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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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세기주석



성 경: [창1:1]

주제1: [천지 창조]

주제2: [무(無)에서 유(有)에로의 창조]

⭕ 태초에(*, 베레쉬트). - 70인역은 이 말을 요 1:1과 같이 '영원부터'란 뜻을 지닌 '엔 아르케'(*)로 번역했으나 원래의 뜻은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개시(開始)함로써 시작된 역사적 '시간의 출발점'을 가리킨다. 이는 창세기가 영원 전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주 및 인류가 탄생하는 시점으로부터 시작되는 태고사(太古史)에 관한 서술임을 암시한다. 한편 공동 번역은 이 말을 '한 처음에'라고 번역했는데 여기서 '한'은 천지 창조의 단회성을, '처음'은 만물의 출발점을 각각 강조하는 말이다.

⭕ 하나님(*, 엘로힘). - 두려워하다'(*, 알라) 혹은 '강하다'(*, 울)란 뜻에서 과생된 말로 곧 '두려워해야 할 강하고 능력있는 자', '경외해야 할 최고 존재'란 의미이다. '여호와'란 명칭이 '언약을 지키시는 자', '택한 백성을 구속하자'란 의미로 쓰였다면(출 6:3) 이 '엘로힘'이란 명칭은 성경에서 주로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강조할 때 쓰였다(출 20:1; 신 6:4; 삼하 22:32). 한편 일부 학자는 '엘로힘'이 '엘로하'의 복수형인 점을 들어 이를 다신론적(多神論的) 사상의 반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록 형태는 복수형이나 실질적으로는 단수로 취급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를 삼위(三位)이시나 일체(一體)이신 하나님의 존재 양식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다(26절). 또한 존귀하거나 장엄한 것을 표현할 때 복수형을 쓰는 히브리인의 독특한 관습에 따라 이를 장엄 복수형으로 볼 수도 있다.

⭕ 천지 - 문자적으로는 '하늘과 땅' 곧 지구를 뜻하나 여기서는 지구를 포함하여 은하계가 자리잡고 있는 전우주를 가리킨다(2:1).

⭕ 창조하시니라(*, 바라) - 구약에는 '창조하다'란 뜻의 단어가 세 종류 나온다. 첫째 여기서 사용된 '바라'는 무에서 유에로의 완전한 신적 창조 행위를 가리키는것으로 순수한 의미의 창조를 가리킨다. 그러나 때로는 특수한 목적으로 여러 재료를 사용하여 건축하거나 만드는 것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 둘째, '아사'(*)는이미 창조된 물질을 재료로 더욱더 나은 물체를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16, 25, 26절). 세째, '야찰'(*)은 '아사'와 비슷하나 특별한 목적에 따라 기존사물을 새로 완벽히 조성하는 것을 가리킨다(2:7.9). 한편 천지창조를 주제로 하는 본장에서 '바라'.'아사', '야찰' 등 이 세 단어는 정확한 뜻에 따라 해당 귀절에서 사용되었음 알 수 있다. 그 예로 '바라'는 (1)무에서 유에로의 존재 창조를 가리키는 1절 (2)생물에게 생명의 근원을 주시는 창조 행위를 가리키는 21절 (3)그전까지 전혀 없었던 영적 존재의창조를 가리키는 27절에서만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특별 계시의 책인 성경은 정확무오한 단어가 구별되어 사용된 그야말로 일점 일획도 오류가 없는 책임을 새삼 인지할 수 있다(마 5:18). 즉 우리는 '바라'뿐 아니라모든 성경 원어를 분석, 연구할 때마다 성경은 단어 하나에 이르기까지 영감된 책임을 새롭게 깨닫는 것이다(성경 총론, 성경의 영감). 이제 이처럼 중요한 단어인 '창조하다'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의미와 그 기사의 정확성을 간추려 보자. (1)하나님의 창조 활동은 그분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기인한 단독 사역이며 (2)하나님의 창조능력은 제한적이거나 부차적이지 않고 완전한 무에서 유에로의 창조를 가능케 하는 새롭고 신비한 성격의 것이다. 그리고 (3)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인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으로서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말씀에 의해 만드셨다(시33:6-9; 렘10:12). (4) 또한 이는 성경기록이 비논리적이거나 비과학적이라는 주장을 일소시켜 준다. '창조'라는 개념조차도 무에서 유에로의 창조와 기존물질을 변형하여 새롭게 제작하는 것과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을 정도로 성경은 합리적인 깃이다. 한편 이 '바라'라는 단어는 사 40-66장에도 약 20번이나 언급되면서 인간에게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가를 명확히 드러내 주고 있다. 즉 (1)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자이시며(사42:5;45:7-9) (2)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창조자이시고(사 43:1, 15) (3)새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분이심과(사 65:17) (4)인류 구원의 주도권을 가지신 분이심(사 42:5-9:49:5, 6)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다윗의 참회시에도 볼 수 있듯 하나님은 죄인을 중생케 하시는 새 창조의 근원이심(시 51:10; 고후 5:17)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성 경: [창1:2]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무(無)에서 유(有)에로의 창조]

⭕ 땅 - 접속사(*, 웨)와 정관사(*, 하)가 붙어 있어 직역하면 '그런데 그 땅'이다. 여기서는 '지구'를 가리킨다.

⭕ 혼돈하고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에 생명체가 살수 있을 정도로 아직은 정돈된 상태가 아님을 보여 주는 말이다. 즉 '혼돈'에 해당하는 원어 '토후'(*)는 '공허', '헛된 것'(삼상 12:21;사 40:17)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전혀 형체가 없거나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상태를 의미한다.

⭕ 공허하며- 원어 '보후'(*)는 사 34:11; 렘 4:23에서 '공허한'(void)으로 번역되었는데 이것 역시 '토우'와 마찬가지로 미처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는 적막한 상태, 무가치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혼돈하고 공허하였다'란 의미는 지구가 아직조화된 모습을 갖추고 있지 있지 않고, 따라서 아무런 생명체도 살고 있지 않은 무질서하고 텅빈 상태였다란 뜻이다. 한편 본절의 '하고...'하며는 카오스적인 존재(存在, was) 상태를 뜻하는 말이지 일부 학자들의 주장처럼 거역한 사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변이(變移, become)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 여기서 '흑암'은 단순히 빛에 대칭되는 어두움의 개념이 아니라 창조 이전 빛이 없는 상태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한편 공동 번역은 이를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로 번역하였다. 왜냐하면 '깊음'에 해당하는 원어 '테홈'(*)은 때로 '깊은 바다'(시 42:7;겔 31:15)나 지하물의 근원지(7:11; 시 78:15)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아마 이는 창조된 원시 형태의 지구가 물 혹은 물 같은 유동체로 덮여있었으며 사면에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있었을 뿐임을 뜻하는것 같다.

⭕ 하나님의 신(*, 루아흐 엘로힘). - '루아흐'는 때로 '바람'(8:1)이나 '숨'(욥9:18)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혹자는 이를 하나님께서 깊은 물의 표면에 불게하신 바람으로 이해하기도 하나 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제3위 하나님되시는 '성령'을 가리키는 말로 천지 창조시부터 이미 삼위 하나님께서 서로 협력하여 사역하셨음을 암시해 주는 말로 이해하여야 한다(26절). 혹자는 성령께서 신약 시대에야 비로소 활동하신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행 2:1-4) 성경은 성령께서 이미 구약 시대부터 여러모로 활동하였음을 이미 구약 시대부터 여러모로 활동하였음을 분명히 증거해 준다 (출 35:31; 삿 3:10; 왕하 2:1215; 대상 12:18;겔 11:24).

⭕ 운행하시니라 - 원뜻은 '알을 품다', 따라서 이 말은 이미 새가 새생명의 탄생을 열망하며 알을 소중히 감싸 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지음 받을 인간의 삶의 장소를 조성하시기 위해 깊은 관심으로 포근하고 소중하게 돌보심을 의미한다.

성 경: [창1:3]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빛의 창조 - 첫째 날]

⭕ 가라사대(*, 아마르) - 6일간의 창조 기사에서 10회나 반복 사용된 이 말은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력이 있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공허하지 않고(신 32:47; 사 55:11; 렘 23:2)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곧 그분의 능력(power)이요 행위(Action)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창조시부터 말씀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은 오늘날도 말씀으로 인간들을 권고한다는 점에서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며 아울러 하나님의 인격적인 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인격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능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빛이 있으라 - 하나님의 첫번째 명령은 '빛'과 '존재'(있으라)에 관한 것이었다.'빛'(, 오르)은 때로 열(사44:16), 불(사31:9), 태양(욥 31:26), 번개불(욥 27:3)등 구체적인 발광체 혹은 발광 현상을 가리키기도 하나 본절의 '빛'은 4일째 창조된 태양과는 구별되는 에너지원(Energy源)을 가리킨다. 한편 어거스틴(Augustine) 은 여기 빛을 신적 은사와 능력을 상징하는 영적인 빛으로 보았다.

성 경: [창1:4]

주제1: [천지 창조]

주제2: [빛의 창조 - 첫째 날]

⭕ 보시기에 좋았더라 - 천지 창조 기사를 다루는 1장에 7회나 언급된 이 말은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셨던 대로 창조된 여러 피조물에 대해 기쁨으로 승인하는 인준 행위를 의미한다. 즉 이 말은 심미적 판단에서 나온 우주의 아름다움 이상의 창조의 놀라운 합목적성과 적합성을 나타낸다(시 104:31). 그러나 이차적으로 이 말은 우주 자체의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좋았더라'(good)에 해당하는 히브리어'토브'(*)는 '위대한'(시 11:2), '놀라운'(욥 37:14), '완벽한'(신 32:4), '아름다운'(전 3:11)등의 뜻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이 본래 좋은 것으로 인정하신 물질을 바르게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힘써야 한다.

⭕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 하나님의 천지 창도에는 3차에 걸친 분리 사역이 나타나있다. 즉 (1)빛과 어두움(4절) (2)물과 궁창(7절) (3)바다와 땅(9절)의 분리이다. 후일 바울은 이 빛과 어두움의 분리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의와 불법의 분리에 적용시킴으로써 도덕적, 종교적 성결의 원리로 확대 해석했다(고후 6:14).

성 경: [창1:5]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빛의 창조 - 첫째 날]

⭕ 낮이라...밤이라 칭하시니라 -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물에게 이름을 부여한 최초의 경우이다. 이는 곧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시 74:16)임을 의미하는 동시에(1:10) 낮과 밤 양자 사이에는 생동감과 적막, 생명력과 정체 등과 같은 차이점이 있음을 나타낸다.

⭕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 아침에 앞서 저녁이 먼저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빛이 비추어 낮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계속 어두움만 있었던 저녁상태였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저녁을 하루의 시작으로 셈하고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날 - 날에 대한 히브리어 '욥'(*)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우주 창조의 연대 및 시간적 길이가 정해지는데,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다음 세 학설이 있다. (1)'날'은 곧 한 시대를 가리킨다는 학설이다(Day-Age Theory :요세푸스, 이레니우스, 오리겐). 그러므로 이들은 5, 8, 13절의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말이 하나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한 시대의 끝과 다른 한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 주장의 근거는 창조주 하나님에게는 시간적 요소가 초월되어 있다는 점이다(시90:4; 벧후 3:8). 그러나 이 학설에는 두가지 난제가 있다. 첫째, 창 1장의 주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출 20:8-11의 안식일 계명 문제에 위반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분명히 안식일 계명에 나타난 창조의 6일은 여자적(如字的) 6일이요, 장구한 6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창세기의 1일이 오늘날과 같은 하루가 아니라면 제7일의 안식일 문제를 설명할 길이 없다. 둘째, 성경의 분명한 어법으로 표현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5, 8, 14, 19절)라는 말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한 시대의 교체로 보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점이다. (2) '욥'(*)을 문자 그대로 24시간으로 보는 학설이다(루터, 칼빈, 뻘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 해석상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원어의 일차적인 뜻을 따라야 한다. 둘째, 실제적인 제7일을 안식일로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면 다른 6일도 당연히 같은 24시간을 가진 하루이어야 한다. 세째, 창조 사역에 있어서 마지막 3일은 분명히 오늘날과 같은 태양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24시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최초의 3일도 같아야 되지 않겠는가? 라는 주장이다. (3) '욥'(*)의 기간이 서로 다르다고 보는 절충적인 학설이다(어거스틴, 바빙크), 즉 태양이 창조된 제4일 이전의 3일은 오늘날의 하루와 다른 장구한 기간으로, 그리고 이어지는 3일은 24시간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세 가지 학설은 각기 나름대로의 타당성과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어느 학설을 완전히 수용하거나 혹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두번째 학설이 보수적인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성 경: [창1:6]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궁창의 창조 - 둘째 날]

⭕ 물 가운데 - 여기서의 물은 지구 표면을 덮고 있던 물(2절)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수분(水分)을 가리킨다.

⭕ 궁창(, 라키아) - 원어상 의미는 '두들겨 넓게 펼친 판(板)'이란 뜻. 따라서 고대 히브리인들의 개념상 '라키아'는 별과 달이 붙어 있고, 하늘 위의 물을 받치고 있으며, 높은 산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단단한 하늘의 금속판(firmament)을 가리킨다(욥 26장, 히브리인들의 궁창 개념).

성 경: [창1:7]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궁창의 창조 - 둘째 날]

⭕ 궁창 아래의 물 - 바다를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물.

⭕ 궁창 위의 물 - 구름이 수증기 상태로 대기권 속에 떠 있는 모든 수분, 이것이 응집되어 지구상에 떨어지는 것이 곧 비나 눈, 우박이다.

⭕ 그대로 되니라 - '그대로'는 '명하신 대로 확실히' 또는 '틀림없이'의 뜻. 천지가 하나님의 명하신 바대로 창조된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성 경: [창1:8]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궁창의 창조 - 둘째 날]

⭕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 이로써 하나님께서 만드신 '궁창'이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났다. 한편 '하늘'에 해당하는 원어 '쇠마임'(*)은 '높다'에서 유래한 말로 아주 높이 그리고 끊없이 펼쳐져 있는 대기권 전체를 가리킨다(욥 26장, 히브리인들의 궁창 개념).

성 경: [창1:9]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바다.육지.식물의 창조 - 세째 날]

⭕ 물이... 뭍이 드러나라 - 이처럼 물과 뭍이 제각기 적절한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됨으로써 지구는 마침내 각종 생물이 서식(棲息)할 수 있는 곳으로 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11, 12, 20, 21절)

성 경: [창1:10]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바다. 육지. 식물의 창조 - 세째 날]

⭕ 칭하시고(*, 카라) - '선언하다'(렘 34:15), '공포하다'(레 23:21)란 뜻. 즉 권위를 가지고 공식적으로 언명함을 뜻한다. 고대 셈족 문화권에서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주권이나 소유권의 행사를 의미한다. (왕하 23:34;24:17). 따라서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후 방기(放棄)하신 것이 아니라 창조물의 이름을 지어 주는 하나님의 명명(命名) 행위에서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지배권 주장이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존재와 생명의 참된 주인은 오로지 하나님 한분 뿐임을 암시한다.

성 경: [창1:11]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바다.육지.식물의 창조 - 세째 날]

⭕ 풀과...채소와...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 - 70인역은 '채소의 어린 싹과 과일의 나무'로 번역, 2종류의 식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도 가능은 하지만 개역 성경과 같이 3종류의 식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 각기 종류대로 - 1장에서만도 10회나 사용된(11, 12, 21, 24, 25절 등) 이 표현은 창조시 모든 생물은 이미 독특하게 구별된 종(種, species)의 형태로 창조되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각기 종류대로'를 뜻하는 히브리어 '레미노'(*)는 '종류'(Kind), '종'(species)을 뜻하는 '민'(*)에서 파생된 말인데, 성경에서 이 말은 매종류와 까마귀 종류, 개 종류와 고양이 종류 등 제각기 독특하게 구별된 종(種)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지 결코 매와 까마귀, 그리고 개와 고양이의 조상으로서 어떤 기본적인 소수의 종류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생물학적 변천 과정을거쳐 저급한 종에서 고등한 종으로의 발전이나, 종과 종사이의 상태변이(變移)를 주장하는 진화론(進化論, evolution theory)은 비성서적 견해이다.

성 경: [창1:12,13]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바다.육지.식물의 창조 - 세째 날]

세째 날은 하나님께서 최초로 생명체를 창조하셨다는 의의를 지닌다. 한편 여기서'풀'(*, 데쉐)은 이끼류와 같은 은화식물(慇化植物)을 대표하는 말로 구분 지을 수 있으나 '열매 맺는 나무'와 더불어 지구상의 모든 식물군을 가리키는 점층법적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

성 경: [창1:14]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해.달.별의 창조 - 네째 날]

⭕ 징조(*, 오트) - 자연적인 현상 혹은 사건에서 보여지는 '표징'(출 10:2). 이런 일이 주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므로 '이적'(출 4:17)으로도 번역된다. 여기서는 천체의 변화란 뜻.

⭕ 사시(*, 모에드) - '지정하다', '고정하다'(히 야아드)에서 기원, '새들의 이주 시기'(렘 8:7), '축제의 절기'(시 104:19; 슥 8:19)등과 같이 계절의 순환에 다라 반복되는 전환의 시기를 가리킨다.

⭕ 일자와 연한 - 네째 날 만들어진 태양 및 천체의 운동으로 측정되는 시간의 기본 단위인 '날'(日)과 '년'(年)이란 뜻.

성 경: [창1:16]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해.달.별의 창조 - 네째 날]

⭕ 주관하게 하시고 - 히브리어 '멤솰라'(*)는 '다스리다'(왕상 9:19), '관찰하다'(렘 5:28)란 뜻. 즉 큰 광명인 해와 작은 광명인 달이 낮과 밤을 구분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실은 일월 성신(日月星辰)숭배 사상과 점성술적인 미신에 빠져 있던 고대인들에게, 그리고 그러한 경향이 있는 현대인들에게 일월성신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이며 또한 이들의 역할은 단지 낮과 밤을 구분하며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따라 일자와 연한을 식별케 하는 데 불과함을 교훈한다.

성 경: [창1:18]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해.달.별의 창조 - 네째 날]

⭕ 보시기에 좋았더라 - 하나님께서는 두 광명과 별을 창조하사 낮과 밤 동안 빛을 비취게 하셨다. 이것은 식물로 하여금 광합성(光合成)작용을 일으켜 성장 발육케 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었으니 이러한 조화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흡족하였을 것이다.

성 경: [창1:20]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조류와 어류의 창조 - 다섯째 날]

⭕ 생물(*, 네페쉬 하야) - 직역하면 '산 영'(living soul)이란 뜻, 여기서는 살아 움직이는 동물을 가리킴. 고대 히브리인들은 식물이 부동적이므로 생명을 갖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였다. 따라서 동물을 이전에 창조된 식물과는 구분하여 움직이며 숨쉬는 것임을 강조하는 용어, 즉 생물이라는 말로 묘사했다.

⭕ 번성케 하라 - 히브리어 '쇠라츠'(*)는 '꿈틀거리다', 무수히 많아 우글거리는 것이 마치 꿈틀거리는 듯이 보인다는 점에서 '풍부하다', '무수히 생기다'(출8:13)란 뜻으로 발전되었다.

성 경: [창1:21]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조류와 어류의 창조 - 다섯째 날]

⭕ 큰 물고기 - '물고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탄닌'(*)은 '용'(사 51:9), '뱀'(사 27:1)등으로도 번역된 단어인데 여기서는 고래, 상어, 악어, 물개 등과 같이 몸집이 큰 부류의 수서동물(水棲動物)을 가리킨다. 날개 있는 모든 새 - '새'에 해당하는 원어 '오프'(*)는 곤충을 포함한 공중을 날으는 모든 종류의 생명체를 가리킨다(7:14).

성 경: [창1:22]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조류와 어류의 창조 - 다섯째 날]

⭕ 복을 주어(*, 바라크) - 기본 뜻은 '무릎 꿇다'(시 95:6). 이 말이 하나님께 적용될 때에는 '찬송하다'(9:26), 피조물에게 적용될 때에는 '축복하다'(27:33)란 뜻이 된다. 여기서 복의 내용은 이어지는 말에서도 드러나듯 풍성케 하는 것인데, '복주다'란 말 자체에도 '풍족케 하다'(신 33:11)란 뜻이 있으므로 증식에 대한 내용이 더욱 강조된다.

⭕ 생육하고 번성하여 - '생육'은 '열매 맺다'라는 뜻으로 풍부한 결실을, '번성'은 '많을'(7:17) 뿐만 아니라 '크고'(스 10:13) '강한'(대하 11:12)상태를 뜻한다. 이와같이 유사한 언어를 반복하여 기술한 것은 하나님이 생물들에게 생명의 보존력과 번식력을 축복으로 주심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축복은 오늘날에도 생명체마다 제각기 갖고 있는 자기 방어 수단과 독특한 출산 방식으로써 종족을 보존, 번식시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 충만하라 - 하나님의 '채워주심'(렘 15:17)으로 '넘칠'(수 3:15)정도로 '가득한'(6:13) 상태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축복의 신적 기원을 풍부함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성 경: [창1:24]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짐승과 인간의 창조 - 여섯째 날]

⭕ 육축(*, 베헤마) - '침묵하다'란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축들이인간과 친밀하나 말하지 못함에 착안하여 이 명칭이 부여된 듯하다. 여기서는 집합적인 의미로 주로 몸집이 큰 가축을 지칭한다.

⭕ 기는 것 - 히브리어 '레메쉬'는 다리가 없거나 많은 다리를 갖고 있어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동물들을 가리킨다. 주로 곤충이나 파충류에 해당됨.

⭕ 짐승(*, 하이) - 생명있는 모든 '생물'(6:19)을 총칭하는 말이기도 하나 여기서는 '들짐승'(레 5:2)과 같은 야생 육식 동물을 가리킨다.

성 경: [창1:26]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짐승과 인간의 창조 - 여섯째 날]

⭕ 우리 - 이 말에 대한 여러 해석은 다음과 같다. (1)하나님께서 자신을 재촉하는 의미로 복수형을 사용하셨다. (2)삼위일체에 대한 구약적인 표현이다. (3)하나님이 천사들과 의논하심을 가리킨다. (4)히브리인들은 장엄한 것을 나타낼 때 흔히 복수형을 사용하므로 강세(强勢)를 나타내는 히브리 문학적 표현이다. 그러나 후대의 발전된 계시에 비추어 볼 때 합당한 해석은 두번째 견해, 즉 창조 사역에 나타난 각 위(位) - 성부, 성자, 성령...의 완벽한 협력을 나타낸 말로 보아야 한다.

⭕ 형상...모양대로 - '형상'(*, 첼렘)과 '모양'(*, 데무트). 이 두 단어는 유사한 단어로서, 비슷한 말을 연속 사용하여 강조의 효과를 나타내는 히브리 수사법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굳이 분류하자면 '형상'(image)은 어떤 사물과 그것을 그린 그림이 서로 닯은 것처럼 인간과 하나님간에 찾아 볼 수 있는 구체적인 닮은 꼴을 가리키며 '모양'(likeness)은 추상적인 면에 있어서의 유사성을 가리킨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 전인(全人)이 하나님의 성품의 영향을 받아 지음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시 8편; 겔28:12). 이러한 사실은 (1)인간이 저급한 상태에서 고등한 상태로 진화되었다는 진화론(evolution theory)의 허구성을 깨우쳐 주며 (2)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님과의 교제 대상으로 인간만이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엡 4:23, 24; 골 3:10). 그러나 창조시 부여된 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타락시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그러나 끝내 상실되지 아니하고 그 흔적은 계속 남아 있어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능케 하는 접촉점(contact point)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이 피조물 중에서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를 능히 깨달을 수 있는 반면 타락으로 말미암는 인간 비하(卑下, 3:16-19) 역시 얼마나 뼈아픈 비극인가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

⭕ 사람(*, 아담) - 창조 사역의 절정은 사람의 창조요, 창조의 면류관 역시 사람이다.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담'은 이중적인 뜻을 갖고 있다. 첫째는 보통 명사로서 일반 사람을 가리키며, 둘째는 고유 명사로서 최초의 사람인 아담을 가리킨다. 한편 '아담'이란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1) '붉어진다'에서 유래, 인간의 피부 빛을 반영하고 있다는 견해. (2)'빛이 난다'란 뜻의 아람어에서 유래, 아담을 빛자는 자로 만들었음을 뜻한다는 견해. (3)'데리고 온다', '결합시킨다'는 뜻의 아람어에서 유래, 아담이 인류의 조상이며 모든 인류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자임을 뜻한다는 견해. (4)'모양'이란 어원에서 유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음을 뜻한다는 견해. (5)'땅'에서 유래.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졌음을 반영한다는 견해 등이 있다. 모두 일면의 타당성을 지니나 (5)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 다스리게 하자 - '주권을 잡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통치하다'라는 뜻, 즉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을 주관할 수 있는 권위와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고등한 존재로서 다른 피조물들에게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성 경: [창1:27]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짐승과 인간의 창조 - 여섯째 날]

⭕ 여자 - 남자와 구별됨을 강조하는 표현(6:19). 본절에서 남자와 더불어 여성의 창조를 특별히 언급한 것은 창조시부터 남녀 간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성 경: [창1:28]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짐승과 인간의 창조 - 여섯째 날]

⭕ 정복하라(*, 카바쉬) - '발로 밟다'(미 7:19), '복종케 하다'(민 32:22)란 뜻, 이는 땅을 자신의 것으로 취급하여 마음대로 행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 선한 목적을 좇아 땅 속에 포함된 광대한 자원을 개발하며 유용하게 이용하라는 문화 명령(Cultural Mandate)이다(9장, 강해 하나님의 문화 명령).

성 경: [창1:29,30]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짐승과 인간의 창조 - 여섯째 날]

⭕ 너희 식물이 되리라 - 최초 인간과 동물에겐 채식(菜食)만이 허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육식(肉食)은 타락 후 노아 홍수 사건 직후에야 비로소 허용되었다(9:2). 이로 볼때 피흘림이 뒤따르는 육식 행위는 결코 하나님의 본래 뜻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원(原) 창조시 허용되지 않았던 육식이 타락 후 허용되었다는 사실은 곧 처음 낙원의 재(再) 창조 또한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 낙원의 재 창조는 그리스도의 '피흘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루어지고 있으며 최종 이루어질 것이다.

성 경: [창1:31]

주제1: [천지창조]

주제2: [짐승과 인간의 창조 - 여섯째 날]

⭕ 심히 좋았더라 -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마무리 지어 주는 이 귀절은 지금까지 반복되어 온 감탄사(10, 12, 18, 21, 25절)보다 한층 더 고조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나 흠도 없이 완벽하고 아름답게 성취되었음을 대변한다.

성 경: [창2:1]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최초의 안식일]

⭕ 천지(*, 하쇠마임 웨하아레츠) - 여기서 '쇠마임'(하늘)은 단순히 '하늘'을 가리키는 단수 명사인 '솨메'의 쌍수형(dual number)으로 인간의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창공' 뿐 아니라 대기권 너머의 '우주'까지 함께 뜻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하늘'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은하계가 자리잡고 있는 '온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단어이다. 그리고 '에레츠'(땅)는 '견고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협의적으로는 '토지', '땅 자체'를 뜻하지만(4:12 ; 출 4:3) 광의적으로는 '온 세상'을 뜻하는데(18:25 ; 수 23:14) 본절에선 후자의 의미로 쓰였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 만물(*, 콜 체바암) - 기본형 '차바'는 본래 '무리', '군대'(단 8:10)을 뜻하는 말이나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가리키고 있다. 한편 이 단어가 왕상 22:19에선 '하늘의 만군', 즉 '천사들'을 그리고 느 9:6에선 '일월 성신', 즉 '천체'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있는데 1차적으로는 그것들의 수효가 많음을, 2차적으로는 그것들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지음받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 다 이루니라(*, 칼라) - '끝나다'는 뜻과 함께 '완전케 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단순히 중단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과 계획대로 온전히 성취시키셨음을 의미한다.

성 경: [창2:2]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최초의 안식일]

⭕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마치신 날이 제 6일이었는지 7일이었는지에 대하여선 이견이 있다. 70인역이나 사마리아 사본은 이를 제 6일째로 번역하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영역본(KJV, NIV, RSV)은 제 7일째로 번역하고 있다. 이 같은 차이점은 히브리어 '예칼'(*, 마치니)의 시제 및 어법이 불투명한데서 비롯되었는데 우리는 이를 다음과 같이 조화시킬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에 대한 창조 사역을 마치신 날은 제 6일째이다. (2) 그러나 그분의 창조 사역의 완성은 이를 기념하고 축복하여 안식하신 날인 제 7일째에야 온전히 성취된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 안식하시니라(*, 쇠바트) - 일에 지쳐 곯아 떨어진 것을 의미하지 아니하고, 일을 마친 후 새로운 활동을 잠시 중단한 채 취하는 '휴식'(출 31:17)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전혀 아무런 행동도 하시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는 (1) 이후로 하나님께선 더 이상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과 (2) 피조된 천지 만물의 운행을 주관하시며 그것들을 보고 기뻐하고 계셨다는 것(1:31)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안식(安息)에 근거하여 훗날 선민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것이 바로 안식일 제도이다(출 16:29 ; 신 5:15). 그리고 구약 시대 이 안식일을 신약 시대에 이르러 주일로 승화되었다(요 20:19 ; 행 20:7 ; 고전 16:2)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안식일인 주일을 지키는 우리 성도들도 이러한 안식의 원뜻을 좇아 그 날을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한다.

성 경: [창2:3]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최초의 안식일]

⭕ 일곱째 날을 복주사 - 본 구절은 장차 인간에게 주어질 안식일 제도가 인간을 위한(막2:27) 복된 것임을 증거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안식일을 지키기 싫어도 지켜야만 하는 강제 규정인 것처럼 이해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참 뜻을 깨닫지 못하는 비극이다.

⭕ 거룩하게 하셨으니(*, 카다쉬) - '성결하다고 선언하다', '거룩한 것으로 간주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곱째 날 자체가 거룩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한 날로 간주하셨기 때문에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 '거룩하다'는 말은 그것이 세상 열락을 추구하던 것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뜻을 좇는 그분의 소유물이 되었다는 뜻임에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 중에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경외하지는 않으면서 일곱째 날만을 형식적으로 기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지극히 어리석은 자라 하겠다(마 23:16-22).

성 경: [창2:4]

주제1: [인간의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천지 창조의 개략]

⭕ 여호와 하나님(*, 예호와 엘로힘) - '예호와'란 하나님의 이름이 처음 소개 된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권능'을 강조하는 '엘로힘'(1:1)과는 달리 그분이 '능동적이고 스스로 계시는 분'(출 3:14)이라는 점과 '이스라엘의 구속자'(출 6:6)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는 칭호이다. 성경에선 이 단어가 무려 6, 800여회나 나오는데 이는 단어의 중요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능히 가늠케 해준다. 한편 '여호와'는 영어 'Jehovah'의 음역인데 이것의 비교적 정확한 히브리 음역은 '야웨'이다(공동 번역에선 '야훼'로 음역하였음). '예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부르는 것을 금기시하던 히브리인들이 '* '라는 자음에 '아도나이'(Adonai- '주(主)란 뜻)라는 단어의 모음을 붙여서 만든 것이다.

⭕ 때에(*, 브욤) - 1:5에서와는 달리 여기서는 히브리어 '욤'이 '날'(day)이 아니라 특정한 '때'(time)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 대략이 이러하니라 - '대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톨도트'(*)는 '계보', '출생', '역사', '가족' 등과 같은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는데, 본절에서의 정확한 의미는 '역사'(歷史)이다. 즉 이는 본절 이하의 내용이 1:1-2:3에 언급된 사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재묘사하는 실제 역사임을 밝혀 주고 있다.

성 경: [창2:5]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천지 창조의 개략]

⭕ 사람도 없었으므로... 나지 아니하였으며 - 1:1-2:3의 천지 창조 기사와는 일견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선 사람이 창조되기 이전(1:26-31)의 세째날에 이미 하나님께서 각종 채소와 과목을 창조하신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1:11-13).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한다. (1) 2장 전체의 관점이 창조 사역의 순서적 전개에 있지 않고 인간을 중심한 창조 과정의 의미 추적에 있으므로 본절도 단순히 인간이 이땅에 존재하기 전의 지구 상태를 묘사한 것일 뿐이다. 즉 당시 땅은 식물이 살기에 적합한 여건을 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6절). (2) 하나님께선 이러한 땅에 각종 생물과 인간이 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여 주셨다(8, 9절) (3)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선 피조 세계에 새로운 질서와 명령을 부여하셨는데 곧 인간이 땅을 정복하고 각종 생물을 다스리는 것이다(15절 ; 1:28).

⭕ 들(*, 사데) - '땅'(*, 에레츠)과는 다른 말이긴 하나 그래도 이 말은 '드넓은 벌판'이라기 보다는 경작하기 적당한 땅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같은 단어가 하반절에선 밭으로 번역되어 있다.

성 경: [창2:6]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천지 창조의 개략]

⭕ 안개(*, 에드) - 땅에서 증발한 후 비가 되어 다시금 땅에 떨어질 수증기를 의미한다(욥 36:27). 이러한 수증기는 땅에 식물이 생성할 수 있는 여러 조건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성 경: [창2:7]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천지 창조 개략]

⭕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 인간의 전인격적인 창조에 관해 기술한 1:26, 27과는 달리 본절은 특별히 인간 육신의 창조에 관해 기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 흙(*, 아파르 민 하아다마) - 직역하면 '땅의 티끌', 즉 '먼지'란 뜻이다. 이처럼 인간 육신의 구성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영혼을 떠난 인간의 가치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임을 교훈해 준다(3:19 ; 벧전 1:24).

⭕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 생명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인 방법으로 부여하신 '생기'로부터 유래되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 생기(*, 네솨마) - '영혼'(잠 20:27), '호흡'(사 2:22), '기운'(욥 33:4) 등으로도 번역되는 단어. 일반적으로는 인간의 '혼'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모든 생명체의 '기식'(氣息)을 의미한다.

⭕ 불어 넣으시니(*, 나파흐) - 숨을 내쉬다', '부풀리다', '불붙이다'는 뜻. 하나님께서 인간 육체에 생명의 근원되는 자신의 기운을 불어넣으셨다는 점에서 인간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殿)이라 할 수 있다(고전 6:19).

⭕ 생령(*, 네페쉬 하야) - '숨', '호흡'을 뜻하는 '네페쉬'와 '생존', '존재'를 의미하는 '하야'가 합해서 된 말로 '살아 있는 존재'란 뜻이다. 물론 '네페쉬'가 다른 곳에서 '혼'(Soul) 또는 '영혼'(Spirit)을 가리키는 뜻으로도 쓰였으나 여기서는 단순히 '호흡'(breath)이란 뜻으로도 쓰였다. 따라서 '생령'이라는 말은 인간이 '영혼'을 지닌 존재를 증거하는 직접적 증거 구절은 아니다. 인간의 영혼은 오히려 1:26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란 말에 강력히 암시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 '네페쉬'가 단순히 '호흡'이란 뜻이며 또 '네페쉬 하야'가 일반적으로 모든 생물을 가리킬 때도 쓰였다는 사실(1:20) 때문에 인간 역시 모든 동물들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왜냐하면 (1) 인간은 앞서 말한 대로 그 본질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창조되었으며 (2) '네페쉬 하야'가 되는 동기와 과정 및 방법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직접적이고도 친밀한 개입, 즉 코에 직접 생기를 불어넣는 특이한 방법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본절을 정리하면 여기 '네페쉬 하야'가 인간이 영적 존재임을 직접 언급한 구절로 오해되어서도 안되지만, 동시에 인간도 다른 동물들과 같이 '네페쉬 하야'가 되었긴 하나 특별히 하나님의 독특한 방법에 의해 창조 되었다는 차이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성 경: [창2:8]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에덴 동산]

⭕ 동산(*, 간) - '울타리를 치다'(히, 가난)에서 파생된 단어로 본래는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는 안전한 장소'를 의미한다. 그런데 70인역은 이를 '낙원'(*, 파라데이소스)으로 번역하고 있다. 한편 세계 여러 민족의 설화를 살펴보면 인간의 최초 거주지가 낙원이었다는 것이 의외로 많은데 이는 인류의 원조가 살던 에덴 동산에 대한 변형된 전승들이라 하겠다.

성 경: [창2:9]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에덴 동산]

⭕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 -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허락하셨던 최초의 양식은 동물이 아닌(9:3) 식물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때(1:29) 이는 분명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푼 또 다른 세심한 배려이다.

⭕ 생명 나무(*, 에츠 하하임) - 일차적으로 이 나무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전제로 인간 생명을 영속시키며 늘 강건한 힘을 공급해 주는 과실 나무이다(3:22). 한편 칼빈(Calvin)은 주장하기를, 이 나무는 아담과 하와가 그 과실을 먹을 때마다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토록 해주는 성례전적(聖禮典的) 의미를 지닌 나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더 이상 이 같은 하나님의 선물을 맛보지 못하는 비극을 초래하였다<3:22-24>.

⭕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 이 나무의 존재 가치는 인간이 신의 보호를 받는 애완 동물로서가 아니라 자유 의지를 소유한 전인격체로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었다. 세부 내용에 관해선 3:22-24 강해,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참조하여라.

성 경: [창2:12]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에덴 동산]

⭕ 베델리엄(*, 베돌라흐) - 공동 번역은 '브돌라라라는 향료'로 번역하였다. 향료로 쓰인 '방향성 수지'(芳香性樹脂)로 주로 인도 서북 지방 및 아프카니스탄에서 생산되고 있다.

⭕ 호마노(*, 쇼함) - '희게 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희미한 녹색을 띤 '녹주석'을 가리키기도 하고, 여러 색을 띤 '얼룩마노'(onyx)를 가리키기도 한다. 공동 번역은 이를 '홍옥수'로 번역하였다. 주로 대제사장의 흉패를 장식하는 데 쓰였다(출 25:7).

성 경: [창2:15]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에덴 동산]

⭕ 그 사람(*, 하아담) - 아담(사람)이란 말 앞에 정관사 '하'가 결합된 형태로 하나님께서 친히 육과 영을 접목시켜 만드신 바로 '그'를 뜻하는 말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되어 있다.

⭕ 이끌어(*, 이카츠) - 라카흐(취하다, 데리고 오다, 지정해 두다)에서 기원한 말로서 정신적인 지도자라는 의미가 강하다. 즉 단순히 육체만을 인도하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의 전인격을 붙잡으시고 당신이 지정해 두신 곳으로 친히 이끄셨음을 의미한다. 이는 강압이나 억지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발적인 의사(물론 하나님은 이 의사에서 적극 개입하셨음)에 따랐다는 점에서 신.인(神.人)협력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 두사(*, 야니헤후) - '쉬다', '머물러두다', '위안하다'의 야나흐'(*)에서 유래된 말로서 외부의 침입이나 내부의 근심이 전혀 없이 절대 평안을 유지하는 가운데 살도록 거처를 마련해 둔다는 뜻이다.

⭕ 다스리며(*, 레아베다흐) - 아바드(일하다, 경작하다, 봉사하다)의 단순 부정사로 아담의 평생 업이 땅을 중심한 노동이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노동의 원목적인 생계가 아니라 자연과 세계를 관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노동(직업)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것이란 천직 의식을 가질 때 고귀하며 의미있다.

⭕ 지키게 하시고(*, 레솨메라흐) - 어근 '솨마르'(*)의 뜻은 '울타리를 치다', '보존하다', '주의를 기울이다'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이 조금의 손상도 없이 보존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아끼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혹자는 이를 근거로 그 당시 하나님의 동산을 해칠 만한 악한 존재가 이미 나타났다고 주장하나 설득력이 없다. 한편 본절은 1:28에서 주어진 것과 동일한 '문화 명령'(cultural mandate)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의 권한을 위임하시고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관할토록 위탁하셨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인간은 만물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로서 세상을 정복하고 문화를 꽃피움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낼 책임이 있다.

성 경: [창2:16]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금단(禁斷)의 선악과]

⭕ 명하여(*, 예차우) - '차아'(명령하다, 지정하다, 맡기다)의 미래 강조형. 본절에 제시된 명령이 당시를 기점으로 해서 적용되는 것으로 도무지 거역하거나 불순종해서는 안될 지상 명령임을 보여 준다.

⭕ 임의로 먹되(*, 아콜 토켈) - 문자적으로는 '먹고 싶은 대로 먹되', '자유롭게 섭취하되'란 뜻이다. 이 말 속에는 '생명나무'(9절)의 실과까지도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완전한 특권을 부여했음을 보여 준다. 즉 인간에게 필요로 하는 모든 음식물이 주어졌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다음 절의 금지 조항과조화되어 인간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모두 제공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을 때에 인간이 도무지 핑계치 못할 것, 곧 책임의 소지가 분명히 당사자에게 주어질 것을 포함하는 '자유에의 허락'이다.

성 경: [창2:17]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금단(禁斷)의 선악과]

⭕ 먹지 말라(*, 로 토칼) - 이는 단순 부정으로서 결코 먹어서는 안된다는 강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깨닫는 바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그 '실과'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을 먹고자 하는 '의지'와 '행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순종과 불순종은 인간의 영원을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이다(렘 7:23-28).

⭕ 네가 먹는 날에는(*, 베욤 아칼레카 밈멘누) - 여기서 '날'이란 말에는 전치사(*, 베)가 붙어 '바로 그날 안에'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는 명령 거부에 대한 하나님의 단호하고도 엄정한 심판의 확실성을 나타내고 있다.

⭕ 정녕 죽으리라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준 절대 명령<3:4>이자 인간과 맺은 최초의 행위 언약이다. 즉 이는 (1)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임을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2) 역설적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면 영원히 살리라는 약속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언약(호 6:7)이다.

성 경: [창2:18]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생물들의 이름 부여]

⭕ 좋지 못하니(*, 로 토브) - '토브'(좋다)는 상대적으로 '더 낫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하신 뜻을 좇아 지으신 피조물 중에 보시기에 좋지 못한 것은 본래 하나도 없었다(1:31). 따라서 이 말은 다만 아담이 혼자 지내는 것보다 하와와 함께 거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낫다는 의미이다.

⭕ 돕는 배필(*, 에제르 네게드) - '조력자', 반려자'란 뜻이다. 이것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마땅한 역할이 어떠한 것인지를 암시해 준다(고전 11:9 ; 엡 5:24). 그러나 이 말이 남성 우위론의 근거로 오용(誤用)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남녀의 차이는 신체적, 기능적 문제이지 인격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다 그분의 성품을 함께 나눠 받은 동등한 인격체일 뿐이다(고전 11:11).

성 경: [창2:19]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생물들의 이름 부여]

⭕ 흙으로... 지으시고 - 일견 1:20-25과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나 그렇지 않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와 마찬가지로 말씀으로 각종 짐승을 지으시되 그 몸의 구성 성분은 흙으로 이루어지끔 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나 짐승들에게는 하나님의 생기 곧 영혼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간과는 비교될 수 없다(7절).

성 경: [창2:20]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생물들의 이름 부여]

⭕ 이름을 주니라(*, 이크라 쉐모트) - '이름을 짓다', '이름을 부르다', '이름을 공포하다'는 뜻이다.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그에 대한 소유권이나 종주권(宗主權)을 나타내는 행위였다. 그런데 여기 하나님께서 직접 피조물의 이름을 짓지 않으시고 그 권한을 아담에게 위임한 것은 만물보다 뛰어난 인간의 우월성(시 8:6)을 인정해 주셨다는 의미를 지닌다.

성 경: [창2:21]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여자의 기원과 결혼 제도]

⭕ 깊이 잠들게(*, 타르데마) - 황홀경에 빠지거나 환상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잠에 든 것을 뜻한다(욥 4:13). 이는 아담이 자연적인 수면에 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 사역에 의해 초자연적인 깊은 잠에 들었음을 증거해 준다.

⭕ 갈빗대(*, 첼라) - '차라'(구부리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갈빗대'란 뜻과 함께 '한쪽 편'이란 뜻도 지닌다. 그러므로 혹자는 이에 근거해 아담은 본래 남녀 양성을 지녔었는데 하나님께서 여성을 따로 떼어내셨을 것으로 추정한다(Obbink). 그러나 그 같은 견해는 딤전 2:13과 상충되는 헛된 공간일 뿐이다.

성 경: [창2:22]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여자의 기원과 결혼 제도]

⭕ 만드시고(*, 바나) - '수선하다', '세우다', '짓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미완성된 건물을 마침내 완공한 것 같이 여자 피조 사건은 아담만으로는 미흡했던(18절) 인간 창조 사역을 충족시켰다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여자를 남자처럼 흙으로 짓지 않으시고 아담의 갈빗대로 만드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 아담과 하와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완전한 합일체이다. 이러한 관계는 서로 정당한 부부의 연을 맺은 모든 자들에겐 영속(永續)되는 것이다(마 19:3-6). (2) 여자는 남자에게 있어서 마땅히 소중히 여김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자(엡 5:25-33) 서로가 인격적인 면에 있어서 동등체이다(고전 11:11, 12). (3) 따라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룬 부부는 서로간의 부족한 점을 사랑과 신뢰로 메꾸어 나가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고전 10:31).

성 경: [창2:23]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여자의 기원과 결혼 제도]

⭕ 여자라 칭하리라 - 아담이 자신의 아내를 가리켜 '여자'라 지칭한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20절을 참조하라.

⭕ 여자(*, 이솨) - '남자'를 뜻하는 '이쉬'(24절 ; 민 5:6)에서 파생된 말이다. 여자란 남자와 구별된 존재임을 강조하는 '네케바'(1:27)와는 달리 여자란 남자에게서 유래(由來)된 존재임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성 경: [창2:24]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여자의 기원과 결혼 제도]

⭕ 떠나... 연합하여... 한 몸을 - 본절에 나타난 바 최초 결혼에 나타난 3대 원리는 (1) 책임을 지닌 성숙한 존재로서 부모로부터 떠나는 '독립성' (2) 동등한 두 인격체가 만나는 '연합성' (3) 두 몸이 사랑으로 하나되는 '합일성'이다. 이러한 연합과 합일의 원리는 장차 신랑되는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되는 그의 교회와의 완전한 '연합'을 예표한다(엡 5:31, 32).

성 경: [창2:25]

주제1: [인간 창조와 에덴 동산]

주제2: [여자의 기원과 결혼 제도]

⭕ 부끄러워(*, 부쉬) - 몰상식한 일을 당하여 수치심에 빠지거나 비상적인 것에 접하여 당혹스러워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1) 그들의 몸과 마음이 모두 하나님의 영에 의해 성화되어 있었으며 (2) 그들의 전인격이 하나님께로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수치심도 틈탈 겨를이 없었음을 나타내 준다. (3) 그러나 이후 그들이 범죄하자 곧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는데(3:7) 이는 그들이 감각적 충동과 욕망에 끌려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16, 17절)을 파괴한 결과 그들의 정상적인 영육도 파괴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성 경: [창3:1]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뱀(사단)의 유혹]

⭕ 뱀(*, 나하쉬) - 본래 이 단어는 파충류를 가리키는 포괄적인 낱말이나 성경에서는 모두 '뱀'으로 번역된다.(사 27:1 ; 렘 8:17 ; 미 7:17). 한편 뱀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사나움을 강조하는 '사라프'(민 21:8 ; 사 30:6)와 '용'(욥 7:12 ; 시 74:13 ; 사 27:1 ; 렘 51:34)으로도 번역되며 특히 큰 뱀을 가리키는 '탄닌'(출 7:9 ; 신 32:33) 등이 있으나, 여기서 사용된 '나하쉬'는 사람을 꾀며 미혹하는 능력을 지닌 뱀의 교활함을 특히 강조하는 명칭이다.

⭕ 간교하더라(*, 아롬) - 좋은 의미에서는 '영리하고 신중한 것'(잠 12:16

; 22:3)을, 나쁜 의미에서는 '교활하고 기회주의적인 것'(욥 5:12 ; 15:5)을 뜻한다. 뱀은 본래 영특하게 피조되었으나 사단의 도구로 사용되자 그 지혜는 사악한 것으로 전락하였다<1-6절 강해 참조>.

⭕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 사단이 하와를 유혹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더 연약하고 또한 쉽게 미혹당할 수 있는 존재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벧전 3:7).

⭕ 하나님(*, 엘로힘) - 뱀이 '언약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명칭인 '여호와 하나님'(2:4)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지고자'(至高者)를 뜻하는 '엘로힘'(1:1)을 사용한 것은 아담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 의사를 표명하는 것이다.

⭕ 참으로 - '진실로'(truly), '정녕'(indeed that)이란 뜻으로 어떤 사실에 대한 강한 놀라움을 나타내는 의문사이다.

⭕ 먹지말라 하시더냐 - 원문의 정확한 번역은 '먹지 말라 한 것이 사실이냐?'. 사단이 하나님의 금지 명령을 몰랐을리 만무한데도 이처럼 물은 것은 (1) 하나님의 말씀과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2) 그분에 대한 철저한 불신 행위이다. 그러나 우리는 (1) 하나님께선 사람이 아니시므로 식언하거나 변개(變改)치 않으신다는 점(삼상 15:29)과 (2)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의무이자 복된 길임(신 6:4-9 ; 28:1-6)을 기억해야 한다.

성 경: [창3:2]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뱀(사단)의 유혹]

⭕ 말하되(*, 아마르) - '대답하다', '애기하다', '명령하다', '선언하다' 등과

같이 의사 소통의 수단을 포괄하는 다양한 뜻을 지닌다. 한편 뱀과 여자가 서로 의사(意思)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1) 범죄하기 이전 인류는 오늘날과 같은 언어 이상의 언어로 동물과 의사 소통이 가능했다. (2) 언어는 인간 고유의 기능이므로 당시 뱀이 여자와 의사 소통한 것은 사단이 뱀의 입을 빌어 여자와 얘기한 것이다. 이 중 전자는 언어 분열 현상(11:1-9)이 하나님께 범죄한 결과였다는 점에 부합되며, 후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동물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된 존재로 지으셨다는 점에 부합된다. 그렇지만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입각할 때 후자가 더 타당한 듯하다.

⭕ 먹을 수 있으나(*, 노켈) - '아칼'(먹다, 소비하다, 삼키다)의 미완료형으로 현재 뿐 아니라 앞으로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는 허용적 의미이다. 만일 아담이 범죄치 아니하였더면 오늘날의 인류도 각종 과실과 함께 생명나무 실과를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22절).

성 경: [창3:3]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뱀(사단)의 유혹]

⭕ 만지지도 말라 - 하나님의 금지 명령과는 차이가 있는(2:17) 과장된 표현이다. 이는 (1) 하나님의 명령이 하와에게 있어선 너무 엄격한 것으로 비쳤다는 점과 (2) 하나님께 대한 그녀의 신뢰와 사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드러내 준다.

⭕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 직역하면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앞 구절과는 달리 하나님의 절대 명령(2:7)을 약화시킨 표현이다. 이처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 결과 그녀가 악의 유혹에 넘어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마 14:27-32).

성 경: [창3:4]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뱀(사단)의 유혹]

⭕ 결코 - 2:17의 '정녕'(surely)과 동일한 말로 불변하는 사실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절대 명령을 절대적인 거짓으로 맞바꾸고 있는 장면에서 우리는 사단의 거짓된 속성을 살펴볼 수 있다(요 8:44).

성 경: [창3:5]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인간의 범죄]

⭕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베욤 아칼르켐) - 여기선 '욤'(날)이 '순간', '때'란 의미로 사용되어 '너희가 그것을 먹자 마자', '너희가 그것을 먹는 순간에'란 뜻이다. 이것은 하와의 욕망을 충동질하는 강한 유혹의 말이다.

⭕ 너희 눈이 밝아 - 문자적 의미는 '너희 눈이 열려'(your eyes shall be opened). 구약에서 이러한 표현은 대개 이상(異常)을 보거나 진리를 아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21:19 ; 민 22:31 ; 사 35:5). 그런데 여기서는 선악을 분별하는 분별력을 획득하게 됨을 뜻한다.

⭕ 하나님과 같이 되어 - '지고한 신성'(Supreme Deity)을 획득하여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인 거짓말에 불과하였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는 오히려 그들의 순전했던 영안(靈眼)이 어두워졌을 뿐이다(7절).

⭕ 아심이니라(*, 요데아) - '야다'(알다, 이해하다, 탐지하다)의 완료 분사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일관되게 알고 계셨다는 의미이다.

성 경: [창3:6]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인간의 범죄]

⭕ 먹음직도...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 선악과가 원래 이러했다기 보다는 하와가 경계심을 늦추고 탐욕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다는 뜻이다.

⭕ 보암직도 하고 - '눈이 추구하는'이란 의미로 육체의 안목과 정욕(벧전 2:11)에 사로 잡혀 허상을 보고, 느낀 것을 뜻한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죄악에 빠지는 것을 엄히 경계하셨다(마 5:28, 29).

⭕ 그도 먹은지라 - 아담은 하나님의 금지 명령을 직접 들은 자로서(2:16, 17) 여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토록 이끌 책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악과를 받아 먹은 것은 (1) 그의 자의로 여자의 범죄에 동참하였다는 곳과 (2) 죄는 놀라운 전염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증거해 준다(롬 7:11).

성 경: [창3:7]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인간의 범죄]

⭕ 밝아(*, 파카흐) - 문자적 뜻은 '개안(開眼)되다'. 그러나 이것은 시력이 항상 더 잘 보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혹은 보아서는 안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뜻이다.

⭕ 벗은 줄을 알고 - 타락 전과는 달리 수치심을 느낀 까닭은 창조시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았던 순수하고 고귀한 영적 순결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치마를 사용해 몸을 가리울 수 없었다<7-13절 강해 참조>.

성 경: [창3:8]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인간의 범죄]

⭕ 날이 서늘할 때에 - 직역하면 '바람이 부는 때에', 서늘한 이 때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갔던 아담과 하와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들의 행위를 뒤돌아보기에 알맞은 시간이었다. 비록 인간은 하나님 곁을 떠난 범죄 하였지만 하나님께선 그들을 포기할 수 없으셨기에 적절한 시점에 그들을 찾아오셨다.

⭕ 음성(*, 콜) - 사람의 '목소리'나 일반적인 '소리'를 모두 뜻하나,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동산에 찾아오실 때 난 기척인 듯하다.

⭕ 낯(*, 파님) - 문자적 뜻은 '얼굴', '앞'이나 여기선 대유법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전존재' 혹은 하나님의 '영광'을 뜻한다. 한편 시 105:4에선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는 것을 '그의 얼굴을 구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 숨은지라 - '스스로를 숨기다'란 뜻이다. 그들은 지은 죄를 깨닫고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을 뵐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범죄한 인간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두려움(10절) 때문에 스스로를 숨겼다.

성 경: [창3:9]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인간의 범죄]

⭕ 네가 어디 있느냐 -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실존을 올바로 파악키를 애타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토로되어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어디에 숨었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죄를 자복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 이처럼 물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처럼 잃어버린 양을 애타게 찾으신다(눅 15:3-7).

성 경: [창3:10]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인간의 범죄]

⭕ 듣고(*, 쇠마티) - '솨마'(주의깊게 듣다, 이해하다)의 완료형으로 아담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서 그 같은 부르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때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지 말고 그 즉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어야 했다.

⭕ 벗었으므로 - '완전 나체인 고로'란 뜻. 그러나 이는 (1) 그들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게 된 근본 원인(8절)이 아니며 (2) 또한 그들은 부분적으로나마 치부를 가리우고 있었으므로(7절) 잘못된 답변이다. 이처럼 아담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회개의 기회를 선용치 못하고 도리어 변명하기에 급급하였는데, 그 결과는 가중되는 죄악(12절)과 그에 마땅한 준엄한 형벌일 수밖에 없었다(17-19절 ; 약 1:15). 용서받는 첫 걸음은 지은 죄를 자복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통회하는 심령을 멸시치 않으신다(시 34:18 ; 51:17).

성 경: [창3:11]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인간의 범죄]

⭕ 누가(*, 미) - '무엇이' 또는 '어떤 자가'란 뜻. 벌거벗은 것을 깨닫게 된 원인이 아담 스스로에게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반어문이다.

⭕ 고하였느냐 - 원뜻은 '반대편에 서다.' 여기서부터 '기밀을 누설하다', '죄악을 고발하다' 등의 뜻이 파생되었다(수 2:20 ; 에 6:2 ; 렘 20:10). 본절 전체에서 이 말의 의미는 '누가 너의 벗은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하더냐'이다.

⭕ 네가 먹었느냐 - 아담의 잘못이 어떠한 것인지를 지적함과 동시에 아담이 솔직히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기를 애타게 원하시는 거듭된 반문이다.

성 경: [창3:12]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인간의 범죄]

⭕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 - '당신이 내 곁에 두신 여자'란 뜻. 하나님께서 하와를 주신 것에 대해 도리어 원망하며 또한 부부간의 한 몸 의식(2:24절)을 팽개쳐 버리는 무책임한 말이다.

성 경: [창3:13]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인간의 범죄]

⭕ 어찌하여(*, 마) - '어떻게'(how) 또는 '왜'(why)라는 뜻이 아닌 '무엇 때문에'(what)라는 물음이다. 하와의 죄악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사악한 교만과 욕망 때문에 빚어진 것임을 지적해 준다(5, 6절).

⭕ 꾀므로 - '잘못 인도하다'는 말. 즉 가야할 길을 가지 못하게 막고서 그릇된 길로 이끌다는 뜻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하와는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녀도 잘못을 시인치 않고 책임 전가에만 급급하였으니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 밖에 없었다(16절).

성 경: [창3:14]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범죄자에 대한 형벌]

⭕ 모든 짐승보다 - '모든 짐승 가운데서', '모든 짐승들로부터'란 뜻이다. 즉 사단의 도구로 전락한 뱀은 이후 짐승들로부터 조차 경멸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 배로 다니고 - 천박하고 미천한 존재로 떨어지고 말았음을 나타내 주는 구체적 사례 중의 하나이다. 후일 모세 율법은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였는데(레 11:41-44) 이제 뱀은 그러한 부정하고 추악한 것의 대명사로 손뽑히게 되었다. 이처럼 뱀이 배로 기어다니게 된 것은 분명 저주의 결과이기 때문에 저주받기 이전의 뱀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이동했을 것이다(Luther. Josephus, Lange). 여하튼 사단의 도구가 되어 아담과 하와를 꾄 죄로 저주를 받아 배로 기어다니게 된 뱀은 (1) 땅(사단)에 속한 모든 멸망의 후손들을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2) 그 머리가 낮은 땅에 있음으로 해서 비록 그리스도의 발꿈치는 상하게 할지언정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 머리가 결정적으로 쉽게 상할 필연적인 처지로 전락되고 만 것이다(15절 ; 마 4:1-11).

⭕ 종신토록(*, 콜 예메 하아카) - 직역하면 '너의 생명의 모든 날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시간, 즉 날과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히브리인들의 시상이 투영되어 있는 관용적 표현이다.

⭕ 흙을 먹을지니라 - 뱀이 배로 기어다닐 때 그 입으로 흙이 들어간다는 것을 근거로 이 말의 문자적인 뜻을 주장하기도 하나, 실제 뱀은 흙을 식물(植物)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문자적 뜻보다는 '흙으로 핥으리라' 정도의 상징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께 징계받은 피조물이 종신토록 멸시와 굴욕 가운데 처하는 것을 종종 이런 식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시 72:9 ; 사 49:23 ; 애 3:29 ; 미 7:17). 한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와는 달리 이처럼 뱀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전혀 허용치 않고 곧바로 저주를 선포하신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1) 인간은 뱀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이 반영된 존재로서(1:27) 하나님의 특별 은총을 입은 존재이다. (2) 사단과 그의 하수인은 하나님께서 달리 구제할 방도가 없을 만큼 이미 완전 타락한 자들이다.

성 경: [창3:15]

주제1: [죄의 기원과 일류의 타락]

주제2: [범죄자에 대한 형벌]

⭕ 원수(*, 에바) - '적대감', '증오감'이란 뜻으로 그리스도와 성도들에 대해 사단과 그의 하수인들이 갖게 될 악감(惡感)을 의미한다(요 15:18, 19).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보다 즐거워해야 하는데 그 까닭은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우리의 상이 커지기 때문이다(마 5:12).

⭕ 머리(*, 로쉬) - 신체상의 '머리' 뿐 아니라(48:14 ; 신 21:12) 지위나 장소에 있어 '최고 높은 것'(대하 13:12 ; 애 1:5)까지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뱀이 최고 귀한 신체 부위인 머리를 상하게 된다는 것은 그가 도저히 회복 될 수 없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는 뜻이다.

⭕ 발꿈치(*, 아케브) - 원뜻은 '끝부분'으로 신체 기능면에서든지, 지위면에서든지 별로 중요치 않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이 발꿈치를 상하게 된다는 것은 그가 비록 해(害)를 당할 것이긴 하나 그것이 치명적이지 못할 것임을 의미한다.

성 경: [창3:16]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범죄자에 대한 형벌]

⭕ 고통(*, 이차본) - '아찹'(새기다, 각성시키다)에서 온 말로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해산의 고통을 더하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일러준다. 즉 (1)그 같은 고통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범죄가 얼마나 치욕스럽고도 중대차한 것이었는지를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2) 인간이 범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겪으시는 심적 고통 역시 여인이 겪는 해산 고통에 비견할 만한 것임을 주지 시키기 위함이다.

⭕ 수고하고 - '슬픔 가운데', '고통 중에'란 뜻. 해산 때 당하는 고통이 너무나 크고 힘들 것임을 시사해 주는 말이다.

⭕ 사모하고(*, 테슈카) - '슈크'(...을 쫓다, 원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의뢰하다', '기대다'란 뜻. 그러나 이것은 여자가 남자에게 종속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기 남편의 권위를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 준다는 뜻이다(엡 5:22, 23).

성 경: [창3:17]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범죄자에 대한 형벌]

⭕ 네 아내의 말을 듣고 - 하와를 주관하여 선한 길로 이끌어야 할 아담이 오히려 아내의 장중에서 놀아난 것(6절)을 책망하는 말이다.

⭕ 수고하여야(*, 에쳅) - '땀흘려 가며 일하는 노동'이나 그에 수반되는 '고생스러움'을 의미한다. 물론 타락 전에도 아담은 노동을 했었다(1:28). 그러나 그것은 자기 성취감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복된 성격의 것이었지 결코 생계 유지의 수고스러운 방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노동 자체가 지니고 있는 가치만은 여전히 존중되어야 하는데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역 자체가 신성한 노동이었기 때문이며 (2)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1:28)은 이미 인간 타락 전에 주어진 것으로 영원한 효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 경: [창3:19]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범죄자에 대한 형벌]

⭕ 얼굴(*, 아프) - '파님'(얼굴, 8절 주석 참조)과는 다른 말로 원뜻은 '코', '콧구멍'(7:22 ; 사 2:22 ; 겔 8:17). 그렇지만 코가 얼굴을 대표할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안면 부위란 점에서 '얼굴'이란 뜻이 새로 파생되었다(삼상 25:41 ; 대하 7:3 ; 느 8:6).

⭕ 필경은 - '시발점', ...에 까지, '...을 향하여'란 뜻. 인간의 범죄 결과, 그들의 여생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여행길에 불과할 뿐임을 교훈해 주는 말이다(2:17).

⭕ 돌아갈 것이니라(*, 타슈브) - '슈브'(되돌아가다, 물러가다)의 미래 완료형으로 장차 어느 순간에는 이미 한 줌의 흙으로 화해 있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은 인간 구성 요소가 흙 뿐이므로 필연적으로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행위 언약'(2:17(에 대한 재확인일 뿐이며 따라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다만 죽음의 방법을 얘기한 것이다.

성 경: [창3:20]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 산 자 - 본래는 살아있는 모든 '생물'을 뜻하는 말이다(1:24). 그러나 여기서는 넓은 의미에서 뱀의 후손과는 구분되는 하나님의 택한 자녀들을 의미한다(15절).

성 경: [창3:21]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 지어(*, 아사) - '만들다'는 뜻외에 '지정하다'는 뜻도 지닌다(24:14 ; 시 104:19). 따라서 이는 (1)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하실 때처럼 직접 옷을 만드신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2)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지시하시고 또한 영감을 주셔 그들이 옷을 만들어 입도록 하신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하나님께서 동물을 잡아 인간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신 사건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의미가 있다. (1) 이것은 인간 죄를 속하기 위한 첫번째 희생이자 구약 속죄 제사의 원형이다(레 4:13-221). (2)이는 장차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예표하는 원시적 사건이다(롬 3:25).

성 경: [창3:22]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실락원(失樂園)]

⭕ 보라(*, 헨) - 기본 불변사로 대개 놀람이나 당혹감을 나타내는 말이나(출 8:26) 여기선 탄식하는 말로 쓰였다.

