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절은 예언이 선포된 시기와 저장의 신분, 그리고 예언의 근원을 밝힌다. 이로써 본서의 확호성과 엄정성을 드러낸다.
(주);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 년에 - 아모스는 호세아 선지자와 동시대의 인물로 보인다(호 1:1). 당시에는 여로보암 2세가 남방 유다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던 시기로(왕하 14:25) 대단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여기서 언급된 지진이 거의 2세기가 지난 후 스가랴에 의해 다시 언급된것을 보면(슥 14:4,5), 상당히 큰 지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세푸스는 웃시야 왕이 성전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하려 했을 때 문둥병이 발하게 되었던 시기(대하 26:16-20)와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어쩌면 이 지진은 장차 있을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였을지도 모른다(Feinberg).
(주);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 '드고아'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19km 떨어진 고지대에 위치한 마을로 넓은 들판이 있었고(대하 20:20;렘 6:1), 목양에 좋은 곳이었다(Jerome, S.R.Driver). 한편 '목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노케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 '로에'(*)와는 달리 털이 많은 양을 키우는 목자이거나(BDB), 비교적 좋은 양을 키우는 목자로 여겨진다. 이 단어가 모압 왕 메사에게 적용되기도 했는데(왕하 3:4), 그는 양을 기르고 공급하는 사람이었다(T.E.McComiskey).
(주);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받은 말씀이라 - '...가 받은 말씀이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디베레이'(*)는 어록집과 같은 형태의 책들에서 자주
사용되었고(잠 30:1;31:1;전 1:1;렘 1:1), 고대 히타이트의 봉신 계약 문서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전문적인 선지자 교육을 받지 못한 아모스는 당시
부패했던 선지자들과는 달리 대중들에게 참신한 인상을 줄수 있었을 것이다.
성 경: [암1:2]
(주); 저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음성을 발하시리니 - '부르짖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쉐아그'(*)는
사자의 부르짖음에 주로 사용된 단어이다(3:4,8;시 22:13;사 5:29;겔 22:25;호 11:10). 이런 표현은 요엘의 표현과 동일한데(욜 3:16), 사자의 울음
소리보다 더욱 강한 우뢰 소리를 가리키기도 한다(욥 37:4). 여기서는 '음성을 발하시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텐 콜로'(*)가 병행적으로
사용되어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으로 인한 권능을 표현하고 있다. 사실상 하나님의 힘있는 말씀은 어떠한 자연 현상보다 웅장하며 강력하다.
성 경: [암1: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다메섹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 '다메섹'은 아람(수리아)의 수도로 그 국가 전체를 대표하고(사 7:8), 마치 국가의 이름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아람, 수리아, 다메섹은 모두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곤 하였다. 이 지역은 동과 서를 연결하는 관문으로 일찍부터 교역의 중심지였다. 아합이 통치하던 시대부터 B.C. 8세기까지는 이스라엘과 다메섹간에 적대감이 분출되던 시기였다. 특히 예후가 통치하던 B.C. 9세기 후반에는 수리아가 이스라엘의 영토를 침입하여 이스라엘에게 괴로움을 주었다(왕하 10:32,33). 한편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쉘로솨 피쉐에이 다메세크 웨알-아르바아'(*)는 문자적으로는 '세 가지와 네 가지 죄로 인하여'라고 할 수 있는데, 단지 문자적으로 서너 가지 죄악을 말하려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당시에 많이 사용되던 수적인 격언(numerical proverb)으로 여겨진다(JB). 어떤 학자들은 3이 완전한 수인 데다가 하나를 더한 4를 언급하여 아주 많은 죄를 의미한다고 하였고(Luther, Calvin, Keil, Drive), 두 숫자를 합친 7이라는 수가 완전수이므로 죄로 가득한 상태를 가리킨다고 한다(W.R.Harper). 어쨌든 아모스는 이 용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6,11,13절;2:1,4,6) 이스라엘과 그 주변 국가들이 저지른 여러 죄악들을 지적하고 있다.
(주); 이는 저희가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 '길르앗'은 우거진 수목이 있었고(렘 22:6,7), 향료로도 유명했다(렘 8:22).
이 지역이 풍요로우며 변경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변 국가들로부터 침략을 많이 받았다. 특히 여호아하스 때에는 수리아가 침공하여 이스라엘 군대를
마치 타작 마당의 티끌같이 만들어버렸다(왕하 13:7). 그들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비인간적으로 취급했던
것이다.
성 경: [암1:4]
(주); 내가 하사엘의 집에 불을 보내리니 벤하닷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 전쟁을 좋아하던 수리아는 결국 황폐하여졌고, 왕조가 단절되고야 말았다.
'하사엘'은 B.C.841년부터 806년까지 수리아를 통치하였다. 그는 본래 엘리야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아람 왕이었고, 왕위에 오르리라는 사실이
예견되었다(왕상 19:15-17). 또한 엘리사는 그가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악을 행하리라는 사실을 내다 보았다(왕하 8:12,13). 후에 그는 예후와
여호아하스가 다스리던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학대하였다(왕하 13:3-7). 한편 '하닷'(Hadad)은 고대의 폭풍의 신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벤하닷은
'하닷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벤하닷'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은 세 명 정도가 있다. (1)벤하닷 I세는 이스라엘 왕 바아사(B.C.900-860)와
유다 왕 아사(B.C.910-869)와 동시대 살았고, 바아사에게서 많은 땅을 빼앗았다(왕상 15:20). (2)벤하닷 II세는 벤하닷 I세의 아들이며 아합 왕
때의 인물로 아합 왕을 전사시킨 자로 보인다(왕상 22장). 후에 그는 군대장관 하사엘에게 살해되었다(왕하 8:7,15). (3)벤하닷 III세는 하사엘의
아들로 이스라엘을 줄곧 침략하여 승리하다가(왕하 13:3,7,25) 마침내 여로보암 II세 때 패하고 말았다(왕하 14:28). 본절에 나오는 벤하닷은
하사엘에 이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 III세일 것이다(왕하 13:3). 한편 '불을 보내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웨쉴라흐티'(*)는 '솰라흐'(*)에서 온 말로 단순히 보내는 것이 아니라 쏘거나 던지는 모습을 나타내며 그 명사형은 '강력한 무기'를 뜻한다(BDB).
이런 표현은 전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서에 자주 사용되었다(4,7,10,12절;2:5). '불을 보내리니'와 좋은 대조를 보이는 '사르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웨에켈라'(*)는 '먹어치우다', '없애버리다', '찢다'등 강한 의미를 가진 '아칼'(*)에서 왔다. 또한, '궁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르메노트'(*)는 궁전을 말하기도 하지만, 요새지를 말하기도 하고 피난처나 은신처를 가리키기도 한다(왕상 16:18). 그러므로 본절은 전쟁을
통해 그 나라의 핵심부이자 최상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궁궐이 완전히 파괴될 것을 말한다.
성 경: [암1:5]
(주); 내가 다메섹 빗장을 꺾으며 - '다메섹'에 대해서는 3절 주석을 참조하라. '빗장을 꺾는다'는 것은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인 성문이 파괴되어 방어 능력을 상실한 것을 말한다.
(주); 아웬 골짜기에서 그 거민을 끊으며 벧에던에서 홀 잡은 자를 끊으리니 - '아웬 골짜기'가 어딘지 분명하지 않지만 수리아와 관계된 것에 비추어본다면, 오늘날의 베카가 있는 레바논과 안티리바누스 사이에 있는 평원일 가능성이 크다(T.E.McComiskey, C.L.Feinberg). '벧에던' 역시 장소는 확인하기 어렵고 다만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도시 국가로 B.C. 855년에 앗수르에게 정복당했다. 이 도시들은 모두 다메섹을 대표하는 도시로 아람 전체를 가리키는 것 같다. '거민'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요쉐브'(*)는 '거주자'(inhabitant)의 의미를 내포하며, 70인역에서도 이런 의미를 가진 '카토이 쿤타스'(*)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단어가 남성 단수로 쓰였을 경우에는 '권좌에 앉은 이'(who sits enthroned)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 같다(JB, J. Niehaus). 본 구절에서는 '홀 잡은 자'와 대구를 이루어 후자의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즉, 본 구절은 다메섹의 모든 실력자와 통치권자가 진멸될 것을 말한다.
(주); 아람 백성이 사로잡혀 길에 이르리라 - '길'(Kir)은 그 장소가 어딘지 확실하지 않지만, 수리아의 국가적 근원지였다(9:7). B.C.732년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3세가 다메섹을 침공하여 그 백성들을 이곳으로 옮겼다(왕하 16:6-9).
(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마르 아도나이'(*)는 아모스에 여러 차례 나온다(8,15절;2:3,11,16;3:10,15;
4:3,5,6,8-11; 5:17,27;7:16;8:3,11,12;9:8,12,15). 이런 표현은 정언적인 표현으로 아모스의 예언이 여호와의 권위로 베풀어지는 돌이킬 수 없는
말씀임을 강조한다.
성 경: [암1:6]
(주); 가사의...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붙였음이라 - '가사'의 히브리어 이름은 '아자'(*)로 '강한
자'(the strong)라는 뜻이 있다. 가사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서남쪽 약 80km 지점에 위치해 있었으며 블레셋에서 가장 큰 성읍이자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곳에서 인신 매매가 주로 행해졌을 것이다. 그만큼 가사는 블레셋을 대표하는 성읍이었다. 블레셋은 무역과 상업을 주로 하였는데,
그들이 유다를 침략하여 여호람의 가족들과 왕궁의 재물을 약탈했을 때(대하 21:16,17), 많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에돔에 넘겨버렸다. 또한,
산헤립의 유다 침공 때에도 블레셋으로 피난간 사람들을 헬라인에게 팔아넘기기까지 했다(욜 3:4-6). 그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인신매매를
자행하였고, 특히 하나님의 백성을 에돔에게 팔아넘기는 큰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야기시켰다. 블레셋은 웃시야 왕(대하 26:6,7)과 히스기야
왕(왕하 18:8) 때 크게 파괴되었으며, 그 후 애굽, 바벧론, 헬라의 침입을 받아 완전히 진멸되었고, 그 후손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성 경: [암1:7]
(주); 내가 가사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 '성'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마트'(*)는 성읍을 둘러싼 견고한 방어벽을 가리키는
것으로 가사가 상당히 안전한 성읍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가사는 B.C. 734년에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3세에게 점령당하고 말았다.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는 4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암1:8]
(주); 내가 또 아스돗에서 그 거민과 아스글론에서 홀 잡은 자를 끊고 또 손을 돌이켜 에그론을 치리니 -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은 블레셋의 다섯 성읍에 속하는 것으로(수 13:3;삼상 6:17,18) 사실상 이런 표현은 블레셋 전체를 가리킨다. '거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요쉐브'(*)는 5절 주석을 참조하라. '끊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웨히키라티'(*)와 '돌이켜...치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하쉬보티'(*)는 모두 히필형으로 강한 뜻을 나타낸다. 즉, 하나도 남김없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계속 활동한다는 의미이다.
(주);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가 멸망하리라 - 앞 구절에 이어 블레셋의 완전한 멸망을 의미한다.
성 경: [암1:9]
(주); 두로의...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지 아니하고 - '두로'는 베니게의 가장 중요한 도시로, 베니게 전체를 향한 예언이다. 두로는 지중해를 앞에 두고 있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이다. 이곳은 무역의 중심지였고(겔 27:3-5), 상당히 부유한 편이었다(겔 27:25,33;슥 9:3). 다윗과 솔로몬 왕 시대에는 두로 왕 히람이 이스라엘과 형제의 계약을 맺을 정도로 둘 사이가 돈독하였고, 상대방 백성을 노예로 팔지 말자는 협정을 맺기도 하였다(삼하 5:11;왕상 5:1-12;9:13).
(주);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붙였음이라 - 두로는 이스라엘과 맺은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고, 이스라엘 백성을 대상으로 인신 매매를
일삼았다. 이러한 죄악으로 인해 많은 선지자들은 두로의 멸망을 예고하였다(사 23장;렘 25:22;겔 26-28;슥 9:3,4).
성 경: [암1:10]
(주); 내가 두로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 두로는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B.C.332년 마게도냐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함락당하고 약
3만명의 백성들은 노예로 팔리고 수천 명의 지도자들이 사형당하였다.
성 경: [암1:11]
(주); 에돔의...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가 칼로 그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노가 항상 맹렬하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
'에돔'은 유다의 동남쪽, 사해와 홍해 사이에 있는 광야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모세는 에돔을 가리켜 이스라엘의 형제라고 하였고(민 20:14),
하나님은 에돔을 침범하지 말고, 미워하지도 말라고 하셨다(신 2:4,8;23:7,8).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돔은 이스라엘의 진행을 방해하여 이스라엘이
그들 가운데로 통과하지 못하게 하였다(민 20:14-21;삿 11:17,18). 뿐만 아니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공격했을 때에는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여 이스라엘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다(옵 1:11-14). 이에 많은 선지자들이 에돔의 멸망을 선포하였다(사 21:11,12;렘 49:7-22;겔
25:12-14;35:1-15;옵 1:15-21).
성 경: [암1:12]
(주); 내가 데만에 불을 보내리니 보스라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 '데만'은 에서의 손자의 이름에서 왔다(창 36:11). 이 도시는 에돔 남부에 있었고,
에돔을 대표하는 지명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렘 49:20;겔 25:13;옵 1:9). '보스라'는 에돔의 수도로 사해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고(창 36:33;렘
49:13), 데만과 마찬가지로 에돔의 명칭으로 대용되기도 한다(사 34:6;63:1;렘 49:22).
성 경: [암1:13]
(주); 암몬 자손의...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 '암몬'은 롯이 작은 딸에게서 낳은 아들 벤암미의 후손들을 지칭하는 이름이다(창 19:38). 암몬 족속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과 인척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명하시기를 그들과 싸우거나 그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하셨다(신 2:19).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시에도 그들을 피해 다른 길로 나아갔다(신 2:19,37;삿 11:15). 그렇지만 그들은 에돔과 마찬가지로 항상 이스라엘에게 적대적이었다(신 23:4-6;삿 11:7-9;왕하 24:2;렘 40:14). 암몬 자손들은 영토 확장을 위해 북쪽에 있는 길르앗을 자주 침공하고, 길르앗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했다(삿 11:8,13;삼상 11:1).
(주);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 암몬 자손들은 아람과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을 침공하였고(삼하 10:6), 이때 이러한
비인도적인 만행을 저지른 것 같다(왕하 8:12). 이처럼 산모의 배를 가르는 무자비한 만행에 버금가는 일들이 다른 성경 부분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왕하 8:12;15:16;시 137:9;사 13:16;호 10:14;13:16;나 3:10).
성 경: [암1:14]
(주); 내가 랍바 성에 - '랍바'는 암몬의 수도로 문자적인 의미는 거대한 곳(the great)이다. 모압이나 유다의 랍바와 구별하기 위하여 '암몬 족속의 랍바'라고 부른다(신 3:11;삼하 12:126;17:27;렘 49:2;겔 21:20). 오늘날에는 그곳에 암만(Amman)이라는 도시가 서 있다.
