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이 나를 병들게 한다(죽으면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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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0 18:38
영혼의 양식 91-08호 1991.02.24.
성서일과 ; 에스더 4:4-17, 히 11:32-40, 눅 4:14-23.
제목 ; 이기심이 나를 병들게 한다(죽으면 살리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우리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죄 때문에 죽게된 우리를 살리시려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죄가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한다고 말입니다. 마치 어미 뱃속에 있는 아기의 탯줄이 끊어진것과 같아서, 하나님께로부터 영의 양식을 공급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인데, 그와 같은 형편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죄를 지은 인간의 모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느냐? 그것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 욕심에 따라 제멋대로 살다보니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큰 벽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무엇하나 제대로 이룰 수 없게끔 되어 있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큰 벽이 생기고 말았으니,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이처럼 우리인간이, 하나님을 불신하는 병든 마음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을 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로 억압하고 핍박하며 잡아먹지 못하여 안달인 상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악한 인간의 마음은 나라 전체까지 병들게 하여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그 백성들을 죽이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라크를 보십시오. 한 인간 후세인의 마음이 병든 탓으로, 나라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나아가서 쿠웨이트를 침략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말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우리 인간의 병든 마음을 고치시려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고쳐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삽니다. 하나님께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만 고쳐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제적인 불행도 벗겨 주시고 사회적으로 겪는 고통까지도 해결해 주십니다.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들려준 예수님의 사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 61:1-2)과 (눅 4:18)에, “가난한 자에게는 복음을, 포로된 자와 눌린자에게 자유를, 눈먼자는 다시 보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진다” 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난한 심령으로 다가오는 자를 맞아주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가난한 심령이란 겸손한 마음입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고, 자기 잘못을 뉘우쳐 용서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후회하고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주님의 복음은 들려 집니다. 말씀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그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같은 죄인도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이 느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로된 자와 눌린자에게 자유를 주신다” 는 말씀은, 죄의 사슬에 묶여 사탄의 포로가 되어 살던 사람들에게 해방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자신도 원치 않는 삶이지만, 먹고 살자니까 어쩔 수 없이 이끌려 사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아주 많습니다.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의지가 약하여 끊어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는,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 용기를 심어주고 해방된 삶을 살게 해 줍니다.
결국 우리가 지금 어떤 형편에 놓여 있나를 알 수 있어야, 주님을 찾게 됩니다. 자신이 지금 죄 가운에 놓여 죄를 지으며 살면서도,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주님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는 말씀이 웃기는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내 죄를 위하여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눈이 열리는 일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비참한 지경에 빠져 있는지를 알 수 있게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이 눈이 열리게 해주는 일도 예수님이 하십니다. 눈이 먼 사람에게는 보게 해준다고 (눅 4:18)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병든 우리의 마음도 고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죄의 심부름을 그만두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어, 자신에게는 기쁨과 보람을, 다른 사람에게는 유익을 끼치는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런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자신을 구하고 민족을 구한 사람의 이야기를 오늘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구약 에스더서에 나오는 모르드개와 에스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하나 먼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모르드개나 에스더가 자기만 살겠다 생각하고 자기 살길만 궁리했더라면, 민족이 멸절되는 것은 물론이요 자기들도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나라를 원하려는 독립지사들의 자기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이 나라가 존속하고 있는 줄 압니다. 만일 우리 나라에 이완용이와 같은, 자기 안일만 추구하는 이기주의자만 가득했다면, 아직도 우리는 왜놈들의 종노릇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민족이 처한 위기를 알아차리고, 베옷을 입고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습니다. “하만” 이라고 하는 사람이 유대인들을 학살하기로 하고 왕의 결재를 받아 놓은 상태였습니다. 마침 모르드개의 사촌여동생인 에스더가 왕후로 있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부탁하기를, 왕에게 유대민족을 살려달라고 애원해 보도록 하라고 일렀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임금이 부르지 않으면 접근할 수 없다는 이유로 모르드개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모르드개는 다시 한 번 부탁하기를,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이런 위기에 민족을 구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느냐?” 