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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아덴 사람
!Aqhnai'o"
아덴 사람 Athenian||아데나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17:21; 행 17:22에 나오며, 누가는 아덴 사람들의 새로운 호기심과 즐거움에 대해 언급한다: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경기하다
ajqlevw
경기하다, 다투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들레오(Homer 이래)는 아들로스(%313: 경기, 투쟁)에서 유래했으며, '경기(쟁)나 다툼, 싸움에 참가하다, 다투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들레오는 신약성경에서는 딤후 2:5에만 2회 나온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공동체의 지도자가 참가하는 싸움에는 극도의 노력과 희생의 각오 뿐만 아니라 훈련과 규율에 따른 행위가 요구된다.
싸움
a[qlhsi"
경쟁, 싸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들레시스(Polyb. 이래)는 아들레오($118)에서 유래했으며, '경쟁, 싸움'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들레시스는 신약성경에서 히 10:32에만 나온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노라". 이 싸움은 고난들의 큰 싸움이다. 히 10:33절의 "구경거리"라는 말은 모욕과 박해를 지켜보는 경기장에 있는 구경꾼들의 모습을 환기시킨다. 그 모습과 실체는 마카베오사서 17:14이하에서와 같이 서로 동화되었다.|이 고난들에 대한 인내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고난을 받은 자들에 임하는 위로가 있다(고후 1:5이하). 여기에서 고난은 인내를 이루고 그리하여 믿음이 활동하는 소망을 강화시킨다(롬 5:3 이하).
낙심하다
ajqumevw
낙심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뒤메오(Aeschyl. 이래)는 헬라인들 가운데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부정접두사 $1와 뒤모스($2372)에서 유래했으며, '낙심하다, 의기소침하다, 심령이 상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뒤메오는 70인역본에서 11회 나오며, 히브리어 하라(분노가 타오르다, 격분하다)를 번역하여 그런 의미를(삼하 6:8; 대상 13:11; 삼상 15:11), 낙가즈(떠는, 전율하는)를 번역하여 그런 의미를(신 28:65), 라암(천둥치다)를 번역하여 '번민하다'(삼상 1:6)|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뒤메오는 신약성경에서 골 3:21에만 나온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아드로이조
ajqroivzw
모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드로이조(Hdt. 이래)는 아드로오스(%314: 여럿이 모이다)에서 유래했으며, '함께 모이다, 회집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드로이조는 70인역본에서 16회 나오며, 대부분 카바츠(모이다, 모으다)를 번역하여 '모이거나, 모으는' 것(창 49:2; 삼상 7:5; 왕하 6:24; 대상 16:35; 겔 36:24), 나가드(쏟다, 사라지다)를 번역하여 '살해되는' 것을 나타낸다(렘 18:21).||#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드로이조는 신약성경에서 한번 눅 24:33에서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것을 나타낸다: "곧 그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무죄한
a[qwo"
무죄한, 결백한 innocen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도오스(Eur. 이래)는 부정접두사 %107와 도에(%316: 형벌)에서 유래했으며, '형벌을 받지 않은, 형벌을 면한, 결백한'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아도오스는 70인역본에서 60여회 사용되었으며, 주로 '결백한, 형벌을 면한(받지 않는)'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출 21:19; 시 25:6; 시 73:13 등).||#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아도오스는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에서만 2회 나온다.||(a) 마 27:4에서 "무죄한 죄"에 대해 사용되었다. 예수님은 결백하시기 때문에 형벌을 받지 않아야 하는 분이시다. 따라서 예수님의 피는 형벌을 면한 무죄한 (자의) 피이다.||(b) 마 27:24에서, 빌라도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라고 말하였다. 이는 '이 사람에 대한 살인죄의 벌은 나에게 부과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염소의
ai[geio"
염소의 of a goa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이게이오스(Homer 이래)는 아익스(**: 염소)에서 유래되었으며, '염소의'를 뜻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아이게이오스는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히브리어 에즈(암염소, 염소털)를 번역한다(출 25:5; 35:6; 35:26; 민 31:20).||#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아이게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히 11:37에 한번 나온다: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물가
aivgialov"
해안, 해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이기알로스(Homer 이래)는 '해안, 해변'을 의미하며, 대부분 바다에 대하여, 그리고 호수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아이기알로스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오며 해변에 대해 사용되었다(삿 5:17).||#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이기알로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바닷가, 해변'을 의미한다(마 13:2; 마 13:48; 요 21:4; 행 21:5; 행 27:39; 행 27:40).
