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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그릇
ajggei'on
그릇, 용기.||#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앙게이온(Hdt. 이래)는 앙고스(%81: 그릇)에서 유래했으며, '그릇, 병, 용기'를 의미하며, 기름을 담은 '병'이나 고기를 담은 '용기'를 나타낸다. 비유적 의미로는 '몸'(body)에 대해(Hippocr 이래), 영들의 집(The Home of spirits)에 대해(Hm 5.2, 5)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앙게이온은 70인역본에서 23회 나오며, 히브리어 켈리의 역어로 '그릇'(창 42:25; 창 43:11)을, 네벨의 역어로 '병'이나 가죽 부대(삼상 25:18), '항아리'(애 4:2)를, 보르의 역어로 '물통이나 우물'(잠 5:15)을, 킥칼의 역어로 떡 '덩이'를 나타낸다(삼상 10:3).||#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앙게이온은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에서만 2회 나온다.|마 13:48에서 고기를 담은 '그릇'에 대해, 마 25:4에서 기름을 담은 '그릇'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앙겔리아
ajggeliva
전하는 말, 메시지 messag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앙겔리아(Homer 이래)는 앙겔로스($32: 사자)에서 유래했으며, 고전 헬라어의 용법에서 '알림, 고지, anouncement'나 '선언(포), proclomation', '전하는 말, 메시지, message' 또는 '명령, command'을 의미한다(참조: Liddell - scott). 이 단어는 '선언하는 행위'(Jos. Ant, 7, 247; Bell., 4, 230)와 '선언된 것(선언 내용)'을 의미하기도 하며, 후자가 더 많이 사용되었다(참조: 요일 1:5)(Jos. vit. 380).||#2. 70인역본의 용법||앙겔리아는 70인역본에서 좋은 소식(앙겔리아 아가데; 잠 12:25; 잠 25:25)과 매우 나쁜 소식에도 사용되었다. 삼상 4:19(법궤의 빼앗김); 삼하 4:4(사무엘과 사울의 죽음); 사 37:7; 겔 7:26; 겔 2:7. 사 28:9에서는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가리키는데 요일 1:5에서와 동일한 용법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앙겔리아는 신약성경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요한일서에서 2회, 요일 1:5과 요일 3:11에 사용되었다.||(a) 요일 1:5에서 동의어들 중 가장 단순한 어형인 앙겔리아가 선택되었는데, 이는 기자가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그가 쓰는 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라는 두 가지 의미를 묘사하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온 메시지이다. 그것은 그가 쓰는 자들을 위하여 말하고자 한 메시지이다. 이 단어는 역시 메시지가 하나님의 어떤 생각을 포함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것은 발견이 아니라 계시(啓示)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이다.||(b) 요일 3:11에서 메시지는 사랑의 법이 그 기초인 복음의 메시지이며, 여기서 동일한 단어가 요일 1:5에서와 같이 사용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선포는 하나님에 관한 소식과 명령이다. 요일 1:5에서 그것은 말해진 예수님의 말씀이며, 요일 3:11에서 그것은 공동체의 근거가 되는(아르케) 전도(마르튀리아)이다. 기자에게 있어서 이 둘은 일치한다. 요일 1:5에서는 명시적 진술이며('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한편 요일 3:11에서는 요일 2:7이하와 요 13:34의 병행구를 통한 지적에 지나지 않는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J.Schniewind; U.Becker; D.Muller).
앙겔로
ajggevllw
알리다, 고지하다 announc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앙겔로(Homer 이래)는 '알리다, 고지하다'를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케륏소($2784)와 비교하면, 이 단어군(합성어)은 정보 제공이나 격려의 특성을 더욱 지니고 있다. 반면에 케륏소는 승낙을 구하는 공적이고도 권위적인 공포를 뜻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앙겔로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오며, '알리다, 선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삼하 15:13; 삼하 18:11; 렘 4:15).||#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앙겔로는 신약성경에서 요 20:18에서만 나오며, '알리다'를 의미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스테펜 본문에는 여기서 아팡겔로($518)로 나온다. 부활과 선포는 밀접히 관련된다(참조: 롬 1:3 - 롬 1:4).|(참조: Walter Bauer; U.Becker; D.Muller; J.Schniewind).
보낸 자
a[ggelo"
천사 angel, 사자 messeng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a) 앙겔로스는 '메시지를 가져오는 자, 사자(messenger)'를 의미하며, 호머(Homer)에서 이미 이 의미로 사용되었다. 호머 시대에 사자는 성사적(sacral)이다. 사자는 신들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이 이유 때문에 아킬레스(Achilles)는 미케네(Mycenae)의 왕 아가멤논(Agamemnon)의 사신들에게 분노를 발하지 못한 것이다. 사자의 임무는 메시지들을 전하는 것이다.|이 임무가 사람들 간의 교류의 유일한 가능성이기 때문에 그는 특별한 신의 보호를 받는다.|사자들(앙겔로이)은 헬라인의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소포클레스(Sophocles)는 Trachiniae에서 사자의 사역에 대하여 묘사한다. 그는 메시지를 전하고 그것과 관련된 문제에 대하여 답하며, 그 다음에 그 보상을 요구한다. 비문들에는 사자의 기능에 대한 정보도 준다. 그는 조약을 체결하고 공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는 공물을 받으며 상대방의 맹세도 받아낸다(Ditt. Syll.). 새들은 신들이 사람들에게 보낸 사자로서 큰 역할을 한다. 철학자도 신의 사자로 나타난다(Epitetus).||(b) 세상의 거룩한 사자는 하늘의 사자들의 원형이다. 헤르메스(Hermes)는 가장 유명한 하늘의 사자이다. 헤르메스와 함께 다른 신의 사자들도 때때로 언급된다.|하늘의 사자들 뿐만 아니라 지하 세계에 온 사자도 있다(Plato). 예를 들면 네메시스(Nemesis)와 헤게트(Hecate)와 함께 지하 세계의 사자들이 있다.||(c) 우리는 사자와 관련하여 통속적 종교에서 이제 철학자들의 종교로 돌아간다. 철학적인 종교는 로고스($3056)의 신학을 발달 시켰는데, 헬라 사상은 로고스 신학을 헤르메스(Hermes)와 관련시키었다. 필로는 히브리의 말아크를 우화식으로 그것을 나타내었으나 유대의 사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성경에서 단 하나의 천사(angel)가 나타나는 곳에서, 필로에 의하면 그는 로고스와 동일시 될 수 있다.||(d) 요세푸스는 앙겔로스를 '사자 messenger'와 '천사 angel'라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그는 이 단어를 구약성경의 천사에 대하여 사용한다. 그는 발람을 만난 천사를 하나님의 영이라고 불렀다(Antiquities 4. 108). 그러나 그는 천사에 대한 에세네파의 견해를 피했다(The Tewish war).||#2. 구약 및70인역본의 용법.||(a) 명사 앙겔로스는 70인역본에서 약300회 이상 나오며, 주로 말아크를 번역한다. 