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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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디모데전서 주석



성 경: [딤전1:1]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인사말]

⭕ 우리 구주 하나님 - '구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소테로스'(*)는 이방신과 로마의 황제 숭배에도 사용되었던 호칭이다(Guthrie). 바울은 여기에서'우리'라는 말을 첨가함으로써 하나님이 사도 바울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을 구속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사도 된 바울 - '사도'(*, 아포스톨로스)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파송된 사람'이라는 뜻이다(고전15:8, 9; 갈 2:8). 처음 사도는 예수의 공생애(公生涯) 기간에 함께 생활한 제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눅 6:13), 나중에는 사도의 조건이 예수의 생활과 죽음과 부활을 전할수 있는 사람으로 발전했다(행 1:23-26). 바울은 여기에서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디모데에게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사도'라는 칭호는 당시 바울 외에 복음 사역에 헌신하였던 바나바, 디도, 아볼로, 실라, 디모데에게도 동일하게 사용되었다(행 14:14; 고전 4:6; 빌 2:25; 살전 2:6).

성 경: [딤전1:2]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인사말]

⭕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 - 디모데가 바울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신앙 안에서 디모데가 바울의 영적 아들이라는 뜻이다. 혹자는 '종속적 원리'에서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를 생각하지만(Calvin) 여기서는 '선생과 제자' 사이의 관계로 봄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선생과 제자'의 관계를 나타낼 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이다(Guthrie).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그리스도인의 유대인 모친과 헬라인 부친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디모데를 만났다(행16:1-3). 그때 디모데는 바울의 전도 여행을 따라다니면서 신앙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그리고나서 바울이 가장 신임하는 동역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바울이디모데를 영적으로 양육(養育)한 아들로 보는 것은 타당하다(빌 2:19-22).

⭕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일반적으로 '은혜와 평강'이라는 말을 인사말로 썼다(고전 1:3; 고후 1:2; 갈 1:3; 엡 1:2; 빌 1:2; 골 1:2; 살전 1:1; 살후 1:2; 딛 1:4; 몬 1:3). 그러나 본문에서는 '긍휼'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이처럼 '긍휼'이 서신의 인사말에 언급된 경우는 본서 외에 딤후 1:2; 요이 1:3; 유 1:2에만 해당된다. '긍휼'의 의미는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상황을 지배하시고 한없는 사랑과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다(Hendriksen). 그러므로 긍휼은 죄인들을 고통에서 구원하여 항상 새롭게한다. 한편 '은혜'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구원의 선물이며, '평강'은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의 결과이다. 이렇듯 은혜와 긍휼과 평강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성 경: [딤전1:3]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거짓 교훈에 대한 경계]

⭕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 바울은 로마에서 2년간 옥에 갇혔다가 석방된 후에 디모데를 데리고 그레데 섬을 지나 에베소까지 왔으나 계속 동행하지 못하고 디모데를 그 곳에 남겨둔 채 마게도냐로 떠났다. 바울이 마게도냐를 방문한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바울이 디모데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도록 한 이유는 에베소 교회에 거짓 교사들의 미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실한 동역자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가 아니면 복음 사역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를 머물도록 한 것이다(Hervey, Calvin). '권하여'의 헬라어 '파레칼레사'(*)는 '간청하다', '간절히 원하다'는 의미로 디모데가 바울과 같이 마게도냐로 가기를 원했으나 에베소에 머물도록 했음을 시사한다.

⭕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 '다른 교훈'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테로디다스칼레인'(*)은 '거짓 교훈', 즉 정통 교훈과 배치(背馳)되는 이단적 사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초대 교회에 이미 공인된 기독교 교리가 있었음을 암시한다(Guthrie).

성 경: [딤전1:4]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거짓 교훈에 대한 경계]

⭕ 신화와 끝없는 족보 - '신화와 족보'는 하나의 표현으로 나누어서 생각해서는 안된다(Hendriksen). 유대인들에게는 모든 만물에 영(靈)이 있다는 영지주의 사상이 있었다(Earle). 이 영지주의자들과 유대교의 학자들은 가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유대의 문화권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끝없는 족보가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리하여 구약 인물들에 대한 가상적 족보를 만들었다. 특히 아브라함과 모세, 대제사장들을 중심으로 족보와 전기를 만들어 개개의 자신들을 그들의 후예로 만들었다(Hervey, Hort). 이러한 특색은 당시 유대교의 묵시 문학에서 발견되었다(Earle).

⭕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 '경륜'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코도미안'(*)은 '청지기' 즉 복음 사역을 위한 '직분'을 의미하지만(stewardship, RSV) '계획'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plan,LB). 그러므로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은 복음이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만 전달되고 사람들이 믿음으로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Hervey). 이에 반해 신화와 족보는 첫째, 끝없는 논쟁을 불러 일으킴은 물론 영지주의자들 스스로 유식 계급이라고 자처(自處)하게 하며, 둘째, 일반 성도들로 하여금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바울은 신화와 족보는 마침내 하나님의 교회에 계급주의와 분파 운동을 불러 일으켜 변론만 일삼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성 경: [딤전1:5]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거짓 교훈에 대한 경계]

⭕ 경계의 목적은...사랑이거늘 - '경계'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랑겔리아스'(*)는 '계명'을 의미한다(commandment, KJV). 이것은 디모데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책임을 다해야 함을 시사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역자는 성도들을 그릇된 이단 사상에 미혹되지 않도록 권고해야 하며 그 권고의 동기는 '아가페' 사랑에 두어야 한다(Guthrie). 이러한 사랑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부터 온다(Robertson). 여기서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자신의 권위와 이익을 위해 불순한 동기로 믿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동기를 가지고 믿는 믿음을 말한다(행 15:9). 당시의 거짓 교사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쓸데없는 신학 논쟁을 일삼으며 가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성 경: [딤전1:6]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거짓 교훈에 대한 경계]

⭕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 '벗어나'의 헬라어 '아스토케산테스'(*)는 '표적을 벗어나다', '잘못 맞추다'는 의미이다(have goneoff, JB). 또한 '헛된 말'에 해당하는 '마타이올로기안'(*)은 신약성경을 통틀어 본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공허한 지껄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불행하게도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의 기초인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벗어나 쓸모없고 무의미한 말만 늘어 놓았다는 뜻이다.

성 경: [딤전1:7]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거짓 교훈에 대한 경계]

⭕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논리를 펴서 율법 선생이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 율법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유대주의자들과 영지주의자들이 가졌던 신화와 헛된 족보를 전파하여 공중 앞에서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고자 하였다(Earle, Simpson).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사랑의 계명을 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헛된 궤변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의 헛된 교만을 꾸짖고 있는 것이다.

⭕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 헛된 궤변을 남발하는 자들의 말은 성경의 권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진리가 아니다. 또한 그들이 말하는 것이나 확증하는 것은 사랑의 진리나 율법에 대한 신성한 목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무의미한 잡담(雜談)에 불과하였다(Guthrie). 성경의 심오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한 해석을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과 같다.

성 경: [딤전1:8]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거짓 교훈에 대한 경계]

⭕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 바울은 여러 곳에서 율법은 선하고 거룩한 것이라고 말하였다(롬 7:12; 갈 3:24; 4:4, 5). 또한 본절에서 바울은 율법을 원목적(原目的)에 맞게 사용할 때 그 효용성이 발휘된다는 점에서 율법이 선하다고 말하고있다. 실상 율법은 인간의 구원을 완성시킬 수 없으나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선한 직능이 있다(롬 7:7). 이러한 의미에서 율법은 인간을 구원으로인도하는 '몽학 선생'으로 묘사되었다(갈 3:24). 율법의 직능(職能)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갈 3:15-29 주제 강해 '율법과 복음의 비교' 및 '율법의 제한성과 연속성'을 참조하라.

성 경: [딤전1:9]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거짓 교훈에 대한 경계]

⭕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 바울의 주장은 모든 불의를 열거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았다. 다만 그가 의도한 바는 율법이 세워진 목적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당시 에베소에 있는 거짓 교사들은 율법에 관해서 갖고있는 그들의 잘못된 견해들을 그대로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성도들은 미혹을 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이 가지고 있는, 범죄를 억제하는 기능과 고발의 기능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세상의 법도 악한 범죄를 다스리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의로운 사람의 행동을 제약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율법 또한 행악자를 위하여 있는 것이지 의로운 자를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로운 사람이 율법 없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Lenski). 혹자는 본절의 '법'(*, 노모스)을 '모세의 법'과 연관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타당치 않다. 왜냐하면 '노모스'가 정관사를 수반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모세의 법'이 아닌 '일반적인 도덕법'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바울이 여기서 '옳은 사람'(*, 디카이오)이라고 한 것은 넓은 뜻으로 그리스도인을 대변하는 말로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를 가리키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완전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Calvin).

⭕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 - '불법한 자'란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고(自高)하는 자이다(롬 2:12; 고전 9:21). '복종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규칙 아래 자신을 복종시키기를 거부하여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이다(Earle). 바울은 본절에서 자신들의 말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말씀은 알려고도, 들으려고도 안하는 에베소의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고의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으며 여전히 법의 테두리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 - 이것은 앞의 문구와 연결지어 해석해야 한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자기 뜻과 소견대로 사는 사람들이 곧 경건치 아니한 자요 죄인이다. '경건치 아니한 자'의 헬라어 '아세베시'(*)는 '믿지 않는 자'란 뜻인데(롬 1:18) 이는 삶과 행위에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업신여기는 자를 말한다. 또한 '죄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마르톨로이스'(*)는 자신의 존재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 의식적(意識的)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을 상실한 자를 가리킨다.

⭕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 -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는 십계명 중 첫 네 계명을 어기는 자를 지적한다(Lenski). '거룩하지 아니한 자'의 헬라어 '아노시오이스'(*)는 '속되고 부도덕한 자'로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시키고 그분의 뜻을 받들지 않는 자를 의미한다(벧전 1:15, 16).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본절과 딤후 3:2에서만 쓰였으나 70인역(LXX)에서는 자주 사용되었다(Barnes). '망령된 자'의 헬라어 '베벨로이스'(*)는 '가다'를 뜻하는 '바이노'(*)와 '문지방'을 뜻하는 '벨로스'(*)와의 합성어로 '거룩한 곳을 범하는 사람'이란 뜻이다(profane, NASB).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목회서신과(4:7; 6:20) 히 12:16에만 언급된다. 이상에서 열거된 여섯 가지의 죄악들은 모두 하나님을 거역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 - 이것은 십계명의 제5계명과 6계명을 거역한 자이다.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트롤로아이스 카이 메트롤로아이스'(*)는 '아비'를 뜻하는 '파테르'(*)와 '어미'를 뜻하는 '메테르'(*)에 '죽이다'를 뜻하는 '알로이아오'(*)가 결합된 형태이다(Bernard). 그러므로 이는 살인죄와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죄를 포함한다(Earle). 또한 '살인하는 것'은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요일 3:15).

성 경: [딤전1:10]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거짓 교훈에 대한 경계]

⭕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 - 이는 십계명의 제7계명을 범하는 자이다. '음행하는 자'는 미혼뿐만 아니라 기혼 이성간에 불륜을 행하는 자이다(고전 6:18). 그러므로 음행하는 자는 부도덕하고 부정한 자로서 더러운 행위를 하는 자이다(마 5:27, 28; 히13:4). 그러나 이것보다 더 추악한 범죄는 '남색하는 것', 즉 동성간에 성적 접촉을 하는 것이다(창 19:1-11; 롬 1:26, 27; 고전 6:9).

⭕ 사람을 탈취하는 자 - 이는 제8계명을 거역하는 자이다.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드라포디스타이스'(*)는 '아네르'(*, '사람')와 '푸스'(*, '발')의 합성어로 '발목을 낚아채다', '노예로 삼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노예 매매자들'이나 '사람을 잡아 노예로 삼는자'를 가리킨다(Robertson). 그리고 '안드라포디스테스'는 어떤 목적으로 유괴하여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는 행위까지 포함한다(출 21:6; 신 24:7).

⭕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 - 이는 십계명의 제9계명을 거역하는 자이다. '거짓말하는 자'는 거짓 양심을 가진 자로서 비진리(非眞理)를 말하는 자이고, 행동이 자신의 신앙 고백과 일치하지 않는 자이다(요일 2:4; 4:20). '거짓 맹세하는 자'는 자신의 권위나 체면 때문에 이웃을 해(害)하는 약속을 하거나 거짓 증거를 일삼는 자이다(마 5:33; 약 5:12).

⭕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 - '바른'의 헬라어 '휘기아이누세'(*)는 눅 5:31과 요삼 1:2에서 '육체의 건강'에 대해 사용했으나 목회 서신에서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율법은 어떠한 사람도 거스릴 수 없으며 회피할 수없다. 죄인들은 그 교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또한 그 교훈은 사람의 영혼을 건강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 교훈은 바른 교훈이 된다. 이러한 교훈을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독선(獨善)에 빠져 사는 사람이다(딤후 4:3; 딛 1:9 ;2:1).

성 경: [딤전1:11]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거짓 교훈에 대한 경계]

⭕ 이 교훈 - '이 교훈'은 8절에서 10절까지의 내용을 가리킨다. 이 교훈의 요지는 율법이 악한 자들의 죄를 드러내고 그들을 의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Lenski).

⭕ 복 되신 하나님 - 이는 본절과 6:15에만 나오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낸다. 여기서 '복 되신'의 헬라어 '마카리우'(*)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들이 받는 특별한 은총들, 즉 '죄 용서함을 받는 축복'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롬 4:7, 8; 14:22; 고전 7:40; 딤전 6:15).

⭕ 영광의 복음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나타낸다(Hervey).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복음을 주셨고 이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낸 것이다(Lenski). 바울은 이러한 영광의 복음에 근거하기 때문에 율법에 위배되는 사항을 강력하게 고발할 수 있었고 과거에 교회를 핍박했던 자신을 신임하셔서 영광의 복음을 맡기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12절).

성 경: [딤전1:12]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바울을 향한 주의 은혜]

⭕ 나를 능하게 하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뒤나모산티'(*)는 '힘있게 하였다'는 뜻이다(has given me strength, NIV). 이 단어가 부정 과거 시상인 점은 바울이 성령의 선물인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을 이미 과거에 부여받았음을 시사한다(Guthrie). 바울이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담대하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능력 때문이다.

⭕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을 그리스도께서 '충성되이 여겼다'는 말은 이상하다. 그러나 이 말은 절대적인 주권 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을 개종시키고 그에게 능력을 부여하신 다음에 그를 충성되이 여기신 것이다. 이는 사도 바울이 결코 위대하거나 행위의 온전함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주권에 의하여 복음 사역의 사명을 수행하였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직분'(*, 디아코니안)이란 말은 '봉사'를 의미한다(service,NIV, JB). 그러므로 사도의 직분은 사랑과 헌신의 정신으로 주님께 드리는 봉사이다(Earle). 사도 바울은 본래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묻지 아니하고 자신에게 직분을 맡기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回心)하였을 때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Hendriksen).

성 경: [딤전1:13]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바울을 향한 주의 은혜]

⭕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 '훼방자'의 헬라어 '블라스페몬'(*)은 '상해를 입히다'는 뜻을 지닌 '블라프토'(*)와 '연설'을 뜻하는 '페메'(*)의 합성어로 롬 2:24에서는 '모독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다(Robertson). 또한 '포행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브리스텐'(*)은 '거만(倨慢)한 사람',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사람'을 뜻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행동을 하였다는 것을 서슴지 않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말함으로써 비웃음을 살 수도 있으나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고백한 것은 자신의 무가치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위대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Calvin).

⭕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 '알지 못하고'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지식적으로 알지 못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신앙적인 문제이다. 당시에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훼방하고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인 줄 알았다. 즉 그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암매(暗昧) 상태에 있었다. 이처럼 바울의 과거 잘못은 영적 무지에 기인한 것이었지만 성령을 거스리는 죄까지는 이르지 않았다(Hendriksen).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징계 대신에 긍휼을 베푸셔서 복음 사역을 감당하는 사도로 불러주신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잘 말해준다.

성 경: [딤전1:14]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바울을 향한 주의 은혜]

⭕ 우리 주의 은혜가...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 '풍성하였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레플레오나센'(*)은 '휘페르'(*,'위에')와 '플레오나조'(*, '많다')의 합성어로 '대단히 풍성하였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훼방하는 죄인 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도륵 하셨다. 혹자는 바울의 이러한 표현은 자신의 사도직을 공격하고 중상 모략(重喪謀略)하는 악한 무리들에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Calvin).

⭕ 믿음과 사랑과 함께 - 믿음과 사랑은 은혜로부터 온다. 바울은 여기서 '함께'(*, 메타)라는 전치사를 사용함으로써 은혜로부터 오는 믿음과 사랑의 뜻을 더욱 분명하게 하였다.

성 경: [딤전1:15]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바울을 향한 주의 은혜]

⭕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은 이미 12-14절에서 언급되었다. 바울이 큰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확실하게 알아야 할 사실이다. '미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토스'(*)는 '충분히 믿을 만하다', '전적으로 확실하다'는 의미로 확실하게 권유(勸諭)하는 완곡어법이다. 이런 표현은 목회 서신에만 5번 나오는데(3:1; 4:9; 딤후 2:11; 딛 3:8) 본절과 4:9에서는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이라는 부가 어구가 첨가되었다(Earle). 혹자는 이 말에 대해 당시에 요한이 자주 사용하던 표현으로 추측하나(Robertson) 이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표현은 목회 서신에만 나오는 바울의 표현방식이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 예수께서 말씀하셨고(마 9:13) 여러 사도들도 증거하였던(롬 5:8) 이 말씀은 기독교 진리의 가장 중요한 사실, 곧 복음의 본질을 잘 요약하고 있다(Simpson). '세상에 임하셨다'는 단순히 성육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떠나기까지 일어난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Lenski).

⭕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바울이 괴수라고 고백한 본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1) 내가 괴수 죄인들의 무리에 속해 있다. (2) 내가 역사적으로 첫번째 괴수이다. (3) 내가 가장 나쁜 죄인이다. 여기서는 (3)의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 혹자는 본절에서 바울이 '건전하지 못한 비실제적인 겸손'을 취하고 있다고 말하며(Scott), 또한 '형식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Easton). 그러나 본절에서 바울은 참으로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고 있다(Guthrie). 특히 바울은 현재형 동사를 사용하여(*, 에이미, '...이다') 회심한 지 수년이지난 지금에도 자신의 과거를 깊이 회개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울의 이러한 죄의식과 참회의 고백은 그의 복음 사역을 승리로 이끄는 근본적인 동인(動因)이 되었다.