(주); 불을 놓아 그 궁궐들을 사르되 - 본절에서 사용된 '불을 놓아...사르되'라는 표현은 다른 부분에서 '불을 보내리라'고 표현된 것과 치이를 보인다(4,7,10,12절;2:2,5). 이는 마치 도성 내부로부터 불이 일어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Pusey).
(주); 전쟁의 날에 외침과 회리바람 날에 폭풍으로 할 것이며 - '외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비테루아'(*)는 전쟁의 외침(수 6:5) 외에도 기쁨의
외침(스 3:12)이나 나팔 신호(민 10:5)를 의미할 수 있다. 본 구절에서는 적군이 랍바 성을 함락시키려고 달려들면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묘사한다. 회리바람은 무서운 심판을 상징하며(시 83:15;호 8:7), 특별히 '폭풍'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알'(*)은 대개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것으로(시 83:15;렘 23:19;25:32;30:23), 본절에서는 적군이 쳐들어오는 모습이 성읍을 휩쓸어 버리기에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음을
묘사한다(T.E.McComiskey).
성 경: [암1:15]
(주); 저희의 왕은 그 방백들과 함께 사로 잡혀 가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저희의 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말캄'(*)이 어떤 고대
역본들에서는 암몬의 민족신인 밀곰(Milcom, 왕상 11:5,33;왕하 23:13)을 가리키는 '밀콤'(*)으로 읽히기도 한다(Aquila, Symmachus, Vulgate,
Syriac). 그러나, 70인역에서는 '그들의 왕'이라는 뜻을 가진 '호이 바실레이스 아우테스'(*)로 번역되었다. 개역 성경도 후자의 견해를 따랐고, 이
해석이 더 적합하다. 아모스는 암몬 자손이 그들의 왕을 비롯하여 모든 관리들이 사로잡히는 신세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비록 암몬 자손들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면서 즐거워하기도 하지만(겔 25:1-7), 얼마 안 되어(B.C. 580년경) 바벧론의 느부갓네살에게 멸망당하고(렘 49:2)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성 경: [암2:1]
(주); 모압의...이는 저가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회를 만들었음이라 - 모압은 원래 암몬의 사촌으로 롯이 큰 딸에게서 낳은 아들이다(창 19:37).
본절의 모압은 그 후손들로 암몬보다는 많은 성읍들의 이름이 나온다(사 15,16장;렘 48:20ff). 모압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발람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고(민 22-24장;수 24:9), 바알브올에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범죄케 하였다(민 25장;호 9:10). 사사
시대에는 18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을 괴롭혔다(삿 3:12-30). 사울 왕 때까지만 해도 모압과 이스라엘은 간헐적으로 전투가 계속되었고(삼상 14:47),
다윗 왕 때에 이르러서야 모압이 제압되었다(삼하 8:2;대상 18:2,11). 특히 본절에서는 모압이 저지른 비윤리적이고 비인도적인 범죄를 지적한다.
'뼈를 불살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르포 아츠모트'(*)는 극단적인 고통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기도 했지만(욥 30:30;시 102:3), 대개 시체 자체를
태우거나(6:9,10), 시체가 썩고 남은 뼈를 태우는 것을 의미한다(왕상 13:2;왕하 23:20;겔 24:10). 여기서 모압 왕이 저지른 죄악은 에돔 왕의
시체를 불에 태우기까지 하여 최악의 모독을 주는 식으로 복수 하였음을 의미한다(J.Calvin, T.E. McComiskey).
성 경: [암2:2]
(주); 모압에...그리욧 궁궐들을 사르리라 모압이 요란함과 외침과 나팔 소리 중에서 죽을 것이라 - '그리욧'(*, 하케리요트)은 간혹 성읍들(the
cities)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모압의 중요한 성읍을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보는 것이 좋다(렘 48:24,41). 이곳에 궁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수도였을 것으로 보이며, '모압의 알'(Ar of Malb) 같은 도시일 것으로 추정된다(사 15:1). 또한 '요란함과 외침과 나팔 소리'는 물밀듯이
몰아닥치는 적군의 모습을 묘사한다. 즉, 적군의 침략으로 인해 모압 백성은 순식간에 초토화될 것을 의미한다.
성 경: [암2:3]
(주); 내가 그 중에서 재판장을 멸하며 방백들을 저와 함께 죽이리라 - '그 중에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키르바'(*)는 가장 중심되는 부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모압의 핵심부를 말한다. 모압은 B.C. 734년에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3세에 의해 정복당했고, 그 후 바벧론이 고대 근동 지역의
패권을 잡았을 때에는 그들에게 조공을 바쳐야 했다. B.C. 598년에 바벧론에 반기를 들었지만 느부갓네살에게 진압당하고 말았다(Josephus).
성 경: [암2:4]
아모스는 지금까지 주변 국가들의 죄악상을 폭로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하였고, 이제 본 메시지의 핵심적 대상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한다.
(주); 유다의...이는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의 이름이다(창 29:31-35). 유다 족속은 가나안 땅의 남부를 차지하고 있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많은 복을 주셨다. 하지만 그들은 언약을 파기하기 일쑤였다. 이런 점에서 유다의 죄악은 이방 민족의 죄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유다는 엄연히 하나님의 법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였다. 주변 국가들은 일반적인 인간의 법에 근거하여 지적 받았을 뿐이지만, 유다는 무엇보다도 먼저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한 것에 대해 질책을 받는다. '여호와의 율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라트 아도나이'(*)는 본서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토라'(*)는 자주 '율법'으로 번역되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위해 주신 교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단어의 어근 '야라'(*)는 '던지다', '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BDB), '토라'라는 표현 속에는 지시나 교훈 등의 의미가 내포된다(J.Niehaus). 유다 백성은 율법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주); 그 열조의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하였음이라 - 아모스 당시의 유다 왕 웃시야(아사랴)는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긴 했지만, 산당을 제거하지는 않았다(왕하 15:3). 그는 후에 강성해지자 교만해져서 제사장의 권위를 빼앗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하려 했다가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다(대하 26:16,19). 이런 약순환은 그 이후로 계속되었다. '거짓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즈베이헴'(*)은 '그들의 거짓'(their lies)이라고 직역할 수 있지만, 본 구절에서는 열조의 따라가던 것을 가리키므로 '우상'을
의미한다(T.J.Finley). 우상을 '거짓 것'으로 표현한 것은 우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유일신 사상에 근거한다.
성 경: [암2:5]
(주); 내가 유다...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 하나님께 대한 종교적 순결을 상실한 유다는 B.C. 586년 바벧론에 의해 멸망되었다. 이로써
아모스의 예언이 완전히 성취되었다.
성 경: [암2:6]
(주); 이스라엘의...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례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 아모스는 유다를 향한 심판에 이어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들추어 내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한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다른 이름으로 여기서는 북이스라엘을 지칭한다.
'의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디크'(*)는 '의'(righteousness)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절에서는 올바름(rightness), 정의(justice)등의 개념을
갖는다. 또한 문맥상 '궁핍한 자'와 병행을 이루고 있어서, 여기서는 의를 추구하다가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궁핍하게 된 사람을 의미한다. 구약
성경은 이런 어법을 많이 사용하였다(출 23:7;신 25:1). 그러므로 이 구절은 뇌물을 받고 불의한 재판을 진행하거나, 죄없는 자를 노예로 팔아
넘기는 행위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성 경: [암2:7]
(주);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 '탐내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쇼아핌'(*)은 '열망하다'(pant after), '짓밟다'(trample upon) 등의 뜻을 가진 '솨아프'(*)에서 온 분사형이다. NIV는 '짓밟다'는 의미를 부여하여 '그들의 땅의 티끌을 짓밟듯이 가난한 자의 머리를 짓밟는다'(They trample on the heads of the poor as upon the dust of the ground)라고 번역하였다. 여기서 아모스는 가진자들의 탐심을 아주 생생하게 나타낸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가난한 자에게 공평할 것과 뇌물을 받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지만(출 23:6-8), 이스라엘은 이를 무시하였다.
(주);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 '한 젊은 여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나아라'(*)에서 정관사 '하'(*)는
동일한 여인임을 가리킨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한 여인과 동침하는 것은 사형에 해당되었다(레 18:6-18;20:17-21). 비록
그녀가 창기일지라도 근친 상간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외에 어떠한 근친 상간도 금지되어 있었다. 더욱이 이 여인이 카일(Keil)의 견해대로
'케데샤'(*), 즉 바알 신전에 있는 성녀(sacred harlot)였다면, 더욱 심각하고도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거룩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또한 '다녀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옐쿠'(*)는 미완료 시제로 습관적인 행동을 뜻한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이런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성 경: [암2:8]
(주);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 '옷'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게딤'(*)은 '베게드'(*)의 복수형으로 온 몸을 감쌀 수 있는 옷을 가리킨다. 이런 옷은 밤 사이에 추위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에게는 몸을 보호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므로 모세 율법은 전당잡힌 옷을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도록 명하였다(출 22:26,27;신 24:12,13).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무시하고 무자비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런 일이 모든 단 옆에서 자행되었다는 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만큼 신앙과 실천의 완전한 괴리 상태에 있었음을 강조한다.
(주);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 '저희 신의 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이트 엘로헤이헴'(*)은 문자적으로 '그들의
하나님의 집'(the house of their God)이라는 뜻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지배층들은 여호와의 종교를 표방하고 종교 생활을 영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 종교를 도입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혼합 종교를 만들었다. '벌금'은 가난한 자들의 옷을 저당잡아 받아낸
무자비한 돈이 분명하다(J.Calvin). 그렇다면, 그들은 겉모양새는 그럴듯하게 꾸몄지만, 실속없는 형식적인 종교 생활을 했음을 보여준다.
성 경: [암2:9]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타락을 언급하고 나서 곧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 이스라엘의 과거를 회상한다.
(주); 내가 아모리 사람을 저희 앞에서 멸하였나니 - '아모리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이전에 있었던 가나안 거민을 가리킨다(창 15:16).
(주);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진멸하지 아니하였느냐 - 아모스는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아모리 사람들이 아무리 강하였더라도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으로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정탐꾼을 보냈을 때 돌아온 정탐꾼의 보고는
본문과 같았다(민 13:22-33).
성 경: [암2:10]
(주);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로 차지하게 하였고 - 본절에 이르러서는 인칭의 변화가 있다. 즉, 아모스는
그의 민족들에게 직접 말하고 있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R.Martin-Achard). '이끌어 내어'의 히브리어 '헤엘레이티'(*)는 '이끌어 올린다'(bring
up)는 의미로 출애굽 기사에 언급된 용어 그대로이다(출 32:7;33:1;신 6:12). 아모스는 이처럼 이스라엘의 역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시작되었고,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성 경: [암2:11]
본절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관심이 가나안 정착으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주);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시르 사람을 일으켰나니 - 아모스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하게 부각된 선지자로 모세(호 12:10,13)와 엘리야(왕상 17장)와 미가야(왕상 22장)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R.Martin-Achard). '나시르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지림'(*)은 문자적으로 '구별되거나 성별된 사람'(seperated or consecrated ones)을 의미한다. 그들은 특별한 서원을 하였고(민 6:1-12), 사무엘처럼 평생을 나실인으로 보낸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삼상 1:28), 얼마 동안만 나실의 서약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민 6:5-8). 그들은 포도나무의 소산과 발효시켜서 만든 독주는 일체 마시지 않았고,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머리도 깎지 않았고,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삿 13:3-14). 이처럼 나시르 사람들은 철저하게 거룩성을 유지하며 하나님께 바쳐진 삶을 살았다.
(주);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앞서 아모스는 출애굽 역사에 이어 선지자와 나실인을 언급함으로써 이스라엘 전역사를 축약하여 개괄하였다. 이로써 타락의 일로를 걷고 있는 회중들에게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고, 앞으로 경고할 내용에 대해 수긍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본절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움 아도나이'(*)는 히브리어 본문에서 대개 문장 끝에 나온다(16절;3:10,15;4:3,6,8-11;6:8,14;9:7,8,12,13). 이 표현은 사실상 '아마르 아도나이'(*)와 동의어이긴 하지만, '네움'은 '신음하다'(groan), '탄식하다'(sigh)라는 의미를 내포한 '나암'(*)에서 온 것으로(BDB), '아마르'보다 깊이있는 표현이다. 즉, 깊은 묵상을 통해 잔잔하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 등을 가리킨다(S.R.Driver). 이 단어는 간혹 선지자가 계시의 말씀을 전달할 때 주어가 되기도 하지만(민 24:3,15;삼하 23:1), 보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언급하는 데 사용되었다(T.J.Finley). 그만큼 이 단어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예언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특별하고 직접적인 계시라는 사실을 지지한다.
(주); 그러나 너희가...포도주를 마시게 하며...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 같은 행위는 단순히 나시르 사람이나 선지자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 즉,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행위를 비웃는 일이었다.
성 경: [암2:12]
(주); 그러나 너희가...포도주를 마시게 하며...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 같은 행위는 단순히 나시르 사람이나 선지자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다. 즉,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행위를 비웃는 일이었다.
성 경: [암2:13]
(주);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 - 히브리어 본문에는 '보라'(behold)의 의미를 가진
'히네'(*)가 본절 처음에 나와서 청중들로 하여금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리고 곧바로 '내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노키'(*)가 있어서 이스라엘을
행한 심판 내용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한편, '누르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본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해석하기가 난해한데,
능동형과 수동형의 번역이 모두 가능하다(J.Calvin). 그래서 어떤 번역본들(개역 성경, RSV, JB, NIV)은 능동형으로 간주하여 '내가 너희를
누르리니'라고 했고, 어떤 번역본들(KJV, NASB)은 이를 수동형으로 간주하여 '내가 너희 아래 눌리리니'라고 번역하였다. 이 가운데 전자의 번역이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본절은 줄곧 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아마도 땅을 가르시겠다는 즉, 지진에 대한
예언으로 여겨진다(Wolff, T.J.Finley, R.Martin-Achard, T.E.McComiskey). 아모스는 다른 부분에서도 지진에 대한 모습을
묘사하였다(1:1;8:8;9:1,5).
성 경: [암2:14]
(주);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으며 - '도망할 수 없으며'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아바드'(*)는 문자적으로 '멸망하리라'(shall perish)는 의미로 심판이 급속하게 이루어질 것을 보여준다.
(주);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용사도 피할 수 없으며 - 히브리어 본문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피할 수 없으며'(*, 로 예말레트)는
'탈출하다'(escape), '구출하다'(deliver)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강한 의미를 나타내는 피엘(Piel)형 동사이다.
성 경: [암2:15]
(주); 활을 가진 자도 설 수 없으며 - 아무리 활을 잘 쏘고 자기 방어에 뛰어난 사람이라도 더이상 제자리를 지킬 수 없고 달아날 수밖에 없으리라는 말이다.
(주);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 말 타는 자도 피할 수 없고 - 아무리 민첩한 사람이라도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한다.
성 경: [암2:16]
(주); 용사 중에 굳센 자는 그 날에 벌거벗고야 도망하리라 - '그 날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욤 하후'(*)는 아모스가 장래의 날에 관심이 있음을 나타낸다. 이 용어가 종말의 날을 가리키기도 하지만(사 24:21), 구태여 종말론적인 의미만을 부여할 필요는 없고, 임박한 포로 시대를 의미하기도 한다(J.Niehaus).
