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아하시야의 죽음 예고]
본절은 이스라엘 역사의 새로운 국면을 시사하는 것으로서 당시의 배경과 이스라엘의 역사적 정황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묘사하고 있다. 첫째,
북이스라엘이 창건된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오므리 왕가(왕상 16:15-29)가 아합 왕의 죽음(왕상22:29-40)으로 그 세력이 급격히 약화
되었음을 보여 준다. 앗수르 왕 살만에셀(Shalmaneser)이 남긴 기록을 보면 당시 아합 왕은 2,000대의 전차와 10,000명의 군사를 지휘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합 왕의 막강함을 짐작해 볼수 있다. 둘째, 이 막강한 아합 왕의 죽음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약해지자
모압이 반기를 들었음을 보여 준다. 모압 왕 메사(Mesha)가 남긴것으로 전해지는 모압 비문(Moab's epitaph)에 보면 모압이 이스라엘 왕국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은 오므리의아들 때부터라고 한다. 그런데 오므리의 아들은 곧 아합 왕을 말한다(왕상 16:28). 결국 모압은 다윗에 의하여 정복을
당한 뒤(삼하 8:2) 계속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쳐오다가 아합 왕 때부터 서서히 반기를 들기 시작하여 아합 왕이 죽은 후에는 완전히
이스라엘을 배반한 것이다(Keil & Delitzsch, Wycliffe, Pulpit Commentary). 한편 모압이 이스라엘을 반역한 기사는 3:4-27에 다시 나온다. 그러니
보다 상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왕하1:2]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아하시야의 죽음 예고]
(주); 다락 난간 - 팔레스틴 지방의 다락은 대개 평평한 지붕 위에 꾸민 방으로 보통 방으로 보통 방에 비해 크다(눅 22:12;행 1:13;9:37;20:8). 그리고 그곳을 오르내리는 계단은 건물밖에 있다. 대하 33:1-11 강해, '히브리인의 주거 형태' 참조. 한편 다락방에는 하나의 창문이 있는데 창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창살이 나 있고 그 창살은 격자 무늬로 되어 있다. 본절의 '난간'에 해당하는 원어 '사바크'(*)도 그 원의(原義)는 '창살'이다. 이 다락에서는 멀리까지도 조망할 수 있었는데 아하시야 왕은 바로 이곳 창문에서 밖을 내려다 보다가 그만 체중을 못이겨 밖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주); 떨어져 병들매 - 높은 곳에서 떨어져 심한 타박상 및 골절(骨折)을 입은 것을 가리킨다. 거기에다 합병증까지 발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 에그론 - 에그론(Ekron)은 블레셋 평원에 있는 다섯 성읍 중에 하나(수 13:3)로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따라서 이스라엘과는 상대적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도시이다. 오늘날 이곳은 아키르(Akir)로 불리우고 있는데 옛날 폐허의 자취를 아직도 지니고 있다. 여호수아 13:3 주석 참조.
(주); 바알세붑 - '바알세붑'(Baal-zebub)에서 '바알'(*)은 '주'(Lord), '소유주', '남편' 등을 의미하며, '세붑'(*, 제붑)은 '파리, 날벌레'라는 뜻이다(사7:18;전 10:1). 그러므로 '바알세붑'은 '파리의 주', '날벌레의 주'라는 뜻이 된다. 혹자(G. Rawlinson)는 '바알세붑'을 '베엘 사멘'(Beel-Samen)과 동일한 신으로도 보았다. '바엘 사멘'은 베니게인(Phoenician)들이 섬기던 '하늘의 주'이다(PulpitCommintary). 그러나 이것은 어원적인 자료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그런데 70인역(LXX)은 '바알세붑'을 '바알 뮈안'(*) 또는 '데온 뮈안'(*)으로 번역하였다. 이와 관련해 혹자는 '데온 뮈안'을 파리 형상으로 된 신으로서 질병을 보내기도 하고 파리로부터 오는 질병을 지켜 주기도 하는 신이라고 주장하였다(Starke). 한편 신약에서는 '제붑'이 '제불'(Zebul)로 읽혀지고 있는데(마10:25), '제불'은 '왕'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은 '바알세불', 즉 '바알 왕'이라는 칭호가 '바알세붑'의 본래의 칭호라는 간접적인 증거가 된다. 또한 바알세붑은 후대 랍비들에 의하여 '바알세벧'(Ball-Zebel)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분토(糞土)의 왕'이라는 뜻이다. 이것으로 보아 왕이라는 뜻의 '세불'이 점차 '세붑', '세벧' 등으로 불리워진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우상에 대하여 나쁜 인상을 심어 주려 한 탓으로 짐작된다(Keil & Delitzsch Commintary, Vol. , p.285). 따라서 후에 '바알세불'은 여호와의 적대자인 사단의 칭호로도 쓰이게 되었다(마 10:25;막 3:22;눅11:15).
(주);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 아하시야의 어리석음이 잘 나타나 있는 말이다. 그는 우상에게 자신의 쾌차(快差) 여부를 묻기에 앞서 먼저
자신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어야 마땅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겸손히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여야 했다. 왜냐하면 그의
사고와 질병을 계속 아비와 어미,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는 죄악(왕상 22:51-53)을 깨닫게 하여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하시야는 계속 우상의 마술적 신탁(oracle)에만 의지하였으니 결국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은 심판의
채찍으로 화(化)하고말았다(4, 16, 17절).
성 경: [왕하1:3]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아하시야의 죽음 예고]
(주); 여호와의 사자 - 역사에는 '여호와의 사자'(the angel of the Lord)라는 문구가 흔하지 않다(K.Koch).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편집자에 의한 삽입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Hobbs). 왜냐하면 엘리야와 관계된 기사들 속에서 '여호와의 사자'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왕상 19:7). 특히 본장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아하시야 왕이 보낸 '왕의 사자'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당시 엘리야가 만난 '여호와의 사자'는 천사가 아니라 여호와 자신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 성경 가운데는 '여호와의 사자'라는 말이 화육(化肉, incarnation)하시기 전의 그리스도, 즉 구약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용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본절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도 구약의 그리스도라고 봄이 타당할 것 같다. 특히 구약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민족의 보호자로 직접 나타나심과 같이(출 23:20, 21;사63:9) 본절의 '여호와의 사자'도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라는 표현은 엘리야의 사역과 관련하여 세번 밖에 언급되지 않았으며(왕상 19:7, 15;왕하 1:3) 그 이외에는 하나님의 계시를 가리켜 주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16절),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왕상 17:2;9:9)라고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 역시 본절의 '여호와의 사자'가 삼위의 하나님 중 한 분인 구약의 그리스도라는 증거가 된다. 이와 관련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창 16:7-16 강해, '여호와의 사자'를 참조하라.
(주); 디셉 사람 엘리야 - '엘리야'(*)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이다. 구약에서는 엘리야라는 이름이 대단히 많이 언급되어 있는데(대상 8:27;스10:21,26) 대개 히브리인들의 '여호와 신앙'의 반영(反映)이다. 한편 디셉(Tishbe)은 요단 동편의 길르앗 지경에 위치한 한 성읍으로(왕상 17:1) 오늘날 길르앗 북쪽의 산악 지대인 리스딥(Listib)과 동일한 성읍인 것으로 추정된다.
(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물으러 가느냐 - 강한 역설적 표현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즉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 전 역사를 통해 나타나신 바된 능력의 하나님이시다(출 3:15;마 22:32). 뿐만 아니라 그분은 자기가 택한 백성 이스라엘과
항상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보호하셨던 하나님이시다. 그러한 증표로서 하나님은 솔로몬으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도록 하셨으며(삼하
7:13; 왕상 6:1 이하)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심을 나타내셨다. 따라서 이상과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아하시야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이방인의 우상인 바알세붑을 찾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배반한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오늘날 극도로 문명이
발달되고 이기주의가 판치는 세상에 사는 성도들에게는 주변의 모든 것이 우상이 되기 쉽다. 그러므로 더욱더 경성함으로 행여 하나님보다 다른
무엇을 더 의지하는 잘못을 범치 말아야 할 것이다(마 10:37;요일5:21).
성 경: [왕하1:4]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아하시야의 죽음 예고]
(주); 그러므로 - 여기서 '그러므로'(therefore)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라켄'(*)으로서 결과를 나타내는 부사이다. 즉 이는 이제 아하시야의 우상 숭배죄 때문에 그에게 죽음의 심판이 임하였음을 보여 준다(Pulpit Commentary).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에는 항상 분명한 이유가 있으니 우리가 그 이유를 분명히 알 때 하나님의 징계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게 될 것이다(약 1:13, 14).
(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 이처럼 엘리야는 아하시야가 반드시 죽으리라는 엄청난 소식을 듣고서도 그 소식을 아하시야의 사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지체없이 길을 떠났다. 이것은 엘리야의 위대한 신앙의 모습일뿐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즉각적인 순종의 자세인 것이다. 왜냐하면
일국(一國)의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왕에게, 더군다나 악하기로 소문나 있는 아하시야(왕상 22:52)에게 그의 죽음 소식을 알린다는 것은
웬만한 신앙과 용기가 아니고서는 행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즉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의 위험도 무릅쓴
신앙의 용장이었던 것이다.
성 경: [왕하1:5]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하늘로부터 임한 불]
(주); 사자들이...돌아오니 - 그렇게 짧은 시간으로는 분명 에그론에 다녀올 수 없었는데 왕의 사자들이 돌아온 시간은 의외로 빨랐다. 아하시야
왕이 '어찌하여'라고 놀람을 표현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왕의 사자들은 엘리야를 만난 후 왕에게로 즉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첫째, 엘리야가 갑자기 왕의 사자들을 찾아와서 책망을 하며 놀라운 심판을 선언했기 때문이다(6절). 엘리야는 왕의 사자들이
무엇때문에 에그론으로 가는지 전혀 묻지도 않았으면서 그 이유를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엘리야의 외모에서 풍겨 오는 신적 권위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왕의 사자들은 엘리야의 외모를 자세히 살펴본 것 같다. 이는 그들이 왕에게 보고하는 장면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8절).
성 경: [왕하1:6]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하늘로부터 임한 불]
(주); 한 사람이 올라와서 - 왕의 사자들 중 그 누구도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던 선지자 엘리야를 보고 못알아 보았을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엘리야를 가리켜 '한 사람' 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엘리야를 보호해 주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들이 처음 엘리야를 만났을 때 그의 신적 권위에 압도되었다는 사실이 이런 주장을 유력하게 해준다. 둘째, 자신들의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이다. 즉 그들은 엘리야로부터 저주의 말을 듣고서도 엘리야를 그냥 놓아준 일로 인해 아하시야로부터 노여움을 살까봐
두려워하였던 것이다(왕상18:7-15).
성 경: [왕하1:7]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하늘로부터 임한 불]
(주); 모양이 어떠하더냐 - '모양'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미쉬파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특별한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본래
'미쉬파트'는 법적인 용어로서 '심판', '공의'라는 뜻이다. 그래서 70인역(LXX)은 이것을 '심판이 무엇이냐'(*, 티스 헤 크리시스)로 번역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미쉬파트'는 일개인의 '특징'이나 '습관' 그리고 '생김새'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KJV는 이를 '외양이 어떠하냐'(What
was the appearance)로, RSV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더냐'(What kind of man was he)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Living Bible은
'어떻게생겼느냐'(What did he look like)로, 공동 번역은 '어떻게 차린 사람이더냐'로 각기 번역하고 있다. 이로 보아 아하시야는 엘리야의 외모
뿐만 아니라 그의 습관이나 특징등을 모두 포함하여 그가 누구인가를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상세한 답변을 요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아하시야가 사자들로부터 엄청난 소식을 듣자 이처럼 제일 먼저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한 까닭은 무엇이겠는가? 아마도 첫째, 그
사람이 정말로 죽음을 예언할 만큼 권위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거짓 예언자나 미친 사람에 불과한지를 알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자신의 생사(生死)와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둘째, 혹 그가 바로 자기 부친 아합에게 저주를 선포했던 엘리야(왕상 21:20-22)가 아닌가 하고
추측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아하시야는 사자들의 보고를 접한 순간 엘리야가 또다시 활동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을 수 있다(Wycliffe, Pulpit
Commintary).
성 경: [왕하1:8]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하늘로부터 임한 불]
(주); 털이 많은 사람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바알 사아르'(*)로서 '어떤 털의 소유자'(a certain possessor of hair)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만으로는 그 정확한 뜻이 모호한데 대개 다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첫째, '머리털이 많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혹자는 엘이야의 특징이 바로 그 머리털에 있었다고 한다(Hobbs). 70인역(LXX)도 이같은 견해를 따라 본절을 '머리털이 많은 사람'(*, 아네르 다쉬스)으로 번역하고 있다. 둘째, '털옷을 입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RSV는 본절을 '그가 털로 만든 겉옷을 입었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혹자는 당시 엘리야가 무두질하지 않은 털가죽 옷을 입고 머리는 어깨 위로 길게 늘어뜨린 채 다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Dake, Rawlinson). 그런데 이상의 두 견해 중 보다 보편적인 주장은 후자이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 침례 요한이 약대 털옷을 입었던 점(마 3:4)이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 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거짓 선지자들 조차 사람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털로 된 겉옷을 입고 다녔던 점(슥 13:4)으로 보아 당시 선지자들에게 있어서의 털옷은 '사명자의 표시'임과 동시에 '권위'를 상징했던 듯하다.
(주);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더이다 - 여기서 '허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트나임'(*)은 두 가지 뜻이 있다. 1)띠나 속옷으로 둘러싸는 곳으로 '요부'(腰部) 전체를 가리킨다. 2)신체의 한 가운데 부분으로 인체의 힘이 집중되어 있는 '허리'를 가리킨다. 다음으로 '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에조르'(*)로서 '마트나임'을 둘러싸는 천이나 혁대를 가리킨다. 공동 번역은 이를 '아랫도리를 가린 것'으로 번역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죽띠가 아닌 무명이나 면 같은 천으로 만든 띠를 두르고 다녔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 p. 286). 그리고 대제사장이 매는 띠는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 그리고 가늘게 꼰 베실로 만든 세마포 띠였다(출 28:8). 그 반면에 가죽띠는 매우 거칠어 착용하기 불편하였으므로 주로 가난한 사람들과 고행자들이 착용하였다(Pulpit Commentary). 따라서 엘리야의 옷차림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아주 대조적인 것으로서 죄악된 세상으로부터의 분리와 죄악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 것으로 보여진다(Keil, Rawlinson).
(주); 왕이 가로되 그는...엘리야로다 - 이처럼 아하시야가 사자들로부터 외양적인 설명만을 듣고서도 그가 엘리야라는 사실을 안 것으로 보아
아하시야는 평소 엘리야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하시야가 평소 엘리야를 알고 있었다는 것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과 그가 전한 말도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시야가 자신의 죄악을 뉘우치지 않고 도리어
엘리야를 체포하려 했던 것(9-13절)은 그가 얼마나 강퍅한 인간이었는가를 잘 보여 준다.
성 경: [왕하1:9]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하늘로부터 임한 불]
(주); 오십부장과 그 오십 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 각 부장 제도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충고에 따라 모세가 처음으로 세운 이스라엘의 준(準)군사 체제이자 행정 조직이다(출 18:21-25). 이때 세움받은 부장들은 곧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인데 이러한 군대 조직의 체계는 고대 근동에 있어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참고;H. W.F. Saggs, The Greatness That Was Babylon, p. 254). 한편 아하시야 왕이 오십부장과 그 오십인을 엘리야에게로 보낸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첫째, 엘리야가 순순히 따라오지 않을 경우, 강제로 끌고 오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않고 아하시야가 선의(善意)를 가지고 있었다면 한 사람의 사자만 보냈어도 충분하였을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초인적인 능력을 의식했기 때문이다(요 18:3). 이처럼 아하시야는 선지자 엘리야에 대한 강한 적의를 품었을 뿐만 아니라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당돌하게 대항하려고 했던 것이다.
(주); 산 꼭대기에 앉았는지라 - 여기서 '산'이란 뜻의 '하르'(*)에는 어떤 특정한 대상을 가리키는 정관사 '하'(*)가 붙어있다. 이것은 본절의 '산'이 앞서 엘리야가 왕의 사자들과 만났던 바로 그 산(3절)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엘리야가 여호와의 사자의 명령대로 시행한 후(3,4절) 도망하지 않고 아하시야가 취할 다음 단계의 행동을 조용하고 냉정하게 기다리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Dake). 한편 분명하지는 않으나 일부 학자들은 엘리야가 앉아 있던 산이 갈멜 산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Baker, Delitzsch). 사실 갈멜 산은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과 싸우던 곳으로서(왕상 18장) 본장의 주제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 주체는 바로 하나님의 사자와 왕의 사자 간의 싸움인데 그 싸움의 승패를 결정짓는 심판자는 앞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왕상 18:38)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었다(10, 12절).
(주);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내려오라 하셨나이다 - 여기서 '내려오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레다'(*)로서 '싸우려 산에서 내려오다',
또는 '홍수처럼 급히 내려오다'라는 뜻의 동사 '야라드'(*)의 능동태 명령형이다. 따라서 이는 아하시야가 일국의 왕으로서 엘리야에게 명령하고
있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이여'는 선지자를 부를 때 흔히 쓰는 호칭이다(삼상 2:27;9:6,10). 그러나 아하시야가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여기서는 엘리야를 빈정대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즉 엘리야를 향하여 명령을 내리는 아하시야 왕의
태도는 존경보다는 경멸에 가까운 것이었다. 한편 '이르되'로 번역된 히브리어 '예다베르'(*)는 피엘형(Piel;강조형 능동)으로서 '거듭거듭
말한다'라는 뜻이다. 이처럼 동일한 말을 두번 세번 반복함으로써 엘리야의 감정을 자극한 것으로 보아 오십부장 역시 아하시야의 명령을 전달함에
있어서 동일한 경멸의 자세를 취하였음이 분명하다.
성 경: [왕하1:10]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하늘로부터 임한 불]
(주);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 이말은 자신의 권위를 실제로 증명해 보이겠다는 일종의 선포이다. 즉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제 엘리야는 왕의 권위보다 더 큰 하나님의 권위를 그들에게 증명해 보이겠다는 말인 것이다. 한편 이러한 권위 증명의 문제는 신약 시대 당시 예수께서도 서기관과 제사장들에 의해서 제기받은 적이 있으시다(막 11:27-33).
(주);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 '불'을 뜻하는 히브리어 '에쉬'(*)는 문자적으로 자연적인 불을 의미한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출 3:2;13:21,22;19:18) 비유적으로는 '진노의 심판'을 나타낸다(계 20:14,15). 소돔과 고모라는 여호와께서 내리신
'유황과 불'로 멸망했고(창 19:24), 예수께서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마 7:19)고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따라서 엘리야가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이라고 한 가정적인 표현의 말은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신적 권위가 증명된 것이다. 한편 이처럼 엘리야가 아하시야의 오십부장에게 불심판을 선고한 까닭은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는 오십부장의
불손한 태도를 징치(懲治)하기 위함이며, 둘째는 아하시야왕의 완악함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성 경: [왕하1:11]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하늘로부터 임한 불]
(주); 왕이 다시...보내니 - 아하시야가 왕이라는 공직자의 위치에서 두 번이나 같은 행위를 시행했다는 것은 이미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국가적인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수 있다. 물론 그 배후에는 아하시야의 행위를 막을 만한 신하들이 없었던 탓도 있을것이다. 어쨌든 엘리야에 대한 아하시야 왕의 도전적인 태도는 더욱더 완강해져 갔다. 이는 곧 어리석음과 완악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주); 속히 내려오라 - '속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메헤라'(*)로서 '서둘러서', '빨리'라는 뜻이다. 이것은 '내려오라'는 말을 더욱 강조해
주는 것으로서 권위주의 의식(意識)이 잔뜩 배어 있는 말이다. 사실 왕이 사자를 보낼 때는 공식적인 용어를 쓰기 마련이다. 따라서 본절에 나타난
이러한 용어는 선지자 엘리야의 권위에 대한 경멸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보여진다. 즉 아하시야는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는 심판을
당하고서도(10절)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교만한 자세로 엘리야와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Keil, Matthew Henry, Wycliffe).
성 경: [왕하1:12]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하늘로부터 임한 불]
보다 완강해진 왕의 거만한 태도에 비해 엘리야 선지자의 태도는 어떠한가? 엘리야는 처음과 동일하게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선지자의 권위를
나타낼 뿐이다. 이러한 본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1)엘리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태도를 취함으로써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신분을 잘 지켰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과거 모세가 크게 한번 실수하므로서(민 20:11)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2)엘리야는 더욱더 거만해진 두번째 오십부장의 불손함을 잘 견딤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종'된 자로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함과 일관된 자세를 잘 유지하는 것은 현대의 사역자들에게도 요청되는 필수적인 기본 덕목이다.
성 경: [왕하1:13]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아하시야의 최후 선고]
(주); 올라가서 엘리야의 앞에...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 여기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앞의 두 오십부장(9,11절)과 다른 세번째 오십부장의 겸손한 태도이다. 특히 이는 두번째 오십부장의 태도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즉 두번째 오십부장은 전임자가 징벌을 받은 사실을 알면서도 산 아래에서 엘리야에게 내려오라고 큰 소리쳤었다. 그러나 세번째 오십부장은 두 전임자를 교훈삼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도로 엘리야에게 공손한 태도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주); 나의...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 여기서 '귀히 보소서'란 말은 히브리어 '티카르'(*)를 번역한 것이다. 이 단어는 '귀하게 여기다',
'존중하다'라는 뜻의 동사 '야카르'(*)의 미완료 변형으로서 어떻게든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간절한 청원이다. 그런데 세번째 오십 부장의 이러한
간구와 겸손함은 아하시야왕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아하시야는 두 차례에 걸친 하나님의 심판에도 불구하고(9-12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또다시 엘리야를 체포하러 세번째 군사들을 파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번째 오십부장은 엘리야의 권위와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고선 아하시야의 명령과 상관없이 엘리야의 발 앞에 무릎 꿇은 것이다(Matthew Henry'sCommintary, Vol. p. 709).
성 경: [왕하1:14]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아하시야의 최후 선고]
(주); 불이...살랐거니와 - 본절은 세번째 오십부장이 두 전임자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징벌을 자신의 교훈으로 삼았음을 보여 주고있다. 이것은
계속되는 하나님의 징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더욱 완악해져가는 아하시야 왕의 태도와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고 두려워하는 자는 반드시 구원을 얻기 마련이다(15절;시 149:4).
성 경: [왕하1:15]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아하시야의 최후 선고]
(주);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 3절에서 언급되었던 '여호와의 사자'가 본절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바로 지금까지 엘리야를 보호하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그의 권위를 지탱해 주셨음을 의미한다.
(주); 저를 두려워 말고 함께 내려가라 - 여기서 '저'가 가리키는 사람은 아하시야 왕이다. 그리고 '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미파나이우'(*)로서 '그의 면전에'라는 뜻이다. 즉, 여호와의 사자는 엘리야로 하여금 아하시야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 말라고 권고하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두 번의 징벌을 내리시고 난 후 지금에 와서야 엘리야를 아하시야 앞에 보내시는 걸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론해 볼 수 있다. 첫째, 이제는 아하시야에게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에 있어 방해가 되는 외적인 장애물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백성들이나 신하들이 모두 분명하게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즉, 두차례에 걸친 심판으로 인해(9-12절) 이제는
백성들이나 신하들 가운데 세번째 오십부장과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심판을
행하심에 있어서 단지 징벌만을 하지 않으신다. 그 심판 속에는 후대의 하나님의 백성들 뿐만 아니라 당대의 백성들에게 주는 귀한 교훈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성 경: [왕하1:16]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아하시야의 최후 선고]
본절은 3,4절의 반복일 뿐만 아니라 왕의 사자들에 의해 왕에게 전달된 동일한 말이다(6절). 그러나 이제 아하시야 왕 앞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직접 선포한 것은 대단히 의미가 깊다. 즉 엘리야는 우상을 섬기는 포악한 아하시야 왕을 향해서 그의 불신앙을 선포함으로써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변경함이 없이 담대히 외쳤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의 참된 용기와
담대함을 발견하게 된다(고후 5:6).
성 경: [왕하1:17]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아하시야의 죽음]
(주); 엘리야의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 여기서 '대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전치사 '케'(*)로서 '...와 동일하게', '...처럼'이라는 뜻이다. 즉 이는 엘리야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틀림없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가리킨다. 이와같이 열왕기서에 기술된 역사의 전반을 살펴볼 때 선지자가 선포한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 선지자의 권위를 보증해 주고 계신다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왕상14:18; 22:13;왕하 2:22; 10:17; 24:2).
(주);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 70인역(LXX)과 수리아역(Peshitta)과 라틴어 역본(Vulgate)에는 '여호람'(Jehoram)이란 말 뒤에 '그의 형제'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다. 그리고 공동 번역, Living Bible, RSV 등도 이것을 옳은 것으로 보고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맛소라 히브리 본문에는 이 말이 생략되어 있다. 아마도 맛소라 본문이 그렇게 한 것은 '여호람'이 '아하시야'의 형제라는 사실을 당대에는 누구나 다 아는 일반적인 상식에 속한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70인역(LXX)등이 '그의 형제'라는 단어를 삽입해 주므로서 오늘날의 우리들에겐 많은 유익이 되고 있다. 즉, 이는 당시 아하시야에게 아들이 없었다는 사실과 여호람이 그의 형제라는 사실을 동시에보여 주는 주석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 유다 왕...여호람의 제 이 년이었더라 - 본절과 달리 3:1에서는 유다 왕 여호사밧(Jehoshaphat)의 제 18년에 이스라엘왕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반면 8:16에는 유다 왕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 해가 이스라엘 왕 여호람의 제 5년이었다고 되어 있다. 즉 한 곳에서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유다 왕 여호람보다 약 4년 먼저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약 1년 늦게 왕위에 올랐다고 서로
모순되게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이처럼 서로 엇갈리는 연대 기록은 성경 기자들의 기록상의 오류로 인한 것이 아니다. 대신 그 원인은 근복적으로
이스라엘의 섭정 제도(regency)에 있다. 즉 성경의 연대 기록은 어떤 왕의 섭정 개시 년도부터 계산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정식으로 등극한
해부터 계산되기도 한다. 따라서 아하시야의 형제 여호람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연대를 계산함에 있어서도 본절에서는 유다 왕 여호람이 섭정을
시작한 해를 기준으로 계산한 반면, 8:16에서는 유다 왕 여호람이 정식 등극한 해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다(Keil &
DelitzschCommentary, Vol. , pp. 288f).
성 경: [왕하1:18]
주제1: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엘리야]
주제2: [아하시야의 죽음]
(주); 아하시야의 남은 사적은...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 성경에는 아하시야의 사적이 엘리야와 관련해서 죄를 범했다는 본장의 기록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사건이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었고 본서가 기록될 당시 사람들은 아하시야의 여타 사적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성경의 기록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심히 악을 행하였다는 것이다(대하 20:35).
(주); 이스라엘 왕 역대 지략 - 이 책(the book of 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Israel)은 신구약 성경 66권 중의 한 권인 역대기(歷代記)가
아니다. 대신 이는 본서 저자가 활용한 자료들 중의 하나인 이스라엘 왕들의 국정 일지(國政日誌)를 가리킨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왕상
14:1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왕하2:1]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엘리야를 추종하는 엘리사]
(주); 여호와께서...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 - 선지자 엘리야 (Elijah, B.C.875-848)가 자신의 공적 사역을 모두 마친 후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가 이르렀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이스라엘 왕 아합의 통치 초기에 등장, 숱한 역경을 이기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역을 완수한 엘리야에게 이제 남은 일이라곤 엘리사(Elisha, B.C. 848-797, 왕상 19:19-21)를 차기 후계자로 굳건히 세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면 그는 영광스러운 최후를 맞이하게 될 터인데 곧 에녹(창 5:24)처럼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昇天)하는 것이었다(11절). 한편 성경상에 아무런 언급이 없으므로 이때가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이같은 엘리야 승천 사건은 이스라엘왕 아하시야(Ahaziah, B.C. 853-852)가 죽고난 뒤에 일어났던 것만은 분명하다(1:17,18).
(주); 길갈에서 - 성경에 나오는 길갈(Gilgal)은 두 곳이다. 하나는 여호수아의 정복사에서 언급된 곳(수 4:19)으로 여리고에서 북동쪽으로 약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질질리아(Jiljiliya) 또는 칼킬리야(Khalkiliya)에 해당하는 곳(신 11:30)으로 벧엘에서
북서쪽으로 약 13km정도 떨어진 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해 있다(T.R.Hobbs). 그런데 엘리야와 엘리사가 이동한 경로(1-11절)와 2절의 '벧엘로
내려가니'란 말로 미루어 볼 때 본절의 길갈은 후자의 길갈임이 분명하다. 이곳은 에브라임 지파의 땅이며 엘리사의 중심 활동지이다(4:38). 그러나
후에 이곳은 우상 숭배지로 변하여 아보스, 호세아등의 선지자에게 규탄을 받았다(암4:4;호4:15;9:15). 이동 경로에 대해서는 다음 지도를
참조하라.
성 경: [왕하2:2]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엘리야를 추종하는 엘리사]
(주);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 본장에서 세번씩이나 언급된 말로(2, 4, 6절) 엘리야가 엘리사를 자신에게서 떼어 놓으려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구절이다. 그런데 엘리야가 이처럼 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있다. 1)엘리야가 자신의 최후가 임박했음을 알고 마지막 지상 생활을 홀로 지내기 위해(Pulpit Commintary), 2)자신이 승천하는 영광을 엘리사와 생도들에게 나타내지 않으려는 겸손에서(Keil & Delitzsch), 3)엘리사의 충성과 사랑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Wycliffe)등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의 세 견해 중 어느 한 가지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모든 견해를 두루 섭렵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듯하다.
(주);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 이것은 구약에서 나타나는 맹세의 일반적인 형식이다(삼상 14:39; 20:3;삼하 11:11).
라기스 문서(LachishLetters)에서도 동일한 맹세 형식을 볼 수 있다. 즉 이스라엘인들은 자신의 맹세나 말의 신실성을 확증, 강조하려 할 때 대개
이같은 표현을 썼다. 이는 곧 하나님과 상대방의 전인격 및 전존재를 건 것으로 '여호와와 당신이 살아 있는 것이 확실하듯 ...도 확실하다'는
뜻이다. 삼상 25:26 주석 참조.
성 경: [왕하2:3]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엘리야를 추종하는 엘리사]
(주);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 - 구약 성경 중 사무엘서나 열왕기에는 '선지자의 무리'(삼상 10:5;19:20;왕상 20:35)또는 '선지자의 생도'(5,7,15절; 4:1,38; 5:22; 6:1)란 말이 종종 나온다. 이들은 영적으로 지극히 암울했던 시기에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도덕적 회복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당대의 위대한 선지자였던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의 수하에 몰려든 자들이다. 이런 무리를 가리켜 우리는 소위 원시 형태의 '선지자학교'라고 부르는데 곧 벧엘, 여리고(5절) 등에 있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상 10:1-16 강해, '선지자 학교'를 참조하라.
(주);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직접 엘리야에게 나아가기에는 엘리야 선지자의 권위가 너무 컸다(PulpitCommentary). 또 그들은 엘리사를 자신들과 동일한 생도의 관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엘리사와 접촉하기가 훨씬 용이했을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 본절 및 5절과 같은 말로 볼 때 벧엘과 여리고 생도들도 엘리사와 같이 엘리야의 승천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아나이까?"라는 질문은 어떤 사실에 대해 확인하려는 말이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 '취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라카흐'(*)로서 '돈을 주고 사다', '결혼하여 데려가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수동형(Niphal)으로는 '포로로 잡혀가다', '죽음에 의해서 옮겨지다'(겔 33:6)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러나 이 단어 '라카흐'(*)가 여기서는 '엘리야의 승천'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의 승천에 대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계시해 주고 엘리야가 엘리사와 선지자들의 생도들에게 그 계시의 내용을 알려준 것으로(Wycliffe) 행 1:9,10에서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감람 산에서 승천하실 때의 모습과 같이 하늘로 올리움을 생생히 나타낸 것이다(Keil & Delitzsch). 또한 본절의 '머리 위로'라는 구절이 이 의미를 더욱 강화해 주고 있는데 여기에 사용된 전치사 '메알'(*)은 '...로부터'라는 뜻의 비분리 전치사(*, 메)와 '위에'라는 뜻의 전치사(*, 알)가 합성된 것으로 엘리야가 하늘 나라로 옮기게됨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생도들이 본절에서 언급한 말은 엘리야 선지자의 승천에 대한 질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혹자는 이것을 가리켜 단순히 엘리야가 엘리사를 떠나려고 한다는 사실을 나타낸 것이라고 본다(B hr). 즉 엘리야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에 대한 언급으로서 엘리사의 마음에 슬픔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벧엘에 있는 성도들이 엘리야의 승천에 관해 알 리가 없기때문이라는 것이다(K.W.B hr). 그러나 일반적으로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히브리어 '라카흐'(*)와 전치사 '메알'(*)의 용법, 그리고 당시 상황등을 고려해 이 구절을 엘리야의 승천에 관한 질문으로 보고 있다.
(주); 너희는 잠잠하라 - 이것은 "그가 하늘로 올라 가는 것을 큰 소리로 말함으로써 백성들을 소란시켜서는 안 된다"(J. Lange)는 의미가 아니다.
또 "엘리야의 겸손을 위해서 그의 영광을 너무 많이 말하지 말라"(Keil)는 의미도 아니다. 즉 이것은 "너희는 마음을 고요하게 해서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Wycliffe) 내 사랑하는 주를 이별하려고 하는 이 순간에 말을 많이 함으로써 내 마음을 격동시키지 말라"(Bunsen)는 뜻으로 엘리사 자신의
내적 심정을 토로한 것이며(Matthew Henry) 거룩한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엄중한 요구이다(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2:4,5,6]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엘리야를 추종하는 엘리사]
엘리야와 엘리사의 여행은 길갈-벧엘-여리고-요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험한 여행에서 스승에 대한 엘리사의 인내와 충성심은 명백하게
증거되고 있다. 이러한 훈련의 과정들을 통하여 결국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계자가 된다.
성 경: [왕하2:6]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엘리야를 추종하는 엘리사]
(주);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 엘리사는 마침내 스승 엘리야의 반복된 시험을 통과하였다. 이러한 그의 결단은 스승에 대한 깊은
애정과 불타는 충성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엘리사의 고백은 그의 전 인생을 엘리야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준 것이다.
성 경: [왕하2:7]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갑절의 영감을 구하는 엘리사]
(주); 선지자의 생도 오십 인이 - 여기에 언급된 오십 인이라는 숫자는 1장에서 엘리야 선지자를 잡으러 왔던 병사들의 수와 동일하다(1:9). 오십
명의 생도들은 엘리야의 최후를 목격한 증인들로서 그의 승천을 전파하게 될 사람들이다. 한편 선지자의 생도들이 50명이라는 것은 그들이 단체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바 이러한 사실은 암살의 위험에서 도피하는 다윗의 사건 등 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도 볼 수 있다(삼상
10:5,6,10; 19:20).
성 경: [왕하2:8]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갑절의 영감을 구하는 엘리사]
(주); 겉옷을 취하여 - '겉옷'은 히브리어로 '에데르'(*)로서 소매없는 외투 또는 양가죽으로 되어 어깨를 감싸는 망토를 가리킨다(Pulpit Commentary). 70인역(LXX)에는 '톤 멜로텐'(*)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이것은 '양가죽'을 의미한다. 한편 모세의 지팡이가 백성들에게 보여주는 권위의 상징인 것과 비교해서 여기에 나타난 엘리야의 겉옷은 선지자의 직분을 상징한다. 그리고 엘리야가 자신의 겉옷을 엘리사가 일하는 곳에다 던진 일(왕상 19:19)이 있는데 이는 엘리야가 엘리사를 선택한다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선지자직을 위임한다는 의미였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들 앞에서 엘리야의 겉옷을 보인 것은 엘리사가 그의 후계자임을 명백히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외투를 말면 모양이 어느 정도 지팡이와 같이 되었을 것이다.
(주);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 이 사건은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가른 사건(출 14:16,21)과 여호수아가
요단 강을 가른 사건(수3:13)에 상응한다. 또 이것은 엘리야와 엘리사의 관계가 모세와 여호수아의 관계처럼 스승과 제자의 관계, 혹은 지도자
위임의 관계인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본 사건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여호와의 권능을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 이적이다. 왜냐하면
'권능'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해 있기 때문이다(시 62:11). 따라서 겉옷을 취하는 선지자의 상징적 행위와 이 이적의 사건은 이것을 지켜보는
생도들에게 하나님의 작정하심과 그분의 목적을 알게 했을 것이다. 한편 '육지'는 히브리어로 '하라바'(*)로서 '마른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에 따라 공동 번역과 영역본들에서는 모두 '마른 땅'(dry ground)이라고 번역했으며 70인역(LXX)도 이와 비슷하게 '에레모스'(*) 즉 '사막',
'광야'란 의미로 옮겼다. 또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와 요단 강을 건널때 '마른 땅'(출 14:21;수 3:17)이라고 말했던 그 표현으로서
성경에서는 드물게 사용된다. 이처럼 하나님은 강물과 바닷물을 갈라 놓을 수 있는 분일 뿐만 아니라 갈라서 드러난 땅을 마르게도 하셔서 백성들의
불편함을 알고 조처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이다. 한편 이 두 선지자가 요단 강을 건너 당도한 곳은 모압 땅이었는데 이곳이 바로 모세가 죽음을
맞이했던 곳이다. 신 34:6을 보면 "오늘까지 이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묘가 없는 엘리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17절에서 무리들이 엘리야의 시체를 찾았으나 찾지 못한 사건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후대의 많은 사람들은 엘리야를 에녹과 연관시키려고 하지만
오히려 모세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무덤의 위치에 대해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것은 모세와 엘리야에 대한 두 기사 뿐이기
때문이다.
성 경: [왕하2:9]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갑절의 영감을 구하는 엘리사]
(주);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 '영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루아흐'(*)로서'영', '호흡', '영혼'이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선지자적 능력'을
가리킨다. 그리고 본문의 '갑절'이라는 말은 신 21:17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는 용어로서 맏아들의 분깃을 강조한 표현이다(Keil & Delitzsch).
즉 이 말은 일반의 형제들보다 장자가 받는 두 몫의 유산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엘리사는 엘리야의 합법한 계승자로서 충분한지도자의 역량을
엘리야에게 요구한 것이다. 만일 이 구절이 엘리야보다 두배의 능력을 구한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때는 다음과 같은 모순이 생긴다(B hr).
1)실제로 엘리사가 받은 능력은 엘리야의 두 배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엘리사가 산 생애의 길이나 그가 나타낸 기적의 수나 양은 엘리야가 행한
것보다 두 배의 능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인 것이다. 2)그러한 요구는 주인을 모시는 종된 자로서 가장 겸손치 못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종이 결코 그 주인만 못하다고 했던 것이다(마 10:24). 따라서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요구한 것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열심을 나타낸 표현으로 엘리야같이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으로 인정받기 위한 것이다(Matthew Henry, The Interpreter's Bible).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사역자도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 먼저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간절히 간구하는 경건의 훈련이 절실히
요청된다(히4:16).
성 경: [왕하2:10]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갑절의 영감을 구하는 엘리사]
(주);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 엘리야의 이 말은 엘리사가 요구한 일의 중요성의 정도를 나타낸다. 왜냐하면 9절에서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고 할때 엘리야는 자신이 쉽게 줄 수 있는 것을 의미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엘리사의 요구는 엘리야가 기대했던 대답이 아닐 뿐만 아니라(Matthew Henry Commentary) 자신이 행할수 없는 하나님께만 속한 일 즉, 신령한 축복을 원한 것이기에 그 일은 어렵다고 한것이다. 또 엘리야는 후계자를 임명함에 있어서 인간적인 의식은 만인이 보는 가운데서 치룰 수 있으나 이에 대한 신적인 증거는 자신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그렇기에 엘리야는 엘리사의 마음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께 엘리사의 신앙심 깊은 요청이 허락되도록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주);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 신 31:23에서 여호수아가 모세의 지도권을 양도받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직접
임했다. 그러나 엘리야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이적이 곧 엘리사의 선지자적 직분에 대한 증거가 되리라고 했다. 즉 엘리야는 엘리사가 자신의 승천
모습을 직접 지켜보고 그리고 그 승천의 영적 의미를 깨닫는다면(Wycliffe) 그의 요청이 성취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6:17;눅 24:16,31). 그래서 '그렇지 않으면'이라는 어느 정도 부정적인 면을 암시하는 말을 첨가해서 엘리야는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나타냄과 동시에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일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처럼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바라보면서 그분의 뜻을
신뢰하였으며 그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선지자적인 태도의 모범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성 경: [왕하2:11]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엘리야의 승천]
(주);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이에 그들이 걷기를 계속하면서 계속해서 말했다'란 의미로 이것은 두 사람이 요단 강을 건너 걸어가고 있을 때(Wycliffe) 하늘로 부터의 징조를 기다리면서 한참동안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무슨 증거를 보이시도록 기도하였을 것이며 또한 엘리사는 스승의 최후를 맞이하면서 엘리야가 남긴 교훈을 하나라도 더 듣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 유사한 예로서 눅 24:50, 51에는 예수께서 하늘로 올리우시기 전에 제자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서 축복해 주시는 장면이 나온다.
(주);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 이 구절은 1장에서 말한 '하늘에서 내려온 불'과 연관됨이 분명하다(1:9-16). 엄밀하게 말하면 실제로 '불수레와 불말'에 관한 언급은 엘리야의 생애 중에서 불의 역사로 말미암은 그의 승리를 연상시켜 준다(왕상 18:24-38;왕하 1:10-12). 실제로 구약에서 말과 병거는 군대의 전쟁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며(출14:7; 삿 4:3;욜 2:5;나 3:2), 불이 하나님의 현현을 상징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출 3:2;24:17;신 33:2;합 3:3-5)이 '불수레와 불말'이 하나님의 권능과 의지를 나타내는 구름을 의미(Lange)한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와 초자연적인 권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Pulpit Commentary, Wycliffe).
(주); 회리바람을 타고 -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회리바람 안에' 또는 '회리바람 가운데'이다. '회리 바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세아라'(*)로서 검은 구름과 번갯불을 동반한(Wycliffe) '태풍' 상태를 의미한 말로 하나님의 임재, 또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여기서 회리 바람은 자연법칙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욥 38:1;행 2:2). 그리고 원문을 보면 엘리야가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승천했는지 분명치가 않다. 단지 갑자기 불수레와 불말이 나타나자 엘리야와 엘리사가 태풍 가운데 사라진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엘리야가 불병거를 타고 올라간 것이 아니라(말 4:5,6;마 11:14) 폭풍 중에, 즉 주께서 임재하시는 가운데 승천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Wycliffe). 그래서 17절에서 오십인을 보내어 엘리야를 찾아오게 한 것도 이와 같이 그의 사라짐이 묘연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엘리야가 에녹(창 5:22-24), 예수(눅 24:50-53)와 같이 죽지 않고 하늘에 올라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모든 신자들이 경험하게 될 일에 대한 예표이기도 하다(고전 15:51;살전 4:17). 한편 후대의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시지 직전에 먼저 엘리야가 나타나리라(말 4:5)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유대 문헌 가운데 기록하고 있는바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엘리야가 갑자기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문을 잠그지 않았다고 하며, 개들이 즐겁게 짖으면 그것이 엘리야가 오는 소식이라 하여 가슴을 두근거렸다는 것이다(B hr).
(주); 승천하더라 - 여기서 히브리 원문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는 '알라'(*)인데 이것은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질문할 때(3,5절) 사용한
단어 '라카흐'(*)와 다른 뜻이다. 즉 '라카흐'는 하나님이 그를 데리고 가심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알라'(*)는 그 원형인 '번제'라는 뜻의
'올라'(*)에서 보듯이 완전히 태워져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사라지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확실히 에녹이 승천한 경우와 연관되는데(창
5:24) 창세기의 기록에서는 세상에 "있지 아니 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을 해석할 때 엘리야의 승천 방법을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하여 그의 모습을 사라지게 하심으로써 에녹과 모세와 동일하게 취하셨음을 인정할 수 있다. 한편
하나님의 기적과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인하는 자유주의적인 신학자들의 일부는 본 엘리야의 승천 기사를 하나의 전설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The
Interpreter's Bible). 그러나 그 현장을 목격한 당시의 선지 학교 학생들과 엘리사의 증언에 의해 또는 승천 전에 언급된 사실(3,5절)을 미루어볼
때 그리고 변화 산상에서 모세와 같이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엘리야의 기사를 살펴볼 때 그 사건의 역사적 진실성과 객관적 사실성은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할수 있다(마 17:3,4;눅 9:30). 이러한 엘리야 선지자의 승천 사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곳에 대한 확실성 뿐만 아니라
인간의 불멸성에 대해 어렴풋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불멸성은 성도의 몸이 입게 될 영광이고, 이러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것에
대한 한 상징인 것이다(Matthew Henry Commintary).
성 경: [왕하2:12]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요단을 가르는 엘리사]
(주); 엘리사가 보고 - 10절과 비교해 볼 때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엘리야의 승천 사실을 엘리사가 목격함을 나타냄과 동시에 엘리사가 제시해 주었던 상황(3, 5절)이 성취되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이때 엘리사는 자신이 요청한 '갑절의 영감'이 응락된 것을 알았다.
(주);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 엘리사의 이 외침은 2장에서 클라이막스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13:14에서 요아스 왕의 입을 통하여 이 문구가 다시 말해진다. 그래서 혹자는 이 구절 자체가 갖는 독특한 의미를 해석하려고 한다. 그러나 선지자를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요아스 왕 이외에는 없기 때문에 이 구절을 문맥과 독립시켜 해석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본문에서 '아버지여'라고 말한 것은 다음과 같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이것은 존경을 나타낸다. 즉 종들이 자기 주인에게(5:13), 또는 젊은 생도들이 나이든 선지자에게 이와같은 존칭을 사용했다. 둘째, 이것은 선지자들의 지도자에게 붙이는 호칭으로 볼 수있다. 또는 이외에도 혹자는 이것을 '엄마, 마마' 등과 같이 어린 아이의 근심된 표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T. H. Gaster). 그러나 본문의 의미는 엘리사가 자신을 엘리야의 영적 아들로 인식하고 엘리야를 '아버지'라고 호칭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라'는 외침은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참 보호자가 된 것을 의미한다(Wycliffe). 왜냐하면 특히 엘리야는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뿐이심을 증명했던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또 엘리사의 이러한 외침은 앞으로 전개될 그의 사역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래서 요아스 왕이 엘리사에 대하여 이 구절의 내용과 똑같은 말을 사용한 것(3:14)도 엘리사를 엘리야와 같은 이스라엘의 보호자로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병거와 마병은 그당시 최고로 강력한 병기로 이스라엘의 왕들이 왕국의 국력을 과시하고 안전을 의존했던 것(Keil &Delitzsch, Vol. . p.296-297)으로 싸울때(욜 2:5;나3:2), 물건을 나를 때(9:28), 여행할 때(행 8:29)등에 사용된 것이다.
(주); 엘리사 - 히브리어로 '엘리솨'(*)로서 '나의 하나님'이라는 뜻의 '엘리'(*)와 '그가 구원하신다'라는 뜻의 '예솨'(*)가 합쳐진 말이며 '나의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라는 의미이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자로서 처음 활동을 시작한 때는 이스라엘 왕국의 7대 왕 아합(B.C. 874-853)의 통치 말년이거나(왕상 19:1-7), 또는 아합의 아들 여호람(B.C.853-841)의 통치 초반으로 본다(3:1). 이때부터 제 12대왕 요아스(B.C.798-782) 통치 초반기에 이르기까지 약 반세기에 걸쳐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는 예언 활동을 하였다(13:14-19).
(주);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 '둘로 찢고'라고 해야 바른 번역이 된다. 여기서 엘리사가 자신의 옷을 찢은 것은 스승과 이별하는 슬픔을
나타낸 행동이었다(PulpitCommentary, Wycliffe).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재한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주던 엘리야가 사라진 것은 엘리사에게 큰
슬픔과 더불어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그의 이러한 심적 상태가 단적으로 표현된 것이다(5:7;수 7:6). 이밖에도 재를 뒤집어쓰는 것(욥
2:8), 얼굴과 가슴을 치는 행위(눅 18:13), 정수리의 머리털을 면도해 버리는 것(렘 7:29)등은 모두 극도의 애통을 표시하는 관례적인 행동들이다.
성 경: [왕하2:13]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요단을 가르는 엘리사]
이제 엘리사는 다른 생도들, 즉 위의 모든 사실을 목격한 증인들에게로 되돌아 오기 시작한다.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줍는 후계자 계승의
상징적 행위는 왕상19:19에서 엘리사가 선지자로서 처음 부름을 받던 행위와 서로 연관된다. 한편 엘리야의 떨어진 겉옷은 엘리사의 요구가
성취되었다는 하나의 증표(Keil & Delitzsch)임과동시에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단정적으로 확증시켜 주는 외적 증거이다(15절,
Wycliffe).
성 경: [왕하2:14]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요단을 가르는 엘리사]
(주); 물을 치며...물을 치매 - 여기서 '물을 치다'라는 표현이 두번 거듭해서 언급된 것은 스승 엘리야가 행했던 능력을 상기시켜 줌(8절, The Bible Knowledhe Commentary,Pulpit Commentary)과 동시에 홍해를 가르던 모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출14:21,22;수 3:17).
(주);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나이까 - 히브리어 원문은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더욱이 그는?'으로 표현되어 있어
마지막의 두 단어를 강조하고 있다(Pulpit Commentary). 그런데 엘리사가 이렇게 외친 것은 엘리야에게 능력을 주셨던 하나님께 자기에게도 함께
하시기를 간구했던 기도였다(Wycliffe). 그러나 이것을 엘리야와 함께 그 하나님의 능력이 더불어 사라진 것이 아닐까 하는 근심의 표현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와는 반대로 엘리사는 질문의 강조 형식을 빌어서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충성심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그의 신앙에 응답하여 기적을 이루게 하셨고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외적으로
확증시켜 주셨던 것이다(Keil & Delitzsch, Vol.3 ,p. 297).
성 경: [왕하2:15]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선지자 생도들의 불신]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은 엘리사의 기적을 목격하고서 그가 엘리야의 후계자로서 그의 권능을 이어받았음을 깨닫게 되었다(요 17:18;행
14:23). 그래서 그들은 엘리사의 영적 권위를 인정해 주는 뜻에서 그의 발앞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였다. 한편, 엘리야가 요단 강을 건넌 후
얼마되지 않아 승천하였고 이것을 목격한 이후 엘리사도 겉옷을 취하여 곧바로 돌아왔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요단 서편 언덕에서는 여리고의 선지
생도들이 엘리야의 일을 궁금하게 여기며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6절 이하에 기록된 사건을 통해서 엘리야의 승천에 대해 모두 확신케
되며 이제부터는 새로운 선지자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된다. 한편, 본절에서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는 말은 엘리사가 엘리야와
동일한 능력과 은사를 부여받았다고 하는 선지 생도들의 고백이다(Wycliffe).
성 경: [왕하2:16]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선지자 생도들의 불신]
(주); 용사 오십 인 - 문자적으로 '용사'라는 단어는 '힘의 아들'이란 뜻으로(PulpitCommentary) 주로 군사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으나 꼭 그렇치만은 않다. 여기서 '용사'는 사흘 밤낮 엘리야를 찾아 험하고 가파른 산중을 헤매어 다닐 수 있는 건장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람들이 수색한 결과 엘리야의 시체를 찾지 못하므로(17절) 엘리사의 말에 더욱 더 큰 신임을 갖게 되었다.
(주); 청컨대...던지셨을까 하나이다 - 여리고에 있던 선지자의 생도들은 엘리야의 영혼만 하늘로 올라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엘리야의 육체가 어느 높이만큼 올라간 후에 필연적으로 지상 어디엔가에 떨어졌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동안 선지자로서의 마지막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 육체를 찾으려 하였다.
(주); 여호와의 신 - 여기서 회리 바람과 여호와의 신에 대한 연관성이 나타난다. 즉 11절에서 엘리야가 회리 바람을 타고 승천한 것은 여호와의 신이 그를 인도해 가신 것으로 볼 수있다. 왜냐하면 회리 바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능력의 도구이기 때문인 것이다(H. W. Robinson). 한편 왕상 18:12에도 여호와의 신이 엘리야 선지자를 인도하심으로 아무도 그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즉 선지자의 생도들은 이전과 같이 하나님의신이 엘리야의 영을 인도한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아흐'(*)는 '영'을 의미하므로 하나님의 영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엘리야의 영육 전부가 아니라 육신과 분리된 영이라고 선지 생도들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사상은 유대 묵시 문학(默示文學)에서도 계속해서 나타난다(Ascension ofIsaiah 6:14).
(주); 보내지 말라 - 히브리 원문은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너희는 아무 것도 찾지 못할 것이다'(Pulpit Commentary)라는 의미로 엘리야의
승천에 대한 엘리사의 확신에 찬 신앙을 나타낸다.
성 경: [왕하2:17]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선지자 생도들의 불신]
(주); 무리가 저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强請)하매 - '부끄러워하도록'은 '...까지'를 뜻하는 '아드'(*)와 '실망하다'를 의미하는 '부쉬'(*)에서 온
말이기 때문에 히브리어 원문의 뜻은 '그들이 그가 부끄러워할 때까지'라는 의미이다(Gesenius, Keil &Delitzsch). 그러나 70인역(LXX)은 이것을
'그가 자기의 거절을 더이상 고집하기 어려울 때까지'로 번역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8:11에도 나타난다. 이와 같이 선지 생도들의 강청에
못이겨 엘리사가 "보내라"고 말했을 때는 그는 단지 그들의 불신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엘리사의 충고 대로였다. 이러한 것을
살펴볼 때 본절은 단지 엘리사가 '만일 너희가 그것을 고집한다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의 민족을 위해서 보내라'라는 의미로 허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2:18]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선지자 생도들의 불신]
본절은 다른 선지자의 생도들보다 영적 통찰력이 뛰어난 엘리사의 모습이 부각되어 있다. 영적 능력과 더불어(14,15절) 이같은 통찰력을
구비함으로써 엘리사는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영적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본절에서는 엘리야의 사라짐에 대한 확실한 역사적
사실성과 그의 후계자 엘리사의 말이 이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공식화되고 있다.
성 경: [왕하2:19]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엘리사의 이적]
(주);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 여기서 말하는 성읍은 구체적으로 어느 성읍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여리고 성 일것이라고 생각한다(Hobbs). 왜냐하면 여리고는 광활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이 경치가 좋고 살기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여리고에는 유대 산지에서 저지대로 흐르는 강이 있었으며, 종려 나무(신34:3)와 무화과 나무(눅 13:6-9)가 있었고 방향(芳香)의 관목들과 향기로운 수지를 내는 나무 등이 많아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한편 본문의 이 이야기는 텔 에스술탄(Tell es-Sultan)의 서쪽에 위치한 '엘리사의 샘'의 전설로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주); 물이 좋지 못하므로 - 본절에서는 물에 독소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성의 사람들은 물이 나쁘기 때문에 토산물(土産物)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Wycliffe). 한편 혹자는 이러한 환상이 여리고성에 대한 여호수아의 저주(수 6:26)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Blake).
(주);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 여기서 '토산'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하아레츠'(*)인데, 이것은 '땅', '육지', '나라', '주민'등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땅'을 의미(Keil & Delitzsch)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땅의 '주민들'도 함께 의미(The Interpreter's Bible)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레 19:29). 또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메솨켈레트'(*)로서 사람이나 동물들이 '자식을 낳지
못하다'라는 뜻의 동사 '솨콜'(*)의 분사형이다. 또 이 단어는 특별히 비유적으로 포도원에 '결실이 없다'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러한
비유적인 의미는 결국 자손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호 9:14). 그래서 루시니안 헬라어 역본은 이를 '아이가 없는'(be childless)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들을 고려하면서 본절을 원문에 따라 해석하면 1)'그 땅에는 소산이 없다' 2)'그 거민은 유산한다'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공동번역과 Living Bible은 70인역(LXX)과 마찬가지로 '주민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란 의미로 해석한 반면 대부분의 영역본들(KJV, RSV,
NIV)은 '그 땅에 소산이 없다'라고 번역하였다. 그런데 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땅의 소산이므로 본절에서는 1)의 해석을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토산을 맺지 못하던 땅이 변화된 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변화된 성도들에 비유될 수 있다. 즉 토산을 맺지 못하던 여리고 성읍과
같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둘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기억해야
하겠다(마 13:23).
성 경: [왕하2:20]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엘리사의 이적]
(주);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 '소금'은 음식물의 양념으로(욥 6:6), 제사용품으로(레2:13;겔 43:24), 그리고 신생아의 소독제와(겔 16:4), 방부제
등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다양한 용도와 관련하여 '폐허'(삿 9:45;신29:23), '생명'(마5:13), '언약'(민18:19;대하 13:5)등을 상징하기도 했다.
이는 엘리사가 마라의 쓴물을 달게 하신(출15:23)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이러한 확신하에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한 기적을
연출해 냈던 것이다(4:41;출 16:25;요 9:6). 이러한 사실은 예수께서 소경을 치료하실때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든 다음 그것을 소경의 눈에
발라서 낫게 하신 사실과 비교될 수 있다. 한편 본절에서 새 그릇은 전적으로 깨끗하고 정결한 수단, 즉 새롭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Matthew
Henry, Vol. , p. 717) 소금은 정결을 상징한다(Pulpit Commentary, The Bible Knowledge Commintary).
성 경: [왕하2:21,22]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엘리사의 이적]
(주); 오늘날에 이르렀더라 - 이 말은 본서의 저자가 열왕기서에 관한 사료를 편집해 기록할 그 당시까지 여리고의 물이 청결하게 되어 백성들에게
뿐 아니라 소산에 대해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본절은 엘리사의 이적에 대한 기록을 실증해 줌과 동시에 21절에 예언했던
엘리사의 말에 대한 권위를 대변해 주는 말이다.
성 경: [왕하2:23]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엘리사를 조롱하다 죽은 이들]
(주);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 여기서 '젊은 아이들'이란 히브리어로 '나아르'(*)로서 십 이 세부터 십 오 세의 '소년들'을 가리킨다(G. Rawlinson). 이들은 선악에 대한 충분한 인식력을 지니고서 도덕적으로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할 자들이었다(Wycliffe).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낯선 나그네인 엘리사를 보고서 도움을 베풀기는 커녕 오히려 조롱하고 비웃는 짖궂은 짓을 일삼았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엘리사가 그들에게 그렇게 잔인한 저주를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 대머리여 올라가라 - 율법에는 인공적으로 머리를 깎아 대머리가 되게 하는 것은 불법으로 되어 있다(신 14:1). 또 대머리는 문둥병에 의한
것으로(레 13:42-44)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벌의 표징으로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천민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본절에서 엘리사의 대머리는
자연적인 특징으로서 결코 사람들의 조롱이나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엘리사의 외모는 스승 엘리야의 외모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1:8). 한편 본절의 '올라가라'는 히브리어 '아래'(*)를 번역한 말인데 이는 '높이 오르다', '도약하다', '능가하다'는 뜻으로 '네 길을 계속
가라'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여기서는 엘리야처럼 '하늘로 올라가라'는 의미로(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엘리야의 승천을 비꼬는 말이다(Matthew Henry, Vol. , p. 718).
성 경: [왕하2:24]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엘리사를 조롱하다 죽은 이들]
본절에 기록된 저주와 그에 대한 성취 방법은 매우 잔인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우리의 윤리 기준을 가지고 설명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당시
여호와를 떠나 우상 숭배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심판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이제 사역을 시작하는 엘리사의 신적 권위를 증명하는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사람인 자신을 조롱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엘리사는 간주했던 것이다(대하
36:16;눅 23:36). 그래서 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젊은 아이들에게 저주를 선포했는데 이는 율법하에서 하나님의 일꾼들이 불순종하는 자에게
저주하도록 하는 모세오경에 근거한 것이다(신 27:14-26). 그리고 아이들 중에 사십 이 명을 찢었다는 본절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이 보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조롱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그 조롱의 행위가 미리 의도된 것이었음을 암시할
수도 있다(Wycliffe).
성 경: [왕하2:25]
주제1: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초기 사역]
주제2: [엘리사를 조롱하다 죽은 이들]
(주); 갈멜 산으로 가고 - 갈멜 산은 휴양과 명상에 적합한 장소일 뿐만 아니라(MatthewHenry) 엘리야의 주된 활동지였기 때문에(Ewald) 그곳은 특별히 선지자들의 거주지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엘리사가 갈멜 산으로 간것은 그곳에 있는 엘리야의 친지들이나 선지자의 생도들에게 그가 승천한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G.Rawlinson, Pulpit Commentary).
(주);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 엘리사는 은둔 생활을 한 자기 스승 엘리야와는 달리 왕궁이 있는 사마리아에서 살았다. 거기서 사람들과
사귀고 교제하며(5:9;6:32), 왕의 친밀한 상담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6:9). 그리고 그는 왕에게로부터 상당한 존경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8:4).
한편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로서 엘리사가 사역한 중심지이다(Wycliffe).
성 경: [왕하3:1]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의 즉위]
본절에서도 1:17에서와 같은 연대기상의 문제가 있다.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왕이 된 것은 유다 왕 여호사밧의 제 17년이었으며 2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다고 했다(왕상22:51). 그러면 아하시야의 동생 여호람이 왕이 된것은 유다 왕 여호사밧의 제 19년이어야 하는데 본절에서는 18년이라고
기록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성 경: [왕하3:2]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의 즉위]
(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 여호람은 이전의 이스라엘 다른 대부분의 왕들(왕상 14:16; 15:25,34; 16:13,19,25,30; 22:52)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많은 왕들(8:27; 10:31; 13:2,11; 14:24; 15:9,18,24,28; 17:2)과 같이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했으며 여호와의 율법을 준수하지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살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 또한 여호람과 같은 이런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생활 하듯이 행동해야 할 것이다(살전 1:3;3:9).
(주); 그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 여호람은 부친 아합이나 모친 이세벨처럼 우상을 섬기지 않고 바알상을 제거함으로써 어느 정도 새로운 신앙의 개혁 운동을 이루었다. 그 뿐만 아니라 여호람은 부모에게서와 형인 아하시야에게서 생활과 신앙에 대한 교훈을 얻어 통치 초기에는 각성을 했던 것 같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일관성 있게 개혁 운동을 주도해 나가지 못하고 단지 바알 신상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멈추었기 때문에 개혁에는 별로 큰 성과가 없었다. 더욱이 그 자신도 통치 후기에는 아합 왕가의 죄악을 답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9:24). 한편 여호람 왕이 이같이 완전하게 악에서 떠나지 못했던 것은 열렬한 바알의 숭배자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에서 악녀로 손 꼽히는 이세벨이 딸 아달랴와 함께 그의 전 통치 기간 동안 살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9:30,Keil & Delitzsch, Vol. , p. 301).
(주); 바알의 주상(柱像)을 제하였음리라 - 여호람이 비록 사마리아에서 바알의 주상들을 제하기는 했지만 그가 북이스라엘 전역에서 바알 숭배의
풍속을 금지시킨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다음 왕인 예후가 바알의 목상 뿐 아니라 바알의 선지자까지 철저히 제거했다는 사실이 뒤에 나오기
때문이다(10:19-28). 물론 여호람이 그 아비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함으로 아합과 이세벨의 길을 따르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은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지 못했다는 사실은 엘리사 선지자의 책망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다(14절).
