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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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민수기 주석



성 경: [민1:1]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 명령]

(주); 애굽 땅에서 나온 후 -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10대 재앙으로 인해 마침내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 언약의 땅 가나안을 향해 출애굽을 감행한 시점과 장소는 B. C. 1446년 1월 15일 고센 지역 라암셋(Rameses)에서 였다(출 12:37). 그리고 이때는 야곱이 요셉의 초청으로 그 가족과 함께 애굽으로 이주한 (B. C. 1876년) 때로부터 430년이 흐른 뒤였다(출 12:40). 한편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후 2달만에 시내 산에 도착했다(B. C. 1446년 3월 15일, 출 19:1). 그리고 시내 산에서 성막 계시와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가지 규례들을 지시받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출애굽 2년(B. C. 1445년) 1월 1일에 성막을 건립했다(출 40:17). 그리고 성막 건립 후 곧 레위기 규례가 주어 졌다. 시기상 이 규례들은 출애굽 제 2년 1월에 주어진 것이다. 이어 민수기 규례가 출애굽 제 2년 2월 1일부터 주어지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이 모든 규례들은 시내산 기슭에서 주어 졌거나 혹은 일어난 사건들 이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제 2년(B. C. 1445년) 2월 20일에 시내 산을 떠났다. 이때는 시내 산에 도착한 지 9개월 닷새가 지난 뒤였다(10:11).

(주); 제 이년 이월 일일 -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시점부터 만 1년 보름이 지난 후의 첫날로서, 성막이 세워진 지 한 달 후이며(출 40:2, 17), 이스라엘이 군대로서의 조직을 완료하고 시내 광야를 떠나기 20일 전이다(10:11). 여기서 '2월'은 '시브 월' 곧 바벨론식 명칭(바벨론 포로 이후)으로는 '이야르 월'이며, 오늘날 태양력의 4, 5월에 해당한다. 한편 이스라엘이 이곳 시내 산에서 근 1년 동안 계속 체류한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된 선민으로서 그들의 삶에 필요한 종교. 도덕. 사회의 각종 율법을 계시받고, 또한 그들의 삶의 중심적 역할을 할 성막을 건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출애굽의 감격에 도취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시간내에 가나안에 입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따르는 신앙과 그분을 중심한 경건한 생활이었다. 만약 이것 없이 가나안이 쟁취된다면 그곳은 그들에게 복된 땅이 아니라 타락과 방종의 땅이 될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일러 가라사대(*, 와예다베르 예호와) - 직역하면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이다. 여기서 '그리고'라는 접속사가 본서와 레위기와의 연계 관계를 보여준다는 견해가 있으나, 차라리 먼저 전개된 출애굽기의 사건들을 이어받는 말로 보는 것이 좋다. 한편 원문에는 이 문구가 첫머리에 있어서 본서가 지니는 신적권위를 처음부터 강변(强辯)해 주고 있다. 본서는 이렇게 여호와의 분부로 시작해서 여호와의 명령으로 끝맺고 있다(36: 13). 이러한 구성은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의 광야 훈련과정을 기록한 본서의 내용 전개와 잘 부합되는 것이다. 실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군대를 조직했고, 질서있게 진을 쳤으며(2:1-34), 질서있게 행군했고(10:11-28), 대적들과 싸워 연전 연승을 거두었다(21:1-3, 10-35; 31:1-54).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할일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33:50-36:13). 비록 여러 번에 걸친 불신앙적 태도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는 했어도, 전반적으로 광야의 훈련을 무사히 겪어낸 이스라엘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매우 크다. 즉 이스라엘 군대의 행동 원리였던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절대적 순종'은 오늘날의 십자가 군대인 교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한다.

(주); 광야 회막에서 - 여기서 '광야'(* 미드바르)란 건조한 계절에는 생물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되고 강우기(降雨期)에만 풀들이 자라는 '스텝'(steppe)지역을 가리킨다. 결국 10월과 4월 사이에 내리는 약간의 겨울비와 8, 9월에 내리는 이슬로 1년을 버텨야 하는 팔레스틴의 기후 조건으로 볼 때 실로 '광야'는 인간이 견뎌내기 힘든 '죽음의 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곳에서 식량 생산을 위해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이 1년여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그런데 이 '죽음의 땅'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회막'은 바로 이 기적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공한다. 즉 그들은 그들의 삶 중심부 깊숙이 개입하고 계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죽음의 땅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광야에 세워진 회막은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고, 생명을 싹트게 하는 생명의 처소, 곧 '광야 교회'라 불리워질 수 있다(행7:38). 한편 본문에 언급된 회막(*, 오헬 모에드)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만나는 장소'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그리고 개역 성경에는 '오헬'이라는 동일한 원어가 '성막'(출 26:9), '장막'(출 16:16), '회막'(출 33:8)등으로 별 구별없이 혼용(混用), 번역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처럼 '만남의 장소'라는 독특한 의미를 강조할 때의 원어는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서의 만남'이란 뜻의 '모에드'와 결합된 '오헬 모에드' 형태로 언급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이며 동역자인 모세를 당신의 처소에서 친근히만나 그에게 당신의 원대한 계획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구약의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공의로우시기만 한 분으로서 인간이 도무지 접근할 수 없는 초월적인 분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떨쳐버릴 수 있다. 진정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만나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시고 또한 기뻐하신다(사 55:1-7).

성 경: [민1:2]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 명령]

(주); 회중 - 이 말의 원어 '에다'(*)는 '약속하다', '징벌하다'는 뜻의 '야아드'란 말에서 유래했다. 그러므로 결국 이는 단순한 의미의 군중(*, 콜 카할)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하에 있는 이스라엘, 곧 언약 공동체를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교회를 가리켜 '회중'이라 할수 있다.

(주); 각 남자의 수 - 고대 이스라엘은 통상적으로 여자와 어린 아이를 독립된 개체로 인정치 않았으며, 그렇기에 오직 남자 성인(20세 기준)만을 인구로 계수하는 것이 관행(慣行)이었다(마 14:21). 그러나 이는 그들이 여자나 어린이의 인격과 생명을 무시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이것은 당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부장(家父長)이그 가족을 대표했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이 주로 성인 남자들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것등의 종교적인 견지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고전 11:3, 7-9; 딤전 2:12, 13). 특별히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군대를 조직하려는 목적상 하나님의 거룩한 군사로의 부름 때문에 성인 남자들만이 계수되었다.

(주); 가족과 종족을 따라 - 가족(*, 미쉬파하)이란 아버지와 어머니를 중심한 1세대의 가정을, '종족'(*, 베트 아보트)이란 '아버지', '우두머리(조상)'를 의미하는 '아브'와 '집', '가족' 등을 의미하는 '바이트'의 합성어로서 곧많은 가족들이 모인 집단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가족'보다는 크고 '지파'보다는작은 규모의 집합체를 뜻한다(수 7:14). 한편 이와같이 혈연 관계를 중심하여 각각을 계수하게 한 것은 결코 분열 의식이나 비정상적인 경쟁 의식을 부추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1)각자의 출생 근원을 기억하게 하며, (2) 각각의 가족 공동체가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을 추진해 간다는 공동체 의식과 선민(選民)의식 및 역사 의식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주); 명수(名數)대로 - 여기서 '명수'란 사람을 샘할 때 각각의 대상이 되는 '머리'(HEAD), 또는 '계산된 수'(count, number)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KJV에서는 '그들의 이름 수대로'(according to the number of names)라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이는 한 사람의 누락도 없이 모두 계수되어야 함을 나타낸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마치 택한 백성들의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하나의 누락도 없이 등재(登載)됨을 연상시킨다(계 21:27).

(주); 계수(計數)할지니 - '계수하다'란 말은 히브리어로 '파카드'(*)인데 '계수하다'는 의미보다 오히려 '점호하다', '정열하다'는 뜻의 군사적인 용어로 번역함이 좋다(Lange).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군대 조직으로 재편성하시기 위해 인구조사를 명하셨기 때문이다(출 12:17, 51). 한편 KJV에서는 '총계를 내다'(take thesum)로, 여타 영역본에는 '명부에 게재하다', '등록하다'(register)로 번역했다.

성 경: [민1:3]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 명령]

(주); 이십 세 이상으로 - 여기서 '20세'란 육체적으로 성숙하고 건장한 자인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미숙하지 않은 자란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1) 비록 체력적으로 건장하고 나무랄데가 없다 할지라도 연령이 20세에 미달될 때에는 군대 조직에 계수함 받을 수 없었고 (2) 비록 연령상으로는 20세가 넘었다 할지라도 체력적으로 전쟁에 참가하기 어려운 자, 곧 신체 허약자 및 신체 장애자들 역시 군대 편제상 계수함 받을 수 없었다(Matthew Henry).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 중 이 두 조건들이 모두 갖춰지지 못할 때 그는 '싸움에 나갈 만한 자'가 되지 못했다. 이는 오늘날 십자가의 군사로 부름 받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고 강건할 때 비로소 대적 마귀와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요일 2:13, 14). 한편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는 본장에서 무려 14회 반복되고 있다. 히브리 문학에서는 어떤 사실을 강조하고자 할때 그것을 반복하는 역설체적(力說體的) 기법을 사용한다. 그런 점에서 위의 문구(文句)는 그러한 조건에 합당한 자는 계수에 있어 절대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은 단순히 인간적인 열정과 지혜로 수행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에 근거하여 수행되어져야 했다.

(주); 그 군대대로 - 여기서 군대(*, 체바오트)란 말은 '싸우다'(*, 차바)에서 파생된 말이다. 출애굽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죄악이 관영한 가나안 민족을 심판하기 위해 싸울 군대로 삼으셨고(출 12:17), 당신 자신은 그 군대의 총사령관이심을 분명히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가 이스라엘 군대 앞에서 행진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반영한다(10:33). 한편 사사 시대 이후에는 하나님을 전쟁의 신(神)으로 묘사하는 명칭인 '만군의 여호와'란 말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삼상 1:3). 그리하여 '체바오트'가 하나님의 이름과 연결되어 '만군의 여호와' 등으로 쓰인 경우가 구약 성경에 약 285회나 된다. 하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아테네(Athene)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즉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는 무엇보다 죄와 싸우시는 분이시다.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각각 77회, 62회씩 언급한 예레미야와 이사야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실로 성경은 만군의 하나님께서 장차 죄악 세상을 평정하시고 공편과 정의의 세상을 세우실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사 9:3-7). 따라서 오늘날 하나님의 군대인 교회의 사명도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롬 14:17)를 대망하며 '세상의 죄와 싸우는 것'으로 규정될 수 있다.

성 경: [민1:4]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의 책임자들]

(주); 두령 - 각 지파 장로들의 모임을 대표하는 자(NIV, the chief leader)를 가리킨다. 그런데 '두령'을 뜻하는 히브리어 '로쉬'(*)는 본서에서 '두령'으로 번역되었으나, 본서 이외에서는 대부분 '족장'으로 번역되어 있다(수 14:1; 19:51; 21:1; 대상5:7; 스 8:16). 이처럼 '로쉬'라는 말이 혼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두령과 족장은 동일한 의미인 듯하다. 여하튼 이들은 모세와 아론을 보필하여 이번 연구 조사를 주도해 갈 자로 부름받았다. 한편 이것은 성막세를 거둘 때의 인구 조사시 레위인들이 보필했던 것과는 대조가 된다(출 38:21). 그 이유는 아마 성막세를 거들 때의 인구 조사는 순수한 종교적 목적으로 시행된 것인 반면, 여기서의 인구 조사는 군대 편제상의 목적에서 실시한 것이기 때문인 듯하다(Pulpit Commentary).

(주); 너희와 함께 하라(*, 이트켐이흐유) - 직역하면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라'란 뜻이다. 이미 이스라엘은 수많은 민사 소송을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한 행정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출 18:13-26). 하지만 광야 행진과 가나안 정복 전쟁을 조직적으로 수행해 낼만한 군사 체계는 아직 미흡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군사조직으로서의 편재를 갖추는데 힘쓰며. 또한 정비된 군사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지휘관들을 직접 선택하심으로써 향후 광야 행진과 가나안 정복 전쟁을 위해 이스라엘을 명실상부한 군대로 재정비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단의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즉 군대는 한 사람의 독불 장군이 지휘할 때보다 명석한 참모들과 유능한 일선 지휘관들의 협조가 뒷받침될 때, 보다 능률적으로 움직여진다는 사실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의 판단보다 여러 사람의 판단과 협력이 어우러질 때 교회가 더욱 성장할수 있는 것이다.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謀士)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잠 15:22).

성 경: [민1:5]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의 책임자들]

(주); 함께 설 사람 - 여기서 '서다'(*, 아마드)란 말은 시중들기 위해 곁에서 긴장하며 기다리고 서 있는 자세를 일컫는다. 그러므로 모세, 아론과 '함께 설 사람'이란 두 지도자를 보좌하여 하나님의 뜻을 원활히 수행해 갈 협력자 내지 조력자(助力者)를 뜻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의 교회 지도자들은 바로 우리의 유일한 지도자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선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조력자로서 복음 전파 사역을 담당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성 경: [민1:5, 6, 7, 8, 9, 10, 11, 12, 13, 14, 15]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의 책임자들]

본문은 인구 조사를 담당할 실무진들의 명단을 하나님께서 친히 제시한 장면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들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가 하나같이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즉 그들의 이름에는 '엘'(하나님), '아비'(아버지), '아히'(형제), '술'(반석)등의 종교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셈족 계통의 어근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는 적어도 그들의 삶이 하나님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각 이름들을 도표화 하면 다음과 같다.

지파명 두령명 이름의 의미

르우벤 엘리술 하나님은 반석이심

시므온 슬루미앨 하나님과 평화롭게

듀 다 나 손 하나님께 예물 드린자

잇사갈 느다넬 하나님께서 주심

스불론 옐리압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심

브라임 엘리사마 하나님께서 들으심

므낫세 가말리엘 하나님은 상급이심

베냐민 아비단 아버지는 심판관이심

단 아히에셀 내 형제가 도움

아셀 바기엘 하나님께서 만나 주심

갓 엘리아삽 하나님께서 더하심

납달리 아히라 고난의 형제

성 경: [민1:16]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의 책임자들]

(주); 회중에서 부름을 받은 자(*, 케리에 하에다)- 여기서 '회중'(*, 에다)은 '증거'(창 31:52), '증인'(레 5:1) '징벌'(미 6:9), '약속'(암 3:3)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로서(2절), 이스라엘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부름 받은 언약 민족임을 시사해 준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민의식 속에서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다(출 19:5, 6). 그런데 5-15절에 언급된 족장들은 부름 받은 회중 가운데서 또다시 부름을 받은 자들이므로 더욱 영예로운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 역시 죄악 세상에서 불러내시사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롬 8:30)으로 말미암아 선택 받은 자로서의 영예를 누리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벧전 2:9). 더욱이 그 중에서도 일꾼으로 소명을 받은 교회 지도자들은 더한층 그 영광의 직분에 감격하면서 성심껏 봉사해야 할 것이다(고후 3:6-11).

(주); 천만인의 두령 - 여기서 '천만인'(*, 엘레프)이란 문자적으로는 '천'(family)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말은 '가족'(family) 혹은 '종족'(clan)등의 뜻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러므로 '천만인'이란 단순한 문자적 수효가 아니라, 상징적으로 가족이나 종족이 모인 '수많은 무리'를 가리킨다. 한편, 이처럼 각 종족의 두령들에게 '천만인'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은 그들에게 위임된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를 보여 준다. 실로 거룩한 공동체를 관리, 운용해 가며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일처럼 이 세상에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란 없다.

성 경: [민1:17]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의 책임자들]

(주); 지명된(*, 니케부 베쉐모트) - '그 이름으로 표시된'이란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매우 직접적이고 개인적이다. 아마 그것은 사명감을 보다 분명히 하고, 신적 직분의 권위를 각자에게 부여하기 위한 배려로 생각된다. 모세(출 3:1-4:31), 여호수아(신 31:23), 기드온(삿5:11-24), 사무엘(삼상 3:1-21), 이사야(사 6:1-13), 예레미야(렘 1:4-19),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막 3:13-19), 바울(행 9:1-22)등이 하나님에 의해 직접적으로 지명된 일꾼의 대표적 경우이다. 한편 초대교회 이후에는 사도들과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교회 직원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행 7:5-7; 14:23; 딛 1:5). 그러나 간접적으로 선출된 일꾼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명받아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딤전 6:12), 디모데처럼 신적 권위를 갖고 사역해야 할 것이다(1:1-16 강해,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명의식).

성 경: [민1:18]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 시행]

(주); 자기 계통을 말하매 - 즉 '출생을 밝혔다'. '계보에 입적하였다'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선민으로서의 구비 요건 중 가장 중요시한 것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출신을 명확히 아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개체로서의 자신 이전에 하나님과 연관된 가문 및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신을 더 중요시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이 가문을 통해 계속 자신이 살아갈 것을 신앙처럼 믿고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각 지파는 계보에 올라가 있는 자들에 한해서 군사수를 점검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보에 들지 않은 자들은 약속의 후손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부정하게 여겼기때문이다(스 2:62). 그 결과 출애굽시 이스라엘을 따랐던 '중다한 잡족'(출 12:38)은 군사로 동원되지 않고 단순히 노동에만 종사한 듯이 보인다(신 29:11).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살면서 불평 불만의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를 초래케 했다(11:4-6, 33).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이 군대 편성에서 제외된 것은 당연하다. 한편 오늘날 진리를 위해 싸워야 하는 교회 역시 구성원들인 성도들의 계보와 출생이 분명해야 한다. 즉 하나님께로서 난 자(요 1:13),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신 자(약 1:18), 생명책에 녹명된 자(빌 4:3)라야 진리와 복음을 위한 투사가 될수 있다. 거듭나지 못한 자들은 사단의 수하에 있으므로, 진리의 편에 서지도 못하고(요 8:44) 사단을 대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마 12:25, 26). 그러므로 이와 관련하여 오늘날 가시적인 교회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는 거듭났다고 자처하는 신자들이 최선을 다해 불의와 싸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요, 다른 하나는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자들이 거듭나지 못했거나 영적 출생을 거의 무시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폐단을 개선하지 못하는 한, 교회는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히는 소금'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마 5:13).

성 경: [민1:19]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조사 시행]

(주); 여호와께서 ... 명하신대로 - 이 말의 뜻은 회막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받았던 모세가 그 명령을 게으름이나 부주의함 없이 신속, 정확하게 준행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실로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적이어서 인간이 그것을 수행해도 되고 그렇지 않아도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볼 때 그 명령이 불합리하고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오직 전적인 순종만이 요구될 뿐이다(창 22:1-19).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폭군의 포악스런 명령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나님의 명령은 그 명령과 더불어 그 명령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역동적인 힘을 제공한다(창 1장; 느 9:8). 그러므로 명령 받은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순종뿐이다.

(주); 계수하였더라 - 성경 기록상 계수 기간은 단 하루 걸렸음을 알수 있다(1, 18절). 이처럼 60만 명이 넘는 장정들의 인구 조사가 단 하루 동안에 끝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일전에 성막건축을 위한 인두세(人頭稅) 수금시 인구 조사를 철저히 실시했던 그 자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이며(출 30:11, 12; 38:26) (2) 이스라엘 백성이 한 곳에 밀집하여 모여 있었다는 사실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고 (3) 또한 각 두령들의 헌신적인 노력 및 백성들의 자발적인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 경: [민1:20, 21]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수효]

(주); 르우벤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 - 르우벤은 이스라엘(야곱)의 12아들 중 장남이었으나, 서모(庶母) 빌하와 간통함으로써 가문과 여호와의 영광을 더럽혔다(창 35:22;49:4). 그 결과 그는 저주를 받아 장자권을 상실하게 되었고 대신 요셉이 그 권한을 부여받았다(대상 5:1,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 여전히 르우벤 지파가 인구 조사 결과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아마 그의 영적 장자의 지위는 인정치 않더라도, 육체적으로 야곱의 첫째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는 본서 기자(記者)의 의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성 경: [민1:22, 23, 24, 25]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수효]

르우벤 지파와 함께 시므온과 갓 지파가 언급된 것은 그들이 르우벤 지파와 가장 절친한 형제 지파이기 때문이다. 즉 시므온은 르우벤을 장남으로 낳은 레아의 둘째 아들이며, 갓은 레아의 시녀인 실바의 장남이다(창 29:33; 30:10, 11). 한편 이들 세 지파는 진 배치에 있어서도 동일한 선상에 놓이게 되었다. 이같은 일련의 조치는 결코 파벌 의식을 조장키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갈등과 마찰을 해소시키고 형제의 우애를 돈독케하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운 조치였다. 사실 인간이 모인 곳에는 어디나 갈등과 긴장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만유를 통일하시며 평안케 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당면한 모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엡 4:6).

성 경: [민1:26, 27, 28, 29, 30, 31]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의 수효]

광야 행진에서 유다 진기(陣旗)에 속한 지파의 총계이다. 여기서 유다가 레아의 넷째 아들이면서도 르우벤 진(陣) 배열에 소속되지 않은 것은 그가 르우벤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장자에 피택되었으므로 독립적인 지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창49:8-12). 특별히 이 지파는 가장 많은 군인 수를 보유하였을 뿐 아니라. 광야 행진중 선봉(先鋒)에서는 영예로운 승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이는 전적으로 야곱의 예언(창 49:8-11)이 성취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바, 이후 예수님께서 이 지파에서 출생하심으로써 야곱의 메시야적 예언은 온전히 성취되었다 (마 1:2; 계 5:5), 한편 유다 지파와 절친한 레위 지파가 이곳에 등재되지 않은 것은 그 지파는 특별히 성막봉사자들로 성별(聖別)되어 군복무를 면제 받았기 때문이다(47-53절; 8:9-26). 그리고유다 진영의 깃발 아래 소속된 잇사갈과 스불론은 각각 레아의 다섯째와 여섯째 아들이다(창 49:1-28 강해, 이스라엘 열 두파의 형성과 분류).

성 경: [민1:32, 33, 34, 35, 36, 37]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요셉, 므낫세, 베냐민 지파의 수효]

본문은 요셉과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들의 총계이다. 여기서 요셉의 두 아들의 지파가 삼촌들의 지파와 동등한 위치에서 계수된 것은 구속사의 일익(一翼)을 담당했던 요셉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축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창 48:5-20). 그중에서도동생 에브라임 지파가 모든 면에서 형 므낫세 지파보다 우위를 차지한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주권적 선택의 결과였다(창 48:13, 14, 17-19), 즉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유언적 예언을 통해 '그 아우를 그 형보다 크게' 하셨던 것이다(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이성과 제도에 얽매이시지 않고 당신의 선한 계획을 추진해 가신다(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초월적이고 주권적인 섭리 앞에 인간은 다만 겸손히 그것을 수용, 인정해야 할 뿐이다(롬 18-29).

성 경: [민1:38, 39, 40, 41, 42, 43]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단, 아셀, 납달리 지파의 수효]

본문은 단 지파와 그의 가까운 지파들 곧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의 군인수 총계이다. 이들은 계수 때나 행진시를 불문하고 맨 마지막에 언급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육적으로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열등한 지파였기 때문이다(2:25-31: 10:25-27). 특히 단 지파는 가나안 정착 이후에 이스라엘 내에서 기업이 될 땅을 얻지 못해 방황하기도 했으며, 또한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자적으로 우상 숭배를 일삼아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기도 했다(삿 18장). 그러므로 계시록의 기록에 의하면 결국 이들은 12지파의 반열에서 제외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계 7:5-8). 이는단의 장래를 예언한 야곱의 말이 온전히 성취된 것이다(창 49:16-18). 이러한 단 지파의 결말은 곧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자들의 최후가 허무와 절망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단 진영의 깃발 아래 소속된 아셀은 레아의 여종 실바의 막내 아들이고, 납달리는 라헬의 여종 빌하의 막내 아들이다(창 30-13).

성 경: [민1:44]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총계(總計)]

(주); 족장 십 이 인 - 이들은 이번 인구 조사를 위해 이스라엘 12지파를 대표하여 뽑힌 자들이었다. 특별히 여기서 '족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시'(*)는 '높이 들리다'란 뜻의 '나사'(*)에서 파생된 말로, 곧 각 지파의 군대 지휘관들을 의미한다. 한편 이 말이 4절에서는 '두령'(captain)으로 번역되었다. 따라서 보다 자세한 내용은 4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1:45]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총계(總計)]

(주); 이 십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자 - 1:3 주석 참조.

(주); 계수함을 입었으니 - 즉 성전(聖戰)을 담당할 군인 명단에 등재 되었음을 뜻한다(2절).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곧 (1) 그들이 사적(社的)인 존재에서 이스라엘은 백성을 대표하여 싸우는 공적(公的)인 존재로 변화되었다는 점과 (2) 그들 사명의 최종 목표는 가나안 정복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점 (3) 그리고 무엇보다 계수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확실한 증표를 얻었다는 점 등을 강조한다(딤후 2:19). 한편 오늘 십자가의 군병으로 부름 받은 우리들도 단순히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등재된 것만으로 자족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구됨과 소유됨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삶의 최종 목표인 영적 가나안 곧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날마다 사단과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성 경: [민1:46]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인구 총계(總計)]

(주);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 - 이스라엘 12지파 중 싸움에 나갈 만한 군사로 부름받은 자의 총계(總計)이다. 그런데 이 숫자는 대략 아홉 달 전 성막 건축을 위한 속전 대상자의 총계와 동일하다(출 30:11-16; 38:26). 이러한 일치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크게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본문의 통계는 성막 건축 전 속전 대상자의 명단 조사 결과(출 38:26)에 전적 의존한 것으로서, 여기서는 단지 군대 편제를 위해 가족과 종족과 지파별로 분류하여 공문서로 작성했을 뿐이라는 견해(Keil, PulpitCommentary). (2) 본문의 통계는 속전 대상자의 인구 조사와 긴밀히 연관되었으나 '603, 550명'이라는 정확한 수치는 이번의 인구 조사에서 처음으로 총계된 숫자라는 견해이다(Lange). 여기서는 첫번째 견해가 타당한 듯한데, 그 근거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다. 즉 (1) 이번 징병 대상자의 총계가 단 하루 동안에 완료되었다는 사실(2) 시간상 저번 성막 건축 전의 속전 대상자의 총계가 있어야만 분명히 인두세(人頭稅)를 징수할 수 있었고, 또한 그 세금에 근거하여 그 기금으로 성막 건축을 완료할수 있었겠기 때문이라는 사실 (3) 그리고 이번의 인구 조사에서는 각 개인보다는 유난히 '가족과 종족을 따라' 계수하라는 명령이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 등을 들 수 있다. 결국 오경(五經)의 기록자인 모세는 지난번 성막 건축전의 속전 대상자 총계를 근거로 이번 징병대상자의 총계를 산출했던 것 같다.

성 경: [민1:47]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제외된 레위 지파]

(주); 레위인은 ...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 레위 지파는 병역 의무로부터 면제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성별(聖別)되어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성막을 호위하며, 또한 그곳에서 진행되는 제반 업무에 전적으로 봉사할 사명을 맡았기 때문이다(3장; 출 13:2, 13).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세상적인 일, 심지어 자신의 생계를 위한 여타의 노동도 할 수 없었으며,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이다(3:12, 13). 한편, 그러나 여기에 레위인이 계수에 들지 않았다는 것은 전체 이스라엘 군인수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뜻일 뿐, 그들이 전혀 계수함 받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레위 지파가 가지는 독특한 의미 및 직무를 따라 일개월 이상된 남자들로써 별도로 계수함 받았다(3:39).

성 경: [민1:48, 49]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제외된 레위 지파]

레위 지파만은 ... 계수 중에 넣지말고 -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에 계수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은 금송아지 숭배 사건때 하나님께 전적 헌신함으로 말미암아 (출32:26-29), 그후 오직 하나님의 일만을 하도록 특별히 구별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레위인 성별 사상은 일찍이 레위기 규례 속에서 암시되어 오다가(레25:32-34), 이제 본서에 이르러 완전히 공식 인준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레위인들은 명분상 이스라엘 장자들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초태생 규례(출 13:2, 13)에 근거해 그들 대신 하나님께 바쳐진 것으로 간주되어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 속에는 계수되지 않았던 것이다.

성 경: [민1:50]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제외된 레위 지파]

(주); 증거막 - 곧 하나님의 임재를 증거하는 성막을 가리킨다. 한편 이 말이 생겨난 것은 성막 속에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을 증거하는 증거판(십계명 두 돌판)이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성막이나 장막이란 말외에 특별히 '증거막'(the tabernacleof the testimony)이라 지칭할 때엔 언제나 하나님의 율법, 계명, 규례 등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주); 모든 기구 - 이 말은 '그것(성막)에 속한 모든 기구', 곧 언약궤, 향단, 진설병상, 등대, 번제단, 물두멍등을 가리킨다(출 25:29, 38, 39; 27:3, 4; 37:16, 24; 39:36-39)

(주); 모든 부속품 - '그것(성막)에 딸린 모든 것', 즉 말뚝, 줄 등을 말한다(출 35:18;38:40). 실로 성막과 모든 기구들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내는 동시에(출 40:34, 35),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그의 중보 사역을 보여주는 가견적 상징물이다 (히 8:1-6; 9:1-15;10:19, 20). 그러므로 그것들은 세심한 배려 속에 잘 관리되어야 했다. 한편 영적으로 오늘날에는 성도들 각자가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성전이며(고전 3:16, 17; 6:19), 신령하고 보편적인 성전을 이루는 각 지체들이다(엡 2:21, 22).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의 몸을 모든 악의 요소로부터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성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롬 12:1, 2).

(주); 운반하며 - 기본 동사 '나사'(*)는 '들어 올리다'로서 곧 손으로 옮기는 행위외에 각종 도구를 사용하여 물건을 운반하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사실 레위인 중에는 성물을 그종류에 따라 고핫 자손처럼(4:15) 어깨로 메어 옮기기도 했으며,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처럼(7:7, 8) 수레로 운반하기도 했다.

(주); 거기서 봉사하며 - 곧 '그것을 돌보라'(NIV, take care of it)로 번역할 수도 있다. 즉 레위인들에게는 성막의 기구들을 돌보는 책임이 공식적으로 부여되었다는 의미이다. 한편 그러나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는 교회의 지체들, 곧 성도들을 돌보는 책임이 부과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빌 2:4).

(주); 장막 사면에 진(陣)을 - 이 말은 레위인의 존재 목적을 분명히 한 구절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처소인 거룩한 장막 주위에 항상 거하면서 (1) 성막 봉사를 위한 준비를 해야 했으며 (2)성막에 접근하는 자들을 통제해야 했고 (3)성물이 탈취당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지 않도록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친위대(親衛隊)로서 오직 그분의 영광을 위해 존재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는 오늘날 우리들의 존재 목적을 명확히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하나님과 늘 동행하면서 그분의 영광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영적 레위인들인 것이다(고전 10:31).

성 경: [민1:51]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제외된 레위 지파]

(주); 걷고 ... 세울 것이요 - 이 말은 하나님의 지상 임시 처소라 할 수 있는 장막의 이동과 설치를 가리킨 말이다(4:4-33),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동 생활을 연일 계속해야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동에 편리한 장막 구조를 허락하셔서 그것을 걷고 세우는 일을 반복케 하셨다. 한편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영원한 거주지로 삼을 수 없었으며, 가나안을 목적 삼고 장막을 매일 걷고 세우는 일에 충실해야 했다. 이는 오늘날 광야 같이 험준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세상에 대해서는 행인과 나그네요 이방인 일 수 밖에 없는(히 11:13; 벧전2:11) 우리들은 유한하고 제한적인 이 세상에 안주하여 잠시 잠깐의 쾌락을 추구하기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매일 진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분명 이땅에 거주하는 인생을 '풀', '안개'와 같이 순간적이고 임시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시 103:15; 약 4:14).

(주); 외인(*, 주르) - 원래는 이방인이나 적대국 백성을 의미했으나, 여기서는 비(非)레위 지파 사람들 즉 이방인 뿐 아니라 이스라엘 중에서도 레위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한편 레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준받지 않은 외인들의 성막 접근을 철저히 막아야 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침범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실로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총없이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을 스스로 보존하시기 위한 비상 조치이다(츨 19:12; 삼상 6:19). 한편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보존하는 파수꾼으로서 '외인'의 접근을 사전에 막아야 했으며, 그래도 가까이 오는 자는 단호히 살해해야 했다. 만일 그렇지 못하고 성막이 파괴되거나 하나님의 거룩이 훼손되는 날이면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전체에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53절; 17:13;18:5; 수 9:20; 22:20).

성 경: [민1:52]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제외된 레위 지파]

(주); 이스라엘 자손은 막을 치되 - 여기서 '막'(幕)이란 거주 또는 공격을 하기 위해 친 '진'(陣)을 가리킨다. 특별히 본문에서는 성막을 중심하여 성막 주위에 이스라엘 12진파의 진 곧 장막을 칠 것이 명령되어 있다(2:1-34). 결국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할 때나 질주할 때를 막론하고 항상 하나님의 성막을 중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주); 기 곁에 칠 것이나 - 히브리어에는 기(旗)를 가리키는 세 가지 용어가 있다. 첫째가 본절에 사용된 '데겔'(*)로서 백성들의 단체나 집합을 상징하는 의미의 기(standard)를 지칭한다(2:34; tl 20:5). 이것은 주로 전쟁에 있어서의 군호(軍號)를 가리킨다. 둘째는 '네스'(*)인데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집중시키는데 사용되는 푯대 또는 기를 가리킨다(사 13:2; 18:3). 따라서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기)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네스', 즉 이스라엘의 구심점이 되심을 적절히 보여 준다(출 17:15). 셋째는 '오트'(*)로서 이것은 '데겔'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지만 '데겔'이 큰 군대를 위해 사용된 반면 이 말은 작은 무리나 가족을 위해 주로 사용되었다(시 74:4). 그리고 성경에서 '오트'는 '데겔'이나 '네스'보다 더 많이 사용 되었는데 흔히 표지, 푯대를 뜻한다. 한편, 이처럼 이스라엘이 성막을 중심으로 4방면에 기(旗)를 세우고 진(陣)을 친 것은 적어도 다음 3가지 의미를 지닌다. (1) 이스라엘의 삶이 예배 중심이라야 한다는 뜻이다. (2) 이스라엘 군대의 통수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뜻이다. (3) 이스라엘의 군대 조직과 질서가 '여호와 신앙'으로 통일성을 갖는 동시에 또한 각 지파별로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성도들의 삶도 이와 같아야 한다. 곧 성도 각자가 몸 담고 있는 교회를 중심한 예배 생활에(행 2:46),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생활(대상 29:11, 12), 신앙 공동체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바로 인식하여 서로 단결하며 피차 조화를 이루는 생활(고전 12:4-27)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 경: [민1:53]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제외된 레위 지파]

(주); 레위인은 증거막 사면에 진을 쳐서 - 특별히 하나님께 헌신되어진 레위 지파 사람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그 사면 가까이에 진을 쳐야했다. 그 이유는 (1) 그들의 직무상, 그들은 성막을 위해 언제라도 봉사해야했기 때문에 늘 가까이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고 (2) 그들의 책임상, 그들은 성막 안으로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 사면을 단단히 호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성막을 침범한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면치 못했고,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는 이스라엘 전체 위에 임했다. 물론 당시 성막 호위를 맡은 담당 레위인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 책임을 지킬지니라 - 여기서 '지키다'(*, 솨마르)란 말은 모든 주의를 기울여 세심하고도 확실하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본 명령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생명을 돌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수행할 것을 요구한 내용이다. 또한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름받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절대적인 명령이기도 하다(창 26:5; 레 8:35).

성 경: [민1:54]

주제1: [첫번째 인구 조사]

주제2: [제외된 레위 지파]

(주); 행하되 ... 행하였더라(*, 와야아수... 켄 아수) -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은 행했다... 그렇게 행했다'란 뜻이다. 이스라엘의 전적인 복종을 강조하기 위해 이처럼 반복법이 사용되었다. 실로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순종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가장 귀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민족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즉 본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민족 지도자로 추앙을 받는 모세도 사실은 하나님의 사환(使喚)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히 3:5).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이셨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교회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오늘날 교회의 목회자나 장로는 하나님의 종으로 봉사할 수는 있어도 지도자로 군림해서는 안된다. 교회의 지도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기 때문이다(마 23:10).

성 경: [민2:1]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각 지파의 배진(配陣) 명령]

(주); 여호와께서 ... 일러 가라사대(*, 와예다베르 예호와) - 이스라엘이 모압 평지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민1-21장은 대부분 '여호와께서말씀하셨다'라는 선언으로 시작된다. 7장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선언이 빠진 11, 12, 14, 16, 20, 21장이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패역한 모습을 다루고 있어 이채롭다. 그러나 그 내용 중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라는 선언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 장은 하나도 없다. 그만큼 본서는 이스라엘 군대의 총사령관이 되사 이스라엘을 친히 지휘하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를 역설(力說)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민2:2]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각 지파의 배진(配陣) 명령]

(주); 기(旗) - 성막을 중심으로한 네 방향 곧 동서남북을 대표하는 각 지파의 진(陣) 깃발을 가리킨다. '기'의 종류에 대해서는 1:52 주석을 참조하라. 그런데 이것들은 각각 유다 깃발(18절), 르우벤 깃발(10절), 에브라임 깃발(18절), 단 깃발(25절). 그러므로 이스라엘 군대는 이 네 깃발을 중심으로 4대(隊)를 이루어 행진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네 지파들은 모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들로서 장차 구원 받을 모든 피조물(4는 피조물의 숫자)을 암시하기도 한다(계 4:6-11). 한편 유대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네 군단(軍團) 깃발의 문장(紋章)과 색깔은 다음과 같았다고한다. (1) 동쪽 유다 진영을 대표한 기는 웅크린 사자의 모습이 그려진 녹색기였다. 여기서 사자의 모습은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라고 한 야곱의 예언을 반영한 것이고(창 49:9), 녹색기는 판결 흉패의 12색깔 중 유다 지파를 상징하는 '녹주옥'을 반영한 것이다(출 28:17). (2) 남쪽 르우벤 진영의 기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홍색기였다. 이는 르우벤이 장자로서 가족의 머리였기 때문인 것 같다(창 49:3). (3) 서쪽 에브라임 진영의 기는 송아지 형상이 그려진 황색기였다. 이것은 요셉이 해몽한 바 바로의 꿈에 나타났던 소를 연상시킨다(창 41:1-4). (4) 북쪽 단 진영의 기는 독수리가 새겨진 백색과 홍색이 섞인 기였다. 이는 뱀으로 묘사된 단(창 49:17)이 이를 싫어하여 뱀의 천적인 독수리를 채택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리고 그 깃발의 색깔은 판결 흉패의 '벽옥' 색깔을 반영한 것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Testament, Vol. I-iii. pp. 17-18). 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러한 그들의 전승 근거는 다음 두 가지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즉 첫재, 문장은 야곱의 임종시 예언(창49:1-27)에 기초한 것이고 둘째, 색깔은 대제사장의 판결 흉패의 색깔(출 28:15-21)에기초한 것이다. 한편 유대 랍비들은 이러한 네 군단의 문장(紋章, crest은 후일 에스겔의 환상 속에서도 분명히 확증된다고 한다(겔 1:10). 그러므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이 네 지파의 깃발은 하나님을 옹위하고 있는 모든 피조계를 대표하는 4생물들의 모습과 일치한다(겔 1:4-14; 계 4:6-11). 또한 성막과 그 사면의 깃발들, 그리고 천국의 보좌와 보좌 주위의 4생물들의 관계를 유추해 보면, 실로 광야에 세워진 성막은 천국과 하나님 임재의 상징임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광야의 진(陣) 배치는 오늘날 광야같이 험악한 인생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에게 소망을 주는 희망찬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 가나안을 향해 행군하는 신앙의 순례자들은 C. F. 버틀러의 찬송시처럼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노래하며 신앙의 행진을 계속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윗도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기에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때일지라도 오히려 천국의 풍요와 안식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시 23:1-6).

(주); 종족의 기호 - 여기서 '기호'(*, 오트)란 '신호', '표', '표시', '깃발' 등을 가리킨다. 이것은 네 방향을 대표하는 네 지파의 '기'(*, 데겔)와는 달라 단순히 12지파 각 종족을 상징하는 깃발일 것이다(Keil). 그리고 각각의 '기호'에 배경을 이루는 색깔은 아마도 대제사장이 달았던 흉패위에 박힌 12개 보석의 색깔과 동일할 것으로 추측된다(출 28:17-21).

(주); 회막을 사면으로 대하여 - 직역하면 '회막 주위로 마주 보라'는 뜻이다. 한편 KJV는'회막 주위에서 멀리 멀어져'(far off about the tabernacle)로, NIV와 공동 번역은 '만남의 장막에서 조금 떨어져'(the Tent of Meeting some distance)라고 해석했는데이는 수 3:4을 참조한 의역인 듯하다. 수 3:4에는 언약궤와 이스라엘 진과의 거리가 2000규빗(약 912m) 정도 떨어지도록 명령되고 있다. 그런데 RSV는 원문에 충실하게 '각 방면에서 회막을 보게끔'(facing the Tent of Meeting on every side)으로, 만일 이것이 옳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천막 입구는 회막을 향해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이스라엘은 항상 성막을 바라보며 그곳을 사모하고 특히 그곳에 임재해 계신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레 19:30; 단 6:10). 물론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임을 당하는'(1:51) 규례로 보아 회막과 주거지와의 거리는 어느정도 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성 경: [민2:3]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동편에 위치한 지파]

(주); 동방 해 돋는 편(*, 케드마 미즈라하) - 직역하면 '해 뜨는 방향인 동쪽'이다. 이는 성막의 앞 방향 곧 행진 방향이기도 하다(3:38). 또한 이곳은성막 주위에 진 배치를 시작할 때 제일 처음 언급된 곳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영광되고 아름다은 자리임을 암시한다. 이곳에 위치한 지파들은 유다의 기(旗)아래 모인 자들로서 행군할 때도 제 일 대로 진행하는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유다 지파를 향한 야곱 예언의 성취라 할 수있다(창 49:10). 이 예언은 다윗 때에 꽃을 피워(삼하 2:4-7; 5:1-3)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 실로 유다가 해 돋는 동편을 차지한 것은 의로운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말 4:2)께서 유다의 가계를 통해 나실 것을 예시한다(히 7:14). 과연 예수께서는 해처럼 찬란한 '세상의 빛'으로 오셔서 우리를 생명과 진리의 길로 인도하셨다(요 8:12; 9:5;10:3, 4). 한편 밧모 섬에서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바라본 바 그리스도의 얼굴이 해와 같았다는 사실은 위의 내용과 잘 부합된다(계1:16).

(주); 진 기에 속한 자라 - 즉 동쪽 방향을 대표하는 유다 진(陣) 기에 예속된 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표현은 종속적인 의미라기 보다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에게 내린 지휘권에 자발적으로 순종함을 가리킨다. 실로 이스라엘은 여호와 단 한 분의 왕으로 족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지파 백성들은 각자의 인격과 지위를 인정해야 했으며 서로가 유기체적인 관계를 지닌 자들로서 서로를 섬기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데 힘써야 했다. 이런 점에서 출애굽 여정 중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광야 교회'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고전 12:4-31).

(주); 유다 자손의 족장은 ... 나손 -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을 지도할 우두머리 한 명씩을 선출하셨다. 그런데 그 지도자들은 지난번 인구 조사 때 모세와 아론을 도와 실무를 담당했던 자들이었다. 즉 1:4-16 에 기록된 지파의 두령들이 2:3-31에서 족장으로 재임명 받았던 것이다. 한편 재역 성경에서 족장이란 말로 표현될 수 있는 히브리어는 '알루프'(*), '나시'(*), '로쉬'(*), '사르'(*) 등이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창세기에는 '알루프'만이 쓰였고, 민수기에는 대부분 '각시'가 쓰였다. 본서에 자주 쓰인 '나시'는 '들어 올리다', '다른 사람들의 머리 위에 올리다' 등의 뜻인 '나사'(*)에서 온 말이다. 그러므로 '족장'(나시)이란 말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우두머리(prince, chief)로 높여진 자를 가리킨다. 즉 각 지파의 대표자로서 '하나님에 의해 들어 올려진 자'가 곧 족장이다. 이는 결국 족장의 권위가 하나남께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나타낸다(롬 13:1).

성 경: [민2:4, 5, 6, 7, 8]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동편에 위치한 지파]

주석 1:5-15 도표 및 1:20-46 도표를 참조하라.

(주); 계수함을 입은 자 - 1:45 주석 참조.

성 경: [민2:9]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동편에 위치한 지파]

(주); 제 일대로 진행할지니라 - 즉 '첫번째로 출발해야 한다'(RSV, they shall set outfirst)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용된 '첫번째'(*, 리숀)란 말은'머리'(*, 로쉬)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의 머리, 곧 행진시 선봉에 서는 영예를 누리게 된 셈이다(창 49:10). 그러나 그것은 직분상의 머리가 아니라 전투적 사명에 있어서의 머리를 가리킨다. 실로 유다 진 기에 속한 자들은 싸움에서 물러서기를 싫어했다. 그 단적인 예가 80세의 노년에 이르러서도 전투에 앞장 섰던 유다 지파 출신의 장군 갈렙의 용맹성에서도 잘 나타난다(민 13:6, 30; 수14:13, 14; 15:14). 진정 하나님은 비겁한 자를 요구하시지 않는다. 오직 강하고 담대한 자라야 그의 부르심을 따라 죄악과 싸우는 전투에 앞장 설 수 있는 것이다. H. W. 롱펠로우가 그의 시[인생 예찬]에서 '말 못하고 쫓기는 짐승이 되지 말고 싸움하여 이기는 영웅이 되라'고 외친 것처럼 지금은 영적 전쟁을 자발적으로 감당하는 성도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따라서 아이작 왓츠는 '뭇 성도 피를 흘리며 큰 싸움 하는데나 어찌 편히 누워서 상 받기 바랄까?' 라는 찬송시로 성도들의 분발은 촉진했다. 실로 용맹했던 유다 지파처럼 각자에게 부과된 사단과의 영적 전쟁을 충성스럽게 수행하기 위해 '제일 대'에 편성되어 싸움터로 나가는 성도야말로 오늘날 하나님 나라 건설에 꼭 필요한 존재인것이다.

성 경: [민2:10]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남편에 위치한 지파]

(주); 남편 - 남편은 행진하는 방향으로 보면 오른쪽에 해당한다. 통상 히브리인들은 오른쪽을 권능과 영광의 상징으로 보았다(출 15:6, 12; 시 118:15, 1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본래 야곱의 장자였던 르우벤의 자손들에게 이처럼 특별한 배려를 베푸신 듯하다.

성 경: [민2:11, 12, 13, 14, 15]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남편에 위치한 지파]

주석 1:5-15 도표 및 1:20-46 도표를 참조하라.

(주); 계수함을 입은 자 - 1:45 주석 참조.

성 경: [민2:14]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남편에 위치한 지파]

(주); 르우엘(*) - 1:14에 언급된 '드우엘'(*)의 오기인 듯하다(Keil, Pulpit Commentary). 아마 '레슈'(*)와 '달렛'(*)의 문자적 유사성으로 말미암은 사본 필사가들의 착각으로 잘못 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공동 번역은 이를 받아들여 '드우엘'로 교정하여 표기했다.

성 경: [민2:16]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남편에 위치한 지파]

(주); 제 이대로 - 실제 행군에 있어서 유다 지파를 뒤따랐던 제 2행렬은 성막 물품들을 운반하는 레위 지파의 게르손, 므라리 자손들이었다 (10:17-70). 그렇다면 르우벤 지파는 정확히 말해 제 3행렬에서 행진했던 것이다. 한편 레온 우드(L. Wood)같은 학자는 이들이 성막 물품을 호위하며 행진했을 것으로 본다(34절 도표).

성 경: [민2:17]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진(陣) 중앙에 위치한 회막]

(주); 회막이 레위인의 진과 함께 - 이는 고핫 자손들이 성막 내의 성물(聖物)을 메고 행진하는 것을 가리킨다(10:21). 이와 같이 성막의 성물은 성막과 분리되어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제일 중앙에 위치했다. 즉 이스라엘의 네 편대 중 두 편대(유다, 르우벤 진 기에 속한 자)는 회막 앞에 나머지 두 편대(에브라임, 단 진 기에 속한 자)는 그 뒤를 따랐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거주할 때 뿐 아니라, 행군 시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을 중심하여 생활할 것을 묵시적으로 명하셨다. 이는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로서, 진정 하나님께서는 장소를 불문하고 당신을 중심한 신앙생활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주); 중앙에(*, 베토크) - 즉 '가운데'란 뜻이다. 이말은 이스라엘 중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위치를 묘사할때 종종사용되었다(왕상 6:13; 겔 37:28; 43:7; 슥 2:5;8:3). 한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은 다음 두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종교적 의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시면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도우신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의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12지파의 단결을 이루는 구심점이요 통치의 중심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해 계실 때, 곧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가운데 있을, 이스라엘은 승승 장구(乘勝長驅)하였다. 그러나 '이가봇', 곧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을 때, 그들은 대적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했다(삼상 4:1-22).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 성도들의 삶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즉 하나님을 그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사는 자들은 그의능력을 체험하며 승리의 삶을 살게 된다(시 118:6, 7). 반면에 죄에 의해 주장받는 삶을 사는 자들은 슬프고 무기력한 나날 속에서 신음할 수 밖에 없다(시 31:10;32:3, 4). 그리고 한편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당신의 장막을 치셨다는 점에서 구원사(救援史)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self-revelation)를 발견하게 된다. 즉 하나님은 광야 시대이 성막 위에 머무르는 구름기둥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본체의 영광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써 자신의 열광을 확실히 계시하시게 되었다. 요 1:14에 기록된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는 표현 중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에스케노센 엔 헤민)를 직역하면 '그가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가 된다. 이는 성막을 통해 모형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자신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Incarmation)은 우리 가운데 임마누엘(마 1:23)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계시 중의 계시'인 것이다. 그리고 이 계시는 마침내 우리들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 우리가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며 동거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 아래 영원토록 머물게 될때 그 완연한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계 7:15-17; 21:3, 4).

(주); 그들의 진 친 순서대로 - 비록 상대할 적이 없고 지루한 광야 행군이라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실히 요구된 것은 '질서'였다. 하나님은 바로 이 질서 의식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께 대한 경외와 순종을 가르치기 원하셨던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혼돈과 무질서를 배격하시는 질서의 신(神)이시다(고전 14 :33).

(주); 그 위치에서 - 직역하면 '그의 손에서'란 뜻이다. 이말은 '... 다음으로'라는 의미도 지닌다(느 3:2). 여기서는 두번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곧 성막 주위에 진을 친 그대로 진행하라는 뜻이 아니고 진을 쳤던 자리에서 차례대로(앞선 지파 다음으로) 출발하여 진행하라는 뜻이다(10:13-28).

(주); 앞으로 행할지니라(*, 잇사우) - 본장의 '진행할지니라'(9, 16, 17, 24, 31절)는 말은 모두 여기서처럼 '앞으로 전진하라'는 뜻을 지닌다. 일례로 전진하지 않는 자전거는 곧 쓰러지고 만다. 마찬가지로 전진하지 않는 신앙 역시 똑같다. 그러므로 성경은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킨다"고 경고한다(잠 1 :32).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과 싸우기 위해 하나님의 군대로서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또한 승리의 시온 성에 들어가기 위해 순례자로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때로 우리의 앞길에 안개가 자욱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인도에 모든 것은 맡기는 자세로 믿음의 행진을 계속해야 한다(히 11:8).

성 경: [민2:18]

주제1: [성막 중신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서편에 위치한 지파]

(주); 서편에는(*, 얌마) - 원뜻은 '바다쪽에는'이다. 여기서 바다는 팔레스틴 서쪽에 위치한 지중해를 가리킨다. 그런데 비평적인 학자들은 이러한 표현이 팔레스틴에 살았던 자에 의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본서의 모세 저작설을 부인한다. 그러나 비록 모세가 팔레스틴에 거주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기거했던 가나안 땅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가나안 서편의 지중해를 '서쪽'이라고 지칭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중해 동쪽 출신의 조상들이 사용했던 관용어를 그대로 썼을지도 모른다(Lange)

성 경: [민2:19, 20, 21, 22, 23]

주제1: [성막 중신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서편에 위치한 지파]

주석 1:5-15 도표 및 1:20-46 도표를 참조하라.

(주); 계수함을 입은 자 - 1:45주석 참조.

성 경: [민2:24]

주제1: [성막 중신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서편에 위치한 지파]

(주); 그들은 제 삼 대로 진행 할지니라 - 진 기(陣旗) 상으로는 이들이 르우벤 진 기를 뒤따랐지만, 실제적으로 행군할 때에는 성막의 성물(聖物)을 운반하는 고핫 자손의 뒤를 따랐다. 그러므로 이들은 아마 고핫 자손의 성물을 호위하는 임무도 띠었으리라 추정된다(16절).

성 경: [민2:25]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북편에 위치한 지파]

(주); 단 군대의 진 기 - 제 4대의 진 기를 잡은 지파는 단 지파였다. 그 이유는 일찍이 야곱의 예언(창 49:17)에서도 암시된 바 이들은 그 전투적 속성으로 인해 용맹한 군대로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적 속성은 극히 타락하여 후일 단지파 지역은 우상 숭배의 진원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들은 광야 행진 시의 영예로운 위치에도 불구하고 그후 약화일로를 걷다가 마침내는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그 이름이 사라지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는 지파가 되고 말았다(계 7:5-8).

성 경: [민2:26, 27, 28, 29, 30]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북편에 위치한 지파]

주석 1:5-15 도표 및 1:20-46 도표를 참조하라.

(주); 계수함을 입은 자 - 1:45 주석 참조.

성 경: [민2:31]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북편에 위치한 지파]

(주); 후대로 진행할지니라 - 도합 157, 600명으로 구성된 이 진영은 선봉에 선 유다 진영 다음으로 군인 수가 많았을 뿐 아니라, 기질상 용감하고 전투적이었기 때문에 (창49:16-21) 이스라엘 진(陣)의 제일 후미 방어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성 경: [민2:32, 33]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완료된 배진]

(주);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 - 1:46 주석 참조.

(주); 레위인은... 계수되지 아니하였으니 - 1:47 주석 참조.

성 경: [민2:34]

주제1: [성막 중심의 진 배치와 진행 순서]

주제2: [완료된 배진]

(주);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여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했음을 보여 준다(1:54). 이러한 순종를 통해 실로 인간은 하나님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삼상 15:22). 그러나 초기의 이같은 아름다운 순종은 이후에 거듭 자행되는 이스라엘의 반역 및 불순종과 확연히 대조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사실은 신앙은 결코 한순간의 일이 아니라 일평생 계속되어야 할 성도의 과제임을 알 수있다. 이에 사도 바울은"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경고하였다.

(주); 진 치기도 ... 진행하기도 - 이 단순한 행동 속에 이스라엘 백성의 나머지 38년 간의 광야 생활이 함축되어 있다. 실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설정해 주신 행동의 규범을 따라 기나긴 광야 여정을 진행해 갈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 역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땅에 거하는 동안 주의 말씀과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과 필연성을 제공한다(시 119:105). 한편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전체 진 규모 면적은 12평방 마일(약 19,308km2) 정도였다고 한다(PalestinianTargums). 그리고 아래 도표는 이스라엘이 정주할 때와 진행할 때의 진 배치도이다.

납달리 아셀 단 북

53,400 41,500 62,700 서 동


에브라임 유다

40,500 74,600

므낫세 잇사갈

32,200 54,400

베냐민 스불론

35,400 57,400

갓 시므온 르우벤

선임지파 45,650 59,300 46,500

정주시 이스라엘의 진영 배치


진행 방향 --->

단 에브라임 르우벤 유다

아셀 므낫세 성막 시므온 성막 잇사갈 법궤

기구 부품

납달리 베냐민 고핫 갓 게르손 스불론

므라리

행진시 이스라엘의 진영 배치

위와 같이 정주할 때의 진영 모습과 행진할 때의 진영 모습이 다른 이유는 광야의 좁은 길을 무리없이 지나가기 위함 때문이었다. 한편 학자들 중에는 정주 시에도 만일 넓은 장소가 없을 경우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바 이상적인 진영 배치를 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Pulpit Commentary).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성막이 이스라엘 진영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그만큼 성막은 이스라엘에게 있어 큰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스라엘의 행군 시에 언약궤가 3일 길을 앞서 간 것은 특이하다(10:33). 이때, 평소 성막 위에 덮여있던 구름(출 40:34-38)은 언약궤 위에 머물렀다(10:34).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친히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뜻한다. 언약궤의 덮개, 즉 속죄소에 조각된 그룹 위에 뒤덮인 구름의 진행 방향이 곧 이스라엘의 진로로 결정되었다. 시 80:1은 바로 이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 언약과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하는 십계명 돌판이 들어 있었다(신10:4). 그러므로 언약궤가 이스라엘을 앞서 간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살아야할 것을 교훈해 준다. 개혁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는 곳까지 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 멈춘다'고 하는 말씀 추종의 삶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야 같은 인생여정에서 우리 발걸음을 비추는 등(燈)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시 119:105)이 우리를 안내하는 대로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는 삶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시 119:32). 그리할 때 그 길의 결국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말씀(법궤)의 인도를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살아간다면 무섭고 두려운 광야에서 헤메고, 허우적거리다가 마침내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은 죽음의 광야를 벗어나 생명의 길로 향하게 만드는 생의 나침판인 것이다.

성 경: [민3:1]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아론의 가계(家系)]

(주); 여호와께서 ... 이러하니라 - 어떤 특정한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라기 보다각 장의 내용으로 들어갈 때에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히브리 문학적 표현의 한 기법이다(창 2:4). 한편 본절의 내용를 직역하면 '그리고 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계시하실 때의 일로서 아론과 모세의 후손에 대한 말씀이니라'이다.

(주); 아론과 모세의 낳은 자 - 여기서 '낳은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톨도트'(*)는 '일족들', '세대'(generations), '가문', '족보'등으로 번역된다.본장 중 2-4절은 아론의 아들로서 제사장이 된 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17절이하는 레위 지파의 족장 이름 및 인구 수를 가계별로 비교적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모세의 자손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이름이 여기 언급된 것은 그가 아론과 더불어 레위 지파의 머리이며 영적인 아버지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Keil). 한편 여기서 아론의 이름이 이례적으로 모세보다 먼저 언급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 이유는 아마 연령상으로는 그가 장자였을 뿐 아니라 본장에 소개되는 제사장들의 아버지요, 초대 대제사장이었고, 또한 레위인들 전체를 통솔하는 종교 지도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론의 직계 자손들은 제사장이 된 반면 모세의 후손들은 제사장를 보필하는 일반 레위인들이 되었기 때문일것이다(Keil). 따라서 아론과 모세를 개인적으로 볼 때는 분명 모세의 권위가 절대적이지만 (출 4:16; 32:22; 민 12:1-16),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세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특별 은총이었고, 회막 봉사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적 사명에 있어서는 분명 아론의 후손들이 모세의 후손들보다 고귀한 직분에 임명되었으므로, 여기서는 바로 그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아론을 모세보다 앞세워 기록한 것이다. 한편 모세가 낳은 자들의 족보는 대상 23:14-17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은 평범한 레위인으로 조용히 봉사했던 것 같다. 이것은 아론의 두 아들이 제사를 잘못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사 죽임을 당하였고(레 10:1, 2), 위대한 종교 지도자 엘리나 사무엘의 아들들이 불량했다고 하는 평가(삼상 2:12; 8:1-3)에 비춰볼 때 충분히 유추 가능한 일이다. 이는 모세의 자녀 교육이 철저했음을 시사한다. 한편 이와같은 기록상의 다양한 조절은 결코 이 책이 오류 투성이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당신의 초월적인 목적과 경륜에 부합된 내용들을 중심으로 엮어져 간 책임을 나타낸다.

성 경: [민3:2]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아론의 가계(家系)]

(주); 나답...아비후...엘르아살...이다말 - 이들은 아론이 그 아내 엘리세바를 통해 얻은 네아들들이다(출 6:23). 따라서 이들은 제사장 성별식 때 아버지인 아론과 더불어 거룩한 제사장으로 위임받았다(레 8:6-13). 그러나 이 네 아들 중 장자인 나답과 차자인 아비후는 제사를 잘못 드린 관계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죽임을 당하고 말았다(레 10;1, 2). 따라서 셋째 아들인 엘르하살이 후일 아비 아론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직을 계승하였다(민 20:25-28). 한편 아론의 넷째 아들인 이다말은 후일 이다말 가문의 조상이된 자이나(대상 24:4-6). 그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다. 다만 성막 건축시나 광야 행진시 제사장으로서 그 맡은 바 직분을 충실히 감당한 자로 서술되고 있을뿐이다(출 38:21; 민 4:28, 33).

성 경: [민3:3]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아론의 가계(家系)]

(주); 기름을 발리우고 거룩히 구별되어(*, 함메슈힘) - 여기서 '기름을 발리우고'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마솨흐'(*)는 곧 '기름을 받은 자'(the anointed)란 뜻이다. 그런데 '기름을 붓다'라는 말을 '기름 부음을 받은 자'(the anointed)란 뜻을 가진 '메시야'(*, 마쉬아흐)라는 명칭의 어근이 되기도 한다(단9:25, 26). 한편 아론의 아들들은 관유(灌油)로 기름 부음을 받는 의식을 가짐으로써 거룩히 구별되어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출 29:4-9). 물론 원문에는 '구별되다'란 말이 언급 되지 않고 있으나, 의미상 그들은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것이다. 즉 '기름을 붓는 행위'는 그 대상에 대한 소유권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한 방법인 것이다. 한편 지사장 성별식 때 사용되는 거룩한 기름, 곧 관유는 성령을 상징한다(출30:22-33). 그러므로 그들은 성령의 역사로 성결하게 구별되어 봉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히 4:8)께서 성령으로 기름부음받아 사역하신 사실(행 10:10:38)을 상기시킨다. 아울러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왕같은 제사장'인 우리들(벧전 2:9) 역시 어떠한 자세로 일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행 2:7)으로 세례를 받고(고전12:13), '복음의 제사장'(롬 15:16)으로서 복음사역에 종사해야 하는 것이다(사 61:1-4).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가운데 기름부음이 되신 성령의 지시를 따라 순종하고 행동해야 함을 의미한다(겔 36:27; 요일 2:27).

(주); 위임받은(*, 밀레 야담) - 직역하면 '그들의 손이 채워진'이다. 그러므로 '위임식'이란 곧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있도록 그들의 손에 예물을 채워주는 의식을 가리킨다(레 7:37). 그리고 본절에서 이 말은 '기름을 발리우고'라는 말과 연결된다. 여기서 기름을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성령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을 또한 성령으로 채움을 받은 자들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미가 선지자는 자신이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채움을 얻고 선지자의 직무를 감당할 것이라고 고백했다(미 3:8). 여기서 '채움'은 '충만'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오직 성령 충만한 자라야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된다. 혹자는 '그들의 손이 채워졌으므로 다른 일을 생각하지 못할것이다'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실로 성령으로 충만하고 사명감으로 불타는 하나님의 일꾼을 세상적인 일로 인해 마음이 나뉠 수 없다(마 6:24).

성 경: [민3:4]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아론의 가계(家系)]

(주); 다른 불(*, 에쉬 자라) - '이상한 불'(KJV, strange fire), '신성치 않은 불'(RSV, Living Bible-unholy fire), '공인되지 않은 불'(NIV, unauthorizedfire)등을 의미한다(레 10:1). 성막 봉사 시 하나님께서는 오직 번제단 위에서 피운 불로 분향단에 점화할 것을 요구하셨다(레 16:12, 13).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는 그에 불순종 했으며 자의(自意)에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다가 하나님의 분노를 사 결국 여호와의 불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실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무시하는 것처럼 망령된 일은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고를 교훈 삼아 하나님께 봉사하는 자들을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사실(삼상 15:22)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주); 여호와 앞에(*, 리프네 예호와) - 직역하면 '여호와 면전에'란 뜻이다. 따라서 나답과 아비후의 경거망동은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완전히 무시한 행위나 다름 없었다. 결국 여호와 앞에 방자했던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심판을 받고 말았다. 한편 오늘날 하나님 앞에서 복음의 제사장된(벧전 2:9)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Coram Deo)서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고양(高揚)하든지 아니면 훼손하든지 둘 중 하나의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운명과도 직결된다. 그런 점에서 침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므로써(눅 1:6) 의인으로 인정받았던 것은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주); 무자하였고 - 나답과 아비후에게 자식이 없었던 것은 자연적인 불임의 결과이기 보다 하나님의 저주에 따른 결과였다. 사실 자식을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로 간주했던 히브리인의 사고 개념상(시 127:3), 나답과 아비후에게 임한 징계와 그들의 무자식이 단순한 우연일 수 없었다.

(주); 아론 앞에서(*, 알 프네 아하론) - 이 말은 '아론이 생존시에'(RSV, in the lifetime of Aaron)로 번역함이 좋을 듯하다(Pulpit Commentary).그것은 그들이 아론과 함께 성직을 위임받았고 (출 28:1), 아론 평생에 그를 보좌하며 봉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아론 사후에도 제사장 직무를 계속 수행했다(20:22-29; 27:18-23). 그러나 그들의 사명도 아론처럼 유한한 것이었다. 결국 아론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된 엘르아살도 자신의 죽음과 함께 대제사장직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돌아보며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영원성을 설파(說破)했다. 즉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히 7:23, 24)라고 했던 것이다. 이처럼 아론과 그 자손들의 제사장직은 일시적이고 당대에 한한 것이었으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영원하여 만세에 효력을 미치는 것이다(히 10:11-14).

성 경: [민3:6]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인들의 임무]

(주); 나아와(*, 하케레브) - 직역하면 '가까이 불러내어'(bring near)이다. 곧일반 레위인들은 제사장들 가까이에서 그들을 도와 제사 사역에 협조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처럼 동역자란 함께 일하는 자이다. 함께 일하는 자들 사이는 가까와야 한다. 즉 장소적으로도 가까우면 동역해야 할 일에 기동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일은 동역자 상호간의 인격적 관계가 가까와지는 일이다. 레위인들은 위치적으로도 제사장들과 가까이 왔지만 '한 지파'라고 하는 연대감 속에 제사장들과 가까이 하며 봉사했을 것이다.

(주); 앞에 서서 - 이 말은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그 앞에 겸손히 대기하고 있는 종의 위치를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된 표현이다(Keil, Pulpit Commentary, 창 41:46; 대하 29:11; 단 1:5). 그러나 이는 레위 지파가 제사장들의 개인적인 종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헌신적으로 협력할 조력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신분상의 구별은 확연하니, 곧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레위 지파에서 태어난 자들은 모두 될 수 있었던 반면, 제사장들은 레위 지파 중에서도 오직 아론의 직계 후손들만이 될 수가 있었다. 이로 인해 제사장과 레위인들 간에는 사회 종교적 위상의 차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즉 제사장은 재판관이나 집전자의 위치에 있었으나(신 17:9; 19:17), 레위인은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아야 할 위치에 있었다(신 12:19; 14:27).

(주); 시종하라 - '봉사하게 하라'(KJV, RSV may minister)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은 이 명령에 따라 성막 안 출입이나 번제단 위에서의 제사 집례 등을 제외한 일, 곧 백성들이 제물을 잡아 드리도록 하는 일에 조력하는 것과 또한 성막을 걷고 운반하는 일에 제사장을 도와 봉사해야 했다(4장; 10:17-21).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즉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속한자로서 하나님을 섬겼으나 레위인들은 제사장에게 속한 자로서 하나님을 섬겼다. 이같은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차이를 예시하는 듯하다. 곧성도들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로되(밸전 2:9; 계 1:6; 5:10) 궁극적으로는 예수님께 속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인 것이다(골 1:14).

성 경: [민3:7]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인들의 임무]

(주);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 - 이는 레위인들의 이중적 사역을 말하고 있다. 즉 전자는 아론과 그 아들들, 곧 제사장들의 제사 사역과 관련된 제반 업무를 보조하는 것과 성막보호와 이동에 대한 임무를, 후자는 일반 백성들을 위한 제사와 또한 그에 부수되는 제반 종사 직무를 가리킨다(1:53). 이는 오늘날 영적 레위인으로 부름 받은 성도들이 지녀야 할 올바른 자세를 암시하여 주는데, 곧 성도들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봉사 및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담당해야할 사명을 맡은 자들인 것이다(마22:37-40). 한편 여기서 직무(*, 미쉐메 레트)란 말은 '지키다'(*, 솨마르)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러므로 즉 직무란 명심하여 지켜져야 할 사항을 가리킨다. 그런데 '지킨다'는 말은 '(명령을) 온전히 순종한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므로(창 26:5; 출 20:6), '직무=순종하는 것'이라는 등식도 성립된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은 우리의 순종없이는 이행될 수 없다는 사실이 재확인 된다. 또한 '지킨다'는 말은 '인내있게 책임을 완수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끝까지(인내하며)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계 2:26)라는 말씀으로 충성과 분발을 요청하셨다. 그러므로 순종과 인내, 그것은 진정 일꾼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부과하신 직무를 '사명감'이라고 하는 마차에 싣고 목적지까지 달리도록 만드는 쌍두마(雙頭馬)인 것이다.

(주); 회막에서 시무하되 - 레위인의 봉사 구역이 한정되어 있다. 즉 그들은 '회막'에서만 일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로서 그분께 구별되어 오직 그분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했기 때문이다(1:49-53). 물론 레위인들의 하나님 소유 사상은 출애굽 장자 성별 사건(출 12:29; 레 2:12)에 근거한다.

(주); 시무하되 - '시무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바드'(*)는 (전적으로 매여)'일하다', '봉사하다'란 의미이다. 이것은 노예가 상전에게, 혹은 아내가 남편에게 매이는 것과 같은 단단한 결속을 뜻하는데, 그러므로 곧 레위인들은 오직 하나님께 매인 자들로서 하나님의 일에만 전적으로 매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성 경: [민3:8]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인들의 임무]

(주); 회막의 ... 기구를 수직(守直)하며 - 레위인들의 임무가 구체적으로 주어졌다. 즉 그들은 회막 안에 있는 모든 기구를 관리하고 보존하며 또한 외인들이 회막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항상 감시하여야 했다(10절). 그런데 이 임무는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보존하는 동시에 백성들의 안녕을 유지하는(1:53) 이중적 성격을 지닌 일로써 매우 중차대한 임무였다.

(주);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 직역하면 '이스라엘 자손 직무로서'이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회중의 직무(제사)를 자신들의 직무로 여기고 그 일을 위해 봉사 했다. 즉 그들은 전체 이스라엘의 예배를 위해 종으로서 봉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영적 레위인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들 역시 이처럼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고후4:5) 사랑으로 종 노릇하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갈 5:13).

성 경: [민3:9]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인들의 임무]

(주); 레위인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라 - 이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제사장들에게 레위인을 다스리며 통찰할 권한을 제공하라는 명령이다. 이는 단순히 아론과 그 아들들의 신분과 지위를 격상시키기 위한 조치라기 보다 성막 봉사를 더욱 원활히 하기 위한 조치였다. 사실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모든 명령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주); 온전히 돌리운(*, 네투님 네투니) - '주어진'(be given)이 반복된 말로서 풀이하면 '확실히 주어진'이란 의미이다. 이는 레위인들이 제사장의 조력자로 분명히 부름 받은 사실을 나타낸다(6절). 그러나 이들은 또한 레위인들에게 주어져 성소의 잡다하고 비천한 일을 맡았던 '느디님', 곧 외국 출신 노예들과는 확실히 구분된다(수 9:27; 대상 9:2). 왜냐하면 레위인들은 제사 사역을 보다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제사장들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일꾼들이기 때문이다. 즉 레위인들은 하나님께는 얽매였으나 사람에겐 얽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요 하나님의 일꾼이었던 것이다.

성 경: [민3:10]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인들의 임무]

(주); 아론과 그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분을 - 제사장 위임식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레 8장 주석을 참조하라.

(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 여기서 '외인'(*, 주르)은 단순히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제사장으로 세움 받지 못한 모든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본절은 1:51의 의미보다 더욱 확대되어 비록 레위인이라 할지라도 제사장으로 위임받지 못한 모든 자들도 포함된다(Gispen). 따라서 이들이 제사장의 고유 권한인 성소(the Holy of Holies)출입이나 번제단 희생 제사 등을 침범할 경우 죽임을 면치 못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가 비록 제사장이라할지라도 오직 대제사장만이 1년 1차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the Holy of Holies)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 밖에 있는 자들은 모두 그 의미상 '외인'이었다. 한편 이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보존키 위한 불가피 한조치로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 많은 인간 사이의 좁힐래야 좁힐 수 없는 차이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인류의 대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같은 모든 담을 허물으시사 인간이 오직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근거로 아무 장애없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던 것이다(히 7:25; 요일:4:10).

성 경: [민3:12]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구별된 레위 지파]

(주); 레위인을 택하여 - 선택에 관한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다. 본래 레위는 야곱의 셋째 아들이었으나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 백성 중 첫 태에 처음 난 자 즉 장자를 대신케하는 자로 선택받았다. 따라서 비록 레위인은 처음 난 자는 아니었으나, 처음난 자를 대신하도록 선택되었기 때문에 종교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장자라 할 수 있다. 한편 이스라엘 12지파 중 특별히 레위인이 장자 대신으로 택함 받은 이유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추정해 복 수 있다. (1) 금송아지 숭배 사건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시, 레위 족속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여 그 뜻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출 32:26-29). (2) 임종을 앞두고 12 아들들에게 내린 야곱의 예언시, 레위 지파는 그 운명상 이스라엘 각 처소에 분산되도록 결정지워졌기 때문이다(창 49:7).

(주); 첫 태(殆)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 이에 대해서 13절에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즉 처음 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 선언은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이시고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셨던 유월절 사건에 그 기초를 둔다(출 13:1-16). 실로 하나님께서는 '장자 멸절'이란 죽음의 형벌 가운데서도 오직 이스라엘의 장자만은 보존하셨기 때문에 그 장자에 대한 당신의 소유권 주장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장자들을 직접 취하는 대신 그 실용상 레위 족속을 대신 취하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 숭배 사건으로 말미암은 심판시에 오직 당신께 전적 헌신한(출32:26-29) 레위인을 주권적으로 선택하여 그들을 이스라엘의 장자대신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대신케'한 말은 '타인의 역할을 대신 담당할 자'란 뜻으로 곧 이 말은 성경 전반에 흐르고 있는 대속(代贖) 개념과 동일한 맥락을 지닌다.그러므로 구속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은 이 레위인의 역할을 계시하시면서 모든 구원받은 자의 첫 열매, 곧 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시하셨던 것이다(막 10:45; 롬5:10).

(주); 내 것이라(*, 하이우 리) - '내 것이 되리라'(KJV, RSV-shall be mine)로 해석되기도 한다. 어떻게 해석을 하든 레위인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이 강력히 천명된 것이다. 또 이는 될 수도 있다. 한편, 오늘날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향해서도 '너는 내 것이라'고 주장하신다(사 43:1). 우리는 본래 죄 아래 팔린 처지였다(롬7:14).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 피로 우리를 사셨으므로 (행 20:28), 우리에게 대한 소유권을 갖고 계신다. 바울은 이 상황을 두고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했다(고전 6:19, 20).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시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롬 14:7, 8).

성 경: [민3:13]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구별된 레위 지파]

(주); 처음 난 자는 다 내 것 - 여기서 '처음 난 자'란 '모든 초태생'(all thefirstborn), 구체적으로 '모든 장자'를 가리킨다. 히브리인들은 장자들을 존중히 여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장자들을 통해 가문의 영예와 전통을 이어 주신다는 사고 방식에서 기인한다. 현실적으로도 장자들은 다른 형제의 배나 되는 유산을 상속 받는 혜택을 누렸다(신 21:15-17). 그런데 이 장자들은 다 하나님의 것이었다. 그것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살아났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유월절 구속의 사건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이스라엘 장자의 소유권자가 되신 것이었다(출 13:2).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중 모든 장자는 하나님께 바쳐져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해야 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레위 지파를 그들 대신 택하여 당신을 섬기도록 했다. 이것은 보다 효율적인 성막 봉사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다. 아울러 각 가정에서 총애를 받는 장자들이 가족들과 떨어지는 아픔을 해소하기 위한 특별 배려이기도 했다. 한편 성경은 교회를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라고 표현했는데(히 12:23), 이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대상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후사(後嗣)이기 때문일 것이다(롬 8:17; 갈 3:29;4:7).

(주); 거룩히 구별 하였음이니 ...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 출13:2 주석 참조.

(주); 나는 여호와니라(*, 아니 예호와) - 원문대로 번역하면 '나, 여호와'이다. 카일(Keil)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리 이흐유)와 연결시켜 '그들은 나 여호와의 것이 되리라'로 해석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1인칭 주격 대명사(*, 아니)가 '나는(...이다)'의 뜻도 지닌다는 사실에 유의하여 '나는 여호와라'고 독립적으로 해석하였다. 한편 히브리어는 동사 자체 속에 주격 어미를 수반하므로 주격 인칭 대명사를 이중으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엄숙한 감정 표시나 약속 표시를 나타낼 때에는 특별히 강조하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 표명을 위해 쓰여졌다(41, 45절). 즉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변동시킬 수 없음을 강조하는 선언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요10:28, 29).

성 경: [민3:15]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 지파의 계수 명령]

(주); 종족과 가족을 따라 - 1:2 주석을 참조하라.

(주); 일개월 이상의 남자 - 레위인의 인구 조사는 다른 지파의 조사 기준(20세 이상된 남자 계수; 1:3)과 달랐다. 왜냐하면 다른 지파의 계수는 징병 대상자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고, 단지 1개월 이상의 남자를 계수케 한 레위인 조사는 이스라엘 장자의 속전 (48절)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이스라엘의 장자들도 생후 1개월 이상부터 장자로 인정받아 속량 대상이 될 수 있었다(18:16). 한편 레위인 중 1개월 이상된 자들이 비록 성막 일을 할 수 있는 어떤 힘을 가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스라엘 장자들의 속전(18:15, 16)이라는 점에서 하나 하나가 귀한 존재였다.

성 경: [민3:16]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 지파의 계수 명령]

(주); 말씀을 좇아 -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말씀에 의거하여'란 의미이다. 즉 모세의 모든 행동과 선포는 결코 자신의 사사로운 견해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한 것이었다. 이러한 계시 의존적인 삶은 오늘날 바로 우리들 역시 추구해야 할 삶의 원리이다. 이와같이 우리들이 말씀을 좇을 때 아브라함처럼 신앙의 행군을 거듭할 수 있으며(창 12:4),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성결한 삶을 살 수 있고(시 119:9),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이적적인 섭리를 체험 할 수 있다(눅 5:4-6).

성 경: [민3:17, 18, 19, 20]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 지파의 계수 명령]

(주); 레위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 게르손, 고핫, 므라리는 야곱의 셋째 아들인 레위의 아들들이며, 이들을 기준으로 전(全) 레위인을 게르손 계열, 고핫 계열, 므라리 계열로 나누었다(출 6:18-20). 한편 성경에 언급된 족보는 무의미한 이름들의 나열이 아니라, 그 이름들 속에 담겨 있는 역사를 가장 함축적으로 묘사한 소(小) 역사라 할 수 있다.

(주);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 - 이들은 레위의 장남, 차남, 삼남이다(출 6:16). 한편 모세와 아론은 고핫의 손자이다(출 6:18-20).