(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는 11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암3:1]
(주);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 '이 말씀을 들으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쉼우 에트-하다바르 하제'(*)가 문장 초두에 나와 강조되어 있으며, 이런 표현은 새로운 주제로 전환하기 위해 사용되곤 하였다(4:1;5:1;8:4). '이 말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다바르 하제'(*)의 '하제'는 지시 대명사로 앞으로 계속 설파할 내용을 지시한다.
(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이르시기를 -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이 권고가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유다의 백성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암3:2]
(주);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 '너희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크에트켐'(*)은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본문장의 맨 앞에 나와 있어서 강조되어 있다. 그만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여 말씀하신다는 사실이 부각된다. '알았나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는 지극히 절친한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특별하게 선택하였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창 18:19).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서(출 19:5;말 3:17) 제사장 나라(출 19:6), 여호와의 백성(삿 5:11;삼하 14:13), 거룩한 백성(신 7:6;14:2,21)으로 여겨졌다.
(주);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 이스라엘이 징계받는 원인이 제시된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특별하게
여기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서 범죄하였기 때문에 징계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이 돌아오길 기대하는
것이므로(6,8-11절) 하나님의 징계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히 12:5-8).
성 경: [암3:3]
(주);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 - 2절에서 예고된 심판이 잠시 중단되고, 아모스의 예언적 권위를 확증하려는 듯한 일련의
질문들이 제기된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질문은 두 사람의 의견 일치가 없이는 동행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아모스가 언급하는 두 사람이
누구를 암시하느냐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1)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으로 보는 견해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동행하길 원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하고 말았다는 것이다(Pusey, Harper). 이 견해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범죄와 그에 따른 징계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2)하나님과 아모스로 보는 견해로 아모스 자신의 예언이 하나님의 뜻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는 아모스의 선포가 다른
선지자들의 선포와도 일치되는 것으로 아모스가 선지자적인 권위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3)기본적으로 (2)의 견해와 동일한 관점이지만,
아모스는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 표명이라는 견해다(Calvin, Keil). 이 가운데 (2), (3)의 견해가 무난하다.
성 경: [암3:4]
(주); 사자가 움킨 것이 없고야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 사자가 부르짖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사자의 울음 소리같다는 사실을
연상시킨다(1:2). 아울러 사자의 부르짖음이 사자가 움킨 것에 근거하는 것처럼, 아모스의 선포도 명백한 근거와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선포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선포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성 경: [암3:5]
(주); 창애를 땅에 베풀지 아니하고야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아무 잡힌 것이 없고야 창애가 어찌 땅에서 뛰겠느냐 - 개역 성경에서는 두 번에
걸쳐 '창애'라고 번역되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각각 '파흐'(*)와 '모케쉬'(*)로 되어 있다. '파흐'는 땅에 있는 덫(ground snare)을 의미하는
것으로 새를 잡기위해 땅에 고정시켜 놓은 덫을 가리킨다. '모케쉬'는 원래 미끼(bait)라는 뜻이었다가 나중에는 함정(trap)을 의미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BDB). 그러므로 이 두 문장은 새가 잡히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기보다는 원인-결과의 관계(cause and effect)를 보여주는 비유로서 서로
독립된 두개의 구절로 보는 것이 낫다.
성 경: [암3:6]
(주); 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고야...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 앞에서 전개된 비유의 본래 의도대로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시키기 위해 원인과 결과를 나타내는 수사학적 질문을 던진다. '나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파르'(*)는 전쟁 때 공격하기 위한 신호(삿
7:18,19), 군사 행동을 정지시키기 위한 신호(삼하 2:28), 적군이 쳐들어 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신호(렘 6:1;호 5:8) 등으로 불렸다. 본절에서는
어떤 성읍의 거민들에게 경고로 부는 나팔을 의미한다. 또한 '재앙'은 하나님의 주권하에 시행되는 것이 기정 사실임을 전제하고 있다(사 45:7).
성 경: [암3:7]
(주);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 본절이 앞절과 연관성이 있는지 여부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앞 부분과 논리적인 연결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T.E.McComiskey). 그래서 어떤 학자는 본절의 첫머리에
나오는 히브리어 '키'(*)를 '그러나'(but)로 번역하고(Harper), 어떤 역본들은 '확실히'(surely)로 번역하였다(KJV, JB). 그렇지만 8절에 나오는
'사자'와 '두려움'의 개념이 4절의 '사자'와 6절의 '두려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을 보면, 7절만을 따로 생각할 수도 없다. 한편 '비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소드'(*)는 '은밀한 협의'(SECRET COUNSEL)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밀접한 관계에 기초한 적극적인 의논(잠 15:22)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깊은 관계성을 통해 미리 알려주는 계획(plan)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나님과 이런 관계에
있으므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렘 23:18,22). 한편, 하나님의 심판에는 그에 앞서 항상 경고가 있다.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도 그러했고(창 6:13-21),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도 미리 경고되었다(창 18:17-21;19:12,13).
성 경: [암3:8]
(주);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 본문은 하나님 심판 선포의 엄위로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4절;1:2;렘 25:30;호 11:10), 임박한 전쟁이나 멸망을 상징할 때도 사용되었다(사 5:29;렘 2:15). 이 구절은 4절의 사자의 부르짖음과 6절의 백성의 두려워하는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다(J.Niehaus).
(주);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 본 구절은 아모스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을 털어놓고
있다. 누구라도 여호와의 말씀을 깨닫는다면 이를 거역할 수 없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자기에게 핍박이 주어진다고 해도 이런 사역은 포기할
수 없다(7:10-17;행 4:20).
성 경: [암3:9]
(주); 아스돗의 궁들과 애굽 땅 궁들에 광포하여 이르기를 - 70인역에는 히브리어 원문에 나온 '아스돗'(*, 아쉐도드)이 '앗수르'(*, 아수리오스)로 되어 있다. 아마 다른 선지자들이 애굽을 앗수르와 병행되게 제시하기 때문인 것 같다(사 7:18;19:23-25;렘 2:18,36;호 7:11;미 7:12). 그러나, 70인역의 이러한 번역은 별로 지지를 받지 못한다. 아모스는 앗수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다음 구절에 사마리아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거기서 가까운 아스돗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 이방인을 향해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저지른 범죄는 이방인들의 관점으로도 여실히 드러날 만큼 심각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성 경: [암3:10]
(주);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르느니라 -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포학'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마스'(*)는 잘못(wrong), 격렬함(violence)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불의(unrighteousness),
무법(lawlessness)등을 의미한다(창 6:11). '겁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드'(*)도 파괴, 살상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잔인무도한 죄악상을 묘사한다. 이런 점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죄악의 심각성이 다른 이방 민족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과는 달리 자기네 성 안에서 이런 일을 자행했다는 점이다.
성 경: [암3:11]
(주);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네 힘을 쇠하게 하며 네 궁궐을 약탈하리라 - '그러므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켄'(*, therefore)은 앞에서 언급된 멸망의 원인과 본절에 나오는 결과를 연결시켜준다. 또한, 2절에서 중단되었다가 본절에서 시작되는 심판을
논리적으로 연결시켜준다(T.E.McComiskey). 여기서는 '대적'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앗수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B.C. 733년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3세가 길르앗과 갈릴리를 침략하고, B.C. 722년 살만에셀 5세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킴으로써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
성 경: [암3:12]
아모스의 예언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회복의 여지를 남겨둔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 이 비유는 모세의 율법을 반영하는데, 율법에 의하면 목자가 치던 양이 죽으면, 목자는 자신이 훔치지 않았다는 증거로 죽은 시체의 일부를 제시해야 했다(출 22:13).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파멸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아울러 다른 이방 민족이 완전히 진멸되는 것과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은 회복의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주);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퉁이에나 걸상에 비단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이 건져냄을 입으리라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에 처할
비참한 상황이 묘사되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따라 철저히 파괴를 당하겠지만, 그들 가운데 일부는 남게 된다는 사상이
깔려있다(사 11:11). '비단 방석'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데메쉐크'(*)는 '다메섹'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LXX, Targum, Peshitta, Vulgate, KJV,
NIV). 본 구절은 이스라엘이 비록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이웃 나라에서 비천한 삶을 살게 될 것이나 완전히 진멸되지는 않고 그 명맥을 유지할 것을
보여준다.
성 경: [암3:13]
(주); 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거하라 - 본절은 9절의 명령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수사학적 표현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간접적으로나마 이스라엘을 경고하기 위해 임의로 증인들(아스돗과 애굽)을 세워 명하셨다. 본절의 '너희'는 9절과 연관지어
아스돗(블레셋)과 애굽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이방인들이 증거할 정도로 심각하고도 부끄러운 것이었다.
성 경: [암3:14]
(주);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단들을 벌하여 그 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고 - 여로보암 1세는 벧엘과 단(Dan)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 애굽에서 인도하여낸 하나님이라 칭하며 그것을 섬기도록 하였다. 또한, 하나님이 율법으로 세운 제사 제도를
파기했다(왕상 12:26-33). 그러므로 벧엘의 단은 이스라엘의 배도를 대표하는 것이었다. '단의 뿔'은 제단의 핵심 부분으로 속죄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권위와 영광을 상징하였고(신 33:17;삼상 2:1,10;시 89:17,24), 그것을 통해 죽음을 면할 수도 있었다(왕상 1:50). 그러므로 그 단의 뿔들을
꺾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 단을 유명 무실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성 경: [암3:15]
(주);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궁들이 파멸되며 큰 궁들이 결단나리라 - 본절은 상류층이 누리는 부귀 영화가 여호와의 심판 앞에서는 무익한 것임을 보여준다. 가난한 자들은 겨울이든 여름이든 한 처소에서 살지만, 상류층의 부유한 자들은 계절마다 집을 바꾸는 호화판 생활을 하였다(J.Calvin). 그러나 이러한 호의 호식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힘없이 사라질 것이다. '결단나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푸'(*)는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에 대하여는 2:1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암4:1]
(주);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 바산은 요단 강 동편의 헬몬 산과 길르앗 산지 사이에 위치한 기름진 땅으로 목축을 하기에 매우 좋았으며, 그곳의 초장은 아름답고 살진 소와 양이 생산되는 곳으로 대표되었다(신 32:14;겔 39:18). '바산의 암소'는 비유적인 표현임에 분명하다. 혹자는 이에 대해 사치와 방종을 일삼은 유한(有閑) 부인을 가리키는 비유로 본다(BDB). 그러나 '들으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쉬므우'(*)는 남성형으로 되어 있어서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여성형으로 보고,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낫다(J.Calvin, Henderson). 특별히 암소를 선택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단과 벧엘에 세운 금송아지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T.J.Finley).
(주); 너희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 2:6,7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가 대구를 이루고 있다.
(주);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 '가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도네이헴'(*)은 3인칭 남성 복수형 어미를
가지고 있어서 어떤 영역 성경(RSV)은 그들의 남편들(their husbands)이라고 번역하였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사치와
방종을 일삼는 형태를 아주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성 경: [암4:2]
(주);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 '거룩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데쇼'(*)는 세속적이거나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된 것을 의미한다(출 29:21,37;30:29;민 16:38).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맹세하셨다는 것은 거짓말하지 않으신다는 보증이다(시 89:35). 하나님은 인간의 불완전함에 제약받지 않으시며 당신의 말씀에 신실하시고, 죄를 용납하거나 심판을 포기하지 않으신다(T.E.McComiskey). 하나님은 맹세하실 때, 힘을 상징하는 오른손이나 능력의 팔로 하시거나(사 62:8), 당신의 크신 이름으로 하셨다(렘 44:26).
(주); 때가 너희에게 임할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하리라 - '갈고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치노트'(*)와 '낚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시로트'(*) 모두 '가시'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두 단어는 대개 남성형으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만 여성형을 취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처참하게 끌려가는 모습을 묘사한다(왕하 19:28;대하 33:11). 앗수르인들은 실제로 이런
식으로 포로들을 끌고 갔다고 한다(D.Guthrie).
성 경: [암4:3]
(주); 너희가 성 무너진 데로 말미암아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지우리라 - 문맥상 '하르몬'은 장차 이스라엘이 잡혀갈 곳을 가리키는데, 정확한 지명은 알려진 바 없다. 다만, 70인역에서는 이것을 '로마의 산'(*, 토 오로스 토 렘만)이라고 번역했다. 혹자는 이 곳이 북쪽 아라랏의 동남쪽 방향에 위치한 '민니'라고 하기도 하고(렘 51:27), '헐몬 산'이라고 하기도 한다(Luther, JB). 이외에도 많은 견해들이 있는데, 공통적인 결론은 그곳이 고유한 지명이고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이에 대해서는 2:1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암4:4]
(주);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 '벧엘'은 야곱이 돌기둥을 세웠던 곳이며(창 28:18,19), 세겜을 떠난 뒤에 단을 쌓고 회개했던 곳이기도 하다(창 35:1-7). 그 후에 이곳은 거룩한 예배 장소로 지정되었다(삼상 10:3). 또한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에 입성한 첫 지점으로(수 4:19,20) 그곳에 도착한 온 백성이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켰다(수 5:2-12). 그러나 아모스 당시에는 벧엘과 길갈이 모두 타락한 여호와 종교의 본산지가 되어, 우상 숭배의 중심지로 바뀌고 말았다(5:5;호 4:15;10:5,8,15).
(주);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 일 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 이스라엘 백성이 기울였던 그릇된 종교적 열심을 엿볼 수 있다. '아침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보케르'(*)는 '끊이지 않고 계속적으로'라는 의미를 가진다(시 73:14;101:8;사 33:2,BDB). 또한 '너희의 희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지브헤이켐'(*)은 모세 율법에서 말하는 상번제가 아니다. 매일 두 번씩 드리도록 되어 있던 '상번제'(*, 올라)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브헤이켐'은 원래 유월절 희생을 의미하는 '지브히'(*)에서 온 말로(출 34:25), 후에 일 년에 한 번 성소를 찾아가 드리는 매년제를 가리키게
되었다(삼상 1:3,7,21). 그러므로 아침마다 희생(지브헤이켐)을 드린다는 것은 그들의 그릇된 예배 의식을 비아냥거리는 표현이다(사 1:11).
십일조는 모세 율법에 의하면 매 3년마다 드리도록 하였다(신 14:28;26:12).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 희생 제물을 드리고 삼 일 마다
십일조를 드리는 열심을 보였다.
성 경: [암4:5]
(주);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온제로 드리며...이것이 너희의 기뻐하는 바니라 - 본절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지만, 문맥상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기쁨을 위해 드리는 그릇된 예배 형태임을 지적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식적인 제사만 되풀이할 뿐, 그에 합당한 삶의 태도는 갖추고 있지
않았다. '수은제'(감사제)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토다'(*)와 '낙헌제'라고 번역된 '네다바'(*)는 모두 일종의 화목 제물이다. 누룩넣은 떡이
낙헌제에 드려지기도 했고(레 7:12,13), 불로 태운 소제가 음식물로 된 제물 위에 드려지기도 했다(레 2:1,2,8).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따라
제사를 잘 드렸더라도 그들의 행위는 종교적인 위선 행위였다. 하나님은 통회하는 심령과 겸손하고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시며 그의 중심을
보시므로(삼상 15:22;16:7;시 51:16,17;사 1:11-17;약 4:6;벧전 5:5,6)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위는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이요 크게 책망받을
일이었다.
