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홈 > 성경 > 성경주석구약 > 열왕기상
열왕기상
열왕기상 주석



성 경: [왕상1:1-4]

본문은 다윗 왕의 노환(老患)이 기록되어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본서 저자가 본서 초두에 다윗 왕의 노환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다윗 왕이 노환으로 인해 더이상 국정(國政)을 돌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함으로써, 아도니야가 다윗의 후계자로 자처하고 반란을 꾀하게끔 되는 배경을 제공해 준다. (2) 같은 맥락에서 다윗 왕의 서거(逝去) 이전에 솔로몬이 급히 즉위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제공해 준다(J. Hammond). 한편 노환으로 인한 다윗의 나약한 모습을 다루고 있는 본문은 인생의 무상감(無常感)을 느끼게 해준다. 베들레헴의 이름 없는 목동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위대한 통치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다윗은 실로 파란 만장한 세월을 경험하였다. 이스라엘의 왕이된 이후에도 다윗은 많은 날들을 전쟁터에서 보냈고, 그 결과 이스라엘 영토를 확장하고 성정 건축의 기반을 다지는 등 명군(名君)과 성군(聖君)으로서의 역량을 한껏 발휘했다. 그러나 그 영화로웠던 세월들도 유수처럼 흘러 지나가고, 이제 다윗은 칠십 노인이 되어 바야흐로 인생의 황혼기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성 경: [왕상1:1]

(주); 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 다윗은 30세 왕이 되어(삼하 5:4,5)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 도합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므로(2:11;대상29:27). 이때 그의 나이는 70세였다. 한편 히브리 원문상 '나이 많아'(*, 바 바야밈)와 '늙으니'(*, 자켄)는 종종 같이 연결되어 나타나는 관용어이다(창18:11;24:1;수 13:1).

(주); 이불 - '이불'로 번역된 히브리어 '베가드'(* )는 원래 '덮개'(covering)란 뜻을 가진 단어로서 의복, 겉옷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고(창39:12;왕상 22;10) 침상이나 탁자를 덮는 이불로 사용되었다(Hammond, Keil). 왜냐하면 다윗은 쇠약하여 침실의 침상에서 줄곧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15, 47절).

(주);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 몸의 온기가 떨어진 것은 단순히 나이 많음에서 오는 것 뿐만 아니라 다윗의 젊은 날의 고생 때문이기도 하다(Keil). 혹 병이 들어있는 것인지도 모른다(Hammond). 여하튼 다윗은 초기에는 외부적으로 망명 생활, 숱한 전쟁 등으로 인해 온갖 풍파를 겪었으며, 말년에는 내부적으로 집안의 불화, 반란, 살인, 음모 등으로 인해 심신이 지칠대로 지쳤다. 더욱이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 이후 하나님의 징계로 겪었던 집안의 불화는 결정적으로 다윗을 노쇠케 만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 모든 일이 말년에 노환(老患)이 되어 다윗을 쇠약케 만든 듯하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한편, 본서 초두에서 이처럼 다윗의 몸의 증세를 상세히 알리는 것은 그가 더 이상 나라를 통치하기에는 너무 쇠약해졌음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성 경: [왕상1:2]

원문에는 초두에 '그러므로'(*, 와)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하의 내용은 앞의 다윗의 노쇠를 해결하려는 의도 외에 다름 아니다. 즉 향락이 목적이 아니라 치료가 목적이다.

(주); 그 신복들이 고하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 원문에는 단수, 즉 한 사람의 말로 되어 있다. 곧 '우리 주' 대신 '내 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내용상 그의 말은 다른 모든 신하들의 견해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수로 번역되었다. 이것은 다윗의 상태가 다윗의 모든 신하들을 근심케 하는 심각한 문제였음을 보여준다. 당시 뚜렷한 후계자가 부각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윗 왕의 쇠약은 국가적인 중대사였던 것이다. 한편 유대 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따르면 여기서 신복들은 왕의 궁중 시의(侍醫)들을 가리킨다고 한다(Antiquities of the Jews, , - ).

(주); 고하되 구하여 봉양하고 - 히브리 원문에서 이 말은 허락을 요청하는 형태이다. 즉 '구하도록, 봉양하도록 허락하소서'란 뜻이다. 따라서 다윗은 이를 허락하였다(3절). 이것은 신하들 뿐만 아니라 다윗 자신도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봉양하고'(*, 소케네트)란 말은 '친숙하다', '일하다'란 뜻의 기본 동사 '사칸'(* )에서 파생된 말로 곧 곁에서 간호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주); 젊은 처녀(*, 나아라 베툴라) - 남자 관계가 전혀 없는 나이 어린 동녀(童女)를 가리킨다. 이처럼 특별히 젊은 처녀가 요구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다윗 왕의 체온 저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젊은 동녀의 온기(溫氣)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2) 또한 그녀는 다윗 왕의 후궁(後宮)으로 간주되어졌기 때문에 반드시 처녀여야만 했다(Hammond, Pattersonm, Austel).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 젊은이의 온기를 받아 늙은 몸의 기운을 회복하는 방법은 고대 치료 의술 중 하나로서 갈렌, 그로티우스 등 고대 의사들의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고대 헬라의 명의(名醫) 갈렌(Galen)에 의하면, 젊고 건강한 사람의 체온으로 노쇠한 사람의 체온 저하를 방지하는 치료 의술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다(Galen, Mathus medicus, 8.7). 그러므로 젊은 처녀로 다윗의 품에 눕게 한 것은 분명 눕게 한 것은 분명 그같은 치료 방법을 통하여 다윗의 원기를 회복시켜, 그로 하여금 통치를 계속할 수 있도록 목적한 것이 확실하다.

성 경: [왕상1:3]

(주); 동녀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나라'(* )는 '젊은', '나이 어린'이란 뜻의 '나아르'(* )에서 파생된 말로, 곧 젊은 처녀를 가리킨다. 2절 주석 참조. 수넴 - 수넴(Shunem)은 나사렛에서 대략 11.2Km 떨어진 소(小) 헬몬산(Mt. Little Hermon)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잇사갈 지파의 고을로 현재의 '술렘'(Sulem) 또는 '솔람'(Solam)이란 곳이다. 한편 에스드라엘론(Esdraelon) 평야 지대에 위치한 이 곳은 넓고 비옥한 농토와 숲으로 둘러싸인,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고장이다(수 19:18;삼상28:4).

(주); 아비삭(* ) - 간호와 온기(溫氣)로써 다윗 왕의 봉양할 의무를 띠고 이스라엘 중에서 뽑힌 수넴 출신의 아리따운 동녀이다. 이름의 뜻은 '나의 아버지는 방랑자'이다. 여기서 '아브' 또는 '아비'는 '아버지'란 의미로서, 히브리인들의 이름 중에서 흔히 발견되는 합성어이다. 예컨대 아비야, 아비아달, 아비멜렉, 아비가일, 아비새 등이 있다. 한편, 여기의 '수넴 여자 아비삭'이 솔로몬의 애인 '술람미 여인'(아6:13)과 동일하다는 설(說)이 있으나,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성 경: [왕상1:4]

(주); 동침하지 아니하였더라 - 다윗이 아비삭과 동침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해석으로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즉 (1) 아비삭은 다만 간호의 역할을 하는 시녀였으므로 다윗이 동침하지 않았다는 견해(Bahr, Keil). (2) 다윗이 노쇠하여 무기력했기 때문에 동침할 수 없었다는 견해(Michaelis, Josephus) 등이다. 첫째 견해의 경우, 이 구절은 후에 솔로몬의 이복형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요구할 수 있었던 배경을 제공해 준다(2:13-18). 그러나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요구를 부왕(父王)의 후궁을 요구하여 왕위까지 노리는 불측한 것으로 간주하여 그를 죽인다(2:22-25). 한편 70인역은 아비삭의 봉양을 '함께 누워 흥분케 하는 것'으로 번역하므로 두번째의 견해를 지지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어느쪽으로 해석하든 본문은 다윗의 노쇠함이 심각할 정도임을 강조하고 있다.

성 경: [왕상1:5]

(주);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 - 아도니야(Adonijah)는 헤브론 통치 시절에 다윗이 학깃(Haggith)을 통해 낳은 넷째 아들이다. 첫째는 암논(Amnon)인데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을 통해 낳은 아들이며, 둘째는 길르압(Chileab)인데 갈메 여인 아비가일을 통해 낳은 아들이다. 그리고 셋째는 암살롬(Absalom)인데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를 통해 낳은 아들이며, 넷째가 바로 이 아도니야(Adonijah)인 것이다.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부로부터 37세 때까지 헤브론 통치 시절 도합 6명의 아들을 낳았다(삼하 3:2-5). 따라서 아도니야 역시 헤브론에서 태어났으니(삼하3:5;대상3:4). 당시 아도니야의 나이는 33세로부터 40세 사이였을 것이다(Hammond). 다윗의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대상 3:1-9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주); 스스로 높여서 - 히브리어 '미트나세'(* )는 분수에 맞지 않는 교만한 행동, 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 독자적 행동을 가리킨다(민 16:3;잠 30:32). 그런데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인 까닭은 6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그중 장자의 권리가 가장 기초적인 이유였다. 왜냐하면 암살롬이 죽은 후 다윗의 남은 아들들 중에서는 아도니야가 가장 연장자였기 때문이다(삼하3:2-5;6절 주석 참조). 따라서 때마침 다윗이 늙고 무기력해졌으므로 아도니야가 왕권에 대한 욕심을 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데 있어서는 장자권 보다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선택이었다(신17:15).그리고 이 선택은 이미 솔로몬에게 주어졌었다(삼하 7:12-17; 12:24,25;대상22:6-10). 또한 아도니야도 이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Keil, Bahr, Patterson).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 한 것은 분수를 넘는 일일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 행동이 된다. 그래서 아도니야의 왕의 찬탈 시도에는 '스스로 높여서'라는 부정적 표현이 사용되었다.

(주); 내가 왕이 되리라 - 당시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했던 동기는 다음과 같다. (1) 왕자 중 아도니야의 연장자였던 암논은 다말 사건으로 인하여 피살되었고(삼하 13:29),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을 반역했을 때 군대 장관 요압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18:24), 길르압(다니엘)은 어렸을 때 죽은 것으로 보인다(대상 3:1). 따라서 아도니야는 당시 생존한 왕자들 중 최연장자였으므로 순서대로라면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다. (2) 또한 아도니야는 용모가 준수한 자로 다윗의 총애를 받도 있었다(6절). (3) 그리고 아도니야는 주위의 인물들 특히 군대 장관 요압이나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같은 사람들을 포섭할 만한 정치력이 있었고, 또한 그 같은 사람들에 의해 사주(使嗾)를 받았다(7절).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아도니아는 교만해져서 왕이 되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도니야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뜻과 다윗 왕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역사의 모든 사건은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자는 결국 멸망에 이를 수 밖에 없다(시 107:10, 11). 하물며 메시아의 가계로 선택받은 다윗 집의 사건에 관해서야 더 말할나위 없는 것이다.

(주); 전배 - 직역하면 '앞서 달리는 자'란 의미인데, 이는 곧 왕이나 방백의 행차에 앞서 달리면서 호위 및 길을 정리하는 일종의 경호원을 가리킨다. 일찍이 압살롬도 반역에 앞서 이처럼 병거와 기병과 전배를 준비한 적이 있다(삼하 15:1). 한편 A.D. 1세기 경의 유명한 유대 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 따르면, 수리한 용모하며 야심만만한 기질, 그리고 용의 주도한 정치력 등 모든 면에서 아도니야는 형 압살롬을 닮았다고 한다.

성 경: [왕상1:6]

아도니야가 교만해져 왕이 되고자 한 원인이 설명된다.

(주);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 - 이 말은 당시 아도니야가 다윗의 아들들 중 최연장자임을 밝히기 위해 기록되었다. 즉 다윗의 맏아들 암논은 근친 상간으로 인해 압살롬에게 죽고(삼하 13:28), 셋째 아들인 압살롬 역시 반역하다 죽었다(삼하 18:14,15). 그리고 둘째인 길르압(혹은 다니엘, 대상 3:1)은 이후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어려서 일찍 죽은 것으로 추측된다(Keil, Hammond). 따라서 이제 남은 아들들 중에 최연장자는 아도니야 자신이었던 것이다.

(주);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 -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도 준수한 용모를 가졌으며(삼상 9:2), 아비 다윗 왕에 대해 반역을 일으킨 압살롬도 그러하였다(삼하 14:25). 그리고 다윗도 준수한 용모를 가졌던 것으로 나타난다(삼상 16:12). 사실 지도자에게 있어 준수한 용모는 백성들의 인기를 끄는 데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요인이다. 그러나 육체의 아름다움 보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것이 더 중요한 자격이다(삼상 16:70.

(주); 한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더라 - '한번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야마우'(* )는 '그의 모든 날들로부터'(from his all days)란 뜻이다. 즉 아도니야가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책망을 들은 일이 없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5절의 방자한 행동에 대한 감시 소홀 내지는 후계자로 생각해서 내버려 둔 것이다. 다만 아도니야의 교만한 행위의 원인 중 하나가 다윗이 그를 적절히 훈계치 못한 데에 있음을 암시할 뿐이다(잠 22:6). 여기에 더하여 다윗이 노쇠해지자 아도니야는 부친을 무시하고 동의도 없이 멋대로 왕이 되려 하였던 것이다(18절).

성 경: [왕상1:7]

(주); 스루야의 아들 요압 - 다윗의 군대 장관으로 전공을 많이 세운 인물이다. 비록 요압은 다윗에게 충실하였지만, 그러나 그는 자주 다윗을 거스렸다(2:5;삼하 3:27;20:10). 그래서 다윗에게 잘못 보인 그는 다윗과 선지자 나단의 영향하에서 자란 경건하고 온유한 성격의 솔로몬 보다는 야심 만만하고 준수한 용모의 아도니야에게 가담하여 다윗 사후에도 계속 권세를 확보하려 했다. 즉 요압은 다윗의 바램이나 하나님의 뜻 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실리를 좇아 행동했던 것이다.

(주); 제사장 아비아달 - 사울이 놉의 제사장들을 학살할 때 피하여 다윗의 보호를 받다가(삼상22장), 이후 다윗 통치 하에서 사독과 더불어 대제사장이 된 인물이다(삼하20:25). 오랜 역경의 세월 동안 다윗과 동거 동락해 온 그가 다윗의 뜻을 거스리고 아도니야의 음모에 가담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추측컨대 아비아달은 당시 공동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을 시기한 끝에 아도니야의 음모에 가담한 것으로 해석된다(Keil, Rowland). 즉 성경 기록상 엘르아살 계통의 사독의 이름이 항상 이다말 계통의 아비아달의 이름보다 앞서서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삼하8:17;15:29,35;20:25). 당시 사독이 아비아달 보다 주도적인 위치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Keil, Bahr). 따라서 아비아달은 자신의 대제사장적 가문의 회복을 위하여 아도니야의 음모에 가담한 것 같다(Hammond). 그러므로 혹자(Thenius)의 견해처럼, 군대 장관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달의 왕위 찬탈 음모 가담은 아도니야가 최연장자로서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였기 때문이라는 대의 명분을 좇아서가 아니다(Keil). 다만 그들은 다윗 사후 자신들의 정치적 종교적 강화하기 위한 실리적 목적으로 아도니야의 음모에 가담했다. 결국 요압의 처형(2;28-35)과 아비아달의 추방(2:26,27)이라는 비극적 결과가 이들의 그러한 사욕을 입증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성 경: [왕상1:8]

(주); 제사장 사독 - 사울이 죽은 후 헤브론에 있던 다윗에게 가담한 무리 중 한 사람으로(대상12:28), 아론의 셋째 아들인 엘르아살의 후손 아히둡의 아들이다(삼하8:17). 압살롬의 반란 때 그는 다윗을 편들어 왕궁에 머물면서 후새를 도와 첩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삼하 15:28,29;17:15). 한편 사독(Zadok)은 다윗시대에 아비아달(Abiathar)과 더불어 공동 대제사장으로 있었는데, 이처럼 다윗 시대에 2명의 대제사장이 있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곧 다윗은 도피시절에 사울의 손을 피해 에봇을 가지고 자신에게로 도망쳐 온 아비아달을 대제사장으로 거느리고 있었다(삼상23:6). 그런데 이후 사울 사후에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를 통치하고 있을 때, 이미 아론의 집 족장 여호야다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된 사독이 사울의 나라를 다윗에게 돌리기 위해 헤브론의 다윗에게서 나아왔다(대상12:23,27,28). 그리고 이때 다윗은 또한 사독을 대제사장으로 맞아들였으므로, 결과적으로 다윗의 통치하에서는 2명의 대제사장이 존재케 된 것 같다(Pulpit Commentary).

(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 - 브나야(Benaiah)는 다윗의 전성기에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했던 인물이다(삼하8:18).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들은 외국인 용병으로 왕의 친위대를 구성하고 있었고(38절), 브나야는 이들의 대장이었다(대상 18:17). 본래 브나야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로서(대상 27:5) 레위인이었으나, 그의 뛰어난 무용(武勇)으로 인해 다윗 왕의 시위대장으로 발탁된 것 같다(삼하 23:20-23;대상 11:22-25). 그러다가 브나야는 솔로몬의 명령을 받고 아도니야의 반란 사건에 가담한 요압을 죽인 후 대신 군대 장관이 된다(2:28-35).

(주); 선지자 나단 - 다윗의 신임을 받는 왕궁의 조언자였다. 당시 선지자 나단은 다윗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나단은 다윗의 성전 건축 계획을 솔로몬에게 넘겨주도록 하였고(삼하 7:4-170, 밧세바를 취한 일로 다윗을 꾸짖기도 하였다(삼하 12:1-14). 그리고 나단은 솔로몬 출생시 하나님의 명으로 솔로몬에게 '여디디야'(Jedidiah,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란 뜻)라는 이름을 붙여 준 일이 있으므로, 일찍부터 나단은 솔로몬이 다윗 왕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력히 암시받은 바 있었다(삼하 12:24,25).

(주); 시므이 - 이 사람이 누군지는 확실치 않다. 학자들(Keil, Bahr)은 솔로몬의 열두 관장 중 하나로 임명받은 엘라의 아들 '시므이'(4:18)와 동일시 하기도 한다. 그리고 에발트(Ewald)와 같은 학자는 시므이를 다윗의 형인 '삼마'(삼상 16:9;삼하 21:12) 도는 '시므아'(삼하 13:3)로 보기도 하나 근거는 희박하다.

(주); 레이 - 역시 미상의 인물이다. 요세푸스는 '다윗의 친구'로 보기도 하고, 에발트는 '다윗의 형제'로 보기도 하나 타당성은 없다(Hammond).

(주);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 - '용사들'의 히브리어 '깁보림'(* )은 두목, 수령의 뜻을 갖는다. 특별히 다윗의 37인의 용사들에게 사용되었다. 그들은 주로 가드 족속, 그렛 족속, 블렛 족속 등으로 구성된 용병들로서 다윗의 직접적인 통솔하에 있던 다윗의 오랜 전우들이다(삼하 23:8-39;대상 11:10-12:18).

(주);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 요압과 아비아달이 구세력의 세력이라면, 사독과 나단등은 후기 예루살렘에서 기반을 잡은 신흥 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브나야를 비롯한 다윗의 용사들은 요압의 영향권하에서 벗어난 다윗의 친위 세력이었다. 따라서 아도니야는 이들을 포섭하는 데 실패했고, 이들 역시 다윗의 뜻을 좇아 예루살렘에서 자라난 새 인물 솔로몬을 지지하는 것이 옳을 뿐 아니라 유리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아도니야의 반역 음모에 가담치 않았다.

성 경: [왕상1:9]

(주);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돌 곁에서 - '에느로겔'(삼하17:17) 또는 '엔로겔'(수15:7)은 '정탐의 우물'이란 뜻으로, 예루살렘 남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기드론 골짜기에 있다. 이곳은 잔치를 벌이기에 적당하며 지금도 예루살렘 주민의 휴양지이다(Robinson, Schultz). '소헬렛'은 '뱀'이란 뜻인데(Gesenius), 느헤미야 2:13의 '용정'(龍井)과 동일시된다(Benzinger). 이곳 소헬렛의 돌은 자연 그대로 제단이 될 수 있었다(Hammond).

(주); 양과 소와 살진 송아지를 잡고 - 이것은 단순히 잔치 음식이 아니고 제사에 쓰이는 희생 제물이다(참고, 민 28-29장), 그런데 일찍이 사울이 왕이 될 때도 제사를 드렸고(삼상11:15), 압살롬도 제사를 가장하여 반역을 자행한 바 있었다(삼하 15:7,12). 마찬가지로 아도니야 역시 제사 잔치를 베풂으로써 반역 거사를 도모한 것이다. 이처럼 반역 거사에 제사 형식을 도입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이다. (1) 제사 형식을 갖춤으로써 종교계 및 군부 실력자들의 회합 의도를 자연스럽게 은폐시킬 수 있으며 (2) 자신들의 거사 행위에 신적(神的) 근거 및 정통성을 부여하고 (3) 거사에 가담한자들 상호간에 정신적, 종교적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한편, 거사 장소로서 아도니야는 수도 예루살렘 남동쪽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에느로겔 근방을 택했는데, 이로 미루어 아도니야는 자신의 거사에 상당히 많은 세력의 지지를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으며, 따라서 거사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군대 장관 요압의 동조와 대제사장 아비아달의 후원을 얻음으로써, 아도니야는 그러한 확신을 굳혔던 것 같다. 하지만 아도니야는 신정 국가 이스라엘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하나님의 뜻'에는 유념치 않았다.

(주);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 - 다윗은 여러 왕비로부터 많은 자식을 거느리고 있었다. 대상 3:1-9에 의하면 아들만 대략 19명 가량 되는데, 그중 아도니야는 넷째였고, 솔로몬은 열째 아들이었다. 그리고 첫째 암논과 둘째 길루압(혹은 다니엘)과 셋째 압살롬 모두 죽었다(6절 주석 참조). 따라서 당시로서는 아도니야가 최연장자였으며, 솔로몬을 제외한 그의 동생은 모두 14명이었다(이외 많은 다윗의 첩의 아들들도 있었다). 이들 아도니야의 동생들도 아마 솔로몬 보다는 최연장자인 아도니야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아도니야는 이들도 자신의 거사 잔치에 참여시켰다.

(주); 왕의 신복 유다 모든 사람 - 다윗 왕의 근친이거나 또는 다윗 왕의 신복으로서 궁중에 출입하는 유다 지파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일찍이 이들은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아도니야는 이들은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거사 잔치에 초대한 것 같다. 따라서 이들 중에는 아도니야의 음모를 알지 못하고 아무 뜻없이 초대에 응한 자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삼하 15:11, J. Hammond)

성 경: [왕상1:10]

(주);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 아도니야는 의도적으로 솔로몬을 초청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이것은 아도니야가 솔로몬이 약속된 왕위 계승자임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음을 뜻한다(Keil, Bahr, Hammond, Patterson). 즉 선지자 나단이 하나님의 명을 좇아, 다윗의 범죄에 대한 사죄의 징표로서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아들 솔로몬에게 붙여준 이름 '여디디야'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삼하 12:24,25). 그러므로 이 이름이 암시하듯 다윗의 왕위 계승자로 일찍부터 솔로몬이 선택받은 자임이 널리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삼하 7:12;대상 2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가 연장자임을 내세워 왕위를 노린 행위는 하나님과 부왕 다윗의 뜻을 정면 거스린 모반(謀叛)행위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신정적(神政的) 왕정 국가인 이스라엘에 있어서 왕위의 정통성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있는 것이다. 한편 아도니야가 솔로몬과 더불어 선지자 나단, 시위 대장 브나야, 데제사장 사독, 그리고 다윗의 (삼십)용사들을 초청해서 제외시킨 것은, 그가 다윗의 의중(意中)을 따르고 있는 솔로몬의 핵심 추종 세력을 익히 간파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성 경: [왕상1:11]

(주); 나단이 밧세바에게 고하여 가로되 - 선지자 나단은 아도니야의 반역 음모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음모를 분쇄하고자 적극 노력하였다. 그런데 나단이 곧장 다윗에게 달려가지 않고 먼저 밧세바에게 찾아간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노약한 다윗 앞에 반역 사건이라는 충격적 사건을 가지고 자신이 먼저 나서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겼고, (2) 따라서 아도니야의 반역이라는 충격적인 보고를 다윗에게 전함에 있어서 당시 다윗의 총애를 받고 있던 밧세바가 그 적격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 아울러 밧세바는 다윗의 침실에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는 왕비의 신분이고(15절), (4) 또한 친아들인 솔로몬의 일에 가장 헌신적일 수 있는 인물이며, (5) 그리고 다윗의 맹세를 받았던 당사자로서(17절)다윗에게 행동을 촉구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도니야의 반역 인물을 진압하고 분쇄하는 데 있어, 선지자 나단의 역할은 결정적일 뿐 아니라 나단의 주도면밀한 지혜가 드러나는 바, 나단은 매우 지혜롭고 신중하게 일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나단의 지혜는 일찍이 밧세바와 우리아에게 관련된 다윗의 범죄를 지적하고 일깨우는 데 있어서도 잘 나타난다(삼하 12:1-150.

(주);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 부왕(父王)인 다윗 조차도 모르게 은밀히 아도니야가 왕위 계승식을 추진한 것으로 보아 아도니야의 행위는 분명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인 솔로몬을 제거하고 왕위를 찬탈코자 시도한 쿠데타였다고 볼 수 있다.

성 경: [왕상1:12]

(주); 당신의 생명과 솔로몬의 생명 구원할 자 - 선지자 나단이 밧세바에게 한 이 말은 단순히 위협적인 말이 아니다. 고대 근도의 군주체제하에서 반란, 찬탈, 쿠데타 등으로 왕권(王權)을 잡은 자는 자시늬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주변의 위험 인물들을 가차없이 처형시키는 예가 허다하였다. 특히 전왕(前王)이나 경쟁자의 왕족들은 참회를 면할 길 없었다(15:29;삿9:5;왕하10:7,14;11:1). 다라서 만일 이번 아도니야의 반역 거사가 성공할 경우, 제일 먼저 솔로몬과 솔로몬의 인척들 및 그의 추종 세력들이 진멸될 곳은 불 보듯이 뻔한 일이었다. 나단은 바로 이 사실을 정확히 지적함으로써 소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사태의 긴박성을 각성시킨 것이다.

(주); 계교 베풀기를 허락하소서 - '계교'(計巧)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차'(* )는 '모략', '흉계' 등의 부정적인 뜻을 지니기도 하나, 여기서는 '상담', '의논' 이란 의미가 짙다. 즉 '에차'는 남을 해하는 계교(욥 5:13) 등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니잠, 노인의 가르침(12:8)이나 지혜로운 자가 듣는 권고(잠 12:15) 등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 아도니야의 반역 거사를 하나님의 뜻의 실현을 위해 행해지는 나단의 계교는 하나님의 뜻의 실현을 위해 행해지는 긍정적인 의미의 계교라고 볼 수 있다.

성 경: [왕상1:13]

(주); 전에 왕이 계집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 본절에 나타난 것처럼 다윗이 구체적으로 밧세바에게 맹세한 내용을 성경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일부 고등 비평가들은 나단의 이 말을 늙어 기억이 희미한 다윗에게 덮어 씌우려는 계략의 일환이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즉 (1) 솔로몬을 향한 하나님의 선택이 이미 있었음을 분명하고(대상 22;9), (2) 또한 다윗의 즉각적인 수긍과 대응 태도(28-30절)로 볼 때 당시 다윗은 그렇게 흐리멍텅 하지도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언제인가 다윗은 본절과 같은 내용의 맹세를 밧세바에게 한 바 있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리고 그러한 맹세를 나단을 비롯한 궁중의 다른 사람들도 익히 듣고 알고 있었으리라고 추측된다. 따라서 위기의 상황에서 나단은 그러한 왕의 맹세를 재확인하며, 동시에 그 사실이 공식 선포되도록 밧세바를 통해 시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주); 솔로몬이 정녕 내 위에 앉으리라 - 다윗은 솔로몬을 낳기 전, 성정 건축을 위하여 기도할 때 이미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며(대상 22:9), 솔로몬을 낳은 후 밧세바에게 그 말씀대로 솔로몬에 대하여 맹세한 바 있다(30절). 그러므로 선지자 나단이 신앙의 사람 다윗으로 하여금 이 약속을 회상하게 하도록 지시한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도 무엇보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근거하여 호소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응답을 받는 길이라고 하겠다(창 32:9, 12;출 32:13, 14).

성 경: [왕상1:14]

(주); 증거하리이다 - '증거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말라'(* )는 '채우다', '가득하게 하다'의 뜻을 갖는다. 그러나 이것은 부족한 것을 더 보충하는 게 아니라, 말씀이 '응하다'(2:27), 또는 말씀이 '이루어지다'(8:24)란 용례에서 보듯 결과로 확정짓는 것(fulfillment)을 뜻한다. 그러므로 나단의 이 말은 밧세바가 다윗에게 한 말이 사실로 확정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Keil, Hammond).

성 경: [왕상1:15]

(주); 밧세바가 이에 침실에 들어가 왕에게 이르니 - 이는 다윗이 어전(御殿)에서 집무를 보지 못하고 항상 침실에만 있었음을 말해 준다. 아울러 이를 통해 (1) 다윗이 바깥 소식에 어두웠던 까닭과(11절) (2) 나단이 먼저 밧세바를 통하여야 했던 까닭이 설명된다.

(주); 수넴 여자 아비삭이 시종하였더라 - 왕의 거동이 부축을 받아야 할 정도였음이 나타난다. 따라서 다윗이 침실에 머문것이 일시적이 아니고 장기간이었음을 알 수있다(47절). 한편 본문과 같은 구체적이고 생생한 다윗 왕의 궁중 기록의 전거(典據)는 분명 '선지자 나단의 글'(대상 29:29)이었을 것이다(J. Hammond).

성 경: [왕상1:16]

(주); 몸을 굽혀 왕께 절하니 - 이것은 왕궁의 예절임과 동시에, 비록 늙고 쇠약해졌지만 아지고 다윗이 엄연한 이스라엘의 통치자임을 말해 준다. 그런데도 아도니야는 다윗을 무시하고 스스로 왕이 된 후 다윗으로 하여금 그 사실을 인정하도록 강요하고자 했다.

(주); 어찜이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 라크'(* )는 의미상 '무엇을 원하느냐'(what do you want?. Living Bible;what do you desire?, RSV)로 번역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다윗의 이러한 관심은 그가 여전히 밧세바를 총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성 경: [왕상1:17]

(주);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시기를 - 다윗은 왕이지만 그 보다 높은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을 가리켜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따라서 밧세바의 이 말은 다윗에게 그러한 맹세를 지킬 의무가 있음을 일깨우는 말이다. 한편 이것은 (1) 신정적(神政的) 왕정 국가 체제인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 왕은 단지 하나님께 임명받은 대리자일 뿐이며, (2) 따라서 이스라엘의 절대적 군주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이스라엘의 독특한 믿음을 반영하고 있는 말이다.

성 경: [왕상1:18]

(주); 내 주 왕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 왕비인 밧세바 조차도 '내 주 왕'(*, 아도니 하멜렉)이라는 경칭을 사용할 정도로 당시의 왕은 신하들에게 대단한 존경을 받았다(J. Hammond). 또한 다른 왕들에 비해 이 표현은 자주 사용되고 있다(참고, 12:4;13:8;20:8). 그러므로 이 경칭이 거듭 반복됨(18, 21, 24, 27절)은 상황의 긴급성과 호소의 간절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존경받는 지도자 다윗의 엄연한 위치를 상기시키려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그러므로써 최고 통치자 다윗의 뜻을 무시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자 하는 아도니야의 방자함과 불법성을 부각시키는 효과도 노렸다고 볼 수 있다.

성 경: [왕상1:19]

본절의 내용은 나단의 지시 사항(11-14절)에는 생략되어 있으나, 이 역시 밧세바가당시 나단으로부터 권고받은 내용일 것이다. 아무튼 본절의 증언에서 보여지듯, 아도니야의 모반 행위는 주도 면밀하게 이루어졌다. 즉 그는 (1) 병거와 기병과 전배 50인을 예비하고(5절), (2) 군대 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거사 핵심 인물로 포섭하고(7절), 93) 에느로겔 근방에서 대관식(戴冠式)을 하려고 거사 장소까지 에비하며(9절), (4) 제사 잔치를 빙자함으로써 거사 모임을 은폐하는 한편(9절), (5) 자신의 추종 세력과 솔로몬의 추종 세력과 정확히 분간하여 차질없이 행동하였다(9, 10절). 하지만 이같이 치밀한 준비를 통한 아도니야의 거사도 결코 하나님이 예정하신 왕 솔로몬의 즉위를 막지는 못했다. 인간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대적할지라도 그의 예정하신 뜻은 호리(毫釐)도 어김없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단 4:35).

성 경: [왕상1:20]

(주); 온 이스라엘이 왕에게 다 주목하고 -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었어도 백성들은 최종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연장자가 반드시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믿음은 백성들 사이에서도 희박했음을 알 수 있다(Bahr). 오히려 그들은 다윗의 공식 선포를 기다린다. 이것은 단순히 동방의 왕들에게는 후계자를 지명할 수 있는 권리와 관습이 있었기 때문(J. Hammond)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임명권에 대한 이스라엘의 믿음 때문이었다. 즉 백성들은 하나님의 대리자인 다윗을 통해(17절) 다윗의 아들들 중 하나님이 뽑은 인물이 선포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한편 이것은 압살롬의 반역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을 보여준다(삼하 15:13,14).

(주); 반포하시기를 기다리나이다 - 여기서 밧세바는 자신의 진술을 확대시켜 다윗이 왕위 계승자를 지목하는 일은 자신 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대한 관심사라고 밝힌다. 사실 밧세바의 이 말은 틀림없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밧세바가 이 사실을 적절히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는 능변가(能辯家)였다.

성 경: [왕상1:21]

(주); 열조와 함께 잘 때에 - '열조와 함께 잔다' 도는 '열조에게로 돌아간다' 등의 표현은 통상 위대한 인물이나 어진 왕 또는 지혜로운 자의 죽음을 완곡하게 표현할 때 종종 사용하는 성경의 독특한 관용어이다.

(주); 죄인이 되리이다 - '죄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핫타'(* )는 영적, 도덕적 과오를 나타내기도 하지만(창 20:9;애 5:7)읽거나 놓침, 또는 틀림이나 빗나감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욥 5:24;삿20:16).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왕위 경쟁에서 실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몰리게 될 역적 또는 반역자를 뜻한다(Clericus, Bahr, Hammond). 이것은 역설적으로 이미 솔로몬이 왕위 후보자로 알려져 있었음을 입증한다(13, 17절). 그런데 그것은 다윗에 의해 생긴 위협이므로(17절) 다윗이 끝까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의무였다. 지금 밧세바는 그러한 점을 다윗에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왕상1:22]

(주); 밧세바가 왕과 말씀할 때에 선지자 나단이 들어온지라 - 히브리 원문에서는 이 장면이 "보라, 나단 선지자가 들어오는 것을!"과 같은 식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 아연 긴장과 활기가 다윗의 왕궁에 감돌게 되었다.

성 경: [왕상1:23]

(주); 혹이 왕께 고하여 가로되 성지자 나단이 여기 있나이다 - 선지자 나단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윗 왕의 부름을 받기 전에 다윗 왕에게로 나아왔다. 그러자 밧세바는 물러갔다(28절). 즉 충격적인 소식의 사실 여부가 문제일때 나단은 약속대로(14절)적절히 밧세바를 이어 곧 들어왔다. 한편 여기서 '혹이'는 원문상 복수이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일 수 없다(15절). 아마도 침실로 들어가는 문 입구에 대기하고 서있는 궁중 신하일 것이다.

(주); 얼굴을 땅에 대어 왕께 절하고 - 이것은 왕비 밧세바의 인사와는 좀 차이가 있다(16절).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들이 이토록 예의를 다하고 있음을 특별히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다른 왕들의 기록에서는 이와 같은 것을 찾기 어렵다. 또한 이러한 자세는 일찍이 나단이 다윗을 책망하기 위해 왔을 때와도 판이하게 다르다(삼하 12:1). 아마도 이는 다윗 왕에게 존엄한 통치자로서의 직무를 다할 것을 호소하려고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성 경: [왕상1:24]

(주); 앉으리라 하셨나이까 - 원문상 이 말은 오히려 강한 긍정문이다. 즉 "앉으라고 하셨음에 틀림없습니다(그렇지 않고서야)"라는 의미이다. 다라서 이 말은 실제로는 그렇게 한일이 없는 다윗의 강한 부인을 이끌어 내려는 선지자 나단의 역설적 긍정의 말인 것이다(J. Hammond). 이처럼 역설적 긍정, 의문, 비유와 같은 말로써 상대방의 의견을 이끌어내는 형식은 선지자 나단의 독특한 메세지 전달 방식이었다(삼하 12:1-6).

성 경: [왕상1:25]

(주); 아도니야 왕 만세를 불렀나이다 - 여기서 '만세'에 해당하는 히브이러 '예히'(* )는 직역하면 "살게 하소서"(Let live !)란 뜻이다. 이것은 왕의 즉위식 때 왕을 찬양하는 일종의 기원문이다(39절;삼상10:24;왕하 11:12;대하 23:11). 한편, 그런데 아도니야에게 이러한 만세가 불리워졌음은 밧세바의 말(15-21절) 속에서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나단이 그것을 말함으로써 아도니야의 반역 사실이 보다 확연히 드러난 셈이다.

성 경: [왕상1:26]

(주); 왕의 종 나와 왕의 종 솔로몬은 청치 아니하였사오니 - 나단이 자신을 표현한 말은 히브리어 원문상 "나 곧 당신의 종인 나"와 같이 강한 표현으로 되어 있다. 솔로몬 역시 "솔로몬 곧 당신의 종" 하는 식으로 강조되어 표현되었다. 이는 24절의 강한 역설적 긍정과 연결되어 "(왕이) 틀림없이 그랬는데도 우리를 제외시켰단 말입니까" 하는 항변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면서 은근히 아도니야의 초청의 불법성과 반역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그러한 아도니야의 초청에서 제외된 자들(나단, 사독, 브나야 등)과 특히 솔로몬을 다윗의 편으로 암시하고 있다.

성 경: [왕상1:27]

(주); 내 주 왕이 하신 일이니이까 - 선지자 나단은 이미 아도니야의 반역 음모를 간파하고 있었다(11절). 그러나 지금 다윗 왕 앞에서는 아도니야의 사건을 전혀 모르는 자처럼 오히려 다윗 왕에게 그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단은 만일 그렇다면(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줄 알고 있지만) 그러한 결정에 자신을 도외시한 다윗 왕의 처사에 대해 지극히 섭섭한 감정을 표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주); 종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나이다 - 같은 맥락에서 이 말 역시 사실 여부를 묻는 의문(Keil)이 아니라 나단이 뛰어난 화술이다. 즉 나단은 아도니야의 음모를 알면서도 다윗 앞에서는 그 자초지종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러므로써 왕위 계승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예언을 전한 바 있는(삼하 7:12) 자신을 제외시키고 그렇게 하실 수 있느냐는 투의 항의조로 다윗을 자극한 것이다. 이러한 나단의 화술은 즉각적이고 분명한 효과가 있었다.

성 경: [왕상1:28]

(주); 다윗 왕이 명하여 가로되 - 이제까지 줄곧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던 다윗이 갑자기 명령하는 자로 나타난다. 이것은 15절의 늙고 무기력한 인상의 다윗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한편 27절의 선지자 나단과의 말 사이에 아무런 설명 없이 곧장 다윗의 행동을 기록함으로써 다윗의 결정이 단호하고도 신속했음을 보여 준다.

(주); 밧세바를 내 앞으로 부르라 하매 - 나단이 말하는 동안(22-27절) 밧세바는 물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밧세바가 온 다음엔 나단이 물러가 있었다(32절), 이것은 혹자들(Clericus, Thenius)의 견해처럼 나단과 밧세바가 상호 공모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취한 행동이 아니라, 왕이 허락 없이는 제 삼자가 함께 할 수 없는 궁중 예법 때문이었을 것이다(Keil).

성 경: [왕상1:29]

(주);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신 여호와의 사실을 가리켜 -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는 것은 당시의 일반적인 형식이나(J. Hammond), 특별히 여기서 다윗의 이러한 맹세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즉 (1) 평생동안 겪은 수많은 환난들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신앙 고백이며(삼하 4:9), (2) '여호와의 사심'(*, 하이 예호와)이 변할 수 없이 확실한 것처럼 솔로몬이 왕이 될 것도 확실하다는 후계자 선언이기도 하다(30절). 물론 다윗의 이러한 확신은 하나님의 엄연하신 약속에 근거한 것이었다(대상 22:9).

성 경: [왕상1:30]

(주); 내가 이전에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 솔로몬의 왕위 계승 문제에 대하여 다윗이 밧세바에게 맹세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보아(13, 17절) 다윗 왕은 성전 건축 문제를 놓고 기도하던 중 솔로몬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대상 22:6-19). 그 사실을 소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언젠가 맹세로써 약속한 것 같다.

(주); 내가 오늘날 그대로 행하리라 - 여기서 '오늘날'(*, 하욤하제)은 단순한 시간적 의미의 오늘(today)이라기 보다는 특별한 성취의 날로서의 오늘(this today)의 의미가 크다(참고, 신 6:6;9:3). 한편 히브리 원문상 '키'(* )란 말이 본절에서 세번 나오고 있는데, 이는 '정녕', '진실로'(surely)란 뜻으로서, 곧 진술하는 내용에 강조를 주고 있다(Ewald). 또한 '그대로'(*, 켄)란 말은 다윗의 행동이 독단적인 결정이 아니라, 지시된 내용을 따르는 순종의 행동임을 보여준다.

성 경: [왕상1:31]

(주); 밧세바가 얼굴을 땅에 대어 절하며 - 16절과 비교할 때 여기서의 밧세바의 절은 왕의 아내로서가 아닌, 왕께 최대의 예의를 갖춘 왕의 신하로서의 모습이다(23절).

(주); 만세수를 하옵소서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히 레올람'(* )은 직역하면 '영원토록 사시옵소서'(Let live forever, KJV ; May live forever, NIV)란 뜻으로서, 이 역시 신하가 왕께 드리는 기원문이다(25절). 이 같은 형식의 기원문은 히브리 왕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경우에 한해 사용되었으나, 바벧론과 페르시아에서는 그들의 왕들에 대해 자주 사용하고 있다(단 2:4;3:9;5:10;6:21;느2:3 등). 한편 본절에서 밧세바의 이 말은 다윗 왕의 내린 명령에 깊은 감사를 표시함과 동시에 그것이 존엄한 왕명으로 받들어질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Keil).

성 경: [왕상1:32]

(주); 다윗 왕이 가로되 내 앞으로 부르라 - 이 장면은 앞의 내용과 비교할 때 두 가지 중요한 변화를 보여 준다. (1) 사람들이 찾아가야만 했던 상황에서(15, 22절) 이제 다윗이 능동적으로 사람들을 부르고 있으며, (2) 또한 아도니야에게 청함 받지도 응하지도 않았던 인물들(8, 10, 19, 26절)이 이제 청함받고 또 이에 응하고 있다.

(주);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 - 이들은 솔로몬의 대관식에 반드시 참석해야 할 인물들이었다. 즉 제사장은 왕에게 기름을 부어주는 자로(39절), 그리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자로서 대관식을 진행해야 했다. 또한 군부 실력자인 브나야는 그 예식을 경호하는 일을 담당했을 것이다. 한편 로린슨(Rawlinson)교수는 위에 열거된 이름의 순서가 곧 왕국 내 지위의 차서(次序)라고 보나 확실치는 않다.

성 경: [왕상1:33]

(주); 너희 주의 신복들 - 이들은 구체적으로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들로 구성된 다윗 왕의 근위대를 가리킨다(38절).

(주); 나의 노새에 태우고 - 히브리 원문상 '나의 노새'에 해당하는 '하피르다 아쉐르 리'(* )는 직역하면 "나에게 속한 그 노새"이다. 구체적으로 알 순 없으나 누가 봐도 그것이 다윗 왕의 노새인 줄 알아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바로 그 노새에 솔로몬이 탔다는 것은 솔로몬이 곧 다윗 왕의 후계자임을 널리 알리는 상징적 표시인 것이다(Keil, Bahr, Hammond). 한편 여기서 '노새'(*, 피르다)는 여성형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암노새를 가리키는데, 이는 숫노새 보다 더 가치가 있었다. 다윗 당시에만 해도 노새는 수입해 들여온 것으로서(10:25;겔27:14). 귀족 계급들이 주로 사용했던 교통 수단이었다.(삼하 13:29;18:9). 일반 평민은 대부분 나귀를 사용했다. 그러나 후에는 노새가 보다 일반적으로 보급되었고, 동시에 운송 수단으로써도 널리 사용되었다(W. S. McCullogh).

(주); 기혼으로 - '기혼'(Gihon)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1) 본문에서 기혼이 예루살렘 보다 낮은 지형으로 나타나고 있고(33, 40절), (2) 이러한 표현은 흔히 예루살렘 동편의 기드론 골짜기를 지칭할 때 사용되며, (3) 갈대아 사본, 수리아 사본 등 여러 고대 사본 등이 기혼을 이 골짜기의 실로암 못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미루어 기혼은 곧 실로암일 것으로 추정된다(J. Hammond). 당시 이곳은 예루살렘성의 주요 수원지(水源池)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Patterson). 더구나 이곳은 아도니야의 잔치 장소인 에느로겔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아도니야의 음모를 분쇄하려고 일부러 기혼을 택하였을 것이다. 한편 데니우스(Thenius)는 여기 '기혼'(* )을 '기드온'(* )으로 고쳐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대제사장 사독이 기브온 성막에서 기름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단순한 추측일 뿐 타당성은 희박하다. 왜냐하면 예루살렘과 기브온과는 약 3시간이나 떨어진 먼 거리이므로 아도니야의 대관식보다 늦게 거행된 솔로몬의 대관식이 아도니야의 대관식이 다 마치기 전에 벌써 끝나 예루살렘까지 돌아오기에는 (41절) 시간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Vol. , p. 23).

성 경: [왕상1:34]

(주); 저에게 기름을 부어 - 당시 '기름 부음'은 주로 통치의 직분에 취임하는 왕의 대관식 의식에서 행해진 공식 행사였다(삼상 10:1;삼하 12:7). 그리고 이 기름 부음의 의식은 (1)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특별히 구별된 자로서 그에게 권위가 주어지며, (2) 도한 이 권위를 부여하시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심을 뜻한다. 그러므로 기름 부음 속에 내포된 사상은 신정(神政) 국가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에 의해 세워지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으며, 하나님을 대신해서 다스린다는 사상이다.

(주); 양각을 불며 - '양각'(*, 쇼파르)은 양의 뿔로 만든 나팔로 갑작스럽게 찢어지는 듯한 높은 소리가 난다. 이는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나(레 25:9;암 3:6), 특히 왕의 즉위식 때에 사용되었다(삼하 15:10;왕하 9:13;11:14). 따라서 다윗 왕은 소로몬의 대관식 때에도 이것을 무리들에게도 그 소리가 들리도록하여 솔로몬의 왕위 즉위가 만천하에 공식 선포되고 드러나도록 조처하였던 것이다.

성 경: [왕상1:35]

(주); 이스라엘과 유다의 주권자 - 여기서 특별히 '이스라엘'과 '유다'로 표기된 것은 당시 국가의 세력 판도가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과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하는 '유다'로 양분되어 있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처음 다윗도 얼마동안은 '유다'만을 통치하다가 나중에 사울 가문을 추종하던 '이스라엘' 지파들을 통합함으로써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었던 것이다(삼하 5:3-5). 그러므로 다윗의 여기 이 말은 자신의 왕위를 계승할 솔로몬은 현재의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모든 지파들을 통치하는, 명실 상부한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될 것이라는 선포이다. 한편, 그러나 솔로몬 사후 르호보암 때에 이스라엘을 다시금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로 분리되고 만다(11:43-12:20).

성 경: [왕상1:36]

(주); 아멘 여호와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오며 - '참으로', '진실로'의 뜻을 갖는 '아멘'(*, Amen)은 보통 이미 말한 것에 대한 확언, 응답을 나타낸다<신 27:11-26 강해, 아멘 연구>. 그러므로 브나야의 이 말은 하나님의 사후 승인을 요청하는 말이 아니라 말씀하시면 꼭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시 33:9)처럼 다윗의 말이 그대로 성취되기를 바라는 강한 소망을 나타내는 것이다(Keil).

성 경: [왕상1:36,37]

이 부분에 나오는 브나야의 말은 3가지 내용으로 요약된다. (1) 다윗의 말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기를 원한다는 것(36절), (2)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함께 계시기를 바라는 것(37a절). (3) 솔로몬의 왕위가 다윗의 그것보다 더 위대해지기를 바라는 것(37b절)등이다. 이와 같은 브나야의 3가지 소원은 결코 아첨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 중심주의에 바탕을 둔 경건한 소원으로서, 그가 비록 무관(武官)이었으나 매우 투철한 여호와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성 경: [왕상1:37]

(주); 내 주 다윗 왕의 위보다 더 크게 하시기를 - 이 말은 일종의 기원문 형식이다. 그러나 다만 형식 뿐만이 아니고 이 말 속에는 브나야의 경건한 소원이 깊게 반영되어 있다(Keil, Hammond). 즉 다윗 왕의 위(位)가 영원토록 보다 견고하게 되기를 소원한 브나야의 이 바램은 하나님의 약속과 맞아(3:10) 실제로 솔로몬의 통치는 이스라엘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게 된다(3:13;대하 9:22).

성 경: [왕상1:38]

(주);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 - 이들의 명칭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에 대하여 크게 두가지 해석이 있다. 즉 (1) '그렛'을 그레데 섬으로 보는 해석으로서, 블레셋 사람이 유래하였다는 '갑돌'(암 9:7;신 2:23)이 바로 이곳과 일치하는 것으로 본다(J. Hammond). 따라서 그렛 사람들(the Cherethites)은 대부분 이방인들인 블레셋 사람들일 것으로 본다. (2) '그렛'과 '블렛'의 어근이 각각 '자르다'(*, 카라트)와 '신속하다'(*, 펠레트)란 의미일 것으로 보고 곧 이들이 사형 집행인과 전령일것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Gesenius, Keil). 한편, 그러나 이들의 직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일치된다. 즉 이들은 외국인 용병들로 구성된 왕의 친위 부대라는 것이다. 유대 사가 요세푸스(Josephus)도 이들을 '소마토퓔라케스'(*,'왕위 근위병' 혹은 '신변 보호자'란 뜻)라고 불렀다(삼:18;15:18;20:23). 자세한 내용은 삼하 8:18 주석 참조.

성 경: [왕상1:39]

(주); 성막 가운데서 기름 뿔을 가져다가 - 여기서 '기름 뿔'(the horn of oil)은 불로 만들어진 기름을 담는 뿔 그릇을 가리킨다. 그리고 '기름'은 제사장, 선지자, 왕, 그리고 성전의 기물들을 거룩히 구별할 때 특별히 사용하는 거룩한 기름(sacred oil, Living Bible) 곧 '관유'(灌油, 출 30:22-33)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거룩한 기름은 언약궤(법궤)가 보관된 성막 안에 보존되어 있었으며, 당시 이 성막은 시온산에 있었다(대상 15:1;삼하 6:17). 한편 만일 아도니야가 제사장 아비아달을 통해 기름 부음을 받았다면, 그때 기름 뿔은 응당 에느로겔에 가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본절에는 그것이 시온 산 위의 성막안에 그대로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이는 두 가지 사실을 추측케 한다. (1) 아도니야가 도유식(塗油式)을 거치지 않고 왕위 즉위를 선포했다. (2) 성막에 기름뿔이 여러 개 비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중 두번째 견해가 더 타당성이 많은 것으로 짐작되는데, 본서 기자는 솔로몬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아도니야의 도유식을 생략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또한 비록 사독이 기브온 산당에서 제사장으로 임명받았지만, 그의 신분상 시온 성막의 출입도 자유로었을 것이기 때문에(keil), 당시 다윗의 명을 좇아 시온 성막에 비치되어 있었던 여러 개의 기름 뿔 중 하나를 취하여 솔로몬의 도유식을 거행했던 것 같다. 그리고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 기름 뿔은 바벧론 포로 전까지 잘 보존되었다고 한다(J. Hammond).

(주);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 이 기름 부음의 의식은 하나님께서 택하여 성별하셨다는 의미(34절 참고) 외에도 하나님께서 또한 여호와의 신 (성령)을 부어 주신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Bahr ; 삼상 16:13). 실제로 사울과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후 곧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삼상 10:9,10;삼상 16:13).

성 경: [왕상1:40]

(주); 모든 백성이 왕을 따라 올라와서 - 솔로몬의 대관식에 참석한 모든 백성이 만세를 부른 이후(39절) 솔로몬은 명실 상부한 저들의 왕이 되었다(25절과 비교).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 왕의 명과 뜻을 좇아 솔로몬을 따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다윗의 순종과 신하들의 충성을 통해 결국 백성들의 환영에서 완성된 것이다.

(주); 땅이 저희 소리로 인하여 갈라질 듯하니 - 여기서 '갈라지다'(*, 바카)란 말은 '찢다', '쪼개다', '부수다' 등의 뜻을 가지는 바, 위의 표현은 그 소리가 땅을 진동시킬 만큼 솔로몬을 추종하는 백성들의 무리가 많았고 또한 즐거움으로 사기 충천한 사실을 가리키는 과장법적 표현이다(45절).

성 경: [왕상1:41]

(주); 함께 한 손들 - 여기서 '손들'은 '초청받은 자들'이란 뜻으로서, 곧 왕위 찬탈을 위한 아도니야의 제사 잔치에 초대받아 응함으로써 반역 거사에 가담한 자들을 가리킨다. 그 핵심 인물은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 장관 요압이다(7, 19절).

(주); 요압이 양각 소리를 듣고 - 전쟁터를 많이 경험한 노련한 군인 요압이 특히 민감하게 나팔 소리에 반응하고 있다(Hammond, Bahr). 일찍이 요압은 압살롬이 반역하여 왕이 될 때에 이러한 나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삼하 15:10). 그러나 지금은 반역의 자리에 앉아 있는 그에게 들린 나팔 소리로 인해 요압은 그 의미를 예감하고 불안해 하였을 것이다.

성 경: [왕상1:42]

(주); 말할 때에 요나단이 오는지라 - 성경 기록에서 대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은 특별한 일의 전달자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삼하 15:27;17:17). 한편 그는 아버지 아비아달과는 달리 아도니야의 잔치에 참석치 않았다. 그 이유는 (1) 아직 연소하여 초청을 받을 만한 지위가 되지 못했거나 (2) 궁중의 전령자(傳令者)로서 항시 바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혹자는 당시 아도니야 측에서 왕궁의 동정을 탐지키 위해 요나단을 대기 시켜 놓은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Bahr).

(주); 너는 용사라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오는도다 - 이와 비슷한 표현이 삼하 18:27에서도 나타난다. 즉 '좋은 사람은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이라는 다윗의 말이다. 아마도 이 같은 말은 그 무렵 속담처럼 통용되었던 것 같다(삼상 24:13). 따라서 여기서 '용사'란 말은 '좋은 사람'의 의미를 가진 인사말일 것이다(J. Hammond). 한편 성경에서 '용사'와 '아름다움'은 흔히 결부되어 등장한다(참고, 삼하 1:17 이하의 다윗의 노래). 여하튼 아도니야는 성중에서 들려오는 환호 소리와 나팔 소리에 내심 불안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면서도, 짐짓 자신과 무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처럼 허세 섞인 말을 한 것이다(Keil, Hammond).

성 경: [왕상1:43]

(주); 과연 솔로몬으로 왕을 삼으셨나이다 - '과연'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발'(* )은 '그러나', '오히려'와 같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대하 19:3;33:17). 따라서 여기서의 사용도 내용상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Not at all, NIV), 혹은 '아니올시다'(No, RSV)라는 부정의 의미를 갖는 것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왕이 된 소식이 아도니야에게는 결코 아름다운 소식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것은 앞에서 아도니야가 한 말(42절)이 그 표현과는 달리 짙은 불안과 의혹을 담은 말이므로 불행히도 그것이 사실이라는 의미에서의 '과연'이기도 한다.

성 경: [왕상1:44,45]

본문은 38, 39절 내용의 반복으로서, 곧 솔로몬의 즉위식이 거국적으로 성대히 거행되었음을 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사실 그대로를 보고하는 장면이다. 따라서 본문은 19절과 25,26절에 나타난 바 아도니야의 즉위식 장면과 비교된다. 비교해 보면, 아도니야에게 결핍된 요소들이 솔로몬의 즉위 장면에는 많이 나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왕의 노새, 기름 부음, 백성의 환영 등이 그것이다.

성 경: [왕상1:46]

(주); 솔로몬이 나라 위에 앉았고 - 여기서 '위'(*, 키세)는 '왕위'(王位)를 가리키는 말로서, 이 말은 성경에서 어떤 사람이 한 나라의 주권자임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었다(출 11:5;삼하 7:13;대하 29:1 등). 한편 솔로몬은 부왕(父王)인 다윗이 아직 죽기 전, 왕으로 여전히 있을 때 왕위에 즉위했다. 이처럼 노환, 질병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선왕(先王)의 생전에 후왕(候王)이 왕위에 올라 외형상 두왕이 한 나라를 공동 통치하는 경우를 '섭정 제도'(the system of Co-regency)라고 하는데, 이 제도는 당시 애굽, 앗수르, 바벧론 등 고대 중근동 국가에서 흔히 발견되는 제도였다. 이스라엘에서는 다윗과 솔로몬 때를 기점으로 후대 왕국의 역사에서 자주 나타나게 된다<서론, 11. 열왕기서의 연대기 문제>.

성 경: [왕상1:46-48]

본문은 솔로몬의 즉위에 관한 좀더 구체적인 요나단의 보고이다. 히브리어 원문상 여기서 요나단의 말은 '그리고 또한', '더욱이'와 같은 부가, 축적의 뜻을 지닌 히브리어 '웨감'(*, and also)이 매절 초두에 거듭됨으로써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요나단이 전하는 사실의 확실성이 점점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아도니야의 거사는 실패하였음도 점점 확실해져 간다. 한편 여기서 본문이 보여 주는 구도(構圖)는 솔로몬이 확실히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성 경: [왕상1:47]

(주); 왕의 신복들이 원하나이다 하매 - 나단과 밧세바로부터 아도니야의 반역 거사소식을 전해 들은 다윗이 즉각 그에 상응하는 조치(33-35절)를 취하자 거의 대부분의 신복들이 급속히 솔로몬 지지 쪽으로 기울어져 솔로몬을 축원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축원(祝願)의 내용은 37절에 나타난 브나야의 축원과 거의 동일하다. 한편 브나야를 비롯한 다윗의 신복등의 이 축원은 후일 하나님의 크신 축복으로 말미암아 그대로 이루어졌다(4:20-34).

(주); 왕이 침상에서 몸을 굽히고 - 다윗 왕의 이 동작을 신하들의 축복 인사에 대한 답례로 보기로 한다(Thenius). 그러나 48절 초두의 '웨감'(*, and also)은 47절 동작의 목적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침상에서 몸을 굽혀 절한 다윗 왕의 행동은 하나님께 대한 경배 행위인 것이다(Hammond, Keil, Bahr). 한편 이처럼 침상에서 경배하는 행위는 노년의 야곱에게서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행위는 또한 어떤 맹세나 선포에 대한 확증의 의미를 띠기도 한다(창 47:31).

성 경: [왕상1:48]

(주); 여호와께서 나로 목도하게 하셨도다 - 왕이 생존해 있는 동안 양위(讓位)하는 일은 매우 특이한 예에 속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왕들은 죽을 때까지 통치를 했고, 따라서 그 후계자들은 선왕(先王)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즉위식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다윗이 생전에 솔로몬의 즉위식을 직접 목도하게 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성전 건축과 더 큰 번영을 이룰 약속된 후계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되었으니, 다윗으로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크게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3:13;대하 9:22).

성 경: [왕상1:49]

(주); 아도니야가 함께 한 손들 - 여기서 '손들'(*, 하케루임)이란 말은 직역하면 '초대받은 자들'(those who were invited)이란 뜻이다. 분명 이들은 하나님과 다윗 왕의 뜻이 솔로몬에게 있는 줄을 알면서도 아도니야의 역모 책동에 솔깃하여 훗날 한자리 차지해 보려는 얄팍한 계산 하에 몰려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이 그르치게 되자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에 급급하여 황급히 도주해 버렸던 것이다.

(주); 다 놀라 일어나 각기 갈 길로 간지라 - 아도니야의 불의한 반역 거사 초대에 응했던 무리들(9절)이 솔로몬의 즉위 소식을 듣자 생명에 위협을 느껴 뿔뿔이 해산하는 광경이다. 여기서 (1) 그들이 그토록 쉽게 공포에 사로잡힌 것은 애초부터 확신이 없었음을 보여주고, (2) 또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당황하여 급히 일어남은 용기가 없었음을, (3)그리고 각기 제멋대로 처음부터 자기 잇속을 차리기 위해 모인 무리들인 것을 보여 준다.

성 경: [왕상1:50]

(주); 제단 뿔을 잡으니 - 제단 뿔은 곧 번제단의 네 모퉁이에 튀어나온 돌기 부분이다(출 38:1-7 주석의 그림을 참조하라). 제사를 드릴 때 여기에 짐승을 매기도 했고, 또희생 제물의 피를 바르기도 하였다(출 29:12;시118:27). 그런데 성경에서 '뿔'(*, 케렌)은 주로 힘과 능력을 상징한다(신 33:17;삼상2:10;시18:2;75:10;112:9). 그러므로 제단의 뿔은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힘과 능력을 상징한다. 아울러 그러한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약자와 억울한 자 및 죄인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따라서 이 제단 뿔을 잡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호소하는 상징적 행위이다(Keil). 그런데 이처럼 제단 뿔을 도피처로 삼는 행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단지 출애굽 이후 오살자(誤殺者)의 도피 제도(출 21:13)와 더불어 시작되었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왜냐하면 출애굽 시대 이후부터 성소의 제단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범죄자의 피신처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출21:12-14). 이후 모세 율법은 이러한 자들을 위한 사회적 보호제도로 도피성(逃避城) 규례를 만들었고(민 35:9-34), 그 규례는 가나안 정착 후 그대로 실시되었다(수 20:1-9). 여하튼 그때 이후 성소의 제단은 도피성과 아울러 범죄자가 하나님의 보호와 긍휼을 호소하고 바라는 피신처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맥락 하에서 반역 거사를 주도한 아도니야도 사형 집행을 두려워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바란다는 의미로 이처럼 제단 뿔을 잡은 것이다(Bahr). 한편, 그런데 아도니야가 피신하여 붙든 제단 뿔은 분명 예루살렘의 시온 성막 내에 있는 번제단 뿔일 것이다(Keil, Hammond).

성 경: [왕상1:51]

(주);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을 두려워하여 - 여기서는 5절과 관련하여 아도니야이 성품이 교만할 뿐만 아니라 비겁하기도 함이 나타난다. 만일 아도니야가 자신의 왕위 계승 자격을 굳게 확신했더라면 이토록 비루하게 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나오는 참된 신념이 있었다.

(주); 솔로몬 왕이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 아도니야는 자신의 입으로 솔로몬을 '왕'으로 시인하고, 자신을 그의 '종'으로 인정함으로써 이제 왕위(王位)을 포기했음을 고백한다. 아울러 목숨만을 구걸하는 허울좋은 겁장이로 나타남으로써, 그의 오만함이 솔로몬의 권위 아래 여지없이 부숴진 사실이 적나라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아도니야는 교활했다. 일단 대세가 솔로몬쪽으로 완전히 기울자 이처럼 굴복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역모를 계획하다가 결국 처형당하고 말았다(2:13-25).

(주);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 - 히브리인들 맹세 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호가 들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맹세의 증인이 된다. 그러므로 만일 누가 맹세를 하고도 그 맹세를 어기면 그는 하나님을 모독한 죄를 범한 자가 되고 만다. 이런 이유로 인해 맹세는 그 엄숙함과 불변성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아도니야도 자기의 생명 보장에 대해 솔로몬이 맹세로써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성 경: [왕상1:52]

(주); 솔로몬이 가로되 - 아도니야의 요구와 달리 솔로몬은 맹세는 하지 않고 다만 말로써 약속할 뿐이다. 오히려 조건부로 약속한다. 그러므로 다음장의 아도니야의 죽음(2:25)은 이러한 조건부 약속을 어긴 결과인 것이다.

(주); 선한 사람이 될진대 - 문맥상 이 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즉 이제 아도니야가 왕권에 대한 불의한 욕심을 버리고, 더이상 선동적인 역모를 꾀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사적인 생활을 보낸다면 그의 생명은 확실히 보장될 것이란 뜻이다(Patterson, Bahr).

(주); 악한 것이 보이면 - 여기서의 '악함'(*,라)이란 도덕적 악함이라기 보다 왕이 되려는 '불측한 의도'를 말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이 악함의 성격은 '비겁함'이다. 왜냐하면 본절에 '악함'에 대비되는 '선함'(*, 벤 하일)의 원어적 의미는 '용감성'이기 때문이다(공동 번역은 실제로 '용감한 사람'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아도니야의 반역 음모는 처음부터 떳떳하지 못하게 몰래 솔로몬과 그의 세력을 해치우려 했던 비겁한 행위로 비쳐졌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솔로몬은 만일 아도니야가 왕권에 대한 욕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또다시 비겁한 역모를 꾀할 경우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고 엄중히 경고하면서 조건부로 아도니야의 목숨을 살려 주었던 것이다.

성 경: [왕상1:53]

(주); 네 집으로 가라 - 솔로몬의 이러한 처분은 그의 관용을 나타낼 뿐 아니라, 경고의 의미가 크다(J. Hammond). 왜냐하면 이와 비슷한 명령을 다른 기록에서 찾아보면 언제나 징계, 연금의 의미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2:36;삼하 14:24). 그러므로 최소한 왕궁을 노리던 아도니야에게 사적(私的)인 개인으로서 이제 제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앞으로는 분수에 넘는 짓하지 말고 조용히 지내라는 경고가 충분히 담겨있는 것이다.

성 경: [왕상2:1]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다윗의 유언]

(주);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임명한 때로부터 그에게 최종 유언을 하는 현 시점에 이르기까지가 어느 만큼의 기간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상당 기간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역대기에서는 솔로몬 즉위 후 다윗이 다시 건강을 회복하여 성전 예배의 새로운 규례 제정, 제물 봉헌, 그리고 솔로몬의 왕위 계승을 공포하는 의식을 성대히 행하는 등 여러가지 활동을 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대상 23장-29장).

