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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성경사전
구약성경에서 이 말은 ‘일하다’를뜻하며 들에서(출1:14), 성막에서(출27:19), 성소에서(민7:9) 일하고 또 주님을 섬기거나(민8:11) 레위사람의 일을 하는 것을 뜻한다(민8:22). 신약에서 이말은 ‘심부름 하다’를 뜻하며 종으로 섬기는 것을 표현한다. 집사라는 용어가 여기서 파생되었다. 사역자, 사역 혹은 ‘섬기다’(고후11:8; 롬15:31; 계2:19)등이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또한 이 말은 종교적인경의를 표하는 것을 뜻하기도 하며(요16:2; 롬9:4;12:1; 히9:1) 경배(敬拜)를 뜻하기도 한다(고후9:12;빌2:17). 그래서 예배를 영어로 worship service라고 한다.
이 말은 원래 책을 뜻하며 특히 다른 책과의 구분을 위해 책 중의 책을 뜻한다. 이것은또한 성경 기록(Scriptures)이라 불리기도 하였는데그 뜻은 단순히 ‘기록된 글’이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 즉 옛 상속 언약과 새 상속 언약으로 구성되어있다(출24:7; 마26:28). 구약은 대부분 히브리어로기록되어 유대인들의 성경이 되었으며 다만 다니엘서와 에스라의 몇 장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신약은 전적으로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는데 이 말은 유대지방과 처음에 복음이 전파된 대부분의 지역에서 통용되던 말이다. 신구약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실행의 표준이요 잣대이며 특별히 신약은 우리의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와 교리와 교회를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책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처음에 수용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던 말로 성경을 주셨다는 사실은 그분께서 배운 사람을 포함한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고 구원받기를 원함을 잘 보여 준다. 히브리어, 그리스어 참조.구약성경은 모두 39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구약을 율법서, 대언서, 기록서 즉 거룩한 기록서로 구분하였다. 율법서는 모세오경을 뜻하며 이것은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서 회당에서 1년에 한 차례씩 읽을 수 있게 했다. 대언서는 여호수아기, 사사기, 사무엘기, 열왕기로 구성된 역사서들 즉 ‘초기대언서’와 다니엘을 제외한 다른 대언서들로 구성된‘후기 대언서’로 구성된다. 후기 대언서들은 이사야,예레미야(애가는 포함되지 않음), 에스겔 같은 큰 대언서와 열두 개의 작은 대언서로 구성되는데 회당에서는 초기와 후기 대언서의 일부와 율법서를 읽었다. 끝으로 기록서는 그 외의 다른 책들 즉 시편,잠언, 욥기, 아가서,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기를 포함하였다. 한편현대 성경에서는 모세오경을 포함한 역사서가 앞부분에 그리고 시가서가 중간에 그리고 대언서가 맨마지막에 위치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서기관 에스라가 바빌론 포로 생활 이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구약의 정경을 수집하고 확정지은 것으로 생각한다.한편 신약성경은 27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책은사도들의 손으로 기록되어 후대에 한 권의 정경으로정착되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행적을 담은 복음서, 사도들의 행적을 담은 사도행전, 교회를 위한 서신서, 그리고 앞날을 보여 주는 계시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의 장절 구분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도입되었으며 장은 1240년경에, 구약의 절은 1450년경에, 그리고 신약의 절은 1551년경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구약성경목록, 신약성경목록 선도 참조(8-10).처음으로 세상에 잘 알려진 영어 신약성경은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인 1370년경에 나온 위클리프 성경이다. 그 뒤 인쇄술이 발명되고 1526년에 처음으로 틴데일의 신약성경이 인쇄되어 나왔고 1535년에커버데일은 처음으로 신구약을 포함한 성경전서를발간하였다. 그 뒤 커버데일과 다른 사람들은 로마카톨릭 교회의 매리 여왕의 압제를 피해 제네바에거하면서 1560년에 제네바 성경을 출간하였고 그후 1611년에 제임스 왕에 의해 일반 사람들을 위한킹제임스 성경이 출간되어 지난 400여 년간 온 세상에 복음을 알리는 표준 성경이 되었다. 킹제임스 성경은 영어가 최고조에 이른 때에 당대의 석학 50여명이 원어에서 충실하게 번역한 성경으로 단 한 번의 수정 없이, 단 하나의 오류 없이 당당하게 세월의풍파를 거스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있으며문학적으로도 영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성경의 보존선도 참조(91).킹제임스 성경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께서 보존해 주신 히브리어 전통 마소라 본문과 그리스어 공인 본문을 축자적으로 완벽하게 번역하여 전 세계공통어인 영어로 표현하여 말 그대로 모든 성경의표준이 되었다는 데 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NIV, NASB 같은 현대 역본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것들은 한결같이 부패된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과 그리스어 비평 본문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수천군데에 오류를 담고 있고 특히 축자적, 형식적 일치번역이 아닌 동적 일치 번역이므로 완전한 하나님의말씀이 아니다. 계시, 영감, 보존, 정경, 마소라, 사본, 킹제임스 성경 참조.
영감을 받은 기록. 이것은 구약과 신약성경을 뜻하며 외경이나 위경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성경, 영감, 정경 참조.
