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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퓔랏소
fulavssw
지키다, 보호하다, 경계하다, 보존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퓔랏소(Homer. 이래)는 다음의 의미를 가진다.||(a) '지켜보다, 파수하다, 주의하여 지키다'|(b) '수호하다, 보호하다, 경계하다, 감옥을 지키다'|(c) '지키다, 보호하다, 보존하다', 본래는 물건, 재산, 사람에 대하여, 후에는 비유적으로 사랑, 충성, 존경에 대하여|(d) '경계하다, 저장하다'(안전하게 보존함).|(e) 명예를 지키다' 명령·서약에 '복종하다', '주의하다'|(f) 중간태로 '스스로를 위해 도주하다(즉 피하다), 자신을 지키다, 스스로를 위해(안전을 위해) 경계하다, 지키다, 준수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퓔랏소는 70인역본에서 약 400회 이상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샤마르(보호하다, 지키다, 경계하다, 378회), 나차르(따르다, 복종하다, 10회)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퓔랏소는 신약성경에서 31회 나오며,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필랏소는 '지켜보다, 파수하다' to watch, keep를 의미한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눅 2:8).||(b) 필랏소는 '경계[감시]하다, 주시하여 지키다'를 의미한다.|① 아무개를, 그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지킨 것에 대해, 행 12:4; 행 28:16; 수동태, 행 23:35; 눅 8:29.|② 어떤 것을 그것을 누가 가져가지 못하도록 지킨 것에 대해, "옷을", 행 22:20.||(c) 퓔랏소는 어떤 인격체(나 사물)를 '그가 안전하게 있도록 보호하다, 지키다'를 의미한다(눅 11:21: 살후 3:3; 딤전 6:20; 딤후 1:14). 상실 또는 멸망되지 않게 보호하다, 즉(행복한 결과라는 지배적 개념과 함께), (요 17:12; 벧후 2:5; 유 1:24; 요 12:25; 요일 5:21).||(d) 퓔랏소는 '지키다' to guard, '주의하다, 어기지 않도록 조심하다, 준수하다'를 의미한다. (행 7:53; 행 21:24; 갈 6:13; 마 19:20; 눅 18:21; 롬 2:26; 눅 11:28; 요 12:47; 행 16:4; 딤전 5:21).||(e) 중간태로 피해야 될 어떤 것을, 스스로를 위해 주의하다, 즉 '피하다, 비키다, ~에서 도피하다'(행 21:25; 딤후 4:15; 눅 12:15; 벧후 3:17).|(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지파
fulhv
씨족, 지파, 인종, 국민.||#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퓔레(Pind., Hdt. 이래)는 퓌오($5453: 낳다, 생기다, 산출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씨족, 지파' tribe(Diod.).|(b) '인종, 국민, 백성'(Xen., Cyr., Dionys.)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퓔레는 70인역본에서 약 40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맛테(잔가지, 가지; 169회), 세벳이나 셰멧(장대, 막대기, 홀; 118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이 두 히브리 명사들은 애굽 지파들을 언급하고 있는 사 19:13을 제외하면 오직 이스라엘의 지파들에 대해서만 사용되었다. 그리고 퓔레는 미시파하를 번역하여, 혈족에 관한 언급, 아브라함의 친족(창 24:38), 에돔 족속(창 36:40)을 나타낸다. 퓔레의 일반적인 의미는 친족관계나 거주지에 의해 결합된 일단의 인간 무리를 뜻한다. 퓔레는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라는 전문용어(민 34:18-28)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축복에서처럼(창 12:3), 세상의 열국들에 대해서도 적용되고 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퓔레는 신약성경에서 3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퓔레는 '씨족, 지파' a tribe를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족장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하나로부터 내려온 모든 자손들'을 가리킨다(히 7:13이하; 눅 22:36; 행 13:21; 롬 11:1; 빌 3:5; 계 5:5; 계 7:5-8).|"이스라엘 열 두 지파"(마 19:28; 눅 2:30; 약 1:1; 계 21:12; 계 7:4).||(b) '인종, 국민, 백성'을 의미한다(마 24:30; 계 1:7; 계 5:9; 계 7:9; 계 11:9; 계 13:7; 계 14:6).|(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잎사귀
fuvllon
