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보기)가인이 동생을 죽이고 받은 표가 무엇인가?(외)
◆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자를 껍데기로만 보고 맨날 남편을 갈아치우는 못된 여자라고만 본다면 이건 성경을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 보는 거고, 이렇게 되면 계시적 깨달음이 없어져 버린다. 그리고 이런 여자라는 것만 알려주기 위함이라면 예수님은 그 여자가 있는 곳에 가시지도 않는다. 알고 보면 이 여자도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라고 하는 걸 볼 때 야곱의 후손이다.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혈통과 의식과 제도는 알았지만 구원을 몰랐다.
우리가 영의 눈으로 보면 이 사마리아 여자는 참 남편을, 즉 참을 찾기 위해 몸부림을 치다가 우물가에서 참 남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거다. 예수님께서 이 여자에게 ‘네 남편을 데리고 오라’ 라고 하니까 ‘나는 남편이 없다’ 라고 했고, 예수님께서 ‘네가 남편이 없다고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라고 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생각과 이 여자의 생각이 점점 맞아 들어가는 거다.
이것을 이 여자가 지금까지 돈 서방을 자기 남편으로 여기고 기대며 살았지만 예수님을 만나서 말씀을 듣고 구원을 얻어서 천국에 가게 되었다고 하는 기본구원으로 말을 하면 안 된다. 이렇게만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라고 하신 말씀의 의도성이 없어져 버린다.
역사적으로 올라가서 보면 북조 이스라엘에 속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은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섬기고 있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앗수르 군대에게 망해서 앗수르 왕이 이곳의 남자들은 앗수르로 잡아갔고 대신 외국남자들을 사마리아에 풀어놓으니 이때부터 혼혈족인 사마리아족이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남조유다에서는 이들을 정조 없는 개처럼 취급을 했다.
그래서 본문의 여자도 세상과 혼합된 우상을 섬기는 신앙정신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바른 구원을 모른 채 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바른 구원을 알게 하려고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라고 말씀을 하셨다. 실지로 예수님께서 야곱의 후손 유다의 계통으로 오셨다.
이 여자는 예수님과 대화를 하면서 참 예배가 뭔지 알게 되었으니, 예수님께서는 참 신랑을 애타게 찾는 성도를 찾아오셔서 당신을 참으로 만나는 신앙을 회복시켜 주신 거다.
◆ 창4:에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후에 두려움에 쌓여서 하나님께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라고 하니까 여호와께서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어서 죽임을 면케 했다고 하는데, 이 표가 뭘까? 얼굴이나 몸에 어떤 표식을 한 건가, 아니면 얼굴을 흉악하게 변하게 한 건가, 아니면 가인을 보면 무언가 두려움이 들게 한 건가? 이 표가 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이 표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 표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모를지라도 이 표가 가인과 그 당시의 사람들과 우리들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려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이 표를 받은 가인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다른 사람의 손에 죽지 않게 하신 것은 회개의 기회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에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그러나 가인이 회개를 했다는 내용을 볼 수가 없으니 하나님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은 시기심 때문인데,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이 놈이 동생을 죽인 나쁜 놈이다’ 라고 하며 떼로 몰려와서 가인을 죽이려고 할 거다. 그러나 가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표는 구원 받은 표가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는 표이기 때문에 가인을 만나는 사람은 가인이 가진 표를 보고, 또한 가인을 죽이면 벌을 칠 배나 받기 때문에 죽일 수가 없는 거다.
당연히 동생을 죽인 가인이 나쁘지만 그러나 가인도 하나님의 자녀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말을 하면 깡패들의 세계에서 가장 강한 두목 밑에 있는 부하 혼자서 시장 통에 나갔다가 그 시장에서 건달노릇을 하는 자들을 만나더라도 시장 통의 건달들이 가장 강한 깡패두목 때문에 두목의 부하를 함부로 못 건드린다. 그런 것처럼 가인이 비록 동생을 죽인 죄인이지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함부로 죽이지 못하게 하신 면도 있는 거다.
또한 가인이 아벨을 시기심으로 죽였는데, 가인이 동생을 죽인 근본 원인은 선악과를 먹은 기준으로 살았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동생을 죽인 나쁜 놈이라고 하면서 가인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있다면 이들은 무슨 기준으로 가인을 나쁘다고 하며 죽이려고 하는 거냐? 역시 가인처럼 선악과를 먹은 기준을 가지고 죽이려고 하는 거다.
그러니까 가인을 죽이지 못하게 한 것은 가인을 심판하려는 자들 역시 가인과 같은 죄인이니 가인을 심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다. 자신을 돌아보라는 거다. 심판은 하나님의 몫이다. 이걸 돌려서 말을 하면 어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짓더라도 그도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하라는 거다.