⭕ 하나같이 되었으니 -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주 하나님 간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좁힐 수 없는 본원적 차이가 있다(사 55:8, 9). 따라서 이 말은 (1) 인간이 선악을 인식할 수 있는 영악한 도덕적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며 (2) 인간의 경솔하고도 어리석은 범죄 행위를 한탄하는 풍자적인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 하시고(*, 펜) - '...하지 않도록', '...하지 않기 위하여'란 뜻. 이 말은 생명나무 실과를 먹게 함으로 인하여 인간의 영원한 육체적 생존을 가능케 하는 생명력을 제공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아울러 이는 타락 이전엔 애초부터 죽음이란 것을 알지 못했던 인간과 하나님 간의 정상 관계가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파괴되었음을 선언하는 말이다. 한편 생명나무가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에 대해선 22-24절 강해를 참조하라.

성 경: [창3:23]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실락원(失樂園)]

⭕ 내어 보내어 - '내던지다', '포기하다'는 뜻으로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과 인간 간의 관계 단절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성 경: [창3:24]

주제1: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주제2: [실락원(失樂園)]

⭕ 쫓아 내시고 - 강권적인 힘을 사용하여 밖으로 몰아내거나 다른 곳으로 추방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서 타락한 아담과 하와를 황급히 에덴 동산 밖으로 쫓아 내신 것은 단순한 형벌의 의미만이 아니라 심오한 구원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비참한 상태에서 만일 인간이 동산의 생명 과실을 따먹게 된다면 그것은 육체적 고통이나 죽음 이상의 영벌(永罰)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일단 아담과 하와를 급히 동산으로부터 쫓아 내신 후 새로운 구속 사역을 계획하셨던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22-24절 강해를 참조하라.

성 경: [창4:1]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가인과 아벨]

⭕ 동참하매(*, 야다) - 원뜻은 '속속들이 알다', '체험적 지식을 갖다'. 부부간의 성 행위는 단순한 육체 관계가 아니라 서로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고 애정을 나누는 정신적 상호 교류 관계여야 함을 교훈한다.

⭕ 여호와로 말미암아 - 문자적 뜻은 '여호와로부터'. 그러나 벨겟역이 번역하고 있듯이 정확한 의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per Dominum)이다. 이는 하와가 자신의 득남을 하나님의 선물로 인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자의 후손'(3:15)에 대한 약속의 성취로 이해했음을 나타내 준다.

성 경: [창4:2]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가인과 아벨]

⭕ 아우 - 원어 '아흐'는 '한 형제'(9:5 ; 27:6 ; 45:14), '친척'(12:5 ; 28:2), '동족'(레 25:3) 등을 뜻한다. 이는 단순한 혈연 관계에 앞서 서로 간을 떼놓을 수 없는 본원적 사랑과 신뢰를 중요시하고 있는 단어이다.

⭕ 양치는 자(*, 로에 촌) - '촌'은 '양'뿐 아니라 '염소' 등 몸집이 비교적 작은 모든 가축을 뜻한다(27:9 ; 민 32:16). 따라서 아벨은 여러 종류의 가축을 돌보는 자였음을 알 수 있다.

⭕ 농사하는 자 - 직역하면 '땅의 노예', '땅을 섬기는 자'. 대지(大地)에 대한 고대인들의 애정이 잘 드러나 있는 표현이다. 한편 농업과 목축업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형태의 직업으로 하나님의 문화 명령(Cultural mandate)속에 이미 계시되어 있었다(1:28).

성 경: [창4:3]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가인과 아벨]

⭕ 세월이 지난 후에 - 문자적 의미는 '날들의 마지막에'라는 성경상의 관용어이다(40:1). 그런데 혹자는 이를 '수확할 때가 되어'란 뜻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 소산 - 원어 '페리'(*)는 '과실', '열매'란 뜻으로 땅을 경작하여 거둔 '과실', '열매'란 뜻으로 땅을 경작하여 거둔 각종 수확물을 의미한다(3:2 ; 레 25:19 ; 왕하 19:29).

⭕ 제물(*, 민하) - '마나'(선물로 삼다)에서 파생된 말로 4절에서처럼 가끔은 '희생 제물'을 의미하기도 하나, 대개는 고운 밀가루와 감람유, 유황을 제물로 삼아 드리는 소제(素祭)를 뜻한다(레 2:1-16). 이러한 소제는 번제를 드릴 때마다 항상 함께 드려졌는데 이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충성을 상징하는 제사이다.

성 경: [창4:4]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가인과 아벨]

⭕ 첫 새끼 - 두가지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 (1)아벨이 거둔 첫 소산이란 점에서, 가장 귀한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쳤다는 의미를 지닌다(출 13:2). (2) 희생 제물이란 점에서,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산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3:21>.

⭕ 기름 - '살지다'란 단어에서 파생된 말로 '지방'(fat), '기름진 것'(45:18)을 의미한다. 즉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또 다른 양들 가운데 가장 살지고 기름진 것을 골라 하나님께 믿음으로(히 11:4) 바쳤다.

⭕ 열납하였으나(*, 솨아), '주목하다', '존경하다'는 뜻. 즉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제물이므로 기쁘게 받아들였다는 의미이다.

성 경: [창4:5]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가인과 아벨]

⭕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 '쳐다보지도 아니하셨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 제물에 대해선 관심조차 기울이지 아니하셨음을 뜻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벨과 가인에 대해 상이한 반응을 보이신 까닭에 대해선 1-15절 강해를 참조하라. 한편 본문만으로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How) 제사를 받아들아거나 혹은 거부하였음을 나타내셨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아벨의 제물은 태우고, 가인의 제물은 그냥 내버려두시는 방법을 사용하셨을 수 있다(완상 18:37, 38).

⭕ 안색이 변하니(*, 이풀루 파나우) - '얼굴을 강타하다'는 말로 극심한 분노나 불만에 의해 안면 근육이 경직된 것을 의미한다(욥 29:24; 렘 3:12). 이것은 죄인의 일반적 태도인데 자신의 제물이 열납되지 못한 것을 본 가인은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했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방자히 불만을 토로하였다.

성 경: [창4:7]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

⭕ 네가 선을 행하면... 못하겠느냐 - 죄를 짓지 않은 자는 떳떳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히브리인들의 관용귀이다. 따라서 본절은 '네가 잘했다면 왜 떳떳하지 않겠느냐?'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 낯을 들지 - '얼굴을 높이다', '의기 양양한 표정을 짓다'는 뜻. 즉 낯을 든다는 것은 양심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 선을 행치 아니하면 - '잘못을 뉘우치고 선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갖기는 커녕 오히려 더 완악한 마음을 갖는다면'이란 뜻.

⭕ 죄(*, 하타트) - '하타'(빗나가다, 과녁을 맞추지 못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인간이 하나님의 뜻과 법을 벗어나 곁길로 나아가는 것이 곧 죄임을 일깨워 주는 단어. 여기서는 죄의 화신(化身)인 '사단'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함이 적절하다.

⭕ 엎드리느니라 - '잠복하다', '쭈그리다'는 뜻으로 먹이를 단숨에 낚아채기 위해 웅크리고 있는 짐승을 연상 시켜준다. 따라서 '죄가 문에 엎드린다'는 말은 사단이 마음 문, 곧 심령에 침입하여 악으로 그를 굴복시키기 위해 호시 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뜻이다.

⭕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엘레카 테슈카토) - '죄가 너를 향하여 기를 쓰고 달려들려고 하나'란 뜻. 즉 죄(사단)는 마치 우는 사자와 같은 것이어서 삼킬 것만 있으면 그 즉시로 달려든다는 의미이다(벧전 5:8).

⭕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 외부로부터 찾아드는 죄의 유혹 뿐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일어나는 죄의 욕망을 물리치고 이겨내라는 뜻. 그러나 이는 인간의 의지나 결단, 인내만으론 온전히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니 항상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야 할 것이다(마 26:41 ; 요 16:13).

성 경: [창4:8]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

⭕ 고하니라(*, 요메르) - '아마르'(말하다)의 미래 완료형으로 가인이 얘기한 시점이 하나님께로부터 책망(6, 7절)을 듣고난 뒤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한 때였음을 알려줌. 한편 본절 내에는 이 말에 걸리는 목적어가 없다. 그러나 70인역(LXX)이나 사마리아 오경, 벨겟역(vulgate) 그리고 공동 번역은 이 말의 목적어가 '들로 가자'란 말을 수록하고 잇다. 즉 가인은 하나님의 책망과 권면을 듣고서도 회개는 커녕 분노와 불만의 억제치 못한 채 아벨을 죽이려 들판으로 꾀어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목적어가 본문보다 앞에 나오는 경우가 흔한 히브리 문법의 특징상 가인이 하나님께로부터 들었던 책망(6, 7절)을 그대로 아벨에게 이야기 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 아우 - 이미 2절에서 다룬 단어이다. 그런데 본장에서 이 단어가 거듭거듭 나오는 까닭(9-11절)은 (1)'형제 살인'이라는 가인이 범한 죄의 흉악성을 강조하며 (2)아담이 지은 죄(3:6)의 영향을 단 시간 내에 골육지친 간의 불화와 살인으로까지 발전되었음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 쳐 죽이니라 - 원뜻은 '죽을 의도를 가지고 때리다'이다. 가인의 마음이 확고 부동하게 사단에게 정복당해 있었음을 증거해 주는 말이다.

성 경: [창4:9]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

⭕ 네 아우... 어디 있느냐 - 최초 타락한 아담에게 주셨던 질문과 동일한 성격의 질문이다<3:9>. 곧 지금이라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라는 독촉인데, 이처럼 범죄한 인간을 쉽게 버리지 않으시고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기인한다(출 34:6 ; 시 33:5).

⭕ 알지 못하나이다(*, 로 야다티) - '야다'(알다)의 과거 완료형 부정으로 '나는 처음으로 알지 못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곧 형제에 대한 우애와 책임을 부인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전자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만하려 든 뻔뻔스런 대답이다. 범죄한 인간이 그럼에도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것 뿐인데 이처럼 가인은 도리어 하나님을 속이려 들었으니 그의 결국이 어떠할런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지키는 자 - '돌보는 자', '시중드는 자', '파수꾼' 등을 의미한다. 가인은 형으로서 마땅히 동생인 아벨을 돌보며 지켜 주어야 할 인간적 책임이 있는 자였다.

⭕ 니이까(*, 하) - '그렇지 아니하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는 의문사이다. 즉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런지는 알 수 없으나 아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로 곧 형제간의 관계성 단절을 선언하는 뻔뻔한 반문이다.

성 경: [창4:10]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

⭕ 무엇 - 원어 '메(*)는 원래 '무엇', '어떻게', '왜' 등과 같은 뜻의 의문사이나 간혹 '얼마나'라는 감탄사로 쓰이기도 한다. 여기선 탄식의 의미가 가미되어 '그토록 놀라운 일' 정도의 뜻이다.

⭕ 하였느냐(*, 아사) - '행하다'(출 40:16)는 뜻외에 '범하다'(레 4:2)는 뜻도 지닌 단어로 여기선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는 의미이다.

⭕ 호소하느니라 - 원뜻은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다'. 즉 '사람 살려!'라고 부르짖는 비명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때로는 억압받는 약자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법에 간절히 호소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왕하 8:3). 그러므로 '핏소리가 하나님께 호소한다'는 것은 그분께서 무죄한 자의 피흘림을 친히 아시고 그것을 절대 간과치 아니하신다는 뜻이다(시 37: 12-15). 한편 인간 생명은 하나님께서 수여하신 것으로 그분만이 홀로 좌우할 수 있다(9:5, 6). 따라서 인간이 타인의 생명을 해(害)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중요한 도전 행위이니 비록 인간측의 호소가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선 응당 이일에 대해 신원(神寃)하실 것이다(살전 4:6).

성 경: [창4:11]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가인에 대한 저주]

⭕ 땅에서(*, 민 하아다마) -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구절이다. (1)'그 땅에서부터'란 뜻. 이는 하나님께서 땅을 사용하시어 가인에게 저주를 내리셨다는 의미가 된다. (2) '그 땅보다 더 많이'란 뜻. 이는 인간 범죄로 말미암아 인간과 더불어 자연계가 함께 당하고 있는 고통<3:17>보다 더욱 극심한 고통과 저주가 가인에게 임할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성 경: [창4:12]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가인에 대한 저주]

⭕ 밭 갈아도... 주지 아니할 것이요 - 하나님께서 토양의 생산력을 제어하사 가인에게 정당한 노동의 소출(所出)을 허락치 아니하시겠다는 뜻(신 11:17). 대지를 제 2의 고향으로서 따스한 어머니의 품과 같이 여겼던 고대인들의 사상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께서 가인과 대지와의 정상 관계를 단절시킨 이 형벌은 얼마만한 저주의 성격을 띠고 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효력 - 원어 '코아흐'(*)는 '힘'(strenght), '생산력', '능력', '본질'등과 같은 여러 뜻을 지니고 있는데 여기서는 인간이 식물(植物)로 삼는 각종 채소류와 곡물류를 의미한다(1:29 ; 2:5).

⭕ 피하며 유리하는 자(*, 나 와나드) - '나'(도망자, 피난자)는 '누아'(계속해서 도망치다, 흔들리다)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로부터 내어침을 당한 가인이 다른 피조 세계에서조차 배척당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일생 동안 심적으로 쫓기는 삶을 살았음을 시사해 준다. 두번째로 단어인 '나드'(방랑자, 부랑자)는 '누드'(헤매다, 방황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가인이 한 곳에 안주치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나그네 삶을 살았음을 증거해 준다. 가인이 그 같은 삶을 산 이유는 (1) 아무리 수고하여도 그에 준하는 소산을 얻지 못하자 다른 삶의 터전을 구하기 위해 (2) 양심의 가책과 고통에 짓눌려 심적 안정을 누리지 못했기 때문에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 경: [창4:13]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가인에 대한 저주]

⭕ 고하되(*, 아마르) -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다'(레 5:5 ; 렘 3:13)와는 달리, 명령을 하달하거나<1:3> 자신의 의사를 개진(開陣)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대상 21:17). 가인이 자신의 죄에 대해선 회개치 않고 단지 형벌이 중한 것에 대해서만 절망, 탄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 죄벌(*, 아온) - '아와'(구부리다, 사곡되이 행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본래는 '죄', '악', '불법'을 뜻하나(15:16 ; 수 22:17 ; 단 9:13) 이차적으로는 본절에서와 같이 죄에 대한 '징계', '형벌', '심판'을 뜻하기도 한다(욥 19:29).

⭕ 견딜 수 없나이다(*, 민느소) - 기본 어근은 '나사'(받아들이다, 감당하다, 열망하다). 능력과 인내 면에서 역부족이라는 뜻이 아니고 부과된 형벌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범죄하고서도 하나님께 반문했던 가인의 뻔뻔스러움(9절)을 회상시켜 주는 구절이다. 하나님 앞에 범과한 인간은 자신에게 미칠 형벌에 대해 염려하거나 어떻게든 이를 면해 보려 발버등쳐서는 안되며 마땅히 자신의 죄에 대해 애통하며 괴로워해야 한다(사 6:5 ; 눅 23:41). 그리할 때 하나님께선 우리를 긍휼이 여기사 비록 진홍같이 붉은 죄라도 양털같이 희게 씻어 주실 것이다(사 1:18).

성 경: [창4:14]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 시작]

주제2: [가인에 대한 저주]

⭕ 오늘(*, 하욤) - '욤'(날, 때)에 정관사 '하'가 붙은 것으로 '바로 이 날'이란 뜻. 이는 가인이 범죄한 데 대해 하나님의 즉각적인 형벌이 선고되었음을 강조해 주는 말이다.

⭕ 이 지면에서...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 성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지 못하게 되었다'란 말은 그분의 관심권 밖으로 벗어나 더 이상 그분의 도움과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다(신 31;8 ; 시 104:29). 가인은 이처럼 끝까지 자신의 죄에 대해선 생각지 않고, 범죄한 결과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배척당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공포에만 사로 잡혀 이러한 본능적 비명을 지른 것이다.

⭕ 나를 만지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 히브리인들에게서 독특하게 찾아볼 수 있는 '고엘 제도'(민 35:19-21), 즉 자신의 혈족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경우 반드시 그 죽은 자의 일가 친척이 보복토록 규정하고 있는 율법을 상기시켜 준다. 이와 유사한 규정은 고대 로마인이나 고울인(Gaul, 프랑스인)에게서도 발견되는데 어떤 범죄로 인해 추방령을 당할 자는 모든 법적 권한을 박탈당했다. 따라서 그 누구라도 자유롭게 그를 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본절은 성경의 난해한 구절 중 하나로 남는데, 그 까닭은 당시 아담과 하와 외에 가인에게 복수할 또 다른 사람이 있었는가 하는 의문점 때문이다. 즉 1장부터 본장에 이르기까지의 기록 중에는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이 네 인물만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 학자들간에는 서로 의견이 분분한데 그중 대표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장차 태어날 아담의 또 다른 후손을 염두에 둔 말이다(Delitzsch). (2) 굶주린 들짐승을 가리킨다(Josephus). (3) 이미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태어나 도처에 살고 있는 많은 자손들을 의미한다(Havernick). 다만 이들은 구속사에 필요한 인물만을 선택 기록하는 성경 기록 특징상 성경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러한 견해 중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을 뿐 아니라 뒤에 이어지는 문맥과도 부합되는 견해는 세번째 견해이다.

성 경: [창4:15]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가인에 대한 저주]

⭕ 벌 - 단순한 '형벌'이 아닌 '복수'(vengeance)를 의미한다(삼상 24:12 ; 겔 24:8).

⭕ 칠 배(*, 쉬브아타임) - '쉬브아'(일곱)의 쌍수(dual number)로 '일곱번' 또는 '일곱 배'란 뜻.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7'은 완전수이니(2:1-3 강해 참조) 벌을 일곱 배나 내리겠다는 것은 완전하고도 철저하게 보응하겠다는 의미이다(레 26:28).

⭕ 표 - 원어 '오트'(*)는 '기념비', '증거믈', '깃발', '표시'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이 문자 그대로 어떤 외형적인 표식인지 아니면 가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내적 확신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쩌면 하나님께선 아하스의 일영표(日影表)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나 물러나게 하심으로써 히스기야를 확신시켜 주셨던 것처럼(왕하 20:8-11), 어떠한 표적을 행하사 가인에게 확신을 심어 주셨을런지도 모른다.

⭕ 죽음을 면케 하시니라 -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계명에 의하면 살인자는 당연히 처형토록 되어 있다(9:6 ; 출 21:12 ; 레 24:17 ; 민 35:16-212, 31). 그렇지만 정작 하나님께서는 인류 최초 살인자인 가인을 살려 주셨다. 따라서 그 까닭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데 그중 가장 개연성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죄악이 관영(貫盈)할 때까지 심판을 유보하신 것뿐이다. 이는 추수 때까지 알곡과 가라지가 한 밭에서 자라도록 허용하시는 하나님의 심판 원리(마 13:24-30)에 근거한 견해이다. (2)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다. 즉 사람들은 가인이 당하는 저주와 고통(12, 13절)을 보고서 살인의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를 교훈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3) 계명을 세우사 인간에게 생명을 주관할 수 있는 절대자이심을 인지시키기 위함이다. 아뭏든 본절은 죄인에게까지도 미치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를 보여 준다(겔 33:11).

성 경: [창4:16]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인류 최초의 성읍 에녹]

⭕ 떠나 나가(*, 야차) - 단순히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8:7 ; 신 4:45) 외에 '달아나다', '피하다'(렘 11:11)란 뜻도 지니고 있다. 이는 가인이 하나님께 쫓겨나기에 앞서 스스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려는 의사가 강했었음을 시사해 준다.

⭕ 거하였더니(*, 야솽) - '정착하다', '계속하다'는 뜻.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는 저주에도 불구하고 한 곳에 안주하려는 가인의 욕망을 드러내 준다.

성 경: [창4:17]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인류 최초의 성읍 에녹]

⭕ 아내 - 아담, 하와 사이에 가인과 아벨외의 또 다른 자손이 있었음<14절>을 뒷받침 해주는 구절이다. 한편 가인의 아내는 가인의 여동생이었거나 다른 형제가 낳은 딸이었을 것인데 종족이 분화되지 않았던 고대 사회에서의 근친 결혼은 피치 못할 것이었다.

⭕ 에녹 - '시작'이란 뜻. 가인에 이어 그로부터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인간 계보(18-24)가 시작되고 있음을 시사해 주는 이름이다.

⭕ 성 - 문자적 뜻은 '영원한 거주지'. 그러나 이것은 근대적 의미의 성읍이 아니라 몇 채의 집과 그것을 둘러싼 외벽 정도의 주거물을 뜻한다. 이것을 완성하는 데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 쌓고(*, 예히 보네) - '하야'(이다, 있다, 존재하다)와 '바나'(건축하다, 짓다, 수선하다)가 복합된 진행형으로 '그가 쌓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는 가인이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은 주거물조차 미처 완성치 못했음을 암시해 주는데, 그 까닭은 그가 땅에서 항상 유리하는 삶을 살게끔 저주 받았기 때문이다(12, 14절).

성 경: [창4:19]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라멕의 가계(家系)]

⭕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이카흐 로 쉐테 나쉼) - 여기서 '로'는 '자신을 위하여'란 뜻으로 곧 이기주의적인 목적과 욕망을 드러내 준다. 그리고 '이카흐'(취하다)는 '부부 관계를 맺다'(신 24:5), '장가들다'(대상 7:15)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인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를 깨뜨린 최초의 경우인데 자세한 내용은 16-24절 강해를 참조하라.

성 경: [창4:20]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라멕의 가계(家系)]

⭕ 장막(*, 오헬) -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심을 상징하는 처소인 '성막'을 뜻하기도 하나(출 26:7) 여기선 주로 유목민들이 사용하는 일반 텐트를 의미한다.

성 경: [창4:21]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라멕의 가계(家系)]

⭕ 수금(*, 키논르) - '현(絃)을 퉁겨 소리를 내는 악기'란 뜻. 다윗 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발전되어 온 현악기이다(삼상 16:23 ; 19:9).

⭕ 퉁소(*, 우갑) - '아가브'(숨쉬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목동들이 즐겨 불던 갈대 피리나 플루트 등과 같은 초기 형태의 관악기를 가리킨다(욥 30:31).

성 경: [창4:23]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라멕의 가계(家系)]

⭕ 창상(*, 폐차) - '파차'(찢어지다, 부상당하다)에서 온 말로 일차적으로는 자상(刺傷)을, 이차적으로는 모든 형태의 부상을 뜻한다.

⭕ 죽였고(*, 하라그티) - '하라그'(때리다, 살해하다)의 과거 시제 내지 미래 시제이다. 이 중 어느 시제로 보느냐에 따라서 본절 전체의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1) 과거 본절 전체의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과거 시제로 볼 경우 그 뜻은 '내게 상처를 입혔기 때문에 나는 그를 죽였다'가 된다. (2) 미래 시제로 볼 경우엔 '만일 누가 내게 상처를 입힌다면 나는 그를 죽여버릴 것이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라멕의 아들인 두발가인이 철기구(무기)를 만들었다는 이야기(22절)에 이어 본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는 누군가가 위해(危害)를 가해 올 경우 그 무기를 사용하여 복수하겠다는 자만섞인 경고인 것 같다.

⭕ 상함(*, 히부라) - '하바르'(연결하다, 결합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본래는 '줄로 맨 자국'을 뜻했으나 '타박상'이란 뜻으로 전의(轉義)되었다.

성 경: [창4:24]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라멕의 가계(家系)]

⭕ 칠십 칠 배 -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주셨던 약속(15절)을 자신의 처참한 살인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각색시킨 구절이다. 즉 친동생을 죽인 가인조차도 하나님께서 살려 주셨는데 하물며 원수에게 정당한 보복을 한 자신을 살려 주시지 않겠느냐는 자만에 찬 확언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긍휼을 만홀히 여긴 것이며 인간 생명을 경시한 극단적 잔학성과 교만의 발로이다. 당시 사람들은 가인을 통해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교훈<15절>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매사에 근신하여야만 했는데 라멕은 이를 외면하였으니 오히려 스스로가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칠십 칠배의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18:25).

성 경: [창4:25]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셋과 에노스]

⭕ 그 이름을... 하였으니 - 직역하면 '그리고 그녀가 그 이름을... 라고 불렀다'. 이처럼 어머니가 자식의 이름을 지어 준 경우는 본서에 종종 나타나는데(1절 ; 29:32-35 ; 30:24 ; 35:18) 이는 친히 해산의 고통을 겪고 낳은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각별한 애정과 기대를 드러낸 행위라 하겠다. 왜냐하면 히브리 사회에서 자녀의 이름은 대개 아버지가 짓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이다(26절 ; 5:28, 29; 21:3 ; 눅 1:62, 63).

성 경: [창4:26]

주제1: [가인과 아벨 및 인간 문명의 시작]

주제2: [셋과 에노스]

⭕ 이름을 불렀더라 - 정확한 뜻은 '이름을 불러 그에게 말을 걸다'. 이는 곧 셋 시대에 바른 신지식(新知識)을 갖은 자들이 하나님께 자신들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겸손히 고백하며 기도와 찬양, 감사와 경배가 있는 공(公) 예배를 드렸다는 의미이다(12:8 ; 21:33 ; 26:25 ; 대상 16:8). 이처럼 셋의 자손들은 가인의 자손과는 달리(16-24절)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삶을 유지하였는데, 이는 우리들에게 세상이 제 아무리 부패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러한 세태에 물들지 말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점을 교훈해 준다(롬 12:2).

성 경: [창5:1]

주제1: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계보]

주제2: [아담의 연보]

⭕ 계보가 이러하니라(*, 제 세페르 톨도트) - 직역하면 '이것은 계보 책이다'. 이 중 '톨도트'(계보, 역사)는 2:4에 나온 '대략'과 같은 단어이니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세페르'(책, 조서, 두루마리, 편지, 증서)는 비록 낱장으로 이루어져 있을지라도 그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기록물인 '문서'나 '책'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 24:1에서는 '이혼 증서'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 형상 - 원어 '데무트'(*)는 3절에 나오는 '모양'(*, 첼렘)과는 달리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유사성', '닮은 꼴'(겔 10:10; 단10:16)을 가리킨다.

⭕ 지으시되(*, 아사) - 인간 창조와 관련하여 앞서 나오는(1:27) '바라'(, 창조하다)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 단독적 '창조사역'을 강조한 단어라면(사40:26;렘 31:22) 이것은 하나님께서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손수 창조하셨다는 애정적 측면을 강조한 단어이다(6:7;신32:6;욥10:9).

성 경: [창5:2]

주제1: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계보]

주제2: [아담의 연보]

⭕ 남자(*, 자카르) - 단순히 '이솨'(여자, 2:23)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서의 명칭인 '이쉬'(2:22)와는 달리 남성과 여성이란 양성 중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성(性)으로서의 남자를 뜻한다(17:10; 신4:16).

⭕ 복을 주시고 - '복'에 해당하는 원어 '바라크'(*)의 원뜻은 '무릎 꿇다'(시95:6)로 여기서부터 '찬양하다'(왕상 1:48), '축복하다'(28:6), '문안하다'(왕하10:15)등의 뜻이 파생됐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축복하셨다는 것은 곧 그에게 감사와 찬양을 돌릴 수 있는 존재로 이끄셨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 일컬으셨더라 - 하나님께서 각종 짐승의 이름은 아담에게 전권을 위임하사 그가 짓도록 하셨으나(2:20) 인간의 이름만큼은 당신의 직접 지어 주신 까닭은 그들이 만물의 영장이긴 하나 역시 하나님의 주권하에 놓인 피조물에 불과할 뿐임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성 경: [창5:3]

주제1: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계보]

주제2: [아담의 연보]

⭕ 세(*, 솨네) - '솨나'(돌아오다, 반복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태양의 일 주기'를 가리킨다. 따라서 아담의 나이 '일백 삼십 세'는 오늘날의 연령 계산법에 의거한 나이와 똑같은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모양 - 원어 '첼렘'(*)은 원래 성질이나 성격상에 있어서의 유사성 또는 환영(幻影), 그림자, 착각 등을 뜻하는 말이나(시 39:6) 여기선 '형상'(히, 데무트)이란 말과 교호적(交互的)으로 사용되었다(1:26). 한편 아담은 타락 후 필연적 죽음을 선고받은 존재이니(2:19) 그가 자기 모양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곧 죽음이란 죄책(罪責)이 후손에게 전가되었다는 의미가 된다(롬 5:12).

⭕ 낳아 - 원뜻은 '해산의 고통을 겪다'(사 21:3; 렘22:23)로 아담이 아들을 얻는 데에는 그 아내의 해산하는 고통이 반드시 수반됨을 기억시켜 준다(3:16).

성 경: [창5:6-18]

주제1: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계보]

주제2: [경건한 셋의 계보]

여기에 나오는 족장들의 계보는 (1)이름 (2)장자를 낳은 아이 (3)그 후의 여생 (4)죽었을 때의 나이 순(順)의 일정한 틀에 따라 기록되었는데 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과 함께 그 가운데서도 중단없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여자의 후손'(3:15)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준다(1-5절 강해).

성 경: [창5:21]

주제1: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계보]

주제2: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 므두셀라 - '창 던지는 자'란 뜻. 그런데 하나님께서 동물을 인간의 식물로 주신 때는 노아 홍수 이후이니(9:3) 므두셀라가 창을 사용한 용도는 짐승의 모피(毛皮)를 얻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한편 그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장수자인데 이는 그가 들판을 쏘다니며 사냥하는 동안 체력이 단련된 탓도 있겠지만 원천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건강을 허락하셨기 때문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으로서 그분께선 당신의 뜻대로 생명을 취하실 수도(눅 12:20), 연장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사 38:5).

성 경: [창5:22]

주제1: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계보]

주제2: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 동행하며 - 원어 '할라크'(*)의 문자적 뜻은 '걷다'(레 11:42), '산책하다'(삼하 11:2)이나 여기서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인격적 교제'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미 6:8). 이처럼 죄악이 관영한 가운데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의 뜻을 좇아 산 자로는 또한 노아가 있는데 그 역시 '하나님과 동행한 자'라 칭함받았다(6:9).

성 경: [창5:24]

주제1: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계보]

주제2: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 데려가시므로 - 원어 '라카흐'(*)는 '취하다', '받아들이다', '택하다'는 뜻이다. 엘리야의 승천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 말로 에녹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낙원(눅23:43)으로 옮겨졌음을 의미한다(히 11:5).

⭕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 직역하면 '그리고서 그가 없어졌다', '없어졌다'의 기본 어근은 '아웬'(*)으로 '헛됨', '무'란 뜻이긴 하나(사 58:9; 슥 10:2) 여기서는 '에녹이 죽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에녹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공동번역)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일 뿐이다.

성 경: [창5:25,26,27]

주제1: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계보]

주제2: [인류 최고령자 므두셀라]

인류 역사상 이 땅에서 가장 오래 산 자인 므드셀라의 계보이다. 비록 그가 죽음을 면치 못하였긴 하나 1000여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다는 것은 장차 회복될 인간의 영원한 생명(딛 1:2)을 기대케 해준다. 한편 그의 아들 라멕은 경건치 못한 가인의 후예 라멕(4:19, 23)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으로 하나님을 경외한 대조적인 인물이다.

성 경: [창5:29]

주제1: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계보]

주제2: [노아의 가정]

⭕ 땅(*, 아다마) - '아담'(붉다)에서 파생된 말로 땅의 견고성을 강조하는 '에레츠'(*)와는 달리 땅이 붉은 색을 띠고 있음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에레츠'가 '온 세상'을 가리키기도 하는 것임에 반해(2:1) 이는 주로 '토지'를 가리키는 단어이다(3:23; 출23:19; 잠12:11).

⭕ 저주하시므로(*, 에르라) - '아라르'(심히 저주하다'의 강의형(强意形)동사로 하나님께서 한번 내리신 저주는 그분께서 스스로 철회하시지 않는 한, 계속해서 그 효력이 발휘됨을 강조해 준다.

⭕ 수고로이 일하는 - 직역하면 '우리 손의 일과 노고로부터', 이는 땅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이후 인간이 그것을 경작하는 일은 대단히 힘들고 고통스런 수고거리가 되었음을 상기시켜 준다(3:17).

⭕ 안위하리라 - 원어 * (나함)의 기본 뜻은 '한숨쉬다', 여기서부터 '동정하다', '위로하다'(37:35; 룻2:13; 나 3:7). '후회하다'(6:7; 렘 20:16)는 뜻이 파생되었다. 이러한 라멕의 기구(祈求)를 통해 우리는 (1)당시 족장들의 극심했었던 생활고와 (2)그 가운데서도 절망하거나 원망치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한 라멕의 순전한 신앙을 엿볼 수 있다(28-32절 강해).

성 경: [창5:32]

주제1: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계보]

주제2: [노아의 가정]

셋을 시조(始祖)로 한 족보(6-31절)는 일단락되고 노아의 세 아들이 새로운 족속의 시조로 역사 전면에 등장, 향후 전개될 구속사를 이끌어 가게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 구절이다.

⭕ 셈 - '명성'이란 뜻. 이름에 걸맞게 그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영적 축복을 누린다(눅 3:23-36).

⭕ 함 - '검다', '뜨겁다'는 뜻. 그는 부도덕한 태도로 인해 노아의 저주(9:22-25)를 받았는데 그 결과 그의 후손들은 가나안, 아라비아, 북동 아프리카 등과 같은 열대 지방에 흩어져 살면서 주로 타민족의 지배를 받는 피지배 민족이 되었다.

⭕ 야벳 - '아름다움' 또는 '확장'이란 뜻. 그는 노아로부터 자손 창대의 축복을 받았는데(9:27) 실제로 팔레스틴 서쪽의 스페인, 러시아 남단, 소아시아, 지중해, 남유럽등과 같은 광대한 지역에 두루 분포된 아리안족(Aryan)의 원조(元祖)가 되었다.

성 경: [창6:1]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인류의 타락]

⭕ 번성하기 시작할 때 -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1:28)는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선 아담의 범죄 이후 모두가 죽을 운명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 동안 인간에게 장수(長壽)를 허용하사 많은 자녀를 갖게 하셨다(5:6-27 강해).

⭕ 딸들(*, 바트) - '벤'(*, 아들)의 여성형으로 문자 그대로 '딸'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람들에게서 딸들이 나다'란 말은 남자에 비해 여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는 뜻이 아니라 그녀들로 인해 인류에 어떤 위기가 도래케 되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성 경: [창6:2]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인류의 타락]

⭕ 하나님의 아들들 -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자들인지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1)지체 높은 집안의 아들들이라는 유대 랍비들(Onkelos, Symmachus, Aben Ezra)의 견해 (2)성경의 일반적 용례(욥1:6; 2:1; 38:7; 단3:25)에 따른 '천사'란 견해(Lxx, Josephus, Tertullian, Luther, Baumgarten, Kurtz, Alford) (3)셋 계통의 경건한 자녀들이란 견해(Augustin, Calvin, Lange, Keil, Wordsworth). 이 중 (1)은 히브리어의 일반적 용례로 볼 때 비성경적이며 (2)는 본문의 전후 문맥 관계상 상치된다. 그리고 구속사적으로 보더라도 이들을 천사들로 볼 경우, 향후 전개되는 타락사는 인간의 타락사가 아니라 천사의 타락사가 된다는 견지에서도 이 견해는 합당치 못하다. 따라서 세번째 견해가 가장 유력시되는데 이는 신학적 의미와도 부합되며 또한 이와 유사한 표현이 경건한 신앙인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 성경 관례(신 32:5; 시 73:15;80:17; 호1:10)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는다.

⭕ 사람의 딸들 -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에 대해서도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지체 낮은 천민 계층의 딸들 (2)인간의 딸들 (3)가인 계통의 불경건한 자녀들. 이 중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말과 자연스레 대응을 이루는 견해는 역시 세번째 것이다.

⭕ 아름다움(*, 토브) - '좋은', '선한', '아름다운' 등의 뜻을 지닌 단어로 성격상에 있어서의 사랑스러운 면을 뜻할 수도 있으나 여기선 외견상의 '미모'를 의미한다(24:16; 단 1:15).

⭕ 보고(*, 라아) - 단순히 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세히 주목하거나 인지하는 것을 의미한다(왕상 20:7; 시 31:7).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신앙과 선한 행실, 아름다운 마음씨 등과 같은 응당 주의를 기울여야 할 내면적 아름다움은 외면한 채 인간의 외모에만 관심을 집중하였다는 것은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곧 하나님을 아는 자든 모르는 자든 간에 당시의 모든 사람이 전도된 가치관을 갖고 있었음을 증거해 주는데 이처럼 온 사회가 타락 일변도로 흘러갈 때 그 결국은 필연적으로 패망일 수밖에 없다(7절).

⭕ 좋아하는 - '선택하다', '지정하다'는 뜻.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안목의 정욕을 좇아 고르는 것을 의미한다(고후 10:7).

⭕ 아내(*, 나쉼) - '이솨'(2:24; 3:20; 4:17)와 교체하여 쓸 수 있는 단어로 '아내' '부인'(4:19; 삿 8:30)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여인'(신 20:14; 느 8:3)을 뜻하기도 한다.

⭕ 삼는지라(*, 라카흐) - 4:19에서는 '취하였으니'로 번역되었다. 일반적으로 결혼하는 것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이다(출 6:25; 민 12:1).

성 경: [창6:3]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인류의 타락]

⭕ 나의 신이...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 신(*, 루아흐)은 문자적으로 '바람'(8:1), '호흡'(7:22), 상징적으로 '마음'(26:35), '정신'(삿 15:19), '영감'(왕하2:9)을 의미한다. 그런데 때로는 '신'(34:9), '영'(왕상22:21)을 뜻하기도 하므로 혹자는 '나의 신'을 1:2에 나오는 '하나님의 신'(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다. 여기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생명'을 뜻하는 바 본절은 인간 타락이 절정에 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홍수 심판으로 그 인간들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겠다는 의미이다(17절).

⭕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 그 시대의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 주고 있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여기서의 육체(*, 바사르)는 헬라어 '사륵스'와 같은 의미로 단순한 '몸'(15:4; 고전 6:15)이 아니라 죄의 영향으로 사악하게 된 '타락한 육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롬 8:6).

⭕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 당시 모든 사람들의 수명이 일백 이십년으로 한정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 기간이 지난 후 대홍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적 경고이다. 따라서 이 기한은 당시의 타락한 인간들에게 주어진 심판의 유보 기간이자 동시에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은혜의 기간이었던 것이다(벧후 3:9).

성 경: [창6:4]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인류의 타락]

⭕ 네피림(*, 네피림) - '떨어지다'(fall)란 뜻을 지닌 기본 동사 '나팔'(*)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어떤 학자들(Hoffman, Delitzsch)은 이러한 원어의 뜻에서 유추 해석하여 '네피림'을 하늘로부터 떨어진 타락한 천사들의 후손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튜크(Tuch)나 크노벧(Knobel) 같은 학자들은 이들을 '괴물'(monster) 또는 '신동'(神童)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70인역(LXX)은 네피림을 '장부'(丈夫)란 뜻의 '기간테스'(*)로 번역했고, 벌겟역(Vulgate)과 KJV도 70인역을 따라 '용사', '거인'이란 뜻의 'giant'로 번역하여 네피림을 타락한 천사나 혹은 천사와 인간 사이의 혼혈족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그 신체적 특성상 장부가 거인으로 불릴 수 있는 일단의 사람 혹은 족속을 가리키는말로 보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신체적 특징은 아울러 도덕적 특성까지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대체로 훼방꾼, 무법자, 난폭꾼, 가해자등의 속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종합하면 노아 당시의 '네피림'이란 거대한 신체를 지닌 '폭꾼들' 내지는 '침략자들' 정도의 뜻으로 이해함이 좋을 듯하다(Luther, Calvin, Keil, Murphy). 한편 이 용어는 출애굽이후 광야 여행 시대인 민 13:33에서 다시 나타나는데, 이때 이 용어가 사용된 것은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이 그 땅 족속들의 모습이 마치 홍수 전 노아 시대의 네피림같이 장대하고 난폭하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말하기 위한 것 뿐이었다.

⭕ 그 후에도 -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을 예고하신 이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이전의 타락한 행실을 담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 취하여(*, 야보우) - '보'(얻다, 침투하다, 달려가다)의 미완료형으로 '하

나님의 아들들'이 멸망의 경고를 들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맞아들인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보'(*)는 남녀간의 혼인을 뜻하는 완곡한 말이다(삼하 16:22; 대상2:21).

⭕ 용사 - 문자적 뜻은 '강한 자', '힘센 자', '우두머리' 당시 이들은 세상을 지배하던 힘세고 강한 영웅이었거나 아니면 많은 하수인을 거느렸던 압제자였음을 뜻한다. 즉 이들은 전쟁과 약탈, 방종과 사치 등이 난무하던 홍수 이전 시대 그 타락의 주역들이었던 것이다.

⭕ 고대에(*, 올람) - 헬라어 '아이온'(*)과 같이 '오래 전', '영원'(눅1: 70; 고전2:7)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3절: 17:7: 왕하 5:27). 이는 저자(모세)의 입장에서 볼 때 본절에 기술된 의미를 지닌다.

⭕ 유명한(*, 쉠) - 좋은 의미에서는 명예나 명성을 얻는 것을 뜻하지만(신 26;19;단9:6) 나쁜 의미에서는 본절과 같이 악명(惡名)을 날리는 것을 뜻한다.

성 경: [창6:5]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작정된 인류 멸망]

⭕ 죄악(*, 라) - '라아'(깨뜨리다, 상하게 하다, 쓸모없게 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질서를 어기거나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인간의 모든 악한 행위를 의미한다(39:9; 사47:10).

⭕ 관영함 - 원어 '라바'(*)는 '크다', '충분하다', '너무 많다'는 뜻(대상23:17; 시 130:7). 이는 당시 사람들의 죄악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깊이 뿌리를 박은 지속적인 것이었음을 나타낸다.

⭕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 타락한 이후 인류가 지니게 된 보편적 죄성(罪性)을 증거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러므로 칼빈(J. Calvin)은 이에 근거하여 '타락한 인간은 근본적으로 그 본성이 부패하고 죄에 오염되었으므로 스스로는 아무런 영적 선도 행할 수 없다'는 '인간의 전적 타락설'(Total Depravity)을 주장하였다(롬 3:9-18). 한편 여기서 마음(*, 레브)은 갖가지 감정이 자리잡고 있는 좌소(座所)를 의미한다(17:17). 그리고 생각(*, 마하솨바)은 어떠한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골똘히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삼하 14:14; 잠16:3; 렘18:12). 또한 계획(*, 에체르)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의도적으로 기획하는 것을 뜻하며(8:21; 신 31:21) 악하다는 것은 앞에 나온 죄악과 같은 의미를 지닌 동일 단어이다.

⭕ 보시고(*, 야르) - '라아'(바라보다, 주목하다, 발견하다)의 미완료형으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소위(所爲)와 그 생각하는 바가 어떠한 것인지를 오랜 기간에 걸쳐 계속적으로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셨음을 의미한다.

성 경: [창6:6]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작정된 인류 멸망]

⭕ 지으셨음을(*, 아사) - 여기에 '바라'(창조하다) 대신(7절) '아사'가 쓰인

것은 자신이 최고의 애정을 기울여 만든 인간을 전멸시켜야 하는데 대한 하나님의 극한 아픔을 강조키 위함이다(5:1).

⭕ 한탄하사(*, 나함) - '후회하다'는 뜻과 함께 '위로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5:29). 그런데 이는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서도 당신이 하신 일에 대해 후회하실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선 인간이 아닌 전지 전능한 지존자(至尊者)로서 결코 변개치 않으시기 때문이다(삼상 15:29). 다만 이는 인간의 비극적 타락에 대해 갖으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인간의 측면에서 묘사한 말일 뿐이다(1-7절 강해).

⭕ 마음에 근심하시고 - 직역하면 '그의 마음에 새기셨다'. 즉 인간의 비극적인 타락 상황을 보신 하나님께선 그것이 마음 깊숙이 새겨져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극심한 아픔으로 느끼셨다는 뜻이다(시 78:40). 이상에서 우리는 범죄한 인간에 대해서조차 사랑을 쉽게 단념치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임을 알 수 있는데(눅 15:11-24). 이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는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것을 준행함으로 더 이상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 않는 것이다(롬12:2).

성 경: [창6:7]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작정된 인류 멸망]

⭕ 나의 창조한 사람 - 2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가 아니었음을 반증해 주고 있는 구절이다. 만일 그들이 '사람의 딸들'과 함께 방종을 일삼는 타락한 천사였다면 하나님께선 본절에서 '내가 창조한 사람과 천사를 멸절시키리라'는 심판을 선고하셨을 것이다(3:14).

⭕ 쓸어 버리되(*, 마하) - 문자적 뜻은 '씻다'(왕하 21:13). '지워버리다'(출32:32). '닦아내다'. 하나님께서 물로서 깨끗이 쓸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임을 시사해 주며 또한 그 심판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파멸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출17:14).

⭕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 3:17에 이어 다시 한번 인간의 죄책(罪責)과 그 영향이 자연계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자연계에까지 확산된 점은 (1)자연계에 대한 인간의 주권성과 (2)인간에 대한 자연계의 예속성을 보여 준다(3:14-21 강해). 한편 여기서 육축(* 베헤마)은 본래 소나 말처럼 몸집이 큰 네 발 짐승을 가리키나 본절에서 모든 가축을 뜻하는 집합적 의미로 쓰였다(1:24; 7:14). 그리고 기는 것(*, 레메스)은 '라마스'(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다)에서 파생된 말로 곧 파충류(1:24; 왕상 4:33)와 곤충(합1:14)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새(*, 오프)는 날개가 있어 날아다닐 수 있는 모든 생물을 의미하나(레 11:21) 성경에선 대개 '새'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1:20; 호 4:3).

성 경: [창6:8]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당대의 의인 노아]

⭕ 여호와께 - 직역하면 '여호와의 눈에', 이는 노아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게 된 까닭이 그분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점이 있었기 때문임을 시사해 준다(9절).

⭕ 은혜(*, 헨) - '하난'(불쌍히 여기다, 아랫사람에게 호의를 베풀다)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시 4:3)와 고생하는 자(시 6:2)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사랑, 은총, 자비등을 의미한다(30:27; 출 33:12).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본성이 곧 사랑과 긍휼, 공의임을 뜻하는 '헤세드'(렘 9:24)와는 달리 먼저 은혜를 받는 자가 경건하며 의로운 자여야 한다는 조건을 필요로 하는 단어이다(9절). 여기서 우리는, 비록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이 없다면 구원 얻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나(롬 3: 10-12) 그 같은 사랑에 대한 인간측의 적극적인 반응과 노력도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분명 확인할 수 있다(계 3:20).

성 경: [창6:9]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당대의 의인 노아]

⭕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 이 말은 이후 전개될 이야기는 인류 전체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노아를 중심하여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속사'에 초점을 맞춘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 의인(*, 이쉬 차디크) - 여기서 '차디크'(의로운, 공정한)는 '차닥'(곧다, 올바르게 행하다)에서 온 말로 전혀 무죄하거나 흠없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시대적 상황에서 그래도 경건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전 7:20). 그러므로 하나님께선 노아의 이 같은 노력을 높이 평가하사 '의'(義)로 인정해 주신 것이다.

⭕ 당세에 - '그의 동시대 사람들 가운데'라는 뜻, 이는 노아가 의롭고 완전한 자라는 것이 절대적인 개념에서가 아니라 상대적 개념에서 그렇다는 뜻임을 드러내 준다. 이처럼 성도도 본시 불신자와 다름없는 죄된 성품을 지닌 자요 육적 죽음이 예정된 자이긴 하나 그래도 세상과는 구별된 존재로 경건한 삶을 살아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고후 2:15).

⭕ 완전한 자(*, 이쉬 타밈) - '타밈'(온전한, 성실한)은 '타맘'(완성하다, 완수하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이 역시 '차디크'와 마찬가지로 모든 행위가 한 절 티도 없이 완전하다거나 전햐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는 자가 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잠 28:18).

⭕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 노아가 '의인', '완전한 자'로 불림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는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한 가운데서도(11절) 그분을 경외하며 그의 뜻을 따라 그의 말씀과 더불어 동행하는 곧고 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토록 분에 넘치는 호칭을 얻을 수 있었다(5:22). 그런데 하나님께선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내가 온전한 것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고 명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딤전 4:12)등.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우리의 삶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야 할 것이다(딤전 4:15).

성 경: [창6:10]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당대의 의인 노아]

5:32과 거의 동일 구절이긴 하나 그 진술 목적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즉 5:32은 구속사의 주역이 될 새로운 족속의 시조(始祖)출현을 암시하고 있으나 본절은 노아의 신앙과 경건성이 그의 아들에게도 영향 미쳤을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그의 아들 셈의 계보에서 위대한 신앙의 인물 아브라함이 출현한 것에 의해 뒷받침된다(11:27).

성 경: [창6:11]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당대의 의인 노아]

⭕ 때에 - 원문에는 없는 말이다. 노아당대를 가리키는 말로 당시 노아와 같은 이가 있었긴 하나 전체 시대 풍조는 부패하기 짝이 없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개역 성경 편찬자가 부기(附記)한 듯하다.

⭕ 온 땅(*, 하아레츠) - 직역하면 '그 땅', 당시 지상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뜻하는 은유적 표현(2:1).

⭕ 강포 - 원어 '하마스'(*)는 '학대하다', '해치다', '탈취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포악', '흉악'을 의미한다(삿 9:24; 겔 7:11). 즉 강도, 살인, 약탈, 강간 등과 같은 악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연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뜻하는데 곧 그러한 온갖 무법 현상이 노아 시대에 횡행하고 있었음을 증거해 준다.

⭕ 충만한지라(*, 티말레) - '말레'(가득하다, 채우다)의 완료형으로 더 이상 채울 자리가 없어 밖으로 흘러 넘칠 정도로 꽉 찬 것을 의미한다(수 3:15). 이는 공의의 하나님께서 한시도 심판을 지체하실 수 없을 만큼 시대의 타락상이 무르익었음을 보여 준다.

성 경: [창6:12]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당대의 의인 노아]

⭕ 하나님이 보신즉 - 하나님은 인간과 같은 육체를 지니지 않은 영이시다(요 4:24). 그러나 성경은 우주와 인간을 섭리하며, 조금도 쉬지 않고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요5:17)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이처럼 의인적 표현을 많이 쓴다(출 15:17; 신11:12; 왕상 8:42; 시 8:6). 그 가운데 본절과 같은 표현은 (1)하나님이 인간의 외면과 더불어 그 중심을 꿰뚫어 보시므로 인간은 그 앞에서 결코 변명하거나 거역할 수 없다는 점과 (2)그분의 판단은 정확하며 한 치의 오류가 없다는 점을 강조해준다.

⭕ 행위(*, 데레크) - '다라크'(걷다, 밟다)에서 파생된 말로 습관적으로 굳어진 '행동 양식'을 의미한다(겔 20:30). 이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습속이 타락 일변도로 고정되어 있어 갱생시키기 매우 힘든 상태였음을 나타내 준다.

성 경: [창6:13]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노아의 방주]

⭕ 노아에게 이르시되 - 후일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알려 주시는 것처럼(18:17) 하나님이 노아에게 장차 있을 대홍수 심판을 미리 일러 주시는 부분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계획과 비밀을 계시하여 주시는데(시 25:14) 이는 (1)환란 가운데서 그를 구원하시기 위함일 뿐 아니라(요 17:12) (2)그로 하여금 세상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게 하여 악인이라도 그 경고를 듣고서 돌이켜 회개하고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겔 33:11).

⭕ 끝날 - 원어 '케츠'(*)는 원래 어떤 물건이나 장소의 '테두리', '가장자리'를 의미하나 여기서는 시간에 있어서의 끝, 즉 '멸망의 때'를 가리킨다(욥 6:11; 단11:40).

⭕ 내 앞에 이르렀으니 - 어떤 사건이나 때가 임박했음을 뜻하는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삼하 22:6; 시 18:5; 요 7:6).

⭕ 멸하리라(*, 솨핫) - 11, 12절에서는 '패괴하다'로 번역된 단어. 이는 하나님 앞에서 타락하거나 부패한 자의 결국은 멸망일 수 밖에 없음을 교훈해 준다.

성 경: [창6:14]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노아의 방주]

⭕ 잣나무(*, 고페르) - 선박이나 성문, 관 등과 같이 강한 내구성이 요구되는 구조물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는 침엽수류의 수지성(樹脂性)나무, '고페르'란 단어는 성경에서는 이곳밖에 나오지 않는다.

⭕ 방주 - 홍수 심판 가운데서도 노아와 그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 예비된 방주는 그 기원과 기능에 있어 신약 시대 '교회'에 자주 비유된다. 즉, 둘다 그 기원에 있어 '신적'이며, 그 기능에 있어 '구원'이기 때문이다(11-22절 강해).

⭕ 간들을 막고 - '여러 칸의 방들을 만들라'는 뜻. 둥우리 같은 작은 방들을 말하는데 이러한 방은 노아의 식구들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18절) 각종 짐승들을 그 종류대로 구분, 유치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였을 것이다(19, 20절).

성 경: [창6:15]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노아의 방주]

1규빗을 45.6cm로 계산할 때 방주의 규모는 길이 약 137cm, 배수량 약 20, 000t이 된다(11-22절 강해). 따라서 한때 세계 최고의 항공모함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던 '엔터프라이즈호'가 길이 317cm, 배수량 75, 700t이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즉 당시 선박 건조술이 발달치 못하였고 동원 인력수도 8명(18절)에 불과하였던 상황에서 그토록 큰 방주를 어떻게 건조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1)배의 구조가 극히 단순하였다는 점 (2)선박 건조 기간이 120년이었다는 점, (3절) (3)고대에는 인근에서 목재를 충분히 구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그 같은 의문은 해소될 수 있다.

성 경: [창6:16]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노아의 방주]

⭕ 창(*, 초하르) - 원뜻은 '빛'이나 여기서는 채광과 통풍을 위한 '창문'을 의미한다. 방주에는 이러한 창이 꼭대기에서부터 45.6cm되는 지점에 빙둘러가면서 여러 개 설치되어 있었던 것 같다.

⭕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 이처럼 갑판을 삼층으로 한 까닭은 적재 면적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방주에는 노아의 가족 및 각종 짐승들 외에도 그들이 1년여간 사용해야 할(8:14) 식량과 생활용품을 적재하여야 했기 때문이다(21절). 한편 체적(體積)에 따른 용적량 산출법에 의거하면 방주의 최대 선적량은 약 14, 000t에 달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성 경: [창6:17]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노아의 방주]

⭕ 홍수(*, 마불마임) - 직역하면 '물의 범람'. 여기서 '마불'(쇄도, 범람)은 앗시리아어 '나발루'(파괴하다, 멸절시키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홍수의 엄청난 위력을 강조해 준다.

⭕ 무릇 생명의 기식있는 육체 - 인간뿐 아니라 땅 위에 사는 모든 생물을 가리킨다. 여기서 물고기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까닭은 분명치 않으나 죄로 오염된 땅(3:17)에 거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인 듯하다.

성 경: [창6:18]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노아의 방주]

⭕ 언약(*, 베리트) - '바라'(자르다, 끊다, 새기다)에서 파생된 말로 위반시에는 죽음 및 관계 단절이 뒤따르는 하나님과 인간간의 엄정한 약속, 계약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선 일찍이 아담과도 이러한 언약을 맺으셨는데(2:16, 17; 3:15). 구체적으로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여기서부터이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아브라함(15:18;17:9-14;22:15). 이삭(26:24), 야곱(28:13, 14)등과 맺은 언약이 나오는데 이것들은 모두 구속사에 있어서 최고의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 및 그의 구속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 경: [창6:19,20]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노아의 방주]

하나님께서 노아 개인과 언약을 맺으셨으나 그로 인해 가족과 동물까지도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대표 원리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즉 아담의 타락으로 전인류와 피조계가 함께 저주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3:17) 노아의 의로움이 동물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미쳤던 것이다. 이러한 대표 원리는 그리스도에게서 그 절정을 이루었는데 곧 그분 한분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가 그 공로를 힘입어 속죄함을 받은 것이다(롬 5:17-19).

성 경: [창6:21,22]

주제1: [홍수 심판의 예고와 노아의 방주]

주제2: [노아의 방주]

⭕ 다 준행하였더라 - 120년에 걸친 노아의 인내와 믿음과 소망이 응축되어 있는 구절이다. 전력을 기울여 방주를 짓는 그 오랜기간 동안 노아는 당대 사람들에게 갖은 조롱과 희롱을 당하고 또한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하신 것을 다 준행하여(약 2:17), 그 결과 자신과 가족, 짐승들을 구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각종 불법과 불경건이 난무하는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역시 절실하게 요구되는 자세이다(눅 21:19; 약 5:7).

성 경: [창7:1]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하나님의 구원 계획]

⭕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 여기서 '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는 '인정하다'는 뜻이다(왕상 21:29). 즉 비록 불완전한 존재이긴 하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했기 때문에 이를 그의 의(義)로 인정해 주셨다는 뜻이다(6:9). 한편,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을 우리는 신학 용어로 '칭의'(稱義)라 한다. 그런데 구원에 이르는 칭의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 공로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따라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인해 죄사함을 받은 성도들은 모두 이러한 하나님의 칭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롬 5:1-9).

성 경: [창7:2]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하나님의 구원 계획]

얼핏보아 6:19, 20과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다. 그러나 이는 앞의 것이 개괄적인 지시였던데 반해 본절의 것은 세부적인 지시인데서 나타난 차이일 뿐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홍수 심판을 일주일 앞둔 시점(4절)에서 보다 구체적이고도 세부적인 지시를 내릴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 정결한 짐승...부정한 것 - 당시는 짐승의 정, 부정 규례가 주어지지 않았던 시점이기에 짐승의 정결과 부정을 구분할 근거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았겠으나 아마 제사 제물로서의 효용성(8:20)에 근거했던 것같다(1-12절강해).

⭕ 암수 일곱씩 - 학자들에 따라 이견을 보이고 있는 구절이다 칼빈(Calvin)이나 랑게(Lange)같은 이는 '일곱씩'을 '세 쌍과 한 마리'로 보는 반면 70인역은 '일곱 쌍'으로 보고 있다. 만일 전자가 합당하다면 여분의 한 마리는 후일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8:20).

성 경: [창7:3]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하나님의 구원 계획]

⭕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 - 70인역이나 사마리아역 등은 '정한 새는 암수 일곱씩, 부정한 새는 암수 둘씩'으로 번역하였다. 이러한 번역은 비록 2절과 호응을 이루긴 하지만 그러나 이처럼 개역할 원문상의 근거는 없다.

⭕ 유전케 하라 - 하나나님께 있어선 심판보다 보존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는 생태계의 온전한 보존이란 측면(9:9-12)과 함께 홍수 이후 인간 생활을 돕기 위한 배려라는 의의(9:1-4)를 지니고 있다(1-12절 강해).

성 경: [창7:4]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하나님의 구원 계획]

⭕ 지금부터 칠 일이면 - 심판을 위한 준비가 최종 완료된 상태에서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최후 통첩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은 죄로 인해 마땅히 심판당하여야 할 타락한 인간들에게 120년이란 긴 회개의 기간을 허락하시고서도(6:3) 이처럼 마지막 한 주간을 특별히 구별지어 인간을 경성시키셨다. 이는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인간이 심판을 당하는 것은 자신의 완악함 때문이지 결코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님을 확실히 증거해 준다(욘1:2). 아마도 노아는 이 7일 동안 더욱더 간곡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품인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고 외쳤을 것이다.

⭕ 사십 주야 - 성경에 나오는 숫자들은 때때로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데 그중 40은 특별히 '시련'과 '연단'의 의미를 지닌다. 대표적인 예로는 이스라엘의 광야 40년간 방황(민 14:33), 모세의 40년간 광야 생활(행 7:30), 예수의 40일간 금식 기도(눅4:1, 2)등이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련과 연단의 끝은 승리와 기쁨인데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하는 성도들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궁극적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라는 심오한 진리를 보여 준다(요 16:33).

⭕ 생물(*, 예쿰) - '쿰'(일어나다, 일어서다)에서 파생된 말로 '호흡하는 생명체'란 점을 강조하는 '네페쉬 하야'(생물, 1:20)와는 달리 생물의 '활동성'을 강조해 주는 단어이다(신 11:6).

성 경: [창7:5]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하나님의 구원 계획]

⭕ 명하신 대로 다 -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한 치도 벗어남이 없는 철저히 순종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순종은 참된 믿음에서 나오는 신앙의 열매이니(갈 5:22, 23) 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노아를 가리켜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히 11:7)라고 칭하였다(6:21, 22).

성 경: [창7:6]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홍수의 시작]

⭕ 홍수가 땅이 있을 때에 - '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야'는 '존재하다'(31:5)는 뜻과 함께 '발생하다'(왕상 12:24)는 뜻도 갖고 있다. 따라서 본절은 '홍수가 땅에 발생했을 때에'로 번역함이 보다 적절하다.

⭕ 육백 세 - 4절에 나온 '40'과 더불어 성경상에서 '6'이란 숫자가 갖는 상징적 의미도 대체적으로 '혹독한 시련'과 '엄청난 고난'이다(계 6:12-17; 9:13-21; 16:12-16). 사실 노년에 이른 노아가 1년 동안이나 제한된 공간과 물 위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같은 시련을 통과한 노아에게 새 인류의 원조로서 번성할 수 있는 축복이 주어진 점(9:1)은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 4)라는 진리를 확신케 해준다.

성 경: [창7:7]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홍수의 시작]

⭕ 노아가 아들들과...함께 - 본절은 6:18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이 말 속에는 두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라멕(4:19)과는 달리 노아 및 그의 아들들은 일부 일처제의 혼인을 준수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방주 안에 들어간 자의 수가 8명이었다는 베드로의 증거(벧전 3:20)에 의해 분명히 드러난다. 즉 그들은 중혼, 축첩등 당시의 타락한 사회상을 본받지 않았던 것이다. (2) 8명이 모두 방주에 들어갔다는 것은 가족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는 후일 롯의 처와 사위들이 보여준 불신의 행동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19:14, 26).

성 경: [창7:9,10]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홍수의 시작]

⭕ 방주로 들어갔더니 칠 일 후에 - 홍수 심판이 이르기 전에 충분하고도 안전하게 구원을 얻었음을 보여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최후 심판시에 있어서도 성도들은 머리털 하나 상치 아니하고 다 구원받게 될 것인데(눅 21:18) 예수께서 성육신(成肉身)하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 중 한명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이었다(요 18:9).

성 경: [창7:11]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홍수의 시작]

⭕ 노아 육백 세...그 달 십 칠 일 - 이스라엘의 종교력은 훗날 출애굽 사건과 관련되어, 제정되었으니(출 12:1, 2) 이 당시는 단순히 민간력으로 계산된 것일 것이다. 아뭏든 이처럼 홍수가 일어난 날짜를 분명하게 명기한 것은 그사건이 분명한 역사적 사건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인데, 이는 오늘날 많은 고고학적 자료에 의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 큰 깊음의 샘들 - 여기서 '깊음'에 해당하는 '테홈'(*)은 원래 지하수의

근원을 가리킨다. 그런데 시 104:6; 욘2:5 에서는 '큰바다'를, 창 49:25에서는 '아래 원칙'을 가리키는 머리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절은 대홍수 때 폭우와 함께 해일(海溢), 지하수의 범람까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 터지며 - 본래 땅은 물로 뒤덮여 있었으나(1:20) 창조 둘째 날 궁창으로 말미암아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구분되었다(1:7). 이어 창조 세째 날 궁창 아래의 물로부터 물이 융기되어 나왔다(1:9). 따라서 지구는 물 가운데, 그리고 물 위에 이룩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대 히브인들은 이 모든 물들이 언제든지 땅을 덮치려하고 있으나 하나님의 제어로 말미암아 그 경계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였다(욥 26:10; 시104:9). 그러나 마침내 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제어의 재갈을 풀어 주자 일시에 엄청난 양의 물이 위.아래 할 것 없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현상을 묘사한 말이다. 그리고 지질학적으로 이 말은 깊은 바다 내에서나 혹은 지각에서 급격한 변화 현상이 일어남을 가리킨다(Lange).

⭕ 하늘의 창들이 열려 - 여기서 '하늘의 창'이란 말은 고대인들의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는 말인데, 즉 그들은 대기권 너머 2층천에는 비, 우박, 눈등을 엄청나게 보관하고 있는 하늘 창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하늘 창문을 통해 지상에 내려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대홍수는 이러한 하늘 창문들이 한꺼번에 열려진 것으로 생각했고 또 그렇게 묘사했다. 여하튼 본절은 댐의 열린 갑문을 통해 물이 갑자기 쏟아져 내리듯 엄청난 양의 비가 한꺼번에 땅에 쏟아진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하늘과 지상의 모든 물을 모두 동원, 일시에 지구를 물로 덮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이다(사 51:10).

성 경: [창7:12]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홍수의 시작]

⭕ 비(*, 게 쉠) - '가솽'(격렬하게 퍼붓다)에서 파생된 말로 보통의 비를 가리키는 '마타르'(신 11:14)와는 달리 세차게 쏟아지는 폭우를 의미한다(왕상 18:41). 그런데 광야에서 만나가 내리는 것을 묘사할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된 점(출 16;4)으로 보아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이루어지는 이적적인 현상을 강조하는 말인 것 같다.

