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을 밝혀 옳은 길을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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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0 18:36
영혼의 양식 91-03호 1991.01.20.
성서일과 ; 살상3:1-20, 고전6:12-20, 요1:35-42.
제목 ; 마음의 눈을 밝혀 옳은 길을 가라
전쟁이 드디어 일어났습니다. 지난 10일 오전 9시, 미공군기의 폭격으로 시작된 걸프 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걱정과 두려움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같은 날 11시에,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연설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지켜볼 수가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말하기를, “저 눈 좀 보세요. 얼마나 많이 걱정과 고민을 했으면, 눈이 저토록 쑥 들어갔을까요?” 하고, 부시 대통령을 동정하는 투로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미국 대통령은 세계에서 제일 강한 권력을 가진 것만큼 고통도 또한 비례해서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고, 신문칼럼은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월남전 파병을 결정한 존슨 대통령은, 결정에 앞서 여러 날을 두고 망설였으며 끝내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부시 대통령도 말할 수 없는 고민과 고통을 겪으면서 괴로워하고 있을 것입니다.
세계적 망나니로 소문난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이 세계평화 무드를 깨뜨리고 미국에 겁도 없이 대드는 것 같아서 한편 우습기도 하지만, 미국의 부시대통령에게는 후세인의 철없는 짓이 큰 두통거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 대 때려주자니 서로 입는 피해가 엄청나겠고, 그냥 내버려두자니 점점 기세를 올리는 후세인의 모습이 더 큰 일을 저지를 것 같아 염려스러웠을 것입니다. 달래도 보고 얼러도 보았지만 후세인은 요지부동 더 방자하게 나오는 모습을 우리는 같이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매를 들었습니다. 망나니를 길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대단한 아픔을 각오하고 버릇을 고쳐주기 위하여 평화의 매를 든 것입니다. 세계의 질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던 후세인, 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여러 경로로 경고도 하고 타일르는 소리를 귀담아 듣지도 아니하고 고집을 피운 후세인, 이번에 단단히 혼줄이 날 것입니다. 이번에 망나니 후세인을 혼내주지 않으면 세계를 다 망가뜨리려 할 것이기 때문에, 단단히 응징해 둘 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구약성경의 말씀은 자식의 버릇을 고쳐주지 못하여 집안 전체가 망하고 만 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엘리” 라고 하는 목사의 가정 이야기입니다.
엘리 목사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드입니다. 이들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도 버릇없이 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까지 서슴없이 행했습니다. 개역성경에서는 그들을 불량자라 했고, 공동번역성경에서는 망나니라 번역했습니다. 엘리 목사는 늙어서 얻은 자식들인지라, 귀엽게 키우다보니 자녀들을 잘못 키운 것입니다. 소문이 사방에 났습니다. 엘리 목사의 아들들이 온갖 못된 짓을 할 뿐만 아니라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있다는 나쁜 소식을 엘리 목사도 듣게 되었습니다. 엘리 목사는 아들들을 불러다 놓고 꾸짖었습니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느냐? 일반성도라도 술담배 먹고 다니면 손가락질 받는 법인데, 그래 목사의 아들이 되어가지고 주초에다가 계집질을 하고 다닌단 말이냐?”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때가 늦었던 것입니다. 일찌감치 매를 들어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었어야 했을 텐데, 귀여운 생각에 “커지면 나아지겠지!” 하고 방심을 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하고 만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하고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니, (삼상3:2) 에, “엘리는 이미 눈이 어두워 앞을 잘 보지 못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들들이 그렇게 된 것은, 아버지인 엘리 목사에게 큰 원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보다는 자식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눈이 어두워져, 어떻게 해야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길인가를 바로 판단하지 못하고 버릇없이 자라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그처럼 큰 화를 불러들이게 된 것입니다.