성경 본문은 여러 사람이 다양한 자료(필사본)를 모아 재구성한 ‘히브리어구약성경이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의미한다. ‘본문’이라는 말은 어떤 종류의 문서든지 그 문서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을 지칭하며 ‘그리스어 본문’이라성경 본문238성경 본문는 것은 여러 사람이 그리스어로 편집한 신약성경을의미한다. 신구약 성경 본문은 계열에 따라 각각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님께서 한 본문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두 종류의 본문이 생긴 것은 각각의 본문을 지지하는 그룹이 다르기 때문인데 그두 그룹은 기독교회 혹은 종교개혁그룹과 로마 카톨릭 교회이다. 사본 참조.I. 대개 구약성경은 마소라 사본에서 번역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마소라 사본에도 두 종류가 있다. KJV의 구약 본문은 ‘전통 마소라 히브리어본문’인 반면에 NIV, NASB 같은 현대 역본들의 구약 본문은 키텔이 지은 ‘BIBLIA HEBRAICAKittel’(BHK) 혹은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BHS) 이다. 또한 현대 역본들은 이 외에도 사해사본, 사마리아 모세 오경, 본문을 수정하는데 사용된 고대 성경 기록관들의 전통, 본문 여백에있는 여러 종류의 다른 본문, 70인역, 제롬의 라틴벌게이트 등을 사용하여 본문을 만들었다.KJV의 히브리어 본문과 현대 역본들의 히브리어본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1516-1517년에 유대인 랍비들이 출간한 구약성경은 ‘다니엘 봄베르그판’ 혹은 ‘제1 랍비 성경’이라고 부른다. 그 이후에1524-1525년에 제2판이 출간되었는데 벤 카임이 이를 편집하였다 해서 이 본문을 ‘벤 카임 마소라 본문’이라 하며 또한 이 본문은 ‘제2 대(大) 랍비 성경’이라고도 불린다. ‘벤 카임 마소라 본문’은 출간된 후400여 년이 지나도록 표준 마소라 본문으로 인정받아 왔으며 KJV 역자들은 바로 이 ‘벤 카임 마소라본문’을 구약성경의 본문으로 사용했다.한편 나치 독일의 히틀러에게 반유대주의 사상을주입시킨 키텔은 1937년 자기가 편집한 마소라 성경인 BHK 제3판에서 KJV의 ‘벤 카임 마소라 본문’을 ‘벤 아세르 마소라 본문’으로 바꾸어 버렸다. 사실 1906년과 1912년에 키텔이 출간한 제1판과 제2판에서는 ‘벤 카임 마소라 본문’이 사용되었는데1937년에 출간한 제3판에서는 레닌그라드 사본에기초한 ‘벤 아세르 마소라 본문’으로 갑자기 구약성경의 출처가 바뀌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키텔은구약성경 전체에서 20,000~30,000 군데의 변개를시도하였다. 레닌그라드 사본은 주후 100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KJV의 기초가 된 ‘전통 마소라 본문’과는 매우 다르다. 그 이후 1967년과 1977년에 독일 슈트트가르트에서 키텔의 BHK를 개정한 BHS가 출간되었는데 이 마소라 성경 역시 레닌그라드사본에 기초한 ‘벤 아세르 마소라 본문’을 사용한 것이다.II. KJV 신약성경의 근간이 된 본문은 그리스어‘공인본문’이다. ‘공인본문’은 누가 이것을 공적으로인정했다는 의미의 ‘공인본문’(公認本文)이 아니고누구나 이를 공통적으로 인정했다는 의미의 ‘공인본문’(共認本文)이며 그래서 이것은 ‘수용본문’(收容本文)이라고도 불린다. ‘공인본문’은 KJV 신약성경 번역의 토대가 되었으며 특히 1598년에 출간된 베자의 제5판이 사용되었다. ‘공인본문’의 특징은 우선신약 교회가 거의 1900 년간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해 왔다는 것이며 그 내용이 변화가 없이 한결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본문은 다수 사본에 근거했기에 ‘다수 본문’이라고 하며, 가장 널리 사용되었기에‘보편적 본문’이라고도 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서방본문’과 대비되어 ‘비잔틴 (혹은 동방) 본문’이라고하며, 루터와 칼빈 등의 종교 개혁자들이 한결같이이 본문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종교개혁본문’이라고도 한다.KJV 신약성경 번역에 사용된 그리스어 본문은 상당수의 서로 다른 편집자들에 의해 조합되었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들로는 에라스무스, 베자, 스테파누스와 엘제비어 형제, 아브라함과 보나벤쳐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에라스무스는 다섯 판에걸쳐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간했다. 1516년의 제1판에 이어, 1519년에는 마틴 루터가 그의 역사적이고 매우 중요한 독일어 번역판에 사용했던 제2판이나왔다. 그 뒤 그의 세 번째, 네 번째 그리고 다섯번째 판은 1522년, 1527년 그리고 1535년에 각각출간되었다. 에라스무스의 작품은 매우 훌륭했고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모범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스테파누스는 1546년, 1549년, 1550년, 그리고마지막으로 1551년에 모두 네 판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간했다. 