성 경: [민3:21, 22, 23, 24, 25, 26]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수효와 임무]

여기에는 게르손 자손의 총계와 성막 주변의 거주 위치 및 맡은 바 소임에 관해 언급되어 있다(4장). 즉 이들의 남자 수는 7,500명이며, 게르손 자손의 족장은 엘리아삽(뜻 :하나님은 더하셨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성막에서 수종들 위치는 성막의 서편이었으며(2:34 도표참조). 또한 성막을 이동할 때 맡은 부분은 성막과 그 주위 뜰의 포장에 이르기까지 성막에 소용되는 모든 천막류였다. 그런데 이부분의 번역상 개역성경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많다. 즉 25절의 성막이라 함은 회막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회막 본체를 최초로 덮는 열폭의 제 1앙장(출 26:1-6)을 말하고, 장막은 그 '성막' 위를 덮는 염소털로 된 제 2앙장(출 26:7-13)을 가리킨다. 그리고 덮개는 '장막' 위를 덮는 수양의 가죽으로 만든 제 3앙장과 해달 가죽으로 만든 그 웃덮개, 곧 제 4앙장 (출 26:14)을 각기 지칭한다. 그리고 회막 문장이란 성소 뜰에서 성막 본체로 들어가는 입구의 휘장을 말한다(출 26:36; 36:37). 한편 게르손 자손이 레위의 장자 후손이라는 점에서 비록 그 맡은 바 소임은 고핫 자손의 중요도 보다 뒤떨어지지만 순서상으로는 제일 먼저 언급된 것 같다.

성 경: [민3:26]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수효와 임무]

(주); 뜰의 휘장 - 성막 뜰에 둘러 친 세마포 휘장을 말한다(출 27:9).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된 인간 사이의 뚜렷한 간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간격은 후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속 제물이 되심으로써 완전히 좁혀졌다.

(주); 뜰의 문장(門帳) - 성막 외부에서 성막의 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 하는 문의 휘장(curtain)을 말한다(출 27:16). 성소 출입은 오직 이 문을 통해서만 가능했는데, 이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양의 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요 10:9;14:6)뿐이라는 사실을 예표하는 기능을 한다.

(주); 줄들 - 붉게 물들인 수양 가죽 덮개(제 3앙장)와 해달 가죽 덮개(제 4앙장)를 잡아매는 줄을 말하는 것 같다(출35:18).

성 경: [민3:27-32]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수효와 임무]

본문에는 고핫 계열의 인원 총수와 거주 위치 및 맡은 바 임무가 언급되어 있다. 고핫 자손의 남자는 8,600명으로서 엘리사반(뜻: 하나님께서 숨기심)이 그들의 족장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성막 남쪽에 진을 치게 되었으며(2:34), 성막 운반시에 맡은 일은 증거궤, 떡상, 등대, 단(분향단과 번제단), 성소에서 쓰는 각종 기구들, 지성소의 휘장과 그에 따른 부속물들을 잘 걷어서 정돈하고 그 위에 보자기를 덮어서 운반하는 것이었다. 한편 그들이 레위의 둘째 아들의 후손이었음에도 블구하고 거주 장소나 맡은 바 업무 면에서 다른 형제 자손보다 우위를 차지한 것은 그들의 특출난 기질이나 재능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의 결과였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직무로 인해 자랑할 일이 없었으며 오직 감사와 충성으로 맡은 바 소임을 잘 감당해야 했다.

성 경: [민3:28]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수효와 임무]

(주); 성소를 맡을 것이며 - '성소의 직분을 맡은 자들이요'가 된다. 여기서 성소란 성소와 지성소로 구성된 성막 본체를 의미한다. 이 부분은 성막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바로 고핫 자손들에게 맡겨졌던 것이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시대를 초월하여 당신의 충성스러운 자들에게 직분을 맡기신다(딤전 1:12).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사리사욕을 좇아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무를 소홀히 하는 자는 화를 입게 된다(행1:16-18; 고전 9:16, 17). 그러나 자기 직분을 충성스럽게 수행하는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수여된다(계 2:10). 실로 우리는 화를 모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사 당신 몸을 버리신 주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맡은 바 직분을 성심껏 감당 해야 한다(골 4:17; 딤후 4:5).

성 경: [민3:30]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수효와 임무]

(주); 웃시엘의 아들 엘리사반 - 엘리사반은 고핫 자손 중 막내 가계 출신이다(19절). 따라서 그가 고핫 자손의 족장이 된 까닭에 웃시엘의 친 형제 이스할의 아들인 고라(출6:21, 24)가 모세와 아론에게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는지도 모른다(16:1-3). 그러나 교만은 항상 그자신을 패망케 한다(잠 16:18).

성 경: [민3:31]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수효와 임무]

(주); 증거궤와 상과 등대 - '증거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출 25:10-22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그리고 그 모양에 대해서는 출 37:9 주석의 그림을 참조하라. '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출 25:23-30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그리고 그 모양에 대해서는 출37:16 주석의 그림을 참조하라. '등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출 25:31-40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그리고 그 모양에 대해서는 출 37:23, 24 주석의 그림을 참조하라.

(주); 단들(*, 미즈베호트) - '번제단'을 지칭하는 '미즈베아호흐'의 복수형이다. 그런데 번제단은 오직 하나만 있으므로, 이말은 곧 성소(the Holy Place) 의 '분향단'(*, 케토레트)까지도 포함해서 언급한 말인 것 같다. 한편, '번제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출 27:1-8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고, 그 모양에 대해서는 출 38:7주석의 그림을 참조하라. 그리고 '분향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출 30:1-10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고, 그 모양에 대해서는 출 37:29 주석의 그림을 참조하라.

(주); 성소에서 봉사 하는데 쓰는 기구 - 즉 진설병 상과 등대, 향단과 번제단 등에 딸린 여러 부속품들을 가리킨다(출 25:29, 38, 39; 27:3, 4; 37: 16, 24; 39:36-39).

(주); 휘장 -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는 장(帳)을 가리킨다(출 36:33; 36:35). 이는 지성소에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스러움을 보존하기 위해 마련한 보호막이다. 그런고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시간과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는 결코 이곳을 출입할 수 없었다. 만약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이곳에 접근하는 자에겐 죽음만이 따를 뿐이었다. 그러나 후일 예수께서는 이러한 제한성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해제하시고 당신을 믿는 자는 누구나, 언제든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수 있게 만드셨다(눅 23:45; 히 7:25).

(주); 그것에 쓰는 모든 것 - 즉 휘장에 달려 있는 갈고리를 가리키는 듯하다(출36:36).

성 경: [민3:32]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수효와 임무]

(주); 족장들이 어른이 되고(*, 우네시 네시에) - 이를 직역하면 '지도자 위의 지도자가 되고'(KJV, was the ruler over the ruler), 곧 가장 높은 직위의 사람이됨을 가리킨다. 따라서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뜻 하나님이 도우심)은세 레위 계열 족장들 (엘리아삽, 엘리사반, 수리엘)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성소 맡은 자들의 지휘자 곧 성소에서 봉사하는 모든 자들(제사장을 포함한 레위인 전부)의 총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제사 업무의 효율화를 위한 직제였지 결코 계급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직제는 아니었다. 성도들의 세계에는 군림하여 지배하는 지도자, 즉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존재해서는 안된다. 성도들의 사회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참지도자가 되시며 그 외에는 모두가 평등하다. 그러므로 Living Bilble이 '어른'을 '으뜸 관리인'(chief administrator)으로 번역한 것은 적절하다. 그리고 본절에서 '레위인의 족장들'이란 성막에서 일하는 자들의 질서와 영적인 권위를 유지 시키기 위해 위임받은 일종의 감독자였다. 그 중 엘르아살은 차기 대제사장의 자격으로서(20:23-29)이 감독자들과 그 아래 사람들이 방종하거나 불성실하지 않도록 지도하고 감독하는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한편 이는 우리 성도들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는 것으로, 그분은 우리의 감독자이자 삶의 주인이시며 겸손한 통치자로서(마23:10-12) 우리의 잘 잘못을 가리며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롬 14:10-12; 고후5:10).

(주); 성소를 맡을 자를 통할 할 것 - 여기서 '통할하다'( , 파카드)는 말은 '감독하다'는 뜻 외에 '소집하다', '임무를 부여하다', '보살피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이는 엘르아살의 임무를 언급한 것으로써, 결국 그는 성막 봉사자들을 모으고 각자에게 필요한 임무를 부여하며 또한 그 일의 진행을 철저히 확인, 점검하는 감독관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바는 곧 하나님을 섬기는데는 법도와 질서가 따라야 한다는 사실이다(고전 14:40).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사실때문에 치리자들을 세우신다. 그러므로 치리자들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적절히 사용되고 아무런 흠이 없도록 잘 다스려야 하며(딛 1:5). 성도들은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치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딤전 5:17).

성 경: [민3:33, 34, 35, 36, 37]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므라리 자손의 수효와 임무]

본문은 므라리 자손의 수효와 그들의 거주 장소 및 성막 봉사의 임무에 관한 설명이다. 그들은 레위의 세째 아들이 후손으로서 거주 장소나 업무면에서 세번째 위치에 있었다. 한편 그들의 총수는 레위의 세 자손 중 가장 적은 6.200명이며, 족장은 아비하일의 아들 수리엘 (뜻: 하나님은 나의 반석)로서, 주로 성막의 골격을 이루는 기둥과 받침 등 성막의 가장 무거운 부품들을 책임졌다.

성 경: [민3:36]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므라리 자손의 수효와 임무]

(주); 그 띠 - '그것의 가로 막대들'(NIV, its crossbar)로 풀이할 수 있다. 즉 성소의 벽을 이루는 널판들이 서로 연결되어 튼튼히 설 수 있도록 각 널판에 부착된 고리를 관통하는 막대들을 가리킨다(출 26:26-29). 한편, 여기서 성막의 널판들을 하나님의 성진을 구성하는 성도들로 비유할 수 있다면(엡 2:20-22). 여기서의 '띠'는 성도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성령'(엡 4:3) 혹은 '사랑'(골 3:14)으로 비유할 수 있다.

(주); 그 기둥과 그 받침 - 지성소의 장(帳)을 거는 지성소 입구의 기둥 넷과 그 받침 넷, 그리고 성소의 장을 거는 성소 입구의 기둥 다섯과 그 받침 다섯을 말한다(출26:32, 37; 36:36, 38).

한편 아래 도표는 3:21-37 에 언급된 바 레위 지파 소속 세 계열의 수요와 성막 주변 위치 및 이동시 봉사 임무에 관한 것이다.

계열 게르손 자손 고핫 자손 므라리 자손

수효 7,500명 8,600명 6,200명

족장 엘리아삽 엘리사반 수리엘

성막 장막 뒤 장막 옆 장막 옆

주변 서편 남편 북편

위치

성막 회막의 모든 회막의 모든 회막의 모든

이동시 휘장과 문장과 제사기구(궤, 널판과 기둥과

운반 덮개 상,등대,단) 받침 및 띠와

물품 줄

성 경: [민3:38]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 지파의 총계]

(주); 장막 앞 동편 ... 해돋는 편 - 모세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거주했던 '동편'(2:3)은 선봉 유다 지파의 보호를 받는 진의 중심지이다. 이곳은 성소 출입 등 성막 일을 관리하는데 가장 편리한 위치이며, 동시에 이스라엘 전체를 지휘하는 데 가장 용이한 곳이다. 여기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로서 정치적 기능을, 아론은 대제사장으로서 종교적 기능을 각각 수행하였다. 이 두 기능자는 서로 경쟁 관계에 있기보다 협조와 조화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관계였는데, 이러한 조화는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일치를 보았다(Pulpit Commentary). 즉 예수는 온 인류의 왕이시자 모든 죄인들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 하셨던 것이다.(요 4:34).

(주);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대신하여 -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제사를 드리지 못하고, 대신 성별된 아론과 그 아들들 , 곧 제사장들이 하나님께나아가 제사함으로써 백성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사역을 일컫는다. 이는 곧 이어 나오는 성소의 직무 즉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보존하며 성막을 관리하는 일과 연관된 것으로서, 그들이 하나님과 인간을 위해 봉사할 사명이 있음을 보여 준다(7절).

(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일지니라 - 10절 주석 참조.

성 경: [민3:39]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레위 지파의 총계]

(주); 이만 이천 명 - 본장 21-27절에 언급된 바 레위 지파의 인구를 모두 합하면(2,28,34절) 22,300명이 된다. 그러므로 본문의 총계와 300명의 차이가 난다. 이에 대해서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견해가 있다. (1) 28절에 기록된 팔천 육백명이란 숫자 중 '육'을 뜻하는 '쉐쉬'(*)는 '삶'을 뜻하는 '쉘쉬'(*)의 오기였다는 설(Keil), (2) 레위 지파의 총 인구수 22,300명 중 장자가 300명이어서 그 숫자가 총계에서 빠졌다는 설(Lange, Matthew Henry), 즉 레위 지파의 장자들은 그 나름대로 하나님께 대한 책임(출 13:12-16; 34:19)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다른 지파의 장자를 대신할 수 없었다는 설이다. 이 두 견해 중 후자의 견해가 전통적인 유대인들 및 대 다수 주석가들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견해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총계는 아무런 오류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민3:40]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이스라엘 장자(長子)의 총계]

(주); 이스라엘 자손의 첫음 난 남자 - 일개월 이상 된 자들로써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난 남자의 수효는 도합 22,273명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20세 이상된 장정의 수효만 60만 이상인 것과 비교해 볼 때 극히 적은 수효이다. 따라서 이들은 출애굽 이후 시내 산에서 인구조사를 실시하기까지 약 1년여 어간에 태어난 장자들로만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Patrick, Keil).

성 경: [민3:41]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이스라엘 장자(長子)의 총계]

(주); 처음 난 자의 대신해 레위인을 - 12절 주석 참조.

(주); 레위인의 가축을 내게 돌리라 - 애굽에서의 첫 유월절 사건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보호하셨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가축의 첫 태생까지 모두 보존하셨다(출 12:29). 그러므로 하나님은 가축의 첫 태생에 대해서도 그것이 당신의 소유임을 선언하시고 그것을 바치도륵 명하셨던 것이다. 물론 바치는 방법은 사람의 경우처럼 '대속의 원리'에 따라 레위인의 가축 전부로 하여금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소유한 가축의 첫 태생을 대신케 했다. 이처럼 가축에까지 대속 원리를 적용시킨것은 모든 생명체에 대한 당신의 주권을 선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성경에는 가축에 대한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관심을 표명한 곳이 몇 군데 있는 데(출 21:28, 29; 34:20;욘 3:7, 8; 4:11), 그렇다고 하더라도 고대 근동 지방의 몇몇 족속들처럼 가축을 인간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보지는 않았다. 성경은 분명 영혼을 지니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과 무인격체인 짐승과의 차이를 확연히 강조하고 있다(욥12:10). 이 차이를 무시하고 동물을 우상시 하거나, 또는 힘의 근원으로 오해한다든지 짐승과의 수간(獸姦)을 일삼는 자는 하나님의 징계로 죽음을 면치 못한다.(레18:23; 20:15, 16).

성 경: [민3:43]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이스라엘 장자(長子)의 총계]

(주); 총계가 이만 이천 이백 칠십 삼명 - 이 숫자는 이스라엘의 20세 이상 남자들의 총수(603,550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극히 적은 수이다. 만일 이 숫자에 근거한다면 적어도 이스라엘 각 가정은 20세 이상의 남자만 계수하더라도 남자 30명당 장자 1명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무리가 따르는 견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숫자는 아마도 출애굽 이후에 태어난 장자들의 총계일 것이다(Keil Matthew Henry). 왜냐하면 출애굽 이후에 비로소 처음 난 자가 당신의 것이므로 구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졌기 때문이다(출 13:1, 2).. 한편 장차 적용을 받게 될 '처음 난 자'의 한계에 대해서도 여러 이견이 있으나, 보편적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장남만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왜냐하면 첫 유월절 당시 이스라엘 자손 이외의 가정에서는 장자 한명씩을 잃었었다. 그런데 그 가정의 부친이 비록 장자이더라도 그 가정에서는 아들로서가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위치에 있으므로 개인적으로 무사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때도 여기서 처음 난 자란 이스라엘의 장자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첫 아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성 경: [민3:45]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장자의 대속(代贖)]

(주); 처음 난 자의 대신에 레위인을 - 12절 주석 참조.

(주); 레위인의 가축을 취하라 - 41절 주석 참조.

성 경: [민3:46]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장자의 대속(代贖)]

(주); 이백 칠십 삼 인이 더한즉 - 레위 자손들의 수는 그들이 대신 책임져야 할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의 수보다 273명이 모자란 숫자였다. 즉 1개월 이상의 남자로서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장자)의 수는 일개월 이상된 레위인의 숫자보다 273명이 더 많았다. 따라서 273명에 대해서는 한명당 5세겔씩의 속전(贖錢, the money for theredemption-NIV)을 냄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종교적 의무를 다할수 있었다(47-51절).

(주); 속(贖)하기 위하여 - 여기서 '속하다'(*, 파다)는 말은 원래 얽매인 것을 '끊다'는 의미이다. 이 의미가 발전하여 어떤 사람이 값을 지불하거나 혹은 그에 상당하는 대체물을 줌으로써 다른 사람으로부터 특정한 사물의 소유권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런고로 이 말의 용례가 구속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그 까닭은 애굽의 노예로 전락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속하신' 역사적 사실(신 15:15)은 끊임없이 이방 세력에 의해 괴로움을 겪던 이스라엘에게 무한한 소망을 주곤 했기때문이다. 특히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망한 전체 이스라엘의 회복의 출애굽과 같은 하나님의 대속 행위로 말미암아 성취될 것이라고 선포했다(사 35:10;51:11). 그리하여 이 말은 마침내 죄악으로부터의 용서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되었으며(시 130:7, 8),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택한 백성을 죄와 저주에서 자유케 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대신 십자가에 바치신 행위를 나타내는 '속량하다'(*, 엑사고라조)라는 말로 이어졌다(갈 3:13; 4:5).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친히 '대속물'(*, 뤼트론)로 칭하신 것도 이러한 구속 사상의 흐름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마 20:28). 한편 이 대속의 은혜를 깊이 체험했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우리의 윤리적 삶과 연결시키고 있다(딛 2:14). 즉 그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고 죄 아래 팔렸으나(롬 3:23; 7:14),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를 입은 자들은 죄에서 해방되어 이제 더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종으로 헌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롬 6:17-19, 21). 여기 민수기 규례에 나타난 바 은 5세겔 곧 일반 노동자들의 20일 품삯으로 성역(聖役)에서 면제된 이스라엘 장자들도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죄악된 문화와 이방 대적과 싸우는 일에 동참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죄에서 속량된 우리 성도들도 우리 몸을 의(義)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롬 6:13), 죄와 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딤전 6:12).

성 경: [민3:47]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수]

주제2: [장자의 대속(代贖)]

(주); 오 세겔씩 - 레위인 수보다 더 많은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 273명을 속하는 방법으로 한명 당 속전 '오 세겔'씩이 요구되었다. 여기서 5세겔(Shekel)의 가치는 일반 노동자의 20일 품삯에 해당하는 가치인데, 이 물질이 한 생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라 한다면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생각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뜻과 상층된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께서 '오 세겔'을 요구하신 것은 생명의 가치가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적은 물질을 통해서도 생명을 속하시겠다는 당신의 의지와 은혜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이는 인간의 구원이 인간의 노력과 헌신에 달렸다기보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렸다는 사상을 잘 반영해 준다.

(주); 성소의 세 겔 - 성경에는 '세겔'의 단위를 (1) 성소의 세겔(출 30:13)과 (2) 왕의 세겔(삼하 13:26) 및 (3) 일반 세겔로 구분하였다. 그런데 세겔(Shekel)은 본래 무게를 나타내는 단위로서 오늘날의 미터법으로 약 11.4g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무게는 고대 도량기술의 취약으로 인해 시간과 장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났다. 그래서 혹자는 변치 않는 절대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성소에 표준 무게 단위를 보관했는데 그것을 '성소의 세겔'이라 명명했다 한다. 사실 하나님이 실질적인 왕으로 통치하던 그 당시에는 모든 표준이 하나님의 뜻과 성소에 근거할 수 밖에 없었다. 즉 신정 정치 하의 성소는 곧 하나님의 통치의 핵이었다. 한편 1세겔이 화폐 단위로 쓰일 때는 은(銀) 1세겔이 금의 1/15 해당하며 이는 노동자 4일의 품삯이었다. 그리고 1세겔은 중량의 최초 단위인 '게라'(약 0.57g)로는 20게라(Gerah)에 해당한다(Vol. I. p. 43,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성 경: [민3:48]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수]

주제2: [장자의 대속(代贖)]

(주); 속전(贖錢)을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 여기서 '속전'(* ... , 하케세프 페두에)이란 속량 대금 또는 속량 은(銀)을 의미한다. 그 당시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은이 물물교환의 기준으로 사용되었기에 여기서 속전 대금도 은으로 사용된 것같다. 한편, 이 '속전'(46절 ; 출 21:30; 30:12, 13)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어졌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성막 봉사와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38절), 하나님께서 백성의 장자들을 대신하여 레위인을 그들에게 주셨던 것처럼(9절), 장자를 대신하는(46절) 속전도 역시 그들에게 주신 것이다(8:9-26; 18:3-7). 구속사적으로 볼 때 이는 대제사장 예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구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그분에게 주신 사실의 전형(典型)이라 할 수 있다(사 53:11; 요 17:6, 9).

성 경: [민3:49]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수]

주제2: [장자의 대속(代贖)]

(주); 모세가 ... 받았으니 - 이는 모세가 행정상 최초 지도자였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에 근거하여 레위인의 수보다 더 많은 273명의 처음 난 자로부터 속전을 착오없이 거두어 들여(각지파 족장들의 도움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인계해야 했다(51절).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신정(神政) 국가 이스라엘 내의 지위는 군림하거나 압제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봉사와 충성만이 요구되는 자리였다.

성 경: [민3:50]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수]

주제2: [장자의 대속(代贖)]

(주); 일천 삼백 육십 오 세겔 - 이는 레위인보다 많은 273명의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들(46절)이 속전(贖錢, the money for the redemption)으로 각각 5세겔씩을 낸(273명 5 세겔) 결과이다. 이처럼 정확한 수치를 언급한 것은 (1) 하나님의 명을 받은 자들의 절대적 순종을 보여주기 위함이며, (2) 속전 수납 사건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성 경: [민3:51]

주제1: [레위인들의 직무와 가족 수]

주제2: [장자의 대속]

(주); 이 속전을...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주었으니 - 즉 레위인의 수효(22,000명)로 대속하고 남은 273명의 처음 난 자의 속전금 1,365세겔을 당시의 대제사장 아론과 일반 제사장들인 그의 두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것'인 이스라엘의 장자를 레위인으로 대속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준 원리에 입각하여(9절), 레위인으로 대속한 이외의 장자를 대속하는 속전금 역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준 것이다. 한편, 이 속전 금액은 제사장 개인용으로 사용하지 않고, 틀림없이 회막 운용 및 회막 보수기금 등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성 경: [민4:1-49]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본문은 회막 봉사를 좀더 효율적이고 질서있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레위의세 자손, 곧 게르손 자손과 고핫 자손과 므라리 자손에게 각자의 업무 분담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성 경: [민4:2]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레위 자손 중에서 고핫 자손을 - 하나님께서 레위의 장자인 게르손의 자손을 먼저 선택하지 않으시고, 차자(次子)인 고핫 자손을 먼저 택하여 성막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을 운반하게 하셨다. 이는 당신의 특별하신 목적을 따라 각각을 적재 적소에 위임시키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기인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주인이 '각각 그 재능대로' 종들에게 사역을 맡겼던 예수 그리스도의 달란트 비유(마 25:14-30)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한편 보다 직접적으로 이것은 모세와 아론이 고핫 계열이었고, 따라서 제사장은 고핫 계열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이들이 가장 먼저 부름받고, 아울러 가장 중요한 성물들이 이들에게 맡겨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PulpitCommentary).

(주); 가족과 종족을 따라 - 본절에는 몇 단계의 혈연 집단의 단위가 열거되었다(1:2). (1) '레위 자손'이라 언급된 '자손'(*, 벤)은 '부족', 곧 '지파'(tribe)를 의미한다. (2) '고핫 자손'의 '자손'(*, 벤) 역시 원어로는 (1)과 동일하나, 의미상 '지파'보다는 소규모의 '씨족'(clan)단위를 가리킨다. (3) '가족'(*, 미쉬파하)은 일개 최소 단위인 '가정'(family)을 (4) '종족'(*, ,베트 아보트)은 가족보다는 크고 씨족보다는 작은 단위(subclan)를 가리킨다(1:2). 따라서 의미상 큰 순서대로 나열하면 지파 -> 씨족 -> 종족 -> 가족 순(順)이 된다.

성 경: [민4:3]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 레위인들이 성막봉사에 필요한 최저 나이(30세)는 일반 백성들의 군 입대 가능 나이(20세)보다 10세나 높다. 이는 성막 봉사가 단순히 젊은 힘이나 패기에 의하지 않고 육체적 정신적인 성숙함과 신중함이 요구되는 일임을보여 준다. 이같은 사실은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건국자인 다윗이 30세에 왕위에 나아간 것(삼하 5:4)과 인류의 대속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30세에 비로소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30세부터'라는 레위인의 규례를 좇아 당신 스스로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보여 주셨다(히5:10). 한편 본문의 30세라는 기준이 8:24에는 25세로, 대상 23:24에는 20세로 하향조정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조정은 본절의 원칙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30세에 공식적으로 성막 업무를 시작하기 전 5년 내지 10년 동안 수습(修習)기간을 두어 성막 봉사를 보다 완벽하고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처였다(스3:8). 하나님께서는 종종 당신의 일꾼들을 사용하시기 전에 특별한 기간 동안 그들을 훈련시키시는 경우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모세(출 2:15; 3:1)와 사도 바울(갈1:17)이다. 그리고 또한 봉사 연한을 50세까지로 제한한 것은 50세 이상 된 자들은기력이 쇠하여 봉사를 원만히 수행하지 못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간의 한계성을 나타낸 것으로, 아무리 거룩한 일에 동참하는 자라 하더라도 인생의 유한함을 극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를 극븍하시고 영원토록 하나님 앞에서 성전 봉사를 행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실로 그분은 영원히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사 우리의 구속과 성화(聖化)를 위해 힘쓰고 계신다(히7:11,28).

(주); 역사(*, 차바) - '군대', ' 병역'등의 의미를 가진 말이다(1:3). 레위인들은 육신적인 전투에서는 면제되었다(1:47-53). 그러나 그들이 수행해야할 일은 전쟁참여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보존해야 했으며, 상당히 무거운 성막 기물들을 운반하고 또한 그 기물들이 조금도 손상을 입지 않도록온 정성을 기울여야 했다. 우리는 직접 전선에 나가서 전투를 치르는 사람만이 군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병(工兵)이나 위생병도 군인으로 본다. 마찬가지로 비록 레위인들이 다른 지파처럼 직접 전투에 가담하지는 않았어도, 하나님의 군대가 신령한 질서를 갖고 싸울 수 있도록 종교적 업무에 종사하는 이상 그들 역시 하나님의 군대의 일원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KJV는 '역사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군대에 들어갈 만한 모든 자'(all that enter into the host)라고 번역했고, 공동 번역도 같은 의미에서 '전장에 나갈 만한 사람 모두'라고 번역했다. 이것은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하나님의 군대에서 제외 된 자들은 한명도 없었음을 뜻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죄악과 싸우는 영적 전쟁에서 제외된 자는 한명도 없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일종의 영적 전투이며(딤전 1:18) 그것에 참여하는 자는 십자가의 군병이라 할 수 있다(딤후 2:3)

성 경: [민4:4]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지성물(*, 코데쉬 하코다쉼) - 문자적으로는 '거룩 중의 거룩'이다. 이 말은 원래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만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곳, 지성소(至聖所)를 가리켰다(출 26:33,34). 그러나 여기선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성소 안의 기물 즉 언약궤, 떡상, 등대, 분향단, 번제단 및 그에 따르는 여러 부속물(출 30:26-29)을 가리킨다. 이것들은 오직 제사장들만이 만질 수 있는 것으로서 타인이 만지면 죽음이 따를 뿐이었다. 그래서 이 동시 이것들은 오직 이스라엘의 제사장된 아론과 그 아들들에 의해서만 정리될 수 있었다(5절).

성 경: [민4:5]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간 막는 장 - 여기서 장(*, 파로케트)은 '쪼개다', '무자비할 정도로 엄격하다'는 의미의 기본 동사 '페레크'(*)에서 유래한 말로서, 여기서는 '구별지우는 것', '분리시키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결국 '간 막는 장'이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을 가리킨다(출 26:31; 레 4:6). 그리고 이 휘장에는 그룹(천사)들이 수놓아 졌는데 (출 26:31,33) 이는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그분의 임재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아론과 그 아들들은 바로 이 휘장을 걷어, 이 휘장으로 거룩한 증거궤(법궤)를 덮어야 했다. 한편, 그런데 레위기 규례에 의하면 지성소의 성소를 구분시키는 이 휘장은 오직 일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만이 분향단의 연기 속에서 젖히고 들어갈 수 있었다(레 16:2,12). 그러므로 레위기의 규례는 후일 성막이 고정적으로 위치된 경우에 해당되는 규례임을 알수 있다. 사실 광야 행진시에는 수시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필요시 언제든지 이 지성소 휘장을 걷을 수 있었다. 한편, 이 경우에 대하여 혹자는 광야 행진시 이동을 위해 지성소 휘장을 걷을 때, 이미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기둥은 법궤 위 속죄소를 떠나 이스라엘 진(陣) 앞서 나갔기때문에 제사장들에게 아무런 해(害)가 없었다고 한다(Patrick).

(주); 증거궤를 덮고 - 즉 지성소와 6 소를 가리는 휘장으로 언약궤를 덮으라는 명령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보존하기 위한 외적 행위이다. 그리고 여기서 '덮다'(*, 카사)란 말은 몸이나 비밀을 '가리다' '닫다' , '숨기다'는 의미로써, 내부의 물건이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도록 철저히 가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한편 증거궤는 이 휘장으로 뿐 아니라 '해달 가죽' 및 '순청색 보자기'로 삼중 덮어야 했으며 기타 각종 지성물 역시 보자기로 덮어야 했다. 이처럼 거룩한 기물(器物)들을 덮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 성별된 사람 이외에 지성물을 만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즉 지성물은 모두 기름 부음받은 것으로 거룩하기에(출 40:9),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외에는 만질 수 없었다(4절) (2) 지성물을 자연의 재해(비, 모래 바람,태양열 등)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3) 기물믈 덮는 각종 보자기의 색상을 통해 백성들로 하여금 종교적 열의와 경건을 북돋우기 위함이었다. (4) 그리고 무엇보다 기물들을 외부로부터 은혜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죄인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목격하는 날이면 그는 죽음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소의 모든 기물들이 나름대로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상징한다는 측면에서 모두 가리워져야 했다. 따라서 이것은 구약 계시의 은폐성을 대변한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이르러 계시의 정점(頂點)이신 예수그리스도로 인해 구약 시대에는 감추어졌던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했고(히 10:1), 마침내 그분의 재림을 통해 그 모든 은폐된 것들이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고전 13:12).

성 경: [민4:6]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 여기서 '해달'(*, 타하쉬)에 상응하는 아랍어 '투하스'는 '돌고래'를 가리킨다. 따라서 '해달'(sea otter)보다는 홍해 및 그 인근 바다에서 서식하는 '바다 소'(NIV, sea cow)나 '듀공'(dugong), 또는 '돌고래'(공동 번역)로 보아야 한다(출 25:5). 그러나 '염소'(RSV, Living Bible, goat)나 '오소리',(KJV,badger)는 거리가 먼 해석이다. 한편 두텁고 질기며 강한 '해달'의 가죽은 광야의 열사(熱砂)와 이슬, 비 등으로부터 언약궤를 보호하기 위해 덮개로 사용되었다.

(주); 순청색 보자기(*,베게드 켈릴 테겔레트) - 직역하면, 다른색이나 수놓은 것이 없는 '전적으로 푸른 청'이다. 혹자는 '푸른 색'은 하늘 빛을 가리키는 색깔로써 곧 하늘의 영광과 권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든지 '순청색 보자기'를 멀리서나마 바라볼 때 그 푸른 색상을 통해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인식하며, 또한 그 보자기 안에 든 지성물이 하늘에 속한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그것을 운반하는 고핫 자손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보자기에 싸인 지성물을 운반했을 것이다. 여하튼 그 보자기의 색상이 의미하는바가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는 그 지성물을 성별하시려고 '순청색 보자기'의 사용을 명하셨던 것이다(Keil). 그러나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형식주의적 품성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당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외적인 질서와 순종과 조화까지도 요구하셨음을 나타낸다. 사실 참된 예의와 형식은 참된 인격 안에서 자연스럽게 넘쳐난다.

(주); 그 채를 꿰고(*, 사무 바다이우) - 이를 직역하면 '각각의 손잡이를 내고'이다. 즉 언약궤 사면에 달린 고리에 '채'(pole)를 꿴다는 뜻이다(출25:12-15). 이것은 언약궤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을 방지하기 위한 배려였다(4절).

성 경: [민4:7,8]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성소 내의 북편에 배치된(출 40:29-33 주석 그림 참조) 진설병 상 위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그 위에 진설병 상에 딸린 여러 부속기구(대접, 숟가락, 주발, 붓는 잔)와 항상 진설하는 떡을 놓았다(출 37:16 주석 그림 참조). 그리고 그 위에 홍색 보자기를 펴 덮고, 이어 진설병 상을 포함한 모든 지성물을 한번 더 해달 가죽 덮개로 덮은 후 진설병 상의 고리에 채를 꿰어 운반하게 했다(출 37:10-16).

(주); 진설병의 상 - 성소(the Holy Place) 내 북편에 위치하며,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떡을 진열해 놓는 곳이다(출 25:23-30).

(주); 홍색 보자기 - 곧 붉은 피의 색깔을 띠는 보자기로서 이는 백성의 죄를 위해 대신 죽은 희생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는 성소의 모든 지성물들이 속죄의 희생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나타내며, 특히 속죄의 희생 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능력 또는 그 피의 효력을 상징한다그 볼 수 있다(출 26:1; 마 27:28). 한편 홍색 보자기로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요 6:35,48,51)를 상징하는 진설병이 놓인 상을 덮은 것은 의미 심장하다. 즉 이는 십자가에서 찢기신 그리스도의 살과 그 상흔(傷痕)에서 쏟아진 보혈을 연상케 한다.

성 경: [민4:9]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등대 - 이것은 앙장과 휘장으로 바깥과 완전히 차단된 성소 내에서 제사장이 제사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불빛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출25:31-40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고, 등대의 모양에 대해서는 출 37:23,24 주석의 그림을 참조하라.

성 경: [민4:10]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메는 틀 - 물건 운반에 사용되는 '들 것'(RSV, TEV, carring frame)을 의미한다(13:23). 이것이 필요한 이유는 모든 성물이 직접적으로 인간의 손에 접촉되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물을 메는 틀로 운반하라는 이 명령은 당신의 절대 성결과 당신의 거룩한 영광의 보존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내포된 명령이다(삼하 6:6,7).

성 경: [민4:11]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금단 - 곧 향을 태우는 '분향단'을 가리킨다. 이것은 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금단'(金壇)으로 불리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출 30:1-10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고, 그 모양에 대해서는 출 37:29 주석의 그림을 참조하라.

성 경: [민4:12]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봉사(*, 솨레트) - 이 말은 비천한 사역에 자주 사용되는 '아바드'(*)와는 달리 고상한 위치의 인물이 '사역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동사 '솨라트'에서 파생되었다. 가령 이 말은 보디발의 가정 총무로 봉사한 요셉(창 39:4)이나 아하시야 왕을 섬긴 그의 조카들의 사역(대하 22:8)을 언급할 때 쓰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말은 종교적 업무와 관련되어 자주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성소 안에서 행한 아론과그의 아들들의 사역(출 28:35,43), 레위인들의 찬양 사역(대상 16:4,37)등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역은 매우 존귀한 것으로 선민 이스라엘 중에서도 특정인에게만 제한되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는 봉사 사역은 특정 이스라엘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섬길수 있는 고귀한 위치에 설 수있게 되었다(사 56:6-8). 한편 아마도 '솨라트'에 상응하는 헬라어는 '라트류오'(*)일 것이다(히 9:9; 13:10; 계 7:15). 사도 바울과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을 사용하여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기고(롬 1:9),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것을 권유하였다(히 12:28).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제사장과 레위인이 된 우리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고귀한 봉사의 일에 전력해야 한다(히 9:14).

(주); 기명(*, 켈레) - '그릇', '도구'등을 뜻한다. 즉 진설병 상, 등대, 분향단이외의 성소 기구와 그릇들을 가리킨다(대하 4장).

성 경: [민4:13]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단의 재를 버리고 - 즉 번제단 위에서 불태워진 각종 희생 제물의 찌꺼기는 진(陣) 바깥의 재 버리는 곳에 버려야 했다(래 4:12).

(주); 자색 보자기 - 자색(紫色)은 성막의 그룹을 수 놓기 위해 사용된 색상 중 하나이며(출 26:1), 성막 문(출 26:26)과 에봇 위의 띠(출 28:8), 판결 흉패(출 28:15), 그리고 왕이 사용하는 기구(아 3:10)등에 주로 사용되는 색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왕의 영광과 권위(삿 8:26), 부요함(눅 16:19) 등을 상징한다. 그런고로 나아가 이 색상은 인류의 참된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권위를 상징하기도 한다(요19:2,3).

성 경: [민4:14]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단의 모든 기구 - 번제단에 부속되는 기구는 재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 및 불 옮기는 그릇 등이다(출 27:3). 여기서 '재 답는 통'은 희생 제물의 타고 남은 재를 담아놓는 단지(pot, NIV)를 가리킨다. 그리고 '부삽'은 다 탄 희생 제물의재를 통에 퍼 담는 일종의 삽(shovel)을 가리키고, '대야'는 단 위 희생 제물로부터 흘러 내리는 피를 받는 그릇(basin)을 가리킨다. '고기 갈고기'는 절단된 희생 제물의 고기를 번제단 위에 골고루 펴 놓는데 사용되는 일종의 포크(fork, RSV)를 의미하며, '불 옮기는 그릇'(firepan)은 일명 '향로'로 불리우는데 제사장이 분향단의 향을 사를때 번제단의 불을 바로 이 그릇에 담아 옮겨 사용 했다. 한편, 그런데 이 모든 기구들이 각각 복수(plural) 형태로 나와 있는 것을 볼 때 이 기구들은 1개씩이 아니라, 각각 여러개씩 있었던 것 같다.

성 경: [민4:15]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 그런데 본장에서 보자기에 덮이지 않은 유일한 성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놋으로 만든 물두멍(출 30:18)이다. 카일(Keil)은 이에 대해 '물두멍은 아무런 덮개 없이 그 모습 그대로 운반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70인역(LXX)과 사마리아 사본(Samaria Papyri)의 본문은 물두멍을 해달 가죽의 덮개로 덮고 그것을 운반용 들것에 두는 형식으로 기록하여 14절 내용과 일치하게 묘사 하였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26). 본절의 표현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과 본장 전체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물두멍도 천등으로 덮개를 씌웠던 것 같다.

(주); 멜 것이니라 - 여기서 '메다'(*, 나사)란 '들어올리다', '운반하다', '떠받치다'는 뜻으로서, 곧 어깨를 지지대로 해서 물건을 메어 운반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것은 성소와 성막 안의 기구들(언약궤, 진설병상, 등대, 금단, 번제단등)을 운반하는 방법을 일컫는 말이다. 한편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들이 맡겨진 것들은 오직 사람의 어깨로 옮겨야만 했다. 이것은 지성물에 대한 백성의 경의와 존경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물론 지성물은 그 자체로서는 어떤 권위도 가지지 못한다. 성소의 지성물들은 그것에 대한 신적(神的) 인준과 하나님의 임재 및 그 거룩한 성품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비로소 신령한 권위와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망각한 채 단지 성물(聖物)에만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또 하나의 변형된 우상 숭배일 뿐이다(출 20:4; 사 1:10-17).

(주); 죽을까 하노라(*, 와메투) - 직역하면 '죽지 않도록'(KJV, RSV, lest theydie)하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성물에 '몸이 닿았다가는 죽을 것이다'(공동 번역)로 해석할 수 있다. 실로 모든 사람은 죄인인 까닭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롬 3:23).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죄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채 하나님의 영광에 나아간다면 그는 죽임을 면치 못한다(출 19:21). 비록 레위인들이 선택된 일꾼들이라 할지라도 구약 시대의 특성상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성물들을 결코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음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러 그것을 목도할 수 있도록 부름을 받았다(살전 2:12; 벧전 5:10).그러르로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고후 3:18), 그 영광을 찬양할 수 있도록 소명받은 우리가(엡 1:12-14)영광의 직분을 갖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고후 3:7-9).

(주);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 2절 주석 참조.

성 경: [민4:16]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성직(聖職)]

(주); 엘르아살의 맡을 것 - 여기서 '맡을 것' (*, 페쿠다트)이란 말은 3:32에는 '통할(統轄)'로 번역되었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대로, 대제사장 아론의 셋째 아들 엘르아살은 두 형 나답과 아비후 사망(레 10:1,2) 이후 실질적인 아론의 장자가 되어 막중한 임무를 부여 받게 되었다. 즉 엘르아살은 등대용 등유(출 27:20,21), 분향단용 향품(출 30:34-38), 상번제 소제물(출 29:40-42; 민 28:3-6) 및 관유(출 30:23-25)등을 통할하였으며, 장막 전체 곧 게르손 자손들과 므라리 자손들이 맡은 것도 관할하였고, 특별히 성소안의 기구들을 맡은 고핫 자손들을 직접 감독하였던 것이다. 결국 그는 레위인들의 실질적인 어른이었다(3:32).

(주); 등유(*, 쉐멘 함마오르) - 성소 안에 빛(*, 오르)을 비추는 등대에 사용되는 순결한 감람 열매의 기름이다(출 27:20). 성소의 등대에 이 기름을 태움으로 말미암아 외부와 차단된 어두은 성소는 환히 밝아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빛은 상징적으로 오늘날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히 4:15)께서 이 세상의 빛이 되신다는 사실(요 8:12)과 또한 복음의 제사장인 우리가(롬 15:16) 세상의 빛으로 존재해야 함을 이중적으로 보여 준다.

(주); 분향할 향품(*, 케토레트 핫삼밈) - 직역하면 '냄새가 좋은 향'(RSV, NIV the fragrant incense)이란 뜻이다. 이 향(香)은 특별히 분향단에 사를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곧 하나님의 명하신 바를 따라 오직 '향 만드는 법대로' 제조되어져야 했다(출 30:35). 한편 성경적 의미로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한다(계8:3,4), 그러므로 제사장 엘르아살이 이 향품을 관리한 것은 상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중보 기도 사역(롬 8:34; 히 7:25)을 예표한다. 나아가 이것은 이 세상을 위해 제사장으로 신택된 우리(출 19:6; 벧전 2:9; 계 1:6)가 뭇사람을 위한 중보자가 되어 기도해야 함을 보여 준다(딤전 2:1-3).

(주); 항상 드리는 소제물(*, 미느하트 하타미드) - 누룩 없이 고운가루와 기름으로 만든 무교병으로서(레 6:14-17), 상번제에 바쳐지는 소제 예물을 가려킨다(28:1-8). 한편, 여기에 쓰인 고운 가루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과 온전한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며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소제물이 날마다 봉헌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영원한 것임을 반영한다(히 7:24,27). 또한 상번제(常燔祭, a regular burnt offering)는 그리스도를 좇는 성도들의 삶이 날마다 하나님께 바쳐져야 함을 예표하기도 한다(롬 12:1,2). 즉 매일 예배드리는 삶(행 2:46),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행 5:42),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삶(살전5:16-18), 바로 이러한 삶이 곧 성도 각자가 자신을 주께 바치는(고후 8:5) '상번제의 삶'이다.

(주); 관유(*, 쉐멘 함미쉐하) - 직역하면 '바르는 기름'(theanointing oil)이란 뜻이다. 이것은 제사장들과 성막의 모든 기구들에게 발라 그것들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려고 특별히 제작된 향기름(출 30:22-33; 40:9-15)을 가리킨다. 한편 상징적으로 이 관유 역시 성도를 거룩하게 변화시키시는 성령을 상징한다. 즉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기름 부으심으로써(고후 1:21), 신령한 지식을 갖게 하시고 주 안에 거하게 하사 의를 행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신다(요일 2:20,27-29).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성령(욜 2:28,29; 행2:17,18)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어 (딛 3:5) 거룩한 생활을 추구해야 한다(고전3:16,17).

성 경: [민4:18]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보호 규례]

(주); 지파(*, 쉐베트) - 본래는 '막대기', '지팡이'의 뜻을 지닌다. 여기서는 지파(tribe)라는 뜻보다는 '가계', '혈통', '족속'이란 뜻으로 쓰였다. 한편, 하나님은 고핫 자손이 하나님을 섬기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 것(호 4:6)을 원치 않으셨다. 그러므로 모세와 아론 및 제사장들은 그들을 잘 가르치고, 감독하여 결코 그들이 무지로 인해 창졸간에 멸망당하지 않도륵 늘 삼가 지도를 게을리 말아야 했다. 한편 고핫 자손을 바로 가르치고 이끌 지도자들이 그 책임을 게을리할 때 고핫 자손이 부지중에 재난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교회 내에도 몇몇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적지 않은 성도들이 상처를 입고 실족할 가능성이 상존해 있음을 보여 준다(마 15:14; 18:6,7;23:13,15).

(주); 끊어지게 말지니 - 곧 '멸망받게 하지 말라'(RSV, let not...be destroyed) 또는 '결단코 소멸당하지 않게 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고핫 자손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막 기구들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그만큼 더 주의하여 그것들을 하나님의 명하신 지시대로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 어느 족속, 어느 지파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거룩성을 침해하고는 살아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고핫 자손은 늘 하나님의 지성물을 취급해야 하는 족속인만큼 더욱 삼가 조심해야 했다. 아울러 그들을 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는 모세와 아론 몇 제사장들은 그들을 감독해야 할 책임이 있는 모세와 아론 및 제사장들은 그들이 행여 하나님의 명령을 잘못 시행하지 않는지 지도, 훈계, 견책하는 일에 잠시도 게을리 말아야 했다. 한편 고핫 자손은 레위 지파의 가지로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말씀을 어김으로 인해 거기서 끊어진다는 것은 그들로서 큰 불행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지로 붙어있다. 우리 역시 말씀을 어김으로 거기서 끊어진다는 것은 불행 중의 불행이다(요 15:1-6; 롬 9:3).

성 경: [민4:19]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보호 규례]

(주); 이같이 하여 - 즉 '아론과 그 아들들의 직무에 관한 명령(5-15절)대로 하여'라는 뜻이다.

(주); 지휘할지니라(*, 사무) - 기본 동사 '숨'(*)은 '임명하다', '돌보다','배치하다'는 뜻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그 권위를 위임받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레위인들의 직무를 구분하여 무리없이 성막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라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성막 내에서 아론을 중심한 조직적이고도 질서있는 봉사를 원하셨다.

성 경: [민4:20]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자손의 보호 규례]

(주); 잠시라도(*, 케발라) - '(성물들이) 덮여있을 때'(KJV), 혹은 '일순간도'(Keil)라는 뜻, 그런데 이 말이 '삼키다'(*, 발라)에서 왔으므로, 욥 7:19을 참조해 볼 때 '침삼킬 동안', 즉 '잠깐 동안이라도'(RSV, even for a moment)라고 번역함이 좋다. 70인역(LXX)도 '갑자기'(Suddenly)라는 뜻의 '엑사피나'(*)로 번역함으로써 이 의미를 취했다. 그러므로 고핫 자손들은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 지성물을 챙기는 동안 혹시라도 호기심이나 실수 등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지성물을 보거나 만져서는 결코 안 되었다. 이처럼 구약 시대에는 지성물을 운반하는 고핫 자손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물인 지성물을 보는 것이 잠시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구원받은 성도들은 장차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도성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영원토록 받으면서 살게 된다(계 21:10,11,23).

(주); 죽을까 함이니라 - 구약 시대 당시 죄인된 인간이 거룩한 기름(관유)을 부음받지 않고 하나님의 현존과 영광을 목도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사6:5) 그리고 역사상 실제로 엘리(Eli) 사후 시대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함부로 여호와의 궤(법궤)를 들여다 보다 떼죽음을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삼상 6:19).

성 경: [민4:21]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성직]

(주); 여호와께서 ... 모세에게...가라사대 - 하나님께서는 고핫 자손의 직무에 대해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으나(1절),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의 직무에 대해서는 단지 모세에게만 말씀하셨다. 이는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의 직무가 아론과 그 아들들의 도움 없이는 죽임 당하는 고핫 자손의 직무와는 달리, 그들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인 듯 하다(1:51). 왜냐하면 이들은 성소 기구들이 아닌 나머지 성막 부품들을 운반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론에게는 계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모세에게만 말씀하신 듯하다.

성 경: [민4:22]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성직]

(주); 게르손 - 레위의 장자이다(창 46:11; 출 6:16).

(주); 종족과 가족을 따라 - 2절 주석 참조.

성 경: [민4:23]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성직]

(주);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세까지 - 3절 주석 참조.

(주); 입참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 - 직역하면, '(대기하다가) 들어가 군사 일을 할수있는 모든 자'를 가리킨다. 한편 여기서 '군사 일'에 대해서는 3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4:24]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성직]

(주); 게르손 가족(*, 미쉐페호트 하게르슈니) - 직역하면 '게르손 후손들의 가족들'(KJV, RSV, the families of the Gershonites)이다. 즉 여기에는 30세 이상 50세 이하의 각 가문별 게르손 자손들을 말한다. 이것은 게르손 자손들이 당시 그들에게 맡겨진 직무를 다시 각 가문별로 분담하여 일을 수행해갔음을 암시한다.

(주); 멜 것 - 여기서 '메다'(*, 마사)란 말은 고핫 자손처럼(15절) 어깨 위에 메는(carring on the shoulder)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옮기는 행위(ca-rring 또는 bearing)를 가리킨다. 게르손, 므라리 자손들은 성막 이동시 소가 끄는 수레로 자신들의 분담 부분을 옮겼다(7:7,8).

성 경: [민4:25,26]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성직]

이는 게르손 자손들이 운반해야 할 성막 앙장들과 회막 문장들, 그리고 그것들에 따르는 줄 등과 기타 그들이 사용하는 모든 기구들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선 출26,27,35,38,39장을 각각 참조하라.

성 경: [민4:26]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성직]

(주); 모든 것을 어떻게 맡아 - 직역하면 '다루어야 할 거기 있는 어떤 것들이든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게르손 자손들이 그에게 맡겨진 성막의 부속물들을 운반하기 위하여 성막을 걷는(taking down) 일(1:51)과 그것의 순조로운 운반을 위해 여러 가지 직무를 맡은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주); 처리할 것이라(*,이바두) - 이를 직역하면, '봉사할지라'(KJV, theyshall serve)이다. 즉 앞에 언급한 직무를 온전히 맡아 봉사하라는 명령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성실과 충성이다(고전 15:58; 계 2:10).

성 경: [민4:27]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성직]

(주); 맡길 것이니라(*, 페카드템) - '지정해야 한다', '짐을 지워야 한다'란 뜻이다. 이것은 강제 노역의 권한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성막 봉사를 위해 각자에게 일을 분담하라는 지시이다. 이런 원리에 따르면, 오늘날 성직자들이 다른 이에게만 짐을 지우고 자신의 몸은 사린다면 그것은 잘못이다(마 23:5). 그러나 성도 각각의 은사에 맞게 교회의 막중한 일들을 적절히 분담해 주는 것은 합리적이고 또한 필요한 작업이다. 이것은 성직자가 일반 성도들을 신뢰할때, 그리고 일반 성도들이 짐을기꺼이 질 수 있을 만큼 성숙했을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다툼과 허영을 버리고 복음 사역을 위해 서로 협력하라고 당부했다(빌 1:27; 2:1-4).

성 경: [민4:28]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자손의 성직]

(주); 이다말이 감독할지니라 - 여기서 '감독할지니라'(*, 베야드)란 말은 '손 아래에(있다)'(KJV, under the hand), 즉 '감독하에있다'(RSV, be under the oversight)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엘르아살과 더불어 레위 가문을 이끌어갈 이다말의 위치를 말해 주고 있다. 일찍이 그는 성막 건축 때 건축 비용을 계산한 적도 있었으므로(출38:21) 성막 내부를 상세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가진 그에게 성막 일의 감독을 맡긴 것은 자연스럽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경험과 재능을 최대한 활용하셔서 당신의 거룩한 목적을 성취해 가신다.

성 경: [민4:29,30,31,32,33]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므라리 자손의 성직]

하나님께서는 성막 내부에서부터 외부에 이르는 직무를 이미 고핫 자손과 게르손 자손에게 지시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기물이 정리된 후 남게 되는 성막 본체의 널판들과 기초 부분들을 므라리 자손에게 맡기심으로 질서 정연한 성막 봉사를 주도하셨다. 이는 당신이 스스로 질서의 신(神)이심을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다(고전 14:33,40). 한편 므라리 자손의 임무가 성소 내의 기물을 다루는 다른 자손들의 직무보다 덜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임무에 관해서도 같은 지시를 되풀이 하시면서 빠짐없이 구체적으로 상세히 설명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라면 그 맡은 일이 무엇이든지간에 모두가 중요하며 의미 있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마 25:40). 한편, 본문에 나타난 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앞의 고핫 자손의 경우(1-20절)와 게르손 자손의 경우(21-28절)를 참조하라.

성 경: [민4:32]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므라리 자손의 성직]

(주); 명목을 지정하라 - 이것을 직역하면 '이름을 따라 하나도 빠짐없이 잘 세어서 운반할 것을(지명하여) 맡기라'이다. 한편 므라리 자손이 해야 할 임무는 성막 본체의 널판들(출 26:15), 그 띠들(출 26:26), 그 기둥과 받침 기둥들과 그 받침들(출 35:18; 39:40)을 걷어(1:51) 운반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와같은 성막의 부속물들을 므라리 자손에개 각각의 이름에 따라 정확하게 지정하고 그 임무를 지시해 주어야 했다. 이는 고핫 자손이 해야 할 직무에 있어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포장하고(5절) 직접 명하여 지시하는 일과는 달리 므라리 자손들은 모세가 지시한 각 성막 재료들의 이름에 따라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Septuagint).

성 경: [민4:33]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므라리 자손의 성직]

(주); 사무대로(*, 레콜 아보다탐) - '봉사할 모든 일을 따라서'이다. 여기서 '봉사하다'(*, 아바드)는 비천하게 수고한다는 뜻을 지닌다(12절). 그러나 여기서 이것은 마치 노예와 같이 복종적인 자세로서 고생하는 것을 뜻하지 않고,매우 겸손한 자세로서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나라 건설 사역 현장에 부름받은 우리도 이들처럼 비천하게, 즉 겸손하게 사역해야 한다(고전 4:10: 고후 11:7). 그리할 때 마침내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위로하시고(고후 7:6) 높이신다(약 4:10; 벧전 5:6).

성 경: [민4:34]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가(家)의 성막 봉사자 수]

(주); 모세와 아론과 회중의 족장들 - 여기서 '회중의 족장들'이란 각 종족(지파)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을 가리킨다(17:2,6). 아마 이들은 이스라엘을 지도하는 70인 장로들(출17:6; 24:1)중에서 각 지파별로 한명씩 대표자로 뽑혀진 것 같다(1:4,16). 모세와 아론은 이들과 더불어 레위 각 가문들을 계수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동역(同役)의 중요성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역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때는 능력 있는 한 지도자의 고독한 통솔보다는 하나님을 함께 믿는 공동체 의식속에서 서로 헙력하여 조화있게 일을 처리해 나가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임을 암시한다(출 18:21,22).

(주); 가족과 종족대로 - 2절 주석 참조.

성 경: [민4:35]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가(家)의 성막 봉사자 수]

(주);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 3절 주석 참조.

(주); 입참하여 일할만한 모든 자 -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도록 선별되어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성소에서 일할 수 있는 지파에 속해 있다는 신분과는 달리, 실제로 그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자들은 마30-50세 사이 사람들 뿐이었다(23절). 즉 그들의 선별된 신분과 하나님의 일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자격과는 차이가있었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로 볼 때에 신약 교회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제사장들이나(벧전 2:5,9; 계 1:6), 실제로 그들이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효과적으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은 그들의 영적 성숙정도에 따라 좌우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Matthew Henry).

성 경: [민4:36]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가(家)의 성막 봉사자 수]

(주); 그 가족대로 - 이것은 고핫 자손들이 그들의 각 가문별로 계수함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모세와 아론과 회중의 족장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고핫 자손들은 그 가족과 종족대로 구분하여 계수하였으나(2,34절), 최종적으로는 각 가문별로 그들의 직무를 더욱 세분하여 맡김으로써 아무런 혼동없이 맡은 바 직무를 각자가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성 경: [민4:37]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고핫 가(家)의 성막 봉사자 수]

(주); 여호와께서 ... 명하신대로 - 이스라엘 자손중 특별히 레위인은 처음 난 자들을 대신한 자들로서 곧 '여호와의 것'이었다(3:12). 그러므로 레위인을 계수함에 있어서도 하나님 특별히 깊은 관심을 표명하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거듭 중복되는 말씀으로 세세히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셨던 것이다. 그런고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이러한 뜻을 잘 받들어 그 명령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했다.

성 경: [민4:38,39,40,41]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게르손 가의 성막 봉사자 수]

이 부분은 므라리 자손 중 회막 봉사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자의 계수 총계가 기록된 부분이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34-37절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4:42,43,44,45]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므라리 가의 성막 봉사자 수]

이 부분은 므라리 자손 중 회막 봉사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자의 계수 총계가 기록된 부분이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34-37절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4:46,47,48]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성막 봉사자 총계]

이스라엘 자손 중 레위 족속 특별히 두 가지 방법으로 계수되었다. 하나는, 생후 '1개월 이상된 자들'을 모두 계수하는 것이었는데(3:15-39),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중 처음 난 자를 대속하기 위한 목적으로 계수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특별히 '30세 이상으로 50세까지의 장정들'을 계수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실제로 성막 봉사를 맡길 목적으로 계수된 것이다. 아래 도표는 이처럼 두 가지 방법으로 계수된 레위 족속의 계수 도표이다.

구 분 1개월 이상 30 - 50 세 비 율

게르손 자손 7,500명 2,630명 35%

고 핫 자손 8,600명 2,750명 32%

므라리 자손 6,200명 3,200명 52%

총 계 22,300명 8,580명 38%

성 경: [민4:49]

주제1: [레위인들의 업무 분담과 봉사자 수]

주제2: [성막 봉사자 총계]

(주); 그 할 일과 멜 일을 따라(*, 알 아보다토 왜알 맛사오) - 직역하면 '그의 봉사와 그의 짐에 따라'이다. 레위인들은 성막이 머물러 있는 동안 제사장들의 업무를 도와 봉사했고 이 동시에는 각자 맡은바 성막의 짐을 운반하는사역을 담당했다. 한편, 같은 이치로 오늘날 성도 각자의 손에는 수행해야 할 봉사의 일이 있고(엡 4:12) 어깨에는 짊어져야 할 십자가의 짐이 있다(마 16:24; 눅 9:23; 갈6:5).

성 경: [민5:1]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부정한 자의 격리]

(주); 여호와께서 ... 일러 가라사대 - 이 표현은 새로운 상황 전개가 시작되거나, 혹은 계시 내용의 성격이 바뀔 때 종종 사용되어지는 성경의 관용적 표현이다. 또한 무엇보다 이 표현은 이하 제시되는 내용의 신적(神的) 기원성을 명료하게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한다.

성 경: [민5:2]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부정한 자의 격리]

(주); 문둥병 환자(*, 차루아) - 문둥병은 히브리어로 '차라아트'(*)이며 헬라어로는 '레프라'(*)이다.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죄와 더러움(부정함)의 개념과 연관시켜 지독한 피부병을 가리킬 때 사용하였다. 한편 히브리어 '차라아트'는 '몹시 괴롭다'는 의미의 '차라'(*)에서 파생된 말로, 곧 심한 발진성 피부염에 감염되었거나 앓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헬라어 '레프라'는 피부 표면이 거칠고 비늘 모양으로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병을 뜻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문둥병 환자에대한 제반 사항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레 13장 주석을 참조하라.

(주); 유출병(*, 조브) - 물같이 자연스럽게 '흐르다'는 뜻의 '주브'(*)에서 파생된 말로서, 곧 몸 밖으로 피가 계속해서 유출되는 일종의 혈루(血漏)증세의 병을 가리킨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유출병은 (1) 여인의 정규 월경(레 15:19-24)과 자궁 출혈(레 15:25-30)을 의미하기도 했으며, (2) 성병에 의한 비정상적인 분비물(레15:1-15)과 또한 정액(精液)을 배출하는 남자의 병(레 15:16-18)을 가리키기도 했다. 여하튼 이스라엘 공동체 사회에 있어서 이 모든 것들은 종교 의식 성결법상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이유는 피를 생명으로 취급했던 그들로서는 피와 그리고 그와 비슷한 정액의 유출은 곧 죄의 결과로서 생명을 파괴시키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신 12:23).

(주); 주검으로 부정케 된 자(*, 콜 타메 라나페쉬) - 즉 '죽은 사람에 의해 더럽혀진 모든 자'이다. 주로 '영혼'으로 번역된 '네페쉬'가 여기서는 반의역어(反意逆語)로 사용되어 '주검'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처럼 '네페쉬'가 '주검'이란 의미로 사용되게 된 이유를 우리는 다음 몇가지로 상정(想定)해 볼 수있다. (1)신 12:23,24에 보면 '네페쉬'는 피속에 흐르는 생명의 원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출21:23; 잠 12:10). 그러므로 주검은 이 '네페쉬'의 활동 중지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2) 시체에 한동안 영혼이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말이 혼용되었을것이다. (3) '죽은 영혼(사람)'(*, 네페쉬 메트)이라는 시체에 대한 관용어(6:6)가 축약되어 이러한 혼용을 초래했을 것이다. 여하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체에 접촉된 자가 부정하다고 하는 개념이다. 문둥병 환자(혹은 악성 피부병 환자)나 유출병 있는 자는 모두 전염성 질환의 보균자로서 부정하다고 인정되어 격리되는 것이 적절했다. 그렇지만 단순히 시체를 가까이 한 이유로 부정하게 취급된 것은 과도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주검 및 주검에 접촉된 자를 부정하다고 간주한 때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종교 의식상 주검 곧 시체는 죄의 삯으로 초래된 죽음(롬6:23)의 현상적 결과였기 때문이다. (2) 위생상 시체는 시간이 경과할수록 부패해지는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레 21:1).

(주); 진 밖으로 내어 보내되 - 여기서 '진밖'이란 회막 주위에 진을 친 각 지파(2:1-34)의 외곽, 또는 이스라엘 본 진영(2:34)의 후미였을 것이다. 그런데 부정한 자로 간주된 모든 사람들을 이스라엘 진 밖으로 내보낸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1) '분리'를 통하여 위생적, 도덕적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2) 부정한 자로 하여금 격리 기간 동안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였다(레 13:45,46). (3) 이스라엘 공동체의 종교적 성결을 위해서였다. 즉 이스라엘 진(陣)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는 곳이었기 때문에 부정한 자들이 결코 거주할 수 없었다. 한편 종교적 의미에서 '분리'란 하나님께 대한 모든 제사에서와 이스라엘 내에서의 각종 행사및 율법에서 배려된 선민(選民)으로서의 모든 혜택으로부터 제외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같은 사실은 신약 교회의 성도들 중 범죄자들이 신앙 공동체에서 치리(治理)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것을 상징한다(마 18:15-20; 고전 5:4,5,13;살후 3:14,15). 이처럼 죄는 개인의 양심을 멍들게 할 뿐 아니라 대인(對人)과 대신(對神) 관계에 대해서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엡 2:1).

성 경: [민5:3]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부정한 자의 격리]

(주); 무론 남녀하고 - 직역하면 '모든 남자와 온 회중의 여자'이다. 이는 부정케 된 자를 진에서 축출시키라는 명령(2절)에는 예외가 없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며 모든 권위를 초월한다.

(주); 더럽히게 말라(*, 로 에타메우) - '더럽히게'(에타메우)란 종교 의식상, 혹은 도덕적으로 '더러워지다'(*, 타메)의 미완료 피엘(Piel)형으로서 계속적으로 더러워지게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죄의 가장 무서운 특성 중 하나인 '전염성'을 강조한 표현으로, 한 사람의 범죄자(부정한 자)가 거룩한 공동체 내에 존재하게 되면 멀잖아 전 공동체가 죄로 오염될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수7:2-26). 그러므로 부정한 자에 대한 단호한 조처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주); 내가 그 진 가운데 거하느니라 - 이 말은 이스라엘 진이 성결해야 할 가장 큰 이유를 제공한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은 결코 부정한 것과 함께 하실 수 없기 때문에, 부패로 오염된 자들을 그분이 왕으로 통치하시는 거룩한 공동체로부터 격리되어야 했다. 인간에 의해 이 명령이 준행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공의의 심판을 통해 당신의 성소(聖所)를 깨끗하게 하신다. 한편 하나님이 '거하시며', '통치하시는' 성전된 우리 각자의 내적 상태에도 이러한 성결이 또한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고전3:16,17).

성 경: [민5:4]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부정한 자의 격리]

(주); 이르신대로 ... 행하였더라 - 진(陣)을 성결케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한 백성들의 아름다운 신앙이 묘사되고 있다. 이 명령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도 실행되었는데(Keil), 그 일례로 문둥병자들이 성(城) 밖의 특정한 지역에서 집단 생활을 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왕하 7:3).

성 경: [민5:6]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손해 배상법]

(주); 사람들이 범하는 죄 - 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 죄로, 그 의미상 '사람들에게 저지른 죄'(KJV, sin that men commit)라 할 수 있는데, 공동 번역에서는 '남에게 손해를 입혀'라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5-10절 사이의 내용으로 보아 이 표현은 분명 이웃간에 재산상의 피해를 준 각종 죄를 일컫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레 6:2,3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특기할 사실은 인간들 사이에서 발생된죄가 여호와께 패역(*, 마알 바예호와)하는 범죄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여호와께 패역한다'는 말은 '여호와께 반역(반항)하여 죄를 짓다'는 뜻으로서, 결국 이웃에 대한 범죄가 하나님께 간접적인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죄가 됨을 보여 준다. 사실 하나님은 진리와 정의를 사랑하는 분이시기에 인간이 어떤 형태로 불의를 자행하든지 간에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법을 거부하며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는 범죄가 되는 것이다(출 9:27; 히 1:3). 그러므로 이스라엘 공동체 사회에서는 누가 어떤 형태의 죄(하나님께 대해서든, 인간에 대해서든)를 범하든지, 범죄한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 속죄의 은총을 구해야 했다. 이에 대해서는 레 6:4-7의 규례를 참조하라.

(주); 그 몸에 죄를 얻거든(*, 아쉐마 하네페쉬 하히우) - 직역하면 '그 온 인격(영혼)이 범죄하다'(RSV, that person is guilty)이다. 이는 인간의 죄가 단순히 사고나 양심에만 손상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전 인격에 그 영향력를 미침을 암시한다.

성 경: [민5:7]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손해 배상법]

(주); 사람에게 죄를 범하고 여호와께 패역한 자는 다음과 같은 조처를 취해야 했다. (1)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 여기서 '자복하고'(*, 히테와두)란 말은'손을 펴서 경배하다', '손을 꽉 잡고 슬퍼하다'는 뜻의 '야다'(*)에서 유래하였다. 이 말은 공개적이고 의지적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의 죄를 놓고 애타게 통회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처럼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을 경우 먼저 범죄자를 자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회개(자복)를 해야만 했다. 따라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치 않거나 뉘우침 없이 물질적 손해 배상만을 하는 것은 참된 의미에서 회개라 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을 동시에 기만하는 행위일 뿐이다. 그런고로 죄에 대한 '자복'은 자신의 죄에 대한 뼈저린 인식과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눅 19:1-10). 결국 '자복'이란 자신의 죄를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내려 놓고 간절히 뉘우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한편 이 자복의 과정 중에는 '속죄제'(8절)가 포함되어 있다. (2)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 여기서 '죄값'(*, 아솽)이란 하나님께 대해서가 아니라 피해를 입은 자에게 대해 물어야 할 배상을 가리킨다. 그리고 '온전히'(*,베로쇼)란 '최상으로', '원금(본전)대로'라는 의미로 자신이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해 조금도 남김없어 갚으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쓰였다. 이처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자는 그 잘못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상대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행동이 따르지 않는 회개는 거짓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예수를 영접했던 세리장 삭개오의 신앙은 진실했다고 할 수 있다(눅 19:8).

(주); 오분지 일을 더하여 - 잘못을 뉘우친 자는 손해 원금 뿐 아니라 그 원금의 1/5(20%)을 덧붙여 주어야 했다. 이것은 피해 보상에 있어서,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정신적인 배려도 생각한 완전하고도 합리적인 보상 원칙이었다. 한편, 이러한 원칙은 속건제 규례와 연결된 것으로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레 5:16; 6:5 주석을 참조하라.

(주); 본주(本主) - 재산상의 침해를 받은 피해 당사자를 가리킨다.

성 경: [민5:8]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손해 배상법]

(주); 친족(*, 가알) - 친척의 재산 문제나 혹은 친척의 혈육을 잇는 일까지 책임지는 가까운 혈족을 가리킨다. 성경은 이들을 '기업 무를 자'로 표현하기도 한다(레25:8-55 강해, 근족의 의무). 본문에서 이 피해자의 친족은 피해자가 죽었을 경우, 그 피해자를 대신해서 가해자에게 보상을 받는 대리자 역할을 해야 했다.

(주); 여호와께 드려 제사장에게로 돌릴 것 - 이 말은 누군가 사람들에게 범하는 죄(6절)를 지은 후 피해 보상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나 그 당사자의 친족마저 없어 누구에게 배상해야 할 지 불확실한 경우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즉 이 경우에라도 범과자는 배상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았다. 그럴 때 그는 7절에 언급된 보상금을 하나님께 드려 그것을 제사장의 몫이 될수 있도록 해야했다. 이러한 규례는 반드시 피해를 보상해야만 지은 죄를 속(贖)함 받을 수 있다는 준엄한 '속죄 원리'를 가르치고 있다(레 5:11,12;6:2-7).

(주); 속죄의 수양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각자가 자기 죄를 깨달았을 때 그 죄를 속함 받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하셨다. 첫째는, 먼저 피해를 입힌 이웃에게 성실히 재산상의 보상을 규례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런 연후에 또한 하나님께 속죄를 위한 제물로 속건제 수양을 바치는 것이다(레 5:15,16; 6:6,7). 이는 모든 죄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성 경: [민5:9]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손해 배상법]

(주); 거제(*, 테루마) - '높이 들어 올리다'란 뜻의 히브리어 '룸'(*)에서 유래한 말로, 곧 제사장이 제물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내려 놓는 행동을 통해 제사를 드리는 제사 방법의 한 형태이다(레 7:32). 여기서 들어올렸다 내리는 행동은 제사장이 그 제물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다가 다시 하나님께로부터 되돌려 받는다는 의미가 내포된 상징적 행동이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주); 그의 것이 될 것이라 - 피해자가 죽고 그 피해자의 친족마저 없을 때 그 '죄 값'(7절)은 하나님께 드려져 실제적으로는 제사장의 소유가 되었다. 이는 오직 여호와를 기업 곧 생계의 근원으로 삼아야 했던 제사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상한 배려였다(레10:12-15).

성 경: [민5:10]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손해 배상법]

(주); 구별한 물건 - '봉헌된 물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물 외의 거제물이나 요제물로서, 곧 첫 열매의 곡식 단이나 각종 십일조를 가리키는 듯하다(18:8-22). 한편 여기서 '구별하다'(*, 카다쉬)란 말은 하나님께 완전히 봉헌(소속)되었다는 뜻이다. 사실 하나님은 만물의 소유주이시나 특별히 언약 백성이 성별하여 드리는 '성물'을 기뻐 받으시며 그것을 특별히 '당신의 것'이라 인정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과 완전히 구별된 우리 성도들 역시 항상 성결을 유지함으로써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롬 12:1).

성 경: [민5:12]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의심의 소제(素祭)]

(주); 고하여 ... 이르라(*, 다베르 웨아마르타) - 직역하면 '말하라...그리고 말하라'이다. 이처럼 동일한 의미의 말을 두번씩이나 언급한 것은 전하고자하는 내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즉 뒤이어 나오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하라', '조금도 빠뜨림 없이 전파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 실행하여(*, 티세테) - 의무에서 '벗어나다', '그릇 행하다'란 뜻의 히브리어 '사타'(*)의 단순 미래형이다. 이것은 아내로서 남편에 대한 (도덕적)의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의 상황을 예상한 것으로서, 여기서는 간음과 같은 부도덕한 범죄를 지칭한다. 이처럼 정도(正道)를 벗어나는(사 30:21) 탈선은 '사단'(*)을 따르는 짓이다.

성 경: [민5:13]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의심의 소제(素祭)]

(주); 타인과 정교를 하였으나 - 직역하면 '그녀가 어떤 남자와 함께 누워 성교(性交)를 하였다'이다. 즉 이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통정으로 인한 불륜(不倫)을 일컫는 말이며 강제 추행과 같은 불가항력적 상황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주);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네엘람...니세테라) - 이는 '숨기고 비밀로 하다'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 히브리어의 두 단어는 모두 미래 재귀형(Niphal)으로서, 부정한 아내가 비밀 유지를 위해 스스로 애쓰고 있는 상황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주); 증인(*,에드) - '이중으로 하다', '반복하다', '중언하다'란 뜻의 히브리어 '우드'에서 유래한 말로써, 그 목격한 상황을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모세 율법에서는 위증(僞證)을 피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 최소한 2인 이상의 '증인'이 요구되었다(신 19:15; 마 18:16).

(주);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 즉 '현행범(現行犯)이 아니었을 경우도'라는 뜻이다(요8:4). 그러나 만일 현행범일 경우, 그리고 분명한 목격 증인들이 있을 경우, 그 여인은 모세 율법에 따라 돌로 처행당하는 형벌에 처해졌다(레 20:10).

성 경: [민5:14]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의심의 소제(素祭)]

여기서는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는 두 경우가 제시되었다. 하나는 아내가 남편에게 의심살 만한 불륜을 저질렀으나 증거가 없는 경우, 또다른 하나는 전혀 사실 무근한 일을 남편이 공연히 의심하는 경우이다.

(주); 의심(*, 루아흐 키느아) - 직역하면 '질투의 신(영)'이다. 따라서 본래 의심이란 질투심을 자극하는 사단의 영향력 아래 있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이는 단순히 머리를 갸우뚱할 정도의 의혹이 아니라, 전인격을 불사를 정도로 심히 의심하는 것를 가리킨다. 그러나 한편 여기 제시된 '의심의 규례'를 따라 그 당시 남편이 가정의 평안을 사수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일으키는 '의심'은 정죄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이것은 가정의 건전한 도덕적 윤리 및 공동체의 기풍 확립을 위해서 필요하기까지 했다. 그런고로 이 의심은 오늘날 소위 의처증(疑妻症)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의심 받는 여인은 실족하거나 불평치 말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 하나님의 공의의 대변자인 제사장에게로 가야 한다. 이렇게하여 만일 여자가 순결하다고 밝혀지면 그녀는 더 큰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28절).

성 경: [민5:15]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의심의 소제(素祭)]

(주); 제사장에게로 가서 - 이는 곧 공의로운 심판을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고 또한 백성의 처지를 하나님께 아뢰는 증보자이기 때문이다.

(주); 그를 위하여 - 즉 '그 아내를 위하여'이다. 구약 시대의 규례상 여호와 앞에 나아가는 자는 빈손으로 나갈 수 없었다(출 23:15; 24:20). 그러므로 남편은 의심받은 아내를 위해 소제의 예물을 준비해야 했다.

(주); 보리 가루 - 보통 소제는 고운 밀가루에 기름과 유향과 소금을 섞어 드려졌으며, 가끔 첫이삭을 볶아 기름과 유향과 함께 드려지기도 했던 일종의 기쁨과 감사와 헌신의 제사였다(레 2:1-16; 6:14-23). 그러나 여기 '의심의 소제' 예물로는 거칠고 질이 떨어지는 가난한 자들의 음식인 '보리 가루'가 사용되었다. 이는 의심하는 자나 의심받는 자의 상황이 매우 곤혹스럽고 애매한 처지였음을 대변해 준다. 사실 의심받는 자나 의심하는 자는 피차 영육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런고로 유대 랍비들은, 남편이 그 아내를 의심의 법으로 고발하기 전에, 그 심증(心證)이 얼마나 객관적인가를 거듭 생각하라고 가르치고 있다(Matthew Henry).

(주); 에바 십분지 일 - 여기서 '에바'(Ephah)는 구약 시대에 부피를 재는 고체량의 단위로서, 1에바는 약 23리터 가량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에바 십분지 일(1/10)은 약 2.3리터 가량에 해당되는 고체 부피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1오멜(Omer)의 부피에 해당되는 것이었다(출 16:16,36).

(주);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 여기서 '의심의 소제'일 경우, 기름과 유향없이 소제가 드려졌다. 그 이유는 이 의심의 소제는 여자의 행실과 관련하여 그 죄의 유.무 문제를 판별하기 위해 드리는 소제였기 때문에 다른 희생물과 더불어 드리는 일반 소제 때와는 달리 죄의 부정을 제하는 '기름'을 부을 수 없었고, 기도를 상징하는 '유향'를 곁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레 2:1-16). 한편 곡식 제사에서 기름과 유향이 사용되지 않는 또 다른 경우는 극빈한 자가 드리는 속죄제에서였다(레 5:11). 결국이 두 제사는 드리는 자의 어려운 물질적 정신적 처지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주); 의심의 소제요 생각하게 하는 소제 - 이 소제는 감격과 헌신과 봉사의 다짐이 있는 일반 소제와는 그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이 소제는 그 제물의 내역에서 볼 수 있듯이 여인의 순결이 의심받는 '의심의 소제'였다. 그런 견지에서 특히 여기 '생각'(*, 지카론)이란 말은 '지난 일을 기억하다', '알아보기 위해 표시해 두다'에서 파생된 말로, 곧 이 소제의 취지를 분명히 해주고 있다. 즉 이 소제는 (1) '의심'의 근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진실인지의 여부를 알아보려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2)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행실에 대해 옳고 그름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3)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판단의 근거를 하나님의 생각, 곧 그분의 전지하신 지혜에 맡기고 그 분의 판단에 겸손히 따르겠다는 데 그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성 경: [민5:16]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물]

(주); 여호와 앞에 세우고 - 즉 여호와의 임재 처소인 '성막 앞에 세우고'라는 뜻의 관용적인 표현이다(레 1:3; 3:1).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제사장은 그 여인을 성막 뜰의 동쪽, 곧 성막 입구 쪽에 서도록 하였다고 한다(Matthew Henry). 한편 이것은 한 가정과 한 인격의 운명이 관련된 일을 인간의 지혜로 해결하지 않고, 최고의 권위자이신 하나님께 맡겨 그분의 판결을 기다린다는 상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더욱이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신전(Coram Deo)의식은 오늘날 성도의 모든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 한편 이 성구는 18절에도 다시 한번 언급되는데, 실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신다(고후 5:10).

