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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끼쳐(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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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다, 뒤에 남겨두다.||#1. 고전 및 교회 문헌.||동사 휘폴림파노(Hionys. Hal., Themist.)는 휘폴레이포($5275: 남겨두다)에서 유래했으며, '남기다, 뒤에 남겨두다'를 의미한다. 교회와 비잔틴 문헌에서 '저버리다, 버리고 돌보지 않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휘폴렘파노는 신약성경에서 벧전 2:21에 한번 나온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여기서 휘폴림파노는 '남기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인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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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다, 기다리다, 참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휘포메노(Homer. 이래)는 전치사 휘포($5259: ~에 의하여, ~아래)와 메노($3306: 남다, 머물다)에서 유래했으며,||(a) '뒤에 남아 있다, 살아 남다, 머물다'|(b) '고대하다, 기다리다'|(c) '견고히 서다, 확고부동하게 있다'|(d) '견디다, 참다, 버티다'를 의미한다.|이 단어는 군사적인 면에서 자주 사용되었으며, 윤리적인 면에서는 원래 중립적이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휘포메노는 70인역본에서 약 85회 나오며, 히브리어 카와(기다리다, 바라다), 야할(기다리다), 하카(끈기 있게 기다리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긴장되고 끈기 있고 참을성 있는 기대를 표현한다(욥 3:9; 시 37:7; 욥 32:4).||#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휘포메노는 신약성경에서 1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공관복음에서 휘포메노는 '머물다'는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소년 예수님께서 홀로 남아 예루살렘에 머무심, 눅 2:43). 인내를 구원의 전제 조건으로 언급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병행구, 막 13:13).|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모든 자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는 말씀과 아울러 수많은 환난에 대해 예고하셨다(막 13:13). 이러한 가혹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인내이다.|마 24:10이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빠져 서로 배신하며 미워할 것이라고 언급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미혹되며, 불법이 성행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에이스 텔로스를, "끝까지"(to the end)라는 뜻으로 보다는, "결국"(finally), "실패하지 않고"(without breaking down)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고 힐(D. Hill)은 말한다.|인내에 대한 경고가, 열 두 제자에 대한 선교 명령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마 10:22에서, 동일한 말씀으로 주어진다. 여기에서도 역시 모든 사람에게 미움 받을 것을 예고하셨고 종말론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인내하는 자가 받는 축복에 대해서는 단 12:12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b) 바울서신.|① 롬 12:12에서 "환난 중에 참으라"고 한다. 휘포메노는 로마서에서는 소망의 특성을 띠고 있는 반면, 고린도전서에서는 사랑의 특성을 나타낸다: "사랑은 …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② 목회서신에서 인내는 기독교인의 필요한 자질로 묘사된다. 택한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는 것이 필요하다(딤후 2:10). 또한 인내는 장차의 "왕 노릇"을 위한 선행 조건이다(딤후 2:12). 바울은 이곳의, 일단의 구절들을 성찬송(liturgical hymn)이나 세례송(baptismal hymn)에서 인용했는지도 모른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1이하).|③ 히브리서 기자는 지속적 인내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즉 지난날 세상의 소유물까지 손실하면서 참았으니 지금도 참을 것이며(히 10:32; 참조: 히 10:34), 징계는 하나님의 자녀됨의 증거이니 참아야 한다(히 12:7).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의 본을 따라 참으라(히 12:2; 참조: 히 12:1; 살후 3:5).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3).||(c) 약 1:12에서 인내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필요하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참조: 롬 2:7; 롬 8:25). 약 5:11에서는 욥의 예를 들어 말한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참조: 욥 1:21이하; 욥 2:10).||(d) 벧전 2:20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통과 법률상의 범죄(crime)로 인해 받는 형벌에 대한 인내를 상호 대조시키고 있다. 후자의 인내에는 칭찬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기독교인들은 그와 같은 형벌을 받으면 안 된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참조: F. Hauck; V. Falkenroth; C. Brown).