성 경: [왕하3:3]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의 즉위]
(주);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 1대 왕인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죽은 후 어리석은 르호보암의
정책을 이용해 북방 열 지파의 지지를 얻어 왕위에 오른 자이다. 이제 그러한 그의 행정을 기록해 보면 다음과 같다. (1)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둘을
세움(왕상 12:29,30), (2)레위 지파가 아닌 일반 사람을 마음대로 제사장에 임명함(왕상 12:31), (3)제사의 절기를 바꾸어 버림(왕상12:32,33),
(4)백성의 종교심을 묶어 놓기 위해 우상 정책을 씀(왕상 12:25-33), 이중에서도 여호람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고수해 나간 범죄는
금송아지를 숭배하는것이었다. 여호람이 이와 같이 금송아지 숭배를 고집한 것은 정치적인 이유로써 예루살렘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유다로
넘어가는 백성들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MatthewHenry, Vol. , p. 719, Pulpit Commentary). 이와같이 자기의 정치적 유익을 위하는 이기심도 일종의
우상 숭배인 것이다(출 20:4,5). 좀더 구체적인 여로보암의 악행에 대해서는 왕상 12:26-33; 13:33;왕하 10:29를 참조하라.
성 경: [왕하3:4]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모압 왕 메사의 배반]
(주); 모압 왕 메사 - '메사'(Mesha)라는 이름은 모압 비문(Moabite stone)의 기록에 나타나 있는데 그는 B.C. 9C 중반 모압의 한 도시인 디본(Dibon)을 병합했다. 또한 그는 약 40년동안 예속 되었던 이스라엘에 대해 항거해 반란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Gibson,Syrian Semitic Inscriptions, 1:71-83). 또 디본에서 발견된 이 비문을 보면 모압은 그모스 신의 진노로 인해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로부터 큰 고난을 당했으나 메사 왕 시대에 와서야 다시 그모스 신이 영광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다(Smith). 이는 북이스라엘에 대해 반란을 일으켜서 성공한 것을 자축적으로 언급한 듯하다.
(주); 양을 치는 자 - 이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노케드'(*)로서 암1:1에서는 복수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표를 찍다'라는 뜻의 '나카드'에서
파생된 단어로 '소유주', '관리자'를 가리킨다. 또한 이 용어는 아마 양가죽에 주인의 표식을 찍던 목축업자의 습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사16:1을 보면 모압은 매년 정규적으로 이스라엘의 치리자에게 양을 조공으로 바쳐온 것으로 보이는데(Keil & Delitzsch) 모압이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쳐 온 것은 다윗 왕 때부터이다(삼하 8:2). 그리고 메사 왕도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양을 기르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합
왕이 죽은 후 모압은 자체의 힘을 규합해서 이스라엘을 배반한 것이다(1:1).
성 경: [왕하3:5]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모압 왕 메사의 배반]
모압의 메사 왕이 이스라엘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시기는 아합 왕이 죽고 오므리 왕조가 급격히 쇠퇴하고 있던 때였다. 성경에서는 모압이 배반한
사실에 대해 단지 '아합이 죽은 후에'(1:1)라고 일축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이 때는 아합 왕이 죽고 여호람과 여호사밧이 통치하던 시기, 즉 약
B.C.850년 경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T. R. Hobbs). 또한 이 시기는 메사가 영토 확장에 힘을 쓰던 모압의 전승기였다. 한편 본문의 모압 반역
사건은 1868년 독일 선교사에 의해 아르논 강 근처에서 발견된 모압의 비석 위에 기록되어 있다. 이 비석에서 모압의 메사는 오므리가 부과한
공세를 거절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모압 왕 메사에 대한 업적을 남기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성 경: [왕하3:6]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
(주); 그 때에...온 이스라엘을 점고하고 - 여기서 '그 때'는 여호람이 왕위에 오른 때를 가리킨다. 그리고 '점고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파카드'(*)로서 '방문하다', '보살피다', '헤아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이 단어가 가리키는 의미는 기존의 군대를 정비하는
것(Wycliffe) 뿐만 아니라 군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모아 큰 군대를 조직하는 것을 말한다(Matthew Henry, Lange Commentary). 그래서
여호람 왕은 정규 군대와 지방에 있는 군대까지 모두 소집하여 메사 왕에 대한 보복을 꾀했던 것이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을 소집할 정도로
여호람의 보복 행위는 강력했으며 또한 이것은 상대적으로 메사 왕의 위력이 상당했음을 암시해 준다.
성 경: [왕하3:7]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
(주); 또 가서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보내어 이르되 - 여호람은 모압 원정을 위해 전 이스라엘 군대를 소집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도 전갈을 보내어 원조를 요청했다. 왜냐하면 여호사밧이 아합과의 동맹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장자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를 정략적으로 결혼시키는 관계였기 때문이다(8:18;대하 18:1). 그런데 이것은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고 유다의 병거와 말을 신뢰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때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은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셨다(대하 19:2). 한편 여호람이 여호사밧과의 협조 관계를 추구했다는 것은 모압을 격파하기 위해 유대 땅을 지나야 할 필요가 있었음을 나타냄과 동시에 당시 유다의 속국이던 에돔의 긍정적 영향을 원했던 것으로 이해 된다(Wycliffe Bible Commentary, p. 343).
(주);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 여호람의 요청에 여호사밧이 이렇듯 쉽게 응락한 것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한민족이라는 사실에 기인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여호사밧이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에 의해 침공을 당해 큰위기를 겪은 경험 때문인 것(대하
20:1-37)으로 추측된다(Matthew Henry).
성 경: [왕하3:8]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
(주); 에돔 광야 길 - 당시 북이스라엘에서 모압을 침공할 수 있는 길은 둘이었다. 하나는 사해 동북쪽을 통해 요단 강을 지나 모압 북쪽으로 가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해 남단을 돌아서 에돔 북쪽을 지나 모압 남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중 후자의 길은 아주 멀 뿐만 아니라 험하고 위험한
길이었지만 여호사밧은 이 길로 갈 것을 권했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이와 같이 여호사밧이 모압의 남쪽 노선을 권고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전자의 북쪽 노선으로 가게 되면 길르앗 라못 부근에 있는 아람을 건드릴까 하는 염려에서이며 2)모압이 남방의 불가침성을 굳게
믿고 있어서 남쪽 방어가 허술했기 때문이고 3) 당시까지도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과 합세할수 있으므로 더욱 강력한 공격을 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Keil, Lange). 그러나 이러한 철저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그 계획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10절) 이것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이심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잠 16:9). 다음 지도는 연합군이 모압을 침공한 경로를 나타낸
것이다.
성 경: [왕하3:9]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
(주); 이스라엘 왕이 유다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 모압의 메사(Mesha)를 치러가는 연합군의 행렬을 기술한 것으로 이스라엘 왕이 원정의 지휘자로서 역할을 했고 그 중요성 정도에 따라 유다 왕과 에돔 왕이 기술된 듯하다(Pulpit Commentary). 한편 왕상22:47에서는 에돔에 왕이 없고 섭정왕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본절에 왕이 명기된것은 에돔의 일시적인 배반(대하 20:22)때 세운 듯하다.
(주); 길을 둘러 행한지 칠 일에 - 본절에서는 세 나라의 동맹군이 광야를 칠 일 동안이나 방황하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본절에서 '둘러 행하다'(surround)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사바브'(*)인데 이 단어는 '어떤 장소를 배회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세 나라가 동맹한 연합군이 지나치게 숫적으로 과다하여 예상 외로 긴거리를 우회하게 된 것이다(Word Biblical Commentary). 그런데 이 단어는 삿 11:18에서도 동일한 의미로 사용 되었다. 한편 이러한 방황은 여호와의 뜻에 순종하지 않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인한 결과였다(T. R. Hobbs). 그래서 카일(Keil)도 이것이 하나님의 징벌이었음을 암시적으로 다음과 같이 시사하고 있다. 즉, 연합군이 7일 동안 방황하며 지나간 곳은 에돔과 모압의 경계가 되는 '아시'(Ashi)의 바위 골짜기였다. 이 골짜기에는 로빈슨(Robinson)에 의하면 사시 사철 계속 물이 흐르는 강이있었고 그 강에 이르기만 하면 병사나 육축을 위한 충분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그 곳에 도착했을 때는 가뭄이 한창이어서 이 강이 말라 있었는데 예기치 않은 이러한 상황, 즉 물의 고갈은 바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생각했다(Keil &Delitzsch).
(주); 먹일 물이 없는지라 - 연합군은 광야의 길로 진군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물이었다. 그런데 광야에 있는 시내는 비가 올 때만
흐르는 건천(wady)이기 때문에 건기, 즉 비가 오지 않는 시기에는 물을 얻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성 경: [왕하3:10]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
(주); 이스라엘 왕이 가로되 슬프다 - 본절은 환난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인식하는 여호람의 어리석음을 보여 준다. 모압 원정을 준비할
때는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이 독단적인 생각에 의해 무력으로 일을 꾀하던 그가 이제 환난에 닥친 뒤에야 비로소 이러한 상황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깨닫고 후회한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일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은 곤경에 직면할 때만이 믿음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기
십상이고 남에게 그 원망을 돌리기 일수이다. 한편 이러한 태도는 믿음없는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출 14:10-13; 15:24; 16:2; 17:2;민 11:1;
14:1-3; 21:5등).
성 경: [왕하3:11]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
(주); 여호사밧이 가로되...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 왕상 22:5-7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여호사밧은 거짓 선지자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참선지자의 말을 듣기 원했다. 그래서 지금도 여호사밧은 여호람의 의견을 배척함과 동시에(Wycliffe) 신앙과 소망을 갖고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은 것이다. 또한 본절은 한 사람의 신실된 믿음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가를 실증해 주고 있다. 즉, 유다 왕 여호사밧의 믿음으로이스라엘과 유다, 그리고 에돔의 모든 병사들까지도 기적적으로 승리할수 있었기 때문이다(24-26절;사 62:11;롬 10:13).
(주);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 엘리야 선지자의 종으로서 엘리야와 함께 생활했으며, 그의 능력을 이어받아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고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자(Keil &Delitxsch), 혹은 엘리야로부터 가장 신임을 받던 자(Thenius)라는 의미로써 엘리야의 뜻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섬겼기 때문에 엘리야와 같은 능력을 전가받은 자라는 뜻이다. 한편 '물을 붓던'이란 표현은 '수종드는 것'을 말하는데 손을 씻으려 할때에 그 옆에서 물을 부어주며 심부름하는 제자의 위치를 나타낸 것이다.
(주);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 엘리사가 모압 원정군을 따라 여기 모압의 경계 지역인 '아사' 골짜기까지 오게 된 경위에 대해서 성경은 아무런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본절을 근거로 해서 엘리사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수 있다. (1)믿음의 사람 유다 왕
여호사밧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즉 여호사밧이 이스라엘과 동맹 맺은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지만(대하 19:2) 하나님은 그의
신앙을 익히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를 끝까지 지키셨던 것이다. (2) 여호람에게 이스라엘의 참 보호자는 여호와 한 분 뿐이심을 보이시기 위해
엘리사를 성령의 감동으로 이곳까지 인도하신 것이다(Keil). (3)유다왕 여호사밧에 대한 엘리사의 염려에 기인한 것이다(14절에 의거). 한편 본절의
의미로 볼때 여호람은 엘리사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한 것 같다(Wycliffe).
성 경: [왕하3:12]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
(주);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있도다 - 문자적으로 이것은 '그는 참 선지자이므로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잘 알려줄 수 있다'라는 의미이다(Pulipit Commentary). 여호사밧이 엘리사의 명성에 대해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으나 그가 엘리사를 참 선지자요, 하나님의 진정한 사역자로 인정하고 그 권위를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엘리사에 대한 명성이 북이스라엘을 넘어 유다까지 알려졌음이 이 표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Lange).
(주); 이에 이스라엘 왕이...더불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 여기서 엘리사에게로 내려가는 세 왕 중에 이스라엘 왕이 맨 선두에 있음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왕이 (1)동맹군의 대표였고 (2)자국의 선지자였고 (3)여호와의 심판에 대한 자각 때문에 제일 먼저 서두른 것이다. 그러나
14절에 있는 엘리사의 말에 비추어 볼 때 그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혹은 큰 믿음이 생겨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한편, 흔히 선지자들이 왕 앞에
불리어 갔던 사례들과 비교해 볼 때 세 왕이 직접 엘리사에게로 간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1)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며(G.Rawlinson) (2)이러한 곤경으로 인해 세 왕이 겸손해졌기 때문이다(Keil,Wycliffe,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3:13]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의 승리 예고]
(주);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 '당신은 왜 그러한 것을 내게 묻습니까?' 혹은 '당신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버렸기 때문에 선지자와는 상관을 안하지 않습니까?'라는 뜻을 반영한 말이다(Lange). 본절에서 엘리사가 자기를 찾아 온 여호람 왕에게 이와 같이 꾸짖은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비록 여호람이 바알 신상을 제거하기는 했으나 당시 바알의 제사장들이 여전히 아무 제재를 받지 않고 활동하고 있었기때문이다(10:19). 이에 대한 근거는 바알 종교를 이스라엘 전역에 퍼뜨린 장본인인 그의 어머니 이세벨이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9:30, Pulpit Commentnary). (2)개혁운동을 전개시킴에 있어서 너무도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여호람에게 자신의 이기적인 사욕을 버리고 진정한 개혁 의지를 갖고 일을 추진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만일 엘리사의 이러한 책망을 여호람 왕이 충심으로 받아 들이고 진실로 여호와께로 돌아왔다면 그는 피살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오므리 왕가가 그렇게 비참하게 멸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9:6-9)
(주);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 이것은 여호람과 그 부모의 우상 숭배를 꾸짖는 엘리사의 대담한 말이다. 즉
엘리사는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는 일에 조언을 해준 아합의 사백 명의 선지자들(왕상 22:6)과 이세벧이 섬기는 바알 선지자들(10:19)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래서 본절은 곧 '그 선지자들에게는 당신이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나에게는 없습니다'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PulpitCommentary). 한편 본절은 왕 앞에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를 책망하는 선지자의 의연한 모습이 돋보인다. 즉 엘리사는 여호람
왕의 면전에서 악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발했던 것이다(Matthew Henry, Vol. , p.721).
성 경: [왕하3:14]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의 승리 예고]
(주); 내가 섬기는 - 히브리어 '아마드티 레파나우'(*)를 번역한 말로서 '내가...의 얼굴을 향해 서다'란 뜻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서서 예배 드리며 봉사하던 사실에서 연유한 용어로서 엘리사가 하나님의 종이자 대사(大使)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왕상 17:1;18:15).
(주);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 이 말은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이 행한 선한 일을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에 도와준다는 말이다(Keil &
Delitzsch). 참으로 여호사밧이 산당과 우상을 제거하고 선지자들과 레위인들을 세워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친 선행이 있기 때문에(대하 17:3-9)
그것을 주께서 기억하고 계셔서 자비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사밧에게도 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즉 길르앗 라못에서 악한 왕 아합을
도운 일이나(대하 19:2), 오빌로 가는 배들을 건조하기 위해 아하시야와 결탁한 일(대하 20:36;왕상 22:48), 그리고 본장에도 나타나 있듯이
하나님의 허락이 없는 모압 원정에 참예하여 우상을 숭배하는 여호람과 에돔 왕과 동맹하는 일 등은 결코 선한 일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행한 여호사밧의 선행을 기억하시고 끝까지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다(대하 19:1-3). 한편 엘리사의 이러한 태도는 12절 말씀과 더불어
파숫꾼이 행해야 하는 바른 모습을 보인 것으로 모든 사역자에게 있어서 귀감이 된다(겔 2:7).
성 경: [왕하3:15]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의 승리 예고]
(주); 거문고 탈 자 - 이 말은 정확하게 번역하기는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제반 현악기를 연주하는 자'로 옮기는 것이 적합하다. 이러한 번역상의 어려움은 이 말을 '수금 뜯는 사람'(공동 번역), '악사'(KJV, RSV), '하프 연주가'(NIV)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 역본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주);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 본절에서 거문고 소리를 통해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시킨 사건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엘리사가 여호람으로 인해 흥분했던 자신의 마음을 진정 시키며 신적 감응을 잘 받기 위한 상태인 무아경에 잠기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G. Rawilnson, PulpitCommetary, Keil & Delitzsch). 둘째는 고대 선지자들 뿐만 아니라 아라비아에서도(The
Interpreter's Bible, Vol. , p. 200) 예언을 할 때 운율을 맞추기 위해 악기를 사용했는데(Bleek), 엘리사의 경우도 이와 동일하다는 것이다(B
hr). 전자의 해석을 지지하는 근거로는 사울을 위해 다윗이 수금을 탔을때 악신이 떠나갔던 일(삼상16:23)과 사울이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블레셋 성읍으로 들어갈 때 비파와 소고와 수금을 앞세운 선지자의 무리를 만난 후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였던 사건(삼상10:5) 등을 그 예로
든다. 그리고 후자와 같은 해석은 성경 다른 곳에서는 전혀 언급한 일이 없다. 따라서 전자의 해석이 더 타당한 것 같다. 더욱이 거문고를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 선지자 엘리사 뿐만 아니라 세 왕과 곤경에 시달린 병사들의 시선이한 데로 집중되었기 때문에 신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아주
용이하였을 것이다. 한편 '선지자의 생도들' 사이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일이 신적 감응을 잘 받아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중요했다는 사실이 다시
증명되었다(삼상 10:5;대상25:1-3). 거문고의 소리는 선지자들의 동요를 잠잠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엘리사는 전형적인 '예언자의 아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언을 준비하는 방법으로 거문고와 피리 소리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 엘리사는 그의 선생 엘리야와 다르다. 왜냐하면 엘리야는 돌발적이고 직접적인 예언을 했으며, 금욕적이며 독자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성 경: [왕하3:16]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의 승리 예고]
(주); 골짜기 - 본절의 골짜기는 모압 남쪽에 있는 제렛(Zered), 즉 지금의 와디 엘 헤사(Wadi el Hesa)라고 하는데(Wycliffe) 그곳은 붉은 사석(沙石)이 깔려 있어서 때로는온 골짜기가 붉게 보인다고 한다.
(주); 개천 - 히브리어 '게빔'(*)을 번역한 말로 이는 '물을 모아 두는 웅덩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골짜기로 물이 흘러 내려 이 웅덩이들에
가득 고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일은 있는 것을 없게 하시고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롬 4:17) 하나님의 능력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성 경: [왕하3:17]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의 승리 예고]
(주); 바람도...비도 보지 못하되...물이 가득하여 - 근동 지역에서 비는 대개 바람과 함께 동반한다. 더욱이 본절의 바람이란 강한 폭풍우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런데 바람도, 비도 없이 골짜기의 물을 채운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수행하는 전쟁은 오직 배후에 역사하시는 여호와의 권능이 임할 때만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성도들의 영적인 투쟁 역시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엡 6:10-20). 한편 본절의 육축은
군대의 식량용 동물을, 짐승은 사람 및 군수품 운반용을 말한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그리고 16, 17절과 18절에서 엘리사가 받은
예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는 것, (2)바람이나 비를 보지 않고도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리라는 것, (3)모압 원정이
성공을 하게 된다는 것(18,19절)등이다. 실로 첫째, 둘째 예언은 다음날 아침 소제를 드릴 때에 성취되었다(20절). 이때에 가득한 물은 에돔 동편
산악지대에 내린 비로써 이스라엘 진영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Keil). 셋째 예언은 모압의 공격에 대해
이스라엘군이 반격할 때에 이루어졌다(24, 25절).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은 먼 곳의 기상 조건과 지형 조건을 다 아실뿐만 아니라 이를 초월하시고
주장하시는 것이다.
성 경: [왕하3:19]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의 승리 예고]
(주);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 좋은 나무를 베라는 명령은 과실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한 신 20:19,20에서의 규례와 서로 상충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상하게 볼 필요가 없다. 여기에 대해서 카일(Keil)은 모압인들이 이스라엘 땅을 침범하여 으례껏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엘리사는 의도적으로 신명기에서와 같은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예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명기의 과실수 벌목 금지에 대한 명령을 여기에 적용시킬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신명기의 율법은 당시, 아직까지 가나안 땅의 첫소산을 거두기 이전이므로 병사들의 양식을 위한 필요성에 의해 명령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T. R. Hobbs). 한편 침범한 적의 땅에서 과목(果木)을 베어버리는 일은 당시 전쟁후에 행해지는 보편적인 일인데, 특히 앗수르나 애굽에 의해 이런 일이 널리 행해졌었다(Pulpit Commentary).
(주); 모든 샘을 메우고 - 샘이나 우물을 메우는 것은 고대 근동 지방의 전쟁시에는 으례껏 보복조치로 행해졌다(창 26:18), 흔히 마을이 샘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던 당시에 '샘을 메운다'는 사실은 그 마을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본절에 언급된 샘은 히브리어 '아인'(*)의 번역으로서 연못이나 우물과는 달리 산에서부터 천연적으로 흘러 들어오는 샘물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샘은 생활 용수의 근원이되었다.
(주);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 문자적으로는 '좋은 땅 모두를 비탄에 잠기게 하라'는 말인데 이 문맥은 70인역(LXX)에서 농사에 큰 타격을
주기 위해 '밭에 돌을 던지다'는 뜻으로 번역되어 있다. 여기서 '헐리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케이브'(*)로서 때때로 심적으로나 육적으로
'고통을 주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WordBiblical Commentary). 또한 이것은 땅을 황폐케 한다는 뜻의 시적인 표현으로서 땅에 대한
의인화인데(Keil & Delitzsch) 렘 23:10과 욜 1:10등에서 유사한 용례를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요단 강 주변에서 개간할 때는 돌이 많기 때문에
돌을 한 쪽으로 치워놓는다. 그래서 땅을 망칠 때는 다시 밭 주변에 있는 돌무더기를 헤쳐 놓으면 되었던 것이다(Pulpit Commentnary).
성 경: [왕하3:20]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의 승리 예고]
(주); 아침에 미쳐 소제 드릴 때에 - '소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민하'(*)로소제뿐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종류의 제물'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이 다른 역본들에 의해서는 '제사'(공동 번역), '제물'(RSV, NIV, Living Bible)로 번역되었다. 한편 유대 전승에 따르면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일 아침과 저녁 두 번씩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고 한다(대하 8:13). 이렇게 규칙적으로 제사를 드리던 습관이 포로 시대나
신약 시대에는 기도하는 습관으로 이어진 것 같다(단 6:10;행3:1).그래서 예수께서도 주로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다(막 1:35). 한편 아침 제사
드리는 시간과 에돔 서편에서부터 물이 흘러 내려오기 시작한 시간이 일치한 것은 결코 우연이아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구원이 매일 드리는 제사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Keil).
성 경: [왕하3:21]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의 대승(大勝)]
(주);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 연합군의 공격에 대한 모압의 방어 준비는 대단히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갑옷을 입을 수 있는 최소한의 어린 병사들까지 온 군대가 소집되었다. 혹자는 이때에 입은 갑옷이 정규 복장이 아니라 간편한 복장인데 이 전쟁에 어린 병사들까지도 참여했다고 한다(T. R. Hobbs).
(주); 그 경계에 섰더라 - 모압은 연합군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군대를 소집하고 그 군대로 하여금 자신의 영토를 방어하게 하려고 모압의
최전방, 즉 와디 엘 아시의 북쪽에 진영을 정비했다(Pulpit Commentary, Wycliffe).
성 경: [왕하3:22]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의 대승(大勝)]
(주);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 북쪽 600m 높이의 절벽 위에 진을 치고 있는 모압 사람들은 해 뜰 무렵 동쪽 골짜기, 연합군의 진지 근처가
벌겋게 반사됨을 보았다. 이처럼 물이 붉은 피와 같이 보인 것은 아침에 떠오른 해의 강렬한 붉은 색조가 물에 비췸으로 인한 것이었다. 한편
에발드(Ewald)에 의하면 비가 내릴때 에돔 땅의 붉은색 흙덩이들이 빗물에 실려온 것이 햇빛에 반사된 때문이라고 하며, 카일(Keil)은 이 현상은
자연적인 방법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것은 엘리사의 명령에 의해서 판 구덩이의 흙이 붉은 색을 띠었을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로 인하여 모압군들은 속임을 당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예언하신 바에 대한(17,18절) 성취로서 여호와의 이적적인 방법의
결과였다(Lange).
성 경: [왕하3:23]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의 대승(大勝)]
(주); 필연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 이와 같이 모압이 물을 피로 잘못 알고 착각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즉, 유다와
이스라엘은 서로 적대적이었다는 사실을 모압이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은 틈만 있으면 반란을 꾀하려고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모압은 이스라엘 진중에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식수 부족으로 서로 분쟁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생각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연합해서 침공하는 이스라엘 동맹군에 대한 증오와 아울러 이것이 약탈의 좋은 기회라고 조급히
판단했기 때문에(Wycliffe) 서둘러 진격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인간들로 하여금 스스로 착각하게 하여 함정에 빠지게도
하신다(에 5:11,12).
성 경: [왕하3:24,25]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의 대승(大勝)]
모압 땅이 황폐케 된 것은 엘리사가 예언한 그대로였다(18,19절). 그런데 이런 파괴는 그 당시에 전쟁의 승자가 취하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지금의 '초토화 전법'(scorchedearth)과 같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길하레셋(Kir Haresheth)이 모압 비문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사해 남단에 위치한 지금의 '엘케락'(El Kerak)과 동일한 성으로 보고 있다(Hobbs). 이곳은 홍해를 잇는 중요한 관문으로서 모압 남방의 최후 보루이며 군사상 전략적 요새였던 것이다. 그래서 중세의 십자군 전쟁때 십자군들은 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하여 영웅적인 싸움을 반복했던 것이다. 한편 성경에 나타난 '길헤레스'(렘 48:31,36), '모압 길'(사 15:1) 등은 모두 이 고장을 말한다.
(주); 물맷군 - 히브리어 '켈라임'(*)을 번역한 말로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물맷꾼(Lange)뿐만 아니라 석궁이나 그와 비슷한 공격용 기계를
작동시켰던 사람까지도 의미한다고 추측된다(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3:26]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의 대승(大勝)]
(주);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 본절에서는 한 가지 의문점이 제기되는데 왜 모압 왕이 이스라엘의 동맹국인(12절)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했느냐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1)에돔 왕은 이스라엘 및 유다와 마지 못해 동맹을
맺었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압왕과 동맹을 맺고 있었으므로(대하 20:10,22) 모압 왕이 에돔 왕의 우호적 입장을 기대했을
것이다(Keil,Skinner). (2)'에돔 왕에게로'가 아니라 '에돔 왕의 반대편으로'라고 해석하는 견해이다(Kittel). 그러나 이 학설은 왜 모압왕이 에돔
왕의 반대편으로 향했는지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3) '에돔 왕에게로'가 아니라 '아람 왕에게로'라는 견해도 있다. 즉, '에돔'과 '아람'이 자음에
있어서는 거의 유사하지만 '에돔'에는 반자음 '와우'가 첨가되어 있다. 따라서 필사자들이 잘못을 범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4) 에돔을
연합군의 배반자로 보고 모압이 그 쪽으로 향했다는 것이다(G. Rawlinson). 그러나 이 견해도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만약 에돔 왕이 배반했을
경우에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1)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한편, 모압의 성읍이
완전하게 공략되었으며(25절), 모압 왕이 필사적으로 이스라엘과 유다 및 에돔 동맹군의 포위망을 뚫으려고 한 점(26절)을 미루어 보아이 전쟁은
엘리사의 예언대로(18,19절) 동맹군의 대승리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대승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했다(10, 13절). 그러므로
우리들은 자신들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며 인내해야 할 것이다(롬 8:25;고전 9:12;골
1:11;딤후 2:12;약 1:12).
성 경: [왕하3:27]
주제1: [여호사밧의 모압 원정(遠征)]
주제2: [여호람 동맹군의 대승(大勝)]
(주); 맏아들을 취하여...번제를 드린지라 - 정예병 칠백 군사를 거느리고 에돔을 향해 가려고 했으나 실패한 모압 왕은 자신의 왕위를 이를 맏아들을 취하여 모압 신 그모스에게 번제물로 드렸다. 이는 이방인들이 역경이나 환란을 자신들의 신이 노함에 의한 결과로 이해했기 때문인데 모압 왕이 장자를 번제로 드린 것은 신의 노여움을 풀고 신에게 호의를 얻기 위한 방법이었다(Wycliffe). 한편 사람을 희생제물로 삼는 이방인의 이러한 우상 숭배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며 정죄받을 행위였다(레18:21;20:1-5).
(주);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 - 사람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우상 숭배의 특징은 인간의 감정을 격분케 한다. 그래서 모압 병사들은 왕이 자기 맏아들을 그들의 신에게 번제물로 바치는 광경을 보고 격분하여 이스라엘의 동맹군을 공격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압군의 결사적인 모습에 겁에 질린 이스라엘군은 포위망을 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Pulpit Commentary)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하나님의 분노로 이해한다. 즉 "크게 통분함"이란 '큰 진노'라는 뜻으로 그모스 신의 격렬한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닥쳐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 여호와가 있는 것같이 모압에는 그모스 신이 있다는 것이 당시 모압의 일반적인 신앙이었는데 모압 땅에서의 이러한 광경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사기가 크게 흔들렸을 뿐만 아니라 어떤 신적 공포감에서 철수하고 말았다는 사실은 미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심으로 심판을 내리셨다는 것이다(Keil & Delitzsch). 이때에 이스라엘이 패전한 기록은 모압 왕 메사의 비문의 기록과 서로 통하는 바 많으며 결국 엘리사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에게 유리했던 전세가 불리해진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는 것은 확실하나 열왕기 저자는 여기에 대해서 침묵하였다고 한다(Lange). 또다른 학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압의 수도를 포위한 연고로 모압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악을 행하였으므로, 이제 이스라엘에 여호와의 진노가 내려 재앙을 당할 것으로 생각하고 심히 놀라 철수했다고 한다.
(주); 저희가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 연합군은 무력으로 더이상의 공격이나 정복을 포기하고 즉 모압을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만들고자
했던 원정의 목적을 달성하지 않고 철수했던 것이다(Keil & Delitzsch, Lange, 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4:1]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과부를 구제한 엘리사]
(주);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 본절은 선지자의 생도들이 전부 독신 생활을 하거나 수도원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Lange, PulpitCommentary). 그리고 그들은 가정 생활을 영위하면서 한 가정의 가장도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선지자 생도들의 공동체 생활을 병행해서 영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 당신의 종이 - 요세푸스(Josephus)와 랍비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는 궁내 대신 오바댜를 가리킨다고 한다(왕상 18:3). 그들의 말에 따르면 아합의 궁내 대신인 오바댜가 핍박당하는 선지자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였는데 이때 그가 자신의 재산을다 써버렸기 때문에 빚을 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근거로 요세푸스는 본절과 왕상 18:3 두 곳에서 다 오바댜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음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Lange). 그러나 혹자는 이러한 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는 없으며 본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빚진 자가 가난하게 된 것이단지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K.W. B hr). 그러나 엘리사가 그 선지자 생도의 처자를 도와준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때 후자(K.W.B hr)의 견해는 타당치 못한 것 같다. 단지 본절의 표현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선지자의 생도가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고 엘리사를 따랐던 것으로 이해된다(PulpitCommentary).
(주);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 당시 사회에서는 개인의 신용에 의해 대부(貸付)가 되었다. 그리고 그 빚에 대한 보증은 일반적으로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 그리고 그들에게 의존하는 자들(예로 종과 노예 등)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차용자는 대체적으로 자신의 몸을 담보로 해서 돈을 빌리고 만일
약속 기한까지 갚지 못하면 그 돈에 해당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종살이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리고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채권자가
빚진 자의 자녀를 종으로 삼는 것은 모세의 율법으로 볼 때도 당연한 일이었다(레 25:39,40). 그러나 율법은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더불어 제시하고 있다. (1)빚 때문에 종살이 하는 자는 종과 같이 엄하게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대우하라(레 25:39,40). (2)기한은 희년(매50년마다 돌아옴)까지이며 그 후에는 다시 조상의 기업을 회복하게 하라(레25:40,46). 이것은 비록 빚진
자일지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성경의 정신을 잘 나타내 준다(출 22:22;신 24:10-13). 한편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부르짖어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할 때 그 여인을 찾아 간 자세는 오늘날 영적인 지도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를 필요로하는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찾아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살전2:8;막 16:15,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간적인 판단을 따라 자기가 원하는 사람만 찾아 가는 것은 진정한 영적 지도자라고 할 수 없다.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서도 양을 버리고
달아나는 자는 삯꾼 목자인 것이다(요 10:12).
성 경: [왕하4:2]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과부를 구제한 엘리사]
(주);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 엘리사는 이 여인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묻는다. 그렇기 때문에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고 말했던 것이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엘리사의 말은 예수께서 여리고에서 떠나가시던 중 길가의 소경들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칠 때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시던 모습을 상기시킨다(마 20:29-34).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필요를 잘 아시지만 직접 구체적으로 구할 것을 요청하신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에 얻지 못한다고 하신 것이다(약 4:2).
(주);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 이 말은 '지금 갖고 있는 당신의 소유가 무엇이냐'고 물으신 것임과 동시에 '당신이 무엇을 팔아서 빚을 갚을 것이냐'는 질문인 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지금 과부의 필요, 즉 생계 유지의 문제와 빚의 청산 문제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 히브리어 '아숙'(*)은 기름 항아리가 아니라 '기름'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말은 '한번 부을 정도의
기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Lange, Pulpit Commentary). 그리고 여기서 한번 부을 정도의 기름이라는 것은 근동 지방에서 목욕 때 바르는
기름, 즉 적은 양의 기름을 가리킨다(Keil & Delitzsch, 삼하 12:20).
성 경: [왕하4:3]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과부를 구제한 엘리사]
(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 비록 여인의 집에 남은 것이라고는 기름 한 병뿐이지만(2절)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욥 42:2;시115:3)을 보여주기 위해 빈 그릇을 구할 수 있는 대로 빌려오라고 했다. 이러한 엘리사의 말에는 여인의 믿음을 시험해 보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즉 그녀가 믿음이 크면 클수록 많은 그릇을 빌려올 것이고 반대로 믿음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릇을 조금만 빌려올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것은 예수께서 '네 믿음대로 되라'(마 8:13;9:29)고 말씀하신 것과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성 경: [왕하4:4]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과부를 구제한 엘리사]
(주); 들어가서 문을 닫고 - 이와 동일한 구절이 본장에서 여러번 나타나는데(4:5,21,33; 6:32) 이것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의 비밀스런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은혜는 은밀한 교제 속에서 풍성히 내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고 했던 것이다. 사실 엘리사도 본장에서
하나님의 이적을 나타내기 위해 문을 닫고 은밀하게 하나님께 기도했다 (33절). 한편 문을 닫는 행위는 아무 것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이다(Lange, Wycliffe).
성 경: [왕하4:5]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과부를 구제한 엘리사]
본절에서는 여인의 믿음에 의한 순종적인 행위를 부각시켜 주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에 불합리하게
여겨질지라도 이 여인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비로소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에 대해
순종하는 성도들에게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신30:2,3;삼상 15:22;행 5:29).
성 경: [왕하4:6]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과부를 구제한 엘리사]
(주); 기름이 곧 그쳤더라 - 즉 여인과 아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그릇에 기름을 다 채우기까지 기름은 계속해서 흘러 나왔으며 모든 그릇이 다
찬 후에야 비로소 기름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그 여인이 그릇을 하나만 빌렸다면 기름은 한 그릇에만 채워 졌을 것이며 열 개를 빌렸다면
그 열 개의 그릇에 다 채웠졌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성도들이 갖고 있는 믿음의 분량대로 풍성히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요10:10). 그리고
또한 이것은 곧 우리의 필요를 정확히 아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낸다(Wycliffe).
성 경: [왕하4:7]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과부를 구제한 엘리사]
(주);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고한대 - 그릇을 빌려온 사람은 여인일지라도 그 그릇에 담긴 기름의 소유자는 하나님이었다. 그래서 여인은 이러한 소유물이 하나님의 것인 줄을 알고(Lange, Pulpit Commentary) 선지자에게 보고한 것이다. 한편우리의 주변에는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소유로 착각하여 자기의 생각대로 처리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눅12:16-21) 물질의 소유주 뿐 아니라 생명의 주인까지도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려주셨다.
(주); 기름을 팔아 - 하나님의 이적으로 인해 생긴 기름을 팔기는 분명 용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은 꿀 뿐만 아니라 밀, 기름, 유향
등을 갖고 주변 국가들과 무역을 하였기 때문이다(겔 27:17).
성 경: [왕하4:8]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엘리사를 대접하는 수넴 여인]
(주); 하루는 - 문자적으로는 '그 날', 즉 '그때에'(Keil & Delitzsch), 혹은 '그 날이었다'(Word Biblcal Commentary)란 의미이다. 그리고 이 구절은 11절과 18절에서 처럼 어떤 사건이 발생한 '특정한 날'을 가리킨다.
(주); 수넴에 이르렀더니 - 수넴은 오늘날 술람이라는 곳과 동일한 곳으로서 므깃도 남방약 11.2km 지점에 위치하며 이스르엘 평야에서 바라보이는 모세 산(창 12:6)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이곳은 이스르엘 북쪽 약 7km 정도에 위치한 곳으로 수 19:18을 보면 잇사갈 지파의 영토였음을 알 수있다. 그리고 사울과 블레셋이 전투한 길보아도 바로 수넴 부근이었다(삼상 28:4). 한편 성경에 기록된 수넴 여인은 둘이 있는데 하나는 아비삭(왕상 1:3)이며 또 다른 하나는 본절의 '귀한 여인'이다.
(주); 귀한 여인 - 여기서 '귀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게돌라'(*)로서 '위대한', '존귀한', '키 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키
큰'리라는 의미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용하지 않고 식물 등에 사용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역 성경은 '부한'(well-to-do, substantial) 또는
'위대한'(great)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주석가들도 이 말을 '부요한'으로 해석하여(Keil) 이 여인을 '남편 덕택에 부자가 된
여인'으로 보고 있다(G. Rawlinson). 한편 랍비들의 유전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여인은 아비삭의 누이 동생으로서 선견자 잇도의 아내였다고
한다(대하 9:29). 그리고 그녀는 백세가 넘도록 살았다고 한다(Ginszberg, Legends of the jews,4:242-244). 다음의 지도는 엘리사 선지자가 갈멜
산에서 수넴을 지나 길갈로 여행한 행로이다.
성 경: [왕하4:9]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엘리사를 대접하는 수넴 여인]
(주);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 엘리사는 자주 갈멜(2:25)에서부터 이곳을 지나 갈릴리에 있는 성읍들까지 여행을 했던 것 같다. 열왕기하에 기록된 엘리사 선지자의 대부분의 활동이 갈멜의 남쪽 지역이었는데 수넴 또한 그의 주요한 활동지였다. 이와 같이 엘리사는 아마도 사무엘 선지자처럼 백성들을 보살피기 위하여 정기적인 여행을 했던것 같다.
(주);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 계속해서 엘리사를 대접해오던 수넴 여인은 그가 참된 하나님의 사람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오랫동안 친숙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면 상대방의 허물을 보기 십상이지만 엘리사는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었기에 세인(世人), 즉 이
여인으로부터 이러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에 존재해 있던 자칭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세인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거짓
선지자들(Lange, Pulpit Commentary)과 좋은 대조가 된다. 한편 본절에는 수넴 여인의 영적인 분별력과 하나님에 대한 그녀의 열심이 묘사되어
있다. (1)영적인 분별력:그녀는 엘리사가 하나님의 거룩한(*, '카도쉬':'구별된', '분리된') 자임을 확신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았다가 맞은 편에 서있는 세 사람을 하나님의 사자로 알고 영접하여 극진히 대접한 것과 유사하다(창 18:1-8). 이와 같이 성도들은 영적 분별력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롬 12:2;사 11:3;고전 2:14). (2) 하나님에 대한 열심: 그 여인은 외간(外間) 남자를 자기 집에서 유할
수 있도록 자기 남편을 설득했다. 이것은 그녀가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알았을 뿐만 아니라, 그 깨달은 사실을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나타내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신 6:5;시 119:2;잠 3:5). 이러한 여인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은 침묵하시지 않고 축복하셨다. 왜냐하면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하나님께 행한 것이기 때문이다(마 10:42;18:5).
성 경: [왕하4:10]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엘리사를 대접하는 수넴 여인]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는 수넴 여인의 열정과 헌신된 봉사가 돋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설득으로 그녀의 남편이 다락에 덧붙여 지은 작은
방이(G. Rawlinson) 엘리사에게 안락한 휴식처로 제공되었다(11절). 이와같은 수넴 여인의 봉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돕는 또 하나의
사역이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푸는 사랑도 그리스도를 위한 것일진대, 수넴 여인의 봉사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진정한 신앙의 열매였다(마
25:40;눅 16:10). 한편 본절에 언급된 작은 방은 '집의 평평한 지붕 위에 지어진 방'(Thenius), 혹은 '다락에 덧붙인 작은 방'을 말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그 방으로 드나드는 통로는 바깥 벽면에 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그 집 본체와는 전혀 상관없이 출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방
안에는 침상과 책상과 의자, 그리고 촛대를 갖추어 놓아 침실로서만이 아니라 휴식과 연구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 졌다.
성 경: [왕하4:11]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수넴 여인에게 임한 자식 복]
(주); 하루는...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 8절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하루는'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사건이 발생한 특정한 시간'을
가리킨다. 그리고 당시에 발생한 사건과 엘리사가 누워 있던 그 방과의 연관성이 본절에 암시되어 있다.
성 경: [왕하4:12]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수넴 여인에게 임한 자식 복]
(주);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성경에 등장한 것은 여기가 처음이다. 그리고 게하시의 출신이나 그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었는지, 또한 그가왜 엘리사의 종으로 선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 한편 '사환'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아르'(*)는 2:23에서 '젊은 아이들'로 번역된 것으로 '종'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민 22:22;삼상 9:3;삼하 9:9등). 그러나 '나아르'는 '노예'와 같이 개인적인 자유를 완전히 상실한 종이 아니라 주로 주인의 시중을 들거나 개인적인 심부름을 하는 종을 가리킨다. 또한 이들은 자유롭게 가정 생활도 할 수 있는 신분이었다(삼상 9:9,10).
(주);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 혹자는 이 여인이 엘리사 앞이 아니라 게하시 앞에 섰다고 한다(Thenius). 그러나 이것은 선지자로서의 권위나
위엄을 상대방에게 내세우기 위함도 아니며 여인과 직접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서 그런 것도 아니다(16절). 그것은 단지 다른 사람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덕(德)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즉 엘리사는 그녀의 은혜에 대해 보답을 하려함과 동시에 그 여인을 당황케 하거나 곤란한 처지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게하시를 가운데에 놓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Wycliffe).
성 경: [왕하4:13]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수넴 여인에게 임한 자식 복]
(주);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 여기에서 '주밀하다'란 말은 히브리어 '하라데트'(*)인데 이 말은 '두려워하다', '조심스럽다' 라는 의미를 지닌 '하라드'(*)에서 온 용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밀하다'는 의미는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행동이 조심스럽고 치밀함'을 가리킨다.
(주);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 이 말은 곧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혹은 '당신을 위해서 내가 해 줄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의미이다(Pulpit Commentary).이는 수넴 여인을 향한 엘리사의 정감있는 요청일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의 은혜에 보답을 하려는 의중을 말한 것이다.
(주); 왕에게나 군대 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 이러한 엘리사의 질문은 그가 궁정에서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 존재인지를 짐작케 한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6:9-12,21-23;8:4-6에서 엘리사가 왕궁으로부터 받은 총애와 존경을 실필 수 있다. 한편, 본절에서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는 엘리사의 말은 '남편에게 무슨 군대의 직책이나직위를 주기 원하느냐?'(Matthew Henry, Vol. , p. 727)는 의미보다는 '내가 너를 위하여 중재할 어떤 일이 있느냐?'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Keil & Delitzsch). 왜냐하면 남편이 부자였기 때문에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권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엘리사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 - 엘리사는 여인의 정성된 섬김에 보답하기 위하여 그녀에게 도움을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본절에 나타난
여인의 대답 속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1) 궁중에 있는 왕에게나 권력을 가진 군대장관에게 구할 아무런 불평 불만도
없다는 것과 함께 (2)자신이 엘리사를 대접한 것은 무슨 보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봉사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여인의 순수한 봉사 정신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큰 본이 될 것이다(벧전 4:10).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명예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교회에서
봉사하고, 물질적인 축복을 바라고 헌금하며 구제사업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자들이다(행 5:4).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고 선포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물론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아무런
사심(私心)없이 사랑을 가지고 봉사를 해야한다(고전 13:5).
성 경: [왕하4:14]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수넴 여인에게 임한 자식 복]
(주);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 여인이 자식이 없는 것에 대해서 어떤 불만을 표했다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 그러나
오히려 게하시가 여인의 갸륵한 마음을 읽고 그녀의 소원을 엘리사에게 얘기해 준 것이다. 당시 히브리 사회에서 자식이 없는 것은 모욕과 수치로
생각되었다(창 30:6;삼상 1:6,7;눅 1:25). 이러한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도 어려움을 토로하지 않은 것은 여인이 행한 봉사의 진실성을 더욱
부각시켜 준 것이다. 그리고 게하시가 여인의 소망을 엘리사에게 대신 말할 때는 그곳에 수넴 여인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15절). 한편 '남편은
늙었나이다'라는 본절의 말은 남편이 자식을 생산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완곡히 표현한 것이다(창18:12).
성 경: [왕하4:15]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수넴 여인에게 임한 자식 복]
(주); 문에 서니라 - 엘리사의 부르심에 즉시 온 여인은 그를 존경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방에 들어가지 않고 문까지만 다가 선 것이다(Lange,
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4:16]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수넴 여인에게 임한 자식 복]
(주);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하나님의 은혜로 늙어서 아들을 얻은 것과 같이 수넴 여인에게도 동일한 은혜가 베풀어 진 것이다(창 18:10). 이는 곧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아직도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고 섭리하시며 인도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나타낸 것이다(Keil &Delitzsch, Vol. , p.311).
(주);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 문자적으로는 '속임수의 헛된 소망을 나에게 일으키지 마옵소서'(Lange) 혹은 '나를 어떤 거짓
소망으로든지 흥분시키지 마옵소서'(Keil & Delitzsch)라는 의미로 선지자의 말을 도리어 헛된 꿈만 부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 경: [왕하4:17]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수넴 여인에게 임한 자식 복]
(주); 돐이 돌아 오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본문의 문자적인 뜻은 '생명이 탄생하는 계절에'이다(창 17:21;18:10,14). 즉 만물이 소생하는
봄철을 가리키는 말이다(T. R.Hobbs). 16절에서 엘리사가 말한 그 때가 돌아 오자 엘리사가 예언한 대로 여인은 아들을 낳았다. 한편, '아들'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는 '벤'(*)으로서 '세우다'라는 '바나'(*)에서 온 말이다. 이는 아들을 통해 가계(家系)를 이을 뿐만 아니라 집안을 흥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성 경: [왕하4:18]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수넴 여인 아들의 죽음]
(주); 그 아이가 저으기 자라매 - 히브리어 본문에는 '저으기'라는 부사가 없고 단지 '그 아이가 자랐다'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본절의 내용만으로는 그가 태어난 후 얼마의 세월이 흘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본절 이후의 문맥으로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아이'에 해당하는 원어가 '어린 아이', '아이'를 의미하는 '엘레드'(*)와 '나아르'(*)로 사용되었다. (2) 이 아이가 어느 정도 말할 수 있었다(19절). 따라서 이 정도 되기까지는 아마도 2,3년의 기간이 흘렀음을 짐작할 수있다. (3)자기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있었다(20절). 이것도 그 아이가 그렇게 많이 자라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이 아이가 부모에게 재롱을 가장 많이 떨 정도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주); 하루는 곡식 베는 자에게 나가서 그 아비에게 이르렀더니 - 수넴 지방은 옥수수 재배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본절에서 곡식을 벤다는 말은
옥수수를 베는 것, 혹은 옥수수를 따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그 아이의 아버지가 곡식 베는 곳에 있었던 것은 그가 직접 추수를
했다기보다는 추수하는 일꾼을 감독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부자이기 때문에 일꾼을 부렸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PulpitCommentary).
성 경: [왕하4:19]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수넴 여인 아들의 죽음]
(주);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 이 아이는 추수하는 들로 나아갔다가 일사병에 걸린 것 같다. 왜냐하면 일사병은 팔레스틴에서 흔한 것일
뿐만 아니라(시 121:6;사49:10) 추수 때는 일 년 중 가장 더운 시기이기 때문에 일사병에 걸리기 쉬웠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Wycliffe).
그러나 이 아이의 병이 일사병에 의한 뇌염이었다고하는 견해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다(Keil & Delitzsch, Vol. , p.311).
성 경: [왕하4:20]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수넴 여인 아들의 죽음]
(주);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 - 본절을 보면 아이가 들판에서 병을 얻은 것이 아침 나절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낮까지'라는
표현을 써서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또한 본절은 아이의 죽음이 명백한 실제적 사실이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그 이유로서 수넴
여인은 아이를 무릎에 안고 아침 나절부터 낮까지 아이의 임종에 대해 줄곧 관찰해 왔음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수넴 여인은 아이의 죽음을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증인이 되는 것이다.
성 경: [왕하4:21]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엘리사를 찾는 수넴 여인]
(주);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서 - 수넴 여인은 아이의 시신을 자신들의 방이나 아이의 방에 두지 않고 선지자의 침상 위에 두었다. 그리고
아이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이의 죽음을 감추기 위해서 문을 꼭 닫아 두었다. 그런데 여인의 이런 행동은 아이가 죽은
것을 남편에게 알려서 근심을 주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고, 또한 엘리사가 오기만 하면 그 아이가 다시 살아날 것을 확신하는 신앙적 태도에서 나온
것이었다(K.W.B hr).
성 경: [왕하4:22]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엘리사를 찾는 수넴 여인]
(주); 한 사환과 한 나귀를 내게로 보내소서 - 그녀는 엘리사에게 가는 길이 멀고 험하기 때문에 나귀 한 마리와 그 나귀를 몰고 갈 종을 남편에게 요구했다. 그런데 본절에서 한 나귀를 요구한 것이 그들이 두 마리의 나귀 밖에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Wycliffe)은 의심스러운 해석이다.
(주);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 여기에는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는 확신에 찬 여인의
믿음이 나타나 있다. 수넴 여인의 이러한 믿음은 (1)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부부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들을 낳았던 사실과 (2) 엘리사를 오랫동안
섬기면서 체득한 영적 지혜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성 경: [왕하4:23]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엘리사를 찾는 수넴 여인]
(주);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 초하루(월삭)와 안식일은 백성들의 종교적 휴일이었다(삼상 20:5;암 8:5;사 1:13). 그래서 엘리사는
아마도 절기일이나 안식일에만 방문자들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Hobbs). 왜냐하면 다른 날은 백성들을 살피며 여행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8절). 또
방문자들도 그런 절기때에만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선지자를 만나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에 기록된 남편의 질문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1) '오늘 그를 만나기가 힘들지 않겠느냐'는 뜻이며, (2) '그렇게 급히 선지자를 만나야 할 다른 무슨 이유가 있느냐'는 뜻이다. 그러나
그녀는 '샬롬'(*)즉 "평안이니이다"라고 대답한다. 이 말은 흔히 안부의 물음에 대한 대답(26절)으로서 '아무 일 없다', 또는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참으로 이것은 그녀가 남편을 안심시키기 위한 지혜로운 처신이었으며 또한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확신의
표현이었다. 한편 여인이 나타낸 이 표현에 대해서 혹자는 구체적인 대답을 회피하기 위한 말이라고도 한다(Keil & Delitzsch, Vol. , p.311).
성 경: [왕하4:24]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엘리사를 찾는 수넴 여인]
수넴에서 갈멜 산까지는 약 40km나 되었기 때문에 수넴 여인은 사환에게 말을 급히 달리게 했다(T.R.Hobbs).
성 경: [왕하4:25,26]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엘리사를 찾는 수넴 여인]
여기에서 엘리사가 자신의 사환을 보내어 수넴 여인을 맞이하게 한 것은 그가 얼마나 그녀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는지를 나타내 보여 준다. 한편
게하시로 하여금 남편과 아이의 평안을 물어보게 한 것은 갑자기 찾아온 그 여인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게하시의 안부 인사에 수넴 여인은 '평안하다'라는 짧은 답변을 했는데 그 이유는 (1) 더 많은 설명을 하려다가는 많은 시간을 지체해야한다고
생각한 때문이며(Keil), (2) 이런 일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직접 말해야만 문제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 경: [왕하4:27]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엘리사를 찾는 수넴 여인]
(주); 그 발을 안은지라 - 수넴 여인이 엘리사의 발을 안은 것은 도움을 요청하는 심정의 간절함을 나타낸다(Pulpit Commentary).그런데 게하시가 그녀의 행동을 막으려고 했던 것은 (1)이와 같은 방법으로 선지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무례한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며(Keil & Delitzsch) (2) 선지자의 위엄을 손상시키는 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요 4:27). 한편 여인이 엘리사의 발을 안은 행위에 대해 혹자는 '큰 슬픔에 사로잡혀서'(Lange), 혹은 '불안을 더이상 자제할 수 없었기에'(Wycliffe)라고 설명하지만 이러한 의견에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그녀의 믿음으로 미루어 살필 때(10,13,22절) 그녀는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여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큰 믿음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존경하는 사람,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동양에서 흔히 하는 행동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방할 듯 싶다(Pulipit Commentary).
(주);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 본절은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임하고 있지는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3:15). 이것은 신약
시대에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에게도 해당된다. 즉 어떤 사람이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자신이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나타내고자 하실 때에만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와
바울에 있어서도 나타난다. (1) 가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는 모친 마리아의 말을 들으신 예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4)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께서도 성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와 일치되게 행하셨음을 보여준다. (2)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막으심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소아시아 지역의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다. 이 때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바울에게 마게도냐로 가도록 인도하셨다(행 16:6-10). 여기에서 우리는 위대한 사도 바울도 역시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하시기까지는 자신의 뜻을
따라 행하려고 했음을 볼 수 있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하나님 자신의 영원하신 계획과 정하신 때에 맞춰 주어진다(전 3:1;행 1:7).
그러므로 자신이 원하는 때면 언제든지 예언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자들에 대한 신중한 경계가 성도들에게 요청된다.
성 경: [왕하4:28]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엘리사를 찾는 수넴 여인]
(주);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 여인은 엘리사에게 자기의 아들이 죽은 사실을 힐책의 표현을 써서 간접적으로 알리고 있다(Pulpit Commentary). 사실 여인은 애초부터 자식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자손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그녀는 한없이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자식이 죽은 마당에 처음과 같은 원점으로 돌아가 '저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라고 하면서 탄원 섞인 말을 하는 것이다. 이 말에서 우리는 역경과 고난의 어려움을 원망하기 이전에 겸손히 순종하는 여인의 아름다운 믿음을 볼 수 있다.
(주);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 이 말 속에는 아들을 잃은 슬픔과 하나님의 사람에게 은혜를 바라는 간절한 요청이 함께
내포되어 있다. 즉 16절에서 '속이지 마옵소서'라고 말했을 때는 자신이 아이를 얻을 형편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무슨 일로
자기와 같은 사람에게 아들이 주어지는가 했더니 역시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구나하는 애탄이 섞인 말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식이 없을 때보다
하나 있는 아들 자식을 잃었을 때의 슬픔이 몇 십배로 더 큰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불어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얻은 아들을
하나님의 축복으로다시 살려달라는 요청이 내포되어 있다.
성 경: [왕하4:29]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엘리사를 찾는 수넴 여인]
(주); 인사하지 말며 - 엘리사가 이렇게 명령한 것은 동양인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인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여 일을 지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Thenius, PulpitCommentary)만은 아니다. 그것은 (1)외적인 상황을 핑계로 게하시가 이적 수행에 실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Keil), (2) 게하시로 하여금 온전한 기적 성취를 위해 기도에 전념토록 하기 위해(C. Lap), (3) 허영심이 많은 그가 여행의 이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발설함으로써 스스로 이적을 행하는 것인양 자랑치 못하게 하기 위해(Theodoret) 그렇게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본절에서 '허리를 묶는다'라는 표현은 행동의 신속함을 위한 당시의 습관을 반영한 말임과 동시에 마음을 가다듬고(벧전 5:15) 진리에 굳게 선다(눅 12:35)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 엘리사는 자신이 직접 가지 않고 게하시를 통하여 지팡이만 보내면서 이런 말을 했다. 이것은 선지자의
상징적 행위로서 지팡이가 선지자의 임무를 대행할 수 있는 증거가 되기에 그렇게 했다. 왜냐하면 그 지팡이는 여행용이 아니라 왕의 홀과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지자적인 은사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출 4:17,20;Lange). 그리고 또한 엘리사가 취한 이러한 조치는 지팡이 자체에 어떤
신비적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상징적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나타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선지자로서 갖는 겸손의
발로인 것이다. 한편 이러한 상징적 행위를 아이에게 덮치고 있는 사망을 저지하기 위함이라는 혹자의 주장(Wycliffe)에 대해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성 경: [왕하4:30]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엘리사를 찾는 수넴 여인]
(주);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 - 이러한 수넴 여인의 믿음에 찬 고백은 순전히 그녀의 신앙에 기인한 것인데 이는 엘리사가 자신의 스승 엘리야에게 했던 신앙 고백과 같은 것이다(2:2;4:6, Pulpit Commentary, Word Biblical Commentary).
(주);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 '제자 게하시가 대신 가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Wycliffe), 혹은 '자신을 따라 나설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Pulpit Commentary)라는 의미이다. 이는 게하시에 대한 불신으로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만을
의지하고자 하는 간절한 심정과 사태의 긴박성를 나타낸 것이다.
성 경: [왕하4:31]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엘리사를 찾는 수넴 여인]
(주);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 게하시가 지팡이를 죽은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사실을 갖고 주석가들은
여러 가지 해석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카일(Keil)은 게하시가 엘리사의 명령대로 충실히 수행했으나 아이를 살리려는 그의 노력은 무사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 p. 313). 또 랍비들의 주장에 따르면 게하시가 엘리사의 명령대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고 속히
가라는 명령에 불순종했다는 것이다. 한편 데오도르(Theodoret)는 야심과 허영심이 강한 게하시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자신이 위임 받은
하나님의 일을 자랑했다는것이다. 그러나 게하시가 아이를 살리는 일에 성공하지 못한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있다. (1)엘리사가 수넴 여인과 함께
가기로 작정한 직후 게하시의 위임은 무효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게하시가 아이를 살리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다. (2) 엘리사가 준 지팡이에 대해
게하시는 어떤 마술적인 힘이 그 지팡이에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게하시는 그 능력을 속히 나타내기 위해서 미리 앞서 간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능력을 남에게 위탁할 권세를 갖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위임한 것은 엘리사의 실수라는 혹자의 주장(Wycliffe)은 우리가
고려할 문제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은 게하시와 같은 불신앙이 아무런 이적을 행할 수 없음을 보여 줌으로 인해 여호와께 대한 참된
신앙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성 경: [왕하4:32,33]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소생하는 수넴 여인의 아들]
엘리사가 집에 들어갔을 때 아이는 자기 어머니가 눕혀 놓은 엘리사의 침상 위에 그대로 있었다(21절). 그리고 엘리사는 외부의 방해를 막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위하여 문을 닫고 여호와께 기도하였다. 이와같은 엘리사의 신중한 태도는 여호와께 대한 그의 신앙이 얼마나
진지하였던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본문 33절에서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었다'라는 표현은 죽은 아이를 산 자, 즉 잠자는 사람으로 간주한
것이다(Matthew Henry, Vol. , p. 730).
성 경: [왕하4:34,35]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소생하는 수넴 여인의 아들]
본절은 엘리사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취한 행동에 대한 묘사로 왕상 17:21에서 엘리야가 과부의 아들을 살릴 때보다도 훨씬 더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 다 그리스도가 행한 이적에 비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곧 자신이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다 가지신 분이시기에 그는 말씀 한 마디로 죽은 자를 살리셨다(막 5:39-42;눅 7:13-15;요 11:43,44). 그러나 엘리야와 엘리사의 경우에
있어서는 자신의 능력에 기인한 이적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한 바대로의 응답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행한 것과 같은 죽은 자를 살리는
동일한 이적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한편 엘리사가 내려서 집안에서 한 번 이리저리 다니고(35절)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한번은 이쪽으로, 또 한번은 저쪽으로'라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엘리사가 크게 감동되어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다(Wycliffe)는
의미보다도 '아이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다닌 것'을 의미한다.
성 경: [왕하4:36,37]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소생하는 수넴 여인의 아들]
(주); 수넴 여인은 엘리사의 방에서 아들이 다시 살아난 것을 보고 엘리사의 발 앞에 엎드려 절했다. 참으로 27절에서 엘리사에게 원망하며 발을
안던 모습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수넴 여인이 본절에서 취한 행동은 엘리사에게는 존경과 감사의 표시였으며 여호와께는 찬양의
표시였을 것이다(시 110:4;요11:41).
성 경: [왕하4:38]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해독(解毒) 이적]
(주);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 이 이야기는 수넴 여인의 이적 사건과 계속 연대기적으로 이어지는 사건은 아니지만 그 후 어느 때인 것 같다(Lange). 본 사건의 장소인 길갈에는 선지 학교들이 있었는데 엘리사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정기적인 순회 즉 연차 순시를 위한 것이었다(Keil, Wycliffe). 한편 이 곳 길갈의 지리적인 위치에 관해서는 2:1의 주석을 참고하라.
(주);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 이 곳의 흉년에 대해서는 8:1에서도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흉년과 엘리사 선지자의 길갈 방문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본문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길갈에서 상당 기간 머물면서 생도들을 돌보게 된 이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될 것이다. 한편 팔레스틴 지방은 연평균 강우량이 적기 때문에 비가 조금만 덜 와도 쉽게 흉년이 드는 곳이다.
(주);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눈 것과는 달리 구약에서는
이와 같이 선지자의 생도들이 선지자 앞에 모여 어떤 집회를 가진 경우는 아주 드물다(T.R.Hobbs). 그러나 여기서 생도들은 엘리사 선지자 앞에
모여 그의 말을 경청했던 것 같다(겔 8:1;14:1슥3:8). 한편 혹자는 본문의 이 구절을 '선지자의 생도들이 그와 함께 거주했더라'고
번역하는데(Vulgate, Luther, Horsley) 이것은 옳다고 볼 수 없다(K. W.B hr) 왜냐하면 본절은 엘리사가 선지 학교를 방문하는 동안 생도들을
교육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 경: [왕하4:39]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해독(解毒) 이적]
(주); 야등 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 외를 따서 - 국을 끓이기 위해 한 사람이 채소를 구하러 들에 나갔다가 야등 덩굴을 발견하게 되었다. 야등
덩굴의 열매는 식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 생도들이 이를 갖고 음식으로 먹으려고 했던 것을 보면 당시의 가뭄이 얼마나
혹심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이 '야등 덩굴'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한 견해는 대체로 두가지가 있다. 첫째 견해는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이 번역하고 있는대로 이것은 콜로신드(Colocynth)라는 식물이라는 것이다. 이 콜로신드는 외과에 속하며 둥글고 황갈색을
띤 오렌지 만한 열매가 열린다. 그리고 그 열매는 매우 쓸 뿐만 아니라 먹으면 복통과 신경통을 일으킨다(TheInterpreter's Bible). 한편 두번째의
다른 견해는 어원적(語原的)인 근거를 가진 것으로서 이것이 도토리와 비슷한 열매인 '들 외'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야생 덩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파쿠오트'(*)인데 이 단어의 어근 '파카'(*)는 '깨뜨리다', '쪼개다'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켄(Oken)에 의하면 이
'들외'는 약 2.54cm 정도의 초록색 다육질로 된 껍질을 가지고 있어서 완전히 익었을 때는 가볍게 누르기만 해도 큰 소리를 내며 쪼개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식물이 뿜어 내는 즙이 대단히 쓰다는 것이다(Gesenius, Winer). 이러한 의견들에 대해 카일(Keil)은 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고 보고
있는데 이유인 즉 본절에 나타난 '들 외'는 야생포도가 아니라 오렌지와 같이 둥글고 누런 열매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Keil &Delitzsch, Vol. ,
p. 314-315).