베자도 1565년, 1582년, 1588년,그리고 1598년에 걸쳐 여러 판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간했다.KJV 역자들은 1598년의 베자 성경과 1550년과1551년의 스테파누스 성경을 주요한 출전으로 사용했다. 1611년에 KJV가 출간된 지 몇 년이 지나지않아 엘제비어 형제가 1624년, 1633년, 그리고1641년에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간했는데 이들은에라스무스의 표준을 따랐던 베자의 판을 충실히따라가며 본문을 편집했다.사도 시대부터 근 1900 년 동안 신약 교회는 ‘공인본문’만을 사용해 왔으며 특히 1611년에 KJV가출간된 이후에는, 비록 여러 가지 영어 성경이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약 360 년 동안 다른 영어 성경은 전혀 쓰이지 않았다. 또한 KJV는 온 세계로퍼져 나가 말 그대로 전 세계의 보편적 성경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권위를 인정한 성경’이라는 인식 하에 ‘권위역본’이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다.기독교회의 팽창에 대해 불안을 느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소위 본문 비평이라는 도구를 도입하여 성경을 한낱 역사책처럼 취급함으로써 그 권위를 떨어뜨리려 했으며 이를 위해 허영에 들뜬 신학자들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이 같은 시도는 결국사악한 열매를 맺게 되었고 1881년에 영국 성공회에 속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라는 두 명의 학자들은 ‘공인본문’에서 무려 5,604 군데나 수정하여 소위 ‘수정본문’이라는 개악된 본문을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이들이 ‘공인본문’에서 빼거나 변개시키거나추가한 단어들은 무려 9,970 개나 되며 이것은 신약성경 전체 본문에 나오는 140,521 개 단어의 7%를 차지하는 것이다. 웨스트코트는 영국 성공회의주교였으며 호르트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였다.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들은 강신술 등에 심취한 영성주의자들이요, 지옥이나 마귀 등을문자 그대로 믿지 않고 창세기 기록을 신화로 생각한 인본주의자들이었다.1967년도까지 존재한 그리스어 신약성경 사본의수는 모두 5,255 개이다. 이런 사본들에는 81개의파피루스 사본과 267개의 대문자 사본, 2,764개의소문자 사본, 2,143개의 기도문(혹은 교독문) 등이있다. 그런데 현존하는 사본들의 99%가 ‘공인본문’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초대교회로부터 하나님의 교회가 오직 ‘공인본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필사하여 각 지역에서 사용했음을 잘 보여 준다.지금까지 수정된 적이 없는 ‘공인본문’과는 달리1898년에 처음 만들어진 ‘네슬레판’은 1992년까지무려 26번이나 판을 개정하여 평균 3.1 년마다 새로운 판이 개정되어 나왔다. 이 사실은 여러 신학자들이 자기들의 구미에 맞게 성경을 뜯어고치려 했음을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다. 이들이 이 같은 철학을수용한 데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웨스트코트와호르트는 주후 250-350년 사이에 초대 교회에서 지도자들의 회의가 열려 자기들이 선호하는 사본들을모두 없애고 ‘공인본문’을 지지하는 사본들만을 간직하게 되었다는 엉뚱한 이론을 폈는데 현대 성경본문 비평학자들은 바로 이같이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상상 속에서 꾸며 낸 헛된 주장을 액면 그대로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역사적으로전혀 근거가 없으며 날조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로마 카톨릭 주의에 심취되어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같은 영성주의자들의 이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지금은 로마 카톨릭 소수 사본에 근거를 둔, 즉 전체 사본 중 1%에해당하는 사본에 근거를 둔 NIV, NASB 등의 현대역본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 성도들의 마음을 도둑질하고 있다. 역본, 킹제임스 성경 참조.
율법의 말씀들을 담은 작은 양피지 두루마리. 유대인들은 그것을 이마와 왼팔에 착용하였는데 이것은 “그것을 네 손 위의 표적과 네 눈 사이의 기념물로 삼으라.”(출13:9, 16)는말씀을 잘못 해석해서 생긴 결과이다. 이마에 착용하는 것은 표(Frontlets)를 참고하기 바란다. 팔에매는 것 역시 양피지 두루마리였으며 그들은 이것을둘둘 말아 검은색 소가죽 통에 넣고 이런 가죽 성구함을 왼손의 팔이 접히는 부분에 묶어서 착용하였다. 성구함은 그리스말로 보존하는 것을 뜻하며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보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귀들로부터 보존되는 것도 뜻해서 일종의 부적같은 역할도 하였다. 이것은 구약시대 말기에 도입되었으며 우리 주님은 바리새인들이 경건과 지혜의표시로 시장에서 이런 성구함을 차고 다니는 것을책망하셨다(마23:5). 오히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하였다 “내가 주께 죄를 짓지 아니하려고 주의 말씀을내 마음속에 숨겼나이다”(시119:11).
