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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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빌립보서 주석



성 경: [빌1:1]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인사말]

⭕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 본문의 인사말 속에 바울과 디모데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당시 디모데가 빌립보 교회에 잘 알려진 지도자였으며(Kent), 바울이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낼 계획이었기(2:19, Martin)때문이다. 바울이 다른 서신과는(롬 1:1;딛 1:1) 달리, '사도'라는 호칭은 사용하지 않고 자신을 '종'으로만 표현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이다. (1) 바울이 빌립보에서는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서 도전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서 옹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2) 그곳 신자들과의 깊은 사랑의 결속력 때문에 사도라는 호칭을 쓸 필요가 없었다(Kent). '종'에 해당하는 헬라어 '둘로이'(*)는 문자적으로 '노예'라는 말이다. 바울이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죄의 공포(恐怖)로부터 해방된(롬 6:18,22) 기쁨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시사한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편지하노니 - 본절은 수신자에 대한 언급이다.

⭕ 성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기오이스'(*)는 히브리어 '카다쉬'(*, '분리하다')와 같은 의미이다. '카다쉬'는 구약의 제사에서 정결 의식을 통해 죄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죄로 부터의 분리는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의미한다(Martin). '분리된 자'에 해당하는 '하기오스'는 신약에서 거룩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한 백성 즉 교회를 가리킨다.

⭕ 감독 - 이것은 '장로'라는 말과 거의 같이 사용되었다(딤전 5:1;딛 1:5-7;벧전 5:1,2, presiding elders, JB). 여기서 '감독'은 하나님의 백성을 주관하도록 선택된 목사와 장로들과 기타의 사역자들을 포함한다(Calvin). 이들의 책임은 하나님 교회 교인들을 양육하고 인도하는 것이었다(Martin).

⭕ 집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노이스'(*)는 공동체(共同體)를 위하여 일을 하는 사람이었으나 여기서는 성도들을 위하여 서로 돕는 일과 다스리는 일을 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Easton). 바울이 감독들과 집사들을 특별히 언급한 것은 빌립보 교회의 감독이었던 에바브로디도가 편지를 가지고 빌립보에 갈 때 그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함이었고, 빌립보 교회에서 감독들과 집사들이 헌금을 모아서 바울에게 전해 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Meyer, Chrysostom).

성 경: [빌1:2]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인사말]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은혜'는 인간의 행위에 관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오는 선물이다. '평강'은 그 '은혜'의 결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화목(和睦)을 누리고 사람들 사이에 화해를 이룸을 의미한다(Vincent). 이러한 '은혜'와 '평강'의 근원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것은 당시 헬라의 인사와는 다른 것임을 나타낸다(Hawthorne).

성 경: [빌1:3]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빌립보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 바울은 그의 몇 서신을 제외하고(딤전, 딛) 거의 전 서신에서 감사로 시작하고있다.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다. (1) 혹자는 '너희가 나를 생각하므로'로 해석한다(Moffatt). 그래서 바울이 옥중에 갇혔을 때에 빌립보 교인들이 보여준 사랑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2) 혹자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로 해석한다(Hendriksen, Kent). 두 해석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본절은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과 그의 감사가 빌립보 교인들과 전에 나누었던 교제를 통해서 온 것임을 시사한다.

성 경: [빌1:4]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빌립보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 본절은 바울의 감사를 진술한 3절과 5절 사이에 삽입된 구절이다(Martin, Lightfoot, Muller, Hendrikse-n, Hawthorne). '간구'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에세이(*)는 문자적으로 '결핍(缺乏)' 혹은 '필요'를 의미하나, 본절에서는 '기도'를 가킨다(RSV, NEB, NIV).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 사랑과 필요를 알고 하나님께 간구함으로써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 사이의 상호 이해와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Hawthorne). 이런 바울의 간구는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다. 비록 바울이 옥중의 고난 가운데서 처해 있었을지라도 변하지 않는 기쁨으로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기꺼이 간구한 것이다.

성 경: [빌1:5]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빌립보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 본절은 3절과 연결된 것으로 감사의 이유이다. '복음에서'라는 말의 헬라어 '에이스 토 유앙겔리온'(*). 이것은 빌립보 교인들이 행했던 기도와 헌금이 복음 전파에 기여하였음을 시사한다. 한편 '너희가 교제함을'의 헬라어 '에피테 코이노니아'(*)에서 전치사 '에피'(*, '위에')는 빌립보 교인의 행함이 '교제'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음 나타낸다. '교제'는 신약성경에서는 관대함을 표현하거나(고후 9:13) 연약한 성도들을 도울때(롬 15:26) 사용되었다(Campbell). 본절에서의 교제는 최근에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에게 보낸 선물은 물론 좀더 넓은 차원의 교제를 의미한다. 즉 본절에서의 교제는 빌립보 교인들이 사도 바울의 고난에 동참(同參)하였던 교제와 예루살렘 교회가 궁핍에 처했을 때 구제했던 교제를 모두 가리킨다(롬 15:26;고후 8:1-5;9:13). 그런데 이러한 교제는 바울이 빌립보 지역을 처음 방문하여 선교하는 '첫날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바울이 빌립보에 도착하여 복음 사역을 시작할 때, 루디아는 그의 집을 개방하였고(행 16:14,15), 간수는 그를 친절하게 대접하였으며(행 16:19-34) 2차 전도 여행시 바울이 데살로니가(빌 4:16)와 고린도(고후11:9)에 있을 때,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헌금을 보내오기도 했다.

성 경: [빌1:6]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빌립보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 '착한 일'을 혹자는 빌립보 교인들이 '헌금을 가지고 전도 사역에 참여한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ightfoot, Martin). 그러나 이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Kent). 오히려 본절의 '착한 일'이란 하니님께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베풀어 주신 '구속 사역의 은혜'를 의미한다(Barth, Caird, Hendriksen).하나님은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실 뿐만 아니라 끝까지 이루시는 분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구속 사역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온전히 이 일을 완성하실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 본절은 하나님께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는 날을 의미한다. 본절의 '날'은 '그 날'(고전 3:13;살전 5:4;살후 1:10), '그리스도의 날'(10절,2:16), '주의 날'(고전 5:5;살전 5:2;살후 2:2), '우리 주 예수의 날'(고전 1:8;고후1:14) 등과 같은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가리킨다. 이 날은 마지막 심판의 날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시작하신 '착한 일' 즉 '구속사역의 은혜'를 완성하는 날이다.

성 경: [빌1:7]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빌립보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 사도 바울의 마음 속에 목자적인 심정이 있음을 나타낸다(Martin). '생각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네인'(*)은 본서에서 자주 사용된 말로서, 지적인 생각뿐만 아니라 애정과 관심을 갖는 마음의 상태까지도 의미한다(Michael).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인들과 갖는 복음의 진보를 위한 교제는 첫날부터 항상 그의 마음속에 있었으며, 그들에 대한 생각은 사랑의 감정으로까지 발전했음을 시사한다.

⭕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 문자적으로 '내가 너희를 마음에 두다'라고 해석된다. NEB에서는 '휘마스'(*, '너희들')를 주어로 하여 '너희가 나를 다정하게 여기다'(you hold me in such affection)로 해석하였으나, '메'(*, '나를')를 주어로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I have you in my heart, KJV, NIV, RSV). 한편 '마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르디아'(*)는 인간의 의식과 인격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헬라인들이나 히브리인들은 '마음'이라는 말을 정신과 의지(意志)를 포함하는 말로서 사람의 가장 솔직한 본성을 표현할 때 사용하였다(TDNT). 따라서 본절은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마음속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 '매임'(*, 데스모이스), '변명함'(*,아폴로기아), '확정함'(*, 베바이오세이)은 전부 법률적인 용어로(행 25:16;딤후 4:16;히 6:16, Deissmann) 바울 사도가 실제로 복음 전파로 인하여 투옥되었으며(엡 6:20;골 4:18) 법정에 서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였음을 시사한다(행 26:29). 바울은 본절에서 빌립보 교인들이 위험한 가운데서도 헌금과 교제를 통해서 바울의 복음 사역을 도왔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충성(忠誠)함으로 자신과 함께 특권을 가지고 투옥과 재판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Caird, Ma-rtin, Kent). 왜냐하면 바울이 당하는 고난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며 교회를 위한 것으로(엡 3:13;골 1:24;딤후 2:10), 바울의 투옥과 재판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영향(影響)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성 경: [빌1:8]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빌립보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 '심장'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플랑크노이스'(*)는 짐승의 내장, 특히 심장, 간, 허파, 콩팥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신약에서는 창자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행 1:18). 그러나 본래 '스플랑크노이스'는 물질적인 것을 가리키는 경우보다는 '마음'이나 '감정'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Hendriksen). 그러므로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 사랑하셨던 마음을 가지고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바울이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 안에서 성령이 역사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가 바울이 가진 사랑의 중심이셨기 때문이다(Bengel).

⭕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 본절은 바울이 얼마나 깊이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는지는 마음을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심을 시사한다(Chrysostom, Vincent, Muller, Kent). 바울은 그의 다른 서신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증거하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증인이심'을 자주 사용한다(롬 1:9;고후 1:23;살전 2:5,10).

성 경: [빌1:9]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빌립보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 내가 기도하노라 -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보고 싶었지만 옥중에 있었기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단지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울은 3절과 4절에서 나타나고 있는 기도의 주제들을 9절에서 11절까지에서 세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Lenski).

⭕ 너희 사랑을...풍성하게 하사 - 본절은 접속사 '히나'(*,'that')로 시작하여 기도의 항목 가운데 첫번째임을 시사한다. 여기서의 사랑은 어떤 특정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나타나고 있는 보편적인 사랑으로서 성령의 열매를 가리킨다(Kent). 그런데 바울은 이런 '사랑'에 두 가지가 더하여져서 풍성해지기를 간구한다. (1) 지식 - 이 지식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그노세에'(*)는 '그노시스'(*, '앎')보다 더욱 진보(進步)된 단어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지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시사한다.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 말씀을 깨달음으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Beare, Vincent). (2) 총명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스데세이'(*)는 주로 70인역에서 '다아트'(*,'지혜')의 의미로 사용되었다(잠 1:4,7,22;3:20;5:2). 이것은 지각적인 통찰력 또는 도덕적인 분별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바울은 사랑에 분별력을 더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분별력은 지각과 체험(體驗)으로써 악한 것과 선한 것, 그리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분별하여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통해서 '사랑'은 보다 건전하고 온전해진다.

성 경: [빌1:10]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빌립보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 이것은 두번째 기도 제목이다. '선한 것'의 헬라어 '디아페론타'(*)는 본래 '다르다', '뛰어나다'라는 의미로서 '중요한 것'이나 '뛰어난 것' 혹은 '최선의 것'을 가리킨다(what is excellent, RSV, NIV, KJV,ASV). 또한'분별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키마제인'(*)은 '시험하다'(고전 11:28;고후 13:5),'시험하여 증명하다'(고전 3:13;벧전1:7)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본절은 '중요한 것을 시험하여 분별하는 것'을 의미한다(Collange, Houlden, Lightfoot, Martin, Meyer). 이것은 지식과 총명이 더해진 사랑을 통해서 도덕적으로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미묘한 것들 사이에서 올바르고 온전한 것을 분별함을 시사한다(Hawthorne, Kent).

⭕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 '진실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일리크리네이스'(*)는 '헤일레'(*, '태양빛')와 '크리노'(*, '판단하다', '시험하다')의 합성어인 듯하다. 이것은 '완전 무결한 태양빛으로 시험하다'라는 의미이다(TDNT). 또한 '허물없이'(*, 아프로스코포이)는 '자르다'(*, 코프토)에서 나온 말로 '손상되지 않는'의 의미이다(행 24:16).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진실함'과 '정직함' 그리고 '깨끗한 마음'을 소유하며 행할 것을 위해서 기도한다.

성 경: [빌1:11]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빌립보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 바울이 기도하는 세번째 기도 제목은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란 율법을 지킴 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3:4-9), 현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재하시고 역사 하심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즉 본절은 빌립보교인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고결함을 가지고 행동할 것을 기도한 것이다(Michael, Scott).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없이 자기의 노력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요 15:4), 하나님과 신자 사이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역사(갈 5:22,23)를 통해서 맺게 되는 것이다(Kent).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그들을 구속하였고 성령을 보내셔서 열매를 맺게하셨으므로 그리스도가 의의 근원이다(Martin).

