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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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nature, 조건, 상태 condition, 종류 kin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퓌시스(Homer 이래)는 퓌오($5453: 낳다, 생기다, 산출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어근 퓌(%822)는 '존재' being, '현존' presence을 의미한다.||(a) 퓌시스는 '근원, 시작, 기원, 혈통, 가계'(Hdt.), 성인이나 어린이의 '혈통'(Aristot.), '원소들로부터 합성된 근본 물질'(Aristotle)을 의미한다.||(b) 퓌시스는 존재나 현존의 근본적 개념으로부터, '자연적 조건, 특성, 상태'(예: 공기, 피, 어떤 땅의 물리적인 특징들, Hdt. 2, 7); '외적 형태'나 모습(Hdt 8:38); '성질'이나 '성격'을 의미하게 되었다. 퓌시스가 양성 sexes(Diod. Plato, Leg.) 그리고 '성기'나 '성적 특성'(Diod. Sic., Hippocrates), '(인간의) 본성'(human)nature(Aristot.), 또는 신들(gods)의 존재의 불멸적-그리고 소멸적인 본성, 또한 개인의 체격, 또는 국가의 제도나 정체를 의미한다.(Isoc.)||(c) 더 나아가 퓌시스는 '피조물', 즉 '자연의 세계', 예를 들면, 바다에 사는 생물이나(Soph., Antigone 345), 자연 속에 존재하는 개개의 유(genera), 종(species)(Plato, Rep. 429d)을 나타낸다.||(d) 퓌시스는 '생성시키는 유효한 힘', 즉 식물을 출현시킨다거나 머리카락이 자라나게 하는 '마력'(Hippocrates)을 의미한다.||(e) 퓌시스는 또한 자연의 규칙적인 질서를 의미한다. 인간의 삶은, 자연과 법이라는 한 쌍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Dem., 25, 15). 이 질서는 생명의 타고난 본래의 목적을 결정한다(Plut.). 이처럼 자연, 운명, 필연성은 사람의 존재를 지배한다(Philodemus).||(f)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Stoics) 간에는 퓌시스가 우주의 한 신(a god)이 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퓌시스는 70인역본에서 12회 나오며, 히브리어 상당어 없이 사용되었다. 70인역본에서||(a) 퓌시스는 '자질, 성품'(마카베오사서 13:27), 자기의 자녀를 사랑하는 힘(마카베오사서 16:3), (물질적 물체와 관련하여) 불을 끄는 물의 속성(지혜서 19:20) 등과 같은 어떤 '특성'을 나타내기도 한다.||(b) 마카베오사서 5:25, 26에서 율법이 우리의 본성과 일치한다는데 대해 말하고 있다.||(c) 마카베오사서 15:25에서 퓌시스는 '자연의 규칙적인 질서', 마카베오삼서 3:29에서 '피조물', 즉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세계, 마카베오사서 1:20에서 '인간의 속성'이란 의미를 나타낸다.|그러나 지혜서 7:20에서 퓌시스는 '살아있는 생물들의 종류'를 나타내었다. 자연은 또한 좋은 것들을 주는 자로서 묘사되었다. "진실로 순결한 즐거움들을 즐기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그리고 자연의 혜택을 거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마카베오사서 5:8).||#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퓌시스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다으과 같이 사용되었다.||(a) ① 갈 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여기에서 퓌세이 이우다이오이("본래 유대인이요") 문구에서 이 단어는 '혈통'이나 '계보, 태생'을 의미한다.|② 롬 2:27도 이와 일치한다: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여기에서 "본래 무할례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할례를 받지 못했던 이유는 혈통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바울은 그러한 사람이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고도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뜻을(본래?) 행한다고 말한다.|③ 롬 11: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카타 퓌신(본래 by nature, 자연적인 방법으로 in the natural way) 참 감람나무에 속한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다면 돌감람 나뭇가지(이방인인 그리스도인들) 역시 아끼지 아니하실 것이다.|퓌시스의 이 용법이 이와 동일한 비유인 롬 11:24 에 한번 더 나타난다: 카타 퓌신(본래 by nature) 돌감람 나뭇가지가 그 돌감람나무에서 잘려, 파라 퓌신("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 나무에 접붙여졌다는 내용에 나온다. 바울의 논술은 소전제로부터 대전제를 향해 나아간다: 본래부터 참 감람나무에 속한 감람 나뭇가지들이 (다시) 그 원 참 감람 나무에 되접붙여질 가능성이 더 많지 않겠는가(롬 11:24). 바울은 여기에서 유대인과 비(非)유대인을 구별하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는 필로와 요세푸스의 용법과 같이 헬라 언어의 용법을 따르고 있다. 본질상 죄인들이며 제 1계명을 어긴 자들인 이방인들은 혈통적으로 진노의 자녀들(엡 2:3; 참조: 지혜서 13:1)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살리신 자들의 생활 속에서 끝이 난다(참조: 엡 2:5-10).||(b) 퓌시스는 '자연의 규칙적 질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롬 1:26에서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자들을 내버려 두셨으므로 그들은 남녀 간의 순리적인(퓌시켄) 성관계를 역리적으로(파라 퓌신) 바꾸었다("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러나 토라를 가지지는 못했으나 순리적 본성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율법이 퓌세이(본래 by nature) 요구하는 바를 이행하는 이방인들도 있다. 이는, 그들이 자연의 순리로부터 율법을 읽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생활과 행동이 나타내 보여주듯이, 자연의 순리가 이방인들의 내부에서 순리 그 자체를 실현시키는 힘이 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은 바로 도덕의 법이 그들의 삶 속에서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이행하는 사람으로서의 이방인들은 자기 자신이 그들 자신에게 율법이 되며(롬 2:27), 그들 자신은 본래 자연적 순리의 보호 아래 지키게 되는 것이다.|롬 2:14-16에서도 '본성'에 관해 언급한다: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고전 11:14에서 긴 머리를 가지는 것이 남자에게는 욕이 되나, 여자에게는 영광이 된다는 사실을 본성이 가르친다.||(c) 벧후 1:4에서 신자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참여자로 언급하고 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참조: 벧후 1:3; 벧후 1:8)된 결과이며 "택하심"(참조: 벧후 1:10)의 결과이다. 이 사상이 분명히 신성과 유사하게 변화한다는 사상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참여의 결과들이 실제적인 인간의 특성들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참으로 인간에게 한 가지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이다. 여기서의 가르침은 새로운 피조물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이나, 또는 중생에 관한 요한의 가르침과 일맥 상통한다. 요 3:3; 요 3:5의 중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신의 성품에의 참여 및 생활 속에서 신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은,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참조: 벧후 1:11) 위한 선행 조건이다.||(d) 약 3:7에서 퓌시스는 2회 사용되었으며, 둘 다 "종류" kind라는 정확한 헬라어 의미를 나타낸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여기의 사상도 다시 자연의 규칙적 질서라는 개념과 일치한다. 이 구절의 요지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8)는 사실을 대조하여 강조하는 데에 있다.|(참조: G. Harder; H. Ko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