성 경: [민5:17]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물]

(주); 토기(*, 비크리 하레시) - 이 토기그릇(초벌 구이인 듯하다)은 곤경에 처한 여인의 형편을 잘 반영한다. 즉 잘 다듬어진 놋그릇에 비해 조악하게 구워진이 토기 그릇은 순결을 의심받고 있는 여인의 곤궁한 현상을 연중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그릇은 모든 행사가 끝난 후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없었고 깨뜨려진 것으로 추정된다(레 6:28).

(주); 거룩한 물 - 이 물은 성소 입구에 위치한 물두멍의 물인 듯하다(출 30:18). 제사장들은 이 물로 성막 봉사를 전후해서 손발을 씻었다(출 30:19-21;40:31,32). 한편 육대 전승은, 이때 토기 그릇에 담긴 물의 양은 약 0.5리터 정도의 용량이었다고 전한다(Matthew Henry).

(주); 성막 바닥의 티끌을 ... 물에 넣고 - 본래 물두멍의 물은 성막 바닥의 티끌과 각종 오물을 씻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오히려 성막 티끌을 그 물에 집어 넣은 것은 이 물의 효과를 역(逆)으로 이용한 것이다. 즉 이때 이 물두멍의 물은 생명과 성결을 제공하기 보다 죽음과 심판의 효과를 자아내게 되었음을 상징화한 것이다. 한편 '티끌'은 최초 범죄 이후 저주받은 뱀의 식물로 규정된 것으로서(창 3:14), 결국 거룩한 물에 '티끌'을 첨가한 것은 저주와 수치 등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함이다(Keil).

성 경: [민5:18]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물]

(주); 그 머리를 풀게 하고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머리털은 명예와 권위로 상징되었다(고전 11:3-10). 그래서 그들은 극한 슬픔을 만났을 때 가장 참담한 마음의 상태를표하기 위하여 머리를 풀고, 또는 머리에 재를 뿌리며(욥 2:12) 스스로 겸비해지곤 했다. 더욱이 이 행동은 문둥병 환자에게도 적용될 정도로(레 13:45) 비천함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흉악한 범죄자로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의심받는 그 자체가 아내에게는 크나큰 수치이며 주위 사람들에게 비난거리였기 때문에, 제사장은 그녀가 지금 욕되고 비천한 자리에 처해 있음을 상징하는 의미로 그여인의 머리를 풀게 한 것이다. 한편 유대 전승에 따르면, 이 경우 이 여인이 나중에 무죄로 판명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 여인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여인의 집안 식구나 가솔들 및 가까운 친족들은 그러한 재판 장소에 입회하는 것을 금지시켰다(Matthew Henry).

(주); 생각하게 하는 소제물 곧 의심의 소제물 - 이것은 일반 소제 예물(레 2:1-16)과는 다른 특별한 목적의 소제물로서, 곧 기름과 유향 및 소금이 첨가되지 않은 조악한 보리 가루 1/10 에바로 구성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15절 주석을 참조하라.

(주); 소제물을 그 두 손에 두고 - 이것은 의심받는 여인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러내 놓고 그분의 정당한 판결을 받을 준비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주); 저주가 되게 할 쓴 물 - 이는 성막의 티끌을 첨가한 이 물 자체가 저주의 효능을 가진 쓴 물이란 뜻이 아니다. 이는 의심받는 여자가 불륜의 사실이 있을 경우 그 쓴 물이 그 부정한 여인에게 하나님의 공의롭고도 고통스러운 형벌를 전달하는 매체가 될 것이라는 뜻에서 사용된 표현이다. 한편 여기서 '쓰다'(*, 마라르)란 말은 '괴롭히다', '격동시키다'란 뜻으로서 영육간에 매우 고통스러운 지경에 이른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이 '쓴 물'을 특별히 제사장에게 맡긴 것은 그가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 경: [민5:19]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물]

(주); 여인에게 맹세시켜 - 제사장은 의심받는 그 여인에게 21절에서 '저주의 맹세'로 규정된 그 맹세를 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맹세는 여자의 무죄 가능성을 배제시키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 맹세에는 무죄의 경우 저주의 쓴 물이 여인에게 아무런 폐해도 끼치지 못하리라는 반대 급부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결국 이 맹세는 여인으로 하여금 '진리'에 절대 순응하도록 하기 위한 조처인 것이다. 한편 유대 랍비들은 말하기를, 이 경우 즉 여인에게 맹세를 시킴으로 말미암아 공식 재판 절차에 들어가기 전, 제사장은 먼저 그 의심받는 여인에게 만일 불륜의 죄가 있다면 숨김없이 고백하라고 강력히 설득하고 권고하는 과정을 반드시 밟아야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만일 그 여인이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제사장에게 자기의 죄를 고한다면, 처벌은 면제되나 남편으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는 운명이 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인이 제사장의 강력한 설득과 권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 제사장은 '의심의 법'에 따라 공식 재판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주); 네 남편을 두고(*, 타하트 이쉐크) - 직역하면 '네 남편 아래 있으면서'이다. 이는 곧 아내는 그 남편의 권위와 보호와 사랑안에 거해야 한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주); 해독(*, 함므아레림) - '심한 저주'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라르'(*)에서 유래한 말로써 곧 '매우 쓰라린 고통', '찌르는 듯한 아픔'을 의미한다. 여기서 20,21절에 언급된 바와 같은 고통을 가리킨다. 한편이 해독의 정확한 병명(炳名)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유대 학자들은 대개 수종증(水腫症)으로 본다. 즉 요세푸스(Josephus)는 일반 수종증(ordinary dropsy, hydrops ascites)으로 보고, 미카엘리스(Michaelis)는 난소 수종증(dropsy of the ovary, hydrops ovarii)으로 본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32.). 여하튼 이 해독은 '간음'이라는 범죄의 행위와 결부되어 하나님께서 여자의 생식기에 내리신 치명적인 병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주); 면하리라(*, 히나키) - 이 말의 원뜻은 '깨끗하다', '완진히 일소하다', '무흠하다'이다. 따라서 이는 의심받았던 사실에 대해 완전히 자유롭게(무죄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성 경: [민5:20]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물]

(주); 실행하여 - 12절 주석 참조.

(주); 더럽혀서 - 기본 동사 '타메'(*)는 종교 의식상 '부정'하게 되다, 혹은 도덕적으로 '오염되다', '때묻다'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도덕적인 불륜을 의미하는데 곧 통정(通情)으로 인한 '간음'을 가리킨다.

성 경: [민5:21]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물]

(주); 저주의 맹세 - 즉 이것은 맹세할 내용의 만일 죄가 있을 경우 어떠한 저주도 달게 받겠다는 식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뜻한다. 여기서는 다음에 이어지는 저주에 관한 내용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주); 여호와께서 - 저주의 주권자를 밝히고 있다. 즉 공의로우신 심판자로서의 하나님께서 모든 선악을 다스리신다는 '하나님의 주권'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주); 넓적다리로 떨어지고 - 여기서 '넓적다리'(*, 야레크)란 본래 '부드럽다'는 의미에서 파생된 말로서, 대체적으로 '출산하는 부분', '정강이', '옆구리', '허리'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는 말이다. 여기서는 성적(性的) 범죄에 대한 징벌이라는 점에서 여자의 생식기를 지칭하는 완곡한 표현인것 같다(Keil, Pulpit commentary). 한편 그리고 이것이 '떨어진다'는 말은 '쓴 물'에 의한 치명적인 악질(惡疾)로 인해 여자의 생식기가 파손되어 더 이상 여성으로서의 기능(임신, 출산 등)을 수행할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임을 나타낸다.

(주); 배로 부어서 -이는 생식기에 발생한 수종(水腫)에 의해 임파액이나 장액(漿液)이 괴어 몸이 엄청나게 부어오르는 상태를 말하는 것 말하는 것이다(Keil).

(주); 저줏거리, 맹셋거리가 되게 하실지라 - 남편으로부터 의심받은 여자가 결국 간음한 것으로 판명되면 그녀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모욕을 당하며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끊어지게 될 것(신 23:2)이라는 말이다. 이같은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것이 요8:1-11 에 나오는 바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사건이다. 한편 율법에 의하면 통간한 남녀는 모두 '돌'로 쳐 죽여야 했다(레 20:10; 신 22:22). 이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에는 결코 악이 존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생생히 교훈하기 위함위었다. 사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악을 징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마 3:2).

성 경: [민5:22]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물]

(주); 네 창자에 들어가서 - '창자'(*, 메에)란 복부, 심장, 내장 등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말로서, 여기서는 구체적인 내장 부위(창자)를 일컫기 보다 단순히 배(복부)로 봄이 옳다. 따라서 결국 본문은 만일 의심받는 여인에게 죄가 있을 경우 저주의 쓴 물이 배에 들어가 여호와께서 일으키신 '해독'(19절)이 각 부위에 스며 들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시 109:18).

(주); 아멘 아멘 - '아멘'(*)은 어떤 사실이나 대상을 '지지하다', '확신한다'는 뜻의 히브리어 '아만'(*)에서 유래한 말로서, 곧 '참되다', '그대로 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의심받는 여인이 제사장의 저주 선언에 대하여 '아멘'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만일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제사장의 저주 선언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적 표현이다. 그런 견지에 이 말은 인간 앞에서의 맹세가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맹세이다(신 27장, '아멘 연구'). 한편, 여기서 '아멘'을 두 번 말한 것에 대해 혹자는 추정하기를, 여기 본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제사장을 그 여인에게 유죄일 경우의 저주 선언과 더불어 무죄일 경우의 축복 선언도 했다고 본다(28절). 그러므로 그 여인은 이 두 가지 경우에 대하여 각각 아멘 아멘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Matthew Henry).

성 경: [민5:23]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두루마리]

(주); 저주의 말을 ... 그 쓴 물에 빨아 넣고 -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의 말이 가득히 기록된 두루마리를 물에 빠는 것은 곧 그 두루마리에 기록된 저주 내용이 그 쓴 물에 옮겨진다는 의미가 담긴 상징적 행동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저주 곧 해독(害毒)이 그 쓴 물에 용해되어 물 속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는 이방종교나 미개인 사회에서 사용되는 어떤 신비적이고 주술적인 방법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통치를 시각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저주가 기록된 두루마리 자체로서는 선악을 분별하거나 죄인을 심판할 능력이 전혀없다. 단지 당시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여 그러한 가시적인 방법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열쇠가 쥐어져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망각한 채 단순히 하나님께서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한 가시적인 도구나 매체를 절대화 하거나 경외하는 일은 변형된 또 하나의 우상 숭배일 수 밖에 없다. 그런고로 우리의 신앙 대상은 하나님과 관련된 '그 무엇'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 '그 자체'여야 한다.

(주); 두루마리(*, 세페르) - '기록하다', '열거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사파르'에서 유래한 말로, 곧 '책', '조서', '두루마리' 등을 가리킨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문서 보관용 책자로 동물의 가죽 , 또는 파피루스(Papyrus), 토판(土版) 등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본문에서처럼 기록된 글자를 물에 빨아 넣는다는 말에서 추축해 보면, 여기서의 두루마리는 동물 가죽(특히 양피지)으로 제조된 두루마리(NIV, scroll)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굴림 막대가 있는 긴 것이 아니라(렘 36:2) 낱장의 문서로봄이 타당하다.

성 경: [민5:24]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두루마리]

(주); 여인으로 ... 마시게 할지니 - 재판 순서상 이 일은 먼저 소지물을 여호와께 바친 다음에(25,26절) 이루어졌다. 이처럼 순서가 뒤바뀐 이유는 저주의 글을 물에다 빠는 행동과 그것을 마시는 행동은 밀접히 연관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주);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 - 18절 주석 참조.

성 경: [민5:25]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두루마리]

(주); 먼저 - 원문상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의미상 첨가한 말이다.

(주); 의심의 소제물 - 15절 주석 참조.

(주); 여호와 앞에 흔들고 - 이는 지물을 요제(*, 테누파)로 드리는 장면이다. '요제'(搖祭)란 화목제의 희생 제물 중 가슴 부위를 드릴 때와 땅의 소산물을 드릴 때 제사장이 제물을 높이 들어 흔들다 내림으로써 진행되는 제사이다(출 29:24; 레7:30). 이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의미와 더불어 그 드린 것을 다시 제사장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성 경: [민5:26]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두루마리]

(주); 기념으로 - '표시하다', '기억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자카르'(*)에서 파생된 말이다. 여기서는 하나님께 모두 드리는 '증표로'라는 의미이다. 즉 비록 '한 움큼'만을 취해 단에서 불사른다 할지라도 그것은 곧 드리고자 한 예물 전체를 헌상(獻上)한 '증표'가 된다는 뜻이다.

(주); 한 움큼을 ... 소화하고 - 소제는 제물 전체를 대표하는 '한 움큼'의 곡식만 기념으로 취해진 후 불태워져 하나님의 몫으로 돌려졌고(레 2:2,9). 그 나머지는 태우지 않고 하나님께 (거제 또는 요제로) 드린 뒤 다시 제사장이 취해 자신의 몫으로 삼았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주); 그후에 ... 그 물을 마시울지라 - 의심의 판결 절차 가운데 제일 마지막으로 여인의 순결 여부를 가려주는 '쓴 물'을 마시게 되어 있다. 즉 최종 판결에 앞서 의심받는 여인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점검하고, 하나님과 단독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이 거룩한 백성의 일원이지만 지금은 의심받고 있는 비천한 처지임을 깊이 자각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준비가 끝난 후 의심받는 여인은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기는 표로 이 '쓴 물'을 마셔야만 했다.

성 경: [민5:27]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두루마리]

(주); 물을 마시운 후 - 유대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 경우 만일 그 여인에게 죄가 있다면 그 쓴 물의 효과는 당장에 독(毒)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여인은 심한 하복부 경련과 더불어 마침내 살이 썩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 여인과 관계한 남자도 그여인과 같은 시각에 같은 방식으로 죽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그 여인에게 죄가 없다면 그 쓴 물은 오히려 약(藥)이 되어 그녀의 생식 기능을 더욱 강화시켜 주어 결국 자녀를 잉태하게 된다는 것이다(Matthew Henry).

(주);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 - 18절 주석 참조.

(주); 배가 부으며 그 넓적다리가 떨어지리니 - 21절 주석 참조

(주);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 즉 간음한 여인이 받게 될 저주의 본보기가 되어 두고두고 그 백성 가운데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비단 죽은 그 여인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이 소속된 가정과 가문에도 크나큰 수치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자가 서로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자기 가족, 자기 가문, 자기 지파, 그리고 자기 나라 가운데서 그러한 저줏거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했다.

성 경: [민5:28]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저주의 두루마리]

(주); 정결하면 ... 잉태하리라 - 남편으로부터 그 순결을 의심받던 여인이 재판 후 마침내 순결한 것으로 밝혀지면 그녀는 혐의에서 완전히 해방될 뿐 아니라, 그동안 당했던 마음 고생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답이 그녀에게 주어졌다. 즉 그 여인은 '잉태'함으로써 지난날의 아픔을 가리고도 남는 보상을 받게 된다. 이 '잉태'는 (1) 의심했던 남편과의 사랑을 다시 회복했음을 나타내는 확실한 증거이며 (2) 하나님께서 그녀를 기억하시며 사랑하신다는 표시이고(삼상 2:1; 눅 1:58) (3) 하나님께서 그녀를 축복하셨다는 증거이다(시 127:3). 더욱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잉태를 확인하고 그녀에 대한 모든 의혹을 말끔히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주); 해를 받지 않고 - 이는(죄의 형벌로부터) '자유로울 것이고' (KJV, RSV-she shallbe free)로 해석할 수 있다.

성 경: [민5:29]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의심의 법(法)]

(주); 의심의 법 - '질투의 법'(NIV, law of jealousy) 혹은 '질투한 경우의 법'(RSV, law in cases of jealousy)이란 뜻이다. 이 법은 질투와 의심으로 인해 가정과 사회가 파괴되거나 부패되는 것를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법이다. 즉 이 법은 간통 혐의에 대하여 사실을 확인시켜 줄만한 어떤 물증이나 증인이 없는 경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폐단을 방지코자 마련된 법이다. 첫째는, 괜한 의심으로 인하여 한 인격 혹은 한 평화스러운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요 둘째는, 간교한 음부 음녀가 이스라엘 공동체의 기풍을 흐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폐단을 방지코자 하나님께서는 '신정(神政) 통치'라는 법적 배경과 '고대 사회'라는 시대적 배경하에서 본 의심의 법을 제정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이 법의 입법자는 하나님이시며, 이 법의 운용자 또한 하나님이시고, 이 법을 통한 판결자 역시 하나님이시다. 이것이야말로 이 '의심의 법'이 당시대 이방의, 모두 주술법(呪術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독특한 특징인 것이다.

성 경: [민5:30]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의심의 법(法)]

(주); 이 법대로 행할 것이라 - 여기서 '법'은 '의심의 법'을 말하는데, 곧 11-29절에 기록된 내용이다. 그것을 다시 간략히 정리하면 아래 도표와 같다.

재 판 절 차 관련성구

의심의 법으로 그 아내를 고발한 남편은 의심의 소제물을 11-15절

준비한 후 제사장에게 나아간다.

제사장은 그 여인으로 하여금 머리를 풀게 한 후 회막 문 16-18절

에 세운다. 그리고 그 여인의 두손에 의심의 소제물을 둔

다. 그런 후 제사장은 토기 그릇에 물두멍의 물을 담고,

성막 뜰의 티끌을 취해 그 물에 넣은 후 자신이 들고 그

여인 앞에 선다.

제사장은 '여호와께서...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게 하리라'

는 내용으로 구성된 저주의 맹세를 그여인으로 하여금 하 19-22절

게 하고, 또한 자신이 회중 앞에서 공식 선포한다. 이때

여인은 아맨 아맨으로 화답하여야 한다.

저주의 맹세가 끝나면 제사장은 그 글귀가 기록된 두루마 23절

리를 자신이 들고 있던 토기 그릇의 물에다 뺀다.

그런후 제사장은 여인의 손에서 의심의 소제물을 취하여 25,26절

요제로 드린 후 그 중 한 움큼을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

르는 의식을 치른다.

소제물 의식을 치른 후 제사장은 이제 끝으로 그 여인으 24절

로 하여금 두루마리를 빤 그 토기 그릇의 물을 마시게 한

다. 이로써 재판의 절차는 모두 마쳐진다.

한편 재판의 결과는 유죄와 무죄의 때를 따라 다음 두가지 27,28절

경우로 나타난다. 즉 유죄일 경우, 그 여인은 저주의 맹세

대로 치명적인 해독을 입게 된다. 그러나 무죄일 경우, 그

여인에게는 아무런 해도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조만간

잉태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성 경: [민5:31]

주제1: [성결에 대한 세부 지침]

주제2: [의심의 법(法)]

(주); 남편은 무죄할 것이요 - 진실을 밝히고 가정의 평화를 사수한다는(14절) 측면에서 비록 아내가 순결하다고 증명되더라도 아내를 의심했던 남편은 죄가 되지 않았다. 대신 '첫날밤의 의심 규례'(신 22:13-19)와 연관시켜 고찰해 볼 때, 이때 순결한 아내를 공연히 의심한 남편은 정신적 보상금으로 장인에게 은 100세겔을 주어야 했으며(신22:19). 또한 의심했던 아내를 평생 데리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어떠한 보상이 주어지더라도 남편으로부터 그 아내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부 생활의 최선책은 사랑과 이해와 용서이다.

성 경: [민6:1]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주); 여호와께서...일러 가라사대 - 이 말은 이하 제시되는 모든 말씀의 신적 기원성을 분명히 나타내는 말이다. 이처럼 성경은 여호와의 계시 말씀이 기록된 책이기에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고 오고 오는 성도들에게 참된 진리를 교훈해 주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민6:2]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주); 남자나 여자가 -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그들의 규범(율법)은 대부분 남성 우위의 내용들로 가득 메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당시 남자는 남녀 두 성(gender)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며, 또한 언약의 체결자로서 하나님께 대한 책무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창 2:15-17; 3:11). 그런데 '나실인'(Nazirite)에 관한 규정을 다룬 본문에는 특이하게도 남자와 여자, 두 성(性)을 동일한 위치에 두고 같은 의무 조항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나실인 제도는 당시대의 종교, 사회적인 관행(慣行)을 초월하며 하나님과 인간의 자유로운 만남과 자발적인 헌신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특별법이라 할 수 있다. 여하튼 나실인제도에 나타난 바 이러한 남녀 동등이라는 파격(破格)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하나님 앞에서는 인격적인 면에서 결코 성(性)차별이 있을 수 없다(그러나 기능적 구별은 인정해야 한다, 창 2:23; 3:16-19). (2)각 개인은 누구에게도 예속됨이 없는 독립체로서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 (3)이러한 인간의 인식과 관습을 뛰어넘는 자유로움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의해서 가능하며, 그렇기에 이 자유로움은 인간의 권리 주장이 아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사용되어져야 한다.

(주); 특별한 서원 - 여기서 '특별하다'(*, 팔라)란 '크고 경이롭다', '구별하다', '어렵다'등의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뒤에 연결된 서원(*, 네데르) 곧 하나님께 대한 약속이 매우 성(聖)스럽고 가치 있는 것이며, 아울러 그 서원 이행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임을 암시한 말이라 볼 수 있다<30:1-8 강해, 서원과 맹세에 대하여>.

(주); 나실인(*, 나지르) - 이는 '구별하다'(separate), '분리하다'(set apart)란 뜻을 지닌 동사 '나자르'(*)에서 유래된 말로 곧 '구별된 자', '성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자', '세상과 분리된 자'란 의미이다. 즉 세상적 욕망을 끊어버리고 자신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헌신하기로 서원한 사람을 가리킨다. 이것은 나실인 제도가 정착되기 전의 구약 초기 시대에는 신성한 종교적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신적 권능을 부여받은 고귀한 신분(예:요셉)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창 49:26). 그런데 후대에 와서 나실인 서원 규약이 율법에 의해 규정되고 표준화 되면서 자신을 종교 도덕적으로 구별시켜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서원한 사람이면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일정 기간 또는 평생 동안 나실인이 될 수 있었다. 혹자는 이 나실인 제도가 애굽이나 당시 이방 국가의 금욕 서원 또는 머리털 봉헌 서원 등의 관습에 기인하고 있다고 주장하나(Spencer, Knobel), 근거가 없는 견해이다(Keil & Delitzsch, Vol. 1-3, p. 34). 한편 나실인 중에는 삼손(삿 13:5)이나 세례요한(눅 1:15)등과 같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에 따라 나실인이 되어 평생을 헌신한 자도 있었고, 사무엘처럼 부모의 서원에 따라 그렇게 된 자도 있었다(삼상 1:11). 물론 본장에서는 자원하여 나실인이 될 자들이 지켜야 할 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나실인의 서원 제도는 다른 모든 구약의 의식적인 율법이 그러하듯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최종 완성된다(마 12:1-8). 그러므로 이제 성도들이 하나님의 섬기는 것은 의식적 구별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방법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구별되어 새로이 거듭난 심령으로써이다(롬 7:5,6: 고후 3:6-11). 다음은 이 나실인 제도를 알기 쉽게 도표화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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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분 | 내 용 | 참 조 구 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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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 원 | 출애굽 제 2년 2월 초에 시내 광야에서 하 | 6 : 1 |

| | 나님이 모세에게 계시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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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적 | 하나님께 헌신,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구별 | 6 : 6 |

| | 시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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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격 | 남녀 구분없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 | 6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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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 수 | (1)포도나무 소산 및 독주를 금할 것 | 6 : 3, 4 |

| | (2)머리털을 깍지 말 것 | 6 : 5 |

| 사 항 | (3)시체 접촉으로 인해 부정케 말 것 | 6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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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지별 | . 자발적 서원으로 | 6:2; 행 18:18; |

| | | . 부모의 서원으로 | 삼상 1:11; |

| 종 류 | | . 하나님의 명령으로 | 삿 13:5,7; |

| +---------+-------------------------------+ 눅 1:15; |

| | 기간별 | . 일정기간 동안 | 삼상 1:11 |

| | | . 일평생 동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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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손, 사무엘, 레갑 족속, | 삿 13:5,7; |

| | | 삼상 1:11; |

| 실 례 | | 렘 35:6,7; |

| | 세례 요한, 사도 바울 | 눅 1:15; |

| | | 행 1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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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혼탁한 현대를 사는 성도에게 순수한 | |

| | 신앙 촉구 | |

| | (2)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을 드린 예수 그 | 히 7:26 |

| 교 훈 | 리스도를 예시 | |

| | (3)온전한 헌신은 철저한 경건생활로부터 | 약 1:27 |

| | 가능 | |

| | (4)자기 부인(deny oneself)없이는 하나님 | 마 16:24 |

| | 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음을 교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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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 직역하면 '여호와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구별하려면'(RSV, to separate himself to the Lord)이다. 이 말은 나실인의 헌신 대상 및 목적을 보여 주는 바 곧 그것은 순전히 '여호와를 위해서, 여호와께'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의 삶 전체를 드렸던 것이다. 그들은 일정한 장소나 업무에 국한되지 않고(출애굽 여정 동안에는 주로 성막 중심의 봉사를 했던 것 같다). 주어진 환경에서 하나님 나라 건설에 일익을 담당함으로써 자신의 서원을 구체화 했다. 한편 그들은 여호와를 위해 자신을 구별하는 일에 타인의 조언(助言)이 필요치 않않다. 다만 헌신을 받으실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바르냐 그렇지 못하냐가 문제일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을 구별한다는 것은 (1)항상 (2)하나님만을 바라보며 (3)속된 것에서 자신을 보존하는 거룩한 삶을 일컫는다.

성 경: [민6:3]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주);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 여기서 '멀리하며'(*, 야지르)란 말은 '분리하다'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나자르'(*)의 사역형 능동태(Hiphil)의 미래 구문으로서, 곧(앞으로 서원 기간 동안) '계속적으로 멀리하라', '철저히 멀리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실인은 모든 술을 절대 입에 대지 말아야 했으며 특히 포도 나무에서 얻어진 어떤 종류의 소산물도 먹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나실인의 나실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 제사장처럼(레 10:9) 마음의 청결과 절제를 유지하여 맑은 정신으로 여호와께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명령의 더 깊은 의미는 술로 대표되는 '모든 육적인 유혹'을 전적으로 멀리하라는 데에 있으며(렘 35:6, 7). 동시에 자신들의 '가장 큰 기쁨'은 오직 여호와께 두라는 데에 있다. 이 사실은 성경에서 포도가 상징하는 바를 알아보면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즉 포도는 기쁨, 축제, 풍요 등을 상징했으며(전 10:19; 요 2:1-11), 동시에 그 발효된 알콜 성분으로 인한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쾌락과 세상적인 사치(창 9:21; 사 28:7)를 상징했다. 그러므로 정신을 혼미케 하며 세상적 쾌락과 사치(삼상 25:18, 36; 호 3:1)를 조장하는 포도주를 멀리해야 하는 것은 구별된 자의 당연한 도리였다. 사실 하나님을 자신의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는 자에게는 술(세상)이 제공하는 기쁨은 관심 밖의 일이 된다. 한편 '독주'(*, 쉐카르)는 포도주와는 구분되는 기타의 독한 알콜성 음료로써 마시는 자를 혼미케 할 정도의 강력한 술(strong drinks)을 총칭하는 말이다(잠 20:1; 사 28:7).

(주); 포도주의 초 - 여기서 '초'(*, 호메츠)란 '신맛이 나다', '발효하다', '알록달록하다'는 뜻의 '하메츠'에서 유래한 말로써 '포도주'(*, 헤메르)보다 알콜 농도가 낮은 신 포도주였을 것이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빵을 먹을 때 찍어 먹는 양념으로 사용되곤 했다(룻 2:14).

(주); 독주의 초 - 역시 '포도주의 초'와 동일하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 마시지 말며(*, 로이쉐테) - '마시다'는 말은 단순히 '들이키다'는 뜻 외에 '술취하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앞의 '멀리하며'란 말과 동의어이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강조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주); 포도즙(*, 미쉐라트 아나빔) - 원문대로 해석하면 '익은 포도를 넣고 발로 짓이겨 뽑아낸 즙을 가리킨다(느 13:15; 욥 24:11; 사 5:2).

(주); 건포도 - 이것은 호화롭고 부유한 계층이 즐기던 식료품이었다(삼상 25:18). 물론 이것을 섭취한다 해도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상 숭배자들이 추구하는 향락을 상징하는 식물이기도 했다는(호 3:1) 점에서 구별된 자의 식물로는 적합하지 못했다.

성 경: [민6:4]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주);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 나실인의 제한된 생활 규범은 서원한 기간 동안 철저히 이행되어야 했다. 만약 이 규범을 어기면 그는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서원을 해야 했다(12절). 그러나 서원한 기간을 끝낸 후에는 그들도 포도의 각종 소산물을 먹을 수 있었다. 이것은 (1)나실인도 그의 서원 기간이 종료되면 평범한 일반 백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며 (2)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조건 일상의 생활까지 제한하실 정도로 지나친 분이 아님을 말해 준다. 이런 측면에서 하나님께서 오히려 나실인의 금지 규례를 서너 가지로 정하여 주신 것은 흔히 이방의 금욕 종교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몸을 자학(自虐)하는 갖가지 금욕 규례를 스스로 만들어 자신의 몸에 굴레를 덧씌우는 그러한 폐단을 방지코자 한 의도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주); 씨나 껍질이라도 - 혹자에 의하면 팔레스틴에서는 포도의 씨와 껍질을 이용하여 술이나 기타 음식물을 만들었다고 한다(Pulpit Commenrtary). 여하튼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포도 나무에서 나오는 하찮은 소산물일망정 금하라는 것이다. 즉 나실인들에게는 포도 나무의 모든 소산, 곧 그것으로 대표되고 상징되는 세상적인 모든 쾌락으로부터 '절대 성결'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 헌신된 자들은 조그마한 유혹의 가능성마저 배제해야 한다.

성 경: [민6:5]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주); 삭도를...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 여기서 '삭도'(*, 타아르)란 '발가벗기다', '없애다'는 뜻의 히브리어 '아라'(*)에서 유래한 말로서 주로 면도용 칼을 의미한다. 한편 나실인이 왜 머리를 깎아서는 안되었으며, 반드시 길러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랑게(Lange)는 나실인이 머리털을 기른 것은 생명의 고상한 힘, 곧 하나님의 주권과 승리의 화환(花環)을 상징하는 머리털(고전 11:3-7)을 길름으로써, 자신을 주장하는 자가 세상 권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 당시의 관념으로 머리털은 피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상징했기 때문에,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행위는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복종과 경외를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Fairbaim, Baumrarten). 한편 길게 자란 머리를 '힘과 충만한 생명력의 상징'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Keil). 왜냐하면 살아 있는 존재만이 머리카락을 생성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실인의 머리를 기른 것은 '자신의 여호와에 의해 조성된 그분의 소유로서 자신의 온 정력을 다 바쳐 여호와를 섬기겠다'는 표식으로써, 머리털은 곧 여호와를 위하여 쓴 관(冠)이라 생각할 수 도 있다. 실례로 평생 나실인이었던 삼손 같은 경우, 그의 머리털은 카리스마적인 신적(神的) 능력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삿 16:17). 결국 나실인이 머리를 깎지 않은 것은 (1)자기 위에 유일한 경배 대상임을 나타낸 것이며 (2)또한 하나님만이 자기 생명과 힘의 유일한 근원임을 인식하여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그분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주); 그는 거룩한즉(*, 카도쉬 이헤에) - 직역하면 '성결하게 되었으니', '봉헌 되었으니'라 할 수 있다. 즉 서원한 기간 동안 그는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의 몸은 더 이상 그의 것도 아니었고, 또한 여타의 주권자도 있을 수 없었다. 오직 그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기에 힘써야 했다. 이러한 요구는 오늘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벧전 2:9)으로 부름받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실로 오늘날 모든 성도들은 영적 나실인인 것이다.

(주);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 이는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표이다. 한편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대머리와 머리를 완전히 밀어버리는 것은 수치스럽고도 혐오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으며(왕하 2:23). 죄로 오염된 이방 문화의 부산물로 받아 들여졌다(레 21:5). 반대로 머리를 전혀 깎지 않고 자연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나실인과 같은 특정인에게만 허용되지 않았던 것 같다(겔 44:20). 사실 히브리인들은 애굽과 같은 고대 다른 이방 족속들과는 달리 수염과 머리를 깎는 관습이 있었다(Keil).

성 경: [민6:6,7]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주);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 - 나실인은 그 정한 기간 중에는 비록 가장 친한 친지들(부모, 형제, 자매 등)이 죽었을지라도 그 시체와 접촉해서는 안 되었다. 만약 나실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곁에서 어떤 사람이 죽었다면, 그는 정결케 하는 날 곧 제 7일에 머리를 깎아버리고 제 8일에 제사장에게 예물을 드려 제사를 드리게 함으로써 시체로 인한 부정을 제해야 했다(9-12절). 왜냐하면 주검(시체)은 결국 죄악이 빚어낸 결과이므로(롬 6:23) 의식상 부정하게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실인이 시체를 멀리해야 하는 것은 의미상 죄를 멀리해야 하는 것의 상징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이 구절을 제사장 성별 규례에 대한 기록인 레 21장과 비교할 때, 나실인은 심지어 대제사장에게 요구되는 사항까지(레 21:1-12) 자신들의 의무 조항으로 받아들여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마저 금지시킨 이러한 요구는,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나 부모, 형제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지 결코 부모, 형제와의 정리(情理)를 완전히 끊어버리라는 뜻은 아니다(마 8:21,22; 10:35-38).

(주);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 - 이 말은 '하나님께 자신을 성별하여 온전히 봉헌한다는 외적이고 상징적인 표시로써 깎지 않은 긴 머리를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결국 나실인의 긴 '머리카락'은 그 머리에 관유로 기름부음 받아 성별된 제사장의 머리(레 21:12), 또는 대제사장의 머리에 씌어진 '관'(冠)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출 29:6; 슥 6:11). 즉 나실인의 긴 머리털은 하나님의 소유됨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인식표였다. 한편 '구별하다'란 뜻을 지닌 히브리어 '나자르'(*)에서 '화관'(花冠)이나 대제사장의 '관'(冠)을 뜻하는 단어 '네제르'(*)가 파생된 사실(출 29:6; 레 21:12)은 위의 견해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Pulpit Commentary). 한편 '머리'가 부정케 된 것은 그의 전인격이 부정케 된 것을 상징했다. 그러므로 시체로 오염된 자는 구별된 자로서의 표식이자 전인격의 상징인 머리털을 깨끗히 밀어냄으로써 부패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었다(9절).

성 경: [민6:8]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의무]

(주);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 즉 이 기간 동안 나실인의 몸은 더이상 자신의 유익이나 친지나 친구를 위해 사용할 수 없었다. 그 기간 동안 나실인의 몸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좇아 살아가야만 했다. 한편 유대 랍비들의 말에 의하면, 나실인으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최소한 그 구별 기간을 30일 이상 되게 해야 한다고 한다(Matthew Henry).

성 경: [민6:9]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정결 규례]

(주); 홀연히 그 곁에서 죽어서 - 여기서 '홀연히'(*, 베페타 피테옴)란 '눈 깜박할 사이', '뜻밖에'라는 뜻이다. 이는 뒤이어 나오는 '그 곁에서'라는 말과어우러져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그 해결 방안이 준비되었다. 그러나 만일 나실인이 그 서원 기간동안 고의로 그 금지 규례를 어겼을 경우에는 아무런 해결책이 없었다. 아마 이때에는 그것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모독한 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엄한 형벌이 내려졌으리라 추정된다.

(주); 그 곁에서(*, 알라우) - 이 말은 '그의 옆에서 일어나다(발생하다)'로 볼수 있다. 즉 자신이 자발적으로 시체를 접촉하게 된 것이 아니라 자기 곁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보살폈거나 그 시체를 만졌을 경우를 일컫는다. 이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행된 주검의 부정에 대해서는 고의로 범한 부정과는 구분하여 그 해결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9-12절). 이는 행동의 결과 이전에 동기를 먼저 보시며인간의 약함을 깊이 이해하시는(히 4:15) 하나님의 자애로우신 조처라 할 수 있다.

(주);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거든 - 여기서 '머리(털)'는 전인격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나실인의 머리털은 자신이 지금 하나님께 구별된 자라는 사실을 가장 뚜렷히 인식시켜 주는 '증표'였기 때문이다(Keil).

(주); 몸을 정결케 하는 날 - 이 날은 시체로 인해 부정하게 된 날로부터 '제 7일째'되는 때였다. 특별히 이 날을 '정결케 하는 날'로 정한 것은 시체를 만지는 자는 '7일 동안' 부정할 것이라는 율법조항 때문이다(19:11). 즉 주검(시체)을 만진 자는 7일 동안은 어쩔 수 없이 부정한 자로 지내야 했으며, 7일 이후에야 비로소 속죄를 위한 각종의 제사가 허락되었다. 한편 여기서 '7'이란 숫자는 '완전수'로서, 부정케 된 자가 자신의 허물을 완전히 인식하고 통회할 수 있는 충분하고도 완전한 기간을 암시한다. 사실 죄(허물)에 대한 깊은 자각이 없이는 아무도 정결례나 제사에 임할 수 없었다. 이는 우리가 예수를 믿고 새 생명을 얻어 풍성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에 대한깊은 자각과 회개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주); 머리를 밀 것이니 - 나실인이 만약 시체로 인해 부정케 되었다면, 그는 '구별'과 '헌신'의 가시적 증표인 긴 머리를 밀므로써 자신의 부정을 없이 해야 했다. 한편 여기서 '밀다'(*, 갈라흐)는 말은 '면도하다', '대머리가 되게 하다', '황폐케하다'는 의미로써, 결국 머리털을 완전히 밀어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서 머리를 민 것은 자신의 허물에 대한 슬픔과 통회의 외적 표시라 할 수 있다(사 22:12;렘 16:6; 겔 7:18). 그런데 모세 율법에서는 원래 이렇게 머리를 미는 것이 금지되었었다(레 19:27; 신 14:1).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그 죄악을 철저히 없이 한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특별 규례가 제정되었던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오늘 영적 나실인이 된 우리는 자신의 범죄에 대해 머리를 미는 대신 각자의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욜 2:13).

성 경: [민6:10]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정결 규례]

(주); 제 팔 일에 - 성경에서 '8'은 회복과 부활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여기서는 허물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함을 뜻한다(마 28:1). 즉 이 날은 나실인이 부정했던 흔적을 떨쳐버리고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에서 새롭게 교제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날인 동시에 새로운 헌신에의 결심을 다지는 날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날은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가 예수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나는 회복과 중생의 날을 예표하는 날이라 할 수 있다.

(주);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마리 - 비둘기는 노아시대(창 8:20)와 아브라함때부터 제물로 바쳐진 정결한 짐승이었다. 이 새들은 가난한 자들의 식용(食用)으로 사용되었으며, 경제적으로 빈곤한 자들의 제사 제물로 규정되었었다<레 14:22>. 여기서는 경제적인 측면의 가난보다 나실인이 자신의 허물로 인한 영적 빈곤함을 강조하기 위해 이 제물이 요구되었던 것 같다.

(주); 회막문에 와서 - 여기서 '회막문'은 성소 앞 곧 성막앞, 번제단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5:16>. 이처럼 부정을 입은 나실인이 회막문에 선 것은 부정하게 된 자신을 하나님께 보이며, 성결과 헌신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였다(레 14:30). 이처럼 모든 죄와 허물은 하나님 앞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성 경: [민6:11]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정결 규례]

(주); 속죄 제물로...번제물로 - '속죄제'는 자신이 저지른 허물에 대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의미에서<레 4:2-5:13>, '번제'는 또다시 하나님께 완전한 '헌신'을 다짐한다는 표시로 드려졌다<레 1:3-17>. 이처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자는 과거의 죄에 대한 철저한 청산과 더불어 현재와 미래의 삶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경건한 계획이 있어야 마땅하다.

(주); 그의 머리를 성결케 할 것이며 - 본절은 나실인이 9절에서 '머리를 민' 행위로 그의 허물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피흘림이 있는 제사'를 드림으로 비로소 속죄의 은총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처럼 "피흘림 없이는 사(赦)함이 없다"(히 9:22)는 규례는 구약 시대 속죄의 대원칙이었다<레 17:10-16 강해, 피제사의 원리>. 한편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 신약 성도들에게도 적용 된다. 즉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와 반성 정도로 그 죄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의 죄든지 예수의 보혈 공로를 힘입을 때에만 비로소 그 죄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엡 1:7).

성 경: [민6:12]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나실인의 정결 규례]

(주);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 원문에는 '새로 정하고'라는 말이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지나간 날은 무효니라'는 말과 어우러져 문맥상 위의 말이 첨가됨이 마땅하다.

(주); 일년 된 수양을...속건제로 - 속건제(trespass offering)는 주로 하나님과 이웃에게 해(害)를 끼쳤을 경우 드리는 의무제로서 <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여기서는 시체로 인한 부정에서 용서받고, 부정을 입기 전의 상태로 회복되기 위해 드리는 제사라 할 수 있다<레 14:12>.

(주); 무효니라(*, 이페루) - 이 말은 '떨어지다', '멸망하다'는 뜻으로 이때까지의 '구별'이 헌신 기간에 전혀 계산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는 한 순간의 실수가 온전하고 경건했던 지난 날을 무익하게 만든다는 냉엄한 신앙 윤리를 제시한다(겔 33:13). 따라서 이제 나실인은 자신의 헌신 서약과 헌신기간을 다시 정함으로써 처음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했다. 이것이 신앙인의 진취성이다.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돌진하는 기상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날마다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빌 3:13, 14).

성 경: [민6:13]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서원기간 만료 규례]

(주); 회막문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 '회막'은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로서 서원 기간을 채운 자가 회막문에 가는 것은 곧 그가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을 의미했다. 이처럼 하나님께 구별된 자의 처음(10절)과 나중은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므로 서원 기간을 채운 나실인이 회막문에 선 것은 곧 나실인으로서 자신의 삶의 시작과 과정과 결말이 하나님에 의해 진행되었음을 고백하는 신앙 행위라 할 수 있다(롬 11:36).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헌신코자 결심하는 자는 무엇보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 앞에서'(Coram Deo)라는 의식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회막문에서'라는 말은 '하나님 앞'이라는 의미외에 '이스라엘 온 회중 앞에서 공개적으로'라는 의미도 지닌다. 즉 나실인이 서원 기간을 채운 후 회막문에서 각종 의식을 행하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의무 기간이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알리기 위해서이다. 즉 이런 공개적 행사를 통해 지금까지 제한된 이웃과의 교제 관계를 청산하고, 서원 전의 본래 상태로 되돌아가 서로 접촉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렸던 것이다.

성 경: [민6:14,15]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서원기간 만료 규례]

(주); 예물을 드리되 - 여기서 '예물'(*, 코르반)이란 '가까이 가져오다', '준비하다', '제공하다'는 뜻의 '카라브'에서 유래한 말로써 곧 여호와께 나아가는 자가 드릴 '봉헌물', '희생 예물'을 뜻한다(레 1:2).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 나아오는 자에게 결코 '빈 손'으로 나오지 말 것을 명하신 바 있다(출 23:15). 이는 당신이 물질적으로 빈핍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라, 당신을 만나러 오는 자로 하여금 그 은혜를 감사케 함으로써 당신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려는 목적으로 요구하신 것이다. 사실 예물은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다(마 6:21). 한편 본문에서는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였다. (1) 번제물 - 나실인이 정한 기간을 채움으로써 서원에서 자유를 얻었지만, 여전히 하나님께 헌신의 삶을 살아갈 것을 고백하는 표의 예물이다<레 1:1-17>. (2) 속죄 제물 - 헌신 기간 동안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지은 죄와 자신의 부족한 삶 전체를 고백하며 속죄의 은총을 바라고 드리는 제사 제물이다<레 4:1-5:13>. 사실 나실인의 생활이란 절대 무흠이 요구되는 것이었으나, 그 서원을 마치는 날 이처럼 죄를 속하는 제사가 요구된 것은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 할 자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롬 3:10). (3) 화목제물 - 헌신 기간 동안 자신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계속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기 원하여 드리는 제사 예물이다<레 7:11-36>. (4) 소제물 - 이 제물은 화목 제물과 함께 드려졌는데, 서원 기간 동안 헌신과 봉사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예물이었다<레 2:1-16>. 그리고 이 소제물과 더불어 전제물이 드려졌다. 전제물이란 전제(奠祭)의 방식으로 드리는 예물로서 곧 포도주나 기름등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전제물은 단독으로 전혀 드려질 수 없었고, 보통번제, 화목제, 소제 예물 등과 더불어 드려졌다(레 23:13). 한편 위의 각종 예물과 제사에 대해서는 레위기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를 참조하라. 소제(meal offering)와 전제(drink offering)로 바쳐질 제물을 열거한 15절의 내용을 보다 쉽게 번역한 공동 번역에는 "또 고운 밀가루를 기름에 반죽하여 누룩 없이 과자 모양으로 만든 것과 기름을 발라 누룩이 없이 만든 속 빈 과자 한 바구니를 곡식 예물과 제주(祭酒)와 함께 가져가 바친다"로 되어 있다. 이 모두는 여호와께 대한 감사의 표로써 드리는 일종의 감사 제물이다(레 7:12).

성 경: [민6:16]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서원기간 만료 규례]

(주);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고 - 번제보다 속죄제가 순서상 먼저 드려졌다<11절>. 그 이유는 인간에게 있어서 헌신과 감사 이전에 가장 먼저 요구되어지는 것이 바로 죄를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 있는 인간과 결코 교제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기에 앞서 죄 문제를 해결함이 마땅하다.

성 경: [민6:17]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서원기간 만료 규례]

(주); 소제와 전제를 드릴 것이요 - 엄밀히 구분하면 여기서 '소제'는 제사의 한 종류이고, '전제'는 제사 드리는 한 방법이다. 즉 전제는 제물을 '부어서'드리는 방식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예물로서는 주로 기름이나 포도주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제사 종류와 제사 방법을 엄밀히 구분하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혼용하고 있다. 한편, 이 소제와 전제는 단독으로는 거의 드려지지 않았고, 대부분 번제 또는 화목제와 더불어 드려졌다.

성 경: [민6:18]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서원기간 만료 규례]

(주); 그 머리털을 밀고 - 서원한 기간이 종료된 나실인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5절)와 각종 헌신에 대한 의무가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표시로써 머리털을 잘랐다. 물론 그가 머리털을 잘랐다고 해서 이제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치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생활 전체를 드리는 나실인의 까다로운 규제에서 벗어나 평범한 생활인으로 돌아감을 가리키는 것이다.

(주); 화목 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 감사와 교제로 상징되는 화목제에 불에 그동안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 자신이 특별히 구별되었음을 표시하는 긴 머리를<7절> 태우는 것은 서원 기간 동안의 구별된 삶 전체와 그 삶을 가능케 했던 사실을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돌린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동시에 그동안의 삶이 온전히 하나님께 열납되었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후부터 하나님과 더 나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소원도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하나님의 사람의 삶 전체는 항상 '하나님께 영광'과 '하나님과 화목'이라는 대명제 아래 머문다(고전 10:31).

성 경: [민6:19]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서원기간 만료 규례]

(주); 삶은 수양의 어깨...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 - 나실인의 서원을 마무리 짓는 최종적인 제사로서 제사장은 화목제 예물(흠없는 수양 한 마리, 14절) 중 수양의 삶은 어깨 부위와 소제 예물(무교병 한 광주리와 기름 섞은 과자들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들, 15절) 중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레 2:4 주석 참조)를 취해 '요제'(搖祭, a wave offering)로 드려야 했다. 그리고 요제로 드린 이 예물들은 이미 화목제로 드린 '흔든 가슴과 든 넓적다리'(레 7:34 주석 참조)와 함께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졌다. 이처럼 나실인의 서원 종료 예물을 제사장이 취한 것은 그 나실인의 삶이 앞으로도 계속 제사장의 구별된 삶으로 이어져 그 속에서 하나님과 친교와 화목의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축복이었다(Keil & Delitzsch, Vol. 1-3, p. 40).

성 경: [민6:20]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서원기간 만료 규례]

(주); 여호와 앞에 요제로 - '요제'는 화목제 희생 제물의 가슴 및 곡식단과 첫이삭의 떡(본문에서는 무교병과 무교전병, 레 7:12)등을 앞.뒤로 흔들어 드리는 제사 방법이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그리고 본문에 언급된 '가슴과 넓적다리'는 이미 화목 제물 중 제사장의 것으로 구별된 것이다(레 7:30-34). 한편 요제로 드려질 제물(19절)은 먼저 그것을 드리는 나실인의 손 위에 올려지며, 다음으로 제사장이 제물을 든 나실인의 손을 받쳐들고 흔들므로써 제사가 진행된다. 이같은 행동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하고 상징한다. 즉 (1)나실인의 헌신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받으셨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2)제물을 앞으로 내밀었다가 다시 거두어 들이는 이 요제의 행동은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을 다시 제사장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다는 사실을 상징화한 행동이다. (3)그리고 나실인이 바친 풍성한 예물이 하나님의 대변자인 제사장들에게 돌려져 그들의 음식이 되게 한것은 나실인이 하나님과 거룩하고도 풍성한 교제를 나누게 되었음을 상징하는 행동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온전한 봉사를 마친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다. 이처럼 구약 시대에 나실인이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교제를 나누는 이러한 간접적인 헌상(獻上)과 교제는 이제 신약 시대에 영적 나실인 된 우리 성도들에게 이르러서는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직접적인 봉헌과 교제를 이룰 수 있게 되었는 바 이것은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되는 날 가장 완전한 모습으로 이뤄질 것이다(계 21:1-4).

(주); 흔든 가슴과 든 넓적다리 - 레 7:34 주석 참조.

(주); 그 후에는...마실 수 있느니라 - 나실인이 나실인으로서의 기간 동안에는 엄격히 금지된 포도주를 마시는 이 의식은 하나님께서 나실인의 서원 종료 제사를 열납하셨음과 그의 헌신 기간이 완전 종료되었음을 확증하는 표시이다. 한편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때 나실인이 마셨던 포도주는 희생 제물과 더불어 드려졌던 전제물(15절)의 일부였던 것으로 추측된다(Keil, Winterbotham).

성 경: [민6:21]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서원기간 만료 규례]

(주); 이 외에도 힘이 미치는대로 - 즉 나실인의 법(13-20절)에 지정된 것 외에 나실인이 마음의 감동을 받은 대로 하나님께 특별 예물을 드려도 좋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것은 의무제가 아닌 '자원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힘이 미치는 대로'란 곧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1) 인간의 형편과 처지를 깊이 이해하시는 하나님의 자애로우신 성품을 반영한 조처이더 (2) 감사하는 마음과 자원하는 심령에 의해 드려진 예물만이 참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출 36:3). 실로 하나님은 예물보다 그것을 드리는 인간의 마음을 더욱 감찰하신다(삼상 15:22). (3) 당신께 감사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억제시키거나 금지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교훈한다. 한편 이 조항으로 인해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자가 '나실인의 법'을 수행할 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동료들이 자원제의 제물을 대신 내어주는 관례가 생겨났다고 한다(Josephus, Antiquities, XIX, 6,1; 행 21:24).

(주); 그 서원한대로...따라 할 것이니라 - 이는 '자신이 자발적으로 약속한 것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서원'이 지니는 필수 이행성을 강조한 표현으로써, 비록 서원한 것이 서원자에게 해로울지라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이 서원의 대전제 조건이다(시 15:4), <30:1-8 강해, 서원과 맹세에 대하여>.

성 경: [민6:22]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이스라엘을 위한 축복]

(주);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릴 축도는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자 선지자인 모세를 통해 제사장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그 축도는 오직 이스라엘의 제사장인 아론과 그 아들들만이 할 수 있었다. 즉 모세와 아론은 각각 그 한계를 지녔던 것이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이르러 구약 시대의 모세와 아론의 역할을 홀로 온전히 감당할 거룩한 자가 나타났으니, 그는 곧 우리의 영원한 왕이자 선지지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영적 이스라엘 백성된 우리 성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 선언을 받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성 경: [민6:23]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이스라엘을 위한 축복]

(주);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 하나님은 당신의 축복을 전달할 자로 당신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인 제사장을 선택하시고 부르셨다. 그러므로 아래 언급된(24-26절) 축복을 선언할 권한은 오직 아론과 그 아들들, 곧 제사장들에게만 있었다. 그러나 그 축복은 제사장 스스로의 권위에 기초하지 않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권위에 의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제사장은 매 축복의 내용을 선언할 때마다 '여호와는'(*, 예호와)이란 말을 전제한 후 각종 축언을 베풀어야 했다. 따라서 제사장들의 축복권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임하신 그 특별한 권위에 전적 의존하고, 나아가 그 권위로 말미암아 그 축복의 내용이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후일 유대 랍비들은 다음과 같은 경고를 그 백성들에게 들려 주고 있다고 한다. 즉 '당신은 행여 이 초라한 제사장이 나에게 무슨 축복을 베풀 수 있겠는가?라는 말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에게 복을 주시는 자는 그 제사장이 아니라, 그 제사장을 통해 말씀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Matthew Henry).

(주); 축복하여 - '축복하다'(*, 바라크)는 말은 '하나님을 송축하다', '무릎을 꿇다', '은혜로 복주다', '풍성하게 하다'란 의미 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 말은 주로 신적인 복의 선포와 그 선포가 지니는 긍정적이고 풍성한 영향력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물론 신(神)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채 개인이나 공동체에 '축복'이 선포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인간을 복(福)되게 하는 근원이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점에서, 그 모두는 하나님의 신적 권위 아래 놓인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말의 용례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한편 이 말의 용례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즉 (1)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善)을 베푸심으로써 그들에게 제공되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와 풍성함을 가리킬 때(신 7:12-16)와 (2)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한 자가 타인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고자 할 때 기원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창 14:19). 본문에서는 위의 두 의미를 모두 포함하여 사용되고 있다<신 28장 강해, 성경에 나타난 복의 의미>

성 경: [민6:24]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이스라엘을 위한 축복]

(주); 여호와는 - 본 축도문(24-26절)에 이 말이 세 번 언급된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는 주체자는 바로 '여호와'라는 사실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축도문의 시적(詩的) 운율상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구속사적으로 볼 때 본 축도문에 '여호와'란 신 명칭이 세 번 언급된 것은 (비록 그것이 당시대의 모세와 아론 및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는 가리워져 있었을지라도) 분명 삼위(三位)로 존재하시되 일체(一體)로 역사하시는(요일 5:8) 삼위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음에 틀림없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그런 견지에서 혹자들은 본 축도문에 나오는 '여호와'(*, 예호와)란 신 명칭의 악센트가 각기 달랐다고 한다(Mattthew Henry's Commentary).

(주); 복을 주시고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건국자이시자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계약자로서 그들에게 '복'(*, 베라카), 곧 현세적이고 내세적인 모든 복을 주시기 원하셨다<신 28장 강해, 성경에 나타난 복의 의미>. 그러므로 이 '복'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과 지혜로 볼 수 있을 것이며(시 16편). 또한 물질적인 번영과 많은 자녀 및 건강과 장수 등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창 24:1; 시 127:3). 이처럼 하나님은 선택하시고 부르신 당신의 백성의 필요를 따라 아낌없이 풍성한 영육간의 복을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진정 복의 근원자이시다.

(주); 지키시기를 원하며 - 여기서 '지키다'(*, 솨마르)는 말은 원래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란 뜻이다. 따라서 이 의미가 발전하여 '세심하고도 철저한 보호와 보존', '주의 깊에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가짐'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의 보호(시 37:28)뿐 아니라 가난과 재앙과 각종 질병 및 전쟁으로부터의 보존(시 33:19; 76:3)까지를 의미한다. 사실 향후 죽음의 땅 광야를 행진해야 하며 사나운 이방 세력과 맞부딪쳐야 하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실제적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 나라를 목적하고 광야 같은 세상을 행진해 가야 하는 우리에게도 간절히 요청되는 바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 없이는 이 세상에서 한시라도 쓰러지지 않을 수 없는 연약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성 경: [민6:25]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이스라엘을 위한 축복]

(주);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 여기서 여호와의 '얼굴'이란 표현은 그분의 '성품'과 전인격을 상징하는 신인동형동성론(Anthropormophism)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가리우거나 감춘다는 것은 인간 편에서는 절망과 죽음을 의미한다(레 17:10; 신 31:17,18; 욥 13:24; 욜 2:6). 반면에 그분의 '얼굴'이 한 개인 또는 어떤 공동체를 향하여 돌려진다는 것은 바로 생명과 구원과 희열이 그위에 찬란히 비췬다는 것을 의미한다(Keil, Baumgarten, Pulpit Commentary; 시 27:1; 44:3; 잠 16:15). 그러므로 하나님의 얼굴 방향은 곧 인간 생존의 열쇠라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간직한 채 지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 백성들에게 당신의 그 사랑과 은혜와 보호와 평강의 얼굴을 항상 돌리시겠다고 축복하고 계시는 것이다. 한편 본문의 '비취다'(*, 오르)는 '영광스러운'(glorious)이란 뜻을 포함하고 있는 말로써, 곧 당신의 영광스러운 광채가 연약하고 보잘것 없는 인간에게로 향하여 짐을 의미한다. 실로 캄캄한 곳에서는 미미한 촛불 하나가 매우 값진 역할을 감당하는데, 하물며 의와 영광의 태양이신 하나님께서 어둡고 지친 우리 영혼에 찬란한 빛을 비추시는데 어찌 벅찬 감격과 생의 희열이 솟아나지 않겠는가?

(주);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그에게 당신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이다. 여기서 '은혜'(*, 하난)란 본래 '구부리다', '아랫사람에게 몸을 굽히다'는 의미였으나 이것이 발전하여 '은혜를 베풀다', '긍휼히 여기다'는 의미가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조건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과 긍휼과 자비라 할 수 있다. 그런고로 오늘날 우리는 바로 이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왔고, 또한 살아가고 있으며 그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엡 2:4,5).

성 경: [민6:26]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이스라엘을 위한 축복]

(주);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 여기서 '향하여 든다'(*, 나사)는 말은 '받아 들이다', '열망하다', '공급하다'는 뜻을 지닌 말로써 곧 '열정적으로 바라보다', '계속해서 주시하다'는 의미이다. 결국 이 말은 하나님께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베푸심'을 가리킨다. 이것은 25절의 '비취사'란 말보다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묘사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귀중한 대상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주의깊게 계속 주시함을 뜻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 된 자는 하나님의 그러한 돌보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그 어떤 위협과 도전도 능히 극복할 수 있으며 아울러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롬 8:31-39).

(주);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 여기서 '평강'(*, 솰롬)은 '안전', '행복', '건강', '번창', '평안', '우정' 등의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전쟁(불화)이 없는 상태', 곧 적막한 평화를 의미하지 않고, 기쁨과 생(生)의 환희가 샘 솟듯 솟아 오르는 역동적인 평화를 가리킨다(사 55:12).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평강'은 모든 기쁨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으로서 곧 하나님의 축복의 최고 절정을 이루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평화를 선포한 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평화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죄와 불의를 멸하시고, 그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억제할 수 없는 참 평강을 맛보게 하셨다(사 52:7; 53:5; 행 10:36; 골 1:20).

성 경: [민6:27]

주제1: [나실인의 서원]

주제2: [이스라엘을 위한 축복]

(주); 내 이름으로 -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을 대변하는 것으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무엇을 명하는 것은 곧 자신의 전 의지와 인격을 내걸고 명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내 이름'이란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해 주셨을 뿐 아니라(출 3:14). 축복 선언(24-26절) 중에도 거듭 언급하셨던 '여호와'(*)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렇게 절대 거룩한 당신의 이름을 전제하여 제사장들로 하여금 축복을 선언하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전 인격과 명예를 걸고 그 축복 내용을 그 백성에게 반드시 이루실 것을 표명하셨다. 또한 이것은 오직 당신의 이름에 의해서 그 축복이 선포될 때만이 그 속에 담겨진 내용이 유효하게 작용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고로 진정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이름이 빠진 축복은 공허한 주문(呪文)에 불과하다.

(주); 내가...복을 주리라 - 이는 여호와께서 유일한 복의 주체자가 되심을 분명히 선언하는 구절이다. 즉 비록 제사장에 의해 축복이 선포되지만, 진정한 선포자요 수여자(授與者)는 바로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이 축복은 가장 완전하며 또한 모든 이들에게 진정으로 유익이 되는 것이다.

성 경: [민7:1]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족장들이 바친 성막 운반 기구]

(주); 장막 세우기를 필하고...구별한 날에 - 장막은 출애굽 제 2년 1월 1일에 완성되었다(출40:17). 그러므로 카일(Keil)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석가들에 의하면 바로 그 날 이후 기름을 발라 구별하는 성막 봉헌식이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본장은 그러한 기사가 언급된 레 8:10 부분에 바로 연결되어야 하나, 시내산 율법 내용이 산만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간적으로는 모순이 되는 인구 조사(출애굽 제 2년 2월 1일 - 민 1:1)를 기록한 부분 뒤에 본성막 도유(途油) 사건과 족장들에 예물 봉헌식 사건을 취급하였다고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T. the Pentateuch, Vol. I-iii. pp. 42-43). 그러나 출 40장의 성막 완공과 레 8:10 사건을 비교하여 보면 성막을 세운 바로 그날부터 성막에 기름을 발라 구별한 것이 아니라, 성막 완공 후 얼마간의 시간이 경과한 어느 날 그 일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Lange). 이런 점에서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성막 봉헌식 날을 성막이 완공되고 백성의 진영이 모두 갖추어진 날, 곧 출애굽 제 2년 2월 8일 경으로 추측한다. 이 견해는 민 10:11의 시내산 출발 날짜(출애굽 제 2년 2월 20일)에서 족장들이 예물 드린 기일(12일)을 역산(逆算)한 시간이다. 사실 성막에 기름을 발라 구별하는 일은 성막봉현의 의미로서 성막 인준의 최종 단계일 뿐이지 반드시 성막이 완공된 그날 실행되여야 했던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시내산 출발 직전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공식적인 제사 행위가 본장에서 처럼 장엄하게 실시된 흔적이 없다. 그리고 본장에 언급된 족장들의 명단이 출애굽 제 2년 2월 1일 실시된 인구 조사와,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 직접 임명하신 그 족장 명단(민 1:1-15)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 아울러 족장들이 바친 예물들이 광야 행군시에 긴요하게 사용되었다는 점<3절>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본장에 언급된 바 족장들의 예물 봉헌식은 시내산 출발 직전에 있었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이 견해만을 고집할 수 없는 것은, 성경 기록은 그 특성상 연대기적 사건 순서(chronological Sequence of events)를 초월하여 그 내용에 따라 구성되는 수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총체적으로 보아, 성막 건립이 필요한 때(출애굽 제 2년 1월 1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을 떠난 때(출애굽 제 2년 2월 20일) 사이의 약 50일 동안 제사장 위임 사건, 나답과 아비후 사건, 유월절 준수 사건 등이 일어났다고 보면 틀림없다. 물론 이 사이에 레 1:1로부터 민 10:10에 나타난 각종 규례들이 모세에게 주어졌으리라는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주);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 사람이나 사물들에게 기름(관유)을 바르는 것은 종교 의식상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즉 (1) 그 대상을 세속적인 것과 구별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삼는 다는 의미와 (2) 그 대상에게 신적 권위를 부여한다는 의미이다(출 40:34,35). 그러므로 한번 기름 발리워진 대상은 영원히 세장적인 일에 사용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해야 했다. 그러므로 본성적으로 악한 자연인과 아무런 종교적 가치가 없는 사물을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련시켜 그분의 거룩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 '기름 바름'이 필수적인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제사와 관련된 각종 사물들, 즉 제단(10절; 출29:36)과 제단에 딸린 도구들(출 40:10), 성막(레 8:10)과 성막에 딸린 기구들 및 증거궤(출 30:26)에는 반드시 기름을 발라야 했다. 한편 이러한 목적에 사용되는 이 기름, 곧 관유(灌油, 출 30:22-33)는 그 의미하는 바에 따라 성령과 성령의 사역을 비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렘 31:14). 이는 구약 시대 각종 모형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아 공식적으로 성별되어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헌신하신 사실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마 3:16; 행 10:38). 실로 성경에 제시된 각종 성물(聖物)들이 그 자체로서 신적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기름 바름'이라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준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오날날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사역과 예배와 헌신 역시 오직 성령의 감동, 감화를 통해서만 그 참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행 1:8; 고전 2:4-13; 요일 2:27).

성 경: [민7:2]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족장들이 바친 성막 운반 기구]

(주); 이스라엘 족장들 - 이스라엘 각 지파의 실질적인 지도자들로서, 인구 조사 때에 감독의 직임을 받은 자들이다<1:4-15>.

(주); 두령 - 1:4 주석 참조.

(주); 예물을 드렸으니 - 각 족장들은 자신과 자신의 지파를 대표해서 하나님께 봉헌예물을 드렸다. 하나님은 당신께 나아오는 자가 '빈 손'으로 오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 이유는 결코 하나님께서 재물을 탐하시기 때문이아니라, 구약 시대의 특성상 예물 속에 그 마음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속사적으로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은 장차 영원한 예물이 되실 그리스도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자가 그 경제적이 형편에 따라 자원하는 심정으로 당신께 예물을 정성껏 바칠 때 하나님은 그의 그러한 심령을 기쁘게 열납하시는 것이다<신 16:16,17>. 한편 본장에 나타난 바 족장들의 솔선 수범하는 헌신을 통해 우리는 지도자의 모범이 가져다 주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교회 지도자는 섬김받고 주어진 지위를 향유하기 위해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지위와 능력을 많은 성도들의 유익과, 특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사용하도록 선택된 것이다(요 13:12-17).

성 경: [민7:3]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족장들이 바친 성막 운반 기구]

(주); 덮개 있는 수레 여섯과 소 열 둘 - 여기서 '덮개 있는 수레'(*, 에겔로트차브)는 70인역(LXX)에서는 '훌륭한 마차'(*, 하막사스 람페니카스)로, 벌게이트(Vulgate)역에서는 '지붕이 있는 마차'(plaustra tecta)로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기독교 사가(史家) 유세비우스(Eusebius, A.D.260-340)는 '두 개의 바퀴가 달린 수레'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원문을 통해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은 '둥근 덮개'(*, 차브)가 있는 '소가 끄는 수레'(*, 에겔로트)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그 당시에 사용하던 '들 것'과 같은 바퀴 없는 수레인지 아니면 바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광야라는 특수 지형과 운반해야 할 기구가 상당히 무거운 것이었다는 점에서 '바퀴가 달린 수레'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한편 이 수레는 소 두마리가 끄는 것이었다(예물 중 수레와 소의 비율이 2:1인 점에 유의하라).

(주); 족장 둘에 수레가 하나씩이요 - 족장들은 각 지파와 자신의 형편에 따라 많이 또는 적게 헌상할 수도 있었겠으나, 여기서는 모두 동일한 양의 예물을 바쳤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수 있다. (1) 봉헌 예물이 헌상되기 전 하나님께서는 미리 각자의 마음을 감동 감화시키사 상호 아름답게 협력하도록 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모든 인간 헌신의 근본적인 출발은 하나님께로부터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물을 무리하게 강요하거나 수탈하시는 분이 아니라, 정성된 예물을 받으시는 분이시며, 그를 통해 봉헌자의 영육을 더욱 풍성케 하시는 분이심을 시사한다(잠11:25; 빌 4:17). (2) 하나님은 각 족장들에게 동일한 관심을 보이시며 동일한 헌신을 요구하셨다. 이는 마치 오늘날, 모든 주의 일을 맡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공평하게 미치는 동시에 또한 각각에게 최선의 충성이 요구되는 것과 같다. (3) 합심하여 드린 예물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을 위해 크게 사용된다(고후 8:1-6).

(주); 장막 앞에 드린지라 - 여호와의 상징적 임재 처소인 '장막' 앞, 곧 번제단 있는 곳에 예물을 가져왔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 표현은 족장들이 그 헌물을 '여호와께 드린지라'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다.

성 경: [민7:5]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레위인에게의 분배]

(주); 레위인에게 주어 - 하나님께 헌상된 예물은 주로 제사장들의 생계용으로 할당되었다(레 2:3; 7:6,8,14,15,28-34). 그런데 여기서는 특별히 제사장의 직무를 도와 성막 일을 담당할 레위인들에게 배당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은 하나님의 자의(自意)에 의해서 사용되며,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에게 제공되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여진다는 사실을 기르치고 있다(고전9:11-14).

(주); 각기 직임대로 - 즉 '레위인들 곧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이 맡은 직무대로'라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이 맡은 각각의 직무의 경중(輕重)을 깊이 이해하시고 그들에게 합당한 선물을 제공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일을 맡기실 뿐아니라,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시는 분이시다(왕상 3:6-13). 그러므로하나님은 결코 비이성적이거나 무모한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인간이 처한 환경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시며(히 4:15), 모든 일에 질서와 평화를 존중히 여기시는 분으로서 초합리적일지언정 결코 비합리적이시지 않다.

(주); 회막 봉사에 쓰게 - 이처럼 하나님은 회막의 완공되자 그 회막의 이동을 위한 대책까지 마련하신 지혜로우신 분이시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의 만남의 처소를 개설하셨고 그곳의 운용까지도 주도하셨다. 이는 결국 신앙 생활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니 하나님이심을 시사한다. 아울러 하나님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일에만 사용되어야한다는 신앙 원칙을 가르치고 있다. 만약 하나님의 소유를 인간의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으로써 큰 죄악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건강, 시간, 재산, 능력 등)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소유로서(롬 11:36), 우리 자신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되며, 항상 청지기 의식(stewardship)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벧전 4:10,11).

성 경: [민7:7]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레위인들에게의 분배]

(주); 게르손 자손들 - 이들은 성막의 앙장들과 덮개 등 주로 덮고 치는 장(帳) 부분을 맡았다(4:25,26). 따라서 그들은 주로 성막의 뼈대가 되는 기둥과 널판 및 받침 등의 무거운 부분을 맡았던 므라리 자손들에 비해 수레와 소들이 덜 필요했다(4:21-33). 따라서 그들은 여섯 대의 수레 중 2대, 열 두 마리의 소 중 4마리를 할당받았다. 이것은 므라리 자손의 절반 수준이었다.

성 경: [민7:8]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레위인들에게의 분배]

(주); 므라리 자손 - 이들은 성막 부품 중 성막의 골격을 이루는 널판, 기둥, 띠, 받침, 말뚝 등을 운반하는 직임을 맡았다(4:31,32). 이것들은 매우 무거운 부품들이었기 때문에 가장 많은 운반 도구가 필요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족장들이 바친 예물(수레 6대. 소 12마리) 중 2/3에 해당되는 수레 4대와 소 8마리가 할당되었다.

(주); 이다말로 감독케 하였으나 - 4:28 주석 참조.

성 경: [민7:9]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레위인에게의 분배]

(주);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 고핫 자손들은 성소에서 가장 중요한 기물, 곧 지성물을 맡았다(4:5-15). 그래서 그들은 성막 이동시 그 성물(聖物)을 '어깨로 메어' 운반해야 했다<4:18-20>. 한편, 팔레스틴 주변국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던 이스라엘 왕정 초기에 다윗은 위의 지성물 운반법을 무시한 채 법궤를 옮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산 적이 있다(심하 6:1-11). 여하튼 지성물을 책임졌던 고핫 자손에게는 '어깨' 외에 다른 수송 수단이 필요치 않았으므로 족장들이 바친 예물은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선물이 주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은 가장 명예롭고 거룩한 일을 맡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바로 그 직임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독특하고도 풍족한 은혜를 골고루 채워주신다(고후 12:9).

성 경: [민7:10]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레위인에게의 분배]

(주); 단의 봉헌(奉獻) - 제단을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여 바칠 때에 공식적으로 드리는 최초의 제전(祭典)을 가리킨다. 이 제전은 거룩한 기름, 곧 관유<출 30:22-33>와 희생의 피를 바름으로써 절정에 이른다(레 8:10,15). 그와 더불어 백성들의 각종 자발적인 예물들이 단 앞에 바쳐짐으로써, 그 제전은 온 백성이 경하(慶賀)하는 기쁨의 의식(儀式)이 되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봉헌'(*, 하누카)이란 말 속에는 새 건축물을 '헌납하다'는 의미 외에 '신적(神的) 권위를 부여하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말의 원어 '하누카'는 후일 수전절(修殿節)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레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 한편 애굽과 같은 이방 종교 문화에서는 이러한 의식이 사악한 세력을 축출하는 제식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러나 성경의 봉헌은 이러한 축사적(逐邪的)인 의미는 전혀 없으며 오직 '거룩한 헌납', 곧 하나님께 그 소유권을 공식 이전하는 거룩한 의식인 것이다. 한편 가나안 정착 이후 성전 완공 때(왕상 8:63; 대하 7:5)와 단의 축성(대하 7:9), 그리고 예루살렘 성벽 완성시(느 12:27)에 이 '봉헌'예식이 치뤄졌으며, 그때마다 전국가적인 축하 행사와 성대한 예식이 치뤄졌다. 여기서 발견하듯이 '봉헌'이란 단순히 종교적인 건축물의 헌납과 구별만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까지 이르는 포괄적인 의식이었다. 그러므로 이는 자신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는 신앙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실로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며 그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참 봉헌의 정신이라 할 것이다(롬 11:36).

(주); 예물을 가져다가...단 앞에 드리니라 - 각 지파를 대표하는 12족장들은 단을 구별하는 날 일제히 자신들의 예물을 번제단 앞으로 가져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각각의 에물을 실제적으로 드린 날은 11절 이후로 부터 83절까지 나타나는 바처럼 12일 동안 각자에게 할애된 날이었다<11절>.

성 경: [민7:11]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레위인에게의 분배]

(주); 여호와께서...이르시기를...하루 한 사람씩 - 12일 동안의 예물 헌납에 관한 내용을 지시하신 분은 하나님이이셨다. 즉 하나님은 한꺼번에 혼잡스럽게 드려지는 예물을 원치 않으셨으며, 질서 속에서 경건하고도 엄숙하게 진행되는 예식을 원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1) 하나님의 질서를 사랑하시는 분임과(고전 14:33) (2) 각각의 헌신을 동일하게 인정하시는 공평한 분이심을 발견할 수 있다.

성 경: [민7:12]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유나 족장 나손의 예물]

(주); 제 일 일에 - 하나님께서 단의 봉헌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신 첫 날을 가리킨다. 한편 제사의 순서는 성막을 중심으로 동쪽에 배진한 유다 지파로부터 시계방향으로, 곧 행군 대형으로 실시되었다(2:3-31). 이것을 보더라도 이 봉헌 예식은 인구 조사 이후에 이뤄진 것임을 알수 있다<1절>.

(주); 유다 지파 -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었으나 야곱의 첫째 아들 르우벤의 잘못(창 35:22; 49:3,4)으로 인해 르우벤 대신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장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의 후손들도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에 서서 장자 지파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1:20-46). 한편 여기서 제사드리는 순서와 행군 순서가 동일한 것은(2:1-34), 신정국(神政國) 이스라엘의 면모를 잘 드러내 주는 것으로서, 혈통적인 측변보다 영적인 측면이 강조된 것임을 보여 준다. 특히 유다 지파의 부각은 이 지파를 통해 오실 예수 그리스도(메시야)의 지위와 사역이 어떠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인도자시며, 왕이실 뿐 아니라, 부활의 첫 열매로서(고전 15:23), 우리의 유일한 대표자가 되신다<롬 5장 강해, 대표 원리>.

성 경: [민7:13]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유다 족장 나손의 예물]

(주); 그 예물 - 즉 '단의 봉헌'을 위해드린 예물(10절)을 가리킨다.

(주); 성소의 세겔 - 여기서 '세겔'은 당시 무게로 측정되던 화폐 단위였다. 이것은 크게 성소용 '성소의 세겔'(출 30:13; 레 27:3)과 궁중용 왕의 세겔은 일반 세겔의 두배가 된다. 그리고 1세겔은 대략 11.4g의 무게에 해당된다. 자세한 내용은 3:47 주석을 참조하라.

(주); 일백 삼십 세겔 중 은반 - 여기서 '은반'(*, 카아레트 케세프)이란 은으로 만든 사발, 또는 큰 접시를 가리킨다. 이것은 진설병을 담는 '대접'(*, 케아라)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출 37:16). 그리고 그 은반의 무게는 130세겔인데, 1세겔(shekel)을 11.4g으로 볼 때 약 1.5kg 정도의 무게를 지닌 것이다.

(주); 은바리 - 여기서 '바리'(*, 미즈라크)는 일종의 대야 또는 종지(basin)로서 재나 포도주를 담는 성소의 기물 증 하나였던 것 같다(출 27:3).

(주); 소제물 - 이 예물은 잘 빻은 곡식 가루를 기름, 유향과 함께 드리는 예물로서 곧 봉사와 충성을 상징하는 예물이다<레 2:1-16>.

(주); 기름 섞은 고운 가루 - 이 예물이 지니는 상징성은 성령에 의한 봉사, 곧 성령 안에서 그분의 인도를 통한 봉사를 상징한다<레 2:1>. 성경적 의미상 기름(Oil)은 대체적으로 성령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성 경: [민7:14]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유다 족장 나손의 예물]

(주); 금 숟가락...향을 채웠고 - 여기서 '숟가락'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프'(*)는 원래 오목한 '손'이란 뜻으로서 숟가락 외에 '손잡이 달린 오목한 그릇'을 뜻하기도 한다. 본절에서는 이 안에 '향'을 채웠다는 점에서 '숟가락'이란 의미보다 '오목한 그릇'으로 봄이 옳을 것이다(출 25:29). 한편 '향'이란 분향단에 쓰일 거룩한 향으로서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에 유향을 섞어서 제조하였으며(출 30:34), 후대에 와서는 더욱 복잡한 제조 방법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즉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약 13종의 재료를 배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지성소 휘장 앞의 분향단에서 태워져 그 냄새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곧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한다<레 2:1>. 따라서 이스라엘 12지파 족장들이 소제물에 향을 놓아드린 것은 그들의 봉사가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더불어 드려졌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성 경: [민7:15]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유다 족장 나손의 예물]

(주); 번제물 - 번제(燔祭)는 제물을 단에서 전부 태워 그 향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제사를 가리킨다<레 1;3 주석 참조>. 드려지는 예물은 드리는 자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수송아지, 수양, 수염소,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중 선택하여 드려졌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수송아지, 수양, 1년된 어린 수양'이 각각 한 마리씩 제물로 바쳐졌다. 이는 단순히 드리는 자의 경제력이 넉넉했다는 사실보다는 드리는 자가 각 지파를 대표하는 자였기에, 그가 각 지파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여러 종류의 번제물을 드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편 그리고 이 제사는 하나님께 대한 자발적인 헌신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먼저 자신을 백성의 대속 제물로 아낌없이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을 예표하며(히 10:5-7), 아울러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자신을 드리기를 힘써야 하는 성도들의 헌신적인 자세를 예표한다(롬 12:1,2) <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성 경: [민7:16]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유다 족장 나손의 예물]

(주); 속죄 제물 - 속죄제는인간이 여호와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죄를 사함받고자 드리는 제사이다<레 4:1-12 강해, 속죄제에 대하여>. 따라서 속죄 제물이란 범죄한 인간이 죄를 속함 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 제물을 가리킨다. 그러나 고의성이 다분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범죄를 지은 자에게는 이 제사 제물이 전혀 소용없었다(15:30,31;히 10:26,27). 그런데 속죄 제사는 공식적인 회집이 있는 날이면 직접적인 죄악의 유무와는 상관 없이 의무적으로 드려졌는데, 이것은 인간이 생래적(生來的)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위한 조처인 동시에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던 중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저질러진 죄악을 제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실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 의식'을 지니는 것만큼 진솔하고 아름다운 자세는 없을 것이다(요일 1:8,9)<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한편 본절에 제시된 '수염소'는 속죄제에 요구되던 제물 중 특별히 족장이 범죄했을 때 드리는 제물(레 4:22-26)이다. 끝으로 이러한 속죄 제물은 구속사상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후 5:21; 갈 3:13; 히 13:11-13).