(주); 명하여 가로되 - 다윗이 공식적으로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남기는 명령은 대상 28-29장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본절 이하의 내용은 다윗이 왕위 계승자인 아들 솔로몬에게 사적(私的) 유언의 형태로 은밀히 당부하는 말이다. 한편 본서가 솔로몬 즉위 이후의 다윗의 활동을 생략하고 있는 것은 역대기와 달리 열왕기는 솔로몬의 통치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성 경: [왕상2:2]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다윗의 유언]

(주);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 직역하면 "나는 모든 땅에 속한 자들의 길로 가고 있노니"(I am going in the way of all the earth)란 의미로서, 곧 임종(臨終)이 가까왔음을 나타내는 성경적 표현이다. 일찍이 여호수아도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서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수 23:14)라고 말한바 있다.

(주);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웨하자크타 웨하이타 레이쉬'(*)를 직역하면 '너는 강하게 되어라! 그리고 남자가 되어라'란 의미이다. 이러한 다윗의 권면은 모세 사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해야만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맡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권면해 주신 말씀과 동일하다(수 1:6-4). 한편 혹자는 다윗의 이 말을 통해 당시 솔로몬의 나이가 매우어렸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Rawlinson). 그리고 사실 즉위식 이후에도 다윗은 솔로몬을 '어리고 약한 아들'로 말하기도 한다(대상 29:1). 이런 맥락에서 유대 사가 요세푸스는 당시의 전통으로 미루어 즉위시 솔로몬의 나이를 14세 정도로 보았다. 혹자는 12세로 보기도 한다(Eupolemus). 아무튼 20세가 채 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Hammond). 그러나 여기서 대장부가 되라는 다윗의 말이 결코 나이의 문제만은 아니다(삼상 4:9). 오히려 이 말은 여호와의 율법 준수의 임무를 행함에 있어 담대하라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Keil, B hr). 왜냐하면 모세의 뒤를 잇는 여호수아에게서도 '담대한 것'과 '율법 준수'는 상호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수 1:7). 그러므로 여기서 다윗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키도록 아들 솔로몬에게 당부한 것이다. 따라서 데니우스(Thenius)의 견해처럼, 다윗의 이 말을 부친의 죽음을 남자답게 용감히 견디도록 위로하는 말로 해석하는 것은 문맥상 타당치 않다(Keil).

성 경: [왕상2:3]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다윗의 유언]

(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 여기서 '지키라'는 '파수꾼이 되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파수꾼이 되라는 말이다. 이 같은 용어는 특별히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직무 수행을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레 8:35;18:30;민 1:53;3:7).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도 이들처럼 신적(神的) 직무를 위임받은 여호와의 통치 대리자로서, 여호와를 위하여 여호와의 율법의 파수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B hr).

(주); 그 길로 행하여 - 여기서 '길'(*, 데레크)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의 도(道)이다. 구체적인 일례로, 신 32:4에 의하면 하나님의 길은 공평(公平)의 길이다. 따라서 솔로몬은 통치할 때 '공평'을 기본 강령으로 삼아 선민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도로 다스려야 했다.

(주);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 여기서 '법률'(*, 훅카)과 '계명'(*, 미츠와)과 '율례'(*, 미쉬파트)와 '증거'(*, 에두트)를 각각 개별적으로 다른 대상들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고 그것들을 구별하여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있어 왔으나, 불가능하고 또한 불필요했다(Hammond). 오히려 이러한 표현은 모세 율법 그 전체를 강조하여 제시하려는 중언법(重言法)적인 표현인 것이다(Keil). 성경 다른 곳에서도 이처럼 비슷한 어휘가 반복되어 나란히 등장하는 예를 종종 찾아 볼 수 있다(신 5:31;8:11;시 119편).

(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지켜라 -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즉 솔로몬은 하나님의 율법을 근간으로 하여 백성을 다스려야 했던 것이다. 인간이 세운 법과 제도는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자칫 소수의 집권층만을 위한 악법이 될 우려를 안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은 거룩하고 선하므로(롬 7:12), 그 법대로 통치하는 자나 통치를 받는 자들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공의와 평강의 나라인 것이다(계 11:15).

(주); 형통할지라 - 사전적 의미에서의 형통(亨通)은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형통할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 '타스킬'(*)은 '지혜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은 지혜롭게 되는 것이고 또한 지혜로운 그가 행하는 것은 무엇이든 형통하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B hr). 그러므로 '형통'(*, 사칼)이란 말 속에서 뜻한 바대로 잘되는 그 뜻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고 '지혜'란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성 경: [왕상2:4]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다윗의 유언]

(주); 일찍이 나단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삼하 7:12-16)을 이제 죽음을 앞둔 다윗이 솔로몬에게 전해주고 있다.

(주); 만일 네 자손이...행하면 - 이 조건절은 원래 나단의 메시지 (삼하 7:8-16) 속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로는 계속 나타나고 있다(8:25;9:5 등). 그런데 애초 이 내용은 신명기에 기록된 바(신 6:1-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에게 위탁한 교육적 책임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도 이러한 의무에서 면제되고 있지 않다(신 17:18-20).

(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 신 6:5 주석 참조.

성 경: [왕상2:5]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다윗의 유언]

(주); 스루야의 아들 요압 - 스루야는 다윗의 누이이며, 요압은 그녀의 맏아들이다(대상2:16).

(주); 내게 행한 일 곧...네가 알거니와 -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일에 대해서는 삼하 2-3장과 19-20장을 각각 참조하라. 한편, 그런데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군대 장관 지위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시기심 때문이었다(삼하 3:6-39;20장). 여기서 특기할 것은 요압의 그러한 살해 행위를 다윗은 마치 자신에게 행한 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아마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것은 다윗의 권위에 대한 멸시와 도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B hr;삼하3:26;20:11). 적어도 요압은 다윗 왕에 대해서는 끝까지 충성을 바친 훌륭한 전사였지만, 그러나 지나치게 방자하고(삼하 18:5,14) 거칠었던 것 같다(삼하 3:27;18:14). 그래서 끼친 공(功) 못지 않게 자주 다윗 왕가를 괴롭혀왔던 것이다. 그 중에서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행위는 도저히 묵과될 수 없었던 요압의 치명적 실수로서, 다윗은 그 사실에 대해 아들 솔로몬에게 응분의 조치를 내릴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주);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 다윗은 아브넬과 협상하여 평화적으로 통일 왕국을 이루려 했었다(삼하 3:21). 또한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마사를 등용한 것은 내란을 종식시키고 왕국의 재정비를 도모하려던 때였다(삼하 19:13;20장). 그런데 다윗의 이러한 평화의 노력이 요압의 살해 행위로 인해 크게 방해를 받았던 것이다. 따라서 요압이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과 압살롬의 군대 장관 아마사를 계략으로 살해한 행위는 다윗을 심히 분노케 했다(삼하 3:29).

(주); 전쟁의 피로...띠와...신에 묻혔으니 - 여기서 '띠'와 '신'은 어떤 임무를 수행할 때 갖추어야 할 것들로서, 주로 전쟁에 임하는 전사(戰士)가 반드시 갖추어야할 필수 도구였다(Keil, B hr). 만일 요압이 전쟁 중에 정정 당당히 싸워 그들을 죽임으로 그들의 피를 띠와 신에 묻혔다면, 그것은 결코 책할만한 일이 못될 것이었다. 그러나 요압은 태평한 시대에, 곧 다윗이 탕평책을 쓰고 있는 즈음에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시기와 질투 및 복수심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전쟁터에서나 묻혔어야 할 피를 명분없이 흘리게 했으니, 그것이 곧 요압의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것이다.

성 경: [왕상2:6]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다윗의 유언]

(주); 네 지혜대로 행하여 - 요압은 그때까지도 군대 장관이었고(35절), 다윗의 조카로서 다윗이 왕이 되는 데 큰 공로를 세운 당대의 세도가였다. 그러한 인물을 명분없이 처단한다면 민심의 동요와 같은 어려움이 생길지도 몰랐다(Starke). 그러므로 이 말은 나쁜 술수로 요압을 처단하라는 뜻이 아니라, 납득이 갈 만한 처벌의 정당성과 적절한시기를 가려 시행하도록 충고하는 말이다. 실제로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불측한 시도가 재차 드러나자 그의 동조자였던 요압도 함께 처단한다(19-25절,28-34절).

(주); 그 백발로 평안히...내력지 못하게 하라 - 그 무렵 요압도 고령기에 접어들었던 것같다. 그런데 백발의 평안한 죽음은 죄 없는 자의 죽음으로서, 요압 같은 자에게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B hr). 왜냐하면 요압은 까닭 없이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31절). 히브리인들은 무고한 자가 흘린 피는 그 피값이 보상될 때까지 하나님께 호소한다고 믿었고(창 4:10), 또한 그 피를 흘리게 한 자는 현세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했다(수 2:19;마 27:24,25). 한편, 이처럼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창 9:5,6)는 피의 보상 원리에 입각하여 다윗은 요압이 그 피 흘린 죄를 반드시 감당해야할 것이라고 솔로몬에게 권고한 것이다. 그러면 왜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압을 처단하지 않고 아들 솔로몬에게 그 일을 위임했는가? 카일(Keil)은 당시 다윗으로서는 군대 장관인 요압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즉 다윗은 적어도 자신에게는 충실했을 뿐 아니라 많은 전공을 새운 요압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단하는 것은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또 혹자는 생각하기를, 다윗은 요압과 공모하여 밧세바의 남편이자 신실하고 용감한 신하인 우리아를 죽게 한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른 경험이 있으므로(삼하 11:14-25), 그 일로 인해 양심이 찔려 요압을 직접 처리하지못했다고 보기도 한다(Leon Wood). 아무튼 다윗은 요압의 불의한 살해 행위를 잊지 않고 있다가 결국 솔로몬을 거스려 아도니야의 반역 행위에 가담한 요압을 솔로몬이 처리하도록 그에게 위임하는 것이 오히려 솔로몬 왕국의 강화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 실현 차원에서 더 유익하다고 판단하고 요압의 처리 문제를 자신의 손으로부터 솔로몬에게 넘겨준 것 같다(R. Patterson, J. Hammond).

(주); 음부(*, 쉐올) - 죽은 자들의 사후 거처 또는 죽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히브리식 표현. 창 37:35;민 16:30;신 32:22;삼상 2:6;삼하 22:6 주석 참조.

성 경: [왕상2:7]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다윗의 유언]

(주); 바실래 - 바실래 및 그가 다윗에게 베푼 선행에 대해서는 삼하 17:27-29;19:31-39부분의 주석을 참고하라.

(주);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 다윗의 이 부탁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즉 왕 자신의 식탁에서 함께 먹는 것을 의미한다는 견해(Keil), 왕궁에서 음식을 공급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견해(B hr).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하나의 형태로 결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식탁을 보고 놀랐으며, 솔로몬 왕궁의 매일 음식 소비량이 굉장히 많았다는 기록이 있기 매문이다(4:22,23;10:5). 어쨌든 이 일은 원래 다윗이 한때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어려음에 처한 자신에게 음식물로 공궤한(삼하 17:27-29) 바실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해왔던 것인데, 이제 솔로몬에게도 그 선행 보답을 계속하도록 부탁하고있는 것이다(삼하 19:33, 37).

(주);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다윗이 정처없는 피난 길에 나서는 극도의 곤경에 빠졌을 때, 바실래는 여러 가지 식물로 다윗과 그의 일행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채워주는 선행을 베풀었었다(삼하 17:27-29). 따라서 후일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진압하고 다시금 환궁 길에 오르게 되었을 때, 그는 바실래에게 그의 후손들을 보살피겠노라고 약속했다(삼하 19:31-39). 본절은 다윗이 바로 그러한 바실래의 선행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바실래와 맺은 약속을 솔로몬 역시 계속 지켜 나가도록 요청하고 있는 장면이다.

성 경: [왕상2:8]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다윗의 유언]

(주); 바후림 - 시므이가 살던 '바후림'(Bahurim)은 수도 예루살렘에서 약 9km 가량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고을로, 베냐민 지역에 속한다(삼하 16:5).

(주); 게라의 아들 - '게라'(Gera)는 베냐민의 손자이므로(창 46:21;대상 7:6) 시므이의 아버지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시므이보다 약 300년 전의 인물인 사사 에훗도 '게라의 아들'로 불리웠던 것으로 보아(삿 3:15) 이 말은 '게라의 후손'이라는 뜻이다(J.H-ammond).

(주);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 여기서 '너와 함께 있나니'(*, 임메카) 란 말은 곧 너와 가까이에 있다는 뜻으로, 이는 솔로몬이 거주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과 가까운 곳에 시므이가 살고 있다는 뜻이다(Keil, B hr). 그러므로 이 말은 혹자(Starke)의견해처럼 시므이가 솔로몬의 권력하에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편 '시므이'(Shimei)에 대해서는 삼하 16:5 주석을 참조하라.

(주);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 직역하면, '그는 지독한 저주로써 나를 저주하였다'란 의미인데, 구체적인 저주의 내용은 삼하 16:7, 8에 나타나 있다. 한편 학자들은 여기서 '독한 말'(*, 켈랄라 니므레체트)을 '강렬한 말'(Gesenius), '거친 말'(Keil), '악한 말'(Thenius) 등으로 번역한다. 여하튼 시므이의 그 저주 까닭에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 혹 은총을 베풀어 주실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을 정도로 시므이의 독한 말(저주)은 다윗에게 깊이 원통함을 심어준 말이었다(삼하16:12).

(주);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 압살롬의 난이 평정된 후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환궁할 때 자신의 잘못에 대해 생명의 위험을 느낀 시므이는 급히 환영단 일천명을 이끌고 요단으로 내려가 다윗 왕을 영접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였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삼하 19:16-23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주); 내가...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 당시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고 막 환궁하는 시점에서 사울 왕의 지파인 베냐민 기파 소속의 유력자 시므이를 처형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일단 시므이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 그러나 다윗의 이 용서는 시므이의 범죄를 용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에 대한 징계를 보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삼하 19:21,23 주석 참조.

성 경: [왕상2:9]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다윗의 유언]

(주);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 압살롬의 반란 때 시므이는 피난가는 다윗에게 혹독한 저주를 퍼부었으나, 후에 다윗은 그를 용서한 바 있다(삼하 16:5-13;19:19-23). 그 까닭은 시므이가 사울의 출신 지파인 베냐민 지파의 유력한 유지였고, 또 그 무렵은 압살롬 내란 이후 회합책으로 민심을 수습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 다윗은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것이다(삼하 19:23). 그러나 아들 솔로몬에게는 그러한 맹세의 책임이 없는 것이다. 한편 원문은 '무죄'를 '벌하지 않은 상태'로 말하고 있다. 또한 '그러나'는 원문상 '그리고 지금'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이제까지 벌하지 않은 상태로 보류해 온 시므이에 대한 처벌을 지금 집행할 때가 왔다는 뜻이다(J. Hammond).

(주); 그 백발의 피를 흘려...내려가게 하라 - 다윗은 시므이의 행위(삼하 16:5-13)를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저주와 모욕이 아닌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시대에는 비록 민심(民心) 수습이란 현실적 문제로 그를 처단하지 않았지만 끝내는 처단해야할 존재로 작정했다. 사실 시므이와 같은 기회주의적 인물은 때가 되면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히 있었으므로, 다윗은 솔로몬의 견고한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므이와 같은 암적(癌的) 존재가 반드시 제거될 필요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한편, 혹자는 용서받은 후 시므이의 행동이 신실한 회개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하에 다윗이 이처럼 명령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Richard D.Patterson). 또한편 일부 학자들(Stanley, Harwood)은 주장하기를, 시므이를 처형시키라는 다윗의 명령은 '뿌리 깊은 증오심' 내지는 '끝내 참을 수 없었던 복수심'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나,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다윗의 명령은 결코 개인적 차원의 원한이나 복수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실현' 내지는 '하나님 왕국의 강화'라는 차원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인 기름 부음 받은 왕을 모욕하고 저주한 자에 대해 개인적인 용서의 차원을 떠나 신적 심판은 반드시 집행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라고 보아야만 한다(Keil, Hammond).

성 경: [왕상2:10]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다윗의 죽음]

(주);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 자서...장사되니 - '열조와 함께 누워 자다'란 표현은 '열조에게 돌아가다'(창 25:8;35:29;49:33)란 표현과 동일한 표현으로서, 곧 '죽음'을 가리키는 성경적 표현이다. 이리하여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위대한 성군(聖君) 다윗도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2절) 가고 말았다. 다윗은 자신의 남은 마지막 재임 기간을 새 왕 솔로몬과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일로 보냈다(대상 22:6-19;28:1-21;29:1-22). 이처럼 다윗은 죽는 그 순간까지 맡은 바 소임을 다하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축복하에서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대상 29:28) 죽어 예루살렘의 다윗 성에 장사되었다. 실로 이스라엘 역사상 다윗은 가장 위대한 왕이요 의로운 왕이었다. 이런 맥락하에서 다윗이 세운 도시 예루살렘은 '다윗 성'으로 간주되었다(3:1;8:1;느 3:15). 뿐만 아니라 다윗은 이후 이스라엘 모든 왕들의 의(義)의 척도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가증한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멸하지 않은 것은 바로 다윗을 생각해기 때문이었다(왕하 8:19). 무엇보다도 다윗은 장차 그의 가계를 통해 오실 메시야의 조상으로서 그 뚜렷한 의의를 지닌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지칭했으며(마 1:1), 백성들 역시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때에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다윗을 기렸던 것이다(마 21:9).

(주); 다윗 성 - 다윗이 여부스족에게서 빼앗은 성채로 시온 산성과 동일시 된다(8:1;삼하 5:7;댜허 5:2). 그런데 시온 산(Mt, Zion)은 두로포이온 계곡과 기드론 계곡 사이의 산을 가리킨다. 이곳은 종종 예루살렘과 동일시 되기도 한다(Wycliffe). 유대 사가 요세푸스도 그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예루살렘은 다윗 성이 보다 확장된 것이다(IDB). 그리고 역대 유다 왕들의 무덤은 시온 산 곧 다윗 성에 있었다(11:43;14:31;15:8). 한편, 다윗의 묘는 느헤미야 시대를 거쳐(느 3:15, 16) 후일 사도시대까지 존재하고 있었다(행 2:29).

성 경: [왕상2:11]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다윗의 죽음]

(주); 다윗이...치리하였더라 -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 때인 B.C. 1010년 경에 헤브론에서 왕위에 올라 그의 나이 70세 때인 B.C. 970년경까지 40년동안 이스라엘을 치리한 후 밧세바를 통해 낳은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양위한 후 그의 통치를 마감하였다.

(주); 헤브론에서 칠 년을 치리하였고 - 다윗의 헤브론 7년 통치는 유다 지파만의 왕으로서 통치한 기간이다. 이후 다윗은 사울 왕국을 통합하여 명실 공히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서 33년간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한편, 다윗의 헤브론 통치기간에 대해 역대기는 여기서와 마찬가지로 7년으로 나타내고 있지만(대상 29:27), 사무엘서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7년 6개월로 나온다(삼하 5:5).

성 경: [왕상2:12]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다윗의 죽음]

(주); 솔로몬이 그 아비 다윗의 위에 앉으니 - 이는 1:46과 중첩되나 본절은 다윗이 죽고 이제 본격적인 솔로몬의 통치기가 시작됨을 나타낸다. 따라서 솔로몬의 즉위(1:46) 이후에도 다윗은 죽을 때까지 얼마동안 일종의 섭정 자격으로 통치를 계속했던 것 같다. 한편, 솔로몬의 즉위 연대는 대략 B.C. 970년 경으로 추정된다.

(주); 그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 대체로 이 부분은 앞으로 이어져 나올 내용의 요약으로 보고 있다(Keil, B hr, Hammond). 그리고 여기에 상응하는 보다 구체적인 설명은 대상 29:23-25 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이것은 일찍이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삼하 7:12).

성 경: [왕상2:13]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아도니야의 방자한 소청]

(주);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 - 1:5 주석 참조.

(주);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 70인역(LXX)에는 아도니야가 절을 하였다는 말이 추가되어 있다. 한편 1:11의 밧세바는 왕비였으나 지금 그녀는 태후(太后)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국에서 태후의 위치는 대단히 유력한 위치였다(J. Hammond). 그러므로 실제 열왕기에는 왕들의 모친들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14:31;15:10,13;왕하11:1;12:1;14:2;15:2 등). 그중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의 전횡(專橫)은 특기할 만하다(왕하 11:1-3). 분명 이런 맥락하에서 아도니야 역시 밧세바를 움직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밧세바에게 접근한 것이다.

(주);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뇨 - 화평에 해당하는 '샬롬'(*)은 보통 인사말로서 주로 사용된다(창 43:27;출 18:7). 그러나 궁금증이나 의혹을 담은 물음에서도 종종 사용된다(삼상 16:4;왕하 5:21;9:11,17). 의당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방문이 의아했을 것이다(Keil, Hammond). 왜냐하면 아도니야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들 솔로몬과 왕위를 놓고 다투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아도니야가 이제 다윗이 죽고난 후 솔로몬이 본격 통치를 시작할 즈음에 갑자기 밧세바를 방문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밧세바는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므로 경계심을 품은 질문을 한 것이다.

성 경: [왕상2:14]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아도니야의 방자한 소청]

(주); 내가 말씀할 일이 있나이다 - 원문은 "내가 말씀을 드려도 괜찮은지?"하는 은근함이 담긴 의문문의 형태이다. 이처럼 비교적 상세하게 그들의 대화 내용이 보도되는 것은 그 자리의 분위기를 전달함으로써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을 납득시키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도니야에게 호의를 가질 리 만무한 밧세바가 결국 그의 청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18절).

성 경: [왕상2:15]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아도니야의 방자한 소청]

(주); 왕위는 내 것이었고 - 원문상 '내 것이다'(*, 리)란 말이 앞서 나오기 때문에 문법상 '내 것'이란 말이 강조적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Burney). 아무튼 아도니야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당시 다윗의 생존한 아들들 중 그가 최연장자였기 때문이다<1:6>.

(주);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 이것은 분명히 상황 판단 착오로서, 사실 자체의 반대되는 곡해이다(1:20,40). 물론 아도니야의 유력한 추종 세력이 있었지만(1:7,9), 온 이스라엘의 지지가 자신에게 있었다는 주장은 아도니야의 교만한 성품과 왕위에 대한 미련이 빚은 착각이다<1:5>. 여하튼 교활하게도 아도니야는 본래 왕위가 자신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지 못한 사실을 과장하여 상기시킴으로써, 은근히 밧세바의 마음에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주); 돌이켜 - 영역본 KJV는 'turned about'으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본래의 원칙에서 벗어난 변칙의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비록 아도니야가 이 말 다음에 그러한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는 말로 돌리고는 있지만(Keil), 역시 내심으로는 왕위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떨치지 않고 있음과 아울러 솔로몬의 왕위를 인정치 않고 있음을 보여 준다(J. Hammond, Patterson).

성 경: [왕상2:16]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아도니야의 방자한 소청]

(주); 내 얼굴을 괄시하지 마옵소서 - 원문은 "당신의 얼굴을 돌리지 마소서"(Do notturn away your face)란 뜻이다. 즉 외면하여 거절하지 말아 달라는 간청이다.

성 경: [왕상2:17]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아도니야의 방자한 소청]

(주);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 아도니야의 이 간청은 다만 아비삭의 미모를 탐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아도니야의 이러한 요구는 궁극적으로 왕위를 노리는 행동으로 해석한다(Keil, B hr,Smith 등). 왜냐하면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그의 첩(후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Patterson). 그런데 파사 제국을 비롯한 고대 근동에서늘 선왕(先王)의 첩을 아내로 삼음으로써 후왕(後王)이 자신의 왕위를 널리 인정받는 관습이 있었다(Herodotus). 이런 맥락하에서 압살롬도 백성들의 목전에서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함으로써 왕권 쟁취를 널리 선언한 바 있있다(삼하 16:20-23). 따라서 비록 밧세바는 이러한 아도니야의 숨은 저의를 정확히 간파하지 못하고 쉽사리 그의 청을 들어 중재자의 자격으로 나섰지만, 지혜로운 솔로몬은 밧세바의 말을 통해 아도니야의 숨은 저의를 정확히 간파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마침내 아도니야를 처형시키고 만다(25절). 그 이유는 솔로몬이 아도니야에게 일찍이 주지시켰던 바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1:52)라는 말대로 아도니야의 아비삭 요구 속에는 다시금 왕위를 노리는 '악한 의도'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성 경: [왕상2:18]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아도니야의 방자한 소청]

(주); 좋다 내가...왕께 말하리라 - 밧세바가 아도니야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한 까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대두된다. 즉 밧세바는 별 생각 없이 아도니야의 청을 들어주었다는 견해, 즉 사사로운 애정 문제가 정치적 연관을 가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기 때문에 선뜻 아도니야의 청을 들어주었다는 해석(Wycliffe, B hr), 왕위 경쟁에서 탈락한 아도니야에 대한 일종의 위로와 동정의 대가로 쉽사리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는 견해 (C. Dentan), 밧세바는 자신이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은근히 과시하기 위해서 아도니야의 청을 수락했다는 견해(J. Hammond) 등이 논의된다. 그러나 아마도 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성 경: [왕상2:19]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아도니야의 죽음]

(주);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 솔로몬이 모친 밧세바를 태후(太后)로 존중하여 최대의 예우와 존경으로 맞이하는 모습이다. 70인역에는 왕이 입맞추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스라엘 왕국에서 태후의 지위는 매우 유력했던 것 같다(J.Hammond, Exell). 그런데 성경 기록상 밧세바는 최초의 공식적인 태후인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즉위에 큰 공헌을 한 밧세바(1:15-21)에 대향 예우가 이후 왕실의 태후에 대한 예우 확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주); 그 우편에 앉게 하는지라 - 우편(右便)의 자리는 특히 고대 근동 사회에서 존대와 영광을 나타내는 자리였다(Keil). 그리고 그러한 관례는 성경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시 110:1;ak 20:21;25:33;행 7:56;롬 8:34 등). 한편 본문이 이처럼 솔로몬의 극진한 예절을 소상히 기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솔로몬은 효성이 지극한 왕이었음을 알리고, 동시에 그러한 효성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모친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한 것은 결코 괄시가 아니라 아도니야의 요청이 역모에 관련된 탓임을 나타내려는 이유 때문이었다.

성 경: [왕상2:20]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아도니야의 죽음]

(주); 한 가지 작은 일로 - 아도니야의 "한 가지 소원"(16절)이 밧세바에게 이르러 "한가지 작은 일"로 바뀌어 있다. 이것은 밧세바가 아도니야의 부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고 었었음을 나타낸다. 분명 밧세바는 그러한 부탁을 단순한 '애정 문제'로 생각했던 것 같다(B hr, Hammond). 한편 그런데 이와는 전혀 다른 견해도 있다. 즉 솔로몬이 아비삭을 좋아했기 때문에 밧세바가 일종이 질투심에서 아도니야의 청을 적극 수락했다는 견해이다(Grove). 이 견해는 아가서의 술람미 여인을 수넴 여자 아비삭과 동일시 가설에 기초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 그 가설을 입증할 만한 기록이 전혀 없고, 설령 그렇더라도 밧세바가 질투하거나 반대할 까닭이 없으며, 그리고무엇보다도 문제의 핵심은 아도니야의 역모(逆謀) 여부에 주어지고 있으므로(22절), 그러한 견해는 지나친 비약이다.

성 경: [왕상2:21]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아도니야의 죽음]

(주);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 분명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이 부탁을 단순한 남녀간의 애정 문제로 인식하고, 이처럼 솔로몬에게 아도니야의 청을 들어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밧세바의 생각으로는, 수넴 여자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지 않았으므로(1:4), 그녀는 한낱 수종드는 시종에 블과할 뿐이라고 간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Keil). 여기에 덧붙여 밧세바는 왕위 경쟁에서 실패한 아도니야에 대한 일종의 동정심도 작용하여 이 문제를 '한 가지 작은 일'로 보았던 것이다(20절). 그러나 당시 일반 백성들은 분명 아비삭을 다윗의 첩(후궁)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Patterson). 그리고 당시의 관례상 선왕(先王)의 후궁을 계승하여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 왕좌를 계승한다는 하나의 상징적 행위였다(삼하 3:7;12:8;16:20-22;Herodotus, -68). 그러므로 만일 아도니야의 뜻대로만 된다면, 그는 왕권회복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되고(Rawlinson), 또한 아도니야의 추종 세력들은 크게힘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삼하 16:21). 이러한 모든 배경하에서 밧세바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솔로몬은 이전에 아도니야의 반역죄를 용서해 주면서 한 말, 곧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고 경고했던 일이 떠올랐을 것이다(1:52).

성 경: [왕상2:22]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아도니야의 죽음]

(주);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 처음의 다정했던 분위기가 일순간 깨어지는 순간이다. 이때 솔로몬은 분명히 격노했을 것이다. 현명했던 그는 아도니야의 '한 가지 소원'(16절)의 저변(底邊)에 깔려 있던 역모의 흉계를 곧 간파했다. 그리고 그 흉계를 모르고 중개 역할을 한 모친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주); 저를 위하여 왕위를 구하옵소서 - 결과적으로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요구한 것이 솔로몬에게 있어서는 왕위를 요구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밧세바의 '한가지 작은 일'이 사실은 아도니야의 역모(逆謀)임을 단정하는 부분이다. 한편 본절 전체에서는 '위하여'에 해당하는 '로'(*)가 세번 나온다. 그리고 그것이 거듭될 때마다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면서 하찮게 보이던 작은 부탁이 결국은 왕위를 노리는 의도였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즉 선왕의 후궁과 다름없는 아비삭을 요구하는 것은<17절> 원래 장자권을 가졌던 아도니야가<15절> 애초 자신의 1차 거사 세력과 재차 역모를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다. 따라서 21절의 밧세바의 말과 본절의 솔로몬의 대답은 같은 요소들을 포함하지만, 사건을 보는 시각은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주); 아비아달과...요압도 위하여 - 여기서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 장관 요압의 이름이 거론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1차 거사 실패 이후(1:7,49)에도 이들 핵심 세력 3인은 왕권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계속 암중 모색해 왔던 것 같다. 혹자는 생각하기를, 과거 압살롬에게 다윗의 후궁들을 취하라고 권면한 자가 아히도벨이었던 것처럼(삼하 16:21), 이번에 아도니야에게 아비삭을 요구하라고 권면한 자가 혹 아비아달 또는 요압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Theodoret).

성 경: [왕상2:23]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아도니야의 죽음]

(주);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별울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 이것은 맹세의 일반적 형식으로서 반드시 맹세의 내용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다. 즉 변경할 수 없는 결심을 나타내는 맹세의 관용적 용법이다(룻 1:!7;삼상 3:17;14:44 등).

성 경: [왕상2:24]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아도니야의 죽음]

(주); 나를 세워...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 다윗의 맹세(1:29)에서와 마찬가지로 솔로몬의 일반적인 맹세의 형식에다 자신의 절실한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신앙 고백을 결합시켜 결연히 맹세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한 것은 곧 여호와의 살아계심이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자신의 맹세 내용 역시 결코변하시 않을 확고 부동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주); 허락하신 말씀대로...집을 세우신 - 여기서 '집'에 해당하는 '바이트'(*)는 때때로 '가족'을 의미하기도 한다(창 50:22;수 2:18;렘 38:17). 따라서 혹자들은 '자손'을 주신 것으로 보고, 곧 솔로몬은 여기서 자신의 왕위를 이을 아들 르호보암을 낳은 사실을 말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Keil, Wordswoth). 그러나 솔로몬의 결혼은 이 일 뒤에 있었으므로(3:1). 그러한 견해는 따르기 곤란하다(B hr). 오히려 솔로몬의 이 말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견고한 왕위'를 허락해 주셨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12절;삼하 7:11-16). 즉 일찍이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허락하신 말씀대로(삼하 7:11-16;12:@4,25;대상22:6-10), 왕위가 다윗에 이어 솔로몬에게 주어짐으로써 그 왕위를 더욱 견고케 하셨다는 뜻이다.

성 경: [왕상2:25]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아도니야의 죽음]

(주); 브나야를 보내매...쳐서 죽였더라 - 원문상 '브나야의 손으로 쳐서 죽였다'란 뜻이다. 그런데 이것이 왕의 친위 대장인 브나야 자신이 직접 행동한 것인지 아니면 그렛사람과 블렛사람<1:38>의 우두머리인 브나야의 감독하에 사형을 집행한 것인지 확실치않다. 아무튼 당시 왕의 친위(경호) 대장은 사형 집행관의 역할도 겸하였기 때문에, 솔로몬 왕의 명을 받은 브나야의 책임하에 아도니야에 대한 처형이 공식 집행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혹자들은 이유야 어떻든 솔로몬이 자신의 이복 형인 아도니야를 처형시킨 것은 당대히 세속적인 왕권 쟁탈 싸움과 다를 바 없는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비난한다. 사실 얼핏 보면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구태여 처형시킨 일은 가혹한 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솔로몬은 혈연 관계를 초월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대권을 위임받은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서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공의를 구현하는 데 주력해야만 했다. 따라서 1차 경고(1:52)에도 불구하고 재차 반역을 시도함으로써, 신정(神政) 왕국 이스라엘의 근간 질서를 문란케 한 아도니야의 죄는 엄중히 다스려져야 마땅하였다(Keil, Hammond, Patterson). 즉 솔로몬의 아도니야 처형 사건은단순히 '왕권 도전 세력의 제거'라는 정치적 차원에서 평가될 것이 아니라, '신정 왕국의 확립 및 강화'라는 신적 공의 실현의 차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솔로몬이 자기 형 아도니야를 처형시킨 사건은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그러나 정당했고, 결과적으로 선을 이루었다.

성 경: [왕상2:26]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아비아달의 파면]

(주); 아나돗 - 베냐민 지파에 속한 고을로 제사장의 성읍이다(수 21:18;대상 6:60).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약 5.6km 정도의 거리로서(Robinson), 선지자 예레미야의 부친 힐기야의 고향이기도 하다(렘 1:1).

(주); 죽을 자로되...죽이지 아니하노라 - 혹자는 이것을 제사장의 목숨은 왕이 결정하는 법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보나, 사울의 예로 미루어 합당치 못하다(삼상 22:!6-19). 따라서 솔로몬의 이러한 조치는 역시 본문이 알리는대로 부친 다윗을 도왔던 아비아달의 공로가 참작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아비아달의 공로는 다음 두 가지이다.

다윗 앞에서 여호와의 궤(언약궤 또는 법궤)를 메어 올린 일 - 제사장 아비아달은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대상 15:11-15)와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피난할 때(삼하 15:24-29) 법궤를 맡아 책임짐으로써 다윗을 도운 적이 있었다.

다윗과 환난을 같이 받은 일-제사장 아비아달은 다윗이 사울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삼상 22:20-23;23:6)와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도피할 때(삼하 15:24,35) 다윗의 입장에서 동고 동락했었다.

성 경: [왕상2:27]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아비아달의 파면]

(주); 아비아달을 쫓아내어...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 이러한 솔로몬의 조치는 제사장을 세우고 폐하는 일이 왕에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비아달의 경우,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왕에 대항하여 계속 반역을 모의함으로써 스스로 제사장직으로부터 이탈하였으므로, 솔로몬은 그에 상응하는 합당한 조치를 취했을 뿐이다(B hr). 한편, 추방 당한 이후의 아비아달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추측컨대, 추방당할 때의 나이가 80세 가량의 노령이었으므로, 이후 오래 살지 못했으리라 짐작된다(Keil & Delitsch, op. cit. p.34).

(주); 엘리의 집...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 일찍이 하나님께서 익명의 선지자를 통하여 엘리의 집에 선포한 예언의 구체적인 내용은 삼상 2:27-36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죄악으로 말미암아 엘리 가문의 제사장직이 폐하여질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런데 여기서 열왕기 저자는 아비아달의 제사장직 파면 사건을 그 예언의 성취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이로써 아비아달은 이다말과 엘리 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제사장 중 마지막 제사장이된 셈이기 때문이다. 원래 아론의 네 아들들(나답, 아비후,엘르아살, 이다말) 중 나답과 아비후는 잘못된 분향 사건으로 인해 일찍 죽었기 때문에(레 10:1,2),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유력한 제사장 계열로 남는다(레 10장;민 3:4;대상 24:3). 그런데 아비아달은 엘리 집안 소속으로서 이다말 계열에, 사독은 엘르아살 계열에 각각 속한다(IDB;삼상 14:3;22:9;eotkd 24:3). 그러므로 아비아달이 역모죄로 말미암아 솔로몬에 의해 파면된 것은 곧 대제사장직이 엘르아살 계통으로 완전히 일원화 되었음을 의미한다(Keil;35절;대상 6:1-8). 아울러 다윗 시대의 2명의 대제사장 문제<1:8>가 해결되었고, 결국 엘리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역사의 시종을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섭리 주관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뚜렷이 감지할 수 있다.

성 경: [왕상2:28]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요압의 최후]

(주);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단 뿔을 잡으니 - 아도니야와 아비아달의 운명을 전해들은 요압은 다음은 자기 차례일 것을 직감했다(Keil, Patterson, C. Dentan). 그리고 아마 요압은 아도니야의 전례를 기억하고는 이렇게 단 뿔을 잡았을 것이다(1:50).그런데 요압의 이러한 행동은 솔로몬에 대해 스스로 떳떳치 못함을 증명한다(Hammond,B hr). 그러나 그것이 곧 2차 거사의 음모가 있었음을 확증하진 않는다. 오히려 오압은 이전의 살인 행위와 관련되어 처벌되고 있다(31-33절). 따라서 요압이 제단 뿔을 잡은 행위는 별 효과가 없었다. 왜냐하면 출 21:13, 14의 규례에 의하면, 제단을 도피처로 삼을 수 있는 자는 오직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에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압은 다윗의 뜻을 정면 거스려 자기의 야욕과 복수심으로 이스라엘의 두 장수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였던 것이다(삼하 3:23-27;20:4-10).

(주); 여호수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 요압이 급히 도망친 '여호와의 장막'은 이전에 아도니야 역시 도망친 곳으로서, 이곳은 기브온에 있던 성막이 아니라(대하 1:3), 시온산 위에 있던 장막이다(대하 1:4;Keil).

(주); 압살롬을 좇지 아니하였으나 - 갈대아역(the Chaldee)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대 역본들(LXX, Vulgate, the Arabic)은 여기서 '압살롬'(*) 대신 '솔로몬'(*)을 취한다. 그리고 일부 학자들(Thenius, Ewald)도 이러한 입장에 동조잔다. 그러나 여타 히브리어 사본들을 참조할 때, 그리고 문법적으로 고찰해 볼 때 그러한 본문 수정은 지지를 받지 못한다(Keil,B hr).

성 경: [왕상2:29]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요압의 최후]

70인역은 본절의 솔로몬의 말 앞에 다음과 같은 말을 첨가하고 있다. 즉 "솔로몬이 사람을 보내어 왜 도망하였느냐고 묻자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피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내용이 삽입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70인 역자의 보충적인 설명일 뿐이지만, 이같은 내용은 요압의 도주가 스스로 제 발 저린 행동이란 사실을 파악케 하는데 도움을 준다(J. Hammond, B hr).

성 경: [왕상2:30]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요압의 최후]

(주);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 브나야가 신성한 성소에서 피 흘리기를 주저하는 것을 보면서 요압이 대답한 이 말의 의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즉 요압은 솔로몬이 감히 신성한 성소에서 자기를 죽이지는 못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라는 견해(B hr, Barlow, Keil), 아니면 성소에서 죽음으로써 요압은 솔로몬에게 성소 모독의 오명을 끼치고 죽으려했다는 견해(M. Henry), 그 밖에 제단 곁에서 죽음으로써 사후에 어떤 공덕을 얻으려는 일종의 미신적 심리가 작용했다는 견해(J. Hamm-ond) 등이 있다. 그러나 요압이 이 중 어느 것을 심중에 두었더라도 결정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즉 그것은 비록 요압 자신은 과거지사로 잊고 있었을런지몰라도, 분명 그는 사악한 계교로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자로서, 곧 이웃을 모살한 자라는 점이다(출 21:14). 그리고 이런 살인자는 성소의 보호 규정에 해당되지 않을뿐 아니라, 성소의 그 어떠한 은총도 전혀 누릴 수 없다는 점이다(신 19:11-13).

성 경: [왕상2:31]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요압의 최후]

(주); 저를 죽여 묻으라 - 솔로몬이 여기서 특별히 '묻으라'(매장하라)는 말을 강조한 이유는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신 21:23의 율법에 나타나는 바, 죽은 자를 그날로 매장하라는 규정에 따르려는 것(J. Hammond), 또는 이전에 세운 요압의 공로를 예우해 주려는 것(B hr, Keil)으로 이해된다. 여하튼 이것들은 모두 솔로몬이 율법을 준수할 뿐 아니라 공평무사한 왕임을 강조해 준다.

(주);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제하리라 - 민 35:31-34의 율법에는 고의로 살인한 자는 결코 용서치 말 것과, 또한 그 죄값은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로써만 오직 갚을수 있다는 율례가 나온다. 그러므로 이런 맥락에서 아브넬과 아마사의 죽음에 책임을 갖고 있는 다윗 왕가는 그들의 피를 흘리게한 요압의 피로써 그 죄값을 속량할 의무가 있었다(삼하 21:1-9;창 4:10;9:6). 따라서 다윗은 임종시 이 사실을 유언으로 남겼고(5,6절), 솔로몬은 부친의 명을 받들어 요압을 처형함으로써 마침내 무고히 피흘리게 한 죄값을 속량받아, 결국 피흘린 죄를 자신의 집으로부터 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 경: [왕상2:32]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요압의 최후]

요압의 처형에 대한 판결문이다.

(주); 저가 자기보다 외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 이 때문에 요압은 비록 성소에서일지라도 죽임을 당하는 것이므로, 솔로몬의 처사는 위법이 아닌 것이다<30절>. 그런데 여기서 솔로몬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요압보다 의롭고 선한 인물로 보고 있는 까닭은, 비록 아브넬과 아마사도 다윗을 적대하긴 하였으나(삼하 2:8-29;17:25) 그것은 전쟁시였고 후에는 오히려 화평을 도모했었기 때문이다(삼하 3:21;19:13;20:4). 반면 요압은 평화시에 개인적 복수심과 질투로 다윗 왕을 거스려 그들을 살해했던 것이다(5절).

(주); 아브넬과...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이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과 압살롬의 군대 장관 아마사를 개인적인 복수심과 질투로 인해 평화시에 무참히 살해한 내용은 각각 삼하 3:22-27과 20:4-12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자세한 내용은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주); 이 일을 내 부친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 즉 요압은 다윗 왕 모르게 독단적으로 아브넬과 아마사를 살해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비록 요압의 행위가 독단적 행위였더라도 그 사건들은 다윗에게 좋지 못한 오해가 생기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윗은 아브넬의 장례를 성심껏 치러 준 바가 있었고(삼하 3:31-37), 솔로몬도 여기서 다윗왕은 전혀 무관한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새삼 변명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J. Hammond)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이미 그 당시에 다윗 왕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삼하 3:37).

성 경: [왕상2:33]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요압의 최후]

(주); 저희의 피는...요압의 머리와 그 자손의 머리로 - 솔로몬의 이 말은, 아브넬의 살해 소식을 듣고 다윗이 요압에게 내린 저주와 비슷하다(삼하 3:28, 29). 히브리인들은 무고히 흘린 피살자(被殺者)의 피는 그 피값이 속량될 때까지 계속 하나님께 호소한다고 믿었으며(창 4:10), 반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한 살해자(殺害者)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당대 또는 자손들에게서라도 반드시 그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믿었다(출 20:5;34:7;레 20:5;26:39;수 2:!9;마 27:24, 25). 이런 점에서, 여기 솔로몬의 말은 오늘날 요압이 죽임당하는 것은 그 자신이 흘리게 한 피의 당연한 대가로서, 이제 그 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요압 역시 죽임당한다는 의미이다. 한편, 이러한 피의 보응 원리(창 9:6)에 대한 성경적 일례로, 무고히 기브온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한 사울의 범죄로 후일 사울의 후손 일곱 명이 처형당함으로써 그 피값을 치른 사건(삼하 21:1-9)을 들 수 있다.

(주); 다윗과 그 자손...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 요압을 처형함으로써 이제 솔로몬은 다윗 집안에 여호와의 평강이 영영히 깃들 것으로 확신한다. 왜냐하면 요압을 처형함으로써 그동안 다윗 집안에 드리워진 무고한 자의 피흘린 죄책을 말끔히 제거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31절). 이로 보아 우리는 다윗 혹은 솔로몬이 결코 개인적인 복수심이나 원한으로 요압을 처형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성경적 '죄의 보응 원리'(창 9:6;출 21:14;레 17:11)에 입각하여 공의롭게 요압을 처형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J. H-ammond), 즉 다윗 혹은 솔로몬은 무고한 피값을 갚을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 그 책임이 다윗 왕가로 돌아와 저주가 되는 것으로 믿었다. 반면 그 피흘린 죄책을 제거하면, 다윗 왕가는 여호와의 평강의 상태에 들게 될 것으로 확신했다는 것이다(Wycliffe). 그런데도 일찍이 다윗이 즉시 이를 행하지 못한 것은 당시에는 요압의 세력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삼하 3:39). 그러나 이제 솔로몬이 마침내 그 의무를 행한 것이다.

성 경: [왕상2:34]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요압의 최후]

(주); 올라가서 - 요압이 피신한 곳은 언약궤가 있던 시온 산 위의 장막이었으므로(28절), 솔로몬의 왕궁보다 고지대에 위치했다(Keil). 따라서 이처럼 표기한 것이다.

(주); 거친 땅 - '유다 광야'를 말한다(Keil, Hammond). 이곳은 베들레헴과 드고아에서 가까운, 돌이 많은 지역이다(수 15:6;삿 1:16). 그런데 여기에 요압 조상들의 무덤이있었다(B hr).

(주);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 고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집에 딸린 정원에 무덤을 마련하기도 했다(Keil). 그런데 이처럼 넓은 정원 딸린 집은 귀족들의 거처였으므로, 집에 장사되는 사람은 주로 귀인(貴人)들에 국한되었다. 성경에는 사무엘이 이처럼 집을 장지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삼상 25:1). 따라서 비록 요압은 피의 보응 원리에 따라 처형은 당했지만, 생전에 그가 다윗을 위해 세운 많은 전공(戰功)이 참작되어 이처럼 용사의 죽음으로 예우받은 것 같다(J. Hammond).

성 경: [왕상2:35]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요압의 최후]

왕국이 솔로몬의 인물들로 새롭게 체제 개편되었음을 말해 준다. 그 핵심 내용은 군대 장관에 '브나야', 대제사장에 '사독'이 임명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브나야는 시위 대장에서 군대 장관으로 영전된 것이며, 사독은 명실 공히 단독 대제사장으로 지위 격상된 것이다.

(주);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 - 이것은 이제 대제사장직이, 다윗이 부득이 세웠던 이원 체제에서(삼하 8:17) 사독 가문이 주도하는 일원 체제로 바뀌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이때로부터 세워진 사독 계열의 제사장직 정통성은 후일 선지자 에스겔에 의해 인정되기도 했는데(겔 44:15,16), 사독 계열의 대제사장직은 B.C.171년, 안티오쿠스(Antiochus)에 의해 짓밟혀 메넬라우스(Menelaus) 가계로 넘겨질 때까지 계속 수행되었다. 따라서 쿰란(Qumran)동굴을 거처로 삼았던 엣센파(The Essenes)는 오직 사독 계열의 대제사장만을 유일한 합법적 대제사장으로 간주하고 이들의 회복을 기대했었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성 경: [왕상2:36]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시므이의 최후]

(주); 시므이 - 이 인물이 앞의 세 사람 (아도니야, 아비아달, 요압)과 같이 솔로몬 왕권을 위협하는 장애로 여겨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시므이는 사울의 근친으로서 강력한 반(反) 다윗 인사였고(삼하 16:5-8,13), 또한 소속 지파인 베냐민 지파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지도급 인사였기 때문이다(B hr; 삼하 19:17 주석 참조).

(주); 너는 예루살렘에서...나가지 말라 - 일종의 주거 제한 및 감시를 위한 조치이다. 그리하여 베냐민 지파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차단하여 반란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J. Hammoan). 한편 본래 시므이가 살던 '바후림'<8절>은 수도 예루살렘에서 약9km 가량 떨어진 곳으로, 베냐민 지파의 요충지였다.

성 경: [왕상2:37]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시므이의 최후]

(주); 기드론 사내 - 유다 지파의 베냐민 지파의 영토를 구분짓는 예루살렘 동편의 경계천(境界川)이다. 우기(雨期)의 폭우 때를 제외하곤 거의 물이 흐르지않는 시내(brook), 곧 '와디'(wady)이다(IDB). 이 시내 건너편에 시므이의 본 거주지인 '바후림'이 있었다(삼하 15:23).

(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 당시 사형 선고의 일반적 형식이다(B hr;레 20:9;수 2:19). 그 의미는 '너 자신의 잘못(죄) 때문에 네가 죽는 것이다'란 뜻으로서, 곧 죽음(피흘림)에 대한 원인과 책임이 바로 죽임당하는 자(범죄자) 자신에게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사형 집행자는 그 피흘림과 전혀 무관하다는 의미이다.

성 경: [왕상2:38]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시므이의 최후]

(주); 이 말씀이 좋사오니 - 다윗의 맹세(삼하 19:23)와 관계없는 솔로몬<9절>은 부친의 유언(8, 9절)을 지키되, 그러나 곧장 시므이를 처벌하지 않고 일단 충성을 시험하는 명령(M. Henry)을 내렸다. 그러므로 이를 아는 시므이는 자신의 과거 소행(삼하 16:5-8)을 생각할 때 솔로몬의 주거 제한 명령을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성 경: [왕상2:39]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시므이의 최후]

(주); 삼년 후 - 시므이에 대한 주거 제한 명령(36절)은 분명 솔로몬의 즉위(B.C. 970)초에 내려진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때는 솔로몬 즉위 3년째인 B.C.967년 경으로 추정된다.

(주); 시므이의 두 종이...도망하여 간지라 - 혹자는 종들이 주인 시므이와 사전에 짜고, 주인을 예루살렘 밖으로 인도하기 위해 도망쳤다고 추측하기도 하나 근거가 없는 무리한 추측이다. 아마도 두 종은 주인 시므이에게는 주거 제한 명령(혹은 금족령)이 떨어진 상태이므로, 자신들을 쫓아오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여 도망친 것 같다. 아무튼 두 종의 도망 사건 배후에는 다윗의 억울함을 신원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다고 본다(8, 9절;삼하 16:12).

(주); 가드 - 블레셋의 5대 성읍 중 하나(삼상 21:10)로, 이스라엘과는 때로는 적대적이고 때로는 친교를 맺는 등 많은 정치적 연관을 갖고 있었딘 블레셋의 주요 성읍이다(삼상 5:6-10;17:4,52;삼하 15:18-22;대상 18:1). 여호수아 11:22 주석 참조.

(주);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 - '마아가'(Maachah)는 삼상 27:2의 '마옥'(Maoch)과 동일시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아기스'(Achish)는 일찍이 사울을 피해 망명한 다윗을 보호해준 인물이다(Keil). 삼상 21:10;27:2 주석 참조.

성 경: [왕상2:40]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시므이의 최후]

(주); 그 종을 찾으려고 일어나 - 도망한 노예를 되찾는 것은 주인의 당연한 권리로서, 그 자체로서는 합법적이다(C. Dentan).

(주); 가드로 가서 - '가드'는 그 위치상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않아도 되는 곳이므로(37절), 어쩌면 시므이는 별 탈 없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므이가 자신의 맹세에 대해 철저한 사람이었다면, 예루살렘을 벗어나 가드까지 먼길을 여행하기 전에 먼저 왕의 허락을 요청했어야 옳았다(Patterson). 만일 그러한 절차를 밟았다면, 시므이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도망간 종을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므이는 은혜를 가볍게 여겼고 맹세를 소홀히 함으로써, 스스로 온전히 회개치 못한 심정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주); 아기스에게 나아가 - 시므이는 직접 아기스 왕과 교섭하여 종들을 되찾았다. 그런데 이 모든 행동은 충분히 정치척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이었다. 즉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 망령이나 동맹 반란의 시도로 비칠수 있었다(삼상 27:1,2;29:1,2). 여하튼 시므이는 예루살렘을 나가지 말라는 솔로몬 왕의 명령(36절)을 정면으로 위배하였다.

성 경: [왕상2:41]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시므이의 최후]

(주); 혹이 솔로몬에게 고한지라 - 시므이의 움직임은 감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혹자는 시므이가 밤에 몰래 다녀온 것으로 보나(M. Henry), 문맥은 오히려 그가 태연히 행동했음 보여 준다. 아마 맹세 후 3년이란 오랜 시간이 지난 탓으로 부주의해졌던 것일 수도 있다(39절). 여하튼 시므이의 가드 행은 솔로몬에게 기다리던 합법적 기회를 주었다<9절>.

성 경: [왕상2:42]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시므이의 최후]

(주); 시므이의 최후 왕이...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 시므이는 이전에 맺은 계약(36-38절)을 위반한 죄로 고발되고 있다. 그런데 그 계약은 당사자 간의 합의(솔로몬의 명령, 시므이의동의)와 하나님 앞에서의 맹세로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결국 그 계약은 하나님과 솔로몬 왕과 시므이 사이의 계약으로서, 곧 맹세로 확증된 계약이 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그 계약을 깨뜨린 자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면치 못할 것이었다. 맹세한 대로 만일 시므이가 죽을 때까지 예루살렘에만 머물렀다면, 솔로몬 왕 역시 부친의 유인(9절)을 따르고 싶어도 어찌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시므이가 먼저 그 계약을 깨뜨리고 말았다.

성 경: [왕상2:43]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시므이의 최후]

(주); 맹세와...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 시므이는 다만 왕의 명령 뿐 아니라 여호와를 가리켜 한 맹세를 어긴 것으로 추궁된다<42절>.

성 경: [왕상2:44]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시므이의 최후]

(주);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 - 여기서 시므이의 악은 현재의 죄와 이전의 죄가 결합된다. 현재의 죄는 여호와를 가리켜 한 맹세를 파기한 죄요, 또한 왕의 엄명을 어긴 죄이다(43절). 그리고 이전의 죄는 압살롬의 반란시 도피 중인 다윗 왕을 모욕하고 저주한 죄이다(삼하 16:5-8). 그런데 그 죄의 성격에 있어 둘은 일치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했던 것은 왕의 능멸인 동시에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를 모욕함으로써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삼하 16:12;삼상 26:9). 그러므로 시므이의 처벌은 다만 지금의 죄 뿐 아니라 이전의 죄에 대한보응도 되는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 - 압살롬의 반란시 도피 중인 다윗을 향하여 시므이는 혹독한 저주를 퍼부었다.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삼하 16:7, 8). 이때 시므이의 저주를 듣고 흥분한 아비새는 시므이를 단칼에 쳐죽이려 했다(삼하 16:9). 그러나 다윗은 아비새를 만류하며 "...저로 저주하게 버려 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삼하 16:11, 12).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왼통함을 돌아보시고 시므이의 악한 행위에 대하여 오늘날 공의롭게 보응하셨다(롬 1:18;살후 1:5-9).

성 경: [왕상2:45]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시므이의 최후]

(주); 그러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위는...견고히 서리라 - 히브리인들은, 저주는 말 자체의 신비로운 힘 때문에 효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믿었다(IDB). 따라서 일단 다윗을 향해 뱉어진 시므이의 저주(삼하 16:7, 8)를 솔로몬은 어떻게든 해소해야만 했다. 그런데 마침내 시므이가 하나님과 왕에게 맺은 서약을 스스로 어김으로써, 시므이의 저주는 자신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다<42, 43절>. 그러므로 다윗 왕가는 시므이의저주에서 벗어나 복과 번영을 영원토록 누리게 될 것이었다. 한편 이것은 솔로몬이 시므이를 다른 사람들(아도니야, 아비아달, 요압)과는 다른 방식으로 처벌한 이유 중 하나이다. 아울러 시므이의 처형을 놓고 솔로몬이 한 이 말은, 시므이에 대한 처형 집행이 결코 사사로운 구원(舊怨)이나 보복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서의 공의로운 법 집행이란 사실을 떳떳이 밝히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J. Hammond).

성 경: [왕상2:46]

주제1: [솔로몬의 왕권 확립]

주제2: [시므이의 최후]

(주); 브나야에게 명하매...시므이를 쳐서 죽게 한지라 - 결국 시므이는 그 죄의 대가로 브나야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죄악된 요소들이 일시적으로는 영원히 존속될 것처럼 보이지만, 때가 이르면 하나도 남김없이 제거될 것이다(말 4:1;살전 5:3). 무죄한 자를 향한 악인의 정죄와 능욕은 필경 그 자신에게 돌아갈 뿐이다(욥 34:11;시 141:10;잠5:22).

(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 여기서 '이에'는 12절 이후의 일련의 사건을 지시한다. 한편 성경에서 '손'(*, 야드)은 보통 권세, 힘 등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IDB;출 13:3;시 78:72;히 10:31). 그러므로 본절은 '모든 장애와 위협을 제거하고 나니 솔로몬의 권세가 막강한 것이 되었다'는 말이다. 결국 이 말은 12절과 함께 솔로몬의 왕위 계승과 그의 왕권 확립에 대한 총평인 것이다.

성 경: [왕상3:1]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솔로몬의 초기 행적]

(주); 솔로몬이 애굽 왕 바로로 더불어 인연을 맺어 - 여기서 '인연을 맺어'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하탄'(*)은 '결혼으로 인척 관계를 형성하다'란 뜻으로서, 보다 구체적으로는 장인과 사위 관계를 강조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솔로몬과 바로의 딸과의 결혼이 국가적인 정략 결혼임을 강조하는 말이다(Patterson). 이처럼 솔로몬은 내부의 적들을 제거한 뒤(2장) 외국과의 동맹을 통해 왕국을 강화하려 했다. 그래서 왕국 강화의 일환으로서 솔로몬은 정략(政略) 결혼을 통해 애굽과 동맹 관계를 맺은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바로 왕은 애굽 21대 왕조(Tanitic)의 마지막 왕으로서 35년간 애굽을 통치한 프수센네스 왕으로 추정된다(Ewald, Winter), 왜냐하면 다음에 이어지는 22대 왕조(Bubastic)의 초대 왕 쉐숑크(Sheshonk)는 르호보암 5년에 예루살렘을 침략했던(14:25) 시삭(Shishak)이 틀림없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the Old Testament, Vol. , p. 38; B hr). 그러므로 적대적 관계인 22대 왕조 이전에 상호 동맹이 있었으리라고 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당시 애굽이 왜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으려 했는지 분명치 않으나, 당시 다윗과 솔로몬 치하의 이스라엘이 매우 강력했던 사실이 그 주요 이유일 수 있다(L.Wood).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대국의 왕인 애굽왕들이 다른 국가에게 딸을 주는 일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Patterson).

(주); 그 딸을 취하고 - 솔로몬이 애굽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 자체가 율법에 위배된다고는 볼 수 없다(B hr, Keil등). 즉 일찍이 요셉과 모세에게서도 그러한 전례(前例)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창 41:45;민 12:1), 모세 율법에 명시된 바 가나안족과의 혼인 금지 조항에 접촉되지도 않기 때문이다(출 34:16;신 7:3). 오히려 율법은 전쟁시에 취한 이방 여인과 결혼도 허용했다(신 21:13).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솔로몬의 결혼을 타락행위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이는 후일에 솔로몬에게 우상 숭배의 악영향을 끼친 왕비들 중(11:1-7) 바로의 딸이 제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 보다 분명해진다(Edersheim, Keil). 그런고로 본절은 다만 솔로몬의 위세가 바로의 딸을 취할수 있었으리만치 강력했다는 점과 함께 이후 계속되는 이방 여인들과 결혼이 시작되었음을 소개하는 구절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다.

(주); 다윗 성에 두고 - 여기서 바로의 딸이 자신을 위한 궁(宮)이 지어지기까지 임시적으로 거주한 '다윗 성'(*, 이르 다윗)은 일찍이 요새화된 고대 예루살렘성을 가리킨다(Keil, B hr, Patterson). 이는 여호와의 궤가 위치한 영역으로 보이는 '다윗 궁'(*, 베트 다윗)과는 구별되는데, 이러한 사실은 대하 8:11의 언급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역대하 8:11에 따르면, 바로의 딸은 다윗 궁에 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궤(법궤)가 안치된 장막이 다윗 궁 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다윗 궁은 특별히 거룩한 곳으로 선포되었고, 따라서 솔로몬은 이방 여인인 바로의 딸이 그것에 거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바로의 딸은 다윗 성으로 불리우던 예루살렘성에 거주하기는 했지만, 다윗 궁 안에 거주한 것은 아니었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그러던 중 궁전 공사가 필역된 후, 솔로몬은 바로의 딸을 위해 지은 궁으로 그녀를 인도했던 것이다(9:24).

(주); 자기의 궁과 여호와의 전...필역(畢役)되기를 기다리니라 - 솔로몬은 즉위 4년 즉 B.C. 966년 경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즉위 11년 B.C. 959년 경에 완공하였다( 6:1,38). 이처럼 7년에 걸쳐 성전 건축을 필역한 다음 솔로몬은 바로 궁전 건축에 착수하였다. 즉 솔로몬은 즉위 11년 즉 B.C.959년에 궁전 건축을 시작하여 즉위 11년 즉 B.C. 946년에 궁전 건축을 완공하였다. 따라서 궁전 건축에는 13년이 걸렸다(7:1). 결국 솔로몬의 주요 건축 공사는 도합 20년의 세월에 걸쳐 완공되었다.

성 경: [왕상3:2]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솔로몬의 초기 행적]

(주); 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 혹자는 본절의 산당(山堂) 제사를 백성들의 종교적 결함으로 해석한다(Rowlinson). 그런데 원문을 순서대로 번역하면 '다만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전이 아직 건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란 의미이다. 그러므로 본절의 의미는 아직 유일한 제사 성소인 성전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불가피하게 산당 제사를 했던 당시 형편을 알리는 것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Hammond). 이런 점에서 여기 '산당'(*, 바마)은 우상 숭배 장소인 가나안 족속들의 산당과는 구별되는 곳으로, 단순히 제사와 기도의 장소일뿐이었다(Keil). 드보(De Vaux)는 당시 산당의 형태는 흙무덤 같은 작은 언덕이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하나의 '제단'(*, 미즈베아흐)으로 구성되었지만, 때로는 제단 곁에 여러 개의 부속 시설을 갖추는 등 꽤 정교하게 구성된 산당도 있었다고 전한다. 한편, 이처럼 솔로몬 시대에 산당 제사가 보편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엘리 시대에 블레셋 족속들에게 법궤를 탈취당한 이후(삼상 4:11), 그 법궤가 실로 놉(삼상 21:1-9) 기브온(대상 16:37-40) 예루살렘(삼하 6:16) 등으로 옮겨다닌 결과 백성들은 제사의 구심 장소를 상실하고 각자 나름대로 산당을 만들어 제사드렸기 때문일 것이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성 경: [왕상3:3]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솔로몬의 초기 행적]

(주);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 율법의 첫째가는 계명은 여호와를 사랑하는 일이다(신 6:5;30:16;마 22:37;눅 10:27). 솔로몬의 번영과 업적은 이처럼 여호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율법에 순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2:3).

(주);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 - 다윗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도록 특별히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이다(8:16). 그리하여 다윗은 그 자신의 시대를 넘어 이스라엘 역사 내내 그의 가치를 인정받아, 향후 이스라엘 모든 왕들이 따라야 할 의(義)의 척도로 등장한다. 그런고로 백성들은 하나님을 다윗의 하나님으로 알았고, 이후 이스라엘 왕들은 축복을 받으려면 다윗의 행함을 본받지 않으면 안되었다(PEB;9:5;왕하 20:5;대하 21:12). 결국 본절은 솔로몬 치세의 번영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한다.

(주);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 대부분이 주석가들이 본질을 부정적 의미로 해석한다(Hammond 등).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 당시 여호와께로부터 가나안 족속의 '산당'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았고(민 33:52), 이후 열왕기에서 '산당'은 우상 숭배와 밀접히 관련된 부정적 의미로 나타남을 기억할 때 그것은 타당하다. 게다가 이스라엘 역사의 황금기를 회상하며 기록했을 열왕기 사가는 여기 본절에서 솔로몬 왕국의 번영 이유와 타락 이유를 나란히 기록했음직도 하다. 그러나 당시 여호와의 성전이 지어지기 전이고(2절), 다음 장면에서 산당은 솔로몬이 여호와께 지혜를 받는 긍정적 장소로 나타나는 점을 고려할 때(4-15절), 아직 지나치게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아야 한다(Keil, B hr). 다만 위험한 가능성을 가질 뿐이다. 그 위험의 가능성은 다음 두 가지이다. 즉 여호와의 유일 중앙 성소 명령(신 12:5-14,18,21,26)을 소홀히 할 위험성과 산당을 중심으로 드려지는(신 12:2,3) 가나안 족속의 우상 숭배 행위를 본받을 위험성이다(Patterson). 그런고로 여호와의 성전이 완공된 이후, 이러한 산당은 전혀 불필요했고 또한 결코 합법적이 될 수 없었다. 다만 철저한 파괴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통치자들은 너무나 오래도록 산당 제사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선왕(善王)들 조차도 산당을 훼파하는 데 소홀히 했으며, 이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당으로 말미암아 우상 숭배 행위에 빠져들고 말았다(Patterson, Keil).

성 경: [왕상3:4]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

(주); 기브온...산당이 큼이라 - '기브온'(Gubeon)은 예루살렘 북서쪽 약 10km지점에 위치한 해발 722m 가량의 이스라엘 중부의 주요 성읍이다(수 9:3;10:2;18:25;21:17;삼하21:1). 가나안 정복 후 처음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수 18:25), 후에 레위 지파의 성읍으로 구별되었다(수 21:17). 이곳 기브온의 산당이 특별히 유명하게된 것은 사울의 놉(Nob) 제사장 학살 사건(삼상 22:11-19)이후 놉에 있던 여호와의 장막이 기브온으로 옮겨지고 나서 부터였다(대상 16:39;대하 1:3). 즉 그 때 이후로 여호와의 장막(모세의 장막)이 있는 기브온과 여호와의 법궤(언약궤)가 있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2대 제사 중심기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 즉위 후 솔로몬은 '일천 번제'라는 대제사을 드리기 위해서는 '놋단'이 있는 기브온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하고, 신하들과 백성의 대표들을 이끌고 기브온으로 올라갔던 것 같다(대하 1:2-6).

(주); 그 단에 - 기브온 산당의 모세 성막(출 27:1-2;38:1,2) 안에 있던 놋 제단을 가리킨다(대하 1:3-6).

