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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지다
fortivzw
짐을 지우다 burde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포르티조(Hes., Lucian)는 포르토스($5414: 짐)에서 유래했으며,||(a) '짐을 싣다, 짐을 지우다, 적재하다'|(b) 전의된 의미로 '~로 부담을 느끼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포르티조는 70인역본에서 겔 16:33에서 오직 한번 샤하드(7809: 선물을 주다, 매수하다, 뇌물을 쓰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포르티조는 신약성경에서 2회, 마 11:28과 눅 11:46에만 사용되었다.||(a) 고통의 짐과 율법의 짐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나타나는데, 율법의 짐은 특히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토론한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눅 11:46에서 외식하는 자들이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다고 비난한다. 이들은 많은 형식적인 계명만 강조하고,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참조: 마 23:23)을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다.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미 6:8의 초기 선지자의 요구를 지지하시고 있다.||(b) 유대교의 율법 해석 학자들이 지우는 멍에와 비교해 볼 때,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그의 짐은 가볍다. 이런 이유로 해서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모두 그에게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마 11:28이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역시 계명이 있으나 이 계명들은 무겁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 부름에 응하는 사람들과 함께 멍에를 메시기 때문이다. 요일 5:3을 보면,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라고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계명들은 사랑의 계명이기 때문이다(W. Mundle).|(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포르티온
fortivon
'짐', burden, '화물', cargo||#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포르티온(Hes. 이래)은 포르토스($5414: 짐)의 지소사이며||(a) '짐' burden|(b) '화물' cargo|(c) '상품' goods|(d) '태안에 든 아기'|(e) 비유적 의미로 걱정, 질병 등으로 생기는 '부담'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포르티온은 70인역본에서 8회 나오며, 맛사(4853: 무거운 짐, 운반, 삼하 19:36; 욥 7:20; 시 38:4; 사 46:1), 소카(7754: 나뭇가지, 삿 9:48), 소크(7754: 나뭇가지, 삿 9:49)의 역어로 사용되었다.|70인역본에서 포르티온은 '짐'(사 46:1), '죄짐'(시 38:4), '부담'(욥 7:20), '나무화물'(삿 9:48; 삿 9:49)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포르티온은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마태복음(마 11:30; 마 23:4), 누가복음(눅 11:46), 갈라디아서(갈 6:5)에만 사용되었다.||(a) 포르티온은 행 27:10에서 배의 '화물' 또는 '하물'에 대해 사용되었다: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b) 포르티온은 무거운 짐이 되는 의식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가라사대 화 있을찐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눅 11:46; 병행구 마 23:4).||(c) 프로티온은 마 11:30에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지우는 의무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는 이것을 그 준수가 지극히 압제적인 바리새인들의 계훈과 대조할 셈으로 '짐'이라고 불렀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d) 갈 6:5에서 바울은 고후 10:12이하 및 고전 3:10이하와 거의 동일한 내용의 언급을 한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여기서 그는 각자에게 맡겨진 그리고 각자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성취해야 하는 과업 내지는 일에 관해 말한다. 동일한 사상이 롬 14:12에도 나온다. 심판대 앞에서의 책임은 짐 혹은 부담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K. Weiss; W. Mundle).
하물
fovrto"
짐, 화물||#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포르토스(Homer. 이래)는 '짐, 화물'을 의미한다. 프로티온($5413: 짐)을 참조하라.||#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포르토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27:10TR에 한번 나오며, 배의 '화물'에 대해 사용되었다: "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보드나도
Fortounavto"
브드나도 Fortunatus (인)||포르투나토스는 라틴이름이며 '행복한'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 고전 16:17에 한번 나온다. 포르투나토스/ 브드나도는 고린도 교인들 중에서 스데바나와 아가이고와 함께 아마 에베소에 있었던 바울에게 보내어진 사자이다. 세 사람은 태만해 보이는 그룹으로부터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고(고전 16:17) 또 아마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답변한 질문들도 가지고 왔을 것이다. 그들은 바울의 마음을 "시원케" 했다(고전 16:18).|(참조: HBD; Walter Bauer; J. H. Thayer).