엘리 목사는 눈만 어두웠던 것이 아니라, 귀도 어두웠던 것 같습니다. 사무엘이 듣고 있던 하나님의 음성을 엘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만 살짝 찾아가셔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엘리가 듣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웬만하면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듣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엘리는 목사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만약 자식이라도 잘 가르쳐 놓았더라면 그 아들들이 아버지를 잘 보좌하여 실수가 없도록 잘 도와주었을 텐데, 그만 자식들을 제대로 가르쳐 놓지 못한 까닭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후세인처럼, 뻔한 결과를 내다보면서 자존심이라는 큰 눈꼽이 끼어서 불행의 길을 스스로 택해서 가고 있는 분은 없으신지요? 내가 이 길을 가면, 나 자신을 망칠 뿐만 아니라 내 가족을 불행하게 하고 많은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는 줄 알면서도, 굳이 타락의 길로 걸어가고 있는 분은 아니 계신지요? 또는 엘리 목사처럼, 물질이나 자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옳은 판단을 하지 못하여, 성도의 길을 바로 가지 못하고 그 사명을 망각하고 있다가, 불행을 불러 들이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아무렴요!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복된 분들이어서, 그 같이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아무쪼록 여러 성도님들은 몸과 마음 모두, 그 눈과 귀가 밝아서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여 옳은 길을 가는 축복된 심령들이 다 되시기를 빕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1. 귀와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엘리 목사가 그처럼 눈과 귀가 어두워지게 된 것은 나이가 든 탓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기도를 게을리 한 탓일 것입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 분들을 보면, 항상 그 중심을 잃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소개해 드린바 있는 “안나” 라고 하는 할머니는 84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에서 항상 기도하면서 생활하다가 아기 예수를 뵙는 영광을 누리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게 되면 자연히 그 마음에 더러운 욕심이 가득차게 됩니다. 마음에 욕심이 차게 되며 판단이 흐려져서 빠르게 행동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바로 사용하지를 않고 불의한 일에 몸을 드리게 됩니다. 바울은 (고전6:20)에서 “자기 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서 말씀이 떠나고 욕심이 주장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짓을 하게 됩니다. (삼상3:13) 의 말씀을 보면, 엘리 목사가 하나님보다는 자식사랑에 치우친 나머지 “제 자식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을 알면서도 바로잡지 못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롬6:12)의 말씀에서 바울은, “죽어버릴 육체의 욕망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죄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육체의 욕망에 잘 이끌려 갑니다. 엘리 목사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내 자식이라는 혈육의 정을 따르다보니 결국 자기도 죽고 자식도 망하게 하는 불행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럴 염려가 아주 많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경고를 우리는 많이 듣고 있습니다. (롬8:13) 에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경고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를 아니하고 세상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세례요한은 참 훌륭한 사람입니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예수를 보고, “하나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 고 제자들에게 솔직하게 예수를 높여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제자 두 사람이 자기를 버리고 예수를 따라가려는 것을 만류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세례요한은 인간적인 정분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제자들이 잘 도리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요1:31)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가 물로 세례를 베풀 것은 예수를 이스라엘에게 알리려는 것이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에게 왜 자존심이 없었겠습니까? 그에게도 콩알만한 자존심은 있었을 터인데, 그는 말하기를 “나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는 쇠하여야 하겠고 예수는 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완전한 자기 포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처럼 예수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나와 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성숙한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나와 내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예수를 통한 새로운 세상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쉽게 말씀 드리면, 나와 가족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게 될 때에는 참 교회를 이룰 수 없다는 말입니다. 교회를 하나의 교양강좌를 듣는 장소로 생각하고, 형편 되는 대로 집회에 참석하게 되면 신앙의 성숙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아예 내 가정과 내 식구를 맡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될 때에야, 나도 신앙의 참맛을 맛볼 수 있거니와 내 가정과 내 식구도 구원시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말씀을 믿으시고 그대로 따름으로 온전한 신앙인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과 욕심에 이끌리게 되면 마음의 눈과 귀가 어두워져 판단이 흐려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타락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타락한 생활의 끄트머리는 멸망입니다. 엘리 목사의 가정, 멸망은 정해진 순서였습니다. 온 이스라엘사람의 신앙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목사가 자식에게 눈이 어두워 말씀과 거리가 먼 판단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그 가정은 파멸을 하고 만 것입니다. 후세인도 머지않아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자기는 안전한 지하 벙커에 숨어 있으면서 국민들 보고만 최후의 한사람까지 나가서 싸우라고 재촉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 가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명분없는 전쟁을 성전이라고 억지로 이름 붙여서 승산없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후세인은 분명 수없이 죽어 마땅한 죄인중의 죄인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바칠만한 곳에 시간과 물질을 바치고 있습니까? 