성 경: [왕하4:40]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해독(解毒) 이적]
(주);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 생도들은 이 식물의 지독한 쓴 맛 때문에 독이 있다고 판단했고 이 독을 마시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카일(Keil)은 콜로신드를 다량으로 섭취하게 되면 죽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본절에 나타난 '사망의 독'은 히브리어
'마웨트'(*)의 번역이다. 이 말은 '죽다', '파괴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무트'(*)에서 파생한 용어로 '죽음'을 뜻한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쓴 맛과 죽음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전 7:26).
성 경: [왕하4:41]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해독(解毒) 이적]
본절에서 엘리사가 독을 제거하기 위해 솥에 넣은 가루는 그가 여리고의 물을 고치기 위해 샘에 넣은 소금과 같이 동일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2:21, K.W.B hr). 그런데 이 가루는 유해한 것을 이로운 것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매개물로써 사용된 것이다(Keil &
Delitzsch).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라는 독성을 제거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보혈을 흘려 주신 것이다.
성 경: [왕하4:42]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보리떡과 채소 이적]
(주); 한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부터 와서 - '바알 살리사'(Baal Shalishah)의 정확한 위치에 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지만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세겜의 서쪽 20km 지점에 위치한 크파르 틸트(Kfar Tilt) 또는 둘트(Thult)를 가리킨다고 본다. 이 곳은 리다(Lydda, 현재의 Ludd) 또는 디오스폴레오스(Diospoleos)에서 북쪽으로 약 24km 가량 떨어진 곳으로서 유세비우스(Eusebius)와 제롬(Jerome)이 '벧 살리사' 즉 '세 계곡의 집'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또한 삼삼 9장에서 사울이 아버지의 나귀를 찾아 다닌 지역들 중의 하나가 바로 살리사라는 곳이었는데(삼상 9:4) 이 지역의 땅은 매우 기름진곳이었다고 한다(T.R.Hobbs). 그리고 이곳은 길갈(Jiljiliya)과도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G.R.Rawlinson).
(주); 처음 익은 식물 - 모든 식물의 첫 소산을 여호와께 바치는 것이 율법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데(레 23:9-14;출 34:26;신 26:3-10), 여호와께 바쳐진 이 첫 소산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이 나누어 먹었다(민 18:13;신 18:4). 그런데 당시에는 합법적인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없었기 때문에(왕상 12:13)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 첫 소산을 바치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경건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Lange Commentary). 한편 이 같은 '첫열매'는 이스라엘의 지위(롬 11:16)와 부활하신 그리스도(고전 15:20,23),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약 1:18)을 상징한다.
(주); 곧 보리떡 이십과 - 레 2:14에 의하면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로 삼았으나 여기서는 떡을 만들어 선지자에게 바쳤던 것이다. 그리고 보리떡한 개는 일반적으로 성인 한 명이 먹을 수 있는 한끼 분의 식사에 해당되므로(G.Rawlinson) 떡덩이 이십 개는 이십 명 밖에 먹을 수 없었다.
(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 여기서 '채소'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카르멜'(*)은 39절에서 '채소'라고 번역된 '오로트'(*)와는 다르다.
'오로트'는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 푸른 풀'(K.W.B hr)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곧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채소'이다. 그리고 본절의 '카르멜'은
중동 아셀(Asher) 남쪽이나 사해의 서쪽 지역의 고산 지대에서 생산되는 곡물이다(Davidson;수 15:55;삼상 15:12;25:5). 그래서 대부분의 영역
성경에서는 이를 '옥수수'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카일(Keil)은 곡식의 구운 이삭(레 2:14)이라고 번역하고 있다(Keil & Delitzsch, Vol. , p.
316). 한편 이처럼 곡물의 첫 이삭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가 여호와의 제단에 바치는 것은 이스라엘의 유월절에 행하여지던 풍습이었다(레 23:10).
성 경: [왕하4:43,44]
주제1: [엘리사가 행한 5가지 기적]
주제2: [보리떡과 채소 이적]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자루를 갖고 일백 명이 먹기에는 대단히 부족한 것이었다. 그러나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온전히
성취되는 이적이 일어났다. 이러한 이적은 바로 그리스도가 행한 오병이어의 이적의 한 모형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마 14:13-21) 당시
이스라엘의 경건한 무리들이 여로보암의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서 고안된 금송아지 숭배를 거부하고 선지자의 학교에서 올바른 예배를 드렸다는 좋은
증거가 된다(Hengstenberg Beitrr, , p. 136).
성 경: [왕하5:1]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문둥병자 나아만]
(주); 아람 - '셈족'의 후예로서 '수리아'라고도 불린다. 유목 민족이었던 그들은 B.C.13세기 경에 힛타이트의 영토였던 다메섹에 정착했다. 북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우호 관계, 혹은 적대 관계를 맺었다(16:5;왕상 15:18-20). 특별히 상업에 재능을 보여 각지를 돌아 다니며 통상을 벌였기 때문에 그 언어가 동방 무역 세계의 언어가 되었다(18:26;사 36:11;스 4:7;단 2:4).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된 후 신약시대에는 아람어가 팔레스틴에서 통용되었다(마 27:46;막 5:41;7:34).
(주); 아람 왕의 군대 장군 나아만은 - 여기서 아람 왕이란 직접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 그 이름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6:24과 8:7에 등장하는 벤하닷I세(Ben Hadad I세, B.C. 900-860)와 동일 인물로 알려져 있다(T.R.Hobbs). 그리고 본장에 기록된 사건은 이스라엘과 아람의 계속적인 전투중 간헐적으로 나타났던 평화 기간에 발생한 것으로 추측한다(K.W.B hr). 왜냐하면 벤하닷 I세가 생존한 시기에는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가 적대적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본장의 중심 인물인 나아만의 이름은 우가릿어(Ugarit)로서 '공평한', '은혜로운'이라는 뜻(Gray)인데 혹자는이 이름이 아람인이 섬기는 신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Ewald)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당시의 아람에서 군대 장관이라는 직책은 군대의 총지휘권을 가진 자를 가리키는 것이며 그 아래에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이라는 직위 서열로 군대 조직이 구성되어 있었다(1:9 주석 참고).
(주);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 여기서 '크고'라는 뜻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전장(前章)에서 수넴 여인을 가리킨 단어인 '귀한'(4:8)이라는 말과 동일한 용어 '게돌'(*)이다(4:8주석 참고). 그리고 '존귀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문자적인 뜻은 '한 권위자가 스스로 얼굴을 들어 올리는 행위'에서 나온 것(Gray)인데 일반적으로 존경 스러움을 나타내는 단어로 쓰인다(3:14). 이처럼 나아만은 벤하닷의 군대 장관으로서 큰 영화를 누렸던 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의 표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영예를 얻었다', 혹은 '존경을 받았다'라고 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주);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 본절에서 이방인이 얻은 승리를 여호와의 구원으로 인한 결과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은 구약 전반에서 보더라도 참으로 특이하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에서 파생된 자연스러운 논리적 결과이다(T.R.Hobbs). 즉 이는 온 천하에 유일한 신(神)이신 여호와께서 이방인의삶까지도 섭리하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나타낸 독특한 히브리적 개념인 것이다(암9:7;사10:13,Lange Commentary). 그래서 여기에 특별히 언급된 아람의 구원은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얻은 승리를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T.R.Hobbs). 한편 요세푸스에 따르면 나아만은 아람의 배반자인 이스라엘의 아합 왕(B.C.874-853)을 살해한 자였다고 한다. 또한 역대하 18장의 아람어 탈굼(Targum) 역본에도 이와 동일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 나아만은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는 등 많은 공적을 세운 능력있는 군대 장관으로서 영화를
누렸지만 불행하게도 문둥병에 걸리고 만다. 그렇지만 문둥병자를 사회에서 추방하는 이스라엘(레 13장-14:57)과는 달리 아람에서는 문둥병자라도
왕과 아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Keil &Delitzsch, Vol. , p.317).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에까지 도움을 구하러 온 것을 보면 그의 문둥병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대단한 지장이 있었음을 알 수있다(Thenius). 이러한 사실에 대해 혹자는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려서 앗수르를
치는데 더이상의 공헌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Wycliffe). 한편 본절에서 '큰 용사'라는 표현은 '좋은 군인'이라는 의미 이상의 아무런 뜻이
아니다(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5:2]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아람 왕의 친서]
(주);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 여기서 '전에'라는 시간을 나타내는 전치사는 언제라고 분명히 그 시기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본장의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의 '때'를 가리킨다. 아합 왕이 라못 길르앗을 원정한 이후로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는 조그만 싸움들이 잦았다. 본절은 그러한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해서 이러한 표현을 한 것이다. 한편 여기서 '떼를 지어'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자르다', '침투하다'라는 어근 동사 '가다드'(*)의 변형인 '게두딤'(*)으로서 흔히 '몰래 습격하는 비적 떼'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삼상 30:8,15). 또한 헬라어 역본들에는 '모노조노스'(*)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벧트를 하나 밖에 차지않은 가벼운 복장 차림을 한 군대의 병사들을 가리킨다(3:21 주석 참고). 그리고 중세 헬라어 역본들을 보면 '도적 떼'라는 뜻의 단어 '페이라테리온'(*)이 첨가되어 아람 사람들의 떼가 비적, 혹은 도적 떼임을 더욱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주); 작은 계집 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 고대의 도적 떼들은 보물의 약탈뿐 아니라 종으로 삼을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가는 일이 성행했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본절에 언급된 작은 계집 아이는 자신을 잡아온 사람들에게까지 탁월한 용기와 자비를 보이고 있다. 그녀는 고향과 친지들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고생하고 있지만 괴로워하지 않고, 복수하기보다는 오히려 친절을 베푼다(마 5:44). 그렇기 때문에 혹자는 본절의 사건이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Wycliffe).
(주); 수종들더니 - 이것을 히브리어 문자대로 직역해 보면 '앞에 있다'라는 뜻이 된다. 이것은 4:12,15에 기록된 '앞에 서 있다'라는 말의
단축형으로 보기도 하며 '존경'을 표시하기도 하며 심지어 '숭배'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T.R.Hobbs). 그 뿐만 아니라 이 용어는 맹세를
나타내는 구문에서도 사용된다(5:16 '나의 섬기는').
성 경: [왕하5:3]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아람 왕의 친서]
(주);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 이는 엘리사 선지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엘리사는 사마리아에 집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6:32) 그곳에서 때때로 거주했기 때문에 그렇게 칭함을 받은 것같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주);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 하나님은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땅에서 사로 잡은 '작은 계집 아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명성이
이방 땅에도 전파되도록 하셨다. 이 약한 소녀를 통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는 이방에까지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미치고 있음을
의미한다(벧전 2:13).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안목으로 판단했을 때 지극히 비천한 자를 종종 들어 쓰시며(고전 1:28) 그들을 사용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성 경: [왕하5:4]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아람 왕의 친서]
(주); 이러이러 하더이다 - 이와 같은 표현은 대화시에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서 전기 선지서에 많이 나타난다(9:12;수 7:20등). 이처럼 나아만이
이스라엘에서 온 계집 아이의 말을 왕에게 전함으로 인해 엘리사 선지자의 명성은 더욱 더 널리 아람 땅에 전파된다.
성 경: [왕하5:5]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아람 왕의 친서]
(주);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 본절을 통해서 나아만 장군이 아람 왕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총애를 받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K.W.B hr, Pulpit Commentary). 한편 아람 왕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왕의 이름을 본문에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 엘리사가 활동한 것은 여호람,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4대에 걸친 시기, 즉B.C.848-797년이었다. 그러나 본장에 등장하는 아람 왕이 8장에 나오는 벤하닷 I세와 동일인이라고 간주할 때 본장의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벤하닷 I세가 암살되기 이전,즉 B.C. 842년 이전이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그때에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왕은 바로 여호람이 되는 것이다(T.R.Hobbs, Word Biblical Commentary, p.63-64).
(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 - 나아만이 이스라엘을 향해 떠날때 가지고 간 선물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한 달란트는
3,000세겔에 해당되며 무게로는 약 34.27kg에 해당되므로(출 38:25,27;왕상 16:24;계 16:21) 은 십 달란트는 약342kg에 해당된다. 그리고 금 육천
개는 두 달란트에 해당되며 무게는 약 68.4kg에 해당된다. 또한 이것을 카일(Keil)의 계산법에 따라 환산해 보면 은 십 달란트는 옛 독일의 화폐로
약 25,000탈러(Thaler)이고 금 육천 개는 약 50,000탈러이다. 그러니까 영국 화폐는 약 3,750파운드와 7,500파운드에 각각 해당된다. 한편 그가
선물로 갖고간 의복 열 벌은 매우 높은 가격의 선물로서 상대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는한 방법이었던 근동 지방의 풍습을 반영한
것이다(Pulpit Commentary). 이러한 풍속과 습관은 오늘날까지도 이 지방에서는 지속적으로 내려온다(Keil & Delitzsch). 이처럼 나아만이 가지고
간 선물은 상당한 것으로 그 당시 나아만의 권세와 부귀가 어떠했는지 가히 짐작 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5:6]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아람 왕의 친서]
본절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는 외교문서에서 쓰는 공식적인 용어이다(T.R.Hobbs). 그리고 본절에 나타난 문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엘리사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아람 왕이 엘리사를 일종의 '우두머리 마술사나 이스라엘 종교의 대제사장'(Menken)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일을 왕에게 부탁하면 왕의 수하에있는 이 선지자가 병을 고쳐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고쳐주소서'라는 표현은
'모으다', '회복시키다', '제거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사프토'(*)를 번역한 말이다. 이는 병의 근원을 뿌리채 뽑아 달라는 탄원과 함께 간절한
열망을 내포하고 있다.
성 경: [왕하5:7]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아람 왕의 친서]
(주); 자기 옷을 찢으며 - 본절에서 이스라엘 왕은 극한 슬픔과 분노의 표현으로 옷을 찢는다(창 37:29; 44:13;민 14:6;수 7:6;삿 11:35). 이것으로
보아 당시의 이스라엘이 아람의 위압에 눌려 있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이 어렇게 분노한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아람 왕의 말을 오해했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왕은 아람 왕의 말을 왕 자신이 그 문둥병을 고쳐 달라는 말로 잘못 받아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서 이 병은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과 같이 중한 병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신32:39;삼상2:6). 따라서 한낱 인간에 불과한 자신에게 이러한 중대한 병을 고쳐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공연히 시비를 거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K.W.B hr, Pulpit Commentary). (2) 엘리사가 이적을 행하는 줄 몰랐던 왕으로서는(8절) 이렇게 오해한 것이
당연했다. 왜냐하면 벤하닷은 아합 왕 때에도 이와 같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왕상 20:3-6). 한편 히브리 민족은 옷을 찢는
행위 이외에도 슬픔이나 분노를 나타내기 위해 머리에 티끌을 뿌리거나(수 7:6) 흙이나 재를 뒤집어쓰기도 하였다(삼하 13:19;에 4:1,3;욥 2:8).
그리고 정수리의 머리털을 면도해 버리거나(렘 7:29) 얼굴과 가슴을 치고 뜯기도 하였다(눅 18:13).
성 경: [왕하5:8]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고침받은 나아만]
(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그가 있던 곳은 사마리아로 추정된다(G.Rawlinson). 따라서 요단 강과는 어느정도 떨어진 곳(이십마일 정도)이었다.
(주);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왕과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을 배신하여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지만(1:6;3:11;8:7-15)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계심을 이방인 나아만을 통해 알게
할 것입니다'(K.W.B hr) 혹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지 마소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은 나아만을 구원하셔서 참 선지자가 이스라엘에
있음을 나타낼 것입니다'(Wycliffe)라는 뜻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는 것과 같이 우리도 근심하게 되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심리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 압박만 더욱 받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근심을 떨쳐 버려야 한다(벧전 5:7).
성 경: [왕하5:9]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고침받은 나아만]
(주);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 애굽으로부터 말과 병거를 수입한 아람은 전쟁 뿐 아니라 평화적인 용도, 즉 사람과 물건의 운반을 위해서도 말과 병거를 사용하였다(왕상10:29). 한편 애굽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일찍 이러한 말과 병거의 사용이 있었다(창41:43;50:9).
(주);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 여기서 나아만이 취한 태도는 4:15에서 수넴 여인이 취한 태도처럼 존경의 표시로 볼 수는 없다. 나아만은 자기의
직책과 부귀 영화로 인한 교만때문에 말에서 내려 들어가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PulpitCommentary)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병을 고치려는 간절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이렇게 교만한 나아만을 맞이하러 엘리사 선지자가 나오지 않은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부귀 영화로
구원 얻을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K.W.B hr).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자와 다를 바 없는(민 12:12) 문둥병자 나아만은 오히려 선지자
엘리사를 교만하다고 진노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11,12절). 그러나 그는 자신의 병고침이 선지자의 어떤 마술적인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겸손함으로 순종한 결과라는 사실을 후에서야 깨닫게 된다(Keil).
성 경: [왕하5:10]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고침받은 나아만]
(주);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 본절에 나오는 엘리사의 명령은 율법에 준한 것이지만(레 14:8,9) 그 의미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율법에서 몸을 씻는 것은 문둥병이 완전히 고쳐지고 난 이후 깨끗케 되었음을 증거하는 상징적 의식 행위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깨끗하게
되기 위한 예비적 동작으로 몸을 씻는 행위를 명령한 것이다(T.R.Hobbs,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13, p.64). 이와 비근한 예로 예수께서 한
소경을 치료하실 때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요 9:7)고 하시니 이에 소경이 즉시 순종하여 가서 씻었더니 눈이
밝아져보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엘리사가 나아만으로 하여금 요단 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게 한 것은 치료를 위한 행위나 치료 후 행하는 의식적
행위에 대한 명령이라기보다는 즉각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명령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일곱 번이나 씻으라고 한 것은 완전한 순종에 대한
요청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 한도의 인내까지도 포함된 명령인것이다. 왜냐하면 '완전하다', '만족시키다'란 뜻의 히브리어 '솨바'(*)에서 온말이
'일곱'을 나타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곱을 일명 '완전 수'라고 하는 것이다. 한편 이것은 여리고 성을 칠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말씀(수6:3-5)과 3년 6개월 동안의 가뭄 끝에야 엘리야가 자기 사환에게 비 올 증거를 찾도록 명령한 것(왕상 18:43)과 동일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일곱 번씩이나 같은 행위를 하게 한 것은 사람들이 흔히 소유하지 못한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만 치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Pulpit Commentary). 이러한 내용들로 살펴볼때 이와 같은 엘리사의 명령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1)나아만의 교만을 분쇄하기 위한 것이다. 나아만은 아람의 군대 장관인 반면에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선지자에 불과했으므로, 나아만이
교만한 자라면 엘리사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만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결코 당신의 능력과 은총을 베푸시지 않는다(잠 8:13;16:5;눅
16:15). 2)나아만의 문둥병이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치유됨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고대 근동 지방에는 불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가지
주술 행위가 사용되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러한 처방은 커녕 아주 평범하게 여겨 오던 혼탁한 요단 강가에서 씻으라는 처방을 했다(12절).
성 경: [왕하5:11]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고침받은 나아만]
(주); 당처(當處) - 이 말은 히브리어 '하마콤'(*)을 번역한 용어인데 이는 '일어 나다'란 뜻의 '쿰'(*)에서 파생한 단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은 '질병으로 인해 부어 오른 바로 그곳', 즉 '환부'란 의미이다.
(주); 손을 흔들어 - 이러한 표현은 흔치 않다. 레 14:12에서 여호와 앞에 요제를 드릴때에 흔들어 드린다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본절과의 연관성은
희박하다. 그리고 선지서에는(사11:15) 이와 같이 손을 흔드는 행위가 심판과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T.R.Hobbs). 따라서
본절에 나타난 손을 흔드는 행위는 나아만이 알고 있는 고대 근동 지방의 주술적 행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나아만은 엘리사
선지자가 자신의 체면을 세워주지도 않고 이러한 주술적 행위도 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하여 못마땅하였던 것이다(Menien). 한편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노를 발한 원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엘리사가 친히 나와 자기를 맞이하고 '당처', 즉 헌데 난곳을 손으로 만지고 병을 제거하는
등의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과 (2)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는 것, 다시 말해서 침례하듯이 몸을 잠기게 하는 것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이야기이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병이 물에 씻어 낫는다면 요단 강같이 적고 더러운 물보다는 차라리 맑고 큰 다메섹의 강들이 더
효력을 나타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성 경: [왕하5:12]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고침받은 나아만]
(주);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 여기에서 '아마나'(*)는 시리아 역본과 아람어 탐굼 역본에 의한 것이며 히브리 맛소라 본문(Masoretic Text)에는 '아바나'(*)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베트'(*)와 '멤'(*)의 혼동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Keil & Celitzsch, Vol. , p.318). 그래서 현대 신학자들은 이것 둘 다를 사용하고 있다. '아마나'는 다메섹의 중심부에 있는 안티레바논(Anti-Lebanon) 산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오늘날의 바라다(Barada)와 동일한 강이다(G.A.Smith, TheHistorical Geography of the Holy Land, p.429-430). 그리고 '바르발'은 다메섹 지방에 있는 또하나의 중요한 강으로서 다메섹에서 남쪽으로 몇 마일 떨어지지 않은 오늘날의 '와디아와이'(Wadi Awaj)와 동일한 강이다. 이 두 강 중에 특히 아마나 강은 대단히 맑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물이 찬 강으로서 희랍인들과 로마인들에게는 '크리소로아스'(Chrysorrhoas), 즉 '황금의 강'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요단 강은 깊고 서서히 흐를 뿐만 아니라 진흙 색을 띠는 혼탁한 강이다(Robinson). 그래서 나아만이 요단 강보다 자기 나라의 강들이 더 좋다고 말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Keil &Delitzsch, Pulpit Commentary).
(주);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 나아만의 이런 생각은 매우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이적이 오직 순종함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웠다(신 30:8;비 11:8).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아브라함에게 명령했을 때, 아브라함이 자신의
합리적인 생각을 따라 불순종했다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창 22:12-14). 그리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장대에 높이 매달린 놋뱀을 보기만 하면 살것이라고 하셨다. 이때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놋뱀을 쳐다 본 자는
모두 살았다(민 21:6-9). 이것은 구원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이다(요 3:14), 즉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는 모두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롬 3:21-24;엡 2:8).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위해
쉬운 방법으로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어리석은 이성(理性)만 고집하여 하나님의 능력은 물론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구원마저도 거부해 버린다. 그러므로 본절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
15:22)는 진리가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
성 경: [왕하5:13]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고침받은 나아만]
본절은 조건을 나타내는 전치사 '임'(*)이 없는 조건문으로서 나아만이 종들이 행한 지혜로운 구변이 나타나 있다(Keil & Delitzsch).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태도는 주인을 노하게 하지 않는 지극히 공손한 태도였다. 왜냐하면 '내 아버지여'라는 존경과 충성을 포함한 본절의 표현은 그들의
태도가 얼마나 공손했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6:21;삼상 24:12, Lange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이와 같이 오늘날의 성도들도 남을
책망하거나 충고할 때는 틀린 점에 대해서 비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존경심을 가지고 해야 한다(삼하 12:1-15).
성 경: [왕하5:14]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고침받은 나아만]
(주);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 '내려가서'라는 말 속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즉, 1)나아만이 요단 강으로 내려갔다는 뜻이다(Keil & Delitzsch,Lange, Pulpit Commentary). 당시 엘리사가 있던 곳은 사마리아 땅의 고지대이므로 나아만은 상당한 거리를 여행하여 요단 강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2)나아만이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였다는 뜻이다(T.R.Hobbs,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13, p.65).
(주); 몸을 잠그니 - 여기서 '잠그다'라는 말은 몸을 물에 완전히 적시거나(왕하 8:15) 물 속에 몸을 전부 집어 넣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10절의 '씻다'라는 단어와는 뜻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또한 모세 오경에서는 이 단어가 '피에 잠그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레 14:6;신
33:24;삼상 14:27). 따라서 나아만은 선지자의 명령(10절)보다 더 철저히 몸을 씻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나아만의 병이 치유가 되고 그 살이
어린 아이와 같이 부드럽게 된 것은 그의 철저한 순종적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일곱 번'은 나아만이 엘리사의
요구에 얼마나 철저히 순종했는가를 나타냄과 동시에 나아만의 문둥병이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침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일곱은
하나님의 완전함을 뜻하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성 경: [왕하5:15]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사례를 표하는 나아만]
(주);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 여기서 '도로 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야쇼브'(*)는 '돌이키다'라는 뜻 이외에 '새롭게 되다', '회개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12절에서 엘리사에게 분을 품고 돌아갔던 그가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다시 엘리사에게로 되돌아 온 것은 그가 하나님께 대해 감사와 회개를 나타낸 표시인 것이다.
(주); 그 앞에 서서 - 자만과 교만으로 가득차서 선지자가 마중을 나와 영접하기를 기다렸던 올 때의 모습(9절)과는 완전치 딴판이다. 즉 자기 병거로부터 내려와서 엘리사앞에 서는 겸손과 겸비의 모습을 갖추는 나아만의 모습이다.
(주); 내가...아나니다 - 이 말은 8절에서 이미 엘리사가 예견했던 바 그대로였다. 이처럼 나아만의 깨달음은 본장의 핵심이다. 이스라엘 이외에는 온 천하에 그 어떤 신도 없는 줄 아는 것, 즉 다시 말하면 나아만은 오직 이스라엘에서만,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통해서만 진정한 치유함이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Lange Commentary, PulpitCommentary, Wycliffe).
(주);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 나아만은 이방의 관례대로 은혜를 베푼 신과 선지자에게 최선의 예우를 다하여 예물을 드렸다.
실로 나아만의 이러한 행위는 자신이 회개했다는 것을 나타냄과 동시에 새로운 신앙을 소유했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된다.
성 경: [왕하5:16]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사례를 표하는 나아만]
(주); 저가 고사한지라 - '고사(固辭)하다'란 말은 '거절하다', '굳이 사양하다'라는 뜻이다. 당시 이스라엘 전역에 기근이 횡행하고 있었던 사실을
두고 볼 때에(4:38;7:1-20) 엘리사가 나아만의 선물을 거절한 것은 큰 의의가 있다. 즉, 엘리사는 어떻게 해서든지 나아만의 마음에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으로 섬김을 받으실 분임을 확신시켜 주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이방의 제사장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함과 동시에 모든 사람을 은혜와 자비로 치유해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기
위해서였다(Lange). 이와 비슷한 예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않은뱅이를 걷게 했을 때 모든 사람이 놀란 눈으로 두 사도를 주목하였다.
이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겸손하게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 3:12)고 말했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자들이 그 은사를 사용하여 자신을 내세워
욕심을 채우며 자랑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된다.
성 경: [왕하5:17]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사례를 표하는 나아만]
(주);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흙을 요구한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해석이 있다. (1)이 흙으로 제단을 쌓기
위해서라는 해석(K.W.B hr,T.R.Hobbs). 출 20:24에 보면 흙으로 만든 토단이 나오는데 나아만은 모세 율법을 따라서 번제단을 쌓아 여호와께
희생물을 드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2) 흙을 아람 땅 중 적당한 곳에 뿌리고 그곳을 성역화하려고 했다는 해석(Thenius, Vom Gerlach,
G.Rawlinson). 이는 유대인들도 바벨론 포로시기에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흙을 나른 적이 있었다는(G.Rawlinson)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해석이다. 이 해석에 의거해보면 나아만의 이러한 요구는 과거에 그가 가지고 있던 다신론에 근거한 요청으로 볼 수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시는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시 139:7-10). (3)자신이 받은 축복에 대한
기념물로 가져가려고 했다는 해석(Wycliffe)이다.
성 경: [왕하5:18]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사례를 표하는 나아만]
(주); 림몬의 당 - '림몬'은 아람의 최고신으로서 당시 고대 근동 지방에 널리 알려져 있던 폭풍의 신 '하닷'과 동일한 신이다(T.R.Hobbs). 왜냐하면 이 림몬은 하닷 림몬이 요약된 말이기 때문이다(Lange Commentary). 그리고 이 신은 후에 희랍 신화에서 전능한 신으로 등장하는 제우스(Zeus)와 동일한 신으로 많은 사람에게 인식되었다(H.Ringgren, Religions of the Ancient Near East, p.154-156). 한편 아람 왕들의 이름이 '벤하닷'으로 기록된 것은 아람의 민족 신인 하닷을 숭배하였다는 증거가 된다(Word Biblical Commentary).
(주); 내 손을 의지하시매 - 당시 근동 지방의 궁중 안에서 흔히 행하던 궁중의 예법으로서 왕이 총애하는 신하의 손에 기대는 것을 말한다(7:2,17). 이 경우는 자기도 왕과 함께 림몬의 당에 들어가 몸을 굽혀 예배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 일만은 여호와께서 관대히 용서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주);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 본절에서 나아만은 자신의 직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우상 앞에 절하게 되는 애로점을 토로하고
있다. 같은 말을 거듭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아만이 걱정하고 있는 염려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PulpitCommentary, Wycliffe). 한편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만을 생각하겠다는 신앙(17절)과 현실 상황적으로 실천의 어려움이 맞물려 있다. 세속의 세계에서 신앙을 지켜가는 문제, 즉
상황 속에서 신앙으로 대처하는 자세는 언제나 모든 신앙인에게 있어서 난제에 속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삶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마 10:38) 헌신하는 삶이지 우왕 좌왕하며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성(聖)과 속(俗)을 넘나드는 이중 인격자의 모습이어서는 안된다.
성 경: [왕하5:19]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사례를 표하는 나아만]
(주); 평안히 가라 - 나아만의 현실적이고 종교적인 갈등에 대해서 엘리사는 한 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고 다만 평안히 가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엘리사가 나아만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을 회피한 것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나아만은 자기가 어떻게 헤야 할바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고 단지 현실적인 난제에 대해 여호와께 용서를 바랬을 뿐이기 때문에 엘리사가 특별히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Rawlinson).이러한 해석은
대단히 일반적인 것이기 때문에 엘리사는 단순히 떠나가는 나아만을 향해 복을 빌어 주었을 뿐이라는 것이다(B hr). (2) 나아만과 같은 경우에
대해서 하나님의특별한 명령이 없었기에 엘리사는 더이상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Keil). 왜냐하면 이때는 아직 옛 언약의 시대였기
때문에 이방인이 여호와에 대한 진실한 신앙을 소유하였다 하더라도 자기 나라에서 섬기는 우상 숭배에 대한 배척을 요구할 수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이같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는 것이 카일(Keil)의 주장이다(Keil & Delitzsch, Vol. , p.321). 한편 본절의 이러한
표현이 나아만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이해했다는 긍정적인 확신의 인식이라는 혹자의 해석(Wycliffe)을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성 경: [왕하5:20]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게하시의 탐욕]
(주); 그 가지고 온 것을 그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 여기서 엘리사의 이타(利他)적인 참된 마음과 게하시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마음의 대조가 잘 나타나 있다. 한편 게하시가 나아만 장군을 뒤쫓아간 것은 그가 갖고 온 재물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Keil & Delitzsch) 외국 사람에게 당연히 어떤 보수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Lange Commentary).
(주);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 이것은 형식상으로 볼 때 분명히 맹세의 말이다. 그러나 이 맹세의 말 속에 숨겨진 게하시의 의도는 16절의 엘리사의 맹세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것으로서 신성 모독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Lange Commentary). 물론 게하시의 이 말을 습관적으로 튀어 나온 상투적인 말로 볼 수도 있지만(G.Rawlinson) 습관적이든 이기심에 가득찬 탐욕의 표현이든 간에 마찬가지로 이러한 게하시의 말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악인 것이다(출 20:7).
(주); 내가 저를 쫓아가서...취하리라 - 본절에는 게하시의 죄가 두 가지로 암시되어 있다. (1) 육신에 속한 자에게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탐욕(골3:5)으로 인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육신에 속한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하고, 결국 사망의 종노릇하게 되기
때문이다(롬 8:5-7). (2) 고의적인 범죄로서 게하시는 '쫓아 가서 하리라'고 하면서 범죄를 위한 구체적이고도 적극적인 계획을 세웠다. 이는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 기회를 찾던 것과 유사하다(마 26:15,16). 즉 가룟 유다나(히10:26) 게하시의 범죄는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계획적이었다는
점에서 닮았다. 이처럼 악한 자는 패역을 품으며, 악한 계교를 꾀하고 악으로 달려간다(잠 6:14,18).
성 경: [왕하5:21]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게하시의 탐욕]
(주); 수레에 내려서 맞아 - 아랫 사람이 윗 사람에게 드리는 존경의 표시로 근동 지방 뿐 아니라 동양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예의 범절이다. 여기서 '내린다'는 말의 히브리어는 '나팔'(*)로서 '병거 같은 데서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새가 땅에 급히 내리는 것(암 3:5), 리브가가 이삭을 보고 약대에서 갑자기 내리는 것(창24:64)등에 이 말이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내린다는 표현은 급히 내린다는 뜻이다. 또한 나아만은 자기 수레로부터 급히 내림으로 사환에게 자기가 엘리사 선지자를 존경하고 곤경한다는 것을 확실히 나타냈다. 그러나 이같은 예는 당시 흔치 않았기 때문에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Pulpit Commentary).
(주); 평안이냐 -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취하리라"(20절)는 탐욕스런 마음으로 급하게 뒤쫓아 온 게하시가 나아만에게 이상하게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아만은 그에게 "평안이냐"고 물은 것이다. 나아만이 이렇게 평안이냐고 물은 것은 게하시의 서두르는 행동으로 인해서
엘리사에게 어떤 불상사가 발생하지는 않았나(Thenius, Wycliffe), 혹은 무엇인가 잘못되지는 않았는가(Pulpit Commentary)하는 추측에 의한
것이다.
성 경: [왕하5:22]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게하시의 탐욕]
본절에서 악을 도모하는 게하시의 생각은 대단히 기발한 것이었다. 당시에 엘리사는 선지자의 생도들을 돌보고 있었기 때문에(4:38) 게하시의
편에서 볼 때 이 같은 자기 합리화적인 방법이 충분히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아만으로부터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 그는 은 한
달란트와 옷 두벌 만을 요구하는 간교함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 본절 상반부에는 자기 주인의 권위를 이용하는 악한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고,
하반부에서는 자신의 탐욕을 위해 거짓말도 서슴없이 하는 간악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
성 경: [왕하5:23]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게하시의 탐욕]
(주); 저를 억제하여 - 여기서 게하시는 엘리사의 입장에 서서 어느 정도 체면을 부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에게
했던 것과 같이(15절) 게하시에게 선물을 받도록 강권했던 것이다. 한편 본절의 '억제하여'라는 말은 히브리어 '이페라츠'(*)로서 '강요하다',
'누르다', '촉구하다'는 뜻의 어근에서 파생한 용어이다. 이것은 나아만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강력했던가를 짐작케 한다.
성 경: [왕하5:24]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게하시의 탐욕]
(주); 언덕에 이르러는 - 여기서 '언덕'이라는 뜻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오펠'(*)인데 '어두움'이라는 뜻의 히브리어도 '오펠'(*)이어서 서로
동음 이의어이다. 그래서 이 두 단어의 발음이 서로 동일함을 이용하여 본절에서 게하시의 '비밀스러운 행동'(dark deed)을 효과적으로 부각시켜 볼
수 있다(T.R.Hobbs).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와 같은 의도를 전혀 발견할 수 없으며 '오펠'(*) 앞에 정관사 '헤'(*)가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언덕을 가리키고 있는 것같다(Keil &Delitzsch, Vol. ,p.322;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5:25]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문둥병에 걸린 게하시]
(주);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 한번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것과 관련해서 연쇄적으로 또다른 거짓말을 하게 된다(호 12:1).
본절에서도 나아만을 속였던 게하시는 이제 또 한번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사람 앞에서도 거짓을 말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죄의 덫인데 이 죄는
또다른 죄를 불러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한편 거짓말하는 동기를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탐심에 의해(삼상 15:15;요 8:44), 핑계로,
두려움으로(창 3:10), 자랑함으로(눅 18:11), 교만함으로(시 119:69), 양심이 화인 맞아 외식함으로(딤전 4:2), 마귀의 자녀가 되어 사단의
영향으로(요 8:44)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러한 거짓말은 백성을 부패시킬 뿐 아니라(겔 13:19) 멸망을 초래하고(렘9:8), 진리를 와해시키기
때문에(롬 1:25) 악의 세력이 주로 쓰는 방법이다.
성 경: [왕하5:26]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문둥병에 걸린 게하시]
(주);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 본절은 매우 난해한 문장으로서 그 해석도 또한 다양하다. (1) 히브리어 본문: '내 마음이 나가지 않았느냐' (2) 70인역(LXX): '내마음이 너와 함께 가지 않았느냐' 대부분의 영역본들의 해석은 70인역과 일치한다. (3)벌게이트 역: '내 마음이 그곳에 있었다' (4) 아람어 탈굼 역: '예언의 영을 통해 나에게 그것이 보여졌다' (5)시리아 페쉬타 역: '내 마음이 나에게 보여 주었다' 이상과 같이 다양하게 번역된 역본들을 종합해 보면 본절의 의미는 '내 마음이 너와 함께 같이 있었다'로 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엘리사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인해 게하시의 잘못을 다 알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본문은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엘리사와 늘 함께 다닌 게하시가 엘리사의 그러한 능력을 알지 못하고 속이는 것을 책망한 것이다. 한편 이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라고 말한 것과 일맥 상통한다(고전5:3). 또한 본절에는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선지자답게 영안이 밝은 엘리사의 모습이 부각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양무리를 맡은 목자는 각 양들의 영적인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영안을 소유한 자라야 하겠다. 그래야만 그는 양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수 있기 때문이다(마24:45).
(주); 지금이 어찌...받을 때냐 - '때'에 대한 엘리사의 강조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능히 짐작케 한다. 즉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이기심과 탐욕으로
백성들 앞에서 본이 되지 못하는 이때에 게하시까지도 그들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하는 것이다(Keil).
성 경: [왕하5:27]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문둥병에 걸린 게하시]
본절에 나타난 것에 의하면 탐욕으로 인하여 게하시가 받은 형벌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게하시 자신이 나아만과 같은 문둥병자가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병이 자손 대대로 유전되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 내린 형벌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고 선지자의 직분을
남용하는 당시의 많은 거짓 선지자와 지도자들에게 경종이 되는 것이었다. 한편 본절의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는 말은 출 4:6과 민
12:10과 동일한 표현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속인 죄 뿐만 아니라 탐심으로 지은 죄에 대한 당연한 결과였다(Keil & Delitzsch, Vol. ,p.322-323).
성 경: [왕하6:1]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도끼 이적]
1-7절까지의 기사는 4장과 마찬가지로 연대를 추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등장 인물이 익명의 선지자의 생도들로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 기사를 4:38-44절과 연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K.W.B hr).
(주);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한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 이 기사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 관해서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는 것 같다. 카일(Keil)은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이 장소를 2:1에 나오는 길갈이라고 주장(Thenius)하는데 그것은 요단 강 근처의 길갈을 잘못 판단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카일은 요단 강과 가까운 여리고가 이 기사의 배경이라고 주장한다(Keil & Delitzsch, Vol. ,p.323:Pulpit Commentary). 한편 본절의
'좁으니'란 말은 히브리어 '차르'(*)를 번역한 말인데 이는 '꺾쇠로 죄다', '고통을 겪다'는 뜻의 '차라르'(*)에서 온 용어다. 이러한 어원적인
의미로 살펴볼 때 그 장소가 매우 비좁고 불편했던 처소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 경: [왕하6:2]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도끼 이적]
(주);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 요단 강변에는 숲과 나무들이 울창하여 버드 나무, 포플라나무, 석류 나무등 건축물의 목재를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D. Baly, TheGeograply of the Bible, p.92-95;렘 49:19;50:44;슥 11:3).
(주); 각각 한 재목을 취하여 - 이 구절은 선지자의 생도들 모두가 사역에 동참하여 협력해서 금방 선지 학교를 세울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한편 이것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성도들의 협동 정신을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된다(갈6:10).
(주); 엘리사가 가로되 가라 - 이 말은 배움의 장소를 옮기는데 있어서 먼저 스승의 승인이 있어야 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엘리사는 생도들의
요구가 타당한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승락한 것이다.
성 경: [왕하6:3]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도끼 이적]
(주);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 '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벧'(*)은 '노예', '신복'으로 번역된다. 이처럼 선지 생도들이 엘리사 앞에서 자신들을 '노예'와 같은 뜻의 단어로 표현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선지자의 무리 가운데서 엘리사의 위치와 권위가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생도들이 제목을 구하기 위해 요단 강으로 가면서 엘리사에게 동행을 요청한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1) 그들은 자신들이 벌목을 하는 중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엘리사가 자기들과 동행함으로써 그들은 안심놓고 벌목 작업에 착수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행 20:34). 실제로 그들이 엘리사와 동행했으므로 하나님의 이적으로 어려움을 면할 수 있었다(5-7절). (2)엘리사가 자기들과 동행함으로써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 줄 것으로 기대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요청은 매사에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한 사실에서 기인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어떤 일을 시작할 때도 적용된다. 즉 성도들은 어떤 일을 착수함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께서 그일을 이루어 주는 분이심을 믿고(잠 16:1) 그 일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시 56:4). 이것이 곧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길을 지도해 주실 것이다(잠 3:6).
(주); 내가 가리라 하고 - 생도들의 요청을 간단히 응낙한 엘리사의 대답을 통해 그의 성격을 간파할 수 있다. 즉 그는 말과 행동이 신속하고,
동일했을 뿐만 아니라 단순하고 직선적이었던 면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6:4,5]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도끼 이적]
(주); 나무를 베더니...나무를 벨 때에 -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앞뒤 절이 동일하게 '나무를 베다'로 번역되었으나 히브리어 원문상으로는 서로 다르다. 즉 4절의 '나무'는 원어로 '에침'(*)으로서 '일반적인 나무'를 가리키는 반면 5절의 '나무'는 '코라'(*)로서 '들보', '서까래'를 가리킨다. 이에 따라 공동 번역과 RSV에서는 이를 '나무'와 '들보감'(log)으로 각각 번역하고 있다. 한편 선지 생도 중 한 사람이 나무를 찍다 도끼를 물에 빠뜨린 것은 큰 나무를 무리하게 찍다가 생긴 일로 생각된다.
(주); 도끼가 - 문자적으로는 '그 쇠가'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은 애굽으로부터 쇠를 제련하고 용구를 만드는 법을 배워 왔기 때문에 일찍이 모세 때부터 쇠로 도끼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신 19:5).
(주); 아아, 내 주여 이는 빌어온 것이니이다 - 이 비판의 외침은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Keil & Delitzsch). 그리고 여기서
'빌어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울'(*)은 '애걸하여 빌리다', '구걸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도끼를 물에 빠뜨린 생도는 너무 가난하여
도끼를 살 수 없어 이웃에게 구걸하다시피 애걸하면서 도끼를 빌어온 것이다(Wycliffe). 한편 율법에 따르면 이웃에게 빌어온 것을 상하게 하거나
잃어버리면 그에 대한 대가로 적절한 배상을 하게 되어 있었다(출 22:14). 그런데 이렇게 도끼 하나도 살 수 없는 형편에 처해 있는 생도가 그 도끼
주인에게 배상을 해야하니 얼마나 암담하였겠는가!
성 경: [왕하6:6,7]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도끼 이적]
본절에 기록된 이적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자연적인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첫째, 엘리사는 자기 눈으로 물에 있는 도끼날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도끼날 밑에 나무조각을 끼워 수면으로 끌어 올렸다(Von Gerlach)는 것과 둘째, 나무가지를 갖고 도끼날 구멍에 끼워 건져냈다는
것이다(Thenius). 그러나 '떠오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체프'(*)는 '넘쳐흐르다', '덮다', '수영하다'라는 뜻의 동사 '추프'(*)의
허필형(Hihpil:사역형 능동)으로서 쇠도끼를 직접 물 위에 떠오르게 만들었다는 뜻이다(신 11:4). 그래서 선지자의 생도는 떠오른 도끼를 물에서
집어 낼수 있었던 것이다(Keil). 한편 엘리사가 행한 이 이적은 예수가 고기의 입에서 금화를 꺼낸 이적(마 17:27)이나 오병 이어의 이적(눅
9:12-17)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당신의 선지자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의 현세적인 필요들을 채워 주시는 분이심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 뿐만
아니라 본절은 단순하고 사소한 사건을 통해서도 하나님의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 주고 있다.(Wycliffe).
성 경: [왕하6:8]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엘리사의 탐지력(探知力)]
(주);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며 - 본절은 이 사건에 대해서 정확한 연대를 기록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열왕기서 기자가 연대기
순으로 본서를 기록하지 않고 비슷한 주제들 끼리 묶어 기록하기를 좋아했다는 증거가 된다(T.R.Hobbs). 한편요세푸스(Josephus)는 이 전쟁을
여호람과 벤하닷의 전쟁이라고 한다(Antipuities ofthe Jesus, , p.51-78). 그러나 23절에서는 이스라엘이 아람보다 국력이 강한 때임을 암시하고
있어서 요세푸스의 견해는 옳지 않은 것 같다. 더욱이 13:3, 14-19,22의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아람의 손에 붙이셨다고 하여 본 기사와
대조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그레이(Gray)는 이기적인 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는 다른 면모를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사건은 이스라엘이 멸망한 시기인 B.C.797년에 일어난 것이며 아람 왕 하사엘 때의 전투라고 한다. 그러나 여호람의 통치 시기에도
이스라엘의 정국이 항상 안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그레이의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따라서 요세푸스의 주장처럼 본절을 여호람 왕과
벤하닷의 전투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다(Lange Commentary). 한편 나아만 사건이 있은지(5:5,6) 얼마되지 않아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이상하게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이런 조그만 전쟁이 잦았음을 감안해 볼 때 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G.Rawlinson). 그리고 본절에서
언급한 '진을 치리라'는 말은 9절의 말씀을 의거해볼 때 '복병을 두리라'(Ewald, Wycliffe)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않다','진치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하나'(*)에서 파생한 '테하노트'(*)이기 때문에 본 번역이 타당한 것으로 이해된다(K.W.B hr, Keil & Delitzsch).
성 경: [왕하6:9]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엘리사의 탐지력(探知力)]
당시에 여호람 왕이 하나님 앞에서 악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3:2) 엘리사는 민족의 재난을 방관하지 않고 여호람 왕을 도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고 있음을 이와 같이 보임으로 인해 왕이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하고 여호와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Pulpit Commentary).
(주);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 어떤 학자는 아람의 전략에 대한 엘리사의 지식이 스파이 정보에 의존한 것처럼 말하나, 그런
것은 엘리사의 이적을 기록한 저자의 동기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특별히 2:19-6:22에 엘리사의 여러 가지이적을 기록하고 있음을 볼 때 그의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본절의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라는 말은 '이곳을 소홀히 하지 마소서'(Keil &
Delitzsch, Clericus), 즉 '이곳을 점령당하지 마소서'라고 해석 할 수도 있고 적군이 매복하고 있으니 '함부로 다니지 마소서'라고도 해석 할 수
있다(K.W.B hr,Pulpit Commentary, Thenius, Wycliffe).
성 경: [왕하6:10]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엘리사의 탐지력(探知力)]
(주); 하나님의 사람의 자기에게 고하여 경계한 곳으로 - 아람 군사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하여 진을 치고 숨어 있는 곳을 미리 알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경고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아람의 공격은 무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그 기회를 틈타 오히려 기습을
가하여 아람을 패주(敗走)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와같은 일이 한 두번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있어 왔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아람에게는 큰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성 경: [왕하6:11]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엘리사의 탐지력(探知力)]
(주); 아람 왕의 마음이 번뇌하여 - 여기서 '번뇌하여'라는 뜻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잇사에르'(*)는 '용기를 잃다', '태풍으로 바닷물이
출렁이다'(욘 1:11), '역경으로 마음이 흔들리다'라는 뜻의 '싸아르'(*)에서 파생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은 '몹시 당황하여 안절 부절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따라서 이것은 엘리사로 인하여 아람 왕이 얼마나 곤혹스러워 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래서 급기야는 내부의 간첩을
색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한편 엘리사의 명성을 듣지 못한 아람왕의 우매함은 패배를 자초할 수 밖에 없었다. 즉 그는 엘리사의 선지(先知)를
근동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단순한 점술사의 점괘로 알았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성 경: [왕하6:12]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엘리사의 탐지력(探知力)]
(주);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 엘리사의 명성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 아람에서도 자자하게 되었다. 이것은 아마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나 그밖의 다른 이적적인 사건들이 아람에 전하여졌기 때문일 것이다(G.Rawlinson). 그리고 원문을 보면 '선지자'앞에 정관사 '헤'(*)가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전쟁에서 이상한 연유로 자주패할 뿐만 아니라 엘리사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그를 특별한 선지자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6:13]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엘리사의 탐지력(探知力)]
(주); 엘리사가 도단에 있나이다 - 도단은 '두 우물'이란 뜻으로 오늘날 '텔 도단'(TellDothan)으로 알려지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은
사마리아에서 동북쪽으로 약 18km정도 떨어진 도단 계곡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Word Biblical Commentary). 또한 이곳은 세겜과도 그리 멀지 않은
곳(창 37:14)으로서 요셉이 자기 형들에 의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팔렸던 장소이기도 하다(창 37:17). 한편 본절에서 아람 왕이 도단에있는
엘리사를 잡으려고 한것은 바로 자신들의 비밀 계획이 엘리사에 의해서 폭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K.W.B hr, G.Rawlinson). 한편 다음 지도는
도단의 위치를 정확히 나타내고 있다.
성 경: [왕하6:14]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여호와의 불말과 불병거]
(주); 많은 군사 -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하일 카베드'(*)는 그 의미가 대단히 모호하다. 왜냐하면 18:17에서는 '보통 군대의 규모'를 가리키고, 왕상 10:2에서는 '많은 수의 수행원'을 ,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큰 군대', 혹은 '강한 군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후 문맥과 23절의 내용을 살펴보아 '일반적인 대규모의 군대'로 이해함이 좋을 것 같다(T.R.Hobbs).
(주);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 아람 왕은 단지 엘리사 한 사람을 잡기 위하여 엘리사가 있는 도단 성을 다 에워살 만큼 많은
군사들을 보냈다. 그러나 아무리많은 군대를 동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람을 힘으로 잡으려는 것은 무력으로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사40:17).
성 경: [왕하6:15]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여호와의 불말과 불병거]
(주);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 여기서 '수종드는 자'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메솨레트'(*)는 '예배를 돕는 자'나 '수행원'을 가리키는 단어이다(Davidson). 따라서 게하시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엘리사와 동행한 선지자 생도들 중의 한 명으로 추측된다(K.W. B hr). 그러나 본절에서 수종드는 자가 꼭 게하시가 아니라는 그 어떤 증거도 찾기는 힘들다. 그리고 이 단어는 엘리사가 보다 어릴 때 엘리야를 수종드는 자로 있을 때 사용되었으며(왕상 19:21), 또한 성전에 있던 어린 사무엘을 지칭할 때도 쓰였던 단어이기도 하다(삼상 2:11).
(주); 성을 에워쌌는지라 - 도단 성은 계곡 위의 넓은 평지에 있었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을 받기가 아주 쉬웠다.
(주);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 엘리사의 사환은 군사들이 왜 성을 포위하고 있는지를 잘 몰랐기 때문에 크게 놀란다. 더욱이 그는 믿음의
눈이 열려있지 않아 눈 앞에 닥친 상황에 대하여 지나치게 겁을 먹은 것이다. 이와 유사한 예로 베드로도 믿음의 눈이 닫혀 주와 함께 물 위를
걷다가 덮쳐오는 파도에 놀라 그만 물에 빠져 가면서 소리 질러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마 14:30)라고 외쳤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믿음이 적음을 꾸짖으셨던 것이다(마 14:31). 이와 같이 모든 일을 인간적인 눈으로 판단하면 낭패를 당하거나 실망하기 쉬우나 하나님 편에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두려울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Wycliffe).
성 경: [왕하6:16]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여호와의 불말과 불병거]
본절의 전(前)반부는 신 20:1-4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쟁에 참여할 때 취해야 하는 마음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즉 믿음의
눈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언제나 함께하심을 확신하기 때문에 난국을 주의 은혜로 타개해 갈 수 있는 것이다(시 3:6;27:3;대하 32:7).
한편 앞절(15절)과 본절에는 두 가지 사실이 뚜렷이 대조되어 있다. (1) 사환의 눈 "사환은 도단 성을 에워싸고 있는 아람 군대만 보고 놀랐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눈을 가지지 못한 모든 사람은 인간적인 눈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려 함으로써 큰 낭패를 당한다(마 16:21-23). (2)
엘리사의 눈: 엘리사는 아람군대보다 수효가 더 많은 하늘 군대를 보고 있었으므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당당함, 이는
쓰러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에 찬 신앙의 소산이라 할 것이다(출 14:1-14).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려움을 당할때 어려움 그 자체를 보지 말고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볼 수 있도록 해야하겠다.
성 경: [왕하6:17]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여호와의 불말과 불병거]
(주); 눈을 여시매 - '눈이 열려진다'는 것은 소경이 눈을 뜬다는 의미가 아니라 '육신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것을 영혼이 보는', 즉 투시의 황홀한 상태가 됨을 말한다(Keil & Delitzsch, Vol. , p.325-326).
(주); 불말과 불병거 - 이것은 하나님이 능력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창 32:2). 따라서 불말과 불병거가 이 땅에
임재해 있다는 것은 지상의 어떠한 무력이라도 천상(天上)의 군대를 능히 물리칠 수 없음을 가리킨다. 이처럼 엘리사와 같이 주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만이 여호와의 전능하심을 힘입어 믿음 안에서더욱 강건해 질 수 있는 것이다(살전 5:17;벧전 1:4). 더 자세한 내용은 2:11을 참조하라.
성 경: [왕하6:18]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장님이 된 아람 군대]
(주);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 도단 성은 계곡 위의 넓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람 군대는 밑에서 성을 에워싸고 있었다(K.W.B hr). 따라서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로 내려 왔다는 표현(Keil & Delitzsch)보다는 엘리사의 일행이 아람 군대에게로 내려왔다고 이해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F.Meyer, G.Rawlinson,K.W.B hr, Thenius 등).
(주);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 여기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싼웨림'(*)으로서 '맹목',
'현혹'(dazzle)이라는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창 19:11에서 사용된 바와 같이 눈 앞이 가리워져 못보게 된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면서도 자신이 처해 있는 상태나 처지를 전혀 모르게 된 상태를 가리킨다(Pulpit Commentary).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도단에서 약20km 정도나
떨어진 곳에 있는 사마리아까지 엘리사를 따라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성 경: [왕하6:19]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장님이 된 아람 군대]
(주);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니 - 아람 군대의 눈이 어두워졌다는 사실을 이 구절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곡의
언덕 위에 있는 도단 성을 에워싸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성에 엘리사가 있다는 정보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의 말에 쉽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단에서 사마리아까지는 급경사가 굉장히 많고 바람이 많이 불어 험난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길인데(T.R.Hobbs) 아람
사람들은 자신들이 길을 잘못 들어 섰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엘리사의 인도대로 이끌려 간 것이다. 한편 혹자는 엘리사의 이러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엘리사의 집이 사마리아에 있었고 '너희를 찾는 사람'이 '그의집'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Thenius). 그러나
도단 성에 엘리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온 아람 군대(15절)가 이러한 말을 믿었다는 생각은 의심을 품게 만든다. 또한 왜 도단 성에서 아람 군대를
물리치지 않고 사마리아까지 그들을 끌고 갔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이 간다. 그러나 이것은 도단성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Wycliffe). 그리고 이것은 역설적으로 영적 눈이 어두워져 사단이 유혹하는 대로 따라 가는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에 비유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불을 좋아하는 나방이 불만 보고 날아가다가 불에 타죽는 것과도 일반이다. 예수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소경이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생명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고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사망의 길로 인도했다(마23:16,26;요9:39-41). 이와 반대로
다윗은 항상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삼고 그를 의지했다(시 23:1-6).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공의로 다스릴 수 있었다(삼하 8:15).
우리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엡 4:22;롬 12:2)
성 경: [왕하6:20]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아람군을 선대하는 엘리사]
(주); 이 무리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 여기서 아람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마리아 한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이 도단성을 에워쌌던
처음 상황과는 (14절)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 그리고 도리어 이스라엘 군에게 포로가 되어 죽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한편 아람(시리아)
군인들의 눈을 어둡게 했다가 다시 시력을 회복시켜 준 것은 그들의 왕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Keil &Delitzsch).
그래서 엘리사는 아람 군대를 매우 관대하게 대했던 것이다(22절).
성 경: [왕하6:21]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아람군을 선대하는 엘리사]
(주);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 여기서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를 향하여 '내 아버지여'라고 부른 것은 어떤 부자간의 관계를 전제로 해서 부른
것이 아니라 존경과 경의의 표현(13:14)으로 볼 수 있다(G.Rawlinson). 그리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엘리사가 엘리야를 향하여 그렇게 불렀듯이(2:12)
선지자의 우두머리에게 붙이는 호칭으로 볼 수도 있다(K.W.B hr). 그러나 지금까지 이스라엘 왕 즉, 여호람과 엘리사 선지자와의 관계가 냉담하고
소원(疏遠)했던 것으로 미루어(3:11-14;5:8) 볼 때 여기에서 사용한 이 호칭은 평상시에는 사용하지 않던 특별한 호칭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호칭을 사용한 것은 여호람 왕이 엘리사가 행한 일에 탄복하여 경의를 나타내기 위해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본절의 '내가
치리이까'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포로에게 행하던 관례 즉, 적군이 포로로 잡히거나 항복해서 잡힌 경우를 막론하고 죽였던 당시의 관례에 따라 죽일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민 31:7;삼상 15:8;대상 20:3). 그리고 여호람 왕이 관례대로 포로를 죽이지 않고 엘리사에게 물은 것은 상황이
예외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Wycliffe).
성 경: [왕하6:22]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아람군을 선대하는 엘리사]
(주); 치지 마소서... 그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소서 - 엘리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아람 사람들을 죽이지 못하게 했다. 왜냐하면 그들을
사마리아에까지 유인해 온 것은 이스라엘에게 전쟁의 승리를 안겨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참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한 것(5:8)이었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Vol.,p.326-327). 만일 엘리사가 그들을 전쟁 포로로 간주해 이스라엘 왕에게 넘겨 주었다면 이
전쟁은 이스라엘과 아람의 전쟁이지 아람 군대와 하늘 군대와의 전쟁은 아닐 것이다(16절). 애초에 아람은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여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래서 엘리사는 아람 군대를 관대하게 대해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진정한 하나님의 권능을 인식케 한 것이다. 한편 사도 바울도
이와 같이 엘리사가 보인 모범의 행위처럼 원수를 먹이고 마시우게 하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와같은 일을 통하여 그들로 하여금 복음에 대해 핑계치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심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기 때문이다(롬 12:20;잠 25:21,22).
성 경: [왕하6:23]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아람군을 선대하는 엘리사]
(주);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 원수를 굴복시키는 길은 칼과 무력이 아니라 마음을 사로잡는 자비와 사랑이다(요일 3:16;고후
5:14). 그래서 엘리사가 나타낸 이적과 더불어 그가 보여준 사랑으로 인해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되던 아람의 침입(5:2)이 멈추고 평화가
회복될 수 있었다. 한편 아람 군대가 잠시 동안 이스라엘을 침공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침공해 보았자 오히려 자신들이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K.W.B hr), 둘째, 아람 군대에 대한 여호람의 호의와
석방에 대한 결과 때문(G.Rawlinson)이다.
성 경: [왕하6:24]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사마리아의 극심한 식량난]
(주); 이후에 - 이 말은 일반적으로 단순 접속사로 사용되었다. 즉 이는 앞의 사건과 연속되는 사건을 소개하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어떤 이야기를 서술하기 위해 사용된 접속사에 불과하다(삼하 8:1;10:1;13:1;대상 18:1;19:1). 따라서 본절 이후는 본절 앞의 사건과 연관이 있는 연대기적 서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주); 이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 여기서 벤하닷 왕은 아합을 공격했던 바로 그 왕(Benhadad II)이다(8:7;왕상 20:1). 이것은 요세푸스의 주장에
근거한 것인데 다른 신학자들도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K.W.B hr, T. R. Hobbs, Wycliffe). 따라서 23절 이전의 사건이 있고 난 이후 수 년의
세월이 지나간 때(K.W.B hr), 그러니까 엘리사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난 이후 앞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잊었을즈음에 발생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G.Rawlinson). 그러나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재차 침입한 것(6:24-7:20)은 앞에 언급된 8-23절의 사건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뿐만 아니라 31절에서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를 저주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즉, 앞사건에서 아람 군대를 놓아준 것 때문일 것이다.
성 경: [왕하6:25]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사마리아의 극심한 식량난]
(주); 성중이 크게 주려서 - 사마리아 성이 당한 고통은 두 가지였다. 즉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므로 성 내외(內外)의 교통이 두절되어 물자의 반입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또 사마리아에 닥친 기근으로 인해 성 안에서도 먹을 식량이 극히 부족했던것이다.
(주);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 레 11:4에 의하면 나귀는 부정한 동물이기 때문에 절대로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특히 머리는 다른 모든 부위보다도 먹기에 제일 나쁜 부분이라서 가장 값이 싼 고기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한 나귀의 머리가 은 80세겔에 거래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기근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짐작할수 있게 한다. 한편 은 1세겔(Shekel)은 일반 노동자 4일의 품삯이기 때문에(출30:24;삼하 24:24) 은 80세겔은 영국 화폐로 5파운드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G.Rawlinson) 일반 노동자의 320일, 즉 거의 1년치의 품삯에 해당되는 값어치이다.
(주);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 여기서 합분태는 히브리어로 '히르이요님'(*)으로서 '비둘기 똥'이나 여물지 않은 콩과 같이
'영양가가 거의 없는 음식물 찌꺼기'(Berleb), 혹은 '작은 곡식'(Wycliffe)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브'(*)의
정확한 용량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으나 요세푸스는 이것을 '제스테'(*), 즉 라틴어로 6분의1(sextarius)로 번역했다. 그리고 그의 '유대
고대사' 8장에 57페이지에 보면 보다 정확한 용량을 제시하고 있는데 2/7제스테는 1밧(Bath)과 같고, 1밧은 6/30리터라고 한다. 따라서 1 제스테는
1/2리터 정도이다. 그리고 요세푸스는 이와 같이 성이 포위되고 기근이 극에 달했을 때는 동물이나 사람의 배설물까지 먹었다고 더불어서 전한다.