(주);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 일천의 숫자가 횟수인지 양(量)인지 분명치는 않으나 어느쪽이든 엄청난 규모임엔 틀림없다. 솔로몬은 백성들에 대한 통치를 시작하기 전 무엇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정립하기 원했다. 따라서 솔로몬은 신하들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모두 이끌고 기브온 산당으로 올라가 자신과 백성들을 하나님께 전적 헌신하는 하나의 신상 고백으로서 '일천 번제'를 드린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과 이스라엘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간구한 것이다. 한편, '번제(*, 올라)는 희생제물을 통째로 제단 위에서 불사르는 제사로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 정립을 원할 때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기를 원할 때 누구든지 자발적으로 드릴 수 있는 자원제이다(레 1:3). 그러므로 솔로몬도 이러한 목적으로 그의 통치 초기에 왕 개인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헌신을 위하여 이처럼 기브온 산당에서 이 '올라'를 드렸던 것이다(Tosef). 그런데 여기서 특기할만한 사실은 무엇보다도 그 규모면에서 '일천 번제'(*, 엘레프 올로트)라는 전무후무성인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전적 헌신의 징표일 뿐 아니라, 즉위 초 솔로몬의 강렬한 헌신과 순종에의 열의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혹자는 이 제사 제물들을 힘껏 드린다 할지라도 최소한 칠일 또는 팔일이 소요된다고 보았다(J. Hammond). 여하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은 신하가 군주에게 예물을 바치는 것처럼 충성과 헌신의 표시로 생각되었다(IDB;시68:18). 그러므로 일천 번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으로 믿고 모시는 솔로몬과 백성들의 신앙 고백 행위인 것이다.

성 경: [왕상3:5]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

(주); 꿈에 나타나시니라 - '나타나셨다'(*, 니레아)는 말은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형체를 구체적으로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B hr, Keil, Hammond). 한편 '꿈'(*, 할롬)은 특히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밝혀 주는 특별한 계시 방편으로 자주 등장한다(창 15:12;28:12;욥 33:15,16;마 1:20-23;2:12).

(주); 내가 네게 무엇을 출꼬 너는 구하라 -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솔로몬의 강렬한 헌신인 일천 번제에 이어 발생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희생 제물을 기쁘게 받으셨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통해 큰 일을 하시고자 했음을 의미한다(Patterson). 여기서 솔로몬의 일천 번제는 이제 시작될 통치에 대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청하려는 목적이 있었다(Keil). 따라서 솔로몬에게는 여호와의 뜻에 부합될 정당한 간구를 할 만반의 채비가 갖추어져 있었다(마 6:33;7:7;약 4:3).

성 경: [왕상3:6]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

자신의 소원을 말하기 전에 솔로몬은 먼저 이미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에 이미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하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모든 간구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 자세이다.

(주); 성실과 공의(公義)와 정직한 마음 -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은 원래 하나님의 속성이다(신 32:4).

(주);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 다윗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을 수 있었던 2대 비결이다. 즉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cum Deo),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행하였기 때문에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고, 백성들을 통치할 수 있었다.

(주); 큰 은혜 - '큰 은혜'(*,헤세드 가돌)의 문자적 의미는 '크신 친절'(greatkindness) 또는 '크신 긍휼'(great mercy)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미 베푸신 것들은 다만 행한 대로의 보답이 아닌 오직 은총일 따름이라고 솔로몬은 겸손히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은혜'(*, 헤세드)는 보통 '언약'과 같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8:23;신 7:9,12;느 9:32;단 9:4;미 7:20 등). 즉 언약 관계하에서 주어지는 친절, 사랑, 긍휼, 호의 등이 바로 '헤세드'인 것이다. 이런 맥락하에서 특별히 여기서는 당신의 언약을 따라 다윗 가문을 선택하셔서 영구한 왕위를 주신 하나님의 크신 호의를 의미한다(1:48;2:4,45;대하 1:8,9).

성 경: [왕상3:7]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

(주); 종은 작은 아이라 - 주석가들은 이때의 솔로몬의 나이를 보통 20세 전후로 본다(B hr, Keil 등). 그러나 여기서 솔로몬의 이 고백은 반드시 나이의 문제라기 보다는 솔로몬의 자기 겸비를 나타내는 것이다(Patterson, Hammond). 즉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수많은 백성을 통치해야 하는 책임의 막중함에 비해 자신의 경험 미숙과 연약함을 절실히 느끼고 고백하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의 소명에 임하는 인물들은 대개 이와같이 자신의 부족함과 부적격함을 토로하고 있다(출 3:11;삿 6:15;렘 1:6,7등). 그러나 이것은 도리어 그 임무가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 의존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 '출입하다'(*, 야차 와보)란 말을 직역하면 '나가고 들어오다'(go out and come in)란 뜻인데, 이는 곧 맡은 바 자신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키 위하여 공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성경의 관용적 표현이다. 따라서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한다'는 솔로몬의 말은 왕으로서 어떻게 백성들을 성공적으로 잘 다스려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말이다(민 27:17;신 28:6;31:2;삼상 18:13;시 121:8).

성 경: [왕상3:8]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

(주); 주의 빼신 백성 -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중에서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신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로(신 7:6), 직역하면 "주께서 선택하신 주의백성"이란 의미이다.

(주); 저희는 큰 백성이라...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 이 말은 일찍이 조상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회상하며 한 말이다(창 13:16;15:5;22:17). 한편, 솔로몬 당시의 인구가 얼마였는지 확실치 않으나, 다윗이 그의 말년에 인구 조사를 실시했을 때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만 130만 명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삼하 24:9).

(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들로 '땅의 티끌'(창 13:16), '하늘의 뭇별'(창 15:5), '바닷가의 모래'(창 22:17) 같이 많이 번성하도록 축복하겠다고 약속하신 바 있었다.

성 경: [왕상3:9]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

(주); 누가...재판을 할 수 있사오리까 - '재판하다'(*, 솨파트)는 성경에서 주로 '다스리다'로 번역되었다(삿 12:11;삼상 8:5,20). 왕정(王政) 시대 이전에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사사(士師)들의 임무는 재판관(쉐파트, '사사'로 번역됨)으로서 사회의 각종 분규를 매듭짓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왕정 시대에 들어와서도 재판은 통치의 주된 기능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실제로 고대 국가의 왕들은 통치자인 동시에 최고 재판관이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 지혜를 받은 후 솔로몬이 한 통치의 첫 업무는 재판이었다(16절 이하). 그리고 그 재판이 곧 왕의 권위를 인정받게 하였다(28절).

(주); 지혜로운 마음 - '지혜로운 마음'(*, 레브쇼메아)은 문자대로는 '듣는 마음'이다. 그런데 '듣다'란 동사 '솨마'는 '복종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루터(Luther)가 이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번역한 것은 의미가 깊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데서 얻는다고 보기 때문이다(시 119:97-99;잠 2:6-9). 여하튼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올바르게 통치하고 재판하기 위해 요구되는 총명과 분별력을 구했다.

(주); 선악을 분별하게 - 통치자로서 백성들의 제반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을 잘 재판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만일 통치자가 백성들 사이의 제반 문제에 대해 시시비비를 옳게 가려 주지 못한다면, 그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대리자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무엇보다 통치자로서 백성들을 잘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던 것이다. 한편 솔로몬이 구한 이러한 지혜는 결코 사색적이고 추상적인 지혜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지혜로서, 그 일례가 16-28절의 판결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성 경: [왕상3:10]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

(주);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 직역하면 '주의 눈에 좋았다'란 뜻이다. 즉 솔로몬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기도를 드린 것이다. 왜냐하면 주의 택한 백성을 맡아 다스릴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참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무엇보다도 올바른 통치와 재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혜를 요청했기 때문이다<9절>.

성 경: [왕상3:11]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

(주); 자기를 위하여 수(壽) 도 ... 부(富) 도 ...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 여기서 '수'(*, 야밈 라빔)는 문자적으로 '많은 날들'을 뜻한다. 그런데 특히 구약 사상에서 오래도록 수를 누리는 것은 큰 축복 중 하나였다(신 5:33;욥 5:26;시 91:16;잠10:27). 그리고 보통 '풍부'로 번역되고 있는 '부'(*, 오쉐르) 역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축복으로 간주되었다(창 13:2;14:23;시 24:1). 또한 '원수'(*, 오예브)는 개인의 원수 뿐만 아니라 국가적 원수를 의미하기도 한다(수 24:11;삿 16:23 등). 따라서 '원수의 생명 멸하는 것'은 군사적 승리의 영광을 의미 한다(B hr). 그러므로 수나 부나 권세를 구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일반적 경향으로, 사실 이것들을 구하는 것 그 자체로는 부정적인 것이라 말할 수 없다. 다만 '자기를 위하여'라는 말이 이것들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즉 이것들도 매혹의 대상으로서 충분히 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주의 백성을 맡아 통치하고 재판할 통치자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구할 것은 결코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솔로몬이 합당한 것을 먼저 구하자, 이 나머지 것들도 더불어 주어지고있다(13절;마 6:33).여기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그 무엇을 간구함에 있어, 그 중요도를 따라 구하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후일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가르치셨다.

성 경: [왕상3:12]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

원문에는 본절의 초두에 '보라'(*, 힌네)란 말이 있어 하나님의 응답이 생생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Keil).

(주);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 후일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의 이 약속이 역사속에서 그대로 성취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대상 29:25;대하 9:22).

성 경: [왕상3:13]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

(주);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 이스라엘 역사에서 부와 영광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잊은 채 그 자체를 목적으로 구하는 자들에게는 엄중한 경고가 내려졌다(신 8:17;삼하 12장;사 10:3;렘 5:27;겔 7:11;호 12:8;미 6:12).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것이 우선되면(10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여타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마 6:32, 33;약 1:5).

성 경: [왕상3:14]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

(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 다윗의 행적은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열왕(列王)들의 선악을 판별하는 기준이 되었다(9:4;15:11 등). 그런데 후일 솔로몬의 행적은 다윗의 기준에 못 미쳤던 것으로 판정되고 말았다(11:4,6).

(주); 법도와 명령 - 하나님의 모든 율법과 교훈을 강조하여 지칭하는 증언법적 표현이다. 2:3;신 4:1 주석 참조.

(주); 지키면...네 날을 길게 하리라 - 간구한 대로 솔로몬이 총명한 지혜를 받을 수 있었고, 덧붙여 수(壽)와 부(富)와 권세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따라 행했기 때문이었다(3절). 따라서 솔로몬이 이후 계속해서 그같은 지복(至福)의 상태를 누리려면, 변함없이 즉위 초기와 같은 순수하고 경건한 신앙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솔로몬은 말년에 이를수록 점점 여호와의 길로부터 벗어나 타락하고 말았다(11:9-13). 그 결과 솔로몬은 "네 날을 길게 하리라"는 여호와의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했다(Keil, Hammond). 왜냐하면 구약시대의 관념상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비단 영적인 의미 뿐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의미를 지녔다는 점에서, 솔로몬이 60세 안팎의 나이로 죽고 말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결코 그가 장수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성 경: [왕상3:15]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

(주);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더라 - 여기서 '꿈'(*, 할롬)은 일반적인 평범한 꿈이 아니라, 특별한 꿈으로서 곧 하나님이 주신 꿈이요 그 꿈을 통한 계시였다. 즉 구약시대에 이러한 꿈은 외부의 변화없이 인간 내면의 사고 작용과 감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계시 방편이었다(창 20:6;삼상 28:6;단 2:4). 따라서 이러한 꿈을 꾼 자는 꿈을 깬 이후에도 꿈의 내용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었으며, 또한 자신의 꿈 속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Patterson, Keil). 일찍이 야곱(창 28:10-22), 요셉(창 37:5-11), 바로(창 41:1-7)도 이같은 꿈을 꾸었었다.

(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잔치하였더라 - 기브온 산당의 제사를 모두 마친 후 솔로몬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법궤가 있는 시온 산 제단에서 새로 번제와 수은제를 드렸다. 그런데 기브온에서와는 달리 예루살렘에서는 특별히 수은제(*, 쉘라밈)가 추가되고 있다. 여기서 '수은제(酬恩祭)는 곧 레 3:1-17;7:11-21,28-34에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화목제'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감사를 표시하는 제사이다. 즉 솔로몬은 기브온의 일천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과 약속을 얻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마자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화목 제사에 쓰인 제물들은 신하들과의 잔치에 사용되었을 것이다(레 7:15,31;삼상 2:16).

(주);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 다윗 통치 이후 솔로몬 성전이 완공될 때까지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장막이 있었다. 하나는 기브온에 있는 원래의 장막이고(대하 1:3),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의 시온 산 위에 있는 임시 장막이다(삼하 6:17). 그런데 기브온 장막은 원래 모세의 장막과 같은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는 있었지만, 여호와의 궤(법궤, 언약궤)가 없었다. 반면 시온 산 위의 장막 속에는 여호와의 궤가 안치되어 있었지만, 온전한 장막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즉 두 개의 장막이 불완전한 상태로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 이에 따라 다윗시대에는 사독과 아비아달이 양쪽에서 이중으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면 다윗은 왜 언약궤와 장막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지 않았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영구한 여호와의 성전 건축 계획이 있었으므로, 무리하게 한 쪽을 철회시키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The Ecpositor's Bible Comme-ntry). 아무튼 이러한 연유로 인해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제사를 필한 후, 예루살렘의 시온 산에 있는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응답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표시로서 새롭게 번제와 수은제를 드린 것이다.

성 경: [왕상3:16]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솔로몬의 명판결]

구체적으로 이 때가 어느때 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본서 저자는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받은 지혜를 (11,12절) 재판에 적용한 한 가지 구체적 실례를 보여 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 사건을 기록하였을 것이기 때문에(Theodoret), 분명 이때는 솔로몬 즉위 초(B.C.970년 경)의 일로서, 기브온 산당에 일천 제사를 필한 직후였을 것이다.

(주); 창기 두 계집이 - '창기'(娼妓)에 해당하는 '자나'(*)가 반드시 '창녀'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자들은 여기의 '창기'를 '여관집 여 주인'(hostess)등으로 달리 해석하기도 한다(B hr, Hammond). 또 혹자는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하도록 하라'는 신 23:17의 율법에 근거하여 이들을 이방인 창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Grotius). 그러나 율법의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창녀는 이스라엘 역사 초기부터 내내 존속해 왔고(IDB), 또한 이들은 여관을 거처로 삼아 여행자들에게는 여관집 주인 같은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으며(창 38:14), 그리고 본문의 창기들은 한 집에 살았을 뿐만 아니라(17절), 이들의 남편에 대한 언급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원래의 번역과 의미가 타당하다고 본다.

(주);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 분명 이 '두 창기 사건'은 하위 재판관들에 의해 해결되지 못한 어려운 사건으로서, 결국 최고 재판관인 솔로몬 왕에게까지 올라온 어려운 사건이었다. 따라서 당시 솔로몬은 일종의 시험대 위에 서게 된 것이다. 만일 솔로몬까지도 이 사건을 해결치 못한다면, 그는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서 그 지혜와 자질이 의심받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때를 위하여 솔로몬은 하나님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케 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던 것이고(9절), 하나님께서는 그 응답으로 송사(頌辭)를 듣고 분별할 줄 아는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솔로몬에게 주셨던 것이다(11, 12절).

성 경: [왕상3:17,18]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솔로몬의 명판결]

본문은 재판관이 판단을 내리는데 필요한 외적 증거나 증인이 전혀 없는 상황임을 보여 준다. 아마도 이들은 혼자서 해산 해산(解産)했거나 서로 돕거나 했을 것이다. 실제 히브리 여인들은 건장하기 때문에 오늘날도 남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해산한다고 한다(Hammond,출 1:19). 따라서 그렇게 일이 진행되는 동안, 두 여인 외에는 그 집에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재판관은 가장 확실한 증인이자 고소인인 이들 두 창기의 내적 진심을 드러내게 하는 것 외에는 진실을 가릴 방도가 도무지 없는 어려운 재판이었다.

(주); 나와 이 계집이 한 집에서 사는데 - 아마 이 두 여인은 같은 여관을 거처로 삼고 매춘 행위를 하는 창기였던 것 같다. 실제 당시 가나안 땅의 어떤 여관에는 이러한 창기들이 기거하고 있었다고 한다(수 2:1).

성 경: [왕상3:19]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솔로몬의 명판결]

(주); 누우므로 - 영문 성경은 각각 '위에 몸을 두다'(lay on, NIV RSV), '과중하게 싣다'(overlade, KJV), '굴리다'(roll over, Living Bible) 등으로 번역했다. 그리고 공동 번역은 '깔아 뭉개다'로 번역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잠자던 도중 부주의하게도 아기를 깔아 질식사(窒息死)시킨 것을 말한다.

성 경: [왕상3:20]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솔로몬의 명판결]

(주); 내 아들을...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 인도의 자타카(Jataka)경전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Cowell). 즉 이 장면과 비슷하게도 거기에는 한 여자가 목욕하는 동안 여귀(女鬼)가 아기를 훔쳐가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한 내용이 있었다. 따라서 혹자는 여기 '두 창기 사건'이 그러한 인도 설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도 한다(James A. Montgomery,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The Books of kin-gs). 그러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인도 자타카 설화는 여귀(女鬼)가 등장하는 등 그 사건이 완전히 신화적 형태인 데 반해 여기 두 창기 사건은 역사적 사건으로 기술되고 있고, 또한 자타카 설화와는 달리 고도로 윤리화된 형태를 갖고 있다. 즉 본절의 '두 창기 사건'은 솔로몬 왕의 즉위 초라는 역사성, 이스라엘의 어떤 여관에 함께 거처하고 있는 두 창기 사이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의 개연성, 그리고 내면의 모성애를 이용하여 지혜롭게 판결을 내린 윤리성 등이 골고루 갖춰진 실제 역사적 사건인 것이다.

성 경: [왕상3:21]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솔로몬의 명판결]

(주); 미명(未明)에 - '미명'(*, 보케르)은 종종 '아침'으로도 번역되나(창 1:5; 24:54;삼상 5:4 등), 정확하게는 이른 아침 동틀 무렵 즉 '새벽'(출 14:24;삿 16:2;대상23:30)을 말한다. 따라서 여기 이 말은 곧 이어지는 '아침에'와 함께 점점 날이 밝아오는 상태를 알린다.

(주); 본즉 죽었기로(*, 힌네메트) - 직역하면 '보라! 죽어 있도다'(behold, itwas dead, KJV)란 뜻으로, 곧 여인의 경악과 놀라움이 나타나고 있는 장면이다.

(주); 자세히 보니 - 여기서 '자세히 보다'(*, 빈)는 꼼꼼하게 살펴 분별하여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단 10:1;삼상 3:8;스 8:15;시 37:10).

성 경: [왕상3:22]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솔로몬의 명판결]

(주); 다른 계집은 이르되 - Living Bible은 '이르되'를 '끼어들되'(interrupted)로 번역함으로써, 다른 여자가 도중에 말을 가로막고 끼어드는 모습을 잘 나타내 준다.

(주);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 양쪽 모두 자기 주장의 확신과 정당성을 강력히 주장한다. 아무런 증인도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진행되는 모습은 판단의 어려움을 더욱 부각시켜 준다.

성 경: [왕상3:23]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솔로몬의 명판결]

(주); 왕이 가로되 - 여기 이 '두 창기 사건'을 왕이 직접 재판하게 된 까닭은 아마도 하급 재판 기관에서 이를 잘 판결할 수 없었던 탓일 것이다. 사실 율법에 의하면, 어떤 사실의 시비(是非)를 가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세 사람의 증인이 필요했다(신 19:15). 그런데 이 사건에는 한 사람의 증인조차 없었다. 한편 율법은 재판에 임하는 것을 곧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으로 보았다(신 19:17). 따라서 올바른 판결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28절). 그러므로 솔로몬은 이 사건을 잘해결함으로써 그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있음을 백성들 앞어 명백히 입증해야 했다.

성 경: [왕상3:24,25]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솔로몬의 명판결]

외적(外的) 증거가 전혀 없었음로, 이제는 내적(內的) 증거를 통해 사실을 밝혀내야 했다. 그것은 두 여자 중 누가 참 모성애를 갖고 있는가를 시험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두 여자 자신들이 이 사건의 증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인간의 심령 깊숙히 감추인 은밀한 부분까지도 분별하시는 하나님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이다(잠21:2; 미 6:4;롬 2:16).

(주); 산 아들을 둘에 나눠 반은 이에게...반은 저에게 주라 - 혹자들이 비평하는 것처럼, 솔로몬의 이 명령은 결코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한 불확실한 모험이 아니다. 기브온 산당의 일천 번제 이후 솔로몬은 인간 본성을 꿰뚫어 보는 비범한 통찰력과 총명한 지혜를 하나님께 부여받았다(12절). 따라서 솔로몬은 두 창기 사건의 본질을 명쾌히 파악하고 있었다. 즉 아이를 죽인 어미는 자신의 부주의와 소홀로 아이를 죽이고 말았다는 자책감과 수치감, 그리고 산 아들을 품고 있는 어미에 대한 강렬한 질투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순간 아이를 바꿔치기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실제로는 자신의 아이가 아닌) 그 산 아이에 대해서 진짜 어미만이 가질 수 있는 본능적 모성애(母性愛)는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솔로몬은 신적(神的) 지혜로 이미 간파했고, 따라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솔로몬은 이처럼 산 아이를 칼로 잘라 두 여자에게 공동 분배하라는 일견 기괴하고 잔인한 명령을 과감히 내린 것이다.

성 경: [왕상3:26]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솔로몬의 명판결]

(주);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 여기서 '마음'에 해당하는 '라함'(*)은 '창자'(bo-wels, KJV)란 뜻이다. 실제 희노애락을 느낄 때 오장 육부에 영향이 미침을 보고, 고대 히브리인들은 이곳 창자를 감정과 정서의 좌소로 보았다(J. Hammond). 같은 맥락에서 신약 성경은 '스플랑크나'(*)란 단어를 사용했다(고후 6:12;7:!5;빌 1:8;몬 1:7,20). 또한 이 말은 '자궁'(womb)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이는 자신이 직접 낳은 자식을 향해 본능적으로 강력히 발(發)하여지는 모성애를 시사해 준다.

(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 왕의 명령의 진의(眞意)도 모르고 선뜻 동의하는 이 여자의 말은 모성애의 참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따라서 이 여인이 애초에 보였던 아이에의 강한 집착(20,22절)도 사실은 진정한 아이 사랑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질투와 소유욕 때문이었음이 자명해지고 말았다. 따라서 그 여인은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생명을 물화(物化)시키는 지극히 비 인간적인 응답을 선뜻 하고야 만 것이다.

성 경: [왕상3:27]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솔로몬의 명판결]

(주);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 어미니라 - 두 여자의 반응을 통해 참된 모성애가 누구에게 있는지 확실히 분별해 낸 다음 솔로몬은 명쾌히 판결을 내린다. 결국 이것은 기브온 산당에서 응답받은 대로(11-14절), 솔로몬에게는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총명한 지혜가 있었고, 그 결과 인간 감정의 움직임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Barlow). 한편, 여기서 그로티우스(Grotius)는 이와 비슷한 판결 사건의 일례로서, 디오도루스 시큘루스(Diodorus Siculus)의 글에 나오는 한 고사(故事)를 인용하고 있다. 즉 어느 날 트라키아의 왕 아리오파르니스(Ariopharnis, King of the Thractans) 앞에 세 청년이 와서 각기 자신이 키메르 왕국의 왕자라고 주장하면서 공정한 판결을 요구했다. 이 때 트라키아 왕은 선왕(先王)의 시신을 향해 가장 정확히 창을 던지는 자가 곧 왕의 계승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시신을 향해 힘껏 창을 던졌으나, 한 사람은 창 던지기를 거부했다. 이 때 트라키아 왕은 바로 창 던지기를 거부한 그 청년이 키메르 왕국의 왕자라고 판결 내렸다고 한다(Pulpit Commentary ;Keil & Delitzsch, Vol. ,p. 43).

성 경: [왕상3:28]

주제1: [솔로몬의 지혜]

주제2: [솔로몬의 명판결]

(주);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 두 창기 사건의 재판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솔로몬의 권위가 백성들의 마음으로부터 인정받게 되었고, 그 결과 백성들은 경외하는 심정으로 솔로몬 왕에게 복종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백성들의 마음속에 이와 같이 권위에의 자발적 복종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다(심상 11:7). 그러므로 결국 재판 결과를 통해 저자는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응답받은 대로(11-14절) 하나님께로부터 총명한 지혜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한편, 이와는 달리 솔로몬이 후계자 르호보암에게는 이같은 지혜가 없었기에 불행히도 백성들의 순종도 없었다(12:1-18).

(주);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권위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물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되었다(수 1:!7; 삼상 11:6,7;왕상 1:37). 그런데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의 표정은 재판의 지혜로운 판결이었다. 이것은 이전의 지도자들이 군사적 승리로서 권위의 표정을 보여 주었던 것에 비해 평화와 번영의 시대에 요구되는 권위였던 것이다(삿 6:12,14;삼상 11:11,15;18:27,28 등). 한편 본절은 12절의 약속이 실현되었음을 보여 준다.

성 경: [왕상4:1]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내각(內閣)]

(주); 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 솔로몬이 왕이 된 사실을 새삼스럽게 기술하는 까닭은 다음에 계속해서 내각, 행정 구역, 문화 및 건축 등 솔로몬 왕국의 일반적인 면모를 기술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마치 국정(國政) 보고서의 첫 서두와도 같은 공식적 서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시작되는 4장 전체는 연대순으로 기록되었다기 보다는 솔로몬 통치의 업적을 총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Dentan). 한편 이스라엘이 왕정 체제로 들어서게 된 이후 솔로몬 이전에 두 왕이 있었다. 그 두 왕은곧 사울과 다윗이다. 먼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사사 시대에서 왕정시대로 이전되어 가는 과도기의 왕으로서, 당시 이스라엘은 지파들간의 근린 동맹(近燐同盟)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왕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 관료 정치나 세금 체제, 궁정생활 등이 미숙했을 뿐 아니라 매우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런고로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이스라엘 왕국은 다윗에 의해 발전되었고 확장되었다. 즉 다윗은 국내적으로는 여러 조직을 확대 개편하고 체계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주변 여러 국가들을 정복하여 국경을 넓히고 조공을 거두어 들였다. 무엇보다도 여부스 족속으로부터 예루살렘을 빼앗아 강력한 수도를 만들었다. 다윗은 이러한 모든 일을 수행키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 했다. 따라서 다윗도 그의 통치 초기에는 이스라엘의일부만을 통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부왕 다윗이 숱한 피를 흘려 이룩해 놓은 거대한 왕국을 순순히 이어 받았다. 따라서 솔로몬의 역할은 거대한 왕국 이스라엘을 더욱 결속력있게 하나로 결합시켜 유지해 나가며, 그로 인해 대내외로 힘을 확장시키는 일이었다. 이러한 일을 위하여 솔로몬은 무엇보다 정치,행정,외교,세제 등의 조직을 더욱 확대 개편하고 체계화시키는 일과 중앙 집중화시키는 일을 착수해야했다. 아무튼 솔로몬은 통일 왕국 이스라엘 최전성기의 왕으로서, 그 이전과 그 이후에 솔로몬처럼 그의 생애 내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므로결국 이 모든 것은 다윗 언약(삼하 7:12-16)에 근거하여 기보온 산당에서 솔로몬에게 약속하신(3:11-14) 하나님의 약속 성취의 결과였다.

성 경: [왕상4:2]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내각(內閣)]

(주); 신하 - 여기서 '신하'의 '하사림'(*)은 다윗의 부하들을 일컬을 때는 사용되지 않았다(삼하 8:16-18;20:23-26). 이러한 사실은 다윗 시대에 비해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국가 조직이 더욱 발전하고 정착하였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B hr).

(주); 이러하니라 - 본절 이하에서 계속되는 솔로몬의 신하들의 관직(官職)을 그 순서에서 살펴보면 솔로몬 시대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즉 종교, 행정, 관료가 우선시되는 평화의 시대인 것이다(Keil). 그러나 이전 다윗의 시대는 군대 장관이 최우선의 자리를 차지하는 전쟁의 시대였다(삼하 8:16;20:23).

(주);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이요 - 본절은 여러 가지 해석의 어려움을 안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즉 (1) 성경 여러 곳에서 사독의 아들은 '아히마아스'인 것만으로 나오고 있고(삼하 15:27;18:27;대상 6:8) (2) 제사장 아사랴(아사리아)는 아히마아스의 아들이지 사독의 아들이 아니며(대상 6:9) (3) 본절 외에 4절에서 제사장들의 이름이 구태여 한번 더 등장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우선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가 누구냐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성경 용례상 종종 나타나듯 여기서도 '아들'을 가리키는 '벤'(*)이 '후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2:8;창29:5;31:28등). 아사리아는 사독의 후손으로 곧 그의 손자일 것으로 보는 견해(Hammo-nd). 그런데 이 견해의 난점은 시간 간격상 사독의 손자가 당시 대제사장의 직위에 오를 나이가 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이다. (2) 아사리아는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형제일 것이라는 견해(Thenius). 그러나 이 견해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고, 더구나 제사장 가문의 족보를 알리는 역대상 6장에 위배된다. (3) 본문(2절)을 '제사장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로 고쳐 읽은 다음 3절과 연결시켜 아사리아를 시사의 아들 엘리호렙과 아히야와 같이 서기관으로 보는 견해(the Vulgate, Luther).그러나 이러한 본문 수정은 무엇보다 문법상 액센트 문제, 연계사 와우(*)탈락 문제등으로 인해 지지받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난점에도 불구하고 (1)의 견해를가장 타당한 견해로 채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난점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면 해결될수도 있다. 첫째, 아사리아의 부친 아히마아스는 일찍 죽었거나 아니면 어떤 이유로 대제사장직 수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아사리아가 보다 유명한 조부 사독의 이름하에 나올 수 있었다. 둘째, 솔로몬 시대에 아비아달과 사독이 대제사장직으로 있기는 하였으나, 아비아달은 곧 파멸되었고 사독은 고령이었기 때문에, 가장 오래도록 대제사장직을 수행한 아사리아가 이들과 같이 그리고 이들에 앞서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셋째, 당시 사독은 매우 고령이었을 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통치 기간은 길었기 때문에, 사독의 손자가 대제사장의 직위에 오를 수 있는 나이는 계산상 결코 불가능하지않다(Pulpit Commentary). 한편 다음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아사리아의 직위인 '제사장'이 어떤 직위이냐 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하여 카일(Keil)과 베르(B hr)는 여기 '제사장'의 '하코헨'(*)은 '총리 대신'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그들은 '코헨'(*)은 삼하 8:18에서 '대신'(大臣)의 뜻으로 사용되었고, 또한 솔로몬 왕국의 관료 서열 중 맨 처음에 등장하는 위치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즉 성경 용례상 '코헨'이란 용어는 거의 대부분 순수히 '제사장'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일반적으로 '대제사장'을 가리키는 용어이다(de Va-ux, BDB). 그리고 솔로몬 왕국의 가장 큰 업적은 성전 건축 사업에 있는 것인 만큼,모든 관료들 중 대제사장이 가장 먼저 언급되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릴 수 있다. 즉 아사리아(Azariah)는 사독의 손자로서(대상 6:8,9), 사독이 고령으로 맡은 바 대제사장직을 수행치 못하게 되었을 때 부친 아히마아스 대신 그 직을 승계하여 대제사장으로서 솔로몬 왕국에 봉사한 인물이다.

성 경: [왕상4:3]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내각(內閣)]

(주); 시사 - '시사'(Shisha)는 삼하 8:17의 스라야, 삼하 20:25의 스와, 대상 18:16의 사워사와 동일 인물일 것이다(Keil, B hr, Hammond). 그는 다윗 시대의 서기관이었다.

(주); 서기관(書記官) - '서기관'(*,소페림)의 임무는 나라의 공문서를 작성하고 보관하는 것 외에도 재정(財政) 문제를 맡는 것도 포함한다(왕하 12:10). 따라서 서기관(scribe, KJV;secretary, NIV)은 매우 중요한 관직이었다(B hr). 관직 명단의 순서도 이를 반영한다(Hammaond). 한편 이 직책은 세습이 된 것 같다. 시사의 아들들이 대를 이어 서기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 여호사밧 - 그는 다윗 왕 때부터 이미 사관(史官)이었다(삼하 8:17;20:24). 그러므로 여호사밧이 솔로몬 시대에도 계속 유임된 것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왕(父王)에게 충성하던 인물들이 그대로 솔로몬에게 등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것 역시 솔로몬 시대가 평화 시대였음을 보여 주는 단면이다.

(주); 사관(史官) - '사관'(*, 마즈키르)의 히브리 동사 '자카르'(*)는 '기억하다','생각해 내다'등의 뜻이다. 따라서 사관(recorder)은 '생각해내는 사람'으로서 국사를 기록할 뿐만 아니라 왕으로 하여금 어떤 계획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왕으로 하여금 어떤 계획을 기억하도록 상기시켜 주는 임무도 가졌다(Dentan). 이런 맥락에서 드보(De Vaux)는 사관을 궁중 의전(儀典) 관장으로 보았다.

성 경: [왕상4:4]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내각(內閣)]

(주); 브나야는 군대 장관이요 - '브나야'(Benaiah)에 대해서는 삼하 23:20-23;왕상 1:8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브나야를 제외한 솔로몬의 중신들은 모두 종교, 행정, 궁정의 관료들로서 평화 시대에 걸맞는 관직들이었다(Wordsworth).

(주);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요 - 제사장직을 파면당한(2:27)아비아달의 이름이 여기 다시 나타나는 것은 이상하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들은 솔로몬이 그를 다시 복직시킨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Clericus,Grotius). 그리고 또 혹자는, 아비아달은 제사장의 직무 정지를 당했을 뿐 제사장직 자체를 박탈당한 것은 아니라고 보기도 한다(The-odoret). 그러나 본장이 솔로몬 통치의 면모를 총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비아달은 솔로몬 즉위 초기에 한동안 솔로몬 치하에서 제사장직을 맡았으므로 여기서 언급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Hammond, Philppson). 그리고 솔로몬 치하에서 실질적인 대제사장을 수행한 자는 사독의 손자 아사리아(아사랴)이지만(1절), 이들은 다윗과 솔로몬 왕국 건설에 이바지한 공이 컸으므로 여기에 기록된 것이다(Patterson).

성 경: [왕상4:5]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내각(內閣)]

(주);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 - 아사리아 혹은 아사랴는 '여호와께서 도우심'이란 뜻인데, 당시에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 성경에서 이러한 이름을 가진 동명 이인은 대략 30명가량 된다. 한편, 여기서 '나단'은 데니우스가 주장하듯 다윗 시대의 유명한 선지자 나단이 아니고, 삼하 5:14에 나타나는 다윗의 아들 '나단'이다(Keil,B hr). 따라서 나단의 아들들인 관리장 아사리아와 대신 사봇은 솔로몬의 조카들이었다.

(주); 관리장 - '관리장'(*,알 하니차빔)은 '관장들'(*,나치빔)'위에서'(*,알) 관리하고 지휘하는 직책이다. 따라서 관리장(secretary of state,Living Bible)은 7-19절에 나오는 열 두 관장의 우두머리이다.

(주); 사붓은 대신이니 왕의 벗이요 - '대신'(*,코헨)은 2절에서처럼 '제사장'(pri-est, NIV)으로 번역할 수 있다. 공동 번역도 '사제'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특별히 이 직책은 성막에서 봉사하는 일반 제사장들과는 달리 다윗 시대와 마찬가지로(삼하8:18), 왕의 영적이고 의례적인 일들에 대해 논의하고 조력하는 일종의 고문관일 것으로 추정된다(Patterson). 이 직책을 부연 설명하는 '왕의 벗'(*, 레에함멜렉)이라는 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런데 당시에 '왕의 벗'은 공적 직무의 호칭으로서 명예와 경의의 직함으로 간주되었다. 다윗 시대에는 '후새'가 이같이 불려졌다(삼하 15:37;16:16). 이상으로 미루어 '대신'은 왕의 신뢰할만한 논의 상대로서 일종의 고문(顧問)과 같은 직책인 듯하다(Keil).

성 경: [왕상4:6]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내각(內閣)]

(주); 궁내 대신 - '궁내 대신'(*, 알 하바이트)은 왕궁의 살림을 도맡은 관리자요 청지기 직책이다(16:9;왕하 18:18;사 22:15). 즉 궁중사를 총괄하는 이 직책은 이전에는 없던 것인데, 솔로몬의 부요하고 화려한 궁중생활 때문에 새로 생긴 직책이다(23절;18:3등). 드보(De Vaux)는 'master of palace'로 그리고 리빙 바이블(LivingBible)은 'manager of palace affairs'로 각각 번역했다.

(주); 아도니람은 감역관이더라 - 아도니람은 아도람과 동일 인물일 것이다(삼하 20:24). 그렇다면 그는 다윗 시대때부터 같은 직책을 맡아온 것이다(B hr,Keil). 한편 '감역관'(*, 알 하마스)은 세금과 부역(賦役)을 담당하였다. 그러므로 이 직책은 도가 지나칠 때 백성들의 미움을 사기 쉬운 자리였다. 이런 이유로 후에 르호보암 때 아도니람은 백성들의 돌에 맞아 죽는다(12:18).

성 경: [왕상4:7]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열 두 관장]

(주); 솔로몬이 또 이스라엘 위에 열 두 관장을 두매 - '관장들'(*, 나치빔)의 주요 임무는 1차적으로 맡은 바 각자의 지역에서 왕실의 식량과 물자를 조달하는 것이다. 즉 '세금 징수관'인 것이다(Rosenmuller). 그런데 이들이 맡은 바 임무를 원활히 수행키 위해서는 각자의 지방에서 도백(道伯)과 같은 정치 권력을 지녔을 것이다(Jos-ephus), De Vaux). 한편 이들 열 두 관장이 담당한 구역들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기존 열 두 지파의 구획과 유사하긴 하나 꼭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필요한 물량을 일정하게 확보하기 위해서 각 지역 생산량의 많고 적음을 따라 구역을 나눴기 때문이다(Keil). 같은 의미에서 '열 두 관장'을 둔 이유 역시 기존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1년 동안의 물량 공급 횟수인 '열 두 달'에 기인한 것이다(Hammond).

(주); 왕과 왕실을 위하여 식물을 예비하되 - 이는 솔로몬 왕국의 중앙 집권화가 강력했을 뿐만 아니라 체계적이었음을 시사해 준다. 아울러 이는 솔로몬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왕실이 모든 지파를 완전 장악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혹자는 이러한 열 두관장 제도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기를, 이는 당대의 이방 폭군 제도와 다를 바 없는 착취 제도라고 비난한다. 물론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이 왕정 체계를 사무엘에게 요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경고하셨듯이(삼상 8:10-18), 왕정 제도가 백성들의 재산과 권리를 제어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러나 여기서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그러한 점이 아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약속하신 대로(3:13), 솔로몬 왕국에 부와 영광이 충만했다는 점을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비단 솔로몬뿐만 아니라 그의 왕국의 모든 백성들이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을 뿐 아니라(20절), 포도 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다'(25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주); 각기 일 년에 한달씩 식물을 예비하였으니 - '일년 중 한달씩 물품을 공급하는 것이 그들 각자의 임무'라는 뜻이다. 즉 차례대로 한달 분씩의 공급 책임을 졌다는 말이다. 공급 품목은 아마 각 지역의 토산물을 중심으로 하는 현물(現物), 또는 세금이었을 것이다(J.Hammond).

성 경: [왕상4:8]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열 두 관장]

(주); 에브라임 산지 -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땅으로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6Km 떨어진 세겜 건너편까지를 말한다(수 17:14-18;24:33). 이곳은 팔레스틴 중부의 산악 지대로서 정착하여 살기 좋은 비옥한 땅이었다. 그래서 이 지역의 벧엘과 실로에 사사 시대의 두 주요 성소가 있었다(Cundall).

성 경: [왕상4:9]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열 두 관장]

(주); 마가스 - 이 지명은 성경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위치 또한 분명치 않다. 단지 본절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단 지파 지역의 어느 곳일 것으로 추측할 따름이다.

(주); 사알빔 - 수 19:42의 '사알랍빈'과 동일 지역. 오늘날의 위치는 '얄로'(Yalo) 북서쪽의 '셀빗'(Selbit)으로 추측된다(Keil).

(주); 벧세메스 - 이 지역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각각 다르게 나타나 독자들에게 혼란을 준다. 즉 어떤 때는 유다지파의 성읍으로(수 15:10), 어떤 때는 잇사갈 지파의 성읍으로(수 19:38)등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이 기록들의 연관 관계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본절의 벧세메스를 수 19:41의 '이르세메스'와 동일시하다(H-ammond, Keil). 그리고 현재의 '아인 세메스'(Ain-Shems)로 추정된다.

(주); 엘론벧하난 - 이 지명은 수19:43의 '엘론'의 변형된 명칭이거나 '벧하난'이라는 또다른 성읍과의 결합된 명칭일 것이다. 70인역(LXX)은 '벧하난' 앞에 '-까지'를 뜻하는 접속사(* ,헤오스)를 삽입하여 '엘론에서 벧하난까지'로 번역하였다. 아무튼 이상의 지명들은 단 지파에 속한 지역으로 여겨진다(수 19:40-48).

성 경: [왕상4:10]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열 두 관장]

(주); 아룹봇 - 이 지명은 이 곳 이외에 다른데서는 찾아볼수 없다. 그러나 헤벨 땅에 속한 어느 지역일 것이다.

(주); 소고와 헤벨 온 땅 - 소고와 헤벨 두 성읍은 크게는 헤벨(Hepher) 땅에 속하는 지역이다. 그리고 헤벨 땅은 해안에 위치한 샤론(Sharon)평원의 남부 지방이다. 그러므로 본절의 지명들을 유다 지파에 속한 지역으로 주장하는 몇몇 주석가들의 주장은 혼돈을 일으키기 쉽다(B hr,Keil). 왜냐하면 솔로몬 당시 유다 지방과 헤벨 땅은 그 사이에 벤데겔의 행정구역(9절)이 있었으리 만큼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성 경: [왕상4:11]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열 두 관장]

(주); 돌 높은 땅 - '돌'(Dor)은 갈멜 산남쪽으로 지중해 연안의 한 성읍이다. 그리고 이 성읍은 여러 세기 동안 중요한 항구 도시의 위치를 차지했다고 한다(Reed).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이에 대항한 가나안 왕들의 동맹 중 일원이 이 돌의 왕이었다(수 11:2;12:23). 한편 '돌 높은 땅'은 이 성읍과 샤론(Sharon) 평원 일부를 포괄하는 지역이다(Josephus,Thenius). 지역 특성상 비옥한 샤론 평야를 끼고 있어야 왕실에 곡물을 댈 수 있었을 것이다(Hammond).

(주); 벤아비나답 - '벤아비나답'(*)은 '아비나답의 아들'(the son of Abin - adab)이다. 이 아비나답은 이새의 둘째 아들이자 다윗의 형 즉 솔로몬의 큰 아버지일 것으로 본다(PEB). 그러므로 벤아비나답, 곧 아비나답의 아들은 솔로몬의 사촌이 된다.

(주); 저가 솔로몬의 딸 다밧으로 아내를 삼았으며 - 벤아비나답이 솔로몬의 사촌이라면 그는 자기 조카와 결혼한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근친 결혼은 고대 사회의 왕실에서는 매우 보편적인 것이었다. 성경에서도 그러한 유사한 예를 찾아 볼수 있다(창24:4;28:2;29:19;수 15:16,17;삿 14:3).

성 경: [왕상4:12]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열 두 관장]

(주); 다아낙과 므깃도 - 이 성읍들은 므낫 세 지파의 경내에 속했으며(수 12:21;17:11)갈멜 산의 동쪽 기슭 곧 이스라엘 평원 끝에 위치하였다.

(주); 이스르엘 - 본절의 다른 성읍들과는 달리 이 성읍은 잇사갈 지파의 경내에 속하였다(수 19:18). 그리고 이곳은 이스르엘 평야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IDB)한편 아합 왕 시대에는 이 성읍이 왕의 거주지가 되었다(18:45,46). 또한 후일 여기서 나봇의 포도원을 둘러싸고 사건이 일어난다(21장). 이로 미루어 이스르엘(Jezreel)은 매우 비옥한 땅임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세린'(Zerin)이다.

(주); 사르단 - '스레다'(7:46;대하 4:17)라고도 불리웠던 이곳은 여호수아의 영솔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널 때 강물이 기적적으로 멈춰 쌓였던 곳이다(수3:16). 또한 솔로몬 시대에는 히람(Hiram)이 성전 건축을 위해 놋그릇들을 녹여부었던곳이도 한다(7:46).

(주); 벧스안 - 이 성읍은 므낫세 지파의 한 성읍으로서(삿 1:27), 이스르엘 골짜기 동편끝에 위치해 있다(수 17:16). 현재의 '베이산'(Beisan)이다(Robinson). 그런데 '벧스안 온 땅'이라 할때는 이스르엘 골짜기 동편 끝에서 요단 골짜기 서북단에 이르는 초승달 형의 옥토 지대를 말한다. 그리고 이곳은 전략상 요충지였으므로, 역사적으로 외세의 많은 침공을 당했다(Hamilton).

(주);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 - '바아나'(Baana)는 사관(史官) 여호사밧(3절)과 형제일 것이다(Keil).

(주); 아벨므홀라 - 이곳은 벧스안 남방 16Km 지점이며, 선지자 엘리사의 고향이다(19:16;삿 7:22).

(주); 욕느암 - 레위인의 성읍 '욕므암'(대상 6:68)과 동일 지역이다. 그리고 '깁사임'(수 21:22)과 같은 곳으로 추정된다(B hr). 그러나 이 성읍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일치하고 있지 않다. 혹자는 스불론 경내로(Beek), 또 혹자는 므낫세 경내로(Hammond 등) 본다.

성 경: [왕상4:13]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열 두 관장]

(주); 길르앗 라못 - 갓 지파의 성읍으로(수 20:8), 혹은 '라못 길르앗'으로 불리운다. 길르앗 지방 동북쪽의 중요 요새지로서 레위인의 성읍이며(수 21:38;대상 6:80) 요단동쪽의 세 도피성 중 하나이다(신 4:43;수 20:8). 주요 요충지였으므로 역사상 이곳에선 많은 전투가 있었다(15:20;22:3;왕하 8:28;9:14).

(주); 야일의 모든 촌 - 즉, 민 32:41의 '하봇야일'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므낫세 지파는 요단 동편의 길르앗지방을 공격하여 거처를 마련하였다. 그때 므낫세 지파의 용사 야일(Jair)이 빼앗은 성읍들을 통칭 '하봇야일'(Havoth-Jai-r, '야일의 촌락들'이란 뜻)로 부르게 되었다(신 3:14;수 13:30).

(주); 바산 아르곱 땅의 성벽과 놋빗장 있는 큰 성읍 육십 - '바산' 곧 '아르곱'은 길르앗 라못(혹은 라못 길르앗)의 동북 쪽에 위치한 지역이다(신 3:4 주석 참조). 원래 이지역의 60개 성읍은 바산 왕 옥(Og)의 성읍들로 모세 영솔하의 이스라엘이 탈취한 것이다(신 3:1-11). 그런데 그 성읍들은 높은 성벽과 문과 빗장을 가졌고 그 외에 성벽없는 고을이 많이 있었다고 기록되고 있다(신 3:5). 따라서 '야일의 모든 촌'과 아르곱(Argob) 땅의 이 '성읍 육십'은 분명 구별된다(Keil).

성 경: [왕상4:14]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열 두 관장]

(주); 마하나임 - 얍복 강 북쪽에 위치한 길르앗 지방의 중요 도시로 갓 지파에 속한 땅이다(수 13:26,30,;21:28). 본래 이 지명은 야곱이 지은 것으로 '하나님의 군대'라는 뜻이다(창 32:1,2). 요단 동편의 이곳은 왕들의 피신처로 종종 이용되었다(삼하2:8,9;17:24-27).

(주); 잇도의 아들 아히나답 - '아히나답'(Ahinadab)은 대하 9:29의 '선견자 잇도'의 아들로 여겨진다(J.Hammond).

성 경: [왕상4:15]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열 두 관장]

(주); 납달리 - 열 두 행정 구역 중 최북단에 위치한 납달리 지파의 영토이다. 납달리 서편에는 아셀, 남쪽에는 스불론, 잇사갈 지파들과 맞닿아 있다.

(주); 아히마아스 - 카일(Keil), 헤몬드(Hammond)등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이 인물을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Ahimaaz)일 것으로 본다(삼하 15:27; 17:17).

(주); 솔로몬의 딸 바사맛으로 아내를 삼았으며 - 납달리 지역의 관장 '아히마아스' 역시 돌 지역의 '벤아비나답'과 마찬가지로(11절) 왕실과 인연을 맺었다. 고대 사회의 풍습상 왕은 신하들 중 충성심이 강하고 유능한 인물에게는 이처럼 딸을 배필로 허락함으로써 포상을 했을 뿐 아니라, 동시에 왕실(王室)도 공고히 했다. 어쩌면 이를 위해서도 당시 왕의 다처다첩(多妻多妾)이 요구되었을 것이다(Rawlinson).

성 경: [왕상4:16]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열 두 관장]

(주); 아셀 - 납달리 서쪽 곧 지중해에 연한 지역으로 아셀 지파의 영토이다.

(주); 아롯 - 이곳의 위치는 밝혀진 바 없다. 고대 주요 역본들에는 '베아롯'(*)으로 되어 있다(LXX,Vulgate,Syriac,Arabic). 그러나 유다와 단에 위치한 '바아롯'(수15:24;19:44)과는 무관하다(Keil,Hammond).

(주); 후새의 아들 바아나 - '바아나'(Baanah)는 '다윗의 벗'인 아렉 사람 후새의 아들이다(삼하 15:32).

성 경: [왕상4:17]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열 두 관장]

(주); 잇사갈 - 잇사갈 지파의 영토로서 12절의 지역들 즉 다아낙, 므깃도, 벧스안 등을 제외한 이스르엘 평야 지역을 가리킨다. 이 지역은 서북으로 스불론, 남으로 므낫세 사이에 위치한다(수 19:17-23).

성 경: [왕상4:18]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열 두 관장]

(주); 베냐민 - 베냐민 지방은 여타 지역에 비해 수도 예루살렘에 가장 근접해 있었다. 이 지역은 북으로 에브라임, 남으로 유다 사이에 위치하였다(수 18:11).

(주); 엘라의 아들 시므이 - 이 인물은 아도니야의 왕위 찬탈 음모에 가담하지 않았던 1:8의 시므이(Shimei)와 동일 인물인 듯하다(Keil,Patterson).

성 경: [왕상4:19]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열 두 관장]

(주);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바산 왕옥의 나라 길르앗 땅 - 아모리 왕 시혼(Sihon)과 바산 왕 옥(Og)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행군을 저지하였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을 패퇴시키고 오히려 그 땅을 차지하였다(민 21:21-35). 그런데 본절의 '길르앗 땅'은 13,14절의 벤게벧과 아히나답의 관할 지역을 제외한 요단 강 동남부 지역을 가리킨다(Keil). 왜냐하면 (1) 보통 길르앗은 요단 동편 전체를 말하며(신 34:1;삿20:1) (2) 13,14절의 지역은 주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고 (3) 요단 동편 전체에서 이북쪽 지역을 제외하고도 사해(死海)까지 이르는 므낫세의 땅과 갓의 땅은 매우 광활하기 때문이다(민 21:24,33).

(주); 우리의 아들 게벧 - '우리'(Uri)의 아들 '게벧'(Geber)은 '벤게벧'(13절)의 아버지이다(J.Hammond).

(주); 그 땅에서는 저 한 사람만 관장이 되었더라 - 이 구절의 해석은 구구하나, 대체로 '그렇게 넓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의 관장이 다스렸다'는 뜻으로 보고 있다(B hr,Keil).

성 경: [왕상4:20]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이스라엘의 태평 성대]

(주);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게 되매 - 창 22:17의 "바닷가의 모래같이"라는 표현이 본절에서 그대로 반복사용되었다. 이것은 일찍이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자손 번성의 약속이 솔로몬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전 성취되었다는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고자 함이다(창 13:16;15:5;22:17).

(주);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 Living Bible은 본절 전체를 "이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는 부유하고 인구가 많았으며 만족을 누리는 국가였다"(Israel and were a wealt-hy, populous, contented nation at this time.)로 번역하였다. 또한 공동 번역은 "인구가 불어났지만 먹고 마시는 일에 아쉬움을 모르며 잘 지냈다"로 번역하였다. 결국이 구절은 솔로몬 시대의 백성들이 일반적으로 풍요를 누리는 태평 성대(太平聖代)의 상태임을 보여 주고 있다. 실제로 고고학은 이 시기와 관련된 많은 곡식 창고들을 발굴해 내었다. 한편, 그런데 이러한 솔로몬 시대의 태평성대는 솔로몬 왕국이 외교(21,24절), 경제(22,23절), 국방(26절)에 있어서 놀라운 번영을 이룩한 것은 결국 솔로몬의 지혜로운 통치로 말미암은 결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솔로몬이...다스리므로"라는 표현이 반복 강조되고 있다(21, 24절).

성 경: [왕상4:21]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이스라엘의 태평 성대]

(주); 하수(河水) - 유브라데(Euphrates)강을 말한다(창 31:21;출 23:31;수 1:4;삼하10:16).

(주); 블레셋...애굽...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 솔로몬 왕국의 판도가 북(北)으로는 유브라데 강에서 서(西)로는 지중해 연안의 블레셋, 그리고 남(南)으로는 애굽의 국경에까지 이르는 광활한 지역이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그 판도내의 모든 국가들이 솔로몬의 속국이 된 것이다. 물론, 모압, 소바, 에돔 등은 선왕 다윗이 정복한 국가들이지만 솔로몬 시대의 국력이 여전히 강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지배권을 계속 유지할 수있었던 것이다(삼하 8:1-14). 이처럼 이스라엘이 주변 국가들에 대해 종주국의 지위를가진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한편 본절은 창 15:18에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바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문자 그대로 성취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처럼 광할한 이스라엘의 판도에 대해 비평가들은 다소 과장된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 기록의 사실성은 다음 사항들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1) 당시 동쪽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암흑세기를 맞아 이렇다 할 강대국이 없었던 침체된 상태였고 남쪽의 강대국이었던 애굽 역시 극도로 쇠약하였던 21왕조의 치세하에 있었다.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이스라엘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들의 국경까지 팽창할수 있었던 것이다. (2) 또한 애굽 왕이 자기의 딸을 솔로몬에게 주었던 사실(3:1)도당시 솔로몬 왕국의 강성함이 어떠했는지를 잘 암시해 준다.

(주); 그 나라들이 공(貢)을 바쳐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섬겼더라 - 이 말은 이전 다윗왕때에 정복되었던(삼하 8:2-14) 모압, 소바, 다메섹, 에돔 등에 대한 지배권을 솔로몬 시대 동안에도 계속 유지하였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고대 국가에서 강력한 통치자가 죽게 될 경우 주변 속국들은 조공을 철회하고 독립을 꾀하곤 하였다. 이것은새 왕의 통치 능력에 대한 일조의 시험이기도 한데, 따라서 새로 즉위한 왕은 자신의통치 능력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정벌 원정에 나서곤 하였다. 그러나 다윗 사후 솔로몬 통치하에서는 이러한 정벌 원정이 필요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주변 속국들이 변함없이 조공을 바침으로써 충성을 다짐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솔로몬으로 하여금 평화 중에서 성전 건립에 전심 전력케 하려는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였다(Patterson). 한편, 당시 공물로 사용된 것으로는 금,은,옷,향품,갑옷,말,노새 등이 있었다(10:25). 역대하 9:14에는 위에서 언급한 나라들 외에 이스라엘 동남부의 아라비아 부족들도 조공(朝貢)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아람(소바,다메섹)과 에돔은 솔로몬 말년에 반란을 일으켜 독립하고 만다(11:14-25). 그리고 솔로몬 사후(死後) 분열된 왕국은 이들에 대한 영향력을 점차로 잃게 된다.

성 경: [왕상4:22]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이스라엘의 태평 성대]

(주); 일일분 식물은 가는 밀가루가 삼십석이요 굵은 밀가루가 육십 석이요 - '석'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코르'(*)는 '호멜'(*)의 후기 명칭인데(겔 45:14), 액체나 고체로 된 물질의 용량을 재는 제일 큰 단위이다(B hr).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얼마 만큼의 양을 가리키는지는 확실치 않다. 대략 1석은 230리터로 추정된다. 많은 주석가들은 데니우스(Thenius)의 계산을 따라 본절의 밀가루 구십 석을 14,000명의 하루치 빵을만들 수 있는 양으로 본다(Hammond,Keil 등). 한편 여기서 '가는 밀가루'(fine flour)와 '굵은 밀가루'(meal)를 구별하여 기록한 이유는 확실치 않다. 아마 궁궐 내에서 비교적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가는 밀가루로 만든 빵을 먹었던 것 같다.

성 경: [왕상4:23]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이스라엘의 태평 성대]

(주); 살진 소가 열이요 초장의 소가 스물이요 양이 일백이며 - 여기서 '살진 소'는 살이 찌도록 외양간에서 사육한 비육우(肥肉牛)를 가리키고, '초장의 소'는 방목(放牧)하여기른 목장의 소를 가리킨다. 주석가 데니우스(Thenius)의 계산에 의하면, 본절의 고기의 양은 솔로몬 궁궐과 관련있는 14,000명의 인원이 각기 한근 이상을 먹을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소비량은 고대 동양의 다른 강대국 왕궁들의 그것과 비교하면 지나친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솔로몬 왕국의 경제적 풍요를 가히 짐작케 하는 것이다.

(주); 살진 새들 - '살진 새들'(*, 바르부림 아부심)이란 말은 여기서만 찾아볼 수 있는 말이다. 아마도 '거위'같은 식용(食用)으로 사육된 조류(鳥類)를 지칭하는 듯하다(Gesenius,Hammond,Gray). 같은 맥락에서 혹자들은 '암탉'(Thenius,G.R.Driver) 또는 '수탉'(Kimchi)으로 보기도 한다.

성 경: [왕상4:24]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이스라엘의 태평 성대]

원문에서 '까닭'을 알리는 '키'(*)가 본절 초두에 있다. 이것은 본절이 솔로몬 왕국의 풍요한 생활이 가능했던 까닭을 설명하는 구절임을 보여 준다. 즉 본절에서와 같은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기 때문에 그 많은 왕궁의 소비량(22,23절)을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 하수 이편 - '하수 이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베르 하나하르'(*)는 문자적으로는 '강 저편'을 의미한다. 영역본 RSV와 Living Bible은 구체적으로 이것을 '유브라데 강서편'(west of the Euphrates River)으로 번역하였다. 당시 솔로몬왕국의 판도는 유브라데 강을 넘지 않았다(21절). 그러므로 유브라데 강 서편의 솔로몬 영토를 '강 저편'으로 표현한 것은 열왕기서 저자가 바벨론 포로 기간 중에 유브라데 동쪽에 머물면서 본서를 기록하였음을 암시한다(Bahr,Hammond,Keil).

(주); 딥사 - '딥사'(Tiphsah)는 '탑사쿠스'(Thapsacus)라는 성읍으로서, 유브라데 서쪽 강변에 위치한 번창한 항구도시이다(Wycliffe). 솔로몬 왕국의 동북 국경 도시이자 무역의 중심지인 이곳을 통해 솔로몬은 국가를 방어하고, 동시에 교역을 통해 많은 수입을 올릴수 있었을 것이다. 가사 - '가사'는 블레셋의 주요 성읍으로(수 13:3), 지중해에서 16Km 떨어진 팔레스틴 최남단 도시이다(Hammond). 그러므로 '딥사에서 가사까지'라는 표현은 솔로몬 왕국의 실제 통치 구역으로서, 곧 솔로몬이 팔레스틴 전역을 폭넓게 다스렸음을 시사(示唆)한다.

(주); 모두 다스리므로...다 관할한바 되매 - 솔로몬 당시의 이스라엘 왕국의 통치 영향력은 세 구역으로 대별될 수 있다. (1) 왕국 중앙부에는 가나안 정복 당시와 흡사한 규모의 본토가 위치하였다. (2) 그 주위에는 조공을 바칠 의무가 있었던 에돔, 모압, 암몬, 아람, 다메섹 등의 나라들이 위치하였는데, 이들은 이스라엘 중앙 정부로부터 파견된 총독에 의해 다스려지거나(삼하 8:6,14), 중앙 정부의 통제 하에서 지방 왕족들에 의해 통치되기도 하였다. (3) 끝으로 솔로몬의 통치권을 수락해야만 했던 주변 속국들을 들 수 있는데, 블레셋을 비롯하여 북부 트랜스 요르단의 여러 왕국들이 그러하였다.

(주); 저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가 있었으니 - 원문상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솔로몬은 자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두와 평화하였다'이다. 공동 번역은 이러한 의미를 충분히 살리면서 '그는...사방으로 평화를 유지하였다'라고 번역하였다. 이것은 바로 대상 22:9의 "저는 평강의 사람이다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는 언약의 성취이다(Hammond).

성 경: [왕상4:25]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이스라엘의 태평 성대]

(주);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 저자는 유다와 이스라엘이 분열되기 이전의 번영기 즉 솔로몬 시대를 회상하며 이 부분을 기록하고 있다.

(주);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 앞에서 언급된 솔로몬 왕국의 전체 세력 판도(21,24절)와는 구별하여 이 표현은 약속의 땅과 언약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본토전 지역, 전 국민에게만 국한하는 표현이다(삿 20:1;삼하 3:10;17:11;24:2). 여기서 '단'(Dan)은 이스라엘 본토의 최북단에 위치한 성읍이며 '브엘세바'(Beersheba)는 최남단의 성읍이다(수 19:47;삿 18:27-31).

(주);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 - 포도와 무화과는 이스라엘의 대표적 작물(作物)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종종 평화와 안정 및 번영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사 36:16;미 4:4;학 2:19;슥 3:10). 본절 역시 태평 성대를 맞아 백성들이 안정되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Bahr,Hammon-d). 이와 비슷한 표현이 왕하 18:31에서도 사용되고 있는데, 이처럼 이 표현은 평화와 안정된 생활을 가리키는 격언적 표현이 되었다. 따라서 후일 선지자들은 메시야가 통치하는 왕국의 번영과 평강 및 안정을 가리키는 데 이 표현을 즐겨 사용하였다(미4:4;슥 3:10).

성 경: [왕상4:26]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이스라엘의 태평 성대]

(주); 솔로몬의 병거(兵車)의 말의 외양간이 사만이요 - 여기서 '외양간'(*, 우르와)은 말을 가두어 두는 '칸막이'(Keil) 또는 말의 먹이를 주는 '구유'(Hammond)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말 한 마리를 위해 준비된 것이다(Bochart). 한편, 여기서 '사만'(*, 아르바임 엘레프)은 '사천'(*, 아르바아 엘레프)의 필사상 오기(誤記)일 것이다(Keil).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까닭은 (1) 병행 구절인 역대하 9:25은 '사천'으로 기록되어 있고 (2) 왕상 10:26의 병거 일천 사백과 마병 일만 이천의 숫자로 미루어 '사천'이 보다 타당하기 때문이다(Patterson). 한편 외양간이 있는 병거성은 동북쪽 국경 수비를 위해 므깃도와 하솔에, 블레셋에 대비해 벧호론과 게셀과 바알랏에, 그리고 에돔에 대비해 아라바의 다말 등 각처에 축조되었다(Wevers, 9:15-19). 그리고 병거는 애굽, 헷, 아람 등지에서 수입해 왔다(10:29).

성 경: [왕상4:27]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이스라엘의 태평 성대]

(주); 예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였으며 - 솔로몬 왕국의 12관장 체계(7절)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관장들(8-19절)은 충성스럽고 유능하여서 그들의 맡은 직무를 제때에 적절하게 수행하였다. 그럼으로써 그토록 큰 왕궁의 살림을 혼란없이 잘 유지하도록 하였다(M.Henry). 본절은 관장들의 성실과 유능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 경: [왕상4:28]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이스라엘의 태평 성대]

(주); 준마(駿馬) - '준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케쉬'(*)는 '말','낙타','노새'등 일반적으로 '빠른 짐승'을 의미한다. 여기서 이 '레케쉬'는 왕의 전령(傳令)이나 소식을 전하는 데 사용하는 말이나 병거를 끄는 말 등 우수한 품종의 말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에 8:10,14;미 1:13).

(주); 보리 - 팔레스틴지방에서는 우리가 보통 말의 먹이로 알고 있는 귀리가 나지 않았다. 대신에 이곳에서는 보리가 사료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한다(Hammond,Kei-l).

(주); 그 말의 있는 곳으로 가져왔더라 - '그 말의 있는 곳'은 구체적으로 해당 구역 안의 병거성을 가리킨다(10:26). 본절로 미루어 열두 관장들은 자기 행정 구역 안에 있는 병거성의 보급도 책임졌던 것 같다.

성 경: [왕상4:29]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뛰어난 지혜]

본절은 3:12의 약속 성취이다.

(주); 지혜 - '지혜'의 '호크마'(*)는 매우 실제적(practical)인 것으로서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하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적절히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지칭한다(Keil). 원래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때는 '솜씨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로서 비단 장인(匠人)들 뿐만 아니라 시,음악 등 모든 문화의 분야에서 재능과 총명을 발휘하는 인물을 뜻한다(Dentan). 즉 '지혜로운 사람'이란 인생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하여 남다른 분별력과 통찰력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Patterson). 또한 '지혜'는 온전한 영적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가장 실제적인 능력은 자신과 하나님간의 온전한 영적 상태에서 나온다는 사상이 여기에 담겨 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선물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Blank, 시 104:24;잠 3:19;사 31:2;렘 10:12;단 2:20).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호크마)의 근본이라"(시111:10),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호크마)요"(욥 28:28) 등의 성구는 이러한 사상의 대표적인 예라고 볼수 있다.

(주); 총명 - '총명'의 '테부나'(*)는 예리한 판단력으로서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정확히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다(Keil). 이것 역시 '지혜'와 마찬가지로 매우 실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주); 많이 주시고 또 - '또'의 '웨'(*)는 '그리고'(and)의 의미 외에도 '그러므로'(therefore)란 뜻도 있다. 따라서 본절은 '...많이 주셨으므로'라는 원인-결과 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공동번역은 "...한없이 주셨으므로'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대다수 영문 성경들은 '그리고'(and)의 뜻을 취하고 있다(RSV,KJV,NIV).

(주); 넓은 마음 - '넓은 마음'의 '로하브 레브'(*)는 '다방면에 걸친 해박(該博)한 지식'을 뜻한다. 원문의 뜻은 '큰 넓이를 가진 마음'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여기서 '마음'은 '두뇌','지식'의 뜻에 해당한다(Hammond). 그리고 '넓이'는 다양한 분야의 광범위한 지식을 수용(受容)할 수 있는 두뇌의 용량(容量)을 말한다(Keil).

(주);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 - '바닷가의 모래'라는 표현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음과 풍부함을 표현하는 관용 어법이다(20절;창4:20;22:17;수 11:4;삿 7:12). 여기서는 앞의 '넓은 마음'과 관련하여 솔로몬이 다방면에 걸쳐 광범위한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성 경: [왕상4:30]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뛰어난 지혜]

(주); 동양 모든 사람 - 여기서 '동양 모든 사람'(sons of the East)은 팔레스틴 동쪽과 동남쪽에 분포된 넓은 의미의 아라비아인들을 가리킨다(Keil). 따라서 여기의 '동양'은 현재 사용되는 의미와는 달리 당시 이스라엘 편에서 본 '동양'이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하란, 메소보다미아인들을 포함하며, 동시에 스바, 아두매, 데마인들을 포함한다. 그런데 고대로부터 이곳은 문명과 문호의 발상지로 알려져 왔으며, 또한 신화적 내용을 담고 있는 많은 지혜 문서 및 다양한 격언적 지혜로 유명하였다(Patterson;렘49:7;욥 1:8).