애굽 사람
Aivguvptio"
애굽 사람 Egyptian.||아이귀프티오스는 국민을 나타내는 형용사로서 '애굽 사람'을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회 나오며, 사도행전(4회)과 히브리서(1회)에만 사용되었다.||(a) 애굽 사람은 모세의 행위와 관련하여 나타난다.|① 행 7: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② 행 7:24,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③ 행 7:28, "네가 어제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b) 애굽 사람은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폭력의 수단을 구했던 자로 나타난다: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행 21:38).||(c) 애굽 사람들은 믿음으로 행한 자들과 대조된다: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히 11:29).|(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애굽
Ai?gupto"
애굽 Egypt.||#1. 헬라어의 의미.||아이귀프토스는 Homer(odyssey)에 처음으로 나타나며, 애굽의 고대 수도인 멤피스(Memphis)의 별칭인 애굽어 하쿠프타(hi-ku Ptah)에서 유래했다. 하쿠프타는 일반적으로 '프타(Ptah)의 '카(ka)의 영혼의 저택'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하쿠프타, 곧 멤피스는 하부 이집트의 수도이고 애굽 전체의 수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단어는(헬라인들에 의해?) 수도 뿐 아니라 그 나라까지 포함되도록 그 의미가 확대되었으며, 그것은 현대 아랍어 미츠르(카이로)가 이집트에 적용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애굽은 젖줄인 나일강에 의해 유지되었으며, 고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북동 아프리카에 자리잡은 나라이다. 고대 애굽의 영토는 북쪽으로 지중해 연안으로부터 남쪽으로 나일강 제 4폭포에 이르기까지의 광할한 지역이었다.||#2. 구약성경 및 70인역본.||아이퀴프토스는 70인역본에서 히브리어 미츠라임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창 10:6), '동쪽'이란 의미로 사용했다고 하지만 아마도 애굽의 지리적 이중성(긴 계곡, 넓은 삼각주)과 제도의 이중성(바로 왕조 및 행정부의 두 가지 기원과 형태)을 반영한다고 한다. 미츠라임이 일반적으로 상, 하 애굽 전체를 가리키지만 사 11:11에서는 '바드로스'(상 애굽)과 구분하여 하 애굽만을 가리킨다.|구약성경 및 70인역본에서 애굽의 중요성은 7개 제목으로 살펴볼 수 있다.||(a) 애굽은 하나님의 세계의 일부이다.|① 창 10:6, 13에서 미츠라임은 애굽과 애굽 사람의 조상 또는 그 이름의 시조가 되는 인물로 나타난다. 이는 하나님의 세계에서 지상의 종족 중에 그들의 자리를 마련해준 것이다.|② 창 15:16에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는 경계가 애굽의 나일강 동편에 있다.|③ 애굽은 문화적으로, 고운 베(잠 7:16; 겔 27:7), 화려한 병거와 군마(왕상 10:28-29; 아 1:9)로 유명했다.|④ 슥 14:18-19에 보면 애굽은 다른 나라들, 앗수르나 바벨론처럼 특별히 월등한 이방 세력이었으나 그들처럼 애굽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복종하게 되어 있다.|⑤ 암 8:8; 암 9:5에서 나일강 홍수가 연례적으로 휩쓰는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서운 심판의 상징이었다.||(b) 애굽은 피난처와 체류지이다.|① 인간적으로 선택하는 곳이다. 창 12:10-13에서 아브라함은 기근을 당했을 때 하나님이 아니라 애굽에서 구원을 찾았다. 창 16:1에서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하갈을 데리고 왔는데, 아브라함과 사래는 자식이 없자,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인간적으로 하갈에서 찾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여종'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에 의해 이루어졌다.|②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곳이다.|창 37:29-30에서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애굽을 이스라엘 집안을 위한 피난처로 마련해 주셨고, 거기서 이스라엘은 한 국가로 성장했다.||(c)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셨다. 애굽은 이스라엘의 "종되었던 집"이었으며, 거기서 하나님은 그의 권능과 이적으로 이스라엘을 구하셨다(출 1-15장; 출 20:1 등). 이러한 구출은 광야에서 회상되었고(출 23:32; 레 11:45; 25:38 등) 이스라엘의 적에게 영향을 주었다(수 9:9; 삼상 4:8; 6:6). 그 후 애굽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 즉 사사 시대(삿 2:1, 2; 삼상 8:8; 10:18)와 솔로몬(왕상 8)과 그 후의 왕들 치하에서(예: 왕하 17:7), 그리고 바벨론 포로시대 이후에도(느 9:9, 18) 반역의 이스라엘을 끌어내신 중요한 시발점으로서 몇세기동안 되새겨져 내려왔다. 시편 기자들은 그에 관해서 노래했으며(예: 시 78:12, 43, 51; 80:8; 106:7, 21), 선지자들은 소리높이 합창했다(예: 렘 2:6외, 여러곳; 겔 20장; 단 9:15; 호 12:9, 13; 암 2:10; 9:7; 학 2:5). 호 11:1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아들로 부르며 애굽에서 불러내었다고 한다.||(d) 애굽에서 구원은 후대의 속박과 구원의 척도이다.|미 7:15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이적은 미래 행동에 대한 척도이다. 애굽은 다시는 전 이스라엘 민족의 망명지가 되지 않았으나(호 11:5), 후에 영적 속박, 예를 들면, 우상 숭배(호 8:13; 호 9:3) 같은 속박의 상징이 되었다. 