채찍
fragevllion
채찍, 매질 whip lash.||#1. 일반 헬라어의 용법||명사 프라겔리온(라틴어 차용어)은 '채찍, 매질'을 의미하며, 동사 프라겔로오($5417)와 함께 중대한 범죄에 대한 로마의 징벌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70인역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프라겔리오는 신약성경에서 요 2:15에만 나타난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참조: Walter Bauer; E.M.Embry).
프라겔로오
fragellovw
채찍질하다 flog, scourge.||#1. 일반 헬라어 용법||동사 프라겔로오(라틴어 flagello)는 '채찍(매)질하다'를 의미하며, 명사 프라겔리온과 함께 중대한 범죄에 대한 로마의 징벌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70인역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참조: E.M.Embry).||#2. 신약성경의 용법||프라겔로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채찍질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27:26의 수난기사에서 예수님에 대한 채찍질을 묘사한다: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병행구절, 막 15:15).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처럼 막대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막대기는 한번에 한군데만을 때려 등만을 상처내지만 그들은 손잡이가 짧은 채찍을 사용했는데 각 채찍에는 몇 개의 가죽끈과 각기 그 짧은 가죽끈 끝에 보기 흉한, 도토리 모양의 납이나 뼈조각이 달려 있었다. 타격은 온 힘으로 가해졌고 장교가 자주 Adde virgas! (Livy <옛 로마의 역사가, 100 A. D.> Caligula<로마 황제, 12-41 A. D.>서 p.26)라고 고함질렀다. 이것은 타격 행위에 힘을 더 넣어주기 위함이었다. 매질이 양쪽에서 가해졌으며 그 결과는 몸서리치게 무서웠다. 가죽과 살이 두 방향으로 바로 뼈 있는 데까지 터져 엉겨 붙었다. 가죽 끈 끝에 달린 납과 뼈가 치고 지나간 자리에는 깊게 찢겨져 그 구멍들이 처참하였다.「요세프스」의「전쟁」6, 6, 3,「요세비우스」의 책 4, 15을 보라.||예수의 매질은 총독 관저 밖에서 빌라도와 유대인을 앞에서 행하여졌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마태와 마가가 모두 조롱하기 위해서-요한에 의하면 매질에 곧 이어 조롱이 있었고 이 조롱이 매질을 완결지었다고 했다-군병들이 예수를 Pretorium (총독 관저) 안으로 전보병대의 막사가 있던「아울레」(안뜰)로 들어갔다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쓰러졌고 십자가에 달린 다른 사람들이 목숨이 끊어지기 오래 전에 돌아가신 사실을 우리는 이 매질에 돌릴 수 있겠다. 빌라도가 예수를 매질한 목적은(그리고 조롱도) 이 하찮은 사람은(예수) 그들이 그처럼 맹렬한 시위를 벌릴 정도의-왕이라고 조롱하는 등-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 유대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들로 하여금 제 정신들을 찾게 하자.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니? 이 무해하고 무력한 몽상가가 무엇이 그처럼 대단하다고 그러는가? 이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죽이는 일 이외의 일로 그들을 만족시켜 보려 한 빌라도의 이 시도는 실패했고 마태와 마가는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명령했다고 즉시 덧붙였다(R. C. H. Lenski의 마태복음).|(참조: Walter Bauer; E. M. Embry).