(주); 애굽의 모든 지혜 - 피라밋에서 보듯 고대 애굽은 기하학, 천문학, 의학 등 오늘날의 자연 과학과 관계된 실제적으로 분야가 매우 발달하였다(Josephus,Herodotus). 따라서 당시 이러한 '애굽의 지혜'는 속담이 될 정도로 유명했다(사 19:11;31:1,2;행7:22).

(주);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 솔로몬의 문화적 업적이 지금으로 말하면 인문 과학과 자연 과학의 선진국이라 할 만한 나라들을 능가할 정도였음을 말하고 있다.

성 경: [왕상4:31]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뛰어난 지혜]

(주);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 - 카일(Keil)은 이 인물들을 솔로몬과 동시대의(of his time) 인물들로 보면서도, 야곱의 손자 세라의 아들들(대상 2:6)과 동일시하는 모순을 보인다. 그러므로 헤몬드(Hammond)의 주장처럼 이들을 솔로몬 당대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 한편 이들 중 '에단'과 '헤만'은 시편의 저자인 듯하다(시 88:1;89:1). 그리고 '갈골'과 '다르다'(다라)는 '에단'과 '헤만'과 더불어 역대상 2:6의 족보, 곧 세라의 아들들로 등장하는 것 이외에는 더이상 알려진 바가 없다. 여하튼 본절의 이 네 인물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문화, 예술에 있어 뛰어난 지혜의 사람으로 공인(公認)된 인물들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들보다도 뛰어났다고 말함으로써 솔로몬의 지혜가 모든 분야에 있어서 역사상 최고의 수준에 도달한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성 경: [왕상4:32]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뛰어난 지혜]

(주); 잠언(簪言) 삼천 - 솔로몬의 잠언 삼천은 후세에 다 전해지지 않았고, 성경의 잠언은 그 일부로 약 삼분의 일 분량이다(잠 1:1). 아마도 후대로 전해지는 동안 필사(잠25:1)등의 과정에서 소실(消失)되었거나 혹은 가장 훌륭한 것만 추린 까닭일 것이다(Keil).

(주); 그 노래는 일천 다섯 - 이 노래들도 후대에 다 전해지지 않았다. 성경에서 아가서와 시편 72,127편정도가 그 노래 중에서 남은 것으로 보여진다(Patterson, Hammond,B-ahr). 혹자는 시132편도 이에 속한다고 주장한다(Ewald). 여하튼 이러한 솔로몬의 '잠언'(*, 마솰)과 '노래'(*, 쉬르)는 솔로몬의 뛰어난 신적 지혜가 반영된 것들로서, 궁극적으로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들이기도 하다(3:12).

성 경: [왕상4:33]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뛰어난 지혜]

(주); 저가 또 초목을 논하되 - 오늘날의 식물학(植物學)과 같은 지식을 말한다. 이는 솔로몬 시대에 많은 학문적 연구와 조사가 이루어졌음을 반영한다. 보통 평화와 번영의 시기에 이와 같은 학술 활동도 활발한 법이다.

(주); 레바논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 레바논의 산들은 백향목의 주요 산지(産地)로서 다윗과 솔로몬이 성전 건축용 백향목을 수입한 곳도 여기이다(삼하5:11;7:2;왕상 5:7장;대상 14:1;대하 2장). 이 백향목(the cedar)은 건축물의 기둥으로 쓰일 만큼 크고 튼튼했기 때문에 자주 영광, 힘, 호화(豪華)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Trever;시 29:5;37:35;아 1:17;렘 22:14). 한편 우슬초(the hyssop)는 관목(灌木)류에 속하는 키가 작고 털이 많은 식물이다. 따라서 본절은 가장 큰 나무에서 가장 하찮은 관목에 이르는 모든 식물의 총칭(總稱)을 표현한 말이다.

(주);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 - 이것은 동물을 그 서식지(땅,하늘,물)및 동작(걷는 것, 나는 것, 기는 것, 헤엄치는 것)에 따라 나눈 성경의 일반적인 분류법이다(창 1:20-23,28). 따라서 모든 동물을 지칭한다. 결국 본절은 식물학(植物學,bot-any)과 동물학(動物學,zoology)에 있어서, 솔로몬이 폭넓은 다양한 격식을 갖추었을 뿐만아니라, 또한 각각의 분야에 있어 깊이까지 갖추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주); 논한지라 - 동사 '다바르'(*)의 기본 뜻은 '말하다'이다. 그러나 이는 비단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관찰하고, 연구하며, 저술하는 활동까지 포괄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다(Keil).

성 경: [왕상4:34]

주제1: [솔로몬 왕국의 번영]

주제2: [솔로몬의 뛰어난 지혜]

(주); 모든 민족...모든 왕 중에서 그 지혜를 들으러 왔더라 - 솔로몬의 탁월한 지혜의 명성은 열방 중에 널리 퍼졌고, 결국 많은 나라의 왕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방문토록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곧 이스라엘이 문화 예술 등 제반분야에서 선진국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변의 국가들은 솔로몬 왕국과의 교류를 적극 원했을 것이고, 왕들은 직접 혹은 대사를 통해 접촉을 시도하고자 했을 것이다(5:1;10:1). 그리고 솔로몬은 개방 정책을 펴서 많은 방문객들을 맞아들였던 것이다(Wycliffe). 스바 여왕의 방문은 여기에 대한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10:1-13).

성 경: [왕상5:2]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희람의 도움을 요청하는 솔로몬]

(주); 솔로몬이 히람에게 기별하여 - 히람이 보낸 사절단을 계기로 솔로몬은 사절단의 편으로 성전 건축에 협력을 요청하는 서신을 히람에게 전한다. 그런데 이 서신은 히람의(8절)와 함께 두로의 문서 보관서에 보존되었다는 내용이 요세푸스의 기록에 나타난다(Antiquities, , ii, p.6).

성 경: [왕상5:3]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히람의 도움을 요청하는 솔로몬]

(주); 당신도 알거니와 -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한 많은 준비를 생전에 했었다(대상 22장). 그 중에는 많은 기술자 및 백향목을 두로와 시돈으로부터 공급받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두로 왕 히람 역시 이러한 다윗의 성전 건축 준비 작업을 이미 도운 바 있었다.(삼하 5:11대상 22:4). 그러므로 마땅히 히람은 다윗의 성전 건축 계획과 성전건축을 향한 열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 건축을 시도할 수 없었던 까닭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주); 사방의 전쟁으로 인하여 - 다윗이 성전 건축을 열렬히 소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도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즉 다윗은 잦은 전쟁을 치러야 했으므로 성전 건축의 기회나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형편에도 불구하고 다윗 자신은 성전 건축을 기대했으나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빈번한 전쟁을 치른 결과, 다윗은 피를 많이 흘리게 하였으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평화의 성전 건축에 적격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대상 22:8;28:3).

(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 성전 건축의 목적으로서, 이는 "오직...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하신 곳"(신 12:5,11)이라는 유일 중앙 성소 개념에 근거한 것이다.

(주); 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 성전 건축에 대한 하나님의 뜻(대상 22:8-10 ;28:2-6)을 분명히 안 다음, 다윗은 자신의 후계자로서 장차 자기 대신 성전 건축 사역을 담당할 솔로몬에게 가능한한 많은 도움과 편의를 주기 위해, 성전 건축에 필요한 기술자와 제반자재들을 충분히 비축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기하였다(대상 22, 29장).

(주);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 성경에서 '발'(*, 레겔)은 보통 종속, 비하의 관계를 상징한다. 왜냐하면 발은 신체의 하부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Dentan). 예를 들면 '발아래 두다'는 정복과 피지배 관계를, '발 아래 앉다'는 선생과 제자의 종속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시 8:6;눅 10:39). 따라서 본절 역시 정복하여 지배하는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다(시 91:13;사 63:3;롬 16:20;엡 1:22;히 2:8). 실제로 발견된 고대 앗수르의 그림 중에는 정복자가 적의 몸을 발바닥으로 누르고 있는 그림이 있다.

성 경: [왕상5:4]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히람의 도움을 요청하는 솔로몬]

(주); 사방의 태평 - 여기서 '태평'(*,누아흐)은 '안식'이란 뜻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러므로 사방의 태평'(RSV, rest on every side)은 국력의 신장(伸張)에 힘입어 나라 안팎으로 평온한 상태가 이루어졌으므로, 이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음을보여 주는 말이다(4:24,25). 이로써 다윗의 성전 건축을 방해했던 '사방의 전쟁'(3절)이라는 원인이 사라진 것이다. 한편, 하나님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사방의 태평을 주신 것은 대상 22:9 약속의 성취이다.

(주); 대적도 없고 - 여기서 '대적'(*,사탄)은 '방해하다', '반대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구약에서 보통 사람의 길을 막는 방해자, 전쟁에서의 적군, 또는 법정에서의 고소자 등을 의미하는 데에 사용되었다(Gaster;민22:22;삼상29:4;시109:6,7). 한편, 11:14,23에서 솔로몬의 대적으로 나타나는 바 하닷과 르손의 반역 행위는 분명 성전 건축 후의 일로서, 솔로몬 통치 후기의 사건이다(Keil). 그리고 그것은 후기에 이르러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 타락한 솔로몬의 불순종을 치시려는 하나님의 징계였다.

(주); 재앙도 없도다 - 여기서 '재앙'(*, 페가)은 '졸지에 찾아오는 불행'(misfortune, RSV), '갑작스러운 재난'(disaster, NIV)같은 것을 의미한다(전 9:12). 구체적으로는 다윗이 겪었던 반역, 기근, 역병 등이 이에 해당된다(B hr;삼하15:14;20:1;21:1;24:15). 다윗은 이러한 재앙을 많이 겪은 '고난의 왕'이었으나, 성전 건축을 담당할 솔로몬은 '평강의 왕'(대상 22:9)으로서, 이와 같은 재앙들이 전혀 미치지 않은 것이다.

성 경: [왕상5:5]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히람의 도움을 요청하는 솔로몬]

(주); 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윗에게 하신 말씀 -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성전 건축'에 대한 당신의 뜻을 명확히 전달한 바 있었다. 즉 삼하 7:12, 대상17:11,12에 나타난 말씀으로, 그것은 다윗의 후계자로 말미암아 성전 건축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다윗은 자신의 후계자가 될 솔로몬에게 이러한 성전 건축 사역에 대해 간곡히 권면했던 것이다(대상 22:11-16;28:9-21).

(주); 하신 대로...건축하려 하오니 -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려는 것은 자신의 야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부친 다윗의 유지(遺志)를 따르려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Hammond).

성 경: [왕상5:6]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히람의 도움을 요청하는 솔로몬]

(주);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베어내게 하소서 - 성전 건축에 필요한 목재를 교섭하는 교역 약조를 솔로몬이 두로 왕 히람에게 제안하고 있다. 이로 보아 백향목 숲이 있는 레바논 일부 지역이 히람의 통치 영역에 속했던 것 같다(Keil). 아무튼 레바논은 고대에 백향목의 산지로 유명했다고 한다(Hammond). 그런데 백향목(柏香木, cedar tree)은 1. 성장하는 데 수백년이 걸리고, 2. 곧고 아름다우며, 3. 목재의 쓴맛 때문에 병충해가 적다는 특징 등으로 해서 매우 값진 건축재였다(Gates).

(주); 나의 종과 당신의 종이 함께 할 것이요 - 영역본 리빙 바이블(Living Bible)은 '나의 종들을 보내 당신의 종들 곁에서 일하게 하겠다'(I will send my men to workbeside them)로 번역하였다. 즉 벌목(伐木)하는 일을 돕겠다는 뜻이다.

(주); 당신의 모든 말씀대로 당신의 종의 삯을 당신에게 붙이리이다 - 본절의 뜻이 한글개역 성경에서는 좀 모호하다. 그러나 영문 성경은 '당신이 요구하는대로의 임금(whatever wages you ask, Living Bible;such wages as you set,RSV)을 지급하겠다'로 번역함으로써 보다 선명하다. 공동 번역도 이와 비슷하게 "당신의 신하들에게는 당신이 정하는 급료를 지불해 드리겠습니다"로 번역하였다. 이러한 솔로몬의 말에서 그의 부(富)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대하 2:10).

(주); 우리 중에는 시돈 사람처럼 벌목을 잘 하는 자가 없나이다 - 벌목(伐木)에는 단순히 나무 자르는 기술 뿐만 아니라 쓸만한 나무를 골라 적절한 시기에 자르고, 또 이를 적절히 보관하는 등 보다 광범위한 지식이 요구된다(Keil). 그런데 시돈 사람(theSidonians) 곧 베니게인들 중에는 그러한 건축 기술자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베니게인들은 무역 중심의 생활을 해왔던 관계로 예전부터 선박 건조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Movers,Schnaase). 이에 반해 이스라엘은 농경.목축 생활을 해왔으므로, 목재를 사용하는 건축 기술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시돈 사람'(*, 치도님)이란 명칭은 곧 베니게(페니키아)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본래 베니게는 도시 국가 형태로서, 곧 시돈과 두로의 두 주요 도시로 구성된 국가이다.그런데 예전에는 두로보다 시돈이 보다 중요한 도시로 여겨졌기 때문에 주변 국가들이 베니게인들을 속칭 '시돈 사람'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특별히 여기서는 백향목이 있는 지역이 시돈 지역에 속했고, 또한 시돈 성의 주민들이 보다 뛰어난 건축 기술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이처럼 시돈 사람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 역시 두로 왕 히람의 통치 영역에 속했다(Keil, Hammond).

성 경: [왕상5:7]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솔로몬과 히람의 교역]

(주); 히람이 솔로몬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 두로 왕 히람은 솔로몬의 교역 제의를 받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 주된 이유는 당시 강력한 세력을 지닌 이스라엘과 탄탄한 정치적 우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통상 관계를 통해서도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베니게(두로와 시돈) 지역은 좁은 해안지대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작물 재배가 여의치 않았다. 따라서 베니게는 이스라엘에 곡물 수입을 의존해야만 했다(Keil, B hr).

(주); 여호와를 찬양할지로다 - '찬양할지로다'(*, 바루크)의 기본 뜻은 '무릎꿇다'이다. 그러므로 찬양이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행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본절의 '찬양'은 히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믿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Keil, Hammond). 사실 히람이 다스리던 베니게 지역은 다신 숭배, 특히 바알 숭배가 성행했던 곳이다(Kapelrud). 그러므로 히람은 단지 대부분의 고대 근동인들의 신앙 태도처럼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로서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를 인정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창26:28,29). 그렇다면 본절은 히람이,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시작할 수 있으리만치 안정과 부를 주셨음을 크게 인정하는 표현이라 하겠다(대하 2:12). 한편 이런 견지에서 70인역(LXX)은 본절을 '하나님은 찬양 받으실 만하다'(*, 율로게토스 호 데오스)로 적절하게 번역하였다(Hammond).

(주); 다윗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사 - 부친 다윗과 마찬가지로 계속 히람과 화평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려는 솔로몬의 처신이 두로 왕 히람에게 '지혜롭게'(현명하고 분별력 있게) 비쳐졌을 것이다.

성 경: [왕상5:8]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솔로몬과 히람의 교역]

(주); 이에 솔로몬에게 기별하여 - 즉 솔로몬의 제의(2-6절)에 대해 히람이 답장을 보내온 것이다(대하 2:11). 그 내용상 일종의 교역 협정을 맺는 것이므로, 솔로몬과 히람사이에 오간 서신들은 국가 공문서와도 같은 것이다. 한편, 히람이 솔로몬의 막대한 규모의 통상 요구를 쾌히 응낙한 사실은 양국의 전통적 우호관계 외에도 당시 이스라엘의 국력이 그만치 성장하였음을 인정한 측면도 있다(1절).

(주); 잣나무 재목 - 잣나무(fir, KJV;cypress, RSV)는 보통 백향목(cedar) 보다는 못한 것으로 취급되지만 역시 병충해, 부패에 강하여 내구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튼튼하고 가벼워, 좋은 건축재이다(Winer).

성 경: [왕상5:9]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솔로몬과 히람의 교역]

(주); 레바논에서 바다로...바다에서 떼로 엮어 - 건축용 백향목과 잣나무는 레바논 산지에서 벌목된 후 일단 베니게 해안 지대로 운반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 나무들은 거대한 뗏목으로 엮어져 바닷길로 이스라엘의 항구까지 운송되었다.

(주); 당신이 지정하는 곳 - 역대기 기록에 의하면, 이 장소는 바로 욥바이다(대하2:16). '욥바'(Joppa)는 '아름다움'이란 뜻을 가진 예루살렘 최근교의 항구 도시로서 예루살렘에서 56Km 가량의 거리에 위치하였다. 이곳은 바위들로 자연 방파제가 형성되어 있으므로, 천연의 선박 기항지였다(Gold). 그런데 정작 레바논에서 욥바까지의 바닷길 보다도 욥바에서 예루살렘까지의 험하고 울퉁 불퉁한 육로가 목재를 운반하기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Hammond).

(주); 식물을 주소서 - 베니게는 지중해 연안을 따라 뻗어 있는 길고 좁은 나라이다(Kapelrud).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 지대로 이루어진 페니키아(베니게)는 임산물(林産物)이 풍부한 대신 농작물(農作物)이 부족했다. 실제 베니게 지역에서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평야 지대는 대략 75Km2 정도의 면적에 불과했다고 한다(Josephus). 따라서 비록 비옥한 땅이기는 해도 실제 경작면적은 결코 넓지 못했다. 그러므로 베니게는 외국으로부터의 식량 수입에 상당량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의 교역에서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언제나 식량이었다(스 3:7;겔 27:17).

성 경: [왕상5:10]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솔로몬과 히람의 교역]

(주); 솔로몬의 모든 원대로 - 대하 2:7-9에는 솔로몬의 요구 내용이 좀 더 상세하게 나타나 있는데, 곧 여기에 없는 솜씨좋은 공장(工匠)과 백단목(오동나무)이 추가되어있다.

(주); 재목을 주매 - 여기서 '주매'(*, 노텐)는 분사형으로서, 곧 계속 공급하여 주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러한 솔로몬과 히람의 교역은 성전과 왕궁 건축이 모두 필할때까지 근 20년동안 지속되었을 것이다.

성 경: [왕상5:11]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솔로몬과 히람의 교역]

(주); 밀 이만 석 - 솔로몬 왕궁의 하루 밀 소비량이 90석(가는 밀가루 30석, 굵은 밀가루 60석)이었으므로, 일년치를 환산해 보면 삼만 이천 팔백 오십 석(코르)이다(4:22)그러므로 혹자는 두로(베니게) 왕궁의 소비 규모가 솔로몬 왕궁의 소비 규모보다 훨씬 적었다고 생각한다(Rawlinson). 그러나 본절의 밀 이만 석이 두로 왕궁의 전체 밀 소비량일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단지 계약상 목재와 노동력의 대가를 그만큼 지불했다는 것 뿐이다(Hammond). 그리고 그만치의 양을 매년 한 차례씩, 아마도 건축이 계속되는 동안(Keil) 계속 보냈다니 상당향 액수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또한 그만한 지불을 감당할 수 있었던 솔로몬 왕국의 부강한 일면이 강조되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대하 2:10의 식량(밀 이만 석, 보리 이만 석, 포도주 이만 말, 기름 이만 말)은 히람의 일꾼들에게 주는 대가로서, 본절의 식량과는 구별되는 것이다(B hr).

(주); 맑은 기름 - '맑은 기름'(pure oil,KJV)이란 감람 나무 열매에서 짜내는 식용유, 즉 올리브 유(油) 중의 고급 기름이다. 설 익은 감람 나무 열매를 따서, 그것으로 올리브 유를 짜낼 때 처음 나오는 기름을 따로 모으면 그것이 바로 맑은 고급 기름이다(Masterman). 이 기름은 일반 기름보다 더 흰 색깔을 띠고 있으며, 맛은 더 순수하다고 한다(B hr, Symbolik).

(주); 석(*, 코르) - 액체 또는 고체의 용량을 재는 가장 큰 단위로서(4:22), 학자에따라 180리터(D.J Wiseman, D.H. Weaton), 210리터(O.R. Sellers), 380리터(KB) 등으로 다양하게 추정하나, 대략 230리터 가량 되는 용량 단위이다.

성 경: [왕상5:12]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솔로몬과 히람의 교역]

(주);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고로 - 본 구절은 솔로몬과 히람이 화친하여 약조를 맺은 사실이 결국 3:12의 성취로서, 솔로몬이 하나님께로부터 얻은 지혜에 힘입은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 뿐만아니라 13절 이하의 내용, 즉 건축 사업의 조직과 관리에서 솔로몬이 지혜롭게 역량을 발휘한 사실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Keil, Henry).

(주); 친목 - 여기서 '친목'(*, 샬롬)은 4:24의 '평화'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 말이다.

(주); 약조를 맺었더라 - '약조'(*, 베리트)는 성경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언약'으로 번역되었다(창 6: 18;신 31:16;삼하 3:13 등). 그런데 '베리트'는 법적으로 구속력을 갖는 의무를 말한다. 그리고 이 '베리트'를 맺는 데는 보통 종교적 의식(儀式)이 따랐다(Vos). 실제로 본절의 '약조를 맺다'(*, 카라트베리트)는 '언약을 자르다'(cut a covenant)라는 원어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계약 당사자들이 희생 제물을 자른 후 그 사이를 지나가는 맹세 의식을 가진 데서 비롯된 듯하다(창 15:10;렘 34:18). 한편, 삼상 22:8의 원문에서는 '자르다'의 뜻인 '카라트'(*)만으로 '맹약을 맺다'라는 의미를 나타내기도 하였다(Payne).

성 경: [왕상5:13]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성전 건축을 위한 일꾼들]

(주); 온 이스라엘에서...그 역군의 수가 삼만이라 - 본절의 역군 삼만 명은 이스라엘인들로서 15절의 이방인들로 구성된 담군 칠만과 돌 뜨는 자 팔만 명과는 구별된다(Keil;9:21;대하 2:17). 즉 본절의 이스라엘 역군들은 아도니람의 지휘하에 만 명씩 석달에 한번 윤번제로 일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집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 이스라엘 역군 삼만 명은 히람의 기술자들을 도와 벌목(伐木)작업을 조력하는 비교적 가벼운 노동을 맡은 자들이었다(Thenius). 따라서 본절 솔로몬이 이스라엘 자손은 노예를 삼지 않았다는 9:22과 모순되지 않는다(Wycliffe).

성 경: [왕상5:14]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성전 건축을 위한 일꾼들]

(주); 한 달에 일만 인씩 번갈아 레바논으로 보내매 - 이들 이스라엘 백성들로 구성된 역군 삼만 명은 아마도 레바논에서 히람의 일꾼들을 도와 벌목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6절). 그런데 솔로몬이 이들을 '한 달에 일만 인씩 번갈아'일을 시킨 것은 그의 지혜로운 경영을 보여준다. 즉 이와 같은 윤번제 방식으로 해서 이들 역군들은 일년에 팔개월간은 자신의 생업과 가사를 돌볼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1) 노동의 효율성을 도모할 수 있었고, 2) 전 이스라엘의 일상 경제가 정상적으로 유지되었고, 3) 국민 각자는 자신의 가정을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주); 아도니람은 감독이 되었고 - 여기서 '감독'(*, 알 하마스)은 4:6의 '감역관'(監役官, superintendant)과 같은 말이다. 4:6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왕상5:15]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성전 건축을 위한 일꾼들]

본절의 '담군'과 '돌을 뜨는 자'들은 모두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던 가나안 사람들이다(9:20,21;대하 2:16, 17;8:7-9). 왜냐하면 이들에 대해서는 앞의 '역군'(*, 마스)삼만 명의 경우와 달리 이스라엘 사람임이 명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Keil,Hammond). 또한 9:21에서 보듯 이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노예 역군'(*, 마스오베드)이란 말로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다(B hr,Patterson).

(주); 담군(擔軍) - '담군'은 '짐 나르는 사람'(transporter)을 의미한다. 이들의 임무는 벌목한 나무나 뜬 돌을 일정 지점까지 운반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주); 돌을 뜨는 자 - '돌을 뜨는 자'란 '돌을 자르는 사람', '석수'(hewer, KJV;stone-cutter,Living Bible)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들의 숫자가 팔만이나 되고 또 산에서 일을 한 것을 보면, 이들의 일은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는 것이기 보다 단순 노동에 가까운 것, 즉 채석공(採石工)으로서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 번역의 '돌 깨는 사람'은 적절한 표현이다. 보다 기술적인 작업은 히람의 건축 기술자들이 담당하였을 것이다. 한편, 목재의 벌목 작업과는 달리 돌의 채석 작업은 아마도 이스라엘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 이유는 목재와는 달리 돌은 먼 거리 수송이 결코 용이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내에서도 채석은 충분히 가능했기 때문이다(Patterson). 고고학적 발굴 결과, 예루살렘 성 바로 근교에 '솔로몬의 채석장'이라고 불리워진 대규모의 채석장(採石場)이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Wood, UnitedMonarchy). 그렇지만 성전의 기초석으로 사용될 크고 우아한 돌은 레바논에서 가져왔을 수도 있다(Hammond).

성 경: [왕상5:16]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성전 건축을 위한 일꾼들]

(주); 동독(董督)하는 관리가 삼천 삼백 인 - '동독하는 관리'란 노동을 감독하는 관리, 즉 십장(foreman, Living Bible)을 의미한다. 한편 본절의 관리들의 숫자는 대하 2:18의 '삼천 육백 인'과는 차이가 난다. 혹자는 이것을 필사자(筆寫者)의 실수로 보기도 하지만(Thenius),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분류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된 기록 차이로 본다(B hr, Keil, Patterson, Hammond). 즉 이들은 미카엘리스(J.H. Michaelis)의 견해를 따라 다음과 갈이 설명한다. 열왕기가 제시하는 감독관의 총수(總數)는 본절의 '삼천 삼백'에다 9:23의 '오백 오십'을 더하면 도합 '삼천 팔백 오십'이다. 이 수는 역대기에서 제시된 바 대하 2:18의 '삼천 육백'과 대하 8:10의 '이백 오십'을 합한 슷자와 같다. 그러므로 감독관의 총 숫자는 열왕기와 역대기의 기록이 일치한다. 단지열왕기(9:23)는 직위의 차이 즉 하급 감독과 상급 감독으로, 역대기(대하 2:18;8:10)는 출신의 차이 즉 가나안인 감독과 이스라엘인 감독으로 분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솔로몬의 건축 사역의 관리로 발탁된 총 수효는 3,850명인데, 이 중 3,300명은 하급 관리(inferiores proefecti)이고, 550명은 고급 관리(superiores proefecti)이다. 또한 3,850명의 관리 중 3,600명은 가나안 족속 출신 관리이고, 250명은 이스라엘 출신 관리이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성 경: [왕상5:17]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성전 건축을 위한 일꾼들]

(주); 크고 귀한 돌...전의 기초석으로 놓게하매 - '크고 귀한 돌'이 '무거운 돌'이라는 견해(Thenius)에 대해, 카일(Keil)은 그것이 무거운 돌이라기 보다 '값진 돌'을 의미한다고 반박한다. 아무튼 본절의 '크고 귀한 돌'은 성전의 기초석을 놓기 위한 돌이다. 그런데 7:10의 기록에 따르면, 이 '기초석'의 크기는 10규빗 또는 8규빗 되는 정방형의 돌이다. 대략 일규빗은 팔꿈치로부터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로 약 46cm 정도이다(IDB). 이렇게 환산해보면, 성전 기초석은 각각 거의 4미터에서 5미터에 이르는 큰 돌임을 알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본절의 '크고 귀한 돌'은 무게도 무거웠으려니와 성전 기초석 용도에 걸맞게 값진 돌을 고른 것임에 틀림없다. 한편, 이처럼 성전의 기초석이 놓여지게 됨으로써, 솔로몬 성전은 역사적인 기공식(起工式)을 거행하게 되었다(6:1). 이로써 모세 시대 이후 여러 곳으로 옮겨지고,또 여러 장소에 분산되어 있던 하나님의 성소가 마침내 유일 중앙 성소(신 12:5)인 솔로몬(예루살렘) 성전으로 정착하게 될 것이었다.

(주); 떠다가 다듬어서 - 성전 기초석으로 놓이게 될 '크고 귀한 돌'은 하나 하나가 빈틈없이 꼭 맞아 들어가도록 8규빗 내지는 10규빗의 정방형 크기로 다듬어졌다. 그리고 6:7로 미루어 보건대, 이 돌을 잘라내고 다듬는 작업은 채석장 현지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성 경: [왕상5:18]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성전 건축을 위한 일꾼들]

(주); 그발 사람 - '그발'은 트리폴리와 베이루트 사이에 위치한, 베니게 최북단 연안의 도시이다. 헬라 시대에는 '비블로스'(Biblos)라고 명명된 이곳은 무역과 조선업의 중심지이다(겔 27:9). 따라서 유능한 해양 선원들과 건축 기술자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었다(Kapelrud). 수 13:5 주석 참조. 그런데 '그발'은 두로, 시돈과 마찬가지로 베니게에 속한 한 도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발 사람'(the Giblites)이 새삼 '히람의 건축자'와 나란히 언급된 것은 뛰어난 기술자인 그들이 솔로몬의 건축 공사에서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점했기 때문이다(Hammond).

(주); 전을 건축하기 위하여...갖추니라 - 솔로몬이 히람과 협정을 맺은 목적인 성전 건축 준비 작업이 마무리 되었음을 보여 준다(Keil). 한편, 70인역은 이 모든 준비를 갖추는 데 3년이 걸렸다고 덧붙인다(Hammond). 이러한 추론은 아마도 본격적인 성전 건축 공사가 솔로몬 즉위 제 4년째부터 시작되었다는 6:1의 연대기적 진술에 근거한 것같다. 왜냐하면 솔로몬과 히람의 협정은 분명 솔로몬 즉위 초에(5:1) 진행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 경: [왕상6:1]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건축 시작]

(주);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 팔십 년 - 보통 출애굽 연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는 B.C. 1,440년 경으로 보는 주장이고('전기 연대설' 또는 '15세기설'), 다른 하나는 B.C. 1,200년 경으로 보는 주장이다('후기 연대설' 또는 '13세기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출애굽기 서론 부분을 참조하라. 한편, 틸레(Thiele)의 계산을 따라 성전 건축을 시작한 솔로몬 4년 시브웰(유대 종교력 2월;오늘날 태양력 4, 5월)을 B.C. 966년 경으로 볼 때, 본문대로라면 출애굽 연대는 B.C. 1446년 경이 될 것이다. 그런데 본절의 '사백 팔십 년'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즉 많은 학자들은 나름대로의 근거하에서 480년이란 이 연대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곧 (1) 70인역(LXX)은 480년 대신 440으로 보았다. (2) 요세푸스(Josephus)는 480년 대신 592년으로 잡는다. (3) 혹자들은 본문의 480년을 일종의 상징적인 세대수(世代數)로 본다. 즉 벌도우(Bertheau), 뵈쳐(Bottcher) 같은 학자들은 여기 480년을 '40년+12세대=480년'으로 보고, 실제적인 12세대는 250년~280년 가량이므로, 약 200년 가량 단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잡한 계산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의 주장은 입증할만한 뚜렷한 근거없이이 추측의 선에서 머물고 만다. 반면 카일(Keil)과 메튜 헨리(Matthew Henry) 같은 주석가들 및 우드(L. Wood)와 아쳐(G. A. Archer) 같은 보수주의 구약 학자들은 본문 그대로 480년의 정확성을 뚜렷이 주장한다. 사실 본절이 왕의 통치 년, 월까지 상세히 알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의 신빙성은 높다. 그리고 이 480년은 부분적인 이견(異見)이 있긴 하지만, 대략 (1) 광야 생활 40년 (2) 가나안 정복기 및 평정기 32년 (3) 사사 시대 331년 (4) 사울의 통치기 33년 (5) 다윗의 통치기 40년 (6) 솔로몬의 즉위 후 4년 등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한편, 본서 저자가 성전 건축 시기를 특별히 출애굽을 기준으로 해서 기술한 까닭은, 성전 건축은 곧 약속의 땅에 대한 그 때까지의 임시적 상태에 종지부를 찍고 항구적 소유를 표징(表徵)하는 신기원(新紀元)으로서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Keil).

(주);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년 - 솔로몬은 즉위 초부터 히람과 협정을 체결하여(5:1-12), 대략 3년 동안 목재, 돌, 역군 등 건축에 필요한 제반 준비 작업을 하였을 것이다(5:13-18).

(주); 시브월 - 37절 주석 참조. 전(殿)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 역대하 3:1에 의하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장소는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이다(창 22:2). 그곳은 인구 조사의 죄를 범한 다윗에게 천사가 하나님을 위해 번제단을 쌓도록 지시한 장소(삼하 24:16-25), 곧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이다(대상 21:15-27). 또한 이곳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쳐 드리던 중 '여호와 이레'의 은혜가 나타난 역사적인 장소이다(창22:2, 14).

성 경: [왕상6:2]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건축 시작]

(주); 전(殿) - 여기서 '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된 성전 본당을 가리킨다.

(주); 장(長)이 육십 규빗이요 광(廣)이 이십 규빗이요 고(高)가 삼십 규빗이며 - 일반적으로 '규빗'(Cybit)은 어른의 팔꿈치에서 중지(中指)까지의 길이로 대략 45.6cm, 혹은 그 안팎이다(Siloam Inxdriptoin;창 6:16;출 37:1;신 3:11). 왕실에서는 좀더 긴 규빗이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1규빗이 대략 52~54cm 가량이다(Stinespring). 한편, 대하3:3에 의하면 솔로몬 성전에는 '옛적 재는 법', 곧 모세의 측량법이 적용되었다. 따라서 1규빗을 대략 45.6cm 가량으로 잡고 전의 규모를 환산해 보면, 대략 길이가 27.36m, 너비가 9.12m, 높이가 13.68m 가량이다. 그런데 이 규모는 당시의 대건축물에 비하며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이유인즉 아마 이곳은 일반 백성들이 모여 예배하는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하나님이 거처하는 상징적인 장소로서 오직 제사장들만이 드나드는 곳이었기 때문일 것이다(Dentan, Hammond).

성 경: [왕상6:3]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건축 시작]

(주); 낭실(廊室) - '낭실'(*, 울람)은 '앞서가다', '인도하다'란 뜻을 갖고 있는 '울'(*)에서 파생된 말이다. KJV는 이 말을 '현관'(porch)으로 번역하였다.낭실은 성전 입구가 있는 동쪽에 위치한 부속 건물로 일종의 대기실 역할을 하였다. 문에 대한 언급이 예외적으로 없는 것으로 미루어(31, 33절) 아마 이 낭실은 터널같은 구조가 아니었을까 추측되기도 한다(B hr). 한편, 낭실의 길이는 20규빗(9.12m)이며 너비는 10규빗(4.56m)이었다. 그리고 본절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대하 3:4의 기록에 의하면 낭실의 높이는 120규빗(약 55m)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건축상의 비육이나 건축물의 모양상 이런 낭실의 높이는 결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역대기의 기록에 필사상의 오류가 개재된 것으로 보고, 낭실의 높이는 성전 본관의 건물 및 낭실의 길이와 너비에 어울리게 20규빗 내지는 30규빗 정도로 추측한다(Keil, Thenius, Hammond, Furgusson, Bertheau, B hr).

성 경: [왕상6:4]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건축 시작]

(주); 붙박이 교창(交窓) - 공동 번역은 '붙박이 교창'을 '우묵 들어간 틀에 끼운 창문'으로 번역하였다(windows with recessed frames, RSV). 즉 안쪽보다 바깥 쪽이 더 좁게 생긴 구조이다(Aquila). 그런데 창문의 이러한 구조는 햇빛과 공기가 잘 들어오고 연기는 잘 빠지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Keil). 한편, 지성소에는 이러한 창문이 없었으므로 완전한 암흑이었다.

성 경: [왕상6:5]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건축 시작]

(주); 전의 벽...다락들을 건축하되 - 솔로몬은 성전(성소와 지성소) 바깥 벽에 잇대어서 많은 '골방들'로 나뉘어지는 3층 구조의 건물을 지었다.

(주); 골방들(*, 첼라오트) - 이 골방들의 숫자는 30개이다(겔 41:6). 그리고 이 골방의 용도는 겔 42:13, 14에 의하면 (1) 제사장들이 제물을 먹는 장소. (2) 제물을 보관하는 장소. (3) 제사장들이 옷을 갈아 입는 장소 등으로 밝혀지고 있다. (4)그리고 성전에는 봉사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거처 장소이기도 했다(시 134:1). 한편, 이처럼 솔로몬 성전의 구조와 용도를 밝히는 데 에스겔의 미래의 성전은 곧 솔로몬의 성전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Quellette).

성 경: [왕상6:6]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건축 시작]

(주); 하층...중층...삼층 다락 - 다락(*, 야추아)은 3층으로 되어 있었고 밑층에서 윗층으로 올라갈수록 1규빗씩 넓게 고안되었다. 그 까닭은 윗층 바닥이 아랫층의 양 벽에 좌우로 반 규빗씩 걸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각 층은 나사 모양의 사다리로 연결되어 오르내리도록 되었다(8절).

(주); 전의 벽 바깥으로 돌아가며 턱을 내어 골방 들보들로 전의 벽에 박히지 않게 하였으며 - '턱을 내어'(*, 미그라오트)라는 말은 '벽의 두께를 줄인다'는 뜻이다(Keil). 예를 들면, 각층 골방의 들보를 지탱하는 선반(턱)을 만즐기 위해서 윗층벽의 두께를 1규빗씩 축소하는 식이다. 한편, 왜 들보들로 전(殿)의 벽에 박히지 않게 하고 굳이 턱을 내게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단지 성전 벽면의 돌들이 크고 값진 것이므로 구멍을 내기 싫었을 것으로, 아니면 성소와 지성소의 신성함을 손상치 않으려는 것으로 추측해 볼 따름이다(B hr).

성 경: [왕상6:7]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건축 시작]

(주); 돌을 뜨는 곳에서 치석하고 - 이 구절은 채석장(採石場) 현지에서 이미 치수에 맞춰 돌을 다듬었으므로 정작 건축 장소 내에서는 연장 소리를 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을 말한다(Keil, Thenius, B hr). 따라서 다듬을 필요조차 없이 건축물의 치수에 꼭 들어맞는 돌들을 미리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라는 견해(Theodoret)는 무리이다. 물론 그러한 견해는 신 27:5, 6의 정신에 맞추려는 관심에서 주장된 것이다. 그리고 본절이 제시하고 있는 공법(工法)이 어느 정도 그 같은 율법 정신을 반영함도 사실이다(Hammond). 그러나 본절의 문맥상, 그리고 5:18절을 고려할 때 본절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건축현장에 운반되기 전에 채석장 현지에서 미리 치수에 맞도록 돌을 다듬었음을의미한다. 한편, 레바논 외에도 솔로몬은 예루살렘 근처에 소위 '솔로몬의 채석장' 도는 '왕궁의 동굴들'로 일컫는 채석장들을 갖고 있었다 한다(Hammond, Gates, Wood,Josephus).

(주); 건축하는 동안에 전 속에서는...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 이것은 일차적으로 '철기를 대지 않는 하나님의 제단'이라는 출 20:25;산 27:5의 옛 율법 정신을 형식에서라도 가능한한 접근하려는 노력이다(Gray). 그리고 치석(治石)을 위한 모든 준비 작업이 레바논 채석장이나 '왕궁의 동굴들'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건축 현장에서는 철 연장 소리 없이도 작업이 가능했음을 이해할만 하다. 한편, 이처럼 '피를 흘리게 하는' 철 연장 소리 없이 정숙히 성전 건축 작업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암시하는 영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과 인간 간의 화해 등을 상징하는 거룩과 평화의 장소로서 성전은 그 성격에 부합되도록 건축 과정에서도 평화로움과 정숙함과 거룩성이 유지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Patterson, M. Henry).

성 경: [왕상6:8]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건축 시작]

(주); 중층 골방의 문 - '중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핫티코나'(*)는 '중간'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구절을 '하층 골방 중간의 문'이라는 의미로 수정한다(B hr, Ewald, Keil 등).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문 성경들도 '맨 아래층'(the bottom floor, Living Bible'the lowest story, RSV)이란 의미로 본절을 해석하였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지상 3층 건물의 입구가 2층에서시작될 는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상과 같이 해석될 경우, 본절의 '골방'(*, 하첼라)은 에스겔 41:5, 9, 11에서처럼 한 층에 속한 골방 전체를 통틀어 표현하는 말이 된다(B hr, Keil).

(주); 문은 전 오른편에 있는데 - 이처럼 제사장들을 위한 골방에 이르는 문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은 이 보속 건물과 성소 및 지성소, 즉 성전 본 건물 사이에 아무런 연결 통로가 없었음을 입증해 준다. 따라서 골방들이 있는 부속 건물에서 성전(성소와 지성소) 내부로 통하는 문이 있었으리라는 테니우스(Thenius)의 가정은 근거가 희박하다. 그것은 성전의 거룩성에도 어긋나는 추측이 아닐 수 없다(Hammond, Keil). 한편, 여기서 '전(殿) 오른편'은 7:39에 의하면 동남쪽 편이다. 그런데 이 때의 '오른편'은 밖에서 성전 입구를 바라보았을 때가 아니라,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서 밖을 바라보았을 때의 오른편이다.

(주); 나사 모양 사닥다리 - '사닥다리'(*, 룰림)란 단어는 여기와 70인역(LXX), 벌겟역(Vulgate) 등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 창 28:12의 '사닥다리'는 본절과달리 '술람'(*)의 번역이다. 그리고 이 두 단어의 차이는 '룰림'이 '나선형 계단'(winding stairs)이라면, '술람'은 문자 그대로 '사닥다리'(ladder)를 뜻하는 단어이다. 한편, 과연 고대에 나선형 사닥다리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가능했는지 의심하는 학자들도 있으나(Stade, Moffatt), 고고학자의 발전이 이를 입증해 줌으로써 반박되었다(Montgomery). 즉 B.C. 18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나선형 사닥다리 유적이 아카나(Achana)의 한 궁전에서 발견되었다(Patterson).

성 경: [왕상6:9]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건축 시작]

(주); 전의 건축이 마치니라 - 본절은 일단 돌을 사용하는 건축은 끝났음을 의미하는 말로 받아 들여진다. 물론 내장(內粧)과 지붕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이고(10, 15절), 최종적인 의미에서의 완성은 38절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그러나 석조 건축, 즉성전의 외형(外形)공사는 일단 완료되었음을 설명하기 위해 본절이 보조문으로 삽입된 것이다(Montogomery).

(주); 그 전은 백향목 서까래와 널판으로 덮었고 - '덮었고' 에 해당하는 '이세폰'(*)은 '감추다'라는 뜻을 가진 '사판'(*)에서 유래된 단어이다(신33:19;렘 22:14). 그러므로 본절의 작업은 15절의 내장 공사와는 달리 지붕을 덮는 일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지붕의 모양에 대해서는 (1) 둥근 아아치 형(Thenius), (2) 人자 모양의 박공(博供, gable) 형(Fergusson), (3) 평평한 형(B hr, Keil) 등이 주장된다. 이 중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런나 당시 근동의 건축물의 대다수가 그렇듯, 일반적으로는 평평한 형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J.Hammond).

성 경: [왕상6:10]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건축 시작]

(주); 또 온 전으로 돌아가며 - 성전 본관 전면(全面), 즉 낭실이 있는 곳을 제외한 나머지 3면의 둘레를 가리킨다(3, 5절).

(주); 고가 다섯 규빗되는 다락방 - 이 '다락방'(*, 야추아)은 6절의 다락들과이에 딸린 골방들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속 건물은 3층 건물로서 각 층의 높이가 5규빗(약 2.3m)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3층 건물 전체의 높이는 15규빗(6.84m)이지만, 약간의 여유있는 간격을 염두에 둔다면 대략 18~20규빗(약 8~9m) 정도일 것이다(Hammond). 그런데 이 높이는 성전 본관의 높이(2절)와는 10규빗(4.5m) 이상의 차이가 나므로 이 간격에 창문을 설치했으리라 본다(Keil).

(주); 백향목 들보로 전에 연접하게 하였더라 - 이 들보들은 성전 벽 바깥 둘레에 이 용도를 위해 일부러 만든 턱(선반)에 걸쳐졌다(6절). 따라서 성전 본관 자체에는 어떤 손상을 주지 않고도 이 건물은 성전에 든든하게 연결될 수 있었다(Keil). 한편, 이 다락들은 분명 물건을 저장할 목적으로 지어졌을 것이다(Patterson).

성 경: [왕상6:11]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하나님의 약속]

(주);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 이 말씀은 분명 선지자를 통해 솔로몬에게 전하여졌을 것이다(Keil, B hr, Patterson). 그렇지 않다면 9:2의 기록과 모순이 생긴다. 왜냐하면 9:2에서 이루어지는 솔로몬과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은 바로 두번째임을 11:9에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첫번째 직접적인 교통은 일천번제 이후 기브온 산당에서 나타났다(3:5). 그리고 두번째 교통은 성전 뿐만 아니라 왕궁 및 모든 건축이 마친 시점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따라서 본절의 말씀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달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말씀을 전해준 인물은 어쩌면 나단 선지자일 수도 있다. 만일 나단이 그때까지 생존해 있었다면, 최초의 언약(삼하 7:12)을 전해줬던 그가 다시금 그 언약을 새롭게 했음직도 하기 때문이다(Hammond).

성 경: [왕상6:12]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하나님의 약속]

(주); 네가 이제 이 전을 건축하니 - 영역본 RSV는 이 구절을 "네가 짓고 있는 이 집에 관해서"(concerning this house which you are building)로 번역하였고 다은 영역본들도 대부분 비슷하다. 그런데 여기서 내용이 조금 잘린 듯한 느낌을 주는 까닭은 원문이 조금 망가져 있기 때문이다. 한편 공동 번역은 "네가 짓는 이 집 말인데..."로 옮김으로써 이런 사실을 비교적 잘 드러내주고 있다.

(주); 법도 - '법도'(*, 훅카)는 원래 '새기다', '조각하다'에서 유래된 말이다.즉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새겨주신 법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순히 일반적인 법률과는 구별되는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에서 나온 법, 곧 율법으로서 이해해야 한다(신4:5, 14;6:20). 따라서 이 법도를 지킨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계약을 지키는 것이 된다(Wharton).

(주); 지켜 그대로 행하면...이룰 것이요 - 성전의 화려함이나 웅장함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성전에 임재하시도록 붙들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언제나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전제로 해서만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될 것이다. 따라서 성전의 참된 가치는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순종한다는 조건 하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Dentan). 한편, 이 조건적 언약의 내용은 2:3;3:14의 반복이다.

(주); 네 아비 다윗에게 한 말 - 구체적으로는 '네 아비 다윗과 맺은 너에 관한 언약'이란 뜻으로(NASB, JB), 삼하 7:12-16의 언약을 가리킨다.

성 경: [왕상6:13]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하나님의 약속]

(주);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며 - 원래 성막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증하는 것이었다(출 25:8; 레 26:11). 이제 모세 성막을 대신할 솔로몬 성전이 세워짐에 따라 이 약속은 솔로몬 성전에 적용되었다. 그러므로 본절은 율법의 순종을 조건으로 하나님께서 새로이 지어진 솔로몬 성전을 자신의 임재의 보증으로 삼으시겠다는 언약인 것이다.

(주); 버리지 아니하리라 - '버리다'(*, 아자브)에는 '배반하다'하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본절은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결코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암시해 준다.

성 경: [왕상6:14]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내부 단장]

(주); 솔로몬이 전 건축하기를 마치고 - 이 말은 9절과 같은 보조 문장의 성격으로서 기록된 것이다. 그 이유는 11-13절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언급함으로써 잠시 중단된 성전 건축에 대한 묘사를 다시 재개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하 15절로부터는 성전 외부 공사(2-10절)에이어 다시 성전 내부 공사를 기술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성 경: [왕상6:15]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내부 단장]

(주); 천장까지의 벽 - '천장까지의 벽' 에 해당하는 '핫시푼 키로트'(*)는 원래 문자대로는 '천장의 벽'이다. 그런데 '천장의 벽'이란 표현은 좀 이상한 말이므로 혹자는 '키로트'(벽)가 '코로트'(*), 즉 '들보'(beam)의 오기(誤記)일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Keil). 어쨌든 이것은 천장에 잇닿아있는 데 까지의 벽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의 사면 안벽 전체를 백향목 널판으로 입혔다는 뜻이다. 한편 전의 천장은 이미 백향목으로 덮여 있었다(9절).

(주); 잣나무 널판으로 전 마루를 놓고 - 천장과 벽에 이어 이제 성전 마루에도 나무를 깔았다. 이로써 성전(성소와 지성소)의 내부 전체는 돌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18절). 한편, '잣나무'에 관해서는 5:8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왕상6:16]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내부 단장]

(주); 전 뒤편에서부터 이십 규빗 되는 곳에 - 전체 성전 길이의 1/3, 즉 60규빗(2절) 중 뒤편(서편)에서부터 20규빗 되는 곳에 백향목 널판으로 칸막이를 만들어 성전을 둘로 구분하였다. 그런데 성전 자체의 너비가 원래 20규빗 인데다(2절), 이 지성소는 정방형의 모양이 되었다.

(주); 백향목 널판으로 가로막아 -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는 칸막이를 백향목 널판으로 세웠다. 원래 모세 성막에서는 청.홍.자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그 위에 그룹을 수놓은 휘장만이 드리워져 있었다(출 26:31;36:35). 그런데 이제 솔로몬의 성전에는 휘장 뿐만 아니라 백향목 칸막이가 더해진 것이다.

(주); 전의 내소 곧 지성소 - '지성소'(*, 코데쉬 하코다쉼)는 '거룩함 중의 거룩함'(holy of holies), '가장 거룩한 성소'(most holy place)를 의미한다. 원래는 모세 성막의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을 가리켰다(출 26:34). 그런데 이제 솔로몬 성전의 맨 안쪽 방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고, 모세 성막 시절과 마찬가지로 언약궤가 이곳에 안치되었다(8:6;대하 5:7). 그리고 이 지성소에는 창문을 달지 않았으므로 매우 어두웠다(Good;8:12). 한편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 규모는 모세 성막의 지성소 규모의 2배였다.

성 경: [왕상6:17]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내부 단장]

(주); 외소 곧 성소의 장이 사십 규빗이며 - 지성소(16절)를 제외한 성전의 나머지 부분은 '성소'(the holy placd)에 해당되었다. 물론 이 성소는 지성소보다 더 크고 높다. 혹자는 성소의 높이도 지성소와 마찬가지로 20규빗으로 추정 하였다(Kurtz, Merz). 이들은 나머지 10규빗은 다락방이 차지한 공간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이것은 부주의에서 비롯된 오류이다. 왜냐하면 다락방은 성전 본관에 달린 것이 아니고 측면의 보속 건물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B hr). 따라서 성소의 높이는 성전 자체와 마찬가지로(2절) 30규빗이었을 것이다. 이 '성소'는 제사장 들이 일년 내내 정규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장소였다. 한편, 지성소와 성소 등 솔로몬 성전의 열개를 이해하려면 출 25-31장,36-40장 부분의 '성막'을 살펴 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솔로몬 성전은 기본적으로 모세 성막의 설계를 본뜬 것이기 때문이다(Dentan).

성 경: [왕상6:18]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내부 단장]

(주); 박 - '박'(*, 페카임)은 공동 번역에서는 '호리병'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근동 지방에서 오두막집이나 시렁을 짓는 데 흔히 하용되는 호리병 박일 것이다. 왕하 4:39의 '들외'나 욘 4:6, 7의 '박넝쿨'도 이와 같은 식물일 것이다. 그런데 호리병 박은 넝쿨과 큰잎들을 갖고 있어서 근동 지방의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준다.

(주); 핀 꽃 - '핀 꽃'(*, 페투레이 치침)은 '활짝 피어 만개(滿開)한 상태의 꽃'(open flowers)을 말한다(J. Hammond). 그런데 이 '핀 꽃'은 일반적으로 즐거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영광을 상징한다(사 35:1, 2).

(주); 아로새겼고 - 혹자는 이것을 얕게 돋을 새긴 양각(陽刻, basirelief)이라고 생각한다(keil).

(주); 돌이 보이지 아니하며 - 성전의 천장과 벽, 그리고 마루는 모두 백향목 또느 잣나무 등으로 덧입혀졌기 때문에 성전(성소와 지성소) 안에서는 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웅장한 석벽들은 온통 백향목으로 덧입혀졌기 때문에 마치 통나무 집과 같았다"(Stanley).

성 경: [왕상6:19]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내부 단장]

(주); 여호와의 언약궤 - '언약궤'(*, 아론 하베리트)는 자기 백성과 함께, 그리고 자기 백성 중에 거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신성한 언약의 징표이다(출13:21;14:19, 20). 따라서 이 언약궤 앞에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있는 것과도 같았다(민 10:35;수 6:8). 물론 언약궤 자체를 우상처럼 하나님과 동일시 할 수는 없다. 단지 올바른 여호와 신앙을 전제해서만 언약궤는 자기 백성과 친교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표징하는 지성물이 된다(Payne; 12, 13절 참조). 한편, 이 언약궤에는 본래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 한 오멜의 만나, 그리고 아론의 지팡이가 들어 있었으나 솔로몬 시대에는 단지 돌판만이 남아 있었다(8:9;출 16:33;민 17:10;히 9:4).

(주); 두기 위하여...내소를 예비하였는데 - '내소'(*, 데비르), 즉 지성소는 오로지 법궤를 안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왕상6:20]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내부 단장]

(주); 내소...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이십 규빗이라 - 내소, 즉 지성소는 완전한 정육면의 입방체(立方體)였다. 모세 성막의 지성소 및 장차 천상의 거룩한 성 역시 입방체의 모양을 띠고 있다(계 21:16). 분명 이것은 정방형으로서 '절대 완전' 또는 '절대 거룩'의 개념을 상징하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J. Hammond). 그런데 본래 성전의 높이는 10규빗의 차이가 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여러 견해들이 있으나, 가장 무난한 견해는 지성소 위의 공간에 10규빗 높이의 '윗 다락'(대하 3:9)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Keil, Stingers).

(주); 정금으로 입혔고 - 본절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 방식을 의미하는지는 논란이 있다. 왜냐하면 '금으로 입히다'(*, 예차페후 자하브)란 말은 금으로두텁게 싸는 것일 수도 있고, 도금(鍍金)을 의미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말을 얇은 금판을 못으로 목재에 부착시키는 방식일 것으로 말한다(Hammond). 특히 대하 3:9은 금못의 사용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 주장이 옳다고 본다. 아마 그러한 기술은 애굽에서부터 익힌 기술일 것이다(출 25:11, 13). 한편 만일 그랬다면 성전 벽에 입힌 금은 엄청난 양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침략자들이 그 같은 금을 약탈해갔다는 기록이 구체적으로 보이질 않는다는 점(왕상 14:26;왕하 14:14)을 들어 본절의 사실성을 부인하는 학자도 있다(B. Stade). 그러나 대하 3:6로 미루어 이방 침략자들이 약탈해간 보물, 즉 '보석'은 성전의 금을 포함한다. 실제 성전 내부에 사용된 금은 600달란트(약 20,400kg)나 되었다(대하 3:8).

(주); 백향목 단에도 입혔더라 - 개역 성경 및 KJV의 번역은 '백향바고 제단에 금을 입혔다'라는 의미를 주고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원문은 '제단에 백향목을 입혔다'라고되어 있다. 원문대로라면 제단의 몸통은 백향목이 아닌 다른 재료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무 제단에 또 나무를 덧입혔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2절과 함께 연결해 보면 제단은 백향목을 입힌 다음 다시 도금을 한 것이 된다(B hr). 즉 성전 내부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의 공정(工程)을 거친 것이다. RSV 및 기타 영역본들은 무난하게 '백향목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made an altar of cedar) 정도의 의미를 취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백향목 단'(제단)은 '향단'을 가리킨다(Keil, Patterson). 비록 향단은 지성소 바로 입구의 '성소'에 위치하고 있었지만(출 30:6;40:5, 26), 그 기능면에 있어서는 '지성소'와 보다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지성소에 속한 것처럼 묘사된 것이다. 22절의 '내소(지성소)에 속한 단'이란 표현 역시 이와 같다.

성 경: [왕상6:21]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내부 단장]

(주); 외소 안에 입히고 - 외소, 즉 '성소'의 내부도 내소, 즉 '지성소'와 마찬가지로 도금을 하였다.

(주); 내소 앞에 금사슬로 건너 지르고 - 이 구절에서는 주로 금사슬의 기능과 용도, 그리고 '건너지른' 상태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가 논란이 된다. 금사슬의 경우, 그것이 단지 장식용이었다는 견해(Meyer)와 실질적인 기능, 즉 지성소의 문을 달아 거는 빗장 또는 휘장을 움직이는 장치로서의 구실을 했으리라는 견해(B hr)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들을 따라 금사슬의 '건너지른' 상태가 달리 설명된다. 예를 들면 지성소 입구 좌우 양벽에 고정시켜 드리웠다든지(Keil, Hammond), 또는 금사슬 양끝에 고리가 있어 거기에 쇠를 가로질러 휘장을 달았다든지(Thenius)하는 등이다. 어쨌든 '내소 앞에 금사슬을 가로지른' 상태가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게 하는 뚜렷한 표식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지성소 입구에 가로질러 드리워진 금사슬은 정한 규율(레 16:2)외에는 그 누구도 지성소에 근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Patterson). 영역복 KJV는 이런 점을 잘 살려 '금사슬로 구획을 지었다'(made a partiton by thechains of gold)로 의역하였다.

성 경: [왕상6:22]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내부 단장]

(주); 온 전을 금으로 입히기를 마치고 - '온전'(*, 콜 하바이트)은 지성소와 성소만을 지칭할 뿐이라고 보기도 한다(B hr, Keil) 하지만 대하 3:4은 낭실도 도금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므로 본절의 '온 전'은 낭실까지도 포함하는 말이라고 봄이좋다(Hammond).

(주); 내소에 속한 단 - '내소에 속한 단'(*, 하미즈베아흐아쉐르 라드비르)은 지성소에 속한 단 20절 이란 의미로 곧 '향단'(출 30:1-10)을가리킨다. 그런데 이 제단은 지성소 내부가 아닌 입구 앞 성소에 놓여 있었다(출30:6). 이전 성막에서의 위치가 그러했기 때문이다(Keil, Hammond, B hr, Patterson).

(주); 금으로 입혔더라 - 성전 내부를 온통 금으로 입혔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대하 3:6). (1) 금은 빛과 순전함을 상징한다(욥 37:21:계 21:18). 따라서 하나님의 빛이시며 빛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이다(요일 1:5, 7). (2) 금은 불변성과 고귀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들 또한 금과 같이 변치않는 고귀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들 또한 금과 같이 변치않는 고귀한 믿음을 늘 지녀야 한다(히 11:6;벧전 1:7) (3) 정금으로 장식된 성전은 새 예루살렘, 곧 영원한 하늘 나라를 상징한다(계 21:16-18).

성 경: [왕상6:23]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내소의 그룹]

(주); 감람목 - 즉 올리브 나무. 높이 약5~10m 정도의 물푸레 나무 과(科)에 속하는 나무로 B.C. 3000년 경부터 소아시아에서 재배되어 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나무는 견고하고 내구성이 강해 희랍인들이 신들의 현상을 만드는데 종종 사용했다고 한다(Winer). 한편 솔로몬은 이 감람목에 금을 입혀 그룹 형상을 만들었다(28절).

(주); 두 그룹 - '그룹'(*, 케룹;복수형은 *, 케루빔)은 천사와도 같은 영적 존재의 한 부류이다. 그러나 그룹의 형상과 본성에 대한 문제는 확실히 결정되어 있지 못하다. A. D. 1세기의 유대 사가 요세푸스 조차도 그룹의 형상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라고 했고, 신약 성경도 그룹의 본성은 "낱낱이 말할 수 없는"(히9:5) 것이라고 규정지었다. 따라서 솔로몬 성전의 그룹 형상도 예술적 표현의 하나일뿐이다(출 25:18, 19 주석 참조). 그러나 그룹의 기능에 대해서는 몇 가지 요점이 성경에 제시되어 있다. 즉 (1) 감시자의 역할(창 3:24), (2) 하나님의 보좌를 운반하는 역할 (출 25:22;삼상 4:4;왕하 19:15;시 80:1;사 37:16), (3) 불(숯불, 번개, 화광석)과의 관련성(겔 10:2;28:14;사 6:6, 7) 등이다(Acomb). 한편, 성경에서 '둘'(two)이라는 숫자는 선포와 증거의 수이다. 따라서 '두 그룹'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선포하고 또한 증거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또한편, 모세 성막내의 두 그룹은 법궤 쪽을 행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자세를 취하였으나(출 25:20;37:9), 솔로몬 성전의 그룹은 모세 성막의 그룹과는 달리 입구 쪽을 향해 정면으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대하 3:13). 그리고 두 그룹의 바깥 쪽 날개는 각각 지성소의 중앙 지점에서 서로 맞닿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27절). 38절 그림 참조.

(주); 십규빗 - 혹자는 그룹 형상의 키가 10규빗인데 주의를 기울인다(Hammond). 실제로 성경에서 수(數)의 상징적 용법상 10은 기본수이면서 완전수이다(창 24:10;31:7;레26:26;수 22:14;느 5:18;욥 19:3;마 25:1;계 2:10). 가장 대표적으로 십계명에서의 '10'이란 신성한 수가 그것이다(출 34:1;신 4:13). 그 밖에도 다니엘, 에스겔, 계시록의 상징 등에도 '10'은 완전수로 자주 사용되었다(Pope;단 7:7;계 12:3 등).

성 경: [왕상6:24]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내소의 그룹]

(주); 이 날개 끝으로부터 저 날개 끝까지 십 규빗 - 한 그룹의 전체 날개 길이는 십 규빗(대략 4.56m)이었다. 그런데 두 그룹의 날개는 성막에서와 마찬가지로(출 37:7-9) 서로 연(演)하여 있었고, 따라서 지성소의 전체 폭(20규빗)을 온통 차지하였다(20절). 그리고 각 그룹의 바깥 날개는 지성소 방의 벽에 닿았고 안쪽 날개는 지성소 방의 중앙에서 서로 맞닿아 있었다(27절).

성 경: [왕상6:25-26]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내소의 그룹]

(주); 그 두 그룹은 한 척수, 한 모양이요 - 두 그룹은 서로 똑같은 모양과 크기를 가졌다. 한편, 솔로몬 성전에 세워진 이 그룹 형상들의 모양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였는지는 의론(議論)이 분분하다. 왜냐하면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이스라엘 주변 근동 문화의 연구를 통해 추측해 볼 따름이다. 예를 들면 바벨론이나 앗수르의 신전 입구에는 애굽의 스핑크스와 비슷한 수호상들이 서 있었는데 그것들은 사람의 얼굴과 독수리의 날개, 사자 또는 황소의 몸통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솔로몬 성전의 그룹도 이와 유사한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에스겔의 환상에서 그룹은 사자, 소, 독수리 그리고 사람 등 네 생물의 형상으로 묘사되며 송아지 발바닥을 가지고 있었다(겔 1:5-10;10:14).

성 경: [왕상6:27]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내소의 그룹]

(주); 내소 가운데 그룹을 두었으니 - '가운데'(*, 타웨크)는 '중앙'을 의미한다(창 3:3;민 35:5;겔 48:8). 즉 그룹은 지성소 중앙의 법궤를 날개로 덮어 보호하는 자세를 취한 것이다. 그리고 이전 모세 성막에서는 두 그룹이 서로 마주 보는 자세였으나, 솔로몬 성전의 그룹들은 외소, 즉 성소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서 있었다(대하3:13).

(주); 폐었는데 - '폐다'는 '펴이다', 즉 '피다', '폄을 당하다'의 준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그룹들의 날개가 펼쳐져 있는 상태가 되게끔 하였다는 말이다. 공동 번역은 이해하기 쉽게 '펼쳐져 있어'로 되어 있다.

성 경: [왕상6:28]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내소의 그룹]

(주); 저가 금으로 그룹에 입혔더라 - 이로써 지성소 내부의 모든 것이 금으로 싸여지고 장식되었다(출 25:10-13). 그리고 비단 지성소 뿐만 아니라 성전 내부 전체와 외소의 문짝까지도 금을 입혔다(30, 32, 35절). 이처럼 성전의 주요 부분들이 금으로 장식된 것은 금이 상징하는 빛과 순전함 및 불변성 때문일 것이다(욥 37:22;벧전 1:7;계21:18).

성 경: [왕상6:29]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의 문]

(주); 그룹 - 6:23;출 25:18, 19 주석 참조.

(주); 종려 - '종려'(*, 티모라)는 야자과에 속한 높이 3~8m 내외의 나무로, 고급 정원수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고대 근동에서는 이 종려 나무(palm tree)가 생산력의 상징으로서 신전에 조각되는 등 매우 신성시되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조각 예술품들에도 사용되었고, 고대 유대의 회당에도 양각(陽刻) 또는 모자이크로 장식되었다(Trever). 그리고 성경에서 이 종려는 환영, 즐거움을 나타내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요 12:13;계 7:9). 한편, 겔 41:18의 기록에 의하면 종려나무는 그룹 사이 사이에 엇갈려 새겨졌음을 알 수 있다.

(주); 핀 꽃 - 18절 주석 참조. 활짝 핀 꽃은 예나 지금이나 싱싱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성전은 생명력이 가득한 장소로 표현된 것이다(B hr).

성 경: [왕상6:30]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의 문]

(주); 내외 전 마루에는 금으로 입혔으며 - 내외, 즉 지성소와 성소에 깔린 마루 전체에 금이 입혀졌다. 이처럼 바닥에도 금이 깔려 있다는 사실이 성소와 지성소의 거룩하게 구별된 성격을 강조하여 준다. 즉 성소(the Holy Place)는 오직 성별된 제사장들만이 직무를 수행하던 곳이고, 더욱이 지성소(the Holy of Holies)는 1년에 한번 속죄의 날에 오직 대제사장만이 희생제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레 16:15,34;민 28:3; 히 9:6-7).

성 경: [왕상6:31]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의 문]

(주); 문 인방 - 인방(引放, lintel)이란 기둥과 기둥 사이에서 문이나 창을 아래 위로 가로지르는 나무를 말한다.

(주); 문설주 - 문설주(門楔柱, doorpost)란 문의 양쪽에 세워 문짝을 끼워 달도록 된 기둥을 말한다.

