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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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민수기 주석



성 경: [민1:1]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 명령]

(주); 애굽 땅에서 나온 후 -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10대 재앙으로 인해 마침내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 언약의 땅 가나안을 향해 출애굽을 감행한 시점과 장소는 B. C. 1446년 1월 15일 고센 지역 라암셋(Rameses)에서 였다(출 12:37). 그리고 이때는 야곱이 요셉의 초청으로 그 가족과 함께 애굽으로 이주한 (B. C. 1876년) 때로부터 430년이 흐른 뒤였다(출 12:40). 한편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후 2달만에 시내 산에 도착했다(B. C. 1446년 3월 15일, 출 19:1). 그리고 시내 산에서 성막 계시와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가지 규례들을 지시받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출애굽 2년(B. C. 1445년) 1월 1일에 성막을 건립했다(출 40:17). 그리고 성막 건립 후 곧 레위기 규례가 주어 졌다. 시기상 이 규례들은 출애굽 제 2년 1월에 주어진 것이다. 이어 민수기 규례가 출애굽 제 2년 2월 1일부터 주어지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이 모든 규례들은 시내산 기슭에서 주어 졌거나 혹은 일어난 사건들 이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제 2년(B. C. 1445년) 2월 20일에 시내 산을 떠났다. 이때는 시내 산에 도착한 지 9개월 닷새가 지난 뒤였다(10:11).

(주); 제 이년 이월 일일 -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시점부터 만 1년 보름이 지난 후의 첫날로서, 성막이 세워진 지 한 달 후이며(출 40:2, 17), 이스라엘이 군대로서의 조직을 완료하고 시내 광야를 떠나기 20일 전이다(10:11). 여기서 '2월'은 '시브 월' 곧 바벨론식 명칭(바벨론 포로 이후)으로는 '이야르 월'이며, 오늘날 태양력의 4, 5월에 해당한다. 한편 이스라엘이 이곳 시내 산에서 근 1년 동안 계속 체류한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된 선민으로서 그들의 삶에 필요한 종교. 도덕. 사회의 각종 율법을 계시받고, 또한 그들의 삶의 중심적 역할을 할 성막을 건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출애굽의 감격에 도취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시간내에 가나안에 입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따르는 신앙과 그분을 중심한 경건한 생활이었다. 만약 이것 없이 가나안이 쟁취된다면 그곳은 그들에게 복된 땅이 아니라 타락과 방종의 땅이 될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일러 가라사대(*, 와예다베르 예호와) - 직역하면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이다. 여기서 '그리고'라는 접속사가 본서와 레위기와의 연계 관계를 보여준다는 견해가 있으나, 차라리 먼저 전개된 출애굽기의 사건들을 이어받는 말로 보는 것이 좋다. 한편 원문에는 이 문구가 첫머리에 있어서 본서가 지니는 신적권위를 처음부터 강변(强辯)해 주고 있다. 본서는 이렇게 여호와의 분부로 시작해서 여호와의 명령으로 끝맺고 있다(36: 13). 이러한 구성은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의 광야 훈련과정을 기록한 본서의 내용 전개와 잘 부합되는 것이다. 실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군대를 조직했고, 질서있게 진을 쳤으며(2:1-34), 질서있게 행군했고(10:11-28), 대적들과 싸워 연전 연승을 거두었다(21:1-3, 10-35; 31:1-54).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할일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33:50-36:13). 비록 여러 번에 걸친 불신앙적 태도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는 했어도, 전반적으로 광야의 훈련을 무사히 겪어낸 이스라엘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매우 크다. 즉 이스라엘 군대의 행동 원리였던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절대적 순종'은 오늘날의 십자가 군대인 교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한다.

(주); 광야 회막에서 - 여기서 '광야'(* 미드바르)란 건조한 계절에는 생물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되고 강우기(降雨期)에만 풀들이 자라는 '스텝'(steppe)지역을 가리킨다. 결국 10월과 4월 사이에 내리는 약간의 겨울비와 8, 9월에 내리는 이슬로 1년을 버텨야 하는 팔레스틴의 기후 조건으로 볼 때 실로 '광야'는 인간이 견뎌내기 힘든 '죽음의 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곳에서 식량 생산을 위해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이 1년여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그런데 이 '죽음의 땅'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회막'은 바로 이 기적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공한다. 즉 그들은 그들의 삶 중심부 깊숙이 개입하고 계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죽음의 땅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광야에 세워진 회막은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고, 생명을 싹트게 하는 생명의 처소, 곧 '광야 교회'라 불리워질 수 있다(행7:38). 한편 본문에 언급된 회막(*, 오헬 모에드)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만나는 장소'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리고 개역 성경에는 '오헬'이라는 동일한 원어가 '성막'(출 26:9), '장막'(출 16:16), '회막'(출 33:8)등으로 별 구별없이 혼용(混用), 번역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처럼 '만남의 장소'라는 독특한 의미를 강조할 때의 원어는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서의 만남'이란 뜻의 '모에드'와 결합된 '오헬 모에드' 형태로 언급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이며 동역자인 모세를 당신의 처소에서 친근히만나 그에게 당신의 원대한 계획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구약의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공의로우시기만 한 분으로서 인간이 도무지 접근할 수 없는 초월적인 분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떨쳐버릴 수 있다. 진정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만나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시고 또한 기뻐하신다(사 55:1-7).

성 경: [민1:2]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 명령]

(주); 회중 - 이 말의 원어 '에다'(*)는 '약속하다', '징벌하다'는 뜻의 '야아드'란 말에서 유래했다. 그러므로 결국 이는 단순한 의미의 군중(*, 콜 카할)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하에 있는 이스라엘, 곧 언약 공동체를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교회를 가리켜 '회중'이라 할수 있다.

(주); 각 남자의 수 - 고대 이스라엘은 통상적으로 여자와 어린 아이를 독립된 개체로 인정치 않았으며, 그렇기에 오직 남자 성인(20세 기준)만을 인구로 계수하는 것이 관행(慣行)이었다(마 14:21). 그러나 이는 그들이 여자나 어린이의 인격과 생명을 무시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이것은 당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부장(家父長)이그 가족을 대표했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이 주로 성인 남자들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것등의 종교적인 견지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고전 11:3, 7-9; 딤전 2:12, 13). 특별히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군대를 조직하려는 목적상 하나님의 거룩한 군사로의 부름 때문에 성인 남자들만이 계수되었다.

(주); 가족과 종족을 따라 - 가족(*, 미쉬파하)이란 아버지와 어머니를 중심한 1세대의 가정을, '종족'(*, 베트 아보트)이란 '아버지', '우두머리(조상)'를 의미하는 '아브'와 '집', '가족' 등을 의미하는 '바이트'의 합성어로서 곧많은 가족들이 모인 집단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가족'보다는 크고 '지파'보다는작은 규모의 집합체를 뜻한다(수 7:14). 한편 이와같이 혈연 관계를 중심하여 각각을 계수하게 한 것은 결코 분열 의식이나 비정상적인 경쟁 의식을 부추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1)각자의 출생 근원을 기억하게 하며, (2) 각각의 가족 공동체가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을 추진해 간다는 공동체 의식과 선민(選民)의식 및 역사 의식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주); 명수(名數)대로 - 여기서 '명수'란 사람을 샘할 때 각각의 대상이 되는 '머리'(HEAD), 또는 '계산된 수'(count, number)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KJV에서는 '그들의 이름 수대로'(according to the number of names)라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이는 한 사람의 누락도 없이 모두 계수되어야 함을 나타낸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마치 택한 백성들의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하나의 누락도 없이 등재(登載)됨을 연상시킨다(계 21:27).

(주); 계수(計數)할지니 - '계수하다'란 말은 히브리어로 '파카드'(*)인데 '계수하다'는 의미보다 오히려 '점호하다', '정열하다'는 뜻의 군사적인 용어로 번역함이 좋다(Lange).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군대 조직으로 재편성하시기 위해 인구조사를 명하셨기 때문이다(출 12:17, 51). 한편 KJV에서는 '총계를 내다'(take thesum)로, 여타 영역본에는 '명부에 게재하다', '등록하다'(register)로 번역했다.

성 경: [민1:3]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 명령]

(주); 이십 세 이상으로 - 여기서 '20세'란 육체적으로 성숙하고 건장한 자인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미숙하지 않은 자란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1) 비록 체력적으로 건장하고 나무랄데가 없다 할지라도 연령이 20세에 미달될 때에는 군대 조직에 계수함 받을 수 없었고 (2) 비록 연령상으로는 20세가 넘었다 할지라도 체력적으로 전쟁에 참가하기 어려운 자, 곧 신체 허약자 및 신체 장애자들 역시 군대 편제상 계수함 받을 수 없었다(Matthew Henry).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 중 이 두 조건들이 모두 갖춰지지 못할 때 그는 '싸움에 나갈 만한 자'가 되지 못했다. 이는 오늘날 십자가의 군사로 부름 받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고 강건할 때 비로소 대적 마귀와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요일 2:13, 14). 한편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는 본장에서 무려 14회 반복되고 있다. 히브리 문학에서는 어떤 사실을 강조하고자 할때 그것을 반복하는 역설체적(力說體的) 기법을 사용한다. 그런 점에서 위의 문구(文句)는 그러한 조건에 합당한 자는 계수에 있어 절대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은 단순히 인간적인 열정과 지혜로 수행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에 근거하여 수행되어져야 했다.

(주); 그 군대대로 - 여기서 군대(*, 체바오트)란 말은 '싸우다'(*, 차바)에서 파생된 말이다. 출애굽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죄악이 관영한 가나안 민족을 심판하기 위해 싸울 군대로 삼으셨고(출 12:17), 당신 자신은 그 군대의 총사령관이심을 분명히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가 이스라엘 군대 앞에서 행진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반영한다(10:33). 한편 사사 시대 이후에는 하나님을 전쟁의 신(神)으로 묘사하는 명칭인 '만군의 여호와'란 말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삼상 1:3). 그리하여 '체바오트'가 하나님의 이름과 연결되어 '만군의 여호와' 등으로 쓰인 경우가 구약 성경에 약 285회나 된다. 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아테네(Athene)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즉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는 무엇보다 죄와 싸우시는 분이시다.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각각 77회, 62회씩 언급한 예레미야와 이사야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실로 성경은 만군의 하나님께서 장차 죄악 세상을 평정하시고 공편과 정의의 세상을 세우실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사 9:3-7). 따라서 오늘날 하나님의 군대인 교회의 사명도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롬 14:17)를 대망하며 '세상의 죄와 싸우는 것'으로 규정될 수 있다.

성 경: [민1:4]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의 책임자들]

(주); 두령 - 각 지파 장로들의 모임을 대표하는 자(NIV, the chief leader)를 가리킨다. 그런데 '두령'을 뜻하는 히브리어 '로쉬'(*)는 본서에서 '두령'으로 번역되었으나, 본서 이외에서는 대부분 '족장'으로 번역되어 있다(수 14:1; 19:51; 21:1; 대상5:7; 스 8:16). 이처럼 '로쉬'라는 말이 혼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두령과 족장은 동일한 의미인 듯하다. 여하튼 이들은 모세와 아론을 보필하여 이번 연구 조사를 주도해 갈 자로 부름받았다. 한편 이것은 성막세를 거둘 때의 인구 조사시 레위인들이 보필했던 것과는 대조가 된다(출 38:21). 그 이유는 아마 성막세를 거들 때의 인구 조사는 순수한 종교적 목적으로 시행된 것인 반면, 여기서의 인구 조사는 군대 편제상의 목적에서 실시한 것이기 때문인 듯하다(Pulpit Commentary).

(주); 너희와 함께 하라(*, 이트켐이흐유) - 직역하면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라'란 뜻이다. 이미 이스라엘은 수많은 민사 소송을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한 행정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출 18:13-26). 하지만 광야 행진과 가나안 정복 전쟁을 조직적으로 수행해 낼만한 군사 체계는 아직 미흡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군사조직으로서의 편재를 갖추는데 힘쓰며. 또한 정비된 군사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지휘관들을 직접 선택하심으로써 향후 광야 행진과 가나안 정복 전쟁을 위해 이스라엘을 명실상부한 군대로 재정비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단의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즉 군대는 한 사람의 독불 장군이 지휘할 때보다 명석한 참모들과 유능한 일선 지휘관들의 협조가 뒷받침될 때, 보다 능률적으로 움직여진다는 사실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의 판단보다 여러 사람의 판단과 협력이 어우러질 때 교회가 더욱 성장할수 있는 것이다.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謀士)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잠 15:22).

성 경: [민1:5]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의 책임자들]

(주); 함께 설 사람 - 여기서 '서다'(*, 아마드)란 말은 시중들기 위해 곁에서 긴장하며 기다리고 서 있는 자세를 일컫는다. 그러므로 모세, 아론과 '함께 설 사람'이란 두 지도자를 보좌하여 하나님의 뜻을 원활히 수행해 갈 협력자 내지 조력자(助力者)를 뜻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의 교회 지도자들은 바로 우리의 유일한 지도자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선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조력자로서 복음 전파 사역을 담당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성 경: [민1:5, 6, 7, 8, 9, 10, 11, 12, 13, 14, 15]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의 책임자들]

본문은 인구 조사를 담당할 실무진들의 명단을 하나님께서 친히 제시한 장면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들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가 하나같이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즉 그들의 이름에는 '엘'(하나님), '아비'(아버지), '아히'(형제), '술'(반석)등의 종교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셈족 계통의 어근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는 적어도 그들의 삶이 하나님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각 이름들을 도표화 하면 다음과 같다.

지파명 두령명 이름의 의미

르우벤 엘리술 하나님은 반석이심

시므온 슬루미앨 하나님과 평화롭게

듀 다 나 손 하나님께 예물 드린자

잇사갈 느다넬 하나님께서 주심

스불론 옐리압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심

브라임 엘리사마 하나님께서 들으심

므낫세 가말리엘 하나님은 상급이심

베냐민 아비단 아버지는 심판관이심

단 아히에셀 내 형제가 도움

아셀 바기엘 하나님께서 만나 주심

갓 엘리아삽 하나님께서 더하심

납달리 아히라 고난의 형제

성 경: [민1:16]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의 책임자들]

(주); 회중에서 부름을 받은 자(*, 케리에 하에다)- 여기서 '회중'(*, 에다)은 '증거'(창 31:52), '증인'(레 5:1) '징벌'(미 6:9), '약속'(암 3:3)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로서(2절), 이스라엘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부름 받은 언약 민족임을 시사해 준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민의식 속에서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다(출 19:5, 6). 그런데 5-15절에 언급된 족장들은 부름 받은 회중 가운데서 또다시 부름을 받은 자들이므로 더욱 영예로운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 역시 죄악 세상에서 불러내시사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롬 8:30)으로 말미암아 선택 받은 자로서의 영예를 누리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벧전 2:9). 더욱이 그 중에서도 일꾼으로 소명을 받은 교회 지도자들은 더한층 그 영광의 직분에 감격하면서 성심껏 봉사해야 할 것이다(고후 3:6-11).

(주); 천만인의 두령 - 여기서 '천만인'(*, 엘레프)이란 문자적으로는 '천'(family)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말은 '가족'(family) 혹은 '종족'(clan)등의 뜻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러므로 '천만인'이란 단순한 문자적 수효가 아니라, 상징적으로 가족이나 종족이 모인 '수많은 무리'를 가리킨다. 한편, 이처럼 각 종족의 두령들에게 '천만인'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은 그들에게 위임된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를 보여 준다. 실로 거룩한 공동체를 관리, 운용해 가며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일처럼 이 세상에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란 없다.

성 경: [민1:17]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의 책임자들]

(주); 지명된(*, 니케부 베쉐모트) - '그 이름으로 표시된'이란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매우 직접적이고 개인적이다. 아마 그것은 사명감을 보다 분명히 하고, 신적 직분의 권위를 각자에게 부여하기 위한 배려로 생각된다. 모세(출 3:1-4:31), 여호수아(신 31:23), 기드온(삿5:11-24), 사무엘(삼상 3:1-21), 이사야(사 6:1-13), 예레미야(렘 1:4-19),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막 3:13-19), 바울(행 9:1-22)등이 하나님에 의해 직접적으로 지명된 일꾼의 대표적 경우이다. 한편 초대교회 이후에는 사도들과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교회 직원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행 7:5-7; 14:23; 딛 1:5). 그러나 간접적으로 선출된 일꾼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명받아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딤전 6:12), 디모데처럼 신적 권위를 갖고 사역해야 할 것이다(1:1-16 강해,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명의식).

성 경: [민1:18]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 시행]

(주); 자기 계통을 말하매 - 즉 '출생을 밝혔다'. '계보에 입적하였다'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선민으로서의 구비 요건 중 가장 중요시한 것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출신을 명확히 아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개체로서의 자신 이전에 하나님과 연관된 가문 및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신을 더 중요시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이 가문을 통해 계속 자신이 살아갈 것을 신앙처럼 믿고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각 지파는 계보에 올라가 있는 자들에 한해서 군사수를 점검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보에 들지 않은 자들은 약속의 후손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부정하게 여겼기때문이다(스 2:62). 그 결과 출애굽시 이스라엘을 따랐던 '중다한 잡족'(출 12:38)은 군사로 동원되지 않고 단순히 노동에만 종사한 듯이 보인다(신 29:11).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살면서 불평 불만의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를 초래케 했다(11:4-6, 33).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이 군대 편성에서 제외된 것은 당연하다. 한편 오늘날 진리를 위해 싸워야 하는 교회 역시 구성원들인 성도들의 계보와 출생이 분명해야 한다. 즉 하나님께로서 난 자(요 1:13),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신 자(약 1:18), 생명책에 녹명된 자(빌 4:3)라야 진리와 복음을 위한 투사가 될수 있다.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사단의 수하에 있으므로, 진리의 편에 서지도 못하고(요 8:44) 사단을 대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마 12:25, 26). 그러므로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 가시적인 교회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는 거듭났다고 자처하는 신자들이 최선을 다해 불의와 싸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요, 다른 하나는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자들이 거듭나지 못했거나 영적 출생을 거의 무시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폐단을 개선하지 못하는 한, 교회는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히는 소금'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마 5:13).

성 경: [민1:19]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 시행]

(주); 여호와께서 ... 명하신대로 - 이 말의 뜻은 회막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받았던 모세가 그 명령을 게으름이나 부주의함 없이 신속, 정확하게 준행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실로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적이어서 인간이 그것을 수행해도 되고 그렇지 않아도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볼 때 그 명령이 불합리하고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오직 전적인 순종만이 요구될 뿐이다(창 22:1-19).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폭군의 포악스런 명령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나님의 명령은 그 명령과 더불어 그 명령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역동적인 힘을 제공한다(창 1장; 느 9:8). 그러므로 명령 받은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순종뿐이다.

(주); 계수하였더라 - 성경 기록상 계수 기간은 단 하루 걸렸음을 알수 있다(1, 18절). 이처럼 60만 명이 넘는 장정들의 인구 조사가 단 하루 동안에 끝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일전에 성막건축을 위한 인두세(人頭稅) 수금시 인구 조사를 철저히 실시했던 그 자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이며(출 30:11, 12; 38:26) (2) 이스라엘 백성이 한 곳에 밀집하여 모여 있었다는 사실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고 (3) 또한 각 두령들의 헌신적인 노력 및 백성들의 자발적인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 경: [민1:20, 21]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수효]

(주); 르우벤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 - 르우벤은 이스라엘(야곱)의 12아들 중 장남이었으나, 서모(庶母) 빌하와 간통함으로써 가문과 여호와의 영광을 더럽혔다(창 35:22;49:4). 그 결과 그는 저주를 받아 장자권을 상실하게 되었고 대신 요셉이 그 권한을 부여받았다(대상 5:1,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 여전히 르우벤 지파가 인구 조사 결과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아마 그의 영적 장자의 지위는 인정치 않더라도, 육체적으로 야곱의 첫째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는 본서 기자(記者)의 의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성 경: [민1:22, 23, 24, 25]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수효]

르우벤 지파와 함께 시므온과 갓 지파가 언급된 것은 그들이 르우벤 지파와 가장 절친한 형제 지파이기 때문이다. 즉 시므온은 르우벤을 장남으로 낳은 레아의 둘째 아들이며, 갓은 레아의 시녀인 실바의 장남이다(창 29:33; 30:10, 11). 한편 이들 세 지파는 진 배치에 있어서도 동일한 선상에 놓이게 되었다. 이같은 일련의 조치는 결코 파벌 의식을 조장키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갈등과 마찰을 해소시키고 형제의 우애를 돈독케하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운 조치였다. 사실 인간이 모인 곳에는 어디나 갈등과 긴장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만유를 통일하시며 평안케 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당면한 모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엡 4:6).

성 경: [민1:26, 27, 28, 29, 30, 31]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의 수효]

광야 행진에서 유다 진기(陣旗)에 속한 지파의 총계이다. 여기서 유다가 레아의 넷째 아들이면서도 르우벤 진(陣) 배열에 소속되지 않은 것은 그가 르우벤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장자에 피택되었으므로 독립적인 지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창49:8-12). 특별히 이 지파는 가장 많은 군인 수를 보유하였을 뿐 아니라. 광야 행진중 선봉(先鋒)에서는 영예로운 승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이는 전적으로 야곱의 예언(창 49:8-11)이 성취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바, 이후 예수님께서 이 지파에서 출생하심으로써 야곱의 메시야적 예언은 온전히 성취되었다 (마 1:2; 계 5:5), 한편 유다 지파와 절친한 레위 지파가 이곳에 등재되지 않은 것은 그 지파는 특별히 성막봉사자들로 성별(聖別)되어 군복무를 면제 받았기 때문이다(47-53절; 8:9-26). 그리고유다 진영의 깃발 아래 소속된 잇사갈과 스불론은 각각 레아의 다섯째와 여섯째 아들이다(창 49:1-28 강해, 이스라엘 열 두파의 형성과 분류).

성 경: [민1:32, 33, 34, 35, 36, 37]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요셉, 므낫세, 베냐민 지파의 수효]

본문은 요셉과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들의 총계이다. 여기서 요셉의 두 아들의 지파가 삼촌들의 지파와 동등한 위치에서 계수된 것은 구속사의 일익(一翼)을 담당했던 요셉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축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창 48:5-20). 그중에서도동생 에브라임 지파가 모든 면에서 형 므낫세 지파보다 우위를 차지한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주권적 선택의 결과였다(창 48:13, 14, 17-19), 즉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유언적 예언을 통해 '그 아우를 그 형보다 크게' 하셨던 것이다(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이성과 제도에 얽매이시지 않고 당신의 선한 계획을 추진해 가신다(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초월적이고 주권적인 섭리 앞에 인간은 다만 겸손히 그것을 수용, 인정해야 할 뿐이다(롬 18-29).

성 경: [민1:38, 39, 40, 41, 42, 43]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단, 아셀, 납달리 지파의 수효]

본문은 단 지파와 그의 가까운 지파들 곧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의 군인수 총계이다. 이들은 계수 때나 행진시를 불문하고 맨 마지막에 언급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육적으로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열등한 지파였기 때문이다(2:25-31: 10:25-27). 특히 단 지파는 가나안 정착 이후에 이스라엘 내에서 기업이 될 땅을 얻지 못해 방황하기도 했으며, 또한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자적으로 우상 숭배를 일삼아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기도 했다(삿 18장). 그러므로 계시록의 기록에 의하면 결국 이들은 12지파의 반열에서 제외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계 7:5-8). 이는단의 장래를 예언한 야곱의 말이 온전히 성취된 것이다(창 49:16-18). 이러한 단 지파의 결말은 곧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자들의 최후가 허무와 절망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단 진영의 깃발 아래 소속된 아셀은 레아의 여종 실바의 막내 아들이고, 납달리는 라헬의 여종 빌하의 막내 아들이다(창 30-13).

성 경: [민1:44]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총계(總計)]

(주); 족장 십 이 인 - 이들은 이번 인구 조사를 위해 이스라엘 12지파를 대표하여 뽑힌 자들이었다. 특별히 여기서 '족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시'(*)는 '높이 들리다'란 뜻의 '나사'(*)에서 파생된 말로, 곧 각 지파의 군대 지휘관들을 의미한다. 한편 이 말이 4절에서는 '두령'(captain)으로 번역되었다. 따라서 보다 자세한 내용은 4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1:45]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총계(總計)]

(주); 이 십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자 - 1:3 주석 참조.

(주); 계수함을 입었으니 - 즉 성전(聖戰)을 담당할 군인 명단에 등재 되었음을 뜻한다(2절).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곧 (1) 그들이 사적(社的)인 존재에서 이스라엘은 백성을 대표하여 싸우는 공적(公的)인 존재로 변화되었다는 점과 (2) 그들 사명의 최종 목표는 가나안 정복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점 (3) 그리고 무엇보다 계수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확실한 증표를 얻었다는 점 등을 강조한다(딤후 2:19). 한편 오늘 십자가의 군병으로 부름 받은 우리들도 단순히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등재된 것만으로 자족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구됨과 소유됨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삶의 최종 목표인 영적 가나안 곧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날마다 사단과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성 경: [민1:46]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총계(總計)]

(주);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 - 이스라엘 12지파 중 싸움에 나갈 만한 군사로 부름받은 자의 총계(總計)이다. 그런데 이 숫자는 대략 아홉 달 전 성막 건축을 위한 속전 대상자의 총계와 동일하다(출 30:11-16; 38:26). 이러한 일치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크게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본문의 통계는 성막 건축 전 속전 대상자의 명단 조사 결과(출 38:26)에 전적 의존한 것으로서, 여기서는 단지 군대 편제를 위해 가족과 종족과 지파별로 분류하여 공문서로 작성했을 뿐이라는 견해(Keil, PulpitCommentary). (2) 본문의 통계는 속전 대상자의 인구 조사와 긴밀히 연관되었으나 '603, 550명'이라는 정확한 수치는 이번의 인구 조사에서 처음으로 총계된 숫자라는 견해이다(Lange). 여기서는 첫번째 견해가 타당한 듯한데, 그 근거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다. 즉 (1) 이번 징병 대상자의 총계가 단 하루 동안에 완료되었다는 사실(2) 시간상 저번 성막 건축 전의 속전 대상자의 총계가 있어야만 분명히 인두세(人頭稅)를 징수할 수 있었고, 또한 그 세금에 근거하여 그 기금으로 성막 건축을 완료할수 있었겠기 때문이라는 사실 (3) 그리고 이번의 인구 조사에서는 각 개인보다는 유난히 '가족과 종족을 따라' 계수하라는 명령이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 등을 들 수 있다. 결국 오경(五經)의 기록자인 모세는 지난번 성막 건축전의 속전 대상자 총계를 근거로 이번 징병대상자의 총계를 산출했던 것 같다.

성 경: [민1:47]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제외된 레위 지파]

(주); 레위인은 ...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 레위 지파는 병역 의무로부터 면제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성별(聖別)되어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성막을 호위하며, 또한 그곳에서 진행되는 제반 업무에 전적으로 봉사할 사명을 맡았기 때문이다(3장; 출 13:2, 13).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세상적인 일, 심지어 자신의 생계를 위한 여타의 노동도 할 수 없었으며,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이다(3:12, 13). 한편, 그러나 여기에 레위인이 계수에 들지 않았다는 것은 전체 이스라엘 군인수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뜻일 뿐, 그들이 전혀 계수함 받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레위 지파가 가지는 독특한 의미 및 직무를 따라 일개월 이상된 남자들로써 별도로 계수함 받았다(3:39).

성 경: [민1:48, 49]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제외된 레위 지파]

레위 지파만은 ... 계수 중에 넣지말고 -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에 계수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은 금송아지 숭배 사건때 하나님께 전적 헌신함으로 말미암아 (출32:26-29), 그후 오직 하나님의 일만을 하도록 특별히 구별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레위인 성별 사상은 일찍이 레위기 규례 속에서 암시되어 오다가(레25:32-34), 이제 본서에 이르러 완전히 공식 인준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레위인들은 명분상 이스라엘 장자들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초태생 규례(출 13:2, 13)에 근거해 그들 대신 하나님께 바쳐진 것으로 간주되어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 속에는 계수되지 않았던 것이다.

성 경: [민1:50]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제외된 레위 지파]

(주); 증거막 - 곧 하나님의 임재를 증거하는 성막을 가리킨다. 한편 이 말이 생겨난 것은 성막 속에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을 증거하는 증거판(십계명 두 돌판)이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성막이나 장막이란 말외에 특별히 '증거막'(the tabernacleof the testimony)이라 지칭할 때엔 언제나 하나님의 율법, 계명, 규례 등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주); 모든 기구 - 이 말은 '그것(성막)에 속한 모든 기구', 곧 언약궤, 향단, 진설병상, 등대, 번제단, 물두멍등을 가리킨다(출 25:29, 38, 39; 27:3, 4; 37:16, 24; 39:36-39)

(주); 모든 부속품 - '그것(성막)에 딸린 모든 것', 즉 말뚝, 줄 등을 말한다(출 35:18;38:40). 실로 성막과 모든 기구들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내는 동시에(출 40:34, 35),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그의 중보 사역을 보여주는 가견적 상징물이다 (히 8:1-6; 9:1-15;10:19, 20). 그러므로 그것들은 세심한 배려 속에 잘 관리되어야 했다. 한편 영적으로 오늘날에는 성도들 각자가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성전이며(고전 3:16, 17; 6:19), 신령하고 보편적인 성전을 이루는 각 지체들이다(엡 2:21, 22).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의 몸을 모든 악의 요소로부터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성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롬 12:1, 2).

(주); 운반하며 - 기본 동사 '나사'(*)는 '들어 올리다'로서 곧 손으로 옮기는 행위외에 각종 도구를 사용하여 물건을 운반하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사실 레위인 중에는 성물을 그종류에 따라 고핫 자손처럼(4:15) 어깨로 메어 옮기기도 했으며,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처럼(7:7, 8) 수레로 운반하기도 했다.

(주); 거기서 봉사하며 - 곧 '그것을 돌보라'(NIV, take care of it)로 번역할 수도 있다. 즉 레위인들에게는 성막의 기구들을 돌보는 책임이 공식적으로 부여되었다는 의미이다. 한편 그러나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는 교회의 지체들, 곧 성도들을 돌보는 책임이 부과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빌 2:4).

(주); 장막 사면에 진(陣)을 - 이 말은 레위인의 존재 목적을 분명히 한 구절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처소인 거룩한 장막 주위에 항상 거하면서 (1) 성막 봉사를 위한 준비를 해야 했으며 (2)성막에 접근하는 자들을 통제해야 했고 (3)성물이 탈취당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지 않도록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친위대(親衛隊)로서 오직 그분의 영광을 위해 존재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는 오늘날 우리들의 존재 목적을 명확히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하나님과 늘 동행하면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영적 레위인들인 것이다(고전 10:31).

성 경: [민1:51]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제외된 레위 지파]

(주); 걷고 ... 세울 것이요 - 이 말은 하나님의 지상 임시 처소라 할 수 있는 장막의 이동과 설치를 가리킨 말이다(4:4-33),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동 생활을 연일 계속해야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동에 편리한 장막 구조를 허락하셔서 그것을 걷고 세우는 일을 반복케 하셨다. 한편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영원한 거주지로 삼을 수 없었으며, 가나안을 목적 삼고 장막을 매일 걷고 세우는 일에 충실해야 했다. 이는 오늘날 광야 같이 험준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세상에 대해서는 행인과 나그네요 이방인 일 수 밖에 없는(히 11:13; 벧전2:11) 우리들은 유한하고 제한적인 이 세상에 안주하여 잠시 잠깐의 쾌락을 추구하기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매일 진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분명 이땅에 거주하는 인생을 '풀', '안개'와 같이 순간적이고 임시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시 103:15; 약 4:14).

(주); 외인(*, 주르) - 원래는 이방인이나 적대국 백성을 의미했으나, 여기서는 비(非)레위 지파 사람들 즉 이방인 뿐 아니라 이스라엘 중에서도 레위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한편 레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준받지 않은 외인들의 성막 접근을 철저히 막아야 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침범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실로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총없이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을 스스로 보존하시기 위한 비상 조치이다(츨 19:12; 삼상 6:19). 한편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보존하는 파수꾼으로서 '외인'의 접근을 사전에 막아야 했으며, 그래도 가까이 오는 자는 단호히 살해해야 했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성막이 파괴되거나 하나님의 거룩이 훼손되는 날이면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전체에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53절; 17:13;18:5; 수 9:20; 22:20).

성 경: [민1:52]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제외된 레위 지파]

(주); 이스라엘 자손은 막을 치되 - 여기서 '막'(幕)이란 거주 또는 공격을 하기 위해 친 '진'(陣)을 가리킨다. 특별히 본문에서는 성막을 중심하여 성막 주위에 이스라엘 12진파의 진 곧 장막을 칠 것이 명령되어 있다(2:1-34). 결국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할 때나 질주할 때를 막론하고 항상 하나님의 성막을 중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주); 기 곁에 칠 것이나 - 히브리어에는 기(旗)를 가리키는 세 가지 용어가 있다. 첫째가 본절에 사용된 '데겔'(*)로서 백성들의 단체나 집합을 상징하는 의미의 기(standard)를 지칭한다(2:34; tl 20:5). 이것은 주로 전쟁에 있어서의 군호(軍號)를 가리킨다. 둘째는 '네스'(*)인데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집중시키는데 사용되는 푯대 또는 기를 가리킨다(사 13:2; 18:3). 따라서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기)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네스', 즉 이스라엘의 구심점이 되심을 적절히 보여 준다(출 17:15). 셋째는 '오트'(*)로서 이것은 '데겔'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지만 '데겔'이 큰 군대를 위해 사용된 반면 이 말은 작은 무리나 가족을 위해 주로 사용되었다(시 74:4). 그리고 성경에서 '오트'는 '데겔'이나 '네스'보다 더 많이 사용 되었는데 흔히 표지, 푯대를 뜻한다. 한편, 이처럼 이스라엘이 성막을 중심으로 4방면에 기(旗)를 세우고 진(陣)을 친 것은 적어도 다음 3가지 의미를 지닌다. (1) 이스라엘의 삶이 예배 중심이라야 한다는 뜻이다. (2) 이스라엘 군대의 통수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뜻이다. (3) 이스라엘의 군대 조직과 질서가 '여호와 신앙'으로 통일성을 갖는 동시에 또한 각 지파별로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성도들의 삶도 이와 같아야 한다. 곧 성도 각자가 몸 담고 있는 교회를 중심한 예배 생활에(행 2:46),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생활(대상 29:11, 12), 신앙 공동체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바로 인식하여 서로 단결하며 피차 조화를 이루는 생활(고전 12:4-27)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 경: [민1:53]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제외된 레위 지파]

(주); 레위인은 증거막 사면에 진을 쳐서 - 특별히 하나님께 헌신되어진 레위 지파 사람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그 사면 가까이에 진을 쳐야했다. 그 이유는 (1) 그들의 직무상, 그들은 성막을 위해 언제라도 봉사해야했기 때문에 늘 가까이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고 (2) 그들의 책임상, 그들은 성막 안으로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 사면을 단단히 호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성막을 침범한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면치 못했고,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는 이스라엘 전체 위에 임했다. 물론 당시 성막 호위를 맡은 담당 레위인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 책임을 지킬지니라 - 여기서 '지키다'(*, 솨마르)란 말은 모든 주의를 기울여 세심하고도 확실하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본 명령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생명을 돌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수행할 것을 요구한 내용이다. 또한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름받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절대적인 명령이기도 하다(창 26:5; 레 8:35).

성 경: [민1:54]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제외된 레위 지파]

(주); 행하되 ... 행하였더라(*, 와야아수... 켄 아수) -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은 행했다... 그렇게 행했다'란 뜻이다. 이스라엘의 전적인 복종을 강조하기 위해 이처럼 반복법이 사용되었다. 실로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순종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가장 귀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민족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즉 본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민족 지도자로 추앙을 받는 모세도 사실은 하나님의 사환(使喚)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히 3:5).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이셨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교회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오늘날 교회의 목회자나 장로는 하나님의 종으로 봉사할 수는 있어도 지도자로 군림해서는 안된다. 교회의 지도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기 때문이다(마 23:10).

성 경: [민2:1]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각 지파의 배진(配陣) 명령]

(주); 여호와께서 ... 일러 가라사대(*, 와예다베르 예호와) - 이스라엘이 모압 평지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민1-21장은 대부분 '여호와께서말씀하셨다'라는 선언으로 시작된다. 7장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선언이 빠진 11, 12, 14, 16, 20, 21장이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패역한 모습을 다루고 있어 이채롭다. 그러나 그 내용 중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라는 선언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 장은 하나도 없다. 그만큼 본서는 이스라엘 군대의 총사령관이 되사 이스라엘을 친히 지휘하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를 역설(力說)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민2:2]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각 지파의 배진(配陣) 명령]

(주); 기(旗) - 성막을 중심으로한 네 방향 곧 동서남북을 대표하는 각 지파의 진(陣) 깃발을 가리킨다. '기'의 종류에 대해서는 1:52 주석을 참조하라. 그런데 이것들은 각각 유다 깃발(18절), 르우벤 깃발(10절), 에브라임 깃발(18절), 단 깃발(25절). 그러므로 이스라엘 군대는 이 네 깃발을 중심으로 4대(隊)를 이루어 행진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네 지파들은 모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들로서 장차 구원 받을 모든 피조물(4는 피조물의 숫자)을 암시하기도 한다(계 4:6-11). 한편 유대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네 군단(軍團) 깃발의 문장(紋章)과 색깔은 다음과 같았다고한다. (1) 동쪽 유다 진영을 대표한 기는 웅크린 사자의 모습이 그려진 녹색기였다. 여기서 사자의 모습은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라고 한 야곱의 예언을 반영한 것이고(창 49:9), 녹색기는 판결 흉패의 12색깔 중 유다 지파를 상징하는 '녹주옥'을 반영한 것이다(출 28:17). (2) 남쪽 르우벤 진영의 기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홍색기였다. 이는 르우벤이 장자로서 가족의 머리였기 때문인 것 같다(창 49:3). (3) 서쪽 에브라임 진영의 기는 송아지 형상이 그려진 황색기였다. 이것은 요셉이 해몽한 바 바로의 꿈에 나타났던 소를 연상시킨다(창 41:1-4). (4) 북쪽 단 진영의 기는 독수리가 새겨진 백색과 홍색이 섞인 기였다. 이는 뱀으로 묘사된 단(창 49:17)이 이를 싫어하여 뱀의 천적인 독수리를 채택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리고 그 깃발의 색깔은 판결 흉패의 '벽옥' 색깔을 반영한 것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Testament, Vol. I-iii. pp. 17-18). 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러한 그들의 전승 근거는 다음 두 가지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즉 첫재, 문장은 야곱의 임종시 예언(창49:1-27)에 기초한 것이고 둘째, 색깔은 대제사장의 판결 흉패의 색깔(출 28:15-21)에기초한 것이다. 한편 유대 랍비들은 이러한 네 군단의 문장(紋章, crest은 후일 에스겔의 환상 속에서도 분명히 확증된다고 한다(겔 1:10). 그러므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이 네 지파의 깃발은 하나님을 옹위하고 있는 모든 피조계를 대표하는 4생물들의 모습과 일치한다(겔 1:4-14; 계 4:6-11). 또한 성막과 그 사면의 깃발들, 그리고 천국의 보좌와 보좌 주위의 4생물들의 관계를 유추해 보면, 실로 광야에 세워진 성막은 천국과 하나님 임재의 상징임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광야의 진(陣) 배치는 오늘날 광야같이 험악한 인생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에게 소망을 주는 희망찬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 가나안을 향해 행군하는 신앙의 순례자들은 C. F. 버틀러의 찬송시처럼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노래하며 신앙의 행진을 계속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윗도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기에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때일지라도 오히려 천국의 풍요와 안식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시 23:1-6).

(주); 종족의 기호 - 여기서 '기호'(*, 오트)란 '신호', '표', '표시', '깃발' 등을 가리킨다. 이것은 네 방향을 대표하는 네 지파의 '기'(*, 데겔)와는 달라 단순히 12지파 각 종족을 상징하는 깃발일 것이다(Keil). 그리고 각각의 '기호'에 배경을 이루는 색깔은 아마도 대제사장이 달았던 흉패위에 박힌 12개 보석의 색깔과 동일할 것으로 추측된다(출 28:17-21).

(주); 회막을 사면으로 대하여 - 직역하면 '회막 주위로 마주 보라'는 뜻이다. 한편 KJV는'회막 주위에서 멀리 멀어져'(far off about the tabernacle)로, NIV와 공동 번역은 '만남의 장막에서 조금 떨어져'(the Tent of Meeting some distance)라고 해석했는데이는 수 3:4을 참조한 의역인 듯하다. 수 3:4에는 언약궤와 이스라엘 진과의 거리가 2000규빗(약 912m) 정도 떨어지도록 명령되고 있다. 그런데 RSV는 원문에 충실하게 '각 방면에서 회막을 보게끔'(facing the Tent of Meeting on every side)으로, 만일 이것이 옳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천막 입구는 회막을 향해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이스라엘은 항상 성막을 바라보며 그곳을 사모하고 특히 그곳에 임재해 계신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레 19:30; 단 6:10). 물론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임을 당하는'(1:51) 규례로 보아 회막과 주거지와의 거리는 어느정도 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성 경: [민2:3]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동편에 위치한 지파]

(주); 동방 해 돋는 편(*, 케드마 미즈라하) - 직역하면 '해 뜨는 방향인 동쪽'이다. 이는 성막의 앞 방향 곧 행진 방향이기도 하다(3:38). 또한 이곳은성막 주위에 진 배치를 시작할 때 제일 처음 언급된 곳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영광되고 아름다은 자리임을 암시한다. 이곳에 위치한 지파들은 유다의 기(旗)아래 모인 자들로서 행군할 때도 제 일 대로 진행하는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유다 지파를 향한 야곱 예언의 성취라 할 수있다(창 49:10). 이 예언은 다윗 때에 꽃을 피워(삼하 2:4-7; 5:1-3)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 실로 유다가 해 돋는 동편을 차지한 것은 의로운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말 4:2)께서 유다의 가계를 통해 나실 것을 예시한다(히 7:14). 과연 예수께서는 해처럼 찬란한 '세상의 빛'으로 오셔서 우리를 생명과 진리의 길로 인도하셨다(요 8:12; 9:5;10:3, 4). 한편 밧모 섬에서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바라본 바 그리스도의 얼굴이 해와 같았다는 사실은 위의 내용과 잘 부합된다(계1:16).

(주); 진 기에 속한 자라 - 즉 동쪽 방향을 대표하는 유다 진(陣) 기에 예속된 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표현은 종속적인 의미라기 보다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에게 내린 지휘권에 자발적으로 순종함을 가리킨다. 실로 이스라엘은 여호와 단 한 분의 왕으로 족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지파 백성들은 각자의 인격과 지위를 인정해야 했으며 서로가 유기체적인 관계를 지닌 자들로서 서로를 섬기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데 힘써야 했다. 이런 점에서 출애굽 여정 중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광야 교회'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고전 12:4-31).

(주); 유다 자손의 족장은 ... 나손 -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을 지도할 우두머리 한 명씩을 선출하셨다. 그런데 그 지도자들은 지난번 인구 조사 때 모세와 아론을 도와 실무를 담당했던 자들이었다. 즉 1:4-16 에 기록된 지파의 두령들이 2:3-31에서 족장으로 재임명 받았던 것이다. 한편 재역 성경에서 족장이란 말로 표현될 수 있는 히브리어는 '알루프'(*), '나시'(*), '로쉬'(*), '사르'(*) 등이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창세기에는 '알루프'만이 쓰였고, 민수기에는 대부분 '각시'가 쓰였다. 본서에 자주 쓰인 '나시'는 '들어 올리다', '다른 사람들의 머리 위에 올리다' 등의 뜻인 '나사'(*)에서 온 말이다. 그러므로 '족장'(나시)이란 말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우두머리(prince, chief)로 높여진 자를 가리킨다. 즉 각 지파의 대표자로서 '하나님에 의해 들어 올려진 자'가 곧 족장이다. 이는 결국 족장의 권위가 하나남께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나타낸다(롬 13:1).

성 경: [민2:4, 5, 6, 7, 8]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동편에 위치한 지파]

주석 1:5-15 도표 및 1:20-46 도표를 참조하라.

(주); 계수함을 입은 자 - 1:45 주석 참조.

성 경: [민2:9]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동편에 위치한 지파]

(주); 제 일대로 진행할지니라 - 즉 '첫번째로 출발해야 한다'(RSV, they shall set outfirst)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용된 '첫번째'(*, 리숀)란 말은'머리'(*, 로쉬)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의 머리, 곧 행진시 선봉에 서는 영예를 누리게 된 셈이다(창 49:10). 그러나 그것은 직분상의 머리가 아니라 전투적 사명에 있어서의 머리를 가리킨다. 실로 유다 진 기에 속한 자들은 싸움에서 물러서기를 싫어했다. 그 단적인 예가 80세의 노년에 이르러서도 전투에 앞장 섰던 유다 지파 출신의 장군 갈렙의 용맹성에서도 잘 나타난다(민 13:6, 30; 수14:13, 14; 15:14). 진정 하나님은 비겁한 자를 요구하시지 않는다. 오직 강하고 담대한 자라야 그의 부르심을 따라 죄악과 싸우는 전투에 앞장 설 수 있는 것이다. H. W. 롱펠로우가 그의 시[인생 예찬]에서 '말 못하고 쫓기는 짐승이 되지 말고 싸움하여 이기는 영웅이 되라'고 외친 것처럼 지금은 영적 전쟁을 자발적으로 감당하는 성도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따라서 아이작 왓츠는 '뭇 성도 피를 흘리며 큰 싸움 하는데나 어찌 편히 누워서 상 받기 바랄까?' 라는 찬송시로 성도들의 분발은 촉진했다. 실로 용맹했던 유다 지파처럼 각자에게 부과된 사단과의 영적 전쟁을 충성스럽게 수행하기 위해 '제일 대'에 편성되어 싸움터로 나가는 성도야말로 오늘날 하나님 나라 건설에 꼭 필요한 존재인것이다.

성 경: [민2:10]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남편에 위치한 지파]

(주); 남편 - 남편은 행진하는 방향으로 보면 오른쪽에 해당한다. 통상 히브리인들은 오른쪽을 권능과 영광의 상징으로 보았다(출 15:6, 12; 시 118:15, 1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본래 야곱의 장자였던 르우벤의 자손들에게 이처럼 특별한 배려를 베푸신 듯하다.

성 경: [민2:11, 12, 13, 14, 15]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남편에 위치한 지파]

주석 1:5-15 도표 및 1:20-46 도표를 참조하라.

(주); 계수함을 입은 자 - 1:45 주석 참조.

성 경: [민2:14]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남편에 위치한 지파]

(주); 르우엘(*) - 1:14에 언급된 '드우엘'(*)의 오기인 듯하다(Keil, Pulpit Commentary). 아마 '레슈'(*)와 '달렛'(*)의 문자적 유사성으로 말미암은 사본 필사가들의 착각으로 잘못 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공동 번역은 이를 받아들여 '드우엘'로 교정하여 표기했다.

성 경: [민2:16]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남편에 위치한 지파]

(주); 제 이대로 - 실제 행군에 있어서 유다 지파를 뒤따랐던 제 2행렬은 성막 물품들을 운반하는 레위 지파의 게르손, 므라리 자손들이었다 (10:17-70). 그렇다면 르우벤 지파는 정확히 말해 제 3행렬에서 행진했던 것이다. 한편 레온 우드(L. Wood)같은 학자는 이들이 성막 물품을 호위하며 행진했을 것으로 본다(34절 도표).

성 경: [민2:17]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진(陣) 중앙에 위치한 회막]

(주); 회막이 레위인의 진과 함께 - 이는 고핫 자손들이 성막 내의 성물(聖物)을 메고 행진하는 것을 가리킨다(10:21). 이와 같이 성막의 성물은 성막과 분리되어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제일 중앙에 위치했다. 즉 이스라엘의 네 편대 중 두 편대(유다, 르우벤 진 기에 속한 자)는 회막 앞에 나머지 두 편대(에브라임, 단 진 기에 속한 자)는 그 뒤를 따랐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거주할 때 뿐 아니라, 행군 시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을 중심하여 생활할 것을 묵시적으로 명하셨다. 이는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로서, 진정 하나님께서는 장소를 불문하고 당신을 중심한 신앙생활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주); 중앙에(*, 베토크) - 즉 '가운데'란 뜻이다. 이말은 이스라엘 중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위치를 묘사할때 종종사용되었다(왕상 6:13; 겔 37:28; 43:7; 슥 2:5;8:3). 한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은 다음 두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종교적 의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시면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도우신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의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12지파의 단결을 이루는 구심점이요 통치의 중심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해 계실 때, 곧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가운데 있을, 이스라엘은 승승 장구(乘勝長驅)하였다. 그러나 '이가봇', 곧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을 때, 그들은 대적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했다(삼상 4:1-22).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 성도들의 삶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즉 하나님을 그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사는 자들은 그의능력을 체험하며 승리의 삶을 살게 된다(시 118:6, 7). 반면에 죄에 의해 주장받는 삶을 사는 자들은 슬프고 무기력한 나날 속에서 신음할 수 밖에 없다(시 31:10;32:3, 4). 그리고 한편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당신의 장막을 치셨다는 점에서 구원사(救援史)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self-revelation)를 발견하게 된다. 즉 하나님은 광야 시대이 성막 위에 머무르는 구름기둥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본체의 영광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써 자신의 열광을 확실히 계시하시게 되었다. 요 1:14에 기록된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는 표현 중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에스케노센 엔 헤민)를 직역하면 '그가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가 된다. 이는 성막을 통해 모형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자신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Incarmation)은 우리 가운데 임마누엘(마 1:23)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계시 중의 계시'인 것이다. 그리고 이 계시는 마침내 우리들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 우리가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며 동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 아래 영원토록 머물게 될때 그 완연한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계 7:15-17; 21:3, 4).

(주); 그들의 진 친 순서대로 - 비록 상대할 적이 없고 지루한 광야 행군이라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실히 요구된 것은 '질서'였다. 하나님은 바로 이 질서 의식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께 대한 경외와 순종을 가르치기 원하셨던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혼돈과 무질서를 배격하시는 질서의 신(神)이시다(고전 14 :33).

(주); 그 위치에서 - 직역하면 '그의 손에서'란 뜻이다. 이말은 '... 다음으로'라는 의미도 지닌다(느 3:2). 여기서는 두번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곧 성막 주위에 진을 친 그대로 진행하라는 뜻이 아니고 진을 쳤던 자리에서 차례대로(앞선 지파 다음으로) 출발하여 진행하라는 뜻이다(10:13-28).

(주); 앞으로 행할지니라(*, 잇사우) - 본장의 '진행할지니라'(9, 16, 17, 24, 31절)는 말은 모두 여기서처럼 '앞으로 전진하라'는 뜻을 지닌다. 일례로 전진하지 않는 자전거는 곧 쓰러지고 만다. 마찬가지로 전진하지 않는 신앙 역시 똑같다. 그러므로 성경은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킨다"고 경고한다(잠 1 :32).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과 싸우기 위해 하나님의 군대로서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또한 승리의 시온 성에 들어가기 위해 순례자로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때로 우리의 앞길에 안개가 자욱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인도에 모든 것은 맡기는 자세로 믿음의 행진을 계속해야 한다(히 11:8).

성 경: [민2:18]

주제1: [성막 중신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서편에 위치한 지파]

(주); 서편에는(*, 얌마) - 원뜻은 '바다쪽에는'이다. 여기서 바다는 팔레스틴 서쪽에 위치한 지중해를 가리킨다. 그런데 비평적인 학자들은 이러한 표현이 팔레스틴에 살았던 자에 의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본서의 모세 저작설을 부인한다. 그러나 비록 모세가 팔레스틴에 거주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기거했던 가나안 땅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가나안 서편의 지중해를 '서쪽'이라고 지칭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중해 동쪽 출신의 조상들이 사용했던 관용어를 그대로 썼을지도 모른다(Lange)

성 경: [민2:19, 20, 21, 22, 23]

주제1: [성막 중신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서편에 위치한 지파]

주석 1:5-15 도표 및 1:20-46 도표를 참조하라.

(주); 계수함을 입은 자 - 1:45주석 참조.

성 경: [민2:24]

주제1: [성막 중신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서편에 위치한 지파]

(주); 그들은 제 삼 대로 진행 할지니라 - 진 기(陣旗) 상으로는 이들이 르우벤 진 기를 뒤따랐지만, 실제적으로 행군할 때에는 성막의 성물(聖物)을 운반하는 고핫 자손의 뒤를 따랐다. 그러므로 이들은 아마 고핫 자손의 성물을 호위하는 임무도 띠었으리라 추정된다(16절).

성 경: [민2:25]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북편에 위치한 지파]

(주); 단 군대의 진 기 - 제 4대의 진 기를 잡은 지파는 단 지파였다. 그 이유는 일찍이 야곱의 예언(창 49:17)에서도 암시된 바 이들은 그 전투적 속성으로 인해 용맹한 군대로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적 속성은 극히 타락하여 후일 단지파 지역은 우상 숭배의 진원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들은 광야 행진 시의 영예로운 위치에도 불구하고 그후 약화일로를 걷다가 마침내는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그 이름이 사라지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는 지파가 되고 말았다(계 7:5-8).

성 경: [민2:26, 27, 28, 29, 30]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북편에 위치한 지파]

주석 1:5-15 도표 및 1:20-46 도표를 참조하라.

(주); 계수함을 입은 자 - 1:45 주석 참조.

성 경: [민2:31]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북편에 위치한 지파]

(주); 후대로 진행할지니라 - 도합 157, 600명으로 구성된 이 진영은 선봉에 선 유다 진영 다음으로 군인 수가 많았을 뿐 아니라, 기질상 용감하고 전투적이었기 때문에 (창49:16-21) 이스라엘 진(陣)의 제일 후미 방어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성 경: [민2:32, 33]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완료된 배진]

(주);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 - 1:46 주석 참조.

(주); 레위인은... 계수되지 아니하였으니 - 1:47 주석 참조.

성 경: [민2:34]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완료된 배진]

(주);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여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했음을 보여 준다(1:54). 이러한 순종를 통해 실로 인간은 하나님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삼상 15:22). 그러나 초기의 이같은 아름다운 순종은 이후에 거듭 자행되는 이스라엘의 반역 및 불순종과 확연히 대조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사실은 신앙은 결코 한순간의 일이 아니라 일평생 계속되어야 할 성도의 과제임을 알 수있다. 이에 사도 바울은"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경고하였다.

(주); 진 치기도 ... 진행하기도 - 이 단순한 행동 속에 이스라엘 백성의 나머지 38년 간의 광야 생활이 함축되어 있다. 실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설정해 주신 행동의 규범을 따라 기나긴 광야 여정을 진행해 갈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 역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땅에 거하는 동안 주의 말씀과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과 필연성을 제공한다(시 119:105). 한편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전체 진 규모 면적은 12평방 마일(약 19,308km2) 정도였다고 한다(PalestinianTargums). 그리고 아래 도표는 이스라엘이 정주할 때와 진행할 때의 진 배치도이다.

납달리 아셀 단 북

53,400 41,500 62,700 서 동


에브라임 유다

40,500 74,600

므낫세 잇사갈

32,200 54,400

베냐민 스불론

35,400 57,400

갓 시므온 르우벤

선임지파 45,650 59,300 46,500

정주시 이스라엘의 진영 배치


진행 방향 --->

단 에브라임 르우벤 유다

아셀 므낫세 성막 시므온 성막 잇사갈 법궤

기구 부품

납달리 베냐민 고핫 갓 게르손 스불론

므라리

행진시 이스라엘의 진영 배치

위와 같이 정주할 때의 진영 모습과 행진할 때의 진영 모습이 다른 이유는 광야의 좁은 길을 무리없이 지나가기 위함 때문이었다. 한편 학자들 중에는 정주 시에도 만일 넓은 장소가 없을 경우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바 이상적인 진영 배치를 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Pulpit Commentary).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성막이 이스라엘 진영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그만큼 성막은 이스라엘에게 있어 큰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스라엘의 행군 시에 언약궤가 3일 길을 앞서 간 것은 특이하다(10:33). 이때, 평소 성막 위에 덮여있던 구름(출 40:34-38)은 언약궤 위에 머물렀다(10:34).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친히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뜻한다. 언약궤의 덮개, 즉 속죄소에 조각된 그룹 위에 뒤덮인 구름의 진행 방향이 곧 이스라엘의 진로로 결정되었다. 시 80:1은 바로 이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 언약과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하는 십계명 돌판이 들어 있었다(신10:4). 그러므로 언약궤가 이스라엘을 앞서 간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살아야할 것을 교훈해 준다. 개혁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는 곳까지 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 멈춘다'고 하는 말씀 추종의 삶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야 같은 인생여정에서 우리 발걸음을 비추는 등(燈)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시 119:105)이 우리를 안내하는 대로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는 삶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시 119:32). 그리할 때 그 길의 결국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말씀(법궤)의 인도를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살아간다면 무섭고 두려운 광야에서 헤메고, 허우적거리다가 마침내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은 죽음의 광야를 벗어나 생명의 길로 향하게 만드는 생의 나침판인 것이다.

성 경: [민3:1]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아론의 가계(家系)]

(주); 여호와께서 ... 이러하니라 - 어떤 특정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라기 보다각 장의 내용으로 들어갈 때에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히브리 문학적 표현의 한 기법이다(창 2:4). 한편 본절의 내용를 직역하면 '그리고 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계시하실 때의 일로서 아론과 모세의 후손에 대한 말씀이니라'이다.

(주); 아론과 모세의 낳은 자 - 여기서 '낳은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톨도트'(*)는 '일족들', '세대'(generations), '가문', '족보'등으로 번역된다.본장 중 2-4절은 아론의 아들로서 제사장이 된 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17절이하는 레위 지파의 족장 이름 및 인구 수를 가계별로 비교적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모세의 자손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이름이 여기 언급된 것은 그가 아론과 더불어 레위 지파의 머리이며 영적인 아버지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Keil). 한편 여기서 아론의 이름이 이례적으로 모세보다 먼저 언급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 이유는 아마 연령상으로는 그가 장자였을 뿐 아니라 본장에 소개되는 제사장들의 아버지요, 초대 대제사장이었고, 또한 레위인들 전체를 통솔하는 종교 지도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론의 직계 자손들은 제사장이 된 반면 모세의 후손들은 제사장를 보필하는 일반 레위인들이 되었기 때문일것이다(Keil). 따라서 아론과 모세를 개인적으로 볼 때는 분명 모세의 권위가 절대적이지만 (출 4:16; 32:22; 민 12:1-16),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세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특별 은총이었고, 회막 봉사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적 사명에 있어서는 분명 아론의 후손들이 모세의 후손들보다 고귀한 직분에 임명되었으므로, 여기서는 바로 그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아론을 모세보다 앞세워 기록한 것이다. 한편 모세가 낳은 자들의 족보는 대상 23:14-17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은 평범한 레위인으로 조용히 봉사했던 것 같다. 이것은 아론의 두 아들이 제사를 잘못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사 죽임을 당하였고(레 10:1, 2), 위대한 종교 지도자 엘리나 사무엘의 아들들이 불량했다고 하는 평가(삼상 2:12; 8:1-3)에 비춰볼 때 충분히 유추 가능한 일이다. 이는 모세의 자녀 교육이 철저했음을 시사한다. 한편 이와같은 기록상의 다양한 조절은 결코 이 책이 오류 투성이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당신의 초월적인 목적과 경륜에 부합된 내용들을 중심으로 엮어져 간 책임을 나타낸다.

성 경: [민3:2]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아론의 가계(家系)]

(주); 나답...아비후...엘르아살...이다말 - 이들은 아론이 그 아내 엘리세바를 통해 얻은 네아들들이다(출 6:23). 따라서 이들은 제사장 성별식 때 아버지인 아론과 더불어 거룩한 제사장으로 위임받았다(레 8:6-13). 그러나 이 네 아들 중 장자인 나답과 차자인 아비후는 제사를 잘못 드린 관계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죽임을 당하고 말았다(레 10;1, 2). 따라서 셋째 아들인 엘르하살이 후일 아비 아론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직을 계승하였다(민 20:25-28). 한편 아론의 넷째 아들인 이다말은 후일 이다말 가문의 조상이된 자이나(대상 24:4-6). 그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다. 다만 성막 건축시나 광야 행진시 제사장으로서 그 맡은 바 직분을 충실히 감당한 자로 서술되고 있을뿐이다(출 38:21; 민 4:28, 33).