산울
fragmov"
울타리 fence, 담 wall, 산울 hedge.||#1. 고전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프라그모스(Soph., Hdt. 이래로)는 프랏소($5420, 울타리를 두르다)에서 유래했으며, '둘러쌈, 가로막음'을 의미하다가 그 이후 '울타리, 말뚝으로 둘러쌈, 울짱, 울로 둘러막은 땅, 경내'를 의미하였다. 비유적으로는 뻣뻣한 턱수염을 뜻하였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프라그모스는 70인역본에서 1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히브리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a) 가데르와 여성형 게데라는 문자적 의미로 찔레나무나 가시나무로 만든 울타리(미 7:4)를 나타내거나, 또는 "이쪽 울타리와 저쪽 울타리가 있는" 포도밭 사이에 있는 좁은 오솔길을 언급하는 싯귀에도 사용되었다. 가시울타리는 궁지에 몰린 침입자, 특히 멧돼지(시 8013 MS)를 막기 위해 필요했다.|가데르는 비유적으로 연약한 품성의 사람에 사용되었는데 그는 굳건하지 않은 울타리 같아서 악한 사람이 공격하고 싶어하는 목표물이 된다(시 62:3).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비유한데서, 울타리로 나온다(사 5:5).||(b) 모셰코트는 욥 38:31에 나타나는데 여호와께서 욥이 오리온 성좌의 삼성의 띠(모셰코트)를 풀 수 있는지 즉 그가 하나님처럼 마음대로 별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고자 하셨다. 70인역본은 나는 삼성의 담을 헐었느냐, 즉 그 별들이 흐트러지게 하였느냐고 해독했다.||(c) 페레츠는 '일시에 터치고 나오다'를 의미하는데, 즉 창 38:29에 따르면 '자궁에서 첫 아이가 태어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익살로서, 그 아이를 베레스(Perez)라 이름 지었다. 70인역본의 표현은 마소라 본문과는 다소 달리 어찌하여 프라그모스(담, 즉 자궁의 담)가 너로 인하여 파괴되었느냐? 라고 묻고 있다. 왕상 11:27에서 마소라 본문은 솔로몬이 다윗의 성의 무너짐(페레츠)을 막았다고 되어있는데 그에 반해 70인역본은 요새(프라그모스)를 수축하였다고 전한다. 프라그모스가 보다 보편적인 의미인 산울로 나오는 곳은 시 143[144]:14에서 페레츠를 번역한 곳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프라그모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공관복음서와 에베소서에만 나온다.||(a) 마 21:33(병행구 막 12:1)의 사악한 종의 비유에서 프라그모스는 포도원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울타리나 산울을 표현한다: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참조: 사 5:2). 주인이 취한 이러한 조치와 그 밖의 예방책들은 포도원에 대한 그의 염려와 그것에 대한 절대적인 재산권을 강조한 것이다(D. Hill, The Gospel of Matthew). 이 비유는 요르단 계곡의 윗쪽과 갈릴리의 많은 고지대가 이방인 토지 소유주들의 손에 들어가 있던 그 당시 흔히 일어나던 일을 언급하였다(W. L. Lane, The Gospel of Mark).||(b) 눅 14:23에서 프라그모스는 잔치의 초청과 관련하여 나타난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참조: 눅 14:16 - 눅 14:24).|메시야 시대는 잔치와 더불어 개막될 것이다(사 25:6). 이 거대한 잔치에 대해 언급한 예수님의 비유에서 집 주인은 본래 초청을 받았던 자들(=유대인들)이 거절하자, 자기 종에게 큰 길과 산울로 나가, 즉 성밖에 있는 자들(=이방인들)에게 가서 잔치에 참석하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가 발견하는 사람을 모두 잔치에 참석하도록 강권하라(아낭카손)고 명령한다. 실제의 힘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한 명의 종으로서는 불가능한 일로서) 설득하는 것에 있다(참조: 막 6:45). 이 구절이 종교적인 박해나 강제적인 전도행위를 허용하는 말은 아니다.||(c) 엡 2:14에서 프라그모스는 가로막는 장벽이나 울타리를 나타낸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엡 2:14의 내용은 프라그모스를 십자가의 이미지와 한 짝을 이루는 개념으로 전제한다. 사실 본문은 다음과 같은 이중의 프라그모스를 나타낸다. 즉 하나는 유대인을 이방인과 가르는 프라그모스이고 다른 하나는 아래 세상을 위의 세상과 가르는 프라그모스이다. 이러한 사상은 초대교회에서는 평범한 것이었다. 이것은 이그나티우스(Ignatius)의 편지에서도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그는 그리스도가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두 가지 의미에서 화합을 회복케 하신 것이다. 그는 유대인을 이방인과 갈라놓는 수직적인 담을 헐어버리신 동시에 인간을 하나님과 갈라놓는 수평적인 담을 헐으셨다. 그는 이 일을 십자가로써 이루셨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가 하시는 이중의 역사가 수직과 수평으로 펼쳐짐을 나타내고 있다(J. Danielou).|(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N. Hillyer).