성 경: [민7:17]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유다 족장 나손의 예물]

(주); 화목제 - 화목제는 각종 제사 중 가장 자유롭고 화목한 분위기에서 드려지는 것으로(레 3:1,6), 하나님과 드리는 자의 친교와 화목을 주목적으로 하는 제사이다. 그리고 화목 제물에는 감사 제물과 낙헌 제물, 서원 제물등 세 종류가 있는데 여기서는 감사를 위해 바쳐졌다. 특별히 본절에 언급된 화목 제물의 양은 규정된 화목제의 제물 양보다 월등히 많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및 그들을 대표한 각 족장들과 얼마나 긴밀한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고 계신지 잘 보여 주고 있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성 경: [민7:18-83]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각 족장의 예물]

이곳에 언급된 내용은 각 족장의 지파 및 신분을 소개하는 것과 그 족장들이 드린 날짜, 그리고 19절에 '그 예물'(*, 카르바누)이란 말 대신에 '그 드린 예물(*, 하케리브 에트 카르바누)이란 말을 제외하고는 12-17절에 언급된 바 내용과 모두 동일한 순서에 따라 동일하게 중복 묘사되고 있다.(그러므로 자세한 주석 내용은 그 부분을 참조하라) 이처럼 각 족장들이 제물을 드릴 때마다 똑같은 내용이 계속 복사판처럼 언급된 것은 1) 바쳐진 각각의 예물이 소중한 것이며 2) 그 예물을 바친 인격 모두가 고결하고 3) 그 각각의 제사가 하나님 앞에 똑같이 의미있는 것임을 시사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바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의 언약 공동체로 보시되 또한 그 개개인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히 여기신다는 사실이다.

성 경: [민7:48]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에브라임 족장 엘리사마의 예물]

(주); 제 칠 일 - 12명의 족장 중 일곱번째로 드려야하는 족장이 그 예물을 드린 날을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는 이 날을 반드시 안식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12족장들이 예물을 드렸던 12일 동안 한 번 또는 두 번의 안식일이 끼어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안식일에 예물 드리는 일을 멈추었다는 기사(記事)는 언급되지 않았다. 즉 예물 드리는 일은 안식일에 구애받지 않았다. 즉 예물 드리는 일은 안식일에 구애받지않고 12일 동안 계속 진행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진리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스러운 일은 결코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 후일 이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요 5:9,10). 그분은 의문화(儀文化)된 형식과 전통의 굴레(롬 2:29; 7:6; 고후 3:6)에서 벗어나 과연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 되는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시고 가르치셨으며 또한 행동하셨다(마 12:1-8). (2)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일종의 신성한 의무 조항이다. 이일은 인간의 환경과 의지를 초월하여 어떤 경우에라도 실행되어야 할 인간의 기본 도리이다(고전 10:31). (3)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질서와 평화를 지키는 가운데 진행되어야 한다(고전 14:40). (4)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은 상호 모순되는 것이 없다. 비록 인간의 생각으로는 상충되는 듯한 부분이 보인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대전제 앞에 모든 율법은 완벽한 조화와 상호 보완 기능을 갖는다.

성 경: [민7:84-88]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각 족장의 예물]

본문은 이스라엘 12족장들이 정성껏 드렸던 예물의 총합계가 기록된 부분이다. 이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

예물

}}

{{

번제물

}}

{{

속죄제물

}}

{{

화목제물

}}

{{

은반:12개

(1,560세겔)

은바리:12개

(840세겔)

금숟가락:12개

(120세겔)

}}

{{

수송아지:12마리

수양 : 12마리

1년된 어린 수양 :12마리

각종 소제물

}}

{{

수염소 :12마리

}}

{{

수소:24마리

수양:60마리

수염소:60마리

1년된 어린 수양:

60마리

}}

{{

}}

성 경: [민7:89]

주제1: [성막 봉헌을 위한 예물]

주제2: [속죄소에서의 여호와의 음성]

(주);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인간과의 만남을 위해 '회막'<1:1>을 개설하셨고, 그곳에서 그들과 만날 것을 약속하셨다(출 25:21). 그러므로 '회막'(*, 오헬 모에드) 곧 만남의 장막(tent of meeting)은 상호 친밀한 교제와 전인격적인 대화를 전제로 한 것으로서, 영광의 하나님께서 죄인된 초라한 인간을 맞이하시는 하나님의 자애로운 속성이 가장 잘 나타난 가견적인 상징물이 것인다. 이것은 인간,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 '여호와께 말씀'하려 했다는 사실에서도 이 만남의 장막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주); 여호와께(*, 이토) - 직역하면 '그에게'이다. 그러므로 혹자는 본절에 3인칭 대명사가 갑자기 사용된 점이 어색하다고 보면서 본절이 원본에는 포함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바로 얼마전 12족장들에게 봉헌 예물을 명하신 여호와(11절)를 '그'라고 호칭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주);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 - 여기서 '속죄소'란 증거궤를 덮고 있는 2.5곱하기 1.5규빗(1규빗=45.6cm)의 뚜껑(정금판)을 의미한다<출 25:17 주석>. 이 뚜껑 좌우에는 금으로 만든 그룹 둘이 날개를 펴고 마주 대하여 속죄소를 덮고 있다<출 25:17-22>. 바로 이 증거궤의 뚜껑에 해당하는 견고한 정금 판(板)을 히브리어로는 '카포레트'(*)라고 하는데, 영어 번역본에는 보통 '시은좌'(propitiatory) 또는 '자비의 처소'(the mercy seat)로 번역되었다. 후일 히브리서 기자도 이를 가리켜 '은혜의 보좌'라고 명명하였다(히 4:16). 그런데 문자적으로 '카포레트'라는 말은 '뚜껑'(lid)을 의미하나, 이 말의 어근 '카파르'(*)가 '덮다', '속죄하다', '달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바 곧 '카포레트'라는 말이 단순한 뚜껑을 가리키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카포레트'는 레위 제사 의식에서 비롯된 말로서 죄를 '덮다', '속죄하다', '화해시키다'(to propitiate)란 의미를 가진 '은혜의 처소'라고 할 수 있다. 즉 이곳은 하나님께서 죄악된 인간을 당신의 사랑으로 속죄하시는 은혜로운 자비의 처소인 것이다. 이처럼 속죄소가 단순히 언약궤 뚜껑이나 또는 그룹들을 의미하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두 그룹들 사이의 공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출 25:17-22>, 이곳은 하나님의 지상 임재 처소요, 하나님께서 인간과 만나시기를 기뻐하시는 바로 그 장소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룹'이 하나님의 임재 처소마다 나타나 그분의 영광과 거룩을 선포한다는 측면에서 이곳은 또한 지극히 영광스럽고 거룩한 곳임을 알수 있다(출 25:18). 그러므로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회중을 위하여 피 뿌리는 의식을 속죄소 위에 거행할 때면,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엄위하심을 나타내는 구름이 그곳 위에 내려 덮혔던 것이다(레 16:2). 한편 구약 시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속죄 사역을 가장 명쾌하게 대변해 주는(레 16:14,15) 이곳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장소를 에표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상징하는 증거궤(법궤) 위에 희생 제물의 피가 뿌려짐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은, 역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대 곧 십자가 위에서 희생 제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보혈의 피를 흘림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인들이 구속함 받았다는 사실을 선명히 연상시켜 주기 때문이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친히 당하심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죽음과 죄에서 해방되어 거룩하신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은혜로운 길을 마련해 주셨다(히 7:25).

(주); 말씀하시는 목소리 - 한편 모세는 '회막' 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목소리'(*, 쿨 미다베르)를 접할 수 있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목소리'란 이상(vision) 중에서 감지되는 환청(幻聽)이나 내면의 소리(invardly voice)가 아니라 모세의 귀에 분명 들려질 뿐 아니라 그가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있는 직접적이고도 생생한 실제 음성을 가리킨다(12:8; 출 3;4; 겔 2;2).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의 말을 들으셨을 뿐 아니라, 그에게 친히 말씀하셨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1)모세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하나님과 만나며 또한 당신의 뜻을 온 이스라엘에 전파하는 중보자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2) 또한 이스라엘에 대해 당신이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음을 암시한다. (3) 그리고 이것은 12 족장들이 드린 봉헌 예물을 기쁘게 받으셨음을 시사한다(Keil). (4)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직접적인 계시를 통하여 당신이 이스라엘의 실질적이고 참된 통치자로서 그들 가운데 함께 동행하심을 인식시키셨다. 이처럼 '말씀을 통한 임마누엘 사상'은 후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사건을 예표한다(Patrick). 이와 같이 당시의 백성과 함께 하시기를 기뻐하시며 그들의 소원과 간구를 들으실 뿐 아니라, 그들과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시기를 즐겨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역시 함께 거하시며 친히 말씀하시고 교제하시기를 기뻐하신다(요 14:13,14).

성 경: [민8:1-4]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등불의 간검(看檢)]

여기서 하나님은 아론에게 일곱 등잔을 등대 위에 올려 놓아 등대 앞을 비추도록 지시하셨다. 그런데 등대에 관한 내용은 본문 뿐 아니라 성경 여러 곳에 언급되었는데, 즉 등대에 관한 계시는 출 25:31-40에, 등대 제작은 출 37:17-24에, 그리고 등대 완성은 출 40:24,25에 각각 언급되었다. 계속해서 등대에 소용되는 기름에 관해서는 레 24:2에, 등대의 사용법과 용도에 관해서는 본문에 기록되었다. 한편 등대에 관한 계시가 언급된 출 25장과 본문을 비교해 보면 본질적으로 차이나는 것은 없고, 다만 그 등잔에 처음 점화하는 것을 대제사장 아론에게 맡긴다는 사실만이 본장에 더 첨가 되어 있을 뿐이다. 한편 구속사적으로 이 등대는 어두운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며(요 1:4,5), 더 나아가 죄악된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춰야 하는 성도들의 사명을 예표한다(마 5:14-16).

성 경: [민8:2]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경과 직무 위임]

주제2: [등불의 간검(看檢)]

(주); 아론에게 고하여 이르라 - 직역하면 '아론에게 그 일을 알리라 그리고 그에게 명하라'이다. 이는 어떤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중복하여 언급하는 히브리어의 관용적 표현이다. 한편 우리가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등대'에 관한 책임은 대제사장 '아론'에게 있으며(출 27:21), 그 계시된 내용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즉 하나님의 임재 처소는 밤과 낮을 불문하고 항상 밝게 빛나야 하며, 그것을 가능케하기 위해서는 율법의 규정에 따른 아론과 그 아들들의 부단한 등불 봉사에 대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주); 일곱 등잔을 등대 앞으로 - 성경 문학적 표현으로 '7'은 '완전'과 '성취'(출 20:10)를, '등대'는 '성령의 역사'를 각기 상징한다(계 4:5). 그러므로 '일곱 등잔'은 성령의 온전하신 역사로 볼 수 있다. 한편 이 일곱 등잔의 불은 등대 앞, 곧 진설병이 놓여 있는 떡상을 향하여 비추게 하였는데(레 24:1-4), 이것은 일차적으로 제사장의 제사활동을 원활하게 할 목적도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이 등잔 빛이 아무렇게나 비추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비추는 빛임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즉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말미암는 모든 진리(계시)의 빛은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ainsworth). 실로 성령의 도움없이는 그 누구도 그리스도를 밝히 볼 수 없으며, 따라서 그에게 나아갈 수도 없다(슥 4:6).

성 경: [민8:3]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등불의 간검(看檢)]

(주); 등불을 등대 앞으로 - 등대는 중앙 줄기를 중심으로 좌우에 3개씩의 가지가 있었다. 그리하여 도합 7개의 가지 위에 등잔 7개가 있었으며, 그 등잔에 등불이 켜졌다(출 37:23,24 주석 그림 참조). 그리고 대제사장 아론은 그 등대의 등불 빛을 앞으로 비추도록 조절해야 했다. 그런데 등대 맞은 편에는 진설병 상이 위치하고 있었다(출 40:29-33 주석 도표 참조). 진설병 상에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덩어리의 떡이 잘 배열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또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항상 불꽃 같은 눈으로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를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성 경: [민8:4]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등불의 간검(看檢)]

(주); 등대의 제도 - 성소에서 쓰인 등대의 모양과 특징은 출 25:31-40; 37:17-24 부분의 주석과 그림을 참조하라. 한편 여기서 '제도'(*, 마아세)란 '만들다', '실시하다', '준비하다'는 뜻을 지닌 '아사'에서 유래한 말로써 '행동', '기술', '일', '만든 것'이라는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영어 성경은 대부분 이를 'work'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는 등대를 '만드는 방법'과 그 '모양'이라는 복합적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주); 식양(式樣) - KJV에서는 이를 'pattern'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어떤 작품을 만들기 위한 '설계도'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의 히브리어는 '타브니트'(*)로 곧 '모형'(模型)이란 뜻이다. 즉 원형(原型)에 대한 모사품이라는 뜻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미 등대의 제반 사항과 그 형체를 보이신 적이 있다(출 25:40). 한편 이러한 사실은 이 땅에 존재하는 등대 또는 성막 전체가 하늘에 있는 실체의 모형이라는 것을 암시한다(출 25:9; 히 8:5). 사실 구약의 모든 제사 제도는 신약시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그림자이며 더 나아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표적 기능을 한다(히 10:1).

성 경: [민8:6,7]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결 예식]

(주); 정결케 하라 - '정결'(*, 토호라)이란 보통 '흠없음', '청결'로 번역된다. 헬라어로는 '카다리스모스'(*)로서, 곧 '정화', '속죄', '결례'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정결'은 도덕적이나 영적으로 흔합이나 더러움이 없는 상태를 일컫는 말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나 사물이 갖추어야 할 조건 또는 자질(資質)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한 바 된 레위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려지기에 앞서 속죄의 물로 자신을 정결케 한 다음 전신을 삭도로 밀고 의복을 새로 빨았다. 이처럼 상징적으로 정결 의식을 행하고 몸과 의복까지 깨끗이한 것은 그들이 순결한 영혼으로서, 이제부터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주); 속죄의 물(*, 메 핫타트) - 직역하면 '죄의 물'이다. 여기서는 그 의미상 '죄를 속하는 물'이라는 뜻에 서 '속죄의 물'로 의역되었다. 이 물은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를 섞어 만든 의식용 물로써(19:2-9) 이것을 레위인에게 뿌리는 것은 그들로부터 모든 죄악된 요소를 제거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고로 결국 이 물은 인류의 죄를 씻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예표한다(히 10:22).

(주); 전신을 삭도로 밀게 하고 - 이것은 물로 씻겨지지 않은 부분의 더러움까지 철저히 제거하기 위한 조처로써 곧 신체의 모든 털을 면도로 깨끗히 제거하라는 명령이다. 혹자는 6:9,18의 나실인 규례와 연관시켜 여기 '전신'(全身)을 온 인격의 대표격인 '머리'로 보아 본 규례를 단지 '머리 카락'을 제거하도록 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 명령은 분명히 '전신'(*, 콜 베사람), 곧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에 대한 명령이다. 한편 온 몸을 삭도로 밀게하는 일은 문둥병자로 판명되었다가 그 병으로부터 치유되어 정결함을 선언받을 때 치르는 예식과 동일하다<레 14:8>. 그러므로 이러한 규례는 정결례를 치르기 전 인간의 죄는 마치 문둥병처럼 심각하고 추악하다는 교훈을 암시한다. 아울러 이제 하나님께 헌신된 자에게는 어떤 흠과 티도 용납될 수 없으며 오직 온전한 성결만이 요구되어짐을 시사한다<레 11:45>.

(주); 의복을 빨게 하여 - 옷을 빠는 행위는 하나님과의 만남 또는 그분께 대한 거룩한 봉사를 위해서 거의 필수적으로 요구되어졌던 의식적(儀式的) 책무였다<출 19:10>. 이는 장차 어린 양의 피에 자신의 예복을 빨아야만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하다는 영적 진리를 예표하는 규례이다(계 7:14).

성 경: [민8:8]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결 예식]

(주); 번제물...소제물...속죄 제물 - 레위인의 헌신을 위해 요구되어진 제사는 (1) 번제 (2) 소제 (3) 속죄제 등 세가지였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그리고 그 예물로는 각각 번제 수송아지 하나, 소제에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속죄제에 역시 수송아지 하나가 요구되었다. 여기서 번제와 속죄제에 특별히 제사 예물 중 최고의 예물인 '수송아지가'가 요구된 것은 레위인 정결 예식이 집단적으로 거행되었기 때문이고, 또한 그것이 이스라엘 회중 전체를 대표하는 의식(儀式)인 만큼 비중이 높은 예식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리고 여기서 '번제'는 생명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온전한 헌신을(레 4,5장) 각각 드려졌다. 그러므로 위의 예물들은 이제 하나님의 일에 임하는 레위인의 자세를 명시한 것으로, 곧 그들은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과 봉사를 아끼지 말아야 할 뿐더러 영적.도덕적으로 순결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 일에 힘써야 했다. 실로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도, 헌신도 모두 불가능하게 만드는 신앙의 최대 장애 요인이기 때문이다(창 3:22-24).

성 경: [민8:9]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결 예식]

(주); 회막 앞에 나오게 하고 - 여기서 '회막 앞'이란 5:16의 '여호와 앞'이란 말과 같은 의미로써 곧 번제단이 있는 성막 출구 쪽을 가리킨다. 이곳에 레위인을 나오게 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공식적으로 성막 봉사자의 임무를 부여 받는다는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한 조처이다. 더욱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 제사 제물로써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 헌상되어 이후부터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할 자라는 측면에서 번제단이 있는 '회막 앞'에 나오게 한 것이다(11절). 한편 회막 봉사에 합당한 자(30-50세의 남자)로 계수함 받은 레위인의 수효는 8,580명이었다(4:48). 그런데 당시 번제단이 있는 회막 뜰의 크기는 기껏 10 곱하기 20m 정도에 불과했으므로 아무리 빽빽히 들어선다 할지라도 천 명을 넘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그러므로 레위인들의 대부분은 성막 바깥 입구 쪽에서 있었고, 실제로 의식에 참여하는 자는 그들 중 각 지파를 대표하는 자들로 몇 백명 정도만이 뽑혀 의식에 참석했을 것이다.

(주); 온 회중을모으고 - 역시 한정된 지역 안에 200만 가량의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다 모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이 말은 이스라엘 자손 중 그들의 두령이나 지도자된 자들, 곧 각 지파의 대표자들을 모았다는 뜻으로 봄이 무난하다(Keil, Mattew Henry)>

성 경: [민8:10]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결 예식]

(주); 안수케 한 후에 -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성막 봉사를 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부과된 의무를 그들에게 전가(轉嫁)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전적으로 여호와께 봉사토록 하기 위해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이는 희생 제물을 바치는 자가 자신이 바치는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여 자신의 모든 책임을 그 짐승에게 전가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행동이다(레 1:4). 그러므로 이 안수(按手) 행위는 이제 성막봉사의 의무가 이스라엘 전 회중으로부터 레위인에게로 공식 전가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혹자(Keil, Matthew Henry)에 의하면, 이때 안수는 백성 전체에 의해 시행된 것이 아니라 각 지파의 족장들이 대표로 나와서 집행했다고 한다<출 29:1-37 강해, 안수에 대하여>. 이것이 타당한 견해이다.

성 경: [민8:11]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결 예식]

(주); 레위인을 요제로 - 요제(搖祭)란 희생 제물의 가슴 부분 혹은 땅의 첫 수확 등을 제사장의 양손 위에 올려 놓고 제단 앞에서 앞뒤로 흔들어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 방법을 말한다<레 7:30-34; 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이렇게 흔드는 행위는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요제로 바쳐진 제물은 제사장의 몫으로 다시 들려졌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레위인을 어떻게 요제로 드리느냐는 것이다.어떤 이는 레위인을 단 위로 올라가게 한 다음 다시 내려오도록 하는 행위를 통하여 그들을 요제로 하나님께 드렸다고 한다(Keil). 또 혹자는 실제 요제 행위가 아니라 이리 저리 움직이는 그들의 부단한 제사에의 봉사와 직무 수행을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한다(Matthew Henry). 그러나 가장 무난한 해석은 레위인을 대신한 제물을 요제로 삼아 바쳤다는 견해이다(12절). 결국 이 레위인 요제는 레위인을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바침과 동시에, 그 바쳐진 자들을 다시 제사장의 몫으로 돌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따라서 레위인들은 제사장의 수하에서 그들을 도와 성막 봉사를 하였다). 그런고로 이제 레위인들은 '요제'를 통해 세상과 구별된 자로서, 제사장에게 소속되어(3:9) 회막에서 하나님만을 위해(15절) 봉사해야만 했다(눅 9:62).

성 경: [민8:12]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결 예식]

(주); 레위인으로...안수케 하고 - 레위인들은 자신들이 드릴 제물들 곧 수송아지들에게 안수함으로써, 그제물들을 자신의 희생과 헌신을 상징하는 대속물로 삼아 그것들을 통해서 자기의 몸을 하나님께 드렸다. 이것은 후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Substitution)의 원리를 예표하는 상징적 행동이다(마 20:28).

(주); 속죄 제물로...번제물로 - 속죄 제물을 먼저 드리고. 헌신의 표인 번제물을 뒤에 드린 것은 먼저 죄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비로소 봉사와 헌신이 가능함을 뜻한다.

성 경: [민8:13]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결 예식]

(주); 레위인을...여호와께 요제로 - 이것은 레위인을 대신하여드려지는 희생 제물이 요제의 방식으로 드려졌다는 사실을 암시한다(11절 주석 참조). 특별히 여기서 요제의 방식이 채택된 이유는 '요제'(搖祭)가 갖는 특수한 성격, 즉 하나님께 드려진 후 다시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진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왜냐하면 레위인들도 본래는 하나님의 것으로 바쳐지지만 실제적으로는 제사장에게 돌려져 제사장 수하에서 성막 봉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3:5-10).

성 경: [민8:14]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구별된 자 레위인]

(주); 구별하라...내게 속할 것이라 - 하나님의 소유가 되기 위하여, 그리하여 그분과 특별한 교제를 나누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과의 '구별'이다. 여기서 '구별하다'(*, 바달)란 '나누다', '선택하다'는 의미로서 본절에서는 완전한 분리를 가리킨다. 이처럼 실로 거룩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의 거룩을 요구하시며 세상과의 분리를 원하신다(레 11:45). 이는 신.구약을 통해 계속적으로 요구되어온 것으로 세상(땅)에 속한 자는 결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심지어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집안 식구에게로 부터까지 분리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셨다(마 10:34-36; 19:29). 그러므로 참된 경건의 제일 요소는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약 1:27)이다.

성 경: [민8:15]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구별된 자 레위인]

레위인들은 성막 봉사의 나이(30세로부터 50세까지)가 되었다고 하여 무조건 성막에서 봉사할 수는 없었다. 성막 봉사 전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특별히 구별되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정결 의식'과 또한 제사장의 수하에서 그를 도와 성막에서 봉사한다는 '요제 의식'을 반드시 치러야 했다. 그런 후 비로소 레위인들은 성막 봉사의 임무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성 경: [민8:16]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구별된 자 레위인]

(주); 온전히 드린(*, 느투님 느투님) - '주다'(*, 나탄)는 말이 두번 중첩되어 그 뜻을 강조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는 '확실히(실패없이) 수여하다'는 말로 번역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 그 소유권이 완전히 이양되어, 어떤 세력도 그것을 더이상 넘볼수 없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성 경: [민8:17,18]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구별된 자 레위인]

3:12,13 주석 참조.

성 경: [민8:19]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구별된 자 레위인]

(주); 그들을...선물로 주어서 - 하나님은 '레위인을 취하여' 당신의 소유로 삼으셨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제사장들(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선물'로 주었다(3:9). 이는 결국 11절에 언급된 '요제'의 형식을 따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선물'(*,네투님)이란 '주다'(*, 나탄)에서 파생된 말로써, 하나님께서 친히 제공하신 사실을 강조한다. 즉 하나님은 제사장들의 원활한 성막 봉사를 위해 레위인들을 그들의 조력자로 제공하셨던 것이다. 한편 제사장들의 조력자였던 레위인들에게도 '느다님'으로 알려진 일꾼들이 주어졌다<스 2:43>.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일을 책임진 자들에게 필요에 따라 적절한 '선물'(사람, 제물, 능력, 은사 등)을 제공하셔서 그 맡은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신다.

(주);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를 대신하여 봉사한 것은 곧 이스라엘 전체를 대신한 것이라 할수 있다. 왜냐하면 장자는 그 집안 식구를 대표하는 자이기 때문이다(창 49:3). 한편 여기서는 레위인이 선택된 목적 한가지를 지적하고 있는데, 그것은 대신하여 특권을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 대신하여 '봉사'하기 위함이었다<8:14-22 강해, 레위인의 2대 사역>. 이는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교회의 일꾼들에게 요구되는 자세이다.

(주);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 레위인들의 임무는 성막 봉사 뿐 아니라 백성의 유익을 위해, 그리고 전민족의 명예와 안전과 번영을 위해 일해야 했다<1:53>. 이는 구체적으로 제사장의 제사 사역을 '성심껏' 도와줌으로써, 그리고 성막을 잘 지키고 보존함으로써 이루어질 일이었다.

(주); 속죄하게 - 비록 제물을 드려서 죄를 속하는 일은 직접적으로 제사장이 수행할 일이었지만, 레위인들도 회막 봉사와 제사장의 제사 집례를 보조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죄를 속하는 일에 간접적이나마 일익을 담당했다. 더욱이 그들은 성막 경호를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무모한 죽음을 예방하였는데<1:53>, 이 역시도 구원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속죄'에 대한 간접적 봉사라 할 수 있다. 사실 그들의 최종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면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보존하는 동시에 백성들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게 하는 일에 힘쓰는 것이었다<8:14-22 강해, 레위인의 2대 사역>. 그런데 후일 이러한 사명을 가장 명쾌히 수행하신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실로 그분은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주시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며 인간에게 봉사하셨다(막 10:45).

성 경: [민8:21]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회막 봉사]

(주); 죄에서 스스로 깨끗케 하고 - 즉 레위인들이 정결에 필요한 모든 의식적인 규범<7,8절>을 수행하였다는 뜻이다. 그 당시 의식적(儀式的) 정결은 곧 전인격적인 정결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이러한 정신이 혼탁해지면서 단지 '의식(형식)'에만 집착한 위선의 종교가 나타나게 되었고(사 1:10-17) 또한 계속되는 범죄로 인해 의식적 종교 생활이 지니는 한계성을 드러내게 되었다. 에수께서는 바로 이같은 '의식적 정결'이 지니는 한계성을 극복하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림을 통한 정결'이라는 가장 완전한 정결 규례를 완성하셨다(엡 2:15).

(주); 그들을...요제로 드리고 - 11절 및 13절 주석 참조.

성 경: [민8:22]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회막 봉사]

(주); 회막에 들어가서...봉사하니라 - 곧 회막의 뜰에서 봉사했다는 뜻이며, 혹은 광야 이동시 운반을 위해 분리된 후 그것들을 운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회막이 설치된 후 소위 언약궤(법궤)가 있는 지성소(the Holy of Holies)는 물론이고, 분향단과 등대 및 떡상이 있는 성소(the Holy Place)안으로는 일반 레위인들이 결단코 들어갈 수 없었다. 그곳 성소 안으로는 오직 제사장들만이 제사 사역을 위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오직 일년에 하루 곧 대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성 경: [민8:24]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년(停年)제도]

(주); 이십 오 세 이상으로 - 앞 부분에서는 레위인의 봉사 연한을 30-50세 사이로 규정하고 있다(4:3-49). 그러므로 성막 봉사의 최소 나이가 본문과는 5세의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이는 상호 모순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차이는 앞 부분에서 언급된 30세는 광야의 성막 이동시 그 성막의 기구 및 부품들을 운반할 수 있는 자격자로서의 최소 나이를 언급한 것인 반면, 여기서는 (후일) 성막이 정착된 후 그 성막에서 일할 수 있는 자의 나이를 언급한 것이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Pulpit Commentary, Keil). 아마 광야에서의 성막 물품 이동에는 그만큼 주의력을 요하는 나이가 요구되었기 때문이고 후일 성막 봉사에는 그만큼 체력을 요하는 나이가 요구되었기 때문인 듯하다(Matthew Henry). 따라서 후일 성전이 완전히 건립된 다윗 시대(대상 23:24)에는 그 봉사의 최저 나이가 20세로 더욱 낮아진 사실을 볼 수 있다<4:3>. 그리고 이것은 실제 운용상 25세 이후 5년의 기간은 견습생(見習生)으로 일하고, 30세 이상부터 비로소 공식적인 봉사에 임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상 23:24에서는 그 견습 연한이 20세로까지 더욱 낮아졌다는 의미가 된다.

성 경: [민8:25]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년(停年)제도]

(주); 오십 세 부터는 그 일을...아니할 것이나 - 여기서 '일'(*, 아바드)이란 주로 노예가 수행할 수 있는 정도의 힘든 노동을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희생 제물의 각을 뜨거나 장작을 마련하여 성막 기구들을 걷고 세우며 운반하는 등의 무겁고 힘든 일을 의미한다(Keil). 물론 50세 이상자들도 이 일을 감달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기력이 쇠한 관계로 직무 수행 중 자칫 실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이 일에서 제외된 것 같다.

성 경: [민8:26]

주제1: [레위 지파의 성결과 직무 위임]

주제2: [레위인의 정년(停年)제도]

(주); 그 형제와 함께(*, 에트에하이우) - 여기서 '함께'라는 말의 히브리어 '에트'는 '...의 곁에', '가까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는 '더불어' 일한다는 의미외에 '조력하다'(assist)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NIV는 이를 '형제들을 도와'(assist their brothers)로 번역하였다. 즉 봉사 연령의 상한선인 50세 이상이 되면 그들은 레위인의 직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수행하는 젊은 레위인의 조력자로서 남은 생애를 보냈던 것이다.

(주); 모시는 직무(*, 리쉐모르 미쉐메레트) - 여기서 '직무'라는 뜻의 히브리어 '미쉐메레트'는 '보호하다', '시중들다'는 뜻의 '솨마르'에서 파생된 말이다. 결국 '모시는 직무'란 '보조적인 일', '지원하는 일' 등의 의미라 할 수 있다. 이는 주로 성막의 각종 비품들을 관리하거나 견습 중에 있는 레위인들을 교육하는 등 육체적인 무리가 따르지 않지만 경륜과 지혜가 필요한 직무를 가리키는 듯하다. 이처럼 50세 이상된 레위인들도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나름대로 명예로운 봉사 직무를 수행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실로 하나님께 대한 봉사는 나이가 환경을 초월하여 실행되어야 할 신앙인의 지상 과제이다.

성 경: [민9:1]

주제1: [유월절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유월절 준수 명령]

(주); 애굽 땅에서 나온 다음 해 정월 - 이 때는 성막을 세운 직후이며, 인구 조사를 하기 직전이다(출 40:2, 17; 민1:1). 그러므로 본장의 사건은 민수기 전체 중에서 출애굽기의 끝부분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부분이다. 즉 시내 산에서 생활한 1년의 마지막 시기로부터 40년 후 모압 평지에 도착할 때까지의 사건을 다루는, 민수기에서 시간적으로 가장 앞선 부분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여기에 위치한 이유는 아마 본문이 제 2의 유월절(9-12절) 규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2월 14일로부터 지켜진 제 2의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을 떠난 출애굽 제 2년 2월 20일(10:11) 바로 직전까지 지켜졌기 때문이다.

성 경: [민9:2]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유월절 준수 명령]

(주); 유월절을 그 정기에 - 유월절 예식은 '영원한 규례'였으나, '너희에게 주시는 당위에 이를 때에'(출 12:25)라는 한시(限時) 규정이 붙여져 있었다. 그렇다면 광야 여행 중에는 이 규레를 무시해도 되느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나 5절의 유월절 시행 사실과 11, 12절의 구체적인 예식 절차 고지를 통해 볼 때 가나안 정착 이전, 곧 광야 여행시에도 유월절이 지켜졌던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과도 기간 동안에는 정착 때에나 가능한 '(가옥의)문설주에 양피를 바르는 행위'(출 12:23)는 생략되고, 번제단에서 그 희생 제물의 피가 뿌려지는 것으로 대신 예식을 지켰을 것이다(Keil & Kelitzsch, Vol I-iii. p. 50). 왜냐하면 당시 모든 짐승은 번제단 앞에서 잡아 그 피를 그곳에 뿌려야 했기 때문이다(레 17:1-7).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그 날짜에, 유월절이 지니는 바 무한한 은혜를 상기하며 어떤 역경 중에서라도 유월절을 반드시 지킴으로써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구원과 해방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음미해야 했다. 한편, 그리고 여기서 '정기'(*, 모에드)란 말은 지정된 집회 장소 곧 '회막'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과 연관된 종교적 책무는 하나님께서 '지정한 장소', 곧 당신의 임재 처소인 회막을 중심으로 '지정한 시간'에 지켜져야 할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이처럼 여호와의 종교는 오직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장소와 시간을 따라 인간이 예배해야만 하는 하나님 중심의 종교요, 계시 중싱미 종교인 것이다.

성 경: [민9:3]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유월절 준수 명령]

(주); 이달 십 사 일 - 출애굽 만 1년 후, 즉 출애굽 제 2년 1월 14일로서 인구 조사(출애굽 제 2년 2월 1일) 약 보름 전의 일이다(1:1). 이 날은 유월절 양 잡는 날이다<출 12:6; 13:3, 4>.

(주); 해 질 때에 - 문자적으로 '두 저녁들 사이'(between the two evenings)이다. 혹자에 따르면, 이를 '보름달이 비추일 때'(by the light of the full moon)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문에 좀 더 가깝게는 '해 진 뒤, 어둠이 밀려오기 전에'(after sunset, before it is fully dark) 곧 '석양에'로 봄이 옳다. 이는 아마 해가 지는 것을 기준삼아 하루가 시작되는 것으로 이해한 히브인들의 시간 개념에 비춰 볼 때 14일이 막 시작되는 시간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해가 서산에 떨어짐으로 첫 저녁(그날의 시작)이 시작되고 완전한 어두움이 몰려 올 때 둘째 저녁(밤)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본문의 시점을 '석양 쯤'으로 볼 때 '두 저녁들 사이'라는 문자적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유대인들은 일의 편의상, 해가 지기 전의 시간인 3-5시 사이에 양을 잡았다고 한다(Josephus).

(주);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 즉 첫 유월절 당시 주어졌던 각종 규레들(출 12:1-14)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본장 6-12절에 주어진 사고자(事故者)에 대한 규례는 이때 새롭게 주어진 유월절 특례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유월절 규정이 최초로 정해졌던 출 12장 부분의 규례에는 본장 6절 이하의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는 문설주에 양피를 바르는 규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아마 희생제물의 피를 번제단에 뿌리는 것으로 대체된 것 같다(Keil).

성 경: [민9:5]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유월절 준수 명령]

(주);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출애굽 다음 해 시내 광에에서 두번째 유월절을 지켰다. 그런데 혹자는 여기 '시내 광야에서의 유월절 준수' 사건에 의문을 제기한다. 즉 쿨츠(Kurtz)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가 200만 가량 된다는 점을 감안하여, 매 15-20명 당 어린 양 한마리가 소비되었다고 보면 양의 수효가 10만-13만 마리가 요구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당시 유월절 제사 집례를 담당할 제사장 3명(아론과 그의 두 아들 - 엘르아살과 이다말)으로 그 일을 과연 어떻게 감당 했겠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유월절 어린양의 수효가 10만 마리 정도나 요구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유월절 어린양을 잡는 것은 배불리 먹기 위함이 아니라, 예식용으로 잡는 것이기 때문에 남자 장정(603,550명)을 중심으로 계산하여 매 15-20명 당 한마리가 요구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린양의 수효는 대략 3만-4만 마리 정도면 충분했다. 그리고 어린양을 잡고 그 피를 취하는데 레위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간주한다면(레위인은 이미 금송아지 숭배 사건 때 하나님께 헌신되었다 - 출 32:28, 29 및 대하 30:16참조), 3명의 제사장이 유월절 예식을 치르는 저녁(대략 9-11시) 시간 동안에 단지 그 피를 넘겨 받아 번제단(가로 및 세로 2. 3m, 높이 1. 4m)에 뿌리는 일은 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후일 요세푸스(Josephus)가 증거하는 바 네로 황제 시대에 256,500 마리의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번제단(비록 모세 당시 보다는 그 규모가 6-10배 정도 켰을지라도)에 뿌린 사실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 T. , Pantateuch, Vol. I-iii. pp. 50, 51). 그리고 유월절 예식 때 사용된 어린양(혹은 어린 염소, 출 12:5)의 수효는 출애굽시 애굽으로부터 몰고 나온 수많은 가축 중에서 충분히 충당 가능했을 것이다(출 12:38).

(주); 다 좇아 행하였더라 - 유월절 규례에 필요한 각종 제물과 음식물을 광야라는 불편한 상황하에서 모두 마련하고, 또한 수많은 유월절 희생 양을 도살하여 피를 내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유월절을 그 정기에 지키라'<2절>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온순히 순종함으로써 선민(選民)의 책무를 다하였다. 이처럼 신앙인의 행동 준거(準據)는 주변의 상황과 자신의 처지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 이어야 한다.

성 경: [민9:6]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부정한 자에 대한 규례]

(주); 사람의 시체로... 부정케 되어서 - 주검을 죄의 결과로 여겼던 히브리 사회에서는 그 정결 예법상 그것을 만진 자는 7일 동안 부정하였다(19:11-22; 창 3:19). 따라서 그는 7일 동안 법규에 따라 공동체에서 겪리되어 근신기간을 가지고 자신을 정결케 해야 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 이스라엘 공동체와 성소를 더럽히는 더 큰 부정을 저지르게 된다<5:2>. 그러므로 그들은 그 부정 기간 동안 모든 공식 집회는 물론이고 본절과 같은 기쁨의 축제인 '유월절'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이는 인간의 죄와 허물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킨다는 준엄한 경고를 제공한다(창 3:24; 사 59:2). 한편 이러한 7일 동안의 격리 규례는 시간상으로<1절> 아직 주어지지 않은 상태였기에(민 5:2; 19:11), 시체로 인해 부정케 된 자들(레 7:21)이 '정기'(定期) 유월절 참여 여부에 대해 의문을 품을수 밖에 없었다<7절>.

성 경: [민9:7]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부정한 자에 대한 규례]

(주); 우리를 금지하여... 드리지 못하게 - 시체로 인해 부정케 된 자의 격리 규정<5:2; 19:11>은 아직 주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단지 레위기 율법을 따라 자신들이 부정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을 인식했을 뿐이었다<레 7:20, 21; 15:3; 21:1>. 그러므로 그들은 지금 유월절 절기를 맞이하여 이스라엘인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금지하여'(*, 가라)란 원래 '감소시키다'(출 5:8), '그치게 하다'(욥 15:4)는 뜻으로서 여기서는 '억제하다', '제지하다'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성 경: [민9:8]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부정한 자에 대한 규례]

(주); 기다리라(*, 이메두) - 이는 '잠잠히 참고 서서 기다리라'는 의미가 내표된 명령이다. 백성들이 조급한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서둘렀을 때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며,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결정이다. 실로 시간이 긴박하고 중대한 문제에 직면할수록 성도는 여호와의 선하신 손길을 의지하여 기다릴 줄 아는 지헤가 필요하다(시 37:7; 잠 20:22; 사 30:18).

성 경: [민9:10]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빛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2차 유월절 규례]

(주); 먼 여행 중에 있든지 - 유대 학자들에 따르면, 유월절 절기인 아빕 월(정월) 14일 시작 시각에 성소로부터 약 24km이상 떨어져 있는 상태를 '먼 여행 중'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Pulpit Commentary). 결국 이는 본의 아니게, 그 거리상 도저히 유월절 정기 예물 드리는 일에 참석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을 때를 가리킨다.

(주); 마땅히... 지키되 - 유월절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 절기임을 시사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유월절 참례에 대해 강력히 요구하신 이유는 그날이 당신의 구원 사역을 기념하는 날일 뿐 아니라, 장차 당신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속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즉 유월절은 하나님 백성의 삶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게 기억되어야 할 생명과 구원과 해방의 날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유월절을 고의로 지키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되기를 거부한 자로 취급되어 선민의 자격과 권리를 박탈당하게 될 것이었다<13절>.

성 경: [민9:11]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2차 유월절 규례]

(주); 이월 십 사일 - 정기 유월절 보다 꼭 한 달 뒤이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부득이한 사정상 정기 유월절을 지키지 못한 자들은 이 한달 동안 제 2의 유월절(소유월절)을 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여행자는 충분히 집으로 돌아와 안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며, 부정한 자는 율법에서 요구한 정결 의무를 완수하여 정기 집회에 참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결코 율법의 자구(字句)에 얽매이지 않고, 그 절기의 정신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이 당신을 바로 섬길 수 있도록 역사하셨다.

(주); 어린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 - 유월절 기념 때 먹는 3대 음식물이다<출 12:8>. 그런데 여기서 '어린양'은 대속의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요 1:29; 고전 5:7), '무교병'은 죄악이 없는 성결한 삶을(고전 5:6-8), 그리고 '쓴 나물'은 과거 애굽의 종살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했던 고난을 각각 상징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출 12장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9:12]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2차 유월절 규례]

(주); 아침까지... 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 유월절 음식은 유월절 당일 저녁 즉석에서 모두 먹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거룩한 음식으로서, 걸코 그 남은 음식이 외인과 짐승들에 의해 더럽혀져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마 7:6). 따라서 만약 먹다가 남은 음식물이 있으면 모두 불태워 없애야 했다<출 12:10>.

(주);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 이는 유월절 양이 아무런 파손당함 없이 도살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출 12:46>. 왜냐하면 유월절 어린 양은 장차 십자가 고난을 겪으실 그리스도의 몸을 에표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실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함으로써, 이 예언적 규례를 완전히 성취하셨다(시 34:20; 요19:36).

(주);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 유월절 규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출 12장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9:13]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2차 유월절 규례]

(주);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 끊쳐지리니 - 부득이한 사정으로 본의 아니게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두 가지 경우(10절)를 제외하고(이때에도 한 달 후 제 2차 유월절을 지켜야 했다). 유월절을 고의로 지키지 않은 자에게는 준엄한 형벌이 가해졌다. 사실 유월절 참례는 선민(選民)으로서의 신앙고백이었다. 그러므로 그 일을 무시하는 자는 곧 하나님의 주권과 구분의 백성되기를 동시에 거부하는 범죄자였다. 여기서 '끊쳐지리니'(*, 니케르타)란 말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 사실과 백성의 진(陳)에서 쫓겨나 하나님의 율법의 특혜를 누리지 못함을 의미한다(레 20:18). 마찬가지로 오늘날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베푸시는 구원의 잔치에 참예하기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마 22:1-14).

(주);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 출애굽 당시만 해도 유월절 어린 양은 음식으로서의 효용이 강조된 것이었으나, 계속 첨가된 유월절 규정에 따라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로서의 효용성이 강조되게 되었다(신 16:1-8). 한편 '예물'은 감사의 의미와 더불어 그 드리는 자의 최를 대신하여 대속의 기능을 함께 가진다<8:10>. 그러므로 만일 '예물'드리는 일을 게을리 하면 자신의 죄 문제를 하찮게 여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각종 예물 곧 대속 제물을 규정해 두셨다(레 1-6장>. 그런데 구약의 이 '예물'은 신약에 이르러 우리의 영원한 대속 제물이신 예수 안에서 온전히 승화되었다(히 10:10).

성 경: [민9:14]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2차 유월절 규례]

(주); 타국인(*, 게르) - 이스라엘 내에 오랫동안 거주함으로써 그 사회에 동화된 이방인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들은 순수한 외국인과의 구별되는데, 만일 이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유월절에 참예키 원한다면 먼저 '할례'를 받아야 했다(출 12:48 주석 참조). 왜냐하면 당시 '할례'는 언약의 표시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제 1의 표시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할례'는 오늘날도 유효한 것은 아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육체의 할례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마음의 할례가 필요하다<창 17:2-14 강해, 할례 언약과 침례>.

(주); 그 율례는 동일할 것이니라 - 언약의 표 '할례'가 있는 자는 혈통과 신분을 불문하고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율법의 의무를 짐과 동시에 그 특권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은 히브리 종교가 폐쇄적이라는 잘못된 견해를 완전히 불식(拂拭)시킨다. 한편 본절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출 12:48, 4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9:15]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주); 성막을 세운 날에 - 이 날은 곧 성막이 완공되어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쁘게 받으신 증거로 회막을 구름으로 덮음으로써(출 40:34), 당신께서 친히 그들의 삶 중심에 거하심을 보이신 날이다. 이 날은 출애굽 제 2년 1월(아빕월) 1일이었다(출 40:17).

(주); 구름이 성막 곧 증거막을 덮었고 - 구름은 하나님의 동행과 임재의 상징적 표현이다<출 40:34, 35>. 사실 구름이 성막위에 덮이기 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과 더불어 계셨으며, 그들의 삶 중심에서 통치하고 계셨다<13:21, 22>. 그러나 성막 건립 후 '구름'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가시적(可視的)으로 그들의 가나안 여행을 더욱 박진감 넘치며 경건한 신앙 행보(行步)가 되돌고 바꾸어 놓았다. 한편, 그리고 여기서 '증거막'(*, 오헬 하에두트)이란 표현은 지성소의 궤속에 들어있는 십게명의 증거(testimony) 기능을 강조하여 사용되는 말인데, 원문상 이 말 앞에 '레'(*)라는 전치가사 덧붙여 있어 이 전치사의 기능을 놓고 논란이 되고 있다. 즉 어떤 학자들은 이 전치사가 방향격이나 위치격을 의미한다고 보고, '증거막'에 혹은 '증거막 쪽에'란 뜻으로 이해한다(Knobel, Rosenmuller). 그렇게 본다면 구름은 단지 지성소 위에만 내려 덮혔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이 전치사가 속격을 의미한다고 보면, '증거막의'란 뜻이 되어 곧 구름이 증거막으로 대표되는 '성막'(*, 미쉬칸) 전체 위에 임했다는 뜻이 된다(LXX, targum, Keil, Pulpit commentary). 성경의 맥락으로 볼 때 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출 40:34).

(주); 불 모양 같은 것 - 이 역시 여호와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하는 것이다<출 13:21, 22; 14:24; 40:38>. 한편 구름과 불의 모양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직접 통치하신 이적적인 현상은 광야 생활 40년간 줄곧 계속되었다<신 1:2, 33; 느 9:19-21>. 한편 '구름 기둥과 불 기둥'에 대해서는 출 13:2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9:16]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주); 항상 그러하여 - 낮에는 구름, 밤에는 불 모양으로 성막을 덮은 현상은 성막이 처음 세워지던 때만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광야 여행을 하는 동안 계속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출 40:38; 왕상 8:10). 이는 비록 광야 여행 중의 이스라엘이 불평과 반란과 거역을 일삼았다 하더라도, 그들을 향한 당신의 사랑과 관심은 항상 끊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실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야말로 역시 오늘날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존과 소망의 근거가 된다.

성 경: [민9:17]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주); 구름이... 머무는 곳에... 진을 쳤으니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상징인 구름을 중심으로 광야 생활을 했다. 따라서 구름이 지시하지 않을 때에는 자의(自意)에 의해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즉 그들의 행동은 전적으로 구름의 인도에 의존했다. 한편 이스라엘을 인도한 이 구름은 수백만 명의 이스라엘인이 모두 목격할 수 있을 만큼의 높은 위치에까지 떠올라 그들의 발길을 인도한 것 같다<출 40:36>. 그러므로 그들은 각각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을 체험할 수 있었다.

(주); 구름이 머무는 곳에... 진을 쳤으니 - 여기서 '머물다'(*, 솨칸)이란 말은 '자리잡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곧 이것은 15절에서 처럼 성막이 쳐진 곳에 내려 앉아 덮이는 것이 아니라, 성막이 쳐질 곳에 미리 자리를 잡아 내려 앉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성막은 이동시 레위의 세가문(게르손, 고핫, 므라리 가문)에 의해 각각 나뉘어져 운반되었기 때문에(10:17, 21), 15절의 형태로 구름이 내려 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성 경: [민9:18]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주); 구름이...머무는 날이 오랠 때 - 구름이 머무르고 떠오르는 시기는 하나님 이외에 아무도 몰랐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 '시기'를 일찍 감지하는 감각이 아니라, 그 구름의 변화에 따라 즉각적으로 순응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였다. 특히 구름이 오랜 기간 동안 지체할 때에는(22절) 그들에게 '인내'가 요구되었다. 실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끝까지 인내하는 것은 우둔한 행동이 아니라 가장 지혜롭고 안전한 처신이다(약 5:7-11).

성 경: [민9:20, 21]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주);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 이때에는 이스라엘의 열심이 요구되는 때이다. 왜냐하면 유약자와 가축까지 동반힌 그 많은 사람들이 장막을 치고 걷는 일은 결코 손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막 위의 구름이 짧은 기간 지체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비록 나쁜 기후 조건이라 하더라도, 심지어 단지 하루만 머물고(21절) 떠난다 하더라도 그들은 즉시 자신의 진을 걷어 출발해야 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날, 육신의 장막을 걷어 떠나가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고후 5:1).

성 경: [민9:22]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주); 일년이든지 - 여기서 '일년'(*, 야밈)이란 '날'을 뜻하는 히브리어 '욤'의 복수형으로서 직역하면 '날들'(days)이라는 의미인데, 통상적으로 '1년' 또는 '많은 기간'(한달 이상)을 의미한다(창 24:25). 여기서도 구체적인 날 수를 가리키는 말이라기 보다 단순히 오랜 기간 동안이란 의미로 봄이 타당하다.

성 경: [민9:23]

주제1: [유월절 기념 명령 및 불과 구름 기둥]

주제2: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기둥]

(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 여기서 '직임'(*, 미쉬메레트)이란 '준수하다', '신중하다'는 뜻의 '솨마르'(*)에서 유래한 말로 곧 '부탁한 임무', '규례', '명령을 통해 하달된 책임' 등을 가리킨다<1:53>. 그러므로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의 머뭄과 떠오름으로 지시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켰다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명령'을 따라 성급하거나 게으르지 않게 광야 여행을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빠른 여행 방법이었다. 오늘 우리가 영적 가나안에 입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바로 '하나님이 부탁하신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성 경: [민10:2]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은나팔 둘 - 은(銀)나팔 모형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다. 그러나 로마에 있는 디도(Titus)의 개선문(triumphal arch)과 고대 이집트의 기념비 등에 새겨진 형상. 그리고 유대 사가(史家)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으로 미루어 볼때 이때의 은나팔은 희년(禧年) 때 사용된 곡선형의 구부러진 뿔나팔(레 25:9 주석 참조)과는 달리 관은 가늘고 기나 주둥이는 넓은, 곧은 모양의 나팔일 것으로 추정된다<Keil & Delitzsch, op.cit., p. 54;Pulpit commentary>. 한편 그리고 이때 제작된 나팔은 단지 '두 개'에 불과했는데 그 이유는 당시 대제사장 아론을 제외한 제사장이 두 명(엘르아살, 이다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3:4). 그러나 솔로몬 시대에는 120명의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었다고 전한다(대하 5:12; Matthew Henry's commentary).

(주); 쳐서 만들어서 - 여기서 '쳐서'(*, 미크솨)란 말은 '망치질 하여'라는 뜻으로, 얇은 은판을 망치로 두들겨서 은나팔을 만들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결국 이 나팔은 정교하지 않고 투박한 형태인 것으로 추정된다(R. Winterbotham).

(주); 그것으로...소집하며...진행케 - 은나팔의 기능에 대해 언급되었다. 이것은 불기둥, 구름 기둥과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뜻을 백성에게 전달하는 도구이자 하나님의 통치의 한 방편으로서 이스라엘 광야 여정을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 즉 하나님께서 성막 위에 머문 구름을 떠오르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행 신호를 보여 주시면 백성들은 곧 떠날 채비를 갖추었으며, 이어 제사장들에 의해 불려진 나팔 소리에 의해 모든 백성은 일제히 이동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은나팔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하여 백성들 혹은 족장들을 소집할 때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은나팔의 두 가지 큰 기능은 소집 신호와 진행 신호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성 경: [민10:3]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두 나팔을 불 때 - 즉 '모든 나팔(2개)을 동시에 불 때'를 가리킨다. 이때는 이스라엘 전체 백성이 회막문 앞으로 집결해야 했다. 그리고 이때의 나팔 소리는 급박하지 않고 차분했다<7절>.

성 경: [민10:4]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이스라엘 천부장(千夫長)된 족장들 - 여기서 '천부장'(*, 라쉐 알레페)으로 번역된 말은 성경 다른 곳에서는 '천만인'으로 번역되었다(1:16; 수 22:14). 곧 각 지파의 '두령'(leader)들을 가리킨다<1:16>.

성 경: [민10:5]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울려 불 때에는 - '울려 분다;'(*, 테카에템 테루아)는 말은 매우 힘차게 떨리는 소리로 불되 간격을 두고 부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영역 성경 KJV에서는 '경보를 불다'(blow an alarm)로, NIV에서는 '폭발음을 내다'(trumpet blast)로 각각 의역하고 있다. 한편 이렇게 나팔이 울려 펴지면 그것은 곧 출발 신호가 되어 '동편 진들', 즉 유다 지파와 앗사갈 지파 및 스불론 지파가 출발하게 된다<2:34 주석 그림>.

성 경: [민10:6]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제 이차로 울려 불 때에는 - 처음 울려펴지는 나팔 소리에 이어 두번째 소리가 울리면 제 2진영인 남쪽 진들(르우벤, 시므온, 갓)이 출발하게 된다. 그리고 본문에는 언급이 없지만 세번째와 네번째의 나팔이 울리면 계속해서 2장에 배치된 진의 순서대로 서편 진들(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에 이어 북편 진들(단, 아셀, 납달리)이 출발하였음이 분명하다(Keil, LXX). 이처럼 하나님은 나팔 신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질서와 순종 의식을 주입시키셨다. 실로 수많은 백성이 한꺼번에 이동하기 위해서는 질서가 절대 필요했다. 그런데 이 질서는 '나팔 소리' 곧 권위에 찬 하나님의 명령에 순응할 때 비로소 갖춰질 수 있었다. 이처럼 진정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고 그분의 말씀이 최고의 권의를 지니는 공동체에는 결코 어지러움이나 분쟁이 있을 수 없다(고전 14:33).

성 경: [민10:7]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소리를 울려 불지 말 것 - 백성들을 회집할 때는 전쟁 수행시나 진의 이동시처럼 강렬하게 높이 울려 불어서는 안되며 평탄하게 같은 높이의 소리로 불어야 했다. 따라서 여기 '불다'란 의미의 히브리어 '타카'(*)는 본래 순간적이고 예리한 소리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소리를 내지 말라는 것이다. 이처럼 회중 소집시 나팔 소리가 평탄하게 조절된 것은 전체 백성들이 모이는 이유가 대체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거나, 특별한 절기를 지킨다거나, 거룩한 회합을 위해서 이므로 경건함과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성 경: [민10:8]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제사장들이 불지니 - 나팔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는 도구로서 오직 거룩한 일에만 사용되어야 하는 성물(聖物)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관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자는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서 모시며 또한 백성의 종교, 도덕적 생활을 개도해가야 할 사명이 있는 제사장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자의(自意)에 의하거나, 계시된 명령에 어긋나게 나팔을 불어서는 안 되었다. 오직 그들은 하나님의 대변자(spokesman)로서 항상 깨어 있어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정확, 신속하게 전달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는 오늘날 복음 전파자들에게도 요구되는 바이다. 즉 오늘날 주(主)의 뜻을 전할 특권과 책임이 있는 복음 전파자들은 자신의 욕망과 견해를 일단 접어두고, 오직 그분의 뜻을 바로 분별하고 그것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거룩한 입술을 지녀야 한다(행 15:7; 엡 6:19).

(주);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거룩한 관례와 제도의 영구한 실천을 강조할 때에 자주 사용되는 관용적 표현이다(출 12:24). 여기서는 오직 제사장들만이 나팔을 관리하고 사용하며, 소집과 행진, 전쟁, 절기 등에 정해진 규정에 따라 나팔을 불어야 한다는 나팔 사용 규정 전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제사장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도 나팔을 불어야 했다(그러나 나팔이 언제까지 보관,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오늘날 이 나팔 규정은 실제적으로 중단되었으나 영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계속되며, 신앙 공동체가 각종 모임을 거듭하고, 교회가 사단과의 영적 교전을 계속하는 한 '대대에 영원한 율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一點一劃)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는 것이다(마 5:17,18). 한편 제사 제도와 관련된 종교적 행사, 전쟁, 왕의 취임식 등에 나팔이 사용된 예는 성경에 가끔 언급되었다(삼하 2;28; 왕상 1:39).

성 경: [민10:9]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너희 땅에서 - 달리 표현하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이다. 이것은 나팔 규정이 광야 여행 중에도 긴요하게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후일 가나안 정착시에도 대비한 규정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 - 여기서 '압박하다'(*, 차라르)란 원래 '꺾쇠로 죄다'는 의미로써 포위하여 몹시 심한 고통을 주는 상태를 가리킨다. 사실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정착시 가나안 7족속(신 7:1)을 제외하고는 주변국과 평화할 것을 명하셨다(신 20:10,11).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압박하는' 무리가 아니면 평화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참 왕으로 모신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이방의 우상 문화를 주입시키는 외세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들의 거룩한 삶을 보존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대적들을 치러 나갈 때에 그들은 여호와의 명을 좇아 나팔 경보에 의해 행동해야 했다. 이때의 경보는 군대의 사기를 북돋우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굳은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며, 또한 여호와의 도움을 통한 승리를 기원하는 역할도 했다.

(주); 여호와가...기억하고...구원하리라 -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나팔을 부는 행위는 곧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을 신실히 의뢰하는 표시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전쟁과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나팔을 불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소리를 들으시고 당신의 약속을 기억하사 그 전쟁에 친히 개입하셔서 그들을 승리케 하실 것이라 약속하셨다(시 98:3). 한편 본문에 나타난 바 나팔을 불 때에 '기억하리라'는 말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평상시 이스라엘을 잊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오게 된다. 따라서 혹자는 본절과 시편 44:23,24을 예로 들어 하나님의 신실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한계나 무관심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당신을 찾고 부르는 자들에게 확신과 소망을 제공하기 위해 사용한 수사학적 표현으로서, 곧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이라는 관점에서 이해 하여야 한다(시 50:15; 렘 33:3). 실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당신을 의뢰하고 부지런히 찾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자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그들을 채워주신다(요 14:13,14).

성 경: [민10:10]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나팔 신호 규정]

(주); 희락의 날 - 특정한 날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단지 기쁜 일로 기념될 만한 모든 날들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법궤 운반시(대상 15:24; 16:6), 성전 봉헌시(대하 5:12), 성전 신축시(스 3:10; 느 12:35,41), 부림절(에 9:17-19)과 같은 민족적, 종교적 기념일(대하 29:27) 또는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등이다(Keil & Kelitzsch, Vol. I-iii. pp. 55,56).

(주); 정한 절기 -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율례로 명하신 날들 곧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나팔절 등의 절기이다(28,29장; 레 23:24,25). 자세한 내용은 레위기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에 관한 도표를 참조하라.

(주); 월삭 - 매 달이 시작되는 첫날을 가리킨다(28:11,14; 삼상 20:24-34).

(주); 번제물...화목 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 이는 그 제물을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기 원하는 간절함을 내포한 행동이다. 특히 이처럼 '속죄'와 관련되지 않은 제물 위에만 나팔을 분 것은 이스라엘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바친 제물과 그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이 될 수 있었다(대하 29:27; 시 81:3).

(주); 그로 말미암아 기억하리라 -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기쁨과 감사가 깃든 정성스런 헌물과, 그리고 이것이 열납되기를 원하여 부는 백성들의 나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기억하실 것이라 약속하셨다<9절>. 특별히 여기서 '기억하다'(*, 자카르)란 말은 '마음에 품다'는 의미로써, 당신의 백성과 교제하시며 아울러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낱낱이 감찰하시고 필요를 따라 채워 주신다는 포괄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성 경: [민10:11]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바란 광야에로의 이동]

(주); 제 이 년 이월 이십 일 -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때로부터는 만 1년 1개월 5일이 지난 때였고, 시내 산에 도착한 때로부터는 만 11개월 5일이 지난 때였다. 그런데 바로 이때를 시내 산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아마도 사고자(事故者)들을 위한 제 2차 유월절(9:11) 준수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은 이때 시내산을 출발하여 얼마 후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으나, 그곳에서 하나님을 반역함으로 말미암아 이후 약 38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다가 출애굽 제 40년 5월 1일 이후에야 비로소 요단 강 도하 직전의 땅 모압에 도착할 수 있었다(33:38; 신 2:14).

성 경: [민10:12]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바란 광야에로의 이동]

(주); 자기 길을 행하더니(*, 레마세에헴) - 이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나사'(*)에서 유래한 말로써, 원뜻은 '장막 말뚝을 뽑아 내다'이다. 결국 위의 말은 '각각 자기가 맡은 소임을 따라 진을 거두고 떠날 채비를 하더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성막을 거두어(1:51) 조직적으로 진을 이동하는 모습(2장)을 말한다.

(주);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 이스라엘은 시내 광야를 출발하여 3일 길을 행하고(33절), 다시 하세롯(11:35)을 거쳐간 후 가데스 바네아가 있는 바란 광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는 그 사이에 두 군데의 휴게지(休憩地)를 더 거쳐 온 것 같다(11:34,35; 12:16; 33:16,17). 그러므로 본절은 가데스 바네아까지의 여정을 축약한 것으로써 11절에서 출발을, 12절에서는 도착을 기록하고, 그 사이에 발생한 일은 나중에 12:16까지 자세히 기록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주); 바란 광야 - 시내 반도에 위치한 큰 사막이다. 이 곳은 피신하기 적당한 몇몇 산과 우기(雨期)에 형성되는 많은 시내, 곧 와디(Wady)가 있었다(삼상 25:1).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 지역에서 가나안으로 이르는 지름길로 이곳을 자주 이용하였다. 한편 이곳은 동(東)으로 험준한 아라바 골자기에 접해 있고, 서(西)로는 술 광야에 맞닿아 있으며, 남(南)으로는 호렙산과 연결되었고, 북(北)으로는 남쪽 가나안 경계선에 맞붙어 있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57). 결국 이곳은 척박한 사면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죽음의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는 버려진 땅이었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이 바란 광야에서 머문 것은 시내 산을 출발한 다음 3일 후였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할 때까지 계속적으로 이 광야에서 저 광야로 거처를 옮기는 나그네 생활을 해야 했다. 이는 마치 영원한 천국을 목적하고 광야 같은 이 세상을 하루 하루 전전(轉轉)해야 하는 성도의 현실을 보여 주는 듯하다(히 11:13). 그런데 이러한 나그네 생활에서 가장 요구되는 바는 안내자 되신 하나님의 인도를 날마다 따르는 일이다(고후 1;4).

성 경: [민10:13]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유다, 잇시갈, 스불론, 지파의 이동]

(주); 모세로 명하신 것을 좇아 - 즉 2:1-31에 지시된 바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란 뜻이다.

성 경: [민10:14-16]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의 이동]

(주); 수두(首頭)로(*, 바리쇼나) - 직역하면, '첫번째'로란 뜻이다. 곧 행군의 제일 선두는 유다 진기에 속한 자들(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이었다<1:26-31; 2:3-9>. 그런데 실질적으로 행군 대열에 선봉을 이룬 것은 '여호와의 언약궤'였다(33절). 즉 이스라엘은 인도자 되신 하나님을 앞세우고 미지(未知)의 땅 가나안에로의 행군을 하였던 것이다.

(주); 군대...영솔하였고(*, 알 체바) - 직역하면 '군대 위에(있었다)'란 뜻이다. 각 지파의 군대 영솔자, 곧 두령 목록은 1:4 주석 도표를 참조하라. 그리고 각 지파 대표들은 총 지휘관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자기 지파를 통솔하였다.

성 경: [민10:17]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이동]

(주); 성막을 걷으매 - 이는 계속 이동해야 하는 광야 여행에 용이하도록 설계된 성막의 특성을 반영한다. 즉 성막은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걷고 세울 수 있는 조립식 천막으로 되어 있었다<출 25:1-9>. 한편 또한 이는 이 땅에 영원한 처소를 마련치 않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걷고 세우기에 편리한 임시 처소에서 생활하는(고후 5:1) 우리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성도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임시적이고 불완전한 존재이지만(사 2:22),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기에 영원한 처소가 예비되어 있는 것이다(요 14:3; 고후 4:7,16-18).

성 경: [민10:18-20]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이동]본문은 유다 전기에 이어 제 2대로 발행해야 하는 르우벤 진기(르우벤, 시므온, 갓) 및 그 군대 영솔자들에 관한 기록이다. 자세한 내용은 2:10-16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행군시에는 이들 앞에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이 성막 물품을 메고 진행하였고, 이들 뒤에는 고핫 자손이 성막의 성물들을 메고 뒤따라 왔다.

성 경: [민10:21]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지파의 이동]

(주); 성물을 메고 - 고핫 자손들은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과 달리 자신들이 맡은 물건을 반드시 어깨로 메고 운반해야 했다<4:5-20; 7:6-9). 한편 여기서 '성물'로 번역된 히브리어 '미크다쉬'(*)는 어떤 '물건'을 뜻한다기 보다 '장소' 곧 거룩한 처소(sanctuary,KJV)를 의미한다. 그러나 '성소'(holy place)를 메고 갈 수 없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문맥상 성소에 배치된 '거룩한 물건'(the holy things, NIV)로 이해함이 옳을 것 같다(18:29).

(주); 그들이 이르기 전에...세웠으며 - 이 말은 고핫 자손들의 직무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고핫 자손에 앞서 출발했던<17절>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의 직무를 언급한 것이다.

성 경: [민10:22-24]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에브라임, 무낫세, 베냐민 지파의 이동]

제 3대로 발행한 진영은 에브라임 진 기에 소속된 지파(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였다. 광야 행군시 이들 지파의 바로 앞에는 고핫 자손들이 성물을 메고 진행하고 있었고, 뒤에는 단 진 기에 소속된 지파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성 경: [민10:25-27]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단, 아셀, 납달리 지파의 이동]

제 4대로 발행한 진영은 단 진기에 소속된 지파(단, 아셀, 납달리)였다. 광야 행군시 이들은 행렬의 맨 후미에서 뒤따라 갔다. 한편 각 지파의 두령 목록은 1:4 주석 도표를 참조하라.

(주); 모든 진의 후진 - 여기서 '후진'(*, 메야세프)이란 원래 '뒤에 남다', '뒤에서 모으다'는 뜻을 가진 말로써 이는 '단 자손 진기에 속한 자들'의 고유 임무를 잘 드러내준다. 즉 그들은 행군 순서상 단순히 맨 뒤에 처진 것이 아니라, 맨 나중에 진행하면서 후방을 경계하고 또한 행진 중 뒤처진 무리들을 모아서 건사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에서 볼 때 '숨은 봉사자들'에 비유될 수 있다. 이처럼 형제들의 평안을 위해 알게 모르게 헌신하는 자들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확장될 것 이며, 공동체는 더욱 풍성한 은혜를 체험케 될 것이다(빌 4:15-19).

성 경: [민10:28]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군]

주제2: [단, 아셀, 납달리 지파의 이동]

(주); 그 군대를 따라(*, 레치브오탐) - 직역하면 '그들의 군대대로'이다. 이는 각 지파가 질서 정연하게 지체함이나 게으름없이 행진했음을 묘사한 말이다(14,18,22,25절). 특별히 여기서 '군대'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이상 노예 민족이 아니라, 그리고 또한 애굽을 도망쳐 나온 오합지졸(烏合之卒)이 아니라, 애굽의 모든 우상 신들을 당당히 꺾고 가나안 정복을 위해 행진해가는 여호와의 군대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성 경: [민10:29]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호밥에 대한 동행 권고]

(주); 미디안 사람 르우엘 - 르우엘은 모세의 장인으로서 미디안 출신 족장이다(출 2:26; 3:1). 그런데 사사기에서는 그를 '겐 사람'이라 호칭하였다(삿 1:16; 4:11). 이는 적어도 '미디안' 족속과 '겐' 족석이 상호 친밀한 유대 관계를 이루었거나, 아니면 통폐합되어 한 민족을 이루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미디안 제사장(출 20:16-18)이었던 '르우엘'은 성경 다른 곳에서 '이드로'(출 3:1; 4:18; 18:1) 혹은 '호밥'(삿 4:11)으로도 표기되었다. 여기서 '이드로'란 이름은 제사장으로 받은 새이름이거나 그의 신분을 지칭하는 특별 호칭인 듯하다. 그러나 사사기 4:11에서 모세의 '장인'으로 표기된 '호밥'이란 인물은 본절에서 표기된 대로 르우엘의 아들, 곧 모세의 처남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장인'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호텐'(*)은 결혼으로 인해 생긴 처(妻)쪽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인 바, 따라서 '장인'이란 의미 외에 '처남'이란 의미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문맥상 여기서 '호밥'은 르우엘(혹은 이드로)의 아들로서, 곧 '모세의 처남'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Keil, Matthew Henry). 그러나 그가 언제 매형되는 모세에게로 왔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렇지만 그의 아버지 이드로가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그의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데리고 모세를 방문했을 때(출 18:1-5) 같이 동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 주마 하신 곳으로...진행하나니 - 모세의 이 말은 이스라엘이 지금 목적(가나안 땅) 있는 여행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그들은 비록 현재 광야를 통과하는 방랑객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또한 반드시 들어가게 하실 가나안을 향해 진행하고 있다는 신앙과 소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도는 이 세상에서 비록 나그네에 지나지 않지만(히 11:13; 벧전 2:11), 달려가야 할 확실한 '푯대'와 (빌 3:14) 들어가야 할 영원한 '처소'(요 14:3)가 있기에 하루 하루를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다.

(주); 선대하리라(*, 헤타베누) - 이는 '좋게 만들다', '유익을 끼치다', '은총을 입다'는 뜻의 히브리어 '야타브'(*)의 사역형 능동태로써 곧 생활과 지위를 보장하며 각종 혜택을 제공할 것이라는 강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단지 인간 모세의 약속이 아니라 뒤이어 나오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여호와의 축복에 근거한 약속이었다.

(주); 여호와께서...복을 내리리라 - 이를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해 친히 말씀하셨다'(KJV, Jehovah has spoken good concerning Israel)이다. 즉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며 복주시고 은혜와 평강주시기를 약속하셨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6:24-26). 따라서 모세는 이 약속을 근거로 호밥에게 동행을 요구했으며 '선대'를 약속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1)하나님의 복은 한 개인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개방되어 있다(창 12:1-3). (2) 하나님 나라 건설에 동참한 자에게는 풍족한 은혜가 주어진다(마 25:34). (3) 인간의 동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성취하기도 하신다.

성 경: [민10:30]

주제1: [시내에서바란으로의 행군]

주제2: [호밥에 대한 동행 권고]

(주); 나는 가지 아니하고 - 호밥은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안락한 현실을 택하였다. 그러나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믿음과 소망으로 확신하는 것이다(히 11:1). 한편 호밥은 한번 거절했으나 , 모세의 강권에 못이겨 끝내 가나안 행에 동행한 것으로 보인다(Knobel). 그것은 후일 사사 시대에 그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거주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되었기 때문이다(삿 1:16; 4:11; 삼상 15:6; 27:10).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나라 건설에 유익한 일이라면 전력을 다해 매달릴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을 모른 자들을 강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토록 할 수 있어야 한다(눅 14:23).

성 경: [민10:31]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호밥에 대한 동행 권고]

(주);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 이는 길 안내자로서의 호밥의 필요성을 강변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구름의 인도로 말미암는 여호와의 절대적인 보호와 인도의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인간의 도움이 필요한 것인가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일에 인간의 지혜와 재능을 최대로 활용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어릴 적부터 이곳 신 광야 주변에서 자라온 호밥은 그곳 광야의 사정과 변화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터이라 가나안으로 향하는 보도 유리한 행군 노정과 구름이 머무는 근처에서 보다 지형적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진 칠 곳을 익숙히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200만 인구 중에 노약자나 유아 및 병자 그리고 가축까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꼭 요청되는 도움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가나안까지 무사히 이끌 책임이 있는 지도자 모세는 지금 처남에게 강청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민10:32]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호밥에 대한 동행 권고]

(주); 복을 내리시는대로...행하리이다 - 즉 여호와 앞에서 대등한 관계를 맺겠다는 약속이다. 29절 주석 참조.

성 경: [민10:33]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연약궤와 모세의 간구]

(주); 여호와의 산 -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출애굽 후 약 11개월 간 머물렀었던 시내산을 가리킨다(출 19:1,2). 자세한 내용은 출 3:1 주석을 참조하라.

(주); 여호와의 언약궤 -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하는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언약의 증표인 거룩한 십계명 두 돌판이 보관된 곳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언약의 산 '시내'를 떠날 때 이것을 메고 떠난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계속 지키고, 그분과 친교를 나누며, 그분의 명령에 따라 생활할 것을 나타내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스라엘의 행군 순서상(13-28절)에서는 언급되지 않던 언약궤의 위치가 여기에 비로소 나타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앞서의 언급이 행군의 보편적인 순서를 총괄적으로 언급한 것인 반면에, 여기서는 실제 행군 출발 시점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를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언약궤(법궤)의 위치를 분명히 명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 삼일 길에 앞서 행하며 - 이는 언약궤가 도보로 3일 정도의 거리 앞에서 이스라엘의 행군을 주도했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시내산에서 출발하여 도착지 기브롯 핫다아와(11:34)까지의 3일 여정동안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의 선두에 있었다는 말이다.이와같이 광야 40년동안 언약궤는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의 행군을 주도해 갔다<14절>.

성 경: [민10:34]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언약궤와 모세의 간구]

(주); 행진할 때에...구름이...덮였었더라 -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표인 구름은 진이 머무를 때에만(9:16) 이스라엘 곁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구름은 작열하는 정오의 태양을 내내 막음으로써(시 105:39), 이스라엘의 걸음을 인도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아마 법궤 위에 높이 떠 있는 거대한 구름 덩어리의 그늘이 이스라엘의 행군 대열 위에 드리워진 것 같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감격과 평온을 늘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큰 감격과 기쁨은 대대로 전해져 후일 시인과 선자자의 입을 통해 다시금 고백되어졌던 것이다(시 91:1; 사 25:4).

성 경: [민10:35]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언약궤와 모세의 간구]

(주); 여호와여 일어나사 - 여기서 사용된 '일어나다'(*, 쿰)는 말은 신인동형동성론(Anthropomorphism)적 표현으로, 단순히 앉았던(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는 상태가 아니라 다음 동작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모세가 여호와로 하여금 일어나시도록 간구한 목적은 (1) 대적들을 진멸하도록 하기 위함이며(시 33:10; 사 14:20), (2) 그로 인해 이스라엘을 돕고(시 35:2; 44:26) 구원토록 하기 위함이다(렘 2:27).

(주); 주의 대적...주를 미워하는 자 - 하나님의 선민(選民)인 이스라엘을 적대시 하고 증오하는 자는 곧 하나님을 대적하고 미워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나타낸다. 사실 고대 근동 지방에는 각 나라에 국가신(國家神)이 있었는데, 전쟁의 승리는 곧 승리국의 국가신이 패전국의 신을 누른 것으로 간주하였다(삼상 5:1; 왕하 24:13; 25:14,15). 이런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과 하나님과는 존망(存亡)을 같이하는 운명 공동체임을 확신했다.

(주); 흩으시고...도망하게(* ... , 야푸츠 야누스) - 여기서 '흩다'는 말은 원래 '산산히 깨뜨리다'는 의미로써 흔적도 없이 무너뜨림을, 그리고 '도망하다'는 말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짐을 뜻한다. 결국 이말은 대적에 대한 완벽한 승리를 의미한다.

성 경: [민10:36]

주제1: [시내에서 바란으로의 행진]

주제2: [언약궤와 모세의 간구]

(주); 여호와여...돌아오소서 - 여기서 '돌아오소서'(*, 슈바)란 말은 그 해석상 다양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이 말은 '구원하소서', '회복하소서', '새롭게 하소소', '축복하소서' 등으로도 번역된다. 이곳에서는 어느 한가지 해석을 취하기보다 그 모두를 취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임재해 계시지(돌아오지) 않으시면, 구원과 회복은 물론이요 변화 및 축복도 불가능하지만, 그분이 함께 하실 때는 그 모든 것이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사 63:11-14).

(주); 이스라엘 천만인 -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뜻이다<1;16>. 사실 이들이 군대 편제상으로 조직은 되었지만, 모세가 보기에 무기도, 변변찮고 전투 경험도 없을 뿐 아니라 수많은 노약자 및 유아와 여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명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들이 막강한 토착 세력인 가나안 족을 정복하러가는 것은 전적으로 여호와의 도우심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 진영이 쉴 때에 일단 떠나가 있었던 구름이 다시 돌아오기를 누구보다도 간절히 원하고 원했던 것이다.

성 경: [민11:1]

주제1: [만나에 실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다베라의 불 사건]

(주); 백성이...약한 말로 원망하매 -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그리고 백성이 여호와의 귀에 악하게 불평의 소리를 발하는 불만자들이 되었다'이다. 그 당시 백성들은 시내산을 막 출발하여 가데스 바네아를 향한 '3일 길'(10:33) 도상에 있었다. 그들은 시내 산에서 약 1년여를 머물면서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으나,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광야 여행과 가나안 정복은 그저 불안하고 요원(遙遠)하게만 보였으며 또한 주변의 척박한 환경은 그들로 하여금 불안과 초조에 떨게 했을 것이다. 이에 그들은 가나안 땅에 그들의 거처를 마련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하나님을 거스리는 말을 거침 없이 내뱉게 되었다. 특별히 본문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가나안 여정상 당연히 요구되는 광야 여행의 고생과 어려움을 제외하고는 그들에게 특별히 불평될 만한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노엽게할 만한 불만을 터뜨렸다는 점이다. 이처럼 불평은 (1)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할 때, (2) 그리고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때 생겨나는 인간의 본성적인 악이다(출 16:2-8).

(주);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 하나님은 당신 백성의 모든 언행 심사(言行心思)를 관찰하고 계신다(잠 15:3).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신가를 대변해 준다.

(주);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 여호와께서 진노하신다는 말은 신인동형동성론(anthropomorphism)적 표현으로서, 곧 당신의 공의로우심과 영광이 손상당하실 때 그 속성상 우러나오는 신적(神的) 반응을 두고 한 말이다. 한편 여기서 '여호와의 불'이란 여호와께로부터 직접 분출되는 불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초자연적으로 일으키신 불을 말한다(Keil). 그리고 이것은 불(구름) 기둥에서 뿜어나온 것인지, 아니면 번개로 인한 것인지는 알 길 없으나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것임에 분명하다(출 19:18; 레 10:2; 신4:11).