성 경: [딤전1:16]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바울을 향한 주의 은혜]

⭕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 13절에 이어 바울은 자신이 긍휼을 입은 이유를 밝히고 있다. 예수의 긍휼은 그의 오래 참으심에서 온다(Lenski). '먼저'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토'(*)는 행렬 가운데서 순서상 '첫번째'를 말한다. 따라서 바울 자신은 미래의 신자들 가운데서 예수의 오래 참으심의 첫번째 대상으로서 본보기가 되었다는 것이다(Guthrie).

⭕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믿어'라는 동사 다음에 나오는 구문을 보면 '위에'(*, 에피)라는 전치사가 여격과 함께 온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확고한 기초가 됨을 나타낸다(Guthrie). 이처럼 요동하지 않는 굳건한 반석 위에 신앙의 근거를 둔 사람들에게 바울은 모본(模本)이 되었다. '본'의 헬라어 '휘포튀포신'(*)은 '실례', '본보기'라는뜻이다(example, NIV). 이는 바울이 예수께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바로 그 죄인들의 '견본'이라는 말이다(벧후 2:6).

성 경: [딤전1:17]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바울을 향한 주의 은혜]

⭕ 만세의 왕 - 본절은 바울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감사의 외침이다. 혹자는 이것을 '유대교의 예배 의식'이라고 주장하지만(Lock) 두가지 면에서 이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첫번째, '만세의 왕'이라는 표현이 바울 서신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엡 2:7; 3:9, 11). 이 표현이 유대인에게 친숙한 표현이긴 하지만, 바울이 이 말을 사용한 것은 '영원토록' 다스리시는 하나님과, 위대한 왕으로 자칭했으나 단명한 '네로'와의 대조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두번째, 유대 사회에서는 두 세대, 즉 현 세대와 오는 세대를 구분하는 습성이 있었다. 바울은 두 세대 가운데서 공히 지배하시는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Guthrie).

⭕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 - 본문은 '만세의 왕'과 동격으로 세상의 모든 왕이나 다른 신들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지존성(至尊性)을 강조한다. '썩지 아니하고'(*, 아프다르토)는 성경 전체에 언급되는 하나님의 속성이다(시 103:15-17; 롬 1:23). 하나님은 피조물들과 달리 불변성을 지니시기에(시 45:6; 히 13:8) 신자의 영생에 대한 보증이 되신다. '보이지 아니하고'(*, 아오라토)는 하나님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여 계신 영이심을 말한다(골 1:15; 6:16).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도 알 수도 없으며 다만 믿음을 통해서 가능하다(히 11:27). '홀로 하나이신'(*, 모노)은 하나님이 다른 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하시고 초월적인 신으로서 우리의 유일한 경배의 대상이 되심을 강조한다(요 17:3; 엡 4:6).

성 경: [딤전1:18]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배도자에 대한 경계]

⭕ 내가 네게 이 경계로서 명하노니 - '경계'는 3절과 5절에서 각각 제시되었는데 그 내용은 3-17절에서 설명되고 있다. '경계'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랑겔리안'(*)는 '교훈', '지시', '명령'을 의미한다(instruction, NIV). 이것은 디모데가 사람들에게 율법을 불법하게 사용하지 않고 적법(適法)하게 사용하도록 가르쳐서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도록 하라는 지시이다. '명하노니'의 헬라어 '파라티데마이'(*)는 '옆에 두다'를 뜻하는 '파라티데미'(*)의 현재 중간태 직설법으로 중요한 임무를 맡길 때 사용되었다(눅 12:48; 딤후 2:2, Guthrie). 그리고 눅 23:46에서는 예수께서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하실 때 사용되었다.

⭕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 - 이것은 디모데가 목회자로서 안수를 받을 때 바울을 통해 내려진 하나님의 예언을 가리킴이 분명하다(Guthrie). 이 예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 사역의 사명을 부여받은 디모데가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는 말씀들일 것이다.

⭕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 '그것'은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러한 예언들을 힘입어 용감하게 싸울 것을 명하고 있다. 이는 디모데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召命)을 깨달은 자에게 담대한 싸움을 싸울 것을 명하는 것이다.

성 경: [딤전1:19]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배도자에 대한 경계]

⭕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 선한 싸움의 도구는 '믿음과 착한 양심'이다. 엡6:10-17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전신 갑주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였는데 본절에서는 교리와 행동에 연관된 근본적인 측면만을 언급하고 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은 본 서신 안에서 세 번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1:5; 3:9) 보아 믿음과 착한 양심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본문의 '믿음'은 딤후 2:17, 18에서 기록된 것처럼 '진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Hendriksen). 사람의 양심이 파괴되면 도덕적 부패와 함께 영적 파멸까지 초래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양심을 버림으로써 오는 믿음의 파멸을 막기 위해 선한 양심, 즉 성령으로 거듭난 양심과 진리인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한다.

⭕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 '선한 양심'은 그리스도인들이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만약 양심이 파괴되면 믿음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기서 바울은 양심을 버림으로써 파멸이 초래됨을 경고하고 있다. 본절의 '버렸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사메노이(*)는 자의적(自意的)으로 거부했음을 뜻한다(have rejected, NIV).

성 경: [딤전1:20]

주제1: [정통 교리의 사수]

주제2: [배도자에 대한 경계]

⭕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 믿음이 파선당한(19절) 대표적인 두 사람이 열거되고 있다. 그들은 에베소 교회에서 극단적인 이단자였다. '후메내오'는 딤후 2:17, 18에 의하면 이단 교사로 언급되어 있는데 그는 부활에 관해서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알렉산더'의 정체에 대해서는 행 19:33과 딤후 4:14에 언급된 두사람 중 어떤 사람인지는 분명치 않다. 혹자는 행 19장의 알렉산더로 주장(Calvin)하나 그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다가 다시 이단자가 되었다는 것은 단지 추측일 따름이다. 아무튼 그들은 율법 선생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자칭 의로운 사람들이었으나 지나친 오류에 빠져 교회를 혼란 속에 빠뜨리고 있었다.

⭕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 이러한 표현은 고전 5:5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여기 언급된 '징계'는 사도적인 권위만이 아니라, 회중 앞에 제시하여 결의된 것으로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교회로부터 쫓겨나 사단의 영역(비기독교 세계)으로 추방된 것이다(Robertson, Guthrie, Earle). (2) 육체적인 고통을 겪게 한 것이다(Hendriksen, Easton). 혹자는 후자의 경우를 반대하나(Lenski) 어떤 경우든지 사단에게 내어준 바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편 저들을 징계한 목적은 파멸에 이르도록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이르도록 하려는 교정적(敎正的)인 것이다(Hervey,Bernard). 이는 본절에 '하려 함이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파이듀도신'(*)이 '배우게 하려 함이니라'(may learn, AV)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들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더 이상 진리에 대해서 훼방하지 않게 하려는 사도 바울의 사랑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성 경: [딤전2:1]

주제1: [중보기도와 여성의 덕]

주제2: [중보 기도]

⭕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첫째로'(*, 프로톤 판톤)는 시간적인 우선보다는 중요성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Guthrie, Robertson). 바울이 첫번째 중요한 사항으로 말하는 것은 기도에 어떤 사람을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으로 본절에서 바울은 기도의 대상을 '모든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다. 혹자는 '모든 사람'을 '모든 죄인들과 성도들을 포함하는 범세계적인 사람'(Robertson)으로 규정하지만 이것은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본절의 '모든 사람'은 문자적인 의미보다는 '인종이나 국적이나 사회적 지위의 구별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Hendriksen). 이것은 기도의 대상을 생각함에 있어 인간의 관습과 제도를 초월(超越)해야 함을 시사한다. 한편 본절에 나오는 네 개의 기도에 대한 명사인 '간구', '기도', '도고', '감사'가 각기 뚜렷한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단순한 동의어로서 반복 사용되었느냐에 대해서는논란이 많다(Hervey). 혹자는 이 네 단어의 의미를 따로이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Guthrie). 그러나 이 네 단어들이 열거된 것은 단순히 무의미한 반복만은 아니다. 그 단어들을 원어상으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간구'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에세이스'(*)는 '긴박한 상황에서의 어떤 특별한 성취를 위한 탄원'을 의미한다(Earle). 둘째, '기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슈카스'(*)는 일반적인 의미로 '하나님을 향한 모든 경건한 아룀'을 뜻한다(Hervey). 셋째 '도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튜크세이스'(*)는 신약성경에서 딤전 4:5과 본절에서만 언급되는 단어로 '접근', '인터뷰','사회적 교제' 등의 개념으로 사용되었으나 본절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간구하는 '중보 기도'를 가리킨다(Hervey). 넷째, '감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카리스티아스'(*)는 과거의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뜻한다(Lenski).

성 경: [딤전2:2]

주제1: [중보기도와 여성의 덕]

주제2: [중보 기도]

⭕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 본절은 기도의 대상으로 특별히 권세자들을 포함할 것을 지시한다. '임금들'(*, 바실레온)은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던 네로 황제 뿐만 아니라 지위가 낮은 분봉왕들도 포함한다(Scott, Earle). 그러나 '임금들'을 당시의 황제와 왕들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오히려 본절의 명령은 모든 세대와 모든 지역을 초월하여 적용되는 명령이다(Lenski). 하나님께서 인류의 생존을 위하여 권세자들을 두시고 그들을 주관하시기 때문에(롬 13:1) 그들이 아무리 합당치 못한 통치를 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만 한다(Calvin). 당시에 로마 제국을 지배하던 네로가 기독교를 극심하게 핍박한 사실을 염두에 둘 때 바울의 명령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를 알 수 있다.

⭕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 권세자들을 위한 기도는 나라의 안녕과 사회 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부와 사회가 평안한 상태로 나아갈 때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안정된 신앙 생활을 영위해 나갈수 있다.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은 외적 장애인 전쟁이 없고, 내적 장애인 근심이 없는 생활을 말한다(Hendriksen). 그리고 '경건'(*, 유세베이아)과 '단정'(*, 셈노테티)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심과 고상한 품성 및 도덕적인 덕행을 의미한다. 이상에서 언급한 신앙 생활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통치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해야 한다. 이는 단지 위정자들과 국가 지도자들에게 밀착되어서 자신들의 이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질서와 안녕의 축복이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Lenski).

성 경: [딤전2:3]

주제1: [중보기도와 여성의 덕]

주제2: [중보 기도]

⭕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 권세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일임을 말한다. '받으실 만한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데크톤(*)은 본절과 5:4에만 나오는 단어로 '기쁘게 받아들이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아포데코마이(*)의 형용사형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선한 기도는 하나님 앞에 상달되며그것은 하나님께서 흔쾌히 응답하여 주신다(요일 5:14).

성 경: [딤전2:4]

주제1: [중보기도와 여성의 덕]

주제2: [중보 기도]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 본 구절은 17세기 칼빈주의자들과 알미니안주의자들 사이에 일어났던 논쟁의 주요 쟁점이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본절을 두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보편 구원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의 보편 구원론적 해석은 타당치 않다. 구원은 모든 사람을 위해 예비되었지만 그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만 구원을 얻는다(Earle). 그래서 칼빈(Calvin)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사실은 '구원을 받으며'의 헬라어 '소데나이'(*)가 수동형으로서 구원의 주체는 오직 '우리구주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받아들일 때 구원을 얻는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것에서 지지를 받는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본절을 통해 어떤 계층이나 종족의 특성 때문에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지는 않음을 말하는 것이지 개별적으로 모든 인간이 구원받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Lenski).

⭕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진리에 대한 지식은 구원의 뿌리요, 열매이다. 이러한 지식은 인간의 자의적(自意的)인 노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획득된다(마 16:17; 딤후 2:25).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겔 33:11)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성 경: [딤전2:5]

주제1: [중보기도와 여성의 덕]

주제2: [중보 기도]

⭕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 바울이 이처럼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며, 진정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실은 개역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헬라어 본문에 나오는 접속사 '가르'(*, '왜냐하면')가 앞절 내용에 대한 이유나 근거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또한 '가르'는 하나님께 드리는 선하고 받으실 만한 기도(1-3절)가 구원의 소망을 확고히 해준다는 점을 나타낸다(Calvin).

⭕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 '중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시테스'(*)는 원래 '화친이나 계약을 맺기 위해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mediator, NIV, JB).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인간의 죄로 인해 깨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이다. 바울 사도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Guthrie). 한편 바울이 '사람이신'이라는 말을 부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인성을 소유하심으로써 인간의 구원을 성취하셨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결코 그리스도의 신격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구원주를 하늘 저편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사 우리의 친구되신예수(요 15:13, 14)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다(Calvin).

성 경: [딤전2:6]

주제1: [중보기도와 여성의 덕]

주제2: [중보 기도]

⭕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의 속전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들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얻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의 당위성을 설명한다. '속전'의 헬라어 '안틸뤼트론'(*)은 신약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단어로 노예나 죄수의 '몸값'을 나타내는 '뤼트론'(*)과 '대신'을 뜻하는 헬라어 '안티'(*)가 합성된 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몸값으로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키셨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지만, 그의 속전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죄의 멍에로부터 풀려나게 된다(롬 10:10-13).

⭕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다 - 본 구절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그리스도의 구속은 기회가 있는 대로 우리가 증거해야하는 사실이다(Hendriksen). (2) 그리스도의 구속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이르러 일어났다(Guthrie, JB). 본 구절의 '기약이 이르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로이스 이디오디스'(*)가 문자적으로 '그 자신의 때에'를 뜻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두번째 견해가 타당하다(Earle).

성 경: [딤전2:7]

주제1: [중보기도와 여성의 덕]

주제2: [중보 기도]

⭕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 '이를 위하여'라 함은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친히 자신을 속전으로 내어주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라는 의미이다(6절). '전파하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뤽스'(*)는 원래 '임금, 군주, 행정 장관, 총독, 군대 장관 등의 공식 통신문을 배달하거나, 공공문서를 전달하고 기타 여러 가지 의무를 이행하는 배달인 또는 사자(使者)'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서는 이 용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선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Thayer). 또한 '사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스'(*)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가리킨다. 바울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파하는 사명을 받았고 이 일을 위하여 그의 생애를 바쳤다(행 9:15; 20:24).

⭕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 바울이 복음선포에 대한 그의 직무의 진정성을 이처럼 강력하게 밝히는 것은 1:3, 19, 20에서 시사되듯이 에베소 교인들 중에 유대주의 거짓교사들이 그의 사도적 권위에 도전하고 있었음을 반영한다(Scott).

⭕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 바울이 '믿음과 진리 안에서 이방인의 스승이 된 것'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과 동격을 이룬다. 특별히 바울의 사도직이 많은 도전을 받은 이유는 사도란 예수의 공생애 기간 중 그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하고 그 본 것을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사도 직분이 '믿음과 진리 안에서' 된 것임을 강조하여 에베소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권위나 디모데의 권위에 대한 의심을 불식시키고자 한다(Calvin).실제로 바울은 헬라 학문의 3대 중심지(알렉산드리아, 아테네, 다소) 중의 하나였던다소에서 출생하여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빌 3:5) 엄격한 바리새인으로 양육과 교육을 받았고 이러한 적절한 배경하에서 주 예수로부터 이방인을 위한 사도의 사명을 받은 자였다(행 26:15-18).

성 경: [딤전2:8]

주제1: [중보기도와 여성의 덕]

주제2: [중보 기도]

⭕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 '그러므로'는 새로운 주제가 도입됨을 나타낸다. 즉 본절에서부터는 공중 예배에있어서 남자와 여자가 지켜야 할 규율을 다루고 있다. '원하노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불로마이'(*)는 바울의 강한 소원이며, 또한 명령의 의미를 내포한다(Simpson). 혹자는 본 구절을 '왕의 명령'에 비유하고 있다(Scott). 바울은 먼저 남자들이 교회 내에서 서로 화목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엄격히 명하고 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고 경배하는 일에 앞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마 5:23, 24). 특별히 바울 사도가 '분노와 다툼이 없이'란 말을 사용한 것은 본 구절의 문맥을 살펴볼 때 이방인과 유대인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유대인들은 여전히 선민 의식(選民意識)을 고수하고 있었으므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는 것을 배척하고 있었다. 그래서 종종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는데 이러한 분쟁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교인들 가운데서 종식되어져야 했다(Calvin). 한편 본절에는 기도의자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성경에 기록된 일반적인 기도의 자세는 서서 손을 들고 손바닥은 위로 향하여 펴는 것이었다(출 9:29; 왕상 8:22; 시 63:4; 눅 18:11). 그러나 본절에서 바울이 의도하는 기도의 자세가 꼭 손을 들고 기도하는 자세를 말하는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분노와 다툼이 없는 손'이다.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적질을 행하거나, 기타 범죄를 짓고 나서 더럽혀진 손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Lenski). 만일 우리가 그런 손을 든다면 하나님께서 돌아서실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할 때는 몸의 자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가지고 있는 내면적인 태도가 더 중요하다.

성 경: [딤전2:9]

주제1: [중보기도와 여성의 덕]

주제2: [여성의 덕]

⭕ 이와 같이 여자들도 - 본절은 8절에 언급된 바, 남자들이 공중 예배에 참석할때 경건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참석하여 거룩한 손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여자들도 똑같이 거룩한 심령을 가지고 공중 예배에 참여하여야 함을 말한다.

⭕ 아담한 옷을 입으며 - '아담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스메인'(*)은 본절과 3:2에서만 나오며, 그 뜻은 '행동이 단정한', '질서가 잘 잡힌'이다. '옷'의 헬라어 '카타스톨레'(*)도 신약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단어로 '옷' 그 자체보다는 '복장이나 태도의 단정함'이란 의미를 갖는다(Hervey, Barlow). 바울은 본문에서 여인들의 옷이 단정하고 품위가 있어야 함을 말함으로써 예배에 임하는 올바른 태도를 교훈하고 있다.