성 경: [민3:3]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아론의 가계(家系)]

(주); 기름을 발리우고 거룩히 구별되어(*, 함메슈힘) - 여기서 '기름을 발리우고'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마솨흐'(*)는 곧 '기름을 받은 자'(the anointed)란 뜻이다. 그런데 '기름을 붓다'라는 말을 '기름 부음을 받은 자'(the anointed)란 뜻을 가진 '메시야'(*, 마쉬아흐)라는 명칭의 어근이 되기도 한다(단9:25, 26). 한편 아론의 아들들은 관유(灌油)로 기름 부음을 받는 의식을 가짐으로써 거룩히 구별되어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출 29:4-9). 물론 원문에는 '구별되다'란 말이 언급 되지 않고 있으나, 의미상 그들은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것이다. 즉 '기름을 붓는 행위'는 그 대상에 대한 소유권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한 방법인 것이다. 한편 지사장 성별식 때 사용되는 거룩한 기름, 곧 관유는 성령을 상징한다(출30:22-33). 그러므로 그들은 성령의 역사로 성결하게 구별되어 봉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히 4:8)께서 성령으로 기름부음받아 사역하신 사실(행 10:10:38)을 상기시킨다. 아울러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왕같은 제사장'인 우리들(벧전 2:9) 역시 어떠한 자세로 일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행 2:7)으로 세례를 받고(고전12:13), '복음의 제사장'(롬 15:16)으로서 복음사역에 종사해야 하는 것이다(사 61:1-4).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가운데 기름부음이 되신 성령의 지시를 따라 순종하고 행동해야 함을 의미한다(겔 36:27; 요일 2:27).

(주); 위임받은(*, 밀레 야담) - 직역하면 '그들의 손이 채워진'이다. 그러므로 '위임식'이란 곧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있도록 그들의 손에 예물을 채워주는 의식을 가리킨다(레 7:37). 그리고 본절에서 이 말은 '기름을 발리우고'라는 말과 연결된다. 여기서 기름을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성령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을 또한 성령으로 채움을 받은 자들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미가 선지자는 자신이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채움을 얻고 선지자의 직무를 감당할 것이라고 고백했다(미 3:8). 여기서 '채움'은 '충만'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오직 성령 충만한 자라야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된다. 혹자는 '그들의 손이 채워졌으므로 다른 일을 생각하지 못할것이다'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실로 성령으로 충만하고 사명감으로 불타는 하나님의 일꾼을 세상적인 일로 인해 마음이 나뉠 수 없다(마 6:24).

성 경: [민3:4]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아론의 가계(家系)]

(주); 다른 불(*, 에쉬 자라) - '이상한 불'(KJV, strange fire), '신성치 않은 불'(RSV, Living Bible-unholy fire), '공인되지 않은 불'(NIV, unauthorizedfire)등을 의미한다(레 10:1). 성막 봉사 시 하나님께서는 오직 번제단 위에서 피운 불로 분향단에 점화할 것을 요구하셨다(레 16:12, 13).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그에 불순종 했으며 자의(自意)에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다가 하나님의 분노를 사 결국 여호와의 불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실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무시하는 것처럼 망령된 일은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고를 교훈 삼아 하나님께 봉사하는 자들을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사실(삼상 15:22)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주); 여호와 앞에(*, 리프네 예호와) - 직역하면 '여호와 면전에'란 뜻이다. 따라서 나답과 아비후의 경거망동은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완전히 무시한 행위나 다름 없었다. 결국 여호와 앞에 방자했던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심판을 받고 말았다. 한편 오늘날 하나님 앞에서 복음의 제사장된(벧전 2:9)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Coram Deo)서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고양(高揚)하든지 아니면 훼손하든지 둘 중 하나의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운명과도 직결된다. 그런 점에서 침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므로써(눅 1:6) 의인으로 인정받았던 것은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주); 무자하였고 - 나답과 아비후에게 자식이 없었던 것은 자연적인 불임의 결과이기 보다 하나님의 저주에 따른 결과였다. 사실 자식을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로 간주했던 히브리인의 사고 개념상(시 127:3), 나답과 아비후에게 임한 징계와 그들의 무자식이 단순한 우연일 수 없었다.

(주); 아론 앞에서(*, 알 프네 아하론) - 이 말은 '아론이 생존시에'(RSV, in the lifetime of Aaron)로 번역함이 좋을 듯하다(Pulpit Commentary).그것은 그들이 아론과 함께 성직을 위임받았고 (출 28:1), 아론 평생에 그를 보좌하며 봉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아론 사후에도 제사장 직무를 계속 수행했다(20:22-29; 27:18-23). 그러나 그들의 사명도 아론처럼 유한한 것이었다. 결국 아론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된 엘르아살도 자신의 죽음과 함께 대제사장직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돌아보며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영원성을 설파(說破)했다. 즉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히 7:23, 24)라고 했던 것이다. 이처럼 아론과 그 자손들의 제사장직은 일시적이고 당대에 한한 것이었으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영원하여 만세에 효력을 미치는 것이다(히 10:11-14).

성 경: [민3:6]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인들의 임무]

(주); 나아와(*, 하케레브) - 직역하면 '가까이 불러내어'(bring near)이다. 곧일반 레위인들은 제사장들 가까이에서 그들을 도와 제사 사역에 협조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처럼 동역자란 함께 일하는 자이다. 함께 일하는 자들 사이는 가까와야 한다. 즉 장소적으로도 가까우면 동역해야 할 일에 기동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일은 동역자 상호간의 인격적 관계가 가까와지는 일이다. 레위인들은 위치적으로도 제사장들과 가까이 왔지만 '한 지파'라고 하는 연대감 속에 제사장들과 가까이 하며 봉사했을 것이다.

(주); 앞에 서서 - 이 말은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그 앞에 겸손히 대기하고 있는 종의 위치를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된 표현이다(Keil, Pulpit Commentary, 창 41:46; 대하 29:11; 단 1:5). 그러나 이는 레위 지파가 제사장들의 개인적인 종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헌신적으로 협력할 조력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신분상의 구별은 확연하니, 곧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레위 지파에서 태어난 자들은 모두 될 수 있었던 반면, 제사장들은 레위 지파 중에서도 오직 아론의 직계 후손들만이 될 수가 있었다. 이로 인해 제사장과 레위인들 간에는 사회 종교적 위상의 차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즉 제사장은 재판관이나 집전자의 위치에 있었으나(신 17:9; 19:17), 레위인은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아야 할 위치에 있었다(신 12:19; 14:27).

(주); 시종하라 - '봉사하게 하라'(KJV, RSV may minister)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은 이 명령에 따라 성막 안 출입이나 번제단 위에서의 제사 집례 등을 제외한 일, 곧 백성들이 제물을 잡아 드리도록 하는 일에 조력하는 것과 또한 성막을 걷고 운반하는 일에 제사장을 도와 봉사해야 했다(4장; 10:17-21).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즉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속한자로서 하나님을 섬겼으나 레위인들은 제사장에게 속한 자로서 하나님을 섬겼다. 이같은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차이를 예시하는 듯하다. 곧성도들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로되(밸전 2:9; 계 1:6; 5:10) 궁극적으로는 예수님께 속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인 것이다(골 1:14).

성 경: [민3:7]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인들의 임무]

(주);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 - 이는 레위인들의 이중적 사역을 말하고 있다. 즉 전자는 아론과 그 아들들, 곧 제사장들의 제사 사역과 관련된 제반 업무를 보조하는 것과 성막보호와 이동에 대한 임무를, 후자는 일반 백성들을 위한 제사와 또한 그에 부수되는 제반 종사 직무를 가리킨다(1:53). 이는 오늘날 영적 레위인으로 부름 받은 성도들이 지녀야 할 올바른 자세를 암시하여 주는데, 곧 성도들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봉사 및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담당해야할 사명을 맡은 자들인 것이다(마22:37-40). 한편 여기서 직무(*, 미쉐메 레트)란 말은 '지키다'(*, 솨마르)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러므로 즉 직무란 명심하여 지켜져야 할 사항을 가리킨다. 그런데 '지킨다'는 말은 '(명령을) 온전히 순종한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므로(창 26:5; 출 20:6), '직무=순종하는 것'이라는 등식도 성립된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은 우리의 순종없이는 이행될 수 없다는 사실이 재확인 된다. 또한 '지킨다'는 말은 '인내있게 책임을 완수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끝까지(인내하며)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계 2:26)라는 말씀으로 충성과 분발을 요청하셨다. 그러므로 순종과 인내, 그것은 진정 일꾼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부과하신 직무를 '사명감'이라고 하는 마차에 싣고 목적지까지 달리도록 만드는 쌍두마(雙頭馬)인 것이다.

(주); 회막에서 시무하되 - 레위인의 봉사 구역이 한정되어 있다. 즉 그들은 '회막'에서만 일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로서 그분께 구별되어 오직 그분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했기 때문이다(1:49-53). 물론 레위인들의 하나님 소유 사상은 출애굽 장자 성별 사건(출 12:29; 레 2:12)에 근거한다.

(주); 시무하되 - '시무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바드'(*)는 (전적으로 매여)'일하다', '봉사하다'란 의미이다. 이것은 노예가 상전에게, 혹은 아내가 남편에게 매이는 것과 같은 단단한 결속을 뜻하는데, 그러므로 곧 레위인들은 오직 하나님께 매인 자들로서 하나님의 일에만 전적으로 매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성 경: [민3:8]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인들의 임무]

(주); 회막의 ... 기구를 수직(守直)하며 - 레위인들의 임무가 구체적으로 주어졌다. 즉 그들은 회막 안에 있는 모든 기구를 관리하고 보존하며 또한 외인들이 회막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항상 감시하여야 했다(10절). 그런데 이 임무는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보존하는 동시에 백성들의 안녕을 유지하는(1:53) 이중적 성격을 지닌 일로써 매우 중차대한 임무였다.

(주);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 직역하면 '이스라엘 자손 직무로서'이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회중의 직무(제사)를 자신들의 직무로 여기고 그 일을 위해 봉사 했다. 즉 그들은 전체 이스라엘의 예배를 위해 종으로서 봉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영적 레위인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들 역시 이처럼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고후4:5) 사랑으로 종 노릇하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갈 5:13).

성 경: [민3:9]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인들의 임무]

(주); 레위인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라 - 이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제사장들에게 레위인을 다스리며 통찰할 권한을 제공하라는 명령이다. 이는 단순히 아론과 그 아들들의 신분과 지위를 격상시키기 위한 조치라기 보다 성막 봉사를 더욱 원활히 하기 위한 조치였다. 사실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모든 명령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주); 온전히 돌리운(*, 네투님 네투니) - '주어진'(be given)이 반복된 말로서 풀이하면 '확실히 주어진'이란 의미이다. 이는 레위인들이 제사장의 조력자로 분명히 부름 받은 사실을 나타낸다(6절). 그러나 이들은 또한 레위인들에게 주어져 성소의 잡다하고 비천한 일을 맡았던 '느디님', 곧 외국 출신 노예들과는 확실히 구분된다(수 9:27; 대상 9:2). 왜냐하면 레위인들은 제사 사역을 보다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제사장들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일꾼들이기 때문이다. 즉 레위인들은 하나님께는 얽매였으나 사람에겐 얽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요 하나님의 일꾼이었던 것이다.

성 경: [민3:10]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인들의 임무]

(주); 아론과 그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분을 - 제사장 위임식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레 8장 주석을 참조하라.

(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 여기서 '외인'(*, 주르)은 단순히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제사장으로 세움 받지 못한 모든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본절은 1:51의 의미보다 더욱 확대되어 비록 레위인이라 할지라도 제사장으로 위임받지 못한 모든 자들도 포함된다(Gispen). 따라서 이들이 제사장의 고유 권한인 성소(the Holy of Holies)출입이나 번제단 희생 제사 등을 침범할 경우 죽임을 면치 못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가 비록 제사장이라할지라도 오직 대제사장만이 1년 1차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the Holy of Holies)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 밖에 있는 자들은 모두 그 의미상 '외인'이었다. 한편 이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보존키 위한 불가피 한조치로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 많은 인간 사이의 좁힐래야 좁힐 수 없는 차이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인류의 대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같은 모든 담을 허물으시사 인간이 오직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근거로 아무 장애없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던 것이다(히 7:25; 요일:4:10).

성 경: [민3:12]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구별된 레위 지파]

(주); 레위인을 택하여 - 선택에 관한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다. 본래 레위는 야곱의 셋째 아들이었으나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 백성 중 첫 태에 처음 난 자 즉 장자를 대신케하는 자로 선택받았다. 따라서 비록 레위인은 처음 난 자는 아니었으나, 처음난 자를 대신하도록 선택되었기 때문에 종교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장자라 할 수 있다. 한편 이스라엘 12지파 중 특별히 레위인이 장자 대신으로 택함 받은 이유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추정해 복 수 있다. (1) 금송아지 숭배 사건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시, 레위 족속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여 그 뜻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출 32:26-29). (2) 임종을 앞두고 12 아들들에게 내린 야곱의 예언시, 레위 지파는 그 운명상 이스라엘 각 처소에 분산되도록 결정지워졌기 때문이다(창 49:7).

(주); 첫 태(殆)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 이에 대해서 13절에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즉 처음 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 선언은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이시고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셨던 유월절 사건에 그 기초를 둔다(출 13:1-16). 실로 하나님께서는 '장자 멸절'이란 죽음의 형벌 가운데서도 오직 이스라엘의 장자만은 보존하셨기 때문에 그 장자에 대한 당신의 소유권 주장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장자들을 직접 취하는 대신 그 실용상 레위 족속을 대신 취하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 숭배 사건으로 말미암은 심판시에 오직 당신께 전적 헌신한(출32:26-29) 레위인을 주권적으로 선택하여 그들을 이스라엘의 장자대신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대신케'한 말은 '타인의 역할을 대신 담당할 자'란 뜻으로 곧 이 말은 성경 전반에 흐르고 있는 대속(代贖) 개념과 동일한 맥락을 지닌다.그러므로 구속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은 이 레위인의 역할을 계시하시면서 모든 구원받은 자의 첫 열매, 곧 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시하셨던 것이다(막 10:45; 롬5:10).

(주); 내 것이라(*, 하이우 리) - '내 것이 되리라'(KJV, RSV-shall be mine)로 해석되기도 한다. 어떻게 해석을 하든 레위인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이 강력히 천명된 것이다. 또 이는 될 수도 있다. 한편, 오늘날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향해서도 '너는 내 것이라'고 주장하신다(사 43:1). 우리는 본래 죄 아래 팔린 처지였다(롬7:14).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 피로 우리를 사셨으므로 (행 20:28), 우리에게 대한 소유권을 갖고 계신다. 바울은 이 상황을 두고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했다(고전 6:19, 20).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시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롬 14:7, 8).

성 경: [민3:13]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구별된 레위 지파]

(주); 처음 난 자는 다 내 것 - 여기서 '처음 난 자'란 '모든 초태생'(all thefirstborn), 구체적으로 '모든 장자'를 가리킨다. 히브리인들은 장자들을 존중히 여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장자들을 통해 가문의 영예와 전통을 이어 주신다는 사고 방식에서 기인한다. 현실적으로도 장자들은 다른 형제의 배나 되는 유산을 상속 받는 혜택을 누렸다(신 21:15-17). 그런데 이 장자들은 다 하나님의 것이었다. 그것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살아났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유월절 구속의 사건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이스라엘 장자의 소유권자가 되신 것이었다(출 13:2).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중 모든 장자는 하나님께 바쳐져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레위 지파를 그들 대신 택하여 당신을 섬기도록 했다. 이것은 보다 효율적인 성막 봉사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다. 아울러 각 가정에서 총애를 받는 장자들이 가족들과 떨어지는 아픔을 해소하기 위한 특별 배려이기도 했다. 한편 성경은 교회를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라고 표현했는데(히 12:23), 이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대상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후사(後嗣)이기 때문일 것이다(롬 8:17; 갈 3:29;4:7).

(주); 거룩히 구별 하였음이니 ...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 출13:2 주석 참조.

(주); 나는 여호와니라(*, 아니 예호와) - 원문대로 번역하면 '나, 여호와'이다. 카일(Keil)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리 이흐유)와 연결시켜 '그들은 나 여호와의 것이 되리라'로 해석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1인칭 주격 대명사(*, 아니)가 '나는(...이다)'의 뜻도 지닌다는 사실에 유의하여 '나는 여호와라'고 독립적으로 해석하였다. 한편 히브리어는 동사 자체 속에 주격 어미를 수반하므로 주격 인칭 대명사를 이중으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엄숙한 감정 표시나 약속 표시를 나타낼 때에는 특별히 강조하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 표명을 위해 쓰여졌다(41, 45절). 즉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변동시킬 수 없음을 강조하는 선언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요10:28, 29).

성 경: [민3:15]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 지파의 계수 명령]

(주); 종족과 가족을 따라 - 1:2 주석을 참조하라.

(주); 일개월 이상의 남자 - 레위인의 인구 조사는 다른 지파의 조사 기준(20세 이상된 남자 계수; 1:3)과 달랐다. 왜냐하면 다른 지파의 계수는 징병 대상자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고, 단지 1개월 이상의 남자를 계수케 한 레위인 조사는 이스라엘 장자의 속전 (48절)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이스라엘의 장자들도 생후 1개월 이상부터 장자로 인정받아 속량 대상이 될 수 있었다(18:16). 한편 레위인 중 1개월 이상된 자들이 비록 성막 일을 할 수 있는 어떤 힘을 가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스라엘 장자들의 속전(18:15, 16)이라는 점에서 하나 하나가 귀한 존재였다.

성 경: [민3:16]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 지파의 계수 명령]

(주); 말씀을 좇아 -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말씀에 의거하여'란 의미이다. 즉 모세의 모든 행동과 선포는 결코 자신의 사사로운 견해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한 것이었다. 이러한 계시 의존적인 삶은 오늘날 바로 우리들 역시 추구해야 할 삶의 원리이다. 이와같이 우리들이 말씀을 좇을 때 아브라함처럼 신앙의 행군을 거듭할 수 있으며(창 12:4),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성결한 삶을 살 수 있고(시 119:9),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이적적인 섭리를 체험 할 수 있다(눅 5:4-6).

성 경: [민3:17, 18, 19, 20]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 지파의 계수 명령]

(주); 레위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 게르손, 고핫, 므라리는 야곱의 셋째 아들인 레위의 아들들이며, 이들을 기준으로 전(全) 레위인을 게르손 계열, 고핫 계열, 므라리 계열로 나누었다(출 6:18-20). 한편 성경에 언급된 족보는 무의미한 이름들의 나열이 아니라, 그 이름들 속에 담겨 있는 역사를 가장 함축적으로 묘사한 소(小) 역사라 할 수 있다.

(주);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 - 이들은 레위의 장남, 차남, 삼남이다(출 6:16). 한편 모세와 아론은 고핫의 손자이다(출 6:18-20).

성 경: [민3:21, 22, 23, 24, 25, 26]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수효와 임무]

여기에는 게르손 자손의 총계와 성막 주변의 거주 위치 및 맡은 바 소임에 관해 언급되어 있다(4장). 즉 이들의 남자 수는 7,500명이며, 게르손 자손의 족장은 엘리아삽(뜻 :하나님은 더하셨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성막에서 수종들 위치는 성막의 서편이었으며(2:34 도표참조). 또한 성막을 이동할 때 맡은 부분은 성막과 그 주위 뜰의 포장에 이르기까지 성막에 소용되는 모든 천막류였다. 그런데 이부분의 번역상 개역성경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많다. 즉 25절의 성막이라 함은 회막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회막 본체를 최초로 덮는 열폭의 제 1앙장(출 26:1-6)을 말하고, 장막은 그 '성막' 위를 덮는 염소털로 된 제 2앙장(출 26:7-13)을 가리킨다. 그리고 덮개는 '장막' 위를 덮는 수양의 가죽으로 만든 제 3앙장과 해달 가죽으로 만든 그 웃덮개, 곧 제 4앙장 (출 26:14)을 각기 지칭한다. 그리고 회막 문장이란 성소 뜰에서 성막 본체로 들어가는 입구의 휘장을 말한다(출 26:36; 36:37). 한편 게르손 자손이 레위의 장자 후손이라는 점에서 비록 그 맡은 바 소임은 고핫 자손의 중요도 보다 뒤떨어지지만 순서상으로는 제일 먼저 언급된 것 같다.

성 경: [민3:26]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수효와 임무]

(주); 뜰의 휘장 - 성막 뜰에 둘러 친 세마포 휘장을 말한다(출 27:9).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된 인간 사이의 뚜렷한 간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간격은 후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속 제물이 되심으로써 완전히 좁혀졌다.

(주); 뜰의 문장(門帳) - 성막 외부에서 성막의 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 하는 문의 휘장(curtain)을 말한다(출 27:16). 성소 출입은 오직 이 문을 통해서만 가능했는데, 이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양의 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요 10:9;14:6)뿐이라는 사실을 예표하는 기능을 한다.

(주); 줄들 - 붉게 물들인 수양 가죽 덮개(제 3앙장)와 해달 가죽 덮개(제 4앙장)를 잡아매는 줄을 말하는 것 같다(출35:18).

성 경: [민3:27-32]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수효와 임무]

본문에는 고핫 계열의 인원 총수와 거주 위치 및 맡은 바 임무가 언급되어 있다. 고핫 자손의 남자는 8,600명으로서 엘리사반(뜻: 하나님께서 숨기심)이 그들의 족장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성막 남쪽에 진을 치게 되었으며(2:34), 성막 운반시에 맡은 일은 증거궤, 떡상, 등대, 단(분향단과 번제단), 성소에서 쓰는 각종 기구들, 지성소의 휘장과 그에 따른 부속물들을 잘 걷어서 정돈하고 그 위에 보자기를 덮어서 운반하는 것이었다. 한편 그들이 레위의 둘째 아들의 후손이었음에도 블구하고 거주 장소나 맡은 바 업무 면에서 다른 형제 자손보다 우위를 차지한 것은 그들의 특출난 기질이나 재능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의 결과였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직무로 인해 자랑할 일이 없었으며 오직 감사와 충성으로 맡은 바 소임을 잘 감당해야 했다.

성 경: [민3:28]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수효와 임무]

(주); 성소를 맡을 것이며 - '성소의 직분을 맡은 자들이요'가 된다. 여기서 성소란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된 성막 본체를 의미한다. 이 부분은 성막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바로 고핫 자손들에게 맡겨졌던 것이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시대를 초월하여 당신의 충성스러운 자들에게 직분을 맡기신다(딤전 1:12).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사리사욕을 좇아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무를 소홀히 하는 자는 화를 입게 된다(행1:16-18; 고전 9:16, 17). 그러나 자기 직분을 충성스럽게 수행하는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수여된다(계 2:10). 실로 우리는 화를 모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사 당신 몸을 버리신 주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맡은 바 직분을 성심껏 감당 해야 한다(골 4:17; 딤후 4:5).

성 경: [민3:30]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수효와 임무]

(주); 웃시엘의 아들 엘리사반 - 엘리사반은 고핫 자손 중 막내 가계 출신이다(19절). 따라서 그가 고핫 자손의 족장이 된 까닭에 웃시엘의 친 형제 이스할의 아들인 고라(출6:21, 24)가 모세와 아론에게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는지도 모른다(16:1-3). 그러나 교만은 항상 그자신을 패망케 한다(잠 16:18).

성 경: [민3:31]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수효와 임무]

(주); 증거궤와 상과 등대 - '증거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출 25:10-22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그리고 그 모양에 대해서는 출 37:9 주석의 그림을 참조하라. '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출 25:23-30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그리고 그 모양에 대해서는 출37:16 주석의 그림을 참조하라. '등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출 25:31-40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그리고 그 모양에 대해서는 출 37:23, 24 주석의 그림을 참조하라.

(주); 단들(*, 미즈베호트) - '번제단'을 지칭하는 '미즈베아호흐'의 복수형이다. 그런데 번제단은 오직 하나만 있으므로, 이말은 곧 성소(the Holy Place) 의 '분향단'(*, 케토레트)까지도 포함해서 언급한 말인 것 같다. 한편, '번제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출 27:1-8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고, 그 모양에 대해서는 출 38:7주석의 그림을 참조하라. 그리고 '분향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출 30:1-10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고, 그 모양에 대해서는 출 37:29 주석의 그림을 참조하라.

(주); 성소에서 봉사 하는데 쓰는 기구 - 즉 진설병 상과 등대, 향단과 번제단 등에 딸린 여러 부속품들을 가리킨다(출 25:29, 38, 39; 27:3, 4; 37: 16, 24; 39:36-39).

(주); 휘장 -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는 장(帳)을 가리킨다(출 36:33; 36:35). 이는 지성소에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스러움을 보존하기 위해 마련한 보호막이다. 그런고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시간과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는 결코 이곳을 출입할 수 없었다. 만약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이곳에 접근하는 자에겐 죽음만이 따를 뿐이었다. 그러나 후일 예수께서는 이러한 제한성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해제하시고 당신을 믿는 자는 누구나, 언제든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수 있게 만드셨다(눅 23:45; 히 7:25).

(주); 그것에 쓰는 모든 것 - 즉 휘장에 달려 있는 갈고리를 가리키는 듯하다(출36:36).

성 경: [민3:32]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수효와 임무]

(주); 족장들이 어른이 되고(*, 우네시 네시에) - 이를 직역하면 '지도자 위의 지도자가 되고'(KJV, was the ruler over the ruler), 곧 가장 높은 직위의 사람이됨을 가리킨다. 따라서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뜻 하나님이 도우심)은세 레위 계열 족장들 (엘리아삽, 엘리사반, 수리엘)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성소 맡은 자들의 지휘자 곧 성소에서 봉사하는 모든 자들(제사장을 포함한 레위인 전부)의 총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제사 업무의 효율화를 위한 직제였지 결코 계급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직제는 아니었다. 성도들의 세계에는 군림하여 지배하는 지도자, 즉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존재해서는 안된다. 성도들의 사회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참지도자가 되시며 그 외에는 모두가 평등하다. 그러므로 Living Bilble이 '어른'을 '으뜸 관리인'(chief administrator)으로 번역한 것은 적절하다. 그리고 본절에서 '레위인의 족장들'이란 성막에서 일하는 자들의 질서와 영적인 권위를 유지 시키기 위해 위임받은 일종의 감독자였다. 그 중 엘르아살은 차기 대제사장의 자격으로서(20:23-29)이 감독자들과 그 아래 사람들이 방종하거나 불성실하지 않도록 지도하고 감독하는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한편 이는 우리 성도들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는 것으로, 그분은 우리의 감독자이자 삶의 주인이시며 겸손한 통치자로서(마23:10-12) 우리의 잘 잘못을 가리며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롬 14:10-12; 고후5:10).

(주); 성소를 맡을 자를 통할 할 것 - 여기서 '통할하다'( , 파카드)는 말은 '감독하다'는 뜻 외에 '소집하다', '임무를 부여하다', '보살피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이는 엘르아살의 임무를 언급한 것으로써, 결국 그는 성막 봉사자들을 모으고 각자에게 필요한 임무를 부여하며 또한 그 일의 진행을 철저히 확인, 점검하는 감독관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바는 곧 하나님을 섬기는데는 법도와 질서가 따라야 한다는 사실이다(고전 14:40).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실때문에 치리자들을 세우신다. 그러므로 치리자들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적절히 사용되고 아무런 흠이 없도록 잘 다스려야 하며(딛 1:5). 성도들은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치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딤전 5:17).

성 경: [민3:33, 34, 35, 36, 37]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므라리 자손의 수효와 임무]

본문은 므라리 자손의 수효와 그들의 거주 장소 및 성막 봉사의 임무에 관한 설명이다. 그들은 레위의 세째 아들이 후손으로서 거주 장소나 업무면에서 세번째 위치에 있었다. 한편 그들의 총수는 레위의 세 자손 중 가장 적은 6.200명이며, 족장은 아비하일의 아들 수리엘 (뜻: 하나님은 나의 반석)로서, 주로 성막의 골격을 이루는 기둥과 받침 등 성막의 가장 무거운 부품들을 책임졌다.

성 경: [민3:36]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므라리 자손의 수효와 임무]

(주); 그 띠 - '그것의 가로 막대들'(NIV, its crossbar)로 풀이할 수 있다. 즉 성소의 벽을 이루는 널판들이 서로 연결되어 튼튼히 설 수 있도록 각 널판에 부착된 고리를 관통하는 막대들을 가리킨다(출 26:26-29). 한편, 여기서 성막의 널판들을 하나님의 성진을 구성하는 성도들로 비유할 수 있다면(엡 2:20-22). 여기서의 '띠'는 성도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성령'(엡 4:3) 혹은 '사랑'(골 3:14)으로 비유할 수 있다.

(주); 그 기둥과 그 받침 - 지성소의 장(帳)을 거는 지성소 입구의 기둥 넷과 그 받침 넷, 그리고 성소의 장을 거는 성소 입구의 기둥 다섯과 그 받침 다섯을 말한다(출26:32, 37; 36:36, 38).

한편 아래 도표는 3:21-37 에 언급된 바 레위 지파 소속 세 계열의 수요와 성막 주변 위치 및 이동시 봉사 임무에 관한 것이다.

계열 게르손 자손 고핫 자손 므라리 자손

수효 7,500명 8,600명 6,200명

족장 엘리아삽 엘리사반 수리엘

성막 장막 뒤 장막 옆 장막 옆

주변 서편 남편 북편

위치

성막 회막의 모든 회막의 모든 회막의 모든

이동시 휘장과 문장과 제사기구(궤, 널판과 기둥과

운반 덮개 상,등대,단) 받침 및 띠와

물품 줄

성 경: [민3:38]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 지파의 총계]

(주); 장막 앞 동편 ... 해돋는 편 - 모세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거주했던 '동편'(2:3)은 선봉 유다 지파의 보호를 받는 진의 중심지이다. 이곳은 성소 출입 등 성막 일을 관리하는데 가장 편리한 위치이며, 동시에 이스라엘 전체를 지휘하는 데 가장 용이한 곳이다. 여기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로서 정치적 기능을, 아론은 대제사장으로서 종교적 기능을 각각 수행하였다. 이 두 기능자는 서로 경쟁 관계에 있기보다 협조와 조화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관계였는데, 이러한 조화는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일치를 보았다(Pulpit Commentary). 즉 예수는 온 인류의 왕이시자 모든 죄인들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 하셨던 것이다.(요 4:34).

(주);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대신하여 -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제사를 드리지 못하고, 대신 성별된 아론과 그 아들들 , 곧 제사장들이 하나님께나아가 제사함으로써 백성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사역을 일컫는다. 이는 곧 이어 나오는 성소의 직무 즉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보존하며 성막을 관리하는 일과 연관된 것으로서, 그들이 하나님과 인간을 위해 봉사할 사명이 있음을 보여 준다(7절).

(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일지니라 - 10절 주석 참조.

성 경: [민3:39]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 지파의 총계]

(주); 이만 이천 명 - 본장 21-27절에 언급된 바 레위 지파의 인구를 모두 합하면(2,28,34절) 22,300명이 된다. 그러므로 본문의 총계와 300명의 차이가 난다. 이에 대해서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견해가 있다. (1) 28절에 기록된 팔천 육백명이란 숫자 중 '육'을 뜻하는 '쉐쉬'(*)는 '삶'을 뜻하는 '쉘쉬'(*)의 오기였다는 설(Keil), (2) 레위 지파의 총 인구수 22,300명 중 장자가 300명이어서 그 숫자가 총계에서 빠졌다는 설(Lange, Matthew Henry), 즉 레위 지파의 장자들은 그 나름대로 하나님께 대한 책임(출 13:12-16; 34:19)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다른 지파의 장자를 대신할 수 없었다는 설이다. 이 두 견해 중 후자의 견해가 전통적인 유대인들 및 대 다수 주석가들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견해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총계는 아무런 오류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민3:40]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이스라엘 장자(長子)의 총계]

(주); 이스라엘 자손의 첫음 난 남자 - 일개월 이상 된 자들로써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난 남자의 수효는 도합 22,273명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20세 이상된 장정의 수효만 60만 이상인 것과 비교해 볼 때 극히 적은 수효이다. 따라서 이들은 출애굽 이후 시내 산에서 인구조사를 실시하기까지 약 1년여 어간에 태어난 장자들로만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Patrick, Keil).

성 경: [민3:41]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이스라엘 장자(長子)의 총계]

(주); 처음 난 자의 대신해 레위인을 - 12절 주석 참조.

(주); 레위인의 가축을 내게 돌리라 - 애굽에서의 첫 유월절 사건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보호하셨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가축의 첫 태생까지 모두 보존하셨다(출 12:29). 그러므로 하나님은 가축의 첫 태생에 대해서도 그것이 당신의 소유임을 선언하시고 그것을 바치도륵 명하셨던 것이다. 물론 바치는 방법은 사람의 경우처럼 '대속의 원리'에 따라 레위인의 가축 전부로 하여금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소유한 가축의 첫 태생을 대신케 했다. 이처럼 가축에까지 대속 원리를 적용시킨것은 모든 생명체에 대한 당신의 주권을 선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성경에는 가축에 대한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관심을 표명한 곳이 몇 군데 있는 데(출 21:28, 29; 34:20;욘 3:7, 8; 4:11), 그렇다고 하더라도 고대 근동 지방의 몇몇 족속들처럼 가축을 인간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보지는 않았다. 성경은 분명 영혼을 지니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과 무인격체인 짐승과의 차이를 확연히 강조하고 있다(욥12:10). 이 차이를 무시하고 동물을 우상시 하거나, 또는 힘의 근원으로 오해한다든지 짐승과의 수간(獸姦)을 일삼는 자는 하나님의 징계로 죽음을 면치 못한다.(레18:23; 20:15, 16).

성 경: [민3:43]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이스라엘 장자(長子)의 총계]

(주); 총계가 이만 이천 이백 칠십 삼명 - 이 숫자는 이스라엘의 20세 이상 남자들의 총수(603,550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극히 적은 수이다. 만일 이 숫자에 근거한다면 적어도 이스라엘 각 가정은 20세 이상의 남자만 계수하더라도 남자 30명당 장자 1명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무리가 따르는 견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숫자는 아마도 출애굽 이후에 태어난 장자들의 총계일 것이다(Keil Matthew Henry). 왜냐하면 출애굽 이후에 비로소 처음 난 자가 당신의 것이므로 구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졌기 때문이다(출 13:1, 2).. 한편 장차 적용을 받게 될 '처음 난 자'의 한계에 대해서도 여러 이견이 있으나, 보편적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장남만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왜냐하면 첫 유월절 당시 이스라엘 자손 이외의 가정에서는 장자 한명씩을 잃었었다. 그런데 그 가정의 부친이 비록 장자이더라도 그 가정에서는 아들로서가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위치에 있으므로 개인적으로 무사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때도 여기서 처음 난 자란 이스라엘의 장자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첫 아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성 경: [민3:45]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장자의 대속(代贖)]

(주); 처음 난 자의 대신에 레위인을 - 12절 주석 참조.

(주); 레위인의 가축을 취하라 - 41절 주석 참조.

성 경: [민3:46]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장자의 대속(代贖)]

(주); 이백 칠십 삼 인이 더한즉 - 레위 자손들의 수는 그들이 대신 책임져야 할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의 수보다 273명이 모자란 숫자였다. 즉 1개월 이상의 남자로서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장자)의 수는 일개월 이상된 레위인의 숫자보다 273명이 더 많았다. 따라서 273명에 대해서는 한명당 5세겔씩의 속전(贖錢, the money for theredemption-NIV)을 냄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종교적 의무를 다할수 있었다(47-51절).

(주); 속(贖)하기 위하여 - 여기서 '속하다'(*, 파다)는 말은 원래 얽매인 것을 '끊다'는 의미이다. 이 의미가 발전하여 어떤 사람이 값을 지불하거나 혹은 그에 상당하는 대체물을 줌으로써 다른 사람으로부터 특정한 사물의 소유권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런고로 이 말의 용례가 구속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그 까닭은 애굽의 노예로 전락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속하신' 역사적 사실(신 15:15)은 끊임없이 이방 세력에 의해 괴로움을 겪던 이스라엘에게 무한한 소망을 주곤 했기때문이다. 특히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망한 전체 이스라엘의 회복의 출애굽과 같은 하나님의 대속 행위로 말미암아 성취될 것이라고 선포했다(사 35:10;51:11). 그리하여 이 말은 마침내 죄악으로부터의 용서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되었으며(시 130:7, 8),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택한 백성을 죄와 저주에서 자유케 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대신 십자가에 바치신 행위를 나타내는 '속량하다'(*, 엑사고라조)라는 말로 이어졌다(갈 3:13; 4:5).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친히 '대속물'(*, 뤼트론)로 칭하신 것도 이러한 구속 사상의 흐름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마 20:28). 한편 이 대속의 은혜를 깊이 체험했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우리의 윤리적 삶과 연결시키고 있다(딛 2:14). 즉 그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고 죄 아래 팔렸으나(롬 3:23; 7:14),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를 입은 자들은 죄에서 해방되어 이제 더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종으로 헌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롬 6:17-19, 21). 여기 민수기 규례에 나타난 바 은 5세겔 곧 일반 노동자들의 20일 품삯으로 성역(聖役)에서 면제된 이스라엘 장자들도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죄악된 문화와 이방 대적과 싸우는 일에 동참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죄에서 속량된 우리 성도들도 우리 몸을 의(義)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롬 6:13), 죄와 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딤전 6:12).

성 경: [민3:47]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수]

주제2: [장자의 대속(代贖)]

(주); 오 세겔씩 - 레위인 수보다 더 많은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 273명을 속하는 방법으로 한명 당 속전 '오 세겔'씩이 요구되었다. 여기서 5세겔(Shekel)의 가치는 일반 노동자의 20일 품삯에 해당하는 가치인데, 이 물질이 한 생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라 한다면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생각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뜻과 상층된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께서 '오 세겔'을 요구하신 것은 생명의 가치가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적은 물질을 통해서도 생명을 속하시겠다는 당신의 의지와 은혜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이는 인간의 구원이 인간의 노력과 헌신에 달렸다기보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렸다는 사상을 잘 반영해 준다.

(주); 성소의 세 겔 - 성경에는 '세겔'의 단위를 (1) 성소의 세겔(출 30:13)과 (2) 왕의 세겔(삼하 13:26) 및 (3) 일반 세겔로 구분하였다. 그런데 세겔(Shekel)은 본래 무게를 나타내는 단위로서 오늘날의 미터법으로 약 11.4g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무게는 고대 도량기술의 취약으로 인해 시간과 장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났다. 그래서 혹자는 변치 않는 절대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성소에 표준 무게 단위를 보관했는데 그것을 '성소의 세겔'이라 명명했다 한다. 사실 하나님이 실질적인 왕으로 통치하던 그 당시에는 모든 표준이 하나님의 뜻과 성소에 근거할 수 밖에 없었다. 즉 신정 정치 하의 성소는 곧 하나님의 통치의 핵이었다. 한편 1세겔이 화폐 단위로 쓰일 때는 은(銀) 1세겔이 금의 1/15 해당하며 이는 노동자 4일의 품삯이었다. 그리고 1세겔은 중량의 최초 단위인 '게라'(약 0.57g)로는 20게라(Gerah)에 해당한다(Vol. I. p. 43,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성 경: [민3:48]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수]

주제2: [장자의 대속(代贖)]

(주); 속전(贖錢)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 여기서 '속전'(* ... , 하케세프 페두에)이란 속량 대금 또는 속량 은(銀)을 의미한다. 그 당시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은이 물물교환의 기준으로 사용되었기에 여기서 속전 대금도 은으로 사용된 것같다. 한편, 이 '속전'(46절 ; 출 21:30; 30:12, 13)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어졌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성막 봉사와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38절), 하나님께서 백성의 장자들을 대신하여 레위인을 그들에게 주셨던 것처럼(9절), 장자를 대신하는(46절) 속전도 역시 그들에게 주신 것이다(8:9-26; 18:3-7). 구속사적으로 볼 때 이는 대제사장 예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구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그분에게 주신 사실의 전형(典型)이라 할 수 있다(사 53:11; 요 17:6, 9).

성 경: [민3:49]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수]

주제2: [장자의 대속(代贖)]

(주); 모세가 ... 받았으니 - 이는 모세가 행정상 최초 지도자였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에 근거하여 레위인의 수보다 더 많은 273명의 처음 난 자로부터 속전을 착오없이 거두어 들여(각지파 족장들의 도움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인계해야 했다(51절).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신정(神政) 국가 이스라엘 내의 지위는 군림하거나 압제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봉사와 충성만이 요구되는 자리였다.

성 경: [민3:50]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수]

주제2: [장자의 대속(代贖)]

(주); 일천 삼백 육십 오 세겔 - 이는 레위인보다 많은 273명의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들(46절)이 속전(贖錢, the money for the redemption)으로 각각 5세겔씩을 낸(273명 5 세겔) 결과이다. 이처럼 정확한 수치를 언급한 것은 (1) 하나님의 명을 받은 자들의 절대적 순종을 보여주기 위함이며, (2) 속전 수납 사건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성 경: [민3:51]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장자의 대속]

(주); 이 속전을...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었으니 - 즉 레위인의 수효(22,000명)로 대속하고 남은 273명의 처음 난 자의 속전금 1,365세겔을 당시의 대제사장 아론과 일반 제사장들인 그의 두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것'인 이스라엘의 장자를 레위인으로 대속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준 원리에 입각하여(9절), 레위인으로 대속한 이외의 장자를 대속하는 속전금 역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준 것이다. 한편, 이 속전 금액은 제사장 개인용으로 사용하지 않고, 틀림없이 회막 운용 및 회막 보수기금 등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성 경: [민4:1-49]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본문은 회막 봉사를 좀더 효율적이고 질서있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레위의세 자손, 곧 게르손 자손과 고핫 자손과 므라리 자손에게 각자의 업무 분담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성 경: [민4:2]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레위 자손 중에서 고핫 자손을 - 하나님께서 레위의 장자인 게르손의 자손을 먼저 선택하지 않으시고, 차자(次子)인 고핫 자손을 먼저 택하여 성막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을 운반하게 하셨다. 이는 당신의 특별하신 목적을 따라 각각을 적재 적소에 위임시키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기인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주인이 '각각 그 재능대로' 종들에게 사역을 맡겼던 예수 그리스도의 달란트 비유(마 25:14-30)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한편 보다 직접적으로 이것은 모세와 아론이 고핫 계열이었고, 따라서 제사장은 고핫 계열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이들이 가장 먼저 부름받고, 아울러 가장 중요한 성물들이 이들에게 맡겨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PulpitCommentary).

(주); 가족과 종족을 따라 - 본절에는 몇 단계의 혈연 집단의 단위가 열거되었다(1:2). (1) '레위 자손'이라 언급된 '자손'(*, 벤)은 '부족', 곧 '지파'(tribe)를 의미한다. (2) '고핫 자손'의 '자손'(*, 벤) 역시 원어로는 (1)과 동일하나, 의미상 '지파'보다는 소규모의 '씨족'(clan)단위를 가리킨다. (3) '가족'(*, 미쉬파하)은 일개 최소 단위인 '가정'(family)을 (4) '종족'(*, ,베트 아보트)은 가족보다는 크고 씨족보다는 작은 단위(subclan)를 가리킨다(1:2). 따라서 의미상 큰 순서대로 나열하면 지파 -> 씨족 -> 종족 -> 가족 순(順)이 된다.

성 경: [민4:3]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 레위인들이 성막봉사에 필요한 최저 나이(30세)는 일반 백성들의 군 입대 가능 나이(20세)보다 10세나 높다. 이는 성막 봉사가 단순히 젊은 힘이나 패기에 의하지 않고 육체적 정신적인 성숙함과 신중함이 요구되는 일임을보여 준다. 이같은 사실은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건국자인 다윗이 30세에 왕위에 나아간 것(삼하 5:4)과 인류의 대속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30세에 비로소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30세부터'라는 레위인의 규례를 좇아 당신 스스로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보여 주셨다(히5:10). 한편 본문의 30세라는 기준이 8:24에는 25세로, 대상 23:24에는 20세로 하향조정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조정은 본절의 원칙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30세에 공식적으로 성막 업무를 시작하기 전 5년 내지 10년 동안 수습(修習)기간을 두어 성막 봉사를 보다 완벽하고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처였다(스3:8). 하나님께서는 종종 당신의 일꾼들을 사용하시기 전에 특별한 기간 동안 그들을 훈련시키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모세(출 2:15; 3:1)와 사도 바울(갈1:17)이다. 그리고 또한 봉사 연한을 50세까지로 제한한 것은 50세 이상 된 자들은기력이 쇠하여 봉사를 원만히 수행하지 못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간의 한계성을 나타낸 것으로, 아무리 거룩한 일에 동참하는 자라 하더라도 인생의 유한함을 극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를 극븍하시고 영원토록 하나님 앞에서 성전 봉사를 행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실로 그분은 영원히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사 우리의 구속과 성화(聖化)를 위해 힘쓰고 계신다(히7:11,28).

(주); 역사(*, 차바) - '군대', ' 병역'등의 의미를 가진 말이다(1:3). 레위인들은 육신적인 전투에서는 면제되었다(1:47-53). 그러나 그들이 수행해야할 일은 전쟁참여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보존해야 했으며, 상당히 무거운 성막 기물들을 운반하고 또한 그 기물들이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도록온 정성을 기울여야 했다. 우리는 직접 전선에 나가서 전투를 치르는 사람만이 군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병(工兵)이나 위생병도 군인으로 본다. 마찬가지로 비록 레위인들이 다른 지파처럼 직접 전투에 가담하지는 않았어도, 하나님의 군대가 신령한 질서를 갖고 싸울 수 있도록 종교적 업무에 종사하는 이상 그들 역시 하나님의 군대의 일원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KJV는 '역사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군대에 들어갈 만한 모든 자'(all that enter into the host)라고 번역했고, 공동 번역도 같은 의미에서 '전장에 나갈 만한 사람 모두'라고 번역했다. 이것은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하나님의 군대에서 제외 된 자들은 한명도 없었음을 뜻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죄악과 싸우는 영적 전쟁에서 제외된 자는 한명도 없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일종의 영적 전투이며(딤전 1:18) 그것에 참여하는 자는 십자가의 군병이라 할 수 있다(딤후 2:3)

성 경: [민4:4]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지성물(*, 코데쉬 하코다쉼) - 문자적으로는 '거룩 중의 거룩'이다. 이 말은 원래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만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곳, 지성소(至聖所)를 가리켰다(출 26:33,34). 그러나 여기선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성소 안의 기물 즉 언약궤, 떡상, 등대, 분향단, 번제단 및 그에 따르는 여러 부속물(출 30:26-29)을 가리킨다. 이것들은 오직 제사장들만이 만질 수 있는 것으로서 타인이 만지면 죽음이 따를 뿐이었다. 그래서 이 동시 이것들은 오직 이스라엘의 제사장된 아론과 그 아들들에 의해서만 정리될 수 있었다(5절).

성 경: [민4:5]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간 막는 장 - 여기서 장(*, 파로케트)은 '쪼개다', '무자비할 정도로 엄격하다'는 의미의 기본 동사 '페레크'(*)에서 유래한 말로서, 여기서는 '구별지우는 것', '분리시키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결국 '간 막는 장'이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을 가리킨다(출 26:31; 레 4:6). 그리고 이 휘장에는 그룹(천사)들이 수놓아 졌는데 (출 26:31,33) 이는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그분의 임재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아론과 그 아들들은 바로 이 휘장을 걷어, 이 휘장으로 거룩한 증거궤(법궤)를 덮어야 했다. 한편, 그런데 레위기 규례에 의하면 지성소의 성소를 구분시키는 이 휘장은 오직 일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만이 분향단의 연기 속에서 젖히고 들어갈 수 있었다(레 16:2,12). 그러므로 레위기의 규례는 후일 성막이 고정적으로 위치된 경우에 해당되는 규례임을 알수 있다. 사실 광야 행진시에는 수시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필요시 언제든지 이 지성소 휘장을 걷을 수 있었다. 한편, 이 경우에 대하여 혹자는 광야 행진시 이동을 위해 지성소 휘장을 걷을 때, 이미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기둥은 법궤 위 속죄소를 떠나 이스라엘 진(陣) 앞서 나갔기때문에 제사장들에게 아무런 해(害)가 없었다고 한다(Patrick).

(주); 증거궤를 덮고 - 즉 지성소와 6 소를 가리는 휘장으로 언약궤를 덮으라는 명령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보존하기 위한 외적 행위이다. 그리고 여기서 '덮다'(*, 카사)란 말은 몸이나 비밀을 '가리다' '닫다' , '숨기다'는 의미로써, 내부의 물건이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도록 철저히 가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한편 증거궤는 이 휘장으로 뿐 아니라 '해달 가죽' 및 '순청색 보자기'로 삼중 덮어야 했으며 기타 각종 지성물 역시 보자기로 덮어야 했다. 이처럼 거룩한 기물(器物)들을 덮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 성별된 사람 이외에 지성물을 만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즉 지성물은 모두 기름 부음받은 것으로 거룩하기에(출 40:9),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외에는 만질 수 없었다(4절) (2) 지성물을 자연의 재해(비, 모래 바람,태양열 등)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3) 기물믈 덮는 각종 보자기의 색상을 통해 백성들로 하여금 종교적 열의와 경건을 북돋우기 위함이었다. (4) 그리고 무엇보다 기물들을 외부로부터 은혜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죄인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목격하는 날이면 그는 죽음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소의 모든 기물들이 나름대로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상징한다는 측면에서 모두 가리워져야 했다. 따라서 이것은 구약 계시의 은폐성을 대변한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이르러 계시의 정점(頂點)이신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구약 시대에는 감추어졌던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했고(히 10:1), 마침내 그분의 재림을 통해 그 모든 은폐된 것들이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고전 13:12).

성 경: [민4:6]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 여기서 '해달'(*, 타하쉬)에 상응하는 아랍어 '투하스'는 '돌고래'를 가리킨다. 따라서 '해달'(sea otter)보다는 홍해 및 그 인근 바다에서 서식하는 '바다 소'(NIV, sea cow)나 '듀공'(dugong), 또는 '돌고래'(공동 번역)로 보아야 한다(출 25:5). 그러나 '염소'(RSV, Living Bible, goat)나 '오소리',(KJV,badger)는 거리가 먼 해석이다. 한편 두텁고 질기며 강한 '해달'의 가죽은 광야의 열사(熱砂)와 이슬, 비 등으로부터 언약궤를 보호하기 위해 덮개로 사용되었다.

(주); 순청색 보자기(*,베게드 켈릴 테겔레트) - 직역하면, 다른색이나 수놓은 것이 없는 '전적으로 푸른 청'이다. 혹자는 '푸른 색'은 하늘 빛을 가리키는 색깔로써 곧 하늘의 영광과 권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든지 '순청색 보자기'를 멀리서나마 바라볼 때 그 푸른 색상을 통해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인식하며, 또한 그 보자기 안에 든 지성물이 하늘에 속한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그것을 운반하는 고핫 자손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보자기에 싸인 지성물을 운반했을 것이다. 여하튼 그 보자기의 색상이 의미하는바가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는 그 지성물을 성별하시려고 '순청색 보자기'의 사용을 명하셨던 것이다(Keil). 그러나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형식주의적 품성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당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외적인 질서와 순종과 조화까지도 요구하셨음을 나타낸다. 사실 참된 예의와 형식은 참된 인격 안에서 자연스럽게 넘쳐난다.

(주); 그 채를 꿰고(*, 사무 바다이우) - 이를 직역하면 '각각의 손잡이를 내고'이다. 즉 언약궤 사면에 달린 고리에 '채'(pole)를 꿴다는 뜻이다(출25:12-15). 이것은 언약궤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을 방지하기 위한 배려였다(4절).

성 경: [민4:7,8]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성소 내의 북편에 배치된(출 40:29-33 주석 그림 참조) 진설병 상 위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그 위에 진설병 상에 딸린 여러 부속기구(대접, 숟가락, 주발, 붓는 잔)와 항상 진설하는 떡을 놓았다(출 37:16 주석 그림 참조). 그리고 그 위에 홍색 보자기를 펴 덮고, 이어 진설병 상을 포함한 모든 지성물을 한번 더 해달 가죽 덮개로 덮은 후 진설병 상의 고리에 채를 꿰어 운반하게 했다(출 37:10-16).

(주); 진설병의 상 - 성소(the Holy Place) 내 북편에 위치하며,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떡을 진열해 놓는 곳이다(출 25:23-30).

(주); 홍색 보자기 - 곧 붉은 피의 색깔을 띠는 보자기로서 이는 백성의 죄를 위해 대신 죽은 희생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는 성소의 모든 지성물들이 속죄의 희생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나타내며, 특히 속죄의 희생 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능력 또는 그 피의 효력을 상징한다그 볼 수 있다(출 26:1; 마 27:28). 한편 홍색 보자기로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요 6:35,48,51)를 상징하는 진설병이 놓인 상을 덮은 것은 의미 심장하다. 즉 이는 십자가에서 찢기신 그리스도의 살과 그 상흔(傷痕)에서 쏟아진 보혈을 연상케 한다.

성 경: [민4:9]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등대 - 이것은 앙장과 휘장으로 바깥과 완전히 차단된 성소 내에서 제사장이 제사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불빛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출25:31-40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고, 등대의 모양에 대해서는 출 37:23,24 주석의 그림을 참조하라.

성 경: [민4:10]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메는 틀 - 물건 운반에 사용되는 '들 것'(RSV, TEV, carring frame)을 의미한다(13:23). 이것이 필요한 이유는 모든 성물이 직접적으로 인간의 손에 접촉되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물을 메는 틀로 운반하라는 이 명령은 당신의 절대 성결과 당신의 거룩한 영광의 보존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내포된 명령이다(삼하 6:6,7).

성 경: [민4:11]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금단 - 곧 향을 태우는 '분향단'을 가리킨다. 이것은 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금단'(金壇)으로 불리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출 30:1-10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고, 그 모양에 대해서는 출 37:29 주석의 그림을 참조하라.

성 경: [민4:12]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봉사(*, 솨레트) - 이 말은 비천한 사역에 자주 사용되는 '아바드'(*)와는 달리 고상한 위치의 인물이 '사역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동사 '솨라트'에서 파생되었다. 가령 이 말은 보디발의 가정 총무로 봉사한 요셉(창 39:4)이나 아하시야 왕을 섬긴 그의 조카들의 사역(대하 22:8)을 언급할 때 쓰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말은 종교적 업무와 관련되어 자주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성소 안에서 행한 아론과그의 아들들의 사역(출 28:35,43), 레위인들의 찬양 사역(대상 16:4,37)등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역은 매우 존귀한 것으로 선민 이스라엘 중에서도 특정인에게만 제한되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는 봉사 사역은 특정 이스라엘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섬길수 있는 고귀한 위치에 설 수있게 되었다(사 56:6-8). 한편 아마도 '솨라트'에 상응하는 헬라어는 '라트류오'(*)일 것이다(히 9:9; 13:10; 계 7:15). 사도 바울과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을 사용하여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기고(롬 1:9),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것을 권유하였다(히 12:28).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제사장과 레위인이 된 우리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고귀한 봉사의 일에 전력해야 한다(히 9:14).

(주); 기명(*, 켈레) - '그릇', '도구'등을 뜻한다. 즉 진설병 상, 등대, 분향단이외의 성소 기구와 그릇들을 가리킨다(대하 4장).

성 경: [민4:13]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단의 재를 버리고 - 즉 번제단 위에서 불태워진 각종 희생 제물의 찌꺼기는 진(陣) 바깥의 재 버리는 곳에 버려야 했다(래 4:12).

(주); 자색 보자기 - 자색(紫色)은 성막의 그룹을 수 놓기 위해 사용된 색상 중 하나이며(출 26:1), 성막 문(출 26:26)과 에봇 위의 띠(출 28:8), 판결 흉패(출 28:15), 그리고 왕이 사용하는 기구(아 3:10)등에 주로 사용되는 색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왕의 영광과 권위(삿 8:26), 부요함(눅 16:19) 등을 상징한다. 그런고로 나아가 이 색상은 인류의 참된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권위를 상징하기도 한다(요19:2,3).

성 경: [민4:14]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단의 모든 기구 - 번제단에 부속되는 기구는 재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 및 불 옮기는 그릇 등이다(출 27:3). 여기서 '재 답는 통'은 희생 제물의 타고 남은 재를 담아놓는 단지(pot, NIV)를 가리킨다. 그리고 '부삽'은 다 탄 희생 제물의재를 통에 퍼 담는 일종의 삽(shovel)을 가리키고, '대야'는 단 위 희생 제물로부터 흘러 내리는 피를 받는 그릇(basin)을 가리킨다. '고기 갈고기'는 절단된 희생 제물의 고기를 번제단 위에 골고루 펴 놓는데 사용되는 일종의 포크(fork, RSV)를 의미하며, '불 옮기는 그릇'(firepan)은 일명 '향로'로 불리우는데 제사장이 분향단의 향을 사를때 번제단의 불을 바로 이 그릇에 담아 옮겨 사용 했다. 한편, 그런데 이 모든 기구들이 각각 복수(plural) 형태로 나와 있는 것을 볼 때 이 기구들은 1개씩이 아니라, 각각 여러개씩 있었던 것 같다.

성 경: [민4:15]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 그런데 본장에서 보자기에 덮이지 않은 유일한 성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놋으로 만든 물두멍(출 30:18)이다. 카일(Keil)은 이에 대해 '물두멍은 아무런 덮개 없이 그 모습 그대로 운반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70인역(LXX)과 사마리아 사본(Samaria Papyri)의 본문은 물두멍을 해달 가죽의 덮개로 덮고 그것을 운반용 들것에 두는 형식으로 기록하여 14절 내용과 일치하게 묘사 하였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26). 본절의 표현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과 본장 전체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물두멍도 천등으로 덮개를 씌웠던 것 같다.

(주); 멜 것이니라 - 여기서 '메다'(*, 나사)란 '들어올리다', '운반하다', '떠받치다'는 뜻으로서, 곧 어깨를 지지대로 해서 물건을 메어 운반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것은 성소와 성막 안의 기구들(언약궤, 진설병상, 등대, 금단, 번제단등)을 운반하는 방법을 일컫는 말이다. 한편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들이 맡겨진 것들은 오직 사람의 어깨로 옮겨야만 했다. 이것은 지성물에 대한 백성의 경의와 존경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물론 지성물은 그 자체로서는 어떤 권위도 가지지 못한다. 성소의 지성물들은 그것에 대한 신적(神的) 인준과 하나님의 임재 및 그 거룩한 성품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비로소 신령한 권위와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망각한 채 단지 성물(聖物)에만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또 하나의 변형된 우상 숭배일 뿐이다(출 20:4; 사 1:10-17).

(주); 죽을까 하노라(*, 와메투) - 직역하면 '죽지 않도록'(KJV, RSV, lest theydie)하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성물에 '몸이 닿았다가는 죽을 것이다'(공동 번역)로 해석할 수 있다. 실로 모든 사람은 죄인인 까닭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롬 3:23).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죄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채 하나님의 영광에 나아간다면 그는 죽임을 면치 못한다(출 19:21). 비록 레위인들이 선택된 일꾼들이라 할지라도 구약 시대의 특성상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성물들을 결코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음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러 그것을 목도할 수 있도록 부름을 받았다(살전 2:12; 벧전 5:10).그러르로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고후 3:18), 그 영광을 찬양할 수 있도록 소명받은 우리가(엡 1:12-14)영광의 직분을 갖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고후 3:7-9).

(주);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 2절 주석 참조.

성 경: [민4:16]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엘르아살의 맡을 것 - 여기서 '맡을 것' (*, 페쿠다트)이란 말은 3:32에는 '통할(統轄)'로 번역되었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대로, 대제사장 아론의 셋째 아들 엘르아살은 두 형 나답과 아비후 사망(레 10:1,2) 이후 실질적인 아론의 장자가 되어 막중한 임무를 부여 받게 되었다. 즉 엘르아살은 등대용 등유(출 27:20,21), 분향단용 향품(출 30:34-38), 상번제 소제물(출 29:40-42; 민 28:3-6) 및 관유(출 30:23-25)등을 통할하였으며, 장막 전체 곧 게르손 자손들과 므라리 자손들이 맡은 것도 관할하였고, 특별히 성소안의 기구들을 맡은 고핫 자손들을 직접 감독하였던 것이다. 결국 그는 레위인들의 실질적인 어른이었다(3:32).

(주); 등유(*, 쉐멘 함마오르) - 성소 안에 빛(*, 오르)을 비추는 등대에 사용되는 순결한 감람 열매의 기름이다(출 27:20). 성소의 등대에 이 기름을 태움으로 말미암아 외부와 차단된 어두은 성소는 환히 밝아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빛은 상징적으로 오늘날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히 4:15)께서 이 세상의 빛이 되신다는 사실(요 8:12)과 또한 복음의 제사장인 우리가(롬 15:16) 세상의 빛으로 존재해야 함을 이중적으로 보여 준다.