⭕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그리스도의 내재(內在)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맺게 되는 의의 열매는 하나님께 영광이된다. 바울이 의의 열매를 사람들에게 돌리지않고 하나님께 돌리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고 마땅히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목적은 마땅히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찬송을 돌리는것(마 5:16;요 15:8;17:4)이고, 사람의 삶 가운데서 맺게 되는 의의 열매도 모두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 경: [빌1:12]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그리스도를 전파함]

⭕ 형제들아...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중요한 주장을 말하기 전에 즐겨 사용한 어투이다(롬 1:13;고전 10:1;12:1;살전 4:13).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알리기 원했던 것은 로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음에 대한 상황들이다. 한편 '형제들아'(*, 아델포이)는 바울이 즐겨 쓰던 단어로서 빌립보 교인들과 바울 사이의 친밀(親密)하고 깊은 애정의 관계를 나타낸다.

⭕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 바울은 A.D. 61-63년까지 로마에 투옥되어 재판을 받고 있었다. 본서도 아마 A.D. 62-63년 사이에 로마의 옥중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그래서 본절의 '나의 당한 일'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것과 로마의 옥중에서 복음을 위하여 가이사에게 변호하였던 사실을 지칭한다(Lenski). 바울은 그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환난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어려움이 복음을 잘 전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진보가 된'에 해당하는 헬라어'프로코펜'(*)은 원래 비난과 박해 속에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것을 의미하는 말로(TDNT) 바울이 옥에 갇혀서 복음을 변호하게 된 것이 오히려 이방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딤후 2:9).

성 경: [빌1:13]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그리스도를 전파함]

⭕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한 나의 매임'이라는 의미로(NIV) 바울의 '매임' 즉 로마 감옥에 투옥된 이유가 정치적 소요(騷擾)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복음을 전했기 때문임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바울의 매임과(7절) 변명함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최고의 법정에서 증거되게 하셨다(행 24:13-23;25:6-22;26:2-23). 한편 '시위대'에 해당하는 '프라이토리오'(*)는 지방에 있는 통치자의 거주지를 가리킬 때나 예루살렘의 가이사랴 총독의 관저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마27:27;막 15:16;요 18:28, 33;19:9;행 23:35). 그러나 본절에서 '시위대'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집정관의 시위 대원'을 가리킨다(Kent, Lightfoot). 시위 대원들은 죄수들을 감독하고 감시하는 가운데 바울과 접촉하였을 것이며, 그 기회를 통해서 바울은 복음을 선포하였을 것이다(Martin). 또한 바울의 복음 증거는 그의 숙소로 찾아온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져서 밖으로 전파되었다.

성 경: [빌1:14]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그리스도를 전파함]

⭕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 여기서 '형제'는 로마에 있는 신자들을 가리킨다. 이는 이방인에서 개종한 신자들과 유대인에서 개종한 신자들을 포함한다(Hendriksen). 또한 '다수'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스 플레이오나스'(*)는 코이네 헬라어에서 자주 사용한 용법으로 '형제들 중 많은 편' 즉, '절대 다수'를 나타내는 최상급의 의미이다(TDNT). 로마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투옥(投獄)이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확인하면서 더욱 담대해졌다.

⭕ 겁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 바울이 매임을 당한 것처럼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적대자들로부터 핍박과 고난을 당하였으나 더욱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본절의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의 헬라어 '아포보스...랄레인'(*)은 현재시상으로 위험의 상태가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었지만 용기를 새롭게 가지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음을 시사한다(Kent).

성 경: [빌1:15]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그리스도를 전파함]

⭕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 본절의 '어떤 이들'을 혹자는 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에 이미 유대주의적 경향(傾向)을 가졌던 로마 교회 지도자들로 본다. 그들이 이미 확보한 지위가 바울의 전도 때문에 흔들리게 되자 시기와 질투심으로 바울의 전도를 막았을 것이라고 해석한다(Vincent, Hendriksen, Dibelius, Barth, Gnilka). 그러나 본절은 14절에 나타난 '형제 중 다수'와 연결지어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Kent,Martin, Hawthorne). 즉 본절의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로 인해서 투옥당한 바울을 보고 담대함을 얻은 이들 중에서 바울을 개인적으로 시기하여, 경쟁심을 갖고 하나님의말씀과 그리스도를 전파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 '착한 뜻'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도키안'(*)은 '만족', '충족'을 의미하는 말로 다른 사람과 유익된 관계를 가진 것을 가리킨다. 즉 본절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목적을 바로 깨닫고 선한 일꾼으로서 복음의 사역을 행하는 것을 시사한다.

성 경: [빌1:16]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그리스도를 전파함]

⭕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 본절의 '이들'은 앞절의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 자들'을 가리킨다(Kent). '세우심을 받은'의 헬라어 '케이마이'(*)는 어떤 목적을 위해 지정하거나 정해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세움을 받은 것이 바울의 의도나 우연한 계기(契機)를 통하여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에 의해서 된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사랑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스 아가페스'(*)는 문자적으로 '바울을 향한 사랑으로부터'라는 의미이다(Robertson). 이것은 바울이 하나님에 의해서 세우심을 입은 자임을 깨달은 이들이 바울의 사역에 더욱더 애정을 갖게 되어 그를 도와 복음 선포 사역에 헌신하였음을 시사한다.

성 경: [빌1:17]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그리스도를 전파함]

⭕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 본절은 15절에 언급된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관계된다. 그들 바울이 매임을 당하자, '매임'으로 인해 바울의 명성은 크게 손상되고 위축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명성을 회복시키려는 동기를 가지고 복음 선포를 하였다.

⭕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 '다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리데이아스'(*)는 '에리듀오'(*, '양털에서 실을 뽑다')와 '에리도스'(*, '고용인')에서 유래한 것으로 당파심을 위해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 이것은 직분(職分)을 맡은 자가 일을 할때 헌신의 동기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목적과 야망을 가지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시사한다(TDNT). 투기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한 이들은 자신의 명성이라는 이기적 야망을 위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성 경: [빌1:18]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그리스도를 전파함]

⭕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 '외모로 하나'는 15절의 '투기와 분쟁으로'와 상관되며 '참으로 하나'는 15절의 '착한 뜻으로'와 상관 된다. 순수하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전파나, 자기의 전파나,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전하는 사람들의 전파나 복음은 동일하게 전파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승리하는 것이라면 자신에게 향한 비난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만 전파되기를 바라는 바울의 소망을 암시한다(Kent).

⭕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복음이 이기적인 야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파되었을지라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조금씩 알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바울은 기뻐하고 있다. 바울은 육체적으로는 감옥에 갇혀있고, 정신적으로는 시기하는 자들에게 고통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자신의 상황에 의해서 더 담대하게 복음이 선포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였다. 본절은 바울의 관점의 초점(焦點)이 자신이 아니라 오직 복음 선포에 관한 것임을 시사한다(Muller).

성 경: [빌1:19]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신앙의 용기와 소망]

⭕ 개역성경에는 '가르'(*,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절이 바울이기뻐한 이유가 됨을 나타낸다.

⭕ 이것이...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 '이것'(*, 투토)은 복음선포를 위해 바울에게 나타난 모든것을 말한다고 보아야 한다(Hawthorne, Martin). 한편 '구원'에 대하여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빌립보 교인들이 다시 만날 재회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구원'이 감옥로 부터의 석방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1:26, Chrysostom, Robertson, Lenski). (2) 혹자는 영적인 구원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Michael, Lightfoot, Beare, Collange, Gnilka, Houlden).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는다. 왜냐하면 25절의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과 23절의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의 표현으로 보아, 바울이 현재적인 자기의 놓임과 미래의 구원을 같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러한 구원이 두 가지 방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진술한다. (1) 너희 간구 - 바울은 믿음의 기도가 엄청난 능력을 발휘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행 4:29-31;12:5-12) 빌립보 교회의 기도를 의지한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 -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이 필요로 하는 생명의 원리를 공급(供給)하시고 인도하신다(요 15:26;롬 8:26).

성 경: [빌1:20]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신앙의 용기와 소망]

⭕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 이 말은 재판의 결과가 어떠하든지 간에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아왔고 장차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몸이기 때문에 거리낌없이 재판의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의미를 함축(含蓄)하고 있다.

⭕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 바울은 재판을 받을 때 재판의 결과에 상관없이 복음에 대해서 담대히 변증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재판 결과 자신이 감옥에서 풀려나 살게 되든지 아니면 사형선고를 받아 죽게 되든지 간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재판석상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오직 그리스도만을 증언함으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기를 소망한다(Martin, Kent).

성 경: [빌1:21]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신앙의 용기와 소망]

⭕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삶'이나 '그리스도가 삶의 구원'이라는 말이 아니라, '삶 자체가 그리스도'라는 의미로(Goodspeed, Knox, Moffatt, Phillips),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하나가 되었음을 암시한다(Kent). 이것은 삶 자체가 그리스도에 의해서 통치를 받으며, 진실, 사랑, 희망, 복종, 전파 등이 삶 속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쳐나는 것을 시사한다(Vincent). 이런 삶의 형태에서는 죽는 것도 유익하다. 왜냐하면 바울 자신은 죽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고(23절;고후5:8) 상급받는 축복 가운데 영원히 살 것이며(딤후 4:7,8) 동시에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고 존귀케하는 것을 방해하던 모든 것에서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Muller). 한편 '죽는 것'(*, 아포다네인)은 부정과거로 '죽음 후의 상태'를 말함이 아니라 죽음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울이 로마인에게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시사한다.

성 경: [빌1:22]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신앙의 용기와 소망]

⭕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 로마의 법정(法廷)에서 재판이 유리하게 끝나서 바울이 살아난다고 할지라도 바울의 삶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삶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풀려났을 때의 삶에 대해서 '내 일의 열매'라고 진술한다. '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구'(*)는 바울 서신에서 복음 선포 사역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되었다(2:30;롬 15:18;고후 10:11). 바울은 자신이 옥중에서 풀려난다고 한다면 삶 속에서 더욱더 그리스도가 증거되기 위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Martin). 한편 '가릴는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히레소마이'(*)는 '고르다' 혹은 '택하다'라는 의미로서 중간태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개인적 선호(選好)를 나타내는 것으로(Kent), 바울 자신은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은 개인적인 마음도 있지만(23절), 다시 살아서 복음을 전파하고픈 생각도 배제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Bernard,Collange, Dibelius, Goodspeed).

성 경: [빌1:23]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신앙의 용기와 소망]

⭕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 '두 사이에 끼였으니'는 두 생각 즉 살아서 복음선포 사역을 계속하고자 하는 것과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바라는 욕망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심리적 상태를 나타낸다. 설사 갈등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바울이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은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육체의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었음을 시사한다(살전 4:13-16, Ridderbos).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에 대해서 혹자는 '죽은 후에 연합하게 된다'는 이교 사상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Dibelius). 그러나 본절의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은 지상에서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었던 것보다휠씬 더 깊고 풍성함에 거함을 시사한다(Martin, Muller).

성 경: [빌1:24]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신앙의 용기와 소망]

개역 성경에 '데'(*,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데'는 앞절에서 언급된 바울의 개인적 소망과 반대되는 내용이 본절에 나옴을 시사한다.

⭕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 바울은 개인적으로 육체(肉體)를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소원하나, 살아있는 것이 빌립보 교인들에게는 휠씬 좋은 일이다. '유익'에 대해 바울이 구체적으로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아마도 목자의 심정으로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행하는 사역을 의미하는 듯하다(Kent).