원래 이 말은 성인 즉 거룩한 사람을 뜻하며 하늘이나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혹은친구를 뜻한다(신33:2). 이 말은 구약시대의 경건한유대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었으나(시16:3; 34:9) 대개는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는 말로 사도 바울에 의해사용되었다(롬1:7; 8:27; 12:13; 15:25, 31; 16:2). 다시 말해 성경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성도 즉 성인이라고 부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교회가 부패하기 시작했고 결국 천주교는 스스로 성인들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죽은 자들을 성인으로 만들어 신자들이 그들에게 기도하고 그들의 은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가르치는 가증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인격체. 성령님은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과 본질에서, 능력에서, 존재 면에서 동등하며 아버지나 아들에게서 발출된 열등한 존재가 아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보내진 경우에 한해서 아버지에게서 나와아버지와 아들에 의해 제자들에게 보내어졌다(요14:26; 15:26). 이분은 아버지의 영이며(마10:20; 고전2:11) 또 그리스도의 영이다(갈4:6; 빌1:19).성령님이 하나님의 영향력이나 힘이 아니고 인격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은 성경의 많은 구절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이분은 스스로 행동을 하고 생각하며 감정을 드러내는 인격체이시다. 이분이 인격체가아니라면 기뻐하거나 괴로워하거나 슬퍼할 수 없으며 또 말씀하거나 위로하거나 중보하거나 자신의 선물(은사)들을 나누어 줄 수 없다. 물론 그리스말이나영어에서 이분은 남성을 가리키는 he로 표현되어있다.성령님께서 신성을 지닌 인격체로서 아버지와 아들과 동등하다는 사실은 그분께서 다른 두 분과 함께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으로부터 증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창조의 사역에서(창1:2; 시33:6; 104:30) 그분이 함께 하셨다. 성령님은또한 침례를 주는 방식에서도 다른 두 인격체와 함께 찬송을 받으시며(마28:19) 사도 바울의 축복 기도에서도 다른 두 분과 함께 나타나고(고후13:14)이름을 받으시고(고후3:17) 하나님의 특성들을 행하고 보여 주신다(롬8:14; 고전2:10; 6:19; 히9:14). 물론 그분이 하나님이므로 그분께 기도드릴 수도 있으며(계1:4-5) 그분께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짓는 것이고(행5:3-4; 엡4:30) 그분께 신성 모독을범하면 용서받을 수 없다(마12:31). 성령 모독 죄 참조.성령님의 일은 신성을 띠고 있다. 그분은 옛날부터 성경 기록자들을 감동시켜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을 기록하게 하였고 여러 사람들에게 기적의 선물(은사)들을 나누어 주었다. 교회 시대에 그분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사람들의 마음에 적용시키며 그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요16:8-9) 그리스도에게 속한것들을 보여 주며 조명을 주사 그들을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요3:5; 엡2:1). 성령님은 교회의 위로자이시며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과 함께증언하며 그들을 위해 중보하고 그들을 인도하며 성화시킨다.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이며 따라서 반드시 성령의 증거가 그 안에 있어야 한다.이것은 마치 살아 있는 사과나무가 반드시 사과를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고후13:5). 성령이 있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예수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갈급함: 성령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예수님만을 드러내며 그분을 영화롭게한다(요15:26; 16:14-15; 고전12:3). 그러므로 성령이 있는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적 인물로가장 매력적인 존재가 되며 그래서 그분을 알기 위해 성경을 탐구하려는 열망이 생긴다(요5:39-40).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는 성경 읽기와 탐구 열정을불러일으킨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갈급함; 성령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갈5:22-23). 성령의 열매는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인격이라 할 수 있으므로 성령이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 주변 환경과 자기 자신에대한 태도에 변화를 보인다. 그러므로 역경과 시험이 있을 때에 그 사람의 열매를 보아 성령 충만을짐작해 볼 수 있다. 성령은 결코 우리를 제어하지않으며 다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어할 수 있도록도우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부단히 자기성찰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삶이 매우 필요하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하는 갈급함:성령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되도록 자신을 내어 놓으며 사람들을 섬기려 한다.성령의 선물(은사)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선물은 섬기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어졌다(벧전4:10; 고전12:7). 그러므로 성도의 생활은 선물(은사) 중심이아니라 섬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의 선물이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성령님을 표현하면서 그분께서 외적으로 나타나시는 것을 강조할 때는 theHoly Ghost로, 내적으로 일하시는 것을 강조할 때는 the Spirit으로 구분하여 표기하므로 한글로 번역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서도 the Holy Ghost는성령님으로 the Spirit은 성령으로 구분하여 표기했다. 성령 침례, 성령 충만 참조.성령 모독 죄(Blasphemy against the HolyGhost) 이것은 보통 ‘성령 훼방 죄’로 알려져 있으며은사주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비성경적인 선물(은사)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성경에 없는 것이라고지적하면 그들은 대개 ‘성령 훼방 죄’를 운운하며 진리를 보여 주는 성도들을 저주하려 하지만 실제로성령 모독죄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마12:31-32; 막3:28; 눅12:10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예수님이 이땅에 계시는 동안 그분이 베푸시는 기적들이 마귀들의 통치자 바알세붑의 힘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한 사람들에게 성령 모독죄가 적용되었다. 그러므로 이죄는 땅에 계시던 예수님과 관련된 죄이며 현 시대사람들은 이런 죄를 지을 수 없다. 현 시대에서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할 죄는 하나도 없으며 누구든지무슨 죄라도 고백하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면하나님께서 모두 용서해 주신다. 신성모독 참조.