히브리어 말아크는 헬라어 앙겔로스에 해당하는 말이며, 역시 '사자 messenger, 천사 angel'를 의미한다. 그리고 앙겔로스는 벤(아들, 창 6:2; 욥 1:6; 욥 2:1), 벤 엘로힘(하나님의 아들, 욥 38:7), 엘로아(신, 하나님, 시 8:6; 시 97:7[96:7]; 시 138:1[137:1]); 엘라흐(아람어, 하나님, 신, 단 2:11; 단 3:25), 압비르(강한 자, 천사, 황소 등을 표현함, 시 78:25[77:25]), 엘(하나님, 신, 욥 20:15), 에노쉬(사람, 인류, 창 19:16), 에베드(종, 사 37:24), 이르(깨어있는 자, 천사, 단 4:10, 19-32), 치르(전달자, 사신, 잠 13:17; 잠 25:13), 사르(수령, 우두머리, 통치자, 방백, 단 10:21; 단 12:1), 야드(손, 잠 26:6)의 역어로 사용되었다.||(b) 앙겔로스는 70인역본에서 인간 사자와 초자연적인 사자에 대하여 사용되었다.|① 인간 엥겔로스(사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자이다. 앙겔로스는 좋은 소식을 전하며(삼상 6:21), 요구를 알린다(민 20:14; 삿 7:24), 앙겔로스는 어떤 목적을 위해 파송되는 자로서 자객이 될 수도 있다(삼상 19:11; 왕하 6:32). 앙겔로스는 외교 사절로 봉사했다(삿 11:12-14; 삼하 5:11; 왕상 20:2).|엥겔로스는 선지자의 경우에 메시지를 전하는 것과 아울러 하나님의 공적인 대표자를 의미한다(대하 36:15-16; 학 1:13). 다윗은 "하나님의 천사, 사자"로 불리웠는데, 그는 신의 특별한 속성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하나님을 대표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결백(삼상 29:9); 지혜(삼하 14:17); 자비로움에 대한 희망(삼하 19:27).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의 사자는 연약한 자로 나타난다(사 42:19).|② 초자연적 엥겔로스(사자)는 하늘의 존재로서, 여호와의 궁전의 일원들이며, 하나님을 섬기며 찬양하는 천사들이다(욥 1:6; 시 148:2). 그들은 메시지를 전달, 계시의 중개자로서의 역할이 그 중심 기능이다(슥 1:9; 11이하; 슥 2:2-5). 그들은 인간의 노력을 도우며(창 24:40), 백성을 보호하며(출 23:20), 사람들을 구원하며(창 19:15이하), 보호한다(시 91:11).|그들은 세계의 창조를 증거하며(욥 38:7), 그들의 임재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창 28:12-17). 그들은 심판을 집행하며(삼하 24:7), "벌하는 사자들"(시 78:49), "멸하는 자"(욥 33:22)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그들도 무흠한 자가 아니다(욥 4:18). 그들은 천사장, 순찰자, 강한 자, 손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앞의 (a)를 참조하라).|③ 여호와의 엥겔로스(사자, 천사)는 특별한 천사의 존재를 나타낸다. 이 사자의 특징도 다른 사자들과 같이 동일한 일반 영역의 기능들을 가진다. 그는 선한 메시지(창 16:10-13)와 위협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삿 5:23). 그는 심판의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고(왕하 19:35; 시 35:5-6), 사람들을 구원한다(창 22:11; 시 34:7[H8]).|오직 삼하 24:16이하에서만 여호와의 천사가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여호와의 사자는 불타는 가시덤불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서 자기를 가리켜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라고 하셨다(출 3:6).|이 여호와의 사자는 잘못된 일로 여행하는 발람의 가는 길을 막았다(민 22:22).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사사 시대 초기 때에도 이 하나님의 사자는 벧엘(삿 2:1-5)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말하였다. 나중에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인의 속박에서 구해낼 군대의 지도자가 되라는 사명을 주었다(삿 6:11-14). 또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나타나 그들이 장차 아들(삼손) 하나를 얻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었다(삿 13장). 이 여호와의 사자는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있던 다윗에게 나타났으며, 동시에 파괴하는 천사를 중지시켜 심판을 그치게 하였고 나중에 선지자 갓에게 나타나 다윗으로 하여금 그곳 바위 위에 제단을 쌓도록 하라는 명령을 전하게 했다(대상 21:15, 18, 27).|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에게서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하늘의 존재로, 그의 배후에서는 천사의 개성이 완전히 사라진다. 따라서 천사가 나타나는 것을 본 자가 그의 속성(이름)을 시험하고 간파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참조: 삿 13:17이하). 여호와의 천사는 거의 언제나 이스라엘이나 어떤 사람을 돕기 위해 나타난다. 사실상 그는 여호와의 실재적 현현이요,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의인화된 도우심이다(출 14:19; 민 22:22; 삿 6:11-24; 왕하 1:3이하). 간혹 우리는 여호와와 여호와의 사자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언급이 인간과는 상관 없이 여호와를 언급할 때는, "여호와"라는 말이 사용되며, 인간이 그를 목격하는 곳에서는 "여호와의 천사"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이 표현은 여호와의 초월성을 나타내는 것이다(예: 창 18장; 출 23:20-23). 여호와의 거룩하심은 이스라엘을 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의 사자만이 이 백성과 동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H. Bietenhard, DNTT). 오직 그의 사자만이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과 중보하는 사역을 수행한다(슥 1:12; 3:1-5).|그의 신원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이미 언급한 것 외에도 그를 본 자들은 하나님을 본 것처럼 놀라워하며(삿 13:21-22), 그는 일인칭으로 하나님을 나타내기 때문이다(창 16:10; 출 3:2, 6; 삿 2:1). 그는 기능면에서의 유사함, 특히 앞에 언급된 중보 기능에 근거하여 볼 때,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와 동일시된다.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사자"로 불리울 수 있으나(삿 13:6, 9; 참조: 삿 13:3). 이러한 명칭은 그의 독자적인 지칭이 아니다. 한편 '인간 사자'라는 항목에서 성경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인간에 대하여서도 '하나님의 사자', '여호와의 사자'라고 불렀다.||#3. 신약성경의 용법||엥겔로스는 신약성경에서 175회 사용되는데, 공관복음에서 51회, 사도행전에서 21회, 요한계시록에서 67회, 바울 서신에 14회 나오며, 사람 사자와 천적 존재에 대해 사용되었다.||1. 엥겔로스는 사람 사자에 대해 6회 사용되었다. '인간 사자'라는 의미로는 약 2:25에서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군들, 눅 7:24에서 요한이 예수님께 보낸 사람들, 눅 9:25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의 한 촌으로 앞서 보낸 사자들에 대해 사용되었다.|마 11:10과 병행구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언약의 사자로서 세례(침례) 요한에 대해 사용되었다.||2. 