성 경: [빌1:25]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신앙의 용기와 소망]

⭕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 바울이 19-24절에서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과 죽음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에 대해 진술한 반면에 본절에서는 '내가 살 것을 확실히 안다'고 말한다. 이것이 어떤 연유에서 비롯된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바울 자신이 천한 주변 요인을 생각하고 '풀려날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확신하고 있었던 듯하다(Kent). 한편 바울이 살아서 빌립보 교인들과 함께 거한다면,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믿음이 진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말씀을 행하는 삶 가운데서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성 경: [빌1:26]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신앙의 용기와 소망]

⭕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 '자랑'의 헬라어 '카우케마(*)는 '기쁨'을 의미한다(joy, NIV;rejoicing, KJV ;Martin, Kent). 이러한 '카우케마'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과 함께 있음으로 생겨난다. 왜냐하면 바울이 풀려나면, 바울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救援)의 풍성함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Meyer).

성 경: [빌1:27,28]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복음에 합당한 생활]

⭕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 바울은 이제 주제를 돌려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생활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폴리튜에스데'(*)는 문자적으로 '시민답게 살아라'는 의미이다.그래서 혹자는 '로마의 시민답게 살아라'(Brewer)는 의미라고 주장하나 이것은 지나친 주장이다. 그 이유는 비록 빌립보 교인들이 로마의 시민인 것을 자랑하였지만(행16:12,20,21),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었기 때문이다(빌 3:20). 그러므로 본절은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인 '하늘의 시민답게 살아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Lenski,Hawthorne, Muller). 하늘의 시민답게 사는 삶의 기준은 '복음'이다. 빌립보 교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일치하며 그 특권(特權)과 책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 본문은 '내가 가서 너희를 만나 보거나 아니면 가지 않고 여기서 너희에 대해서 듣거나'라는 의미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자신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두 가지를 행하기를 권면한다. (1)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 '일심으로'의 헬라어 '엔 헤니 프뉴마티'가 '성령'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onnard,Collange, Dibelius, Gnilka, Martin). 그러나 이어서 '한 뜻으로'라는 표현이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 '엔 헤니 프뉴마티'는 '인간의 영이나 마음'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Moffatt, Lohmeyer, Beare, Hawthorne, Kent, Muller;in one spirit, KJV,NIV, RSV). 즉 바울은 공동의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 서로 협력하여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애써 수고할 것을 권면한다. '복음의 신앙'은 복음 속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진리의 실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빌립보 교인들은 '진리'를 보다 널리 전하고 지키기 위해서 수고해야 한다. (2)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 '대적하는 자들'은 유대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자(Lenski)도 있으나, 바울이 세운 교회에서 유대인들이 문제를 일으켰던 것들을 통해서 볼 때(행 17:5,13) 유대인들을 포함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자들을 가리킨다(Martin, Kent).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주변의 많은 핍박과 거짓 교사들의 수많은 유혹 속에서 두려워 하여 도망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담대하게 맞서서 영적 싸움을 전개하기를 권면하고 있다.

⭕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 빌립보 교인들이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복음을 방해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증거가 되는 것이고, 고난과 박해를 이겨내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이루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대적자들의 핍박을 견디어 내는 이런 빌립보 교인들의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성 경: [빌1:29]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복음에 합당한 생활]

⭕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은 은혜의 선물이다. 그런데 그 은혜는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과 고난을 받는 것을 내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해야 하며(요 8:30),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독생자이신 그리스도께서 고난당하신 것처럼(히 2:10)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약 1:3,4;벧전 1:6,7).

성 경: [빌1:30]

주제1: [복음에 합당한 생활]

주제2: [복음에 합당한 생활]

⭕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 '싸움'은 대적자들로부터 오는 장애물과 위험등,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게 될 재난의 개념이 내포된 것으로(TDNT),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과의 영적 투쟁을 의미한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겪었던 여러 가지 고난이 이제 빌립보 교인들에게 임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 바울은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박해를 받은 적이 있었다(행 16:16-24;살전 2:2). 그때 귀신들린 여종으로 인하여 빌립보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을 빌립보 교인들은 보았으며 그들 자신도 동일하게 바울과 같이 이교도들의 훼방과 핍박을 당하고 있었다. 즉 빌립보 교인들도 바울과 같은 싸움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듣는 바'는 바울이 로마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빌립보 교인들이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듣고 있었음을 시사한다(빌 2:26).

성 경: [빌2:1]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겸손의 촉구]

본절은 '에이'(*, '만약')로 시작하는 네 개의 조건문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안에서 지켜야 할 덕목을 나타낸다. 이런 덕목은 신자 개인의 윤리적 고상함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갈 때에만얻게 되는 것이다(Lenski). (1) 무슨 권면이나 - 바울이 교회에 대해 성령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한 것처럼(4:2;롬 12:1;15:30; 16:17;고전 1:10;4:16;16:15;엡 4:1;살전 2:11,12;5:14) 그리스도인들도 서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권면해야 한다. (2) 사랑에 무슨 위로나 -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리고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서로가 사랑으로 연약한 가운데 있는 형제를 위로해야 한다. (3) 성령의 무슨 교제나 - '성령'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토스'(*)에 대해서 혹자는 관사의 부재(不在)를 이유로 '인간의 영' 혹은 '마음'이라고 해석하여 본절 '상호간의 조화' 혹은 '영적 교제'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ruce,Hendriksen). 그러나 관사 없이도 성령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으며(롬 7:6;고전 2:4;갈3:3;5:16,18,25), 대개의 경우 '교제'는 영적 교제를 시사하기 때문에 '프뉴마토스'가 불필요하다. 따라서 본절의 '프뉴마토스'는 '성령'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본절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의해서 교회의 일원이 되었으므로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여 교제를나누어야 함을 시사한다(Hawthorne). (4)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 '긍휼'은 사랑에서 비롯된 '동정'이나 '애정'을 가리키며, '자비'는 '긍휼'에서 비롯된 의부적 표현이다(Martin). 그리스도인들은 연약한 자나 어려움에 빠진 자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성 경: [빌2:2]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겸손의 촉구]

⭕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 '마음을 같이하여'의 헬라어 '토 아우토 프로네테'(*)는 문자적으로'생각을 같이 하여'라는 의미이나 이것은 단순히 지적인 문제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보다 넓은 의미의 '감정', '태도', '의지'를 같이함을 나타낸다(Meyer, Hawthorne). 바울은 '마음을 같이 하여'와 거의 동일한 의미의 '뜻을 합하며'와 '한 마음을 품어'를 반복하여 빌립보 교인들 사이의 일치를 권면한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의 일치를 강조한 이유는 이교도의 핍박 하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일치가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Hendriksen) 빌립보 교회내의 분쟁과 불화를 종식시키기 위함이었다(Kent).

성 경: [빌2:3]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겸손의 촉구]

⭕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바울은 본절에서 '일치'를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다. 소극적 측면에서 '일치'를 위해서는 '다툼과 허영'을 버려야 한다. '허영'의 헬라어 '케노독시안'(*)은 '케노스'(*, '내용 없는')와 '독사'(*, '영광')의 합성어로서 '내용없는 영광이나 자랑'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을 높이고 헛된 영광을 추구할 때 다툼이 일어나게 되어서 교회의 '불일치'를 초래하게 된다. 한편 적극적 측면에서 일치를 위해서는 '겸손'해야 한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으로, 이 겸손을 통해서 사람 앞에서 '타인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을 이룰 수 있다(벧전 5:5,6; Martin). 당시에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노예 근성에서 비롯된 '굴욕'과 '비굴함'을 의미하였다(Lenski, Hawthorne).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겸손의 본'을 보여주심으로(8절;요 13:1-20) '겸손'은 기독교 최대의 미덕이 되었다. 이런 '겸손'을 통해서 서로 섬김으로 '일치'를 이루게 된다.

성 경: [빌2:4]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겸손의 촉구]

⭕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 '돌아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스코푼테스'(*)로 '목표 혹은 목적을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목표나 목적의 내용'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이것을 '이익'이나 '생활의 어려움' 등으로 해석하여 '자기의 이익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익도 함께 생각하라'는 것으로 이해한다(Moffatt). (2)혹자는 이것을 '동료 그리스도인의 은사나 자질' 등으로 해석하여 '자기의 은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은사도 잘 관찰하여 그것을 본받아라'는 의미로 해석한다(Lightfoot). 두 가지 견해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내에서 자신의 이익과 은사를 살펴야 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과 은사를 잘 살펴서 서로를 포용하며 연합으로 '일치'를 이루게 된다(Kent, Martin, Muller).

성 경: [빌2:5]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겸손의 촉구]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본절은 앞에서 빌립보 교회의 일치를 위해 '겸손'을 권면한 것에 대한 예증으로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전환절이다. 그리스도는 궁극적인 모델로서 이 땅에 오셔서 '겸손'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인들에게 모델이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권면한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자기를 부정하심으로 십자가를 지기까지 복종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서로가 겸손하고 자신을 부정할 때 다툼이나 허영은 사라지고 '교회의 일치'를 낳게 될 것이다(Martin, Kent, Hawthorne).

성 경: [빌2:6]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겸손의 촉구]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 '본체'에 해당하는 헬라어 '모르페'(*)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외적인 형체와 영광이 동일시되며(출 16:10;24:15,16;레 9:6,23;민 12:8;14:10) 선재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나누셨기 때문에(요 17:5;고후 4:4;골 1:15), '본체'를 '영광'으로해석한다(Behm, Fitzmyer). 그러나 이 해석은 7절의 '종의 형체'(*, 모르펜 둘루)에서 나타나는 '고난 당함'을 설명할 수 없다(Hendriksen, Hawthorne). (2) 혹자는 이것을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과 성품'으로 이해한다(Muller,Lightfoot, Kent, Hawthorne, Vincent).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 안에서 존제하신다'는 의미로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본질을 소유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본절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하나님과 동등됨'이 그리스도께서 장차 취하실 영광이지만 고난을 통과하기까지 유보하셨다고 해석한다(Martin, Stauffer). (2) 혹자는 본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나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는 인간으로 오시기 위해 자신의 영광을 포기하셨다고 해석한다(Muller, Hawthorne, Lightfoot).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도 이미 그의 영광은 하나님과 동등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과 동등하시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동등됨을 포기하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셨다.

성 경: [빌2:7]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겸손의 촉구]

⭕ 자기를 비어 - '자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아우톤'(*)은 강조적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비어'의 헬라어 '에케노센'(*)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1) 그리스도 자신의 영광을 포기하였다(Plummer). (2) 독립적인 권위 행사를 포기하였다(Hendriksen). (3) 하나님의 대권적(大權的) 권능을 포기하였다(Lightfoot). (4) 존엄과 주권의 표지(標識)를 포기하였다(Calvin). (5) 하나님의 속성 즉 무소 부재, 전지 전능 등을 포기하였다(Forsyth, Mackintosh, Martin).위의 견해들 중 세번째가 타당한 듯하다(Kent).

⭕ 종의 형체를 가져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종의 외적인 모습을 취하셨거나 종으로 가장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종의 본질적인 속성을 취하셔서 종이 되셨음을 의미한다(Hawthorne). '종'에 대해서 혹자는 사 52:13-53:12에 나타난 '야웨의 종'의 개념을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Martin, J. Jeremias, Lohmeyer). 그러나 본절의 '종'은 11절에 나타난 고양된 그리스도이신 '주'와 대조적인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나타낸다(Renqstorf, Hawthorne).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권리나 특권을 포기하여 죄 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음을 시사한다(막10:45;눅 22:27).

⭕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 '같이' 의 헬라어 '호모이오마티'(*)는 '유사함'(similarity)이나 '동일함'(identity)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죄의 본성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다른 모든 인간들과 같이 되셨음을 시사한다(Kent, Lincol-n). 그리스도는 참인간이시다.

성 경: [빌2:8]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겸손의 촉구]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그리스도의 겸손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낮아지심에서 잘 드러난다. 영화로우신 분께서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은 지극한 겸손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겸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발적인 순종 가운데 십자가를 지시는데까지 나아간다. 그분은 본래 하나님과 동등되심에도 불구하고 동등됨을 포기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셨다(히 5:8). 이런 점에서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겸손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된다(Kent, Hawthorne).

성 경: [빌2:9]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겸손의 촉구]

⭕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 '지극히 높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립소센'(*)은 '휘페르'(*, '위로')와 '휩소스'(*,'높은 곳')의 합성어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려지다'라는 의미이다(Kent).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겸손과 수치스러운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부활과 승귀(昇貴)를 통해 영광에 이르도록 높이셨음을 시사한다(Robertson, Hawthorne).