한편 이와 같은 일은 세계 제 2차 대전 말기에도 있었는데 독일이 유럽을 포위하자 유럽 사람들은 먹을 식량이 없어서 개와 고양이, 심지어
해충까지도 잡아먹었다는 것이다(T. R. Hobbs). 이러한 곤경과 환란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범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징벌을 내리셔서 이같은 고충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레 26:23-26).
성 경: [왕하6:26]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사마리아의 극심한 식량난]
(주); 성 위로 통과할 때에 - 대부분의 고대성들은 요새화된 성벽으로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사륜 마차가 지나다닐 정도로 폭이 넓었다(G.Rawlinson). 또한 그곳은 매우 높아서 적의 이동을 관찰하기가 매우 용이했다. 그리고 그곳은 보초의 경비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 고관들이 자주 왕래하던 곳이다(Lange Commentary, Pulpit Commintary).
(주);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 성 안에 있는 집들 중에는 성벽에 붙어 있는 집들도 있었기 때문에(수 2:15;삼상 19:12) 성이 적의 공격으로 인하여
위기를 맞을 때는 여자도 성을 방어하는 일에 동참했다(삿 9:53). 그래서 왕이 성벽 위를 통과하는 동안 여인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성 경: [왕하6:27]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사마리아의 극심한 식량난]
(주);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 여기서 왕이 말한 여호와의 이름은 마음 중심에서 나온 신앙의 표현이 아니라(31-33절) 왕 자신의 탄식을 강조하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언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5:20).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왕의 표현은 사마리아성 안에 기근이 심하여서 누구든지, 심지어는 왕조차도 백성을 도울 수 없다는 당시의한계 상황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주); 타작 마당...포도주 틀 - 본절에는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이 나란히 언급되어 있는데 이러한 특수한 표현의 구문에 대하여 해석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1)이것은 생산의 원천인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을 언급한 것이다(민 18:27,30;신 14:14;16:13). 왕이 이와 같은 단순한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당시에 굶주린 백성들의 아사(餓死)를 막을 수 없음을 탄식한 것이다. 그래서 호 9:1,2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이 내린
심판의 표시라고 보고 있다. 한편 당시 사마리아의 타작 마당은 성문 앞에 있었는데(왕상 22:10) 아람 군이 이곳을 포위하여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2)이것은 후기 예언서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바와 같이 '왕이 타작마당을 심판의 장소로 언급한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호 13:3;미 4:12;렘 51:33). 3)이것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막막한 상태를 나타내는 숙어적 표현이다. 즉 왕은 여인의 간절한 외침을
듣고 그 여인의 어려움 또한 현재의 상황으로 인해 왕이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대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Word
BlblicalCommentary, Vol. 13, p.79-80).
성 경: [왕하6:28]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사마리아의 극심한 식량난]
(주);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 문자적으로 '너의 불평거리는 무엇이냐'라는 의미이다. 27절에서 왕이 여인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 없는 대답을 하자
본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여인은 자신의 질문에 대하여 어떤 보충의 설명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혹자의 해석처럼 여인은 아마 자신이 왕에게
음식을 구한 것이 아니라 어떤 판결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을 것이다(K.W.B hr). 그렇기 때문에 왕은 그 여인에게 무슨 일이냐고 다시 질문한
것이다.
성 경: [왕하6:29]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사마리아의 극심한 식량난]
본절의 사건은 이미 성경에서 예언 하였던 바 그대로 성취되었다(레 26:29;신28:56,57). 그리고 이러한 기록은 그 당시 사마리아 성이 당한 기근이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를 말해준다. 한편 성경에 나타난 이 같은 예언의 성취를 다른 곳에서도 볼 수있는데 예루살렘이 1)느부갓네살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애 4:10)와, 2)디도(Titus)에 의해 포위되었을 때(Josephus)였다. 그리고 죽은 아들에 대해서 전혀 비애하지 않고 그 시신(屍身)을
먹는 본절의 기사를 통해 한계 상황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죄악된 인간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이 극도에까지 다다른
상황에서도 인간은 결코 회개하지 않는 완악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음부에 있는 부자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눅 16:31)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성 경: [왕하6:30]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엘리사를 죽이려 드는 여호람]
(주); 왕이...자기 옷을 찢으니 - 이처럼 여호람 왕이 자기 옷을 찢는 몸짓을 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5:7). 그는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현실의 참혹한 상황에 경악하여 백성의 지도자로서 느끼는 비통을 외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왕의 이러한 분노는 자기 백성의 참상에 대한 책임을 엘리사에게 전가시키는 심히 악한 격분이었다.
(주);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 '굵은 베'는 회개, 슬픔을 표시할 때 입는 거친 옷이다(19:1;창 37:34;삼하 3:31;대상 21:16;에 4:1;욥
16:15;사 15:3;단 9:3;욘 3:8;마 11:21;계11:3).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이 공식적인 왕복(王服)속에 이 굵은 베옷을 걸쳐 입었다는 것은
사마리아 성에 닥친 재난으로 인해 회개하는 행동인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회개하여 겸손해진 행위라기보다는 마치
바리새인들이 경문(經文)을 넓게 하여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했던 것과 같은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재난의 원인을 엘리사에게로
돌리면서 그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31절). 그리고 혹자가 말한 것처럼 왕은 이런 형식적인 옷차림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켜 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B hr). 그러나 진실된 회개의 신앙이 없이 슬픔과 회개의 표시로만 굵은 베옷을 입는 것은 외식적으로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는 것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이기 때문이다(딤전 4:7).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외식을 회개하지 않아 외식하는 자가 받는 율(律)에 처해짐 같이(막 7:1-27), 여호람왕도 결국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외식하는 자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모든 자에게도 해당된다(마5:20).
성 경: [왕하6:31]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엘리사를 죽이려 드는 여호람]
여기서 여호람 왕이 엘리사를 저주한 것은 8-23절의 사건과 24절에서 벤하닷이 재 침입한 서건을 서로 연관시켜서 이해할 때 보다 자연스러워진다.
그러나 카일(Keil)이나기타 다른 신학자들(B hr,Rawlinson)은 이 두 기사를 서로 연관시키지 않고 해석하기 때문에 약간의 억지스런 추측을 했다.
즉 그들은 엘리사가 왕에게 항복하지 말고 여호와를 의지할 것을 묵시적으로 권고했기 때문에 왕이 엘리사를 저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벤하닷은
엘리사에게 당한 굴욕을 잊지 못해서 사마리아를 다시 공격했고 이스라엘 왕은 그때 아람 군대를 죽이지 않고(22절) 놓아 보내 주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T.R. Hobbs). 그래서 여호람 왕은 엘리사를 저주한 것이다. 또한 왕이 엘리사에게 저주를 한
직접적인 이유로서는 이러한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일언 반구(一言半句)도 없이 여호와의 도움을 구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8-23절의 사건과 24절의 사건을 연결시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왕이 엘리사의 목을 치겠다고 한 것은 율법의 어느
곳에도 그러한 행위를 용납한 곳은 없으나(Pulpit Commentary) 애굽과 바벨론과 앗수르 등의 이방에서는 흔히 행하던 참형(斬刑)이다.
성 경: [왕하6:32]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엘리사를 죽이려 드는 여호람]
(주); 그 때에 엘리사가 그 집에 앉았고 - 엘리사의 거처에 대해서는 여러 곳이 언급되었지만 여기서는 사마리아에 있는 본래의 집으로 추측된다.
(주); 장로들이 - 이들은 성의 관리들(Lange Commentary)이라기 보다는 사마리아 성에 있는 백성들의 대표자들이다. 한편 그레이(Gray)처럼 여기에 언급된 모임을 정규적인 또는 습관적인 모임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사마리아 성이 직면해 있는 중대한 문제를 두고 백성의 대표자들과 상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Hobbs).
(주); 사람들 보내었더니 - 왕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신하 중 한 사람(왕상 10:8;단 1:4,5)을 여호람은 엘리사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주); 살인한 자의 자식 - 이것은 물론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의 나쁜 의도를 파악했기 때문에 한 말이다. 그래서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 표현이 '아합의 아들 여호람'을 가리킨다고 한다. 왜냐하면 여호람이야말로 혈통적으로나 기질면에서나 광폭한 살인자 아합의 친아들이었기 때문이다(왕상 21:19). 그러나 본문의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말은 족보상의 어떤 구체적인 인물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기 보다는 '살인자와 같은 인간', '포악한 인간'등의 비유적인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삼상 20:30). 비근한 예로 예수 당시 바리새인들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으므로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이때 예수께서그들에 대하여 '마귀' 즉, '살인한 자의 자식'이라고 하시면서 책망하셨다(요 8:44).
(주);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 나지 아니하느냐 - 대부분의 학자들은 여호람 왕이 엘리사를 죽이기 위해 사자를 보낸 성급한 행위를 후회하고
즉시 사자를 뒤따라 왔다고본다(G.Rawlinson, Keil & Delitzsch, Wycliffe). 그래서 엘리사는 문을 닫게 하고 왕이 도착할 때까지 사자들을 들이지
말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33절에 기록된 말을 왕이 직접 언급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한글 개역 성경도 왕의 말로
번역했다). 그러나 일부 극소수의 학자는 이것을 왕이 뒤따라 온 것이 아니라 왕이 보낸 사자의 발소리라고 한다(T.R.Hobbs).
성 경: [왕하6:33]
주제1: [엘리사의 이적과 사마리아의 참상]
주제2: [엘리사를 죽이려 드는 여호람]
(주); 왕이 가로되 - 원문에는 '와요메르'(*)로서 말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즉 그것은 혹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왕의 사자가 말한 것(T.R.Hobbs)이 아니라 '왕자 신'이 와서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역 성경 RSV와 NEB는 말하는 주어를 왕으로 간주해서 번역한 것이다. 한편 KJV는 그 주체를 왕의 사자로 번역해서 그 뜻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The Interpreter's Bible).
(주); 어찌 더...기다리리요 - 이 모든 재앙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시인하는 여호람 왕은 이제 여호와께만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태도를 갖는다. 그가
왜 이처럼 갑자기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으나 왕은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바른 길로 돌아왔던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p.329-330; Wycliffe). 한편 7장 1절부터는 여호와의 재앙이 끝나고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다.
성 경: [왕하7:1]
주제1: [구원받은 사마리아 성]
주제2: [식량난 해결 예고]
혹자는 본절 이후의 사건을 앞장의 기사와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려 한다(T.R.Hobbs). 왜냐하면 6:33에는 등장 인물이 '사자'인데 반해 2절에서는 그 등장 인물이 '한 장관'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맥의 흐름상으로 보거나, 사건의 연결상으로 볼때에 앞장의 사건과 본절에는 긴밀한 연결 관계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7:1, 2절은 앞 사건의 한 구성 요소일 뿐만 아니라 그 기사의 절정이기 때문이다(G.Rawlinson).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예언을 선포할 때 사용되는 고전적인 서론 형식을 엘리사가 이처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러한 서론 형식은 공공의 집회에서 백성들의 주의를 환기 시키기 위하여 흔히 사용되던 것이다(Pulpit Commentary;렘2:4;10:1;미 3:1;암 7:16,17). 그리고 '들을지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마'(*)는 단수 형태로 사용되기도 하고(렘 2:4) 혹은 복수 형태로 사용되기도 하는데(미3:9) 일반적으로는 복수 형태로 사용되는 것이 정상이다(Hobbs). 그러나 이 단어가 단수로 사용될 때는 '듣는 무리를 하나로 취급할 때'나 '무리 속에 있는 개개인을 하나하나로 간주해 그 설교의 대상으로 삼을 때'이다(렘 22:2).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이러한 표현은 사마리아 성이 아람으로부터 구원받게 되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강조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가라사대'란 말은 히브리어 '아마르'(*)의 번역으로서 '대답하다', '확인하다', '명하다'란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여호와의 확신적 선언임을알 수 있다.
(주); 내일 이맘때에 - 여기서 '때'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카에트'(*)는 명사 '에트'(*) 앞에 전치사 '카'(*)가 첨가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가 구약에서는 아주 드문 예로서(민 23:23;수 11:6;삼상 4:20;왕하 4:16), 이것은 어떤 특별한 시점(時點)을 가리킨다. 즉, 바울이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라고 말한 바로 그 '때'(*,카이로스)와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주); 사마리아 성문에서 - 고대의 성들에는 큰 성문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넓은 뜰이 함께 있어 그 지역 사회의 공적인 장소가 되기도 했다. 즉, 공적인 연설의 장소(창34:20), 공무 집행소(왕상 22:10), 재판이 열리는 곳(신 17:5;행 7:58), 사열하는 곳(삼하 18:4) 뿐만 아니라 말씀을 선포하는 장소(렘 17:19,20) 등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장에서는 성문이 곡물을 파는 시장으로 사용된 듯하다(17,18절).
(주);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 여기에 언급된 한 '스아'는 한 '에바'의 약1/3에 해당되는 부피로서 약 7.33l 정도이다. 한편 이것이
평상시보다는 고가에 해당되지만 당시의 형편으로 볼 때는(6:25) 엄청난 가격 절하이다. 즉, 고운 가루 한 스아의 값이 당시에 거래되던 합분태
사분 일 갑(*,kab)에 해당하는 가격의 1/5밖에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갑'(약 1.3l)은 한 '스아'의 약 1/6에 해당되므로 이것을
통해서 고운 가루의 가격 절하 정도가 얼마만한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따라서 이 예언이 기근으로 허덕이던 사마리아 성 안의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선포로 들렸을 것이다. 한편 '한 세겔'이 금인지, 혹은 은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으나, 금 한 세겔은 은 한 세겔의 15배에
해당되고(대상 21:25) 은 한 세겔은 일반 노동자의 4일에 해당하는 품삯이다(출 30:24;삼하 24:24).
성 경: [왕하7:2]
주제1: [구원받은 사마리아 성]
주제2: [식량난 해결 예고]
(주); 한 장관 - 여기서 '장관'을 뜻하는 히브리어 '솰리쉬'(*)는 '셋'을 의미하는 '솰라쉬'(*)에서 파생된 것으로 BDB(F.Brown, S.R.Driver, and C.A.Briggs,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에서는 '병거에 탄 세번째 사람'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혹자는 이를 '셋째 관리'로 번역하기도 한다(Thiele, Mysterious Numbers, p.114). 한편, 거니(Gurney)에 따르면 헷족(Hittite)의전차는 세 사람이 몰도록 되어 있는데 그것은 전시에 가능한한 빨리 많은 사람들을 수송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라암세스 2세와 가데스에서 전쟁할 때 헷족(Hittite)은 바로 이러한 삼륜 전차를 이용했다(Yadin, Art of Warfare 1:104-105),그러나 구약 성경에서는 '솰리쉬'(*)라는 단어가 군대와 관련해서 번역된 적은 전혀 없다(T.R. Hobbs). 오히려 출 15:4에서는 '택한 장관'(RSV)으로, 겔 23:23에서는 '귀인'으로 번역되어 왕의 측근에서 왕을 보필하는 자를 나타낸다(PulpitCommentary, Keil & Celitzsch).
(주);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 왕의 전속 부관(the kings aide - de - camp, Keil &Delitzsch, Vol. , p.330), 즉 나아만과 같은 직급에 속한 이 사람은 이스라엘 왕이 신임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주);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 이것은 창 7:11에 기록된 홍수 사건을 의식한 말로서 엘리사 선지자의 예언의
진실성을 의심한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한 것일 뿐만 아니라 선지자를 심하게 조롱한 것이다(K.W.B hr). 따라서 그는
정죄를 받아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20절).
성 경: [왕하7:3]
주제1: [구원받은 사마리아 성]
주제2: [텅빈 아람 진영을 발견한 문둥이]
(주);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이 문둥이들은 게하시의 아들들이라고 하는데(T.R.Hobbs) 이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율법에 따르면 문둥병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존재라 하여 이스라엘의 공동체에서 격리되어 성 밖에서
살았으며(레 13:46;민 5:3) 친지들이 공급해 주는 음식으로 연명했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당시에는 성 안의 거주자들도 목구멍에
풀칠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음식 공급이 단절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한편 혹자는 이 문둥이들이 '성문 앞' 혹은
'통로'(hateway)에 있었다고 한다(Keil & Delitzsch, Vol. ,p.330).
성 경: [왕하7:4]
주제1: [구원받은 사마리아 성]
주제2: [텅빈 아람 진영을 발견한 문둥이]
(주); 주리니 - 이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은 '라아브'(*)로서 '시장하다','갈망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의 표현은 약간의 갈증이나 시장기가 아닌 배가 고파서 속이 쓰리며 기운이 탈진한 상태를 가리킨다.
(주);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 즉, 네 문둥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차라리 적군에게 항복하는 길이 낫다고
생각해서 그 길을 택했다. 여기서 '항복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팔'(*)은 '탈주하다', '떨어지다', '눕다'라는 뜻 외에 '넘어가다' 라는 뜻도
지닌다(삼상 29:9;렘 39:9). 이에 따라서 70인역(LXX)에서는 '들어가자'란 뜻이 헬라어 '에이셀데인'(*)으로 번역되어 문둥이 네 사람이 아람에게
항복하러 간것이 아니라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들어간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KJV과 RSV도 70인역(LXX)의 이러한 번역을 지지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문둥이들이 아람 진영에 가고자 한 행위를 반드시 항복하러 가는것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단순히 양식을 구하러 들어갔던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나을듯 싶다.
성 경: [왕하7:5]
주제1: [구원받은 사마리아 성]
주제2: [텅빈 아람 진영을 발견한 문둥이]
(주); 황혼에 일어나서 - 본절에서 '황혼'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네쉐프'(*)는 '해뜰 때' 나 '해 질 무렵'의 엷은 태양빛(twilight)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명', '황혼'등을 뜻한다. 그리고 본문의 9절과 12절을 근거로 해서 볼 때 '황혼'으로 번역하는 것이가장 적절하다(Keil & Delitzsch,
Lange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7:6]
주제1: [구원받은 사마리아 성]
주제2: [텅빈 아람 진영을 발견한 문둥이]
(주); 이는 주께서...듣게 하셨으므로 - 문둥이들이 아람 진영으로 향해 가는 것과 동시에 병거 소리와 말소리, 그리고 큰 군대의 소리를 아람 군대에게 듣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이적적인 역사였다. 그 뿐만 아니라 3:22에서도 아람은 이와 유사한 방법에 의해 속임을 당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들은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권자가 되심을 보여 주는 것이다. 즉, 여호와께서는 나아만을 통하여 아람에게 승리를 주시기도 하셨으나(5:1) 또한 이와같이 패하게도 하시는 것이다. 한편 혹자는 이 소리의 근원을 산골짜기에 밀어닥친 바람에 기인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K.W. B hr, Wycliffe).그러나 '소리'(sound)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콜'(*)로서 '인간의 음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은 억측에 불과하다(G.Rawlinson).
(주);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 여기서 언급된 '헷 사람의 왕들'을 초기 헷(Hittite)제국의 제왕들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B.C.1200년경 오늘날의 터어키(Turkey) 전역을 차지하고 있던 헷 제국은 앗수르와 해안에 퍼져있던 소수 민족들에의해서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왕상 9:21에는 솔로몬이 헷제국이 멸망한 뒤에 남아있던 헷 사람들을 이스라엘의 노예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헷
문화는 아람 북쪽에 남아 소규모 집단을 형성하고 있던 헷족의 여러 왕들 또는 장군들에 의해 전해져 오다가 후에는 점차적으로 셈 문화에 병합되고
말았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헷 사람의 왕들'은 바로 소규모 집단의 우두머리들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Gelb,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2:612-615; O.R.Gurney, The Hittites, 39-46). 그리고 당시에 이들은 소규모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여 갈그미스
부근의 북 아람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니느웨 왕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왔었다. 그래서 이들이 이스라엘을 돕기 위하여 왔다고 아람
사람들이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도망한 것은 당연하였다(G.Rawlinson). 또 본절의'애굽 왕들'이라는 복수 형태의 표현에도 상당한 논란점이 있다.
왜냐하면 애굽은 언제나 단일 왕 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당시 애굽 왕조의 분열로
부바스티스(Bubastis), 타니스(Tanis), 멤피스(Memphis) 지역을 각기 다른 왕들이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들'이라는 복수 표현을 썼다는 해석이
있다(G.Rawlinson). (2)히브리 본문에서 '애굽'을 뜻하는 '미츠라임'(*)을 '무스리'(Musri)를 뜻하는 '무츠림'으로 읽을 수 있다는 해석이
있다(T.R.Hobbs, Wycliffe). 왜냐하면 당시 무스리는 소아시아의 실리시아(Cilicia)지역을 차지하고 있었고 다수의 왕들이 복수제로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Gurney, The Hittites, p.42-43). 그리고 앗수르의 기록들을 보면 종종 애굽을 무스리라고 칭했는데 이렇게 명칭을 서로 바꾸어
혼용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성경에서도 무리없이 '애굽왕들'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그러나 무스리가 애굽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아람은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이 서로 동맹을 맺고 이스라엘을 도와 자신들을 치려고 한다는 소문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으니
겁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Herzog and Gichon, Battles of the Bible, p.233).
성 경: [왕하7:7]
주제1: [구원받은 사마리아 성]
주제2: [텅빈 아람 진영을 발견한 문둥이]
(주); 황혼에 일어나서 - 5절과 비교해 볼 때 아람 군대가 달아난 시각과 문둥이들이 아람진으로 출발하기 시작한 시간이 거의 일치한다.
(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을 그대로 두고 - 그들이 왜 좋은 말과 나귀를 그대로 버려두고 달아났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아마
그들은 너무나 공포에 질려서 군장을 꾸릴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은 기드온의 300용사의 외침에 놀란 미디안 군사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죽였던 상황과 유사하다(삿 7:19-23). 이처럼 하나님의 권능은 당신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두려움으로 작용한다(시 76:12;요 2:11;습2:11).
그러나 당신을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도움이 되시고(시33:20;46:1;121:1;146:5;사 50:7;고후 6:2), 피난처가 되신다(시 14:6;46:1;렘
17:18;욜 3:16). 또 혹자는 작전상 적으로 하여금 그들이 진을 떠나지 않은 것처럼 믿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G.Rawlinson). 한편 나귀는
고대의 군대에 있어서 짐과 사람을 운반하는 데 필수적인 수단으로 사용된 동물이었다.
성 경: [왕하7:8,9]
주제1: [구원받은 사마리아 성]
주제2: [텅빈 아람 진영을 발견한 문둥이]
본절에는 네 명의 문둥이가 아람 진영에 들어가서 취한 행동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1) 식욕을 채움:이 식욕은 수면욕과 더불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다. 문둥이들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목숨까지 건 위험을 감행했다. (2) 재물욕을 채움:일단 식욕이 채워지고 나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재물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문둥이들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욕구를 위해 온 신경을 쏟으나,
그럴수록 탐욕으로 인한 공허감과 불만은 더욱 가중되어 간다(시 39:6;합 2:9;딤전 6:9-11). 이와 관련하여 예수께서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앗의
비유를 말씀하신 바 있다. 즉,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앗은 말씀을 듣기는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財利)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에 비유된다(마 13:22). 그러나 성도들은 불신자들과 같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아야
한다(마 6:25,31).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와 같은 기본적인 것은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마 6:32). (3) 뉘우침: 문둥이들은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소위(所爲)를 뉘우치고 성 안에서 굶주리고 있는 자기 형제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둥이들의 행위는 엄청난 구원의
복음을 받은 성도들에게 적용된다. 우리들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복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추어 두기만 한다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자기가 가지고있는 것까지도 빼앗길 것이다(마 25:29).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禍)가 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고전 9:16). 한편 9절에 표현된 '아름다운 소식'은 히브리어 '베스라'(*)를 번역한 말로서 항상 좋은 소식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삼하 18:20). 그러나 여기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생명을 건지는 복음의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이 문둥이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낀
것은 단순한 조국애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성 안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 이때에 자기들만의 욕심을 채운다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벌을 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Word Biblical Commentary, Vol. 13,
p.91). 그래서 문둥이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선치 못하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히브리어 '로켄'(*)을 번역한 것이다. 이 말은 자신들의 행위가'
적절치 못하다'는 뜻으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정죄라기 보다는 더 나은 것을 추구하려는 자기 점검을 의미한다.
성 경: [왕하7:10,11]
주제1: [구원받은 사마리아 성]
주제2: [문둥이의 보고]
(주); 성 문지기를 불러 고하여 가로되 - 여기서 '문지기'를 뜻하는 히브리어 '쇼에르'(*)는 성문을 수비하는 병사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다(Keil). 여기서 문둥이들은 자신들이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당시의 규례(레 13:46;민 5:3) 때문에 성안으로 직접 들어가지 못하고
아람군이 도망했다는 기쁜 소식을 문지기에게 전달하게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살리는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이 여러 단계의 명령 계통을 거치게
됨으로 시간적으로 상당히 지체되었을 것이다(11절). 한편 10절의 '아람진에...있더이다'라는 표현은 문둥이들이 직접 자신들의 결정을 실천에 옮긴
사실을 극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즉, 그들은 직접 목격한 사실을 조금도 과장하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사실대로 전했다. 이것은 예수의 제자들도
귀로 듣고 눈으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진 바된 복음을 조금도 변개함이 없이 그대로 전한 것과 같다(요일 1:1-3). 이와 반대로 하와는 뱀의 유혹시에
하나님께 받은 계명을 자신의 생각으로 바꿔 말했다(창2:17;3:3). 그래서 결국 뱀의 유혹에 넘어감으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던 것이다(창
3:16).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성도들이 전하는 복음은 사단의 이용물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위험을 경계하기위해 사도 베드로는 '경(經)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0,21)고 말했다.
성 경: [왕하7:12]
주제1: [구원받은 사마리아 성]
주제2: [정탐꾼을 파송하는 여호람]
이스라엘 왕은 문둥이들이 전한 소식을 즉시 믿지 않고 이것을 아람 사람들의 책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장에서는 공직자들의 회의적인 태도를
공통적으로 보여 주게된 것이다(2절). 그렇지만 왕의 추측이 전혀 황당 무계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공동체와 격리되어 살던,
문둥이에 지나지않은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해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에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공격할 때(수 8장)도
이와 같은 수법을 사용했었으며 아비멜렉이 세겜 성을 탈취할 때(삿 9:30절 이하)도 동일한 책략을 사용했었기 때문에 왕은 쉽게 그렇게 판단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의 경험과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서 복음이 배척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마 15:3;막
7:13;요 11:24). 한편 신약에서도 예수 당시 바리새인들은 인위적인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높이 두고 그 전통으로써 모든 것을 판단할 뿐만
아니라(마 15:3;막 7:13)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도 믿지 않으려고 했다(요 9:1-34). 이와 유사한 예를 마리아와 마르다 두 자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예수와 아주 밀접한 사이였으며 그분의 말씀도 열심히 들었던 자들이다(눅 10:38-42). 그런데 그들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리라고는 믿지 못하고 마지막 부활만을 고집하고 있었다(요 11:24). 이때에 예수께서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고꾸짖으셨다(요 11:40).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나 교리에 집착해 있는 자는
결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능력을 체험할 수 없을 것이다(2절).
성 경: [왕하7:13]
주제1: [구원받은 사마리아 성]
주제2: [정탐꾼을 파송하는 여호람]
나아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5:13) 본절에서 왕은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신하에 의해 문제의 해결점을 모색하게 된다(3:11;6:12). 즉, 한 신복의 제안은 네 명의 문둥병자와 같이 죽음을 각오하고 결단을 내리자는 것으로 결국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주); 이 말들이...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 이것은 '이 마병들이 성중에서 이미 죽었거나, 아니면 아직 생존해 있는 모든 이스라엘 무리와
같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 마병들은 성중에 남아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사(餓死)를 당하게 될 것이며, 설혹
적진에 들어가 붙잡히더라도, 싸울 힘이 없어 점령당할 사마리아 성민과 같이 죽게될 것이니, 어차피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성 경: [왕하7:14]
주제1: [구원받은 사마리아 성]
주제2: [정탐꾼을 파송하는 여호람]
(주); 저희가 병거 둘과 그 말을 취한지라 - 여기서 왕이 아람을 정탐하러 보내면서 마병이 아닌 병거를 보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리고 병거 둘에 말 다섯 마리(13,14절)를 취한 것도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에는 한 병거에 두 마리의 말이 쓰인 경우가 있고 세
마리가 쓰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후자의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자의 문제 즉, 왜 마병 대신에 병거를 보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어색한 점으로 남는다. 한편 히브리 성경 BHS(Biblia hebraicastuttgartensia)의 본문 비평에는 '병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켑'(*)을
'리케비'(*)로 수정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면 이 단어는 분명히 '마병'이라는 뜻이 된다(Word Biblical Commentary, Vol. 13,p.91). 그러나 그렇게
본문을 수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병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켑'(*)은 다양하게 번역되기 때문이다(13:7;신 24:6;삿 9:53;삼하 8:4).
그리고 왕이 두 병거를 동시에 보낸것은 하나가 적에 잡히더라도 나머지 하나가 급히 돌아와 보고를 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Lange
Commentary).
성 경: [왕하7:15]
주제1: [구원받은 사마리아 성]
주제2: [정탐꾼을 파송하는 여호람]
(주); 저희가 그 뒤를 따라 요단에 이른즉 - 아람이 요단을 통과하여 자신들의 본국으로 도망간 것은 성경에서 잘 알려진 경로를 통해서였다. 실제로 아람의 퇴각로는 두 길이 있었다. 하나는 와디 파리아(Wadi Faria) 사막을 통과하여 '아담의 다리'(Bridge ofAdam)가 있는 요단 강쪽을 지나 얍복 강으로 도망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6장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아람 군대가 엘리사를 잡으로 왔던 길, 즉 도단 계곡(the Valley ofDothan)의 북쪽 제닌(Jenin)을 지나 야무크(Yarmuk)로 도망가는 길이다. 그러나 그외의 길은 모두 적지를 통과하는 길이므로 퇴각로서는 부적합한 길이었다(T.R.Hobbs). 한편 요단 강까지 따라간 정찰병들은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에 대한 공격 의지를 완전히 버리고 도망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 버린 의복과 군물이 길에 가득하였더라 - 이것을 볼 때 12절에서 왕이 의심한 것과 같이 아람 군대가 도망간 것처럼 꾸민 책략으로 보기에는
너무 실제적이다. 한편 여기서 '군물'(軍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켈림'(*)은 일반적으로 '그릇'(Vessel)으로 번역되지만 본절에서는 '무기'나
군인들이 사용하던 '물건'으로 번역해도 좋은 것 같다(T.R.Hobbs).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아람 군대가 얼마나 황급히 도망했는지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성 경: [왕하7:16,17]
주제1: [구원받은 사마리아 성]
주제2: [성취된 예언]
본문에는 두 가지 예언의 성취가 기록되어 있다. (1)경제의 회복:엘리사는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1절)고 왕에게 예언했던바, 이것은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자기 아들을 삶아 먹을 정도로 기근이 심했던 사마리아 성의 경제가 하룻밤 사이
이렇게 거의 정상적으로 회복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없을 만큼 큰 이적이었다. (2) 장관의 죽음:엘리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던 장관에게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2절)고 심판적인 예언을 했다. 이 예언도 정확하게 이루어졌으니, 곧 그가 성문의 출입을
통제하던 중 백성들의 발에 밟혀 죽음으로써 그 곡식들을 맛보지 못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했던 장관은 사마리아 성이 구원되는 그
순간에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출애굽 노정에서 여호수아와 갈렙 외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 모세를 반역했다. 그 결과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해석함에 있어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다(히
3:17-19;4:5,6).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써 그들에게 약속된 구원이 이방인들에게로 옮겨지게
되었다(롬 11:11). 하나님께서는 본절에 기록된 것보다 더 큰 이적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구원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밟혀 죽은 장관과 같이 구원의 소식만 듣고 그것에 참예하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한편 엘리사의 예언에 대해 불신앙을 나타냈던 한
장관을 백성이 '밟으매'라는 말은 매우 엄격하고 잔인한 의미를 담은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 말은 히브리어 '이르메수후'(*)를 번역한 것으로
'토기장이가 진흙을 이기기 위해 짓밟은 것'을 나타내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성 경: [왕하7:18,19,20]
주제1: [구원받은 사마리아 성]
주제2: [성취된 예언]
본문은 본장 전체의 요약으로 볼수도 있고 단순한 부차적인 설명으로 볼 수도 있다(Montgomery). 그러나 그레이(Gray)의 말처럼 본문을 통해서
열왕기서 기자는 하나님의 약속과 예언의 말씀의 성취를 강조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권위를 부가시켜준다. 또한 본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과정에서 문둥이 네 사람과 아람 군대를 하나님이 도구로 사용하셨음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가장 미천한 것을 들어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들을 주관하심으로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성 경: [왕하8:3]
주제1: [계속된 엘리사의 사역]
주제2: [수넴 여인의 기업 회복]
(주); 여인이...호소하려 하여 - 여기서 여인 은 블레셋 땅에서 돌아와 정당한 법적인 수속을 밟은 것으로 보인다. 기근을 피해 7년간 고향을, 떠나있던 동안 전토(田土)가 아마 다른 사람의 수중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인 듯하다. 한편 7년이란 기간은 안식년에 해당하므로 여인의 호소는 율법적인 타당성을 층분히 갖춘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호소하기 위해 왕에게 나아간 것은 왕에 의해서 심판이 이루어지던 당시의 사정으로 볼 때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삼하 8:15). 한편 본절의 '호소'라는 말은 '부르짖다'라는 의미로서 권리 주장을 위한 법적 용어이다.
(주); 나아갔더라 - 이 말은 히브리어 '테체'(*)를 번역한 것으로 이는 '튀어 나오다', '전진하다', '분출하다' 라는 의미의 '야챠'(*)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이러한 것으로 살필 때 자신의 재산을 회복하기 위해 다급한 심정으로 서둘러 나선 여인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성 경: [왕하8:4]
주제1: [계속된 엘리사의 사역]
주제2: [수넴 여인의 기업 회복]
(주); 때에 왕이...게하시와 서로 말씀하며 - 본문에는 왕과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엘리사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이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수넴 여인의 가정에 나타난 이적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 여인이 왕에게 호소하러 들어왔다. 이것은 우연히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말미암은것이다. 이는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 당시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하만의 계교를 극적으로 물리치고 디아스포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할 수 있도록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섭리와 유사하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신론(理神論)자들의 말대로 이 세상의 통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이 아니라 이 세상을 당신의 뜻에 따라 간섭하시고 이끌어가시는 분이시다(신 29:29).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깨닫고(대상 29:11,12) 그 사건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편 본절에서 왕이 게하시와 대화하는 장면이 매우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왜냐하면 5:27절에서 이미 게하시와 그의 자손까지 문등 병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사건의 시점이 게하시가 문둥병에 들지 않았을, 때. 그리고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준 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Smith, Keil). 그러나 이 사건을 5장 이전의 것으로 돌린 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는 것 같다(T. R.Hobbs). 본 사건에 대한 연대기적 문제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것은 주제 강해 '기근을 중심으로 한 연대기'를 참조하라.
(주); 큰 일 - 이 말은 히브리어 '가돌'(*)을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더크다', '크게 되다'를 의미하는 '가달'(*)에서 유래한 말로 '위대한
일', '놀라운 사건'등을 의미한다. 한편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어 행하신 일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욥 5:9;9:10;시
71:19;106:21).
성 경: [왕하8:6]
주제1: [계속된 엘리사의 사역]
주제2: [수넴 여인의 기업 회복]
(주);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 본절에서는 왕이 여인에게 질문한 내용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아마 여인의 집과 전토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엘리사가 여인의 아들에게 행한 이적까지도 포함한 질문이었올 것이다. 한편 여인이 호소하러 온 시간과 게하시와 왕이 엘리사의 이적에 관해서 이야기한 시간과의 일치는 여인에게 있어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기적적인 만남을 통해 여인의 호소는 한층 설득력 있는 것으로 왕에게 받아들여 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 고한지라 - 이 말은 히브리어 '테사페르'(*)를 번역한 것이다. 이는 '친하게 이야기하다', '자세히 말하다'라는 뜻의 '사파르'(*)에서 파생한 용어로 '사심이나 거짓이 없이 상세히 보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 한 관리를 임명하여 - 여기서 '관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리스'(*)는 주로 '한관'(eunuch)으로 번역되지만 보다 폭넓게는 '중요한
관리직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예를 들면 보디발과 랍사리스 (왕하 18:17)등을 들수 있는데 전자는 애급 왕 바로의 시위
대장이었고(창 37:36) 후자는 군사적으로 요직에 있는 인물이었다(C. U. Wolf,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2:197-180). 참으로 왕은
여인의 호소를 신중히 여기고 관리 한사람을 보내서 그녀의 소유뿐만 아니라 부재시의 소출까지도 다 회복하게 해 주었다. 이것은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갈취한 경우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선처였다(왕상 2:11-16).
성 경: [왕하8:7]
주제1: [계속된 엘리사의 사역]
주제2: [하사엘의 벤하닷 살해]
(주);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대에 - 엘리사가 다메섹으로 가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으나 6:13-19에서 아람 왕이 엘리살를 잡으려 했던 사건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매우 뜻밖의 일인 듯이 보인다. 한편 카일(Keil)은 그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 하사엘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 다메섹으로 갔다고 본다(왕상 19:15). 즉, 이것은 본래 엘리야가 호렙 산에서 여호와께 받은 사명이었으나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명령(왕상 19:16)과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명령이 엘리사에게 전가되어 그를 통해 성취됨을 나타낸 것이다. 한편 엘리사가 간 곳은 다메섹의 성 안이 아니라 그 성의 근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만약 그가 성 안으로 들어 갔다면 하사엘이 낙타를 타고 그를 맞이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9절). 그러나 엘리사가 간 곳을 단순히 다메섹이라고만 기록한 것은 추측컨대 그 지방 일대를 가리키는 의미로 그렇게 했던 것 같다(K. W. B hr).
(주); 벤하닷이 병들었더니 - 요세푸스는 벤하닷이 병든 사실에 대해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가 6장에서 자기의 욕심에 의해(6:8-14) 이스라엘을 침입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치심으로 병을 얻었다는 것이다(Antiquities of the Jews. ix 87) 그러나 벤하닷은 아합과 동시대의 사람이었기 때문에(왕상 20:1) 노년에 이르러 병을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G. Rawlinson).
(주);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에 이르렀나이다 - 당시에 엘리사는 아람 땅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정도 나아만에
의한 영향, 즉 문둥병이 고침을 받은 사실 때문에 그렇게 되었음을 암시해 준다(5:17). 그래서 나아만의 치유 사건을 잘 알고 있던 어떤 사람이
엘리사를 아람 왕에게 소개한 것이다.
성 경: [왕하8:8]
주제1: [계속된 엘리사의 사역]
주제2: [하사엘의 벤하닷 살해]
(주); 왕이 하사엘에게 이르되 - 요세푸스는 하사엘을 '그 집의 충성된 자'(*, 호 피쉬토타토스 톤 오이케톤)라고 불렀다. 그러나 하사엘의 족보나 궁중에서의 그의 관직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려 진 것이 없다. 다만 '문벌도 없는 하사엘이 왕위를 차지했다'는 앗수르의 비문을 보면 그가 비천한 데서 왕위에까지 오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왕이 자신의 병에 판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엘리사에게 하사엘을 보낸 것으로 보아 그는 나아만과 같은 군대 장관이었던듯 하다(K. W. B hr).
(주); 여호와께 나의 이 병이 낫겠나 물으라 - 왕은 나아만이 취했던 방법(5:5), 즉 선물을 각고 가서 하나님의 엘리사를 만난 동일한 방법으로
선지자를 맞이하게 하고 자신의 병에 관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묻도록 했다. 그리고 1:2의 아하시야 왕과는 대조적으로 여호와란 이름을
부각시킴으로써 오직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라는 확신과 그에 따른 의식((意識)을 나타내고 있다(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8:9]
주제1: [계속된 엘리사의 사역]
주제2: [하사엘이 벤하닷 살해]
(주); 예물을 삼아 가지고 - 하나님의 사람에게 무엇을 물으려 할 때에는 예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 규례로 되어 있다(삼상9:7;왕상 14:3). 이는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 나아가지 못한다(출 23:15)는 규례가 오래 전부터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아람 왕 벤하닷은 일찍이 엘리사를 잡기 위하여 군대까지 동원했었다(6:13-15). 그러나 이제는 병중에 있으므로 엘리사의 도움을 받고자 사자를 보낸 것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가 개종(改宗)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질병으로 인하여 그가 겸손하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하사엘은 자기 왕 벤하닷을 가리켜서 엘리사의 아들이라고 하며 겸손히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주); 당신의 아들 아람 왕 벤하닷이 - 이것은 아람 왕과 엘리사 선지자의 관계가 크게 변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관계가
호전되었다기 보다는 병에 대한 치유 때문에 벤하닷이 이렇게 겸손해진 듯하다. 한편 하사엘도 벤하닷의 치유를 위하여 자신의 왕을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엘리사에게 존경을 나타낸 것이다(G.Rawlinson). 한편 7절에서 엘리사가 다메섹을 방문한 것과 이러한 우호적 관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분명히 알 수가 없다. 다만 6:8-23의 1차 침입 사건에서 실패한 이후 아람 왕이 엘리사에 대하여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고 추측할 뿐이다.
성 경: [왕하8:10]
주제1: [계속된 엘리사의 사역]
주제2: [하사엘의 벤하닷 살해]
(주); 왕이 정녕 나으리라 하라 - 본절은 히브리 본문상의 해석을 두고 많은 논란이 되고있다. 왜냐하면 원문에서 히브리어 '로'(*)의 성격과 그
위치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해석을 살펴보면 (1) '그에게 말하라 당신을 살리려고'(Theodort, Josehpus). 이것은 '로'(*)를
부정사로 보지 않고 대명사(*)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선지자가 하사엘에게 고의로 거짓말을 시킨 경우가 되어 선지자의 권위나 성격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배격된다. (2) '당신은 살지 못하리라고 말하라'(Keil). 이 해석은 '로'(*)를 그대로 부정사로 본 것이다. 이것은 2절에서
하사엘이 왕에게 "왕이 정녕 살리이다"라고 거짓말한 것에 대한 책임을 하사엘에게 돌릴 수 있고 선지자의 권위도 유지할 수 있는 유익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하사엘이 벤하닷을 죽일 것이라는 말은 되지만 왕의 병에 관한 본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되지 못한다. 그리고 또 히브리어
어법상 부정사(negative)의 위치가 한 정동사 앞에 올 수 없기 때문에 이 해석은 문법적인 지지도 얻지 못한다. (3) '네가 정녕 살리라'(Gesnius,
G. Rawlinson). 이것은 부정사(negative) '로'(*)를 강한 긍정을 나타내는 부정법로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이 해석에는 '당신은 병으로 인해서는
결코 죽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에 의해서 생명을 잃을 것입니다'라는 뜻이 있다고 본다(Clericus, gerlach, B hr). 이러한 것들
가운데서 세번째의 해석이 가장 옳은 것 같다. 왜냐하면 이 해석은 문법상의 오류를 꾀할 뿐만 아니라 왕의 병에 관한 본래의 질문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해석은 왕의병에 대한 대답이 됨과 동시에 하사엘이 왕위를 찬탈할 것이라는 예언도 된다.
성 경: [왕하8:13]
주제1: [계속된 엘리사의 사역]
주제2: [하사엘의 벤하닷 살해]
(주); 개 같은 종 - 이스라엘 지방에서 개(*, 켈렙)는 시체나 각종 썩은 고기를먹으면서 온각 전염병을 옮기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다(사 66:3;신 23:18;삼상 17:43). 그리고 구약 시대에는 시체에 닿기만 해도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므로(레 11:39;민 19:11, 13, 16) 그 시체를 먹는 개를 부정한 것으로 취급했음은 당연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극도로 비하시켜 표현할 때는, '죽은 개' 또는 '개 같은'이란 표현을 사용했다(삼하 9:8;16:9). 하사엘이 엘리사 앞에서 자신을 '개 같은 종'이라 한 것은 베를린 비문에 기록된 대로 '문벌도 없는' 그의 신분에 대한 겸손한 표현임과 동시에 역모할 마음이 누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부정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편 구약 시대에 부정한 동물로 여겨졌던 이 개는 오늘날 죄악에 빠져 죄를 짓기 위해 이리 저리 찾아 다니는 사람들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과 사귄다는 것은 곧 부정한 개를 만지듯 죄에 빠지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기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 할례당을 삼가라(빌 3:2)고 경고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과가 끝나면 세상에서 오염된 손발을 씻는 의식을 행하듯(레 14:8;삿 19:21;마15:20;막 7:2, 3) 우리들은 일상 생활 가운데서 우리의 영혼이 더럽혀지지 않았는지를 살펴보고 항상 주님 앞에 회개함으로 깨끗함을 유지해야 하겠다(고후 7:1;히 9:14;약4:8;벧전 1:22;요일 3:3).
(주); 알게 하셨느니라 - 이 말은 '보여 주다', '인식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라아'(*)에서 온 '히르아니'(*)를 번역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용어는주께서 엘리사에게 속환을 통해 예언했음을 암시한다.
성 경: [왕하8:14]
주제1: [계속된 엘리사의 사역]
주제2: [하사엘의 벤하닷 살해]
하사엘은 선지자가 일러준 대로 왕의 쾌유(快癒)를 전했다. 그러나 그는 앨리사의 말을 반 밖에 전하지 않았다. 즉 하사엘은 벤하닷이 살 것이라는
사실만 말했을 뿐 그가 죽으리라는 것은 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왕위에 오를 계획을 다 꾸며놓고 있던 하사엘의 입장에서 볼 때 왕이 병에서
회복된다면 하사엘의 계획은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왕을 죽일 다른 방도를 간구했던 것이다.
성 경: [왕하9:1]
주제1: [예후의 혁명]
주제2: [기름 부음 받은 예후]
(주); 선지자 엘리사가 - 성경에서 본절과 같이 '선지자'와 '엘리사'를 함께 묶어서 표현한 곳은 극히 드물다. 즉 지금까지는 엘리사라는 이름만 언급되거나(3:13;4:1;6:1)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별칭(4:7;5:14;6:10;7:2)이 따로 따로 쓰였다. 그러나 여기서 특별히 선지자 엘리사라고 기술함으로 '선지자'의 신분과 엘리사의 이름을 강조한 것은 새 왕의 옹립(擁立)과 관련된 것이다. 즉 선지자 엘리사라고 표현함으로 인해 예후를 왕으로 세우는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 일의 완성을 위해 엘리사가 사역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주);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 랍비들의 전승에 따르면 엘리사에게서 사명을 받은 생도가 아밋대의 아들 요나 선지자일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분명한 근거는 없다(14:254). 좀 더 자세한 것은 2장 주제 강해, '선지자의 생도들'을 보다 참조하라.
(주); 너는 허리를 동이고 - '동이다'란 말은 히브리어 '하고르'(*)를 번역한 것으로 '허리띠로 조르라'는 명령어이다. 히브리인들은 통으로 된 옷을 입었기 때문에 활동에 용이하도록 허리에 띠를 둘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여행 차림은 어떤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임을 나타낸다(4:29).
(주); 길르앗 라뭇으로 가라 - 본절의 표현 양식으로 보아 당시에 엘리사가 거주하고 있었던 곳은 사마리아가 틀림없다(B hr). 그리고 사마리아와
길르앗 라못은 요단강을 경계선으로 하여 동서로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는 꽤 먼 편이었다. 즉 사마리아와 길르앗 라못의 사이는 약 65km
정도 되는 거리이다. 한편 이때에 예후는 길르앗 라못을 지키고 있었으며 이스라엘 왕 요람은 하사엘과의 전투에서 부상당하여 이스르엘에서 치료를
하고 있었다(15절). 전투중인 길르앗 라못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8 :28 주석을 참고하라.
성 경: [왕하9:9]
주제1: [예후의 혁명]
주제2: [기름 부음 받는 예후]
이스라엘을 다스린 네 왕가는 (1) 여로 보암 왕가(B.C. 930-909 ), (2) 바아사 왕가(B.C. 909-885), (3) 오므리 왕가(B.C. 885-841), (4) 예후
왕가(B.C. 841-752)이다. 그런데 여로보암 왕가는 여호와의 노를 격동시킨 일로 안하여(왕상 15:30) 바아사에 의한 멸망을 당했고(왕상 15:29),
바아사 왕가는 7일 동안 왕노릇한 시므리에 의해서(왕상 16:15) 아합과 같이 그 일족이 몰살됨으로 멸망했다(왕상 16:11, 12). 그리고 시므리도
바아사와 동일하게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범죄함으로(왕상 16:19) 왕궁에 불을 놓고 그속에서 타죽었다(왕상 16:18). 그와 더불어 아합의 왕가 또는
오므리 왕가는 예후에 의해서 멸절하게 된다. 한편 이들의 공통점은 '여호아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점이다. 특히 본절에 언급된 앞의 세 왕조는
금송아지 우상과 바알 및 여러 우상들을 섬겨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우상 숭배 죄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로 통칭되었다(왕상 12:28;15:26;16:2, 19, 26,31;22:52).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상 숭배죄를 어느 왕조보다도 많이 범한 아합 왕조에
대해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 시키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벌은 자신의 배만 위하는 탐욕의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왜냐하면 탐욕은 우상 숭배이기 때문이다(엡 5:5). 그 대표적인 예로 아간과(수 7:1-26) 그리스도를 팔아 넘긴 유다가 있다(행 1:18).
그러므로 재물과 명예, 그리고 방탕한 일에 욕심을 내는 모든 사람도 본절에 기록된 아합 왕가가 받은 심판 뿐 아니라 아간과 가룟 유다가 받은
심판에서 제외되어 있지 않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여 그 길을 돌이켜야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겔 39:9, 11, 18, 19).
성 경: [왕하9:11]
주제1: [예후의 혁명]
주제2: [왕위에 오른 예후]
(주); 그 미친 자 - 여기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메슈가'(*)는 대단히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즉 신 28:34에서는 그것을 의학적인 정신적 질병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다윗은 이와 비슷한 정신적 질병이 걸린 것처럼 눈속임을 한적이 있던 것이다(삼상21:13). 또 호 9:7과 렘 29:26에서는 악한 선지자들을 경멸하는 용어로 즉, 선포적이고 질타적인 의미의 말로 본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미 3:5-8). 한편 혹자는 이것을 선지자가 무아경에 빠졌을 때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한다(Montgomery). 그래서 삼상 10장에 나오는 선지자의 무리들의 이상한 행위도 이와 같은 유로 간주한다. 그 뿐만 아니라 본절에서도 예후의 군대 장관들은 무아 경지에서 예언하는 선지자를 조롱하는 말로 '그 미친 자'라고 표현했던 것이다(Keil). 이것은 당시 선지자들에 대한 평판이 대체적으로 경멸하는 풍조였음을 반영하는 말이다.
(주);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뇨 - 군대 장관들이 예후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 것은 선지자의 생도가 갑작스럽게 출현했다가 사라졌기 때문에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하는 궁금한 마음과 함께(Pulpit Commentary) 어떤 중대한 소식을 갖고 왔을지 모른다는 추측 때문일 것이다(Keil & Delitzsch).
(주);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 말함 것을 알리라 - 본 구절에 대해 학자들 간에 주장하는 바가 각기 다르다. 혹자는 이 말을 예후는 그 사건을 이미
사전에 계획된 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의미를 다 알지 않느냐고 군대 장관들에게 반문했다고 본다(G.Rawlinson). 즉, 군대 장관들이 그 선지자
생도와 함께 계획적로 자신을 왕위에 앉히려고 꾸민 연극이기 때문에 질문한 바를 자신들이 더 잘 알지 않느냐는 의미로 본다. 또 한편 혹자는
그대들이 그 선지자 생도가 미쳤을 뿐 아니라 정신없이 말한 것을 알리라. 그래서 선지자가 들어올 때 아무와도 이야기한 것이 없는 것과 같이
나갈때도 그렇게 했다고 한다(B hr, Keil & Delitzsch). 이와 달리 어떤 학자는 예후의 대답은 그들도 장차 그 젊은 선지자의 신분과 그가 말한
내용을 알게 된다는 의미로 했다고 주장한다.
성 경: [왕하9:12]
주제1: [예후의 혁명]
주제2: [왕위에 오른 예후]
(주); 당치 않은 말이라 - 이것은 예후의 반문에 대한 그들의 분명한 의사 표시이다. 즉, 예후의 추측이 옳지 않음을 나타내고 있다. 11절에서
'평안이뇨'라고 물었을 때 예후는 군대 장관들의 심중을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이제는 그들의 심중을 간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예후는
자신의 왕위에 관한 문제였음을 그들에게 밝히고 있다.
성 경: [왕하9:13]
주제1: [예후의 혁명]
주제2: [왕위에 오른 예후]
(주);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취하여 - 겉옷은 수치를 가릴 뿐 아니라(창 3:10,11) 정숙을 유지하게 해주기 때문에(벧전 3:3) 인격과 권위를 상징한다. 따라서 군대장관들이 이와 같은 행위를 한 것은 평소에 예후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마음이 간절했음을 나타낸다. 심지어 그 선지자의 생도를 미친 자라고 경멸했던 그들이 선뜻 선지자의 말을 받아들인 것이 바로 그러한 마음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한편 겉옷을 취하여 바닥에 펴는 군대 장관들의 행위와 마 21:8에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에 대해 무리들이 옷을 펴는 행위는 왕에 대한 백성들의 예우(禮遇)일 뿐만 아니라 왕으로 인정한다는 의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예후가 서 있던 맨바닥 위에 그들이 옷을 깔고 그를 거기에 세운 후 왕으로 선포한 것(Keil, Kimchi)은 왕의 보좌가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임시로 행한 조치였다.
(주); 나팔을 불며 - '나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파르'(*)는 '양각'이라고도 번역되는데 이것은 수양이나 수염소의 뿔로 만든 '신호용 나팔'로서 두 가지 음계 밖에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 나팔이 쓰인 용도는 안식일때 시작(레 23:24). 개전(開戰, 수 6:4;삿 3:27;7:18), 왕의 즉위(11:24), 각종 위험에 대한 경고(겔 7:14;33:3-6;호 8:1;욜 2:1)등이 있다. 그러나 왕상 1:34과 여기서나 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왕의 대관식 때 나팔을 불었던 것과 같이 나팔을 분 것이다(E. Werner, "Musical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Vol. 3, p. 469-476). 즉 예후가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였음과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신호였던 것이다.
(주); 예후는 왕이라 - 앗수르 왕 살만에셀 3세(B. C. 859-824)의 비문을 보면 예후의 이름이 두 번 언급되어 있다. 이 비문에 따르면 예후는
하사엘로부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공물을 바쳤다는 것이다(Ancient Near Eastern Texts, p.280; AncientNear East in Pictures, p.
351-355). 그리고 이 비문 예후를 '오므리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옳지 않다. 그러나 그 비문에서 그렇게 기록한 것은
오므리 왕조가 이스라엘 왕조 중에서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사르곤 2세(B. C. 722-705)의 시대까지 이스라엘은
오므리 왕조로 알려져 있었다(C. C. Smith).
성 경: [왕하9:14]
주제1: [예후의 혁명]
주제2: [요람을 타도하는 예후]
(주);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 본절은 앞절에서 일어난 사건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즉, 선지자의 생도가 왔다 간 이후에 발생한 일련의 공개적인 행위를 통해 요람에 대한 배반이 공식화되었다는 의미이다(G Rawlinson). 그렇기 때문에 요람이 부상을 입기 전, 다시 말해서 선지자의 생도가 이곳에 오기 전에 비밀의 약정이 있었다는 견해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Koster, Lange Commentary).
(주); 아람 왕 하사엘을 인하여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 요람이 하사엘과 싸운 것은 길르앗 라못을 방어하기 위한 싸움이었음이 여기서
판명된다(8:28 주석 참고, LangeCommentary, Keil & Delitzsch). 그리고 본절의 기사는 예후가 요람을 배반한 사실이 하사엘과의 전투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즉, 이 전투에서 요람은 능력을 재대로 발휘하지 못해 백성들로부터 신망을 잃게 된 반면 예후는 이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여 모든 군대 장관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B hr). 더군다나 21절을 보면 요람이 거의 완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에
시달린 병사들을 위로하러 길르앗 라못으로 돌아오지 않고 이스르엘에서 병 문안을 온 유다의 아하시야 왕과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군대 장관의
원망을 산 것으로 생각된다(Lange Commentary). 실로 요람에 대한 선임이 이와 같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예후가 배반하여 요람을 치러 갈 때에 모든
병사들이 그의 말에 절대 순종하였던 것이다.
성 경: [왕하9:15]
주제1: [예후의 혁명]
주제2: [요람을 타도하는 예후]
본절이 8:28, 29절의 말씀과 중복된 것은 이 두 가지가 동일 저자에 의해 쓰여지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는 단순한 반복(Thenius)이 아니다. 앞의 기사는 온전한 역사적 기술이며 여기서는 1-14절돠의 연관성을 보여 주기 위한 추가적 설명인 것이다(B hr).
(주);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 예후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혁명의 정당함을 물음과 동시에 자신의 거사 도모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성 경: [왕하9:16]
주제1: [예후의 혁명]
주제2: [요람을 타도하는 예후]
(주); 유다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 - 요람의 조카였던 아하시야는 정치적인 면으로 길르앗 라못의 전투에서 요람을 원조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도 요람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다. 8:29 주석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왕하9:17]
주제1: [예후의 혁명]
주제2: [요람을 타도하는 예후]
(주); 망대에 파숫군 하나가 섰더니 - 여기서 파숫꾼은 단순한 성문지기가 아니라 멀리서 다가오는 위험을 미리 알리는 직무를 맡은 병사를 가리킨다(T.R. Hobbs, 삼상 14:16;삼하 18:24-27). 한편 본 망대는 이스르엘 망대 중에서 길르앗 라못을 향하고 있는 동남편의 망대를 가리키는 듯하다.
(주); 예후의 무리의 오는 것을 보고 - 여기서 '무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쉬프아'(*)는 '풍부함', '넘쳐 흐르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신 33:19). 즉 그렇기 때문에 본절은 예후가 무리들을 이끌고 올 때에 요람을 암살하기에 넉넉한 규모의 군사들을 동반했다는 말이다.
(주); 평안이냐 묻게 하라 - 요람 왕은 파숫꾼의 보고를 듣고 즉시 사자(使者) 한 명을 그 무리들에게 보냇다. 그런데 요람 왕이 사자를 보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두가지 주장이 있다. 이러한 상반되는 이견(異見)은 '평안이냐'라는 말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른다. 공동 번역과 Living Bible은 이 말을 '그 무리들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아 보라'는 명령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지나친
의역이다. 왜냐하면 본절에 쓰인 '평화'라는 말은 '샬롬'으로서 일상적인 인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창 33:1-11 강해, 구약 시대의 인사법 참조>.
즉 당시 요람 왕은 다가 오는 무리들을 아군으로 확신하고 그들로 하여금 빨리 전황에 대한 보고를 듣기 원했던 것이다. 요람은 부상으로 인하여
오랫 동안 전쟁터에서 떠나 있었으므로 전황에 대해 무척 궁금했을 것이다(8:28, 29). 전황을 알아 보기 위해 나갔던 사자들이 돌아오지 않자 직접
나간 요람이 예후를 보고 동일하게 '평안이냐'라고 물었던 것도(22절) 마찬가지로 이해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잘 되느냐'는 영역
성경(ModernLnaguage Bible)의 번역도 이러한 해석을 지지한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파수꾼'은 히브리어 '초페'(*)를 번여한 것이다. 이는 '먼
곳을 응시하다', '몸을 굽힌다'라는 의미의 '차파'(*)에서 온 말로 성 지키는 자의 행동과 시선에 긴장감이 돌 뿐만 아니라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리게 한다.
성 경: [왕하9:18]
주제1: [예후의 혁명]
주제2: [요람을 타도하는 예후]
요람은 두번씩이나 똑같이 한 명의 사자만을 보내어 평안을 묻게 했다. 이것은 요람이 분명 그 무리들을 아군으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요람이 위험을 감지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둔감한 인물이었는가를 보여 준다. 한편 요람의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이 심판을
행하시는데 더욱 순조롭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진노를 더욱 가속화시켰다(Wycliffe).
성 경: [왕하9:20]
주제1: [예후의 혁명]
주제2: [요람을 타도하는 예후]
(주); 그 병거 모는 것이 ...미치게 모나이다 - 여기서 '미치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11절의 '미친 자'와 동일한 어근, 즉 '미친듯이 날뛰다',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다'를 의미하는 '솨가'(*)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런데 예후의 용맹함이 바로 이와같은 어구로 수식되고 있다는 것은
요람과는 달리 그가 얼마나 정력적인 사람이었던가를 말해준다. 한편 요람은 무리들이 미친듯이 급히 말을 몰아쳐 온다는 파수꾼의 보고를 받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를 맞으러 나간다. 그런데 이때에도 요람은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22절에서도 역시 요람은 평안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미치게 모는' 예후의 모습을 통해 평소에 그가 과격한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예후의 혁명이
그처럼 광적이었으며 잔인했음을 암시해준다.
성 경: [왕하9:21]
주제1: [예후의 혁명]
주제2: [요람을 타도하는 예후]
요람과 아하시야가 예후를 맞은 것은 그와 접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람과 싸우던 그에게서 전시의 상황을 듣고자 함이었던 것같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항해 보지도 못하고 죽게 된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쉽게 죽임을 당한 것은 아합 왕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볼 수 있다.
(주);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 '나봇의 토지'는 아합의 탐욕과 배교를 상징하는 곳이다. 그런테 우연히 예후와 요람이 이 곳에서
상봉하게 된 것은 아합의 죄값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주권적인 섭리 의해 이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섭리를 간적으로 볼 때는 마치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예언의 말씀에 따라(7-10절) 정확히 성취 되는 것이다.
성 경: [왕하9:22]
주제1: [예후의 혁명]
주제2: [요람을 타도하는 예후]
(주); 예후야 평안이냐 - 혹자는 이 말을 '길르앗의 완정은 성공적인가?'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고(Wycilffe) 다른 학자는 이것을 '군대에 이상은 없는가?', '어떤 재난이 발생했는가'라는 뜻으로 이해한다(Rawlinson). 그러나 예후는 이와는 달리 그 질문의 의미를 '너와 나 사이에 문제될 것이 없지 ?'라고 받아 들여 부정적인 답변을 한 것이다.
(주); 네 어미 이세벧의 음행과 술수 - 여기서 '이세벧의 음행'은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비유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B hr).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이세벧이 직접적으로 음행을 범했다는 기사를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빼문이다. 그러나 '음행'은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우상 숭배'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레 20:5;렘 3:2, 9;겔 23:27;호 2:2), 그녀가 지은 수많은 범죄, 즉 바알을 숭배한 우상 섬김의 배도(背道)는 음행과
다를바가 없는 것이다. 또한 '술수'는 우상숭배에 따르는 일종의 마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세 율법에서는 이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출22:18;신 18:10, 11). 한편 여기서 특별히 이세벧의 죄악을 언급하고 있는 첫째 이유는 그녀가 아합이 지은 범죄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고,
둘째 이유는 그녀의 악행과 반대 행위인 예후의 반란의 정당성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7절).