잎 leaf.||#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퓔론(Homer 이래)은 플레오(풍부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잎, 잎사귀'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퓔론은 70인역본에서 약 2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알레(잎)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퓔론은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잎사귀'를 의미한다.||(a) 막 11:13에서 퓔론은 잎사귀 밖에 없는 무화과 나무를 묘사한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병행구 마 21:19).||(b) 마 24:32에서 퓔론은 시기를 알려주는 징후를 나타낸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병행구 막 13:28).||(c) 계 22:2에서 새 예루살렘에서 퓔론의 효과에 대해 말한다: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월부어드(Walvoord)는 소성케하다는 말은 '건강을 주는' 것으로 고려하여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새 예루살렘에서 생명의 기쁨을 제공한다.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질병을 치유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Leon Morris).|(참조: Walter Bauer)
덩어리
fuvrama
혼합된 것 a mixture, 덩어리 a lump.||#1. 고전 헬라어의 용법||명사 퓌라마는 퓌라오(%91: 섞다, 혼합하다)에서 유래했으며 '혼합된 어떤 것, 밀가루 반죽, 그러한 덩어리'를 의미한다(Aristot., Probl; Plularch, Moralia). 같은 어근을 가진 동사는 밀가루나 어떤 비슷한 물질을 혼합한다는 의미로 거의 한정된다. 진흙 반죽을 만들기 위하여 흙에다 물을 부어 혼합하는 것을 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참조: Plato, Timaesus 73e; Theaetetus 147c).||#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퓌라마는 70인역본에서 3회(출 7:28; 출 12:34; 민 15:20) 나온다.|70인역본에서 퓌라마는 토기장이의 작업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반죽을 준비하는 반죽 그릇(출 8:3)이나 반죽 자체(출 12:34)나 반죽할 거친 가루(민 15:20이하)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퓌라마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는데 그 중에 4회는 반죽 덩어리를 의미한다(롬 11:16; 고전 5:6; 고전 5:7; 갈 5:9).||롬 9:21에서 퓌라마는 토기장이가 하나는 귀하게 쓰기 위한 그릇과 다른 하나는 천한 목적에 쓰기 위한 그릇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진흙덩이를 의미한다. 비록 하나님이 사람을 자비의 그릇과 분노의 그릇으로 지으셨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의 구원의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 문맥상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자비의 행위에 근거하고 있으며 또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 모든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의 한도에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하여 계획된 것임이 분명한 것이다(롬 9:22-롬 9:33).|(참조: J.H.Thayer, W.L.Lane)
순리대로
fusikov"
자연에 속하는, 자연적인||#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퓌시코스(Xen. 이래)는 퓌시스($5449: 자연, 천성)에서 유래했으며, '자연에 속하는'(Xen.), '자연적인, 본성적인, 자연과 일치하는'(Dionys., plut.)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퓌시코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로마서(롬 1:26; 롬 1:27)와 베드로후서(롬 2:12)에만 나온다.||(a) 롬 1:26; 롬 1:27,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여기서 퓌시코스는 '자연과 일치하는'이란 의미를 지닌다.||(b) 벧후 2: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여기서 퓌시코스는 '자연에 지배되는'이란 의미를 지닌다.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사실상 이성 없는 동물이나 자연이나 본성에 지배되는 피조물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본능으로
fusikw'"
자연적으로, 본성적으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퓌시코스(Aristot., Diod. S., Plut., Philo)는 퓌시코스($5446: 자연적인, 자연에 속하는)에서 유래했으며, '자연적으로, 본성적으로, 본래, 날 때부터'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퓌시코스는 신약성경에서 유 1:10에 한번 나온다: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여기서는 아마 본성적으로 구원 받은 것을 주장하고 있는 듯한 거짓 교사들에 대해, 그들이 다만 본성으로만 알고 합리적으로는 알지 못하는 것들에 의해 멸망 받으리라고 단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Koster.).