엥겔로스는 주로 천적 존재들, 곧 천사에 대하여 사용되었다.|(a) 신약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의 유대적 개념들이 채택되었다.|·천사들은 천상계의 대표자들이요 하나님의 사자들이다(히 12:22; 딤전 5:21). 그들이 나타날 때, 초자연적 세계가 이 세계로 들어오는 것이다.|·천사들과 같이 되는 것은 그 세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행 6:15).|·천사들과 비교하는 것은 신적인 것과 비교하는 것이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갈 4:14).|·천사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것은 천계에 거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이렇게 제시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히 13:2에 의하면 천사들은 천계의 대표자, 하나님의 사자로서 구약의 성도들, 곧 아브라함(창 18장), 롯(창 19장)에게 나타났다.|·행 7:30; 행 7:35에 의하면 천사는 모세에게 나타났다(출 3:2).|·행 7:53; 갈 3:19; 히 2:2에서 천사들은 율법을 수여하는 데 역할을 담당했다.||(b) 예수님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주권의 표현이다. 따라서 천사들은 예수님의 탄생 생애와 사역과 관련된 중요한 순간에 나타났다.|① 천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전후하여 빈번히 나타났다: 천사는 성소에서 분향하는 사가랴에게 나타나 선구자 요한의 출생을 예고하였다(눅 1:11-눅 1:13).|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였다(눅 1:26-눅 1:28; 눅 1:31).|천사는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잉태가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알리었다(마 1:18-마 1:21).|천사는 밤에 양치는 목자들에게 나타나 구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눅 2:8-눅 2:11),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눅 2:13이하).|천사는 요셉에게 현몽하여 아기 예수님의 안전을 위해 지시했다(마 2:13; 마 2:19).|② 천사들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후에 나타나 그에게 수종들었다(마 4:11; 막 1:13).|사탄이 예수님을 시험을 하면서 천사들의 도움을 언급했다(마 4:6; 눅 4:10).|③ 예수님께서 수난과 관련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천사가 나타나 힘을 도왔다(눅 22:43).|마 26:53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천사들을 자기 마음대로 호령할 수 있었다.|④ 천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무덤 입구의 돌을 굴려내 치웠다(마 28:1이하). 천사들은 예수님의 시체가 뉘었던 곳에 앉아 있다가 찾아온 여인들에게 말을 걸었다(요 20:12이하). 천사는 무덤에 찾아온 여인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였다(마 28:5이하).|⑤ 천사들은 예수님께서 심판관으로 재림하실 때 그와 함께 와서 사역할 것이다(마 13:49; 마 16:27; 마 25:31; 눅 12:8이하; 살후 1:7).||(c) 천사들은 구원사의 과정에서 동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이 구원사에서 개인의 발달(성장)에 관심을 보인다(눅 15:10), 마 18:10에서는 "소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나온다. 천사 혹은 여호와의 천사는 하나님의 교회가 사명을 행할 때 사도들을 위하여 활동하며(행 5:19; 행 12:7이하),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며(행 8:26; 행 10:3이하; 행 27:23) 사도들의 대적을 벌한다(행 12:23).||(d) 신약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는 천사들과 동등한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위에 계신다고 한다(막 13:32). 천사들은 섬기는 영이며, 구원 받은 자들을 섬기라고 보내신 하나님의 일군에 불과하다(히 1:4이하; 참조: 엡 1:20이하; 빌 2:9이하). 만일 그가 천사들보다 더 낮은 존재로 언급되었다면, 이것은 단순히 그의 임무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히 2:5이하).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천사들에게 거의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사도로서의 그는 천사들의 명령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갈 1:8). 천사의 말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고전 13:1). 어떠한 피조물도, 어떠한 천사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떼어 놓을 수 없다(롬 8:38).|천사들은 결혼하지 않은 영이며(마 22:30),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전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의 시기를 알지 못한다. 성도는 천사들을 판단하는 위치에 있게 된다(고전 6:3). 바울은 천사 숭배를 공격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이 중개자로서의 그리스도의 독특한 위치를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골 2:18; 계 22:8이하; 참조: 골 1:15이하).||(e) 바울은 여러 범주의 천사들이 있음을 인정하였다(롬 8:38이하; 참조: 고전 15:24; 엡 1:21; 골 1:16).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 참여하였다(갈 3:19; 참조: 행 7:53; 히 2:2). 그들은 인간들과(눅 15:10) 사도들의 운명에(고전 4:9)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영혼을 낙원으로 인도한다(눅 16:22).|천사들은 요한계시록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보좌를 에워싸고 찬양의 노래로 천상계를 가득 채운다(계 5:11; 계 7:11). 이들은 계시를 전달하고 환상을 준다(계 1:1; 계 10:1 이하; 계 10:8 이하; 계 14:6 이하; 계 17:1).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실행한다(계 7:1; 계 8:2 이하; 계 9:1; 계 9:13; 계 11:15; 계 12:7 이하; 계 14:15; 계 14:17 이하; 계 15:1; 계 15:6 이하; 계 18:1 이하; 계 19:17; 계 20:1 이하).|한편 사단도 천사들을 거느리고 있다(마 25:41; 고후 12:7). 벧후 2:4과 유 1:6은 천사들의 타락에 대해 말하고 있다.||(f) 수호 천사 또는 인도하고 섬기는 천사에 대한 개념은 유대교에서 채택된 것이다.|행 12:15은 천사와 사람의 모습과 음성이 유사함을 나타낸다.|마 18:10에서 천사들은 우리로 하여금 소자도 하나님께 중요하며 우리에게 마땅히 그러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고전 11:10은 천사들의 성애적 욕망에 대해 언급한 것 같으나, 아마도 오히려 그들이 요구하는 예의 범절을 언급한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 계 1:20과 2-3장에서 교회의 사자들은 감독들을 의미할 수 있으나, 신약성경 시대에 감독은 교회 위로 높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문맥상, 지지하고 있는 천사들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그럴듯하다.|(참조: J. Schniewind; H. Bietenhard; J. H. Thayer).