(주); 벽의 오본지 일이요 - '오분지 일'로 번역된 '하미쉬트'(*)를 정확히 이해하기란 어렵다. 이 어휘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견해들은 대략 다음 세 가지이다.(1) 문의 크기를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 즉 성전 폭의 1/5, 즉 4규빗 크기의 문을 의미한다는 견해(Keil, B hr), (2) 엔태블러처(entablature), 즉 건축에서 기둥이 떠받치는 힘의 평형 부분이 기둥의 1/5 지점에 있음을 의미한다는 견해(Bottcher,Thenius), (3) 오각형(pentagon)모양의 문을 의미한다는 견해(Gray, Meyer, Stier). 한편, 대다수의 영역본들은 이 말을 오각형 모양의 문으로 번역하였다(RSV, apentagon;NIV, Living Bible, five-sided). 그리고 공동 번역도 "오각형을 이루었다"로 해석하였다.

성 경: [왕상6:32]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의 문]

(주); 감람목으로 만든 그 두 문짝 - 지성소 문의 이 문짝들은 7:50로 미루어 금돌쩌귀에 의해 문설주에 연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돌쩌귀란 문짝을 문설주에 달고 여닫게 하기 위해 쇠붙이로 된, 암수 두 개가 한 벌로 된 물건을 말한다. 암짝은 문설주에, 수짝은 문짝에 박아 맞춘다.

(주); 그룹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 지성소의 문에는 벽에 조각된 것과 같은 형상들이 새겨졌다(29절). 한편 조각된 형상들에 금을 입힌 사실을 새삼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저자의 기록상의 특징이다. 즉 새로운 부분이 소개될 때마다 매번 금을 입힌 사실을 꼼꼼이 반복함으로써 강조의 효과를 자아내는 것이다.

성 경: [왕상6:33]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의 문]

(주); 벽의 사분지 일 - '사분지 일'(*, 리비이트)의 해석 문제에 대해서는 31절의 '오분지 일' 부분을 참조하라. 한편 RSV, NIV 등 영역본들은 대개 '사각형'(square, foursided)의 문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이는 공동 번역도 마찬가지이다.

성 경: [왕상6:34]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의 문]

(주); 그 두 문짝은 잣나무라 - 외소, 즉 성소의 문짝을 잣나무로 만든 까닭은 이 나무가 감람목(올리므)에 비해 가볍기 때문에 쉽게 가라앉지 않도록 사용되었을 것이다(Keil). 아마도 외소(성솨)의 문짝은 내소(지성소)에 비해 훨씬 더 사용 빈도가 높은 것을 고려하였을 것이다.

(주); 이 문짝도...저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으며 - 각 문짝이 두 짝으로 이루어져 다른 문짝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성소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의 일상적인 출입을 편리하레 하기 위해서이다(Keil,Montgomery). 그런데 각 문짝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 것이 정확히 어떤 형태 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카일(Keil)은 33절의 '사분지 일'을 문의 크기로 보기 때문에 만일 각 문짝이 수직 분할로 되었다면 한 사람이 간신히 드나들기에도 비좁은 크기가 되므로 아마도 수평 불할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평 분할의 경우, 그의 계산으로는 각 문짝의 아래쪽 문은 각각 2규빗(너비), 4규빗(높이)의크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즉 (1) 우선 33절의 문의 크기를 의미하는지 분명치 않고, (2) 만일 그렇더라도 그의 계산은 본절이 외소의 문짝임에도 불구하고 내소의 문의 크기를 적용한 실수이며, (3) 수평 분할의 문은 당시의 건축에서 거의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것 등이다. 따라서 각 문작은 수직 분할의 형태로 나뉘어졌다고 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J.Hammond).

성 경: [왕상6:35]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의 문]

(주); 새긴 데 맞게 하였고 - 즉 조각한 형상의 깊고 얕음에 따라 고르게 또한 세심하게 금을 입혔다는 말이다(J. Hammond). 그런데 고대의 도금 방식은 대개 얇은 금판을 못으로 부착하는 것이었다고 한다(Keil). 솔로몬의 성전에도 이처럼 못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대하 3:9).

성 경: [왕상6:36]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의 문]

(주);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 - 돌과 백향목 판자는 안뜰의 담을 구성하는 재료들이다. 여기서 '켜'(*, 투르)란 포개어 놓은 물건의 낱낱의 층(layer, row)을 말한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대개 '줄'(line)로 번역되었다(출28:17;39:10;왕상 7:2;대하 4:3). 아마 사각형으로 다듬은 돌을 세줄, 그 위에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줄 하는 식으로 담을 둘렀을 것이다. 이러한 건축 방식은 포로 귀환 후의 제 2성전에서도 재현된다(스 6:4). 한편 대하 7:3에서 추론해 보면 이 안뜰 담의 높이는 백성들이 담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볼 수 있을 만큼 낮았음을 알 수 있다.

(주); 안뜰 - '안뜰'(the inner court)이라는 표현 자체가 '바깥뜰'을 전제하는데, 각각 대하 4:9의 '제사장의 뜰'에 해당될 것이다. 그리고 렘 36:10은 본절의 '안뜰'을 '윗뜰'로 호칭하였는데, 아마도 이것은 안뜰이 바깥뜰에 비해 상대적으로 격(格)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전의 모세의 성막처럼 성전 앞의 뜰에서 제사장들과 백성들과는 달리 제사장들은 안뜰, 즉 제사장의 뜰에서 직무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생긴 구별일 것이다. 그러나 안뜰과 바깥뜰 모두 크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다른 예들에 비추어 솔로몬 성전이 모세 성막 크기의 2배가 된다면, '안뜰'(제사장의 뜰)의 크기는 동서간의 길이가 200규빗(91.2m), 남북 간의 폭이 100규빗(45.6m) 될 것이다. 그리고 '바깥 뜰'(큰뜰)은 안뜰 크기의 2배, 즉 길이 400규빗(182.4m), 폭 200규빗(91.2m)이 될 것이다(Keil, Hammond).

성 경: [왕상6:37]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건축 필역(畢役)]

(주); 시브웰 - '시브'(*, 지우)는 히브리 종교력의 둘째 달(2월)이다. 그리고 '시브'는 '밝음', '찬란함' 등의 의미를 가진 가나안어에서 생긴 말로 추정된다. 그래서 시브웰은 오늘날의 태양력으로는 4, 5월 경이므로 꽃들의 찬란함에서 단 명칭일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Hammond, Keil).

(주); 기초를 쌓았고 - 목재와 석재의 준비 기간(5:13-18)은 건축 기간에 합산(合算)되지 않았다(Keil, B hr). 즉 본서 저자는 솔로몬 성전의 건축 기간을 성전의 기초석을 정초(定礎)한 시점부터 계산하고 있다.

성 경: [왕상6:38]

주제1: [솔로몬의 성전 건축]

주제2: [성전 건축 필역(畢役)]

(주); 제 십 일 년 불월 곧 팔 월에 - 여기서 '불'(*)은 히브리 종교력의 여덟째 달(8월)로, 오늘날 태양력으로는 10-11월에 해당한다. '불'(*)의 어원에 대하여 게세니우스(Gesenius)는 '비'라고 보았고, 카일(Keil)은 '열매' 라고 보았다. 아무튼 '불월'에 해당하는 히브리 종교력 8월(오늘날 태양력 10-11월)은 팔레스틴의 기후상 우기(雨期)일 뿐더러 과수의 열매를 추수하는 달이므로 이처럼 명명된 것 같다. 한편, '불월'은 후대(B.C. 5세기 경)에는 '마르헤쉬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렇게 바뀐 이유는 바벨론 포로 기간 동안 바벨론 언어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Saunders).

(주); 그 설계와 식양대로 - 솔로몬 성전의 전체 건축 내용은 일찍이 선왕(先王) 다윗이 솔로몬에게 일러준 것이다. 나아가 성전의 설계와 식양은 성신(聖神)이 다윗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대상 28:11 이하, 특히 12절).

(주); 전을 건축한 동안이 칠 년이었더라 - 성전 건축은 솔로몬 즉위 4년 불월(B.C. 966년 2월)에 기초석을 놓음으로 시작하여(6:1), 솔로몬 즉위 11년 시브웰(B.C. 959년 8월)에 필역되었다. 따라서 건축 기간은 보다 정확히 7년 6개월 걸린 셈이다. 그런데 성전 건축에 걸린 이 기간은 고대의 다른 대건축물에 비하면 그리 길다고는 할 수 없다. 에베소의 다이아나(Diana) 신전 건축은 무려 200여 년이 걸렸다고 한다(Pliny). 또한 애굽의 피라밋 건축에는 대개 20년이 소요된다(Hammond). 이와 비교하면 그토록 화려하고 정교한 건물을 완공하는 데 7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1) 성전이 비교적 작은 규모였다는 점, (2) 많은 인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어 최선을 다했다는 점, (3) 그리고 다윗 시대부터 세심한 준비가 축척되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솔로몬 성전 건축은 긴 세월 동안 정성을 다한 대건축 사역이었던 것이다.

성 경: [왕상7:2]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솔로몬의 왕궁 건축]

(주); 저가 레바논 나무로 궁을 지었으니 - '레바논 나무'란 곧 '백향목'(柏香木, Cedar)을 말한다. 그런데 특별히 여기서 '나무'로 번역된 '야아르'(*)는 '모으다', '소집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건축 재료를 백향목으로 사용했다는 뜻을 넘어 백향목의 밀집 상태, 즉 수풀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지칭한다. 따라서 본절은 '레바논 숲의 궁'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영역본들도 본절의 '나무'를 '숲'이란 의미로 번역하였다(KJV.RSV.Living Biblr, theforest of Lebanon). 아마도 이 궁은 매우 서늘하고 쾌적한 장소였을 것이다(삿3:20). 왜냐 하면 백향목의 숲이 근동의 더위를 잊게 할만큼 시원한 그늘을 형성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하에서 본절의 '레바논 나무 궁'은 레바논의 백향목들로 건축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지(Keil, B hr, Patterson), 후자들의 주장처럼(Dathe,Michaelis) 레바논에 여름 별장용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은 아니다. 한편 이 궁의 용도에 대해서 여러 논란이 있으나 일부는 병기고로 사용되었으라는 점만은 분명하다(10:17;사 22:8). 그러나 병기고 외에도 좀더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주); 장(長)이...고(高)가 삼십 규빗이라 - 왕실에서 사용하는 규빗(52-54cm)이었다면<6:2>), 레바논 나무 궁의 크기는 길이 52-54m, 폭 26-27m, 높이 15-16m 가량 이다. 즉 높이만 성전과 같고 길이와 폭은 성전보다 두배 가량 더 크고 넓다(6:2).

(주); 백향목 기둥이 네 줄이요 - 궁전의 하층은 기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혹자는 이 기둥들의 숫자가 400개라고 주장하나(Thenius), 궁전의 규모를 감안할 때 너무 과밀(過密)하다. 한편 궁전이 단층이 아니라고 추정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4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왕상7:3]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솔로몬의 왕궁 건축]

(주); 기둥 위에 있는 사십 오 개 들보...한 줄에 열 다섯이요 - 본절의 난점은 2절과의 모순 때문에 생긴다. 왜냐하면 2절대로라면 백향목 들보도 네 줄이어야 할 것이나 본절은 한 줄에 열 다섯씩 사십 오개, 즉 세 줄로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본절의 '들보'를 '골방'으로 해석한다(B ht, Hammond,Keil). 이 같은 견해는 궁전도 성전처럼 다락과 골방을 갖고 있으리라고 추측하는 데서 비롯된다(6:5). 한편 '덮었는데'에 해당하는 '사푼'(*)은 지붕을 덮었음을 의미한다(6:9). 따라서 앞의 수정된 견해를 취할 경우 본절은 '사십 오 개 골방의 지붕을 백향목으로 덮었다'는 의미가 된다.

성 경: [왕상7:4]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솔로몬의 왕궁 건축]

(주); 또 창틀이 세 줄로 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대하였고 - 본절이 설명하는 상태가 무엇이냐에 따라 3절의 골방(들보)들이 어떤 배열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단층 건물에 창이 세 줄씩 있을 가능성은 회박하다. 만약 그럴 경우 3절의 골방들은 단층 내부에서 세 줄로 나란히 붙어 있는 납득키 어려운 구조로 배열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과 창이 서로 대하여" 있는 상태를 자연스럽게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그러나 15개씩 세 층으로 배열되었다고 본다면, 본절의 상태가 좀더 자연스럽게 풀린다. 즉 창틀은 각 층에 한 줄씩 있고 각 층의 창은 방 맞은편에 서로 마주보는 창을 갖고 있는 것이다(Keil). 한편 이 골방들의 용도는 병기고및 왕실 시위대의 거처 등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B hr).

성 경: [왕상7:5]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솔로몬의 왕궁 건축]

(주); 문과 문설주를...네모지게 - '네모지게'(*, 라바)는 문자대로 문의 모양을사각형(square)으로 만들었음을 말한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사각형의 문에서 문설주와 인방(6:31)은 당연히 사각형을 이를텐데 불필요하게도 '문설주'만 또 언급하고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주석가들은 70인역(LXX)을 따라 '문설주'(*,메주자)를 '창틀'(*, 메헤자)로 고쳐 읽는다(Thenius, Hammond, B hr). 그렇게 되면 본절은 이 건물의 문 뿐 아니라 창문의 모양도 설명하는 셈이 된다.

성 경: [왕상7:6]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솔로몬의 왕궁 건축]

(주); 기둥을 세워 낭실을 지었으니 장이 오십 규빗이요 광이 삼십 규빗 - 이 낭실은 벽대신에 기둥들로만 둘러져 있는 건물(a porch of pillars, KJV;the Hall of pillars,RSV)이다. 그런데 낭실이 어떤 건물인가 하는 여부에 논란이 좀 있다. 혹자는 이 낭실의 길이가 레바논 나무 궁의 폭과 일치하는 점을 들어(2절) 이 낭실이 바로 레바논 나무 궁의 현관(porch)일 것이라고 주장한다(Rawlinson). 그러나 (1)이 낭실이 성전 과거의 비등한 만치 커다란 크기이고(6:3), (2)성전의 낭실은 그 폭이 성전의 폭과 일치하는데 비해 본절의 낭실 폭은 궁전의 폭과 일치하지 못하며(2절), (3)이 낭실 자체가 또 하나의 낭실을 갖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이 낭실은 독립된 건물일 것으로 본다(Fergusson). 그러나 본절의 '낭실'(*, 울람)이란 표현은 레바논 나무 궁과 이 건물 그리고 다음 절에 아오는 재판하는 낭실이 어떤 형태로든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해 준다. 이러나 사실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도 입증되는데, 즉 므깃도 궁의 유적을 통해 확인한 결과, 솔로몬 궁전은 분명 당시 수리아 북방과 아나톨리아 남방에서 주로 사용된 '비트-힐라리'(Bit-Hilani, 양 옆의 여러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는 낭실을 통하여 넓은 실내로 들어가는 형태의 건축양식) 구조로 건축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Ussishkimn, King Solomon's Palaces).

(주); 섬돌(*,아브) - '섬돌'은 오르내리는 돌 층계이다. 그런데 개역 성경 외에는'아브'(*)를 '섬돌'로 번역하지 않고 있다. 영역본들은 대개 건축물 상단의 수평 돌출 부분, 즉 '처마'나 '차양'의 뜻으로 번역하고 있다(RSV.Living Bible,canopy;Modem Language, cornice). 공동 번역도 역시 '차양'으로 번역하고 있다.

성 경: [왕상7:7]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솔로몬의 왕건 건축]

(주); 보좌의 낭실 곧 재판하는 낭실 - 이 건물은 상아에 정금을 입혀 만든 화려한 보좌와 여섯 층계, 열두사자상들이 있는 곳이다(10:18-20). 한편 본절의 '재판'(*, 솨콰트)은 3:9의 '재판'과 동일하다(대하 1:10,11). 따라서 이 건물은 왕의 주무(主務)를 수행하는 장소이다. 그런데 이처럼 입구나 현관의 의미를 지닌 낭실에서 왕이 백성들을 재판한 것은 이전 시대에 성문 앞에서 무리를 재판하던(삼하 15:2;룻 4:1,2) 관습을 반영한 것이라 한다(Stanley).

(주); 온 마루를 백향목으로 덮었고 - 이에 비해 성전의 마루는 잣나무로 덮었고 그 위에 금을 입혔다(6:16, 30).

성 경: [왕상7:8]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솔로몬의 왕궁 건축]

(주); 솔로몬의 거처할 궁 - 보좌의 낭실(재판하는 낭실) 뒤편에는 왕이 거처하는 궁이 있었다. 이 궁은 레바논 나무 궁이나 재판하는 낭실과 달리 솔로몬이 사적인 생활을 하는 장소였다.

(주); 그 공작이 일반이며 - 즉 재판하는 낭실과 같은 식으로 지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솔로몬의 거처가 재판하는 낭실과 같은 크기임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Hammond). 하지만 여기서 '공작'(*, 마아세)이 '솜씨', '기술'(wormanship, RSV)을 의미하므로, 솔로몬의 거처는 재판하는 낭실과 같은 기술과 양식, 그리고 재료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백향목과 상아 장식 등이 사용되어 매우 화려하게 꾸몄을 것이다(10:18-20). 향편 본절로 미루어 6절의 낭실과 7절의 낭실은 서로 구별되는 별개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7절의 낭실과 같은 식으로 지어진 솔로몬의 거처가 6절의 낭실처럼 기둥만으로 벽을 이룬 건물일 리 없기 때문이다.

(주); 그 장기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같더라 - 솔로몬 일찍이 결혼한 바로의 공주<3:1>를 위해 자신의 거처와 같은 식으로 지은 궁을 마련해 주었다(대하 8:11). 여기서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같더라'가 규모의 동일함 보다는 기술 및 재료의 동일함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편 데니우스(Thenius)가 주장하듯 이 궁은 솔로몬의 모든 부인과 후궁들(11:3)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바로의 공주만을 위한 사저이다(Hammond). 그렇다면 바로의 공주는 애굽의 위세와 더불어 솔로몬의 부인 중 으뜸의 지위를 갖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녀의 거처는 고대 동양의 왕궁 구조가 대부븐 그렇듯이 왕의 거처와는 분리되어 그 뒤에 위치했을 것이다(Keil). 전체적으로 보아 이처럼 왕과 왕비의 거처와 같은 사적 용도의 건물은 공적 용도의 건물(레바논 나무 궁, 기둥 낭실, 보좌의 낭실 등)에 비해 궁전의 안쪽에 위치했다.

성 경: [왕상7:9]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솔로몬의 왕궁 건축]

(주); 안팎을 - 이 말이 궁전의 안쪽 지역과 바깥 지역을 일컫는 말인지, 단지 건물 벽의 내면과 외면을 일컫는 말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고 보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다. 즉 '2-8절에 소개된 모든 건물의 내면과 외면'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주); 귀하고 다듬은 돌 - '귀하고'(*, 야카르)는 가치있고(valuable), 값비싸며(expensive), 희귀한(rare)의 뜻이 모두 담겨 있다. 그리고 '다듬은'(*, 가시트)은 '자르다'라는 뜻이다. 즉 돌의 울퉁불퉁한 부분을 잘라내어 고르고 반듯하게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주); 척수(尺數)대로 톱으로 켠 것 - 미리 설계된 규격대로 치수를 재어 잘라냄을 말한다. 한편 '톱'(*, 가라르)은 틉질하는 소리에서 유래된 의성어라 한다(Hammond). 그런데 솔로몬 건축 공사에 사용된 톱의 모양은 알려진 바 없다. 참고로 당시 에굽의 톱은 한쪽 날만 있고, 후대에 니므롯(북 바벨론, 미 5:6)에서 발굴된 톱은 양날을 가졌다고 한다(Layard). 그렇지만 성경 기록상 톱은 다윗 때부터 이미 사용되었음을 찾아 볼 수 있다(삼하 12:31;대상 20:3).

(주); 기초석에서 처마까지 - '기초석'(*, 마사드)은 건물의 다른 부분들이 이에 의지하여 세워지고 연결되는 크고 귀한 돌이다(5:17). 그리고 '처마'(*, 테파흐)는 그위에 다른 건축물을 세우지 않는 지붕의 돌출부이다(Gesenius, Keil). 따라서 "기초석에서 일종의 대유법(代喩法)적 표현이다.

(주);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 까지 - 여기서 '외면'(*, 후츠)은 성전의 '바깥뜰'(혹은 '큰 뜰')을 가리키는 표현일 것이다(대하 4:9). 이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본절이 궁전의 건물 및 공간 전체를 지시하려고 의도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의 '큰 뜰'이 왕궁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뜰 전체를 지칭한다면(Ewald), 본절의 '외면'은 왕궁과 성전의 경계를 이루는 성전의 뜰을 의미할 것이다. 공동 번역도 이런 입장을 취해 "야훼(여호와)의 전의 뜰"로 해석하였다.(RSV,the courtof house of theLord).

성 경: [왕상7:10]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솔로몬의 왕궁 건축]

(주); 귀하고 큰 돌 - 5:17 주석 참조. 십 규빗 되는 돌과 여덟 규빗 되는 돌 - 왕실에서 사용되는 규빗(6:2)이 적용된다면, 왕궁의 기초석은 각각 길이 5.2-5.4m 폭 3.68-4.32m의 크기이다.

성 경: [왕상7:11]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솔로몬의 왕궁 건축]

(주); 그 위에는 척수대로 다듬은 귀한 돌도 있고 - 기초석이 다만 "귀하고 큰 돌"로만 묘사된데 비해, 그 위의 돌들은 "척수대로 다듬은 귀한 돌"로 묘사되고 있다. 성전 기초석의 경우를 염두에 둘 때(5:17), 왕궁의 기초석도 다듬질 안하지는 않았겠으나, 기초석은 눈에 보이지 않거나 땅 속에 박히는 것이므로 상대적으로 거칠게 다듬어졌음을 암시받을 수 있다. 반면 기초석 위에 세워지거나 꾸며지는 돌들은 보다 매끄러울 뿐 아니라 작았으리라는 것은 당연하다(Hammond).

성 경: [왕상7:12]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솔로몬의 왕궁 건축]

(주); 큰 뜰 주위에는 - 솔로몬의 앙궁에도 성전과 마찬가지로 2개 이상의 뜰이 있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1)본절의 '큰 뜰'이라는 표현 자체가 보다 작은 어떤 뜰을 전제하며 (2)8절의 '다른 뜰'은 이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큰 뜰'은 분명 건물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뜰을 가리킬 것이다.

(주); 다듬은 돌 세켜...마치...놓은 것 같더라 - 이는 성전의 안뜰과 동일한 방식으로 담을 둘렀음을 의미한다(6:36). 본절에서 "...것 같더라"로 번역된 '웨라하차르'(*)는 '또 (여호와의 전의)뜰도 그렇게'라는 뜻이다. 이때 '또'에 해당하는 '와우'(*)는 잠언서등에서 종종 나타나듯 비교를 나타내는 문법적 기능을 한다고 한다(Gesenius, Ewald 등). 그렇다면 개역 성경의 "마치...같더라"의 번역은 원문의 뜻을 잘 전달해 주고 있는 셈이다.

(주); 낭실에 놓은 것 같더라 - 본절의 '낭실'이 성전의 낭실인지 궁전의 낭설인지 분명치 않다(Montgomery). 또 궁전이라 해도 그 중 어느 낭실인지 결정하기 어렵다. 추측에 의해 성전 낭실이 아니고 궁전의 기둥 낭실(6절)로 주장하기도 하며(Keil), 또는 재판하는 낭실로 주장하기도 하나(Rawlinson) 확증적인 근거는 없다.

성 경: [왕상7:13]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기술자 히람의 초정]

(주); 보내어 - '보내다'(*, 솰라호)는 '왕의 대리자로 보내다'라는 뜻이다(5:1;8:44;9:27 등). 즉 왕명을 받들어 수행하는 자 곧 사절, 사신 등을 보낼 때 사용하는 말이다. 신약(LXX)에서 사용된 '사도'(*, 아포스톨로스-'보냄 받은 자'란 뜻)란 말도 바로 이 '솰라흐'에서 파생, 번역된 말이다. 한편 이같은 동사의 용법으로 미루어 '히람'(Hiram)은 솔로몬이 특별히 두로 왕에게 요청해서 데려온 중요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이 대하 2:7-14 보다 상세히 나와있다.

(주); 히람 - '후람'으로도 표기되는(대하 2:13;4:11) 뛰어난 놋 재조 전문 기술자로, 두로 왕 히람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다. 히람은 모세 시대의 성막 제조 기술자인 브사렐(출 31:2-5)과 비견될 수 있는 인물로, 놋 뿐만 아니라 금은동철 및 돌과 나무, 천을 다루는 일에도 탁월한 기술을 지니고 있었던 희대의 장인(匠人)이었다(대하2:14).

성 경: [왕상7:18]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성전 기둥 제작]

(주); 두 줄 석류를 한 그물 위에 둘러 - 이 '두 줄 석류'와 사슬 모양의 꽃줄(17절)은 서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두 줄 석류는 꽃줄 장식의 위 아래로 한 줄씩 두른게 아닐까 추측된다(B hr,Keil등).

성 경: [왕상7:24]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놋바다 제작]

(주); 박 - 6:18 주석 참조. 그런데 대하 4:3에는 '박'이 아니라 '소'로 기록되어 있다. 만일 역대기의 기록을 따르면 조절의 기록과 중복될 뿐 아니라 본절의 설명도 어색하다. 왜냐하면 소의 형상을 1규빗 당 10개씩 촘촘히 박은 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대기의 기록은 '박'(*, 페카임)을 '소'(*, 베카림)로 잘못 기록한 것이다(Keil).

(주); 바다를 부어 만들 때에...만들었으며 - 즉 새로이 덧붙여(장식한 것이 아니고, 놋대야(바다)를 주문할 때 미리 그 같은 형상이 나오도록 제작하였다.

성 경: [왕상7:27]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물두멍과 받침 제작]

(주); 놋으로 받침 열을 만들었으니 - 이 열개의 놋받침은 물두멍을 받치기 위한 것이다. '두멍'이란 물을 길어 붓고 쓰는 통을 말한다. 그런데 대하 4:6에 의하면, 이 열 개의 물두멍은 희생 제물을 씻는데 사용되었으며 성전의 좌우 양편으로 다섯개씩 갈라져 위치하였다.

(주); 매 받침의...세 규빗이라 - 이 놋받침의 크기는 길이와 폭이 각각 2-2.16m 똑같았고, 높이는 1.5-1.5m였다. 따라서 이 놋받침은 사각형의 상자 모양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왕상7:28]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물두멍과 받침 제작]

(주); 그 받침의 제도는 이러하니 - '제도'(制度)로 번역된 '마아세'(*)는 '기량', '솜씨', '공작'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는 어떤 공작물의 구조나 얼개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주); 변죽 가운데 판이 있고 - '변죽'이란 그릇 따위의 가장자리를 말한다. 그러므로 받침대의 사면 가장자리에 받침대의 사면 벽을 구성하는 판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한편 공동 번역은 변죽과 판의 관계를 틀과 그 틀에 끼워서 있는 판자의 관계로 이해하였다.

성 경: [왕상7:32]

주제1: [궁전 건축과 성전 기구 제작]

주제2: [물두멍과 받침 제작]

(주); 바퀴 축은 받침에 연하였는데 - 원문에는 '-안에'의 뜻이 있는 전치사 '베(*)가 보인다. 또한 '연하다'로 번역된 '나가'(*)는 '계속되다', '잇닿아 있다' 등의 뜻이 있다. 따라서 본절의 바퀴축은 받침대 속에 박혀 있었던 듯하다. 공동 번역도 이같이 해석하여 "바퀴축들은 그 받침대 속에 들어 있고"로 번역하였다.

(주); 바퀴의 고는 각각 한 규빗 반 - 바퀴의 높이는 받침대 높이(세 규빗, 27절)의 반이었다.

성 경: [왕상8:1]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이에 - 본절 초두에 나오는 '이에'(*, 아즈)란 말은 솔로몬이 장로와 족장들을 소집하는 행동이 7:51의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것을 마친지라"에 이어지는 행동임을 시사해 준다. 그런데 문제는 2절에서 보듯, 장로와 족장들이 솔로몬 왕에 의해 소집된 시점이 유대 종교력 '칠월'이라는데서 발생한다. 왜냐하면 6:38은 성전 건축을 마친 시점이 솔로몬 즉위 11년 '불 월' 곧 '팔 월'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팔월'에 끝난 일 다음에 '이에'로 이어지는 사건이 '칠월'일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 즉 성전 봉헌식이 이루어진 시기 문제에 대하여 크게 다음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즉 (1) 성전이 완공된 해(솔로몬 즉위 11년)의 7월이라는 견해(Ewald, Hammond). 이는 8월에 가서야 비로소 성전이 완공되었으나(6:38). 거족적인 대절기인 초막절에 맞추기 위해 한달 앞당겨 봉헌식을 거행했다는 견해이다. (2) 성전 완공 다음 해의 7월이라는 견해(B hr, Patterson). 성전은 솔로몬 즉위 11년, 즉 B.C.959년 8월에 완공되었으나 성전 기구를 만드는 데 근 1년 정도 걸렸을 것이므로(7:13-50), 봉헌식은 건축 후 11개월만에 비로소 거행될 수 있었다는 견해이다. (3) 솔로몬의 궁전 완공(7:1-12) 이후라는 견해(Keil, Thenius). 이들은 9:1-10에 근거하여 성전 봉헌식은 성전 완공 13년 후인 궁전 완공 이후에 거행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전 완공 후 봉헌식까지 13년이나 기다렸다는 이 세번째의 견해는 무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첫번째 견해의 입장에서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 '아즈'(*)는 상당히 폭넓은 말이므로 성전 완성 한달 전도 지시 가능하다. (2) 6:38의 '팔월'은 본장의 봉헌식까지 다 끝난 시점일 수 있다. (3)모든 마루리가 팔월에 끝났더라도 성전의 봉헌식은 전통적인 절기, 즉 칠월의 장막절에 맞추는 것이 의의가 깊으므로 앞당겨 했을 가능성이 있다. (4) 오랜 숙원 사업이자 거국적 최대 관심사인 성전 봉헌식을 해를 달리할 정도로 미루었을 까닭이 없다(Pulpit Commentary).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성전 기구 제작(7:13-50) 기간을 고려한다면, 그래서 완전한 끝마무리 이후에 성전의 봉헌식을 치루었을 것이라고 본다면, 두번째의 견해도 일리가 있다(Expositor's Bible Commentary).

(주);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 여기서 '시온'(Zion)은 예루살렘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구릉 이름인데, 이곳에 세워진 산성을 다윗이 여부스 족속으로부터 빼앗아 '다윗 성'(the City of David)이라 명명하였다(삼하5:7). 그리고 다윗은 이곳 다윗 성에다 장막을 설치하고 여호와의 언약궤(법궤)를 임시로 안치하여 놓았었다(삼하 6:1-19).

(주); 이스라엘 장로와...족장들을 예루살렘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 광야를 유랑하던 시절의 모세 성막에서 이제 영구적 건물인 솔로몬 성전으로 법궤의 자리를 옮기는 봉헌식은 이스라엘 민족의 뜻깊은 역사적 순간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지도자들과 백성의 대표자들이 모두 소집된 자리에서 성전 봉헌식은 공시적으로 성대히 거행되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장로와 족장들'은 중앙 집권적 정부가 임명하는 관료와는 구별되는 존재들이다. 즉 그들은 인격이나 지혜, 무용 등의 탁월함으로 인해 혈연 및 지파 공동체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른바 자연 발생적인 공동체내의 유지나 지도자들이다(Davies). 그런고로 이들은 성전 건축에 관해 의논할 당시에도 다윗에 의해 소집된 바 있으며(대상 28:1-3), 건축 재료를 위해 자신들의 보물들을 기꺼이 바치기도 하였다(대상 29:6-9). 이렇듯 성전은 범민족적 사역에 의해 건축되었으므로,그 봉헌식에 있어서 국민의 대표자인 이들을 소집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다윗 역시 궤를 옮겨오던 당시 "이스라엘에서 뺀 무리 삼만"을 소집하였었다(삼하 6:1).

성 경: [왕상8:2]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모이고 - '이스라엘'은 열 두 지파로 구성된 민족 전체 구성원들을 호칭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소집된 사람들, 즉 열 두 지파의 대표자들(장로와 족장들)이 모인 것을 전 백성이 모인 것과 다름없는 것으로 본 것이다(Keil). 가장(家長)이 곧 가족 전체를 대표하던 고대의 사고 방식을 기억하면 쉽게 이해할 수있다.

(주); 에다님월 곧 칠월 - '에다님'(*, 에타님)은 '시내에 물이 흐른다'는 뜻이다(Gesenius). 유대 종교력으로 7월(오늘날 태양력의 9-10월에 걸쳐 해당)에는 특별히 건기가 끝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Robinson). 곧 이른 비가 내리는 때로서, 이때 시내가 흘러내리기 때문에 명명된 월명(月明)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7월'이란 설명 어구가 첨가된 것은 이 달의 이름이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티스리'로 바뀌어졌기 때문이다(Keil).

(주); 절기에 - 원래 '절기'에 해당하는 '하그'(*)에 관사를 붙여 '헤하그'(*)가 되면 그 자체로 '초막절'(장막절)을 의미하는 이름이 된다(대하 7:8;느 8:14;사30:29;겔 45:23, 25). '초막절'은 유대 종교력 칠월 15일부터 시작하여 칠일간 거행되는 절기로, 연중 절기 중 가장 크고 즐거울 뿐만 아니라 제일 마지막으로 거행되는 수확의 절기였다. 그리고 본래 이 절기는 광야의 유랑 생활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출 23:16;34:22;레 23:33-36;민 29:12-32;신 16:13-16). 그런데 이 초막절은 그 순서에 있어 계약 율법이 낭독되었는데, 이로 미루어 '초막절'은 계약 갱신의 목적을 지닌 것이기도 하였다(Rylaarsdam). 따라서 바로 그러한 절기에 율법의 판이 담긴 법궤를 성전에 안치하는 것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이었다. 아울러 초막적(장막절, 수장절) 행사는 광야 생활 동안 지켜 보호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면서, 동시에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사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는 절기였다. 이런 의미에서 초막절을 맞이하여 광야 생활 이후 유리 방황하던 언약궤를 영구한 안식의 장소인 솔로몬 성전에 안치시키는 일을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성 경: [왕상8:3]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 민수기의 규례에 따르면, 벰궤는 레위인들이 메어야 했다. 그러나 손을 대어 만질 수는 없었다(민 4:15). 그런데도 다윗은 블레셋인들에게 빼앗겼던 법궤를 회수할 때 그것을 수레에 싣게 하였고, 게다가 웃사는 손을 대가까지 함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었다(삼하 6:3-7). 이제 솔로몬은 규정대로 궤를 운반하였다. 한편, 병행 구절인 대하 5:4에서는 '레위 사람이 궤를 메니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궤를 멘 자들은 '레위족 제사장들'이었기 때문이다(대하 5:7). 원래 언약궤의 운반은 레위인 가운데서도 고핫 자손에게 맡겨졌으며(민 3:30, 31), 언약궤(법궤)에 덮개를 씌우거나 벗기는 일 등 언약궤를 실제로 돌보고 감독하는 일은 언제나 고핫 자손 중에서도 제사장 계통인 아론의 자손들에게 속한 일이었다(민 4:5-15). 그런데 여기서 솔로몬이 언약궤의 운반을 고핫 자손에게 맡기지 않고 상위 직위인 제사장들에게 직접 맡긴 것은, 성전 봉헌식을 더욱 경건하고 비중있게 거행하려는 의도에서였던 것 같다(수 3:6, 15, 17;대상 15:11,12). 그리고 이처럼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직접 멘 실례는 매우 의의 깊은 역사적 사건, 예를 들면 요단 강 도하시(수 3:6, 17), 여리고 성 포위시(수 6:6)등에 이미 시행된 적이 있었다.

성 경: [왕상8:4]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여호와의 궤 - '법궤'(레 16:2), '언약궤'(민 10:33), '증거궤'(출 26:33) 등으로 불리우는 이 궤는 다윗 성, 곧 시온 산 위 '다윗이 친 장막 가운데' 근 40여년간 머물러 있었다(삼하 6:17).

(주); 회막 - 보통 '장막' 또는 '성막'으로 불리던 '회막'은 실로와 놉을 거쳐 당시에는 기브온에 있었다(대하 1:3). 따라서 '언약궤'는 다윗 성으로부터, '회막'은 기브온 산당에서부터 각각 솔로몬 성전으로 운반되었다.

(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 - 이 모세 성막의 옛 기구들은 이제 그것들(놋제단, 향단, 떡상, 촛대 등)을 대신할 솔로몬 성전의 새 기구들이 제작되었으므로(7:23-50), 더이상 사용되지 않고 옮겨져 성전 창고에 보관되었을 것이다(7:51).

(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 제사장들은 특별히 언약궤를 메고, 레위인들은 성막과 여타 성막의 모든 기구들을 광야 여정에서처럼 그 옮기는 방식과 절차를 따라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으로 옮겼을 것이다(Keil; 민 4:1-33).

성 경: [왕상8:5]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으니 - 아마도 법궤는 지성소에 안치되기 전 제단이 있는 안뜰에 우선 놓여졌던 것 같다. 그리고 왕과 백성들은 이때 법궤 앞에서 감사와 기쁨의 제사를 성대히 베풀었던 것 같다(Keil). 따라서 이때의 희생 제사는 단순히 정결만을 위한 예식이라기보다 잔치와도 같은 기쁨과 감사의 행사인 것이다(3:15). 즉 성전의 낙성식으로 갖는 축하의 순간인 것이다(Gates). 유대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법궤가 지성소에 안치되기까지 백성들이 노래하며 춤추었다고 한다. 한편, 그런데 이때의 희생 제사는 감사와 축하의 의도 외에도 법궤와 관련된 이전의 불상사들(삼상 4:17, 18;6:19;삼하 6:7)과 같은 화를 피하기 위한 의도도 분명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Hammond).

성 경: [왕상8:6]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 성전의 핵심인 그 처소가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다. 그런데 원래 하나님의 임재를 실제로 나타내 주던 것은 법궤였다. 따라서 법궤 자체가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 되기도 하였다(민 10:35, 36). 그러므로 법궤가 성전의 자기 '처소'(*, 마콤) 즉 제 위치에 안치됨으로써, 성전을 성전답게 하는 가장 요긴한 부분의 일이 마무리된 것이다. 아무튼 모세 성막의 다른 모든 기물들은 솔로몬 성전어가 규모에 맞추어 모두 새롭게 제작되었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하는 이 언약궤(법궤)만은 시내 산에서 만들어진(출 25:10-22;37:1-5) 바로 그것을 그대로 옮겨와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에 안치시켰던 것이다.

(주); 내전 - 본절에서 '내전'으로 번역된 '데비르'(*)는 6:16, 17에서 '내소'로번역된 바로 그 단어이다.

(주);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 언약궤(법궤)는 금으로 만들어진 그룹들의 펼쳐진 날개 아래 안치되었다. 6:23-28 주석 참조.

성 경: [왕상8:7]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 법궤와 채(pole, 출 25:13), 곧 법궤에 속한 부분은 모두 그룹의 날개 아래 그늘에 있어 설혹 지성소 문을 열었을 때라도 항상 어두운 상태로 있게 하였다(12절).

성 경: [왕상8:8]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채가 긴 고로 채 끝이...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 본절이 설명하는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본절 수록의 목적이 전래의 성막 규정을 솔론몬 성전 역시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인 듯하다(Keil). 그런데 출 25:15의 규정에 의하면, 채를 법궤의 고리에 꿴 채로 두어야 했다. 어쨌든 본절의 상태를 여러 가지로 추측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으나, 다음과 같은 주장이 비교적 타당해 보인다.(1) 동서로 길게 위치한 성전에 대해 법궤는 남북으로 길게 위치하였을 것이다(B hr,Patterson). 왜냐하면 성전 전면을 바라보고 서 있는 그룹의 날개 그늘에 법궤와 채가온전히 덮일 수 있는 적절한 위치가 남북이기 때문이다. (2) 본절의 기록상 관찰자의위치는 성소의 우편, 즉 지성소 휘장의 왼쪽을 젖혀 볼 수 있는 자리였을 것이다(Hammond, Montgomery). (3) 그리고 이 관찰자는 아마도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을 돕는 제사장 중 하나였을 것이다(Hammond).

(주); 그 채는...그곳에 있으며 - 법궤 운반용 '채'(pole)는 법궤의 고리에 꿰어진 상태로 붙어 있었는데(출 25:13, 15),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광야 생활 동안 나그네로 지냈음을 상기시켜 준다(Patterson).

(주); 오늘까지 - 본서(열왕기서)는 바벨론 포로 이후에 기록되었다(서론, 기록 연대). 그러므로 본서가 기록될 당시에 솔로몬 성전은 파괴되었고(B.C.586년), 따라서 법궤에 딸린 채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오늘까지'란 말은 솔로몬 성전의 파괴 이전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저자가 본서를 기록할 때 이전의 기록물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Keil, Hammond).

성 경: [왕상8:9]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 히브리서 9:4에 의하면, 언약궤 안에는 본래 '십계명 두 돌판'외에도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 완공 후(B.C.959년) 법궤를 지성소에 안치시킬 때 십계명 두 돌판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면 나머지 것들은 모세 시대 이후 여호수아 시대와 사사 시대, 그리고 사울과 다윗 시대를 거치는 근 500여년 동안의 어간에 없어진 듯하다. 아마도 엘리 제사장 시절 법궤가 블레셋에게 일시 탈취당했을 때(삼상 4:3-11) 유실된 듯하다(Hammond). 한편, 그러나 혹자들은 본래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 두 돌판만들어있었을 뿐(출 25:16;40:20;신 10:5), 만나 항아리와 싹난 지팡이는 '여호와 앞에'(출 26:33) 곧 '증거궤 앞에'(민 17:10) 두었었다고 본다(Keil, B hr). 그리고 히브리서 9:4의 말은 후대 유대 전승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견해 역시 완전히 배격할 수는 없다.

(주); 호렙 - 시내 산의 여러 봉우리 중 하나로 추정되는 '호렙 산'(Mt. Hored)은 율법이 주어지고 하나님과의 언약이 맺어진 곳으로(신 4:10-13), 통칭 '시내 산'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이름이다. 출 3:1 주석 참조.

성 경: [왕상8:10]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

(주);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 혹자는 여기서 '구름'을 번제단 위에서 타오른 희생 제물의 연기 구름일 것이라고 보았으나(Bertheau), 전적으로 잘못이다. 여기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시적으로 드러내주는 영광스러운 '그 구름'(the cloud)이다. 한편, '구름'으로 번역된 '아난'(*)에는 '흐림', '안개'란 뜻도 있다. 그러나 한글 성경에는 언제나 구름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성경에서 사용된 구름은 항상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연관되어 등장한다(시 18:11;사 4:5;단 7:13;마 17:5;계1:7). 예를 들면 시내 산과 그리고 출애굽의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타내실 때는 항상 구름이 그분을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출 19:16;24:15-18). 원래 구름은 신의 직접적인 광채를 대면할 때 파생되는 인간의 죽음을 방지하기 위한 신의 옷이라는 사상이 이러한 기록의 배후에 있다(Moor). 그러므로 구름은 곧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표식이된다. 이러한 구름이 이전에 성막 봉헌시에도 나타났고(출 40:34, 35), 지금 성전 봉헌시에도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이전의 모세 성막을 승인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새로이 솔로몬 성전을 자신의 임재 처소로 승인하셨다는 것이다(Patterson, Hommond, Keil)>

성 경: [왕상8:11]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

(주);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 이 장면 역시 구름 때문에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던 모세와 비교된다(출 40:35). 즉 그때의 일이 지금에도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전의 모세 성막과 마찬가지로 솔로몬 성전 역시 자신의 영광의 거처로 인정하셨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주);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과 동일한 것인가 아니면 구별되는 다른 것인가로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 혹자는 다른 특별한 언급이 없고, 12절은 단지 '캄캄한 곳에 계신 하나님'을 말하므로 본절은 그저 캄캄한 구름을 지칭한다고 본다(B hr). 그러나 더 많은 이들은 여기서 '영광'은 '구름'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보고, 어떤 '밝은 빛', '맹렬한 불'같은 것으로 설명한다(Hammond, Keil). 여기서 우리는 그 구체적 형태는 결정할 수 없더라도 '영광'은 '구름'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밝힐 수 있다. 우선 '구름'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밝힐 수 있다. 우선 '구름'과 '영광'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본래 하나님의 영광은 너무 강렬해서 인간이 직접 대면할 수 없는 것이다(출 33:20).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구름은,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외피(外皮) 구실을 하는 것이다(10절).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구름이 곧 영광 자체일 수 없음도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본절이 전해 주는바 '짙은 구름'은 그만치 강렬한 하나님의 영광을 반증(反證)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영광' 자체와는 구별되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한편, 이처럼 구약 시대에는 '빽빽한 구름'으로 당신의 임재의 가견적 표식을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신약 시대에는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써 당신의 임재를 알리사 교회의 시작을 기념하셨다(행 2:2).

성 경: [왕상8:12]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감사 찬양]

(주);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 언제 어디서 하나님이 그같은 말씀을 하셨는지 다른 본문에서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을 "여호와께서...계시려고 의도하셨사오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Thenius). 본절에서 '말씀하다'에 해당하는 '아마르'(*)는 '의도하다'라는 뜻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르'는 그 동사의 주어가 하나님이신 경우에는 대체로 계시, 즉 당신을 알게 하시는 행동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의 의미는 '하나님은 캄캄한 데 계신 분이심을 알게해 주셨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구름과 흑암 속 캄캄한 곳에 거하신다가 구절은 많이 찾아 볼 수 있다(출 19:9;20:21;레 16:2;신4:11;5:22;시 18:11;97:2). 따라서 솔로몬은 이러한 상황을 기억하고 이처럼 말한 것같다. 그런데 그 구절들에서 '흑암' 또는 '캄캄함'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의 접근 불가능함, 또는 사고 불가능함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의 '캄캄한 데 계신 하나님'이란 표현은 결국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의 지존(至尊)하심을 시인하는 표현이다.

성 경: [왕상8:13]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론몬의 감사 찬양]

(주);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전을 건축하였사오니 - 본절은 외견상 12절의 내용과 상충(相衝)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12절은 제한받을 수 없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지존하심을 고백한 구절인 반면, 본절은 바로 그 하나님을 성전이라는 한 장소에 제한시킬 수 있는 양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절은 솔로몬이 성전에 구름이 가득함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가 허락되었음을 확신하고 하는 말이다(Keil). 결국 성막에서든 성전에서든 그곳을 자신의 처소로 삼으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지, 인간의 자의적 결정이 하나님의 처소를 고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본절의 표현 속에는 그렇듯 지존하신 하나님을 감히 모시고자 하는 솔로몬의 겸비함이 들어 있다고 볼수 있다(27절). 그러므로 12절과 13절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계시는 '지존하신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음과 아울러, 그렇듯 고귀하신 하나님을 감히 성전에 모시고자 함에서 연유한 솔로몬의 겸비한 심령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주); 주께서 영원히 거하실 처소 -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근거로 다음 두 가지가 제시된다. (1) 광야를 유랑하던 시절의 성막이 갖는 이동성과 임시성에 대해 정착과 안정이 있는 성전의 영구성. (2) 다윗과 그의 후손에게 영구한 왕위를 세워 주시겠다는 삼하 7:14-16의 약속.

성 경: [왕상8:14]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감사 찬양]

(주); 얼굴을 돌이켜 - 그때까지 솔로몬은 성전에 구름이 나타나는 장면을 응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Hammond). 이것은 13절의 솔로몬의 말이, 성전에 가득한 구름이 내리 임함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여 발언한 내용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해 준다.

(주);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 축복은 제사장만의 고유 권한이라는 데 근거해서(민6:22-27), 혹자는 본절의 솔로몬의 축복을 "권한은 없지만 그저 축하로서 했을 뿐"이라고 해석했고(Hammond), 혹자는 "제사장의 축도를 대신 수해한 것"이라고 각기 해석했다(Stanley). 그러나 (1) '축복하다'에 해당되는 '바라크'(*)의 용법은 실로 다양한데, 때로는 백성이 왕을 축복하는 경우에도 사용되었고(66절), (2) 그리고 축도가 아닌 광범위한 의미의 '축복'은 제사장에게만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창14:19;신 7:12-16). 결국 문맥으로 보아 본절마의 축복은 하나님의 축복을 확신한 공동체의 우두머리가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경축사와도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 경: [왕상8:15]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감사 찬양]

(주); 여호와께서 그 입으로 나의 부친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 -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약속으로서, '왕위'(王位)와 '성전 건축'등에 대한 '다윗 계약'을 가리킨다(삼하 7:2-17;대상 22:6-12;28:1-10).

(주); 그 손으로 - 성경에서 '손'(*, 야드)이란 말의 사용 용법이 여러 가지이므로, 그 의미 또한 다양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과 같은 형태로 사용되게 되면 보통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또는 능력을 의미하게 된다. 좀 더 살펴보면 '손'은 (1)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책임 및 권한을 나타내며, (2)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실질적 능력 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로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말씀하신 바를 이루실 능력도 가지고 계신 분이심을 본절의 솔로몬은 고백하는 것이다.

(주); 이루셨도다 -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말씀하신 바대로 (1) 아들 솔로몬을 세워 다윗의 위(位)에 앉도록 하사 나라를 견고케 하셨다(삼하 7:12). (2) 또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바대로 솔로몬으로 하여금 여호와의 집, 곧 성전을 건축케 하셨다(삼하 7:13).

성 경: [왕상8:16]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감사 찬양]

(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 - 이 날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총과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오랜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날로서, 선민 이스라엘이 신정 국가로서 첫 발을 내디딘 날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역사의 주요 국면, 주요 사건 등에서 이 출애굽 사건은 끊임없이 상기되고 회고된다.

(주); 내 이름을 둘 만한 집 - '이름을 두는 집'이라 해서 "하나님이 기신(寄身)하실 곳이 아니고, 그의 이름을 전파하실 곳"으로 이해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그것은 이름을 내용과 관련없는 피상(皮相)으로 보는 사고 방식이다. 그러나 구약 사상에서 '이름'(*, 쉠)은 단순한 호칭이나 명찰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이름은 그 이름의 소유자가 갖고 있는 총체적이고도 본질적인 성품을 나타낸다(창 27:36;32:28;삼상 25:25등). 즉 이름은 바로 그 이름을 가진 존재 그 자체이다. "이름이 있는 곳에 그 이름의 주인공이 있다"(Schmidt). 그러므로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둔다는 것은 곧 하나님자신의 임재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존재를 그곳에 계시하시고, 또한 당신의 권위와 영광을 그곳에 두시겠다는 의미이다(신 12:5). 그런고로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에 관심을 갖고 거룩히 지키시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신다(겔 20:9;39:7). 결국 이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30절)이 땅의 백성들 사이에 있을 수 있도록 하는 통로요 매개체(媒介體)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둔 집, 성전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 사이에 임재하신 처소로서 하나님께 '허락받은' 곳이 된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름을 두는' 주체는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전이든 성물이든 그 자체가 하나님을 속박해 둘 수 없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후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신앙에서 돌아섰을 때 성전은 무의미한 건물로 전락되었고 결국 파괴되지 말았다(사 1:10-17).

(주);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 본절과 병행 구절인 대하 6:5, 6을 참고컨대, 이 말은 '다른 지파의 어느 성읍도 뽑히지 않고 오직 유다 지파의 예루살렘이 뽑혔다'는 의미를 보충해야 뜻이 분명해진다.

(주); 다만 다윗을 택하여 - 본절은 수많은 나라들 중 유독 이스라엘을 택하사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고(출 19:6), 또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 유독 다윗을 택하사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상기시키고 있다(시 78:70). 한편 본절을 통해 솔로몬은(1) 자신을 비롯한 전백성들이 자고함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였으며 (2) 하나님의 크신 위엄과 주권 앞에 전적으로 순종할 것을 다짐하였고 (3)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고자 하였다.

성 경: [왕상8:17]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감사 찬양]

(주); 마음이 있었더니 - '마음'으로 번역되는 '레브'(*) 또는 '레바브'(*)는 '심장'(heart)이란 뜻을 갖고 있다(렘 11:20;17:10). 따라서 본절의 '마음'은 단지 의도, 사고, 기억 같은 개별적인 심리 기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장을 비롯하여 감정, 의지 등을 통틀어 열렬히 희망함을 의미한다. 한편, 삼하 7:2;대상 17:1 등을 보면, 다윗은 성전을 건축 하고픈 마음을 강렬히 시사했었다.

성 경: [왕상8:18]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감사 찬양]

(주);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 다윗이 품은 성전 건축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일단 그 자체는 기쁘게 생각하심을 표현한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절을 "네게 있는 것은 좋도다"로 이해하면 문맥상의 뉘앙스가 보다 잘 전달된다. 공동번역은 "...생각하는 것은 기특한 일이다"로 번역하고 있다.

성 경: [왕상8:19]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감사 찬양]

(주); 그러나 너는 그 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이유를 우리는 다음의 두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다. (1) 삼하 7:5-7: 여기서 하나님은 백향목집(성전)을 별로 필요없는 것으로 말씀하신다. (2) 대상 22:8: 여기서 하나님은 다윗이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라는 이유로 성전 건축을 허락지 않으신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무관한 이유들을 제시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즉 (1)에서 하나님이 성전을 원치 않으신 이유는 이스라엘의 천막을 치고 옮겨 다녀야 하는 불안정한 처지 때문이었고, (2)는 다윗이 수많은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의 안정을 위해노력해야 했던 인물임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다윗은 이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성전을 지으리만치 안정된 시대에 속한 인물이 못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정의 이유'로 인해 평화 중에 건축되어야 할 성전은 차기 세대로 미루어져야만 했다. 그리고 바로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주); 네 아들 그가...전을 건축하리라 - 여호와를 향한 다윗의 열심은 성전 건축을 위한 소원으로 불타올랐으며, 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다윗은 건축 자재를 마련하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대상 22:2-1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다윗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성전 양식까지 소상히 계시해 주셨다. 그렇지만 정작 성전 건축 사업만큼은 솔로몬에게 위임하셨다(대상 28:12-20). 여기서 하나님의 주권 개념이 여실히 드러났으며, 그러한 하나님의 뜻 앞에 흔쾌히 순복한 다윗의 신앙 자세 또한 후세의 귀감이 될 만한 것이었다.

성 경: [왕상8:20]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감사 찬양]

(주); 이제...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도다 - 본절에서 '이루다'로 번역된 동사 '쿰'(*)은 원래 '일어나다' 또는 '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말씀하신 대로 세우셨다'로 번역할 수 있다(Hammond). 그런데 '쿰'이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된 문맥에 사용될 때면 '확립하다' 또는 '확정짓다'란 의미를 띠게 된다. 즉 체결된 언약을 확실하게 하는 순간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솔로몬이, 이전에 부친 다윗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언약(삼하 7:13)이 눈 앞에서 실현됨을 보고 하는 말이다.

(주);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 '이름'은 그것에 의해 호칭되는 사물이나 사람의 '존재'그 자체를 상징한다.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은 곧 그분의 존재 자체를 의미한다(16절). 이런 점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지상 임재의 상징적이고 가견적인 처소인 것이다.

성 경: [왕상8:21]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감사 찬양]

(주);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 이처럼 '출애굽'사건과 '성전 건축' 사건을 긴밀하게 연관시키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성전의 핵심, 즉 성전의 가치를 결정짓는 요체는 그 곳이 하나님의 임재가 약속된 장소라는 데 있다. (2) 그런데 이 임재를 보증 또는 표징하는 것은 바로 '언약궤'이다. (3) 그리고 이 언약궤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출애굽 당시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언약의 사실에 기인한다. (4) 고로 성전 건축의 의의 및 가치는 출애굽을 기점으로 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6:1).

(주); 세우신 - 여기서 '세우다'는 '쿰'이 아니라 '카라트'(*)이다. 그런데 '카라트'는 언약과 관련된 문맥에서는 '쿰'과는 달리 '언약을 체결하다' 또는 '언약을 개시(開始)하다'라는 의미를 띠게 된다(20절;5:12).

(주); 여호와의 언약 넣은 궤 - 즉 '법궤' 또는 '증거궤'로도 불리는 '언약궤'를 가리키는데, 이 언약궤 속에는 여호와 언약의 핵심이자 요체(要諦)인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이 들어 있었다(출 25:16;40:20;신 10:5). 그리고 이 언야궤는 성전의 가장 깊숙한 내소, 곧 '지성소'에 안치되어 있었다(6절).

성 경: [왕상8:22]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기도]

(주); 회중을 마주서서 - 여기서 솔로몬의 자세와 방향이 의문시 된다. 왜냐하면 (1) 본장 54절과 대하 6:13은 솔로몬이 무릎을 끓고 기도하였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으며,(2) 성전을 향해 등을 돌리고 회중을 향하여 기도했다는 것은 있음직하지 못하다는 의심 때문이다. 이에 대해 (1) 솔로몬의 자세 문제는 그가 처음에는 일단 섰다가 곧 무릎을 끓었던 것으로 보이며(Montgomery), (2) 방향 문제는 본문을 그대로 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답변할 수 있다. 비록 수정하자는 주장이 있긴 해도(Hammond), 특별히 그래서는 안된다는 규정을 발견할 수 없는 한 무리한 수정을 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예배의 사회자가 회중을 마주 향한 자세로 기도하는 일은 흔치 않은가! 한편 솔로몬이봉헌 기도를 드리기 위해 서있는 자리는 번제단 앞 뜰 가운데 특별히 마련된, 길이와 너비 5규빗(약 2.3m) 높이 3규빗(약 1.4m)되는 일종의 연단(演壇)이다(대하6:13).

(주);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 성경 용례상 '하늘 또는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편다'는 말 자체가 곧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된다(Hammond; 출 9:29;사1:15). 그런데 '파라스'(*), 즉 손을 펴거나 뻗치는 행위는 보통 '간청'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동작을 하늘을 향하여 하게 되면 곧 하나님께 간구하는 의미의 자세가 되기 마련이다. 아무튼 여기서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자로서 공적 예배를 인도하는 목자 또는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하 전개되는 솔로몬의 기도는 성경 중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공중 기도의 하나이다.

성 경: [왕상8:23]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기도]

(주); 상천 하지(上天下地)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 이 말은 많은 신들 중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제일(第一, the first)이라는 뜻이 아니라, 천지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만이 유일(唯一, the only)하신 신임을 의미하는 말이다(삼하7:22;22:32). 비록 타민족의 눈에 여호와는 이스라엘만의 국가신으로 비쳤지만(왕하5:17), 이스라엘은 천지간에 여호와 하나님만이 오직 한분이신 유일신으로 알고 믿었다(신 6:4). 한편 본절과 비슷한 표현을 우리는 출 15:11;신 4:39;시 86:8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주); 온 마음으로...행하는 종들에게...은혜를 베푸시나이다 - 신 7:9과 동일한 의미한 함축한 구절로서, 이는 솔로몬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신앙 고백인 동시에 오늘날 성도들에게 던지는 신앙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각박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 전선(戰線)에서 시달리는 자들에게 있어 '온 마음으로'(wholeheartedly) 하나님을 섬기기란 불가능해 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에게는 당신의 베푸시는 은혜와 도우시는 권능이 반드시 함께 할 것이라고 약속되었다(시 27:9;125:1). 또한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며 우리를 눈동자처럼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시 17:8;마 10:30;히 13:8). 따라서 성도들은 목전의 환난에 좌우되지 아니하고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뜻대로 살아감으로써, 성숙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영광스러운 면모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빌 1:20).

성 경: [왕상8:24]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기도]

(주); 허(許)하신 말씀 - '허하신'의 기본 의미는 '말하다'(*, 다바르)는 뜻이다. 그러므로 문자대로 번역하면 '말씀하신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맥상 '다바르'를 '허락하다'란 뜻으로 번역한 구절이 몇 군데 있다(출 12:25;신 9:28;삼하 7:28;렘 32:42). 한편 혹자는 '허락하다'는 '말씀하다'로 개역(改譯)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허락하다'란 인간이 먼저 청원한 것을 하나님이 승락하신다는 의미이므로 은혜의 성격을 표현하기에는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바르'가 하나님의 말씀, 즉 계시를 의미할 때는 오히려 '허락하다'라는 표현이 유용하다. 왜냐하면 계시가 본래 인간이 알수 없던 것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취적 행동이라며나, 이에는 허용 또는 허락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주);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 - 상천 하지의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는 천지 만물을 홀로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시므로, 그분의 입으로 약속하신 바는 무엇이든지 주권자의 크신 능력의 손으로 반드시 이행하실 수 있다. 15절 주석 참조.

(주);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 '카욤 하제'(*, as it is today)는 3:6에서와 같이 눈 앞에 전개된 일들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 성취임을 인식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한 감사를 담고 있는 표현이다.

성 경: [왕상8:25]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기도]

(주); 여호와여 주께서...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 이 말씀의 핵심은 삼하 7:8-16의 메시지, 곧 위대한 다윗 언약 속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으로는 솔로문에 대한다윗의 마지막 유언(2:4) 속에 나타나 있다.

(주); 자기 길을 삼가서 - '삼가다'(*, 솨마르)는 '지키다', '주의하다'는 뜻을갖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말은 율법을 면밀히 주의하여 지키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출 20:6;레 18:26;신 26:16;겔 11:20). 주의할 것은 우리말로 '삼가다'는 '조심하다' 또는 '경계할'라는 소극적인 뜻에 그치는데 반해, 히브리 원문의 '솨마르'는 보다 적극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즉 '솨마르'의 기본 개념은 '...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다'이다. 따라서 '솨마르'는 단순한 절제나 경계가 아닌 애정이 담긴 실천을 내포하고 있다. 즉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면밀히 계획, 실천하는 행동적 의미가 짙은 말이다.

(주);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 다윗은 향후 이스라엘 열왕들의 행적을 가치 판단하는 표준과 척도로서 제시된다(9:4;15:11 등). 그런데 다윗이 그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인물일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그가 '하나님 앞에서 행하였다'는 말에 요약되어 있다.

(주);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 조건절로 되어 있음에 주의하라.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곧 인격적 관계임을 강조해 준다. 사실 성전이든 언약궤든, 혹은 성례전이든 그안에서 인간과 만나시는 분은 산 인격이신 하나님이다. 언약에서도 마찬가지로 언약을 매개로 인간과 대면하시고 만나시는 하나님은 그 언약의 주인으로서이지 결코 언약에 속박된 상태가 아니다. 그러므로 솔로몬 및 다윗 왕조에 주어진 언약도 인격적 관계가 그러하듯 계약 당사자의 성실이 바탕되어야만 했다.

(주); 이제...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 다윗에게 약속하신 바대로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았고, 또한 위대한 성전 건축 사업도 완료되었다(삼하 7:12, 13). 이제 남은 것은 다윗 가계를 통해 영원토록 왕위에 오를 자가 끊어지지 않는 것 뿐이었다. 솔로몬은 바로 이러한 약속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약속에는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이라는 조건이 부가되어 있었다(2:4). 하지만 말년의 솔로몬은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하고 말았다(11:6). 그 결과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었고, 북 왕국은 다윗의 혈통과 무관한 자에 의해 통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유다 왕국 조차도 누적된 범죄로 말미암아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그러나 이렇듯 표면상으로는 하나님의 왕위 약속이 깨어졌다 하겠으나, 영원한 왕국에 관한 하나님의 숨겨진 경륜은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다(눅 1:27). 요컨대 그러한 궁극적이고도 최종적인 약속 성취는, 첫째로 당신의 영광과 이름을 위해서임. 둘째로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넘치는 사랑 때문이었다고 볼 수있다(시 23:3;요 13:1).

성 경: [왕상8:26]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기도]

(주);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 '확실하게 하다'로 번역된 원문은 '예아멘'(*)이다. 그런데 이 말 속에 들어있는 기본형 '아멘'은 이미 말해진 것에 대해 확언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1:36). 따라서 25절 말미의 "...지키시옵소서"와 본절의 "...확실하게 하옵소서" 같은 요구 형태의 기도는 이미 앞서 주어진 약속에 근거하는 기도인 것이다. 물론 여기서 이미 주어진 약속은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주어진, 소위 '다윗 언약'(삼하 7:12-16)을 가리킨다. 여기서 우리는 바람직한 기도의 한 모범,즉 약속에 근거하여 드리는 기도를 발견할 수 있다.

성 경: [왕상8:27]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기도]

(주);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 근동 지방의 무수한 신들이 땅이나 산 등 제한된 지역만의 신으로 믿어지고 숭배되던 당시의 환경 속에서 이같은 솔로몬의 올바른 신(神) 지식은 매우 돋보인다. 분명 솔로몬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충만한 지혜로 인해(3:12;4:29-34) 이같은 올바른 지식을 소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 하늘들의 하늘 - '하늘들의 하늘'로 번역된 '쉐메 핫솨마임'(*)은 두 가지로 이해 가능하다. 즉 (1) 그것은 히브리어가 최상급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평범한 표현일 뿐이라는 견해(Gaster). 이 경우는 '하늘 끝' 또는 '아주 높은 하늘'(the highest heaven)이라는 뜻이 된다. (2) 그것은 히브리인들이 갖고 있는 일종의 우주관, 즉 하늘이 층층으로 되어 있다는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견해(Schottgen).이 경우 '하늘들의 하늘'은 그렇게 '겹쳐진 하늘 중 최상층'(heaven of heavens)을 의미하게 된다. 참고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서 최고의 신 아누(Anu)는 여러 층중 최상층의 하늘에 거주했다고 한다(Gaster). 어쨌든 어느 쪽의 견해를 취하든 문맥상 본절의 "땅과 하늘들의 하늘"은 천지, 곧 우주 전체를 의미하는 말이다. 즉 우주전체로도 담아 낼 수 없을 하나님의 무한성을 수사적(修辭的)으로 표현한 말인 것이다(렘 23:24).

(주);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 우주 전체로도 무한하신 하나님의 처소로서는 부족하거늘 하물며 일개 건물에 지나지 않는 조그마한 성전이 감히 하나님의 처소일 수 있겠느냐는 겸비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성전이 하나님의 처소일 수 있는 것은 성전 자체의 어떤 가치나 능력이 하나님을 메어 둘 수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무한하신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직 은총으로 성전을 인간들 사이에 임재하시는 당신의 처소로 삼으신 것이다. 이러한 역동적인 사실을 망각하게 되면 심각한 오류를 낳게 된다. 실제로 후대의 타락한 이스라엘은 그 역사에서 자주 불순종과 불의에 빠지면서도, 무조건 성전을 마치 하나님이 묶어있는 장소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신 개념을 가졌던 것이다(렘 7:4;미 3:11). 결국 본절에 내포된 의미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1) 하나님의 편재성(偏在性):즉 하나님께서는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대주재(大主宰)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건축된 전(殿)에 국한되실 수 없다(행 17:24). (2) 당신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지존하신 하나님께서 땅 위에 당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처소를 마련토록 하셨다는 사실 자체 속에 하나님의 무한한 비하와 크신 긍휼이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비하(卑下)와 사랑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인의 모습으로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절정에 달했다(롬 8:3;히 1:3).