신자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해서 그리스도의 일을 실행하기 위해 애를 쓰며 육신을 죽이는 상태. 이것은신약성경에 15번 등장한다(눅1:15, 41, 67; 4:1; 행2:4; 4:8, 31; 6:3, 5; 7:55; 9:17; 11:24; 13:9, 52;엡5:18). 이 중에서 14구절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오는데 이런 경우에는 단순히 어떤 개인이나모임이 성령으로 충만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리고 에베소서 말씀에서만 성령 충만이 명령으로 나와 있다. “술 취하지 말라. 거기에는 과도함이 있나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엡5:18). 이 말씀은 충만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 준다. 충만하다는 것은 ‘무엇의 통치하에 있다’ 혹은 ‘무엇에 의해 지배당하다’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진리는 술에 취하는 것(술에 지배당하는 것)과 성령으로 충만한 것(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을 비교한 데서 알 수있다.또 이 말씀은 성령 충만이 언제 일어나는지 말해주고 있다. 여기서 “충만하라.”는 단어는 현재 시제로서 현재 진행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를 다시 쓰자면 “계속 충만하라.”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은 믿는 이들이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시제라고 해서 성령 충만이한 번 이루어지면 영원히 지속되거나 혹은 살면서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성령충만은 유지되어야 하며 잃어버릴 수도 있고 그때는회복할 필요가 있다.이 말씀은 누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다. “성령 충만하라.”는 명령은 모든 믿는 이에게 적용된다. 이 명령은 특정 소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 모두에게 적용된다. 성령충만의 명령은 개인적인 성격을 지닌다. 주님께 순종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도 있지만 주님께 불순종하여 충만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께 순종하고(롬6:13; 12:1) 성령의 권능안에서 걸을 때(갈5:16) 얻을 수 있다.끝으로 성령 침례와 성령 충만의 차이점은 다음과같다. 성령 침례는 단 한 번 일어나지만 성령 충만은여러 번 일어날 수 있다. 성령 침례는 거듭나는 순간에 일어나며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일어난다. 모든 신자는 항상 성령 침례를 받은 상태에 있지만 성령 충만은 믿는 자가 순종하는 때에 이루어진다. 성령 침례는 명령이 아니지만 성령 충만은 명령이다. 성령 침례는 믿는 자의 신분과 관련이있고 성령 충만은 믿는 자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성령 침례는 사람을 그리스도안으로 옮기는 것이고성령 충만은 사람의 행동을 그리스도와 같이 만드는것이다. 성령님, 성령 침례, 침례 참조.
성령님이 신자 속에 들어와 거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 성령 침례와 성령 충만이 같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이 둘은 매우 다르다. 성령 침례에대한 구절은 신약에서 11번 나온다(마3:11; 막1:8;눅3:16; 요1:33; 행1:5; 11:16; 롬6:1-7; 고전12:13;갈3:26-28; 엡4:5; 골2:12). 이 중 다섯 번은 성령 침례를 미래 시제로 다루고 있는데 이는 성령 침례가당시에는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한편 과거 시제도 있는데(행11:16) 이것은 오순절을 되돌아보며 하나님께서 그 날 이루신 성령침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나머지 다섯 번은 서신서에 있으며 모두 성령 침례의 본질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신약성경 구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I. 침례는 ‘담그다’는 뜻을 가지며 ‘하나의 사물을다른 데로 옮겨놓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성령 침례는 이런 일이 영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 침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일어난다. 첫째,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를 성령님 안으로 푹 잠기게하신다. 여기서도 침례라는 단어가 쓰이며 이는 곧그를 성령님의 세계로 옮김을 의미한다. 둘째, 성령님께서 믿는 자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푹 잠기게 하신다. 이것은 곧 그를 그분의 교회라는 세계로 옮긴다는 말이다(요1:33; 고전12:13).II. 성경은 성령 침례가 성도가 처음 구원받았을때 일어나는 경험의 일부라고 가르친다. 성령 침례는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고 거듭날 때 일어난다. 따라서 성령 침례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필수불가결의 관계에 있는데(갈3) 그것은 곧 성도가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아들이고 침례를 받았으며 그리스도에 속한 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이다.III.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령 침례를 받았다고 가르친다. 성령 침례가 구원받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당연히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 침례를받은 것이다. 성경도 성도들이 다 한 성령을 통해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다고 말한다(고전12:13). 즉 어떤 사람이 구원받았다면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았다는 것을 말하기에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지 못한 자는 구원받지 못한 자이다.따라서 성령 침례를 받지 못한 신자는 있을 수 없다.IV. 성경에는 성령 침례를 추구하라는 명령이 없고 심지어 그 같은 것에 대한 암시조차도 발견할 수없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이미 성령 침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성령 침례가 구원받는 순간 이루어지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지고있는 가장 복된 소유이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굳이이것을 따로 추구할 필요가 없다. 성령님, 성령 충만참조.