성 경: [왕하9:23]
주제1: [예후의 혁명]
주제2: [요람을 타도하는 예후]
(주);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 여기서 '손올 돌이켜'라는 표현은 손으로 병거를 되돌렸다는 의미이다. 한편 이와 비슷한 상황인 왕상 22:34에서는 아합이 병거 모는 자에게 손을 돌이킬 것을 명령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요람이 직접 자신의 손을 돌이켜 병거를 몰아 도망하고 있다. 즉 요람은 다른 병사의 호위도 없이 단신으로 병거를 몰았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요람은 예수의 대답을 통해 어떤 모반(謀反)이 있음을 알아차린 것 갈다(Keil & Deltizch, Vol. III, p. 342). 그러나 이것이 진정 하나님께서 내린 심판이라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Wycliffe).
(주); 아하시아여 반역(叛逆)이로다 - '반역'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르마'(*)는 모든 종류의 '속임' 또는 '박역'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것을'반역'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으나 원문의 본래의 뜻은 반역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것을 가리켰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예후의 행위가 요람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의외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예후는 요람을 주인으로 섬기는 위치에 있었고(7절)요람은 그에게 큰 직권을 맡길만큼 그를
신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 그 순간 전까지도 요람은 예후의 반란을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후의 행위는 그에게 '속임'으로
받아들여질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참으로 이와 같이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도적이 오는것 같이 순식간에 임하는 것이다(마 24:43;눅
12:39).
성 경: [왕하9:24]
주제1: [예후의 혁명]
주제2: [요람을 타도하는 예후]
(주);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기어 - 이 구절에 해당하는 원문을 직역하면 '예후가 자기 손에 활을 채웠다'이다. 이것은 활을 쏘기 위해 시위에 화살을 장전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삼하 23:7). 한편 '힘을 다하여 활을 당긴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본문에는 없는 것으로 일부 영역본(KJV, RSV, Living Bible)과 한글 개역 성경은 이를 생생하게 나타내기 위해 상황 어구를 첨가한 것이다.
(주); 두 팔 사이를 쏘니 - KJV가 이를 '두 팔 사이'(between his arms)로 번역한 것과는 달리 RSV, NIV, Living Bible에서는 '어깨 사이'(between
the shoulders)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사람의 '몸통 부분'을 가리킨다. 또 공동 번역에서는 이를 '등'이라고 의역했는데 이것은 아마도 요람이
도망갈 때 등을 보이고 갔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한편 Vulgate역에서도 예후가 요람의 '어깨 사이'를 쏨으로 인해 화살 요람의
심장을 비스듬이 관통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bahr, Keil & Delitzsch).
성 경: [왕하9:25]
주제1: [예후의 혁명]
주제2: [요람을 타도하는 예후]
(주); 그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 여기서 '장관'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솰라쇼'(*)는 '세번째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세번째 사람'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본래 병거에 타는 세 사람 가운데서 세번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래서 카일(Keil)은 빗갈이 예후와 함께 병거에 탄 부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특수한 군사적인 용어로서 본래의 이와 같은 의미는 사라지고 하나의 직위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쓰였던 같다(T. R. Hobbs). 따라서 이것이 5절에 기록된 군대 장관, 즉 소부대의 지휘자(leader)와 같이 예후보다 직급이 낮은 부하를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10:25;15:25;대상 12:18) 한편 예후와 행동을 같이한 이 빗갈이라는 장교는 아합 시대에도 예후와 함께 아합의 부하였다.
(주); 네가 기억하려니와 - 대부분의 고대 사본들과 70인여(LXX)은 이를'내가 기억하거니와' 혹은 '내가 기억하노니'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히브리어 '재콜'(*)을 다음에 이어지는 낱말 '아니'(*)라는 1인칭 때문에 잘못 번역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해 본절은 '기억하라'라는 명령형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Rawlinson:NIV, "Remember how you").
(주); 너와 내가...아합을 좇았을 때에 - 본절은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왕에게 예언할 때 그 자리에 예후도 함께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왕상 21:19).
(주); 저의 일을 예언 하셨느니라 - '예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샤'(*)는 '올리다', '짐을 지다'를 뜻하는 동사 '나샤'(*)로부터 파생된
명사이다. 이것은 1차적으로는 '짐', '올림'을 의미하나 2차적으로는 '선지자들의 선포나 경고' 혹은 '위험을 내포하는 예언'(사13:1;14:28;15:1;나
1:1;겔 12:10)등을 뜻한다. 본절의 내용에 기인해 볼 때 예후는 아합에 대한 엘리야의 선고를 잊지 않고 있었다. 이것은 예후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10:16). 또한 만일 예후가 믿음이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을 진멸하기 위해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기름부으라고 명령하시지도 않았을 것이다(왕상 19:16). 더욱 확실한 사실은 예후가 왕이 되어 바알의 당을 헐고 그곳에 변소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 예후를 칭찬하신 것에서도 잘나타나 있다(10:27).
성 경: [왕하10:1]
(주); 아합의 아들 칠십 인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 여기 "아들"이란 말(* )은 자손들(손자들까지 포함)을 가리킨다. "70인"이란 숫자도
문자적으로 70명이 아니고 대략으로 말한 것이라는 학자가 있다(John Gray). 그러나 우리는 이 숫자가 여자적(如字的)으로 그만큼 많은 수효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성 경: [왕하10:2]
(주);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작한 자를 택하여 그 아비의 위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 곧, 요람의 아들들 중에서
왕이 될만한 자를 세우고 그를 보호하기 위하여 싸울 용의가 있으면 싸워보라는 도전(挑戰)이다. 이것은 예후가 사마리아에 있는 지도자들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한 편지였다. 군대의 지휘자는 이렇게 병법상 지혜가 있어야 된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려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써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셨다(눅 14:31). 손무자(孫武子)의
병서(兵書)에는 말하기를, "상대방을 알고 나 자신의 실력도 잘 아는 처지에서는 백 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더라"(知彼知己 百戰百勝)고 하였다.
성 경: [왕하10:4-6上]
이 부분 말씀을 보아도 예후는 병법에 능한 사람이어서 싸우지 않고 이기기를 계획하여 그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사마리아에 있는 왕자들을
자기 손으로 직접 해하지 않고 그들의 보호자들의 손에 의하여 죽였다. 그는 적편(敵便)에 있던 자들을 자기 편으로 포섭하는 데 능하였다. 예후로
말미암아 아합의 가문이 전부 죽임이 된 것은 잔인한 일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비참한 죽음의 이면에는 보다 비참한 그들의 죄악이 그
원인으로 되어 있다. 그 사실을 생각할 때에는 아합 왕실에 대한 예후의 숙청 운동은 하나님의 지당한 심판 행위였다. 우리는 무섭고 사정 없고 또
처참한 심판 사건 앞에서는 그 사건과 관련된 자들의 죄악의 참상을 기억해야 한다.
성 경: [왕하10:6下]
(주); 너희는 의롭도다(9절 상반) - 곧, 거기 모인 백성은 아합 왕실을 전멸시키는 일에 가담한 일이 없다는 의미이다.
(주);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9절 끝) - 예후는 이 말로써 그의 간교하고 음흉한 성질을 드러낸 것이다. 실상은 자기가 아합 왕자 70명을
죽이도록 명령하고도 이제 와서 자기는 그 사건과 전연 관련이 없는 듯이 그들을 죽인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합 왕실의 멸망이 여호와의 뜻대로 실현되었다고 하며 그것을 정당시 하였다. 그는 아합 왕자들을 죽인 자를 정죄하지는 않은 것이다.
성 경: [왕하10:12-14]
여기서는 예후가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 42명을 죽인 사실에 대해 말한다. "아하시야의 형제들"이란 말(* )이 여자적(如字的)으로 바로
번역되기는 하였으나 실상은 아하시야의 형제들의 아들들을 가리킨다(대하 22:8). 예후로 말미암아 이들이 죽임이 된 이유는 그들이 아합 왕실의
친속(親屬)들로서 이세벨의 우상주위에 깊이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일찍부터 아합 왕실과 깊이 교통한 것이 마침내 화근이 되고 말았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로 더불어 친근히 지내는 자들은 마침내 그 악인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그런 악인과
가까이 하지 말아야 된다. 요 1:10-11 참조.
성 경: [왕하10:15-17]
"레갑"은 겐 족속에 속하였는데(대상 2:55), 모세의 장인이 이 족속에 속하였다(민 10:29). 이 족속은 사치와 방종을 피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데 엄격한 경건(敬虔)을 유지하려고 유목 생활을 택하였다. 삿 1:16, 4:11 참조. 예레미야는 레갑 족속을 경건의 모본으로 들어 타락한 유대인들을 경고하기도 하였다. 렘 35장 참조.
(주);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15-16) - 예후가 "레갑의
아들"(레갑의 자손이란 뜻) "여호나답"을 이렇게 높인 것은 자기의 혁명이 경건을 위한 다는 인상을 민중에게 주려는 정치적 목적이다.
성 경: [왕하10:18]
주제1: [아합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진멸 당하는 바알 숭배자]
여기서 예후는 자신이 아합보다 바알을 더 많이 섬기리라는 말로 뭇 백성들을 쉽게 눈속임한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속일 수 있었던 것은 바아사와
시므리의 경우를 비교해 보며 설명할 수 있다. 즉 그들의 경우에 있어서 군사 혁명은 단지 자신의 이기심만을 충족시키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개혁의 의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이세벧이 예후를 시므리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9:31) 백성들 가운데서도 예후의 혁명을
시므리와 같은 성격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와같이 백성들의 생각을 미리 짐작하고 그것를 역이용하여 일을 진행시켜 나가는
예후의 기발함이 본장의 전반에 잘 나타난다(9,16절). 본절에 나타난 '예후는 많이 섬기리라'는 선포는 바알 숭배자들을 처단하기 위한 그의
계략이었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많이'라는 말은 '증가하는', '능가하는', '철저한'이란 의미의 히브리어 '라바'(*)에서 온 '하르베'(*)를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양 뿐만 아니사 질에서 매우 철저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성 경: [왕하10:19]
주제1: [아합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진멸 당하는 바알 숭배자]
(주); 내가 이제 큰 제사를 바알에게 드리고자 하오니 - 여기서 '제사'( ,제바흐)라는 말은 예후의 편에서 볼 때 재미있는 언어의 유희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제바흐'(*)는 수소나 양, 그리고 염소같은 동물들을 죽여서 드리는 '희생제'를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배교자들에 대한 '살륙'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왕상 13:2;왕하 23:20).
(주); 바알의 모든 선지자와 모든 섬기는 자와 모든 제사장들을 -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선지자와 제사장이 서로 구분되는 계급이었다. 즉 제사장은
'아브'(*)라 하여 마치 백성의 아버지인 것처럼 존대되었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종'이라 하여 특별한 계급으로 생각되었다. 한편 베니게 지방에서는
선지자가 제사장보다 더 우대된 것 같으며 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 같다(왕상 18:19-40). 그리고 여기서 '섬기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바드'(*)와 '멸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바드'(*)가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인데 이것이 본절 전체에 대해 풍자성을 더 가미하고 있는
듯하다.
성 경: [왕하10:20]
주제1: [아합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진멸당하는 바알 숭배자]
(주); 바알을 위하는 대회를 거룩히 열라 - 여기서 '대회를 거룩히 열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드슈 아차라'(*)는 예배 준비를 가리키는
공식적인 용어이다(욜 1:14;2:15). 그리고 본절에 언급된 '아차라'(*)가 '거룩한 대회'(solemn assembly)로 번역된 경우는 성경에서 빈번한데(민
29:35;신 16:8;대하 7:9;느 8:18;사 1:13)이 대회라는 말은 신 16:8과 레 23:36에 기록된 '성회'또는 '거룩한 대회'에서와 같이 절기 마지막 날에
폐회를 위한 성대한 제전을 의미한다. 한편 암5:21에서는 이 말이 이스라엘 회중이 지키는 '여호와외 성회'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또한
이것은 본래 세상일에 대한 금욕의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바알 숭배가 횡행하던 그 당시에는 바알을 높이기 위한 모임으로 자주 열렸던 것
같다. 그래서 예후가 이러한 모임을 선포해도 백성들로부터 의심을 사지 않았던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성 경: [왕하10:21]
주제1: [아합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진멸당하는 바알 숭배자]
(주); 바알의 당 - 사마리아에 있는 바알의 산당은 아합이 이세벧과 결혼한 직후에 세운 것이다(왕상 16:32). 이 산당은 바알의 제사장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수용했던 장소인 것으로 보아 대단히 큰 전(殿)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B hr).
(주); 이편부터 저편까지 - 이 표현에 대한 히브리 원문은 '페라페'(*)이다. 그런데 이 말은 '훅불다', '불어 날리다'란 의미의 '파아'(*) 온
'페'(*)가 전치사로 연결된 용어다. 여기에서 '페'는 '입', '가장자리', '부분'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본절의 뜻은 '입에서 입으로', 혹은 '열고
또 연다'란 것이다(B hr). 즉 이것은 최대한으로 여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본 구절의 표현은 '바알의 우상이 있는 성소'에 사람이 가득차 있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흑자는 본 표현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라고 해석하는 것이다(Keil & Delzsch, Vol. III, p. 350-351; KJV, from oneend
to another; NIV, Living Bible, RSV, from one end to other; NEB, from end toend).
성 경: [왕하10:22]
주제1: [아합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진멸 당하는 바알 숭배자]
(주); 예복 맡은 자 - 여기서 '예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멜르타하'(*)는 구약 전체 중 이곳에서 단 한번밖에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소하게
보일지 모르나 그 의미는 분명한 것 같다. 이 단어가 '시험', '증거'(proof)라는 뜻을 가진 아카드어 '말타크루'(maltaktu)와 관계가 있다는
주장(W.Von Soden)은 전후 문맥에서 볼 때 옳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동족어인 에디오피아어에서는 예복을 '알타'(*)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마포로
만든 옷이기 때문에 히브리어의 의미가 정확하리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한편 이방의 신전에는 거의 옷을 보관하는 방을 따로 두었을 뿐만 아니라그
옷을 관리하는 관리자도 있어서 제사를 드릴 때마다 예복을 입었다. 한편 바알 제사장들이 그렇게 예복을 입었기 때문에 구별하기가 용이해 그들
모두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성 경: [왕하10:23]
주제1: [아합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진멸 당하는 바알 숭배자]
(주);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너희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 - 본절에 사용된 '여호와의 종'은 '바알을 섬기는 자'와 대응되는 말이다. 이 단어가 비록
히브리어로는 똑같이 '에벧'(*), 즉 '종'으로 나타나 있으나 이는 '여호와에 대한 열렬한 예배자'와 '바알에 대한 예배자'를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예후가 이러한 명령을 내린 것은 예후나 여호나답을 따르던 여호와의 종들이 영문도 모르고 그들 중에 섞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Rawlinson). 또한 바알 숭배자들도 자신들의 선성한 예식에 이교도가 섞여있다는 것을 불경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므로 예후의 처사를 옳게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예후가 이 일을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으로 하여금 지켜보게 한 것은 여호아의 종들을 보호해 줌으로써 여호와에 대한 자신의
열심(16절)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성 경: [왕하10:24]
주제1: [아합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진멸 당하는 바알 숭배자]
(주); 무리가...들어간 때에 - 여기에 '무리'로 번역된 말이 70인역(LXX)에는 '그'로 되어 있고 히브리 성경에는 '그들'로 되어 있다. 25절과
비교할 때 '그' 즉, 예후 자신이 혼자서 번제드린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들어간 때에'로 번역한 본절은 '들어가니라'로 되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고 그가 제물과 번제를 드리려고 들어가니라'가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
성 경: [왕하10:25]
주제1: [아합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예후의 남은 행적]
(주); 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 이 구절의 주어가 3인칭 단수 접미어인 '오'(*)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혹자는 예후가 친히 번제를 드림으로써 자신이 열렬한 바알 숭배자인 것처럼 가장했다고 한다(Ewald). 그러나 히브리어에서 3연칭 단수 접미어 '오'(*)는 종종 부정적 주어로서 영어의 it나 They와 같은 용법으로 쓰인다(B hr). 그래서 70인역(LXX)과 벌게이트(Volgate)역에서는 본절의 주어를 3인칭 남성 복수형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예후와 여호나답은 바알 신당 주위에 80인의 호위병을 배치하고 그들이 예배를 다 드릴 때까지 기다린 것 같다. 그러나 만약에 예후가 이방의 제사 의식에 참여했더라면, 예후에게는 곤란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즉, 그 행위가 본심에 의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하나님의 신실한 지도자로 여기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될 때 앞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데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 뭉쳐진 신실한 백성들의 지지를 받기가 어렵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Wycliffe). 그래서 그는 이방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주); 호위병과 장관들에게 이르되 - 호위병의 문자적인 뜻은 '달리는 자들'이다. 즉 그들은 왕을 보호하는 것을 최고 임무로 하는 정예 부대였다(삼상 22:7;왕상 14:27,28). '장관들'에 관해서는 9:25의 주석을 참고하라.
(주); 바알의 당 있는 성 - 여기서 '성'이란 뜻의 히브리어 '이르'(*)는 '높은 요새'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바알 숭배자들이 들어가 있는 '제단'
또는 '내전'(內殿)을 가리키는 듯하다(Rawlison, Keil). 왜냐하면 바알의 신상이 있는 이 전은 높은 담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어서 그 모양이 마치
요새와 같았기 때문이다(B hr). 이것과는 달리 바알의 주상(主像)은 돌로 만들어져 있고 그 주상을 중심으로 작은 바알의 상들이 빙둘러 놓여져
있는데 그것들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한편 예후가 바알을 예배하는 모든 자를 죽이라고 그의 군사들에게 명한 것은 다음 두 가지 의미에서
교훈을 준다.(1) 이것은 윤리적인 차원에서 의아스럽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한다는 의미에서는 충분히 정당화된다.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복하는 곳의 모든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하셨는데(신 3:1-3;수 8:18-25),이것도 하나님께로부터
범죄자들에 내려진 심판으로 볼 수 있다(창 15:16). 이처럼 하나님께서 심판의 칼을 드시사,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듯 죄에 빠진 자들을
전멸시키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조금의 불의도 용납 될 수 없다는 공의의 속성에 기인한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는 이러한 공의의 하나님보다는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을 더욱 강조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이 잘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양 속성을 잘 조화시겨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참 지혜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2) 이는 예후의 과감한 실천의 표현이었다. 즉 그는 여호나답에게 여호와께 대한
열심을 나타내 보이겠다고 약속했다(16절). 그래서 그는 여호나답이 보는 가운데(23절) 바알에게 제사하는 모든 사람을 죽였다. 이러한 예후의
행동은 죄의 길에 서서 후회만하고 행동으로는 돌이키지 않는 우유 부단한 사람들에게 경고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미지근한 상태에
머무르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계 3:15,16).
성 경: [왕하10:26]
주제1: [아합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진멸당하는 바알 숭배자]
본절에서 '목상들'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츠보트'(*)는 '기둥들'이란 뜻인데 왕상 14:23에 의하면 이것이 아세라 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들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불로 태워 없앨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알 주상은 원추형의 돌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조각 조각으로
훼파하였을 것이다(B hr ; Keil &Delitzscf, Vol, III, p. 351-352). 한편 가나안 인들이 섬기던 우상은 바알의 신상뿐 아니라 여러 가지가 더 많이
있었는데 신명기 기자는 이 모든 것을 불사르고 훼파하라고 기록하고 있다(신 7:5,25;12:2, 3).
성 경: [왕하10:27]
주제1: [아합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진멸당하는 바알 숭배자]
(주); 변소를 만들었더니 - 변소는 '성읍의 모든 불결한 것을 두는 저장소'이다(Rawlinson). 그런데 바알 신당을 이와 같은 용도로 사용하도록
했다는 것은 바알 신에 대한 모독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행위는 당시 근동지방에서 유행하던 최대의 모욕이었다(Keil & Delitzsch). 한편
맛소라 본문(Masoretic Text)에는 '변소'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모하라오트'(*)를 '하수구'라는 뜻의 '모차오토'(*)로 변형하고 있어 그 의미가
매우 완곡하게 표현 되었다(스 6:11;단2:5;3:29).
성 경: [왕하10:28]
주제1: [아합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2: [진멸당하는 바알 숭배자]
본절은 예후가 바알 숭배자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숙청을 가했지만 금송아지 숭배는 금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즉, 이것은 마치 남쪽 유다
왕들이 종교 개혁을 했울 때 산당을 전부 훼파하지 않은 것과 흡사하다(12:3'14:4;15:35;대하15:17;20:33). 본문은 특히 28절과 29절을 비교적인
관점에서 서술함으로 예후의 주된 활동을 한번 더 강조함과 동시에 그의 부정적 측면, 즉 금송아지 우상을 척결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강조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성 경: [왕하11:1]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아달랴의 학정(虐政)]
(주);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 '아달랴'라는 이름은 '크게 일어나다', '존귀케 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아탈'(*)과 '여호와'(Yahweh)라는 신의 이름이 합성되어진 것이다(Hobbs). 그래서 그녀의 이름은 '여호와는 존귀하시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그녀가 이러한 의미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대단히 모순된 것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녀의 이름이 갖는 의미와 그녀의 실제적인 행동은 전혀 정반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아달랴가 유다의 여호람과 결혼하게 된 것은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남유다 왕 여호사밧이 군사 동맹을 굳건히 하기위하여 전략적으로 세운 혼인 정책 때문(왕상 22:2-4; 대하 18:1)이었을 것이다.
(주); 그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 여기서 '일어나'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쿰'(*)은 군사 용어로서 '어떤 행동을 개시하는 것'을 뜻한다(7:12). 지금까지 세기의 악녀 이세벨과 같이 자기 남편 호람을 부추겼을 뿐만 아니라 (8:18; 대하21:5, 11) 아들 아하시야를 조종하여(8;27; 대하 22:3)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던 그녀에게 있어서 남편과 아들이 잇다른 죽음(8:24; 9:27)은 큰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아하시야가 통치하던 때에는 아달랴가 남유다 아히시야 왕의 태후로서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하였었다. 한편 아달랴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태후 또는 '왕후'(*, 게비라)가 왕보다 더 실질적인 세력을 가진 때(왕상 15:2; 렘 13:18;29:2)가 종종 있었는데(B hr) 그 여자들은 때때로 중요한 역사적 인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예를 들면, 밧세바, 마아가, 아달랴, 이세벨). 그런데 이제 아달랴의 아들 아하시야가 죽었으니 자연히 그녀의 손자들 중에 하나가 왕위를 계승할 것이다. 그렇게되면 그녀는 태후의 자리도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달랴는 자신의 권좌를 계속 누리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것이다.
(주); 왕의 씨를 진멸하였으나. - 본 표현에 나타난 '씨'는 히브리어 '제라'(*)를 번역한 말인데 이는 '씨를 뿌리다', '퍼뜨리다', '낳다'를
의미하는 '자라'(*)에서 온 용어이다. 특히 이 말은 '열매', '자손', '후손'이라는 뜻도 지녀 본절에서 '왕의 씨'라고 함은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는 아하시야의 모든 아들과 친척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왕의 씨는 아달랴가 집권하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에 아하시야의 친척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라비아의 사람들에 의해서(대하 21:17), 그리고 예후에 의해서(10:13,
14), 또한 여호람에 의해서 (대하 21:4) 이미 멸절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달랴는 아하시야의 아들, 즉 자신의 친손자들을 죽였을 것이다. 한편
그 중에서 남아있는 왕족들은 대제사장들과 결혼 관계를 맺음으로써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였기 때문에 더욱 더 아달랴는 그들을 멸하였을
것이다(Rawlinson).
성 경: [왕하11:2]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아달랴의 학정(虐政)]
(주); 요람 왕의 딸...여호세바가. - 여기서 요람 왕은 유다의 여호람 왕을 가리킨다. 그리고 본절의
(주); 여호세바 - 는 여호람의 딸이자 아하시야의 누이로서 대하 22:11에는 여호사브앗으로 나오는데 그녀는 제사장 여호야단의 아내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달랴가 왕위에 오를 만한 모든 정적들을 제거시키려고 한 시도는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침실에 숨겨 6년 동안 몰래 키움으로써 실패하였다. 그리고 아달랴가 행한 처사는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싸우는 극악한 죄악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윗 왕통을 계속하여 유지시키려는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한편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여호세바를 '요사베테'라고 하는데 그녀는 후궁 소생인 요람의 딸이라고 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에대한 구체적인 다른 자료들은 발견되지 않는다.
(주); 침실에 숨겨. - 여기서 '침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다르 함미토트'(*)의 해석에 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성전에 딸린
제사장들의 공동 침실이라는 견해(Luther, Clericus, Vatablus, Hobbs)와 2) 침실로 쓰여지지는 않으나 요나 이불이 있는 궁궐 내의 한 방(Keil, B
hr)이라는 견해이다. 그런데 여호세바는 모두 죽이기로 작정되어 있는 왕자들 가운데에서 요아스를 훔쳐냈기 때문에 제사장들의 숙소까지 옮기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당시의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두 번째 견해가 더욱 타당하게 보인다.
성 경: [왕하11:3]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아달랴의 학정(虐政)]
(주); 요아스가 저와 함께. - 여기서 성전에 숨겨 있었던 사람은 요아스와 그를 위한 유모이다. 왜냐하면 요아스는 당시 갓난 아이였기 때문이다(Wycliffe). 한편 요아스와함께 한 사람이 여호세바라고 혹자는 주장하나(Thenius) 여호세바가 그곳에서 6년 동안 요아스를 돌보아 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아니다(B hr). 그리고 그들이 숨어있었던 곳은 세속적인 목적을 위하여 성전에 딸려 있었던 방이었기 때문에(왕상6:5-8; 느 13:5-9) 성전 마당 한 곳에 있는 대제사장의 집, 즉 여호세바의 집에 그들이 숨어 있었다는 카일(Keil)의 주장은 옳지 않다. 그리고 성전 마당에 있는 어떤 건물 속에서도 대제사장과 그의 가족이 함께 살았다는 성경 기사가 기록된 곳은 아무데도 없기 때문에 이를 더욱 뒷바침해준다(B hr).
(주); 육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 왕자인 요아스가 6년 동안이나 숨어서 살아야 했다는 것은 아달랴가 왕의 씨를 멸하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극악하게 애써왔는가를 보여준다. 그래도 요아스와 그 유모는 성전에서 6년 동안 숨어 살 수 있었는데 그것은 한차례 아달랴가 성전을 파괴했음에도
불구하고(대하 24:7) 하나님께서 다윗의 씨를 보존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한편 요아스가 아달랴의 눈을 피해 성전에서 6년 동안 양육받았던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1) 다윗의 씨가 보전됨: 요아스는 다윗의 왕통을 이어야 할 자이다. 그리고 다윗의 왕통이 끊어진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언약이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단은 아달랴를 통해서 다윗의 왕통인 요아스를 죽여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시켜 버리려는
어마어마한 흉계를 꾸몄다. 이러한 사단의 흉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도 계속되었다(마 2:13-23). 뿐만아니라 이와 유사하게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언약의 자녀들에게도(고전 10:16;11:25; 히 13:20) 사단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에서 성도들을
끊어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택함 받은 백성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아무도 없음으로(롬 8:13-39)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이
닥쳐와도 믿음으로 승리하여야한다. 2) 종교 개혁을 위한 예비 교육: 요아스는 여호와의 전에서 양육되었기 때문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아(12:2) 여호와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각성을 쌓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12:4-6). 여기서 우리는 교회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딤후 3:4-17).
성 경: [왕하11:4]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여호야다의 거사(擧事)]
(주); 제 칠 년에. - 레 25:3-5에 따르면 7년째는 안식년에 해당된다. 그러나 여기서 칠년이란 말은 어떤 사건의 결정을 이루는 해를 가리킨다(F. R. McCurley, Journal ofBiblical Literature, p. 93). 즉 이는 여호야다가 지금까지 준비하고 계획한 요아스의 왕좌 복권 운동의 절정의 시점을 말한다. 이와같이 7일, 7주, 7년이란 기간에서 7은 종종 어떤 사건에 있어서 위기의 정점을 나타낸다(J. van Goudoever). 한편 혹자는이 칠년에 해당되는 때가 유대인의 삼대 절기, 즉 유월절(출 12:1-28), 맥추절(민28:26-31; 신 16:9-12), 장막절(레 23:33-43; 슥 14:16-19) 중의 하나라고 이해한다(Wycliffe). 그러나 평행 구절인 대하 23:1-3에서의 '레위 사람과 이스라엘 족장들을 모았다'고 한 표현으로 미루어 볼 때 유대인들의 삼대 절기 중 하나는 아닌 것 같다.왜냐하면 삼대 절기 기간에는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대성회로 지켰기 때문에 에위 사람과 족장들을 모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주); 여호야다. - 이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Yahweh)와 '알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야다'(*)가 합성된 것으로서 '여호와께서 아신다'라는 뜻이다. 한편 본절에서 여호야다가 주체가 되어 모든 거사(擧事)를 진행하고 지휘한 것으로 보아 그가 요아스의 왕위 복권 운동의 핵심이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주); 가리 사람들의 백부장들과. - 여기서 가리 사람은 그렛 사람과 동일한 민족이다(대상 18:17). 그런데 이들은 가나안의 서방에 있던 정착민들로 (삼상 30:14) 아도니야의 반역 음모에서 솔로몬을 보호했던 사람들이다(왕상 1:37, 38). 또한 이들은 브니야의 관할하에서 다윗의 심복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삼하 8:18) 일명 블레셋 사람이라고 칭해지기도 했다(겔 25:16). 한편 그레이(Gray)와 몽고메리(Montgomery)의 견해에 따르면 가리 사람들은 왕실을 경호하는 용병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역대기 사가(史家)는 여호야다의 왕정 복고 운동이 순수한 유다의 힘으로 성공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으나(대하 23:3, 4) 본서 기자는 이방인이 세력이 혁명군으로 가담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당시의 백부장이라는 지위는 상당한 세력을 가졌던 것으로 추측되며 백부장 위에는 천부장이 있었다(삼하 18:1).
(주); 호위병.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라침'(*)으로서 '달리다'라는 뜻의동사 '라츠'(*)에서 파생된 단어이다(삼하 15:1; 왕상 1:5). 이들이 주로하는 일은 왕상 14:27절에 개괄적으로 나타난 바와 같이 '왕을 경호하는것'이다. 한편 역대기 기자는 이 때에 모인 백부장이 다섯이라는 것과 그 이름들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대하 23:1).
(주); 저희와 언약을 세우고. - 역대기에는 본서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유다 고을에 있는 레위 사람과 이스라엘 족장들이 모두 함께 하나님의
전에서 언약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대하 23:2, 3). 한편 예후가 이스라엘 왕 요람에 대한 자신의 혁명을 스스로 '반역'(*)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10:9)과 비교해 볼 때 본절에서 '언약'이란 말에 대해 '케쉐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베리트'(*)라는 전형적인 언약의 용어를 쓰고 있는
데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1) 이것은 하나님과 다윗 간에 세운 언약에 대한 재다짐이다(삼하 7:11-16). 실제로 7세된 요아스가
죽었더라면 다윗의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폐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서운 아달랴의 학살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씨를
보전하셨기 때문에 여호야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2) 하나님과의 언약을 세움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 편에서 이처럼 적극적으로 시도한 적은 없었다. 따라서 이것은 여호야다가 요아스의 정체를 밝히기 이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는가 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된다. 한편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언약에 대한 사단의 파괴 공작은 아담에게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쉴새없이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언약에 성실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롬8:31-39).
성 경: [왕하11:5]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여호야다의 거사(擧事)]
(주); 너희의 행할 것. - 여호야다는 두 곳에서 군사권을 장악하는 계략을 세웠다. 즉 성전과 왕궁이 바로 이곳인데 전자는 어린 요아스가 거하는 거처일 뿐만 아니라 왕관을 쓰고 기름부름을 받은 곳이기 때문이고 후자는 요아스가 앉을 왕의 보좌가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B hr). 이러한 두 가지 임무는 본문(5-8절) 뿐만 아니라 대하 23:4-7에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주); 안식일에 입번한 너희. - 여기서 '입번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보'(*)로서 '들어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이 말은 '호위 엄무를
수행하기 위해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당시 호위병들은 당번(當番)과 비번(非番)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래서 당번이 근무를 위해서 출근하는
것을 '입번한다'고 하고 비번이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것을 '출번하다'(7절)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왕실 호위대는 각각 100명씩 다섯 부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대하 23:1) 이들은 백부장에 의해 지휘 되었다. 한편 안식일의 호위 임무를 위해 들어가는 부대는 이 중에서 세 부대이며 그
나머지 두 부대는 백성들의 치안을 돌보거나 성전을 지켰다(Rawilinson). 따라서 5, 6절은 안식일에 입번한 세 부대에 대한 여호야다의 지시
사항으로 왕궁, 수르 문, 그리고 호위대 뒷문에 각각 1개 부대씩 배치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호야다가 이와같이 왕궁을 수호하게 한 것은
아달랴를 사로잡으려는 의도에서라기 보다는 이제 곧 왕위에 오를 요아스를 위해 왕의 보좌가 있는 왕궁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Rawlinson, B hr).
이처럼 여호야다가 당시의 이러한 관례를 이용하여 성정에 많은 병력이 배치되는 안식일을 거사일로 잡은 것은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했는지를
알게 한다.
성 경: [왕하11:6]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여호야다의 거사(擧事)]
(주); 수르 문. - 이 문에 대해서 특별히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수르'(*)라는 말이 '쫓아 버리다', '길에서 벗어나다'란 의미의 어근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이 장소는 '출구'에 관련된 것이 아니면 왕궁 사이에 있는 문으로 추측된다. 한편 대하 23:5에서는 스르문 대신에 이곳을 '기초문'이라고 적고 있다.
(주); 호위대 뒤에 있는 문. - 19절에서는 이곳을 '호위병의 문'아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은 왕궁 동편에 있어서 성전과 마주 대하기 때문에 새 왕의 대관식 때에 왕궁으로 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곳을 매우 중요하게 지키는 장소였다(B hr).
(주); 왕궁을 주의하여 지켜 방어하고. - 여기서 '방어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싸흐'(*)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주장하는 학자에 따라서
다양하다. F.Brown, S. R. Driver, and C. A. Briggs,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Tesament 사전에는 이 단어가 '밀어내다',
'찢어내다'라는 뜻의 '나싸흐'(*)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견해를 보이고 있는 데이비슨(Davidson) 사전에도 이 단어의
뜻이 부사적으로 호위병들이 교대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루터의 주장같이 이 단어가 '방어'를 의미한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B hr).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지킨다'라는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다(Ewald, Keil, Furst).
성 경: [왕하11:7]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여호야다의 거사(擧事)]
(주); 안식일에 출번하는 너희 중 두 대는. - 평일에는 왕궁이 세 부대가 배치되고 성전에 두 부대가 배치되기 때문에 안식일에 출번하는 부대는 두
대나 된다. 한편 이들의 주 임무는 성전에 있는 어린 왕 요아스를 돌보는 것이며 누구든지 그 왕을 해치려 할때는 즉각 죽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대하 23:7에는 유다 각 고을에서 모여든 레위인들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본절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역대기에는
입번한 자들에 관한 언급은 있으나(대하 23:4, 5) 출번한 자들의 언급은 없다. 그래서 본문과 불일치하는 부분에 대한 해석이 학자들에 따라 모두
다르다. 1) 혹자는왕궁 수비에 들어갈 세 부대의 구성원들이 모두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조직되어 있었다고 보기 때문에 출번한 자들이 두 대를
역대기에서는 단지 '모든 백성들'이라고만 밝혔을 뿐이라는 것이다(Keil). 2) 또 다른 주석가는 입번한 세 부대에 관한 본문의 언급은 군인들에만
관한 것이며 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B hr, Rawilnson). 그래서 여호야다의 계획에 다섯 백부장들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은(4; 대하 23:1) 모든 호위병들이 전부 동원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 호위병들이 모두 본 계획에 가담하지 않고서는 이
일이 성공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역대기의 기록과 본장의 기록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있다. 그러나 역대기가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의 움직임을 그 중심으로 기록하였다고볼 수 있는 반면 본장은 전체적인 사실에 대한 언급으로 볼 때 이 문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B hr).
성 경: [왕하11:8]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여호야다의 거사(擧事)]
(주); 왕을 호위하며. - 호위병은 왕의 앞과 뒤에서 호위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본문의 '호위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로 '둘러싸다', '부딪히다'라는 의미의 '나카프'(*)에서 온 '힉카프템'(*)을 쓴 것이다.
(주); 왕의 출입 할 때에 시위할지니라. - 이것은 요아스 왕이 어디를 가든지 그를 둘러싸고 보호하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당시 요아스가 유년의
나이이기에 호기심이 많아 어디든지 가고 싶어했기 때문일 것이다(Rawilnson). 그러나 혹자는 이것이 요아스의 행동 전부에 대해 호위하라는 것이
아니라 왕이 성전에서 왕궁으로 들어가기까지를 호위하는 것이라고 한다(B hr, Thenius).
성 경: [왕하11:9]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요아스의 즉위]
본절에서는 백부장들이 철저하게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아달랴를 보호하고 그 모든 일에 경호했던 그들이 이제는 요아스를 참된
왕으로 섬기기 위하여 제사장 여호야다의 명령에 순종한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 '안식일에 입번할 자와 출번할 자'란 호위병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엄격히 말해서 호위병들의 다섯 부대 가운데서 두 부대 만을 말하는 것이다(7절).
성 경: [왕하11:10]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요아스의 즉위]
(주); 다윗 왕의 창과 방패. - 이것은 다윗이 직접 사용한 무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전쟁에서 노획한 것들로 이스라엘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성전에 제물로 드린 것이다(삼하 8:7-12). 특히 본절에서 여호야다가 하닷에셀의 신복들에게서 빼앗은 '금방패'(삼하 8:7)를 자신의 의도에
동참한 백부장들에게 나누어 준 것은 '다윗 가문을 재건시키는 일을 성취시키자하는 의도'(Ewald, Thenius)에서였다. 따라서 약 300여년 전에
언약의 왕조를 일으켰던 다윗 왕에 의해서 드려진 본 무기를 지급받은 백부장들은 사기가 충천했을 것이다. 더욱이 그들이 하려는 일은 요아스를
통해 다윗 왕조의 정통성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호야다의 말에 더욱 충성하였을 것이다.
성 경: [왕하11:11]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요아스의 즉위]
(주); 호위병이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 여호야다로부터 다윗의 창과 방패를 받은 백부장들은 다시 그 무기들을 호위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여기서 '호위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침'(*)은 '달리는 자들' 혹은 '경주자들'이라는 뜻으로 전형적인 군사 용어이다. 따라서 이 호위병들이 레위인들과 제사장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카일(Keil)의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주장이다.
(주); 단과 전 곁에 서고. - 여기서 말하는 단은 성전 안에 있는 향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 마당 중앙에 놓여 있는 번제단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제사장들과 직무를 수행하는 레위 사람들 이외에는 아무도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민18;3, 7; 대하 23:6). 그리고 여기에
나타난 전은 곧 성전을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호위대는 제단과 성전 현관 바로 앞 부분인 뜰의 가장 윗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11:12]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요아스의 즉위]
(주); 면류관을 씌우며. - 삼하 1:10을 보면 이스라엘 왕들은 항상 면류관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한편 면류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젤'(*)은 '멀리 떨어져 있다','헌신하다', '봉헌하다'란 어근의 '나자르'(*)에서 온 말로 '구별된 어떤 것', '왕관', '화관'등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것은 곧 제사장이나 나실인의 헌신, 또는 왕권을 상징하는 왕관을 나타내는 것으로 왕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되어 바쳐진 자라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주); 율법책을 주고. - 여기서 말하는 율법책은 모세 오경 전부가 아닌 십계명만을 가리킨다(B hr). 그리고 '증거판'(출 16:34; 25:16, 21)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이 십계명은 왕이 왕좌에 오른 것을 상징하는 의미로 주어지기도 하였다(신 17:18, 19). 또한 이것은 왕의 독단적인 생각과 행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으로 백성들을 치리하여야 함을 뜻한다(G. von Rod. "The Royal Ritual in Judah", The Problem ofthe Hexateuch, p. 222-232).
(주); 기름을 부어. - 히브리어 원문에는 여기에 기록된 동사의 주어가 복수 형태로 나타나 있는데 병행구절인 대하 23:11에 따르면 여호야다와 그 아들들이 함께 기름을 부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이유는 여호야다의 아들들도 제사장들이기 때문이다(Keil& Delitzsch).
(주);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 - 열왕기서에서 왕의 등극에 대한 백성들의 기쁨을 표현한 곳은 솔로몬시대 이후(왕상 1:39) 여기가
처음이다. 이것은 요아스로 인하여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이 새롭게 되었음을 백성들이 공통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혹자는 백성들이
박수하며 만세를 부른 것이 요아스에 대한 왕으로서의 승인과 인정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Wycliffe).
성 경: [왕하11:13]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아달랴의 최후]
(주); 호위병과 백성의 수리를 듣고. - 히브리 원문에는 '호위병'과 '백성'이라는 단어 사이에 '그리고'라는 뜻의 접속사 '와우'(*)가 없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필사자의 오류로 실수하여 빠뜨린 것으로 본다(Keil, B hr, Rawilnson). 그러나 호위병들도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포함된 사람이므로 두 단어를 동격이라고 본다면 접속사'와우'(*)는 필요가 없을 것이다(Ehrlich, Hobbs). 그리고 이것은 14절의 '온 국민'이라는 말과 동일어 일 것이다.
(주);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 아달랴는 바알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자였기 때문에 안식일 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날에도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 성전에서 요란한 함성이 들려오자 불안한 마음이 생겨 성전으로 달려갔던 것이다(Rawilnson).
성 경: [왕하11:14]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아달랴의 최후]
본절과 13절에서 묘사된 아달랴의 반응은 매우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열왕기서 기자는 여기서 요아스 왕의 대관식과 아달랴의 당황함을 대조적으로 묘사하면서 참왕의 당당함과 거짓 통치자의 패망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왕권이 도래함으로 혼비 백산하는 사단의 모습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주); 왕이 규례대로 대 위에 섰고. - 여기서 '대'로 번역된 '암무드'(*)는 '서다'(stand)라는 뜻의 '아마드'(*)에서 파생된 단어로 집을 떠받치는 '기둥', '두 놋쇠 기둥'등을 뜻한다(삿 16:25, 26, 29; 출 27:10, 11, 17; 왕상 7:15).한편 여기에 사용된 전치사 '알'(*)이 '위'쪽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옆'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루터는 이 부분을 '기둥 옆'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것을 전통적으로 지정된 어떤 장소로서 왕을 위하여 특별히 만든 '사열대 위' 혹은 '관람석'(suggestus)이라고 생각한다(Keil, B hr, Rawilnson). 그에 대한 실증적인 예로 대하 6:13을 보면 솔로몬이 놋으로 대를 만들어 그 위에 섰다고 한다. 그리고 본절의 '규례대로'라는 말은 이와 같은 해석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왕이 당시의 규례대로, 즉 왕이 성전을 방문 하였을 때 취하는 습관이나 규범대로 그렇게 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아스 왕은 성전 제단 뜰 한가운데 있는 높은 대위에 서서 아달랴가 성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 장관들. - 4, 9, 10절에 나타난 호위대의 백부장들, 또는 대장들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모여든 그 외의 두령들을 포함해서 지칭하는 말이다.
(주); 나팔수. - 이것은 '노래부르는 자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솨림'(*)과는 달리 '하사림'(*)의 번역어이다. 이 말은 벌게이트(Vulgate)역에는 '노래 부르는 자들'이라는 뜻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본절에서는 분명히 나팔을 부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관리들을 가리킨다(9:13; 민 10:2; 삼하 15:10). 즉 이들은 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로서 양각 나팔을 불었던 악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B hr).
(주); 옷을 찢으며. - 이는 요람과 같이 큰 슬픔을 나타내기 위해 취한 행동(6:30)이 아니라 분노와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옷을 찢은 것이다.
(주); 반역이로다 하매. - 여기서 사용된 '반역'(*, 케쉐르)이라는 단어는 예후가 사용했던 것으로(10:9) 여호야다가 사용한 '언약'(베리트, *
)이라는 말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그리고 아달랴의 이러한 외침은 분명한 목적이나 의도가 없이 본능적으로 내뱉은 절규였다(Puipit Commentary).
한편 혹자는 그녀의 이러한 외침으로 살펴볼 때 그녀의 호위대가 곁에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고 주장하나(Wycliffe)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성 경: [왕하11:15]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아달랴의 최후]
(주); 반열 밖으로 몰아내라. - 여호야다가 아달랴와 그녀를 따르는 자들을 반열 밖으로 몰아낸 것은 우상 숭배자요 살인자인 그들의 피로 성전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Rawilnson, Keil & Delitzsch). 한편 '몰아내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은 '호치우'(*)인데 이는 '튀어
나오다', '도망가다', '실패하다'란 뜻의 '야차'(*)에서 온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곧다시 근접할 수 없도록 패퇴시키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왕하11:16]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아달랴의 최후]
(주); 말 다니는 길로 통과하다가. - 성전에서 왕궁으로 통하는 길은 여호야다의 호위병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5, 6절) 아달랴는 왕의 말
마굿간으로 통하는 길로 달아났다. 그런데 이것은 느 3:28에서 말하는 '말문'과는 다른 길이다. 즉, 본절의 '말문'은 성전 내에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왕궁으로 들어가기가 쉬웠던 것이다. 따라서 이 길은 말을 타고 동편에서 성으로 들어오는 성의 외곽에 있는 문으로서 궁전의 마굿간으로
통하게 되기 때문에 (렘 31:40) 호위병에 의해 제지를 받을 염려가 없다고 아달랴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이 아달랴는 말이 다니는
길에서 수치스럽게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Hobbs).
성 경: [왕하11:17]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여호야다의 개혁 조처]
(주); 여호와와 언약을 세워. - 여기서 언급한 '언약'은 4절에서 언급한 '언약', 즉 인간 사이에서 그 증표로 나타내기 위해 세운 언약과는 내용상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리고 히브리어 원문에는 정관사 '헤'(*)를 동반하여 '그 언약'이리고 기록하고 있어서 본절의 언약이 모세의 언약이나
다윗의 언약에 대한 새로운 갱신임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 기록된 언약은 두 가지 방면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수직적인 언약으로서
여호와의 왕과 백성 사이에서 이루어졌고, 둘째는 수평적인 언약으로서 왕과백성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 수직적인 언약은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출 24:3-8)을 가리키는 것인데 왕과 백성은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율법을준수해야 하는 것과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그들을 축복하시고 보호하시는 것을 말한다(신 4:20; 27:9, 10). 그리고 수평적인 언약은 왕이 백성을 율법에 따라 다스릴 것와
백성은 하나님이 임명하는 왕을 섬기며 순종해야하는 것을 서약하는 행위를 가리킨다(삼하 5:3).
성 경: [왕하11:18]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여호야다의 개혁 조처]
(주); 온 국민. -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호야다 제사장을 돕기위해 유다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을 말한다(대하 23:2).
(주); 바알의 당. - 유다에도 이스라엘과 같이 바알 신전이 있었다는 기록은 아무데도 없다. 그러나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이 바알 신전은 여호람과 아달랴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여호람의 악행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는 역대기서에서(대하 21:1-20) 그러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Rawilnson). 한편 혹자는 이 바알 신전이 모리아 산에 있었다고 주장하나(B hr), 그 정확한 위치를 확정지을 수 있는 분명한 단서는 없다. 그리고 당시 바알의 신전이 여호와의 성전안에 있었다고 하는 견해(Thenius)는 대하 24:7이나 본절을 볼 때 가능치가 않다(Keil &Delitzsch, Vol. 3, p. 363-364). 한편 본절에서 '깨뜨리고'란 말은 히브리어 '쇠바르'(*)를 역한 것인데 그 원뜻은 '산산히 부서지다', '파열하다'란 의미이다. 이는 형체가 없어질 정도로 완전히 으스러뜨림을 가리키는 것이다(레 26:13; 나1:13).
(주); 바알의 제사장 맛단. - '맛단'은 페니키아(두로와 시돈)식 이름으로 그 뜻은 '선물'이라는 의미로 추측된다. 이에 대한 완전한 이름은 '맛단 바알', 즉 '바알의 선물'이란 뜻인데 바알의 제사장에게 아주 걸맞는 이름이다. 한편 이것은 페니키아 비문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며 히브리어로 유다의 마지막 왕인 '맛다니야'(24:17)와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된 이름이다.
(주);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전을 수직하게 하고. - 여호야다가 성전에 문지기를 세운 것은 1) 율법대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는가를
감독하고(Keil & Delitzsch), 2) 부정한 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였다(대하 23:18, 19; Thenius, Ewald). 이것은 아달랴의 통치기간 동안
정상적인 성전 예배를 드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자칫 율법을 범하기 쉬웠기 때문인 듯하다(Rawilnson). 그리고 이 때가 왕의 대관식이 진행되는
중이었으므로(19절) 바알 숭배자들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목적도 함께 있었음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B hr).
성 경: [왕하11:19]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여호야다의 개혁 조처]
(주); 호위병의 문 길. - 이것은 6절에 있는 "호위대 뒤에 있는 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Rawilnson). 당시 성전은 시온 산에 있었으므로
요아스 왕은 시온 산에서부터 다윗 성까지 호위병들이 경호를 받으며 왕궁 보좌에 이르게 된것이다. 그리고 이미 왕궁에 배치된 3개 부대(5, 6절)는
입궁하는 왕을 보호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한편 역대기서에는 본절의 '가리 사람과 호위병' 대신에 '존귀한 자들과 백성의
방백들'이라고 표현해(대하 23:20) 왕을 옹위한 범위를 좀더 구체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Keil & Delitzsch).
성 경: [왕하11:20]
주제1: [아달랴의 유다 학정과 요아스의 즉위]
주제2: [여호야다의 개혁 조처]
(주); 즐거워하고...평온하더라. 본절은 아달랴의 학정과 종교적 부패, 그리고 비리 등으로 그 동안 백성들이 많은 고통과 억압을 받았음을 암시한다. 또한 백성들이 이 고통과 억압에서 벗어나 기쁨과 평온을 얻었음은 새로운 왕권이 상당히 안정되었다는 것을 반영해 준다. 참으로 불안한 지도자, 불안한 정책하에 있는 백성들에게는 기쁨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 역시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는 미래를 두고서 불안에 떨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요컨데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게 마련이다(잠 29:2). 그러므로 오늘날의 성도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 생활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정의가 넘치고 의인이 대접받을 수 있게 되도록 노력하는 보다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을 소지해야 하겠다. 한편 여기서 '평온'이란 말은 '조용하다'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싸움이나 전쟁이 없는 안정적인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수 11:23; 14:15; 대하 14:5).
(주); 왕궁에서 칼로 죽였었더라. - 외형상 본절의 의미가 16절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나 둘 다 왕궁 근처에서 무리가 아달랴를 죽였음을 뜻한다.
열왕기서 기자가 다시 한번 아달랴가 왕궁 근처에서 죽임당했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성중의 평온함과 대조시켜서 지금까지 유다를 혼란케 한
장본인이 바로 아달랴임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성 경: [왕하12:1]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요아스의 선정(善政)]
히브리 원문에는 11:21이 본장의 1절로 기록 되어 있고 본장의 1절은 2절로 되어있다. 그래서 Lange Commentary(B hr)와 Ward Biblical Commentary (Hobbs)는 본절을 11장 마지막 절로 간주하여 설명하고 있다.
(주); 예후의 칠년에. - 불이스라엘의 예후(B.C. 841-835)와 남유다의 아달랴(B.C.841-835)는 같은 해에 왕위에 올랐는데 아달랴는 유다를 6년동안 다스렸다(11:3). 따라서 요아스가 7세에 왕위에 오른 해는 예후의 칠년에 해당된다.
(주); 요아스. - '여호와는 강하시다', '여호와는 도와주신다' 라는 의미의 이름인데 성경의 많은 곳에서는 '여호아스'로 혼동되기도 한다. 그래서 KJV과 RSV에서는 이를 Jehoash(여호아스)라고 표기하고 있다.
(주); 그 모친의 이름은 시비아라. - 유다에서는 왕들의 통치 약력을 소개할 때 그 어머니가 누구였더라고 언급하는 것이 관례인 듯하다(14:2; 15:2). 한편 '시비아'(*, 치비야)라는 이름은 '가젤'(gazelle)이란 뜻인데 아프리카 영양(羚羊)의 일종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주); 브엘세바 사람. - 이곳은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하여 호렙 산으로 도망가는 도중에 들렀던 지역(왕상 19:3)이다. 그리고 이곳은 헤브론의
서남쪽 약 45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는 '빌에세바'로 불리워지고 있다. 또한 이성읍은 '맹세의 우물'이란 뜻으로 시므온 지파 땅이며 국경
도시로서 전략상 중요한 지역이다(삼상 3:20; 삼하 24:7;대하 30:5). 한편 '시비아'라는 이름은 브엘세바 출신인 사람들에게 주로 붙여지는
것같다(Gibson).
성 경: [왕하12:2]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요아스의 선정(善政)]
(주);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 - 이 구절을 번역하는데 있어서 혹자는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했으므로 그의 전 생애 기간
동안...정직히 행하였으되"라고 번역한다(Ewald, Thenius). 그러나 대하 24:2을 근거로 볼 때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그가 죽고난 이후에는 하나님께 범죄하였음이 틀림없다. 즉 그는 여호야다가 죽자 바알 숭배에 관심이 있는 새로운 측근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 타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대하 24:15-25). 한편 여호야다는 13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대하 24:15) 그가 죽은 시기는
요아스 왕 23년 이후인것 같다(6절).
성 경: [왕하12:3]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요아스의 선정(善政)]
(주);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 산당에 드린 제사가 우상 숭배였다는 기록은 아무데도 없다(Hobbs). 그러나 이곳이 비합리적인 여호와
숭배 장소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Wycliffe). 아사(왕상 15:14)나 여호사밧(왕상 22:43)과 같은 선한 왕의 경우에도 이 산당은 제거시키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산당 제사는 히스기야 시대(18:4)에서야 비로소 제거 되면서 요시야 왕 때에 예배의 중앙화를 이루게 되었다(23:8). 한편 이러한
산당 예배는 당시 예배의 중앙화를 이루지 못한 유다의 일반적인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결과는 나라의 쇠망을 촉진시키는 일이
되었다(Wycliffe).
성 경: [왕하12:4]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성전 수리를 명하는 요아스]
(주);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 본절에서 성전 보수의 주체가 요아스 왕임을 본서의 저자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포로 시대 이전에는 제사장보다 왕의 권위가 더 존중되었음을 의미한다(H. Ringgren, Israelite Religion, p.211). 한편, 본절과 병행 구절인 대하 24:4에서도 동일하게 요아스 왕의 주도권이 강하게 나타나 있어 이를 더욱 뒷바침한다(Rawilnson).
(주); 여호와의 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은. - 요아스 왕은 성전 수리를 위하여 한 때 모세가 법막(法幕)을 위해 거두었던 세금을 다시 바치게
하였다(대하 24:6). 이때 거두어 들인 세금의 종류는 다음 세 가지로 분류된다. 1) 사람의 통용하는 은(銀).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각 사람이 위로 지나갈 때에 드는 돈'이다. 이것은 일종의 인두세나 주민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인구 조사에 의해 계수된
20세이상의 장정들로부터 받는 돈인데 이는 출 30:13, 14에 근거한 세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어떤 사건에 의해 수입으로 들어오는 돈도
아니고(Ewald) 세상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돈(Luther)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포로 시대 이후에도 이러한 종류의 세금이 해마다
징수되었던 것 같다(느 10:32). 2) 각 사람의 몸 값으로 드리는 은.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각자의 평가에 대한 사람의
돈'이란 뜻이다(Keil & Delitzsch). 그래서 이것은 서원하는 자들에 대한 제사장의 평가에 따라 징수되는 세금으로서 연령이나 남녀의 성별의
차이에 따라 그 징수액이 각각 달라졌다(레 27:2-8). 그리고 사람이나 생물의 첫태생을 여호와께 바칠 때 드리는 세금도 여기에 포함된다(민
18:15,16). 3) 자원하여 여호와의 전에 드리는 은. - 자발적인 헌물로서 성소에 바치는 은을 말한다. 이것은 성막에 관련된 경우와 같이(출35:21)
자원하는 예물이었다. 그런데 이 돈들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각각 자기가살던 성읍에 가서 잘 아는 사람들에게 받아와서 성전의 퇴락한 곳을
고치는데 사용하였다(B hr, Keil & Delitzsch, Vol. 3, p. 366). 한편 역대기에서는 이 세가지의 종류의 세금을 전체적으로 통칭하여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의 회중이 법막을 위하여 정한 세"라고만 표현하였다(대하 24:6). 그런데 이것은 성전 건축을 위한 반 세겔의 헌납(출 30:12,
13)까지도 포함한 것이다.
성 경: [왕하12:5]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성전 수리를 명하는 요아스]
(주); 각각 하는 자에게서 받아들여서. - 위에서 언급한 세금들은 유다의 각 고을에 있는 제사장들이 거두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성전 수리도 성전에 종사하는 레위인들이나제사장들에게 맡겨진 것 같다. 즉 이것은 성전 복구를 위한 요아스 왕의 큰 뜻과는 달리 성전 수리가 전 국민적 운동이 되지 못하고 매우 소극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당시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포로 시대 이후에 성전을 복구하기 위한 제사장들의 열의와 비교해 보면 당시 성직자들의 상태가 어떠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대하 24:5). 한편 본절에 나타난 '아는 자'란 히브리어 '마카르'(*)로서 '친족'에서 유래한 말인데 '상인'(merchant), 또는 '매매자'라는 의미도 지닌다. 아마도 이들은 후일 성전에서 직업적으로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마 21:12)의 효시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 퇴락한 것. -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 왕 때(B.C. 959년; 왕상 6:38) 지어진 것으로 당시를 요아스 왕 때(B.C. 835-796)의 초기로 보더라도
그것은 약 130년, 혹은 140년 정도가 된 것이다(Keil & Delitzsch). 그 뿐만 아니라 성전은 아달랴의 아들들에 의해 심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보수할
곳은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대하 24:7).
성 경: [왕하12:6]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성전 수리를 명하는 요아스]
(주); 이십 삼 년에 이르도록...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 이토록 성전 수축이 지연된 원인은 에 가지로 생각될 수 있다. 1) 헌금이 너무 적게
들어왔다. 그러나 이 원인은 제 2성전 수축안에 의해 성전이 쉽게 수리된 것으로 보아 헌금의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타당하지 않다. 2) 제사장들이
헌금을 거두는 데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도 타당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4절에 언급된 헌금은 제사장들이 힘들여 거두어 들인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왕이 바뀌어 성중이 평온해졌으므로 백성들이 자발적인 헌금이 많았을 것이다. 3) 바쳐진 헌금을 제사장들이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이 원인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 즉 제 2성전 수축 명령을 받은 제사장들이 '성전에 드려진 그 은으로 전의 은대접이나 불집개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 그릇이나 은 그릇이나 만들지 않았다'는(13절) 말은 그것들이 첫 성전 수축 명령때에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4) 지금까지 우상 숭배로 피폐해진 제사장들이 그 헌금을 자신의 생계 수단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B hr, Rawilnson). 그래서 요아스
왕은 제사장들의 생활을 위해 먼저 배려를 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어떤 책망도 하지 않고 성전 수리를 위하여 일꾼을 쓰게 하고 새롭게
헌금을 하도록 종용한 것이다. 어쨌든 제사장들이 성전 수축을 지연시킨 것은 그 일에 대한 사명감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데 근본 원인이 있다
하겠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사명감이 결여된 자는 하나님의 일을 바로 수행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일할 자를 뽑을 때에는
반드시 확고한 사명감을 가진 자를 선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딤전 3:1; 4:15).한편, 13:1을 보면 요아스 왕 23년은 이스라엘 왕조가 바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였다. 그런데 요아스 왕이 성전 수리를 명령한 것이 언제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그 일을
지지부진 했고 또 왕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같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에 변화가 일어나던 그 해에 요아스 왕은 다시 어떤 영적인 각성을
촉구할 만한 책임을 직감하고 성전 수리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성 경: [왕하12:7,8]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성전 수리를 명하는 요아스]
(주); 대제사장 여호야다. - 여호야다 당시에는 '대제사장'이라는 직명이 없었으며 제사(祭司)와 제사장 구별만 있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이 용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주); 저희로...드리게 하라. - 헌금하는 사람이 직접, 지금으로 말한다면 성전 수리 위원회 같은 데 드리도록 하고 제사장은 이에 관여하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주); 너희 아는 사람들 - 은 제사장들이 수금하는 지역에 해당하는 수금 대상자들을 가리킨다. 왕은 성전 수축 계획이 지연되었기 때문에 제 2의
성전 수축 계획을 수정 발표하고 이를 강행했다. 재원은 이전과 같으나 재정 관리 방법과 책임자를 달리했다.1) 성전 수리와 관계된 헌금은
제사장들이 받지 못한다. 2) 성전 수리 책임을 제사장들에게 지우지 않는다. 3) 성전을 수리하는 자들에게 직접 지불하도록 명령했다(11절). 한편
8절의 '응락하니라'라는 말의 원어는 '오다', '나타난다'라는 의미로서 '동의하다'는 뜻이 파생된 말이다. 즉 이는 입술로 만의 승락이 아니라
지적인 판단에 이해 행동으로서 동의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 경: [왕하12:9]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수리되는 성전]
(주); 한 궤를 취하여. - 이 궤의 용도에 대하여 본절에서는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으나 아마 은을 거두어 들이는 데 사용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은을 달아서 돈대신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절에 나타난 궤는 아마도 역사상 최초의 '헌금궤'라고 할 수 있다. 이 헌금궤 규례는 예수의 시대까지도 존속되었다. 그런데 이 헌금궤를 지키는 책임은 성전문을 지키는 제사장이 졌다. 한편 이스라엘에서 은 대신 동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포로시대 이후부터였다(스 2:69, H. Hamburger, "Money",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Vol. 3,p.423-435).
(주); 여호와의 전문 어귀 우편 곧 단 옆에 두매. - 여기서 말하는 '단'은 바로 '번제단'을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의 히브리 원문을 직역해
보면 '성전에 들어갈 때에 오른 편에 있는 제단 가까이에 두매'가 된다. 그런데 대하 24:8에는 그 궤를 성전문밖에 두었다고 했다. 즉 역대서에는
'밖'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후차'(*)를 사용함으로 본절과는 다른 장소를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해서 그 궤가
처음에는 단옆에 놓였다가 나중에는 편의상 문 밖으로 옮겨졌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Wycliffe). 그러나 이 두 기록을 종합해 보면 이
헌금궤가 놓인 위치는 성전 안뜰 번제단 근처, 즉 성전의 현관 밖 오른 편이다(B hr,Rawilnson).
성 경: [왕하12:10]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수리되는 성전]
(주); 왕의 서기. - 왕의 서기에 관해서는 22장에서도 언급되어 있다. 즉 서기는 왕을 도와 대리 임무를 수행하는 비서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18:18; 대상 27:32) 문서를 기록하거나 전리품을 셈하여 정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한편 성전을 수리하기 위한 헌금을 계수하는 데에 왕의 서기가 등장한 것은 요아스 왕이 직접 성전수리 사역에 관여하고 있었음을 가리킨다. 한편 본절의 서기에 대해 '민간인 사무원'이라고 하는 혹자의 주장(B hr)에 대해서는 쉽게 납득을 하기가 힘들다.