성 경: [암4:6]
(주);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한가하게 하며 너희 각처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 '너희 이를 한가하게 하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타티 라켐 니케욘 쉬나임'(*)은 '내가 너희에게 깨끗한 이빨들을 주었다'는 뜻으로 양식이 없어 굶주린 끝에 이빨에 끼일 음식조차 없어지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범죄로 인한 흉년이 간혹 있었다(왕상 8:37;왕하 4:38). 이런 징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우상 종교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방편으로 주어진 것이 분명하다.
(주);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 '돌아온다'의 히브리어 '슈브'(*)는 당시의 선지자였던 호세아도 많이 사용했다(호
3:5;6:1;7:10,16; 11:5;14:1,7). 70인역에서는 '슈브'가 '회심하다'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에페스트레파테'(*)로 번역되었다. 즉, 본 구절에서
돌아온다는 표현은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완전히 하나님께 순복하는 마음으로 전환하고(눅 15:17-20;살전 1:9), 나아가서 이제까지의 삶의 방식을
청산하고, 전면적인 수정을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호 3:5;7:10,16;14:1,7). 본서에서는 이런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8-11절) 이스라엘 백성이
매우 완강하게 버티며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성 경: [암4:7]
(주);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어...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리는 비는 12월에서 2월 사이에 내리는 비로 늦은 비(봄 비)에 해당한다. 이 비는 추수를 앞두고 내리므로 알곡을 숙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이 비가 내리지 않으면 수확에 큰 지장을 초래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적으로 지역에 따라 비가 내리는 기이한 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구체적인 간섭이 있는 특별한 현상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성 경: [암4:8]
(주);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히 마시지 못하였으나 - 앞 구절에 이어 가뭄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특히 '두 세 성읍 사람'이라는 표현은 공동체적인 표현으로 신분에 관계없이 이스라엘 전체가 고통을 당하는 것을 나타내며, 이 징계가 민족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J.Niehaus).
(주);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 이에 대해서는 6절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암4:9]
(주); 내가 풍재와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 '풍재'(風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쉬다폰'(*)은 이삭을 까맣게 만드는 흑수병(黑穗病, smut)이다. 이 단어가 70인역에서는 '바싹 말려서'(*, 엔 퓌로세이. with parching)라고 번역되었다. 또한 '깜부기'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예라콘'(*)도 식물을 말리는 병으로 붉은 색으로 변하게 한다. 이런 재앙은 신명기의 언약적 재앙으로 언급되기도 하였고(신 28:22), 솔로몬의 기도(왕상 8:37)와 학개 선지서에서도 언급되었다(학 2:17).
(주); 팟종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 '팟종이'의 히브리어는 '가잠'(*)으로 '자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땅의 소산들에 심각한 타격을 안겨다 준다는 점을 표현한다(욜 1:4;2:25). 또한 '먹게 하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요칼'(*)이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어서 메뚜기 떼에 의한 피해를 아주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성 경: [암4:10]
(주); 내가 너희 중에 염병이 임하게 하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당시에 애굽에게 내려졌던 재앙에 버금가는 재앙이 이스라엘에도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을 언급한다(출 5:3;신 28:27,60). 당시 이스라엘 사회처럼 비위생적인 환경에서는 역병이 순식간에 번지기 십상이었고, 실제로 급속하게 퍼졌던 전염병이 있었다(삼상 5장). 따라서 당시의 사람들은 이런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주);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 '칼'은 전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수리아(아람)와 치른 오랜 기간의 전쟁을 회상하게 한다(왕하 13:3). '너희 청년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후레이켐'(*)은 '선택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바하르'(*)에서 온 말로 일반적으로 청년들이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음을 시사한다(잠 20:29). 이러한 청년들이 많이 죽었던
역사적인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의 희망을 끊어버리는 것과도 같았다.
성 경: [암4:11]
(주);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같이 되었으나 - '무너뜨렸다'의 히브리어 '하파크'(*)는
'뒤집다'는 의미로 매우 큰 재난을 의미한다. 어떤 학자는 본절의 현상이 아모스가 예언한 지 2년 후에 있었던 지진(1:1)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E.B.Pusey). 이는 아모스가 예언을 행한 시기와 이 예언을 집약하여 문서화한 시기를 따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지자들은 소돔과
고모라를 단순히 멸망의 본보기로만 언급하곤 한다(사 1:9;13:19;렘 50:40;습 2:9). 여기서도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지진에 의한 현상으로
보기보다는 일반적인 멸망의 본보기로 보고, 수리아의 침입으로 이스라엘의 성읍들이 초토화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둔 것(왕하 13:1-9)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T.E. McComiskey).
성 경: [암4:12]
(주);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 '이와 같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켄'(*)이 앞에 이미 언급된 내용을 가리키는 반면, 이어서 나오는 '코'(*)는 앞으로 언급할 내용을 가리킨다(BDB). 하지만, 본 구절에는 하나님이 행하시려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이것을'에 해당하는 지시대명사 '조트'(*)는 앞에 나온 '코'를 가리키는 것으로 '코'를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막연한 표현으로 강조한 이유는, 이미 앞에서 제시된 심판의 내용에 비추어 봤을 때, 비록 심판의 내용을 일일이 다시 언급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려는 징계가 얼마나 심각한지 암시적으로 쉽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Pusey).
(주);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징계를 전제하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최후의 통첩과도 같은
경고이다(T.E.McComiskey).
성 경: [암4:13]
(주); 대저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 심판 날에 이스라엘이 만나게 될 하나님의 속성을 묘사하면서 한 단락을 끝마친다. 접속사 '키'(*, 대저)는 바로 앞 구절에서 언급된 내용과 본절을 연결시킨다. '지으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요체르'(*)는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토기장이의 활동을 가리키기도 하지만(사 29:16;렘 18:4,6), 자주 하나님의 행동을 묘사하였다. 예를 들어, 동물과 사람을 만드셨다든지(창 2:7,8,19), 땅을 조성하셨다든지(사 45:18), 이스라엘 백성을 조성하셨다(사 43:1,21;44:2,21,24)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또한 '창조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보레'(*)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행위(creative activity)에만 사용되었다(창 1:1;사 40:28;43:1,15;45:12,18). 이상의 두 단어가 본절에서는 병행적으로 사용되었고, 모두 분사형으로 되어 있어 하나님의 창조의 연속성과 역동성을 나타낸다. 이로써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가장 근본적인 신앙 고백을 상기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는 것들은 단지 하나님의 피조물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한편 '바람'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존재하는 실체로 불가시적인 세계를 대표한다(Pusey). 그렇다면 '산'은 가시적인 세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주);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 '자기 뜻'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 세호'(*)는 '자기 뜻이 무엇인지'라고 직역할 수 있다. 여기서 '세호'는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온 단어(hapax legomenon)로 이와 다른 형태의 단어인 '사하'(*)가 하나님께 적용된 예가 없고 오로지 사람에게만 적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단수 접미사 '오'(*)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3:7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뜻을 알려주셨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생각의 동기를 밝히 아시고, 드러내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T.E.McComiskey).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고 참되게 우리의 뜻을 알고 계신다(Pusey).
(주);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자는 - 산과 언덕 등 높은 데를 밟고 다닌다는 장엄한 비유는 땅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낸다.
(주); 그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도나이 엘로헤이 체바오트'(*)는 크신 능력으로
천지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간결한 찬송은 앞서 아모스가 말한 모든 말과 잘 조화를 이루며 그의
메시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즉 하나님은 창조주의 권리를 가지고 전피조계를 다스리시고, 지으신 백성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나타낸다.
성 경: [암5:1]
(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애가로 지은 - '애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나'(*)는 슬픔을 표현한 노래나 시를 가리키는 것으로(J.K.Howard)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거나(삼하 1:17-27;겔 28:12), 민족의 멸망을 슬퍼하며 불려졌다(렘 7:29;겔 19:1). 소위 키나 리듬(Qinah Rhythm)은 다음 도표와 같이 전형적으로 3과 2운율(3+2 metre)을 이루고 있다. 본문의 애가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주); 이 말을 들으라 - 3:1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암5:2]
(주); 처녀 이스라엘이 - '처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톨라트'(*)는 '딸'(*, 바트)이라는 표현과 함께 이스라엘을 수식하는 용어로 사용되곤 하였다(사 37:22;렘 14:17). 하나님은 이런 표현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마치 남자에게 짓밟힌 적이 없는 여인을 대하듯 하신다. 이러한 표현은 아마도 이방 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았던 과거를 회상하며 부르는 호칭일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이방의 침략이 없이 부귀를 누리던 시기가 여로보암 2세 때에 있었다.
(주); 엎드러졌음이여...일으킬 자 없으리로다 - '엎드러졌음이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펠라'(*)는 '처절한 죽음'을 나타내는 표현이고(삼하
1:19,25), '던지움이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트솨'(*)는 어떤 동작으로 인해 나오는 소리를 흉내낸 의성적 단어로 사정없이 내팽개쳐진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런 표현들과 더불어 '일어나지 못하리로다'와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는 표현은 여로보암 2세 때 앗수르의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이
결코 회복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T.J.Finley). 한편, 하나님이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위해 장래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고 한 것은 유다
족속과 다윗의 혈통을 통한 회복을 내다보는 것이었다(9:11;렘 31:4-6).
성 경: [암5:3]
(주); 이스라엘 중에서...열 명만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 본절은 이스라엘이 무너져가는 최후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스라엘 중에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베이트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집들에게'(to the house of Israel)라는 의미로 이스라엘의 12족속 모두가 전쟁의 피해로 인해
쇠퇴할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100분의 1이라도 살아남을 것을 약속하여 소망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이와같이
소수나마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맺으신 언약 때문이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시면서도 끝까지 긍휼을 베푸신 것이다. 다른 이방 나라들은 완전히 진멸하기도 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만큼은 끝까지
남겨두신다.
성 경: [암5:4]
(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 '이스라엘 족속에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베이트 이스라엘'(*)은 앞 구절의 '이스라엘 중에서'와 같은 용어로 본 구절은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앞 문장과 대구를 이룬다. 이스라엘이 장차 쇠퇴하겠지만, 소수나마 남게 되리라는 사실을 복합적으로 제시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바를 권고하신다.
(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 구절이 단지 두 단어의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나를 찾으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디르슈니'(*)는 여호와께 사용될 때, '그분께로 돌아와 다시 믿음과 신뢰를 회복하라'는 의미이다(시 9:10;24:6;77:2;사 65:10;호
10:12;습 1:6). 그리고 '살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위흐유'(*)는 때때로 영적인 생명과 연관되어 있다(T.E.McComiskey). 또한 이 두 명령형
동사가 접속사 '와우'(*, 그리고, 그리하면)로 연결되어 있어서 앞의 명령은 전제로 제시되었고, 뒤의 명령은 그에 따라 주어지는 결과를 나타낸다.
이스라엘 백성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화해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생명을 부여하실 것이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제시한다(Calvin).
성 경: [암5:5]
(주);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 앞 구절에서는 회개를 촉구하였고, 본절에서는 회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본절에서 언급하는 '벧엘', '길갈', '브엘세바'는 당시 우상의 본거지로 유명한 곳으로, 앞에서(4:4,5) 이미 언급된
벧엘과 길갈에다가 브엘세바가 추가되었다. '브엘세바'는 '벧엘'이나 '길갈'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미있는 장소였다. 그곳은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던 적이 있는 곳이며(창 21:33), 그곳에서 여호와가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시기도 하였고(창 26:24;46:1,2), 사무엘이 자기
아들들을 사사로 삼은 곳이기도 하다(삼상 8:1,2). 이와같이 유서깊은 브엘세바도 타락한 이스라엘에 의하여 우상을 섬기는 장소로 변모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장소들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를 상징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에서 하나님대신 우상을 섬기는 우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본절에는 히브리어 두운법의 효과로 인한 언어의 묘미(word play)가 나타나는데, '길갈은 정녕 사로잡히겠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하길갈 갈로 이글레'(*)로 '김멜'(*)과 '라메드'(*)가 연속적으로 반복되면서 마치 '길갈'이라는 지명의 특성상 사로잡히는
운명에 처하고야 말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성 경: [암5:6]
(주);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 앞에서(4절)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주체였고, 이번에는 아모스가 그와 똑같은 말을 반복하여 청중에게 던진다. 이로써 아모스의 선포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증하게 한다.
(주); 염려컨대...없을까 하노라 - '염려컨대...없을까 하노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펜'(*)은 백성들로 하여금 분명한 선택을 하도록 요청한다.
그 선택은 바로 여호와를 찾아서 그로 말미암는 모든 은혜를 누리든지 아니면 심판을 당하든지 양자 택일을 하라는 요청이다(T.E.McComiskey).
한편, '내리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첼라흐'(*)의 기본적인 의미는 '돌진하다'(rush)는 의미와 가까운 것으로(BDB) 전후 문맥에 따라 독특한
뉘앙스를 준다. 이 단어는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시는 모습을 그리는 데 사용되기도 했고(삿 14:6,19;15:14;삼상 10:6;11:6;16:13), 반면에 악령이
강하게 임하는 모습을 묘사하기도 하였다(삼상 18:10). 여기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대항하시는 여호와의 강력한 행위를 묘사한다(J.Niehaus).
성 경: [암5:7]
(주);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며 정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 '공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선지서에서는 주로 참종교, 곧 모세
율법이 지향하는 윤리적 실제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되곤 하였다(J.Niehaus). 이는 모세 율법을 제정한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헤아려서 율법의 모든
요소를 편견없이 공정하게 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가 '정의'(justice)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다카'(*)와 함께 사용되어 거의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24절;6:12). 그리고 '인진'이라고 번역된 '라아나'(*)는 문자적으로는 '쓴 쑥'(wormwood)을 나타낸다. 또한 이 단어가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몹시 쓰디쓴 경험을 나타내기도 한다(렘 9:15;애 3:15,19). 공법과 정의가 바로 지켜질 때에야 비로소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인생의 참된 가치를 알 수 있다.
성 경: [암5:8]
일부 학자들은 본절에 나타나는 찬송의 요소가 후대에 삽입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본절이 논리적인 흐름을 깨뜨리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6:8-13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런 서술 방식이 본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T.E.McComiskey).
(주);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 '묘성'이라고 번역된 '키마'(*)는 많은 별무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라틴어로는 '플레이아데스'이다. 이 별에는 일곱 개의 큰 별을 비롯하여 40개 이상의 별자리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삼성'이라고 번역된 '케실'(*)은 70인역(LXX)에서 '오리온'(*)이라고 번역되었다. '묘성'과 '삼성'은 함께 사용되어(욥 9:9;38:31), 질서와 조화를 잘 이루는 전체 별자리를 대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하늘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묘사한다.
(주);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 시간을 주관하는 하나님을 묘사한다.
(주);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 자연 질서를 총체적으로 다스리시며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묘사한다.