⭕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바울은 이 이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언급하지 않는다. 이 '이름'에 대해서 혹자는 '예수'라고 주장하며(De Wette), 혹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Vincent). 그러나 문맥상 '이름'은 11절에 나오는 '주'를 가리킨다(Muller, Weiss, Martin, Kent).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전우주를 다스리시는 주권을 소유하신 '주'이심을 시사한다(Hawthorne).

성 경: [빌2:10]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겸손의 촉구]

⭕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시고 '주'라는 이름을 주신 목적은 모든 피조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앞에 복종케 하여 주로 섬기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예수의 이름'은 앞절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뛰어난 이름'과 동일한 것으로 '주'를 가리킨다(Lightfoot, Michael, Moule, Plummer). 그리스도께서 '주'(主)이시기 때문에 모든 만물이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한편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할 대상에 대해 세 가지로 언급하고 있다. 즉 '하늘에 있는 자들'(*, 에푸라니온), '땅에 있는 자들'(*, 에피게이온) '땅 아래 있는 자들'(*, 카타크도니온)이다. 세 대상의 헬라어는 남성과 중성 둘 다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그것을 남성으로 이해해서 이성적(理性的)이며 생물적(生物的) 존재인 천사와 같은 초자연적 존재와 인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Kent, Muller, Martin). 이들은 '에푸라니온'이 천사들과 하늘에 있는 성도들, '에피게이온'이 땅에 살아있는 자들, '카타크도니온'이 사단의 무리와 지옥에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혹자는 중성으로 해석해서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를주로 경배하며 복종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ightfoot, Moule, Hawthorne).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성 경: [빌2:11]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겸손의 촉구]

⭕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시인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사본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어떤 사본에서는 제1부정과거 가정법인 '엑소몰로게세타이'(*)를 사용하여 '시인하였을 것이다'라는 의미로 기술한다(*,B, P )다른 사본에서는 미래 직설법인 '엑소몰로게세타이'(*)를 사용하여 '시인할 것이다'라는 미래적 의미로 기술한다(A, C, D, Textus Receptus). 두 가지 경우 중 문맥상 전자가 더타당하다. 왜냐하면 10절의 '꿇게 하시고'의 헬라어 '캄프세'(*)는 '캄프토'(*,'굽히다')의 제1부정과거 가정법이기 때문이다(Kent, Hawthorne).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높이셔서 '주'라는 칭호를 주심으로 모든 만물로 하여금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주'라고 시인하게 하셨다. '주'에 대한 시인은 하나님 뜻의 성취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Kent).

성 경: [빌2:12]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성화의 촉구]

⭕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구원을 이루라 - '사랑하는 자들아'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목양하는 자로서 친근감있게 부르는 호칭이다. 친근한 호칭과 더불어 바울은 본절에서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한다. 이 '구원을 이루라'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차원에서 본절을 이해한다(Muller, Kent). 본절의 권면은 칭의 이후에 오는 성화의 과정에서 신인협동(神人協同)의 차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미 구원의 확증은 얻었지만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구원의 증거들을 실증하며 살아가야 함을 시사한다고 한다. (2) 혹자는 '그리스도인의 연합적인 차원'에서 본절을 이해한다(Hawthorne, Martin, Michael, Gnilka, Collan-ge). 바울은 4절에서 이미 개인적인 삶만 집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돌보아 주라고 권면하고 있으며 본절 이하에서 개인적 구원의 문제를 생각한 종말론적인 분위기가 전혀 나타나지 않기에 교회 전체의 집합적, 공동체적 권면으로 볼 수 있다고 한(Hawtho-rne).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Lenski). 왜냐하면 '구원'에있어서 '개인'과 '교회'는 분리할 수 없는 불가 분리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완성을 향해 계속해서 성숙해가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협력하여 나아가야 한다(엡 4:1-6).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 구원을 이루어가는 방법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적으로 의지하여 하나님의 계획과 명령에 늘 순종하는 것이다(Martin, Kent).

성 경: [빌2:13]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성화의 촉구]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행하시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네르곤'(*)은 현재분사로 하나님께서 진정한 힘을 부여하시며 우리의 결심과 소원까지도 인도하시는 분임을 시사한다(Hendriksen). 그렇다고 해서 본절이 인간의 자유 의지나 책임적 선택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일의 계획과 성취에 있어서 그 모든 것을 인도하시되 강제적인 방법이나 수단으로 하시지 않는다(Kent). 이런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은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는다. 이것은 비록 온전히 이해할 수없을 만큼의 신비일지 모르지만 바울이나 성경이 명백히 증거하는 교훈이다(Hawthorne, Lenski).

성 경: [빌2:14]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성화의 촉구]

⭕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 '원망'은 '투덜대는 불평'을 의미하며 '시비'는 '악의(惡意) 있는 논쟁'을 의미한다. 결국 사소한 일을 가지고 '악의있는 마음으로 불평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후자는 바울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출 15-17;민 14-17)들을 염두에 두고 서로 유비(類比)시켜 기록한 것으로 추측한다(Kent). 그러나 이러한 추측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그와같은 추정을 내릴 만한 근거가 전혀없으며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권위를 빙자하여 하나님께 도전한 반면에 빌립보 교회의 문제는 순수히 교회 내부의 불화(2절)이기 때문이다(Hawthorne, Martin). 바울은 교회내에서 불평과 싸움이 없이모든 일을 행하기를 권면한다.

성 경: [빌2:15]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성화의 촉구]

⭕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빛들로 나타내며 - '흠이 없고'는 타인에게 책망받을 만한 일이 없는 것을 의미하며 '순전하여'는 이질적인 것이나 온전치 못한 것이 전혀 섞이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타인에게 책망받을 만한 일이 없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온전한 성품을 닮아서 세상에 빛을 나타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 으로서 온 세상을 비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마5:14;엡 5:8).

⭕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 -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빛을 드러내야 할 '세상'을 의미한다. 빌립보 교인들이 현재 살고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악과 연합한 타락한 세대이다(엡 6:12).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빌립보 교인들의 사명은 흠이 없는 자로서 세상에 빛을 드러내는 것이다.

성 경: [빌2:16]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성화의 촉구]

⭕ 생명의 말씀을 밝혀 - '밝혀'의 헬라어 '에페콘테스'(*)는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단단히 붙들다'이며, 다른 하나는 '제시하다'이다. '에페콘테스'의 의미에 따라서 본절에 대한 해석도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1) 혹자는 본절을 앞절의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와 대조하여 '생명의 말씀을 단단히 붙들다'란 의미로 해석한다(Lightfoot, Moffatt) (2) 혹자는 '제시하다'는 의미를 받아들여 세상에 '생명의 말씀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uller, Lenski, hawth-orne). 두 가지 견해는 서로 다른 견해가 아니다. 전자의 견해는 후자를 뒷받침해 준다.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의 말씀 즉 복음을 굳게 붙들지 않으면 그것을 세상에 밝히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Kent).

⭕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 빌립보 교인들이 생명의 말씀에 사로잡혀 말씀을 세상에 밝히 드러낼 때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하고 고난가운데 복음을 전파하여 열매를 맺은 것이 헛되지 않게 되며 '그리스도의 날' 즉 재림 때에 '자랑'이 된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그리스도인들 이 땅에서 애써 수고한 대가를 보상받을 것이다(Kent).

성 경: [빌2:17]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성화의 촉구]

⭕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 '관제'는 고대 제사의 관습에서 포도주를 제물에 붓는 행위를 가리킨다. 바울은 이런 제사 행위를 연상시켜 자신의 순교를 암시한다. '관제로 드릴지라도'의 헬라어 '스펜도마이'(*)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있다. (1) 혹자는 현재 수동태로 보아서 가까운 미래의 의미를 포함하는 형태라고 해석하여 현재나 가까운 장래에 바울 자신이 순교당할 것을 예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Hendriksen, Martin). (2) 혹자는 현재 중간태로 보아서 바울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교의 제단에 드리려는 심정을 고백한 것이라고 주장한다(Lenski). 두가지 견해 중전자가 타당하다. 신약성경에서 '스펜도마이'는 두 번 나타나는데(17절;딤후 4:6) 모두가 수동태로 사용되고 있다(Kent). 따라서 본문은 바울 자신이 가까운 장래에 순교당할 것을 예견(豫見)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믿음의 제물과 봉사'의 헬라어 '테뒤시아 카이 레이투 르기아 테스 피스테오스'(*)에서 '제물과 봉사'는 하나의 관사 '테'(*)로 수식을 받고 있다. 이것은 '제물과 봉사'가 '희생적 봉사'를 의미하는 중언법적 표현임을 시사한다(Kent).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행하는 모든 희생적인 봉사위에 자신을 관제로 즉 순교로써 드린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한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음과 교회를 위한 바울의 헌신적인 열정을 시사한다(Muller).

성 경: [빌2:18]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성화의 촉구]

⭕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 본절은 바울 자신의 고난과 순교가 빌립보 교인에게 슬픔과 좌절보다는 기쁨과 소망이 되도록 하라는 권면이다. 앞절과 본절에 '함께 기뻐하라'가 계속 나오므로 혹자는 17절의 '함께 기뻐하니'를 '축하하다'로 해석한다(Meyer, Lightfoot). 이미 빌립보 교인들이 기뻐할 내용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본절에서 두번씩이나 기뻐하라고 권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문맥상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관제로 순교를 당할 바울에게 '축하를 보낸다'는 것은 문맥에 맞지 않는 어색한 표현이기 때문이다(Kent, Muller).

성 경: [빌2:19]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동역자를 추천함]

⭕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기를 희망한다. 디모데를 보내려는 목적은 '안위를 받기 위함'이다.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나 카고 유프쉬코'(*)에서 '카고'(*, '나도 또한')는 '에고'(*, '나')와 강조형 용법의 '카이'(*, '또한')가 합성된 것으로 결국 바울이 디모데를 보내려 한 목적이 두 가지였음을 나타낸다. 그 두가지 목적은 (1) 빌립보 교인에게 바울의 근황(近況)을 전하여서 빌립보 교인들을 위로하며(2) 디모데가 바울에게 돌아왔을 때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소식을 들어서 바울 자신이 위로를 받는 것이다.

성 경: [빌2:20]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동역자를 추천함]

⭕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 '뜻을 같이 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이소프쉬콘'(*)은 '이소스'(*, '동등한')와 '프쉬케'(*, '혼')의 합성어이다. '이소프쉬콘'은 두 가지의미를 지닌다. (1) 시 55:13의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를 칠십인역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다. 그 뜻은 '친밀하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다'를 의미한다(RSV). (2) 문자적인 해석으로 '같은 심령을 가지다'를 의미한다. 본절의 '이소프쉬콘'은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하다. 전자의 의미로 해석하면 바울 주위에 디모데를 제외하면 친밀하게 돌보는 자가 없음을 뜻하고 후자의 의미로 해석하면 바울의 생각과 뜻을 같이 하는자는 디모데 뿐임을 의미한다(Lenski). 한편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은 디모데가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빌립보 교회를 잘 목양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Kent).

성 경: [빌2:21]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동역자를 추천함]

⭕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 본절에서 바울이 책망하고 있는 '자기 일을 구하는 자'가 구체적 으로 누구인지 분명치 않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사람을 파견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주변 사람들에게 언급하였으나 주변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적인 문제와 유익만을 추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위해서 희생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책망을 하고 있다(Muller, Kent).

성 경: [빌2:22]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동역자를 추천함]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파견키로 한 후 빌립보 교인들에게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디모데를 천거한다.

⭕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 디모데는 바울이 제1차 전도 여행시 빌립보 지방에서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을 만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 되었으며(행 16:3),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시 에베소의 소동으로 바울이 휘말려 있을 때 바울을 대신하여 빌립보 지역을 순회(巡廻)하며 심방하였고(행 19:22)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시 핍박을 피해온 바울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복음 전도에 동참하였다(행20:4). 빌립보 교인들은 이러한 디모데를 잘 알고 있었다.