성 경: [창7:13]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방주 속의 생명들]

⭕ 들어갔고(*, 바) - '보'(가다, 오다, 들어가다)의 과거 완료형으로 노아의 가족들이 '그 날' 곧 홍수가 시작되던 날(11절) 이전에 이미 방주에 들어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구름 한 점 없던 맑은 날에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 안에 들어가 있은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미친 짓으로 보였을 것이다(마 24:38, 39). 그러나 노아는 이에 개의치 않고 최후의 한 주간 동안 방주 안밖을 들락 날락거리면서 거듭 회개의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추측된다(4절).

성 경: [창7:14]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방주 속의 생명들]

⭕ 모든 새 곧 각양의 새 - 원문에는 각기 다른 세 개의 단어가 사용되어 모든 종류의 새를 나타내고 있다. (1)'오프'(*):날개를 지니고 있는 모든 생물을 뜻하는 포괄적 단어이다(6:7). (2)'치포르'(*):주로 참새와 같이 몸집이 작은 들새를 가리킨다(시 84:3; 잠26:2). (3)'카나프'(*):'오프'와 교호적으로 사용되긴 하나 주로 날개 달린 조그마한 곤충을 의미한다.

성 경: [창7:15]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방주 속의 생명들]

⭕ 둘씩 - 정결한 짐승이든 부정한 짐승이든 둘씩만을 방주 안에 들여보냈다는 뜻이 아니다(2절). 이는 각종 짐승들이 '한쌍씩(공동 번역) 짝을 이루어 방주로 나아오는 모습을 묘사한 것일 뿐이다.

성 경: [창7:16]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방주 속의 생명들]

⭕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 원문에 충실하게 직역하면 '그 뒤에서 닫으셨다'. 즉 여호와께서 노아 및 그 가족, 생물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간 후 그 뒤에서 문을 닫으셨다는 뜻이다. 이는 (1)하나님이 전적으로 방주를 주관하시며 그 속에 있는 생명들을 보호하시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준다. (2)또한 이는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은혜와 구원을 받을 시기(고후 6:2)가 지난 후 일단 문이 닫히고 나면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기회가 없음을 교훈해 준다(1-12절 강해).

성 경: [창7:17,18]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40일간의 대홍수]

40일간 계속되는 비로 말미암아 물이 점점 불어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창일하매(*, 가바르)의 원뜻은 '확립하다', '강하게 되다', '승(勝)하다' 등으로(출17:11; 삼하 11:23) 온 세상을 뒤덮을 때까지 물이 점점 더 불어나도록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시사해 준다(시 147:17, 18).

성 경: [창7:19]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40일간의 대홍수]

⭕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나니 - 노아 당시의 대홍수가 일부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사건이었음을 증거해 준다. 9:11, 15은 이를 뒷받침하는 구절이다(13-24절 강해, 부분 침수설). 따라서 일부 학자들(Poole, Murphy)의 주장처럼 본절을 목격자의 관점에서 기술한 수사학적 표현으로 이해하여, '홍수의 부분 침수설'을 내세우는 것은 불합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분명 노아와의 언약(6:17; 7:4; 9:11, 15)을 통해 거룩한 씨의 보존을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만 국한시켰기 때문이다.

성 경: [창7:20]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40일간의 대홍수]

⭕ 십 오 규빗이 오르매 - 무엇을 기준으로 한 말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아마 가장 높은 산을 덮고서도 물이 15규빗(약 6.84m)이나 더 불어났다는 뜻인 듯하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철저성을 강조해 주는데, 실제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그분의 진노의 낯을 피해 숨을 곳이라곤 아무데에도 없다(시 139:7-12).

성 경: [창7:21,22]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40일간의 대홍수]

홍수로 말미암아 땅 위의 사람들과 짐승들이 모두 멸절되었음을 간명하면서도 분명하게 증거해 준다. 그러나 세상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멸절되어 가는 절박한 순간에서도 노아 가족만은 하나님의 보호의 날개(신 32:11, 12) 아래에서 편해 쉴 수 있었는데(23절). 이는 성도가 어떠한 환난 중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이다(시23:4-6).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에서 결코 의인은 악인과 함께 멸망당하지 않기 때문이다(18:25).

성 경: [창7:23]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40일간의 대홍수]

⭕ 홀로 노아와...자만 남았더라 - 사도 베드로는 이처럼 심판의 물만이 온 대지를 뒤덮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 노아 가족이 구원받은 것을 '침례'에 비유하였는데(벧전 3:20, 21) 이는 바울이 이스라엘의 홍해 도강(渡江) 사건을 가리켜 바다에서 침례받았다고 묘사한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전 10:1, 2).

성 경: [창7:24]

주제1: [대홍수 심판]

주제2: [40일간의 대홍수]

⭕ 일백 오십 일 - 혹자(murphy)는 이 기간을 비가 내렸던 40일을 제외한 그 이후의 기간으로만 본다. 그렇다면 물이 땅에 창일해 있던 기간은 총 190일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Lange, Bush, Knobel)은 150일이란 기간안에 폭우가 쏟아졌던 40일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이는 8:3과도 조화를 잘 이룬다.

성 경: [창8:1]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아라랏 산에 머문 방주]

⭕ 권념하사(*, 자카르) - '기억하다', '새기다'의 뜻(9:15 ; 욥 14:13). 이는 평상시에는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느 5:19 ; 시 25:7). 즉 하나님께서는 홍수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방주 안의 생명들을 늘 잊지 않으시고 보호하셨다는 뜻이다. 또한 이는 이들을 위해 행하실 다음 단계의 일까지 미리 생각하고 계셨음을 뜻한다.

⭕ 바람으로... 물이 감하였고 - 바람에 의한 물의 증발 작용 뿐 아니라 바람에 의해 물이 바다로 쓸려 내려간 작용까지 병행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홍수 대심판에는 비와 함께 지하수의 범람, 해일 등도 수반되었기 때문이다<7:11>. 이처럼 홍수를 발생시킨 것도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였듯이 심판을 끝내고 땅을 본래대로 회복시킨 것도 하나님의 단독적, 초자연적인 역사였는데 이는 온 우주의 운행을 주관하시는 그분의 권능을 잘 드러내 준다(시 19:4).

⭕ 바람 (*, 루아흐) - '영'이나 '기운'을 의미하기도 한다<6:3>. 그러므로 혹자(Rupertus)는 이를 태양열로, 그리고 혹자(Theodort, Ambrose)는 하나님의 입김, 또는 성령 등으로 보기도 한다. 70인역도 '영'(靈)이란 뜻의 (* 프뉴마)로 번역했다. 그러나 (1) 태양력에 의해선 물을 한쪽으로 쏠리게 할 수 없고 (2)물을 감소시키는 사역을 성령이 주도하셨다고 보기에도 힘드므로 여기선 문자 그대로의 '바람'(wind)으로 보아야 한다<1-12절 강해>.

성 경: [창8:2]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아라랏 산에 머문 방주]

⭕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 - 7:11에서 이미 살펴본 단어이다. 그런데 심판의 종결을 이야기 하면서 이에 대해 다시 언급하고 있는 까닭은 홍수의 원인이 없어졌음을 상기시키므로 심판이 완전히 끝났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7:11>.

성 경: [창8:3]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이라랏 산에 머문 방주]

⭕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 문자적 의미는 '가며 되돌아가고'이다. 이는 마치 썰물 때처럼 물이 지속적, 점진적으로 감소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성경에는 이처럼 동일한 말 내지는 비슷한 말을 반복 또는 중복하여 그 뜻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표현법을 중언법(重言法)이라 한다(26:5 ; 시 21:1 ; 전 1:2).

⭕ 일백 오십 일 후에 감하고 - 홍수가 시작된지 제 150일째에 최고 수위에 달했던 물(7:24)이 그날 이후부터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성 경: [창8:4]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아라랏 산에 머문 방주]

⭕ 칠 월 곧 그 달 십 칠 일 - 홍수가 시작된 날이 2월 17일(7:11)이었으며, 물이 빠지기 시작한 날이 150일 후 부터였으니 이 날은 물이 감소되기 시작한 지 하루나 이틀째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 달을 30일로 잡을 때 2월 17일부터 7월 17일 사이는 150일이 되기 때문이다.

⭕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 왕하 19:37 ; 사 37:38 ; 렘 51:27 등을 참조할 때 성경이 증거해 주는 아라랏(Ararat)은 일종의 지역(region)으로서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계곡 상단에 위치한 아르메니아(Armenia) 지역인 것 같다. 실로 이곳은 옛 대륙의 중심지로서 홍수 후 노아의 후손들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가기에 매우 적합하였다.

성 경: [창8:5]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아라랏 산에 머문 범주]

⭕ 물이 점점 감하여 - 직역하면 '물이 가고 감소하여'(the waters were going and falling). 하루가 다르게 빨리 물이 감소되고 있음을 표현한 구절이다. 아라랏 산의 높이를 해발 5, 100m로 잡을 경우, 홍수 최고 수위는 약 5, 107m가 되니(7:20) 이를 걷힌 기간인 164일(13절)로 나누면 실제로 홍수 수위는 하루 평균 3. 1m정도씩이나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 시 월 곧 그 달 일 일 - 홍수 발생 224일째이다.

성 경: [창8:6]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까마귀와 비둘기]

⭕ 방주에 지은 창 - 채광과 통풍을 위해 방주 측면에 설치해 놓았던 창을 의미한다<6:16>. 본절 이하에 의하면 이 창은 쉽게 여닫을 수 있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창8:7]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까마귀와 비둘기]

⭕ 날아 왕래하였더라 - 직역하면 '앞으로 나아갔다 되돌아왔다'(going forth and returning). 그러나 이는 방주 안으로 되돌아왔다는 뜻이 아니라 방주 주변을 배회하면서 앉을 곳을 찾아 날아다녔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노아는 이 까마귀를 재차 방주 밖으로 내놓았을 것이다(8절). 까마귀는 썩은 고기를 먹으러 젖은 땅에도 앉은 새였으니 굳이 방주 안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1-12절 강해>.

성 경: [창8:8]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까마귀와 비둘기]

⭕ 비둘기 - '평화'의 상징인 이 새는 귀소성(歸巢性)이 강하여 옛날부터 통신 수단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노아가 까마귀 다음으로 이 새를 택한 것은 이러한 성질에 의거, 물이 감한 증거물을 갖고서 방주 안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했기 때문인 듯하다(11절).

성 경: [창8:9]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까마귀와 비둘기]

⭕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 비둘기는 마른 땅에만 앉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주로 평지나 골짜기에서 생활한다. 당시에 땅은 물이 채 빠지지 않았었고 물이 빠진 고대 지역 역시 미처 건조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비둘기는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곧 노아에게 돌아온 듯하다.

⭕ 접족할 곳을 찾지 못하고(*, 로 마츠아 마노아흐 레카프 라겔라) - '카프'(발바닥)와 '레겔'(발)이란 유사 단어가 중복된 중언법이다<3절>. 그리고 '마노아흐'는 '휴식처', '안식처'란 뜻이다. 따라서 이는 '발바닥만이라도 착지시킬 수 있는 마땅한 휴식처를 발견치 못했다'는 강한 의미가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원을 사모하는 우리 성도들은 썩어져 가는 세상 열락(悅樂)에서 안식과 기쁨을 찾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정결한 말씀과 그의 온전하신 뜻 가운데서 참된 소망을 찾을 수 있는 자들이되어야 할 것이다<1-12절 강해>.

⭕ 손을 내밀어 - 어느 한 곳에도 발딛지 못하고 온 종일 날개짓하느라 지친 비둘기에게 노아가 내민 손바닥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포근한 안식처이자 기쁨의 근원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수고하고 지친 성도들에게 역시 그보다 더한 최종적이고도 영원한 안식처가 약속되어 있는데 그것은 곧 천국이다(마 5:10). 그러나 이러한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끝까지 감당해야 하니(롬 8:17)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히 6:12).

성 경: [창8:10]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까마귀와 비둘기]

⭕ 또 칠일을 기다려 - 이처럼 노아가 칠일을 주기로 하여 새를 방주 밖으로 내보낸 것(12절)은 (1) 그가 방주 안에서도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역을 기념하는 안식일(2:1-3)을 엄숙히 지켰음을 시사한다. (2) 또 당시에도 한 주간은 오늘날과 같이 칠 일로 이루어져 있음을 증거해 준다. (3) 그리고 이 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노아가 한 주간을 무의미하게 그리고 지루하게 보내지 아니하고 믿음과 기도와 인내로써 여호와를 앙망하면서 보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는 바가 큰데 곧 성도는 자신의 삶이 어떠한 상황에 이르렀는지 간에 그에 개의치 말고 항상 하나님을 바라며 그를 경외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후 4:7-10).

성 경: [창8:11]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까마귀와 비둘기]

⭕ 저녁 때에 - 성경에서 이 단어는 가끔 소망이 사라지고 절망만이 남은 암울한 상태를 상징한다(렘 6:4 ; 겔 24:18). 여기서도 비둘기가 저녁에 돌아왔다는 것은 기다림에 지쳐 더 이상 기대를 걸 수 없는 시점에 홀연히 나타났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비둘기가 갖고온 희망의 증표는 노아에게 더욱더 큰 기쁨을 안겨다 주었을 것이다.

⭕ 감람 새 잎사귀 - 여기서 '새'(new)로 번역된 히브리어 '타랍'(*)은 '뜯어내다', '찢어내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물에 떠다니던 감람나무 잎을 물고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감람나무는 사시 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는데 비록 물속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하기는 하나 수표면(水表面) 위, 저지대에서 주로 생성한다. 그러므로 비둘기가 이 나무 잎사귀를 물고 온 것은 땅에 물이 많이 감소되었다는 충분한 증거물이 된다. 한편 홍수로 말미암아 모든 생물이 멸절된 중에(7:22) 이처럼 푸르른 생명체가 소성하고 있다는 것은 (1)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끝났음과 이제 새 시대가 도래케 되었음을 알려 주며(9:8-19) (2)사망 권세를 물리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예표해 준다<1-12절 강해>.

성 경: [창8:12]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까마귀와 비둘기]

⭕ 또(*, 오드) - '반복하다'는 뜻, 8, 10절에 이어 이 단어가 거듭 사용된 것은 노아가 물이 줄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한 주일을 보냈음을 강조해 준다<10절>.

⭕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 귀소 본능이 강한 새임에도 불구하고<8절> 비둘기가 이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1) 비둘기가 마른 땅에서 새로운 보금 자리를 찾아 정착했음과 (2) 노아로 하여금 땅에서 물이 완전히 물러갔음을 깨닫도록 배후에서 동물의 본성에서까지도 제어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해준다. 한편 본장에서 강한 체질의 까마귀가 감당 못할 일을 연약하고 온유한 비둘기가 완수한 것은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상기시켜 준다(고전 1:27 ; 고후 11:8-10). 따라서 성도들은 자신과 같이 미련하고 연약한 자를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랑하되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하여야 할 것이다(고전 1:31).

성 경: [창8:13]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방주 밖으로 나온 생명들]

⭕ 육백 일 년 정월 곧 그달 일 일 - 노아가 601세 되던 해 1월 1일로서 홍수가 발발한 지 314일째 되던 때이다.

⭕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 물이 땅에서 걷히기는 하였으나 일찍 물이 빠진 고지대(5절)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땅이 완전히 건조되지는 않은 상태이다(14절).

⭕ 뚜껑(*, 믹세) - '카솨'(덮다, 가리다)에서 파생된 말로 본래는 '덮개'(cover)를 의미한다)출 26:14 ; 36:19 ; 민 4:8). 그러나 여기서는 방주의 '지붕'(roof)을 가리킨다.

⭕ 걷혔더니 - 직역하면 '타다', '황무해지다'. 마침 가뭄에 의해 땅이 타들어가듯 물이 걷힌 후에 땅이 서서히 말라가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성 경: [창8:14]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방주 밖으로 나온 생명들]

⭕ 이 월 이십 칠 일 - 홍수가 발발한 지 370일째 되던 때이다. 이는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문지 약 220일째요<4절>. 물이 걷힌 것을 확인한지 약 57일째 되던 날이다. (13절).

⭕ 땅이 말랐더라 - '마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베쉬'(*)는 본래 '시들다'는 뜻이다(욜 1:12 ; 욘 4:7). 여기서는 작열하는 태양과 신선한 바람에 의해 땅이 완전히 말랐음을 뜻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성 경: [창8:15]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방주 밖으로 나온 생명들]

⭕ 가라사대 - 본서에서만도 50회 이상이나 나오는 중요 단어이다(1:3 ; 2:16 ; 9:8 ; 15:1 ; 21:17 ; 31:24 ; 46:3 등). 이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단순한 사실을 가리키는데 그치지 않고 말씀하신 바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실천적 의미를 지닌다<1:3>. 특히 여기서는 노아가 방주에 들어갈 때처럼(7:16) 나올 때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행동하였다는 것을 암시한다<13-19절 강해> 즉 노아는 물이 걷힌 것을 알고서도(13절) 독자적으로 방주 밖으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까지 57일이나 더 방주 안에 머물렀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다(마 8:8-10).

성 경: [창8:16]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방주 밖으로 나온 생명들]

⭕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 - 18절 ; 6:18 ; 7:7과는 순서상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아들들, 아내, 자부들의 순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은 이에 대해 저자가 다른 두 문서가 혼합, 편집된 탓이라는 문서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같은 순서는 기록상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한 저자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기 위하여 인간 저자를 사용하시되 그들의 성품과 기질, 언어와 문체, 은사와 재능 등을 유기적(有機的)으로 사용하셨지 결코 로보트처럼 기계적으로 사용하지 않으셨다<성경총론, 성경의 권위와 영감>.

⭕ 방주에서 나오고 - '방주로 들어가라'(7:1)는 말씀을 120년 동안이나 기다렸던 것처럼 노아가 1년여 동안이나 대망해 오던 소망의 말씀이다. 이는 노아에게 있어서 (1) 마치 무덤에서 잠자던 성도들이 깨어나 밖으로 나오는 것과 같은 '부활'의 의의를 지니며(고전 15:16-22) (2)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완전한 것임을 확인받는 순간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성 경: [창8:17]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방주 밖으로 나온 생명들]

⭕ 이끌어 내다(*, 야차) - '뽑아내다'. '인도해내다'는 뜻. 한꺼번에 많은 수의 짐승이 문쪽으로 몰려 사고가 나지 않게끔, 질서정연하게 각 종류별로 문밖으로 인도해 내라는 의미이다(19절).

⭕ 생육하고... 번성하리라 - 홍수로 땅이 황폐해졌고 주검만이 사방에 널려 있는 참혹한 상황 가운데서 노아를 위로하며 동시에 방주 안에 씨를 보존할 목적(7:3)을 일깨워 주는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의 메세지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참혹한 현실 속에 처할 때 종종 자신의 목적을 계시하므로 용기를 북돋워 주신다(12:1-3 ; 왕상 19:4-18 ; 행 23:11). 한편 우리는 여기서 많은 악인의 무리는 멸절시키고 소수 의인은 축복하시며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이중 사역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그 분의 공의와 사랑에 기초한 행동이다<13-19절 강해>.

성 경: [창8:18]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방주 밖으로 나온 생명들]

⭕ 노아가... 함께 나왔고 -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노아가 가족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는 장면이다. 이는 우리들에게 (1)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받은 자는 그것을 충실하게 전할 책임이 있음과(마 10:7, 8) (2) 또한 가족들은 한 가정의 대표자를 존중하여 그에게 순종함으로써 가정의 화평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엡 6:1-4).

성 경: [창8:19]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방주 밖으로 나온 생명들]

⭕ 그 종류대로 - '종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하'(*)는 '가족', '종족', '족속' 등으로도 번역되는 단어로(10:5 ; 레 25:10) 같은 종(種)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된 생활양식, 특성을 강조한다. 이와는 달리 각 종류간의 이질성과 개체성을 강조하는 단어로는 '민'(*)이 있다(1:11 ; 6:20 ; 7:14). 한편 여기서 모든 짐승이 그 종류대로 나왔다는 것은 (1) 그들이 각 종류별로 팀을 이루어 방주밖으로 나왔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17절> (2)모든 종류가 그 어느 것 하나 손상되지 않고 다 생명을 보존하여 방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생태계를 온전히 보존코자 하셨던 당신의 계획<7:3>을 전혀 실패 없이 성취하셨던 것이다.

성 경: [창8:20]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노아 제단 및 여호와의 언약]

⭕ 단(*, 미즈베아흐) - '자바흐'(제사드리다, 동물을 살육하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죽인 동물을 바치는 제단'이란 의미이다(출 29:18 ; 대하 29:22). 영어'altar'(제단, 성찬대)는 라틴어 'altus'(높은)에서 유래하였는데 이것은 제단이 통상적으로 언덕이나 바위등과 같이 높은 곳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한편 성경상 이 단어가 여기에서 최초로 언급되었긴 하나 하나님께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것은 노아 이전 시대부터 전해져 온 제사법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범죄한 인간이 피흘림이 있는 제사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원리는 이미 아담과(3:21) 아벨 때부터 나타났기 때문이다(4:4).

⭕ 모든 정결한 짐승... 단에 드렸더니 - 부정한 짐승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결한 짐승은 더 많이 보존되었으니(7:2) 이 짐승들 중 일부가 제물로 희생된 후에도 모든 짐승들이 균형을 이룬 채 번식하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성 경: [창8:21]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노아의 제단 및 여호와의 언약]

⭕ 그 향기(*, 레아흐 한니호아흐) - 문자적 뜻은 '향긋한 냄새'(공동번역) 또는 '만족시키는 향기'(soothing fragrance). 이같은 향기를 흠향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노아의 제사를 만족스럽게 받으셨다는 의인법적 표현이다(레 26:31). 그러나 이는 제물을 드린 노아의 믿음을 기쁘게 받으셨다는 뜻이지 제물 자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할 만큼 만족스런 것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믿음이 없는 제물은 그것이 아무리 풍성하고 값비싼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히 11:6; 사 1:11-14).

⭕ 그 중심에 이르시되 - 히브리어에 있어서 마음에 굳게 다짐하거나 스스로 결연된 단안을 내리는 것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이다(옵 1:3).

⭕ 다시는... 저주하지 아니하시리 - 직역하면 '다시는... 저주를 더하지 아니 하리니'. 이는 죄에 대한 심판(2:17)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거나 땅에 내린 저주(3:17)를 철회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아울러 이 말은 지역적인 홍수조차 없애겠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노아 때의 대홍수처럼 전인류를 멸하는 대대적인 물 심판만은 다시금 일으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 이는...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 인간 죄악으로 심판을 선고한 6:5-7과는 일견 상반되는 듯한 구절이다. 그러나 6장에 언급된 타락은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철저한 도덕적 부패를 의미한 것임에 반해, 여기서는 각 개인의 도덕적인 죄와는 동일시 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원죄(原罪)를 의미한다. 즉 아담 타락 후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에 대해 전적으로 무능하니 만일 그 같은 죄성의 결과를 물어 노아 홍수 같은 대심판을 반복한다면 사람과 땅과 짐승은 잠시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하고서 홍수 대심판과 같은 모든 생명체를 멸하는 심판은 최후 심판 때까지는 다시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여기서 주신 것이다.

⭕ 계획하는바(*, 예체르) - '야차르'(구조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나오는 인간성, 사고구조 등을 의미한다.

성 경: [창8:22]

주제1: [홍수의 멈춤과 지면의 회복]

주제2: [노아의 제단 및 여호와의 언약]

⭕ 땅이 있을 동안에는 - 직역하면 '땅의 모든 날 동안에는'. 곧 '세상 끝날까지'란 의미.

⭕ 심음과... 밤아 쉬지 아니하리라 - 홍수로 인해 파괴된 자연 질서와 생태계의 균형을 원상태로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이다<20-22절 강해>.

⭕ 쉬지 아니하리라(*, 로 이쉐보투) - '솨밧'(쉬다, 그치다, 끝나다)의 미완료형에 부정사 '로'(not)가 붙은 상태로 곧 영원토록 그치지 아니할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늘날 급작스런 기상 이변이나 자연계의 변화 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지구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이 세상이 끝나는 순간까지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연계의 정상적인 운행을 계속될 것이다.

성 경: [창9:1]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

⭕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 축복의 유일한 '주체자'(엘로힘)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언약에 근거한 복을 받는 객체에 불과할 뿐임을 보여 준다. 즉 하나님께선 아담에게 주셨던 원시 복음(3:15)을 기억하시고 그에게 준 것과 동일한 축복(1:28)을 인류의 새 조상인 노아 가족들에게 주신 것이다.

⭕ 그들에게 이르시되 - 자신의 심중에 결심하셨던 바(8:21)를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장면이다. 이로써 인류에 대해 갖고 게셨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더욱더 구체적으로 실행될 수 있었다(8-17절).

⭕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 혹자는 1:28과는 달리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이 생략된 것에 대해 주목한다. 그리고 그 까닭에 대해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들로부터 땅을 정복할수 있는 권한을 거두어 가셨기 때문으로 이해한다. 이는 타락한 인류와 함께 고통을 겪고있는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될 날만 고대하고 있다는 가르침(사 6:1-9; 롬 8:18-23)에 부합된다. 따라서 비록 땅이 부단히 정복되어 가고 있는 점은 부인될 수 없지만 피조계에 대한 원초적 지배권(정복권)을 박탈당한 인간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대로 자연계를 온전히 회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계의 온전한 회복은 오직 여인의 후손, 곧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가능할 것이다(엡 1:22).

성 경: [창9:2]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

⭕ 바다의 모든 고기가 - 노아 홍수시에 물고기도 그 종류대로 보존되었다거나 아니면 전멸되었다는 언급이 없었는데 여기서 다시금 물고기가 등장한다. 이는 (1)본래 물에서 살도록 지음 받은 생명체이므로 홍수 심판시에도 자연히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또한 인간과 함께 땅을 생활 터전으로 삼던 뭇 피조물과는 달리 인간의 죄책(罪責)에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은 생명체였으므로 심판의 대상에서 유보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뭏든 여기서 물고기까지 언급된 것은 인간을 제외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를 가리키기 위함이다.

⭕ 너희들 - 노아 가족만이 아닌 오고 오는 세대에 걸친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 두려워하며...무서워하리니 - 아담의 범죄 이전에는 인간과 다른 피조물 간에 아름다운 공존 관계가 유지되었으나(2:19) 타락 이후 이제는 하등 피조물들이 인간 권위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과 뭇 짐승들 간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그것들에게 심어 주신 인간을 향한 본능적 두려움에 의해서만 서로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음을 시사해 준다 (1-1절 강해). 한편 여기서 '두려워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라'(*)는 '야레'(깜짝 놀라다, 도덕적으로 경외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서 동물들에게 주신 생득적(生得的) '공포'를 의미한다. 그리고 '무서워하다'에 해당하는 '하타트'(*)는 '위축시키다', '위협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인간들로부터 당한 무서운 경험에 의해 후천적으로 취득케 된 '두려움', '불안감'을 의미한다.

⭕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타락 이후 이제는 영적 권위로는 더 이상 동물계를 지배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내리신 명령과 권위, 배후에서 역사하신 섭리에 의해서 계속해서 지배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일부 동물들을 가축으로 길들여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 좋은 예이다.

성 경: [창9:3]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

⭕ 산동물 - 인간에게 육식(肉食)을 허용하고 있는 최초 구절이다. 그러나 '산 동물'이라고 제한하여 다른 짐승에 의해 찢겼거나 이미 죽은 것은 모두 제외하고 있는데 이러한 규정은 훗날 율법화되었다(출 22:31; 레 22:8). 이는 시체를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던 히브리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을 유지하기 위한 조처였다(민 19:16).

⭕ 채소같이...너희에게 주노라 - 채소에 덧붙여 이제 동물도 인간의 음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정확히 언제부터 육식이 허용되었는가에 대해선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1)홍수로 말미암아 땅이 황폐해진 결과 식물이 부족하자 비로소 육식이 허용되었다(Rosenmuller, Clarke, Kalisch). (2)처음부터 허용되었으나 인간의 신체 구조상 채식이 적합하였으므로 스스로 먹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홍수 후 연약해진 신체의 변화로 인해 육식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Pererius, Aquinas, Luther). (3)타락 전에도 육식이 허용되었으나 여기서 그 허가가 새롭게 갱신된 것이다(Calvin, Bush, Lange). 아뭏든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이것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었다는 점인데(Keil, Alford) 이는 홍수 사건 이후 인간과 피조 세계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예시해 준다(1-7절강해).

성 경: [창9:4]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피의 금령]

⭕ 그 생명되는 피 - 생명체가 일정량 이상의 피를 흘리면 죽게 되는 것을 볼 때 생명과 피는 불가분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이 자명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피를 생명과 동일시 여기고, 더 나아가 영혼이 거하는 처소로까지 묘사한다(레 17:11, 14). 따라서 고기를 피 채 먹지 말라는 명령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모든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므로 인간이 그 주권을 절대 침해할 수 없다. (2)비록 짐승의 피일망정 피를 흘리고 먹는 일이 습관화되면 자연히 사람의 생명까지도 경시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교훈하시기 위함이다(Calvin).

⭕ 먹지 말 것이니라(*, 로 토켈루) - '아칼'(먹다, 소비하다)의 미완료형 부정 명령으로 영원토록 먹지 말라는 의미이다. 즉 이 명령은 노아 당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에 걸쳐 전인류가 지켜야 할 명령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모세 율법도 피를 먹지 못하도록 엄히 규정하였고(레 3:17;17:21;신 12:25;15:23), 초대 교회에도 이방인 개종자들이 피를 먹는 것은 금하였던 것이다(행 15:20, 29). 물론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은 성도들은 율법을 자구적(字句的)으로 준수하여야 하는 의무에서부터 자유하긴 하나(롬 3:28) 이러한 명령을 주신 근본 취지와 정신만은 영원토록 존중하여야 할 것이다(롬 3:31; 고전 8:1-13).

성 경: [창9:5]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피의 금령]

⭕ 반드시 - 문자적 뜻은 '왜냐하면', 그러나 여기선 인과적 의미보다 제한적 의미가 강하므로 '반드시'(surely)로 번역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 즉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인간 생명을 해친 자는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그 피에 대한 책임을 꼭 묻겠다는 뜻이다.

⭕ 너희 피...찾으리니 - 여기서 '찾는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리쉬'(*)는 '추적하다', '조사하다', '탐구하다'(신 12;30; 스10:16)는 뜻이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인간 생명을 해치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그냥 넘기지 않으시고 끝까지 추적하여 징벌하시겠다는 강한 의미임을 알 수 있다.

⭕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 모세 율법은 이에 대한 세부 규정을 기술해 놓았다(출21:28, 29). 그런데 짐승은 영혼이 없는 존재로 율법 조항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미물이니 짐승을 처벌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함으로 이해된다.

⭕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 직역하면 '사람의 손 곧 모든 사람의 형제의 손에서',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사람이 같은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에게도'(공동번역)이다.

성 경: [창9:6]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피의 금령]

⭕ 사람의 피를 흘리면 - 여기서 '흘리다'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파크'(*)는 '소비하다', '붓다'(시 69:24; 호5:10)는 뜻으로 우연한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죽인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에 대해선 반드시 보수하셨으나 우연한 실수로 사람의 피를 흘린 자에 대해선 그 생명을 보존토록 특별히 조처하셨다(출 21:13; 민 35:11-15).

⭕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 정확한 번역은 '사람에 의해 그 피를 흘릴 것이라', 즉 피의 보복을 하되 가인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 직접하시는 것이 아니라(4:18-12) 재판권을 사람에게 맡겨 간접적으로 시행하시겠다는 뜻이다. 모세시대에는 이것이 고엘(갚는 자, 피의보복자) 제도로 성문화되어 나타난다(민 35:19; 신 19:12). 그런데 이것이 살인자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복수할 수 있다는 근거로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십계명은 개인으로서의 살인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출 20:13).

⭕ 자기 형상대로...지었음이니라 -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원천적으로 설명해 주는 말이다(1:26, 27). 물론 인간 타락으로 인해 그 같은 하나님의 형상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하나님과의 교제시 그 접촉점(Contact point)을 이룬다(롬 1:19). 그러므로 인간을 살해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상해(傷害)하며 그분을 모독하는 하나님의 형상 파괴죄가 된다. 한편 여기서 '형상'(히, 첼렘)은 주로 성질상에 있어서의 유사성을 가리키는 말이지만(5:3) 인간의 육체 역시 하나님의 영광이 깃들기에 합당하도록 존귀하고 품위있게) 구성되었음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말이다.

성 경: [창9:7]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피의 금령]

⭕ 그 중에서 번성하라 - 6절과 대조되는 구절로 결국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퇴락치 아니하고 번성하기를, 그리고 그들에게 형벌 대신 축복 주시기를 원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또한 이는 인간이 허무하게 살해당해서는 안되는 존귀한 존재이며 나아가 번성하고 땅에 편만하여 그 어떠한 삶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펼쳐 드려야 할 자들임을 시사해 준다(롬 12:2).

성 경: [창9:8]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무지개 언약]

⭕ 하나님(*, 엘로힘) - 우주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강조하는 이 명칭(1:1)이 거듭 사용된 것(1절)은 하나님이 노아와 그 가족 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9, 10절)과 무조건적인 언약을 체결하셨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성 경: [창9:9]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무지개 언약]

⭕ 내가 - 언약의 주체자가 바로 하나님자신이심을 역설하는 말이다. 즉 이는 하나님이 스스로 언약을 베푸시고 그대로 실행할 것임을 강조해 주는데 이것은 피조물에 대한 그분의 무한한 사랑의 증거이다.

⭕ 언약 - 본래는 상호동등한 입장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계약으로 어느쪽이든 이를 어길 때에는 그에 준하는 보응이 따르기 마련이다(6:18).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언약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무조건적인 언약이다(8-17절 강해)

성 경: [창9:10]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무지개 언약]

⭕ 세우리니 - 본장에서는 언약을 '세우는 것'을 가리키는 각기 다른 세 종류의 히브리어가 사용되었다. (1)'쿰'(*):본절(원문상에는 9절)과 11, 17절에 나오는데 타락한 세상을 회복시키며 유지하는 언약의 기능을 강조하는 말이다. (2)'나탄'(*):12절에 나오는데 언약이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에 의해 주어졌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3)'자카르'(*):15절에서 '기억하다'로 번역된 단어로 언약의 지속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성 경: [창9:11]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무지개 언약]

⭕ 다시는...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 여기서 '홍수'(*, 마불)에 정관사

(*, 하)가 붙은 것은 다시는 '그 홍수', 즉 노아 홍수와 같은 세계적인 대홍수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국지적인 홍수가 자주 발생한다 하여 이를 하나님의 언약에 상치되는 것으로 오해하여서는 안 된다(8:21).

성 경: [창9:12]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무지개 언약]

⭕ 영세까지 - 직역하면 '숨겨진 세대에까지'. 이는 비록 인간들에계는 장래의 모든 일이 숨겨진 비밀처럼 알 수 없는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해서 낱낱이 아시고 미리 그들을 위해 계획하시고 계심을 나타내 준다(엡 1:3-10).

⭕ 증거(*, 오트) - '우트'(오다, 나타내다. 동의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에 대해 보증하시고 그 언약과 함께 하심을 명백히 나타내는 '신호물', '표시', '전조'(前兆)등을 의미한다.

성 경: [창9:13]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무지개 언약]

⭕ 무지개 - 이것이 이전까지는 없었으나 노아와의 언약 후 비로소 생겨났는지 그 이전부터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1)하나님의 천지창조 사역의 성격과 (2)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에도 기존의 별을 두고 맹세하신 것(15:5)에 근거할 때 무지개는 기존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Calvin, Kalisch, Lange).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은 자신의 언약시 중표로 삼으시거나(신 4:26; 3:28;시 19:1) 신령한 진리를 보여 주는 도구로 삼으시곤 하신다(마 6:26-30). 아마 그 이유는 당신이 친히 창조하신 천지 만물은 당신의 실천적 행위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언약의 증거 -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모든 언약은 그 본질에 있어 영원 불변하다(6:18). 그러나 그것이 주어지는 형식과 증거는 시대를 따라 형태를 달리한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생명이 단절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이란 약속을 주셨고(3:15) 모세시대에는 모세 같은 선지자의 약속을 주셨다(신18:15). 그리고 왕국시대에는 다윗의 위(位)를 이을 영원한 왕에 대한 약속을(삼하 7:12), 이사야 시대에는 고난 받는 종의 약속을 주셨다(사 42, 53장). 그런데 여기서는 무지개 언약을 주심으로 물 심판으로부터의 보호를 약속하고 계시니 결국 이 모든 언약의 증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징(表徵)이자 기독교 언약의 그림자인 것을 알 수 있다(8-17절 강해).

성 경: [창9:14]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무지개 언약]

⭕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 직역하면 '구름의 구름을 땅 위에 모을 때에', 이처럼 많은 구름이 한 지역에 모인다는 것은 곧 큰비가 내릴 전조이다(삿5:4;왕상 18:44, 45; 시 77:17).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를 보고서 또다시 노아 홍수 같은 물심판이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염려에서 자유토록 하기 위해 주신 보호의 증표가 곧 무지개이다.

⭕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 무지걔는 주로 소나기가 그친 후 찬란한 햇살이 비취기 시작할 때 목격된다. 그 까닭은 무지개가 형성되는 데 반드시 햇빛과 자욱한 안개 또는 물방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본절도 이러한 사실에 근거한 표현으로 햇살을 등진 맞은편 구름가운데 무지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가 구름을 인간 죄악으로 말미암아 찾아든 각종 환난과 질고로(3:16-9), 무지개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평안과 영원한 안식을 상징하는 것(요 3:16-18)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다 더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8-17절 강해).

성 경: [창9:15]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무지개 언약]

⭕ 다시는 물이...홍수가 되지 아니할 지라 - 직역하면 '홍수를 위한 물이 다시 있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세상 종말에는 물이 아닌 불로써 온 우주를 심판하실 것이란 점이다(벧후 3:10). 이 같은 심판이 지니는 성격이 어떠할런지는 소돔 성에 임한 국지적인 유황불 심판만으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데 성도들은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 이 같은 심판 중에서도 마치 물 심판 때 구원을 얻은 노아 가족들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장중에 온전히 붙들림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벧후 3:12-14).

성 경: [창9:16]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무지개 언약]

⭕ 보고(*, 라아) - 힐끔 쳐다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주목하여 살펴보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31:42;민 13:18) 하나님의 세밀한 주의력과 관심을 표명해 준다.

⭕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신다'는 말이 15절에 이어 반복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을 언제나 신실하게 준행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신인동형 동성론적(神人同形同性論的) 표현이다. 한편 언약의 징표인 무지개가 홍수를 막고 있듯이 오늘날 우리가 영원한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십가가에서 흘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가 하나님의 진노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그 피 공로를 덧입기만 하면 하나님의 진노에서부터 자유하게 될 것이다(요일 1:7).

성 경: [창9:17]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무지개 언약]

⭕ 또 이르시되 - 스스로에게 다시금 다짐하실 뿐 아니라(공동 번역) 노아에게 재차 공식적으로 확언하신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보증과 맹세는 비단 노아 뿐 아니라 홍수 후 전 인류가 그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낙심치 않을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성 경: [창9:18]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세아들]

⭕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 노아의 여러손자들 중 특별히 가나안만 그의 아비와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함이 실수한 결과 저주를 받게 될 인물(24, 25절)로서 향후 전개 되는 성경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 경: [창9:19]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세아들]

⭕ 퍼지니라(*, 나파츠) - 원뜻은 '산산이 때려 부수다'(삿 7:19; 시 2:9). '흩뿌리다'로 이 말은 노아의 후손들이 마치 잘 익은 봉숭아 꽃씨가 터져 사면에 흩어지듯 세상구석 구석에까지 확산, 정착해 살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한편 이는 '땅에 충만하라(1절)는 하나님의 축복의 성취인데 노아와 그 가족들은 아담과 거의 비슷한 상황 가운데(1:27, 28) 종족을 번성시켜 나갔다.

성 경: [창9:20]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세아들]

⭕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 직역하면 '땅의 사람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다', 이는 노아가 인류 최초의 농부였다든지 그때야 비로소 포도 재배가 이루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아담도 토지를 경작하였고(3:23) 가인도 땅의 소출을 수확하던 자였다(3:23) 가인도 땅의 소출을 수확하던 자였다(4:2, 3) 다만 이는 홍수 이후 황폐해진 땅을 노아가 다시금 경작하기 시작하였다는 뜻이다.

⭕ 포도나무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케렘'(*)은 복수(plural)의 의미로 많은 포도나무를 가리킨다. 아라랏 산의 위치로 추정되는 아르메니아지역(8:4) 서북편에는 넓은 야산 지대가 있는데 이곳은 실제로 고대의 유명한 포도 생산지였다.

성 경: [창9:21]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세아들]

⭕ 포도주를 마시고 - 포도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인'(*)은 일종의 '발효된 포도즙'을 가리키는 상용어이다(레 10:9; 시 60:3; 사 22:13; 욥 1:5). 그런데 여기에 정관사 '하'(the)가 붙은 것은 노아가 그 같은 포도주에 이미 익숙해 있었음을 나타내 준다(Kalisch).

⭕ 취하여(*, 솨카르) - '잔뜩 마시다'는 뜻으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만취된 것을 의미한다. 바로 여기에 노아의 잘못이 있는데 사실 그가 포도주를 마신 것 자체는 아무런 잘못일 수 없다(18-29절 강해). 왜냐하면 순수한 자연수를 구하기 어려웠던 히브리인들은 일상 생활시에 포도주를 음료수로 사용하였으며 하나님께 전제(奠祭)를 드릴 때에도 제물로 삼았었기 때문이다(출 29:40; 레 23:13). 그러기에 성경도 이를 과다 섭취할 때에 따르는 폐단에 대하여서만 엄히 경고하고 있다(잠 23:20, 21; 사 20:1; 28:7; 엡 5:18).

⭕ 벌거벗은지라 - 직역하면 '그 자신을 벗었다'(he suncobered himself)로 스스로 옷을 벗어버려 알몸을 드러낸 것을 뜻한다. 당대에 완전한 자로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노아도 이처럼 잠깐의 방만(放漫)한 자세로 인해 시험에 빠진 것은 우리 성도들이 한순간이라도 영적 긴장을 풀어서는 안됨을 교훈해 준다(마 26:41; 벧전 5:8).

성 경: [창9:22]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세아들]

⭕ '하체' - '하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르와'(*)는 '벗게 하다', '발가벗기다'란 뜻을 가진 '아라'에서 파생된 말로, 넓은 의미로는 벌거벗은 상태를 가리키나 좁은 의미로는 사타구니 부분의 성기를 가리킨다. 타락전 순결한 기쁨의 상징이었던 이것이 아담 범죄이후 수치(3:7;신24:1)와 불결함(애 1:8)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 보고(*, 라아) - 단순히 힐끗 지나쳐 보았다는 뜻이 아니고 만족스럽게 응시하였음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함의 실수는 아비의 하체를 본 그 자체에 있지 아니하고 그것을 보고 악의적으로 즐긴 데 있음을 시사해 준다.

⭕ 두 형제에게 고하매 - 보다더 적극적이고 경박스런 함의 죄이다. 정상적인 부자간(父子間)이라면 아들이 아비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 상례인데 함은 형제들까지도 아비의 수치를 목격하고 쾌감을 느끼도록 충동질한 것이다. 이처럼 범죄자들은 남들도 자신의 범죄에 가담토록 강요함으로써 동질감과 심리적 안정감을 얻으려는 경향이 있다.

성 경: [창9:23]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세아들]

⭕ 옷을 취하여 - 옷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시믈라'(*)는 주로 겉옷(garment)을 가리키는데(신 10:18;삿 8:25; 룻 3:3) 때로는 덮개나 보자기를 가리키기도 한다(삼상 21:9). 그런데 여기에 정관사 '하'가 붙은 것을 볼 때 셈과 야벳이 취한 옷은 노아가 벗어 아무렇게나 놓아 두었딘 바로 그 옷일 수도 있다.

⭕ 뒷걸음쳐 들어가서 - 아비의 수치를 보지 아니하고 덮어 주려는 조심스럽고도 사려 깊은 행동이다. 이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최초 효도의 예로서 비록 십계명으로 성문화(成文化)되지 않았을지라도 부모에 대한 존중은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 도덕률임을 교훈해 준다(출 20:12). 한편 다른 사람의 수치를 드러내지 않고 가려 주는 행위는 성도가 지녀야 할 당연한 태도인데 왜냐하면 성도들 역시 하나님 앞에서 죄로 인한 허물과 수치를 가리움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18-29절 강해).

성 경: [창9:24]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축복과 저주]

⭕ 작은 아들 - 22절을 볼 때 이 자는 함인것 같다. 그러나 혹자는 가나안으로 보기도 하는데(Poole, Inglis, Lewis) 이는 25절에서 가나안이 저주받고 있는 점에 근거한 견해이다.

성 경: [창9:25]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축복과 저주]

⭕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 난해 구절 중의 하나로 아비의 하체를 조롱한 함의 범죄가 왜 그의 아들 가나안의 저주와 연결되었는가하는 의문점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1)함이 받을 형벌의 가혹함을 더하기 위하여 가나안으로 대표되는 그의 후손들을 저주하였다(Calvin, Lange) (2)노아는 예언의 은사를 통하여 장차 가나안족이 징계를 받게 될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Theodoret, Willet) (3)가나안이 노아의 수치를 처음 목격하고 그 사실을 함에게 고한 진짜 범죄의 하수인이요 공범자였다(Aben Ezra, Poole, Jamieson) (4)함이 노아의 막내 아들인것같이 가나안도 함의 막내 아들이므로 같은 원리로 저주받았다(Hoffman, Delitzsch) (5)당시 가나안도 이미 그의 아버지의 불경건함과 죄악을 답습하고 있었다(Ambrose, Keil). 아뭏튼 함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아들이 저주받은 것은 자신이 저주받은 것 이상의 형벌이었고, 또한 자신의 미래는 아들 가나안의 미래 속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함은 가나안과 함께 복합적으로 저주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 종들의 종 - 최상급을 나타내는 히브리어의 관용적 표현으로 '가장 비천한 종'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용례로는 '신의 신'(신 10:17) '왕 중 왕', '노래중의 노래'등이 있다. 한편 이 저주는 역사속에서 그대로 성취되어 가나안 족속은 여호수아 시대에 셈족인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가장 비천한 종의 형태로 전락되었고(수 9:23), 그 나머지는 솔로몬 시대에 완전 정복당했다(왕상 9:20, 21). 그후에도 칼타고인이나 애굽인들과 같은 가나안 족속들은 페르샤인, 마게도냐인, 로마인 등과 같은 야벳 족속들에 의해 계속 철저히 정복당하였다(Keil).

성 경: [창9:26]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축복과 저주]

⭕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찬송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라크'(*)가 사람에게 적용되면 '그를 축복하다'는 뜻이 된다(신28:6;룻3:10). 따라서 본절은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셈에게 축복 베푸시기를 원한다는 함축적 의미를 지닌다.

⭕ 셈의 하나님 - 귀하고 특수한 것이나 하늘에 속한 신령한 축복에 대하여 얘기하고자 할 때 먼저 하나님과 연관지어 사고하며 발언하는 히브리인들의 관례를 보여 주는 구절이다(신 33:20).

성 경: [창9:27]

주제1: [무지개 언약과 노아의 실수]

주제2: [노아의 축복과 저주]

⭕ 야벳을 창대케 하사 - 문자적 뜻은 '야벳에게 넓은 공간을 주사', 이 말은 비단 야벳 족속의 영토와 인구 뿐 아니라 문명, 문화에도 관계된 것인데 참으로 구라파의 문화와 과학, 희랍의 철학, 로마의 법정신 등은 야벳의 후손들에 의해 이룩되었다.

⭕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 이 말은 야벳 족속이 셈 족속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뜻이 아니다. 이는 그들이 종교적으로 셈 족속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란 뜻이다. 야벳이 셈의 종교적 축복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뜻이다(Calvin, Keil, Lange). 실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3:15)은 후일 셈의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나셨고 그로 말미암아 복음이 온 누리에 퍼짐으로써 성취되었다. 한편 함 족속 역시 비록 종의 신세로나마 셈과 야벳의 장막에 거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배제당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오늘날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얻을 수 있는 것이다(요 3:16).

성 경: [창10:1]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야벳의 계보]

⭕ 홍수 후에...낳았으니 - 홍수 이후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다시 인류가 급속히 확산되었음을 보여 주는 본절은 비록 오늘날의 인류가 지정학적, 인종적, 신체적 특성과 기질을 달리하고 있긴 하나 근본적으로는 노아, 나아가 아담에게서 나온 한가족임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인종은 고대 원인(猿人)으로부터 진화, 변천된 개체라는 다윈 (Charles Da r win, 1809-1882)의 진화론(進化論)이 전혀 터무니 없는 주장임을 드러내 준다.

성 경: [창10:2]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야벳의 계보]

⭕ 야벳의 아들은 - 셋의 후손(5:6-32)보다 가인의 후손(4:16-24)이 이삭보다 이스마엘(25:12-26)이 먼저 기록된 것처럼 여기서도 셈(21-31절)보다 함(6-20절)과 야벳(2-5절)이 먼저 언급되어 있다. 이처럼 언약의 직접적 계승자를 보다 나중에 기록하고 있는것은 본서 저자의 독특한 문체인데 이는 하나님의 섭리가 점차적으로 계시되고 있음을 강조해 준다.

⭕ 야완 - 고대 페르시아어로는 '유나' 헬라어로는 '이아온' 또한 산스크리트어로는 '야바나'등으로 불리우던 이오니아인(Ionian)을 가리킨다. 이들은 헬라인의 조상으로(단 10:20) 소아시아 서부 지역에 거주하였다. 두발과 메섹 - 겔 38:2; 39:1에는 마곡의 속국으로 나와 있다. 이들은 이베리아인(Iberian)과 모쉬족(Moschi)으로 추정되는데 소아시아 동부, 티크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상류 또는 흑해 지역에 정착하였다.

⭕ 디라스 - 성경 외의 사료(史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명칭이다. 그러므로 학자에 따라서는 (1)에게 해 주변이나 타우루스(Taurus) 근방에 있는 아시아족의 조상 (3)펠라기스족(Pelagian)의 일파 등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어느 견해가 보다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성 경: [창10:3]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야벳의 계보]

⭕ 아스그나스 - 게르만족의 조상으로 추정되는데 렘 51:27에 의거하면 유키네(Euxine)와 카스피 해 사이 지역에 거주하였던 것 같다.

⭕ 도갈마 - 겔 27;14; 38:6에도 나오는데 시리아 국경 부근의 터어키 지방에 거주하던 민족으로 추정된다.

성 경: [창10:4]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야벳의 계보]

⭕ 달시스 - 길리기아의 다소(Tarsus)사람으로 보는 자도 있으나(Josephus) 스페인의 달테수스(Tartessus), 즉 선지자 요나가 도망치려 했던 곳인 다시스(욘1:3) 사람의 원조(元祖)로 보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이다(Eusebius, Bochart).

⭕ 깃딤 - 키프러스 섬과 지중해 연안에 살던 족속으로 성경에 자주 언급된다(대상1:7; 사23:1; 겔27:6; 단11:30).

성 경: [창10:5]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야벳의 계보]

⭕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 대로 - 야벳의 후예는 유럽-인도 인종(아리안족)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대별(大別)해 보면 지중해족, 북서 유럽족, 북동 유럽족, 알프스족, 힌두족, 드라비다족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 바닷가의 땅 - 지중해 건너편의 모든 땅을 의미한다. 처음에 지중해 연안과 여러 섬들에 거주하던 야벳 자손은 점차 유럽 본토 및 인도 지역으로 진출해 나갔다.

성 경: [창10:6]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함의 계보]

⭕ 함의 아들 - 이들은 주로 이집트, 가나안, 남아라비아, 에디오피아 등지에 정착하였는데 오늘날을 기준으로 하면 아프리카를 중심한 흑인종(Negroid) 분포 지역이다.

성 경: [창10:7]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함의 계보]

⭕ 하윌라 - '모래 땅'이란 뜻으로 아라비아에서 페르시아 만 사이의 광할한 사막 지대에 거주하던 함의 후손이다. 그런데 29절로 보아 이곳에는 셈의 후손인 하윌라족도 분할 거주하였던 것 같다(Kalisch).

⭕ 라아미의 아들은 스바 - '스바'는 솔로몬을 방문했던 스바의 여왕(왕상 10;1-10)으로 인해 우리에게 친근해진 명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정확히 어느 지역에 거주했던 족속인지는 분명치 않은데 아라비아의 미디안 지역 내에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 경: [창10:8]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함의 계보]

⭕ 그가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 '영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깁보르'(*)는'강력한 세력을 지닌 자', '폭력으로 통치하는 자'를 가리킨다(룻 2:1; 전9:11). 따라서 본절은 니므롯이 지상에서 최초로 강력한 국가를 형성했던 자임을 의미해 준다(10-12절).

성 경: [창10:9]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함의 계보]

⭕ 여호와 앞에서 -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로도 '하나님을 대적하여'로도 해석될 수 있는 구절이다. 그러나 니므롯(*, '반역하다'란 뜻의 '대적자'란 점에 비추어 볼 때 후자가 보다 타당하다(Augustine, Keil, Bush). 특이한 사냥군 - 문자적 뜻은 '짐승을 난폭하게 잡는 사냥꾼', 그러나 고대 전쟁영웅들을 가리켜 '사냥군의 제자'라고 일컬었던 관습과 당시 사냥은 전쟁을 대비한 훈련의 일환으로 활용되었던 점에 근거할 때에 이는 '잔혹한 전쟁광'을 의미하는 것일수도 있다(6-20절 강해).

⭕ 아무는 여호와 앞에...사냥꾼이로다 - 하나님 앞에서 무례한 권세를 부리며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가리켜 니므롯에 비유한 속담이다.

성 경: [창10:10]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함의 계보]

⭕ 바벨 - 함무라비(Hammurabi)왕 통치시 바벨론 제국의 수도이다. 완전한 히브리명은 바벨론(Babylon)인데 동은 티그리스, 서는 아라비아 사막, 남은 페르시아만, 북은 앗수르땅으로 둘러싸인 열대성 기후 지역이다.

⭕ 에렉- 일명 '우륵'(Uruk)으로도 불려지는 도시로 바벨론 동남쪽에 위치하였다. 1954년 독일 학자들에 의한 발굴 작업시 이곳에서 설형 문자판과 신전 등이 발굴되었다.

⭕ 악갓 - 사르곤(Sargon)이 창건한 아카드 왕조(B.C 2300-2100)의 수도이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바벨론 부근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 갈레 - 사 10:9에서는 '갈로'로 불리운 성읍이다. 그러나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유프라테스 강 동쪽의 니플(Nippur)로도 (Rawlinson), 티그리스 강동쪽의 크테시폰(Ctesiphon)으로도 (Jerome, Eusebius, Bochart) 추정한다.

성 경: [창10:11,12]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함의 계보]

⭕ 르호보딜 - '사각형 도시'란 뜻으로 니느웨의 한 위성 도시이다.

⭕ 갈라 - 니느웨 남방 약 80km지점, 티그리스 강과 삽(Zab)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했던 성읍이다.

성 경: [창10:14]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함의 계보]

⭕ 블레셋 - 지중해 갑돌(그레데)로부터 가나안 연안으로 이주한 해양 민족이다. 이들의 원거주지는 애굽이었으며 혈통상 함족으로 분류된다.

성 경: [창10:16]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가나안의 자손]

⭕ 여부스 족속 - 예루살렘 지역과 그 외곽 변두리에 거주했었는데(수 15:8; 삿1:21) 여호수아와 다윗, 솔로몬에 의해 세력이 약화되었다.

⭕ 아모리 족속 -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시 요단 동편과 서편의 산간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민 13:29; 수2:10; 9:10). 초기에는 바벨론 서편에서 세력을 떨쳤었는데 함무라비도 이 아모리 왕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

⭕ 기르가스 족속 - 가나안의 후손 중 가장 소수의 족속이다. 수 3:10;24:11;대상1:14등에 언급되어 있지만 그들이 어디에 거주하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성 경: [창10:17]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가나안의 자손]

⭕ 히위 족속 - 세겜과 기브온, 헬몬 산 아래에 거주하였다(수 9:7;11:13). 야곱의 딸 디나가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에게 강간당한 일이 있었는데(34장) 훗날 여호수아가 이 땅을 정복,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에게 나누어 주었다(수 9:3-21).

⭕ 알가 족속 - 오늘날 텔 알카(Tell Arka)로 알려진 알카(Arka)에 거주했었는데 이 도시는 트리폴리(Tripoli) 북쪽 약 다섯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 신 족속 - 알카 강의 남쪽, 즉 알카 근처의 센나(Senna)에 거주하였다.

성 경: [창10:18]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가나안의 자손]

⭕ 아르왓 족속 - 겔 27:8, 11에 나오는 아르왓(Arvad)에 거주하였는데 이곳은 현재 루와드(Ruwad)로 알려진 섬 마을로 트리폴리 연안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 스말 족속 - 베니게 남방, 트리폴리와 아르왓 사이의 소므라(Soemra)에 거주하였다.

⭕ 하맛 족속 - 오론테스(Orontes) 강변의 하맛에 거주하였는데 이곳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시 끝까지 점령당하지 아니한 지역이다. 다윗은 이곳 왕 도이와 우호 관계를 맺었고(삼하 8:9-12) 솔로몬은 이곳에 국고 성을 쌓았다(대하 8:4).

⭕ 이후로...흩어져 처하였더라 - 본서 기술 당시, 상기(上記)한 가나안의 여러 족속이 이미 실존해 있었음과 훗날 이들 족속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음을 증거해 준다.

성 경: [창10:19]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가나안의 자손]

⭕ 가나안의 지경은 - 15~18절의 여러 족속들이 차지하고 있던 영역을 대략적으로 나타낸 경계이다.

⭕ 그랄 - 블레셋 평원의 가사 남쪽에 위치한 성읍. 아브라함과 이삭이 기근을 피하여 한 때 이곳에 머문 적이 있다(창 26:1-6).

⭕ 라사 - 이 도시의 위치는 분명치 않다. 고대 유대 문헌에 의거하면 소돔과 고모라 근처의 사해 동쪽편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니 혹자는 시리아의 하맛 근처에 위치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성 경: [창10:21]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셈의 계보]

⭕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 에벨은 벨렉의 아버지이며(25절) 벨렉은 아브라함 계통의 조상이다(11:18-26). 따라서 본서 저자가 셈의 족보를 이야기하면서 먼저 에벨을 언급한 것은 그가 항상 히브리 민족의 계보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증거해 준다. 한편 '에벨'은 '건너편', '건너온 자'란 뜻으로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에서 가나안 땅으로 건너온 아브라함을 연상시켜 주는 데 '히브리'(Hebrew)란 민족 이름이 여기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는 학설도 있다(21-32절 강해).

성 경: [창10:22]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셈의 계보]

엘람 - 페르시아 만에서 카스피 해사이에 거주하면서 활로 유명하던 족속이다(렘49:35). 이들의 영토는 동쪽으로 티그리스 강, 서쪽으로 바벨론, 북쪽은 메대에 의해 경계지워졌는데 고대로부터 강력한 왕국이었다.

⭕ 앗수르 -티그리스 강 상류에 거주하다가 후에 소아시아로 퍼져 나간 앗시리아 족속이다. 앗수르는 B.C 2000년경부터 이미 독립 왕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였는데 북왕국 이스라엘은 훗날(B.C. 722) 이들에게 멸망당하였다.

⭕ 아르박삿 - 앗수르 북쪽, 삽(Zab)강 상류 지역인 아라파키티스(Arr a pa chitis)에 거주하던 족속이다.

⭕ 룻 - 소아시아의 리디아인(Lydian)으로 보는 자들도 있는 반면 메소포타미아 북편, 즉 아르메니아의 남방 경계에 위치한 루브디(Lubdi) 주민으로 보는 자들도 있다.

⭕ 아람 - 메소포타이미아와 시리아를 주요 거처로 삼았던 아람족(수리아인)이다. 이스라엘은 다메섹을 중심으로 한 이들 왕국과 많은 접촉을 가졌으며 전쟁도 자주 치루었다.

성 경: [창10:23]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셈의 계보]

⭕ 우스 - 이 아람의 아들로부터 우스라는 지명이 파생되었는데 렘 25:20; 애 4:21등을 참조할 때 그곳은 가나안 남쪽, 아라비아 사막에 위치한 광활한 지역이었던 것같다. 한편 욥의 고향도 이곳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욥 1:1).

성 경: [창10:25]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셈의 계보]

⭕ 벨렉...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 '벨렉'은 '팔락'(*, 나누다)에서 나온 이름으로 '분리'란 의미이다. 그런데 벨렉 당시에 세상이 나뉘었다는 것은 당시 바벨탑 사건(11:1-9)으로 인한 인구 분산 사건이 있었음을 뜻하는 것 같다(Keil, Lange).

⭕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 '욕단'의 뜻은 '작다'이다. 이 두 형제에게서 또한 혈통이 분리되었는데 벨렉은 아브라함계의 조상이며, 욕단은 아라비아계의 조상이다.

성 경: [창10:26]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셈의 계보]

⭕ 알모닷 - 남 아랍 족속인데 이들 후손이 예멘(Yemen)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 하살마뛕 - 인도양 연안에 위치한 아라비아 영토 하드라마웃(Hadramaut)에 거주하였다. 그곳은 향과 몰약으로 유명한 곳이다.

성 경: [창10:27]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셈의 계보]

⭕ 우살 - 예멘족으로 오늘날 예멘의 수도인 산아(Sana)에 주로 거주하였는데 이곳의 철광석은 오늘날까지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 디글라 - '종려나무의 땅'이란 뜻인데 이로 미루어 보아 이들 족속이 거주하던 지역은 종려 나무가 풍부했던 곳인 듯하다.

성 경: [창10:29]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셈의 계보]

⭕ 오빌 - 금 산지로 유명한 오빌(왕상9:28;대하 8:18)이란 지명이 여기서 파생되었는데 이 족속은 페르시아 만의 오만(Oman)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 요밥 - 분명치 않으나 학자에 따라선 '요밥'을 '광야'란 뜻의 아라비아어 '예밥'과 동의어로 보고 이들을 아라비아 광야에 거주하던 족속으로 단정한다(Bochart, Gesenius, Kalisch).

성 경: [창10:31]

주제1: [노아 아들들의 후예와 인류의 확산]

주제2: [셈의 계보]

⭕ 셈의 자손이라...나라대로였더라 - 셈의 후예는 크게 북부 셈족과 남부 셈족으로 나눌 수 있다. 이중 북부 셈족으로는 앗수르인, 아람인, 이스라엘인, 에돔인 등을 들수 있으며 남부 셈족으로는 아랍인을 들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셈족은 대체적으로 황색 인종으로 분류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성 경: [창11:1]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바벨탑 사건]

⭕ 온 땅 - 어떤 한정된 지역이나 그곳 주민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 사는 모든 인간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Living Bible은 '전 인류'(all mankind)로, 공동번역은 '온 세상'으로 번역하였다.

⭕ 구음이 하나이요 - 직역하면 '한 입술'. 바벨탑 사건 이전에는 인류의 언어가 동일했음을 강조하는 환유법적 표현이다. 이러한 언어의 통일성은 인류가 한 조상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입증해 준다.

⭕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 직역하면 '한 낱말'. 이는 당시 언어의 형태나 단어, 그리고 뜻이 인종이나 민족, 지역간을 막론하고 같았음을 뜻한다. 이러한 언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부여하신 특별한 의사소통 기능인데 바벨탑 사건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혼잡된 언어는 비록 비교 언어학, 언어 분석학 등이 끝없이 발달한다 해도 인간 머리만으로는 그 통일성을 완전히 밝혀 내지 못할 것이다.

성 경: [창11:2]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바벨탑 사건]

⭕ 동방으로 - 대홍수 후 노아 가족 및 그 후손들이 거주하였던 아라랏(8:4)에서 바벨론은 정확히 남동쪽이 된다. 그러나 이를 가리켜 '동방' 이라 한 것은 기본 방향만을 나타낸 것으로 이해할수 있다.

⭕ 옮기다가(*, 나사) - 원뜻은 '잡아 뽑다'(사 33:20)로 유목민들이 이동할 때마다 유숙하기 위해 쳐놓았던 장막의 말뚝을 뽑는 것에서 나온 말이다(민 2:34).

⭕ 평지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비크아'(*)의 본래 의미는 '나누인 사

이', 즉 산과 산 사이의 비교적 넓고 평평한 골짜기를 가리킨다. 그러나 70인역이 이를 '페디온'(*, 넓은 평지)으로 번역하고 있듯이 여기서는 상당히 넓게 펼쳐진 평야 지대를 가리킨다. 이 같은 장소는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길을 나섰던 유목민들의 눈길을 단번에 끌었을 것이다.