⭕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 '염치'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두스'(*)는 본래 '예절', '고상함'을 의미한다(decency, NIV). 본절에서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예절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삼가하는 것'(Hendriksen), '여자다운 조건에서 벗어나지 않는 현숙함'(Bernard)이다. 또한 '정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소프로쉬네스'(*)는 '마음의 확고함', '빠른 이해력'을 의미하는 말로 '확고한 판단' 또는 '명석한 판단력'으로 번역할 수 있다(Earle). 바울사도가 이처럼 주장한 것은 당시에 여자들이 내면의 아름다움보다 외적인 화려함에 더치중을 하였기 때문이다. 예배에 참석할 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신경을 쓰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과시하기 위하여 옷치장을 하는 것은 헌신적인 신앙과 거리가 멀다.

⭕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 '땋은 머리'의 헬라어 '플레그마신'(*)은 신약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며, 포도나무 덩굴이나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세공품', '화환'을 의미한다. 본절에서 바울이 땋은 머리까지도 반대하는 것은 건전하게 땋은 머리가 아니라 뒷말과 연결지어서 보면 겉만 번지르르한 허영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 땋은 머리는 재산의 많음을 나타냈다(Hendriksen).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 등으로 꾸미는 것은 예배에 합당한 자세로 볼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앞에 드리는 마음 자세라기보다 사람에게 관심을 끌게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성 경: [딤전2:10]

주제1: [중보기도와 여성의 덕]

주제2: [여성의 덕]

⭕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 '선행'은 '자선 행위'를 가리킨다(5:10; 고후9:8, 9; 골 1:10). 바울은 당시에 교리와 행위를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자선 행위의 필요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Guthrie).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인 선행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보석이나 값비싼 옷을 훨씬 능가하는 가치있는 요소이다.

⭕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로 번역된 헬라어 '에팡겔로메나이스 데오세베이안'(*)은 문자적으로 '하나님 공경함을 고백한 자들'이다(who profess to worship God, NIV). 이것은 그리스도인 여성들의 품행이 단정해야 하는 그 수준이 일반 여성들과 같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는 데에 있음을 말해준다(Guthrie).

성 경: [딤전2:11]

주제1: [중보기도와 여성의 덕]

주제2: [여성의 덕]

⭕ 여자의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 바울은 여자들이 집회에서 마땅히 보여야할 정숙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종용'이란 '침묵'을 의미한다. 곧 공적인 장소에서 말하려고 나서지 않는 것이다(고전 14:34, 35). 또한 '종용'은 여자들이 봉사하는 행위에 있어서 남자들과 동등한 입장에 서지 않는 것을 말한다. '순종함으로'는 개인의 권리의 포기나 무조건적인 굴복을 의미하기보다는 조직된 권위, 예를 들어 교회의 법규와 질서 및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가리킨다(Ramsay).

성 경: [딤전2:12]

주제1: [중보기도와 여성의 덕]

주제2: [여성의 덕]

⭕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 바울은 교회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할 때도 여자는 남자의 권위 아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쓰라고 당부하였다(고전 11:2-6). 이것은 남존 여비(男尊女卑)의 사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의 기능 차이와 창조 질서를 언급한것이다.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다(갈 3:28). 본절의 가르치지 말라는 것은 교회의 공공 집회에서 금하는 것이지 자신의 가족들과 가정에서하는 가르침까지 박탈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맡겨주신 가르치는 직분을 강조하고 있다(Calvin).

성 경: [딤전2:13]

주제1: [중보기도와 여성의 덕]

주제2: [여성의 덕]

⭕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제시한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법으로 제정하셨다는 점(13절)과 여자가 범죄함으로 인한 처벌로 여자에 부과하였다는 것(14절)이다. 여기서 남자가 먼저 지음을 받았다고 해서 남자가 우월하고 여자가 열등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단지 창조의 순서일 뿐이다(창 2:18-25). 그러나 이 순서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다.

성 경: [딤전2:14]

주제1: [중보기도와 여성의 덕]

주제2: [여성의 덕]

⭕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 여자가 남자를 주관치 못하는 두번째 이유는 여자의 범죄 행위를 인함이다. 여자가 사단의 유혹에 빠진 것은 모든 인류를 죄의 노예로 만들었다(창 3:1-6). 이러한 사실은 여자는 가르치는 일을 맡길 수 없을 정도로 쉽게 꾀임을 받는다는 주장을 가져왔다. 사실 하와의 타락은 그녀에게 정해주신 위치를 무시하였을 때 일어났다. 그녀는 복종하는 것 대신 앞장서는 것을 택하였다. 그녀의 범죄는 순종의 길에서 벗어나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그녀는 그녀 자신의 죄악된 본으로 인해 남편에게 순종하여야 하며, 남자를 주관해서는 안된다(Hendriksen).

성 경: [딤전2:15]

주제1: [중보기도와 여성의 덕]

주제2: [여성의 덕]

⭕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 '하와'라는 개인으로부터 이제는 일반적인 여자에게로 주제를 바꾸로 있다. 본절은 그리스도인 여성에게 있어서 네 가지 미덕을 소개한다. 즉 '정절과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이 그것인데, 이것들은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뛰어날 수 있는 적절한 품성들이다(Guthrie).

⭕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 본 구절은 목회 서신 중 가장 난해한 구절로서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 (1) 여자는 여자의 삶의 모든 조건들에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것이다(Calvin). (2) 여인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해산함으로써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Elicott, Lock). (3) 여자가 해산을 안전하게 치름으로구원을 얻을 것이다(Moffatt). (4) 자녀를 양육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Chrysostom).(5) 여자는 해산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얻을 것이다(Scott). 이상의 견해 중에서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그 이유는 여자는 형벌로 주어진 해산의 고통을 감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있어서는 남자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성 경: [딤전3:1]

주제1: [감독과 집사의 자격]

주제2: [감독의 자격]

⭕ 미쁘다 이 말이여 - 2장에서 공중 예배의 지침을 말한 바울은 본장에서 직분을 맡을 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미쁘다 이 말이여'에 대해서 혹자는 2장과 연결된 것으로 보나(Lock, Chrysostom) 이것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2장에 언급된 여자들의 태도에 대한 교훈은 이런 표현을 쓸 정도로 강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Calvin). 또한 이런 표현은 바울이 인용구의 앞에 사용하였다(1:15;딤후 2:11). 따라서 본문은 바로 다음 구절 이하의 내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Hervey). 본문의 의미에 대해서는 1:15주석을 참조하라.

⭕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 '감독의 직분'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스코페스'(*)는 '내려 다 보다', '돌보다', '감독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에피스코페오'(*)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단어는 벧전 2:25에서 '양떼를 돌보는 사람'으로 쓰였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적용 되었다. 본절에서 이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주관하도록 선택된 목사와 장로들과 기타의 사역자들을 포함한다(Calvin). 초대 교회 당시에 감독이 되는 것은 온전한 헌신과 희생이 요구되었던 만큼 대단히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스런 일이 되었기에 '선한 일'로 간주되었다. 여기서 '선한 일'이란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모든 일을 통칭한다.

성 경: [딤전3:2]

주제1: [감독과 집사의 자격]

주제2: [감독의 자격]

⭕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 감독의 직분 자체가 선한 것이기에 감독은 특별한 자격 조건을 필요로 한다. 바울은 감독에게 요구되는 품성으로 15개 조항을 열거하고있다. 그 첫번째 자격으로 책망할 것이 없는 자를 들고 있는데, '책망할 것이 없으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네필렘프톤'(*)은 '공격을 받지 않는'이란 뜻으로 레슬링 선수나 권투선수가 공격하는 선수에게 몸을 노출시키지 않는데서 유래되었다(Hervey). 본절에서 이 말은 감독의 신령한 권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비행(非行)이 없어야 함을 의미한다.

⭕ 한 아내의 남편이되며 - 어떤 학자들은 이 말이 '한번 결혼한 후의 재혼을 금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ernard, Tertullian, Moffatt). 이러한 주장은 초대교부 시대부터 한번 결혼한 이후 독신자가 되어버린 성직자들의 재혼을 금지시킨 관례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성직자들의 금욕주의를 내세웠던 예에서 영향을 입은 듯하다. 그러나 이 말은 목회자는 꼭 결혼한 자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아니며 재혼을 금지하는 내용도 아니다. 이것은 다만 일부 일처제(monogamy)와, 감독은 자기아내에게 충실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Earle, Calvin, Scott). 사도 바울은 결혼 상대가 죽었을 경우 재혼을 반대하지는 않았다(롬 7:2, 3;고전 7:9).

⭕ 절제하며 - 감독의 세번째 조건은 '절제'이다.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네팔리온'(*)은 본래 '술 취하지 않은 상태'란 의미를 가지며 후에 '온전한', '신중한'등의 광범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Earle). 이와같은 원어의 의미를 염두에 둘 때 감독은 술이나 다른 육적인 쾌락을 삼가하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함을 시사한다(Hervey).

⭕ 근신하며 - '소프로나'(*)는 '건전한 정신의', '자제하는', '차분한'의 의미를 가진다(딛 1:8;2:2, 5). 감독은 갑작스런 충동으로 좌지우지(左之右之)아니하고 매사에 분별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discreet, JB).

⭕ 아담하며 - 헬라어 '코스미온'(*)은 '질서 있는', '예의 바른', '명예로운'(respectable, NIV)이란 뜻이다. 이 말은 사람의 행위에 있어서 도가 지나치지 않고 점잖으며 정중하게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 나그네를 대접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필로크세논'(*)은 '나그네를 사랑하는'이란 뜻이다(딛 1: 8;벧전 4:9). 1세기에 여행을 하던 그리스도인들은 이교(異敎) 분위기에 싸인 여관을 피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하룻밤을 유숙할 그리스도인 가정을 찾아다니곤 했다. 이로 말미암아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부터 모여든 신자들이 서로 알게 되고 우애와 친교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이와 같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미덕이었다(Earle).

⭕ 가르치기를 잘하며 - 일곱번째 자격인 '가르치기를 잘하는 것'(*, 디다크티콘)은 수다스러운 혀로 달변하는 것을 의미했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시켜 영적으로 가르칠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Earle, Calvin). 이는 또한 불신자를 전도하고 자신이 맡은 양떼를 말씀으로 잘 양육할 능력을 말한다(마 9:35).

성 경: [딤전3:3]

주제1: [감독과 집사의 자격]

주제2: [감독의 자격]

⭕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 '술을 즐기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로이논'(*)은 '술곁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을 뜻하는 '파로이니오스'(*)의 후기 단어이다(Robertson). 감독은 무절제하게 술을 즐기며, 술을 통해서 마음의 안위와 쾌락을 누리는 자가 아니어야 한다.

⭕ 구타하지 아니하며 - 이는 성질이 급하여 폭력을 즐겨 쓰는 행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주장만 일삼는 언어의 폭력까지를 포함한다.

⭕ 오직 관용하며 - '관용하며'에 해당하는 혤라어 '에피에이케'(*)는 정확히 번역하기 힘든 단어로 '호의적인', '친절한', '참을성 있는', '동정심 많은','관대한', '다정한'등의 의미를 갖는다(Simpson). 혹자는 이 단어를 '친절한 분별력'으로 번역하였다(Matthew Arnold). 따라서 이 말은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지 않는다면 어떤 손해나 아픔이라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 다투지 아니하며 - 이 말은 본절과 딛 3:2에만 나온다. 이것은 '관용'과 통하는 말이며, 자기 주장만 내세우지 아니하고 타인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자세를 의미한다.

⭕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 이 말은 부정적인 태도로 치부(致富)하지 않으며(딤전3:8), 재물을 모으는 것을 생의 첫번째 목표로 삼지않는 자를 가리킨다(Barnes).

성 경: [딤전3:4]

주제1: [감독과 집사의 자격]

주제2: [감독의 자격]

⭕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 감독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가정의 흘륭한 가장(家長)이 되어 자녀들을 복종시켜야 한다. '다스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이스타메논'(*)은 '앞에 서다' 또는 '앞에 두다'를 뜻하는 동사 '프로이스테미'(*)의 현재 분사로 '앞서서 행하는'이란 의미를 지닌다. 감독이 모든 일에 자녀들의 모범이 될때에 자녀들은 신뢰를 가지고 부모를 공경하며 예의 범절을 지킬 수 있다. 이는 또한 감독이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는데 있어서 그 품위를 잃지 않고 자녀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에 힘쓰는 것을 의미한다. '단정함'(*, 셈노테토스)은 '방탕'과 반대되는 말로서 행동이 정숙하고 기품과 규모가 있는 것을 말한다(Calvin).

성 경: [딤전3:5]

주제1: [감독과 집사의 자격]

주제2: [감독의 자격]

⭕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께 교회를 돌아보리요) - 본절에 괄호가 있는 것은 이 구절이 앞절을 설명하는 삽입구임을 암시한다. 가정은 사회 집단의 최소단위이다. 이 최소 단위를 잘 다스릴 수 없는자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잘 돌볼 수 없다. 한편 '교회'의 헬라어 '엑클레시아스'(*)는 '엑칼레오'(*, '불러낸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 본래 '정규로 소집된 시민의 정치적 집회'를 의미하였으나 점차 이스라엘의 종교적 집회에도 사용되었고 나중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집단'을 가리키게 되었다. 따라서 이는 건물을 가리키기보다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가리킨다. 교회는 가정과 유사점이 많다. 복음의 사역자에 대한 권위가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비슷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모인 형제와 자매가 있는 것도 그렇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큰 가정이라 할 수 있다(Barnes).

성 경: [딤전3:6]

주제1: [감독과 집사의 자격]

주제2: [감독의 자격]

⭕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 '새로 입교한 자'의 헬라어 '네오퓌톤'(*) 은 '새롭게 씨를 뿌린'이란 뜻으로 최근에 개종하여 교회가 받아들인 자를 가리킨다(Earle). 바울이 새로 입교한 자들에게 감독직을 맡기지 말라고 한 이유는 새 신자에게 그와 같은 중직(重職)을 맡길 경우 오만과 야심에 곧장 휩쓸리기 때문이다.

⭕ 교만하여져서 - '교만하여져서'로 번역된 헬라어 '튀포데이스'(*)의 문자적 의미는 '연기에 싸이다'이다. 확실한 소명의식이나 지휘 능력이 없는 새로운 개종자는 갑자기 확보된 지위에 의하여 교만의 연기에 싸이기 쉽다. 그 자만심은 높은 지위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게 하며, 그 결과 타락의 길로 가게 할 가능성이 많다(Guthrie, Scott).

⭕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 본 구절은 난해한 구절이다. 여기서 '마귀'에 해당하는 '디아볼루'(*)를 '사단'으로 볼 것인가 '중상모략자'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1) '사단'으로 볼 경우에는 '마귀가 당할 정죄'의 뜻이다. 이는 사단이 하나님의 피조물로 창조되었으나(창 1장) 자신의 교만으로 타락하게 되었고 자만심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암시한다. 이와 같이 교만한 사람들은 그와 같은 심판을 받게 된다(Earle, Calvin, Chrysostom, Ellicott,Alford, Guthrie). (2) '중상모략자'로 보는 경우에는 하나님의 교회에 세움을 받은 자가 자신의 교만으로 인해 마귀가 가져오는 정죄, 즉 마귀가 놓은 올무에 빠진다는 뜻이다. 이러한 견해는 마귀를 주격 소유격으로 보는 이론이다. 그러나 '정죄'라는 단어가 '중상모략'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성경상의 표현으로 보아마귀가 정죄의 올무를 놓는다는 의미보다는 마귀가 정죄를 받는다는 전자의 의미가 타당하다(창 3:15;사 14:12;슥 3:2;마 4:10;롬 16:20).

성 경: [딤전3:7]

주제1: [감독과 집사의 자격]

주제2: [감독의 자격]

⭕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 감독의 열다섯번째 자격을 언급하는 본절은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교회가 필요없는 비방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마땅한 요구 사항이었다. '외인'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다. 외부 사람들에게 좋은 증거를 필요로 하는 것은 바울이 가졌던 관심으로 여러 곳에 나타난다(고전 10:32;골 4:5;살전 4:12). 교회 지도자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할 때 교회와 그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늘나라의 시민인 동시에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기때문에 세상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벧전 2:12). 여기서 바울이 의도하는 것은 감독이 세상 사람들에게 아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고 모범적으로 행동하여 인정받으라는 것이다(Calvin).

⭕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 외부인으로부터 선한 증거를 얻지 못한 사람은 쉽게 비방을 받게 된다. '비방'이란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는 것이다. '마귀의 올무'를 혹자는 '마귀가 잡힌 덫' 즉 '교만'으로 해석한다(Earle, Guthrie). 그러나 여기서는 마귀가 순진한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해 설치하여 놓은 올가미로 해석해야 옳다. 마귀는 환난을 통하여 믿음이 연약한 자를 잡으려고 올무를 설치한다(벧전5:8). '올무'에 해당하는 혤라어 '파기나'(*)는 '붙들어 매다'를 뜻하는 '페그뉘미'(*)에서 나온 단어로 새나 짐승을 잡기 위해 설치한 '덫'(눅21:34), '함정'(롬 11:9)을 뜻한다(Robertson).

성 경: [딤전3:8]

주제1: [감독과 집사의 자격]

주제2: [집사의 자격]

⭕ 집사들도 단정하고 - 본절부터 13절까지는 집사의 자격에 대한 기술이다. 집사의 자격 요건은 앞서 언급한 감독의 자격 요건과 흡사하다. 이는 초대 교회의 집사들이 장차 감독이 될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집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누스'(*)는 '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식사때 시중드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Josephus). 그런데 이 말이 초대교회에서는 '섬기는 자', '봉사하는 자'의 의미로 발전하였다. '집사'라는 표현은 행 6장에서 최초로 나온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 가난하고 불우한 교인들을 물질적으로 돌보는 구제 사업을 맡을 일곱 집사를 선택하였다(행 6:1-6). 집사직은 제도화되기 전까지 두 측면에서 언급되었는데, 첫째는 교회의 영적 생활과 재정업무를 돌보던 사람에게 사용되었고(빌 1:1) 둘째는 비공식적인 입장에서 봉사하는 자 모두를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엡6:21). 이처럼 집사는 군림하는 자가 아님 돌보고 섬기는 일에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이다(Earle). '단정하고'에 대해서는 4절 주석을 참조하라.

⭕ 일구 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 '일구 이언'의 헬라어 '딜로구스'(*)는 '두 번'을 뜻하는 부사 '디스'(*)와 '말하다'를 뜻하는 '레고'(*)의 합성어로 이 사람에게는 이 말을 하고 저 사람에게는 다른 말을 하는 이중적인 언행(言行)을 의미한다(Hervey, Earle). 결국 이말은 '불성실하다'는 개념을 가진다. 집사는 공명 정대(公明正大)하며 성실한 언행을 가져야한다.

