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를 내려 주십시오
햇볕같은이야기
10.24 21:28
저주를 내려 주십시오
예레미야 애가 3:55~66
소설가 한강 선생이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목말라하던 노벨문학상이 마침내 우리 문학계에 허락되었다는 사실이 반갑고 고맙습니다. 한강의 소설에는 4.3과 5.18 등 우리 근대사에서 슬프고 음습한 배경이 스며있습니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함부로 말할 수 없었던 일들을 작가는 섬세한 시선으로 풀어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란 역사가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푸는 사람이며, 분한 이들의 여린 마음을 헤아리는 사제이고, 억울한 이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 재판관 같은 존재입니다. 사실, 혹은 허구라 하더라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풀어내는 이야기에는 진실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거짓과 위선과 왜곡이 일상화된 세상이지만 적어도 문학 작품에서만큼은 억울한 이들의 눈물이 씻어져야 하고 굽었던 정의가 어떤 식으로든 언급되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억울한 일이 많습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들과 수학여행 가는 배를 탔다가 참변을 당한 세월호 학생들과 이태원에 놀러 갔다가 압사를 당한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탐욕으로 희생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책임있는 이들을 통하여 진정 어린 사과의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숨져간 팔레스타인의 어린아이들과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참사 앞에서 힘없는 이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슬퍼도 눈물 흘릴 수 없고, 아파도 아파할 수 없고, 분해도 분노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주나요? 이런 이들의 억울함은 누가 풀어주나요?
“주님, 주님께서 내가 당한 억울한 일을 보셨으니, 내게 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3:59) “내 원수들이 온종일 나를 헐뜯고 모함합니다. 그들은 앉으나 서나, 늘 나를 비난합니다. 주님, 그들이 저지른 일을 그대로 갚아 주십시오. 그들의 마음을 돌같이 하시고, 저주를 내려 주십시오.”(3:62~65) 삶을 체념하던 시인이 비로소 입을 엽니다. 주님은 억울한 자의 변호자이시며 공정한 재판관이십니다. 주님만이 유일한 희망이십니다.
주님, 지금도 피해자를 조롱하고 가해자의 편에 선 악한 이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행한대로 갚아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