성 경: [암5:9]
(주); 저가 강한 자에게...산성에 미치느니라 - '저가...홀연히...임하게 하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마벧리그'(*)는 다른 곳에서 단세 번만
나온다(욥 9:27;10:20;시 39:13). 따라서 이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란 쉽지 않고 그 해석도 여러 가지이다. 이 단어는 '웃다'(laugh at,
smile), '번득이다'(flash forth, RSV), '강하게 하다'(strenghteneth, KJV), '갑자기 일어나다'(burst)등으로 해석된다. 어떤 해석에
의존하든지간에, 본절은 아무리 강한 자라도 강한 만큼 갑자기 멸망한다는 의미로 하나님의 뜻에 의해 좌우될 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성 경: [암5:10]
(주);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 '책망하는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키아흐'(*)는 '불의에 맞서 대항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성문'은 법률 소송 절차가 수행되었던 장소로(12,15절;신 21:19;수20:4;룻 4:1,2;욥 31:21), 공적인 선포는 주로 성문에서 이루어졌다. 예레미야는
문(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고(렘 17:19;19:2), 아모스도 성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을 것이다. 아모스 당시 이스라엘의 형편은
공법이 정당하게 실행될 수 있는 구조가 깨어지고 말았기 때문에 '책망하는 자들'이나 '정직히 말하는 자들'이 미움을 받고, 의인이 고난받고
공의로운 통치가 배척받았던 것이다(왕상 22:16,24).
성 경: [암5:11]
(주);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 - '너희가...밟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보솨스켐'(*)과 '취하였은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티케후'(*)는 각각 '바솨스'(*)와 '라카흐'(*)의 미완료형이다. 이는 계속적이고도 습관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성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관원들은 부당한 세금을 거둬들였음을 보여준다.
(주);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 이스라엘의 부(富)와 탐욕을 상징하던 집들과 땅들이 하나님의
진노로 텅비게 되고, 포도원은 돌볼 사람이 없이 방치될 것이다. 이런 예언은 이미 신명기에서 예고되었던 내용들이기도 하다(신 28:30,39).
성 경: [암5:12]
(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 이스라엘 백성은 아마도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모른다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욥22:13,14; 시73:11).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날카롭게 파악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앞 구절과 연결시켜 강조하기 위해 히브리어 원문에는 접속사 '키'(*, 그러므로)로 시작된다.
(주); 너희는 악인을 학대하여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 '뇌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페르'(*)는 형벌에
처해질 사람을 위해 지불되었던 '생명의 속전'(the price of a life)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서는 흉악한 범죄를 무마시키기 위해 사용된 불의한
재물을 의미한다(삼상 12:3). 그들은 책망하는 자들과 정직한 자들을 미워하였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인을 학대하고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했다.
성 경: [암5:13]
(주);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 '이런 때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에트 하히'(*)는 앞 구절에서 보여준
시대의 특성을 지시한다. 악이 범람하면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고, 의인들이 곤욕을 당하며 괴로움을 겪는다(잠 9:7,8; 29:2; 사 53:7).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은 희생을 감수하며 외쳐야 할 것을 외치도록 부름받았다(겔 33:1-6). 본절의 경우처럼 최악의 경우에 지혜자는 죽임을 당하기
위해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잠잠할 뿐이다(사 53:7).
성 경: [암5:14]
(주);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 앞서 4절에서는 여호와가 이방의 성소를 미워하시므로 거기서 돌이켜 신뢰와 확신의 대상이 되시는 여호와를 찾으라고 촉구했다. 그런데 본 구절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여호와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선을 구하라고 촉구한다. '선을 구하라'는 것은 선에 관심을 기울여 적극적으로 행하라는 의미이다(T.E. McComiskey).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 히브리어 원문에는 개역 성경에 번역되지 않은 히브리어 '위히-켄'(* -
)이 있다. 그 뜻은 '너희가 그렇게 한다면'(in case you do, BDB)으로 앞 문장의 내용과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런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선한 행실로 하나님과 화목해지지 못하면,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임재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아모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속하길 원하였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무관하게 위선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다(Calvin). 본절에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를 지적하여 실의에 빠지게 하지만, 장차 그들과 함께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제시하여 소망을 갖게 한다.
성 경: [암5:15]
(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 이 문장에 나오는 명령형의 문장들은 앞에 나온 명령형 동사들과 연관되어 점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먼저 4절에서 백성은 여호와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14절에서는 그저 외곽적으로만 여호와께 순종하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도의적인 마음으로 순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런 배경에서 주어지는 본절의 명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의지를 다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선을 추구해야 할 것을 보여준다(T.E.McComiskey).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 '혹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울라이''(*)는 의혹이나 불신을
전제하는 표현이 아니라, 엄청난 죄에 빠진 자를 사유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며, 이를 기대하는 표현이다(욜 2:14). 또한 '남은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에리트'(*)는 어떤 것의 일부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이 상당히 많은 영토를 가지고 있던 점에
비추어본다면, 이러한 표현은 그리 걸맞지 않은 표현이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솔로몬 시대에 버금가는 은 시대(silver age)의 영화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을 아주 작고 미약한 것으로 표현한다(7:2). 그는 이스라엘을 강하고 능력있는 나라가 아니라 침략당하기
쉽고,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는 작고 보잘것없는 나라로 보았다(T.E.McComiskey). 실제로 북이스라엘은 하사엘과 벤하닷에게 침략당하여 파괴되고
땅을 빼앗겼다(왕하 13:3,7). 결국 이스라엘은 요아스와 여로보암 2세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잃었던 땅을 완전히 되찾았다(왕하 13:23ff;
4:26ff). 이로써 아모스의 예언은 부분적으로나마 북이스라엘에게 성취되었다.
성 경: [암5:16]
(주);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 본 구절에서는 독특하게도 하나님의 여러 가지 성호가 한꺼번에 사용되어 아모스의 선포가 하나님의 엄위로우시며 절대적이며 확실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주); 사람이 모든 광장에서 울겠고...울음군을 불러다가 울게 할 것이며 - 이미 제시된 경고의 결과로 여호와께서 그토록 준엄하게 책망하셨던
죄를 심판하시리라는 사실을 밝힌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광장과 거리는 물론이고, 사람이 없는 한적한 농촌에서도 시행될 것이다.
울음꾼을 사서 슬픔을 나타내리라는 사실(렘 9:17ff)은 이를 뒷받침한다. 마치 출애굽 당시 애굽사람이 당했던 것처럼 모든 백성이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맛보게 될 것을 보여준다.
성 경: [암5:17]
(주); 모든 포도원에서도 울리니 - 보통 포도원은 즐거움을 주는 장소로 인식되지만, 울음의 장소로 바뀌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슬픔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표현으로 슬픔의 도를 더해준다.
(주); 이는 내가 너희 가운데로 지나갈 것임이니라 - 이런 표현은 과거 출애굽 당시에 주어졌던 마지막 장자 재앙을 연상시키는 것으로(출 12:12), 앞에서 제시된 슬픔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사실임을 보여준다.
(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2:1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암5:18]
(주); 화 있을진저...빛이 아니라 - 본절을 통해 아모스 당시에 유행했던 신학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여호와의 날'은 선지자들에 의해 자주 선포된
종말론적 개념이다.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물리치고, 절대적인 주권을 발휘하여 세상을 통치하시며 심판하실 것임을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분명히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T.E.McComiskey). 그들은 그날이 오면 여호와께서 자기들을 위해 모든 원수를
물리치시고, 자기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아모스는 이러한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즉, '여화의
날'은 어두움과 절망의 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선포는 여호와의 날을 유일한 도피처로 생각하고 있던 자들에게 더 큰 위험을 예상하게 하고,
절망을 안겨다 주었을 것이다(C.L.Feinberg).
성 경: [암5:19]
(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뱀에게 물림 같도다 - 본절은 앞 구절을 부연 설명하는 것으로 여호와의 날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현상이
나타날 것임을 비유로 설명한다. 여호와의 날에 대해 매우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급기야 돌이킬 수 없는 형편에 빠지고 말 것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성 경: [암5:20]
(주);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 - 반어적 의문법을 사용하여 18절 하반절의 내용을
반복한다. 여기서는 특별히 여호와의 날이 어둡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이제껏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날을 소망하며 살았지만, 아모스의
선포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어두움의 절망으로 잠식되고 만다.
성 경: [암5:21]
(주);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 앞 구절에서는 추상적인 표현을 사용한 반면, 본절부터는 매우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한다. '너희 절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게이켐'(*)은 보통 이스라엘의 3대절기를 가리킨다(출
23:14,17; 34:23; 신 16:16,17). 모세 율법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절기를 미워하신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선을 추구하면 공의를
세우는 일이지(14,15절) 그럴 듯한 종교적인 행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사 1:16,17; 66:2-4; 렘 6:19,20; 7:1-15, 21-23; 호 6:6; 미 6:6-8).
'미워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네'(*)는 앞에서(15절) 이스라엘이 미워해야 할 악에 대해 언급한 것과 동일한 동사이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중요하게 생각하던 절기를 악과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한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 율법에 기록된 의식들을 아무리 판에 박힌듯이
문자적으로 정확하게 준수했더라도, 그런 노력은 무위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들의 종교 행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겸손함을 가지고
있었다기보다는 참신앙을 흉내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열심히 의식을 지키던 행위는 도리어 불순종을 나타내는 행위였던
것이다(T.E.McComiskey).
성 경: [암5:22]
(주);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 '번제'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올로트'(*)는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제사였다. 그리고 '소제'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민호테이켐'(*)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선물로 바치는 제물을 가리키는 것으로(창
4:3-5; 민 16:15; 삼상 26:19), 특별히 여기서는 '번제'와 병행적으로 사용되어 번제물에 첨가하여 드리는 곡식 제물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번제'와 '소제'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총체적인 제물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화목제'(*, 쉘렘)를 여호와께 드린 후에는 그 제물의
일부를 제물을 바친 자와 그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이런 화목제가 살진 송아지로 드려진 것은 그만큼 그들이 풍성한
음식으로 화목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완벽하게 제사 의식은 행했지만, 제사의 참된 정신을
구현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사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 곧 내적이고 본질적인 것이지 외형적이고 가식적인 것이 아니다(시 51:16,17).
성 경: [암5:23]
(주); 네 노래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 솔로몬 성전 건축 이후에 희생 제물과 더불어 찬양대의 찬양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일부가 되었다(대상 16:41,42; 23:5; 25:1ff). 그들은 나팔이나 제금 등의 악기도 사용하였다.
(주);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 '비파'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네발'(*)이 어떤 악기인지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일련의 예배
의식에 사용되는 중요한 악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6:5;삼상 10:5; 시 71:22; 사 14:11). 당시 이스라엘이 겉으로 화려한 예배를 많이 치르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실속이 없고 아무런 가치가 없었으므로 결국 이를 그만두라고 명하신다. 이처럼 아무리 멋진 예술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해도
본질이 없는 찬양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성 경: [암5:24]
(주);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 본절에 의하면, 백성들의 잘못된 예배는 공법과 정의의 결여라고 볼 수 있다. '공법'과
'정의'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키기도 하지만(사 10:22), 아모스는 인간 사회에 구현되어야 할 원리로 보았다(7,15절; 6:12). 즉, 사회 질서와
관계있는 것으로 율법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사회구조 속에서 구현되고 정직하게 이웃을 대할 때에야 비로소 그 예배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흘릴지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이갈'(*)은 '굴리다'(roll)는 뜻의 '갈랄'(*)에서 온 나팔형
동사로 굽이치는 강물처럼 격렬하게 흐르게 하라는 명령형이다(BDB). 또한, 히브리어 원문에는 '끊임없는'(perpetual)이라는 뜻을 가진
'에이탄'(*)이라는 형용사가 있어서 그 강도를 더해준다. 그러므로 공법과 정의가 적극적이고도 계속적으로 흘러야만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제사가
의미있고 가치있음을 보여준다.
성 경: [암5:25]
(주);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 '사십 년 동안'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에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광야에 있었던 40여 년의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 동안 그들은 광야에 있었지만, 부지런히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민 18:8-10).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목적도 바로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출 3:18; 8:27). 하지만
반어적이고도 의아해하는 듯한 의문문을 사용하여 그들의 섬김이 과연 쓸모있었는지 되묻는다. 사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항상 인도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줄곧 배도의 길을 갔었고, 완전한 섬김의 태도를 취하지 못했다.
성 경: [암5:26]
(주); 너희가...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 본절이 개역 성경에서는 미래의 예언으로 간주되었지만, 과거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타락상으로 보기도
하고(KJV,NASB),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로 보기도 한다(JB.NEB). 히브리어 원문에서 본절은 접속사 '와우'(*)로 시작되어 앞 구절과 연결시킨다.
여기서는 '와우'가 반의 접속사로 사용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여호와께 희생을 드렸지만, 불순종으로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소홀히 함으로 우상
숭배로 기울어지고 말았던 사실을 지적한다. '식굿'의 히브리어 '시쿠트'(*)와 '기윤'의 히브리어 '키윤'(*)은 토성의 신(the god Saturn)의 이름인
'삭굿'(Sakkut)과 '카이완'(Kaiwan)과 발음이 비슷하지만, 구태여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본절의 문맥상 이스라엘이 단순히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어떤 별의 신을 섬겼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의 군대를
섬겼다고 한다. 이 하늘의 군대가 별의 신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면, 그들이 섬기던 이런 유의 우상이 당시 메소포타미아에서 유입되었을 것이다(행
7:42,43). 한편, 어떤 이유에서인지 70인역(LXX)은 히브리어 '키윤'을 '라이판'(*,Rephan)으로 번역하였다. 아마도 이집트에서 목성의 신으로
섬기던 레파(Repa)의 또다른 이름으로 보았던 것 같다(T.E.Comiskey).
성 경: [암5:27]
(주);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 잡혀 가게 하리라 - '사로 잡혀 가게 하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웨히겔레이티'(*)는 히필 미완료형이다. 이는 매우 강한 어투로 이스라엘 백성이 필연코 잡혀가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다메섹 밖으로'라는 표현 대신 '바벧론 밖에'라고 인용하였다(행 7:4). 아마도 스데반은 아브라함의 조상들이 그의 고향 바벧론(갈대아 지방)에서 우상을 섬겼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의 신앙이나 언약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로 돌아갔으며 이방인과 같은 취급을 당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보인다(E.B.Pusey).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섬기는 본질에 대해 망각하고 급기야 그토록 멸시하던 이방인 취급을 당하게 될 것을 예고받는다.
(주); 이는 만군의 하나님이라 일컫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에 대해서는 4:13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암6:1]
본 구절은 자만심에 빠진 지도자들에게 주어지는 선포이다.
(주); 화 있을진저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이'(*)는 공격적인 저주를 나타낸다기보다는 오히려 슬픔과 탄식을 나타내는 감탄사로(사 1:4,24; 29:1) 일반적으로 심판이 선포될 때 사용된다(5:18).
(주);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 - '안일한 자'의 히브리어 '하솨아나님'(*)과 '마음이 든든한 자'의 히브리어
'하보테힘'(*)은 대구로 사용되어 '시온'과 '사마리아'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자기맘에 이끌리는 대로 아무렇게나 살아가던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죄악을 깨달을 만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을 수 없는 형편에 처해 있었다.