(주); 분향할 향품(*, 케토레트 핫삼밈) - 직역하면 '냄새가 좋은 향'(RSV, NIV the fragrant incense)이란 뜻이다. 이 향(香)은 특별히 분향단에 사를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곧 하나님의 명하신 바를 따라 오직 '향 만드는 법대로' 제조되어져야 했다(출 30:35). 한편 성경적 의미로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한다(계8:3,4), 그러므로 제사장 엘르아살이 이 향품을 관리한 것은 상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중보 기도 사역(롬 8:34; 히 7:25)을 예표한다. 나아가 이것은 이 세상을 위해 제사장으로 신택된 우리(출 19:6; 벧전 2:9; 계 1:6)가 뭇사람을 위한 중보자가 되어 기도해야 함을 보여 준다(딤전 2:1-3).

(주); 항상 드리는 소제물(*, 미느하트 하타미드) - 누룩 없이 고운가루와 기름으로 만든 무교병으로서(레 6:14-17), 상번제에 바쳐지는 소제 예물을 가려킨다(28:1-8). 한편, 여기에 쓰인 고운 가루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과 온전한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며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소제물이 날마다 봉헌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영원한 것임을 반영한다(히 7:24,27). 또한 상번제(常燔祭, a regular burnt offering)는 그리스도를 좇는 성도들의 삶이 날마다 하나님께 바쳐져야 함을 예표하기도 한다(롬 12:1,2). 즉 매일 예배드리는 삶(행 2:46),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행 5:42),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삶(살전5:16-18), 바로 이러한 삶이 곧 성도 각자가 자신을 주께 바치는(고후 8:5) '상번제의 삶'이다.

(주); 관유(*, 쉐멘 함미쉐하) - 직역하면 '바르는 기름'(theanointing oil)이란 뜻이다. 이것은 제사장들과 성막의 모든 기구들에게 발라 그것들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려고 특별히 제작된 향기름(출 30:22-33; 40:9-15)을 가리킨다. 한편 상징적으로 이 관유 역시 성도를 거룩하게 변화시키시는 성령을 상징한다. 즉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기름 부으심으로써(고후 1:21), 신령한 지식을 갖게 하시고 주 안에 거하게 하사 의를 행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신다(요일 2:20,27-29).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성령(욜 2:28,29; 행2:17,18)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어 (딛 3:5) 거룩한 생활을 추구해야 한다(고전3:16,17).

성 경: [민4:18]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보호 규례]

(주); 지파(*, 쉐베트) - 본래는 '막대기', '지팡이'의 뜻을 지닌다. 여기서는 지파(tribe)라는 뜻보다는 '가계', '혈통', '족속'이란 뜻으로 쓰였다. 한편, 하나님은 고핫 자손이 하나님을 섬기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 것(호 4:6)을 원치 않으셨다. 그러므로 모세와 아론 및 제사장들은 그들을 잘 가르치고, 감독하여 결코 그들이 무지로 인해 창졸간에 멸망당하지 않도륵 늘 삼가 지도를 게을리 말아야 했다. 한편 고핫 자손을 바로 가르치고 이끌 지도자들이 그 책임을 게을리할 때 고핫 자손이 부지중에 재난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교회 내에도 몇몇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적지 않은 성도들이 상처를 입고 실족할 가능성이 상존해 있음을 보여 준다(마 15:14; 18:6,7;23:13,15).

(주); 끊어지게 말지니 - 곧 '멸망받게 하지 말라'(RSV, let not...be destroyed) 또는 '결단코 소멸당하지 않게 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고핫 자손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막 기구들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그만큼 더 주의하여 그것들을 하나님의 명하신 지시대로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 어느 족속, 어느 지파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거룩성을 침해하고는 살아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고핫 자손은 늘 하나님의 지성물을 취급해야 하는 족속인만큼 더욱 삼가 조심해야 했다. 아울러 그들을 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는 모세와 아론 몇 제사장들은 그들을 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는 모세와 아론 및 제사장들은 그들이 행여 하나님의 명령을 잘못 시행하지 않는지 지도, 훈계, 견책하는 일에 잠시도 게을리 말아야 했다. 한편 고핫 자손은 레위 지파의 가지로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말씀을 어김으로 인해 거기서 끊어진다는 것은 그들로서 큰 불행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지로 붙어있다. 우리 역시 말씀을 어김으로 거기서 끊어진다는 것은 불행 중의 불행이다(요 15:1-6; 롬 9:3).

성 경: [민4:19]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보호 규례]

(주); 이같이 하여 - 즉 '아론과 그 아들들의 직무에 관한 명령(5-15절)대로 하여'라는 뜻이다.

(주); 지휘할지니라(*, 사무) - 기본 동사 '숨'(*)은 '임명하다', '돌보다','배치하다'는 뜻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그 권위를 위임받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레위인들의 직무를 구분하여 무리없이 성막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라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성막 내에서 아론을 중심한 조직적이고도 질서있는 봉사를 원하셨다.

성 경: [민4:20]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보호 규례]

(주); 잠시라도(*, 케발라) - '(성물들이) 덮여있을 때'(KJV), 혹은 '일순간도'(Keil)라는 뜻, 그런데 이 말이 '삼키다'(*, 발라)에서 왔으므로, 욥 7:19을 참조해 볼 때 '침삼킬 동안', 즉 '잠깐 동안이라도'(RSV, even for a moment)라고 번역함이 좋다. 70인역(LXX)도 '갑자기'(Suddenly)라는 뜻의 '엑사피나'(*)로 번역함으로써 이 의미를 취했다. 그러므로 고핫 자손들은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 지성물을 챙기는 동안 혹시라도 호기심이나 실수 등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지성물을 보거나 만져서는 결코 안 되었다. 이처럼 구약 시대에는 지성물을 운반하는 고핫 자손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물인 지성물을 보는 것이 잠시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구원받은 성도들은 장차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도성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영원토록 받으면서 살게 된다(계 21:10,11,23).

(주); 죽을까 함이니라 - 구약 시대 당시 죄인된 인간이 거룩한 기름(관유)을 부음받지 않고 하나님의 현존과 영광을 목도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사6:5) 그리고 역사상 실제로 엘리(Eli) 사후 시대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함부로 여호와의 궤(법궤)를 들여다 보다 떼죽음을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삼상 6:19).

성 경: [민4:21]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성직]

(주); 여호와께서 ... 모세에게...가라사대 - 하나님께서는 고핫 자손의 직무에 대해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으나(1절),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의 직무에 대해서는 단지 모세에게만 말씀하셨다. 이는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의 직무가 아론과 그 아들들의 도움 없이는 죽임 당하는 고핫 자손의 직무와는 달리, 그들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인 듯 하다(1:51). 왜냐하면 이들은 성소 기구들이 아닌 나머지 성막 부품들을 운반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론에게는 계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모세에게만 말씀하신 듯하다.

성 경: [민4:22]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성직]

(주); 게르손 - 레위의 장자이다(창 46:11; 출 6:16).

(주); 종족과 가족을 따라 - 2절 주석 참조.

성 경: [민4:23]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성직]

(주);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세까지 - 3절 주석 참조.

(주);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 - 직역하면, '(대기하다가) 들어가 군사 일을 할수있는 모든 자'를 가리킨다. 한편 여기서 '군사 일'에 대해서는 3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4:24]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성직]

(주); 게르손 가족(*, 미쉐페호트 하게르슈니) - 직역하면 '게르손 후손들의 가족들'(KJV, RSV, the families of the Gershonites)이다. 즉 여기에는 30세 이상 50세 이하의 각 가문별 게르손 자손들을 말한다. 이것은 게르손 자손들이 당시 그들에게 맡겨진 직무를 다시 각 가문별로 분담하여 일을 수행해갔음을 암시한다.

(주); 멜 것 - 여기서 '메다'(*, 마사)란 말은 고핫 자손처럼(15절) 어깨 위에 메는(carring on the shoulder)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옮기는 행위(ca-rring 또는 bearing)를 가리킨다. 게르손, 므라리 자손들은 성막 이동시 소가 끄는 수레로 자신들의 분담 부분을 옮겼다(7:7,8).

성 경: [민4:25,26]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성직]

이는 게르손 자손들이 운반해야 할 성막 앙장들과 회막 문장들, 그리고 그것들에 따르는 줄 등과 기타 그들이 사용하는 모든 기구들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선 출26,27,35,38,39장을 각각 참조하라.

성 경: [민4:26]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성직]

(주); 모든 것을 어떻게 맡아 - 직역하면 '다루어야 할 거기 있는 어떤 것들이든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게르손 자손들이 그에게 맡겨진 성막의 부속물들을 운반하기 위하여 성막을 걷는(taking down) 일(1:51)과 그것의 순조로운 운반을 위해 여러 가지 직무를 맡은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주); 처리할 것이라(*,이바두) - 이를 직역하면, '봉사할지라'(KJV, theyshall serve)이다. 즉 앞에 언급한 직무를 온전히 맡아 봉사하라는 명령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성실과 충성이다(고전 15:58; 계 2:10).

성 경: [민4:27]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성직]

(주); 맡길 것이니라(*, 페카드템) - '지정해야 한다', '짐을 지워야 한다'란 뜻이다. 이것은 강제 노역의 권한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성막 봉사를 위해 각자에게 일을 분담하라는 지시이다. 이런 원리에 따르면, 오늘날 성직자들이 다른 이에게만 짐을 지우고 자신의 몸은 사린다면 그것은 잘못이다(마 23:5). 그러나 성도 각각의 은사에 맞게 교회의 막중한 일들을 적절히 분담해 주는 것은 합리적이고 또한 필요한 작업이다. 이것은 성직자가 일반 성도들을 신뢰할때, 그리고 일반 성도들이 짐을기꺼이 질 수 있을 만큼 성숙했을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다툼과 허영을 버리고 복음 사역을 위해 서로 협력하라고 당부했다(빌 1:27; 2:1-4).

성 경: [민4:28]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성직]

(주); 이다말이 감독할지니라 - 여기서 '감독할지니라'(*, 베야드)란 말은 '손 아래에(있다)'(KJV, under the hand), 즉 '감독하에있다'(RSV, be under the oversight)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엘르아살과 더불어 레위 가문을 이끌어갈 이다말의 위치를 말해 주고 있다. 일찍이 그는 성막 건축 때 건축 비용을 계산한 적도 있었으므로(출38:21) 성막 내부를 상세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가진 그에게 성막 일의 감독을 맡긴 것은 자연스럽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경험과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셔서 당신의 거룩한 목적을 성취해 가신다.

성 경: [민4:29,30,31,32,33]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므라리 자손의 성직]

하나님께서는 성막 내부에서부터 외부에 이르는 직무를 이미 고핫 자손과 게르손 자손에게 지시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기물이 정리된 후 남게 되는 성막 본체의 널판들과 기초 부분들을 므라리 자손에게 맡기심으로 질서 정연한 성막 봉사를 주도하셨다. 이는 당신이 스스로 질서의 신(神)이심을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다(고전 14:33,40). 한편 므라리 자손의 임무가 성소 내의 기물을 다루는 다른 자손들의 직무보다 덜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임무에 관해서도 같은 지시를 되풀이 하시면서 빠짐없이 구체적으로 상세히 설명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라면 그 맡은 일이 무엇이든지간에 모두가 중요하며 의미 있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마 25:40). 한편, 본문에 나타난 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앞의 고핫 자손의 경우(1-20절)와 게르손 자손의 경우(21-28절)를 참조하라.

성 경: [민4:32]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므라리 자손의 성직]

(주); 명목을 지정하라 - 이것을 직역하면 '이름을 따라 하나도 빠짐없이 잘 세어서 운반할 것을(지명하여) 맡기라'이다. 한편 므라리 자손이 해야 할 임무는 성막 본체의 널판들(출 26:15), 그 띠들(출 26:26), 그 기둥과 받침 기둥들과 그 받침들(출 35:18; 39:40)을 걷어(1:51) 운반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와같은 성막의 부속물들을 므라리 자손에개 각각의 이름에 따라 정확하게 지정하고 그 임무를 지시해 주어야 했다. 이는 고핫 자손이 해야 할 직무에 있어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포장하고(5절) 직접 명하여 지시하는 일과는 달리 므라리 자손들은 모세가 지시한 각 성막 재료들의 이름에 따라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Septuagint).

성 경: [민4:33]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므라리 자손의 성직]

(주); 사무대로(*, 레콜 아보다탐) - '봉사할 모든 일을 따라서'이다. 여기서 '봉사하다'(*, 아바드)는 비천하게 수고한다는 뜻을 지닌다(12절). 그러나 여기서 이것은 마치 노예와 같이 복종적인 자세로서 고생하는 것을 뜻하지 않고,매우 겸손한 자세로서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나라 건설 사역 현장에 부름받은 우리도 이들처럼 비천하게, 즉 겸손하게 사역해야 한다(고전 4:10: 고후 11:7). 그리할 때 마침내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위로하시고(고후 7:6) 높이신다(약 4:10; 벧전 5:6).

성 경: [민4:34]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가(家)의 성막 봉사자 수]

(주); 모세와 아론과 회중의 족장들 - 여기서 '회중의 족장들'이란 각 종족(지파)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을 가리킨다(17:2,6). 아마 이들은 이스라엘을 지도하는 70인 장로들(출17:6; 24:1)중에서 각 지파별로 한명씩 대표자로 뽑혀진 것 같다(1:4,16). 모세와 아론은 이들과 더불어 레위 각 가문들을 계수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동역(同役)의 중요성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역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때는 능력 있는 한 지도자의 고독한 통솔보다는 하나님을 함께 믿는 공동체 의식속에서 서로 헙력하여 조화있게 일을 처리해 나가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임을 암시한다(출 18:21,22).

(주); 가족과 종족대로 - 2절 주석 참조.

성 경: [민4:35]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가(家)의 성막 봉사자 수]

(주);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 3절 주석 참조.

(주); 입참하여 일할만한 모든 자 -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도록 선별되어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성소에서 일할 수 있는 지파에 속해 있다는 신분과는 달리, 실제로 그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자들은 마30-50세 사이 사람들 뿐이었다(23절). 즉 그들의 선별된 신분과 하나님의 일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자격과는 차이가있었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로 볼 때에 신약 교회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제사장들이나(벧전 2:5,9; 계 1:6), 실제로 그들이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효과적으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은 그들의 영적 성숙정도에 따라 좌우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Matthew Henry).

성 경: [민4:36]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가(家)의 성막 봉사자 수]

(주); 그 가족대로 - 이것은 고핫 자손들이 그들의 각 가문별로 계수함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모세와 아론과 회중의 족장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고핫 자손들은 그 가족과 종족대로 구분하여 계수하였으나(2,34절), 최종적으로는 각 가문별로 그들의 직무를 더욱 세분하여 맡김으로써 아무런 혼동없이 맡은 바 직무를 각자가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성 경: [민4:37]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가(家)의 성막 봉사자 수]

(주); 여호와께서 ... 명하신대로 - 이스라엘 자손중 특별히 레위인은 처음 난 자들을 대신한 자들로서 곧 '여호와의 것'이었다(3:12). 그러므로 레위인을 계수함에 있어서도 하나님 특별히 깊은 관심을 표명하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거듭 중복되는 말씀으로 세세히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셨던 것이다. 그런고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이러한 뜻을 잘 받들어 그 명령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했다.

성 경: [민4:38,39,40,41]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가의 성막 봉사자 수]

이 부분은 므라리 자손 중 회막 봉사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자의 계수 총계가 기록된 부분이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34-37절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4:42,43,44,45]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므라리 가의 성막 봉사자 수]

이 부분은 므라리 자손 중 회막 봉사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자의 계수 총계가 기록된 부분이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34-37절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4:46,47,48]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성막 봉사자 총계]

이스라엘 자손 중 레위 족속 특별히 두 가지 방법으로 계수되었다. 하나는, 생후 '1개월 이상된 자들'을 모두 계수하는 것이었는데(3:15-39),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중 처음 난 자를 대속하기 위한 목적으로 계수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특별히 '30세 이상으로 50세까지의 장정들'을 계수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실제로 성막 봉사를 맡길 목적으로 계수된 것이다. 아래 도표는 이처럼 두 가지 방법으로 계수된 레위 족속의 계수 도표이다.

구 분 1개월 이상 30 - 50 세 비 율

게르손 자손 7,500명 2,630명 35%

고 핫 자손 8,600명 2,750명 32%

므라리 자손 6,200명 3,200명 52%

총 계 22,300명 8,580명 38%

성 경: [민4:49]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성막 봉사자 총계]

(주); 그 할 일과 멜 일을 따라(*, 알 아보다토 왜알 맛사오) - 직역하면 '그의 봉사와 그의 짐에 따라'이다. 레위인들은 성막이 머물러 있는 동안 제사장들의 업무를 도와 봉사했고 이 동시에는 각자 맡은바 성막의 짐을 운반하는사역을 담당했다. 한편, 같은 이치로 오늘날 성도 각자의 손에는 수행해야 할 봉사의 일이 있고(엡 4:12) 어깨에는 짊어져야 할 십자가의 짐이 있다(마 16:24; 눅 9:23; 갈6:5).

성 경: [민5:1]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부정한 자의 격리]

(주); 여호와께서 ... 일러 가라사대 - 이 표현은 새로운 상황 전개가 시작되거나, 혹은 계시 내용의 성격이 바뀔 때 종종 사용되어지는 성경의 관용적 표현이다. 또한 무엇보다 이 표현은 이하 제시되는 내용의 신적(神的) 기원성을 명료하게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한다.

성 경: [민5:2]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부정한 자의 격리]

(주); 문둥병 환자(*, 차루아) - 문둥병은 히브리어로 '차라아트'(*)이며 헬라어로는 '레프라'(*)이다.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죄와 더러움(부정함)의 개념과 연관시켜 지독한 피부병을 가리킬 때 사용하였다. 한편 히브리어 '차라아트'는 '몹시 괴롭다'는 의미의 '차라'(*)에서 파생된 말로, 곧 심한 발진성 피부염에 감염되었거나 앓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헬라어 '레프라'는 피부 표면이 거칠고 비늘 모양으로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병을 뜻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문둥병 환자에대한 제반 사항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레 13장 주석을 참조하라.

(주); 유출병(*, 조브) - 물같이 자연스럽게 '흐르다'는 뜻의 '주브'(*)에서 파생된 말로서, 곧 몸 밖으로 피가 계속해서 유출되는 일종의 혈루(血漏)증세의 병을 가리킨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유출병은 (1) 여인의 정규 월경(레 15:19-24)과 자궁 출혈(레 15:25-30)을 의미하기도 했으며, (2) 성병에 의한 비정상적인 분비물(레15:1-15)과 또한 정액(精液)을 배출하는 남자의 병(레 15:16-18)을 가리키기도 했다. 여하튼 이스라엘 공동체 사회에 있어서 이 모든 것들은 종교 의식 성결법상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이유는 피를 생명으로 취급했던 그들로서는 피와 그리고 그와 비슷한 정액의 유출은 곧 죄의 결과로서 생명을 파괴시키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신 12:23).

(주); 주검으로 부정케 된 자(*, 콜 타메 라나페쉬) - 즉 '죽은 사람에 의해 더럽혀진 모든 자'이다. 주로 '영혼'으로 번역된 '네페쉬'가 여기서는 반의역어(反意逆語)로 사용되어 '주검'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처럼 '네페쉬'가 '주검'이란 의미로 사용되게 된 이유를 우리는 다음 몇가지로 상정(想定)해 볼 수있다. (1)신 12:23,24에 보면 '네페쉬'는 피속에 흐르는 생명의 원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출21:23; 잠 12:10). 그러므로 주검은 이 '네페쉬'의 활동 중지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2) 시체에 한동안 영혼이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말이 혼용되었을것이다. (3) '죽은 영혼(사람)'(*, 네페쉬 메트)이라는 시체에 대한 관용어(6:6)가 축약되어 이러한 혼용을 초래했을 것이다. 여하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체에 접촉된 자가 부정하다고 하는 개념이다. 문둥병 환자(혹은 악성 피부병 환자)나 유출병 있는 자는 모두 전염성 질환의 보균자로서 부정하다고 인정되어 격리되는 것이 적절했다. 그렇지만 단순히 시체를 가까이 한 이유로 부정하게 취급된 것은 과도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주검 및 주검에 접촉된 자를 부정하다고 간주한 때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종교 의식상 주검 곧 시체는 죄의 삯으로 초래된 죽음(롬6:23)의 현상적 결과였기 때문이다. (2) 위생상 시체는 시간이 경과할수록 부패해지는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레 21:1).

(주); 진 밖으로 내어 보내되 - 여기서 '진밖'이란 회막 주위에 진을 친 각 지파(2:1-34)의 외곽, 또는 이스라엘 본 진영(2:34)의 후미였을 것이다. 그런데 부정한 자로 간주된 모든 사람들을 이스라엘 진 밖으로 내보낸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1) '분리'를 통하여 위생적, 도덕적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2) 부정한 자로 하여금 격리 기간 동안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였다(레 13:45,46). (3) 이스라엘 공동체의 종교적 성결을 위해서였다. 즉 이스라엘 진(陣)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는 곳이었기 때문에 부정한 자들이 결코 거주할 수 없었다. 한편 종교적 의미에서 '분리'란 하나님께 대한 모든 제사에서와 이스라엘 내에서의 각종 행사및 율법에서 배려된 선민(選民)으로서의 모든 혜택으로부터 제외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같은 사실은 신약 교회의 성도들 중 범죄자들이 신앙 공동체에서 치리(治理)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것을 상징한다(마 18:15-20; 고전 5:4,5,13;살후 3:14,15). 이처럼 죄는 개인의 양심을 멍들게 할 뿐 아니라 대인(對人)과 대신(對神) 관계에 대해서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엡 2:1).

성 경: [민5:3]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부정한 자의 격리]

(주); 무론 남녀하고 - 직역하면 '모든 남자와 온 회중의 여자'이다. 이는 부정케 된 자를 진에서 축출시키라는 명령(2절)에는 예외가 없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며 모든 권위를 초월한다.

(주); 더럽히게 말라(*, 로 에타메우) - '더럽히게'(에타메우)란 종교 의식상, 혹은 도덕적으로 '더러워지다'(*, 타메)의 미완료 피엘(Piel)형으로서 계속적으로 더러워지게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죄의 가장 무서운 특성 중 하나인 '전염성'을 강조한 표현으로, 한 사람의 범죄자(부정한 자)가 거룩한 공동체 내에 존재하게 되면 멀잖아 전 공동체가 죄로 오염될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수7:2-26). 그러므로 부정한 자에 대한 단호한 조처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주); 내가 그 진 가운데 거하느니라 - 이 말은 이스라엘 진이 성결해야 할 가장 큰 이유를 제공한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은 결코 부정한 것과 함께 하실 수 없기 때문에, 부패로 오염된 자들을 그분이 왕으로 통치하시는 거룩한 공동체로부터 격리되어야 했다. 인간에 의해 이 명령이 준행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공의의 심판을 통해 당신의 성소(聖所)를 깨끗하게 하신다. 한편 하나님이 '거하시며', '통치하시는' 성전된 우리 각자의 내적 상태에도 이러한 성결이 또한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고전3:16,17).

성 경: [민5:4]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부정한 자의 격리]

(주); 이르신대로 ... 행하였더라 - 진(陣)을 성결케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한 백성들의 아름다운 신앙이 묘사되고 있다. 이 명령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도 실행되었는데(Keil), 그 일례로 문둥병자들이 성(城) 밖의 특정한 지역에서 집단 생활을 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왕하 7:3).

성 경: [민5:6]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손해 배상법]

(주); 사람들이 범하는 죄 - 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 죄로, 그 의미상 '사람들에게 저지른 죄'(KJV, sin that men commit)라 할 수 있는데, 공동 번역에서는 '남에게 손해를 입혀'라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5-10절 사이의 내용으로 보아 이 표현은 분명 이웃간에 재산상의 피해를 준 각종 죄를 일컫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레 6:2,3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특기할 사실은 인간들 사이에서 발생된죄가 여호와께 패역(*, 마알 바예호와)하는 범죄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여호와께 패역한다'는 말은 '여호와께 반역(반항)하여 죄를 짓다'는 뜻으로서, 결국 이웃에 대한 범죄가 하나님께 간접적인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죄가 됨을 보여 준다. 사실 하나님은 진리와 정의를 사랑하는 분이시기에 인간이 어떤 형태로 불의를 자행하든지 간에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법을 거부하며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는 범죄가 되는 것이다(출 9:27; 히 1:3). 그러므로 이스라엘 공동체 사회에서는 누가 어떤 형태의 죄(하나님께 대해서든, 인간에 대해서든)를 범하든지, 범죄한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 속죄의 은총을 구해야 했다. 이에 대해서는 레 6:4-7의 규례를 참조하라.

(주); 그 몸에 죄를 얻거든(*, 아쉐마 하네페쉬 하히우) - 직역하면 '그 온 인격(영혼)이 범죄하다'(RSV, that person is guilty)이다. 이는 인간의 죄가 단순히 사고나 양심에만 손상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전 인격에 그 영향력를 미침을 암시한다.

성 경: [민5:7]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손해 배상법]

(주); 사람에게 죄를 범하고 여호와께 패역한 자는 다음과 같은 조처를 취해야 했다. (1)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 여기서 '자복하고'(*, 히테와두)란 말은'손을 펴서 경배하다', '손을 꽉 잡고 슬퍼하다'는 뜻의 '야다'(*)에서 유래하였다. 이 말은 공개적이고 의지적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의 죄를 놓고 애타게 통회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처럼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을 경우 먼저 범죄자를 자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회개(자복)를 해야만 했다. 따라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치 않거나 뉘우침 없이 물질적 손해 배상만을 하는 것은 참된 의미에서 회개라 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을 동시에 기만하는 행위일 뿐이다. 그런고로 죄에 대한 '자복'은 자신의 죄에 대한 뼈저린 인식과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눅 19:1-10). 결국 '자복'이란 자신의 죄를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내려 놓고 간절히 뉘우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한편 이 자복의 과정 중에는 '속죄제'(8절)가 포함되어 있다. (2)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 여기서 '죄값'(*, 아솽)이란 하나님께 대해서가 아니라 피해를 입은 자에게 대해 물어야 할 배상을 가리킨다. 그리고 '온전히'(*,베로쇼)란 '최상으로', '원금(본전)대로'라는 의미로 자신이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해 조금도 남김없어 갚으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쓰였다. 이처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자는 그 잘못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상대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행동이 따르지 않는 회개는 거짓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예수를 영접했던 세리장 삭개오의 신앙은 진실했다고 할 수 있다(눅 19:8).

(주); 오분지 일을 더하여 - 잘못을 뉘우친 자는 손해 원금 뿐 아니라 그 원금의 1/5(20%)을 덧붙여 주어야 했다. 이것은 피해 보상에 있어서,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정신적인 배려도 생각한 완전하고도 합리적인 보상 원칙이었다. 한편, 이러한 원칙은 속건제 규례와 연결된 것으로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레 5:16; 6:5 주석을 참조하라.

(주); 본주(本主) - 재산상의 침해를 받은 피해 당사자를 가리킨다.

성 경: [민5:8]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손해 배상법]

(주); 친족(*, 가알) - 친척의 재산 문제나 혹은 친척의 혈육을 잇는 일까지 책임지는 가까운 혈족을 가리킨다. 성경은 이들을 '기업 무를 자'로 표현하기도 한다(레25:8-55 강해, 근족의 의무). 본문에서 이 피해자의 친족은 피해자가 죽었을 경우, 그 피해자를 대신해서 가해자에게 보상을 받는 대리자 역할을 해야 했다.

(주); 여호와께 드려 제사장에게로 돌릴 것 - 이 말은 누군가 사람들에게 범하는 죄(6절)를 지은 후 피해 보상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나 그 당사자의 친족마저 없어 누구에게 배상해야 할 지 불확실한 경우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즉 이 경우에라도 범과자는 배상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았다. 그럴 때 그는 7절에 언급된 보상금을 하나님께 드려 그것을 제사장의 몫이 될수 있도록 해야했다. 이러한 규례는 반드시 피해를 보상해야만 지은 죄를 속(贖)함 받을 수 있다는 준엄한 '속죄 원리'를 가르치고 있다(레 5:11,12;6:2-7).

(주); 속죄의 수양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각자가 자기 죄를 깨달았을 때 그 죄를 속함 받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하셨다. 첫째는, 먼저 피해를 입힌 이웃에게 성실히 재산상의 보상을 규례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런 연후에 또한 하나님께 속죄를 위한 제물로 속건제 수양을 바치는 것이다(레 5:15,16; 6:6,7). 이는 모든 죄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성 경: [민5:9]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손해 배상법]

(주); 거제(*, 테루마) - '높이 들어 올리다'란 뜻의 히브리어 '룸'(*)에서 유래한 말로, 곧 제사장이 제물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내려 놓는 행동을 통해 제사를 드리는 제사 방법의 한 형태이다(레 7:32). 여기서 들어올렸다 내리는 행동은 제사장이 그 제물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다가 다시 하나님께로부터 되돌려 받는다는 의미가 내포된 상징적 행동이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주); 그의 것이 될 것이라 - 피해자가 죽고 그 피해자의 친족마저 없을 때 그 '죄 값'(7절)은 하나님께 드려져 실제적으로는 제사장의 소유가 되었다. 이는 오직 여호와를 기업 곧 생계의 근원으로 삼아야 했던 제사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상한 배려였다(레10:12-15).

성 경: [민5:10]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손해 배상법]

(주); 구별한 물건 - '봉헌된 물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물 외의 거제물이나 요제물로서, 곧 첫 열매의 곡식 단이나 각종 십일조를 가리키는 듯하다(18:8-22). 한편 여기서 '구별하다'(*, 카다쉬)란 말은 하나님께 완전히 봉헌(소속)되었다는 뜻이다. 사실 하나님은 만물의 소유주이시나 특별히 언약 백성이 성별하여 드리는 '성물'을 기뻐 받으시며 그것을 특별히 '당신의 것'이라 인정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과 완전히 구별된 우리 성도들 역시 항상 성결을 유지함으로써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롬 12:1).

성 경: [민5:12]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의심의 소제(素祭)]

(주); 고하여 ... 이르라(*, 다베르 웨아마르타) - 직역하면 '말하라...그리고 말하라'이다. 이처럼 동일한 의미의 말을 두번씩이나 언급한 것은 전하고자하는 내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즉 뒤이어 나오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하라', '조금도 빠뜨림 없이 전파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 실행하여(*, 티세테) - 의무에서 '벗어나다', '그릇 행하다'란 뜻의 히브리어 '사타'(*)의 단순 미래형이다. 이것은 아내로서 남편에 대한 (도덕적)의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의 상황을 예상한 것으로서, 여기서는 간음과 같은 부도덕한 범죄를 지칭한다. 이처럼 정도(正道)를 벗어나는(사 30:21) 탈선은 '사단'(*)을 따르는 짓이다.

성 경: [민5:13]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의심의 소제(素祭)]

(주); 타인과 정교를 하였으나 - 직역하면 '그녀가 어떤 남자와 함께 누워 성교(性交)를 하였다'이다. 즉 이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통정으로 인한 불륜(不倫)을 일컫는 말이며 강제 추행과 같은 불가항력적 상황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주);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네엘람...니세테라) - 이는 '숨기고 비밀로 하다'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 히브리어의 두 단어는 모두 미래 재귀형(Niphal)으로서, 부정한 아내가 비밀 유지를 위해 스스로 애쓰고 있는 상황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주); 증인(*,에드) - '이중으로 하다', '반복하다', '중언하다'란 뜻의 히브리어 '우드'에서 유래한 말로써, 그 목격한 상황을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모세 율법에서는 위증(僞證)을 피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 최소한 2인 이상의 '증인'이 요구되었다(신 19:15; 마 18:16).

(주);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 즉 '현행범(現行犯)이 아니었을 경우도'라는 뜻이다(요8:4). 그러나 만일 현행범일 경우, 그리고 분명한 목격 증인들이 있을 경우, 그 여인은 모세 율법에 따라 돌로 처행당하는 형벌에 처해졌다(레 20:10).

성 경: [민5:14]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의심의 소제(素祭)]

여기서는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는 두 경우가 제시되었다. 하나는 아내가 남편에게 의심살 만한 불륜을 저질렀으나 증거가 없는 경우, 또다른 하나는 전혀 사실 무근한 일을 남편이 공연히 의심하는 경우이다.

(주); 의심(*, 루아흐 키느아) - 직역하면 '질투의 신(영)'이다. 따라서 본래 의심이란 질투심을 자극하는 사단의 영향력 아래 있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이는 단순히 머리를 갸우뚱할 정도의 의혹이 아니라, 전인격을 불사를 정도로 심히 의심하는 것를 가리킨다. 그러나 한편 여기 제시된 '의심의 규례'를 따라 그 당시 남편이 가정의 평안을 사수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일으키는 '의심'은 정죄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이것은 가정의 건전한 도덕적 윤리 및 공동체의 기풍 확립을 위해서 필요하기까지 했다. 그런고로 이 의심은 오늘날 소위 의처증(疑妻症)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의심 받는 여인은 실족하거나 불평치 말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 하나님의 공의의 대변자인 제사장에게로 가야 한다. 이렇게하여 만일 여자가 순결하다고 밝혀지면 그녀는 더 큰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28절).

성 경: [민5:15]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의심의 소제(素祭)]

(주); 제사장에게로 가서 - 이는 곧 공의로운 심판을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고 또한 백성의 처지를 하나님께 아뢰는 증보자이기 때문이다.

(주); 그를 위하여 - 즉 '그 아내를 위하여'이다. 구약 시대의 규례상 여호와 앞에 나아가는 자는 빈손으로 나갈 수 없었다(출 23:15; 24:20). 그러므로 남편은 의심받은 아내를 위해 소제의 예물을 준비해야 했다.

(주); 보리 가루 - 보통 소제는 고운 밀가루에 기름과 유향과 소금을 섞어 드려졌으며, 가끔 첫이삭을 볶아 기름과 유향과 함께 드려지기도 했던 일종의 기쁨과 감사와 헌신의 제사였다(레 2:1-16; 6:14-23). 그러나 여기 '의심의 소제' 예물로는 거칠고 질이 떨어지는 가난한 자들의 음식인 '보리 가루'가 사용되었다. 이는 의심하는 자나 의심받는 자의 상황이 매우 곤혹스럽고 애매한 처지였음을 대변해 준다. 사실 의심받는 자나 의심하는 자는 피차 영육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런고로 유대 랍비들은, 남편이 그 아내를 의심의 법으로 고발하기 전에, 그 심증(心證)이 얼마나 객관적인가를 거듭 생각하라고 가르치고 있다(Matthew Henry).

(주); 에바 십분지 일 - 여기서 '에바'(Ephah)는 구약 시대에 부피를 재는 고체량의 단위로서, 1에바는 약 23리터 가량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에바 십분지 일(1/10)은 약 2.3리터 가량에 해당되는 고체 부피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1오멜(Omer)의 부피에 해당되는 것이었다(출 16:16,36).

(주);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 여기서 '의심의 소제'일 경우, 기름과 유향없이 소제가 드려졌다. 그 이유는 이 의심의 소제는 여자의 행실과 관련하여 그 죄의 유.무 문제를 판별하기 위해 드리는 소제였기 때문에 다른 희생물과 더불어 드리는 일반 소제 때와는 달리 죄의 부정을 제하는 '기름'을 부을 수 없었고, 기도를 상징하는 '유향'를 곁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레 2:1-16). 한편 곡식 제사에서 기름과 유향이 사용되지 않는 또 다른 경우는 극빈한 자가 드리는 속죄제에서였다(레 5:11). 결국이 두 제사는 드리는 자의 어려운 물질적 정신적 처지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주); 의심의 소제요 생각하게 하는 소제 - 이 소제는 감격과 헌신과 봉사의 다짐이 있는 일반 소제와는 그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이 소제는 그 제물의 내역에서 볼 수 있듯이 여인의 순결이 의심받는 '의심의 소제'였다. 그런 견지에서 특히 여기 '생각'(*, 지카론)이란 말은 '지난 일을 기억하다', '알아보기 위해 표시해 두다'에서 파생된 말로, 곧 이 소제의 취지를 분명히 해주고 있다. 즉 이 소제는 (1) '의심'의 근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진실인지의 여부를 알아보려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2)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행실에 대해 옳고 그름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3)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판단의 근거를 하나님의 생각, 곧 그분의 전지하신 지혜에 맡기고 그 분의 판단에 겸손히 따르겠다는 데 그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성 경: [민5:16]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물]

(주); 여호와 앞에 세우고 - 즉 여호와의 임재 처소인 '성막 앞에 세우고'라는 뜻의 관용적인 표현이다(레 1:3; 3:1).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제사장은 그 여인을 성막 뜰의 동쪽, 곧 성막 입구 쪽에 서도록 하였다고 한다(Matthew Henry). 한편 이것은 한 가정과 한 인격의 운명이 관련된 일을 인간의 지혜로 해결하지 않고, 최고의 권위자이신 하나님께 맡겨 그분의 판결을 기다린다는 상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더욱이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신전(Coram Deo)의식은 오늘날 성도의 모든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 한편 이 성구는 18절에도 다시 한번 언급되는데, 실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신다(고후 5:10).

성 경: [민5:17]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물]

(주); 토기(*, 비크리 하레시) - 이 토기그릇(초벌 구이인 듯하다)은 곤경에 처한 여인의 형편을 잘 반영한다. 즉 잘 다듬어진 놋그릇에 비해 조악하게 구워진이 토기 그릇은 순결을 의심받고 있는 여인의 곤궁한 현상을 연중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그릇은 모든 행사가 끝난 후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없었고 깨뜨려진 것으로 추정된다(레 6:28).

(주); 거룩한 물 - 이 물은 성소 입구에 위치한 물두멍의 물인 듯하다(출 30:18). 제사장들은 이 물로 성막 봉사를 전후해서 손발을 씻었다(출 30:19-21;40:31,32). 한편 육대 전승은, 이때 토기 그릇에 담긴 물의 양은 약 0.5리터 정도의 용량이었다고 전한다(Matthew Henry).

(주); 성막 바닥의 티끌을 ... 물에 넣고 - 본래 물두멍의 물은 성막 바닥의 티끌과 각종 오물을 씻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오히려 성막 티끌을 그 물에 집어 넣은 것은 이 물의 효과를 역(逆)으로 이용한 것이다. 즉 이때 이 물두멍의 물은 생명과 성결을 제공하기 보다 죽음과 심판의 효과를 자아내게 되었음을 상징화한 것이다. 한편 '티끌'은 최초 범죄 이후 저주받은 뱀의 식물로 규정된 것으로서(창 3:14), 결국 거룩한 물에 '티끌'을 첨가한 것은 저주와 수치 등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함이다(Keil).

성 경: [민5:18]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물]

(주); 그 머리를 풀게 하고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머리털은 명예와 권위로 상징되었다(고전 11:3-10). 그래서 그들은 극한 슬픔을 만났을 때 가장 참담한 마음의 상태를표하기 위하여 머리를 풀고, 또는 머리에 재를 뿌리며(욥 2:12) 스스로 겸비해지곤 했다. 더욱이 이 행동은 문둥병 환자에게도 적용될 정도로(레 13:45) 비천함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흉악한 범죄자로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의심받는 그 자체가 아내에게는 크나큰 수치이며 주위 사람들에게 비난거리였기 때문에, 제사장은 그녀가 지금 욕되고 비천한 자리에 처해 있음을 상징하는 의미로 그여인의 머리를 풀게 한 것이다. 한편 유대 전승에 따르면, 이 경우 이 여인이 나중에 무죄로 판명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 여인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여인의 집안 식구나 가솔들 및 가까운 친족들은 그러한 재판 장소에 입회하는 것을 금지시켰다(Matthew Henry).

(주); 생각하게 하는 소제물 곧 의심의 소제물 - 이것은 일반 소제 예물(레 2:1-16)과는 다른 특별한 목적의 소제물로서, 곧 기름과 유향 및 소금이 첨가되지 않은 조악한 보리 가루 1/10 에바로 구성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15절 주석을 참조하라.

(주); 소제물을 그 두 손에 두고 - 이것은 의심받는 여인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러내 놓고 그분의 정당한 판결을 받을 준비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주); 저주가 되게 할 쓴 물 - 이는 성막의 티끌을 첨가한 이 물 자체가 저주의 효능을 가진 쓴 물이란 뜻이 아니다. 이는 의심받는 여자가 불륜의 사실이 있을 경우 그 쓴 물이 그 부정한 여인에게 하나님의 공의롭고도 고통스러운 형벌를 전달하는 매체가 될 것이라는 뜻에서 사용된 표현이다. 한편 여기서 '쓰다'(*, 마라르)란 말은 '괴롭히다', '격동시키다'란 뜻으로서 영육간에 매우 고통스러운 지경에 이른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이 '쓴 물'을 특별히 제사장에게 맡긴 것은 그가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 경: [민5:19]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물]

(주); 여인에게 맹세시켜 - 제사장은 의심받는 그 여인에게 21절에서 '저주의 맹세'로 규정된 그 맹세를 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맹세는 여자의 무죄 가능성을 배제시키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 맹세에는 무죄의 경우 저주의 쓴 물이 여인에게 아무런 폐해도 끼치지 못하리라는 반대 급부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결국 이 맹세는 여인으로 하여금 '진리'에 절대 순응하도록 하기 위한 조처인 것이다. 한편 유대 랍비들은 말하기를, 이 경우 즉 여인에게 맹세를 시킴으로 말미암아 공식 재판 절차에 들어가기 전, 제사장은 먼저 그 의심받는 여인에게 만일 불륜의 죄가 있다면 숨김없이 고백하라고 강력히 설득하고 권고하는 과정을 반드시 밟아야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만일 그 여인이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제사장에게 자기의 죄를 고한다면, 처벌은 면제되나 남편으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는 운명이 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인이 제사장의 강력한 설득과 권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 제사장은 '의심의 법'에 따라 공식 재판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주); 네 남편을 두고(*, 타하트 이쉐크) - 직역하면 '네 남편 아래 있으면서'이다. 이는 곧 아내는 그 남편의 권위와 보호와 사랑안에 거해야 한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주); 해독(*, 함므아레림) - '심한 저주'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라르'(*)에서 유래한 말로써 곧 '매우 쓰라린 고통', '찌르는 듯한 아픔'을 의미한다. 여기서 20,21절에 언급된 바와 같은 고통을 가리킨다. 한편이 해독의 정확한 병명(炳名)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유대 학자들은 대개 수종증(水腫症)으로 본다. 즉 요세푸스(Josephus)는 일반 수종증(ordinary dropsy, hydrops ascites)으로 보고, 미카엘리스(Michaelis)는 난소 수종증(dropsy of the ovary, hydrops ovarii)으로 본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32.). 여하튼 이 해독은 '간음'이라는 범죄의 행위와 결부되어 하나님께서 여자의 생식기에 내리신 치명적인 병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주); 면하리라(*, 히나키) - 이 말의 원뜻은 '깨끗하다', '완진히 일소하다', '무흠하다'이다. 따라서 이는 의심받았던 사실에 대해 완전히 자유롭게(무죄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성 경: [민5:20]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물]

(주); 실행하여 - 12절 주석 참조.

(주); 더럽혀서 - 기본 동사 '타메'(*)는 종교 의식상 '부정'하게 되다, 혹은 도덕적으로 '오염되다', '때묻다'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도덕적인 불륜을 의미하는데 곧 통정(通情)으로 인한 '간음'을 가리킨다.

성 경: [민5:21]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물]

(주); 저주의 맹세 - 즉 이것은 맹세할 내용의 만일 죄가 있을 경우 어떠한 저주도 달게 받겠다는 식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뜻한다. 여기서는 다음에 이어지는 저주에 관한 내용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주); 여호와께서 - 저주의 주권자를 밝히고 있다. 즉 공의로우신 심판자로서의 하나님께서 모든 선악을 다스리신다는 '하나님의 주권'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주); 넓적다리로 떨어지고 - 여기서 '넓적다리'(*, 야레크)란 본래 '부드럽다'는 의미에서 파생된 말로서, 대체적으로 '출산하는 부분', '정강이', '옆구리', '허리'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는 말이다. 여기서는 성적(性的) 범죄에 대한 징벌이라는 점에서 여자의 생식기를 지칭하는 완곡한 표현인것 같다(Keil, Pulpit commentary). 한편 그리고 이것이 '떨어진다'는 말은 '쓴 물'에 의한 치명적인 악질(惡疾)로 인해 여자의 생식기가 파손되어 더 이상 여성으로서의 기능(임신, 출산 등)을 수행할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임을 나타낸다.

(주); 배로 부어서 -이는 생식기에 발생한 수종(水腫)에 의해 임파액이나 장액(漿液)이 괴어 몸이 엄청나게 부어오르는 상태를 말하는 것 말하는 것이다(Keil).

(주); 저줏거리, 맹셋거리가 되게 하실지라 - 남편으로부터 의심받은 여자가 결국 간음한 것으로 판명되면 그녀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모욕을 당하며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끊어지게 될 것(신 23:2)이라는 말이다. 이같은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것이 요8:1-11 에 나오는 바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사건이다. 한편 율법에 의하면 통간한 남녀는 모두 '돌'로 쳐 죽여야 했다(레 20:10; 신 22:22). 이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에는 결코 악이 존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생생히 교훈하기 위함위었다. 사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악을 징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마 3:2).

성 경: [민5:22]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물]

(주); 네 창자에 들어가서 - '창자'(*, 메에)란 복부, 심장, 내장 등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말로서, 여기서는 구체적인 내장 부위(창자)를 일컫기 보다 단순히 배(복부)로 봄이 옳다. 따라서 결국 본문은 만일 의심받는 여인에게 죄가 있을 경우 저주의 쓴 물이 배에 들어가 여호와께서 일으키신 '해독'(19절)이 각 부위에 스며 들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시 109:18).

(주); 아멘 아멘 - '아멘'(*)은 어떤 사실이나 대상을 '지지하다', '확신한다'는 뜻의 히브리어 '아만'(*)에서 유래한 말로서, 곧 '참되다', '그대로 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의심받는 여인이 제사장의 저주 선언에 대하여 '아멘'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만일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제사장의 저주 선언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적 표현이다. 그런 견지에 이 말은 인간 앞에서의 맹세가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맹세이다(신 27장, '아멘 연구'). 한편, 여기서 '아멘'을 두 번 말한 것에 대해 혹자는 추정하기를, 여기 본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제사장을 그 여인에게 유죄일 경우의 저주 선언과 더불어 무죄일 경우의 축복 선언도 했다고 본다(28절). 그러므로 그 여인은 이 두 가지 경우에 대하여 각각 아멘 아멘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Matthew Henry).

성 경: [민5:23]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두루마리]

(주); 저주의 말을 ... 그 쓴 물에 빨아 넣고 -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의 말이 가득히 기록된 두루마리를 물에 빠는 것은 곧 그 두루마리에 기록된 저주 내용이 그 쓴 물에 옮겨진다는 의미가 담긴 상징적 행동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저주 곧 해독(害毒)이 그 쓴 물에 용해되어 물 속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는 이방종교나 미개인 사회에서 사용되는 어떤 신비적이고 주술적인 방법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통치를 시각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저주가 기록된 두루마리 자체로서는 선악을 분별하거나 죄인을 심판할 능력이 전혀없다. 단지 당시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여 그러한 가시적인 방법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열쇠가 쥐어져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망각한 채 단순히 하나님께서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한 가시적인 도구나 매체를 절대화 하거나 경외하는 일은 변형된 또 하나의 우상 숭배일 수 밖에 없다. 그런고로 우리의 신앙 대상은 하나님과 관련된 '그 무엇'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 '그 자체'여야 한다.

(주); 두루마리(*, 세페르) - '기록하다', '열거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사파르'에서 유래한 말로, 곧 '책', '조서', '두루마리' 등을 가리킨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문서 보관용 책자로 동물의 가죽 , 또는 파피루스(Papyrus), 토판(土版) 등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본문에서처럼 기록된 글자를 물에 빨아 넣는다는 말에서 추축해 보면, 여기서의 두루마리는 동물 가죽(특히 양피지)으로 제조된 두루마리(NIV, scroll)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굴림 막대가 있는 긴 것이 아니라(렘 36:2) 낱장의 문서로봄이 타당하다.

성 경: [민5:24]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두루마리]

(주); 여인으로 ... 마시게 할지니 - 재판 순서상 이 일은 먼저 소지물을 여호와께 바친 다음에(25,26절) 이루어졌다. 이처럼 순서가 뒤바뀐 이유는 저주의 글을 물에다 빠는 행동과 그것을 마시는 행동은 밀접히 연관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주);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 - 18절 주석 참조.

성 경: [민5:25]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두루마리]

(주); 먼저 - 원문상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의미상 첨가한 말이다.

(주); 의심의 소제물 - 15절 주석 참조.

(주); 여호와 앞에 흔들고 - 이는 지물을 요제(*, 테누파)로 드리는 장면이다. '요제'(搖祭)란 화목제의 희생 제물 중 가슴 부위를 드릴 때와 땅의 소산물을 드릴 때 제사장이 제물을 높이 들어 흔들다 내림으로써 진행되는 제사이다(출 29:24; 레7:30). 이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의미와 더불어 그 드린 것을 다시 제사장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성 경: [민5:26]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두루마리]

(주); 기념으로 - '표시하다', '기억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자카르'(*)에서 파생된 말이다. 여기서는 하나님께 모두 드리는 '증표로'라는 의미이다. 즉 비록 '한 움큼'만을 취해 단에서 불사른다 할지라도 그것은 곧 드리고자 한 예물 전체를 헌상(獻上)한 '증표'가 된다는 뜻이다.

(주); 한 움큼을 ... 소화하고 - 소제는 제물 전체를 대표하는 '한 움큼'의 곡식만 기념으로 취해진 후 불태워져 하나님의 몫으로 돌려졌고(레 2:2,9). 그 나머지는 태우지 않고 하나님께 (거제 또는 요제로) 드린 뒤 다시 제사장이 취해 자신의 몫으로 삼았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주); 그후에 ... 그 물을 마시울지라 - 의심의 판결 절차 가운데 제일 마지막으로 여인의 순결 여부를 가려주는 '쓴 물'을 마시게 되어 있다. 즉 최종 판결에 앞서 의심받는 여인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점검하고, 하나님과 단독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이 거룩한 백성의 일원이지만 지금은 의심받고 있는 비천한 처지임을 깊이 자각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준비가 끝난 후 의심받는 여인은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기는 표로 이 '쓴 물'을 마셔야만 했다.

성 경: [민5:27]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두루마리]

(주); 물을 마시운 후 - 유대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 경우 만일 그 여인에게 죄가 있다면 그 쓴 물의 효과는 당장에 독(毒)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여인은 심한 하복부 경련과 더불어 마침내 살이 썩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 여인과 관계한 남자도 그여인과 같은 시각에 같은 방식으로 죽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그 여인에게 죄가 없다면 그 쓴 물은 오히려 약(藥)이 되어 그녀의 생식 기능을 더욱 강화시켜 주어 결국 자녀를 잉태하게 된다는 것이다(Matthew Henry).

(주);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 - 18절 주석 참조.

(주); 배가 부으며 그 넓적다리가 떨어지리니 - 21절 주석 참조

(주);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 즉 간음한 여인이 받게 될 저주의 본보기가 되어 두고두고 그 백성 가운데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비단 죽은 그 여인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이 소속된 가정과 가문에도 크나큰 수치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자가 서로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자기 가족, 자기 가문, 자기 지파, 그리고 자기 나라 가운데서 그러한 저줏거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했다.

성 경: [민5:28]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두루마리]

(주); 정결하면 ... 잉태하리라 - 남편으로부터 그 순결을 의심받던 여인이 재판 후 마침내 순결한 것으로 밝혀지면 그녀는 혐의에서 완전히 해방될 뿐 아니라, 그동안 당했던 마음 고생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답이 그녀에게 주어졌다. 즉 그 여인은 '잉태'함으로써 지난날의 아픔을 가리고도 남는 보상을 받게 된다. 이 '잉태'는 (1) 의심했던 남편과의 사랑을 다시 회복했음을 나타내는 확실한 증거이며 (2) 하나님께서 그녀를 기억하시며 사랑하신다는 표시이고(삼상 2:1; 눅 1:58) (3) 하나님께서 그녀를 축복하셨다는 증거이다(시 127:3). 더욱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잉태를 확인하고 그녀에 대한 모든 의혹을 말끔히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주); 해를 받지 않고 - 이는(죄의 형벌로부터) '자유로울 것이고' (KJV, RSV-she shallbe free)로 해석할 수 있다.

성 경: [민5:29]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의심의 법(法)]

(주); 의심의 법 - '질투의 법'(NIV, law of jealousy) 혹은 '질투한 경우의 법'(RSV, law in cases of jealousy)이란 뜻이다. 이 법은 질투와 의심으로 인해 가정과 사회가 파괴되거나 부패되는 것를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법이다. 즉 이 법은 간통 혐의에 대하여 사실을 확인시켜 줄만한 어떤 물증이나 증인이 없는 경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폐단을 방지코자 마련된 법이다. 첫째는, 괜한 의심으로 인하여 한 인격 혹은 한 평화스러운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요 둘째는, 간교한 음부 음녀가 이스라엘 공동체의 기풍을 흐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폐단을 방지코자 하나님께서는 '신정(神政) 통치'라는 법적 배경과 '고대 사회'라는 시대적 배경하에서 본 의심의 법을 제정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이 법의 입법자는 하나님이시며, 이 법의 운용자 또한 하나님이시고, 이 법을 통한 판결자 역시 하나님이시다. 이것이야말로 이 '의심의 법'이 당시대 이방의, 모두 주술법(呪術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독특한 특징인 것이다.

성 경: [민5:30]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의심의 법(法)]

(주); 이 법대로 행할 것이라 - 여기서 '법'은 '의심의 법'을 말하는데, 곧 11-29절에 기록된 내용이다. 그것을 다시 간략히 정리하면 아래 도표와 같다.

재 판 절 차 관련성구

의심의 법으로 그 아내를 고발한 남편은 의심의 소제물을 11-15절

준비한 후 제사장에게 나아간다.

제사장은 그 여인으로 하여금 머리를 풀게 한 후 회막 문 16-18절

에 세운다. 그리고 그 여인의 두손에 의심의 소제물을 둔

다. 그런 후 제사장은 토기 그릇에 물두멍의 물을 담고,

성막 뜰의 티끌을 취해 그 물에 넣은 후 자신이 들고 그

여인 앞에 선다.

제사장은 '여호와께서...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게 하리라'

는 내용으로 구성된 저주의 맹세를 그여인으로 하여금 하 19-22절

게 하고, 또한 자신이 회중 앞에서 공식 선포한다. 이때

여인은 아맨 아맨으로 화답하여야 한다.

저주의 맹세가 끝나면 제사장은 그 글귀가 기록된 두루마 23절

리를 자신이 들고 있던 토기 그릇의 물에다 뺀다.

그런후 제사장은 여인의 손에서 의심의 소제물을 취하여 25,26절

요제로 드린 후 그 중 한 움큼을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

르는 의식을 치른다.

소제물 의식을 치른 후 제사장은 이제 끝으로 그 여인으 24절

로 하여금 두루마리를 빤 그 토기 그릇의 물을 마시게 한

다. 이로써 재판의 절차는 모두 마쳐진다.

한편 재판의 결과는 유죄와 무죄의 때를 따라 다음 두가지 27,28절

경우로 나타난다. 즉 유죄일 경우, 그 여인은 저주의 맹세

대로 치명적인 해독을 입게 된다. 그러나 무죄일 경우, 그

여인에게는 아무런 해도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조만간

잉태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성 경: [민5:31]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의심의 법(法)]

(주); 남편은 무죄할 것이요 - 진실을 밝히고 가정의 평화를 사수한다는(14절) 측면에서 비록 아내가 순결하다고 증명되더라도 아내를 의심했던 남편은 죄가 되지 않았다. 대신 '첫날밤의 의심 규례'(신 22:13-19)와 연관시켜 고찰해 볼 때, 이때 순결한 아내를 공연히 의심한 남편은 정신적 보상금으로 장인에게 은 100세겔을 주어야 했으며(신22:19). 또한 의심했던 아내를 평생 데리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어떠한 보상이 주어지더라도 남편으로부터 그 아내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부 생활의 최선책은 사랑과 이해와 용서이다.

성 경: [민6:1]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주); 여호와께서...일러 가라사대 - 이 말은 이하 제시되는 모든 말씀의 신적 기원성을 분명히 나타내는 말이다. 이처럼 성경은 여호와의 계시 말씀이 기록된 책이기에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고 오고 오는 성도들에게 참된 진리를 교훈해 주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민6:2]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주); 남자나 여자가 -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그들의 규범(율법)은 대부분 남성 우위의 내용들로 가득 메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당시 남자는 남녀 두 성(gender)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또한 언약의 체결자로서 하나님께 대한 책무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창 2:15-17; 3:11). 그런데 '나실인'(Nazirite)에 관한 규정을 다룬 본문에는 특이하게도 남자와 여자, 두 성(性)을 동일한 위치에 두고 같은 의무 조항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나실인 제도는 당시대의 종교, 사회적인 관행(慣行)을 초월하며 하나님과 인간의 자유로운 만남과 자발적인 헌신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특별법이라 할 수 있다. 여하튼 나실인제도에 나타난 바 이러한 남녀 동등이라는 파격(破格)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하나님 앞에서는 인격적인 면에서 결코 성(性)차별이 있을 수 없다(그러나 기능적 구별은 인정해야 한다, 창 2:23; 3:16-19). (2)각 개인은 누구에게도 예속됨이 없는 독립체로서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 (3)이러한 인간의 인식과 관습을 뛰어넘는 자유로움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의해서 가능하며, 그렇기에 이 자유로움은 인간의 권리 주장이 아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사용되어져야 한다.

(주); 특별한 서원 - 여기서 '특별하다'(*, 팔라)란 '크고 경이롭다', '구별하다', '어렵다'등의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뒤에 연결된 서원(*, 네데르) 곧 하나님께 대한 약속이 매우 성(聖)스럽고 가치 있는 것이며, 아울러 그 서원 이행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임을 암시한 말이라 볼 수 있다<30:1-8 강해, 서원과 맹세에 대하여>.

(주); 나실인(*, 나지르) - 이는 '구별하다'(separate), '분리하다'(set apart)란 뜻을 지닌 동사 '나자르'(*)에서 유래된 말로 곧 '구별된 자', '성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자', '세상과 분리된 자'란 의미이다. 즉 세상적 욕망을 끊어버리고 자신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헌신하기로 서원한 사람을 가리킨다. 이것은 나실인 제도가 정착되기 전의 구약 초기 시대에는 신성한 종교적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신적 권능을 부여받은 고귀한 신분(예:요셉)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창 49:26). 그런데 후대에 와서 나실인 서원 규약이 율법에 의해 규정되고 표준화 되면서 자신을 종교 도덕적으로 구별시켜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서원한 사람이면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일정 기간 또는 평생 동안 나실인이 될 수 있었다. 혹자는 이 나실인 제도가 애굽이나 당시 이방 국가의 금욕 서원 또는 머리털 봉헌 서원 등의 관습에 기인하고 있다고 주장하나(Spencer, Knobel), 근거가 없는 견해이다(Keil & Delitzsch, Vol. 1-3, p. 34). 한편 나실인 중에는 삼손(삿 13:5)이나 세례요한(눅 1:15)등과 같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에 따라 나실인이 되어 평생을 헌신한 자도 있었고, 사무엘처럼 부모의 서원에 따라 그렇게 된 자도 있었다(삼상 1:11). 물론 본장에서는 자원하여 나실인이 될 자들이 지켜야 할 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나실인의 서원 제도는 다른 모든 구약의 의식적인 율법이 그러하듯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최종 완성된다(마 12:1-8). 그러므로 이제 성도들이 하나님의 섬기는 것은 의식적 구별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방법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구별되어 새로이 거듭난 심령으로써이다(롬 7:5,6: 고후 3:6-11). 다음은 이 나실인 제도를 알기 쉽게 도표화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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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분 | 내 용 | 참 조 구 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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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 원 | 출애굽 제 2년 2월 초에 시내 광야에서 하 | 6 : 1 |

| | 나님이 모세에게 계시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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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적 | 하나님께 헌신,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구별 | 6 : 6 |

| | 시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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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격 | 남녀 구분없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 | 6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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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 수 | (1)포도나무 소산 및 독주를 금할 것 | 6 : 3, 4 |

| | (2)머리털을 깍지 말 것 | 6 : 5 |

| 사 항 | (3)시체 접촉으로 인해 부정케 말 것 | 6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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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지별 | . 자발적 서원으로 | 6:2; 행 18:18; |

| | | . 부모의 서원으로 | 삼상 1:11; |

| 종 류 | | . 하나님의 명령으로 | 삿 13:5,7; |

| +---------+-------------------------------+ 눅 1:15; |

| | 기간별 | . 일정기간 동안 | 삼상 1:11 |

| | | . 일평생 동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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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손, 사무엘, 레갑 족속, | 삿 13:5,7; |

| | | 삼상 1:11; |

| 실 례 | | 렘 35:6,7; |

| | 세례 요한, 사도 바울 | 눅 1:15; |

| | | 행 1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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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혼탁한 현대를 사는 성도에게 순수한 | |

| | 신앙 촉구 | |

| | (2)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을 드린 예수 그 | 히 7:26 |

| 교 훈 | 리스도를 예시 | |

| | (3)온전한 헌신은 철저한 경건생활로부터 | 약 1:27 |

| | 가능 | |

| | (4)자기 부인(deny oneself)없이는 하나님 | 마 16:24 |

| | 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음을 교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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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 직역하면 '여호와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구별하려면'(RSV, to separate himself to the Lord)이다. 이 말은 나실인의 헌신 대상 및 목적을 보여 주는 바 곧 그것은 순전히 '여호와를 위해서, 여호와께'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의 삶 전체를 드렸던 것이다. 그들은 일정한 장소나 업무에 국한되지 않고(출애굽 여정 동안에는 주로 성막 중심의 봉사를 했던 것 같다). 주어진 환경에서 하나님 나라 건설에 일익을 담당함으로써 자신의 서원을 구체화 했다. 한편 그들은 여호와를 위해 자신을 구별하는 일에 타인의 조언(助言)이 필요치 않않다. 다만 헌신을 받으실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바르냐 그렇지 못하냐가 문제일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을 구별한다는 것은 (1)항상 (2)하나님만을 바라보며 (3)속된 것에서 자신을 보존하는 거룩한 삶을 일컫는다.