앙고스
a[ggo"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앙고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그릇' vessel, '용기' container를 의미한다. 비유적 의미로 악한 영들의 집으로서 몸(body)에 대해 사용되었다(Hm 5, 2, 5).||#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앙고스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히브리어 케룹(3619: 광주리, 새장, 암 8:1; 암 8:2)의 역어로 실과 '광주리'를 나타내고, 케리(3627: 물품 용기)의 역어로 과실 '광주리'(신 23:25), 물 '그릇'(왕상 17:10), 토기장이의 단지(그릇, 렘 19:11), 곡식 '그릇'(겔 4:9)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앙고스는 신약성경에서 마 13:48에 한번 '그릇'(광주리)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들으라
a[ge
자, 이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아게는 아마도 아고($71: 인도하다, 데려오다, 가져오다)의 명령법이며, '자! 이봐 come! Come now!'를 의미한다. 고전 헬라어에서 간혹 사용되듯이 한 사람 이상이 호칭될 때도 쓰인다.||#2. 신약성경의 용법||아게는 신약성경에서 야고보서에만 2회 감탄사로 사용되었다.|약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약 5: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참조: Walter Bauer; J.H.Thayer).

ajgevlh
떼, 무리 a her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겔레(Homer 이래)는 아고($71: 인도하다, 몰다)에서 유래했으며, '떼, 무리'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아겔레는 70인역본에서 11회 나오며, 주로 에델(떼, 무리)의 역어로 '양 떼'(삼상 17:34; 아 4:2), 염소 떼(아 4:1; 6:5), 게달라(울타리)의 역어로 양 '우리'(삼상 24:4), 쉬페아(다량, 다수)의 역어로 약대의 '많음'을 나타낸다(사 60:6).||#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겔레는 신약성경에서 6회, 공관복음에서만 나오며, 돼지 '떼'에 대해 사용되었다(마 8:30; 마 8:31; 마 8:32; 막 5:11; 막 5:13; 눅 8:32; 눅 8:33).|(참조: Walter Bauer; J.H.Thayer).
족보도 없고
ajgenealovghto"
족보가 없는 without genealogy.||형용사 아게네알로게토스는 %107(부정접두사)와 게네알로게오([$1075]: 가계를 캐다)에서 유래했으며, '가계 없는'를 의미한다. 스 2:61 - 스 2:63에서 보는 것과 같이 유대나라에서 제사장들의 혈통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려는 자는 누구든지 그들의 혈통을 검증받아야 하는 것이다(Mid 5, 4; T.Sanh, 7, 11; Qid 4, 4).|창세기 14장에서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은 구약성경의 다른 곳에서 어떤 사람의 조상에 대해 언급할 때 통례적으로 사용되는 "~의 아들"이라는 기술 없이 소개된다. 이 이유로 그는 히 7:3에서 아게네알로게토스로, 히 7:6에서는 메 게네알로구메노스로 묘사되었다. 즉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혈연적인 조상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히브리서의 기자는 예수님의 참 인성에 대해 간접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참 인성은 참 신성과 함께 결속되어 있다.|(참조: Buchsel, TDNT; C.Brown, DNTT).
천한 것
ajgenhv"
가족이 없는, 비천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게네스(Xen. 이래)는 %107(부정 접두사)와 게노스($1085: 가족, 자손)에서 유래했으며, 유게네스($2104: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에 반대되는 말로, '가족이 없는, 천한 출신의 사람, 이름없는 혹은 명성이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이 단어는 70인역본에서 나타나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아게네스는 신약성경에서 고전 1:28에서 한번 나온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세상의 [천한 것들]"은 사람들 가운데 언급될 가치조차 없는 자들을 의미한다.|(Walter Bauer; J.H.Thayer).