성 경: [암6:2]
(주); 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거기서 대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보라 - '갈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칼네'(*)의 자음들은
'모두 다'(all of them, RSV, LXX)로 읽을 수도 있다. '갈레'의 위치는 분명하지 않지만 시날 땅과 관련하여 언급된 도시로(창 10:10) 이사야가
언급한 '갈로'(사 10:9), 에스겔이 언급한 '간네''(겔 27:23)와 동일한 지역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갈레는 티그리스 강 건너편 가까운 곳에 있었을
것이다. 또한 '하맛'은 원래 가나안에 속해 있다가(창 10:18)이스라엘의 북쪽 경계 지역으로 할당되었다(민 34:7,8; 수 13:5; 삿 3:3; 왕하 14:25;
겔 47:16). '가드'는 블레셋과 유다를 경계로 하는 지역으로 르호보암은 이곳을 변방을 지키는 성읍으로 정했었다(대하 11:8). 이 지역들은
공통적으로 변방에 떨어진 도시들로 별로 보잘것 없는 도시들이었다. 이런 도시들로 가보라는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성 경: [암6:3]
(주);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와지게 하고 - 당시 지도자들은 축적된 부와 영예로 많은 백성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존경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아모스의 눈에는 그들이 안일 가운데 빠져 점점 강포한 자리로 나아가는 상태로 보였음이 분명하다.
성 경: [암6:4]
(주); 상아 상에 누우며...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 본절은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만끽하던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같은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복된 결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안일 가운데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3절). 그러므로 본절은 안일에 빠져 방탕과 쾌락에 탐닉하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성 경: [암6:5]
본절 역시 앞절과 마찬가지로 쾌락에 탐닉하던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실상을 고발한다.
(주);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하포르팀'(*)이라는 한 단어로 되어 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것으로(hapax legomenon), 부숴지거나 떨어져나간(broken or fallen off) 어떤 것(사람)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페레트'(*)와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다(레 19:10). 그러므로 어떤 특별한 규칙이나 질서도 없이 불러대는 노래를 말한다. 이는 마치 혼수 상태에서 아무런 생각없이 지절대는 모습을 묘사한다. 노래를 해도 무슨 가락으로 하고 있는지, 가사를 읊어도 무슨 내용인지 모른 채 지절대는 모습이다. 특별히 문맥에 비추어 본다면, 그저 좋아서 희희낙락 곡조를 흥얼거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E.B.Pusey).
(주);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 다윗이 많은 악기를 만들고, 많은 노래를 지었지만(삼하 23:1), 본 구절의 지적처럼 자기를
위하여 이런 일을 하지는 않았다(대상 23:5; 대하 29:26,27).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보건대, 당시의 지도자들은 다윗의 이름을 빙자해서 많은 노래를
하고 많은 악기를 제조하는 창조적인 예술성을 발휘했지만, 다윗과는 달리 인간 중심적인 노래로 일관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여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사 5:12; 24:9).
성 경: [암6:6]
(주);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 '대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즈레케이'(*)는 성전에서 제사를 위해 사용하는 대야를 가리키는 것으로(출 38:3; 민 4:14; 대하4:8) 제물그릇(sacrificial bowls)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NASB). 이는 그들이 매우 무분별하게 방탕한 태도로 술을 마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 귀한 기름은 향품을 섞은 기름(왕상 10:10; 겔 27:22)을 가리키는 것으로 당시 지도자들이 누리던 방탕한 풍요를 묘사한다.
(주);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 '요셉의 환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베르 요세프'(*)라는 구문이 여기에만 등장하지만,
'쉐베르'는 민족적인 파멸을 언급하는 문맥에서 자주 사용된다(사 30:12, 15; 애 2:13; 나 3:19). 아모스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여 당시의
지도자들이 방탕한 생활을 누리고 근심없이 지낸다고 해도,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은 어김없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성 경: [암6:7]
(주); 그러므로...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 앞에서 예고하였던 야곱의 환난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다. 부를 축적한 지도자들이 포로로
잡혀가되 가장 먼저 잡혀갈 것을 말한다. 이로써 끝장나게 될 기지개는 그들의 부를 상징하는 것으로(4절), 그들의 자신만만했던 생각도 수포로
돌아갈 것을 보여준다.
성 경: [암6:8]
(주);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였노라 - 하나님이 하시는 맹세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신실하심에 근거하는 것이므로 영원히 변치않는다. 그런 만큼 결코 변치 않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를 확인하는 증거이기도 하다(창 22:16; 사 62:8; 렘 22:5; 44:26;49:13). 아모스는 이런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앞으로 전개될 내용이 역사적으로 반드시 일어나고야 말 것임을 분명히 한다.
(주); 내가 야곱의 영광을...대적에게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 '야곱의 영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게온야아코브'(*)의 '게은'은
'탁월성'(excellency, KJV),'오만함'(arrogance,NASB,NEB), '자만심'(pride, NIV, RSV, JB)등을 의미한다. 이 표현이 히브리어 문맥상 '궁궐들'과
대구를 이루어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많은 소유와 부를 큰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궁궐'은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부정직한 방법으로 축적한 풍요로움을 상징하던 것으로(1:4; 3:10,15),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던 풍요로움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나타내며, 아울러 그것들이 머지않아 정복자들에게 탈취되고야 말 것을 시사한다.
성 경: [암6:9]
(주);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 - 본절이 내용상으로는 앞 구절과 단절된 듯하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접속사 '키'(*,
'그러므로')가 있어서 앞 문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앞에서 예고된 심판이 본절에 이르러 더욱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된다(T.E.McComiskey).
즉, 어떤 집이나 궁궐에 열 사람이 남아 있을지라도 모두 죽게 될 것이라는 표현으로 이스라엘의 완전한 파멸을 강조한다.
성 경: [암6:10]
(주); 죽은 사람의...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 일반적으로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시체를 화장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 죽은 자의 가족은 의무적으로 그 시체를 매장하도록 하였다. 여기서처럼 시체를 확장시킨다는 것은 특별한 일로서 분명히 전염병으로 죽은 까닭에 전염병이 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주); 그 집 내실에 있는 자...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일컫지 못할 것이라 하리라 - 전염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가 마지막으로
죽음을 기다리며 간신히 살아있는 처절한 모습을 묘사한다. 심지어 여호와의 이름을 잘못 일컫다가 심판에 처해질까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도록 하는 모습이다.
성 경: [암6:11]
(주); 큰 집이 침을 받아 갈라지며 작은 집이 침을 받아 터지리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카 하바이트 하가돌 레시심 웨하바이트 하칸톤
베키임'은 모두 일곱 단어로 그중에서 다섯 단어가 '해'(*)로 시작되어 있다. 이런 일정한 두운(頭韻)은 말하려는 초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큰
집과 작은 집이 파괴되리라는 사실이다. '큰 집'은 북이스라엘의 열 지파를 가리키고 '작은 집'은 남유다의 두지파를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지만,
여기서는 큰 집에서 작은 집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모든 집을 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다(C.L.Feinberg).
성 경: [암6:12]
(주); 말들이 어찌...너희는 공법을 쓸개로 변하며 정의의 열매를 인진으로 변하며 - 본절은 순리에 맞지도 않은 불가능한 사실을 예로 들어
이스라엘의 행위는 도리에 맞지도 않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죄악임을 증거한다. 인간의 단편적이고 어리석은 눈에는 일시적으로 공법과 정의를
추구하는 일이 쓸데없는 노력으로 보이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공법이나 정의를 무시해버려도 좋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고 순리에 맞지도 않는다. 비록 공법과 정의가 바르다는 사실이금방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항상 공법과 정의의
수호자이시기 때문이다.
성 경: [암6:13]
(주);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의 뿔은 우리 힘으로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 자로다 - '허무한 것'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로다바르'(*)는 지명을 가리키기도 한다(T.E.McComiskey,J.Niehaus). 로-다바르는 길르앗 변방 가까이에 있는 마을로 요르단의 동쪽 약 5Km지점,
갈릴리 바다의 남쪽 약 19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J.Niehaus). 그렇지만 이지명의 문자적인 의미는 '없는 것'(nothing)으로 언어의 묘미를 살려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즉,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가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 허무한 것을 추구하며 이를 기뻐하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르나임'(*)도 아스다롯-가르나임(Ashtarothdarnaim)이라는 지명을 가리킬 수 있다. 그곳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의 바산 광야에 위치하고 있다. '로-다바르'-와 '카르나임'은 아마도 여로보암이 아람 땅을 침공하여 승리했을 때 취한 곳임이
분명하고, 이로 인해 정치적인 자부심이 대단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모스는 그 지역의 이름을 풍자적으로 사용하여 당시에 만연해있던 국가적인
자만심이 아무 쓸데없는 것임을 지적한다(T.E.McComiskey).
성 경: [암6:14]
본절이 히브리어 원문에는 '키 히네니'(*)로 시작된다. 이는 문자적으로 '내가 여기 있으므로'(for here I am)라는 의미로 여기서는 결론적인 내용을 언급하면서, 앞에서(11절) 사용된 표현 '보라'를 반복한다. 이는 앞서 제시된 심판의 내용을 상기시키면서 이스라엘의 느닷없이 당하게 될 일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행될 것인지 말하려는 의도를 밝힌다.
(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 '일으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킴'(*)은 히필형 동사로 여호와께서 심판의 방편으로 자기 백성을 향해 대적을 일으키시는 것을 묘사한다(합 1:6).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대적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신다. 이는 하나님이 악을 조장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대적들로 하여금 세력을 확대하고 침략을 일삼도록 내버려두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하나님의 백성 곁에 내버려두시는 사실 하나로도 심판의 효과는 분명하다.
(주); 저희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하리라 하셨느니라 -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라는 표현은 여로보암이
회복한 이스라엘의 경계를 가리키는 것으로(왕하 14:25,28),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기업의 경계선이기도 하다(민 34:8-12). 이는 이스라엘과
맺은 땅에 대한 언약과 직결되는 표현으로 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선언이다. 이같은
아모스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행하다가 B.C.722년에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하는 비운을 맞고야 말았다.
성 경: [암7:1]
본장부터는 주로 환상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그 가운데 첫 번째로 주어진 환상은 풀이 베어진 다음 다시 풀의 움이 돋으려 할 때 황충떼가 몰려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 이 구절은 환상이 소개되는 첫머리에 줄곧 사용되는 표현으로(4,7절; 8:1), 아모스의 환상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주); 왕이 풀을 벤 후...주께서 황충을 지으시매 - 왕이 풀을 베었다는 사실은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때에 거두어 들인 곡식을 먼저
왕에게 바쳐야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국가의 군사 조직이 유지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T.E.McComiskey). 첫 번째 환상은 풀이 움을
돋으려고할 때, 황충떼가 몰려오는 광경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환상 속의 황충떼는 장차 임하게 될 외세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이 받게 될 심각한
타격을 상징한다. 또한 '주께서...지으시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요체르'(*)는 분사형으로 매우 생동감있는 표현인 바 이 재앙이 주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나타내며, 여호와의 행동이 역동적이며 실감나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성 경: [암7:2]
(주); 내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 아모스는 환상을 통해 황충떼가 모든 풀을 다 먹이치워 온 땅이 황폐하게 된 것을 보고나서, 이런 환상에 버금가는 일이 이스라엘에 일어날 것임을 알아차린 것 같다. 그래서 아모스는 여호와께 용서를 구한다.
(주);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 '미약하오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키 카톤 후'(*)는 '매우 작으므로'라는 의미로 이런 표현은
당시 이스라엘이 많은 영토를 확보하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대단한 번영을 이루고 있었던 정황에 비추어 보면, 그리 어울리는 표현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아모스가 이런 식으로 표현한 이유는 아마도 아모스가 여호와의 크신 능력을 경험하고 나서 그렇게 크신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은
지극히 미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T.E.McComiskey).
성 경: [암7:3]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가라사대 이것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여호와께서는 즉각적으로 아모스의 기도에 대해 반응을
보이신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신다는 것이다. '뜻을 돌이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함'(*)은 근본적으로 '남몰래 괴로워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항상 뭔가에 대해 후회하거나 회개하는 것을 가리킨다(J.Niehaus). 하나님께서 비록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시긴 했지만, 사람이
알 수 없는 신중한 고려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때때로 뜻을 돌이키시기도 하는데, 반드시 일어나기로 예언된 일조차도 신실한 사람의 중보
기도나 회개로 하나님의 심판이 보류되거나 그런 뜻이 철회되기도 한다(출 32:32; 대상 21:15; 대하 7:14; 렘 18:8; 욜 2:13; 욘 3:10).
성 경: [암7:4]
(주);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 1절과 동일한 표현으로 두 번째환상이 시작된다. 1절 주석을 참조하라.
(주); 주 여호와께서 명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 '징벌하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리브'(*)는 '다투다'는 의미를 가진 '리브(*)에서 온 말로, 하나님이 불의를 제거하시기 위해 인간과 직접 싸우시겠다는 경고가 암시되어 있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사 66:15,16에서 나타나는데, 거기서는 불을 견책과 심판의 수단으로 표현한다(J.Niehaus). 특별히, 여기서는 4:6-11과 연관지어 '불'이 가뭄의 현상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C.L. Feinberg). 또한 1절의 '지으시매'의 히브리어 '요체르'(*)와 마찬가지로 '명하여'의 히브리어 '코레'(*)도 분사형으로 되어 있어서 여호와의 행동이 매우 역동적이고 생생함을 나타낸다.
(주);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큰 바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홈라바'(*)는 '큰 깊음'(the great deep,
KJV,RSV,NASB),'큰 심연'(the great abyss, NEB,JB)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것으로 공동번역은 이를 '지하수'라고 번역하였으나, 바람직한
번역이라고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육지'라고 번역된 히브리어가 단순히 '땅'의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지'의 히브리어
'하헬레크'(*)는 '분깃'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어서(LXX),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업의 땅을 가리킨다(BDB)할 수 있다. 이런 표현들은 불로 인한
재앙이 이스라엘 백성과 관계된 모든 바다와 육지 위에 임할 것을 보여준다. 또한 그 땅이 아무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업이라고 해도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통해 재앙의 대상에는 예외가 없음을 보여준다.
성 경: [암7:5,6]
첫 번째 환상과 마찬가지로 아모스는 용서를 구하고, 이에 대해 하나님은 같은 답변으로 2,3절과 마찬가지인 두 번째 재앙에 대해서도 당신의 뜻을
돌이키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성 경: [암7:7]
(주);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 1,4절과 똑같은 표현으로 세 번째 환상이 시작된다.
(주);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 곁에...잡고 서셨더니 -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마트 아나크'(*)는 '다림줄을 사용하여
수직으로 세운 담'(a vertical wall, NASB)을 의미하는 것으로 70인역은 '견고한 성'으로 번역한다. 이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견고하다고 생각하던
사마리아 성을 암시적으로 나타낼 수도 있지만(암 6:1), 문맥상 이스라엘 전체 백성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또한, '서섰더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차브'(*)는 분사형 동사로 1,4절과 마찬가지로 역동적이고 생생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주님께서 다림줄을 들고 그 곁에 서셨다는
것은 수직인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것으로 주님의 공정한 심판이 이스라엘에게 행해질 것을 상징한다.
