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나게 하려 하다
fanerovw
계시하다, 알리다, 보여주다, 나타내다.||#1. 고전 헬라어 문헌||파네로오는 파네로스($5318:보이는, 명백한, 뚜렷한)에서 유래했으며, '보이게하다, 계시하다, 나타나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감추어져 있거나 알려지지 않은 것을, 명백하게, 또는 눈에 보이게, 또는 알려지게 하거나 말이든 행위든 또는 어떤 방식으로 든지 명백히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파네로오는 70인역본에서 렘 33:6에 한번 나타나며, 갈라(나타나다, 보여주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3. 신약성경의 용법||파네로오는 신약성경에서 47회 나타나며, '계시하다, 알게하다, 보이다, 나타내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마가복음에서 파네로오는 3회 나타난다. 막 4:22에서 속담에 담긴 비유의 숨은 뜻을 보인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막 16:12; 막 16:14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것을 언급한다.||(b) 바울은 파네로오와 아포칼륍토($601)를 동의어로서 사용하였다. 이것은 특별히 롬 1:17과 롬 3:21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롬 1:19과 고전 4:5에서 파네로오는 '보이게 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전자에서는 창조에서의 "하나님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성"의 계시에 관하여 언급되어 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후자에서는 모든 감추어진 것들이 드러날 때 임할 심판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여기에는 그가 때가 이르기 전에 심판을 공표하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의 주관에 맡긴다는, 아울러 그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때이른 칭찬을 받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실제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다른 언급들에서 요점은 복음 안에서의 계시이다. 재귀적 용법은 결코 사용되지 않았다. 특별한 일들은 항상 계시된다. 롬 3:21은 롬 1:17을 되풀이 하는데 현재형 아포칼륍테타이("나타나서")를 완료형 페파네로타이("나타났으니")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의 특별한 때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에 의한 칭의에 대한 단 한번의 계시를 의미한다(참조: 롬 3:24 - 롬 3:26; 롬 1:3이하).|바울은 파네로오를 고린도후서에서 9회나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논쟁 문맥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는 이 단어를 그의 설교를 통하여 임하거나 일어나는 계시에 대해(고후 2:14; 고후 11:6), 바로 그의 생활에 대해 사용했다. 그 자신의 사도적 생활 방식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 자신의 생활 방식과 비교 된다는 데에서 그리스도의 역설적 계시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 그의 대적들을 포함하여 - 하나님께서 성공 중에 자신을 나타내실 것을 기대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 계시는 다르게 임한다. 바울의 사도적 방식은 고난과 고통의 방식이어서,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후 4:10 이하).|다른 한편으로, 교회 안에 믿는 남녀가 있다는 사실로 그들이 그리스도로부터 온 편지이며, 바울의 대적들이 자랑하는 신임장과는 다르게 바울의 사도직을 입증하는 분명한 증거임을 알 수 있다. 고후 5:10 이하에서 파네로오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만인이 출두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이 동사는 3회 나타나는데, 우리가 출두할 뿐만 아니라(10절), 우리가 누구인지 하나님께 알리어진다(ll절a). 바울은 여기에 그것이 독자들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덧붙였다(11절b). 고후 7:12에서 바울은 자신이 기록한 의도는,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 이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다"하고 선언하였다. 비록 바울의 웅변술이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사도직과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이 명백해지었다는 소망을 표현한다(고후 11:6).||(c) 그외의 바울 서신에서도 파네로오와 아포칼륍토는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골 1:25 이하와 엡 3:5을 비교하면 할 수 있다. 계시는 선포에서 발생한다(골 1:25이하; 골 4:4; 롬 16:25 - 롬 16:27). 엡 5:13 이하에서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빛의 관점에서 취급되었다: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계시의 사상은 이 세대들에게는 감추어졌으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어진 신비라는 관점에서 훨씬 더 발전되었다(골 1:26; 골 3:4; 골 4:4; 참조: 엡 3:5; 엡 6:19).|바울은 딤전 3:16에서 원시 기독교 찬송가를 인용하여 신비의 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여기서 파네로오는 성육신(incarnation)을 말한다(참조: 요 1:31; 히 9:26; 벧전 1:20; 요일 1:2; 요일 3:5; 요일 3:8에서의 예수님 성육신적 사역을 뜻하는 용례). 