⭕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 디모데는 주 안에서 바울의 신실한 아들이었다(고전4:17;딤전 1:2;딤후 1:2). 이것은 바울과 디모데 사이가 매우 친밀한 관계임을 시사한다(Hawthorne).

⭕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 디모데는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때부터 바울과 함께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며 복음 선포를 하였다(Kent, Hawthorne).

성 경: [빌2:23]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동역자를 추천함]

⭕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는 바울이 곧 재판을 받게 되리라고 예측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바울은 재판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안 후에 디모데를 빌립보에 보내겠다고 밝히고 있다(Martin, Kent). 혹자는 이 해석에 대해 반대한다(Hawthorne). 왜냐하면 성도들을 그토록 사랑하는 바울이 자기의 신상문제로 인해 교회의 화급한 문제를 제쳐두고 디모데 파송을 연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연기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이 언급되지 않기에 우리가 알수는 없으나 재판의 문제 때문에 연기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Hawthorne).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타당하지 못하다. 비록 판결의 내용이 지극히 불확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바울이나 빌립보 교인 모두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으며, '보아서'의 헬라어 '아피도'(*)가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이 한 사실에 집중한다'는 의미로 바울의 관심이 재판 결과에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재판 결과를 알리기 위해 디모데를 잠시 지체(遲滯)시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해석이다(Lenski).

성 경: [빌2:24]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동역자를 추천함]

⭕ 나도 속히 가기를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 바울이 어떻게 풀려날 것을 확신했는지 분명치 않으나 그는 석방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1:25). 석방에 대한 그의 확신은 '주안에서'이루어졌다. '주 안에서'라는 것은 바울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이 주의 계획과 바램에 따라 결정됨을 시사한다(고전 4:19). 본문은 바울 자신의 미래 문제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께 달려 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 철저히 의존하고 순종하는 삶 속에서 나온 고백이다(Hawthorne).

성 경: [빌2:25]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동역자를 추천함]

⭕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 '에바브로디도'의 축약형은 '에바브라'이다. 이 사람은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 언급된 '에바브라'와는 다른 인물로(골 1:7;4:12;몬 1:23), 골로새서에서 언급된 '에바브라'는 골로새 출신이고 본절의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출신이다(Muller). '에바브로디도'는 본서를 빌립보 교회에 전달한 자로서(Kent) 바울은 이를 다섯 가지 칭호로 부르고 있다.

⭕ 나의 형제요 -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함께 신앙을 공유하며 하나님 가족의 일원으로서 깊은 애정을 나누는 자이다.

⭕ 함께 수고하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쉬네르곤'(*)으로서 '동역자'를 의미한다. '동역자'는 복음증거를 위해 함께 수고하는 자를 가리킨다. 이것은 에바브로디도가 바울과 함께 빌립보 교회를 세운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Martin,Ha-wthorne).

⭕ 함께 군사된 자요 - 이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대적자들과 계속해서 싸우는 일꾼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가 계속해서 고난당하였음을 암시한다(몬 1:2).

⭕ 너희 사자로 - '사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스톨론'(*)은 문자적으로 '사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에바브로디도'가 '보냄을 받은 자'임을 시사한다. 에바브로디도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권위'를 부여받고 보냄을 받은 자이다(H-awthorne).

⭕ 나의 쓸 것을 돕는 자 - '돕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이투르곤'(*)은 문자적으로 '봉사자'란 의미로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필요를 도와 주기 위해서 보낸 자이다.

성 경: [빌2:26]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동역자를 추천함]

본절은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려고 하는 두 가지 이유이다(Ha-wthorne, Muller).

⭕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 '간절히 사모하고'의 헬라어 '에피포돈'(*)은 강렬한 열망을 의미한다. '에피포톤'은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는 마음과(1:8) 갓난 아이가 젖을 간절히 원하는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벧전2:2). 이것은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 교인들을 얼마나 간절히 사랑하고 보고 싶어했는지를 암시한다. 바울은 이런 에바브로디도의 열망 때문에 빌립보 교회로 보내려고 하였다.

⭕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 '심히 근심한지라'의 헬라어 '아데모논'(*)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겪는 심한 고통'을의미하는 것으로 에바브로디도가 자신의 건강 문제로 빌립보 교회가 염려함을 듣고 자신의 건강 문제 보다는 교회에 대해 더 크게 염려함을 시사한다. 한편 에바브로디도가 걸린 병에 대해서 혹자는 향수병과 과로라고 추측한다(Hawthorne). 또한 혹자는 바울의 시중에 따른 과로는 인정하나 향수병은 거부한다(Lenski). 왜냐하면 문맥상 바울의 석방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에바브로디도가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대하면서 향수병에 빠진다는 것은 타당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단순히 추측에 불과하며 분명히 알수는 없다.

성 경: [빌2:27]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동역자를 추천함]

⭕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 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의 병세가 심각하여서 거의 죽게 될 뻔했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진술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에바브로디도의 병세가 심각했고 치유 과정이 큰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병세나 치유 과정에 대해서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바울의 관심이 병의 원인이나 치료 과정 보다는 병을 낫게 하신 하나님의 간섭 즉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다'는 것에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이 자신에게도 미쳤다고 진술한다. 이것은 바울이 주의 사역에 헌신한 종들을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에바브로디도의 치유로 말미암아 깊이 깨달았음을 의미한다(Hawthorne).

⭕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 에바브로디도의 회복은 단순히 하나님의 일꾼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확신 이상을 바울에게 가져다 주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의 병세 악화가 빌립보 교인들을 엄청난 좌절과 실의에 빠지게 될 것을 인식하였다(Kent). 바울의 근심은 단순히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에바브로디도의 병세 악화나 사망이 초래할 빌립보 교인들의 충격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에바브로디도의 회복은 바울이 안고 있던 이중(二重)의 근심을 해결해 주었다.

성 경: [빌2:28]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동역자를 추천함]

⭕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 '보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펨프사'(*)는 서간체 부정과거로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의 편지와 함께 이미 떠났음을 보여준다. 한편 '더욱 급히'의 헬라어 '스푸다이오테로스'(*)는 '보다 급하게'를 의미하는 비교급으로 중병에서 회복된 지 얼마되지도 않은 에바브로디도를 급하게 보냈음을 시사한다. 바울이 급하게 에바브로디도를 보낸 이유는 빌립보 교인들이 에바브로디도를 빨리 만나봄으로 근심과 좌절에서 벗어나서 다시 활기를 찾고 바울 자신도 근심을 덜기 위함이다(Hawthorne, Hendriksen, Kent).

성 경: [빌2:29]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동역자를 추천함]

⭕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 여기서 '주 안에서'(*, 엔 퀴리오)가 무엇을 수식하느냐에 따라 본절의의미가 달라진다. (1) 만약 동사 '영접하고'를 수식한다면 본절 '주께서 에바브로디도를 영접하시듯이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라'는 권면이 된다(롬 15:7). (2)만약 '모든 기쁨'을 수식한다면 본절 '주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고 있는 특성 중의 하나인 순수한 기쁨으로 영접하라'는 권면이 된다(롬 16:2). 비록 강조하는 바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전체 문맥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주 안에서 한 형제된 동료 그리스도인을 기쁜 마음으로 존귀히 여기며 섬겨야 하기 때문이다(Hawthorne, Martin).

성 경: [빌2:30]

주제1: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

주제2: [동역자를 추천함]

빌립보 교인들이 에바브로디도를 영접하고 존귀히 여겨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에바브로디도는 로마에 갇힌 바울을 돕기 위해 처형당할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심지어 자신이 병들어 죽게 될 지경에 이르기까지 헌신하였다. '돌아보지 아니한'의 헬라어 '파라볼류사메노스'(*)는 본래 '도박사가 돈을 따기 위해 모험'을 하거나 '탐험가가 값진 것을 얻기 위해 생명을 거는 위험'을 의미한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자신의 조력자로 봉사하는 일이 이처럼 헌신적이었음을 빌립보 교회에게 전해주면서 에바브로디도를 영접하고 존귀히 대하라고 권면한다(Ha-whorne, Hendriksen, Martin).

⭕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 '일'의 헬라어는 '레이투르기아스'(*, '봉사' )로서 복음전파 사역을 의미한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과 함께 동참해서 복음 선포 사역을 감당해야 했으나, 할 수 없음으로 대신 에바브로디도를 보냈던 것이다(Martin, Kent). 그렇기 때문에 빌립보 교인들은 에바브로디도를 영접하고 존귀히 여겨야만 했다.

성 경: [빌3:1]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 '종말로'(*, 토 로이폰)는 대부분 '결론적으로', '마지막으로'로 번역되었다(KJV, JB, NIV, RSV). 그러나 이 단어가 서신서에서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 경우는 극히 드물며(고후13:11), 오히려 새로운 주제를 소개하려고 할 때(살전 4:1;살후 3:1)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본절의 '종말로'는 바울이 끝을 맺기 위해 사용했다기 보다는 새로운 주제를 소개하기 위해 사용했으며 '이제는', '더 나아가서', '덧붙여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Goodspeed, Knox, Houlden, Moffatt). 한편 바울은 본 서신의 여러 곳에서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다(1:18;4:4,10).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이 옥중에 있을 때 여러가지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기뻐하라'고 한 것은 기뻐함을 통해서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일치를 해소(解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는 성도들의 이러한 기쁨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가능한 것임을 시사한다.

⭕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 '같은 말'에 대한 해석에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주 안에서 기뻐하라'를 가리킨다(Alford, Weiss, Moffatt). (2) 3,4장에서 언급된 교회내의 불일치에 대한 경고를 가리킨다(Lightfoot). (3)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이다(Zahn, Meyer, Scott, Vincent). 이 세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1)은 문맥상 다음에 이어지는 '너희에게 안전하느니라'와 연결되어지지 않으며 (2)도 2절 이하에 기록된 거짓 교사의 경고와 일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은 복음에서 벗어난 사실들을 지적해주는 것이 아무리 지나치다고 할지라도 지루함이 없다는 의미이다.

성 경: [빌3:2]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본절은 유대주의를 따르고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유대주의를 강요하는 자들에 대해 조심하라는 권면이다.

⭕ 개들을 삼가고 - '개들'은 길거리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덤벼드는 사나운 짐승을 가리키는 것으로(Lightfoot) 경멸스러운 존재를 가리킬 때 사용했던 상징적 표현이다(신 23:18;삼상 17:43;잠 26:11;사 56:10,11). 예수께서도 이 말을 진리를 거역하는 자들에게 사용하셨고(마 7:6) 이방인을 가리킬 때도 사용하셨다(마 15:26,27). 본문에서의 '개들'은 성도들을 괴롭히는 유대주의 행악자들을 지칭한다(Michael).

⭕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 '행악하는 자들'은 문자적으로 '악한 일꾼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지 않고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이다.

⭕ 손할례당을 삼가라 - '손할례당'의 헬라어 '텐 카타토멘'(*)은 문자적으로 '절단한 자'를 의미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인간적 노력의 산물인 의식적인 행위만 중요시하는 자로서 율법을 고수하였다.

성 경: [빌3:3]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 본절은 2절에서 경고한 내용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율법에 따른 행위만을 일삼는 유대주의자들은 진정한 할례당이 아니고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들이 진정한 할례당이다(롬 2:25-29;골 2:11). 바울은 진정한 할례당의 특징을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여 - '봉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라트류온테스'(*)는 유대인들이 공식적인 예배를 드릴 때 사용한 말이다(눅 2:37;행26:7;롬 9:4,TDNT). 진정한 할례당은 전통이나 형식에 지배받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쁜 마음으로 예배드린다(시 51:17).

⭕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자랑하였다. 그러나 참할례당은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 자들로서 모든 만족과 소망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오는 것임을 아는 자들이다(갈 6:14).

⭕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 '육체'에 해당하는 헬라어 '사르키'(*)는 일반적으로 몸(눅 24:39), 인간의 성품(요 1:14), 타락한 본성(롬 7:5) 등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Schweitzer, Muller). 본절의 '사르키'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것 즉 인간의 의식(儀式)이나 공적 등을 가리킨다. 본절은 진정한 할례당인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의(義)를 얻을 수 없는 의식과 자랑을 신뢰하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함을 시사한다(Kent, Martin).