과장하다
fusiovw
교만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퓌시오오는 퓌사(%666: 풀무)에서 유래했으며,||(a) '부풀리다, 부풀게 하다, 부풀어 오르게 하다',|(b) 비유적으로, '마음이 부풀게(득의 양양하게) 하다, 자만하게 하다', 수동태, '마음이 부풀어 오르다, 자만하다, 거만하게 처신하다, 교만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퓌시오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고전 8:1에서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b) 고전 13:4에서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c) 고전 4:6에서 서로 대적하여 교만하지 말라고 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사람들은 서로 대적함으로 교만하게 된다. 교회에서 지도력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지도권을 애착하는 일이 배타적인 파당을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하든가 또는 부당한 충성으로 타락해서는 안된다. 지도자를 선정하는 일과 그를 높이되 다른 지도자들에게 대립시킬 정도까지 지도자를 높이는 일은 육적인 자랑의 결과이다(D. S. Mez).||(d) 고전 4:18, "어떤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고린도교회의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고린도 신자들을 대하기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면서, 또한 바울에 대한 반발로써 스스로 교만하였던 것이다(D. S. Metz).||(e) 고전 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클링(Kling)의 말과 같이 '몸의 지체가 타락하고 마땅히 보존되어야 할 주님의 교회가 그처럼 더러워지고 욕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참된 영적 교회라면 통한히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시치미를 떼고 신령한 것을 자랑하듯이 그 교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지식과 은사를 자랑하기를 계속했으며, 파렴치한 그 죄인을 너그럽게 보아주며 동시에 교만한 마을을 계속 과시했다(D. S. Metz).|여기서 퓌시오오는 고전 4:6; 고전 4:18; 고전 4:19에서도 파벌에 대해 사용되었으며, 여기서도 같은 당파에 속해 있는 자들은 똑같이 나쁜 마음을 품고 그의 비행을 오히려 두둔하였다(참조: Robertson).||(f) 골 2: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거짓 선생들은 겸손해지기는커녕 자만심으로 더 우쭐해 진다. 하나님의 계시보다는 인간의 사색으로부터 나온 신앙은 필연적으로 겸손보다는 교만에 빠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자만적 태도는 정당성이 전혀 결여한 헛된 것이다. 이는 그것이 근거한 가상적 지식은 진정한 지식이 아니요, 단지 인간의 고안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교만을 드러내보이는 마음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가 아니라 육체에 의해 조절되는 것이다(참조: H. M. Carson).
본성
fuvsi"
자연 nature, 조건, 상태 condition, 종류 kin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퓌시스(Homer 이래)는 퓌오($5453: 낳다, 생기다, 산출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어근 퓌(%822)는 '존재' being, '현존' presence을 의미한다.||(a) 퓌시스는 '근원, 시작, 기원, 혈통, 가계'(Hdt.), 성인이나 어린이의 '혈통'(Aristot.), '원소들로부터 합성된 근본 물질'(Aristotle)을 의미한다.||(b) 퓌시스는 존재나 현존의 근본적 개념으로부터, '자연적 조건, 특성, 상태'(예: 공기, 피, 어떤 땅의 물리적인 특징들, Hdt. 2, 7); '외적 형태'나 모습(Hdt 8:38); '성질'이나 '성격'을 의미하게 되었다. 퓌시스가 양성 sexes(Diod. Plato, Leg.) 그리고 '성기'나 '성적 특성'(Diod. Sic., Hippocrates), '(인간의) 본성'(human)nature(Aristot.), 또는 신들(gods)의 존재의 불멸적-그리고 소멸적인 본성, 또한 개인의 체격, 또는 국가의 제도나 정체를 의미한다.(Isoc.)||(c) 더 나아가 퓌시스는 '피조물', 즉 '자연의 세계', 예를 들면, 바다에 사는 생물이나(Soph., Antigone 345), 자연 속에 존재하는 개개의 유(genera), 종(species)(Plato, Rep. 429d)을 나타낸다.||(d) 퓌시스는 '생성시키는 유효한 힘', 즉 식물을 출현시킨다거나 머리카락이 자라나게 하는 '마력'(Hippocrates)을 의미한다.||(e) 퓌시스는 또한 자연의 규칙적인 질서를 의미한다. 인간의 삶은, 자연과 법이라는 한 쌍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Dem., 25, 15). 이 질서는 생명의 타고난 본래의 목적을 결정한다(Plut.). 이처럼 자연, 운명, 필연성은 사람의 존재를 지배한다(Philodemus).||(f)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Stoics) 간에는 퓌시스가 우주의 한 신(a god)이 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퓌시스는 70인역본에서 12회 나오며, 히브리어 상당어 없이 사용되었다. 70인역본에서||(a) 퓌시스는 '자질, 성품'(마카베오사서 13:27), 자기의 자녀를 사랑하는 힘(마카베오사서 16:3), (물질적 물체와 관련하여) 불을 끄는 물의 속성(지혜서 19:20) 등과 같은 어떤 '특성'을 나타내기도 한다.||(b) 마카베오사서 5:25, 26에서 율법이 우리의 본성과 일치한다는데 대해 말하고 있다.||(c) 마카베오사서 15:25에서 퓌시스는 '자연의 규칙적인 질서', 마카베오삼서 3:29에서 '피조물', 즉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세계, 마카베오사서 1:20에서 '인간의 속성'이란 의미를 나타낸다.