잊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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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게 하다, 생각나게 하다 remin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휘포밈네스코(Homer이래로)는 휘포($5259: ~로 말미암아, ~이래)와 밈네스코($3403: 생각나게 하다, 기억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상기(회상)시키다, 기억하게 하다, 생각나게 하다'|(b) '회상하다, 상기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휘포밈네스코는 70인역본에서 4회 나온다. 휘포밈네스코는 왕상 4:3에서만 히브리어 자칼의 히필형의 역어로 되었으며, '기록하는 자'("사관")를 뜻한다. 그리고 휘포밈네스코는 지혜서 12:1에서 죄지은 것을 '생각나게 하다', 지혜서 18:22에서 약속과 계약을 '회상시키다', 마카베오사서 18:14에서 '마음에 두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휘포밈네스코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타나며,||(a) 눅 22:61에서 휘포밈네스코의 수동태가 사용되어 '생각나다, 회상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여기에서 자기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예언을 다시 기억해낸 베드로의 이야기는 자만의 어리석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대하는 자비로운 방법, 그리고 회개 및 회복에는 양심의 가책이 그 일부로 포함된다는 교훈을 전해준다.||(b) 벧후 1:12에서 휘포밈네스코는 '선포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이 구절은 이미 진리에 서 있을지라도 이것들에 관하여 항상 선포하기를 등한히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요 14:26에 의하면, 이처럼 생각나게 하는 것은 보혜사 성령의 할 일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그리스도께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이 그로부터 들은 그 말씀을 마음 속에 새기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마음 속에 그 말씀이 어느 정도 남아 있을 때, 성령이 그들에게 힘을 주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각 세대마다 그에 알맞는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선포하게끔 한다.|딛 3:2에서도 휘포밈네스코는 '선포하여 깨우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그리고 휘포밈네스코는 딤후 2:14; 요삼 1:10; 유 1:5에서도 '생각나게 한다'는 의미로 번역하지만, '언급하거나 선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참조: J.H.Thayer; K.H.Bartels).
휘폼네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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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기억(하는 행위).||#1. 고전 헬라어의 용법||명사 휘폼네시스(Euripides이래로)는 휘포밈네스코($5279: 상기시키다, 기억나게 하다, 생각나게 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기억하게 함, 기억(생각)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휘폼네시스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히브리어 테힐라(찬송, 찬양받을 만한 행위)의 역어로, 시 71:6에서만 사용되었다.|휘폼네시스는 지혜서 16:11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거나 일깨워 주다'를 의미하며 마카베오이서 6:17에서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휘폼네시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a) 타동사적으로, '상기시킴, 생각나게 함'을 의미한다.|벧후 1: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여기에서 생각나게 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복음의 진리를 다시 한번 설명한다는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벧후 3:1에서도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b) 자동사적으로, '기억하거나 생각함'을 의미한다.|딤후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참조: J.H.Thayer; K.H.Bartels).
견디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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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히 섬, 인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휘포모네(ps. -pla.)는 휘포메노($5278)에서 유래했으며,||(a) '견고히 섬, 확고부동, 인내',|(b) '기대, 기다림'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휘포모네는 70인역본에서 약 25회 나오며, 히브리어 미크웨(기대, 소망, 에스드라하 10:2; 렘 14:8; 렘 17:13), 티크와(소망, 시 9:19; 시 61:6; 시 70:5; 욥 14:19)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휘포모네는 신약성경에서 3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공관복음.|눅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누가가 사용한 명사형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도 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엔 휘포모네)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참조: 마 13:23; 막 4:20). 이 비유에 대한 누가의 진술에만 휘포모네가 언급되어 있고, 반면 마가와 마태는 누가가 빠뜨린 풍성한 결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는 그의 복음서를 이방 세계에 소개한다는 성격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비유는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하는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반면, 앞에 언급한 종말론적 강화는 시험과 환난에 연결시키고 있다. 