하면서 타일렀습니다. 모르드개 덕분에 왕후가 된 에스더는 오빠의 부탁을 마냥 모른척할 수 만은 없었습니다. 마침내 에스더는 결심했습니다. 죽게 되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하고 왕에게 나아가서 청원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르드개에게 부탁하기를, 에스더 자신을 위하여 사흘동안 밤낮으로 금식기도를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온 유대 백성이 합심해서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위기에 닥쳐서 방황을 하지 않고 마음이 하나되어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에스더라고 하는 한 여인이 자기 목숨을 바쳐서 민족을 구할 생각을 함으로써 유대 민족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에스더가 왕후로서의 지위와 부귀 영화를 잃어버릴까봐 염려해서 몸을 사렸더라면 유대 민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에스더는 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평소에 에스더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위기를 겪게 되었을 때에 바른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목숨을 건 결정,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승리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기만 살겠다고 하는 이기심을 버리게 됨으로써 가능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많은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바른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른 판단과 결정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들 각 개인의 심령이 건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1. 우리는 계속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모양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위기가 있고, 자기 자신만이 아는 위기가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사람이 볼 때에는 위기가 아니어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 위기인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이 안전하다 평안하다 할 그때가 가장 위험한 때일 수도 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에스더의 경우, 자기 민족이 큰 위기에 처해 있지만, 사실 에스더로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체하면 얼마든지 에스더는 평안히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의 형편도 마찬가지입니다. 걸프전쟁이다. 우르과이라운드다 하지만, 나 살기에 아무 걱정 없고 내 가정에 별탈 없으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괜스레 신문보고 텔레비젼을 봄으로 해서 골치 아프게 지낼 필요도 없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그 사람이 그 사람인지라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매봉감리교회 출신인 유관순도 나라 걱정할 것이 없이 가만히 있었으면, 시집가서 잘 살다가 손자 손녀 많이 두고 지금쯤은 아흔 살의 할머니가 되었거나 편안히 일생을 마치고 고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5절의 말씀에, “믿음은 불의의 세력을 물리치고 더 나은 생명을 누리게 한다” 고 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 위기란 진정 무엇일까요? 불의를 보고서도 눈감음으로써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위기일까요? 아니면 괜스레 참견을 해서 어려움을 겪게 되면 그 어려움이 위기가 될까요? 예수만 믿으면, 이꼴 저꼴 다 안보고 맘편케 지낼 수 있는데, 왜 교회는 다니기 시작해서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아니면 큰 교회를 다니면 맘 편케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을, 개척교회 다니느라 여러 가지 일을 감당해야 되고 걱정하게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십니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이나 바울도 얼마든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나 바울은 미련하게 살다가 미련하게 죽음을 맞이한 분들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기는 나만 잘 살겠다는 이기심입니다. 골치 아프게 살 필요없이 다른 사람 간섭받지 아니하고 내 멋대로 살겠다고 하는 개인주의입니다. 이 이기심이 나를 병들게 하는 원흉입니다. 이 이기심은 이웃을 망칠뿐만 아니라 민족과 국가를 망하게 하고, 자기 자신과 후손까지도 망하게 합니다. 이번의 수서사태가 이런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는 진리입니다. 잠깐 눈감아 주면 몇천 몇억을 힘들이지 않고 수중에 넣을 수 있다는 계산 속에서 부정행위를 계속해 오다가 이제 그 사실이 드러나자 국가의 지도자들이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까? 거짓말, 또 거짓말로써 위장하지만, 국민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솔직합니까? 우리도 별 수 없습니다. 모르드개와 같은 믿음, 에스더와 같은 용기를 따라 가려면 정말 멀고 또 먼 길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는 아직 많은 기회가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내 힘으로써가 아닙니다. (히 11:33)의 말씀을 보며, “믿음이 있으면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고 했습니다. 모르드개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면 믿음의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2. 어떤 위기에서든지 마음이 하나되어 구원을 요청하면 도와주십니다.
수서사건을 보더라도 위기의 발생은 개인적인 욕심, 곧 이기심에서 생겨납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위기는, 그런 위기를 보고서도 모른체 하거나 나만 혼자 편히 지내려는 생각입니다. 나라가 어려움을 겪게 되면, 그 문제의 원인은 내가 내 직분을 잘 감당치 못한 까닭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문제를 보고서 외면하거나,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 넘기려는 태도가 바로 가장 큰 위기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어디를 가던지 어느 단체이든지 문제는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어쩌면 문제가 있는 것이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를 겪을 때마다 하나님께 겸손히 무릎을 꿇고 지혜를 구하는 것이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요, 그것이 바로 우리 성도가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않고, 기도 이외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면 문제는 더 확대되고 더 큰 위기를 겪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왜 몰랐겠습니까? 다 아셨지만 아무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당신 홀로 당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승리였습니다.
