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탄 없음
uJpovstasi"
본질, 실체, 확신, 계획||#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휘포스타시스(Hippocr. 이래)는 휘피스테미(%735: ~아래 두다, ~아래 서다)에서 유래한 실명사형이다.||(a) 휘포스타시스는 '~아래 서는 것', '어떤 것의 기초'(Sextus Empiricus), '사람이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물의 밑바닥' (Aristole, Hist.), '경제적 기반', '소유물이나 토지의 가치' (파피루스), '보물' treasure(substantia bonorum operum), '인생의 출발점', '탄생의 항성시', '군사 전진기지'(나 2:7, 70인역본; 삼상 13:23), '요새' garrison(Hdt.), '자리' seat(Socrates), '실체' substance(시 88: 48; 시 138:15); '물질적 본질' material substance (Chrysippus); '본질' essence(솔로몬의 시편 17:24); '줄기' stock, 심지어 '근원' source을 의미한다.||(b) 휘포스타시스는 인간적 자세로서 '자기자신을 ~사이에 둠', '자기 입장을 고수함', '인내함'을 의미하며, 또한 '소망', '확신'(Polyb.), '저항'(Thuc.), '저항하는 힘'(Polyb.)을 의미하기도 한다.||(c) 휘포스타시스는 물질계에서 '밑에 가라앉는 것', '찌꺼기'(Aristotle, Part.), '나머지', '침전물'(Hippocrates), '제련과정의 침전물'(Polyb.)을 의미한다.||(d) 휘포스타시스는 잠재적인 상태에서부터 분명한 '현실', '실현', '본질적인 것', '질료' 나 '객체'다. 이 단어는 로고스에 형태를 부여하는 질료 안에 있는 내재적 로고스(Logos)를 의미한다. 세계-로고스(world-logos)로서의 하나님은 이 세상의 휘포스타시스이다. 신 피타고라스(New-Pythagorean) 사상에서는 숫자가 이 기능을 수행했다. 따라서 휘포스타시스는 '의향의 실현'을 의미하고(Diodorus), '질료와 성질의 관계에 들어감'을 의미했으며, 이런 관계 없이는 경험적인 것도 실제적 본질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또한, 이 단어는 '몸의 실현화'를 의미하기도 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휘포스타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0회 나오며, 맛사(무거운 짐, 신 1:12); 아마드(사람이 물밑에 딛고 설 땅, 시 68:3); 예쿰(생물, 신 11:6); 헬레드(생명의 존속기간, 시 38:6; 시 88:48); 미휘야(식물, 음식, 삿 6:4); 케나아(꾸러미, 보따리, 렘 10:17); 맛차브(부대, 삼상 13:23; 삼상 14:4); 맛체바(석상, 겔 26:11); 데쿠나(식양, 겔 43:11)의 역어로 사용되었다.|그리고 이 단어는 소드(회의, 친구들의 집단, 렘 23:22); 맛사(짐: 신 1:12); 토헬렛(기대, 소망, 시 38:8); 티그와(소망, 룻 1:12; 겔 19:5)의 역어로 사용되었다.|따라서 휘포스타시스는 신 11:6에서 '동산'을, 욥 22:20에서 '부동산', 겔 26:11에서 '권력의 기반'을, 룻 1:12; 시 39:7에서 확실한 보장을 해줄 수 있는 '구체적인 소망', 시 139:15에서 '삶의 계획', 렘 23:22에서 '계획', 겔 19:5; 신 1:12에서 '의논'을 뜻한다. 그러므로 70인역본의 용법은 헬라 세계의 용법을 보강하는 것이다. 휘포스타시스는 사물들 배후에 놓여 있는 실체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계획, 의도, 또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지속되고 있는 계획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휘포스타시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고린도후서와 히브리서에만 사용되었다.||(a) 고후 9:4,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의 준비치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9:2이하에서 바울은 자기가 고린도 교회에서 모금한 헌금에 대한 그의 자랑이 헛되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4절에서 그의 관심은 자기가 자랑한 것이 발표되었다는 것 보다도 이 '계획' 또는 '계획안'이 아가야 교인들의 준비 부족으로 말미암아 좌절되지나 않을까 하는 데 있었다.||(b) 고후 11: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여기서도 앞에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어리석은 비교를 통해서 자기가 어쩔 수 없이 자랑하겠다는 '의도'를 언급하고 있다. "자신" 또는 "확신"으로 번역하는 견해도 있으나 많은 곤란을 야기시키고 있으며 외부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c)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서 휘포스타시스는 독사(영광)와 대구를 이루며, 하나님의 본질에 관계된다. "초월적인 실체"가 그 단어의 의미에 아마 가장 가까울 것이다.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며 하나님의 실체의 형상을 나타낸다.||(d)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여기서 휘포스타시스를 '확신'으로 번역하는 것이 많은 지지를 받아왔는데(멜란히튼을 따르는 루터 이래로) 이 견해는 이 단어를 주관적으로 만드는 곤란한 점을 나타내고 있다. 병행어 엘렝코스(증거)는 '확신'이라기보다는 '증거'라는 뜻을 갖는 객관적인 것이다. 즉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의 증거라는 의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휘포스타시스도 초월적인 성질을 갖고 있는,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 것이다. 이 단어는 초월적인 장래의 일들의 성격을 정의해 주고 있으며, 이 구절은 담대하게 믿음을 이러한 일들의 증거와 실상과 동일시한다. 단지 예수님의 사역과 이 사역에 참여하는 믿음만이, 그림자요 원형을 본뜬 것에 불과한 타락하기 쉬운 세상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e) 히 3:14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띠고 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여기서 언급은 우리의 처음 확신에 관계된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제 신자들이 나누어 갖게 된 하나님의 바로 그 실체의 현 존재인 이상 신자들의 믿음이 근거하고 있는 기본적인 실체를 대한 객관적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 대해 선포할 때의 그 처음의 실체를 굳게 붙잡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실체 안에서 목표에 확신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휘포스타시스 그 자체는 그 확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에 불과하고 원형을 본뜬 것에 불과한 만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설적으로 나타났고, 교회 공동체가 믿음으로 소유하게 된 바로 그 하나님의 실체를 의미하는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Koster; G. Har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