땀흘려서 마땅한 곳에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까? 정말 여러분 자신의 양심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기 주장을 꺽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사실 여러분은 오늘 이곳에 나와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 받을 자격이 있는 분들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아무튼 자주 말씀을 대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이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에 의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말씀을 자주 듣고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생활을 열심히 해야 축복된 삶을 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을 들려주시고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함께 하시면서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김남식 성도님은 문짝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문짝을 만들때에는 필요한 나무를 골라 쓰게 될 것입니다. 문짝 만드는 일에 필요 없는 나무는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김남식 성도님은 오랫동안 문짝 만드는 일에 종사해 왔기 때문에, 어디에는 어떤 나무가 필요하고 필요치 않은지를 잘 알고 있을 줄로 압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필요로 하시기 때문에 부르셨습니다. 가장 알맞은 곳에 우리를 적절히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6:13)에서 “우리 몸은 주님을 섬기라고 있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우리 몸을 사셨다고, (고전 6:20)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나 핑계도 댈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농촌의 소가 피곤하다고 주인이 밭 갈기 위하여 끌고 나가는데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매를 맞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매를 때려도 듣지 않으면, 그 때에는 도살장으로 팔려 갈 운명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뜻에 거룩하게 사용하시려고, 우리를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십니다. 만일 말씀으로 깨끗케 되기를 거부하면, 우리는 부패하여 아무 쓸모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오히려 후세인처럼 그 심령이 뒤틀려지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은 물론이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거룩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항상 깨끗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거룩한 생활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바르게 사용되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지체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고전 6:15)에서 바울은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하고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광스럽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한 지체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지체가 되어 주어진 재능에 따라 열심히 봉사를 해야 합니다. 거룩한 교회의 한 부분이 되어서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하게 될 때,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 몸을 깨끗하게 보존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사용하게 되면, 이 땅에는 주의 평화가 임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그 평화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항상 관심을 하나님께 둠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부르심에 따라 사명 다하여 살자.
베드로와 안드레가 예수의 제자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그들은 인생을 온전케 하시는 구세주를 사모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세례요한을 만나게 되었고, 그 세례요한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한 소개를 받게 되어서 예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입니다. 부모가 예수를 믿어서 따라 믿게 된 경우도 있고, 친구 따라 교회에 왔다가 예수를 믿게 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에 대하여 깊은 생각과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면 벌써 교회를 떠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보다 한 차원 높은 단계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인생을 아무렇게나 사는 분들이 아니고 좀 더 성실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도 예수님은 안드레에게 물었던 것처럼 “너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묻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지금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기야 지금은 모두 페르시아만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진정한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하는 것에 문제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예수를 믿는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술을 즐기는 사람은 관심이 늘 술집에 가 있을 것이고, 춤을 즐기는 사람의 관심은 댄스홀에 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의 관심은 언제나 교회에 있고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이 언제나 성전에서 생활하면서 항상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을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리이신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동시에 예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구약의 본문은, 엘리는 망하게 되었고 사무엘은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 쓰임 받게 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엘 리가 망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육신의 정에 얽매여 자식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사무엘이 새로 쓰임 받게 된 것은 언제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관심을 두고 사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쓰임 받아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긍지로 삼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옳은 길을 감으로 축복된 생애를 사식 바랍니다. ♥
성서일과 ; 살상3:1-20, 고전6:12-20, 요1:35-42.