(주); 대제사장. - 열왕기하에서는 '대제사장'이라는 명칭을 매우 드물게 사용했다(22:4,8; 23:4).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여호야다를 가리켜 '대제사장'이란 호칭을 쓴 적이 없기 때문에 본절의 언급은 더욱 이상하게 보인다. 따라서 '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가돌'(*)은 그 사람의 직업적인 위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의 인품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Hobbs). 그래서 '가돌'(*)이라는 단어는 4:8에서와 같이 수넴 여인을 가리키는 '귀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 대제사장이라는 용어는 점차 사라지고 그 이후로부터는 단순히 '제사장'이라는 호칭이 쓰였는데 이것은 왕권의 강화로 제사장의 권세가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제사장의 권세가 다소 회복되었던 왕국시대 후기에서부터는 다시 '대제사장'이라는 호칭이 쓰였다(Rawilnson).
(주); 그 은을 계수하여 봉하고. - '봉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추르'(*)로서 '속박하다', '포위하다', '동여매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는 '자루에 넣어 묶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원문을 직역해 보면 이것은 '봉하여 계수하고'가 된다. 그런데 이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때
순서가 바뀐 것처럼 생각된다. 즉 은을 계산할 때 먼저 자루를 봉하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먼저 은의 일정한 양을 자루에 넣은 뒤
그 무게를 저울에 달므로써 계산했었다(5:23). 그렇기 때문에 벌게이트(Vulgate)역의 해석을 보면 먼저 자루에 넣어 묶은 뒤에 계산한 것으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은은 하나하나의 낱개로 계산하지 않고 그 무게로 값을 측정했기 대문이다(Keil). 따라서 '...은을 쏟아 내어 세었다'라고 번역한
공동 번역은 다소 부정확한 것이다.
성 경: [왕하12:11]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수리되는 성전]
(주); 맡은 자의 손에 붙이면. - 여기서 '손'(*, 야드)은 '권력'이나 '책임'의 상징적 표현이다. 따라서 '맡은 자'란 곧 성전 수리 공사를 총괄하는
'감독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본절을 통해서 우리는 요아스 왕이 따로 궤를 만들게 한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성전 수리를 위해
내는 돈과 제사장들의 생계를 위해 내는 의무적인 돈을 섞이지 않도록 구분짓기 위해서였다. 4절에 언급된 세 가지 세금 징수는 엄격히 말하면
제사장들을 위한 세금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 성전 수리 비용을 제사장들이 생계 비용으로 많이 사용해서 성전 수리는 등한히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성전 수리 만을 위해 그 궤 속에 있는 은이 사용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역대하 34:12에 의하면 이
감독은 레위인들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성 경: [왕하12:12]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수리되는 성전]
(주); 미장이. - 문자적으로는 집을 지을 때 벽 따위에 흙이나 시멘트를 바르는 일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건축하는 사람들의 지시에 의해서 실제적으로 작업하는 인부를 가리킨다(KJV, NIV, RSV, masons).
(주); 석수. - 채석장(採石場)에서 돌을 캐내는 사람이 아니라 돌을 다듬고 깎는 일을 하는 기술자를 가리키는 말이다(KJV, hewers of stone; NIV,
stonecutters; LivingBible, quarryman). 한편 역대서에서는 '철공장'과 '놋공장'도 더불어 언급함으로 인해 성전의 구석 구석을 수리해야 함을
나타내고 있다(대하 24:12).
성 경: [왕하12:13]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수리되는 성전]
본절과 대하 24:14절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본절에서는 성전 수리를 목적으로 드려진 은으로 여호와의 전에 쓰이는 성기(聖器)를 마들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역대기에서는 그 기구들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하 24:14절은 실제로 본장 16절 이후에 해당되는 기사로서 성전 수리를 다 마치고 난 이후에 전의 성기(聖器)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절은 성전 수리 작업을 하는 도중에는 은을 다른 곳에 쓰지 못하게 하였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성전에 쓰이는 기구들에 대한 자세한 목록은 왕상 7:50에 나타나 있다. 한편 당시에는 성전 건물 자체도 매우 퇴락했지만 그 안에 있는 각정 집기들도 많이 없어졌던 것 같다. 사실 성전의 각종 귀금속들은 약탈당하거나 강대국에 조공으로 바쳐지곤 했다(18절; 왕상 14:26; 15:18). 그러나 성전수리 중에는 이렇게 없어진 기명들을 만드는데에 관심을 우선적으로 성전 수리를 완수하는 데에만 모든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만큼 성전 수리 작업이 중요했음을 반증한다. 그렇지만 성전 수리 작업이 완수되자 남은 돈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기명들을 만들었다(대하 24:14). 그러므로 본장과 대하 24장의 내용 간에는 하등의 모순이 있을 수 없다.
(주); 은대접. - 이것은 예배시에 직접 사용했던 그릇이다(출 12:22).
(주); 불집게 - 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으나 제사용 도구로서는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25:14; 렘 52:18).
(주); 주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즈라코트'(*)는 '뿌리다'라는 뜻의 '자라크'(*)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런데 이 도구는 불을 옮길때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출 27:3).
성 경: [왕하12:14,15]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수리되는 성전]
(주); 회개치 아니하였으니. - 여호와의 전을 맡은 자(11절), 즉 감독자는 거두어들인 모든 은을 일꾼들의 임금과 성전 수리비로 마음껏 사용했다.
그러나 그가 성실히 일했기 때문에 따로 회계할 필요가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믿음과 신뢰를 그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사회도 이러한 상호 신뢰로 그 기반을 다질 때 정직한 사회, 서로 아끼고 이해하는 사회가 된다. 이는 곧 하나님 나라의 한면을 보여준
듯하다(눅 17:20, 21). 한편 15절에 나타난 '회계하다'란 말은 히브리어 '하쉐브'(*)를 번역한 말인데 그 의미는 '생각하다', '고려하다',
'평가하다', '계산하다', '찾아내다'이다. 이는 은의 쓰임, 용도에 대해 회계할 때 하나도 남김없이 세세하게 검토하는 것을 가리킨다.
성 경: [왕하12:16]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수리되는 성전]
(주);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 - 이러한 본절의 기록을 보아 1차 성전 보수 때의 실패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을 해결한 듯하다. 즉 처음의 보수
때에는 제사장의 생활 문제에 대해 제도적으로 이를 뒷바침하지 않았으나 2차 때에는 이를 보완한 것 같다. 왜냐하면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오직 제사장에게 돌려져 그들의 생활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속건제에 관한 레 5:15-19의 기록을 보면 범죄한 자들이 '속건제'를 드릴
때 1)어떤 지정된 가치에 따라 제물을 드렸다. 즉, 여호와의 성물 또는 금령을 범한 자는 '흠 없는 수양 또는 은'을 드려야 했으며, 이웃에 대해
범죄한 자 또한 흠 없는 수양을 드려야 했다. 2) 범죄한 그 사람에 대하여 반드시 의무적으로 변상해 주어야 하며, 3) 제사장들에게 바칠 세금으로
배상 가격의 1/5을 바쳤다. 그런데 만일 당사자가 죽게 되면 그 친족들에게 보상하거나 제사장에게 하도록 되어 있다(민5:6-8). 한편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은 속죄제에 대한 속전(the atonement money)을 받게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혹자는 이 속전이 1) 이미 속죄된 것과 유사한 실수를 범한
경우에 드리는 돈이며, 2) 희생물에 대한 세금이며, 3) 희생 대신에 드리는 보상이라고 설명한다(De Vaux Ancient Israel, Vol, 1, p. 429-430).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세금이 징수되었다는 기록은 성서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Hobbs), 많은 학자들은 제사장들의 수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자원하여 헌금을 바쳤을 것이라고 본다(Keil,B hr, Rawilnson). 그런데 속죄제는 고의성이 없이 하나님 앞에 지은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으로
집단적인 것은 매절기 때마다 드렸고 (레 4:13, 14). 개인적인 것은 필요에 따라 제사를 드렸다(레 4:27, 28, 31).
성 경: [왕하12:17]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아람 왕 하사엘의 침입]
(주); 때에. - 이것은 16절과 17절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역대의 기록을 보면 본장에 기록된 사건 이외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죽음과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사망 이후 아세라 숭배를 허락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대하 24:15-18).그리고 또 여호야다에 이어 제사장이 된 스가랴를 요아스왕이 돌로 쳐서 죽이게 한 사건도 기록되어 있다(대하 24:20-22). 따라서 본절에 기록된 아람왕 하사엘의 침입은 요아스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볼 수 있다(대하 24:24).
(주); 하사엘이 올라와서. - 유다와 아람은 최근에 들어 서로 침략하고 공격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이 유다와 아람의 세력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다(Rawilnson). 그러나 하사엘이 유다를 공격한 것은 아람의 영토 확장 정책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사엘이 유다를 공격할 때에는 앗수르의 살만에셀 3세(B.C. 859-824)가 다메섹을 두 번째 공격하고 난 이후(B.C. 840-837)인 것이다. 그리고 이 침공은 10:32, 33에 기록된대로 북이스라엘에 대한 공격과는 직접 관련된 사건이다. 즉 하사엘은 자기 나라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하여 서진(西進) 정책을 폈으며 이로 인하여 북이스라엘과 유다는 다함께 심각한 경제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군사적 위기에 처하게된 것이다. 한편 대하 24:23에 따르면 하사엘이 유다를 공격한 시기가 요아스 왕이 성전 수리를 기념하는 1주년 후였음을 알 수 있다.
(주); 가드를 쳐서 취하고. - 가드(Gath)는 현재 '텔에스-사피'(Tell es-Safi)나 또는 '텔쉐이크-엘 아레이니'(Tell Sheikh el Areini)에 해당되는 곳으로서(R. A. S.Macalister, B. Mazar) 예루살렘의 남서쪽 약 30km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성경에서의 '가드'는 본래 불레셋의 주요한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였으며(삼상 6:17) 초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Stinespring, Interpreter'sDictionary of the Bible, Vol. 2, p.355-356). 그 뿐만 아니라 이 성읍은 기름진 해안 평야(블레셋 평야)의 일부로서 르호보암 시대에 유다를 방비하는 성읍들 가운데 하나에 속하는 요새이기도 했다(대하 11:8).
(주);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고자 한 고로. - 아람의 변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유다의 남방에 있는 가드(Gath)를 하사엘이 먼저
침략한 것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다. 그러나 하사엘의 편에서 볼 때 물질적인 소득과는 별개의 문제로 가드의 후방에서 예루살렘을 제거하는 것은
전략상 상당히 유익한 것이다. 한편 가드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적어도 약 64km 이상 떨어진 먼 곳이었기 때문에 하사엘이 예루살렘을 치러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성 경: [왕하12:18]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아람 왕 하사엘의 침입]
대하 24:24에는 아람의 적은 구대에 의해 유다의 많은 숫자가 대패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큰 패전 때문에 요아스는 자기 조상 때부터 성물(聖物)로 여호와의 전에 바쳤던 모든 보물을 하사엘에게 내어 주게 된 것이다. 본문의 17절과 18절을 얼핏보기에는 가드를 빼앗김으로 인해 요아스가 싸움도 하지 않고 보물을 다 내어준 것처럼 보이나 대하 24:24에서는 큰 참패 이후에 그렇게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대하 24:23). 이러한 이유로 인해 본문의 내용과 역대하 24장과는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혹자는 이 두 기사가 서로 다른 전쟁을 언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Thenius). 그러나 이 견해는 전혀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두 기사는 조화될수 있다. 왜냐하면 역대하의 기록은 단지 좀 더 자세히 기록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역대기에서는 하사엘의 침략을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사후에 바알을 숭배하고 심지어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인 데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해석했다(대하 24:23, 24). 그러나 본문은 여호야다가 죽은 후 요시야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으로 어려움을 해결했던 잘못을 지적하는 차원에서 기록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요시야의 사역을 설명하기 앞서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는 단서를 붙였다(2절). 어쨌든 요아스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왕실과 성전의 재정이 거의 바닥날 지경에까지 처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품을 떠나 방황하는 자가 고통받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가 하나님 앞으로 속히 돌아올 수 있도록 권면해야 한다(왕상14:1-20). 한편 이 싸움에서 요아스가 큰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이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반영해 준다(대하 24:25).
(주);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 이 왕들은 바알을 숭배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 대한 예배를 철폐시키지도 않았다. 그래서 백성들과 권위있는 제사장들과의 공개적인 충돌을 피하였던 것이다(B hr). 그 뿐만 아니라 종교를 혼합적인 것으로 만들어 여호와의 성전에까지 예물을 드리는 일도 했던 것이다(Rawilnson).
(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취하여. - 요아스는 유다의 3대 왕인 아사가 아람 왕 벤하닷에게 조공을 주어 전쟁을 피한 일(왕상 15:18),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셋에게 뇌물을 주고 항복한 일(16:8),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산헤립에게 보물을 주고 전쟁을 협상한 사건(18:15)과 같은 방법으로 전쟁을 끝마친다.
(주); 보내었더니. -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쉐라흐'(*)는 '보내 버리다', '포기하고 내주다'란 의미이다. 이는 곧 요아스가 아람 왕
하사엘에게 왕궁의 보물을 준 사건이 기쁨에 의해서가 아니라 억지로 내어 주었음을 반영한 용어이다.
성 경: [왕하12:20]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요아스의 최후]
(주);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서. - 본문에서는 요아스의 신복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이 단지 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만 되어 있다. 그러나 대하 24:24-27에는 요아스의 신복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와 경위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기 기록은 신학적인 이유로서의 설명은 될 수 있으나 반란의 정치적인 동기는 제공해 주지 않는다.
(주); 실라로 내려가는 길 가. - 어떤 주석가들도 여기에 언급된 '실라'에 대해서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실라'라는 용어가 지명인지, 혹은 거리를 나타내는 말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자는 대부분의 고대 역자들이 이 단어를 단순히 특수한 명사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한다(B hr). 그러나 그 정확한 의미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한편 또다른 혹자는 이를 '거리'라고 추측하고(Grotius, Thenius), 다른 학자들은 '경사지'라고 판단하나(Ewald) 이를 뒷바침할 만한 근거는 미약하다.
(주); 밀로 궁에서 저를 죽였고. - 요아스가 어디서 죽임을 당하였는지 그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대하 24:25). 본절에서
'밀로'(*)는 '채우다'라는 뜻의 '말라'(*)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이를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1) 이것은 기드론 골짜기를 끼고 있는
구릉지, 즉 오벧의 경사지에 만들어져 있는 계단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K. Kenyon, B. Mazar). 2) 이것은 다윗(삼하 5:9)과 솔로몬(왕상 9:15,
24)이 지은 요새로서 오벧의 북서쪽에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G.A. Barrois,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Vol. 3,p.
382-383). 한편 본절에서는 밀로 궁이 실라로 내려가는 길가에 위치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실라'에 관해 알려진 바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것이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데니우스(Thenius)와 같은 학자들은 '실라'가 현재의 다윗로에 해당하는 길이기 때문에 욥바문에서 하람 지역을
연결하는 경사진 곳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밀로'의 2) 번 해석과의 어떤 연관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성 경: [왕하12:21]
주제1: [요아스의 유다 통치]
주제2: [요아스의 최후]
(주);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과 소멜의 아들여호사바드. - 대하 24:26에는 두 모반자를 "시므앗의 아들 사밧과 시므릿의 아들 여호사밧"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본절과 역대서 사이에 나타난 기록의 차이점은 본절이 부친의 계보를 딴 이름인 반면에 역대기는 모친의 출신지에 따른 이름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Hobbs). 그리고 '앗'(-ath)이라는 이름의 어미는 앗수르나 아랍인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부쳐지던 것이다. 또한'시므릿'(대하 24:26)은 히브리어 '소멜'의 여성형인데 (Rawilnson), 이것은 당시의유 대사회에 국제적인 결혼이 성행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결혼 풍습은 요아스가 우상숭배를 허용하였기 때문에 더욱 성행하였을 것이다. 한편 본절의 병행구절인 대하 24:26에서 시므앗의 아들을 '사밧'이라고 한것은 히브리어 '자칼'(*)을 '자바'(*)으로 오기한 것으로 보인다(Wycliffe). 그리고 '사갈'은 '여호사갈'의 축약형이다.
(주); 저는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 대하 24:25에 의하면 요아스가 다윗성에 장사되긴 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라는 본절이 역대기의 기록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Thenius). 그러나 이것을 기록자의 관점 차이로
이해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즉 역대기는 보다 신학적인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왕하12:24]
주제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주제2: [희람의 도움을 요청한 솔로몬]
(주); 두로 - 원래 두로( Tyre)는 돌이 많은 섬이었으나 현재는 육지와 연결된 에이커(Acre)만 북쪽의 항구 도시이다. 당시 두로는 베니게의 수도였는데, 베니게는 도시 국가 형태를 취하고있었으므로, 수도인 두로가 종종 베니게(페니키아, 즉 레바논에 해당하는 지역)를 총칭(總稱)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곤 하였다. 이 지역을 '베니게'라는 명칭으로 부르기 시작한 때는 B.C.1200년 경부터이다. 한편, 이전에는 시돈(Sidon)이 두로보다 더 중요한 성읍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이 지역 주민들을 '시논 사람'(6절)으로 부르기도 하였다(Hammond). 아무튼 두로는 당시 주요 건축 자재인 백향목의 산지일 뿐만아니라 많은 숙련된 장인(匠人)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주); 히람 - 두로 왕 '히람'(*)의 이름은 원문의 10, 18절에서는 '히롬'(*)으로, 역대기에서는 '후람'(*)으로 조금씩 다르게 표기되었다. 그리고 요세푸스는 '해이로모스'(*)로 표기하였다. 어쨌든 이 왕은 삼하 5:11과 대하 2:3에서 보여지듯 선왕 다윗에게 건축 자재를 보내준 인물이다. 한편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성전 건축을 시작하던 해, 즉 솔로몬의 즉위 4년은 두로 왕 히람의 즉위 11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히람은 적어도 20년 이상을 솔로몬과 교류하였다(9:10). 따라서 히람은 그의 재위 기간이 다윗 시대 보다는 솔로몬 시대에보다 더 장기간(長期間) 일치했다고 볼 수 있다(B hr;9:10-14). 삼하 5:11 주석 참조.
(주); 그 심복을 솔로몬에게 보내었으니 - 두로 왕 히람이 그의 신복들을 보내게 된 계기는 솔로몬의 즉위 소식을 듣고서이다. 그러므로 여기의 '신복'은 새 왕을 승인하고 축하하기 위해 파견된 사절(使節)이다. 이러한 의미를 70인역과 수리아역은 각각 '신복들이 솔로몬을 기름 부어'와 '신복들이 솔로몬을 축복하고' 등으로 옳김으로써 잘 나타내 준다. 한편 두로와 이스라엘의 우호 관계는 후대에까지 게속되리 만치 밀접한 것이었다(행 12:20). 그 주요한 이유는 좁은 해안 지대인 두로는 경작지가 충분치 못함으로 해서 이스라엘에 곡물 수입을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Hammond). 이러한 사실은 9, 11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주); 평일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 - '평일에'의 '콜 하야밈'(*)은 '모든 날에'란 뜻이다. 이것은 다윗과 히람이 각각 왕으로 통치하는 기간 동안
서로 친구로서 항상 우호 관계 속에서 지냈음을 의미한다(Keil). 처음 히람이 건축 자재와 일꾼들을 보내 다윗과 우호 관계를 맺게 되자 다윗은 그
일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였었다(삼하 5:11, 12).
성 경: [왕하13:1]
주제1: [여호아하스와 요아스의 이스라엘 통치]
주제2: [여호아하스의 행적]
(주); 요아스의 이십 삼 년에 - 본절에 기록된 연대기에서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1)북이스라엘의 예후가 28년간 통치하고 죽은 것이 요아스의
23년에 해당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후의 제 7년에 유다의 요아스가 즉위했고 예후는 28년간 통치했으므로 이때는 요아스의 21년이나
22년 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Keil). 그래서 요세푸스(Josephus)는 21년이 옳다고 주장한다. (2) 만일 이것이 옳다면 10절에 요아스의 37년은
이스라엘의 여호아하스가 17년간 통치한 (1절) 기간에 해당될 것이므로 10절의 연대기 문제와 12:1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23년을 고집하는 일부 학자들은 10절에 기록된 요아스의 37년을 39년으로 수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다(Thenius). 그 뿐만 아니라
70인역(Aldina 판)도 이 10절을 39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70인역(LXX)의 39년은 1절의 기록에 따른 일방적인 수정일 뿐 당시의 유다와
이스라엘의 연대기 기록 방법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적인 주장이다(Keil, B hr). 한편 본절에서 요아스 23년이라고 기록한
것은 필경 사의 착오에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B hr). 그래서 혹자는 이 구절을 갖고 즉위 연대를 계산하지 않은 연대 계산법을 채용한 불분명한
것이라고 한다(Wycliffe).
성 경: [왕하14:1]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아마샤의 초기 행적]
(주); 요아스 이 년에. - 본절에서도 13:1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연대기 문제가 학자들 간에 빈번히 제기되고 있다. 즉 북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는 유다 왕 요아스의 37년에 왕위에 올랐다(13:10). 그렇다면 유다 왕 요아스가 40년간 통치하였으므로(12:1)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는
최소한 북이스라엘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의제 4년 또는 5년 이후에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본절에는 이를 요아스 2년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학자들 간에는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중복되는 2-3년 간은 유다의 요아스와 그의 아들 아마샤의 공동
섭경 기간이라는 것이다(Hobbs, Gray). 그러나 이것은 전체 문맥에 대한 설명에서는 용이하지만 분명한 성서적 근거, 혹은 역사적 기록이 없으므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2) 유다 왕 요아스의 통치 기간은 실제로 만 39년이며 40년 초에 죽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요아스는 유다 왕 요아스의
37년 후반에 왕위에 즉위하였다. 즉 이것은 왕의 즉위가 니산월(가나안식 옛 이름은 아빕월, 종교적으로는 제 1월) 한 두 달 전에 있었고 볼 때 그
한 두 달을 1년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나는 것이다(Keil &Delitzsch, Vol. 3, p. 379). 이렇게 본다면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위에
오른 것은 이스라엘의 요아스 제 2년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후반기 연대가 이렇게 많은 혼란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이 전반기의 연대 계산법과는 후반기의 연대 계산법이 상당히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본다(E. R. Thile,Mysterious Number, p.
103-124).
성 경: [왕하14:2]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아마샤의 초기 행적]
(주); 여호앗단. - 요세푸스(Josephus)는 이를 '요다데'(Jodade)로 부르나 70인역(LXX)에서는 이보다 더욱 정확하게 '요다딤'(Joadim)으로
지칭한다(Rawilnson). 그런데 이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기쁨'이라는 의미이다.
성 경: [왕하14:3]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아마샤의 초기 행적]
(주); 그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 역대기에는 이 부분을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였더라'(대하 25:2)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아마샤 이전의 유다 왕들 가운데 '다윗과 같이'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였다는 칭찬을 받은 왕은 단지 3대 왕 '아사'뿐이었다(왕상 15:11). 한편 아마샤는 비록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지만 여러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던 것이다. 즉 그는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말년에는 우상 숭배에 빠지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앙 생활에서 '적당주의'는 통용될 수 없는 것이다(계 3;15).
(주); 그 부친 요아스의 행한 대로. - 아마샤와 그의 부친 요아스가 행한 행위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1) 둘 다 처음에는 여호와께 열심이었다.
2) 그러나 나중에는 우상을 숭배하였다(대하 24:18; 25:14). 3) 양자 모두 선지자들의 경책을 거부하였다(대하24:19; 25:16). 4) 그리고 두 사람
공히 모반자들에 의해 피살당했다(19절; 12:21).5) 또한 둘 다 적군에게 성전의 많은 보물들을 내주었다(14절; 12:18).
성 경: [왕하14:4]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아마샤의 초기 행적]
본절의 주석에 관해서는 12:3의 주석을 참고 하라.
성 경: [왕하14:5]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아마샤의 초기 행적]
(주); 나라가 그 손에 곧게 서매. - 이 말은 다음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1) 왕상2:46에서 솔로몬의 번영기에 쓰였던 것처럼 정권이
확립되었음을 의미한다(15:19;Rawilnson, Keil & Delitzsch). 아마샤는 집권 초기에 부친 요아스를 암살한 세력(12:20, 21)에 의해 여러가지로
방해를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해 정권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아마샤의 통치권
확립과 더불어 국력이 신장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실 유다는 아하시야(8:25-29;9:27, 28; 10:12-14)와 악녀 아달랴의 집권(11:1-3), 아람 왕
하사엘의 공격(12:17,18; 대하 24:23, 24) 등으로 약해질 대로 약해졌었다. 그러나 아마샤는 에돔과 싸워 대승을 거둠으로 국력 신장의 계기를 잡은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본절 전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1) 아마샤의 부친친 요아스가 죽은 후 어떠한 혼란기가
있었다(12:19-21)는 사실을 함축한다. 실로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정권의 교체가 이뤄질 때는 언제나 혼란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부왕(父王)이 살해되었기 때문에 그 혼란은 더욱 심각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본절에서도 그러한 혼란기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2) 요아스를
살해한 자들과 모반자들은 아마샤가 제거하기 이전까지도 여전히 어떤 주요 관직에 있었음을 가리킨다. 즉 그 모반자들은 요아스의 행위에 대한
복수나 나라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 모반을 한 것이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정권욕에 의한 것이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비록 역대기 기자의
관점으로 볼 때에는 요아스가 여호야단의 아들을 죽인 그 피로 인하여 암살을 당한 것이지만(대하24:25) 본서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모반이 순수한 목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 경: [왕하14:6]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아마샤의 초기 행적]
(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 본절은 신 24:16을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그 성경구절의 내용은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출 20:5)라는 말씀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수 7:1-26과 왕하 9:26에서와 같이 아비의 죄로 인하여
자식들이 죽임을 당한 경우와도 엄격히 상치(相馳)된다. 이것은 본서 기자가 신명기를 얼마나 존중했는가를 보여줌과 더불어 신명기
후기비평주의자들의 주장(Riehm)을 뒤집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본절의 기록은요시야 왕이 신명기서를 발견하기 약 200년 전의 것이기에
신명기서가 요시야 왕에 의한 편집이거나 포로시대 이후의 편집이라고 하는 그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때문이다(Rawilnson). 한편 고대
동양의 전례에 의하면 반역자를 사형에 처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자식들까지도 죽였다(Wycliffe).
성 경: [왕하14:7]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아마샤의 초기 행적]
(주); 염곡에서. - 염곡은 '소금 골짜기'란 뜻인데 그 위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두 견해가 있다. 1) 오늘날의 '나할 말타'(Nahel Malhata)로서 네게브 사막에 위치한 아랏(Arad)의 남쪽 지역이다. 그런데 이 곳에서 아마샤 왕이 에돔 사람을 격퇴시켰다는 것이다(Y. Aharoni,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2) 남아라비의 사해 바다 남쪽 지역으로서 페드라 서쪽 약 30km 지점에 있는 '아일 밀흐'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이 오늘날의 '에스 삽카'(Es Sabkah)일 것이라는 견해이다. 그런데 이 두 견해 중에서 후자에 언급된 '에스 삽카'는 '카슴 우스툼'(Khasm Usdum)이라는 소금으로 된 능선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염곡'이라는 히브리어 명칭이 썩 잘 어울린다(Rawilnson).그러나 역시 '염곡'이라는 명칭에 정관사가 없어서 그 위치는 불분명하기만 하다. 한편 다윗은 바로 이곳에서 에돔과 싸운 적이 있는데(삼하 8:13) 그 싸움 이후로 에돔은 이 곳에 요새를 만들었다(Hobbs).
(주); 셀라를 쳐서. -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셀라'(*) 앞에 관사가 붙어 있는것으로 보아 이곳이 에돔의 수도를 가리키는 별칭인 것같다(Keil, Rawilnson). 그런데 70인역(LXX)에서는 이곳을 오늘날의 '페트라'(Patra) 또는 '움바야라'(umm-Bayyara)로 보고 있다(S. Cohen,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Vol. 4 p. 262-263).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셀라'는 '부세일'(Buseir)의 북서쪽에 위치한 오늘날의'에스 셀라'(es-Sela)인 것으로 밝혀졌다(A. F. Rainey). 그리고 이 곳은 '바위'라는 의미의 지명(地名)으로 아라바 광야에서 에돔의 서쪽으로 통하는 좋은 길목이 된다. 한편 본구절과 평행 구절인 대하 25:11, 12에서는 아마샤의 군대가 포로 10,000명을 이 바위 꼭대기에서 밀어 떨어뜨려 죽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 이 지명(地名)은 '하나님에 의해 정복되다'란 의미로 일찍이 수 15:38에서 언급되었으나 여기서 언급한 지명의 위치와는 완전히 다르다. 왜냐햐면 '셀라'는 여전히 이사야(사 16:1), 오바댜(옵 3절), 예레미야(렘 49:16) 등의 선지자에 의해서 셀라로 나오는 반면 수 15:38의 '욕드엘'은 라가스 근처로 유다 족속의땅이기 때문이다. 한편 에돔은 에서가 그 조상으로서(창 36:9) 다윗의 지배를 받던 나라이다(삼하 8:13, 14). 그런데 이 에돔은 이스라엘의 요람 왕 때 유다로부터 독립하였다(8:20-22). 아마 에돔은 아람 왕 하사엘이 유다를 괴롭히는 틈을 타(12:7, 18) 유다의 남쪽 변방 지역을 조금씩 차지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유다의 아마샤는 이 지역으로부터 에돔을 몰아내고 아라바 지역으로 부터의 접근을 막았던 것이다(Hobbs,Word Biblical Commentary, Vol. 13, p. 179-180).
(주);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 이 말은 본서의 저자가 기록할 당시까지 그러한 상황을 계속적으로 유지했다는 뜻이다. 즉 이 표현은 본서의 저자가
참고한 원사료(原史料)에 나타나 있던 것이 아니라 저자가 본서를 기록하면서 첨가한 말이다(B hr, Rawilnson).
성 경: [왕하14:8]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요아스에게 패하는 아마샤]
(주); 아마샤가...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어. - 대하25:13을 보면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러한 도전장을 보낸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즉 그 이유는 에돔과의 전쟁때 고용되었다가 돌려보내진 이스라엘 군사들의 적대적인 행위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외적인 이유에 지나지 않고(Keil & Delitzsch) 내적 이유는 아마야가 교만해졌기 때문이다(Wycliffe). 이러한 사실은 아합 이후 이스라엘보다 군사력에 있어서 열세에 있던 유다가 에돔과의 승리로 인하여 아마샤가 교만해졌음을 암시하고 있는(10절) 본문을 통해서 더욱 증명된다.
(주); 오라 우리가 서로 대변하자. - 문자적으로는 '낯과 낯을 마주 대하자'라는 의미로 선전 포고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다. 아합 이후 유다는
계속해서 북이스라엘의 기세에 눌려 지냈는데 이제 아마샤는 요아스에게 정식으로 같은 지위에서 지내자고 도전한 것이다. 그러나 아마샤는 단순히
정치적인 담화를 원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군사적인 충돌을 피할려고 했던 것 같다(대하25:17).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은
그것을 정식 선전 포고로 받아들였던 것이다(Hobbs).
성 경: [왕하14:9]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요아스에게 패하는 아마샤]
본절에 나오는 우화는 과거 요담이 세겜 사람들에게 말한 우화와 아주 비슷하다(삿9:7-15). 그런데 일반적으로 비유나 우화는 일상 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재를 취하여 교훈적인 내용을 풍자적으로 간단하고 명료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문학의 한 표현 형태이다. 한편 여기서 가시나무는
유다를, 백향목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그런데 가시나무가 갑자기 교만해져서 백향목에게 딸을 달라고 하는 요구는 당시 동등한 신분간이라야
성사될 수 있었던 결혼 풍습에 비추어 볼 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가시나무'는 비천한 신분,
불신앙(사32:13-15), 심판(호2:6), 고난(잠26:9)을, '백향목'은 의인의 번영(시92:12), 아름다움(아1:17)을 상징하기 때문이다(왕상5:9-11). 그리고
우연히 지나가던 레바논의 들짐승들에게 이 가시나무가 짓밟히고 말았는데 이것은 가시나무인 유다가 백향목인 북이스라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심판을 받아 멸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러한 요아스의 비유가 유다의 아마샤의 비위를 매우 상하게 했을 것이다.
성 경: [왕하14:10]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요아스에게 패하는 아마샤]
본절은 유다가 가시나무와 같이 교만하게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마샤의 도전을 순전히 그의 교만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의 군사들이 유다 성읍을 엄습하고 3천명의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노략한 것(대하25:13)에 대한 일언 반구(一言半句)의 사과도 없는 요아스의 태도에 대해 아마샤는 더욱 분개하였음이 틀림없다. 한편 본절에게 '마음이 교만하였으니'라는 말은 '네 마음이 너를 치켜 올렸다'라는 의미로 교만케 된 아마샤의 심적 태도를 잘 나타내준다.
(주); 스스로 영광을 삼아. - 문자적으로는 '영광을 받아라', 혹은 '그 영광으로 만족하라'는 의미이다. 이는 '네가 에돔으로부터 얻은 명성으로 만족하라'(Keil & Delitzsc-h), 또는 '네가 얻은 것으로 자랑을 하고 다른 것으로 위험을 부르지 말라(Rawilnson)는 것이다.
(주); 화를 자취하여. - 문자적으로는 '당신은 어찌하여 불행을 초래하려고 하는가!', 혹은 '고통이나 전쟁에 끼어들려고 하는가!'이다.
성 경: [왕하14:11]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요아스에게 패하는 아마샤]
(주);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므로. - 화해적인 의미가 아니라 도발적인 의도를 내포한 듯한, 그리고 아마샤를 우롱하는 듯한 소식을 들은 아마샤가 요아스의 경고를 들었을리가 만무하다.
(주); 요아스가 올라와서. - 아마샤의 선전 포고를 들은 북왕국의 요아스는 아마샤가 공격해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B hr) 오히려 남왕국으로 군사를 이끌고 가서 그곳에서 전쟁을 시작했다. 한편 본절에서 '올라갔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어근 '아라'(*)를 번역한 것으로 '오르다','출발하다','깨어나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요아스의 군사가 행군한 지리적 상황을 반영함과 동시에 요아스가 먼저 진영을 갖춰 출발했음을 반영한 말이다.
(주); 벧세메스. - 수19:38에 의하면 벧세메스는 유다 땅으로 '태양의 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땅은 예루살렘 서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헤브론에서 욥바로 가는 도로상에 있다. 그리고 이곳은 오늘날의 '아인 셈스'(Ain Shems)와 동일한 곳이다. 한편 요아스가 이 곳으로 올라간 것은
전략적으로 매우 유리한 장소였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직접적으로 공격하기에 매우 험난하고 힘든 곳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벧세메스의 고지와 부근에 있는 소렉(Sorek)계곡은 유다의 중심부를 치는데 매우 유리한 위치가 되기 때문이다(Hobbs). 한편, 이곳은 납달리
자손들에게 할당된 성읍이다(수19:38).
성 경: [왕하14:12]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요아스에게 패하는 아마샤]
(주); 유다가...패하여. - 대하25:20에 의하면 아마샤가 패한 것은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다.
(주);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 문자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그 장막으로 도망했다'란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군대가 패배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역사서의 전형적인 표현이다(삼상4:10; 삼하18:17; 왕하8:21). 이 전쟁은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진 이후(B.C.931;왕상11:43-12:20) 처음으로 발생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간의 전쟁이었다. 한편 베가와 아하스 시대에도 또 한번 이러한 전쟁을 치루었는데(대하28:6-8), 그 때에는 유다가 지금보다
훨씬 더 참패했었다.
성 경: [왕하14:13]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요아스에게 패하는 아마샤]
(주); 아마샤를 사로잡고. - 북왕국의 공격에 의해 아마샤의 군대가 모두 도망감으로 인해 아마샤는 요아스의 포로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후에 아마샤가 모반자들의 공격을 받게되는 중요한 한 요소가 된다(Hobbs).
(주);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 '에브라임 문'은 다른 말로 '베냐민 문'이라고 불리웠는데(렘37:13; 38:7; 슥14:10), 이 문은
예루살렘 성읍 북쪽에 위치해서 베냐민 지파나 에브라임 지파의 땅으로 통하는 통로가 되었다. 또한 '성 모퉁이 문'은 옛 성벽의 북서쪽 모퉁이에
위치하였는데(렘31:38; 슥14:10) '다마스커스 문'의 서쪽이 이에 해당된다(B hr, Rawilnson). 그 뿐만 아니라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해 언급된
'탑'이 놓여 있는 자리가 곧 '모퉁이 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 모퉁이 문은 후에 아사랴(웃시야)에 의해 더욱 견고하게 되었는데(대하26:9)
느12:38-43에서 언급된 성벽 보수 공사에서는 이상하게 이러한 사실이 언급되고 있지 않다. 또한 느헤미야서에서 보면 성벽에는 약 13개의 문이
있었으며(느3:1-31; 12:31-39; 슥14:10) 이쪽 문에서 저쪽의 다른 문까지는 보통180m-270m 정도였다고 한다(Rawilnson). 이것을 당시 수치로
표현하면 약400규빗이 된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 성벽은 후일 히스기야 왕에 의해 기존 성벽보다 조금 북쪽에 다시 건립되었다(대하32:5). 그래서
새로 건립된 성벽이 '제 2성벽'으로 불리고 있다. 또한 이 벽은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하여 다시 좀더 북쪽에 건립되었는데 이것을 '제
3성벽'이라고 칭한다(G. A. Smith). 한편 유다 역사가인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아마샤가 요아스에게 포위당함으로 인해서 유다 군대가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예루살렘 성문을 열어 주었는데 그 결과 이스라엘 군대에 의하여 이같이 비참한 약탈과 파괴를
당했다고 한다. 한편 요아스가 성을 헌 것은 성을 점령했다는 외형적인 표시로서 나타낸 것이다(B hr).
성 경: [왕하14:14]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요아스에게 패하는 아마샤]
본서의 기자는 아람 왕 하사엘이 유다 왕 요아스 시대에 성전 보물을 뇌물로 받아갔던 일(12:18)과 함께 북왕국 요아스가 성전 약탈을 한 사실을 중요한 주제로 부각시키고 있다.
(주); 볼모로 잡아가지고. - '볼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네 하타아르보트'(*)는 '교환하다', '담보로 주다'라는 뜻의 어근 '아라브'(*)에서
파생한 말로 문자적으로는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의 아들'(Vulgate, obsides)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러한 파생형 단어는 본절에서와 병행구인
대하25:24에서만 나타난다. 한편 요세푸스에 의하면 당시에는 포로된 왕을 놓아 주어 자유를 주는 대신 다른 많은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때에는 아마샤 왕을 놓아주지 않고 그를 볼모로 잡아갔다(13절). 그래서 아마샤는 여호아스(요아스)가 죽은 후 15년간 생존했고,
유다에 돌아와서 그 15년 동안을 다시 다스린 것이다(17절).
성 경: [왕하14:15,16]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요아스의 죽음]
이 구절들은 13:12,13절과 그 내용 뿐 아니라 서술 방법이 거의 일치한다. 한편 요아스의 죽음과 사적에 대한 기록이 두번씩 반복된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와 유다의 아마샤와의 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한것(17절)으로 보인다(B hr). 왜냐하면
17절에서 요아스의 죽음 후에 아마샤가 15년을 더 생존한 사실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 경: [왕하14:17,18]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아마샤의 최후]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 제 2년에 아마샤가 왕위에 올라(1절) 29년을 치리하였다(2절). 그리고 요아스는 사마리아에서 16년을 치리하였다(13:10)
때문에 아마샤는 요아스보다 15년을 더 산 셈이 된다. 따라서 본절에 나타난 연대기 문제는 정확한 것이다. 한편 아마샤의 나머지 행적에 관해서는
대하25장에서 에돔과의 전쟁, 우상 숭배, 그리고 선지자로부터 받은 경책 등을 더 기록하고 있다.
성 경: [왕하14:19]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아마샤의 최후]
(주); 무리가 저를 모반한 고로. - 본문 가운데는 무리가 일으킨 모반에 대한 원인이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혹자는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고 약탈당한 이후부터 아마샤가 죽기 이전까지 약 15년 동안 모반자들이 왕위를 빼앗은 뒤 이때 왕을 죽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문 속에서 이에 대한 분명한 근거가 전혀 없다. 한편 또 다른 학자는 모반의 원인이 당시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왕과 제사장들 간의 충돌에 있었다 고한다(R. de Vaux). 그러나 제사장들이 오히려 왕의 진노로 희생당한 예는 있으나 반대로 제사장들이 왕을 시해한 예는 없으므로 그러한 추측은 불가능하다. 한편 역대기 저자는 아마샤가 피살당한 것은 그가 '여호와를 버린' 때문이라고 한다(대하25:27). 그래서 어느 정도 후자의 견해를 지지하는 듯하다. 그러나 모반의 원인을 왕과 제사장들간의 충돌로 보기 보다는 오히려 아마샤의 패역과 배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B hr, Keil & Delitzsch, Vol. III, p.383).
(주);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 아마샤 왕이 라기스로 도망한 것은 그만큼 생명에 대한 위협을 여러 곳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기스는
오늘날의 '텔 엘 두웨일'(Tellel-Duweir)로서 예루살렘의 남서쪽 약 48km에 위치한 요새화된 성읍으로 유다에서 두번째로 큰 도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수12:11) 유다 지파에게 기업으로 준 지역이었다(수15:39). 한편 이곳이 요새화된 것은 르호보암 때로서 애굽인들을 대항하기
위해서였다(대하11:9). 따라서 왕은 이곳이 요새화된 성이기 때문에 모반자들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왕은 라기스 백성들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고(Wycliffe) 자객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성 경: [왕하14:20]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아마샤의 최후]
모반자들은 격식을 갖추어 아마샤 왕의 장례를 치루었던 것 같다(Hobbs). 왜냐하면 모반자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1)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가장하고, (2)백성들로부터의 비난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 말에 실어다가. - 히브리어 원문은 '그 말들 위에', 혹은 '말에 올려서'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아마샤가 라기스로 도망할 때 사용한 왕실 마차에 실어서 예루살렘에 왔음을 가리키는 것이다(Keil & Delitzsch, Rawilnson).
(주); 다윗 성. - 이곳은 족장 시대(당시에는 살렘으로 불리워짐)와 가나안 시대부터 있던(창14:18; 시76:2) 시온의 요새이다(삼하5:7). 이 성은 동쪽의 기드론 시내와 서쪽의 두로베온 계곡에 있는 급한 경사의 능선을 점유하면서 북쪽 힌놈 골짜기까지 닿아있다. 그런데 이 성은 다윗이 B.C.1003년에 여부스 족으로부터 빼앗아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다윗 왕국의 수도로 삼은 곳이다(삼하5:9). 그리고 이곳에 장지(葬地)도 마련해 놓고 있어서 다윗(왕상2:10)과 솔로몬(왕상11:43)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다 왕(대하12:16; 14:1; 16:14; 21:1등)과 귀인(貴人)들도 묻힌 곳이다(대하24:16).
(주); 장사하니라. - 근동 지방에서는 일반적으로 죽은 자를 사망 당일에 매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시체 처리 방법은 주위의 이방
민족들과는 매우 달랐는데 그 개괄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1)가족들이 시체에 입을 맞춤(창50:1). (2)시체를 물로 깨끗이 씻고 염을 함.
(3)시체를 정한 세마포로 운반함(삼하3:31; 눅7:14). 한편, 시체를 미이라로 만드는 방법과 시체를 불로 태워 화장하는 풍습을 유대인에게서는
대체적으로 찾아 볼 수가 없다.
성 경: [왕하14:21]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아마샤의 최후]
(주); 유다 온 백성이...왕을 삼으니. - 본절과 같이 왕이 옹립하는 데 유다 온 백성이 모두 관여했다는 표현은 매우 생소하다. 그렇게 때문에 학자들간에 '유다 온 백성'에 대한 해석을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한 여러 해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당시 온 백성이 떠들썩했음을 의미한다(Rawilnson). (2)유다의 전 백성이 환호했음을 뜻한다(Keil). (3)'유다 백성'은 유다의 모든 군대를 가리킨다는 것이다(Thenius,Hobbs). 그런데 왕을 시해한 모반자들이 하는 일에 온 백성이 동조했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1)과 (2)의 해석은 온당치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본절에 나타난 '온유다 백성'이라는 말은 '모반한 군대'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아마샤는 군대의 봉기로 폐위되고 아사랴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본절의 '아사랴로'가 히브리 원문에는 '아사랴를 취하여'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취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크후'(*)는 모반자들이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아사랴를 택한 것을 의미한다(B hr, Hobbs). 즉 이것은 12:21절과는 같이 다윗의 가문에서 왕을 세웠다는 사실을 암시한 것이다.
(주); 아사랴. - 유다 왕 웃시야의 이름으로 '아사랴'와 '웃시야' 이 두 이름이 계속 혼합되어 사용되었다. 이에 대한 설명은 학자들에 따라 무척
다양하다. (1)두 이름의 히브리어 자음이 오직 하나만 다르다는 데에 착안하여 '웃시야'는 필사자의 오류로 인해 '아사랴'에서 자음 '레쉬'(*)가
탈락된 형태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본서와 역대하에서는 이 두 이름이 병행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만약 이
가정이 옳다면, 적어도 한 작품 안에서는 하나의 이름만 일관성 있게 쓰여졌을 것이다. (2)'아사랴'는 왕명이며 '웃시야'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 붙여진 별명이라는 견해가 있다. (3)앞의 주장과 반대로 '웃시야'가 왕명이고 '아사랴'는 본명이라는 주장도 있다. (4)이 두 이름이 무차별하게
함께 쓰였다는 주장이 있다(Keil). 히브리어로 '아사랴'는 '여호와는 도움이 있다'를, '웃시야'는 '나의 힘은 여호와시다'를 뜻하는데, 전자는
본서와 대상에서만 9번 나오고 후자는 본서와, 역대하, 호세아, 아모스, 스가랴 등에서 모두 22번 나온다. 이렇게 쓰여진 회수로 미루어 볼때 보다
많이 사용된 '웃시야'는 공식적인 왕명이고 '아사랴'는 본명이 아닐까 생각된다. 특히 역대의 많은 왕들이 등극한 이후 그 이름을 바꾸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추측의 개연성은 더욱 높아진다(삼하12:24,25).
성 경: [왕하14:22]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아마샤의 최후]
(주); 엘랏을 건축하여. - 평행 구절인 대하26:6에서는 아사랴(웃시야)가 건축한 성읍이 여럿 나오는데 유독 본절에서 '엘랏'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 '엘랏'이 갖고 있는 지정학적인 위치와 그 성의 기능에 대한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엘랏'(Elath)은 '작은 숲'이란 의미의 지명(地名)으로 솔로몬이 이용하였던 에시온게벨 항구 근처(왕상9:26)에 있는 현재의 아카바만에 위치한 곳이다. 그리고 엘랏은 아카바만에 있는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항구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무역과 상업에 관심이 있는 여러나라들이 탐을 냈었다. 그래서 한 때는 에돔의 점령하에 있었던 것이다(8:22). 그리고이 엘랏이 유다의 웃시야 왕에 의해 남왕국의 영토가 된 후에도 아람과 앗시리아의 여러 왕들에 의해 점령되기도 한 사실(16:6-9)을 보더라도 그곳이 얼마나 경제적인 요지(要地)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엘랏을 건축'한다는 표현은 그곳을 '수축하거나', 아니면 문자 그대로 '건축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주); 돌렸더라.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쉬베하'(*)는 '돌아가다','기뻐하다', '지불하다'는 뜻의 '슈브'(*)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용어가 여기에서는 엘랏의 건축에 대해 '기쁜 마음을 갖고 자신의 땅으로 삼았음'을 가리킨다.
성 경: [왕하14:23]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여로보암의 행적]
여로보암이 아마샤 15년에 즉위했다는 것은 남유다 왕 아마샤(B.C.796-767)가 29년간 통치했으므로 북이스라엘의 요아스보다 아마샤가 15년 더
살았다는 17절의 진술과일치한다. 그러나 여로보암(혹은 여로보암II세, B.C.793 - 753)이 41년간 통치했다는 것은 그의 아들 스가랴(B.C.753-752)가
아사랴(B.C.791-739) 38년까지는 왕이 되지 않았다는 15:8의 진술과 다르다. 이에 대하여는 15:8의 주석과 본장의 강해를 참조하라. 한편
여로보암II세는 이스라엘 왕들 중에서 영토 확장에 가장 성공적인 통치자였다. 이스라엘과의 극성스러운 경쟁국이었던 아람이 앗시리아의
아다드니라리III에게 침략당하여 수도 다메섹까지도 정복되는(B.C.805년) 틈을 타서 여로보암II세는 이스라엘의잃은 땅을 모조리 되찾았던 것이다.
성 경: [왕하14:24]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여로보암의 행적]
느밧의 아들로서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과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일명 여로보암II세)은 우상을 숭배하는 일과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에
있어서 그 맥을 같이한다. 한편 여로보암II세의 죄악이 사회에 미치는 결과로 인하여 그는 아모스와 호세아 선지자에게 맹렬한 비난을 받게
된다(암2:6; 5:27; 6:14).
성 경: [왕하14:25]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여로보암의 행적]
(주); 가드헤벨. - 이것은 '우물가의 포도주틀'이란 의미의 지명인데 이곳은 스불론 지파의 한 성읍으로서 다볼 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수19:13). 또한 이곳은 나사렛 북동쪽 4.8km 지점으로 요나의 무덤이 이 곳에 있다고 전해진다(Rawilnson).한편 오늘날에는 여기를 '엘-메세드'(el - Meshed)라고 부른다.
(주);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 - 선지자 '요나'에 관한 기록은 '요나서'외에 오직 여기에만 나타나 있다. 그래서 이 구절을 통하여 요나 선지자의 활동 시기를 추측할 수있다. 그는 B.C.780년경의 인물(Wycliffe), 즉B.C.793 - 753(?)에 활동했던 사람으로 호세아, 아모스와 동시대인이며 미가보다는 앞선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본절에 기록된 요나로 하신 말씀이 '요나서' 본문에는 들어 있지 않다.
(주);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 하란(M. Haran)의 말에 따르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확장한 것은 그의 통치 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요아스왕이 전쟁에서 승리만하는 상승세를 탔다고 본다면(13:25 주석 참고) 꼭 그렇게만 생각할 이유는 없다.
(주); 하맛 어귀에서부터. - '하맛 어귀'라는 지명은 구약에서 자주 언급된다(민13:21;34:8; 수13:5; 삿3:3; 왕상8:65). 그리고 솔로몬 시대에는 이곳이 이스라엘의 북쪽 변방에 해당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을 하맛의 남쪽으로 간주해 일반적으로 유프라테스 강과 가까운 곳으로 보고 있다.
(주); 아라바 바다까지. - 여기서 말하는 바다는 '사해 바다'이다. 그리고 '아라바'(Arabah)라는 지명은 요단 계곡에서 홍해의 아카바만에 이르는
저지대를 가리킨다(신3:17; 수3:16; 12:3). 그런데 이때에 여로보암이 확장시킨 이스라엘의 지경(地境)은 흡사 다윗의 왕국 절정기의 경계선과
같다. 한편 암6:14에서도 이때의 경계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성 경: [왕하14:26]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여로보암의 행적]
(주); 여호와께서...보셨고. - 본절은 13:5과 출3:7, 신26:7과 연관해서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극심한 고난에 대한 정확한
당시의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본절에 기록된 열왕기서 기자의 주석이 뜻하는 바는 명백하게 나타난다. 즉, 여호와의
구원은 환난 중에 있는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시는 그분의 긍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은 아직까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신 적이 없는 하나님의 언약 때문이다(사55:3; 렘32:40; 겔16:60).
성 경: [왕하14:27]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여로보암의 행적]
(주); 천하에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 이것은 13:23에 언급된 언약의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본서 기자의 이러한 언급은 그가 신명기적 역사관에 충실하였다는 증거가 된다(G. Von Rad).
(주);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 우리는 여기서 우상 숭배 자이며 여호와 앞에서 범죄한 여로보암이 어떻게 이스라엘에 번영을
가져오게 되는지에 대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여로보암의 개인적 능력이나 그를 보좌하는 신복들의 탁월한 술수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여로보암을 통해 죄인들인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다(호5:15; 히10:13; 벧전3:20). 그러나 이러한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이 행한 죄를 묵과하셨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B hr).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왕의 악행으로도 결코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신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분의 정한 시기에 가장 올바른
공의로서 나타나기 때문이다(시103:6; 사45:21; 습3:5).
성 경: [왕하14:28]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여로보암의 행적]
본절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원문을 직역해 보면 "그가 유다의 다메섹과 하맛을 이스라엘에 돌린 일은..."이 된다. 그런데 학자들은 여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1)다윗 시대 이후로 다메섹과 하맛이 이스라엘에 복속된 적이 없는데 여로보암이 이 두 성읍을 '회복'하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왜 여기서 이스라엘과 유다가 동시에 언급되고 있는가? (3)'이스라엘에 돌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이스라엘'(*)에서
전치사 '베'(*)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4)이스라엘이 이와같이 동북쪽으로 영토를 크게 확장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을 몇가지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1)다윗과 솔로몬이 정복했던(삼하8:6; 왕상11:24; 대하8:4; 9:26). 다메섹과 하맛(당시에는
유다 지파에 속하였음)을 여로보암이 회복한 것이다. 그리고 '다메섹'과 '하맛'은 좁은 의미에서의 '성읍'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다메섹은 아람을 지칭한다고 한다(Keil, Rawilnson, B hr). (2)이것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차지한 영토를 합병해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Haram, Hobbs). 이에 대한 간접적인 증거로서 여로보암과 동시대인인 유다의 웃시야(아사랴)가 솔로몬 시대에 버금가는 번영을 이루었던
사실을들 수 있다(대하26:6-15). 그리고 당시의 국제 정세를 보면 앗수르는 앗술 니라리 5세(Assur-nirari V, B.C. 754 - 745)의 치하에서 국력이
약화된 사실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영토 확장을 위한 전투도 이스라엘과 상관없는 남동쪽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당시 이스라엘로서는 적절한
상황과 여건을 맞았던 것이다(Hobbs). 그러나 (1)과 (2)해석이 서로 상치되는 것은 이니다. 왜냐하면 상기(上記)된 두 가지의 견해는 서로 상호
보충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서 기자가 본문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로보암의 활약상이기 때문이다.
성 경: [왕하14:29]
주제1: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주제2: [여로보암의 행적]
(주);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스가랴는 예후의 4대손으로서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약속하신 예언(10:30) 즉 예후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나리라고 하신 말씀이 여기서 성취된 것이다.
성 경: [왕하15:1]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아사랴의 행적]
(주); 여로보암 이십 칠 년에. - 연대기 문제에 있어서 본절은 14:23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여로보암이 아마샤 15년에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기 때문에(14:23) 아사랴는 그의 아버지 아마샤가 29년간 통치한 후인 여로보암 14년이나 15년에 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본절에는 27년으로 나와 있으니 무려 12-13년 정도나 차이가 난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본절의 '27년'을 '15년'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본절 뿐만 아니라 8, 13, 23, 27절도 함께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awilnson, Keil& Delitzsch). 그러나 이렇게 고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4장 강해, '왕하 13-15장의 연대기'를 참조 하라. 한편 이 14장 강해에 의하면 '여로보암 27년'이란 표현은 그의 아버지 요아스(B.C.798-782)와 함께 통치하기 시작한 때부터 산출한 기간임을 알 수 있다.
(주); 아사랴가 왕이 되니. - 아사랴는 웃시야(B.C.791-739)라고도 불려 지는데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14:22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왕하15:2]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아사랴의 행적]
(주); 오십 이 년을 치리하니라. - 아사랴는 B.C.791-767까지 약 24년간 그의 부친 아마샤와 섭정을 했다(Thiele, Mysterious Numbers). 그러므로 그가 정식으로 등극한 해는 아마샤가 죽은 해인 B.C.767년이며 그가 단독으로 통치한 기간은 약 28년간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가 16세에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그가 처음 섭정하기 시작한때의 나이를 가리킨다. 이에 대해 요세푸스(Josephus)도 그가 16세에 등극하여 52년간 다스린 후 68세에 사망했다고 기록했는데, 이것 역시 그가 16세에 섭정을 시작했음을 간접적으로 입증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아사랴가 24년간이란 장기간 동안 부친 아마샤와 함께 섭정을 했다는 분명한 증거는 찾기 힘들다. 단지 학자들은 아마샤가 북이스라엘의 요아스(B.C.798-782)와 싸울 때에 자기 아들을 왕으로 세웠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부친 아마샤의 실정(失政)에 대한 반감 때문에 섭정했으리라 추정된다(14:1-20).
(주); 여골리야라. - 대하26:3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왕의 부친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모친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다. 이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능하시다', 혹은 '여호와께서 정복하신다'로 주의 전능하심과 공의로움을 반영한 것이다. 한편 요세푸스(Jose-phus)는 그녀를
'아기알라'로 칭하고 있다.
성 경: [왕하15:3]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아사랴의 행적]
아사랴의 치적에 대한 평가는 그의 부친 아마샤에 대한 평가(14:3)와 유사하다. 그런데 본서에서 유다 왕들의 치적을 평할 떼 그 기준은 항상 다윗
왕이었다. 그러나 다윗에 비길만한 칭찬을 들은 왕은 히스기야와(18:3) 요시야(22:2) 뿐이다. 한편 역대기기자는 아사랴, 즉 웃시야가 스가랴
선지자가 살아 있는 동안 여호와께 구했다고 기술하고 있다(대하26:5). 이는 그가 우상 숭배 때문에 여호와의 진노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교만에
의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임을 반영한 것이다(5절; B hr).
성 경: [왕하15:4]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아사랴의 행적]
(주); 산당은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 유다 열왕들의 치적을 평가함에 있어서 여호와 신앙에 대한 배교적인 행위를 일삼던 장소인 산당을 제하지
않는 것은 왕의 선악 여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왕상15:14; 22:43; 왕하12:3; 15:35). 한편 산당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6:1-9 강해, '산당 예배에 관하여'를 참조하라.
성 경: [왕하15:5]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아사랴의 행적]
(주);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3절)라는 표현 뒤에 본절과 같은 말이 나옴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역대기의 저자는 왜 그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밖에 없었는가 하는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즉 대하 26장을 보면 아사랴(웃시야)가 이방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해 많은 영토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대하26:2-7) 그의 권세가 널리 알려져 그는 두려움의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결과를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지 않고 부왕 아마샤와 같이 자신의 능력과 힘에 돌리는 교만을 나타냈던 것이다(대하26:16). 그중에서도 특히 그는 제사장의 직무를 침범하려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대하26:16-18).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교만은 영적 타락을 가져와(호7:9,10) 하나님을 부인하고(시10:4) 자기 도취에 빠지게 되어(렘43:2) 결국은 멸망에 이르는 것이다(잠16:18).
(주); 그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어. - 아사랴가 문둥병에 걸린 것은 그의 통치 말년이기 때문에 그리 오랜 기간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아사랴가 문둥병자가 된 후 별궁에 거하고 있는 동안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의 일을 돌보았는데 이 때 요담은 적어도 15세 이상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담은 왕위에 오른 때의 나이가 25세이므로(33절) 아사랴(B.C.791-739)가 문둥병에 걸렸던 기간은 10년 이하일 것이다.
(주); 별궁에 거하고. - 이방에서는 나아만의 경우처럼 문둥병에 걸렸어도 자신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5:4). 그러나 이와는 달리 이스라엘에서의 문둥병자는 격리된 생활을 해야 했다.(레13:46; 민5:2,3; 12:10,14,15). 그런데 아사랴의 경우는 이스라엘의 풍습 뿐만 아니라 그 병의 정도가 아주 심하여 그가 왕임에도 불구하고 따로 격리 수용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한편 '별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트 하하프쉬트'(*)에 관하여 학자들은 매우 다양하게 해석한다(W.Rudolph, Zeitschrift fiu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p.418). 이에 대한 몇가지 해석을 살펴보면, (1)어떤 신분상의 '욕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과, (2)'장소적으로 어떤 격리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을 달리하게된 이유는 히브리어 '하프쉬트'(*)의 해석 때문이다. 즉 이 단어는 (1)'신분적 예속이나 책무 등으로부터의 자유'(출21:2,5,26,27; 신15:12,13,18; 삼상17:25)라는 뜻과, (2)'공간적인 분리'(KJV, RSV, NIV)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아로니(Aharoni, Biblical Archaeologist, p.116-117)는 아사랴 왕이 예루살렘에서 약5km정도 떨어진 라맛 라헬(Ramat Rachel)에 있는 굴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를 긍정적으로 볼 때 '별궁'의 의미는 (1)과 (2) 둘 다 동시에 수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시의 문둥병자들은 성 밖에 따로 모여 살았기 때문이다(레13:46). 그리고 왕이 격리된 상황 내면에는 왕에 대한 '욕된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왕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성 밖으로 추방되지 않고 그를 위한 특별한 장소가 마련되었을 것이다(B hr). 한편 아사랴의 이런 저주의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죄 가운데서 고독하게 사는 인생들에게도 적용된다. 왕으로서의 영광스러운 지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 가운데서 살았던 아사랴와 같은 인생은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육체적으로 안락하다 할지라도 그의 영혼은 이미 죽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롬2:9). 왜냐하면 죄 그 자체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단절시키기 때문이다(눅16:19-31).
(주); 요담이 궁중 일을 다스리며. - 섭정 왕 요담은 명목상으로 왕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국사(國事) 전반을 다스렸을 것이다.
그리고 요담은 이때 섭정을 시작해서 웃시야(아사랴)가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왕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성 경: [왕하15:6]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아사랴의 행적]
(주); 모든 행한 일. - 앗수르 왕 다글랏 빌레셀의 원정 기사에 보면 그의 통치 3년(B.C.743년, 혹은 742년)에 앗수르 군주가
'야우다아사랴우(Azaryau of Iauda)'로부터 공물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Luckenbill). 어떤 학자들은 여기에 나타난 이 인물을 아사랴 왕과
동일인으로 생각한다(Montgomery), 그러나 성경에서는 유다 왕이 그의 오랜통치 기간 동안에 앗수르의 속국으로서의 예를 행했다는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아사랴가 원정을 갔던 곳은 앗수르와 접한 북쪽을 제외한 유다의 남서방향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대하26:6-15). 더욱이 오늘날 아사랴우가 북쪽 아랍에 있는 야유다(Iauda)의 아사랴유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공물을 바친 인물이 아사랴가
아님을 더욱 확증해 준다(Herrmann, History, p.246).
성 경: [왕하15:7]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아사랴의 행적]
(주);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 이사야서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를 선지자 이사야가 부름 받은 해와 일치시켜 기록하고 있다(사6:1). 한편 역대기 기자는 본절의 언급보다도 훨씬 더 구체적으로 웃시야가 '열왕의 묘실에 접한 땅 곧 그 열조의 곁'에 장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어(대하26:23) 그가 문둥병에 걸린 채로 죽었음을 나타내 준다. 즉 그는 문둥병자였기 때문에 열조들의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열조들의 무덤곁에 묻힌 것이다. 또한 요세푸스(Josephus)도 아사랴가 단순히 자신의 땅에 홀로 묻혔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따라서 역대서의 기록과 본절의 기록은 모순되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 2성전에 있는 아람어 비문을 보면 아사랴(웃시야) 왕의 뼈들을 후에 왕의 묘실로 이장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어 두 기록의 모순점을 해결해 준다(Y.Yadin, Jerusalem Revealed).