거룩되게 하다
aJgiavzw
거룩하게 하다, 성별하다, 봉헌하다, 성화(성결)하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하기아조는 거의 독점적으로 성경 헬라어에 속한다. 형용사 하기오스($40: 신성한, 거룩한)에서 유래했으며, '거룩하게 하다, 신성(거룩)하다고 '선언하다. 봉헌하다, 성별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a) 하기아조는 70인역본에서190여회 나오며, 주로 카다쉬(거룩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동사의 사용법은 그것이 사용되는 배경에 있어서 명사나 형용사보다 더 일률적이다.||(b) 민 16:38에서 고라 자신의 향료들이 거룩하다고 한다. 출 29:21; 출 29:37; 출 30:29에서 제사 의식에 사용된 특정 물품이 하나님께 봉헌됨으로서 거룩한 것으로 여긴다.||(c) 어떤 사람이 부정함으로 인하여 공동체의 생활에서 일시적으로 배제되어 있을 때 그는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삼하 11:4).||(d) 또는 그가 하나님과 접촉하려 할 때 그는 자신을 성결하게 한다. 출 19:14 전후에 나오는 신의 현현 기사, 삼상 21:5이하에 나오는 거룩한 전쟁에 관한 기록, 그리고 삼상 16:5에 나오는 이새의 가족이 제사드리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제사에서 여호와께서는 그 가문의 가장 높은 친척이 되신다.||(e)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거룩히 구별하거나(삼상 7:1에서는 엘리아살이 제사장 직분으로 성별된다), 사물들을 거룩히 구별하여 삿 17:3 등에서는 은을, 왕상 8:64에서는 성전의 앞 뜰을 거룩히 구별한다.||(f) 거룩하다는 개념의 윤리적 의미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영역을 혼란시키는 행위에 대한 금지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레 22:32). 하나님은 죄를 심판함으로써 자기의 거룩함을 입증하신다(레 10:3; 민 20:13; 겔 28:22). 그의 거룩함은 또한 자기 약속들을 굳게 지킨다는 점에서 예증된다(겔 20:41; 겔 28:25; 겔 39:27).(T. E. Mccomiskey; O. Procksch; C. Brown).||#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하기아조는 신약성경에서 28회 사용되었는데, 공관복음서에 4회, 요한복음에 4회, 사도행전 2회, 바울 서신에 16회, 베드로전서 1회, 유다서 1회, 요한계시록 1회 나온다.||(a) 주기도문의 첫번째 간구에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구절이 나온다(마 6:9; 눅 11:2).|논리적으로 거룩하게 하는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이 아니다. 이것은 뒤따르는 간구들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의 나라가 임하거나 그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 의해 거룩하게 여김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그의 인격이며, 그 자체로 거룩하고, 그 거룩으로 계시되는 것이다(참조: 겔 20:41; 겔 38:16). 계시는 종말론적으로 마지막 심판에서 일어나며, 역사적으로 신자들에 의해서가 아닐지라도 신자들 안에서 일어난다.|하나님의 신성(deity)이 예배 행위(the mystery of worship)에서 인간에게 계시되고(참조: 사 6:3), 그 다음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된다(즉 신성시 된다.).|예배의 요소는 여기서 하나님의 신성이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느끼는 예배에 열중되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성화(sanctification)는 오로지 하나님께 속한다. 성전(마 23:17), 제단(막 23:19), 제사(히 9:13)가 거룩할 때라도 거룩하게 하는 능력은 오로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바탕을 둔다.(Procksch, TDNT).|"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기아스테토는 하기아조의 명령 과거 수동태로 여기서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옵소서'이며, 과거형이 사용된 것은 완전한 실현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행위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두가지 의미를 함축한다.|첫번째 의미는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거룩하게 하거나 여김을 받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시는 행동을 하실 때 그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거나 여김을 받게 된다.|두번째 의미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거나 여김을 받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거나 여길 때 그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거나 여김을 받게 된다.|힐(D. Hill)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거나 여긴다는 말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높인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며,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예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로메아어(Krnst Lohmeyer)에 따르면, 주기도가 기원하고 있는 성화는 적극적인 의미와 소극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첫째로,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상반되는 감각적 영역에 속한 모든 것을 버림을 뜻한다. 왜냐하면 존재와 행위에 있어서 거룩한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봉사하는 천사와 같이 행위를 존재에, 그리고 존재를 행위에 일치시키는 사람이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둘째로,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안에서 모든 인간적, 역사적 존재가 고양되고, 그리하여 완성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성화의 과정은 또한 그 자체를 넘어선다. 왜냐하면 성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을 통한 세상의 성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통한 하나님의 성화에 있기 때문이다. 세계와 인류도 결국은 하나님이 자신의 거룩을 나타내시는 성화 과정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참조: C. Brown, DNTT)||(b) 하기아조는 요한복음에 4회 나오는데 그 첫번째 구절에서 이 동사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과 일을 수행하도록 특별히 성별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적으로 뜻하고자 하는 바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성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① 요 10:36에서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하신 것은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보내신 자가", 요 10:36) 문맥이 보여주는 바, 예레미야가 그의 출생 이전에 거룩하게 된 것과 같이(렘 1:5), 성육신 이전에 이루어졌다. 이것은 제자를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요 17:19) "거룩한 하나님"(참조: 6:69)의 자기를 거룩하게 하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다(요 17:19).|②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그의 기도에서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였다(요 17:17; 요 17:19).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70인역본에서 동사 하기아조가 제사장이나(예: 출 28:41; 29:1, 21) 희생 제물(예: 출 28:38; 민 18:9)을 거룩하게 하는 것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위하여 자기 자신을 구별하였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거룩하게 하거나 교회를 거룩하게 하실 때(엡 5:26) 그것은 그의 신성의 증거이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하나님께 거룩하게 헌신하셨고, 그런 방법으로 그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다. 그것은 우리에게 갈보리, 그리고 갈보리가 의미하는 모든 것을 나타내어 준다.