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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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판단하다, 전념하다, ~에 마음을 두다, ~하고 싶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로네오(Homer 이래로)는|(a) '생각하다, 의견을 가지다, 판단하다',|(b) '전념하다, ~에 마음을 두다',|(c) '~하고 싶다',|(d) '계획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프로네오는 70인역본에서 15회 나오며, 하캄(신 32:29; 슥 9:2), 사칼(시 93:8), 빈(사 44:18)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기타는 히브리어 해당어 없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프로네오는 신약성경에서 26회 나오며, 그 중에 23회가 바울 서신에 나타난다.||(a)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막 8:33; 병행구, 마 16:23에서 베드로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에 나타난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베드로는 세상적 생활과 안녕에 초점을 맞춘 인간적 사상 만을 생각할 수 있었다. 베드로는 그의 생각과 뜻이 하나님의 일을 편들지 않고(하나님과는 반대되는) 인간의 일을 편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책망을 받았다. 예수님이 희생제물로 바쳐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반대함으로써 베드로는 하나님의 적들의 대의 명분을 조장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는 그 적들의 편에 가담한 것이다(그러므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는 신랄한 꾸짖음을 받았다).||(b) 바울서신.|빌 3:19에서 프로네오는 마음을 세상에 두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골 3:2에서는 그 반대를 묘사한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롬 12:3에서는 건전한 포부를 갖도록 권고한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16에 보면 서로 같은 마음을 가지고, 높은 것들을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전 4:6에서는 배움으로 교만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하라고 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빌 2:2에서 바울은 목표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마련하신 사귐에서(빌 4:2) 한 마음을 품는 것이며, 한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이 마음을 가진 신자들은 다른 이상한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갈 5:10).고후 13:11과 롬 15:5에도 같은 마음을 거론한다.|빌 3:15이하에서 달리 어떤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롬 14:6에서 프로네오는 '준수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는 무조건 규정만을 준수해서는 안되고 책임적인 판단을 해야한다.|고전 13:11에서 성숙은 유치한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빌 1:7에서 프로네오(휘페르)는 생각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관심'을 의미한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빌 4:10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롬 8:5 이하에서 프로네오는 '~에 전념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인간은 항상 어떤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고투와 노력은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다. 인간은 소유하기 위하여 애쓰고 또 그것에 전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을 하나님의 영 안에 있는 생명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8장의 문맥에서 바울은 인간의 마음은 모종의 객체에 집착해 있으며, 이것의 종류는 그가 육에 속한 사람인지 또는 영(Spirit)에 속한 사람인지에 따라 좌우된다고 논증하고 있다. 따라서 육신을 좇는 자(롬 8:5)는 그들의 마음을 육체의 일에 둔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생각과 노력이(그것이 그들의 인생 전체이다) '단지 인간적인, 즉 세상의 덧없는 일들'에 향해 있다(R. Bultmann ).|반면 하나님의 영(Spirit)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호이 데 카타 프뉴마 온테스, 롬 8:5)은 약속된 성령의 은사에 의거하여, 성령의 지배하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이와같은 태도를 가진 자들에게는 "생명과 평안"(롬 8:6)의 약속이었다.|그러나 육신의 일에 마음을 두는 것은 사망을 뜻하며 이는 이 둘 사이에 어떤 필연적인 연관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참조: 롬 5:21; 롬 6:23), 육신에 마음을 두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거역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수 없는 까닭에 하나님을 거역할 수밖에 없다. 이 구절은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은 그가 살아가는 방식, 즉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말하면 성령 안에서와 믿음으로 살아가든지 또는 대신에 육체 안에서, 다시 말하면 죄 안에서 그리고 영적인 사망 안에서 살아가든지 간에 어쨌든 그 생활 방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아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생각과 노력이 그의 삶의 전체적인 방향과 분리되어 나타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삶의 방향은 그가 설정해 놓은 목표에 반영되어 있다. 생각과 생활 사이의 이러한 밀접한 상호 관계는 프로네오에 포함되어 있는 광범위한 의미로부터 메아리쳐 들려온다. 이 단어는 지성의 활동은 물론 의지의 운동까지도 표현한다; 그것은 관심이자 동시에 결정이다. 따라서 그 의미가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을 "편듬"(taking sides)이라는 개념에까지 실제로 확대되기도 한다.||(c) 행 28:22에서 로마의 유대인 지도자들이 바울에게 이 새로운 "파"에 관한 견해를 말해보라고 청한다: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참조: Walter Bauer; H.Paulen; J.Goetzmann; G.Bertr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