성 경: [왕상8:28]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기도]

(주); 기도와 간구 - 구약에서 '기도'를 의미하는 용어가 여럿 있지만 그 중에도 본절에 나오는 '테필라'(*)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테필라'는 동사 '팔랄'(*)에서 파생되었다. 그런데 '팔랄'은 '중재하다'(intervene)란 뜻을 갖고 있다. 본절은 솔로몬이 그의 백성들을 위해 기도 드리는 장면이다. 따라서 본절의 '테필라'는 그 어원적 의미에 가장 적절하게 사용된 셈이다. 한편 '간구'(*, 테힌나)는 '자비롭다' 또는 '불쌍히 여기다'는 뜻을 가진 동사 '하난'(*)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런데 '하난'은 어떤 사람이 필요로 하는 바로 그것을 주어야겠다고 진심으로 느끼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솔로몬의 기도와 간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 주시도록 대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의미에서 중보기도의 모범적 형태를 보여 준다고 하겠다.

(주);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 - '부르짖음'은 '간구'와 마찬가지로 '하난'에서 온 말이다. 또한 '비는'이란 말로 '기도'와 마찬가지로 '팔랄'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하난'은 자비와 동정을 필요로 하는 어떤 슬픈 처지를 전제(前提)한다. 여하튼 이러한 어휘가 구사된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오직 하나님만 의뢰코자 하는 간절하고도 절박한 심정이 토로되었기 때문이다.

성 경: [왕상8:29]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기도]

(주); 전에 말씀하시기를 - 아마도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성전 건축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전할 때(삼하 7:13)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Keil).

(주); 주의 눈이 주야로...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 성전에서, 그리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를 드리는 근거가 제시되고 있다. 즉 그것은 성전 자체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주의 눈이 주야로" 성전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전은 그곳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그곳을 향한 인간의 기도를 매개(媒介)해 주는 장소이다(단 6:10;시5:7;욘 2:4). 이러한 성전의 핵심적 특성 및 기능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속에 잘 요약되어 있다(사 56:7;마 21:13). 한편 '주의 눈'에 대해선 9:3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왕상8:30]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기도]

(주);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 사실 하나님은 무소 부재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늘들의 하늘이라 할지라도 주의 거처로서 합당치 못하다(27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히 낮아지셔서 이 땅 위에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짓도록 명하시고 허락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을 당신과 인간의 만남과 교제의 장소로 삼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용서받고 상호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성전 뿐이었다. 이제 솔로몬은 이러한 점을 상기하면서, 약속대로 성전을 통해 주께 나아가고자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용납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 주의 계신 곳 하늘 - 비록 본문이 하나님의 임재 처소로서로 성전을 봉헌하는 장면이지만, 하나님의 진정한 거처는 '하늘'이라고 거듭 밝힘으로써 성전을 상대화시키고 있다(34, 36, 39, 43, 45, 49절). 한편, 본절의 '하늘'은 우주 내의 어느 한 장소를 가리킨다기보다 성전을 포함하여 어떠한 제한된 장소라도 하나님의 참된 거처일 수 없다는 점을 선포하는 데 강조점이 있다. 즉 본절은 솔로몬 성전이 하나님의 진정한 처소일 수는 없으며, 다만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의하여 당신의 백성을 만나실 장소로서 땅 위에 그곳을 지정하셨을 뿐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하늘에 계신다는 말속에는 하나님의 전지 전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곧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모든 인간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감찰하신다는 것이다(39절). 이렇듯 치밀하신 주의 통찰은 경건한 자의 간구에는 보호하시는 은총으로, 그리고 패역한 자에게는 진노의 심판으로 작용하게 된다(시 91:4;렘 17:10).

성 경: [왕상8:31]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기도]

(주); 맹세시킴을 받고 - 어떤 사건의 재판에 있어 도저히 판결을 내릴 수 없거나, 증인들을 내세울 수 없게 되면 최종적으로 다툼 또는 판결을 끝맺기 위해(히 6:16) 맹세를 시켰다(Roland; 출 22:11). 예를 들면, 분실된 물건이 우연히 어느 사람의 수중에 있음이 발견되었을 때 그는 그 물건을 고의로 훔친게 아니라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여타 사람은 그 맹세를 인정해야만 했다. 이것은 오직 맹세의 대상자가 되시는 진리의 하나님께서 판결할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주); 주의 단 - 성전 안뜰에 있는 '번제단'을 의미한다. 일반 백성들이 만일 성전에서 맹세할 경우에, 그들은 소위 '평민의 제단'인 번제단 앞에서 맹세하였던 것이다(마5:23, 24).

성 경: [왕상8:32]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기도]

(주); 국문(鞫問)하사 - '국문하사'로 번역된 '솨파트타'(*)는 '재판하다'는 뜻을 가진 '솨파트'(*)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런데 본래 '솨파트'는 '재판하다'라는 사법적 의미보다 더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즉 입법.사법.행정이 모두 포함된 통치 행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솨파트타'는 사법적 의미의 '판단'을 수행하는 의미가 짙다. 왜냐하면 선악간을 공정히 가려내셔서 그 행위대로 보응(報應)해 달라는 내용의 맥락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주); 악한 자...의로운 자...갚으시옵소서 - 하나님은 인간의 선악간에 보상과 처벌로 정당히 보응하신다는 사상은 성경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보응사상은 계약 관계에서 아예 공식화(公式化)되어 있다(Towner). 즉 하나님 말씀에의 순종 여하에 따라 저주와 축복의 보응이 임하리라는 것이다(신 28:1, 2). 그런데 이러한 보응은 곧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에 근거하여 신정 국가의 공의를 올바로 세우고자 하는 데 목표가 있다. 솔로몬의 특별 간구 내용 중 무엇보다 먼저 등장하는 내용이 백성들의 맹세의 신실함과 공의로운 보응 사상이다. 이처럼 선민의 공동체 내에서 공의를이루는 문제는 하나님 앞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레 19:15;신 16:18;33:21;시35:24;사 61:8등).

성 경: [왕상8:33]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기도]

(주);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 선민 이스라엘이 대적에게 패배하는 것은 곧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것이었다(레 26:17, 39-42;신 28:25, 48).

(주); 주께로 돌아와서...이 전에서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 - 본절은 적에게 패배하여 포로로 끌려간 경우를 말하고 있다. 신정(神政) 국가 이스라엘에게 있어 전쟁의 패배는 곧 하나님의 징계요, 선민(選民)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어 자기 땅에서 추방당하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했다(Greenberg;호 9:3-5). 따라서 이스라엘이 다시 자기 땅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징계의 해제요 하나님께로의 귀환이다. 혹자는 본절이 단순히 회개 기도를 의미하고, 포로의 경우는 다음 절(34절)에서나 나온다고 보나(Hammond), 수긍할 수 없는 견해이다. 왜냐하면 (1) 문맥상 33절과 34절은 하나의 주제로 묶여지며, (2) 본절의 "돌아와서"(*, 슈브)가 일단 추방을 전제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한편, "주의 눈이 주야로 보고 있는"(29절) 성전으로 돌아오는 것은 곧 주께로 돌아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리고 '빌며 간구하는 것'(*, 히트팔루 웨히트한누)은 자복하는 겸허한 심령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사실 간절함이 없는 기도는 진실성이 결여되어 외식으로 흐르기 쉽다(눅 18:1-8).

성 경: [왕상8:34]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기도]

(주);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므로, 비록 포로로 끌려간 이국 땅에서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개입하셔서 그들을 다시 고국으로 귀환시키실 수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성전에만 제한된 존재라면, 성전의 파괴는 곧 그의 거처의 상실을 의미하게 된다(왕하 25:9). 그리고 전쟁에서 패배한 여타 민족신들의 운명처럼 역사의 유물로서나 남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정한 공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분이시므로, 어느 곳에서든지 당신의 백성들이 당하는 고초를 감찰하사, 언제라도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살아계신 전능자인 것이다.

(주); 열조(列祖)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 이스라엘에게 있어 땅은 단순히 군사적 점령으로 획득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기업이다(Williams). 따라서 그 땅에서 추방됨은 이스라엘의 위약(違約)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의 결과이다. 이러므로 조상들에게 선물로 주신 땅, 곧 그들의 기업으로 돌아오는 것은 다시금 계약에의 충실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 경: [왕상8:35]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기도]

(주); 하늘이 닫히고...주의 벌을 받을 때에 - 가뭄은 이스라엘의 자연 환경에서는 가히 국가적 재난이었다(17:7;18:1). 왜냐하면 팔레스틴은 샘이나 강이 흔치 않아서 가뭄이 한번 들면 아예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 같이 되기 때문이다(Scott). 이처럼 이스라엘의 농작물은 때를 따라 이른비(가을비)와 늦은비(봄비)가 오느냐 혹은 오지 않느냐에 절대 달렸다. 때문에 그들은 가나안 족속이 폭풍과 농작물의 신(神)으로 섬기는 바알(Baal)을 숭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의 길에 빠질때 하나님께서는 하는 문을 닫고 오히려 비를 내려주지 않음으로 해서, 모든 축복의 제공자는 오직 하나님 당신 뿐이심을 보여 주시고자 했다. 그런고로 당시 이스라엘에게 있어 가뭄은 그저 자연적 재난이 아니라 그러한 재난을 통해 범죄한 백성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채찍이었다.

(주);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 어떤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바로 그 이름의 권위에 참여하여 그 대리자로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Abba). 따라서 어떤 이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바로 그 이름을 가진 이의 권위 및 주권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징벌을 당한 이스라엘이 그 곤궁한 처지에서 주의 이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주권 및 그 보호하에 들어가는 것이요, 모든 우상 숭배에서 떠나 여호와 유일 신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주); 그 죄에서 떠나거든 - '떠나다'에 해당하는 '슈브'(*)는 회개에 있어서 인간편의 행동들을 가장 포괄적으로 요약해 주는 말이다. 회개의 행동은 (1) 죄에서 돌아서서 (2) 선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슈브'에는 바로 이두 가지 소극적.적극적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떠나다'는 한글 표현이 갖는 소극적 의미에다가, 보다 적극적으로 선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가 '슈브'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한편 '슈브'는 포로 귀환을 의미하는 동사로도 자주 활용된다. 즉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는 것과 죄의 상태에서 돌이키는 것은 동일한 영적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33, 34절).

성 경: [왕상8:36]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기도]

(주);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옵시며 - '가르치다'에 해당하는 '야라'(*)는 어떤 주체의 독자적이고 지배적인 행동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된다. 즉 '던지다','보내다', '(활을)쏘다'등의 의미로 사용된다(출 15:4;시 64:7등). 그런데 본절에서의 '가르침'이란 재난을 겪는 중에 불현듯 임하는 깨우침과 같은 것이다. 즉 자신들이 원하지도 않던 가르침이 복병이 쏜 화살처럼 예기치 않게 날아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은 인간의 내적 소질 개발과 같은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는 결코 그같은 깨달음을 스스로 가질 수 없는 무자격한 자에게 재난을 통해 강권적으로 임하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인간은 원치 않던 고통을 통해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성 경: [왕상8:38]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각각...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 여기서 '재앙'(*,네가)은 이미 그 안에 '징벌'의 의미가 들어 있는 단어이다. 마치 아버지가 자식에게 벌을 주듯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재앙을 주신다(삼하 7:14;시 89:32). 그런데 '네가'는 '...에 닿다', '만지다'란 뜻을 가진 '나가'(*)에서 파생하였다. 이 '나가'는 감동(感動), 즉 하나님의 손길이 사람의 영혼에 접촉하신다는 의미로 사용된다(삼상 10:26). 한편 '깨닫고'에 해당하는 기본형은 '알다'란 뜻인 '야다'(*)인데, 본 문맥에서는 '분별하다'(disinguish)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므로 본절은 단순히 재앙이 임했음을 인지(認知)하는 상태가 아닌, 재앙에 담긴 징계의 의미와 목적을 충분히 분별해 내는 상태를말한다. 한편, 본절에서 특별히 강조된 사항은 (1) 죄에 대한 개개인의 인식 및 회개와 (2) 어떤 종교적 의식(儀式) 보다는 마음의 상태, 즉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회개의 진실성이다. 진정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철저한 죄인식을 통해 마음으로 회개하는 그 진실성과 겸허함을 보고 그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성 경: [왕상8:39]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 30절 주석 참조

(주); 그 모든 행위대로...갚으시옵소서 - 32절 주석 참조.

(주); 주만 홀로 인생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 성경에서 '마음'(*, 레바브)은 정서 활동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전 인격적 핵심을 가리키는 말이다(Dentan). 이 핵(核)으로부터 정서, 지식, 의지의 활동이 일어나고 또한 외적 활동까지도 포괄하게 되는 것이다(18절). 그런데 이 인간의 마음은 오직 그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만이 온전히 분별하시고 그에 따라 판결을 내리실 수 있다(렘 17:9, 10).

성 경: [왕상8:40]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그리하시면...항상 주를 경외하리이다. '주를 경외함'은 이스라엘 신앙의 절대적인 가치이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은 그 자체로서 추구해야 할 절대 가치인 것이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기도가 응답된 결과로서 '주를 경외함'을 회복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신 31:13).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이를 하나님의 사유하심이 성도의 하나님 경외에 대한 조건부가 된다는 식의 의미로 이해해서는 아니된다. 여기서 솔로몬의 이 말은(1) 다만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근거하여 그분의 긍휼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며, (2) 또한 사유(赦宥)하심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확신한 말이라고 볼 수 있다(시130:4).

성 경: [왕상8:41]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이스라엘이 속하지 아니한 자...이방인이라도 - 본절의 '이방인'(*, 노크리)은 이스라엘에 귀환한 자들을 일컫는 체류자(*, 게르)와는 구별된다(민 15:14이하). 다시 말해 '노크리'는 이스라엘에 일시 방문한 상인이나 여행자들이다(Hamlin). 예를 들면 스바 여왕이나 나아만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10:1-13;왕하5:1-19). 또한 정치적 목적으로 입국하는 각국의 사절들도 이에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본절이 이방인들을 향해 개방성을 띤다는 점에서 꼭 이스라엘에 내방한 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즉 '세상 만민'을 향한 개방성인 것이다(43절). 이처럼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포함하는 하나님의 전 우주적 통치, 곧 말씀(복음)의 전세계주의적 성격은 비록 희미하나마 구약 시대에도 면면이 흐르고 있는 주요 사상 중 하나이다(창 22:18;출 22:21;민 15:14-16;시 22:27, 28;사 49:6 등). 그러나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사상이 보다 뚜렷히 나타난다(롬 3:29;고전 8:6).

성 경: [왕상8:42]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능한 손과...펴신 팔 - 전능하신 하나님의 생생하고도 역동적인(dynamic) 보호, 섭리, 구원의 행동을 가리키는 의인법적 포현이다(출 6:6;14:8).

(주);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 이러한 이방인들의 기도는 아마 어떤 경우에는 단순히 외교 사절로서 그 나라의 민족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정도일 수도 있다(Montgomery). 혹은 단지 성전의 수려함과 명성 때문에 그 외양이나 일별(一瞥)코자 방문했을 수도 있다(대상 22:5). 그러나 나아만의 경우처럼(왕하 5장) 좀더 절실하게 찾아 오는 이방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성 경: [왕상8:43]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무릇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대로 이루사 - 훗날 유대주의를 특징짓는 독선과 배타성을 감안하면 본절의 이방인에 대한 개방성은 주목할 만하다. 그렇지만 원래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시다(사 11:9, 10;롬3:29).

(주); 땅의 만민...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 이방인의 기도에 응답해달라고 요청하는 이유가 밝혀진다. 즉 "주의 이름을 알고 이스라엘의 신앙처럼 주를 경외하게 해달라"는 것이다(왕하 5:15-19). 이처럼 이스라엘의 신앙은 일찍부터 세상 만민들에게 개방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바울이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열려진 구원을 말함으로써 편협한 유대주의에 반기를 들었을 때, 그것은 구약에 반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약을 옳게 증언하려는 것이었다(롬 10:12, 13). 한편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다는 사상은 주의 이름을 성전에 두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16,29절). 여기서 강조점은 '주의 이름'에 있지 '성전'에 있지 않다. 이처럼 '장소의 신학'이 아닌 '이름의 신학'을 내세움으로써, 솔로몬은 하나님이 특정 장소에 제한당하는 분이 결코 아님을 밝히 드러내려 했던 것이다(Anderson).

성 경: [왕상8:44]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싸우고자 하여 주의 보내신 길로 나갈때 - 이스라엘에게 있어 전쟁은 언제나 하나님께 속한 일이었다(삼상 17:47). 그러므로 공격적이든 방어적이든 모든 전쟁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일로 믿었다(Toombs). 그래서 본절과 같이 전쟁터에 종군(從軍)하는 것을 "주의 보내신 길"과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견지에서 전쟁에 임하는 병사들은 자신들을 하나님께 봉헌된 전사로 생각하였다(삿 5:2;사 13:3).

(주); 전 있는 편을 향하여 - 본절과 48절은 이제까지의 경우들 보다는 훨씬 멀리 떨어진 장소를 시사하다. 즉 전쟁터와 적국에 포로로 잡혀간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단지 그들은 성전이 있는 '방향' 쪽으로만 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나마 잊지 않고 방향만이라도 성전 쪽을 향하려는 간절함은 곧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히 은총과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 내적 열정 그 자체이다(B hr). 그런고로 솔로몬은 그들이 그처럼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멸시치 않을 것으로 확신하고,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던 것이다. 한편, 그런데 이처럼 성전과 예루살렘을 향하여 바라보고 기도하는 행위는 포로기 이후에 유대인들에게 있어 하나의 관습처럼 굳어졌다(B hr;단 6:11).

성 경: [왕상8:45]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돌아보옵소서 - '돌아보옵소서'의 기본 어근인 '아사 미쉬파트'(*)는 원래 '공의를 행하다'란 뜻이다. 이는 전쟁도 단지 인간들끼리의 분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개입과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 말은 이스라엘이 전쟁에 임함에 있어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한 뚜렷한 명분을 내세울 수 있어야 할 것과 또한 전쟁 수행 과정에 있어서도 시종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하여야 함을 뜻한다. 자기 민족의 이익을 무조건 편드는 여타 민족신들의 속성에 비해 오직 공의를 따라 판결을 행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속성이 잘 나타나 있다.

성 경: [왕상8:46]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 이것은 솔로몬이 일곱번째 간구(46-51)와 같은 내용의 기도를 하는 까닭을 설명하는 말이다. 즉 범죄치 않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결국 그러한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적국에 포로로 잡혀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레 26:27-39;신 28:64-68). 이것은 솔로몬이 인간의 전적 부패(total depravity)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건대, 우리는 솔로몬의 지혜가 단순히 국정(國政) 사무나 자연 현상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본질에까지 심오하게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욥15:16;렘 17:9;롬 3:10-18).

(주); 붙이시매 - '붙이다'에 해당하는 '나탄'(*)에는 '내버려두다' 또는 '허락하다'는 뜻이 들어 있다. 좀더 사법적인 의미로는 '대가를 지불토록 어떤것을 넘겨준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창 23:9;신 15:10 등). 그러므로 본절 속에는 (1) 포로가 되는 것은 범죄의 대가를 치루는 것이며, (2) 적에게 패배하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하에, 즉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가능한 일이라는 믿음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왕상8:47]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스스로 깨닫고 - 직역하면 "자신의 심령으로 돌아오고"로 번역할 수 있다. 원래'죄'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의도하신 제자리를 벗어난 상태이다. 그러므로 회개의 과정은 참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 '범죄'(*, 하타)는 '목표에서 빗나감'을 의미하고, '패역'(*, 아와)은 '그릇됨', '어그러지고 구부러짐'을 의미한다. 그리고 '악을 짓다'(*, 라솨)는 '방종에 빠져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한번 빗나감으로써 점점 심각해지는 죄의 양상을 점증(漸增)적으로 보여 준다 하겠다. 한편 솔로몬의 이 말은 후일 바벨론 포로 시절에 경건한 유대인들에 의해 죄를 깊이 통회할 때 그대로 사용되었다(단 9:5;시106:6).

성 경: [왕상8:48]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온 마음과 온 뜻으로 -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기본 자세로, 신명기가 제시하는 규례와 일치한다(신 30:2, 6). 신 6:5 주석 참조. 열조에게 주신 땅 - 34절 주석 참조.

(주); 전 있는 편을 향하여 - 44절 주석 참조. 한편 본절에서 우리는 기도할 때의 방향이 땅->성->전으로 점점 좁아져 가고 있음을 보게 되는데, 이는 될수 있는 한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모해야 된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성 경: [왕상8:49]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 30절 주석 참조.

(주); 기도와 간구 - 28절 주석 참조.

(주); 돌아보옵시며 - 이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미쉬파트'(*)는 '판단하다'란뜻이다. 곧 하나님께서 인간의 간구에 대해 공의와 긍휼로 판단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진실성 여부에 따라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었다. 45절 주석 참조.

성 경: [왕상8:50]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허물 - '허물'에 해당하는 '페솨'(*)는 '실수.과오'란 뜻 보다는 더 강한'반역'의 뜻을 갖고 있다. 즉 하나님께 저지를 패역한 범죄라는 성격과 이로 인해 생긴 불화까지도 암시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같은 불화에서 생긴 하나님과의 간격이 인간으로 하여금 온갖 왜곡된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욥 34:6;시 36:1;잠17:19;29:22 등).

(주);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 '불쌍히 여김'에 해당하는 '라하밈'(*)은'부드러운 자비심'(tender mercy)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적들로 하여금 그러한 마음이 일어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솔로몬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에 국한된 분으로서가 아니라, 이방 통치자의 마음까지도 당신의 뜻대로 지배하실 수 있는 분으로서 신앙하고 있다(시 106:44-46;스1:1). 한편, 그런데 그렇게 적들의 동정심이 일어나도록 하는 보다 근본적인 동인(動因)은 바로 하나님의 동정심이다. 즉 심판을 받아 마땅하지만 회개하는 이스라엘에게 다시금 자비와 용서로 대하시는 하나님의 아버지 같은 '불쌍히 여김'이 있기 때문에그런 일이 가능한 것이다. 또 한편 '라하밈'은 '태' 또는 '자궁'으로 번역되는 '레헴'(*)과 갚은 관련이 있다(3:26). 이는 마치 젖먹이 자식에 대한 어미의 마음처럼 이스라엘을 향해 지극한 애정과 안타까움을 갖는 상태를 가리킨다(시 106:44-46).

성 경: [왕상8:51]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철 풀무 같은 애굽 - '풀무'(*, 쿠르)는 금속을 제련하는 용광로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제련'이란 의미 보다는 철이라도 녹일 정도의 뜨거운'열'이 강조되어, 애굽에서의 생활이 극심한 고통으로 가득했음을 비유로 말하고자 사용되었다. 신 4:20주석 참조.

(주); 주의 산업 - '산업'(*, 나할라)은 '소유' 또는 '상속 재산'이란 의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영구적인 소유'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주의 '나할라'라는 말은 그들이 결코 버림받을 수 없는 존재, 곧 하나님의 특별하신 소유로 주의 보호와 아낌 및 관심의 대상이라는 의미이다. 출 19:5 주석 참조.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이러한 믿음에 근거하여 비록 불순종으로 징벌을 받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회개하면 마침내 원래의 위치로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언제고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출 34:9;신 4:30, 31;9:26;시 33:12). 그런데 이처럼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주의 '나할라'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근거는 다름 아닌 하나님과의 '계약'이었다(출 19:5, 6;렘 11:4). 따라서 이제까지 솔로몬의 모든 기도는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상대자로 삼으시고 언약을 맺은 사실에 근거하여 드려졌던 것이다. 솔로몬은 결코 이스라엘 자신의 미덕이나 공로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호소할 수는 없었다(신7:6-11).

성 경: [왕상8:52]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눈을 들어 - '눈'(*, 아인)은 성경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으나(시119:18;잠 6:17;겔 6:9;마 6:22), '하나님이 눈을 든다'는 표현은 인간을 살피시고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다(시33:18;34:15). 반면에 '하나님이 눈을 가리운다'는 표현은 인간의 기도와 요청을 무시함을 의미한다(사 1:15).

(주); 종의 간구함...들으시옵소서 - 기도를 시작할 때 사용된 문구(28, 29절)가 지금 기도를 마무리 짓는 부분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들어달라는 간청으로 앞뒤가 구성된 솔로몬의 기도는 51, 53절에서 보듯 이스라엘이 주의 산업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어 응답을 요청한 것이다.

성 경: [왕상8:53]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성전에 안치된 언약궤]

(주); 주의 종 모세로 말씀하심 같이 - 이는 출 19:3-6의 말씀을 가리킨다.

(주); 세상 만민 가운데서 저희를 구별하여 - 이 말은 출 19:6의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에 상응한다. 한편 '구별하다'(*, 바달)란 말 속에는 '분리되다', '차이를 만들다'는 뜻이 있는데, 이 말은 이스라엘이 이방 여러 나라와 특별히 구별되었다는 문맥에서 자주 등장한다(스 6:21;느 9:2;10:28). 그런데 '거룩'(*, 콰도쉬)에도 이러한 '구별'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러한 거룩 및 구별에는 단순히 속된 것에서 분리되는 것 외에도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봉사하는 면이 들이 있다(Eichrodt). 출 19:6의 '제사장 나라'는 바로 그러한 구별의 적극적인 면을 알려 주는것이다. 즉 이스라엘은 타민족과는 분리된 선민(選民)인 바 이는 이스라엘로 열방 중제사장 나라로 봉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출 19:6 주석 참조).

(주); 주의 산업 - 51절 주석 참조.

성 경: [왕상8:54]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축원]

(주); 솔로몬이 무릎을 끓고 - 기도할 때 솔로몬이 취한 자세에 관해서는 22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그런데 무릎을 끓는 자세에는 (1) 탄원(단 6:10;행 7:60;엡 3:15), (2)복종(왕하 1:13;마 17:14;눅 5:8), (3) 예배(19:18;사 45:23)등의 의미가 들어 있다(Davies). 일반적으로 무릎 끓는 자세는 직립(直立) 및 겸허함 등을 나타내는 자세이다(Crawley).

(주);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 22절 주석 참조.

(주); 기도와 간구 - 28절 주석 참조.

(주); 아뢰기를 - '아뢰다'에 해당하는 '팔랄'(*)은 '호소하다', '기도하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여기서 '테필라'(기도)란 말이 파생되어 나왔다(28절). 그런데 '팔랄'은 '중개자로서 행동하다'는 뜻도 있다(Thomas). 그렇다면 본장의 솔로몬의 기도는 그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솔로몬의 기도는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일종의 중개자로서 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 경: [왕상8:55]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축원]

(주); 회중 - '회중'으로 번역된 '카할'(*)은 특히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의 전 국민적 신앙 집회를 가리키는 데 줄곧 사용한 단어이다(Pope). 즉 특별히 종교적 목적을 지니고 모인 무리를 뜻한다.

(주); 축복하며 가로되 - 14절 주석 참조.

성 경: [왕상8:56]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축원]

이하의 내용(56-61절)은 봉헌 기도 이후에 솔로몬이 백성들에게 주는 일종의 축사(祝辭)이다. 이에 반해 15-21절은 봉헌 기도에 앞선 인사말이라 볼 수 있다.

(주); 저가 무릇...태평을 주셨으니 - 여기서 '태평'(*, 메누하)은 '안식'이란 뜻인데, 이 안식에의 약속은 신명기 12:9, 10에서 주어진 것이었다. 비록 여호수아21:44에서 이 안식이 성취되었지만, 그것은 불완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아직 많은 가나안 족속들이 땅의 도처에 있었고, 영구한 평화의 상징인 성전도 건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 시대의 정복을 거쳐 마침내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성전이 건축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태평)은 완전 성취되었던 것이다. 솔로몬은 지금 이러한 사실을 감회스럽게 신앙 고백하고 있다.

(주); 허하신 대로 - 이 역시 '다바르'(*)를 번역한 것이다. 24절 주석 참조.

(주); 모세를 빙자(憑藉)하여 - '빙자하여'로 번역된 '베야드'(*)는 수단을 나타내는 전치사 '베'(*)와 '손'이라는 뜻을 가진 '야드'(*)의 결합이다. 따라서 이는 '모세의 손을 빌어' 또는 '모세를 통해'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 공동 번역은 "모세를 시켜"로 번역하였다. 한편, 이처럼 솔로몬이 말하는 근거 구절로 우리는 레위기26:3-13과 신명기 28:1-14의 내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주);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 - 여기서 '이루지 않음'에 해당하는 '나팔'(*)은 '떨어지다', '내던져지다'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는 죽음이나 멸망 또는 방치 등을 지칭하는 데 쓰인다(삿 20:44;애 1:7;대상 20:8). 이처럼 전능자요 선지자인 하나님의 말씀 또는 약속은 호리(毫釐)라도 헛되이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성 경: [왕상8:57]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축원]

(주);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 '우리와 함께 있다'(*, 임마누)에 들어있는 전치사 '임'(*)은 이미 그 개념 안에 '친교와 교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임'으로 수식되는 관계는 고난이든 번영이든 같이 경험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이 관계는 지위나 신분에 관계없이 함께 동참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임'으로 수식된 것은 곧 인간과 같을 수 없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하셔서 수치든 실패이든 공동으로 겪으시는 은총의 관계를 의미하다.

(주); 떠나지 마옵시며 - '떠나다'에 해당하는 '아자브'(*)는 '버리다', '포기하다'는 뜻도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소리치신 말 "엘리 엘리라마 사박다니"에서 '샤바크'(사박)란 말이 바로 이 '아자브'에 해당하는 아람어이다(마 27:46). 그러나 때로 하나님께서 성도를 일시 '아자브'하시는 경우는 (1) 연단을 위한 징계로 고통과 곤경에 일시 처하게 하시는 경우(시 22:1;37:25;사 41:17), (2) 그리고 인간의 심중에 있는 것을 알아보기 위한 경우(대하 32:31)등이 있다.

(주); 버리지 마옵시고 - '버리다'에 해당하는 '나타쉬'(*)는 '배척하다', '거절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아자브'에 비해 '나타쉬'는 좀더 거부의 뜻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성 경: [왕상8:58]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축원]

(주); 우리의 마음을...행하게 하옵시며 - 본절은 백성들에게 율법을 순종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도록 솔로몬이 하나님께 간청하는 장면이다. 이처럼 마음을 모아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수 있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힙입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볼때 57절에서 간구한 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곧 본절이 말하고 있는 '순종의 삶'을 가능케 하는 필수 조건이라 하겠다.

(주); 명하신 - '명할'(command)에 해당하는 '차와'(*)는 여러 맥락에서 활용되지만(룻 2:9;삼상 17:20;삼하 21:14), 특히 하나님이 그 주체인 경우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1) 하나님의 명령은 곧 성취와 완성을 의미한다(시 33:9;사 45:12). (2)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는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수단도 같이 주신다(출31:2-6). (3) 하나님의 명령은 곧 진실이다. 그리고 그 진실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뒤따른다(신 28:8;시 105:8). (4)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는 수행해야 할 모든 것을 하나님 편에서 책임진다는 약속이 내포되어 있다(대상 16:15).

(주); 계명과 법도와 율례 - '계명'(*, 미츠와)과 '법도'(*, 호크)와 '율례'(*, 미쉬파트)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과 명령을 가리키는 중언법(重言法)적인 표현이다(2:3;신 4:1). 따라서 여기 언급된 세 가지 규례들을 지킨다는 것은, 곧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삶을 의미한다.

성 경: [왕상8:59]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축원]

(주); 나의 간구한 이 말씀...가까이 있게 하옵시고 - '가까이 있다'에 해당하는 '카라브'(*)에는 좀더 역동적인 개념이 들어 있다. 즉 아주 가까이 다가가 친밀하게 접촉한다는 개념이 이 말 속에는 들어 있다. 그 예로 성경에서 '카라브'는 가까이 있어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며', '만질 수 있는' 접촉을 의미하는 데 종종 사용되었다(출 32:29;36:2;레 10:4;민 9:6). 따라서 본절과 같이 솔로몬의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께 '카라브'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에는, 마치 품안에 든 아기에게 기울이는 어미의 지극한 관심처럼 자신의 기도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간곡함이 담겨 있는 것이다.

(주); 날마다 당하는대로 - 즉 '매일의 필요한 것을'(with our daily needs, LivingBible). 출 16:4;마 6:11등의 구절에서 같은 뜻의 말을 찾아 볼 수 있다. 진정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매일의 필요한 은혜를 풍성히 채워주실 것이다.

성 경: [왕상8:60]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축원]

(주); 세상 만민에게...알게 하시기를 - 성전을 봉헌함에 있어, 솔로몬은 (1) 그 성전이 주의 이름과 영광을 보존하고 (2) 나아가 그 성전을 통해 열방에 주의 이름과 영광의 빛이 전달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성(唯一性)이 온 천하에 밝히 드러나기를 기원하고 있다(43절).

(주);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 여기서의 '하나님'은 '하엘로힘'(*)으로 정관사 '하'(*)가 들자 있는 '그 하나님'(the God)이다. 즉 살아계셔서 당신의백성들을 위해 친히 강한 손과 펴신 팔로 구원의 역사를 베푸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따라서 진정 '여호와'만이 참되고 유일하신 신(神), 즉'엘로힘'이신 것이다. 한편 본절은 23절과 함께 신명기적 신앙 고백의 형태를 띤 것이다(신 4:35, 39).

성 경: [왕상8:61]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축원]

(주); 화합하여 - 본절에서 '화합하여'로 번역된 원어는 전치사 '임'(*)이다. 이 '임'에 담겨있는 본래적 의미를 고려할 때(57절), 본절가 같은 번역이 가능하다. 그리고 하나님과 '임'하는 것이 곧 하나님과 '화합하는' 길이요 또한 '완전케'되는 비결이다.

(주); 완전케 하여...지킬지어다 - '완전하다'[(*, 솰렘)는 어떤 관계가 비뚤어짐없이 건전하게 조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그렇게 회복된 관계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솰렘'에서 '평화'를 의미하는 '솰롬'이 파생되어 나왔다. 따라서 하나님과 인간이 '솰롬'(평화)의 관계에 있는 상태를 곧 '솰렘'(완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본절에서 보듯 그와 같은 '솰렘'(완전)의 결과 혹은 과정이 곧 '법도를 행하며 계명을 지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완전'을 의미하는 헬라어 '텔레이오스'(*)는 "완전히 성숙함, 그리고 지정된 목적에 도달함"을 의미하고, 라틴어 '페르펙투스'(perfectus)는 "처음부터 철저히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Campbell).

(주); 오늘날과 같이 - 성전 봉헌시 왕과 백성들의 마음 상태가 순종과 헌신으로 불타오르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이렇듯 당시에는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므로서 번영과 평안의 상태를 누렸으나, 후일 왕과 백성들이 가증한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지고 말았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성도들은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깊이 깨달아 늘 깨어 있기를 힘써야 한다(벧전 5:8).

성 경: [왕상8:62]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감사 제사]

(주); 왕과 함께 한 이스라엘 - 성전 낙성식에 참여하고 있는 왕과 백성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친밀하고 화합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표현이다(57, 61절). 여기에도 '화합', '동행', '친교'의 뜻을 가진 전치사 '임'(*)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함께 제사를 드리는 왕과 백성들의 이러한 화목함은 신정(神政) 통치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이스라엘의 신정 통치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백성들은 곧 하나님의 백성이고 왕은 단지 하나님이 세운 백성의 목자일 뿐이다(삼상 13:14;삼하 5:2).

(주); 다 여호와 앞에 희생을 드리니라 - 언약궤 안치식(1-21절)과 솔로몬의 봉헌 기도(22-61절)가 끝난 후, 마지막으로 거대한 규모의 화목제가 드려짐으로써 성전 봉헌식은 그 절정에 달하였다. 병해 구절인 대하 7:4-10에는 악기를 동원하여 여호와를 찬양하는 장면까지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당시 여호와께 대한 감사와 헌신, 친교의 표시는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 사건인 성전 봉헌식을 맞이하여 거대한 규모의 희생제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63절).

성 경: [왕상8:63]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감사 제사]

(주); 화목제의 희생 - 원어로는 '제바흐 쉘라밈'(*)인데, 이 용어는 제사 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제사에만 쓰였다(삼상 1:21;20:29 등). 신 27:7을 보면 "또 '쉘라밈'(화목제)을 드리고 거기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레 7:15에 의하면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 희생의 고기"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쉘라밈'을 드리는 동기는 즐거움과 감사인 것을 알 수있다(Milgrom).

(주);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 이만이라 - 이 숫자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 일부 학자들은 본절의 기록을 과장 또는 오기(誤記)로 생각하기도 한다(Montgomery, Thenius).그러나 전반적인 정황으로 미루어, 이는 가능한 숫자이다(Keil, B hr). 왜냐하면 (1)보통의 화목제와 달리 성전 낙성식이라는 역사적 대사건을 위한 제사일 뿐 아니라,(2) 이 제상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하수까지'의 전 국민(가장및 대표들)으로 나타나고 있고(65절), (3) 원래의 번제단만으로 감당할 수 없어서 성전 앞뜰 가운데를 구별해 특별히 사용해야 할 정도였기 때문이다(64절). 그리고 제물(짐승)을 잡고 준비하는 일은 반드시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의 임무만은 아니었다. 이러한 일은 제물을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은 누구든지 할 수 있었다. 단지 희생 제물에 피를 번제단 사면에 뿌리는 일만이 제사장의 직무였다(레 1:5, 6;3:2, 8). 한편, 다윗시대에 30세 이상의 레위인들이 38,000명이었으므로(대사 23:3), 비율에 따라 솔로몬 당시의 제사장들의 수효는 대략 2,000-3,000명 정도였을 것이다(Keil). 그러므로 이러한 전반적인 상황를 고려한다면, 낙성식 기간의 7일 동안 소 22,000과 양 120,000의 희생 제물을 처리하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참고로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을 보면, 네로 황제 당시의 유월절에 양 250,000 마리가 2-3시간 동안에 제물로 드려졌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대기를 비롯한 고대의 모든 역본들의 기록이 본문의 기록과 일치하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의 기록과 일치한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의 숫자를 기록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주); 낙성식을 행하였는데 - 여기서 '낙성식'(落成式)은 '시작하다', '봉헌하다', '창설하다'란 뜻의 '하나크'(*)에서 파생된 말로, 가옥이나 성전등을 완공한 후 이를 기념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예식을 의미한다(신 20:5;대하 7:5, 9). 한편, 후대 유대인들은 '하눅카'(Hanukkah)란 절기를 지켰는데, 이는 '수전절'(修殿節)이란 의미로 곧 수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oochus Epiphanes)가 예루살렘 성전을 훼파하여 더립힌 것을 재건하고 성결케 하여 재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레위기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

성 경: [왕상8:64]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감사 제사]

(주); 거룩히 구별하고 - 53절 주석 참조. 그런데 본절에서 '거룩히 구별하다'란 말은 단지 한 단어 '카다쉬'(*)를 번역한 것이다. 아마도 '거룩'의 기본 의미가 '구별'이기 때문에 이처럼 번역한 듯하다. 그런데 본래 사람이든 장소, 물건이든 그 자체의 거룩성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련 및 접촉 때문에 거룩하게 된다(Wood). 한편 '카다쉬'의 반대어 '홀'(*)은 '속된 것' 또는 '평범한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솔로몬은 여호와의 전 앞뜰, 곧 제사장의 뜰(6:36)을 거룩히 구별하여 임시적인 제단 장소로 삼았는데, 이는 본래 거룩히 구별된 번제단만으로는 봉헌식 때의 많은 희생제물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 번제와 소제와...화목제 - 레위기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부분을 참조하라.

성 경: [왕상8:65]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감사 제사]

(주); 칠일 칠일 합 십 사일 - 성전 봉헌 절기 7일과 초막절 7일을 가리킨다(대하7:8-10).

(주); 하맛 어귀 - 하맛(Hamath) 왕국의 남쪽 경계는 곧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였다(Haldar; 민 13:21;수 13:5;삿 3:3). 이 나라는 후에 앗수르의 살만에셀 2세에게 정복된다.

(주); 애굽 하수 - '애굽 하수'(*, 나하르 미츠라임)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의 남쪽 경계선으로 등장한다(창 15:18).그리고 여기서 하수(河水)는 바로 나일강을 가리킨다.

성 경: [왕상8:66]

주제1: [성전 봉헌식]

주제2: [솔로몬의 감사 제사]

(주); 제 팔 일에 - 이 날은 절기 '십 사일'중의 '팔 일'이 아니라 첫번째 절기인 성전 봉헌 절기 7일이 끝나고 두 번째 절기의 '팔일'째 되는 날, 즉 초막 절기 7일이 끝나고 난 다음 날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성전 봉헌 절기는 7월(에다님 월) 8일부터 14일까지 7일간 계속되었고, 이어 7월 15일부터 21일까지 7일간은 초막절(장막절)로 지켜졌다. 이어 7월 22일, 즉 초막 절기 8일째에는 폐회 축제가 있었으며(레 23:33-39), 결국 백성들은 폐회 축제가 끝난 저녁 또는 다음 날, 곧 7월 23일에 각각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대하 7:10).

(주);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 원래 '장막'(tent)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이동식 거처로 이스라엘이 광야 유량 시절에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시대 당시는 가나안 정착 이후로도 400여년이 지난 때로, 이 때는 이스라엘도 집을 짓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 '장막으로 돌아가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집으로 돌아가다'라는 의미로 사용된(삼하 20:1;삿7:8) 관습화된 언어 표현일 뿐이다(Keil,Hammond).

(주); 다윗과...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즐거워하였더라 - 성전 봉헌식을 마무리 짓는 본절에서 솔로몬 대신 특별히 다윗의 이름이 거론된 것은, 성전 건축은 다윗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실질적인 성전 건축자는 다윗이었기 때문이다(Keil, B hr). 즉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단순히 다윗의 계획과 이상을 실행에 옮기는 역할을 감당했을 뿐이다(Hammond).

성 경: [왕상9:1]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주); 무릇 이루기를 원하던 일 - 구체적으로 이 말이 지시하는 바는 다름아닌 '여호와의 전과 왕궁 건축하기'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성전과 궁전 건축을 마쳤다'는 사실 보도에 덧붙여 '그리고 성전과 궁전 건축은 바로 솔로몬이 원했던 일이다'라는 부연 설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본절과 병행절인 대하 7:11에는 '무릇 그 심중에 여호와의 전과 자기의 궁궐에 어떻게 만들고자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또한 본절은 성전과 궁전은 단지 건축되었다는 사실 뿐 아니라, 그 구상과 계획에서도 원래 의도했던 바대로 차질없이 지어졌음을 알게 해 주는 말이다.

성 경: [왕상9:2]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주);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같이 - 일천번제 이후 여호와께서 기브온 산당에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방식은 밤에 꿈을 통해서였다(3:5,15).

(주);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 기브온 계시에 이어 두번째로 하나님의 계시가 솔로몬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꿈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이 두번째의 계시가 주어진 시점은 성전 뿐 아니라 궁전까지도 완공된 후였다(1절). 8장의 성전 봉헌식이 성전 완공 후 바로 실시한 것이라면, 두번째 계시는 솔로몬의 봉헌 기도(8:22-53) 후 13년이나 지난 다음에 임한 셈이다. 만일 이러한 시간 상의 격차를 메우기 위해 8장의 성전 봉헌식이 궁전 완공까지도 완전 끝난 후에 거행되었다는 입장(Keil,Thenius)을 취한다 해도 또 다른 난점이 생긴다. 즉 관연 궁전 건축 기간인 13년 동안 법궤를 안치하지도 않은 채 성전의 기능을 보류해 두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8:1 주석 참조.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두번째 계시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종합 고찰해 볼 수있다. 즉 성전은 성전 완공과 더불어 바로 봉헌되어 졌고, 솔로몬의 봉헌 기도(8:22-53)에 대한 응답으로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희생 제물을 사르고 또한 여호와의 영광의 빛이 성전에 가득임함으로써(대하 7:1) 일단 상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솔로몬은 궁전을 비롯한 일반 성읍 건축(15,19절) 사역을 계속 진행하였고, 마침내 성전 완공 후 13년(17:1)에 궁전 건축을 필하자 하나님의 두번째 계시가 임했다고 볼수 있다. 그런데 이때는 솔로몬 즉위 24년째 되던 무렵으로(6:37,38;7:1), 안으로는 성전과 궁전을 비롯한 주요 건축 사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고, 밖으로는 외교와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때였다. 따라서 이때는 솔로몬이 교만과 사치, 그리고 이방문화의 유혹을 가장 많이 받을 우려가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신앙 상태를 재점검해 주실 목적으로 다시금 나타나사(Patterso-n,Hammond). 이하 나오는 두번째의 계시내용(3-9절)은 바로 이러한 목적과 잘 부합된다.

성 경: [왕상9:3]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주); 저에게 이르시되 - 솔로몬을 향한 하나님의 두번째 계시는 과거 솔로몬의 봉헌 기도(8:22-53)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한편, 본문(3-9절)과 병행 구절인 대하 7:12-22에서는 보다 자세하게 하나님의 메시지가 주어져 있다.

(주); 네가 - '네가'라는 단수 인칭 대명사로 미루어 3-5절은 솔로몬 개인에게 주는 말씀이다. 반면 6절은 '너희'라는 복수가 사용되고 있어 6절이하 9절까지 내용은 전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말씀임을 알게 해준다.

(주);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 비록 기도한 시점과 응답의 시점 사이의 간격이 벌어져 있더라도, 하나님의 두번째 나타나심은 솔로몬의 봉헌 기도에 대한 응답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한편 '기도와 간구'에 대해서는 8:28 주석을 참조하라.

(주); 내가 들었은즉 - '들었은즉'에 해당하는 '솨마'(*)에는 주의를 기울여 경청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따라서 본절에서처럼 하나님께서 '솨마'하셨다는 말은 곧 하나님께서 인간의 기도와 간구를 소홀히 듣지 않으시고 진지하게 새기셨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의미할 때는 이 '솨마'가 사용되고 있다(삿 13:9;시 4:1;34:17;렘 11:10,11;겔 8:18).

(주); 거룩하게 구별하여 - 8:64주석 참조. 그런데 성전의 거룩성은 그 자체의 종교 의식이나 화려함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사 당신의 이름을 그곳에 두시고(신 12:5,11)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에 의존되어 있다.

(주); 나의 이름을...두며 - 8:16주석 참조. 나의 눈 - 하나님의 '눈'(*, 아인)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의 전활동과도 깊이 관련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눈은 인간 행동의 선약을 감찰하시기도 하고, 인간의 기도와 요구를 살피시기도 하는 등의 활동을 하시기 때문이다(15:11;16:25;왕하 19:16;시 33:18;사 37:17). 또한 하나님의 눈은 의인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악인을 심판하기 위해 그들을 하신다(대하 16:9;암 9:8). 따라서 하나님의 눈의 향방은 곧 보호, 응답 등 그의 전활동의 향방과 일치한다.

(주); 나의 마음 - '마음'(*, 레브)은 단지 심리적 기능에 국한되지 않고, 한인격의 내적 기능 전체를 포괄하는 말이다. 즉 감정, 사고, 사려 깊음, 의지 등등이 모두 '마음'에서 기인된다. 그래서 '마음'은 곧 어떤 인격 자체를 지칭하기도 한다(창 17:17;전 1:16 등). 따라서 '마음'은 그 인격의 외적 활동과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특히 본절에서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가리키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처럼 마음에는 원해도 실천할 수 없는 연약한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마음에 원하시는 바는 무엇이든지 실현하실 수 있는 전능자이시다.

(주); 항상 거기 있으리니 - 과거 봉헌 기도할 때 솔로몬은 하나님의 눈이 주야로 성전을 향해주실 것을 간구한 바 있었다(8:29). 이제 하나님께서는 비단 '눈'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항상 성전을 향하여 그곳에 있겠다고 응답하신 것이다.

성 경: [왕상9:4]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의 온전한 행함과 변치 않는 마음가짐으로 인해 신정 국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따라야 할 삶의 척도 또는 표본으로 제시된다. 그래서 이후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은 다윗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을 받았다(15:3,11;왕하 14:3;16:2;18:3;22:2;대상 17:1,2;대하 7:17,18;28:1;29:2;34:2).

(주);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 이 말은 이스라엘 열왕들의 표준이 되었던 다윗의 마음가짐을 요약해서 보여 준다. 다윗의 생애에 벌어진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다윗은 성실하고 솔직한 신심(信心)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예를 들면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 기름부음 받았다는 이유로 원수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든지, 여호와의 법궤 앞에서 기쁨과 감격의 춤을 춤으로써 보여 준 열정, 그리고 밧세바 사건...을 철저히 통회하는 모습 등이다(삼상 26:23-25;삼하 6:14;12:7-15). 이러한 사건들은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정직한 마음가짐이라는 특징을 보여 준다. 결국 열왕의 표준인 다윗의 바르고 온전한 행함은 그러한 마음가짐에 바탕된 것이다.

(주); 온전히 - '온전히'로 번역된 '톰'(*)은 '완전 무결함'과 '성실'이란 의미 외에도 '강함'의 뜻도 있다. 따라서 '톰'으로 설명되는 마음가짐의 특성은 하나님을 향한 꾸준한 성실과 야무진 집중에 있다. 사실 그의 삶을 통해 볼 때 다윗은 결코 완전한 삶을 살지는 못하였다(삼하 11:2-12:15;24:10등). 그러나 다윗은 죄악에 빠졌을 때 곧 '철저히' 회개하는 등 하나님을 향한 신앙 원리는 결코 변함이 없었다. 즉 인간적인 실수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끝까지 여호와 신앙의 도리를 부여잡았다. 그 결과 다윗은 우상 숭배 행위에는 결코 빠지지 않는 유일한 왕이 될수 있었다. 하나님은 바로 다윗의 이러한 점을 기뻐하시고 당신의 마음에 합한 자로 인정하셨던 것이다.

(주); 바르게 - '바르게'(*,요쉐르)는 그 품성이 '정직하다는 것'도 의미하지만 '길을 곧게 하다'는 뜻도 포함한다. 즉 하나님의 법, 또는 의로움이 똑바로 펼쳐지도록 하는 것이 곧 올바름인 것이다.

(주); 법도와 율례 - 이 두 단어는 상호 연결되어 '하나님의 모든 율법과 교훈'을 강조하여 지칭하는 중언법적(重言法的) 표현이다(2:3;8:58).

(주); ...지키면 - 이러한 조건절의 형태는 다윗 계약의 특징이다. 그리고 그 조건적 의무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신명기적 권고를 담고 있다. 즉 다윗과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께 충성하고 율법에 순종하는 한에서만 왕위가 계속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Dentan).

성 경: [왕상9:5]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주); 허하여 - 8:24주석 참조.

(주);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견고하게 하려니와 - 이 내용은 흔히 '다윗 계약'이라 불리우는 언약의 반복이다(삼하 7:11-16;왕상 2:4;8:25;시 132:11-13). 그러나보다 직접적으로는 8:25,26에 나타난 바 솔로몬의 기도, 즉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확실하게 하옵소서"에 대한 응답이다. 한편,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편에서의 확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파국이 찾아 오게 되는 이유는 계약에 대한 인간편의 불성실 탓임을 암시해 준다.

성 경: [왕상9:6]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주); 너희나 너희 자손이 - 이제까지 솔로몬 개인에게 주어지던 말씀의 대상이 갑자기복수(複數)로 바뀌고 있다(3절). 즉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게로 대상이 확대된 것이다. 그런데 이하 6-9절의 내용은 3-5절의 내용과 달리 순종에 실패할 경우의 부정적 결과를 경고하는 것이다. 한편, 후일 이렇게 경고된 재난을 실제로 겪은 바벨론 포로 중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자신들을 향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자신들의 재앙은 바로 불순종에 원인이 있음을 깨닫고 참회와 갱신에로 나아갈수 있었을 것이다(Dentan).

(주); 돌이켜 - '돌이켜'는 긍정적 의미로 '회개'를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슈브'는 어느 경우로 쓰이든 항상 소극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을 같이 포함하고 있다(8:35). 본절에서도 '돌이킴'의 구체적 내용이 (1)소극적인 면:하나님을 좇지 않는 것과 계명및 법도를 지키지 않는 것, (2) 적극적인 면:다른 신을 좇아 섬기고 숭배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본절의 '돌이킴'은 단지 불순종 정도가 아닌, 전적인 배신을 말하는 것이다(J.Hammond).

(주);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 여기서 우상 숭배는 망국(亡國)의 병으로 지적되고 있다. 즉 이스라엘 패망의 직접적 원인을 강대국의 침공이나 국력의 미비 등에서가 아닌, 우상 숭배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은 신명기야말로 여호와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줄독 강조하기 때문이다(신 4:35,39;5:26;6:4;10:17;32:39). 즉 신명기는 그 유일하신 하나니께서 만 백성 중 이스라엘을 택하사 당신 백성으로 붙드시는 독톡한 계약 관계를 강조한다(Walker). 이러한 데서 우상숭배가 왜 그토록 심각한 범죄로 주목받는지 이해할 수 있다. 즉 우상숭배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고 있는 독특한 계약 관계를 뿌리째 흔드는 영적 간음 행위였던 것이다(신 7:4,25,26; 12:31; 13:14; 18:12; 20:18; 27:15). 그러므로 이러한 시각이 열왕기에서도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왕하 17:16-18;23:26,27).

(주); 다른 신 - 이스라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본래 알지 못할 뿐아니라 결코 좇아 섬겨서는 안되는 이방의 온갖 우상들을 가리킨다(신 6:14; 11:28;13:2).

성 경: [왕상9:7]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주); 끊어 버릴 것이요 - 기본 동사 '카라트'(*)는 하나님과의 교제 및 언약 관계로부터 단절되거나 제외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우상 숭배 죄와 관련되어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주); 던져 버리리니 - 이에 해당하는 기본동사 '쉴라흐'(*)는 '관계를 끊어 버리다', '해고하다'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왕하 24:20). 그리고 이 말은 주로 한 남자가 아내와 이혼하는 상황을 의미할 때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그러므로 후일 선지자들은 남편되시는 하나님께서 신실치 못한 아내인 이스라엘을 버리시는 상황을 경고할 때 종종 이 말을 사용하였다(Patterson). 한편, 성전의 가치는 하나님과의 관계로 말미암아갖게 되는 거룩성에 있다(8:64). 그런데 본절에서처럼 하나님이 관계를 끊고 던져 버린 성전은 보통 건물과 하등 다를 바가 없게 된다. 후일에 실제로 솔로몬 성전은 우상숭배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증한 범죄로 말미암아 B.C. 586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약탈당하고 파괴당하고 만다(왕하 25:8,9).

(주); 속담거리 - '속담거리'로 번역된 '마솰'(*)은 격언, 풍자 등의 의미외에도 교훈이란 뜻도 있다. 따라서 본절처럼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 가운데 '마솰'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경멸, 조롱 이상의 것을 말한다. 즉 이스라엘의 역사가 모든 민족에게 하나의 본보기 또는 객관적 교훈이 된다는 것이다.

(주); 이야기거리 - '이야기거리'로 번역된 '쉐니나'(*)는 '찌르다' 또는 '날카롭게 하다'란 뜻의 '쇠난'(*)에서 파생되었다. 따라서 이 말은 신랄하게 '조롱하는 말'이란 뜻이 강하게 암시되어 있다(시 64:3). 이처럼 모든 민족의 조롱거리가 되는 민족의 처지란 참으로 비참한 것이 아닐 수 없다(신 28:37;왕하 17:23).

성 경: [왕상9:8]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주); 이 전이 높을지라도 - 이 표현이 무얼 의미하는지 좀 모호하다. 그러나 '높다'(*, 엘욘)는 말은 대체로 '명성'이 드높다는 뜻일 것으로 본다(J.Hammond). 문제는 어떤 의미의 명성인가 하는 점이다. 즉 비참한 본보기로서의 명성인가 아니면 번영의 표본으로서의 명성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 경고가 솔로몬과 당시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형식과 시점을 취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때의 성전은 번영의 상징으로서 드높은 명성을 가졌을 때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이 성전의 명성이 지금은 이렇게 드높지만 결국에는....'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다.

(주); 놀라며 - '놀라며'에 해당하는 '솨멤'(*)은 어떤 외적 광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내적 반응으로서의 '공포'와 '충격'을 가리킨다. 그런데 '솨멤'은 '황폐하다'는 뜻을 지닌 '솨맘'에서 온 말이다. 그리고 이 '솨맘'은 원래부터의 황폐가 아니라 어떤큰 재난의 결과로서의 황폐를 의미한다. 성경에서는 보통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생긴 황폐를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의 '놀라움'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철저히 황폐케된 성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생기는 '놀라움'을 가리킨다.

(주); 비웃어 가로된 - '비웃다'에 해당하는 '솨라크'(*)는 조소(嘲笑)의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이다(렘 19:8;욥 27:23;애 2:15,16).

(주); 무슨 까닭으로...이같이 해하셨는고 - 신 29:24 주석 참조.

성 경: [왕상9:9]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주);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자기 하나님 여호와 - 마치 자기 부모를 고르거나 대체할 수 없듯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독특한 관계는 바로 출애굽에서 비롯된다. 마치 자식을 낳듯 여호와께서는 출애굽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자기백성으로 탄생시킨 분이시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고유한 관계는 포기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주); 다른 신...섬기므로...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심이라 -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인 반면에(마 22:37,38), 우상 숭배는 크신 구속의 은총을 업신여기고 저버리는 가장 크고 가증스러운 죄악이다(출 20:3).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거듭 경계하셨다(출 20:3;신 5:7;겔 14:4-6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전역사를 통해 우상이 근절된 때란 실로 드물며, 특히 열왕들의 우상숭배는 남,북 왕국 멸망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왕하 17:16-18;23:26,27).

(주); 부종(附從)하여 - 이는 '집착하다','달라붙다'는 뜻을 지닌 '다바크'(*)를번역한 말이다. 마치 신체의 각 부분이 결합해 있듯 지극히 밀착된 관계를 말한다. 특히 연인(戀人)에 대해 연연하고 집착하는 상태를 묘사할때 사용된다(창 2:24;34:3;왕상 11:2). 그런데 이 '다바크'는 신명기에서 하나님을 따르도록 권면할 때 자주 사용된 동사이다(신 11:22;13:4;3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다른 신들에 '다바크'함으로써 하나님의 질투의 진노를 격발(激發)케 하였다(신 6:15).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동사의 사용에서 하나님이 진노하신 이유를 쉽게 수긍할 수 있게 된다.

성 경: [왕상9:10]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과 히람의 교역]

(주); 이십 년 만에 - 성전 건축에 7년, 왕궁 건축에 13년, 도합 20년이다(6:28;7:1).

성 경: [왕상9:11]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과 히람의 교역]

(주); 갈릴리 땅의 성읍 이십 - '갈릴리'는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 지역이다(솔로몬 당시의 갈릴리는 오늘날 갈릴리 지역의 북쪽 일부지역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경계는 모호하고 일정치 않았다. 뚜렷한 경계가 확정된 것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을 때부터였다(Clark). 역사상이 지역은 끊임없이 여러 민족이 이주해 들어오고 또한 나갔다. 그래서 이스라엘 주민의 숫자가 다른 지역에 비해 적었다. 주로 베니게인들과 가나안 본토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솔로몬 당시 갈릴리 지역은 히람의 나라 두로와 국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지역의 성읍 이십을 히람에게 주었으므로 국경선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주); 히람에게 주었으니 - 솔로몬이 왜 이 성읍들을 히람에게 주었는지 분명치 않다. 하지만 히람이 건축 자재를 제공한 것과 연관되었다는 점은 문맥으로 미루어 확실하다. 그러나 솔로몬의 이러한 성읍 양도는 단순히 히람의 호의에 답례하는 예물과 같은 성격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단순한 선물이라면 히람이 그토록 불평을 한 까닭이 쉽게 납득이 가질 않기 때문이다(13절). 그러므로 혹자는 두로 왕 히람이 공급한 건축 자재의 물량이 엄청났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보충으로서 영토의 일부를 양도해야 했다고 보기도 한다(Dentan).

성 경: [왕상9:12]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과 히람의 교역]

(주); 눈에 들지 아니하여 - '눈에 들다'에서 특별히 '들다'로 번역된 '야솨르'(*)는 원래 '편편하다','곧다'란 뜻이다. 그러므로 원문대로 직역하면 '눈에 곧지 아니하여'가 된다. 결국 이 말은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으로부터 받은 성읍들이 자신이 제공한 온갖류의 풍부한 건축 자재의 대가로서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했음을 암시한다. 혹자는 두로 왕 히람이 원한 땅은 해안 지역인 '악고'(Acco) 땅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Rawlinson). 아니면 옥수수 등을 재배할 평지 지역을 원했을 것이다(J.Hammond).그러나 히람에게 주어진 땅은 산악 지대의 성읍이었으므로 실망을 금치 못한 것이다(Porter).

성 경: [왕상9:13]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과 히람의 교역]

(주); 나의 형이여 - '나의 형'(*, 아히)이란 말은 당시 왕들끼리 대화할 때 상호 사용하는 호칭이다(Keil). 29:32에서 아합이 벤하닷에게 이러한 호칭을 사용하는 예를 볼 수 있다.

(주);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하뇨 - 원문에는 의문 대명사 '마'(*)가 있다. 그러나 의문을 표시하는 게 아니고 불평과 경멸을 표시하는 어투이다. 공동 번역은 "당신이 나에게 준 성읍들이 이게 뭣니까?"로 번역하여 원문의 어감을 잘 전해 주고 있다.그런데 왜 히람이 이 성읍들을 불만스럽게 여겼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추측컨대, (1) 해양 민족인 두로에게 있어 갈릴리 산악 지대의 성읍은 무가치하게 보였거나, (2)혹은 그 성읍들 자체가 메마르고 척박한 지역이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주); 가불 - '가불'(*, 카불)은 '별로 좋은 점이 없는','무가치한'이라는 뜻을 지닌 베니게어에서 온 말이다(Josephus,Beek). 혹자는 '경계' 또는 '국경지역'이란 뜻으로 보기도 한다(Gesenius). 아무튼 '가불'은 '악고' 동쪽 약 13Km 지점에 위치한 현재의 '카불'일 가능성이 크다(Robinson). 그런데 대하 8:2에 의하면, 히람은 이 성읍들을 솔로몬에게 반환하였다. 그래서 원래부터 이 성읍들은 '담보로서' 히람에게 주어졌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Keil).

(주); 오늘까지 - '오늘까지'(*, 하욤 하제)는 본절 외에도 8:8;9:21;12:19;왕하 8:22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각 절마다 '오늘까지'가 정확히 언제인지 결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열왕기는 솔로몬의 왕위 계승으로부터 여호야긴의 석방까지 대략 400여 년에 걸친 역사(B.C. 971-562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종 기록은 여호야긴이 석방 이후나 포로 귀환 이전(B.C. 561-537년)일 것이다. 그러므로 각 절에서 '오늘까지'란 표현은 단지 그 기록에 참조된 사본의 표현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다(Hammond).

성 경: [왕상9:14]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과 히람의 교역]

(주); 히람이...보내었더라 - 히람이 금을 보낸 까닭은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10-14절에서 솔로몬과 히람의 거래 관계가 좀 모호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분명한 설명을 위해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1) 건축으로 탕진한 국고를 충당키 위해 솔로몬이 갈릴리 성읍들을 담보로 히람에게 빌어온 금이라는 견해(Sanda). (2) 본절의 금을 11절의 금과 동일시하여, 앞서의 갈릴리 성읍들은 바로 이 금값을 지불한 것이라는 견해(Benzinger). (3) 아예 본절을 수정하여 금을 보낸 사람은 히람이 아니고 솔로몬이라는 견해(Gratz). 이 경우는 솔로몬이 갈릴리 성읍을 되찾기 위해 그 값을 치룬 것이라는 주장이 된다. 이중 첫번째와 두번째의 견해가 일리 있는데, 어쨌든이 무렵 솔로몬의 재정 상태는 오랜 건축 사업으로 말미암아 썩 좋지는 않았던 듯하다.

(주); 금 일백 이십 달란트 - 고대 이스라엘의 화폐 가치상 금1달란트(talent)는 3,000세겔(shekel)에 해당되는데, 대략 34.27kg의 무게를 지녔다. 참고로, 당시 은 30세겔은 장정 한 사람의 노예값이었는데, 금세겔은 은세겔의 15배 가량 되었다. 따라서 금 1달란트는 은 45,000세겔에 해당되는 값어치를 지녔다<성경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및 월력>.

성 경: [왕상9:15]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건축 사업]

(주); 밀로(*, Millo) - '밀로'란 명칭은 '채우다'(*, 말레)란 뜻에서 파생된 말로, 곧 예루살렘 성읍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인 북방의 방어를 위해 북동쪽 또는 북서쪽 지역에 '흙과 돌로써 채워 세워놓은 성채(城砦)'를 가리킨다(Keil,Mitchell). 원래 이곳은 여부스인들의 성채였으나 다윗이 이를 정복하였다(삼하 5:6-9). 그리고 다윗은 이곳 밀로에서부터 성을 쌓아 수도 예루살렘의 성벽을 건축하였다(대상 11:8). 그런데 솔로몬은 바로 이곳 밀로를 증축 또는 수축했던 것이다(24절). 삼하 5:9 주석참조.

(주); 예루살렘 성 - 다윗은 여부스족속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을 빼앗아 밀로와 예루살렘성을 건축한 바 있었다(삼하 5:9). 그러나 그 당시 다윗의 건축은 시온 산의 고지대 지역을 중심으로 성벽을 쌓았기 때문에, 솔로몬은 수도 방어를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하여 저지대 부분까지 성벽을 확장, 증축했던 것이다. 아울러 다윗의 때로부터 근 50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이전에 쌓은 성벽을 튼튼히 수축하기도 했을 것이다(11:27).

(주); 하솔(*, 하초르) - '울타리를 둘러 친 땅'이라는 뜻이다. 갈릴리 호수의 북쪽으로 16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하솔(Hazor)은 북쪽으로부터 뻗어내려오는 두 주요도로가 합쳐지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따라서 솔로몬은 이 언덕에 성채를 쌓아 북방 국경 및 훌레 평야를 방어하는 요새로 삼았다(Yadin). 이후 하솔은 B.C. 8세기경 디글랏빌레셀 3세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 이스라엘의 북방 국경을 방어하는 주요 성읍이 되었다. 여호수아 11:10 주석참조.

(주); 므깃도 - 에스드렐론과 샤론 평원 사이에 위치한 군사적 요새지이다. 또한 이곳은 팔레스틴 내륙에서 베니게에 이르는 길과 애굽에서 수리아,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길의 교차점으로서 주요 교통로이기도 하다(삿 5:19;삼상 31:1;왕하 23:29). 따라서 이스라엘 역사상 이곳에서는 많은 전쟁이 치루어졌는데, 이런 맥락에서 계시록은 이곳 므깃도를 그리스도께서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멸망시키실 최후의 큰 전투 장소, 곧 아마겟돈 전쟁의 무대로 묘사하고 있다(계 16:16). 여호수아 12:21 주석 참조.

(주); 게셀 - 이곳은 예루살렘과 욥바 중간의 팔레스틴 평지에 있는 성읍이다. 원래 '게셀'(Gezer)에는 가나안인들이 거주하였으나 애굽의 바로가 빼앗아 솔로몬에게 주었다(16절). 이는 솔로몬의 아내인(3:1) 자기 딸을 위한 일종의 지참금이었다(Hamilton).한편 솔로몬은 이곳에 요새를 구축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게셀은 이스라엘의 이후 '게셀'은 마카비 시대까지 주요 군사 요충지가 되었다. 오늘날의 위치는 '텔 엘 예셀'(Tell el-Jezer)로 추정된다. 여호수아 10:33 주석 참조.