제목 ; 마음의 눈을 밝혀 옳은 길을 가라
전쟁이 드디어 일어났습니다. 지난 10일 오전 9시, 미공군기의 폭격으로 시작된 걸프 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걱정과 두려움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같은 날 11시에,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연설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지켜볼 수가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말하기를, “저 눈 좀 보세요. 얼마나 많이 걱정과 고민을 했으면, 눈이 저토록 쑥 들어갔을까요?” 하고, 부시 대통령을 동정하는 투로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미국 대통령은 세계에서 제일 강한 권력을 가진 것만큼 고통도 또한 비례해서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고, 신문칼럼은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월남전 파병을 결정한 존슨 대통령은, 결정에 앞서 여러 날을 두고 망설였으며 끝내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부시 대통령도 말할 수 없는 고민과 고통을 겪으면서 괴로워하고 있을 것입니다.
세계적 망나니로 소문난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이 세계평화 무드를 깨뜨리고 미국에 겁도 없이 대드는 것 같아서 한편 우습기도 하지만, 미국의 부시대통령에게는 후세인의 철없는 짓이 큰 두통거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 대 때려주자니 서로 입는 피해가 엄청나겠고, 그냥 내버려두자니 점점 기세를 올리는 후세인의 모습이 더 큰 일을 저지를 것 같아 염려스러웠을 것입니다. 달래도 보고 얼러도 보았지만 후세인은 요지부동 더 방자하게 나오는 모습을 우리는 같이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매를 들었습니다. 망나니를 길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대단한 아픔을 각오하고 버릇을 고쳐주기 위하여 평화의 매를 든 것입니다. 세계의 질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던 후세인, 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여러 경로로 경고도 하고 타일르는 소리를 귀담아 듣지도 아니하고 고집을 피운 후세인, 이번에 단단히 혼줄이 날 것입니다. 이번에 망나니 후세인을 혼내주지 않으면 세계를 다 망가뜨리려 할 것이기 때문에, 단단히 응징해 둘 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구약성경의 말씀은 자식의 버릇을 고쳐주지 못하여 집안 전체가 망하고 만 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엘리” 라고 하는 목사의 가정 이야기입니다.
엘리 목사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드입니다. 이들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도 버릇없이 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까지 서슴없이 행했습니다. 개역성경에서는 그들을 불량자라 했고, 공동번역성경에서는 망나니라 번역했습니다. 엘리 목사는 늙어서 얻은 자식들인지라, 귀엽게 키우다보니 자녀들을 잘못 키운 것입니다. 소문이 사방에 났습니다. 엘리 목사의 아들들이 온갖 못된 짓을 할 뿐만 아니라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있다는 나쁜 소식을 엘리 목사도 듣게 되었습니다. 엘리 목사는 아들들을 불러다 놓고 꾸짖었습니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느냐? 일반성도라도 술담배 먹고 다니면 손가락질 받는 법인데, 그래 목사의 아들이 되어가지고 주초에다가 계집질을 하고 다닌단 말이냐?”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때가 늦었던 것입니다. 일찌감치 매를 들어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었어야 했을 텐데, 귀여운 생각에 “커지면 나아지겠지!” 하고 방심을 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하고 만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하고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니, (삼상3:2) 에, “엘리는 이미 눈이 어두워 앞을 잘 보지 못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들들이 그렇게 된 것은, 아버지인 엘리 목사에게 큰 원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보다는 자식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눈이 어두워져, 어떻게 해야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길인가를 바로 판단하지 못하고 버릇없이 자라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그처럼 큰 화를 불러들이게 된 것입니다.