성 경: [창11:3]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바벨탑 사건]

⭕ 서로 말하되 - 직역하면 '각자 그 이웃에게 얘기하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도리어 그를 배척하면, 인간끼리의 중지(衆智)를 모아 일을 결정하되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결의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내 주고 있는 구절이다.

⭕ 자 - 서로 격려하거나 무슨 일을 권유할 때 쓰이는 단어로 '준비하자', '시작하자' 등의 의미이다. 공동 번역은 '어서' 로 번역하였다.

⭕ 견고히 굽자 - 문자적 뜻은 '굽고 또 굽자'. 햇볕으로 벽돌을 건조시킨는 것이 고대인들의 일방적 방법이었던 점에 비추어 불로서 벽돌을 굽는 이 방법은 당시 그들의 문명이 상당한 수준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증거해 준다<1, 2, 3, 4, 5, 6, 7, 8, 9절 강해>.

⭕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 자연석이 풍족하지 못했던 시날(바벨론)지역에서 가마를 이용, 벽돌을 구워내는 방법을 개발한 것은 문명의 개가(凱歌)였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불에 구운 벽돌은 자연석보다 더 내화성(耐火性)이 강하기 때문이다.

⭕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 벽돌과 벽돌을 견고하게 접착시키는 데에 진흙이나 회반죽 대신 역청을 사용하였음을 뜻한다. 여기서 '역청'(*, 헤메르)은 '끓다'란 뜻의 '하르마'에서 파생된 말로 바벨론이나 사해 부근의 지하 분수지에서 기름(oil)처럼 끓어 오르는 역청(*, 아스팔토스)을 말한다.

성 경: [창11:4]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바벨탑 사건]

⭕ 성과 대를 쌓아 - 여기서 '성'(*, 이르)은 '도시', '성읍'을 의미하며 '대'(*, 믹달)는 '탑'을 의미한다. 이는 곧 대제국 건설과 이를 기념하는 탑을 건설하려 한 것을 뜻하는데 이러한 건축 공사를 실행한 주체는 니므롯 왕조(10:8, 9, 10, 11, 12)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 '내가 하늘에 올라...나의 보좌를 높이리라'(사14:13)고 한 사단의 자만과도 같은 자만심의 발로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이러한 자들에 대하여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마 11:23)고 경고하신다.

⭕ 우리 이름을 내고 - 직역하면 '우리 스스로를 위하여 이름을 새기고'. 이는 바벨탑을 건축한 일차적 동기로 무실론적인 인본주의와 허망한 인간의 명예욕을 드러내 준다. 유대인 철학자 필로(Philo)에 의하면, 당시 사람들은 각자 벽돌에다 자신들의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 속에서 바벨탑 건축자들의 이름은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아이로니칼하게도 자신을 드러냄 없이 주를 위해 겸허하게 살다간 주의 종들의 발자취는 길이 남아 빛나고 있다(히 11:4-40).

⭕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 바벨탑 건축의 두번째 동기로 가인의 후예들이 가인이 받은 땅에서의 유리 방황하는 저주(4:12)를 인간적인 수단으로 극복해 보려고 하는 교만과 무지를 드러내 준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인류가 번성하여 땅에 널리 퍼지고 충만하는 것이었지 결코 각 개체들의 자주권이 억압당하는 세계적 단일 제국 형성에 있지아니 하였다(1;28;9:1).

성 경: [창11:5]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바벨탑 사건]

⭕ 여호와께서...강림하셨더라 - 간견적 형태의 현현(출 19:20;민 12:5)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 행위를 간섭하시고 중재하시기 위하여 역사하는 것을 뜻하는 신인 동형동성론적 표현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간섭은 자신에 대해 반역하는 교만한 인간들을 징계하고 심판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7, 8절) 이를 가리켜 한 유대 랍비는 '하나님이 자비의 보좌에서 심판의 보좌로 내려오셨다' 라고 평하였다.

성 경: [창11:6]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바벨탑 사건]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그 중심에 이르시되'(8:21)와 같은 의미로 하나님께서 이미 마음 속에 스스로 결정해 놓았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 무리(*, 암) - 동질성이 강조되는 집단. 즉 동일한 목적 아래 힘을 규합하며 협력하는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는 인간들이 죄를 짓는 데 집단적 일체감을 느낀 것을 지적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 인류 공동체적 범죄가 가능했던 조건이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단일 언어를 주신 것은 서로 합력하여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도록 하기 위함이었는데 인간은 오히려 이것을 악용하였으나 그 결과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와 선물을 거두어 가신 것은 당연하다.

⭕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 직역하면 '이제는 그들로부터 그들이 하려고 마음 먹은 것들을 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막을 방도가 하나님께서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이는 그들의 불순한 생각이 절정해 달해 다시는 돌이킬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뜻일 뿐이다(3:22).

성 경: [창11:7]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바벨탑 사건]

⭕ 자 우리가 내려가서 - 5절과 동일한 신인 동형 동성론적 표현이다.그런데 여기서'우리'라는 복수형이 사영된 것은 단일한 신성(神性) 가운데 영원하고 동일한 삼위(三位)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해 준다<1:26>. 한편 여기서의 '자'(Come)는 4절의 것과는 대조되는 것으로 삼위 하나님이 서로에게 다짐하며 권유하는 형식의 말인데 이것은 삼위 하나님의 사역 목적이 동일함을 나타낸다(요 6:38, 39).

⭕ 언어를 혼잡케 하여...못하게 하자 - '혼잡하게 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발랄'(*)은 '뒤섞다'는 뜻이다 (레 2:4;민 15:6).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언어를 분리, 단절시키셨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본절은 언어란 것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는 문화 유산이긴 하나 그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강권적인 언어 분리 사역에 따른 근원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분명히 증거해 준다 <1-9 강해>.

성 경: [창11:8]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바벨탑 사건]

⭕ 여호와께서...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는 단순히 인류를 징계하려는 데만 그 목적이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이 땅에 충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하시고 명령하신 축복이며 따라서 인간의 역반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자신이 이를 강권적으로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과 계획을 역사 속에 성취시키시는 신실하신 분인데 우리가 그분의 약속을 복음으로 받아들이고 굳게 믿을 수 있는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삼상15:29).

성 경: [창11:9]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바벨탑 사건]

⭕ 바벨(*, 바벨) - 이 단어의 유래에 대하여는 다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혼잡하다'를 의미하는 '바랄'(*)이 '발벨(*)로 발전되었고, 이어 이 단어에서 (* 라멜)이 생략되면서 결국 '혼잡'을 의미하는 '바벨'이 된 것이다. 둘째, 본래 '신(神)의 문' 을 의미하는 '밥일'(*)로부터 유래한 단어이다(Gesenius, Rosenmuller). 이 두 견해 중 문맥상 '바벨탑'에 적합한 의미는 전자인 듯하다. 한편 오늘날 고대 바벨탑의 유적으로 가장 유력시되는 탑이 두개 있는데 곧 마르둑(Marduk)tlswjsdml 'dpxpapskszl(Etemenanki) 탑' 이다. 이 중 전자는 유프라테스 강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데 기초만 남아 있을 뿐 그 본래 구조와 형태는 알아 볼 수 없다. 그리고 후자는 유프라테스 강 서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역청과 벽돌로 된 구조물이 아직도 7층 높이로 남아 있다.

성 경: [창11:10-26]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셈의 후예]

⭕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 이는 10:21-31에 나온 셈 계보의 단순한 반복 기술이 아니다. 이것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계보를 밝히기 위해 특별히 씌어진 것인데 여기에는 셈에서부터 아브라함에 이르는 계보가 연대기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성 경: [창11:12,13]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셈의 후예]

⭕ 삼십 오 세에...사백 삼 년을 지내며 - 인간 범죄로 말미암아 노아 홍수 이후 계속해서 인간의 득남 연령과 수명에 큰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홍수 이전까지의 족보(5:6-32)에는 65세에서 187세 사이에 득남한 것으로 나와 있으나 본절로부터 26절의 족보에는 29세에서 100세 사이에 득남한 것으로 나와 있다. 또한 수명에 있어서도 홍수전 족장들의 평균 수명은 858세였으나 홍수 후 평균 수명은 317세였다.

성 경: [창11:18]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셈의 후예]

⭕ 르우 - '친구', '동료'란 뜻으로 이 이름은 그가 하나님과 벗하는 자였음을 나타내준다. 우리는 여기서도 아라비아족 계통의 욕단 후예와 아브라함족 계통의 벨렉 후예<10:25>간의 차이점이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성 경: [창11:26]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셈의 후예]

⭕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 - 나홀이 하란의 딸과 결혼한 것(29절) 및 12:4 등에 근거할 때 하란이 데라의 맏아들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 기자가 아브람을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그의 영적 장자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성 경: [창11:27]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데라의 가족]

⭕ 데라는 아브람과...낳았고 - 아브람의 출생 연대를 성경 기록에 따라 역산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왕상 6:1 에 근거한 출애굽 연대 B.C.1446년에 이스라엘의 애굽 체재 430년 (출 12:40),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의 연령 100세 (25:26), 야곱이 애굽에 이주할 당시 나이 130세(창 47:9)를 모두 더하면 B.C.2166년이란 아브라함 출생 연대가 나온다. 그러나 출에굽 연대에 대하여서도 학자들마다 차이를 보이며, 성경 족보도 중간마다 생략된 경우가 많으므로 이는 어디까지나 개략적인 연대일 뿐이다.

성 경: [창11:28]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데라의 가족]

⭕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죽었더라 - 여기서 '그 아비 보다 먼저'의 문자적 의미는 '그 아비 면전에서'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 아비가 살아 있을 때에'로 봄이 타당하다(Luther, Calvin, Rosenmuller). 그러나 유대 전승에 의하면, 당시 데라는 화신(火神) 숭배자였는데 아들 하란이 이를 거부하자 그들 당국에 고소, 자신의 면전에서 불에 타죽게 했다 한다. 그러나 이의 사실성은 믿기 어렵다. 아뭏든 하란의 죽음은 성경상 아비보다 먼저 죽은 최초의 경우로 (1)인간 수명이 더욱 단축되었음을 시사하며 (2)죽음은 그 누구에게도 순간적으로 엄습할 수 있음을 경고해 준다.

성 경: [창11:29]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데라의 가족]

⭕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 '아브람' 의 뜻은 '고귀한 아버지' 로 선민의 조상인 그에게 걸맞는다. 그리고 '사래'는 '나의 공주'란 뜻이다. 후일 이 이름은 하나님에 의해 각각 '아브라함'(많은 무리의 아버지)과 '사라'(여주인)로 바뀌는데(17:15) 이는 그들이 지엽적 존재에서 믿음의 조상이란 거시적 존재로 변모 되었음을 뜻한다.

⭕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 나홀의 조카 딸과 결혼하였듯이 아브람 역시 이복 누이와 결혼 하였다(20:21). 이러한 근친 결혼은 족장 시대에 있어서는(1) 지리적, 문화적 여건상 불가피하였거나 (2) 혈통 우월주의에 입각한 종족 보존 방법일 수도 있었고 (3) 또한 순수한 여호와 신앙을 전수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 방법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구 증가 및 확산이 이루어졌고 한 가정의 성적 순결 유지가 더욱 중요하게 된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근친 결혼을 공식적으로 금하셨다.(레18:1-18).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성적 혼란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법정신을 깨닫고 그 뜻을 철저히 준행하여야 한다.

⭕ 하란은...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 '이스가'의 뜻은 '선견자'이다. 그런데 밀가에 대한 기록은 다른 곳(22:20, 21, 22, 23, ;24:15, 24, 47)에서도 나오지만 이스가에 대한 기록은 없다. 따라서 그녀가 왜 여기에 언급되었는지 알 수 없다.

성 경: [창11:30]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데라의 가족]

⭕ 사래는...자식이 없었더라 - 많은 무리의 아비가 될 자인 아브라함이 이때까지 자식이 없었다는 큰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자식을 신의 선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아이가 없다는 것은 신의 은총에서 제외된 자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라나 당시 급속히 번식해 나가던 이방 족속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은 그분의 엄밀한 계획하에 있었으니 이는 마치 씨앗이 땅 속에서 발아의 때를 기다리듯 아브람의 씨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잠시 대기하고 있는 상태일 뿐이었다.(17:1-8).

성 경: [창11:31]

주제1: [바벨탑 사건과 인류의 분산]

주제2: [하란으로의 이주]

⭕ 데라가...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 데라가 무엇 때문에 그의 본토를 떠났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으나 행 7:2, 3에서 스데반이 말한 것처럼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주요 동기였을 것이다. 물론 이 외의 다른 요소들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던 것이라 하겠다. 한편 여기에는 갈대아 우르를 떠난 무리 중 나홀이 빠져 있는데 24:10에 나홀이 우르에서 메소포타미아로 옮겨간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먼저 데라 일행이 이주 한 후 나홀의 가족도 뒤따라 이주한 것 같다.

⭕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 이곳은 당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거민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땅이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곳으로 아브람을 인도하려 작정하셨으며 아브람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히 11:8)서도 그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믿음의 순례 길을 떠난 것이다.

⭕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 데라의 노쇠함 때문에 가나안으로의 여행이 이처럼 잠시 지체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데라 사후 12:1에서 가나안 이주를 위한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직접적인 언약이 보다 명료하게 제시된다.

성 경: [창12:1]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아브람의 소명]

⭕ 여호와 -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호와'(*)란 신명칭을 본장에서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본서 기자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선택된 백성을향한 그 분의 언약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증거해 준다<2:4>.

⭕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 일반 사람들도 들을 수 있는 말씀으로 아브람의 계시를 받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의 심령 속에 내적으로 임했는지 분명치 않다. 다만 '이르시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마르'(*)의 의미가 대개 '말한다', '이야기한다'란 점에 비추어 볼때 전자일 가능성이 크다.

⭕ 본토 - 혹자(Calvin)는 이를 '우르'로 이해하고 아브람이 구체적 소명을 받은 것을 우르에 있을 때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11:31). 그러나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 떠난 곳이 '하란'인 점에 입각할때(4절) 이는 하란 , 더 나아가 우르와 하란을 포함하는 메소포타미아 전지역을 가리키는 것임에 분명하다.

⭕ 떠나...가라 - '누가 네 뒤에 남든지 상관 말고 너를 위하여 떠나라' 는 의미이다. 기독교 역사는 이러한 떠남과 분리의 역사인데 오늘날 우리 성도들 역시 죄악된 이 세상에서 분리되어 의와 거룩을 좇는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한다(롬 12:2).

⭕ 내가 네게 지시할 땅 - 직역하면 '내가 네게 보여 줄 그 땅'. 여기서 '보여 줄' 은 미래 미완료형으로 아직까지는 보여지지 않으나 미래에는 구체적으로 보여질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땅'은 아브람으로서는 불명확하나 하나님으로서는 이미 작정해 놓은 가나안 땅을 의미한다.

성 경: [창12:2]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아브람의 소명]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 Living Bible은 문두(文頭)에 '네가 그렇게 하면'(If you do)이란 말을 부기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 '큰 민족' 이란 단순한 숫자적으로 인구가 많은 것 뿐 아니라 영적으로 위대한 민족을 가리키는 바 곧 '이스라엘' 에 적합한 명칭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그의 적은 수의 친척을 떠나기만 하면 (1절) 그 보상으로 오히려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시리라고 보장하셨다.

⭕ 네게 복을 주어 - 아직껏 무자(無子)한 아브람(11:30)이 많은 무리의 아비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는 근거이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니 그분께서 원하시고 또한 복을 내려 주시기만 하신다면 인간적인 모든 제약은 사라지고 만다(롬 4:18).

⭕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 직역하면 '내가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다'.이는 곧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유명케 하여 그 이름이 길이 회자(膾炙)되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아브람의 이름은 위대하게 되었다. 즉 열국의 아비(17:4, 5), 선지자(20:7), 하나님의 방백(23:6), 여호와의 종(시 105:5, 6) 하나님의 벗(약 2:23) 등의 명칭을 부여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은 선민 이스라엘의 시조(始祖)로서, 또한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믿음의 조상으로서 길이 남게 되었다. 이처럼 사람을 높이시는 이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시니 겸손한 자는 높이 들림받지만 무릇 스스로 높아지려는 자는 낮아지고 말 것이다<1, 2, 3절 강해>.

⭕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예 베라카'(*)는 곧 '너는 복이 될지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함죽하고 있는 의미에 대하여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된다. (1) 아브라함으로 인한 물리적 풍요(슥 8:12)를 의미한다.(Gesenius, Rosenmuller) (2) 사람들이 상호 축복의 양식(樣式)이 된다는 뜻이다.(Calvin, Knobel, Kimchi) (3) 여기서 복은 영적인 복으로서 곧 아브라함은 그로 말미암는 복의 기준이 되리라는 뜻이다(Keil, Delitzsch, Kalisch). 이상의 견해를 종합해 볼 때 물론 첫번째와 두번째 견해도 세번째 견해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라함으로 말미암는 영적 축복이란 단순한 아브라함 개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긍적으로는 그의 가계(家系)에서 약속된 '여자의 후손'(3:15)인 메시야가 나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과 영생은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미칠 수 있는 것이니(살후 2:13, 14) 그 같은 메시아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가리켜 '복의 근원'이라 칭함은 당연하다.

성 경: [창12:3]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아브람의 소명]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내가 저주 하리니 - 하나님과 아브람과의 각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이 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상호 공수 맹약을 맺으시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제 아브람의 이웃은 아브람과의 관계에 따라 그들도 각각 하나님께 축복과 저주를 받게 될 것을 의미한다. 이 원리는 신약 시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 여기서의 '저주'(*, 칼랄)는 '감소시키다', '낮게 여기다' 는 뜻으로 곧 남을 멸시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행위를 가리킨다.이것은 하나님과 특별 맹약을 맺은 하나님의 종 아브람을 멸시여기는 행위는 곧 하나님을 업수히 여기는 행위가 된다는 뜻이다.

⭕ 내가 저주하리니 - 여기서의 '저주'(*, 아라르)는 하나님의 법에 따른 공적 저주를 의미 하는데 이에는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인 징계 조처와 형벌이 따르게 된다(삼상2:30, 31, 32, 33).

⭕ 땅의 모든 족속이...얻을 것이니라 - '복의 근원'(2절)에 대한 보충, 확대 설명이다(갈 3:8). 축복은 타락 결과 인간에게 주어진 저주(2:17;3:16, 17, 18, 19)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니, 이러한 축복은 단순한 물질적 축복 뿐 아니라 죄를 사해 주는 영적 축복을 포함한다(Calvin, Keil, Luther). 즉 본질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구상의 모든 민족이 자신의 죄에 대하여 해결받고 진정한 삶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리라는 복된 언약이다(눅 24:47).

성 경: [창12:4]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가나안으로 향하는 아브람]

⭕ 여호와의 말씀 - '말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바르'(*)는 '명령'을 의미한다(27:19;왕상 12:12). 따라서 이는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의 절대 기준으로 삼았으며 말씀의 권위를 존중, 어김이 없었음을 나타내 준다(22:1, 2, 3, 4, 5, 6, 7, 8, 9, 10, 11, 12).

⭕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메소포타미아를 떠난 사실이 거듭 언급되고 있는 까닭(11:31)은 그가 이후 아브라함과의 관계에서 많은 족적을 남겼기 때문이다(13:1-13;14:13-16;19:1-28).

⭕ 아브라함이...그 나이 칠십 오 세였더라 - 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 칠십 오세였으니(25:7) 이때는 그의 중년기이다. 대개 중년기의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려 하며 변화를 기피하려는 것이 일반적인데, 갈 바를 알지 못하고서도 지체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본토 집을 나선 아브람에게서 우리는 진정한 용기와 신앙의 결단력을 보게 된다(마 4:18, 19, 20, 21, 22).

성 경: [창12:5]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가나안으로 향하는 아브람]

⭕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 - 연로한 부친 데라로 말미암아 뜻하지 아니하게 체류하게 되었던(11:31) 하란 거주 생활이 비교적 오래 지속되었음을 나타낸 준다. 한편 당시 아브람과 롯은 유목인이었으니(13:5) 그들의 모슨 소유물은 대부분 가축이었을 것이다(13:2).

⭕ 얻은 사람들 - 직역하면 '획득한 자들'. 대족장 아브라함 집에 속한 남녀 종들과 그들의 자식을 가리킨다. 일손이 부족한 아브람에게 많은 가축을 돌보기 위해서는 부득이 종들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 본절은 마치 아브람이 목적지를 알고서 길을 떠난 듯이 오해할 수 있는 구절이다. 그러나 이는 11:31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결과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 밖에 없는 작정된 땅이 바로 가나안임을 일깨워 주는 구절일 뿐이다<1절>.

⭕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 하란에서 가나안까지는 약 480Km정도의 거리인데 당시의 여행으로 미루어 보아 아브람 일행은 유프라테스 강변을 따라 시리아에 도착, 그곳 광야를 횡단하여 다메섹에 이른 후 가나안으로 직진하였을 것이다.

성 경: [창12:6]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가나안으로 향하는 아브람]

⭕ 모레 상수리나무(*, 엘론 모레) - '본다'는 뜻을 가지 '라아'(*)로부터 파생된 '모레'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가르치는 자'를 뜻하는데 '예언자'로 번역될 수도 있다. 그리고 '강하다'란 뜻을 가진 '울'(*)로부터 파생된 '엘론'은 상수리나무 처럼 재질(才質)이 강하며 병충해도 잘견디는 나무를 가리킨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모레 상수리나무'를 고대 이교도들이 신탁(oracle)을 받을 때 사용하던 '예언자의 나무'로 본다. 그러나 '마므레'와 같이(13:18) '모레'가 단순히 상수리나무 숲의 주인 이름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Alford, Murphy, Kalisch).

⭕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 아브람이 세겜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벧엘과 남방으로 옮겨 가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8, 9절). '가나안 사람'은 함의 후예(10:6)로 우상숭배 행위에 탐닉하며 배타심이 강하던 족속이었으니 아브람이 그들 가운데서 생활하기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4-9절 강해>.

성 경: [창12:7]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가나안으로 향하는 아브람]

⭕ 여호와께서 아바람에게 나타나 - '나타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는 '증명하다', '보이다'는 뜻으로 아브람에 대한 하나님의 현현(theophany)이 꿈이나 환상이 아닌 눈으로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증거해 준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므로(요 4:24) 눈에 보이는 것은 온전한 하나님 자체가 아니라 그분의 임재의 상징이거나 표시일 것이다(17:22;18:1, 2;출 3:2). 그러나 이것은 계시를 받는 자가 분명히 인지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 가라사대 - 대개의 경우 하나님의 현현(顯現)에는 선포되는 말씀이 동반된다. 따라서 계시 수납자는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분의 특별 계시를 귀로 들을 수 있다(33:24, 25, 26, 27, 28, 29, 30).

⭕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 1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다. 이로써 아브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섭리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곳 가나안이 자신의 후손들에게 허락된 '약속의 땅'임을 알게 되었다. 훗날 이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출애굽의 원동력이 되었으며(50:24;출 3:15, 16, 17, 18, 19, 20) 또한 민족적 일체성을 유지하는 근본 동인이 되었다.

⭕ 여호와를 위하여...단을 쌓고 -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제단을 쌓은 자로는 아브람 이전에 이미 노아가 있지만(8:20) 자신에게 현현하신 하나님을 기념하여 제단을 쌓는 자는 아브람이 처음이다. 이로써 아브람은 장차 그의 후손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에 대하여서도 함께 감사하였을 것인데 참된 신앙은 이처럼 보지 못하고 장래 일에 대하여서도 믿고 감사할 줄 아는 것이다(히 11:1, 13).

성 경: [창12:8]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가나안으로 향하는 아브람]

⭕ 벧엘 - '하나님의 집'이란 뜻. 아브람 당시의 본래 이름은 '루스'였으나 야곱에 의해 벧엘로 바뀌었다(창 28:16, 17, 18, 19). 예루살렘 북방 약 19Km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베이틴(Beitin)으로 좋은 샘들이 많아 고대로부터 유목민들의 각광을 받던 곳이다.

⭕ 아이 - '황폐한 작은 산'이란 뜻. 벧엘 동남쪽 약 3Km지점에 위치한 가나안의 요새화 된 성읍이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시 아간의 범죄로 일차 정복에 실패한 성읍이 바로 이 아이 성이다(수 7:1-26).

⭕ 여호와를 위하여...이름을 부르더니 - 여기서 단을 쌓는 것은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을 뜻하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찬송과 기도가 있는 공(公) 예배를 드리는 것을 뜻한다<4:26>. 즉 아브라함은 가나안 입성 후 처음으로 모든 식솔들을 불러 모아 하나님께 대한 공 예배를 드림으로써 자신의 가정에 예배 규례를 확립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아브람은 정처없이 유리하는 중에서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찬양은 성도가 멈추어서는 안 되는 영적 호흡이다.

성 경: [창12:9]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가나안으로 향하는 아브람]

⭕ 점점...옮겨 갔더라 - 이러한 이주 원인은 원주민과의 마찰 때문으로 추측되는데(6절) 얼마의 시간 동안에 어느 만큼 이동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가다가 장막을 치고, 다시 출발하곤 하는 일을 되풀이 하였을 것이다.

성 경: [창12:10]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아브람의 아내 사래 사건]

⭕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 가나안(팔레스틴) 지방은 지리적 여건상 우기와 건기가 뚜렷이 구분되어 대개 양력 10, 11월에 집중적인 비가 내린다. 따라서 이때 비가 적게 오면 그 다음 해에는 기근이 들게 마련인데 가나안으로 이주한 아브람에게 때맞춰 닥친 이러한 기근은 다시금 그의 신앙과 인내를 시험하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 애굽에...내려 갔으니 - 애굽은 나일강이란 풍부한 수원(水原)으로 인해 어지간한 가뭄에도 불구하고 거의 기근을 모르는 지역이다. 따라서 아브람이 기근을 당하여 메소포타미아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애굽으로 내려간 것은 지혜로운 행동으로 평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애굽은 성경에서 세속을 상징하는 나라나 혹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적 도움, 수단으로 묘사되어 있음을 볼 때 (사 31:1) 그가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 애굽으로 내려간 것은 경솔한 처사이자 실족을 자초하는 전조 행위였다 하겠다<10-20절강해>.

성 경: [창12:11]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아브람의 아내 사래 사건]

⭕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 직접 재난을 당하기도 전에 미리 도덕적 나약성과 두려움을 보인 아브람의 태도는 하나님을 의뢰치 아니하는 자가 드러내게 되는 비신앙적 면모와 다를 바 없었다.

성 경: [창12:12]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아브람의 아내 사래 사건]

⭕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 시대를 막론하고 이방인이 타지에서 경원시 당하는 것은 보편적 현상이다. 더군다나 당시 애굽 사료들에 의하면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살인쯤은 예사로이 자행하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아브람은 애굽인들이 자신을 죽이고 사래를 빼앗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지금까지 자신을 인도하며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을 여전히 믿었더라면 이러한 부질 없는 염려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 경: [창12:13]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아브람의 아내 사래 사건]

⭕ 원컨대(*, 나) - 간청을 나타내는 기본 불변사로 '미안하지만', '부탁드리지만' 정도의 정중한 어감을 지닌다. 이는 아브람이 아내 사래에 대한 결례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의사를 완곡히 강요하였음을 시사한다.

⭕ 나의 누이라 하라 - 혹자는 아브라함의 이러한 태도는 아내 사래의 순결을 보호하기 위해 부득불 취한 신중하고도 불가피한 처사라고 합리화시키기도 한다(Rosenmuller). 그리고 사래가 아브람의 이복 누이였던 점(20:12)만을 생각하면 아브람의 이러한 행위는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과 현시를 받은 아브람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지 않고 인간적인 처세 방법을 택했다는 것은 엄연한 잘못이자 나아가 남을 속이려는 기만이 아닐 수 없다.

⭕ 그러면...그대로 인하여...보존하겠노라 - 아브람의 이기심과 허물이 노출된 대목이다. 왜냐하면 거짓말의 결과 자신의 생명은 보존할 수 있었을런지 몰라도 사래의 순결은 보다 더 무방비 상태에 처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15, 19절). 이처럼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 이면에는 죄와 결점을 지닌 인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약속의 땅으로 다시금 인도하신 것(13:1)은 그분의 신실하심과 사랑 때문인데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그 같은 품성에 입각해 낮고 천한 우리를 택하사 부유하고 지혜롭다 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전 1:28).

성 경: [창12:14]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아브람의 아내 사래 사건]

⭕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 여기서 '아리땁다'는 것은 외견상 보기에 아름다운 용모와 자태를 뜻한다. 비록 이때 사래의 나이 65세를 웃돈 때이긴 하나(4절 ;17:17) 127세란 그녀의 수한에 비추어 볼 때(23:1) 원숙미를 자랑할 중년기이다. 더욱이 그녀는 아직 아이를 낳은 적이 없으니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으며 혈색 또한 좋았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비록 애굽인들이 흑인계는 아니라 하나 그 쪽 여인네들의 피부색이 거무스름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사과 빛 피부색을 지니 사래의 용모는 더욱 돋 보였을 것은 분명하다.

성 경: [창12:15]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아브람의 아내 사래 사건]

⭕ 바로의 궁으로 - 고대 근동 및 애굽의 세도가들은 여러 첩들을 거느렸으며 특히 왕들은 수십, 수백 명의 후궁(後宮)들을 거느리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바로가 사래를 궁전으로 불러들인 것은 곧 그 같은 후궁 중의 하나로 삼기 위하였음임을 알 수 있다.

⭕ 취하여 들인지라 - 혹자는 본 구절에서 사래의 순결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브람과 특별한 관계의 공수 동맹 계약을 맺은(3절) 하나님께서 곧 약속의 자녀를 생산할 사래가 바로에게 정절을 빼앗긴 후 때늦게 재앙을 내린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된다. 따라서 본절은 사래에게 남편이 없는 줄 안 바로가 그녀를 정식 후궁으로 맞아들이기 위해 일단 후궁(Harem)으로 모셔 놓은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성 경: [창12:16]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아브람의 아내 사래 사건]

⭕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 고대 근동에서는 신랑 될 사람이 신부 될 사람의 가족에게 결혼 대가로 예물을 주는 것이 관례였다(출 22:16;신 22:29;삼상 18:25). 아브람이 사래로 인하여 후대받은 것도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 아브람이...얻었더라 - 아브람이 바로의 선물을 받은 것은 물론 타의였겠지만 그가 끝내 입을 열어 자신의 거짓을 밝히지 아니한 것은 결국 자기 아내를 판 것과 다름없는 비겁한 행위였다.

성 경: [창12:17]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아브람의 아내 사래 사건]

⭕ 사래의 연고로 - 사래는 장차 약속의 자녀를 낳을 열국의 어미이다(17:16). 따라서 비록 아브람의 약한 믿음과 실수 때문에 아내에 대한 그의 권리를 빼앗겼다 하나 하나님께서는 사래가 바로의 첩으로 전락되는 것을 결코 방치하지 않으셨다.

⭕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 비록 바로가 모르고서 남의 아내를 취하였다고는 하나 언약의 전승 가문을 모독함으로써 하나님의 권위를 훼손시킨 죄는 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고의적이 아니었던 점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발하신 재앙은 직접적인 징계가 아닌 경고를 주시기 위한 간접적인 수단이었을 것이다(20:6, 7).

성 경: [창12:18,19]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아브람의 아내 사래 사건]

아브람의 거짓과 불성실에 대한 바로의 삼중적인 책망이 나타나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 아브람이 이방인 바로에게 오히려 책망당한 것은 그의 거짓과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적, 주권적 보옹이라 할 수 있다.

⭕ 네 아내라고...아니하였느냐 - 사래가 아브람의 아내라는 사실을 바로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알았는지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이 일로 하나님의 선지자 아브람이 이방의 군주 바로에게 힐책당한 것은 마치 맛을 잃은 소금이 천시당하듯(마 5:13) 도덕적으로 순전치 못한 하나님의 자녀 역시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소받을 뿐임을 교훈 해준다(빌 2:15).

⭕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 사래가 명실 공히 순결을 잃지 아니한 아브람의 아내임을 증거해 준다. 이처럼 하나님께선 당신의 백성들이 위기 중에 처할때 결코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고 항상 돌아보시는 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스스로 곁길로 나가려 뻗대는 자들에 대해서는 채찍으로 돌보실 것이다(사 1:5).

성 경: [창12:20]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아브람의 아내 사래 사건]

⭕ 그들이...보내었더라 - 아브람이 자기 가족과 소유를 이끌고 애굽에서 나온 것은 다음과 같은 점에 의해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의 예표로 볼 수 있다. (1)기근으로 인해 애굽에 내려간 점(42-47장) (2)애굽에서 어려움을 겪은 점(출 1장) (3)하나님의 돌보시는 역사와 재앙에 의해 구출된 점(출7장-12:30) (4)풍부한 소유물을 이끌고 출애굽한 점(출 12:31-38). 여기서 우리는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언약의 땅 가나안을 아브람의 후손에게 주려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된 우리들에게 언약의 땅을 천국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까지 내주셨다(골 1:20).

성 경: [창13:1]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가나안으로의 귀환]

⭕ 롯도 함께 하여 - 애굽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던 롯이 여기서 다시 나타난다. 이는 아브람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만 롯이 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인데, 이것은 그의 후손 암몬과 모압 족속 역시 항상 이스라엘과의 관계 하에서만 신정사에 그 모습을 나타낸 것과 같다(신23:3; 삿3;13, 14; 왕하24;2).

⭕ 남방으로 올라가니 - 애굽 쪽에서 보았을 때의 정확한 방향은 북쪽으로 올라간 것이 된다. 즉 아브람 일행은 남하할 때의 순서와는 역순으로 네게브를 거쳐 벧엘과 아이 부근(3절;12;8)으로 올라간 것이다. 한편 여기서 `올라가다'는 말은 가나안 땅보다 낮은 지대인 애굽에서 팔레스틴 산지 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나타낸 표현이다.

성 경: [창13:2]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가나안으로의 귀환]

⭕ 풍부하였더라 - (*, 카베드). 원뜻은 `무겁다'로 미처 다 관리할 수 없을 만큼 차고 넘친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아브람이 하란에서 모은 소유(12:5)에 바로에게서부터 받은 예물을 더하였기 때문인데(12:16) 굳이 이러한 사실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향방을 암시하기 위함이다(6절).

성 경: [창13:3]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가나안으로의 귀환]

⭕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 애굽에서 네게브에 이른 뒤 잠시 휴식한 후 다시금 행진한 것을 나타내 준다. 이처럼 길을 가면서 정기적인 휴식을 취하는 것은 사람 뿐 아니라 가축들을 고려한 유목민들의 전형적인 여행 방식이다(33:13, 14).

성 경: [창13:4]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가나안으로의 귀환]

⭕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 정확히 얘기하면 두번째로 단을 쌓은 곳이다(12:8). 아브람이 하나님께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은 세겜이었다(12;6, 7). 그러나 세겜에서는 단순히 하나님의 현현을 기념하기 위하여 단을 쌓았을 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공적예배를 드리기 위해 단을 쌓았던 곳은 벧엘이 처음이었다.

⭕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 아브람이 애굽에서의 잘못을 회개하며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로 진실한 기도를 드리고 새 삶에의 결의를 다진 것을 뜻한다.(시18:49;50:51). 이처럼 신앙인도 범죄하며 넘어질 수는 있으나 그때마다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뜨거운 체험을 상기하며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계 2:4, 5).

성 경: [창13:5]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아브람과 롯의 분가(分家)]

⭕ 장막이 있으므로 - 유목민들은 대개 사람들이 휴식하며 거처하기 위한 장막 뿐 아니라 가축들을 위한 별도의 장막도 아울러 준비해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롯에게 이러한 장막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언급된 이유는 그에게도 아브람 못지않게 딸린 사람과 가축이 많았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성 경: [창13:6]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아브람과 롯의 분가(分家)]

⭕ 그 땅이...용납지 못하였으니 - 가나안 땅에 임했던 기근(12:10)이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탓에 많은 가축을 방목할 목초(牧草)와 물이 부족했던 것도 요인 중의 하나로 작용했을 것이다.

⭕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 많은 재물이 도리어 근심이 된 경우이다(딛전6:10). 즉 두 가정은 각각의 재산이 많아지자 서로의 재산을 돌보기에 급급하였으며 그 결과 지금껏 유지해 왔던 화목한 관계가 깨어지게 된 것이다(약 4:1). 이처럼 세상에는 재물때문에 우정과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가 흔한데 성도들은 세상 모든 물질이 하나님께로 부터 주어지는 것(대상 29:12; 마 6:25-32)임을 깨달아 지나치게 땅의 것에 집착하는 삶을 삼가야 할 것이다(마 6:33;눅 12;15-21).

성 경: [창13:7]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아브람과 롯의 분가(分家)]

⭕ 목자가 서로 다투고 - 아브라함과 롯의 양 가정의 분쟁이 먼저 목자에게서부터 비롯된 것은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좋은 목초지와 샘의 근원을 확보하여, 가축 사육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최우선적인 임무는 목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26:20). 특히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더하면 더할수록 양가 목자들 사이의 반목, 질시는 더하였을 것이다.

⭕ 가나안 사람과...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 아브람의 가정과 롯의 가정이 서로 분쟁하게 된 간접적인 이유이다. 즉 아브람 일행이 장막을 친 곳은 임자 없는 지역이 아니라 이미 원주민이 주거하고 있던 지역이었으니 한정된 주거 면적 안에서 상대편보다 더 유리한 목축지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다툼이 불가피하였을 것이다.

성 경: [창13:8]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아브람과 롯의 분가(分家)]

⭕ 골육 - 문자적으로는 `형제(친척)인 사람'. 아브람이 이 점을 강조한 까닭은 자신들간의 집안 싸움이 여호와의 성호에 누를 끼침은 물론 결코 스스로에게나, 원주민에게도 덕이 되지 않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간의 다툼은 그 지역 원주민들이 자신들을 공격하고 추방하는 좋은 계기로 삼을 수 있음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 서로 다투게 말자 - `다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리바'(*)는 `주먹다짐'보다는 대개 `말다툼'이나 '논쟁'을 의미한다(신 19:17;욥31:13;잠18:6). 물론 성도들간이라고 이러한 말다툼이 전혀 없을 수는 없으나 그러한 때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며 자신의 주장을 일보 양보하는 지혜와 미덕이 필요하다(잠 10:12;13:10).

성 경: [창13:9]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아브람과 롯의 분가(分家)]

⭕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 사해 연변을 따라 벧엘에서 소알까지 펼쳐져 있는 광활한 땅 뿐 아니라 요단 강 양편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비옥한 평지도 함께 가리키는 것 같다.

⭕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 예수의 산상수훈을 연상시켜 주는 말로서(마 5:38-42) 참된 신앙에서 비롯된 아브람의 겸허하고 관대한 인격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이러한 양보는 세속적 처세술(12:10-13)을 완전히 초월한 여호와 신앙에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빌 2:3, 4). 아뭏든 아브람의 자기 희생적 대 양보는 (1) 둘 사이의 불화의 틈을 탄 원주민들의 기습 공격 가능성을 막았으며 (2) 롯과의 종교적 화평을 유지, 이방 사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않았고 (3) 아브람이 더욱더 하늘 분깃만을 의뢰하게 됨으로 믿음의 조상로서의 덕망을 쌓게 된 3중 효과를 거두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공동체가 화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아울러 그 희생은 결국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는 교훈을 깨닫게 된다.

성 경: [창13:10]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소돔을 택한 롯]

⭕ 눈을 들어...바라본즉 - 단순히 좌우를 둘러보았다는 뜻이 아니라 이것 저것 세속적인 여러 조건을 따졌다는 의미이다. 즉 롯은 탐욕에 찬 눈과 마음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으로 이용하기에 급급하였던 것이다.

⭕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 요단 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벧엘 지경과는 달리 강 좌우변에 위치한 요단 평지는 모압 산맥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풍부한 수원 덕분에 평상시의 가뭄하에서는 그다지 물 걱정을 하지 않았다.

⭕ 애굽 땅과 같았더라 - 애굽은 천혜(天惠)의 보고인 나일 강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일찍부터 관개 수로 시설이 잘 되어 있어 비옥한 땅이 많았다. 특히 나일 삼각주(Delta)지경은 세계적인 옥토로 이름나 있다.

성 경: [창13:11]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소돔을 택한 롯]

⭕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 롯은 아브람의 조카로 하란을 떠난 이래 줄곧 아브람의 영향하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보호자이자 후견인인 아브람에게 아들과 같은 의무를 이행해야 마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택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아브람에게 양보할 줄 몰랐고 세속적 이해 관계에만 눈이 어두워 이기적 선택을 하였다. 그에게는 아직도 세속적이고 물질 중심적인 애굽의 정신이 남아 있었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이기적 선택은 미구에 닥쳐 올 모든 불행을 자초하는 결과가 되었다.

⭕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 이러한 분리는 양가 사이의 불화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작용하였다. 즉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불러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하셨다(12:1). 따라서 아브람이 롯과 함께 있는 한 여전히 아비 집과 밀접한 유대관계를 가진 상태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서 롯을 분리시킨 것이다.

성 경: [창13:12]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소돔을 택한 롯]

⭕ 가나안 땅 - 넓은 의미에서는 팔레스틴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해안 지대 및 내륙지대를 모두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브라함이 롯에게 양보한 요단 평지를 제외한 그 일대의 산지를 뜻한다.

⭕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 세속적 부와 향락에 끌려 동으로 점점 옮기다가 죄악의 도성 소돔에까지 들어간 롯(14:12)의 행적은 세상 명예와 물질에 눈이 어두워 신앙의 세계를 떠나 점점 죄악의 세계로 빠져드는 타락한 신자의 전형이다. 그 결과는 비극일 수 밖에 없는데 롯 역시 포로신세, 가산의 몰락, 아내와 사위의 상실, 딸과의 불륜 등 온갖 참상을 겪게 되었다.

성 경: [창13:13]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소돔을 택한 롯]

⭕ 여호와 앞에 - 직역하면 '여호와께 대하여' 혹은 '여호와께서'. 이는 인간이 범하는 모든 죄악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범죄하는 것임을 강조해 준다.

⭕ 큰(*, 메오드) - '심히'(1:31), '강렬'(출 10:19), '풍부'(13:2), '번성'(47:27)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소돔인들의 죄악의 정도가 그 양과 질에 있어서 상식선을 넘어선 매우 심각한 것임을 시사해준다.

성 경: [창13:14]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

⭕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직접 현현하시어 이 말씀을 주셨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조카 롯을 떠나 보내고 적막한 가운데 처해 있는 아브람에게 임한 위로와 확신(12:2)의 약속이다.

⭕ 눈을 들어...바라보라 - 롯과의 결별로 인한 인간적 고독과 상심을 극복하고, 또한 롯처럼 탐욕의 눈이 아닌(10절) 믿음과 소망의 눈으로 약속의 땅(12:7)을 바라보라는 말이다. 이 장면은 훗날 비스가 산 정상에서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보여 주신 하나님의 행동을 연상시킨다(신34:1-4). 이와 같이 믿음은 갖지 못한 것을 소유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신앙이다(히11:1). 따라서 우리도 신앙의 눈으로 하늘 가나안 곧 천국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히11:15, 16).

성 경: [창13:15]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

⭕ 보이는 땅 -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지상의 땅 가나안 뿐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천상의 땅 가나안 까지 염두에 둘 때 그 의미는 보다 새로와진다.

⭕ 네 자손 - 가나안 땅을 천국의 모형으로 이해할 때, 이는 지상 가나안의 실체인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모든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엡3:6)을 포함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 영원히 이르리라 -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변역될 수 없다. 그러나 그 약속의 효력은 이를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미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제 1 세대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을 저버린 결과 그 땅을 상속받지 못한 것(민14:26-38)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성 경: [창13:16]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

⭕ 땅의 티끌같게 하리니 -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12:2)는 약속을 보다 강조한 표현이다. 계속해서 '하늘의 뭇별'(15:5), '바닷가의 모래'(22:17)로 이어지는 후손에 대한 약속은 당시 늙고 무자(無子)한 아브람에게는 꿈과 같은 소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약속은 역사적으로도(왕상 4:20), 영적으로도 성취되었으니(마 8:11;롬 4:16;갈 3:7) 하나님의 약속은 마침내 성취되며 또한 하나님 안에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18:14;막 9:23).

성 경: [창13:17]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

⭕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 아브람이 현재 발딛고 있는 땅이 곧 그의 후손에게 상속될 바로 그 땅(12:7)임을 확신케 하기 위한 탐방명령이다.

성 경: [창13:18]

주제1: [아브람과 롯의 분리]

주제2: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

⭕ 이에 - 하나님께서 명령한 즉시 행동에 옮긴 신속성을 나타낸 단어로 아브라함의 신앙의 성숙성이 엿보인다.

⭕ 헤브론 - 벧엘 남방, 예루살렘 남쪽 약 30여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으로 본래 명칭은 기럇아르바이다(23:2). 훗날 여섯 도피성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수20:7) 다윗이 이곳에서 7년 반을 치리하기도 하였는데(삼하 2:1-4, 11) 이스라엘 신정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곳이다.

성 경: [창14:1]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최초의 가나안 전쟁]

엘람 왕 그돌라오멜에게 반기를 든(4절) 남부 가나안의 다섯 왕(2절)을 징벌하기 위해 모인 북부 가나안 연합군의 명단이다.

⭕ 시날왕 아므라벧 - '시날'은 바벨론을 포함하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사이의 전지역을 가리킨다. 한편 아므라벧(Amraphel)은 한동안 바벨론의 유명한 왕인 함무라비와 동일 인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이때는 대략 B.C . 2082년경이며 함무라비는 B.C 1750년을 전후하여 생존했던 자이니 동일 인물일 수 없다. 따라서 학자들은 아므라벧을 메소포타미아 북서편에 위치했던 산할(Sanhar) 왕 아모라빌(Amorapil)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분명치는 않다.

⭕ 엘라살 왕 아리옥 - '엘라살'은 우르 근처의 유프라테스 강 하류에 위치한 라르사(Larsa)이다. 이 도시는 바벨론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려던 자들에 의해 종종 본거지로 이용되었다.

⭕ 엘람 왕 그돌라오멜 - '엘람'은 오늘날의 이란 고원 남부에 위치했던 나라로 수도는 수사(Susa)였다 한편 엘람에는 '그돌'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왕이 많은데 여기서 '라오멜'이 엘람의 여신인 '라가말'(Lagamar)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사실외에는 그돌라오멜에 대하여 알려진 것이 없다.

⭕ 고임 왕 디달 - '고임'은 '열국', '백성들'이란 뜻이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디달(Tidal)을 가나안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돌아 다니면서 여러 부족과 그들의 영토를 약탈하던 자로 보는데 KJV도 이러한 견해에 근거하여, '고임 왕'을 '열국의 왕'(king of nations)으로 번역하였다.

성 경: [창14:2]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최초의 가나안 전쟁]

그돌라오멜을 중심한 연합군들에게 항거하기 위하여 동맹한 사해 부근 다섯 성읍의 왕들이다. 이들이 십 이 년 동안이나 섬겨 왔던 그돌라오멜을 배반한 주요 원인은 가나안 땅에 임했던 심한 기근(12:10)에도 불구하고 여느해와 다름없이 할당된 과중한 조공량에 반발, 마침내 정치적 자주권을 획득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소돔 왕 베라 - '소돔'은 '불타다', '역청 지대'란 뜻인데 하나님의 유황불 심판을 받아 멸망한 후대 역사를 잘 반영하고 있는 지명이다(19:24). 그리고 '베라'는 '정복자', '파멸'이란 뜻으로 이 이름 역시 정치적, 군사적 힘을 키우려다 패퇴하고 만 그의 전적을 투영해 준다. 한편 고모라 왕 비르사는 '큰 자', 아드마 왕 시납은 '신은 아버지이시다', 스보임 왕 세메벧은 '그의 이름이 위대하시다'는 각각의 이름 뜻을 갖는데 이러한 사실은 당시 이들 군주들이 여호와 신앙과는 무관한 채 각자 백성들 사이에서 신적 존재로 군림했었음을 시사해 준다.

⭕ 싸우니라 - 본 전쟁은 성경에 기록된 국가들간의 첫 연합 전쟁이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 큰 싸움은 계 19:11-21에 예언되어 있다. 따라서 평화의 왕 그리스도가 재림하셔서 그의 왕국을 완성시킬 때까지는 이땅에 전쟁과 전쟁이 계속될 것임을 알 수 있다(단 9:26;마 24:6). 그러므로 성도는 미4:3에 예언된 영원한 평화의 날을 사모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더욱 염원해야 할 것이다.

성 경: [창14:3]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최초의 가나안 전쟁]

⭕ 싯딤 골짜기 - '아카시아 골짜기', '급류의 골짜기'란 뜻. 사해 연안에 돌출되어 있는 리산(Lisan) 반도의 남쪽 땅인 것 같다.

⭕ 지금 염해 - '지금'이란 말은 원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본서 기록자인 '모세 당시' 이미 염해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첨가한 듯 하다. 한편 땅이 염해가 되었다는 것은 그 사이 지각 변동이 있었음을 뜻하는데 지질학적 탐사 결과 이곳에는 약 25회 가량의 지각 변동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성 경: [창14:4]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최초의 가나안 전쟁]

⭕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 그돌라오멜의 엘람족이 셈계(10:22)라는 사실은 가나안족이 장차 셈족의 지배를 받게 되리라는 노아 예언(9:26)이 역사적으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 제 십 삼 년에 - 그돌라오멜이 엘람 왕으로 집권한 지 제 십 삼 년을 가리키는 것 같다. 아뭏든 약소국인 팔레스틴의 여러 도시 국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강대국들에 의해 지배를 당해 왔는데 이는 곧 유프라테스 강으로부터 다메섹, 요단 계곡을 경유하여 홍해와 애굽에까지 이르는 무역로와 군사로를 터주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성 경: [창14:5]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최초의 가나안 전쟁]

⭕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한 왕들 - 엘람과 바벨론은 역사적으로 볼 때 대개 적대관계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동맹국으로 나와있다(1절). 이는 당시 바벨론에서 두 왕조가 세력을 잡으려고 싸우고 있는 동안 도리어 엘람이 그 지역의 세력을 장악하였기 때문인데 그 결과 바벨론(시날)은 엘람의 동맹 요청을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아스드롯 가르나임 - '두 뿔의 아스드롯'이란 뜻. 여기서 '아스드롯'은 가나안 족속이 섬기던 풍요의 여신 '아스다롯'을 가리킨다(삿 2:13). 그러나 이곳의 정확한 위치에 대하여서는 알려진 것이 없는데 사해 동쪽 약 45km 지점에 위치한 가르나임 성읍 부근인 것으로 추정된다.

⭕ 르바 족속 - 이스라엘 백성 이전에 팔레스틴에 거주하던 초기 원주민으로 일명 '르바임 족속'으로 불리운다(신 2 :11). '르바'란 말은 '크다'란 뜻의 아랍 어근에서 유래한 말인데, 이름 그대로 이들은 거인족으로 알려졌다. 르바 족속의 마지막 남은 자인 바산 왕 옥(Og)은 길이 4.1m, 넓이1.8m나 되는 침상에서 잘 정도였다 한다(신 3:11). 그런데 그돌라오멜 동맹군이 가나안 평지 다섯 성읍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르바 족속 및 기타 여러 족속을 공략한 점으로 보아 엘람의 속박과 멍에에 대항하여 일어난 반란은 가나안의 주변 많은 족속들로부터 호응과 간접적인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 함 - 위치 불명의 장소이나 학자에 따라 암몬의 수도인 랍바(삼하12:26)의 고대 명칭으로 보기도 한다(keil).

⭕ 수스 족속 - 신 2:20에서는 `삼숨밈'(Zamzum-mim)으로 불리우기도 하는데 아르논 강과 얍복강 사이 르바 족속 지경에 살던 자들로 추정된다.

⭕ 사웨 기랴다임 - '기랴다임의 평원'이란 뜻. 그러므로 제자는 르우벤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어졌던 기랴다임(민 32:37)과 동일한 곳으로 보기도 한다.

⭕ 엠 족속 - 모압 땅의 거주자들로 아낙 족속, 르바임 족속과 함께 거인족으로 유명하다(신 2:10)

성 경: [창14:6]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최초의 가나안 전쟁]

⭕ 호리 족속 - 에돔 족속 이전, 사해 서남쪽에 있는 세일 산 주변의 여러 동굴에 거주하던 자들이다(신 2:12).

⭕ 그 산 세일 - 사해 남쪽, 아라바 평지 동쪽에 위치한 산맥으로 페트라(Petra)와 호르 산(신 32:50)도 그 주요 지형 지세 중의 하나이다. 후일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이 이 지역을 점령하고 그곳에 거주한 이후부터 성경에서 '세일', '세일 산', '세일 땅'이라고 써왔는데, 훗날 '에돔'을 뜻하는 동의어로 사용되었다(36:30;대하 20:10;25:11) 이곳은 에시온게벧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역사상 중요한 위치를 점하였다.

⭕ 광야 근방 엘바란 - 학자에 따라 홍해 동쪽, 오늘날의 아카바 만 북편에 위치한 것으로, 또는 아카바만과 수에즈 만 사이의 바란 광야 끝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한다.

성 경: [창14:7]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최초의 가나안 전쟁]

⭕ 아말렉 족속의 온 땅 - 아말렉 족속에서의 손자이자 엘리바스의 아들인 아말렉(36:12)에게서 비롯된 족속이다. 따라서 아브라함 당시에는 아말렉 족속이 있었을리 만무하다. 따라서 자유주의 학자들은 이를 성경에 나오는 역사적 오류라고 비평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다만 이는 모세가 본서를 기록할 당시, 그 관점에서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 하사손다말 - 일명 '엔게디'(Engedi)로도 불리운다(대하 20:2). 사해 서안 중앙부에 위치한 성읍으로 주위의 종려나무와 포도원의 고멜화가 유명하다(아 1:14). 사울에게서 미움을 받았던 다윗이 그를 피해 한때 거하였던 곳이기도 하다(삼상23:29).

⭕ 아모리족속 - 팔레스틴, 수리아, 바벨론 등지에 흩어져 살던 함 계통의 족속이다. 한편, 이처럼 엘람 연합군이 남부 가나안 동맹군과 교전하기에 앞서 아말렉 지경과 사해 서안 지대까지 초토화시킨 까닭은 (1)유리한 입지 조건을 선점하며 (2)인접 부족과의 세력 규합을 막아 보급로와 퇴각로를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성 경: [창14:8,9,10]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최초의 가나안 전쟁]

⭕ 싯딤 골짜기에서...접전하였으니 - 남부 가나안 동맹군이 접전 장소로 싯딤 골짜기를 택한 까닭은 유리한 지형 지물을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즉 그곳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아 침입군에게 방해가 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인데 결과는 오히려 자신들의 참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러한 패배 원인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타락과 패역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사실은 패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어그러진 길로 가다가 마침내 유황불 심판을 당하는 사실(19:1-11, 24, 25)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삼상 17:47) 하나님 앞에서 타락한 국가가 승리할 리 없다.

성 경: [창14:11,12]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사로잡힌 롯]

⭕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 롯도 소돔 성에 거하던 시민인 이상 그곳 거민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 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사실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고 세상 쾌락과 재물만을 추구하던 롯의 비참한 결국이다. 화약을 안고 있는 자는 언젠가는 그 화약에 의해 몸을 다치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 터져 자신을 오염시킬지 모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을 자신에게서 신속히 제거해야 할 것이다(약 1:21).

성 경: [창14:13]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롯을 구한 아브람]

⭕ 도망한 자 - 엘람 연합군이 소돔 성을 공약할 때 요행히 몸을 피했거나 포로로 잡혀가던 중 필사의 탈출을 한 소돔 거민이다.

⭕ 히브리 사람 아브람 - 처음으로 '히브리'라는 명칭이 언급된 경우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직 하나님의 선민(選民)인 아브라함의 모든 후예를 가리키는 민족적 의미(39:14;출 2:6)가 아니다. 단순히 셈 계통의 '에벧의 후손'을 가리키는 말이거나 (Calvin, Lyra, Murphy, Bush) 혹은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팔레스틴으로 '이주 한 자' (*, 이브리)라는 의미(Ori-gen, Keil, Lange, Kalisch)일 뿐이다.

성 경: [창14:14]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롯을 구한 아브람]

⭕ 조카 - (*, 아흐)원 뜻은 '형제'(9:5), '아우'(4:2)이다. 아브람이 롯을 가리켜 '벤 아흐'(조카, 12절)라 하지 않고 이렇게 칭한 것은 롯의 이기주의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그를 사랑한 애정을 증거해 준다.

⭕ 집에서 길리고 - '길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얄랏'(*)은 '낳다', '태어나다'는 뜻이다. 따라서 집에서 길린 자란 돈을 주고 새로 사온 자가 아니라 아브람의 가정에 소속된 사람들(12:5)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을 의미한다.

⭕ 연습한 자 - 직역하면 '훈련시킨 자', '무장시킨자'. 당시 공공적인 치안 조직과 제도가 미처 갖춰져 있지 않던 고대 사회에서는 스스로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이 필요하였 것이다. 특히 유목민들은 많은 수의 가축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도적과 맹수의 위험을 이겨내기 위하여 더욱 정예화된 일꾼들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 삼백 십 팔 인 - 이로 미루어 아브람에게 딸린 식솔은 도합 천 여 명이 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왜냐하면 이들의 부모와 여자 형제들의 수를 어림하여 318에 4를 곱하여도 1, 272명이란 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성 경: [창14:15]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롯을 구한 아브람]

⭕ 그들을 쳐서 파하고 - 아브람의 ' 군사는 자신의 집에서 태어나 훈련받은 318명과 아모리 족속의 원병은 소수(24절)였고, 전략기술도 승리의 방심을 틈 탄 야간 사방 기습 공격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네 왕의 지휘를 받고 있는 강대국의 정규군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기드온 군대의 300명 용사처럼(삿 7:7-23), 이들이 하나님을 선봉장으로 한 믿음과 장의의 용사들이었기 때문이다.

⭕ 호바 - '갈대의 땅'이란 뜻. 오늘날 이곳은 다메섹 북방 80km 지점. 다메섹에서 팔미라로 통하는 도로상의 위치한 현재의 호바와 동일시되고 있다.

성 경: [창14:16]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롯을 구한 아브람]

⭕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 왔더라 - 아브람이 자신의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것은 정당하다. 그런데 한걸음 더 나아가 롯의 모든 이웃들까지 구해 준 것에서 우리는 타인의 불행도 생각할 줄 아는 아브람의 보다 성숙된 신앙 인격을 엿보게 된다.

성 경: [창14:17]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살렘 왕 멜기세덱]

⭕ 소돔 왕이...영접하였고 - 예기치 않았던 아브람의 도움에 사의(謝意)를 표하기 위함이다. 한편 혹자는 소돔 왕이 역청 구덩이에 빠져 죽은 것으로 이해하여(10절), 본절을 잘못된 기사로 보려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왜냐하면 10절은 소돔, 고모라 왕과 함께 도망치던 군사들 중의 많은 수가 구덩이에 빠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성 경: [창14:18]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살렘 왕 멜기세덱]

⭕ 살렘 왕 멜기세덱 - 학자에 따라서는 '살렘'(*)을 갈릴리 바다 옆 스키토폴리스(Scythopolis) 부근의 한 성읍으로 보기도 하나(Jerome), 아마르나 토판, 시76:2 등을 참고할때 '살렘'은 예루살렘의 고대 명칭임에 분명하다(Josephus, Onkelos, Keil). 그리고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자 제사장으로서 '의(義)의 왕'이란 뜻인데, 그가 정확히 누구였는지에 대하여서는 견해가 분분하지만 가장 타당한 견해는 문자 그대로 그를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순수하고 올바른 신앙을 가진 가나안의 왕으로 보는 견해(Josephus, Calvin, Delitzsch, Keil, Bush)이다.

⭕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 떡과 포도주는 가나안 지역의 일상 식물이나 지금 이것은 전쟁에서 지친 병사들에게 생기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멜기세덱이 이러한 음식물을 가겨 온 것은 아브람이 그 땅의 평화와 자유, 재산 등을 회복시켜 주었기 때문인데 이처럼 감사는 그 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은혜를 입은 자가 당연히 행해야 할 덕목이다(살전 5:1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 멜기세덱이 왕과 제사장이란 이중 신분을 갖고 있었던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도 미디안족의 통치자이자 제사장이었다(출 2:16;3:1). 그러나 (1)유대인들의 제사 제도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왕과 제사장이란 이중 직무. (2) 당시의 부패상 가운데서도 하나님 경외하며 의와 평강으로 백성을 다스린 태도, (3) 시작과 끝, 출생과 족보가 없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진 그의 신비적 출현 등은 아주 특이한 요소로 예수 그리스도의 특성과 유사한데 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강한 영감을 받아 그를 신약 시대 예수를 대표하는 자로 언급하였다(히 7:11-17).

성 경: [창14:19]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살렘 왕 멜기세덱]

⭕ 천지의 주재 - '주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네'(*)는 '카나'(창조하다, 소유하다)에서 온 말로 하나님께서 천지의 창조자시며 동시에 역사의 주관자요 만물의 소유자 이심을 고백하는 말이다(마 11:25;행 17:24)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 엘 엘욘) 하나님의 강한 능력과 초월성, 거룩성, 완전성을 강조하는 명칭으로(시 57:2;단 3:26) 모든 축복과 승리(20절)는 하나님께로부터 연유한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말이다(출 17:5;잠 10:22)

성 경: [창14:20]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살렘 왕 멜기세덱]

⭕ 십분 일을...주었더라 - 아브람의 이 행위는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분을 인정하는 것이자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행위이다. 한편 여기서 십분 일(1/10)은 십일조를 가리키는데 십일조는 본래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이나 소득 중 십분 일을 바치는 것으로 셈족 이외의 문화권에서도 널리 시행되던 제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가 훗날 모세 율법으로 성문화(레 27:30-33;민 18:21-32)되기 이전에는 본절에서처럼 시행되었다는 점은 이것이 어떤 형식에 얽매여 억지로 수행해야 하는 규례가 아니라 은혜를 입은 자가 행하여야 할 자발적인 감사의 표시임을 일깨워 준다.

성 경: [창14:21]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소돔왕의 환대]

⭕ 물품은 네가 취하라 - 전투에서 노획한 전리품에 대하여 정복자의 권리를 인정해 주던 고대 관습에 따른 조처이다.

성 경: [창14:22]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소돔왕의 환대]

⭕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 신적(神的)인 엄숙한 서약을 할 때 취하던 히브리인들의 일반적 행동 양식(신 32:40;단 12:7;계 10:5, 6)으로 하늘을 향해 오른손 또는 양손을 치켜드는 것을 뜻한다.

성 경: [창14:23]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소돔왕의 환대]

⭕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 설령 아브람이 전리품을 취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당한 그의 권리를 누리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를 거절한 것은 이기적인 롯의 태도와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13:10, 11). 이처럼 아브람이 재물에 유념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삶을 지배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소돔 왕의 하사품을 받았더라면 그가 군사를 일으킨 순수한 동기마저 희석될 우려가 있었고 동시에 향후 행동에 있어서도 소돔 왕으로부터 절대적인 독립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성 경: [창14:24]

주제1: [가나안 전쟁과 살렘 왕 멜기세덱]

주제2: [소돔왕의 환대]

⭕ 나와 동행할...분깃을 제할지니 -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다른 협력자(13절)들의 몫을 보장해 주기 위한 조처이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잘못은 자신의 신앙 양심을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다. 하지만 참된 신앙인이 취할 태도는 아브람처럼 타인의 정당한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 주며, 믿음이 약한 형제를 자신의 신앙 척도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롬 14:1-3;고전 8:9;9:22, 23).

성 경: [창15:1]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후사(後嗣)에 대한 약속]

⭕ 이상 - (*, 마하제) '묵시'(겔 13:7), '환상'(vision)으로도 번역된다. 인간의 자연 영역을 초월한 하나님의 계시 전달 방법을 가리키는데 육체적 감각이 있는 실제 현상이나 혹은 꿈이나 무아 지경 등을 통해 나타난다(민 12:6;겔 11:24;단 8:16). 이같은 이상(異常)은 초대 교회에서도 나타나긴 하였지만(행 2:17;9:10;고후 12:1) 대개 구약 시대에 나타났는데 그 까닭은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계시서인 성경이 당시에는 미처 완성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 두려워 말라 - 당시 아브람이 영적으로 침체해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아브람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두려워 했는지에 대하여선 분명치 않다. 따라서 당시 상황으로 유추해 볼 때 다음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된다. (1)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나안 전쟁에서 승리하였긴 하나 그 후에 있을지도 모를 열국의 복수를 두려워하였다(Jonathan). (2) 가나안 땅과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계속 침묵하고 계시자 이를 두려워하였다는 견해이다. 이 중 이어지는 2절을 볼 때 두번째 견해가 보다 타당한 듯하다.

⭕ 나는 너의 방패요 - 그 어떠한 환난이나 위험 가운데서도 아브람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힘과 능력이 되겠다는 뜻이다.