즉 두 경우가 다 인내를 전제 조건으로 하고 있다. 한 경우에는 구원에 대하여, 한 경우에서는 말씀의 열매를 맺는 것에 대해서이다.||(b) 바울서신.|① 로마서에서 휘포모네가 나타난다. 인간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을 영위하고자 한다면, 그에게는 휘포모네가 필요하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롬 2:7). 이 구절은 "선행 중의 꾸준한 인내"(NEB)라는 능동적 의미와 고난 중의 끈질긴 인내라는 수동적 개념, 이 양자 가운데서 어떠한 해석을 하더라도 무방하다(참조: M. Black).|롬 5장에서 바울은, 의롭다 함을 받은 신자가 어떻게 하여 고난까지도 유익한 것으로 삼을 수 있는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참조: 롬 5:2) 즐거워한다. 나아가서는,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들리프세신)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들리프시스)은 인내(휘포모넨)를, 인내(휘포모네)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3 이하).|롬 8:25에서 소망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인내로써 기다린다는 특징을 띠고 있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여기의 문맥상 배경은 피조물의 고통에 대한 언급이다(참조: 롬 8:23).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5).|②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인내의 문제를, 특히 교회를 위해 자신이 행하는 주의 일과 관련시켜 언급하였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후 1:6). 고후 6:4과 고후 12:12은 바울 자신의 사도적 인내를 언급하고 있다.|③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위한 기도에서 인내를 언급한다: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 1:11).|④ 살전 1:3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소유한 '소망의 인내'가 하나님께 대한 바울의 특별한 감사의 원인으로서 작용한다. 살후 1:4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그들의 인내와 믿음에 대해 친히 자랑한다고 기록하고 있다.|또 살후 3:5에서 바울은 기도한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참조: 히 12:2 이하). 데살로니가인들은 그들의 주께서 보여 주신 인내를 가지도록 권면을 받고 있다. 주는 그들이 본받아야할 인내의 모범을 보이셨던 것이다.(L. Morris).|⑤ 목회 서신에서 인내는, 기독교 사역자들(딤전 6:11; 딤후 3:10)과 노인들(딛 2:2)에게 필요한 하나의 자질로서 묘사된다.||(c) 히브리서에서 휘포모네는 인내에 대한 권면에 나타난다(히 10:36; 히 12:1). 히브리서 기자는 지속적 인내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즉 지난날 세상의 소유물까지 손실하면서 참았으니 지금도 참을 것이며(히 10:32; 참조: 히 10:34),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하여" 참아야 한다(히 10:36). 징계는 하나님의 자녀됨의 증거이니 참아야 한다(히 12:7).||(d) 야고보도 시련이 믿음을 굳게 하고 인내를 강화하여 온전함에 이르게 한다고 증거한다(약 1:3-4). 욥은 그에 관한 훌륭한 예이다(참조: 약 5:10). 욥의 경우처럼 만일 신자들이 굳게 인내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약 1:11; 참조: 약 1:12; 마 5:12).||(e) 벧후 1:6에서는 일련의 미덕을 진술하는 가운데 휘포모네를 두번 언급하였다: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롬 5:3 이하, 그리고 약 1:3 이하와 유사한 면이 있는 구절이다.||(f) 요한계시록에서 인내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계 1:9) 밧모섬에 유배당한 요한 자신이 겪어야 했던 것이기도 했다(계 1:9). 성령께서는 두아디라와 에베소의 교회들에 대해, 그들의 인내를 칭찬하신다(계 2:2 이하; 계 2:19). 빌라델비아 교회 역시 유사한 위로의 말씀이 주어진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 3:10). 짐승과의 싸움을 위해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계 13:10).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참조: U. Falkenroth; C. Brown; F. Hauck).
짐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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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다, 약정하다, 추측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휘포노에오(Eur., Hdt. 이래)는 전치사 휘포($5259: ~에 의하여, 말미암아, ~아래, 밑에)와 노에오($3539: 지각하다, 인지하다, 생각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비밀히 생각하다', 여기서 나쁜 의미로 '의심하다' suspect, '혐의를 두다' hole in suspicion를 의미하게 되었으며,||(b) 일반적으로 '추측하다' conjecture, '생각하다' think, '추측(정)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휘포노에오는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오직 단 7:25에서 히브리어 스바르(5452: 생각하다, 의도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토빗 8:16; 집회서 14:14에도 이 단어가 나타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휘포노에오는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에만 3회 나온다.||(a) 행 25:18에서 '의심하다'를 의미한다: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b) 행 27:27에서 '추정하다'를 의미한다: "열 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 저리 쫓겨 가더니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와지는 줄을 짐작하고"||(c) 행 13:25에서 '추측하다, ~라고 생각하다'를 의미한다: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Behm).