미래의 이스라엘의 구원은 애굽에서 구원을 상징으로 하여 나타내었다(사 11:11; 호 11:11; 슥 10:10).||(e) 후기 역사의 상황에서 애굽의 역할이 나타난다. 출애굽 시대 이후에 애굽의 역할은 다양하다. 애굽은 때로는 피난처로(왕상 11:40; 렘 26:21 이하), 동맹국으로(왕상 3:1), 때로는 적으로(왕상 14:25 이하; 왕하 23:33-34), 그러나 때로는 도움을 구하는 잘못된 신뢰의 목적을 가진 덫으로(왕하 17:4; 참조: 왕하 18:21 등) 나타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애굽의 "힘"을 의지했기 때문에, 정치적 속박과 그와 유사한 새로운 형태의 속박에 얽매이게 되었다(사 30:31장; 렘 2:18, 36; 렘 37:5, 7; 렘 41:17; 렘 42-44장; 겔 17:15; 23장; 호 7:11, 16; 호 12:1).||(f) 애굽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다. 하나님은 이사야(사 19:20), 예레미야(렘 46장), 에스겔(겔 29-32장), 요엘(욜 3:19)을 통해 애굽의 자만심과 자기 주장, 언약의 백성을 공격한 것에 대한 심판이 선언되었다.||(g) 애굽은 또한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도 된다. 애굽은 회복과 하나님의 치유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사 19:19-25에서 앗수르, 이스라엘과 더불어 애굽 역사 "그의 백성"이 되어 여호와를 경배하고 치유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겔 29:13-16에 보면 애굽은 과거의 악에서 떠나고 겸손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한다.||#3. 신약성경||아이귀프토스, 즉 애굽이란 말은 신약성경에서 23회 나오며, 신약성경에 나타난 애굽의 역할은 구약에 나타난 애굽의 역할과 거의 일치한다.||(a) 애굽은 하나님의 세계의 일부이다. 행 2:10에서 오순절에 애굽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의 큰 역사가 그들 자신의 방언으로 선포되는 것을 들었다: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b) 애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해낸 속박을 나타낸다.|①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하는 권능의 모범이다(행 7:9 이하; 행 13:17).|② 출애굽 사건은 그 후 이스라엘의 불신실함과 죄악의 본보기로서 묘사되었다.|·행 7:39-행 7:40,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치 아니하고자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40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히 3:16,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히 8:9,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유 1:5,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c) 애굽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불러내신 피난처이다.|마 2:13; 마 2:15; 마 2:19,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옛 족장 이스라엘과 그의 백성이 애굽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았고(창 45:5, 7)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의 "아들"로서 그곳에서 불러내신 것처럼(호 11:1), 아기 예수님도 하나님의 명에 의해 애굽으로 피하게 되었으며(마 2:13), 호세아의 말을 끝까지 이루기 위해 그곳에서 나왔다(K. A. Kitchen).|마태는 호 11:1 인용절("내가...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에서 그 거룩한 주의 가족이 애굽에서 돌아온 것을 이 예언의 성취로 보았다. 성취라는 차원에 있어서 이것을, 장차 올 것에 대한 예언이 그대로 적중하였다는 의미로 이해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호세아가 분명히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지, 예수님이 어릴 때에 애굽으로부터 돌아온 것에 관해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보다 더 깊은 의미에서의 성취인 것이다. 즉 지정한 하나님의 아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 그것도 호세아가 언급하고 유대인들이 역사상의 위대한 사건 중의 하나로 간주하는 본래의 출애굽 사건은 외견상 무의미하게 보였으나 사실상 인류를 위하여 가장 뜻깊고 중요한 것으로 판명될 바로 그 사건의 예시적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Colin Bown).||(d) 애굽은 물질주의와 세속 율법의 상징이다.|① 히 11:26-히 11:27,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여기서 모세는 신앙의 길에서 그의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애굽의 지위와 재물을 거절하였다. 우리는 히 11:24-히 11:26에서 '강건한 믿음의 자격'을 발견한다.|첫째로, 이것은 감각적이고 일시적인 복보다 영적 도덕적 가치의 우월성을 시사하여 주며(히 11:25-히 11:26),|둘째로, 영원한 가치가 그리스도의 편에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음을 확신한다(히 11:24-히 11:25).|셋째로 강건한 믿음의 자격은 영원한 이익을 위하여 일시적인 이익을 버리는 것이다(R. S. Taylor).|② 계 11:8,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여기에 하나님과 반대되는 반역적 세속성이 대조되어 있다. 거기에는 신실한 자들의 살해되 시체들이 위선적인 예루살렘과 방탕한 로마에 어울리는 "소돔과 애굽"이라고 불리운 성읍의 거리에 널려 있다.|(참조: ISBE; PEB; K. A. Kitchen).