⭕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 강조문으로 '내가 바로 너의 상급이다'란 뜻. 즉 하나님은 모든 축복의 근원이시며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복(12:2, 7; 13 :15-17)을 반드시 성취시켜 주시는 분임을 의미한다.

성 경: [창15:2]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후사(後嗣)에 대한 약속]

⭕ 주 여호와 - (*, 아도나이 예호와)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및 다스림을 강조하는 이름인 '아도나이'와 언약에 대한 신실성을 강조하는 이름인 '예호와'가 합쳐진 칭호이다(삼하 7:28;겔11:17). 이를 통해 볼 때 아브람은 비록 그 성취 방법에 대하여선 몰랐지만(4절)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시켜 주시리란 사실은 다시 확신하였음을 알 수 있다.

⭕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 - 고대 근동에서는 무자(無子)한 부부가 재산 상속을 조건으로 노년의 부양과 사후의 장례를 책임질 양자를 입양하던 관습이 있었다(Nuzi tablets). 따라서 그때까지 무자했던 아브람도 이 관습에 의거하여, 하나님께 자기 집에서 태어나 자란 가장 신임받는 종 엘리에셀을 자신의 후사(後嗣)로 추천한 것이다.

성 경: [창15:3]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후사(後嗣)에 대한 약속]

⭕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아브람의 섣부른 판단과 성급한 결정이다. 물론 이로써나마 하나님의 악속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아브람의 충정은 높이 살 수 있지만, 약속을 바라고 기다리는 인내가 부족했던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약 1:4).

성 경: [창15:4]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후사(後嗣)에 대한 약속]

⭕ 네 몸에서 날 자가..되리라 -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는 셋(5:3)->노아(6:9)셈(9:26)->에벧(10:21)->아브람(12:1)으로 이어지는 경건한 신앙 계보를 이탈하지 않는 자로 구성되어야 했다. 따라서 일찍이 '여자의 후손'(3:15)으로 예언된 바 메시야는 아브람의 직계 혈통 중 다윗 가문을 통해 탄생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었다.

성 경: [창15:5]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후사(後嗣)에 대한 약속]

⭕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 13:16에서 약속하신 것과 같은 말씀으로 장차 아브람의 후손이 이루 다 셀 수 없을 만큼 번성하고 창대케 될 것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러한 약속은 당시로서는 능히 상상하기도 믿기도 힘든 것이었지만 오늘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기리고 있는(롬 4:11) 영적 자손들의 수가 세계 전인구의 32.4%(1985년 기준)를 점유함으로써 실제적으로 성취되었다.

성 경: [창15:6]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언약체결을 위한 준비]

⭕ 여호와를 믿으니 - '믿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만'(*)은 '신뢰하다'(대하 20:20;욥 39:12)는 뜻으로 아브람이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그 말씀에 전적으로 의지했으며 더 나아가 이미 계시된 '여자의 후손' 메시야에 대하여도 신앙하였음을 증거해 준다(요 8:56;히 11:1).

⭕ 의(義) - '차다크'(*, 의로운 상태가 되다)에서 온 말로 간단히 '의의 옷'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죄인으로(3:10;사 20:3;고후 5:3;계 3:17, 18) 오직 하나님께서 덧입혀 주시는 '의의 옷'으로만 그 죄악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롬 3:23-28;4:7, 8;계 19:8).

⭕ 여기시고 - '정하다'(시 106:30), '계산하다'(레 27:50), '짊어지게 하다'란 뜻으로 여기서는 곧 전가된 '의(義)'를 나타낸다. 한편 성경에 나타난 대표적인 전가(轉嫁)의 예를 살펴보면 (1)전 인류에게 전가된 아담의 죄(롬 5:12) (2)그리스도에게 전가된 인류의 죄(사 53:5, 6;고후 5:14, 15;히 2:9) (3)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죄인에게 전가된 하나님의 의 (롬 4:18-24;빌 3:9) 등이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본래 칭의받기에 부족한 죄인이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그에게 전가된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신율(神律) 앞에서 무죄한 상태로 간주됨을 알 수 있는데 본절에 나타난 바 아브람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 경: [창15:7]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언약체결을 위한 준비]

⭕ 업을 삼게 하려고 - 직역하면 '차지하게 하려고', '상속하게 하려고'. 이는 본래 아브람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아무런 권리나 명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를 상속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데에는 분명한 목적과 게획이 있었는데 오늘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신 데에도 역시 분명한 목적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며 깨달아 이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할 것이다(고전 10:31)

성 경: [창15:8]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언약체결을 위한 준비]

⭕ 무엇으로 알리이까 - 이 질문은 아직껏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의심이나 불신앙의 반문이 아니라, 더 큰 확신을 갖기 위한 열의에서 나온 요구이다. 이와 동일한 경우로는 기드온의 간구(삿 6:17-24), 히스기야의 기도(왕하 20:8), 마리아의 물음(눅 1:34-38)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자신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후 더 큰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선 필요에 따라 우리에게 적절한 증거로 확신을 심어 주시는데 우리들도 뜬 구름을 잡는 것과 같은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참된 믿음과 그에 따르는 확신을 지닌 진정한 신앙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막 16:17).

성 경: [창15:9]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언약체결을 위한 준비]

⭕ 나를 위하여 -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맺으신 언약의 영원성을 확약하며 동시에 이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

⭕ 삼 년 된 - 3년 된 희생 제물은 충분히 성숙되고 아름다운 것들, 즉 짐숭 중 가장 귀한 것들이었다(Mur-phy). 모세의 율법에서도 이와 같은 것들을 하나님께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다(레 1:2-17).

성 경: [창15:10]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언약체결을 위한 준비]

⭕ 그 중간을 쪼개고...마주 대하여 놓고 - 이러한 제사 형식은 고대 근동 국가에서 언약이나 동맹을 체결한 후 이를 보증하기 위해 시행하던 보편적인 관습으로 후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서도 습관화되었다(렘 34:18, 19), 이는 (1) 피와 고통과 죽음 앞에서 자신이 맺은 조약은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지키겠다는 맹세의식이자 (2) 화해와 통일을 나타내는 한 몸 의식인데 이때 둘로 쪼개진 희생제물은 곧 언약의 두 당사자를 의미한다. 한편 상징적으로 볼 때 이 의식은 장차 가나안을 상속받기 위해 이스라엘이 겪어야 할 애굽 노예생활의 고통과 출애굽시 지불해야 할 피와 죽음을 예시하고, 구속사적으로는 장차 영적 이스라엘에게 하늘 가나안을 보장해 주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어야 할 수난과 희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 훗날 모세의 율법에도 새는 쪼개지 않고 통채로 불에 태우도록 규정되었는데(레 1:14-17) 이것들은 쌍을 이루어 각기 한 마리씩 마주 배열된 것 같다. 한편 여느 재물과는 달리 새, 즉 비둘기(9절)는 쪼개지 아니한 이유에 대하여 혹자(Wordsworth)는 그것이 결코 나뉘일수 없는 성령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나(마 3:16;눅 3:22;요 1:32) 실제로는 그것이 쪼갤 필요가 있을 만큼 몸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Kalisch).

성 경: [창15:11]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언약체결을 위한 준비]

⭕ 아브람이 쫓았더라 - 솔개와 같은 맹금류(猛禽類)가 짐승의 사체를 쪼아먹기 위해 접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장차 원수들에게 고난받는 이스라엘을 예표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한다(Keil, Knobel, Lange, Kalisch). 그리고 아브람이 솔개를 쫓아낸 것을 이스라엘이 결코 멸망당하지 않고 원수들을 격파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Jonathan, Rosenmuller, Bush). 이러한 해석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확신할 수 없으나 아뭏든 아브람의 이러한 행동은 그가 하나님께 더럽혀지지 않은 제물로서 제사를 드리기 원하였음을 나타내 준다. 이는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배를 일삼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요 4:24).

성 경: [창15:12]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이스라엘의 애굽 노예생활 예언]

⭕ 깊이 잠든 중에 - '깊은 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르데마'(*)는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시기 위하여 아담을 재우신 것(2:21)과 하나님을 피해 달아났던 요나가 선창밑에서 잠든 것(욘 1:5)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 단어이다. 이는 솔개를 쫓느라 지친 아브람에게 찾아든 평범한 잠을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깊은 잠으로 만들어 그것을 자신의 특별 계시 수단으로 삼은 것임을 나타내 준다

⭕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 직역하면 '극심한 어두움에 대한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런데 잠자는 사람이 캄캄함으로 인해 두려워했다는 것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아마도 이는 장차 그의 후손이 당하게 될 어둠의 역사(13절)를 어렴풋이나마 예견한데서 온 놀라움과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이 어둠의 공포를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이 당할 애굽의 속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Cavin, Keil, Rosenmuller, Ka-lisch).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사실을 계시하시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미리 조성하신 적절한 분위기로 말미암아 생겨 난 공포일 것이다.

성 경: [창15:13]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이스라엘의 애굽 노예생활 예언]

⭕ 너는 정녕히 알라 - 문자적 뜻은 '너는 아는 것을 알라', '알고 또 알라'. 이는 하나님께서 지금부터 말씀하시는 것을 유념하여 듣고 마음 속 깊이 명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공동 번역은 '똑똑히 알아 두어라'로 번역하였다.

⭕ 사백년 동안 - 정확한 기간은 430년이지만(출 12:40, 41;갈 3:17) '사 대'(16절)란 말과 맥을 맞추기 위해 대략적으로 사용된 예언적 숫자이다.

성 경: [창15:14]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이스라엘의 애굽 노예생활 예언]

⭕ 그 후에 네 자손이...나오리라 -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그 즉시로 주시지 않고 이방 곧 애굽에서 400년간 지내게 하신 뒤 주신 까닭으로 두 가지가 있다. (1) 당시 가나안 땅의 주인이던 아모리 족속의 죄악에 대하여 심판을 유보하시고 그들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16절). (2) 이스라엘 자손들이 연단의 기간을 겪는 동안 그들로 하여금 더욱더 성숙한 신앙인격을 갖추도록 하기 위함이다.

성 경: [창15:15]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이스라엘의 애굽 노예생활 예언]

⭕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 이는 아브람의 유해가 그의 조상들의 장지(葬地)인 메소포타미아 땅(11:31, 32)으로 운구되어 안장될 것이란 뜻이 아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삶을 모두 살다가 경건한 신앙계통의 그의 조상들이 이미 가 있는 영적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아람에게는 영적 가나안이, 그의 후손에게는 실제적 가나안 땅이 기업으로 주어짐으로써(16절) 아브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7절)은 공평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창15:16]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이스라엘의 애굽 노예생활 예언]

⭕ 사대 만에 - 당시 100세가 넘었던 족장들의 평균 수명에 따라 한 세대를 100년으로 계산한 것이다. 출 6:16-20에 의거하면 아담의 증손 레위가 일 세대, 레위의 아들 고핫이 이 세대, 고핫의 아들 아므람이 삼 세대 그리고 아므람의 아들 모세가 제 사 세대였음을 알 수 있다.

⭕ 아모리 족속 - 이스라엘의 강력한 오므리 왕가와 아합 왕가가 이스라엘 국가 전체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듯이(미 6:16) 여기서도 가나안 여러 족속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족속이었던 아모리족(10:4)을 가나안 민족 전체를 대표하여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한 경우이다.

⭕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 '관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렘' (*)은 더 이상 채울 틈이 없이 완전하게 가득찬 것을 뜻한다. 이 처럼 죄악에도 도수(度藪)가 있는데(6:5;롬 2:4, 5;벧후 3:8, 9) 회개치 않은 죄는 계속 쌓여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부르고마는 도수에까지 이르게 된다(대하 36:15, 16). 본절에 나오는 아모리족 역시 아브람 때까지 이미 팔레스틴에서 400여년간을 살면서 갖은 죄악을 저질렀는데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400년간의 회개 기간을 더 주셨다. 그러나 끝내 회개치 않고 죄악의 도수만 높여갈 뿐이므로 마침내 그들은 멸망하고 말았던 것이다(수 10:40-43). 이처럼 하나님의 인내와 용서는 그 깊이에 있어선 제한이 없지만(엡 3:18, 19) 기간에 있어선 제한이 있다(막 1:15;고후 6:2).

성 경: [창15:17]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가나안 영토]

⭕ 해가 져서 어둘 때에 - 여기서 이 어둠은 사단과 죄에 예속되어 있는 혹암의 세계를 상기시켜 주는데, 그러나 그러한 어둠이 더할수록 자기 백성을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횃불은 더욱 찬연히 빛날 것이다.

⭕ 연기 나는 풀무...타는 횃불 - '풀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누르' (*)는 불을 담아 둘 수 있는 주발이나 가마, 화로를 의미하며, 타는 횃불은 그 화로 속에서 타고 있는 불꽃 또는 거기서 취하여진 횃불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불꽃은 호렙 산 떨기나무에 붙은 불(출 3:2-4), 이스라엘을 인도하던 불기둥(출 13:21, 22;40:38)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견적(可見的) 현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대적자들에게는 그들을 소멸시키는 진노와 심판을 의미하며(출19:18;겔 10:2-4;슥 12:6;계 15:8)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의미한다(사 62:1).

⭕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 학자에 따라서는 쪼개어진 고기를 아브람의 영적 자손들에게 천상의 가나안 땅을 보장해 주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희생을 예시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한편 여기서 특이한 사실은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간 것이 언약 당사자인 아브람과 하나님, 양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라는 점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시는 모든 언약은 본질적으로 그분의 주권적인 뜻에 의해 맺어지는 편무(片務) 계약(6:18;9:8-17)일 뿐임을 강조해 준다.

성 경: [창15:18]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가나안 영토]

⭕ 애굽강에서부터...유브라데까지 -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가나안 땅의 경계가 처음으로 언급된 부분이다. 이는 곧 애굽 국경 부근인 가사(Gaza) 남쪽 지방에서부터 유프라테스 강 서편에 있던 큰 성읍 딥사(Tiphsa)에 이르기까지의 광범위한 지역이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지휘하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던 당시에는 이 모든 지역을 차지하지 뭇했었고(민34:2, 3) 홋날 다윗과 솔로몬의 치세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위에 열거된 국경이 형성되었다(왕상 4:41;대하 9:26). 따라서 본절은 단순히 문자적인 뜻 외에 상징적으로 하늘 가나안의 지경이 크고 넓다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고 볼 수도 있다.

⭕ 주노니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타티'(*)는 '내가 이미 주었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기업이 될 땅에 대한 반복된 약속(12:7;13:15) 에다 인준(認准)까지 마친 계약 완료 상태를 의미한다. 이와 유사한 말을 그리스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분께선 자신이 이 땅에 옴으로써 천국이 이미 임하였고(마 12:28) 자신을 믿는 자는 영생을 이미 얻었다고 말씀하셨다(요 3:36).

성 경: [창15:19,20,21]

주제1: [아브람과 맺은 하나님의 횃불 언약]

주제2: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가나안 영토]

아브람 당시를 전후하여 가나안 지경에 흩어져 살던 여러 족속들이다. 훗날 이스라엘이 이들을 정복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에 기인한 축복이었지만 이들 족속들의 패망 원인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관영한 죄악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렘 31:29, 30).

⭕ 겐 족속 - 팔레스틴 남부 산악 지대에 살던 족속인데 이스라엘의 가나안정복 이후에도 유다 자손과 함께 그곳에 정착하였다(삿 1:16). 모세의 장인 호밥이 이 겐 사람이다(삿 1:16;4:11).

⭕ 그니스 족속 - 겐족속과 함께 팔레스틴 남부 지역에 거주하였던 족속으로 추정된다. 헤브론 땅을 분깃으로 받은 갈렙이 이 그니스 사람이다(수 14:13, 14).

⭕ 갓몬 족속 - '갓몬'은 동쪽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들이 판레스틴 동부 지역에 거주하였던 족속이었음을 알 수 있을 뿐 성경 그 어디에서도 이들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한편 이외에 헷 족속과...여부스 족속에 대하여선 10:15, 16;13:7;14:5 을 참조하라.

성 경: [창16:1]

주제1: [하갈과 이스마엘]

주제2: [아브람의 첩이 된 하갈]

⭕ 생산치 못하였고 - 하나님의 거듭된 약속(12:7;13:15, 16;15:4)에도 불구하고 사래가 늙도록 아이를 갖지 못한 것은 신앙생활의 한 갈등 요인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신체적 결함으로 여기기 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것으로 여겨졌으니(20:17, 18) 그 갈등은 더욱 심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사래는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인간적 방도를 모색하였는데(2절) 이 역시 후사 문제에 대해 아브람이 범하였던 것과 동일한 실수가 아닐 수 없다(15:3).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한치도 어김이 없이 반드시 다 이루어지며, 그러한 성취의 때는 인간의 생각을 초월한 하나님 편의 적절한 때를 좇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전3:1, 2;사 55:8, 9).

⭕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 아브람이 기근을 피해 애굽에 내려갔을 때 사래 사건으로 인하여 바로에게서 선물로 받았던 노비들 중의 한 사람인 것으로 추측된다.

성 경: [창16:2]

주제1: [하갈과 이스마엘]

주제2: [아브람의 첩이 된 하갈]

⭕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 하나님께서 자신의 태(胎)를 닫으셨다는 뜻으로 이제부터 하려고 하는 일의 책임이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있음을 단언한 말이다. 물론 인간의 잉태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29:31;시 127:3;사 66:9). 따라서 사래는 더욱 더 하나님만을 믿고 그 약속을 의지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고 그분의 잉태케 하시는 역사를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채 스스로 성급한 판단과 섣부른 일을 감행한 데 사래의 잘못이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사래의 실수는 장차 큰 비극의 전조가 되었다.

⭕ 여종과 동침하라 - 족장이나 부호(富豪)와 같은 상류 계층에선 부부간에 자식이 없을 경우, 아내가 자신의 여종을 남면에게 주어 후사를 보도록 하는 것이 고대 근동의 관습이었다(Nuzi Tablets). 그리고 이 경우 태어난 아기는 여종에게가 아니라 아내에게 속하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사래의 행동은 당시의 생활 습속을 따른 어쩌면 자연스런 행위였다고도 볼 수 있으나 (1)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인내하는 신앙심을 결여한 점과 (2) 이로써 하나님의 창조 질서인 일부 일처제를 파괴하였다는 잘못은 면할 수 없다.

⭕ 얻을까 하노라 - 직역하면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하갈을 통하여 자신을 중심한 새 가정을 일으키려는 사래의 인간적 의도를 잘 드러내 준다 이런 점에서도 사래는 하갈을 인격체로서 보다는 생산 수단으로만 대하였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비록 종이 주인의 재산이긴 하지만 그의 생명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고귀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엡 6:9).

⭕ 들으니라 (*, 솨마) - '동의하다', '만족하다'는 뜻으로 사래가 제시하는 요구와 방법이 어떠한 의미를 지닌 것인지 분명히 알고서도 아브람이 이에 응하였음을 나타내 준다. 즉 그는 사래의 요구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상반되는 철저히 인간적인 방법임을 알면서도 이에 한마디의 반론도 제기하지 않은 채 수락한 것이다. 실로 그들은 칼빈(Calvin)의 지적대로 약속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그 성취 방법에만 몰두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인간적인 방법과 잔꾀로 성취해 보려고 하는 것은 인간 교만의 발로이자 잘못이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이루어가야 한다. 목적만 좋으면 수단과 방법은 정당화되기 마련이라는 사고는 일반 사회에서조차 질타당하는 잘못된 생각이다(롬 6:1).

성 경: [창16:3]

주제1: [하갈과 이스마엘]

주제2: [아브람의 첩이 된 하갈]

⭕ 십년 후 -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할 때의 나이는 75세였다(12:4). 따라서 이때는 아브람이 85세가 되던 해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인 이삭은 그로부터도 15년이 더 지난 10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주어졌으니(21:5)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명하셨다.

성 경: [창16:4]

주제1: [하갈과 이스마엘]

주제2: [하갈의 교만]

⭕ 잉태하매...멸시한지라 - 직역하면 '잉태하자...눈에 하찮게 보였다'. 당시에는 여자가 잉태치 못하는 것을 대단한 치욕으로 생각했고 다산(多産)을 신의 은총으로 간주했었으니(29:32, 35;30:6, 20) 이러한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삼상 1:6).결국 사래는 자신의 계책에 자신이 얽매이는 비참한 꼴을 당한 셈인데 이는 일부 다처주의(一夫多妻主義)에서 오는 폐단과 비극의 한 예라 할 수 있다(삼하 16:21, 22).

성 경: [창16:5]

주제1: [하갈과 이스마엘]

주제2: [하갈의 교만]

⭕ 나의 받는 욕 - '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마스'(*)는 '손해', '강포'를 뜻하는데 이는 곧 주인인 사래가 일개 여종에 지나지 않는 하갈로부터 받은 멸시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강포스러운 것이었음을 나타내 준다.

⭕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 직역하면 '그것은 당신 탓이다'. Livivg Bible은 이를 '그것은 모두 당신 잘못이다'(It's all your fault)로 번역하였는데 하갈 사건으로 파생된 모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간사한 인간 속성이 잘 드러나 있다. 즉 사래는 아브람이 수태한 하갈을 편애한 결과 하갈이 더욱더 자신을 멸시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아뭏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갖고있는 이러한 책임 회피 성향은 범죄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로부터 비롯된 인간 치부(恥部)이다(3:12, 13).

⭕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 자칫 이 말은 자신과 아브람의 행위를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정당하게 심판받겠다는 결연한 의지 표명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참된 성찰도 하지 않은 채 감정에 치우쳐 모든 책임을 아브람에게 미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Calvin). 그렇지 않았더라면 사래가 이 일로 하갈을 학대하였을리 만무하다(6절).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계획이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는 것과 같은 죄악을 범치 말아야 할 것이다.

성 경: [창16:6]

주제1: [하갈과 이스마엘]

주제2: [하갈의 교만]

⭕ 눈에 좋은 대로...행하라 - '원하는 대로 하라'는 히브리식 관용 표현이다. 당시의 관습에 의하면 여주인인 사래는 하갈를 종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따라서 이 말은 사래가 그렇게 하여도 좋다는 뜻이다. 이는 칼빈(Calvin)의 지적대로 (1) 가정의 평화를 회복하기 원하는 아브람의 합당한 조처이자 (2)하갈을 통하여 약속의 자녀를 얻으려 했던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간접적인 시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반면, 후사 문제에 대한 족장의 나약성과(Bush), 장차 태어날 아이의 어머니에 대한 부당한 대우(Candl isch) 등도 엿보인다.

⭕ 학대하였더니(*, 아나) - 원 뜻은 '응답하다'로 하갈이 사래를 멸시한 것만큼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가했음을 시사해 준다.

⭕ 하갈이...도망하였더라 - 빈곤의 악순환을 연상시켜 주는 죄악의 사슬고리 현상이다. 즉 사래의 인간적 계획->아브람의 동조->하갈의 교만->사래와 아브람 간의 불화->종의 신분으로 환원된 하갈->사래의 학대->하갈의 도망 순으로 계속 증대되는 죄악은 우리들에게 한 순간의 잘못이 엄청난 비극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 주기에 충분하다(약 1:14).

성 경: [창16:7]

주제1: [하갈과 이스마엘]

주제2: [방황하는 하갈과 여호와의 사자]

⭕ 여호와의 사자(*, 말라크 예호와) - '말라크'(사자)는 '보냄을 받은 자'란 뜻으로 대개는 '천사'를 의미한다(19:1;민 20:16;왕상 13:18;호 12:4;슥 2:3). 그러나 여기서는 성육신 이전 이 땅에 현현(顯現)하신 성자 하나님 곧 그리스도를 의미하는데 이는 (1) 하갈이 그를 가리켜 '하나님'이라 부른 점(13절) (2) 죄인으로서 제 1위 되시는 성부 하나님의 본체를 본 자는 살 수 없다는 점(출19:21-24;삿 13:22) 제 3위 되시는 성령은 단일성(單一性)을 지닌 불가변(不可變)적 존재이므로 인신(人身)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그러하다.

⭕ 광야의 샘 - 일종의 오아시스로 주위에 사람이 상시(常時) 거주치는 않으나 이동 중에 있는 유목민들이 가축들에게 물을 먹일 수 있도록 개발한 샘인 듯하다.

성 경: [창16:8]

주제1: [하갈과 이스마엘]

주제2: [방황하는 하갈과 여호와의 사자]

⭕ 사래의 여종 하갈아 - 비록 하갈이 사래의 학대를 피해 달아날지라도 여전히 그녀는 '사래의 여종'임을 상기시켜 주는 말이다. 종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주인으로부터의 사면에 있지 결코 도망치는 것에 있지는 않다. 따라서 이 말은 불확실한 도피 행각을 벌이고 있는 하갈에게 그녀가 취할 마땅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을 것이다.

⭕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 축복받은 장막인 아브람의 가정을 떠나 죄악과 우상 숭배의 도시인 애굽으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반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초기부터 타락한 아담에게(3:9), 그리고 가인에게(4:9) 이 '어디'(where)란 물음을 던져오셨는데 이것은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현 위치를 파악하고 회개하며 돌아오기를 간구하는 그분의 눈물어린 호소이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하갈에게 던져진 이 어김없는 질문은, 오늘날 세상 향락에 탐닉되기 좋아하는 우리들에게도 역시 들려오고 있는 피묻은 주님의 음성이다.

⭕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 '사래를 피하여'라는 말은 하갈이 자신의 고향 애굽으로 도망치는 원인이 그녀로 부터 받은 견딜 수 없는 학대(6절)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로써 도피 행위를 변호하고 선처(善處)를 호소하였을 것이다(Lange). 한편 하갈이 사래를 자신의 '여주인'으로 호칭한 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양심이 움직이고, 자신이 여전히 사래의 종이란 사실을 분명히 발견케 되었음을 뜻한다.

성 경: [창16:9]

주제1: [하갈과 이스마엘]

주제2: [방황하는 하갈과 여호와의 사자]

⭕ 돌아가서 - 문제 해결을 위해 우선적으로 취하여야 할 방도이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곁길로 간 죄인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은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듯(신 30:9, 10). 주인에게서 달아난 종이 사죄받을 수 있는 첩경은 다시금 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훗날 빌레몬의 달아난 종 오네시모에게 취한 바울의 행동도 이와 같았다(몬 1:12). 오늘날 사회 기강이 해이해지고 각종 부정 부패가 만연하는 까닭도 따지고 보면 학자가 학자의 신분을 떠나고, 위정자가 국민의 공복(公僕)이란 위치를 떠나고, 군인이 활동 반경을 이탈하여 경거 망동하는 데 있으니 성도들은 세상을 밝히는 불로서 등경을 떠나 발 아래 처하지 아니함으로 본인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마 5:14, 15).

⭕ 수하에 복종하라 - '수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드'(*)는 '힘', '지배', '명령', '보호'등의 뜻으로 주인의 권위와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이다. 이는 사래의 학대에 대하여서도 참고 온순하게 순종하라는 의미인데, 그렇다고 해서 주인은 종들을 소나 말처럼 취급할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성경은 종들에게도 안식일에 휴식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으며(출 20:10) 종을 때려 죽인 주인은 형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출 11:20).

성 경: [창16:10]

주제1: [하갈과 이스마엘]

주제2: [방황하는 하갈과 여호와의 사자]

⭕ 크게 번성하여 - 직역하면 '번성케하고 번성케 하여'. 하갈은 사래가 자신을 통하여 실현시키길 원하였던 하나님의 언약(12:2;13:16;15:4)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그러한 언약의 자손이 태어나기 전에(21:1-5) 하갈 자신도 많은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것은 절망 중의 큰 위로였을 것이다. 특히 고대에는 오늘날보다 더욱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였으니 후손이 크게 번성할 것이라는 이 약속은 그 속에 내포된 바 한 인간이 일국(一國)의 조상이 된다는 것과 더불어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한바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같게 하리니'(13:16)란 말을 연상시켜 준다. 결국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은 이러한 약속대로 오늘날 터어키인들과 아랍인들을 구성하는 12족속의 조상이 되었다(25:12-16).

성 경: [창16:11]

주제1: [하갈과 이스마엘]

주제2: [방황하는 하갈과 여호와의 사자]

⭕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 성경상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름이 지어진 첫번째 경우이다(17:19; 왕상 13:2; 대상 22:9;마 1:21;눅 1:13). 히브리 사회에서 어떤 자가 다른 자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피명명자에 대한 명령자의 종주권이나 특별한 은총을 나타내는 행위인데 여기서 이스마엘이 하나님과의 언약 밖에서나마 이러한 은총을 받은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신실한 종 아브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12:3).

⭕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 이 말은 단순히 하나님이 하갈의 고통과 괴로움을 헤아려 주셨다는 의미 외에도(LXX) 그녀가 드린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의미를 지닌다(Chaldee). 왜냐하면 엘리에셀 (24:12-14)과 마찬가지로 하갈 또한 아브람의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여호와 신앙을 체득하였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13절).

성 경: [창16:12]

주제1: [하갈과 이스마엘]

주제2: [방황하는 하갈과 여호와의 사자]

⭕ 들나귀같이 - '들나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페레'(*)는 발이 빠르고 길들여지지 않으며 들에서 자유로이 뛰노는 '야생 나귀'를 의미한다(욥 39:5 - 8). 이 나귀는 당시 메소포타미아를 중심한 아라비아 지역에서 많이 서식하였는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이스마엘과 그 후손이 들나귀 같으리라는 하나님의 이 예언은 30세기가 흐르는 역사 속에서 정착 생활을 단념하고 문명 생활을 멸시하면서 약대나 말을 타고 창을 든 채 광활한 자연을 마음껏 누비면서 난폭하고 거칠게 살아 가는 베두인(Bedouin)계 아랍족들 및 사라센(Saracens) 족들에 의해 성취되었다.

⭕ 그 손이...치겠고...칠지며 - 이스마엘 자손의 호전적인 성격으로 인해 그 이웃 족속들과 반목할 것을 뜻한다. 이 예언은 아라비아, 시리아, 이집트, 북아프리카 사막 등을 방랑하면서 이민족을 침공, 약탈하기 일수인 베두인족과 A.D.7-15C 말까지 시리아, 이라크, 북아프리카, 대서양 연안까지 진출, 무력으로 사라센(Saracen) 제국을 건설했던 호전적(好戰的)인 아랍 여러 족속들에 의해 열사상 성취되었다.

⭕ 동방에서 - 직역하면 '면전에서'(in the presence of). 그런데 R.S.V는 이를 그의 모든 친족들과 '대항해서'(over against)로, 공동 번역은 모든 골육의 형제와 '등지고'로 번역하였다. 문자적인 뜻은 이스마엘 자손이 가나안 땅의 면전이라 할 수 있는 유프라데스와 수에즈 운하, 홍해 사이의 광대한 사막 지역에 거주하게 될 것임을 가리키는 듯하다.

성 경: [창16:13]

주제1: [하갈과 이스마엘]

주제2: [방황하는 하갈과 여호와의 사자]

⭕ 감찰하시는 하나님(*, 엘로이) - '나의 눈으로 확인한 하나님' 또는 '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절망 중에 처한 하갈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 및 약속을 받고, 그분을 뵈온 감격에서 참회의 마음으로 부른 하나님의 이름이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고통과 절망 중에 방황하는 인간들을 친히 만나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데 그에 대하여 감읍(感泣)하고 마음 문을 열기만 하면 이후 참된 평강이 그의 전인격을 지배할 것이다(계 3:20).

⭕ 내가 어떻게...뵈었는고 - '어떻게 내가 하나님을 본 후에도 살아 있는가'로 번역될 수 있는 구절이다. 즉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목도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출 20:19;33:20) 자신이 살아 남은 것에 대한 경이와 놀라움을 나타낸 구절일 수 있다(Keil, Murohy).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이를 '내가 광야 도피 생활 중에서도 돌아보시고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을 뵈올 수 있다니!'라는 의미의 감탄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성 경: [창16:14]

주제1: [하갈과 이스마엘]

주제2: [방황하는 하갈과 여호와의 사자]

⭕ 브엘라해로이 - 하갈이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님을 기념하여 붙인 샘의 이름으로 '살아 계셔서 나를 지켜 보신 자의 우물'이란 뜻이다. 브엘세바 남방, 아인가데스 서북방 18Km지점에는 오늘날 아랍인들이 '마 레하이 라이'(살아 있는 자의 우물)로 부르는 샘이 있는데 이 샘이 '브엘라해로이'일 가능성이 있다.

성 경: [창16:15]

주제1: [하갈과 이스마엘]

주제2: [이스마엘의 출생]

⭕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 본문은 하갈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다시 여주인 사래에게로 돌아갔고 또한 그녀가 아브람에게 광야 체험을 들려주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아브람은 하갈이 자신에게 낳아준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대로 이스마엘이라 칭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구속사적으로 그는 어디까지나 약속을 따라 난 자인 이삭(21:1-3)과는 구별된 자로 '육체를 따라 난 자'이다(갈 4:23). 여기서 '육체를 따라 난 자'란 율법 곧 저주 아래에서 난 자들로 하나님의 약속의 유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자들이 곧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성 경: [창17:1]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

⭕ 구십 구 세 때에 -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온 지 25년째가 되던 해로(12:4) 후손에 대한 소망이 완전히 단절된 절망적인 상황을 나타내는 나이이다(17, 18절). 이처럼 인간에겐 절망적인 그 순간이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비로소 역사하시는 시간인데, 이는 연단을 통해 우리의 신앙 인격을 보다 성숙시키고 또한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뢰케 하려는 목적이 있다(롬5: 4).

⭕ 전능한 하나님(*, 엘 솨다이). -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경우이다. 이 명칭은 하나님께서 자연법칙을 초월하여 자신의 약속을 성취시키는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고 계심을 강조하는 명칭이다. 따라서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고통과 절망 중에 있는 당신의 종들에게 이 이름으로 찾아가셨다. 즉 이 이름으로 벧엘의 야곱을 위로하셨고(35:11), 미디안의 모세에게 확신을 주셨으며(출 6:3), 극심한 고통 중에 있는 욥을 찾아가셨다(욥 40:2). 지금도 하나님께서 이러한 이름을 통하여 비록 아브람이 늙었으나 그로 하여금 열국의 아비(4절;15:5)가 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당신께 있음을 재천명하신 것이다.

⭕ 내 앞에서 행하여 - 직역하면 '내 앞에서 걸어가라'(walk before me). 곧 '목전(目前)에서 행하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의식하에 매사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신앙과 그분의 말씀을 따라 행동하라는 교훈을 준다(잠 3:1-7).

⭕ 완전하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밈'(*)은 원래 전혀 비난할 것이 없거나 흠이 없는 깨끗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것은 타락한 인간으 로서는 도저히 이르지 못할 영역이다. 따라서 여기서 요구되는 완전은 무한성을 가지는 하나님의 완전(마 5:48)과는 달리 그러한 완전을 지향하는 노력을 가리킨다 하겠다. 한편 하나님께서 지금 아브람에게 이 같은 명령을 주신 까닭은, 다시는 그가 축첩으로 인한 실수(16:2)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성 경: [창17:2]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

⭕ 내 언약 -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이끄시는 언약 또는 사람들과 이미 체결해서 잘 알려진 언약(6:18;9:9)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특별히 아브람에게 거듭거듭 주셨던 후손과 기업에 대한 약속을 가리킨다(12:1-3;13:14-17;15:1-7 ).

⭕ 나와 너 사이에 세워 - 반복된 약속에다 인준까지 마친 하나님의 언약이 마침내 실현될 때가 되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아브람이 이 말씀을 받은 때가 99세이고 이삭을 낳은 때가 100세이니(21:5) 이 말씀을 받은 지 얼마 안 있어 사래가 이삭을 잉태, 하나님의 후손 약속이 실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창17:3]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

⭕ 엎드린대(*, 나팔 파님) - '나팔'(떨어뜨리다)과 '파님'(얼굴)이 복합된 말로 얼굴을 비롯한 온 몸을 땅에 완전히 대고 엎드린 것을 가리킨다. 이는 지극한 경외의 자세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예배 자세인데(왕상 8:54).이로써 아브람은 자신의 축첩행위로 인하여 발생되었던 그간의 가정 불화 및 모든 잘못을 하나님께 내어 놓고 회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과 순전한 삶을 갖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렘 2:19).

⭕ 일러 가라사대 - 순전한 마음가짐과 합당한 자세를 갖춘 아브람에게 새로운 축복(언약의 갱신)을 주시려는 일성(一聲)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가 어그러진 길로 나갈 때에는 훈계와 책망을 발하시며(1절), 또한 그 음성을 듣고 돌이킬 때에는 또 다른 축복을 주시는데 이러한 끊임없는 은혜 때문에 죄인인 우리가 멸망치 않고 마침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롬 3:23, 24).

성 경: [창17:4]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

⭕ 열국의 아비 - 1차적으로 이 말은 이스마엘에게서 비롯된 모든 종족과 민족들(25:12-16), 아브람의 후처 그두라에게서 퍼진 여러 족속들(25:1-4), 아브람의 후손이면서, 갈리어 나간 민족인 에돔 족속(36:1-19) 등도 염두에 둔 말이다. 그러나 구속사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의 축복(12:3)을 나눠 가지게 된 아브람의 영적 자손을 염두에 둔 말이다(롬 11:7-12).

성 경: [창17:5]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

⭕ 아브람...아브라함 - 후일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32:27, 28), 시몬에게 '베드로'란 이름을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요1:42)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새 언약과 함께 주신 새 이름이다(엡 3:;계 2:17). 히브리인들은 보통 할례를 받을 때 이름이 주어지는데(21:3, 4;눅 1:59, 60;2:21) 아브람 역시 할례를 받기 직전, 이러한 새 이름을 받은 것은(9-14, 23-27) (1) 직접적으로는 언약의 갱신을 상징한 외적 표식이나 (2) 영적으로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와서 맺을 새 언약(고전 11:25)에의 동참을 상징한다.

성 경: [창17:6]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

⭕ 심히 번성케 - '번성케'는 히브리어 '파라'(*, 결실하다)와 '라바'(*, 너무 많다)가 결합된 말로 주체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에 '심히'(exceedingly)라는 말이 첨가되었으니 그 풍성한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자손이 번성하리라는 것은 구약 시대에 있어서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인데(시 127:3-5) 하나님께선 천지 창조 직후에도 이러한 축복을 주셨고(1:28), 노아(9:1), 이스마엘(20절), 이삭(26:4, 24), 야곱(28:3) 그리고 요셉(48:4)에게도 동일한 축복을 주셨다.

⭕ 열왕이...좇아 나리라 - 이 말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여러 나라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 뿐 아니라, 그의 후손 중에서 유명한 통치자, 현군(賢君)들이 많이 배출될 것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었다. 이 예언은 특히 다윗왕과 솔로몬왕을 통해 결정적으로 이루어졌다.

성 경: [창17:7]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

⭕ 세워서(*, 하키모티). - '쿰'(공고히 하다, 설립하다)의 과거 완료형으로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언약을 재확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재확인된 사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체결하신 언약은 아브라함 뿐 아니라 그의 후손들에게까지 영원히 미친다는 점이었다(13:15, 16).

⭕ 영원한 언약 -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이 혈통상 그의 직계 자손에게만 적용되지 않고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택한 자녀로 삼으신 모든 인간들에게도 공식적으로 적응될 것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당시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이 같은 언약의 연속성을 강조하였고(행 2:39) 사도 바울 역시 이에 근거하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였다(행 4:31).

⭕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 구원의 약속을 함축하고 있는 말로서 곧 모든 언약 내용의 핵심이다.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언약을 맺은 자들에게 은혜로 많은 은사를 주실 뿐 아니라 마침내 자신까지도 내어주신다. 이는 곧 인간 구원을 예기케 해주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은 생명 자체로서(요 14:6) 자신과 교제하는 자들에게 영생을 보장해 주시기 때문이다(요 17:3).

성 경: [창17:8]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

⭕ 영원한 기업 - 하나님의 약속대로 (12:7;13:15) 가나안 땅은 훗날 여호수아의 영도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속되었다(수 11:16-23). 그러나 후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가나안 땅을 영속적으로 차지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범죄할 때마다 그 땅에서 쫓겨났다. 그 최근의 예가 A.D. 70년 예루살렘 멸망 이후, 근 2, 000여년간의 디아스포라(Diaspora) 사건(마 24:15-28)인데, 여기에서 우리는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는 말이 조건부적인 성격의 언약임을 알 수 있다(Pulpit Commentary). 그 조건이란 곧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인간주의 '믿음'과 '순종'인데(9절) 이러한 언약의 조건성(條件性)은 출 19:5, 6;신 4:25-31;7:9-13;호 9:17 등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인간측이 그 언약에 대해 합당한 반응을 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든지 그 효력을 발생한다는 점에서 그 언약은 여전히 '영원한 언약'이다. 같은 맥락에서 천상 가나안도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에게 영원한 언약이다.

성 경: [창17:9]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할례 명령]

⭕ 그런즉 너는...지키라 - 언약의 내용이자 조건이다. 특별히 여기서 '너'는 언약의 대상이 되는 아브라함의 역할을 강조하는 말인데 이는 언약의 주체자로서 하나님의 역할을 강조하는 '나' 라는 말과는 대조가 된다. 비록 하나님께서 모든 조건들을 규정하신다는 점에서 본질상 하나님의 언약이 일방적인 성격을 지니나, 모든 언약이 그러하듯 이 언약에서도 이처럼 언약의 내용과 조건을 준행하여야 할 쌍방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성 경: [창17:10,11]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할례 명령]

⭕ 할례를 받으라...양피를 베어라 - 남자 성기(性器)의 표피 윗부분을 제거하는 할례 의식은 당시 이미 중동 지역에 널리 퍼진 성년 의식이었다. 즉 양피를 제거하는 이러한 의식은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들만이 아니라 이스마엘 족속, 에돔 족속, 암몬 족속 그리고 애굽인들도 이를 시행하였는데 아마 암몬 족속같은 경우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으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특히 오늘날의 탐사 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의식이 페니키아인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그리고 남태평양 군도 등의 여러 부족사이에서도 행해졌다는 것이 판명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에 관련하여 이러한 의식에 특별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셨는데 그것은 (1)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육신적인 죄와 부정을 떨쳐 버린다는 정결 의식의 상징적 표현이며(Calvin) (2) 거듭난 새 생명의 정화(淨化)를 상징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번식 기관인 생식기의 성별과 성화가 요청된다는 의미이다.

성 경: [창17:12]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할례 명령]

⭕ 대대로 남자는 - 구약 시대, 옛 언약(히 8:7)하의 모든 의식은 인자(仁者)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기 때문에 제물은 대개 수컷이었고(레 1:3-13) 의식(儀式)에의 참석 역시 남성 위주였다. 그러나 성경에서 여성은 남성안에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2:21-24;엡 5:22-33) 그 효력의 범위와 영향은 양성(兩性) 모두에게 해당되었다. 따라서 할례 의식 역시 여성을 대표하여 남성이 행하는 상징적 의식임을 알 수 있는뎨(Calvin), 이는 할례를 대신할 신약 시대의 침례 의식에 뭇 남성과 여성이 다 함께 참석하고 있는 점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행 8:12).

⭕ 집에서 난 자나...무론하고 - 이처럼 아브라함의 후손 뿐 아니라 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모든 자를 할례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보편성을 보여 준다. 이는 신약 시대 교회의 보편성(우주성, catholicit y))과 맥락을 같이 한다(행 2:39).

⭕ 난 지 팔 일만에 - 이 때 할례를 실시하는 이유는 먼저 생리적으로 유아가 별로 통증을 느끼지 않으며 동시에 피가 가장 빨리 응고되는 최적기(最適期)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외에도 상징적 이유가 있는데 (1) 의식상, 새로 태어난 남자 아이는 7일 동안 부정하므로(레 12:2) 그 이전에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림이 합당치 않기 때문이고 (2) 구속사적으로, 제 팔일은 안식일이 지난 첫번째 날로서 그리스도의 부활(마 28:1;막 16:2;눅 24:1;요 20:1)과 함께 새롭게 출발하는 '새 생명'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롬 8:10, 11).

성 경: [창17:13]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할례 명령]

⭕ 너희 살에 있어 - 일단 할례 의식을 통해 육신의 살에 새겨진 언약의 징표를 보고 하나님의 언약 내용을 마음 속 깊이 새기라는 말이다(롬 2:29). 이것은 마치 돌비에 새겨진 하나님의 계명이 우리의 심비(心碑)에 새겨지지 않는 한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과 같다.

성 경: [창17:14]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할례 명령]

⭕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 단순히 육체적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하에 있는 공동체로부터 제외될 것이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모든 언약과 무관한 자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Augu stine, Willet, Calvin, Murphy, Inglis). 여기서 물론 할례 그 자체가 신성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의식에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언약 내용의 준수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니 그것을 경홀(輕忽)히 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다. 따라서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은총에서 배제되는데, 이는 영적인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 함'(롬 1:17)을 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는 것을 예표한다.

⭕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 비록 하나님의 언약이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그 모든 언약은 인간의 죄 문제와 관련되어 있고, 따라서 그것은 전적으로 인간 구속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언약 내용을 충실히 준수하여야 할 책무가 있다(9절). 따라서 만일 인간이 그 책무를 게을리하거나 고의적으로 협정 내용을 위반할 시에는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는 일이 되어 결국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무효화 되고마는 것이다.

성 경: [창17:15]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사래의 개명(改名)과 이삭 탄생 예언]

⭕ 사래...사라 -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바뀐 것과 마찬가지로(5절) 사래에게 '사라'라는 새 이름이 주어진 것은 그녀가 아브라함과 더불어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것은 그녀가 자신의 혈통을 좇아 날 예수 그리스도(15:4)로 인하여 구원을 얻게 될 수 많은 영적 자녀의 어미가 되는 것을 뜻한다. 혹자는 이제 사래가 교회의 어미가 된다는 뜻으로도 보았다(Jerome, Augustine), 따라서 본절에 나타난 바 사래의 개명(改名)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 관계 수립이라는 구속사적 의의를 지닌다.

성 경: [창17:16]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사래의 개명(改名)과 이삭 탄생 예언]

⭕ 이삭을 낳아 주게 하며 - 아브람에게 약속된 후사가 사라의 몸에서 태어날 적자(嫡子)임을 분명히 계시해 주는 최초의 경우이다(15:4). 즉 지금까지 거듭되어 왔던 자녀에 대한 약속 성취가 눈앞에 이르른 현시점에서 이제 하나님은 그 최대 관심을 약속의 자녀를 낳을 당사자인 사라에게 쏟고 계시는 것이다.

⭕ 열국의 어미가 되게 - 직역하면 '그녀가 열국에서 되도록'(She shall become of nations). 그러나 KJV, NIV, RSV등과 같은 대부분의 영역본은 이를 '그녀가 열국의 어미가 될 것이다'(She will be a mother of nations)로 의역(意譯)하고 있다. 공동 번역과 한글 개역 성경도 이러한 번역을 그대로 취하고 있는데 이는 '사라'(여장부, 여주인, 공주)라는 이름에 걸맞는 번역이다.

성 경: [창17:17]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사래의 개명(改名)과 이삭 탄생 예언]

⭕ 엎드리어 읏으며 - 여기서 '엎드리어'(*, 이폴 알 파나우)는 이미 3절에 나온 것(엎드린대)과 동일한 말로 얼굴이 땅에 닿을 정도로 부복(俯伏)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웃은 것에 대하여서는 불신앙적 태도인지, 아니면 너무 기쁜 나머지 깜짝 놀란 웃음인지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웃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하크'(*)는 흥에 겨운 '큰 웃음'과 함께 '경멸의 읏음'도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요8:56에 근거해 아브라함의 이 웃음은 믿음의 눈으로 사라를 통해 이삭 뿐 아니라 장차 메시아가 날 것까지 보고 기뻐하였다는 견해를 취한다(Augustine, Calvin, Delitzsch). 그러나 이같은 견해는 영적인 해석에 치우친 무리한 주장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사라의 회임(懷姙)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하였으며 곧 이어 이스마엘이나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기를 하나님께 기원하였기 때문이다(18절). 따라서 아브라함의 이 웃음은 비록 일순간적이긴 하지만 90세 된 사라가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온 미소같은 웃음이라 하겠다.

⭕ 사라는 구십 세니 - 사라의 향년이 일백 이십칠 세였으니(23:1) 이때는 사라가 폐경기(閉經期)에 들어선 때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사라의 수태 가능성에 대하여 회의를 표명한 것은 인간적으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만일 아브라함이 한시라도 하나님의 전능성(1절)과 약속의 신실성(삼상 15:29)을 잊지 않고 있었더라면 인간적인 모든 의심은 도리어 기쁨과 감사의 읏음으로 화하였을 것이다.

성 경: [창17:18]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사래의 개명(改名)과 이삭 탄생 예언]

⭕ 이스마엘이나...살기를 -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15: 2, 3)라고 대답한 것과 똑같은 식의 반응이다. 즉 위로해주시는 말과 그 뜻은 고맙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나마 언약이 성취되기를 바란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고 방식을 드러내 주고 있는 구절이다. 그런데 혹자는 각도를 달리하여 본절의 '이스마엘이나'를 '이스마엘 역시'로 보고, 아브라함이 언약 외의 또 다른 아들 이스마엘도 하나님의 축복에서 배제당하지 않기를 간구하는 내용이라고 보기도 한다(Lange, Keil, Rosenmuller). 이러한 견해도 문맥에 따라서는 상당히 일리있는 견해이다.

성 경: [창17:19]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사래의 개명(改名)과 이삭 탄생 예언]

⭕ 이삭(*, 이츠학) - '차하크'(읏다, 17절)에서 파생된 말로 '그가 웃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름대로 아브라함은 훗날 이삭 탄생 이후 이삭을 볼 때마다 기쁨의 웃음을 띠었겠지만 반면 한때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불신앙의 웃음을 웃었던 지난날의 과오를 상기하며 신앙의 경각심을 늦추지 않았을 것이다.

⭕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영원한 언약 - 오고오는 후손을 통하여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언약(3:15)은 결코 한 개인이나 한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역사와 더불어 계속 발전, 확장되어 마침내 전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됨이 또다시 확실하게 계시되었다.

성 경: [창17:20]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사래의 개명(改名)과 이삭 탄생 예언]

⭕ 네 말을 들었나니 - 직역하면 '내가 너를 이해하였다', '내가 너를 경청하였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형편과 처지를 헤아려 주시고 그 간구하는 바를 들어 주셨다는 뜻이다.

⭕ 크게 번성케 할지라 - 아브라함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일 뿐 아니라 일찍이 하갈에게 약속하셨던 축복(16:10)의 재확인이다. 한편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 죽지 않기만을 간구하였는데(18절)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보존은 물론 자손 번성까지 약속해 주셨으니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하심이 후하심'(시 86:5)을 재삼 깨달을 수 있다.

⭕ 열 두 방백을 낳으리니 - 이 약속은 25:12-16에서 성취되었는데 그 열두 방백은 주로 아라비아 중부 및 북부 지역에 정착하였으며, 멀리로는 바벨론 지역에까지 진출하였다.

성 경: [창17:21]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사래의 개명(改名)과 이삭 탄생 예언]

⭕ 명년 이 기한 - 계속된 언약의 반복을 통하여 마침내 구체적인 이삭 탄생 시기가 계시되었다. 이처럼 계시는 하나님의 계획된 뜻에 따라 점진적으로 주어지는데 인간에게는 비록 더딜지라도 언약된 바가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는 데에 그 특성이 있다(합 2:3).

성 경: [창17:22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사래의 개명(改名)과 이삭 탄생 예언]

⭕ 떠나 올라가셨더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라'(*)는 1차적으로 '오르다', '올라가다'는 뜻 외에 2차적으로 '회복하다', '복구하다', '거두어 들이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가시적인 형상을 입으시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계시하신 후 본연의 무형상적 실체로 돌아가셨다는 뜻이기도 하다(35:13).

성 경: [창17:23,24,25,26,27]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준행된 할례의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아름다운 순종 기사이다. 그는 할례의 이유에 대하여 일언 반구도 없이 말씀하신 대로(23절) 다 순종하였으며 당일에(26절) 즉각적으로 순종하였다.

성 경: [창17:24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준행된 할례의식]

⭕ 구십 구 세 - 17절의 '백 세'와는 상치된 말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17절은 '백 세를 목전에 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성 경: [창17:25]

주제1: [아브람의 개명과 언약의 표징-할례]

주제2: [준행된 할례의식]

⭕ 십 삼 세이었더라 - 오늘날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랍 족속들은 생후 8일째에 할례를 시행치 않고 13세 되는 해에 시행하는데(Josephus) 아마도 이것은 자기네들의 시조(始祖)인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던 때를 기리기 위함인듯하다.

성 경: [창18:1]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천사를 영접한 아브라함]

⭕ 마므레 상수리 수풀 - 예루살렘 남방, 헤브론 근교에 위치한 곳으로 롯과 헤어진 아브라함이 일찍부터 정착지로 삼아 지금까지 거주해 오고 있던 지역이다.

⭕ 오정 즈음에(*, 케흠 하욤) - '때'(욤)와 '열'(하맘)이 합쳐진 말로 직역하면 '더운 그 때에', 곧 태양이 하늘 중앙에 치솟은 때를 가리키는데 이때 팔레스틴 거민들은 대개 식사와 함께 잠시 휴식을 취한다(창 43:16;아 1:7).

성 경: [창18:2]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천사를 영접한 아브라함]

⭕ 사람 셋 - 13절과 19: 1에 의거할 때 이 중 한 분은 하나님이시고 나머지 둘은 천사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과 천사가 이처럼 가시적(可視的)인 사람의 형상을 입고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까닭은 어디까지나 계시 내용을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무형상적이며 시.공간을 초월하는 초월자이시므로 그 본연의 모습으로서는 뜻하는 바 계시 내용을 유한한 인간에게 적절하게 전달할 수 없으므로 이처럼 사람의 형상을 입고 나타나신 것이다.

⭕ 달려나가 - 생면 부지의 나그네들에 대하여 적극적이고도 진실된 사랑으로 영접한 행위이다. 여행 중에 지친 나그네를 대접하며 그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당시 히브리인들의 관례로 굳어진 아름다운 풍습이긴 하지만(출 22:21;욥 31:32;마 25:35;딤전 5:10) 이처럼 아브라함이 그들을 보자마자 달려나가 따뜻하게 영접한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친절이자 그의 삶이 항상 나그네 대접하기를 힘쓰는 삶이었음을 드러내 준다.

⭕ 몸을 땅에 굽혀 - 귀한 방문자에 대하여 갖추는 근동의 인사 양식이다. 야곱이 에서를 맞이할 때(창 33:3), 요셉이 그의 아버지를 환영할 때(창 48:12) 또한 선지 생도들이 엘리사를 맞이할 때(왕하 2:15)에도 이러한 인사가 행하여졌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나그네들의 신분이나 연령 등을 묻지도 않고 이러한 예우를 표한 것은 그의 인격이 평소 겸손한 사람이었음을 증명해 준다.

성 경: [창18:3]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천사를 영접한 아브라함]

⭕ 내 주여 - 아브라함이 세 사람의 나그네에 대하여 단수인 '내 주여'(my lord))를 사용한 점은 인상적이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들은 이에 의거해 아브라함이 세 사람의 나그네 중 한 사람이 하나님이심을 즉시로 깨달았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1) 이는 세 사람을 총칭하는 대표 단수이며 (2) '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도나이'는 종교적 의미 뿐 아니라 남편(12절)이나 상전(24:12) 또는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일반적인 의미도 함께 지닌 단어란점 (3) 아브라함이 부지중(不知中)에 천사들을 대접하였다고 성경이 친히 증거하고 있는 점(히13:1) 등에 의거할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아브라함은 이후 서서히 그들의 정체를 깨닫게 되기는 하지만(17, 22절) 아직은 그들을 단순한 나그네로 알고 일반적 차원에서 존칭어를 사용한 것이다.

성 경: [창18:4]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천사를 영접한 아브라함]

⭕ 발을 씻으시고 - 아랍과 팔레스틴 지역은 대부분 모래와 먼지가 덮인 거친 사막 길로 되어 있다. 따라서 샌들(Sandal) 같은 간단한 신발만 신고 먼지 길을 오래 걸은 여행자들에게는 발 씻을 물이 절실히 요구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고대 근동에서는 자신의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발 씻을 물을 가져다 주는것이 필수 관행이 되었는데 이는 손님 접대에 있어서 최상 최적의 예우였다.

⭕ 나무 아래서 쉬소서 - '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안'(*)은 '기대다'. '눕다', '의지하다'는 뜻으로 곧 나무 그늘에서 휴식하며 식사하기에 편한 자세를 취하라는 의미이다. 오늘날도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 왼팔로 몸을 바치고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히브리인들에게서 혼히 찾아볼 수 있는 식사법이다(요13:23).

성 경: [창18:5]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천사를 영접한 아브라함]

⭕ 쾌활케(*, 사아드) - '세아드'(원조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견고케 하다'(잠 20:28), '힘있게 하다'(시 104:15), '원기를 되찾다'는 뜻이다. 장거리 여행으로 인하여 쇠진한 기력을 힘있게 회복할 수 있게끔 쉬라는 뜻이다.

성 경: [창18:6]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천사를 영접한 아브라함]

⭕ 떡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우가'(*)는 '레헴'(*, 떡, 빵)보다 더 고급스런 빵으로 뜨거운 돌에 구운 일종의 '펜 케이크'(pan-cake)를 가리킨다.

성 경: [창18:8]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천사를 영접한 아브라함]

⭕ 나무 아래 모셔 서매 - 나그네들과 같이 앉아서 식사를 하지 않고 '그들이 나무 밑에서 먹는 동안 곁에 서서 시중든 것'(공동번역)을 의미한다. 이것은 손님에 대하여 극진한 예우를 갖추는 행동이다.

⭕ 그들이 먹으니라 - 유대 주석가 및 일부 카톨릭 학자들은 이에 대하여 해석하기를 그들이 단지 먹는 척하였 뿐이지 실제로 먹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Josephus, Philo, Jonathan). 그러나 이것은 본문에 비추어 볼 때 지지될 수 없는 해석이다. 물론 영적 존재가 육적인 음식을 먹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과 수행 천사가 기꺼이 음식을 드신 까닭은 마므레의 환대 사건이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 실제 사건었다는 점을 족장에게 확신시키고 동시에 아브라함과 보다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Keil, Delitzsch, Lange). 이는 마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드신 것(눅 24:41-43)과 같은 이유이다.

성 경: [창18:9]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거듭된 이삭 탄생 예언]

⭕ 사라가 어디 있느냐 - 세 나그네가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들른 보통 여행자들이 아님을 시사해 주는 질문이다. 즉 이들은 이미 족장의 아내인 사라의 이름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사라에 대한 특별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특별히 방문한 자들이었던 것이다.

성 경: [창18:10]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거듭된 이삭 탄생 예언]

⭕ 그가 가라사대 - TEV는 '그'를 '그들 중 한 사람'(one of them)으로, RSV는 '주'(the lord)로, 공동 번역은 '하나님'으로 각각 번역하였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방문한 목적을 밝히려 하시는 것이다.

⭕ 기한(*, 에트 하야). '시간'(에트)과 '생명'(하야)이 복합된 말로 직역하면 '생명의 시간'이다. 이는 '소생할 때', '해가 바뀔 때'란 의미로 만사에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음을 일깨워 준다.

⭕ 네게로 돌아오리니 - 하나님에게 있어 '임하다' '돌아오다' 등의 표현 (출 3:18;민 10:36;시 50:3;90:13;슥 14;5)은 그분이 어떤 사건에 직접 개입하셔서 사역하시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지금은 약속만을 가지고 너를 방문했지만 다음에는 약속의 실현을 가지고 다시 찾아오겠다'란 뜻이다.

⭕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 이로 보아 아브라함 가족들의 거처인 장막은 나그네들이 앉아 쉰 나무 가까이에 설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대 유목민들의 장막은 대개 칸막이가 처져 있어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바깥 부분은 주로 손님들을 맞아들이는 사랑방으로 남자들이 사용하였고, 안쪽은 생활 필수품과 취사 도구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여자들이 내실로 사용되었다. 사라가 하나님의 말을 들은 곳도 바로 이 내실이었을 것이다.

성 경: [창18:11,12]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거듭된 이삭 탄생 예언]

⭕ 늙었고 - 문자적 의미는 '생명의 날들이 지나갔다'인데 이는 생식 능력의 때가 이미 지나가 버렸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단어이다.

⭕ 속으로 웃고 - 아브라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간적 상황이 근거해 자신의 수태 가능성을 불신한 자궤적(自潰的) 웃음이다(Calvin, Keil).

⭕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 '내가 어찌 부부간의 즐거움을 가지리요'(Modern Language Bible)라는 뜻으로 자신의 수태 불능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성 경: [창18:13]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거듭된 이삭 탄생 예언]

⭕ 사라가 왜 웃으며 - 낯선 여행자로서 족장 아내의 이름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9절) 그녀의 심중의 생각까지 감찰하고 있는 점은 하나님의 전지성(全知性)을 입증해 준다(요 21:17;히 4:13).

⭕ 어떻게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움남'(*)은 '참으로', '진실로', '확실히'란 뜻이다. 따라서 사라는 자신이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인 줄로 철저히 믿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창18:14]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거듭된 이삭 탄생 예언]

⭕ 능치 못할 일 - 문자적으로는 '너무 어려워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일'. 이러한 일이 자신에게는 있을 수 없음을 역설하시면서(렘 32:27;마 19:26;눅 1:37) 사라의 불신을 불식시키는 약속을 거듭 주고 계시는 하나님에게서 우리는 재삼 죄인에 대한 그분의 인내와 사랑의 열정을 깨달을 수 있다.

성 경: [창18:15]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거듭된 이삭 탄생 예언]

⭕ 두려워서 - 자신의 속마음이 확연히 드러나 버린데 대한 두려움이자, 단순한 나그네로만 알았던 자의 권능에 대해 느끼는 놀라움이다.

⭕ 승인치 아니하여 - 자신의 잘못이나 은밀한 생각 등이 폭로될 때 당혹감 내지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거짓말, 변명 따위를 늘어놓는 것은 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에 기초한 일반적 성향이다(3:12, 13). 이러한 태도는 사라에게서도 여지없이 나타났는데 그녀는 말하고 있는 상대방의 정체가 하나님일 것이라는 순간적인 생각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자신의 불신이 드러난 데 따른 두려움에 못이겨 거짓말을 하고 만다.

⭕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 더 이상의 거짓말을 용납치 않는 하나님의 엄숙한 선언이다. 이 말 속에는 자신의 불신앙을 거짓말로 은폐해 보려 했던 사라의 경솔하고도 어리석은 죄악을 책망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편 이에 대하여 사라가 더 이상 변명을 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킨 것은 하나님의 책망에 온전히 굴복당하고 말았음을 나타내 준다.

성 경: [창18:16]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소돔에 대한 심판 예언]

⭕ 소돔으로 향하고 - 직역하면 '소돔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마치 심판주 하나님께서 왼편에 있는 저주받을 자들에게 얼굴을 향하듯(마 25:41) 심판을 위한 진노의 얼굴을 소돔 쪽으로 돌리는 장면을 연상시켜 준다. 한편 아브라함이 기거하고 있는 헤브론 지경에서 소돔까지는 약 30km정도의 거리로 멀리 내려다 볼 수 있는 지점이다.

⭕ 함께 나가니라 - 유대전승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일행들과 함께 헤브론 북동쪽에 있는 '카퍼바누케'(Capherbanuche)까지 동행했다고 한다. 이곳은 아주 높은 언덕에 위치한 지역으로 그곳에서 내려다보면 사해와 그 연변의 여러 성읍들을 한 눈에 관찰할 수 있다.

성 경: [창18:17]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소돔에 대한 심판 예언]

⭕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을 멸하시려는 계획을 알려 주신 이유는 이어 나오는 18, 19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1) 축복의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즉 택한 민족 이스라엘의 조상이될 뿐 아니라 만민의 복의 근원이 될 아브라함(18절)에게는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는 것'(19절)이 진정한 축복의 길이라는 사실을 자식과 후손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할 사명과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2) 구속의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즉 심판이 없는 구속은 의미가 없으며, 구속이 없는 심판 또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요 5:29;롬 5:9) 하나님께서는 구속과 심판, 축복과 저주의 두 길을 아브라함에게 제시함으로써(요 3:18) 오고 오는 그 모든 후손들이 소돔의 멸망을 경고로 삼아 축복받는 구속의 길을 택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성 경: [창18:18]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소돔에 대한 심판 예언]

⭕ 천하 만민은...복을 받게 될 것 - 아브라함의 혈통을 타고 태어날 그의 후손 메시야로 인해 지구상의 온 족속에게 미칠 구원의 축복을 가리킨다.

성 경: [창18:19]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소돔에 대한 심판 예언]

⭕ 이는...이루려 함이니라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그로 하여금 '여호와의 도'를 지키게 하는 근거가 바로 하나님의 언약(12:2, 3;15: 18-21;17:1 -8)에 있음을 보여 준다. 즉 여호와는 불변의 하나님으로서 자신이 언약한 바를 반드시 이행하시지만 여기에는 그 언약의 수혜자인 인간측의 마땅한 자세도 아울러 요구되는 것이다.