이것은 보통장막을 가리키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가 세운 특별 장막을 뜻한다. 이곳은 성전이세워지기 전에 히브리 사람들이 하나님께 경배하던곳이었으며 이와 관련된 하나님의 지시 사항과 이것을 수행한 내용은 출25:1-40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보통 회중의 성막 혹은 증언의 성막이라 불렸다.성막 선도 참조(56).성막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는 각각 30, 10, 10큐빗이었고(출26:15-30; 36:20-30) 입구는 네 종류의덮개로 덮인 채 동쪽에 있었다. 성막은 두 부분으로나뉘어서 동쪽의 삼분의 이는 성소 그리고 서쪽의삼분의 일은 지성소로 쓰였는데 이 두 곳에는 창문이 없었으므로 성소에서 섬기려면 등잔불이 있어야했다. 성막의 뜰에는 번제 헌물 제단과 물두멍이 있었고 제단은 뜰의 문과 성막의 문 사이에 있었으며(출40:6, 29) 물두멍은 번제 헌물 제단과 성막의 문사이에 있었다(출38:8). 바로 이 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헌물과 기도를 드렸다.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성소에는(히9:6) 향 제단과 진열하는 빵을 두는 상과 금 등잔대가 있었다.향 제단은 성소의 중앙에 휘장 앞에 있었으며(출30:6-10; 40:26-27) 여기에서 아침저녁으로 향을 태웠다. 제사장의 오른편 즉 북쪽에는 보여 주는 빵이있었고(출26:35; 40:22-23) 남쪽에는 금 등잔대가있었다(출25:31-39). 대제사장만 1년에 한 차례 들어가는 지성소에는 그룹들과 긍휼의 자리로 덮인 언약궤가 있었다(히9:7).성막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를 떠난 뒤 둘째해 첫째 달 첫째 날에 세워졌고(출40:17) 이스라엘자손이 광야에서 움직여야 했으므로 분해해서 쉽게조립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성막의 이동에 따라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함께 옮겨 다녔으므로 이스라엘자손이 움직인 횟수만큼 성막도 레위 사람들에 의해옮겨졌고(민4:1-49) 그들이 진을 친 곳에 다시 조립되어 세워졌다.가나안 정복 때에 성막은 길갈에 있었으며(수4:19; 10:43) 정복이 끝난 후에 여러 해 동안 실로에있었다(수18:1; 삼상1:3). 삼하6:17과 대상15:1은 다윗이 기럇여아림에 오래 머물다가 오벳에돔의 집에머물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들여오려고 한 장소를정하고 거기에 성막을 세웠다고 말한다(대상13:6,14; 참조 삼하6:11-12). 한편 대상21:29는 모세의 성막이 그 당시에 기브온에 있었다고 말하므로 언약궤와 성막은 이미 오랫동안 따로 있었을지도 모른다.솔로몬의 때에도 성막은 여전히 기브온에 있었으며(대하1:3, 13) 아마도 이것이 성막에 대한 마지막 언급일 것이다. 왜냐하면 성전 안으로 궤와 함께 들어온 성막은(대하5:5) 오랫동안 시온에서 궤를 보관해온 장막이었기 때문이다(대하1:4; 5:2).
고대에 도시나 성채의 성벽을 부수기 위해 사용된 장치로서공성퇴라 불리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100명 이상이 공성퇴의 탑 밑에서 일하고 활 쏘는 자들이 탑의위에서 성 안의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하였다(겔4:2;21:22).
거룩히 구별하다, 성화 참조.
하나님께 구분된 거룩한 장소. 성소는 종종 성전 전체를 가리키기도 하며(시73:17; 히9:1) 향 제단과 금 등잔대와 보여 주는 빵을 둔 성소(Holy place)를 가리키기도 하고(대하26:18; 히9:2) 어떤 때는 성전의 가장 거룩한 곳 즉언약궤가 있고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속죄일에 들어가는 지성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성소는 광야에서 세운 성막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리키기도하였다(레4:6). 성막과 성전 참조. 땅의 성전 혹은 성소는 하늘의 것의 상징이며(시102:19; 히9:1, 24) 도피하는 사람이 성전을 피난처로 삼을 때에는 하나님이 성소라 불리기도 한다(사8:14; 겔11:16).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의 추격을 받는 죄인이 안전하게숨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그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거룩히구별된 곳으로 그분께만 경배 드리는 건물. 이곳은말 그대로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곳인데 우상이 있는이교도들의 신전과는 달리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지성소에서 그룹들 사이에 거하신다. 다윗은 자신이주님을 위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을 것을 요청하였으나 하나님은 나단 대언자를 통해 그가 아니라 그의 아들 솔로몬이 그것을 지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고이에 다윗은 자기 아들 솔로몬을 위해 많은 물자를예비하였다. 성전을 세울 장소는 아브라함이 이삭을바치려 했던 모리아 산이었다(창22:2, 14; 대하3:1).성전의 모델은 성막과 거의 비슷하며 단지 외형만커졌고 그 안의 기구들도 거의 비슷하다. 성전을 짓는 데 7년 6개월이 걸렸으며 봉헌식을 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대하5:1-14; 6:1-42; 7:1-22).성전 자체는 주랑과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되어 그리크지 않았으며 주변의 뜰과 방이 있는 지역이 넓었다. 성경에서 성전이라는 말은 지성소가 있는 건물만을 뜻하지 않고 종종 뜰을 포함한 전체 성전 구역을 의미한다. 솔로몬의 성전 선도 참조(57).성전의 크기에 대해서는 열왕기상 6장과 역대기하 3-4장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솔로몬의 성전은처음 33년 동안만 아름다움을 유지하였고 이집트의시삭 왕이 이곳을 약탈한 뒤부터(왕상14:25-26; 대하12:9) 하사엘, 디글랏빌레셀, 산헤립 등이 더럽혔고(왕하12:1-21; 16:1-20; 18:1-37) 마침내 바빌론의느부갓네살 왕이 완전히 파괴시켰다. 그래서 첫 성전은 424년 3개월 8일 만에 땅에서 사라졌고 그 뒤52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페르시아 왕고레스의 은혜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스룹바벨과유대인들이 두 번째 성전의 기초를 놓았고(스1:1-4;2:1; 3:8-10) 그 뒤 이방인들의 많은 방해를 받으면서 성전 공사가 진행되어 21년이 지난 뒤 완공되었다(스6:15-16). 