설명하여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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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다, 해석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라조(Homer 이래)는 어근 프라드(%663)에서 유래했으며, '명백하게 지적하다, 알리다, 선포하다, 설명하다, 해석하다' to explain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프라조는 신약성경에서 마 15:15에 한번 '설명하다'나 '해석하다'라는 의미로 나온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마 13:36TR에도 같은 의미로 나타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막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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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싸다, 멈추게 하다, 막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랏소(Homer 이래로)는 '둘러(에워)싸다, 산울로 두르다', 특히 방어나 보호를 위해 '요새화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프랏소는 70인역본에서 8회 나오며, 6개의 히브리 단어들을 번역했다.||(a) 아탐은 잠 21:13에 나오며 '(귀를) 틀어막다' 즉 '듣기를 거부하다'를 의미한다.|(b) 수그는 아 7:3에 나오며 문자적 의미는 가시가 많은 울타리 따위로부터 '물러서다'이며 이로부터 '(울타리로) 둘러싸지다' 즉 '포위되다'를 뜻하게 되었다.|(c) 수크는 호 2:8에 나오며, '막다'를 의미한다.|(d) 사카르는 욥 38:8에 나오며 가시같은 것으로 길게 울타리를 치다, 즉 '모든 활동을 막다'를 의미한다. 문자적으로 '짜다, 엮다' 특히 울타리를 만들기 위하여 나뭇가지를 엮다를 의미한다.|(e) 사탐은 단 8:26에 나오며, '가두어 두다, 숨기다, 즉 전갈을 비밀로 간직하다'를 의미한다.|(f) 라파스는 잠 25:26에 나오며, 문자적으로 '진흙이나 물 따위를 밟다'를 의미하는데 '우물을 막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프랏소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a) 롬 3:19에서 프랏소는 입을 막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간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 아래에 있으니, 하나님 앞에 유죄 선고를 받는다. 이론이 아니고 경험에서 얻는 증거와 성경의 증언 앞에서 피고의 논증은 침묵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이 그에게 요구하시는 규범과 비교해 볼 때,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변명하거나 정당화시킬 만한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b) 고후 11:10에서 프랏소는 자랑을 '막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바울은 그 누구도 자기의 자랑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러한 비유는 강을 막거나(Chrysostom; 잠 25:26; 삿 16:3), 길을 가로막는 일(호 2:6; 애 3:9)에서 유래한 것이다.||(c) 히 11:33에서 프랏소는 사자의 입을 막는 것을 표현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믿음으로 영적인 영역의 힘에 의지하여 다니엘의 경우처럼(단 6:22; 마카베오일서 2:60; 마카베오사서 16:3, 21, 18:13) 사자들의 입을 막았던 즉 적어도 잠시나마 야수들의 자연적인 본능을 변질시켜 메시야 시대를 미리 맛보았던(사 11:6) 자들에 대하여 언급한다.|(참조: N. Hillyer; Walter Bauer).