성 경: [암7:8]
(주);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 세 번째 환상은 하나님께서 친히 아모스의 이름을 불렀다는 점에서 앞에서 제시되었던 두 환상과 다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이름을 알고(출 33:12,17)부르시는 것은 그 대상을 향한 긍휼과 애정이 크시다는 것을 나타낸다(민 16:5; 삼상 3:10; 딤후 2:19). 다음 장에 나오는 여름 과일 환상(8:1)에서도 이와 똑같은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처럼 대화체 형식을 빌어 아모스의 환상을 보다 생동감있게 한다.
(주); 내가 다림줄을...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 - 7절에서 주님께서 보여주신 상징적인 행동에 대한 해석이 주어진다. '다림줄을 띄우고 쌓은
담'은 바로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으로 주님은 결코 이스라엘의 죄악을 용서하시지 않으리라는 결연한 태도를 비추신다.
성 경: [암7:9]
앞에서 언급된 다림줄 심판의 대상과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지 열거한다.
(주);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 '이삭의 산당'은 '이스라엘의 성소'와 평행을 이루어 이삭과
이스라엘이 동의어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용법은 본서에만 나오는 특징이다. 한편, 70인역(LXX)은 '이삭'의 이름이 '웃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웃음의 산당'(보모이 겔로토스)이라고 번역했다. 아마도 '웃음거리가 된 산당'이란 뜻을 강조하기 위해 이와 같은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듯하다. 즉 여호와만을 섬겨야 하는 경건한 장소에서 이방의 우상을 섬기는 일로 이방에서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어리석음을
비난하는 것이다. 또한 '내가 일어나 칼로...을 치리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웨카메태이 알-...베하레브'(*)는 직역하면, 그리고 '내가 칼을
가지고...대항하여 서리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여로보암 가문을 더 이상 자기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으시겠다는 표현이다. 이 예언이 암시하는
대로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는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었다가 반란을 일으킨 살롬에게 피살되고 말았다(왕하 15:8-10).
성 경: [암7:10]
당시 벧엘에 있던 제사장 아마샤가 아모스를 모반죄로 고소한다.
(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견딜 수 없나이다 - '모반하나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솨르'(*)는 '묶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바, 아마샤는 아모스가 무리와 힘을 합하여 음모를 꾸민다고 언질하고 있다. 아마샤가 고발하는 내용은 앞에서 아모스가 여로보암
왕가에 대한 예언에 근거한다. 사실상 아모스가 여로보암의 멸망을 예고한다고 해서 실제로 반란을 획책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고소의 대상이 되기
않았겠지만, 아모스의 예언 사역으로 인해 아마샤는 심적으로 자신의 제사장 위치를 위협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아마샤는 벧엘에서 우상
숭배를 주도하던 제사장이었을 것이고, 여로보암의 신임을 받고 벧엘의 성소에서 왕궁과 연결된 어용적 직무를 수행했을 것이다.
성 경: [암7:11]
(주); 아마샤 제사장이 아모스를 고발하는 내용이 계속된다.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 이 표현은 아모스의 말을 과장하는 말이다. '칼에
죽겠고'(*, 바헤레브 아무트)는 앞에서 아모스가 실제로 언급한 '내가 일어나 칼로...치리라'는 표현을 왜곡시킨 것이 분명하다. 아모스는 여로보암
가문에 대해 말했을 뿐 개인에 대해 언급하지도 않았고, '죽으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아마샤는 이러한 자극적인 표현으로 여로보암
왕으로 하여금 단호한 조치를 내리도록 유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성 경: [암7:12]
아마샤는 왕에게 아모스를 고발하고 나서 아모스에게 일련의 지시를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아마샤의 말을 들은 여로보암이 적지않은 분노를 나타냈던 것으로 보인다(T.E.McComiskey).
(주);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야 - '선견자'(*, 호제)는 '선지자'(*, 나비)의 구식 명칭이다(삼상 9:9). 이런 표현을 통해 아모스의 예언 행위를 비아냥 거리는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아모스의 품위를 손상시키려고 이런 명칭을 사용했다기보다는 바로 앞에서 아모스가 환상을 보았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이런 용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T.E.McComiskey).
(주); 너는 유다땅으로 도망하여...예언하고 - 아마샤는 아모스의 예언 활동을 인정하고, 그가 유다 출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매우 신사적으로
권면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매우 모욕적인 의도가 가득하다(E.B.Pusey).이런 표현에 비추어 보건대, 아마샤가 아모스를 자신과 똑같이 생계를
위해 예언하는, 직업적인 선지자로 간주했던 것이 분명하다(C.L.Feinberg).
성 경: [암7:13]
본절에는 아마샤가 아모스에게 유다에 가서 예언하라고 말하는 의중이 드러난다. 아마샤의 표현을 보면, 벧엘이 '왕의 성소', '왕의 궁'이라고
하면서 '왕'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아마샤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여 벧엘은 왕궁을 위해 봉사하는 자신의 구역이라는 점을 은근히 강조한다. 즉,
그는 함부로 남의 자리를 넘보지 말고 유다에나 가서 예언하는 일로 밥이나 벌어먹으라는 것이다.
성 경: [암7:14]
아마샤의 요구에 대해 아모스가 대답하는 내용이 계속된다.
(주);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로-나비 아노키 웰로 벤-나비 아노키'(*)에서 시제를 나타내는 동사가 없기 때문에 현재형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NASB, RSV,NEB), 과거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KJV,JB). 어떻게 해석하든 아모스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아모스 자신이 아마샤가 이해했던 것처럼 직업적인 선지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 '목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보케르'(*)는 '큰 소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바카르'(*)와 연관이
있으므로, 문자적으로는 '큰 소떼를 치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일반적인 목자를 통틀어 가리키는 것 같다. 그래서 70인역(LXX)에는 '염소지기'(*,
아이폴로스)라고 번역되었다. 그러므로 앞에서(1:1) 아모스의 직업에 대해 언급된 '노케드'(*)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말로 볼 수 있다. 아모스는
자신의 원래 직업이 목자이지 직업적인 선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한다.
성 경: [암7:15]
본절에서 아모스는 자신의 의도하는 무관하게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명에 의해 예언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게다가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하는 자로 세움받았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성 경: [암7:16]
(주);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 아마샤는 자신의 입지를 생각하며, 아모스를 직업적인 선지자로 매도하면서까지 아모스에게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고 회유하였지만(13절), 아모스는 여호와의 권위로 더욱 강력하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것을 아마샤에게 주장한다.
성 경: [암7:17]
아모스는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권위로 아마샤에게 여호와의 징계를 선포한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 아마샤 가문의 최후에 대해 선포한다. 제사장이라고 자처하는 아마샤가 가족과 함께 심각한 수모를 당하게 될 것을 예고한다. 이 예언이 성격상 개인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나, 곧바로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심판과 연결시켜 그의 가족이 이스라엘의 운명과 함께 할 것임을 나타낸다.
(주);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 본 구절은 11절의 언급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고 있으며, 아모스는 이구절을
자주 사용하였다(5:5;6:7). '그 본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약속의 기업으로 받은 가나안 땅(렘 16:15;겔 11:17;36:24; 슥 2:12)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예언은 결국 살만에셀의 앗수르 군대가 이스라엘을 점령하여 성취되었다(왕하 17:24; 렘 6:12; 미 2:4).
성 경: [암8:1]
7:1,4,7절과 동일한 표현으로 네 번째 환상이 시작된다. 개역 성경에서는 약간 차이를 보이지만, 히브리어 본문은 모두가 똑같이 '코히레아니 아도나이 아도나이'(*)라고 되어 있다.
(주);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보이시며 - '여름 실과 한 광주리'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가 있다. (1)과일이
완전히 익은 상태로 그대로 놔두면 상할 수밖에 없어 더 이상 보존할 수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죄악이 쌓일 대로 쌓여 이제 심판날을 기다린다는
해석이다. (2)무르익은 여름 실과를 따서 광주리에 담아 옮기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죄악이 무르익을 대로 익어서 결국 포로로 잡혀 이방 땅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이상의 두 해석이 관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의미는 이스라엘의
멸망이 임박했다는 사실이다.
성 경: [암8:2]
(주);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 이와같은 질문은 세 번째 환상에서도 똑같이 주어졌었다(7:8).
(주); 내가 가로되 여름 실과 한 광주리니이다...내 백성 이스라엘의 꿈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니 - '여름 실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이츠'(*)는 '끝', '마지막'등의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케츠'(*)와 비슷한 음가를 가지고 있다. 아모스는 아마도 이처럼
발음이 유사한 어휘를 연결시켜 언어의 묘미(word play)를 살린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여름 실과 광주리가 추수의 기쁨이나 저장한 곡식을
나타내는 데에 사용되었지만, 여기서는 조롱거리가 되고 용서받지 못할 가련한 상황에 처한 모습을 묘사한다.
성 경: [암8:3]
(주);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 '궁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이콜'(*)은 '큰 집'의 앗수르어에서 온 것으로(W.R.Harper), 성전(temple)이라고 번역할 수 도 있다(LXX,KJV,RSV). 따라서, 궁전의 노래는 벧엘 성전에서 부르던 노래와 비파 소리(5:23)와 궁궐 같은 집에서 호의호식하며 부르던 의미없는 노래 소리(6:5)등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요함 가운데 부르던 노래는 끝나고 슬픔만 남아서 애곡하게 될 것을 말한다.
(주);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처처에 내어 버리리라 - 이런 표현은 스타카토(staccato)식의 생생한 문제로 이를 다시 번역하면, '시체가 많다,그 시체들이 도처에 던져진다, 잠잠히!'라고 할 수 있다(T.E.McComiskey).
(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2:11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암8:4]
앞에서 예고된 끔찍한 광경에 이어 곧 바로 여호와께 불순종하는 사람들의 실상을 고발한다.
(주); 궁핍한 자를 삼키며 땅의 가난한 자를 망케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 당시의 사람들이 특별히 '궁핍한 자'와 '가난한 자'를
억압하였던 실상을 먼저 말하는데, 이는 앞서 언급되었던 대로(2:7;5:11), 많은 부자들이 저울을 속여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부당한 이득을
챙겨 부를 누리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궁핍한 자'란 단순히 경제적인 도움이 있어야 생계를 이을 수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가난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니웨이'(*)는 경제적으로 빈곤한 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남에게 짓밟히는 비천한 계급의 사람들을 가리킨다(욥
24:4; 사 3:14,15). 그러므로 당시에 완전한 인권 유린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암8:5]
(주);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곡식을 팔게 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말을 내게 할꼬 - '월삭'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데쉬'(*)는 '새 달'(the new moon)이라는 뜻으로 매달 초하루를 가리킨다(삼상 20:5,24; 왕하 4:23). 이때에는 전제와 번제와 소제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였고(민 28:11-15), 정한 절기나 안식일과 함께 나란히 소개되곤 한다(민 10:10; 왕하 4:23; 사 1:13,14; 겔 46:3; 호 2:11),월삭 때에 사람들이 매매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은 율법에 명확하게 명시되지 않았지만, 당시의 관습에 의한 것이었을 것이다(J.Niehaus). 또한,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에 근거하는 것으로(출 20:8-11; 신 5:12-15). 노동이 금지되었다. 이날은 단순히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의도를 따라 쉬어야 했다(출 20:10,11).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의미에는 관심이 없고 물질적인 탐심만 가득하여 이런 날들에 장사하지 못하는 것을 염려하고 걱정했던 것이다.
(주); 에바를 작게 하여 세겔을 크게 하며 거짓 저울로 속이며 - 그들은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부당한 이익을 위해 부피를 재는 단위인 '에바'와
무게를 재는 단위인 '세겔'을 속였다. 이렇듯 측량을 속이는 것은 단순한 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질서와 정의를 허무는 일이므로
공법이나 정의가 제대로 설 수 없었을 것이다(5:7;6:12).
성 경: [암8:6]
(주); 은으로 가난한 자를 사며...잿밀을 팔자 하는도다 - 본절은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인권이 유린된 실상을 드러낸다. 이스라엘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사람을 매매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다(2:6). 또한 '잿밀'은 밀찌꺼기 같은 폐물을 말하는 것으로, 이런 것들을 가지고 사람을
속여 재화를 창출하고자 하였다. 본절에서 '사람'과 '잿밀'을 대조시켜 매우 가치있는 것과 가치없는 것의 구분이 없어진 현실을 잘 대조시키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가치있는 것이라고는 재물 외에는 없다.
성 경: [암8:7]
(주);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되...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 - '야곱의 영광'에 대해서는 6:8의 주석을 참조하라. 여기서는
이 용어가 특별히 영원 불멸하셔서 맹세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4:2; 삼상 15:29; 대상 29:11). 렘 2:11에서도
'영광'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용되었다. 야곱의 영광이신 여호와 자신으로 맹세를 보증하는 것은 다음에 열거되는 심판의 내용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며, 그 맹세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 경: [암8:8]
(주); 이로 인하여 땅이...낮아지리라 - 본절은 땅에서 일어날 대단한 변화, 곧 지진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묘사한다.
성 경: [암8:9]
(주);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며 - '그 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웨하야
바욤하후'(*)는 문자적으로 '그 날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it will be on that day)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런 표현은 선지서들에서
표준적으로 사용된 도입 구문이다(사 7:18; 렘 4:9;겔 38:18; 호 1:5; 욜 3:18; 미 5:10). 이 구절은 하나님의 심판이 전우주적으로 나타나게 되며,
누구도 피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한편 혹자는 본문을 예기치 않은 순간에 심판이 임할 것임을 나타내는 내용으로 이해하기도
한다(T.E.McComiskey).
성 경: [암8:10]
앞절에 이어서 이스라엘이 겪어야 할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독자(獨子)의 장례를 치르는 아픔에 견주어 묘사한다.
(주); 모든 사람으로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 이런 표현들은 모두 극한 슬픔을 표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슬픈 일을 당한 사람들은 굵은 베옷을 입거나(삼하 3:31; 렘 4:8; 48:37), 머리를 밀었다(사 3:24; 15:2; 22:12; 렘 47:5; 48:37;
겔 7:18; 27:31; 미 1:16). 또한, 티끌을 머리에 무릅쓰고 재 가운데 뒹굴며 슬픔을 나타내기도 했다(겔 27:30).
성 경: [암8:11]
본절은 보다 본질적인 기근의 문제르를 다룬다. 즉, 외적인 기근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호와의 말씀의 기근이라는 것이다.
(주); 보라 날이 이를지라 - '이를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임'(*)은 '들어오다'는 의미를 가진 '보'(*)의 분사형으로 역동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사람들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하셨다. 백성들은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왜냐하면, 말씀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시 74:9; 애 2:9; 겔 7:26; 호 5:6).
성 경: [암8:12]
(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 말씀의 기근으로 인해 찾아 헤매는 모습을 매우 구체적인 비유를 들어 실감나게 표현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 말씀의 기갈이 심각한 정도를 나타내는데, 아무리 간절하게 말씀을 찾아
헤맬지라도 아무런 말씀도 받지 못하고, 더이상 하나님의 백성된 정체성도 찾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오늘날의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고귀하고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지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생명의 근원이므로 그 말씀을 잘 알아서 신실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한다(T.E.McComiskey).