이 성전의 크기는 이전 것과 같았으나 겉모습은 이전 것보다 떨어져서 처음 성전을 본사람들은 초라한 모습의 새 성전을 보고 슬퍼하였다(학2:3). 하지만 주님은 이 집의 영광이 처음 것보다크리라고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학2:9). 이 성전에는 언약궤, 긍휼의 자리, 눈에 보이는 영광, 제단의거룩한 불, 우림과 둠밈, 대언의 영 등이 없었다. 주전 168년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대제는 매일 드리는 성전 희생 제사를 금하고 제단에 돼지 피를 드림으로써 이 성전을 더럽혔고 근 3년 동안 주님을경배하지 못하게 하였으나 유다 마카비는 주전 165년에 다시 경배를 부활시키고 성전을 새롭게 봉헌하였다.헤롯은 자신의 통치 제1년인 주전 37년에 두 명을빼고 산헤드린의 모든 회원을 죽였으며 이것을 속죄하기 위해 성전을 재건하고 미화하기로 하였다. 그는 2년 동안 자재를 모은 뒤 스룹바벨의 성전을 허물고 46년에 걸쳐 다시 지었다. 이렇게 완공된 성전에 주님이 들어가셨으므로 학2:9; 말3:1의 예언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헤롯의 성전은 대리석으로건축되어 빼어난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자랑하였다(막13:1; 눅21:5). 그러나 그 당시 온 세상에서 가장아름다운 건물로 여겨지던 성전은 우리 주님의 예언대로 주후 70년에 로마 사람들에 의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막13:2). 헤롯의 성전 선도 참조(57).왕들의 시대에는 레위 사람들이 항상 성전을 지켰다(대상26:1-32; 대하23:19). 로마의 통치 때에는 성전과 붙은 안토니아의 성채 안에 로마 사람들의 수비대가 있었다(요18:12; 행4:1; 5:26; 21:31-40).경건한 유대인들은 언제나 성전을 향해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성전을 사랑하였다(시84:1-12).그런데 어떤 이들은 헛된 열심에 빠져 위선과 우상숭배로 성전을 자랑하였으며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이 성전을 향해 신성모독죄를 범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마26:61; 27:40;요2:19-20; 행6:13; 21:27-30).한편 신약시대의 성전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신자의 몸이며(고전3:16-17; 6:19; 고후6:16) 신약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장소는 결코 성전이 아니다. 교회가 의식화되어 천주교처럼 변하면서 목사가 제사장(사제)처럼 행세하고 예배당이 성전이 되는 구약 체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비성경적이며우리 주님이 미워하시는 일이다. 니골라당 참조.
사람의 마음을 이루는 성질과 마음씨(약5:17).
이 단어의 일반적인 뜻은너무 명백하다. 그런데 이 단어는 특별히 주님의 예언과 약속이 정확한 때에 정확한 장소에서 이루어질때 쓰였다(수23:14; 마2:17; 8:17; 12:17). 신약성경에는 이런 일이 많았고 그래서 사람들의 목적이 다르고 그들이 그 일을 수행하면서 무슨 일을 하는지모르지만 결국 그것이 하나님의 예언을 성취하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요19:24, 28, 36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시킨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뜻을 성취하는 줄 몰랐다. 또한 “이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라는 표현은 이 말이 적용된 일이 원래의 예언 구절을 직접적으로 혹은 부가적으로 성취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호세아 대언자의 말씀 즉“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호11:1)는말씀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불러낸 것을 뜻하지만 부가적으로 마태는 마2:15에서이집트에 내려간 예수님에게 그것을 적용하면서 “이것을 성취하려 함이더라.”라는 표현으로 기술하고있다. 이런 구절은 성경에 여럿 있다(시109:8; 사6:9; 61:1-3; 마13:14; 눅4:18-21; 행1:16, 20).
구원받은 성도는 즉시 칭의를 얻으며 이때부터 죽을 때까지 성화의 과정이시작되는데 성화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우선 성화는 구원받은 사람에게 이미 완성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그의 신분이 그리스도의 신분과같기 때문이다(히3:1; 10:10-14; 고전1:30). 믿는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 구별된 것처럼 구별된 자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죄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그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는 신분적으로 완전하지만 매일의 삶에서 부딪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은혜 안에서 자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는점진적인 성화의 과정도 존재하며 그 결과 신자는점차로 자신의 더러운 본성에서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의 왕좌 앞에서 점도 없이 큰 기쁨과 함께 서게된다. 이러한 점진적 성화는 죄를 고백함으로 모든죄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자유로운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서 이루어진다(요14:26; 17:17; 고후3:18; 7:1; 엡4:24; 살전4:3-4; 5:23; 살후2:13; 히12:10; 벧전1:2; 요일1:7-9).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을 대적하지말고 하나님이 거룩한 것처럼 거룩하기 위해 애를써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자녀는 부활한 이후에 그의 상태마저 완전히 성화될 것이다. 즉 현재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신분에서뿐 아니라 실제 삶 자체가 완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거룩함, 성별, 분리 참조.