성 경: [민6:3]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주);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 여기서 '멀리하며'(*, 야지르)란 말은 '분리하다'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나자르'(*)의 사역형 능동태(Hiphil)의 미래 구문으로서, 곧(앞으로 서원 기간 동안) '계속적으로 멀리하라', '철저히 멀리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실인은 모든 술을 절대 입에 대지 말아야 했으며 특히 포도 나무에서 얻어진 어떤 종류의 소산물도 먹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나실인의 나실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 제사장처럼(레 10:9) 마음의 청결과 절제를 유지하여 맑은 정신으로 여호와께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명령의 더 깊은 의미는 술로 대표되는 '모든 육적인 유혹'을 전적으로 멀리하라는 데에 있으며(렘 35:6, 7). 동시에 자신들의 '가장 큰 기쁨'은 오직 여호와께 두라는 데에 있다. 이 사실은 성경에서 포도가 상징하는 바를 알아보면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즉 포도는 기쁨, 축제, 풍요 등을 상징했으며(전 10:19; 요 2:1-11), 동시에 그 발효된 알콜 성분으로 인한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쾌락과 세상적인 사치(창 9:21; 사 28:7)를 상징했다. 그러므로 정신을 혼미케 하며 세상적 쾌락과 사치(삼상 25:18, 36; 호 3:1)를 조장하는 포도주를 멀리해야 하는 것은 구별된 자의 당연한 도리였다. 사실 하나님을 자신의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는 자에게는 술(세상)이 제공하는 기쁨은 관심 밖의 일이 된다. 한편 '독주'(*, 쉐카르)는 포도주와는 구분되는 기타의 독한 알콜성 음료로써 마시는 자를 혼미케 할 정도의 강력한 술(strong drinks)을 총칭하는 말이다(잠 20:1; 사 28:7).

(주); 포도주의 초 - 여기서 '초'(*, 호메츠)란 '신맛이 나다', '발효하다', '알록달록하다'는 뜻의 '하메츠'에서 유래한 말로써 '포도주'(*, 헤메르)보다 알콜 농도가 낮은 신 포도주였을 것이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빵을 먹을 때 찍어 먹는 양념으로 사용되곤 했다(룻 2:14).

(주); 독주의 초 - 역시 '포도주의 초'와 동일하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 마시지 말며(*, 로이쉐테) - '마시다'는 말은 단순히 '들이키다'는 뜻 외에 '술취하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앞의 '멀리하며'란 말과 동의어이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강조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주); 포도즙(*, 미쉐라트 아나빔) - 원문대로 해석하면 '익은 포도를 넣고 발로 짓이겨 뽑아낸 즙을 가리킨다(느 13:15; 욥 24:11; 사 5:2).

(주); 건포도 - 이것은 호화롭고 부유한 계층이 즐기던 식료품이었다(삼상 25:18). 물론 이것을 섭취한다 해도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상 숭배자들이 추구하는 향락을 상징하는 식물이기도 했다는(호 3:1) 점에서 구별된 자의 식물로는 적합하지 못했다.

성 경: [민6:4]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주);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 나실인의 제한된 생활 규범은 서원한 기간 동안 철저히 이행되어야 했다. 만약 이 규범을 어기면 그는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서원을 해야 했다(12절). 그러나 서원한 기간을 끝낸 후에는 그들도 포도의 각종 소산물을 먹을 수 있었다. 이것은 (1)나실인도 그의 서원 기간이 종료되면 평범한 일반 백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며 (2)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조건 일상의 생활까지 제한하실 정도로 지나친 분이 아님을 말해 준다. 이런 측면에서 하나님께서 오히려 나실인의 금지 규례를 서너 가지로 정하여 주신 것은 흔히 이방의 금욕 종교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몸을 자학(自虐)하는 갖가지 금욕 규례를 스스로 만들어 자신의 몸에 굴레를 덧씌우는 그러한 폐단을 방지코자 한 의도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주); 씨나 껍질이라도 - 혹자에 의하면 팔레스틴에서는 포도의 씨와 껍질을 이용하여 술이나 기타 음식물을 만들었다고 한다(Pulpit Commenrtary). 여하튼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포도 나무에서 나오는 하찮은 소산물일망정 금하라는 것이다. 즉 나실인들에게는 포도 나무의 모든 소산, 곧 그것으로 대표되고 상징되는 세상적인 모든 쾌락으로부터 '절대 성결'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 헌신된 자들은 조그마한 유혹의 가능성마저 배제해야 한다.

성 경: [민6:5]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주); 삭도를...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 여기서 '삭도'(*, 타아르)란 '발가벗기다', '없애다'는 뜻의 히브리어 '아라'(*)에서 유래한 말로서 주로 면도용 칼을 의미한다. 한편 나실인이 왜 머리를 깎아서는 안되었으며, 반드시 길러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랑게(Lange)는 나실인이 머리털을 기른 것은 생명의 고상한 힘, 곧 하나님의 주권과 승리의 화환(花環)을 상징하는 머리털(고전 11:3-7)을 길름으로써, 자신을 주장하는 자가 세상 권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 당시의 관념으로 머리털은 피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상징했기 때문에,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행위는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복종과 경외를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Fairbaim, Baumrarten). 한편 길게 자란 머리를 '힘과 충만한 생명력의 상징'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Keil). 왜냐하면 살아 있는 존재만이 머리카락을 생성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실인의 머리를 기른 것은 '자신의 여호와에 의해 조성된 그분의 소유로서 자신의 온 정력을 다 바쳐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표식으로써, 머리털은 곧 여호와를 위하여 쓴 관(冠)이라 생각할 수 도 있다. 실례로 평생 나실인이었던 삼손 같은 경우, 그의 머리털은 카리스마적인 신적(神的) 능력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삿 16:17). 결국 나실인이 머리를 깎지 않은 것은 (1)자기 위에 유일한 경배 대상임을 나타낸 것이며 (2)또한 하나님만이 자기 생명과 힘의 유일한 근원임을 인식하여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그분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주); 그는 거룩한즉(*, 카도쉬 이헤에) - 직역하면 '성결하게 되었으니', '봉헌 되었으니'라 할 수 있다. 즉 서원한 기간 동안 그는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의 몸은 더 이상 그의 것도 아니었고, 또한 여타의 주권자도 있을 수 없었다. 오직 그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기에 힘써야 했다. 이러한 요구는 오늘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벧전 2:9)으로 부름받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실로 오늘날 모든 성도들은 영적 나실인인 것이다.

(주);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 이는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표이다. 한편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대머리와 머리를 완전히 밀어버리는 것은 수치스럽고도 혐오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으며(왕하 2:23). 죄로 오염된 이방 문화의 부산물로 받아 들여졌다(레 21:5). 반대로 머리를 전혀 깎지 않고 자연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나실인과 같은 특정인에게만 허용되지 않았던 것 같다(겔 44:20). 사실 히브리인들은 애굽과 같은 고대 다른 이방 족속들과는 달리 수염과 머리를 깎는 관습이 있었다(Keil).

성 경: [민6:6,7]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주);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 - 나실인은 그 정한 기간 중에는 비록 가장 친한 친지들(부모, 형제, 자매 등)이 죽었을지라도 그 시체와 접촉해서는 안 되었다. 만약 나실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곁에서 어떤 사람이 죽었다면, 그는 정결케 하는 날 곧 제 7일에 머리를 깎아버리고 제 8일에 제사장에게 예물을 드려 제사를 드리게 함으로써 시체로 인한 부정을 제해야 했다(9-12절). 왜냐하면 주검(시체)은 결국 죄악이 빚어낸 결과이므로(롬 6:23) 의식상 부정하게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실인이 시체를 멀리해야 하는 것은 의미상 죄를 멀리해야 하는 것의 상징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이 구절을 제사장 성별 규례에 대한 기록인 레 21장과 비교할 때, 나실인은 심지어 대제사장에게 요구되는 사항까지(레 21:1-12) 자신들의 의무 조항으로 받아들여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마저 금지시킨 이러한 요구는,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나 부모, 형제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지 결코 부모, 형제와의 정리(情理)를 완전히 끊어버리라는 뜻은 아니다(마 8:21,22; 10:35-38).

(주);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 - 이 말은 '하나님께 자신을 성별하여 온전히 봉헌한다는 외적이고 상징적인 표시로써 깎지 않은 긴 머리를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결국 나실인의 긴 '머리카락'은 그 머리에 관유로 기름부음 받아 성별된 제사장의 머리(레 21:12), 또는 대제사장의 머리에 씌어진 '관'(冠)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출 29:6; 슥 6:11). 즉 나실인의 긴 머리털은 하나님의 소유됨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인식표였다. 한편 '구별하다'란 뜻을 지닌 히브리어 '나자르'(*)에서 '화관'(花冠)이나 대제사장의 '관'(冠)을 뜻하는 단어 '네제르'(*)가 파생된 사실(출 29:6; 레 21:12)은 위의 견해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Pulpit Commentary). 한편 '머리'가 부정케 된 것은 그의 전인격이 부정케 된 것을 상징했다. 그러므로 시체로 오염된 자는 구별된 자로서의 표식이자 전인격의 상징인 머리털을 깨끗히 밀어냄으로써 부패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었다(9절).

성 경: [민6:8]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주);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 즉 이 기간 동안 나실인의 몸은 더이상 자신의 유익이나 친지나 친구를 위해 사용할 수 없었다. 그 기간 동안 나실인의 몸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좇아 살아가야만 했다. 한편 유대 랍비들의 말에 의하면, 나실인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최소한 그 구별 기간을 30일 이상 되게 해야 한다고 한다(Matthew Henry).

성 경: [민6:9]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정결 규례]

(주); 홀연히 그 곁에서 죽어서 - 여기서 '홀연히'(*, 베페타 피테옴)란 '눈 깜박할 사이', '뜻밖에'라는 뜻이다. 이는 뒤이어 나오는 '그 곁에서'라는 말과어우러져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그 해결 방안이 준비되었다. 그러나 만일 나실인이 그 서원 기간동안 고의로 그 금지 규례를 어겼을 경우에는 아무런 해결책이 없었다. 아마 이때에는 그것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모독한 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엄한 형벌이 내려졌으리라 추정된다.

(주); 그 곁에서(*, 알라우) - 이 말은 '그의 옆에서 일어나다(발생하다)'로 볼수 있다. 즉 자신이 자발적으로 시체를 접촉하게 된 것이 아니라 자기 곁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보살폈거나 그 시체를 만졌을 경우를 일컫는다. 이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행된 주검의 부정에 대해서는 고의로 범한 부정과는 구분하여 그 해결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9-12절). 이는 행동의 결과 이전에 동기를 먼저 보시며인간의 약함을 깊이 이해하시는(히 4:15) 하나님의 자애로우신 조처라 할 수 있다.

(주);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거든 - 여기서 '머리(털)'는 전인격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나실인의 머리털은 자신이 지금 하나님께 구별된 자라는 사실을 가장 뚜렷히 인식시켜 주는 '증표'였기 때문이다(Keil).

(주); 몸을 정결케 하는 날 - 이 날은 시체로 인해 부정하게 된 날로부터 '제 7일째'되는 때였다. 특별히 이 날을 '정결케 하는 날'로 정한 것은 시체를 만지는 자는 '7일 동안' 부정할 것이라는 율법조항 때문이다(19:11). 즉 주검(시체)을 만진 자는 7일 동안은 어쩔 수 없이 부정한 자로 지내야 했으며, 7일 이후에야 비로소 속죄를 위한 각종의 제사가 허락되었다. 한편 여기서 '7'이란 숫자는 '완전수'로서, 부정케 된 자가 자신의 허물을 완전히 인식하고 통회할 수 있는 충분하고도 완전한 기간을 암시한다. 사실 죄(허물)에 대한 깊은 자각이 없이는 아무도 정결례나 제사에 임할 수 없었다. 이는 우리가 예수를 믿고 새 생명을 얻어 풍성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에 대한깊은 자각과 회개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주); 머리를 밀 것이니 - 나실인이 만약 시체로 인해 부정케 되었다면, 그는 '구별'과 '헌신'의 가시적 증표인 긴 머리를 밀므로써 자신의 부정을 없이 해야 했다. 한편 여기서 '밀다'(*, 갈라흐)는 말은 '면도하다', '대머리가 되게 하다', '황폐케하다'는 의미로써, 결국 머리털을 완전히 밀어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 머리를 민 것은 자신의 허물에 대한 슬픔과 통회의 외적 표시라 할 수 있다(사 22:12;렘 16:6; 겔 7:18). 그런데 모세 율법에서는 원래 이렇게 머리를 미는 것이 금지되었었다(레 19:27; 신 14:1).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그 죄악을 철저히 없이 한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특별 규례가 제정되었던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오늘 영적 나실인이 된 우리는 자신의 범죄에 대해 머리를 미는 대신 각자의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욜 2:13).

성 경: [민6:10]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정결 규례]

(주); 제 팔 일에 - 성경에서 '8'은 회복과 부활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여기서는 허물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함을 뜻한다(마 28:1). 즉 이 날은 나실인이 부정했던 흔적을 떨쳐버리고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에서 새롭게 교제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날인 동시에 새로운 헌신에의 결심을 다지는 날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날은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가 예수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나는 회복과 중생의 날을 예표하는 날이라 할 수 있다.

(주);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마리 - 비둘기는 노아시대(창 8:20)와 아브라함때부터 제물로 바쳐진 정결한 짐승이었다. 이 새들은 가난한 자들의 식용(食用)으로 사용되었으며, 경제적으로 빈곤한 자들의 제사 제물로 규정되었었다<레 14:22>. 여기서는 경제적인 측면의 가난보다 나실인이 자신의 허물로 인한 영적 빈곤함을 강조하기 위해 이 제물이 요구되었던 것 같다.

(주); 회막문에 와서 - 여기서 '회막문'은 성소 앞 곧 성막앞, 번제단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5:16>. 이처럼 부정을 입은 나실인이 회막문에 선 것은 부정하게 된 자신을 하나님께 보이며, 성결과 헌신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였다(레 14:30). 이처럼 모든 죄와 허물은 하나님 앞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성 경: [민6:11]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정결 규례]

(주); 속죄 제물로...번제물로 - '속죄제'는 자신이 저지른 허물에 대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의미에서<레 4:2-5:13>, '번제'는 또다시 하나님께 완전한 '헌신'을 다짐한다는 표시로 드려졌다<레 1:3-17>. 이처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자는 과거의 죄에 대한 철저한 청산과 더불어 현재와 미래의 삶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경건한 계획이 있어야 마땅하다.

(주); 그의 머리를 성결케 할 것이며 - 본절은 나실인이 9절에서 '머리를 민' 행위로 그의 허물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피흘림이 있는 제사'를 드림으로 비로소 속죄의 은총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처럼 "피흘림 없이는 사(赦)함이 없다"(히 9:22)는 규례는 구약 시대 속죄의 대원칙이었다<레 17:10-16 강해, 피제사의 원리>. 한편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 신약 성도들에게도 적용 된다. 즉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와 반성 정도로 그 죄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의 죄든지 예수의 보혈 공로를 힘입을 때에만 비로소 그 죄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엡 1:7).

성 경: [민6:12]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정결 규례]

(주);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 원문에는 '새로 정하고'라는 말이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지나간 날은 무효니라'는 말과 어우러져 문맥상 위의 말이 첨가됨이 마땅하다.

(주); 일년 된 수양을...속건제로 - 속건제(trespass offering)는 주로 하나님과 이웃에게 해(害)를 끼쳤을 경우 드리는 의무제로서 <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여기서는 시체로 인한 부정에서 용서받고, 부정을 입기 전의 상태로 회복되기 위해 드리는 제사라 할 수 있다<레 14:12>.

(주); 무효니라(*, 이페루) - 이 말은 '떨어지다', '멸망하다'는 뜻으로 이때까지의 '구별'이 헌신 기간에 전혀 계산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는 한 순간의 실수가 온전하고 경건했던 지난 날을 무익하게 만든다는 냉엄한 신앙 윤리를 제시한다(겔 33:13). 따라서 이제 나실인은 자신의 헌신 서약과 헌신기간을 다시 정함으로써 처음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했다. 이것이 신앙인의 진취성이다.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돌진하는 기상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날마다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빌 3:13, 14).

성 경: [민6:13]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서원기간 만료 규례]

(주); 회막문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 '회막'은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로서 서원 기간을 채운 자가 회막문에 가는 것은 곧 그가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을 의미했다. 이처럼 하나님께 구별된 자의 처음(10절)과 나중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므로 서원 기간을 채운 나실인이 회막문에 선 것은 곧 나실인으로서 자신의 삶의 시작과 과정과 결말이 하나님에 의해 진행되었음을 고백하는 신앙 행위라 할 수 있다(롬 11:36).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헌신코자 결심하는 자는 무엇보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Coram Deo)라는 의식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회막문에서'라는 말은 '하나님 앞'이라는 의미외에 '이스라엘 온 회중 앞에서 공개적으로'라는 의미도 지닌다. 즉 나실인이 서원 기간을 채운 후 회막문에서 각종 의식을 행하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의무 기간이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알리기 위해서이다. 즉 이런 공개적 행사를 통해 지금까지 제한된 이웃과의 교제 관계를 청산하고, 서원 전의 본래 상태로 되돌아가 서로 접촉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렸던 것이다.

성 경: [민6:14,15]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서원기간 만료 규례]

(주); 예물을 드리되 - 여기서 '예물'(*, 코르반)이란 '가까이 가져오다', '준비하다', '제공하다'는 뜻의 '카라브'에서 유래한 말로써 곧 여호와께 나아가는 자가 드릴 '봉헌물', '희생 예물'을 뜻한다(레 1:2).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 나아오는 자에게 결코 '빈 손'으로 나오지 말 것을 명하신 바 있다(출 23:15). 이는 당신이 물질적으로 빈핍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라, 당신을 만나러 오는 자로 하여금 그 은혜를 감사케 함으로써 당신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려는 목적으로 요구하신 것이다. 사실 예물은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다(마 6:21). 한편 본문에서는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였다. (1) 번제물 - 나실인이 정한 기간을 채움으로써 서원에서 자유를 얻었지만, 여전히 하나님께 헌신의 삶을 살아갈 것을 고백하는 표의 예물이다<레 1:1-17>. (2) 속죄 제물 - 헌신 기간 동안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지은 죄와 자신의 부족한 삶 전체를 고백하며 속죄의 은총을 바라고 드리는 제사 제물이다<레 4:1-5:13>. 사실 나실인의 생활이란 절대 무흠이 요구되는 것이었으나, 그 서원을 마치는 날 이처럼 죄를 속하는 제사가 요구된 것은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 할 자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롬 3:10). (3) 화목제물 - 헌신 기간 동안 자신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계속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기 원하여 드리는 제사 예물이다<레 7:11-36>. (4) 소제물 - 이 제물은 화목 제물과 함께 드려졌는데, 서원 기간 동안 헌신과 봉사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예물이었다<레 2:1-16>. 그리고 이 소제물과 더불어 전제물이 드려졌다. 전제물이란 전제(奠祭)의 방식으로 드리는 예물로서 곧 포도주나 기름등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전제물은 단독으로 전혀 드려질 수 없었고, 보통번제, 화목제, 소제 예물 등과 더불어 드려졌다(레 23:13). 한편 위의 각종 예물과 제사에 대해서는 레위기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를 참조하라. 소제(meal offering)와 전제(drink offering)로 바쳐질 제물을 열거한 15절의 내용을 보다 쉽게 번역한 공동 번역에는 "또 고운 밀가루를 기름에 반죽하여 누룩 없이 과자 모양으로 만든 것과 기름을 발라 누룩이 없이 만든 속 빈 과자 한 바구니를 곡식 예물과 제주(祭酒)와 함께 가져가 바친다"로 되어 있다. 이 모두는 여호와께 대한 감사의 표로써 드리는 일종의 감사 제물이다(레 7:12).

성 경: [민6:16]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서원기간 만료 규례]

(주);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고 - 번제보다 속죄제가 순서상 먼저 드려졌다<11절>. 그 이유는 인간에게 있어서 헌신과 감사 이전에 가장 먼저 요구되어지는 것이 바로 죄를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 있는 인간과 결코 교제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기에 앞서 죄 문제를 해결함이 마땅하다.

성 경: [민6:17]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서원기간 만료 규례]

(주); 소제와 전제를 드릴 것이요 - 엄밀히 구분하면 여기서 '소제'는 제사의 한 종류이고, '전제'는 제사 드리는 한 방법이다. 즉 전제는 제물을 '부어서'드리는 방식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예물로서는 주로 기름이나 포도주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제사 종류와 제사 방법을 엄밀히 구분하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혼용하고 있다. 한편, 이 소제와 전제는 단독으로는 거의 드려지지 않았고, 대부분 번제 또는 화목제와 더불어 드려졌다.

성 경: [민6:18]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서원기간 만료 규례]

(주); 그 머리털을 밀고 - 서원한 기간이 종료된 나실인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5절)와 각종 헌신에 대한 의무가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표시로써 머리털을 잘랐다. 물론 그가 머리털을 잘랐다고 해서 이제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치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생활 전체를 드리는 나실인의 까다로운 규제에서 벗어나 평범한 생활인으로 돌아감을 가리키는 것이다.

(주); 화목 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 감사와 교제로 상징되는 화목제에 불에 그동안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 자신이 특별히 구별되었음을 표시하는 긴 머리를<7절> 태우는 것은 서원 기간 동안의 구별된 삶 전체와 그 삶을 가능케 했던 사실을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돌린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동시에 그동안의 삶이 온전히 하나님께 열납되었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후부터 하나님과 더 나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원도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람의 삶 전체는 항상 '하나님께 영광'과 '하나님과 화목'이라는 대명제 아래 머문다(고전 10:31).

성 경: [민6:19]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서원기간 만료 규례]

(주); 삶은 수양의 어깨...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 - 나실인의 서원을 마무리 짓는 최종적인 제사로서 제사장은 화목제 예물(흠없는 수양 한 마리, 14절) 중 수양의 삶은 어깨 부위와 소제 예물(무교병 한 광주리와 기름 섞은 과자들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들, 15절) 중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레 2:4 주석 참조)를 취해 '요제'(搖祭, a wave offering)로 드려야 했다. 그리고 요제로 드린 이 예물들은 이미 화목제로 드린 '흔든 가슴과 든 넓적다리'(레 7:34 주석 참조)와 함께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졌다. 이처럼 나실인의 서원 종료 예물을 제사장이 취한 것은 그 나실인의 삶이 앞으로도 계속 제사장의 구별된 삶으로 이어져 그 속에서 하나님과 친교와 화목의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축복이었다(Keil & Delitzsch, Vol. 1-3, p. 40).

성 경: [민6:20]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서원기간 만료 규례]

(주); 여호와 앞에 요제로 - '요제'는 화목제 희생 제물의 가슴 및 곡식단과 첫이삭의 떡(본문에서는 무교병과 무교전병, 레 7:12)등을 앞.뒤로 흔들어 드리는 제사 방법이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그리고 본문에 언급된 '가슴과 넓적다리'는 이미 화목 제물 중 제사장의 것으로 구별된 것이다(레 7:30-34). 한편 요제로 드려질 제물(19절)은 먼저 그것을 드리는 나실인의 손 위에 올려지며, 다음으로 제사장이 제물을 든 나실인의 손을 받쳐들고 흔들므로써 제사가 진행된다. 이같은 행동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하고 상징한다. 즉 (1)나실인의 헌신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받으셨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2)제물을 앞으로 내밀었다가 다시 거두어 들이는 이 요제의 행동은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을 다시 제사장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는 사실을 상징화한 행동이다. (3)그리고 나실인이 바친 풍성한 예물이 하나님의 대변자인 제사장들에게 돌려져 그들의 음식이 되게 한것은 나실인이 하나님과 거룩하고도 풍성한 교제를 나누게 되었음을 상징하는 행동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온전한 봉사를 마친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다. 이처럼 구약 시대에 나실인이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교제를 나누는 이러한 간접적인 헌상(獻上)과 교제는 이제 신약 시대에 영적 나실인 된 우리 성도들에게 이르러서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직접적인 봉헌과 교제를 이룰 수 있게 되었는 바 이것은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되는 날 가장 완전한 모습으로 이뤄질 것이다(계 21:1-4).

(주); 흔든 가슴과 든 넓적다리 - 레 7:34 주석 참조.

(주); 그 후에는...마실 수 있느니라 - 나실인이 나실인으로서의 기간 동안에는 엄격히 금지된 포도주를 마시는 이 의식은 하나님께서 나실인의 서원 종료 제사를 열납하셨음과 그의 헌신 기간이 완전 종료되었음을 확증하는 표시이다. 한편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때 나실인이 마셨던 포도주는 희생 제물과 더불어 드려졌던 전제물(15절)의 일부였던 것으로 추측된다(Keil, Winterbotham).

성 경: [민6:21]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서원기간 만료 규례]

(주); 이 외에도 힘이 미치는대로 - 즉 나실인의 법(13-20절)에 지정된 것 외에 나실인이 마음의 감동을 받은 대로 하나님께 특별 예물을 드려도 좋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것은 의무제가 아닌 '자원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힘이 미치는 대로'란 곧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1) 인간의 형편과 처지를 깊이 이해하시는 하나님의 자애로우신 성품을 반영한 조처이더 (2) 감사하는 마음과 자원하는 심령에 의해 드려진 예물만이 참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출 36:3). 실로 하나님은 예물보다 그것을 드리는 인간의 마음을 더욱 감찰하신다(삼상 15:22). (3) 당신께 감사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억제시키거나 금지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교훈한다. 한편 이 조항으로 인해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자가 '나실인의 법'을 수행할 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동료들이 자원제의 제물을 대신 내어주는 관례가 생겨났다고 한다(Josephus, Antiquities, XIX, 6,1; 행 21:24).

(주); 그 서원한대로...따라 할 것이니라 - 이는 '자신이 자발적으로 약속한 것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서원'이 지니는 필수 이행성을 강조한 표현으로써, 비록 서원한 것이 서원자에게 해로울지라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이 서원의 대전제 조건이다(시 15:4), <30:1-8 강해, 서원과 맹세에 대하여>.

성 경: [민6:22]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이스라엘을 위한 축복]

(주);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릴 축도는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자 선지자인 모세를 통해 제사장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그 축도는 오직 이스라엘의 제사장인 아론과 그 아들들만이 할 수 있었다. 즉 모세와 아론은 각각 그 한계를 지녔던 것이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이르러 구약 시대의 모세와 아론의 역할을 홀로 온전히 감당할 거룩한 자가 나타났으니, 그는 곧 우리의 영원한 왕이자 선지지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영적 이스라엘 백성된 우리 성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 선언을 받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성 경: [민6:23]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이스라엘을 위한 축복]

(주);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 하나님은 당신의 축복을 전달할 자로 당신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인 제사장을 선택하시고 부르셨다. 그러므로 아래 언급된(24-26절) 축복을 선언할 권한은 오직 아론과 그 아들들, 곧 제사장들에게만 있었다. 그러나 그 축복은 제사장 스스로의 권위에 기초하지 않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권위에 의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제사장은 매 축복의 내용을 선언할 때마다 '여호와는'(*, 예호와)이란 말을 전제한 후 각종 축언을 베풀어야 했다. 따라서 제사장들의 축복권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임하신 그 특별한 권위에 전적 의존하고, 나아가 그 권위로 말미암아 그 축복의 내용이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후일 유대 랍비들은 다음과 같은 경고를 그 백성들에게 들려 주고 있다고 한다. 즉 '당신은 행여 이 초라한 제사장이 나에게 무슨 축복을 베풀 수 있겠는가?라는 말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에게 복을 주시는 자는 그 제사장이 아니라, 그 제사장을 통해 말씀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Matthew Henry).

(주); 축복하여 - '축복하다'(*, 바라크)는 말은 '하나님을 송축하다', '무릎을 꿇다', '은혜로 복주다', '풍성하게 하다'란 의미 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 말은 주로 신적인 복의 선포와 그 선포가 지니는 긍정적이고 풍성한 영향력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물론 신(神)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채 개인이나 공동체에 '축복'이 선포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인간을 복(福)되게 하는 근원이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점에서, 그 모두는 하나님의 신적 권위 아래 놓인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말의 용례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한편 이 말의 용례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즉 (1)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善)을 베푸심으로써 그들에게 제공되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와 풍성함을 가리킬 때(신 7:12-16)와 (2)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한 자가 타인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고자 할 때 기원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창 14:19). 본문에서는 위의 두 의미를 모두 포함하여 사용되고 있다<신 28장 강해, 성경에 나타난 복의 의미>

성 경: [민6:24]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이스라엘을 위한 축복]

(주); 여호와는 - 본 축도문(24-26절)에 이 말이 세 번 언급된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는 주체자는 바로 '여호와'라는 사실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축도문의 시적(詩的) 운율상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구속사적으로 볼 때 본 축도문에 '여호와'란 신 명칭이 세 번 언급된 것은 (비록 그것이 당시대의 모세와 아론 및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는 가리워져 있었을지라도) 분명 삼위(三位)로 존재하시되 일체(一體)로 역사하시는(요일 5:8) 삼위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음에 틀림없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그런 견지에서 혹자들은 본 축도문에 나오는 '여호와'(*, 예호와)란 신 명칭의 악센트가 각기 달랐다고 한다(Mattthew Henry's Commentary).

(주); 복을 주시고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건국자이시자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계약자로서 그들에게 '복'(*, 베라카), 곧 현세적이고 내세적인 모든 복을 주시기 원하셨다<신 28장 강해, 성경에 나타난 복의 의미>. 그러므로 이 '복'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과 지혜로 볼 수 있을 것이며(시 16편). 또한 물질적인 번영과 많은 자녀 및 건강과 장수 등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창 24:1; 시 127:3). 이처럼 하나님은 선택하시고 부르신 당신의 백성의 필요를 따라 아낌없이 풍성한 영육간의 복을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진정 복의 근원자이시다.

(주); 지키시기를 원하며 - 여기서 '지키다'(*, 솨마르)는 말은 원래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란 뜻이다. 따라서 이 의미가 발전하여 '세심하고도 철저한 보호와 보존', '주의 깊에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가짐'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의 보호(시 37:28)뿐 아니라 가난과 재앙과 각종 질병 및 전쟁으로부터의 보존(시 33:19; 76:3)까지를 의미한다. 사실 향후 죽음의 땅 광야를 행진해야 하며 사나운 이방 세력과 맞부딪쳐야 하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실제적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 나라를 목적하고 광야 같은 세상을 행진해 가야 하는 우리에게도 간절히 요청되는 바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 없이는 이 세상에서 한시라도 쓰러지지 않을 수 없는 연약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성 경: [민6:25]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이스라엘을 위한 축복]

(주);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 여기서 여호와의 '얼굴'이란 표현은 그분의 '성품'과 전인격을 상징하는 신인동형동성론(Anthropormophism)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가리우거나 감춘다는 것은 인간 편에서는 절망과 죽음을 의미한다(레 17:10; 신 31:17,18; 욥 13:24; 욜 2:6). 반면에 그분의 '얼굴'이 한 개인 또는 어떤 공동체를 향하여 돌려진다는 것은 바로 생명과 구원과 희열이 그위에 찬란히 비췬다는 것을 의미한다(Keil, Baumgarten, Pulpit Commentary; 시 27:1; 44:3; 잠 16:15). 그러므로 하나님의 얼굴 방향은 곧 인간 생존의 열쇠라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간직한 채 지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 백성들에게 당신의 그 사랑과 은혜와 보호와 평강의 얼굴을 항상 돌리시겠다고 축복하고 계시는 것이다. 한편 본문의 '비취다'(*, 오르)는 '영광스러운'(glorious)이란 뜻을 포함하고 있는 말로써, 곧 당신의 영광스러운 광채가 연약하고 보잘것 없는 인간에게로 향하여 짐을 의미한다. 실로 캄캄한 곳에서는 미미한 촛불 하나가 매우 값진 역할을 감당하는데, 하물며 의와 영광의 태양이신 하나님께서 어둡고 지친 우리 영혼에 찬란한 빛을 비추시는데 어찌 벅찬 감격과 생의 희열이 솟아나지 않겠는가?

(주);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그에게 당신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이다. 여기서 '은혜'(*, 하난)란 본래 '구부리다', '아랫사람에게 몸을 굽히다'는 의미였으나 이것이 발전하여 '은혜를 베풀다', '긍휼히 여기다'는 의미가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조건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과 긍휼과 자비라 할 수 있다. 그런고로 오늘날 우리는 바로 이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왔고, 또한 살아가고 있으며 그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엡 2:4,5).

성 경: [민6:26]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이스라엘을 위한 축복]

(주);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 여기서 '향하여 든다'(*, 나사)는 말은 '받아 들이다', '열망하다', '공급하다'는 뜻을 지닌 말로써 곧 '열정적으로 바라보다', '계속해서 주시하다'는 의미이다. 결국 이 말은 하나님께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베푸심'을 가리킨다. 이것은 25절의 '비취사'란 말보다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묘사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귀중한 대상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주의깊게 계속 주시함을 뜻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 된 자는 하나님의 그러한 돌보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그 어떤 위협과 도전도 능히 극복할 수 있으며 아울러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롬 8:31-39).

(주);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 여기서 '평강'(*, 솰롬)은 '안전', '행복', '건강', '번창', '평안', '우정' 등의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전쟁(불화)이 없는 상태', 곧 적막한 평화를 의미하지 않고, 기쁨과 생(生)의 환희가 샘 솟듯 솟아 오르는 역동적인 평화를 가리킨다(사 55:12).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평강'은 모든 기쁨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으로서 곧 하나님의 축복의 최고 절정을 이루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평화를 선포한 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평화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죄와 불의를 멸하시고, 그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억제할 수 없는 참 평강을 맛보게 하셨다(사 52:7; 53:5; 행 10:36; 골 1:20).

성 경: [민6:27]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이스라엘을 위한 축복]

(주); 내 이름으로 -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을 대변하는 것으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무엇을 명하는 것은 곧 자신의 전 의지와 인격을 내걸고 명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내 이름'이란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해 주셨을 뿐 아니라(출 3:14). 축복 선언(24-26절) 중에도 거듭 언급하셨던 '여호와'(*)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렇게 절대 거룩한 당신의 이름을 전제하여 제사장들로 하여금 축복을 선언하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전 인격과 명예를 걸고 그 축복 내용을 그 백성에게 반드시 이루실 것을 표명하셨다. 또한 이것은 오직 당신의 이름에 의해서 그 축복이 선포될 때만이 그 속에 담겨진 내용이 유효하게 작용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고로 진정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이름이 빠진 축복은 공허한 주문(呪文)에 불과하다.

(주); 내가...복을 주리라 - 이는 여호와께서 유일한 복의 주체자가 되심을 분명히 선언하는 구절이다. 즉 비록 제사장에 의해 축복이 선포되지만, 진정한 선포자요 수여자(授與者)는 바로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이 축복은 가장 완전하며 또한 모든 이들에게 진정으로 유익이 되는 것이다.

성 경: [민7:1]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족장들이 바친 성막 운반 기구]

(주); 장막 세우기를 필하고...구별한 날에 - 장막은 출애굽 제 2년 1월 1일에 완성되었다(출40:17). 그러므로 카일(Keil)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석가들에 의하면 바로 그 날 이후 기름을 발라 구별하는 성막 봉헌식이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본장은 그러한 기사가 언급된 레 8:10 부분에 바로 연결되어야 하나, 시내산 율법 내용이 산만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간적으로는 모순이 되는 인구 조사(출애굽 제 2년 2월 1일 - 민 1:1)를 기록한 부분 뒤에 본성막 도유(途油) 사건과 족장들에 예물 봉헌식 사건을 취급하였다고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T. the Pentateuch, Vol. I-iii. pp. 42-43). 그러나 출 40장의 성막 완공과 레 8:10 사건을 비교하여 보면 성막을 세운 바로 그날부터 성막에 기름을 발라 구별한 것이 아니라, 성막 완공 후 얼마간의 시간이 경과한 어느 날 그 일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Lange). 이런 점에서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성막 봉헌식 날을 성막이 완공되고 백성의 진영이 모두 갖추어진 날, 곧 출애굽 제 2년 2월 8일 경으로 추측한다. 이 견해는 민 10:11의 시내산 출발 날짜(출애굽 제 2년 2월 20일)에서 족장들이 예물 드린 기일(12일)을 역산(逆算)한 시간이다. 사실 성막에 기름을 발라 구별하는 일은 성막봉현의 의미로서 성막 인준의 최종 단계일 뿐이지 반드시 성막이 완공된 그날 실행되여야 했던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시내산 출발 직전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공식적인 제사 행위가 본장에서 처럼 장엄하게 실시된 흔적이 없다. 그리고 본장에 언급된 족장들의 명단이 출애굽 제 2년 2월 1일 실시된 인구 조사와,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 직접 임명하신 그 족장 명단(민 1:1-15)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 아울러 족장들이 바친 예물들이 광야 행군시에 긴요하게 사용되었다는 점<3절>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본장에 언급된 바 족장들의 예물 봉헌식은 시내산 출발 직전에 있었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이 견해만을 고집할 수 없는 것은, 성경 기록은 그 특성상 연대기적 사건 순서(chronological Sequence of events)를 초월하여 그 내용에 따라 구성되는 수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총체적으로 보아, 성막 건립이 필요한 때(출애굽 제 2년 1월 1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을 떠난 때(출애굽 제 2년 2월 20일) 사이의 약 50일 동안 제사장 위임 사건, 나답과 아비후 사건, 유월절 준수 사건 등이 일어났다고 보면 틀림없다. 물론 이 사이에 레 1:1로부터 민 10:10에 나타난 각종 규례들이 모세에게 주어졌으리라는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주);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 사람이나 사물들에게 기름(관유)을 바르는 것은 종교 의식상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즉 (1) 그 대상을 세속적인 것과 구별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삼는 다는 의미와 (2) 그 대상에게 신적 권위를 부여한다는 의미이다(출 40:34,35). 그러므로 한번 기름 발리워진 대상은 영원히 세장적인 일에 사용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해야 했다. 그러므로 본성적으로 악한 자연인과 아무런 종교적 가치가 없는 사물을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련시켜 그분의 거룩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 '기름 바름'이 필수적인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제사와 관련된 각종 사물들, 즉 제단(10절; 출29:36)과 제단에 딸린 도구들(출 40:10), 성막(레 8:10)과 성막에 딸린 기구들 및 증거궤(출 30:26)에는 반드시 기름을 발라야 했다. 한편 이러한 목적에 사용되는 이 기름, 곧 관유(灌油, 출 30:22-33)는 그 의미하는 바에 따라 성령과 성령의 사역을 비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렘 31:14). 이는 구약 시대 각종 모형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아 공식적으로 성별되어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헌신하신 사실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마 3:16; 행 10:38). 실로 성경에 제시된 각종 성물(聖物)들이 그 자체로서 신적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기름 바름'이라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준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오날날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사역과 예배와 헌신 역시 오직 성령의 감동, 감화를 통해서만 그 참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행 1:8; 고전 2:4-13; 요일 2:27).

성 경: [민7:2]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족장들이 바친 성막 운반 기구]

(주); 이스라엘 족장들 - 이스라엘 각 지파의 실질적인 지도자들로서, 인구 조사 때에 감독의 직임을 받은 자들이다<1:4-15>.

(주); 두령 - 1:4 주석 참조.

(주); 예물을 드렸으니 - 각 족장들은 자신과 자신의 지파를 대표해서 하나님께 봉헌예물을 드렸다. 하나님은 당신께 나아오는 자가 '빈 손'으로 오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 이유는 결코 하나님께서 재물을 탐하시기 때문이아니라, 구약 시대의 특성상 예물 속에 그 마음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속사적으로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은 장차 영원한 예물이 되실 그리스도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자가 그 경제적이 형편에 따라 자원하는 심정으로 당신께 예물을 정성껏 바칠 때 하나님은 그의 그러한 심령을 기쁘게 열납하시는 것이다<신 16:16,17>. 한편 본장에 나타난 바 족장들의 솔선 수범하는 헌신을 통해 우리는 지도자의 모범이 가져다 주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교회 지도자는 섬김받고 주어진 지위를 향유하기 위해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지위와 능력을 많은 성도들의 유익과, 특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사용하도록 선택된 것이다(요 13:12-17).

성 경: [민7:3]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족장들이 바친 성막 운반 기구]

(주); 덮개 있는 수레 여섯과 소 열 둘 - 여기서 '덮개 있는 수레'(*, 에겔로트차브)는 70인역(LXX)에서는 '훌륭한 마차'(*, 하막사스 람페니카스)로, 벌게이트(Vulgate)역에서는 '지붕이 있는 마차'(plaustra tecta)로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기독교 사가(史家) 유세비우스(Eusebius, A.D.260-340)는 '두 개의 바퀴가 달린 수레'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원문을 통해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은 '둥근 덮개'(*, 차브)가 있는 '소가 끄는 수레'(*, 에겔로트)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그 당시에 사용하던 '들 것'과 같은 바퀴 없는 수레인지 아니면 바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광야라는 특수 지형과 운반해야 할 기구가 상당히 무거운 것이었다는 점에서 '바퀴가 달린 수레'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한편 이 수레는 소 두마리가 끄는 것이었다(예물 중 수레와 소의 비율이 2:1인 점에 유의하라).

(주); 족장 둘에 수레가 하나씩이요 - 족장들은 각 지파와 자신의 형편에 따라 많이 또는 적게 헌상할 수도 있었겠으나, 여기서는 모두 동일한 양의 예물을 바쳤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수 있다. (1) 봉헌 예물이 헌상되기 전 하나님께서는 미리 각자의 마음을 감동 감화시키사 상호 아름답게 협력하도록 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모든 인간 헌신의 근본적인 출발은 하나님께로부터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물을 무리하게 강요하거나 수탈하시는 분이 아니라, 정성된 예물을 받으시는 분이시며, 그를 통해 봉헌자의 영육을 더욱 풍성케 하시는 분이심을 시사한다(잠11:25; 빌 4:17). (2) 하나님은 각 족장들에게 동일한 관심을 보이시며 동일한 헌신을 요구하셨다. 이는 마치 오늘날, 모든 주의 일을 맡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공평하게 미치는 동시에 또한 각각에게 최선의 충성이 요구되는 것과 같다. (3) 합심하여 드린 예물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을 위해 크게 사용된다(고후 8:1-6).

(주); 장막 앞에 드린지라 - 여호와의 상징적 임재 처소인 '장막' 앞, 곧 번제단 있는 곳에 예물을 가져왔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 표현은 족장들이 그 헌물을 '여호와께 드린지라'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다.

성 경: [민7:5]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레위인에게의 분배]

(주); 레위인에게 주어 - 하나님께 헌상된 예물은 주로 제사장들의 생계용으로 할당되었다(레 2:3; 7:6,8,14,15,28-34). 그런데 여기서는 특별히 제사장의 직무를 도와 성막 일을 담당할 레위인들에게 배당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은 하나님의 자의(自意)에 의해서 사용되며,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에게 제공되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여진다는 사실을 기르치고 있다(고전9:11-14).

(주); 각기 직임대로 - 즉 '레위인들 곧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이 맡은 직무대로'라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이 맡은 각각의 직무의 경중(輕重)을 깊이 이해하시고 그들에게 합당한 선물을 제공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일을 맡기실 뿐아니라,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시는 분이시다(왕상 3:6-13). 그러므로하나님은 결코 비이성적이거나 무모한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인간이 처한 환경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시며(히 4:15), 모든 일에 질서와 평화를 존중히 여기시는 분으로서 초합리적일지언정 결코 비합리적이시지 않다.

(주); 회막 봉사에 쓰게 - 이처럼 하나님은 회막의 완공되자 그 회막의 이동을 위한 대책까지 마련하신 지혜로우신 분이시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의 만남의 처소를 개설하셨고 그곳의 운용까지도 주도하셨다. 이는 결국 신앙 생활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니 하나님이심을 시사한다. 아울러 하나님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일에만 사용되어야한다는 신앙 원칙을 가르치고 있다. 만약 하나님의 소유를 인간의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으로써 큰 죄악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건강, 시간, 재산, 능력 등)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소유로서(롬 11:36), 우리 자신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되며, 항상 청지기 의식(stewardship)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벧전 4:10,11).

성 경: [민7:7]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레위인들에게의 분배]

(주); 게르손 자손들 - 이들은 성막의 앙장들과 덮개 등 주로 덮고 치는 장(帳) 부분을 맡았다(4:25,26). 따라서 그들은 주로 성막의 뼈대가 되는 기둥과 널판 및 받침 등의 무거운 부분을 맡았던 므라리 자손들에 비해 수레와 소들이 덜 필요했다(4:21-33). 따라서 그들은 여섯 대의 수레 중 2대, 열 두 마리의 소 중 4마리를 할당받았다. 이것은 므라리 자손의 절반 수준이었다.

성 경: [민7:8]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레위인들에게의 분배]

(주); 므라리 자손 - 이들은 성막 부품 중 성막의 골격을 이루는 널판, 기둥, 띠, 받침, 말뚝 등을 운반하는 직임을 맡았다(4:31,32). 이것들은 매우 무거운 부품들이었기 때문에 가장 많은 운반 도구가 필요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족장들이 바친 예물(수레 6대. 소 12마리) 중 2/3에 해당되는 수레 4대와 소 8마리가 할당되었다.

(주); 이다말로 감독케 하였으나 - 4:28 주석 참조.

성 경: [민7:9]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레위인에게의 분배]

(주);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 고핫 자손들은 성소에서 가장 중요한 기물, 곧 지성물을 맡았다(4:5-15). 그래서 그들은 성막 이동시 그 성물(聖物)을 '어깨로 메어' 운반해야 했다<4:18-20>. 한편, 팔레스틴 주변국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던 이스라엘 왕정 초기에 다윗은 위의 지성물 운반법을 무시한 채 법궤를 옮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산 적이 있다(심하 6:1-11). 여하튼 지성물을 책임졌던 고핫 자손에게는 '어깨' 외에 다른 수송 수단이 필요치 않았으므로 족장들이 바친 예물은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선물이 주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은 가장 명예롭고 거룩한 일을 맡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바로 그 직임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독특하고도 풍족한 은혜를 골고루 채워주신다(고후 12:9).

성 경: [민7:10]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레위인에게의 분배]

(주); 단의 봉헌(奉獻) - 제단을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여 바칠 때에 공식적으로 드리는 최초의 제전(祭典)을 가리킨다. 이 제전은 거룩한 기름, 곧 관유<출 30:22-33>와 희생의 피를 바름으로써 절정에 이른다(레 8:10,15). 그와 더불어 백성들의 각종 자발적인 예물들이 단 앞에 바쳐짐으로써, 그 제전은 온 백성이 경하(慶賀)하는 기쁨의 의식(儀式)이 되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봉헌'(*, 하누카)이란 말 속에는 새 건축물을 '헌납하다'는 의미 외에 '신적(神的) 권위를 부여하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말의 원어 '하누카'는 후일 수전절(修殿節)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레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 한편 애굽과 같은 이방 종교 문화에서는 이러한 의식이 사악한 세력을 축출하는 제식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러나 성경의 봉헌은 이러한 축사적(逐邪的)인 의미는 전혀 없으며 오직 '거룩한 헌납', 곧 하나님께 그 소유권을 공식 이전하는 거룩한 의식인 것이다. 한편 가나안 정착 이후 성전 완공 때(왕상 8:63; 대하 7:5)와 단의 축성(대하 7:9), 그리고 예루살렘 성벽 완성시(느 12:27)에 이 '봉헌'예식이 치뤄졌으며, 그때마다 전국가적인 축하 행사와 성대한 예식이 치뤄졌다. 여기서 발견하듯이 '봉헌'이란 단순히 종교적인 건축물의 헌납과 구별만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까지 이르는 포괄적인 의식이었다. 그러므로 이는 자신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는 신앙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실로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며 그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참 봉헌의 정신이라 할 것이다(롬 11:36).

(주); 예물을 가져다가...단 앞에 드리니라 - 각 지파를 대표하는 12족장들은 단을 구별하는 날 일제히 자신들의 예물을 번제단 앞으로 가져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각각의 에물을 실제적으로 드린 날은 11절 이후로 부터 83절까지 나타나는 바처럼 12일 동안 각자에게 할애된 날이었다<11절>.

성 경: [민7:11]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레위인에게의 분배]

(주); 여호와께서...이르시기를...하루 한 사람씩 - 12일 동안의 예물 헌납에 관한 내용을 지시하신 분은 하나님이이셨다. 즉 하나님은 한꺼번에 혼잡스럽게 드려지는 예물을 원치 않으셨으며, 질서 속에서 경건하고도 엄숙하게 진행되는 예식을 원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1) 하나님의 질서를 사랑하시는 분임과(고전 14:33) (2) 각각의 헌신을 동일하게 인정하시는 공평한 분이심을 발견할 수 있다.

성 경: [민7:12]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유나 족장 나손의 예물]

(주); 제 일 일에 - 하나님께서 단의 봉헌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신 첫 날을 가리킨다. 한편 제사의 순서는 성막을 중심으로 동쪽에 배진한 유다 지파로부터 시계방향으로, 곧 행군 대형으로 실시되었다(2:3-31). 이것을 보더라도 이 봉헌 예식은 인구 조사 이후에 이뤄진 것임을 알수 있다<1절>.

(주); 유다 지파 -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었으나 야곱의 첫째 아들 르우벤의 잘못(창 35:22; 49:3,4)으로 인해 르우벤 대신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장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의 후손들도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에 서서 장자 지파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1:20-46). 한편 여기서 제사드리는 순서와 행군 순서가 동일한 것은(2:1-34), 신정국(神政國) 이스라엘의 면모를 잘 드러내 주는 것으로서, 혈통적인 측변보다 영적인 측면이 강조된 것임을 보여 준다. 특히 유다 지파의 부각은 이 지파를 통해 오실 예수 그리스도(메시야)의 지위와 사역이 어떠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인도자시며, 왕이실 뿐 아니라, 부활의 첫 열매로서(고전 15:23), 우리의 유일한 대표자가 되신다<롬 5장 강해, 대표 원리>.

성 경: [민7:13]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유다 족장 나손의 예물]

(주); 그 예물 - 즉 '단의 봉헌'을 위해드린 예물(10절)을 가리킨다.

(주); 성소의 세겔 - 여기서 '세겔'은 당시 무게로 측정되던 화폐 단위였다. 이것은 크게 성소용 '성소의 세겔'(출 30:13; 레 27:3)과 궁중용 왕의 세겔은 일반 세겔의 두배가 된다. 그리고 1세겔은 대략 11.4g의 무게에 해당된다. 자세한 내용은 3:47 주석을 참조하라.

(주); 일백 삼십 세겔 중 은반 - 여기서 '은반'(*, 카아레트 케세프)이란 은으로 만든 사발, 또는 큰 접시를 가리킨다. 이것은 진설병을 담는 '대접'(*, 케아라)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출 37:16). 그리고 그 은반의 무게는 130세겔인데, 1세겔(shekel)을 11.4g으로 볼 때 약 1.5kg 정도의 무게를 지닌 것이다.

(주); 은바리 - 여기서 '바리'(*, 미즈라크)는 일종의 대야 또는 종지(basin)로서 재나 포도주를 담는 성소의 기물 증 하나였던 것 같다(출 27:3).

(주); 소제물 - 이 예물은 잘 빻은 곡식 가루를 기름, 유향과 함께 드리는 예물로서 곧 봉사와 충성을 상징하는 예물이다<레 2:1-16>.

(주); 기름 섞은 고운 가루 - 이 예물이 지니는 상징성은 성령에 의한 봉사, 곧 성령 안에서 그분의 인도를 통한 봉사를 상징한다<레 2:1>. 성경적 의미상 기름(Oil)은 대체적으로 성령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성 경: [민7:14]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유다 족장 나손의 예물]

(주); 금 숟가락...향을 채웠고 - 여기서 '숟가락'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프'(*)는 원래 오목한 '손'이란 뜻으로서 숟가락 외에 '손잡이 달린 오목한 그릇'을 뜻하기도 한다. 본절에서는 이 안에 '향'을 채웠다는 점에서 '숟가락'이란 의미보다 '오목한 그릇'으로 봄이 옳을 것이다(출 25:29). 한편 '향'이란 분향단에 쓰일 거룩한 향으로서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에 유향을 섞어서 제조하였으며(출 30:34), 후대에 와서는 더욱 복잡한 제조 방법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즉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약 13종의 재료를 배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지성소 휘장 앞의 분향단에서 태워져 그 냄새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곧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한다<레 2:1>. 따라서 이스라엘 12지파 족장들이 소제물에 향을 놓아드린 것은 그들의 봉사가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더불어 드려졌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성 경: [민7:15]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유다 족장 나손의 예물]

(주); 번제물 - 번제(燔祭)는 제물을 단에서 전부 태워 그 향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제사를 가리킨다<레 1;3 주석 참조>. 드려지는 예물은 드리는 자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수송아지, 수양, 수염소,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중 선택하여 드려졌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수송아지, 수양, 1년된 어린 수양'이 각각 한 마리씩 제물로 바쳐졌다. 이는 단순히 드리는 자의 경제력이 넉넉했다는 사실보다는 드리는 자가 각 지파를 대표하는 자였기에, 그가 각 지파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여러 종류의 번제물을 드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편 그리고 이 제사는 하나님께 대한 자발적인 헌신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먼저 자신을 백성의 대속 제물로 아낌없이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을 예표하며(히 10:5-7), 아울러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자신을 드리기를 힘써야 하는 성도들의 헌신적인 자세를 예표한다(롬 12:1,2) <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성 경: [민7:16]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유다 족장 나손의 예물]

(주); 속죄 제물 - 속죄제는인간이 여호와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죄를 사함받고자 드리는 제사이다<레 4:1-12 강해, 속죄제에 대하여>. 따라서 속죄 제물이란 범죄한 인간이 죄를 속함 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 제물을 가리킨다. 그러나 고의성이 다분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범죄를 지은 자에게는 이 제사 제물이 전혀 소용없었다(15:30,31;히 10:26,27). 그런데 속죄 제사는 공식적인 회집이 있는 날이면 직접적인 죄악의 유무와는 상관 없이 의무적으로 드려졌는데, 이것은 인간이 생래적(生來的)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위한 조처인 동시에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던 중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저질러진 죄악을 제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실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 의식'을 지니는 것만큼 진솔하고 아름다운 자세는 없을 것이다(요일 1:8,9)<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한편 본절에 제시된 '수염소'는 속죄제에 요구되던 제물 중 특별히 족장이 범죄했을 때 드리는 제물(레 4:22-26)이다. 끝으로 이러한 속죄 제물은 구속사상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후 5:21; 갈 3:13; 히 13:11-13).

성 경: [민7:17]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유다 족장 나손의 예물]

(주); 화목제 - 화목제는 각종 제사 중 가장 자유롭고 화목한 분위기에서 드려지는 것으로(레 3:1,6), 하나님과 드리는 자의 친교와 화목을 주목적으로 하는 제사이다. 그리고 화목 제물에는 감사 제물과 낙헌 제물, 서원 제물등 세 종류가 있는데 여기서는 감사를 위해 바쳐졌다. 특별히 본절에 언급된 화목 제물의 양은 규정된 화목제의 제물 양보다 월등히 많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및 그들을 대표한 각 족장들과 얼마나 긴밀한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고 계신지 잘 보여 주고 있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성 경: [민7:18-83]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각 족장의 예물]

이곳에 언급된 내용은 각 족장의 지파 및 신분을 소개하는 것과 그 족장들이 드린 날짜, 그리고 19절에 '그 예물'(*, 카르바누)이란 말 대신에 '그 드린 예물(*, 하케리브 에트 카르바누)이란 말을 제외하고는 12-17절에 언급된 바 내용과 모두 동일한 순서에 따라 동일하게 중복 묘사되고 있다.(그러므로 자세한 주석 내용은 그 부분을 참조하라) 이처럼 각 족장들이 제물을 드릴 때마다 똑같은 내용이 계속 복사판처럼 언급된 것은 1) 바쳐진 각각의 예물이 소중한 것이며 2) 그 예물을 바친 인격 모두가 고결하고 3) 그 각각의 제사가 하나님 앞에 똑같이 의미있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바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의 언약 공동체로 보시되 또한 그 개개인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히 여기신다는 사실이다.

성 경: [민7:48]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에브라임 족장 엘리사마의 예물]

(주); 제 칠 일 - 12명의 족장 중 일곱번째로 드려야하는 족장이 그 예물을 드린 날을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는 이 날을 반드시 안식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12족장들이 예물을 드렸던 12일 동안 한 번 또는 두 번의 안식일이 끼어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안식일에 예물 드리는 일을 멈추었다는 기사(記事)는 언급되지 않았다. 즉 예물 드리는 일은 안식일에 구애받지 않았다. 즉 예물 드리는 일은 안식일에 구애받지않고 12일 동안 계속 진행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진리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스러운 일은 결코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 후일 이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 5:9,10). 그분은 의문화(儀文化)된 형식과 전통의 굴레(롬 2:29; 7:6; 고후 3:6)에서 벗어나 과연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 되는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시고 가르치셨으며 또한 행동하셨다(마 12:1-8). (2)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일종의 신성한 의무 조항이다. 이일은 인간의 환경과 의지를 초월하여 어떤 경우에라도 실행되어야 할 인간의 기본 도리이다(고전 10:31). (3)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질서와 평화를 지키는 가운데 진행되어야 한다(고전 14:40). (4)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은 상호 모순되는 것이 없다. 비록 인간의 생각으로는 상충되는 듯한 부분이 보인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대전제 앞에 모든 율법은 완벽한 조화와 상호 보완 기능을 갖는다.