(주); 요담이...왕이 되니라. - 여기서 사용된 동사 '이믈로크'(*)는 5절에서 '다스리며...치리하였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페트'(*)와는
분명히 다르다. 왜냐하면 이는 히브리어 '마라크'(*)에서 온 말인데 그 의미는 '다스리다', '보좌에 오르다', '참으로 왕이 되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5절에서는요담의 섭정을 지칭하는 것임에 반해 본절에서는 그가 실제적인 왕이 되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편 본서의 연대기
문제를 해결할 때는 이러한 동사의 사용에 주의해야할 것이다(Hobbs,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13, p.195).
성 경: [왕하15:8]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스가랴의 행적]
(주); 이사랴의 삼십 팔 년에. - 여기서 말하는 '아사랴의 38년'이란 그의 부친, 즉 아마샤(B.C.796-667)와 함께 섭정한 24년을 합하여 계산한 것이다. 이러한 연대기 문제에 대해서는 14:23-29 강해, '왕하13-15장의 연대기'를 참조하라.
(주); 스가랴가...왕이 되어. - 여기에 나오는 북왕국의 왕 스가랴(B.C.753-752와 대하26:5에 나오는 스가랴 선지자는 동명 이인(同名異人)이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스가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라는 경건한 뜻을 가지고 있으나 6개월 동안의 그의 치적을 살펴보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결코 떠나지 않았음을 알 수있다(9절).
성 경: [왕하15:9]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스가랴의 행적]
(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 북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여로보암은 백성의 종교심을 묶어 놓기 위해 우상 정책을 쓴
장본인이다(왕상12:25-33).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징벌로 말미암아 재위 22년에 죽고 그 아들 나답도 재위 2년 만에 죽고 만다(왕상14:13-20;
15:25-28). 특히 그가 만든 금송아지 우상은 매우 가증스러운 것이였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왕상12:28-33). 그래서 그후부터
그는 금송아지 우상의 대명사가 되었다. 한편 스가랴도 단(Dan)과 벧엘(Bethel)에서 송아지 숭배를 했기때문에(Wycliffe, Keil & Delitzsch) 이같이
표현한 것이다.
성 경: [왕하15:10]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스가랴의 행적]
(주); 야베스의 아들 살룸. - 여기서 아베스는 인명이 아니라 지명(地名)이다. 따라서 이 말은 살룸이 요단 동편의 야베스-길르앗 출신이라는 것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Hobbs). 그리고 이쉬다(Ishida)의 논문(Royal Dynasties, p.173-176)을 보면 그 당시 요단 동편 지역(Transjordan)과 서편 지역(Thiele). 따라서 살룸이 스가랴를 모반한 것은 바로 그러한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한편 요세푸스에 의하면 살룸이 스가랴의 친구였으나 왕위 계승 문제로 스가랴를 죽였다고 한다(Rawilnson, B hr). 그리고 본절에 언급된 지명 야베스는 오늘날의 '야습'(Yasuf)에 해당되는 곳이다(Gray).
(주); 백성 앞에서 쳐죽이고. - 본절의 '백성 앞에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발 암'(*)의 해석에 대하여 학자들에 따라 그 견해가 아주 다양하다.
(1)대다수의 중세 맛소라 사본에는 그냥 한 단어로 '카발암'(*)으로 쓰여 있으며 70인역 바티칸 사본(Septuagint; G MS, Codex Vaticanus)에도
'케블라암'(*)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2)맛소라 사본(Masoretic Text)과 다른 헬라어 역본에는 '백성들 앞에서'(*, 카테난티 투 라우)로
기록하고 있으며 KJV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3)루시니안 헬라어 역본(Septuagint;Lucianic recension)에는 '엔 이블라암'(*)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이것을 옳게 보고 있다(T.R. Hobbs, Word BiblicalCommentary, Vol. 13, p.195-196). 그리고 학자들이 그렇게 보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히브리어 '카발암'이라는 명사에 대해서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2)이것이 '백성들 앞에서'라는 뜻의 '카발
암'(*)이라면 '백성'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암'(*)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거나 아니면 이 단어가 부사로 사용되었다고 보아야 하는데 부사로 볼 때
문맥상 잘 어울리지 않는다. (3)따라서 '카발암'은 9:27에 나오는 '이블르암'에 대한 오기(誤記)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블르암'은
유다 왕 아하시야가 예후의 칼을 피해 도망하다가 시해된 곳이다(9:27). 그래서 스가랴는 아하시야가 죽은 그곳에서 처형당했다고 본다. 한편
본절의 표현을 (2)의 경우와 같이 보는 가운데서 공개적으로 사형시켰다는 말이다(Keil & Delitzsch,Vol. III, p.389; Wycliffe). 그런데 스가랴를
공개 처형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이 동요하거나 복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의 죄악성과(Wycliffe) 스가랴의 행악을 잘나타내 준다.
성 경: [왕하15:12]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스가랴의 행적]
본절은 10:28-31에 기록된 예언에 대한 성취 부분이다. 이와같이 예언의 성취를 언급함으로써 본서 기자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부각시키고 있다.
(주); 네 자손이 이스라엘 위를 이어 사 대까지 이르리라. - 북쪽 이스라엘 건국 이래 가장 강력한 종교 개혁을 시도했던 왕은 예후다(10:15-27).
그러나 그도 다른 이스라엘 열왕과 같이 여로보암이 범한 금송아지 숭배의 길에서는 떠나지 않았다(10:29).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예후 왕가가
지속되지 못하고 예후 이후 4대째만에 끝날 것이라고 말씀하였다(10:30).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적인 예언은 스가랴가 즉위한지 6개월만에
성취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드러나는 한 가지 특징적인 사실은 예후가 하나님 앞에서 어느 정도 신실하게 행하였으므로, 4대(代) 8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후 한 사람의 적은 선행을 기억하시고(갈6:7-10; 히10:24) 그의 자손들에게
복을 주셨다.
성 경: [왕하15:13]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살룸의 행적]
(주); 살룸이...한 달을 치리하니라. - 이와 같이 살룸이 한 달 밖에 왕위에 있지 못한 것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정국이 얼마나 불안정했는가를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 즉, 짧은 기간 동안 통치할 수 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을 통해 인간의 부질없는 권력욕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백성들의
의사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면서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이러한 자리는 아침이면 사라질 안개와도 같은 권력인 것이다(약4:14).
성 경: [왕하15:14]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살룸의 행적]
(주); 가디의 아들 므나헴. - '므나헴'(*)이란 이름은 '슬퍼하다', '후회하다', '위로받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나함'(*)의 피엘형(Piel:강조형 능동) 분사 형태로서 '위로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는 '장군', 혹은 '총사령관'의 지위를 갖고 있었던 자인 듯하다(Josephus, Keil & Delitzsch), 그런데 그가 살룸에 대한 반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1)이스라엘 왕국은 '군사 군주제'(military monarchy)이다. (2)살룸 또한 왕위 찬탈자이다. (3)예후왕가가 멸망했기 때문에 왕위는 군대 장관에게로 돌아가야 한다(Wycliffe, p.354). 한편 '가디의 아들'이란 가디가 그의 출신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아버지의 이름이 '가디'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가디'라는 이름은 '가디야후'(Gaddiyahu)의 단축형으로서 주로 사마리아 지역에서 발견되던 인명(人名)이다(Gibson).
(주); 살룸을 거기서 죽이고. - 요세푸스(Josephus)가 전하는 유대 전승에 의하면 므나헴은 스가랴의 군대를 이끌고 살룸에게 보복했다고
한다(Hobbs). 한편 이것은 므나헴이 디르사에서 태어나긴 했으나 그가 므낫세 지파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지파 간의 전쟁이 치열했다는
논증의 좋은 증거가 된다.
성 경: [왕하15:15]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살룸의 행적]
본절에서 살룸의 사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비록 그의 통치가 짧은 기간 동안이기는 하지만 그의 통치는 합법적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치세가 공식적으로 역대 왕들의 사적을 기록한 역대 지략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 경: [왕하15:16]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살룸의 행적]
(주); 딥사. - 왕상4:24에 따르면 '딥사'는 유프라테스 강변에 있는 한 성읍이다(Keil &Delitzsch, Rawilnson). 그러나 일부의 학자들은 므나헴이 그곳까지 정복의 손길을 뻗쳤다고는 보지 않는다(B hr). 그래서 본절에 언급된 '딥사'는 유프라테스 강변의 딥사(Thapsacus)가 아니라 '디르사 근처에 있는 딥사'라고 주장한다(Septuagint; Lucianicrecension)에도 '딥사'가 '타푸아'(Tappuah)로 수정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견해를 옳다고 본다(Hobbs). 그리고 수16:8에 보면 '타푸아'(답부아)는 북쪽 에브라임지경에 위치했다고 하는데 이곳은 디르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은 여로보암 2세가 정복하여 되찾은 북방 경계선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14:25,28) 그 지역을 이스라엘 땅으로 수호하기 위하여 므나헴이 원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Ishida). 그러나 '성문을 열지 않았다'는 본절의 표현은 그 지역의 사람들이 므나헴의 통치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음을 보여 준다(B hr).
(주); 아이 벤 부녀를 갈랐더라. - 이와 같은 잔인한 행위는 고대 근동의 전쟁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의
승리자들은 그렇게 하는것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한 것 같다. 한편 '갈랐더라'는 말은 히브리어 '빅케아'(*)인데 이는 '갈기갈기 찢다'란 뜻의
'바카'(*)에서 온 말이다. 즉 이것은 임신한 여인의 몸을 칼로 난도하는 모습을 회화적으로 나타낸 표현으로 그들의 잔인성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런 잔인한 풍습에 관해서는 8:12과 사13:18; 호13:16; 암1:13을 참조하라.
성 경: [왕하15:17]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므나헴의 행적]
(주); 아사랴 삼십 구 년에. - 이 부분의 연대기 문제에 대해서는 본장 강해를 참조하라.
성 경: [왕하15:18]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므나헴의 행적]
므나헴(B.C.752-742)의 행적에 대한 본절과 같은 주석은 아주 전형적인 것이다. 즉 이러한 방식의 기술과 표현은 북이스라엘의 말기에 와서 규칙적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 9절에 나타난 표현과 마찬가지로 이는 하나님 앞에서 악행을 일삼았음을 나타낸다. 특히 우상 숭배 중에서도 금송아지 숭배에 의한 죄악을 범했을 경우에 이렇게 표현했다(왕상12:28-30). 그리고 이러한 말은 북왕국의 초대왕 여로보암으로부터 멸망의 전조가 나타나는 말기까지 대부분의 열왕들이 악한 왕이었음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주); 평생.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콜야마이우'(*)인데 그 뜻은 '그의 모든 날들 중에'란 의미이다. 그런데 BHS(Bibkis hebraica
stuttgartensia)의 본문 비평에는 이것을 '베야마이우'(*)로 수정하여 18절의 마지막에 나오는 이 단어를 19절의 초두에 위치시키고 있다. BHS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19절에 접속사가 없기 때문에 문장 구성상 매우 어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본다면 19절은 '그의 때에 앗수르 왕
불이...'로 되어 자연스럽게 된다. 그러나 맛소라 본문의 이 단어는 특정한 사람의 생애를 가리키는 관용적인 용어이므로 그러한 수정을 억지라고
볼 수 있다(Hobbs).
성 경: [왕하15:19]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므나헴의 행적]
(주); 앗수르 왕 불이 와서...치려하매. - 앗수르 왕 '불'(Pul)의 정체에 대해서는 바벨론 열왕의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를 보면 '불'왕은 바로 디글랏 빌레셀(Tiglath-Pileser,III세; B.C.745-727)과 동일 인물로서 그는 바벨론을 2년간 지배했었다. 그런데 그때 그에게 바벨론식으로 붙여진 이름이 '불'인 것이다. 또 디글랏 빌레셀의 비문을 보면 앗수르가 사마리아의 므나헴으로부터 공물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를 더욱 뒷받침해 준다(Luckenbill). 그리고 북이스라엘 왕 므나헴이 앗수르에 공물을 바친 때는 B.C.743년 쯤으로 디글랏 빌레셀 제 3년에 해당하는 것 같다(Thiele). 한편 앗수르의 불 왕이 사마리아에 온 것이 침략인지 아니면 므낫세의 초청에 의한 것인지에 대하여 견해가 다양하다. 그런데 이렇게 견해를 달리하게 된 것은 '와서...치려하매'로 번역된 히브리어 '바'(*)의 해석 때문이다. 혹자는 이것을 (1)침략을 나타내는 용어로는 쓰일 수 없다고 보는 반면에(Hobbs), (2)다른 사람들은 이 단어가 침략을 표현하는 경우로 쓰인 예가 있다고 보아(창34:25) 이를 침략을 나타내는 행위로 본다(B hr). 그러나 본서 기자는 침략을 나타내는 용어로는 주로 '알라'(*)를 썼으며(6:25; 12:17; 17:3,5), 본절에 나타난 것과 같은 '바'(*)를 쓰지는 않았다. 따라서 불 왕이 온 것을 '침략'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방문이 므나헴의 초청에 의한 것인지(Thenius) 므나헴을 정당한 왕으로 인정해 그를 왕위에 앉히기 위한 것인지(Ewald)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한편 성경에서는 본절에서 최초로 앗수르 제국에 대한 언급을 함으로 인해 앗수르가 강대국으로 팽창하는 과정에 있음을 시사해 준다(Wycliffe). 그리고 본절에 나타난 앗수르 왕 불 왕위
를 찬탈하여 제국을 새롭게 부흥시킨 자였다. B.C.743년이거나 B.C.738년에 일으킨 디글랏 빌레셀의 전쟁은 북이스라엘에게까지 파급되어 므나헴에게서 공세를 내게 했다. 앗시리아 왕에게 공세를 바침으로써 므나헴은 앗시리아 통치자의 신복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디글랏 빌레셀이 바벨론 왕이 되었을 때 므나헴은 '불루'라는 이름을 얻었다(바벨론 왕 명부에도 그렇게 기록되었음).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므나헴'보다도 그의 바벨론식 이름이 더 널리 알려졌던 것 같다.
(주); 은 일천 달란트. - 드라크마(Drachma)가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눅15:8)이라고 할 때 은 한 달란트(Talent)는 약 6,000 드라크마에 해당하는 돈이다(출38:27; 마18:24). 그렇기 때문에 은 일천 달란트라고 하면 6백만 드라크마이다. 노동자 하루 품삯을 약 2만원으로 계산할 때 이는 약 1,200억원에 해당된다. 이처럼 많은 돈을 주고 므나헴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시켰던 것이다.
(주);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하여. - 므나헴이 앗수르 왕에게 많은 공물을 바친 것은 요단 동편으로부터의 위협을 제거해 주도록 부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성공은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25절). 한편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셋에게 조공을 주어 자신의 불안정한
정권을 유지하고자 했던 그의 행위는 성전의 은과 금으로 전쟁에서 벗어나려했던 남유다의 아사(왕사15:18), 아하스(16:8), 히스기야(18:15)에
버금가는 악행이었다.
성 경: [왕하15:20]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므나헴의 행적]
(주); 토색하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요체'(*)는 '나가다'라는 뜻의 동사 '야차'(*)의 히필형(Hiphil:사역형 능동)이다. 그래서 '세금을 징수하다'라는 뜻의 동사 '에리크'(*)와(23:35)는 다르다. 그리고 이 단어를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나오게 하다'라는 뜻이 되는데 이것은 므나헴이 어마 어마한 돈을 세금으로 징수한 것이 아니라 군사력을 동원하여 부자들에게서 돈을 빼앗은 것임을 암시한다. 한편 자기 동족 중 딥사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를 정도로 잔인했던 므나헴은(16절) 바닥난 재정을 메우고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 부자들에게 토색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매우 심각했음을 의미한다. 사회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악한 통치자와 관원은 자신의 배를 채우기에 급급하지만 선한 통치자와 관원은 자기 것을 희생해서라도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 한편 므나헴은당시 정치와 경제의 지주였던 부자들에게서 토색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바, 공의를 행하기 보다는 자신의 배만 채우고자하는 불한당같은 지도자에 불과했다. 어느 나라든지 지도자들이 이런 상태에 빠져 있으면 결코 부흥될 수 없다. 성도들은 이 같은 지도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 입각하여 통치를 하도록 권면하여야 한다.
(주); 은 오십 세겔. - 은 한 세겔(Shekel)은 일반 노동자 4일의 품삯에 해당된다(출30:24; 삼하24:24). 그렇기 때문에 은 오십 세겔은 200일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품삯이다. 만약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2만원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400만원에 해당하는 돈이다. 그런데 은 오십 세겔로 은 일천
달란트를 만들려면 3만명 정도의 사람에게 강제로 거출해야 했을 것이다.
성 경: [왕하15:23]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브가히야의 행적]
(주); 브가히야. - '브가히야'(*)라는 이름은 '열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파카흐'(*)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여호와께서(눈을) 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B.C.742-740) 역시 2년 밖에 통치하지 못하였는데 이것은 당시 북왕국의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한편 그의 2년 동안의 통치는 아사랴(B.C.791-739)의 마지막 2년과 부합된다(Thiele, MysteriousNumbers, p.73-74)는 혹자의
주장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성 경: [왕하15:25]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브가히야의 행적]
(주); 그 장관. -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솰리쇼'(*)는 '그의 장관'이란 뜻으로 23절의 브가히야와 연결되는 말이다. 그래서 이 말은 '브가히야의 장관'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한편 요세푸스(Josephus)는 이 사람을 '천부장'이라고 하고 혹자는 이사람을 '전속 부관'이라고 한다(Keil & Delitzsch).
(주); 베가. - 이 이름도 '브가히야'와 같은 어근인 '파카흐'(*)에서 파생하였다. 그런데 하조르(Hazor)에서 발견된 그의 비문에는 그의 이름이 '페가 삼다르'(*)로 기록되어 있다(Y. Yadin). 한편 본절에서 '르마랴의 아들 베가'라고 표현한 것으 베가 보다도 그의 아버지 르말랴가 당시에는 더 잘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사7:4; 8:6)인 듯하다(Rawilnson). 그리고 호위대의 대장이었던 베가가 왕을 반역하였다는 것은 그 군대의 기강이나 충성심이 얼마나 해이(解弛)해졌는지를 잘 나타내 준다(Wycliffe).
(주); 왕궁 호위소에서. - 이것은 왕궁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요새' 또는 '높은 망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반대로 이곳에서 왕궁을 공격하기는 매우 용이했을 것이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브가히야 왕은 베가에 의해 살해되기 전에 이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주); 아르곱과 아리에를. - 여기서 대부분의 역본들은 이 구절을 생략하거나 29절에 삽입시킨다. 왜냐하면 아르곱은 신3:4,13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요단 동편 상부에 위치한 지역의 지명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문에서는 이것이 불확실하게 나타나 있어서 아르곱과 아리에가 인명(人名)인지 지명(地名)인지 의문을 남겨준다. 만약 두 이름이 인명(人名)이라면, 이들은 베가와 함께 공모한 사람들이었는지 또는 브가히야와 함께 살해된 사람들이었는지 결론지을 수 없다. 1886년 쉬타데(Stade)는 맛소라 사본의 아르곱과 아리에라는 어구가 25절과 가까운 29절에 대한 주석이었다고 시사한 바 있다. 이는 '길르앗'이 두 절에 나오기 때문에 필사자가 실수하여 이 두 지명의 주석을 29절 대신에 25절에 포함시킨 것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아르곱은 '60개의 성읍'을 포함하는 옥의 나라 바산에 있었던 지방이지만(신3:4,113,14;왕상4:13), 길르앗(왕상4:13; 민32:40; 삿10:4; 대상2:22)에 속해 있는 '야일의 고을들'(하봇)과는 구별된다. 아르곱의 위치는 신3:4,13,14에 의해 정해져 있는데 그 서쪽 변경에는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의 영토(즉, 오늘날의 골란 고원)가 있다. 한편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이를 인명(人名)으로 간주하고 이 사람들을 왕의 친구들로 추측한다(Rawilnson). 그 뿐만 아니라 권위있는 일부 학자들도 이를 인명으로 보고 이 사람들을 '고관'으로 생각한다(B hr, Keil & Delitzsch, Vol.III, p.393).
(주); 길르앗 사람 오십 명으로 더불어 죽이고. - 길르앗 사람들은 건장했기 때문에(대상26:31; 수17:1) 왕의 호위를 맡아서 담당했다. 특히 그들은
베가의 명령을 받는 전속부관, 즉 장관의 명령을 받는 직속 부하였다. 한편 혹자는 본절의 표현을 부정하고, 대신 길르앗 50명이 베가를 도운
것으로 이해한다(Keil & Delitzsch, Vol.III, p.393).
성 경: [왕하15:27,28]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베가의 행적]
(주); 베가가...이십 년을 치리하며 - 디글랏 빌레셀(Tiglath Pileser III)의 비문을 보면 앗수르가 B.C. 732년에 베가를 정복했다고 기록되어
있다(29절). 그리고 이 앗수르왕은 B.C. 745년부터 727년까지 약 18년간 통치했기 때문에 이 중에서 므나헴의 통치기간 10년과 브가히야의 통치
기간 2년을 제외하면 베가에 해당되는 통치 연수는 불과 6년 남짓하다(Thiele). 그러므로 베가가 20년간 북왕국을 통치했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딜리(Thiele)의 주장을 따르고 있는데 그는 여기서 말하는 20년이 북왕국 내의 지파 간에 전쟁이 일어난 햇수를
가리킨다고 본다. 한편 이러한 국내 분쟁이 발생한 기간은 유다 왕 아사랴 38년 즉, 북이스라엘 왕 스가랴(B.C. 753-752) 때부터(8절) 남왕국
아사랴 52년까지 약 14년 정도 된다. 그러므로 베가가 왕으로 단독 통치한 햇수는 6년에서 8년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달리(Thiele)는
요담 12년까지 약 8년 정도를 베가의 단독 통치 기간으로 보고 있다. 또한 본절에 나타난 베가의 20년간의 톤자치 기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의심을 품는 학자들도 있다. 즉 이 연대는 30절, 16:1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17:1에 의하면 베가의 후임 왕 호세아의 통치
기간은 9년인데, 이렇게 되면 베가의즉위 연도인 B.C. 740년부터 '사마리아 함락'까지의 기간은 29년이 되는 셈이고, 사마리아 함락의 시기도 B.C.
711년경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 사마리아 함락은 B.C. 722년에 이루어졌으므로 베가가 20년간 왕위에 있었다는 주장은
역사적인 사실과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이 연대 문제는 본문을 수정하지 않고도 해결될 수 있다. 즉 베가는 B.C. 740-732년까지 9년 동안 정식으로
왕으로서 통치했으나, 그 이전에도 길르앗 지방을 11년간 다스렸다고 볼수 있는 것이다(25절). 다시 말해서 그는 여로보암 2세가 죽고 나서 B.C.
752년경 길르앗 지방을 장악했으며, 계속적으로 이스라엘 전체의 통치권을 잡고자 기회를 넘보다가, B.C. 740년경 앗수르의 후원에 힘입어 쿠데타에
성공했고 이스라엘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따라서 이 길르앗 통치 기간까지 합한다면 그의 통치 기간은 B.C. 752-732의 20년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절을 베가가 '사마리아에서 이십 년을 치리했다'라고 이해하기 보다는 베가가 '사마리아에서 치리했고 또한 이십 년을 다스렸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당시의 상황과 맞는다. 그러므로 전자에대한 의심의 해결 방법과 후반부에 언급된 회의에 대한 해결책을 종합하면 비교적 정확한
해답이 나온다. 즉 베가가 북왕국을 통치한 정확한 기간과 그에 대한 확실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
성 경: [왕하15:29]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베가의 행적]
앗시리아의 디글랏 빌레셀이 이끄는 이 전쟁은 B.C. 739-732년에 일어났다. 앗시리아 침략의 직접적인 이유는 유다왕이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맺어진 동맹 관계에 대항하기 위해서 앗시리아의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16:17). 침략의 구실을 찾고있던 디글랏 빌레셀은 이스라엘로 진군하여 갈릴리와 갈르앗 주변의 모든 성읍들을 파괴하고 수많은 백성들을 사로잡아 갔다. 그는 마침내 디메섹으로 진군하여 도시를 약탈하고 아람왕 르신을 처형시켰다(16:9).
(주); 디글랏 빌레셀이 - 이 이름은 19절에 나타난 '불'이라는 바벨론식 이름과 동일한 앗수르 왕으로서의 정식 왕명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앗수르 왕이 정복을 목적으로 원정한 해가 B.C. 733년 경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B.C. 743년 경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B.C. 743년 1차 출정(29절)과 B.C. 735년 2차 출정(사 7:1-9)이후 세번째 출정이다. 그리고 이때에 디글랏 빌레셀은 팔레스틴 전역을 공격하여 이스라엘 도시의 대부분을 정복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다시 B.C. 732년경 다메섹을 주목표로 재침공 했다(Jerusalem Bible).
(주); 이욘 - '폐허'란 뜻을 지닌 이 도시는 이욘 강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벨벳마아가에서 북쪽으로 약 15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리고 이곳은 벤하닷의 침략을 받은 납달리 자손의 마을(왕상 15:20)로서 이스라엘의 최북단에 위치한다.
(주); 아벨벳마아가 - '압제하는 집의 초원'이란 뜻을 지닌 이 도시는 기럇 세모나(Qirvat Shemona)의 북쪽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아빌'(Tel Abil)과 동일한 곳이다. 한편 이곳은 팔레스틴 북부 갈릴리 상부의 훌레 계곡에 위치했던 성읍(삼하 20:14, 15)으로 정치 선동가 세바가 요압의 추격을 피해 숨어 있던 장소이다(삼하 20:14-22). 또한 이곳은 아람 왕 벤하닷에게 점령당했던 곳이기도 하다(왕상 15:20).
(주); 야노아 - '나머지'란 뜻을 지닌 이 도시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대개 (1) 세겜의 남동쪽 약 10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길벱 야눈(KhirbetYanum)이거나 (2) 악고의 북동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한 야노아(Janoah)로 보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견해가 있으나 최근에는 (2)의 견해가 큰 지지를 받고 있다. 한편 이곳은 납달리에게 배당된 성읍인데 에브라임의 경계 지역으로도 알려진 곳이다(수16:6,7).
(주); 게데스 - '성소'란 뜻을 지닌 이 도시는 아벧벱마아가와 하솔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은 두로 동쪽 약 36km 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텔 게데스'(TelKedesh), 혹은 '가데스'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곳은 납달리 지파에 속한 레위인들의 도피성(수 19:37 ; 21:32)이었을 뿐만 아니라 바락의 고향이며(삿 4:6) 그가 드보라를 돕기 위해 병력을 집결시킨 장소이기도 하다(삿 4:1-10).
(주); 하솔 - '울타리 마을'이란 뜻을 지닌 이곳은 고대 훌레(Hulh)호수의 남쪽 약 8km지점에 위치한 큰성읍이다. 이곳은 가나안의 수도로서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당했다(수11:1-13). 그후 재건되어 납달리 지파에게 할당된 후(수 19:32, 36) 솔로몬에 의해 요새화되었다(왕상 9:15). 한편 이 지역은 1950년 야딘(Yadin)에 의해서 발굴되었는데, 이곳에서 큰 건물들이 불타 파괴된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아마 디글랏 빌레셀 3세에 의해 파괴된 것으로 추측된다.
(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 - 이 지명들은 성경에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요단 동편의 중부 고원지역에 위치한 길르앗 지방과 갈릴리 지역이 첨가된 것은 그 당시 북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에 미친 재난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가를 짐작케 한다. 그리고 디글랏 빌레셀은 이 지역들을 장악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북쪽과 갈릴리 방향인 서부지역을 쉽게 얻을 수 있었은 뿐만 아니라 하솔을 장악함으로 인해 다메섹까지의 진출이 용이하게 되었다.
(주); 앗수르로 옮겼더라 - 앗수르의 공식적인 기록들에는 포로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이 정복자로서 포로들을 납치해 가는
것은 앗수르의 정책상 정당한 것이었다(M. Cagan). 아마도 앗수르는 대외적인 명예를 생각해서 포로에 대한 기록을 생략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본 구절을 역사적으로 증명해 주는 역대서에는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속한 지명들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어 이 사실을 확인시켜준다(대상
5:26). 또한 그후 앗수르의 살만에셀 5세(Shalmaneser V, B.C. 727-722)에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번째로 포로로 잡혀갔는데 이는 모두 신
28:36의 성취이다(Wycliffe).
성 경: [왕하15:30]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베가의 정택]
(주); 요담 이십 년에 - 사 7:1-8:8을 보면 베가와 아람, 즉 소위 아람과 에브라임이 동맹하여 남왕국 왕 요담의 후계자인 아하스와 싸웠다(16:5).
그런데 본절에서 베가가 요담 20년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리고 요담이 예루살렘에서 16년을 통치했다는 33절의 기록과도 이
연대는 맞지 않는다. 이에 대하여 딜리(Thiele)는 베가 17년부터 아하스와 요담이 섭정한 것으로 본다(16:1). 그렇게 되면 요담과 아하스는 4년을
넘게 섭정을 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성경적인 증거는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간접적인 증거로 아람 왕 르신(B.C. 750-732)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가 동맹하여 유다를 친 전쟁이 마치 요담과 아하스 때 두 번 있었기 때문에(15:37 ;16:5) 두 왕의 섭정 기간 동안에 치루어진 전쟁이라 보면
된다. 한편 본절에는 단순히 '호세아가 반역하여 베가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앗수르의 비문에 나타난 내용과 공식 문서들을
참고할 때 당시 북이스라엘의 상황은 디글랏 빌레셀 3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즉 디글랏 빌레셀은 북이스라엘의 내정까지 깊이 간여해
베가를 죽이고 호세아를 왕으로 세웠던 것 같다. 그러므로 디글랏 빌레셀이 호세아의 반역을 승인한 것으로 추측된다(Rawlinson, Wycliffe).
성 경: [왕하15:32]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요담의 행적]
(주); 베가 이 년에...요담이 왕이 되니 - 27절에서 베가가 요담의 아버지 아사랴의 52년즉, 그의 마지막 통치 연도에 왕이 되었다는 기록과 본절의
연대기는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요담'(*)은 여호와의 이름과 '안전한', '경건한', '순결한'이란 의미의 '타맘'(*)이라는 동사가 합성된
형태로서 '여호와는 완전하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편 그는 웃시야(아사랴, B.C. 791-739)와 공동 통치했을 뿐만 아니라 아하스(B.C.
735-716)와도 공동으로 섭정했다는 일부의 주장(Thiele, Wycliff)을 받아들인다면 그는 실제로 므나헴 2년부터 통치한 것이다(17절).
성 경: [왕하15:33]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요담의 행적]
(주); 십 육년을 치리하니라 - 여기서 말하는 16년은 요담이 그의 아버지 아삿랴(혹은 웃시야)와 함께 섭정하기 시작한 해부터를 말한다(Rawlinson, 대하 26:23 ; 27:1). 그리고 요담의 통치 16년은 북이스라엘 왕 베가 17년에 해당한다(16:1).
(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루사라 - 여기서 '여루사'(*)라는 이름은 매우 특이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루사'(*)의 여성 능동 분사 형태인데 성경에서는 이러한 동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레이(Gray)는 '예루살'(*)이 이 말의 본래 형태라고 본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요세푸스(Josephus)는 그녀를 '예리사'(Jerasa)라고 불렀고 역대기 기자도 본서와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어(대하 27:1) 그레이의 견해를 의심케 한다.
(주); 사독의 딸이더라 - 사독이 제사장이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요담은 제사장 계열과 왕족 계열의 맥을 동시에 이은 자임이 분명하다. 한편 34절을
보면 요담에 대한 평은 그의 아버지 웃시야에 비해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러나 대하 27:2의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그가 제사장의 딸이라고
간주되는 그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부친보다는 성전의 규례를 잘 지켰기 때문이다(34절 참조).
성 경: [왕하15:34]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요담의 행적]
(주);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 본절과 평행 구절인 대하 27:2에서도 요담의 행위에 대해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역대서에서는 그가
'여호와의 전에는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추가하고 있어 불경건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을 나타내 준다.
성 경: [왕하15:35]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요담의 행적]
(주); 여호와의 전의 윗문을 건축하니라 - '윗문'은 안마당, 혹은 윗마당의 북쪽에 있는 문으로서(대하 27:3 ; 겔 9:2) 제물로 바쳐질 것들을 잡는
곳이다. 그러나 이 문은 북쪽 지방으로부터의 침략을 방어할 목적으로 세워진 듯하다. 그리고 이 문은 예루살렘성전의 북쪽문을 말하는데 일명
'베냐민의 윗문'이라고도 했다(슥 14:10). 한편 대하27:3을 보면 요담이 오벧 성을 많이 증축했을 뿐만 아니라 유다의 성읍을 많이 건축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그가 수도를 요새화하고 성읍을 건축한 것은 당시의 혼란한 국제 상황을 반영하는 것임과 동시에 여호와께 대한 그의 신앙의
자세를 반영하는 것이다(대하 27:6). 한편 역대기 기자는 이 뿐만 아니라 요담과 암몬과의 전쟁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대하 27:5).
성 경: [왕하15:37]
주제1: [웃시야 왕과 이스라엘의 악한 다섯왕]
주제2: [요담의 행적]
아람 왕 르신과 북왕국 왕 베가와의 동맹은 사 7:1-8:8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역대기 기자는 암몬과의 전쟁은 언급하면서도(대하 27:5) 본절과
같은 전쟁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한편 이사야의 기록을 보면 베가와 르신은 다브엘의 아들을 유다의 왕위에 앉혀서 유다를
자신들의 동맹에 가담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일은 결국 성공하지 못했는데 이 사건 때문에 이사야 선지자는 르신과 베가를 저주했던
것이다(사 7:7-9).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믿음에 대한
예언이 주어졌던 것이다(사 7:10-14). 한편, 아람이 다브엘의 아들을 유다의 왕위에 앉히려고 한 것은 그를 유다의 왕위에 세움으로 유다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아 앗수르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르신과 베가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경멸과는 달리 본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여 유다를 징벌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저자들의 기록 관점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한편 르신과 베가가 동맹하여
유다를 공격한 것이 두 번인지(16:5) 아니면 한 번인지, 그리고 한 번인지(16:5)아니면 한 번인지, 그리고 한 번이라면 왜 같은 사건을 두 번
기록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대하 27:5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왕하16:1]
주제1: [유다 왕 하스의 악정(惡政)]
주제2: [아하스의 우상 숭배 행위]
(주); 베가 십 칠 년에 - 몇몇 주석가들은 루시니아 중세 사본(Septuagint ; Lucianicrecension)을 근거로 해서 본절의 17년을 19년으로 수정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또 다른 주석가(McHugh)는 이것을 단 7년으로 계산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전체 연대기에 맞추어 계산한 것으로 보여 흥미롭긴 하지만 역시 본문 기록의 당위성을 생각해 볼때 긍정적인 지지를 받기는 어렵다(18:9 주석 참고). 한편 이러한 연대기적인 난제는 14장 주제 강해 '왕하 13-15장의 연대기'와 15장에서 다루어진 '열왕기하 15장의 연대기에 대한 추가 설명'을 보다 참조하라.<15:32 주석 참조>.
(주); 아하스가 왕이 되니 - '아하스'가 디글랏 빌레셀의 연대표에 보면 '야우하지'(Yauhazi)로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아하스'라는 리브리어
이름을 앗수르 식으로 표현해서 그런 것 같다(Luckenbill). 한편 유다의 모든 왕들에 대한 사적을 소개할 때는 반드시 모친의 이름이 소개되는데
반해 본절의 아하스와 여호람(8:16, 17)만이 모친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특이하게 보인다<12:1 주석 참고>.
성 경: [왕하16:2]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惡政)]
주제2: [아하스의 우상 숭배 행위]
(주); 이십 세라...십 육 년을 치리하였으나 - 단순히 본절을 이해할 때 아하스가 20세에 왕이 되어 16년을 치리하였기 때문에 그가 죽었을 때의 나이는 36세가 된다. 그런데 18:2에 보면 그의 후계자 히스기야(B.C. 728-687)가 아버지를 이어 왕위에 오를 때의 나이가 25세였다. 그렇다면 아하스는 11세에 자기 아들 히스기야를 낳았다는 말이 되는데 이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본절에 나타난 연대기적인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보는 견해가 있다. (1) 아하스의 통치 연대를 B.C. 735년부터 716년까지 약 20년 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J. Bright, Albright). 이같이 보는 이유는 히스기야 14년인 B.C. 701년에 산헤드립이 유다를 쳐들어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그렇게 되면 아하스는 B.C. 716년에 죽은 셈이 되고 그때 나이가 40세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아하스(B.C. 735-716)가 15세에 히스기야를 낳은 셈이 되어 어느 정도는 가능한 것이다. 한편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로서 단시 근동에서 유행했던 조혼(早婚)제도를 들 수 있다. 즉 당시의 동양에서는 남자가 12, 13세, 여자가 10, 11세에 결혼하는 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자는 유다 왕국에서는 전혀 그런 예가 없었다는 이유로 이를 부정한다(Keil & Delitzsch, Vol. III, P. 398-399). (2) 아하스와 그의 아버지 요담이 섭정을 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Thiele, Gray, Meer, Hobbs). 즉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군이 유다를 침공한 B.C. 733년부터 두 사람이 섭정을 했는데 이때의 나이가 20세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 섭정이 4년정도 계속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아하스가 단독으로 통치하기 시작한 것은 24세였고 그때부터 16년간을 다스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러한 섭정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한편 70인역(LXX), 수리아역(Syrica), 아람역(Arab.) 등에서는 아하스의 나이를 20세 대신에 25세로 기록하고 있어서 어느정도 위의 견해에 긍정함을 나타내고 있다.
(주);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 이와같이 왕의 사적을 다윗과 비교하는 것은 긍정적이든지 부정적이든지 간에 그리 흔하지는 않는 일이다. 솔로몬과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B.C. 913-910)은 부정적으로(왕상 11:4 ; 15:3), 아사와 요시야는 긍정적으로(왕상15:11 ; 왕하 22:1, 2) 다윗의 행적에
비교되었다. 그리고 아마샤는 (14:1-5) 다윗과 같지는 않았으나 그에 상당하는 칭찬을 받았다. 한편 열왕들의 사적을 다윗과 비교하는 것은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과 그 법도를 지켰기 때문이다(왕상 11:34). 물론 다윗도 이전에 하나님의 법도를 어겨 범죄한 적이 있었다(삼하 11:1-27 ; 24:1-9).
그러나그는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순순히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진실로 회개를 함으로(삼하 12:13 ; 24:10 ; 시 51편) 하나님께 그 죄과를
용서받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성왕(聖王)의 대표적인 인물이 된 것이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일
열왕들을 평가하는 기준 근거가 된 것이다.
성 경: [왕하16:3]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아하스의 우상 숭배 행위]
(주);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 - 이와 유사한 평을 받은 유다 왕은 여호람이다(8:18). 여기서 아하스가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였다는 말이다. 특히 대하 28:2을 보면 그가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라고 되어 있어 이러한 사실을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그 뿐만 아니라 역대기에서는 '부어 만들고'라는 표현을 첨가시킴으로 인해 그들이 숭배한 우상이 금송아지인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혹자는 이 우상이 바로 그들이 고안해 만든 '송아지 우상'이라고 밝힌다(Keil & Delitzsch). 그러나 혹자는 이를 송아지 숭배로 받아들이지 않고 단순히 아하스가 아합과 아하시야와 같은 악한 행위를 했을 뿐이며 베니게인들의 우상을 재도입했다고 주장한다(Rawlinson, Bahi).
(주);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역대 왕들 가운데서 이와 같이 이방 종교와 섞인 혼합주의(syncretism)를 처음으로 제창한 왕은 아합이다(왕상 16:30-33). 그런데 아하스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과 이방의 우상 숭배법을 혼합하는 죄를 범한 것이다(14, 18절).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아하스가 행한 우상 숭배는 금송아지를 우상화한 것 뿐만 아니라 이방 종교를 영입한 듯하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우상 숭배 행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이전에 그곳에서 유행했던 풍습인 듯하다(M. Cogan).
(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 본절은 분명히 아하스가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한 것 중에서 그 한 예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서도 이스라엘의 열왕이 이방인의 이런 풍습을 따랐다는 기록을 없다. 한편 요세푸스(Josephus)는 아하스가 예루살렘에 세워진
제단 위에서 자기 자식을 희생 번제물로 바쳤다고 기술하고 있어 당시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증언하고 있다(Antiquities of the Jews, Vol. IX,p.
243). 한편 성경에서는 몰록에게 자식을 바치는 일을 경고한 곳(레 18:21 ;20:1-5)이 있는데 이것은 인신제사가 우상 숭배의 행위에서 벌어지는
예식의 일부분뿐만 아니라 풍조이기 때문에 엄정하게 경고하신 것이다. 그리고 신 18:10에서 또 한번 이를 경고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취해야 할
자세를 엄하게 강조한다. 그런데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한다"는 표현이 정확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
있어 예식이 벌어지는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알 수 있게 한다.(1) 이것은 신명기적 입장에서 본 왕의 배교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라는 견해가
있다(Hobbs). 그러나 미 6:7 ; 렘 7:31 ; 19:5 ; 32:35 등에서는 분명히 아들을 불 속에서 태우는 것을 언급하고 있어 그것이 단지 상징적이라는
견해는 타당치 못한 것 같다. 더욱이 미가 선지자(B.C. 735-716)를 전후로 한 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므로 그들의말은 당시에 이런 행위가
직접적으로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후의 예레미야 선지자(B.C. 627-580)나 이스라엘 선지자(B.C. 593-570)도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해서 증언한 것이다(겔 16:21). (2) 이것은 직접 아이를 죽여 불로 태웠음을 의미한다는 견해가 있다(Keil, B hr, Eusebius, Wycliffe). 이
견해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긍정하는 것으로 오늘까지도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므로 단지 불로만 통과케하고 죽이지는 않는다는
의식적인 해석은 부정케 된다. 왜냐하면 의식적인 측면에서이 사실을 보는 견해는 이 행위가 정결케 하는 불침례를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에 본절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한편 이러한 인신 제사는 아하스 뿐만 아니라 므낫세(21:6)도 범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그리고 인신 제사에 대한 보다
자세한 것은 본장 주제 강해 '몰록 종교의 인신 제사'를 참조하라.
성 경: [왕하16:4]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아하스의 우상 숭배 행위]
(주);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 이런 표현은 신명기서와 본서 뿐만 아니라(신 12:2 ; 왕상 14:23) 예레미야서(렘 2:20 ;
3:6)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이렇게 근동의 우상 숭배자들은 그들의 예배 대상인 우상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산에서 종교 의식을 거행했다.
또한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의식에 엄숙함과 신비함을 부여하기 위해서 무성한 나무 숲 아래서 제사를드렸다(신
12:2). 아하스는 이러한 산당에서의 종교적 행위를 허용(왕상 3:2 ; 14:23; 15:14 등)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왕들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그 행위를
장려했다. 그래서 그는 통치 말기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예루살렘 성전을 폐쇄하기까지 했던 것이다(대하 28:24). 호 4:13에서는 이런 장소에서
행음(行淫)이 이루어졌다고 밝혀 당시의 사회상과 타락상을 고발하고 있다. '산당'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것은 본장 주제 강해 '산당 예배에
관하여'를 참조하라.
성 경: [왕하16:5]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아람과 이스라엘 동맹군의 침입]
북 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에 대해서는 사 7장과 대하 28장, 그리고 본서 15:37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왕하16:6]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아람과 이스라엘 동맹군의 침입]
(주); 엘랏을 회복하여 아람에 돌리고 - '엘랏'은 본서가 기록될 당시까지는 유다나 에돔의 소유였었다(왕상 9:26 ; 22:48 ; 왕하 14:22). 그러므로 한번도 소유한 적이 없는'엘랏'을 아람 왕 르신이 회복되었다는 말은 그 주장에 있어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이에 대해 학자들 간에는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누어져있다. (1) '아람'을 '에돔'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Hobbs, Gray, Myers). 그리고 70인역(LXX)과 벌게이트(Vulgate)역에도 이를 '에돔'으로 번역하고 있어서 위의 견해를 뒷받침해 준다. 그렇다면 아람이 엘랏을 정복하여 '에돔'에게 돌려주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본절의 '회복'이란 용어는 적절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2) '회복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헤쉬브'(*)를 단순히 '정복하여'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Keil,B hr). 그래서 카일(Keil)은 아람 왕 르신이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이전에 먼저 엘랏지역을 '정복하였다'고 한다(Keil & Delitzsch, Vol. III, p. 401-405). 그러나 오늘날 밝혀진 고고학의 자료에 의하면 '엘랏'은 분명히 에돔의 소유였다(J.M.Myers,Albright Festschrift, p. 377-392 ; Y. Hoffmann, The Bible and Jewish History, p.76-89). 그리고 엘랏은 다메섹에서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람의 르신이 이곳을 먼저 정복한 뒤에 예루살렘을 공격했다는 것은(Keil)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대하 28:17에서는 분명히 에돔인의 침략으로 유다 백성이 사로잡혀 갔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위에 언급된 아람을 에돔으로 고치는 것은 당연히 수정이다(Rawlinson). 그리고 엘랏을 회복하는 일에 아람 왕 르신의 공로가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당시에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엘랏 항구를 상실한 일은 유다에게있어서 매우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하스는 앗시리아(앗수르)의 도움을 긴박하게 요청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7절). 그리고 '엘랏'의 위치와 그 성읍의 기능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것은 14:22의 주석을 참조하라.
(주); 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 - 본서가 기록되던 당시에 엘랏은 분명히 에돔의 소유였다(Rawlinson).
성 경: [왕하16:7]
주제1: [유다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앗수르의 도움을 청하는 아하스]
선지자 이사야는 그때 유다 왕 아하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다. 이사야는 아하스 왕에게 진짜 적은 인근의 작은 나라들의 왕이 아니라 앗시아임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사 7:3-17). 이사야의 말은 앗시리아가 근동 전지역을 가공할 만한 전쟁이 상태로 몰아감으로써 사실로 드러났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의 죄를 벌하시기 위하여 다시 에돔과 블레셋을 통해 유다를 치도록 하셨다. 이에 이하스는 그들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앗시리아 왕의 군사 원조를 청하였다. 실로 아하스는 먼저 에돔과 블레셋의 침략을 막기 위한 목적도 가졌으나 동시에 아람과 이스라엘의 침략자마 막으려는 목적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이사야의 권면을 듣지 않고 여호와를 배반하고 취한 망령된 행동이다. 정녕 이사야가 이하스 왕에게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두려워 말라'(사 7:3-9 ; 8:5-8)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앗시리아를 의존한 것이다. 그의 이런 처사는 결국 남유다에 대한 앗시리아의 압제를 초래하고 말았다.
(주);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 아사야 선지자는 왕에게 앗수르왕과 동맹 맺는 것에 대해 엄중히 경고했었다(사 7:4). 왜냐하면 강대국 즉, 앗수와의 동맹은 강대국에 대한 약소국(남유다)의 종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때부터 유다는 정치적으로, 또 한 군사적으로 앗수르에 예속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 이렇게 유다의 아하스는 자신을 굴욕적으로 비하(卑下)하면서까지 앗수르를 의지하여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이러한 그의 행위는 잘못된 동기, 즉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북이스라엘과 아람을 들어 유다를 벌하시려는 것을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막아
보려는데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결국 스스로 재난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최근의 역사에서도 나타나듯이 자국의 생존을 위해 외세에
의존하는 정책은 결코 이득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성 경: [왕하16:8]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앗수르의 도움을 청하는 아하스]
본절에 나타난 아하스의 이런 행위는 15:20에 기록된 므나헴의 악한 행위와 비슷하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뇌물받는 것을 엄금하고 있으며 사무엘의
아들들이 바로 뇌물때문에 책망을 받은 장본인이다(삼상 8:3). 또한 신명기서의 기자는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한다'고 함으로 뇌물을 받는 것 뿐만 아니라 주는것까지도 엄중히 경고하였다(신 10:17 ; 27:25). 이런 의미에서 볼때 아하스가 앗수르왕에게
뇌물을 바치는 행위는 결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특히 본절에서 '여호와의 전'에 있던 보물로 뇌물을 삼은 행위(12:18 ; 18:15 ; 왕상
15:18)는 극심한 배교행위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1) '여호와의 전'에 있는 은금은 (가) 왕들이주변 국가를 정복한 후 승전의 기념으로
하나님께 바쳤던 헌물과(삼하 8:11, 12) (나)백성들이 낸 헌물이었기 때문이다(12:4). (2)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은 주로 백성들의 세금을
거둬들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하스는 이처럼 하나님께 바쳐진 헌물과 백성의 세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에 사용했다. 이러한 행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에서 비롯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이나 정치 지도자들은 돈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잘 사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칫하면 아하스처럼 하나님의진노를 사는 데에 돈을
사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성 경: [왕하16:9]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앗수르의 도움을 청하는 아하스]
본절에서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아람을 친 것이 마치 앗수르가 유다의 구원 요청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여 도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앗수르의 자료들을 살펴보면 그러한 의도는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Hobbs). 이에 대한 보충 자료로서 대하 28:20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오히려 유다를 포위하고 공격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당시에 앗수르는 이미 서방으로의 진출 정책을 실현하고 있던 중이라 유다의 요청을 구실로 삼아 쉽게 다메섹과 사마리아를 공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연대는 정확치 않지만 대개 사마리아를 공격하기 한 해 전인 B.C. 733년에 닷무르(Tadmor)를 선두로 한 공격으로 보고 있다(Cogan). 그 뿐만 아니라 아하스가 앗수르에게 원군 요청을 할 때 이미 디글랏 빌레셀은 게셀(Gezer)의 포로들과 함께 예루살렘 가까이에까지 와 있었다(W. hallo). 그러니까 앗수르는 이때 2차 원정 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접근은 다메섹 정복과 함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게도 큰 위협이 되었던 것이다. 앗수르의 1차 원정은 15:29, 30에서 이미 다루었다. 그리고 그들의 3차 원정은 17:3-5(호세아 5년)에 나타난다.
(주);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 앗수르의 편에서 볼 때 사마리아보다도 다메섹이 가깝기 때문에 이곳을 먼저 침공한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는 경제적으로 부요했고, 군사적인 면에서 볼 때도 사마리아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먼저 침략을 당한 것 같다(Rawlinson). 한편 본절에서 언급된 '쳐서 취하여'라는 말은 히브리어 '이트페세하'(*)를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손으로 다루다', '압도하다', '장악하다'란 의미의'타파스'(*)에서 온 용어이기 때문에 '완전히 정복했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수리아(아람)는 이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역사 위에서 사라지게 되었다(B.C.732).
(주); 길로 옮기고 - 길(kir)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레이(Gray)는 암 1:5을 근거로 들면서 '길'(*, 키르)은 고유 명사가
아니라 '도시'라는 뜻의 일반 명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것이 '니드웨'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에 대한 그 어떤 분명한
증거도 없다. 한편 암 9:7에는 '길'(kir)이 아람인들의 본래 고향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카일(Keil)은 본절의 '길'을 쿠르(kur)
강가의 한 지방으로 보고 있다.
성 경: [왕하16:10]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다메섹 우상 제단 도입]
(주); 아하스 왕이...다메섹에 갔다가 - 아하스는 디글랏 빌레셀이 자기의 요청대로 응해준 것을 감사하기 위하여, 그리고 디글랏 빌레셀이 유다로 침공해 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Thenius) 그를 찾아 다메섹으로 갔다. 그런데 당시 앗수르 왕들은 이웃의 왕들로부터 뇌물을 받기 위하여 따로 접견실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Rawlinson). 그래서 아하스는 그곳에서 앗수르 왕을 만났던 것으로 추측된다.
(주); 거기 있는 단을 보고 - 구약 성경에서는 '보는 것'(Seeing)으로 말미암아 범죄에 이르게 되는 경우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창 3:6 ; 6:2 ; 12:15 ; 34:2 ; 38:2 ; 삼하11:2). 아하스도 그에 대한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앗수르 왕들은 자기 제단을 따로 가지고 다녀서 쉽게 옮겨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제단은 흔히 그들의 진영에 두는 습관이 있었다(Rawlinson). 그렇기 때문에 디글랏 빌레셀을 방문하러 갔던 아하스는 그 단을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아하스가 앗수르의 제단을 보고 그대로 똑같이 만들게 한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그레이(Gray)는 이것을 아하스가 앗수르에 대한 전적인 복종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대하 28:23에서는 그 단을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드리기 위해 세운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어 제단을 본떠서 만든 이유를 더욱 불분명하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스가 앗수르의 제단을 본떠 만든 것이 앗수르 왕에게 아부하기 위해 자원해서 그렇게 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Pulpit Commentary).
(주); 제사장 우리야 - '여호와의 빛이시다'라는 의미는 '우리야'라는 이름은 성경에서 '우리'(*) 또는 '우리야'(*)로 나타난다. 사 8:2에서
이사야는 그를 '진실한 증인'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본장에서 그의 역할을 볼 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그는 왕의 배교적인
명령에 대해 제사장으로서의 권위로 한 마디의 비판도 없이 그대로 고분고분하게 순종하였기 때문이다(11, 16절).
성 경: [왕하16:11]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다메섹 우상 제단 도입]
본절에서는 아하스가 무슨 목적으로 그 단을 만들게 했는지 분명히 알 수가 없다. 아하스가 이 단을 만들라고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했을 때
우리야는 제사장으로서 이일에 대하여 아무런 칭찬도 정죄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하스가 여호와 숭배를 디글랏 빌레셀처럼 개인적인 안위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제사장 우리야는 이 일에 대한 평을 회피한 것 같다. 그러나 온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규례의 법도를 지키도록 교육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제사장이 특정한 왕에게만 복속되어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죄범하는 것을
수수 방관했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성 경: [왕하16:12]
주제1: [유다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다메섹 우상 제단 도입]
(주); 단을 보고 - 아하스는 다메섹에서 그랬던 것과 같이 또 다시 눈으로 단을 보자 곧장 충동에 이끌려 제사를 드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나타난 '본다'라는 말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라아'(*)로서 단순히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즐기다', '준비하다', '나타나다'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는 아하스가 단을 보고 마음으로 흡족히여겨 제사를 준비해서 행동으로 나타냈음을 시사한다.
(주);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야알 알라이우'(*)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학자들의 견해는 매우 다양하다. (1) NEB는
'그 계단 위에 올라갔다'(mounted the steps)로 번역한다(Luther, De Wette, B hr). (2) KJV은'그것을 위하여 드렸다'(on its behalf)로 번역한다.
즉 이 말은 새 단의 건축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식을 올렸다는 뜻이다(Gray). 그러나 '오르다'를 뜻하는 '알라'(*)는 전형적인 '번제'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음을 고려해 볼때 (Davidson) 이는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그래서 본절은 앗수르의 제단을 본뜬 단을
아하스가 개인용으로 삼아 제사드렸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성 경: [왕하16:13]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다메섹 우상 제단 도입]
(주); 불사르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크테르'(*)는 '불태우다'라는 동사 '카타르'(*)의 히필형(Hihpil ; 사역형 능동)이다. 그런데 이 동사가 하필형으로 사용될 때는 '제물을 태우는 것'을 나타내고, 피엘형(Piel : 강조형 능동)으로사용될 때는 '분향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본절에서는 '제물을 불에 태우는 것'을 말한다. 한편 본절에 표현된
(주); 자기의 번제와 소제 - 에서 3인칭 단수 소유격 형태인 '자기의'(히, 3인칭 단수접미어)는 일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는 다른 왕 자신을 위한 제사임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솔로몬과 같이(왕상 8:63) 왕이 직접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의미로 이해해서 '자기의'라는 말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Gray). 한편 본절에 나와 있는 제사에 대해서는 레위기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를 참조하라.
(주); 수은제 - 성경에서는 화목제 혹은 수은제로 나와 있는데 이 제사에는 세 가지가 있다. 즉 감사제(thank - offering), 서원제(vow -
offering), 자원제(free - willoffering)가 그것인데 '감사제'는 '지나간 축복에 대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서원제'는 '장차 받을 축복의
조건 제사'로 '자원제'는 축복에 대한 조건이라기보다는 '기도에 대한 보조 제사' 형식으로 드렸다. 그리고 제물은 가축 중에서 암수를 가릴것 없이
흠없는 것으로 드렸는데 기름 바른 무교병을 같이 드렸다. 제사 드리는 순서로는 제물에 안수한 후 잡아서 제단에 피를 뿌리고 다음과 같은 3부로
나누어 드렸다.즉 (1) 내장에 덮인 기름, 콩팥, 간에 덮힌 꺼풀과 꼬리를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2)오른쪽 어깨와 가슴은 제사장에게 주고, (3)
남은 것은 제주(祭主)가 먹되 감사 제물은 그날에, 자원제물이거나 서원 제물이면 다음 날까지 다 먹되 남은 것은 진영 밖에서 불살랐다(레 3:1-17
; 7:11-21, 28-34 ; 9:18-21). 한편 '수은제'만을 지칭할 때는 '손을 펼친다'란 뜻의 히브리어 '야다'(*)와 '토다'(*)가 쓰여진 듯하다(암 4:5).
그러나 '수은제'는 일반적으로 '감사제'와 같은 의미로 혼용했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대부분 감사제를 나타내는 즉 '쉐람'(*)을 사용했다. 그런데
본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에는 '쉐람'(*)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감사제'로 하지 않고 왜 '수은제'라고 번역했는지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감사제'와 '수은제'라는 표현을 혼용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레 7:12 ; 22:29). 한편 본제사에 대해
KJV, LB, RSV의 영역판에서는 '화목제'(peaceofferings)로 번역되어 있고 NIV 영역판에서는 '친교제'(fellowship offerings)로 되어 있다.
성 경: [왕하16:14]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다메섹 우상 제단 도입]
(주); 놋단 - 이에 대해서는 겔 9:2을 참조하라. 70인역(LXX)에는 '놋'에 해당하는 적절한 단어가 없다. 그래서 혹자는 맛소라 학자들이 아하스의 새 단과 구별하기 위해 이전에 있던 단, 즉 솔로몬이 만든 단 앞에다 '놋'이라는 단어를 적절하게 삽입해 넣은 것이라고 본다(Burney). 그러나 15절 후반부에 나오는 '놋단'이라는 단어와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70인역(LXX)에서 '놋'이라는 단어를 생략했다고 볼 수도 있으므로 버니(Burney)의 제안을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제단은 제사를 위해(창 8:20) 분향하는(출 30:1, 7, 8 ; 눅 1:10, 11)기구이다. 그런데 조각목으로 만든 후 놋으로 쌌기 때문에(출 27:2) 일명 '놋단'이라고 불리는 것이다(출 39:39 ; 왕상 8:64).
(주); 그 단북편에 두리니 - 즉 다시 말하면 아하스의 명령에 의해 만든 새 단은 성소의 정면 중앙에 위치 하도록 하고 옛 솔로몬이 만든 놋단은
한쪽 구석에 치워져 버렸다는 뜻이다.
성 경: [왕하16:15]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다메섹 우상 제단 도입]
(주); 이 큰 단 위에 불사르고 - 여기서 말하는 '큰 단'이라는 것은 왕상 8:64에서 솔로몬의 놋단이 작았다는 기록과 대조가 된다. 그러나 본절의 '큰단'은 솔로몬의 단보다 규모가 커서 그렇게 불리워진 것은 아니었다(Rawlinson). 그렇게 큰 단이라고 불리워진 것은 아마도 아하스의 새 단이 현관과 성전 바로 정면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혹자는 아하스의 단이 솔로몬의 단보다 컸기 때문에 '큰 단'이라고 불렀다고 생각한다(Keil & Delitzsch, Vol. II, P. 406). 한편 어떤 주석가는 솔로몬의 단이 작아서 그로 인한 불편을 없애기 위해 단을 교체했다고 주장하나(Hobbs) 그것은 설득력이 있는 설명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하스는 앗수르 왕에게 아부하기 위해 단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10절) 그 단이 보기에 좋아서 새 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하스가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했던 각종 제사는 겔 46:13-15에 기록된 것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율법적으로도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다(출 29:38-42 ; 민 28:2-8). 그렇다고 해서 그가 행한 제사가 배교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Hobbs)은 무리다. 왜냐하면 새 단은 앗수르의 양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우상을 숭배하는데 적합한 것이지 하나님을 섬기는데 알맞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 나의 물을 일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리비케르'(*)의 해석에 관해서학자들 간에는 견해가 매우 다양하다. (1) 혹자는 이것을 '나의
생각해 볼일'로 해석한다(Keil, Rawlinson). 즉 다시 말하면 '내가 그것에 관해서는 좀더 생각을 해서 앞으로 조치하도록 하겠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2) 혹자는 '비케르'(*)가 '구하다' 또는 '묻다'라는 뜻이 아니라 '주의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B hr). (3) 또한 다른 학자들은
'비케르'(*)가 '구하다' 또는 '기도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Thenius,Hobbs). 한편 이 '비케르'(*)라는 단어가 레 13:27, 33에서는 병든 사람의
피부를 '살핀다'라는 뜻으로, 시 27:4에서는 '기도'라는 의미로, 잠 20:25에서는 물건을 '주의깊게 살핀다'는 뜻으로, 그리고 겔 34:11, 12에서는
'잃어버린 것을 찾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구하다', '기도하다'라는 용어로도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하스가 한 말은 '내가 그것을 다시 배치 하겠다'이다(Wycliffe). 왜냐하면 본절과 평행구절인 대하 28:23에는아하스가
'다메섹의 신들에게 제사했다'라고 증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하스가 아람 왕들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 그 신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새 단'은 번제단으로 사용하고 '놋단'은 기도 제단으로 사용했다는 주장(Hobbs)은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새
단'은 번제단으로 사용했을지라도 놋단은 결국 치워버렸기 때문이다(14절, Rawlinson). 한편 본서에서는 '하나님께 구한다'는 말을 '비케쉬'(*)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비케르'(*)의 동의어로 볼 수 있다(Hobbs, Thenius).
성 경: [왕하16:16]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다메섹 우상 제단 도입]
(주);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대로 행하였더라 - 비록 제사장 우리야가 하나님 앞에 진실된 증인이었다 할지라도(사 8:2) 뚜렷이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나는 아하스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한 것은 잘못이다. 이것은 파숫군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겔
33:6). 반면에 세례 요한은 헤롯의 잘못을 과감하게 꾸짖었으며(막 6:18), 예수께서도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율법사와 서기관들과 같은
자들의 잘못을 적나라하게 책망하셨다(마 23:1-36).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도 매일의 삶 가운데서 종교적인 개혁은 물론 정치적인 개혁까지
신경을 써서 사회가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굳게 설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다. 만일 그렇지 않고 우리야 처럼 잠잠하면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서
죽은 자들의 피값을 말씀을 맡은 지도자들에게서 찾으실 것이다(겔 33:6).