|그러나 지혜서 7:20에서 퓌시스는 '살아있는 생물들의 종류'를 나타내었다. 자연은 또한 좋은 것들을 주는 자로서 묘사되었다. "진실로 순결한 즐거움들을 즐기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그리고 자연의 혜택을 거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마카베오사서 5:8).||#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퓌시스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다으과 같이 사용되었다.||(a) ① 갈 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여기에서 퓌세이 이우다이오이("본래 유대인이요") 문구에서 이 단어는 '혈통'이나 '계보, 태생'을 의미한다.|② 롬 2:27도 이와 일치한다: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여기에서 "본래 무할례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할례를 받지 못했던 이유는 혈통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바울은 그러한 사람이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고도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뜻을(본래?) 행한다고 말한다.|③ 롬 11: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카타 퓌신(본래 by nature, 자연적인 방법으로 in the natural way) 참 감람나무에 속한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다면 돌감람 나뭇가지(이방인인 그리스도인들) 역시 아끼지 아니하실 것이다.|퓌시스의 이 용법이 이와 동일한 비유인 롬 11:24 에 한번 더 나타난다: 카타 퓌신(본래 by nature) 돌감람 나뭇가지가 그 돌감람나무에서 잘려, 파라 퓌신("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 나무에 접붙여졌다는 내용에 나온다. 바울의 논술은 소전제로부터 대전제를 향해 나아간다: 본래부터 참 감람나무에 속한 감람 나뭇가지들이 (다시) 그 원 참 감람 나무에 되접붙여질 가능성이 더 많지 않겠는가(롬 11:24). 바울은 여기에서 유대인과 비(非)유대인을 구별하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는 필로와 요세푸스의 용법과 같이 헬라 언어의 용법을 따르고 있다. 본질상 죄인들이며 제 1계명을 어긴 자들인 이방인들은 혈통적으로 진노의 자녀들(엡 2:3; 참조: 지혜서 13:1)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살리신 자들의 생활 속에서 끝이 난다(참조: 엡 2:5-10).||(b) 퓌시스는 '자연의 규칙적 질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롬 1:26에서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자들을 내버려 두셨으므로 그들은 남녀 간의 순리적인(퓌시켄) 성관계를 역리적으로(파라 퓌신) 바꾸었다("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러나 토라를 가지지는 못했으나 순리적 본성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율법이 퓌세이(본래 by nature) 요구하는 바를 이행하는 이방인들도 있다. 이는, 그들이 자연의 순리로부터 율법을 읽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생활과 행동이 나타내 보여주듯이, 자연의 순리가 이방인들의 내부에서 순리 그 자체를 실현시키는 힘이 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은 바로 도덕의 법이 그들의 삶 속에서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이행하는 사람으로서의 이방인들은 자기 자신이 그들 자신에게 율법이 되며(롬 2:27), 그들 자신은 본래 자연적 순리의 보호 아래 지키게 되는 것이다.|롬 2:14-16에서도 '본성'에 관해 언급한다: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고전 11:14에서 긴 머리를 가지는 것이 남자에게는 욕이 되나, 여자에게는 영광이 된다는 사실을 본성이 가르친다.||(c) 벧후 1:4에서 신자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참여자로 언급하고 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참조: 벧후 1:3; 벧후 1:8)된 결과이며 "택하심"(참조: 벧후 1:10)의 결과이다. 이 사상이 분명히 신성과 유사하게 변화한다는 사상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참여의 결과들이 실제적인 인간의 특성들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참으로 인간에게 한 가지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이다. 여기서의 가르침은 새로운 피조물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이나, 또는 중생에 관한 요한의 가르침과 일맥 상통한다. 요 3:3; 요 3:5의 중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신의 성품에의 참여 및 생활 속에서 신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은,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참조: 벧후 1:11) 위한 선행 조건이다.||(d) 약 3:7에서 퓌시스는 2회 사용되었으며, 둘 다 "종류" kind라는 정확한 헬라어 의미를 나타낸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여기의 사상도 다시 자연의 규칙적 질서라는 개념과 일치한다. 이 구절의 요지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8)는 사실을 대조하여 강조하는 데에 있다.|(참조: G. Harder; H. Koster).