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제자들과 관련된다. 그것은 '제자들을 위하여' 행하여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죽으셨다. 즉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그들이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셨던 것이다. 나아가 그것은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거룩함을 얻기를 기대하면서, 즉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되기를 기대하면서 죽으셨다.' 제자들의 거룩하게 됨은 진리로 거룩하게 되고 속죄로 완성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또한 진리를 행하는 일이기도 하다(70인역본의 시 119:142을 참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은 거룩함을 입어야 한다. 이것은 요한복음에서 인용한 이 모든 말씀들의 문맥이 명백히 입증하고 있는 바이다.(D. Procksch, TDNT, C. Brown, DNTT)||(c) 히브리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는 거룩하게 하는 방법으로 매우 분명히 기술되어 있다. 히 2:11의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는 말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이 혈육에 속한 자녀처럼(히 2:14), 하나에서 나왔다는 것을 말한다. 육체적 관계에 대한 강조가 보여주는 바, 이 하나는 하나님이 아니고 아담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는 역시 하기오스(거룩한 자)이며, 따라서 그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는 그의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거룩함을 얻게 하셨다(히 10:10; 히 10:14). 그의 피는 그들을 위한 화해(reconciliation)의 수단(means)이다(히 10:29; 히 13:12):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히 13:12). 여기에는 속죄의 개념과 거룩하게 함의 개념 간의 분명한 관계가 있다. 하기오이(거룩한 자들, 성도)로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의 상태에 놓여 있을 때라도 거룩하게 함의 진행을 그들 안에서 계속 진행시켜야 한다(계 22:11: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d) 바울 서신에서 의롭게 함(justification)의 사상은 하나님의 한 기능인 거룩하게 함(sancti fication)을 흐리게 한다. 그는 그 개념을 거룩하게 된 자에 대하여 말하면서 능동적으로보다 수동적으로 적용한다. 그에게 있어서 역시 거룩하여지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그들의 뿌리를 가지며(고전 1: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이방 기독교인들은 제물($4376), 곧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된 제물이다(롬 15:16). 그러므로 다시 거룩하게 함의 개념이 화해의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 거룩하게 함은 인간의 편에서는 도덕적 행위가 아니지만 하나님의 영향 받는 효과적인 상태(고전 6:11: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 곧 세례(침례)에서 그리스도와 연합(교제)에서(롬 6:4; 골 2:12) 거룩하게 함과 의롭게 함의 기초가 있는 것을(참조: 고전 1:30) 보여주는(혹은 설명) 세례(침례)적 씻음이다. 거룩함(sanctification)이 하나의 상태이다는 것은 특별히 분명하게 한 기독교인 배우자가 어떤 거룩함의 성격을 이교인 배우자와(고전 7:14), 또한 기독교인들이 아닌 자녀들에 영향한다는 사실에서 명백해진다. 후기 바울 서신, 예를 들면 에베소서(엡 5:26: "깨끗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와 목회서신(딤전 4:5; 딤전 2:21)에서 거룩의 개념은 완전히 유대인 식의 순결의 개념에 가깝다(참조: 엡 1:14; 골 1:22).||(e) 사도행전에서 "거룩함을 입은 자들"(하기아스메노이)이란 표현은 사도 바울이 두번 언급했으며(행 20:32: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 26:18: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두번 다 신 33:3의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라는 말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골 1:12)에 기독교인의 참여라는 바울 사상에 상응하며, 그 외에도 수동태 헤기아스메노이(거룩함을 입은 [자들])가 거룩의 상태라는 주장을 더욱 강조한다.||(f) 마지막으로 벧전 3:15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하라는 부름을 받는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를 삼아(주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하고". 여기서 전제 조건은 그들이 거룩한 자들(하기오이, 벧전 1:16)이라는 것이며,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의 성전인 그들 안에 거하시며, 어떤 불순결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더욱 더 마음의 순결은 거룩함의 한 조건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거함으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듯이 그들은 행위에서 거룩해야 한다.||(g) 그리고 하기아조는 물건에 대하여 '속된 것에서 분리하여 하나님께 바치다, 성별하여 신성하게 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금", 마 23:17; "예물", 마 23:19; "그릇", 딤후 2:21.|(참조: O. Procksch; C. Brown).
거룩하게 하심
aJgiasmov"
거룩함 holiness, 성별, 봉헌 consecration, 정화, 성화 sanctification.||#1. 헬라어의 용법||명사 하기아스모스는 하기아조($37)에서 유래했으며, 거룩함, 거룩하게 함, 봉헌, 정결함(정화)을 의미한다.|이 단어는 성경과 교회 문헌에서만 사용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하기아스모스는 70인역본에서 10회 나오며, 삿 17:3에서 카다쉬(히6942)의 역어로, '분리 또는 구별하여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렘 6:16에서 말고아(히4774)의 역어로, '정결함(정화)'을 의미한다. 겔 22:8에서 코데쉬(6944)의 역어로, '거룩한 것'(성물)을 의미한다. 겔 45:4에서 믹다쉬(히4720)의 역어로 '거룩한 곳(성소)'을 의미한다. 암 2:11에서 '나지르(히5139)의 역어로, '구별하여 바침'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하기아스모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일반적으로 '거룩하게 함'을 의미한다.|거룩한 자만이 거룩하게 함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어떤 다른 거룩하게 하는 과정에 선행한다(참조: 계 22:11).||(a) 살전 4:3에서 하기아스모스는 하나님의 뜻이며, 이는 생활의 순결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상호 교제는 "거룩함(정결함)과 존경"으로 성취된다(살전 4:4).||(b) 살전 4:7에 의하면, 거룩케 하심(하기아스모스)은 부정케하심(아카달시아)의 반대이며, 또한 아카달시아는 도저히 부르심과 연결될 수 없는 도덕적 상태인(우…에피 아카달시다) 반면 하기아스모스는 부름이 가져오는 도덕적 형태이다.||(c) 롬 6:19에서 몸은 '거룩함에 이르게 하는 의'(디카이오쉬네 에이스 하기아스몬)에 봉사하며, 그러므로 하기아스모스는 또한 도덕적 정결의 목적이다(롬 6:22: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d) 고전 1:30에 의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거룩함]과 구속이" 가능하게 되며, 그것은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말미암아(살후 2:13; 벧전 1:2: "엔 하기아스모 프뉴마토스) 기독교인들 안에서 실행되며, 그러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기아스모스나 성결은 기독교인 신분의 산 형태(living form)이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엔 하기아스모스 프뉴마토스)이라는 문구에서 강조점은 프뉴마 하기오스으로 묘사된 성령의 인격에 두지 않고 성령의 작용에 두며, 그 작용은 거룩하게 하심이다.||(e) 딤전 2:15에서도 유사하게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라는 문장에서 표현하는 것은 자녀의 상태가 아니라 행위이며, 또한 히 12:14에서도 거룩함(하기아스모스)이 도덕적 목적이다. 만일 속죄가 기독교인 삶의 기초라면 하기아스모스는 그것에서 발전한 도덕적 형태이며, 그것 없이 그리스도에 대한 비젼도 있을 수 없다. 하기아스모스라는 말은 항상 도덕적 요소를 강조하여 하기오스(거룩한)와 하기아제인(거룩한 것)과 구별된다.|(참조: O. Procksch; H. Seebass; C. Brown).