성 경: [왕하16:17]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아하스의 남은 행적]
(주);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 내고 - '물두멍'(대야)은 물을 담기 위해 만든 뚜껑없는 원형 물통을 말한다. 이것은 바퀴 달린 받침 위에 놓여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으며, 또한 받침과 분리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 용도는 제사장들의 손발과 희생제물을 씻는 데 사용되었다. 모든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제단에 나아가서 그들의 공식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반드시 손발을 씻어야만 했던 것이다(출 30:19-21). 이 물두멍의
용량은 40밧(1밧은 22L로 계산하면 880L), 크기는 직경이 4규빗(약 1.82m)이었다. 그리고 성전에서 그것의 위치는 제사장의 뜰(안뜰) 좌우편에 각각
5개씩 두었다. 한편 성막에서는 그것을 성막과 제단 사이에 두었는데(출 40:30), 성전에서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편리를 고려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더욱 자세한 물두멍의 구조에 대해서는 왕상 7:27-39을 참조하라. 한편 아하스가 이와같이 성전의 구조를 훼손시킨 목적은 분명치 않다.
혹자는 '앗수르 왕에게 선물로 보내기 위해' 그렇게 했다(Ewald,Thenius)고 하나 전혀 근거가 없다. 그리고 혹자는 아마도 아하스가 성전 운영을
효과적으로, 또는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그것을 옮겼다고 하나(Hobbs)이에 대한 근거 또한 찾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하스가 이같이 행한 것을
'우상이 있는 신전이나 왕궁 같은 곳에 옮겨 붙이기 위한 것(Keil & Delitzsch, Vol. III, P. 407)으로, 혹은단순히 제단이 바뀐 것과 때를
같이하여 여호와 신앙에 대한 흔적을 지우기 위해 성전안의 구조를 '파괴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Rawlinson). 한편 아하스가 앗수르 왕디글랏
빌레셀(Tiglath - pileser)을 두려워하여, 그가 예루살렘에 올 것을 대비해 그의 탐욕을 자극할 만한 것을 제거했다는 혹자의 주장(Wycliffe)에
대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다면 물두멍에 붙어 있는 옆 판 뿐만 아니라 물두멍과 받침 전체를 없앴어야 하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성 경: [왕하16:18]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아하스의 남은 행적]
(주); 낭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싸크'(*)는 '물건을 덮다', '어떤 장소를 덮다'라는 뜻의 동사 '싸카크'(*)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에 대한 영역본을 살펴보면 NEB는 '구조물'(structure)로, RSV는 '덮은 길'(covered way)로, KJV는'밀실'(covert)로 서로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보다 더 만족스런 번역은 없는 듯하다. 한편 본 낭실은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인데 이는 바닥에 '무엇을 깔아 놓은 곳'으로서 왕의 성전을 방문했을 때 자리 잡던 장소였을 것이다(Keil & Delitzsch). 들어가는 낭실 이것은 위에서 언급된 '낭실'과는 다른 것으로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마보'(*), 즉 '입구'라는 뜻이다. 이것은 솔로몬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서(왕상 10:5) '왕이 성전으로 들어갈 때 거치는 계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공동 번역에서는 '바깥 대문'으로 번역하였고, 대부분의 영역본에서는 '입구'(entry)로 번역하였다.
(주); 앗수르 왕을 인하여 -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것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 하여'로 번역한다(Keil, Rawlinson). 왜냐하면 아하스는 앗수르 왕
때문에 이 두 낭실을 여호와의 전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한편 다른 주석가는 이것을 '앗수르왕 앞에서'로 번역하는데 이것은 대하
28:20, 21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하스는 앗수르 왕이 올 것을 대비하여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앗수르
왕이 그것을 보고 달라고 요구할까 걱정해서이기도 하지만(B hr) 속국의 왕으로서의 태도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Hobbs).
성 경: [왕하16:19]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아하스의 남은 행적]
역대기서는 열왕기서에서 발견할 수 없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첨가해 아하스의 치적에 대한 바른 평가를 할 수 있게 한다. 즉 (1) 남유다의
아하스가 북이스라엘의 베가에 완전한 패배를 당함(대하 28:5). (2) 아람에게 패함(대하 28:5). (3) 에돔에게 패배함(대하 28:17). (4) 통치 기간
중 남쪽의 많은 지역을 블레셋에게 빼앗김(대하 28:18). (5) 다메섹의 우상을 숭배했으며 오히려 그것들에 의해 망한 사실(대하28:23). (6) 그의
통치 말기의 성전 폐쇄(대하 28:24), 낭실 문을 닫음(대하 29:7), 등불을 끈 것(대하 29:7),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드리지 않고 분향을 하지 아니한
것(대하 29:7). (7) 마지막으로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지어 우상 숭배를 조장한 것(대하 28:25)등이 있다.
성 경: [왕하16:20]
주제1: [유다 왕 아하스의 악정]
주제2: [아하스의 남은 행적]
대하 28:27에 나타난 바와 같이 역대서의 기자는 아하스가 다윗의 성에는 장사 되었으나 열왕들의 묘실에는 안치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본서의 기자보다 역대서의 기자가 매우 아하스에 대해 비평적임을 반영한 것이다.
성 경: [왕하17:1]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호세아의 악정(惡政)]
(주); 아하스 십 이 년에...이스라엘 왕이 되어 - 본절에서 이스라엘의 호세아(Hoshea)는유다의 아하스 왕 12년에 왕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15:30에서는 요담 20년에 호세아가 베가를 죽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요담과 그의 아들 아하스사이에 4년간의 섭정(攝政)이
있었다고 본다면(15:30 주석 참조) 호세아가 왕이 된 것은 아하스 4년이어야 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약 8년 정도의 간격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자들은 여러 가지 제안을 한다. 예를 들면 (10 본절의 12년을 2년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Gray). (2) 요담과
아하스의 섭정 기간을 요담 8년부터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Thiele). (3) 호세아가 베가를 죽인 후(15:30)의 약 8년간은 무정부 상태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Keil). 그러나 위의 견해들이 연대기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은 될 수 있으나 어디에서도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발견할 수는 없다. 한편 아하스가 왕이 된 것은 B.C. 723년경이 된다. 그런데 이때는 호세아의 통치(B.C. 732-722)말엽으로 사마리아 성이 앗수르의
사르곤 2세(B.C. 722-705)에 의해 함락되기 직전이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적어도 아하스 3년 또는 4년인 B.C. 732년경에 왕위에 올랐어야 한다.
따라서 위에 제시된 세 견해 가운데(3)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15:30에 나와 있듯 요담 20년에 호세아가 왕위에 오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15:32-38 강해, '열왕기하 15장의 연대기에 대한 추가 설명'을 참조하라.
성 경: [왕하17:2]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호세아의 악정(惡政)]
(주); 악을 행하였으나...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 - 호세아의 배교(背敎)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본절에서 그가 '그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하지는 아니하였다'는 결코 그가 송아지 우상을 버렸다거나 이방의 우상들을 파괴했다는 말은 아니다. 아마도 본서
기자는 전장(前章)에 기록된 아하스 왕의 악행(16:1-4)과 비교하여 이러한 평가를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Hobbs). 혹자는 호세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루실렘 성전 방문을 허용했기 때문에 이러한 긍정적 평가를 받으리라고 추측하기도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I, p.
409). 아무튼 이상과 같은 사실과는 관계없이 결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것은 이전 이스라엘 왕들과 백성들의 죄악이 축적된 결과라는 것이 곧
본서 기자의 견해이다(7-18절).
성 경: [왕하17:3]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이스라엘의 패망]
(주); 살만에셀이 올라와서 호세아를 친고로 - 여기에 나오는 살만에셀(Shalmaneser)은 디글랏 빌레셀 3세(15:29)의 아들인 살만에셀 5세(B.C. 727-722)이다. 그의 왕명은 일명 '울룰라이'(Ululai)로 알려져 있다(Hobbs). 그런데 그는 무슨 연고인지 분명치 않으나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있던 때에 죽었으며 그의 후계자로는 그의 형제는 사르곤 2세(Sargon II, B.C. 722-705)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성을 함락시킨 왕은 사르곤 2세임이 분명하다(B.C. 722). 그러나 바벨론 열왕기에는 사마리아 전투에서의 종국적인 승리자가 살만에셀로 나와 있다(K. Gravson, H. Tadmor). 이것은 아마도 그가 가장 수훈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된 것이다.
(주); 호세아가...조공을 드리더니 - 살만에셀 5세의 아버지인 디글랏 빌레셀 3세는 베가를 친 후 호세아의 반역을 도와(15:29, 30) 호세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고 그에게 조공을 명했다(B hr). 그러나 디글랏 빌레셀이 죽자 호세아는 더 이상 조공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니 이에 다시금
살만에셀이 호세아를 쳐 조공을 바치게 한 것이다(Pulpit Commentary). 한편 여기서 '조공'이라는 단어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민하'(*)는 본래
'봉헌하다', '바치다'라는 뜻으로서(3:4) 주로 소제물(素祭物)이나'희생 제물'을 가리킨다(창 4:3; 출 30:9; 레 6:20; 왕상 8:64; 암 5:25). 그러나
본절 및 삿 3:15, 17, 18; 삼하 8:2등에서 이 단어는 지배자에게 바치는 공물(貢物)을 가리키고 있다.
성 경: [왕하17:4]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이스라엘의 패망]
(주); 애굽 왕 소 - 일반적으로 애굽 왕 '소'(So)는 사르곤의 보고서에 나오는 '시베'(Sibe)왕인 '파라오 사바카'(Pharaho Shabake)와 동일 인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J.B. Pritchard, Ancient Neatr Eastern Texts). 그러기에 혹자들은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세워'(*)로 발음되었으나 맛소라의 학자들에 의해서 '소'(*)로 발음되었을 것으로 본다(Keil.J, B hr, Rawlinson).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문헌학적 고찰에 의해 '사바카'의 재위 기간이 B.C. 710년에서 696년인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사바카는 호세아 당시의 애굽 왕이 아님이 분명해졌다(Hobbs). 그리고 이제와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소'가 왕명이 아니라, 애굽 델타(Delth) 지역의 한 도시인 것으로 믿고있다. 그리고 '소'라는 도시는 '테프나크테'(Tefnakhte)와 일치한다고 한다(Hobbs).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본절은 '애굽 왕(이 있는) 소'로 개역(改譯)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던컨(Dunker)에 의하면 당시의 애굽 왕은 사바카의 아버지로서 B.C.726년에서714년까지 통치했던 '사바콘'(Shadbakon)이었다고 한다.
(주); 사자들을 보내고 - 호세아 선지자는 이와같이 이스라엘이 이방과 동맹을 맺기 위하여 사자(使者)를 보내는 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호 5:13; 7:8-16; 8:9). 그리고 열왕기서에서는 선왕(善王)이 악한 왕들과 동맹을 맺는 것에 대해서조차 통렬히 비난하고 있다(8:27; 대하 19:2; 20:36). 실상 유다 왕 아하스 같은 이도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구하므로 도리어 유다를 이방의 신복(臣僕)으로 전락시켰다(16:7). 그런데도 호세아는 이제 또다시 애굽과의 동맹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 호세아는 아마도 애굽 왕의 원조를 확신하고 해마다 앗수르에 바치던 조공을 중지하였던 것 같다(Wilson). 그러나 불행이도 당시 애굽은 국내적으로 분열 상태에 있어 이스라엘을 지원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때문에 호세아는 대노(大怒)하여 쳐들어온 살만에셀 5세를 맞아 싸웠으나 결국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주); 호세아의 배반함을 보고 - 여기서 '배반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케쉐르'(*)는 '음모'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70인역(LXX)에서는 이를 '잘못'(wrong)이라는 뜻인 '아디키안'(*)으로 번역하고 있다. 아무튼 다시 앗수르의 속국(屬國)과도 같던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는 것을 중지하였다는 것은 곧 반란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주); 옥에 금고하여 두고 - 이처럼 호세아가 옥에 갇힌 것이 사마리아 성의 함락 전인지 아니면 그 후인지에 대하여 학자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1) 사마리아 성이 함락되기 이전에 호세아 왕은 이미 옥에 갇혔다는 견해가 있다(Ewald, Hobbs). 왜냐하면 18:11에 보면
앗수르의 포로 가운데 호세아 왕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본문에서도 호세아 왕이 갇힌 것이 먼저이고 그 후에(5절) 앗수르의 최후의
공격이 닥쳤기 때문이다. (2) 호세아가 갇힌 것이 사마리아 성의 함락 이후 앗수르의 포로로 잡혀 가서의 일이라는 견해가 있다(Keil, B hr,
Rawlinson).이와 관련 바르(B hr)는 니드웨 기념비에 호세아 왕이 앗수르의 포로로 잡혀가는 그림이 나타나 있다고 말한다. 또한 호세아의 재위
기간이 9년으로 명시된 것으로 보아 사마리아 성이 함락됨과 동시에 포로로 잡혀갔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18:10). 그리고 카일(Keil)은 호세아의
금고(禁錮)와 사마리아 성 함락의 기사가 서로 도치되어 기록된 것은 호세아가 살만에셀에 반역한 결과를 먼저 언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위의 두 견해 가운데 비교적 타당한 것은 두번째 견해이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성을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호세아가 순순히 앗수르 왕에게
항복했을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사실 호세아가 만일 그렇게 항복할거라면 애당초 조공을 금지하는 등의 배반을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18:9-12의 기록을 보면 분명히 호세아의 7년에 앗수르의 공격을 받고 3년 후인 호세아 9년에 사마리아 성이 함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 경: [왕하17:5]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이스라엘의 패망]
(주);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 혹자는 주장하기를 앗수르인들은 본래 북이스라엘을 사마리아로 언급하지 않고 '오므리의 집'으로 일컫는 다고 한다(J.B. Pritchard). 만일 실제로 그렇다면 본절은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킨다기 보다는 수도인 사마리아 성을 지칭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세겜에서 발견된 한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세겜 성이 함락되어 파괴된 것은 B.C. 724년 경으로 나타나 있다(W.G.Dever). 따라서 앗수르는 먼저 이스라엘을 훼파하여 전국토를 거의 장악한 후 마지막으로 수도 사마리아 성읍을 함락 시키기 위해 총공세를 폈음이 분명하다.
(주); 삼 년을 에워쌌더라 - 앗수르의 막강한 전력(戰力)과 뛰어난 전쟁 기술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마리아 성을 함락하는 데 3년이란 기간이
걸렸다는 것은 그리 이상할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멸망 지국(滅亡之國)의 위기에 몰린 이스라엘인들은 수도 사마리아 성읍만은 보존하기 위하여
다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말하는 3년이란 만 3년은 아닐 것이다. 18:9, 10에 의하면 이는 단지
호세아 7년에서 9년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성 경: [왕하17:6]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이스라엘의 패망]
(주); 호세아 구 년에 ... 앗수르로 끌어다가 - 사마리아 성이 함락된 연대는 공히 B. C.722년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앗수르의 1, 2차 침입(15:29; 16:9)으로 인해 이미 많은 백성들이 앗수르로 포로되어 잡혀 갔었다. 그리고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은 나머지 이스라엘 지역에서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고 있었다. 세겜으로부터의 증거는 바로 이러한 것을 증명해 준다. 5절 주석 참조. 한편 사르곤(Sargon)의 비문에는 그 당시 사마리아에서만도 남자만 약 27,290명이 포로로 잡혀갔다고 기록되어 있다(R.D. Patterson, Pulpit Commentary). 이것은 당시 사마리아 전체 인구의 1/3정도에 해당된다고 한다(Rafia). 따라서 남자는 거의 모두 붙잡혀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아무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4,600명 정도를 포로로 잡아간 것에 비교해보면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렘 52:30).
(주); 할라와...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주된 곳은 할라와 고산 하볼, 그리고 메대 사람들이 사는 여러 고을이었다. 그런데
할라(Halah)라는 지명은 앗수르 제국 안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레이(Gray)는 이 도시가 톨레미(Ptolemy)의 칼키티스(Chalchitis) 중의 하나일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으로 고산(Gozan)은 오늘날 '텔 할라프'(tel Halaf)로 추측된다. 그곳은 유프라테스 강의 지류인 하볼 강 유역이다.
그렇지만 하볼(Habor)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한편 메대(Media)는 지금의 이란 북서 지방에 위치했던 나라이다. 그러나 B.C. 550년경
페르시아에 합병되었으니 곧 페르시아 왕 고레스 때의 일이다.
성 경: [왕하17:7]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패망의 원인]
본절에서 23절까지는 1-6절에 기록된 사건들에 대한 신학적 주석이다. 즉 이 부분에선 이스라엘이 멸망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죄악 때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문은 그 어휘나 문체가 신명기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다는 분명한 특징을 띤다(M. Weinfeid).
(주); 이 일은 - 이에 해당하는 원문(*, 와예히 키)을 직역하면 '이 일은...때문이다'가 된다. 이런 구문은 성경에서 매우 드물게 사용되는 것으로서 저자의 설명적 첨가임을 암시해 준다. 한편 여기서 '이 일'이란 사마리아 성이 함락되고 백성들이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간 사건을 가리킨다.
(주); 이스라엘 자손이...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파기했음을 먼저 상기시킨다. 특히 출애굽 사건은 후기 선지서에서 하나님의 언약적 사건으로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다(호 11:1; 12:9, 13; 13:4). 즉 하나님께서는 과거 이스라엘 조상들과 맺었던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을 애굽의 바로 손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다시금 저들에게 새로운 축복의 언약을 주셨다(출 2:23-25 ;19:1-6). 그런데도 그들은 그 같은 언약을 저버리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으니 이제 다시 앗수르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주);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계명 중에 제 1계명을 범했음을 가리킨다(출 20:2,3; 신 5:6,7). 이처럼
이스라엘백성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고 우상을 섬긴 것은 곧 저들을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건져 주신 구원자에 대한 배은망덕의 죄악이었다.
한편 여기서 이방신들에 대해서도 '경외하며'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것은 특이하게 보인다. 혹자는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레우'(*)를'심리적인
공포'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Snaith). 그러나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이것은 '숭배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바드'(*)와 동의어로 보아야
한다(R.Otto). 아무튼 신 4:10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그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라고 했고, 신 5:29에서는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고, 신 6:24에서는 그의 모든 규례들을 지켜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결과'에 대해서는 신28:58-68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같은 길에서 떠났으니 결국 예고된 심판을 당하고 만 것이다.
성 경: [왕하17:8]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패망의 원인]
(주); 이방 사람의 규례 - 우상 숭배 및 사악한 종교 의식(儀式)을 의무화 또는 조장시키는 이방인의 법령 및 제도를 가리킨다. 레 18:3 주석 참조.
(주); 이스라엘 여러 왕의 세운 율례 - 본절은 이스라엘 열왕들의 악행을 동일한 척도에서 정죄할 수 있은을 암시한다. 즉 모든 이스라엘 왕들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세운 거짓 종교와 우상 숭배 죄악(왕상 12:25-33)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왕상15:34; 16:19,26; 22:52).
성 경: [왕하17:9]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패망의 원인]
(주); 가만히 불의를 행하여 - 이것은 이스라엘 왕과 백성들이 '몰래 불의를 유포시킨 것'을 가리킨다(Hobbs). 즉 그들은 지금까지 산당을 세우고 금송아지를 숭배하면서 마치 여호와를 섬기는 것처럼 가장했던 것이다(Keil). 사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은 백성들 앞에 금송아지를 세워 두고 아론처럼 "이스라엘 아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산이로다"(출 32:4; 왕상 12:28)라고 공포하면서 그 배후에는 온갖 불의를 다 행했다(왕상 12:28-33). 그리고 지금까지 모든 이스라엘 왕들은 그러한 송아지 숭배를 묵인하면서 허용하거나 장려해 왔다. 그러나 이제 본절에서 본서 기자는 그같이 행하는 그들의 본심을 가리켜 '가만히 불의를 행한'것으로 지적하고 있는것이다.
(주); 산당을 세우고 - 왕상 3:4에서는 산당에 대하여 그다지 부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본문은 이 산당이 우상 숭배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10-12절). 사실 성전이 없던 시절에 불가피하게 인정되어 오던 산당(삼상 9:5-14)은 후에 모든 악을 산출해 내는 본거지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이 또한 '가만히 불의를 행한'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와 관련해서는 16:1-9 강해, '산당 예배에 관하여'를 참조하라.
성 경: [왕하17:10]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패망의 원인]
(주);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 가나안 족속들은 대개 높은 산, 푸른 나무 아래서 우상 및 우상을 섬기는 처소를 설치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높이 올아갈수록 저들의 신에게 보다 더 근접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푸른 숲을 신령한 곳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어쨌든 본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그러한 곳에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다는 것은 그들이 가나안 종교에 영향받았음을 시사해 준다. 왕상 14:23 주석 참조.
(주); 목상과 아세라 상 - 여기서 '목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체바'(*)는'기둥'이라는 뜻이다. 그러기에 창 28:18,22; 35:14; 출 24:4; 사
19:19 등에서는 동일한 단어가 '기둥'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런데 본절에서 이것은 분명히 우상 숭배의 대상이었음이 지적되고 있다. 즉 본서
기자는 이 기둥들을 가나안 종교의 풍습들과 깊은 연관을 가진 것으로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이것이 고대의 야훼주의의 잔재(창 35:14)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본절에서 지적하고 있는 기둥들은 분명 바알 숭배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Rawlinson).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왕상 14:23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아세라'(Asherah)는 고대 근동의 제신(諸神)의 어머니로 숭배되던 여신이다. 이에 관해서는 레 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왕하17:11]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패망의 원인]
(주); 산당에서 분향하며 - 여기에서 '분향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예카테루'(*)는 '분향하다'라는 뜻의 기본형 동사 '카타르'(*)의 피엘형(Piel : 강조형 능동이다. 이 단어가 히필형(Hiphil : 사역형 능동)으로 쓰일 때는 이스라엘 제사장들의 율법적인 합당한 제사 행위를 가리킨다(레 1:9,13,15,17; 2:2,9,16). 그러나 본절과 같이 피엘형으로 사용될 때는 주로 우상 숭배시의 제사 행위를 가리킨다(16:4; 렘 7:9; 11:13,17).
(주);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으며 - 여기서 '격노하다'에 해당하는 '카아스'(*)는 '슬퍼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에 대하여 격노하심은 곧 죄짓는 자의 영혼을 안타까이 여기며 슬퍼하심의 또 다른 감정 표현인 것이다(겔 18:23).
성 경: [왕하17:12]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패망의 원인]
(주); 또 우상을 섬겼으니 - 여기서 '우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길룸김'(*)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치 않다. 데이빗슨(Davidson)의
히브리어 사전에서는 이 단어가 '굴러가다'라는 뜻의 동사 '갈랄'(*)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겔 6:4,5,6에서와 같이 일반적으로
'우상들'이라고 번역되는 것이 보통이긴 하지만 23:24에서는 '가증한 것들'과 함께 언급되고 있고 겔 4:12에서는 '인분'(ball of dung)과 연결되고
있다. 아마도 우상을 이와 같은 단어로 표현한 것은 신29:17이나 본문에 비추어 볼 때 둥근 우상이나 기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카일(Keil)은 이 단어의 의미를 '흙덩어리' 또는 '돌' 등으로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단어 속에는 분명히 어떤 경멸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B hr,Rawlinson). 이와 관련해서는 신4:1-40 강해, '원어의 뜻으로 살펴본 우상 개념' 참조.
성 경: [왕하17:13]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패망의 원인]
(주);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 - '선지자'와 '선견자'는 근본적으로 같은 말이다. 삼상9:9에는 "지금 선지자라고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고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굳이 두 단어를 구분하자면 다음과 같다. '선지자'(*, 나비)는 '선포하다', '말하다'라는 뜻의 '나바'(*)에서 파생된 말로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측면을 강조한 명칭이다. 반면 '선견자'(*, 로에 또는 *, 호제)는 '보다'(*, 라아) 또는 '인지하다'(*, 하자)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는 곧 선지자의 신령한 환상을 보는 측면에서 강조점을 둔 명칭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상 9:9 주석을 참조하라.
(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 주로 이러한 어투로 예언자 선지자는 예레미야(렘 7:3, 5; 18:11)와 에스겔(겔 33:11)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부분만큼은 적어도 위의 두 사람 중 한명이 기록한 것으로 생각한다(Gray). 그러나 이 다음에 나오는 '명령', '율례', '율법' 등의
단어는 주로 신명기에서 사용하던 어휘이며 신 18:18과 본절의 사상이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위의 주장은 진위(眞僞) 여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우리는 이 부분에서 이스라엘을 돌이키기 위해 본서 기자가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한편 이와 관련해서는 본서 서론,
'저자'부분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왕하17:14]
주제1: [북이스라엘의 패망]
주제2: [패망의 원인]
(주); 그 목을 굳게 하기를 - 본절 이하에서는 출애굽 이후 여호와께 불순종하던 이스라엘의 완악한 역사가 지적되고 있다. 사실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여호와께 대한 이스라엘의 완고한 외고집은 성경 전체에서 계속해서 지적되고 있는 사항이다(출 33:3,5 ;대하 36:13; 느 9:16,17,29; 렘 17:23). 한편 여기서 '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래프'(*)는 '얼굴의 뒷면'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바로 서기를 거부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삼하 22:41; 렘 18:17). 그리고 '목을 굳게 하다'는 말도 하나님의 뜻에 대해 불순종 하거나 굽힐줄 모르는 인간의 외고집, 교만 등을 나타내는 성경의 관용적인 표현이다(출 34:9; 신 9:6; 대하 30:8; 렘 7:26). 출33:3 주석 참조.
(주); 믿지 아니하던 - '믿는다'에 해당하는 '아만'(*)은 '확신', '신뢰', '진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따라서 본절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확신하고 신뢰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왕하17:15]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패망의 원인]
(주); 그 열조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 - 본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언약은 크게 다음 세가지이다. (1) 11:4, 17에서 요아스에 의해 다시 체결된 다윗의 언약, (2) 13:23에 언급된 아브라함의 언약, (3) 본절에 언급된 시내 산 언약이 그것이다. 그런데 본절에서 언급된 언약을 시내 산 언약으로 볼 수 있는 까닭은 전후 문맥이 출애굽 및 광야에서의 사건들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출 19:5-8; 24:3-8). 한편 이 시내 산 언약은 이스라엘 민족이 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할 때에 비로소 주어진 언약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근간(根幹)은 바로 이 시내 산 언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본서 기자는 여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언약을 떠났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 여기서 '말씀'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에두트'(*)는 '증거'를 뜻하는 것으로 주로 율법이나 십계명 또는 그밖의 성스러운 의식(儀式)들을 가리킨다(신 4:26; 30:19; 31:18).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같은 규례나 법도를 저버렸다 하니 곧 저들의 타락의 첫 관문을 훨씬 넘어섰음을 의미한다(시119:1-11).
(주); 허무한 것을 좇아 허망하며 - 여기서 '허무한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벧'(*)은 '바람', '먼지', '무가치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허망하다'는 말 역시 이와 동일한 어근(語根)을 지닌다. 한편 본절과 같은 이러한 표현은 예레미야서와 같은 데서 자주 나타나는데(렘 2:5) 주로 이방의 우상 숭배를 지적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또 바울은 이방인들에 대해서도 이러한 어투로 표현했다(롬 1:21). 즉 이것은 헛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모두가 무가치하며 무존재한 자들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서 더 나아가 신 32:21에서는 우상 숭배가 부패하고 사악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케 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주); 이방 사람을 본받아 -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스라엘인들에게 이방 사람들을 본받지 말라고 명령했었다(레 18:3; 신 12:30,31). 왜냐하면
이방 문화는 하나님을 떠난 문화로서 그 문화를 받아들일 경우 최소한 혼합주의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 이방 문화에 삼켜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한국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 기독교가 토속 종교와 접합되어 여러 가지 이상한 형태의 혼합주의로 나타난 데서도 발견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 문화를 기독교 문화로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자신이 세상문화에 빠져 들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창 4:16-24 강해, '죄와 문화와의 관계'를 보다 참조하라.
성 경: [왕하17:16]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패망의 원인]
(주);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 여기서 특별히 '두 송아지'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는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출 32장)이 아닌 여로보암의 두 금송아지 사건(왕상12:28-30)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왕상 12:28-30 주석과 본장 24-41절 강해, '금송아지 숭배'를 보다 참조하라.
(주); 하늘의 일월 성신 - 이것은 소위 천체(天體) 숭배라고 하는 것으로서 바벨론이나 아라비아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우상 숭배이다. 그런데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이러한 천체 숭배를 했다는 기록이 없다. 단지 유다의 므낫세가 일월 성신(日月星辰)을 숭배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21:3). 한편 혹자는 므나헴(Menahem, B.C.752-742) 시대에 바벨론의 성운(星雲) 숭배 사상이 이스라엘에 도입되지 않았는가 하고 추측하기도 한다(Rawlinson). 또 암 5:26에는 이미 B.C. 8세기 중반경에 성운 숭배가 있었다는 암시가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천체를 숭배하는 일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신 4:19; 17:3). 이와 관련해서는 21:1-18 강해,'자연신론의 제형태'를 참조하라.
(주); 바알을 섬기고 - 바알(Baal) 숭배가 처음 언급된 때는 기드온 시대이다(삿6:25-32). 그러나 바알을 가장 널리 보급시킴으로써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알 숭배에 빠지게 한 왕은 바로 아합이다. 이에 대해서는 왕상 16:31-33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왕하17:17]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패망의 원인]
(주);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 몰렉(Molech) 종교의 인신 제사(人身祭祀)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고대 가나안 족속들은 자식들 중 한 명을 택하여 몰렉에게 바치면 나머지 자식들에게 축복이 임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몰렉(또는 몰록) 종교의 사악한 풍습에 대해서는 16:3 주석 및 레 18:21 주석을 각기 참조하라. 한편 일월성신 숭배와 마찬가지로 몰렉 종교의 인신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 역시 북왕국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16:3에서 유다 아하스가 이러한 인신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들을 볼때 이스라엘에서도 이러한 행위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할수 있다. 또 이스라엘의 선지자의 글에도 이러한 행위들이 이스라엘 가운데 있었음을 암시한 곳이 있다(호 4:2; 5:2; 6:8).
(주);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 복술(卜術)은 무슨 표적을 보고 점을 치거나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술(邪術)은 여러 가지 마술로써 사람을 형혹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신18:10에서는 몰렉 숭배와 함께 이러한 복술과 사술행위가 엄히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아합 시대에 이러한 행위들이 있었던 것으로 분명히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9:22). 그리고 에스겔서도 이러한 점술 또는 술수가 행해졌음을 기록하고 있다(겔 21:21).
(주); 스스로 팔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팔다'라는 뜻의 동사 '마카르'(*)의 재귀형으로서 구약에서는 단 14번 밖에 쓰이지 않았다. 그 중
신 28:68에서는 자신을 종으로 파는 것을 가리키고 있고, 왕상 21:20, 25에서는 아합이 그의 아내 이세벧의 충동에 의해 악행을 행하였음을
가리키고 있다. 이와같이 이 단어 속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매함이 비유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악의
길에 빠져 든 것은 그들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서였다. 다시 말해 그들은 어떤 다른 영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자유 의지에 의해서 악행을 한
것이다(약 1:14).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변명할 수 없으며(롬 1:20) 어떠한 징벌을 받더라도 할 말이 없다(렘 11:11; 살전 5:3 등).
그런즉 우리들은 죄에 대한 책임이 인간 개개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신 24:16). 그리하여 우리 몸을 병기로 드려(롬6:12,13) 우리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과 싸워 이기기에 힘쓰며(롬 6:19; 7:22,23) 우리를 죄에서 건져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삶을 힘쓰자(롬 7:25).
성 경: [왕하17:18]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패망의 원인]
본절은 7-17에 열거된 죄악들로 인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 다시 말하면 이것은, 이스라엘 열 지파의 멸망이 남음 유다의 두 지파(유다와 베냐민, 왕상
12:21)에게 경고가 됨을 가리키고 있다. 미가서 1장에서도 이와같이 사마리아의 패망이 예루살렘에 경고가 됨을 지적하고 있다. 또 렘 2-3장과 겔
6장도 이와 같은 내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다 지파 역시 계속 죄악된 길을 걸어갔으니 그들 또한 결국 예루살렘
함락(B.C. 586년)이라는 파국을 맞고 말았다(19,20절; 25:1-17).
성 경: [왕하17:19]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여로보암의 범죄 결과]
본절과 다음 절은 삽입절로서 유다도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행한 죄악을 따라 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유다 왕들 중에 이스라엘 열왕을 따라 행한 왕으로서는 여호람, 아하시야, 아달랴, 아하스, 므낫세, 아몬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
열왕들과 같이 바알을 숭배하며 이방인의 풍습을 따라 행한 왕들이다(8:18; 16:3,4; 21:2-9, 20-22). 본서 서론, '남북 왕국의 열왕들'참조.
성 경: [왕하17:20]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여로보암의 범죄 결과]
(주); 여호와께서...그 앞에서 쫓아 내시니리 - 성경에서 이처럼 여호와라는 이름이 직접주어로 등장한 문장은 흔치 않다. 한편 삼상 15:26에서는 여호와께서 사울을 버리셨고, 23:27에서는 예루살렘을, 렘 2:37,6:30에서는 그 백성들을 버리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당신 백성들에 대하여 이런 태도를 취하신 것은 그들의 여호와의 율법과 규례와 명령에 대하여 순종하지 않았던 때문이다(Hobbs).
(주); 이스라엘의 온 족속 - 문맥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모든 백성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노략군의 손에 붙이시고 - 여기서
'노략군'이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각기 차례로 점령한 앗수르(3-6절)와 바벨론(25:1-17)을 가리킨다. 한편 '손에 붙이다'는 말은의역(意譯)하면
'멸망토록 내버려 두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온 이스라엘이 적군에게 패배당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셨던 것이다. 대하 28:5 주석
참조.
성 경: [왕하17:21]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여로보암의 범죄 결과]
이스라엘을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나누시매 - 이 구절은 과거 선지자 아히야가 여로보암에게 주었던 예언(왕상 11:31)과 일치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죄악으로 인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되리라고 경고하셨는데 여로보암이 다윗 왕조에 등을돌리고 북 이스라엘 왕국의 세움으로써 온전히 성취되었던 것이다(왕상 12:16-20).
(주);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몰아 - '몰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가 잠7:21에서는 '꾀다', '유혹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신 13:6에서도 우상숭배로 이끄는 것을 '꾀다'로 표현하고 있다. 본절 역시 바로 이와 같은 의미인데 곧 여로보암이 혼합 종교 정책을 펼치므로 결국에는 백성들을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지게 한 것을 가리킨다(왕상 12:26-33).
(주); 큰 죄 - 이것은 배교(背敎) 또는 우상 숭배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다.
성 경: [왕하17:22]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여로보암의 범죄 결과]
(주); 여로보암의 행한 모든 죄를 따라 행하여 -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력하게 여로보암의 죄에 빠져 들었다. 아마도 그 까닭은 외양적으로 매력적인
모습을 지닌 죄에 미혹되었기 때문일 것이다(창 3:6; 잠 9:17; 딤전 2:14 등). 아무튼 여기서 밝히 드러나듯이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에는
여로보암의 잘못이 컸다. 그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에 우상을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장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열왕들의 죄를
대표하게 되었다. 이처럼 일단 제도화되고 구조화된 악은 쉽게 사라지지 않게 마련이다(왕상 15:26,34; 16:2,19,26,31; 왕하 3:3; 10:29; 13:6,11;
14:24 ;15:9,18,28 등).
성 경: [왕하17:23]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여로보암의 범죄 결과]
(주); 모든 선지자로 하신 말씀대로 -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한 선지자로서는 실로 사람 아히야(왕상 14:15,16)와 아모스(암 7:17)가 있으며 표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나 이외에 호세아, 이사야 선지자 등이 있다(호 1:6; 9:16; 사 28). 더욱이 B.C. 1406년경에 행한 모세의 고별(告別) 설교에도 이러한 경고가 나오니 곧 "여호와께서...너와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가시리니"라는 구절이다. 신 28:36 주석 참조.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패망하고 포로로 잡혀 간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히 성취된 사건이라 하겠다(Pulpit Commentary).
(주); 오늘까지 미쳤더라 - 여기서 '오늘까지'라는 것은 본서가 기록된 당시까지를 가리킨다(B.C. 562-536). 본서 서론, '기록 연대' 참조. 여기서
우리는 본서 기자의 교훈적인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됨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치욕이었다. 더군다나 신명기적
역사관에 투철한 본서 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아직까지 계속되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와 교훈이라는 측면에서 되씹어야 할 아픔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기에 본서 기자는 '오늘까지 미쳤더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왕하17:24]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앗수르의 이주 정책]
(주); 앗수르 왕이...사람을 옮겨다가 - 이때 이주민 정책을 썼던 앗수르 왕은 에살핫돈(Esarhaddon, B.C. 681-669)이었다(19:37; 스 4:2). 이것은 사르곤 2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앗수르로 끌어간 이후(3절 주석 참조)의 후속 조치로 보인다.
(주); 구다 - 구다(Cuth) 오늘날의 텔 이브라힘(Tel Ibrahim)으로서 바벨론의 북동쪽 약20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앗수르 비문(碑文)들에 자주 언급되는 중요한 바벨론 성읍이다.
(주); 아와 - 18:34에도 언급되어 있는데 스 8:15,21에 나오는 '아하와'(Ahava)와 동일한 곳으로 추측된다. 대개의 학자들은 이곳을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오늘날의 '이스'(Is)로 보고 있다(Rawlinson). 하맛 - 오른테스(Orontes) 강변에 위치한 하맛(Hamath)은 사마리아 멸망 2년 후인B.C. 720년에 사르곤 2세에 의해 정복되었다(J.B. Pritchard, Ancient Near EasternTexts). 이때에 하맛 사람들은 앗수르에 잡혀가고 대신 그곳에는 앗수르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본절은 이 하맛인들이 사마리아에도 이주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수13:5 주석 참조.
(주); 스발와임 - 이곳은 살만에셀에 의해 정복된 아람의 사바라인(Shabarain)으로서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시파라'(Sippara)로 아려져 있는데 혹자는 바그다드 서남쪽 25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아부하바'(Abu-Habba)와 동일시하기도 한다(Rawlinson).
(주);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운명 공동체를 가리키기도 하고, 이스라엘 군대를 가리키기도 하는 등 그 의미가 매우 광범위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마도 사마리아와 이스라엘 각 성읍의 성인 남자들을 가리키는 듯하다(Hobbs). 그대신 여자와 아이와 노인들은 사마리아에 그냥 남아 있었으며 그 수도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주); 사마리아의 여러 성읍 두매 - 사마리아(Samaria) 성읍의 역사와 앗수르의 사마리아 식민지 정책에 관해서는 24-41절 강해, '사마리아'를
참조하라.
성 경: [왕하17:25]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앗수르의 이주 정책]
(주); 여호와께서 사자들을 그 가운데 보내시매 -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땅인 사마리아에서 여호와를 경외치 않는 이방인들에게
사자(獅子)들을 보내어 징벌하셨다. 그것은 곧 저들이 본국에서는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고도 살 수 있었으나 하나님의 택하신 땅 팔레스틴에서는
그렇지 못함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한편 이밖에도 불순종한 자들(왕상 13:24,26)과 우상 숭배자들을 처단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자들이
사용된 경우가 가끔 있다(단 6:16-24).
성 경: [왕하17:26]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앗수르의 이주 정책]
(주);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하므로 - 고대 근동에도 여러 부족 신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독특한 종교 관습과 의식, 법규들도 있었다. 그래서 사마리아로 이주해온 이방인들은 사자들의 출몰을 사마리아 부족 신의 진노 탓으로 생각했다. 즉 그들이 사마리아의 종교 관습대로 사마리아 신을 섬기지 아니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재앙이 임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두려움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유일신(唯一神) 여호와에 대한 경외가 아니라 다신(多神) 사상에 의거한 공포심의 일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주); 법 - 여기서 '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이스라엘의 율법뿐 아니라 제반 제사 규례와 법도, 기타 여호와 종교의 모든 의식과
관습 등을 가리킨다. 1:7 주석 참조.
성 경: [왕하17:27]
주제1: [북이스라엘을 멸망]
주제2: [공존하는 여호와 신앙과 이교 신앙]
(주); 사로잡아 온 제사장 하나 - 여호와를 버리고 배교(背敎)했기 때문에 이방 땅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의 제사장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여호와의 법을 이방인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니러니칼(ironical)하다(28절).
(주); 저로...무리에게 가르치게 하라 - 고대 이방인들의 종교적 심성의 한 단면을 잘 보여 주는 구절이다. 즉 다신 사상에 사로잡혀 있던 앗수르
왕 역시 사마리아 땅의 신 여호와를 달램으로써 행여 자신의 제국에 미칠지도 머를 재앙을 사전에 막으려 한 것이다.
성 경: [왕하17:28]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공존하는 여호와 신앙과 이교 신앙]
(주); 벧엘에 거하며...가르쳤더라 - 벧엘은 과거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가 세워져 있던 곳이다(왕상 12:28,29). 그러나 이곳의 금송아지는
사마리아 멸망 당시 앗수르로 옮겨져 갔기 때문에(호 10:5), 이 제사장이 새로 금송아지를 세워 숭배케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제사장이 벧엘로 와서 거하게 된 것으로보아 다시 금송아지를 숭배케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Keil, B hr, Rawlinson). 29-33절에
나타난 이주민들의 우상 숭배 행위 역시 위와 같은 주장을 어느 정도 뒷받침 해준다.
성 경: [왕하17:29]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공존하는 여호와 신앙과 이교 신앙]
(주);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 이스라엘 땅이었던 사마리아 내에 외국 백성들을 혼합시켜 놓음으로써 종교적인 혼란이
야기되었다. 외국인들(이방인들)은 그들 자신의 종교적 풍속을 가져 왔다(30-32절). 이로 인해서 거짓 신들과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숭배되어지는
혼합 종교가 생겼다(41절). 또한 백성들의 혼합은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 민족들과의 혼합 결혼을 초래하게 하였다. 이들의 후예들은
후에 혼혈족이라는 의미에서 사마리아인들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요 4:9). 그러므로 그들은 점차로 한 나라라기보다는 하나의 종파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고, 이는 후기 팔레스틴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눅 9:52). 이에 대해서는24-41절 강해, '사마리아'를 보다
참조하라.
성 경: [왕하17:30]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공존하는 여호와 신앙과 이교 신앙]
(주); 숙곳브놋 - 암 5:26에 보면 '식굿'(*, 시쿠트)이라는 신명(神名)이 나오는데 여기에 나오는 '숙곳브놋'(Succoth Benoth)과 동일한 신으로 추측된다(Hobbs,B hr). 그러나 이것이 어떤 신인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한편 혹자는 '숙곳브놋'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시쿠트 브노트)의 문자적인 뜻이'오두막집의 딸들'이기 때문에 이것은 젊은 여인들이 매음 행위를 한 오두막집이나 천막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Keil). 그러나 이방의 여러 신상들을 열거하고 있는 본문으로 미루어 볼때 그러한 설명은 타당하지가 못하다(B hr).
(주); 굿 사람들 - '굿'(Cuth)이란 지명의 뜻은 '자손의 나라'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의 포로되어 잡혀간 곳이라는 사실 외에는 달리 알 수 있는 바가 없다.
(주); 네르갈 - 이것은 메소포타미아의 지신(地神)이다(H. Ringgren). 전하는 바에 따르면 매달 28일이 바로 이 네르갈(Nergal)의 제일(祭日)이었다고 한다.
(주); 아시마 - 이것은 아모스 당시 하맛 출신의 이주민들이 섬겼던 신으로서(암 8:14) 엘레판틴 파피루스 문서에 나타나는 '아심 베델'(Ashim -
bethel)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신이 로마 시대의 자료들 속에는 '시미'(*) 또는 '세이미오스'(*)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수리아의
폭풍신인 하닷(Hadad)의 딸 이름이다.
성 경: [왕하17:31]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공존하는 여호와 신앙과 이교 신앙]
(주); 닙히스와 다르닥 - 닙하스(Nibhaz)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다르닥(Tartak)은 아람 이주민들의 신으로서 숭배된 여신 아타르카티스(Atargatis)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신은 라스 샤므라 사본들에 나오는 앗타르(Athar)와 아스다롯과 시리아인의 여신 아낫(Anath)을 혼합한 복합적인 존재이다. 레 26:1-13 강해, '가나안땅의 신들' 참조.
(주);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 - 자녀를 불살라 바치는 것으로 보아 이 신은 몰록 종교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7절 주석 참조. 그래서
혹자는 이 신들이 스발와임의 몰록 신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이신이 태양 신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Keil & Delitzsch). 아무튼 이 가운데 아남 멜렉(Anammelech)은 일반적으로 '아누'(Anu)라는 메소포타미아의 태양 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Hobbs). 한편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위에서 언급된 신들 중 숙곳브놋은 암탉의 형상을, 네르갈은 수탉의 형상을,
아시마는 염소 형상을띠고 있었다 한다. 그리고 닙하스는 개의 형상을, 아드람멜렉은 노새의 형상을, 아남멜렉은 말의 형상을 각기 띠고 있었다
한다(Pulnit Commentary, Keil & Delitzsch,Matthew Henry).
성 경: [왕하17:32]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공존하는 여호와 신앙과 이교 신앙]
(주); 저희가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 이방인들은 우상들을 섬기면서 아울러 여호와도 섬겼다. 본절에서 이방인들이 여호와를 경외했다는 말은 유일 신 하나님으로 알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배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러 신들 중 하나로 섬겼다는 의미다.
(주); 자기 중에서...제사장으로 택하여 - 시간이 지나면서 혼합된 여호와 종교가 널리 보급되자, 그들은 더많은 제사장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임의대로 자기들 중에서 제사장을 뽑아 제사드리게 했다. 이것은 명백히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위반이다(출29:9; 30:30; 40:15). 즉
하나님께서는 오직 아론의 후손, 레위 족속 가운데서 제사장을 택하라고 명령하셨는데, 그들은 필요에 따라 되는대로 선택했다. 이러한 전통은 이미
여로보암에 의해 세워진 바 있다(왕상 12:31). 오늘날 많은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 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지만,
주께서 그들 중 많은 사람에게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선언하실 것이다(마 7:21,23).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의를 세우고자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아니했기 때문이다(롬 10:2,3).
성 경: [왕하17:33]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공존하는 여호와 신앙과 이교 신앙]
본절은 28-32절의 요약적 결론 부분이다. 더 나아가 25절에서 여호와께서 이방인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사자들을 보내 징벌하신 의도가 오히려
이와같이 엉뚱한 혼합종교 형태로 나타났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앗수르 왕이 벧엘로 보낸 제사장이 올바르지 못했다는 증거가
된다(28절). 그리고 좀 더 포괄적으로는 이방인들 역시 이스라엘 민족과 마찬가지로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고야 말 패역한 백성들임을 보여
준다.
성 경: [왕하17:34]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이스라엘의 배교(背敎)]
(주); 저희가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 사마리아에 이주해 온 이방인들의 우상숭배와 혼합된 형태의 여호와 숭배는 본서가 기록될 때(B.C.
562-536)까지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그 땅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의 경외는(28,32,41절) 여호와께서 야곱이 자손에게 주신 율례와 계명과
언약에 완전히 위배되는 그러한 것이었다(35-40절). 그래서 본서 기자는 오히려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치 아니하였다고 본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율례와 법도, 율법과 계명에 대해서는 37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왕하17:35]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이스라엘의 배교(背敎)]
(주); 언약을 세우시고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세우신 언약은 무엇보다 다음 두 가지 사실에 기초한 것이었다. 첫째,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오직
여호와만 경외하라는 것(35,36절). 둘째, 여호와께서 주신 율법을 힘써 지키라는 것이다(37절). 그런데도 온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모든 명령을
저버렸다. 한편 이와 관련해서는 출 19:1-6 강해, '성경의 언약'을 보다 참조하라.
성 경: [왕하17:36]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이스라엘의 배교(背敎)]
(주);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여호와의 율법 및 그와의 언약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전제 조건이 된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출애굽'이라는 구속적 은총을 베푸신 후에(출 6:6; 신 4:34; 9:29; 11:2 ;시 136:12). 그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과 의무로서 율법을 부여하신 것이다(신 6:12-15; 8:2-6; 29:2-9).
성 경: [왕하17:37]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이스라엘의 배교(背敎)]
(주);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 - 사실 이 단어들은 하나님의 모든 율법과 교훈을 강조하는 동일한 말이다. 그럼에도 굳이 이를 분류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먼저 '율법'(*, 토라)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모든 명령과 지시를 포괄하는 말이다. 때로 이는
모세 오경이나 그약 성경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율례'(*, 후카)는 대개 도덕법, 의식법(儀式法), 시민법, 사회법 등과 같이
세부적으로 규정된 법규를 가리킨다. 그리고 '법도'(*, 미쉬파트)는 율례(일명 규례)로부터 파생된 인간과 하나님, 인간과 인간 간의 모든 공적,
사적 권리와 의무를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계명'(*, 미츠와)은 십계명이나 기타 제반 규례와 같이 특별히 법규화되거나 성문화(成文化)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모든 단어들은 실상 중언법적(重言法的) 표현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성 경: [왕하17:38]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이스라엘의 배교(背敎)]
(주);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 - 이는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상대로 맺은 언약인 '시내 산 언약'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15절 주석
참조. 한편 본서 기자는 34-41절에서 거의 반복적인 형태로 '언약'을 언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와 병행하여 '다른 신들을 경외치
말고'(35,37,38절)라는 말을 계속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본서 기자가 우상 숭배에 대해 얼마만큼 엄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알수
있다.
성 경: [왕하17:39,40]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이스라엘의 배교(背敎)]
유다인과 사마리아인의 반목은 이미 왕국 분열시 싹튼 것이지만(왕상 12:16), 사마리아인이 멸시 받게 된 근본적인 동인은 여호와의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한 그들의 패역함 때문이었다. 물론 인간의 심성에 때묻지 않은 자 없겠으나(롬 3:23),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포(출 23:27; 레 26:6-8)를 듣고서도 그마음의 중심에 신앙을 잊었다는 것은 곧 구원의 소망을 포기한 것이기에 멸시받아 마땅하다
하겠다.
성 경: [왕하17:41]
주제1: [북이스라엘의 멸망]
주제2: [이스라엘의 배교(背敎)]
본절은 33절에 이어 다시 한번 28-33절을 요약 결론한 것이며 또한 반복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한편 본장에서 보듯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의
혼합으로 인해 형성된 사마리아인들은 오늘날에도 나블루스(Nablus)부근 그리심 산에 살고 있다(Hobbs). 그런데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당시에는
이러한 사마리아 인들이 오히려 유대인들보다 더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경건한 무리들이었다(Rawlinson). 또 사마리아 오경을 번역하는 등의
면에서도 그들은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24-41절 강해, '사마리아'를 보다 참조하라.
성 경: [왕하18:1]
주제1: [앗수르의 유다 침입]
주제2: [히스기야의 초기 행적]
(주); 호세 삼 년에...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 호세하 3년 B.C.730년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때는 히스기야가 아하스와 공동 통치를 하던 때이고
정작 그가 왕위에 오른 때는 B.C.728년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본장에서 산헤립이 유다를 침입한 때 (B.C. 701년)를 히스기야 14년으로 언급하고
있는 점이다(13절). 그렇다면 히스기야는 B.C.715년 경에 즉위한 셈이 된다. 이러한 연대상의 난문제는 이미 앞에서도 살펴본 바인데 이에 대해
흑자는 B.C.728년과 715년 사이에 약 13년간의 연대기가 빠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Thiele). 이와 관련해서는 15:22-38 강해, '열왕기하 15장의
연대기에 대한 추가 설명' 및 왕상 서론, '열왕기서의 연대기 문제', '열왕기서의 참조 도표 등을 각기 참조하라.
성 경: [왕하18:2]
주제1: [앗수르의 유다 침입]
주제2: [히스기야의 초기 행적]
(주); 이십 구년을 치리하니라 - 20:1-11절에는 히스기야가 중병(重病)에 걸렸다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생명을 연장받는 기사가 나온다. 히스기야는 바로 그러한 병을 앓기 이전에 14년을, 그 병이 나은 이후에 15년을 도합 29년간 유다를 다스렸다.
(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라 - 대하29:1절에는 그 모친의 이름이 '아비야'(Abi-jah)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아비'(Abi)는 '아비야'의 축약형으로 그 뜻은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이시다'이다.
(주);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 스가리야(또는 스가랴)의 뜻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시다'이다. 이 사람은 사8:2절에 나오는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와 동일 인물로 추측된다. 거기에서 스가랴는 '진실한 증인'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그 같은 영향이 외손자 히스기야에게까지 미친 것같다.
대하 29:1 주석 참조.
성 경: [왕하18:3]
주제1: [앗수르의 유다 침입]
주제2: [히스기야의 초기 행적]
(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 이러한 특별한 찬사는 유다 왕들 가운데 오직 아사(왕상15:11)와 요시야(22:2)에게만 주어졌다. 이러한
평가는 북왕국의 열왕들에 대한 평가와 아주 대조적인 것이다. 아마도 그 아비 아하스와 선지자 이사야의 접촉이 잦았던 점으로 보아(사7:3-16)
히스기야는 어릴 때부터 이사야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영향이 스가리야로부터 받은 영향과 함께 히스기야를 훌륭한
신앙인으로 성장시켰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18:6]
주제1: [앗수르의 유다 침입]
주제2: [히스기야의 초기 행적]
(주);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 히스기야 왕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신4:4의 말씀에 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향한 정열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세속의 삶 가운데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신앙을 지켜나가기란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요15:4-6).
성 경: [왕하18:9]
주제1: [앗수르의 유다 침입]
주제2: [이스라엘의 멸망]
(주); 사마리아...에워쌌더라 - 히스기야의 영도 아래 유다는 다시금 부흥의 기치(旗幟)를 올렸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호세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은
멸망의 위기에 이르렀다. 이스라엘에 그 같은 환란이 임한 것은 다름 아니라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다(12절). 따라서 히스기야와 유다는 이러한
사실에서 더욱더 교훈을 받아 각성하였을 것이다.
성 경: [왕하18:10]
주제1: [앗수르의 유다 침입]
주제2: [이스라엘의 멸망]
(주); 삼 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 여기서 3년이란 기간은 히스기야 4년에서 6년까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는 만 3년이 아닌 2년 몇 개월에
해당된다. 이러한 기록은 17:5의 기록과도 일치한다. 한편 본문에서 사마리아성을 에워싼 자는 분명히 살만에셀로 나타나 있다(9절). 그러나 정작
그 성을 함락시킨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대개의 학자들은 사마리아 성이 함락된 것을 B.C.722년 사르곤 2세의
원년의 일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성을 함락시킨 공적은 살만에셀에게로 돌려지곤 하는데 그 만큼 살만에셀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17:3
주석 참조.
성 경: [왕하18:11]
주제1: [앗수르의 유다 침입]
주제2: [이스라엘의 멸망]
(주); 할라와...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 - 이스라엘인들이 앗수르에 포로되어 잡혀간 곳인 이들 성읍에 대해서는 17:6 주석에 상술(詳述)해 놓았으니
그곳을 참조하라.
성 경: [왕하18:12]
주제1: [앗수르의 유다 침입]
주제2: [이스라엘의 멸망]
본 절은 17:7-23에 기록된 사마리아 성의 함락 원인을 몇 마디 말로 지적해 놓은 것이다. 여기서 요약해 놓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목은 (1)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 (2)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림, (3)모세의 율법에 대한 거역, 이 세 가지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17장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18:13]
주제1: [앗수르의 유다 침입]
주제2: [이스라엘의 멸망]
(주); 히스기야 왕 십 사 년에 - 산헤립(Sannacherib)의 선임 왕인 사르곤 2세(Sargon,II)는 B.C.722년에서 705년까지 약 17년 내지 18년간을 통치했다. 그리고 산헤립은 그 뒤를 이어 B.C. 705년에 즉위했다. 그런데 앗수르의 기록에 의하면 산헤립은 그의 통치 제 4년에 히스기야에 대한 원정을 실시하였다고 한다(Pawlinson). 따라서 이때(즉 히스기야 14년)는 B.C. 701년 경이 되며 그렇다면 히스기야의 즉위 연대는 B.C. 715년 경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기적 혼란에 대해서는 이미 1절에서 살펴본 바이니 그곳을 참조하라.
(주); 앗수르 왕 산헤립이 을라와서...취하매 - 산헤립의 1차 원정 목적은 에굽을 징벌하기 위한 것이었다(Josehpus, Keil, B hr). 그런데 유다의
히스기야가 아하스 때와는 다르게 조공을 거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블레셋의 가사 지방을 공격함으로써, 블레셋과 동맹하여 애굽을 치려던 계획에
많은 차질을 주었다(7,8절). 때문에 산헤립은 먼저 유다 공략, 장애물을 제거하려한 것이다. 한편 산헤립의 비문(碑文) 기륵에 따르면 이때
산헤립이 히스기야로부터 탈취한 성은 모두 46개로 욥바, 에그론, 딥나, 라기스 등 중요한 요새를 전부 탈취하였다고 한다(Grid). 사실
미1:10-16에도 이러한 성들이 히스기야 시대에 탈취되었음이 언급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또한 대하 32:1과 사10:28-32 등도 각기 참조하라.
성 경: [왕하18:14]
주제1: [앗수르의 유다 침입]
주제2: [이스라엘의 멸망]
(주);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보내어 - 라기스(Lachish)는 예루살렘과 가사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성읍이다. 유다 지파에 할당된 성읍중 하나로(수15:39) 르호보암에 의해 요새화되었다 (대하11:9). 14:19 주석 참조.
(주);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타티'(*)는 정치적인 '과오'를 뜻하는 단어로서 '배반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파솨'(*)와 동일한 용법으로 사용된다(1:1;3:5). 한편 이사야 선지자는 이때의 상황을 히스기야의 연약함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표현하고 있다(사8:9-15;10:24-26; 14:24, 25). 즉 초기에는 단호한 반 앗수르 정책을 폈던 히스기야도(7절) 그만 마음이 약해져 앗수르의 막강함에 굴복하였고 백성들은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사22:13)며 모두 절망하였던 것이다.
(주); 앗수르 왕이...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한 앗수르의 기록을 보면 이때의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히스기야를 예루살렘에
새장 속의 새처럼 가두었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 참호를 둘렀으며 누구든지 문 밖으로 나오는 자는 처벌했다'.그리고 이에 덧붙여 산헤립이 탈취한
성읍의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다. 또한 거기에는 본절의 금,은 외에도 보석, 상아, 의자와 상아 침상, 귀한 목재, 그의 딸들, 궁녀들, 남녀 음악사
등을 대가로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같이 히스기야의 연약함 때문에 그와 그의 백성들이 당한 고충은 실로 엄청나다. 그런데 이처럼 성도들도
불신앙적 처사로 인해 영육간에 많은 꾀를 당할 경우가 있다. 따라서 항상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모든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수1:9).
성 경: [왕하18:15]
주제1: [앗수르의 유다 침입]
주제2: [이스라엘의 멸망]
열왕기에서 외적의 침입으로 인하여 성전(聖殿)과 왕궁이 함께 수탈되는 것은 하나의 공식적인 패턴(pattern)처럼 나타난다(왕상14:25-28). 그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할 경우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의 왕실과 함께 하지 않으며 임재(臨在)의 처소인 성전에도 함께 하시지 않음의 한
증거이다.
성 경: [왕하18:16]
주제1: [앗수르의 유다 침입]
주제2: [이스라엘의 멸망]
(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 - 솔로몬의 경우에서처럼(왕상6:20-22, 2830,32) 히스기야는 성전을 깨끗케 하면서 성전의 문과 기둥에 금을
입혀 장식한 것 같다(대하29:17-19). 그러나 이제 그가 그러한 금까지도 벗겨서 산헤립에게 조공으로 바쳐야했던 것은 아하스 때에(16:8) 이미
성전과 왕궁의 은금을 조공으로 다 바쳤기 때문에 앗수르 왕에게 바칠 삼십 달란트의 금(14절)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Rawlinson). 한편
달란트(Talent)를 무게 단위로 계산할 경우 1달란트는 약 34.27kg에 해당하는 중량이다. 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성 경: [왕하18:17]
주제1: [앗수르의 유다 침입]
주제2: [앗수르의 2차 침입]
본절을 앗수르의 2차 침입으로 보느냐 아니면 1차 침입(13-16절)의 연장으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다음과 같이 견해가 다르다. (1)먼저 이것을 1차 침입의 연장으로 보는 학자가 있다(Keil, B hr). 이 견해의 대표자가 카일(Keil)인데 카일은 앗수르 왕이 히스기야로부터 조공을 받은 뒤에(16절) 히스기야가 저자세로 나오는 것을 악용하며 자기 나라로 돌아 가지 않고 도리어 예루살렘을 침공했다는 것이다. 카일은 이 같은 근거로 평행구절인 사36:1,2를 든다. 사실 사36장의 1절과 2절은 매우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어서 외관상으로 보기에는 1차 침입의 연장인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2)그러나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것을 2차 침입으로 보고 있다(Rawlinson, Hobbs). 그 이유는 첫째, 앗수르의 2차 침입시에는 구스 왕 디르하가와 교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19:9) 이 디르하가(Tirhakah)는 히스기야의 동맹 요청에 응하여 히스기야를 도우러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다와 구스(에디오피아)간에 동맹을 체결하는데는 상당한 기간이 지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앗수르의 침입은 2차 침입으로 보아야한다. 둘째, 1차 침입시에 유다는 이미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있어서 완전히 쇠진한 상태에 있었으니 계속해서 앗수르와 맞서 교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앗수르는 B.C.701년에 1차 침입을 한 후 2년후인 B.C.699년에 2차 침입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 위에서 언급한 사36장에서 1절과 2절 사이에는 약 2년간의 간격이 있었다고 보아야한다(Hobbs). 한편 구스 왕 디르하가에 대해서는 19:9 주석을 참조하라.
(주); 다르단 - 다르단(Tartan)뿐 아니라 뒤이어 나오는 랍사리스(Rabsris), 랍사게(Rabshakeh)는 모두 고유한 인명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실상 이것들은 모두 앗수르의 관직명이다. 이 중 다르단은 앗수르 군대의 직위와 관련된 공식적인 직명인 것으로 추측된다(Lucknbill,Ancient Records). 이와 관련 혹자는 '다르단'이 총사령관직이었다고도 한다(Rawlinson).
(주); 랍사리스 - 이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내시장'(內侍長)이다. 그러나 '내시장'이라는 직함이 군대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주); 랍스게 - 이와 관계가 있는 히브리어는 '술 맡은 자'라는 뜻에 해당되는 '마쉬케'(*,창 40:5)가 있다. 따라서 랍사게는 왕의 비서와 같은 직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측된다(Hobbs).
(주);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 - 대하32:30에는 '윗못 수도'가 '기혼의 윗 샘물'로 기록되어 있다.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성 밑으로 수도를 건설하여 성 밖에서 흐르는 물줄기와 기혼(Gihon) 시냇물을 끌어들여 이곳 샘에 저장하였는데(20:30) 이것은 식수나 세탁용, 또는 전시(戰時)의 비상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예루살렘에서는 적군에 포위당헹을 때 생활 용수(用水) 공급 문제가 언제나 큰 골치거리였으니 히스기야는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지하수로를 건설하였을 것이다. 한편 이 윗못 수도는 이미 아하스 때에도 있었는데(사7:3). 이때는 예루살렘 성 밖에서 성의 서편을 따라 힌놈 골짜기(Valley of Hinnom) 아래로 물이 흘렀다. 그러나 히스기야 때에 이것을 성내로 끌어들인 것이다(Keil &Delitzsch), 따라서 본절에서 앗수르 군대가 윗못 수도곁 큰 길에서 유다와 맞섰던 장소는 예루살렘 성밖 서쪽 기혼으로 들어오는 물의 근원지이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1차 칩입후 2차 예루살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하여 앗수르 군대가 사용할만한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