영원한
aji?dio"
영원한 eternal||#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이디오스는 아에이($104)에서 유래했으며, '영원한, 끊임없는'을 의미한다. 고전 헬라어 문헌에서 하나님의 영원성과 로고스의 영원성에 대하여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아이디오스는 70인역본 지혜서 7:26에 "지혜는 영원한 빛의 찬란한 광채"라고 했고, 마카베오사서 10:15에서 "전제군주의 영원한 형벌"이란 표현이 나타난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아이디오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a) 롬 1:20에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b) 유 1:6절에 타락한 천사들의 '영원한' 결박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참조: J.H.Thayer; H.Sasse; J.Guhrt).
경건한
aijdwv"
경건, 겸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이도스는 호머(Homer) 이래로 나타나며,||(a) '경외' awe, '경의' reverence(Pindar, Plato),||(b) 겸손 modesty(Hdt.1, 8)을 의미하며, 아주 드물게 사용된다.|본래 이 용어는 데이논(두려운 자) 앞에서 경외하는 것이나 경외하는 태도를 나타내는데 헬라인들에게 있어서는 데이논(deinon)은 신들의 형상으로 존경받을 만한 어떤 힘, 운명, 정의, 혹은 계율을 의미한다(Hesiod, Works 197 이하).||아이도스는 하나님, 제사장 맹세에 대한 존경을 의미를 의미하며, 따라서 유세베이아($2150), 곧 경건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그리고 아이도스는 신성하게 제정된 제도들(예: 가정, 결혼, 환대에 대한 계율 등)이나 혹은 특전을 지닌 어떤 인물들(예: 왕, 웅변가와 가수, 부모와 노인들 등)에 대한 존경을 의미한다. 또한 이 말은 포보스(phobos), 곧 어떤 재앙이나 현재의 상황을 변화시키는데 대한 두려움(fear)의 의미로 사용되어 '마음 조이게 하는 도피'를 의미하기도 한다(Aristotle).||본래 헬라인들의 자기 이해를 위한 기초 개념이었던 아이도스는 후기에 이르러 그것을 속박하고 있던 끈을 풀고, 개인 윤리에 있어서 자존심, 명예나 부끄러움에 대한 헬라인들의 감각을 의미하는 하나의 독립적인 개념으로 되었다(Stoics, Epictetus 등). 이러한 의미에서 아이도스는 신중함(prudence), 훈련(discipline)을 뜻하는 말인 소프로쉬네($4997)와 자유(freedom)를 뜻하는 말인 엘류데리아($1657, 자유), 즉 "가치 있는 인간의 태도"(R. Bultmann, TDNT I 170)와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 말이 아이스퀴네($152)라는 말과는 별도로, 계급 체제로 분화되어 있는 한 사회 속에서 엘리트(elite)와 귀족 계급에만 제한되어 사용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H. G. Link, E. Tiedtke, DNTT).||일찍이 이 단어는 분명한 단어 아이스퀴네($152)와 연관된다. 아이스퀴네($152)는 부끄러운 행위나 상태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함을 뜻하며, 따라서 때때로 부끄러운 행동, 천한 태생, 불명예, 치욕을 의미하기도 한다.(Bultmann, TDNT)||#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아이도스는 70인역본에서 외경에서만 2회 나오며, 의미심장하게도 이 말은 겸손이라는 의미로 마카베오삼서 1:19, 그리고 고령자에 대한 경의를 뜻하는 말로 마카베오삼서 4:5에 나온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이도스는 2회 신약성경에서 히 12:28과 딤전 2:9에서만 나타난다.||(a) 히 12:28에서 아이도스를 그 본래의 의미인 '하나님에 대한 경외'라는 뜻으로 사용하는데, 이것은 율라베이아(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와 병행된다.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b) 딤전 2:9은 여자들의 바른 행실을 '겸손(한 태도)'과 정절로 묘사하고 있다. 이 문맥(딤전 2:10)은 여기에서 강조되고 있는 바가 옷을 수수하게 입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여인의 참된 장식물로 간주되는 "선행"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아이도스와 소프로쉬네($4997)는 신약성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이 말들이 동료 인간들에 대한 존경과 자제를 요구하는 스토아 철학의 미덕들처럼 독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의 존재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의해 정의되지 않고 하나님 및 이웃에 대한 관계에 의해 정의되며, 이웃에 대한 관계는 국가나 우주에 대한 의식보다는 이웃의 요구에 의지하기 때문이다.|헬라어 아이도스는 신약성경에서 아가페로 바뀌었다.|(참조: R. Bultmann; H. G. Link; E. Tiedtke).