항상 인간편에서 먼저 약속을 저버렸지만, 하나님은 그 약속을 꼭 지키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대하여 주먹질을 하고 원망과 불평을 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으로써 인간을 대하셨습니다. 인간이 겪는 불행은 하나님께서 벌주셔서 그리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록 인간이 죽을 죄를 지었을지라도 돌아와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새롭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다윗이 그랬고, 야곱이 그랬습니다. 살인죄를 짓고 못된 짓을 많이 했지만, 거듭나고 새로워졌을 때에 그들은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편안히 누워서 쉴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일어나서 새로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젊은 분들은 힘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나이 드신 분들은 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젊은이보다 더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야합니다.
3. 하나님의 백성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믿음임을 인식하고, 어떤 어려움이든지 믿음으로 이겨나갑시다.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을 보면, 33절에서 ①믿음은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살리는 길이요, 이기심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어떤 어려움이든지 하나님께 나아와 겸손히 무릎을 꿇으면 해결될 줄 믿습니다. ②또한 35절에서는, 믿음은 불의의 세력을 물리치고 더 나은 생명을 누리게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불의의 세력이란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이기심과 교만한 마음입니다. 나를 극복하면 어떤 원수도 쉽게 이길 수가 있습니다. ③그리고 믿음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한다고, 3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 어떤 사람에게서 인정받으려고 신경쓰지 말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돌교회 교인들은 교회의 외모를 보고 나온 분들이 아니고, 교회내의 성도간의 사랑과 가족적인 분위기 때문에 다니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나를 인정해줄 것인가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을 것입니다.
오로지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주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기 위하여, 온갖 마음을 다 기울이고 열심히 자기 직분에 충실하는 것 뿐입니다.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를, 자기 개인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리로 삼지 아니하고 민족을 구원하는 기회로 삼았듯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을 민족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 누구보다 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 은혜를 헛되이 여기지 마시고, 가장 값있게 사용할 수 있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축복 받은 인생들입니다. 생명이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 복된 길을 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더욱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성서일과 ; 에스더 4:4-17, 히 11:32-40, 눅 4:14-23.
제목 ; 이기심이 나를 병들게 한다(죽으면 살리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우리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죄 때문에 죽게된 우리를 살리시려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죄가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한다고 말입니다. 마치 어미 뱃속에 있는 아기의 탯줄이 끊어진것과 같아서, 하나님께로부터 영의 양식을 공급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인데, 그와 같은 형편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죄를 지은 인간의 모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느냐? 그것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 욕심에 따라 제멋대로 살다보니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큰 벽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무엇하나 제대로 이룰 수 없게끔 되어 있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큰 벽이 생기고 말았으니,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이처럼 우리인간이, 하나님을 불신하는 병든 마음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을 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로 억압하고 핍박하며 잡아먹지 못하여 안달인 상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악한 인간의 마음은 나라 전체까지 병들게 하여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그 백성들을 죽이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라크를 보십시오. 한 인간 후세인의 마음이 병든 탓으로, 나라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나아가서 쿠웨이트를 침략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말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우리 인간의 병든 마음을 고치시려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고쳐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삽니다. 하나님께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만 고쳐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제적인 불행도 벗겨 주시고 사회적으로 겪는 고통까지도 해결해 주십니다.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들려준 예수님의 사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 61:1-2)과 (눅 4:18)에, “가난한 자에게는 복음을, 포로된 자와 눌린자에게 자유를, 눈먼자는 다시 보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진다” 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난한 심령으로 다가오는 자를 맞아주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가난한 심령이란 겸손한 마음입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고, 자기 잘못을 뉘우쳐 용서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후회하고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주님의 복음은 들려 집니다. 말씀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고, 그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같은 죄인도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이 느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로된 자와 눌린자에게 자유를 주신다” 는 말씀은, 죄의 사슬에 묶여 사탄의 포로가 되어 살던 사람들에게 해방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자신도 원치 않는 삶이지만, 먹고 살자니까 어쩔 수 없이 이끌려 사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아주 많습니다.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의지가 약하여 끊어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는,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 용기를 심어주고 해방된 삶을 살게 해 줍니다.