휘포노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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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생각.||#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휘포노이아(Thu. 이래)는 휘포노에오($5282)에서 유래했으며, '은밀한 의견, 추측, 상상, 망상, 혐의, 의심'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휘포노이아는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오직 히브리어 라욘(7476: 사고, 생각, 착상, 단 4:16; 단 5:6)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집회서 3:24에서 '망상'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휘포노이아는 신약성경에서 딤전 6:4에 한번 나온다: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휘포플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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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의 그늘을 따라) 항해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휘포플레오(Dio Cyrys.)는 전치사 휘포($5259)와 플레오($4126: 배를 타고 가다, 항해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아래로 또는 (그늘을 따라) 항해하다', 즉 '~의 바로 곁에서 항해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휘포플레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행 27:4; 행 27:7에만 나온다: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순하게 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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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게(순하게) 불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휘포프네오(Aristot.)는 전치사 휘포($5259)와 프네오($4154: 불다, 숨쉬다)에서 유래했으며,||(a) '낮게 불다'(Aristot.),|(b) '부드럽게(순하게) 불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휘포프네오는 신약성경에서 행 27:13에 한번 나온다: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여기서 휘포프네오는 '순하게 하다'를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발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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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판 footstool||#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휘포포디온(hares in Athen)은 전치사 휘포($5259)와 푸스($4228: 발)에서 유래했으며, '발판, 발을 올려 놓는 대'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휘포포디온은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히브리어 하돔(1916: 발판)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시 99:5; 사 66:1; 애 2:1에서 하나님의 발판에 대해 사용되었으며, 시 110:1에서는 원수를 '발판'으로 하는 것을 언급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휘포포디온은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발판'을 의미한다.||(a) 휘포포디온은 하나님의 '발판'에 대해 사용되었다.|① 마 5:35,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② 행 7:49,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b) 눅 20:43에서 원수를 '발판'으로 삼는 것에 대해 언급한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이 구절은 시 110:1을 인용한 것이며, 이 발판의 상징은 굴복한 적의 목을 발로 밟던 옛 중동의 관습에 근거를 두고 있다(참조: 왕상 5:3). 병행구 행 2:35; 히 1:13에서도 이 시편을 인용하고 있다.|히 10:13에 보면 완전한 속죄 제사를 드린 대제사장은 미리 알고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신다. 모든 악과 모든 적대 세력에 대한 궁극적인 정복은 갈보리에서 이룬 한 공적으로부터 솟아오를 것이다. 그 힘은 속죄의 모든 역사를 위하여 충분하다.||(c) 약 2: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는 표현은 가난한 사람들을 매우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기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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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 실체, 확신, 계획||#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휘포스타시스(Hippocr. 이래)는 휘피스테미(%735: ~아래 두다, ~아래 서다)에서 유래한 실명사형이다.||(a) 휘포스타시스는 '~아래 서는 것', '어떤 것의 기초'(Sextus Empiricus), '사람이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물의 밑바닥' (Aristole, Hist.), '경제적 기반', '소유물이나 토지의 가치' (파피루스), '보물' treasure(substantia bonorum operum), '인생의 출발점', '탄생의 항성시', '군사 전진기지'(나 2:7, 70인역본; 삼상 13:23), '요새' garrison(Hdt.), '자리' seat(Socrates), '실체' substance(시 88: 48; 시 138:15); '물질적 본질' material substance (Chrysippus); '본질' essence(솔로몬의 시편 17:24); '줄기' stock, 심지어 '근원' source을 의미한다.