⭕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 '많은 술에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는'의 뜻으로 술에 탐닉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 '더러운 이를 탐하지'의 헬라어 '아이스크로케르데이스'(*)는 '부끄러운'을 뜻하는 '아이스크로스'(*, 엡 5:12)와 '유익'을 뜻하는 '케르도스'(*, 빌 1:21)의 합성어로 '비열한 수단으로 사소한 이익을 취하는 것'을 뜻한다. 부정으로 취한 것은 항상 더러운 것이다. 또한 정당한 이익이라고 할지라도 과도한 욕망으로 인한 것은 더러운 것에 포함된다(Robertson). 본문은 앞서 언급한 초대교회 집사직의 역할에 비추어 볼 때 분배할 구제품을 횡령하거나 그것을 이용하여 이익을 남기려고 이리저리 유용하는 행위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Scott).

성 경: [딤전3:9]

주제1: [감독과 집사의 자격]

주제2: [집사의 자격]

⭕ 깨끗한 양심 - 이상과 같이 그리스도를위하여 맡은 바 직분을 감당할 자격을 갖춘 사람은 깨끗한 앙심을 가진 자이다. '깨끗한 양심'은 '선한 양심'과 같은 의미로(1:5,19)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은 앙심이다(히 10:22). 혹자는 이를 '보석을 보관할 수 있는 작은 상자'에 비유하였다(Lock).

⭕ 믿음의 비밀을 가진자 - '비밀'에 해당하는 헬라어 '뮈스테리온'(*)은 오랫동안 숨겨져 있다가 마침내 사람들에게 공개되거나 선택된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믿음의 비밀'은 '성령에 의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계시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비밀'이다. 따라서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좇아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지식을 소유한 자'이다(Calvin).

성 경: [딤전3:10]

주제1: [감독과 집사의 자격]

주제2: [집사의 자격]

⭕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 '시험하다'의 헬라어 '도키마제스도산'(*)은 '금속을 시험하다'를 뜻하는 '도키마조'(*)의 명령형이다. 추천된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집사로 임명하라는 바울의 명령은 기간을 설정해 놓고 합격여부를 결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진실성과 구원에 관한 확고한 믿음의 도리를 가졌는지를 시험하라는 것이다. 8,9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집사가 될 사람을 판단할 때는 떠돌아다니는 풍문(風聞)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교회 전체를 통한 조화나 관찰을 거쳐야한다. 이 시험은 세 단계를 갖는데, 그것은 시험과 시험에 대한 증명, 그리고 시험의 결과에 대한 인정이다. 여기서는 이 세단계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Earle).

성 경: [딤전3:11]

주제1: [감독과 집사의 자격]

주제2: [집사의 자격]

⭕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 '여자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귀나이카스'(*)는 '여자' 또는 '아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여기서 '여자들'이 어느 집단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집사들의 아내라는 주장(NIV, KJV,Earle, Moffatt, Jeremias, Easton, Weiss). 즉 전후 문맥상 8-10절, 12, 13절이 집사의 자격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집사의 아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2) 일반적인 여자라는 주장. 이 주장은 8-12절의 문맥상 합당하지 않다. (3)여집사라는 주장(Bernard, Lock, Robertson, White, Alford, Ellicott, Chrysostom).이 견해를 주장하는 자들은 본절의 '여자들'을 감독이나 집사처럼 교회에서 특별한 직분을 맡아 봉사하는 자들로 이해한다. 다만 여기서 여집사의 자격 요건에 대해 분리된 문항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여집사가 제2의 직분이라는 차별 의식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세번째 주장이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 참소하지 말며 - '참소하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볼루스'(*)는 '비방하는', '거짓으로 고발하는'의 뜻이다. 특별히 목회 서신에만 나타나는 이말(딤후 3:3;딛 2:3)은 초대 교회에 요구되는 사항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역시 필요한 경고이다(Earle).

⭕ 절제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네팔리우스'(*)는 2절 주석을 참조하라.

⭕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 '모든 일에 충성된 자'는 포괄적인 필요 조건이다. 교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자신이 부여받은 직분과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혹자는 '모든 일에 충성된 자'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자'로 해석하였다(Moffatt).

성 경: [딤전3:12]

주제1: [감독과 집사의 자격]

주제2: [집사의 자격]

⭕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 이제 집사에게도 감독과 마찬가지로 가정의 질서를 위해서 남편된 책임과 자녀를 잘 다스려야 할 것이 요구된다. '다스리는'(*, 프로이스타메노이) 것은 글자 그대로 '머리가 되는 것'이다. 롬 12:8과 살전 5:12에서는 이 단어가 교회의 영적 지도자에게 쓰였다.

성 경: [딤전3:13]

주제1: [감독과 집사의 자격]

주제2: [집사의 자격]

⭕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 '아름다운 지위'는 교회에서 직분을 훌륭하게 감당했을 때 얻게 되는 첫번째 결과이다. '집사의 직분'에 해당하는 헬라어'디아코네산테스'(*)는 여자 집사(롬 16:1)와 바울 자신과 바울의 동역자들에게도 사용되었다(고전 3:5;고후 3:6;6:4;11:23;엡 3:7;골 1:23). 그러므로 '디아코니아'(*)는 일반적인 봉사의 직분를 칭한다고 할 수있다. 따라서 본문은 '집사 직분을 잘한'으로 번역하기보다는 '직분을 한'으로 번역함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Lenski, Hendriksen). 한편 '지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바드몬'(*)은 '가다'를 뜻하는 동사 '바이노'(*)에서 나온 단어이다. 칠십인역(LXX)에서는 '밉탄'(*, 삼상 5:5)이란 말을 '바드몬'으로 번역하였는데 원래 이 말은 '문지방'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복수로 사용될 경우에는 '계단을 오르는 걸음'이란 뜻을 가진다(Robertson, Earle). 이 말은 교회에서의 직위 승진을 시사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교회에서 성실히 직분을 감당했을 때 사람들에게 높은 평판을 얻게 되고 그들 스스로가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되리라는 의미이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 직분을 잘 감당하는 자들에게 오는 두 번째 결과이다.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는 자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게 된다. '담력'(*, 파르레시안)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 있어서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담대한 것을 말한다(Hervey). 이 담력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연결되는 것은 담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데서 비롯됨을 보여준다(Lenski).

성 경: [딤전3:14]

주제1: [감독과 집사의 자격]

주제2: [교회와 복음의 심오함]

⭕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 '이것'은 2:1-3:13에 기록된 내용을 가리킨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가 있는 에베소 교회에 가기를 원했으나(1:3)지체되는 경우를 생각해서 목회 서신을 기록한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기전에 디모데에게 직접 이러한 지침들을 전하지 않고 서신으로 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혹자는 디모데가 너무 미성숙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Easton). 그러나 이것은 정당한 이유라고 볼 수 없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의도에서 이 지침들을 서신으로 전했을 것이다. 첫째, 본 서신은 바울이 에베소를 떠날 때 말로써 충고하였던 것을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라고 볼수 있다. 둘째, 바울이 디모데에게만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고 수신자인 에베소 교인들로 하여금 디모데의 권위를 인정하도록 하기 위하여 서신을 기록하였다. 셋째, 바울이 에베소를 서둘러 떠나야만 했기 때문에 미처 알려주지 못했던 지침들을 전달하고자 하였다(Guthrie).

성 경: [딤전3:15]

주제1: [감독과 집사의 자격]

주제2: [교회와 복음의 심오함]

⭕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 본절에서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청지기 역할의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다. 몇 사본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헬라어 사본에서 '행하여야'라는 동사의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 따라서 이 동사의 주어는 일반적인 사람이나 디모데가 포함될 수있다. 비록 본 동사('알게 하려')의 주어가 디모데이나 앞의 구절에서 열거되었던 지침들을 살펴보면 문맥상 일반적인 사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Guthrie). 한편 '하나님의 집'(*,오이코 데우)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우러러보는 그리스도인 전체의 가족'을 나타내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정'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는 지상에 있는 보편적 교리를 가리킨다. 교리를 집이라고 일컬은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되는 가족들을 소유하고 계시고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Earle, Lenski).

⭕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 교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영원히 살아 계셔서 주관하시는 하나임의 소유이다. 바울이 이처럼 교리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소유라고 말한 것은 교회를 돌보는 사람들이 지킬 거룩하고 흠없는 생활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Hervey).

⭕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 여기서 '기둥'은 '터'에 의해 더욱 강화되는 지주(支柱)의 개념을 갖는다. 그리고 본문 전체를 볼때 '기둥'과 '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시되는 '진리'의 확실성과 견고성을 강조한다. 혹자는 본문을 '하나님께서 각지역 교회의 신앙의 증인들을 사용하사 교인들의 삶의 터전 위에 진리를 강화시켜 나가신다는 의미로 해석한다(Lock).

성 경: [딤전3:16]

주제1: [감독과 집사의 자격]

주제2: [교회와 복음의 심오함]

⭕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 이 구절은 놀라우신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찬양이다. '경건'의 헬라어 '유세베이아스'(*)는 원래 '영혼의 자질이나 상태'를 의미하나, 여기서는 이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로 삶 속에 나타난 경건을 의미한다(Hendriksen). 곧 예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참되게 헌신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참된 경건의 본질이다. 이경건은 비밀로 언급된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그분을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Lock).

⭕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 이제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6행으로 찬송한다. 이 6행의 찬송은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해서 그의 영광스러운 승천으로 끝을 맺는다. 이는 초대 교회에서 행하던 찬양의 형태로서 풍부한 운율과 의식적(儀式的)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먼저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는 그리스도의 비하(卑下)를 가리킨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고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 이처럼 저주를 받아 연약해진 인간의 육신을 스스로 입으셨으므로, 이를 통하여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명백히 드러났다(요 1:1-14;고후 8:9;빌 2:5-11).

⭕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 앞에서 예수의 인성(人性)을 묘사한 반면 본문은 예수의 신성(神性)을 언급한다. 예수는 비록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셨으나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의 신성은 그의 말씀과 그가 행하신 기적들의 근거였고 사망을 이기신 그의 부활을 통하여 절정적(絶頂的)으로 증거되었다(Simpson).

⭕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 예수는 그의 모든 생애를 천사들에게 보이셨다. 대표적으로 그의 탄생(눅 2:12-14), 사단의 시험(마 4:11), 부활(마 28:2-7;막 16:5-8;요 20:12,13). 그리고 승천시에(행 1:9-11)천사들이 예수 곁에 등장하였다. 무엇보다 본문에서의 의미는 부활에서 나타내 보이신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Hendriksen, Lenski). 한편 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신자들의 구속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벧전1:12).

⭕ 만국에서 전파 되시고 -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모든 족속으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다(마 28:18-20). 인간의 연약함과 질고를 담당하시기 위해 친히 낮아지사 고난의 생애를 보내신 그리스도는 이제 세상의 구주로서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다. '만국'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드네신'(*)은 글자 그대로 '민족들'을 의미하지만(the nations, NIV), 유대인들과 구별되는 이방인 뿐만 아니라 '천하 만민'을 가리킨다(Robertson).

⭕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 이제 세상 가운데 전파되신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세주로 받아들여 지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믿음으로 응답하는 역사를 말한다. 참된 복음의 권세는 그 복음을 듣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를 믿고 받아들이는 신앙을 가져다 준다.

⭕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 이것은 그리스도의 승천에 대한 언급이다. 하늘에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하늘로 오르셨다(행 1:9). 지상에서의 사역을 승리로 종결지으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이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셔서 하늘의 영광 가운데 계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의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다(빌 2:9-11).

성 경: [딤전4:1]

주제1: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주제2: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

⭕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 본장에서 바울은 이단에 대한 경계를 명하고 있다. 1-5절은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금욕주의에 대한 교훈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의 거짓 예배가 하나님의 참된 예배를 더럽히고 있는 것을 경계시키고, 이것이성령에 의한 예언임을 밝히고 있다(Guthrie).

⭕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기르침을 좇으리라 - '후일'(*, 휘스테로이스 카이로이스)은 묵시 문학적으로 '말세'(막 13:5-37; 딤후 3:1)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가까운 장래'를 의미한다. 즉 이것은 어떤 특정한 시간에 실현되는 임박성을 가리킨다(Earle). '...에서 떠나'의 헬라어 '아포스테손타이'(*)는 '버리다', '취소하다'의 뜻으로(desert, JB) '마음이 변하다', '배교하다'로 번역할 수 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고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기 때문에 배교자들이 생긴다. 한편 '미혹케하는 영'(*, 프뉴마신 플라노이스)은 '거짓말하는 영'을 가리킨다(왕상 22:22). 이 말은 방황을 뜻하는 '플라네'(*)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방황하게 하다', '길을 헤매게 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귀신'이라는 말은 KJV과 NEB에서는 '악마'(devil)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헬라어 본문에서는 '다이모니온'(*, '귀신')과 '디아볼로스'(*, '마귀')로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마 12:24; 막 5:8, 9). '귀신'은 복수로 사용되었고 '마귀'는 단수로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성 경: [딤전4:2]

주제1: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주제2: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

⭕ 자기 양심이 화인맞아서 - 이는 믿음에서 떠난 자의 상태를 말한다. '화인맞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카우스테리아스메논'(*)은 문자적으로 '인두로 도장을 찍은'이란 뜻이다. 이 말은 노예 매매시 주인이 노예에게 신체 부위에 불로 지져서 자기 소유를 표시했던 사실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이 부위는 점차 딱딱해져서 감각(感覺)이 없어지게 된다. 즉 양심이 화인맞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의 악한 행동에 대해서 감각이 무디어진 자들이다(엡 4:19). 이처럼 그들의 감각을 무디게 하여 진리를 구별할 수 없게 하는 그들의 소유자는 사단이다(Lock).

⭕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 - 이 말은 '마귀들로부터 조종받는 사람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Guthrie, Calvin). 사단은 사람들을 꼬여 하나님 위에 오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성 경: [딤전4:3]

주제1: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주제2: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

⭕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 에베소 교회의 이단들은 금욕주의자였다. 그들은 물질은 악하고 정신은 선한 것이며, 육적인 것은 악에 물들게 하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혼인을 불쾌하게 여겼고 몇몇 음식을 먹지 않았던 엄격한 채식주의자였다(롬 14:1, 2, Scott). '혼인을 금하는' 풍습은 엣세네파(Essenes)에서 시작하여 테라퓨테파(Therapeutae)에서 유행하였는데(Josephus, Philo), 이것이 발전하여 영지주의자(Gnostics)들의 교리가 되었다. 이러한 교리는 1세기에 교회에 들어와서 2세기 경까지 교회에 두루 퍼졌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적 쾌락을 죄로 규정하였고, 성결(聖潔)하게 되는 것은 금욕을 통해서만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결혼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특별히 만드신 제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세상을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좋게' 창조하셨다(창 1:10, 12, 18, 21, 25, 31). 따라서 억지로 행하는 금욕주의와 금식주의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배치(背馳)된다.

⭕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 특정한 음식을 금지하는 것은 모세 율법에 규정되어 있다(레 11장).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불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셨다(갈 5:1-6). 따라서 우리는 어떤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고 채식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소중한 것들이다(막7:5; 롬 13:14; 딛 1:15). 그러나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받지 않는다(롬 1:21).

성 경: [딤전4:4]

주제1: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주제2: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

⭕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 본절은 앞절을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 선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창1장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창 1:10, 12, 18, 21, 25). '지으신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티스마'(*)는 '창조하다'를 뜻하는 동사 '크티조'(*)에서 유래한 단어로 '창조된 피조물'을 뜻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말함으로써 어떤 것도 버릴 것이 없다고 표현한다. 사실 인류에게 아무 쓸모 없는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Hendriksen). 따라서 본문은 '만일 감사함으로 받으면'으로 조건적 분사로 해석할 수도 있고,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선하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버릴 것이 없다'는 원인,결과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Scott).

성 경: [딤전4:5]

주제1: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주제2: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

⭕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 하나님께서 제정(制定)하신 결혼을 창조자의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일용할 양식과 마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전제라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는 그것을 거룩하게 하는필수적인 조건이다. 혹자는 '말씀과 기도'가 음식물 자체를 거룩하게 한다고 하나(Simpson) 그것은 지나친 해석이며 그것보다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연결시키는 고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스도인은 먹고 마시는 행위에 있어서 결코 세상 사람들처럼 쾌락과 만족을 추구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고전10:31).

성 경: [딤전4:6]

주제1: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주제2: [그리스도의 일꾼]

⭕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 '이것'(*, 타우타)은 1-5절의 내용을 지시한다. '형제'(*, 아델포이스)는 교회 안에 소속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벧전 2:17; 5:9). 에베소 교인들은 바울의 형제들이요, 영적 식구들이다. 바울이 여기서 이 말을 한 것은 결코 권위를 나타내려고 함이 아니라 이단 세력으로부터 에베소 교인들을 보호하려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Hendriksen). 한편 '깨우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티데메노스'(*)는 '아래에 놓다'를 뜻하는 '휘포티데미'(*)에서 유래한 말로 '제시하다'로 번역할 수 있다(point, NIV). 이때 본절은 '만일 네가 이것들을 제시한다면 그들의 행위에 대한 기초가 되므로 너는 이것들을 명(命)하라'는 뜻이다(Scott).

⭕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되어 - '일꾼'(*, 디아코노스)은 3:8, 12에서 '집사'라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었으나 본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봉사하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자들을 일컫는다(Robertson, Lenski). 혹자는 이 말이 '집사'라는 용어로 정착(定着)되기 전에 바울이 디모데를 위하여 사용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하나(Hervey) 정확한 근거가 없다.

⭕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 '믿음의 말씀'은 기독교 진리의 참된 복음의 말씀이며, '선한 교훈'은 거짓 교훈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교훈들을 말한다. '네가 좇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레콜루데카스'(*)는 '옆에서 바싹 따르다', '어떤 일에 열중하다'라는 의미이다. '양육을 받으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트레포메노스'(*)는 '기르다'를 뜻하는 동사 '엔트레포'(*)에서 나온 말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할머니를 통해서 받아 온 믿음의 양육으로 인해 신실한 하나님의 선한 일꾼된 디모데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Calvin).