성 경: [창18:20]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소돔에 대한 심판 예언]

⭕ 소돔과 고모라 - 아드마, 스보임, 소알과 더불어 사해(死海) 남단 싯딤 골짜기에 있던 다섯 도시 중 두 도시이다(14:2, 3). 이곳 사람들은 극도로 타락하였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 있어서 이 두 도시는 '죄악의 도시'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 부르짖음 -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에 대한 부르짖음 곧 원성(怨聲)을 뜻한다. TEV는 이를 '고소'(complaint)1로 번역하였다. 억울한 피는 땅 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하늘을 향해 호소한다는 고대인의 사상에서 나온 말로(4:10),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심히 무겁고 큰 것이었음을 상징한다.

성 경: [창18:21]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소돔에 대한 심판 예언]

⭕ 내려가서 - 고지대인 헤브론에서 해안 평지 지역인 소돔과 고모라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정확히 표현한 말이다.

⭕ 보고 알려 하노라 -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이는 그분께서 타락상을 직접 보고서 확인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주시겠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갈대아역(Chaldee)에는 '만일 회개하기만 한다면 내가 그들을 벌하기 않겠다'는 말이 첨가되어 있다. 뒤이어 아브라함이 중보 기도하였을 때 그들 중 열명만이라도 회개하였더라면 실제로 소돔과 고모라는 멸당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 경: [창18:23]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기도]

⭕ 가까이 나아가(*, 나가쉬) - 기본 뜻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 접근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경배하다', '함께 눕다'등의 뜻이 파생되었다. 따라서 이는 아브라함이 위치적으로 뿐 아니라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영적으로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 것을 가리키고 있다 하겠다.

성 경: [창18:24]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기도]

⭕ 의인 오십 - 당시 소돔 성의 인구가 얼마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소돔이 비옥한 평지에 위치한 성읍이었다는 점(13절)을 감안할 때 오십 명이라는 수는 전체 인구수에 비해 지극히 적은 수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이렇게 적은 수를 내세워 소돔 성읍의 구원을 간구하였던 것은 의인 오십이라도 크게 생각해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 경: [창18:25]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기도]

⭕ 공의를 행하실 것 -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에만 매달려 무조건적인 사유(赦宥)를 간구하지 않고, 그분의 공의에 근거한 재판상의 공정성을 호소하였음을 보여 준다(Keil). 이러한 아브라함의 신관(神觀)은 당시 근동의 샤마니즘적인 여타 종교의 저급한 신관에 비해 대단히 차원 높고 성숙한 것이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윤리성을 결여한 여타 잡신들과는 달리 선과 악,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시는 공의의 신이심을 깊이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 경: [창18:26]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기도]

⭕ 온 지경을 용서하라 - 하나님께서 대표의 대야의 원리에 입각해 인간을 구원하심을 보여 준다. 이러한 대표 원리는 한 사람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고 셀 수없이 많은 죄인들에게 구원을 베푸신 신약 시대 십자가 사건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롬 5:18, 19). 이는 비록 죄인이라도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기보다는 돌이켜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에 기인한 큰 은혜이다(겔 33:11).

성 경: [창18:27]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기도]

⭕ 티끌과 같은 나 - '티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파르 와에페르'(*)는 '먼지'(아파르)와 '재'(에페르)가 복합된 말이다. 이는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실존을 정확히 파악한 진솔한 신앙 고백이다(롬 9:21-23).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통찰할 줄 알았던 아브라함은 먼지에서 시작하여 한 줌의 재로 사라지고 마는 자신의 존재(3:19)에 대하여서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중보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에 근거한 기도 였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창18:28,29,30,31,32]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기도]

앞 부분(23-25절)이 하나님의 공의에 의지한 호소였던데 반해 이 부분은 그분의 자비와 긍휼에 더욱 의지한 간절한 호소이다. 마치 황금 사슬이 하나하나 연결되듯 의인 오십, 사십 오인, 사십, 삼십, 이십, 십 인으로 진행되는 이 간절하고 끈질긴 아브라함의 기도 속에서 소돔 성에 대한 아브라함의 애타는 사랑과 그의 간청을 끝까지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가 엿보인다. 이런 장면에서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면모를 충분히 엿볼 수 있는데, 특히 그의 중보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예표로 간주하기에 충분하다.

성 경: [창18:32]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기도]

⭕ 이번만 더 - '창조자에 대한 피조물의 신앙적 파렴치성'(F.Delitzsch)을 드러낸 말이다. 그러나 마치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듯한 이 말은,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기도자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이러한 기도와 간구 자세를 원하시는데(사1:18;마 7:7-11; 눅 11:5-13;18:1-8)그 까닭은 인간의 그러한 파렴치성에도 불구하고 봇물 같은 사랑을 부어 주시기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성 경: [창18:33]

주제1: [세 천사의 방문과 아브라함의 중보]

주제2: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기도]

⭕ 즉시 가시니 - 하나님께서 이 땅을 떠나 하늘 거처로 올라가신 것 뿐 아니라, 사람의 형상을 벗으시고 무형상적 실체로 돌아가신 것을 함께 의미한다.

성 경: [창19:1]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천사를 영접한 롯]

⭕ 저물 때에 - 소돔성의 타락상을 바로 살필 수 있는 최적의 때이다. 왜냐하면 음란과 음란과 방탕, 각종 사악한 죄악들이 활개치는 때는 주로 어두운 밤 시간이기 때문이다(잠 7:7-9). 이런 의미에서 어두움은 성경상 죄악의 신세를 상징한다. 따라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을 때에도 어두움을 사랑한 유대인들은 그를 영접치 않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요1:4-11 ;19:15). 오늘날 여전히 어두움의 때에 처해 있는 우리들(눅 22:53) 역시 불법과 각종 죄악의 올무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 근신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살전 5:6).

⭕ 두 천사 - 타락한 소돔 성을 불로 심판할 목적을 띠고 하나님께로부터 파송된 '분노의 천사'(삼하 24:16)들이다(18:22).

⭕ 성문에 앉았다가 -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재판장소, 사업 거래소, 고지(告知)) 장소 및 사교생활의 주요 무대였다(신 21:19;수 20:4;왕하 7:1;느 13:19;시 69:12;잠1:21). 따라서 성문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붐볐는데 롯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지도층 인사로서 그곳 거민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추측케 해준다.

⭕ 일어나 영접하고 - 숙부 아브라함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것과 동일한 나그네 대접 행위이다. 이러한 롯의 친절은 소돔 주민들과는 달리(4-9절) 희미하게나마 아직도 롯에게 남아 있는 경건성의 반영이다(벧후2:7, 8). 그러나 그의 결정적인 잘못은 죄악으로 가득찬 타락의 도시 소돔을 과감히 떠나지 않고 계속 그들 속에 함께 섞여 산 데 있다(살전 5:22).

성 경: [창19:2]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천사를 영접한 롯]

⭕ 내 주여 - 이 역시 아브라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롯도 천사들의 신분을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일반적인 존칭어를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

⭕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 '거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호브'(*)는 '넓은 공터', 즉 성문 안의 '광장'을 의미한다. 삿 19:15에 의하면 집으로 초대받지 못한 여행자들은 이러한 성읍의 길거리에서 유숙하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천사들이 롯의 초대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려 한 까닭은 소돔의 타락상을 구체적으로 시찰하기 위함이었다.

성 경: [창19:3]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천사를 영접한 롯]

⭕ 식탁(*, 미쉬테) - '솨타'(마시다, 술취하다)에서 온 말로 '마실 것', '향연'의미한다. 이는 여행 끝에 지친 나그네들을 위해 우선적으로 음료수나 포도주를 대접한 것을 나타낸다.

성 경: [창19:4]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패역한 소돔거민]

⭕ 무론 노소하고 - 이처럼 늙은이나 젊은이나 예외 없이 정염(情炎)에 사로잡혀 몰려왔다는 사실은 소돔 성읍이 만연된 도덕성의 부패를 확실히 보여 주는 동시에 그 성읍에 대한 심판의 정당성(13절)을 시사해 준다.

성 경: [창19:5]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패역한 소돔거민]

⭕ 저녁에 네게 온사람 - 두 천사는 완전한 사람의 형태로 왔기 때문에(18:2) 그들의 수려하고 아름다운 용모는 금방 소돔 주민들의 눈에 띠었을 것이다.

⭕ 상관하리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는 본래 '경험을 하여 상대방을 아는 것'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성교(性交). 즉 동성애(同姓愛)를 가리키는 완곡어로 사용되었다(삿19:22). 남색(男色)을 가리키는 영어 'sodom y'는 소돔 주민들의 이러한 성적 문란에서 파생된 치욕스런 단어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2:24)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동성애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롬 1:26, 27;고전 6:9) 모세의 율법(레 20:13)을 통해 이 죄를 엄격히 단죄하고 있다.

성 경: [창19:6]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패역한 소돔거민]

⭕ 뒤로 문을 닫고 - 손님들을 안전히 보호하기 위한 조처로 몸으로 폭도들을 맞닥뜨린 용기 있는 행동이다. 고대 동방에서는 자기집에 온 손님의 안전을 위해 목숨도 불사한 채 보호하는 것이 관례였다(8절).

성 경: [창19:7,8]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패역한 소돔거민]

롯이 손님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딸들의 순결과 명예를 희생하려 한 것은 소돔 사람들의 막을 수 없는 타락 행위에 대하여 그나마 덜 심각한 죄악으로 대처하려 한 행동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는 분명 죄로써 죄를 막고자 한 세속적 타협안이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악과의 타협은 더 큰 악을 초래하여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뿐 하나님 앞에서의 궁극적인 해결을 가져오지는 못한다. 따라서 성도는 다른 것들에 대하여서는 자기를 희생하고 봉사해야 하지만 악에 대하여서는 추호의 양보도 없이 끝까지 대항해야 한다.

성 경: [창19:8]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패역한 소돔거민]

⭕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 - 롯의 이 두 딸은 이미 소돔인과 정혼한 상태에 있는 딸들이다(14절). 따라서 이 둘을 폭도들에게 색욕거리로 내주려 한 롯의 행위는 딸들 뿐 아니라 정혼한 사위들의 명예까지도 훼손시키는 결례였다.

⭕ 내가...이끌어 내리니 - 족장 시대에 있어서 자녀에 대한 아비의 부권(父權)을 보여 준다. 당시의 부권은 자식의 생사 여탈권(生死與奪權)을 쥐고 있을 만큼 막강하였는데 드라빔 사건(31:29, 32). 다말 사건(38:24), 정탐꾼 사건(42:37)등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성 경: [창19:9]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패역한 소돔거민]

⭕ 이 놈이 - 욕설이 섞인 모욕적인 인사이다. 이것은 소돔 사람들이 롯에 대하여 존혀 존경심을 품지 않았다는 증거인데, 경건을 유지해야 할 신앙인이 악에 물들면 세상 사람보다 더욱 멸시 받기 마련이다.

⭕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 (*, 이쉬포트). '솨파트'(재판하다, 소송을 제기하다)의 부정형으로 과거부터 공공연히 소돔 사람들의 방탕한 행위에 대해 책망과 항의를 해온 것을 가리킨다(벧후 2:7, 8). 즉 비공식적이긴 하나 롯은 소돔 성으로 이주한 이래(13:12) 지도자적 위치에 있으면서 그곳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쳐 왔던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가 악을 멀리하지 않는 롯의 책망과 항의는 그곳 소돔 사람들을 설득시키기에는 힘이 미약했을 것이다.

성 경: [창19:10]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패역한 소돔거민]

⭕ 손을 내밀어 - 안에서 걸어 잠근 문을 열고서는 황급히 집으로 롯을 끌어들인 행동을 의미한다.

성 경: [창19:11]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패역한 소돔거민]

⭕ 눈을 어둡게 하니 - 왕하 6:18에 나온 것과 동일한 초자연적 역사로 일시적인 시각 장애 현상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착시(錯視)현상으로 인해 멀쩡한 눈을 가지고서도 엉뚱한 곳을 헤매었던 아람 군대처럼(왕하 6:19, 20), 소돔 거민들 역시 시각 장애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랑게(Lange)는 '천계의 신령한 능력과 지상의 마귀적 충동이 정면 충돌한 필연적 결과'였다고 평하였다. 그리고 아벤 에즈라(Aben Ezra)는 '눈과 아울러 마음까지 어둡게 되었다'고 묘사했다.

성 경: [창19:12,13]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소돔 심판 예고]

⭕ 롯에게 이르되 - 천사들이 롯에게 그를 방문한 목적을 일러주고 있다. 그것은 곧 롯에게 임박한 재난을 경고하는 것이자 심판이 임하기 전에 롯과 그의 가족을 그 심판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롯은 그때서야 비로소 나그네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천사들이란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the Codex Samaritanus).

⭕ 자녀나 - 이처럼 천사들이 롯의 딸들 뿐 아니라 아들들에 대하여서도 언급한 점을 들어 비평학자들은 본장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문서들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천사들이 롯의 가족 구성원을 정확히 지적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언급한 것일 뿐이다. 본절에서 롯의 아내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 역시 이와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성 경: [창19:14]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소돔 심판 예고]

⭕ 농담으로 여겼더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하크'(*)는 '비웃다'(17:17), '희롱하다'(39:17)는 뜻으로, 롯의 사위들이 장인 어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그 말을 단지 조소와 건성으로만 대하였음을 나타내 준다. 이는 그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들을 줄 아는 영적 귀가 없었던 탓인데(사 6:9, 10) 이처럼 생명의 복음은 노아 홍수 때에도(벧후 2:5), 소돔, 고모라 때에도, 그리고 말세에 고통하는 때인 오늘날에도(딤후 3:1) 그것은 들을 귀 있는 자들의 것이다(계 2:7, 11, 17, 29).

성 경: [창19:15]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소돔 심판 예고]

⭕ 재촉하여 가로되 - 하늘에서는 이미 진노의 유황불이 다 준비된 상태에서, 구원에로의 간곡한 초대이다(벧후 3:7). 그런데 오늘날의 상황은 이보다 더 긴박하며 이미 심판의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인 지경이니(마 3:10) 누구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지 아니할 때에는 아낌없이 찍히워 심판의 불에 던지움을 당할 것이다.

성 경: [창19:16]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롯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

⭕ 롯이 지체하매 - 본래 재물에 욕심이 많았던 그로서는(13:10, 11)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재산을 다 놓고 간다는 것이 못내 아쉬워 머뭇거렸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였던 노아(6:13-22)나 아브라함(12:1-4;22:1-12)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은 재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만고의 진리인데, 오늘날에는 수많은 무리들이 헛된 일에 분요하며 오직 재물 쌓기에만 급급하니(시 39:6)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들의 재물을 쌓아 두어야 할 진정한 창고는 하늘에 있으며(마 6:19-2 1), 생명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순종하는 것이 곧 참된 부요의 유일한 길(요 8:51)임을 부지런히 증거해야 할 것이다.

⭕ 손을 잡아 인도하여 -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역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까닭도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부르심(롬 8:29;엡 1:4)과 죄사함의 은혜(롬 5:21;히 10:14) 때문인데 만일 이러한 은혜가 없었더라면 롯도, 우리도 모두 사단이 잡아당기는 손에 의해 죽음의 수렁으로 던져졌을 것이다(벧전 5:8).

⭕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 '인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헴라'(*)는 상대방의 행위에 상관없이 그저 베푸는 '긍휼'이나 '동정'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롯이 노아처럼(6:9) 의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여러 죄악된 요소에도 불구하고(8절) 아브라함을 기억하사(29절 ;18:22-33)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것이다.

성 경: [창19:17]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롯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

⭕ 돌아보거나 - 없어질 세상 재물이나 명예 등 그 어떤 것에도 미련을 두지 말라는 경고이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서 반드시 요구되는 원리인데. 왜냐하면 한 사람이 진정으로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듯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기 때문이다(마 6:24).

⭕ 들에 머무르거나 - 멸망의 도성으로부터 완전히 떠나라는 명령이다. 왜냐하면 죄는 전염성이 강하여 철저히 결별하지 않는 한, 한시라도 틈을 주지 않고 우리를 악에 물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들에게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교훈한다.

⭕ 산으로 도망하여 - 죄악의 도성과 구별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의미이다. 한편 여기서 가리키는 '산'은 사해 동편 고지대에 위치해 있는 '모압산'을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Pulipit Commentary).

성 경: [창19:19]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롯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

⭕ 산까지 갈 수없나이다 - 이처럼 롯이 이의를 제기한 까닭에 대하여선 (1) 멸망의 긴박성에 따른 죽음의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높은 산을 오르기에는 역부족인 육체적 연약성 때문에 (2) 소돔 성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등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뭏든 이는 어디를 가든지 함께 동행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못미더워한 일종의 불신 행위인데. 이에 대해서까지 인내하시고 들어주신 것(21, 22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롯에게 '인자를 더하셨다'(16절)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성 경: [창19:20]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롯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

⭕ 작기도 하오니 - 소돔 다섯 성읍(14:2) 중 소알은 가장 작은 성읍이니 다른 성읍에 비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조금만 미쳐도 능히 보존되지 않겠느냐는 의미이다. 이는 물론 자신에게 베풀어진 인자(16절)에 근거한 간청이긴 하지만 (1)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산으로 피신하지 않고 처음부터 자포 자기하는 나약성을 보인 행위란 점 (2) 하나님께서 제시해주신 구원의 방도(17절)에 대하여 의심하며(19절) 순종치 않는 행위란 점에서 책망받아 마땅하다.

성 경: [창19:21]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롯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

⭕ 네 소원을 들었은즉 - (*, 나사티 파네카). '나사'(받아들이다)와 '파님'(얼굴)이 합쳐진 말로, 직역하면 '너의 얼굴을 가납하였은즉'이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얼굴'을 '소원'으로 의역한 까닭은 간절한 소원을 아뢸 때 대개 얼굴을 땅에 대던 히브리인들의 관습에 기인한다. 한편 롯의 소원이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천사가 이를 대뜸 수락한데 대하여선, 달리 지체할 촌음의 여유가 없을 만큼 하나님의 심판이 촉급하였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22절).

성 경: [창19:22]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롯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

⭕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 본절은 하나님의 심판 목적이 선과 악을 함께 멸하는데 있지 않고. 악한 것을 멸함으로 선한 것을 보존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분께선 의인의 생명 하나를 보호하기 위해 온 천하를 멸하실지라도(6:13-22), 심판을 포기하면 하셨지 결코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지는 않으신다(18:25;계7:3). 그러나 여기서 다시한번 기억할 사실은 롯이 구원을 얻은 것은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29절)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16절) 때문이었지 결코 자신의 의(義)때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구원받은 자는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 소알 - '작다'는 뜻이다. 본래 명칭은 '밸라'('삼키다'는 뜻)였으나 본 사건 이후 그 이름이 바뀌었다.

성 경: [창19:23]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 해가 돋았더라 - 영적으로 각성치 못한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졸지성(猝地性)을 강조해 준다. 즉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그 아침의 하늘에 심판의 불이 예비되어 있으리라고는 소돔 거민 중 그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것이다(14절). 마찬가지로 심판주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러 재림하실 때에도 역시 이와 같을 것인즉(눅 17:28-30). 우리는 매순간 순간을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마 24:43, 44). 한편 롯이 소돔을 떠날 때는 동틀 무렵이었는데(15절) 꾸물거리고서도(16절) 소알에 도착한 때가 해돋는 아침에 불과하니 그 거리가 얼마 만큼 가까운지를(20절)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성 경: [창19:24]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 일부 학자들의 견해처럼(Tertullia n, Lange, Wordsworth) 심판하시기 위하여 땅에 강림하신 하나님(18:1)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 또는 성자 하나님(16:1)과 성부 하나님을 구별짓고 있는 구절로 오해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이는 어디까지나 심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음을 강조하기 위한 반복 어법이다(Calvin). 즉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반복함으로써 강조 효과를 노리는 이러한 표현 방식은 성경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형식이다(1:27;5:1;9;16). 그러므로 공동 번역은 이를 '야훼께서 손수 하늘에서'로 번역하고 있다.

⭕ 유황과 불을...내리사 -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원인이 자연적인 화산 폭발이라는 일부 학자(Lynch, Kitto)의 학설을 배격해 주는 구절이다. 설사 그같은 자연 현상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을지는 몰라도 어디까지나 두 도성의 멸망 원인과 심판의 주도자는 전적으로 하나님이셨음을 증거하는 구절이다.

성 경: [창19:25]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 온 들 - 이 말은 '요단 평지' 전역을 뜻하지 않고 그 중에서도 소돔과 고모라를 중심한 반경(半徑)의 특히 기름진 지역을 가리킨다(13:10). 이는 소돔, 고모라 멸망 이후에도 요단 평지에 위치한 몇몇 성읍이 여전히 언급되었던 점에 의해 뒷받침된다(왕상 7:46; 대하 4:17).

⭕ 다 엎어 멸하셨더라 - 하나님의 철저하고도 완전한 심판의 결과이다. 특히 소돔과 고모라 지역은 역청이 많은 곳이었으므로(14:10) 그곳에 대한 하나님의 불심판은 자연히 지각 함몰, 침강 현상을 초래하여, 오늘날 그곳은 수 표면이 지중해 수면보다 약 392Km가 더 낮은 죽음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12-29절 강해).

성 경: [창19:26]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 뒤를 돌아본 고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바트'(*)는 '골똘이 바라보다'는 뜻과 함께 '마음속에 간직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LXX, Vulgate).

따라서 이것은 롯의 아내가 단순한 호기심에 의해 뒤돌아본 것이 아니라, 소돔에 있는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돌아본 것임을 잘 나타내 준다. 게다가 그녀는 소돔 성 멸망에 대한 천사의 고지(告知)조차 못미더워하였을 것이다.

⭕ 소금기둥 - 문자적 뜻은 '소금으로 된 화석상(化石像)'. 그런데 엇비슷한 위치에 있던 롯의 일행 중 유독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만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것'(Calvin, Kalisch)은 (1) 사건의 초자연적 성격과 함께 (2)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해당자에게 개별적으로 엄격히 적용된다는 사실(렘 31:30)을 보여 준다. 한편 오늘날에도 사해 연변에는 롯의 아내로 전해지고 있는 특정한 소금기등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우리의 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생생히 깨우쳐 주는 산 교훈감이라 하겠다(눅 9:62;빌 3:13, 14).

성 경: [창19:27,28]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 -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천사를 전송하러 동행했다가 멈춰서 하나님과 대화했던 곳으로 헤브론 북동쪽 언덕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중보 기도 드렸던 성읍이 과연 구원받았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조카 롯에 대한 염려로 인해 날이 밝는 대로 이곳으로 달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의 동산 같고 비옥한 애굽 땅과 같았던 성읍과 지경(13:10)이 마치 옹기점 연기같이 불타오르는 장면만을 목격하는 재난의 증인이 되고 말았다.

성 경: [창19:29]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 비록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긴 하였지만 아브라함의 간구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진노의 심판 중에서도 자신의 자비(16절)와 롯의 최소한의 믿음(1-8절;벧 2:7.8), 그리고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 기도(18:23-320에 의거하여, 롯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큰데(약 5:16), 특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을 위해 드리는 도고(禱告)에 더욱더 귀를 기울여주신다(딤전 2:1-3).

성 경: [창19:30]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모압족과 암몬족의 기원]

⭕ 산에 올라 거하되 - 여기서 산은 천사가 피신하라고 명했었던 바로 그 산, 즉 사해 동쪽에 있는 '모압산'을 가리킨다.

성 경: [창19:31]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모압족과 암몬족의 기원]

⭕ 이 땅에는 - 이 말은 멸망당한 소돔성 일대를 의미하지 결코 온 세상을 가리키지 않는다.

⭕ 세상의 도리(*, 데레크 콜 하아레츠) - 여기서 '도리'에 해당하는 '데레크'는 '습관', '행동 양식', '풍습' 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직역하면 '온 세상의 습속'이 되는데 이는 곧 혼기에 찬 남녀가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는 '혼인 풍속'을 의미한다.

성 경: [창19:32]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모압족과 암몬족의 기원]

⭕ 술을 마시우고 - 여기서 술은 소알을 떠날 때 갖고 나온 것이거나(30절), 아니면 그의 두 딸이 준비하거나 만든 것일 것이다.

⭕ 전하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야'(*)는 '살리다', '유전케 하여 소성시키다'(시 119:25)의미로 종족 보존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내준다. 그러나 그 같은 인간 본능과 또한 무자(無子)로 말미암는 수치가 아무리 컸다 하더라도 아비와 상관함으로써 후사를 얻으려한 딸의 계획은 (1) 인간의 기본 인륜을 저버린 패역이자 (2) 후사를 핑계로 자신의 정욕을 채우려 한 간계였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성 경: [창19:33,34,35]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모압족과 암몬족의 기원]

⭕ 깨닫지 못하였더라 - 술이나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죄악은 아니지만, 자신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술취하는 것은 도덕성과 신앙이 마비될 뿐 아니라 무서운 죄를 깨닫지 못하게 되는 타락의 첩경임을 다시 한번 단적으로 증거해 주고 었다. 물론 그 동안 롯이 소돔 재앙과 아내를 잃은 데 대한 슬픔을 술로써 잊으려 했을 것이라고는 짐작이 가며, 일말 동정이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술에 만취되어 방심함으로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게 된데 대한 도덕적 책임은 면할 수 없다. 실로 노아 사건(9:20-27) 이래 술취함은 많은 죄악에로의 첩경이었다(레10:1-9;사 5:11;잠 20:;합 2:15). 만일 롯이 술취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기본적인 덕성상(1-8절;벧후 2:7, 8) 딸과의 근친 상간이라는 무서운 죄(레 20:11-17)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 경: [창19:36]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모압족과 암몬족의 기원]

⭕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 - 술취함으로 인한 한순간의 실수가 당대 뿐 아니라 후대에 이르기까지 두고 두고 롯의 생애 최대의 치욕으로 남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즉 (1) 모압('아버지로 말미암아'란 뜻)과 암몬('네 아비의 아들'이란 뜻)은 근친상간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조상 롯의 수치를 영원히 후세에 전하고 있으며 (2) 그 결과 롯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성경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신약에 얼핏 기록된(눅 17:28, 29, 32;벧후 2:7, 8) 그에 관한 이야기는 단지 경고를 하기 위한 의미만 담고 있을 뿐이다.

성 경: [창19:37,38]

주제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주제2: [모압족과 암몬족의 기원]

본 기사는 일부 자유주의 학자(De Wette)의 주장처럼 모압과 암몬 족속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우월성이나 혹은 증오를 나타내기 위하여 허위로 꾸며낸 기사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진실만을 구속사적 측에서서 진솔히 기록한 기사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도 바로 모압 여인 롯에게서 나왔으며(마 1:5, 6), 뿐만 아니라 그의 혈통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나셨기 때문이다(눅 3:23-31).

성 경: [창20:1]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브라함의 불신앙적 행위]

⭕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 헤브론 지경 아므레 상수리 수풀(13:18)에서 장막을 걷고 남방(the south country), 곧 팔레스틴 남쪽 지방인 네게브(Negeb)로 이주한 것을 가리킨다. 이주 원인은 아마 그 무렵 헤브론 지역에 침입한 셋 족속(23장)으로부터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 그랄 - 팔레스틴 남부, 사해 서쪽에 위치한 조그마한 성읍이다. 후일 이삭도 흉년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하였으며(26:1) 유다 왕 아사가 구스 군대를 크게 격파했던 곳이기도 하다(대하 14:13).

성 경: [창20:2]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브라함의 불신앙적 행위]

⭕ 누이라 하였으므로 - 이에 대하여 문서설(文書設, documentary hypothesi s))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12:10-20에 나오는 동일한 사건의 반복 기록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앞서의 사건은 아브라함 75세 때 애굽왕 바로와 관계된 일이었으나, 본장의 사건은 아브라함 99세 때 그랄 왕 아비멜렉과 관계된 일이기 때문이다. 아뭏든 이처럼 아브라함이 20여년 전에 저질렀던 것과 동일한 잘못을 또다시 범한 것은 (1) 그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면 반드시 시험에 빠지고 말았다는 점과 (2) 한번 지은 죄에 대하여선 쉽게 재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교훈해 준다.

⭕ 사라를 취하였더니 - 이러한 행위는 당시의 관습에 의해 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일국의 통치자는 어떤 처녀라도, 심지어는 그 땅의 일시적인 방문자 일지라도 마음에 들면 후궁으로 취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여기서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한 이유는 90세가 다 된 사라의 미모에 반해서라기 보다 정략 결혼을 통해 자기 영토권내로 이주한 부유하고 강력한 족장 아브라함과 동맹 관계를 맺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Delitzsch).

성 경: [창20:3]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브라함의 불신앙적 행위]

⭕ 현몽하시고 -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계시의 방편으로 꿈을 사용하신 경우이다. 물론 택한 백성을 위해서도 하나님께선 꿈으로 계시하셨지만(28:13-15;37:5-11;왕상 3:5;마 1:18-24), 이러한 일은 특히 이방인에게 자주 일어났는데(31:24;41:1-13;삿 7:13, 14;단 4:4-27;마 2:12), 이는 꿈이 하나님의 현현(theophany)보다는 차원이 낮은 계시의 방편임을 시사해 준다.

⭕ 네가 죽으리니 -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남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결혼 제도의 신성함을 부인하고 기본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이니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정신은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도 그대로 승계되었는데 거기에는 결혼한 여자를 범하였을 경우 쌍방 다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성 경: [창20:4]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브라함의 불신앙적 행위]

⭕ 가까이 아니한 고로 - 하나님의 약속(17:19)에 근거한 비상 섭리의 결과이다. 만일 아비멜렉이 실제로 사라와 관계하였더라면 시기적으로 볼 때 사라가 낳은 아들 이삭(21:2, 3)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것이다.

⭕ 의로운 백성(*, 고이 차디크) - '백성'에 해당하는 '고이'는 대개 '이방 나라',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직역하면 '죄없는 이방인'이란 뜻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아비멜렉과 그의 백성은 어느 정도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알고 있었으며 도덕적으로도 주변 성읍과는 달리 다소 나았던 것 같다. 이는 소돔과 고모라 멸망시 그들이 함께 심판당하지 않았던 점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19:24, 25). 아뭏튼 아비멜렉의 호소는 '구체적인 죄가 없는데도 벌주시려나이까'란 의미의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호소라 하겠다.

성 경: [창20:5]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브라함의 불신앙적 행위]

⭕ 이는 내 누이라 - 아브라함의 이 말은 혈통 및 가계상(家系上)으로는 맞는 말(12절)이라 하더라도, 신앙 양심을 거스리고 세상 사람의 눈을 속이려 한 말이었다는 데 아브라함의 잘못이 있다.

⭕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 - 결혼하지 않은 여인을 후궁으로 취할 수 있는 당시대의 합법적인 왕의 권한을 뜻한다. 그 중 '온전한 마음'은 사라에 대한 내적 동기를 가리키며, '깨끗한 손'은 그녀를 자기 내실로 데려오도록 시도한 외적 행위를 가리킨다.

성 경: [창20:6,7]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브라함의 불신앙적 행위]

아비멜렉의 행위는 그의 도덕 양심과 당시의 윤리 기준으로 볼 때에는 악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신성한 섭리에 누(累)를 끼쳤기 때문에 선지자의 중재를 통해서만 죄 용서 받을 수 있었다.

⭕ 선지자(*, 나비) - 원뜻은 '쉬임없이 말하다'로 신적 영감을 받아 말하는 '대언자'(출 7:1)를 가리킨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하는 일차적 사명 외에 하나님과 사람을 중재하는 역할도 맡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지자'로 칭하신 까닭은 하나님의 뜻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또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 아브라함이 선지자인 이상, 아비멜렉이 그의 아내를 취하려고 한 것은 선지자의 거룩성과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범죄 행위였다. 따라서 이러한 아비멜렉의 죄는 아브라함의 중재 기도를 통해서만 용서받을 수 있었다. 한편 이 같은 아브라함의 선지자적 기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이미 소돔에 사는 조카 롯을 위한 중재 기도에서 발휘된 적이 있었다(19:29).

성 경: [창20:8]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비멜렉의 책망]

⭕ 모든 신복을 불러 -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 앞에, 그것도 아랫사람 앞에서 시인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자신의 잘못을 그들에게 고함으로 저들도 연대 책임을 느끼고 각성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도록 하였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의 겸허한 마음과 참된 용기가 잘 드러나 보인다.

성 경: [창20:9]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비멜렉의 책망]

⭕ 합당치 않는 일 - 직역하면 '행해서는 안 될 일'. 즉 아브라함은 (1) 먼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섭리와 손길을 불신하고 (2) 나아가 이웃을 실족케 하는, 행해서는 안 될 일을 범하였던 것이다.

성 경: [창20:10]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비멜렉의 책망]

⭕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 아브라함이 거짓말을 한 정확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아비멜렉의 질책어린 물음이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에게 질책을 당하고 있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부끄러워 숨으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식이 잘못했을 때 그부모가 낯을 들 수 없듯 아브라함은 일찍이 부름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친구이며(대하 20:7) 대언자였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교회와 성도가 세상 사람로부터 이유 있는 조소와 질책을 당할 때 그것은 다시 한번 예수의 손에 못을 박는 행위가 됨을 명심해야 한다.

성 경: [창20:11]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브라함의 변명]

⭕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 소돔, 고모라와 같은 여타 성읍처럼 이곳 거민들도 하나님을 경외치 않을 줄로 생각하고 두려워했다는 뜻이다. 물론 아브라함의 이러한 변명은 그랄 족속이 어느 정도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알고, 도덕적으로도 타성읍보다 다소 나았기는 하나 이들도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족속이었다는 점에서 그럴듯한 성격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일전의 애굽사건(12:10-20)을 통하여 신변상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잔꾀를 의지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하고서도 (1) 다시금 인간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혔으며 (2) 이를 타개하기위혜 재삼 사람을 기만하려 들었으니 큰 잘못일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하려고만 하셨다면 아브라함의 이러한 잘못을 빌미로 그와 맺으셨던 언약(12:2, 3)을 파기할 수도 있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하지 않으시고 그 크신 사랑과 자비로 참고 또 참으시사 그 언약을 유지시켜 나가셨다. 따라서 이처럼 아브라함이 약속을 유업으로 받아 오늘날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결코 그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나의 나 된 것도 역시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다(고전 15:10). 그러니 우리는 무슨 일에서든지 자긍하지 말고 항상 겸손한 자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처신해야 할 것이다(롬 11:18-21).

성 경: [창20:12]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브라함의 변명]

⭕ 실로 나의 이복 누이 - 이에 대하여 혹자는 사라가 이스가와 동일 인물(11:29)로 아브라함에게는 조카 딸이 될 뿐이지 이복 누이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Lange). 즉 사라가 아브라함을 가리켜 '내 오라비'(5절)라고 한 것은 단지 서로가 그에게 부르도록 약정했기 때문이지 결코 서로가 이복 오누이 관계였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뒷받침해 주는 성경적 근거가 없으며 또한 '실로'(*, 옴나)라는 단어 역시 불변사로 '분명히', '확실히', '참으로'라는 강조적 의미이기 때문에(수 7:20)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따라서 데라가 아브라함의 어머니 외에 또 어떤 여자를 취하여 사라를 낳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자 그대로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였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Keil).

⭕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 - 이러한 근친 결혼은 (1) 인구가 미분산(未分散)되어 있고 (2) 가문의 혈통 보존을 중요시 여겼던 고대 사회에서는 도덕률과는 무관한 자연스런 관행이었을 것이다.

성 경: [창20:13]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브라함의 변명]

⭕ 내 아비 집을 떠나...하실 때에 -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하나님께 소명(召命)을 받은 사실을 가리킨다(12:1). 이때 그는 이미 자신이 나그네와 같은 자로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게 될 운명에 처해 있음을 깨달았던 것 같다.

⭕ 우리의 가는 곳마다 - 아브라함이 애굽에서도 사라를 가리켜 이복 누이라 칭한 것을 상기시켜 주는 말이다.(12:13). 아브라함 당시대의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자신의 아내가 실제 누이가 아니라 할지라도 아내를 가리켜 누이라 칭하는 것이 관례적인 표현이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처신이 결코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이거나 치졸한 변명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이 순수한 마음에서 그렇게 처신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여 이를 자구책(自救策)으로 이용하고자 했던데서부터 결국 모든 문제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 은혜(*, 헤세) -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선으로 갚는 것과 같은 모든 자비, 연민, 사랑 등을 가리킨다. 이러한 은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죽음에 내어 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성 경: [창20:14]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비멜렉의 손해 배상]

⭕ 양과 소와 노비...사라도 - 애굽 왕 바로처럼(12:16, 19) 아비멜렉도 사라 뿐 아니라 예물까지도 딸려 보낸 것은 기대 이상의 친절한 호의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지레 짐작한 모든 두려움, 불신(11절)등이 얼마나 그릇된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성 경: [창20:15]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비멜렉의 손해 배상]

⭕ 너 보기에 좋은 대로 거하라 - 아브라함을 자신의 영토내에서 내보내었던 바로(12:20)와는 대조되는 태도로 아브라함에 대한 아비멜렉의 우호적인 자세와 관대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호의에 의거해 이후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영토에서 우물을 파고 지낼 정도로 장기적인 체류를 하였다(21:25, 34).

성 경: [창20:16]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비멜렉의 손해 배상]

⭕ 은 천개 - 은 천 세겔을 가리킨다. 여기서 '세겔'(Shekel)은 히브리인들의 화폐 단위(대상 21:25)가 아닌 무게 단위(삼하 14:26)로 대략 11.4g(약 3돈)에 해당된다. 따라서 은 천 세겔은 11.4kg에 달하는 상당한 양이었음 알 수 있다. 이것은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내로 취하려 했던 잘못에 대해 속죄하는 속전(贖錢)이자 동시에 아브라함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화해의 선물이기도 하였다(신 22:28, 29).

⭕ 네 수치틀 풀게 하였노니(*, 케수트 에나임) - '카사'(덮다, 가리다)와 '에나임'(눈)이 복합된 말로, 직역하면 '네 눈을 가리우게 하였으니'. 이는 곧 '네 눈에 베일을 씌워 보지 못하게 하였다'는 말로 사라의 순결성을 표현한 말인데 먼저 (1) 사라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범하려고 한 아비멜렉의 잘못을 보지 못하게 하였으니'란 뜻이며 (2)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베일로 가리운 것 같이 '사라를 우정의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였으니'란 뜻이다(Calvin).

⭕ 네 일이 다 선히 해결되었느니라 - '선히 해결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야카흐'(*)는 '증명하다', '바로잡다', '변론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절은 '네가 모든 사람 앞에 결백하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공동 번역)란 뜻으로 곧 사라의 순결성을 표현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창20:17]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브라함의 도고(禱告)]

⭕ 아브라함이...기도하매 - 조금 전까지만해도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일로 인해 아비멜렉 앞에서 위신이 크게 실추되었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도움에 처해 순식간에 권위를 회복하는 장면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궁지에 몰린 아브라함이 선지자적 권위(7절)를 회복할 수 있도록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비멜렉 집안의 우환을 치료하여 주심으로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을 우러러보도록 도와 주셨던 것이다(18절). 이처럼 오늘날 성도들도 자신이 잘나서가 결코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기 때문에 빛 된 사명을 다할 수 있는데,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께 일생 빚진 자임을 자각하고 더욱더 주어진 사명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고전 4:2).

⭕ 여종 - 여기서는 단순한 하녀(maidservant)와는 구별되는 아비멜렉의 첩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성 경: [창20:18]

주제1: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

주제2: [아브라함의 도고(禱告)]

⭕ 태를 닫히셨음이더라 -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비멜렉 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전가족을 일시적으로 불임 상태로 만드신 것은 사라를 위한 이적적인 보호이자 또한 그녀를 통하여 탄생될 약속된 자녀(17:19)의 순결성 유지를 위한 특별한 보호 조처였다. 한편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헤 가운데 주신 언약은 인간의 실수나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 효력이 상실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창21:1]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이삭의 출생]

⭕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 여기서 '그 말씀'이란 일전에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셨던 언약(17:19-22;18:9-15)을 가리킨다. 이제 예고하셨던 기간이 이르자(2절) 그 언약을 말씀대로 성취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성을 증거해 준다.

⭕ 권고하셨고(*, 파카드) - 문자적인 뜻은 '방문하다'. 이 말은 종종 특별한 인물에 대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혹은 호의의 행동을 가리키기도 하고(50:24;롯 1:6;삼상 2:21), 반대로 심판의 행위(사 24:21;렘 9:25;호 12:2)를 가리키기도 한다.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로 사용되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잊지 않고 사라를 돌보신 것을 뜻한다.

⭕ 행하셨으므로 - 사라가 잉태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특별히 배후에서 역사하신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생명의 잉태와 죽음 등과 같은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테(사 44:2) 특히 90세에 이르는 사라가 단산(斷産)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같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히 11:11).

성 경: [창21:2]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이삭의 출생]

⭕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 - 이삭의 출생이 자신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이루어지니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과 아브라함 간의 언약 기간(17:21)을 가리킨다. 그런데 분명한 첫계시(15:4) 이후 13년이 지난 시점에 이르러서야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성취시키신 까닭은 (1) 아브라함 나이 100세가 되어 그의 몸이 죽은 것 같은 때(롬 4:19)를 기다림으로써 이삭 탄생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며(히 11:11, 12) (2) 언약의 일부분인 이스마엘 (16:10-12; 17:20)이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도록 기다리시기 위함이었다(13, 21절)

⭕ 아들을 낳으니 - 거듭된 약속과 오랫동안의 고대 끝에 마침내 '약속의 씨'가 태어난 순간이다. 이처럼 구약의 인물 중 그 누구보다도 이삭이 대망(待望)가운데 태어나게 된 까닭은 언약의 첫 열매인 그가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고전 15:20, 23)를 예표하기 때문인데 그러한 그의 예표적 생애는 모리아 산 사건(22:2)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났다.

성 경: [창21:3]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이삭의 출생]

⭕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 이 이름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이다(17:19, 21). 히브리인들의 이름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용모, 특징, 운명 등을 반영하고 있는데 '웃다'는 뜻의 이 이름은 역시 탄생전 수태고지 시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웃었던' 사건에 기인한다. 동시에 이 이름은 이삭이 오랫동안 고대하던 아들로서 온 가족들의 기쁨 중 태어난 것을 보여 준다. 그는 단순한 한 가정의 계승자일 뿐 아니라 먼 훗날 모든 민족에게까지 미칠 언약(12:2, 3)의 상속자였으니 그의 탄생은 구속사적인 의미에서도 크게 웃을 큰 경사(慶事)가 아닐 수 없다.

성 경: [창21:4]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이삭의 출생]

⭕ 난 지 팔 일 - 하나님의 원(原) 창조 기간인 7일(2:1-3)이 지난 재(再))창조의 첫날(막 16:9)로서 거듭 태어난 새 생명의 새 출발을 의미하는 날이다.

⭕ 할례를 행하였더라 - 당시 할례는 비단 히브리인 뿐 아니라 애굽, 에디오피아 같은 고대 이방 민족들도 시행하던 의식이었다. 그러나 이방인들의 할례는 단지 어떤 고통과 질병 따위를 제거하려는 미신적인 성격을 가졌거나 혹은 출산 능력을 증가시키고자 하는 생식 수단으로서의 의미만을 지녔지만, 히브리인들의 할례는 언약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한 철저히 종교적이고도 영적인 의미를 지녔다는 데 그 차이가 있다.

성 경: [창21:5]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이삭의 출생]

⭕ 백 세라 -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고향을 떠난 지 25년째 되던 해이다(12:4).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비록 더디 이루어지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다 이루어지고 만다. 따라서 성도는 그러한 기간 동안 신앙의 인내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롬 4:18-22)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다(롬5:4).

성 경: [창21:6]

주제1: [아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이삭의 출생]

⭕ 사라가 가로되 - 언약의 아들 이삭의 탄생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어머니 사라의 찬송시이다. 이것은 후일 예수 탄생을 기뻐하는 마리아 송가(Magnificat)의 전조가 되었다(눅 1:46-55).

⭕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 이전 수태고지 시에 웃었던 불신의 웃음(18:12)과는 달리 이삭의 탄생을 이웃과 함께 진정으로 기뻐하는 노모(老母)의 억제할 수 없는 환희와 신앙의 웃음이다.

성 경: [창21:7]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이삭의 출생]

⭕ 누가...말하였으리요 - 여기서 '누가'(*, 미)는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데 대한 놀라움과 경탄을 나타낸 단어이다. 즉 사라는 미리 계획하시고 예정하신가운데 모든 사람이 다 비웃고 불신할 만한 일을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오늘날 능히 이루신 데 대하여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창21:8]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이삭과 이스마엘 간의 갈등]

⭕ 젖을 떼는 날에 - 당시 문화권에서는 아이들이 오늘날보다 나이가 더 들어서 젖을 떼었는데 대개 3살경이었다(삼상 1:22-24)이 때 히브리인들은 종교 의식과 더불어 이웃과 함께 큰 잔치를 베푸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이때 이삭의 나이는 17세 가량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16:16).

성 경: [창21:9]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이삭과 이스마엘간의 갈등]

⭕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 '희롱하는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차헤크'(*)는 '멸시하다', '비웃다'란 뜻 외에 '핍박하다'란 뜻도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이는 장난기 섞인 단순한 희롱이 아니라 17세나 된 이스마엘이 적자(嫡子) 이삭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상속권을 상실한 자신의 존재 가치에 불만을 품고 고의적으로 동생을 멸시하고 핍박한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처럼 애굽 여인의 소생인 이스마엘(16:1)이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핍박한 본 사건은 (1) 역사적으로, 장차 애굽에서 애굽인들에게 이스라엘이 당할 400년간의 핍박 생활(15:13)과 (2) 영적으로, 성령을 따라 난 신자들이 육체를 따라 난 불신자들에 의해 핍박당하는 것을 예표한다(갈:29).

성 경: [창21:10]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이삭과 이스마엘간의 갈등]

⭕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 사라가 하갈을 가리켜 '여종'이라고 칭한 것은 종에게서 난 자식이 주인의 아들과 함께 상속자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여기서 '내어 쫓으라'(*, 가라쉬)는 말은 '이혼하다'(레 21:7;민 22:13)는 뜻도 지니고 있는 단어로 곧 법적 절차를 밟아 하갈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에 대하여 지니고 있던 권리 및 관계를 제거시키라는 의미이다. 사라의 이러한 요구는 하갈이 여전히 그녀의 몸종이었던 이상(16:6) 당시의 관습으로서는 합법적인 것이었다(Nuzi Tablets). 그러나 한때 사라가 자녀생산을 위해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주었던 목적(16:2)에 비추어 볼 때에는 잔인하며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 아브라함의 가계(家系)를 이으며 가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상속자가 될 수 없다는 뜻.

성 경: [창21:11]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이삭과 이스마엘간의 갈등]

⭕ 근심이 되었더니 - 하갈과 이스마엘을 추방하라는 사라의 요구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깊이 번민한 까닭은 (1)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한때 이스마엘을 약속의 후계자로 삼으려 했던 그의 부성애 때문이었으며(17:18) (2) 또한 하갈이 비록 사라의 몸종이긴 하나 주인에게 자식을 낳아 준 여종은 함부로 추방하지 못한다는 것이 족장 당시 고대 근동 지방의 풍습이었기 때문이다(Nuzi Tablets).

성 경: [창21:12]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이삭과 이스마엘간의 갈등]

⭕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 14절에 의거할 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였던 때는 밤 시간이었으며 계시 전달 방법은 꿈이었던 것 같다.

⭕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 언약의 후손에 참여할 수 있는 범주를 이삭 후손으로 제한하셨다는 거듭된 확약이다(17:21). 이러한 제한은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 중 야곱만을 택함으로써 다시 한번 축소되었다(25:23).

성 경: [창21:13]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이삭과 이스마엘간의 갈등]

⭕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 역시 이스마엘의 문제로 근심하는 아브라함을 위로하기 위하여 주신 이전 약속(17:20)의 재확인이다. 성경에 나오는 거듭된 약속이나 충고, 경고 등은 모두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깊은 배려에서 주어지는 것들이다. 한편 이 같은 하나님의 약속은 후일 이스마엘에게서 12방백이 태어남으로써 실제로 성취되었다(25:12-26).

성 경: [창21:14]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

⭕ 아침에 일찌기 - 인간적인 갈등에 사로잡혀 한때 번민하고 고통하던 것과는 다른 자세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좇아 순종하기를 지체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 떡과 물 한 가죽부대 - 여행 길을 떠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물이다. 그런데 본문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이외에도 아브라함이 얼마 만큼의 금품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애정과 재산(13:2;20:14-16)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9절;16:1).

⭕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 브엘세바는 헤브론 서남쪽 약44km지점에 위치한 팔레스틴의 국경 도시이다(삼상 3:20). 그런데 하갈이 이곳 들판에서 방황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고향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애굽을 떠난지 이미 20년이 지난 뒤였으므로(16:3) 길을 잃고 헤매었던 것 같다.(Pulpit Commentary).

성 경: [창21:15]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

⭕ 물이 다한지라 - 하갈은 본시 애굽 출신의 여종으로서 사막의 열기 가운데에도 장시간 힘든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지만 부유한 족장의 집에서 자란 이스마엘은 전혀 그런 경험이 없었으니 사막의 불볕 더위하에서 물이 떨어졌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성 경: [창21:16]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

⭕ 살 한 바탕(*, 하르헤크 타하 케세트) - '거리' (하르헤크)와 '화살 쏘기'(타하 케세트)가 복합된 말로 '화살이 미치는 거리'(bowshot), '활쏘기에 알맞는 거리'를 가리킨다. 이는 대략 300m정도의 거리이다.

⭕ 마주 앉아...방성 대곡하니 - 속수 무책(束手無策)인 상태에서 자식이 죽어 가고 있는 비참한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멀찍이 떨어져 앉아 그저 목놓아 울고만 있는 애처로운 광경이다.

성 경: [창21:17]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하갈을 권념한 하나님]

⭕ 하나님이 - 언약의 하나님인 '여호와'(12:1)가 아닌 능력의 하나님인 '엘로힘'으로서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는 하갈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남으로 더이상 언약적 하나님의 보호하에 있지 못하고 다만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에만 있게 되었음을 시사한다(Keil).

⭕ 하나님의 사자 - 일전에 '술 길 샘물 곁'에서 하갈에게 현현하셨던 '여호와의 사자'(16:7)와 동일 존재인 것 같다.

⭕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 일전의 여러 경우(17:1;18:1, 2;19:1)와 같이 가시적(可視的)으로 현현하신 경우이다.

⭕ 두려워 말라 - 아브람(15:1)과 이삭(26:24), 다니엘(단 10"12), 요한(계 1:17)에게도 들려졌던 것과 같은 하나님의 위로와 은총의 말씀이다(사 41:10;43:1-3). 철저히 절망적인 상황 중에서도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모든 자들에게는 오늘날에도 시공을 초월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질 것이다(마 10:30, 30).

성 경: [창21:18]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하갈을 권념한 하나님]

⭕ 붙들라(*, 하자크) - '강하게 하다'(신 31:6), '굳세게 하다'(사 35:4)는 말로 이스마엘이 성인이 될 때까지 용기를 잃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와 주라는 뜻이다.

⭕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 미약한 시작을 위대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사역을 증거해 주는 말로(고전 1:26-29) 광야에서 길을 잃고 기갈(飢渴) 중에 죽어 가고 있는 보잘 것 없는 소년 이스마엘이 장차 아라비아 족속의 원조(元祖)가 될 것이라는 희망찬 메시지이다.

성 경: [창21:19]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하갈을 권념한 하나님]

⭕ 눈을 밝히시매 - 기적적으로 영안(靈眼)을 밝혀 주셨다는 뜻이 아니라, 거의 발견 불가능한 것을 섭리적으로 보게 해주셨다는 뜻이다.

⭕ 샘물을 보고 - '샘물'에 해당하는 원어 '베에르'(*)는 '보르'(저수지)와는 구분되는 말로 땅속에 묻혀 있는 물이 솟아나는 '샘'을 의미한다(26:19;아 4:15). 대개 이러한 샘물들에는 돌로 입구를 막고 특수한 표시를 해놓기 때문에 그 샘의 표시를 모르는 자는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갈을 간섭하셔서 그녀로 하여금 이 같은 샘을 발견하도록 역사하셨다. 그러므로 메튜 헨리(Mattnew Henry)는 이 샘을 가리켜 '은총의 계약으로 이미 주어졌던 샘물', 즉 죄 가운데 방황할 때 발견 되어지지 않지만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는 발견되어지는 샘물(요 4:13, 14)이라고 묘사하였다.

성 경: [창21:20]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장성한 이스마엘]

⭕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 활은 광야 생활의 필수 도구로서 이스마엘이 크게 성장하여 활을 사용하는 한 부족으로 번창했음을 암시해 준다(Murphy).

성 경: [창21:21]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장성한 이스마엘]

⭕ 바란 광야 - 아카바 만과 수에즈 운하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가데스 바네아 남쪽 지역이다. 이로 보아 하갈과 이스마엘은 브엘세바에서 기적적인 구원을 받은 후 계속 팔레스틴 남방으로 여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 이스마엘은 애굽 여인 하갈과 히브리인 아브라함 사이의 혼혈아인데 그 역시 애굽 여인과 결혼함으로 후손 아라비아인들은 히브리, 애굽인 간의 완전한 이중 혼혈족이 되고 말았다.

성 경: [창21:22]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아브라함과 아비멜렉간의 화친]

⭕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 - 당시 아브라함이 거주하던 지역(34절)의 최고 통치자인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 장관이 아브라함을 방문한 까닭은 상호 동맹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다. 즉 이미 하나님의 간섭(20:3-7)을 체험한 바 있는 아비멜렉은 하나님에 의해 점점 창성해 가고 있는 아브라함이 두려워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기 원하였던 것이다. 인구도 부족하고 국가 조직도 미비된 당시 상황에서는 약자에 대한 강자들의 약탈이 빈번하였기 때문에 강력한 이웃의 세력과 조약을 맺는다는 것은 바로 생존과 직결되는 중대사였다.

⭕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 후일 언약의 후손 이삭(26:28)과 야곱(30:27), 요셉(39:3)도 이방인들로부터 이와 동일한 고백을 듣는데, 바로 이 점이 성도를 불신자들과 구별지어 주는 근본적인 특징이다(마 28:20).

성 경: [창21:23]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아브라함과 아비멜렉간의 화친]

⭕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 상호동맹 조약의 효력이 당대 뿐 아니라 자손들에게까지도 적용되기를 바라는 아비멜렉에게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아브라함을 창대케 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인지할 수 있다

⭕ 이제...맹세하라 - 그 즉석에서 상호 불가침 조약이 체결되기를 염원하는 아비멜렉의 간청이다. 한편 '맹세'(*, 솨바)란 말은 '세바'(일곱)에서 파생된 말로 맹세의 엄중성 및 신성성(神聖性)을 강조해 준다. 그 까닭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7'이란 숫자는 천지 창조 기간과 관련하여 더하거나 감할 수 없는 성수(聖數) 및 '완전 수'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구속사적 맥락에서 이 맹세와 일곱의 관계는 그리스도의 가상칠언(架上七言, 마 27:46, 47;눅 23:34, 43;요 19:26-30)에서 결정적으로 나타났다.

⭕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 아내 사라에 대한 아브라함의 거짓말로 인해 곤경에 빠질뻔한 상황 중에서도 아비멜렉이 그에게 각종 예물과 거주지를 제공하였던 일(20:14-16)을 가리킨다.

성 경: [창21:24]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아브라함과 아비멜렉간의 화친]

⭕ 내가 맹세하리라 - 화평의 사람 아브라함(13:9)이 아비멜렉의 화친 제의에 기꺼이 응한 것은 참된 신앙 인격이 결코 독선적이거나 배타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세상적인 것을 피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이웃이나 친구를 멀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고전 5:9-13).

성 경: [창21:25]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아브라함과 아비멜렉간의 화친]

⭕ 우물을 늑탈한 일 - 팔레스틴 남부 사막 지대의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우물은 생활의 필수 요건이자 가장 큰 재산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우물을 장악하기 위한 분쟁이 종종 일어나곤 하였는데(26:17-22) 심할 때는 대대적인 전쟁으로 비화(飛火)되기까지 하였다.

⭕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 아비멜렉의 영토 안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텃세를 부리며 자신의 우물을 강제로 빼앗는 일을 당하면서도 지금까지 참아 왔었다. 그러나 이제 우정의 동맹 조약을 맺게된 마당에서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에 항의를 표한 것이다.

성 경: [창21:27]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아브라함과 아비멜렉간의 화친]

⭕ 양과 소를...주고 - 동맹 체결을 확정하는 의미에서 주는 선물이다. 즉 고대 근동에 있어서 국가나 개인간에 선물을 수납하는 것은 화친을, 거절은 불화와 전쟁을 의미하는 행위였다(사 30:6;39:1).

성 경: [창21:28,29,30]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아브라함과 아비멜렉간의 화친]

⭕ 일곱 암양 새끼 - '7'이란 상징수를 통하여 맹세의 엄중성을 강조하려 한 '일곱 의식'이다. 즉 아브라함은 앞으로의 권리 침해에 대비하여 특별히 일곱 마리의 짐승을 아비멜렉에게 선물함으로써 자신의 우물 소유권에 대한 왕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으려 한 것이다.

성 경: [창21:31]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아브라함과 아비멜렉간의 화친]

브엘세바 - 일곱 암양 새끼로 맺은 맹세를 기념하는 명칭으로 '일곱의 우물' 또는 '맹세의 우물'이란 뜻이다.

성 경: [창21:32]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아브라함과 아비멜렉간의 화친]

⭕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돌아갔고 - 34절과는 일견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블레셋 땅 뿐 아니라 여러 족속, 국가에 오늘날과 같은 뚜렷한 국경 개념이 없었다. 따라서 본절은 아비멜렉과 비골이 그들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으로 돌아갔다는 의미이다. 한편 아비멜렉이 그랄 왕임에도 불구하고(2절) 그의 통치령을 '불레셋 족속의 땅'이라 칭한 까닭은 그곳에 블레셋인들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성 경: [창21:33]

주제1: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축출]

주제2: [아브라함과 아비멜렉간의 화친]

⭕ 에셀나무 - 위성류(渭城柳, tamarisk)로서 사막의 모래 언덕이나 염분이 많은 늪지대에서 잘 자란다. 아브라함이 단단하고 수명이 긴 이 나무를 심은 이유는 아비멜렉과 맺은 언약의 공고성과 지속성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였다.

⭕ 영생하시는...이름을 불렀으며 -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분께 찬양과 예배를 드렸다는 뜻이다. 한편 아브라함은 일찍이 여호와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엘 엘욘)으로 불렀으며(14:22), 할례 언약시에는 '전능하신 하나님'(*, 엘 솨다이)으로 불렀다. 그런데 이제는 '영생하시는 하나님'(*, 엘 올람)으로 부름으로써 하나님은 오고 오는 세대에 걸쳐 자기 백성을 돌봐 주시는 분임을 고백하고 있으니 그의 신지식(新知識)이 더 한층 깊어졌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창22:1]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아브라함에 대한 시험]

⭕ 그 일 후에 - 여기서 '일'(*, 다바르)이란 문자적으로 '말'(言語)을 의미한다(11:1). 따라서 지금까지 주어진 축복 혹은 언약의 통괄 지칭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건'(롯 3:18)이란 뜻도 지니므로 '그 일 후에'란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과는 다른 새로운 국면 전개에 대한 머리말로 이해할 수도 있으며 앞의 사건과 어느 정도의 시간적 격차가 있음을 나타내 주는 문장 연결어로도 볼 수 있다. 이때는 이삭이 번제용 나무를 지고 산을 오를 만큼 충분히 자랐을 때이다(6절).

⭕ 시험 하시려고 - 성경에 나타난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단에게서 기원한 시험으로(엡 2:2), 인간을 타락케 하는 유혹(temptation)이다(3:1-6).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 의한 시험으로 성도의 신앙을 증험(證驗)해 보는 테스트(test))이다(욥 23:10). 여기서 아브라함이 당한 시험은 후자의 경우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연단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에 인간적인 생각을 완전히 굴복시켜야 하는 순종의 시험이었다.

⭕ 그를 부르시되 - 일전에 말씀으로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였던 것과 동일한 방식의 계시이다.

⭕ 아브라함아 하시니 - 명령을 계시하시기 위한 부르심인데 단 한 마디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당시 상황의 긴박성과 긴장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 내가 여기 있나이다 - 무슨 일이든지 이르는 대로 청종하겠다는 결의에 찬 응답이다(사 6:8). 이는 성도가 항상 준비해 두어야만 하는 대답인데 언제 어느 곳에 처해 있을지라도 자신의 영적 현주소는 '하나님 앞'(coram Deo)이란 사실을 잊지 않을 때만이 자연스레 나올 수 있다.

성 경: [창22:2]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아브라함에 대한 시험]

⭕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 3중으로 강조된 점층법적 표현이다. 즉 (1)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사람 (2) 그중에서도 100세에 낳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이자 (3) 이스마엘이 떠난 후 자신에게 넘은 유일한 혈통이며 25년을 기다려 얻은 '언약의 아들'이란 점을 강조한 말이다. 이 말에는 이삭에 대한 아브라함의 애정을 최고도로 불러 일으켜 절박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후 그러한 상황하에서도 자신의 명령에 순종토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연단의 의미가 담겨있다.

⭕ 모리아 땅 - 당시 아브라함이 거주하던 브엘세바(21:32-34)에서 사흘 길 거리에 위치한 예루살렘의 산악 지대이다. 한편 '모리아'(*, 모리야)는 '마르에'(*)와 '예호와'(*)의 합성어로 '여호와께서 보이신 곳'이란 뜻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곳을 지정하시고 선택하셨음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곳을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곳 뿐 아니라 훗날 솔로몬 성전이 건립될 장소(대하3:1)로 이미 택정해 놓으셨던 것이다.

⭕ 번제로 드리라 - 인신 제물(人身祭物)로 바치라는 뜻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나 신앙으로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난제(難題)였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1) 이는 피흘리는 것을 싫어하며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던 하나님의 속성(9:4-6)과 상치되며 (2) 거듭된 약속과 맹세 속에 겨우 태어난 유일한 약속의 씨 이삭을 다시 거두어 가려 하시는 것 역시 하나님의 약속(17:5, 6)과는 일견 모순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성 경: [창22:3]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아브라함의 순종]

⭕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 명령에 순종하기 위한 서두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브라함이 기쁜 마음으로 명령에 순종했다고 이해할 수는 없다. 그는 밤잠을 못 이루면서 심한 고통과 갈등을 겪였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길은 순종밖에 없고 하나님은 어떠한 식으로든 약속한 것을 능히 이루어 주실 줄 믿었기에(롬 4:21) 그는 모든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였을 것이다(막 14:36).

⭕ 번제에 쓸 나무 - 번제(Burnt Sacrifice)는 짐승을 제물로 잡아 죽인 후 각을 떠서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화제(火祭)이다. 따라서 불을 피우는 데 사용될 나무가 필요하다. 그런데 팔레스틴의 구릉 지대엔 대부분 나무들이 없었기에 번제용 나무를 미리 준비해야 했다. 한편 아브라함의 집에는 제물로 사용할 수 있는 각종 짐승과 다른 종들도 있었는데 굳이 하나님께서 이삭을 불에 태워 바치라고 요구하셨으니 이것은 분명히 성경에서 말하는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벧전 4:12)이었음올 알 수 있다.

⭕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 모리아 산까지의 삼일 길, 즉 약 80Km 여정(旅程)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이어 주는 헌신과 순종의 길이자 지성소를 향한 속죄의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이삭을 대신하여 수양이 번제로 드려졌듯이(13절) 훗날 이곳에 세워진 솔로몬 성전에서도 역시 인간을 대신한 희생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졌기 때문이다(대하 5:6).

성 경: [창22:4]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아브라함의 순종]

⭕ 제 삼일에 - 지시받은 날(1절)로부터는 나흘째이다. 상징적이긴 하나 이것은 유월절 나흘 전에 미리 양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출 12:3, 6)과 일치한다.

⭕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이 지정한 곳으로 아브라함을 인도하셨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하나님은 햇빛에 영롱히 반사되는 구름 덩어리를 그곳 모리아 산에 머물게 하심으로 아브라함이 쉽게 제단 쌓을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 경: [창22:5]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아브라함의 순종]

⭕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 원어 성경에 의하면 이 문장의 주어는 '우리'라는 복수 1인칭이다. 이는 종들을 따돌리기 위한 아브라함의 거짓말로 이해될 수도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죽은 것과 같은 자신의 몸에서 독자 이삭의 기적적 탄생을 체험한 아브라함(롬 4:18-22)은 비록 지금 이삭이 죽임당하나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다시 살아날 줄을 믿었다(히 11:17-19)고 성경이 친히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 경: [창22:6]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아브라함의 순종]

⭕ 이삭에게 지우고 -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옮겨 지우신 대속(代贖)사역(사 53:4-6;요 19:17)을 연상시켜 주는 장면으로 예표론적 의미를 지닌다.