성 경: [빌3:4]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 사도 바울은 육체를 신뢰하고 있는 유대주의자들을 반박하기 위하여 자신의 간증을 하고 있다. 그는 성령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자이기도 하지만 육체를 자랑할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육체를 자랑하지 않았다. 바울이 육체를 자랑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육체를 신뢰할 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만이 자신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확실한 진리이며, 그 어떤 것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이다(Ridderbos).

성 경: [빌3:5]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본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육체를 신뢰할 만한 근거들을 제시한다.

⭕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 이스라엘 혈통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난 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아야 했으며(창 17:12;레 12:3),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는 성인이 되어서 할례를 받았다(행 16:3). 바울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과 달랐을 뿐만 아니라 난 지 십삼일 만에 할례를 받았던 이스마엘 족속과도 달랐다. 그는 오로지 율법에 정한대로 난 지 팔 일만에 부모로부터 할례받은 진정한 유대인이었다.

⭕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 바울은 이스라엘 족속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여 얻은 선택된 언약의 백성임을 의미하며 '족속'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민족으로 하나님과 약속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거룩한 백성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Lightfoot). 바울은 이방인에서 개종한 사람이 아니라 순수한 이스라엘 태생으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의 권리와 특권을 소유하고 있다(Hawthorne).

⭕ 베냐민의 지파요 - 베냐민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아들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인 사울이 이 지파였다(삼상 9:1,2). 하만의 음모(陰謀)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베냐민 지파였다. 또한 베냐민 지파는 왕국이 분열되었을 때 다윗 왕조에 신실하게 충성하였으며 바벨론 포로때에는 성전 건축을 위해 유다와 레위 지파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갔다(느 11:7-9). 바울은 이런 베냐민 지파에 속한 것을 매우 자랑하였으며(롬 11:1) 이 자랑을 통해서 자신이 베냐민 지파에 속한 순수한 유대인임을 밝히고있다(Hendriksen, Kent).

⭕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 본절은 바울 자신이 '아브라함의 씨'로서 이방인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히브리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히브리인임을 밝히고 있다(Kent,Hawthorne). 그는 유대인 방식으로, 히브리말로써 양육을 받은 자였다(행 22:2,3, Mu-ller). 그러므로 그는 혈통은 물론 히브리말과 히브리 관습을 그대로 보존한 순수한 히브리인이었다.

⭕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 바리새파는 가장 엄격한 유대 종파로서 구약의 율법은 물론 구전이나 서기관이 해석한 전승을 연구하며 따르는 자들이다(Hawthorne,Muller). 바울은 바리새인의 아들로 태어나(행 23:6) 바리새파에 입문한 자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존경받는 선생 가말리엘 밑에서 수학했다(행 22:3). 그러므로 그는 바리새인 중에서 가장 신실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자였다(Beare).

성 경: [빌3:6]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바울은 유대인이면서 바리새인으로서 예루살렘성 밖에까지 그의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자였다(행 9:13,21). 그는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어느 누구보다도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었다. 한편 '율법의 의'는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명령들과 기준들을 지킴으로 얻어지는 '의'를 의미한다. 바울은 이런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다른 사람이 볼 때 흠이 없었던 자였다. 그러나 바울이 지킨것은 율법에 대한 형식적인 순종에 불과하며 하나님이 진정으로 요구하시는 영적 순종에는 미치지 못하였다(Kent).

성 경: [빌3:7]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 '무엇이든지'는 단지 앞의 구절(5, 6절)에서 언급된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앞절들(5,6절)에서 언급한 바울이 신뢰할 만한 육체의 조건들은 다만 대표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본절의 '무엇이든지'는 바울 자신에게 이익이 되었던 모든 것을 가리킨다(Vincent, Kent). 바울은 유대교에서 자신의 외적인 것들이 자랑거리가 되었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를 만난 후부터 이전의 자랑거리가 이제는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구원이 단지 예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과거에 구원을 얻을 조건이 되리라 생각했던 외적인 조건들이 해로 여겨지게 되었다. '여길 뿐더러'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게마이'(*)는 완료 중간태로서 해로 여겼을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해로 여기고 있음을 나타낸다.

성 경: [빌3:8]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 앞절에 이어 본절에서도 '헤구마이(*, '해로 여김')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자신이 해로 여기고 있는 확신이 지속되고 있는 것을 나타내며(Kent) '모든 것'은 7절의 유익했던 '모든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Martin, Bonnard, Dibelius). '가장 고상함'의 헬라어 '휘페레콘'은 '탁월함'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바울 자신이 가장 뛰어난 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음을 의미한다. 한편 '내 주'는 그리스도와 바울 자신과의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내가 그를 위하여'라 함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지금까지 그가 귀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여기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때는 그의 회심의 때를 가리킨다. 뿐만 아니라 그는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다. '배설물'의 헬라어 '스퀴발라'(*)는 개에게 던지는 것으로 '똥'이나 '음식 찌꺼기' 또는 '쓰레기'등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난후 그 이전의 삶 전체에 대해서 얼마나 철저하게 버렸는가를 시사한다(Hawtho-rn, Martin).

성 경: [빌3:9]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 본절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재림의 날에 구원얻는 것을 나타낸다(Kent, Martin). '발견되리'는 앞절의 '그리스도를 얻고'와 동등하게 '히나'(*, '하기 위하여')에 연결된 목적절로서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음이 발견되려'라는 의미이다(Vincent, Hawthorne).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와 긴밀한 연합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를 힘입고 있음을 시사한다.

⭕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 '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카이오쉬넨'(*)은 법정에서 사용된 용어로 두 부류 가운데서 한 쪽은 '옳다'고 인정하고 다른 한 쪽은 '정죄'할 때 사용되었다(Hawthorne). 그러므로 본절은 믿음을 통하여 '의'를 얻으며 율법을 통해서 의를 얻지 못한다는 의미로, 바울 자신이 갖고 있는 의가 자신의 노력이나 율법을 지키는 행위에 의해서 온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하나님께부터 의롭다고 인정되는 것은 오로지 십자가에서 죄를 속량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 유일한 조건인 '믿음'은 '행위'와 반대되는 것으로 자신의 노력이나 행위로는 '의'를 얻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Kent).

성 경: [빌3:10]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 내가 그리스도와...알려 하여 - 8절의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Kent).여기서 '알려하여'의 헬라어 '그노나이'(*)는 지적 지식 뿐 아니라 경험적 지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과거나 현재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알기를 원한다는 강한 의지를 시사한다.

⭕ 그 부활의 권능 - 바울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알기를 원했던 것 '그 부활의 권능'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이나 그리스도인이 죽음 이후 경험하게될 육체적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Muller) 부활하셔서 믿는 자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낸다. 이 부활의 권능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살도록 한다(롬 6:4). 바울은 그리스도를 단순히 역사적 사실로서만 알기를 원치 않았다.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그의 개인적 삶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경험하기를 원했다(Hawthorne).

⭕ 그 고난에 참예함 - 본문은 '부활의 권능'과 분리된 전혀 새로운 경험이 아니라 같은 경험의 또 다른 측면이다(Hawthorne). 이것 역시 단순히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내외적인 고난을 말하는 것으로(Kent),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자신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함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골 1:24).이러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장차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롬 8:17-18;고후 4:7-11).

⭕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 본문은 앞서 언급한 '그 고난에 참예함'을 보다 직접적이고 심도있게 표현한 것이다(Muller). 이것은 단순히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에 참예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자신의 옛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내고(롬 6:5,6;고전 15:31;갈 2:20), 그리스도의 새로운 부활의 생명으로 연합(聯合)하여 계속 성장해야 함을 시사한다(Kent).

성 경: [빌3:11]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 '어찌하든지...이르려 하노니'의 헬라어 '에이 포스 카탄테소'(*)는 부활에 대해 다소 의심을 내포하는 듯하다. 이에 대해서 혹자는 바울이 부활 자체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방법에 대해 의심한다고 주장한다(Lenski). 그러나 오히려 이것은 그의 깊은 겸손과 조심스런 바람의 표현으로서 자기 신념을 배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L-ightfoot, Kent, Hawthorne, Hendriksen, Muller). 한편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에 해당하는 헬라어 '텐 엑사 나스타신 텐 에크 네크론'(*)은 신약성경에서 찾아보기 힘든 아주 드문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의인과 죄인 모두의 부활을 나타낼 때는 '아나스타시스 톤 네크론'(*)을 사용한다. 이러한 일반적 표현과는 달리 본절에서는 전치사 '에크'(*,...로 부터')가 두번씩이나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 의인의 부활 혹은 영광의 부활을 뜻하는 부분적인 부활로 보아야 한다(Kent, Muller, Hawtherne). 즉 본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그의 고난에 참예하고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와같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게 될 영광의 부활을 시사한다(계 20:4-15).

성 경: [빌3:12]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푯대를 향하여 달려감]

⭕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 본절은 바울이 이미 도달한 현재의 상태와 앞으로 도달하여야 할 목표 사이의 갈등을 나타낸다(Martin).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났던 것을 암시한다(Muller). 그는 그곳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회심하게 되었다. 그의 회심은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서(Robertson) 그가 열망하는 완전함에 이르기 위하여 믿음의 경주 즉 영적 성장을 향해 계속해서 달음질해야 한다. 여기서 '좇아가노라'로 번역된 헬라어 '디오코'(*)는 '추적한다'라는 의미로 사냥이나 달리기 경주에서 사용된 용어이다. 본절에서 '디오코'는 좀더 적극적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강한 표현으로 그리스도를 배우고 닮아가고자 하는 바울의 진지한 노력을 시사한다.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목적을 계속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자각시키고 있다.

성 경: [빌3:13]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푯대를 향하여 달려감]

⭕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본절은 앞절의 반복이다. 바울이 자신의 과거에 집착(執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나아감을 강조하는 이유는 아마도 빌립보 교인들 가운데 행위와 의식을 강조하며 자신들이 받은 영적 은혜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극단적 완전주의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인 듯하다(Kent). 본문의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는 바울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일관된 삶의 자세를 나타낸다. 여기서 '잊어버리고'의 헬라어 '에필란다노메노스'(*)는 과거의 기억이 자신의 관심을 빼앗아 진보를 방해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에필란다노메노스'를 통해서 전에 지녔던 유대인으로서의 특권이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루어 놓은 업적들로 인해서 믿음의 경주를 방해받지 않도록 할 뿐 아니라 앞에 있는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목적을 잡기위하여 전력을 다해 믿음의 경주를 계속하고 있다(Martin).

성 경: [빌3:14]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푯대를 향하여 달려감]

⭕ 푯대를 향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 스코폰'(*)은 문자적으로 '푯대를 똑바로 쳐다보고'라는 의미이다. 이는 경주자가 달려가고 있는 경주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바울이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히12:1,2)만을 바라보고 경주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삶의 여정 속에서 자신들의 시선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시키고 그를 향하여 전진하여야 함을 시사한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 '위에서 부르신 부름'은 경주의 승리자에게 상을 주기 위해 심판관 앞에 있는 높은 단으로 올라오도록 명하는 것에서 연유된 표현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부르심을 의미하며(고전 1:26;7:20;엡 1:18;4:1,4;살후 1:11) '상'은 경주 뒤에 있을 영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질 구원의 완성을 시사한다.

성 경: [빌3:15]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푯대를 향하여 달려감]

⭕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 '온전히'의 헬라어 '텔레이오이'(*)는 더 이상의 노력이 필요치 않은 절대적 완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연약과 무지에 비하여 꽤 성장한 상대적 완전으로서 더 높은 목표를 향한 노력의 여지가 아직도 남아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고전 2:6;14:20;엡4:13;골 1:28;4:12, NIV, KJV, Kent, Vincent).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소속되었고 하나님께로 구별되어서 '온전히 이룬 자'가 되었으나 아직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分量)까지 성숙해가야 한다(Muller).

⭕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 바울은 자신이 생각하는 '온전'에 대해 혹시나 빌립보 교인들 중에 반대가 있거나 다른 생각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리라고 확신한다(Martin, Kent).