거만함
fusivwsi"
거만, 교만.||#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퓌시오시스(Achmes, Hesychius)는 퓌시오오($5448: 부풀게 하다, 교만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마음이 부풀어 오름, 거만, 교만, 자만'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퓌시오시스는 신약성경에서 고후 12:20에 한번 나오며, '거만'을 의미한다: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퓌테이아
futeiva
식물 plan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퓌테이아(Xenoph.이래)는 퓌튜오($5452: 심다, 뿌리다)에서 유래했으며, '심은 것, 식물'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퓌테이아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왕하 19:29에서 히브리어 나타(심다)를 번역했으며, 그리고 맛타(심음, 재배지)를 번역하고 있는 겔 17:7에서는 '심긴'을, 미 1:6에서는 심을 장소, 곧 재배지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퓌테리아는 신약성경에서 한번 나타난다.|마 15:13에서 '심은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이 비유에서 "심은 것"은 마 13:29에 의하면 사람들을 가리킨다. 교리는 그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과 분리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들을 그들되게 하는 것은 그 교리이기 때문이다. "심은 것" 중에 하나님이 심은 식물은 그의 말씀을 붙잡은 참신자들을 말하며, 그가 심으시지 않은 것 나머지는 믿음이 없고 사람들의 교리에 집착하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뿌리를 뽑는다는 말씀은 때가 되면 그들을 덮칠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다.|(참조: R.C.H.Lenski).
퓌튜오
futeuvw
심다 to plan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퓌튜오(Homer이래)는 퓌톤(%102: 식물)에서 유래했으며, '심다, 뿌리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어린이를 보는(begetting) 아버지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Hdt. 4; 145; Eur., Alcestis 662).||#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퓌튜오는 70인역본에서 약 5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나타(심다, 세우다, 치다 pitch)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퓌튜오는 신약성경에서 11회 나오며,||(a) 개인들은 심은 나무들로 묘사되었다.|마 15:13에서 퓌튜오는 하나님이 심지 않은 자들을 묘사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5451 퓌테이아 신약성경의 용법 참조.||(b) 옛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은 포도원으로 묘사된다. 마 21:33이하; 병행구, 막 12:1이하; 눅 20:9이하에서는 하나님이 심으신 포도밭 이야기가 나온다. 막 12:1이하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포도나무를 심으신 분이나 그것을 파괴하지는 않으신다. 그는 한 때의 소작인들을 다른 이들로 바꾸어 놓으신다.|눅 13:6 - 눅 13:9에 나오는 무화과 나무는 막 11:12이하의 무화과 나무와 함께 이스라엘로 이해해야 될 것이다(참조: W.L.Lane).||(c) 예수님의 일군들은 심는 자들로 묘사한다. 예수님은 심으시는 분, 곧 말씀을 뿌리는 자(참조: 마 13:37)이며, 그를 따르는 자들도 이 일을 하라고 부름을 받았다(고전 3:6이하; 고전 9:7).||(d) 눅 17:28에서 말세에도 심는 일은 여전하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참조: E.M.Embry; Walter Bauer).