동생을 죽인 가인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가지고 있는 법의 기준이 어디서 나온 거냐? 이들도 아담의 후손들이요, 선악과 따먹고 타락된 지식으로 사는 자들이니 이들의 기준 역시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선악과 따먹은 기준이다. 보암직 먹음직 탐스러워 보이는 세상 것을 취하려고 하는 정신이다. 그러니까 이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미워하고 죽이면 벌이 칠 배가 더 많다는 거다. 다른 말로 하면 너를 깨닫게 하기 위해 가인을 살려둔 것이니 가인을 만나면 죽일 생각을 하지 말고 깨달으라는 거다. 가인을 죽일 놈이라고만 하지 말고 가인이 왜 저렇게 되었는지를 깨달으라는 거다. 자기가 깨닫지 못하면 남을 죽이는 것과 똑같은 결과가 된다.
그리고 가인이 아벨을 죽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시기 질투 때문이지만 그 이전에 가인은 아벨과 달리 제사, 즉 예배의 정신적 태도가 잘못된 게 원인이 되어서 사람을 죽이는 데까지 나가게 된 거다. 한 마디로 예배의 태도가 잘못되니 저주의 사람이 되는구나. 그러니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졸거나 잠을 자도 되지만 예배는 그런 게 아니다. 설교가 진리이치의 교훈이 아니라면 벌떡 일어나서 집에 가도 되겠지만 옳은 이치의 말씀이라면 겸손히 듣고 네 것으로 만들어라. 그렇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저주다.
◆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욕을 한 게 있는데, 그래서 예수님이 나쁜 분이냐? 인간을 만드신 분이 욕을 한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 거다. 모든 성경은 우리에게 주는 구원도리와 이치가 들어 있다. 그러니까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욕을 하는 거지만 ‘내가 그 소리를 들을 사람으로 살았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권고요 권면이요 책망의 교훈으로 받아야 한다. 잘못한 자기의 입장에서 교훈으로 받아들이고 ‘말씀대로 바로 살아야지’ 라고 해야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어떤 사람이 말한 것을 어느 한 부분만 잘라서 들으면 나쁜 말이지만 앞뒤의 말과 함께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 그 과정을 보면 나를 위해주는 말일 수도 있는데, 이걸 헤아리지 않고 한 면만 보고 싸우려 들고 원수를 맺게 되면 결국은 나만 손해다. 그리고 상대의 말로 인해 나의 마음이 상하고 싸우는 일도 있는데, 상대가 언짢은 말을 할 때 싸우려고 하기 전에 상대가 평소에 나에 대한 언행심사가 어떠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나를 깎아내리려는 건지, 나를 위하는 건지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당장 나에게 안 좋게 들리는 말이나 안 좋게 보이는 행동을 할 때 이에 대해 안 좋은 쪽으로 넘겨 치기로 생각하는 것은 마귀 짓이다. 예수 믿으면서 마귀 짓을 하면 못 쓴다. 이러면 은혜를 못 받는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 생각의 기준을 가지고 넘겨 치기로 생각하지 말아라.
믿는 사람이 처음에는 잘 했는데 나중에 잘못해서 징계를 받았다면 이 사람이 잘 할 때도 잘못하는 속성이 있었던 거냐? 즉 나중에 잘못하면 앞에서 잘 한 것은 다 없어진 거냐? 바꿔서 처음에는 잘못했는데 나중에 깨달아서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다면 이 사람이 처음에 잘못할 때도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요소가 들어 있었던 거냐? 더 늘려서 생각을 하면 이 세상에 살면서 처음에는 잘못했지만 나중에 잘 해서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듣더라도 처음에 잘못한 게 있기 때문에 ‘너는 나쁜 놈이다’ 라는 판정을 받게 되느냐? 지금 뭘 말을 하려고 이런 예를 드는 건지 아느냐?
솔로몬 왕을 보면 처음에는 잘 했지만 나중에 하나님 앞에 범죄가 되어서 나라가 두 쪽이 났는데, 이걸 성경으로 기록을 해서 나에게 준 이유가 뭐냐? 나도 그렇게 하라는 거냐, 하지 말라는 거냐, 아니면 나와 관계없이 그냥 읽으라는 거냐? 나는 이걸 읽으면서 ‘솔로몬 왕이 처음에 잘 한 것처럼 끝까지 잘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교훈을 얻고 나는 끝까지 잘 해야 한다. 또한 이룰구원 면으로 보면 ‘처음에 잘 한 것처럼 끝까지 잘 했다면 이룰구원을 이룬 양이 얼마나 많을까?’ 하고 깨달아야 한다.
믿는 자기가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어서 이룰구원의 교훈을 받으면서 잘 자랐다면 지금쯤 신앙실력이 얼마나 높이 올랐을까? 아마 영능의 실력자가 되어서 세계를 누빌 거다. 아닌 말로 ‘세상 복 복’ 하며 이질적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도 세계 각지에서 비행기 값을 주면서까지 모시지 않느냐? 이걸 나쁘다고만 보지 말고 신앙의 이치 면에서 이룰구원적으로 깨달아라.
성경에서 이치를 바로 깨닫고 바로 만들어지면 이것이 자기의 존귀영광이 된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고, 소망을 주고, 우리의 포부를 천국까지 넓혀준다. 이 마지막 시대에 진리에 대해 포부를 가져라. 이치 깨달음의 확장성을 스스로 쪼그라뜨리지 말아라. 하나님은 이 면을 놓고 이렇게 저렇게 자연은총으로 역사를 하신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