성 경: [빌3:16]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푯대를 향하여 달려감]

⭕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동일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지라도 그 성숙의 정도가 서로 차이가있기 때문에 믿음의 분량대로 최선을 다해 영적 성장을 이루어가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히 6:11,12). '그대로 행할 것이라'의 헬라어 '토 아우토 스토이케인'(*) 중 동사 '스토이케인'은 '보조를 마추라', '일치하여 행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갈 6:16). 바울은 '스토이케인'을 사용해서 다시 한번 성도들 상호간에 성숙과 의견의 차이가 존개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조화와 협력을 이루어 나갈 것을 일깨우고 있다(Hawthorne, Kent).

성 경: [빌3:17]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하늘에 있는 시민권]

⭕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했던 것과 같이(고전11:1) 빌립보 교인들이 따라야 할 모델로서 자신을 제시하고 있다. 바울의 이와같은 권면은 자기를 자랑하는 우월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Kent).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의 헌신에 대하여 모델을 통한 실제적인 교훈이 필요하였고,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구체적인 모델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다(7-16절;고전 11:1, Hendriksen).

⭕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 본절에서 바울은 '자신'만을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암시한다(2:25,29,Muller, Hendriksen). 바울은 본절에서 자신은 물론 다른 동역자들의 삶을 빌립보 교인들이 배우기를 권면한다.

성 경: [빌3:18]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하늘에 있는 시민권]

⭕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십자가의 공로를 무시하고 율법의 규범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로서 2절에 언급된 유대주의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Lenski, Muller, Barth, Hawthorne). (2) 혹자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왜곡하여 율법의 모든 금지 조항을 부정하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Lightfoot, Kennedy, Beare). 두 가지 견해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 죄를 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왜곡(歪曲)하여 참자유가 아닌 방종을 일삼는 자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Kent).

성 경: [빌3:19]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하늘에 있는 시민권]

본절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에 대한 설명이다.

⭕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 '멸망'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폴레이아'(*)는 '구원' (*, 소테리아)의 반대 개념이다. 이는 특별히 사악한 자들에 대한 형벌로서 영원한 파멸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마 7:13;벧후 3:7;계 17:8).'십자가의 원수'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될수 없으며 육신의 욕망에 빠져 있기에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

⭕ 저희의 신은 배요 - 본문은 쾌락주의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Muller, Kent), 육체의 정욕대로 사는 것을 시사한다(롬 16:18;고전 6:13;유 1:11).

⭕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 '부끄러움'의 헬라어 '아이스퀴네'(*)는 '벌거벗음'(nakedness), 또는 '사람의 은밀한 부분'을 가리킬때 사용되는 단어이다(Hawthorne). 따라서 본문은 '저희'가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부도덕한 일들을 서슴지 않고 즐겼음을 시사한다(엡 5:12).

⭕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 - 그리스도인들이 '하늘 일'에 관심을 두는 반면(20절, 요3:12) 이들은 '땅의 일' 즉 본능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생각하며 세상적 가치 기준을 따라 행동한다(Muller, Kent).

성 경: [빌3:20]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하늘에 있는 시민권]

⭕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 본절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된 자들과 반대되는 참그리스도인의 특성을 나타낸다. 빌립보 시민들이 비록 로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로마 제국에 속해 있어서 로마의 시민으로서 특권을 누리는 것처럼 빌립보 교인들은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히 11:13;벧전 2:11)처럼 산다할지라도 하늘에 소속된 시민이다(Martin, Kent, Calvin).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비록 지금은 지상에 살고 있지만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므로 하늘나라 시민으로서 합당한 모든 책임과 의무를 기뻐하여야 함을 권면한다(Hawthorne).

⭕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 '거기로서'가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혹자는 '시민권'(Martin), 혹자는 '하늘'(Muller, Moffatt)이라고 주장하나, 두 가지를 모두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Kent).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연고지가 하늘이기 때문에 모든 관심사가 하늘에 있으며 진정한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롬 8:21-23). 왜냐하면 그의 재림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죄의 세력에서 완전히 해방시키는 온전한 구원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Muller).

성 경: [빌3:21]

주제1: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

주제2: [하늘에 있는 시민권]

⭕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임할 온전한 구원의 모습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인의 몸은 '낮은 몸'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으로 완전히 변화된다. 여기서 '낮은 몸'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갖고 있는 현재의 몸으로서 죄짓기 쉬운 욕망, 죽음, 질병, 고난등에 대해 무방비한 상태로 놓여 있는 육체의 연약성을 시사한다(Kent).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현재의 썩어질 몸을, 당신이 부활하실 때 입으신 '영광의 몸' 즉 '썩지 아니할 몸', '신령한 몸' 으로(고전 15:42-44) 변화시키실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 곧 '그리스도'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역사'(役事) 의 헬라어 '에네르게이안'(*)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킨다(Muller, Kent). 그리스도는 온 우주와 원수들,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초자연적이며 주권적인 능력을 가지시기에 마지막날 성도들을 완전히 구원하실 것이다.

성 경: [빌4:1]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 - 바울은 이와 같은 말을 마게도냐 교회에 대해서도 사용하였다(살전 2:19). '면류관'의 헬라어 '스테파노스'(*)는 당시 운동 경기에서 승리자에게 주었던 월계관이나 연회에서 얻은 화관을 의미한다(Caffin). 바울에게 있어서 빌립보 교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은 현재 그에게 주어진 기쁨이었다. 또한 이것은 미래에 하나님 앞에서 그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며(2:16;고전 15:58) 그에게 주어질 상의 근거였다(Kent).

⭕ 주 안에 서라 - '서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테케테'(*)는 '스테코'(*)의 현재 능동태 명령법으로 '진실되게 서다', '굳게 서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원래 병사가 전쟁 중에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초소에 굳게 계속 서 있는모습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본절에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어려운 상황들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하고 있다(Calvin). 그들은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서 있어야 했으며 그것은 '주 안에서'(*, 엔 퀴리오)만 가능했다. 성도들이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 굳게 그리고 진실되게 설 수 있는 것은 항상 주와 동행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성 경: [빌4:2]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유오디아...순두게 - '유오디아'(*, 유오디안)는 '순조로운 여행'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순두게'(*, 쉰튀켄)는 '행운의 기회'라는 뜻을 지닌다. 두 사람은 본문의 전후 관계로 보아 여인들로서 서로 분쟁과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Kent).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전도를 받은 자주(紫紬)장사 루디아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로서(행 16:13-15) 상대적으로 여성의 역활이 컸던 교회였다. 따라서 이 두 여인의 다툼과 분쟁은 빌립보 교회에 악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 바울은 앞절에서는 일반적인 권면을 하였지만 본절에서는 빌립보 교회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권면을 하고 있다(Meyer). 바울이 이 두 여인 각자에게 '권하노니'를 반복하는 것은 두사람 사이의 불화가 매우 심각했기 때문에 개별적인 훈계가 필요함을 나타내준다(Kent). 바울은 이 둘의 분쟁이 속히 해결되도록 화해를 권면하고 있다. 여기서 '같은 마음'(*, 토 아우토 프로네인)이란 주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된 마음을 가리킨다(Martin). 바울은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떠나기를 원치 않았다(Meyer). 그들의 화해와 일치의 기본 원리는 주님과의 영적 연합에 있다. 그들은 주님의 격려와 모본을 받아들여 화해함으로써 교회에 유익을 끼쳐야 했다.

성 경: [빌4:3]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그네시에 쉬쥐게'(*)에서 '쉬쥐게'는 '멍에를 같이한 자', '동역자'라고 번역할 수 있다. '멍에를 같이 한 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다. 그 견해를 열거해보면 (1) 디모데(Estius), (2) 에바브로디도(Lightfoot, Grotius),(3)누가(W.Ramsay),(4) 빌립보 교회의 감독(Luther), (5) 루디아(Renan, Scott), (6)유오디아나 순두게의 남편(Chrysostom), (7) 실라(Bengel), (8) '쉬쥐고스'라는 문자적인 이름을 가진 사람(J.Muller, Hort, Moffatt) 등이 있다.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확실히 알수 없으나 본절에 기술된 바와 같이 그가 바울과 함께 복음 사역에 동참했으며 또 빌립보 성도들을 도우라는 바울의 부탁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복음에...힘쓰던 저 부녀들 -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가리킨다.

⭕ 글레멘드 - 이에 대해서는 성경의 어느 곳에도 언급이 없으므로 알 수 없다. 로마의 유명한 감독 중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A.D 30-100)이 있으나 동일 인물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파한 제자들에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고 말씀하셨다. 세상은 주를 위해 수고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지만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은 바,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므로 그들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다(계 3:5).

성 경: [빌4:4]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 '기뻐하라'의 헬라어 '카이레테'(*)는 현재 능동태 명령법으로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Robe-ertson). 바울은 실제로 본 서신을 쓸 당시에 로마 감옥에 투옥(投獄)되어 어려운 형편에 있었다(1:14,17,20-23). 그러나 그는 그 가운데서도 자신이 먼저 기뻐하는 생활을 나타냈다(2:17).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이 고난과 감옥 생활 중에서 믿음에 굳게 서서 그처럼 기뻐한 것(행 16:19-25)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Martin). 따라서 바울의이 말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더 큰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Calvin). 한편 '주 안에서'(*, 엔 퀴리오)는 바울의 기쁨의 원천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해준다. 그리스도야말로 성도들이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할 충만한 근거가 되신다(Cal-vin).

성 경: [빌4:5]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 '관용'으로 번역된 헬라어 '토 에피에이케스'(*)는 손해나 역경을 당해도 쉽게 동요되거나 넘어지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영적인 인내'를 가리킨다(Calvin). 또한 이것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Kent). 바울은 이러한 태도를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 심지어 자신을 핍박(逼迫)하는 사람까지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보여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바울은 성도들이 관용의 태도로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퀴리오스 엥귀스'(*)는 주의 재림의 소원을 나타내는 '마라나 타'(*, '주여 오시옵소서', 계 22:20)의 변형 구절이다(Martin). 바울은 선악간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와 오는 것을 믿는 이상 모든 핍박을 인내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이라고 권면하고 있다(약 5:7-9).

성 경: [빌4:6]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로 번역된 헬라어 '메덴 메림나테'(*)는 금지를 나타내는 현재 명령법으로 '염려를 중단하라'는 뜻이다(Robertson).이는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거나 초조해 하거나 불필요한 관심을 쏟지 말라는 것이다(Kent).염려에 대한 해결책은 '기도'와 '간구'이다. '기도'의 헬라어 '프로슈케'(*)는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가 하나님을 향해 있음을 나타내며 '간구'의 헬라어 '데에세이'(*)는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뜻한다. 한편 '감사함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 유카리스티아스'(*)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도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요소로서 기도하는 자가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나타낸다(Meyer).

성 경: [빌4:7]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모든 지각에 뛰어난 - 하나님의 평강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내거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 하나님의 평강 - 이것은 염려하지 않고 기도와 감사로 하나님께 아뢸 때 그 기도의 결과로 오는 하나님의 선물이다(Hendriksen). 이것은 세상의 평화와 확연히 구별된다. 세상의 평화는 일시적이고 표면적이지만, 하나님의 평강은 영원하며 본질적이며 완전하기 때문이다.

⭕ 지키시리라 - 헬라어 '프루레세이(*)는 '호위하리라'는 의미로 군대 용어이다(Martin). 이것은 로마 군대의 수비대가 보초를 서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하나님의 평강은 믿는 자의 마음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모든 근심과 실망으로부터 성도들을 지켜 보호해 준다(Kent).

성 경: [빌4:8]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종말로 형제들아...이것들을 생각하라 - 바울은 성도들이 언제나 도덕적, 영적으로 탁월하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함을 권면하고 있다(Kent). 특히 본절에서는 성도들이 정신적인 영역에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여덟 가지 덕목들이 열거되고 있다.

⭕ 참되며(*, 알레데) - 이 덕목은 허위와 상반된 개념으로 원래 하나님의 속성이며(롬 3:4) 믿는 자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

⭕ 경건하여(*, 셈나) - 바울 서신에만 나타나는 이 말(딤전 3:8,11;딛2:2)은 특히 교회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 옳으며(*, 디카이아) - '하나님으로부터 옳다 인정함을 받는다'는 뜻이다.