에디오피아 사람
Aijqivoy
에디오피아의, 에디오피아인 Ethiopian.||아이디옵스는 아이도(%217: 태우다)와 옵스(%57: 얼굴, 얼굴이 거무스레한)에서 유래했으며, '에디오피아의, 에디오피아 사람'을 의미한다.||#1. 구약성경||구약성경에서 에디오피아는 "구스"라는 이름으로 나온다(창 2:13; 창 10:6-8; 삼하 18:21-23; 대상 1:8-10; 사 11:11 등).||#2. 신약성경||신약성경에서 아이디옵스는 행 8:27에 한번 나온다: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ai|ma
피 bloo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a) 명사 하이마(Homer 이래)는 '피 blood'를 의미하며, 세속적 용법에서 사람과 동물의 피를 가리킨다. 이미 호머의 작품에서 하이마는 생명의 담지자이며, 생명력이라는 생리학적 의미로 사용된다. 피는 사람과 짐승의 생명을 유지하는 전제 조건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육체적 조직상 필요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이다.||(b) 하이마는 또한 호머 작품에서 은유적으로 '혈통'을 의미한다. 피는 생명의 거점이므로, "피를 흘린다"는 표현은 일찍부터 이미 "죽이다"라는 말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Aesch., Eumenides 653).||(c) 하이마는 제의적 용법에서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피는 인신 제물에 있어서, 그리고 그것을 대신하는 동물 제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헬라인과 로마인들은 죽은 사람을 위하여 피 제사를 최초에는 시신 위에 피를 뿌렸으며, 나중에는 화장용 장작에, 그리고 마지막에는 묘지 내부와 봉분 위에 뿌렸다(Il., 23, 24; 참조: Od. 11, 35, 50, 96).|피를 흘리게 한 죄는 피로써 속해야 한다. 오레스테스(Orestes)는 자기 어머니의 피를 흐르게 하였으므로, 에리니에스는 그의 피를 마시고 싶어 하였다(Aesch., Eumenides, 261f.). 그러나 사람의 피 대신 동물의 피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오레스테스는 어린 돼지의 피로 깨끗하게 되었다(Aesch., Eumenides 28f.).|제물로 바쳐진 피에는 강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Heraclit., Frag. B5; Diels, I, 78). 짐승의 피나 때때로 사람의 피도 마시거나 뿌리는 여러 가지 피 의식들이 특히 비, 번영, 해(harm)를 부르는 마술적 의식에 채택되었다. 피를 마시는 것, 특히 살해한 원수의 피를 마시는 것(Hdt., 4, 64, 1)은 힘을 주고 예언하는 능력을 가져온다고 믿었다(Pausanias, 2, 24, 1). 피로 언약을 맺을 때에는 핏방울을 잔 하나에 받아서 포도주에 타 모든 참석자들이 마셨다.(참조: F. Laubach).||#2. 70인역본의 용법.||(a) 명사 하이마는 70인역본에서 약 400회 나오며, 거의 모두 히브리어 담(피)의 역어로 사용되었고, 그리고 네차흐(포도의 '즙', 비유적으로 '피, 흘린 피')의 역어로 2회(사 63:3, 6), 루아흐(영)의 역어로 한번(욥 6:4) 사용되었다.||(b) 구약성경에서도 고전에서와 같이 피는 생명의 좌소였다. 피는 생명의 담지자이며, 영혼은 피 속에 거한다(창 9:4; 레 17:11; 레 17:14; 신 12:23; Jub. 6:7; Josephus Ant. 1. 102, 등).||(c)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유일한 주이시다. 그는 사람의 피와 생명을 주관하신다(겔 18:4). 그래서 그는 무고한 자가 흘린 피에 대하여 보복을 하신다(창 9:5; 렘 51:35이하). 흘려진 인간의 피는 복수를 부르짖으며(창 4:10; 참조: 히 12:24; 계 6:10) 동시에 그 피 자체가 살인자의 죽음을 가져온다(수 2:19; 삼하 3:28이하; m. Sanh. 4:5). 살인자(사 59:3)와 땅(창 4:11이하; 겔 7:23)은 희생자의 피로 말미암아 "더럽혀"지며, 출산과 월경의 피도 부정하게 한다(레 12; 15:19-33; 1Enoch 15:4; Josephus Ant. ⅲ. 216).||(d) 동물의 피도 거룩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피의 식음은 금지되었다. 이 법을 어기는 행위는 사형에 처한다는 조건으로 엄금하였다(창 9:4; 레 3:17; 레 7:26; Jub. 6:12-14 등). 특별한 도살의 방법 즉 적법한 도살은 동물의 피를 뺄 것을 확언한다(신 12:16; 신 12:23 이하; Josephus Ant. ⅵ. 120f, etc.). 레 17:8; 레 17:10; 레 17:13; 레 17:15은 이 법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이교도 거주지역에 살고 있는 외국인, 즉 "이방인"에게도 적용됨을 강조하고 있다.||(e) 구약성경에서 희생제의 체계는 대부분 피의 속죄하는 능력에 바탕을 둔다(출 29:20이하; 레 3:2, 8, 13 등). 희생 제물로 사용된 동물의 피는 제단의 대에 뿌림으로써 하나님께 되돌려졌다. 피는 제단(출 29:16; 레 3:2)과 대제사장(출 29:21), 그리고 성전 휘장(레 4:6; 민 19:4)에도 뿌려졌다. 제물로 사용된 피의 효력은 속죄(레 16:6; 레 16:15이하), 정화(레 14장), 그리고 성화(출 29:30 이하)였다. 피는 깨끗하게 하는 제사에서 죄를 없이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특히 속죄일에 모든 죄가 속죄였다(레 16장). 또 피는 제사장과 백성들과 성전을 깨끗하게 하였다(대하 29:23 이하).||(f) 그리고 모세는 제단과 백성들에게 언약의 피를 뿌림으로써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에 피의 언약을 세웠다(출 24:3-8).