군드리(Gundry)는 이 구절이 다음과 같은 사실에 비춰볼 때, 승천에 이르기까지의 전체적인 지상 사역을 언급한다고 생각한다.|① 인간의 생애를 뜻하는 사르크스($4561)를 사용했다는 점(참조: 갈 2:20; 빌 1:22, 빌 1:24; 히 5:7).|② '태어난다'와 같은 보다 특정한 동사 대신에 '나타난다'라는 일반적인 동사를 사용했다는 점,|③ '영광 중에 받아들여졌다'라는 종합적인 언급을 했다는 점. 이렇게 해서 에파네로데는 행동이 전체로서 생각되었음을 나타내는 단순 과거 수동태이다.|또한 딤후 1:1O에서 화네로오는 성육신의 의미를 뜻하는 말로도 사용되는데, 여기에서 하나님의 권능 안에서 복음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목회서신들에서 이 동사가 나오는 다른 구절들에서도 성육신(incarnation)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이제 그것은 선포에 의해 전달된다: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 1:3).||(d) 파네로오는 히브리서 9장에서 2회 나오나 의미는 약간 다르다. 히 9:26에서 성육신에 관하여 언급되어 있는데, 성육신의 목적은 구약성경의 희생제사와 속죄(의식)일을 능가하는 속죄 희생제를 드리려 함이었다. 그리스도의 현현은 유일회적이며 다시 되풀이 될 수 없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찌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5 이하). 역으로, 저자는 앞서 논하기를 법궤의 구조(그리고 암암리에 성전)와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성소 내부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 옛 언약의 종교와 의식의 불완전성의 증거라 한다.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히 9:8).||(e) 파네로오는 또한 베드로전서에서도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로 2회 나오는데,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삶에서와 그의 재림에서의 두 가지 현현에 관하여 언급되었다. 벧전 1:20에서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라고 하였고, 벧전 5:4에서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다"고 하였다.|(참조: C.Brown).||(f) 요한의 기록에서 파네로오는 실제로 아포칼륍토($601)의 동의어로 자주 사용되었는데, 아포칼륍토는 사 53:1을 인용하고 있는 요 12:38에서만 사용되었다.|요 1:31에서 세례(침례) 요한이 와서 물로 세례(침례)를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다. 요 2:11에서 가나의 표적이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었다.|요 7:4에서 "세상", 곧 모든 사람의 눈 앞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격려하며 말하기를,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였다. 그러나 그 말은 믿음의 부족을 드러낸 것이며(요 7:5), 예수님은 아직 그의 때가 오지 않았을 때에 그들의 권면을 거절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때, 그리고 세상을 따르는 그들의 태도는 항상 여기에 있다(요 7:6).|예수님은 하나님의 실체, 하나님의 이름(요 17:6), 하나님의 하시는 일(요 3:21; 요 9:3)을 나타내신다. 요한에 의하면, 예수님의 모든 행위는 계시라고 부를 수 있다(요 2:11).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실체는 증거에서 계시된다. 예를들면, 세례(침례) 요한의 증거 등이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요 1:31). 요 21:1("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과 요 21:14(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에서 화네로오는 그의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의 자기 계시, 곧 부활하신 주님의 나타남을 의미한다.|요한일서에서도 화네로오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수님의 사역는 계시로 묘사되어 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요일 3:5).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8). 그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계시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 4:9; 요일 3:16). 그 목적이 살리려 한 것이라면 전계시(全啓示)는 역시 생명(조에, 요일 1:2)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요한은 예수님 안에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고 하였다. 그것은 또한 생명의 말씀의 내용이다(요일 1:1).|요일 2:19에서 공동체를 떠나는 불신자들의 행동은 그들이 참으로 공동체에 속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파네로오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요일 2: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요일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한계시록에도 2회 나타난다. 계 3:18에서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요하신 그리스도로부터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는 권면을 받는다. 여기에는 자기 만족적인 번영에 빠져 결국 교회의 참된 상태에 눈이 멀어버린 그 교회의 미지근한 태도가 언급되어 있다. 계 15:4에서 이긴 자들은 "오직 주만이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는 사실을 찬송하고 있다.|(참조: R.Bultmann/D.Luhrmann; C.Br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