성 경: [민7:84-88]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각 족장의 예물]

본문은 이스라엘 12족장들이 정성껏 드렸던 예물의 총합계가 기록된 부분이다. 이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

예물

}}

{{

번제물

}}

{{

속죄제물

}}

{{

화목제물

}}

{{

은반:12개

(1,560세겔)

은바리:12개

(840세겔)

금숟가락:12개

(120세겔)

}}

{{

수송아지:12마리

수양 : 12마리

1년된 어린 수양 :12마리

각종 소제물

}}

{{

수염소 :12마리

}}

{{

수소:24마리

수양:60마리

수염소:60마리

1년된 어린 수양:

60마리

}}

{{

}}

성 경: [민7:89]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속죄소에서의 여호와의 음성]

(주);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인간과의 만남을 위해 '회막'<1:1>을 개설하셨고, 그곳에서 그들과 만날 것을 약속하셨다(출 25:21). 그러므로 '회막'(*, 오헬 모에드) 곧 만남의 장막(tent of meeting)은 상호 친밀한 교제와 전인격적인 대화를 전제로 한 것으로서, 영광의 하나님께서 죄인된 초라한 인간을 맞이하시는 하나님의 자애로운 속성이 가장 잘 나타난 가견적인 상징물이 것인다. 이것은 인간,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 '여호와께 말씀'하려 했다는 사실에서도 이 만남의 장막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주); 여호와께(*, 이토) - 직역하면 '그에게'이다. 그러므로 혹자는 본절에 3인칭 대명사가 갑자기 사용된 점이 어색하다고 보면서 본절이 원본에는 포함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바로 얼마전 12족장들에게 봉헌 예물을 명하신 여호와(11절)를 '그'라고 호칭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주);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 - 여기서 '속죄소'란 증거궤를 덮고 있는 2.5곱하기 1.5규빗(1규빗=45.6cm)의 뚜껑(정금판)을 의미한다<출 25:17 주석>. 이 뚜껑 좌우에는 금으로 만든 그룹 둘이 날개를 펴고 마주 대하여 속죄소를 덮고 있다<출 25:17-22>. 바로 이 증거궤의 뚜껑에 해당하는 견고한 정금 판(板)을 히브리어로는 '카포레트'(*)라고 하는데, 영어 번역본에는 보통 '시은좌'(propitiatory) 또는 '자비의 처소'(the mercy seat)로 번역되었다. 후일 히브리서 기자도 이를 가리켜 '은혜의 보좌'라고 명명하였다(히 4:16). 그런데 문자적으로 '카포레트'라는 말은 '뚜껑'(lid)을 의미하나, 이 말의 어근 '카파르'(*)가 '덮다', '속죄하다', '달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바 곧 '카포레트'라는 말이 단순한 뚜껑을 가리키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카포레트'는 레위 제사 의식에서 비롯된 말로서 죄를 '덮다', '속죄하다', '화해시키다'(to propitiate)란 의미를 가진 '은혜의 처소'라고 할 수 있다. 즉 이곳은 하나님께서 죄악된 인간을 당신의 사랑으로 속죄하시는 은혜로운 자비의 처소인 것이다. 이처럼 속죄소가 단순히 언약궤 뚜껑이나 또는 그룹들을 의미하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두 그룹들 사이의 공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출 25:17-22>, 이곳은 하나님의 지상 임재 처소요, 하나님께서 인간과 만나시기를 기뻐하시는 바로 그 장소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룹'이 하나님의 임재 처소마다 나타나 그분의 영광과 거룩을 선포한다는 측면에서 이곳은 또한 지극히 영광스럽고 거룩한 곳임을 알수 있다(출 25:18). 그러므로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회중을 위하여 피 뿌리는 의식을 속죄소 위에 거행할 때면,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엄위하심을 나타내는 구름이 그곳 위에 내려 덮혔던 것이다(레 16:2). 한편 구약 시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속죄 사역을 가장 명쾌하게 대변해 주는(레 16:14,15) 이곳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장소를 에표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상징하는 증거궤(법궤) 위에 희생 제물의 피가 뿌려짐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은, 역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대 곧 십자가 위에서 희생 제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보혈의 피를 흘림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인들이 구속함 받았다는 사실을 선명히 연상시켜 주기 때문이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친히 당하심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죽음과 죄에서 해방되어 거룩하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은혜로운 길을 마련해 주셨다(히 7:25).

(주); 말씀하시는 목소리 - 한편 모세는 '회막' 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목소리'(*, 쿨 미다베르)를 접할 수 있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목소리'란 이상(vision) 중에서 감지되는 환청(幻聽)이나 내면의 소리(invardly voice)가 아니라 모세의 귀에 분명 들려질 뿐 아니라 그가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직접적이고도 생생한 실제 음성을 가리킨다(12:8; 출 3;4; 겔 2;2).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의 말을 들으셨을 뿐 아니라, 그에게 친히 말씀하셨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1)모세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하나님과 만나며 또한 당신의 뜻을 온 이스라엘에 전파하는 중보자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2) 또한 이스라엘에 대해 당신이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음을 암시한다. (3) 그리고 이것은 12 족장들이 드린 봉헌 예물을 기쁘게 받으셨음을 시사한다(Keil). (4)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직접적인 계시를 통하여 당신이 이스라엘의 실질적이고 참된 통치자로서 그들 가운데 함께 동행하심을 인식시키셨다. 이처럼 '말씀을 통한 임마누엘 사상'은 후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사건을 예표한다(Patrick). 이와 같이 당시의 백성과 함께 하시기를 기뻐하시며 그들의 소원과 간구를 들으실 뿐 아니라, 그들과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시기를 즐겨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역시 함께 거하시며 친히 말씀하시고 교제하시기를 기뻐하신다(요 14:13,14).

성 경: [민8:1-4]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등불의 간검(看檢)]

여기서 하나님은 아론에게 일곱 등잔을 등대 위에 올려 놓아 등대 앞을 비추도록 지시하셨다. 그런데 등대에 관한 내용은 본문 뿐 아니라 성경 여러 곳에 언급되었는데, 즉 등대에 관한 계시는 출 25:31-40에, 등대 제작은 출 37:17-24에, 그리고 등대 완성은 출 40:24,25에 각각 언급되었다. 계속해서 등대에 소용되는 기름에 관해서는 레 24:2에, 등대의 사용법과 용도에 관해서는 본문에 기록되었다. 한편 등대에 관한 계시가 언급된 출 25장과 본문을 비교해 보면 본질적으로 차이나는 것은 없고, 다만 그 등잔에 처음 점화하는 것을 대제사장 아론에게 맡긴다는 사실만이 본장에 더 첨가 되어 있을 뿐이다. 한편 구속사적으로 이 등대는 어두운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며(요 1:4,5), 더 나아가 죄악된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춰야 하는 성도들의 사명을 예표한다(마 5:14-16).

성 경: [민8:2]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경과 직무 위임]

주제2: [등불의 간검(看檢)]

(주); 아론에게 고하여 이르라 - 직역하면 '아론에게 그 일을 알리라 그리고 그에게 명하라'이다. 이는 어떤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중복하여 언급하는 히브리어의 관용적 표현이다. 한편 우리가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등대'에 관한 책임은 대제사장 '아론'에게 있으며(출 27:21), 그 계시된 내용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즉 하나님의 임재 처소는 밤과 낮을 불문하고 항상 밝게 빛나야 하며, 그것을 가능케하기 위해서는 율법의 규정에 따른 아론과 그 아들들의 부단한 등불 봉사에 대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주); 일곱 등잔을 등대 앞으로 - 성경 문학적 표현으로 '7'은 '완전'과 '성취'(출 20:10)를, '등대'는 '성령의 역사'를 각기 상징한다(계 4:5). 그러므로 '일곱 등잔'은 성령의 온전하신 역사로 볼 수 있다. 한편 이 일곱 등잔의 불은 등대 앞, 곧 진설병이 놓여 있는 떡상을 향하여 비추게 하였는데(레 24:1-4), 이것은 일차적으로 제사장의 제사활동을 원활하게 할 목적도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이 등잔 빛이 아무렇게나 비추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비추는 빛임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즉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말미암는 모든 진리(계시)의 빛은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ainsworth). 실로 성령의 도움없이는 그 누구도 그리스도를 밝히 볼 수 없으며, 따라서 그에게 나아갈 수도 없다(슥 4:6).

성 경: [민8:3]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등불의 간검(看檢)]

(주); 등불을 등대 앞으로 - 등대는 중앙 줄기를 중심으로 좌우에 3개씩의 가지가 있었다. 그리하여 도합 7개의 가지 위에 등잔 7개가 있었으며, 그 등잔에 등불이 켜졌다(출 37:23,24 주석 그림 참조). 그리고 대제사장 아론은 그 등대의 등불 빛을 앞으로 비추도록 조절해야 했다. 그런데 등대 맞은 편에는 진설병 상이 위치하고 있었다(출 40:29-33 주석 도표 참조). 진설병 상에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덩어리의 떡이 잘 배열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또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항상 불꽃 같은 눈으로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를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성 경: [민8:4]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등불의 간검(看檢)]

(주); 등대의 제도 - 성소에서 쓰인 등대의 모양과 특징은 출 25:31-40; 37:17-24 부분의 주석과 그림을 참조하라. 한편 여기서 '제도'(*, 마아세)란 '만들다', '실시하다', '준비하다'는 뜻을 지닌 '아사'에서 유래한 말로써 '행동', '기술', '일', '만든 것'이라는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영어 성경은 대부분 이를 'work'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는 등대를 '만드는 방법'과 그 '모양'이라는 복합적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주); 식양(式樣) - KJV에서는 이를 'pattern'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어떤 작품을 만들기 위한 '설계도'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의 히브리어는 '타브니트'(*)로 곧 '모형'(模型)이란 뜻이다. 즉 원형(原型)에 대한 모사품이라는 뜻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미 등대의 제반 사항과 그 형체를 보이신 적이 있다(출 25:40). 한편 이러한 사실은 이 땅에 존재하는 등대 또는 성막 전체가 하늘에 있는 실체의 모형이라는 것을 암시한다(출 25:9; 히 8:5). 사실 구약의 모든 제사 제도는 신약시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그림자이며 더 나아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표적 기능을 한다(히 10:1).

성 경: [민8:6,7]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결 예식]

(주); 정결케 하라 - '정결'(*, 토호라)이란 보통 '흠없음', '청결'로 번역된다. 헬라어로는 '카다리스모스'(*)로서, 곧 '정화', '속죄', '결례'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정결'은 도덕적이나 영적으로 흔합이나 더러움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 말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나 사물이 갖추어야 할 조건 또는 자질(資質)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한 바 된 레위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려지기에 앞서 속죄의 물로 자신을 정결케 한 다음 전신을 삭도로 밀고 의복을 새로 빨았다. 이처럼 상징적으로 정결 의식을 행하고 몸과 의복까지 깨끗이한 것은 그들이 순결한 영혼으로서, 이제부터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주); 속죄의 물(*, 메 핫타트) - 직역하면 '죄의 물'이다. 여기서는 그 의미상 '죄를 속하는 물'이라는 뜻에 서 '속죄의 물'로 의역되었다. 이 물은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를 섞어 만든 의식용 물로써(19:2-9) 이것을 레위인에게 뿌리는 것은 그들로부터 모든 죄악된 요소를 제거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고로 결국 이 물은 인류의 죄를 씻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예표한다(히 10:22).

(주); 전신을 삭도로 밀게 하고 - 이것은 물로 씻겨지지 않은 부분의 더러움까지 철저히 제거하기 위한 조처로써 곧 신체의 모든 털을 면도로 깨끗히 제거하라는 명령이다. 혹자는 6:9,18의 나실인 규례와 연관시켜 여기 '전신'(全身)을 온 인격의 대표격인 '머리'로 보아 본 규례를 단지 '머리 카락'을 제거하도록 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 명령은 분명히 '전신'(*, 콜 베사람), 곧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에 대한 명령이다. 한편 온 몸을 삭도로 밀게하는 일은 문둥병자로 판명되었다가 그 병으로부터 치유되어 정결함을 선언받을 때 치르는 예식과 동일하다<레 14:8>. 그러므로 이러한 규례는 정결례를 치르기 전 인간의 죄는 마치 문둥병처럼 심각하고 추악하다는 교훈을 암시한다. 아울러 이제 하나님께 헌신된 자에게는 어떤 흠과 티도 용납될 수 없으며 오직 온전한 성결만이 요구되어짐을 시사한다<레 11:45>.

(주); 의복을 빨게 하여 - 옷을 빠는 행위는 하나님과의 만남 또는 그분께 대한 거룩한 봉사를 위해서 거의 필수적으로 요구되어졌던 의식적(儀式的) 책무였다<출 19:10>. 이는 장차 어린 양의 피에 자신의 예복을 빨아야만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하다는 영적 진리를 예표하는 규례이다(계 7:14).

성 경: [민8:8]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결 예식]

(주); 번제물...소제물...속죄 제물 - 레위인의 헌신을 위해 요구되어진 제사는 (1) 번제 (2) 소제 (3) 속죄제 등 세가지였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그리고 그 예물로는 각각 번제 수송아지 하나, 소제에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속죄제에 역시 수송아지 하나가 요구되었다. 여기서 번제와 속죄제에 특별히 제사 예물 중 최고의 예물인 '수송아지가'가 요구된 것은 레위인 정결 예식이 집단적으로 거행되었기 때문이고, 또한 그것이 이스라엘 회중 전체를 대표하는 의식(儀式)인 만큼 비중이 높은 예식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리고 여기서 '번제'는 생명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온전한 헌신을(레 4,5장) 각각 드려졌다. 그러므로 위의 예물들은 이제 하나님의 일에 임하는 레위인의 자세를 명시한 것으로, 곧 그들은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과 봉사를 아끼지 말아야 할 뿐더러 영적.도덕적으로 순결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 일에 힘써야 했다. 실로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도, 헌신도 모두 불가능하게 만드는 신앙의 최대 장애 요인이기 때문이다(창 3:22-24).

성 경: [민8:9]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결 예식]

(주); 회막 앞에 나오게 하고 - 여기서 '회막 앞'이란 5:16의 '여호와 앞'이란 말과 같은 의미로써 곧 번제단이 있는 성막 출구 쪽을 가리킨다. 이곳에 레위인을 나오게 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공식적으로 성막 봉사자의 임무를 부여 받는다는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한 조처이다. 더욱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 제사 제물로써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 헌상되어 이후부터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할 자라는 측면에서 번제단이 있는 '회막 앞'에 나오게 한 것이다(11절). 한편 회막 봉사에 합당한 자(30-50세의 남자)로 계수함 받은 레위인의 수효는 8,580명이었다(4:48). 그런데 당시 번제단이 있는 회막 뜰의 크기는 기껏 10 곱하기 20m 정도에 불과했으므로 아무리 빽빽히 들어선다 할지라도 천 명을 넘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그러므로 레위인들의 대부분은 성막 바깥 입구 쪽에서 있었고, 실제로 의식에 참여하는 자는 그들 중 각 지파를 대표하는 자들로 몇 백명 정도만이 뽑혀 의식에 참석했을 것이다.

(주); 온 회중을모으고 - 역시 한정된 지역 안에 200만 가량의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다 모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이 말은 이스라엘 자손 중 그들의 두령이나 지도자된 자들, 곧 각 지파의 대표자들을 모았다는 뜻으로 봄이 무난하다(Keil, Mattew Henry)>

성 경: [민8:10]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결 예식]

(주); 안수케 한 후에 -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성막 봉사를 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부과된 의무를 그들에게 전가(轉嫁)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전적으로 여호와께 봉사토록 하기 위해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이는 희생 제물을 바치는 자가 자신이 바치는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여 자신의 모든 책임을 그 짐승에게 전가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행동이다(레 1:4). 그러므로 이 안수(按手) 행위는 이제 성막봉사의 의무가 이스라엘 전 회중으로부터 레위인에게로 공식 전가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혹자(Keil, Matthew Henry)에 의하면, 이때 안수는 백성 전체에 의해 시행된 것이 아니라 각 지파의 족장들이 대표로 나와서 집행했다고 한다<출 29:1-37 강해, 안수에 대하여>. 이것이 타당한 견해이다.

성 경: [민8:11]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결 예식]

(주); 레위인을 요제로 - 요제(搖祭)란 희생 제물의 가슴 부분 혹은 땅의 첫 수확 등을 제사장의 양손 위에 올려 놓고 제단 앞에서 앞뒤로 흔들어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 방법을 말한다<레 7:30-34; 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이렇게 흔드는 행위는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요제로 바쳐진 제물은 제사장의 몫으로 다시 들려졌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레위인을 어떻게 요제로 드리느냐는 것이다.어떤 이는 레위인을 단 위로 올라가게 한 다음 다시 내려오도록 하는 행위를 통하여 그들을 요제로 하나님께 드렸다고 한다(Keil). 또 혹자는 실제 요제 행위가 아니라 이리 저리 움직이는 그들의 부단한 제사에의 봉사와 직무 수행을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한다(Matthew Henry). 그러나 가장 무난한 해석은 레위인을 대신한 제물을 요제로 삼아 바쳤다는 견해이다(12절). 결국 이 레위인 요제는 레위인을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바침과 동시에, 그 바쳐진 자들을 다시 제사장의 몫으로 돌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따라서 레위인들은 제사장의 수하에서 그들을 도와 성막 봉사를 하였다). 그런고로 이제 레위인들은 '요제'를 통해 세상과 구별된 자로서, 제사장에게 소속되어(3:9) 회막에서 하나님만을 위해(15절) 봉사해야만 했다(눅 9:62).

성 경: [민8:12]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결 예식]

(주); 레위인으로...안수케 하고 - 레위인들은 자신들이 드릴 제물들 곧 수송아지들에게 안수함으로써, 그제물들을 자신의 희생과 헌신을 상징하는 대속물로 삼아 그것들을 통해서 자기의 몸을 하나님께 드렸다. 이것은 후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Substitution)의 원리를 예표하는 상징적 행동이다(마 20:28).

(주); 속죄 제물로...번제물로 - 속죄 제물을 먼저 드리고. 헌신의 표인 번제물을 뒤에 드린 것은 먼저 죄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비로소 봉사와 헌신이 가능함을 뜻한다.

성 경: [민8:13]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결 예식]

(주); 레위인을...여호와께 요제로 - 이것은 레위인을 대신하여드려지는 희생 제물이 요제의 방식으로 드려졌다는 사실을 암시한다(11절 주석 참조). 특별히 여기서 요제의 방식이 채택된 이유는 '요제'(搖祭)가 갖는 특수한 성격, 즉 하나님께 드려진 후 다시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진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왜냐하면 레위인들도 본래는 하나님의 것으로 바쳐지지만 실제적으로는 제사장에게 돌려져 제사장 수하에서 성막 봉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3:5-10).

성 경: [민8:14]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구별된 자 레위인]

(주); 구별하라...내게 속할 것이라 - 하나님의 소유가 되기 위하여, 그리하여 그분과 특별한 교제를 나누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과의 '구별'이다. 여기서 '구별하다'(*, 바달)란 '나누다', '선택하다'는 의미로서 본절에서는 완전한 분리를 가리킨다. 이처럼 실로 거룩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의 거룩을 요구하시며 세상과의 분리를 원하신다(레 11:45). 이는 신.구약을 통해 계속적으로 요구되어온 것으로 세상(땅)에 속한 자는 결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심지어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집안 식구에게로 부터까지 분리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셨다(마 10:34-36; 19:29). 그러므로 참된 경건의 제일 요소는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약 1:27)이다.

성 경: [민8:15]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구별된 자 레위인]

레위인들은 성막 봉사의 나이(30세로부터 50세까지)가 되었다고 하여 무조건 성막에서 봉사할 수는 없었다. 성막 봉사 전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특별히 구별되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정결 의식'과 또한 제사장의 수하에서 그를 도와 성막에서 봉사한다는 '요제 의식'을 반드시 치러야 했다. 그런 후 비로소 레위인들은 성막 봉사의 임무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성 경: [민8:16]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구별된 자 레위인]

(주); 온전히 드린(*, 느투님 느투님) - '주다'(*, 나탄)는 말이 두번 중첩되어 그 뜻을 강조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는 '확실히(실패없이) 수여하다'는 말로 번역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 그 소유권이 완전히 이양되어, 어떤 세력도 그것을 더이상 넘볼수 없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성 경: [민8:17,18]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구별된 자 레위인]

3:12,13 주석 참조.

성 경: [민8:19]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구별된 자 레위인]

(주); 그들을...선물로 주어서 - 하나님은 '레위인을 취하여' 당신의 소유로 삼으셨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제사장들(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선물'로 주었다(3:9). 이는 결국 11절에 언급된 '요제'의 형식을 따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선물'(*,네투님)이란 '주다'(*, 나탄)에서 파생된 말로써, 하나님께서 친히 제공하신 사실을 강조한다. 즉 하나님은 제사장들의 원활한 성막 봉사를 위해 레위인들을 그들의 조력자로 제공하셨던 것이다. 한편 제사장들의 조력자였던 레위인들에게도 '느다님'으로 알려진 일꾼들이 주어졌다<스 2:43>.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일을 책임진 자들에게 필요에 따라 적절한 '선물'(사람, 제물, 능력, 은사 등)을 제공하셔서 그 맡은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신다.

(주);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를 대신하여 봉사한 것은 곧 이스라엘 전체를 대신한 것이라 할수 있다. 왜냐하면 장자는 그 집안 식구를 대표하는 자이기 때문이다(창 49:3). 한편 여기서는 레위인이 선택된 목적 한가지를 지적하고 있는데, 그것은 대신하여 특권을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 대신하여 '봉사'하기 위함이었다<8:14-22 강해, 레위인의 2대 사역>. 이는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교회의 일꾼들에게 요구되는 자세이다.

(주);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 레위인들의 임무는 성막 봉사 뿐 아니라 백성의 유익을 위해, 그리고 전민족의 명예와 안전과 번영을 위해 일해야 했다<1:53>. 이는 구체적으로 제사장의 제사 사역을 '성심껏' 도와줌으로써, 그리고 성막을 잘 지키고 보존함으로써 이루어질 일이었다.

(주); 속죄하게 - 비록 제물을 드려서 죄를 속하는 일은 직접적으로 제사장이 수행할 일이었지만, 레위인들도 회막 봉사와 제사장의 제사 집례를 보조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죄를 속하는 일에 간접적이나마 일익을 담당했다. 더욱이 그들은 성막 경호를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무모한 죽음을 예방하였는데<1:53>, 이 역시도 구원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속죄'에 대한 간접적 봉사라 할 수 있다. 사실 그들의 최종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면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보존하는 동시에 백성들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게 하는 일에 힘쓰는 것이었다<8:14-22 강해, 레위인의 2대 사역>. 그런데 후일 이러한 사명을 가장 명쾌히 수행하신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실로 그분은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주시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며 인간에게 봉사하셨다(막 10:45).

성 경: [민8:21]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회막 봉사]

(주); 죄에서 스스로 깨끗케 하고 - 즉 레위인들이 정결에 필요한 모든 의식적인 규범<7,8절>을 수행하였다는 뜻이다. 그 당시 의식적(儀式的) 정결은 곧 전인격적인 정결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이러한 정신이 혼탁해지면서 단지 '의식(형식)'에만 집착한 위선의 종교가 나타나게 되었고(사 1:10-17) 또한 계속되는 범죄로 인해 의식적 종교 생활이 지니는 한계성을 드러내게 되었다. 에수께서는 바로 이같은 '의식적 정결'이 지니는 한계성을 극복하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림을 통한 정결'이라는 가장 완전한 정결 규례를 완성하셨다(엡 2:15).

(주); 그들을...요제로 드리고 - 11절 및 13절 주석 참조.

성 경: [민8:22]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회막 봉사]

(주); 회막에 들어가서...봉사하니라 - 곧 회막의 뜰에서 봉사했다는 뜻이며, 혹은 광야 이동시 운반을 위해 분리된 후 그것들을 운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회막이 설치된 후 소위 언약궤(법궤)가 있는 지성소(the Holy of Holies)는 물론이고, 분향단과 등대 및 떡상이 있는 성소(the Holy Place)안으로는 일반 레위인들이 결단코 들어갈 수 없었다. 그곳 성소 안으로는 오직 제사장들만이 제사 사역을 위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오직 일년에 하루 곧 대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성 경: [민8:24]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년(停年)제도]

(주); 이십 오 세 이상으로 - 앞 부분에서는 레위인의 봉사 연한을 30-50세 사이로 규정하고 있다(4:3-49). 그러므로 성막 봉사의 최소 나이가 본문과는 5세의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이는 상호 모순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차이는 앞 부분에서 언급된 30세는 광야의 성막 이동시 그 성막의 기구 및 부품들을 운반할 수 있는 자격자로서의 최소 나이를 언급한 것인 반면, 여기서는 (후일) 성막이 정착된 후 그 성막에서 일할 수 있는 자의 나이를 언급한 것이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Pulpit Commentary, Keil). 아마 광야에서의 성막 물품 이동에는 그만큼 주의력을 요하는 나이가 요구되었기 때문이고 후일 성막 봉사에는 그만큼 체력을 요하는 나이가 요구되었기 때문인 듯하다(Matthew Henry). 따라서 후일 성전이 완전히 건립된 다윗 시대(대상 23:24)에는 그 봉사의 최저 나이가 20세로 더욱 낮아진 사실을 볼 수 있다<4:3>. 그리고 이것은 실제 운용상 25세 이후 5년의 기간은 견습생(見習生)으로 일하고, 30세 이상부터 비로소 공식적인 봉사에 임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상 23:24에서는 그 견습 연한이 20세로까지 더욱 낮아졌다는 의미가 된다.

성 경: [민8:25]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년(停年)제도]

(주); 오십 세 부터는 그 일을...아니할 것이나 - 여기서 '일'(*, 아바드)이란 주로 노예가 수행할 수 있는 정도의 힘든 노동을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희생 제물의 각을 뜨거나 장작을 마련하여 성막 기구들을 걷고 세우며 운반하는 등의 무겁고 힘든 일을 의미한다(Keil). 물론 50세 이상자들도 이 일을 감달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기력이 쇠한 관계로 직무 수행 중 자칫 실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이 일에서 제외된 것 같다.

성 경: [민8:26]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년(停年)제도]

(주); 그 형제와 함께(*, 에트에하이우) - 여기서 '함께'라는 말의 히브리어 '에트'는 '...의 곁에', '가까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는 '더불어' 일한다는 의미외에 '조력하다'(assist)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NIV는 이를 '형제들을 도와'(assist their brothers)로 번역하였다. 즉 봉사 연령의 상한선인 50세 이상이 되면 그들은 레위인의 직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수행하는 젊은 레위인의 조력자로서 남은 생애를 보냈던 것이다.

(주); 모시는 직무(*, 리쉐모르 미쉐메레트) - 여기서 '직무'라는 뜻의 히브리어 '미쉐메레트'는 '보호하다', '시중들다'는 뜻의 '솨마르'에서 파생된 말이다. 결국 '모시는 직무'란 '보조적인 일', '지원하는 일' 등의 의미라 할 수 있다. 이는 주로 성막의 각종 비품들을 관리하거나 견습 중에 있는 레위인들을 교육하는 등 육체적인 무리가 따르지 않지만 경륜과 지혜가 필요한 직무를 가리키는 듯하다. 이처럼 50세 이상된 레위인들도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나름대로 명예로운 봉사 직무를 수행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실로 하나님께 대한 봉사는 나이가 환경을 초월하여 실행되어야 할 신앙인의 지상 과제이다.

성 경: [민9:1]

주제1: [유월절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유월절 준수 명령]

(주);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정월 - 이 때는 성막을 세운 직후이며, 인구 조사를 하기 직전이다(출 40:2, 17; 민1:1). 그러므로 본장의 사건은 민수기 전체 중에서 출애굽기의 끝부분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부분이다. 즉 시내 산에서 생활한 1년의 마지막 시기로부터 40년 후 모압 평지에 도착할 때까지의 사건을 다루는, 민수기에서 시간적으로 가장 앞선 부분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여기에 위치한 이유는 아마 본문이 제 2의 유월절(9-12절) 규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2월 14일로부터 지켜진 제 2의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을 떠난 출애굽 제 2년 2월 20일(10:11) 바로 직전까지 지켜졌기 때문이다.

성 경: [민9:2]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유월절 준수 명령]

(주); 유월절을 그 정기에 - 유월절 예식은 '영원한 규례'였으나, '너희에게 주시는 당위에 이를 때에'(출 12:25)라는 한시(限時) 규정이 붙여져 있었다. 그렇다면 광야 여행 중에는 이 규레를 무시해도 되느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5절의 유월절 시행 사실과 11, 12절의 구체적인 예식 절차 고지를 통해 볼 때 가나안 정착 이전, 곧 광야 여행시에도 유월절이 지켜졌던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과도 기간 동안에는 정착 때에나 가능한 '(가옥의)문설주에 양피를 바르는 행위'(출 12:23)는 생략되고, 번제단에서 그 희생 제물의 피가 뿌려지는 것으로 대신 예식을 지켰을 것이다(Keil & Kelitzsch, Vol I-iii. p. 50). 왜냐하면 당시 모든 짐승은 번제단 앞에서 잡아 그 피를 그곳에 뿌려야 했기 때문이다(레 17:1-7).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그 날짜에, 유월절이 지니는 바 무한한 은혜를 상기하며 어떤 역경 중에서라도 유월절을 반드시 지킴으로써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구원과 해방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음미해야 했다. 한편, 그리고 여기서 '정기'(*, 모에드)란 말은 지정된 집회 장소 곧 '회막'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과 연관된 종교적 책무는 하나님께서 '지정한 장소', 곧 당신의 임재 처소인 회막을 중심으로 '지정한 시간'에 지켜져야 할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이처럼 여호와의 종교는 오직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장소와 시간을 따라 인간이 예배해야만 하는 하나님 중심의 종교요, 계시 중싱미 종교인 것이다.

성 경: [민9:3]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유월절 준수 명령]

(주); 이달 십 사 일 - 출애굽 만 1년 후, 즉 출애굽 제 2년 1월 14일로서 인구 조사(출애굽 제 2년 2월 1일) 약 보름 전의 일이다(1:1). 이 날은 유월절 양 잡는 날이다<출 12:6; 13:3, 4>.

(주); 해 질 때에 - 문자적으로 '두 저녁들 사이'(between the two evenings)이다. 혹자에 따르면, 이를 '보름달이 비추일 때'(by the light of the full moon)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문에 좀 더 가깝게는 '해 진 뒤, 어둠이 밀려오기 전에'(after sunset, before it is fully dark) 곧 '석양에'로 봄이 옳다. 이는 아마 해가 지는 것을 기준삼아 하루가 시작되는 것으로 이해한 히브인들의 시간 개념에 비춰 볼 때 14일이 막 시작되는 시간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해가 서산에 떨어짐으로 첫 저녁(그날의 시작)이 시작되고 완전한 어두움이 몰려 올 때 둘째 저녁(밤)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본문의 시점을 '석양 쯤'으로 볼 때 '두 저녁들 사이'라는 문자적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유대인들은 일의 편의상, 해가 지기 전의 시간인 3-5시 사이에 양을 잡았다고 한다(Josephus).

(주);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 즉 첫 유월절 당시 주어졌던 각종 규레들(출 12:1-14)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본장 6-12절에 주어진 사고자(事故者)에 대한 규례는 이때 새롭게 주어진 유월절 특례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유월절 규정이 최초로 정해졌던 출 12장 부분의 규례에는 본장 6절 이하의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는 문설주에 양피를 바르는 규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아마 희생제물의 피를 번제단에 뿌리는 것으로 대체된 것 같다(Keil).

성 경: [민9:5]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유월절 준수 명령]

(주);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출애굽 다음 해 시내 광에에서 두번째 유월절을 지켰다. 그런데 혹자는 여기 '시내 광야에서의 유월절 준수' 사건에 의문을 제기한다. 즉 쿨츠(Kurtz)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가 200만 가량 된다는 점을 감안하여, 매 15-20명 당 어린 양 한마리가 소비되었다고 보면 양의 수효가 10만-13만 마리가 요구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당시 유월절 제사 집례를 담당할 제사장 3명(아론과 그의 두 아들 - 엘르아살과 이다말)으로 그 일을 과연 어떻게 감당 했겠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유월절 어린양의 수효가 10만 마리 정도나 요구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유월절 어린양을 잡는 것은 배불리 먹기 위함이 아니라, 예식용으로 잡는 것이기 때문에 남자 장정(603,550명)을 중심으로 계산하여 매 15-20명 당 한마리가 요구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린양의 수효는 대략 3만-4만 마리 정도면 충분했다. 그리고 어린양을 잡고 그 피를 취하는데 레위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간주한다면(레위인은 이미 금송아지 숭배 사건 때 하나님께 헌신되었다 - 출 32:28, 29 및 대하 30:16참조), 3명의 제사장이 유월절 예식을 치르는 저녁(대략 9-11시) 시간 동안에 단지 그 피를 넘겨 받아 번제단(가로 및 세로 2. 3m, 높이 1. 4m)에 뿌리는 일은 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후일 요세푸스(Josephus)가 증거하는 바 네로 황제 시대에 256,500 마리의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번제단(비록 모세 당시 보다는 그 규모가 6-10배 정도 켰을지라도)에 뿌린 사실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 T. , Pantateuch, Vol. I-iii. pp. 50, 51). 그리고 유월절 예식 때 사용된 어린양(혹은 어린 염소, 출 12:5)의 수효는 출애굽시 애굽으로부터 몰고 나온 수많은 가축 중에서 충분히 충당 가능했을 것이다(출 12:38).

(주); 다 좇아 행하였더라 - 유월절 규례에 필요한 각종 제물과 음식물을 광야라는 불편한 상황하에서 모두 마련하고, 또한 수많은 유월절 희생 양을 도살하여 피를 내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유월절을 그 정기에 지키라'<2절>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온순히 순종함으로써 선민(選民)의 책무를 다하였다. 이처럼 신앙인의 행동 준거(準據)는 주변의 상황과 자신의 처지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 이어야 한다.

성 경: [민9:6]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부정한 자에 대한 규례]

(주); 사람의 시체로... 부정케 되어서 - 주검을 죄의 결과로 여겼던 히브리 사회에서는 그 정결 예법상 그것을 만진 자는 7일 동안 부정하였다(19:11-22; 창 3:19). 따라서 그는 7일 동안 법규에 따라 공동체에서 겪리되어 근신기간을 가지고 자신을 정결케 해야 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 이스라엘 공동체와 성소를 더럽히는 더 큰 부정을 저지르게 된다<5:2>. 그러므로 그들은 그 부정 기간 동안 모든 공식 집회는 물론이고 본절과 같은 기쁨의 축제인 '유월절'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이는 인간의 죄와 허물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킨다는 준엄한 경고를 제공한다(창 3:24; 사 59:2). 한편 이러한 7일 동안의 격리 규례는 시간상으로<1절> 아직 주어지지 않은 상태였기에(민 5:2; 19:11), 시체로 인해 부정케 된 자들(레 7:21)이 '정기'(定期) 유월절 참여 여부에 대해 의문을 품을수 밖에 없었다<7절>.

성 경: [민9:7]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부정한 자에 대한 규례]

(주); 우리를 금지하여... 드리지 못하게 - 시체로 인해 부정케 된 자의 격리 규정<5:2; 19:11>은 아직 주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단지 레위기 율법을 따라 자신들이 부정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을 인식했을 뿐이었다<레 7:20, 21; 15:3; 21:1>. 그러므로 그들은 지금 유월절 절기를 맞이하여 이스라엘인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금지하여'(*, 가라)란 원래 '감소시키다'(출 5:8), '그치게 하다'(욥 15:4)는 뜻으로서 여기서는 '억제하다', '제지하다'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성 경: [민9:8]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부정한 자에 대한 규례]

(주); 기다리라(*, 이메두) - 이는 '잠잠히 참고 서서 기다리라'는 의미가 내표된 명령이다. 백성들이 조급한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서둘렀을 때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며,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결정이다. 실로 시간이 긴박하고 중대한 문제에 직면할수록 성도는 여호와의 선하신 손길을 의지하여 기다릴 줄 아는 지헤가 필요하다(시 37:7; 잠 20:22; 사 30:18).

성 경: [민9:10]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빛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2차 유월절 규례]

(주); 먼 여행 중에 있든지 - 유대 학자들에 따르면, 유월절 절기인 아빕 월(정월) 14일 시작 시각에 성소로부터 약 24km이상 떨어져 있는 상태를 '먼 여행 중'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Pulpit Commentary). 결국 이는 본의 아니게, 그 거리상 도저히 유월절 정기 예물 드리는 일에 참석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을 때를 가리킨다.

(주); 마땅히... 지키되 - 유월절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 절기임을 시사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유월절 참례에 대해 강력히 요구하신 이유는 그날이 당신의 구원 사역을 기념하는 날일 뿐 아니라, 장차 당신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속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즉 유월절은 하나님 백성의 삶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게 기억되어야 할 생명과 구원과 해방의 날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유월절을 고의로 지키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되기를 거부한 자로 취급되어 선민의 자격과 권리를 박탈당하게 될 것이었다<13절>.

성 경: [민9:11]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2차 유월절 규례]

(주); 이월 십 사일 - 정기 유월절 보다 꼭 한 달 뒤이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부득이한 사정상 정기 유월절을 지키지 못한 자들은 이 한달 동안 제 2의 유월절(소유월절)을 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여행자는 충분히 집으로 돌아와 안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며, 부정한 자는 율법에서 요구한 정결 의무를 완수하여 정기 집회에 참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결코 율법의 자구(字句)에 얽매이지 않고, 그 절기의 정신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이 당신을 바로 섬길 수 있도록 역사하셨다.

(주); 어린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 - 유월절 기념 때 먹는 3대 음식물이다<출 12:8>. 그런데 여기서 '어린양'은 대속의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요 1:29; 고전 5:7), '무교병'은 죄악이 없는 성결한 삶을(고전 5:6-8), 그리고 '쓴 나물'은 과거 애굽의 종살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했던 고난을 각각 상징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출 12장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9:12]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2차 유월절 규례]

(주); 아침까지... 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 유월절 음식은 유월절 당일 저녁 즉석에서 모두 먹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거룩한 음식으로서, 걸코 그 남은 음식이 외인과 짐승들에 의해 더럽혀져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마 7:6). 따라서 만약 먹다가 남은 음식물이 있으면 모두 불태워 없애야 했다<출 12:10>.

(주);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 이는 유월절 양이 아무런 파손당함 없이 도살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출 12:46>. 왜냐하면 유월절 어린 양은 장차 십자가 고난을 겪으실 그리스도의 몸을 에표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실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함으로써, 이 예언적 규례를 완전히 성취하셨다(시 34:20; 요19:36).

(주);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 유월절 규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출 12장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9:13]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2차 유월절 규례]

(주);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 끊쳐지리니 - 부득이한 사정으로 본의 아니게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두 가지 경우(10절)를 제외하고(이때에도 한 달 후 제 2차 유월절을 지켜야 했다). 유월절을 고의로 지키지 않은 자에게는 준엄한 형벌이 가해졌다. 사실 유월절 참례는 선민(選民)으로서의 신앙고백이었다. 그러므로 그 일을 무시하는 자는 곧 하나님의 주권과 구분의 백성되기를 동시에 거부하는 범죄자였다. 여기서 '끊쳐지리니'(*, 니케르타)란 말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 사실과 백성의 진(陳)에서 쫓겨나 하나님의 율법의 특혜를 누리지 못함을 의미한다(레 20:18). 마찬가지로 오늘날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베푸시는 구원의 잔치에 참예하기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마 22:1-14).

(주);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 출애굽 당시만 해도 유월절 어린 양은 음식으로서의 효용이 강조된 것이었으나, 계속 첨가된 유월절 규정에 따라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로서의 효용성이 강조되게 되었다(신 16:1-8). 한편 '예물'은 감사의 의미와 더불어 그 드리는 자의 최를 대신하여 대속의 기능을 함께 가진다<8:10>. 그러므로 만일 '예물'드리는 일을 게을리 하면 자신의 죄 문제를 하찮게 여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각종 예물 곧 대속 제물을 규정해 두셨다(레 1-6장>. 그런데 구약의 이 '예물'은 신약에 이르러 우리의 영원한 대속 제물이신 예수 안에서 온전히 승화되었다(히 10:10).

성 경: [민9:14]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2차 유월절 규례]

(주); 타국인(*, 게르) - 이스라엘 내에 오랫동안 거주함으로써 그 사회에 동화된 이방인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들은 순수한 외국인과의 구별되는데, 만일 이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유월절에 참예키 원한다면 먼저 '할례'를 받아야 했다(출 12:48 주석 참조). 왜냐하면 당시 '할례'는 언약의 표시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제 1의 표시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할례'는 오늘날도 유효한 것은 아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육체의 할례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마음의 할례가 필요하다<창 17:2-14 강해, 할례 언약과 침례>.

(주); 그 율례는 동일할 것이니라 - 언약의 표 '할례'가 있는 자는 혈통과 신분을 불문하고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율법의 의무를 짐과 동시에 그 특권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은 히브리 종교가 폐쇄적이라는 잘못된 견해를 완전히 불식(拂拭)시킨다. 한편 본절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출 12:48, 4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9:15]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주); 성막을 세운 날에 - 이 날은 곧 성막이 완공되어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쁘게 받으신 증거로 회막을 구름으로 덮음으로써(출 40:34), 당신께서 친히 그들의 삶 중심에 거하심을 보이신 날이다. 이 날은 출애굽 제 2년 1월(아빕월) 1일이었다(출 40:17).

(주); 구름이 성막 곧 증거막을 덮었고 - 구름은 하나님의 동행과 임재의 상징적 표현이다<출 40:34, 35>. 사실 구름이 성막위에 덮이기 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과 더불어 계셨으며, 그들의 삶 중심에서 통치하고 계셨다<13:21, 22>. 그러나 성막 건립 후 '구름'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가시적(可視的)으로 그들의 가나안 여행을 더욱 박진감 넘치며 경건한 신앙 행보(行步)가 되돌고 바꾸어 놓았다. 한편, 그리고 여기서 '증거막'(*, 오헬 하에두트)이란 표현은 지성소의 궤속에 들어있는 십게명의 증거(testimony) 기능을 강조하여 사용되는 말인데, 원문상 이 말 앞에 '레'(*)라는 전치가사 덧붙여 있어 이 전치사의 기능을 놓고 논란이 되고 있다. 즉 어떤 학자들은 이 전치사가 방향격이나 위치격을 의미한다고 보고, '증거막'에 혹은 '증거막 쪽에'란 뜻으로 이해한다(Knobel, Rosenmuller). 그렇게 본다면 구름은 단지 지성소 위에만 내려 덮혔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이 전치사가 속격을 의미한다고 보면, '증거막의'란 뜻이 되어 곧 구름이 증거막으로 대표되는 '성막'(*, 미쉬칸) 전체 위에 임했다는 뜻이 된다(LXX, targum, Keil, Pulpit commentary). 성경의 맥락으로 볼 때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출 40:34).

(주); 불 모양 같은 것 - 이 역시 여호와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하는 것이다<출 13:21, 22; 14:24; 40:38>. 한편 구름과 불의 모양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직접 통치하신 이적적인 현상은 광야 생활 40년간 줄곧 계속되었다<신 1:2, 33; 느 9:19-21>. 한편 '구름 기둥과 불 기둥'에 대해서는 출 13:2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9:16]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주); 항상 그러하여 - 낮에는 구름, 밤에는 불 모양으로 성막을 덮은 현상은 성막이 처음 세워지던 때만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광야 여행을 하는 동안 계속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출 40:38; 왕상 8:10). 이는 비록 광야 여행 중의 이스라엘이 불평과 반란과 거역을 일삼았다 하더라도, 그들을 향한 당신의 사랑과 관심은 항상 끊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실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야말로 역시 오늘날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존과 소망의 근거가 된다.

성 경: [민9:17]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주); 구름이... 머무는 곳에... 진을 쳤으니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상징인 구름을 중심으로 광야 생활을 했다. 따라서 구름이 지시하지 않을 때에는 자의(自意)에 의해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즉 그들의 행동은 전적으로 구름의 인도에 의존했다. 한편 이스라엘을 인도한 이 구름은 수백만 명의 이스라엘인이 모두 목격할 수 있을 만큼의 높은 위치에까지 떠올라 그들의 발길을 인도한 것 같다<출 40:36>. 그러므로 그들은 각각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을 체험할 수 있었다.

(주); 구름이 머무는 곳에... 진을 쳤으니 - 여기서 '머물다'(*, 솨칸)이란 말은 '자리잡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곧 이것은 15절에서 처럼 성막이 쳐진 곳에 내려 앉아 덮이는 것이 아니라, 성막이 쳐질 곳에 미리 자리를 잡아 내려 앉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성막은 이동시 레위의 세가문(게르손, 고핫, 므라리 가문)에 의해 각각 나뉘어져 운반되었기 때문에(10:17, 21), 15절의 형태로 구름이 내려 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성 경: [민9:18]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주); 구름이...머무는 날이 오랠 때 - 구름이 머무르고 떠오르는 시기는 하나님 이외에 아무도 몰랐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 '시기'를 일찍 감지하는 감각이 아니라, 그 구름의 변화에 따라 즉각적으로 순응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였다. 특히 구름이 오랜 기간 동안 지체할 때에는(22절) 그들에게 '인내'가 요구되었다. 실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끝까지 인내하는 것은 우둔한 행동이 아니라 가장 지혜롭고 안전한 처신이다(약 5:7-11).

성 경: [민9:20, 21]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주);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 이때에는 이스라엘의 열심이 요구되는 때이다. 왜냐하면 유약자와 가축까지 동반힌 그 많은 사람들이 장막을 치고 걷는 일은 결코 손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막 위의 구름이 짧은 기간 지체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비록 나쁜 기후 조건이라 하더라도, 심지어 단지 하루만 머물고(21절) 떠난다 하더라도 그들은 즉시 자신의 진을 걷어 출발해야 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날, 육신의 장막을 걷어 떠나가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고후 5:1).

성 경: [민9:22]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주); 일년이든지 - 여기서 '일년'(*, 야밈)이란 '날'을 뜻하는 히브리어 '욤'의 복수형으로서 직역하면 '날들'(days)이라는 의미인데, 통상적으로 '1년' 또는 '많은 기간'(한달 이상)을 의미한다(창 24:25). 여기서도 구체적인 날 수를 가리키는 말이라기 보다 단순히 오랜 기간 동안이란 의미로 봄이 타당하다.

성 경: [민9:23]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 여기서 '직임'(*, 미쉬메레트)이란 '준수하다', '신중하다'는 뜻의 '솨마르'(*)에서 유래한 말로 곧 '부탁한 임무', '규례', '명령을 통해 하달된 책임' 등을 가리킨다<1:53>. 그러므로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의 머뭄과 떠오름으로 지시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켰다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명령'을 따라 성급하거나 게으르지 않게 광야 여행을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빠른 여행 방법이었다. 오늘 우리가 영적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바로 '하나님이 부탁하신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성 경: [민10:2]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은나팔 둘 - 은(銀)나팔 모형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다. 그러나 로마에 있는 디도(Titus)의 개선문(triumphal arch)과 고대 이집트의 기념비 등에 새겨진 형상. 그리고 유대 사가(史家)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으로 미루어 볼때 이때의 은나팔은 희년(禧年) 때 사용된 곡선형의 구부러진 뿔나팔(레 25:9 주석 참조)과는 달리 관은 가늘고 기나 주둥이는 넓은, 곧은 모양의 나팔일 것으로 추정된다<Keil & Delitzsch, op.cit., p. 54;Pulpit commentary>. 한편 그리고 이때 제작된 나팔은 단지 '두 개'에 불과했는데 그 이유는 당시 대제사장 아론을 제외한 제사장이 두 명(엘르아살, 이다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3:4). 그러나 솔로몬 시대에는 120명의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었다고 전한다(대하 5:12; Matthew Henry's commentary).

(주); 쳐서 만들어서 - 여기서 '쳐서'(*, 미크솨)란 말은 '망치질 하여'라는 뜻으로, 얇은 은판을 망치로 두들겨서 은나팔을 만들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결국 이 나팔은 정교하지 않고 투박한 형태인 것으로 추정된다(R. Winterbotham).

(주); 그것으로...소집하며...진행케 - 은나팔의 기능에 대해 언급되었다. 이것은 불기둥, 구름 기둥과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뜻을 백성에게 전달하는 도구이자 하나님의 통치의 한 방편으로서 이스라엘 광야 여정을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 즉 하나님께서 성막 위에 머문 구름을 떠오르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행 신호를 보여 주시면 백성들은 곧 떠날 채비를 갖추었으며, 이어 제사장들에 의해 불려진 나팔 소리에 의해 모든 백성은 일제히 이동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은나팔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하여 백성들 혹은 족장들을 소집할 때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은나팔의 두 가지 큰 기능은 소집 신호와 진행 신호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성 경: [민10:3]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두 나팔을 불 때 - 즉 '모든 나팔(2개)을 동시에 불 때'를 가리킨다. 이때는 이스라엘 전체 백성이 회막문 앞으로 집결해야 했다. 그리고 이때의 나팔 소리는 급박하지 않고 차분했다<7절>.

성 경: [민10:4]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이스라엘 천부장(千夫長)된 족장들 - 여기서 '천부장'(*, 라쉐 알레페)으로 번역된 말은 성경 다른 곳에서는 '천만인'으로 번역되었다(1:16; 수 22:14). 곧 각 지파의 '두령'(leader)들을 가리킨다<1:16>.

성 경: [민10:5]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울려 불 때에는 - '울려 분다;'(*, 테카에템 테루아)는 말은 매우 힘차게 떨리는 소리로 불되 간격을 두고 부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영역 성경 KJV에서는 '경보를 불다'(blow an alarm)로, NIV에서는 '폭발음을 내다'(trumpet blast)로 각각 의역하고 있다. 한편 이렇게 나팔이 울려 펴지면 그것은 곧 출발 신호가 되어 '동편 진들', 즉 유다 지파와 앗사갈 지파 및 스불론 지파가 출발하게 된다<2:34 주석 그림>.

성 경: [민10:6]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제 이차로 울려 불 때에는 - 처음 울려펴지는 나팔 소리에 이어 두번째 소리가 울리면 제 2진영인 남쪽 진들(르우벤, 시므온, 갓)이 출발하게 된다. 그리고 본문에는 언급이 없지만 세번째와 네번째의 나팔이 울리면 계속해서 2장에 배치된 진의 순서대로 서편 진들(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에 이어 북편 진들(단, 아셀, 납달리)이 출발하였음이 분명하다(Keil, LXX). 이처럼 하나님은 나팔 신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질서와 순종 의식을 주입시키셨다. 실로 수많은 백성이 한꺼번에 이동하기 위해서는 질서가 절대 필요했다. 그런데 이 질서는 '나팔 소리' 곧 권위에 찬 하나님의 명령에 순응할 때 비로소 갖춰질 수 있었다. 이처럼 진정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고 그분의 말씀이 최고의 권의를 지니는 공동체에는 결코 어지러움이나 분쟁이 있을 수 없다(고전 14:33).

성 경: [민10:7]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소리를 울려 불지 말 것 - 백성들을 회집할 때는 전쟁 수행시나 진의 이동시처럼 강렬하게 높이 울려 불어서는 안되며 평탄하게 같은 높이의 소리로 불어야 했다. 따라서 여기 '불다'란 의미의 히브리어 '타카'(*)는 본래 순간적이고 예리한 소리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소리를 내지 말라는 것이다. 이처럼 회중 소집시 나팔 소리가 평탄하게 조절된 것은 전체 백성들이 모이는 이유가 대체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거나, 특별한 절기를 지킨다거나, 거룩한 회합을 위해서 이므로 경건함과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성 경: [민10:8]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제사장들이 불지니 - 나팔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는 도구로서 오직 거룩한 일에만 사용되어야 하는 성물(聖物)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관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자는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서 모시며 또한 백성의 종교, 도덕적 생활을 개도해가야 할 사명이 있는 제사장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자의(自意)에 의하거나, 계시된 명령에 어긋나게 나팔을 불어서는 안 되었다. 오직 그들은 하나님의 대변자(spokesman)로서 항상 깨어 있어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정확, 신속하게 전달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는 오늘날 복음 전파자들에게도 요구되는 바이다. 즉 오늘날 주(主)의 뜻을 전할 특권과 책임이 있는 복음 전파자들은 자신의 욕망과 견해를 일단 접어두고, 오직 그분의 뜻을 바로 분별하고 그것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거룩한 입술을 지녀야 한다(행 15:7; 엡 6:19).

(주);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거룩한 관례와 제도의 영구한 실천을 강조할 때에 자주 사용되는 관용적 표현이다(출 12:24). 여기서는 오직 제사장들만이 나팔을 관리하고 사용하며, 소집과 행진, 전쟁, 절기 등에 정해진 규정에 따라 나팔을 불어야 한다는 나팔 사용 규정 전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제사장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도 나팔을 불어야 했다(그러나 나팔이 언제까지 보관,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오늘날 이 나팔 규정은 실제적으로 중단되었으나 영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계속되며, 신앙 공동체가 각종 모임을 거듭하고, 교회가 사단과의 영적 교전을 계속하는 한 '대대에 영원한 율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一點一劃)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는 것이다(마 5:17,18). 한편 제사 제도와 관련된 종교적 행사, 전쟁, 왕의 취임식 등에 나팔이 사용된 예는 성경에 가끔 언급되었다(삼하 2;28; 왕상 1:39).

성 경: [민10:9]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너희 땅에서 - 달리 표현하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이다. 이것은 나팔 규정이 광야 여행 중에도 긴요하게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후일 가나안 정착시에도 대비한 규정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 - 여기서 '압박하다'(*, 차라르)란 원래 '꺾쇠로 죄다'는 의미로써 포위하여 몹시 심한 고통을 주는 상태를 가리킨다. 사실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정착시 가나안 7족속(신 7:1)을 제외하고는 주변국과 평화할 것을 명하셨다(신 20:10,11).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압박하는' 무리가 아니면 평화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참 왕으로 모신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이방의 우상 문화를 주입시키는 외세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들의 거룩한 삶을 보존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대적들을 치러 나갈 때에 그들은 여호와의 명을 좇아 나팔 경보에 의해 행동해야 했다. 이때의 경보는 군대의 사기를 북돋우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굳은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며, 또한 여호와의 도움을 통한 승리를 기원하는 역할도 했다.

(주); 여호와가...기억하고...구원하리라 -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나팔을 부는 행위는 곧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을 신실히 의뢰하는 표시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전쟁과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나팔을 불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소리를 들으시고 당신의 약속을 기억하사 그 전쟁에 친히 개입하셔서 그들을 승리케 하실 것이라 약속하셨다(시 98:3). 한편 본문에 나타난 바 나팔을 불 때에 '기억하리라'는 말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평상시 이스라엘을 잊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오게 된다. 따라서 혹자는 본절과 시편 44:23,24을 예로 들어 하나님의 신실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한계나 무관심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당신을 찾고 부르는 자들에게 확신과 소망을 제공하기 위해 사용한 수사학적 표현으로서, 곧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이라는 관점에서 이해 하여야 한다(시 50:15; 렘 33:3). 실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당신을 의뢰하고 부지런히 찾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자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그들을 채워주신다(요 14:13,14).

성 경: [민10:10]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희락의 날 - 특정한 날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단지 기쁜 일로 기념될 만한 모든 날들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법궤 운반시(대상 15:24; 16:6), 성전 봉헌시(대하 5:12), 성전 신축시(스 3:10; 느 12:35,41), 부림절(에 9:17-19)과 같은 민족적, 종교적 기념일(대하 29:27) 또는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등이다(Keil & Kelitzsch, Vol. I-iii. pp. 55,56).

(주); 정한 절기 -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율례로 명하신 날들 곧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나팔절 등의 절기이다(28,29장; 레 23:24,25). 자세한 내용은 레위기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에 관한 도표를 참조하라.

(주); 월삭 - 매 달이 시작되는 첫날을 가리킨다(28:11,14; 삼상 20:24-34).

(주); 번제물...화목 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 이는 그 제물을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기 원하는 간절함을 내포한 행동이다. 특히 이처럼 '속죄'와 관련되지 않은 제물 위에만 나팔을 분 것은 이스라엘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바친 제물과 그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이 될 수 있었다(대하 29:27; 시 81:3).

(주); 그로 말미암아 기억하리라 -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기쁨과 감사가 깃든 정성스런 헌물과, 그리고 이것이 열납되기를 원하여 부는 백성들의 나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기억하실 것이라 약속하셨다<9절>. 특별히 여기서 '기억하다'(*, 자카르)란 말은 '마음에 품다'는 의미로써, 당신의 백성과 교제하시며 아울러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낱낱이 감찰하시고 필요를 따라 채워 주신다는 포괄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성 경: [민10:11]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바란 광야에로의 이동]

(주); 제 이 년 이월 이십 일 -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때로부터는 만 1년 1개월 5일이 지난 때였고, 시내 산에 도착한 때로부터는 만 11개월 5일이 지난 때였다. 그런데 바로 이때를 시내 산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아마도 사고자(事故者)들을 위한 제 2차 유월절(9:11) 준수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은 이때 시내산을 출발하여 얼마 후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으나, 그곳에서 하나님을 반역함으로 말미암아 이후 약 38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다가 출애굽 제 40년 5월 1일 이후에야 비로소 요단 강 도하 직전의 땅 모압에 도착할 수 있었다(33:38; 신 2:14).

성 경: [민10:12]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바란 광야에로의 이동]

(주); 자기 길을 행하더니(*, 레마세에헴) - 이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나사'(*)에서 유래한 말로써, 원뜻은 '장막 말뚝을 뽑아 내다'이다. 결국 위의 말은 '각각 자기가 맡은 소임을 따라 진을 거두고 떠날 채비를 하더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성막을 거두어(1:51) 조직적으로 진을 이동하는 모습(2장)을 말한다.

(주);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 이스라엘은 시내 광야를 출발하여 3일 길을 행하고(33절), 다시 하세롯(11:35)을 거쳐간 후 가데스 바네아가 있는 바란 광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는 그 사이에 두 군데의 휴게지(休憩地)를 더 거쳐 온 것 같다(11:34,35; 12:16; 33:16,17). 그러므로 본절은 가데스 바네아까지의 여정을 축약한 것으로써 11절에서 출발을, 12절에서는 도착을 기록하고, 그 사이에 발생한 일은 나중에 12:16까지 자세히 기록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주); 바란 광야 - 시내 반도에 위치한 큰 사막이다. 이 곳은 피신하기 적당한 몇몇 산과 우기(雨期)에 형성되는 많은 시내, 곧 와디(Wady)가 있었다(삼상 25:1).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 지역에서 가나안으로 이르는 지름길로 이곳을 자주 이용하였다. 한편 이곳은 동(東)으로 험준한 아라바 골자기에 접해 있고, 서(西)로는 술 광야에 맞닿아 있으며, 남(南)으로는 호렙산과 연결되었고, 북(北)으로는 남쪽 가나안 경계선에 맞붙어 있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57). 결국 이곳은 척박한 사면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죽음의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는 버려진 땅이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이 바란 광야에서 머문 것은 시내 산을 출발한 다음 3일 후였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할 때까지 계속적으로 이 광야에서 저 광야로 거처를 옮기는 나그네 생활을 해야 했다. 이는 마치 영원한 천국을 목적하고 광야 같은 이 세상을 하루 하루 전전(轉轉)해야 하는 성도의 현실을 보여 주는 듯하다(히 11:13). 그런데 이러한 나그네 생활에서 가장 요구되는 바는 안내자 되신 하나님의 인도를 날마다 따르는 일이다(고후 1;4).

성 경: [민10:13]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유다, 잇시갈, 스불론, 지파의 이동]

(주); 모세로 명하신 것을 좇아 - 즉 2:1-31에 지시된 바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란 뜻이다.

성 경: [민10:14-16]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의 이동]

(주); 수두(首頭)로(*, 바리쇼나) - 직역하면, '첫번째'로란 뜻이다. 곧 행군의 제일 선두는 유다 진기에 속한 자들(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이었다<1:26-31; 2:3-9>. 그런데 실질적으로 행군 대열에 선봉을 이룬 것은 '여호와의 언약궤'였다(33절). 즉 이스라엘은 인도자 되신 하나님을 앞세우고 미지(未知)의 땅 가나안에로의 행군을 하였던 것이다.

(주); 군대...영솔하였고(*, 알 체바) - 직역하면 '군대 위에(있었다)'란 뜻이다. 각 지파의 군대 영솔자, 곧 두령 목록은 1:4 주석 도표를 참조하라. 그리고 각 지파 대표들은 총 지휘관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자기 지파를 통솔하였다.

성 경: [민10:17]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이동]

(주); 성막을 걷으매 - 이는 계속 이동해야 하는 광야 여행에 용이하도록 설계된 성막의 특성을 반영한다. 즉 성막은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걷고 세울 수 있는 조립식 천막으로 되어 있었다<출 25:1-9>. 한편 또한 이는 이 땅에 영원한 처소를 마련치 않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걷고 세우기에 편리한 임시 처소에서 생활하는(고후 5:1) 우리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성도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임시적이고 불완전한 존재이지만(사 2:22),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기에 영원한 처소가 예비되어 있는 것이다(요 14:3; 고후 4:7,16-18).

성 경: [민10:18-20]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이동]본문은 유다 전기에 이어 제 2대로 발행해야 하는 르우벤 진기(르우벤, 시므온, 갓) 및 그 군대 영솔자들에 관한 기록이다. 자세한 내용은 2:10-16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행군시에는 이들 앞에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이 성막 물품을 메고 진행하였고, 이들 뒤에는 고핫 자손이 성막의 성물들을 메고 뒤따라 왔다.