프레아르
frevar
우물, 구덩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프레아르(Hom., Hdt. 이래)는||(a) 고의로 판 '우물' well(Appian, Bell., Philo, Somn.),|(b) '구덩이, 수갱'(Here Alex.), '무저갱' 또는 '지옥'을 의미하기도 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프레아르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프레아르는 '우물'을 의미한다.|① 눅 14:5,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② 요 4:11; 요 4:12, "11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b) 프레아르는 '구덩이, 구렁'을 의미한다.|계 9:1; 계 9:2, "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2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무저갱, 끝없는 구렁은 지옥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지옥은 땅의 표면으로부터 더 멀리 뻗어나갈수록 크기가 증가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이에 따라 구멍이 좁은 웅덩이와 닮은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프레나파타오
frenapatavw
마음을 속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레나파타오(Hesychius)는 프레나파테스($5423: 자기 기만의, 자기를 속이는)에서 유래했으며, '마음을 속이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프레나파타오는 신약성경에서 갈 6:3에 한번 나온다: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프레나파타오는 아파타오($538: 속이다) 보다 더 많은 것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주관적 공상'의 개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프레나파테스
frenapavth"
마음을 속이는 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프레나파테스(Herodian)는 프렌($5424: 마음, 정신, 생각)과 아파테($539: 속임, 사기, 기만)에서 유래했으며, '마음을 속이는 자'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프레나파테스는 신약성경에서 딛 1:10에 한번 나온다: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프렌
frhvn
횡경막, 마음||#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프렌(Homer. 이래)은||(a) 정신적, 영적, 활동력의 장소로 여겼던 '횡경막'을 의미했으며,|(b) 후에 '마음'을 의미하게 되었다.|(c) 아이스킬루스는 프렌을 교만할 수도 있고 합리적일 수 있는 '성벽'(disposition)을, 물리적 의미로 '내적 인간'을 가리키는데 사용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프렌은 70인역본에서 12회 나오며, 히브리어 레브(3820: 마음, 영혼), 만다(4486: 지식, 지력, 이해력)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지혜, 총명'을 나타낸다(잠 7:7; 잠 11:12; 잠 24:30; 단 4:31; 단 4:33).||#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프렌은 신약성경에서 고전 14:20에만 2회 나온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이 구절에 대해서 고데드(Godet)는 유용한 것보다는 재미있는 편을 좋아하고 실속 있는 일보다는 우아한 일을 좋아하는 것이 어린이들의 특색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어린 아이들과 같아서 방언에 대하여 현저한 취미를 갖고 있었다고 주석했다. 프렌은 '마음' 즉 '지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의미한다.|아모니우스(Ammonius)가 말한 것과 같이 누스($3563)는 은밀한 사고과정을 나타내지만 프렌은 좋은 사고를 나타낸다(참조: D. S. Metz; A. T. Robertson)|(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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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다, 전율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릿소(Homer 이래)는 기본 동사이며, '거칠다' to rough(라틴어 horreo, horresco)를 뜻하며 따라서||(a) '곤두서다, 뻣뻣해지다, 일어서다'(Hes.),|(b) '떨다, 전율하다, 극한 공포에 사로잡히다, 소름끼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프릿소는 신약성경에서 약 2:19에 한번 나오며, '떨다'를 의미한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마음을 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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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판단하다, 전념하다, ~에 마음을 두다, ~하고 싶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로네오(Homer 이래로)는|(a) '생각하다, 의견을 가지다, 판단하다',|(b) '전념하다, ~에 마음을 두다',|(c) '~하고 싶다',|(d) '계획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프로네오는 70인역본에서 15회 나오며, 하캄(신 32:29; 슥 9:2), 사칼(시 93:8), 빈(사 44:18)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기타는 히브리어 해당어 없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프로네오는 신약성경에서 26회 나오며, 그 중에 23회가 바울 서신에 나타난다.