(주);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 하나님은 진(陳) 전체에 심판의 불을 확산시키지 않으시고 단지 이스라엘 진의 가장자리에 쳐진 장막에만 불을 붙이셨다. 이는 이 심판이 철저한 멸망을 목적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을 환기시켜 바른 길로 가게하려는 데 있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여호와의 위엄을 현시하여 경외심을 갖게 함으로써 다시는 그러한 불평 불만을 터뜨리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었음을 보여준다(Keil & delitzsch). 그런데 2절에 나타나는 바 백성의 다급한 '부르짖음'으로 보아 진 끝을 사른 여호와의 불길은 그 위력이 대단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에 출애굽하여 시내 산으로 향할 때에도 같은 불평이 있었으나(출 15:24; 16:2), 그때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곧 시내 산 언약을 중심으로 그 이전의 이스라엘은 마치 젖먹이 신앙과 같았기 때문에(고전 3:2) 하나님께서 묵인하셨으나, 시내 산 율법 전수 후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보다 분명히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정면 거스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징계를 내렸던 것이다.

성 경: [민11:2]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다베라의 불 사건]

(주); 백성이...부르짖으므로 - 여기서 '부르짖다'(*, 차아크)란 말은 '비명을 지르다'(shriek), '울부짖다'(cry out)란 뜻이다. 곧 진(陳) 끝으로부터 맹렬히 타들어오는 불의 기세에 놀라 자기도 모르게 겁에 질려 울부짖는 상태를 가리킨다.

(주); 모세가...기도하니...꺼졌더라 - 여기서 '기도하니'(*, 이트팔렐)란 말은 '중재하다', '탄원하다', '판단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팔랄'(*)에서 유래한 말로, 곧 여호와께 절규하듯 간청하면서 그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다는 의미이다. 즉 백성들이 불평, 원망한 죄를 용서해 줄 것을 모세가 증보 기도한 것이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맹렬한 불길을 거두어 가셨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불평이 가져다 주는 심각한 결과를 깨닫게 하시는 것으로 그 목적하신 바를 이루셨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모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이웃의 생명과 구원을 위한 의인의 중보 기도는 그 역사하는 힘이 큼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었다(약 5:16,19,20). 일찍이 모세는 금송아지 숭배사건에서도 간절한 중보기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한 바 있었다(출 32:11-14).

성 경: [민11:3]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다베라의 불 사건]

(주); 다베라(*, 타브에라) - '불 붙이다', '소멸하다', '잔인하다' 등의 뜻을 지닌 '바아르'(*)에서 유래한 말로써 곧 '불붙음'이란 뜻을 지닌 지명이다(신 9:22). 그러므로 이곳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징벌을 자초하는 일임을 오고오는 세대에 교훈해 주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성 경: [민11:4]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 섞여 사는 무리 - 출애굽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빠져나온 이방인을 가리킨다<출 12:38>. 이들은 할례를 받기 전에는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12지파의 본진(本陳)에 소속되지 못한 것 같고, 아마 각자 연관을 맺고 있는 지파에 붙어서 '식객'(食客)노릇을 했던 것 같다(Pulpit Commentary). 그러므로 이들은 자연히 민족적 자긍심이나 대대로 전해져 오는 여호와 신앙 및 가나안을 향한 소망에 있어 현저히 결여될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광야 여행 중 어려운 고비 때마다 제일 먼저 불평 불만을 터뜨렸던 것이다.

(주); 탐욕을 품으매 - 탐욕이란 절실히 필요한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분수에 넘치는 것을 무리하게 취하고자 하는 마음이다(창 3:6). 그들은 현재 맛있는 음식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들(가나안 정복, 하나님 뜻의 성취)이 산적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욕심을 따라 원망을 일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욕심은 끝내 죄와 죽음을 불러오는 파괴적인 욕망이다(약 1:15).

(주);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 '섞여 사는 무리'들의 불평 불만이 곧 이스라엘 백성들에게까지 전염된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울다'(*, 바카)란 말은 '통곡하다'는 뜻 외에 '애통한다', 즉 '몹시 한탄하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과거에 즐겼던 음식들(5절)을 못내 아쉬워하며 현 생활을 비관하고 낙담하면서 후회와 불만섞인 울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이처럼 죄는 전염성과 파괴성이 강하여 온 공동체를 일시에 불신과 파멸의 상태로 이끌고 만다.

(주);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출애굽시 몰고나온 많은 가축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가축들은 제사 제물용으로, 혹은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모를 광야 여행에 대비하여 보존용으로 삼았음에 틀림없었다(Keil). 만일 자유로운 식용 도살이 허영되었더라면 그 가축들은 얼마 못가서 다 없어지고 말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금 먹고 있는 만나 외에 좀더 자극성 있고 입맛을 돋구는 마늘이라든지 동물성 고기를 원했던 것이다.

성 경: [민11:5]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먹은 것 -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장된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작열하는 태양 볕 아래 채찍을 맞아가며 힘든 노동을 한 대가로 음식을 얻을 수 있었을 뿐이지 결코 본절의 표현처럼 '공짜로' 음식을 구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그 당시 나일강에서는 많은 물고기들이 잡혔다고 한다(Diodotus, Herodotus, Strabo, Hengstenberyg).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그것을 무료로 제공받은 것이 아니라, 죽음과 같은 노동 이후에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값비싼 음식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현실이 조금 힘들다고 생각한 나머지 민족의 자주 독립이나 개인의 인권 회복 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전날의 치욕스런 노예 생활에서 빌어먹었던 사실을 과장하여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주); 외(*, 키슈임) - 연하고 단맛이 나는 오이로서, 오늘날 '카테'(katteh)라 불리운다.

(주); 수박(*, 아비티힘) - 고온과 풍부한 습기를 지닌 애굽의 기후 조건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과일이었다. 오늘날 '밧티에'(battieh)라 불리운다.

(주); 부추(*, 하치르) - 본래는 '풀'을 뜻하는 말이나 여기서는 각종 푸성귀를 일컫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 파(*, 베찰림) - 고대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이것은 늘과 더불어 피라밋 공사 때 노동자들에게 제공된 주요 음식이었다고 한다. 애굽의 기후 조건상 이 파의 재배도 매우 잘 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노동자 계층의 음식으로 즐겨 사용된다고 한다.

(주); 마늘(*, 슈밈) - 파와 더불어 노동자들에게 힘을 돋구는 음식물로 즐겨 사용되던 것으로, 오늘날 '툼'(tum)이라 불리운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66). 따라서 1년여 동안 이것들은 섭취하지 못했던 애굽 노동자 출신 잡족과 또한 이스라엘인들에게는 괴로운 일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한 기쁨과 만족을 위해 잠시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어야 했다. 이것이 참 신앙인의 자세이다.

성 경: [민11:6]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 정력에 쇠약하되 - 원문에는 '정력'이 '영혼'을 뜻하는 '네페쉬'(*)로 표기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는 인간의 '영혼'을 뜻하기 보다 인간의 '육체' 또는 그 육체와 연관된 '기력'으로 이해함이 옳다(잠 23:2; 전 6:7). 그러므로 '정력이 쇠약하다'는 말은 자신들의 식용과 원기를 돋굴만한 음식을 오래도록 먹지 못했기 때문에 몸이 약해졌으며 반복되는 식생활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진정 그들이 약해진 것은 몸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정신 상태였다.

(주); 만나 외에는...아무것도 없도다 -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가장 완전한 건강식인 '만나'<출 16:15>를 팽개치고 과거의 얼큰하고 자극적인 음식물을 찾기에 급급한 이스라엘 백성의 저급한 불만이다. 실로 세상의 자극적인 향략과 얼큰한 탐욕에 취한 자들에게는 하늘의 순수하고도 담백한 신령한 음식이 눈에 차지 않는 법이다(요 6:66-68). 이러한 사실을 주석가 바움가르텐(Baumgarten)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것은 정결하고 순수한 음식물의 은근한 맛을 계속 즐기지 못하고, 자신의 내적 탐욕으로부터 생겨나는 바 툭 쏘고 시큼한 맛이 뒤섞인 자극적인 음식물을 갈구하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기인한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67).

성 경: [민11:7]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 만나(*, 만) - 직역하면 '(이것이) 무엇이냐'(what)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을 70인역(LXX)이 헬라어로 번역하면서 '만나'(*)라고 하였기에 개역 성경도 그 음역을 따라 이처럼 번역한 것이다.

(주); 깟씨...진주와 같은 것 - 이것은 그렇게 크지 않은(대략 굵은 모래알 크기) 타원 형태의 음식물로 보여진다. 그리고 그 색깔에 있어서는 출 16:31과 본문의 '진주'(계 2:17)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볼 때 아비보리(ivory) 색 정도로 상상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깟씨'는 미나리과에 속하는 고수풀(coriander)의 씨를 가리키는데, 크기는 직경 약 3mm 정도되며, 향료 또는 조미료로 사용된다.

성 경: [민11:8]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 갈기도...찧기도...삶기도 - 이것은 만나가 백성들의 다양한 입맛 취향에 따라 요리해 먹을 수 있도록 원재료로 주어진 것을 뜻한다. 따라서 백성들은 만나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것을 요리하지 않은 채로 먹었으나(출 16;15,16) 시간이 경과 함에 따라 다양하게 요리해서 먹은 듯하다.

(주); 기름 섞은 과자맛 - '기름'과 '꿀'(출 16:31)과 '초'(6:3)는 음식물에 발라 먹는 향신료로서, 이것들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만나'는 그 맛이나 모양에 있어서 최상의 음식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만나의 모양과 맛을 자세히 언급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지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성 경: [민11:9]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 이슬이...내리 때에 만나도 - 하늘 창고에서 내려진는 만나는 차가운 새벽 이슬과 더불어 지상에 내려졌고, 해가 떠오르는 아침녘에 사라졌다(출 16;20,21). 열을 가하여 요리하는 경우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만나가(8절) 일정한 시간이 차 기온이 오르게 되면 자동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분명 만나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초자연적인 음식임을 반증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당신이 제공하는 신령한 음식을 위해서는 영육간에 부지런해야 할 것을 또한 간접적으로 가르치셨던 것이다. 아울러 당신이 제공하는 선물들에 대해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강조하셨다. 한편, 일부 비평학자들은 만나가 광야에서 자생하는 식물의 진액이라고 주장하나 이것은 터무니 없는 억지이다. 이에 대해서는 출 16:15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11:10]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모세의 호소]

(주); 백성의 온 가족들이...우는 것을 - 군중 심리에 편승된 죄악(불평)은 이스라엘 전역을 오염시켰고, 따라서 온 민족이 혈기와 방종으로 마치 어린아이 같이 울어댔다(슥 2;13). 이에 하나님은 '진노'하셨다. 그러나 이 '진노'는 1절이나 33절에서처럼 행동화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불평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음으로써 표현되고 있다.

(주);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 여기서 모세가 불유쾌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도를 넘어 불만을 터뜨리고 혈기를 부리는 백성들과 (2) 그에 대해 진노하시는 여호와 때문이었다. 즉 모세는 무한정으로 불평을 일삼는 백성들의 완악함에 대해 그 역시 불만을 품었고, 동시에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옳게 조처할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주시지는 않고 침묵으로 당시의 진노만을 표현하시는 하나님께 유감을 표시했던 것이다(시 44:23; 사 51:9). 또한, 곧 이어 11절에 반복해서 '어찌하여'라는 말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그의 유감의 정도가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여호와께 대한 도전이나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책임진 지도자들이 한계 이상의 하중(荷重)을 받을 때 누구나 느끼는 무력감에서 비롯된 것이다(11-15절). 그럼에도 그의 유감은 분명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미숙한 감정 표현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성 경: [민11:11]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모세의 호소]

(주);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하시나이까 - 이는 모세의 착각이었다. 출애굽의 궁극적인 책임자는 하나님으로서 그분이 이스라엘의 필요를 모두 공급해야 했으며 또한 '약속대로' 그들을 안전히 가나안으로 인도할 책임이 있었다. 모세는 단지 그분의 대언자요 도구일 뿐이었다. 더욱이 여기서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 자요, 혼자 '짐을 떠맡은 자'로 생각했는데 실은 하나님께서 날마다 그에게 은혜를 더하셨고 그의 어러움을 낱낱이 해결해 주셨다(출 14:13-31; 16장). 결국 그가 '괴로움'을 느낀 근본 원인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쉽게 좌절해 버린 연약한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다.

성 경: [민11:12]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모세의 호소]

(주);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 모세는 이스라엘이 한 민족과 국가로 '잉태'하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이며, 또한 그 민족에게 가나안을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출 20:2). 그러므로 본절은, 고기를 달라고 불평하며 아우성치는 백성들을 돌볼 책임은 모세 자신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모세의 책임 전가성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즉 '당신이 이스라엘의 아비이니 이 사태를 당신이 책임지라'는 식의 체념과 불만 섞인 항변을 하나님께 한 것이다.

성 경: [민11:13]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모세의 호소]

(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그리고 그들과 하나님과의 중재자로서 이때 모세는 그 고기를 '하나님께로부터' 얻어야 했다. 그러나 모세는 지금 복받쳐 오르는 감정으로 인해 자신의 그 막중한 임무를 망각한 채, 마치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책임을 벗기에 급급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민11:14]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모세의 호소]

(주); 나 혼자는...질 수 없나이다 - 위대한 출애굽의 지도자요 신앙의 인물인 모세 역시도 결국 나약한 인간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그는 하나님의 큰 일꾼으로 부름받았으나(출 3:1-4:31), 자기 혼자 사명을 감당하기엔 고독했고 힘이 부쳤다. 따라서 지금 모세는 불평 섞인 요구로나마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섞인 요구에 대해 하나님은 한마디도 질책하지 않으시고 모세를 보필해 줄 70인의 장로들을 그의 옆에 두심으로써 그의 고통스러움을 들어 주셨다(16-25절).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주위의 동료를 통해서도 당신의 사랑와 은혜를 전달해 주신다.

성 경: [민11:15]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모세의 호소]

(주);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 직역하면 '은혜를 베푸실 양이면 주저하지 마시고 단번에 저를 죽이시어'가 된다. 이제 모세는 현실 도피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로 매우 심약(心弱)해졌다. 즉 그가 죽기를 원한 것은 사도 바울의 경우처럼 하나님과의 영원한 동거를 사모해서가 아니라(고후 5:8), 단지 불만을 토로하는 백성들의 완악함으로 인한 '곤고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자에게는 현실의 고충 때문에 죽음을 운운하거나 맡겨진 사명을 내팽개칠 수 없다. 그에게는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는 신앙과 끝가지 참고 견디는 인내만이 요구될 뿐이다(시 50:15; 렘 33:3).

(주);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 여기서 '곤고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는 '고통', '재난', '불행', '슬픔' 등 온갖 인생의 '험악한 일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따라서 모세는 이제 시내 산을 출발하여 가나안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노정에서 벌써 이 정도의 곤고함이 자기 앞에 닥친다면, 앞으로 이 백성들을 이끌고 어떻게 계속 가나안 행군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짐작에서 하나님께 죽음을 요청하고 잇는 것이다. 즉 그는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그 소망의 열매도 보지 못하고 어차피 죽을 바에야 차라리 지금 죽은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생각은 출애굽을 시킨 분이 하나님이시며, 또한 가나안 땅을 약속한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모세는 자신은 단지 앞장 서는 선두 주자일 뿐, 이스라엘을 친히 이끄시고 인도하는 책임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모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먼저 기도로써 하나님의 도움을 청했어야 옳았다.

성 경: [민11:16]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주); 장로(*, 자켄) - 나이 많고 경륜과 지혜와 덕망을 고루 겸비한 자로서 백성을 지도할만한 자들이다. 맡은 일이 무겁다는 모세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은 그를 도울 지도자 70인을 세우셨다. 특별히 여기서 '70'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완전수' 또는 '하나님의 수'로 상징되고 있다.(출 1:5; 단 9:2,24; 눅 10:1). 이는 장로들이 모세의 무거운 짐을 완전히 덜어 주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진 자들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한편 후대에 이르러 유대인들은 바로 이곳에서 산헤드린 구성 인원의 근거를 찾았다고 한다(Pulpit Commentary).

(주); 유사(*, 쇼테림) - 군사, 행정에 유능한 인물을 가리킨다. 결국 모세에게 보내진 자들은 인격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실무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자들이었으며 주로 세상적인 일보다 모세와 더불어 종교적이며 거룩한 일에 투입될 자들이었다.

(주); 네가 아는 자 - 이는 모세의 동역자를 선택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모세의 재량권을 대폭 하락하셨음을 보여 준다.

(주); 회막 내 앞 이르러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공식적인 인준을 위해서 모세가 택한 70인의 장로와 유사들을 당신의 임재 처소 앞으로 오게 하셨다.

성 경: [민11:17]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에대한 하나님의 약속]

(주); 내가 강림(降臨)하여 - 이 약속은 25절에서 성취되었다. 즉 하나님은 구름 가운데 강림하셨다. 이는 회막 위에 떠올랐던 구름이 회막으로 내려 앉은 것을 의미한다(12:5; 출 33:9; 신 31:15). 그리고 강림하신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장로들에게 각자가 수행해야 할 임무를 말씀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부족하고 모난 인간을 '찾아오셔서', '함께 하시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가 최고조에 달했던 사건이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이다(요 1:14). 즉 예수의 강림으로 인해 인간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마 1:21,23).

(주); 네게 임한 신(神) - 여기서 '신'이란 흔히 '바람'을 뜻하는 히브리어 '루아흐'(*)에 정관사 '하'(*)가 결합된 형태로서, 곧 '성령'(the Spirit) 또는 그 '성령의 은사'(gifts of the Spirit)를 의미한다. 이처럼 성령은 하나님께서 인준하신 자들 위에 임하셔서 각자에게 필요한 풍성한 은사와 능력을 부어 주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수행케 하신다(삿 3:10; 6:34; 삼상 10:6,10).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슥 4:6). 그래서 성령은 구약 시대에도 어떤 특별한 자들에게 임했는데, 그 대표적인 겅우가 브사렐(출 35:30), 옷니엘(삿 3:10), 기드온(삿 6:34), 입다(삿 11:29), 삼손(삿 13:25) 등이다(L.Wood). 그러나 구약 시대 당시 성령의 활동은 극히 제한적이고 한시적(限時的)이어서, 제한된 인물에게 한시적으로 임했다. 따라서 때로 성령은 떠나가기도 하였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경우가 그에 해당된다(삼상 16:14). 그러므로 다윗은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대강림 사건(행 2:1-4) 이후의 성령은 떠나지 아니하시고 영원토록 내주하신다(요 14:16).

성 경: [민11:18]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주); 너희 몸을 거룩히 하여 - 여호와의 초자연적이고 은헤로운 사역을 위해서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바는 성결이었다(출 19:10; 수 3:5). 하나님은 영육간에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지 않는다(마 22:11-13).

(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 고기 먹기를 소원하는 것 자체는 인간의 생리적 욕구로써 큰 흠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잘못은 고기에 대한 욕구가 지나쳐 현재 주어진 것에 감사치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먹지 못하는 현실로 인해 원망섞인 탄식을 한 데 있었다. 이것은 실로 자신들의 처참한 옛 처지를 망각한 배역 무도한 행위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불만에 징계로 대응하시기 보다 고기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이는 그들의 요구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싫도록 고기를 먹는 가운데 자신들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불손했음을 스스로 자각하도록 하기 위함인 듯하다(눅 15:11-21).

(주);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 있었다 - 이는 출애굽을 주도하시고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지극히 모독하는 처사이다. 이처럼 크신 은혜를 멸시하고 과거 애굽의 노에 시절을 동경한 배은망덕한 태도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된 이유였다(20절).

성 경: [민11:19,20]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주); 코에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 - 달리 표현하면 '고기에 질려 가까이 하기 싫어질 정도가 될 때까지 1개월간'이다. 여기서 '1개월간'이란 '기브롯 핫디아와'에서의 짧은 체류 기간을 생각한다면 숫자적으로 정확한 '1개월'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고기에 질린 정도의 기간을 빗대어 한 말이라 볼 수 있다.

(주); 여호와를 멸시하고 -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근본 동인이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와 약속 모두를 멸시하고 자신들의 죄악된 욕구를 따라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멸시하다'(*, 마아스)란 말은'내쫓다', '증오하다', '비난하다'는 의미도 내포된 것으로서,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의뢰하거나 자신들의 왕으로 모시지 않고 오히려 그분의 약속과 구원 사역을 비난하고 업신여겼음을 가리킨다.

(주);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 -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 그 혹독한 사역에 못이겨 '탄식하며 부르짖었다'(출 2:23). 하나님께서는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사 당신의 크신 권능으로 그들을 바로의 손에서 구출하셨다. 그러한 출애굽 사건이 고작 1년여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광야 노정이 좀 고달프다고 해서 그들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라고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 광야 생활은 고생을 위한 고생이 아니라 가나안 땅을 목적하는 의미있는 고생임에도 불구하고이처럼 배은망덕한 언사를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실로 그들은 가나안 땅을 차지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다. 그런고로 광야 여정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불평과 원망으로 일관된 패역의 노정이요, 하나님께 있어서는 긍휼과 인내로 일관된 은총의 노정이었다.

성 경: [민11:21]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주); 보행자가 육십 만 명이온데 - 여기서 '보행자'(步行者)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장정들을 가리킨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20세 이상된 장정(壯丁)으로서 '603,550명'의 보행자를 거느리고 있었다(1;46). 이에 비추어볼 때 전체 인구는 200만 명이 족히 넘었을 것이다<출 12:37>.

성 경: [민11:22]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주); 그들을 위하여...잡은들 족하오며 - 일찍이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셨던 신 광야 사건(출 16:13)을 목격했었던 모세로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겠다고 정하신 일은 능히 성취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모세는 백성들의 불평과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해 언짢아졌던 감정<10절>이 채 가시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배려에 대해(19,20절)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한편 '양떼와 소떼'는 애굽에서 탈출해 나올 때 가져온 것으로서 주로 제사용으로 많이 사용되어야 했고(출12:32), 그리고 '바다의 모든 고기'는 그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전혀 구할 수 없었던 음식물이었기에 이러한 모세의 말은 그의 불편한 심기(心氣)를 대변해 주는 표현이다.

성 경: [민11:23]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주);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 결코 변함없는 여호와의 무한하신 능력을 설의법(設疑法)적인 표현으로 강조한 것이다. 더욱이 이는 애굽에서 바로를 억누르신 능력, 홍해를 가르신 능력,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신 능력 등을 벌써 잊어버렸느냐는 책망이 섞인 표현이기도 하다(잠 30:4; 사 40:12).

성 경: [민11:24]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세움 받은 칠십 장로]

(주); 백성의 장로 칠십 인을 모아 - 이들을 모으는 일은 전적으로 모세의 권한에 일임되었다(16절). 따라서 혹자는 여기서 모세의 보필자로 뽑힌 장로 70인은 약 1년 전 시내 산 언약체결 후 시내산 중턱에서 모세와 아론과 더불어 친교의 음식을 먹었던(출 24:9-11) 바로 그 70인의 장로라고 보기도 한다(Pulpit Commentary).

성 경: [민11:25]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세움 받은 칠십 장로]

(주); 그에게 임한 신을 칠십 장로에게도 - 혹자는 여호와께서 진노하셔서 모세에게 임한 성령의 은사를 감소시키기 위해 이런 조치가 취해졌다고한다(Calvin). 하지만 이 조치는 '70인 장로'가 모세를 돕기 위해 선택된 자들이란 점에서(16,17절), 모세의 능력을 감소시킨 것이라기 보다 모세와 더불어 일할 자들에게 동일한 성령의 은사를 수여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keil, Targum). 이는 데오도렛(theodoret)이 표현한 바 "마치 불을 다른 곳에도 옮겨 붙이기를 원하는 자가 근원이 되는 그 최초의 불을 끄지 않듯, 하나님께서도 모세에게 내린 성령의 불길을 조금도 감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으로 다른 70인의 장로들에게 옮겨 붙이신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I-iii.p.70).

(주); 예언을 하다가(*, 이트나베우) - 문자적으로는 '계속해서 지껄이다', '많은 말로 탄원하다'로써 곧 성령의 감동에 의해 신적인 황홀경에 몰입되어 다발적(多發的)인 말을 하는 상태를 일컫는다(Keil). 그러므로 이것은 일반 예언자들에 의해 선포되어지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신적 권위를 부여받은 사실을 가시적(可時的)으로 증명하고, 그로 인해 백성들이 '70인 장로'에게 복종하도록 하기 위한 성령의 특별하신 감동으로 볼 수 있다(삼상 10:6).

(주); 다시는 아니하였더라(*, 로 야세푸) - 이는 '더이상 계속하지 않았다'(RSV. did so no more). '되풀이 하지 않았다'(NIV. didl not do so again)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멈춤'은 영원히 '예언'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일순간 예언하다가 곧바로 멈춘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그들이 예언을 멈추었다고 해서 그들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세를 도와 여호와 신앙을 보존하는 일과 백성들을 개도해가는데 필요한 능력을 계속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고전 12:28).

성 경: [민11:26]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엘닷과 메닷]

(주); 녹명(錄名)된 자 - 모세가 자신을 보필할 70명의 장로 명단을(16절) 작성해 두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애굽에서 40년간 교육받은 모세로서는 자연스로운 일이다(행7:22).

(주); 엘닷...메닷...진에서 예언한지라 - 엘닷(뜻: 하나님의 친구)과 메닷(뜻: 우정)이 회막 앞에 모이지 않고 진에 남아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아마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조차도 성령의 능력을 덧입혀 예언하게 하셨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상황과 장소와 시간에 구애됨 없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활동하신다(시 139:17).

성 경: [민11:27]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엘닷과 메닷]

(주); 한 소년(*, 한나아르) - 문자적으로 '한 청년기의 젊은이'를 가리킨다. 그는 '예언'과 같은 신령한 일이 거룩한 회막에서가 아니라, 개인의 거처인 진(陳) 중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 같다. 이는 마치 신약시대에 유대 할례자들이 이방인 중에서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사실에 놀랐던 것과 흡사하다(행 10:44-48).

성 경: [민11:28]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엘닷과 메닷]

(주); 택한 자 중 한 사람 - 모세에게 수종들던 자가 최소한 두 명 이상이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그 중 여호수아가 가장 신임받던 수종자였다(출 17:9; 24:13; 32:17).

(주); 내 주 모세여 금하소서 - 여호수아는 모세를 수종들던 신실한 종의 입장에서 모세의 명예를 위하여 엘닷과 메닷이 아무런 모세의 지도나 중재도 없이 개인 거처에서 예언한 것을 놓고 시기하였다. 따라서 그는 그 일을 이스라엘의 행정적 기강과 모세의 권위를 침해한 일로 단정하였다. 이는 마치 신약 시대에 예수의 제자들이 축사(逐邪)하는 어떤 자에게 대해 주님의 명예를 위하여 흥분했던 것과 유사하다(막 9:38-40). 그러나 이 모두는 성령과 그 역사의 초월성을 이해하지 못한 공연한 질투였다.

성 경: [민11:29]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엘닷과 메닷]

(주);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 인간적인 판단에 따라 개인 거처에서 예언한 자들을 시기했던 여호수아에 대한 모세의 질책이다. 여기서 '시기하다'(*, 카나)란 '열정적으로 샘내다(질투하다)'는 뜻으로서 여호수아의 건의가 매우 감정적이고 불순한 동기에서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즉 그는 모세의 절대 권위가 그를 수종드는 자신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 여호와께서...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 여기서 '선지자'란 하나님께로부터 전달된 메시지를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고 인간들에게 그대로 선포하는 자를 가리킨다(출 7:1; 겔 3:4; 암 3:8). 이들은 왕이나 제사장처럼 세습에 의해 그 직무를 맡지 않고, 당신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에만 직무를 감당했다. 한편 '선지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나비'(*)의 어원은 정확히 알수 없으나, 그 용례를 통해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즉 그의 직무는 (1)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알아 선포하며 (2) 백성을 가르치며, 인도하기 위해 말씀을 선포하고 (3) 타락시에는 담대히 신적 심판(divine judgement)을 선포하여 백성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 등을 하였다. 한편 모세는 모든 백성이 위와 같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고 전하며 성령에 사로 잡히게 되기를 원하였다. 따라서 그는 성령의 은사를 독점하거나, 그 주어진 능력을 동원하여 자기의 지위를 절대화하려 들지 않았다. 이처럼 자기의 권위와 지위를 중요시 하기보다 이스라엘 전체의 영적 성숙을 추구했던(욜 2:28) 모세야말로 하나님 집에서의 모범적인 지도자 상(像)을 구현한 자이다. 한편, 그런데 그의 이러한 신앙적 소망은 후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각 성도에게 충만히 임하신 성령을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다(눅 23:45; 요 14:16; 행 2;1-4).

성 경: [민11:30]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엘닷과 메닷]

(주); 진 중으로 돌아왔더라 - 혹자는 이 말을 근거로 회막은 진(陳) 바깥에 세워져 있었다고 간주하고, 따라서 본장의 70인 장로 예언 사건은 성막이 건립되기 전 임시로 세운 장막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결국 여기 70인 장로 임명 사건이 출 18장에 나타나는 재판관 임명 사건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Vater, Knobel). 그러나이것은 분명 억측이다. 왜냐하면 비록 장막이 진 중앙에 위치했다 할지라도 백성들의 진과 장막 사이에는 레위 자손들의 거처가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거쳐가야 하므로 위의 표현처럼 진 중으로 돌아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Keil, Pulpit Commentary). 한편 이들과 재판관 사이의 관계는 분명치는 않지만, 이들 장로 70인이 (1) 성령을 받았다는 점에서 (2) 그리고 숫자면에서 더 적었다는 점에서 더 높은 권위를 갖게 되었다고 봄이 무난할 것 같다(L.Wood, A survey of Israel's History)

성 경: [민11:31]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와 기브롯 핫디아와 사건]

(주); 바람이...메추라기를 몰아 -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여기서는 바람의 변화를 주도하셔서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장면이다. 시편 78:26,27에 의하면 이때의 바람은 동남풍 곧 아카바만에서 발원하여 신 광야를 거쳐 지중해 쪽으로 부는 바람을 가리킨다. 한편 '메추라기'로 표현된 철새 떼들을<출 16:13> 봄에 떼를 지어 중앙 내륙 아프라카에서부터 북상(北上)하여 앗시리아 쪽으로 이동하는데, 이때 힘에 겨운 새들이 가끔 팔레스틴 지역에 떨어지곤 한다. 이 경우 손이나 막대기로 기진한 새들을 손쉽게 잡을 수 있다고 전한다(Knobel). 그러나 여기서는 자연적인 현상을 추월하여 하나님께서 동남풍을 이용하여 바로 이 철새떼들을 이스라엘 진 위에 소나기처럼 무더기로 떨어뜨리셨던 것이다

(주);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 - 메추라기가 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면에 하룻길(약 32km) 정도에 걸쳐 지면에서 두 규빗(1m) 높이로 쌓였다. 혹자에 의하면 이것은 이때 땅 위 1m까지 메추라기가 쌓인 것이 아니라, 기진한 수많은 새들이 1m 높이 정도에서 날아다님으로써 백성들이 손쉽게 잡을수 있었던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Targum, Vulgate). 그러나 이는 "적게 모은 자도 10호멜"(약 120말)이라는 다음 절(32절)의 표현과 조화되기 어렵다. 따라서 이는 말 그대로 기진맥진한 메추라기 떼가 이스라엘 진 사방에 그냥 맥없이 떨어져 쌓였다고 봄이 옳다(Kiel).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당시 보기만해도 질릴 정도의 엄청난 고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분명하다.

성 경: [민11:32]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와 기브롯 핫디아와 사건]

(주); 백성이...이튿날 종일토록 - 백성들은 그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이틀간 닥치는 대로 메추라기를 모아들였다. 그들이 모은 양이 곧 그들의 탐욕 정도를 대변해 준다. 즉 그들 중 적게 모은 자가 '십 호멜'(약 2,200리터=120말) 정도였으므로, 전체 백성들이 거둬들인 양은 헤아릴 수 없을만큼 엄청났음이 분명하다. 특히 그들의 원망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처럼 당신의 크신 권능을 친히 나타내셨건만, 자신들의 부그러움을 깨닫고 자숙(自肅)하기는 커녕 서로 더 많이 모으겠다고 아귀다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백성의 완악함을 보게 된다.

(주); 호멜 - 호멜(homer)은 구약 시대의 고체 건량 단위로서 한 호멜은 약 6 부셀(bushel)에 해당한다(P.B.Y. Soctt, The Biblical archaeologist). 그리고 한 '부셀'은 대략 36리터(약 2말 1홉)에 해당된다.

(주); 진 사면에 펴 두었더라 - 햇볕에 말려서 장기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마치 애굽 사람들이 생선을 햇볕에 말려 오래도록 먹는 것과 동일한 방법이었다(Herodotus).

성 경: [민11:33]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드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와 기브롯 핫디아와 사건]

(주); 고기가...씹히기 전에 - 여기서 '씹히다'(*, 카라트)란 말은 '자르다', '소멸시키다'는 의미로서, 이빨로 '씹는다'는 의미보다 '먹어 없애버리다', '모두 소비하다'는 뜻으로 이해함이 옳다. 그러므로 본문은 '고기를 씹고 있는 중에'라기 보다는 '메추라기 고개를 모두 먹어 없애기 전에'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1개월'간의 고기 섭취를 허락하신 적이 있는데(20절), 이 기간이 차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의 쓴 맛도 함께 경험해야 했다.

(주); 심히 큰 재앙으로 - 혹자는 이 재앙이 당시 몸에 해롭다고 간주된(Pliny) 메추라기 고기를 갑자기 많이 섭취함으로 생겨난 식중독 또는 기타 질병일 것으로 추정한다(Knobel, bochart). 그러나 재앙을 음식물로 인한 자연적인 질병에 국한시키기 보다 여호와께서 특별하게 내리신 어떤 죽음의 징계인 역병(疫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그 징계의 대상자는 아마 고기를 달라고 앞장 서서 불평을 선동했던 자들일 것으로 추정된다(Pulpit Commentary). 이 사건은 결국 (1)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원망과 탐욕을 일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깨우쳐 주고 (2) '배부른 생활'이 항상 개인에게 유익한 것만은 아님을 교훈한다. 오히려 악인의 번영은 멸망을 앞당기는 역할을 한다(잠 23:17; 전 2:26).

성 경: [민11:34]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기와 기브롯 핫다아와 사건]

(주); 기브롯 핫다이와 - '탐욕의 무덤'이란 의미를 지닌 지명으로서, 시내산에서 '3일길' 되는 곳인 바란 광야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이곳은 불평을 일삼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려 다수(多數)를 죽이셨던 곳으로, 오고오는 후세대에 탐욕이 가져다 주는 비극적인 사태를 웅변적으로 보여 준다.

성 경: [민11:35]

주제1: [만나에 싫증난 백성들의 불평]

주제2: [메추라게와 기브롯 핫다아와 사건]

(주); 하세롯 - '울타리', '마을' 등의 의미를 지닌 지명으로서, 기브롯 핫다아와 인근 지역이라는 것 외에 그 위치에 대해 알려진 바 없다. 혹자는 이 곳을 오늘날 빌-엣-테벱(Bir-et-themmed) 지역으로 보기도 한다(Kurtz, Fires). 한편 이곳에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다가 화를 당하는데 , 그런 점에서 본절은 12장의 배경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성 경: [민12:1]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를 비방한 미리암과 아론]

(주);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 여기서 '구스'는 원문에 '쿠시'(*)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족속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아라비아 반도 및 앗시리아 지역 등에 널리퍼져 정착한 검은 피부색의 함족 계통을 말한다. 한편 모세의 아내가 된 '구스 여인'(the Cushite woman)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1) 그중 '구스'를 '미디안'과 동일시하여(합 3:7) '구스 여자'를 모세의 본처인 '십보라'(출 2;21)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Calvin, Knobel). 그러나 본서의 기록자 모세가 자신의 아내에 대해 그같이 불투명하게 언급했을 리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모세 소명 전의 도피 생활에서 이루어진 오랜전의 사건을 놓고 새삼 미리암과 아론이 문제 삼았을 리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위의 견해를 용납하기 어렵다. 따라서 어떤 학자는 (2) 모세가 그의 아내 십보라의 사망 후 재혼하였는데, 바로 그 새 아내가 '구스 여자'였다고 주장한다(Michaelis, Keil, Ewald). 문맥상 이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유대 전승도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즉 모세는 출애굽시 함께 탈출해 나온 잡족 가운데 한 여인을 취하여 후취(後娶)로 취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Keil & Delitzsch, Pentateuch. Vol. I-iii. p. 76). 즉 '그것은 율법에 표현된 바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평등 사상 및 친교관계를 직접 나타내 보여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Baumgarten). '그것은 미래에 이루어질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복된 연합 관계를 본보기로 보여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Gerlach).

(주); 미리암과 아론이...비방하니라 - 원문에서 강조하는 바는 '미리암'이 모세 비방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첫째 미리암의 이름이 이스라엘의 제사를 집례하는 대제사장 아론의 이름보다 앞서 기록되었기 때문이며, 둘째 '비방하니라'(*, 테다베르)는 말의 동사가 여성형 주어를 취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셋째 이 사건에 대하여 미리암만 징계를 받아온 이스라엘의 앞에서 수치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은 미리암이 적극 주도하고 아론이 이에 소극적으로 동조한 것이었다(Keil, Pulpit Commentary, Lange). 한편 그들이 모세의 결혼을 두고 비방거리로 삼은 동기에 대해 추론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이방인과의 결혼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침묵하시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적 순수성 보존을 위해 가나안 7족속과의 통혼을 금지하셨을 뿐(출 34:16; 신 7:1), 이방인과의 결혼을 아예 금지시키신 것은 아니었다(창 48:5; 롯 4;13-22). 또한 가나안 정복 당시와 에스라 9장, 그리고 느헤미야 13장에 강조된 이방인과의 결혼 금지는 그 결혼이 가져올 종교적 타락(우상 숭배)과 도덕적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자체가 무슨 절대법은 아니었다. (2) 선민(選民)으로서의 민족적 우월성과 배타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그 종교적 자긍심보다 그 육신적 우월 의식에 사로잡힐 때마다 질책을 면치 못했다(Kurtz). (3) 그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모세의 탁월한 지위에 대한 그들의 교만한 질투심 때문이었다(2절). 그러므로 그들은 실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는 경구를 깊이 깨달아야 했다.

성 경: [민12:2]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를 비방한 미리암과 아론]

(주);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한 근본 이유는 자신들에 비해 월등한 모세의 지위 및 탁월한 권위에 대한 시기심 때문이었다. 여기서 '...와(더불어)'라는 전치사 '베트'(*)는그 해석상 '...로 부터'로 봄이 더욱 타당하다. 즉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으로부터만 백성에게 말씀하셨느냐'는 의미이다. 이는 모세의 중보적(中保的) 기능을 언급한 것으로서, 미리암과 아론 역시도 이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물론 그들도 신령한 은혜를 체험한 자들이었다. 즉 미리암은 여선지자 자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기도 했으며(출 15:20,21), 아론은 우림(Urim)과 둠밈(Thummim)이 부착된 판결 흉패를 입은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도 했고 또한 모세와 더불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기도 했었다(2:1; 출 28:15,30). 그러나 그들에게는 가장 직접적인 신정 정치(神政政治)하에서의 모세만이 가지는 특수한 권위와 기능 곧 중보자로서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출 4:16; 32:22). 그러므로 결국 그들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모세에게만 독특하게 주어진 그 권위에 도전한 것은 그 권위를 덧입히신 하나님께 대한 도전으로 간주될 수 있다.

(주); 여호와께서...들으셨더라 - 이는 인간의 행동과 사고 전체를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강조한 표현인 동시에, 이 사건의 정확하고도 공정한 심판을 하시고자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나설실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성 경: [민12:3]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를 비방한 미라암과 아론]

(주); 온유함(*, 아나우) - 원문상 '온유'란 '자기를 낮춤', '괴롭힘을 당함', '겸손함'이라는 뜻을 지니고있다(LXX, Vulgate). 그러므로 모세가 온유했다는 말은 자신을 비방하는 소리에 대항치 않고 감정을 억제하며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묵묵히 참아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편, 이같은 자기 절제는인간의 본성적 기질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갈 6:22,23).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勝) 하더라 - 즉 당시 모세의 '온유함'을 따라갈 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모세 스스로를 치켜세우는 교만한 표현이 아니라, 그 당시의 정황을 객관성 있게, 그리고 모세의 심적 고통을 깊이있게 다룬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평 학자들은 본절의 표현을 근거로, 본서 및 오경의 저자를 모세로 보지 않고 후대 기록자에 의한 삽입문이라 본다. 그렇지만 고대의 저작 속에 필자가 자신을 객관화시켜 묘사한 작품은 허다하다(Josephus, Xenophon). 아니면 모세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대필(代筆)케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H.E. Freeman). 여하튼 이러한 사실에 대해 칼메트(Calmet)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음미할 만하다. '여기서 모세가 아무런 교만의 마음 없이 자신을 칭찬한 것처럼, 다른 곳에서는 아무런 위선의 마음없이 또한 자신을 질책할 것이다'(Kiel & delitzsch, Vol. I-iii. p. 78).

성 경: [민12:4]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를 변호한 하나님]

(주); 갑자기(*, 피테옴) - 원뜻은 '눈깜박일 동안'으로서, 본문에서는 준비할 여유도 없이 순간적으로 진행된 사실을 나타낸다. 즉 하나님께서 그 일에 개입하사 말씀하실 것이라고는 3인 중 마무도 상상치 못했다는 의미이다.

(주); 삼 인은 회막으로 - 회막(會幕)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친히 만나시는 장소로서 곧 이스라엘 통치의 핵이었다(17:4; 출 29:42,43). 한편 이곳으로 3인을 부르신 것은 그들 상에 진행된 비방 문제를 판결하기 위함이었다. 혹자(lange)는 이 일 이후부터 회막의 앞뜰에 여인들의 출입이 가능해졌다고 한다<5절>.

성 경: [민12:5]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를 변호한 하나님]

(주); 여호와께서...강림하사 - 곧 회막 위에 머물러있던 구름이 회막에 완전히 내려 앉은 것을 의미한다(10절: 11:25).

(주); 장막 문에 서시고 - 모세를 비방했던 미리암과 아론이 나아오자 구름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께서 '장막 문' 곧 '회막 뜰 입구'에 서셨다(레 8:3,31,33). 아마 이때 구름은 미리암과 아론 두 사람을 덮고 그 구름 속에서 여호와가 말씀하심으로써 당신의 현존(presence)을 밝히셨던 것 같다.

성 경: [민12:6]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를 변호한 하나님]

(주); 내 말을 들으라 - 원문에는 '제발', '부탁하건데' 라는 의미의 부사 '나'(*)가 첨가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제발 부탁하건데 이제 내말을 들으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더 이상 인간적인 비방을 삼가하고 거룩하고 공의로운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인간사(人間事)의 최종 결정권을 가진다(시 119:105; 계 20:4).

(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며 - 직역하면 '만약 너희 가운데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으며'이다. 이는 미리암과 아론의 직능이 '선지자' 또는 '선지자적 역할'을 담당한 자라는 사실을 암사히는 표현이다. 한편,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에게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는 방법 두 가지를 제시하셨다. (1) 이상으로(*, 바마르아) - '이상'(vision)이란 '보다', '나타나다', '제시하다' 등의 뜻을 지닌 히브리어 '라아'(*)에서 유래한 말로 곧 하나님께서 인간의 감각을 통하여 인지(認知)시키시는 초자연적인 광경을 가리킨다(창 46:2; 삼상 3:15; 겔 1:1). (2) 꿈으로(*, 바할롬) - 외부의 변화없이 인간 내면의 사고 작용과 감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시는 방법이다(창 20:6; 삼상 28:6; 단 2:4). 그러나 모세는 이러한 간접적이고 일방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과 교제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상호 '하나님과 대면하는' 영광을 부여 받았다.

성 경: [민12:7]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를 변호한 하나님]

(주);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 여기서 '나의 온 집'은 회막 뿐 아니라 회막에 관련된 각종 규레 및 나아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언약 관계 그리고 언약 백성 모두를 총괄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그리고 '충성하다'(*, 네에만)란 말은 '확실하다', '진실(충실)하다'는 등의 뜻이 들어 있는 '아만'에서 유래한 말로서, 모세가 오랜 기간에 걸쳐 어떤 상황 아래서도 하나님께 최선의 헌신을 다함으로써 충실하다는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창 42:20; 신 28:59; 히 3:2). 이런 이유 때문에 모세는 일반 선지자와는 달리 '이상'이나 '꿈'과 같은 간접적인 의사 소통 방법이아닌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face to face) 특별한 방법으로 교제했던 것이다<8절>.

성 경: [민12:8]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를 변호한 하나님]

(주); 그와는 내가 대면(對面)하여 - 여기서 '대면하다'(*, 페 엘 페)란 말의 문자적 의미는 '입과 입을 마주 대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출 33:11에는 '얼굴과 얼굴을 서로 대하여'(face to face)란 말을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두 표현은 동일한 의미로써 곧 매우 친밀한 교제 관계를 나타낸다. 즉 하나님은 모세에게는 일반 선지자들에게 사용하시는(6절) 꿈(dreams)이나 이상(visions)과 같은 계시 방법을 사용치 않으시고 마치 오랜 친구처럼 직접 그와 가까이서 대화하셨음을 강조한 것이다.

(주);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 직역하면 '외모를 보듯이 하고 수수께끼로 아니하며'이다. 즉 눈으로 보아 단번에 이해할 정도로 확실히 말하고,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애매하게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주);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 죄인된 인간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본체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대원리이다(출 33:18-23; 딤전 6:16). 그러므로 여기서 '여호와의 형상'(*, 테무나트 예호와)이란 여호와의 본체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또한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겔 1:26; 단 7:9), 또는 여호와의 사자(使者)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의 형상(창 16:7)과도 전혀 다르다(Keil). 여기서 '여호와의 형상'이란 출 33:11의 경우처럼 외형적인 고유한 형상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여기서의 '형상'이란 출 33:11의 경우처럼 그의 위엄스럽고 영광에 찬 임재의 상징을 나타낸다. 이는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그와 만나시기 위해 사용하신 특수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결국 본질 전체에서 강조하고 있는 바는 모세의 직위와 역할은 다른 모든 선지자들 및 백성들보다 탁월하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시고 인정하신 모세의 권위를 시기하거나 비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 경: [민12:9]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문둥병이 들린 미리암]

(주); 여호와께서...진노하시고 떠나시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세 지도자 사이에 발생한 분란을 재판장의 자격으로 해결하시고 그곳을 떠나가셨다. 한편 피고 미리암에 대한 진노의 표시로는 뒤이어 나오는 '문둥병' 징계로 이해할 수 있으나, '아론'에 대한 진노의 결과는 언급되지 않았다. 아마도 아론에게는 가슴을 찌르는 듯한 죄의식과 더불어 잠시 동안의 제사 집례 중지 등으로 죄책이 돌아갔을 것이다.

성 경: [민12:10]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문둥병이 들린 미리암]

(주); 구름이...떠나갔고 - 즉 여호와의 임재의 가시적(可視的) 증거인 구름이 걷힘으로 여호와께서 그곳을 떠나가셨음을 보이셨다(5,9절).

(주);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려 - 그 당시 문둥병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산 자들이 걸리는 천형(天刑)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치료되기까지 하나님의 임재의 거룩성이 미치는 진(陳)에서 격리되어 생활해야 했다<레 13, 14장>. 한편 여기서 문둥병의 증세가 '눈과 같이' 희어졌다는 말은 그 병세가 상당히 악화(惡化)되었음을 나타낸다.

(주); 아론이...본즉 - 당시 아론은 제사장으로서 문둥병을 판별해야 하는 직무를 갖고 있었다(레 13:2). 따라서 그는 미리암의 증세를 살폈을 것인데, 여기서는 그 증세의 완연함으로 인해 자세히 관찰할 필요도 없이 즉각 알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모세 비방에 가담한 아론에게는 문둥병이 발병하지 않았다는데,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추론해 볼 수 있다. (1) 그는 미리암의 충동질에 단지 동조했을 뿐이다. (2) 거룩한 제사를 집례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직책의 부정을 막기 위해 문둥병이 면제되었다. (3) 문둥병 발병은 교훈적인 성격의 징계로써 비방자의 대표인 미리암만으로도 충분했다. 따라서 구태여 대제사장 아론을 징계하지 않더라도 신적 권위자에 대한 질투가 가져다 주는 부정적 결과를 미리암을 통해 아론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Matthew Henry's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성 경: [민12:11]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문둥병이 들린 미리암]

(주); 내 주여(*, 아도니) - 아론은 모세의 형이지만(출 7:7), 이제는 모세가 신적 권위에 있어서 자기보다 월등한 위치에 있음을 인정하면서, 종이 주인에게 부르는 호칭인 '아도아니'를 사용하여 그에게 호소하고 있다. 특별히 '주'(主)라는 호칭 앞에 '제발, 청하오니' 등의 뜻인 히비르어 '비'(* -한글 개역 성경에는 '슬프다'로 번역됨)를 언급하여 '비 아도니' 곧 '제발 나의 주여!'(please my Lord-NIV)라는 강력한 소청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이는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높아지는 겸손의 진리를 웅변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욥 5:11; 마 23:12).

(주);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 아론은 자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한 것<2절>이 악한 동기(질토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인하고 자신들이 짊어져야 할 죄의 짐을 면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죄의 짐은 범죄자의 몫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면제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들의 신앙관이었기 때문이다(8:12; 레 4:4). 이는 책임 회피성 간구라기보다 자신의 죄악을 적절히 깨닫고 통회하는 자만이 요구할 수 있는 청원이다. 한편 구속사적으로 이 간구는 죄의 짐을 벗게 되는 놀라운 사실을 예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롬 5:8).

성 경: [민12:12]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문둥병이 들린 미리암]

(주); 살이 반이나 썩고 죽어서...나온 자 - 생명과 기쁨을 동반하는 출산(出産)을 기대했다가 살이 거의 썩어버린 사산아(死産兒)를 낳는 것처럼 절망적인 때는 없을 것이다. 지금 미리암의 문둥병 증세가 부패한 사산아처럼 절망적이라는 것이다. 아론의 간절한 청원과 모세의 다급한 중보 기도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녀는 지금 살이 썩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며 손가락 발가락 부분이 오그라드는 등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성 경: [민12:13]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의 도고(禱告)]

(주); 원컨대...고쳐 주옵소서(*, 나 레파 나 라) - 원문에는 '원컨대'를 뜻하는 불변사 '나'(*)가 두번이나 거듭되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을 직역하면 '제발 청하옵나니 그녀를 고치소서 제발 청하옵나이다'로서 매우 급박하고 간절한 기도문이다.

성 경: [민12:14]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의 도고(禱告)]

(주); 아비가...침을 뱉았을지라도 - 히브리인들은 사형이나 축출 등 극단적인 범죄의 경우가 아닌 일반 중죄를 범하였을 때에는, 그 아비나 형제가 범죄자에게 침을 뱉음으로써 심한 모욕을 주어 징벌하였다(신 25:9; 사 50:9). 그리고 이 경우 모욕을 당한 자는 반드시 수욕(受辱)의 기간이 요구되었다. 하물며 하나님의 대리자인 모세의 권위에 도전한 미리암의 죄를 지나칠 수 없으셨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관례를 응용하여 7일간의 참회 기간을 그녀에게 제시하셨던 것이다.

(주); 진 밖에칠 일을 가두고 - 미리암의 범죄 대가는 극심한 문둥병으로 나타났고, 이에 따른 모세의 중보 기도 결과 그녀는 7일간의 수욕 기간을 거친 후 회복될 것이라는 응답을 받았다. 한편 여기서 '7'은 완전수로서, 결국 7일간의 격리는 (1) 범죄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완전히 차단하고야 만다는 사실과 (2) 완전한 참회를 통하여 비로소 회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는 엄숙한 경고를 담은 명령이다. 한편 문둥병이 완쾌될 경우 정결 의식을 거친 후 비로소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는데, 본문에는 언급이 없지만 7일 후 미리암도 이 정결례를 치룬 후 진(陳)에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레 14:1-20).

성 경: [민12:15]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의 도고(禱告)]

(주); 백성은...진행치 아니하다가 - 미라암과 아론의 범죄로 인해 이스라엘 전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로의 행군을 잠시 중단해야만 했다. 그러므로이는 한 개인의 죄악이 거룩한 공동체(교회)와 하나님 나라 건설에 얼마나 큰 피해를 제공하는지를 실증적으로보여 준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생명과 미래를 나눠가지는 신앙 공동체이자 운명 공동체이다(고전 12장).

성 경: [민12:16]

주제1: [아론과 미리암의 시기]

주제2: [모세의 도고(禱告)]

(주); 하세롯 - 11:35 주석 참조.

(주); 바란 광야 - 이곳은 10:12에 이어 두번째로 언급되었다(따라서 자세한 내용은 10:12 주석을 참조하라). 이런 계속적인 언급은 이스라엘이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 생활 중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한편,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남방 경계인 가데스(Kadesh)에 진을 치고(13:26; 신 1:19), 그들의 부푼 미래가 펼쳐질 가나안에 12정탐꾼을 파견하게 된다(13장).

성 경: [민13:1-14:45]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가나안 정탐꾼 파송]

이 부분은 가나안 여정의 분기점을 이루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기록한 부분이다.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이를 때까지를 가나안 여정 중 오르막길(비록몇몇 범죄 사건이 발생했지만)이라 한다면, 이후 부터는 절망과 회한의 내리막길이라 할 수 있다. 실로 12정탐꾼 파송 사건 이후 진행된 일련의 불행한 결과(구세대의 가나안 입국 금지와 광야에서의 죽음 및 40년 뒤로 보류된 가나안 입국 등)는 불신앙과 불평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잘 보여 준다.

성 경: [민13:2]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가나안 정탐꾼 파송]

(주);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하되 - 가나안 정탐은 백성들의 요청(신 1 : 19-23)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즉 신명기 기록을 보면(신 1 : 19-23),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백성들로 하여금 바로 올라가 취하도록 하였으나 백성들이 그 땅을 먼저 정탐하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모세가 이 요청을 받아들여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리하도록 명령하셨던 것이다(Keil). 그러므로 사실상 백성들은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거듭된 약속(창 17 : 8 ; 50 : 24 ; 출 3 :8, 17)을 확신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그들의 신앙에 이상(異常)이 생겼음을 반영한다(히 11 : 1, 2). 그러나 하나님은 연약한 이스라엘을 책망치 않으시고 정탐꾼을파견케 하여 그들에게 당신이 약속한 그 땅을 친히 목격하게 하심으로써 모든 의심을 떨쳐 버리도록 인도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해 베푸시는 모든 조처는 궁극적으로 성도의 신앙 성숙과 유익을 위한 것이다(요 16 : 7 ; 18 : 14 ; 히 12 :10). 한편 '탐지하다'(*, 투르)란 말은 '장사나 정탐을 위해 먼저 알아보러 보내다'란 뜻으로, 목적한 지역의 사정을 면밀히 조사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 각 지파 중에서 족장 된 자 - 여기서 '족장'이란 각 지파를 대표하여 특별한 과업을 수행하던 유력한 인물을 가리킨다. 그리고 3절에서는 '족장'이란 말이 '두령'으로 대치되고 있는데, 이 두 호칭은 각 지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공식 직함의 소유자(1: 5-15 ; 2 : 3-31)가 아니라 비정규적으로 '일'을 위해 각 지파의 종족들의 두령들 가운데서 선임된 지도자급 실무자를 가리킨다<1 : 16>. 그런데 본장에 언급된 대로 그들이 수행해야할 직무는 긴 시간 동안 정탐하는 일로써 힘과 용기와 신앙과 지혜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같이 힘과 신앙적 열정과 기상(氣像)이 넘치는 젊은이들로 구성되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성 경: [민13:3]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가나안 정탐꾼 파송]

(주); 모세가... 그들을 보내었으니 - 모세가 각 지파 중에서 선출하여 보낸 족장들은 1 : 4-16에 명기된 바 인구 조사를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지명받았던 족장들과는 구별된다.

성 경: [민13:4-15]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가나안 정탐꾼 파송]

본문에는 가나안 정탐 임무를 부여받은 12지파의 족장들이 그들의 이름과 함께 열거되어 있다. 그들 12명은 모두 거룩한 백성의 길잡이로서 중책을 부여받았으나, 안타깝게도 갈렙과 호세아(여호수아)를 제외하고는 누구의 이름도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앙의 위인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신앙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는 자는 적다'(마 22:14)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연상케 해준다. 한편 12정탐꾼의 명단을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지 파 명 이 름 이 름 의 뜻

르 우 벤 삼 무 아 알 림

시 므 온 사 밧 재 판 관

유 다 갈 렙 공 격 자

잇 사 갈 이 갈 그가 속할 것이다

에 브 라임 호 세 아 구 원

베 냐 민 발 디 구 속

스 불 론 갓 디 엘 하나님의 기쁨

므 낫 세 갓 디 복 됨

단 암 미 엘 하나님의 백성

아 셀 스 둘 감추어진 비밀

납 달 리 나 비 숨 기 다

갓 그 우 엘 여호와는 도움이시다

위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레위 지파'에서는 정탐꾼이 선발되지 않았다. 이는 레위 지파가 지니는 특수성<1 : 47-53 ; 3, 4장> 때문인 바 곧 가나안 땅 분배시 레위 지파는 그들만의 영토를 분배받지 않고, 각 지파 영토 내에 얼마간의 거주지를 할애받아 거주해야 하는 특별한 신분과 직능 때문이었다(35 : 2). 즉 그들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하여 성막에서 봉사하고, 백성을 교육시키며, 여호와의 영광을 보존하는 등의 더 중요한 직책이 있었기 때문에, 가나안 정복 전쟁 및 땅 분배를 위한 정탐 활동이 요구되지 않았던 것이다.

성 경: [민13:6]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가나안 정탐꾼 파송]

갈렙 -성경 다른 곳에서는 그나스(그니스) 사람(Kenizzites) 갈렙이라고 나타난다(32 : 12 ; 수 14 : 6). 그런데 그나스 족속은 일찍부터 팔레스틴 주변에 거주하고 있었던 에돔족속 중 하나(창 36 : 11, 15)로, 아마 이들 중 일부가 이스라엘의 유다 지파에 합류되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갈렙도 순수 히브리 혈통은 아니었다. 그러나 갈렙을 통해 보듯이 유다 지파 내에서 이들의 역할은 컸다.

성 경: [민13:11]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가나안 정탐꾼 파송]

(주); 요셉 지파 - 정확히 표현하면 '요셉 자손'(1 : 10 ; 34 : 23)이다. 보통 '요셉 자손'이란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지파 모두를 포함하는 말이지만, 간혹 한 지파만을 지칭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겔 37 : 16 ; 계 7: 8).

성 경: [민13:16]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가나안 정탐꾼 파송]

(주);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칭하였더라 - '여호수아'(*)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란 뜻으로서, '구원'을 뜻하는 '호세아'(*) 앞에 언약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칭호 '여호와'(*)의 첫자(字) '예'(*)가 붙어서(그리고 모음 'e'가 'u'로바뀌어서) 이루어진 말이다. 한편 출 3 : 14, 15에는 이 '여호와'란 이름의 의미('스스로 있는 자')가 밝혀져 있는데, 곧 하나님은 타인에 의해 존재하거나 피조된 존재가 아니라, 영원토록 스스로 존재하는 인격적인 존재이자 모든 존재의 근원 되심이 밝혀져 있다. 특별히 이 단어가 언약과 연관되어 쓰일 때는, 그 약속하신 바를 영원히 지키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모세가 '호세아'를 언약의 하나님과 연관된 이름인 '여호수아'로 개명(改名)한 것은 향후 가나안 정복 전쟁의 지휘자로서 호세아(여호수아)가 앞으로 수행해 나가야 할 책무가 어떠함을 보여 준다(출 24 : 13 ; 33 :11). 한편 히브리인들의 이름은 각 개인의 품격과 그 신분 및 그 삶의 방향과 연관된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본문의 개명 사건은 여호수아의 생애에 일대 전환기를 맞았음을 의미한다. 즉 그는 한 지파의 지도급 인사에서 이스라엘 전체의 지도자로서 서서히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난제가 있다. 그것은 본절에 앞서 이미 성경 여러 곳에서 '호세아'는 개명된 새 이름인 '여호수아'로 불리워지고 있다는 점이다(출 17 : 9 ; 24 : 13 ; 32 : 17 ; 33 : 11 ; 민 11 : 28). 따라서 문서설 학자들은 여기서 성경 저자의 다양성을 주장하나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고 앞서 언급된 '여호수아'란 이름이 미리 예상하여 사용된 것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따라서 '시간상으로' 호세아의 개명(改名) 사건은 그가 여호수아란 이름으로 처음 언급되는 아말렉전투(출 17 : 8-13) 전후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Keil & Delitzsch, Vol. I- . pp. 85-86). 그런데 그 개명 사건을 본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각 지파를 대표하여 선발된 정탐꾼들의 이름이 그 지파 및 족보에 따라 명부에 등재되는 과정에서, 여호수아의 본 이름이 호세아로 나타나는 점에 유의하여, 그의 개명(改名) 사실을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성 경: [민13:17]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에게 하달된 명령]

(주); 남방 길로... 산지로 - 여기서 '남방'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네게브'(*)는 가나안땅의 광활한 남부 지역을 총괄적으로 가리키는 말인데, 문자적으로는 '메마르다' '건조하다'란 뜻의 '나가브'에서 유래하였다. 다시말하면 가나안 남부 지역은 그 메마른 풍토 여건으로 인해 '네게브'(건조한 곳)라 불려졌다(Keil). 그러므로 이곳은 소위 수목 대신 작달막한 관목 및 잡초들만 자라나는 스텝(Steppe) 기후 지대로서 농경지로는 별로 사용되지 않고, 우기(10-4월)에 목초지로 사용된다. 그리고 산지는 가나안 중심부를 관통하고 있는 산악 지역을 가리킨다. 이 지역은 약 900m에 이르는 남쪽의 유대 산지로부터 중앙 고원 지대인 에브라임 산지 및 서쪽으로 뻗어가는 에스드렐론(Esdraelon) 평원, 그리고 동쪽으로 뻗쳐있는 이스르엘(Jezreel) 계곡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막강한 철기 문화로 무장한 헷 족속, 여부스 족속, 아모리 족속등이 거주하였다(29절). 결국 모세가 '남방 길'과 '산지'로 올라가라고 명한 것은 요단 동편으로 우회하여 들어가 탐지하지 말고, 가나안을 가로지르고 있는 산지를 타고 바로 북상(北上)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접수하게 될 가나안 땅의 실상을 똑똑히 알아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성 경: [민13:18, 19, 20]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에게 하달된 명령]

모세는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파견하면서 다음 여섯 가지를 알아 보도록 명령하였다. (1) 그 땅 거민의 강약 - 가나안 원주민들의 군사적 능력을 알아보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강대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로부터 가나안 땅에의 약속을 허락받은 이스라엘에게는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2) 다소(多少) - 즉 그 땅의 인구 밀도와 그로 말미암아 전쟁에 나설 수 있는 남자의 숫자가 많을 것이냐 혹은 적을 것이냐를 살펴보라는 것인 듯하다. (3) 땅의 호불호(好不好) - 가나안의 지대와 지형이 어떠하며 그리고 그 땅의 기후조건이 살기에 적합한가의 여부를 조사하라는 뜻이다. (4)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 - 여기서 '진영'은 군사적 방어물이 없는 마을이나 자연 촌락을, '산성'은 군사 시설로 방어가 완비된 도시를 가리킨다. 즉 원주민들이 사는 곳에 방어 울타리가 쳐져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라는 것이다. (5) 토지의 후박(厚薄) -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의 지질(地質) 정도 곧 농사가 잘되는 옥토인지 그렇지 않은 박토인지도 조사해야 했다. (6) 수목(樹木)의 유무 - 나무의 생태에 관한 조사로서 나무가 자랄 수 있을 만큼 수분이 충분한 지역인지를 알아보도록 했다.

성 경: [민13:20]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에게 하달된 명령]

(주); 담대하라(*, 히테하자크템) - 이는 '지속적인 용기를 가져라', '(승리를 확신하고) 용맹스럽게 행하라'는 뜻으로써, 곧 그들이 탐지하는 모든 사물을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바라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정탐꾼들에게 필요한 것은 보이는 것만 보는 현상적(現象的)인 시각이 아니라, 그것을 모두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을 의뢰하고 믿는 믿음을 통해 보는 신앙적 시각이었다(히 11 : 3).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그 땅을 본 자는 여호수아와 갈렙 둘 뿐이었고, 나머지 열명은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그 땅을 보았다.

(주); 그 땅 실과를 가져오라 - 포도, 석류, 무화과 등(23절)의 실과를 통해 모세는 그 땅이 과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지를 정탐꾼들에게 확인하게 했으며, 그리고 그 증거물을 백성에게 보일 수 있도록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주);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 - 팔레스틴에서는 포도를 몇 차례 걸쳐 수확하는데, 그 첫 수확기가 보통 7, 8월(빠르면 6월에도 가능)이며, 가장 수확이 많을 때가 9, 10월이라고 한다(Robinson).

성 경: [민13:21]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40일간의 정탐 활동]

(주);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 - '신 광야'는 팔레스틴 남쪽, 사해(死海)와 아카바 만 사이의 광활한 광야 지대로서 가나안땅 제일 남쪽 경계를 이룬다(34 : 3). 그리고 '하맛'과 '르홉'은 약속의 땅 가장 북쪽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수 13 : 5 ; 삼하10 : 8). 특별히 르홉(Rehob)은 사사 시대 이후 '단'이라고 불리우던(삿 18 : 28, 29) 라이스(Lais) 성읍 주변에 있는 도시이다. 결국 본절은 12명의 정탐꾼들이 팔레스틴 지역을 남쪽부터 북쪽까지 철두 철미하게 정탐했음을 보여 준다. 한편 정탐꾼들의 거쳐간 진행로를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성 경: [민13:22]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40일간의 정탐 활동]

(주); 또 - 이 말은 정탐꾼들이 르홉까지 갔다가 다시 방향을 바꾸어 남방으로 갔다는 뜻이 아니다. 21절은 먼저 전체적인 정탐 과정을 총론격으로 말한 것이며, 뒤이어 나오는 본절은 보다 상세히 그 정탐 여정을 언급하기 위해서 '또'라는 접속사를 붙인 것이다.

(주); 헤브론 - 이 도시는 아브라함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족장시대에 자주 언급된 것으로 보아 고대 세계의 문화 중심지로 이해할 수 있다(창 13 : 18 ; 23 : 19). 한편 '헤브론'보다 7년 뒤에 세워졌다는 '소안'은 애굽 나일강 삼각주 동쪽의 한 지류에 위치했다(Keil). 그 지명의 뜻이 '낮은 땅'이라는 사실에서 그곳은 나일강 뚝보다 저지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후일에 타니스(Tanis)로 불리워졌는데 힉소스(Hyksos) 왕조 때 건설되어 애굽의 수도 내지는 바로의 거처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여기서 모세가 어떤 이유로 '헤브론'과 '소안'을 연결시켰는지에 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 없다. 그렇지만 이는 헤브론 성읍의 오래된 역사성을 지적함으로써 그 성읍의 견고함을 미리 암시하려는 듯하다. 아울러 이는 결과적으로 모세가 애굽의 도시 '소안'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는 것도 암시하는데, 아마도 그는 애굽 궁중생활에서 그러한 학문을 배웠으리라 추정된다.

(주); 아낙 자손 - 가나안 족속 보다 훨씬 전에 그 땅에 존재했던 원주민을 가리킨다. 이들은 헤브론을 중심하여 생활했다. 아낙의 아비 아르바(수 14 : 15)가 아낙 자손의 창시자로 여겨지지만(수 15 : 13), 그 기원에 대해서는 불명확하다. 즉 이들이 살고있던 헤브론의 옛 명칭이 '기럇아르바'로 되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아르바'가 아낙자손의 창시자로 생각될 뿐이다. 한편 아낙 자손은 신체가 크고, 강한 거인 족속이었다(33절).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이들로 인해 기가 눌릴 수 밖에 없었다(신 9 :2). 하지만 믿음의 용사 갈렙은 후일(약 50년 후) 이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영토를 확장했다(수 14 : 12 ; 15 : 13, 14).

(주);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 - 거대한 아낙 자손의 강력한 세 지도자였다. 그러나 12지파의 영토가 각기 분배되고 헤브론이 갈렙의 기업으로 돌아갔을 때, 갈렙은 담대한 신앙과 굳센 믿음으로 이들을 용감히 쫓아내었다(수 15 : 14 ; 삿 1 : 20).

성 경: [민13:23]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40일간의 정탐 활동]

(주); 에스골 골짜기 - '에스골'(*)은 '포도 송이'라는 뜻을 지닌 곳으로, 헤브론에서 가까우며 과일 농사에 적합한 곳이다. 그리고 '골짜기'(*, 나할)란겨울 우기(10-4월)에만 생기는 골짜기의 개울, 곧 '와디'(Wady)를 가리킨다. 이 '와디'는 종종 건기(乾期)에는 지표면에 물이 말라버리지만 땅속에는 과수(果樹)가 자라기에 충분한 수분을 품고 있다. 결국 '에스골 골짜기'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확인하고 감탄했던 만큼(24절) 포도 농사가 잘되던 곳이었다. 지금도 이곳은 가나안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포도를 생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Robinson).

(주); 포도 한 송이... 둘이... 메고 - 이것은 가나안 땅에서 재배되는 농산물이 매우 풍요로왔음을 대변해 준다. 지금도 팔레스틴에서는 무게가 4-5kg 정도 나가는 포도 송이를 볼 수 있다고 한다(Tobler Denkblatter). 한편 포도 송이를 '막대기에 꿰어' 운반한 것은 그 무게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을 손상시키지 않고 운반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주); 석류와 무화과 - 정탐꾼들이 포도 송이와 더불어 이것도 운반한 것은 가나안 땅의 실과를 가져 오라는 모세의 명려에 충실했음을 보여 준다. 아울러 이것은 그 땅이 각종 농산물에 적합한 옥토(沃土)임을 증명해 준다.

성 경: [민13:24]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40일간의 정탐 활동]

(주); 에스골 골짜기라 칭하였더라 - '에스골 골짜기'란 옛날 이곳을 통치했다는 족장 '에스골'(창 14 : 13, 24)의 이름과 연관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이름은 또한 풍성한 '포도 송이'와 관련하여 비옥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해 경탄을 발했던 이스라엘의 기쁨을 반영한 이름임에는 틀림 없다.

성 경: [민13:25]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귀환]

(주); 사십 일 동안 - 약속의 땅 가나안의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의 거리를 보통 160km정도로 보고 있다. 이 거리는 일반 성인(成人) 남자가 산악 지역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일주일이면 충분히 주파(走破)할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러므로 왕복 기간이 '40일'을 경과했다는 것은 가나안 곳곳을 충분히 정탐했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성경 문학적 표현으로 '40'이란 숫자는 충분한 기다림과 인내의 기간을 뜻하므로(출 24:18;눅4:1, 2), 12정탐꾼들이 자신들의 정탐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 경: [민13:26]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귀환]

(주); 회보하고 - 여기서 '회보(回報)하다'(*, 다바르)는 말은 '진술하다', '대답하다', '사물의 원인을 말하다'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12정탐꾼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바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낱낱이 보고했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자신들의 보고를 더욱 신빙성 있게 하는 자료로 '그 땅 실과를' 백성에게 내보였다.

성 경: [민13:27]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귀환]

(주); 젖과 꿀이... 흐르고 -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한 수사학적 표현으로(출3:8;렘11:5). 곧 '풍요롭고 기름진 땅'을 의미한다<신 11 : 9>.

성 경: [민13:28]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귀환]

(주); 그러나(*, 에페스 키) - 이 말은 매우 강한 반의(反意) 접속어로써 KJV에는 '그렇지만'(nevertheless)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이는 뒤이어 나오는 정탐꾼들의 보고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32절), 그들의 불신앙적 견해를 단적으로 보여 준 말이다.

(주); 강하고... 견고하고... 클 뿐 아니라 -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이 기름지고 풍요로운 반면에 매우 강력한 방어 진지와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사실(fact)대로 보고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10명의 정탐꾼은 그 '사실'을 근거로 '악평'(32절)함으로써, 가나안을 반드시 기업으로 주시겠다던 하나님의 약속을 업신여기고 말았다. 이처럼 10명의 정탐꾼들은 2명의 정탐꾼(여호수아와 갈렙)과 동일한 '사실'을 놓고도 '믿음'의 결핍으로 인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주); 아낙 자손 - 22절 주석 참조.

성 경: [민13:29]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귀환]

(주); 아말렉인... 헷인과 여부스인... 아모리인... 가나안인 - 이 족속들은 가나안 땅의 강력한 족속들로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 가장 큰 장애물로 여겼던 그곳 원주민들이었다<수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성 경: [민13:30]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상반된 보고]

(주); 갈렙이... 안돈시켜 - 여기서 '안돈(安頓)시키다'(*, 하사)란 말은 '잠잠하게만들다'는 뜻으로(삿 3 : 19). '조용히 !', '쉿 !'(hush)을 뜻하는 감탄사 '하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갈렙은 정탐꾼들의 겁먹은 보고와 그에 동요하는 백성들을 진정시키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환기 시키며 믿음을 재무장시킬 의향이었다. 이처럼 그가 백성 앞에 나서서 담대히 외칠 수 있었던 근거는 인간적인 회유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믿음' 때문이었다. 한편 여기서 여호수아 대신 갈렙이 대표적으로 말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 백성들의 눈에 모세의 수종자 여호수아 보다는 갈렙이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있는 것으로 비쳐졌기때문인 듯하다(Pulpit Commentary).

(주);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 갈렙의 이 말은 결코 만용(蠻勇)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라, 여호와의 약속을 굳게 믿는 신앙에 기초한 말이다. 이와 같이 참 신앙인은 환경을 초월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기에 항상 담대히 전진할 수 있다(요 16 :33 ; 히 11 : 1).

성 경: [민13:31]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상반된 보고]

(주);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 -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10명의 정탐꾼을 일컫는다. 한편 백성들의 설득 작업에 '여호수아'가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14 : 6의 정황으로 보아 이때 여호수아는 분명 갈렙과 견해를 같이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여호수아는 모세의 부관으로서 모세의 입장을 대변해야 했기에 공정성을 지니기엔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갈렙이 전격적으로 나서서 긍정적인 보고를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 노예의 신분을 막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막강한 군사력과 방어벽을 구축하고 있던 가나안 원주민들을 상대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수행해야 할 전쟁은 단순히 무기와 병력에만 의존하는 일상 전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거룩할 목적을 지닌 영적인 전쟁이었다. 더욱이 그들에게는 군대의 대장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셨기에 주저하거나 낙담해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확신하지 못했던(삼상 17 : 47)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미약함과 상대의 강함만 보일 뿐,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성 경: [민13:32]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상반된 보고]

(주);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 여기서 '악평'(*, 다바)이란 '은밀한 행동'이라는뜻의 '다바브'(*)에서 유래한 말로써 '모욕', '중상', '나쁜 소식'이란 의미를지닌다. 그러므로 그들은 약속의 땅에 대해 나쁜 평가를 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들어가 살 '기업'으로서는 부적합한 곳이라는 평가를 내렸던 것이다. 즉 그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불신하며 모욕했던 것이다.

(주); 그 거민을 삼키는 땅 - 이는 가나안 땅이 원래 생존 불가능한, 즉 박토(薄土)이거나 기후 조건이 나쁘다거나, 각종 질병이 만연하는 땅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앞의 보고대로(26, 27절) 그 땅이 매우 비옥하고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열국들이 그곳을 서로 쟁취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펼칠 것이며 따라서 수많은 희생자가 계속 발생될 곳이라는 뜻이다(Rosenmuller, Gerlach).

(주);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 - 여기서 '장대한 자들'(*, 아느쉐 모도트)이란 '장신(長身)의 사람들', '두 사람 크기의 사람들', 곧 '키가 매우 큰 자'란 뜻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몸집이 크다는 뜻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감히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족속들이라는 의미이다.

성 경: [민13:33]

주제1: [가나안 정탐꾼의 파송과 그 보고]

주제2: [정탐꾼들의 상반된 보고]

(주);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 - '네피림'은 노아 시대로부터 그 명성을 떨치던 강폭한 거인족으로서<창 6 : 4주석 참조> 정복과 수탈을 일삼던 난폭한 무리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여기서 10정탐꾼들은 아낙 자손들의 위용에 기가 질려 그들을 고대 세계의 '대장부'(네피림)를 연상하여 묘사하였던 것이다(아낙과 네피림과의 연간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후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무찌른 바산 왕 '옥'<신 3 : 11>의 신장이나 다윗이 죽인 블레셋 거인 골리앗(삼상 17 : 4-7)등을 보더라도 몇몇 가나안 원주민들의 육체적인 탁월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꾼들이 32절에서 말한 것처럼 그 땅의 '모든 백성'이 그와 같은 장대한 체격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0정탐꾼들의 보고에는 불가능을 미리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보고가 과장될 수 밖에 없었다.

(주); 우리는... 메뚜기 같으니 - 이는 전쟁도 하기 전에 이미 정신적으로 패배한 자들의 연약한 소리이다. 10정탐꾼들의 보고에는 신앙적인 요소가 한 마디도 첨가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모든 정탐 결과가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그들의 회의와 불신은 계속되는 14장에서 전 이스라엘 백성에게 파급되어 끝내 여호와의 진노를 사고 말았다. 이처럼 '여호와 신앙'을 내팽개친 자들에게 남는 것은 절망과 비탄 뿐이다.

성 경: [민14:1]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백성들의 원망]

(주); 부르짖으며... 곡하였더라 - 특정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세와 아론 및 두 신앙적인정탐꾼을 제외한 모든 백성이 일제히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다. 불신앙의 바람이 이스라엘 전체를 휘몰아쳤던 것이다. 모세는 이러한 백성들의 비탄에 찬 반응에 대해'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곡하였다'고 표현함으로써 그들의 울부짖음이 점차 고조되고 확산되어가고 있음을 시사하였다. 한편 여기서 '소리를 높이다'(*, 타사 에트 코람)는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소리 높혀 외치다' 또는 '불타는 심정으로 아우성치다' 등의 뜻이며, '부르짖다'(*, 나탄)란 '가슴을 치며 울다'는 뜻이다. 그리고 '곡하다'(*, 바카)는 '몹시 애통(한탄)하며 울부짖다'란 의미이다. 결국 그들은 완전히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밤새도록' 절규하며 점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갔던 것이다. 그들이 절망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을 찾아 간구하기 보다 자기 연민과 회한의 감정에 빠져든 근본적인 이유는 오직 약속에 대한 불신과 믿음의 결핍 때문이었다. 실로 믿음이 없이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다(히 11 : 6).

성 경: [민14:2]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백성들의 원망]

(주);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 백성들이 출애굽의 두 지도자를 원망한 것은 배은망덕한 일인 동시에 두 지도자를 세우신 여호와의 권위에 도전하는 악행이었다. 이처럼 원망을 일삼는 자는(출 17 : 3)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다. 이 사실을 교훈삼아 후일 사도바울은 항상 근신할 것을 우리에게 명하였다(고전 10 : 10, 11).