결국 우리가 지금 어떤 형편에 놓여 있나를 알 수 있어야, 주님을 찾게 됩니다. 자신이 지금 죄 가운에 놓여 죄를 지으며 살면서도,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주님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는 말씀이 웃기는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내 죄를 위하여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눈이 열리는 일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비참한 지경에 빠져 있는지를 알 수 있게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이 눈이 열리게 해주는 일도 예수님이 하십니다. 눈이 먼 사람에게는 보게 해준다고 (눅 4:18)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병든 우리의 마음도 고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죄의 심부름을 그만두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어, 자신에게는 기쁨과 보람을, 다른 사람에게는 유익을 끼치는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런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자신을 구하고 민족을 구한 사람의 이야기를 오늘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구약 에스더서에 나오는 모르드개와 에스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하나 먼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모르드개나 에스더가 자기만 살겠다 생각하고 자기 살길만 궁리했더라면, 민족이 멸절되는 것은 물론이요 자기들도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나라를 원하려는 독립지사들의 자기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이 나라가 존속하고 있는 줄 압니다. 만일 우리 나라에 이완용이와 같은, 자기 안일만 추구하는 이기주의자만 가득했다면, 아직도 우리는 왜놈들의 종노릇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민족이 처한 위기를 알아차리고, 베옷을 입고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습니다. “하만” 이라고 하는 사람이 유대인들을 학살하기로 하고 왕의 결재를 받아 놓은 상태였습니다. 마침 모르드개의 사촌여동생인 에스더가 왕후로 있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부탁하기를, 왕에게 유대민족을 살려달라고 애원해 보도록 하라고 일렀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임금이 부르지 않으면 접근할 수 없다는 이유로 모르드개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모르드개는 다시 한 번 부탁하기를,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이런 위기에 민족을 구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느냐?” 하면서 타일렀습니다. 모르드개 덕분에 왕후가 된 에스더는 오빠의 부탁을 마냥 모른척할 수 만은 없었습니다. 마침내 에스더는 결심했습니다. 죽게 되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하고 왕에게 나아가서 청원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르드개에게 부탁하기를, 에스더 자신을 위하여 사흘동안 밤낮으로 금식기도를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온 유대 백성이 합심해서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위기에 닥쳐서 방황을 하지 않고 마음이 하나되어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에스더라고 하는 한 여인이 자기 목숨을 바쳐서 민족을 구할 생각을 함으로써 유대 민족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에스더가 왕후로서의 지위와 부귀 영화를 잃어버릴까봐 염려해서 몸을 사렸더라면 유대 민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에스더는 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평소에 에스더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위기를 겪게 되었을 때에 바른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목숨을 건 결정,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승리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기만 살겠다고 하는 이기심을 버리게 됨으로써 가능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많은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바른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른 판단과 결정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들 각 개인의 심령이 건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1. 우리는 계속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모양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위기가 있고, 자기 자신만이 아는 위기가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사람이 볼 때에는 위기가 아니어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 위기인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이 안전하다 평안하다 할 그때가 가장 위험한 때일 수도 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에스더의 경우, 자기 민족이 큰 위기에 처해 있지만, 사실 에스더로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체하면 얼마든지 에스더는 평안히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의 형편도 마찬가지입니다. 걸프전쟁이다. 우르과이라운드다 하지만, 나 살기에 아무 걱정 없고 내 가정에 별탈 없으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괜스레 신문보고 텔레비젼을 봄으로 해서 골치 아프게 지낼 필요도 없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그 사람이 그 사람인지라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매봉감리교회 출신인 유관순도 나라 걱정할 것이 없이 가만히 있었으면, 시집가서 잘 살다가 손자 손녀 많이 두고 지금쯤은 아흔 살의 할머니가 되었거나 편안히 일생을 마치고 고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5절의 말씀에, “믿음은 불의의 세력을 물리치고 더 나은 생명을 누리게 한다” 고 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 위기란 진정 무엇일까요? 불의를 보고서도 눈감음으로써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위기일까요? 아니면 괜스레 참견을 해서 어려움을 겪게 되면 그 어려움이 위기가 될까요? 