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한
uJperhvfano"
거만한, 교만한, 자랑하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휘페레파노스는 휘페르($5228: ~위에, ~을 넘어서)와 파이노($5316: 나타내다)의 합성어이며, '남들 위로 자기 모습을 나타내는'이란 의미를 가진다. 휘페레파노스는 헤시오드(Hesiod)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통상적으로 '오만한, 교만한'이라는 뜻을, 때때로는 '방탕한'이라는 뜻을 나타내었다. 이 형용사는 '빼어난' 이나 '장엄한'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었다(예: Plato. Plut.).||#2. 70인역본의 용법.||휘페레파노스는 70인역본에서 약 40회 나오며, 휘페레파노스는 시 119(118):21, 119(118):51, 119(118):69, 119(118):78, 119(118):122에서 제드(오만한, 건방진)의 역어로, 욥 40:12(7); 시 94(93):2; 시 123(122):4; 시 140(139):5에서는 게에(거만한, 오만한)의 역어로, 시 101(100):5에서는 가보아(높은 것, 높임 받는)의 역어로, 잠 3:34; 사 29:20에서는 루츠(비웃다, 놀리다, 경멸하다)의 역어로, 사 13:11에서는 아리츠(주인)의 역어로, 시 89:11(88:10)에서는 라합(오만)의 역어로, 욥 38:15; 시 18(17):27; 사 2:12에서는 룸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외경에서 주로 '거만한'이란 의미로 나타난다. 지혜문학에서 휘페레파노이는 이스라엘 안팎에 있는 의인 및 겸손한 자와 대조되는 한 특징적인 집단을 이루고 있다. 휘페레파노스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결코 사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하나님은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라는 신념이 깔려 있다(잠 3:34). 주님에 대한 두려움이 지혜의 시작인 것과 같이 주님으로부터의 이탈은 교만의 시초이다(시락서 10:12). 그러므로 기도를 하는 사람은 교만의 의혹으로부터 자신을 깨끗케 하며(에 4:17[70인역본])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가운데 자신의 겸손을 나타낸다(유딧 6:19). 한편,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자신의 교만을 질책하며(예: 암 6:8; 암 8:7; 호 5:5; 호 7:10; 렘 13:9; 겔 7:10, 겔 7:20; 겔 16:56; 습 2:10; 참조: 레 26:19), 따라서 이스라엘에 깊이 뿌리 박힌 생각과는 전혀 상반되는 입장을 취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휘페레파노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타나며, 한글개역에 '교만한, 교만한 자'라는 의미로 번역되었다. 휘페레파노스는 눅 1:51; 롬 1:30; 딤후 3:2; 약 4:6(잠 3:34의 인용); 벧전 5:5(잠 3:34의 인용)에서 사용되었다.|눅 1:51의 문맥은 시적이다. 즉 이 단어는 눅 1:46-55에 나오는 마리아의 찬가의 다음과 같은 싯귀 속에 나온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휘페레파누스])을 흩으셨고". 이 싯귀는 시 89:10의 "주께서 라합을 살륙 당한 자같이 파쇄하시고 주의 원수를 주의 능력의 팔로 흩으셨나이다"라는 구절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이 마리아 찬가의 영어 이름인 "the Magnificat"는 이 시의 첫머리에 나오는 라틴어 동사로부터 유래한 것으로서, 영역판 성서(EVV)는 이 단어를 "Magnifies"(찬양하다)로 번역하였다. "이 시는 구약성경(그리고 쿰란문서?)를 토대로 하여 구성된 서정시로서, 한나의 노래와 특별한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삼상 2:1-10; 참조: 눅 1:38; P. Winter, BJRL, 37, 1954,328-47). 이 시는 자기 자신에게 내린 복(46-48절)과 하나님을 공경하는 모든 자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49-50절), 비천한 자에 대한 그의 각별한 사랑(51-53절),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각별한 사랑(54절 이하)에 대하여 마리아가 느끼는 기쁨에 넘치는 감사를 표현하고 있다. 이 시의 후반부는 인간의 억압으로부터 한 민족을 구원하셨다는 개념으로 하나님의 승리를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 이전의 메시야 사상을 재현하는 시이다. 신약성경 기자들은 이러한 메시야 사상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그것을 재해석하여 메시야의 파루시아(parousia)에 대한 대망으로 그것을 전이시킨다"(E. E. Ellis, The Gospel of Luke, New Century Bible, 1966, 72).|나머지 용례들은 주로 권면적 기능을 가진 문맥에서 나타난다. 즉, 이 용례들은 초대 기독교의 교리교육에서 사용되었다고 하는 이른바 '악덕 목록'과 결부되어 있다.|바울은 롬 1:30에서 휘페레파노스를 이방인들의 악덕 중에 하나로 열거한다. 여기서 휘페레파노스는 우상 숭배적인 이교의 부패를 표현한다. 초대교회에 해석에 따르면 이 거만한 자들을 그들이 가지지 않은 것을 자랑하는 자들이다.|딤후 3:2의 악덕의 목록에서 휘페레파노이는 알라조네스("자긍하며") 바로 뒤에 나타난다. 기자에 있어서 이 두 용어는 거만의 서로 다른 두 형태를 의미한다. 이 목록에 표현된 도덕적 무질서는 경건한 겉 모습으로 혐오감을 일으키며, 거짓 교훈에서 생겨나고 말세의 특징이다. 약 4:6과 벧전 5:5는 다같이 잠 3:34의 겸손을 권고하는 구절을 인용하였다. 약 4:6의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라는 말씀과, 벧전 5:5의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참조: 민 15:30 LXX)라는 말씀에서 인용되고 있다. 첫 구절은 세상과 벗하여 살아가는 것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고, 두 번째 구절은 마지막 때의 삶이라는 보다 넓은 맥락 속에 놓여 있는 교회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참조: E. Guting; C. Brown; G. Bert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