성 경: [왕상9:16]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건축 사업]

(주); 전(前)에 - 언제 무슨 이유로 어떻게 바로가 게셀을 공격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 일이 솔로몬과 바로의 딸이 결혼하기전후(B.C. 970년 경)에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은 분명할 것이다. 한편 본절은 15,17절의 '게셀'을 설명하기 위한 삽입절이다.

(주); 불사르고...죽이고 - 원래 '게셀'(Gezer)은 가나안 정복 후 에브라임 지파에게 분배되었던 성읍이었으나(수 16:3), 당시 그곳에 거주하던 가나안 족속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솔로몬의 때까지 정복되지 못한 상태였다(수 16:10). 그런데 바로가 이 성읍을 정복하여 자기 딸의 결혼 예물(지참금)로 솔로몬 왕에게 주었다. 한편, 애굽 왕 바로가 게셀을 정복할 때 이처럼 주민을 멸절시키고 불을 지른 것은 보통의 전투 행위가 아니라 어떤 보복을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Hammond). 데니우스(Thenius)는 게셀 주민들이 애굽의 해안 지역을 노략, 해적하였으므로 바로가 그 일에 대해 보복하였다고 주장하나, 확실치는 않다(Keil).

성 경: [왕상9:17]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건축 사업]

(주); 아래 벧호론 - 벧호론(Bethhoron)은 깊은 계곡에 의해 동서로 구분된다. 이중 동쪽 지역을 '윗 벧호론',서쪽 지역을 '아래 벧호론'이라 한다. 왜냐하면 동쪽 지역은 해발525m,서쪽 지역은 해발 315m이기 때문이다(Reed). 그런데 이 벧호론은 게셀과 함께 블레셋에 대한 방어 진지였다. 즉 이곳은 베냐민, 유다, 에브라임 지역을 방어하는 길목이었다(Keil). 따라서 솔로몬은 이곳을 더욱 공고히 요새화시켰던 것이다. 한편, 역대하 8:5에 의하면 솔로몬은 또한 '윗 벧호론'까지 증축했음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10:10;16:3 주석 참조.

성 경: [왕상9:18]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건축 사업]

(주); 바알랏 - '여주인'이라는 뜻이다. 원래 단 지파의 영역이며 깁브돈과 여훗 사이에 위치했었다는 기록이 있다(수 19:44,45).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요세푸스는 이곳이 게셀 근처라 했다(Morton).

(주); 다드몰 - 이곳에 다메섹과 유프라테스 강 상류의 중간 지역에 위치한 전략상 요충지이다. 후대(희랍과 라틴 시대)에는 '팔미라'(Palmyra)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이곳은 많은 정원과 종려나무 숲들이 있어 쾌적한 오아시스 지대 였다고 한다(Owen). 그러므로 솔로몬은 새로 점령한, 왕국의 북동 지역을 지원할 국고성을 다드몰에 건축하였던 것이다(대하 8:3,4).

성 경: [왕상9:19]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건축 사업]

(주); 국고성(國庫城) - 국고성(the store city)은 나라에 필요한 물품들-군량미, 왕국의재산, 구제용 식량 등-을 비축하는 장소이다(창 41:35;출 1:11;대하 17:12;32:28). 따라서 이러한 국고성은 물품의 저장 뿐 아니라 방비도 요구되었으므로 요새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주); 병거 성들 - 4:26 주석 참조.

(주); 마병의 성들 - 솔로몬이 거느린 마병의 수는 만 이천 명이었다(10:26). 그런데 '마병'으로 번역된 '파라쉬'(*)는 '말' 또는 '마병'으로 번역가능하다. 만일 '말'로 읽게 되면 '파라쉬의 성들'은 곧 마굿간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반면 '마병'으로 읽는다면 그것은 기병들의 주둔지가 되겠다. 그러나 이 둘에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말과 마병이 아주 동떨어진 곳에 제각기 위치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처럼 요새화된 국고성과 여타 전쟁용 병거 및 말과 기병대는 주로 북방 국경 지대에있었던 것같다(대하 8:4;16:4). 왜냐하면 당시 솔로몬 왕국에 위협이 될만한 세력은 북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 경: [왕상9:20]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건축 사업]

(주); 아모리 사람과...남아 있는 자 - 이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다 쫓아내지 못했던 가나안 토착민들이다(삿 1:21-36). 가나안 정복 전쟁 이후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주하여 살면서 여러 가지 사역에 종사 하였다. 즉 노예 신분으로서 이스라엘 중에 함께 지내게 된 것이다.

성 경: [왕상9:21]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건축 사업]

(주); 노예로 역군을 삼아 - 20년에 걸친 솔로몬의 건축 공사는 필연적으로 거대한 노동력이 요구되었다. 본절은 솔로몬이 어떻게 그만한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즉 솔로몬 왕은 옛 가나안 토착민의 자손들을 동원하여 강제 노역을 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동원된 가나안인 역군들의 수는 15만명 이상이었다(5:15).

(주); 오늘까지 - 13절 주석 참조.

성 경: [왕상9:22]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건축 사업]

(주); 오직 이스라엘 자손은...노예를 삼지 아니하였으니 - 이스라엘은 원래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구속의 백성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소유가 될 뿐, 다른 사람의 노예일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레25:39-43). 왕과 백성의 관계라 해도 이러한 형제애의 바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신17:14-20). 본절은 솔로몬이 막대한 노역 동원 중에서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 했었다는 점을 애써 보여 주고 있다.

(주); 저희는 군사와...장관이 됨이었더라 - 가나안인들에 비해 이스라엘 자손들은 특권적 지위와 자유를 누렸음이 말한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부역(賦役)이 면제되지는 않았다. 비록 좀더 자유롭고 대가를 지불받으며 편안한 방식이긴 했지만, 성전건축 때 이스라엘 자손 삼만이 동원되었다(5:13,14). 그런데 아마도 갈수록 이스라엘 자손의 노역도 과중하게 부과되었던 것 같다. 노역(勞役) 사무를 총괄하는 감역관의 존재와 솔로몬 사후 르호보암을 향한 백성들의 호소 및 탄원이 이를 입증해 준다(12:4, 18).

성 경: [왕상9:23]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건축 사업]

(주); 역사(役事)를 감독하는 두목 오백오십 인 - 여기 550명의 감독은 상급 감독으로서 이스라엘인 250명, 가나안인 300명으로 구성되었다. 5:16 주석 참조.

성 경: [왕상9:24]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건축 사업]

(주); 바로의 딸 - 3:1 주석 참조.

(주); 다윗성에서부터 올라와 - 3:1 주석 참조, 한편, 그런데 그때까지 다윗 궁에 거하던 바로의 딸을 굳이 따로 마련한 궁으로 데려온 이유를 우리는 역대하 8:11에서 찾아 볼수 있다. 즉 다윗이 살던 궁은 법궤가 머무렀던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이방 여인인 바로 딸의 거처로서는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되었던 것이다.

(주); 밀로를 건축하였더라 - 솔로몬은 바로의 딸, 곧 왕비를 위한 별궁을 짓고 왕비의 거처를 그곳으로 옮긴 후 곧이어 '밀로'를 건축하였다. 그 이유는 (1) 왕비의 이전으로 다윗 궁이 비어진 상태였으므로, 밀로의 건축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거나(Hammond)(2) 또는 왕비의 별궁 건축에 투입된 노동력을 밀로 건축에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Keil). 한편 '밀로'(Millo)에 대해서는 15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왕상9:25]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제사]

(주);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단 - 역대하 8:12에는 '낭실 앞에 쌓은 여호와의 단'으로 나온다. 곧 성전 앞뜰의 '번제단'을 가리킨다.

(주); 해마다 세 번씩 - 대하 8:13에 의하면, 이 세 번의 제사는 일년의 세 절기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드렸다. 그런데 '무교절'은 출애굽을 기념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봄 축제이다. 원래 무교절과 유월절은 약간 차이가 있다. 즉 유월절은 1월 14일(유대 종교력), 어린양을 제물로 잡는 첫날을 가리키며, 반면 무교절은 그 다음 7일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따로 구별하지 않고 이 절기 전체를 '무교절' 혹은 '유월절'로 통칭(通稱)한다(출 12:1-28). 한편 '칠칠절'(혹은 맥추절, 출 23:16)은 3대 절기 중 두번째 절기로서 일종의 수확제이다(레 23:21;민 28:26;렘 5:24). 처음 보리 벧 때부터 밀수확을 끝마치는 7주간이 끝난 다음 날이다. 신약의 '오순절'이 바로 이 날이다(Ryla-arsdam). 또한 '초막절'(장막절)은 3대 절기 중 세번째 절기로서 가을 축제이다(8:2).이 절기에는 광야에서 유랑하던 40년을 회상하면서 계약 갱신의 의식을 갖는다(출23:16;34:22;신 16:13,16). 그런데 이 절기는 순례 절기였다고 한다(Rylaarsdam). 즉 모든 백성들이 성소에 모이는 절기인 것이다(신 16:16;삿 21:16-19;삼상 1:3,21;왕상8:65,66). 레위기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를 참조하라.

(주); 이에 전(殿)역사가 마치니라 - 혹자는 이를 '불필요한 반복'이라고 보나(Montgome-ry), 많은 주석가들이 여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즉 일상적인 제사 기능이 발휘됨으로써 성전의 참다운 완성을 이루었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다(Bahr,Hammond). 곧 여기서는 원문의 '쉴람 에트 하바이트'(*)를 '성전을 완전하게 하다'또는 '성전을 완성된 상태에 두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다(Keil).

성 경: [왕상9:26]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무역]

(주); 엘롯 - '엘롯'(Eloth) 또는 '엘랏'(Elath,신 2:8)은 '에시온게벨'(Ezion - geber)과 더불어 홍해의 아카바 만 최북단에 위치한 2개의 주요 항구 도시인데(Winer), '에시온게벨'이 보다 윗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 두 항구도시는 전략적으로, 그리고 상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지였다.

(주); 에시온게벨 - 이곳은 홍해의 한 지류인 아카바 만의 상부에 위치한 항구이다. 이지역은 아카바 만의 상부에 위치한 항구이다. 이 지역은 일찍이 이스라엘이 모압 광야를 지날 때 진을 친 바 있었다(민 33;35,36;신 2;8). 그런데 솔로몬은 이곳에 항구를 건설하여 오빌과의 해상무역 기지로 삼았다. 고고학은 이 지역에서 솔로몬 시대의 건축 공법으로 이루어진 건물과 성벽을 발견하였다(Cohen).

(주); 배들을 지은지라 - 선박 제조에 있어 솔로몬은 당시 항해와 선박 건조 기술이 크게 발달한 베니게인들의 도움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좁은 해안 지대라는 국토의 지형적 조건이 베니게인들로 하여금 일찍부터 바다에 눈을 돌리게끔 했기 때문에, 솔로몬 당시 베니게인들의 항해와 선박 건조 기술은 매우 뛰어났다(Winer, 5:1,9). 한편 '베니게'는 당시 히람 왕의 통치하에 있었던 두로와 시돈 지역을 가리킨다.

성 경: [왕상9:27]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무역]

(주); 히람이...사공들을 솔로몬의 종과 함께 그 배로 보내매 - 역대하 8:18에 의하면, 히람이 솔로몬에게 보낸 것은 사공 뿐만 아니라 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상의 차이는 내용에 있어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들은 비록 솔로몬의 소유일지라도 그 제작은 히람이 의뢰를 받아 베니게인들의 기술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절과 역대기의 기록 사이에는 하등 모순이 없다.

(주); 바다에 익숙한 사공 - 역대하 8:18에는 '바닷길을 아는 종들'로 되어 있다. 솔로몬의 무역 선단은 일찍부터 해상 무역에 익숙한 베니게인들의 절대적인 도움을 입었다.

성 경: [왕상9:28]

주제1: [하나님의 언약과 솔로몬의 사업들]

주제2: [솔로몬의 무역]

(주); 오빌 - 오빌(Ophir)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많다. 크게 다음 다섯가지 주장이 있다. 즉 (1) 아라비아의 남서부 해안지역, (2) 아라비아의 동남부 해안지역, (3) 아프리카의 동북부 해안 지역, (4) 소아시아 해안지역, (5) 인도 해안 지역등이다. 이 중 마지막 견해인 '인도 해안 지역'이 가장 타당성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무역 품목들-금,은,상아,잔나비,공작 등-이 고대 인도 지역의 주요한 무역품들이다. (2)긴 항해길이 장거리 지점임을 암시한다(10:22). 그런데 인도의 봄베이(Bombay) 근처에 '수파라'(Supara)란 항구가 있는데, 바로 이곳이 '오빌'(Ophir)인 것같다고 학자들은 말한다(Jerom,The New Bible Dictionary). 이런 견지에서 70인역(LX-X)은 '오빌'(Ophir)을 '소피아'(*, Supara)라고 번역했다. 그렇지만 올브라이트(Albright)는 오빌을 아프리카 동북부 해안 지역으로 보았고, 패터슨(Patterson)은 아라비아 남서부 해안 지역으로 본다. 여하튼 이 지역은 고대 세계에 금의 산지로 유명했음이 분명하다(대상 29:4). 따라서 이스라엘은 오빌에서 많은 금을 수입하였는데, 정금이라고 하면 곧 오빌을 연상할 정도였다(욥 22:24;28:16;시 45:9). 솔로몬은 이 오빌에서 금,이외에도 백단목과 각종, 보석 등을 운반해 왔다(10:11).

(주); 금 사백 이십 달란트 - 역대하 8:18에는 '금 사백 오십 달란트'로 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는 보통 히브리 알파벳의 숫자 표기상 20(*)과 50(*)의 혼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된다(Bahr,Keil). 한편, 당시 금 한 달란트(talent)의 무게는 대략 34.3Kg이었고, 그 가치는 장정 1,500명의 노예값에 해당되었다.

(주);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 왔더라 - 솔로몬의 해상 무역은 그가 가진 부의 주요 원천 중 하나였다. 비록 본절은 해상 무역에 국한하여 소개했지만, 활발한 교역 활동은 솔로몬 시대의 특징이었다(10:2,11,22,28;대하 2:10;9:14). 이러한 활발한 교역 활동에는 평화 시대라는 요인 외에도 애굽,수리아,아라비아 등으로 통하는 주요 교역로에 자리잡고 있는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이점이 크게 작용했다. 한편, 이렇듯 활발한 통상교역은 이스라엘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즉 이제까지 지파 중심으로 농경과 목축에 주력하던 이스라엘에 상공업의 물결이 밀려들어옴으로써 도시 문화가 발달하게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지파 중심의 생활로부터 탈피하여 보다 체계적이고 대외적인 국가 조직의 재편을 가져왔다.

성 경: [왕상10:1]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을 방문한 스바 여왕]

(주); 스바 - '스바'(*, 쉐바)는 아라비아 반도 남서쪽 )지금의 예멘에 해당하는지역)에 위치한 셈족 국가로서 사베안(Sabaeans)왕국을 가리킨다(Keil). 이 나라는 그 위치상 이방세력의 영향에서 비교적 안전한 변방 지대여서, 비옥한 초승달(theFertile Crescent)지역의 권력투쟁으로부터 안전을 유지할 수 있었고, 따라서 독자적인 정치와 경제 문화를 가질 수 있었다. 또한 무엇보다 이 나라는 고대 근동에서 중요한 무역 기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즉 그 위치 때문에 근동 북방의 여러 나라들 및 아프리카, 인도, 지중해 국가들은 스바를 통하여서만 향료, 보석, 황금등을 수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Beek; 욥 6:19; 시 72:10,15; 사 60:6; 렘 6:20; 겔 27:22,23;38:13). 고고학적 발굴 결과, 이 나라의 수도 역시 '스바' - 헬라명으로는 '마리아바'(*)-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 여왕 -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4세의 원정 기록에는 B.C732년 경의 원정 당시 아라비아의 한 여왕으로부터 공물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Harvey). 그러고 보면 당시 아라비아에는 여왕이 더러 있었던 듯하다. 그 밖에도 주전 7-8세기 경의 앗수르 원정 기록에는 아라비아의 여왕이 5명이나 나온다(Montgomery). 한편 본문의 스바 여왕은, 아라비아의 전설에 의하면 '발키스'란 이름으로 나타나고 아비시니아(Abyssinia)전설에 의하면 '마퀴다'란 이름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스비 여왕은 솔로몬을 통해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이 아비시니아 왕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전설까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 입증되지는 않았다(Winer, Patterson).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 '이름'에 담겨있는 의미를 고려할 때, 이 말은 곧 '여호와의 은혜로운 활동에 힘입어'라는 뜻이다(8:16). 곧 솔로몬의 명예의 근원은 여호와의 은혜로우신 사역(3:12,13)의 결과라는 의미이다.

(주); 솔로몬의 명예를 듣고 와서 - 해상 무역의 발달은 솔로몬 왕국의 부강함과 아울러 솔로몬의 탁월한 지혜의 명성을 먼 이방나라에까지 미치게 하였을 것이다. 즉 솔로몬의 명성은 다메섹이나 가사로 가는 도중 정기적으로 이스라엘을 통과했던 아라비아 무역상들에 의해 스바 여왕의 귀에 들어간 듯하다(Patterson). 여하튼 여기서 우리는 스바 여왕이 솔로몬을 방문한 목적을 크게 다음 두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소문으로만 듣던 솔로몬의 명예와 지혜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고대 아라비아인들은 지혜로 유명한 족속이었으며, 동방 전설에 의하면 특히 당시 스바 여왕은 지혜의 여왕으로 이름나 있었다고 한다. 여하튼 후일 예수께서는 본문의 사건을 인용하심으로써(마 12:42; 눅 11:31). 당시의 완악한 유대인들에게 지혜와 의를 적극적으로 사모하고 추구할 것을 촉구하셨다. 두번째로, 스바 여왕은 상업적인 통상관계를 맺기 위해서 방문했을 수 있다. 당시 솔로몬은 홍해 근처에 '에시온게벧'항구를 가지고 홍해와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활발한 무역 활동을 하고 있었고(9:26-28; 10:11,20-28), 스바 또한 금, 향품, 보석 등을 많이 수출하는 나라였다(사 60:6; 렘 6:20; 겔 27:22). 따라서 스바 여왕은 이스라엘과 통상을 맺어 남아라비아에까지 확장된 솔로몬의 무역권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자 방문하였을 것이다.

(주); 명예 - '명예'(*, 쉐마)는 '듣다'(*, 솨마)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본래 이 단어는 소식이나 평판, 소문 등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본절에서는 멀리스바에까지(약 2,400Km) 퍼진 솔로몬의 명성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명성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활동에 힘입은 결과였다. 즉 솔로몬은 즉위 과정이나 통치 방법, 대외 정책 등 모든 면에서 여호와의 도우심을 경험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대내외적으로 큰 명예를 누릴 수 있었다. 이렇듯 솔로몬의 모든 부귀와 명예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었으므로, 겸허하게 주를 의지하는 한 그러한 영예는 지속될 것이었다. 그러나 영예의 절정에서 솔로몬은 그만 여호와의 길로부터 벗어나고 말았으며, 그로 인해 이스라엘 역사에 크나큰 곤경이 도래하게 되었다(11:4-13).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주); 어려운 문제 - '어려운 문제'로 번역된 '히다'(*)는 '수수께끼' 또는 '비유'의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비유적 속담들이나 문제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히다'는 지혜에 대한 시험(test)으로 종종 사용된다. 왜냐하면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만이 '히다'를 다루고 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잠 1:5,6; 시 49:1-4). 이러한 게임의 양식은 어떤 의미가 암시된 문제를 제시하면 푸는 자가 그 숨은 의미를 발견해 내야 하는 것이다(삿 14:14,18). 따라서 그것은 재미있는 오락이었고 동시에 어떤 사람의 기지 및 지혜를 시험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한편, 이러한 수수께끼는 아라비아 부족에게는 세련된 대화 방식의 하나였다고도 하는데(Harvey), 사실 아라비아 문학에는 이러한 수수께끼와 비유적 속담들이 풍부히 깃들어있다(Burckhardt). 그런데 여기서 스바 여왕은 '어려운 문제'를 통해 단순히 언어적 유희나 정신적 재치만을 시험한 것은 아닌듯하다. 그녀는 사실 어려운 문제 속에 숨겨진 심오한 진리를 발견코자 나름대로 진지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솔로몬을 방문, 시험했던 것 같다(마 12:42).

성 경: [왕상10:2]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주제2: [회복을 비는 마지막 간구]

(주); 예루살렘에 이르니 - '예멘'(Yemen)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2,400Km나 되는 먼길이다. 스바 여왕이 이러한 먼 길을 여행하게 된 데에는 무역로의 개척과 통상 협정을 통한 보호 요청의 동기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Beek, Dentan). 그러나 본절은 오직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흠모만을 방문 동기로 제시한다. 그리고 훗날 예수님은 스바 여왕이 지혜에 대한 갈망으로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 온 것을 한 귀감으로 말씀하셨다(마12:42; 눅 11:31).

(주); 수원(隨員)이 심히 많고...약대에 실었더라 - 스바의 경제적 부요를 짐작케 하는 표현이다. 당시 스바는 해로 및 육로 무역을 통해 아라비아의 여러 국가들 중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고 한다(Winer). 즉 스바는 선박을 통한 해상 무역 뿐 아니라, 낙타를 이용한 대상(隊商)무역으로도 육지 무역의 중요한 위치를 갖게 된 나라이다. 본절은 바로 그러한 특징을 보여 주고 있는데, 즉 물품의 운반과 보호에 요구되는 많은 수행원과 낙타의 이용이 그것이다.

(주); 향품과...금과 보석 - 아라비아 향품은 아라비아의 최고급 특산품으로 속담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였다(Herodotus). 그리고 '금'은 현재는 발견되지 않으나 당시에는 아라비아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Strabo, Diodorus). 어쩌면 '금'은 토산품이 아니라 무역품일 가능성도 크다(J.Hammond). '보석'은 지금도 아라비아 지역에서 많이 나오는데, 당시에는 보다 다양한 종류가 발견되었다고 한다(Pliny).

(주); 자기 마음에 있는 것 - 공동번역은 '미리 생각하였던 문제들'로 번역하였다. 물론이 문제들은 수수께끼의 형식을 취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수수께끼라고 해서 단순한 말의 유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 등의 원리와 법칙을 탐구하는 고대 세계의 지혜의 방식이었다. 따라서 자연 현상에 대한 주제는 물론이거니와 종교적인 주제의 문제들도 많이 숙고되었다. 스바 여왕의 수수께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J.Hammond). 한편 지혜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당시 고대 세계에서는 보편적이었다고 한다(Montgomery).

성 경: [왕상10:3]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회복을 비는 마지막 간구]

(주); 은미하여 - '은미(隱微)하여'의 어근 '알람'(*)은 '숨겨지다', '가리워지다'는 뜻이다. 사실 수수께끼는 표면에 드러나 있는 의미 이상의 것을 지니고 있다(Blank). 그 참된 의미는 애매하고도 간결한 표현으로 가리워진 채 문제를 푸는 사람 앞에 제시된다. 그러므로 그 덮은 베일을 벗겨내지 못하는 한 그 참된 의미는 계속 숨겨진 것, 가리워진 것으로 남는다.

(주); 대답지 못한 것이 없었더라 - 본절에서 '대답하다'는 '풀다', '알게 하다'는 뜻을 지닌 '나가드'(*)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이 '나가드'는 기본적으로 '어떤 것을 눈에 잘 띄게 높이 두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본절의 '대답'은 솔로몬이 주어진 문제의 숨겨진 의미를 척척 끄집어 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확연히 깨우치게 함을 뜻한다. 한편, 이 단어는 요셉과 다니엘의 꿈 해몽과 관련하여 사용된 말이기도 하다(창41:24; 단 5:12).

성 경: [왕상10:4]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회복을 비는 마지막 간구]

(주); 솔로몬의 모든 지혜 - 4:29-49주석 참조. 특히 감추인 것을 밝히 드러내는, 수수께끼를 푸는 솔로몬의 막힘없는 지혜가 스바여왕을 놀라게 했을 것이다.

(주); 그 건축한 전 - 역대하 9:3에 의하면, 본절의 '전'은 성전이 아니고 궁전이다. 한편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스바 여왕은 특히 레바논 나무궁(7:2-4)에 경탄하였다고 한다(J. Hammond).

성 경: [왕상10:5]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회복을 비는 마지막 간구]

(주); 그 상의 식물과 - 4:22,23을 보라. 그 신복들의 좌석 - '좌석'으로 번역된 '모솨브'(*)는 '회합'의 뜻이 있다.예를 들어 연회 석상에서의 자리, 또는 장로들의 회합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삼상20:18,25; 대하 9:4; 시 107:32). 그러므로 '신복들의 좌석'은 단순히 빈 자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식사로 모인 공직자들의 배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주); 신하들의 시립(侍立)한 것 - '시립한 것'(*, 마아마드)은 직책에 따라 제장소에 서는 것을 말한다. 즉 솔로몬의 신하들이 지위와 임무에 따라 도열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주); 술 관원들 - 왕의 술 시중을 드는 관리로서 특별히 왕의 신임을 받는 자들만이 그 자리에 임명받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술 관원은 쉽사리 왕을 시해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Wolf). 그런데 이 술 관원의 우두머리는 단지 명목상 술 시중을 들 뿐 실제로는 왕과 친분이 있는 고위 관리의 직책이었다.

(주);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는 층계 - 70인역(LXX)을 비롯한 고대 역본들은 이 구절을 '여호와의 전에서 드리는 번제'로 번역한다. 왜냐하면 (1)'올라'(*)는 '층계'로 번역될 수도 있지만, 더 많은 경우에 '번제'로 사용되었고(창 8:20; 출 29:18; 레3:5; 9:17; 민 28:19; 왕상 3:4; 8:64; 9:25). (2) 또한 '올라가다'(*, 알라)란 말은 '드리다'는 뜻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삼상10:8; 대상16:40; 겔 43:18). (3) 스바여왕을 경탄시킬 만한 요소는 단순한 층계보다는 솔로몬의 엄청난 규모의 번제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역대기의 병행 구절(대하 9:4)과 겔40:26의 기록에 근거하여, 문맥상 본문 그대로 '층계'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것 같다(J.Hammond). 왜냐하면 이 '층계'는 왕궁에서 성전으로 올라가는 특별한 계단으로서 매우 예술적으로 꾸며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Keil, Bahr, Winer, Ewald).

(주); 정신이 현황하여 - '현황'(眩慌)이란 정신이 어지럽고 황홀함을 뜻한다. 원문의 표현대로는 '잠시 동안 그녀 안에 루아흐'(*, '정신' 또는 '영')가 있지 않았다'이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해 진격할 당시 가나안 거민들의 당혹과 놀람의 상태를 묘사할 때 사용된 말이기도 하다(수 2:11; 5:1). 즉 어떤 상황이나광경이 사람의 혼을 뺄 정도로 굉장함을 말하는 것이다. 공동번역은 '넋을 잃을 정도로 감탄하였다'로 번역하여 비교적 원문의 뜻을 잘 전해 주고 있다. 한편, 여기서 스바 여왕이 이토록 감탄하고 놀란 이유는 단순히 건물의 웅장함이나 규모의 거대함 등 외형적인 면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솔로몬의 지혜로운 통치로 말미암은 왕국의 체계적인 조직과 질서 정연함 등 내부적인 면이 더욱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C.F Bumey).

성 경: [왕상10:6]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회복을 비는 마지막 간구]

(주); 내 나라에서...들은 소문 - 4:31,34을 참조하라. 한편, 여기서 특히 '소문'(*, 다바르)은 어떤 행적에 대한 보고를 의미하기도 한다(대상 29:29). 날로 발흥(發興)하는 이스라엘의 번영상 및 그 나라의 지혜로운 통치자 솔로몬에 대한 이야기는 멀리 스바에까지도 보고되었다.

(주); 진실하도다 - '진실'(*, 에메트)은 '견고'란 뜻이 있다. 그리고 이 말은 '뒷받침하다'(*, 아만)는 말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므로 스바 여왕의 이 말은 소문이 실상으로 뒷받침되어 견고하게 확증되었다는 뜻이다.

성 경: [왕상10:7]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회복을 비는 마지막 간구]

(주); 믿지 아니하였더니 - 스바 여왕은 들려온 소문이 분명 과장되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침소 봉대(針小棒大), 즉 하찮은 일도 크게 불려서 전달되는 소문의 속성을 감안할 때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 목도(目睹)한즉 - 즉 눈으로 직접 보니,

(주); 절반도 못되니 - 보통 귀에 들린 소문에 비해 눈으로 목격하는 실상은 하찮은 것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을 뒤엎고 소문이 실상에 오히려 못미친다고 말함으로써, 스바 여왕은 찬사의 뜻을 더욱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주); 당신의 지혜와 복이...소문에 지나도다 - 원문대로 옮기면 '나의 들은 소문에 당신의 지혜와 복을 더하였다'이다. 아마도 맨 처음 스바 여왕이 보고받은 소문의 내용은 주로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나라는 북방 지역과의 무역로를 장악하고 있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국가라는 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스바 여왕이 직접 방문하여 친히 목도한 결과, 그동안 익히 들은 국력의 강대함 외에도 솔로몬의 지혜와 그가 받은 복에 대한 경탄을 금할 길 없었던 것이다.

성 경: [왕상10:8]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회복을 비는 마지막 간구]

(주); 복되도다...복되도다 - 여기서 '복되도다'(*, 아쉐레)는 보다 인간적인 행복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 받는 영적 축복 '바라크'(*)와는 구별된다. 한편 '복되도다'가 두번 거듭된 것을 강조를 위한 반복이다. 전반적인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 스바의 여왕은 외교적 언변이 유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 당신의 사람들이여 - 이 말은 일반적으로 '당신의 아내들이여'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Montgomery). 왜냐하면 (1)솔로몬의 신하들에 관해서는 본절 하반부에 다시 나오므로 이들이 솔로몬의 신하일 리 없고, (2) 고대 근동에서는 남자 자신에게 직접 하기보다 그의 아내를 향해 말하는 것이 안부나 찬사에 대한 동양 귀부인의 예절이었기 때문이다(Hitti). 70인역(LXX)도 이러한 해석의 입장을 취하여 '당신의 부인들이여'로 번역하였다.

(주);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 왕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고대 군주 국가에서, 왕이 지혜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몸소 지혜를 설파하는 상황이라면 그 신복들이나 백성들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대단했을 것이다. 따라서 본절에는 솔로몬의 신복들처럼 솔로몬곁에서 늘 지혜를 들었으면 하는 스바 여왕의 아쉬운 심경이 표현되었다 하겠다. 한편 성도들은 솔로몬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의 월등한 지혜를 소유하신(마 12:42) 그리스도의 말씀을 성경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듯 복된 처지를 망각하지 아니하고 항상 말씀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히13:15).

성 경: [왕상10:9]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회복을 비는 마지막 간구]

(주); 송축(頌祝)할지로다 - 마태복음 12:42과 관련하여 스바 여왕의 이 말을 일종의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여 스바 여왕이 여호와 신앙으로 개종하였다고 보는 종래의 해석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좀 지나친 해석이라는 데 대부분의 의견이 일치된다(Gate, Keil, Hammond). 즉 스바 여왕은 두로 왕 히람의 경우처럼(5:7) 다신론의 차원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인정한 것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본절 초두에서 '우리 하나님' 혹은 '나의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당신의 하나님'으로 말한 까닭이 석연찮게 된다. 아울러 여호와의 전에 경배했다든지 혹은 제물을 바쳤다는 기록도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 당신을 기뻐하사 - '기뻐하사'(*, 하페츠)는 '기울다'는 뜻으로, 단순히 맘에 든다는 정도를 넘어 '하나님의 마음 중심이 솔로몬에게로 완전히 기울어진' 애정 상태를 말한다.

(주); 공과 의 - 여기서 '공'(公)에 해당하는 '미쉬파트'(*)는 '법도', '공평','판결'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출 21:1; 28:15; 레 18:4,26; 신 17:11; 33:21등). 이는 나라에 법도가 올바로 서 기강이 문란치 않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한편 '의'(義)에 해당하는 '체다카'(*)는 '의로움','정직'을 의미한다(신 6:25; 33:21; 시22:31; 36:10; 사 33:15등). '미쉬파트'가 법(法)과 같이 좀 형식적인 면에 관련있다면, '체다카'는 윤리(倫理)와 같은 보다 내용적인 면에 관여한다 하겠다.

성 경: [왕상10:10]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회복을 비는 마지막 간구]

(주); 저가 금...보석을 왕께 드렸으니 - 스바 여왕의 이같은 선물에 대해 솔로몬도 답례로 많은 물품을 주었다. 이러한 답례 행위는 고대 세계에서 왕들 사이의 관습이었던 것 같다(13절). 한편 솔로몬의 스바 여왕 같의 선물교환은 곧 두 나라 간의 호혜적인 통상 교역을 의미한다(Harvey).

(주); 향품(香品) - '향품'(*, 발삼)이 구체적으로 무얼 지칭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향품이 고대 세계에서 부의 척도가 되리만치 중요하고 값비싼 물품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스바는 당시 남주 아라비아를 통과하는 향품 무역을 관장하였다(Trever). 따라서 혹자는 이 향품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거기에는 아라비아 산(産) 순발삼(balsam)이 포함되었으리라고 추측한다(Keil). 한편 요세푸스에 의하면, 스바 여왕의 방문을 통해 비로소 팔레스틴지역에 향품이 소개되었으며, 이후 솔로몬은 스바와의 무역을 통해 여리고 근처에 발삼 나무로 가득찬 향료 정원을 지었다고 한다(Autiquities VIII, 6.6).

성 경: [왕상10:11]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회복을 비는 마지막 간구]

(주); 오빌 - 9:28 주석 참조.

(주); 히람의 배들 - 9:27 주석 참조. 한편 역대하 9:10에는 '후람(히람)의 신복들과 솔로몬의 신복들'로 표기되어 있다. 당시 솔로몬의 무역 선단은 두로의 항해 기술자들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입고 있었다.

(주); 백단목 - 이 나무의 정확한 종류와 명칭은 불확실하게 남아 있다. 요세푸스(Josephus)는 일종의 소나무 목재로 보았다. 여하튼 백단목(*, 아체 알무김)은 인도와 실로(Ceylon)이 원산인 '붉은 백단향 나무'(학명, Pterocarpussantalinus)곧 '자단목'(紫檀木, red sandal-wood)과 같은 종류일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이 적갈색의 백단향 나무도 본절의 백단목처럼 단단하고 나무결이 고와 악기 제조에 적합하였다고 한다(Trever).

성 경: [왕상10:12]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회복을 비는 마지막 간구]

(주); 난간(*, 미스아드) - 병행 구절인 역대하 9:11에는 '층대'(*, 메실로트)로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는 '난간이 있는 층계(계단)'로 이해함이 가장 무난하다(Keil).

(주); 노래하는 자 - 이들은 성전과 궁정에서 활동하는 전문 음악가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전문 음악가들은 적어도 다윗 시대 이전에는 성경에서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미리암, 드보라, 그리고 다윗의 승리를 찬양하는 여자들의 경우에서 보듯 여인들의 합창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출 15:20, 21; 삿 5:1이하; 삼상 18:6,7). 그러므로 조직적으로 전문 음악가를 양성한 것은 왕정 시대에 들어선 이후부터이다. 한편 이들 노래하는 자의 기능은 제사에서의 전례 음악, 왕의 즉위 및 향연과 축제에서의 노래,연주 등을 담당하는 것이었을 것이다(Wemer).

(주); 수금 - '수금'(*, 킨노르)은 가장 고귀한 악기로서 귀족 계급이 사용하였다(Wemer). 성경에서 수금은 다윗과 레위인들의 악기로 등장한다(삼상 16:23; 대상15:16; 대하 5:12).

(주); 비파 - '비파'(*, 네벧)는 대체로 하프(harp)와 비슷한 현악기로 간주된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역시 레위인들의 악기이다(대상 15:16; 대하 5:12). 시편을 보면이 두 악기는 종종 함께 언급되어 있다(시 71:22; 108;2; 150:3).

성 경: [왕상10:13]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회복을 비는 마지막 간구]

(주); 왕의 규례대로 - 여기서 '규례'로 번역된 '야드'(*)는 원래 '손'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창 3:22; 레 7:30; 신 28:8; 삿 8:3등). 고대 근동에서 왕들끼리의 대면은 상호 예물을 주고 받는 것으로 시작되고 끝맺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솔로몬 왕국에서도 예물에 대한 답례물의 규정이 관례로서 확립되어 있었을 것이다.

(주); 외에 또 저의 소원대로 무릇 구하는 것을 주니 - 역대하 9:12에 의하면, 솔로몬은 '스바 여왕의 가져온 대로 답례'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솔로몬은 스바 여왕의 선물에 대해 그 가치에 상응하는 충분한 답례를 하였다. 그러고도 또 스바 여왕이 요구하는대로 아낌없이 선뜻 물품을 내주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본절은 당대의 무역국 스바의 여왕이 더 많은 물품을 탐낼 정도로 솔로몬의 부가 극에 달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요구하는대로 서슴없이 내어주는 솔로몬 왕국의 넉넉함 역시 그 점을 강조해 준다.

성 경: [왕상10:14]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의 부(富)]

(주); 세입금(歲入金) - 솔로몬의 부의 원천은 무역에서 얻는 이익 외에도 세금 징수가그 주된 출처였다. 이 세금은 열 두 관장을 통해 백성들로부터 거두어 들이는 것(삼상8:15)외에도 주변 국가들의 조공, 각국 무역상들이 내는 통행세 등이 포함되었을 것이다(Dentan).

(주); 육배 육십 육 금 달란트 - 이는 솔로몬이 매년 정기적으로 거두는 세입금을 말한다(Bahr, Montgomery). 그런데 혹자는 오빌로 항해하는 상선단이 3년마다 귀환한 것을 근거로 이 666 금 달란트는 매년의 세입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Keil). 그러나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이 반박할 수 있다. (1)오빌로 항해했던 선단('히람의 배'로 표기됨,11절)과 3년마다 귀환한 '다시스 배'를 동일시 할 수 없다(9:27,28; 10:11,22). (2)오빌로 항해한 선단이든 다시스 행 배든 이 항해의 일차적인 목적은 무역에 있지 세금징수에 있지 않다. (3)15절을 참고하건데, 본절의 세입금은 정기적인 항목만의 총액이다. 정기적이 아닌, 부가적 세입금은 15절에서 따로 언급되었다. 따라서 설령 무역 선단이 세금을 징수했다 하더라도 그 금액은 15절에 포함되지, 본절에 포함되지 않는다. 한편 금 666달란트가 현대의 화폐 가치로 어느 정도인지는 확실치 않다. Living Bible은 2천만 달러로 기록하고 있다. 추측컨대, 당시 금 1달란트의 무게는 34.3kg정도로, 은 45,000세겔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당시 은 30세겔은 노예 장정 한 사람의 값이었으므로(출 21:32), 금 1달란트는 약 1,500명의 노예값을 지불할 수 있는 큰 금액이었다. 아무튼 그 액수가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엄청난 것으로 비추어졌음을 분명하다. 왜냐하면 본장 전체가 솔로몬의 엄청난 부와 사치에 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한편, 혹자는 이 세입금의 액수와 계시록의 '666'(짐승의 수, 계 13:18)과의 일치를 들어 좀 상징적인 논의를 제시하는데(Hammond), 좀 지나친 견해이다(Bahr). 왜냐하면 (1)열왕기서에 나오는 숫자를 계시록처럼 상징적으로 해석할 이유가 없고, (2)비록 구약의 다른 부분에서도 '666'이란 숫자가 나오지만 상징적 의미와는 무관한 경우로 나오기 때문이다(스 2:13).

성 경: [왕상10:15]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의 부(富)]

(주); 상고(商賈) - 본절에서 '상고'(merchantmen, KJV)로 번역된 '아네쉐 하타림'(*)은 번역에 있어 사실 논란이 많은 단어이다. 예를 들면, 70인역은'공물'(tribute)로, 시리아역과 아람역은 '장인'(匠人, artisan)으로, 라틴역은 '대사'(ambassador)로 제각기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게다가 성경에서 '상고'로 보통 번역되는 말은 '케나안'(*)이나 '사하르'(*)이다(창 23:16; 왕상 10:28;사 23:2; 겔 27:36; 호 12:7). 그런데 '하타림'의 어근 '투르'(*)는 '두루 다니다', '여행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이 말은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장사하는 군소 상인들을 의미할 수 있다(Keil).

(주); 무역하는 객상 - '객상'(*, 로켈림)의 어근은 '장사 등을 하면서 돌아다니다'는 뜻을 가진 '라칼'(*)이다. 여기서 '객상'(客商)이란 말은 그 자체로외국과의 무역상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로켈림'은 앞의 '상고'(하타림)와는 구별되는데, 즉 주로 외국을 상대로 대규모의 상업 행위를 하는 자들을 지칭한다고 보아야할 것이다(keil). 한편 이들 상고나 객상들의 상업 활동에는 일정한 세금이 부과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 아라비아 왕들 - 이는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은 이방 왕들'(Gesenius, theChaldee)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접경한 아라비아 광야에 거하는 모든 잡족들의 왕들'(Keil, Patterson)을 가리킨다(렘 25:24). 당시 이들 지역의 왕들은 모두 솔로몬의 통치하에 있었다.

(주); 나라의 방백들 - 즉 국내의 지방 장관들을 의미한다(4:7-19).

성 경: [왕상10:16]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의 부(富)]

(주); 쳐서 늘인 금 - 성전 건축 때 사용된 공법(工法) 역시 금을 두들겨 얇은 널판처럼 하여 나무에 덧입히는 방식이었다(6:22). 방패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일단 나무로 만든 다음 그 위에 금을 덧입혔음을 짐작케 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혹자(Rawlinson)의 주장처럼, 단순히 금으로 도금한 상태는 아니다.

(주); 큰 방패 - 이는 전신을 가릴 수 있는 진지 방어용 방패를 말한다. 한편 당시의 일반적인 방패 제작 방식은 나무에 가죽을 씌우는 것이었다(Wevers). 그런데 본절의 방패는 가죽 대신에 얇은 금판을 입힌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금방패는 실제 전투용이 아닌, 의식(儀式)을 위한 것임이 틀림없다.

(주); 육백 세겔 - 고대의 무게 측정법을 따라 1세겔을 11.424g으로 볼 때(Sellers), 방패 하나 당 약 6.9Kg의 금이 든 셈이다. '마네'(Maneh)로는 12마네가 된다. 즉 작은 방패에 비해(17절) 4배의 금이 더 든 셈이다. 또한 1달란트는 3,000세겔이므로, 큰 방패 200개 전체에는 40달란트의 금이 든 셈이다.

성 경: [왕상10:17]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의 부(富)]

(주); 작은 방패 - '큰 방패'(*, 친나)에 비해 '작은 방패'(*, 마겐)는 백병전에 쓰이는 휴대용 방패이다. 이것은 보통 팔걸이 식의 둥근 방패이다(McCullugh).

(주); 삼 마네 - '마네'(Maneh)는 고대의 무게 단위로서, 약 571.2g으로 50세겔에 해당한다. 따라서 3마네는 150세겔로서 약 1.7kg 이다. 그러므로 작은 방패 300개 전체에 든 금은 15달란트(45,000세겔)이다.

(주); 레바논 나무 궁 - 7:2주석 참조. 분명 이 금방패들은 레바논 나무 궁의 벽에 장식용으로 걸려졌을 것이다. 한편, 여기 보관된 금방패들은 르호보암 때 애굽 왕 시삭(Shishak)에게 탈취당하고 말았다(14:26).

성 경: [왕상10:18]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의 부(富)]

(주); 상아(象牙) - '상아'(*, 쉔)는 곧 코끼리의 어금니이다. 한편, 고대 근동 사회에서 상아가 제공된 출처는 대부분 유브라데 강상류 지역에 서식하던 코끼리 떼였던것 같다. B.C. 1,500년 경의 앗수르의 기록에서도 그러한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Pritchard). 그런데 이스라엘에 상아가 유입된 경로는 두로(Tyre)를 통한 교역 또는 다시스(Tarshish)배를 통해 직접 수입이었다(22절).

(주); 큰 보좌를 만들고 - 이 상아보좌는 순전히 상아로만 만든 보좌가 아니고, 상아로 장식한 보좌를 가리킨다(Keil). 즉 나무로 만든 후 금을 입히고, 금판 사이 사이에 상아를 박아 장식한 보좌를 가리킨다(Bahr). 한편, 이 보좌의 제작 역시 두로 기술자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당시의 두로는 상아를 이용한 조각술이 발달했기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이스라엘은 그때까지 상아 조각은 물론 보좌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낯선 일이었다. 원래 이스라엘의 관습은 유목민 특유의 웅크리고 앉거나 기대어 앉은 것이었으므로 의자의 사용은 매우 드물었다(Hammond). 다윗조차도 보좌를 사용했는지의 여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어쨌든 솔로몬에 이르러 보좌를, 그것도 상아로 만든 보좌를 사용한 것은 왕권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이후 보좌(*, 키세)는 왕의 직무와 지극히 밀접한 연결을 갖게 되므로, 그 자체로 왕권을 상징하기까지에 이르른다(Toombs; 시 9:4; 122:5; 사 16:5; 렘 17:25).

성 경: [왕상10:19]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의 부(富)]

(주); 보좌 뒤에 둥근 머리가 있고 - 카일(Kell)은 보좌의 뒷편을 아아치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보며, 베르(Bahr)는 보좌 등판에다 둥근 모양을 덧붙인 것으로 보았다. 한편 본절을 고대 근동에서 권력의 상징이던 황소의 머리가 장식된 것으로 이해하고자 하는학자들도 있다(Montgomery, Toombs등). 즉 '둥근'(*, 아골)을 '송아지'(*, 에겔)로 보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둥근'과 '송아지'는 모음 부호만 다를 뿐 똑같은 철자이다. (2)그런데 후대의 서기관들이 의도적으로모음 부호를 변형시켜 '송아지'를 '둥근'이 되게 했다. (3)그 이유는 황소는 이스라엘역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준 송아지 숭배 사건(출 32;4)을 연상시키는 형상이기 때문이다(Gates). (4)또한 '머리'에 해당하는 '로쉬'(*)가 무생물을 향해 쓰이는 경우란 거의 없기 때문이다(창 3:15; 40:13; 출 29:10; 레 4:15; 8:14; 삼상 31:9; 왕하6:32등). (5)그러므로 '로쉬'는 '에겔'(송아지)에 연결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상과 같은 주장은 나름대로 일리는 있으나 확실히 입증되지는 않았다.

(주); 팔걸이 - 솔로몬의 보좌는 팔걸이와 그 곁의 사자 장식으로 미루어 애굽식에 가까왔던 것 같다. 바사(페르시아)왕의 보좌에는 이러한 팔걸이가 없었다고 한다(Toombs).

(주); 사자가 하나씩 섰으며 - '사자'는 백수의 왕으로서(잠 30:30,31), 흔히 성경에서 통치와 심판을 상징한다(암 3:8; 계 10:3). 본절에 언급된 보좌 팔걸이 곁의 두 마리의 사자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 경: [왕상10:20]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의 부(富)]

(주); 열 두 사자 - 19절의 두 사자는 팔걸이 곁의 장식으로 본절의 열 두 사자와는 구별된다. 따라서 형태와 크기, 재료에 있어 어떤 구별이 있었음직하다. 여하튼 여섯 층계좌우편의 이 열 두 사자상들은 만민 중 왕과 제사장의 나라로 택함받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였다(Keil).

(주); 여섯 층계 좌우편에 - 열 두 사자상은 한 층계의 좌우에 둘씩 놓였다. 그렇다면 솔로몬의 보좌는 이 여섯 층계 외에도 보좌를 위한 꼭대기의 한 층을 더한, 즉 칠 층 구조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보좌의 구도와 열 두 사자상의 배열은 이제까지의 지파 중심적 이스라엘이 왕권 중심으로 옮겨졌음을 반영해 준다(Hammond). 참고로, 바벨론의 우주관과 그에 따른 신전의 구조도 칠층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Wunsche).

(주); 아무 나라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 - 고대 근동 지역의 유물들을 고찰하건대, 비록 보좌가 높고, 정교하게 만들어 졌으며, 팔걸이에는 각종 동물 형상들이 조각되어 있는 사실들이 입증되었으나(Layard). 그 규모나 형태 및 화려함 등에 있어서는당시대 솔로몬의 보좌와 같은 것은 없었다. 솔로몬의 보좌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한 보좌는 먼 후대에 가서야 비로소 나타난다(Rosenmuller, Keil & Delitzsch, Vol. III.p. 164).

성 경: [왕상10:21]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의 부(富)]

(주); 솔로몬의 시대에 은을 귀히 여기지 아니함은 - 은(銀, Silver)은 적어도 바사 시대(B.C. 500년 경)이전까지는 금에 비견되는 가장 값진 금속이었다. 바사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많은 은이 산출됨으로써, 금에 비해 그 가치가 하락하게 된다(Garber). 그러므로 B.C 10세기 경인 솔로문 시대에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따라서 이는 그만큼 솔로몬 왕국의 부(富)가 극에 달했음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27절).

성 경: [왕상10:22]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의 부(富)]

(주); 다시스 - '다시스'(Tarshish)는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실제 지명이거나 아니면 어떤 장소와는 무관하게 '아주 먼 곳'을 지칭하는 경우이거나이다. 후대에 '다시스 배'란 곧 먼 바다를 항해하는 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Gordon). 한편, 실제 지명으로 볼 때 다시스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확인되고 있지 않다. 다만 성경 기록상의 추적을 통해, 지중해 연안의 희랍 지역 중 하나이거나 아니면 지중해 건너 남쪽 어떤 항구 도시일 것으로 추정해 볼 따름이다(창 10:4; 욘 1:3; 사 23:1; 66:19). 그리고 성경에는 선지자 요나가 다시스 행 배를 타고자 욥바로 갔다는 기록이 있다(욘 1:3).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다시스를 스페인의 타티스(Tartessus)로 보기도 한다(The NewBible Dictionary). 고대에 이곳은 은을 많이 수출하는 항구였다(렘 10:9; 겔 27:12). 한편 혹자들(Albright, Unger)은 '다시스'(*, Tarshish)란 말 자체가 '광물'(mining) 또는 '녹이다(smelt)란 뜻이므로, 제련소의 물품을 멀리 운반하는 배를 가리켜 '다시스 배'라고 칭했다고 본다. 즉 솔로몬 당시 에시온게벧에는 큰 제련소가 있어 외국에서 수입해온 물품들 - 금,은,백단목,상아,잔나비,공작 등 -에 대한 수출품으로서 구리, 철, 놋과 같은 광물들을 그곳에서 선적하여 다시스 배로 수송했다는 것이다(Wood, Patterson). 이 견해도 상당히 타당성 있는 견해이다.

(주); 다시스 배 - 일반적으로 '배'를 의미하는 '아니야'(*)에 비해 본 절에 쓰인 '아니'(*)는 '선단'(船團)이란 뜻이 있다. 그러므로 '다시스 배'는 9:27,28의 오빌로 항해나는 선단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선단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다시스 선단을 곧 오빌 선단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Rawlinson, Hammond). 왜냐하면 본절에서 이 두 선단은 비록 협동 작업은 하지만 서로 구별되는 관계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선단에 붙여진 '다시스'란 명칭은 앞서 설명한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내포된 듯하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1)이 다시스 선단이 운반한 금과 은의 출처는 당시 은과 금속 가공으로 유명한 실제의 다시스일 것이며, (2)상아와 잔나비와 공작 등은 실제의 다시스 외에도 멀리 인도양을 두루 항해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점이 다시스 선단의 한 번 항해가 3년씩 걸린 이유를 설명해 준다.

(주); 상아와 잔나비와 공작 - 이것들은 인도산으로서 아주 귀하고 사치스러운 무역 품목인데, 대부분 궁전 장식용으로 쓰였다.

성 경: [왕상10:23]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의 예물]

4:30 주석 참조. 한편 본절에서부터 25절까지는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총괄이다. 즉 3장에서부터 줄 곧 찬양되던 솔로몬의 지혜는 이로써 그 이야기를 끝맺게 되는 것이다. 한편, 혹자는 본절에서 '재산'이 '지혜'보다 더 앞서 강조되어 나타나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이는 사치와 번영으로 인한 솔로몬의 타락 기미가 엿보이는 표현이라고 보았다(Wordsworth).

성 경: [왕상10:24]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의 예물]

(주);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 - 4:29-34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궁극적으로 이는 기브온 약속(3:12,13)의 완전한 성취이다. 그런데 다음 장에서 솔로몬의 이 마음의 지혜는 이방 여인들과 우상 숭배로 인해 흐려진다(11:3,4). 이러한 대비(對比)에서 열왕기 저자는 왕국의 번영과 쇠퇴를 솔로몬의 지혜의 명암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우상숭배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성 경: [왕상10:25]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의 예물]

(주); 예물 - 비록 문맥은 존경을 표시하기 위한 선물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본절의 '예물'(*, 민하)은 공물로서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 매년 정해진 물량을 바친 것이라는 본절 하반부의 내용이 이를 잘 입증해 준다. 그리고 4:21에서 '공'(貢)으로 번역된 원어도 역시 '민하'이다. 원래 '민하'는 우월한 자에게 '존경'과 '복종'을 표시하기 위한 선물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하'란 단어 속에는 예물과 공물의 성격이 동시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절은 '민하'의 예물로서의 성격만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그럼으로써 지혜에 의한 솔로몬의 평화로운 통치를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성 경: [왕상10:26]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의 병거]

(주); 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 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은 사실은, 경제적 번성에 따르는 군사적 부강으로 간단히 넘어가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왜냐하면 (1)이스라엘의 지형은 산악 지대가 많아 병거가 많이 필요없는데, 이러한 사실은 다윗이 하닷에셀에게서 빼앗은 병거 일천 대 중 백 대만을 제외하고 는모두 부셔버린 사실에서도 입증된다(대상 18:4). (2)더구나 왕이 말을 모으는 일은 신명기 규례상 명백히 금지된 일이라는 점(신 17:16) 등의 문제에 대해 솔로몬의 병거와 마병은 (1)단순히 전투용 뿐이아닌 상업적 목적(매매 혹은 상선단의 보호)도 지닌 것이라는 해석도 있으나(Dentan), (2)무엇보다도 왕국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해석되고 있다(Hammond, Wevers). 한편 신명기 규례가 '왕된 자는 말을 많이 주지말 것'(신 17:16)을 명한 이유는 (1)무엇보다 병마(兵馬)에 의존하기 보다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며(시 20:7; 33:17; 잠 21:31). (2)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애굽으로 돌이킬까봐 염려했기 때문이다. 즉 말의 주산지인 애굽과의 잦은 외교나 거래 관계는 결국 애굽의 우상 문화를 끌어들이게 되고, 나아가 정치적 종속의 관계를 띨 우려마저 있었기 때문이다(Craigie). 그리고 이렇게 되면, 애굽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출애굽 은총이 업신여김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 율법의 금지 조항이 염려한 점을 망각하고, 단순히 예비용으로 보기에는 너무 많은 말을 애굽으로부터 수입하였다(28,29절). 이로써 솔로몬 왕에게 드러워지는 실패와 타락의 전조(前兆)를 느낄 수 있다. 병거성 - 4:26 주석 참조. 한편 시카고 대학의 발굴단은 므깃도 유적지에서 400마리 정도의 말을 수용할 수 있는 외양간을 발견했다고 한다(Montgomery).

성 경: [왕상10:27]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의 병거]

(주); 은을 돌같이 흔하게 - 21절의 내용을 확대한 말이다. 이것은 극에 달한 솔로몬 왕국의 부를 수사학적으로 과장되게 표현한 말이다. 한편, 팔레스틴 지역은 실제로 돌이많은 지역이다(Englert).

(주);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 앞의 부분과 함께 본절은 히브리적 대구법의 한 유형에 속한다. 즉 대단히 귀중한 것(은, 백향목)이 흔해 빠진 것(돌, 뽕나무)에 비유되어 그 많음이 더욱 강조된다. 한편, '뽕나무'(*, 쉬케마)는 지금의 팔레스틴에서는 오히려 보기드문 나무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매우 흔했다고 한다(사9:10;Bahr, Hammond, Keil). 특히 경사가 완만한 구릉 지대에 무성하였다고 한다(Winer).

(주); 백향목 - 4:33; 5:6 주석 참조.

성 경: [왕상10:28]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의 병거]

(주); 애굽에서 내어 왔으니 - 이 말은 말들을 인수한 장소가 애굽 내의 어떤 지역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비록 애굽이 이스라엘에 말을 매매하였지만, 실제로 인수된 장소는 애굽 바깥의 어느 지역일 것이다. 아마도 애굽말의 사육장을 많이 갖고 있던 소아시아 남부의 어느 지역이 아닐까 추정된다(Kapelrud).

(주); 떼 - 여기서 '떼'로 번역된 '케웨'(*)에 대해서 해석의 입장이 분분하다. 즉 한글 개역은 게세니우스(Gesenius)의 입장과 같이 '떼'(company)로 번역하였지만(창1:10; 출 7:19; 레 11:36), 흠정역(KJV)은 '아마사'(亞麻絲)로, 영역본 NIV와 RSV 그리고 공동 번역은 지명을 나타내는 '쿠에'(Kue)로 각각 번역하였다. 그런데 많은 학자들은 여기서 '쿠에'를 길리기아의 옛명칭이라고 본다(Gates, Kapelrud, Thompson), 그리고 길리기아는 소아시아 남부 해안 지방의 비옥한 고장으로 명마의 생산지이다. 이런 견지에서 본절의 '떼'는 장소를 가리키는 '쿠에'로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Keil,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성 경: [왕상10:29]

주제1: [절정기의 솔로몬 왕조]

주제2: [솔로몬의 병거]

(주); 애굽에서 내어 올린 병거 - 당시 애굽은 말과 병거의 주요 수출국이었다. 그런데 애굽에 병거가 성행하게 된 것은 B.C. 1800년 경부터 애굽을 지배하게 된 힉소스인들의 병거 사용에서부터였다(Wevers). 이후 이스라엘인들의 경험 속에서 애굽은 항상 말과 병거의 국가였다(출 14:6; 15:1; 신 17:16; 사 31:1). 그런고로 이러한 애굽과 혼인을 통한 동맹관계를 맺은 솔로몬은 애굽으로부터 병거를 많이 공급받을 수 있었다.

(주); 은 육백 세겔 - 은 1세겔(Shekel)은 대략 11.4Kg이었으므로, 은600세겔은 약 7Kg의중량이다. '마네'(Maneh)로는 12마네, '달란트'(Talent)로는 0.2달란트이다(16절).

(주); 헷사람 - 히타이트족을 가리킨다(창 10:15; 23:3). 그런데 히타이트족은 B.C.2천년대 초 경에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바 있지만, 솔로몬 당시에는 작은 왕국들로 나뉘어져 있었다(Gelb). 그리고 이 왕국들은 팔레스틴 북쪽 변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솔로몬 왕국은 남쪽 애굽과 북쪽 헷 왕국들 사이에서 병거와 말 매매의 중간상인 구실을 한 것이다. 이러한 수입과 매매를 통해 얻은 수익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주); 아람 왕들 - 아람 민족은 유브라데 강주변, 즉 이스라엘의 북쪽 및 북동쪽 경계에 여러 개의 작은 국가들로 나뉘어져 있었다(Bowman). 본절의 아람 왕들은 바로 이 작은 국가들의 왕들을 가리킨다. 솔로몬은 이들에게도 애굽의 병거와 말을 수입해 되팔았다. 그런데 아람인들은 이전부터 자주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서왔던 민족이었다(삼하 8:5,6; 10:8-18). 그리고 이러한 적대 관계는 솔로몬 통치 이후 분열 왕국 시대에가서도 내내 계속된다(20:20; 22:35; 왕하 7:15; 8:28; 대하 24:24). 그러므로 솔로몬은 세속적 무역 정책의 결과 결국 이스라엘의 대적에게 무기를 판 셈이 되고 말았다(Wordsworth).

성 경: [왕상11:1]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의 우상 숭배]

(주); 바로의 딸 - 3:1 주석 참조. 솔로몬은 즉위 초기 애굽과 동맹을 맺고, 그 표시로서 바로의 딸과 결혼하였다. 당시 애굽의 공주가 다른 나라에 주어진 일이 극히 드물었음에 비추어 볼 때. 그 당시 열국 중 솔로몬의 지위가 어떠했는지를 가히 짐작케 한다. 여하튼 바로의 딸은 솔로몬의 모든 아내들 증에서 정실(正實)에 속했고, 따라서 솔로몬은 바로의 딸을 위해 특별히 별궁을 건축하기도 했다(9:24). 그리고 문맥상 바로의 딸은 분명 솔로몬올 타락케 만든 다른 이방 여인들과는 구별되고 있다(B hr).

(주);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 '사랑하였으니'에 해당하는 '아하브'(*)는 대상에 대하여 강한 집착을 가진 사랑을 말한다. 즉 그 대상을 소유하거나 그 곁에 있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리킨다. 곧 이 '아하브'에는 1) 집착 2) 욕망에 근거한 성적(性的) 열정이라는 성격이 두드러진다(창24:67; 출 21:8; 삼하13:1; 호3:1). 그러므로 이 단어는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을 단순히 정략적으로 취한 것만이 아니고 '안목의 정욕'으로 적극 탐하였음올 알려 준다.

(주);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 열거된 나라들을 살펴보면, 이스라엘과 전통적로 우호 관계에 있던 나라 외에 적대 관계에 있던 나라도 포함된다(신 23:3이하). 솔로몬이 이러한 모든 나라들과 통혼(通婚)하게 된 데에는 외교적 목적이 분명 들어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본래 왕의 국제 결혼에는 외교적 동맹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결혼은 고대의 왕에게는 하나의 자랑거리였다(B hr, Dentan)

성 경: [왕상11:2]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의 우상 숭배]

(주); 일찌기...말씀하시기를 - 본절의 말씀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마침내 요단 강 동편에 이르러 가나안 점령을 목전에 두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일러 주신 말씀이다(신 7:3, 4).

(주); 통하지 말며...통하게 말라 - 여기서 '통하다'에 해당하는 '보'(*)는 '가다' 또는 '오다'란 뜻으로서, 이는 단순한 교제가 아니라 결혼을 통해 깊은 유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은 양자의 문화, 풍습 및 종교의 절충과 혼합을 초래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고유의 여호와 신앙은 변질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일찌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들과의 잡혼(雜婚)을 엄격히 금지시켰던 것이다(출 34:11-16;신 7:1-4). 그런데 가나안 족속과의 통혼(通婚)금지를 명한 율법은 그 율법의 정신으로 볼 때 비단 가나안 족속 뿐 아니라 여호와 신앙을 변질시킬 우려가 있는 다른 모든 이방 족속들에게도 적용된다. 따라서 솔로몬이 이러한 율법의 명령과 정신을 무시하고 가나안 족속(헷 족속)을 비롯한 이방의 많은 여인들과 결혼한 것은 분명 국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편리한 혼합주의를 채택한 실정(失政)이요 범죄였다.

(주); 돌이켜 - 9:6 주석 참조.

(주); 연애하렸더라 - '연애하였더라'에 해당하는 '다바크'(*)는 '집착하다', '달라붙다'는 뜻으로서 강렬한 감정적 애착상태를 의미한다(시 102:5;애 4:4 등). 따라서 이 말은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과의 애정에 탐닉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이말은 1절의 '아하브'(사랑하였으니)와 함께 솔로몬의 지혜로운 통찰력과 분별력이 흐려진 이유를 잡작케 해준다.

성 경: [왕상11:3]

주제1: [솔로몬의 타락]

주제2: [솔로몬의 우상 숭배]

(주); 후비가 칠백 인이요 빈장이 삼백 인 - 처첩(妻妾)의 숫자가 이렇게 많은 것은 단순히 솔로몬의 호색때문만은 아니다. 즉 고대왕들에게 있어 처첩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은 부와 권세를 과시하는 것이었다(Dentan). 그러므로 태평 성대를 누리고 있는 강대국의 왕 솔로몬은 주변 국가들의 왕들에 비해 처첩들의 수에 있어서도 우월하려고 했던 것이다(Hammond). 이상에서 볼 때 솔로몬이 많은 여인들로 둘러싸이게 된 데에는 안목의 정욕, 정치 . 외교적 목적, 부와 권세의 과시라는 복합적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아가서 6:8에 의하면 왕후가 60인이요 첩이 80인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아 6:8, 9). 아마도 열왕기서의 기록은 솔로몬의 전 통치기간을 통해 취해진 모든 처첩들의 수효를 가리키는 것 같고(Keil), 아가서에 언급된 수효는 솔로몬이 젊은 시절에 거느렸던 아내들의 총 수효였다고 짐작된다(Hammond). 다시말해 솔로몬의 부와 영예가 더해감에 따라 그의 아내들의 수효 또한 늘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본절의 수효는 혹자(Thenius)가 의심하듯 믿을수 없을 정도의 터무니없는 기록은 결코 아니다. 예컨대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코도마누스(DariusCodomanus, B.C. 399-330)는 300명의 아내들을 거느리고 알렉산더 원정에 나섰으며, A.D. 10세기 전후 터어키 왕들의 부인은 대개 1300명에 달했다고 한다(B hr). 아무튼 우리는 전장(10장)에서 솔로몬이 말(馬)을 많이 둔 사실(10:26)과 은금 보화를 많이 쌓은 사실(10:16, 17)을 이미 보았다. 그런데 본절에서 우리는 솔로몬이 또한 처첩을 많이 둔 사실을 발견한다. 요컨대,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왕 될 자에게 권면하고 경고하신 바 왕 된 자는 말울 많이 두지 말 것이요,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라(신 17:16, 17)는 세가지 명령을 모두 범한 자가 되고 말았다.

(주); 후비(后妃) - '후비'로 번역된 '사라'(*)는 '후궁'들과는 구별되는, '왕비'의 지위이다. 즉 이들은 원래 이웃 나라의 공주, 혹은 왕족이었기 때문에 구별된 지위와 특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Hammond). 한편, 바로의 딸은 이들 중에서도 으뜸의 지위를 누렸던 것 같다(3:1;9:24).

(주); 빈장(嬪 ) - '빈장'으로 번역된 '필레게쉬'(*)는 삼하 16:21, 22에서 '후궁'으로 번역된 그 단어이다.

(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 솔로몬이 많은 이방 여인들을 왕비로 맞아들인 결과, 그 여인들은 각자 자기 민족의 신(우상)들을 가지고와서 숭배했다. 분명 왕비들은 갖은 방법으로 솔로몬을 회유했을 것이고, 이에 솔로몬은 그러한 신들의 숭배를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이방 신들을 위해 산당까지 지었던 것이다(7, 8절). 솔로몬이 이러한 종교적 혼합주의(混合主義,Suncretism)는 이방 국가들의 호의를 얻어 동맹을 더욱 공고히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이방의 우상 숭배를 거듭거듭 경고하고 엄히 금하신 율법의 말씀을 어긴 것으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솔로몬의 말년부터 이스라엘 내에 자리잡게 된 이방 우상의 산당들은 이후 분열왕국 시대동안에도 줄곧 심판의 대상이 되었고, 마침내 남북 왕국 멸망의 주된 원인이 되고 말았다.

