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햇볕같은이야기
11.20 21:12
공공성
호세아 1:1~11
주님, 오늘 호세아서를 읽으며 예언자의 날 선 마음을 대합니다. 글자와 행간에 담긴 주님의 뜨거운 마음을 헤아립니다. 정치나 교육이나 경제나 교육은 인간의 공적 영역입니다. 교회조차도 이 범주에 해당합니다. 공공성이란 일반 사회 전체에 미치는 이해관계의 공평성을 말합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있다 보니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부자와 힘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약한 사람도 함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욕망을 절제하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자세가 필수입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악이란, 사적 이익을 공적 영역에서 이루려는 무모한 생각과 실천입니다. 타락한 죄인에게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죄는 악을 부르고 악은 멸망에 이릅니다. 악이 보편화되면 악행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사회적 타락이란 그렇습니다. 나쁜 일을 몰래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악이 보편화되면 악행을 백주에 드러내어 행하며 자랑까지 합니다. 악행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을 비난하며 능멸합니다. 불의하고 힘을 가진 자는 이런 세상이 좋지만 가난하고 약한 자는 이런 세상이 지옥입니다.
주님, 공공의 영역에서 사적 이익을 탐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공공성을 자기 욕망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이 횡행합니다. 의대와 법대에 학생에 몰리는 이유가 이를 증명합니다. 정치인은 힘의 공공성을 잃고, 공직자는 권력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판관은 사법 정의를 팽개치고 있습니다. 종교도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마저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보수화되었습니다. 진리를 보수하지 않고 권익을 보수하려는 교회는 진리를 품은 교회도 아니고 살아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아라!”(1:2)는 주님의 명령이 가혹하고 슬픕니다.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는 이름을 가진 예언자가 자기 삶의 불행과 희생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그 메시지가 처절합니다.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을 봅니다. 그 방법이 아니고서는 구원의 해법이 없다는 주님의 십자가 마음을 읽습니다. 선이 보편화되는 세상, 하나님의 나라를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