⭕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 아들을 죽음의 현장으로 이끌고 가는 아브라함의 내적고통은 그를 침묵케 하였을 것이고 평소와 다른 아버지의 표정은 이삭에게 긴장감과 당혹감, 참된 여행 목적에 대한 궁금증 등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성 경: [창22:7]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아브라함의 순종]

⭕ 내 아버지여...내 아들아 - 어색한 긴장감과 침묵을 깨는 대화로 부자(父子)간의 끈끈한 정이 넘치는 존경과 애정의 부름과 응답이다.

⭕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 이는 (1)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가 이미 모세 시대 이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증거해 주며 (2) 아브라함의 경건 생활과 제사 행위를 통해 이삭이 제사를 드리는 절차와 방법, 필요한 제물에 대하여 소상히 알고 있었음을 나타내 준다. 한편 이 질문은 이러한 사실적 의미 외에도 영적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곧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모든 인류가 안타깝게 부르짖는 공동의 물음이란 점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수없는 어린양을 죽이고서도 그 '어린양'이 어디에 있는지 해답을 찾지 못했다(사 1:11-14). 그러나 성경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증거해 주고 있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 1:29).

성 경: [창22:8]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아브라함의 순종]

⭕ 하나님이...친히 준비하시리라 - 이삭의 질문에 대한 거짓말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전에 이삭을 대신할 다른 제물을 준비해 놓으시겠다고 자신에게 말씀하셨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이것은 앞으로 되어질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온전히 그리고 선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믿는 확신에 찬 대답일 뿐이다(히11:17-19). 이러한 그의 태도는 이전의 몇몇 경솔했던 처신(12:10- 20;6:1, 2;20:1-18)을 교훈삼아 아브라함이 보다 현명하고 성숙된 신앙인으로 변화하였음을 보여 준다.

성 경: [창22:9]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아브라함의 순종]

⭕ 이삭을 결박하여 - 이로써 이삭은 아브라함이 자신을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리려 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혈기 왕성한 이삭은 하려고만 하였다면 노쇠한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아버지의 뜻에 묵묵히 순종하였는데 아마 아브라함의 행위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작정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삭의 순종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스스로를 대속 제물로 십자가에 내어 주기까지 한 그리스도의 순종(빌 2:8)과 속죄 사역(사 53:5)을 예표한다.

성 경: [창22:10]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아브라함의 순종]

⭕ 칼을 잡고 - 아브라함이 할 수 있었던 순종의 마지막 행위이다. 따라서 이제 이삭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구태여 이삭을 죽이지 않더라도 아브라함의 신앙은 입증되었으며 제사의 정신도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살리신 까닭(12절)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비록 이삭은 죽지 않았으나 죽었고, 죽었으나 다시 살아났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의 페러독스(paradox)이다(마 10:39;16:25;dy 12:15). 한편 여기서도 이삭의 순종은 간과되어선 안 되는데 아브라함의 칼 앞에서 잠잠했던 이삭의 모습은 병정들의 창칼 앞에서 잠잠했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표해 준다(마 26:47-56).

성 경: [창22:11]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여호와 이레]

⭕ 여호와의 사자 - 일전에 하갈에게 현현하셨던 분(16:7)과 동일한 성육신(成肉身) 이 전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 다급한 반복은 사태의 긴박성과 함께 이름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분명히 보여 주기 위함이다. 즉 이삭은 결코 죽임당해서는 안 되며 아브라함은 약속의 상속자인 이삭을 통해서만 진정 열국의 아비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해 준다(17:5).

성 경: [창22:12]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여호와 이레]

⭕ 네 손을 대지 말라 - '아무 일도 행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인정하셨다는 의미로 이제 그에 대한 시험이 끝났음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는 믿음만이 가득 차 있는 이상 더 이상의 시험이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 여호와의 사자가 자신과 하나님을 동일시하고 있음은 그가 제 2위 성자(聖子) 하나님이심을 뒷받침해 준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 자신이 근본 하나님이면서도 여호와의 사자가 이처럼 하나님을 객관화시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같이 구별된 위격(位格)이 있음을 시사해 준다.

⭕ 아노라(*, 야다티) - 이는 체험을 통해 전인격적으로 수용한 지식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삭 헌납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이 온전함을 확인하셨다.

성 경: [창22:13]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여호와 이레]

⭕ 수양(*, 아일) -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절)는 문장(*, 엘로힘 이르에 로)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든 단어(*)와 우연히 일치하는데 아브라함의 믿음이 실제로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는 분명한 물중(物證)이다.

⭕ 수풀(*, 사바크) - 팔레스틴에 흔히 있는 잡목들의 가지가 어지럽게 뒤엉킨 상태를 두고 한 말이다(시 74:5).

⭕ 아들을 대신하여 - 이삭을 대신하여 죽은 한 수양 뿐 아니라 역사 이래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수없이 죽어간 흠없는 짐승들(출 12:5;29:1레 1:3;민 6:14)은 오로지 흠없는 한 어린양의 영원한 제사, 즉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을 계시한다(히 9:11-14;13:11, 12).

성 경: [창22:14]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여호와 이레]

⭕ 여호와 이레 - '여호와께서 돌보신다'는 뜻으로 8절에 의거하여 명명한 이름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쓸 것을 미리 아시고 때에 따라 공급해 주시는 분(마 6:25-32)임을 찬양한 기념비적 이름이다.

⭕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의 산에서 보게 되리라'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였던 바로 그 때 하나님이 마련해 둔 수양을 보게 되는 축복을 얻었듯이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해 두신 구원 계획에 우리가 믿고 순종할 때 비로소 온전히 주어지는 것임을 시사해 준다(요 1:10-12).

성 경: [창22:16]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거듭된 하나님의 축복]

⭕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 맹세라는 것은 본래 자기보다 높은 자가 아니면 절대자의 이름을 걸고서 하는 것이 관례이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맹세의 권위가 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개 인간들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곤 한다(삼상 19:7;왕상 1:30;느 13:25;사 19:18). 그런데 하나님께 있어서는 자신보다 더 높은 이가 없다. 그분만이 절대자이시며 지고자(至高者)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자신을 가리켜 맹세할 수 밖에 없는데 자신의 영원한 삶과 존재를 담보로 맹세한 그 약속은 결코 변개(變改)될 수 없으며(삼상 15:29) 또한 가장 엄숙히 시행될 것이다(히 6:13-17).

성 경: [창22:17]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거듭된 하나님의 축복]

⭕ 하늘의 별과...같게 하리니 - 지난날에 주셨던 언약(13:16;15:5)의 유효성을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재차 보증한 부분이다.

⭕ 네 씨가...문을 얻으리라 - 문 곧 성문은 성내의 주민들과 성읍의 안녕(安寧)을 지켜 주는 방어물이니 이러한 문을 얻고 열어 젖힌다는 것은 성읍을 점령하였다는 말과 상통한다. 따라서 본절의 일차적 의미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원수를 물리치고 약속된 성읍 가나안을 점령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에는 보다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 있는데 곧 장차 메시야를 통하여 그를 믿는 모든 성도들, 즉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이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할 것이라는 뜻이다(갈 3:7-9, 14).

성 경: [창22:18]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거듭된 하나님의 축복]

⭕ 네 씨로 말미암아 - 복의 근원자가 될 특정한 씨, 곧 발꿈치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3:15;갈 3:16).

⭕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고 이로써 그들이 구원의 축복을 얻게되는 것을 뜻한다.

⭕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 육신의 번민과 애정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장면이다. 이러한 인정은 누구든지 악에 물들지 아니하며 믿음의 길을 달려간 자이면 다 받을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자신의 영광의 자리에로 초대해 주실 것이다(마 25:21).

성 경: [창22:20,21,22,23,24]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나홀의 계보]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난 후(11:27-32) 처음으로 접하는 동생 나홀의 근황(近況)이다. 일견 갑작스러운 듯한 본 기사는 24장의 서론격으로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가 다름 아닌 나홀 집안의 사람임을 보여 주는데 의의가 있다.

성 경: [창22:21]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나홀의 계보]

⭕ 우스 - 본절에 언급된 셈의 손자 우스(10:23)와는 다른 인물이다.

⭕ 아람의 아비 그므엘 - 아람족의 시조(始祖)는 아니고 다만 그 가계(家系)의 한 조상일 뿐이다.

성 경: [창22:22]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나홀의 계보]

⭕ 게셋 - 갈대인의 조상이거나 그 후손인 것 같다. 욥의 재산을 약탈한 자들이 바로 이 갈대인이다(욥 1:17).

⭕ 브두엘 - 매우 경건했던 자로 훗날 이삭의 아내가 된 리브가의 아비이다(24:15, 24, 27).

성 경: [창22:23]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나홀의 계보]

⭕ 리브가 - 이삭의 사촌 형제의 딸로서 후에 이삭의 아내가 되었다(24:67).

성 경: [창22:24]

주제1: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시험]

주제2: [나홀의 계보]

⭕ 마아가 - 마아갈 족속(신 3:14;수 12:5)의 시조(始祖)로 추정된다.

성 경: [창23:1]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벨라 굴]

주제2: [사라의 죽음]

⭕ 사라가 일백 이십 칠세를 살았으니 - 성경상에서 여자로서는 나이가 언급된 유일한 경우이다. 이러한 연유는 사라가 '약속의 자녀'의 어머니(17:19)로서 모든 성도들의 믿음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히 11:11, 12).

성 경: [창23:2]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벨라 굴]

주제2: [사라의 죽음]

⭕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며 - '기럇아바'는 '아르바의 성읍'이라는 뜻으로 헤브론의 옛 이름이다(수 14:15; 15:13; 21:11). 이곳은 애굽의 소안보다 7년 먼저 세워진 역사 깊은 도시일 뿐 아니라(민 13:22) 고대 사회의 문화 중심지이기도 했다. 한편 이곳은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진 후 그랄(20:1)과 브엘세바(21:31-34)에 거하기 앞서 약 20년을 살았던 곳인데(13:18) 사라가 이곳에서 죽었다는 것은 곧 전장(22장)의 사건 이후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이 다시금 이곳으로 이주하였음을 의미한다. 훗날 아브라함이 죽어 장사(葬事)된 곳도 역시 이곳이다(25:7-10).

⭕ 들어가서 - 빈소(殯所)에 들어간 것을 뜻한다(공동 번역).

⭕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리세포드 웨리브코타) - '슬퍼하다'(*, 사파드)는 가슴을 치며 크게 곡(哭)하는 것(삼하 11:26)을 뜻하며, '애통하다'(*, 바카)는 스스로의 감정을 자제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렘 9:1)을 뜻한다. 이 두 행위는 모두 장례 의식에서 관례적으로 행해지던 것이다. 즉 아브라함은 자신과 함께 나그네같은 생을 살아 온 아내 사라가 먼저 죽은 사실에 대하여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느꼈던 것이다. 이것은 평소에 아브라함이 얼마나 사라를 아끼며 사랑했는지를 잘 대변해 준다. 아뭏든 내세에 대한 소망을 지니고 있는 자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체험하는 것은 억제할 수 없는 슬픔임에 틀림없다. 이점은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예수조차도 우신 사건이 분명히 드러난다(요11:35). 하지만 성경은 부활의 소망을 강조하면서 과도한 슬픔을 자제하는 것(살전 4:13)이 죽음을 대하는 성도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교훈하고 있다.

성 경: [창23:3]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벨라 굴]

주제2: [장지(葬地) 준비]

⭕ 헷 족속 - 이들 족속의 원류(源流)는 B.C.18세기경 소아시아의 수리아 지방에 정착한 철기 문명의 주인공 힛타이트족(Hittites이다. 본절에 언급된 '헷 족속'은 이들을 떠나 고대 근동 각지로 퍼져 나간 일파로서 후대에 이르러선 '가나안족'과 동일시 되었다(신 7:1). 한편 성경 역사상 이들은 선민(選民) 이스라엘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는데(삿 3:5, 6;삼상 26:6;왕상 11:1;스 9:1, 2;겔 16:3), 특히 헤브론 근처에 거주하였던 헷 족속은 홋날 완전히 셈족에 동화되었다.

성 경: [창23:4]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벧라 굴]

주제2: [장지(葬地) 준비]

⭕ 나그네요 우거한 자(*, 게르 웨토솨브) - '나그네'(게르)는 고향이나 고국을 떠나 사는 자를 가리키며 '우거한 자'(토솨브)는 낯설고 정이 들지 않는 곳에 체류하는 자를 가리킨다.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의 상속자로 인정받은 아브라함(13:14, 15)이 도리어 헷 족속에게 이같이 말하고 있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바로 인식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바른 역사 의식과 고매한 인격을 반영해 준다. 더 나아가 그의 기업이 단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임을 깨닫고 있었음을 시사해준다(히 11:13;벧전 2:11).

⭕ 매장지 - '파다', '뚫다'(*, 카바르)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땅이나 언덕에 굴 또는 구멍을 파서 시신을 안치해 두는 장소를 의미한다.

⭕ 장사하게 하시오 - 팔레스틴은 북위 31도 15'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더우면서도 지중해의 영향을 받아 다습(多濕)한 기후를 띠고 있다. 그러므로 시체가 금방 부패하기 마련인데 사후(死後) 24시간 이내에 장사하는 것이 상책이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죽음을 놓고 마냥 슬퍼하고 있지만 않고 서둘러 매장지를 구한 까닭도 이 때문이다.

성 경: [창23:6]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벨라 굴]

주제2: [장지(葬地) 준비]

⭕ 내 주여 - 히브리인들에 의해 '여호와' 대신 하나님을 호칭하던 단어로 사용되긴 하였으나, '주'(*, 아도나이)는 단순히 상대방을 높여 부르던 일반적인 존칭어이다.

⭕ 하나님의 방백 - 직역하면 '하나님께서 높은 자리에 임명한 자'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헷 족속들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께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영적, 물질적으로 큰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뭏든 이러한 평가는 아브라함이 자신을 낮추어 얘기한 것(4절)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는데 무릇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는 진리를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내 준다(마23:12). 한편 히브리인들은 가장 위대하고 탁월한 존재들을 묘사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동반하여 표현하기를 즐겨하는데 여기서도 그러한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 당시 아브라함의 사회적 지위와 주위 사람들에게 끼친 중후(重厚)한 인품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말이다.

성 경: [창23:7]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벨라 굴]

주제2: [장지(葬地) 준비]

⭕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 자신이 막벧라 굴을 매입하는 데 있어 헷 족속이 거간(居間) 역할을 수행해 주도록 부탁하기 위한 정중한 자세이다. 당시 고대 근동의 풍습에 의하면 모든 거래에 있어 보증인의 역할을 하는 중개인의 입회가 필요하였다.

성 경: [창23:8]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벨라 굴]

주제2: [장지(葬地) 준비]

⭕ 당신들의 뜻일진대 - 직역하면 '당신들의 영혼에 부합되면'이다. 흔히 '영혼'은 사람의 전의지(全意志)를 대변한다(시 105:22). 이처럼 아브라함이 매장지를 구입함에 있어서 헷 족속 전체의 의사를 고려한 것은 불필요한 마찰과 오해를 피하며 또한 그들의 매장지 중 하나를 단순히 호의로 받아들여 사용하기 보다는(6절) 적법한 절차를 밟아 확실한 소유권을 획득하기 위함에서였을 것이다.

⭕ 소할의 아들 에브론 - '에브론'은 '새끼 사슴'이란 뜻이다. 10절에 의거하면 그는 성읍의 최고 통치자는 아니었을지라도 덕망 있는 지도자적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왜냐하면 당시 각종 행정과 사법 등의 일처리를 위하여 성문의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던 자는 지도자급 인사에 한하였기 때문이다.

성 경: [창23:9]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벨라 굴]

주제2: [장지(葬地) 준비]

⭕ 막벧라 굴 - '막벧라'는 '이중의'(double)라는 뜻의 히브리어 '카팔'(*)에서 파생된 말로 '이중으로 된 굴'이란 뜻이다. 아마 이는 (1) 입구가 두 개인 굴을 가리키거나 (2) 굴 속에 또 하나의 물이 있는 겹굴 (3) 아니면 두 사람이 함께 장사될 수 있는 큰 굴을 말할 것이다. 여하튼 특이한 형태를 지칭하던 이 말은 은연중에 장소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로 굳어지고 만 것 같다.

⭕ 준가(*, 케세프 말레) - '케세프'(은)와 '말레'(많은, 풍부한, 풍성한)가 합쳐진 말로 '많은 은(銀)'을 뜻한다. 이는 '충분한 돈', 즉 당시 거래되던 가격에 비해 오히려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 의미인데 물물교환의 매개체로 귀금속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성경상의 첫번째 기록이다.

성 경: [창23:10]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벨라 굴]

주제2: [헷 족속과의 교계(較計)]

⭕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 정확한 등기법이 아직 없던 시대에 거래의 합법적인 공증(公證)을 받으려면 이처럼 모든 거래 행위와 공공 생활의 중심지였던 성문(34:20;삼하 15:2;느 8:1;렘 17:19) 앞에서, 그리고 여러 증인 앞에서 공식적인 거래를 하여야 했다.

성 경: [창23:11]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벨라 굴]

주제2: [헷 족속과의 교계(較計)]

⭕ 그 밭을...그 속의 굴도 니가 당신께 드리되 - 아브라함이 매장지로 사용하기 위하여 막벧라 굴만을 사려 했으나 에브론이 굴 뿐 아니라 그 굴이 위치해 있는 밭까지 아브라함에게 무상(無償)으로 주려한 것은 굉장한 호의임에 틀림없으나 그 이면에는 다분히 이해 타산적인 동기가 담겨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 법에 의하면 땅 주인이 그 땅에 속한 모든 것의 세금을 내도록 되어 있었으니 막벧라 굴만을 아브라함에게 양도하면 그 굴에 대한 납세 의무는 여전히 에브론에게 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브론은 납세 의무의 원천이 되는 밭 전체에 대한 소유권을 아브라함에게 완전히 넘겨 주려 하였음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말하는 '밭'(*, 사데)이란 좁다란 개간지가 아니라 넓은 들판을 가리킨다.

성 경: [창23:12]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벨라 굴]

주제2: [헷 족속과의 교계(較計)]

⭕ 몸을 굽히고 - 표면적이나마 에브론이 보여 준 호의에 대하여 일단 감사를 표하는 자세이자 헷 족속 앞에서 굴과 더불어 밭을 무상으로 제공하고자 했던 그의 제의를 정중히 거절하기 위한 몸가짐이다.

성 경: [창23:13]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벨라 굴]

주제2: [헷 족속과의 교계(較計)]

⭕ 합당히 여기면 - '참으로 굴과 그 밭을 양도하려고 한다면'이란 뜻이다.

⭕ 그 밭값을...주리니 -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기업(基業)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다(13:15). 그런데도 불구하고 만일 아브라함이 에브론에게 막벧라 굴과 밭을 무상으로 양도받았다고 할 것 같으면 그는 자신의 기업을 하나님이 아닌 이방 족속으로부터 받은 셈이 될 것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약속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행위가 되니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제의를 거절하고 끝까지 그에 준하는 값을 치루려 한 것이다.

성 경: [창23:15]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벨라 굴]

주제2: [헷 족속과의 교계(較計)]

⭕ 땅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 비록 간접적이긴 하나 에브론이 받기 원하는 가격이 정확히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밭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땅의 가치를 헤아려 볼 때 이는 아브라함의 부(富)와 지위를 최대로 이용한 터무니 없는 비싼 가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은 사백 세겔은 4.56kg(약 1, 200돈)에 해당하는 중량이기 때문이다.

⭕ 어찌 교계하리이까 - 서로 상당한 부와 명예를 지니고 있는 실력자들끼리 어찌 밭 하나 주고 받는 일로 셈하고 흥정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이다. 이는 호의를 가장하여 자신의 탐욕스런 저의를 숨기고 있는 교묘한 말이다.

성 경: [창23:16]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벨라 굴]

주제2: [헷 족속과의 교계(較計)]

⭕ 상고(*, 사하르) - 원뜻은 '돌아다니다', '뛰다', '배회하다'로 여기서 여러 지역과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무역하는 '상인'이란 뜻이 파생되었다(42:34;왕상10:28).

⭕ 통용하는 은 - 상인들 사이의 거래에서 공적으로 사용하던 은인데 보통의 은에 무게를 표시하는 표식(mark)을 찍어서 그 가치를 나타내었다.

성 경: [창23:18]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벨라 굴]

주제2: [헷 족속과의 교계(較計)]

⭕ 헷 족속 앞에서 - 합당한 대금을 지불하고 체결된 정식 계약을 여러 증인들 앞에서 공증(公證)하기 위함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당시에도 초보적인 문자가 있기는 하였으나 아브라함과 에브론은 문서가 없는 구두 계약(口頭契約)을 맺었거나 아니면 간략한 매매 계약서와 함께 여러 사람 앞에서 공증받는 병행 계약을 맺었던 것 같다.

성 경: [창23:19]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벨라 굴]

주제2: [헷 족속과의 교계(較計)]

⭕ 사라를...장사하였더라 - 사라가 처음으로 묻힌 이래 이곳에는 아브라함(25:9)과 이삭, 리브가, 야곱과 레아(49:31;50:13) 등의 3대 족장과 그의 아내들이 묻히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요셉은 야곱이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세겜 땅에 장사되었다(수 24:32).

⭕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 엄밀히 얘기하면 마므레는 헤브론 지경 내의 한 지역이다(13:18). 그리고 '마므레'란 지명은 그곳을 점령한 아모리 종족의 한 부족장 이름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14:13).

성 경: [창23:20]

주제1: [사라의 죽음과 매장지 막벨라 굴]

주제2: [헷 족속과의 교계(較計)]

⭕ 아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 - 마므레의 매장지가 아브라함의 소유로 등기 이전되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기 위해 재언급되었다. 한편 가나안의 상속자 아브라함(13:15, 17)이 가나안에서 실제적으로 소유한 유일한 땅이 의미 심장하게도 자신의 최후 안식처가 될(25:9) 한 조각 장지(葬地)였다는 사실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은 가나안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는지를 시사해 준다. 그것은 곧 그의 궁극적인 기업이 죽음과 함께 유업으로 받을 하늘 가나안, 즉 천국인 것이다.

성 경: [창24:1]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이삭을 위한 혼사 준비]

⭕ 아브라함이... 늙었고 - 사라의 죽음(23장)에 연이어 아브라함이 늙었다는점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서서히 한 세대는 물러가고 이삭이라는 또 한 세대가 구속사의 전면에 등장할 시점이 되었음을 예고해 준다. 또한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일과 관련하여 아브라함이 나이많다는 점이 언급되고 있는 것은 그 일이 아브라함 노년(老年)의 최후의 중대사이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촉급한 일임을 의미한다.

⭕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래(12:4) 175세로 세상을 하직하기까지(25:7) 험난한 나그네 생활을 하며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도 그의 생을 가리켜 범사에 하나님께 축복받은 삶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을 찾아 오셔서 그의 삶 전체가 의로운 것이 되게 하시고 믿음의 아비가 되게 해주신 것(17:5)을 의미하지 단순히 때마다 물질과 권력, 건강 등과 같은 축복을 내려 주신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신 28장, 성경에 나타난 복의 의미>.

성 경: [창24:2]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이삭을 위한 혼사 준비]

⭕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 - 여기서 '늙은'(oldest)으로 번역된 원어'자켄'(*) 은 '장로'(elder)로도 번역된 말로(50:7;롯 4:2) 존경을 나타내는 칭호이다. 이 노종은 약 60년전에 아브라함의 상속자로 지명되기도 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15:2)로 추정 되는데 이스마엘과 이삭 탄생 후 아브라함의 집사장(執事長)으로 최선을 다하였기에 존경을 받았던 것 같다.

⭕ 네 손을 내 환도뼈 밑에 넣으라 - 충성의 맹세나 절대 복종, 친밀하고도 엄숙한 서약을 표하던 고대의 관습이다<1-9절, 환도뼈 맹세>.

성 경: [창24:3]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이사을 위한 혼사 준비]

⭕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 하나님만이 우주 만물의 절대 주권자이심을 의미한다 (느 9:6). 이는 인간의 운명도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음을 인정하는 말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삭의 결혼에 대하여서 조차 직접적으로 섭리하여 주실 것이라는 아브라함의 확신을 드러내 준다 (7절). 또한 이삭의 결혼은 단순한 혼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건설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대사(大事)이므로(keil) 전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이름 아래 진행되어야만 했다.

⭕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택하지 말고 - 이삭을 자기 혈통과 결혼시켜 순수성을 보존할 뿐 아니라 가나안 족속의 방종한 생활에 물들지 않도록 구별짓기 위함이다. 즉 가나안 족속의 도덕적 문란을 익히 알고 있던 아브라함(18:16-33;19:27, 28)은 이삭이 그들의 딸과 결혼함으로 말미암아 악에 물들 가능성을 사전에 배제하려 하였던 것이다. 한편 훗날 모세의 율법에서도 이스라엘인이 우상 숭배 행위에 탐닉해 있는 가나안인과 혼인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 되었는데(출 34:16;신 7:3) 이는 믿는 자와 함께 멍에를 같이 함(고후 6:14)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임을 알 수 있다<고전 7장, 그리스도인의 결혼관>.

성 경: [창24:4]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이삭을 위한 혼사 준비]

⭕ 내 고향 내 족속 - 갈대아 우르(11:28)가 아닌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의 하란 지역을 가리킨다(10절;11:31, 32;12:4). 이지역 주민들은 가나안 주민들보다 덜 문란할 뿐 아니라 여호와에 대한 지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들은 완전한 여호와 종교의 추종자로 볼 수는 없고 라반(31장) 집안의 경우처럼 몇몇 이방신과 더불어 여호와를 경배했던 혼합종교주의자로 여겨진다. 한편 아브라함이 에벨의 후손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민들(11:15-26)0을 '내 족속' 이라고 부른 것은 당시 아직 이스라엘 민족이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10장, 히브리인과 아스라엘인>.

⭕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 이러한 근친 결혼은 순수한 신앙전수와 셈족의 언약적 혈통을 보존하기 위한 데라 가문의 오래된 전통이었다<11:29>.

성 경: [창24:5]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이삭을 위한 혼사 준비]

⭕ 여자가... 오고자 아니하거든 - 문명의 도시 하란에 비해 가나안은 척박한 곳이었으며 하란과 가나안은 20여일이 훨씬 더 소요되는 먼 길 (약800km)이었고 여인의 몸으로 일가 친척과 친구들이 있는 정든 고향을 떠나 낯 모르는 사람을 따라 낯선 땅으로 따라 나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며 더군다나 신부 될 여인이 신랑 될 사람의 얼굴이나 직접적인 정보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으니 이러한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 주인의 아들을...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 작은 출애굽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의 출본토(出本土) 사건(12:4)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인간적인 대안(代案)이다.

성 경: [창24:6]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이삭을 위한 혼사 준비]

⭕ 삼가(*, 솨마르) - 본분을 지켜 온전히 행하라는 뜻이다(18:19). 여기서는 '너 자신을 조심하여'라는 의미가 강하다. 이는 아브라함이 그 종에게 매우 간곡히 당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 돌아가지 말라 - 본토를 나온 것은 자신과 자신의 후손이 함께 받은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또 다른 지시가 없이는 가나안을 떠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기 전에 인간적인 생각을 좇아 행동했던 아브라함의 지난 날의 태도와는 대조되는 것으로(12:10-20;20:1:7) 말씀만을 좇아 행동하는 그의 성숙된 신앙 인격을 보여 준다.

성 경: [창24:7]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이삭을 위한 혼사 준비]

⭕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보내실지라 - 여기서 '씨' 는 이삭을 포함한 아브라함의 전 후손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후손을 얻기 위하여선 필수적으로 이삭에게 아내가 있어야 하니 하나님께선 반드시 그러한 처녀를 예비하시어 가나안 땅 이삭에게로 보내 주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은 언약을 반드시 성취시켜 주시는 분으로 굳게 믿고 있음을 잘 드러내 준다(신 7:9).

성 경: [창24:8]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이삭을 위한 혼사 준비]

⭕ 만일 여자가...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오려는 여자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다른 곳에서 이삭의 아내 될 자를 예비하려는 것이 분명하므로 그에 순응하는 도리밖에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는 마음의 소원과 일의 계획은 인간에게 있을지라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아는 자만이 고백할 수 있는 말이다(잠16:1)

성 경: [창24:9]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이삭을 위한 혼사 준비]

⭕ 이에... 맹세하였더라 - 고향에서 이삭의 아내 될 자를 구하고 못 구하고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을 뿐 종은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는 제의는 종이 쾌히 응락할 만큼 지극히 만족스런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성 경: [창24:10]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엘리에셀과 리브가의 만남]

⭕ 약대 중 열 필 - 이렇게 많은 약대는 신부될 자와 그의 가족에게 줄 예물을 운반하는데 필요한 것이었기도 하겠지만(52절) 여행 목적이 성공할 줄로 굳게 믿고 돌아올 때 신부와 그 일행을 태워 오기 위한 준비물이었을 것이다(61절).

⭕ 메소보다미아(*, 아람 나하라임)- '두 강'(나하라임)과 '아람'이 합쳐진 말로 '두 강들의 아람' 이란 뜻. 여기서 두강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을 가리키고 '아람'은 '고지' 또는 '산지'란 뜻이다. 이는 곧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사이의 고원 지대를 가리키는데 세계 3대 문명 발상지 중의 하나로 히브리와 헤라 문명에 크게 영향을 준 근원지이다.

⭕ 나홀의 성에 이르러 -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15절;11:26)이 거주하던 성읍 곧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에 도착하였음을 가리킨다(28:10). 나홀은 아마 우르에서 아비 데라를 따라 함께 왔다가 하란에서 정주했거나 아니면 데라가 떠난 후 얼마 안 있어 이곳으로 이주해 왔을 것이다<11:31>.

성 경: [창24:1]1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엘리에셀과 리브가의 만남]

⭕ 성밖 우물 곁 - 물은 생활의 필수요소이기 때문에 자연히 우물이나 샘, 개울을 중심으로 부락이 형성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많은 경우에 있어 우물이 성밖에 위치하는 까닭은 아마 먼지가 적게 일어나고 수질 오염을 예방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올 때- 팔레스틴의 낮은 매우 무덥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대개 서늘한 아침과 저녁 두 차례에 걸쳐 공동으로 물을 길었다(요4:6, 7). 그리고 이때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여자들은 고유 의무로서 우물터에 물을 길으러 나왔으며 그곳에서 각종 정보 교환과 남자들이 물을 길어 나귀로 나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여자들이 물을 길어 어깨나 머리에 이고 나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성 경: [창24:12]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에리에셀과 리브가의 만남]

⭕ 순적히 만나게 하사( . 하크레 나)- 직역하면 '만나는 일이 일어나게 해주소서'이다(27:20). 이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걸음을 순탄하게 인도해 주실 것을 신뢰하는 믿음에 찬 간구이다.

⭕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경건 생활을 몸에 익힌 엘에리셀이 인간적인 수단을 강구(講究) 하기에 앞서 기도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장면이다. 즉 그는 매사에 기도하는 자세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만이 참된 지혜이자 문제 해결의 지름길임을 깨달았는데 그의 기도는 뒤이어 알 수 있듯이 그 즉시로 응답받은 기도(사65:24)였다(사6:36-40;사 38:1-8).

성 경: [창24:13,14]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엘리에셀과 리브가의 만남]

⭕ 우물(*, 아인) - 원래의 뜻은 '눈'(eye)이다. 이는 아마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오는 현상이 샘에서 물이 솟아나는 현상과 유사성을 지니기 때문인듯 하다.

⭕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 약대 곧 낙타는 긴 여행 끝에 상당히 많은 물을 섭취해야 하는 짐승이다. 따라서 여행자 뿐 아니라 그와 동행하는 낙타에게까지 자원해서 물을 길어 먹일 정도의 여자라면 상냥하고 친절한 마음씨와 함께 센스(sense)까지 겸비한 여자라는 좋은 증거가 된다. 이처럼 순수한 사랑과 봉사 정신, 지혜를 갖춘 여인을 이삭의 아내로 택정해 달라고 기도한 에리에셀은 그 역시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지혜를 갖춘 자였음에 분명하다.

성 경: [창24:15]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엘리에셀과 리브가의 만남]

⭕ 리브가 - '끈', '고리'라는 뜻이다. 이삭과는 오촌간이면서 그의 아내가 되었는데 이로써 하나님의 언약 혈통을 잇는 자가 되었다는 데 그 이름의 뜻이 있는 것 같다<22:23>.

⭕ 물 항아리(*, 카드) - 일반적으로는 물을 길어 나르는 조그마한 항아리나 바께쓰(bucket)를 가리키는데 예외적으로 저장용 큰 항아리나 통을 의미하기도 한다(왕상 17:12).

성 경: [창24:16]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라반의 집으로 인도된 엘리에셀]

⭕ 심히 아리땁고 - 마음씨 뿐 아니라 외모도 아름다운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아내들의 공통점이다(12:11;26:7;29:17). 즉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외모와 행실이 어긋나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생활과 밀착된 아름다움으로 사랑과 총명이 겸비된 아름다움이었다. 행실과는 동떨어진 채 퇴폐한 목적과 허영에서 겉으로만 다듬는 아름다움은 오래 가지 못할 뿐더러 주위 사람들에게 순결하고 참된 기쁨도 주지 못한다. 따라서 성도들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에 앞서 신앙으로 다듬어진 인격과 행실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을 먼저 추구해야 할 것이다(딤전 2:9, 10).

⭕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 - 남자와 성 관계 (sexual interoourse)를 갖지 아니한 숫처녀를 뜻한다. 즉 순결함을 강조한 표현이다. 이에 비해 '소녀'(*, 나아라)란 '젊음'을 강조한 말이다(사21:12). 당시 리브가가 얼마나 미모가 출중하며 생기 발랄했는가를 짐작케 해준다. 한편 성 윤리가 혼탁해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혼전(婚前) 성 행위가 비일 비재하며 간음 죄에 대한 법규가지도 철폐하라는 압력이 강해지고 있지만 모든 남녀가 혼전 순결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性)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축복 중의 하나이며(아 5:18, 19;전9:9) 결혼을 통하여서만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도록 하나님께서 질서를 세우셨기 때문이다<아 5장, 올바른 성 윤리>.

성 경: [창24:18]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라반의 집으로 인도된 엘리에셀]

⭕ 급히 그 물 항아리를 - 처음 보는 나그네의 요구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물을 마시우게 한 것은 마지 못해 응한 선대(善待)가 아니라 진실된 친절로서 리브가의 상냥한 마음씨와 열심으로 선을 행하는 모습을 잘 드러내준다. 이러한 선행은 비록 보상을 바라고 행해져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성경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고 가르치고 있다.

성 경: [창24:19,20]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라반의 집으로 인도된 엘리에셀]

⭕ 배불리 마시게... 모든 약대를 위하여 긷는지라 - 낙타는 항상 위(胃)에 물을 저장해 두는 덕에 장기간 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 반면 한번 물을 마시기 시작하면 엄청난 양을 마신다. 따라서 여행 끝에 지친 열마리의 낙타들(10절)이 배불리 마실 수 있을 만큼 구유에 물을 가득 채우려면 리브가가 우물에 몇 십번을 왕래하여야만 했음에 틀림없다.

성 경: [창24:21]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라반의 집으로 인도된 엘리에셀]

⭕ 묵묵히 주목하여 - 비록 자원한 일이긴 하나 리브가가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물동이를 이고 우물을 몇 십번이나 왕래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으니 엘라에셀이 이를 만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아마 그 까닭은 (1)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그렇게 신속히 응답해 주신 데 대한 놀라움과 기쁨에 사로잡혔으며 (2) 좀더 신중하고도 안전하게 리브가를 관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 여부를 알고자 - 친절한 마음씨와 태도, 아름다운 용모에 있어서는 이삭의 아내감으로 부족함이 없으나 과연 그녀가 참으로 아브라함의 일가 친족인가 하는 여부를 알기 위함이다.

성 경: [창24:22]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라반의 집으로 인도된 엘리에셀]

⭕ 금고리 한 개와... 금 손목고리 한 쌍 - 신부에게 주는 예물 (53절)이 아니라 리브가의 친절한 행동에 대한 감사 표시로 준 선물이다. 결혼 예물은 여자 집안의 가장(家長) 허락없이는 제공될 수 없다(50-53절). 한편 여기서 '금고리'는 원어로 '네젬'(*)인데 귀고리(35:4;삿8:24)나 코고리(47절;겔16:12)를 가리킨다.

성 경: [창24:24]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라반의 집으로 인도된 엘리에셀]

⭕ 밀가가... 브두엘의 딸 - 성(姓)과 이름의 문화가 별로 발달되지 않았던 고대 근동에서는 자신을 소개할 때 이처럼 친족 관계를 밝히는 것이 통례였다. 이 소개로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혈족임이 밝혀졌다.

성 경: [창24:25]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라반의 집으로 인도된 엘리에셀]

⭕ 짚과 보리가 족하며 - 사람 뿐 아니라 여전히 약대에 대하여서도 관심을 멈추지 않는 리브가의 세심한 배려이다. 이처럼 짐승과 하찮은 풀 한 포기라도 귀히 여길 수 있는 자세는 천지 만물과 그 모든 것들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이다(욥 12:10)

성 경: [창24:26]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라반의 집으로 인도된 엘리에셀]

⭕ 여호와께 경배하고 -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와 인도에 깊은 감사를 드리는 엘리에셀의 경건한 신앙 자세이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도록 기도한 표징(14절)이 그 당장에 나타나자 하나님이 자신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셨음을 깨닫고 즉시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드린 것이다.

성 경: [창24:27]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라반의 집으로 인도된 엘리에셀]

⭕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 엘리에셀의 찬송 중에 나타난 하나님은 (1)성도에게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 (2) 성도의 발걸음을 친히 인도시는 하나님(시5:8;23:2;27:11;48:14)이시다.

⭕ 인자(*, 헤세드) - '은혜', '자비', '긍휼'등으로 번역된는 단어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은총을 의미한다<20:13>.

성 경: [창24:28]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라반의 접대]

⭕ 어미 집에 고하였더라 - ' 아비 집'이란 말 대신 '어미집' (mother's house)이 사용된 데 대하여 혹자는 이것이 리브가의 집에서는 여자가 가장(家長)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리브가의 오라비인 라반이 가족의 대변자로 나타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타당성이 없다(31-33, 50절). 아마 이러한 말은 당시 여자들이 남자들의 장막과는 따로 구분된 장막<18:10>에서 생활한데서 나온 표현으로 아비나 다른 형제들에 앞서 먼저 어머니에게 달려간 것을 가리킬 것이다.

성 경: [창24:29]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라반의 접대]

⭕ 라반 - '하얀', '백색'이라는 뜻이다. 표리 부동하며(29:26) 물욕(物慾)이 많은 자(31:6, 7)였는데 집안 일에 아비 브두엘(50절)보다 그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볼 때 장자로서 당시 연로한 아비를 대신하여 집안의 대소사(大小事)를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은 것 같다.

성 경: [창24:30]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라반의 접대]

⭕ 고리와 그 손의 손목고리를 보고 - 이러한 선물은 라반으로 하여금 엘리에셀 일행을 환대하게 한 동기로 작용하였을 것이다(31-33절).

성 경: [창24:31]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라반의 접대]

⭕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 뒷날의 행적을 살펴보면 라반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하지 않은 자였음을 알 수 있다(331:30). 따라서 이러한 인사말은 라반이 누이 동생으로부터 엘리에셀의 행동을 전해 듣고(28절) 그가 부른 하나님의 명칭(27절)에 의거해 갖춘 예우에 불과하지 결코 라반이 여호와 제일주의의 신앙자였음을 보여 주는 말이 아니라 하겠다.

성 경: [창24:32]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라반의 접대]

⭕ 종자(*, 에노쉬) - 일반적인 '남자',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는 나이 든 엘리에셀을 도와 함께 여행 길을 떠나 온 아브라함 집의 종들을 가리킨다. 이처럼 라반은 '종'들 조차도 자기 집에 찾아온 '남자' 곧'손님'으로서 극진히 대접했던 것이다.

⭕ 발 씻을 물을 주고 - 사막 지방의 경우 손님이 자기 집을 방문하였을 때 가장 먼저 행하던 접대 풍습이다<18:4>.

성 경: [창24:33]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라반의 접대]

⭕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 일반적인 상황하에서는 주인과 손님이 음식을 들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니면 식사 후에 담소(談笑)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엘리에셀은 오랜 여행 끝에 지칠 대로 지쳤으면서도 여독을 풀 수 있는 식사 시간을 갖기에 앞서 자신의 여행 목적을 밝히려 들었는데 이는 (1) 자신이 아브라함의 명령을 받고 파송된 종이라는 점과 (2) 주인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환도뼈 언약(9절)을 잊지 않은 그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맡은 바 사명을 다하려 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성 경: [창24:34]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이삭을 위한 청혼]

⭕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 자신을 아브라함 집의 집사장<2절>으로 소개하지 않고 그저 종이라고만 소개한 것은 자신이 주인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일 뿐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자신을 감추고 주인만을 내세우는 겸손한 태도는 오늘날 하나님의 일꾼인 모든 성도들이 필히 견지해야할 태도이다(고전 1:31;15:10).

성 경: [창24:35]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이삭을 위한 청혼]

⭕ 창성케 하시되 - 리브가를 시집보내도 좋을 만큼 아브라함의 재력(財力)과 기반이 튼튼함만을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한 그가 패배자적인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1절>.

성 경: [창24:36]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이삭을 위한 청혼]

⭕ 그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 아브라함 집안에서의 이삭의 위치를 설명해 준다. 즉 그는 하나님의 언약 자손(17:21)으로서 아브라함의 혈통(15:4)과 기업(21:10)을 이어받을 유일한 상속자였던 것이다.

성 경: [창24:37,38,39,40,41]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이삭을 위한 청혼]

자신의 친족 중에서 며느리를 얻기 원한 아브라함의 소원과 이 일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실 것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증거되고 있다. 이는 엘리에셀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가나안에서 하란까지 여행한 동기와 목적을 밝힌 것으로 리브가를 보내 달라는 간접적인 요구이다.

성 경: [창24:40]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이삭을 위한 청혼]

⭕ 섬기는(*, 할라크) - '함께가다'(19:2) '따라가다'(삼하16:13)'걷다'(렘10:23)는 뜻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곧 그분과 함께 동행하며 그분의 명령을 좇아(왕상 14:8) 더불어 왕래하는 것(삼상 30:30)임을 시사해 준다.

성 경: [창24:42,43,44,45,46,47,48]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이삭을 위한 청혼]

리브가는 하나님께서 이삭을 위해 택정해 놓은 배필(配匹) 임을 열변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엘리에셀의 이러한 열변은 추상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과 그로 말미암은 확신에서 나온 구체적인 것이었으니 라반을 공감시키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28-60절 강해>.

성 경: [창24:49]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이삭을 위한 청혼]

⭕ 나로 좌우간 행하게 하소서 - 리브가에 대한 청혼의 수락 여부를 분명히 해주어야 자신이 주인과 맺은 약속, 즉 본토 혈족 중에서 신부를 구하는 일을 차질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공동 번역). 이는 라반이 청혼을 거절한다 하여도 낙심치 않고 속히 다른 곳에 가서 신부를 찾아보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명이다.

성 경: [창24:50]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리브가의 청혼 수락]

⭕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에 라반과 브두엘이 도리없이 굴복당하는 장면이다. 즉 라반이 여호와를 온전히 경외하는 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청혼에 응한 것은 (1)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와 (2)아브라함의 확고한 신앙심(7절) (3) 엘리에셀의 불타는 사명감(33절)과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는 겸손한 자세 등에 굴복당했기 때문이다.

⭕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 청혼에 대하여 수락 여부를 얘기해 줄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는데 어찌 인간이 이에 대해 '좋다', '나쁘다' 할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공동 번역).

성 경: [창24:51]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리브가의 청혼 수락]

⭕ 데리고 가서... 되게 하라 - 자녀에 관한 모든 일, 그 중에서 특히 결혼 문제에 있어서 당사자의 의견보다 부모와 가문의 의견이 더 중요시 되었던 것은 비단 옛날의 우리 나라 뿐 아니라 고대 근동 지방의 관습이었다<28-60절,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의 부모의 권위>. 또한 여기서처럼 아비를 도와 오라비가 누이 동생의 결혼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것도 당시의 관습이었는데(34:5, 13, 25;삿 21:22;삼하13:22), 때문에 라반과 브두엘의 결정에 따라 이제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로 확정되었다.

성 경: [창24:53]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리브가의 청혼 수락]

⭕ 은금 패물과 의복... 보물 - 22절과 같이 단순한 감사 선물이 아니라 결혼 성립을 뜻하는 공식적인 예물이다. 즉 이는 고대의 관습을 따라 여러 증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신랑과 신랑측의 이름으로 신부와 신부 가족들에게 준 결혼 빙폐(聘幣)인 것이다<34장, 빙물과 예물>.

성 경: [창24:54]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리브가의 청혼 수락]

⭕ 아침에 일어나서... 돌아가게 하소서 - 엘리에셀이 이처럼 서두른 이유는 아마 (1)자신을 보낸 후 그 결과를 고대하고 있을 아브라함에게 한시 바삐 기쁜 소식을 전해 드리고 싶은 충정과 (2) 일의 결과를 보고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사명이 종결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 투철한 사명 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 경: [창24:55]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리브가의 청혼 수락]

⭕ 소녀로 며칠을 - 갑작스러운 혼인에 대하여 여러 준비를 갖출 뿐 아니라 리브가와의 이별에 대비하여 마음 정리를 하는 데는 적어도 며칠간의 시간적 여유가 필요함이 자명하다.

성 경: [창24:57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리브가의 청혼 수락]

⭕ 그에게 물으리라 - 결혼의 수락 여부를 묻겠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당장 떠나느냐 아니면 며칠 후에 떠나느냐의 결정권을 리브가에게 일임하겠다는 뜻이다.

성 경: [창24:58]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리브가의 청혼 수락]

⭕ 가겠나이다 - 하나님의 뜻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믿음과 용기 있는 대답이다. 아마도 리브가는 엘리에셀이 자신의 여행 목적을 밝힐 때부터 이미 하나님의 거역할 수 없는 뜻을 깨닫고 믿음을 굳힌 것 같다. 아뭏든 이러한 결단으로 말미암아 그녀는 속히 족장의 아내로서의 길에 들어섬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지는 언약 백성의 족보(마 1:1-16)로 이적(移籍)하게 되었다. 이는 비록 우리의 한 순간적 신앙 결단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잘 가르쳐 준다 <28-60 강해>.

성 경: [창24:59]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리브가의 청혼 수락]

⭕ 그의 유모와 - 이름은 드보라이다 (35:8). 유아 시절부터 신부를 계속하여 돌보아온 유모를 신부의 시중을 위해 함께 시집에 보내던 일은 당시 부유층과 저명 인사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관례적인 일인데 지금도 아라비아의 일부 나라들에서는 행하여지고 있다.

성 경: [창24:60]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리브가의 청혼 수락]

⭕ 너는 천만 인의 어미가... 얻게 할지어다 - 자손 번성과 장막의 터를 넓히기를 기원하는 이러한 축복은 고대 근동 여인들에게 주어지던 최대의 축복이긴 하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22:17)을 알리 없는 리브가의 가족들이 그녀에게 그것과 한치 틀림 없는 동일한 축복을 기원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일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입을 빌어 재확인한 자신의 약속이자 예언으로 이해해야 한다.

성 경: [창24:61]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리브가를 맞아들인 이삭]

⭕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 아브라함의 신실한 종인 엘리에셀이 신부 리브가를 신랑 이삭에게로 인도해 가는 모습은 성도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인도하려 한 바울의 열심을 연상시켜 준다(고후 11:2)

성 경: [창24:62]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리브가를 맞아들인 이삭]

⭕ 브엘 라해로이 - '나를 아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우물'이란 뜻이다. 하갈이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던 곳으로 가데스와 베렛사이의 술(shur)길가 샘물이다 (16: 7 - 14).

⭕ 남방에 거하였었음이라 - 사라가 사망했던 당시 아브라함은 헤브론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23:2). 그런데 아직도 여전히 아브라함의 거주지가 그곳이었다면 엘리에셀 일행은 남방 브엘라해로이에 오기 전 먼저 그곳에 들렀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에셀이 그러지 아니한 것으로 보아 사라의 죽음 이후 아브라함은 이삭과 함께 헤브론을 떠나 이미 남방에 이주하여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창24:63]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리브가를 맞아들인 이삭]

⭕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 '묵상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수아흐'(*)는 상념에 젖거나 슬픔에 잠기는 것 또는 기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아마 이삭은 모친 사후(死後), 고요한 저녁 무렵 들판에 나가 사라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이즈음은 결혼 문제가 눈 앞에 닥친 때였으니 만큼 이 일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드리곤 하였을 것이다.

성 경: [창24:64,65]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리브가를 맞아들인 이삭]

⭕ 약대에서 내려 - 상대방에 대한 겸양의 표시이다. 특별히 여자가 낙타를 타고가는 경우 남자를 만났을 때 잽싸게 내려 상대에게 예를 갖추는 것이 보편적인 예법이었다고 한다.

⭕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 가리우더라 - '면박' (*, 차이프)은 보통의 수건이나 베일(veil) 보다는 훨씬 큰 '너울'(공동 번역)을 가리킨다. 리브가가 이러한 너울로 자신을 가리운 것은 결혼하기 전의 신랑이 신부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되던 당시의 관습에 따른 것인데 신랑에 대한 신부의 겸양(謙讓)과 복종, 순결을 나타내 준다(고전 11:10).

성 경: [창24:67]

주제1: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주제2: [리브가를 맞아들인 이삭]

⭕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 당시 족장이나 부유층의 사람들은 여러개의 크고 작은 장막을 갖고 있어 가족의 신분에 따라 적당한 장막을 분배해 주었다. 따라서 족장의 부인인 사라가 생전에 기거하였던 장막은 아브라함 집의 소중한 유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삭이 리브가를 이곳으로 인도하였다 함은 이제 리브가가 실질적인 새 안주인으로서 아브라함 집의 모든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존귀한 위치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 이러한 이삭과 리브가의 모습은 일부다처주의가 팽배했던 시대에 세상 풍속을 좇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창조 질서인 일부 일처제를 좇은 아름다운 장면이다<4장, 일부 다처주의의시작>. 한편 타락한 세대일수록 사랑은 결혼의 목적과 조건에서 밀려나기 십상인데 그럴수록 우리는 사랑이 참된 결혼의 본질적인 요소로,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자 예수께서 원하시는 바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의 만남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거룩한 결합을 상징한 징표가 되기 때문이다(엡5:31-33).

⭕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 학자들간에 상당한 논란을 일으키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이삭 탄생시 사라의 나이는 90세였고(17:17;21:5) 사라 운명시 이삭의 나이는 37세였으며(23:1),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한 것은 그의 나이 40세때였으니(25:20) 이삭이 3년 동안이나 사라를 위해 애도했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위대한 인물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공식적 애도 기간은 보통 30일 내지는 70일이었다(50:3;민 20:29;신 34:8). 그러나 이러한 의문점은 이삭이 노년에 자신을 낳고 기뻐하던 어머니의 모습과 각별히 자신을 사랑해 준 어머니의 정을 못 잊어 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

성 경: [창25:1]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아브라함의 후처와 서자(庶子)]

⭕ 후처(*, 이솨) - '부인', '아내' 또는 일반적인 '여자'를 가리키는 말이나후처로 번역된 것은 언약의 자손을 낳을 합법적 아내인 사라와 구별하기 위함이다(6절 ;대상 1:32).

⭕ 그두라 - 이름의 뜻은 '향기'이다.

성 경: [창25:2]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아브라함의 후처와 서자(庶子)]

⭕ 시므란 - '찬양하는'이란 뜻이다.

⭕ 욕산 - '새 사냥꾼'이란 뜻이다. 남부 아라비아의 야키쉬에 사는 힘야릭 족속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 므단 - '분쟁'이란 뜻이다.

⭕ 미디안 - '심판'이란 뜻으로서 후에 므단과 미디안 두 족속이 한 족속으로 합쳐진 것 같다.

⭕ 이스박 - '버리는 자'란 의미이다. 에돔 땅 쇼백에 정착한 듯하다.

⭕ 수아 - '부귀'. 이두매의 산 지역의 지명과 동일하다.

성 경: [창25:3]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아브라함의 후처와 서자(庶子)]

⭕ 스바 - 소와 나귀를 강탈하던 스바 족속의 조상(욥 1:15; 6:19)이다.

⭕ 드단 - 후손은 에돔의 남동쪽에 위치한 족속으로 두로의 주요한 교역민(겔 25:13)이었다.

⭕ 앗수르 족속 - 북부 아라비아 사람들로 팔레스틴 남쪽에 거주한 것 같다. 히브리 발음으로 아슈림(*)인데 앗시리아와 혼동하면 안된다.

⭕ 르두시 - '핍박을 당하는'의 뜻이다.

⭕ 르움미 - '민족'이란 뜻으로서 이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산재한 듯하다.

성 경: [창25:4]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아브라함의 후처와 서자(庶子)]

⭕ 에바 - '어두움'이란 뜻이며 사 60:6 에는 풍요로운 족속으로 나온다.

⭕ 에벨 - '송아지'란 의미이다. 헷야즈의 바누기파족과 관련이 있다.

⭕ 하녹 - '추종자'란 의미이다.

⭕ 아비다 - '지식의 아버지'란 뜻이다.

⭕ 엘다아 - '하나님이 불렀던 자'란 뜻이다.

성 경: [창25:5]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아브라함의 후처와 서자(庶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구속 목적이 담긴 혈통 관계를 잊지 않고 자신의 합법적 상속자이자 언약의 후손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물려주었다. 더욱이 아브라함은 가나안땅에의 약속과 언약의 상속권까지도 물려주었다.

성 경: [창25:6]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아브라함의 후처와 서자]

⭕ 재물(*, 마타노트) - '선물', '혜택'이란 뜻이다. 이는 이삭이 아브라함에게서 받은 '모든 소유'와는 달리 서자들은 재산 상속권을 요구할 수 없고 단지 주는 것만을 받을수 있는 언약 밖의 자손임을 보여 준다.

⭕ 동국 (*, 에레츠 케뎀) - '동쪽의 땅'. 광의적인 의미로는 아라비아이다. 이삭과 서자를 다른 곳에 거주하게 한 것은 이들 사이에 발생할 소지가 있는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언약 자손의 순수한 혈통을 보존코자 하는 아브라함의 신중한 처사였다.

성 경: [창25:7]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아브라함의 죽음]

⭕ 향년(*, 예메 쉐네 하예) - 직역하면 '인생 햇수의 날들'이다. 인생이란 햇수로 계수되기 보다는 하루의 날들로 이어진 연약한 존재임을 연상케 하는 히브리적 표현이다. 이는 하루 하루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준다.

⭕ 일백 칠십 오 세 - 아브라함은 75세에 소명받은 후 100년간의 나그네 생활을 마치고 175세를 일기로 하나님이 계신 영원한 가나안으로 들어갔다<25장. 강해>.

성 경: [창25:8]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아브라함의 죽음]

⭕ 수가 높고 나이 많아 - 직역하면 '백발의 나이로 그 연수(年數)가 충만하여 만족했다'이다. 이는 지상에서 복된 수명을 누렸다는 뜻으로 아브라함이 이 땅위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 속에 여한이 없이 풍성한 삶을 살다가 생의 승리자로 죽어간 사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잠 16:31;20:29).

⭕ 열조(*, 암) - 집합적 단위로 '백성', 좀 더 좁은 의미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지파'를 의미한다. '열조에게 돌아간다'는 표현은 사후에도 그들의 후손들의 삶과 인격을 통해 자신들의 삶이 계속 유지된다는 구약의 내세관을 보여준다. 이는 신약의 '영생 개념'과는 차이가 나지만(요 3:16; 5:24 갈 6:7, 8) 죽음이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또 다른 생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이해시켜 주는데는 도움이 된다(15:15; 삿 2:10).

성 경: [창25:9]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아브라함의 죽음]

⭕ 이삭과 이스마엘이 - 평소 화목치 못했던 그들이 아버지 아브라함을 장사하기 위해 협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을 가져온 것처럼, 때때로 의인의 죽음이 불화의 감정을 해소하고 화목의 장을 마련할 때가 있다.

성 경: [창25:11]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아브라함의 죽음]

⭕ 브엘 라해로이 - 이 뜻은 '나를 감찰하시는 생존자의 우물'(16:14)이다. 하갈이 사라를 피하여 도주하던 중 샘곁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 위로와 축복을 받은 뒤 그 샘을 명명한데서 연유되었다.

성 경: [창25:12]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이스마엘의 후예]

⭕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 -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 아브라함과의 관계때문에 비록 선민의 대열에 들지는 못했지만 이스마엘이 낳은 후손들은 세상적으로 존귀케 되었으며 신정국 이스라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성장했다.

성 경: [창25:13]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이스마엘의 후예]

⭕ 세대(*, 톨다) - 원 뜻은 '출생'이다. 따라서 '세대대로'를 '출생 순서대로'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 게달 - '검은 피부'라는 뜻으로서 사 21:7에는 활을 잘 사용하는 족속으로 묘사되었다. 그들의 천막은 볼품있고 내구성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렘 49:29 ; 아 1:5). 아라비아 페트라와 바벨론 사이에 있는 광야에 거주했었다(사 42: 11 ; 시 120:5).

⭕ 앗브엘 - '하나님의 기적'이란 뜻이다. 이 족속은 사해 남서부에 거주하였다.

⭕ 밉삼 - '달콤한', '즐거운', '향기로운' 등의 뜻이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성 경: [창25:14]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이스마엘의 후예]

⭕ 미스마 - '듣는다', '주의하다'란 의미이다. 70인역과 벌게이트역에는 마스마로 되어 있다.

⭕ 두마 - '침묵'이란 뜻의 말. 시리아와 바벨론의 경계선에 위치한 두맛 엘드옌델에 거주했다.

⭕ 맛사 - '견디다'의 뜻. 두마의 북쪽에 있는 미사노이에 정착하였다.

성 경: [창25:15]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이스마엘의 후예]

⭕ 하닷 - '날카로움'이란 뜻이다. 이 족속은 오만과 바레인 근처의 아라비아 해안땅에 거주했다.

⭕ 데마 - '오른 손을 사용하다'란 의미이다. 주로 무역에 종사한 족속이다(욥 6:19 ;렘 25:13).

⭕ 여둘과 나비스 - 요단 동편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민족과 가까운 족속이다.

성 경: [창25:16]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이스마엘의 후예]

⭕ 촌 - 성벽이 없는 임시 거주지를 의미한다(사 42:11). 즉, 이동할 수 있는 장막의 진을 일컫는다.

⭕ 부락 - 요새화 된 유숙지를 뜻한다(민 31:10 ; 아 8:9).

⭕ 십 이 방백 - 이스마엘 후손의 창성함(숫자적으로나 사회적으로)을 보여 주는 구절이자 언약의 온전한 성취를 나타낸 부분이다(17:20). 특히 '방백'(*, 나시)이란 큰 무리의 지도자(겔 45:9)나 추장(30:2)을 일컫는 말로써 이스마엘 자손의 흥왕함을 대변해 주는 말이다.

성 경: [창25:17]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이스마엘의 후예]

⭕ 이스마엘은...일백 삼십 칠 세 - 아브라함 사후(死後) 48년만에 이스마엘은 파란 많은 생을 마감했다. 비록 그에게는 언약의 후손 이삭과 같은 축복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의 죽음에 대한 기사<8절>와 동일한 필치로 그의 죽음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는 아브라함과 동일한 사후 거처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성 경: [창25:18]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이스마엘의 후예]

⭕ 술 - '성벽'이란 뜻이며 브엘세바와 애굽 사이의 중간 지점<16:7낱말 풀이>에 위치해 있다.

⭕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였더라 - '거하다'(*, 나팔)란 '넘어지다'(시10:10),

'엎드러지다'(사 3:8)는 뜻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오래 '정착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결국 이 부분은 이스마엘 후손들이 그들의 물려받은 땅에서 형제 민족들과 대치하면서(정복. 수탈당하지 않고) 살았음을 암시한다.

성 경: [창25:19]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에서와 야곱의 출생]

⭕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 창세기는 대부분 족장의 역사들로 엮여져 있다. 그런데 이런 역사들을 기술함에 있어서 '족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족보는 단순한 인명의 열거가 아니라 그 인명을 통해 기나긴 역사를 압축, 요약한 다이제스트(digest) 역사 기록임을 알 수 있다. 본절은 본서의 족보 기록 중 아홉번째 등장하는 것으로 (1) 이삭 후예의 역사성과 (2) 언약의 후손이 어떻게 이어져 내려가고 있는가를 밝혀 주며 (3) 이삭 후에 새롭게 등장하는 야곱의 생애를 조명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성 경: [창25:20]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에서와 야곱의 출생]

⭕ 밧단 아람(*, 파단 아람) - '아람인의 벌판'이란 뜻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북부 지역을 지칭하며 본래 아브라함 가문의 발생지로 간주된다. 구체적으로 리브가의 출신지를 언급하는 이유는 그녀가 혼합 민족이 아닌 언약 백성인 아브라함의 순수한 혈족으로 하나님의 기업을 소유할 자격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성 경: [창25:21]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에서와 야곱의 출생]

⭕ 잉태하지 못하므로 - 이삭은 40세에 결혼하였으나 20년 동안 리브가를 통하여 자식을 갖지 못했다. 아브라함의 후처인 그두라는 벌써 6형제를 낳았고 그 자손들까지 번성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첩의 소생인 이스마엘 역시 이미 12형제와 12방백을 이루고 있었다. 결국 근 20년의 기도가 응답되어 나이 60세에 쌍동이를 얻게 될 뿐 아니라 그의 후손도 번성케 된다(히 6: 14, 15). 하나님의 은총이 지연될 때 10년을 견디지 못하고 첩을 얻었던 아브라함과는(16:3) 달리 이삭은 그런 실수를 범치 않았다. 하나님이 맺으신 약속의 성취는 확실하나 간혹 더딜 때가 있다(합 2:3). 이는 약속의 씨가 단순한 자연적 결실이 아닌 하나님의 은총의 산물임을 확신케 하기 위해서이다(시127:3).

⭕ 위하여(*, 레노카흐) - '마주 대하여'란 전치사이다. '간구하매'와 함께

사용되어, 항상 누구를 염두에 두고 기도한다는 의미이다.

⭕ 간구하매(*, 아타르) - '향을 피우다'란 어근에서 유래한 말로서 성도의

기도가 향연과 같이 올라감을 비유한다(Gesenius).

성 경: [창25:22]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에서와 야곱의 출생]

⭕ 싸우는지라(*, 라차츠) - '압박하다', '깨뜨리다' 등의 뜻이 있으나 본문에서는 '서로 요동하다'는 번역이 적합하다. 즉 복중의 태아가 격한 몸부림을 했다는 뜻이다. 이는 쌍 태아의 복중 싸움으로 인한 현상이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으로 임신케 된 리브가는 정상적인 태아의 운동 이상의 요동으로 인하여 놀랐다.

⭕ 이 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 이 말은 다음 세 가지 사실을 내포한다. (1) 임신의 고통으로 인한 육체적 괴로움의 하소연(Rosenmuller). (2) 복중의 태아가 요동하다가 유산하면 어찌하리요란 정신적 갈등, 그리고 (3) 신적 은총으로 잉태한 아이가 뱃속에서부터 싸우는 데서 연유한 영적인 불안감을 토로하는 의미다. 즉, 리브가는 자기 태중에 있는 아이들의 싸움에서 육체적인 괴로움과 정신적 갈등과 영적인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던 것이다. 한편 리브가의 이 예감은 원시 복음(3:15)에 계시된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 간의 싸움, 즉 영육간의 싸움(롬 7:15-22)과 종말에 있을 그리스도와 사단간의 우주적인 투쟁(계 20:1-3, 10)을 쌍태의 싸움으로 예고한 하나님의 신비로운 계시였다.

성 경: [창25:23]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에서와 야곱의 출생]

⭕ 국민(*, 고이) - 단수로는 '나라', '국가'이고 복수는 '열방', '열방', '이방', '이방인들', '이방사람', '민족', '만민', '국민', '족속', '거민', 등으로 번역되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과 에돔의 두 '민족'을 지칭한다.

⭕ 태 (*, 베텐) - '비어있다'는 어근에서 유래한 말이며 '태', '자궁', '배',

'몸'으로 번역된다.

⭕ 복(*, 메에) - '부드럽다'는 뜻의 어근에서 유래, 오직 복수로만 사용된다. '복부', '배', '자궁'으로 쓰였으며 상징적인 의미에서 동정심을 가리킬 때도 있다.

⭕ 강하겠고(*, 아마츠) - '강하다', '담대히 하다', '굳세게 하다', '힘있게 하다'는 뜻의 미래 미완료형으로서 계속적인 강성함을 계시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상대국 에돔보다 지속적으로 모든 면에서 앞서 나갈 것을 예견한 말이다.