성 경: [암8:13]
(주);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는 인생의 황금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아름다움이
가장 돋보이고 힘이 가장 왕성한 시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삶의 지표를 잃고 나약한 모습을 나타내고야 만다. 이런
형편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우리 인생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이사야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사 40:8)고 하였고, 예수께서도 사탄의 시험을 받으시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고 하셨다.
성 경: [암8:14]
(주); 무릇 사마리아 죄된 우상을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 '죄된'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쉐마'(*)는 '부끄러운'(shame)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으나 근본적으로 죄(guilt)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때때로 이 단어는 우상 숭배로 인해 나타나는 죄악상을 가리키기도 한다(대하 24:18; 33:23). 사마리아에는 아합이 왕으로 있는 동안 바알과 아세라 상을 세웠다(왕상 16:32,33).
(주); 단아 네 신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의 위하는 것의 생존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 '단'은 여로보암 왕 이후로 금송아지를 섬기는 장소로 유명하였다(3:14;7:13). '브엘세바의 위하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데레크 베에르-쉐바'(* - )는 '브엘세바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로 브엘세바로 올라가는 순례 행로를 가리킨 것이다. 아모스가 본 구절에서 여러 산당들을 언급한 것으로 봐서, 아마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역에 따라 여호와에 대한 개념을 다르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T.E.McComiskey).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여호와 종교가 이방의 우상 숭배와 같이 변질되어 이방신의 개념이 들어오게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주);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 그릇된 신관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당하게 될 징계를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해야 하며(신 6:13;10:20), 이를 준수해야 했다(렘 4:2). 만약 헛된 우상에 맹세하거나 그것들을 추종하는 자들은 멸절되는 것이
당연하다(습 1:5,6). 본장에서 아모스는 네 번째 환상을 언급하기 시작하면서(2절) 용서받지 못할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였고, 이 환상을
끝마치면서 다시 한번 이스라엘의 징계를 선포한다. 이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 가치도 없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성 경: [암9:1]
(주); 단 곁에 서서 - 1-6절에서는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기점으로 이스라엘 전체가 멸망받을 것이 예언된다. 그런데 심판에 앞서 먼저 성전이 파멸될 것을 언급하는 것은 이스라엘 멸망의 일차적 원인이 종교적 타락에 있음을 알려 준다. 여기에서 '단'(*, 하미즈베아흐)은 북이스라엘의 벧엘이나 기타 우상 숭배 지역에 세워둔 것이라기보다는 예루살렘 성전 내에 있는 번제단을 의미한다(S.Calvin, F. Keil, S.Deane).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곳에 나타나시사 성전을 파멸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멸망을 선포하는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심판을 받아야 할 때 우선적으로 당신의 임재 처소인 성전을 떠나시기 때문이다(겔 9:1-11; 10:18,19).
(주); 기둥 머리를...움직이게 하며 - 성전문 등을 받치고 있는 기둥 꼭대기를 쳐서 문이 부서지게 한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전자체를 철저히 파괴하실 것임을 암시한다.
(주);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 혹자는 본 구절의 '머리'란 말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무리의 머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이나 제사장들'을 지칭한다고 본다(S.Calvin). 이런 해석에 근거하여 칼빈은 하나님이 본절에서 백성의 지도자들이나 일반 백성 모두를 멸하시겠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주); 남은 자(*, 아하리탐) - 이는 흔히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에서 말해지는 바, 여기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환난을 피하고 보존되어진 자들(사
10:20,22; 미 5:3,7,8)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아직 환난을 받지 않은 자(곧 받게 될 자)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좋다(4:2).
성 경: [암9:2]
2-4절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음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암시적으로 드러나게 된다(요 5:24).
(주); 음부 - 이는 히브리인들에 의해 죽은 자들이 사후(死後)에 가는 지하 세계로 여겨졌던 곳이다. 히브리인들은 우주가 세 부분 즉 하늘과 땅, 지하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였는데, 이중 죽은 자들이 가는 지하 세계가 바로 음부라고 생각했다(욥 14:13). 본절에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아주 깊은 곳이라는 뜻을 함축한다.
(주); 하늘 - 의미상 앞 부분의 '음부'와 대비되는 뜻으로 쓰였다. 이는 인간의 손길을 초월한 아주 높은 곳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욥 20:6; 렘
51:53). 이 많은 곧 앞의 '음부'라는 말과 함께 인간이 피할 수 있는 모든 곳 또는 최대한의 곳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말은
신약에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설명하면서 사용하기도 했다(롬 10:6,7).
성 경: [암9:3]
(주); 갈멜 산 꼭대기 - '갈멜'은 '과수원','정원'이란 뜻이다. 이 산은 팔레스틴의 지중해 연안 중앙부에 돌출한 반도에 위치한 산이다. 이 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잡목과 가시덤불 등이 많은 곳으로 알려진다(Thomson). 역사적으로 볼 때 이곳은 많은 피난자들의 은신처 역할을 했다(왕상 18:4,19). 아무튼 본절에서 '갈멜산 꼭대기'는 비교적 이스라엘의 북단에 위치해 있는 산악 지대로서 도피자들이 자신을 숨길 수 있는 험한 지형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카일(Keil)은 갈멜 산이 받 옆에 있는 바, 그 자체로는 그리 높지 않을지라도 바다와 비교할 때 높은 곳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한다.
(주); 바다 밑 - 앞 부분의 '갈멜산 꼭대기'와 대조되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전자가 현세, 즉 인간 세계에서 사람이 피할 수 있는 높고 험한
지형을 말한다면, 후자는 깊고 은밀한 지역을 가리킨다.
성 경: [암9:4]
(주); 그 원수 앞에...할 것이라 -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서도 형벌을 면(免)함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케 된다는 뜻이다. 이런 내용은 이미 모세에 의해 일찍부터 예언되어졌다(레 26:33; 신 28:65).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백성들에게 지극히 큰 징벌을 내리시는 공의로운 분이다.
(주); 주목하여(*, 사메티 에이니) - 직역하면 '내가 나의 눈을 둘 것이다'라는 말인데,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기 위해 의인을 본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으나(시 34:15; 벧전 3:12), 본 구절은 그 반대의 경우이다. 즉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죄악을 감찰하시고 죄인을
징벌하시기 위해 주지하신다는 의미이다(시 66:7).
성 경: [암9:5]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이 피할 수 없음을 밝힌 후에 저자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드러내고 있다.
(주); 주 만군의 여호와 -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다스리시고 지배하는 분임을 알려주는 표현이다(4:13).
(주); 땅을 만져 녹게 하사 - 하나님께서는 창조시 기초를 놓아 견고하게 하신 땅(욥 38:4; 시 104:5; 잠 8:29)을 허물어뜨릴 수도 있는 분임을 암시해준다(시 46:8; 75:3). 아울러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심판주임을 비유적으로 제시한다.
(주); 그 온 땅으로...솟아오르며 - 이스라엘 땅에 큰 홍수를 내려 지표면을 덮게 하리라는 뜻으로 보인다(J.Calvin). 하나님의 심판의 표현으로 홍수가 사용된 대표적 사례는 노아의 홍수 시대의 일을 들 수 있다(창 6:7; 7:10-24).
(주); 애굽 강같이 낮아지게 - 나일 강이 자주 홍수로 범람한 사실을 기초로 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전달하는 구절이다. 하나님은 땅이 홍수로
침몰되어 삶의 근거지를 송두리째 빼앗기도록 하시는 분이다(8:8). 결국 본절은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과 자연을 다스리는 능력자임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성 경: [암9:6]
5절이 능력의 하나님을 드러낸 반면, 본절은 언약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소개한다.
(주); 그 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 여기에서 '전'이란 히브리어로 '마아라'(*)로서 흔히 '계단', '층계'(왕상 10:19,20; 대하 9:18; 겔 40:6, 22, 26)를 뜻한다. 이는 흔히 하나님의 '성전'을 뜻하는 히브리어 '바이트'(*, 집, 왕상 6:1-19; 대상 22:1-19; 겔 41:5-20)와는 다르다. 특별히 본 구절에서는 솔로몬의 경우처럼 보좌에 이르는 층계를 암시하는 것 같다(J.Wolfendale). 이럴 경우 본절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보좌, 즉 우주를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통치의 상징인 보좌를 하늘에 세우셨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셨다는 표현은 성경에서 여러 번 나온다(시 11:4; 103:19; 사 66:1).
(주); 그 궁창의 기초를...두시며 - 여기에서 '궁창'이란 히브리어로 '아구다'(*)로서 '띠', '고리', '묶음'등을 뜻한다. 이는 성경에서 흔히
'궁창'으로 쓰여지는 '라키아'(*, 넓게 퍼진 것, 창 1:6,7,8,14)나 '솨하크'(*, 작게 부숴진 가루, 수증기, 욥 35:5; 37:18,21; 시 57:20; 77:17;
78:23)와는 다르다. 혹자는 이에 대해 하늘아래의 물과 하늘 위의 물을 나누는 띠라고 보기도 한다(J.Wolfendale).
성 경: [암9:7]
하나님은 타락한 백성들에게 다시 한번 이스라엘의 독특함을 설명하신다. 이스라엘은 열방과 달리 인류 구원을 위해 선택된 선민이므로, 범죄로 인한 멸망을 받을지라도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7-10절).
(주);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 구스인은 함의 후예들이다(창 10:6-8). 이들은 영적으로 타락하고 불의한 자를 상징한다(렘 13:23). 그러므로 이 구절은 구스 족속의 검은 피부가 희게 되지 않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악한 마음이 변하지 않음을 탄식하는 말이다.
(주);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 출애굽 사건을 가리킨다. 아람 사람을 길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 아람인들은 셈의 제5남의
후예들이다(창 10:22,23). 이들은 이스라엘의 북부 수리아(시리아)에 거주하였으며, 북왕국 이스라엘과는 많이 싸우기도 하였다(왕상 20:1-23; 왕하
16:5-9). 한편 본 구절의 '길'(*, 키르)은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한 한 지역으로서 아람인들이 현재 다메섹을 중심으로 거하고 있는 곳으로 오기 전에
거주하였던 지역을 가리키는 듯하다.
성 경: [암9:8]
(주); 범죄한 나라 - 혹자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합친 전체 이스라엘 나라를 지칭한 말이라고 한다(F.Keil, J. Deane). 반면 다른 사람은 어떤 특별한 왕국을 지적함이 없이 보편적으로 범죄한 모든 나라를 함축한다고 주장한다(J.Calvin).
(주); 야곱의 집은...아니하리라 - 본 구절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나라를 심판하시는 중에도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선택된 자들을 보호하시어 보존케
하시리라는 약속이다. 이는 '남은 자' 사상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신실한 자들을 심판에서 면케 하시고 죽음의
형벌에서 보존하심으로써 은혜를 나타내신다(5:15; 사 10:20-22; 렘 31:7).
성 경: [암9:9]
본서의 핵심 구절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국 가운데 흩으셔서 고통을 받게 하심을 선언하는 내용이다.
(주);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같이 하려니와 - '체질하기를'(*, 하니오티)의 기본어 '누아'(*)는 '흔들다'의 뜻을 갖는다. 그리고 '체질함'의 히브리어는 '이노아 바케바라'(*)로서 직역하면 '체로 흔들음'이다. 이런 본 구절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방 열국 중에 흩으사 온갖 시련과 어려움을 당케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심으로써 알곡과 쭉정이를 분류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진실로 당신을 의뢰하고 은혜를 구하는 자와 거짓되고 허풍스런 신앙을 가진 자를 구별하실 것이다.
(주); 그 한 알갱이도...아니하리라 -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신앙을 가진 자는 세계 열방 속에 흩어져 온갖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실족하지 않고 은혜로 보존될 것을 암시한다.
성 경: [암9:10]
(주); 내 백성 중에서...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 -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는 구절로서, 죄를 짓는 자들은 반드시 멸망하게 된다는 교훈을
전달해 준다. 하나님은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분이다(갈 6:7,8).
성 경: [암9:11]
(주); 그 날 - '여호와의 날'(5:18,20)로서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형벌하시는 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J.Deane,F.Keil). 그러나 이 날은 내용상 단순히 형벌의 뜻만을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회복의 의미도 함축한다.
(주);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자로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자이다(삼상 13:14; 행 13:22).
그는 왕이 된 후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으며(행 13:36)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는 열성 등을 보여, 왕가(王家)가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약속을
받았다(삼하 7:1-17). 이런 점에서 그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왕상 12:19; 왕하 8:19; 렘 29:16; 눅 1:32). 이런 맥락에서
'다윗의 무너진 천막'이란 말은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쇠잔케 된 이스라엘을 지칭한다. 하나님께서 이를 수리하고 세우시겠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소생시키사 회복시키시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종국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킨다는 뜻을
함축하기도 한다(행 15:15-21). 한편 본절에서 '그 틈을 막으며'란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져 포로 시대까지 계속되었는데 이둘이
하나로 합쳐질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F.Keil, j.Wolfendale,j.Deane).
성 경: [암9:12]
(주); 저희로...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이스라엘이 많은 이방 열국들을 속국으로 두어 지배하며, 광대한 통치권을
행사하게 되리라는 암시이다. 이사실은 궁극적으로 왕의 왕되신 그리스도의 왕국이 광대할 것임을 암시하기도 한다(J.Calvin). 한편 본절에서
'에돔의 남은 자'란 1:11,12에서 심판을 받은 자들과는 달리 그 심판에서 구원받고 보존된 자들을 가리킨다. 아마 이들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이란 말과 비교해 볼 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 즉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을 가리키는 듯하다(F.Keil). 그리고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도 역시 같은 의미로서 하나님의 품에 돌아온 자들, 곧 구원받은 무리들을 지칭하는 듯함.
성 경: [암9:13]
(주); 그 때에 밭 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 '밭 가는 자가...이으며'란
밭갈이가 쉴새없이 계속된다는 뜻이며, '포도를 밟는 자가...이으며'란 포도 수확이 풍성하여 밭갈이 시기까지 계속된다는 의미이고
'산들은...흘리며'란 포도가 무성히 열려 포도주를 많이 얻을 것이란 내용이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란 산에서 기르는 양이나 염소 등 가축으로
인해 많은 양의 젖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표현중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 말은 욜 3:18의 내용과 유사하다. 이런 말씀은 회복된 이스라엘
가운데 풍요와 번영이 넘칠 것을 암시해준다.
성 경: [암9:14]
(주);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 이스라엘이 바벧론 포로에서 귀횐될 것을 가리키는 내용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풍요로운 축복을 누리게 됨을 예표하는 것이다(눅 4:18).
(주); 저희가...먹으리라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하여 안식을 누리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바벧론 포로 귀환후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예루살렘 성벽을 쌓음으로 외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
성 경: [암9:15]
(주); 저희를...나의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바벧론 포로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후, 지속적으로
거하게 되리라는 약속이다. 이 말은 궁극적으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후, 지속적으로 축복받을 것을 예시한다. 한편
본절에서 저자는 가나안을 '나의 준 땅'이라고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이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음을 분명히 드러낸다(창 17:8; 출 6:8;
신 2:31; 수 1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