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라
chvra
과부 widow.||#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케라(Homer이래)는 형용사 케로스(여윈, 사별한)의 여성형이며, 그 본래의 의미는 '남편없이 남겨진 여인'이다. 이 의미에서 '과부' 또는 '남편없이 살아가는 여인'을 의미하게 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케라는 70인역본에서 약 70회 나오며, 한 두 구절을 제외하고는 모두 알마나(과부)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케라는 신약성경에서 2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마가복음의 용법. 막 12:40과 그 병행구에서 예수님은 과부에게 행한 불의에 대해 선지자적인 고발을 하신다. 서기관들은 겉으로만 과부들을 도와 그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듯하지만, 너무 과중한 짐을 그들에게 지워 과부들의 재산을 잃어 버리게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과부들의 진정한 대변자로 등장하신 것이다.|막 12:41이하에서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욕심 많은 부자들은,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자기의 전체 생활비를 바침으로써 자신의 헌신적인 신앙심을 보여준 가난한 과부와 대조된다. 이러한 전적인 바침은, 특별히 과부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과 그의 공급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예기한 것이다.||(b)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용법|① 눅 18:3; 눅 18:5의 비유에서 과부의 행동은 끈덕지고 확신에 찬 기도의 예를 보여준다. 문제는 금전적인 문제였는데, 과부는 사법적 판결(결정)없이 세력 있는 상대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런데 재판관은 이 고소사건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과부는 재판관에게 계속 끈덕지게 그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함으로 말미암아 승리했다.|② 눅 4:25 - 눅 4:26에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택된 한 과부의 예를 들어 하나님의 사자가 자기의 완고한 백성들에게 보냄받지 않고 사렙다 과부에게만 보냄 받았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사자들을 그들의 인간적 속박들로부터 자유케하고, 그들을 이방인에게 접근하도록 승인하는가를 보여준다.|③ 눅 7:11이하에서는 나인성 과부의 유일하게 남아있던 보호자가 죽은 것에 초점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는 그 과부에게 대한 예수님의 동정이 지니는 메시야적인 특성이 강조된다.|④ 눅 2:36(눅 2:36이하)에서 성전에서 예수님을 보고 감사한 과부 안나는 평생을 재혼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와 금식 생활을 하면서, 여자 선지자로서 아기 예수님에 대한 증인이 되는 특권을 얻고 후에 교회에서 여자 증인들의 본보기 노릇을 한다.|⑤ 행 6:1에서 교회 자체적으로도 과부들에 대한 규정들을 두고 있다. 흩어져 살던 많은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와서는 거기에 과부들을 남겨두었다. 팔레스타인의 신자들은 공동으로 기금을 운영했기 때문에 헬라 세계의 과부들에 대해 무관심한 경향이 있었다. 이것 때문에 본토인들과 흩어져 살던 사람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따라서 사도들이 개입하였고 일곱 집사를 임명하게 되었다.|다비다는 과부들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는 일례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졌을 수도 있고, 교회에서 다비다에게 그 일을 맡긴 것이라면 집단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이라 생각된다. 과부들에 대한 언급이 성도와 함께 나오는 것을 보면(행 9:41), 과부들이 이미 특별한 계층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그리고 다비다를 다시 살린 것은 이 계층의 호의로 인하여 생긴 일이다(눅 4:26; 눅 7:12).||(c) 바울서신의 용법.|① 과부의 결혼 문제. 고전 7:8(참조: 고전 7:8이하)에서 바울은 처녀들과 과부들에게 충고한다: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과부들에 관해서 중요한 문제는 재혼이다.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자유로운 결정에 맡긴다(참조: 고전 7:39). 바울의 견해에 의하면 만일 그들의 성적 요구가 젊은 과부들에게 있어서 특별히 강하여 고통없이 재혼하지 않은채 그냥 지내기 불가능하게 한다면 재혼해야 한다(딤전 5:6, 딤전 5:11, 딤전 5:14이하). 