퓌오
fuvw
나오다, 자라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퓌오(Homer 이래)는 기본 동사이며,||(a) '낳다, 생기게 하다, 산출하다, 내다', 수동태로 '태어나다, 생기다, 나다, 자라다',|(b) 자동사 '싹트다, 나오다, 자라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퓌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누가복음과 히브리서에만 사용되었다.||(a) 퓌오는 '나서 자라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① 눅 8: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② 눅 8: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b) 퓌오는 히 12:15에서 비유적으로 쓴 뿌리가 '나오다'를 의미한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폴레오스
fwleov"
굴, 동굴, 소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폴레오스(Aristot. 이래)는 어원이 불확실하며, 숨는 '굴, 동굴, 소굴'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폴레오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마 8:20(병행구 눅 9:58)에 나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포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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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내다, 부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포네오(Homer 이래)는 포네($5456: 소리, 음성)에서 유래했으며,||(a) '소리를 내다, 소리가 나다',|(b) '부르다, 불러 모으다',|(c) '말하다, 연설하다',|(d) '응답하다, 호소하다, 명령하다',|(e) '노래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포네오는 70인역본에서 10회 나오며, 인간의 말(시 115:15; 마카베오삼서 2:22), 동물의 울부짖음(습 2:14), 나팔소리(암 3:6)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포네오는 신약성경에서 43회 나오며, 4복음서와 사도행전, 요한계시록(계 14:18)에만 사용되었다.||(a) 어떤 경우에(눅 8:8; 눅 16:24; 행 10:18 등), 특히 "큰 소리로"라는 구절이 덧붙여져 있을 때(막 1:26) 의미상 크라조("크게 외치다")와 구분할 수가 없다.||(b) 포네오는 경우에 따라서 '긴급한 요청'(마 27:47; 병행구 막 15:35) 또는 '강력한 명령'(눅 8:54; 요 12:17), 권위있는 소집(막 9:35; 눅 16:2), 정중한 초대(예: 눅 14:12; 요 1:48)를 나타낸다.||(c) 팔레스틴에서 수탉은 대개 3경쯤에(즉, 자정에서 새벽 3시 사이에) 운다. 포네오는 마 26:34; 마 26:74, 병행구 막 14:30; 막 14:72; 눅 22:34; 눅 22:60에서 닭이 우는 것을 나타낸다.|(참조: M. J. Harris; O. Betz).
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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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소리.||#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포네(Homer 이래)는 파오(%816: 빛나다, 비치다, 분명하게 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목소리, 음성'을 의미한다.|헬라인들에게 있어서 포네는 생물이 내는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의미하며, 동물 소리들, 또는 인간의 소리들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인간에 대하여 쓸 때는 '목소리'(목소리로 내는 분절음으로), '말' 또는 (의미가 있는 언어로) 진술을 의미했다. 당시 사람들은 신이 이상한 포네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참조: 행 12:21-22).||#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포네는 70인역본에서 약 600회 이상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콜(소리, 음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이 단어는 천둥 소리(출 19:16),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시 104:12),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나타낸다. 여러 시편에 보면(시 29:3 이하; 시 29:8; 시 104:7 등) 하나님의 창조적, 계시적 음성이 천둥으로 묘사되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즉 순종하는 것)은 언약 종교(삼상 12:14) 및 참 종교(수 24:19-24)의 본질이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포네는 신약성경에서 13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소음과 소리. 포네는 자주 '소음' 혹은 '소리'를 의미한다. 계 9:9에서 바퀴 구르는 소리, 계 18:22에서 맷돌 가는 소리, 계 19:1에서 군중들의 소음, 요 3:8에서 바람 부는 소리, 고전 14:7에서 악기들의 곡조, 눅 1:44에서 말소리, 마 2:18에서 애곡 소리를 의미한다.