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장자를 죽음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다(출 12:22 이하). 마카베오사서 6:29; 17:29; 17:22에서 순교자의 피는 속죄하는 힘을 지닌다는 사상이 있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하이마는 신약성경에 97회 나오며, 대부분 히브리서와 공관복음서에(각각 21회씩), 그 다음으로 요한계시록에 19회, 바울 서신에서 12회 사용되었다.|단연, 가장 빈번히 주의 만찬에 대한 문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관련된다. 이에 더하여 희생 제물의 피의 효력에 대한 히브리서의 사색은 그리스도론 진술에 대한 근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학에 의하여 더 결정되거나 비유적으로 피에 대해 말하는 하이마 본문들이 있다. 신약성경의 주의 만찬에 대한 교리와 세례(침례)에 관한 어떤 진술의 이면에는 초기 유대교의 피의 의식과 고대 피의 상징의 요소가 놓여 있다.||(a) 하이마의 기본적인 생리학적 의미는 '피', 사람의 피를 의미한다. 사람의 피로서의 하이마는 동물의 피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요 19:34과 요 1:13에서 이러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요 19:34에서 예수님의 피에 대하여 언급한다: "그?중?한?군병이?창으로?옆구리를?찌르니?곧?피와?물이?나오더라". 사람의 몸의 성분은 '살과 피'로 되어 있으며 그것 자체로서는 연약하다. 사람은 위엄의 하나님과 대조되는 흙으로 된 연약한 창조물인 살과 피이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사람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그 분 자신의 권한에 대항할 능력이 없는 자로서 혈육이다: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갈 1:16).|사람은 무력하고 영속적이지 못한 자로서 혈과 육이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고전 15:50).|영적 세계에서 그의 작음(littleness)으로 인하여 혈과 육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엡 6:12)". 또한 그의 물질적이고 죽을 본성을 지닌 혈육이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히 2:14). 마지막 구절만이 인간의 세상에서의 육체적인 본성의 물질적인 측면을 훨씬 더 뚜렷하게 강조하기 위해 의도된 것 같다.|피는 인류의 계속되는 생명을 유지시킨다. 요 1:13의 표현에 피가 '종(species)의 계속되는 생명의 운반자'라는 물질적인 관념이 깔려 있다: "혈통으로 나다"에서 특별히 복수 하이마타를 사용하여 자녀 속에 흐르는 생명을 전하는 양친들의 피의 결합을 나타낸다. 행 17:26에서도 같은 사상이 발견된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인류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끈이 되는 혈통의 조상의 피이다.||(b) 행 15:29에 기록된 사도들의 결의에 대한 본문에서 동물의 피를 먹는 것을 금지한 것은 피의 신성함에 대한 구약의 믿음에 기초한 것이다: "피를 멀리 하라"(행 15:20; 행 21:25). 동물이 희생 제사로 드려질 때, 생명의 운반자인 그 동물의 피는 하나님 앞에서 속죄의 수단이다(레 17:11). 따라서 일반적으로 피를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레 17:10; 레 17:14; 레 7:26 이하; 레 3:17; 신 12:23; 창 9:4). 이 금지의 유효성이 삼상 14:32 이하; 욥 6:7; 욥 6:12 이하; 욥 7:28 이하; Damasc., 4, 6; Eth., En., 98:11; 7:5; Jos. Ant., 3, 260와 같은 구절들에 의해 입증된다.||(c) 피를 흘리는 것은 생명을 담고 있는 것, 따라서 생명 그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마는 '흘러 나온 피', '폭력적으로 파괴된 생명', '죽음' 또는 '살인'을 의미한다.||① 이런 의미로 예수님의 살해에 대해 사용되었다.|- 마 27: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마 27:24,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행 5:28,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② 그리고 동일한 의미로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예수님의 증인들의 살해에 대해 사용되었다.|- 마 23: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마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 가리라".|- 눅 11:50; 눅 11:51, "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계 16:6,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계 17:16, "네가 본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계 18: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계 19: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③ 유대와 헬라의 하이마 엑케오(또는 엑퀴노)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의 용법과 일치하게 실제로 피를 흘렸다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을지라도 '죽이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눅 11: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행 22: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 롬 15: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계 16:6,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④ 하나님께서는 살인으로 흘려진 피에 대해 복수하신다.