결혼하지 않고 그대로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은 바울 자신과 같이 카리스마(은사, 참조: 고전 7:7)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더 나은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고전 7:8) 더욱 복을 받는다(참조: 고전 7:40).|② 딤전 5:3이하에서 과부를 위한 초기의 규정이 발견된다. 이 규정은 과부들이 가정에서 돌보아 줄 사람이 있거나, 집안에서 할 일이 있을 때에는 교회의 보살핌이나 교회에서 봉사를 위해서 과부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 주석자들은 자녀들과 손자들을 돌보는 사람이 과부들인지, 과부들을 돌보는 사람이 자녀들과 손자들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아마도 두 견해가 다 옳을 것이며, 상호간의 의무가 중요할 것이다. 과부들은 자기들이 당장 해야 할 일들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며 친척들도 과부들에 대한 의무를 교회에 대한 의무처럼 여기고 과부들을 돌보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③ 젊은 과부들. 딤전 5;11이하,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넓은 의미에서 젊은 과부들은 아직 살 날이 많고, 다른 일들이 있다(참조: 딤전 5:13). 그들은 쉽게 경솔한 행동을 하거나 육욕에 빠지게 된다. 만약 젊은 과부들에게 교회의 직분을 맡겼다가 그 후에 재혼하게 되면 그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처음의 충성심을 파기하게 될 것이다. 젊은 과부들은 또한 일을 하는 중에 게으르게 되거나 잡담을 하거나 교회에 나쁜 평판을 듣게 할 위험성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재혼을 해야하고(참조: 딤전 5:14) 그렇게 해서 나쁜 일에 빠져들 기회를 적게 해야 한다.|④ 참과부들 및 과부들에 대한 관리. 딤전 5:3 - 딤전 5:16의 과부에 대한 규범이 언급되어 있다. 여기에서 과부와 참 과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다. 참 과부들은 교회에서 봉사하게 하기 위해서 선발되었다. 이것은 '명부에 올린다'는 말에 내포되어 있다. 명부에 올려진 과부는 교회에서 직책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과부 명부에 올려진 자의 조건을 살펴보면, 참과부는 홀로 남아 있는 사람으로, 가족이 없어야 하며, 교회가 그들을 돌보아야 한다(딤전 5:16). 과부의 연령은 60세가 넘어야하며(딤전 5:9), 단 한 사람의 아내가 되었던 자라야 하고(딤전 5:9), 선행의 증거가 있어야 하며(딤전 5:10), 재혼할 생각이 없어야 한다(딤전 5:11). 한 남편에 대한 규정은 첫 남편의 사후에 재혼하지 않은 것을 말하는지 이혼한 후에 재혼하지 않은 것을 말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예수님은 남편의 사후에 재혼하는 것은 허용하셨지만, 이혼하고 재혼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셨다(참조: 막 12:24이하; 롬 10:12). 바울은 전자의 경우를 원칙적으로 자유로운 상태라고 하고 있다(참조: 롬 7:2 - 롬 7:3). 눅 2:36 - 눅 2:37은 단 한 번만 결혼했던 과부를 찬양하고 있다.|그들의 일은 하나님만 믿으며, 밤낮 기도에 힘쓰며(참조: 살전 3:10), 교회를 대신해서 여러가지 일들을 한다(참조: 딤전 5:10).|친척들은 형편이 닿는대로 과부들을 부양해야 하며, 교회는 다른 아무도 책임질 수 없을 때에 책임을 맡는 것이다(딤전 5:16).||(d) 야고보서의 용법|신약성경 시대의 교회들은 과부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가장 강렬한 표현은 야고보서에 나오는데 그곳에서 예배시에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외면적 존경은 이런 표현과 대조된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 과부의 비유적 용법|①눅 18:3, 눅 18:5(참조: 눅 18:2이하)에서 과부는, 말세에 하나님의 백성이 최후의 설욕을 위해 탄원하는 믿음에 대해 응답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②계 18:7에서 창녀 바벨론(로마를 상징)이 자신을 여왕에 비유하고 과부가 아니라고 한다: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러나 곧 위치가 바뀔 날이 올 것이다. 억압을 당했던 과부가 왕비가 되고(참조: 계 21:2) 거만한 바벨론은 버림받은 과부가 될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을 신부라고 하고, 도시를 여성으로 표현하는 두 가지 소재를 비유적으로 결합시킨다. 예루살렘과 바벨론, 두 도시는 두 가지의 인간 유형을 상징한다. 즉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백성은 신부이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백성은 과부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에 해당하는 교회는 이제 이스라엘이 포로기간 동안에 그랬던 것처럼 남편이 없는 여인과 같은 상태이다. 그러나 주께서 재림하실 때 교회는 하늘의 신랑이신 그 분을 만나는 신부가 될 것이다(참조: 계 22:17).|(참조: Walter Bauer; J.H.Thayer; G.Stahlil; S.So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