||(b) 휘포스타시스는 인간적 자세로서 '자기자신을 ~사이에 둠', '자기 입장을 고수함', '인내함'을 의미하며, 또한 '소망', '확신'(Polyb.), '저항'(Thuc.), '저항하는 힘'(Polyb.)을 의미하기도 한다.||(c) 휘포스타시스는 물질계에서 '밑에 가라앉는 것', '찌꺼기'(Aristotle, Part.), '나머지', '침전물'(Hippocrates), '제련과정의 침전물'(Polyb.)을 의미한다.||(d) 휘포스타시스는 잠재적인 상태에서부터 분명한 '현실', '실현', '본질적인 것', '질료' 나 '객체'다. 이 단어는 로고스에 형태를 부여하는 질료 안에 있는 내재적 로고스(Logos)를 의미한다. 세계-로고스(world-logos)로서의 하나님은 이 세상의 휘포스타시스이다. 신 피타고라스(New-Pythagorean) 사상에서는 숫자가 이 기능을 수행했다. 따라서 휘포스타시스는 '의향의 실현'을 의미하고(Diodorus), '질료와 성질의 관계에 들어감'을 의미했으며, 이런 관계 없이는 경험적인 것도 실제적 본질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또한, 이 단어는 '몸의 실현화'를 의미하기도 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휘포스타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0회 나오며, 맛사(무거운 짐, 신 1:12); 아마드(사람이 물밑에 딛고 설 땅, 시 68:3); 예쿰(생물, 신 11:6); 헬레드(생명의 존속기간, 시 38:6; 시 88:48); 미휘야(식물, 음식, 삿 6:4); 케나아(꾸러미, 보따리, 렘 10:17); 맛차브(부대, 삼상 13:23; 삼상 14:4); 맛체바(석상, 겔 26:11); 데쿠나(식양, 겔 43:11)의 역어로 사용되었다.|그리고 이 단어는 소드(회의, 친구들의 집단, 렘 23:22); 맛사(짐: 신 1:12); 토헬렛(기대, 소망, 시 38:8); 티그와(소망, 룻 1:12; 겔 19:5)의 역어로 사용되었다.|따라서 휘포스타시스는 신 11:6에서 '동산'을, 욥 22:20에서 '부동산', 겔 26:11에서 '권력의 기반'을, 룻 1:12; 시 39:7에서 확실한 보장을 해줄 수 있는 '구체적인 소망', 시 139:15에서 '삶의 계획', 렘 23:22에서 '계획', 겔 19:5; 신 1:12에서 '의논'을 뜻한다. 그러므로 70인역본의 용법은 헬라 세계의 용법을 보강하는 것이다. 휘포스타시스는 사물들 배후에 놓여 있는 실체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계획, 의도, 또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지속되고 있는 계획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휘포스타시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고린도후서와 히브리서에만 사용되었다.||(a) 고후 9:4,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의 준비치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9:2이하에서 바울은 자기가 고린도 교회에서 모금한 헌금에 대한 그의 자랑이 헛되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4절에서 그의 관심은 자기가 자랑한 것이 발표되었다는 것 보다도 이 '계획' 또는 '계획안'이 아가야 교인들의 준비 부족으로 말미암아 좌절되지나 않을까 하는 데 있었다.||(b) 고후 11: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여기서도 앞에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어리석은 비교를 통해서 자기가 어쩔 수 없이 자랑하겠다는 '의도'를 언급하고 있다. "자신" 또는 "확신"으로 번역하는 견해도 있으나 많은 곤란을 야기시키고 있으며 외부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c)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서 휘포스타시스는 독사(영광)와 대구를 이루며, 하나님의 본질에 관계된다. "초월적인 실체"가 그 단어의 의미에 아마 가장 가까울 것이다.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며 하나님의 실체의 형상을 나타낸다.||(d)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여기서 휘포스타시스를 '확신'으로 번역하는 것이 많은 지지를 받아왔는데(멜란히튼을 따르는 루터 이래로) 이 견해는 이 단어를 주관적으로 만드는 곤란한 점을 나타내고 있다. 병행어 엘렝코스(증거)는 '확신'이라기보다는 '증거'라는 뜻을 갖는 객관적인 것이다. 즉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의 증거라는 의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휘포스타시스도 초월적인 성질을 갖고 있는,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 것이다. 이 단어는 초월적인 장래의 일들의 성격을 정의해 주고 있으며, 이 구절은 담대하게 믿음을 이러한 일들의 증거와 실상과 동일시한다. 단지 예수님의 사역과 이 사역에 참여하는 믿음만이, 그림자요 원형을 본뜬 것에 불과한 타락하기 쉬운 세상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e) 히 3:14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띠고 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여기서 언급은 우리의 처음 확신에 관계된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제 신자들이 나누어 갖게 된 하나님의 바로 그 실체의 현 존재인 이상 신자들의 믿음이 근거하고 있는 기본적인 실체를 대한 객관적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 대해 선포할 때의 그 처음의 실체를 굳게 붙잡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실체 안에서 목표에 확신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휘포스타시스 그 자체는 그 확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에 불과하고 원형을 본뜬 것에 불과한 만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설적으로 나타났고, 교회 공동체가 믿음으로 소유하게 된 바로 그 하나님의 실체를 의미하는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Koster; G. Harder).