⭕ 섬기리라 (*, 아바드) - '일하다', '봉사하다', '경작하다', '노예의 신분이 되다', '노동하다'란 뜻의 미래 미완료로 에돔 족속이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있게 될 것을 암시한 말이다.

⭕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섬기리라 - 예언적인 신탁의 형태로 표현된 이 대답은 한 태속에서 두 국민과 두 민족의 창시자인 야곱과 에서가 출생하여 그후 야곱의 장자권 계승과 더불어 그들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에돔 사이의 뿌리깊은 갈등과 반목 그리고 이미 승부가 결정난 필연적인 싸움이 계속되리라는 예언이다. 결국 이 예언은 야곱 자손이 에서의 자손을 정복했던 출애굽 사건과 다윗의 치세중에 여자적으로 성취되었다(삼하 8:12, 13: 대하 21:8). 더 나아가 바울은 영적 해석으로 이 예언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 교리를 설명했다(롬 9:10-23; 말 1:2-4). 따라서 본 예언은 사람의 구원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과 그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구절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 경: [창25:24]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에서와 야곱의 출생]

⭕ 기한(*, 음) - 문자적으로는 '날' 로서 일출에서 일몰까지, 또는 일몰에서 다음 일몰까지를 의미하거나 제한된 시간이나 기한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이다<1:5>.

성 경: [창25:25]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에서와 야곱 출생]

⭕ 붉고(*, 아드모니) - '아담'이란 히브리 말에서 유래한 말로서 '머리, 팔 또는 안색이 붉은'이란 뜻이다. 이는 혈기 왕성했던 에서의 성격과 조화를 이루는 외모의 한 특징이다.

⭕ 갖옷(*, 에데르 세아르) - 직역하면 '털이 많은 겉옷'이다. '전신이 갖옷같다'는 말은 신생아의 외모가 기이하게 붉은 털로 싸여져 있다는 말로 그의 야성적이고 육욕적인 성품을 예견케 한다(Kalisch, Keil). 후에 그는 들판을 돌아다니는 사냥꾼이 되어 아버지가 즐기던 음식올 대접하여 부친 이삭의 사랑을 독점했다.

⭕ 에서(*, 에사우) - 이름의 뜻은 '거친', '털이 많은'이다. 이는 그의 열정적이고 동물적인 기질을 대변해 준다(Murphy). 에서는 피부가 붉었었으므로 '에돔'이라고도 하였다.

성 경: [창25:26]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에서와 야곱 출생]

⭕ 발꿈치(* . 아카브) - 이는 '발뒤꿈치를 잡는다', '속이다', '불의로 남의 뒤를 친다'(27:36), '발뒤꿈치를 든다'(시 41:9) 등의 뜻을 갖는다. 한편 발꿈치를 잡고 출생한 것에 대한 해석으로는 이 말이 (1) 지극히 짧은 시간적 격차를 묘사한 말이다(Bush) (2) 야곱이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으려는 듯이 바짝 뒤쫓아서 나온 모습을 말한다(Delitzsch) 등의 학설이 있다. 그러나 호 12:3에서의 인용은 문자 그대로의 해석을 정당화한다(Keil). 허나 우리가 집중 추적해야 될 사실은 이런 의학적인 난제가 아니라 영적이고 예표적인 의미를 지닌 하나님의 섭리이다.

⭕ 야곱(*, 야아콥) - 어근 아카브(*)는 '발뒤꿈치'(heel; 3:15, 호12:3) 또는 '발뒤꿈치률 잡는다'란 뜻과 '뒷면'이란 의미가 있어 나쁜 의도로 사용될

때는 '남을 사취하는 자'(27:36), '거짓되다'(렘 9:3 ;17:9), '발꿈치를 든다'(시41:9)는 뜻을 내포한다. 기이한 출생에 의해 붙여진 그의 이름은 이와 같이 좋지 못하나 훗날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태어났을 때 붙여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즉 이스라엘(32:8)이라는 한 영광된 이름을 얻게 되었다.

성 경: [창25:27]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사고 판 장자의 명분]

⭕ 장성하매(*, 가달) - 육체, 정신, 소유, 명예, 또는 자존심 등의 측면에서 '크게되다' '자라나다' '확대되다'란 뜻이다. 가사를 충분히 분담할 수 있은연령에 도달했음을 암시한다.

⭕ 익숙한(*, 야다) - '알다'(12:11), '깨닫다'(출 34:29), '습득하다', '동침하다'(4:1)란 뜻으로 단순한 지식을 의미하지 않고 체험적으로 안다는 말이다. 에서의 능숙한 사냥솜씨를 암시한다.

⭕ 사냥꾼(*, 차이드) - '곁에 엎드리다', '쫓다'란 어원에서 유래한 말로 '예비하다'(수 9:5), '양식'(수9:14), '식물' (느 13:15)로도 번역됐다. 에서의 민첩한 기질과 양식을 위해 사냥업에 종사함을 보여 준다.

⭕ 들(*, 사데) - '뻗치다'는 어근에서 유래되어 '밭'(23:17), '전지' 등으로

도 번역되나 앞의 '사냥군'이란 말로 보아 '들판', '초원'이 적합하다. 결국 '들 사람'이란 농부가 아니라 넓은 초원을 가로지르며 사냥을 일삼는 자를 가리킨다.

⭕ 사람(*, 이쉬) - '현존하다' '강하다'란 어원에서 유래하였다. 이 말의 용법은 짐승과 대립되는 경우에(출11:7), 또는 여자(2:23)나 하나님(32:28)과 대립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담'이 흙으로 된 허무함과 비참성을 지닌 인간을 표현한다면 '이쉬'는 능력을 지닌 인간을 나타낸 말이다(시 42:9; 62:9). 여기서는 에서의 야성적인 늠름함을 암시키 위해 사용된 듯하다.

⭕ 종용한(*, 탐) - '완성하다'에서 유래하여 '순전한'(욥 1:1), '완전한'(시64:4), '온전한'(잠 29:10)등의 도덕적인 용례가 많으나 여기서는 강한 인상을 풍기는 에서와 대조적으로 단지 야곱의 평온하고 단순한 면(luther)을 표현한 듯하다(고전1:26-29).

⭕ 장막에 거하니 - '거하다'는 '야솨브'(*)로 '머무다'(13:12), '거주하다'(출 12:40). '앉다'(삿 3:5), '우거하다'(26:17)로 번역된다. 야곱은 가정적인 사람으로 집안에 머물기를 좋아했으며 부친을 계승하여 전형적인 목양에 종사한 듯하다.

성 경: [창25:28]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사고 판 장자의 명분]

⭕ 사냥한 고기 (*, 파아 차이드) - 문자적으로 '그의 입 안에 있는 사냥물'이다(LXX). 에서가 사냥하여 얻은 고기를 계속적으로 탐닉해 왔던 이삭의습관을 알 수 있다.

⭕ 좋아하므로 (*, 아하브) - '애정을 갖다' '사랑하다'는 뜻으로 선택의 원인이 사랑에 있음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신10:15; 말1:2, 3). 반면에 불선택의 미움을 의미할 때는 '사네' (*)란 말이 사용된다(말 1:3). 또한 하나님이 베푸시는 언약적 사랑을 표현할 때는 '헤세드'(*)란 말을 썼다(신 7:9;미 7:20;왕상8:23). 본문에서는 에서를 편애한 이삭의 선택적 사랑이 에서의 사냥한 고기로 인함임을 밝힌다. 결국 이러한 부모의 편애가 자녀에게 끼친 영향을 두 아들의 생애와 그 후손의 역사에서 볼 수 있다.

성 경: [창25:29]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사고 판 장자의 명분]

⭕ 죽(*, 나지드) - '끓어오르다'에서 유래한 말로 끓인 음식, 즉 '수프' '진한 국'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도 팔레스틴에서 재배되는 적갈색의 렌즈 콩에다 양파, 쌀, 그리고 올리브 기름을 섞어 조리하는 요리가 있다(삼하 17:28; 23:11).

⭕ 곤비하여(*, 아예프) - `기운이 없어지다'란 뜻이다. 지침으로 인하여 기력을 상실한 상태를 묘사한 말이다(욥 22:7; 시 63:1; 삿 4;21).

성 경: [창25:30]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사고 판 장자의 명분]

⭕ 붉은 것(*, 아돔) - 원문에는 이 말이 두 번 반복되어 '그 붉고 붉은 것'으로 나온다. 에서가 팥죽의 붉은 색깔에 자극받은 식욕 때문에 지극히 흥분한 상태에 있음을 묘사한다(Wordsworth). 본래의 붉은 피부에다 이 붉은 팥죽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되어 이후 사람들은 그를 '붉다'는 뜻을 지닌 '에돔'이라 불렀다.

⭕ 먹게 하라(*, 할이테니) - 직역하면 '나로 돌이키게 하라'로 에서의 왕성한 식욕을 드러낸다.

성 경: [창25:31]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사고 판 장자의 명분]

⭕ 장자의 명분(*, 베코라) - 기본 어근인 '태를 열다'에서 파생된 말로 사람이나 짐승의 '초태생'과 추상적으로는 '장자의 상속권'을 의미한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처음 출생한 자가 갖는 특권과 책임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외적 특권으로 (1) 아비의 뒤를 승계하여 가장이 되어 가문의 대소사(大小事)를 처리할 수 있는 주도권(27:1-45; 대하 21:3)과 (2) 다른 형제에게 할당된 유산의 두 몫을 분배받을 수 있는 자격(신 21:15-17)을 가진다. 둘째는 내적 특권으로 장자는 (1)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한 가정의 대표자로서 모든 일을 수행함과 동시에 (2) 언약 관계에서 영적 축복의 후계자가 된다. 또한 책임도 병행하는데 그것은 부친의 노후나 사후, 모친과 미혼 자매들을 부양해야 할 의무이다.

⭕ 오늘날 (*, 카욤) - 직역하면 '오늘처럼'이나 여기서는 '빨리' '우선적으로'를 뜻한다(삼상 2:16; 왕상 1:51).

⭕ 팔라 (*, 마칼) - '팔다' '양도하다'의 강조 명령형이다. 야곱이 이런 장자권의 소유를 위한 흥정을 하게 된 배경에는 (1) 그가 평소에 장막에 머물때 장자권의 영적 축복을 부모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반면, 에서는 장자권의 가치에 관해 무지하므로 가능했고 (2) 과거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는 언행을 자주하는 것을 눈여겨 보아 왔었고 (3) 사전(事前)에 이 문제를 놓고 농담조의 대화가 빈번하여 에서의 경계심이 해이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행위에 있어서 굶주림에 처한 형의 처지를 이용해 장자권을 흥정한 처사는 정당시될 수 없다. 이 사실은 향후 그의 고달픈 인생의 여정이 잘 반증해 준다.

성 경: [창25:32]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사고 판 장자의 명분]

⭕ 내가 죽게 되었으니(*, 히네 아노키 호레크라모트) - 직역하면 '보라 나는 죽음의 지경에 이르렀으니'이다. 에서의 이 대답에 대한 해석들로서는 에서가 (1) 너무 굶주려 죽어가는 급박한 위경에 도달했다는 것과(Calvin) (2) 사나운 짐승을 쫓음으로 인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말과 (3) 삶의 종국적 결과가 죽음이니 장자권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란 견해 중 에서가 평소 취했던 경박한 태도를 보아 지금 당장 배고파 죽게 되었는데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냐는 식의 현실 지상주의의(Keil) 세째 견해가 타당성이 있다.

⭕ 무엇이 유익하리요(*, 라마 제) - 직역하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이다. 에서가 한 이 말의 의도는 (1) 지금 아사(餓死) 직전에 있는데 장자권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2) 내가 죽으면 야곱이 대신 장자권을 차지할텐데 장자의 명분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는 순간적 욕망을 추구하는 두 의중이 복합된 듯하다.

성 경: [창25:33]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사고 판 장자의 명분]

⭕ 맹세하고 (*, 솨바) - 완전 수인 '일곱'이란 명사에서 유래하여 '일곱번 말하다' 즉 '서약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맹세는 하나님의 권능과 심판 아래 쌍방간에 맺은 약속을 신실히 이행할 것을 서약하는 성스러운 의식으로서 그 약속한 바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출22:11; 민5:19).

⭕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 구약 당시 장자권의 상실은 (1) 본절처럼 본인의 의사로 맹세를 통하여 직접 양도할 때 (2)서자가 장자일 경우 합법적인 아내가 그후 아들을 낳아 장자의 명분을 요구할 때(21:10) (3) 아비의 직권으로 다른 아들을 선택할 때(48:22, 대상 26:10) (4) 중죄에 대한 징벌로 박탈당할 때(49:3, 4 ;대상 5:1) 합법적으로 가능했다. 성경 기록과 유사한 풍습이 기록된 아카드어 토판인 누지서판(Nuzi Tablets)에는 한 형제가 상속받은 숲을 다른 형제에게 세 마리의 양을 받고 팔고 있는 상속권 거래에 관한 실례가 소개되어 있다.

성 경: [창25:34]

주제1: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삭의 두 아들]

주제2: [사고 판 장자의 명분]

⭕ 떡(*, 레헴) - 어근 '먹다'에서 유래하여 식량, 곡물, 빵 등을 포괄하는 말이나 여기서는 죽과 함께 먹는 빵을 의미한다.

⭕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와야칼 와예쉐트 와야캄 와예라크) -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먹었다. 그리고 그가 마셨다. 그리고 그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갔다'. '와우'(*, 그리고) 용법으로 계속 이어지는 본절은 자신의 행동에 관하여 생각할 여지를 두지 않고 일을 해치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목전의 욕심만 채우기에 급급한 육적 사람의 상태를 생생히 묘사했다.

⭕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바자) - '업신여기다' '경멸하다'는 뜻이다. 본절에서는 와우 용법으로 앞의 문장인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에 연결됐다. 어리석은 행위에 대하여 전혀 뉘우치는 빛이 없는 에서의 강퍅한 태도를 보여 준다. 인류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가 영생을 금단의 열매와 바꾼 이래(3:6) 죄로 말미암아 인간의 지정의(知情意)가 마비되어(엡 2:1-3; 4:8) 무분별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히12:16은 에서를 가리켜 '망령된'(*, 베베로스)자라 일컫는데 이는 '속된' 혹은 '불경건한'이란 뜻으로 속된 욕심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축복의 기회를 하찮게 다루는 자란 뜻이다.

성 경: [창26:1]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그랄로 이주한 이삭]

⭕ 첫 흉년 - 척박한 팔레스틴 지방에서 기근은 흔한 일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경험한 첫 흉년(B.C. 2090년경)은 이삭의 때에 발생하였던(B.C. 1990년경) 것보다 약 100년전의 일이다(12:10). 이 대흉년은 하나님의 비상한 섭리에 의해 야곱의 역사에서 한번 더 일어난다(42:5). 한편 팔레스틴의 농사는 거의 비와 이슬에 의존하는 바 흉년은 거주민의 생계에 막중한 손해를 끼쳤다.

⭕ 그랄 - '거주지'란 뜻이다. 가사에서 남동쪽으로 약 17Km 떨어진 현재의 토 아부 후레이라(tell abu hureira)이다. 가나안의 남쪽 경계선 서남쪽에 위치한 풍요한 곡창지로서 약 70년전에 아브라함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20:1).

⭕ 아비멜렉 - '아버지는 왕'이란 뜻으로 애굽 왕이 바로로 통용되듯이 그랄 왕의 공식적인 칭호이다(시 34편의 표제에 나오는 아비멜렉의 실제 이름은 '아기스'이다). 이삭이 만났던 아비멜렉과 아브라함 당시의 아비멜렉은 약 70년 시차가 있으므로 동명이인(同名異人)임이 확실하다.

⭕ 이르렀더니(*, 예라크) - 문자적으로는 '가다' 이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이삭이 왕을 직접 찾아갔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아비멜렉이 통치하는 영역 안으로 들어섰다는 의미이다.

성 경: [창26:2]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그랄로 이주한 이삭]

⭕ 여호와(*, 예호와) - 언약의 당사자로서의 신실성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명칭이다. 구속사의 전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삭에게 하나님의 언약은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여호와'란 이름이 강조되었다. 반면 언약과 관계없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강조되는 '엘로힘'이라는 명칭이 통상적으로 사용된다.

⭕ 내려가지 말고 -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그 자손이 애굽으로 갈 것을 예언하셨고(15:13), 이는 후에 요셉을 통하여 성취되었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이삭이 애굽으로 내려감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애굽의 팽배한 우상숭배로 인해 이삭의 신앙이 동요됨을 예견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언제나 선민에게 있어서 애굽을 죄악과 타락의 도성이자 신앙 연단의 장소로 이해시키고 있다(사 31:1; 렘 42:19; 겔 23:3).

성 경: [창26:3]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그랄로 이주한 이삭]

⭕ 이 땅에 유하면(*, 구르 바아레츠 하조트) - 직역하면 '이 땅에 거처하라'이다. '이 땅'은 이삭이 머물던 블레셋 땅이 아니라 그의 아비 아브라함에게 약속으로 주어진 가나안 땅 전체를 가리킨다(calvin, keil, lange).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 하나님의 동행과 임재를 약속하신 말이다. 선민 이스라엘과 항상 함께 하신 하나님은 후에 성막과 성전의 지성소에 거하셨으나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 약속은 완전히 성취되었다(요 1:14). 예수의 이름인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란 말은 이 사실을 잘 보여 준다(마 1:23).

⭕ 네게 복을 주고 -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약속하신 복은 이미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22:16-18)의 재확인이자 계승으로 그 핵심은 자손과 땅에 대한 축복이다. 이후 이러한 약속은 야곱에게도 주어졌으며(28:15) 부분적, 일시적으로나마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성취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영적 축복으로, 그 궁극적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어 질 것이란 점이다. 오늘날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이제 이러한 축복을 온전히 누리는 자들이라 하겠는데 그 증거는 다음과 같다. (1)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칭함 받고 있다는 점(롬 8:15, 16) (2) 성령이 그들 가운데 내주(內主)하신다는 점(갈 2:20) (3)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보장받고 있다는 점(요 3:16; 5:3, 10) 등이다.

성 경: [창26:4]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그랄로 이주한 이삭]

⭕ 네 자손을 인하여 - 본절은 '자손' (*, 제라)을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란 집합적 뜻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장차 오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축복이 완성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3:15) 그 의미는 단수로 취급함이 적절하다(갈 3:16).

⭕ 복을 받으리라(*, 히트바레쿠) - 직역하면 '자신들을 스스로 축복할 것이다'이다. 이것은 재귀형으로 '천하만국 스스로가 아브라함의 씨, 즉 메시야를 통해 부여될 축복을 바랄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성 경: [창26:5]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그랄로 이주한 이삭]

⭕ 순종하고(*, 솨마) - '듣다'(3:17), '준행하다'(22:18)란 뜻이다. 즉 들은 바대로 실천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우리의 신앙도 성경을 읽고 깨닫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은 바를 지켜, 행함으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갈 5:22, 23).

⭕ 명령(*, 미쉬메레트) - '울타리를 치다', '지키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파수', '위탁물'이란 뜻이나 여기선 읽거나 듣고서 지키도록 하기 위해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뜻한다(kalisch).

⭕ 계명(*, 미츠와) - '명령하다', '짐을 맡기다'란 동사에서 유래하였다. '명령된 율법'이란 뜻으로 특별히 법규화되거나 명문화(明文化)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 율례(*, 후카) - '새기다'란 말에서 유래하였다(출12:14). 시공간을 초월한 전인류가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할 불변하는 하나님의 규례와 진리를 의미한다.

⭕ 법도(*, 토라) - '가리키다', '교훈하다'란 동사에서 유래하였다. 일반적인 도덕 원칙을 의미하나, 특히 '십계명' 또는 '모세 오경'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이처럼 본절에서 '명령', '계명', '율례', '법도'란 말들이 사용됨은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율법을 제정하기 이전에도 이미 그 근본 사상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성 경: [창26:7]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이삭]

⭕ 누이(*, 아호트) - 문자적으로 인척 관계인 '자매'를 뜻하나 은유적으론 매우 친근하거나 유사한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복 형제였던 것처럼 이삭과 리브가가 오촌지간이었다는 점에 근거할 때에(24:15) 본절에서 이삭이 리브가를 가리켜 '누이'라고 말한 것은 일면 타당성이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1) 사람을 기만하려 든 거짓말이며 (2) 하나님께서 맺어 주신 부부 사이를 부정한 것이란 점에서 지탄을 면할수 없다. 게다가 이 같은 잘못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범했던 것과 동일한 잘못이란 점에서(12:10; 20; 20:1-18) 우리는 부모의 그릇된 언행이 자녀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명히 교훈받을 수 있다(엡 6:4).

⭕ 아리따우므로(*, 토브) - '좋은', '아름답다'는 뜻으로 외모가 보기 좋다는 말이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처 사라도(12:11) 야곱의 처 라헬도 (29:17) 외모가 아리따운 여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점은 하나님께선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으로(삼상 16:7) 염치와 정절, 선한 행실로 자신을 아름답게 단장하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이다(딤전 2:9, 10).

⭕ 죽일까(*, 하락) - '죽일 의도로 때리다', '쳐죽이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이삭의 근심은 한갖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앞서 하나님께선 이삭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3절)는 보호와 인도하심의 약속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이 이방 족속을 두려워한 것은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인지를 잘 드러내 준다.

성 경: [창26:8]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이삭]

⭕ 껴안은 것(*, 차학) - '웃다'(18:13), '희롱하다'(39:14) 등의 다양한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애무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본문은 그 행동이 절정에 이르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으니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은 모습은 누가 목격해도 오누이 간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성 경: [창26:9]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이삭]

⭕ 불러(*, 카라) - '소리치다', '부르다'란 뜻이다. 본절에서는 아비멜렉이 창 밖으로 이삭을 향해 소리쳤다기 보다는 신하를 시켜 급히 '소환'했음을 의미한다.

성 경: [창26:10]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이삭]

⭕ 쉬웠을 뻔하였은즉(*, 키므앗) - '거의'(almost)란 뜻이다. 이 말은 그랄 백성 중 하나가 리브가를 범하려 할 뻔했던 위기상황에까지 이르렀었음을 암시해 준다.

⭕ 죄 (*, 아솽) - '파괴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큰 죄책'이나 '과오'를 의미한다. 한편 본절에서 아비멜렉이 이처럼 이삭의 잘못에 대해 신중히 대처한 이유는 과거 아브라함 당시 궁정에서 일어났던 같은 종류의 사건을 잊지 아니하였기 때문일 것이다(20:1-18).

성 경: [창26:11]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이삭]

⭕ 범하는(*, 나가) - 본래 의미는 '만지다', '타격하다'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자와 함께 '눕다', 여자의 정조를 '유린하다' 는 뜻이다.

⭕ 죽이리라(*, 모트 유마트) - 직역하면 '반드시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로 절대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엄중한 선엄임을 알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삭 스스로 확보할 수 없었던 안전을 이방의 왕을 통해 확보하게 하셨다. 즉 하나님은 이삭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통하여 그와 그 가족을 온전히 보존하시는 초월적인 섭리와 은혜를 베푸셨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영원하심 및 역사의 주관자 되심을 보여 준 귀한 사건이었다.

성 경: [창26:12]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우물로 인한 분쟁]

⭕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 가인(4:2)과 노아(9:20)에 이어 세번째로 나타나는 족장의 농사에 관한 기록이다. 이삭은 유목민인 아브라함과는 달리 반(半)유목민으로 간주될 만큼 농사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처럼 유목민이 땅을 개간한다는 것은 힘들고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니 자연히 그들은 시시때때로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하게 되었을 것이다.

⭕ 백배(*, 메아 쉐아림) - 문자적으로는 '백배의 분량'이다. 이처럼 이삭이 동일한 경작 조건에도 불구하고 블레셋 족속에 비해 백배의 수확을 얻었다는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의 결과이다. 이러한 사실에서도 우리는 비록 인간은 연약하고 불완전하며 왕왕 하나님의 뜻을 거스릴 때가 많으나 하나님께선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들에게 긍휼을 덧입히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애 3:31-33).

⭕ 얻었고(*, 마차) - 문자적인 뜻 '발견했다'이다. 본절에서 이 말은 이삭이 들에 나가 수확할 것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발견하고 놀라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와이바라 케후 예호와) - '그리고 그처럼 여호와께서 축복하셨다'란 의미로 하나님이 일전에 약속하신대로 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내포한다(3절). 이는 하나님의 이름에 있어 언약 관계에서 많이 사용되는 '예호와'란 명칭(엘로힘 대신에)이 사용된 점만으로도 알 수 있다<2절>.

성 경: [창26:13]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우물로 인한 분쟁]

⭕ 왕성하여(*, 할라크) - 직역하면 '갈수록'이다. '진행하며'(수6:14), '점점'(삼상 14:19)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본절에서 이 말은 '그가 계속 번창하게 되어갔다'란 뜻이다.

성 경: [창26:14]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우물로 인한 분쟁]

⭕ 양과 소(*, 미크네 촌 우미크네 바카르) - 직역하면 '양떼의 재산과 소떼의 재산'이다. 이와 같이 양과 소를 따로 구분함은 이삭의 살림살이가 심히 증대된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히브리인들은 소유하고 있는 가축의 수로 부를 가늠했었기 때문이다(12:16, 30, 43; 욥 1:3).

⭕ 노복(*, 아부다) - '일하다', '섬기다'에서 유래한 말로 주인에 예속된 종들을 가리킨다. 당시 이삭 가문에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모인 종들은 주로 비히브리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조, 20:14).

⭕ 시기하여(*, 카나) - 원뜻은 '열심을 내다'로 여기서는 크게 질투하며, 시샘하는 것을 뜻한다. 타인의 번영이나 성공에 대해 이처럼 까닭없이 배아파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성의 일면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우리 성도들은 이러한 옛 성품을 벗어 버리고 오직 새사람을 입어 대신(對神) 관계에서 뿐 아니라 대인(對人) 관계에서도 성숙한 모습을 지녀가야 할 것이다(엡 4:22).

성 경: [창26:15]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우물로 인한 분쟁]

⭕ 우물을 막고 - 물이 귀한 팔레스틴에서 이런 행위는 곧 전쟁 도발 행위요(왕하3:25;사15:6), 간접적인 추방 명령으로 간주되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25 원문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창26:16]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우물로 인한 분쟁]

⭕ 강성한(*, 아춤) - '힘이 센'(신7:1). '수가 많은'(민32:1;잠 7:26)이란 뜻이다. 이는 숫자적으로 이삭의 가세가 너무 강대하여 군사적으로도 블레셋인들에게 위협이 될 정도임을 뜻한다. 훗날 애굽에선 같은 이유로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바로에 의해 시기의 대상이 되어 노예로 전락되었다(출 1:9).

⭕ 떠나가라(*, 얄라크) - '가져가다', '옮기다'는 뜻으로 네 모든 권속과 가산을 가지고 이곳에서 떠나라는 강제 추방 명령이다. 그런데 맹세한 바를 죽기까지 준수하는 고대인들의 관습에 의거해 볼 때 아브라함과 맺은 호혜 조약(互惠條約)을 이처럼 쉽게 파기한 본절의 아비멜렉은 아브라함 당시의 아비멜렉이 아닌 것 같다(21:22-27). 이러한 사실은 (1) 아브라함 당시(B.C.2060년경)와 지금(B.C.1990년경)간에는 이미 70여년의 시간차가 있고 (2) '아비멜렉'은 '아버지의 왕'이란 뜻으로 고유 인명이 아닌 역대 블레셋 왕들의 공식 칭호였다는 점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1절>.

성 경: [창26:17]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우물로 인한 분쟁]

⭕ 골짜기(*, 나할) - 산기슭 아래쪽, 물을 구할 수 있는 평평한 분지를 의미한다. '그랄 골짜기'는 가사에서 남동쪽으로 약 15Km거리에 위치했었다.

⭕ 우거하며(*, 야솽) - 본래 의미는 '앉다'란 뜻으로 오랫동안 머물러 있거나 거주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삭은 블레셋 땅에서 약 15년 동안 거주하였다.

성 경: [창26:18]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우물로 인한 분쟁]

⭕ 다시 팠으니(*, 와야사브 와야포르) - 직역하면 '그리고 되돌아와서 팠다'이다. 이는 이삭이 오래 전 아브라함이 거하던 그랄 골짜기로 되돌아와 아브라함이 팠었던 브엘세바 우물 및 다른 몇몇 우물들을 다시 팠다는 뜻이다(21:22-34).

⭕ 그 아비의 부르던...불렀더라 - 이삭이 우물들의 본래 이름을 회복시킨 이유는 이 우물들에 대한 그의 권리를 확인함과 동시에 부친을 향한 그의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였다.

성 경: [창26:19]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우물로 인한 분쟁]

⭕ 샘 근원(*, 마임 하임) - 직역하면 '살아있는 물', 즉 '생수'란 뜻이다(레 14:5, 6; 계 21:6). 이는 풍부하고 수질이 좋은 새로운 샘을 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한편 이삭이 아브라함 당시에 팠던 우물들을 복구시킨 외에도(18절) 이처럼 새로운 우물들(20-22절)을 팠다는 사실은 그의 권속과 가축이 나날이 증대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성 경: [창26:20]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우물로 인한 분쟁]

⭕ 우물 이름 - 각 우물에 기념될 만한 이름을 부여한 것을 볼 때 팔레스틴내에서 우물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얼마만한 지를 짐작케 한다.(21:31).

⭕ 에섹(*, 에섹) - '억압하다', '강탈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일반적인 다툼보다 '불공평하게 강탈을 당하는 것'을 뜻한다. 이 우물의 이름에서 우리는 이방 땅에서 겪은 이삭의 고초와 비애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삭이 이 우물을 포기한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관대한 마음으로 양보한 것일 뿐이다. 사실 이삭에겐 마음만 정하면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는 많은 인력(人力)이 있었다(16절).

성 경: [창26:21]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우물로 인한 분쟁]

⭕ 싯나(*, 시트나) - '적대감'이란 뜻으로 원수같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의 사탄(*)에서 유래했다. 이같은 이름은 새로운 우물을 파려는 이삭의 두번째 시도가 처음보다 더 악의적인 도전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성 경: [창26:22]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우물로 인한 분쟁]

⭕ 거기서 옮겨 -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들의 영토라고 합법적으로 주장할 수 없는 지역으로 이전한 듯하다.

⭕ 르호봇(*, 레호보트) - '넓은 공간'이란 뜻이다. 이삭이 새로운 우물을 르호봇이라고 명명(命名)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가족과 가축들을 위해서 적절한 장소를 제공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였음을 암시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삭의 온유함에 따른 하나님의 축복과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으리라는 예수님의 팔복 교훈의 성취를 보게 된다(마 5:5). 한편 이곳 현재 브엘세바 남서쪽 약 30Km 지점에 위치한 엘 로케바(er-Rochebah)와 동일시된다.

⭕ 번성하리로다(*, 파라) - '열매를 맺다'는 뜻이나 본절에서는 풍성한 수확을 일컫기 보다는 숫적인 중가를 의미한다(1:28). 한편 이러한 이삭의 외침은 블레셋인들의 갖은 훼방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내하며 양보해 온 그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최후 승리, 번영을 기뻐한 개가(凱歌)라 하겠다.

성 경: [창26:23]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이삭에게 임한 하나님의 계시]

⭕ 올라갔더니(*, 아라) -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거나 낮은 지위에서 높은 지위로 격상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브엘세바는 실상 그랄보다 낮은 지역에 위치한다. 따라서 이 말은 지중해 지역에서 팔레스틴 지역으로 접근될 때 통상 '올라간다'고 말하는 것에 근거한 표현임을 알 수 있다(삿 11:13). 한편 이삭이 또다시 브엘세바로 이주한 원인은 분명찮으나 블레셋인들의 끊임없는 압력이 주 원인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 경: [창26:24]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이삭에게 임한 하나님의 계시]

⭕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 -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어진 언약이(17:7) 지금도 변함없이 유효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이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아브라함 자손이 된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계속 적용된다(롬 4:16).

⭕ 두려워말라(*, 알티라) - 낮선 땅 브엘세바에 이주한 이삭의 마음에 일어날 수 있는 불안과 동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주신 위로와 평강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선 과거 아브라함이 가나안 왕들과 싸운 후에도 이러한 권면을 주셨다(15:1).

⭕ 내 종 아브라함 - 본서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종'으로 일컬어진 곳은 이곳 뿐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소명받은 이후 줄곧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았음을 대변해 준다.

성 경: [창26:25]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이삭에게 임한 하나님의 계시]

⭕ 그곳에 단을 쌓아 - 부친의 신앙을 본받아 이삭이 하나님께 단을 쌓은 최초의 기록이다. 여기서 '단을 쌓았다'는 것은 하나님께 공개적으로 엄숙한 제사를 드렸다는 뜻이다. 이는 (1) 이삭이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총과 약속에 대해 감사하였다는 것과 (2)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셨던 장소를 성별하여 기념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 와이크라 베쉠 예호와) - 직역하면 '여호와 그 이름을 사용함으로 부르다'이다. 이는 여호와의 이름을 사용하여 그분의 권능과 섭리와 성품을 찬양하는 공식적인 경배를 의미한다(4:26). 이것은 이삭의 신앙이 보다 더 하나님 중심주의로 심화되어 가고 있다는 좋은 증거이다.

⭕ 팠더라(*, 카라) - '탐지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앞절(15, 18, 19, 22절)의 '파다'(히, 하파르)와는 달리 땅을 '파는' 행위만을 뜻한다. 이는 곧 하나님의 은총으로 쉽게 물을 얻을 수 있었음을 암시한다(32절). 한편 유목민이 우물을 팠다는 것은 그 지역에 오랫동안 정착할 의도를 갖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이삭은 헤브론으로 이주, 그곳에서 죽기 전까지 떠나지 않았던 듯하다(35:27).

성 경: [창26:26]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이삭과 아비멜렉 간의 화친]

⭕ 그 친구 아훗삿 - '친구'라는 정겨운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아훗삿'은 '아비멜렉'의 막역한 개인 고문 또는 조언(력)자인 듯하다.

⭕ 비골(*, 피콜) - '강한', '위대한'이란 뜻으로 블레셋의 군대 장관의 일반적 명칭인 듯하다.

성 경: [창26:27]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이삭과 아비멜렉 간의 화친]

'너희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템'(*)은 강의형(强意形) 인칭 대명사로서 이삭과 블레셋 간의 마찰은 전적으로 그들의 악한 행동에 기인하고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 떠나가게 하였거늘(*, 솰라흐) - 단순히 '내보내는 것'이 아닌 우격다짐

으로 '몰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블레셋인들이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번번이 내쫓은 것에 대한 북받치는 감정을 나타낸 말이다.

⭕ 어찌하여(*, 맛두) - '무슨 까닭이냐'는 강력한 반어법적 표현으로 그때의 형편으로는 도무지 올 수 없었는데 왜 왔느냐는 질문형 부사이다.

성 경: [창26:28]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이삭과 아비멜렉 간의 화친]

⭕ 여호와(*, 예호와) - 블레셋인들이 엘로힘(*)대신 여호와(*)란 명칭을 사용한 점은 그들이 아브라함, 이삭 등과 잦은 교제를 나누었기 때문에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들이 그 이름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사용했다고는 볼 수 없다.

⭕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라오 라이누 키하야) - 직역하면 '보면서 우리가 보고', 이는 곧 '우리가 명확히 안다'는 뜻이다. 이는 이삭이 그의 생활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뚜렷이 확인시켜 주었음을 짐작케 한다.

⭕ 맹세(*, 알라) - 본래는 상대방에게 저주가 임하기를 비는 '갈구'를 뜻하나 여기선 맹약한 바를 파기할 시엔 화(禍)가 있을 것임을 확약한 '맹세'를 의미한다.

성 경: [창26:29]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이삭과 아비멜렉 간의 화친]

⭕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 이 말속에 담긴 뜻은 만약 네가 우리를 노략하거나 훼방할 경우에 서로 맹세한<28절> 것을 파기한 대가 톡톡히 치룰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이삭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위협을 시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당시 이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막강했음을 암시해 준다.

⭕ 선한 일만...행하며 - 아비멜렉은 자신이 이삭에게 악행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구구한 자기 변명을 늘어 놓았다.

⭕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 이삭과 아비멜렉이 충돌치 않은 이유는 순전히 이삭의 관용과 화평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었지 아비멜렉의 극진한 배려 때문이 아니었다.

성 경: [창26:30]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이삭과 아비멜렉 간의 화친]

⭕ 잔치를 베풀매 - 이삭은 아비멜렉의 평화 협정 조약을 흔쾌히 승락하고 그 조약을 기념하는 관례적인 행사로 풍성한 식탁을 배설했다(31:54). 이 공동 식사는 앞으로의 관계 정상화를 다짐하는 우정의 연회였다.

성 경: [창26:31]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이삭과 아비멜렉 간의 화친]

⭕ 서로(*, 이쉬 레아히 우) - 직역하면 '한 사람이 그의 형제에게'. 원문은 '서로'를 단수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언약을 체결한 쌍방을 하나로 묶음으로써 서로를 더욱 결속시키는 효과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성 경: [창26:33]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이삭과 아비멜렉 간의 화친]

⭕ 세바(*, 쉬브아) - '일곱' 또는 '맹세'란 뜻이다<21:31>. 블레셋인과의 평화협정을 맺은 직후 파던 우물에서 물이 나오자 이삭은 이 모든 사건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알고 기념키 위해 이 같은 이름을 붙였다. 한편 이곳은 본서 저자인 모세 시대까지(오늘까지) '브엘세바'라 명명되었는데 그 이름은 이미 아브라함 때에(21:31) 붙여진 이름(우물에 국한)이지만 이삭이 그 이름을 거듭 명명함으로써 대대에 그 이름이 남기를 소망하였던 것 같다. 이후부터 '브엘세바'는 단순한 우물명이 아니라 성읍명으로 확정된 것 같다.

성 경: [창26:34]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에서의 결혼]

⭕ 사십 세에 -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할때와 같은 나이다(25:20). 아마 족장시대 때는 보편적으로 40세가 결혼 적령기였던 것 같다. 에서의 결혼 때에 이삭의 나이는 100세였다.

⭕ 헷 족속....아내로 취하였더니 - 에서는 아브라함 이래로 간직해 온 언약 가계로서의 순수한 영적 순결성을 저버리고 우상에 오염된 가나안 땅 헷 족속 여인을(23:3) 아내로 맞아들였다.

성 경: [창26:35]

주제1: [리브가 사건과 이삭의 우물]

주제2: [에서의 결혼]

⭕ 마음의 근심 (*, 모라트 루아흐) - '영혼의 괴로움'이란 뜻이다.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에서의 일부다처 행위와 가나안 헷족속인 며느리들이 보여 준 이방 생활 방식에 기인한 것이었다(28:8).

성 경: [창27:1]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이삭의 유언준비]

⭕ 나이 많아(*, 키 자켄) - '턱 수염'에서 파생된 '자켄'과 '...하는 때'란 뜻을 지닌 '키'가 합쳐져 문자적으로는 '늙은 때'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특히 '키'라는 말로써 본장의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 이삭의 늙은 '때'임을 강조하였다. 사람이 늙게 되면 시력이 약해지고(27:1;삼상 3:2), 넘어질 위험이 있으며(삼상 4:18), 또한 죽음이 바로 눈 앞에 있으므로(19:31;24:1), 더욱 스스로를 온전하게 다스려야 한다. 한편 당시 이삭의 나이는 약 137세(25:26;31:38;41:46;47:9), 야곱은 약 77세였다.

⭕ 어두워(*, 카하) - '약하다', '어둡다'란 뜻으로 기력이 쇠약해지는 것을 의미한다(사 42:4). 본절에서는 눈과 관련돼 시력이 급속히 약해지는 것을 표현한다(삼상 3:2).

⭕ 잘 보지 못하였더니(*, 메르오트) - '보다'란 동사 '라아'와 전치사 '민'(...부터)이 결합한 형태다. 이는 잘 보이던 상태로부터 보이지 않는 상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즉 이삭이 노안(老眼)으로 거의 실명(失明) 상태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 내 아들아 - 장자 에서에 대한 극진한 애정이 담긴 부름으로 '내 사랑하는 아들아'라는 친근한 말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22:7), 리브가가 야곱을(8절) 각각 이렇게 불렀다.

성 경: [창27:2]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이삭의 유언준비]

⭕ 어느 날 죽을는지(*, 욤모티) - 직역하면 '나의 죽음의 날을'이다. 이삭은 현저하게 나타나는 노쇠 현상과, 현재 자신의 나이와 갈은 137세의 나이로 14년 전에 죽은 이스마엘의 죽음에서(25:17) 어떤 암시를 받아 임종을 대비코자 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사망한 것은 180세 때에 이르러서였다(35:28).

성 경: [창27:3]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이삭의 유언준비]

⭕ 그런즉(*, 웨아타) - '아타'는 부사로서 '지금'을 뜻하므로 직역하면 '그러므로 지금'이 된다. 이는 이삭의 급박한 마음을 암시한다.

⭕ 기구 - '과정을 완성하다'란 히브리어 동사 '칼라'(*)에서 유래하였다. 주어진 봉사나 직업이 적합한 '장비'나 '용기'(왕하 12:13), '도구'(왕상 6:7) 혹은 '무기'(삿 18:16)를 뜻한다. 여기서는 사냥용 무기를 가리키는데 뒤이어 그것이 멀리서도 목표물을 잡을 수 있는 활 종류임을 밝히고 있다.

⭕ 가지고(*, 사 나) - '사'는 '가지다', '들다'란 의미의 동사 '나사'(*)의 명령형이고. '나'는 '제발'(please), '청컨데'라는 간청을 뜻한다. 따라서 문자적으로는 '제발 원하기는 가지고'이다. 에서에 대한 이삭의 지극한 관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 들에 가서 - 성채가 둘러쳐진 마을의 뜰과는 구별되는 야생 동물들의 서식처로 가라는 말이다.

성 경: [창27:4]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이삭의 유언준비]

⭕ 즐기는(*, 아하브) - '애정을 갖고 있는'이란 뜻이다. 다른 것과 비길 수 없을 정도로 선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 별미(*, 마트아밈) - '맛을 보다'란 동사 '타암'에서 유래한 말로써 '맛 좋은 음식'이란 뜻이다.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기 위해 자신이 평소 특별히 즐기던 사냥 고기를 준비케 했다.

⭕ 내 마음껏(*, 나프쉬) - 직역하면 '내 영혼이'이며 의미상으로는 '내 정성을 쏟아'이다. '네페쉬'는 사람의 영적, 의지적 욕구, 즉 '소망' 혹은 '의지'를 지칭하는 단어이다(출 15:9;신 21:4). 이삭이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야곱이 상속자 임을 밝히는 계시가 주어졌을(25:23) 뿐 아니라 에서의 장자권에 대한 무시와 포기(25:33)및 에서의 이방인과의 결혼(26:34) 등으로 에서에게는 장자권이 주어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혈연적 장자권에 연연하여 에서에게 장자권을 계승코자 했음을 보여 준다. 그 이유는 별미로 인한 에서에 대한 편애(25:28)와 연로함으로 인한 영적 식별력 둔화 때문이다.

⭕ 축복하게 하라 - 족장시대 때 각 족장들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아들들에게 축복하는 것이 관례였다(49장). 이 축복은 단순한 아버지로서의 소원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언약의 가계를 이어 나갈 자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며 앞날에 있을 구체적인 사실들을 예언하는 종교적 내용이 함축된 것이다(50:24;신 33장;왕상 2장).

성 경: [창27:5]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야곱을 위한 리브가의 계교]

⭕ 들었더니(*, 쇼마트) - '듣다'란 동사 '솨마'의 분사형으로 계속적인 행동을 나타낸다. 즉, 이삭이 에서에게 말하고 있을 때 리브가가 전부 듣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성 경: [창27:7]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야곱을 위한 리브가의 계교]

⭕ 여호와 앞에서 (*, 리프네 예호와) - '리프네'는 '얼굴'이란 명사 '파님'에서 파생된 말로 '향하고'(18:8), '대면하여'(32:30), '맞은 편'(출 14:2) 등 다양하게 번역되나 여기서는 '여호와'란 명칭과 합쳐져 '여호와의 권위에 입각해서'란 의미가 담겨있다(Ainsworth). 왜냐하면 족장의 축복은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부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48:20).

⭕ 네게 축복하게 하라(*, 와아바레크카) - '축복하다'란 동사 '바라크'의 피엘(piel), 미래형으로 '그리고 너를 필연코 축복하리라'란 뜻이다. 이 동사와 앞에 사용된 동사 '웨오케라'(*, 나로 먹게 하여)와 이어져 이삭의 고조된 감정 상태와 강한 결심을 나타낸다.

성 경: [창27:8]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야곱을 위한 리브가의 계교]

⭕ 내 아들아 - 야곱에 대한 리브가의 지극한 사랑을 대변해 주는 부름이다<1절>.

⭕ 내가(*, 아니) - 일인칭 대명사로서 일의 주체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즉 야곱의 장자권 탈취 계획이 전적으로 리브가 자신에 의해서 주도 됨을 밝히는 어투이다.

⭕ 명하는 대로(*, 라아쉐르 메차우) - '...대로'를 뜻하는 '라아쉐르'와 '명령하다'란 뜻의 동사 '차와'의 미래형이 합쳐졌다. 따라서 '내가 주는 그 명령들대로'란 번역이 낫다. 여기서 리브가가 책략과 결단에 있어서 얼마나 뛰어난 여자인가를 볼 수 있다. 사실 그녀는 과거에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을 통해 이삭과의 결혼 제의를 받았을 때에도, 신속히 마음을 결단하고 행동했었다(24:58).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결단력은 신적 예언(25:23)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술수를 따라 병약한 남편의 약점을 이용한 인간적인 발상이란 점에서 그녀에게 허물이 있다. 아무리 하나님의 예언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성급히 그것을 이루려 들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그분의 성취케 하시는 역사를 따르는 것이 신앙인의 정도(正道)이다.

성 경: [창27:9]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야곱을 위한 리브가의 계교]

⭕ 염소의 좋은 새끼(*, 쉐네 게다에 이짐) - '둘'을 뜻하는 '쉐네'와 '새끼 염소'를 나타내는 '게디'와 '건강하다'란 '아자즈'에서 파생한 '에즈'가 합쳐져 '좋은 염소 새끼 두마리'(KJV, two good kids of the goats)이다. '염소 새끼 두 마리'가 선택된 것은 에서가 준비하는 고기보다 더 많은 고기를 이삭에게 요리해 드리려 함이었다. 특히 '게디'는 야생 동물의 고기와 그 맛이 거의 같아 요리의 훌륭한 재료가 될 뿐 아니라 이삭을 속이기에 용이했다.(삿 6:19;13:15;삼상 10:3).

성 경: [창27:10]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야곱을 위한 리브가의 계교]

⭕ 죽으시기 전 (*, 리프네 모토) - '...전(前)'을 뜻하는 전치사 '리프네'와 '죽음'을 나타내는 동사 '무트'에 3인칭 어미를 합쳐 '그의 죽음 직전'을 가리킨다. 구약의 많은 경우가 임종을 앞둔 자의 유언의 효력에 대한 특유의 믿음을 보여 줌으로(48:10-20;삼하 23:1-7; 왕상 2:1-4) 죽음의 장엄성을 느끼게 한다.

성 경: [창27:11]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야곱을 위한 리브가의 계교]

⭕ (*, 헨) - 개역 성경에는 생략됐으나 원문에는 야곱의 말 서두에 첨가되어, 주의를 환기시키는 '보라(KJV, Behold)란 뜻의 감탄사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주로 그 다음에 나오는 정보를 강조할 때 쓰는 용어로써 본절에서는 야곱 자신의 난처한 입장을 호소할 의도로 사용되었다.

⭕ 매끈매끈한(*, 하라크) - 강가의 매끄러운 돌처럼(사 57:6) 부드러운 면을 표현하는 형용사이다. 야곱은 털이 많은 에서와 자신의 매그러운 피부를 의도적으로 대조시켜 이삭을 속이기가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성 경: [창27:12]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야곱을 위한 리브가의 계교]

⭕ 만지실진대(*, 마솨쉬) - 일반적으로 어떤 대상의 신원 확인을 위하여 만져 보는 행위를 가리키나(12, 21, 22절) 강의형(强意形)으로 쓰일 경우에는 단순히 '더듬는' 것(신 28:29;욥 5:14)과 '찾는' 행위(31:34, 37)를 나타낸다. 본문에서는 단순형으로서 이삭이 에서의 신원 확인을 위해 야곱을 만질 경우를 예상한 말이다.

⭕ 속이는 자(*, 메타아테아) - 이는 '타인을 실족케 하는 자'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에 대해 혹자는 '놀리는 자(비웃는 자)'라고 주장했으며(Keil Lange). 어떤 이는 '타인의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자'라고 보기도 한다(Murphy, Rosenm ller). 여기는 두 견해를 모두 수용할 수 있다.

⭕ 저주(*, 케라라) - '가볍게 하다'란 뜻의 '카랄' 동사에서 유래하였다. 이미 부여한 지위를 박탈하려는 의도를 공식적으로 표현할 때, 혹은 선택된 자로서의 축복을 제거할 때 쓰이는 용어(렘 24:9)이다. 구약의 히브리인들은 가부장의 권한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했으며 아버지가 자녀에게 수여하는 복과 저주는 곧 신적 권위를 지닌 것으로 믿었다(9:25-27; 49:2-28). 그러므로 야곱이 아버지의 저주를 두려워 한 것은 당연했다.

성 경: [창27:13]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야곱을 위한 리브가의 계교]

⭕ 너의 저주는 내게로 - 리브가는 주저하는 아들에게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아들에게 임할 저주를 자기가 담당할 것이라 했다. 이는 모성애 이상의 초의지로서 자신이 계시받았던 야곱의 번성<25:23>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인간적인 사악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려 했던 잘못된 억지였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결코 사악한 방법을 동원치 않으신다.

성 경: [창27:14]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야곱을 위한 리브가의 계교]

⭕ 취하여 (*, 라카흐) - '잡다', '탈취하다'란 뜻으로 영역에서는 '가져오'(KJV, fetched)로 번역했으나 '손으로 죽이다'는 의미도 지닌다(왕상 19:10, 14). 이 말은 야곱이 직접 짐승을 죽여서 가져옴으로 모든 일이 비밀스럽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성 경: [창27:15]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에서로 가장한 야곱]

⭕ 집 안(*, 바바이트) - '안'을 뜻하는 전치사 '바'와 '집'을 나타내는 '바이트'가 동시에 사용된다. 이는 건축물로서의 가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의미하는 것 같다(33:17).

⭕ 좋은 의복(*, 하무도트) - '갈망하다', '기뻐하다'란 동사 '하마드'에서 유래한 명사로 '호감이 가는 옷' 또는 '좋은 옷'이란 뜻이다. 이는 권세있는 자들이 의식이나 축제때 입기 위해 간직하던 외출복, 아름답고 값진 천으로 만든 두루마기 겉옷을 가리킨다(39:!2-16). 특히 에서가 입던 이 의복은 지체높은 사냥꾼들이 입던 예복으로 들의 향취와 에서의 체취가 어우러져 시각보다 후각이나 촉각에 더 의존하던 이삭으로 하여금 야곱을 사냥꾼으로 오해케 하였을 것이다.

성 경: [창27:16]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에서로 가장한 야곱]

⭕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 팔레스틴의 염소털은 매우 보드랍고 윤기있어 마치 사람의 털을 연상케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삭이 털이 많은 에서로 위장하는데 이 염소 새끼 가죽이 적절히 사용될 수 있었다.

⭕ 꾸미고(*, 라베쉬) - '옷을 입다', '덮다'란 뜻으로 단순히 옷을 입는 행위뿐만 아니라 본절에서와 같이 몸치장을 위해 무엇을 부착하는 행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문법적으로 사역형인 히필(hiphil)형을 사용하여 리브가가 야곱 스스로 염소털로 몸을 위장하게 했음을 나타낸다. 이는 야곱이 이삭을 속이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는 리브가의 계획에 억지로가 아닌 자신의 의사로 가담하고 있음을 암시하여, 그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타인의 강요에서 비롯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말1:2, 3).

성 경: [창27:18]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에서로 가장한 야곱]

⭕ 네가 누구냐 - 야곱은 에서의 목소리를 흉내내었으나 이삭이 이상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재차 그 신분을 정확히 확인키위해 위의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이삭의 신체 기능은 자식들을 뚜렷이 식별할 수 없게끔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성 경: [창27:19]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에서로 가장한 야곱]

⭕ 일어나(*, 쿰) - 이 동사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데 (1) 단순히 '일어섬'을 뜻하는 신체적 행동과 (2) 떠날 것을 촉구할 때 (신 17:8), (3) 엎드린 위치에서 일어나는 것(수3:16) 등이다. 본절에서는 이삭이 노쇠하여 침상에 누워있는 상태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것을 나타낸다.

성 경: [창27:20]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에서로 가장한 야곱]

⭕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 예호와 엘로헤카) - 직역하면 '너의'를 뜻하는 인칭 대명사가 접미되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가 된다. 이것은 야곱의 더욱 사악해진 위선을 보여 준다. 이와 더불어 앞절에는 세번에 걸친 야곱의 거짓말이 나타나는데 (1) 자신을 에서라 칭한 것 (2) 아버지께서 명령하신대로 했다는 것 (3) 자기가 사냥했다는 것 등 이다. 이처럼 야곱은 한가지 거짓을 은폐하기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하고 그것의 합리화를 위해 급기야는 하나님의 이름까지 망령되이 일컫는 가중한 죄악을 범하였다.

⭕ 만나게(*, 카라) - '마주치다', '발생하다'란 일반적인 뜻도 지니나 여기서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24:12;42:38; 출 1:10). 즉 야곱은 사냥감을 얻게 된 것이 순전히 하나님의 인도 덕택이었다고 이삭을 설득하기 위해 이 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이 거짓말의 대가로 훗날 험악한 세월을 보냈으며(49:9) 친히 다른 사람들부터 여러번 속임을 당해야만 했다(29:25;31:7;37:33). 성경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교훈한다(갈 6:7).

성 경: [창27:21]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이삭의 확인 절차]

⭕ 가까이 오라 (*, 게솨 나) - '지금'을 뜻하는 '나'와 '접근하다'란 동사 '나가쉬'(*)의 명령형이 합쳐져 '지금 가까이 다가오라'이다. 특히 '나가쉬'는 실제적인 접촉을 의미하는 '카라브'(*, 신 22:14)와는 달리 만지고(29:10), 먹고 (48:10), 포옹할(48:10) 수 있을 만큼의 접근을 의미한다. 이삭은 야곱에게 자신이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라고 명하고 있다.

성 경: [창27:23]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이삭의 확인 절차]

⭕ 분별 (*, 히키로) - '알아보다', '식별하다'란 뜻을 지닌 '나카르'(*)에서 유래하여 어떤 대상을 식별할 목적으로 자세히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룻 3:14;욥2:12). 특히 본절에서는 강조를 뜻하는 사역 능동형을 사용하여 이삭이 야곱의 손을 촉각을 통해 세밀히 조사함으로 그가 과연 에서인지를 확인하려는 그의 고심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삭이 능히 분별치 못한 것은 노쇠한 탓도 있으나 결국은 하나님의 예정하신 섭리 때문이다(25:23).

성 경: [창27:25]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야곱에게 내린 이삭의 축복]

⭕ 가져 오라(*, 하기솨) - 정관사 '하' 와 '가까이 끌다'란 동사 '나가쉬'(*)의 사역 능동형이 합쳐져 '너는 가까이 가져오라'는 의미이다.

⭕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 에서로 변장한 야곱에 대한 이삭의 의심이 모두 가시고 이삭은 이제 그에게 언약의 후손으로서의 축복을 빌기로 했다. 이러한 결론은 야곱과 리브가의 간계로 승리로 볼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야곱을 언약 후손으로 선택하였던(25:23) 하나님의 묵허와 관용과 자비로우신 인도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추악한 인간의 술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구속사(Heilsgeschichte)를 성취해 가신다(롬 11:36).

성 경: [창27:26]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야곱에게 내린 이삭의 축복]

⭕ 입 맞추라(*, 솨카) - '마시게 하다', '축축하게 하다'란 동사에서 파생된 명령형으로 '너는 축축하게 하라'는 말이나 주로 '입맞춤'을 뜻한다. 히브리인에게 이 행위는 우정(삼하 20:9;마 26:48)과 우애(29:13) 그리고 충성을(삼상 10:1;시 2:12) 표시한다. 특히 본절에서는 부자간의 애정과 신뢰와 하나님을 확인하는 표시로 쓰였다.

성 경: [창27:27]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야곱에게 내린 이삭의 축복]

⭕ 맡고(*, 야라흐) - '감각적인 인식'외에 '지적 인식'의 의미도 지니는 이 단어는 이삭이 입은 에서의 옷에서 나는 향취를 맡으므로 앞에 있는 아들이 에서임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평소 에서가 돌아다니던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의 사냥을 연상하였음을 암시한다.

⭕ 여호와의 복 주신 발 - 약속의 땅 가나안을 일컫는다. 이삭은 아들의 옷에서 배어나온 가나안 들판의 흙내음을 맡고 끓어오르는 감흥으로 축복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때 이삭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전해 받은 많은 후손과 가나안 땅에의 약속을 비록 자신의 생전에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의 후대에 온전히 성취될 것을 믿음으로 내다보고 축복의 말을 전했던 것이다(히 11:20).

성 경: [창27:28]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야곱에게 내린 이삭의 축복]

⭕ 이슬 - 팔레스틴에서는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하므로 많은 양의 이슬이 내려 가뭄에도 식물이 살아남을 수 있다. 식물의 생존에 절대 필요한 이러한 이슬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신 33:28;잠 3:20), 하나님과 왕의 총애(잠 19:12)를 이슬이 내리는 것에 비유하기도 하였다(시 133편). 본문에서 이삭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이슬을 풍작과 관련시켜 매일의 양식을 기원하고 있다.

⭕ 기름짐(*, 쉐만님) - 안정과 번영을 뜻하는 '솨멘'에서 파생되었다. 이는 비유적으로 토지가 비옥한 것을 의미한다. 결국 토지의 비옥함은 소산물의 풍성함을, 더 나아가 풍요롭고 안정된 생활을 뜻한다. 출 3:8에서 가나안 땅은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되어 있다.

성 경: [창27:29]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야곱에게 내린 이삭의 축복]

⭕ 만민이 ... 섬기고 ... 굴복하리니 - 가나안 땅의 실질적인 주인이 될 것과 근방의 여러 족속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예언한 구절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다윗과 솔로몬 때에 일시 성취되었으며(왕상 9:20, 21), 메시야의 도래로 영적으로도 성취되었고(마 12:28), 지금도 완성되어 가며(마 28:!8-20), 미구에 메시야의 재림으로 궁극적인 완성을 볼 것이다(계 22:5).

⭕ 형제들의 주(主)가 되고 - 이는 정치, 문화, 군사 등 전반에 걸쳐 야곱이 친족과 더 나아가 세상에서 통치권자가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는 언약의 후손들에게 거듭 약속된 것으로 예수에게서 최종 완성 되었다(빌 2:10, 11).

⭕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오라레이카 아루르) - '오라레이카'는 '저주하다'를 뜻하는 '아라르'의 복수형에 2인칭 대명사를 접미시켜 '너를 저주하는 자들'이란 뜻으로 복수를 의미한 반면 '저주를 받고'는 단수로 표현했다. 이는 '네 저주자들은 그 각개인이 저주를 받고'란 의미로 그 축복이 더욱 밀도있게 강조됐다. 결국 이삭이 야곱에게 이 땅에서 정치, 경계적 축복은 물론 하나님의 축복의 대리자가 될 것임을 강조하였다(12:3).

성 경: [창27:30]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에서의 통곡과 그에 대한 예언]

⭕ (*, 아크) - 개역 성경에는 생략됐으나 원문에는 이 말을 삽입하여 야곱이 피한 직후 에서가 들어왔음을 강조하였다. '과연'으로 옮겨질 수 있는 이 말은 내용의 급박성을 강조할 때 주로 사용되나 번역되지 않을 경우도 많다(출 12:15;레 23:27;시37:8). 이와 같이 야곱이 아슬 아슬하게 들킬뻔한 위기를 모면한데서 인간의 운명과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다.

성 경: [창27:31]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에서의 통곡과 그에 대한 예언]

⭕ 일어나서... 잡수시고(*, 야쿰 요칼) - '일어나다'의 뜻인 '쿰'이란 동사와 '먹다'란 동사 '아칼'의 연장형이 사용되어 공손한 어투로 변해 '원컨대 일어나 잡수소서'로 이해된다. 여기서 에서의 말은 야곱보다(19절) 훨씬 친근감과 존경심이 넘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인간 관계라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대신할 수 없다.

⭕ 내게 축복하고서 - 이미 자신의 맹세로 장자의 명분을 팔아 언약의 전승자로서의 위치를 상실한 에서가 언약 계승의 축복을 원함은 무지한 처사였다. 이처럼 에서가 장자권을 경솔히 여긴 것을 볼 때 어떤 면에선 그가 요구한 축복이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었을 것이다.

성 경: [창27:32]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에서의 통곡과 그에 대한 예언]

⭕ 너는 누구냐 - 망연 자실(茫然自失)한 이삭의 질문이다. 이삭은 떨쳐버릴 수 없었던 불길한 예감(18절)이 현실로 드러났음을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성 경: [창27:33]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에서의 통곡과 그에 대한 예언]

⭕ 심히 크게 떨며(*, 예헤라드 하라다 게돌라 아드리메오드) - 3중 강조법올 사용하여 이삭의 극심한 감정의 변화를 강조했다. 즉 비범한 상황 앞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동요를 뜻하는 '하라드'에 동일 어근에서 추출한 '하라다' 곧 '떨림'을 붙이고, 연이어 '크다'란 뜻인 형용사 '게돌라'와 '매우 극렬한'을 의미하는 '아드 메오드'를 합쳐 '그가 매우 극렬하게 큰 경련으로 떨었다'란 말이다. 이삭은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예정을 깨달았으며 에서를 축복하려 했던 자신의 실수로 인하여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것이다(Calvin).

성 경: [창27:34]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에서의 통곡과 그에 대한 예언]

⭕ 방성대곡(*, 체아카 게돌라 우마라 마드 메오드) - '흥분하여 울다'란 동사에서 파생된 '체다카'와 '쓰다'란 뜻인 '마라르'의 명사 '마라'에 '아주 심한'이란 부사구가 결합해 '매우 심한 비통의 큰 울음'이란 의미이다. 이처럼 에서는 울면서 축복을 구했지만 결코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히 12:16, 17). 이는 마지막 날 사단의 노예로서 끝까지 그리스도를 부인하다가(벧전 5:8) 끝내 처절한 회한의 눈물을 흘리게 될 불신자들의 울부짖음을 예시해 준다(마 25:30). 한편 그 당시의 울부짖음은 그 자신의 망령된 행실에 대한 참회의 울음이 아니라 부친 이삭의 마음올 변화시키려는 의도에서 기인한 것 같다.

⭕ 그리(*, 감) - '다시', '똑같이'란 의미로 방금 말한 진술이나 표현을 강조할 때와 클라이막스를 표시하는데 사용된다. 에서는 조금전에 야곱에게 베풀어준 똑같은 축복을 졸랐다. 그는 여전히 장자권을 쉽게 생각했던 자신의 허물과 야곱을 약속의 후손되게 하신 하나님의 초월적인 섭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성 경: [창27:35]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에서의 통곡과 그에 대한 예언]

⭕ 간교하게(*, 베미르마) - '기만하다', '배반하다'는 뜻의 '라마'(*)에서 유래한 말로서 야곱의 교묘한 술책을 꼬집는 말이다.

⭕ 네 복을 빼앗았도다 - 이 말 속에는 이삭 자신은 에서에게 복을 주고 싶었으나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암시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33절>.

성 경: [창27:36]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에서의 통곡과 그에 대한 예언]

⭕ 야곱 (*) - '발꿈치를 잡은 자', '사기꾼', '빼앗는 자' 등의 뜻을 지닌 이름으로 본절에서 야곱이 두 번이나 에서를 속였다는 사실에서 야곱이란 이름이 그에게 합당하다는 뜻이다.

⭕ 빼앗고...빼앗았나이다 - 이는 순전히 에서의 인간적인 생각이었다. 그의 장자권은 자의(自意)로 야곱에게 넘겨졌던 것이며(25:33), 장자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이미 야곱에게 허락하신 것이었다

성 경: [창27:37]

주제1: [이삭에게 축복받는 야곱]

주제2: [에서의 통곡과 그에 대한 예언]

⭕ 세우고 (*, 심) - '어떤 신분에 두다'란 의미이다. 따라서 '야곱을 에서의 주로 세운다'란 말은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을 정복할 것을 예고한 말로 볼 수 있다(삼하 8:14; 왕상 11:11:15, 16; 왕하 14:7-10).

⭕ 할 수 있으랴(*, 에에세) - '여건을 조성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 '아사'

의 미래형으로 이제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