의심이 있다
a{gion
성소, 지성소.||하기온은 하기오스($40)의 중성이다. 신약성경에서9회 사용되었으며, '성소'를 의미한다.|히 9:3에는 두번 나란히 사용되었으며, '지성소'라는 의미를 지닌다.|(J. H. Thayer; Walter Bauer).
거룩하신
a{gio"
거룩한 holy, 신에게 바친 sacre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하기오스는 어원이 분명치 않다. 이 단어는 하조마이(%317)와 관련이 있다. 하조마이는 '~에 두려워하다, 움츠리다'('신이나 부모를 두려워하는 것, Homer, Il. 1, 21에서 아폴로를 두려워하는 것)와 '존경하다'(Aesch., Eumenides 1002에서는 제우스가 팔라스의 보호 아래 있는 사람들을 존경함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를 의미한다. 은유적으로는 '그것은 나를 죽음의 공포로 채우지 않는다'(Eur., Orestes 1116)라는 표현에서 사용되었다. 부정적으로 쓰일 경우에는 '거룩한 분노로 채워지다'를 의미한다(Eur., Frag. 348). 하기조마이는 70인역본에나 신약성경에 나오지 않는다.|옛 헬라어 하기오스는 존경의 의미에서든 반감의 의미에서든 '두려움의 대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금기(taboo)보다는 예배할 가치가 있는 거룩한 것을 더 강하게 시사한다. 그 후에 '사당'(shrine; Herodouts에서), '사람'(Aristoph)에 대해 사용되었고, 헬레니즘 시대에 이 단어는 '신들'이나 '신들을 묘사하는 수식어'로 사용되었다.|하기오스는 동방의 신들(이시스[Isis], 세라피스[Serapis], 바알[Baal] 등. TDNT Ⅰ89)을 묘사하는 수식어로 사용되었는데, 이로부터 헬라의 신들에 대해서도 적용하게 되었다.||#2. 구약 및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하기오스는 70인역본에서 약 800여회 나오며, 20개의 히브리어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주로 코데쉬와 카도쉬를 번역했다.|70인역본에서 하기오스에 해당하는 이런 단어들은 '분리'나 '구별'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따라서 카도쉬는 본질적으로 거룩한 것, 또는 신적 의식이나 제의 행위에 의해 거룩한 영역에 속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구약에서 거룩한 것들은 도덕적 순결보다 범속한 것으로부터 분리, 곧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보통 사용으로부터 분리하여 놓거나 따로 떼어 놓은 것들을 의미한다.|"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는 말은 모든 것, 특히 악한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절대적 분리성을 표현한다(사 17:7).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이 다른 민족들로부터 분리, 구별하여 자기의 소유물로 삼았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레 20:26; 신 7:6; 14:2; 26:19).|예배 의식에 속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거룩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님 예배를 위해 따로 떼어(분리, 구별)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영역에 속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희생제사의 여러 부분(레 6:16; 7:6), 제사의 의식에 사용된 특정 물품(출 29:37; 출 30:29), 제물, 거룩한 향(출 30:37), 거룩한 기름(출 30:37), 성전과 그 구성요소(시 65:4; 레 6:16 등), 제사장(레 21:6, 8), 레위인(대하 35:3), 절기, 안식일(출 16:23; 사 58:14) 등이 이에 해당한다.|같은 맥락에서 '예배하기 위해 모인 회중', '이스라엘 백성', 때때로 '천사들'을 "성도들"이라고 부른다(출 15:11; 19:6; 신 7:6; 시 16:3; 34:9; 89:5, 7; 단 7장; 에녹 1:9; 19:1, 4-5; 유딧 31:14).|그러므로 '거룩한 것'이라는 개념은 윤리 이전의 개념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또한 윤리적 가치를 지향하는 개념이기도 하다(출 31:13; 시편과 선지서).|하기오스는 구약성경을 통과하면서 '거룩한, 신성한, 성별된, 봉헌된, 순결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하기오스는 신약성경에서 약 23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하나님의 거룩. 신약성경에서 거룩은 구약성경에 근거하여 물질적 요소는 인격적 요소에 크게 양보한다. 신약성경의 거룩은 하나님의 내적 본질의 묘사를 담고 있다. 그것은 전능, 영원, 영광을 포괄하며, 두려움을 불러 일으킨다.|① 계 6:10에서 순교자들은 하나님을 "거룩하고 참되신" 분이라고 부른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② 요 17:11에서도 하나님의 거룩은 "거룩하신 아버지"로 나타난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③ 벧전 1:15이하에도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나타난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구약성경과 비교하면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묘사하는 경우가 매우 적다.||(b) 거룩하신 자(하기오스)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간혹 하기오스로 묘사되었으며 이 묘사는 잘 알려진 중요한 것이다.|① 누가복음에서 그것은 "성령"이 마리아에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그녀를 덮으신 예수님의 기적적 탄생에 근거되어 있다(눅 1:35). 여기서 토 겐노메논("나실 바")과 관련된 하기온("거룩한 자")은 주어에 속하고 휘오스 데우("하나님의 아들")는 술어에 속한다. 토 겐노메논 하기온("나실 바 거룩한 자")은 새 생명의 초자연적 기원을 설명하며, 그 기원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운다. 그러므로 여기서 휘오스 데우 곧 하나님의 아들은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직무에 근거하지 아니하고 그의 기원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마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부른다(막 1:24; 눅 4:34). 70인역본에서 이러한 칭호는 삿 13:7과 삿 16:17에만 나타나며, 이 표현의 지칭 인물이 거룩함으로 충만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② 요 6:69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고백 받는다: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③ 요일 2:20에서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자로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④ 유사하게 계 3:7에서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진실하신 자로 나타난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이러한 구절에서 하기오스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⑤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종"으로 불리운다(행 3:14; 행 4:27; 행 4:30).