성 경: [딤전4:7]

주제1: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주제2: [그리스도의 일꾼]

⭕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이 되기 위해서 디모데가 해야 할 일을 말하고 있다. '망령'(*, 베벨루스)에 대해서는 1:9 주석을 참조하라. '허탄한 신화'에 해당하는 헬라어 '그라오데이스 뮈두스'(*)는 늙은 노파가 어린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어하는 헛된 말을 가리킨다(old wives' tales, NIV, JB, Scott). 즉 본절의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란 이단들이 주장하는 끝없는 족보와 신화를 나타낸다(딤전 1:4). 바울은유대인의 신화와 족보를 이렇게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고 디모데에게 이런 것들을 내버리라고 권고한다.

⭕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 '경건'(*, 유세베이안)은 순결한 양심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마음을 뜻한다(Calvin). 이런 경건(敬虔)의 연습은 8절의 '육체의 연습'과 대조를 이룬다. '연습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귐나조'(*)는 '벌거벗은'을 뜻하는 '귐노스'(*)에서 유래한 말로 '벌거벗고 운동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당시 헬라에는 '달리기'와 '격투' 등의 경기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옷을 벗고 경기에 임하였다(Josephus). 따라서 이 비유가 운동 경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혹자는 이 비유에 금욕주의적 훈련도 포함된다고 말한다(Earle).

성 경: [딤전4:8]

주제1: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주제2: [그리스도의 일꾼]

⭕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 '육체의 연습'이란 고대의 운동 경기자들이 경기에 나가기 전에 부지런히 훈련하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말이다. 이것은 육체를 단련하기 위한 운동뿐만 아니라 외식적인 신앙 행위 즉 철야 기도, 금식 기도 등을 포함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습은 엣세네파에서 중요시하던 규칙이었다(Calvin). 그런데 이러한 것은 잠시 동안 유익이 된다. '약간의'에 해당하는 '프로스 올리곤'(*)은 시간의 길이를 뜻하는 '얼마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 경건한 삶을 사는 자는 금생(今生)에 하나님과 더불어 삶으로써 은혜가 넘치는 평화스러운 삶을 살며(시34:1, 2), 내생(來生)에 있어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막 10:30). 이러한 삶은 잠시 동안만 유익을 주는 육체적 삶과 달리 항상 유익을 준다. 이처럼 경건의 축복을 말하는 본절은 자신이 처한 세상 환경에 관계없이 가장 풍족한 삶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실존(實存)을 잘 말해준다(Guthrie).

성 경: [딤전4:9]

주제1: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주제2: [그리스도의 일꾼]

⭕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하도다 - 이 관용적 표현은 1:15에서도 동일하게 나온다. 그런데 이 말이 8절의 경건과 관련된 것인지, 10절과 관련된 것인지는 논란이 있다. 많은 주석가들은 당시 10절보다 8절 내용이 널리 알려져 있던 사실 때문에 전자를 따르고 있다(Hendriksen, Scott, Robertson). 그러나 경건의 주제를 다루는 8절보다 소망의 하나님을 언급하는 10절이 더 중요한 신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또 10절 초두에 나오는 '이를 위하여'가 8절의 '경건'을 말하고 있으므로 후자가 타당할 것이다(Earle, Guthrie). NIV는 후자가 타당하다는 견해에 따라 10절 초두, 즉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을 괄호로 묶고 있다.

성 경: [딤전4:10]

주제1: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주제2: [그리스도의 일꾼]

⭕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 바울은 앞에서 인용한 말씀, 즉 경건이 주는 유익과 약속은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여러 동역자들의 노력의 근거라는 말로 위로하고 있다. 복음 때문에 현재 고통받고 있는 신자들은 그들의 양심 가운데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교제가 있고, 장차 즐겁고 복된 날을 소망하기 때문에 고통을 이길 수 있다. '수고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 '코피오멘'(*)는 '힘을 다하여 열심히 일하다'의 뜻을 가진다. 또한 '진력하는'의 헬라어 동사 '아고니조메다'(*)는 운동 경기에서 이기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싸울 때 사용되는 말이다. 바울이 이 단어들을 사용한 것은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모든 수고와 고생을 참아냈던 것처럼 어떠한 어려움과 박해도 감내(堪耐)하라는 권고의 의미이다(고전 4:9-13; 고후 11:23-27; 딤후 3:11, Hervey).

⭕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 이는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수고하고 진력(盡力)한 이유이다. 경건은 현재를 살아가는 삶뿐만 아니라 장차 영원한 삶을 확실히 보장하는 하나님의 약속이므로 현재의 고난을 견뎌낼 수 있다. 특히 자신이 하나님과 교리를 위하여 힘을 다한 수고가 썩어져 없어질 이 땅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결코 흔들림이 없이 자신이 맡은 책임을 위하여 수고하고 진력할 수 있다(고후 4:16-18; 벧전 1:3, 4).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 때, 그 고난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더욱 깊게 하기 때문에 진정한 감사의 조건이 된다.

⭕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 본절에 나타난 사상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2:4).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구주라고 불리는 것이 타당하다(Lenski). 또한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지키시고 보살펴주신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람들의 구주가 되신다는 주장도 있다(Hendriksen).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바울은 '믿는 자들의'라는 문구를 첨가함으로써 그 의미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 의지는 차별적으로 임하는 것은 아니지만(Calvin), 하나님의 선하신 구원의 의지를 믿고 받아들이는 자들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White). 자신의 완고한 불신앙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성 경: [딤전4:11]

주제1: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주제2: [그리스도의 일꾼]

⭕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쳐라 - '명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랑겔레'(*)는 원래 군대에서 사용하는 명령어였다. 예수께서는 신적 권위를 가지고 명령하실 때 이 단어를 사용하셨다(마 10:5; 15:35; 막 8:6; 눅 8:29 ;9:21). 그리고 바울 사도는 자신의 동역자들에게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낼 때 이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하였다(살전 4:11; 살후 3:4, 6). 본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확실한 진리를 바탕으로 하여 권위(權威)를 가지고 교회를 가르치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확고한 신념을 심어주고 싶은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Guthrie). '이것들'은 바울이 6-10절에서 말한 모든 것을 지시한다. '가르치라'(*, 디다스케)는 현재 명령법으로 '계속하여 가르치라'는 것을 의미한다.

성 경: [딤전4:12]

주제1: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주제2: [그리스도의 일꾼]

⭕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 '연소함'(*, 네오테토스)이란 '젊음'을 뜻하는 '네오스'(*)에서 온 말로서 유대 사회에서 군대를 갈 만큼 자란 나이에서부터 40세까지 달하는 사람을 가리켜 사용하였다(Lock). 많은 학자들은 디모데의 나이가 매우 어렸을 것으로 추측(推測)하지만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연소함'은 장로들이나 교인들 틈에서 경륜이 적은 디모데가 상대적으로 지도자 역할을 감당하기에 어려운 점을 의미하는 것이지 나이에 대한 연소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Guthrie).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연륜과 경륜 때문에 업신여김을 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따라서 바울은 디모데가 가지고 있는 상대적인 연소함을 행동의 진지함으로 보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것은 장로들과 나이 많은 교인들에게 연소함으로 업신여김을 받는다면,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서 권위를 지니라는 말이다(Calvin). 그리스도의 사역자로서의 권위는 외부적인 치장이나 장식, 그리고 연령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가르침과 거룩한 생활에서 오는 것이다.

⭕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 '말'이란 공개적인 연설뿐만 아니라 사적인 대화까지도 포함한다. '행실'(*, 아나스트로페)은 다른 사람과 관계되는 행동을 의미한다. 또한 다음으로 언급되고 있는 세 가지 '사랑', '믿음', '정절'은 그리스도인의 내면적인 성품이며, 이것들도 결국 타인과 관계된 생활과 연결된다. '사랑'은 말과 행위로 표현되고 '믿음'은 사랑에 근거를 둔다. '정절'의 헬라어 '하그네이아'(*)는 '순결한 양심을 지키다'라는 뜻을 가지는 헬라어 동사 '하그뉴오'(*)에서 유래된 말로, 생활에 있어서 죄가 없는 것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철저한 순결을 의미한다(5:2, Robertson). 한편 '본'에 해당하는 헬라어 '튀포스'(*)는 '상처를 내다'는 뜻인 '튀프포'(*)로부터 나온 단어로서 어떤 것을 만드는데 필요한 '양식' '모델', '본보기'라는 뜻이다(빌 3:17; 살전 1:7; 살후 3:9). 바울은 본절에서 디모데가 비록 젊은 사람이었지만 경험(經驗)이 충분한 인생을 산 사람처럼 말과 행실에 있어서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보살펴줌으로써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믿음직한 행동을 할 것을 권하고 있다.

성 경: [딤전4:13]

주제1: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주제2: [그리스도의 일꾼]

⭕ 내가 이를 때까지 - 본문은 내용상 3:14의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와 일치한다. 바울은 자신이 에베소에 없는 중에 디모데가 대리자의 직무를 수행하여 공중 예배에 관한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 '읽는 것'은 공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을 말한다. 헬라어 성경과 개역성경에서는 그냥 '읽는 것'이라고 하였지만 NIV에서는 '성경'(Scripture)이라는 말을 첨가하였다. 초대 교회의 유대교 회당에서는 모든 공적 예배에서 성경을 공식적으로 낭독(朗讀)하였다(눅 4:16; 행 3:15; 고후 3:14). 본절에서는 율법서와 선지서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과 바울이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적으로 읽는 것을 말하고 있다(골 4:16, Hendriksen). '권하는 것'은 교리와 도덕에 어긋남이 없게 하기 위하여 충고하고 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눅 4:16-30) '그릇된 사상에 미혹되지 않고 확고한 믿음 위에 설 수 있도록 해석하고 권유하는 것'을 뜻한다.

성 경: [딤전4:14]

주제1: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주제2: [그리스도의 일꾼]

⭕ 네 속에 있는 은사...조심 없이 말며 - 본절은 디모데가 받은 은사를 사용하지 않고 헛되게 묻어두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은사'의 헬라어 '카리스마토스'(*)는 '카리스'(*, '은혜')에서 나온 말이며, 이는 성령으로 부여받는 모든 영적 은혜와 능력을 의미한다(눅 7:42; 행 27:24; 롬 8:32).본절의 '은사'는 교회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하여 안수(按手)를 통해서 성령께서 주시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Hervey). 이러한 의미에서 혹자는 본절의 '은사'는 '직분'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나(Scott), 적절한 해석이라고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디모데에게 주어진 은사는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이고, 안수는 초대 교회에서 직분을 맡을 자에게 행하는 통상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Lenski, Calvin). 그러므로여기서는 일반적인 은사의 의미와 직분의 의미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조심 없이(*, 메 아멜레이)는 '멸시하여 소홀히 여긴다'는 뜻이다. 바울은 여기서 디모데에게 목회자라는 위치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고 성별된 것이므로 소홀히 여기거나 헛되게 하지 말 것을 명하고 있다.

⭕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 - 디모데가 안수를 받은 것이 언제, 어디서, 행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마도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때에 루스드라에서 일어났던 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때 안수를 행하던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덧입혀짐으로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디모데에게 은사가 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Hendriksen). 또 혹자는 이 안수 의식이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두고 떠날 때에 거행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Lock). '장로회'는 장로들의 단체, 즉 교회의 공회를 가리킨다. 장로회는 점차 성례전을 행하는 단체로 직제화(職制化)되었다. 아마 바울도 이 장로회의 일원이었을 것이다(딤후 1:6). '안수'(*, 에피데세오스 톤 케이론)는 고대로부터 유대 사회에 내려온 관습으로서 권위나 축복, 능력 등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 그 대상자에게 전달하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이것이 초대 교회에서는 장로회에서 실시되었다. 따라서 디모데는 인간의 의식으로 교회의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 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인 권위를 인정받은 것이다.

성 경: [딤전4:15]

주제1: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주제2: [그리스도의 일꾼]

⭕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 '모든일'이란 디모데가 목회자로서 수행해나가야 할 일을 가리킨다. '전심'의 헬라어 '멜레타'(*)는 문자적으로는 '관심을 갖다'라는 의미지만 여기서는 '실시하다', '경작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 '진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코페'(*)는 '똑바로 나아가다', '발전하다'를 뜻하는 '프로코프트'(*)에서 나온 단어이다. 바울의 관심은 디모데의 진보가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디모데의 진보가 교회 내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접촉하는 모든 외인들에게까지 드러남으로써 자신의 구원을 이룰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구원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성 경: [딤전4:16]

주제1: [올바른 목회를 위한 지침]

주제2: [그리스도의 일꾼]

⭕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 이 말은 '네 자신과 가르침에 유의하라'는 뜻이다. 이는 디모데가 스스로 조심하고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을 잘 살펴보라는 것이다. '삼가'(*, 에페케)는 '주의하다'를 뜻하는 동사 '에페코'(*)에서 온 말로서 시상이 현재 명령법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네 자신을' 뜻하는 여격 '세아우톤'(*)과 합성되어 그 의미가 '너 자신에게 관심을 계속해서 가져라'는 뜻을 나타낸다. 한편 '가르침'은 '교훈'이라고 볼수 있다(doctrine, KJV). 따라서 본절의 '가르침'은 공적(公的)인 가르침으로 보아야 한다(Lenski). '계속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메네'(*)는 문자적으로 '어떤 것의 옆에 계속 머물러 있다'라는 뜻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 곳에 계속 머물러 내가 지시한 일들을 계속해서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성 경: [딤전5:1]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 '늙은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레스뷔테로'(*)는 다른 곳에서 교회의 직책을 나타내는 '장로'(elder,presbyter)로 사용되었으나(17, 19절; 딛 1:5) 여기서는 문자적인 의미가 그대로 적용되어 '노인'(older man, NIV)을 뜻한다. 또한 '꾸짖지'의 헬라어 '에피플렉세스'(*)는 본래 '주먹으로 치다'의 뜻인데 여기서는 '말로써 때리다'는 뜻으로 공격적인 심한 질책을 나타낸다. 디모데는 비록 연소하였으나(4:12), 한교회의 목회자로서 때에 따라서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연장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주어야 했다. 그럴 경우 바울은 온유한 태도로 권할 것을 충고하였다. '권하되'의 헬라어 '파라칼레이'(*)는 '올 것을 요구하다', '충고하다', '위로하다'의 뜻으로 자신에게 오게 하여 충고하며 위로하는 따뜻한 권면을 의미한다. 이러한 권면은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디모데가 그의 교인들을 향해 지녀야 할 태도로서 2절까지 이어진다.

⭕ 아비에게 하듯 하며 - 연장자를 권면할 때에는 모든 예의와 겸손함을 갖추고 신중히 해야 함을 말한다. 인간적인 예의 범절은 종교나 시대, 공간을 막론하고 지켜져야 할 영속적인 규범이며 특별히 노인을 존대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효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기본적인 윤리이다(레 19:32).

⭕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하고 - '형제'(*, 아델푸스)라는 말속에는 기독교의 '평등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Hendriksen). 또한 교회 내에서 누구를 불문하고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영적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교회의 구성 상태를 가장 적합하게 나타내는 말이다(고전 12:26, 27).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연결된 한 형제이며 따라서 서로간에 분열과 반목(反目)을 피하고 선을 이뤄야 한다.

성 경: [딤전5:2]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 늙은 여자 - 이것은 1절의 '늙은이'와 서로 짝을 이루는 말로서 그 말이 '장로'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단지 '노인'을 뜻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준다.

⭕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 '깨끗함'(*, 하그네이아)은 '성적 순결'을 뜻하는 말로 바울이 디모데가 젊은 여자를 대할 때 느낄 수 있는 성적 욕망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한다(Lenski). 그러나 이는 단순히 성적인 순결뿐만 아니라 마음과 육체를 통틀어 아무 흠이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Guthrie).

성 경: [딤전5:3]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과부를 대하는 태도]

⭕ 참과부인 과부 - '참과부'에서 '참'에 해당하는 헬라어 '온토스'(*)는 '실제로', '진실로'라는 뜻으로 '참과부'란 남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돌보아줄 사람이 없는 과부를 말한다(Guthrie, Hanson). 당시에는 남편과 사별한 여인들과 더불어, 일부 다처제(一夫多妻制)의 성행으로 인해 남편에게 버려져 혼자된 여인들도 많았으며 당시 교회는 이들을 돕는데 적극 참여하였다(행 6:1). 성경에서는 이곳뿐 아니라 과부를 보살펴 줄 것을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과부를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으며(신 10:18; 24:17; 시 68:5). 특별히 하나님은 그들의 보호자가 되신다고 하였다(사 1:17). 신약성경에서도 과부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 대한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다(막 12:42, 43; 눅 7:11-17 ;18:3-5). 더욱이 초대 교회안에 집사 제도가 생기게 된 큰 원인으로서 과부를 보살피는 일을 들 수 있다(행 6:1-6). 그런데 때로는 과부를 돕는 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으므로(행 6:1) 교회는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과부에 대한 규정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 경대하라 - 헬라어 '티마'(*)는 '존경하다'의 뜻으로 명사 '티메'(*)에서 파생되었다. '티메'는 '가치' 혹은 '값'을 의미하며 영어의 '사례금'(honorarium)은 이에서 파생되었다. 혹자는 본 구절에서 과부들의 당연한 권리로서 그들이 받아야 할 연금(pension)을 바울이 언급한 것이라고 본다(Scott). 따라서 본구절은 과부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존경하라는 의미와 아울러 그들에게 필요한 경제적 도움을 주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성 경: [딤전5:4]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과부를 대하는 태도]

⭕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 본절의 '과부'는 '참과부'가 아닌 자들로서 자손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손자'의 헬라어 '에크고나'(*)는 칠십인역(LXX)에서는 자주 언급되나 신약성경에서는 이곳에만 나온다. KJV에서는 이 단어를 '조카'(nephew)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17세기 이전의 용법으로 그 당시에는 '조카'가 일반적으로 '손자'를 뜻하는 말이었다(Guthrie).

⭕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 '먼저'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톤'(*)은 '첫째로'(first of all, NIV)라는 의미의 부사이다. 이것은 집안에서 효를 행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야 할 중요한 일임을 나타낸다.