||(b) 인간의 음성. ① 행 12:14에서 로데는 목소리로 베드로를 알아 보았다: "베드로의 음성인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② 요 10:3-4에 의하면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③ 요 3:29에서 신랑의 들러리는 신랑의 음성을 듣고 즐거워한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④ 갈 4:20에서 바울은 다른 어조의 음성을 사용하고자 한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배와 육십 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⑤ 막 1:3에 의하면 세례(침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음성이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⑥ 마 2:18에서 라헬의 음성이 애곡을 한다고 언급된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⑦ 이 외에도 우리는 자비 등을 구하기 위해 운다. 또 목소리를 높인다 또는 방자하게 말한다(계 13:5)와 같은 표현들을 찾아 볼 수 있다.||(c) 큰 음성. 계 6:10에서 순교자들은 큰 음성으로 부르짖는다. 계 5:12에서 천사들은 큰 음성으로 하나님을 찬미한다. 이 음성들은 사자(계 10:3)나 나팔(계 1:10), 물(계 1:15), 천둥(요 12:29-30) 소리 등에 비유된다. 막 15:37에서 예수님의 큰 외침은 하나님 현현의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하다(참조: 마 27:50; 눅 23:46). 행 12:22의 외침은 헤롯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유발시킨다. 막 1:26과 행 8:7에서 더러운 귀신들이 큰 소리를 지른다. 행 14:10에서 바울은 큰 음성으로 치유를 한다. 요 11:43에서 예수님께서는 큰 음성으로 나사로를 일으키신다(참조: 요 5:28-29). 행 9:4(참조: 7절)에서는 한 음성이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말씀한다.||(d) 외침, 말, 고백, 발언. 포네는 '외침'(행 19:34)이나 '말'(벧후 1:17), '고백'(행 24:21), '발언'(벧후 2:16)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e) 하나님의 음성. 포네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사용되었다.|① 계 10:3에서 힘 있는 천사의 말에 대해 일곱 우뢰가 응답을 한다: "사자의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외칠 때에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발하더라".|② 계 1:10 이하에서 인자께서 계시의 말씀을 발하신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여기서 시내산에서의 하나님 현현에 대한 종말론적 대응이 나타난다. 행 2장도 시내산 사건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크신 역사에 관한 복음이 이제 율법을 대신하게 된다.|③ 요 5:37은 신 4:12에 근거를 둔 어떤 주장에 대해 반기를 든다. 계시는 로고스의 오심으로써 그 절정에 이른다. 그의 음성을 듣는 자는 죽음의 영역에서 벗어나 영생의 영역으로 들어간다(참조: 요 5:25; 요 5:28).|④ 요 10:27에서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는 말은 그를 알고 따른다는 뜻이다. 이러한 면에서는 국적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⑤ 요 18:37에서 진리 속에 있는 자는 모두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러나 우리가 마치 바람 소리를 들을 때처럼, 그것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 음성을 들을 수도 있다(요 3:8; 참조: 요 8:14).|⑥ 히 12:18 이하에 시내산 사건과의 또 다른 비교가 나온다. 말세에 하나님께서는 땅 뿐 아니라 하늘도 흔드실 것이다. 창조된 모든 것이 변할 터이지만, 흔들리지 않는 것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⑦ 히 1:1 이하에서 아들의 말씀은 선지자들의 선포의 클라이막스라고 언급된다(참조: 히 2:2).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음성이 교회의 말씀 전파를 통해서 울려 퍼지는 위대한 "오늘"은 이미 왔으며, 그 "오늘"은 종말의 안식일과 더불어 끝이 날 것이다.||(f) 하늘의 음성.|① 하늘의 음성은 요한계시록에서 자주 언급된다(계 10:8; 계 11:12). 이 음성들은 성소나 보좌, 제단에서부터 울려나오고, 짐승이나 인자에 의해 언급되며, 명령이나 책망, 주장의 형태를 지닌다.|② 사도행전은 하늘로부터의 음성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초월성을 한층 강조한다(계 7:31; 계 10:13 이하; 계 11:9).|③ 예수님께서 침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한 음성이 내려와 그의 메시야 되심을 확증한다. 이 말씀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며, 그 음성은 직접 예수님께 주어진 것이다: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막 1:11).|④ 변화산 사건에서 구름에서부터 들리는 음성은 예수님께 권위를 부여해 준다: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막 9:7).|⑤ 벧후 1:16 이하에서 이 음성은 사도들이 전한 메시지의 진실성을 보증해 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⑥ 요 12:20 이하에서 하늘로부터 들리는 음성은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었음을 확증한다. 이 음성은 예수님 자신을 위해 들려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들려진 것이지만(요 12:30),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요 12:29). 계시는 하늘로부터 직접적인 음성을 통해 전해지지 않는다.|(참조: O. Betz; M. J. Har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