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이 과거에도 선지자들을 언제나 부인하고 죽였듯이 예수님을 거부하였다(행 7:51이하).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 저항하는 것은 하나님께 저항하는 것과 똑같다.||(c) 거룩한 영(성령)|성령의 거룩은 그리스도의 거룩과 분리될 수 없다(참조: 행 2:17이하).|① 성령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특히 세례(침례) 받으실 때에 활동하셨다(마 1:18; 마 1:20; 눅 1:35; 마 3:11과 병행구). 이는 성령의 시대의 시작인 것이다.|요한은 그리스도는 성령의 세례(침례)를 베풀 것이라고 하였고(행 1:5), 부활 후에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다(오순절, 행 2:4). 성령은 이제 나타나셨으며, 그러므로 거부는 용서받을 수 없다. 세례(침례)는 이제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의 이름으로 행해진다.|② 누가는 특히 한정적, 비한정적 형태 모두에서 프뉴마 하기온, "거룩한 영"(성령)이라는 어구를 즐겨 사용한다. 누가는 하나님의 영을 다른 영들과 구별하기를 원하며, 그 제의적 요소보다는 카리스마적인 요소를 강조한다.|③ 바울은 보다 더 인격적 강조를 하며, 제의적 측면을 지지하나 영적화 한다. 예를 들어 거룩한 성전인 교회와 그리스도인 안에는 성령이 거하신다(엡 2:21; 고전 6:19; 참조: 롬 15:16; 고후 13:13; 살전 4:8). 세례(침례)와 성찬(고전 12:13)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나누는 것(교제)을 의미하는 예배 공동체의 표시이다.||(d) 교회의 거룩. 구약성경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종인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신 성령의 전으로서 거룩하다. 거룩한 백성들인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해야 한다(벧전 2:9; 벧전 1:16). 그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된다(고전 1:2).|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들은 이제 성도들 중에 속한다(엡 2:19). 교회와 마찬가지로 교회들도 거룩하다(고전 14:33). 거룩은 본래부터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의 부르심으로 말미암는다(롬 1:6; 고전 1:24; 빌 1:1).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의 기업을 가진다(엡 1:8; 골 1:12; 참조: 신명기).||(e) 그리스도인의 거룩. 교회가 성전인 것처럼(고전 3:17; 엡 2:21)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롬 12:1; 롬 15:16). 사랑으로서 서로 섬기는 것은 거룩을 나타내는 것이다(갈 5:13; 롬 15:25; 롬 16:2). 거룩한 입맞춤은 그것을 보증한다(고전 16:20).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된 자는 그들의 가족 전체를 거룩하게 만든다(고전 7:14). 여기서의 거룩은 도덕적인 성격을 지니며, 불순, 특히 이방의 성적인 것과 대조되는 것이다(행 10:14; 엡 5:5). 거룩에 대한 제의적인 언급은 거룩을 단순한 도덕적인 것으로 되는 것을 막아준다.|끝으로 마지막 심판에서 거룩의 원리는 기준인 것이다(고전 6:2). 신자들은 심판할 것이다-이리하여 믿음은 그 자체가 거룩하다고 불리워질 수 있는 것이다(유 1:20).||(f) 교회의 승리.|① 거룩한 천사들은 승리를 거둔 교회에 속한다(막 8:38; 눅 9:26; 계 14:10; 유 1:14).|천사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돌아올 것이다(살전 3:13). 그러나 이 구절은 세상을 떠난 성도들을 가리키거나 포함하는지도 모른다(살후 1:10).|② 그리스도인들은 성도로서 승리한 교회에 속한다(계 14:12; 계 17:16).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될 것이다(계 22:11).-그러나 스스로 거룩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거룩해졌다. 거룩은 이미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인 그리스도인들의 중심 결의(central determnation)인데, 그리스도인들이 벌써 그리스도의 거룩한 제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되고 성령의 전이 된 것이다.|(참조: O. Procksch; H. Seebass; C. Brown).
거룩하심
aJgiovth"
거룩함 holines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하기오테스(Schol. Aristoph 등)는 하기오스($40)에서 유래했으며, 도덕적 의미로, '거룩함, 고결'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하기오테스는 70인역본 외경 마카베오이서 15:2에 한번 나오며 "거룩하게 구별해 놓으신 날"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하기오테스는 신약성경에서 히 12:10에 한번 나온다: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은 기독교인들이 참예해야 하는 그의 본질적인 속성이며, 이를 위하여, 하늘의 아버지는 그의 가르침으로 그를 준비시키시는 것이다.|그 목적은 벧전 1:15에서와 같은 것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참조: H. Seebass).
하기오쉬네
aJgiwsuvnh
거룩함 holiness.||#1. 일반 헬라어 문헌.||이 희귀한 명사 하기오쉬네(Herodian Gr. 1. 335 등)는 자질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형용사 하기오스($40)에서 유래, 확장된 것이며, 성경 헬라어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 단어는 '거룩함 holiness'을 의미하지만 '상태 state' 보다 오히려 '자질 quality'을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하기오쉬네는 70인역본에서 5회 나오며, 호드(시 145:5), 온(시 96:6), 코데쉬(시 30:5; 시 97:12)의 역어로 사용되었고, 마카베오사서 3:12에서도 나온다.|이러한 구절에서 영광의 요소(호드와온)는 거룩함(코데쉬)의 요소와 함께 소개되지만, 이 두 단어는 서로 교체할 수 없는 것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하기오쉬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바울 서신에만 나온다.||(a) 롬 1:4에서 하기오쉬네는 육신의 원리(참조: 롬 1:3)와는 다른 생명의 원리, 즉 자연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원리를 언급한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b) 고후 7:1에서 하기오쉬네는 인간의 자질이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그 기반은 속죄에 두며, 그 능력에서 거룩한 백성이 존재한다. 하기오쉬네는 여기서 하기아스모스와 같이 윤리적 성격을 지닌다.||(c) 살전 3:13에서도 마찬가지다: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목적은 거룩으로 마음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여기서도 거룩은 그 자체 마음의 순결로 보인다. 그것은 윤리적 헌신에서 완성되는 하기오쉬네이며 그 기원은 그 안에 그 제의적 성격이 놓여 있는 속죄에 근거한다.|(참조: O. Procks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