⭕ 정결하며(*, 하그나) - 이것은 도덕적인 정숙함을 강조하며 엄격한 의미의 순결(純潔)을 강조하는 말이다.

⭕ 사랑할 만하며(*, 프로스필레) - 신약성경을 통틀어 이곳에만 나오는 단어로 '즐겁고 유쾌하며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 칭찬할 만하며(*, 유페마) - 이 단어 역시 본절에만 나오는 단어로서 '정중한', '고상한', '우아한'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 덕(*, 아레테) - 도덕적으로 뛰어난 것을 뜻한다.

⭕ 기림(*, 에파이노스) - 도덕적으로 인정이 되어 칭찬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성 경: [빌4:9]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베푼 가르침은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이 있고 행동으로 실천되어야 할 것이었다(Hendriksen). 바울은 그 본보기로서 빌립보에서의 자신의 생활을 실례로 들고 있다. 본절에 나타난 네 개의 동사는 두 그룹으로 구분할 수 있다(Kent). (1)'배우고'(*, 에마데테)와 '받고'(*, 파렐라베테)라는 말은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에게서 받은 교훈을 강조한다. (2) '듣고'(*, 에쿠사테)와 '본'(*, 에이데테)은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말과 행동에 대해 관찰한 것을 강조한다. 이처럼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의 가르침을 통해 받은 것과 그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받은 것, 그리고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생활을 직접 관찰함으로써 깨달은 모든 것을 본받아 행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당시 초대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생활의 표준(標準)을 사도들의 말과 행실에 두고 있었다(Martin).

성 경: [빌4:10]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바울은 정중하고 고상하게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내온 선물에 대해 빌립보 교회에 감사하고 있다.

⭕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 바울에 대한 빌립보 성도들의 물질적 봉사가 한동안 끊어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제'로 번역된 헬라어 '에데 포테'(*, '마침내')는 얼마동안 단절되었던 교제가 다시 연결됨을 가리킨다(Kent). '다시 싹이 남이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네달레테'(*)는 '다시 꽃이 피다', '소생시키다'는 뜻이다. 이것은 원래 겨울 잠을 자던 나무가 봄을 맞아 싹이 나며 꽃이 피는 것을 비유할 때 사용되는 단어로서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1)너희가 나의 관심에 신경쓸 만큼 다시 번창하였다(Meyer). (2) 너희의 나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새롭게 생겨났다(RSV). 이 두 가지 의미는 상호 보충적이다. 빌립보 교인들은 항상 바울 사도를 돕고자 하는 사려깊은 마음과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적절한 기회와 여건이 허락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여건이 마련되었으므로 그들은 바울을 돕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를 실현하게 되었다(Martin).

성 경: [빌4:11]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 바울은 비록 자신이 곤경 가운데 처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자신의 주된 관심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Kent). '어떠한 형편에든지'로 번역된 헬라어 '엔 호이스 에이미(*)는 문자적으로 '어떤 환경에서라도 나는 존재한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곤경에 처한 그의 궁핍한 생활에 대해서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체념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오히려 외적인 형편이 어떠하든지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초연함을 의미한다(Martin).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와 평강을 덧입고 있었으므로 외적 여건에 초연하여 자족(自足)할 수 있었다. '자족'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우타르케스'(*)는 신약성경에서 본절에만 사용되었으며, 스토아 철학자들이 즐겨 쓰는 윤리적인 용어였다(Robertson). 당시 스토아 철학에서는 스스로의 노력으로도 변경시킬 수 없는 불가항력적 형편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 초조해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숙명적으로 여겨 그 가운데서 만족하기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바울의 자족의 생활은 스토아 철학자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의 자족의 비결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았기 때문이다(1:21).

성 경: [빌4:12]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모든 일에...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 '모든 일'은 특수한 상황과 평상적인 모든 상황을 가리킨다(Kent). 바울은 모든 상황 가운데서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함으로써 복음 사역에 매진할 수 있었다.여기서 '비결을 배웠노라'로 번역된 헬라어 '메뮈에마이'(*)는 신약성경에서 본절에서만 사용된 단어로 '비밀을 전수받다'라는 의미다. 바울은 그의 생활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의지함으로 자족할 줄 알게 된 것을 하나님이 그에게 비밀로 가르쳐 주신 것으로 말하고 있다(시 25:14).

성 경: [빌4:13]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 바울은 모든 환경을 극복할수 있는 능력은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모든 권위있는 사본에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딤전 1:12)라는 바울의 고백을 볼 때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Kent).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환경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임을 믿고 있었고 이것은 그의 철저한 신앙 고백이며 강한 확신이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관계 안에서 모든 형편에서 자족하게 되고 이길 힘을 갖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밀이며 참된 능력의 원천이다(Calvin).

성 경: [빌4:14]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 바울은 반의(反意) 접속사 '그러나'(*, 플렌)를 사용하여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Kent). 즉 바울은 자신이 빌립보 교인들의 도움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고 있다(Hendriksen).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선물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그 선물의 배후에 있는 빌립보 성도들의 고상한 정신을 더욱 귀중히 여겨 칭찬하고 있다.

성 경: [빌4:15]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그에 대해 관용하였던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해 그들이 초기에 보여주었던 사랑을 상기시키고 있다(Kent). 여기서 '너희도 알거니와'라는 말은 '너희가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증거를 찾을 필요가 없다'라는 의미이다(Cal-vin). 이와 같은 언급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서 받은 도움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그가 빌립보 교회에서 받은 물질보다 그들에 대한 관심이 휠씬 크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한편 '복음의 시초'란 본 서신을 기록할때부터 약 10년 전(행 16장) 빌립보에서 복음 사역의 일을 마친 후 마게도냐를 떠날 때를 가리킨다(살후 2:13).

⭕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 이것은 바울을 도운 교회가 빌립보 교회 외에는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고후 11:8). 여러 교회가 바울의 복음 사역을 도왔으나 처음에는 다른 교회가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빌립보 교회만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Robertson).실제로 바울이 마게도냐를 떠나 아가야로 갈때 빌립보 교회외에는 아무 교회도 그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지않았다. 바울은 이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상업적 용어인 '주고 받는 일'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곤 도세오스 카이 렘프세오스'(*)는 부기의 대차 대조표 즉 '거래 계좌'를 뜻한다. 바울이 이러한 용어를 사용한 것은 교회가 복음 사역자들의 선교 비용을 충당(充當)하는 것이 마땅한 일임을 나타낸다(고전 9:11).

성 경: [빌4:16]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 사역을 할 때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손수 노동을 하였다(살전 2:9;살후 3:7,8). 그러나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의 물질적 필요를 공급하기 위하여 여러번 그에게 쓸 것을 보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을 도와준 정확한 횟수는 밝히고 있지 않지만 보편적으로 '한 번 이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Morris,Mo-ffatt).

성 경: [빌4:17]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 이것은 빌립보 교인들에 의해 내려질지도 모르는 잘못된 결론을 부정하는 것이다(Kent). '선물'로 번역된 헬라어 '도마'(*)는 일반적인 선물과는 달리 생계에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구함이 아니요'로 번역된 헬라어 '우크 호티 에피제토'(*)는 '바라는 것이 아니요', '기대하는 것이 아니요'란 뜻이다. 혹자는 바울이 더 많은 선물을 바라고 있다는 그들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그와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Lig-htfoot). 그러나 바울의 이 표현은 그의 관심의 대상이 선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선물을 보낸 빌립보 성도들의 영적 열매에 있음을 밝히려고 한것이다(Hendriksen).

⭕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 바울은 당시의 상업적 '로곤'(*, '유익'), '카르폰'(*, '과실'), '플레오나존타'(*, '번성하기')를 사용하고 있다. 혹자는 이와 같은 상업적 표현을 염두에 두고 빌립보 교인들의 바울에 대한 물질적 원조를 '신용 장부에 붙고 있는 이익금'이라고 묘사하였다(Moule). 실제로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에게 베푼 물질적 도움은 영적인 투자와 같았다(Martin, Hendriksen). 그들의 영적 투자는 그들이 투자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될 것이었다. 바울의 진정한 관심의 대상은 빌립보 교인들의 영적 성장과 열매에 있었다.

성 경: [빌4:18]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 바울은 계속해서 상업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코 판타'(*)에서 '아페코'는 파피루스에서 흔히 발견되는 말로 영수증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용어였다(Kent). 이 용어의 의미는 '내가 이미 받았다'(마 6:5), '이것은 나의 영수증이라', '빚진 모든 것을 갚았다'이다(Hendriksen). 또한 '풍부한지라'로 번역된 헬라어 '페릿슈오'(*)는 빌립보 교회의 물질적 도움이 바울의 필요를 채우고도 남았음을 의미한다(Martin).

⭕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 바울은 선물을 보내준 빌립보 성도들에게 믿음과 사랑과 감사의 태도로 경의를 표하고 있다. '향기로운 제물'(*, 오스멘유오디아스)은 구약의 제사 의식을 반영하는 표현으로서(창 8:21;출 29:18;레 1:9,13,17;겔 20:41),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엡 5;2). 또한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헌신적(獻身的)인 삶을 상징한다(롬 12:1). 결론적으로 본절에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의 선물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으시는 것을 나타낸다.

성 경: [빌4:19]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나의 하나님이...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 빌립보 성도들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은 그들이 풍족한 가운데서가 아니라 부족한 형편 가운데서도 바울이 사역을 물질로 도와주었음을 암시해준다. 한편 '채우시리라'의 헬라어 '플레로세이'(*)는 미래 능동태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채워 주실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는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본절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바는 자신의 모든 물질적 필요를 채우셨던 것처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모든 필요를 채우실 하나님의 신실성에 있다(Martin). 이와 같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생명적 관계를 유지할 때 주어진다(고후 8:9).

성 경: [빌4:20]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결론적 충고]

⭕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 본절은 본 서신을 마무리 짓는 송영이다. 그러나 실제 본 서신을 끝맺은 송영은 23절에 나타난다.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토 데 데오 카이파트리 헤몬'(*)으로 여기서 관사가 하나만 있는 것은 단 한 사람을 의미한다(Kent). 따라서 이 말은 '한 분이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라는 의미이다. 바울은 특별히 본절에서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부성적(父性的)인 돌보심을 확신하며(19절) 찬양으로 그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한편 본절의 끝에 나오는 '아멘'(*)은 히브리어 '아멘'(*)의 음역으로 '확증되었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찬양의 종결에서 종종 사용되었으며(대상 16:36;느 8:6) 찬양의 내용에 동의함을 강조한다(Schlier).

성 경: [빌4:21]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끝인사]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 바울은 편지를 먼저 받아 볼 빌립보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그 교회 성도들 각각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부탁한다(Kent). 본절의 문안 인사는 당시의 보편적인 편지 형식에서 빌려온 것으로서 그리스도와의 영적 관계를 확인함을 특징으로 한다(Caffin).

⭕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 - 이들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1:1;2:19-30) 그리고 1:14에 언급된 사람들 중의 일부일 것이다(Kent).

성 경: [빌4:22]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끝인사]

⭕ 가이사집 사람 중 몇이니라 - 이것은 황제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 황제 가문과 관련된 사람을 가리킨다. 혹자는 바울이 수년 동안 로마감옥 생활을 하던 중 접촉하여 알게 된 황제 집안의 관리들과 노예들을 가리킨다고 말한다(Muller). 이들은 바울과의 교제를 통해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던 많은 사람들 중의 일부일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본 서신 서두의 언급(1:13)으로 보아 이들은 시위대에 속한 자들 중 개종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바울은 특별히 이들을 언급한 이유에 대해서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주의 복음이 악명 높은 로마 황제 네로의 궁전에까지 들어갔다는 것이다.

성 경: [빌4:23]

주제1: [빌립보 교회에 주는 바울의 권면]

주제2: [끝인사]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 예수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보호하심이 빌립보 교회의 모든 성도들 위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는 본문은 갈 6:18;몬 1:25과 매우 비슷하다(Kent). 바울은 서신을 맺으면서 그의 모든 서신의 주제이며 그의 삶 가운데 충만히 거하였던 주의 은혜가 빌립보 성도들에게 넘쳐나기를 소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