엘리 목사는 눈만 어두웠던 것이 아니라, 귀도 어두웠던 것 같습니다. 사무엘이 듣고 있던 하나님의 음성을 엘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만 살짝 찾아가셔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엘리가 듣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웬만하면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듣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엘리는 목사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만약 자식이라도 잘 가르쳐 놓았더라면 그 아들들이 아버지를 잘 보좌하여 실수가 없도록 잘 도와주었을 텐데, 그만 자식들을 제대로 가르쳐 놓지 못한 까닭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후세인처럼, 뻔한 결과를 내다보면서 자존심이라는 큰 눈꼽이 끼어서 불행의 길을 스스로 택해서 가고 있는 분은 없으신지요? 내가 이 길을 가면, 나 자신을 망칠 뿐만 아니라 내 가족을 불행하게 하고 많은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는 줄 알면서도, 굳이 타락의 길로 걸어가고 있는 분은 아니 계신지요? 또는 엘리 목사처럼, 물질이나 자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옳은 판단을 하지 못하여, 성도의 길을 바로 가지 못하고 그 사명을 망각하고 있다가, 불행을 불러 들이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아무렴요!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복된 분들이어서, 그 같이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아무쪼록 여러 성도님들은 몸과 마음 모두, 그 눈과 귀가 밝아서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여 옳은 길을 가는 축복된 심령들이 다 되시기를 빕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1. 귀와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엘리 목사가 그처럼 눈과 귀가 어두워지게 된 것은 나이가 든 탓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기도를 게을리 한 탓일 것입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 분들을 보면, 항상 그 중심을 잃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소개해 드린바 있는 “안나” 라고 하는 할머니는 84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에서 항상 기도하면서 생활하다가 아기 예수를 뵙는 영광을 누리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게 되면 자연히 그 마음에 더러운 욕심이 가득차게 됩니다. 마음에 욕심이 차게 되며 판단이 흐려져서 빠르게 행동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바로 사용하지를 않고 불의한 일에 몸을 드리게 됩니다. 바울은 (고전6:20)에서 “자기 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서 말씀이 떠나고 욕심이 주장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짓을 하게 됩니다. (삼상3:13) 의 말씀을 보면, 엘리 목사가 하나님보다는 자식사랑에 치우친 나머지 “제 자식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을 알면서도 바로잡지 못했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롬6:12)의 말씀에서 바울은, “죽어버릴 육체의 욕망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죄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육체의 욕망에 잘 이끌려 갑니다. 엘리 목사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내 자식이라는 혈육의 정을 따르다보니 결국 자기도 죽고 자식도 망하게 하는 불행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럴 염려가 아주 많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경고를 우리는 많이 듣고 있습니다. (롬8:13) 에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경고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를 아니하고 세상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세례요한은 참 훌륭한 사람입니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예수를 보고, “하나님의 어린양이 저기 가신다” 고 제자들에게 솔직하게 예수를 높여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제자 두 사람이 자기를 버리고 예수를 따라가려는 것을 만류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세례요한은 인간적인 정분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제자들이 잘 도리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요1:31)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가 물로 세례를 베풀 것은 예수를 이스라엘에게 알리려는 것이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에게 왜 자존심이 없었겠습니까? 그에게도 콩알만한 자존심은 있었을 터인데, 그는 말하기를 “나는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는 쇠하여야 하겠고 예수는 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완전한 자기 포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처럼 예수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나와 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성숙한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나와 내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예수를 통한 새로운 세상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쉽게 말씀 드리면, 나와 가족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게 될 때에는 참 교회를 이룰 수 없다는 말입니다. 교회를 하나의 교양강좌를 듣는 장소로 생각하고, 형편 되는 대로 집회에 참석하게 되면 신앙의 성숙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아예 내 가정과 내 식구를 맡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될 때에야, 나도 신앙의 참맛을 맛볼 수 있거니와 내 가정과 내 식구도 구원시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말씀을 믿으시고 그대로 따름으로 온전한 신앙인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과 욕심에 이끌리게 되면 마음의 눈과 귀가 어두워져 판단이 흐려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타락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타락한 생활의 끄트머리는 멸망입니다. 엘리 목사의 가정, 멸망은 정해진 순서였습니다. 온 이스라엘사람의 신앙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목사가 자식에게 눈이 어두워 말씀과 거리가 먼 판단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그 가정은 파멸을 하고 만 것입니다. 후세인도 머지않아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자기는 안전한 지하 벙커에 숨어 있으면서 국민들 보고만 최후의 한사람까지 나가서 싸우라고 재촉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 가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명분없는 전쟁을 성전이라고 억지로 이름 붙여서 승산없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후세인은 분명 수없이 죽어 마땅한 죄인중의 죄인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바칠만한 곳에 시간과 물질을 바치고 있습니까? 