성 경: [왕상11:4]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의 우상 숭배]

(주);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 레 27:1-8을 참고하건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장년과노년의 구분점은 60세였던 듯하다(Blank). 그러므로 '나이 늙을'(*, 지크나)이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이때 솔로몬의 나이는 60세 전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노년이 종종 축복과 존경의 대상이 되지만, 고결함과 경건한 생애의 뒷받침없이 저절로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욥 5:26; 시 71:9; 잠 20:29 등). 그런데 본절에서 솔로몬의 노년은 문맥상 우상 숭배에 대한 저항력이 약화되는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여기서의 노년이란 무기력, 판단력 쇠퇴등의 부정적 측면을 띤 노년이다(전12:1-5). 이러한 부정적 의미의 노년이 본절에 언급된 이유는 솔로몬의 타락은 그의 통치 말년에 국한된 것으로 말하려는 의도와 왕비들의 유혹에 빠져 우상 숭배를 허용한 원인 중 일부을 솔로몬의 노년에 돌리려는 것 때문이다.

(주); 왕비들이....다른 신들을 좇게 하므로 - 솔로몬의 타락을 고발하는 본절의 초점은 솔로몬이 단순히 이방 여인들을 많이 취하였다는 사실에 주어져 있지 않다. 비록 솔로몬의 처첩들의 숫자는 놀랄 만한 것이지만,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일부 다처 자체만을 심각히 비난하기는 어렵다. 다윗만 해도 왕비 7명, 첩이 최소한 10명 이상이었다(대상 3:1-9). 따라서 본절이 보다 부각시키고 있는 점은, 솔로몬의 왕비들이 솔로몬으로 하여금 우상 숭배로 빠지게 하는 함정구실을 하였다는 데 있다. 신명기의 경고도 바로 이 점을 겨냥한 것이었다(신 7:3, 4; 17:17).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모압 여인들과 놀아나다가 우상 숭배에 빠졌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았던 뼈아픈 경험이 있었다(민 25:1-5). 따라서 이방 여인과의 접촉에 따르는 위험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그러나 본절은 솔로몬이 이러한 생생한 역사적 교훈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그 그물에 걸리는 비극을 보여 준다.

성 경: [왕상11:5]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의 우상 숭배]

(주); 아스다롯 - 가나안인들이 섬기던 풍요의 여신으로, 성적(性的) 사랑과 다산(多産)을 위해 숭배되던 우상이었다. 따라서 이 여신을 위한 제사에는 보통 음란한 행위가 의식의 순서로 따랐다고 한다(B hr). 지금도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이 여신 숭배와 관련된 진흙싱들이 출토된다. 그런데 이 우상들은 유방과 음부를 두드러지게 만든 소규모의 우상으로, 당시 일반 가정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판단된다(Gray). 그러므로 당시에 이 아스다롯 숭배가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 알 수 있다(레 26:1-13 강해, 가나안땅의 신들). 삿 2:13; 삼상 7:3; 31:10 주석 참조.

(주); 밀곰 - 암몬의 민족신으로 인신 제사로 유명하며 '몰록' 혹은 '몰렉'과 동일시 된다(7절). 그런데 '밀곰'은 히브리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파생된 명칭이다(IDB). 레18:21; 20:2 주석 참조.

성 경: [왕상11:6]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의 우상 숭배]

(주); 여호와의 눈앞에서 - 죄악과 자기 합리화로 마음의 눈을 가리운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존재가 간과(看過)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앞에서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사물이나 사건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눈은 도처에 있으며, 항상 선악을 감찰하시기 때문이다(잠 15:3). 그러므로 본절의 '눈앞에서'(*, 베아인)는 다음 두 가지를일러 준다. 즉 솔로몬의 행위는 어떤 형태로든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는 점, 솔로몬이 어떤 요설(饒舌)로 자신을 합리화 해도 '하나님의 눈'이라는 표준과 척도에 의해 판단받게 된다는 점이다.

(주); 악을 행하여....좇지 아니하고 - 솔로몬의 이러한 타락이 그의 통치 기간 중 어디쯤에서 심각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는지는 명확치 않다. 분명 성전 완공 후 감사와 헌신의 봉헌 기도(8:12-53)를 드렸을 당시(즉위 11년)에는 이러한 타락이나 변질의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후 왕궁 건축이 완료된(즉위 24년)재임 중기 이후부터 서서히 나타나 재임 말기로 갈수록 심화되었던 것 같다(4절, Leon Wood). 한편, 그러나 이후의 여러 기록들을 참조컨대, 솔로몬은 '이스라엘로 범죄케 만든' 여로보암처럼 직접 이방 우상들에게 제사드린 것 같지는 않다. 즉 솔로몬이 여호와께 제사를 완전히 저버렸다는 암시는 전혀 없다. 적어도 솔로몬은 그의 통치 말기까지 일년 삼차씩 번제단 위에서 엄숙한 제사는 드렸던 것 같다(J. Hammond). 그러나 그러한 제사 행위를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산당을 지음으로 조장까지 했다는 사실에서, 분명 솔로몬은 부친 다윗과는 달리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했던 것이다. 다윗도 비록 그의 생애 중 간음, 살인 교사, 교만 등 중한 죄악을 범하긴 하였으나, 우상 숭배 죄는 결코 범하지 않았다.

(주); 다윗이....온전히 좇음 같이 - 9:4주석 참조.

성 경: [왕상11:7]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의 우상 숭배]

(주); 그모스 - 모압 민족의 수호신으로 태양의 신이자 전쟁의 신이다(Movers). 그리고 '그모스'(*, Chemosh)란 명칭은 '정복자'라는 뜻일 것으로 추측된다(Gesenius,Livingston). 그런데 이 그모스는 암몬의 신 몰록과 쌍둥이 형제라고 한다. 또한 이러한 우상을 섬기는 제사 의식은 매우 잔인하며 음란했다(Gates). 고고학적 발굴 결과 '그모스'는 그 양 옆에는 횃불이 불타고 있으며 손에는 창과 칼과 방패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Keil). 민 21:29; 삿 11:24 주석 참조.

(주); 예루살렘 앞산 - 예루살렘 동편의 '감람산'을 말한다. 이 산의 중앙 지역은 해발 822m로 예루살렘 보다 약 30m 정도 높다고 한다. 한편, 그런데 후일 이 감람산의 최남단 봉우리는 '범 죄의 산'(Mons Scandali)이라 불리워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이곳에 우상을 위한 산당을 지었기 때문이다(Robinson, Alden).

(주); 몰록 - '몰록'은 '밀곰'과 동일시 된다. 5절 주석 참조. 원래 '몰록'(*)은 고유 명칭이 아니고 그저 '왕'이라는 뜻이다. 즉 암몬인들은 그들의 신을 왕으로 호칭한 것이다. 한편 '몰렉'이라는 명칭은 '몰록'의 자음에다 '치욕'(*, 보쉐트)이란 단어의 모음을 결합하여 발음한 것이다. 이는 물론 이스라엘인들이 우상을 경멸하기 위해 취한 방식이다(Patterson). 한편 몰록 숭배 제사 의식에는 인신 제물이 바쳐졌다. 그리고 이 제사는 주로 예루살렘 남서쪽 힌놈의 골짜기 도벳에서 행해졌다(Gray; 왕하23:10; 렘 32:35). 레위기 18:21; 20:2 주석 참조.

성 경: [왕상11:8]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의 우상 숭배]

(주); 다 그와 같이 한지라 - 전술(前述)한 여러 동기로 미루어 솔로몬은 이방 왕비 중 어느 누구에게만 특정적으로 혜택을 줄 수는 없었다(3절). 그리하여 마침내는 이방 후비들의 모든 신들의 제사를 허용하였고, 또한 그 신들을 모실 산당까지 짓게 하였던 것이다. 아스다롯, 밀곰(몰록), 그모스는 그러한 모든 이방 우상들의 대표적인 우상일뿐이다. 아무튼 그러한 종교적 혼합 정책의 결과, 예루살렘 주변의 산들은 거의 우상을 위한 산당들로 가득하였을 것이다(Hall, Hammond).

(주); 저희가 자기의 신들에게...제사하였더라 - 비록 솔로몬이 왕비들에게 각자의 신을 섬기도록 허용했다지만, 이 왕비들이 자신의 신을 섬기는 데 적극적이고 열심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것은 반대로 솔로몬이 이방 왕비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소개하는데 흥미가 없었음을 입증해 준다. 이러한 이면에는 솔로몬 자신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하였음과 솔로몬의 통치 방향이 일종의 혼합주의, 즉 주변 국가들의 종교와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쪽으로 잡혀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Dentan). 아무튼 다윗 역시 한때 중한 죄를 범하긴 하였으나(삼하 11:2-27), 솔로몬처럼 우상 숭배의가증스러운 길로 들어서지는 않았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 아내들로 각자의 신들을 섬기도록 허용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 산당을 짓기까지 하였다. 또한 솔로몬이 하나님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하였던 반면에 그 아내들이 열심으로 그들의 신을 증거하였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칼하다. 이렇듯 사단은 누구든 교만하고 방만한 틈을 발견하면 걸코 이를 놓치려 하지 않는다. 한편 솔로몬에 의해 세워진 이교 산당은 이후 계속하여 이스라엘의 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훗날 느헤미야는 포로 귀환민들에게 이방인과의 통혼을 경고하면서, 솔로몬의 범죄를 예로 든 바 있다(느 13:26, 27).

성 경: [왕상11:9]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하나님의 경고]

(주); 돌이켜 - 9:6 주석 참조.

(주); 진노하시니라 - '진노하시니라'에 해당하는 원어 '아나프'(*)는 특별히 하나님의 분노를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이때 하나님의 분노는 언약 백성이 언약을 깨뜨린 범죄에 대해 발(發)하시는 거룩한 분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러한 분노는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고, 자기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일관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 하여금 '아나프'하게 하는 범죄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저버림으로써 하나님께 큰 상처를 입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입었던 솔로몬의 우상 숭배야말로 하나님을 지극히 '아나프'하게 하는 범죄라고 볼수 있다.

(주); 일찌기 두번이나...나타나시고 -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두번 나타나신 장면은 3:5-14과 9:2-9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이 두 번의 묵시를 살펴보게 되면, 첫번째에 비해 두번째의 묵시는 좀더 경고의 성격을 띠고 있다. 특히 우상 숭배는 파멸로 가는 지름길임을 명백히 경고하고 있다(9:6-9).

성 경: [왕상11:10]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하나님의 경고]

(주); 이 일에 대하여 - 이 일이란 곧 '우상숭배'를 말한다. 실로 선민 이스라엘에게 있어 우상 숭배 행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구속적 언약 관계(출 19:5, 6)를 송두리째 부인하는 가장 심각한 범죄였다. 9:6 주석 참조.

(주); 다른 신을 좇지 말라 - 솔로몬의 우상 숭배가 곧 여호와께 드리던 제사의 폐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9:25). 솔로몬은 '이것도 저것도' 모두 취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솔로몬의 혼합주의적 행위에 대한 성경의 진단(診斷)은 '그가 하나님을 떠났다'라고 내려지고 있다(9절). 진정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 전부를 온전히 원하신다. 그러므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이 여호와 유일 종교 신앙의 특색이다(신 6:5; 마 6:24).

(주);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 하나님게서 솔로몬에게 명하신 명령과 법도(法度)는 지키기 블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필요 적절한 시기마다 친히 경계의 말씀을 해주셨다(3:5; 6:12; 9:2-9). 따라서 솔로몬의 우상 숭배는 안일과 교만으로 말미암은 불신앙의 소치라 할 수 밖에 없으며, 이중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린 셈이다. 즉 하나님께는 이 일이 극진히 아껴주셨던 당신의 종으로부터 배반당하는 가슴 아픈 일이었으며, 당신의 공의대로 솔로몬을 심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또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번영과 부의 축적, 그리고 사치와 다처 축첩등 모든 세상의 부귀 영화를 다 누리고, 심지어 우상 숭배에도 빠졌던 솔로몬이 그의 말년에 '여호와를 떠난' 인간의 모든 부귀 영화, 우상 숭배, 입신양명이 '다 헛되고 헛된 것'(전 1:2)이라고 고백한 사실은 의미 심장하다고 할 수있다. 즉 이 고백은 솔로몬은 이러한 사실을 다시금 깊이 깨닫고 여호와 신앙을 회복했던 것 같은데, 이는 솔로몬의 마지막 저술인 전도서를 보면, '사람의 본분(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전 12:13)이라고 명백히 결론지은 사실에서 엿볼수 있다(Leon Wood).

성 경: [왕상11:11]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하나님의 경고]

(주); 여호와께서...말씀하시되 - 앞서 두번에 걸친 하나님의 직접 현현(3:5; 9:2)과 달리 본절의 말씀은 어느 선지자(아마도 '아히야', 29절)를 통한 간접 전달 방식이었다(b hr, Hammond).

(주); 네가 나의 언약과...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 여호와의 계속적인 축복과 후손들에 대한 왕위 계승은 오직 하나님의 언약과 법도를 지키는 조건 하에서만 보장되었다(3:14; 6:12; 9:4). 그러나 솔로몬은 그 조건을 지키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따라서 솔로몬과 그의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은 철회될 수 밖에 없었고, 오히려 불순종에 따른 심판을 면할 길 없었다.

(주); 빼앗아 - 여기서 '빼앗아'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카라'(*)는 '찢다' 또는 '쪼개나'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솔로몬 왕국 전체를 멸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둘로 분열시키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분열 원인은 바로 솔로몬의 우상 숭배와 율법 준수 실패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주); 네 신복에게 주리라 - 여기서 신복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인물은 '여로보암'이다. 그는 솔로몬의 노역 감독관이었다(28절). 그런데 솔로몬 사후, 이 예언대로 여로보암은 남북으로 분열된 왕국에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되었다(B.C. 930-910).

성 경: [왕상11:12]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하나님의 경고]

(주);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온전한 마음과 그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은혜로 나타나고 있다(9:4, 5; 삼하 7:15). 특히 여기서 '위하여'(*, 레미안)는 '말미암아' 혹은 '인하여'로 번역 가능하다. 이는 하나님께서 소돔에 열 명의 의인이 있다면 그들로 '인하여' 멸망을 연기하시겠다는 말씀 속에서도 사용된 말이다(창 18:26-33). 또한 과거 소돔과 고모라 멸망시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조카 롯은 구원받을 수 있었다(창 19:29). 마찬가지로 다윗으로 인하여 솔로몬은 자기 당대의 심판을 모면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솔로몬 자신이 아들 르호보암에게 재앙을 심은 셈이 되고 말았다.

(주);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 여기서 '네 세대에는'(*, 베야메카)은 곧 '너의 날들에는', 즉 솔로몬이 살아있는 동안을 말한다. 실로 솔로몬의 죄는 그가 특별히 받아 누린 특권과 축복들을 생각할 때에 더욱 컸다. 즉 솔로몬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인해 아도니야와 요압과 아비아달의 손으로부터 구원받아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여호와께서 친히 두 번이나 나타나사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필요에 따라 지혜와 권면과 경계의 말씀을 적절히 주셨다. 그 결과 솔로몬은 이스라엘은 물론이요 당시 세계 열국의 왕들에 비해 으뜸가는 부와 권력과 명예와 향락을 누렸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평생동안 사랑과 헌신 경외를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드렸어야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렇지 못했다. 솔로몬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헛된 우상들에게 그는 눈길올 돌리고 마음을 주었다. 따라서 의당 솔로몬은 하나님의 심판올 직접 받아야 옳았지만, 그러나 다윗 언약을 끝까지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총으로 말미암아 당대에는 심판을 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인간은 언약을 저버리지만, 그러나 인간이 저버린 언약을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성 경: [왕상11:13]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하나님의 경고]

(주); 뺀 - '뺀'(*, 바하르티)은 '선택하다'(*, 바하르)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 말 속에는 신중히 결정한 선택 또는 궁극적인 것이 되게 하려는 결심 등의 의미가 들어 있다.

(주); 예루살렘을 위하여...주리라 - 솔로몬의 왕위가 대(代)를 끊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예루살렘의 가치 때문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바하르'하신 도성으로서, 다윗 언약에 근거된 바(삼하 7:13)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둘 만한 장소로 택하신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로몬의 행위는 그만한 자비를 받을 이유가 없지만, 하나님 자신의 언약과 선택을 위해서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이름을 세계 열방에 전파할 종교적 수도로서 유지되어야 했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은 유다의 주권을 아주 박탈하지 않으신 것이다(Hammond).

(주); 한 지파 - 이는 구체적으로 '유다 지파'를 말한다(12:20).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등을 돌리는 심판 중에 단지 한 지파만이 남는 구차스러움이 엿보인다. 즉 모두 빼앗겨 마땅한 범죄로되, 다윗 언약과 예루살렘의 은총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최소한의 것만 남긴다는 것이다.

성 경: [왕상11:14]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을 대적하는 하닷]

(주); 에돔 - 이스라엘 동남쪽에 있는 사각형 모양의 국가이다. 여기서 '에돔'(*)이란 '붉은 지역'이라는 뜻인데, 이 지역에 붉은 바위와 흙이 많았기 때문에 명명된 이름이다. 한편, 에돔의 선조는 이스라앨의 조상 야곱의 형인 에서이다(창 36:1). 이는 두 국가가 민족적 혈통상 매우 밀접한 관련하에 있음을 암시해 준다(Cohen). 그러나 열왕기 시대에 에돔은 내내 남왕국 유다의 적(敵)이었다.

(주); 하닷 - 원문상 17절은 '아닷'(*)으로 표기되었지만, 같은 이름이다. 그런데 '하닷'(*, Hadad)은 '태양' 아니면 '호통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고유 명사가 아니고, 에돔인들이 왕을 가리켜 단지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Hammond). 한편 시리아 지역의 왕들 이름 역시 벤하닷, 하닷에셀과 같이 '하닷'과 결부되어 등장하곤 한다. 솔로몬 당시 에돔 왕 하닷은 에돔의 왕족으로, 일찍이 요압과 아비새 휘하의 다윗 군대가 어떤 이유로 에돔 왕족과 군대를 진멸시키기 위한 학살 작전을 감행했을 때 애굽으로 도피하여 살아 남았던 유일한 생존자 였다(삼하 8:13, 14;대상 18:12, 13).

(주);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 에돔 사람 하닷 편에서 보면, 솔로몬에 대한 그의 적대는 일종의 독립운동이겠으나, 솔로몬에게 있어 하닷의 적대 행위는 분명 하나님이 주시는 형벌이었다. 이렇듯 얼핏 인간들끼리의 사건처럼 보이는 역사의 모든 대소사의 배후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인간의 선택과 자유 의지적 행위가 언제나 관련되고 전제되어 있다(Davison).

성 경: [왕상11:15]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을 대적하는 하닷]

(주); 전에....에돔의 남자를 다 쳐서 죽였는데 - 본절이 말하고 있는 시기가 삼하 8:13, 14; 대상 18:12, 13의 시기 즉 염곡 전투 때인 것은 분명하나 상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전후 관계를 추론해 볼 때, '다윗이 에돔에 있을 때에'는 다윗 군대가 정복 전쟁차 에돔에 쳐들어 간 사실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에돔인을 쳐죽인 일의 지휘자가 요압 혹은 아비새(대상 18:12)로 달리 나오는 기록상의 차이는, 형제간인 이들이 같이 종군했으나 직책, 임무 등의 차이가 있던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Hammond). 마지막으로 본절에서 '죽임을 당한 자'란 당시 에돔과의 전투에서 생긴 이스라엘의 전사자들을 의미할 것이다(B hr).

성 경: [왕상11:16]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을 대적하는 하닷]

(주); 에돔의 남자를 다 없이 하기까지 - 이 말을 문자 그대로 에돔인의 씨를 다 말렸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만약 그랬다면 이스라엘이 에돔을 지속적으로 복종시키기 위해 에돔 땅에 수비대를 주둔시켜야 할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삼하 8:14; 대상 18:13). 그러므로 본절의 의미는 다음 두 가지로 봄이 바람직하다. 1) 여기서의 '에돔의 모든 남자'란 전투가 가능한 남자들만을 가리킨다는 견해(hammond, Keil) 2)다윗의 군대는 실제로 대학살을 획책했을지도 모르나 성공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는 견해(Kittel)). 아무튼 이러한 본절은 에돔과 이스라엘 사이의 노골적인 적대감을 잘 증거해 준다. 그런데 그같은 적대감은 에서와 야곱 간의 관계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리하여 양국간의 뿌리 깊은 적대 관계는 왕정시대에 이르러 표면화되었는바, 마침내 다윗은 에돔을 정복하고 말았던 것이다(삼하 8:13, 14). 분명 다윗의 이러한 정복 사업은 그 아들 솔로몬 왕국의 경제 성장에 중요한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솔로몬 왕국의 퇴락 조짐이 보이자 에돔 역시 여타의 속국(屬國)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을 위해 안간힘을 썼으며, 그 덕분에 이스라엘의 지배하에서 벗어난 적도 많았다. 그러나 표면상으로 에돔은 늘 이스라엘의 지배하에 있었으니 곧 B.C.586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까지였다.(왕하8:21; 대하20:1; 시137:7; 애4:21)

(주); 여섯달을 그곳에 유하였었더라 - 잔인한 성격의 요압(삼하3:27; 18:9-17; 20:8-21)이 이처럼 6개월간 에돔에 머물면서 가했을 살륙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닷의 끈질긴 복수심을 설명해 준다. 또한 하닷이 다윗과 요압에 대해 갖고 있던 공포심도 짐작케 해준다(21절).

성 경: [왕상11:17]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을 대적하는 하닷]

(주); 작은 아이 - '작은 아이'(*, 나아르)는 3:7에서 솔로몬이 자신을 가리켜 사용한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나 문맥상의 의미는 큰 차이가 있다. 3:7에서 이 말은 정신적 또는 연령적으로 성숙치 못한 자를 가리켰으나 본절에서는 단지 연령적으로 어린 소년을 가리키고 있다. 과거 하닷은 어린 소년이었기 때문에 요압 군대의 학살을 모면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왕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압의 군대는 특히 왕족을 멸절시키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Keil). 따라서 그같은 사실이 발각되기 전에 하닷의 신하들은 하닷을 수행(隨行)하여 애굽으로 도망친 것이다.

(주); 애굽으로 가려 하여 - 18절로 미루어 보건대, 하닷은 이스라엘 영토를 우회하여 시나이 반도(Sinai Peninsula)를 통해 애굽으로 입국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경로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취했던 경로의 역(逆)이다(민 10:12; 12:16; 13:3, 26).

성 경: [왕상11:18]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을 대적하는 하닷]

(주); 미디안 - 미디안(Midian)은 아카바만 동쪽에 있는 북서 아라비아의 넓은 땅이다(Landes). 이 지역은 이스라엘의 동남쪽이며, 에돔의 남쪽에 해당된다. 따라서 하닷처럼 애굽으로 가려는 에돔인은 이스라엘 영토를 경과하지 않는 한 먼저 미디안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미디안은 일찍이 모세가 도망했던 땅이다(출 2:15).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출 2:15 주석을 참조하라.

(주); 바란 - '바란'(Paran)은 '빛나는 땅'이란 뜻이다. 이곳은 미디안과 애굽 사이에 위치한 시나이 반도 중앙의 넓은 사막 지역으로 가데스(Kadesh)와 신 광야(the wilderness of Zin)를 포함한다. 그런데 이 지역은 그 기복이 심한 지형으로 인해 도피처로 자주 이용되었다고 한다(Houston). 한편 과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지역을 횡단하였고, 이곳에서 팔레스틴으로 정찰병을 보내기도 하였다(민 10:12; 12:16; 13:3).

(주); 바로가 저에게....또 토지를 주었더라 - 여기서의 바로(Pharaoh)는 솔로몬의 장인(丈人)인 바로(3:1)와는 다른 인물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닷의 망명은 다윗 시대의 일이었으며 또한 이스라엘의 적에게 은혜를 베푼 자와 솔로몬이 장인.사위 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있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9-22절). 한편 망명한 하닷에 대한 바로의 환대는 왕자에 대한 동양적 예우,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바로가 왜 그토록 에돔 사람 하닷을 친절히 맞이하였는지는 확실히 알려진바 없다. 그러나 그 당시 애굽이 남쪽의 테베(Thebe) 왕조와 븍쪽의 타니스(Tanis) 왕조로 분열되어 국력이 약화되어 있던 점으로 보아, 이는 아마도 대외 융화 정책의 일환이었을지도 모른다.

성 경: [왕상11:19]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을 대적하는 하닷]

(주); 은총 - '은총'(*, 헨)은 '호의', '친절'이란 뜻으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게된 호의적(好意的) 감정을 말한다. 이런 경우 호의를 받게 되는 원인은 보통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인격적 매력에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망명객이란 불우한 처지에 있던 하닷이 바로의 호의를 입게 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요셉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하닷이 바로의 보호를 받게된 것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섭리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창 39:21; 출 3:21; 11:3; 12:36). 즉 하나님께선 솔로몬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하닷을 보호해 주셨던 것이다. 14절 주석 참조.

(주); 왕비 - 본절에서 '왕비'로 번역된 '학비라'(*)는 '여주인'이라는 뜻으로 왕의 많은 아내들 중에서도 으뜸인 지위에 있는 여성에게 붙이는 칭호이다(Hammond,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 p.174).

(주); 다브네스 - 이러한 형태의 이름은 고대 근동 사회에서 매우 보기 힘든 이름이다. 그래서 '다브네스'(Tahpenes)가 어디서 유래된 어떠한 뜻의 이름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학자들에 따라서는 두어 가지로 추측하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애굽 여신의 이름이었을 것이라는 견해(Rosellini, Rawlinson). '바로'의 경우가 그렇듯이, '왕의 아내'를 가리키는 애굽의 공식 명칭이 그대로 고유 명사화된 것라는 견해(Wilson). 출 1:11 주석 참조.

성 경: [왕상11:20]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을 대적하는 하닷]

(주); 그누밧을....바로의 궁중에서 젖을 떼게 하매 - 이는 하닷의 아들 그누밧(genubath)이 다브네스의 양자로 입양되었음을 의미한다(Guthrie, Keil, Montgpmery). 한편 고대 근동 사회에서 아기가 젖을 떼는 시기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점으로 간주되었다(창21:8; 삼상 1:21-24; 시 131자:2; 사 28:9). 즉 당시 중근동 지역에서는 이유기(離乳基)가 대개 3살경이었는 바 이 때에야 비로소 그 아이는 완전한 생명체로 간주되었다. 그리하여 이 때에는 고유한 종교 의식과 더불어 큰 잔치가 베풀어지는 것이 관례였다. 창 21:8 주석 참조.

성 경: [왕상11:21]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을 대적하는 하닷]

본절은 다윗과 요압이 에돔인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공포의 대상이었는지를 잘나타내 준다. 즉 다윗과 요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하닷은 귀국할 엄두를 내고있는 것이다. 한편 다윗이 죽은 해는 B.C. 970년경이며 요압 또한 같은 해에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했다(2:34). 그리고 하닷의 독립 투쟁은 B.C. 940년경으로 추론된다(14절). 따라서 하닷은 에돔으로 돌아간 이래 근 30년 간에 걸쳐 설욕전을 위한 준비를 다졌던 것으로 보인다.

성 경: [왕상11:22]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을 대적하는 하닷]

(주); 나와 함께 있어 무슨 부족함이 있게에 - 뚜렷한 이유없이 함께 있기를 마다하는 것을 홀대(忽待)에 대한 인간적 서운함의 표시로 해석하는 동앙적 사고(思考)가 담긴 표현이다. 한편 바로가 이처럼 하닷을 매우 총애했음으로 미루어 보건대(18, 19절), 바로가 하닷에게 베푼 은총을 장차 이스라엘을 견제할 세력 양성의 의도로 해석하는 것(Ewald)은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주); 없나이다 그러나....나를 보내옵소서 - 애굽이 제공하는 모든 특권과 안락함으로도 붙잡을 수 없으리만치 하닷의 복수심이 깊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이토록 강렬한 하닷의 복수심은 솔로몬의 통치에 얼마만큼 우환이 되었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25절a). 한편 본장에는 하닷의 간청을 바로가 승락했는지의 여부가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여하튼 하닷이 에돔으로 돌아와 솔로몬의 적수가 된 것은 분명하다(14, 25절).

성 경: [왕상11:23]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을 대적하는 르손]

(주); 르손 - '르손'(*)은 '족장'이라는 뜻이다. 소바 왕 하닷에셀의 신하라는 사실 외에는 그의 행적에 대해서 알려진 바 없다. 물론 르손(Rezon)의 부친 엘리아다(Eliadah)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 르손은 15:18에 나오는 '아람 왕 헤시온(Hezion)'과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다(Corney). 만일 사실이 그러하다면 이름이 바뀐 까닭은 '족장'이라는 뜻의 이름이 왕으로서는 적당치 않았기 때문일것이다(25절).

(주); 소바 - 아람족에 속한 한 나라로서 레바논과 안티레바논 사이에 위치하였다(Haldar). 아람인들은 강력한 통일 왕국을 형성했던 적이 없으며 시리아와 북부 팔레스틴 지방에 여러개의 조그마한 도시 국가를 이루었을 뿐이다. 삼상 14:47 주석 참조. 그런데 소바(Zobah)는 적어도 사울 왕 시대부터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었다(삼상 14:47). 다윗은 아람 소바(시 60편), 아람 나하라임(시 60편), 벧르홉(삼하 10:6) 등의 아람 왕국들과 싸운 바 있다. 한편 이러한 아람의 여러 소왕국들 중 가장 큰세력으로 성장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도시는 다메섹(Damascus)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10:6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왕상11:24]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을 대적하는 르손]

(주); 다윗이 소바사암을 죽일때에 - 과거 소바 왕 하닷에셀(Hadadzer)이 세력을 회복하려고 유프라테스 강으로 진군하는 것을 다윗이 기습하여 대패시킨 것을 가리킨다(삼하 8:3, 4). 이후 다윗은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 아람의 연합군도 패퇴시킴으로써 아람을 속국으로 만들었다(삼하 8:5, 6)

(주); 르손이...그 떼의 괴수(魁首)가 되며 - 다윗이 하닷에셀과 아람 연합군을 격파할 때(삼하 8:3-6)에 르손은 하닷에셀을 버리고 도망하였다. 그리고 불한당과 산적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세력을 키웠다. 그런뒤 솔로몬의 통치 기간 중 다메섹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배력이 약화되자 르손은 이를 점령하였다. 그리하여 다메섹은 르손의 세력을 중심으로 다시 결집된 아람 국가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Corney).

성 경: [왕상11:25]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을 대적하는 르손]

(주); 일평생에 - '일평생에'(*, 콜이메)는 문자대로는 '모든 날들에'란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솔로몬의 통치 말년에 있어서의 '모든 날들'을 가리킨다. 즉 하닷이 솔로몬에게 반기를 든 이래(B.C. 940년경) 하닷은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솔로몬의 두통거리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21절 주석 참조.

(주); 환난 - '환난'(*, 라으)은 '걱정', '고민' 등의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즉 이는 곧 하닷이 솔로몬의 골칫거리였다는 말이다. 추측컨대 하닷은 애굽에서 귀국한 후 일종의 게릴라 전투를 통해 독립을 꾀하였던 듯하다. 따라서 쉽사리 진압되지 않는 하닷의 활동은 솔로몬에게 눈의 가시와도 같았을 것이다(Gates).

(주); 수리아 - 원문에는 그냥 '아람'(*)으로 되어 있다. 원래 '수리아'(Suria) 혹은 '시리아'(Syria)는 70인역(LXX)과 일부 영역본이 아람(Aram)을 가리키는 데 사용한 용어이다(IDB). 한편 아람인들은 대대로 통일국가를 형성한 적이 없고, 대신 필요에 따라 동맹을 맺고 연합군을 형성하곤 하였다(10:29). 이 중 본절의 수리아는 아람 소바, 아람 나하라임 등의 아람 소왕국들과 구별되는 다메섹의 아람 왕국이다. 23절 주석 참조.

(주); 미워하였더라 - '미워하였더라'에 해당하는 '쿠츠'(*)는 어떤 대상에 대한 거부감 이상으로 그 대상이 파멸하기롤 바라는 감정을 말한다. 따라서 이같은 감정은 실제로 대상을 파멸시키려는 행동을 낳기 마련이다.

성 경: [왕상11:26]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여로보암의 반역]

(주); 여로보암이 또한....대적하였으니 - 이스라엘 남북 분열에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인 여로보암아(Jeroboam)에 대하여 드디어 언급되고 있는 구절이다. 그는 북쪽 10지파와 더불어 반란을 일으켰는데(12:16-19), 그 같은 반란은 속국(屬國)들의 독립 운동이었던 하닷과 르손의 반역과는 달리 혁명적 성격을 띠었으므로 이스라엘 왕국에 더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이밖에도 여로보암이 끼친 해악은 상당히 큰데, 특히 그는 열왕기가 민감하게 주목하는 우상 숭배에 관한 한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북왕국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순례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송아지 숭배를 부활시켰기 때문이다(12:27-30; 출 32:1-5; 수 24:14이하). 그리하여 이후 열왕기기자가 북왕국의 악한 왕들을 평가할 때면 언제나 여로보암에 빗대어 말하는 것이 공식문이 될 지경이었다(16:19, 26; 22:52; 왕하 3:3; 10:29; 13:2 등). 즉 여로보암은 다윗과는 정반대의 성격으로 열왕의 표준이 된 것이다.

(주); 에브라임 족속 - 에브라임 족속(Ephrathite)은 수효 면에서나 이스라엘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에서나 늘 유다 지파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장막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에브라임은 서편 진지의 주도 세력이었다(민 2:18-24). 또한 가나안 정복 전쟁의 영웅 여호수아도 이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었다(민 13:8; 신 31:7). 그 뿐 아니라 왕정 시대에 들어와 예루살렘이 종교적 수도가 되기 이전에는 에브라임 영토의 실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중심지였던 사실 역시 매우 중요하다(수 18:1; 22:12; 삿 18:31; 21:19; 삼상 1:3, 9; 2:14; 3:21). 이처럼 이스라엘 남북 왕국의 분열 이면에는 그러한 반목을 낳을 만한 뿌리깊은 경쟁 관계가 일찍부터 자리잡고 있었다. 때문에 솔로몬 사후(死後) 에브라임과 유다의 반목은 강렬하게 표면화되었으며 대다수의 지파들은 여로보암을 후원하였던 것이다(12:12, 16-19). 그러나 훗날 에스겔은 이러한 지파간의 반목과 질시를 근원적으로 종식시키고 참된 단합과 화해의 왕국을 건설할 왕이 다윗 가계로부터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겔 37:15-28)

(주); 스레다 - 스레다(Zereda)의 뜻은 '찌르기' 또는 '서늘함'이다. 그러나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진 바 없다. 대하 4:17절에 동일 지명이 나오긴 하나 그곳은 요단 골짜기의 성읍이란 점에서 본절의 스레다와는 다르다. 혹자는 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한 '세리라'(Zerira)가 곧 본절의 '스레다'일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는데 분명치 않다(Lange)

성 경: [왕상11:27]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여로보암의 반역]

(주); 손을 들어 - 여기서 '손을 들다'(*, 헤림 야드)는 말은 '복종하기를 거부하다'는 뜻이다. 특히 '들다'(*, 룸)는 그 자체로 '교만하다', '높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신 8:14; 시 131:1; 사 2:12). 이와 반대로 성경에서 '누구에게 복종하다'는 말은 원문상 '손을 (어떤 사람의) 밑에 주다'는 어구로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주);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고 - 9:15 주석 참조.

(주); 다윗의 성의....수축(修築)하였는데 - 솔로몬은 유다 지파의 성읍이라 할 수 있는 다윗 성의 보수 공사를 유다지파가 아닌 에브라임 지파에게 떠맡겼다. 28절 주석 참조. 따라서 그렇잖아도 유다 지파와 경쟁의식이 있던 에브라임 지파로서는 이에 불만이 없올 수 없었다(B hr). 26절 주석 참조.

성 경: [왕상11:28]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여로보암의 반역]

(주); 큰 용사 - '큰 용사'(*, 깁보르 하일)는 문자 그대로 '강한 힘을 가진 전사(戰士)'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상류 계급의 남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상류 계급의 남자는 그 공동체 내에서 군사 행동의 의무와 책임을 가지게 된다(Gray). 사울은 베냐민 지파 내의 바로 그러한 가문 출신이었고, 여로보암은 에브라임 지파 내에서 그러하였던 것 같다(삼상 9:1).

(주); 요셉 족속 - 요셉 족속은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를 말한다. 즉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요셉의 두 아들이다(창 48:5). 그래서 '요셉 족속'이라고 할 때는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지파 중 어느 하나를 말하거나 아니면 모두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이 두지파는 븍쪽의 가장 강한 지파들이기 때문에 '요셉 족속'은 곧 북왕국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Wintermute). 한편 야곱과 모세의 축복을 살펴보게 되면, 우리는 이스라엘 초기 역사에 있어서의 요셉 족속의 중요성과 그 지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창 49:1-27; 신 33:1-29).

(주); 감독하게 하였더니 -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예루살렘에서 일하게 된 요셉 족속의 부역 총 책임자로 임명한 것을 가리킨다.

성 경: [왕상11:29]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여로보암의 반역]

(주); 아히야 - 아히야(Ahijah)는 에브라임 지파의 성읍인 실로(Shiloh)의 제사장 가문의 예언자이다. 때문에 혹자는 아히야가 에브라임 지파의 주도권 쟁취를 위해 여로보암을 충동질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같은 주장은 그 근거가 지극히 희박하다. 물론 여로보암의 반역 과정에는 지파간의 반목 질시가 한 동인(動因)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히야 자신은 솔로몬의 우상 숭배를 여호와 신앙에 위배된 상황으로 보고 이를 타개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으므로 이를 대언했을 뿐이다(31-39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여로보암의 집권 후에 아히야가 여로보암에게 대항한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14:1-16). 아무튼 이러한 선지자 아히야는 나단(Nathan) 선지자(1:8, 11-14) 이후로 부터 솔로몬과 르호보암 시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사자(使者)로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14:1-13; 대하 9:29).

(주); 새 의복 -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다는 사실이 본절과 다음절에 걸쳐 두 번이나 언급된 것은 다음과 같은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이는 통일 이스라엘 왕국이 아직 신생 제국에 불과한 시점에서 남북으로 분단되고 말 것임을 상징한 표현인 것이다. 여호와 신앙이 배척된 상황에서는 다윗의 천신 만고의 노력과 솔로몬의 다방면의 치적(治績)등도 이렇듯 물거품에 불과하다 하겠다.

성 경: [왕상11:30]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여로보암의 반역]

(주); 옷을 잡아 열 두 조각에 찢고 - 옷을 찢는 것이 곧 왕권 분열의 상징이 되었던 전례는 사울의 경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삼상 15:27-29). 한편 여기서 열 두 조각의 옷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나타낸다.

성 경: [왕상11:31]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여로보암의 반역]

(주); 열 조각 - 혹자(Keil)는 완전수로서의 '열'에 착안하여 '열 조각'의 의미를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온전한 왕권올 갖게 되리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즉 솔로몬에게 돌아간 '하나'(32절)에 대비시켜 온전한 왕권은 여로보암이 차지하고 솔로몬의 후손에게는 한 부분만이 돌아감을 말하려는 것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본문 자체에서 '열 조각'은 바로 '열 지파'를 비유하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새삼 다른 해석을 부가할 필요가 없다.

성 경: [왕상11:32]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여로보암의 반역]

(주); 뺀 성 예루살렘 - 13절 주석 참조.

(주); 한 지파 - 실제로는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가 남왕국 유다에 속하였다(12:21; 대하 11:3). 그럼에도 블구하고 본절은 유다와 베냐민을 통틀어 한 지파로 말하고 있다. 그 이유로 대개 다음의 두 가지가 지적된다(B hr, Hammond, Schmidt). 유다와 베냐민 지경(地境)은 서로 인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경계에 위치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 15:21-62 지도 참조. 사사 시대 때의 내란으로 인해 인구가 격감(激減)된 베냐민(삿 20:46-48)을 따라 한 지파로 치지 않았거나 유다에 의존되어 등장했기 때문이다.

성 경: [왕상11:33]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여로보암의 반역]

(주); 저희가 나를 버리고 - 여기서 '버리다'에 해당하는 '나타쉬'(*)는 마음으로부터 상대방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이는 강경한 관계 단절의 상태를 의미한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8:57 주석을 참조하라.

(주); 정직한 - '정직한'에 해당하는 '야솨르'(*)는 물론 도덕적 품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는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야솨르'가 가리키는 정직이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을 말한다(신 6:18). 그러므로 모든 인간적 요소에 거리낄 것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승인을 얻기에 부족하다면, 아직 야솨르에 못미치는 것이다. 이 야솨르의 구체적 표현은 하나님의 법과 약속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신 6:1-9). 즉 누구든지 하나님의 약속을 충실하게 실행해 나가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정직을 증명해 주는 셈이다.

성 경: [왕상11:34]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여로보암의 반역]

(주); 내 종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도를 지켰으므로 - 다윗도 전에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 범죄한 적이 있었다(삼하 11:1-27; 24:1-9).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인간적 욕정과 성결된 생활 간의 괴리로 인하여 큰 고뇌에 빠졌을 것이다. 그런고로 다윗은 나단의 책망을 순순히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진실한 회개를 통해 죄사함을 간절히 구했으며(삼하 12:13; 24:10; 싸; 51편), 하나님께서는 이를 어여삐 보시고 죄과를 도말해 주셨던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 또한 하나님의 엄격하신 계명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의 허다한 과오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사죄의 은총을 힘입어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수행을 위해 끝까지 매진할 때,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가 늘 함께 할 것이다(히 3:6, 14).

(주); 솔로몬의 생전에는...빼앗지 아니하고 - 이처럼 이스라엘에 저주를 부른 장본인 솔로몬(1-13절)이 그의 생전에 이렇다 할 보응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일견 불합리하게 보인다. 사실 예고된 심판으로서의 왕국 분열은 정작 그의 아들 대에 이르러 치루게 된다(35정마; 12장). 그런데 아비의 죄가 후손에게 씌위지는 것은 만족할 만한 합리적 해답(렘 31:29, 30)이 없는 수수께끼이다(Davison). 여하튼 다윗의 덕분으로 심판을 면하는 솔로몬이나 솔로몬의 죄를 뒤집어 쓰는 르호보암에게서 우리는 아비의 선악을 후손에게까지 응보한다는 신명기적 주제를 보게 된다(신 5:9, 10)

(주); 주관하게 - 원문에는 '나시(*)기 도;게'로 되어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나시'는 '군주',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종종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출 16:22; 22:28; 수 9:15).

성 경: [왕상11:35]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여로보암의 반역]

(주); 아들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아 - '손'(*, 야드)은 힘과 능력을 나타내며, 어떤 사물에 대한 고유한 책임과 권한을 의미하기도 한다. 8:15 주석 참조.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아들이 갖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주요 책임과 권한을 박탈하겠다는 말이다.

성 경: [왕상11:36]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여로보암의 반역]

(주);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 본절의 문맥상 '한 등불'은 '한 지파에 상응(相應)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한 등불이 항상 있다'는 말은, 결코 부강과 번영은 아니지만 어쨌든 명맥은 계속 유지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본절은 비록 한 지파만이라도 다윗 왕조를 계승토록 하겠다는 뜻이다. 한편 이와 반대로 '등불이 꺼지는 것'은 죽음, 파국등을 의미한다(삼하 21:17).

성 경: [왕상11:37]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여로보암의 반역]

(주); 내가 너를 취(取)하리니 - 여기서 '취하다'는 '손에 넣다', '붙잡다'는 뜻의 '라카호'(*)에서 온 말이다. 이러한 용어 사용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도가 개재되었다고 본다. 여로보암이 왕이 된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 행동의 결과(12:24)임을 밝히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이 북왕국의 왕이 된 것은 정작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가 아니라는 점을 밝히려는 것. 이같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을 왕으로 취하셨을 때에는 '라카흐'가 아닌 '선택받음'의 뜻이 뚜렷한 '바하르'(*)가 사용되었음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8:16; 삼하 6:21; 대상 28:5).

(주); 네 마음에 원하는대로 다스려 - 이 말은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1)왕노릇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즉 절대 권력을 의미한다고 보는 입장(Keil, Living Bible등) 2)여로보암의 평소 소원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었음을 시사하는 구절이라는 입장(B hr, 공동 번역 등). 그런데 이 두 입장은 어느 쪽이나 일면의 타당성을 제시하므로 선뜻 선택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의 입장을 취할 경우 이어지는 38절의 권면이 무색하게 돤다. 따라서 2)의 입장이 비교적 무난하리라 본다.

성 경: [왕상11:38]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여로보암의 반역]

(주); 모든 일에 순종하고...지키면...네게 주리라 - 비록 이스라엘 왕국의 정통성은 다윗의 후손들에 의해 계승되었던 남왕국 유다에게 있었지만(3:14; 6:12; 9:4; 삼하 7:11-16) 북왕국 이스라엘 또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신령한 자태를 드러내어야 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북왕국을 대표할 여로보암에게도 당신의 말씀에 순종만 하면 축복을 보장하겠다는 언약을 주시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와 같은 조건적 축복의 공식(신 28:1-14)은 모든 왕들에게 열려 있는 셈이다(Gates).

(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 8:57 주석 참조.

(주); 견고한 집을 세우고 - 여기서 '집'(*, 바아트)은 '왕조'(王朝)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즉 여로보암의 가문이 계속해서 왕위에 오르도록 한다는 의미이다(9:4, 5). 그러나 정작 여로보암 왕조는 그 아들 나답 대에 이르러 종말을 고하고 말았는데, 그 까닭은 저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행악(行惡)하였기 때문이다(15:25-30).

성 경: [왕상11:40]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여로보암의 반역]

(주); 이러므로...죽이려 하매 - 39절과 본절 사이에는 생략 및 비약이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29-39절의 내용은 여로보암과 아히야의 단 둘만의 대담(對談)인데 솔로몬이 당시에 그 사실을 알았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여로보암의 역심(逆心)을 알아차리게 된 경위가 본문에서 생략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여하튼 여로보암은 아히야와의 대담 이후 그의 역심(逆心)이 노출되는 어떤 행동을 보였을 것이다.

(주); 애굽왕 시삭 - 애굽 22대 왕조의 창시자로서 르호보암 때 예루살렘을 약탈한 왕이다(14:25, 26). 그런데 이 시삭(Shishak)이 솔로몬의 장인인 애굽의 바로(3:1)는 아닌 듯하다. 솔로몬의 장인이 솔로몬의 대적에게 피신처를 마련해 주었을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3: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왕상11:41]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의 죽음]

(주); 사적(事蹟) - '사적'에 해당하는 '다바르'(*)는 '말하다', '정돈하다', '다스리다' 등의 뜻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리고 관련된 의미들을 살펴보건대 '사적'은 한 사람의 개인적 행적이 아닌, 공적 활동에 대한 정리된 기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 솔로몬의 행장 - 이 기록(the acts of Solomon)은 14:19, 29에 등장하는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의 역대 지략' 중 솔로몬에 해당하는 부분일 것이다. 즉 이는 역대왕의 실록 중 솔로몬의 치세사에 해당하는 부분일 것이다(Helmbold). 한편 본서 기자는 본서를 기록함에 있어서 이 실록을 주된 자료로 참조하였음에 분명하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대하 35:26, 27 주석 및 도표를 보다 참조하라.

성 경: [왕상11:42]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의 죽음]

(주); 다스린 날 수가 사십 년 - 대개의 학자들은 솔로몬이 즉위했을 때(2:12)를 20세 전후로 본다(Keil, Lange). 따라서 솔로몬은 대략 60세 정도까지 통치했던 셈이다. 3:7 주석 참조. 한편 솔로몬의 통치 기간은 부친 다윗의 통치 기간과 마찬가지로 40년간이다(2:11). 그런데 혹자에 의하면, 솔로몬이 왕위에 있은 기간은 다윗 생존시의 섭정 기간을 포함해야 하므로 40년 이상이라고 한다(Gates). 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결정짓기 어렵다. 왜냐하면 다윗의 40년 통치 기간에 과연 섭정 기간이 포함 되었는지의 여부 조차 모호하기 때문이다.

성 경: [왕상11:43]

주제1: [솔로몬의 타락과 죽음]

주제2: [솔로몬의 죽음]

(주); 솔로몬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 비록 열왕기가 솔로몬 치세에 관해 많은 부분을 할당하였지만, 소개된 내용이 충실하게 연대기적 기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 기록에는 성전(聖殿)을 중심으로 여러 독럽적인 단편들이 서로 엇갈려 등장하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시간적으로 후에 속한 궁전 건축을 언급한 다음 (7:13-51), 다시 성전의 기물을 소개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7:1-12). 그러므로 열왕기의 기록만 가지고 솔로몬의 치세를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하기란 매우 어렵다(Myers). 그리고 41절이 암시하듯 열왕기는 솔로몬에 관한 기록의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있다. 더구나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그에게 어떤 내적 변화가 있었는지 일체 언급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솔로몬이 말년에 하나님 앞에서 참된 회개를 하였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을 통시적(通視的)으로 살펴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대하 11:17은 '다윗과 솔로몬의 길'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솔로몬의 생애에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전도서는 솔로몬 자신의 인생을 총결산한 책으로 간주되는데, 이 전도서의 결론은 '일의 결국은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이다(전12:13) 2)삼하7:12-17절은 다윗의 후손에게 징계를 내릴지라도 끝내 버리지는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담고 있다.

성 경: [왕상12:1]

주제1: [왕국의 분열]

주제2: [르호보암의 압제 정치]

(주); 르호보암 - '르호보암'(*)은 '백성이 창대하기를 기원하나이다'라는 뜻이다. 이는 '여로보암'(Jeroboam)의 이름의 뜻이 '백성들의 수가 많아지게 하소서'인 것과 좋은 대구를 이룬다. 때문에 이러한 두 이름의 유사성에 주목하여 이 이름들을 다같이 백성의 권리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긴 명칭으로 보는 시각도있다(Maclean). 한편 르호보암(Rehoboam)은 암몬 여인 나아마(Naamah)의 소생으로 솔로몬의 독자였다(14:21,31 ; 대하 12:13). 따라서 솔로몬 사후 당연히 아비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다(11:43). 르호보암이 즉위할 때 그의 나이는 41세였는데 그때로부터 그는 17년간 통치하였다(14:21). 연대 문제는 복잡 난점이 따르기는하나 대략 B.C.930-913년 (솔로몬의 즉위를 B.C.970년으로 보고) 기간이 르호보암의 재위 기간이다.

(주); 세겜 - '세겜'(*, 쉐켐)은 '등성이', '비탈'이라는 뜻으로 추정된다. 이 세겜(Shechem)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58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은 곧 그리심 산과 에발산 사이의, 사방으로 통하는 교차 지점이다. 그래서 세겜은 예로부터 이스라엘 종교, 정치의 중심지였다(Reed). 또 이곳은 에브라임에 속한 지역이기도 하다(수 20:7;삿 9;1이하).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수 17:7 주석을 참조하라.

(주); 온 이스라엘이 저로 왕을 삼고자 하여 - 여기서 '온 이스라엘'(*, 콜 이세라엘)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전체가 아닌 북쪽의 열 지파를 말한다(B hr,Hammond). 이처럼 '이스라엘'이라는 호칭이 열 지파만을 일컫던 전례 없지 않다.(삼하2:9, 10, 17, 28). 한편 이스라엘 열 지파가 세겜에서 르호보암의 면담을 요구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1) 백성들의 승인이 이스라엘 왕의 즉위에 있어 필수 요건이였기 때문이다(1:39;삼상 2:15 ;삼하 2:4; 5:3 ;대하 29:22). 2) 그 동안 소외되었던 북쪽 지파의 권리를 호소하려는 의도에서였다(4절).

성 경: [왕상12:2]

주제1: [왕국의 분열]

주제2: [르호보암의 압제 정치]

(주); 얼굴을 피하여 - '얼굴을 피하여'(*, 바라흐 미프네)는 어떤 불쾌한 이유로 서로 마주 대하는 것을 피함을 말한다(시102:2 ; 겔39:23). 한편 이와 유사한 표현이 성경에 간혹 나오는데 '반하여 얼굴을 드는 것'은 적대감의 표현이며(렘21:10), '얼굴을 빛나게 하는 것'은 우호적인 영접의 의미(민 6:25)이다(Dentan).

(주); 애굽에 있는 중에 - 본절과 병행 구절인 대하 10:2에는 '애굽에서 돌아오매'로 되어 있다. 문맥상으로 볼 때 대하의 번역이 더 타당한 둣하다. 아히야의 예언(11:31,35,37,38)을 잊지 않았을 여로보암이 솔로몬의 사망 소식(11:43)을 듣고 귀국하지 않았다면 도리어 이상하다. 70인역(LXX) 및 수리아역(Peshitta) RSV, NIV, 그리고 공동 번역 등은 본절을 '애굽에서 돌아와 있었는데'(returned from Egypt)로 번역하고 있다.

성 경: [왕상12:3]

주제1: [왕국의 분열]

주제2: [르호보암의 압제 정치]

(주); 무리가...저를 불렀더라 - 본절로 보아 북쪽 지파들의 반란(16-20절)이 표면화되기 이전부터 여로보암은 저들의 지도자격이었던 것같다. 이러한 사실은 여로보암이 북쪽 지파 중 유력한 지파인 에브라임의 지도자 가문 출신인 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11:26, 28주석 참조. 물론 본시점에서 북쪽 지파들이 르호보암을 거부하기로 결정짓고 있었던 것은 아직 아니다(4절). 단지 유동적인 형편에서 여로보암은 북쪽 지파들의 대변자(代辯者)가 되어 줄 것을 부탁받은 것일 뿐이다(Lange). 본절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은 1절과 마찬가지로 북쪽 열 지파를 가리킨다. 한편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은 모두 남쪽 지파에서만 배출되었다(사울은 베냐민, 다윗과 솔로몬은 유다). 그런데 이들이 왕위에 오를 때에는 남쪽 지파는 물론 북쪽 지파들의 승인을 얻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제 본절은 북쪽 지파들이 르호보암에게도 마찬가지 절차를 밟게 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사실에서 엿볼 수 있는 점은 분열 왕국 이전에도 북쪽 지파와 남쪽 지파 사이에는 일종의 구별 의식이 존재했으리라는 것이다.

(주); 회중 - '회중'에 해당하는 '카할'(*)은 신명기 기자가 온 이스라엘의 국민적 종교 집회를 지칭할 때 자주 사용한 단어이다(한글개역 성경은 대개 '총회'로 번역하고 있음.(신 5:22;9:10;10:4;18:16등). 이에 관하여서는 민 16:2 주석에 상세히 설명해 놓았으니 그곳을 참조하라.

성 경: [왕상12:5]

주제1: [왕국의 분열]

주제2: [르호보암의 압제 정치]

(주);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 이처럼 르호보암이 백성들의 요구에 즉각 승락하지 아니하고 대답을 삼 일 뒤로 미룬 이유는 다음 두어 가지로 추정된다. 1) 역대 왕들과달리 선뜻 왕위 승인을 얻지 못하고 난관이 있자 이를 숙고할 기한을 가지려 하기 위함이다. 2) 예루살렘 (세겜에서 약 58Km 떨어진)에서 상의할 모사(謀士)들을 소집할 시간을 얻으려 하기 위함이다. 한편 예루살렘에서 세겜까지는 그 거리로 보아 나귀를 탄다 해도 하루가 꼬박 걸렸을 것이다(Hammond).

(주); 하매 백성이 가니라 - 르호보암의 요청에 순순히 말을 듣는 백성에게서 아직까지 그들에겐 반역의 의도가 없었음을 본다. 이 같은 사실은 앞서 그들의 요청(4절)이 진지한 것이었음도 입증해 준다. 따라서 처음부터 그들이 르호보암에 대한 반역을 예비했다는 견해(B hr emd)는 성립하기 어렵다.

성 경: [왕상12:6]

주제1: [왕국의 분열]

주제2: [르호보암의 압제 정치]

(주);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 - 본절에서 '노인'(*, 자켄)은 단순히 연로한 자를 지칭하기보다 국가 행정에 직, 간접으로 영향을 끼치던 장로들을 의미한다. 출3:16 주석 참조. 이들은 솔로몬의 성공과 실패를 몸소 체험했던 바 통치의 묘(妙)와 백성의 섭리에 익숙한 노련함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솔로몬의 행정 구역을 담당했던 원로대신들도 있었을 것이다(4:2-6). 그렇다면 이들이야말로 이스라엘 지역 사회의 문제를 근접한 데서 가장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인물들이다.

(주); 교도(敎導)하여 - '교도하여'(*, 이와아츠)는 '충고하다'는 뜻으로 특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겸손히 제시하는 의견을 말한다. 즉 여기서 이는 왕인 르호보암에게 원로들이 진언(進言)하는 것을 가리킨다.

성 경: [왕상12:7]

주제1: [왕국의 분열]

주제2: [르호보암의 압제 정치]

(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 장로들의 이 직언(直言)은 여호와 신앙에 입각한 이스라엘의 전통적이고도 이상적인 군주관이 반영된 말이다. 즉 왕은 백성들에게 봉사할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은 실제에 있어 왕은 율법에 복종해야 하는 인물로 간주하는 사고 방식으로 표현된다(신 17:14-20). 즉 왕의 권력은 무제한한 것이 아니고 율법에 담긴 민사법과 전통의 규정들에 의해 규제되었다(삼하 11:1 이하;16:4;24:14 등). 그런데 왕에게 이와같은 법의 정신과 의무를 일깨워 주는 역할이 장로들에게 있었다(삼상 10:25;삼하 5:3;왕하11:17). 르호보암이 의논한 장로들 중에도 이와 같은 역할자가 있어 본절과 같이 충고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권력욕에 사로잡힌 왕들은 율법의 정신과 규정에 제한당하는 것을 싫어하였다. 아무튼 본절은 과거 이스라엘의 왕들 뿐 아니라 오늘날 교회나 사회의 지도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고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즉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들은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무리들 위에 군림하려 해서는 아니되며, 도리어 섬기고 헌신하는 자세로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해야 마땅한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마20:28).

(주); 섬기고 - '섬기고'에 해당하는 '아바드'(*)는 '봉사하다', '일하다'는 뜻으로 구약에서 자주(290회) 등장하는 단어이다. 이는 그만치 구약이 담고 있는 굵직한 정신의 일맥(一脈)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아바드'는 사물과 사람 및 하나님 모두를 향해 사용된다. 즉 이 단어는 사람이 자연을 경작한다든지 종이 주인에게 봉사한다든지 또는 성도가 하나님을 섬긴다든지 하는 모든 경우에 사용되고 있다(창2:5;29:15;렘 22:13;신 15:19;삿 9:28;삼상 11:1등). 그 가운데서도 본절에서 이 단어는 왕으로서의 백성에 대한 행동의 본질적 성격이 곧 '섬김'(serve)임을 강조해 주고있다. 따라서 위에 있는 자는 섬기는 자라는 성경의 정신은 여기서도 발견된다(눅22:25, 26).

(주); 좋은 말 - '좋은 말'(*, 드바림 토림)은 본래 상대방으로 하여금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말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는 백성들의 요구에 대하여 승낙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장로들은 르호보암에게 백성들의 요구(4절)를 들어주도록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왕상12:8]

주제1: [왕국의 분열]

주제2: [르호보암의 압제 정치]

(주); 버리고 - '버리고'(*, 아자브)는 주로 선한 것, 마땅한 것을 저버리는 경우에 사용되는 말이다(신 28:20;31:16;삿 10:10;렘 1:16). 즉 본절에서 르호보암은 율법의 정신으로 뒷받침된 장로들의 진언을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본 문맥에서 '아자브'는 '무시하다'는 뜻이 강하다. 이것은 단순히 아둔함에서 비롯되는 불찰이기보다는, 탐탁치 않은 감정과 나란히 가는 의도적인 배제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은 오만한 욕구가 잠재해 있다. 이렇게 볼때 르호보암은 부친 솔로몬의 생애 중 후반부의 어두운 면을 물려받은 흔적이 엿보인다. 즉 당시 솔로몬은 부강함에 집착한 나머지 율법의 정신에 위배되는 짓을 곧잘 벌였던 것이다(11:1-13)

(주); 그 앞에 모셔 있는...소년들 - 이들은 현재 르호보암의 신하로서 6절의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 즉 현재는 원로가 된 솔로몬의 신하들과 대비된다. 이러한 본문이 전하는 사건의 한 측면에는 르호보암 내각 내부에 존재하던 신.구 세력간의 대립이 은연 중 표출되고 있다. 그런데 그 같은 대립과 갈등은 곧 이어 완연히 드러나고 만다(10, 11절).

(주); 자기와 함께 자라난 - '함께 자라남'이 시사하듯, 이들 소년들은 르호보암과 같은 경험을 통해 사물과 인간에 대해 같은 관점, 같은 경향을 갖게 된 부류라 하겠다. 즉 이들은 하나의 '파당성'(派黨性)을 가진 무리인 것이다.

(주); 소년들 - '소년'에 해당하는 '옐레드'(*)는 '낳다', '태어나다'는 뜻의 '얄라드'(*)에서 온 말로 갓 태어난 어린아이로부터 장성한 청년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연령에도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41세 때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보아 여기서는 40대의 동년배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14:21). 왜냐하면 이들은 르호보암과 함께 자랐다고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여기서 '소년'은 왕성한 활력로서의 젊음을 내포한 긍정적인 말이 아니다. 대신 이는 6절의 '노인'과 날카롭게 대비되어, 경험이 불충분하고 사려깊지 못한 부정적 면이 강조되는 젊음으로서 '소년'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르호보암과 마찬가지로 권력과 힘을 추종(追從)하되 책임의 면을 고려하지 않는 '힘 지향적' 인물들이다. 이들의 용렬(庸劣)함은 상황을 도리어 악화시키는 강경책을 진언하는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10, 11절).

성 경: [왕상12:9]

주제1: [왕국의 분열]

주제2: [르호보암의 압제 정치]

(주);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 장로들이 충고를 무시해 버린 르호보암의 오만으로 미루어(6-8절) 백성들의 간청에 대해 그가 어떻게 느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권력 지향적인 르호보암에게 있어선 자신의 무제한한 욕구 충족을 위해서 백성들의 굴종이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그에게 들이닥친 백성들의 요구(4절)는 그의 야심에 타격을 주는 내용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르호보암의 심사를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성 경: [왕상12:10]

주제1: [왕국의 분열]

주제2: [르호보암의 압제 정치]

(주); 나의 새끼 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 이 수사학적 표현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두 대비(對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1) 굵기의 비교로서, 신체 중 가장가는 부분인 새끼 손가락과 가장 굵은 부분인 허리가 대비된다. 2) 내적 의미 연관의 비교로서, 새끼손가락이 표상하는 바 손끝의 간릉(幹能)한 재주 정도와 허리가 표상하는 바 힘의 근원지(사 45:1;시 69:23)가 서로 대비된다. 결국 이 말은 르호보암이 부친 솔로몬보다 훨씬 능력이 많다는 의미이다(Pulpit Commentary). 그런데 실상 이는 르호보암의 능력에 대해 과장된 찬사를 보내기 위한 비유적 표현이다. 원로들의 충정어린 자문이 노련한 경험에서 나온 지혜로운 것이었음에 반해, 소인배들의 조언은 아첨으로 가득찼으며 젊은 왕의 혈기를 충동질하기에 적절하였다. 만일 왕이 원로들의 조언을 따랐다면, 불만을 품은 백성들은 반역의 구실을 잃게 되었을 것이고 르호보암 자신은 왕국 분열을 조장하는 범죄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사단은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유혹을 해온다. 르호보암은 왕직을 수행하기에 앞서 일종의 테스트를 받고 있었던 것으로(막 1:12,13) 사단의 유혹에 넘어감으로서 통일 왕국이라는 큰 그릇을 소유하기에 부적격자로 판명되었다.

성 경: [왕상12:11]

주제1: [왕국의 분열]

주제2: [르호보암의 압제 정치]

(주); 더욱 무겁게 할지라 - 원래 '무겁다'는 말(*, 카베드)에는 '가혹하다' 외에도 '슬프다'는 뜻도 들어있다. 사실 가혹한 대접을 받는 사람은 슬픔을 안게 마련이다. 아무튼 본절은 백성들에게 이전보다 더 혹독하게 속박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처사가 백성들의 슬픔을 가중시키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주); 채찍 - 본절의 '채찍'에 해당하는 원어는 '쇼트'(*)로, 죄를 징책하는 의미의 '채찍', 즉 '네가'(*)와는 구별된다(삼하 7:14;시 89:32). 다시 말해 이는 단지문자 그대로의 '채찍'을 가리키는바 여기서는 통치상의 가혹함과 잔인성을 표상해 주는 말이다.

(주); 징치(徵治)하였으나 - '징치하다'는 말(*, 야사르)은 종종 '징계하다'로도 번역되는 단어이다(신 8:5;시 38:1;잠29:17). 그런데 하나님께 있어서 이 '야사르'는 대개 인간의 변화 및 회개를 겨냥한 긍정적인 의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좀 혹독하게 말해서 솔로몬의 '야사르'는 단지 자신의 이기적 욕구 충족을 위해 백성을 쥐어짠 것일 뿐이다. 4절 주석 참조.

(주); 전갈 - 대개의 학자들은 본절의 '전갈'(*, 아크랍)을 동물(전갈은 곤충이아니라 절지 동물)로서의 전갈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채찍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한다. 즉 앞서의 채찍이 단순히 가죽으로 된 끈인데 본절의 '전갈'은 이 가죽끈에 쇠조각을 박은 채찍이란 주장이다(H.Austel, Gates, Patterson, Montgomery). 한편 전갈(scorpion)은 꼬리 끝에 독침이 있어 이에 쏘이면 극심한 고통을 겪게 하는 동물이다. 그러기에 계시록에서도 전갈은 극도의 고통에 비유되었다(계 9:5).

성 경: [왕상12:12]

주제1: [왕국의 분열]

주제2: [르호보암의 압제 정치]

(주); 모든 백성 - 1절의 '온 이스라엘'과 동일한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1절 주석을 참조하라.

(주); 이는 왕이 명하...하였음이라 - 백성들이 아직까지 왕의 명령을 따르고 있음을 재차 특기(特記)하고 있는 구절이다. 5절 주석 참조. 따라서 이때까지 백성들은 다윗 왕조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후에 벌어진 파국은 르호보암의 불찰에 결정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13-20절). 그런데 르호보암의 잘못이 갖는 성격은 우둔한 강압책이라는 표면적인 것보다 율법 정신에 투철치 못한데서 찾아야 한다(7절). 이는 곧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니 이스라엘 남북 분열과 대립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임이 분명해진다(21-2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