⭕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 '부모'의 헬라어 '프로고노이스'(*)는 부모 이상의 조상들을 포함한다. 또한 '보답하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모이바스 아포디도나이'(*)의 문자적인 뜻은 '되돌려 줄 것을 주다'이다. 이러한 의미에 따라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로부터 받은 것을 보상하라'는 의미로 해석한다(Scott). 특히 '되돌려 주다'는 뜻을 지닌 헬라어 '아포디도나이'는 현재 능동 부정사로서 되돌려 주는 행위가 그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성 경: [딤전5:5]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과부를 대하는 태도]

⭕ 참과부로서 외로운 자 - '외로운'에 해당하는 '메모노메네'(*)는 '모노스'(*, '홀로')의 완료 수동 분사로 '홀로 남겨진'의 뜻을 갖는다. 이것은 '참과부'의 특성으로서 돌보아줄 자녀나 친척도 없음을 의미한다. 혹자는 자신이 돌보아야 할 어린 자녀를 둔 과부도 여기에 포함시킨다(Lenski).

⭕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 바울은 참과부의 또다른 자격을 제시한다. 그것은 육신적으로 자신을 돌보아 줄 사람이 없을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간구와 기도를 하는 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참과부의 실례는 눅 2:36, 37에 성전에서 주야(晝夜)로 금식하며 기도한 과부 안나를 들수 있다.

성 경: [딤전5:6]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과부를 대하는 태도]

⭕ 일락을 좋아하는 이 - '일락을 좋아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파탈로사'(*)는 '방탕하게 살다'의 뜻이다. 당시에는 사회 전체가 물질적으로풍요롭지 못하였으며 고용의 기회도 거의 없었던 때이므로 많은 과부들은 매춘(賣春)등의 부도덕한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므로 혹자는 바울이 '스파탈로사'를 사용한 것은 당시 생활이 궁핍했던 과부들이 매춘의 유혹을 받고 있었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Guthrie).

⭕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 바울의 역설적인 표현으로서 육체적으로 살아 있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것을 뜻한다(Lenski).

성 경: [딤전5:7]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과부를 대하는 태도]

⭕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 '또한'(*, 카이)은 본절이 6절과 연결됨을나타낸다. 그러나 본절의 '이것을'(*, 타우타; '이것들')이 6절에만 국한(局限)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3-4절의 내용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Hendriksen). 즉 참과부를 존경하며 물질적으로 도와줄 것과(3절), 자녀들이나 손자들은 과부인 어머니나 할머니를 잘 봉양(奉養)할 것과(4절) 연고자가 아무도 없는 참과부로서 경건한 생활을 하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을 구별할 것(5, 6절) 등을 포함한다.

성 경: [딤전5:8]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과부를 대하는 태도]

⭕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 '자기 친족'(*, 톤 이디온)은 구체적인 범주를 정하기는 어려우나 '자기 가족'(*, 오이케이온)은 '직계 가족'을 의미한다(Guthrie). '돌아보지'의 헬라어 '프로노에이'(*)는 문자적으로 '미리 생각하다', '준비하다', '공급하다'의 뜻을 갖는다.

⭕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 혹자는 기독교의 사랑은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인데 자기의 직계가족조차 돌보지 아니하는 자는 불신자보다 못한 자로서 전혀 복음에 참여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본 구절을 해석한다(Scott). 또한 여기에서의 '믿음'은 개인의 주관적 믿음이 아니라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고백되는 신앙 고백을 일컫는 것으로 해석하여 '믿음을 배반한 것'을 '교회의 가르침을 저버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Lenski). 결론적으로 본 구절은 일반 성도 전체를 향한 교훈으로 볼 수 있으며 그들의 신앙 고백이 어떻든 간에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에봉사할 만한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인간의 원초적인 책무를 무시하는 자이므로 정죄받아 마땅하다는 의미이다.

성 경: [딤전5:9]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과부를 대하는 태도]

⭕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 - '명부에 올릴'로 번역된 헬라어 '카탈레게스도'(*)는 신약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말로서 당시의 과부들에 대한 물질적 원조가 제도적으로 확립되었음을 나타낸다. 명부에 이름이 올라 제도적으로생계를 보장받은 과부들은 특별한 자격을 구비(具備)한 자들이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지배적인 견해이다(Ellicott, Robertson, Scott). 또한 혹자는 당시 과부 제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Bernard, Hendriksen), 이성간의 접촉이 엄격히 제한되었던 상황 속에서 교회에서 남자들이 하기 곤란한 일들을 이들 과부들이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Hendriksen).

⭕ 나이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 나이를 육십으로 제한한 이유에 대하여 혹자는 재혼할 의도나 재혼할 가능성이 없는 나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Lenski). 또한 노령으로인해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가 불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규정을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 - 본문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고대에는 과부들에게 특별한 정절(貞節)을 요구하여 재혼을 삼가하도록 하였다. 이에 대한 성경의 증거로 눅 2:36, 37의 과부 안나가 84년 동안 재혼하지 않고 혼자 지냈다. 따라서 본 구절은 한 남편 외에는 재혼한 경험이 없는 과부를 말한다(Scott, Guthrie). (2) 혹자는 바울이 14절에서 젊은 과부에게 다시 시집갈 것을 권면하면서 본절에서 재혼한 경험이 없는 과부만을 참과부의 명단에 올리라는 것은 모순이 되므로 (1) 의 견해에 반대한다(Hendriksen). 여기서는 (2)의 견해가 전후 문맥상 타당성을 가진다. 이렇게 볼 때 본문은 결혼 생활중에 남편 외에 다른 남자와 관계가 없던 자로 결혼 생활에 충실했던 자를 뜻한다.

성 경: [딤전5:10]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과부를 대하는 태도]

⭕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 과부의 명단에 올려 구제해야 할 참과부의 조건으로는 구체적 선행이 제시된다.

⭕ 자녀를 양육하며 - 본절은 문자적 의미보다는 어머니다운 품성을 지녔는가 하는 점을 강조한다. 혹자는 바울이 참다운 모성애를 실천하는 것은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큰 일 가운데 하나라고 간주하였기 때문에 그가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Lenski). 또다른 견해로는 명부에 등록된 과부의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어린이들을 돌보는 일이었다는 주장이 있다(Scott). 여기서는 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한 것 같다.

⭕ 나그네를 대접하며 - 초대 교회에서는 나그네를 접대하는 일이 하나의 공식적인 일이었으므로 이런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이 필요하였다. 나그네를 대접한 과부의 실례로서 사르밧의 과부(왕상 17:9), 수넴 여자(왕하 4:8-11), 루디아(행 16:40) 등을 들 수 있다.

⭕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 이것은 종이나 하는 천한 일로서 여기서는 이웃과 나그네를 위한 겸손하고 헌신적인 봉사를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이다(Hendriksen). 이러한 정신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범을 통해 가르치신 바이다(요 13:14).

⭕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 '환난'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신앙으로 인해 받은 박해를 가리킨다(살전 1:6; 살후 1:4).

⭕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 - '좇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페콜루데센'(*)은 '추구하다', '헌신하다'의 뜻이다. 결국'선한 일을 좇는다'는 것은 단순히 선한 양심과 신앙을 갖는다기보다는 실제 생활에서 선행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성 경: [딤전5:11]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과부를 대하는 태도]

⭕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 '젊은 과부'는 60세 이하의 과부들을 지칭한다. 바울이 이들을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한 이유는 일단 명부에 이름이 오른 과부는 그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온전한 헌신이 요구되었는데 젊은 과부는 다시 재혼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 '정욕으로'의 헬라어 '카타스트레니아소신'(*)은 '성적인 욕망에 사로잡히다'라는 의미를 갖는다(Robertson). 젊은 과부가 남편을 원하여 재혼하는 그 자체는 죄가 아니나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을 외면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이된다.

성 경: [딤전5:12]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과부를 대하는 태도]

⭕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 과부의 명부에 이름이 오르기 위하여 그들은 다시 재혼하지 않고 평생 동안 그리스도께 헌신할 것을 서약하였을 것이다(Robertson, Rocke). 혹자에 의하면 후대에 이런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배우자'(the spouse ofchrist)라고 불렀다고 한다(Hanson). 따라서 본절의 '처음 믿음'(*, 텐 프로텐 피스틴)이란 '젊은 과부들의 처음 서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저버렸으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데테산'(*)의 문자적인 뜻은 계약이나 법률 따위를 '폐기하다', '위반하다', '따로 떼어두다' 등이다.결국 이 말은 젊은 과부가 그리스도께 헌신하겠다는 서약을 파기(破棄)한다는 의미이다.

⭕ 심판을 받느니라 - '심판'(*, 크리마)은 KJV에서 '저주'(damnation)로 번역하고 있으나 이것은 다소 과격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리는 '심판'(judgment, NIV)으로 해석하여 그들의 잘못을 책망받는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Guthrie).

성 경: [딤전5:13]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과부를 대하는 태도]

⭕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 '게으름을 익혀'에 해당하는 '아르가이 만다누신'(*)을 혹자는 '게으름을 배워 게으름뱅이들이 되었다'로 번역하여 젊은 과부들의 게으름은 무의식적으로 몸에 배인 습관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배운 것임을 나타낸다(Scott).

⭕ 집집에 돌아다니고 - 이것은 (1) 명부에 올라 있는 과부들의 임무 중에 교인들의 집을 방문하여 신앙적인 상담과 조언을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악용(惡用)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며(Earle, Guthrie), (2) 그들이 가정에 매이지 않은 홀몸으로서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기 때문에 행해진 쓸데없는 방문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1)의 견해가 지배적이다.

⭕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 '망령된 폄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뤼아로이'(*)는 혹자에 의하면 '음식 등이 끓어거품이 오르다'를 의미하는 '플뤼오'(*)에서 파생된 말로서(Robertson),'쓸데없는 말을 경박하게 늘어 놓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일을 만들며'의 헬라어 '페리에르고이'(*)는 '자신과 관계없는 일들에 간섭하기 좋아한다'는 의미이다(Earle). 그러나 혹자는 이 단어가 행 19:19의 '마술을 행하던'의 헬라어 '페리에르가'(*)와 동일한 단어이므로 본절의 '일을 만들며'는 '마술적인 행위'를 나타낸다고 보며, '마땅히 아니할 말' 역시 '마술의 주문'(呪文)이라고 주장하나(Hanson) 일반적인 견해는 아니다. 여기서 '마땅히 아니할 말'이란 교회에 덕이 안되는 해로운 말로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다. 바울은 젊은 과부들이 모두 게으름을 부렸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들 중의 일부는 신앙 생활과 자신의 일상 생활을 게을리 하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긴장되어 있지 못하고 쉽게 남의 말이나 교회 전체의 문란을 초래하는 악담을 하고 비밀이 지켜져야 하는 사적인 이야기들을 집집마다 하여 교회 내에 문제를 야기시켰을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성 경: [딤전5:14]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과부를 대하는 태도]

⭕ 그러므로 젊은이는 - 본절이 접속사 '그러므로'(*, 운)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서 바울이 지금까지 해왔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11절의 '젊은 과부'(*, 네오테라스 케라스)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여기서의 '젊은이'(*, 네오테라스)는 '젊은 과부'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 시집가서 - 바울은 여기서 젊은 과부들에게 재혼할 것을 권면하였는데 이것은 고전7:25-29의 내용에서 결혼을 금하지는 않았으나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7:26)고 한 말과 사뭇 다르다. 이에 대해 (1) 혹자는 바울이 고린도에 편지할 때와는 달리 지금 본 서신을 쓸 때에는 그의 인생의 말년으로 '임박한 파루시아'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Scott). (2) 이와는 다른 견해로 본절의 '젊은이'는 이미 자제심(自制心)을 잃은 자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Guthrie). 두 견해 중 (1)의 견해가 보다 타당하다. 왜냐하면 후대 교회, 즉 2, 3세기의 교회에서는 금욕주의의 결과로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가치있게 생각하였으나 바울은 금욕주의에 반대(4:3)하고 있기 때문이다.

⭕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 하나님께서 여자들에게 허락하신 특권이자 사명이라 할 수 있는 출산하는 일과 집안을 관할하는 일을 바울은 적극 추천하였다. 혹자는 '집을 다스리고'(*, 오이코데스포테인)라는 말에서 아내에 대한 인식과 그들의 영향력이 높이 평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Liddon).

⭕ 대적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티케이메노'(*)는 '반대자', '대항자'의 뜻으로서 일반적으로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사람'을 가리킨다(Hendriksen, Earle). 그러나 '대적' 앞에 관사 '토'(*)가 붙었다고 하여 이 단어가 '마귀'를 나타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Lenski). 그런데 후자의 경우도 마귀가 '사람'을 통해 역사한다는 해설을 덧붙여 말함으로써 두 견해가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견해임을 알 수 있다.

⭕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 '훼방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이도리아스'(*)는 '욕하다', '매도하다', '조롱하다'의 강한 뜻을 갖는 말로서 젊은 과부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교회가 받을 수 있는 비난에 대한 바울의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기회'의 헬라어 '아포르멘'(*)은 '진격 기지'를 뜻하는 군사 용어로 바울은 이러한 표현을 즐겨 사용하였다(롬 7:8, 11; 고후 5:12; 11:12; 갈 5:13). 그는 늘 교회가 외부 세계로부터 악평의 대상이 되지 말 것을 경고해 왔는데 그당시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아니하고 참된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성도들의 사랑과 변화된 생활이었다(약 2:7, 8; 벧전 2:12; 4:4, 14, 15).

성 경: [딤전5:15]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과부를 대하는 태도]

⭕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 '사단'에 대하여 글자 그대로 '대적자'의 의미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11절의 '그리스도'와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Lenski). 그러나 혹자는 보다 구체적으로 복음을 통해 얻은 자유를 남용하여 젊은 과부들이 천박하고 부도덕한 행위에 빠지는 것을 뜻한다고 본다(Scott, Guthrie). 따라서 본 구절은 젊은 과부 중에 일부는 이미 '처음 믿음'(12절)을 저버리고 여러 부도덕한 행위에 빠져 교회에 물의(物議)를 일으켰음을 나타내며, 아울러 믿음의 생활을 떠난 자는 반드시 사단의 노예로 전락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성 경: [딤전5:16]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과부를 대하는 태도]

⭕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로 짐지지 말게 하라 - '믿는 여자'(*, 피스테)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많다. 왜냐하면 앞의 8절에서 '누구든지...돌보지 아니하면'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믿는 여자'로 국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1) 그런데 몇몇 후기 헬라어 사본들에서 '피스토스'(*, '믿는 남자')를 첨가시켜 '피스토스에 피스테'(*, '믿는 남자와 믿는 여자')로 표기하고 있으며 흠정역(KJV)도 이에 준해 '남자나 여자'로 번역하고 있다. 심프슨(Simpson)이나 거스리(Guthrie) 역시 여기에 동의한다. (2) 그러나 대부분의 본문 비평가들(Alford, Ellicott, Speaker, Moffat)은 보다 짧은 본문인 '피스테'만을 택하고있다. 혹자는 몇몇 사본에서 '믿는 남자'를 삽입시킨 것은 필사자(筆寫者)들이 바울의 뜻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며, 여기서의 '믿는 여자'란 신자가 아닌 남편을 둔 여자 교인이거나, 개인적인 경쟁력을 갖춘 과부나 미혼녀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enski). (3) 또다른 견해로는 '믿는 여자'가 14절에서 언급한 '젊은 과부'를 가리키는 말로서 비록 그들이 교회에서 공식적인 일은 맡지 못하였으나 가정에 소속되어 다른 과부를 도움으로써 교회에 덕을 끼치는 일을 하도록 바울이 권면한 것으로 본다(Scott). 이상과 같이 '믿는 여자'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으나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친척 중에 과부가 있는 자로서 친척 과부를 돌보아 줄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여자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도움을 줄 능력이 있는 여자가 자기 친척 과부를 도와줌으로써, 교회는 아무 연고가 없어서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참과부'를 도울 수 있었다.

성 경: [딤전5:17]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장로를 대하는 태도]

⭕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 '다스리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에스토테스'(*)는 교회의 감독권을 시사하며 주로 행정적인 업무를 관장(管掌)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장로'의 헬라어 '프레스뷔테로이'(*)는 딛 1:7에 나오는 '에피스코폰'(*, '감독')과 같은뜻으로 사용되었다. 혹자는 이에 대해 교회의 행정적인 임무를 강조할때는 '감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나이든 어른으로서 받아야 할 존경을 강조할 때는 '장로'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고 한다(Hendriksen).

⭕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 '존경'에 해당하는 헬라어 '티메스'(*)는원래 '가치', '가격'을 의미하는 말로서 '보상'으로 번역되거나(White) '사례금'으로번역될 수 있다(Liddon). 이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여기서는 물질적인 '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보고 정신적인 '존경'(honor)만을 주장한다(Lenski).(2) 물질적인 의미와 정신적인 의미를 함께 수용하는 견해도 있다(Hendriksen).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배'의 헬라어 '디플레스'(*)에 대하여 몇 가지 주장이 있다. (1) 존경과 보상의 이중적인 의미. (2) 과부들보다 두배의 존경과 보수(Calvin, Rocke). 그러나 일반적인 견해는 숫자적인 의미보다는 장로들에 대한 특별한 존경심과 풍족한 물질적인 공급을 뜻하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Guthrie, Scott).

⭕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 - '말씀과 가르침'에 대하여 혹자는 '전도와 가르치는 일'로 해석한다(Robertson). 본 구절은 교회를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장로들과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는 장로들이 초대 교회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들은 아마 오늘날의 '목사'에 해당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이다.

성 경: [딤전5:18]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장로를 대하는 태도]

⭕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 본 구절은 신 25:4로부터 인용된 말씀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타작방법은 곡식단을 풀어 타작마당에 펴 놓고 그 위를 소가 지나가게 하거나 소가 끄는 타작 기구가 지나가게 하였다. 그때 주인은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않고 일하는 동안 그 곡식을 마음대로 먹게 하였다.

⭕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 본 구절은 눅 10:7의 인용이다. 마 10:10에도 동일한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후자에서는 '먹을 것'(*, 테스 트로페스)으로 나온 반면 여기서는 '삯'(*, 투 미스두)으로 기록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바울은 누가복음을 인용하였다고 본다. 특히 누가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처음 투옥되었을 때 그와함께 있었다(골 4:14; 몬 1:24). 또한 혹자는 누가복음이 그때에 기록되었을 것으로보고 바울이 그것을 인용하였거나 그것에 대한 자료를 인용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Hendriksen). 결국 본절의 요지는 일하는 짐승에게도 충분한 곡식을 제공하는데 하물며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꾼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임을 강조한 것이다(고전 9:9, 14).