||(a)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막 8:33; 병행구, 마 16:23에서 베드로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에 나타난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베드로는 세상적 생활과 안녕에 초점을 맞춘 인간적 사상 만을 생각할 수 있었다. 베드로는 그의 생각과 뜻이 하나님의 일을 편들지 않고(하나님과는 반대되는) 인간의 일을 편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책망을 받았다. 예수님이 희생제물로 바쳐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반대함으로써 베드로는 하나님의 적들의 대의 명분을 조장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는 그 적들의 편에 가담한 것이다(그러므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는 신랄한 꾸짖음을 받았다).||(b) 바울서신.|빌 3:19에서 프로네오는 마음을 세상에 두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골 3:2에서는 그 반대를 묘사한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롬 12:3에서는 건전한 포부를 갖도록 권고한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16에 보면 서로 같은 마음을 가지고, 높은 것들을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전 4:6에서는 배움으로 교만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하라고 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빌 2:2에서 바울은 목표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마련하신 사귐에서(빌 4:2) 한 마음을 품는 것이며, 한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이 마음을 가진 신자들은 다른 이상한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갈 5:10).고후 13:11과 롬 15:5에도 같은 마음을 거론한다.|빌 3:15이하에서 달리 어떤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롬 14:6에서 프로네오는 '준수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는 무조건 규정만을 준수해서는 안되고 책임적인 판단을 해야한다.|고전 13:11에서 성숙은 유치한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빌 1:7에서 프로네오(휘페르)는 생각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관심'을 의미한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빌 4:10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롬 8:5 이하에서 프로네오는 '~에 전념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인간은 항상 어떤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고투와 노력은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다. 인간은 소유하기 위하여 애쓰고 또 그것에 전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을 하나님의 영 안에 있는 생명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8장의 문맥에서 바울은 인간의 마음은 모종의 객체에 집착해 있으며, 이것의 종류는 그가 육에 속한 사람인지 또는 영(Spirit)에 속한 사람인지에 따라 좌우된다고 논증하고 있다. 따라서 육신을 좇는 자(롬 8:5)는 그들의 마음을 육체의 일에 둔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생각과 노력이(그것이 그들의 인생 전체이다) '단지 인간적인, 즉 세상의 덧없는 일들'에 향해 있다(R. Bultmann ).|반면 하나님의 영(Spirit)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호이 데 카타 프뉴마 온테스, 롬 8:5)은 약속된 성령의 은사에 의거하여, 성령의 지배하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이와같은 태도를 가진 자들에게는 "생명과 평안"(롬 8:6)의 약속이었다.|그러나 육신의 일에 마음을 두는 것은 사망을 뜻하며 이는 이 둘 사이에 어떤 필연적인 연관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참조: 롬 5:21; 롬 6:23), 육신에 마음을 두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거역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수 없는 까닭에 하나님을 거역할 수밖에 없다. 이 구절은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은 그가 살아가는 방식, 즉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말하면 성령 안에서와 믿음으로 살아가든지 또는 대신에 육체 안에서, 다시 말하면 죄 안에서 그리고 영적인 사망 안에서 살아가든지 간에 어쨌든 그 생활 방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아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생각과 노력이 그의 삶의 전체적인 방향과 분리되어 나타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삶의 방향은 그가 설정해 놓은 목표에 반영되어 있다. 생각과 생활 사이의 이러한 밀접한 상호 관계는 프로네오에 포함되어 있는 광범위한 의미로부터 메아리쳐 들려온다. 이 단어는 지성의 활동은 물론 의지의 운동까지도 표현한다; 그것은 관심이자 동시에 결정이다. 따라서 그 의미가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을 "편듬"(taking sides)이라는 개념에까지 실제로 확대되기도 한다.||(c) 행 28:22에서 로마의 유대인 지도자들이 바울에게 이 새로운 "파"에 관한 견해를 말해보라고 청한다: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참조: Walter Bauer; H.Paulen; J.Goetzmann; G.Bertr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