(주);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여행 중 상황이 조금만 나빠져도 습관적으로 죽음을 운운했었다(출 14 : 11 ; 16 : 3). 이는 하님의 모든 구원의 은총(유월절 사건, 홍해 사건, 만나 사건 등)을 업신여기는 처사인 동시에, 자유와 생명을 향유할 가치가 없는 자임을 스스로 증거하는 태도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역경에 처할지라도 생명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인내해야 한다(약 5 : 7-11).

성 경: [민14:3]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백성들의 원망]

(주); 우리를... 망하게 하려 하는고 - 패악한 백성들의 억측이다. 하나님은 분명 그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여 당신을 중심한 복된 국가를 만드시려 했다(출 3 : 7, 8).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바로의 추격의 칼로부터, 광야의 죽음의 갈증과 기아로부터 고비 때마다 구원하셨다. 이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던 그들이었지만, 그러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을 적대자요, 살인자로 매도함으로써 씻을 수 없는 죄악을 범하고 말았다. 이처럼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에 관해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나타낸다. 따라서 참 믿음은 지적인데 머무르지 않고 전인격적으로 수납하는데까지 나아간다.

(주);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 백성들의 이러한 불신앙적이고 쓸데없는 걱정은 후일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즉 훗날 그들이 염려했던 자녀들은 생존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오히려 그들 자신은 광야에서 죽음을 맞게 됐던 것이다. 이 얼마나 불신앙의 패러독스(paradox)인가?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처자를 걱정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들의 연약한 믿음을 염려해야 옳았다.

(주);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 죽음을 두려워한 자들의 비겁한 생각이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와 선민(選民)으로서의 특권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노예 근성의 발로이다. 아울러 애굽이 죄악된 세계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환난을 만난 성도가 옛 죄악된 생활로 되돌아 가고자 하는 어리석음의 전형(典型)을 보여 주고 있다. 실로 참 신앙인은 과거 죄악되고 비굴했던 생활에로의 회귀보다 고난스런 현실을 꿋꿋이 인내하는 가운데 끝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빌 3 : 13, 14).

성 경: [민14:4]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여호수아와 갈렙의 권면]

(주); 한 장관을 세우고 - 여기서 '장관'(*, 로쉬)이란 '머리'란 뜻으로서 곧 인도자, 우두머리 등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옛 생활로의 복귀를 위해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를 배척하고 자신들의 뜻을 충족시키는 지도자 선출을 운운했다. 이는 지금까지의 단순한 불평보다 보다 구체적이고 계획적인 패역으로서, 더이상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겠다는 교만한 발상의 극치요, 배은망덕한 불신의 절정이었다.

성 경: [민14:5]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여호수아와 갈렙의 권면]

(주);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 모세와 아론은 폭도(暴徒)가 된 백성들에게 대항치 않고 그들 앞에서 이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표시로 엎드려 간구하였다(Calvin). 그리고 간구의 자세는 배를 땅에 대고 누운 자세를 취하였다.

성 경: [민14:6]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여호수아와 갈렙의 권면]

(주); 여호수아와...갈렙이 그 옷을 찢고 - 두 지도자 모세와 아론의 행동(5절)에 신앙의 두 정탐꾼이 동조하는 장면이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옷을 찢는 것은 극한 슬픔과 고통과 분노를 표시하는 행위이다(창 44 : 13 ; 스 9 : 5).

성 경: [민14:7]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여호수아와 갈렙의 권면]

(주); 심히 아름다운 땅(*, 토바 하아레츠 메오드 메오드) - 여기서 '심히'를 뜻하는 원어 '메오드'는 반복될 경우 보통 최상급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리고 '아름다운'이란 '풍부한', '편한', '잘되는' 등의 의미를 뜻하기도 한다. 결국 위의 말은 가나안 땅이 자신들이 보아왔던 그 어떤 땅보다 비옥하며 풍족할 뿐아니라, 영적으로도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축복되고 은혜로운 땅임을 시사한다.

성 경: [민14:8]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여호수아와 갈렙의 권면]

(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 가나안 땅 입국은 오직 '여호와의 기쁘신 뜻', 곧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에 기인한 것임을 밝혔다. 따라서 가나안 땅 입국은 인간의 행위나 주변의 상황에 구애됨 없이 오직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일찍부터 베풀어져 있었다. 백성들은 단지 그 은혜를 받아 누리기만 하면 되었다. 따라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바로 이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주);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출 3:8 및 민 13:27, 그리고 신 11: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14:9]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여호수아와 갈렙의 권면]

(주);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 여호와를 거역하는 것은 곧 (1)여호와의 약속을 믿지 않는 것과 (2)여호와의 뜻을 거부하는 악행을 동시에 의미한다. 일찍이 여호와는 가나안을 그들에게 약속하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가나안에 거룩한 나라를 건설코자 하는 뜻(계획)을 가지고 계셨다(출 3 : 8).

(주); 그들은 우리 밥이라 - 이는 손쉽게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말이다. 동시에 이 말은 가나안이 이스라엘의 필요를 넉넉히 채우는 보고(寶庫)임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한편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여호와가 함께 하신다'는 믿음 때문이었다(수 1 : 5, 6). 그러므로 실로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굳센 믿음을 가질 때 인간이 지닌 제문제는 말끔히 해결된다(롬 8:31-39).

(주); 그들의 보호자(*, 칠람) - 직역하면 '그들의 그림자'이다. 무서운 사막 지역에서는 큰 산이나 반석이 태양의 열기를 차단하는 보호물이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보호를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으로 '반석', '산성'(시 18 : 2), '그림자'(시 91 :1, 2)등이 자주 사용되었다. 한편 본문에서 가나안 백성을 향한 여호와의 보호(그늘)기능은 '일반 은총적' 측면, 곧 가나안인들에게 구원을 목적한 보호가 아니라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 보호를 의미한다(마 5 : 45). 그러므로 본절은 가나안 원주민에게는 이제 이러한 배려까지 철회된 상태이므로, 그들은 전혀 희망없는 족속들임을 강조한 말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신 바 가나안족속에 대한 심판 유예 기간은 이제 끝났던 것이다(창 15 : 16).

성 경: [민14:10]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여호수아와 갈렙의 권면]

(주); 온 회중이... 돌로 치려하는 - 정곡을 찌르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설득에 오히려 백성들이 완전히 이성을 잃고 설치는 격앙된 모습이다. 이는 마치 스데반의 의로운 설교에 유대인들이 그를 돌로 치는 모습과 같다(행 7 : 57, 58). 실로 회개를 모르는 패역한 백성들의 공통된 모습인 것이다.

(주);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시니라 -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이 침해받을 때에 결연히 일어나셔서 영광을 보존하신다(16 : 42 ; 욥 38 : 1).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전격적인 개입은 항상 악인에게는 심판을, 의인에게는 구원과 축복을 동반한다(시 37 : 28 ; 145 : 20). 한편, 여호와의 영광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셨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카일(Keil)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상징하는 '빛의 섬광'이 회막의 구름 가운데로부터 터져나왔을 것이라고 추측한다(출 16 : 10).

성 경: [민14:11]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진노하신 여호와]

(주);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를 대변하는 말인(출 10 : 3 ; 16 : 28 ; 렘 23 : 26)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불평과 반역을 일삼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나타낸다. 실로 하나님은 그들의 해방과, 광야에서의 생존을 위해서 많은 '이적'을 그들의 목전에서 베푸셨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또다른 '이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었다(마 11 : 20-24).

성 경: [민14:12]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진노하신 여호와]

(주); 전염병으로... 멸하고 - 하나님께서 패역한 백성을 친히 진멸코자 계획하신 것은 이번만이 아니었다(출 32 : 10). 그만큼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멸망당해 마땅한 패역한 백성이었다. 한편 여기서 '전염병'(*, 데베르)이란 '흑사병'과 같은 악성 유행병(plague)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치료불가능한 질병이었다(32, 33절).

(주); 너로... 크고 강한 나라를 - 이는 금송아지 우상 사건 때에도 언급된 말이다(출 32: 10). 이처럼 거듭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산 백성들은 광야에서 처참한 죽음을 맛보아야 했으며, 이로인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창 12 : 2 ; 17 : 7) 모세를 통해 이루시려던 당신의 나라를 건설코자 하는 계획도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록 패역한 세대는 포기하셨지만, 당신의 나라 건설이라는 원대한 계획은 모세를 통해 계속 추진하고자 하셨다.

성 경: [민14:13]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모세의 중보 기도]

(주); 주의 능력으로 - '능력'(*, 코아흐)이란 '생기', '힘' 등을 의미하는 말로써 여기서는 열 가지 재앙 등으로 애굽의 바로와 그 신(神)들을 파멸시키고 가나안 광야 여정을 주도하셨던 하나님의 주권적인 힘을 가리킨다. 출 32 : 11에는 '큰 권능과 강한 손'이란 말로 더욱 시각적이고 박진감 넘치게 표현하였다.

성 경: [민14:14]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모세의 중보 기도]

(주); 그들도 들었으니 - 여기서 '그들'은 애굽 백성들을 비롯하여 이스라엘이 광야 여정동안 거쳐 온 주변 족속들 및 가나안 열족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위에 베풀어진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명성을 곧 그들의 신 여호와의 명성으로 간주하였다(15절).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몰락(이유야 어떻게 되었든)은 곧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라는 것이 모세의 중보 기도의 논지(論旨)였다.

(주); 대면하여 보이시며 - 매우 친밀한 관계를 의미한다<12 : 8>.

(주);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 - 출 13 : 21 주석 참조.

성 경: [민14:15]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모세의 중보 기도]

(주); 한 사람 같이 - '단번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모든 백성을 정녕 단번에, 한 사람 죽이듯이 매정하고 단호하게 몰살시키실 것이냐는 눈물어린 탄원조의 말이다.

성 경: [민14:16]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모세의 중보 기도]

(주); 여호와가... 능이 없는고로... 죽였다 - 모세의 간절한 중보 기도는 자신의 체면과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충정에 근거하고 있음이 확연히 밝혀졌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전부 정당한 것은 아니었다. 만일 모세의 주장 대로라면 하나님은 이방 민족들의 비판적인 눈을 의식하여 패역한 이스라엘을 결코 정의롭게 치리(治理)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기도가 호소력을 가지는 이유는, 이유야 어떻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언약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는 만약 이스라엘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 의해 그 백성이 죽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한낱 조롱거리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방인들은 '여호와'란 신(神)이 어떻게 우연히 애굽의 신을 격파했는지 몰라도, 막상 가나안 신들과의 싸움을 앞두고 그 패배가 두려워 그러한 우스꽝스러운 일을 벌였다고 한껏 조롱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바로 이러한 점을 깊이 염려한 것이다.

성 경: [민14:17]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모세의 중보 기도]

(주); 이미 말씀하신 대로 - 금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을 종결짓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의 중보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던 부분(출 34 : 6, 7)을 일컫는다. 여자적(如字的)으로 똑같지는 않으나 그 의미상 동일하다.

성 경: [민14:18]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모세의 중보 기도]

본절은 모세의 호소가 성숙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 즉 그가 인식한 하나님은 인자가 많아 죄를 용서 하시는 분이시지만, 그렇다고 그 사랑으로 인해 죄악을 그대로 방치해 두시지는 않는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이다. 실로 긍휼과 인자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사죄하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나 이 사죄(赦罪)는 죄악을 방치하는것으로써가 아니라, 공의에 기초한 희생 제물로써만 가능하다(히 9 : 22). 이런 사실은 본절의 '사하다'(*, 나사)란 말이 '옮겨버리다'(bearing away), '감당하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는 데서 확실시 된다. 즉 이 말은 희생 제물을 통한 대속적(代贖的)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이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성품이 가장잘 드러난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사건이다(롬 3 : 25, 26).

성 경: [민14:19]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모세의 중보 기도]

(주); 주의 인자의 공대하심을 따라 - 앞절에는 공의와 사랑이 조화된 하나님의 성품이 언급되었는데, 본절은 모세가 그 성품 중 그분의 '인자'(仁慈)에 더욱 매달리고 있는장면이다. 실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죄용서 받을 수 있는 아무런 자격이 없다. 따라서 만약 하나님이 공의로만 인간을 대하신다면, 그 앞에 살아남을 사람은 한명도 없다(룸 3 : 10-18). 그러므로 연약한 인간은 그분의 광대하신 인자에 매달릴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주);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사하신 것 같이 -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과 원망은 실로 그 뿌리가 깊다. 즉 출애굽 직후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 왔을 때(출14 : 10-12), 마라에서 먹을 물이 없었을 때(출 15 : 22-24), 신 광야에서 먹을 것이 부족했을 때(출 16 : 1-3),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었을 때(출 17 : 1-3), 모세가 시내 산에서 더디 내려온다고 생각했을 때(출 32 : 1), 광야 여행이 좀 힘들다고 생각됐을 때(민 11 : 1), 애굽의 생선과 마늘 등이 먹고 싶었을 때(민 11 : 4-6), 그리고 지금 가나안 땅의 정복이 어렵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은 지체없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또한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을 멸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진노하시되,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사 그들을 멸하시지는 않으셨다. 그러므로 모세는 다시 한번 그 크신 자비하심에 의뢰하여 죄사함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민14:20]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사유(赦宥)하신 여호와]

(주); 내가... 사하노라(*, 살라흐티) - '내가 사했노라'(KJV, RSV-, I havepardoned)로 해석함이 좋다. 즉 하나님의 사죄는 벌써 완결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백성들이 당장 한번에 죽지 않게 되고, 또한 기존의 이스라엘을 폐하고 모세를 통해 새 민족을 세우시겠다는 말씀을 취소하셨다는 뜻이지 그들에게 마땅히 내릴 형벌조차 취소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금송아지 숭배 사건 때 보류되었던 그 형벌(출 32 :3)에 지금의 죄악까지 겹쳐 이제 그 죄악의 한도가 찼기 때문에 더 이상 형벌을 미룰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원망하던 백성들은 하나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가야 했다.

성 경: [민14:21]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사유(赦宥)하신 여호와]

(주); 진실로... 맹세하노니 - 직역하면 '내가 살아 있는 것과 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될 것처럼'이다.

(주); 나의 사는 것 - 보통 사람들이 맹세를 할 때에는 자신보다 탁월하고 불변하는 존재의 권위를 빌어 맹세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존재 위에 거하시는 최고의 권위자이기 때문에 어떤 약속과 맹세를 하실 때는 하위(下位)에 있는 어떤 대상을 두고 약속하실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은 다만 당신 스스로의 권위로 맹세하실 뿐이다(히 6 : 13, 14). 그러므로 이는 유일신 여호와(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한편 이처럼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두고 한 맹세는 결코 변경되거나 상쇄되지 않고 반드시 성취하신다.

(주);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할 것 - 백성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창 12 : 1-3 ; 17 : 5-8) 당신의 나라 건설과 선민(選民)의 번영을 온전히 주도해 가심으로써 온 우주 가운데 당신의 영광이 충만할 것이라는 말씀이다(빌 2 : 9-11). 이는 당신의 영광스런 계획이 결코 수정될 수 없음 같이 22, 23절의 저주 선언 역시 결단코 철회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성 경: [민14:22]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사유(赦宥)하신 여호와]

(주);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 여기서 '10'은 '완전수'이다. 그런 점에서 '열 번'이란 숫자적으로 꼭 '10회'를 가리킨다기 보다는 백성들의 끝없는 반역을 강조한 표현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 사건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홍해 사건(출 14 : 11, 12), 마라 사건(출 15 : 23, 24), 신 광야 사건(출 16 : 2), 만나 사건(출 16 : 20, 27), 르비딤 사건(출 17 ; 1-3), 금송아지 사건(출 32 : 1-6), 다베라 사건(11 : 1), 기브롯 핫다아와 사건(11 : 4-23), 가데스 바네아 사건(14장) 등이다(Keil & Delitzsch, Vol. I- . p. 94).

성 경: [민14:23]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사유(赦宥)하신 여호와]

(주);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치 않는 자, 그리고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한 자들은 예외없이 약속된 기업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실로 불신앙이 빚어내는 비극적 결과이다.

성 경: [민14:24]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사유(赦宥)하신 여호와]

(주); 오직 내 종 갈렙은 - 20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중 오직 갈렙만이 가나안 입국을 허락받은 것은 아니다. 여기서 갈렙은 20세 이상으로 그 처벌 대상에서 면제된 자들을 대표하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갈렙이 일반 백성들의 신앙적 수준에서 가장 온전히 여호와를 의뢰한 자로 대표되기에 족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갈렙은 여호수아(그는 모세의 뒤를 이어 전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를 비롯하여 아론과 엘르아살(수 14 : 1) 등 레위 지파(이들은 정탐꾼을 파견하지도 못했고, 또한 가나안 땅의 분배에서도 제외될 것이었다) 등의 다른 입국자들을 대표해서 언급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아직 가나안 입국 금지 선고가 내려지지 않았던(27 :13, 14) 모세의 경우도 지금은 '갈렙'이란 이름 안에 감추어진 입국자였다고 할 수 있다.

(주);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 여기서 '온전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말레'(*)는'가득 채우다', '충만하다', '만족시키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온전히 좇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만족하실 정도로 넉넉히 그분의 뜻에 순종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이같은 순전하고도 능동적인 순종으로써(삼상 15 : 22) 이 일에는 용기와 결단이 요구된다(마 16 : 24).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영광스런 결말이 따를 것이다(마 5 : 11, 12). 그리고 후일 갈렙은 이 일을 자신의 긍지로 삼고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수 14 : 8).

(주); 그 땅을 차지하리라 - 수 14 : 6-15에 온전히 성취되었다.

성 경: [민14:25]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사유(赦宥)하신 여호와]

(주); 골짜기 - 이 골짜기는 팔레스틴의 남방 사막 지대(Negeb)를 일부 포함하고 있는 아모리 산지의 접경 지역, 곧 오늘날 '와디무레'(Wady Murreh) 골짜기를 가리킨다(Keil & Delitzsch, op. cit. p. 95).

(주); 돌이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 약속의 땅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도 입국을 마다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 그들은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 '돌이켜' 홍해로 나 있는 길<출 13 : 18>을 통해 다시금 '시내 광야'로 들어가야 했다. 이제 그들은 아무 목표없이 그저 광야를 방황하는 초라한 유랑 민족의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실로 목표없는 삶이 무의미하듯 지향할 곳 없이 방황하며 오직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려야 했던 그들은 이제 지옥의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었다. 이는 불신앙의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 지를 똑똑히 보여 준다. 한편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에 대해서는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을 참조하라.

성 경: [민14:26-35]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이 부분은 이곳 가데스 바네아 사건으로 인해 향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소요될 38년간의 광야 생활 및 그 광야 생활 중 받게 될 징계의 원인과 그 징계의 세부적 사항을 다루고 있다.

성 경: [민14:27]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아드 마타이) - 직역하면 '내가 언제까지?'이다. 거듭거듭 불평과 원망을 일삼는 이스라엘의 완악함이 극에 달했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애틋한 심정이 짧은 말 속에 잘 응축되어 있다.

성 경: [민14:28]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나의 삶을 가리켜 - 직연하면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이다. 21절 주석 참조.

(주); 내내 귀에 들린대로... 행하리니 -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혈기를 따라 지껄인 2절의 말("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대로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광야에서' 그들을 죽이시기로 결정하셨다는 뜻이다. 즉 백성들은 자신들의 불신앙과 그로 인한 망발(妄發)을 하나님 앞에서 책임져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진리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혀는 자신의 생사(生死)를 가늠하는 척도이며(잠 18: 20, 21 ; 약 3 : 5-8),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하지 않은 죄에 대해서 징계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해서만 심판하신다(마 25 : 40, 45, 46 ; 고후 5: 10).

성 경: [민14:29]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군]

(주); 이십 세 이상으로 - 이는 가데스 거역 사건의 책임자 범위에 관한 내용이다. 즉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전쟁을 수행할 만한 나이로 계수된 자 곧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한 나이인 20세 이상(1 : 3) 된 사람들에게 불신앙의 첵임을 물어 광야에서 죽게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의 군대 구성원으로서 죄악된 이방 세력과 싸워야 했음에도,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의 약속을 멸시함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였기 때문이다.

성 경: [민14:30]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 24절 주석 참조. 거하게 하리라 한(*, 나사티 에트 야디 레솨켄) -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정착시켜 주겠다고 손들어 맹세한'(공동 번역)이 된다. 이 말을 통해 한 가지 의문시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맹세하신 것을 스스로 파기하시는 변화 무쌍한 존재이신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영원 불변하신 분으로서 당신의 계획을 결코 변개(變改)치 않으신다(삼상 15 : 29 ; 약 1 : 17). 그러므로 하나님은 비록 불평하는 자들은 광야에서 죽이실 것이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을 위시한 20세 미만의 새 세대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들이실 것이다. 결국 20세 이상 자들이 가나안에 입국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심술 때문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죄악 때문이었다.

성 경: [민14:31]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 여기서 유아(*, 타프)란 원래 '아장아장 걷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말이 20세 미만의 사람 모두를 지칭했다. 가데스 바네아의 불평, 불만자들은 이들을 핑계로<3절> 가나안 정복을 반대했으나, 하나님은 바로 이들을 보존하시기로 결정하셨던 것이다. 아마 이들은 아직 육체적, 정신적으로 미숙하여 여호와의 군대 구성원이 될 수 없었고, 따라서 가나안 정복전쟁에 참여해야 할 책임이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에 형벌이 모면된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더 큰 이유는, 이들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봄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반드시 만 20세가 되지 않은 자라고 해서 모두 불평, 불만을 하지 않은 자라고 보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본질상 죄 아래 놓여 있다(엡 2 : 1).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지 않고는 누구도 생존할 수 없는 것이다.

성 경: [민14:32]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엎드러질 것이요 - '엎드러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팔'(*)은 '허물어지다'(rall down), '내던져지다'(throw down), '사라지다'(perish)등의 뜻이다. 즉가데스 바네아의 거역자들은 하나님의 형벌로 광야에서 소망없이 하나 둘씩 스러져 갈 것임을 암시하는 말이다. 참고 또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내와 베풀고 또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만홀히 여기는 자의 종국을 잘 보여 준다(갈 6 : 7). 한편, 전체 200만 이스라엘 인구 중 20세 이상 된 남자와 여자의 수효를 대략 120만명으로 산정한다면, 38년(13, 870일) 기간 동안에 매일 80-90명이 죽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순종의 죄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도록 하기에 족했을 것이다.

성 경: [민14:33]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 여기서 '패역한 죄'(* . 누테켐)란 '간음' 또는 '우상 숭배'를 뜻하는 말인 바(출 34 : 16), 본문의 기자(記者)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평하고 자신들의 고집을 내세운 것을 '영적 간음'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죄를 범한 자의 자녀들은 그 부모의 영향을 받아 광야에서 40년동안 영적 고통 뿐 아니라 육체적 고통도 감수해야 했다. 부모가 자녀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는 없으나, 그 생활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출 20 : 5, 6).

(주);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이흐이우로임) - 직역하면 '목자들이 되리라'이다. 카일(Keil)은 이 해석을 받아들여 '휴식이 전혀 없는(광야의) 목자 생활을 하리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즉 끝없는 방랑으로 피곤한 삶을 살 것이라는 뜻이다.

성 경: [민14:34]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사십 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 하나님께서 형벌로 내린 40년 광야 유랑 생활의 산술적 근거가 제시되었다. 특별히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유랑기간을 친히 정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확히 계산하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본격적으로 유랑한 기간은 시내 산의 인구 계수 시기(출애굽 제 2년 2월 1일)로부터 아론의 죽음(출애굽 제 40년 5월 1일) 후 새 인구 조사 시기까지 대략 38년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출애굽 직후부터 하나님을 거역하기 시작하여 시내 산의 인구조사가 있기까지 이미 1년 이상을 거역과 불평의세월로 보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미상 그 기간도 방랑의 기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시에 죽이시지 않고 40년 간의 기간에 걸쳐 그들을 징계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백성들에게 스스로를 반성하며 죄악의 비참한 결과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고 (2)또한 20세 미만의 새세대가 구세대를 이어 하나님의 거룩한 임무를 맡을 수있는 성숙함에 이를 때까지의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격렬한 심판의 와중에서도 당신의 백성을 향한 긍휼과 사랑을 잊지 않으신다(합 3 : 2).

(주); 나의 싫어버림 - 여기서 '싫어버림'(*, 테누아티)이란 '거절하다', '낙담시키다'는 의미로서, 계속적인 이스라엘의 거역과 불평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실망하시고 더이상 은혜 베푸시기를 거절하시고자 하심을 가리킨다. 이처럼 인간의 죄는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는 장애물인 것이다.

성 경: [민14:35]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 뒤이어 언급되는 말들이 신적 권위를 지님을 나타내 준다. 실로 하나님의 권위로 말해지는 것은 그 자체가 곧 완전한 성취를 의미한다.

성 경: [민14:36]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그 땅을 악평하여...원망케 한 사람 - 곧 13 : 4-15절에 언급된 바 12명의 각 지파 정탐꾼 중에서 유다 지파 갈렙과 에브라임 지파 호세아(여호수아)를 제외한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을 가리킨다<이들의 목록에 대하여는 13 : 4-15 주석 도표를 참조하라>.

성 경: [민14:37]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 백성을 충동질하여 온 이스라엘에 불신과 불평을 조성한 10정탐꾼들은 '여호와 앞에서', 곧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분명히 보아 확인할 수 있는 어떤 공개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징벌을 받아 처참한 죽음을 맛보아야 했다. 이는 거룩한 공동체에 범죄를 유포시키는 죄가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똑똑히 보여 주는 한 예이다(고전 10 : 10).

성 경: [민14:38]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죽임당한 가나안 정탐꾼]

(주); 여호수아와...갈렙 - 이 두 믿음의 용사는 후일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도 지대한 공헌을 세운다. 즉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가되어 가나안 정복 전쟁을 총지휘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고, 갈렙은 가나안 족속중 가장 강력한 족속인 아낙 자손을 물리치는 용맹무쌍한 업적을 이룩했다. 실로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 앞에서 가나안 족속은 그들의 밥이었던 것이다(9절).

성 경: [민14:39]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이스라엘의 패전(敗戰)]

(주); 모세가 이 말로 - '이 말'이란 26-35절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 내용을 가리킨다.

(주); 백성이 크게 슬퍼하여 - 백성들의 때 늦은 한탄이다. 이 때 늦은 후회는 여호와의 극렬한 분노를 어찌할 수 없었으며, 비록 죄용서<20절>는 받았으나 쓰디쓴 죄의 열매(32, 33절)는 스스로 거둬들여야 했다. 그러므로 회개에는 그 때와 기한이 있는 법이다(고후 6 : 1, 2 ; 히 12 : 17).

성 경: [민14:40]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이스라엘의 패전(敗戰)]

(주); 산 꼭대기로 올라가며 - 이 산은 가데스 근처의 호르 산이다. 이 산은 가나안 남쪽 경계선을 이룬다. 그리고 이 산지에는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거하고 있었다(25절).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이곳을 오른 것은 그 원주민을 정복하기 위함이었다. 즉 이스라엘은 이곳을 점령함으로써 그들이 '산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왕상 20 : 28), 그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결의를 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결행은 광야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25절)을 또다시 정면 거부한 것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더욱 크게 살 뿐이었다. 실로 범죄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과실을 보상하기 위한 인간적인 노력이나 변명보다 진실된 참회와 순종이다.

(주); 여호와의 허락하신 곳 - 아브라함 때로부터 거듭 약속되어져 온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창 15 : 16-21).

성 경: [민14:41]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이스라엘의 패전(敗戰)]

(주); 명령을 범하느냐...형통치 못하리라 - 순종이 없는 열심은 결코 복된 결과를 기대할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더할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삼상 15 : 22, 23).

성 경: [민14:42]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이스라엘의 패전(敗戰)]

(주); 패할까 하노라(*, 로틴나기푸) - 직역하면 '패하지 않도록'이다. 전쟁의 주관자(삼상 17 : 47)이신 여호와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패배를 자초하는 일이다. 한편 하나님께서 그들과 동행치 않은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를 배반하였기'(43절) 때문이다. 즉 그들은 여호와를 따르는 일을 거부하고, 자신의 추악한 감정의 노예가 됨으로써, 그들의 왕이신 하나님을 그들의 삶 속에서 몰아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당시 이스라엘에게 시급한 것은 전쟁 수행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회복하는 일이었다.

성 경: [민14:43]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이스라엘의 패전(敗戰)]

(주);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 아말렉 족속은 에돔 족속으로부터 갈라져 나와(창 36 : 12), 시내 반도를 중심으로 그 세력을 뻗치며 유랑하던 강력한 유목민들이었다. 그리고 모세 당시에는 이 족속이 가나안 족속과 동맹 관계를 맺은 상태에서 가나안 남방 지경에 거주하고 있었다.

성 경: [민14:44]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이스라엘의 패전(敗戰)]

(주); 그들이 그래도...올라갔고 - 모세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출전 금지 명령을 끝내 청종치 않고, 자신들의 그릇된 열심이 마치 하나님을 섬기는 최선의 방법이라도 되는 양 이스라엘은 막무가내로 서둘러 금지된 땅으로 올라갔다. 특히 '그래도'란 말은 백성들의 의지적인 불순종과 불신앙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외시켜버린 종묘적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온다(사 1 : 10-17).

(주); 언약궤와 모세는 진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 이는 모든 백성이 산에 오른 것이 아니며 일부분은 산 아래 머물러 있었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산 아래 있었던 사실은 여호와께서 산에 오르는 자 가운데 함께 계시지 않았음을 시각적(視覺的)으로 보여 준다. 하나님(언약궤)을 앞세우지 않고(10 : 33), 자신의 고집과 주장을 하나님의 권위 위에 둔 자에게는 늘상 실패만 따를 뿐이다.

성 경: [민14:45]

주제1: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

주제2: [이스라엘의 패전(敗戰)]

(주); 내려와 쳐서 파하고 -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고집은 그들의 치욕적이고도 철저한 패배로 끝이 났다(신 1 : 44). 이 패배는 출애굽 후 이스라엘이 최초로 겪은 것이다. 한편 이때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징계코자 사용하신 심판의 도구라 할 수 있다<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주);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 - '저주'라는 뜻의 '호르마'는 가데스 부근의 한 장소이다. 비록 이곳은 훗날 이스라엘이 재탈환하여(21 : 3 ; 수 12 : 14 ; 삿 1 : 17) 시므온 지파에게 분배하였지만(수 19 ; 4), 가나안 정복의 첫 교전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서의 패배로 가나안 주변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깔보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과 인도를 거부한 자는 세상으로부터 치욕과 멸시를 당하게 된다(마 5 : 13, 14).

성 경: [민15:1-19:22]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각종 제사에 따르는 소제와 전제]

이 부분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 팔년 동안이라"는 신 2 : 14의 기록을 염두에 두고 연구하여야 한다. 즉 본서 1-14장까지는 출애굽제 2년 2월초의 인구 조사 사건부터 시간적으로 계속 연결된 기록이다. 그리고 20 : 1부터 전개되는 두번째 가데스 바네아 사건은 가나안에 입국하기 직전(출애굽 제 39년)에 일어난 사건들의 기록이다. 따라서 본문(15-19장)의 기록은 출애굽 제 2년 이후부터 출애굽 제 39년 사이의 약 38년 동안의 광야 여정과 그때 계시된 말씀들이 기록된 것이다.

성 경: [민15:2]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각종 제사에 따르는 소제와 전제]

(주); 내가 주어 거하게 할 땅에 들어가서 - 이는 14 : 30에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말씀과 비교된다. 그것은 본장에 주어진 제사법을 실천할 사람들은 광야에서 죽어야 했던 구세대가 아니라, 가데스 반역 사건(14장) 당시 20세 미만이었던 사람들과 그 이후에 출생한 자들 곧 새 세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성 경: [민15:3]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각종 제사에 따르는 소제와 전제]

(주); 화제(火祭) - 제물을 불에 태워 그향기를 드리는 제사로서, 번제나 소제 등에서 제물을 불에 태워드리는 모든 제사 방법을 총칭한다.

(주); 번제 - 레 1 : 3 주석 참조.

(주); 서원을 갚는 제 - 하나님께 드리기로 특별히 서원한 것을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이다.

(주); 낙헌제(freewill offering) - 화목제 중 자발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다(레 7 : 16, 17).

(주); 정한 절기제 - 해마다 정해진 절기에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제사이다. 한편 이상의 제사에 관해 더 자세한 내용은 레위기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를 참조하라.

성 경: [민15:4]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각종 제사에 따르는 소제와 전제]

(주); 에바 - 구약 시대에 고체의 부피를 측정하는 단위로서 약 23리터에 해당된다.

(주); 힌 - 약 3.8리터의 액체량을 나타내는 단위이다 <Vol. I. p. 44, 성경의 도량형과화폐 및 월력>.

(주); 소제 - 동물을 희생 제물로 드릴 때 항상 곁들이는 곡식제사를 가리키며, 충성과 감사를 상징한다<레 2장>.

성 경: [민15:5]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각종 제사에 따르는 소제와 전제]

(주); 전제(奠祭) - 일반적으로 번제물이나 화목 제물 위에 포도주나 독주를 부어 드리는 제사 방법을 의미한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전제(drink offering)는 상번제와 더불어 아침, 저녁으로(28 : 7 ; 출 29 : 40), 안식일 제사 때(28 : 9), 월삭 제사 때(28 : 14), 그리고 초막절 제사 때(28 : 18-21)에 특별히 드려졌다<레위기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성 경: [민15:7]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각종 제사에 따르는 소제와 전제]

(주); 향기롭게 할 것이요 - 이 말은 여호와께서 바치는 자의 제물과 그 마음을 기쁘게 받으신다는 신인동형동성론(Anthropomorphism)적 표현이다. 레 2 : 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15:8]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각종 제사에 따르는 소제와 전제]

(주); 화목제 - 하나님과 더욱 돈독한 친교를 다지기 위해 드리는 제사로서, 여기에는 감사제, 서원제, 자원제가 있다. 대부분의 절기 제사는 이 화목제를 중심으로 드려졌다<레 3 : 1-5 강해, 화목제에 대하여>.

성 경: [민15:9]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각종 제사에 따르는 소제와 전제]

(주); 고운가루 - '흔들다'란 뜻에서 파생된 말인데, 곧 빻은 밀가루를 채에 흔들어 골라낸 부드러운 가루를 의미한다.

(주); 기름 - 감람나무 열매로부터 짜낸 올리브(olive) 기름을 가리킨다.

성 경: [민15:11, 12]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이스라엘 대대의 율례]

(주); 각기 수효에 맞게 하라 - 드려지는 제물의 가치와 수효에 따라 소제와 전제의 양을 정확히 맞추어 제사를 드려야 했다. 이에 대해 아래 도표를 참조하라.

제 물 소제의 양 전제의 양

어린 양 고운가루 1/10에바 포도주 1/4 힌

어린 염소 기름 1/4 힌

수 양 고운가루 2/10에바 포도주 1/3 힌

기름 1/3 힌

수 송아지 고운가루 3/10에바 포도주 1/2 힌

기름 1/2 힌

성 경: [민15:13]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이스라엘 대대의 율례]

(주); 이 법대로 - 2-12절에 제시된 소제물과 전제물에 관한 제사법을 가리킨다. 물론 이를 확대 해석해서 율법 전체를 의미한다고 해도 틀린 것은 아니다.

성 경: [민15:14]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이스라엘 대대의 율례]

(주); 타국인이나...대대로 있는 자 - 이들은 통상이나 여행등을 위해 이스라엘을 잠시 방문하는 순수 외국인들과는 구별되는 자들이다. 이들은 본래 이스라엘 12지파의 혈통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인연으로 이스라엘 사회에 오래도록 거주하는 중 그 공동체에 여러모로 동화된 자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만일 이들도 할례를 받는다면, 본토 이스라엘 자손들과 아무런 차별없이 율법의 의무를 지기도 하고, 또한 그 특혜를 누릴 수도 있었다.

성 경: [민15:15]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이스라엘 대대의 율례]

(주); 회중(*, 카할) - 단순한 집합체로서의 '회중'(congregation)과는 달리 특별한 목적으로 모인 '총회'(RSV, assembly)를 뜻한다. 이는 가나안에 건설될 신국(神國) 이스라엘의 성격을 규정한 말로써, 이스라엘은 단순히 히브리인으로 구성된 혈통적 집합체가 아니라, 혈통을 초월하여 여호와 신앙으로 모인 '신앙 공동체'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런 점에서 여호와 종교는 결코 폐쇄적이거나 배타적이지 않고 전 우주적인 보편적 종교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민15:16]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이스라엘 대대의 율례]

(주); 한 법도, 한 규례니라 - 하나님의 법은 절대적인 것으로 상황과 사람에 따라 모순되는 내용이 아니며,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될 가나안 땅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었다. 이런 점에서 이방인들도 이스라엘 영내에 거주하며, 이스라엘이 누리는 신적 특권을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거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여호와께서 정하신 법규를 온전히 따를 것'이 요구되었으며, 그리고 반드시 이 요구를 충촉시킬 때에만 율법의 각종 보장과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므로 가나안에는 인간 의지가 중심이 된 종교는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출 12 : 19, 48 ; 레 16 : 29-31 ; 17 : 8).

성 경: [민15:17-21]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첫 소산의 거제]

본문은 처음 익은 곡식으로 가루떡을 만들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 것을 규정한 내용이다. 이에 대한 총괄적인 규정은 이미 출 23 : 19에 언급된 바 있다.

성 경: [민15:18]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첫 소산의 거제]

(주); 너희가 나의 인도하는 땅에 들어가거든 - 이는 규례의 적용 시기를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말이다. 즉 지금 전하는 규례는 광야에서가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살 때 지켜져야 하는 규례란 뜻이다. 그런 점에서 이 말은 또한 규례의 적용 대상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곧 그 대상은 광야에서 죽게될 출애굽의 구세대(시내 산 인구 계수시 20세 이상된 자들)가 아니라, 가나안 땅에 입국하게 될 가나안의 새 세대들이다.

성 경: [민15:19]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첫 소산의 거제]

(주); 그 땅의 양식을 먹을 때 - 후일 아스라엘은 여리고 성 점령 직전에 가나안 땅의 양식을 처음 맛볼 수 있었다(수 5 : 11, 12). 거제(擧祭) - 제물을 높이 들었다 아래로 내려 놓는 제사 방법이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성 경: [민15:20]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첫 소산의 거제]

(주);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 - 곧 첫 수확한 곡식을 거칠게 빻아 그 가루로 만든 떡을 가리킨다. 이는 한 해의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뜻으로 드려졌는데, '거제'후 그 예물은 제사장의 몫이 되었다(출 29 : 27, 28 ; 레 7 : 14, 32). 한편 이 첫곡식의 열매는 인류 구속을 완성하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롬 8 : 23 ; 고전 15 : 23).

(주); 타작 마당의 거제같이...드리라 - 곧 곡식을 타작한 마당에서 맨 먼저 거두어들인 곡식을 한단 묶어 하나님께 거제로 드리는 것 같이 첫 곡식으로 가루떡을 만들어 거제로 하나님께 또한 드리라는 뜻이다. 한편 백성들이 타작 마당으로부터 곡식 한 단씩을 제사장에게 가져오면 제사장은 유월절 기간 중에 들어 있는 '첫 이삭 바치는 날'(the day of first fruit)에, 즉 유월절이 지난 첫 안식일 다음 날에 첫 이삭을 거제로 하나님께 드렸다(레 23 : 10-14). 이것을 '타작 마당의 거제'라고 한다.

성 경: [민15:21]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첫 소산의 거제]

(주); 거제(*, 테루마) - '거제'(heave offering)란 말은 '높이 들어올리다'(lift up)란 뜻의 '룸'(*)에서 파생된 말로, 곧 제물을 높이 들어서 드리는 제사방법을 가리킨다. 즉 제사장은 번제단 앞에서 제사 예물을 양손으로 꽉 붙들고 그것을 상하(上下)로 높이들었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놓는 제사 방법이다. 여기서 제사장이 제물을 위로 들어 올리는 것은 그 제물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이며, 그것을 다시 내려놓는 것은 그 제물이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졌다는 의미를 지닌다.

성 경: [민15:22]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온 회중을 위한 속죄 규례]

(주); 그릇 범죄하여(*, 티쉐구) - 이말의 원뜻은 '옆길로 빗나가다', '취하여 비틀거리다', 또는 '알지 못하고 죄짓다'란 의미로서, 연약한 본성 때문에 실수로 범하고 만 비고의적인 범죄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것을 인간 의지가 반영된 고범죄(故犯罪)와 구별하시고 그에 합당한 속죄제를 요구하신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고찰하면, 여기에 나타난 규례(22-26절)는 앞서 제시된 레위기 규례(레 4 :13-21)와는 구별되는 규례이다. 곧 레위기의 속죄 규례는 보다 분명하고 뚜렷한 어떤 위반죄에 대한 속죄 규례인 반면, 여기서의 속죄 규례는 보다 일반적이고 소극적인 태만죄 내지는 무지죄에 대한 속죄 규례라고 볼 수 있다. 여하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약함을 긍휼히 여기셨지만, 그 죄에 대해서는 이유를 막론하고 냉철하게 물으신 것이다.

(주); 지키지 못하되 - 하나님께서는 제사법과 더불어 그 법을 어길 경우를 대비한 법을 또한 허락해 주셨다(Knobel). 이처럼 인간의 약함을 인간 자신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시 103 : 4) 당신의 깊으신 자비와 긍휼로 인간이 계속적으로 당신과 교제할 수 있도록 속죄의 길을 열어주셨다(요 14 : 6).

성 경: [민15:23]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온 회중을 위한 속죄 규례]

(주); 명한 날부터...대대에 지키지 못하여 - 이는 비록 많은 시간이 경과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제시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세대와 개인을 만날 수 없다는 불행한 가능성을 암시한 말이다(롬 3 : 10, 20). 동시에 이는 율법외에 인간을 의롭게 할 또다른 한 법이 계시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가능성을 시사한 말이기도 하다(롬 3 : 11).그리하여 실로 하나님께서는 때가 찬 경륜을 따라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그 믿음으로써(以信) '의인' 되게 하심으로(得義) 위의 희망적인 가능성을 현실화 하셨다(롬 8 : 2).

성 경: [민15:24]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온 회중을 위한 속죄 규례]

(주); 회중이...범죄하였거든 -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범죄나 혹은 그들을 대표하는 제사장의 범죄는 한 개인의 범죄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 심각하게 다뤄졌다<레 4 : 13-5: 13>. 따라서 온 회중의 속죄를 위해서는 '수송아지'와 더불어 '수염소'가 드려졌는데, 여기서 수송아지는 번제용이었고 수염소는 속죄제용이었다. 그런데 실제 제사를드릴 때는 항상 그러했듯, 속죄제를 먼저 드려 죄용서 받은 후 헌신의 상징인 번제를 드렸을 것이다(Keil). 그리고 속죄제를 드리는 방법은 레 4 : 13-21에 명시된 규례대로 드렸을 것이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회중의 범죄시, 수송아지와 더불어 수염소까지 요구된 것은 초기 규례(레 4 : 13-21)의 경우(수송아지만 허용)와는 조금 변경된 것이다.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마 이는 율법의 기본 정신이 변질되지 않는 한 사소한 세부 규정은 당시의 상황 및 특징 등을 따라 보다 충실하게 보충, 확대될 수도 있다는 좋은 증거가 된다.

(주); 화제(*, 올라) - 원문상으로 '번제'를 의미한다. 개역 성경에 '화제'로 번역된 것은 그것이 온전히 불로 태워져 드려진다는 측면에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주); 규례대로 그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 즉 8-10절에 명시된 대로 수송아지를 드릴 때 동반되어야 할 소제물(고운 가루 3/10 에바, 기름 1/2힌)과 전제물(포도주 1/2힌)을 드리라는 뜻이다<11, 12절 도표 참조>.

성 경: [민15:25]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온 회중을 위한 속죄 규례]

(주); 속죄하면(*, 키페르) - 기본 개념은 '덮다', '지워버리다'란 뜻이다. 이처럼 '속죄'는 희생의 피를 근거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를 가리우는 것'(시32 : 1)이요, '도말하는 것'(시 51 : 1)이다.

(주); 그릇 법죄함 - 이 말의 기본 동사 '솨가그'(*)는 '비틀거리다', '실수하다', '길을 잃다' 등의 의미를 띠고 있다. 그러므로 '그릇 범한 죄'란 곧 죄를 죄인줄 깨닫지 못하고 지은 죄, 서두르다 실수하여 지은 죄, 또는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부득이지은 죄 등을 가리킨다.

성 경: [민15:26]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온 회중을 위한 속죄 규례]

(주); 타국인도 사함을 얻을 것은 - 타국인들도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소속되어 있었던고로, 그들 역시 회중이 저지른 범죄의 영향하에 있었고, 아울러 그 범죄를 속하는 속죄의 은총 영역 안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속죄의 은총은 결코 편협적이거나 폐쇄적이지 않고 전 인류에게 미치는 것임을 시사한다. 실로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주인으로서, 그들이 당신의 법도에 따라 죄 고백을 성실히 한다면, 받아들이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이 약속은 온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마침내 구체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죄를 고백하는 모든 자는 그지위와 혈통에 구애받지 않고, 예수 안에서 구속과 자유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롬 8 : 19-23 ; 고후 5 : 17).

성 경: [민15:27]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일 개인을 위한 속죄 규례]

(주); 한 사람이 그릇 범죄하거든 - 개인의 죄는 회중의 죄에 비해 적은 예물이 요구되었다<레 4 : 27-5 : 13>. 이 경우 원칙상 '암염소'가 요구되었으나 경제적 능력이 없는 가난한 자에게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그리고 그보다 더 어려운 극빈자에게는 '고운 가루'로 대체할 수 있게 했다<레 5 : 7-13>. 이는 개인 각각의 형편을 깊이 이해하시는 하나님의 넓으신 사랑을 반영하며, 더불어 범죄자는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 앞에서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써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엄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히 9 : 22).

성 경: [민15:28]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일 개인을 위한 속죄 규례]

(주); 그릇 범죄한 - 25절 주석 참조.

(주); 여호와 앞에 얻은 죄 - 여기서 '죄'에 해당하는 말은 본래 '표적을 맞추지 못하다', '과녁으로부터 빗나가다'란 뜻의 기본 동사 '하타'(*)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죄'란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서 빗나가고,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성 경: [민15:29]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일 개인을 위한 속죄 규례]

(주); 본토 소생...타국인 - 여기서 '본토 소생'(*, 에즈라흐)은 지역적으로 혹은 혈통적으로 태어나면서 부터 이스라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타국인'(*, 게르)은 본래 지역이나 혈통이 이방 출신이었으나, 할례를 받음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된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들은 순수한 '외국인'(*, 노크리)들과는 구별되는 존재들로서, 이스라엘 본토 소생들과 동일하게 율법의 의무 및 권리가 부여되었다.

성 경: [민15:30]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일 개인을 위한 속죄 규례]

(주); 짐짓(*, 베야드 라마) - 직역하면 '높은 손으로', 또는 '손을 높이 들어'이다. 이것은 의지적이고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권위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행동이다(신 32 : 27 ; 사 10 : 32).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극도로 교만하여 손을 높이 쳐들어 휘두르듯이 공개적으로 범하는 죄악은 속죄제로 죄 용서함 받을 수 없었고 오직 멸망과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었다(마 12 : 31, 32 ; 요일 5 : 16).

(주);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 여기서 '훼방하다'(*, 가다프)란 말은 '말로써 난도질하다', '불경스런 말을 하다'는 의미이다(겔 20 : 27). 결국 여호와께 '손을 높이 쳐든' 범죄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모독하여 그분의 영광을 크게 훼손시키는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주); 끊쳐질 것이라 - 여기서의 의미는 단순히 언약 공동체에서 파문당하여 축출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죄에 대한 대가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사실 부모의 권위를 모독한 자에게도 죽음이 돌아갔는데(출 21 : 17 ; 레 20 : 9), 하물며 부모의 권위 이상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한' 자라면 영원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마 12 : 31, 32).

성 경: [민15:31]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일 개인을 위한 속죄 규례]

(주);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 직역하면 '그의 죄악이 그의 위에'이다. 이는 결단코 속죄될 수 없고 오직 그 죄책을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표현이다.

성 경: [민15:32]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안식일을 어긴 자]

(주); 광야에 거할 때에 - 이때가 언제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모압 평지에 도착한 뒤의(20장) 사건인 듯하다. 그런데도 본절 이하의 사건이 여기에 기록된 이유는 앞절에 언급된 '여호와께 짐짓' 범죄한 자(30절)의 경우를 예로 들기 위해 정착 기간이 길었던 모압 평지의 생활 동안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이 부분에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Keil, Pulpit Commentary).

(주); 안식일에...나무하는 것 - 안식일에는 일체의 노동(심지어 불 피우는 일까지)이 금지된 법규가 시내 산에서 공포된 적이 있었다(출 35 : 1-3). 그리고 율법 전반을 통하여 누차 안식일 준수를 거듭 명령한 바 있었다. 이 사실을 엄연히 알고도 안식일에 나무를 한 것은 고의적으로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는 행위였다. 결국 그 범죄자에게는 어떤 변명도 소용이 없었으며, 짐짓 범한 죄의 대가인 죽음이 기다릴 뿐이었다(출31:14, 15; 35:2).

성 경: [민15:33]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안식일을 어긴 자]

(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 여기서 '온 회중'은 문자 그대로 200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을 대표하는 장로 및 두령들의 회(會)를 가리킨다(실제 성경에서는 대부분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본절의 표현은 범죄자를 이스라엘 공동체의 재판석 앞으로 끌고 왔다는 뜻이다.

성 경: [민15:34]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안식일을 어긴 자]

(주); 어떻게 처치할는지 - 곧 처형하라는 명령은 이미 받은 바 있으나(출 31 : 14, 15 ;35 : 2), 안식일 규례 위반자에 관한 한 아직까지 어떠한 방법으로 처형할지는 지시되지 않았으므로, 지금 그 방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Keil). 이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神政) 국가로서 모든 문제의 최종 결정권자는 하나님이셨다. 즉 이스라엘은 율법을 집행할 때 지도자의 즉흥적이고 강압적인 판단이나 군중들의 충동에 의해 법이 집행된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를 여호와의 뜻에 온전히 맡기는 계시 의존적인 삶을 살았다. 이처럼 성경은 가장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최종 판결을 맡김으로써 죄로 오염된 인간 이성의 오류를 방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딤후 3 :15-17).

성 경: [민15:35]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안식일을 어긴 자]

(주); 진 밖에서 돌로...칠지니라 - 먼저 '진 밖에서' 사형 집행을 하도록 명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거룩성이 미치는 영역, 곧 이스라엘 진영의 거룩성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였다(12 : 15 ; 행 7 : 58). 그리고 '돌로 쳐 죽이는' 형벌을 명한 것은 그 범죄에 대하여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 또한 공동체의 연대 책임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였다(레 20 : 2).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권위와 영광에 도전하는 자들에게는 예외 조항을 두지 않고 공개 처형시킴으로써 그 죄가 지니는 심각성과 파괴성을 온백성에게 교훈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출 31 : 14, 15 ; 레 20 : 2 ; 24 : 14 ; 수 7 : 25).

성 경: [민15:36]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안식일을 어긴 자]

(주); 돌로...쳐 죽여서 - 이러한 처형은 히브리 사회에서 가장 극악한 죄에 대해 시행하던 일종의 공개 처형법으로써, 안식일 규례 위반자 외에도 우상 숭배자(레 20 : 2-5), 여호와의 성호를 모독한 자(레 24 : 15, 16), 부모에게 대적하는 패륜아(신 21 : 18-21), 간통한 남녀(신 22 : 22-24) 등에게 적용되었다.

성 경: [민15:37-41]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교훈용 옷단 술]

본문은 거룩한 선민의 의복에 관한 규례로서, 곧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보다 온전히 기억하여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들 의복의 옷단 귀에 '술'(tassels, NIV)을 달도록 한 내용이다.

성 경: [민15:38]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교훈용 옷단 술]

(주);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 여기서 '옷'(*, 베게드)이란 이스라엘인들이 걸치던 일상 외투를 가리킨다. 이 '베게드'가 신 22 : 12에는 '케수트'(*), 즉별 치장없이 몸가림을 위한 '겉옷'이란 말로 대치되어 있다. 결국 이것은 통으로 되고 앞 뒷면이 분리된 의복으로서 자연히 네 개의 모서리(끝단)가 있게 마련이다. 바로 이 네 끝단에 '술'(fringes, KJV ; tassels, NIV)을 달게 된다. 한편 이 겉옷은 여행자나 가난한 이들에겐 이불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출 22 : 27).

(주); 술을 만들고 - '술'(*, 치치트)이란 '꽃피다'는 의미를 지닌 '추츠'(*)에서 유래한 말이며 '장식', '꽃', '끈'을 가리킨다. 이것을 청자색 실로 외투의맨끝단에 달았는데, 이러한 관습은 율법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있어서 생명의 꽃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다(출 28 ; 36). 훗날 외식하는 유대인들은 이 '술'을 크게 하여 자신들의 경건을 공개적으로 자랑하곤 했다. 그러나 이 '술'을 옷에 달도록 명한 것은 자신의 경건을 과시하라는 뜻이 결단코 아니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죄에 빠지지 않게끔 조심하라는 시각적 교육 효과를 위한 것이었다(39, 40절).

(주); 청색 끈을...술에 더하라 - 여기서 청색 끈은 옷 네 귀에 달린 '술 뭉치'를 옷에 단단히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Keil). 아울러 그것은 하늘 색깔을 상징하는 바, 곧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에 속한 백성으로서 그러한 백성답게 거룩하게 살아가야 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 경: [민15:39]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교훈용 옷단 술]

(주); 방종케 하는(*, 조님) - 이 말의 원뜻은 '간음하다'로서, 상징적으로는 '우상을 섬기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문에서는 여호와를 떠나 이방의 세속적 문화에 도취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주);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 눈은 죄악을 받아들이는 통로라 할 만큼 죄악에 민감하다. 따라서 일단 눈을 통과한 죄는 인간의 마음에 정착한 후 곧 한 개인의 전인격에 파괴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처럼 인간의 감각 기관과 인간의 사고 및 정서의 상호 관계는 심리학자들의 도움을 빌지 않더라도 성경이 누누히 경고하고 있는 바이다(마 5 : 27-2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나약한 감각과 마음을 이해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옷에 이방인과 구별되는 '술'을 달게 하심으로써, 그'술'을 볼 때마다 세상으로 향하던 눈을 돌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고 인식토록 했으며, 또한 그 행동에 있어서도 구별된 거룩한 백성답게 이방인의 모범이 되도록 하였다.

성 경: [민15:40]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교훈용 옷단 술]

(주);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당신의 백성에게도 역시 '거룩'(성결)을 요구하셨다(레 11:44, 45). 그러므로 '거룩'은 선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거룩'은 어떤 의식적인 행위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본절의 말씀처럼 부단히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함으로써 이뤄져갈 수 있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죄악을 깨닫게 하고, 회개로 인도하며, 거룩한 인격으로 변화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다(요 20:31; 딤후 3:15; 히 4:12, 13).

성 경: [민15:41]

주제1: [가나안 땅에서의 제사 규례]

주제2: [교훈용 옷단 술]

(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 하나님은 규례를 계시하실 때 종종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과연 어떤 분이 되시는가를 강조하셨다<출 20 : 1, 2 ; 29 : 45, 46 ; 레 11 : 45>.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강압적으로 율법의 멍에를 지우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자이시며 인도자로서 그들의 진정한 유익을 위해 율법을 제공하심을 밝히시고자 당신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언급하셨던 것이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바 '출애굽' 사건은 흑암의 세력으로부터 당신의 백성을 해방시킨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사역을 보여 주는 대사건으로서, 하나님 백성된 자들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밝혀주는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이 '출애굽'사건은 오늘날 영적으로 우리 성도들 개개인에게도 실재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성 경: [민16:1]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를 비방한 고라 일당]

(주); 레위의 증손...고라 - '고라'는 모세와 아론의 친사촌으로서 성막 봉사와 백성의 종교 교육에 대한 책음을 맡은 레위인이었다(8:14-22 강해 참조). 그러므로 고라는 자신도 사촌들처럼 정치, 종교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여 반란을 주도했던 것 같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이기심을 따라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는 영광 대신 오직 파멸이 기다릴 뿐이다(잠 16:18). 한편 여기에서는 고라가 레위의 4대손(孫)으로 언급되고 있으나, 이는 문자 그대로 고라가 반드시 레위의 '증손자'라는 의미보다는 그가 레위 계열의 사람임을 밝힌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성경의 일반적인 족보 기록관에 부합된다.

(주); 다단과 아비람과...온 - 이 세 사람은 이스라엘의 장자인 르우벤 지파 출신으로서, 그들의 조상 르우벤의 실수(창 35:22; 49:3,4)로 인해 실추된 자신들의 가문의 명예와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당'을 짓는 고라의 반역에 쉽게 동조했던 것 같다(Keil,matthew Henry). 즉 그들은 이스라엘의 장자 집안 출신이므로 정권을 탈취할 분명한 명분이있다고 생각하여 분파 의식을 가지고 반란에 임했던 것이다. 이처럼 그들이 거룩한 공동체 내에서 사악한 분파 의식을 조장하며 불의한 정치적 활동을 일삼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위계 질서를 정면 부정하고 도전하는 일로서 곧 공동체 전체를 파괴하는 심각한 죄악이었다(고전 1:10-17). 한편, 그런데 고라 반역 사건에서 주모자 중 하나로 등장하는 '온'(On)은, 이하 사건에서는 더 이상 그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아마 그 이유는 그가 고라및 다단과 아비람에 비해 그 반역 사건에서 매우 소극적이었거나, 아니면 미미한 역할을 맡았거나, 아니면 거사 직전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성 경: [민16:2]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를 비방한 고라 일당]

(주); 총회(*, 에다) - 이는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의 모임을 지칭하는 말이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모인 공식적인 선민 집단, 또는 회중이 모여 만든 전 민족적 정치, 종교 집단을 가리킨다. 한편 구약 성경에는 백성들의 모임을 의미하는 단어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1) '에다' : 이는 '정하다'는 뜻의 '야아드'(*)에서 유래한 말로 곧 '약속에 의해 모인 집단'을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불러 모으신 집단, 곧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온 회중을 가리킬 때 이 용어를사용하엿다. 그렇지만 때로 벌떼(삿 14:8), 수소의 무리(시 68:30) 등과 같이 약속되지 않은 자연적 집단을 가리킬 때나 혹은 악한 자의 집단을 가리킬 때도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욥15:34; 시 22:16; 86:14). (2) '카할(*) : 이 용어의 원 뜻은 '소집하다'로서 곧 신정적(神政的)인 목적에 따라 모인 공식적인 선민 집단을 가리킨다. 통례적으로 '카할'과 '에다'는 공동체 전체를 가리키며 '카할'은 그 공동체를 대표하는 장로(족장)들의 모임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70인역(LXX)은 일반적으로 '에다'를 '쉬나고게'(*)로, '카할'은 '에클레시아'(*)로 번역하고 있는데, 신약 성경에서는 '쉬나고게'가 집합체로서의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들과 구분하는 용어로 사용되었고, '에클레시아'는 스데반의 연설 가운데서 이스라엘 공동체에 대해 사용되고 있으나(행 7:38), 후에는 주로 일반 교회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3) '모에드'(*) : 주로 '성회'(聖會)로 번역되는 말로서, 곧 신성한 절기나 축제일을 맞아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의 성소에 나아갈 때에 사용되는 말이다(레 23:2,4,37,44; 호 9:5; 12:9).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총회'는 광야 생활 중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구성되어진 거룩한 공동체로서 이를 가리켜 흔히 '광야 교회'(총회)라 지칭한다(행 7:38). 이 광야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한 베드로의 신앙 고백 위에 세워진 신약 교회의 그림자 역할을 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거룩한 공동체(총회)안에 임재해 계시며(미 18:20), 그를 통해 인류를 향하신 당신의 거룩한 뜻을 성취해 가신다.

(주); 회중에 유명한 - 직역하면 '온 백성 가운데 이름이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는 백성들 가운데서 그 지위를 인정받은 유력한 사람들을 가리킨다(창 6:4).

(주); 족장 이백 오십인 - 여기서 '족장'(*, 나시)은 족장 시대 당시 혈연 집단의 종신(終身) 지도자인 '알루프'(*)와는 달리 그들의 사회적 신분, 지위, 역할이 지도적 위치에 있는 유능한 인사들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그들은 적어도 모세와 아론이 신탁(神託)에 의해 이스라엘 최고 지도자가 되기 전까지 각 가문에서 지금보다 상당한 권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의 등장 이후 그들의 절대적인 권위에 눌려 지내야 했던 그들로서는 불만이 축적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그로 인해 고라의 반란 음모에 쉽게 동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틀림없이 세속적인 명예욕에 불타는 사특한 자들이었을 것이며,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공동체의 질서보다 자신들의 실추된 지위와 명예에 더 집착한 나머지 이와같이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고라 반역 사건에 가담하게 되었던 것이다.

(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 하나님께서 친히 소명하여 임명하신 권위를 멸시하고 강압적으로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고라를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 지도자급 인사들이 반역을 꾀하였다. 따라서 신약성경은 이 사건을 '고라의 패역'(the rebellion of korah)이라 언급하고 있다(유 1:11). 이 사건은 단지 인간 모세를 대적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아니라, 모세에게 지도자 자격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었다.

성 경: [민16:3]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를 비방한 고라 일당]

(주); 분수에 지나도다(*, 라브라켐) - 직역하면 '너희가 너무 많이(소유하였다)'이다. 즉 반역자들은 모세와 아론이 지나치게 월권(越權)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들은 아론 및 그의 후손들에게만 제사장직이 부여된다는 사실에 대해 도전했던것 같다. 그리하여 레위지파 속속인 고라는 아론의 종교적 통솔권을 탐냈던 것 같고, 르우벤 지파 소속인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의 정치적 지휘권을 욕심냈던 것 같다. 따라서 결국 고라 일당의 이 말은 모세와 아론에게 그들의 정치 및 종교적 지휘권을 내놓으라는 협박조의 말이라 할 수 있다.

(주);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 일찍이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제사장 나라와 그 백성으로 만드실 것을 약속하셨다(출 19:6). 그런데 이 언약에는 "내 말을 잘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출 19:5)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엇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 언약을 무시한 자에게는 위의 약속이 적용될 수 없었다(Keil).

(주); 스스로 높이느뇨 - 모세와 아론은 분명 이스라엘 회중이 보는 가운데서 직접 하나님께 부름받고, 그 권한을 위임받은 하나님의 대리자들이었다(출 19:7,8; 20:19-21; 레 8:3-6). 고라 일당 역시 이 사실을 분명히 목도하고서도 타오르는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이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즉 고라 일당은 모세와 아론의 지위가 순전히 자의(自意)에 의해 쟁취한 것이지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것이라 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위임자이신 하나님의 권위까지 불신한 것이다(출 3:10-12; 4:14-16).

성 경: [민16:4]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의 책망과 제의]

(주); 모세가...엎드렸다가 - 엎어지듯 땅에 완전히 몸을 엎드리는 이 자세는 오직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의탁한다는 전적 의뢰와 간구의 표시이다<14:5>.

성 경: [민16:5]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의 책망과 저의]

(주); 고라와 그 모든 무리에게 - 이로 볼 때 고라가 반역 주동자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성경은 그 무리들을 '고라당'으로 지칭하였다(26:9; 27:3).

(주); 자기에게 속한 자...가까이 나아오게 - 모세는 문제가 된 지도자의 권위를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확신하고 이제 하나님 앞에서<5:16> 신적 권위에 대한 진위(眞爲)를 판정받고자 했다. 그가 이처럼 당당하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아론의 권위를 친히 인정하셨고 또 항상 동행하심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출 28:1;' 29:1; 레 8:12,30). 사실 모세 개인의 심정으로서는 자신에게 너무 감당키 힘든 '짐'(11:11)인 이스라엘 지도자의 자리를, 그 자리를 탐내는 고라에게 넘겨주고도 싶었을런지 모른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가능만 하다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다 선지자 되기를'(11:29) 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극구 사양에도 불구하고 시내 산에서 위임받은 바 하나님의 소명이 너무나 크기에(출 3:1-4:17), 자신으로서도 그 자리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즉 그는 하나님께 매인 바 된 몸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모세는 다시 한번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기로 의연하게 결정했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동일한 의미의 말(속한 자, 거룩한 자, 택하신 자)이 여러 번 반복되고, '가까이 나아오게'란 말이 두 번씩이나 반복된 것은 문제의 중대성과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히브리 문학의 중언법적(重言法的) 표현이다.

성 경: [민16:6]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의 책망과 제의]

(주); 향로를 취하고 - '향로'란 제단 기구중 '불 옮기는 그릇'(출 27:3), 또는 '불똥 그릇'(레 10:1; 16:12)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모세가 이 향로를 취하라고 고라 일당에게 주문한 것은 그 일이 가장 '제사장적' 특성을 띠고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Keil). 즉 제사장은 아침 저녁으로 번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아 성소 내의 분향단에서 향을 불사름으로써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던 것이다(레 16:12). 따라서 모세는 진정 누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거룩한 자(선택된 자)인가를 판명해 보기 위해서 고라 일당에게 '향로'를 취할 것을 제안했고, 또 이것은 현명한 일이었다.

성 경: [민16:7]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의 책망과 제의]

(주); 향로에 불을 담고 그위에 향을 두라 - 제사장의 고유 직책인 '향'을 피우는 일은 실로 거룩한 임무로서, 제사장은 이 일을 통해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신적 권위를 부여받지 않았거나 불경건한 자는 이 일을 진행하는 도중 죽임을 면치 못했다(레 10:1-3). 따라서 만약 고라 일당 중에서 신적 권위를 부여받은 자가 혹이라도 있다면 그는 죽임을 모면할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모두 죽게 될 것이다.

(주); 너희가...분수에 지나치느니라 - 모세의 이 말은 고라 일당의 반역 의도가 참으로 무엇인지를 정확히 지적하는 말이다. 그것은 곧 모세와 아론에 대한 왜곡된 시기심에서 비롯된 세속적인 명예욕 및 권력욕이었다. 특별히 여기서 고라 일당이 반역 명분으로 삼았던 말(3절)인 '분수에 지나도다'(*, 라브 라켐)란 말을 모세가 문자 그대로 그들에게 다시 함으로써, 진정 여호와 앞에 분수 넘게 행동한 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성 경: [민16:8]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의 책망과 제의]

(주); 고라에게 이르되...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 당시 신정(神政) 정치 하의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에서 제사장의 권한은 사실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모세 율법에는 그 제사장될 자격을 레위 지파 중 아론의 직계 자손들에게 한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레위 자손 중 아론의 직계 자손이 아닌 자들 가운데 야심가들은 그 제사장을 자리를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러한 야심의 결과로서 지금 고라가 반기를 든 것이다. 그러나 레위 자손 중 고라의 이름만 2인칭 단수로써 계속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10,11절) 그의 선동은 레위지파 내의 사람들에게 별로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같은 불만의 소지가 있는 르우벤 지파 사람들을 선동했던 것 같다. 사실 레위지파는 금송아지 숭배사건 때(출 32:26-29), 하나님께 전적 헌신한 이후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 일이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모세가 고라를 지칭하면서 '레위 자손들'이라 부르고 있는 이유는 앞으로 그 지파 가운데서 나타날 수 있는 제 2, 제 3의 고라의 출현을 미연에 방지코자 한 일종의 경종이었던 듯하다.

성 경: [민16:9]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의 책망과 제의]

(주); 그들의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 직역하면 '그들을 위하여 봉사하게 하심이'이다. 공동번역은 이를 '그들을 돌보게 하심이'로 번역하였다. 이처럼 레위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 중 특별히 뽑힌 바 된 지파로서, 하나님 측근에서 그들 대신 하나님의 일을 하는 큰 영광을 누리는 지파였다<8:14-22 강해, 레위인의 2대 사역>.

(주);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 성막 봉사 직무는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레위 지파만의 고유하고 영광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시고 구별하사 제공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그들이 제사장으로서 군림하겠다는 교만한 마음만 없다면,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일에 대해 감사를 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제사장이나 레위인을 막론하고 실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그 직능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하나님께 인정받는 데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마 25:14-30)

성 경: [민16:10]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의 책망과 제의]

(주);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 여호와께서는 레위지파 중 아론의 후손에게만 제사장 직책을 허락하셨고, 일반 레위인에게는 성막 봉사를 분부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구분하신 직책을 인간적인 욕망에 따라 왈가왈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악행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꾼들이 크든 적든 주어진 직능에 만족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당신을 영화롭게 하기를 원하신다(계 2;10).

성 경: [민16:11]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모세의 책망과 제의]

(주); 여호와를 거스리는도다 -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위로 친히 세우신 자를(출 3:10-12; 4;14-16) 불신하고 멸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되었다.

(주); 아론은 어떠한 사람이 관대...원망하느냐 - 아론의 제사장직은 고라 일당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자의(自意)에 의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임(委任)에 따른것 임을 확실히 밝히는 장면이다(출 16:7,8). 실제로 아론과 그 아들들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백성들의 목전에서 거룩한 제사장 위임식을 7일동안 성대하게 치렀었다(레 8:1-9:24).

성 경: [민16:12]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

(주);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보내었더니 - 고라의 반역에는 동조했지만 레위인들과는 반역 이유가 다른 르우벤 지파 사람들이<1절> 호출되었다. 아마 모세는 고라에 대한 견책에 이어 이들에 대해서도 견책하려 했던 듯하다.

(주);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 이는 성막 앞에 나아가 여호와의 공정한 판결 받기를 거부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들의 불만은 아론의 제사장직에 대한 고라의 불만과는 달리 모세의 정치적 지도권(왕권)에 대한 불만이었던 듯하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의 소환 명령조차 무시했던 것이다. 한편 반역 주동자<1절> 중 '온'(On)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이 없는데, 그 이유는 아마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의 반역 의사가 누그러졌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성 경: [민16:13]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

(주);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해 친히 적용시킨 이 언약의 말(출 3:8)을 다단과 아비람은 실로 패역하게도 우상과 세속의 땅인 애굽에 적용시키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은총은 헌신짝처럼 여기면서도, 세속적 명예와 권력에는 모든 것을 바치는 진정 멸망의 자식들임을 스스로 천명하였다.

(주); 스스로... 왕이 되려하느냐 - 직역하면 '우리 위에서(계속) 주권을 잡으려하느냐? 이다. 이때 반역자들은 호르마의 참패(14:45)를 모세의 탓으로 돌렸던 것 같다. 그리고 거듭되는 절망의 순간과, 가나안 땅에서 광야에로의 회귀<14:25>를 모세의 정권 연장을 위한 잔꾀로 생각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성 경: [민16:14]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

(주); 네가...아니하고...아니하니 - 다단과 아비람 일당은 하나님의 약속이나 계획 및 섭리에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죄악이나 패역함에 대해서도 일체의 자성(自省)이 없었다. 오직 그들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하나의 권력 투쟁 장소로 보고, 거기서 승리하기 위해 온갖 비방을 모세에게 서슴치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불평, 불만 요인들을 모세 개인의 자질 부족으로 몰아 붙이고 있는 것이다.

(주); 눈을 빼려느냐 - '눈을 멀게 하려느나'는 뜻이다. 곧 이 말은 모세가 백성을 감언이설(甘言利設)로 회유하여 교묘하게 자신들을 소경 취급한다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

성 경: [민16:15]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진노하는 모세]

(주); 모세가 심히 노하여 - 아마 모세는 다단과 아비람의 외양상 그럴듯한 말에, 그리고 거룩한 용어들을 세속적 야망과 결부시켜 경멸조로 지껄이는 그들의 가증스러움에 인간적이고, 종교적인 분노와 의분을 동시적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주); 예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 '예물'은 여호와께 나아가는 자의 기본적인 지참물이었다(출 23:15; 34:20). 그러므로 이 말은 반역자들을 가까이 용납하지도,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도 말아 달라는 모세의 격양된 호소이다.

(주); 나는...취하지...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 모세의 양심선언이다. 즉 그는 지도자로서 백성에게 물질적인 피해(나귀, 삼상 12:3)도, 정신적인 강압(사람을해함, 삼상 8:11-17)도 주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모세는 자신은 독재자가 아닌 봉사자요, 주인이 아닌 청지기로서 오직 하나님께 맡은 바 자신의 책무에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성 경: [민16:16,17]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진노하는 모세]

(주); 고라에게 이르되...아론과 함께 - 이번 반역 사건의 최고 관심사가 아론과 고라의 권위 문제임을 보여 준다.

(주); 향로는 모두 이백 오십이라 - 아마 향로들은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던 화로이었거나, 아니면 이번 사건 때문에 특별히 새로 만든 것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 경: [민16:18]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진노하는 모세]

(주); 회막문을 서니라 - 즉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을 받기 위하여 모세와 아론 및 고라 일당은 회막문에 섰다. 여기서 회막문은 회막 뜰로 통하는 성막 입구를 가리킨다. 이제 그곳은 신(神)적 심판대가 되었던 것이다.

성 경: [민16:19]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진노하는 모세]

(주); 고라가 온 회중을...모아 놓고 - 여기서 '온 회중'이란 고라의 반역에 직.간접으로 동조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며, 전 백성을 뜻하는 9절의 '회중'과는 구별된다. 그러나 그 당시 고라의 반역은 '온 회중'이란 말이 언급될 정도로 패역한 무리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고라는 자신의 뜻을 추종하는 많은 무리들로 인해 극히 흥분했을 것이다.

(주); 여호와의 영광이...나타나시니라 - 하나님의 긴급하고도 직접적인 개입을 나타낸다. 아마 구름 사이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터져 나왔을 것이다<14:10>. 한편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는 악인에게는 심판과 죽음을, 의인에게는 구원과 보호를 각각 의미한다(시 37:28; 요 1:14).

성 경: [민16:20]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 여호와의 계시가 모은 무리 중 모세와 아론에게만 임했다. 이것은 이 두 사람만을 이스라엘의 중재자로 공식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고라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성 경: [민16:21]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너희는...떠나라 - 하나님은 악인을 징벌하시기에 앞서 반드시 당신의 백성에 대한 보호 조처를 강구하신다(창 19:17).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의 은혜를 체험키 위해서는 먼저 죄악된 세상(무리)과의 '분리'가 요구된다(레 11:45).

(주); 순식간에...멸하려 하노라 - 이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 의지를 반영하는 말이다<14:12>.

성 경: [민16:22]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두 사람이 엎드려 가로되 - 자신들을 거역한 무리의 징벌 소식에 기뻐해야 할 두 지도자가 오히려 그들의 구원을 위해 간곡히 중보 기도하는 장면이다<4절; 14:5>. 이와 같이 공의와 더불어 관용과 사랑은 지도자가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이다.

(주);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 엘로헤 하루호트 레발 바사르) - 여기서 '생명'을 뜻하는 '루아흐;'(*)는 영혼이란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으며, 모든 생물을 생존케하는 '생명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다(창 2:7; 욥 33:4; 전 3:19,21).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구절이 '육체와 영혼'으로 이분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근거하여 중보 기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여하튼 본절에서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죄로 인해 필연적인 죽음을 맛보아야 하는 육체에 영원한 생명의 본질을 채워주신(슥 12:1)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형상대로 친히 지은, 생명체 중 가장 존귀한 인간을 당신의 진노로 창조간에 괴멸시킬 수 있으신가 라는 점이다. 이것은 생명의 주인이시자 보존자이신(롬 11:36)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세와 아론은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에 의지하여 그 징벌을 거두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였던 것이다.

(주);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 즉 '온 회중'을 반역에 가담케 한 주동자 '고라'의 범죄를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징벌은 그 한 사람만으로도 족하다는 것이 모세의 지론(持論)이다.

성 경: [민16:24]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회중에게...장막 사면에서 떠나라 하라 - 여기서 '장막'(*, 미쉬칸)이란 '회막'(18,19절)과는 다른 말로서 곧 일반 백성들의 거주지인 진(陳)을 가리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세 반역자 고라, 다단, 아비람의 '장막'에 운집한 백성들을 해산시킴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반역 주동자들과 함께 멸망될 비극(26절)을 예방케 하셨던 것이다.

성 경: [민16:25]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다단과 아비람에게로 가니 - 모세는 '회막문' 앞에서 루우벤 진영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고라'는 이스라엘 배진상(配陳上) 회막 옆에 거주하였는데도<2장>, 그의 이름이 아예 언급되지 않은 것은 그의 아들들이 반역에 동조하지 않아 24절의 경고를 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주); 장로들이 좇았더라 - 이스라엘의 지도급 인사들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 반란 수습과 하나님의 심판이 이제부터 시작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성 경: [민16:26]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그들의 물건은...만지지 말라 - 회중을 반역 주동자들과 분리하고, 그들의 물건에 손대지도 못하게 한 것은 죄로부터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이다(수 7:1).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이처럼 단호히 대처할 것을 누누히 말씀하셨다(시 1;1; 요이 1;10).

성 경: [민16:27]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다단과 아비람은...장막문에 선지라 - 두 주동자들은 가족과 더불어 반역 의사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은 기색이다. 한편 고라의 가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데, 이 사실을 26:11 부분과 연결해 볼 때 그 당시 고라의 가족들은 고라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성 경: [민16:28]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나의 임의로함이 아닌 줄을 - 여기서 '나의 임의로'(*, 밀리비)란 '내 심장(마음)으로부터', '내 뜻을 따라'라는 의미이다. 모세는 반역자를 처단하는 일이 결코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주); 이 일로 인하여 - 즉 모세는 '30절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이 죽어간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행위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 경: [민16:29]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일반이면...아니어니와 - 즉 고라 일당에게 임할 죽음과 형벌이 일반 모든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그러한 죽음이나 벌이라면(a natural death and some ordinary accident-NIV, Living Bible),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형벌로 간주하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모세는 애굽에 내린 10대 재앙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적을 직접 체험하는 중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이 임하리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성 경: [민16:30]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여호와의 징벌 예고]

(주); 새 일을 행하사 - 여기서 '행하사'(*, 이베라)란 '창조하사'란 의미이다. 이 말은 '새 일'(*, 베리아)이라는 단어와 더불어 동일한 히브리어 원형, 곧 '창조하다'는 뜻의 '바라'(*)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결국 '새 일을 행한다'는 것은 이전에 없었던, 그리고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초자연적인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만들어 내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주); 음부 - 구약 시대 당시 음부(*, 쉐올)란 개념은 단순히 '땅 밑의 세상', '죽은 자들이 들어가는 곳', '무덤' 등을 의미했다. 후일 이러한 개념으로부터 신약 시대의 '지옥'이란 개념이 파생되었다. 창 37:35 주석 참조.

성 경: [민16:31]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징벌당한 반역자들]

(주); 마치는 동시에...땅이 갈라지니라 - 하나님의 심판이 국부적인 지진의 형태로 급작스럽고 격렬하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고라 일당의 반역에 대해 여태껏 참고 또 참았음을 시사한다.

성 경: [민16:32]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징벌당한 반역자들]

(주); 땅이 그 입을 열어 - 강도 높은 지진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진은 삼킬 자만을 삼키는, 진정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인한 것이었다.

(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 - 26:11의 기록을 보면 이때 고라의 아들들은 멸망하지 않고 그들의 가족들도 살아 남은 것을 볼수 있다(26:58). 때문에 훗날 고라 후손들은 다윗 시대에 유명한 음악가로 활약했다(대상 6:31-48:9,19). 그러므로 여기서 죽은 사람들은 고라를 따르던 그의 종들이나 혹은 고라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그를 추종하던 무리들을 가리킨다(Keil). 이처럼 하나님은 죄의 책임을 범죄자에게만 돌리신다.