성 경: [딤전5:19]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장로를 대하는 태도]

⭕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 모세 율법에 의하면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죄를 판결(判決)할 수 있었다(신 19:15; 민 35:30). 이와같은 규정은 초대 교회에서도 적용되었다(고후 13:1). 특히 장로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으므로 교회 안과 밖에서 늘 주목을 받았다. 따라서 그들은 악의(惡意)와 근거없는 비난으로부터 보호받을 필요가 있었으므로 두 세 명의 증인이 요구되었다.

성 경: [딤전5:20]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장로를 대하는 태도]

⭕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 '범죄한 자들'은 장로들을 가리킨다(19절). '모든 사람 앞에'로 번역된 헬라어 '에노피온 판톤'(*)은 '모든 장로들 앞에'를 뜻할 수도 있고(Earle), 혹은 '온 교회 앞에'를 뜻할 수도 있다(Guthrie). 일단 장로의 범죄가 발견되었을 때는 그에 대한 징계를 공개적으로 행하여야 했다.

성 경: [딤전5:21]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장로를 대하는 태도]

⭕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 이와 같은 표현은 예배의식적인 표현으로서, 여기에 언급된 것은 이 세 존재가 최후 심판에 참여할 것이라는 사상에서 기인한다(눅 9:26; 계 14:10). 특히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이란 말은 바울 특유의 표현으로 자기 초소를 떠난 타락한 천사들(계 18:1; 19:17; 20:1; 21:9)과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

⭕ 내가 엄히 명하노니 - 헬라어 '디아마르튀로마이'(*)는 '엄숙히 단언하다', '엄숙히 선언하다'의 뜻을 갖는 강의 복합어로서 교회 지도자들의 징계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신중해야 함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명령은 바울개인의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하는 엄숙한 것이었다.

⭕ 편벽되이 하지 말며 - '편벽'(偏僻)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클리신'(*)은 '저울을 한 쪽으로 기울어지게 하다'는 뜻의 동사 '프로스클리노'(*)에서 파생된 말로 '편애'(favoritism, NIV)로 번역될수 있다. 즉 디모데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개인적인 편견이나 편애를 철저히 배제하고, 사랑과 의에 입각한 공정한 판결을 하여야 했다.

성 경: [딤전5:22]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장로를 대하는 태도]

⭕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 본절의 '안수'(*, 에피티데이)가 어떠한 성격을 갖는가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다. (1) 타락한 장로들을 다시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의식으로서의 안수이다(Rocke, White, Robertson). (2) 장로를 비롯한 다른 성직을 임명하는 의식으로서 행해진 것이다(Earle, Kelly, Theodoret). (3) 본절은 장로에 관한 문제를 취급한 것으로서 장로를 임명할 때 행한 공개적인 의식이었다(Lenski). 위 의견들 중에 두번째 것이 가장 지배적이다. 교회의 중요한 직분을 맡기기 위해 안수할 때 그 사람의 신앙이나 인품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중직자들의 과오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 '간섭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이노네이'(*)는 '함께 나누다', '동반자가 되다'의 뜻을 갖는다. 이에 대해 (1)혹자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타락한 일부 장로들이 짓는 죄에 동참하지 말아야 할 것을 권면한 것으로 보는 견해(Lenski)와 (2) 어떤 사람을 안수하여 장로로 임명하는 것은 그 사람을 보증하는 것이 되므로, 그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공동의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Earle). 문맥상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 바울은 본절을 통해 안수의 중요성을 디모데에게 인식시키고 있다.

성 경: [딤전5:23]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장로를 대하는 태도]

⭕ 물만 마시지 말고...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금욕주의적인 계율이 있었다. 즉 나실인 서약자는 포도주나 포도로 만든 것을 먹지 않았으며(민6:1-21), 레갑인들도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렘 35:5-8). 따라서 디모데는 이러한 유대 계율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고 22절에서 바울이 요구한 대로 자신의 정결을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Scott). 그 결과 그는 나름대로 금기(禁忌) 사항을 마련해 두고 오직 물만 마시고 포도주는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근동 지방의 물들은 대개 병균들로 오염되어 있었으므로 끓이지 않고 계속 마실 경우 이질이나 위장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서의 '비위'(*, 스토마콘)는 '위장'을 뜻한다. 즉 디모데는 위장병과 다른 질병을 앓고 있었을 것이며 따라서 바울은 그의 질병을 위해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면하였다. 한편 당시의 포도주는 도수가 약하였고 특히 유대인들 사이에서 사용된 포도주는 흔히 물이 섞인 포도주였다(Earle).

성 경: [딤전5:24]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장로를 대하는 태도]

⭕ 어떤 사람들의 죄는 - 바울은 본절에서 다시 17절 이후에서 그가 다루어 왔던 문제로 돌아가 장로의 임직(任職)뿐만 아니라 교회의 규율에 대해 말하고 있다. 혹자는 23절에 기록된 대로 디모데가 병약하였으므로 교회를 처리하는 면에 있어서 미비한 점이 있었을 것으로 가정한 바울이 처리에 도움이 되는 말을 디모데에게 한 것으로 생각한다(Alford).

⭕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 '밝히'의 헬라어 '프로델로이'(*)는 '이미 알려진' 혹은 '명백한'이란 뜻으로서 그들의 죄는 판단에 있어서 문제가 없는 명백한 죄들이다. 또한 '좇나니'의 헬라어 '에파콜루두신'(*)은 '뒤를 따라 가다'의 뜻으로 '어떤 사람들의 죄'가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진 죄임을 나타낸다(Hendriksen). 그러나 이것 역시 앞의 '밝히 드러난 죄'의 전철(前轍)을 밟아 밝혀지게 된다.

성 경: [딤전5:25]

주제1: [교회 질서에 대한 권고]

주제2: [장로를 대하는 태도]

⭕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 혹자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성급한 판단을 피하라는 의미로 본 구절을 쓴 것으로 본다(Alford). 즉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은 처음에는 그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본 모습을 나타내게 될 것이므로 경솔한 판단을 삼가하라는 뜻이다.

성 경: [딤전6:1]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종과 상전의 관계]

⭕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 '종들'의 헬라어 '둘로이'(*)는 글자 그대로 '노예들'을 말한다. 당시 로마에는 많은 수의 노예들이 있었는데 학자에따라서 삼분의 일 이상으로 보기도 하며 (Hendriksen) 절반 이상으로 추정하기도 한다(Earle). 로마는 전쟁을 통하여 패전국으로부터 노예를 확보하거나, 주위의 약소 국가들로부터 노예를 사들이기도 하였다. 또는 로마의 자유민 중에 빚을 청산하지 못하거나, 죄를 짓고 노예가 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많은 경우 노예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노예가 되었다. 로마인들은 노예들에게 후한 대우를 해주었으며 그중에는 요리사, 이발사, 주치의 등 전문적인 일을 하며 상당한 지위를 갖고 있는 노예들도 있었다. 신약성경에 노예에 관한 기사가 자주 나오는 것으로 보아 초대 교회 교인들 가운데에는 이러한 노예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전 7:21-24; 12:13; 엡 6:5-8; 골3:11, 12; 벧전 2:18).

⭕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 본 구절은 바울이 노예 제도를 인정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혹자에 의하면 바울은 외형적으로는 노예제도를 인정하여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부작용을 피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점진적인 노예 제도의 폐지를 목표로 삼았다고 본다(Hendriksen). 여기서'상전'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스포타스'(*)는 '퀴리오스'(*, '주')와 동의어로서 후자가 보다 일반적인 의미를 갖는 반면 전자는 종의 상전으로서 권세를 강조한 말로(Trench) 하나님(눅 2:29; 행 4:24; 계 6:10)과 그리스도(유 1:4)께 본 단어가 적용되었다. 또한 영어의 'despot'(폭군, 전제 군주)가 본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이 노예 신자들에게 상전을 공경(恭敬)하라고 권면한 주된 이유는 노예 제도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성경의 가르침에 손상을 입히거나 욕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훼방을 받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블라스페메타이'(*)는 '비방하다', '욕하다'의 의미이다. 또한 '교훈'의 헬라어 '디다스칼리아'(*)는 '복음의 가르침'을 뜻한다(Hendriksen).

성 경: [딤전6:2]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종과 상전의 관계]

⭕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 앞절이 일반적인 모든 노예들, 특히 불신자를 주인으로 둔 노예들에게 적용된 것이라면 본절은 믿는 상전을 둔 노예들에게 적용된 것이다(Alford).

⭕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 믿는 노예들은 자신의 주인이 동등한 신자일 경우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하여 주인의 권위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혹자는 믿는 노예들 가운데 교회의 장로가 된 자들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Robertson).

⭕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 '유익을 받는 자'는 '주인'을 가리킬 수도 있고 '노예'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문맥으로 보아 전자로 해석한다(Scott, Guthrie, Lenski). 이들은 믿는 신자인 동시에 '사랑을 받는'(*, 아가페토이) 자들이었다. 혹자는 이 단어가 상전이 노예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으로 해석하는가 하면(Earle, Alford) 다른 학자는 하나님과 다른 신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Hendriksen). 후자의 견해가 문맥상 더 적합하다. 이처럼 믿는 노예들이 섬기는 상전들 역시 믿는 사람들이며,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들일 경우 믿음을 가진 노예들은 그 상전을 더욱 잘 섬겨야 한다.

성 경: [딤전6:3]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돈에 대한 성도의 태도]

⭕ 다른 교훈을 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테로디다스칼레이'(*)가 1:3에서는 '신화와 끝없는 족보'를 가리키는 것에 반해여기서는 '이단 사상'을 가리킨다. 당시 헬라 세계에는 '소피스트'(Sophist)라고 불리는 궤변론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웅변과 변론술을 가르치고 돈을 받았다. 또한 영지주의자들이 이단 사상을 교회에 끌어들여 초대 교회에 혼란을 야기시켰다.

⭕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 - '바른 말'(*, 휘기아이누신로고이스), 곧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뿐만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근거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설명한 교훈이다(Guthrie). 그러므로 이 '바른 말'속에는 예수의 말씀에 근거한 사도들의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다.

⭕ 착념치 아니하면 - '착념치'의 헬라어 '프로세르케타이'(*)는 '...에게로 가다' 혹은 '접근하다'의 뜻으로 신약성경에서 자주 사용되었다(히 4:16; 7:25). 여기에서는 이 단어가 유일하게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동의하다' 혹은 '정신적으로 가까이 다가가다'를 의미한다(agree, NIV).

성 경: [딤전6:4]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돈에 대한 성도의 태도]

⭕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에 맞는 이단 사상을 좇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한다는 측면에서 '교만하여'(*, 테튀포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자들은 참된 진리인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전혀 무지한 자들이다.

⭕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 '언쟁'의 헬라어 '로고마키아스'(*)는 '로고스'(*, '말')와 '마코마이'(*, '싸우다')의 합성어로 '설전'(舌戰)을 의미한다. 영어의 'logomachy'(말다툼)가 이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또한 '좋아하는'의 헬라어 '노손'(*)은 '병들다'는 뜻이다. 이러한 의미에 따라 혹자는 본 구절을 '논쟁을 병적으로 갈망하는'(having a morbid craving for argument)으로 해석하였다(Easton).

⭕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 이와 같은 것들은 '변론과 언쟁'의 결과로 생겨나는 것들이다. '투기'(*, 프도노스)는 '시기'를 뜻한다. 논쟁에서 패배한 자는 승자에 대해 질투의 악감정을 갖게 된다. '분쟁'(*,에리스)은 '투기'에서 비롯된다. '훼방'의 헬라어 '블라스페미아이'(*)가 하나님께 적용될 때는 '신성 모독'(blasphemy)을 뜻하나 여기에서는 사람에게 적용되어 '욕'이나 '비방'을 의미한다. '악한 생각'에서 '생각'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노이아이'(*)는 '의심하다' '추측하다'를 뜻하는 헬라어 동사 '휘포노에오'(*)에서 파생된 말로 '의심'을 뜻한다(행 13:25; 25:18; 27:27). 따라서 '악한 생각'은 '악한 의심'(evil suspicions,NIV)으로 번역될 수 있다. 불필요한 변론에 치우치는 것은 사람들을 의심하게 할 뿐만 아니라(Hendriksen)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성 경: [딤전6:5]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돈에 대한 성도의 태도]

⭕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다툼이 일어나느니라 - 4절에서는 '변론과 언쟁을 좋아함'으로써 생기는 악한 열매 네 가지가 열거되었다. 본절에서는 마지막 다섯번째 결과로 '다툼'이 언급된다.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파라트리바이'(*)는 '디아'(*, '통하여')와 '파라트리바이'(*, '화나게 함')의 합성어로서 '서로에게 화를 내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다툼'은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린 자들'에게서 난다. 여기서 '부패하여지고'의 헬라어 '디에프다르메논'(*)은 완료 수동 분사로 '철저히 부패된 상태'를 나타낸다(Earle). 또한 '잃어버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스테레메논'(*)은 '자신의 권리를 상실하게 됨'을 뜻한다(White). 일단 그들은 진리를 소유한 경험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것을 박탈(剝奪)당했다(Lenski).

⭕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 '이익의 재료'로 번역된 헬라어 '포리스몬'(*)은 '얻다', '획득하다'를 뜻하는 동사 '포리조'(*)에서 파생된 말로 '경제적인 이익'을 뜻한다(financial gain, NIV). 진리를 떠나 다른 교훈을 좇는 자들은 '경건'(*, 유세베이안) 즉 '종교'라는 이름으로(Scott) '그들의 거짓된 교훈'을 가르쳐주고 그 대가로 물질적인 사례를 요구하였다(Lenski, Hendriksen).

성 경: [딤전6:6]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돈에 대한 성도의 태도]

⭕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은 '현자란 지상의 행복과 불행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마음의 평정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금욕주의적인 경건에 도움을 줄지언정 참된 만족을 주지는 못한다. 또한 이단 사상을 전파하는 자들이 추구하였던 만족은 그 원천(源泉)을 마음속에 두고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에 두고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것들과 대조적으로 오직 평강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교제함으로써 얻어지는 '지족'(*, 아우타르케이아스)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지족의 마음을 소유한 자는 세상적인 유혹과 물질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떨쳐버리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둠으로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풍족한 삶을 살게 된다(빌4:11-13). 그에게 있어 진정한 행복이란 물질의 많음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성 경: [딤전6:7]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돈에 대한 성도의 태도]

⭕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 구약 지혜 문학에 나오는 내용의 인용으로 보이는(욥 1:21; 전 5:14, 15). 본절은 두개의 문장이 접속사 '호티'(*, '왜냐하면')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이다. 이것은 태어나는 것보다 죽는다는 것에 강조점을 둔 것으로 긍극적으로 세상의 물질적인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낸다(White).

성 경: [딤전6:8]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돈에 대한 성도의 태도]

⭕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 '먹을 것'의 헬라어 '디아트로파스'(*)는 복수로서 생존에 필요한 모든 음식을 포함한다(Hendriksen). 또한 '입을 것'의 헬라어 '스케파스마타'(*)는 '덮다'를 뜻하는 동사 '스케파조'(*)에서 파생된 복수 명사로서 '의복'이나 '덮개' 혹은 '은신처' 등을 의미한다(Earle). 바울의 이러한 권면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정당한 부의 축적마저 부인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어느 것에 관심을 가지고 생활해야 하느냐하는 점이다. 즉 최소한의 먹을 것과 입을 것만을 취하라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에 더 큰 관심을 가지라는 권면이다(마 6:33).

성 경: [딤전6:9]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돈에 대한 성도의 태도]

⭕ 부하려 하는 자들은 - '부하려 하는'에서 '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불로메노이'(*)는 '의도하다', '갈망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본문은 부자가 되려는 강한 욕구를 갖고 있는 자들을 말한다.

⭕ 시험과 올무 - '시험'의 헬라어 '페이라스몬'(*)은 '유혹'(temptation, KJV, NIV)을 의미하며 '올무'의 헬라어 '파기다'(*)는 '덫', '함정'을 뜻한다. 부자가 되려는 지나친 욕망에 사로잡힌 자는 필경 유혹을 받아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된다(딤후 2:26).

⭕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 재물에 대한 지나친 욕구는 영혼의 눈을 어둡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결과는 인간의 영적 죽음이요 완전한 파멸이다.

⭕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 혹자는 '침륜'(*, 올레드론)이 현세(現世)에서의 파멸을 의미하며 '멸망'(*, 아폴레이안)은 사후(死後)의 파멸을 뜻한다고 본다(Scott). 하지만 그보다는 유사한 의미를 갖는 단어를 중복시킴으로 물질의 지나친 추구가 멸망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말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또한 '빠지게 하는'의 헬라어 '뷔디주신'(*)은 '배가 바다깊이 침몰하는' 것을 묘사한 말이다(눅 5:7). 바울은 물질을 소유하려는 욕구 자체를 죄악시하지는 않았다. 혹자가 지적한 대로 바울은 결코 금욕주의자가 아니었다(Hendriksen). 그러나 이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고 물질의 획득에 지나친 관심을 두어 거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잘못된 삶의 형태이다.

성 경: [딤전6:10]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돈에 대한 성도의 태도]

⭕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 본 구절은 비온(Bion)과 데모크리투스(Democritus)가 한 말 곧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척도이다'(*, 텐필라르귀리안 에이나이 메트로폴린 판톤 톤 카콘)와 유사하므로 학자들은 바울이 이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추정한다(Guthrie, Robertson). 그러나 이에 반해 렌스키(Lenski)는 본 구절이 바울의 독자적인 말임을 주장한다. 한편 '사랑함'의 헬라어 '필라르귀리아'(*)는 '탐욕'(covetousness)을 의미한다. 돈 그 자체는 악하지 않으나 그것에 탐욕을 품게 될 때 악이 발생한다. 여기서 바울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한 것은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유일한 근원임을 말한다기보다 재물을 지나치게 탐하게 될 때 일어나는 극단적인 결과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Guthrie).

⭕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 '사모하는'의 헬라어 '오레고메노이'(*)는 '잡으려고 손을 뻗치다', '갈망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오래고'(*)의 현재 분사로 '항상' 돈을 갈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 여기서 '떠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플라네데산'(*)은 별이 자신의 일정한 궤도에서 이탈하여 유성처럼 떠돌아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Lenski).