|- 계 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계 19: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눅 11:50; 눅 11:51, "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마 27: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 마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 가리라".|- 행 5:28,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행 18:6,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떨어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⑤ 사도의 결의에 대한 서방 역본에 의하면 살인의 금지, 즉 아페케스다이 하이마토스(행 15:29)는 기독교인 행위의 기본적인 원칙 중의 한나이다(G. Resch, Das Aposteldekret, 1905; A.V.Harnack, Ag., 1908).|⑥ 히 12:4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는 말은 순교로 목숨을 잃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죄에 대한 극도의 저항을 군사의 부상 당하는 싸움의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⑦ 행 20:26의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에서 하이마는 다나토스($2288: 죽음) 또는 죄인에 대한 심판으로서의 영원한 죽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행 18:6에서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⑧ 히브리서에서 하이마는 때때로 구약의 제사와 의식에서 흘린 동물들의 피를 의미한다. -멸하는 천사를 피하기 위해(히 11:28), 하나님의 명령(언약)을 세우기 위해(히 9:18),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그릇들을 신성하게 하기 위해(히 9:21), 그리고 속죄와 정화를 위해(히 9:7; 히 9:12 이하; 히 9:22; 히 9:25; 히 10:4; 히 13:11) 피를 뿌렸다.||(d) 신약성경에서 하이마는 그리스도의 피,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관련하여 신학적으로 최고의 중요성을 가진다.|그리스도의 피, 고전 10:16; 엡 2:13; 히 9:14.|예수의 피, 히 10:19; 요일 1:7.|예수 그리스도의 피, 벧전 1:2.|주의 피, 고전 11:27.|어린 양의 피, 계 7:14; 계 12:11.|그리스도의 육체의 피가 아닌 폭력적인 죽음에서의 피흘림이나 피 흘려진 것이 중요하다. 신약성경의 관심은 여기에 있다. 십자가처럼, "그리스도의 피"는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 신학적(soteriological) 의의에 있어서 단순히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또 다른 하나의 표현, 또는 더욱 생생한 표현이다. 이 피는 새로운 언약을 세운다.|성만찬의 표현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피는 새로운 하나님의 언약($1242)의 실현의 보증이다.|- 고전 11:25,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막 14:24,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폭력에 의한 예수님의 죽으심이 렘 31:31 이하에 약속된 하나님의 새 언약의 효력을 확증하고 보증한다. 렘 31:31 이하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사람들의 마음에 기록하시고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시내의 거룩한 옛 언약이 피에 의해 보증되고 시작된 것처럼(히 9:18 이하; 출 24:8). 그 선물과 함께 새 언약도 예수님의 피에 의해 확립되고 유효하게 된다.|예수님의 피, 곧 예수님의 죽으심은 이 언약($1242)의 선물의 하나인 용서의 보증이 되는 것이다. 용서가 피의 복수를 대신한다(창 4:15; 창 4:24과 함께 마 18:2 이하 병행구절 눅 17:4을 참조하라). 행 20:26에 따르면 영원한 죽음에 이르는 죄는 바울이 말한 피에 대한 범죄이다(행 18:6; 고전 11:27). 세례(침례)는 "옛 자아"에 대한 사형의 형벌에 대한 실행이다(롬 6:4; 롬 6:6; 롬 6:8; 골 2:20; 골 3:3; 참조: 갈 2:19). 전도의 습관에서뿐만 아니라 신학적인 의견에서도 할례를 대신한다. 그것은 인간의 손으로는 이룰 수 없는 완전하게 죄를 없이하는 "그리스도의 할례"이다(골 2:11 이하). 고전 7:19에 따르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할례의 의식을 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참조: 갈 5:6; 갈 6:15). 마음에 행하는 할례는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율법의 글 속에서가 아니다(롬 2:29).