성 경: [민16:33]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징벌당한 반역자들]

(주); 산 채로...빠지며...망하니라 -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범하게 서술된 본구절을 자세히 음미해 보면 반역자들의 처참한 멸망을 가히 상상할 수 있다.

성 경: [민16:34]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징벌당한 반역자들]

(주); 부르짖음을 듣고 도망하며...두렵다 - 음부로 빠져드는 반역자들의 아비규환(阿鼻叫喚)으로 인해 백성들은 공포에 떨었으며 목숨을 위해 황급히 그 자리를 피하여 도망하였다. 이는 그들이 심정적으로 고라의 반역에 동참하였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모습이다(41절). 이와 같이 범죄는 필연적으로 두려움을 야기시킨다(창 3:10). 그러나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는 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요일 4:18).

성 경: [민16:35]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징벌당한 반역자들]

(주); 여호와께서로 불이 나와서 - 고라와 그 추종 세력 및 다단과 아비람과 그들의 가족들에 대한 지진 심판에 이어 하나님은 그때까지 회막문에서 있었던 250명의 고라 일당들을 불로 심판하셨다. 즉 본절은 하나님의 극렬한 불 심판으로 인해 250명 반란자들이 죽어간 기사이다. 한편 여기 사용된 불은 일찍이 잘못된 분향을 드린 결과 나답과 아비후를 죽였던(레 10:2) 그 불과 같은 성격의 불로서 하나님의 심판의 초자연성이 반영된 불이다. 그런데 이 불이 '불기둥'에서 나온 것인지 혹은 번개와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여하튼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것만은 확실하다(11:1; 레 10:2; 히 12:29).

성 경: [민16:37]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반역자들의 놋 향로]

(주); 엘르아살을 명하여 - 아론의 뒤를 이어 차기(次期) 대제사장이 될 그에게 현직 대제사장인 아론의 직무를 대신하게 했다.그 이유는 이번 일이 필연적으로(반역으로 죽은) 부정한 자의 주검과 접촉해야 했으므로 절대 성결을 유지해야 할 대제사장으로서는(레 16장) 이 일을 수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주); 향로를 취하여다가 - 모세는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불 또는 그 불에 타 죽은 시체 사이에서 향로를 끄집어 낼 것을 명하였다. 왜냐하면 심판의 불 또는 그 불에 타 죽은 시체 사이에서 향로를 끄집어 낼 것을 명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은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심판의 불에 같이 소멸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 그 불을 타처에 쏟으라 - 여기서 '불'은 250개 향로에서 타고 있는 숯불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불을 회막에서 가져다가 다른 곳에 쏟게 한 것은 불을 담은 그릇인 '향로'가 어떤 이유에서든 여호와 앞에 가져왔던 것으로서 '거룩한' 기물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 거룩한 기물에 부정한 불이 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17,39절). 그러므로 '거룩한' 향로를 구별하시기 위해 반역자들의 불을 다른 곳, 즉 진 바깥 재버리는 곳이(레 4;12) 아닌 다른 장소에 버리게 하셨다. 결국 이는 성(聖)과 속(俗)의 구별을 명하신 것이다.

성 경: [민16:38]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반역자들의 놋 향로]

(주); 그 생명을 스스로 해하였거니와 - 즉 자기가 저지른 죄악의 결과로 마땅히 자기들의 목숨을 잃었다는 뜻이다(15:31; 잠 20:2).

(주); 그 향로를 쳐서...편철을 만들라 - 하나님은 반역자들의 예물은 받지 않으셨지만(15절) '향로'는 당신께 바쳐진 거룩한 기물로 구별하셨다<37절>. 따라서 그것이 오용(誤用)되지 않도록 특별히 당신의 거룩한 처소 내에 보관하게 하셨다. 이러한 조치를 따라 만들어진 편절로 덧입혀진 분향단은 죄에 대해 엄중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표', 곧 기념물 역할을 하였다<40절>.

성 경: [민16:39]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반역자들의 놋 향로]

(주); 놋 향로를 취하여...제단을 싸서 - 여기서 '제단'은 곧 지성소 휘장 맞은 편에 위치한, 향을 피워 놀리는 분향단을 가리킨다. 한편 '향로'는 놋으로 만든 것이므로 각각을 망치로 두들겨 펴서 그 250개 편철 조각을 이어 분향단에 덧입히기는 쉬웠을 것이다.

성 경: [민16:40]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반역자들의 놋 향로]

(주); 기념물이 되게 - 향로를 쳐서 제단을 입힌 것은 고라 사건을 계기로 거룩한 제사장직의 신적 권위를 다시 한번 분명히 인식하게 하여, 아무도 고라 무리들처럼 그 제사장직을 넘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경계의 표로써 오고오는 세대에 교훈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성 경: [민16:41]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백성들의 원망과 염병 사건]

(주); 너희가...죽였도다 - 백성들은 아직도 급작스럽게 죽은 고라 일당과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이 문제를 단순한 정치적 분쟁으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죽은 자들의 생명에 대하여 모세와 아론이 책임질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성 경: [민16:42]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백성들의 원망과 염병 사건]

(주);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 여기서 '치다'(*, 알)란 '대항하다', '불평하다'는 뜻이지 실제로 '구타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편 백성들은 반역 주동자들이 징계를 받은 현장에서도 불평과 책임 전가를 일삼음으로써 끝내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고야 말았다. 자신의 죄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는 오직 멸망이 기다릴 뿐이다(시 49:20).

(주); 구름이...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더라 - 하나님의 임재의 가견적인 확실한 표로서, 성막 위에 떠있던 구름이 성막을 온통 감쌌고, 그리고 그 구름 사이로부터 여호와의 영광, 곧 그 영광의 광채가 터져나왔다(Keil).

성 경: [민16:45]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백성들의 원망과 염병 사건]

(주); 순식간에(*, 케라가) - '눈을 깜박이다'(욥 20:5)는 뜻의 '라가'에서 유래한 말로서 '매우 급작스럽게'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뒤에 이어질 하나님의 진노 곧 염병 심판이 초자연적인 역사에 의한 것임을 시사한다.

(주); 엎드리니라 - 간절히 기도 드릴 때의 모습이다(4절).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실로 염치 없게도'그 패역한 백성들을 위하여 거듭 거듭 중보 기도 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백성들의 범죄에 대해 이제 모세는 더이상 중보 기도의 명분을 찾기 힘들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제사장 제도를 통해 실제 행동으로써 기도하였다.

성 경: [민16:46]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백성들의 원망과 염병 사건]

(주); 향을 두어...속죄하라 -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심판의 말을 전해받은(45절) 모세는 희생 제물의 피를 근거로 죄를 속하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향로에 향을 피움으로써 속죄의 예를 갖추라고 하였다. 그만큼 당시의 상황이 급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염병의 강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간접 시사해 준다. 한편 구약 제사법에 있어서 '향'(香)은 일반적으로 간절한 기도를 상징하는데(레 4:3-35; 히 9:22), 본 사건 당시의 '향'도 바로 이러한 상징적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주);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 여기서 '염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게프'(*)는 '차다', '때리다'란 뜻의 동사 '나가프'란 말에서 유래했는데, 일반적으로 '역병'(plague)을 가리킨다. 따라서 혹자는 이때 나타난 '염병'을 급성 혹사병으로 보기도 한다. 그 병명이야 어떻든 하나님의 진노로 시작된 이 병은 매우 치명적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49절>.

성 경: [민16:48]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백성들의 원망과 염병 사건]

(주);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 아론의 중보적 사역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장면이다. 즉 그는 제사장의 고유 권한인 향로를 취하고 그 향로에 향을 사름으로써 속죄 사역을 담당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 본 사건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제사장직에 대한 논쟁이 필요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아니한 사악한 무리들의 분향은 다른 사람을 구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분향으로 인해 자기 생명조차 잃고 말았던 반면, 하나님께 속한 아론의 분향은 죽음의 파멸로부터 많은 생명을 건져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Keil). 이런 점에서 삶과 죽음의 중간에 서서 염병의 위험에도 개의치 않고 죄인의 생명의 중보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다(사 53:4-6). 한편 '산 자와 죽은 자의 중간에' 섰다는 말은 일단 지역적으로 염병의 심판이 임한 지역(틀림없이 불평, 불만자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었을 것이다)과 아직 임하지 않은 지역 사이에 섰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으나, 나아가 이는 그 의미상 죽어야 할 자와 용서받아 생존할 자 사이에 섰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성 경: [민16:47]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백성들의 원망과 염병 사건]

(주); 달려간즉...시작되었는지라 - 원문에는 놀라움과 경악을 뜻하는 감탄사 '한네'(*)란 말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보라', '세상에', '저런' 등의 뜻이다. 곧 무서운 염병이 삽시간에 백성들 사이로 퍼져 이스라엘 진 전체가 아비규환의 장(場)이 되어 버렸음을 뜻한다. 이는 전체적인 상황이 매우 긴박함을 생생히 보여 준다.

성 경: [민16:49]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백성들의 원망과 염병 사건]

(주); 고라의 일로 죽은 자 - 이들은 다음과 같은 자들로 구성되엇다. 즉 고라 및 그를 끝까지 따르던 그의 추종자들, 다단과 아비람 및 그의 가족들, 그리고 고라의 반역에 동조한 족장 250인들이었다.

(주); 죽은 자가 일만 사천 칠백 명 - 일반 괴질로 보기에는 단시간에('순식간에', 45절) 죽은 자 수가 너무 많다. 따라서 결국 이 죽음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무서운 징벌의 결과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당시 이스라엘의 전 인구가 2백만 명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로 이 사건은 전민족적인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성 경: [민16:50]

주제1: [고라 일당의 반란]

주제2: [백성들의 원망과 염병 사건]

(주); 염병이 그치매 - 하나님의 주권과 아론의 권위가 확실히 밝혀진 장면이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의 품성을 지니신 분으로 당신의 백성을 때로는 치시고, 때로는 고치기도 하신다. 또한 아론은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돕는 일꾼이었다.

성 경: [민17:1]

주제1: [아론의 싹난 지팡이]

주제2: [각 지파를 대표하는 지팡이]

(주); 여호와께서...일러 가라사대 - 이 계시의 말씀은 16장의 사건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므로, 아마 염병 심판 후에 곧이어 주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향로 분향이나 고라 일당을 삼킨 지진이나 원망하는 백성들을 친 염병이나 그리고 본장에 나타난 싹난 지팡이 등은 모두 '제사장직의 권위 확립'에 그 목적이 있었다.

성 경: [민17:2]

주제1: [아론의 싹난 지팡이]

주제2: [각 지파를 대표하는 지팡이]

(주); 종족(*, 마테) - 이 말의 원 뜻은 '나무가지'로서 한 그루 나무에 여러 개의가지가 돋아나는 상태틀 두고 상징화한 말이다. 즉 동일 조상에서 갈라진 여러 집안이란 뜻을 나타낸다. 한편, 그런데 본절에서는 그 의미상 '종족' 보다는 '지파'로 번역함이 더 정확하다(1:4)

(주); 지팡이(*, 마테) - '종족'과 동일 어근에서 유래한 말이다. 한편 '지팡이는 여행자나 목자의 호신용 또는 도보용으로 사용했던 막대기이며, 때로는 통치자의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홀' 및 지도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지휘봉을 가리키기도 했다. 여기서는 지도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기구로 봄이 옳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이러한' 지팡이'를 통해 당신의 뜻을 계시하셨다(출 4:2; 겔 37:16). 본장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참제사장 지파를 가려내시려는 방편으로 지팡이를 가져오게 하셨다.

(주); 그 사람들의 이름을...쓰되 - '이름'은 그 사람의 전인격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각지파 지팡이에 이름을 쓰게 한 것은 그 사람이 각 지파를 대표하여 전인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성 경: [민17:3]

주제1: [아론의 싹난 지팡이]

주제2: [각 지파를 대표하는 지팡이]

(주); 레위의 지팡이에는 - 본서에서 이스라엘 12지파라고 하면 보통 레위 지파를 제외한 지파들(대신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야곱 아들들과 동등한 지위로 승격시켜줘 지파로 간주했음, 창48:17-22)을 일컫는데 (1:5-16), 여기서는 특별히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요셉의 한 지파로 간주되었고(신 27:12) 레위 지파를 12지파에 포함시켰다. 그 이유는 본장의 내용이 레위 지파의 대표자로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아론의 신적 권위를 밝히기 위해 진행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주); 종족의 각 두령 - 여기서 '두령'(*, 로쉬)은 2절의 '족장'(*, 나시)이란 말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물론 일반적으로 '나시'는 행정 조직의 장 또는 한 집단의 실력자(16:2)를 가리키고, '로쉬'는 한 집단을 인격과 경륜으로 이끌어가는 '장로' 또는 최고 의장을 뜻하지만 본장에서는 구분없이 쓰였다. 따라서 결국 여기서의 '두령'이란 모든 방면에서 각 지파의 최고 권위자를 의미한다.

성 경: [민17:4]

주제1: [아론의 싹난 지팡이]

주제2: [각 지파를 대표하는 지팡이]

(주); 증거궤 앞에 두라 - 증거궤(언약궤.법궤-출 25:10 주석 참조)는 지성소(the Holyof Holies) 안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곳은 하나님의 임재 처소로서(10:33;출 25:21-23) 대제사장만이 1년 1차씩 회성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따라서 이곳에 '지팡이들'을 두게 하신 것은 당신이 친히 임재하사 '지팡이들' 중 하나를 택하셔서 그 제사장의 권위를 인정하시고, 그를 다른 지파들로 하여금 분명히 확인(5, 8절)시키기 위함이었다.

성 경: [민17:5]

주제1: [아론의 싹난 지팡이]

주제2: [각 지파를 대표하는 지팡이]

(주);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 이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선택하셨음을 보이실 뿐 아니라, 또한 그러한 사명을 맡기신 자에게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생명력을 아울러 공급하실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약속이다. 그러므로 구속사적으로 볼 때 이 약속은 죄로 죽어있던(엡 2:1) 우리를 구원하사 영생케 하신 생명과 부활의 주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암시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주); 원망하는 말을...그치게 하리라 - 반역자들의 불평과 교만을 완전히 꺾어 아론의 제사장직에 관해 더 이상의 소요가 없도록 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 일꾼들의 고초를 간과하시지 않고 적절하고 명쾌한 방법으로 해결해 주신다.

성 경: [민17:6]

주제1: [아론의 싹난 지팡이]

주제2: [각 지파를 대표하는 지팡이]

(주); 그 지팡이 합이 열 둘이라 - 여기서 '열 두 지팡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표한다. 특별히 본 사건에서는 레위 지파가 한 지파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그 지파가 하나님께 따로 구별되기 전 상황으로 되돌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히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요셉 지파 속으로 함께 묶여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열 두 지팡이들을 모두 한 곳, 증거궤 앞에 두었는데 이것은 아론의 지팡이를 따로 떼어 둠으로써 생길 의혹의 소지를 말끔히 불식시키기에 족했다.

성 경: [민17:7]

주제1: [아론의 싹난 지팡이]

주제2: [각 지파를 대표하는 지팡이]

(주); 증거의 장막 - 이 '증거의 장막' (the tent of testimony)이란 명칭은 성막의 또 다른 이름으로서, 성막이 하나님의 존재와 통치를 증거하는 곳이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는 명칭이다(출 38:21)

성 경: [민17:8]

주제1: [아론의 싹난 지팡이]

주제2: [아론의 싹난 지팡이]

(주); 이튿날 - 정확한 시간을 밝힌 것은 본 사건의 사실성 곧 역사성을 밝히기 위함이다.

(주); 움이 돋고...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 바싹 말라버린 나무 막대기에서 식물 생장의 전과정(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열매가 열림)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했을뿐 아니라. 그 과정이 하루밤 만에 이뤄진 것은 그 기적이 분명히 생명의 능력이신 하나님에 의한 초자연적인 역사임을 보여 준다. 따라서 혹자(Edword)의 주장처럼, 그 지팡이들은 살구나무에서 갓 베어낸 지팡이들로써 그 자체의 생성력 때문에 움이 돋았다는 해석, 그래서 그 중 아론의 지팡이가 가장 활발하게 싹이 돋아났다는 해석은 전혀 터무니 없는 억지이다. 그러나 그 지팡이가 살구나무 막대기였다는 사실은 합리적이다. 한편 '살구나무'(*, 솨케드)란 '깨어 있다', '지키다'는 뜻의 히브리어 '사카드'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므로 아론이 비록 말라버린 살구 나무가지로 지팡이를 만들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에 생명력을 불어 넣으심으로써 당신은 항상 깨어있어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분임(렘 1:11, 12)과 아울러 아론의 대제사장직을 당신이 친히 임명하셨다는 사실을 똑똑히 증명하셨다. 더불어 이 살구나무 기적은 하나님의 깨어지키시는 은혜 없이는 아무도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성 경: [민17:9]

주제1: [아론의 싹난 지팡이]

주제2: [아론의 싹난 지팡이]

(주); 그들이 보고...자기 지팡이를 취하였더라 - 그들은 분명 마른 지팡이 12개가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고, 또한 하루밤 사이에 그 지팡이 중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싹이 난 사실을 똑똑히 보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전날 일어난 고라 심판 사건 및 염병 사건과 더불어 이제 제사장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성 경: [민17:10]

주제1: [아론의 싹난 지팡이]

주제2: [아론의 싹난 지팡이]

(주); 아론의 지팡이는... 간직하여 - 언약궤 앞에 간직될 이 아론의 지팡이는 아론및 그의 후손들에게 주어질 제사장직에 대한 하나님의 확실한 보증이었다. 아울러 이것은 하나님이 항상 살아 계셔서 이스라엘을 지켜보고 계심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상징물이 될 것이었다. 나아가 이것은 당신의 주권에 도전하는 자에게는 준엄한 심판, 당신을 온전히 섬기는 자에게는 생명의 상급을 허락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시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 지팡이는 훗날 보관 및 이동에 용이하도록 언약궤 안에 보관되어 관리하게 된다(히 9:4). 그러나 후일 솔로몬 시대에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고 언약궤를 지성소 안으로 옮기고자 했을 당시에 이르러서는 그 궤 안에 십계명 두 돌판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왕상 8:9).

(주); 배역한 자(*, 베네머리) - 직역하면 '반역의 아들(자녀)들'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법도와 제도를 무시한 채 교만히 행한 자들을 가리킨다. 실로 하나님께 대한 반역은 모든 죄의 근원인 동시에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주); 표징이 되게하여...죽지 않게 할지니라 -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은멸망이 아니라 생명임을 강력히 시사한 부분이다(요 3:16, 17). 한편 여기서 '표징'(*, 오트)이란 '신호'(signal), '기념'(monument), '증거(evedence), '표'(mark), '증표'(새가두) 등의 뜻인데, 이는 곧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어그러진 백성을 깨우치기 위한 교훈적 상징물로써, 당신의 백성을 멸망치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축된 기물이란 의미이다. 따라서 만약 이 '표징'을 기억하고 자신의 죄악된 자리에서 돌이키는 자에게는 생명이 약속되었다. 한편, 그런데 여기 이 아론의싹난 지팡이에 대하여, 혹자는 고라사건 이후에도 계속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과정이 반복되었다고 주장하나(Matthew Henry), 우리는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마 이 싹난 지팡이는 아론의 제사장직을 확고히 입증해 주는 역할을 한 뒤 언약궤안에 보관되다가(물론 지팡이의 싹과 열매는 자연스럽게 시들어졌을 것이다) 사사 시대를 거치면서 손실되었다고 보는 것이 무난하다. 왜냐하면 솔로몬 시대에는 이미 언약괘 안에 그 지팡이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왕상 8:9, Keil, Pulpit Commentary).

성 경: [민17:12]

주제1: [아론의 싹난 지팡이]

주제2: [두려움에 떠는 회중]

(주);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 고라 일당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하고, 곧이어 말라버린 살구 나무 지팡이로부터 생명의 기적을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자행했던 죄악(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여 불평함)으로 인해 심한 좌절과 공포에 젖어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거의 단말마와 같은 비명으로 자신들은 이제 죽게 되었다고 거듭 울부짖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백성들의 두려움에 찬 한탄은 믿음에서 나오는 경외감이나 자신의 무가치함을 토로한 것(사 6:5)과는 다르다. 그들은 하나님의 강제력, 곧 하나님의 놀라운 초월적인 능력에 압도된 나머지 죄악된 인간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과 절망을 외친 것 뿐이었다(창 3:10)

성 경: [민17:13]

주제1: [아론의 싹난 지팡이]

주제2: [두려움에 떠는 회중]

(주); 가까이 나아가는 자...다 죽사오니 -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성막에는 하나님 앞에서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 외에는 그 누구도 결코 접근할 수 없었다. 따라서 만약 일반인이 접근하면 그 자는 죽을 수 밖에 없었다(3:10). 그러므로 백성들은 자신들로서는 성막에 접근할수 없음과 생명되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상실된 것을 깨닫고 심한 절망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징벌과 심판만을 일삼는 무자비한 분으로 인식하여 그분 앞에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탄식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시고자 하셨다(10절). 더욱이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신 목적은 정당한 절차를 통해(제사장의 중보사역을 통해) 백성들과 교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도 백성들이 성막을 가까이 하는 자마다 다 죽어야 하는가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쓴 것은 그들이 아직도 하나님의 성품(사랑과 공의)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그분의 보호하심을 온전히 믿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온전히 알기 까지 인간은 극한 오해와 좌절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알때 비로소 인간은 모든 회의와 갈등과 불안을 말끔히 떨쳐버릴 수 있다(호 6:1-3)

성 경: [민18:1]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과 제사장의 직무]

(주); 성소에 대한 죄 - 즉 성소와 관련되어 발생될 소지가 있는 모든 죄를 가리킨다. 즉 제사장 또는 레위인 이외의 사람들이 성소에 접근하거나 함부로 성물(聖物)을 만져 하나님의 거룩성과 영광을 훼손한다든지(출 28:38;레 16:20), 혹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사 등에 무성의하거나 불성실한 죄 모두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런 죄는 제사장과 그에 딸린 레위인들(여기서는 성소 기물을 책임져야 하는 고핫 자손) 모두에게 책임이 주어졌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거룩한 처소 관리를 맡기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일을 맡기신 자들에게 권리와 명예를 허락하실 뿐 아니라, 맡은 일에 대한 책임도 반드시 물으신다(마 25:14-30;계 2:10).

(주);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 - 즉 제사장직을 수행하면서 발생한 모든 직.간접의 죄를 가리키는데, 이때의 책임은 제사장 스스로 가져야 했다.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아론의 온 가족이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들의 죄를 정켤케 하기 위해서이다(레 16:5, 6). 이는 비록 제사장이 거룩한 직무를 맡은 자라 할지라도 결국은 죄 아래놓인 한 인간에 불과하며(롬 3:10), 그렇기에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사유의 은총이 또한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히 8:3).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이신 대제사장 예수께서는 죄와는 전연 상관 없는 분이셨으나, 우리의 죄를 대신하시기 위해 당신의 몸을 친히 영원한 대속 제물로 바치셨다(히 9:28).

성 경: [민18:2]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과 제사장의 직무]

(주); 레위 지파...합동시켜 너를 섬기게 하고 - 여기서 '합동시켜'(*, 일리우)는 '결합시켜'(join)란 의미로써, 일반 레위인들에게도 제사장 직분과 동일한 직무를제공하라는 말이 아니라, 성막 봉사 사명에 그들도 동참시키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지만 그들 모두를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또한 당신의 주권으로 성막 봉사에 필요한 레위인과 제사에 헌신할 제사장들을 각각 나누시고 그들 각자에게 독특한 종교적 임무를 맡기셨다. 그러므로 일반 레위인들에게 제사장을 '섬기게'하신 것은 그들이 제사장보다 미천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으로써 제사장에게 봉사토록 한 것이다.

(주); 증거의 장막 앞에 있을 것이니라 - 여기서 '증거의 장막'(the Tent of theTestimony, NIV)은 곧 지성소(the Holy of Holies)와 성소(the Holy Place)로 구성된 성막 본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론과 그 아들들 곧 제사장들을 특별히 일반 레위인과 구분시켜 그들만이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했다. 한편, 그리고 여기서 '앞에 있다'는 말은 봉사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성 경: [민18:3]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과 제사장의 직무]

(주); 네 직무와 장막의 모든 직무 - 3:25, 31, 36에 기록된 성막 이동시의 업무와 성소보호 임무(1:49-53)및 일반 제사 업무에서 아론과 그 아들들을 돕는 일 등을 가리킨다.

(주); 성소의 기구와 단에는 가까이 못하리니 - 성소안에 배치된 각종 기물은 여호와의 거룩한 기름(관유, 출 30:22-23)을 부음 받아 구별된 것으로서(출 25, 37, 38장), 오직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만이 관할하도록 규정되었으며, 또한 분향단에서 향을 피우거나 제사드리는 일도 제사장의 고유 소관이었다. 그러므로 일반 백성들은 물론이려니와 일반 레위인들도 이러한 구분을 바로 알고 행할 때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4:5;16:40). 이런 점에서 본절은 17:13의 응답으로 볼 수도 있다.

성 경: [민18:4]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과 제사장의 직무]

(주); 회막의 직무 - 이 말은 장막의 이동 및 설치와 연관된 '장막의 모든 일'(3:25, 31, 36)과 구별되는 것으로, 곧 성막 설치 후 아론과 그 아들들의 일을 보조하는 모든 임무를 가리킨다.

(주); 외인은...가까이 못할 것이니라 - 1:51 및 3:10 주석 참조.

성 경: [민18:5]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과 제사장의 직무]

(주); 성소의 직무와 단의 직무 - 곧 거룩한 성소 안에서의 일과 번제단에서의 일은 아론과 그 아들들(제사장)만의 고유 직무였다. 따라서 그들 외에 그 누구라도 그러한 직무를 범한다거나 탐낸다면 고라 일당과 같은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성 경: [민18:6]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과 제사장의 직무]

(주); 레위인을...선물로 주어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여 레위인을 당신의 소유로 삼으셨고(3:12, 13;8:16-18), 그들 레위인을 다시 제사장에게 소속시켜(선물로 주어) 제사장의 일을 돕도록 했다. 그러므로 레위인은 자신의 위치와 직무를 명확히 깨달아 원소유이신 하나님을 위하여 제사장 밑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봉사 직무에 최선을 다해 충성해야 했다.

성 경: [민18:7]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과 제사장의 직무]

(주); 단과 장 안의 모든 일 - 즉 번제단에서 희생 제물을 드리는 일로부터 휘장 안에서 등대의 불을 관리하고, 떡상의 떡을 진열하며, 분향단에서 향을 피워올리는 일(그리고 대제사장의 경우는 지성소 안의 언약궤에 피를 뿌리는 일까지도 포함)등은 오직 제사장된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의 고유한 직분이었다.

(주); 제사장의 직분을...선물로 주었은즉 - 이처럼 제사장직은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하나님께서 친히 임명하신 직책으로서 신적 권위와 영광을 지닌다. 따라서 하나님의 위임 없이 그 직책을 수행하거나 그에 따른 특권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침해로 간주되어 심판을 면치 못했다(삼상 13:8-14).

성 경: [민18:8]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제사장들의 응식(應食)]

(주); 거제물 - 곧 '거제로 드려진 제물'이란 뜻으로, 여기서 '거제'란 예물을 높이 들었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 놓는 제사 방법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바쳐진 하나님의 거제물이 다시 제사장에게로 돌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 영영한 응식(應食) - 여기서 '응식(*, 호크)이란 일한 대가로 받는 응분의 보수를 가리킨다. 즉 하나님은 제사장들(아론과 그 후손들)에게 성막에서의 평생 봉사를 명하셨고, 그에 대한 대가로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당신께 드려진 예물들(불사르는 제물을 제외한 것, 9절)을 평생의 보수로 제공하셨다.

성 경: [민18:9]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제사장들의 응식(應食)]

(주); 지성물 중에 불사르지 않은 것 - 여기서 '지성물'至聖物)은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을 뜻한다. 그리고 '불'은 번제단의 불을 가리킨다. 결국 '불사르지 않은 것'이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 중 번제단 위에 올려져 여호와께 불살라지는 제물 이외의 제물을 가리킨다.

(주);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 제물 - 이러한 제물 중 번제단 위에서 불살라지는 소제의 기념물 부분(레 4:8-10)을 제외한 부분은 모두 제사장들의 몫으로써, 오직 제사장들만 성소 내에서 먹을 수 있었다.

(주); 지극히 거룩한즉 - 레 7:6 주석 참조.

성 경: [민18:10]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제사장들의 응식(應食)]

(주); 지극히 거룩하게 여김으로(*, 비코데쉬 하카다쉼) -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더없이 거룩한 곳에서'(공동 번역)이다. 곧 '회막 뜰 안에서'한 의미이다(레 6:9, 19;7:6).

(주); 남자들이 다 먹을지니라 - 여기서 '남자들'이란 기름 부음을 받아 (8절) 여호와의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자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먹을 것이 허용된 것은 '9절의 예물'(지성물 중 불사르지 않은 모든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 제물)이 지극히 거룩한 제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목 제물 중 불사르지 않은 가슴과 넓적다리 및 기타 곡물의 첫 소산 등은 만약 그가 부정하지만 않다면, 제사장 가족의 모든 남녀노소가 다 먹을 수 있었다(레 22:11).

성 경: [민18:11]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제사장들의 응식(應食)]

(주); 거제물과...요제물 - 두 제물은 모두 일단 하나님께 바쳤다가 하나님께로부터 다시금 제사장에게 돌려져 제사장의 몫으로 되는 것들이다. 자세한 내용은 레 7:30-34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주); 너와 네 자녀에게 영영한 응식으로 -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자가 10절과는 달리 '자손'까지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다. 즉 앞서 말한 '지성물'과는 달리 제사장의 피부양자에게도 화목제의 거제물과 요제물 먹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러나 '정결한 자마다' 곧 '의식적(儀式的)으로 아무런 부정이 없는 자에게'라는 제한적인 규정이 딸려 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이유(문둥병, 유출병, 시체 접촉 등)로 부정케 된 자들은 결코 성물을 먹을 수 없었다(레 22:2-6).

성 경: [민18:12, 13]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제사장들의 응식(應食)]

(주); 첫 소산 곧 제일 좋은...곡식 - 여기서 '첫 소산'은 경작하여 얻은 첫 열매로서 그 땅에서 얻어지는 모든 생산물의 대표적 역할을 한다(신 26:1-11). 그런 점에서 '첫 소산'은 모든 생산물 중 '가장 좋은 것'을 골라 봉헌한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예물을 요구하셨고, 또한 그러한 예물을 당신의 종들에게 응식으로 주셨던 것이다(마 7:11). 한편, 그런데 백성들이 '첫 소산'을 봉헌하는 가장 큰 목적은 자신의 모든 소산물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또한 결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이다.

성 경: [민18:14]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제사장들의 응식(應食)]

(주); 특별히 드린 모든 것(*, 콜 헤렘) - 직역하면 '바쳐진 모든 것'이 된다(레 27:28, 29). 한편 '금지하다', '헌신하다'는 뜻의 '하람'에서 유래한 '헤렘'은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는 하나님의 소유물을 가리킨다(공동 번역).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 바쳐졌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전쟁(상대국을 완전히 멸망시켜야 함)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21:2;신 7:1, 2). 가나안 정복 당시 아간이 이 '헤렘'을 훔쳤다가 처형을 당했다(수 7:1, 11, 24-26). 이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용은 레 27:28, 2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18:15]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제사장들의 응식(應食)]

(주); 사람의 처음 난 것...대속할 것이요 - 출애굽시 죽음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들을 보호하신 후 하나님은 그들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게 되셨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모두 하나님께 바쳐져야 했고, 그 방법으로서 속전 제도가 채택되었다. 출 13:12, 13 주석 참조.

(주); 부정한 짐승의 처음 난 것도 대속할 것이며 -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물의 처음 나는 것'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시지만, 당신의 거룩하신 속성(레 11:44, 45)으로 인해 '부정한 짐승'은 열납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다른 정결한 짐승으로 대속되어야 했다(출 13:13).

성 경: [민18:16]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제사장들의 응식(應食)]

(주); 난지 일개월 이후에...은 다섯 세겔로 속하라 - 사람의 속전(贖錢)에 대해서는 레27:1-8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주); 성소의 세겔 - 3:47 주석 참조.

(주); 한 세겔은 이십 게라 - 보통 은(銀)의 1세겔(Shekel)은 노동자 4일의 품삯에 해당되며, 무게로는 11.4g 정도 나간다. 따라서 1게라(Gerah)는 약 0.57g 정도 나가는 무게 측정 화폐의 최소 단위이다.

성 경: [민18:17, 18]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제사장들의 응식(應食)]

소위 정결한 짐승(소, 양, 염소)의 초태생은 '부정한 짐승'(나귀) 처럼(15절) 대속할 필요가 없었다. 이것들은 '가슴과 우편 넓적다리'를 요제와 거제(11절)로 드리고, 다른 부위들은 모두 태워 여호와께 '향기'를 통한 제사를 드려아 했다.

(주); 흔든 가슴과 우편 넓적다리 같이 - 여기서 '흔든 가슴'이란 화목 제물을 '요제'로 드릴 때 앞뒤로 '흔들어'(waving)드리는 가슴 부위를 가리킨다. 그리고 우편 넓적다리는 '든 뒷다리'라고도 하는데가, 곧 화목 제물을 '거제'로 들릴 때 상하로 '들어서'(Heaving)드리는 뒷다리 부위를 가리킨다(레 7;28-36). 이처럼 요제나 거제로 드린 가슴과 우편 넓적다리(뒷다리) 부분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려졌는데, 이와 같이 정결한 초태생 짐승의 가슴과 우편 넓적다리 부위도 제사장의 몫(응식)이 되었다.

성 경: [민18:19]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제사장들의 응식]

(주); 여호와께서...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 하나님의 뜻은 이미 12절에 분명히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또 한번의 기회를 살피고자 한 것을 보면 지금 그가 얼마나 물질에 연연해 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경험많은 복술가로서 발람은 신탁(神託)을 거역함으로써 임할 재앙이 두려워 발락의 사신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뿐, 내심으로는 이미(불의의) 삯을 따라 모압 땅에 가고픈 심정이 간절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발락에게 갈 수 있는 가능성과 어떤 변화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성 경: [민18:20]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제사장들의 응식(應食)]

(주); 아론에게 이르시되...땅의 기업도 없겠고 - 여기서 '아론'은 성막 일을 하는 모든 자의 대표로서, 곧 제사장들 뿐 아니라 모든 레위인들까지도 대표하여 나타냈다. 따라서 이 원리에 의하여 가나안 땅 분배시 제사장들 및 레위 지파에게는 땅이 분배되지 아니하였다(26:62;신 12:12;수 14:3). 그러나 대신 그들에게는 여호와 자신이 그들의 분깃(몫, 기업)으로 주어졌다. 즉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는 선물(9-18절)이 그들의 분깃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론 자손 및 레위 지파의 분깃은 실로 영예스러운 분깃이라 할 수 있다(B hr).

(주); 나는...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종종 '나는...이다'(I am...)라는 말로써 당신을 구체적인 실체로 형상화하셨다(창 15:1;시 18:2;요 14:6). 여기서도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당신은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깃'이요 '기업'이라 계시하시면서, 그들에게 오직 당신만을 섬기며 의지할 것을 당부하셨다. 이에 대하여 주석가 마시우스(Masius)의 다음과 같은 말은 퍽인상적이다. "여호와를 '섬기는'(cultus) 일이야말로 진정 토지를 '경작하는'(cultus)일보다 훨씬 생산적인 일이다."(Keil & Delitzsch, Pentateuch, Vol. I- . P.118).

성 경: [민18:21]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들의 분깃인 십일조]

(주);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주어서 - 이는 제 1의 십일조에 해당하는 것으로서<창28:10-22 강해, 구약의 십일조>, 하나님께 대한 헌신(바침)과 이웃(생계 수단이 없는 레위인)에 대한 사랑(나눔)이라는 2중적 성격을 지닌다.

성 경: [민18:22]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들의 분깃인 십일조]

(주); 이 후로는...가까이 말 것이라 - 1:51 및 3:10 주석 참조.

(주); 죄를 당하여(*, 나사 헤테)- 직역하면 '죄를 잉태하여'(bear sin)가 된다. 실로 죄는 어머니 뱃속에서의 아이처럼 빠르게 성장한다. 그리고 그 결국은 죽음이다(롬 6:23;약 1:15).

성 경: [민18:23]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들의 분깃인 십일조]

(주);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 레위인들이 회막에서 봉사하는 책임을 성실히 감당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정죄당하리라는 뜻이다. 즉 회막 봉사와 관련하여 그들에게 책임이 부여되었다는 뜻이다.

성 경: [민18:24]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들의 분깃인 십일조]

(주);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준 고로 - 여기서 '거제'란 단순히 제사 방법으로서의 거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레위인들에게 돌려지는 모든 몫을 대표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레위인들에게 돌아갈 몫의 대부분은 바로 '거제'로 드려지는 예물이었기 때문이다.

(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 - 제사장들(아론과 그의 후손들) 뿐만 아니라, 레위인들에게도 생계 보장을 위한 땅이 다른 지파 사람들과는 달리 별도로 주어지지 아니하였다(26:62;신 12:12;14:27;수 14:3). 대신 그들에게는 '여호와'가 그들의 분깃이었다. 즉 여호와의 일에 전념함으로써 여호와께로부터 받는 몫이 그들의 분깃이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레위인들에게는 달리 땅을 분배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 경: [민18:26]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들의 분깃인 십일조]

(주); 십일조의 십일조 - 레위인들은 다른 지파의 백성들로부터 받은 십일조의 1/10을 다시 떼어 하나님께 거제로 드려야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이 비록 성막봉사에 임하고 있지만, 다른 이스라엘 지파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하나님을 섬기며 경배하는 백성임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한편 레위인들이 낸 십일조는 제사장들의 분깃으로 돌아갔다.

성 경: [민18:27]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들의 분깃인 십일조]

(주); 너희의 거제물을...곡물과...즙 같이 여기리니 - 즉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이 일반 백성들로부터 받은 십일조의 1/10을 바칠 때 그 십일조를, 일반 농부들이 밭에서 거둔 소산의 십일조를 내는 것과 동일한 가치로 보신다는 뜻이다. 이는 레위인 역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성 경: [민18:28]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들의 분깃인 십일조]

(주);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십일조 - 수치상으로만 계산한다면, 당시 레위 지파의 장정 수는 대략 12, 000명 가량이었고,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의 장정수는 대략 600, 000명 가량이었다. 그러므로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가 레위인에 비해 50배나 되었으므로, 만일 모세 율법의 규례대로만 지켜질 것 같으면 레위인들에게는 전혀 생계 걱정이 필요 없었다(Michaelis).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상 레위인들이 항상 가난한 구제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본 규례가 분명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음이 틀림없었다(Keil, Pulpit Commentary).

성 경: [민18:29]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들의 분깃인 십일조]

(주); 아름다운 것(*, 헬레보) - 문자적으로는 '그것의 지방질'(its fat)이란 뜻이다. 이것은 종종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가장 좋은 것'(KJV, FSV, the best), '가장 기름진 것'을 상징했다. 결국 본절은 레위인들이 일반 백성에게서 받은 십일조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하나님께 십일조로 바치라는 명령이다.

성 경: [민18:30]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들의 분깃인 십일조]

(주); 타작 마당의...소출같이 되리니 - 이것은 일반 농부들이 경작물 중 십일조(1/10)를 제외한 나머지 9/10를 임의(任意)로 사용했던 것처럼, 레위인들 역시 '십일조의 십일조'(26절)를 제외한 나머지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특별히 본절에서 '타작 마당의 소출'은 보리, 밀, 등 곡물류를, '포도즙 틀의 소출'은 포도, 올리브등 과실류를 가리키는데, 이는 곧 모든 논과 밭의 작물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성 경: [민18:31]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들의 분깃인 십일조]

(주); 권속(*, 베트켐) - 한 가장(家長)에게 딸린 집안 식구들과 종들을 포함한 대가족을 의미한다(창 18:19).

(주); 보수(*, 사카르) - 이 말은 원래 '고용하다', '용병(傭兵)으로 삼다'는 뜻인데, 그 의미가 발전하여 '계약금의 지불', '생계비', '임금', '상급'등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성막에서 일한데 대한 정당한 대가를 가리킨다(고전 9:13;딤전5:18).

성 경: [민18:32]

주제1: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

주제2: [레위인들의 분깃인 십일조]

(주);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받은 십일조에서 다시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그것은 백성들의 십일조를 욕되게 하는 것일 뿐아니라 하나님께 범죄하는 일로 간주되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소유를 도적질 하는 것으로서(말 3:8),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에 해당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 바쳐질 십일조(1/10), 곧 성물(聖物)은 결코 한낱 죄에 오염된 물질로 전락되어서는 안되며, 오직 거룩히 구별되어 하나님께 온전히 헌상되어야만 했다.

성 경: [민19:1]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정결식을 위한 잿물]

이 부분은 시체(주검)로 인해 부정해진 자가 치루어야 할 정결식(淨潔式)에 관해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장의 정결의법을 레위기 12-15장의 정결법과 비교 연구하면 더욱 이해하기 쉽다. 한편 본장의 율례는 가데스 바네아의 거역 사건으로 필경 광야에서 죽어갈수 밖에 없는 구세대의 비극(14:28-35)과 관련하여 주어졌을 것이다. 즉 매일 80-100명 정도가 죽어가야 했던 그 사실로 말미암아 필경 이스라엘 백성 전체는 주검(시체)으로 인한 부정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주검의 부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본 정결의 법을 특별히 계시해 주신 것이다.

성 경: [민19:2]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정결식을 위한 잿물]

(주); 법의 율례(*, 후카트하토라) - 여기서 '율례'를 뜻하는 '후카트'는 '새기다', '기록하다'의 뜻이 있는 '하카크'(*)에서 파생한 말로 성문법적(成文法的) 특성을 암시한 말이다. 그리고 '법'을 뜻하는 '토라'(*)는 '던지다', '쏘다' 등의 뜻이 있는 '야라'(*)에서 나왔는데 곧 '지시', '가르침', '법'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낱말은 보통 결합되어 '율법(토라)과 규례(후카트)'로 번역되는데, 이것은 이하에 제시되는 여러 규정이 이후의 세대를 위해 성문법(成文法)으로 제정되어 두고두고 가르쳐야 할만큼 중요한 것들임을 암시한다. 한편 31:21에는 이 말이 '법률'로 번역되어 있다.

(주);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함 - 신체의 결함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레 22:20 주석 참조). 아직 경제적(세속적) 이익을 위해 노동에 투입되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신 21:3). 따라서 상징적으로 이는 죄의 영향력을 완전 극복하시고 절대 순결을 유지하셨을 뿐 아니라, 세속과 온전히 구별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예표한다(히 4:15).

(주); 붉은 암송아지 - 수송아지가 속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쓰여진(레 16:11) 반면, 암송아지는 정결례를 위한 피 뿌림과 재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아마 이는 암송아지가 지닌 온유한 기질 때문에 하나님의 정결케 하시는 본 예식에 적절히 사용될 수 있었던것 같다. 한편 '암송아지'(*, 파라)란 완전히 성숙한 암소와 새끼 암송아지의 중간쯤 되는 '젊은 암송아지'(young heifer)를 가리킨다(Keil, LXX, Vulgate). 그리고이 암송아지는 '붉은' 색으로 한정되었는데. 아마 이것은 피의 색깔을 띤 붉은 색의 암송아지는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써 온 인류의 죄를 말끔히 씻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요 19:34;히 9:12, 13). 그러나 혹자(Keil, B hr, Kurtz, Leyrer)는 오히려 이 '붉은 색'이 건강한 얼굴의 볼과 입술 등에서 나타나는 홍조(紅潮)를 연상케 한다고 보고, 곧 '생동하는 생명력'을 상징한다고한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122). 여하튼 '피'의 죽음으로 인한 대속의 결과가 '생명'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같다. 한편 후기 유대 전승에 따르면, 이때 사용되는 붉은 암송아지의 털에 흰 털이나 검은 털이 2개 이상만 있으면 '흠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사용될 수 없었다고 한다(Matthew Henry).

성 경: [민19:3]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정결식을 위한 잿물]

(주); 제사장의 엘르아살에게 줄 것이요 - 아론의 세째 아들로서 현직 제사장이자 차기(次期) 대제사장이 될 엘르아살(20:25-28)에게 정결례 집행이 맡겨진 것은 현재 대제사장인 아론은 시체와 관련된 부정에서 절대 보호되어야 했기 때문이다(레 21:11, 12).

(주); 진 밖으로 끌어 내어서 - 번제물이나 속죄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번제단 북편 성막 뜰에서 잡았으나, 이 암송아지는 태워 재를 내는 데 목적이 있을 뿐 아니라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진 밖에서 죽였다<9절;레 1:7;4:4, 12, 21>. 한편, 상징적으로 이는 장차 죄인으로 취급되어 예루살렘 성 밖에서 처형 당하실 예수의 죽음을 예표한다(히 13:11, 12).

(주); 자기 목전(目前)에서 잡게 - 희생 제물을 잡는 일은 제사장의 감독아래 제물 드리는 자 또는 레위인이 맡아서 했다<레 1:2, 5;3:1, 2;4:15, 22, 24, 27, 29>. 여기서는 백성 중 대표자가 이 일을 감당한 것으로 보인다(Keil).

성 경: [민19:4]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정결식을 위한 잿물]

(주); 피를...일곱 번 뿌리고 - 죄는 사망의 원인이며(롬 6:23;약 1:15), 또한 생명대신하는 것이 피이기 때문 (창 9:4, 5;레 17:11), 피흘림이 없이는 사(赦)함이 없다는 것이 속죄의 대원리이다(히 9:22). 따라서 엘르아살은 부정한 자를 정결케 하는 잿물을 만들기 위해서 죽은 희생 제물(붉은 암송아지)로부터 피를 취하여 그 피를 뿌림으로써 부정한 자의 죄 값에 대한 속죄 사역을 이루어야만 했다. 한편 '회막 앞을 향하여' 피를 뿌린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사 백성의 죄를 사해 주시는 곳인 속죄소(시은소)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1년 1차에 한해 대제사장이 희생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수 있었기 때문에(레 16:29-34), 평상시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레 4:6, 17). 한편, 피를 '일곱번' 뿌린 것은 '완전한' 속죄를 의미한다. 이는 성경 숫자의 상징적 의미상 '일곱'은 '온전', '충만', '거룩' 등을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지닌 속죄의 완전성을 예표한다(히 7:27;9:12;10:12, 14).

성 경: [민19:5]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정결식을 위한 잿물]

(주);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사르게 - 일반 속죄제의 경우에는 번제단 밑에 피를 쏟아 부었으나(레 4:7, 18, 25), 정결케 하는 물을 만드는 이번 일에는 속죄 의식을 위해 일곱 번 뿌리고 남은 피를 희생 제물의 나머지 모든 부분과 함께 불태워야 했다. 그러므로 붉은 암송아지의 이러한 온전한 희생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온전히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암시한다(요 1:29;계 1:18;5:6)

성 경: [민19:6]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정결식을 위한 잿물]

(주);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 - 여기서 '백향목'(cedar wood)은 재질이 좋으며 빛깔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나무로 오랫동안 보존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는 생명의 영원성과 그 생명의 고결한 가치를 상징한다. 또한 '우슬초'(hyssop)는 담벼락과 돌 등에 붙어자라는 야생풀로서, 주로 부패와 죽음을 상징하는 죄를 정결케 하기위해 피를 적셔 뿌리는 데 사용되었다(출 12:22;레 14:6). 즉 우슬초는 죄를 정결케 하는 어떤 능력의 상징물이었다(시 51:7). 그리고 '홍색실'(scarlet wool)은 속죄를 위한 예수의 붉은피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를 암송아지가 타고 있는 불에 넣은 것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온전한 영적 성결과 영원한 생명의 효능을 예시하는 행동이었다. 레 14:4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19:7]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정결식을 위한 잿물]

(주); 옷을 빨고...몸을 씻은 후 - '붉은 암송아지의 의식'을 집례한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에 전가된 죄와 죽음의 부정에 의식적으로(ceremonially) 오염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정결례의 방법으로 옷을 빨고 몸을 씻은 후 부정케 된 날이 지나가기까지(저녁까지) 진 밖에 머물러야 했다<출 19:10, 14;레 11:25;15:5>. 이는 부정의 오염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밝히 보여 주는 동시에, 예수의 정결케 하는 보혈에 온 마음을 적시고 그분이 마련하신 의의 옷을 입을 때에 비로소 성결케 됨을 예표한다(사 64:6;롬13:14;히 9:14).

(주);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 레 15:5, 6 주석 참조.

성 경: [민19:8]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정결식을 위한 잿물]

(주); 송아지를 불사른 자도 - '붉은 암송아지의 의식'을 집례한 제사장과 더불어 그 암송아지를 불사른 자 역시 부정한 자로 간주되었는데, 그것은 암송아지에게 전가된 죄의 부패성을 또한 덧입어 부정해졌기 때문이다(레 16:26). 이것은 송아지를 불사른 자도 마찬가지 였으며(10절), 심지어 이 의식(儀式)의 결과로 생겨난 '부정을 깨끗케 하는 물'을 뿌리는 자와 만진 자 역시 부정한 자로 간주 되었다(21절). 결국 이 모든 것은 죄의 결과인 주검(시체)의 오염도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생생히 일깨워 주는 것이다.

성 경: [민19:9]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정결식을 위한 잿물]

(주);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 이 '재'(sahes)는 붉은 암송아지에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이 더해져 태워진 것이었다. 즉 이 재는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소생시키는 강한 능력과 구원의 힘을 지닌 모든 것의 정수(精髓)였다'(Leyrer).

(주); 진 밖 정한 곳에 둘지니 - 의식상(儀式上) 정한 곳으로 지정된 장소에(레 4:12 주석 참조) 재를 보관해 두어 시체로 인해 부정케된 자가 발생할 때마다 그 재를 사용할수 있게 했다. 이는 결국 (1) 인간은 항상 범죄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과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 용서하기를 기뻐하신다는 진리를 내포한 조처이다.

(주); 부정을 깨끗케 하는 물(*, 메 닛다) - 직역하면 '부정의 물'이다. 이는 문자적으로 '죄의 물'을 '속죄의 물'이라 하는 것과 비슷하다(8:7). 그리고 이 '부정의 물'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를 흐르는 물(17절)에 타서 만든 것이다.

(주); 곧 속죄제니라 - 정결례에 사용되는 물이 일반 '속죄제'(레 4:1-5:13)와 동일하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의 '속죄제'란 말은(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죄를 제거하기 위한 것', 또는 '정결식을 위한 물'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NIV는 이 부분을 '죄에서 깨끗케 하기 위한 것이다'(It is for purification from sin)로 번역하고 있다.

성 경: [민19:10]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정결식을 위한 잿물]

(주); 암송아지의 재를 거둔 자도 - 그러므로 주검의 부정으로부터 '정결케 하는 물'을 만들고 시행하는 과정에 참여한 자는 모두 부정한 자로 간주되어 모두 옷을 빨고 몸을 물로 씻은 연후에야 비로소 정결한 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는 크게 다음의 사람이 포함되었다. (1) 송아지를 잡는 의식을 집례한 자 (2) 송아지를 잡고 불사른 자 (3) 송아지의 재를 거둔 자 (4) 송아지의 재로 만든 물을 뿌리거나 만진 자 등이다. 그러나 이 송아지의 재로 만든 잿물, 즉 '부정을 깨끗케 하는 물'에 뿌리움 당한 자는 정결한 자로 간주되었다. 바로 여기에 '속죄의 비밀'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주); 이스라엘 자손과... 우거하는 외인 - 여기서 '우거하는 외인'이란 본래 지역이나 혈통은 본토 이스라엘인과는 다르지만, 후일 여호와 신앙을 고백하고 할례를 받은 후 이스라엘 공동체에 편입된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율법은 본토 이스라엘인과 이들과의 구별을 차등 두지 않고 거의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다.

성 경: [민19:11]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시체로 인한 부정]

(주); 시체를 만진 자는 칠 일을 부정하리니 - 시체 접촉이 부정을 초래한다는 이전의 규례(레 21:1)에 덧붙혀 여기서는 그 부정의 기간이 분명하게 명시되었다. 그런데 의식상(儀式上) 그 부정 기간을 '7일' 간으로(12:15)규정한 것은 시체 접촉이 지니는 부패성이 매우 심각함을 나타낸다(13, 20절).

성 경: [민19:12]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시체로 인한 부정]

(주); 제 삼 일과 제 칠 일에 - 여기서 '제3일'의 뿌림은 자신의 죄를 기억시켜 그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를 바로 알게 하여, 속죄의 필요성을 간절히 느끼도록하는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는 죄를 자각케하는 율법의 기능과 흡사하다(갈3:23-25). 그리고 '제 7일'의 뿌림은 부정에서 완전히 깨끗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에서 완전히 해방된 감격을 예표한다(롬 8:1, 2). 따라서 주검으로 더럽혀진 자는 이러한 의식적 정결례를 치루지 않고 아무도 깨끗케 될 수 없었다. 결국 이 두 번의 뿌림은 '참회'와 '구원'을 통해 정결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신앙 생활의 전형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 정결케 할 것이라(*, 이트핫타) - '빗나가다'란 뜻에서 파생된 말로서' 범죄하다', '속죄하다'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여기서는 죄로부터의 떠남을 상징하는 외적 의식을 가리킨다. 즉 '정결'이란 말이 강조하는 바는 '깨끗함'이란 측면보다는 '부정에서 해방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먼저 죄(부정)에 대한 깊은 자각이 없이는 속죄(깨끗함)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없다는 진리를 함축한다(요일 1:9).

성 경: [민19:13]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시체로 인한 부정]

(주); 누구든지 - 시체로 인한 부정의 규정에는 결코 예외 조항이 있을 수 없다는 강력한 단서 조항이다.

(주);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성막을 중심으로 이뤄진 거룩한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시체와 접촉함으로 인해 부정케 된 자가 정결례를 실시하지 않고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가는 것은 거룩한 공동체를 부패케 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을 훼손하는 일로 간주되었다<레 15:31;16:16;20:3>.

(주); 이스라엘에서 끊쳐질 것 - 여기서 이 말이 가지는 의미는 선민이자 거룩한 공동체가 누리는 모든 특권에서 제외되어 진 밖으로 축출되며, 각종 제사와 축제에 참여할수 없게 되는 동시에, 장차 유업으로 받을 가나안 땅에서의 분깃마저 상실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훗날 유대 종교에서 최고의 형벌로 제도화시킨 '출교'적 성격이 강하다(요 9:22).

성 경: [민19:14]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여러 형태의 주검으로 인한 부정]

(주); 장막에 들어가는 자... 부정할 것이며 - 시체를 직접 만지지 않고 단지 주검이 있는 처소에 출입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정하다고 취급되었다. 아마 이것은 주검(시체)이 죄의 가장 적나라한 결과로서(롬 6:23), 명백히 노출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그만큼 그 오염도도 강력했다고 본 것이다.

성 경: [민19:15]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여러 형태의 주검으로 인한 부정]

(주); 뚜껑을... 덮지 아니한 그릇도 - 여기서 '뚜껑'(*, 차미드 파틸)이란 직역하면 '끈의 덮개'란 말로 곧 끈으로 그릇의 입구를 동여맨 덮개를 가리킨 것같다. 결국 위의 말은 '철저히 밀봉하지 않은 그룻'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뚜껑을 덮지 않은 그릇이 주검으로 인해 부패케 되는 이유는 주검의 냄새가 그 그릇 안으로 스며들어 갔기 때문이다(Keil). 이것은 마치 성물(聖物)을 토기 그릇에 삶았을 경우, 그 흡수성으로 인해 깨뜨린 것과 같은 이치이다(레 6:28 주석 참조). 이처럼 본절과 14절에서 사소한 경우에까지 부정하다고 환기 시킨 것을, 백성들로 하여금 주검으로 상징된 죄를 매우 가증스럽게 여기도록 함으로써 영육간에 절대 성결을 유지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레 11:45).

성 경: [민19:16]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여러 형태의 주검으로 인한 부정]

(주); 시체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 즉 죄의 결과인 죽음(창 3:19)과 연관된 그 무엇에나 접촉하게 되면 부정을 면치 못했다. 특히 여기서 '무덤'에 접촉하게 되면 부정을 면지 못한다는 이 규정 때문에, 가나안 정착 이후 유대인들은 무덤에 흰 회칠을 함으로써 부정을 모면케 하는 관례가 생기게 되었다(마 23:27).

성 경: [민19:17]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여러 형태의 주검으로 인한 부정]

(주); 흐르는 물 - 직역하면 '살아있는 물'이란 뜻인데, 곧 '신선한 물'을 가리킨다<레14:5;15:13>. 이는 죽음의 권세를 몰아내는 예수님의 영생의 생수를 상징한다(요4:14;7:38, 39). 그러므로 불사른 암송아지의 재를 이 물 속에 섞는 본절의 행위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근거하여 죄인이 정결함을 얻고 또한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예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 경: [민19:18]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여러 형태의 주검으로 인한 부정]

(주); 정한 자가... 뿌리되 - 시체로 오염된 자를 정결케 하는 행위는 비록 제사장이 아닐지라도 정결한 자는 누구든지 암송아지 잿물을 우슬초에 찍어 뿌림으로써 수행할 수 있었다. 이는 아마도 시체로 부정케 되는 일이 다반사일 것이므로, 그것을 일일이 제사장에게 고할 수도 없었고 또한 제사장만이 그 일을 다할 수도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런 조항은 전혀 무흠하신(정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롬 8:3;고후 5:21;히 4:15)를 힘입음으로 누구든지 죄씻음을 받아 정결케 됨을 암시한다(히 9:12, 14;10:22;요일 1:7-9).

(주); 우슬초를 취하여 - 출 12:22 및 레 14:4-6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19:19]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여러 형태의 주검으로 인한 부정]

(주); 저녁이면 정하리라 - 부정케 된 자가 3일째의 결례와 7일째의 결례를 마치고(12절), 옷을 빨고 몸을 씻은 후 새로운 한 날이 시작되는 그날 밤에야 비로소 정결케 되었다. 레 15:5, 6 주석 참조.

성 경: [민19:20]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영원한 정결 규례]

본절은 13절의 반복으로서, 시체로 인해 부정케 된 자는 반드시 암송아지를 태운 잿물로 정결 의식을 시행하라는 엄숙한 명령이요, 경고다. 13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19:21]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영원한 정결 규례]

(주); 이는 그들의 영영한 율례니라 - 시체로 인해 부정케 되었을 때에는 오직 암송아지의 잿물에 의해서만 정결케 될 수 있었다. 이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제정하신 영원한 법이었다. 한편 오늘날 이 법은 예수께서 온 인류를 정결케 하시기 위해 친히 암송아지 되사 죽으신 그 속죄 사역을 통해 영원한 율례로 입증되었다(히 9:12, 14;10:22).

성 경: [민19:22]

주제1: [부정을 깨끗케 하는 잿물]

주제2: [영원한 정결 규례]

(주);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부정할 것이며 - 죄의 강력한 전염성을 강조한 동시에 아울러 완벽한 성결을 요구한 부분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성(聖)과 속(俗)의 뚜렷한 분별 의식이 있어야 하며(레 10:10), 항상 부정케 되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여 늘 경건생활에 힘써야 한다(레 19:2;약 1:27). 레 15:4, 10 주석 참조

성 경: [민20:1]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미리암의 죽음]

(주); 정월에 - 출애굽 제 40년째 되는 해 1월(아빕월)을 가리킨다. 이것은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곧장 호르 산으로 진행했고, 거기서 아론이 죽었는데, 그 연대가 출애굽 제 40년 5월 1일로 기록된 사실에서 확인된다(33:38). 한편 아빕월은 오늘날 태양력 3-4월 쯤에 해당되는 봄철이다.

(주); 신 광야에 이르러서... 가데스에 거하더니 - '크고 두려운 광야'(신 1:19;8:15)라는 별칭을 지닌 '신 광야'는 대부분이 불모의 땅으로서 가나안의 남방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다(34:3, 4;수 15:1). 그리고 이 지역의 한 귀퉁이에 회한의 땅 '가데스 바네아'(13:26;14:28-35)가 위치해 있었다. 이스라엘은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기나긴 방랑 생활에 들어갔고, 이제 그 38년간의 징계의 기간이 끝나고 다시금 그 땅에 이르렀던 것이다. 한편 다음 도착지인 호르 산에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아론이 죽었는데, 그때가 5월 1일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33:38),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마 이곳 가데스에서 약 3-4달 가량 머문 것 같다. 그리고 체류의 주된 이유는 미리암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기간 때문이었으리라 추정된다.

(주);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 장사하니라 - 모세와 아론의 누이로서(26:59), 어릴적에는 갈대 상자에 넣어져 강에 떠내려가는 동생 모세를 보호한 적이 있었고(출2:4), 후에는 이스라엘의 여선지자가 되어 백성들을 이끌던 지도자적 인물이다(출15:20;미 6:4). 그러나 한때는 교만한 생각으로 아론을 충동질하여 하나님의 전권대사 모세를 비방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민 12:1). 아마 그의 마지막 생이 이처럼 간략히 서술된 것도 그 일에 대한 견책의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미리암이 갈상자에 담겨져 떠내려가는 모세를 지켜보고, 또 바로의 공주에게 유모를 알선해 준점에 비추어 볼 때(출 2:7), 아마 그녀의 나이는 모세 보다 10살 정도는 위였으리라 추측된다. 따라서 이때 모세의 나이가 120세였으므로, 미리암의 나이는 130세정도는 족히 되었을 것이다.

성 경: [민20:2]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지도자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주); 물이 없으므로 - 팔레스틴 남쪽 변방에 위치한 '가데스'는 일종의 사막의 오아시스지역으로 본래 좋은 샘(시내)들이 여러 군데 있었다. 따라서 출애굽한 백성들은 주로 이곳을 주요 활동 무대로 삼아 생활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긴 방랑 생활 끝에 다시금 이곳으로 돌아올 때에는 당연히 물을 얻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해에는 심한 가뭄으로 인해 모든 샘과 시내가 말라버렸다(Leon Wood, A Survey of Israel'sHistory). 따라서 백성들은 마치 곧 죽을듯이 불평을 터뜨렸던 것이다. 이때 백성들이 불평했던 장소에 대해 시 106:32에서는 정확히 '므리바'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출애굽 직후 '르비딤'에서도 식수가 없다는 이유로 해서 백성들은 불평한 적이 있었다(출 17:1-7). 물론 이 두 사건은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이다.

(주); 공박하리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은 단순히 전치사로서 '... 에 적의를 품고 대항하는'(against)이라는 뜻이다. 곧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킬 자세로 모세와 아론에게 따지고 대들면서 원망하였던 것이다(16:19, 42).

성 경: [민20:3]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지도자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주);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 이는 10정탐꾼의 불신앙적 보고 이후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 그 당시 20세 이상이던 구세대가 약 37년간 광야에서 죽어가던 상황을 가리킨다(13:25;14:26-35). 따라서 이러한 백성들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그들 조상들의 죽음을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사(自然死)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주);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하였도다 - 백성들의 경솔하고도 배은 망덕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 준다. 실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 아니라 '인내와 믿음'이었다(약5:7-11).

성 경: [민20:4]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지도자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주); 너희가 어찌하여... 이 광야로 인도하여 - 백성들의 역사 의식이 결여된 상태를 반영한 말로써 진정 노예의 상태와 자유의 상태를 구별 못하는 어리석은 불평이다. 아울러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것은 모세나 아론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음을 깨닫지 못하는 불신앙의 외침이다. 더욱이 이 말은 출애굽 초부터 계속되어온 불평인데(출14:11;16:2, 3;17:3), 광야 40년 동안에도 변화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만큼 완악했는가를 알 수 있다. 실로 악인이 돌이키지 않는 이유는 그의 생활에서 하나님이 보이신 기적이 부족해서가 하니라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주); 여호와의 총회 - 여호와께 부름받은 이스라엘은 회중을 가리킨다. 16:2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20:5]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지도자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주); 악한 곳(*, 하마콤 하라)- 직역하면 '아무 쓸모 없는 땅'. '해(害)를 제공하는 장소'이다. 즉 사람이 도무지 생존할 수 없는 죽음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주); 이곳에는... 없고 ... 없고... 없고... 없고... 없도다 - 백성들이 머물렀던 가데스는 그들의 말대로 모든 것이 절대 부족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육신적인 눈으로 그곳을 바라본 것에 불과하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그곳은 모든 것이 넘치는 충만의 장소였다. 즉 그들에게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셨고,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이 있었으며 계약 백성으로서의 미래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부정적인 발언은 결국 그들의 불신앙에서 나온 말에 불과할 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허락하실 것이라 하셨지, 그들의 말대로 '죽음의 땅'을 약속하신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출 3:8;13:5). 그런고로 참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를 현실에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히 11:1).

성 경: [민20:6]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지도자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주);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며 - 14:5, 10 및 16:4, 1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20:8]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지도자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주); 지팡이를 가지고 - 이 지팡이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17:8)가 아니라, 출애굽 당시 모세가 바로 앞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던 그 지팡이(출 7:15;9:23)를 가리킨다. 그리고이 지팡이는 '르비딤 물 사건'에서도 사용되었었다(출 17:5). 그러므로 모세는 이 지팡이를 통해 지금까지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나타냈던 것이다. 그리고 보통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때는 이 지팡이를 땅에 내려 놓고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이 '지팡이'는 그 자체에 어떤 신통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상징적 도구에 불과했다.

(주); 그들의 목전에서 - 여호와의 이적이 공개적으로 실행되어 그의 영광과 능력을 여러 사람에게 분명히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참된 능력과 진리는 항상 떳떳하여 가리울 것이 없다.

(주); 반석에게 명하여 - 여기서 '반석'(*, 셀라)이란 '바위' 외에 '높은 요새'란 의미도 지닌다. 그러므로 이것은 출 17:1-7의 르비딤물 사건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반석'(*, 추르), 곧 단순한 돌덩어리가 아니라 절벽처럼 높다란 바위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단지 그 반석을 향하여 '물을 내라'는 명령만을 하도록 당부하셨다. 그 이상의 어떤 노력도 요구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창 1장;히 11:3). 그것을 운행하시는(롬 11:36) 하나님의 능력으로 볼때 반석에서 물이 나오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성 경: [민20:9]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지도자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주); 그 명대로 - 출애굽 후 지금까지 모세의 순종은 완벽했다. 그러나 11절의 결정적인 불순종으로 인해 모세는 그가 이때껏 쌓아 올린 순종의 아름다움을 산산히 부수어 놓고 말았다. 이는 상징적으로 율법 준수의 한계를 암시한다. 즉 율법 계시의 전수자요, 공포자인 그도 '율법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모세의 가나안 입국 실패는 이러한 구속사의 깊은 진리를 담고 있다 하겠다.

성 경: [민20:10]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므리바 물 사건]

(주); 패역한 너희여(*, 함모림) - '너희, 반역자들아'로 표현할 수 있다. 즉 불평과 원망을 일삼는 백성을 향해 모세가 극도의 혈기섞인 분노를 나타내었던 것이다. 시 106:32, 33에는 이 장면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백성들이 모세의 감정을 돋구어 모세가 매우 격앙스런 말을 했다고 전한다. 특히 감정이 폭발한 모세가 '우리' 곧 하나님을 들먹이면서까지 화를 내었을 뿐 아니라, 마치 하나님과 동등한 자격을 지닌 자기가 백성들에게 물을 줄 수도, 심판할 수도 있는 자처럼 행세하며 혈기를 부린 것은 거룩한 의분을 지나 일종의 '망령된' 행위였다(시 106:33). 따라서 이일은 결국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한 것으로 정죄되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12절>.

성 경: [민20:11]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므리바 물 사건]

(주);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 모세는 순간적으로나마 하나님의 능력의 실현이 마치 자신이 반석을 침으로써만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여 반석을 힘껏 두 번 내리쳤다(Keil). 그러나 만일 이때 모세가 단순히 '명령'으로만 반석에게 '물을 내라' 하였다면,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이 높이 드러났을 것이다<8절>.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말과(10절)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고자 했다. 더욱이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지 못하고(6절), 백성을 치고 싶은 심정으로 반석을 두 번이나 두들겨댔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욕하는 바로 그 백성에게 기적을 보이시고 당신의 능력과 영광을 높이 드러내고자 하셨으나, 모세가 백성에게 혈기를 냄으로써 오히려 여호와의 영광과 거룩성을 파괴하고 말았던 것이다(Lange). 결국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은, 원망하는 백성에게 일단 물을 제공하셔서 그들에 대한 당신의 끝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확인시키려 하셨던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와 거룩성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린 불경스런 처사라 할 수 있다(시 106:32, 33). 이것이 바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던 또하나의 죄목이었다(12절). 한편 구약사가 레온 우드(Leon Wood) 박사는 본절에서 다음과 같은 영적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 즉 여기 이 반석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고전10:4), 그분은 갈보리 십자가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바 한번 '매'를 맞는 것으로 족했다. 그리하여 그 이후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에게 구하기만 하면 영생수를 얻을 것이었다. 그런데 모셰가 이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이 모형적 진리를 범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한다(A Survey of Israel's History). 덧붙혀 그는 말하기를, 만일 모세가 이 가데스의 거역만 범하지 않았던들,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한다.

(주);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 인간의 혈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이 약속하신바를 온전히 이루셨다.

성 경: [민20:12]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므리바 물 사건]

(주);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 아론도 모세의 망령된 언행(言行)에 동조 내지는 방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도 모세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 했다(28절).

(주); 나를 믿지 아니하고 -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처럼(3-5절) 하나님을 불신앙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백성의 지도자인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교만히 자신의 혈기대로 행한 사실<10, 11절>을 두고 한 말이다. 어쩌면 교만하여 하나님께 전적 순종치 않는 것도 불신앙의 한 단면인지 모른다.

(주);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 모세가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백성에게 분노한 것<11절>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하나님의 뜻은 비록 원망하는 백성들이지만 그들에게 이적을 베푸셔서, 당신이 그들의 보호자이시며 진정한 왕이심을 밝히시고 그로 인해 당신의 거룩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모세의 혈기는 바로 이 뜻에 대한 도전이요 장애였던 것이다.

(주); 너희는...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 모세와 아론은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수있는 영예를 박탈당했다. 그리고 이 징계는 그러한 영예 뿐 아니라 그들 자신도 가나안 입국이 금지되는 준엄한 내용까지 포함된 것이었다(28절;27:12-14;신 32:48-52). 이는 지도자의 작은 실수가 얼마나 큰 비극적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명확히 제시한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모세와 아론이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망은 받았으나 그들이 누릴 영적 축복과 하늘 나라의 시민권까지 박탈당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마 17:3). 한편, 여기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데에는 영적으로 심오한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 즉 모세는 율법의 수여자요, 선포자이며, 전수자로서 '율법'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는 것은 '율법 으로는' 결코 새 하늘과 새 땅(천국)의 상징인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상징인 모세가 그 율법(행위)으로 인해 죽었거늘, 하물며 그 누가 율법(자신의 공로)으로 구원 얻을 수 있다고 자신할 것인가(롬 3:28). 율법은 단지 우리를 가나안(천국)의 입구까지 인도하는 몽학선생에 불과할 뿐이다(롬3:20;갈 3:24, 25). 따라서 여기 하나님의 이 선언은 당신의 깊은 섭리의 경륜이 깔린 구속사의 대선언인 것이다. 그리고 모세의 실수는 그러한 섭리의 결과로 파생된 하나님의 또다른 뜻이었다.

성 경: [민20:13]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므리바 물 사건]

(주); 므리바 물 - '므리바'(*)란 '다투다', '싸우다'는 뜻의 '리브'(*)에서 나온 말로서, 곧 '다툼'. '투쟁'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므리바 물'이라 한것은 '반석에서 물이 솟은 장소'를 가리킨 말이 아니라, '여호와를 원망한(다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여호와께서 반석에서 내신 물'을 가리킨다(27:14;신 32:51). 따라서 이것은 르비딤의 반석에서 물을 나오게 함으로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한 것과는 다르다(출 17:7). 그러나 물 때문에 마음이 상한 백성들이 모세와 다투었고, 이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크신 은력으로 반석에서 물을 내신 그 사건 자체와 의미는 상호 밀접히 연관된다. 출 20:1-7 주석 부분 참조.

(주);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훼손한 아론과 모세를 징벌하심으로 당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셨고, 또한 원망하는 백성들에게는 그들의 요구대로 물을 공급하사 불평을 일추시킴으로써 당신의 거룩함을 증명하셨다(Keil).

성 경: [민20:14]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에돔왕의 통행 거부]

(주); 에돔 왕에게 - '에돔'은 이삭의 아들에서의 후손들이 사는 거주지 또는 그 민족의 이름이다(창 25:22, 23). 그리고 에돔의 위치는 그 당시 이스라엘이 진을 치고 있던 가데스의 동북쪽에 있었으며, 사해(死海)에서 남쪽으로 홍해 동북면 아카바 만에 미치는 산악 지대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통과하여 가나안 동편, 곧 트랜스 요르단(Trans Jordan)에 진격하고자 했다. 그 이유는 가데스에서 곧장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매우 험준하고 가파른 산악지대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에돔지역은'약속의 땅'에 포함되지 않은 곳으로서, 이스라엘에게는 관심 밖의 땅이었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왕'이란 말은 왕정 시대의 최고 통치자를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한 지역을 통괄하는 족장(ruler, chief)을 의미하는 것으로 봄이 좋을 듯하다. 그런데 이들은 창 36:15-19에 언급된 14명의 우두머리들 보다 그 권위가 큰 족장이었던 것 같다(대상 1:43-54). 한편, 약 300년 후 사사 시대 당시 입다의 진술에 의하면, 이때 모세는 모압 왕에게도 역시 사자를 보내어 관할 지역 통과 요청을 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삿 11:17). 그런데 본 민수기의 기록에는 그 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 에돔 지역의 통과가 불가능하다면 설사 모압 지역의 통과가 허락된다 하여도 별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에돔 지역의 통과 사실 여부에만 그 기록 촛점을 맞추었기 때문일 것이다(Hengstenberg, Pulpit, Commentary).

(주);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 공동 번역에는 이를 '당신의 아우 이스라엘이오'라고 기록했다. 즉 모세는 조상 야곱과 에서(에돔)의 혈육의 정을 근거로(신 23:7) 상당히 친근하게 에돔에 접근하고자 했던 것이다<신 2:4-8>.

(주); 우리의 당한 모든 고난 - 여기서 '고난'(*, 텔라아)은 '지치다'란 뜻의 히브리어 '라아'(*)에서 파생된 말로서, 산고(産苦)와 같이 괴로운 '진통'(KJV, travail)을 의미한다. 실제 이 '고난'은 15절에 언급된 애굽 치하에서의 압제당한 사실을 가리킨다(출 2:23).

성 경: [민20:15]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에돔왕의 통행 거부]

(주); 우리 열조가 애굽으로 - 야곱과 그 일행 70명이 요셉의 초청으로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간 일을 말한다(창 46:1-27).

(주); 우리를 학대하였으므로(*, 야레우 라누) - '우리에게 악을 행하였다', '괴롭혔다'(KJV, vexed), '거칠게 다루었다'(RSV, dealt harshly)로 번역할 수있다. 애굽인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히브리인들을 모질게 취급했음을 의미한다<출1:8-14>.

성 경: [민20:16]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에돔왕의 통행 거부]

(주); 천사를 보내사 - 혹자는 이 '천사'를 상징적으로 보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이해하기도 하나(Knobel), 그렇지 않다. 여기서 '천사'는 이스라엘 역사의 고비 때마다 결정적으로 나타나사 큰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언약의 그 천사' 곧 '제 2위 하나님'으로 보아야 한다<창 16:7-16 강해, 여호와의 사자>. 즉 여호와의 사자(천사)가 직접 개입하여 애굽의 장자들을 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음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출 12:23). 그러므로 지금 모세는 출애굽의 대역사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되어진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주); 우리가 당신의 변방... 가데스에 있사오니 - 여기 '변방'이란 에돔의 서쪽 경계이며, 사해의 남서쪽이라 생각된다. 이곳은 가데스 바네아의 북동쪽 끝단으로서, 만일 에돔이 이곳까지 관할하였다면 그 당시 그들은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성 경: [민20:17]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에돔왕의 통행 거부]

(주);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 - 모세는 사해 남쪽에 위치한 에돔 땅을 지나 요단 동편(Trans Jordan) 지역으로 진입하려 했다. 따라서 그들이 들어가려 했던 곳에는 '에돔'과 더불어 사해 동쪽의 '모압' 및 요단강 상류 동편의 '암몬'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모압과 암몬 사이에는 '아모리 남 왕국'이, 그리고 암몬 북쪽 바산 지역에는 '아모리 북 왕국'이 각각 그 세력을 굳히고 있었다. 이들 왕국들은 세력권 다툼에 온힘을 쏟았으며 최근엔 아모리 남 왕국이 모압을 쳐 아르논 강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확장했다(21:26). 모세는 이같은 정치 상황을 이용하여 에돔과 모압으로 통하는 대로(大路)로 자신들이 통과할 수 있도록 요청한 것이다(14-21절;삿 11:17). 즉 아모리 왕국이 강해져 가는 것을 에돔과 모압이 우려하던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에돔 왕이 모세의 소청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모세가 에돔과 모압을 통과한 후 가나안 땅으로 가려면 두 왕국의 적대국인 아모리와 충돌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즉 모세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외교적 실리를 위해서라도 에돔 왕이 길을 터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주); 밭으로나... 마시지 아니하고 - 즉 통과시 도로만 이용할 뿐 통과 지역에 털끝만한 손해도 끼치지 않겠다는 말이다<19절>.

(주); 왕의 대로(대로)만 통과하고 - '왕의 대로'(King's Highway)란 고유 명사로서, 트랜스 요르단(Trans Jordan) 북쪽으로부터 아모리와 모압과 에돔을 통과하여 아카바 만의 어귀인 '에시온 게벧'에 까지 이르는 거대한 국제 도로를 일컫는다. 이 도로는 아마도 군사적 목적으로 주변 국가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건설한 것으로 보이는데, 평화시에는 다메섹에서 아라비아를 왕래하는 대상(隊商)이 주로 사용했다. 그러므로 200만명 이상의 백성을 진행시켜야 하는 모세로서는 이 넓은 길이 행군에 절대적으로 요청되었을 것임에는 두말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성 경: [민20:18]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에돔왕의 통행 거부]

(주); 칼로 너를 맞을까 염려하라 - 에돔왕은 오랜 민족적 감정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통과를 불허했다(창 27:41). 더욱이 그는 무력으로 이스라엘의 통과를 저지할 것이라고까지 경고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이러한 적대 행위로 인해 후일 그들은 여호와의 심판을 면치 못했다(옵 1장).

성 경: [민20:19]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에돔왕의 통행 거부]

(주); 대로(*, 메실라) - '돋운 길'(사 49:11)이란 뜻으로서, 군사 또는 무역용으로 닦은 길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왕의 대로'를 지칭한다<17절>. 이 대로는 오늘날에도 '왕의 길'(Derb es Sultan)이라 일컬어진다.

(주);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 문자적으로는 '결코 아무 일도 아니다'란 뜻이다. 즉 '왕의 대로'만 사용할 뿐 더이상 바랄 것도 피해 줄 것도 없다는 뜻이다.

성 경: [민20:20]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에돔왕의 통행 거부]

(주); 강한 손으로 막으니 - 에돔 왕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행군을 재개하자 에돔 왕은 군대를 소집하여 '강한 무력'(RSV, a strong force)으로 이스라엘의 진입을 막았다.