성 경: [민10:21]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지파의 이동]

(주); 성물을 메고 - 고핫 자손들은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과 달리 자신들이 맡은 물건을 반드시 어깨로 메고 운반해야 했다<4:5-20; 7:6-9). 한편 여기서 '성물'로 번역된 히브리어 '미크다쉬'(*)는 어떤 '물건'을 뜻한다기 보다 '장소' 곧 거룩한 처소(sanctuary,KJV)를 의미한다. 그러나 '성소'(holy place)를 메고 갈 수 없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문맥상 성소에 배치된 '거룩한 물건'(the holy things, NIV)로 이해함이 옳을 것 같다(18:29).

(주); 그들이 이르기 전에...세웠으며 - 이 말은 고핫 자손들의 직무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고핫 자손에 앞서 출발했던<17절>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의 직무를 언급한 것이다.

성 경: [민10:22-24]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에브라임, 무낫세, 베냐민 지파의 이동]

제 3대로 발행한 진영은 에브라임 진 기에 소속된 지파(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였다. 광야 행군시 이들 지파의 바로 앞에는 고핫 자손들이 성물을 메고 진행하고 있었고, 뒤에는 단 진 기에 소속된 지파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성 경: [민10:25-27]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단, 아셀, 납달리 지파의 이동]

제 4대로 발행한 진영은 단 진기에 소속된 지파(단, 아셀, 납달리)였다. 광야 행군시 이들은 행렬의 맨 후미에서 뒤따라 갔다. 한편 각 지파의 두령 목록은 1:4 주석 도표를 참조하라.

(주); 모든 진의 후진 - 여기서 '후진'(*, 메야세프)이란 원래 '뒤에 남다', '뒤에서 모으다'는 뜻을 가진 말로써 이는 '단 자손 진기에 속한 자들'의 고유 임무를 잘 드러내준다. 즉 그들은 행군 순서상 단순히 맨 뒤에 처진 것이 아니라, 맨 나중에 진행하면서 후방을 경계하고 또한 행진 중 뒤처진 무리들을 모아서 건사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에서 볼 때 '숨은 봉사자들'에 비유될 수 있다. 이처럼 형제들의 평안을 위해 알게 모르게 헌신하는 자들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확장될 것 이며, 공동체는 더욱 풍성한 은혜를 체험케 될 것이다(빌 4:15-19).

성 경: [민10:28]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군]

주제2: [단, 아셀, 납달리 지파의 이동]

(주); 그 군대를 따라(*, 레치브오탐) - 직역하면 '그들의 군대대로'이다. 이는 각 지파가 질서 정연하게 지체함이나 게으름없이 행진했음을 묘사한 말이다(14,18,22,25절). 특별히 여기서 '군대'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이상 노예 민족이 아니라, 그리고 또한 애굽을 도망쳐 나온 오합지졸(烏合之卒)이 아니라, 애굽의 모든 우상 신들을 당당히 꺾고 가나안 정복을 위해 행진해가는 여호와의 군대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성 경: [민10:29]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호밥에 대한 동행 권고]

(주); 미디안 사람 르우엘 - 르우엘은 모세의 장인으로서 미디안 출신 족장이다(출 2:26; 3:1). 그런데 사사기에서는 그를 '겐 사람'이라 호칭하였다(삿 1:16; 4:11). 이는 적어도 '미디안' 족속과 '겐' 족석이 상호 친밀한 유대 관계를 이루었거나, 아니면 통폐합되어 한 민족을 이루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미디안 제사장(출 20:16-18)이었던 '르우엘'은 성경 다른 곳에서 '이드로'(출 3:1; 4:18; 18:1) 혹은 '호밥'(삿 4:11)으로도 표기되었다. 여기서 '이드로'란 이름은 제사장으로 받은 새이름이거나 그의 신분을 지칭하는 특별 호칭인 듯하다. 그러나 사사기 4:11에서 모세의 '장인'으로 표기된 '호밥'이란 인물은 본절에서 표기된 대로 르우엘의 아들, 곧 모세의 처남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장인'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호텐'(*)은 결혼으로 인해 생긴 처(妻)쪽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인 바, 따라서 '장인'이란 의미 외에 '처남'이란 의미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문맥상 여기서 '호밥'은 르우엘(혹은 이드로)의 아들로서, 곧 '모세의 처남'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Keil, Matthew Henry). 그러나 그가 언제 매형되는 모세에게로 왔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렇지만 그의 아버지 이드로가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그의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데리고 모세를 방문했을 때(출 18:1-5) 같이 동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 주마 하신 곳으로...진행하나니 - 모세의 이 말은 이스라엘이 지금 목적(가나안 땅) 있는 여행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그들은 비록 현재 광야를 통과하는 방랑객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또한 반드시 들어가게 하실 가나안을 향해 진행하고 있다는 신앙과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도는 이 세상에서 비록 나그네에 지나지 않지만(히 11:13; 벧전 2:11), 달려가야 할 확실한 '푯대'와 (빌 3:14) 들어가야 할 영원한 '처소'(요 14:3)가 있기에 하루 하루를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다.

(주); 선대하리라(*, 헤타베누) - 이는 '좋게 만들다', '유익을 끼치다', '은총을 입다'는 뜻의 히브리어 '야타브'(*)의 사역형 능동태로써 곧 생활과 지위를 보장하며 각종 혜택을 제공할 것이라는 강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단지 인간 모세의 약속이 아니라 뒤이어 나오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여호와의 축복에 근거한 약속이었다.

(주); 여호와께서...복을 내리리라 - 이를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해 친히 말씀하셨다'(KJV, Jehovah has spoken good concerning Israel)이다. 즉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며 복주시고 은혜와 평강주시기를 약속하셨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6:24-26). 따라서 모세는 이 약속을 근거로 호밥에게 동행을 요구했으며 '선대'를 약속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1)하나님의 복은 한 개인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개방되어 있다(창 12:1-3). (2) 하나님 나라 건설에 동참한 자에게는 풍족한 은혜가 주어진다(마 25:34). (3) 인간의 동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성취하기도 하신다.

성 경: [민10:30]

주제1: [시내에서바란으로의 행군]

주제2: [호밥에 대한 동행 권고]

(주); 나는 가지 아니하고 - 호밥은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안락한 현실을 택하였다. 그러나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믿음과 소망으로 확신하는 것이다(히 11:1). 한편 호밥은 한번 거절했으나 , 모세의 강권에 못이겨 끝내 가나안 행에 동행한 것으로 보인다(Knobel). 그것은 후일 사사 시대에 그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거주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되었기 때문이다(삿 1:16; 4:11; 삼상 15:6; 27:10).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나라 건설에 유익한 일이라면 전력을 다해 매달릴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을 모른 자들을 강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토록 할 수 있어야 한다(눅 14:23).

성 경: [민10:31]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호밥에 대한 동행 권고]

(주);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 이는 길 안내자로서의 호밥의 필요성을 강변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구름의 인도로 말미암는 여호와의 절대적인 보호와 인도의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인간의 도움이 필요한 것인가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일에 인간의 지혜와 재능을 최대로 활용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어릴 적부터 이곳 신 광야 주변에서 자라온 호밥은 그곳 광야의 사정과 변화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터이라 가나안으로 향하는 보도 유리한 행군 노정과 구름이 머무는 근처에서 보다 지형적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진 칠 곳을 익숙히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200만 인구 중에 노약자나 유아 및 병자 그리고 가축까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꼭 요청되는 도움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가나안까지 무사히 이끌 책임이 있는 지도자 모세는 지금 처남에게 강청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민10:32]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호밥에 대한 동행 권고]

(주); 복을 내리시는대로...행하리이다 - 즉 여호와 앞에서 대등한 관계를 맺겠다는 약속이다. 29절 주석 참조.

성 경: [민10:33]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연약궤와 모세의 간구]

(주); 여호와의 산 -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출애굽 후 약 11개월 간 머물렀었던 시내산을 가리킨다(출 19:1,2). 자세한 내용은 출 3:1 주석을 참조하라.

(주); 여호와의 언약궤 -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하는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언약의 증표인 거룩한 십계명 두 돌판이 보관된 곳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언약의 산 '시내'를 떠날 때 이것을 메고 떠난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계속 지키고, 그분과 친교를 나누며, 그분의 명령에 따라 생활할 것을 나타내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스라엘의 행군 순서상(13-28절)에서는 언급되지 않던 언약궤의 위치가 여기에 비로소 나타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앞서의 언급이 행군의 보편적인 순서를 총괄적으로 언급한 것인 반면에, 여기서는 실제 행군 출발 시점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를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언약궤(법궤)의 위치를 분명히 명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 삼일 길에 앞서 행하며 - 이는 언약궤가 도보로 3일 정도의 거리 앞에서 이스라엘의 행군을 주도했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시내산에서 출발하여 도착지 기브롯 핫다아와(11:34)까지의 3일 여정동안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의 선두에 있었다는 말이다.이와같이 광야 40년동안 언약궤는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의 행군을 주도해 갔다<14절>.

성 경: [민10:34]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언약궤와 모세의 간구]

(주); 행진할 때에...구름이...덮였었더라 -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표인 구름은 진이 머무를 때에만(9:16) 이스라엘 곁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구름은 작열하는 정오의 태양을 내내 막음으로써(시 105:39), 이스라엘의 걸음을 인도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아마 법궤 위에 높이 떠 있는 거대한 구름 덩어리의 그늘이 이스라엘의 행군 대열 위에 드리워진 것 같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감격과 평온을 늘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큰 감격과 기쁨은 대대로 전해져 후일 시인과 선자자의 입을 통해 다시금 고백되어졌던 것이다(시 91:1; 사 25:4).

성 경: [민10:35]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언약궤와 모세의 간구]

(주); 여호와여 일어나사 - 여기서 사용된 '일어나다'(*, 쿰)는 말은 신인동형동성론(Anthropomorphism)적 표현으로, 단순히 앉았던(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는 상태가 아니라 다음 동작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모세가 여호와로 하여금 일어나시도록 간구한 목적은 (1) 대적들을 진멸하도록 하기 위함이며(시 33:10; 사 14:20), (2) 그로 인해 이스라엘을 돕고(시 35:2; 44:26) 구원토록 하기 위함이다(렘 2:27).

(주); 주의 대적...주를 미워하는 자 - 하나님의 선민(選民)인 이스라엘을 적대시 하고 증오하는 자는 곧 하나님을 대적하고 미워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나타낸다. 사실 고대 근동 지방에는 각 나라에 국가신(國家神)이 있었는데, 전쟁의 승리는 곧 승리국의 국가신이 패전국의 신을 누른 것으로 간주하였다(삼상 5:1; 왕하 24:13; 25:14,15). 이런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과 하나님과는 존망(存亡)을 같이하는 운명 공동체임을 확신했다.

(주); 흩으시고...도망하게(* ... , 야푸츠 야누스) - 여기서 '흩다'는 말은 원래 '산산히 깨뜨리다'는 의미로써 흔적도 없이 무너뜨림을, 그리고 '도망하다'는 말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짐을 뜻한다. 결국 이말은 대적에 대한 완벽한 승리를 의미한다.

성 경: [민10:36]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언약궤와 모세의 간구]

(주); 여호와여...돌아오소서 - 여기서 '돌아오소서'(*, 슈바)란 말은 그 해석상 다양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이 말은 '구원하소서', '회복하소서', '새롭게 하소소', '축복하소서' 등으로도 번역된다. 이곳에서는 어느 한가지 해석을 취하기보다 그 모두를 취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임재해 계시지(돌아오지) 않으시면, 구원과 회복은 물론이요 변화 및 축복도 불가능하지만, 그분이 함께 하실 때는 그 모든 것이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사 63:11-14).

(주); 이스라엘 천만인 -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뜻이다<1;16>. 사실 이들이 군대 편제상으로 조직은 되었지만, 모세가 보기에 무기도, 변변찮고 전투 경험도 없을 뿐 아니라 수많은 노약자 및 유아와 여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들이 막강한 토착 세력인 가나안 족을 정복하러가는 것은 전적으로 여호와의 도우심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 진영이 쉴 때에 일단 떠나가 있었던 구름이 다시 돌아오기를 누구보다도 간절히 원하고 원했던 것이다.

성 경: [민11:1]

주제1: [만나에 실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다베라의 불 사건]

(주); 백성이...약한 말로 원망하매 -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그리고 백성이 여호와의 귀에 악하게 불평의 소리를 발하는 불만자들이 되었다'이다. 그 당시 백성들은 시내산을 막 출발하여 가데스 바네아를 향한 '3일 길'(10:33) 도상에 있었다. 그들은 시내 산에서 약 1년여를 머물면서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으나,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광야 여행과 가나안 정복은 그저 불안하고 요원(遙遠)하게만 보였으며 또한 주변의 척박한 환경은 그들로 하여금 불안과 초조에 떨게 했을 것이다. 이에 그들은 가나안 땅에 그들의 거처를 마련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하나님을 거스리는 말을 거침 없이 내뱉게 되었다. 특별히 본문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가나안 여정상 당연히 요구되는 광야 여행의 고생과 어려움을 제외하고는 그들에게 특별히 불평될 만한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노엽게할 만한 불만을 터뜨렸다는 점이다. 이처럼 불평은 (1)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할 때, (2) 그리고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때 생겨나는 인간의 본성적인 악이다(출 16:2-8).

(주);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 하나님은 당신 백성의 모든 언행 심사(言行心思)를 관찰하고 계신다(잠 15:3).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신가를 대변해 준다.

(주);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 여호와께서 진노하신다는 말은 신인동형동성론(anthropomorphism)적 표현으로서, 곧 당신의 공의로우심과 영광이 손상당하실 때 그 속성상 우러나오는 신적(神的) 반응을 두고 한 말이다. 한편 여기서 '여호와의 불'이란 여호와께로부터 직접 분출되는 불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초자연적으로 일으키신 불을 말한다(Keil). 그리고 이것은 불(구름) 기둥에서 뿜어나온 것인지, 아니면 번개로 인한 것인지는 알 길 없으나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것임에 분명하다(출 19:18; 레 10:2; 신4:11).

(주);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 하나님은 진(陳) 전체에 심판의 불을 확산시키지 않으시고 단지 이스라엘 진의 가장자리에 쳐진 장막에만 불을 붙이셨다. 이는 이 심판이 철저한 멸망을 목적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을 환기시켜 바른 길로 가게하려는 데 있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여호와의 위엄을 현시하여 경외심을 갖게 함으로써 다시는 그러한 불평 불만을 터뜨리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었음을 보여준다(Keil & delitzsch). 그런데 2절에 나타나는 바 백성의 다급한 '부르짖음'으로 보아 진 끝을 사른 여호와의 불길은 그 위력이 대단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에 출애굽하여 시내 산으로 향할 때에도 같은 불평이 있었으나(출 15:24; 16:2), 그때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곧 시내 산 언약을 중심으로 그 이전의 이스라엘은 마치 젖먹이 신앙과 같았기 때문에(고전 3:2) 하나님께서 묵인하셨으나, 시내 산 율법 전수 후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보다 분명히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정면 거스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징계를 내렸던 것이다.

성 경: [민11:2]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다베라의 불 사건]

(주); 백성이...부르짖으므로 - 여기서 '부르짖다'(*, 차아크)란 말은 '비명을 지르다'(shriek), '울부짖다'(cry out)란 뜻이다. 곧 진(陳) 끝으로부터 맹렬히 타들어오는 불의 기세에 놀라 자기도 모르게 겁에 질려 울부짖는 상태를 가리킨다.

(주); 모세가...기도하니...꺼졌더라 - 여기서 '기도하니'(*, 이트팔렐)란 말은 '중재하다', '탄원하다', '판단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팔랄'(*)에서 유래한 말로, 곧 여호와께 절규하듯 간청하면서 그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다는 의미이다. 즉 백성들이 불평, 원망한 죄를 용서해 줄 것을 모세가 증보 기도한 것이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맹렬한 불길을 거두어 가셨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불평이 가져다 주는 심각한 결과를 깨닫게 하시는 것으로 그 목적하신 바를 이루셨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모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이웃의 생명과 구원을 위한 의인의 중보 기도는 그 역사하는 힘이 큼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었다(약 5:16,19,20). 일찍이 모세는 금송아지 숭배사건에서도 간절한 중보기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한 바 있었다(출 32:11-14).

성 경: [민11:3]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다베라의 불 사건]

(주); 다베라(*, 타브에라) - '불 붙이다', '소멸하다', '잔인하다' 등의 뜻을 지닌 '바아르'(*)에서 유래한 말로써 곧 '불붙음'이란 뜻을 지닌 지명이다(신 9:22). 그러므로 이곳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징벌을 자초하는 일임을 오고오는 세대에 교훈해 주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성 경: [민11:4]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 섞여 사는 무리 - 출애굽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빠져나온 이방인을 가리킨다<출 12:38>. 이들은 할례를 받기 전에는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12지파의 본진(本陳)에 소속되지 못한 것 같고, 아마 각자 연관을 맺고 있는 지파에 붙어서 '식객'(食客)노릇을 했던 것 같다(Pulpit Commentary). 그러므로 이들은 자연히 민족적 자긍심이나 대대로 전해져 오는 여호와 신앙 및 가나안을 향한 소망에 있어 현저히 결여될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광야 여행 중 어려운 고비 때마다 제일 먼저 불평 불만을 터뜨렸던 것이다.

(주); 탐욕을 품으매 - 탐욕이란 절실히 필요한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분수에 넘치는 것을 무리하게 취하고자 하는 마음이다(창 3:6). 그들은 현재 맛있는 음식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들(가나안 정복, 하나님 뜻의 성취)이 산적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욕심을 따라 원망을 일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욕심은 끝내 죄와 죽음을 불러오는 파괴적인 욕망이다(약 1:15).

(주);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 '섞여 사는 무리'들의 불평 불만이 곧 이스라엘 백성들에게까지 전염된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울다'(*, 바카)란 말은 '통곡하다'는 뜻 외에 '애통한다', 즉 '몹시 한탄하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과거에 즐겼던 음식들(5절)을 못내 아쉬워하며 현 생활을 비관하고 낙담하면서 후회와 불만섞인 울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이처럼 죄는 전염성과 파괴성이 강하여 온 공동체를 일시에 불신과 파멸의 상태로 이끌고 만다.

(주);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출애굽시 몰고나온 많은 가축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가축들은 제사 제물용으로, 혹은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모를 광야 여행에 대비하여 보존용으로 삼았음에 틀림없었다(Keil). 만일 자유로운 식용 도살이 허영되었더라면 그 가축들은 얼마 못가서 다 없어지고 말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금 먹고 있는 만나 외에 좀더 자극성 있고 입맛을 돋구는 마늘이라든지 동물성 고기를 원했던 것이다.

성 경: [민11:5]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먹은 것 -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장된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작열하는 태양 볕 아래 채찍을 맞아가며 힘든 노동을 한 대가로 음식을 얻을 수 있었을 뿐이지 결코 본절의 표현처럼 '공짜로' 음식을 구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그 당시 나일강에서는 많은 물고기들이 잡혔다고 한다(Diodotus, Herodotus, Strabo, Hengstenberyg).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그것을 무료로 제공받은 것이 아니라, 죽음과 같은 노동 이후에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값비싼 음식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현실이 조금 힘들다고 생각한 나머지 민족의 자주 독립이나 개인의 인권 회복 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전날의 치욕스런 노예 생활에서 빌어먹었던 사실을 과장하여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주); 외(*, 키슈임) - 연하고 단맛이 나는 오이로서, 오늘날 '카테'(katteh)라 불리운다.

(주); 수박(*, 아비티힘) - 고온과 풍부한 습기를 지닌 애굽의 기후 조건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과일이었다. 오늘날 '밧티에'(battieh)라 불리운다.

(주); 부추(*, 하치르) - 본래는 '풀'을 뜻하는 말이나 여기서는 각종 푸성귀를 일컫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 파(*, 베찰림) - 고대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이것은 늘과 더불어 피라밋 공사 때 노동자들에게 제공된 주요 음식이었다고 한다. 애굽의 기후 조건상 이 파의 재배도 매우 잘 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노동자 계층의 음식으로 즐겨 사용된다고 한다.

(주); 마늘(*, 슈밈) - 파와 더불어 노동자들에게 힘을 돋구는 음식물로 즐겨 사용되던 것으로, 오늘날 '툼'(tum)이라 불리운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66). 따라서 1년여 동안 이것들은 섭취하지 못했던 애굽 노동자 출신 잡족과 또한 이스라엘인들에게는 괴로운 일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한 기쁨과 만족을 위해 잠시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어야 했다. 이것이 참 신앙인의 자세이다.

성 경: [민11:6]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 정력에 쇠약하되 - 원문에는 '정력'이 '영혼'을 뜻하는 '네페쉬'(*)로 표기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는 인간의 '영혼'을 뜻하기 보다 인간의 '육체' 또는 그 육체와 연관된 '기력'으로 이해함이 옳다(잠 23:2; 전 6:7). 그러므로 '정력이 쇠약하다'는 말은 자신들의 식용과 원기를 돋굴만한 음식을 오래도록 먹지 못했기 때문에 몸이 약해졌으며 반복되는 식생활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진정 그들이 약해진 것은 몸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정신 상태였다.

(주); 만나 외에는...아무것도 없도다 -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가장 완전한 건강식인 '만나'<출 16:15>를 팽개치고 과거의 얼큰하고 자극적인 음식물을 찾기에 급급한 이스라엘 백성의 저급한 불만이다. 실로 세상의 자극적인 향략과 얼큰한 탐욕에 취한 자들에게는 하늘의 순수하고도 담백한 신령한 음식이 눈에 차지 않는 법이다(요 6:66-68). 이러한 사실을 주석가 바움가르텐(Baumgarten)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것은 정결하고 순수한 음식물의 은근한 맛을 계속 즐기지 못하고, 자신의 내적 탐욕으로부터 생겨나는 바 툭 쏘고 시큼한 맛이 뒤섞인 자극적인 음식물을 갈구하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기인한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67).

성 경: [민11:7]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 만나(*, 만) - 직역하면 '(이것이) 무엇이냐'(what)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을 70인역(LXX)이 헬라어로 번역하면서 '만나'(*)라고 하였기에 개역 성경도 그 음역을 따라 이처럼 번역한 것이다.

(주); 깟씨...진주와 같은 것 - 이것은 그렇게 크지 않은(대략 굵은 모래알 크기) 타원 형태의 음식물로 보여진다. 그리고 그 색깔에 있어서는 출 16:31과 본문의 '진주'(계 2:17)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볼 때 아비보리(ivory) 색 정도로 상상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깟씨'는 미나리과에 속하는 고수풀(coriander)의 씨를 가리키는데, 크기는 직경 약 3mm 정도되며, 향료 또는 조미료로 사용된다.

성 경: [민11:8]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 갈기도...찧기도...삶기도 - 이것은 만나가 백성들의 다양한 입맛 취향에 따라 요리해 먹을 수 있도록 원재료로 주어진 것을 뜻한다. 따라서 백성들은 만나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것을 요리하지 않은 채로 먹었으나(출 16;15,16) 시간이 경과 함에 따라 다양하게 요리해서 먹은 듯하다.

(주); 기름 섞은 과자맛 - '기름'과 '꿀'(출 16:31)과 '초'(6:3)는 음식물에 발라 먹는 향신료로서, 이것들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만나'는 그 맛이나 모양에 있어서 최상의 음식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만나의 모양과 맛을 자세히 언급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지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성 경: [민11:9]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 이슬이...내리 때에 만나도 - 하늘 창고에서 내려진는 만나는 차가운 새벽 이슬과 더불어 지상에 내려졌고, 해가 떠오르는 아침녘에 사라졌다(출 16;20,21). 열을 가하여 요리하는 경우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만나가(8절) 일정한 시간이 차 기온이 오르게 되면 자동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분명 만나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초자연적인 음식임을 반증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당신이 제공하는 신령한 음식을 위해서는 영육간에 부지런해야 할 것을 또한 간접적으로 가르치셨던 것이다. 아울러 당신이 제공하는 선물들에 대해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강조하셨다. 한편, 일부 비평학자들은 만나가 광야에서 자생하는 식물의 진액이라고 주장하나 이것은 터무니 없는 억지이다. 이에 대해서는 출 16:15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11:10]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모세의 호소]

(주); 백성의 온 가족들이...우는 것을 - 군중 심리에 편승된 죄악(불평)은 이스라엘 전역을 오염시켰고, 따라서 온 민족이 혈기와 방종으로 마치 어린아이 같이 울어댔다(슥 2;13). 이에 하나님은 '진노'하셨다. 그러나 이 '진노'는 1절이나 33절에서처럼 행동화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불평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음으로써 표현되고 있다.

(주);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 여기서 모세가 불유쾌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도를 넘어 불만을 터뜨리고 혈기를 부리는 백성들과 (2) 그에 대해 진노하시는 여호와 때문이었다. 즉 모세는 무한정으로 불평을 일삼는 백성들의 완악함에 대해 그 역시 불만을 품었고, 동시에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옳게 조처할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주시지는 않고 침묵으로 당시의 진노만을 표현하시는 하나님께 유감을 표시했던 것이다(시 44:23; 사 51:9). 또한, 곧 이어 11절에 반복해서 '어찌하여'라는 말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그의 유감의 정도가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여호와께 대한 도전이나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책임진 지도자들이 한계 이상의 하중(荷重)을 받을 때 누구나 느끼는 무력감에서 비롯된 것이다(11-15절). 그럼에도 그의 유감은 분명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미숙한 감정 표현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성 경: [민11:11]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모세의 호소]

(주);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하시나이까 - 이는 모세의 착각이었다. 출애굽의 궁극적인 책임자는 하나님으로서 그분이 이스라엘의 필요를 모두 공급해야 했으며 또한 '약속대로' 그들을 안전히 가나안으로 인도할 책임이 있었다. 모세는 단지 그분의 대언자요 도구일 뿐이었다. 더욱이 여기서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자요, 혼자 '짐을 떠맡은 자'로 생각했는데 실은 하나님께서 날마다 그에게 은혜를 더하셨고 그의 어러움을 낱낱이 해결해 주셨다(출 14:13-31; 16장). 결국 그가 '괴로움'을 느낀 근본 원인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쉽게 좌절해 버린 연약한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다.

성 경: [민11:12]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모세의 호소]

(주);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 모세는 이스라엘이 한 민족과 국가로 '잉태'하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이며, 또한 그 민족에게 가나안을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출 20:2). 그러므로 본절은, 고기를 달라고 불평하며 아우성치는 백성들을 돌볼 책임은 모세 자신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모세의 책임 전가성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즉 '당신이 이스라엘의 아비이니 이 사태를 당신이 책임지라'는 식의 체념과 불만 섞인 항변을 하나님께 한 것이다.

성 경: [민11:13]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모세의 호소]

(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그리고 그들과 하나님과의 중재자로서 이때 모세는 그 고기를 '하나님께로부터' 얻어야 했다. 그러나 모세는 지금 복받쳐 오르는 감정으로 인해 자신의 그 막중한 임무를 망각한 채, 마치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책임을 벗기에 급급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민11:14]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모세의 호소]

(주); 나 혼자는...질 수 없나이다 - 위대한 출애굽의 지도자요 신앙의 인물인 모세 역시도 결국 나약한 인간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그는 하나님의 큰 일꾼으로 부름받았으나(출 3:1-4:31), 자기 혼자 사명을 감당하기엔 고독했고 힘이 부쳤다. 따라서 지금 모세는 불평 섞인 요구로나마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섞인 요구에 대해 하나님은 한마디도 질책하지 않으시고 모세를 보필해 줄 70인의 장로들을 그의 옆에 두심으로써 그의 고통스러움을 들어 주셨다(16-25절).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주위의 동료를 통해서도 당신의 사랑와 은혜를 전달해 주신다.

성 경: [민11:15]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모세의 호소]

(주);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 직역하면 '은혜를 베푸실 양이면 주저하지 마시고 단번에 저를 죽이시어'가 된다. 이제 모세는 현실 도피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로 매우 심약(心弱)해졌다. 즉 그가 죽기를 원한 것은 사도 바울의 경우처럼 하나님과의 영원한 동거를 사모해서가 아니라(고후 5:8), 단지 불만을 토로하는 백성들의 완악함으로 인한 '곤고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자에게는 현실의 고충 때문에 죽음을 운운하거나 맡겨진 사명을 내팽개칠 수 없다. 그에게는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는 신앙과 끝가지 참고 견디는 인내만이 요구될 뿐이다(시 50:15; 렘 33:3).

(주);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 여기서 '곤고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는 '고통', '재난', '불행', '슬픔' 등 온갖 인생의 '험악한 일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모세는 이제 시내 산을 출발하여 가나안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노정에서 벌써 이 정도의 곤고함이 자기 앞에 닥친다면, 앞으로 이 백성들을 이끌고 어떻게 계속 가나안 행군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짐작에서 하나님께 죽음을 요청하고 잇는 것이다. 즉 그는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그 소망의 열매도 보지 못하고 어차피 죽을 바에야 차라리 지금 죽은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생각은 출애굽을 시킨 분이 하나님이시며, 또한 가나안 땅을 약속한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모세는 자신은 단지 앞장 서는 선두 주자일 뿐, 이스라엘을 친히 이끄시고 인도하는 책임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모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먼저 기도로써 하나님의 도움을 청했어야 옳았다.

성 경: [민11:16]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주); 장로(*, 자켄) - 나이 많고 경륜과 지혜와 덕망을 고루 겸비한 자로서 백성을 지도할만한 자들이다. 맡은 일이 무겁다는 모세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은 그를 도울 지도자 70인을 세우셨다. 특별히 여기서 '70'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완전수' 또는 '하나님의 수'로 상징되고 있다.(출 1:5; 단 9:2,24; 눅 10:1). 이는 장로들이 모세의 무거운 짐을 완전히 덜어 주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진 자들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한편 후대에 이르러 유대인들은 바로 이곳에서 산헤드린 구성 인원의 근거를 찾았다고 한다(Pulpit Commentary).

(주); 유사(*, 쇼테림) - 군사, 행정에 유능한 인물을 가리킨다. 결국 모세에게 보내진 자들은 인격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실무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자들이었으며 주로 세상적인 일보다 모세와 더불어 종교적이며 거룩한 일에 투입될 자들이었다.

(주); 네가 아는 자 - 이는 모세의 동역자를 선택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모세의 재량권을 대폭 하락하셨음을 보여 준다.

(주); 회막 내 앞 이르러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공식적인 인준을 위해서 모세가 택한 70인의 장로와 유사들을 당신의 임재 처소 앞으로 오게 하셨다.

성 경: [민11:17]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에대한 하나님의 약속]

(주); 내가 강림(降臨)하여 - 이 약속은 25절에서 성취되었다. 즉 하나님은 구름 가운데 강림하셨다. 이는 회막 위에 떠올랐던 구름이 회막으로 내려 앉은 것을 의미한다(12:5; 출 33:9; 신 31:15). 그리고 강림하신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장로들에게 각자가 수행해야 할 임무를 말씀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부족하고 모난 인간을 '찾아오셔서', '함께 하시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가 최고조에 달했던 사건이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이다(요 1:14). 즉 예수의 강림으로 인해 인간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마 1:21,23).

(주); 네게 임한 신(神) - 여기서 '신'이란 흔히 '바람'을 뜻하는 히브리어 '루아흐'(*)에 정관사 '하'(*)가 결합된 형태로서, 곧 '성령'(the Spirit) 또는 그 '성령의 은사'(gifts of the Spirit)를 의미한다. 이처럼 성령은 하나님께서 인준하신 자들 위에 임하셔서 각자에게 필요한 풍성한 은사와 능력을 부어 주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수행케 하신다(삿 3:10; 6:34; 삼상 10:6,10).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슥 4:6). 그래서 성령은 구약 시대에도 어떤 특별한 자들에게 임했는데, 그 대표적인 겅우가 브사렐(출 35:30), 옷니엘(삿 3:10), 기드온(삿 6:34), 입다(삿 11:29), 삼손(삿 13:25) 등이다(L.Wood). 그러나 구약 시대 당시 성령의 활동은 극히 제한적이고 한시적(限時的)이어서, 제한된 인물에게 한시적으로 임했다. 따라서 때로 성령은 떠나가기도 하였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경우가 그에 해당된다(삼상 16:14). 그러므로 다윗은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대강림 사건(행 2:1-4) 이후의 성령은 떠나지 아니하시고 영원토록 내주하신다(요 14:16).

성 경: [민11:18]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주); 너희 몸을 거룩히 하여 - 여호와의 초자연적이고 은헤로운 사역을 위해서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바는 성결이었다(출 19:10; 수 3:5). 하나님은 영육간에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지 않는다(마 22:11-13).

(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 고기 먹기를 소원하는 것 자체는 인간의 생리적 욕구로써 큰 흠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잘못은 고기에 대한 욕구가 지나쳐 현재 주어진 것에 감사치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먹지 못하는 현실로 인해 원망섞인 탄식을 한 데 있었다. 이것은 실로 자신들의 처참한 옛 처지를 망각한 배역 무도한 행위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불만에 징계로 대응하시기 보다 고기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이는 그들의 요구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싫도록 고기를 먹는 가운데 자신들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불손했음을 스스로 자각하도록 하기 위함인 듯하다(눅 15:11-21).

(주);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 있었다 - 이는 출애굽을 주도하시고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지극히 모독하는 처사이다. 이처럼 크신 은혜를 멸시하고 과거 애굽의 노에 시절을 동경한 배은망덕한 태도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된 이유였다(20절).

성 경: [민11:19,20]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주); 코에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 - 달리 표현하면 '고기에 질려 가까이 하기 싫어질 정도가 될 때까지 1개월간'이다. 여기서 '1개월간'이란 '기브롯 핫디아와'에서의 짧은 체류 기간을 생각한다면 숫자적으로 정확한 '1개월'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고기에 질린 정도의 기간을 빗대어 한 말이라 볼 수 있다.

(주); 여호와를 멸시하고 -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근본 동인이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와 약속 모두를 멸시하고 자신들의 죄악된 욕구를 따라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멸시하다'(*, 마아스)란 말은'내쫓다', '증오하다', '비난하다'는 의미도 내포된 것으로서,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의뢰하거나 자신들의 왕으로 모시지 않고 오히려 그분의 약속과 구원 사역을 비난하고 업신여겼음을 가리킨다.

(주);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 -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 그 혹독한 사역에 못이겨 '탄식하며 부르짖었다'(출 2:23). 하나님께서는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사 당신의 크신 권능으로 그들을 바로의 손에서 구출하셨다. 그러한 출애굽 사건이 고작 1년여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광야 노정이 좀 고달프다고 해서 그들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라고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 광야 생활은 고생을 위한 고생이 아니라 가나안 땅을 목적하는 의미있는 고생임에도 불구하고이처럼 배은망덕한 언사를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실로 그들은 가나안 땅을 차지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다. 그런고로 광야 여정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불평과 원망으로 일관된 패역의 노정이요, 하나님께 있어서는 긍휼과 인내로 일관된 은총의 노정이었다.

성 경: [민11:21]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주); 보행자가 육십 만 명이온데 - 여기서 '보행자'(步行者)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장정들을 가리킨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20세 이상된 장정(壯丁)으로서 '603,550명'의 보행자를 거느리고 있었다(1;46). 이에 비추어볼 때 전체 인구는 200만 명이 족히 넘었을 것이다<출 12:37>.

성 경: [민11:22]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주); 그들을 위하여...잡은들 족하오며 - 일찍이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셨던 신 광야 사건(출 16:13)을 목격했었던 모세로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겠다고 정하신 일은 능히 성취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모세는 백성들의 불평과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해 언짢아졌던 감정<10절>이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배려에 대해(19,20절)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한편 '양떼와 소떼'는 애굽에서 탈출해 나올 때 가져온 것으로서 주로 제사용으로 많이 사용되어야 했고(출12:32), 그리고 '바다의 모든 고기'는 그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전혀 구할 수 없었던 음식물이었기에 이러한 모세의 말은 그의 불편한 심기(心氣)를 대변해 주는 표현이다.

성 경: [민11:23]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주);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 결코 변함없는 여호와의 무한하신 능력을 설의법(設疑法)적인 표현으로 강조한 것이다. 더욱이 이는 애굽에서 바로를 억누르신 능력, 홍해를 가르신 능력,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신 능력 등을 벌써 잊어버렸느냐는 책망이 섞인 표현이기도 하다(잠 30:4; 사 40:12).

성 경: [민11:24]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세움 받은 칠십 장로]

(주); 백성의 장로 칠십 인을 모아 - 이들을 모으는 일은 전적으로 모세의 권한에 일임되었다(16절). 따라서 혹자는 여기서 모세의 보필자로 뽑힌 장로 70인은 약 1년 전 시내 산 언약체결 후 시내산 중턱에서 모세와 아론과 더불어 친교의 음식을 먹었던(출 24:9-11) 바로 그 70인의 장로라고 보기도 한다(Pulpit Commentary).

성 경: [민11:25]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세움 받은 칠십 장로]

(주); 그에게 임한 신을 칠십 장로에게도 - 혹자는 여호와께서 진노하셔서 모세에게 임한 성령의 은사를 감소시키기 위해 이런 조치가 취해졌다고한다(Calvin). 하지만 이 조치는 '70인 장로'가 모세를 돕기 위해 선택된 자들이란 점에서(16,17절), 모세의 능력을 감소시킨 것이라기 보다 모세와 더불어 일할 자들에게 동일한 성령의 은사를 수여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keil, Targum). 이는 데오도렛(theodoret)이 표현한 바 "마치 불을 다른 곳에도 옮겨 붙이기를 원하는 자가 근원이 되는 그 최초의 불을 끄지 않듯, 하나님께서도 모세에게 내린 성령의 불길을 조금도 감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으로 다른 70인의 장로들에게 옮겨 붙이신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I-iii.p.70).

(주); 예언을 하다가(*, 이트나베우) - 문자적으로는 '계속해서 지껄이다', '많은 말로 탄원하다'로써 곧 성령의 감동에 의해 신적인 황홀경에 몰입되어 다발적(多發的)인 말을 하는 상태를 일컫는다(Keil). 그러므로 이것은 일반 예언자들에 의해 선포되어지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신적 권위를 부여받은 사실을 가시적(可時的)으로 증명하고, 그로 인해 백성들이 '70인 장로'에게 복종하도록 하기 위한 성령의 특별하신 감동으로 볼 수 있다(삼상 10:6).

(주); 다시는 아니하였더라(*, 로 야세푸) - 이는 '더이상 계속하지 않았다'(RSV. did so no more). '되풀이 하지 않았다'(NIV. didl not do so again)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멈춤'은 영원히 '예언'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일순간 예언하다가 곧바로 멈춘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그들이 예언을 멈추었다고 해서 그들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세를 도와 여호와 신앙을 보존하는 일과 백성들을 개도해가는데 필요한 능력을 계속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고전 12:28).

성 경: [민11:26]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엘닷과 메닷]

(주); 녹명(錄名)된 자 - 모세가 자신을 보필할 70명의 장로 명단을(16절) 작성해 두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애굽에서 40년간 교육받은 모세로서는 자연스로운 일이다(행7:22).

(주); 엘닷...메닷...진에서 예언한지라 - 엘닷(뜻: 하나님의 친구)과 메닷(뜻: 우정)이 회막 앞에 모이지 않고 진에 남아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아마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조차도 성령의 능력을 덧입혀 예언하게 하셨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상황과 장소와 시간에 구애됨 없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활동하신다(시 139:17).

성 경: [민11:27]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엘닷과 메닷]

(주); 한 소년(*, 한나아르) - 문자적으로 '한 청년기의 젊은이'를 가리킨다. 그는 '예언'과 같은 신령한 일이 거룩한 회막에서가 아니라, 개인의 거처인 진(陳) 중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 같다. 이는 마치 신약시대에 유대 할례자들이 이방인 중에서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사실에 놀랐던 것과 흡사하다(행 10:44-48).

성 경: [민11:28]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엘닷과 메닷]

(주); 택한 자 중 한 사람 - 모세에게 수종들던 자가 최소한 두 명 이상이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그 중 여호수아가 가장 신임받던 수종자였다(출 17:9; 24:13; 32:17).

(주); 내 주 모세여 금하소서 - 여호수아는 모세를 수종들던 신실한 종의 입장에서 모세의 명예를 위하여 엘닷과 메닷이 아무런 모세의 지도나 중재도 없이 개인 거처에서 예언한 것을 놓고 시기하였다. 따라서 그는 그 일을 이스라엘의 행정적 기강과 모세의 권위를 침해한 일로 단정하였다. 이는 마치 신약 시대에 예수의 제자들이 축사(逐邪)하는 어떤 자에게 대해 주님의 명예를 위하여 흥분했던 것과 유사하다(막 9:38-40). 그러나 이 모두는 성령과 그 역사의 초월성을 이해하지 못한 공연한 질투였다.

성 경: [민11:29]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엘닷과 메닷]

(주);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 인간적인 판단에 따라 개인 거처에서 예언한 자들을 시기했던 여호수아에 대한 모세의 질책이다. 여기서 '시기하다'(*, 카나)란 '열정적으로 샘내다(질투하다)'는 뜻으로서 여호수아의 건의가 매우 감정적이고 불순한 동기에서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즉 그는 모세의 절대 권위가 그를 수종드는 자신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 여호와께서...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 여기서 '선지자'란 하나님께로부터 전달된 메시지를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고 인간들에게 그대로 선포하는 자를 가리킨다(출 7:1; 겔 3:4; 암 3:8). 이들은 왕이나 제사장처럼 세습에 의해 그 직무를 맡지 않고, 당신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에만 직무를 감당했다. 한편 '선지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나비'(*)의 어원은 정확히 알수 없으나, 그 용례를 통해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즉 그의 직무는 (1)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알아 선포하며 (2) 백성을 가르치며, 인도하기 위해 말씀을 선포하고 (3) 타락시에는 담대히 신적 심판(divine judgement)을 선포하여 백성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 등을 하였다. 한편 모세는 모든 백성이 위와 같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고 전하며 성령에 사로 잡히게 되기를 원하였다. 따라서 그는 성령의 은사를 독점하거나, 그 주어진 능력을 동원하여 자기의 지위를 절대화하려 들지 않았다. 이처럼 자기의 권위와 지위를 중요시 하기보다 이스라엘 전체의 영적 성숙을 추구했던(욜 2:28) 모세야말로 하나님 집에서의 모범적인 지도자 상(像)을 구현한 자이다. 한편, 그런데 그의 이러한 신앙적 소망은 후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각 성도에게 충만히 임하신 성령을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다(눅 23:45; 요 14:16; 행 2;1-4).

성 경: [민11:30]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엘닷과 메닷]

(주); 진 중으로 돌아왔더라 - 혹자는 이 말을 근거로 회막은 진(陳) 바깥에 세워져 있었다고 간주하고, 따라서 본장의 70인 장로 예언 사건은 성막이 건립되기 전 임시로 세운 장막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결국 여기 70인 장로 임명 사건이 출 18장에 나타나는 재판관 임명 사건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Vater, Knobel). 그러나이것은 분명 억측이다. 왜냐하면 비록 장막이 진 중앙에 위치했다 할지라도 백성들의 진과 장막 사이에는 레위 자손들의 거처가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거쳐가야 하므로 위의 표현처럼 진 중으로 돌아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Keil, Pulpit Commentary). 한편 이들과 재판관 사이의 관계는 분명치는 않지만, 이들 장로 70인이 (1) 성령을 받았다는 점에서 (2) 그리고 숫자면에서 더 적었다는 점에서 더 높은 권위를 갖게 되었다고 봄이 무난할 것 같다(L.Wood, A survey of Israel's History)

성 경: [민11:31]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와 기브롯 핫디아와 사건]

(주); 바람이...메추라기를 몰아 -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여기서는 바람의 변화를 주도하셔서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장면이다. 시편 78:26,27에 의하면 이때의 바람은 동남풍 곧 아카바만에서 발원하여 신 광야를 거쳐 지중해 쪽으로 부는 바람을 가리킨다. 한편 '메추라기'로 표현된 철새 떼들을<출 16:13> 봄에 떼를 지어 중앙 내륙 아프라카에서부터 북상(北上)하여 앗시리아 쪽으로 이동하는데, 이때 힘에 겨운 새들이 가끔 팔레스틴 지역에 떨어지곤 한다. 이 경우 손이나 막대기로 기진한 새들을 손쉽게 잡을 수 있다고 전한다(Knobel). 그러나 여기서는 자연적인 현상을 추월하여 하나님께서 동남풍을 이용하여 바로 이 철새떼들을 이스라엘 진 위에 소나기처럼 무더기로 떨어뜨리셨던 것이다

(주);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 - 메추라기가 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면에 하룻길(약 32km) 정도에 걸쳐 지면에서 두 규빗(1m) 높이로 쌓였다. 혹자에 의하면 이것은 이때 땅 위 1m까지 메추라기가 쌓인 것이 아니라, 기진한 수많은 새들이 1m 높이 정도에서 날아다님으로써 백성들이 손쉽게 잡을수 있었던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Targum, Vulgate). 그러나 이는 "적게 모은 자도 10호멜"(약 120말)이라는 다음 절(32절)의 표현과 조화되기 어렵다. 따라서 이는 말 그대로 기진맥진한 메추라기 떼가 이스라엘 진 사방에 그냥 맥없이 떨어져 쌓였다고 봄이 옳다(Kiel).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당시 보기만해도 질릴 정도의 엄청난 고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분명하다.

성 경: [민11:32]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와 기브롯 핫디아와 사건]

(주); 백성이...이튿날 종일토록 - 백성들은 그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이틀간 닥치는 대로 메추라기를 모아들였다. 그들이 모은 양이 곧 그들의 탐욕 정도를 대변해 준다. 즉 그들 중 적게 모은 자가 '십 호멜'(약 2,200리터=120말) 정도였으므로, 전체 백성들이 거둬들인 양은 헤아릴 수 없을만큼 엄청났음이 분명하다. 특히 그들의 원망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처럼 당신의 크신 권능을 친히 나타내셨건만, 자신들의 부그러움을 깨닫고 자숙(自肅)하기는 커녕 서로 더 많이 모으겠다고 아귀다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백성의 완악함을 보게 된다.

(주); 호멜 - 호멜(homer)은 구약 시대의 고체 건량 단위로서 한 호멜은 약 6 부셀(bushel)에 해당한다(P.B.Y. Soctt, The Biblical archaeologist). 그리고 한 '부셀'은 대략 36리터(약 2말 1홉)에 해당된다.

(주); 진 사면에 펴 두었더라 - 햇볕에 말려서 장기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마치 애굽 사람들이 생선을 햇볕에 말려 오래도록 먹는 것과 동일한 방법이었다(Herodotus).

성 경: [민11:33]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드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와 기브롯 핫디아와 사건]

(주); 고기가...씹히기 전에 - 여기서 '씹히다'(*, 카라트)란 말은 '자르다', '소멸시키다'는 의미로서, 이빨로 '씹는다'는 의미보다 '먹어 없애버리다', '모두 소비하다'는 뜻으로 이해함이 옳다. 그러므로 본문은 '고기를 씹고 있는 중에'라기 보다는 '메추라기 고개를 모두 먹어 없애기 전에'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1개월'간의 고기 섭취를 허락하신 적이 있는데(20절), 이 기간이 차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의 쓴 맛도 함께 경험해야 했다.

(주); 심히 큰 재앙으로 - 혹자는 이 재앙이 당시 몸에 해롭다고 간주된(Pliny) 메추라기 고기를 갑자기 많이 섭취함으로 생겨난 식중독 또는 기타 질병일 것으로 추정한다(Knobel, bochart). 그러나 재앙을 음식물로 인한 자연적인 질병에 국한시키기 보다 여호와께서 특별하게 내리신 어떤 죽음의 징계인 역병(疫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그 징계의 대상자는 아마 고기를 달라고 앞장 서서 불평을 선동했던 자들일 것으로 추정된다(Pulpit Commentary). 이 사건은 결국 (1)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원망과 탐욕을 일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깨우쳐 주고 (2) '배부른 생활'이 항상 개인에게 유익한 것만은 아님을 교훈한다. 오히려 악인의 번영은 멸망을 앞당기는 역할을 한다(잠 23:17; 전 2:26).

성 경: [민11:34]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와 기브롯 핫다아와 사건]

(주); 기브롯 핫다이와 - '탐욕의 무덤'이란 의미를 지닌 지명으로서, 시내산에서 '3일길' 되는 곳인 바란 광야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이곳은 불평을 일삼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려 다수(多數)를 죽이셨던 곳으로, 오고오는 후세대에 탐욕이 가져다 주는 비극적인 사태를 웅변적으로 보여 준다.

성 경: [민11:35]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게와 기브롯 핫다아와 사건]

(주); 하세롯 - '울타리', '마을' 등의 의미를 지닌 지명으로서, 기브롯 핫다아와 인근 지역이라는 것 외에 그 위치에 대해 알려진 바 없다. 혹자는 이 곳을 오늘날 빌-엣-테벱(Bir-et-themmed) 지역으로 보기도 한다(Kurtz, Fires). 한편 이곳에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다가 화를 당하는데 , 그런 점에서 본절은 12장의 배경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성 경: [민12:1]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를 비방한 미리암과 아론]

(주);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 여기서 '구스'는 원문에 '쿠시'(*)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족속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아라비아 반도 및 앗시리아 지역 등에 널리퍼져 정착한 검은 피부색의 함족 계통을 말한다. 한편 모세의 아내가 된 '구스 여인'(the Cushite woman)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1) 그중 '구스'를 '미디안'과 동일시하여(합 3:7) '구스 여자'를 모세의 본처인 '십보라'(출 2;21)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Calvin, Knobel). 그러나 본서의 기록자 모세가 자신의 아내에 대해 그같이 불투명하게 언급했을 리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모세 소명 전의 도피 생활에서 이루어진 오랜전의 사건을 놓고 새삼 미리암과 아론이 문제 삼았을 리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위의 견해를 용납하기 어렵다. 따라서 어떤 학자는 (2) 모세가 그의 아내 십보라의 사망 후 재혼하였는데, 바로 그 새 아내가 '구스 여자'였다고 주장한다(Michaelis, Keil, Ewald). 문맥상 이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유대 전승도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즉 모세는 출애굽시 함께 탈출해 나온 잡족 가운데 한 여인을 취하여 후취(後娶)로 취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Keil & Delitzsch, Pentateuch. Vol. I-iii. p. 76). 즉 '그것은 율법에 표현된 바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평등 사상 및 친교관계를 직접 나타내 보여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Baumgarten). '그것은 미래에 이루어질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복된 연합 관계를 본보기로 보여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Gerlach).

(주); 미리암과 아론이...비방하니라 - 원문에서 강조하는 바는 '미리암'이 모세 비방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첫째 미리암의 이름이 이스라엘의 제사를 집례하는 대제사장 아론의 이름보다 앞서 기록되었기 때문이며, 둘째 '비방하니라'(*, 테다베르)는 말의 동사가 여성형 주어를 취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셋째 이 사건에 대하여 미리암만 징계를 받아온 이스라엘의 앞에서 수치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은 미리암이 적극 주도하고 아론이 이에 소극적으로 동조한 것이었다(Keil, Pulpit Commentary, Lange). 한편 그들이 모세의 결혼을 두고 비방거리로 삼은 동기에 대해 추론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이방인과의 결혼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침묵하시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적 순수성 보존을 위해 가나안 7족속과의 통혼을 금지하셨을 뿐(출 34:16; 신 7:1), 이방인과의 결혼을 아예 금지시키신 것은 아니었다(창 48:5; 롯 4;13-22). 또한 가나안 정복 당시와 에스라 9장, 그리고 느헤미야 13장에 강조된 이방인과의 결혼 금지는 그 결혼이 가져올 종교적 타락(우상 숭배)과 도덕적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자체가 무슨 절대법은 아니었다. (2) 선민(選民)으로서의 민족적 우월성과 배타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그 종교적 자긍심보다 그 육신적 우월 의식에 사로잡힐 때마다 질책을 면치 못했다(Kurtz). (3) 그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모세의 탁월한 지위에 대한 그들의 교만한 질투심 때문이었다(2절). 그러므로 그들은 실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는 경구를 깊이 깨달아야 했다.

성 경: [민12:2]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를 비방한 미리암과 아론]

(주);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한 근본 이유는 자신들에 비해 월등한 모세의 지위 및 탁월한 권위에 대한 시기심 때문이었다. 여기서 '...와(더불어)'라는 전치사 '베트'(*)는그 해석상 '...로 부터'로 봄이 더욱 타당하다. 즉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으로부터만 백성에게 말씀하셨느냐'는 의미이다. 이는 모세의 중보적(中保的) 기능을 언급한 것으로서, 미리암과 아론 역시도 이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물론 그들도 신령한 은혜를 체험한 자들이었다. 즉 미리암은 여선지자 자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기도 했으며(출 15:20,21), 아론은 우림(Urim)과 둠밈(Thummim)이 부착된 판결 흉패를 입은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도 했고 또한 모세와 더불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기도 했었다(2:1; 출 28:15,30). 그러나 그들에게는 가장 직접적인 신정 정치(神政政治)하에서의 모세만이 가지는 특수한 권위와 기능 곧 중보자로서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출 4:16; 32:22). 그러므로 결국 그들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모세에게만 독특하게 주어진 그 권위에 도전한 것은 그 권위를 덧입히신 하나님께 대한 도전으로 간주될 수 있다.

(주); 여호와께서...들으셨더라 - 이는 인간의 행동과 사고 전체를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강조한 표현인 동시에, 이 사건의 정확하고도 공정한 심판을 하시고자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나설실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성 경: [민12:3]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를 비방한 미라암과 아론]

(주); 온유함(*, 아나우) - 원문상 '온유'란 '자기를 낮춤', '괴롭힘을 당함', '겸손함'이라는 뜻을 지니고있다(LXX, Vulgate). 그러므로 모세가 온유했다는 말은 자신을 비방하는 소리에 대항치 않고 감정을 억제하며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묵묵히 참아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편, 이같은 자기 절제는인간의 본성적 기질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갈 6:22,23).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勝) 하더라 - 즉 당시 모세의 '온유함'을 따라갈 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모세 스스로를 치켜세우는 교만한 표현이 아니라, 그 당시의 정황을 객관성 있게, 그리고 모세의 심적 고통을 깊이있게 다룬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평 학자들은 본절의 표현을 근거로, 본서 및 오경의 저자를 모세로 보지 않고 후대 기록자에 의한 삽입문이라 본다. 그렇지만 고대의 저작 속에 필자가 자신을 객관화시켜 묘사한 작품은 허다하다(Josephus, Xenophon). 아니면 모세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대필(代筆)케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H.E. Freeman). 여하튼 이러한 사실에 대해 칼메트(Calmet)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음미할 만하다. '여기서 모세가 아무런 교만의 마음 없이 자신을 칭찬한 것처럼, 다른 곳에서는 아무런 위선의 마음없이 또한 자신을 질책할 것이다'(Kiel & delitzsch, Vol. I-iii. p. 78).

성 경: [민12:4]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를 변호한 하나님]

(주); 갑자기(*, 피테옴) - 원뜻은 '눈깜박일 동안'으로서, 본문에서는 준비할 여유도 없이 순간적으로 진행된 사실을 나타낸다. 즉 하나님께서 그 일에 개입하사 말씀하실 것이라고는 3인 중 마무도 상상치 못했다는 의미이다.

(주); 삼 인은 회막으로 - 회막(會幕)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친히 만나시는 장소로서 곧 이스라엘 통치의 핵이었다(17:4; 출 29:42,43). 한편 이곳으로 3인을 부르신 것은 그들 상에 진행된 비방 문제를 판결하기 위함이었다. 혹자(lange)는 이 일 이후부터 회막의 앞뜰에 여인들의 출입이 가능해졌다고 한다<5절>.

성 경: [민12:5]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를 변호한 하나님]

(주); 여호와께서...강림하사 - 곧 회막 위에 머물러있던 구름이 회막에 완전히 내려 앉은 것을 의미한다(10절: 11:25).

(주); 장막 문에 서시고 - 모세를 비방했던 미리암과 아론이 나아오자 구름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께서 '장막 문' 곧 '회막 뜰 입구'에 서셨다(레 8:3,31,33). 아마 이때 구름은 미리암과 아론 두 사람을 덮고 그 구름 속에서 여호와가 말씀하심으로써 당신의 현존(presence)을 밝히셨던 것 같다.

성 경: [민12:6]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를 변호한 하나님]

(주); 내 말을 들으라 - 원문에는 '제발', '부탁하건데' 라는 의미의 부사 '나'(*)가 첨가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제발 부탁하건데 이제 내말을 들으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더 이상 인간적인 비방을 삼가하고 거룩하고 공의로운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인간사(人間事)의 최종 결정권을 가진다(시 119:105; 계 20:4).

(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며 - 직역하면 '만약 너희 가운데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으며'이다. 이는 미리암과 아론의 직능이 '선지자' 또는 '선지자적 역할'을 담당한 자라는 사실을 암사히는 표현이다. 한편,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에게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는 방법 두 가지를 제시하셨다. (1) 이상으로(*, 바마르아) - '이상'(vision)이란 '보다', '나타나다', '제시하다' 등의 뜻을 지닌 히브리어 '라아'(*)에서 유래한 말로 곧 하나님께서 인간의 감각을 통하여 인지(認知)시키시는 초자연적인 광경을 가리킨다(창 46:2; 삼상 3:15; 겔 1:1). (2) 꿈으로(*, 바할롬) - 외부의 변화없이 인간 내면의 사고 작용과 감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시는 방법이다(창 20:6; 삼상 28:6; 단 2:4). 그러나 모세는 이러한 간접적이고 일방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과 교제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상호 '하나님과 대면하는' 영광을 부여 받았다.

성 경: [민12:7]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를 변호한 하나님]

(주);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 여기서 '나의 온 집'은 회막 뿐 아니라 회막에 관련된 각종 규레 및 나아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언약 관계 그리고 언약 백성 모두를 총괄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그리고 '충성하다'(*, 네에만)란 말은 '확실하다', '진실(충실)하다'는 등의 뜻이 들어 있는 '아만'에서 유래한 말로서, 모세가 오랜 기간에 걸쳐 어떤 상황 아래서도 하나님께 최선의 헌신을 다함으로써 충실하다는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창 42:20; 신 28:59; 히 3:2). 이런 이유 때문에 모세는 일반 선지자와는 달리 '이상'이나 '꿈'과 같은 간접적인 의사 소통 방법이아닌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face to face) 특별한 방법으로 교제했던 것이다<8절>.

성 경: [민12:8]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를 변호한 하나님]

(주); 그와는 내가 대면(對面)하여 - 여기서 '대면하다'(*, 페 엘 페)란 말의 문자적 의미는 '입과 입을 마주 대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출 33:11에는 '얼굴과 얼굴을 서로 대하여'(face to face)란 말을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두 표현은 동일한 의미로써 곧 매우 친밀한 교제 관계를 나타낸다. 즉 하나님은 모세에게는 일반 선지자들에게 사용하시는(6절) 꿈(dreams)이나 이상(visions)과 같은 계시 방법을 사용치 않으시고 마치 오랜 친구처럼 직접 그와 가까이서 대화하셨음을 강조한 것이다.

(주);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 직역하면 '외모를 보듯이 하고 수수께끼로 아니하며'이다. 즉 눈으로 보아 단번에 이해할 정도로 확실히 말하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애매하게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주);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 죄인된 인간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본체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대원리이다(출 33:18-23; 딤전 6:16). 그러므로 여기서 '여호와의 형상'(*, 테무나트 예호와)이란 여호와의 본체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또한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겔 1:26; 단 7:9), 또는 여호와의 사자(使者)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형상(창 16:7)과도 전혀 다르다(Keil). 여기서 '여호와의 형상'이란 출 33:11의 경우처럼 외형적인 고유한 형상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여기서의 '형상'이란 출 33:11의 경우처럼 그의 위엄스럽고 영광에 찬 임재의 상징을 나타낸다. 이는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그와 만나시기 위해 사용하신 특수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결국 본질 전체에서 강조하고 있는 바는 모세의 직위와 역할은 다른 모든 선지자들 및 백성들보다 탁월하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시고 인정하신 모세의 권위를 시기하거나 비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 경: [민12:9]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문둥병이 들린 미리암]

(주); 여호와께서...진노하시고 떠나시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세 지도자 사이에 발생한 분란을 재판장의 자격으로 해결하시고 그곳을 떠나가셨다. 한편 피고 미리암에 대한 진노의 표시로는 뒤이어 나오는 '문둥병' 징계로 이해할 수 있으나, '아론'에 대한 진노의 결과는 언급되지 않았다. 아마도 아론에게는 가슴을 찌르는 듯한 죄의식과 더불어 잠시 동안의 제사 집례 중지 등으로 죄책이 돌아갔을 것이다.