⭕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 '근심'의 헬라어 '오뒤나이스'(*)는 '깊은 슬픔'을 의미한다. 또한 '찔렀도다'의 헬라어 '페리에페이란'(*)은 '꿰뚫어 관통하였다'는 뜻으로(pierced, KJV) 주로 고기를 쇠갈고리로 꿸 때 사용되었던 말이다. 결국 돈에 지나친 탐욕을 품은 자들은 신앙보다 물질에 더 관심을 갖게 되어 신앙을 잃고 방황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극심한 슬픔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성 경: [딤전6:11]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디모데에게 주는 개인 권면]

⭕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 '하나님의 사람'(*, 안드로페 데우)이라는 호칭은 디모데로 하여금 자신이 어떠한 존재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마땅한 것인가를 일깨워 준다. 이 말은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이나 특별한 인물들에게 적용되었다. 예를 들면 모세(신 33:1; 시 90:1), 다윗(대하 8:14), 선지자들(삼상 2:27; 9:6), 엘리야(왕하 1:9), 하나님의 사자들(왕상 12:22) 등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는 이러한 호칭이 보다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일반 신자들(딤후 3:17)이나 디모데와 같은 복음 사역자들에게 사용되었다.

⭕ 이것들을 피하고...좇으며 - '이것들'이란 4-10절에서 언급된 멸망의 요인들을 가리킨다. '좇으며'의 헬라어 '디오케'(*)는 '추구하다'(follow after, KJV)의 뜻으로 '피하고'(*, 퓨게)의 반의어이다. 여기서 바울은 딤후2:22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특유의 대조법을 사용하여 권면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 -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인 디모데가 추구해야 할 여섯 가지 덕목을 열거한다. '의'(*, 디카이오쉬넨)는 법률 용어로 '공의'(公義)를 뜻한다(Lenski). '경건'(*, 유세베이안)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경외심을 간직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행위로도 볼 수 있다(벧후 1:3). '믿음'(*, 피스틴)에 대하여 혹자는 '이것은 주관적인 믿음으로서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신뢰하는것을 뜻한다'고 본다(Hendriksen). 그런데 렌스키(Lenski)는 이와 다른 견해를 피력한다. 즉 기독교에 있어서 '믿음'은 가장 근본적인 것인데 처음에 열거되지 아니하고 세번째 나온 것으로 보아 이것은 신앙적인 차원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을 믿고 신뢰하는 하나의 미덕(美德)을 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자가 타당하다. 본절에서 바울은 일반적인 미덕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덕목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 아가펜)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하신 일 중 가장 위대한 것으로서 인간이 본받아야 할 신앙의 핵심 요소이다(요일4:10). '인내'(*, 휘포모넨)는 불행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고 '견디는 것'을 말한다(살전 1:3; 5:14). '온유'(*, 프라위파디안)는 신약성경 중 본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온순'(meekness, KJV)으로 번역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자가 지니는 특징 중의 하나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안위를 제공하고 대인 관계에 있어서 늘 여유있는 상태를 가리킨다(마11:29; 고후 10:1).

성 경: [딤전6:12]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디모데에게 주는 개인 권면]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 '싸우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고니주'(*)는 올림픽 같은 운동 경기에서 '시합하다', '시합에 이기기 위해 애쓰다'의 뜻을 갖는다. 이것과 동족어인 명사 '싸움'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곤'(*)은 원래 운동 경기를 위한 '집회'를 의미하였는데 이것이 점차 경기 자체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따라서 본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다. "선한 경기에서 경쟁하라." 혹은 "선한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애쓰라." 결국 이말은 믿음이라는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일 것을 권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Simpson).

⭕ 영생을 취하라 - '취하라'의 헬라어 '에필라부'(*)는 '꼭 붙잡다'라는 뜻이다(take hold of, NIV). 바울은 '영생을 시합에서 이긴 자가 얻는 상급에 비유하여 그것을 꼭 붙잡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한편 본절의 '영생'에 관하여 몇가지 해석이 있다. (1) 모든 싸움이 끝나고 죽음 이후에 최종적으로 하늘 나라에서 얻게되는 영광이다(Lenski). (2) 이것은 믿는 신자가 이미 소유한 것으로서 죽음 이후에 완성된다(Scott). (3) 여기서의 '영생'은 '끝없는 생명'이란 양적 의미보다는 질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속성인 거룩함과 사랑, 평안, 기쁨 등에 함께 참여하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삶을 말한다(Hendriksen). 이상의 세 견해는 근본적으로 서로 배치되지 않으며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는다.

⭕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디모데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 에클레데스)에 의한 것이었다. 한편 '증거하였도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몰로기안'(*)은 침례받을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다'의 뜻이다(Robertson, Earle). 바울은 이러한 신앙 고백 앞에 '선한'(*, 칼렌) 곧 '아름다운', '명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당시에는 기독교가 박해를 받고 있었던 때이므로 그와 같은 신앙 고백은 더욱 가치있는 것이었을 것이다.

성 경: [딤전6:13]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디모데에게 주는 개인 권면]

⭕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 본 구절은 민 16:22의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과 같은 표현으로 모든 존재에게 생명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창조 능력을 나타낸다. 이처럼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하나님을 증인으로 자주 채택하였다(롬 1:9 ;고후 1:23; 빌 1:8; 살전 2:5). 바울이 하나님을 '만물을 살게 하신' 분으로 언급한이유에 대하여 혹자는 '디모데로 하여금 생명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 믿음을 부여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Hendriksen).

⭕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 바울은 디모데가 해야 할 증거와 역사적으로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비교하여 디모데에게 엄숙히 권면한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선한 증거'란 '고백'을 의미한다는 것에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동의한다(Lenski). 이 고백의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메시야(Messiah)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요18:36, 37). 그러나 고백의 내용이 정확히 무엇이었는가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여기에서 바울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사형을 언도(言渡)할 수 있는 빌라도 앞에서도 꿋꿋하셨던 그리스도의 담대함이었다(Scott).

성 경: [딤전6:14]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디모데에게 주는 개인 권면]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 '나타나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파네이아스'(*)는 중요한 인물의 '출현'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예컨대 로마의 황제 칼리굴라(Caligula)의 비문에서 그의 출현과 관련해 사용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본절에서는 이 말이 '그리스도의 현현'(the Epiphany), 즉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파루시아'(*)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 '명령'(*,엔톨렌)에 대하여 몇 가지 견해가 있다. (1) 마 28:20에서 예수께서 '내가 네게 명한모든 것을 지키라'고 말한 것과 그외 다른 복음서(요 14:15, 21; 15:10)에서도 같은말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명령'은 '예수의 말씀'을 가리킨다(Lenski). (2)디모데가 침례받을 때 서약한 의무일 것이다(Guthrie, Wordsworth). (3)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부과된 모든 의무를 말한다(Hendriksen, Scott). (4) 11절과 12절에 언급된 명령을 가리킨다. (2) 와 (3) 의 견해는 일면 타당성을 지니나 전후 문맥상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성 경: [딤전6:15]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디모데에게 주는 개인 권면]

⭕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 '기약'의 헬라어 '이디오이스'(*)는 복수로서 '시간들'(times, KJV)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수로 취급할 수 있는 관용적 용법으로 '때'라고 표현할 수 있다(눅 20:10 ;23:7). 여기서의 이 '때'는 그분 자신의 때로 아무도 알 수가 없다(행 1:7).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한편 '그의 나타나심'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킨다.

⭕ 하나님은 복 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 여기서부터 16절까지는 하나의 '영광송'(doxology)이다. 이 영광송에 관해 몇가지 견해가 있다. (1) 이것은 아마도 유대인의 회당 의식에서 모방한 초대 그리스도인의 찬송이었을 것이다(Scott). (2)이것은 바울이 유대인의 회당 예배에서 하는 신앙 고백을 회상하여 한 말이다(Lock).(3) 바울 자신의 독자적인 말이다(Guthrie). (4) 구약성경에서 인용한 것이다(Hendriksen, Earle). 특히 헨드릭슨(Hendriksen)은 여기서의 영광송과 유사한 구약성경의 구절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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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딤전 6:15,16 | 구약의 병행 구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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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 | 신 6:4;시 41:13;사 40:12-31;단 4:35|

| 이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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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왕의 왕이시며 | 겔 26:7;단 2:37;스 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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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의 주시요 | 신 10:17;시 13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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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 시 36:9;사 40:28;단 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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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이 가지 못한 빛에 거하시고 | 출 24:17;34:35;시 1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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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 출 33:20;신 4:12 |

| 없는 자시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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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 | 느 8:6;시 41:13;72:19;89:52 |

| 어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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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복되시고'(*, 마카리오스)로 표현한 것은 오직 본절과 1:11에서만 나타난다. '능하신 자'(*, 뒤나스테스)는 '통치자'(ruler, NIV)를 뜻하는 말로서 행 8:27에도 등장하는데 하나님께 적용된 경우는 이곳 뿐이다. 그러나 외경 마카비하의 3:24; 12:15; 15:27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편 '능하신' 앞에 '홀로'(*, 모노스)가 첨가되어 있는 것은 우상이나 황제 등 지상의 어떠한 권세보다 하나님의 권세가 우월함을 나타낸다(Guthrie,Scott).

⭕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 이와 유사한 구절이 계 17:14과 19:16에서 그리스도께 적용된 것을 볼 수 있다. 당시에는 로마 황제를 하나의 신(神)으로 숭배하였기에 이러한 표현은 로마의 황제에 대하여 사용하던 문구였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께 적용시킨 것은 황제 숭배에 대한 강한 반발과 직결된다(Hanson). 한편 하나님을 표현하는 이 칭호는 이방 종교에서 온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의 신 10:17; 겔 26:7; 단2:37에서 빌어온 것이다(Hendriksen).

성 경: [딤전6:16]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디모데에게 주는 개인 권면]

⭕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 15절에서는 하나님이 우주와 세상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통치자임을 나타내고 있는 반면, 본절에서는 모든 피조 세계를 초월해 계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속성을 찬미한다. '죽지 아니함'의 헬라어 '아다나시안'(*)은 부정 접두어 '아'(*)와 '죽음'을 뜻하는 '다나토스'(*)의 합성어로 '불멸'(不滅) 혹은 '불사'(不死)를 뜻한다. 이것은 곧하나님께서 생명의 근원이 되심을 밝힌 말이다(Guthrie). 또한 '오직'(*, 모노스)이라는 말의 첨가는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불멸이 있음을 강조한다. 혹자는 이러한 사상을 히브리적인 사고 방식이라 한다. 헬라인들은 사람의 영혼이나 마음은 본질적으로 영원하여 죽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죽음 이후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였다(Hanson). 그런데 히브리어에는 '불멸'에 정확히 상응하는 말이 없으므로 여기서는 히브리적 사고 방식을 헬라 말을 빌어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 이것은 시 104:2의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와 에스겔 선지자가 빛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본 것(겔 1:4)과 비교될 수 있다.

⭕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 이것은 출 33:20-23과 요 1:18의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와 요 4:24의 "하나님은 영이시니"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개념이다. 한편 헬라 철학에서도 이러한 신(神)의 불가시적(不可視的)개념을 찾아 볼 수 있으나(Hanson), 신약에 언급된 하나님의 불가시적 개념의 연원은 구약 히브리 사상에 있다.

⭕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 대부분의 송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써 결론을 맺지만 여기서는 '존귀와 능력'을 돌림으로써 결론을 맺고 있다. 이것은 15절의 '능하신'이라는 말과 잘 조화를 이룬다. '아멘'은 영광송의 종결을 나타낸다(1:17).

성 경: [딤전6:17]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부자에게 주는 권고]

⭕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 8-10절에서 언급된 교훈은 '부하려는 자들에게' 준 교훈인 반면, 본절에서 19절까지는 당시 '이미 부자인 자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그 당시 에베소는 부유한 도시로서 부자 교인들이 많았을 것이다.

⭕ 마음을 높이지 말고 - '마음을 높이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휩셀로프로네인'(*)은 신약성경에서 본절에만 나오는 단어로 '자랑하다','교만하다'는 뜻이다. 바울은 부자들을 향해 재물로 인해 교만하게 행하지 말것을 제일의 교훈으로 권면하고 있다.

⭕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 '정함이 없는'의 헬라어 '아델로테티'(*)는 '불확실성'의 뜻을 갖는 말로 신약성경에서 본절에만 나온다. 재물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으므로 믿을 것이 못 된다(눅 12:13-21). 잠 23:5에도 "정녕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기록 되어 있다. 한편 '소망을 두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피케나이'(*)는 '엘피조'(*, '바라다')의 완료 능동 부정사로서 '신뢰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불확실한 재물을 신뢰하지 말고'라는 뜻이다.

⭕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 하나님은 후(厚)하신 분으로 그의 자녀에게 영육간에 필요한 모든 것을 풍족히 채워 주시는 분이시다(시 37:25; 행 14:17; 약 1:17). 또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풍족히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누리게'하셨다. '누리게'의 헬라어 '아폴라우신'(*)은 '즐기다'(enjoyment, NIV)의 의미를 갖는다. 혹자는 바울이 그의 마음속에 영지주의자들(Gnostics)을 의식하고 이 말을 하였을 것이라고 한다(Hanson). 즉 그들은 금욕주의적인 것을 교인들에게 가르쳤으나(4:3) 바울은 금욕주의를 반대했다(4:4).결국 본절에서 바울이 경계한 것은 과도한 재물욕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악한 요소들이었다.

성 경: [딤전6:18]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부자에게 주는 권고]

⭕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 17절이 하나님께 대한 부자들의 태도에 역점을 두었다면 본절은 타인들에 대해 그들이 지녀야할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부자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깨닫고 자신의 재물을 선하게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선한 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도에르게인'(*)은 본절과 행 14:17에만 등장한다.

⭕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메타도투스'(*)는 '대가 없이 주다' 혹은 '인색(吝嗇)하지 않게 주다'는 뜻을 갖는 말로 본절에서만 언급되는 단어이다.

⭕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 '동정하는'의 헬라어 '코이노니쿠스'(*)는 '함께 나누다', '공감하다', '교제하다'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이말은 그리스도인인 부자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물질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신적인 것과영적인 것까지 없는 자들과 함께 나누고 서로 교제해야 함을 의도한다(행 2:42-44 ;4:34-37).

성 경: [딤전6:19]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부자에게 주는 권고]

⭕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 본 구절에 대하여 구구한 해석이 있다. (1) 이것은 토비트 4:9, 곧 "궁핍한 날을 대비하여 자신을 위해 좋은 보화를 쌓아 두라"의 인용이다(Hanson). 토비트서는 기원전 20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외경 마카비서와 함께 유대문학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 책이다. (2) 본구절의 '터'는 눅 6:48,49의 반석 위에 지은 집과 흙 위에 지은 집의 비유를 통해 그 의미를 보다 잘 파악할수 있다. 또한 '터'(*, 데멜리온)는 이중적인 의미, 즉 '기초'와 '자본'의 두 가지 뜻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말일 수 있다(Scott). (3) '터'란 단순히 '보화'를 의미한다(Alford). (4) NIV에서는 본 구절을 "이렇게 하여 그들은 장래에 자신들을 위한 하나의 견고한 기초로서 보화를 쌓게 될 것이다"로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마 6:19-21의 말씀, 곧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와 의미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본 구절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다(Earle). 한편 여기서 (2)를 제외한 나머지 세 견해는 '터'를 '보화'로 해석하는 일치를 보이고 있다.

성 경: [딤전6:20]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끝인사 및 마지막 당부]

⭕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 '부탁한 것'의 헬라어 '파라데켄'(*)은 '기탁물'(deposit)로 번역된다. 이것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1) 디모데에게 위탁(委託)된 건전한 교리, 혹은 교훈을 말한다(Lenski, Earle).(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뜻한다(Simpson). (3) 복음을 포함한 성경 전체를 포괄한 말이다(Hendriksen). (4) 이것은 넓은 의미를 갖는 말로서, 그리스도부터 시작하여사도를 거쳐 디모데에게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전체적인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Scott). 이상의 견해들은 상호 대립되지 않으나 전후 문맥상 (1) 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그런데 디모데에게 맡겨진 건전한 교훈은 본서 전체에 걸쳐 언급된 것이다.

⭕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 - 이는 당시 영지주의자들(Gnostics)의 가르침이나 유대주의의 가르침을 가리킨다(Earle).

⭕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 '망령되고'(*, 베벨루스)는 '신성을 더럽히는'의 의미이며(레 10:10; 딤후 2:16), '허한'(*, 케노포니아스)은 '공허한'을 뜻한다(1:6). 또한 '변론'의 헬라어 '안티데세이스'(*)는 '반대', '대조'(antithesis)를 뜻한다. 이러한 뜻의 '변론'은 영지주의자들이 주로 사용한 논법으로 혹자는 '변론'이 이단자 마르시온(Marcion)이 저술한 유명한 영지주의적 책 '안티데세스'(Antitheses)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아 마르시온의 가르침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Scott).

성 경: [딤전6:21]

주제1: [교회의 각급 성도에게 주는 권면]

주제2: [끝인사 및 마지막 당부]

⭕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 본절은 20절에서 바울이 권면한 것을 유념해야 할 이유를 말한 것으로 디모데가 그의 교인들을 향하여 해야할 경고이다(Lenski). '좇는'에 해당하는 원어 '에팡겔로메노이'(*)는 '단언하다', '주장하다', '고백하다'(profess, NIV)의 뜻을 갖는다. 또한 '이것'은 20절의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란 영지주의나 유대주의의 가르침을 주장하며 그들의 신앙으로 그것을 고백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교회와의 관계가 단절(斷絶)된 자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으면서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로서 1:6의 '헛된 말에 빠진 자들'이었다(Hendriksen).

⭕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 본구절은 바울의 서신 가운데 가장 짧은 축도문이다. 바울은 본 서신 서문에서도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말하였다(1:2). 여기서의 '은혜'(*, 카리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가운데 가장 귀한 것으로 바울은 마지막 축도를 이 '은혜'로 마치고 있다. 한편 KJV는 '너희'(*, 휘몬)를 '너'(you)로 번역하고 있으나 원문에는 복수 '너희'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편지가 디모데에게만 국한(局限)된 것이 아니라 모든 교인들을 향해 쓰여진 것임을 알수 있다(Guthr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