예수만 믿으면, 이꼴 저꼴 다 안보고 맘편케 지낼 수 있는데, 왜 교회는 다니기 시작해서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아니면 큰 교회를 다니면 맘 편케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을, 개척교회 다니느라 여러 가지 일을 감당해야 되고 걱정하게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십니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이나 바울도 얼마든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나 바울은 미련하게 살다가 미련하게 죽음을 맞이한 분들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기는 나만 잘 살겠다는 이기심입니다. 골치 아프게 살 필요없이 다른 사람 간섭받지 아니하고 내 멋대로 살겠다고 하는 개인주의입니다. 이 이기심이 나를 병들게 하는 원흉입니다. 이 이기심은 이웃을 망칠뿐만 아니라 민족과 국가를 망하게 하고, 자기 자신과 후손까지도 망하게 합니다. 이번의 수서사태가 이런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는 진리입니다. 잠깐 눈감아 주면 몇천 몇억을 힘들이지 않고 수중에 넣을 수 있다는 계산 속에서 부정행위를 계속해 오다가 이제 그 사실이 드러나자 국가의 지도자들이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까? 거짓말, 또 거짓말로써 위장하지만, 국민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솔직합니까? 우리도 별 수 없습니다. 모르드개와 같은 믿음, 에스더와 같은 용기를 따라 가려면 정말 멀고 또 먼 길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는 아직 많은 기회가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내 힘으로써가 아닙니다. (히 11:33)의 말씀을 보며, “믿음이 있으면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고 했습니다. 모르드개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면 믿음의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2. 어떤 위기에서든지 마음이 하나되어 구원을 요청하면 도와주십니다.
수서사건을 보더라도 위기의 발생은 개인적인 욕심, 곧 이기심에서 생겨납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위기는, 그런 위기를 보고서도 모른체 하거나 나만 혼자 편히 지내려는 생각입니다. 나라가 어려움을 겪게 되면, 그 문제의 원인은 내가 내 직분을 잘 감당치 못한 까닭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문제를 보고서 외면하거나,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 넘기려는 태도가 바로 가장 큰 위기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어디를 가던지 어느 단체이든지 문제는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어쩌면 문제가 있는 것이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를 겪을 때마다 하나님께 겸손히 무릎을 꿇고 지혜를 구하는 것이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요, 그것이 바로 우리 성도가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않고, 기도 이외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면 문제는 더 확대되고 더 큰 위기를 겪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왜 몰랐겠습니까? 다 아셨지만 아무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당신 홀로 당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승리였습니다.
항상 인간편에서 먼저 약속을 저버렸지만, 하나님은 그 약속을 꼭 지키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대하여 주먹질을 하고 원망과 불평을 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으로써 인간을 대하셨습니다. 인간이 겪는 불행은 하나님께서 벌주셔서 그리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록 인간이 죽을 죄를 지었을지라도 돌아와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새롭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다윗이 그랬고, 야곱이 그랬습니다. 살인죄를 짓고 못된 짓을 많이 했지만, 거듭나고 새로워졌을 때에 그들은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편안히 누워서 쉴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일어나서 새로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젊은 분들은 힘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나이 드신 분들은 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젊은이보다 더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야합니다.
3. 하나님의 백성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믿음임을 인식하고, 어떤 어려움이든지 믿음으로 이겨나갑시다.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을 보면, 33절에서 ①믿음은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살리는 길이요, 이기심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어떤 어려움이든지 하나님께 나아와 겸손히 무릎을 꿇으면 해결될 줄 믿습니다. ②또한 35절에서는, 믿음은 불의의 세력을 물리치고 더 나은 생명을 누리게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불의의 세력이란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이기심과 교만한 마음입니다. 나를 극복하면 어떤 원수도 쉽게 이길 수가 있습니다. ③그리고 믿음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한다고, 3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 어떤 사람에게서 인정받으려고 신경쓰지 말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돌교회 교인들은 교회의 외모를 보고 나온 분들이 아니고, 교회내의 성도간의 사랑과 가족적인 분위기 때문에 다니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나를 인정해줄 것인가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을 것입니다.
오로지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주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기 위하여, 온갖 마음을 다 기울이고 열심히 자기 직분에 충실하는 것 뿐입니다.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를, 자기 개인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리로 삼지 아니하고 민족을 구원하는 기회로 삼았듯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을 민족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 누구보다 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 은혜를 헛되이 여기지 마시고, 가장 값있게 사용할 수 있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축복 받은 인생들입니다. 생명이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 복된 길을 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더욱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