성 경: [민12:10]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문둥병이 들린 미리암]

(주); 구름이...떠나갔고 - 즉 여호와의 임재의 가시적(可視的) 증거인 구름이 걷힘으로 여호와께서 그곳을 떠나가셨음을 보이셨다(5,9절).

(주);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려 - 그 당시 문둥병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산 자들이 걸리는 천형(天刑)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치료되기까지 하나님의 임재의 거룩성이 미치는 진(陳)에서 격리되어 생활해야 했다<레 13, 14장>. 한편 여기서 문둥병의 증세가 '눈과 같이' 희어졌다는 말은 그 병세가 상당히 악화(惡化)되었음을 나타낸다.

(주); 아론이...본즉 - 당시 아론은 제사장으로서 문둥병을 판별해야 하는 직무를 갖고 있었다(레 13:2). 따라서 그는 미리암의 증세를 살폈을 것인데, 여기서는 그 증세의 완연함으로 인해 자세히 관찰할 필요도 없이 즉각 알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모세 비방에 가담한 아론에게는 문둥병이 발병하지 않았다는데,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추론해 볼 수 있다. (1) 그는 미리암의 충동질에 단지 동조했을 뿐이다. (2) 거룩한 제사를 집례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직책의 부정을 막기 위해 문둥병이 면제되었다. (3) 문둥병 발병은 교훈적인 성격의 징계로써 비방자의 대표인 미리암만으로도 충분했다. 따라서 구태여 대제사장 아론을 징계하지 않더라도 신적 권위자에 대한 질투가 가져다 주는 부정적 결과를 미리암을 통해 아론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Matthew Henry's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성 경: [민12:11]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문둥병이 들린 미리암]

(주); 내 주여(*, 아도니) - 아론은 모세의 형이지만(출 7:7), 이제는 모세가 신적 권위에 있어서 자기보다 월등한 위치에 있음을 인정하면서, 종이 주인에게 부르는 호칭인 '아도아니'를 사용하여 그에게 호소하고 있다. 특별히 '주'(主)라는 호칭 앞에 '제발, 청하오니' 등의 뜻인 히비르어 '비'(* -한글 개역 성경에는 '슬프다'로 번역됨)를 언급하여 '비 아도니' 곧 '제발 나의 주여!'(please my Lord-NIV)라는 강력한 소청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이는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지는 겸손의 진리를 웅변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욥 5:11; 마 23:12).

(주);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 아론은 자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한 것<2절>이 악한 동기(질토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인하고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죄의 짐을 면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죄의 짐은 범죄자의 몫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면제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들의 신앙관이었기 때문이다(8:12; 레 4:4). 이는 책임 회피성 간구라기보다 자신의 죄악을 적절히 깨닫고 통회하는 자만이 요구할 수 있는 청원이다. 한편 구속사적으로 이 간구는 죄의 짐을 벗게 되는 놀라운 사실을 예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롬 5:8).

성 경: [민12:12]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문둥병이 들린 미리암]

(주); 살이 반이나 썩고 죽어서...나온 자 - 생명과 기쁨을 동반하는 출산(出産)을 기대했다가 살이 거의 썩어버린 사산아(死産兒)를 낳는 것처럼 절망적인 때는 없을 것이다. 지금 미리암의 문둥병 증세가 부패한 사산아처럼 절망적이라는 것이다. 아론의 간절한 청원과 모세의 다급한 중보 기도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녀는 지금 살이 썩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며 손가락 발가락 부분이 오그라드는 등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성 경: [민12:13]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의 도고(禱告)]

(주); 원컨대...고쳐 주옵소서(*, 나 레파 나 라) - 원문에는 '원컨대'를 뜻하는 불변사 '나'(*)가 두번이나 거듭되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을 직역하면 '제발 청하옵나니 그녀를 고치소서 제발 청하옵나이다'로서 매우 급박하고 간절한 기도문이다.

성 경: [민12:14]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의 도고(禱告)]

(주); 아비가...침을 뱉았을지라도 - 히브리인들은 사형이나 축출 등 극단적인 범죄의 경우가 아닌 일반 중죄를 범하였을 때에는, 그 아비나 형제가 범죄자에게 침을 뱉음으로써 심한 모욕을 주어 징벌하였다(신 25:9; 사 50:9). 그리고 이 경우 모욕을 당한 자는 반드시 수욕(受辱)의 기간이 요구되었다. 하물며 하나님의 대리자인 모세의 권위에 도전한 미리암의 죄를 지나칠 수 없으셨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관례를 응용하여 7일간의 참회 기간을 그녀에게 제시하셨던 것이다.

(주); 진 밖에칠 일을 가두고 - 미리암의 범죄 대가는 극심한 문둥병으로 나타났고, 이에 따른 모세의 중보 기도 결과 그녀는 7일간의 수욕 기간을 거친 후 회복될 것이라는 응답을 받았다. 한편 여기서 '7'은 완전수로서, 결국 7일간의 격리는 (1) 범죄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완전히 차단하고야 만다는 사실과 (2) 완전한 참회를 통하여 비로소 회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는 엄숙한 경고를 담은 명령이다. 한편 문둥병이 완쾌될 경우 정결 의식을 거친 후 비로소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는데, 본문에는 언급이 없지만 7일 후 미리암도 이 정결례를 치룬 후 진(陳)에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레 14:1-20).

성 경: [민12:15]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의 도고(禱告)]

(주); 백성은...진행치 아니하다가 - 미라암과 아론의 범죄로 인해 이스라엘 전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로의 행군을 잠시 중단해야만 했다. 그러므로이는 한 개인의 죄악이 거룩한 공동체(교회)와 하나님 나라 건설에 얼마나 큰 피해를 제공하는지를 실증적으로보여 준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생명과 미래를 나눠가지는 신앙 공동체이자 운명 공동체이다(고전 12장).

성 경: [민12:16]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의 도고(禱告)]

(주); 하세롯 - 11:35 주석 참조.

(주); 바란 광야 - 이곳은 10:12에 이어 두번째로 언급되었다(따라서 자세한 내용은 10:12 주석을 참조하라). 이런 계속적인 언급은 이스라엘이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 생활 중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한편,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남방 경계인 가데스(Kadesh)에 진을 치고(13:26; 신 1:19), 그들의 부푼 미래가 펼쳐질 가나안에 12정탐꾼을 파견하게 된다(13장).

성 경: [민13:1-14:45]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가나안 정탐꾼 파송]

이 부분은 가나안 여정의 분기점을 이루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기록한 부분이다.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이를 때까지를 가나안 여정 중 오르막길(비록몇몇 범죄 사건이 발생했지만)이라 한다면, 이후 부터는 절망과 회한의 내리막길이라 할 수 있다. 실로 12정탐꾼 파송 사건 이후 진행된 일련의 불행한 결과(구세대의 가나안 입국 금지와 광야에서의 죽음 및 40년 뒤로 보류된 가나안 입국 등)는 불신앙과 불평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잘 보여 준다.

성 경: [민13:2]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가나안 정탐꾼 파송]

(주);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하되 - 가나안 정탐은 백성들의 요청(신 1 : 19-23)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즉 신명기 기록을 보면(신 1 : 19-23),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백성들로 하여금 바로 올라가 취하도록 하였으나 백성들이 그 땅을 먼저 정탐하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모세가 이 요청을 받아들여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리하도록 명령하셨던 것이다(Keil). 그러므로 사실상 백성들은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거듭된 약속(창 17 : 8 ; 50 : 24 ; 출 3 :8, 17)을 확신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그들의 신앙에 이상(異常)이 생겼음을 반영한다(히 11 : 1, 2). 그러나 하나님은 연약한 이스라엘을 책망치 않으시고 정탐꾼을파견케 하여 그들에게 당신이 약속한 그 땅을 친히 목격하게 하심으로써 모든 의심을 떨쳐 버리도록 인도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해 베푸시는 모든 조처는 궁극적으로 성도의 신앙 성숙과 유익을 위한 것이다(요 16 : 7 ; 18 : 14 ; 히 12 :10). 한편 '탐지하다'(*, 투르)란 말은 '장사나 정탐을 위해 먼저 알아보러 보내다'란 뜻으로, 목적한 지역의 사정을 면밀히 조사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 각 지파 중에서 족장 된 자 - 여기서 '족장'이란 각 지파를 대표하여 특별한 과업을 수행하던 유력한 인물을 가리킨다. 그리고 3절에서는 '족장'이란 말이 '두령'으로 대치되고 있는데, 이 두 호칭은 각 지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공식 직함의 소유자(1: 5-15 ; 2 : 3-31)가 아니라 비정규적으로 '일'을 위해 각 지파의 종족들의 두령들 가운데서 선임된 지도자급 실무자를 가리킨다<1 : 16>. 그런데 본장에 언급된 대로 그들이 수행해야할 직무는 긴 시간 동안 정탐하는 일로써 힘과 용기와 신앙과 지혜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같이 힘과 신앙적 열정과 기상(氣像)이 넘치는 젊은이들로 구성되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성 경: [민13:3]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가나안 정탐꾼 파송]

(주); 모세가... 그들을 보내었으니 - 모세가 각 지파 중에서 선출하여 보낸 족장들은 1 : 4-16에 명기된 바 인구 조사를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지명받았던 족장들과는 구별된다.

성 경: [민13:4-15]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가나안 정탐꾼 파송]

본문에는 가나안 정탐 임무를 부여받은 12지파의 족장들이 그들의 이름과 함께 열거되어 있다. 그들 12명은 모두 거룩한 백성의 길잡이로서 중책을 부여받았으나, 안타깝게도 갈렙과 호세아(여호수아)를 제외하고는 누구의 이름도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앙의 위인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신앙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는 자는 적다'(마 22:14)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연상케 해준다. 한편 12정탐꾼의 명단을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지 파 명 이 름 이 름 의 뜻

르 우 벤 삼 무 아 알 림

시 므 온 사 밧 재 판 관

유 다 갈 렙 공 격 자

잇 사 갈 이 갈 그가 속할 것이다

에 브 라임 호 세 아 구 원

베 냐 민 발 디 구 속

스 불 론 갓 디 엘 하나님의 기쁨

므 낫 세 갓 디 복 됨

단 암 미 엘 하나님의 백성

아 셀 스 둘 감추어진 비밀

납 달 리 나 비 숨 기 다

갓 그 우 엘 여호와는 도움이시다

위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레위 지파'에서는 정탐꾼이 선발되지 않았다. 이는 레위 지파가 지니는 특수성<1 : 47-53 ; 3, 4장> 때문인 바 곧 가나안 땅 분배시 레위 지파는 그들만의 영토를 분배받지 않고, 각 지파 영토 내에 얼마간의 거주지를 할애받아 거주해야 하는 특별한 신분과 직능 때문이었다(35 : 2). 즉 그들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하여 성막에서 봉사하고, 백성을 교육시키며, 여호와의 영광을 보존하는 등의 더 중요한 직책이 있었기 때문에, 가나안 정복 전쟁 및 땅 분배를 위한 정탐 활동이 요구되지 않았던 것이다.

성 경: [민13:6]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가나안 정탐꾼 파송]

갈렙 -성경 다른 곳에서는 그나스(그니스) 사람(Kenizzites) 갈렙이라고 나타난다(32 : 12 ; 수 14 : 6). 그런데 그나스 족속은 일찍부터 팔레스틴 주변에 거주하고 있었던 에돔족속 중 하나(창 36 : 11, 15)로, 아마 이들 중 일부가 이스라엘의 유다 지파에 합류되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갈렙도 순수 히브리 혈통은 아니었다. 그러나 갈렙을 통해 보듯이 유다 지파 내에서 이들의 역할은 컸다.

성 경: [민13:11]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가나안 정탐꾼 파송]

(주); 요셉 지파 - 정확히 표현하면 '요셉 자손'(1 : 10 ; 34 : 23)이다. 보통 '요셉 자손'이란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지파 모두를 포함하는 말이지만, 간혹 한 지파만을 지칭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겔 37 : 16 ; 계 7: 8).

성 경: [민13:16]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가나안 정탐꾼 파송]

(주);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칭하였더라 - '여호수아'(*)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란 뜻으로서, '구원'을 뜻하는 '호세아'(*) 앞에 언약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칭호 '여호와'(*)의 첫자(字) '예'(*)가 붙어서(그리고 모음 'e'가 'u'로바뀌어서) 이루어진 말이다. 한편 출 3 : 14, 15에는 이 '여호와'란 이름의 의미('스스로 있는 자')가 밝혀져 있는데, 곧 하나님은 타인에 의해 존재하거나 피조된 존재가 아니라, 영원토록 스스로 존재하는 인격적인 존재이자 모든 존재의 근원 되심이 밝혀져 있다. 특별히 이 단어가 언약과 연관되어 쓰일 때는, 그 약속하신 바를 영원히 지키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모세가 '호세아'를 언약의 하나님과 연관된 이름인 '여호수아'로 개명(改名)한 것은 향후 가나안 정복 전쟁의 지휘자로서 호세아(여호수아)가 앞으로 수행해 나가야 할 책무가 어떠함을 보여 준다(출 24 : 13 ; 33 :11). 한편 히브리인들의 이름은 각 개인의 품격과 그 신분 및 그 삶의 방향과 연관된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본문의 개명 사건은 여호수아의 생애에 일대 전환기를 맞았음을 의미한다. 즉 그는 한 지파의 지도급 인사에서 이스라엘 전체의 지도자로서 서서히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난제가 있다. 그것은 본절에 앞서 이미 성경 여러 곳에서 '호세아'는 개명된 새 이름인 '여호수아'로 불리워지고 있다는 점이다(출 17 : 9 ; 24 : 13 ; 32 : 17 ; 33 : 11 ; 민 11 : 28). 따라서 문서설 학자들은 여기서 성경 저자의 다양성을 주장하나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고 앞서 언급된 '여호수아'란 이름이 미리 예상하여 사용된 것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따라서 '시간상으로' 호세아의 개명(改名) 사건은 그가 여호수아란 이름으로 처음 언급되는 아말렉전투(출 17 : 8-13) 전후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Keil & Delitzsch, Vol. I- . pp. 85-86). 그런데 그 개명 사건을 본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각 지파를 대표하여 선발된 정탐꾼들의 이름이 그 지파 및 족보에 따라 명부에 등재되는 과정에서, 여호수아의 본 이름이 호세아로 나타나는 점에 유의하여, 그의 개명(改名) 사실을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성 경: [민13:17]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에게 하달된 명령]

(주); 남방 길로... 산지로 - 여기서 '남방'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네게브'(*)는 가나안땅의 광활한 남부 지역을 총괄적으로 가리키는 말인데, 문자적으로는 '메마르다' '건조하다'란 뜻의 '나가브'에서 유래하였다. 다시말하면 가나안 남부 지역은 그 메마른 풍토 여건으로 인해 '네게브'(건조한 곳)라 불려졌다(Keil). 그러므로 이곳은 소위 수목 대신 작달막한 관목 및 잡초들만 자라나는 스텝(Steppe) 기후 지대로서 농경지로는 별로 사용되지 않고, 우기(10-4월)에 목초지로 사용된다. 그리고 산지는 가나안 중심부를 관통하고 있는 산악 지역을 가리킨다. 이 지역은 약 900m에 이르는 남쪽의 유대 산지로부터 중앙 고원 지대인 에브라임 산지 및 서쪽으로 뻗어가는 에스드렐론(Esdraelon) 평원, 그리고 동쪽으로 뻗쳐있는 이스르엘(Jezreel) 계곡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막강한 철기 문화로 무장한 헷 족속, 여부스 족속, 아모리 족속등이 거주하였다(29절). 결국 모세가 '남방 길'과 '산지'로 올라가라고 명한 것은 요단 동편으로 우회하여 들어가 탐지하지 말고, 가나안을 가로지르고 있는 산지를 타고 바로 북상(北上)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접수하게 될 가나안 땅의 실상을 똑똑히 알아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성 경: [민13:18, 19, 20]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에게 하달된 명령]

모세는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파견하면서 다음 여섯 가지를 알아 보도록 명령하였다. (1) 그 땅 거민의 강약 - 가나안 원주민들의 군사적 능력을 알아보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강대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로부터 가나안 땅에의 약속을 허락받은 이스라엘에게는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2) 다소(多少) - 즉 그 땅의 인구 밀도와 그로 말미암아 전쟁에 나설 수 있는 남자의 숫자가 많을 것이냐 혹은 적을 것이냐를 살펴보라는 것인 듯하다. (3) 땅의 호불호(好不好) - 가나안의 지대와 지형이 어떠하며 그리고 그 땅의 기후조건이 살기에 적합한가의 여부를 조사하라는 뜻이다. (4)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 - 여기서 '진영'은 군사적 방어물이 없는 마을이나 자연 촌락을, '산성'은 군사 시설로 방어가 완비된 도시를 가리킨다. 즉 원주민들이 사는 곳에 방어 울타리가 쳐져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라는 것이다. (5) 토지의 후박(厚薄) -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의 지질(地質) 정도 곧 농사가 잘되는 옥토인지 그렇지 않은 박토인지도 조사해야 했다. (6) 수목(樹木)의 유무 - 나무의 생태에 관한 조사로서 나무가 자랄 수 있을 만큼 수분이 충분한 지역인지를 알아보도록 했다.

성 경: [민13:20]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에게 하달된 명령]

(주); 담대하라(*, 히테하자크템) - 이는 '지속적인 용기를 가져라', '(승리를 확신하고) 용맹스럽게 행하라'는 뜻으로써, 곧 그들이 탐지하는 모든 사물을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바라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정탐꾼들에게 필요한 것은 보이는 것만 보는 현상적(現象的)인 시각이 아니라, 그것을 모두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을 의뢰하고 믿는 믿음을 통해 보는 신앙적 시각이었다(히 11 : 3).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그 땅을 본 자는 여호수아와 갈렙 둘 뿐이었고, 나머지 열명은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그 땅을 보았다.

(주); 그 땅 실과를 가져오라 - 포도, 석류, 무화과 등(23절)의 실과를 통해 모세는 그 땅이 과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지를 정탐꾼들에게 확인하게 했으며, 그리고 그 증거물을 백성에게 보일 수 있도록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주);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 - 팔레스틴에서는 포도를 몇 차례 걸쳐 수확하는데, 그 첫 수확기가 보통 7, 8월(빠르면 6월에도 가능)이며, 가장 수확이 많을 때가 9, 10월이라고 한다(Robinson).

성 경: [민13:21]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40일간의 정탐 활동]

(주);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 - '신 광야'는 팔레스틴 남쪽, 사해(死海)와 아카바 만 사이의 광활한 광야 지대로서 가나안땅 제일 남쪽 경계를 이룬다(34 : 3). 그리고 '하맛'과 '르홉'은 약속의 땅 가장 북쪽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수 13 : 5 ; 삼하10 : 8). 특별히 르홉(Rehob)은 사사 시대 이후 '단'이라고 불리우던(삿 18 : 28, 29) 라이스(Lais) 성읍 주변에 있는 도시이다. 결국 본절은 12명의 정탐꾼들이 팔레스틴 지역을 남쪽부터 북쪽까지 철두 철미하게 정탐했음을 보여 준다. 한편 정탐꾼들의 거쳐간 진행로를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성 경: [민13:22]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40일간의 정탐 활동]

(주); 또 - 이 말은 정탐꾼들이 르홉까지 갔다가 다시 방향을 바꾸어 남방으로 갔다는 뜻이 아니다. 21절은 먼저 전체적인 정탐 과정을 총론격으로 말한 것이며, 뒤이어 나오는 본절은 보다 상세히 그 정탐 여정을 언급하기 위해서 '또'라는 접속사를 붙인 것이다.

(주); 헤브론 - 이 도시는 아브라함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족장시대에 자주 언급된 것으로 보아 고대 세계의 문화 중심지로 이해할 수 있다(창 13 : 18 ; 23 : 19). 한편 '헤브론'보다 7년 뒤에 세워졌다는 '소안'은 애굽 나일강 삼각주 동쪽의 한 지류에 위치했다(Keil). 그 지명의 뜻이 '낮은 땅'이라는 사실에서 그곳은 나일강 뚝보다 저지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후일에 타니스(Tanis)로 불리워졌는데 힉소스(Hyksos) 왕조 때 건설되어 애굽의 수도 내지는 바로의 거처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여기서 모세가 어떤 이유로 '헤브론'과 '소안'을 연결시켰는지에 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 없다. 그렇지만 이는 헤브론 성읍의 오래된 역사성을 지적함으로써 그 성읍의 견고함을 미리 암시하려는 듯하다. 아울러 이는 결과적으로 모세가 애굽의 도시 '소안'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는 것도 암시하는데, 아마도 그는 애굽 궁중생활에서 그러한 학문을 배웠으리라 추정된다.

(주); 아낙 자손 - 가나안 족속 보다 훨씬 전에 그 땅에 존재했던 원주민을 가리킨다. 이들은 헤브론을 중심하여 생활했다. 아낙의 아비 아르바(수 14 : 15)가 아낙 자손의 창시자로 여겨지지만(수 15 : 13), 그 기원에 대해서는 불명확하다. 즉 이들이 살고있던 헤브론의 옛 명칭이 '기럇아르바'로 되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아르바'가 아낙자손의 창시자로 생각될 뿐이다. 한편 아낙 자손은 신체가 크고, 강한 거인 족속이었다(33절).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이들로 인해 기가 눌릴 수 밖에 없었다(신 9 :2). 하지만 믿음의 용사 갈렙은 후일(약 50년 후) 이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영토를 확장했다(수 14 : 12 ; 15 : 13, 14).

(주);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 - 거대한 아낙 자손의 강력한 세 지도자였다. 그러나 12지파의 영토가 각기 분배되고 헤브론이 갈렙의 기업으로 돌아갔을 때, 갈렙은 담대한 신앙과 굳센 믿음으로 이들을 용감히 쫓아내었다(수 15 : 14 ; 삿 1 : 20).

성 경: [민13:23]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40일간의 정탐 활동]

(주); 에스골 골짜기 - '에스골'(*)은 '포도 송이'라는 뜻을 지닌 곳으로, 헤브론에서 가까우며 과일 농사에 적합한 곳이다. 그리고 '골짜기'(*, 나할)란겨울 우기(10-4월)에만 생기는 골짜기의 개울, 곧 '와디'(Wady)를 가리킨다. 이 '와디'는 종종 건기(乾期)에는 지표면에 물이 말라버리지만 땅속에는 과수(果樹)가 자라기에 충분한 수분을 품고 있다. 결국 '에스골 골짜기'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확인하고 감탄했던 만큼(24절) 포도 농사가 잘되던 곳이었다. 지금도 이곳은 가나안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포도를 생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Robinson).

(주); 포도 한 송이... 둘이... 메고 - 이것은 가나안 땅에서 재배되는 농산물이 매우 풍요로왔음을 대변해 준다. 지금도 팔레스틴에서는 무게가 4-5kg 정도 나가는 포도 송이를 볼 수 있다고 한다(Tobler Denkblatter). 한편 포도 송이를 '막대기에 꿰어' 운반한 것은 그 무게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을 손상시키지 않고 운반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주); 석류와 무화과 - 정탐꾼들이 포도 송이와 더불어 이것도 운반한 것은 가나안 땅의 실과를 가져 오라는 모세의 명려에 충실했음을 보여 준다. 아울러 이것은 그 땅이 각종 농산물에 적합한 옥토(沃土)임을 증명해 준다.

성 경: [민13:24]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40일간의 정탐 활동]

(주); 에스골 골짜기라 칭하였더라 - '에스골 골짜기'란 옛날 이곳을 통치했다는 족장 '에스골'(창 14 : 13, 24)의 이름과 연관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이름은 또한 풍성한 '포도 송이'와 관련하여 비옥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해 경탄을 발했던 이스라엘의 기쁨을 반영한 이름임에는 틀림 없다.

성 경: [민13:25]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귀환]

(주); 사십 일 동안 - 약속의 땅 가나안의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의 거리를 보통 160km정도로 보고 있다. 이 거리는 일반 성인(成人) 남자가 산악 지역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일주일이면 충분히 주파(走破)할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러므로 왕복 기간이 '40일'을 경과했다는 것은 가나안 곳곳을 충분히 정탐했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성경 문학적 표현으로 '40'이란 숫자는 충분한 기다림과 인내의 기간을 뜻하므로(출 24:18;눅4:1, 2), 12정탐꾼들이 자신들의 정탐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 경: [민13:26]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귀환]

(주); 회보하고 - 여기서 '회보(回報)하다'(*, 다바르)는 말은 '진술하다', '대답하다', '사물의 원인을 말하다'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12정탐꾼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바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낱낱이 보고했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자신들의 보고를 더욱 신빙성 있게 하는 자료로 '그 땅 실과를' 백성에게 내보였다.

성 경: [민13:27]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귀환]

(주); 젖과 꿀이... 흐르고 -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한 수사학적 표현으로(출3:8;렘11:5). 곧 '풍요롭고 기름진 땅'을 의미한다<신 11 : 9>.

성 경: [민13:28]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귀환]

(주); 그러나(*, 에페스 키) - 이 말은 매우 강한 반의(反意) 접속어로써 KJV에는 '그렇지만'(nevertheless)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이는 뒤이어 나오는 정탐꾼들의 보고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32절), 그들의 불신앙적 견해를 단적으로 보여 준 말이다.

(주); 강하고... 견고하고... 클 뿐 아니라 -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이 기름지고 풍요로운 반면에 매우 강력한 방어 진지와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사실(fact)대로 보고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10명의 정탐꾼은 그 '사실'을 근거로 '악평'(32절)함으로써, 가나안을 반드시 기업으로 주시겠다던 하나님의 약속을 업신여기고 말았다. 이처럼 10명의 정탐꾼들은 2명의 정탐꾼(여호수아와 갈렙)과 동일한 '사실'을 놓고도 '믿음'의 결핍으로 인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주); 아낙 자손 - 22절 주석 참조.

성 경: [민13:29]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귀환]

(주); 아말렉인... 헷인과 여부스인... 아모리인... 가나안인 - 이 족속들은 가나안 땅의 강력한 족속들로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 가장 큰 장애물로 여겼던 그곳 원주민들이었다<수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성 경: [민13:30]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상반된 보고]

(주); 갈렙이... 안돈시켜 - 여기서 '안돈(安頓)시키다'(*, 하사)란 말은 '잠잠하게만들다'는 뜻으로(삿 3 : 19). '조용히 !', '쉿 !'(hush)을 뜻하는 감탄사 '하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갈렙은 정탐꾼들의 겁먹은 보고와 그에 동요하는 백성들을 진정시키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환기 시키며 믿음을 재무장시킬 의향이었다. 이처럼 그가 백성 앞에 나서서 담대히 외칠 수 있었던 근거는 인간적인 회유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믿음' 때문이었다. 한편 여기서 여호수아 대신 갈렙이 대표적으로 말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 백성들의 눈에 모세의 수종자 여호수아 보다는 갈렙이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있는 것으로 비쳐졌기때문인 듯하다(Pulpit Commentary).

(주);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 갈렙의 이 말은 결코 만용(蠻勇)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라, 여호와의 약속을 굳게 믿는 신앙에 기초한 말이다. 이와 같이 참 신앙인은 환경을 초월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기에 항상 담대히 전진할 수 있다(요 16 :33 ; 히 11 : 1).

성 경: [민13:31]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상반된 보고]

(주);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 -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10명의 정탐꾼을 일컫는다. 한편 백성들의 설득 작업에 '여호수아'가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14 : 6의 정황으로 보아 이때 여호수아는 분명 갈렙과 견해를 같이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여호수아는 모세의 부관으로서 모세의 입장을 대변해야 했기에 공정성을 지니기엔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갈렙이 전격적으로 나서서 긍정적인 보고를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 노예의 신분을 막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막강한 군사력과 방어벽을 구축하고 있던 가나안 원주민들을 상대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수행해야 할 전쟁은 단순히 무기와 병력에만 의존하는 일상 전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거룩할 목적을 지닌 영적인 전쟁이었다. 더욱이 그들에게는 군대의 대장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셨기에 주저하거나 낙담해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확신하지 못했던(삼상 17 : 47)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미약함과 상대의 강함만 보일 뿐,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성 경: [민13:32]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상반된 보고]

(주);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 여기서 '악평'(*, 다바)이란 '은밀한 행동'이라는뜻의 '다바브'(*)에서 유래한 말로써 '모욕', '중상', '나쁜 소식'이란 의미를지닌다. 그러므로 그들은 약속의 땅에 대해 나쁜 평가를 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들어가 살 '기업'으로서는 부적합한 곳이라는 평가를 내렸던 것이다. 즉 그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불신하며 모욕했던 것이다.

(주); 그 거민을 삼키는 땅 - 이는 가나안 땅이 원래 생존 불가능한, 즉 박토(薄土)이거나 기후 조건이 나쁘다거나, 각종 질병이 만연하는 땅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앞의 보고대로(26, 27절) 그 땅이 매우 비옥하고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열국들이 그곳을 서로 쟁취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펼칠 것이며 따라서 수많은 희생자가 계속 발생될 곳이라는 뜻이다(Rosenmuller, Gerlach).

(주);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 - 여기서 '장대한 자들'(*, 아느쉐 모도트)이란 '장신(長身)의 사람들', '두 사람 크기의 사람들', 곧 '키가 매우 큰 자'란 뜻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몸집이 크다는 뜻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감히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족속들이라는 의미이다.

성 경: [민13:33]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상반된 보고]

(주);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 - '네피림'은 노아 시대로부터 그 명성을 떨치던 강폭한 거인족으로서<창 6 : 4주석 참조> 정복과 수탈을 일삼던 난폭한 무리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여기서 10정탐꾼들은 아낙 자손들의 위용에 기가 질려 그들을 고대 세계의 '대장부'(네피림)를 연상하여 묘사하였던 것이다(아낙과 네피림과의 연간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후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무찌른 바산 왕 '옥'<신 3 : 11>의 신장이나 다윗이 죽인 블레셋 거인 골리앗(삼상 17 : 4-7)등을 보더라도 몇몇 가나안 원주민들의 육체적인 탁월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꾼들이 32절에서 말한 것처럼 그 땅의 '모든 백성'이 그와 같은 장대한 체격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0정탐꾼들의 보고에는 불가능을 미리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보고가 과장될 수 밖에 없었다.

(주); 우리는... 메뚜기 같으니 - 이는 전쟁도 하기 전에 이미 정신적으로 패배한 자들의 연약한 소리이다. 10정탐꾼들의 보고에는 신앙적인 요소가 한 마디도 첨가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정탐 결과가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그들의 회의와 불신은 계속되는 14장에서 전 이스라엘 백성에게 파급되어 끝내 여호와의 진노를 사고 말았다. 이처럼 '여호와 신앙'을 내팽개친 자들에게 남는 것은 절망과 비탄 뿐이다.

성 경: [민14:1]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백성들의 원망]

(주); 부르짖으며... 곡하였더라 - 특정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세와 아론 및 두 신앙적인정탐꾼을 제외한 모든 백성이 일제히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다. 불신앙의 바람이 이스라엘 전체를 휘몰아쳤던 것이다. 모세는 이러한 백성들의 비탄에 찬 반응에 대해'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곡하였다'고 표현함으로써 그들의 울부짖음이 점차 고조되고 확산되어가고 있음을 시사하였다. 한편 여기서 '소리를 높이다'(*, 타사 에트 코람)는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소리 높혀 외치다' 또는 '불타는 심정으로 아우성치다' 등의 뜻이며, '부르짖다'(*, 나탄)란 '가슴을 치며 울다'는 뜻이다. 그리고 '곡하다'(*, 바카)는 '몹시 애통(한탄)하며 울부짖다'란 의미이다. 결국 그들은 완전히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밤새도록' 절규하며 점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갔던 것이다. 그들이 절망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을 찾아 간구하기 보다 자기 연민과 회한의 감정에 빠져든 근본적인 이유는 오직 약속에 대한 불신과 믿음의 결핍 때문이었다. 실로 믿음이 없이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다(히 11 : 6).

성 경: [민14:2]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백성들의 원망]

(주);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 백성들이 출애굽의 두 지도자를 원망한 것은 배은망덕한 일인 동시에 두 지도자를 세우신 여호와의 권위에 도전하는 악행이었다. 이처럼 원망을 일삼는 자는(출 17 : 3)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다. 이 사실을 교훈삼아 후일 사도바울은 항상 근신할 것을 우리에게 명하였다(고전 10 : 10, 11).

(주);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여행 중 상황이 조금만 나빠져도 습관적으로 죽음을 운운했었다(출 14 : 11 ; 16 : 3). 이는 하님의 모든 구원의 은총(유월절 사건, 홍해 사건, 만나 사건 등)을 업신여기는 처사인 동시에, 자유와 생명을 향유할 가치가 없는 자임을 스스로 증거하는 태도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역경에 처할지라도 생명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약 5 : 7-11).

성 경: [민14:3]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백성들의 원망]

(주); 우리를... 망하게 하려 하는고 - 패악한 백성들의 억측이다. 하나님은 분명 그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여 당신을 중심한 복된 국가를 만드시려 했다(출 3 : 7, 8).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바로의 추격의 칼로부터, 광야의 죽음의 갈증과 기아로부터 고비 때마다 구원하셨다. 이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던 그들이었지만, 그러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을 적대자요, 살인자로 매도함으로써 씻을 수 없는 죄악을 범하고 말았다. 이처럼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에 관해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나타낸다. 따라서 참 믿음은 지적인데 머무르지 않고 전인격적으로 수납하는데까지 나아간다.

(주);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 백성들의 이러한 불신앙적이고 쓸데없는 걱정은 후일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즉 훗날 그들이 염려했던 자녀들은 생존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오히려 그들 자신은 광야에서 죽음을 맞게 됐던 것이다. 이 얼마나 불신앙의 패러독스(paradox)인가?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처자를 걱정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들의 연약한 믿음을 염려해야 옳았다.

(주);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 죽음을 두려워한 자들의 비겁한 생각이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와 선민(選民)으로서의 특권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노예 근성의 발로이다. 아울러 애굽이 죄악된 세계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환난을 만난 성도가 옛 죄악된 생활로 되돌아 가고자 하는 어리석음의 전형(典型)을 보여 주고 있다. 실로 참 신앙인은 과거 죄악되고 비굴했던 생활에로의 회귀보다 고난스런 현실을 꿋꿋이 인내하는 가운데 끝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빌 3 : 13, 14).

성 경: [민14:4]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여호수아와 갈렙의 권면]

(주); 한 장관을 세우고 - 여기서 '장관'(*, 로쉬)이란 '머리'란 뜻으로서 곧 인도자, 우두머리 등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옛 생활로의 복귀를 위해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를 배척하고 자신들의 뜻을 충족시키는 지도자 선출을 운운했다. 이는 지금까지의 단순한 불평보다 보다 구체적이고 계획적인 패역으로서, 더이상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겠다는 교만한 발상의 극치요, 배은망덕한 불신의 절정이었다.

성 경: [민14:5]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여호수아와 갈렙의 권면]

(주);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 모세와 아론은 폭도(暴徒)가 된 백성들에게 대항치 않고 그들 앞에서 이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표시로 엎드려 간구하였다(Calvin). 그리고 간구의 자세는 배를 땅에 대고 누운 자세를 취하였다.

성 경: [민14:6]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여호수아와 갈렙의 권면]

(주); 여호수아와...갈렙이 그 옷을 찢고 - 두 지도자 모세와 아론의 행동(5절)에 신앙의 두 정탐꾼이 동조하는 장면이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옷을 찢는 것은 극한 슬픔과 고통과 분노를 표시하는 행위이다(창 44 : 13 ; 스 9 : 5).

성 경: [민14:7]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여호수아와 갈렙의 권면]

(주); 심히 아름다운 땅(*, 토바 하아레츠 메오드 메오드) - 여기서 '심히'를 뜻하는 원어 '메오드'는 반복될 경우 보통 최상급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리고 '아름다운'이란 '풍부한', '편한', '잘되는' 등의 의미를 뜻하기도 한다. 결국 위의 말은 가나안 땅이 자신들이 보아왔던 그 어떤 땅보다 비옥하며 풍족할 뿐아니라, 영적으로도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축복되고 은혜로운 땅임을 시사한다.

성 경: [민14:8]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여호수아와 갈렙의 권면]

(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 가나안 땅 입국은 오직 '여호와의 기쁘신 뜻', 곧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에 기인한 것임을 밝혔다. 따라서 가나안 땅 입국은 인간의 행위나 주변의 상황에 구애됨 없이 오직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일찍부터 베풀어져 있었다. 백성들은 단지 그 은혜를 받아 누리기만 하면 되었다. 따라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바로 이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주);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출 3:8 및 민 13:27, 그리고 신 11: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14:9]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여호수아와 갈렙의 권면]

(주);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 여호와를 거역하는 것은 곧 (1)여호와의 약속을 믿지 않는 것과 (2)여호와의 뜻을 거부하는 악행을 동시에 의미한다. 일찍이 여호와는 가나안을 그들에게 약속하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가나안에 거룩한 나라를 건설코자 하는 뜻(계획)을 가지고 계셨다(출 3 : 8).

(주); 그들은 우리 밥이라 - 이는 손쉽게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말이다. 동시에 이 말은 가나안이 이스라엘의 필요를 넉넉히 채우는 보고(寶庫)임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한편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여호와가 함께 하신다'는 믿음 때문이었다(수 1 : 5, 6). 그러므로 실로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굳센 믿음을 가질 때 인간이 지닌 제문제는 말끔히 해결된다(롬 8:31-39).

(주); 그들의 보호자(*, 칠람) - 직역하면 '그들의 그림자'이다. 무서운 사막 지역에서는 큰 산이나 반석이 태양의 열기를 차단하는 보호물이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보호를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으로 '반석', '산성'(시 18 : 2), '그림자'(시 91 :1, 2)등이 자주 사용되었다. 한편 본문에서 가나안 백성을 향한 여호와의 보호(그늘)기능은 '일반 은총적' 측면, 곧 가나안인들에게 구원을 목적한 보호가 아니라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 보호를 의미한다(마 5 : 45). 그러므로 본절은 가나안 원주민에게는 이제 이러한 배려까지 철회된 상태이므로, 그들은 전혀 희망없는 족속들임을 강조한 말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신 바 가나안족속에 대한 심판 유예 기간은 이제 끝났던 것이다(창 15 : 16).

성 경: [민14:10]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여호수아와 갈렙의 권면]

(주); 온 회중이... 돌로 치려하는 - 정곡을 찌르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설득에 오히려 백성들이 완전히 이성을 잃고 설치는 격앙된 모습이다. 이는 마치 스데반의 의로운 설교에 유대인들이 그를 돌로 치는 모습과 같다(행 7 : 57, 58). 실로 회개를 모르는 패역한 백성들의 공통된 모습인 것이다.

(주);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시니라 -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이 침해받을 때에 결연히 일어나셔서 영광을 보존하신다(16 : 42 ; 욥 38 : 1).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전격적인 개입은 항상 악인에게는 심판을, 의인에게는 구원과 축복을 동반한다(시 37 : 28 ; 145 : 20). 한편, 여호와의 영광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셨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카일(Keil)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상징하는 '빛의 섬광'이 회막의 구름 가운데로부터 터져나왔을 것이라고 추측한다(출 16 : 10).

성 경: [민14:11]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진노하신 여호와]

(주);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를 대변하는 말인(출 10 : 3 ; 16 : 28 ; 렘 23 : 26)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불평과 반역을 일삼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나타낸다. 실로 하나님은 그들의 해방과, 광야에서의 생존을 위해서 많은 '이적'을 그들의 목전에서 베푸셨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또다른 '이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었다(마 11 : 20-24).

성 경: [민14:12]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진노하신 여호와]

(주); 전염병으로... 멸하고 - 하나님께서 패역한 백성을 친히 진멸코자 계획하신 것은 이번만이 아니었다(출 32 : 10). 그만큼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멸망당해 마땅한 패역한 백성이었다. 한편 여기서 '전염병'(*, 데베르)이란 '흑사병'과 같은 악성 유행병(plague)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치료불가능한 질병이었다(32, 33절).

(주); 너로... 크고 강한 나라를 - 이는 금송아지 우상 사건 때에도 언급된 말이다(출 32: 10). 이처럼 거듭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산 백성들은 광야에서 처참한 죽음을 맛보아야 했으며, 이로인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창 12 : 2 ; 17 : 7) 모세를 통해 이루시려던 당신의 나라를 건설코자 하는 계획도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록 패역한 세대는 포기하셨지만, 당신의 나라 건설이라는 원대한 계획은 모세를 통해 계속 추진하고자 하셨다.

성 경: [민14:13]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모세의 중보 기도]

(주); 주의 능력으로 - '능력'(*, 코아흐)이란 '생기', '힘' 등을 의미하는 말로써 여기서는 열 가지 재앙 등으로 애굽의 바로와 그 신(神)들을 파멸시키고 가나안 광야 여정을 주도하셨던 하나님의 주권적인 힘을 가리킨다. 출 32 : 11에는 '큰 권능과 강한 손'이란 말로 더욱 시각적이고 박진감 넘치게 표현하였다.

성 경: [민14:14]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모세의 중보 기도]

(주); 그들도 들었으니 - 여기서 '그들'은 애굽 백성들을 비롯하여 이스라엘이 광야 여정동안 거쳐 온 주변 족속들 및 가나안 열족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위에 베풀어진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명성을 곧 그들의 신 여호와의 명성으로 간주하였다(15절).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몰락(이유야 어떻게 되었든)은 곧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라는 것이 모세의 중보 기도의 논지(論旨)였다.

(주); 대면하여 보이시며 - 매우 친밀한 관계를 의미한다<12 : 8>.

(주);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 - 출 13 : 21 주석 참조.

성 경: [민14:15]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모세의 중보 기도]

(주); 한 사람 같이 - '단번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모든 백성을 정녕 단번에, 한 사람 죽이듯이 매정하고 단호하게 몰살시키실 것이냐는 눈물어린 탄원조의 말이다.

성 경: [민14:16]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모세의 중보 기도]

(주); 여호와가... 능이 없는고로... 죽였다 - 모세의 간절한 중보 기도는 자신의 체면과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충정에 근거하고 있음이 확연히 밝혀졌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전부 정당한 것은 아니었다. 만일 모세의 주장 대로라면 하나님은 이방 민족들의 비판적인 눈을 의식하여 패역한 이스라엘을 결코 정의롭게 치리(治理)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기도가 호소력을 가지는 이유는, 이유야 어떻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언약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는 만약 이스라엘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 의해 그 백성이 죽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한낱 조롱거리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방인들은 '여호와'란 신(神)이 어떻게 우연히 애굽의 신을 격파했는지 몰라도, 막상 가나안 신들과의 싸움을 앞두고 그 패배가 두려워 그러한 우스꽝스러운 일을 벌였다고 한껏 조롱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바로 이러한 점을 깊이 염려한 것이다.

성 경: [민14:17]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모세의 중보 기도]

(주); 이미 말씀하신 대로 - 금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을 종결짓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의 중보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던 부분(출 34 : 6, 7)을 일컫는다. 여자적(如字的)으로 똑같지는 않으나 그 의미상 동일하다.

성 경: [민14:18]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모세의 중보 기도]

본절은 모세의 호소가 성숙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 즉 그가 인식한 하나님은 인자가 많아 죄를 용서 하시는 분이시지만, 그렇다고 그 사랑으로 인해 죄악을 그대로 방치해 두시지는 않는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이다. 실로 긍휼과 인자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사죄하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나 이 사죄(赦罪)는 죄악을 방치하는것으로써가 아니라, 공의에 기초한 희생 제물로써만 가능하다(히 9 : 22). 이런 사실은 본절의 '사하다'(*, 나사)란 말이 '옮겨버리다'(bearing away), '감당하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는 데서 확실시 된다. 즉 이 말은 희생 제물을 통한 대속적(代贖的)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이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성품이 가장잘 드러난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사건이다(롬 3 : 25, 26).

성 경: [민14:19]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모세의 중보 기도]

(주); 주의 인자의 공대하심을 따라 - 앞절에는 공의와 사랑이 조화된 하나님의 성품이 언급되었는데, 본절은 모세가 그 성품 중 그분의 '인자'(仁慈)에 더욱 매달리고 있는장면이다. 실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죄용서 받을 수 있는 아무런 자격이 없다. 따라서 만약 하나님이 공의로만 인간을 대하신다면, 그 앞에 살아남을 사람은 한명도 없다(룸 3 : 10-18). 그러므로 연약한 인간은 그분의 광대하신 인자에 매달릴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주);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사하신 것 같이 -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과 원망은 실로 그 뿌리가 깊다. 즉 출애굽 직후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왔을 때(출14 : 10-12), 마라에서 먹을 물이 없었을 때(출 15 : 22-24), 신 광야에서 먹을 것이 부족했을 때(출 16 : 1-3),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었을 때(출 17 : 1-3), 모세가 시내 산에서 더디 내려온다고 생각했을 때(출 32 : 1), 광야 여행이 좀 힘들다고 생각됐을 때(민 11 : 1), 애굽의 생선과 마늘 등이 먹고 싶었을 때(민 11 : 4-6), 그리고 지금 가나안 땅의 정복이 어렵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은 지체없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또한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을 멸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진노하시되,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사 그들을 멸하시지는 않으셨다. 그러므로 모세는 다시 한번 그 크신 자비하심에 의뢰하여 죄사함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민14:20]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사유(赦宥)하신 여호와]

(주); 내가... 사하노라(*, 살라흐티) - '내가 사했노라'(KJV, RSV-, I havepardoned)로 해석함이 좋다. 즉 하나님의 사죄는 벌써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백성들이 당장 한번에 죽지 않게 되고, 또한 기존의 이스라엘을 폐하고 모세를 통해 새 민족을 세우시겠다는 말씀을 취소하셨다는 뜻이지 그들에게 마땅히 내릴 형벌조차 취소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금송아지 숭배 사건 때 보류되었던 그 형벌(출 32 :3)에 지금의 죄악까지 겹쳐 이제 그 죄악의 한도가 찼기 때문에 더 이상 형벌을 미룰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원망하던 백성들은 하나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가야 했다.

성 경: [민14:21]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사유(赦宥)하신 여호와]

(주); 진실로... 맹세하노니 - 직역하면 '내가 살아 있는 것과 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될 것처럼'이다.

(주); 나의 사는 것 - 보통 사람들이 맹세를 할 때에는 자신보다 탁월하고 불변하는 존재의 권위를 빌어 맹세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존재 위에 거하시는 최고의 권위자이기 때문에 어떤 약속과 맹세를 하실 때는 하위(下位)에 있는 어떤 대상을 두고 약속하실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은 다만 당신 스스로의 권위로 맹세하실 뿐이다(히 6 : 13, 14). 그러므로 이는 유일신 여호와(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한편 이처럼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두고 한 맹세는 결코 변경되거나 상쇄되지 않고 반드시 성취하신다.

(주);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할 것 - 백성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창 12 : 1-3 ; 17 : 5-8) 당신의 나라 건설과 선민(選民)의 번영을 온전히 주도해 가심으로써 온 우주 가운데 당신의 영광이 충만할 것이라는 말씀이다(빌 2 : 9-11). 이는 당신의 영광스런 계획이 결코 수정될 수 없음 같이 22, 23절의 저주 선언 역시 결단코 철회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성 경: [민14:22]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사유(赦宥)하신 여호와]

(주);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 여기서 '10'은 '완전수'이다. 그런 점에서 '열 번'이란 숫자적으로 꼭 '10회'를 가리킨다기 보다는 백성들의 끝없는 반역을 강조한 표현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 사건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홍해 사건(출 14 : 11, 12), 마라 사건(출 15 : 23, 24), 신 광야 사건(출 16 : 2), 만나 사건(출 16 : 20, 27), 르비딤 사건(출 17 ; 1-3), 금송아지 사건(출 32 : 1-6), 다베라 사건(11 : 1), 기브롯 핫다아와 사건(11 : 4-23), 가데스 바네아 사건(14장) 등이다(Keil & Delitzsch, Vol. I- . p. 94).

성 경: [민14:23]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사유(赦宥)하신 여호와]

(주);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치 않는 자, 그리고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한 자들은 예외없이 약속된 기업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실로 불신앙이 빚어내는 비극적 결과이다.

성 경: [민14:24]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사유(赦宥)하신 여호와]

(주); 오직 내 종 갈렙은 - 20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중 오직 갈렙만이 가나안 입국을 허락받은 것은 아니다. 여기서 갈렙은 20세 이상으로 그 처벌 대상에서 면제된 자들을 대표하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갈렙이 일반 백성들의 신앙적 수준에서 가장 온전히 여호와를 의뢰한 자로 대표되기에 족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갈렙은 여호수아(그는 모세의 뒤를 이어 전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를 비롯하여 아론과 엘르아살(수 14 : 1) 등 레위 지파(이들은 정탐꾼을 파견하지도 못했고, 또한 가나안 땅의 분배에서도 제외될 것이었다) 등의 다른 입국자들을 대표해서 언급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아직 가나안 입국 금지 선고가 내려지지 않았던(27 :13, 14) 모세의 경우도 지금은 '갈렙'이란 이름 안에 감추어진 입국자였다고 할 수 있다.

(주);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 여기서 '온전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말레'(*)는'가득 채우다', '충만하다', '만족시키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온전히 좇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정도로 넉넉히 그분의 뜻에 순종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이같은 순전하고도 능동적인 순종으로써(삼상 15 : 22) 이 일에는 용기와 결단이 요구된다(마 16 : 24).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영광스런 결말이 따를 것이다(마 5 : 11, 12). 그리고 후일 갈렙은 이 일을 자신의 긍지로 삼고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수 14 : 8).

(주); 그 땅을 차지하리라 - 수 14 : 6-15에 온전히 성취되었다.

성 경: [민14:25]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사유(赦宥)하신 여호와]

(주); 골짜기 - 이 골짜기는 팔레스틴의 남방 사막 지대(Negeb)를 일부 포함하고 있는 아모리 산지의 접경 지역, 곧 오늘날 '와디무레'(Wady Murreh) 골짜기를 가리킨다(Keil & Delitzsch, op. cit. p. 95).

(주); 돌이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 약속의 땅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도 입국을 마다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 그들은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 '돌이켜' 홍해로 나 있는 길<출 13 : 18>을 통해 다시금 '시내 광야'로 들어가야 했다. 이제 그들은 아무 목표없이 그저 광야를 방황하는 초라한 유랑 민족의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실로 목표없는 삶이 무의미하듯 지향할 곳 없이 방황하며 오직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려야 했던 그들은 이제 지옥의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었다. 이는 불신앙의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 지를 똑똑히 보여 준다. 한편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에 대해서는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을 참조하라.

성 경: [민14:26-35]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이 부분은 이곳 가데스 바네아 사건으로 인해 향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소요될 38년간의 광야 생활 및 그 광야 생활 중 받게 될 징계의 원인과 그 징계의 세부적 사항을 다루고 있다.

성 경: [민14:27]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아드 마타이) - 직역하면 '내가 언제까지?'이다. 거듭거듭 불평과 원망을 일삼는 이스라엘의 완악함이 극에 달했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애틋한 심정이 짧은 말 속에 잘 응축되어 있다.

성 경: [민14:28]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나의 삶을 가리켜 - 직연하면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이다. 21절 주석 참조.

(주); 내내 귀에 들린대로... 행하리니 -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혈기를 따라 지껄인 2절의 말("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대로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광야에서' 그들을 죽이시기로 결정하셨다는 뜻이다. 즉 백성들은 자신들의 불신앙과 그로 인한 망발(妄發)을 하나님 앞에서 책임져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진리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혀는 자신의 생사(生死)를 가늠하는 척도이며(잠 18: 20, 21 ; 약 3 : 5-8),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하지 않은 죄에 대해서 징계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해서만 심판하신다(마 25 : 40, 45, 46 ; 고후 5: 10).

성 경: [민14:29]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군]

(주); 이십 세 이상으로 - 이는 가데스 거역 사건의 책임자 범위에 관한 내용이다. 즉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전쟁을 수행할 만한 나이로 계수된 자 곧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한 나이인 20세 이상(1 : 3) 된 사람들에게 불신앙의 첵임을 물어 광야에서 죽게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의 군대 구성원으로서 죄악된 이방 세력과 싸워야 했음에도,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의 약속을 멸시함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였기 때문이다.

성 경: [민14:30]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 24절 주석 참조. 거하게 하리라 한(*, 나사티 에트 야디 레솨켄) -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정착시켜 주겠다고 손들어 맹세한'(공동 번역)이 된다. 이 말을 통해 한 가지 의문시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맹세하신 것을 스스로 파기하시는 변화 무쌍한 존재이신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영원 불변하신 분으로서 당신의 계획을 결코 변개(變改)치 않으신다(삼상 15 : 29 ; 약 1 : 17). 그러므로 하나님은 비록 불평하는 자들은 광야에서 죽이실 것이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을 위시한 20세 미만의 새 세대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들이실 것이다. 결국 20세 이상 자들이 가나안에 입국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심술 때문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죄악 때문이었다.

성 경: [민14:31]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 여기서 유아(*, 타프)란 원래 '아장아장 걷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말이 20세 미만의 사람 모두를 지칭했다. 가데스 바네아의 불평, 불만자들은 이들을 핑계로<3절> 가나안 정복을 반대했으나, 하나님은 바로 이들을 보존하시기로 결정하셨던 것이다. 아마 이들은 아직 육체적, 정신적으로 미숙하여 여호와의 군대 구성원이 될 수 없었고, 따라서 가나안 정복전쟁에 참여해야 할 책임이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에 형벌이 모면된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더 큰 이유는, 이들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봄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반드시 만 20세가 되지 않은 자라고 해서 모두 불평, 불만을 하지 않은 자라고 보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본질상 죄 아래 놓여 있다(엡 2 : 1).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지 않고는 누구도 생존할 수 없는 것이다.

성 경: [민14:32]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엎드러질 것이요 - '엎드러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팔'(*)은 '허물어지다'(rall down), '내던져지다'(throw down), '사라지다'(perish)등의 뜻이다. 즉가데스 바네아의 거역자들은 하나님의 형벌로 광야에서 소망없이 하나 둘씩 스러져 갈 것임을 암시하는 말이다. 참고 또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내와 베풀고 또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만홀히 여기는 자의 종국을 잘 보여 준다(갈 6 : 7). 한편, 전체 200만 이스라엘 인구 중 20세 이상 된 남자와 여자의 수효를 대략 120만명으로 산정한다면, 38년(13, 870일) 기간 동안에 매일 80-90명이 죽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순종의 죄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도록 하기에 족했을 것이다.

성 경: [민14:33]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 여기서 '패역한 죄'(* . 누테켐)란 '간음' 또는 '우상 숭배'를 뜻하는 말인 바(출 34 : 16), 본문의 기자(記者)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평하고 자신들의 고집을 내세운 것을 '영적 간음'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죄를 범한 자의 자녀들은 그 부모의 영향을 받아 광야에서 40년동안 영적 고통 뿐 아니라 육체적 고통도 감수해야 했다. 부모가 자녀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는 없으나, 그 생활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출 20 : 5, 6).

(주);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이흐이우로임) - 직역하면 '목자들이 되리라'이다. 카일(Keil)은 이 해석을 받아들여 '휴식이 전혀 없는(광야의) 목자 생활을 하리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즉 끝없는 방랑으로 피곤한 삶을 살 것이라는 뜻이다.

성 경: [민14:34]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사십 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 하나님께서 형벌로 내린 40년 광야 유랑 생활의 산술적 근거가 제시되었다. 특별히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유랑기간을 친히 정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확히 계산하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본격적으로 유랑한 기간은 시내 산의 인구 계수 시기(출애굽 제 2년 2월 1일)로부터 아론의 죽음(출애굽 제 40년 5월 1일) 후 새 인구 조사 시기까지 대략 38년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출애굽 직후부터 하나님을 거역하기 시작하여 시내 산의 인구조사가 있기까지 이미 1년 이상을 거역과 불평의세월로 보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미상 그 기간도 방랑의 기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시에 죽이시지 않고 40년 간의 기간에 걸쳐 그들을 징계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백성들에게 스스로를 반성하며 죄악의 비참한 결과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고 (2)또한 20세 미만의 새세대가 구세대를 이어 하나님의 거룩한 임무를 맡을 수있는 성숙함에 이를 때까지의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격렬한 심판의 와중에서도 당신의 백성을 향한 긍휼과 사랑을 잊지 않으신다(합 3 : 2).

(주); 나의 싫어버림 - 여기서 '싫어버림'(*, 테누아티)이란 '거절하다', '낙담시키다'는 의미로서, 계속적인 이스라엘의 거역과 불평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실망하시고 더이상 은혜 베푸시기를 거절하시고자 하심을 가리킨다. 이처럼 인간의 죄는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는 장애물인 것이다.

성 경: [민14:35]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 뒤이어 언급되는 말들이 신적 권위를 지님을 나타내 준다. 실로 하나님의 권위로 말해지는 것은 그 자체가 곧 완전한 성취를 의미한다.

성 경: [민14:36]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그 땅을 악평하여...원망케 한 사람 - 곧 13 : 4-15절에 언급된 바 12명의 각 지파 정탐꾼 중에서 유다 지파 갈렙과 에브라임 지파 호세아(여호수아)를 제외한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을 가리킨다<이들의 목록에 대하여는 13 : 4-15 주석 도표를 참조하라>.

성 경: [민14:37]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 백성을 충동질하여 온 이스라엘에 불신과 불평을 조성한 10정탐꾼들은 '여호와 앞에서', 곧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분명히 보아 확인할 수 있는 어떤 공개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징벌을 받아 처참한 죽음을 맛보아야 했다. 이는 거룩한 공동체에 범죄를 유포시키는 죄가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똑똑히 보여 주는 한 예이다(고전 10 : 10).

성 경: [민14:38]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여호수아와...갈렙 - 이 두 믿음의 용사는 후일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도 지대한 공헌을 세운다. 즉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가되어 가나안 정복 전쟁을 총지휘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고, 갈렙은 가나안 족속중 가장 강력한 족속인 아낙 자손을 물리치는 용맹무쌍한 업적을 이룩했다. 실로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 앞에서 가나안 족속은 그들의 밥이었던 것이다(9절).

성 경: [민14:39]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이스라엘의 패전(敗戰)]

(주); 모세가 이 말로 - '이 말'이란 26-35절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 내용을 가리킨다.

(주); 백성이 크게 슬퍼하여 - 백성들의 때 늦은 한탄이다. 이 때 늦은 후회는 여호와의 극렬한 분노를 어찌할 수 없었으며, 비록 죄용서<20절>는 받았으나 쓰디쓴 죄의 열매(32, 33절)는 스스로 거둬들여야 했다. 그러므로 회개에는 그 때와 기한이 있는 법이다(고후 6 : 1, 2 ; 히 12 : 17).

성 경: [민14:40]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이스라엘의 패전(敗戰)]

(주); 산 꼭대기로 올라가며 - 이 산은 가데스 근처의 호르 산이다. 이 산은 가나안 남쪽 경계선을 이룬다. 그리고 이 산지에는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거하고 있었다(25절).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이곳을 오른 것은 그 원주민을 정복하기 위함이었다. 즉 이스라엘은 이곳을 점령함으로써 그들이 '산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왕상 20 : 28), 그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결의를 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결행은 광야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25절)을 또다시 정면 거부한 것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더욱 크게 살 뿐이었다. 실로 범죄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과실을 보상하기 위한 인간적인 노력이나 변명보다 진실된 참회와 순종이다.

(주); 여호와의 허락하신 곳 - 아브라함 때로부터 거듭 약속되어져 온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창 15 : 16-21).

성 경: [민14:41]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이스라엘의 패전(敗戰)]

(주); 명령을 범하느냐...형통치 못하리라 - 순종이 없는 열심은 결코 복된 결과를 기대할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더할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삼상 15 : 22, 23).

성 경: [민14:42]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이스라엘의 패전(敗戰)]

(주); 패할까 하노라(*, 로틴나기푸) - 직역하면 '패하지 않도록'이다. 전쟁의 주관자(삼상 17 : 47)이신 여호와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패배를 자초하는 일이다. 한편 하나님께서 그들과 동행치 않은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를 배반하였기'(43절) 때문이다. 즉 그들은 여호와를 따르는 일을 거부하고, 자신의 추악한 감정의 노예가 됨으로써, 그들의 왕이신 하나님을 그들의 삶 속에서 몰아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당시 이스라엘에게 시급한 것은 전쟁 수행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회복하는 일이었다.

성 경: [민14:43]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이스라엘의 패전(敗戰)]

(주);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 아말렉 족속은 에돔 족속으로부터 갈라져 나와(창 36 : 12), 시내 반도를 중심으로 그 세력을 뻗치며 유랑하던 강력한 유목민들이었다. 그리고 모세 당시에는 이 족속이 가나안 족속과 동맹 관계를 맺은 상태에서 가나안 남방 지경에 거주하고 있었다.