|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피의 희생제사라고 설명한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요 1:29; 요 1:36; 요 19:36; 행 8:32; 벧전 1:19)인 동시에 수양(계 5:6; 계 5:12; 계 13:8 etc)이며, 대신하여 그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친(엡 5:2) "속죄 염소"(요 1:2; 참조: 레 16:20-22)이다. 그는 동시에 높으신 제사장이며 희생 제물이다(히 9:11-10:18).|고대의 신앙이 죄를 깨끗이 하고 뿌리째 뽑는 희생제물의 피에 건 모든 희망은 신약성경의 예수님의 피에 관한 진술에서 그 정점에 이른다. 그리스도의 피는 죽은 행실에 대해 그 양심을 깨끗하게 하므로 염소와 황소의 피보다 낫다(히 9:11-14; 히 9:25; 히 10:4). 그것은 죄를 정화함으로써 의롭게 한다(롬 3:25; 롬 5:9; 엡 1:7; 히 9:13 이하; 히 10:19; 히 10:29; 히 13:11 이하; 요일 1:7-9; 계 1:5; 계 7:14; 계 12:11). 마 26:28과 병행구절 막 14:24에 언급된(눅 22:20; 고전 11:25; 히 10:29) "언약의 피"가 있는 구약의 모세의 언약처럼 예수님의 피의 언약(고전 10;16; 히 9:15-22; 히 13:20)도 "뿌리는" 방법으로 세워진다(히 12:24; 벧전 1:2의 란티스모스; 히 10:22의 란티세스다이). 그의 피와 함께 그리스도는 그에게 속하는 자들을 사셨고(행 20:28; 벧전 1:18 이하; 계 5:9; 엡 2:13) 십자가 위에서 우주의 화해를 이루셨다(골 1:20)||이미 구약과 유대교의 관념적인 세계에서는 한편으로 피와 물(참조: 출 4:9; 출 7:17-25; 출 29:4; 출 29:20; 레 14:5-7; 레 14:50-52)이, 다른 한편으로 피와 포도주(참조: 창 49:11; 신 32:14; 사 63:1-6; 렘 13:12 이하; 렘25:15-28; 집회서 39:26; 50:15; 마카베오일서 6:34 등)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므로 신약의 상징적인 견해가 세례(침례)의 물과 예수님의 피의 희생제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성찬식의 포도주를 마시는 것 모두를 행하고 기념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세례(침례)와 성찬식은 함께 가장 완전한 의미를 이룬다(고전 10:1-6; 고전 12:13; 요일 5:6-8). 따라서 요 19:34에서 그것들은 예수님의 주검, 즉 그의 희생적인 죽음에 의한 "피와 물"로 규명된다. 죄를 완전히 제거하고 생명을 가능케 하는(참조: 요 1:9) 이 죽음에의 참여는 성찬과(요 6:53-56) 세례(침례)(참조: 요 3:5; 요 13:2-11) 모두를 행한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포도주를 마시는 것과 피의 세례(침례)이다(막 10:38 이하; 참조: 마 20:22 이하; 눅 12:50).|순교의 신학은 피의 증언을 세례(침례)로 이해할 수 있다(막 10:38 이하; 눅 12:50). 역으로 세례(침례)는 골 2:11 이하에 의하면 참된 할례이다. 이러한 이유로 속죄하고 구속하는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언급들은 멀지 않아서 세례(침례)에서 확고한 자리를 찾는다(히 10:19; 히 10:22; 히 10:29; 벧전 1:18 이하; 히 9:14; 참조: 롬 6:3).|그러나 기념하는 공동체가 성찬의 주되신 주님의 피의 제사에의 참여를 인정받는 것은 원래 성찬식에서이다. 예수님의 해석하시는 말씀에 의해 명백히 그가 죽으실 때 흘리시는 피와 관련된(막 14:24; 병행구절 고전 11:25; 참조: 요 6:55 이하) 성찬의 포도주 언약(고전 10:16)은 출 24:6-8의 옛 피의 언약을 닮은 새 피의 언약(히 9:15-18; 히 13:20)이다(마 26:28 병행구절 막 14:24; 히 9:18-22). 초기의 공동체는 속죄하는 피의 의식을 더할 필요 없이 성찬식의 포도주를 마실 때에 희생 제물의 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효력있는 정화하는 피의 능력을 체험한다(히 9:13 이하).||(e) 묵시적 언어에서 하이마는, 전쟁(행 2:19), 우박과 불(계 8:7), 물의 변화(계 8:8; 계 11:16; 계 16:3 이하), 색이 변한 달(계 6:12; 행 2:20), 민족들에 대한 심판(계 14:20,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과 같은, 땅과 하늘의 종말론적 공포를 나타내는 피와 비슷한 붉은 색을 의미하기도 한다.|출 7:17 이하는 구약성경의 재앙의 표적으로 하이마(붉은 색)를 사용하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묵시적 사용은 욜 3:3(70인역본에서 욜 2:30 이하) 이하에서 발견된다. 사 63:3에서 포도 추수는 종말론적 이미지이다.|(참조: J. Behm; O. Bocher; F. Laubach).
피흘림
aiJmatekcusiva
피흘림 shedding of blood.||#1. 일반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하이마텍퀴시아는 하이마($129: 피)와 엑퀴노(%894)에서 유래했으며, `피흘림'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하이마텍퀴시아는 신약성경에서 히 9:22에 한번 나오며, `피흘림'을 의미한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이 단어는 여기서 부음이나 뿌림을 언급하지 않고 희생제사에서의 피흘림을 나타낸다. 요점은 용서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 생명을 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오로지 구약성경에서만 이미 묘사되어 있는 이것은 이제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다.|(참조: Walter Bauer ; J.Beh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