세겔은 원래 무게였으며 금이나 은을 다는 데 사용하였다. “아브라함이 상인들이 널리 쓰는 돈으로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니라”(창23:16). 이런 경우에 히브리말에서 세겔은 생략되곤 하였으며(창20:16; 37:28) 영어에서는 piece라는 말을 첨가하고 이탤릭체로 표시하였다. 거룩한 세겔(출30:13)과 왕의 무게에 따른 세겔(삼하14:26)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보인다. 세겔이라는 명칭을 가진 동전은 바빌론 포로 생활 이후에 마카비 시대에 나왔으며 아마도 마26:15에 나오는 은전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I. 가나안 족속으로 세겜 마을의 통치자. 그는 야곱의 딸 디나를 유인하여 욕을 보였으며 후에 디나의 오라비 레위와 시므온 등에 의해 자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창34:1-31).II.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 놓인 가나안의 중부 도시.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5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곳은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처음 나오는데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 여기에서 처음으로 제단을 세우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지역을 소유하게 되었다(창12:6; 33:18-19; 35:4).야곱은 이 근처에 밭을 사서 자기 아들 요셉에게 주었고 요셉은 거기에 묻혔다(창48:22; 수24:32). 가나안 정복 이후에 이곳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배정되어레위 사람들의 도시로 도피 도시가 되었고 지파들이모이는 장소가 되었다(수20:7; 21:21; 24:1, 25; 삿9:1-57). 르호보암은 여기에서 열 지파가 반역하는기회를 주었다(왕상12:1-33). 이 근처에는 야곱의우물이 있었으며 바로 거기에서 우리 주님은 사마리아의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다(요4:5; 참조 행8:25;9:31; 15:3).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를 멸망시킨 뒤에세겜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수도가 되었다. 사마리아사람 참조. 세겜의 골짜기는 에발 산과 그리심 산사이에서 북서쪽으로 몇 킬로미터 나아가며 너비는500미터 정도 된다. 그러므로 이 두 산은 서로를 향해 메아리를 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실제로 그런일이 발생하였다(신27:11-14; 삿9:7).
놋과 은 등으로 물건을 만드는 사람(창4:22). 세공업자 혹은 대장장이는 문명 발전에 필수적이며 특별히 전쟁을 할 때에는 그들의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였다(삿5:8; 삼상13:19-22; 왕하24:14). 한편 신약에는 은과 구리 세공업자가 나온다(행19:24; 딤후4:14).
데살로니가의 제자. 그는 바울의 여행에서 함께 하였다(행20:4).
바울의 친구로 경건한 율법사. 바울은 말년에 니코폴리스에서디도에게 글을 쓰면서 그와 아볼로를 부지런히 도와여행하게 하라고 했다(딛3:13).
이 말은 보통 자손, 혈통 등의 뜻을 가질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역사 혹은 계보 등을 뜻하기도 한다. 창5:1의 ‘아담의세대들에 대한 책’은 아담의 창조와 그의 후손의 역사에 대한 책이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창2:4의 ‘하늘들과 땅의 세대들’은 하늘들과 땅의 창조 역사를말한다. 또한 마1:1의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대한책’은 그리스도의 계보와 그에게서 난 후손과 그분의 삶의 역사에 대한 책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구약은 첫 사람 아담의 세대에 대한 책이고 신약은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의 세대 즉 그분 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에 대한 책이다.“한 씨가 그분을 섬기리니 주께서 그것을 한 세대로 여기시리라. 그들이 와서 앞으로 태어날 한 백성에게 그분의 의를 밝히 드러내되 그분께서 이것을행하셨음을 드러내리로다”(시22:30-31). 예수님께서행하신 일을 널리 알리는 씨는 곧 그분을 믿는 사람들이며 성경은 주님께서 그 씨를 단 한 세대로 여긴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세대’란 그리스도로 인해 태어난 자들을 가리키며 그리스도 안에서는모두 형제이고 손자, 증손자 등이 없으므로 당연히다 한 세대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가 다 선정된세대라고 말한다(벧전2:9). 시14:5; 24:6; 73:15;78:6, 8; 102:18; 112:2; 사53:8; 렘7:29; 마23:36;24:34; 막13:30; 눅21:32; 행8:33 등의 세대도 거의같은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현 세대’는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을 뜻하며“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것이 성취되리라.”(마24:34)는 말씀은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는사람들이 다 죽기 전에 모든 일이 성취됨을 뜻한다.“이 패역한 세대로부터 너희 자신을 구원하라.”(행2:40)는 말씀은 패역한 사람들을 향한 진노로부터피하라는 뜻이다. 세대가 얼마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며 그것을 정확히 구분 짓는 것은 매우 힘들다.
아셀의 딸. 그녀는 이집트로 내려간 사람들의 명단에 세 번 등장한다(창46:17; 민26:46; 대상7:30).
I. 르우엘의 아들,에서의 손자(창36:13, 17).II. 유다와 다말의 아들(창38:30; 마1:3).III. 시므온의 아들, 세라 족속의 창시자(민26:13).그는 창46:10에서 소할로 언급되었다.IV. 아사 왕 시대에 큰 군대를 이끌고 유다를 침공한 이디오피아 왕(대하14:9-13).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자마자 레겜멜렉과 다른 이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장들에게 금식을 해야 하는가를 물어 본 사람(슥7:2).
하만의 아내. 그녀는 하만처럼거만하였으며 그 결과 하나님의 종 모르드개를 달려고 준비한 교수대에 자기 남편과 열 아들이 달려 죽는 것을 보아야 했다(에5:10-14; 6:13; 7:10; 9:13).
사해의 남동부로 들어가는시내나 그 시내가 있던 골짜기(민21:12; 신2:13-14).이곳은 모압의 남쪽 경계로 사렛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출애굽 참조.
침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