성 경: [민14:44]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이스라엘의 패전(敗戰)]

(주); 그들이 그래도...올라갔고 - 모세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출전 금지 명령을 끝내 청종치 않고, 자신들의 그릇된 열심이 마치 하나님을 섬기는 최선의 방법이라도 되는 양 이스라엘은 막무가내로 서둘러 금지된 땅으로 올라갔다. 특히 '그래도'란 말은 백성들의 의지적인 불순종과 불신앙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외시켜버린 종묘적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온다(사 1 : 10-17).

(주); 언약궤와 모세는 진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 이는 모든 백성이 산에 오른 것이 아니며 일부분은 산 아래 머물러 있었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산 아래 있었던 사실은 여호와께서 산에 오르는 자 가운데 함께 계시지 않았음을 시각적(視覺的)으로 보여 준다. 하나님(언약궤)을 앞세우지 않고(10 : 33), 자신의 고집과 주장을 하나님의 권위 위에 둔 자에게는 늘상 실패만 따를 뿐이다.

성 경: [민14:45]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이스라엘의 패전(敗戰)]

(주); 내려와 쳐서 파하고 -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고집은 그들의 치욕적이고도 철저한 패배로 끝이 났다(신 1 : 44). 이 패배는 출애굽 후 이스라엘이 최초로 겪은 것이다. 한편 이때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징계코자 사용하신 심판의 도구라 할 수 있다<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주);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 - '저주'라는 뜻의 '호르마'는 가데스 부근의 한 장소이다. 비록 이곳은 훗날 이스라엘이 재탈환하여(21 : 3 ; 수 12 : 14 ; 삿 1 : 17) 시므온 지파에게 분배하였지만(수 19 ; 4), 가나안 정복의 첫 교전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서의 패배로 가나안 주변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깔보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과 인도를 거부한 자는 세상으로부터 치욕과 멸시를 당하게 된다(마 5 : 13, 14).

성 경: [민15:1-19:22]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각종 제사에 따르는 소제와 전제]

이 부분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 팔년 동안이라"는 신 2 : 14의 기록을 염두에 두고 연구하여야 한다. 즉 본서 1-14장까지는 출애굽제 2년 2월초의 인구 조사 사건부터 시간적으로 계속 연결된 기록이다. 그리고 20 : 1부터 전개되는 두번째 가데스 바네아 사건은 가나안에 입국하기 직전(출애굽 제 39년)에 일어난 사건들의 기록이다. 따라서 본문(15-19장)의 기록은 출애굽 제 2년 이후부터 출애굽 제 39년 사이의 약 38년 동안의 광야 여정과 그때 계시된 말씀들이 기록된 것이다.

성 경: [민15:2]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각종 제사에 따르는 소제와 전제]

(주); 내가 주어 거하게 할 땅에 들어가서 - 이는 14 : 30에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과 비교된다. 그것은 본장에 주어진 제사법을 실천할 사람들은 광야에서 죽어야 했던 구세대가 아니라, 가데스 반역 사건(14장) 당시 20세 미만이었던 사람들과 그 이후에 출생한 자들 곧 새 세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성 경: [민15:3]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각종 제사에 따르는 소제와 전제]

(주); 화제(火祭) - 제물을 불에 태워 그향기를 드리는 제사로서, 번제나 소제 등에서 제물을 불에 태워드리는 모든 제사 방법을 총칭한다.

(주); 번제 - 레 1 : 3 주석 참조.

(주); 서원을 갚는 제 - 하나님께 드리기로 특별히 서원한 것을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이다.

(주); 낙헌제(freewill offering) - 화목제 중 자발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다(레 7 : 16, 17).

(주); 정한 절기제 - 해마다 정해진 절기에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제사이다. 한편 이상의 제사에 관해 더 자세한 내용은 레위기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를 참조하라.

성 경: [민15:4]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각종 제사에 따르는 소제와 전제]

(주); 에바 - 구약 시대에 고체의 부피를 측정하는 단위로서 약 23리터에 해당된다.

(주); 힌 - 약 3.8리터의 액체량을 나타내는 단위이다 <Vol. I. p. 44, 성경의 도량형과화폐 및 월력>.

(주); 소제 - 동물을 희생 제물로 드릴 때 항상 곁들이는 곡식제사를 가리키며, 충성과 감사를 상징한다<레 2장>.

성 경: [민15:5]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각종 제사에 따르는 소제와 전제]

(주); 전제(奠祭) - 일반적으로 번제물이나 화목 제물 위에 포도주나 독주를 부어 드리는 제사 방법을 의미한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전제(drink offering)는 상번제와 더불어 아침, 저녁으로(28 : 7 ; 출 29 : 40), 안식일 제사 때(28 : 9), 월삭 제사 때(28 : 14), 그리고 초막절 제사 때(28 : 18-21)에 특별히 드려졌다<레위기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성 경: [민15:7]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각종 제사에 따르는 소제와 전제]

(주); 향기롭게 할 것이요 - 이 말은 여호와께서 바치는 자의 제물과 그 마음을 기쁘게 받으신다는 신인동형동성론(Anthropomorphism)적 표현이다. 레 2 : 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15:8]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각종 제사에 따르는 소제와 전제]

(주); 화목제 - 하나님과 더욱 돈독한 친교를 다지기 위해 드리는 제사로서, 여기에는 감사제, 서원제, 자원제가 있다. 대부분의 절기 제사는 이 화목제를 중심으로 드려졌다<레 3 : 1-5 강해, 화목제에 대하여>.

성 경: [민15:9]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각종 제사에 따르는 소제와 전제]

(주); 고운가루 - '흔들다'란 뜻에서 파생된 말인데, 곧 빻은 밀가루를 채에 흔들어 골라낸 부드러운 가루를 의미한다.

(주); 기름 - 감람나무 열매로부터 짜낸 올리브(olive) 기름을 가리킨다.

성 경: [민15:11, 12]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이스라엘 대대의 율례]

(주); 각기 수효에 맞게 하라 - 드려지는 제물의 가치와 수효에 따라 소제와 전제의 양을 정확히 맞추어 제사를 드려야 했다. 이에 대해 아래 도표를 참조하라.

제 물 소제의 양 전제의 양

어린 양 고운가루 1/10에바 포도주 1/4 힌

어린 염소 기름 1/4 힌

수 양 고운가루 2/10에바 포도주 1/3 힌

기름 1/3 힌

수 송아지 고운가루 3/10에바 포도주 1/2 힌

기름 1/2 힌

성 경: [민15:13]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이스라엘 대대의 율례]

(주); 이 법대로 - 2-12절에 제시된 소제물과 전제물에 관한 제사법을 가리킨다. 물론 이를 확대 해석해서 율법 전체를 의미한다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성 경: [민15:14]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이스라엘 대대의 율례]

(주); 타국인이나...대대로 있는 자 - 이들은 통상이나 여행등을 위해 이스라엘을 잠시 방문하는 순수 외국인들과는 구별되는 자들이다. 이들은 본래 이스라엘 12지파의 혈통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인연으로 이스라엘 사회에 오래도록 거주하는 중 그 공동체에 여러모로 동화된 자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만일 이들도 할례를 받는다면, 본토 이스라엘 자손들과 아무런 차별없이 율법의 의무를 지기도 하고, 또한 그 특혜를 누릴 수도 있었다.

성 경: [민15:15]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이스라엘 대대의 율례]

(주); 회중(*, 카할) - 단순한 집합체로서의 '회중'(congregation)과는 달리 특별한 목적으로 모인 '총회'(RSV, assembly)를 뜻한다. 이는 가나안에 건설될 신국(神國) 이스라엘의 성격을 규정한 말로써, 이스라엘은 단순히 히브리인으로 구성된 혈통적 집합체가 아니라, 혈통을 초월하여 여호와 신앙으로 모인 '신앙 공동체'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런 점에서 여호와 종교는 결코 폐쇄적이거나 배타적이지 않고 전 우주적인 보편적 종교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민15:16]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이스라엘 대대의 율례]

(주); 한 법도, 한 규례니라 - 하나님의 법은 절대적인 것으로 상황과 사람에 따라 모순되는 내용이 아니며,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될 가나안 땅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었다. 이런 점에서 이방인들도 이스라엘 영내에 거주하며, 이스라엘이 누리는 신적 특권을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거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여호와께서 정하신 법규를 온전히 따를 것'이 요구되었으며, 그리고 반드시 이 요구를 충촉시킬 때에만 율법의 각종 보장과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므로 가나안에는 인간 의지가 중심이 된 종교는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출 12 : 19, 48 ; 레 16 : 29-31 ; 17 : 8).

성 경: [민15:17-21]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첫 소산의 거제]

본문은 처음 익은 곡식으로 가루떡을 만들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 것을 규정한 내용이다. 이에 대한 총괄적인 규정은 이미 출 23 : 19에 언급된 바 있다.

성 경: [민15:18]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첫 소산의 거제]

(주); 너희가 나의 인도하는 땅에 들어가거든 - 이는 규례의 적용 시기를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말이다. 즉 지금 전하는 규례는 광야에서가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살 때 지켜져야 하는 규례란 뜻이다. 그런 점에서 이 말은 또한 규례의 적용 대상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곧 그 대상은 광야에서 죽게될 출애굽의 구세대(시내 산 인구 계수시 20세 이상된 자들)가 아니라, 가나안 땅에 입국하게 될 가나안의 새 세대들이다.

성 경: [민15:19]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첫 소산의 거제]

(주);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 - 후일 아스라엘은 여리고 성 점령 직전에 가나안 땅의 양식을 처음 맛볼 수 있었다(수 5 : 11, 12). 거제(擧祭) - 제물을 높이 들었다 아래로 내려 놓는 제사 방법이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성 경: [민15:20]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첫 소산의 거제]

(주);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 - 곧 첫 수확한 곡식을 거칠게 빻아 그 가루로 만든 떡을 가리킨다. 이는 한 해의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뜻으로 드려졌는데, '거제'후 그 예물은 제사장의 몫이 되었다(출 29 : 27, 28 ; 레 7 : 14, 32). 한편 이 첫곡식의 열매는 인류 구속을 완성하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롬 8 : 23 ; 고전 15 : 23).

(주); 타작 마당의 거제같이...드리라 - 곧 곡식을 타작한 마당에서 맨 먼저 거두어들인 곡식을 한단 묶어 하나님께 거제로 드리는 것 같이 첫 곡식으로 가루떡을 만들어 거제로 하나님께 또한 드리라는 뜻이다. 한편 백성들이 타작 마당으로부터 곡식 한 단씩을 제사장에게 가져오면 제사장은 유월절 기간 중에 들어 있는 '첫 이삭 바치는 날'(the day of first fruit)에, 즉 유월절이 지난 첫 안식일 다음 날에 첫 이삭을 거제로 하나님께 드렸다(레 23 : 10-14). 이것을 '타작 마당의 거제'라고 한다.

성 경: [민15:21]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첫 소산의 거제]

(주); 거제(*, 테루마) - '거제'(heave offering)란 말은 '높이 들어올리다'(lift up)란 뜻의 '룸'(*)에서 파생된 말로, 곧 제물을 높이 들어서 드리는 제사방법을 가리킨다. 즉 제사장은 번제단 앞에서 제사 예물을 양손으로 꽉 붙들고 그것을 상하(上下)로 높이들었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놓는 제사 방법이다. 여기서 제사장이 제물을 위로 들어 올리는 것은 그 제물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이며, 그것을 다시 내려놓는 것은 그 제물이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졌다는 의미를 지닌다.

성 경: [민15:22]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온 회중을 위한 속죄 규례]

(주); 그릇 범죄하여(*, 티쉐구) - 이말의 원뜻은 '옆길로 빗나가다', '취하여 비틀거리다', 또는 '알지 못하고 죄짓다'란 의미로서, 연약한 본성 때문에 실수로 범하고 만 비고의적인 범죄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것을 인간 의지가 반영된 고범죄(故犯罪)와 구별하시고 그에 합당한 속죄제를 요구하신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고찰하면, 여기에 나타난 규례(22-26절)는 앞서 제시된 레위기 규례(레 4 :13-21)와는 구별되는 규례이다. 곧 레위기의 속죄 규례는 보다 분명하고 뚜렷한 어떤 위반죄에 대한 속죄 규례인 반면, 여기서의 속죄 규례는 보다 일반적이고 소극적인 태만죄 내지는 무지죄에 대한 속죄 규례라고 볼 수 있다. 여하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약함을 긍휼히 여기셨지만, 그 죄에 대해서는 이유를 막론하고 냉철하게 물으신 것이다.

(주); 지키지 못하되 - 하나님께서는 제사법과 더불어 그 법을 어길 경우를 대비한 법을 또한 허락해 주셨다(Knobel). 이처럼 인간의 약함을 인간 자신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시 103 : 4) 당신의 깊으신 자비와 긍휼로 인간이 계속적으로 당신과 교제할 수 있도록 속죄의 길을 열어주셨다(요 14 : 6).

성 경: [민15:23]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온 회중을 위한 속죄 규례]

(주); 명한 날부터...대대에 지키지 못하여 - 이는 비록 많은 시간이 경과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제시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세대와 개인을 만날 수 없다는 불행한 가능성을 암시한 말이다(롬 3 : 10, 20). 동시에 이는 율법외에 인간을 의롭게 할 또다른 한 법이 계시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가능성을 시사한 말이기도 하다(롬 3 : 11).그리하여 실로 하나님께서는 때가 찬 경륜을 따라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그 믿음으로써(以信) '의인' 되게 하심으로(得義) 위의 희망적인 가능성을 현실화 하셨다(롬 8 : 2).

성 경: [민15:24]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온 회중을 위한 속죄 규례]

(주); 회중이...범죄하였거든 -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범죄나 혹은 그들을 대표하는 제사장의 범죄는 한 개인의 범죄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 심각하게 다뤄졌다<레 4 : 13-5: 13>. 따라서 온 회중의 속죄를 위해서는 '수송아지'와 더불어 '수염소'가 드려졌는데, 여기서 수송아지는 번제용이었고 수염소는 속죄제용이었다. 그런데 실제 제사를드릴 때는 항상 그러했듯, 속죄제를 먼저 드려 죄용서 받은 후 헌신의 상징인 번제를 드렸을 것이다(Keil). 그리고 속죄제를 드리는 방법은 레 4 : 13-21에 명시된 규례대로 드렸을 것이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회중의 범죄시, 수송아지와 더불어 수염소까지 요구된 것은 초기 규례(레 4 : 13-21)의 경우(수송아지만 허용)와는 조금 변경된 것이다.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마 이는 율법의 기본 정신이 변질되지 않는 한 사소한 세부 규정은 당시의 상황 및 특징 등을 따라 보다 충실하게 보충, 확대될 수도 있다는 좋은 증거가 된다.

(주); 화제(*, 올라) - 원문상으로 '번제'를 의미한다. 개역 성경에 '화제'로 번역된 것은 그것이 온전히 불로 태워져 드려진다는 측면에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주); 규례대로 그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 즉 8-10절에 명시된 대로 수송아지를 드릴 때 동반되어야 할 소제물(고운 가루 3/10 에바, 기름 1/2힌)과 전제물(포도주 1/2힌)을 드리라는 뜻이다<11, 12절 도표 참조>.

성 경: [민15:25]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온 회중을 위한 속죄 규례]

(주); 속죄하면(*, 키페르) - 기본 개념은 '덮다', '지워버리다'란 뜻이다. 이처럼 '속죄'는 희생의 피를 근거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를 가리우는 것'(시32 : 1)이요, '도말하는 것'(시 51 : 1)이다.

(주); 그릇 법죄함 - 이 말의 기본 동사 '솨가그'(*)는 '비틀거리다', '실수하다', '길을 잃다' 등의 의미를 띠고 있다. 그러므로 '그릇 범한 죄'란 곧 죄를 죄인줄 깨닫지 못하고 지은 죄, 서두르다 실수하여 지은 죄, 또는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부득이지은 죄 등을 가리킨다.

성 경: [민15:26]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온 회중을 위한 속죄 규례]

(주); 타국인도 사함을 얻을 것은 - 타국인들도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소속되어 있었던고로, 그들 역시 회중이 저지른 범죄의 영향하에 있었고, 아울러 그 범죄를 속하는 속죄의 은총 영역 안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속죄의 은총은 결코 편협적이거나 폐쇄적이지 않고 전 인류에게 미치는 것임을 시사한다. 실로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주인으로서, 그들이 당신의 법도에 따라 죄 고백을 성실히 한다면, 받아들이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이 약속은 온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마침내 구체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죄를 고백하는 모든 자는 그지위와 혈통에 구애받지 않고, 예수 안에서 구속과 자유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롬 8 : 19-23 ; 고후 5 : 17).

성 경: [민15:27]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일 개인을 위한 속죄 규례]

(주); 한 사람이 그릇 범죄하거든 - 개인의 죄는 회중의 죄에 비해 적은 예물이 요구되었다<레 4 : 27-5 : 13>. 이 경우 원칙상 '암염소'가 요구되었으나 경제적 능력이 없는 가난한 자에게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그리고 그보다 더 어려운 극빈자에게는 '고운 가루'로 대체할 수 있게 했다<레 5 : 7-13>. 이는 개인 각각의 형편을 깊이 이해하시는 하나님의 넓으신 사랑을 반영하며, 더불어 범죄자는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 앞에서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써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엄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히 9 : 22).

성 경: [민15:28]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일 개인을 위한 속죄 규례]

(주); 그릇 범죄한 - 25절 주석 참조.

(주); 여호와 앞에 얻은 죄 - 여기서 '죄'에 해당하는 말은 본래 '표적을 맞추지 못하다', '과녁으로부터 빗나가다'란 뜻의 기본 동사 '하타'(*)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죄'란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서 빗나가고,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성 경: [민15:29]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일 개인을 위한 속죄 규례]

(주); 본토 소생...타국인 - 여기서 '본토 소생'(*, 에즈라흐)은 지역적으로 혹은 혈통적으로 태어나면서 부터 이스라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타국인'(*, 게르)은 본래 지역이나 혈통이 이방 출신이었으나, 할례를 받음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된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들은 순수한 '외국인'(*, 노크리)들과는 구별되는 존재들로서, 이스라엘 본토 소생들과 동일하게 율법의 의무 및 권리가 부여되었다.

성 경: [민15:30]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일 개인을 위한 속죄 규례]

(주); 짐짓(*, 베야드 라마) - 직역하면 '높은 손으로', 또는 '손을 높이 들어'이다. 이것은 의지적이고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권위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행동이다(신 32 : 27 ; 사 10 : 32).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극도로 교만하여 손을 높이 쳐들어 휘두르듯이 공개적으로 범하는 죄악은 속죄제로 죄 용서함 받을 수 없었고 오직 멸망과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었다(마 12 : 31, 32 ; 요일 5 : 16).

(주);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 여기서 '훼방하다'(*, 가다프)란 말은 '말로써 난도질하다', '불경스런 말을 하다'는 의미이다(겔 20 : 27). 결국 여호와께 '손을 높이 쳐든' 범죄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모독하여 그분의 영광을 크게 훼손시키는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주); 끊쳐질 것이라 - 여기서의 의미는 단순히 언약 공동체에서 파문당하여 축출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죄에 대한 대가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사실 부모의 권위를 모독한 자에게도 죽음이 돌아갔는데(출 21 : 17 ; 레 20 : 9), 하물며 부모의 권위 이상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한' 자라면 영원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마 12 : 31, 32).

성 경: [민15:31]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일 개인을 위한 속죄 규례]

(주);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 직역하면 '그의 죄악이 그의 위에'이다. 이는 결단코 속죄될 수 없고 오직 그 죄책을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표현이다.

성 경: [민15:32]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안식일을 어긴 자]

(주); 광야에 거할 때에 - 이때가 언제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모압 평지에 도착한 뒤의(20장) 사건인 듯하다. 그런데도 본절 이하의 사건이 여기에 기록된 이유는 앞절에 언급된 '여호와께 짐짓' 범죄한 자(30절)의 경우를 예로 들기 위해 정착 기간이 길었던 모압 평지의 생활 동안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이 부분에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Keil, Pulpit Commentary).

(주); 안식일에...나무하는 것 - 안식일에는 일체의 노동(심지어 불 피우는 일까지)이 금지된 법규가 시내 산에서 공포된 적이 있었다(출 35 : 1-3). 그리고 율법 전반을 통하여 누차 안식일 준수를 거듭 명령한 바 있었다. 이 사실을 엄연히 알고도 안식일에 나무를 한 것은 고의적으로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는 행위였다. 결국 그 범죄자에게는 어떤 변명도 소용이 없었으며, 짐짓 범한 죄의 대가인 죽음이 기다릴 뿐이었다(출31:14, 15; 35:2).

성 경: [민15:33]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안식일을 어긴 자]

(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 여기서 '온 회중'은 문자 그대로 200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을 대표하는 장로 및 두령들의 회(會)를 가리킨다(실제 성경에서는 대부분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본절의 표현은 범죄자를 이스라엘 공동체의 재판석 앞으로 끌고 왔다는 뜻이다.

성 경: [민15:34]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안식일을 어긴 자]

(주); 어떻게 처치할는지 - 곧 처형하라는 명령은 이미 받은 바 있으나(출 31 : 14, 15 ;35 : 2), 안식일 규례 위반자에 관한 한 아직까지 어떠한 방법으로 처형할지는 지시되지 않았으므로, 지금 그 방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Keil).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神政) 국가로서 모든 문제의 최종 결정권자는 하나님이셨다. 즉 이스라엘은 율법을 집행할 때 지도자의 즉흥적이고 강압적인 판단이나 군중들의 충동에 의해 법이 집행된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를 여호와의 뜻에 온전히 맡기는 계시 의존적인 삶을 살았다. 이처럼 성경은 가장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최종 판결을 맡김으로써 죄로 오염된 인간 이성의 오류를 방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딤후 3 :15-17).

성 경: [민15:35]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안식일을 어긴 자]

(주); 진 밖에서 돌로...칠지니라 - 먼저 '진 밖에서' 사형 집행을 하도록 명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거룩성이 미치는 영역, 곧 이스라엘 진영의 거룩성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였다(12 : 15 ; 행 7 : 58). 그리고 '돌로 쳐 죽이는' 형벌을 명한 것은 그 범죄에 대하여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또한 공동체의 연대 책임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였다(레 20 : 2).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권위와 영광에 도전하는 자들에게는 예외 조항을 두지 않고 공개 처형시킴으로써 그 죄가 지니는 심각성과 파괴성을 온백성에게 교훈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출 31 : 14, 15 ; 레 20 : 2 ; 24 : 14 ; 수 7 : 25).

성 경: [민15:36]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안식일을 어긴 자]

(주); 돌로...쳐 죽여서 - 이러한 처형은 히브리 사회에서 가장 극악한 죄에 대해 시행하던 일종의 공개 처형법으로써, 안식일 규례 위반자 외에도 우상 숭배자(레 20 : 2-5), 여호와의 성호를 모독한 자(레 24 : 15, 16), 부모에게 대적하는 패륜아(신 21 : 18-21), 간통한 남녀(신 22 : 22-24) 등에게 적용되었다.

성 경: [민15:37-41]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교훈용 옷단 술]

본문은 거룩한 선민의 의복에 관한 규례로서, 곧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보다 온전히 기억하여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들 의복의 옷단 귀에 '술'(tassels, NIV)을 달도록 한 내용이다.

성 경: [민15:38]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교훈용 옷단 술]

(주);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 여기서 '옷'(*, 베게드)이란 이스라엘인들이 걸치던 일상 외투를 가리킨다. 이 '베게드'가 신 22 : 12에는 '케수트'(*), 즉별 치장없이 몸가림을 위한 '겉옷'이란 말로 대치되어 있다. 결국 이것은 통으로 되고 앞 뒷면이 분리된 의복으로서 자연히 네 개의 모서리(끝단)가 있게 마련이다. 바로 이 네 끝단에 '술'(fringes, KJV ; tassels, NIV)을 달게 된다. 한편 이 겉옷은 여행자나 가난한 이들에겐 이불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출 22 : 27).

(주); 술을 만들고 - '술'(*, 치치트)이란 '꽃피다'는 의미를 지닌 '추츠'(*)에서 유래한 말이며 '장식', '꽃', '끈'을 가리킨다. 이것을 청자색 실로 외투의맨끝단에 달았는데, 이러한 관습은 율법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있어서 생명의 꽃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다(출 28 ; 36). 훗날 외식하는 유대인들은 이 '술'을 크게 하여 자신들의 경건을 공개적으로 자랑하곤 했다. 그러나 이 '술'을 옷에 달도록 명한 것은 자신의 경건을 과시하라는 뜻이 결단코 아니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죄에 빠지지 않게끔 조심하라는 시각적 교육 효과를 위한 것이었다(39, 40절).

(주); 청색 끈을...술에 더하라 - 여기서 청색 끈은 옷 네 귀에 달린 '술 뭉치'를 옷에 단단히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Keil). 아울러 그것은 하늘 색깔을 상징하는 바, 곧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에 속한 백성으로서 그러한 백성답게 거룩하게 살아가야 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 경: [민15:39]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교훈용 옷단 술]

(주); 방종케 하는(*, 조님) - 이 말의 원뜻은 '간음하다'로서, 상징적으로는 '우상을 섬기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문에서는 여호와를 떠나 이방의 세속적 문화에 도취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주);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 눈은 죄악을 받아들이는 통로라 할 만큼 죄악에 민감하다. 따라서 일단 눈을 통과한 죄는 인간의 마음에 정착한 후 곧 한 개인의 전인격에 파괴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처럼 인간의 감각 기관과 인간의 사고 및 정서의 상호 관계는 심리학자들의 도움을 빌지 않더라도 성경이 누누히 경고하고 있는 바이다(마 5 : 27-2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나약한 감각과 마음을 이해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옷에 이방인과 구별되는 '술'을 달게 하심으로써, 그'술'을 볼 때마다 세상으로 향하던 눈을 돌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고 인식토록 했으며, 또한 그 행동에 있어서도 구별된 거룩한 백성답게 이방인의 모범이 되도록 하였다.

성 경: [민15:40]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교훈용 옷단 술]

(주);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당신의 백성에게도 역시 '거룩'(성결)을 요구하셨다(레 11:44, 45). 그러므로 '거룩'은 선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거룩'은 어떤 의식적인 행위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본절의 말씀처럼 부단히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함으로써 이뤄져갈 수 있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죄악을 깨닫게 하고, 회개로 인도하며, 거룩한 인격으로 변화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다(요 20:31; 딤후 3:15; 히 4:12, 13).

성 경: [민15:41]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교훈용 옷단 술]

(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 하나님은 규례를 계시하실 때 종종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과연 어떤 분이 되시는가를 강조하셨다<출 20 : 1, 2 ; 29 : 45, 46 ; 레 11 : 45>.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강압적으로 율법의 멍에를 지우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자이시며 인도자로서 그들의 진정한 유익을 위해 율법을 제공하심을 밝히시고자 당신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언급하셨던 것이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바 '출애굽' 사건은 흑암의 세력으로부터 당신의 백성을 해방시킨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사역을 보여 주는 대사건으로서, 하나님 백성된 자들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밝혀주는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이 '출애굽'사건은 오늘날 영적으로 우리 성도들 개개인에게도 실재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성 경: [민16:1]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를 비방한 고라 일당]

(주); 레위의 증손...고라 - '고라'는 모세와 아론의 친사촌으로서 성막 봉사와 백성의 종교 교육에 대한 책음을 맡은 레위인이었다(8:14-22 강해 참조). 그러므로 고라는 자신도 사촌들처럼 정치, 종교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여 반란을 주도했던 것 같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이기심을 따라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는 영광 대신 오직 파멸이 기다릴 뿐이다(잠 16:18). 한편 여기에서는 고라가 레위의 4대손(孫)으로 언급되고 있으나, 이는 문자 그대로 고라가 반드시 레위의 '증손자'라는 의미보다는 그가 레위 계열의 사람임을 밝힌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성경의 일반적인 족보 기록관에 부합된다.

(주); 다단과 아비람과...온 - 이 세 사람은 이스라엘의 장자인 르우벤 지파 출신으로서, 그들의 조상 르우벤의 실수(창 35:22; 49:3,4)로 인해 실추된 자신들의 가문의 명예와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당'을 짓는 고라의 반역에 쉽게 동조했던 것 같다(Keil,matthew Henry). 즉 그들은 이스라엘의 장자 집안 출신이므로 정권을 탈취할 분명한 명분이있다고 생각하여 분파 의식을 가지고 반란에 임했던 것이다. 이처럼 그들이 거룩한 공동체 내에서 사악한 분파 의식을 조장하며 불의한 정치적 활동을 일삼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위계 질서를 정면 부정하고 도전하는 일로서 곧 공동체 전체를 파괴하는 심각한 죄악이었다(고전 1:10-17). 한편, 그런데 고라 반역 사건에서 주모자 중 하나로 등장하는 '온'(On)은, 이하 사건에서는 더 이상 그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아마 그 이유는 그가 고라및 다단과 아비람에 비해 그 반역 사건에서 매우 소극적이었거나, 아니면 미미한 역할을 맡았거나, 아니면 거사 직전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성 경: [민16:2]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를 비방한 고라 일당]

(주); 총회(*, 에다) - 이는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의 모임을 지칭하는 말이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모인 공식적인 선민 집단, 또는 회중이 모여 만든 전 민족적 정치, 종교 집단을 가리킨다. 한편 구약 성경에는 백성들의 모임을 의미하는 단어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1) '에다' : 이는 '정하다'는 뜻의 '야아드'(*)에서 유래한 말로 곧 '약속에 의해 모인 집단'을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불러 모으신 집단, 곧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온 회중을 가리킬 때 이 용어를사용하엿다. 그렇지만 때로 벌떼(삿 14:8), 수소의 무리(시 68:30) 등과 같이 약속되지 않은 자연적 집단을 가리킬 때나 혹은 악한 자의 집단을 가리킬 때도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욥15:34; 시 22:16; 86:14). (2) '카할(*) : 이 용어의 원 뜻은 '소집하다'로서 곧 신정적(神政的)인 목적에 따라 모인 공식적인 선민 집단을 가리킨다. 통례적으로 '카할'과 '에다'는 공동체 전체를 가리키며 '카할'은 그 공동체를 대표하는 장로(족장)들의 모임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70인역(LXX)은 일반적으로 '에다'를 '쉬나고게'(*)로, '카할'은 '에클레시아'(*)로 번역하고 있는데, 신약 성경에서는 '쉬나고게'가 집합체로서의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들과 구분하는 용어로 사용되었고, '에클레시아'는 스데반의 연설 가운데서 이스라엘 공동체에 대해 사용되고 있으나(행 7:38), 후에는 주로 일반 교회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3) '모에드'(*) : 주로 '성회'(聖會)로 번역되는 말로서, 곧 신성한 절기나 축제일을 맞아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의 성소에 나아갈 때에 사용되는 말이다(레 23:2,4,37,44; 호 9:5; 12:9).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총회'는 광야 생활 중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구성되어진 거룩한 공동체로서 이를 가리켜 흔히 '광야 교회'(총회)라 지칭한다(행 7:38). 이 광야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한 베드로의 신앙 고백 위에 세워진 신약 교회의 그림자 역할을 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거룩한 공동체(총회)안에 임재해 계시며(미 18:20), 그를 통해 인류를 향하신 당신의 거룩한 뜻을 성취해 가신다.

(주); 회중에 유명한 - 직역하면 '온 백성 가운데 이름이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는 백성들 가운데서 그 지위를 인정받은 유력한 사람들을 가리킨다(창 6:4).

(주); 족장 이백 오십인 - 여기서 '족장'(*, 나시)은 족장 시대 당시 혈연 집단의 종신(終身) 지도자인 '알루프'(*)와는 달리 그들의 사회적 신분, 지위, 역할이 지도적 위치에 있는 유능한 인사들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그들은 적어도 모세와 아론이 신탁(神託)에 의해 이스라엘 최고 지도자가 되기 전까지 각 가문에서 지금보다 상당한 권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의 등장 이후 그들의 절대적인 권위에 눌려 지내야 했던 그들로서는 불만이 축적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그로 인해 고라의 반란 음모에 쉽게 동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틀림없이 세속적인 명예욕에 불타는 사특한 자들이었을 것이며,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공동체의 질서보다 자신들의 실추된 지위와 명예에 더 집착한 나머지 이와같이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고라 반역 사건에 가담하게 되었던 것이다.

(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 하나님께서 친히 소명하여 임명하신 권위를 멸시하고 강압적으로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고라를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 지도자급 인사들이 반역을 꾀하였다. 따라서 신약성경은 이 사건을 '고라의 패역'(the rebellion of korah)이라 언급하고 있다(유 1:11). 이 사건은 단지 인간 모세를 대적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아니라, 모세에게 지도자 자격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었다.

성 경: [민16:3]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를 비방한 고라 일당]

(주); 분수에 지나도다(*, 라브라켐) - 직역하면 '너희가 너무 많이(소유하였다)'이다. 즉 반역자들은 모세와 아론이 지나치게 월권(越權)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들은 아론 및 그의 후손들에게만 제사장직이 부여된다는 사실에 대해 도전했던것 같다. 그리하여 레위지파 속속인 고라는 아론의 종교적 통솔권을 탐냈던 것 같고, 르우벤 지파 소속인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의 정치적 지휘권을 욕심냈던 것 같다. 따라서 결국 고라 일당의 이 말은 모세와 아론에게 그들의 정치 및 종교적 지휘권을 내놓으라는 협박조의 말이라 할 수 있다.

(주);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 일찍이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제사장 나라와 그 백성으로 만드실 것을 약속하셨다(출 19:6). 그런데 이 언약에는 "내 말을 잘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출 19:5)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엇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 언약을 무시한 자에게는 위의 약속이 적용될 수 없었다(Keil).

(주); 스스로 높이느뇨 - 모세와 아론은 분명 이스라엘 회중이 보는 가운데서 직접 하나님께 부름받고, 그 권한을 위임받은 하나님의 대리자들이었다(출 19:7,8; 20:19-21; 레 8:3-6). 고라 일당 역시 이 사실을 분명히 목도하고서도 타오르는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이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즉 고라 일당은 모세와 아론의 지위가 순전히 자의(自意)에 의해 쟁취한 것이지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것이라 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위임자이신 하나님의 권위까지 불신한 것이다(출 3:10-12; 4:14-16).

성 경: [민16:4]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의 책망과 제의]

(주); 모세가...엎드렸다가 - 엎어지듯 땅에 완전히 몸을 엎드리는 이 자세는 오직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의탁한다는 전적 의뢰와 간구의 표시이다<14:5>.

성 경: [민16:5]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의 책망과 저의]

(주); 고라와 그 모든 무리에게 - 이로 볼 때 고라가 반역 주동자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성경은 그 무리들을 '고라당'으로 지칭하였다(26:9; 27:3).

(주); 자기에게 속한 자...가까이 나아오게 - 모세는 문제가 된 지도자의 권위를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확신하고 이제 하나님 앞에서<5:16> 신적 권위에 대한 진위(眞爲)를 판정받고자 했다. 그가 이처럼 당당하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아론의 권위를 친히 인정하셨고 또 항상 동행하심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출 28:1;' 29:1; 레 8:12,30). 사실 모세 개인의 심정으로서는 자신에게 너무 감당키 힘든 '짐'(11:11)인 이스라엘 지도자의 자리를, 그 자리를 탐내는 고라에게 넘겨주고도 싶었을런지 모른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가능만 하다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다 선지자 되기를'(11:29) 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극구 사양에도 불구하고 시내 산에서 위임받은 바 하나님의 소명이 너무나 크기에(출 3:1-4:17), 자신으로서도 그 자리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즉 그는 하나님께 매인 바 된 몸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모세는 다시 한번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기로 의연하게 결정했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동일한 의미의 말(속한 자, 거룩한 자, 택하신 자)이 여러 번 반복되고, '가까이 나아오게'란 말이 두 번씩이나 반복된 것은 문제의 중대성과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히브리 문학의 중언법적(重言法的) 표현이다.

성 경: [민16:6]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의 책망과 제의]

(주); 향로를 취하고 - '향로'란 제단 기구중 '불 옮기는 그릇'(출 27:3), 또는 '불똥 그릇'(레 10:1; 16:12)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모세가 이 향로를 취하라고 고라 일당에게 주문한 것은 그 일이 가장 '제사장적' 특성을 띠고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Keil). 즉 제사장은 아침 저녁으로 번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아 성소 내의 분향단에서 향을 불사름으로써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던 것이다(레 16:12). 따라서 모세는 진정 누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거룩한 자(선택된 자)인가를 판명해 보기 위해서 고라 일당에게 '향로'를 취할 것을 제안했고, 또 이것은 현명한 일이었다.

성 경: [민16:7]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의 책망과 제의]

(주); 향로에 불을 담고 그위에 향을 두라 - 제사장의 고유 직책인 '향'을 피우는 일은 실로 거룩한 임무로서, 제사장은 이 일을 통해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신적 권위를 부여받지 않았거나 불경건한 자는 이 일을 진행하는 도중 죽임을 면치 못했다(레 10:1-3). 따라서 만약 고라 일당 중에서 신적 권위를 부여받은 자가 혹이라도 있다면 그는 죽임을 모면할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모두 죽게 될 것이다.

(주); 너희가...분수에 지나치느니라 - 모세의 이 말은 고라 일당의 반역 의도가 참으로 무엇인지를 정확히 지적하는 말이다. 그것은 곧 모세와 아론에 대한 왜곡된 시기심에서 비롯된 세속적인 명예욕 및 권력욕이었다. 특별히 여기서 고라 일당이 반역 명분으로 삼았던 말(3절)인 '분수에 지나도다'(*, 라브 라켐)란 말을 모세가 문자 그대로 그들에게 다시 함으로써, 진정 여호와 앞에 분수 넘게 행동한 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성 경: [민16:8]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의 책망과 제의]

(주); 고라에게 이르되...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 당시 신정(神政) 정치 하의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에서 제사장의 권한은 사실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모세 율법에는 그 제사장될 자격을 레위 지파 중 아론의 직계 자손들에게 한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레위 자손 중 아론의 직계 자손이 아닌 자들 가운데 야심가들은 그 제사장을 자리를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러한 야심의 결과로서 지금 고라가 반기를 든 것이다. 그러나 레위 자손 중 고라의 이름만 2인칭 단수로써 계속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10,11절) 그의 선동은 레위지파 내의 사람들에게 별로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같은 불만의 소지가 있는 르우벤 지파 사람들을 선동했던 것 같다. 사실 레위지파는 금송아지 숭배사건 때(출 32:26-29), 하나님께 전적 헌신한 이후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 일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모세가 고라를 지칭하면서 '레위 자손들'이라 부르고 있는 이유는 앞으로 그 지파 가운데서 나타날 수 있는 제 2, 제 3의 고라의 출현을 미연에 방지코자 한 일종의 경종이었던 듯하다.

성 경: [민16:9]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의 책망과 제의]

(주); 그들의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 직역하면 '그들을 위하여 봉사하게 하심이'이다. 공동번역은 이를 '그들을 돌보게 하심이'로 번역하였다. 이처럼 레위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 중 특별히 뽑힌 바 된 지파로서, 하나님 측근에서 그들 대신 하나님의 일을 하는 큰 영광을 누리는 지파였다<8:14-22 강해, 레위인의 2대 사역>.

(주);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 성막 봉사 직무는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레위 지파만의 고유하고 영광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시고 구별하사 제공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그들이 제사장으로서 군림하겠다는 교만한 마음만 없다면,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일에 대해 감사를 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제사장이나 레위인을 막론하고 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그 직능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하나님께 인정받는 데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마 25:14-30)

성 경: [민16:10]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의 책망과 제의]

(주);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 여호와께서는 레위지파 중 아론의 후손에게만 제사장 직책을 허락하셨고, 일반 레위인에게는 성막 봉사를 분부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구분하신 직책을 인간적인 욕망에 따라 왈가왈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악행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꾼들이 크든 적든 주어진 직능에 만족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당신을 영화롭게 하기를 원하신다(계 2;10).

성 경: [민16:11]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의 책망과 제의]

(주); 여호와를 거스리는도다 -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위로 친히 세우신 자를(출 3:10-12; 4;14-16) 불신하고 멸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되었다.

(주); 아론은 어떠한 사람이 관대...원망하느냐 - 아론의 제사장직은 고라 일당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자의(自意)에 의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임(委任)에 따른것 임을 확실히 밝히는 장면이다(출 16:7,8). 실제로 아론과 그 아들들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백성들의 목전에서 거룩한 제사장 위임식을 7일동안 성대하게 치렀었다(레 8:1-9:24).

성 경: [민16:12]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

(주);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보내었더니 - 고라의 반역에는 동조했지만 레위인들과는 반역 이유가 다른 르우벤 지파 사람들이<1절> 호출되었다. 아마 모세는 고라에 대한 견책에 이어 이들에 대해서도 견책하려 했던 듯하다.

(주);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 이는 성막 앞에 나아가 여호와의 공정한 판결 받기를 거부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들의 불만은 아론의 제사장직에 대한 고라의 불만과는 달리 모세의 정치적 지도권(왕권)에 대한 불만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의 소환 명령조차 무시했던 것이다. 한편 반역 주동자<1절> 중 '온'(On)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이 없는데, 그 이유는 아마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의 반역 의사가 누그러졌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성 경: [민16:13]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

(주);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해 친히 적용시킨 이 언약의 말(출 3:8)을 다단과 아비람은 실로 패역하게도 우상과 세속의 땅인 애굽에 적용시키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은총은 헌신짝처럼 여기면서도, 세속적 명예와 권력에는 모든 것을 바치는 진정 멸망의 자식들임을 스스로 천명하였다.

(주); 스스로... 왕이 되려하느냐 - 직역하면 '우리 위에서(계속) 주권을 잡으려하느냐? 이다. 이때 반역자들은 호르마의 참패(14:45)를 모세의 탓으로 돌렸던 것 같다. 그리고 거듭되는 절망의 순간과, 가나안 땅에서 광야에로의 회귀<14:25>를 모세의 정권 연장을 위한 잔꾀로 생각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성 경: [민16:14]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

(주); 네가...아니하고...아니하니 - 다단과 아비람 일당은 하나님의 약속이나 계획 및 섭리에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죄악이나 패역함에 대해서도 일체의 자성(自省)이 없었다. 오직 그들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하나의 권력 투쟁 장소로 보고, 거기서 승리하기 위해 온갖 비방을 모세에게 서슴치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불평, 불만 요인들을 모세 개인의 자질 부족으로 몰아 붙이고 있는 것이다.

(주); 눈을 빼려느냐 - '눈을 멀게 하려느나'는 뜻이다. 곧 이 말은 모세가 백성을 감언이설(甘言利設)로 회유하여 교묘하게 자신들을 소경 취급한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

성 경: [민16:15]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진노하는 모세]

(주); 모세가 심히 노하여 - 아마 모세는 다단과 아비람의 외양상 그럴듯한 말에, 그리고 거룩한 용어들을 세속적 야망과 결부시켜 경멸조로 지껄이는 그들의 가증스러움에 인간적이고, 종교적인 분노와 의분을 동시적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주); 예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 '예물'은 여호와께 나아가는 자의 기본적인 지참물이었다(출 23:15; 34:20). 그러므로 이 말은 반역자들을 가까이 용납하지도,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도 말아 달라는 모세의 격양된 호소이다.

(주); 나는...취하지...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 모세의 양심선언이다. 즉 그는 지도자로서 백성에게 물질적인 피해(나귀, 삼상 12:3)도, 정신적인 강압(사람을해함, 삼상 8:11-17)도 주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모세는 자신은 독재자가 아닌 봉사자요, 주인이 아닌 청지기로서 오직 하나님께 맡은 바 자신의 책무에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성 경: [민16:16,17]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진노하는 모세]

(주); 고라에게 이르되...아론과 함께 - 이번 반역 사건의 최고 관심사가 아론과 고라의 권위 문제임을 보여 준다.

(주); 향로는 모두 이백 오십이라 - 아마 향로들은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던 화로이었거나, 아니면 이번 사건 때문에 특별히 새로 만든 것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 경: [민16:18]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진노하는 모세]

(주); 회막문을 서니라 - 즉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을 받기 위하여 모세와 아론 및 고라 일당은 회막문에 섰다. 여기서 회막문은 회막 뜰로 통하는 성막 입구를 가리킨다. 이제 그곳은 신(神)적 심판대가 되었던 것이다.

성 경: [민16:19]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진노하는 모세]

(주); 고라가 온 회중을...모아 놓고 - 여기서 '온 회중'이란 고라의 반역에 직.간접으로 동조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며, 전 백성을 뜻하는 9절의 '회중'과는 구별된다. 그러나 그 당시 고라의 반역은 '온 회중'이란 말이 언급될 정도로 패역한 무리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고라는 자신의 뜻을 추종하는 많은 무리들로 인해 극히 흥분했을 것이다.

(주); 여호와의 영광이...나타나시니라 - 하나님의 긴급하고도 직접적인 개입을 나타낸다. 아마 구름 사이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터져 나왔을 것이다<14:10>. 한편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는 악인에게는 심판과 죽음을, 의인에게는 구원과 보호를 각각 의미한다(시 37:28; 요 1:14).

성 경: [민16:20]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 여호와의 계시가 모은 무리 중 모세와 아론에게만 임했다. 이것은 이 두 사람만을 이스라엘의 중재자로 공식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고라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성 경: [민16:21]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너희는...떠나라 - 하나님은 악인을 징벌하시기에 앞서 반드시 당신의 백성에 대한 보호 조처를 강구하신다(창 19:17).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의 은혜를 체험키 위해서는 먼저 죄악된 세상(무리)과의 '분리'가 요구된다(레 11:45).

(주); 순식간에...멸하려 하노라 - 이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 의지를 반영하는 말이다<14:12>.

성 경: [민16:22]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두 사람이 엎드려 가로되 - 자신들을 거역한 무리의 징벌 소식에 기뻐해야 할 두 지도자가 오히려 그들의 구원을 위해 간곡히 중보 기도하는 장면이다<4절; 14:5>. 이와 같이 공의와 더불어 관용과 사랑은 지도자가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이다.

(주);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 엘로헤 하루호트 레발 바사르) - 여기서 '생명'을 뜻하는 '루아흐;'(*)는 영혼이란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으며, 모든 생물을 생존케하는 '생명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다(창 2:7; 욥 33:4; 전 3:19,21).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구절이 '육체와 영혼'으로 이분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근거하여 중보 기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여하튼 본절에서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죄로 인해 필연적인 죽음을 맛보아야 하는 육체에 영원한 생명의 본질을 채워주신(슥 12:1)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형상대로 친히 지은, 생명체 중 가장 존귀한 인간을 당신의 진노로 창조간에 괴멸시킬 수 있으신가 라는 점이다. 이것은 생명의 주인이시자 보존자이신(롬 11:36)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세와 아론은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에 의지하여 그 징벌을 거두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였던 것이다.

(주);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 즉 '온 회중'을 반역에 가담케 한 주동자 '고라'의 범죄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징벌은 그 한 사람만으로도 족하다는 것이 모세의 지론(持論)이다.

성 경: [민16:24]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회중에게...장막 사면에서 떠나라 하라 - 여기서 '장막'(*, 미쉬칸)이란 '회막'(18,19절)과는 다른 말로서 곧 일반 백성들의 거주지인 진(陳)을 가리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세 반역자 고라, 다단, 아비람의 '장막'에 운집한 백성들을 해산시킴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반역 주동자들과 함께 멸망될 비극(26절)을 예방케 하셨던 것이다.

성 경: [민16:25]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다단과 아비람에게로 가니 - 모세는 '회막문' 앞에서 루우벤 진영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고라'는 이스라엘 배진상(配陳上) 회막 옆에 거주하였는데도<2장>, 그의 이름이 아예 언급되지 않은 것은 그의 아들들이 반역에 동조하지 않아 24절의 경고를 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주); 장로들이 좇았더라 - 이스라엘의 지도급 인사들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 반란 수습과 하나님의 심판이 이제부터 시작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성 경: [민16:26]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그들의 물건은...만지지 말라 - 회중을 반역 주동자들과 분리하고, 그들의 물건에 손대지도 못하게 한 것은 죄로부터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이다(수 7:1).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이처럼 단호히 대처할 것을 누누히 말씀하셨다(시 1;1; 요이 1;10).

성 경: [민16:27]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다단과 아비람은...장막문에 선지라 - 두 주동자들은 가족과 더불어 반역 의사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은 기색이다. 한편 고라의 가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데, 이 사실을 26:11 부분과 연결해 볼 때 그 당시 고라의 가족들은 고라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성 경: [민16:28]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나의 임의로함이 아닌 줄을 - 여기서 '나의 임의로'(*, 밀리비)란 '내 심장(마음)으로부터', '내 뜻을 따라'라는 의미이다. 모세는 반역자를 처단하는 일이 결코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주); 이 일로 인하여 - 즉 모세는 '30절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이 죽어간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행위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 경: [민16:29]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일반이면...아니어니와 - 즉 고라 일당에게 임할 죽음과 형벌이 일반 모든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그러한 죽음이나 벌이라면(a natural death and some ordinary accident-NIV, Living Bible),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형벌로 간주하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모세는 애굽에 내린 10대 재앙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적을 직접 체험하는 중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이 임하리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성 경: [민16:30]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새 일을 행하사 - 여기서 '행하사'(*, 이베라)란 '창조하사'란 의미이다. 이 말은 '새 일'(*, 베리아)이라는 단어와 더불어 동일한 히브리어 원형, 곧 '창조하다'는 뜻의 '바라'(*)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결국 '새 일을 행한다'는 것은 이전에 없었던, 그리고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초자연적인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만들어 내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주); 음부 - 구약 시대 당시 음부(*, 쉐올)란 개념은 단순히 '땅 밑의 세상', '죽은 자들이 들어가는 곳', '무덤' 등을 의미했다. 후일 이러한 개념으로부터 신약 시대의 '지옥'이란 개념이 파생되었다. 창 37:35 주석 참조.

성 경: [민16:31]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징벌당한 반역자들]

(주); 마치는 동시에...땅이 갈라지니라 - 하나님의 심판이 국부적인 지진의 형태로 급작스럽고 격렬하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고라 일당의 반역에 대해 여태껏 참고 또 참았음을 시사한다.

성 경: [민16:32]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징벌당한 반역자들]

(주); 땅이 그 입을 열어 - 강도 높은 지진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진은 삼킬 자만을 삼키는, 진정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인한 것이었다.

(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 - 26:11의 기록을 보면 이때 고라의 아들들은 멸망하지 않고 그들의 가족들도 살아 남은 것을 볼수 있다(26:58). 때문에 훗날 고라 후손들은 다윗 시대에 유명한 음악가로 활약했다(대상 6:31-48:9,19). 그러므로 여기서 죽은 사람들은 고라를 따르던 그의 종들이나 혹은 고라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그를 추종하던 무리들을 가리킨다(Keil). 이처럼 하나님은 죄의 책임을 범죄자에게만 돌리신다.

성 경: [민16:33]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징벌당한 반역자들]

(주); 산 채로...빠지며...망하니라 -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범하게 서술된 본구절을 자세히 음미해 보면 반역자들의 처참한 멸망을 가히 상상할 수 있다.

성 경: [민16:34]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징벌당한 반역자들]

(주); 부르짖음을 듣고 도망하며...두렵다 - 음부로 빠져드는 반역자들의 아비규환(阿鼻叫喚)으로 인해 백성들은 공포에 떨었으며 목숨을 위해 황급히 그 자리를 피하여 도망하였다. 이는 그들이 심정적으로 고라의 반역에 동참하였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모습이다(41절). 이와 같이 범죄는 필연적으로 두려움을 야기시킨다(창 3:10). 그러나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는 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요일 4:18).

성 경: [민16:35]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징벌당한 반역자들]

(주); 여호와께서로 불이 나와서 - 고라와 그 추종 세력 및 다단과 아비람과 그들의 가족들에 대한 지진 심판에 이어 하나님은 그때까지 회막문에서 있었던 250명의 고라 일당들을 불로 심판하셨다. 즉 본절은 하나님의 극렬한 불 심판으로 인해 250명 반란자들이 죽어간 기사이다. 한편 여기 사용된 불은 일찍이 잘못된 분향을 드린 결과 나답과 아비후를 죽였던(레 10:2) 그 불과 같은 성격의 불로서 하나님의 심판의 초자연성이 반영된 불이다. 그런데 이 불이 '불기둥'에서 나온 것인지 혹은 번개와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여하튼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것만은 확실하다(11:1; 레 10:2; 히 12:29).

성 경: [민16:37]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반역자들의 놋 향로]

(주); 엘르아살을 명하여 - 아론의 뒤를 이어 차기(次期) 대제사장이 될 그에게 현직 대제사장인 아론의 직무를 대신하게 했다.그 이유는 이번 일이 필연적으로(반역으로 죽은) 부정한 자의 주검과 접촉해야 했으므로 절대 성결을 유지해야 할 대제사장으로서는(레 16장) 이 일을 수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주); 향로를 취하여다가 - 모세는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불 또는 그 불에 타 죽은 시체 사이에서 향로를 끄집어 낼 것을 명하였다. 왜냐하면 심판의 불 또는 그 불에 타 죽은 시체 사이에서 향로를 끄집어 낼 것을 명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심판의 불에 같이 소멸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 그 불을 타처에 쏟으라 - 여기서 '불'은 250개 향로에서 타고 있는 숯불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불을 회막에서 가져다가 다른 곳에 쏟게 한 것은 불을 담은 그릇인 '향로'가 어떤 이유에서든 여호와 앞에 가져왔던 것으로서 '거룩한' 기물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 거룩한 기물에 부정한 불이 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17,39절). 그러므로 '거룩한' 향로를 구별하시기 위해 반역자들의 불을 다른 곳, 즉 진 바깥 재버리는 곳이(레 4;12) 아닌 다른 장소에 버리게 하셨다. 결국 이는 성(聖)과 속(俗)의 구별을 명하신 것이다.

성 경: [민16:38]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반역자들의 놋 향로]

(주); 그 생명을 스스로 해하였거니와 - 즉 자기가 저지른 죄악의 결과로 마땅히 자기들의 목숨을 잃었다는 뜻이다(15:31; 잠 20:2).

(주); 그 향로를 쳐서...편철을 만들라 - 하나님은 반역자들의 예물은 받지 않으셨지만(15절) '향로'는 당신께 바쳐진 거룩한 기물로 구별하셨다<37절>. 따라서 그것이 오용(誤用)되지 않도록 특별히 당신의 거룩한 처소 내에 보관하게 하셨다. 이러한 조치를 따라 만들어진 편절로 덧입혀진 분향단은 죄에 대해 엄중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표', 곧 기념물 역할을 하였다<40절>.

성 경: [민16:39]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반역자들의 놋 향로]

(주); 놋 향로를 취하여...제단을 싸서 - 여기서 '제단'은 곧 지성소 휘장 맞은 편에 위치한, 향을 피워 놀리는 분향단을 가리킨다. 한편 '향로'는 놋으로 만든 것이므로 각각을 망치로 두들겨 펴서 그 250개 편철 조각을 이어 분향단에 덧입히기는 쉬웠을 것이다.

성 경: [민16:40]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반역자들의 놋 향로]

(주); 기념물이 되게 - 향로를 쳐서 제단을 입힌 것은 고라 사건을 계기로 거룩한 제사장직의 신적 권위를 다시 한번 분명히 인식하게 하여, 아무도 고라 무리들처럼 그 제사장직을 넘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경계의 표로써 오고오는 세대에 교훈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성 경: [민16:41]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백성들의 원망과 염병 사건]

(주); 너희가...죽였도다 - 백성들은 아직도 급작스럽게 죽은 고라 일당과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이 문제를 단순한 정치적 분쟁으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죽은 자들의 생명에 대하여 모세와 아론이 책임질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성 경: [민16:42]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백성들의 원망과 염병 사건]

(주);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 여기서 '치다'(*, 알)란 '대항하다', '불평하다'는 뜻이지 실제로 '구타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편 백성들은 반역 주동자들이 징계를 받은 현장에서도 불평과 책임 전가를 일삼음으로써 끝내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고야 말았다. 자신의 죄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는 오직 멸망이 기다릴 뿐이다(시 49:20).

(주); 구름이...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더라 - 하나님의 임재의 가견적인 확실한 표로서, 성막 위에 떠있던 구름이 성막을 온통 감쌌고, 그리고 그 구름 사이로부터 여호와의 영광, 곧 그 영광의 광채가 터져나왔다(Keil).

성 경: [민16:45]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백성들의 원망과 염병 사건]

(주); 순식간에(*, 케라가) - '눈을 깜박이다'(욥 20:5)는 뜻의 '라가'에서 유래한 말로서 '매우 급작스럽게'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뒤에 이어질 하나님의 진노 곧 염병 심판이 초자연적인 역사에 의한 것임을 시사한다.

(주); 엎드리니라 - 간절히 기도 드릴 때의 모습이다(4절).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실로 염치 없게도'그 패역한 백성들을 위하여 거듭 거듭 중보 기도 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백성들의 범죄에 대해 이제 모세는 더이상 중보 기도의 명분을 찾기 힘들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제사장 제도를 통해 실제 행동으로써 기도하였다.

성 경: [민16:46]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백성들의 원망과 염병 사건]

(주); 향을 두어...속죄하라 -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심판의 말을 전해받은(45절) 모세는 희생 제물의 피를 근거로 죄를 속하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향로에 향을 피움으로써 속죄의 예를 갖추라고 하였다. 그만큼 당시의 상황이 급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염병의 강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간접 시사해 준다. 한편 구약 제사법에 있어서 '향'(香)은 일반적으로 간절한 기도를 상징하는데(레 4:3-35; 히 9:22), 본 사건 당시의 '향'도 바로 이러한 상징적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주);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 여기서 '염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게프'(*)는 '차다', '때리다'란 뜻의 동사 '나가프'란 말에서 유래했는데, 일반적으로 '역병'(plague)을 가리킨다. 따라서 혹자는 이때 나타난 '염병'을 급성 혹사병으로 보기도 한다. 그 병명이야 어떻든 하나님의 진노로 시작된 이 병은 매우 치명적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49절>.

성 경: [민16:48]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백성들의 원망과 염병 사건]

(주);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 아론의 중보적 사역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장면이다. 즉 그는 제사장의 고유 권한인 향로를 취하고 그 향로에 향을 사름으로써 속죄 사역을 담당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 본 사건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제사장직에 대한 논쟁이 필요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아니한 사악한 무리들의 분향은 다른 사람을 구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분향으로 인해 자기 생명조차 잃고 말았던 반면, 하나님께 속한 아론의 분향은 죽음의 파멸로부터 많은 생명을 건져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Keil). 이런 점에서 삶과 죽음의 중간에 서서 염병의 위험에도 개의치 않고 죄인의 생명의 중보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다(사 53:4-6). 한편 '산 자와 죽은 자의 중간에' 섰다는 말은 일단 지역적으로 염병의 심판이 임한 지역(틀림없이 불평, 불만자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었을 것이다)과 아직 임하지 않은 지역 사이에 섰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으나, 나아가 이는 그 의미상 죽어야 할 자와 용서받아 생존할 자 사이에 섰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성 경: [민16:47]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백성들의 원망과 염병 사건]

(주); 달려간즉...시작되었는지라 - 원문에는 놀라움과 경악을 뜻하는 감탄사 '한네'(*)란 말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보라', '세상에', '저런' 등의 뜻이다. 곧 무서운 염병이 삽시간에 백성들 사이로 퍼져 이스라엘 진 전체가 아비규환의 장(場)이 되어 버렸음을 뜻한다. 이는 전체적인 상황이 매우 긴박함을 생생히 보여 준다.

성 경: [민16:49]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백성들의 원망과 염병 사건]

(주); 고라의 일로 죽은 자 - 이들은 다음과 같은 자들로 구성되엇다. 즉 고라 및 그를 끝까지 따르던 그의 추종자들, 다단과 아비람 및 그의 가족들, 그리고 고라의 반역에 동조한 족장 250인들이었다.

(주); 죽은 자가 일만 사천 칠백 명 - 일반 괴질로 보기에는 단시간에('순식간에', 45절) 죽은 자 수가 너무 많다. 따라서 결국 이 죽음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무서운 징벌의 결과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당시 이스라엘의 전 인구가 2백만 명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로 이 사건은 전민족적인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성 경: [민16:50]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백성들의 원망과 염병 사건]

(주); 염병이 그치매 - 하나님의 주권과 아론의 권위가 확실히 밝혀진 장면이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의 품성을 지니신 분으로 당신의 백성을 때로는 치시고, 때로는 고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