땀흘려서 마땅한 곳에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까? 정말 여러분 자신의 양심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기 주장을 꺽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사실 여러분은 오늘 이곳에 나와 앉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 받을 자격이 있는 분들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아무튼 자주 말씀을 대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이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에 의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말씀을 자주 듣고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생활을 열심히 해야 축복된 삶을 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을 들려주시고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함께 하시면서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김남식 성도님은 문짝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문짝을 만들때에는 필요한 나무를 골라 쓰게 될 것입니다. 문짝 만드는 일에 필요 없는 나무는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김남식 성도님은 오랫동안 문짝 만드는 일에 종사해 왔기 때문에, 어디에는 어떤 나무가 필요하고 필요치 않은지를 잘 알고 있을 줄로 압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필요로 하시기 때문에 부르셨습니다. 가장 알맞은 곳에 우리를 적절히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6:13)에서 “우리 몸은 주님을 섬기라고 있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우리 몸을 사셨다고, (고전 6:20)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나 핑계도 댈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농촌의 소가 피곤하다고 주인이 밭 갈기 위하여 끌고 나가는데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매를 맞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매를 때려도 듣지 않으면, 그 때에는 도살장으로 팔려 갈 운명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뜻에 거룩하게 사용하시려고, 우리를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십니다. 만일 말씀으로 깨끗케 되기를 거부하면, 우리는 부패하여 아무 쓸모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오히려 후세인처럼 그 심령이 뒤틀려지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은 물론이요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거룩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항상 깨끗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거룩한 생활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바르게 사용되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지체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고전 6:15)에서 바울은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하고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광스럽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한 지체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지체가 되어 주어진 재능에 따라 열심히 봉사를 해야 합니다. 거룩한 교회의 한 부분이 되어서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하게 될 때,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 몸을 깨끗하게 보존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사용하게 되면, 이 땅에는 주의 평화가 임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그 평화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항상 관심을 하나님께 둠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부르심에 따라 사명 다하여 살자.
베드로와 안드레가 예수의 제자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그들은 인생을 온전케 하시는 구세주를 사모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세례요한을 만나게 되었고, 그 세례요한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한 소개를 받게 되어서 예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입니다. 부모가 예수를 믿어서 따라 믿게 된 경우도 있고, 친구 따라 교회에 왔다가 예수를 믿게 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에 대하여 깊은 생각과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면 벌써 교회를 떠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보다 한 차원 높은 단계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인생을 아무렇게나 사는 분들이 아니고 좀 더 성실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도 예수님은 안드레에게 물었던 것처럼 “너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묻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지금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기야 지금은 모두 페르시아만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진정한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하는 것에 문제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예수를 믿는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술을 즐기는 사람은 관심이 늘 술집에 가 있을 것이고, 춤을 즐기는 사람의 관심은 댄스홀에 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의 관심은 언제나 교회에 있고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이 언제나 성전에서 생활하면서 항상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을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리이신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동시에 예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구약의 본문은, 엘리는 망하게 되었고 사무엘은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 쓰임 받게 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엘 리가 망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육신의 정에 얽매여 자식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사무엘이 새로 쓰임 받게 된 것은 언제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관심을 두고 사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쓰임 받아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긍지로 삼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옳은 길을 감으로 축복된 생애를 사식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