뒤로 물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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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츠리다, 물러나다, 후회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휘포스텔로(Pind. 이래)는 전치사 휘포($5259: ~에 의하여, 말미암아, ~아래, 밑에)와 스텔로($4724: 정돈하다, 준비하다, 채비하다, 움츠리다, 제지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움츠리다, 물러나다, 퇴각하다, 후퇴하다, 취소하다, 피하다, 침묵을 지키다, 숨기다, 감추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휘포스텔로는 70인역본에서 7회 나오며, 신 1:17에서 나사(5375)를 번역하여 '움츠리다'를, 욥 1:8에서 구르(1481)를 번역하여 '피하다'를, 막 1:10에서 칼라(3607)을 번역하여 '그치다'를, 합2:4에서 아팔(6075)을 번역하여 '교만하다'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휘포스텔로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사도행전, 갈라디아서, 히브리서에만 사용되었다.||(a) 행 20: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여기에서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행 20:27)에게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그들에게 선포하는데 주저하거나 꺼리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b) 갈 2: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이 야고보에게서 안디옥에 왔을 때,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던 베드로가 그 곳을 "떠나 물러가" 심지어는 '숨어 버렸을' 가능성이 있음을 나타낼 때 언급되었다.||(c) 히 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합 2:4의 그리스도론적인 언급을 인용 했으며, 휘포스텔로는 '후회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믿는 자들은 확실한 고백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일 후퇴하거나 자신을 은폐시킴으로 인하여 죄책을 갖는다면 어떤 확신이나 보상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R. H. Rengstorf).
뒤로 물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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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츠림, 물러섬||#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휘포스톨레(Asclepiodot.)는 휘포스텔로($5288)에서 유래했으며,||(a) '낮춤, 내림, 움츠림, 물러섬'|(b) '절제, 보유, 비밀'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휘포스톨레는 신약성경에서 히 10:39에 한번 나온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여기에서는 휘포스톨레는 피스티스(믿음)와 긴장관계에 있으며, '지속성의 부족' 혹은 '불신임'(참조: 히 2:1)을 의미한다.|(참조: K. H. Rengstore)
다시 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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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다(가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휘포스트레포(Homer 이래)는 기본 전치사 휘포($5259)와 스트레포($4762: 돌리다, 방향을 바꾸다, 돌아서다, 변화시키다)에서 유래했으며,||(a) 타동사로 '되돌려 보내다, 돌게하다',|(b) 자동사로 '되돌아가다, 돌이키다, 돌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휘포스트레포는 70인역본에서 24회 나오며, 히브리어 슈브(돌아가다, 돌아오다, 돌아서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사람이 '돌아가거나 돌아오는 것'(창 14:17; 창 50:14; 대하 2:25; 대하 28:15), 또는 '돌이키는 것'(수 2:23; 전 9:11), 여호와께 '다시 나아가는 것'(출 32:31), 진노를 '옮기는 것'(잠 24:18)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휘포스트레포는 3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휘포스트레포는 사람이 '돌아가다, 돌아오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막 14:40; 눅 1:56; 눅 2:39; 눅 2:43; 눅 2:45; 눅 4:1; 눅 4:14; 눅 7:10; 눅 8:37; 눅 8:39; 눅 8:40; 눅 9:10; 눅 10:17; 눅 11:24; 눅 17:15; 눅 17:18; 눅 19:12; 눅 23:48; 눅 23:56; 눅 24:9; 눅 24:33; 눅 24:52; 행 1:12; 행 8:25; 행 8:28; 행 12:25; 행 13:13; 행 13:34; 행 14:21; 행 20:3; 행 21:6; 행 22:17; 행 23:32; 갈 1:17; 히 7:1).||(b) 휘포스트레포는 벧후 2:21에서 받은 명령에서부터 '돌아선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휘포스트론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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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또는 밑에) 펴다(깔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휘포스트론뉘오(Homer 이래)는 전치사 휘포($5259)와 스트론뉘오($4766: 펴다, 깔다)에서 유래했으며, '아래에(또는 밑에) 펴다, 아래에(또는 밑에) 깔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휘포스트론뉘오는 신약성경에서 눅 19:36에 한번 나온다: "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