성 경: [민20:21]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에돔왕의 통행 거부]

(주); 이스라엘이... 돌이키니라 - '왕의 대로'가 그토록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에돔과 접전하지 아니하고 쉽게 행군 방향을 돌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세일 산을 중심한 에돔 땅을 에서의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셨기 때문이며(창 36:1, 8, 9) (2) 하나님께서 형제 민족의 땅을 탐하거나 침범치 말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신 2:4, 5;23:7). (3) 하나님께서는 소모적인 전쟁을 막으시고, 가나안 7족속의 징벌(신 7:1)을 위해 힘을 비축케 하셨기 때문이다. (4)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보호자이실 뿐 아니라, 모든 이방인의 주관자도 되시는 분으로서 이번 경우오직 정의와 평화의 원칙으로 이 땅을 통과하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성 경: [민20:22]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아론의 죽음]

(주); 호르 산에 이르렀더니 - '호르산'은 에돔 변경에 위치한 곳으로(23절;33:37). 가데스 북동쪽 약 24km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에벧 마두라'(Jebel Madurah)로 추정된다. 이 산은 가데스에서 모압으로 곧장 갈 수 있는 도로상에 있다.

성 경: [민20:23]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아론의 죽음]

(주); 에돔 땅 변경 호르 산 -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使臣)을 보낸 모세는 아마 에돔 왕이 허락해 줄 것으로 간주하여<17절>, 회보가 올 동안 당시 에돔 국경을 형성하고 있던 아라바 지역의 호르 산까지 진행했던 것 같다.

성 경: [민20:24]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아론의 죽음]

(주);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 성경 기록에 의하면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죽음을 '열조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표현하고 있다(창 15:15; 25:8; 35:29;49:29, 33). 이는 구약 시대 히브리인들의 내세관이 반영된 말로서, 사실 그들에게는 신약 시대와 같은 부활 사상은 희박했다(계시의 점진적 측면에서 구약 후기의 히브리인들에게서 부활 사사이 가끔 언급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죽음 이후에는 사자(死者)들이 '음부'라는 처소에 머무는 것으로 이해했다<창 37:35 주석 참조>.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비록 '영생' 개념은 뚜렷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죽음 이후에도 후손을 통해 자신들이 영존(永存)하는 것으로 확신했다는 점이다. 즉 그들은 독립된 한 개체로서의 자신보다는 가문 또는 혈족 내에서의 자신의 존재가치를 더욱 인정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또다른 형태로서의 존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그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확실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이미 죽은 자신들의 조상은 그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갔다고 믿었으며(전 12:7), 결국 자신들이 죽어 '조상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은 조상들이 간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주); 내가...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 그 결정적 이유는 '므리바 물' 사건 때문이었다. 따라서 아론 역시 혈기에 찬 모세의 행동<11, 12절>에 동조했음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결국 아론의 죽음은 자연사(自然死) 이상의 의미, 즉 하나님의 징벌로 볼 수 있다.

성 경: [민20:25]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아론의 죽음]

(주); 너는 아론과... 호르 산에 올라 - 여호와 종교는 산(山)의 종교라 할만큼 산과 밀접하다. 즉 하나님은 많은 경우 산에서 당신의 종들을 친밀히 만나시고 당신의 뜻을 계시해 오셨다. 이제도 하나님은 출애굽의 두 영웅(모세와 아론)과 그 뒤를 이어 제 2대(代) 대제사장이 될 엘르아살을 산으로 부르시고 아론의 최후를 주도하셨다. 그러므로 아론의 죽음은 다른 여타 악인의 최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곧 하나님이 함께 하는 죽음으로 볼 수 있다.

성 경: [민20:26]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아론의 죽음]

(주); 아론의 옷을 벗겨... 엘르아살에게 입히라 - 여기서 '아론의 옷'이란 대제사장의 의복을 뜻한다. 대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봉사를 할 때 그는 반드시 이 복장은 착용해야만 한다<출 28:1-43>. 그러므로 모세가 아론에게서 이 옷을 벗겨 엘르아살에게 입히는 것은 아론의 대제사장직이 그의 아들에게 전수된다는 상징적 행동이었다<레8:7-9>.

성 경: [민20:27]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아론의 죽음]

(주); 회중의 목전에서... 오르니라 - 모세는 제사장직에 도전한 고라 일당의 반란 사건(16장)의 경험을 살려 대제사장직의 직책이 인간의 자의에 따른 것이 아니라(16:3), 하나님의 권위로 위임된 것임을 온 백성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백성들의 '목전에서' 현직 대제사장과 신임 대제사장을 대동하여 하나님이 부르시는 산에 올랐다.

성 경: [민20:28]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아론의 죽음]

(주); 아론이... 죽으니라 - 출애굽시 아론의 나이는 83세였고(출 7:7), 죽을 때 나이가 123세였으므로(33:39). 그가 출애굽 제 40년 5월1일에 죽었다는 33:38의 기록은 정확하다. 한편, 초대 대제사장 아론의 죽음은 지금도 살아 계시사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제사장직과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히 7:21, 24). 이처럼 인간 대제사장은 죽어갔으나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우신 '대제사장직'을 영원히 지속시키시는 것은 인간과 영원히 교제하시기를 원하시며, 죄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성품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성 경: [민20:29]

주제1: [므리바 물 사건]

주제2: [아론의 죽음]

(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였더라 - 보통의 애도 기간은 7일간이었으나(창 50:10;삼상 31:13), 모세와 아론의 경우 각각 30일간 진행되었다(신 34:8). 이는 지도자에 대한 각별한 예우로써 국장(國葬)에 해당한다.

성 경: [민21:1]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아람 왕 정복]

(주); 아랏의 왕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 '아랏'(Arad)은 '야생 당나귀', '도망자'등의 뜻을 지닌 지명으로, 헤브론 남쪽 약 32Km지점의 네게브 사막 둥북부에 위치해 있었다(Eusebius, Jerome). 당시 이곳 통치자는 호르산에 진치고 있던(4절) 이스라엘이 '아다림'(Atharim)길을 통해 자신들의 영내로 진입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선제(先制) 공격하여 몇 명의 포로를 잡아갔다. 한편 여기서 '아다림 길'은 '정탐의 길'이란 뜻으로서, 이전에 이스라엘 12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탐지하기 위해 가데스로부터 남방(네게브) 길로 해서 헤브론으로 올라갔던(13:17, 21, 22) 바로 그 길이었다(Keilh).

성 경: [민21:2]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아람 왕 정복]

(주); 이스라엘이... 서원하여 가로되 - 이스라엘은 아랏인들의 예상 못했던 공격에 치를 떨면서 그들을 향해 극도의 분노를 나타내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의 선민으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여호와께 승리를 보장해 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만일 승리하게 되면, 마치 희생 제물을 하나님의 제단에 바치듯, 그 성읍에 속한 모든 것을 멸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맹세하였다(레 27:28, 29).

(주);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 '나'라는 1인칭 주어로 된 이 호소는 모세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그들의 서원을 하나님께 아뢴 것이다.

성 경: [민21:3]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아람 왕 정복]

(주);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 이스라엘은 비록 광야여행 중 불평과 원망을 일삼았으나(출14:11, 12; 15:23, 24; 16:2, 20, 27; 17:1-3; 32:7),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인도하셨으며, 특히 그들의 간구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기꺼이 응답해 주셨다. 바로 이것이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이자 신실하심이다(출 34:6; 시 86:5).

(주); 그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 - '호르마(*)란 '철저한 파멸', '저주'등의 뜻으로, '아랏' 지역에 새로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 '호르마'와 동일 어근을 지닌 '멸하니라'(*, 야하렘)란 말은 '전력을 다하여 파괴시키고 근절시킴'을 나타내는데, 이는 그 당시 전쟁의 참화(慘禍)가 얼마만 했는가를 짐작케 해준다. 물론 이러한 철저한 훼파는 2절의 서원대로 실행된 것이다. 따라서 이 '아랏'의 승리는 장차 이루어질 가나안 정복의 승리를 보장해 주는 첫 징표가 되었다.

성 경: [민21:4]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놋뱀 사건]

(주); 호르산 - 20:22 주석 참조.

(주);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 이스라엘은 에돔의 방해로 인해(20:18-21) 평탄한 '왕의 대로'가 있는 에돔 동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홍해의 길' 즉 아카바 만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광야길로 가기 위해 다시 바란 광야로 들어가야만 했다(신 2:1;삿 11:18). 이스라엘은 이 광야를 통해 남쪽으로 계속 행군하여, 에돔의 서쪽 국경을 형성하며 남북으로 뻗어있는 세일 산을 지나, 아카바 만의 입구와 인접한 엘랏과 에시온 게벧 곁을 통과했다. 이렇게 우회(迂廻)한 이스라엘은 에돔의 동쪽 지역의 광야길을 통하여 다시 에돔 북쪽의 모압 지역을 향하여 올라간 것이다.

(주);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 위에 언급한 대로 38년간 광야에서 방황했던 이스라엘이 지름 길을 제쳐 놓고 또다시 고역스런 광야 길로 나서야 했기에 백성들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극한 분노를 일으키고 말았다.

성 경: [민21:5]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놋뱀 사건]

(주); 어찌하여... 죽게 하는고 - 이러한 백성들의 원망은 어려운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거의 어김없이 터져나온 습관적인 불평이었다(14:2, 3; 20:2-5; 출 14:11, 12; 16:3;17:3). 그러나 이것은 '죽음으로부터' 그들을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경륜을 멸시하고 모독하는 패역한 행위로서, 진정 그들은 생명의 가치를 누릴 자격조차 없는 '죽어야할 자들'이었다.

(주); 박(薄)한 식물 - 여기서 '박한'(*, 켈로켈)은 '악한' 또는 '무시할 만한'이란 뜻으로서, 하나님께서 재공하신 하늘의 음식 '만나'를 멸시한 백성들의 완악함을 대변한 말이다. 이 '만나'는 실제로 세상의 여타 음식물보다 훌륭한 것으로서, 이스라엘이 이것올 처음 대할 때 스스로 경탄한, 실로 맛있는 식물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를 멸시한 것은 곧 그들의 세속적이고 패역한 마음의 반영이라 할수 있다.

(주); 싫어하노라(*, 카차) - '몹시 지겨워하고 질색하여 꿀어버린다'는 의미이다. 이는 '박한'이란 말과 조화를 이루어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만나)에 감사하기는 커녕 오히려 원수처럼 미워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결국 그들이 싫어한 것은 단순히 먹는 식물이 아니라, 출애굽 자체와 그것을 주도하신 하나님이었다.

성 경: [민21:6]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놋뱀사건]

(주); 불뱀들(*, 네하쉼 세라핌) - 문자적으로는 '불 붙은 뱀'이란 뜻이다. 여기서 '불 붙은'이란 형용사는 당시 이스라엘이 여행하던 광야 지역(특히 아라바 지역)에 많이 서식하던 독사(毒蛇)가운데 한 종류로서, 등에 '불타는 듯한 붉은 반점'이 있는 뱀을 일컫는 표현이다(Leon Wood, Schubert, PulpitCommentary). 그와 함께 이는 그 뱀의 맹독성(猛毒性)을 강조한 말이라 볼 수도 있다(Keil). 즉 그 뱀에 물리게 되면 그 강력한 독성으로 인해 즉시 온몸에 높은 열이 생기며 죽어가기 때문에 붙여진 말일 것이다. 한편 원어상 '불뱀'이란 말 앞에 정관사 '하'(*, the)가 붙은 것은 그 뱀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종류이며, 또한 특별히 하나님께서 보내신 징계의 도구였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연계를 활용하여 당신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이것이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능력이다(롬 11:36).

성 경: [민21:7]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놋뱀 사건]

(주); 우리가 ... 범죄하였사오니 - 이때 백성들은 불뱀의 습격 원인을 정확히 간파했으며, 또한 그 해결책 역시 올바른 것이었다. 이처럼 자신의 허물을 바로 아는 자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는 당신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행하시는 회유와 권면의 채찍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범죄의 길에서 돌이키게 한다(잠 3:12; 눅 15:14-17; 히 12:5-13).

(주); 모세가... 기도하매 -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중재자를 통해서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온 인류의 중보자이신(롬 8:34; 딤전 2:5; 히 1: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요 14:13; 16:23, 24) 누구나 직접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여기서 모세의 기도는 백성들의 중재 요청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광야 여행 중 유일한 경우였다. 이는 그만큼 상황이 심각했음을 암시하며, 또한 이제 그들이 모세를 참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로 인정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성 경: [민21:8]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놋뱀 사건]

(주);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 하나님은 모세의 중재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불뱀'(a fiery serpent, KJV)과 동일한 모형 뱀을 만들어 깃발을 단 긴 장대 위에 매달게 했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뱀의 파괴성을 앗아 가시고, 대신 은혜로우신 생명의 메시지(복음)를 널리 주심을 상징한다. 즉 이것은 죄의 권세를 무찌르고 영광을얻으신 하나님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다(출 17:15; 사 5:26; 11:10, 12). 그러한 의미에서 이 장면은 죽음(사단)의 권세를 물리치시기 위해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늘과 땅으로부터 버림받아 허공에 높이 들리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생생히 예표한다(요 3:14, 15; 갈 3:13; 골 2:15). 한편 여기서 장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스'(*)는 '빛나다', '눈에 띄다'란 뜻의'나사스'(*)에서 유래한 말로, 곧 많은 사람들의 눈에 확연히 띄도록 깃발(flag) 혹은 돛(sail)을 달아맨 긴 깃대(flagstaff, flagpole)를 가리킨다(시 60:4; 사 11:10;램 51:27).

(주); 그것을 보면 살리라 - 하나님은 불뱀의 치명적인 독성(毒性)을 제거하는 유일한 치료법으로써 그들을 쓰러뜨린 불뱀 형상을 보게 하셨다. 이는 '치료하시는 여호와'(출 15:26)의 능력의 부족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1)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허물을 다시 한 번 똑똑히 자각하게 하고 (2)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말씀에 절대 순종할때,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을 수 있다는 순종의 도틀 가르치며 (3) 또한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생명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오직 '장대에 높이들린 자'(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길밖에 없음을 가르치는 구원의 원리를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요 14:6; 행 4:12).

성 경: [민21:9]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놋뱀 사건]

(주); 놋뱀을 만들어 -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놋쇠(bronze)로 불뱀을 만들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자유주의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즉 그들은 이것이 뱀을 높이 받듦으로써 뱀의 노여움을 풀고자 시도한 고대 토템(Totem)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W. R. Smith). 또는 강력한 놋뱀올 만듦으로써 그 위력으로 역시 뱀을 쫓아내고자 한 고대의 사귀(邪鬼) 축출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Frazer). 그러나 이러한 이방적 해석은 전혀 터무니없다. 왜냐하면 모세 율법은 오히려 바로 이러한 이방의 온갖 우상 숭배 및 사술(邪術)의 철저한 배격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출 20:4, 5; 레 19:31; 20:27등). 한편, 그런데 모세가 불뱀을 '놋'으로 만든 이유에 대하여 학자들은 이 재료가 햇빛에 반사될 때 내는 붉은 빛깔 때문에 선택되었다고도 하고 또한 불에 잘견디는 내열성(耐熱性) 때문에 선택되었다고도 한다(Keil, Lange). 따라서 그들은 영적으로 이 놋뱀이 불로 상징되는 심판과 그 심판의 고통을 견디어 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를 상징하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 놋뱀은 가나안 정착 이후에도 계속 보존되었으며(히스기야 왕때까지), 심지어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숭배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왕하 18:4). 따라서 히스기야 왕은 종교 개혁 실시 때 이 놋뱀을 부셔 버리고, 그것을 '느후스단'(놋조각)이라 했던 것이다. 실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놋뱀 그 자체에 신통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놋뱀을 통해서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성숙한 여호와 신앙의 선민이 되어야 했다.

(주); 장대 위에 다니 - 루토(Luther)는 그의 요한복음 3장 설교(Luther's Sermon onJohn iii. 1-15)에서 이 사실, 곧 놋뱀을 만들어, 그것을 장대 위에 달아, 그것을 쳐다본 자가 치료된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놋뱀(구리뱀)을 만든 사실 - 놋뱀의 실제 모양은 불뱀이로되 독(毒)이 없다. 이것은 실제 사람의 형상이시되(빌 2:7), 전혀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롬 8:3; 고후 5:21; 히 4:15;벧전 2:22-24). (2) 놋뱀을 장대위에 높이 매단 사실 - 이것은 실제적으로 (일차적으로) 죄에 거하는 모든 악(사단)의 세력에 대한 공개적인 처형이며, 영적으로는(구속사적으로는), 그리하여 이제 사단의 권세가 모두 처형된 승리의 그 자리에 우뚝 솟아계신 그리스도의 승리의 모습이 만 백성에게 현시된 그 사실을 상징한다(요 3:14; 골2:14, 15). (3) 놋뱀을 쳐다보아야 산 사실 - 이것은 일찍이 뱀(사단)의 머리를 쳐부술 자로 계시된 여인의 후손(차 3:15), 곧 인자(人子)되신 그리스도를 전적 의뢰하여야만 모든 뱀의 독성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대진리를 상징한다(Keil &Delitzsch, Pentateuch, Vol. I-iii. pp. 140, 141).

(주); 쳐다본즉 살더라 -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고, 순종하는 자에게만 구원의 기쁨이 전달되었다(요 3:16).

성 경: [민21:10]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비스가 산으로의 행진]

(주); 오봇에 진 쳤고 - 이스라엘은 에돔을 직통하지 못하고 그 국경선을 따라 북상(北上)하여 '오봇'(Oboth)에 이르렀다. '땅에 판 구멍들'이란 뜻을 지닌 '오봇'은 사해 남동쪽 모압의 남동(南東)국경 지대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석회 동굴이 많았던 것 같다. 오늘날의 '아인 엘 웨이바'(Ain el Weiba)로 추정된다.

성 경: [민21:11]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비스가 산으로의 행진]

(주); 모압 앞 해 돋는 편... 이예아바림 - 이곳 '이예아바림'(Ije-abarim)은 모압 동남편의 변방 불모지로서 대부분 암석 투성이 지역이다(33:44). 당시 이곳은 모압과 에돔이 만나는 장소로서 카일과 델리취(Keil and Delitzsch)가 '교차로의 폐허'라 지칭한 바대로 사람에 생존할 수 없었던 곳으로 보인다. 한면 '해 돋는편 광야'란 '요단 동쪽에 위치한 광야'라는 뜻이다.

성 경: [민21:12]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비스가 산으로의 행진]

(주); 세렛 골짜기 - '세렛'(Zered)은 비가올 때만 5-6km정도의 긴 시내를 형성하는 와디(Wady)지역으로(오늘날의 Wady el-Hesa에 해당), 모압의 남동쪽을 지나 사해의 남동쪽으로 물줄기를 이룬다. 이스라엘은 이 '세렛 시내'를 건넘으로 비로소 광야 38년간의 지루한 방랑생활을 종결짓고 본격적인 가나안 진입 여정에 돌입할 수 있었다(신 2:13, 14).

성 경: [민21:13]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비스가 산으로의 행진]

(주); 아모리인의 지경 - 아모리 족속은 족장 시대 이전부터(약 B. C. 2000년전부터)가나안 땅에 거주했다(창 15:16). 그들은 헤스본을 중심하여 주변에 촌락과 성읍을 건축한 남 왕국(25, 26절; 신 2:26)과 바산을 중심해 그 위세를 떨쳤던 북 왕국으로 나뉘어져 발전했다. 본문에 언급된 것은 그 중 남 왕국으로서 그들은 북동쪽으로는 얍복 강을 경계로 모압 족속과 마주하고 있었으며, 북쪽으로는 길르앗을 경계로 바산과 맞대어 있었고, 남쪽으로는 아르논을 경계로 모압 족속과 마주하였었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사해와, 둥쪽으로는 광야 지역을 경계로 하였다(삿 11:22). 아르논 건너편에 진쳤으니 - '아르논'(Arnon)은 '급류'란 뜻의 강으로서, 북부 아라비아 산지에서 가파른 골짜기를 타고 약 32km를 진행하여 사해 동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긴 강이다. 당시 아모리와 모압은 이 강을 경계로 대치하고 있었다.

성 경: [민21:14]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비스가 산으로의 진행]

(주); 여호와의 전쟁기 - 이는 '야살의 책'(수 10:13; 삼하 1:18)과 함께 성경에 그 이름만 알려진 고서(古書)이다. 따라서 혹자는 이 책을 아모리 족속의 '바알 전쟁기'(the Book of the Conflicts of Baal)와 동일한 것으로 보기도 하며(G. Unruh), 또 혹자는 이 책을 후대 왕정시대(여호사밧 당시, B. C. 873-849)의 그 작품으로 보기도 하나(Knobel), 그렇지 않다. 이 책은 그 고어체적(古語體的) 기법으로 인해, 그리고 그생생한 지리적(地理的)묘사로 인해 확실히 단언할 수 있는 바, 카일(Keil)이 적절히 정의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여호와께서 베푸신 영광스러운 사역들을 찬양하기 위하여 모세 그 자신의 시대에 기록된 '송시(頌詩)모음집'(Collection of Odes)이다'(Keil & Delitzsch, Pentateuch, Vol. I-iii. p. 145). 한편,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이 성경 본문에까지 언급된 것으로 보아 상당히 귀중한 책이며, 그리고 가나안 여정 중에 언급된 것으로 보아 주로 출애굽 여정을 하나님의 구원 역사라는 관점에서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주); 수바의 와헙(*, 와헤브 베수파) - KJV에서는 이를 '홍해 바다'(the Red Sea)로 번역하였다. 이는 '홍해'가 히브리어로 '얌 수프(*)로서 '수바'(*, 수파)와 비슷하게 표기되어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카일(Keil)은 '수파'가 특정 지명이나 바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욥 21:18과 나1:3에서 언급된 '폭풍우'란 뜻의 히브리어 '베수파'(*)의 형용사형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14절을 '하나님께서 폭풍우 속에서 나아가 와헙과 아르논 골짜기들을 취하셨다'라는 뜻으로 해석했다(Keil & Delitzsch, op. cit. p. 146). 그러나 이 견해는 크게 환영받지 못하며,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수바에 있는 와헙'으로 이해함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바'(Suphah)는 아르논 지역에 위치한 아모리인의 영토로, '와헙'(Vaheb)은 그 지역에 있는 요새 이름으로 추측할 수있다.

성 경: [민21:15]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비스가 산으로의 행진]

(주); 아르 고을을 향하여... 모압의 경계에 닿았도다 - 여기서 '아르'(Ar)는 아르논 강을 끼고 발달한 모압의 성읍인데(신 2:9, 18, 36; 수 13:9, 16), 고대 근동에서 정치.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으로 추정된다(22:36). 한편 이 짧은 서사시가 지닌 역사적 가치는 아르논 강이 모압과 아모리족의 경계선이었다는 점을 보여 주는 데 있다.

성 경: [민21:16]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비스가 산으로의 행진]

(주); 브엘에 이르니 - '브엘'(Beer)은'우물', '물웅덩이'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시하여 땅을 파게 함으로써 물을 주신 곳이다. 아마 이곳은 사 15:8에 나타나는 '브엘 엘림'과 동일 지역인 것 같다.

성 경: [민21:17]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비스가 산으로의 행진]

(주); 그 때에 -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브엘'에서 우물을 파서 물이 솟아 났을 때를 가리킨다.

(주); 우물 물아... 노래하라 - 이 짧은 노래를 흔히 '우물의 노래'(the Song of Well)라 일컫는다. 이 노래는 죽음의 땅 광야에서 생명의 샘물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격스럽게 찬양한 것으로서, 지루한 38년의 광야 생활이 끝난 환희와 생동감을 본장에 담긴 다른 두편의 시(14-15절, 27-30절)와 더불어 인상깊게 묘사하고 있다. 한편 앞에 언급된 '여호와의 전쟁기'(the Book of the Wars of Jehovah)는 바로 이같은 '서사시의 모음집'으로 생각된다.

성 경: [민21:18]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비스가 산으로의 행진]

(주); 족장들... 귀인들 - 이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지도자들의 관할 아래 우물을 팠다.

(주); 홀(笏)과 지팡이 - '홀'(*, 메호케크)이란 '막대기', '지휘봉' 등의 뜻으로서 통치자(지도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지팡이를 가리키며(창 49:10), '지팡이'(*, 미쉐아노탐) 역시 '지주', '막대기'를 뜻하는 것으로 '홀'과 동일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결국 이것은 지도자들의 '권위'있는 명령에 따라 우물 파는작업이 진행 되었음올 암시한다.

(주); 맛다나에 이르렀고 - '선물'이란 뜻의 '맛다나'(Mattanah)는 그 위치가 불명확하다. 많은 학자들은 이곳을 디본(Dibon) 동북방 17. 6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길벱 엘 메데이이네'(Khirber el Medeiyineh)로 추정한다.

성 경: [민21:19]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비스가 산으로의 행진]

(주); 나하리엘에서 바못에 이르렀고 - '나할리엘'(Nahaliel)은 '하나님의 급류 골짜기'란 뜻의 지명으로, 급류가 형성될 만큼 가파르고 험준한 지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바못'(Bamoth)은 '바못바알'의 준말로 '바알의 산당'이란 뜻이다. 따라서 아마 이 명칭은 당시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던 아모리 족속에 의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성 경: [민21:20]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비스가 산으로의 행진]

(주); 모압 들에 있는 골짜기 - '모압 들'은 동(東)으로 아라비아 사막까지 뻗어 있고, 서(西)로는 요단 강과 사해가 만나는 지점에서 끝나며, 남(南)으로 아르논 지류까지뻗어 있는 거대한 고원지대를 가리킨다. 신 2:26에서는 이 지역을 '그데못 광야 지역'으로 언급하였다. 한편 본절에 대해 RSV는 알기 쉽게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비스가 산 정상에 가까운 모압들의 골짜기'(the valley lying in the region of Moab bythe top of Pisgah which looks down upon the desert)로 번역하였다.

(주); 비스가 산 - '깎아 새긴 것'이란 뜻올 지닌 비스가(Pisgah)산은 사해의 북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아바림 산맥의 한 봉우리였다(33:47; 신 32:49). 이 산은 그 정상에오르면 모압 평지 전부와, 서쪽으로는 사해(the Dead Sea)까지 굽어볼 수 있는 높은 산이었다. 모세는 후일 이곳에서 아득한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도 했다(신 3:27). 한편이 산과 '느보 산'의 관계에 대해서 여러 견해가 있으나, '비스가 산'의 정상을 이루는 한 봉우리를 '느보 산'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신 32:49; 34:1).

성 경: [민21:21]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아모리 왕 정복]

(주); 아모리 왕 시혼에게... 가로되 - 아모리 족속은 에돔과 모압 족속과는 달리 여호와의 심판의 대상이었다(출 23:23; 34:11; 신 7:1).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신(使臣)을 통하여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것은 율법에 명시된 전쟁의 법을 따르고자 함인(신 2:26) 동시에, 이스라엘이 지금 가장 중요한 목표지로 삼은 곳이 가나안 땅이지 요단 동편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성 경: [민21:22]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아모리 왕 정복]

(주); 왕의 대로로만 통행하리이다 - 에돔 족속에게 청원했던 내용과 동일하다. 자세한 내용은 20:17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21:23]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아모리 왕 정복]

(주); 시혼이... 용납하지 아니하고 - 삿 11:20의 기록에 따르면, 이때 아모리왕 시혼(Sihon)은 '이스라엘을 믿지 못하였다'고 한다. 즉 그는 200만 이상의 대군이 자기 영토에 진입한다는 것은 곧 자기 성읍들이 훼파되거나 최소한 각종 재산상의 피해를 당하는 것을 의미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 당시 시혼이 모압족의 땅을 탈취하여 정국이 불안정한 상태였으므로, 이러한 오해는 충분히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주);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 신 2:24에 의하면 시혼(Sihon)의 이러한 선제공격은 그들을 멸하시려 했던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한다. 즉 죄악이 관영했던 아모리인들을(창 15:16) 더 이상 용납치 않으시고, 이스라엘을 통해 그들을 섬멸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전쟁 충동 욕구를 주입시키셨던 것이다. 이를 통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삼상 17:47)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주); 야하스에 이르러 - 야하스(Jahaz)는 아르논 강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시혼 왕은 이스라엘에 참패 당하였다(신 2:32-34; 삿 11:20, 21). 한편, 이스라엘은 정복 후 이곳을 르우벤 지파와 레위 지파의 므라리 자손에게 분할해 주었다(수 13:28;21;36; 대상 6:67).

성 경: [민21:24]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아모리 왕 정복]

(주); 아르논 부터 얍복까지 점령하여 - 이는 아모리 남왕국 전체를 점령했다는 의미이다. 한편 얍복(Jabbok) 강은 사해 북방 약40km 지점의 길르앗 동편 고원에서 발원하여 아모리 및 암몬과 국경선을 이루며 요단 강에 흘러 들어가는 약 96km 가량의 긴 강이다. 후일 이 강은 갓 지파의 경계가 되었다(신 3:16; 수 12:2).

(주);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하더라 - 이것은 아모리 족속이 얍복 강 이북의 땅으로 뻗어나가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입증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있어 이 말의 의미는 그들이 형제 민족인 암몬을 침공치 않았다는 뜻이다(신 2:19).

성 경: [민21:25]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아모리 왕 정복]

(주); 헤스본과 그 모든 촌락 - 직역하면, '헤스본과 그 모든 딸들'이란 의미이다. 즉 이것은 '헤스본'(Heshbon)을 모성(母性)으로 하여 아모리 전역에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성읍들(cities)이란 의미이다. 추측컨데 당시 아모리 왕국의 수도 헤스본을 비롯하여 아모리 지역의 모든 성읍을 훼파시키고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은 대략 남북으로 90km, 동서로 45km 정도 되는 방대한 지역이었다.

성 경: [민21:26]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아모리 왕 정복]

(주); 헤스본은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도성이라 - '회계'(會計)란 뜻을 지닌 헤스본(He-shbon)은 요단 동편 약 29km지점에 있는 아모리 왕국의 수도이다. 원래 이 지역은 모압 영토였으나 시혼(Sihon)이 탈취하여 수도로 삼았었다. 그런데 이 땅을 이스라엘이 아모리 족속으로부터 강점하여 르우벤(32:37) 및 갓 지파(수 21:38-40; 대상 6:77, 81)에게 할당하였으나, 왕정 후기에 또다시 원주민이었던 모압인들에게 점령되었었다(사 15:4;16:6, 8, 9; 렘 48:2, 33, 34).

성 경: [민21:27]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승리의 노래]

(주); 시인이 읊어 가로되 - 여기서 '시인'(*, 모쉘림)은 그 어원이 '잠언'의 의미를 지닌 '마솰'(*)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성경의 '시인'은 단순히 자연이나 인생을 노래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기리고 백성을 교훈하는 내용을 시나 노래로 읊조리는 자를 가리킨다.

(주); 너희는... 견고히 할지어다 - 정복당한 아모리인을 향해 정복자 이스라엘이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풍자적인 조롱의 말이다(Ewald, Meyer).

성 경: [민21:28]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승리의 노래]

(주); 불이... 화염이 나와서 - 본절은 모압을 섬멸한 아모리인의 '전쟁의 불'을 읊은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철저하게 멸망당한 아모리인의 현재와 모압 족속을 무참히 짓밟은 아모리인의 과거의 위업은 큰 대조를 이룬다.

(주); 아르 - 고대 근동 지역의 주요 정치, 군사 요충지로서 모압의 대표적인 성읍이다(신 2:9; 수 13:9). 이 성읍 주변에 아르논 강이 흐르고 있었다.

(주); 아르논 높은 곳의 주인 - 본래 이 지역의 원주민인 모압 족속을 가리킨다.

성 경: [민21:29]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승리의 노래]

(주); 그모스의 백성아 - '그모스'(Chemosh)는 '정복자', '지배자' 란 뜻의 '카마쉬'(*)에서 유래한 말로서, 당시 모압인들이 그들의 주신(主神)으로 섬기던 민족신의 이름이다(왕하 23:13; 렘 48:1, 7). 그리고 이 신은 인근 암몬 족속에 의해서도 숭상되었는데(삿 11:24), 따라서 그모스는 당시 암몬인의 주신(主神) '밀곰'(몰렉)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유대 사가(史家) 제롬(Jerome)은 이 신을 '바알브올'과 동일하게 보고 있다(25:3; Keil & Delitzsch, op. cit. p. 153). 한편, 모압인들은 그모스를 전쟁의 신으로 숭배하여 그들을 모든 전쟁에서 승리케 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시인의 노래는 오히려 그 신(神)으로 말미암아 모압의 아들과 딸들이 아모리 족속에게 포로로 잡혔음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이 부분을 공동 번역은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제 아들들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쫓기고 제 딸들이 붙잡혀가도 그모스는 속수 무책이었다."

성 경: [민21:30]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승리의 노래]

시(詩)의 셋째 절은 다시금 아모리 족속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를 노래하고 있다.

(주); 우리가 그들을 쏘아서 - 여기서 '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라'(*)는창을 던지거나 화살을 쏘듯이 '세게 멀리 던지는 것'(cast away)을 뜻한다(출 15:4). 즉 이것은 이스라엘이 아모리 족속을 마치 멀리 집어 던지듯 이끝에서 저끝까지 몰아낸 사실을 시적으로 묘사한 말이다.

(주); 디본까지... 노바까지 - 여기서 '디본'(Dibon)은 아모리 지역의 남단에 위치한 성읍을, '노바'(Nophah)는 북단에 위치한 성읍을 각각 가리킨다.

(주); 황폐케 하였도다(*, 나쉼) - '훼손하다', '멸하다'란 뜻의 '솨멤'(*)에서 유래한 말로, 정복지를 초토화(焦土化)시킨 사실을 일컫는다. 실로 이 전쟁은 전면적인 종교전쟁이었다(신 2:34).

성 경: [민21:32]

주제1: [민 21:32]

주제2: [불뱀과 놋뱀 사건]

(주); 바산 왕 정복 야셀을 정탐케 하고 - '그가 도운다'는 뜻의 '야셀'(Jaazer)은 헤스본 북쪽에 위치한 길르앗 지역의 아모리인 거주지로, 오늘날의 암몬 서쪽 약 11km 지점에 있는 '길벱 사르'로 추정된다(렘 48:32). 모세는 이 성읍과 주변 촌락들을 정복함으로써(32:25), 시혼 통치하의 아모리 남왕국을 완전히 정벌했다.

성 경: [민21:33]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바산 왕 정복]

(주); 돌이켜 바산 길로 올라가매 - '바산'은 '비옥하고 기름지며 돌이 없는 평지'란 뜻으로, 이 지역에는 아모리인들의 북왕국이 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곳은 북쪽으로는 헤르몬 산에서 발원하는 발트발 강과 남쪽으로는 길르앗 땅, 서쪽으로는 갈릴리 바다, 동쪽으로는 아라비아 서북의 그술라 마아가(Maacah) 지역을 경계로 하는 거대한 곡창 지대였다. 그리고 당시 이 지역에는 몸집이 장대하고 체력이 강한 르바임 족속들이 살고 있었다(창 14:5; 신 2:10, 11).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암몬과의 전쟁을 피하는 대신 '돌이켜' 북쪽 바산 길로 행진해 갔다(신 2:19)

(주); 바산 왕 옥 - '옥'(Og)이란 이름의 의미는 정확치는 않으나 추측컨데, 그들이 숭배하는 어떤 우상 이름에서 유래한 듯하다. 그는 르바임 족속의 마지막 왕으로 기골(氣骨)이 장대했는데, 길이가 4.1m 너비가 1.8m나 되는 철침대를 사용할 정도였다고 한다(신 3:11).

(주); 에드레이 - 이 성읍은 바산 근처 야르묵 강의 한남쪽 분기점 절벽 위에 세워진 성읍이다(신 1:4; 3:10; 수 12:4; 13:12). 따라서 아모리 왕 '옥'(Og)은 여기서 남쪽 혹은 둥쪽에서 침략해 들어오는 침입자들을 한 눈에 간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이 에드레이 외곽 전투에서 당당히 '옥'을 쳐부수고 그 성을 멸하였다(신 3:1-6). 그런데 '옥'의 대부분의 성읍들은 이 에드레이 성읍처럼 요새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만약 그들이 수비에만 전념하였다면 좀처럼 정복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옥'은 교만한 마음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와 이스라엘을 대적하다가 멸절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후일 이 땅은 므낫세의 아들 마길에게 분배되었다(수 13:31). 그리고 오늘날 이곳은 다마스커스 남방 약 96km지점과 요단 동편 약 48km지점에 있는 남부 시리아 내의 한 성읍 '데라'(Dera, 인구 약 5,000명)와 동일 지역으로 추정된다.

성 경: [민21:34]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바산 왕 정복]

(주); 그를 두려워 말라 - 사실 두려워할 만한 요인은 충분했다. 즉 '옥'(Og)을 비롯한 그 족속이 장대한 족속이었을 뿐 아니라, 그 성읍들은 곳곳에 요새화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초적으로 두려움은 인간 범죄 이후에 생겨난 감정으로, 그 삶에 하나님이 없는 자에게서 흔히 발견된다(창 3:8-10). 그렇지만 하나님을 그 대장으로 모신 이스라엘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아모리 북왕국 '옥'(Og)과의 전투를 앞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두려워 말라' 하신 것은 당신이 친히 그들과 더불어 싸우실 것에 대한 확실한 약속으로 이해할 수 있다(요 14:1-27).

(주);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 즉 24절의 내용을 가리킨다.

성 경: [민21:35]

주제1: [불뱀과 놋뱀 사건]

주제2: [바산 왕 정복]

(주); 이에... 그 땅을 점령하였더라 - 승리는 하나님의 약속(34절)의 결과였다. 당시 모세가 '옥'으로부터 탈취한 성읍은 60개, 곧 바산 전체였다고 전한다(신 3:4). 이리하여 이스라엘은 요단 동편의 아모리 왕국을 완전 장악하였다.

성 경: [민22:1]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모압 평지에 진친 이스라엘]

(주); 모압 평지에 진 쳤으니 - 모압 평지는 요단 강 건너편(동편)에 위치한 초목 지대로서 곧 사해 북쪽에서 얍복 강 근처까지 형성된 거대한 평원(plain)을 가리킨다. 이곳은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머문 최종 지점이다. 이스라엘은 수 개월 동안 이곳에 머물렀는데 그동안 이곳에서 제 2차 인구 조사를 실시(26장)하였으며, 군대를 재검열하고 율법을 거듭 선포하였으며(신 1:1-3), 가나안 정복을 위해 여호수아를 차기(次期) 지도자로 임명하였고(신 34:9), 출애굽의 영웅 모세가 죽어갔다(신 34장). 그리고 신명기 전체의 기록이 이곳에서 행한 모세의 설교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주); 여리고 - 요단 강 서쪽 약 8Km지점과 예루살렘 동북 약 29Km 지점에 위치한 큰 성읍으로, 요단 강을 건넌 이스라엘이 최초로 점령한 가나안의 성읍이다(수 6:21).

성 경: [민22:2]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부르는 발락]

(주); 십볼의 아들 발락 - '발락'(Balak)은 '약탈자', '파괴자'란 뜻으로 당시 모압의 왕이었다(삿 11:25).

(주);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 - 곧 이스라엘 군대가 아모리 남왕국 '시혼'(Sihon)의 모든 성읍과 아모리 북왕국 '옥'(Og)의 모든 성읍을 완전 초토화시킨 일을 가리킨다(21:24, 35).

성 경: [민22:3]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부르는 발락]

(주);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 모압인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정복했던 강력한 아모리왕 시혼이 이스라엘을 쉽사리 섬멸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는 달리 이스라엘이 아모리를 여지없이 무찌르고 요단 강변까지 전진해 온 것을 보고, 모압은 이스라엘의 위세에 눌려 큰 두려움에 휩싸였고, 따라서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무찌를 묘책 찾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사실 이스라엘은 그들이 형제 민족이란 점에서 모압에게는 아무런 적대 감정이나 살의(殺意)도 갖고 있지 않았다 (신 2:9 ).

(주); 이스라엘 백성의 많음을 인함이라 - 비평가들은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 이토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가 많았다는 것에 의심을 품고, 본 기록을 왕정 시대의 작품으로 돌린다(B. Gray).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은 200만명 가량의 인구 중 군대에 참가한 수가 60만명 이상이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전체 백성 중 대략 1/3가량이 군대에 편입되어 전쟁에 참가했기 때문에 모압 왕으로부터 이러한 말이 나왔을 법 한 것이다. 아울러 이 말은 반드시 인구의 수효가 많다는 점 외에도, 그 위세가 등등한 점을 묘사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겁먹은 자에게 있어 적군 백명은 천명보다도 더 많아 보이는 법이기 때문이다.

성 경: [민22:4]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부르는 발락]

(주);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 미디안(Midian)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네째 아들이다(창 25:1-4). 따라서 이 자의 후예들이 후일 미디안 족속을 형성하였는데, 주요거주지는 시내 반도 일대였다(출 2:15, 16:3:1;민 10:29, 30). 그러나 그들 중 일부족속은 모압과 암몬의 동편 경계 지대에서도 살고 있었다(창 36:35). 이들의 주요 생계 수단은 대상(隊商)을 통한 무역이었으나, 때로 유목 생활도 하였다. 그리고 미디안 장로들은 고대 족장 체제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각 부족의 지도자급 인사들로서, 그들 중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는 '왕'으로 호칭되기도 하였다(31:8;수 13:21). 한편 당시 발락은 이스라엘 대군을(3절) 군사력으로는 무찌를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백방으로 묘안을 찾던 중 이처럼 아카바 만 동북쪽 아라비아에 살고 있던 '미디안 장로들'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추측컨데 이 장로들은 모압 왕실에 고용되어 각종 문제들에 조언을 해주던 마술사 혹은 복술가이었거나 아니면 왕실을 드나들며 외방의 정보와 문물을 전해주던 유력한 대상(caravan)들이었을 것이다. 즉 교역 여행을 통해 해박한 정보를 가진 미디안 장로들이었기에, 위경에 처한 발락은 그들의 지혜를 빌리기로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술사(術士) 발람을 왕에게 추천했다(7절;수 13:22).

(주);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 자신들의 영토가 초토화되고 자신들 역시 멸절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말이다. 이러한 모압 왕 발락의 비유는 당시 유목 생활에 익숙한 자들에게 이스라엘의 위협을 알리기에 매우 적절했다. 아울러 실제 유목 생활을 하던 미디안 족속들에게도 조만간 거친 소 이스라엘이 밀어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은연중 암시하여 그들도 모압과 공동의 운명임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공동대처해야 할 위급 사항임을 권면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성 경: [민22:5]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부르는 발락]

(주); 브올의 아들 발람의 본향 강변 브돌 - 여기서 '강변'이란 고대 근동에서 가장 문화가 발달했던 '유프라테스 강변'을 가리킨다. 그리고 '브돌'(Pethor, 앗시리아 자료에는 Pitru로나옴)은 유프라테스 상류 서안(西岸)에 위치해 번창했던 메소포타미아의 한 성읍으로서, 갈그미스(Carchemish) 남쪽 약 19km 지점에 있었다(따라서 이스라엘이진 친 모압 평지로 부터는 대략 640km나 떨어져 있는 곳이다). 이곳은 그 당시 정치, 경제의 중심지인 동시에 종교의 중심지였던 관계의 중심지인 동시에 종교의 중심지였던 관계로 많은 마술사들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Strabo). 한편 '브올'(Beor)은'멸망시키다'는 뜻의 '베올'(*)에서 유래한 이름이며, ' 발람'(Balaam)은 '탐닉하는 자'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란 뜻의 이름으로서, 묘하게도 물질에 현혹되어 이스라엘을 전멸시키려 했던 그의 성격 및 행적과 조화를 이룬다. 한편 발람이 어떤 인물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즉 혹자는 발람을 단순히 이방의 거짓 우상숭배자로 보아, 그가 이스라엘을 축복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고 주장한다(Philo, Ambrose, Augustine). 또 혹자는 그가 본래는 참 선지자였으나, 다만 물질에 눈이 어두워 모압을 위해 일했다고 보기도 한다(Turtullian, Jerome). 그리고 또 다른 이는 그가 본래는 바벨론의 제사장이었으나, 후에 이스라엘 종교로 개종하였다가 결구 모압왕에게로 넘어간 자라고 하기도 한다(Albright). 그러나 우리가 성격 본문(Text)에 충실할 때 발람이 단지 이방 메소포타미아의 유명한 복술가(卜術家)라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Keil & Delitzsch, op. cit. pp. 158-159). 또한 메소포타미아에 살던 '발람'(혹자는 이 자를 창 36:32의 에돔 왕 '벨라'와 동일시하나 근거가 없다)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하나님을 단순한 이방의 신 중 하나로 생각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발람은 그의 아버지와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복술로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 왔었기에, 모압 왕 발락이 그를 이용하여 이스라엘을 치려 했던 것은 당연했다. 한편 발람은 거듭되는 여호와의 경책에도 불구하고 물질에 눈이 어두워 발락의 요청을 이루려 하다가 마침내 이스라엘을 음행케 하여 몇몇을 멸망시켰고(25:1-5), 결국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31:8). 이 일로 인해 그는 '불의의 삯을 탐낸 탐욕의 선지자', '거짓 선지자', '음행으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던 선지자'등으로 불려지게 되었다(벧후 2:1-22;계 2:14).

(주);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 발람의 거처 브돌과 모압과의 거리는 무려 400마일(약640km)이나 떨어져 있는 먼 거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압 왕 발락이 메소포타미아의 술사 발람을 부르려 미디안 장로들을 보낸 것은 (1) 이스라엘에 대한 모압 왕의초급한 심정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고 (2) 아울러 당대에 술사(術士)로서 발람의 명성이 어떠했는 지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성 경: [민22:6]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초청을 거절하는 발람]

(주);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 그 당시 고대인들은 복술가(卜術家)나 마법사들의 주술적(呪術的)인 주문(呪文)이 초자연적인 세계와 연결되어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상대방이 저주를 받고 큰 피해를 입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EgyptianExcration Text). 따라서 그러한 복술가들의 영험스런 힘에 대해 익히 알고 있던 발락은 그 중에서도 가장 영험한 자로 알려진 발람을 초청하여 이스라엘을 멸하려 했다.

(주); 복을 받고... 저주를 받을 줄 - 성경은 결코 사단의 권세와 능력을 부인하지 않는다(엡 6:12). 오히려 그 세력에 대하여 '공중 권세 잡은 자'로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있다(엡 2:2). 따라서 이교의 각종 점술가, 마법사, 박수, 복술가 등도 나름대로 사단의 초자연적인 힘을 빌어 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고대인들은 복술가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점에 있어서 발람의 명성은 탁월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이방의 술사 발람의 특이한 점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교통하여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대신 축복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발람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는 분분하나(5절), 후일 성경의 기록으로 보아 그는 분명 참 선지자는 아니었다(민 31:8, 16;신 23:5, 6;수 13:22;24:9;느 13:2;벧후 2:13-15;유 1:11;계2:14). 이것은 그의 비참한 종말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수 13:22) 분명 '선지자'란 칭호의 '나비'(*) 대신 '술사'(術]士)란 뜻의 '코셈'(*)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도 자명한 사실이다(Hengstenberg, Wycliffe). 그러므로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결과론적 축복은 (발람의 본래 심정은 모압 왕의 의도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을 것이다), 발람에게 임하는 사단의 저주의 영(靈)을 여호와께서 강권적으로 차단시키시고, 오히려 여호와께서 개입하사 그 이방의 술사 발람을 통해서도 이스라엘을 향한 당신의 원대한 뜻과 계획을 선포하시기를 기뻐하신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Keil).

성 경: [민22:7]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초청을 거절하는 발람]

(주); 복술(卜術)의 예물(*, 케사밈) - 이는 '분배하다', '점을 치다'란 뜻의 '케삼'(*)에서 유래한 말로서, 복술가의 복채(卜債)을 가리킨다(벧후 2:15).

성 경: [민22:8]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초청을 거절하는 발람]

(주);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 여행자에 대한 호의(好意)라기 보다 장로들이 가져온 복채에 마음이 있어 그들을 머물게 한 것이다. 만일 발람이 여호와의 참 선지자였다면, 이때 그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는 저들을 오히려 저주하면서 여지없이 되돌려보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거짓 술사(術士)로서 불의의 삯만을 사랑한 자였다(벧전 2:15, 16). 한편 밤 사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발람에게 임한 것으로 보아 그 계시 수단은 필시 '꿈'이었을 것이다(Matthew Henry).

(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대답하리라 - 이 말로만 보면 발락은 선지자 대열에 낀다. 그러나 실제로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감화로 받은 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발람은 하나님을 거스리는 복술가요 악한 영과 신접(神接)한 자로서 멸망당해야 옳았다(신 18:11, 12). 그런데도 그가 여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들먹인 것은, 그가 당시 입의 각종 민족신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자로서, 역시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 민족의 운명이 걸린 이번 일에 대해 그 신의 신탁을 한번 받아 보겠다는 의미였다.

성 경: [민22:9]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초청을 거절하는 발람]

(주); 하나님의 발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 하나님은 발람이 비록 이방의 사악한 복술가(卜術家)지만 그에게 초월적으로 강림하셔서 그의 비뚤어진 인격과 계획을 바로 잡고자 하셨다. 이는 멸망받을 발람을(신 18:11, 12) 사랑해서라기 보다 선민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였다. 이처럼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인격을 주관하셔서 당신의 거룩한 뜻을 성취해 가신다(행 9:1-6).

(주); 이 사람들이 누구냐 - 이는 물질에 마음이 뺏긴 발람을 질책하시는 하나님의 역설적인 질문이다. 이로써 하나님은 발람의 혼탁한 영혼과 양심을 깨우치고자 하셨다(Hengstenberg).

성 경: [민22:11]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초청을 거절하는 발람]

(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있어 - 당시 애굽과 바벨론 두 강대국의 세력이 쇠퇴해 가던 상황인지라 곳곳에서 새로운 세력들이 출몰하던 때였다. 따라서 발락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 역시 흔히 있는 민족 간의 사소한 갈등 정도로 이해했던 것 같다(5절).

성 경: [민22:12]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초청을 거절하는 발람]

(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인간에게는 그 자체가 큰 복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며(신 30:19), 시여자(施與者)가 되시기 때문이다(6:23-26).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복받은 민족이었으며, 특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그 민족을 세상을 향한 '복의 전달자'(창 12:1-3)로 삼으시기까지 하셨다. 비록 이스라엘이 광야 여정 동안 불평과 원망을 일삼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만 백성 중 하나님이 함께 하는 복받은 민족이었다. 그러므로 모압 왕 발락의 기대(6절)와는 반대로 이스라엘은 결코 저주받을 수 없는 민족이었다. 그리고 술사 발람 역시 저주할래야 할 수 없는 민족이었다.

성 경: [민22:13]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초청을 거절하는 발람]

(주); 여호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느니라 - 발람은 여호와의 영에 완전히 압도되어 자신의 사악한 계획과 의지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만유의 주인으로서(롬 11:36) 온 인격을 관할하시다. 한편, 발람의 이 완곡한 거절은 오히려 이 일에 대해 발락의 분발을 더 촉구했다(15절). 그러므로 혹자는 여호와를 핑계 댄 발람의 이 말을 더 좋은 조건을 위한 일종의 계략으로 보기도 한다(Hengstenberg).

성 경: [민22:15]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락의 두번째 초청]

(주); 더 높은 귀족들을 더 많이 보내매 - 사절단의 보고를 통해 물질에 약한 발람의 마음을(7, 8절) 간파한 발락은 지난번 보다 더 강하게 유혹하기 위해 더 높은 인사(人士)와 더 많은 물질(17절)을 발람에게 보냈다. 결국 발람은 탐욕에 찬 본성을 억제치 못하고 끝내 발락의 제의에 순응하게 된다(21절;벧후 2:15;유 1:11).

성 경: [민22:16]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락의 두번째 초청]

(주); 아무 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오라 - 이 부분을 좀더 의역하면 '제발 네가 내게로 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를 바란다'(KJV, Let nothing, I pray thee, hinder thee from comming unto me)로 할 수 있다. 즉 발락은 발람이 자기에게 오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방해 때문임을 깨닫고, 발람에게 그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의 뜻에 동조하라고 종용했다. 아울러 발락의 이 말 속에는 만일 오게 되면, 발람에게 원하는 모든 부와 명예를 보장해 주겠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17절).

성 경: [민22:18]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락의 두번째 초청]

(주); 은, 금을 가득히... 내게 줄지라도... 못하겠노라 - 17절의 발락의 유혹에 대한 발람의 대답이지만 19절로 미뤄 볼 때 이 대답은 진실치 못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실 발람은 물질에 이미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으나, 사신(使臣)들 앞에서 자신의 탐욕스런 마음을 감추고 동시에 하나님을 속이기 위해 위선적인 대답을 한 것이다.

성 경: [민22:19]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락의 두번째 초청]

(주);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 하나님의 뜻은 이미 12절에 분명히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또 한번의 기회를 살피고자 한 것을 보면 지금 그가 얼마나 물질에 연연해 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경험많은 복술가로서 발람은 신탁(神託)을 거역함으로써 임할 재앙이 두려워 발락의 사신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뿐, 내심으로는 이미(불의의) 삯을 따라 모압 땅에 가고픈 심정이 간절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발락에게 갈 수 있는 가능성과 어떤 변화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성 경: [민22:20]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락의 두번째 초청]

(주); 일어나 함께 가라 - 이는 12절의 '가지 말라'는 말씀과 모순된다. 이 문제에 대해 칼빈(Calvin)은 '이같은 하나님의 허락은 풍자적이다.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나머지 허락하신 것이 아니고, 발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듭 거역하고 가기를 소원했기 때문에, 그의 자유 의지에 따라 거역하는 상태를 그대로 방임하신 것이다'란 말로써 적절히 해석하고 있다.

(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유 의지를 방임한다고 해서 당신의 주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이방의 술사 발람을, 당신의 뜻을 세상에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그의 사악한 소원을 허용하셨다.

성 경: [민22:21]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책망하는 나귀]

(주);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 발람은 하나님의 진의(眞意)를 파악하지 못한 채, 하나님께서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신 줄로만 알고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길을 떠났다.

성 경: [민22:22]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책망하는 나귀]

(주); 그가 행함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 여기서 '행함'(*, 홀레크)이란 '가고 있다'는 의미로 단순히 길을 가는 행위 뿐 아니라, 목적지 도착을 위한 의지에 불타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내포한 말이다. 즉 발람은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하라'(20절)고 하신 하나님의 지시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일에만 온 신경을 집중 시켜(벧후 2:15) 조급히 나귀를 몰았던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멸망의 길로 치닫고 있는 발람을 경책하시고자 크게 진노하셨는데, 원문의 '진노하다'(*, 이하르 아프)란 말은 '분노가 불꽃처럼 타오르다'는 뜻으로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발람의 그릇된 탐욕을 얼마나 싫어하셨는지를 잘 보여 준다.

(주); 여호와의 사자 - 하나님의 진노를 대행하는 천사이다. 20:16 주석 참조.

성 경: [민22:23]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책망하는 나귀]

(주); 나귀가... 보고 - 이것은 동물의 타고난 감각적 특성으로 인해 나귀가 감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나귀의 눈을 밝히 여심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초월적 세계를 본다는 탁월한 복술가 발람은 죄된 탐욕으로 말미암아 그의 눈이 스스로 닫혀있었다.

(주); 발람이 나귀를... 채찍질하니 -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를 보지 못하고, 하찮은 미물(微物)에 불과한 나귀만 그 사자를 목격하고 피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탐욕에 눈이멀어 영적으로 무감각해졌는지를 대변해 준다. 따라서 이런 자야 말로 멸망하는 짐승같은 존재이다(시 49:20;전 3:19).

성 경: [민22:24]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책망하는 나귀]

(주); 여호와의 사자는... 좁은 길에 섰고 - 여기서 '좁은 길'(*, 미쉐올)이란협소하고 우묵하여 한 사람이 가까스로 지날 수 있는 좁다란 길을 뜻한다. 여호와의 사자는 발람을 궁지에 몰아 그의 그릇된 마음을 깨우치고 어두워진 그의 영안(靈眼)을 열어주려 했던 것이다.

성 경: [민22:25]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책망하는 나귀]

(주); 발람의 발을... 상하게 하매 -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의 진노의 칼을 피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과정에서 주인의 발을 담벼락에 비비어 걸음에 불편할 정도로 상처를 이해하지 못한 채 나귀만을 탓하였다. 이처럼 영적으로 무지한 자는 위경에 처해서도 타인의 실수만 책할 뿐 자신의 허물은 돌아보지 못한다(벧후 2:12).

성 경: [민22:26, 27]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책망하는 나귀]

여호와의 사자가 진노의 칼을 빼든 채 계속 나귀를 몰아가자 마침내 나귀는 더이상 빠져나갈 데 없는 협착한 곳에 이르고 말았다. 따라서 사자의 칼을 피하기 위해 좌우 담벼락에 뒤척대던 나귀는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이러한 시실을 모르는 발람은 그만 화가 솟구처 필시 자신이 아꼈을 그 나귀를 자신의 지팡이로 사정없이 세 번이나 내리쳤다.

성 경: [민22:28]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책망하는 나귀]

(주);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 일부 학자들은 이를 실제 현상이 아닌 환청(幻聽)이라 한다. 혹은 복술가 발람이 나귀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의미를 파악해 낸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발람의 마음과 귀에 생생하게 들려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나귀에게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셨던 사실(fact)이다. 원하신다면, 하나님은 모든 피조계(被造界)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실 뿐 아니라(시 19:1-6), 각 피조계의 언어 기능도 주관하시는 만유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출 4:11, 12;롬 11:36). 한편 그당시 나귀의 말은 오직 발람에게만 들려진 것으로 보이는데(행 9:7), 즉 하나님께서는 혼탁한 발람의 마음과 귀를 열어 나귀의 말을 분명히 들을 수 있도록 주도하셨던 것이다(벧후 2:16). 아마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뒤따르던 동행인들은 이 사실을 복술가로서의 발람의 평소 습관(어떤 초월적인 존재들과 혼자서 대화를 나누던 버릇)으로 간주했을런지 모른다(Pulpit Commentary). 그리고 여기서 특별히 여호와의 사자가 직접 발람을 책망하지 않고, 나귀로 하여금 발람을 책망토록 한 이유는, 복술가로서의 자만에 빠져있는 발람에게 그의 초월적(영적) 통찰력이 한낱 미물인 나귀의 그것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생히 깨우쳐 줌으로써, 그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가를 보여 주려 함에 있었다(Calvin). 그리하여 그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말만 하도록(20절) 유도하려 했던 것이다.

성 경: [민22:29]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책망하는 나귀]

(주);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 술사 발람은 자신의 직업이 항상 초월적인 어떤 기이한 세계와 교통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 나귀의 말에 대해서도 크게 놀라는 기색없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극도의 분노로 인해 현상황의 기이한 일에 대해 분별력을 상실했는지도 모른다(Pulpit Commentary).

(주); 나를 거역하는 연고니... 죽였으리라 - 여기서 '거역하는(* - , 히트알라르테)이란 말은 '먼지 속에 뒹굴다'는 뜻의 '아라르'에서 파생된 말로 지독한 모욕을 제공하거나 조롱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너를 죽였으리라'(*, 하라게티크)란 말은 '내가 너를 죽였다'는 과거적 표현으로, 두말할 것도 없이 반드시 너를 죽였을 것이라는 단정적인 말이다. 결국 발람은 나귀의 말을 감정적으로만 받아들였지, 자신의 그릇된 행위를 돌아보는 교훈적 의미로 수용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그는 무지할 뿐 아니라 잔인한 주인이었다(잠 12:10). 여기서도 볼 수 있듯이 탐심으로 인해 그 마음이 완악케 된 자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시 18:27; 약 4:6).

성 경: [민22:30]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책망하는 나귀]

(주);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 발람과 나귀의 대화가 인간의 음성으로 서로 통했건, 아니면 영적 내면의 귀로 서로 통했건, 사실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간섭으로 인간과 동물이 상호 대화를 주로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한낱 나귀를 유명한 복술가 발람의 선생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자만에 빠진 당대의 술사(術士) 발람의 허영을 여지없이 응징했던 것이다(Nyssenus).

(주); 이같이 하는 행습(行習)이 있더냐 - 나귀의 자기 변호이다. 하나님은 나귀의 비행습적인 행동을 통하여 발람의 탐욕에 찬 마음을 깨우치시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세상의 온갖 대소사(大小事)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줄 안다(벧후 2:16).

성 경: [민22:31]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여호와의 사자의 분부]

(주);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 나귀의 입을 여셨던(28절) 하나님께서는 또한 발람의 어두워졌던 영의 눈, 곧 영적인 인지(認知) 능력을 밝히셨다. 타락 이후 죄로 그 기능이 상실된 인간의 영은 오직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만 어두움을 벗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욥 42:5;잠 20:27). 한편, 이 사실은 여호와께서 그 눈을 밝히신 발람과 나귀외에 발람과 함께한 동행인들은 여호와의 사자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이것은 후일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나타나신 예수의 모습에 있어서 바울 외의 바울의 동행인들은 빛만 보았을 뿐(행 22:9) 예수의 형상은 보지 못하였고, 그 소리만 들었을 뿐(행 9:7) 그 말은 듣지 못한 사실과 엇비슷하다(Keil).

(주); 칼을 빼어 들고 - 여기서 '칼'(*, 헤레브)은 '파멸시키다', '죽이다'란 뜻의동사 '하라브'에서 파생된 말로 주로 전쟁용 긴 칼(sword)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들었다는 사실은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공의의 심판을 베풀겠다는 뜻을 지닌 생생한 회화적(繪畵的) 표현이다(창 3:24).

(주);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 이는 여호와의 사자의 실체를 목격했던 발람이 그 위용에 압도되어 본능적으로 취한 행동이다. 이와 같이 죄로 물든 영혼은 본능적으로 여호와의 위엄 앞에서 공포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창 3:10;사 6:5).

성 경: [민22:32]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여호와의 사자의 분부]

(주); 패역하므로... 막으려고 - 여기서 '패역하므로'(*, 키 야라트)란 '성급하기 때문에', '심히 왜곡되므로', '거꾸로 가므로'라는 뜻으로서, 발람의 이번 여행이 하나님의 뜻에 정반대가 됨을 밝힌 말이다. 또한 '막으려고'(*, 레사탄)는 '원수가 되다', '저항하다'란 의미로 하나님은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조급하게 행동하는 발람을 원수처럼 여기시며 그 길을 차단하시려 했음을 밝히고 있다.

성 경: [민22:33]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여호와의 사자의 분부]

(주); 나귀가 만일... 피하지 아니하였더며 - 여호와의 사자는 당대의 술사(術士) 발람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 그의 그 유명한 주술적(呪術的) 술법 때문이 아니라, 그가 노하여 때렸던 그 나귀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그 이방력이 한낱 나귀의 그것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행여 복 받은 민족 이스라엘을 향하여 저주할 생각일랑 갖지 말도록 단단히 주의를 시킨 것이다. 따라서 발람은 오직 여호와의 도구가 되어 여호와께서 그의 입에 주신 말씀만 순전한 마음으로 선포할 임무만 감당해야 될 것이었다(20, 35절), 그렇기에 지금 여호와의 사자는 그 점을 거듭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후 마지 못해(?)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던 발람이 결국 자신의 사악한 꾀를 모압 왕에게 일러 줌으로써(31:16), 이스라엘로 하여금 범죄케 하였고(25:1-18), 그 결과 그는 결국 비참한 종말을 맞고야 말았다(31:8).

성 경: [민22:34]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여호와의 사자의 분부]

(주);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돌아가겠나이다 -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의 설명에야(33절) 비로소 자신이 절박한 상황에 처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행동으로 볼 때(31:16), 이것은 참된 회개라 할 수 없고 다만 죽음에의 공포와 절대자 앞에서의 두려움으로 인한 불가항력적인 굴복에 불과했다.

성 경: [민22:35]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여호와의 사자의 분부]

(주); 여호와의 사자 - 창 16:7 주석 및 16:7-16 강해를 참조하라.

(주); 가라... 말할지니라 - 하나님은 20절과 동일한 허락을 하셨다. 이로 보건데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이유는 발람이 발락에게 간 사실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발람이 발락에게 가고자 했던 근본 동인(動因), 곧 물질에 유혹된 그의 탐심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민22:36]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환영하는 발락]

(주); 모압 변경의 끝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 모압의 최고 권력자인 발락이 일개 술사에 불과한 발람을 영접키 위해 국경 지대까지(21:15) 마중 나간 것을 보면 그당시 발락의 마음이 상당히 조급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발람에 대한 지극한 예우에 많은 정성을 기울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아르논가에 있는 성읍 - 아르논(Arnon)강을 끼고 발달한 '아르' 성읍을 언급하고 있는 말일 것이다(Pulpit Commentary). 카일(Keil)은 이 성읍이 한때는 모압의 도성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아모리 왕 시혼(Sihon)에게 일단 빼앗기고 난 후에는 변방 성읍으로 전락되고 말았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대신 '아르' 이남의 '랍바'를 새 도성으로 선정하고 있었다고 한다(Keil & Delitzsch, op. cit. p. 175).

성 경: [민22:37]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환영하는 발락]

(주); 내가 어찌... 존귀케 하지 못하겠느냐 - 물질과 명예로 술사 발람을 유혹하는 모압왕 발락의 간교한 회유책이다. 이런 조건을 제시한 것을 보면 발락은 이스라엘을 괴멸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주술을 통한 저주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이로 보면 발락은 수준 낮은 저급한 샤머니즘 사상의 소유자였다.

성 경: [민22:38]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환영하는 발락]

(주);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씁 그것을 말할 뿐 - 이것은 얼마 전 '나귀 사건'의 교훈이 발람의 기억 속에 아직껏 두려움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볼 때 '나귀 사건'(22-35절)은 모압 여행의 마지막 때 쯤 일어난 사건으로 보인다(Keil). 그런고로 발람의 이 말은 하나님께 대한 진실된 경외감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없다. 그리고 발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축복하시고 계신다는 사실(12절)을 명확히 발설치 않고, 다만 자기의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릴 수 없다는 점만을 강조했다. 즉 그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관계를 통해 하나님과 자신의 위치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마치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자신의 한계를 말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발람은 여전히 발락의 제의에 부응할 만한 어떤 변화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 경: [민22:39]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환영하는 발락]

(주); 기럇후솟 - '거리의 성읍', '벌판의 성읍'이란 뜻으로, 그 위치는 정확치 않으나 바못바알(21:19, 20)과 아르논 강 근처일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곳은 모압 영토내에서 군사, 정치적으로 중추적 역할을 하던 곳으로 보인다.

성 경: [민22:40]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환영하는 발락]

(주); 우양을 잡아... 대접하였더라 - 이것은 단순히 발람 일행에 대한 감사의 예물이 아니라, 발람의 신(神)에 대한 기원의 제물이었다(Keil). 이러한 것은 저주를 선포하기 전날 우양을 잡았다는 점에서도 분명해진다(Hengstenberg). 즉 모압 왕 발락은 고대인들이 통상적으로 가진 사고 방식대로 제물을 발람의 신(神) 여호와(모압 왕은 발람의 행위를 통해서 그렇게 간주했다)께 마침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그 신의 마음을 돌려보고자 애썼던 것이다.

성 경: [민22:41]

주제1: [발락이 발람을 초청하다]

주제2: [발람을 환영하는 발락]

(주); 바알의 산당에 오르매... 진 끝까지 보니라 - 여기서 '바알의 산당' (KJV, the highplaces of Baal)이란 '바못바알'을 가리킨다. 그리고 '바알'은 당시 모압과 아모리인들이 섬기던 남신(男神)으로서 태양을 상징한다(레 26: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 한편 모압왕 발락은 메소포타미아의 술사 발람을 이스라엘 진영의 끝 부분까지 내려다 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한 이곳까지 인도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 했다. 왜냐하면 고대인들의 통상 생각에 (오늘날에도 그렇듯이), 저주가 그 효력을 보다 충분히 발휘하려면, 그 저주의 대상 및 방향을 반드시 보고, 향햐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Hengstenberg).

성 경: [민23:1]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제단을 쌓는 발람]

(주); 일곱 단을 쌓고... 일곱을 준비하소서 - 발람은 자기 고향 메소포타미아의 풍습대로(신23:4),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동의와 협조를 구하고자 하였다. 한편 제단과 제물의 '일곱'이란 숫자는 바벨론 지역의 거주민에게 신성(神性)한 수로 여겨져 왔던 것으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근거하여 성경 문학적 표현으로 종종 사용되는 '완전'및 '거룩'을 상징하는 수(數), '7'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발람은 이방의 풍습을 따라 유일하신 참 신으로서가 아니라, 여러 민족 신들중의 하나로생각했던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결국 발람이 경배한 신은 진리와 윤리의식및 바른 내세와 역사에의 전망이 없는, 봉헌된 제물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유치한 이방 우상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이스라엘의 독특한 제사 양식과는 거리가 먼, 재난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순전히 기복적(祈福的)인 제사 형태였다(왕상 18:26-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을 주관하신 것은 이방의 간교한 술사(術士)를 통해서도 능히 역사하실 수 있는 당신의 전능성을 이방에 널리 보여 주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족과 지역에 국한되는 당대의 각종 우상 신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살아계신 여호와의 역사였다. 심지어 하나님은 사단의 활동을 통해서도 당신의 종들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신다(욥1:6-12).

성 경: [민23:2]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제단을 쌓는 발람]

(주); 발락과 발람이... 드리니라 - 발락은 제물들과 제단을 준비했고, 발람은 제주(祭主)가 되어 제사를 집례했다.

성 경: [민23:3]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제단을 쌓는 발람]

(주); 번제물 곁에 서소서 - 번제물은 백성의 정성을 집대성한 것으로서, 그 곁에 선다는 것은 곧 백성의 심정을 대표해서 그 제사에 깊이 참례했음을 뜻한다. 이처럼 고대의 왕들은 백성의 생명과 재난을 관할하는 자로서, 항상 섬기는 신(神) 앞에서 책임적 존재로 활동했다.

(주); 나는 저리로 갈지라 - 발람은 제사 장소를 떠나 이방의 술사들이 통상 그러했듯 신접(神接)하거나 점궤 및 신탁을 받으려 할 때 흔히 찾던 특정한 곳(높고 한적한 장소)을 향했다. 따라서 이는 이방 종교의 사술적(邪術的)형태이다(24:1). 한편 카일(Keil)에 따르면, 당시 고대 근동의 여러 이교(異敎)에서는 신으로부터의 확실한 예언의 메시지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 현상을 통해 신으로부터 전해지는 표징(sign)을 얻고자 했다고 한다(Hengstenberg). 이 때 술사들은 흔히 자신이 정해둔 특별한 장소에서 그 표징을 구했던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지시하시는 것 - 발람은 이스라엘의 저주를 위해 그들의 신(神)인 여호와께 신탁을 의뢰했다. 아마 그는 여호와의 허락없이도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그것을 곧 시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법이 전혀 없었으므로 여호와의 지시를 고대했던 것이다. 즉 그는 여호와의 능력과 권위를 알기는 알았으나 믿고 순종치 않은 패역한 사술가였다(눅 8:26-39).

(주); 사태난 산(*, 쉐피) - '높다', '긁어서 벗기다'란 뜻의 히브리어 '쇠파'(*)에서 유래한 말로서 '메마른 곳', '고지'를 의미한다. 이는 자연재해나 채석 등으로 벌거숭이가 된 산 임을 암시한다. 한편 KJV, TEV, 공동 번역 등에는 '사태난 산'을 단순히 '꼭대기'(top of the hill)로 번역하고 있다. 여하튼 앞에서 언급했듯이 당시 이교의 술사들은 점괘(占卦)나 신접(神接)을 위해 전망이 좋고 인적이 없는 높은산 꼭대기나 벌거숭이가 된 장소를 즐겨 찾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발람이 '사태난 산'에 이른 것은 여호와의 주권적인 계시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주술(呪術)에 의해 점괘를 알아보려 했음을 암시한다.

성 경: [민23:4]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제단을 쌓는 발람]

(주);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 하나님께서 발람의 제사를 기뻐 받으시고 그에게 임하신 것이 아니라, 발람을 통해 역사에 대한 당신의 절대적인 주권과 당신이 친히 이스라엘을 보호, 축복하심을 세상 만방에 알리시기 위해 이번 일에 적극 개입하신 것이다.

(주); 내가... 드렸나이다 - 바람은 이방 종교 제사를 통해 드려진 자신의 제물이 하나님을 만족케 했으며 그것이 바로 자신의 의(義)인 것처럼 착각하였다. 따라서 이는 짐승 몇 마리로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무지하고 교만한 처사와 다름없다.

성 경: [민23:5]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제단을 쌓는 발람]

(주);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어 - 하나님은 탐욕에 차 있는 발람의 마음을 강권적으로 저지하시고, 오히려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의 메시지를 그 입에 두셨다. 따라서 발람은 전 인격이 변화된 것이 아니라, 다만 여호와의 뜻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된것 뿐이다. 이는 전 인격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그 입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당당히 선포하는 이스라엘의 참 선지자들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출4:15;렘1:9;겔3:27).

성 경: [민23:6]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제단을 쌓는 발람]

(주); 번제물 곁에 함께 섰더라 - 우두커니 서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성껏 기원의 희생제물을 태우고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3절). 물론 그 기원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에 저주가 내려지기를 바라는 기원일 것이다.

성 경: [민23:7]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발람의 첫번째 예언 노래]

(주); 노래(*, 마솰) - 이는 문자적으로 '비유' 또는 '잠언'이란 의미이나, 그것은 일반적인 노래나 시(詩)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는 '교훈적인 글귀', '지혜의 글' 등으로 이해함이 좋다.

(주); 아람에서... 동편 산에서 - 두 표현 모두 발람의 고향 '메소포타미아'를 지칭한다(신 23:4). 특별히 여기서 '아람'은 본래 셈의 아들인데(창10:22), 그 후손들이 하란을 포함한 유프라테스 강변에 정착하였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 북서부 지역을 흔히 '밧단 아람'이라 묘사한다( 24:10;25:20).

(주); 야곱을 저주하라...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 여기서 '야곱'과 '이스라엘'은 선민(選民)을 가리키는 동일한 의미이다(시 78:71;79:7;135:4). 특별히 여기서 발람이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시적 용어로 '야곱'을 사용했다는 점은 그가 이스라엘의 족장사(族長史)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Pulpit Commentary). 그리고 '꾸짖으라'(*, 조아마)란 말은 격노하며 분개하고 협박하라는 뜻으로서, 감정이 극에 달한 자가 상대를 위협하고 격멸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성 경: [민23:8]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발람의 첫번째 예언 노래]

(주);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어찌 저주하며 -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거나 축복 하는 것이 순전히 그들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소관에 달린 것이며, 자신은 거기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따라서 이는 당대의 유명한 복술가 발람을 믿었던 모압왕 발락의 계획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선언이었다(Keil). 한편, 발람의 이 말은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성과 초월성을 강조한 말이다(신 30:15;애 3:38). 그리고 여기서 환기해야 할 사실은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은 것은 '원하지 않아서'(does not want)가 아니라, '할 수 없어서'(cannot do)라는 점이다. 즉 발람 자신으로서는 모압 왕의 의도를 따라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일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모압 왕 발락이 제시한 부와 명예(22:37)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후일 그에 대한 성경의 평가가 '뇌물을 밝히는 자'(느 13:2), '불의의 삯을 사랑한 자'(벧후 2:15), '삯을 위하여 어그러진 길로 몰려간 자'(유 1:11) 등으로 묘사되고 있는 점을 보아 분명해 진다.

성 경: [민23:9]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발람의 첫번째 예언 노래]

(주); 홀로 처할 것이라 - 이스라엘이 지정학적(地政學的)으로 고립될 것이라는, 혹은 심리적으로 조용하게 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거룩한 민족으로서 열방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다른 영광과 특권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곧이어 뒤따르는 동의적(同意的)인 표현, 곧 '그를 열방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라는 말에 의해 확실히 뒷받침된다. 그런데 발람은 이러한 시상(詩想)을 모압 평지에 고고하게 따로 진(陣)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의 독존적(獨尊的)인 모습에서 외견적으로 발견한 것 같다(Baumgarten). 여하튼 발람의 이 예언은 역사의 흐름속에서 그 진가 발휘되는 바, 곧 헹스텐베르그(Hengstenberg)가 지적한 대로, '고대 세계의 위대한 제국들 곧 애굽, 앗수르, 바밸론등은 역사 속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져 갔으나, 이스라엘은 온갖 멸망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서 오늘날에도 여전히(영적으로는) 신약 교회 속에서 번성하고 있으며, 그리고(실제적으로는) 비록 지금은 거부된 상태이나, 언젠가는 회복될 운명으로서 그 존재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Keil & Delitzsch, Vol. 1-iii. p. 180).

성 경: [민23:10]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발람의 첫번째 예언 노래]

(주); 야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며 - 여기서 '야곱의 티끌' 이란 일찍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창 28:14)라고 하신 약속에서 기인한 표현으로서, 곧 티끌처럼 많아진 이스라엘 백성을 일컫는다. 그리고 '야곱의 티끌'이란 단순히 숫자적인 의미에서의 팽창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권위와 능력과 모습 등이 탁월한 것에 대한 묘사로도 볼 수 있다.

(주); 이스라엘 사분지 일 - 시내산 계시 이후 이스라엘은 행진시나 정주시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 진영(陣營)을 형성하고 있었다<2장>. 발람은 그중 가장 잘 보이는 한 진영을 바라보면서 그 1/4만으로도 충분히 위압적인데, 하물며 다 모이면 얼마나 그 위세가 높겠는가라는 의미로 위의 말을 했던 것이다.

(주); 의인의 죽음... 같기를 바라도다 - 발람은 하나님이 엄위하시는 영광스럽고도 축복된 이스라엘 진영을 목격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감동되어 지신도 악한 길에서 떠나 의인 처럼 살다가 죽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한편 그가 여기서 그토록 열망한 '의인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생(生)의 완성이자 영생으로 들어가는 통로로서(고전15:31;고후 4:11), 궁극적 의미의 축복이라 할 수 있다(잠 14:32).

성 경: [민23:11]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발람의 첫번째 예언 노래]

(주); 온전히 축복하였도다(*, 베라크다 바레크) - '축복하다'를 뜻하는 동사'바라크'(*)가 중복된 형태로서, 곧 '복스러운 복의 말만을 계속 하였다'는 의미이다. 더군다나 이 말 앞에 놀라움을 나타내는 감탄사 '힌네'(*, 세상에, 저런)가 있어 발락이 발람의 이 축복의 말에 대해 그 놀라움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성 경: [민23:12]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발람의 첫번째 예언 노래]

(주);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에쉐모르 레다베르) - 원뜻은 '말하는데 어찌 주의하고 경계하며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강권적으로 주신 말씀을 그가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고 모압인들에게 그대로 전달했다는 뜻이다.

성 경: [민23:13]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두번째 제단을 쌓는 발람]

(주); 그 끝만 보리니 - 발락은 발람이 위용에 찬 이스라엘의 진영을 모두 바라봄으로써, 기가 질려 그들을 저주할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 진영의 끝 부분만을 보게하여, 이스라엘이 미약한 민족에 불과하다고 인식시키고, 그로 인해 마음껏 저주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발락은 이스라엘 진의 끝만 보이는 장소로 위치를 옮겼다.

성 경: [민23:14]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두번째 제단을 쌓는 발람]

(주); 소빔 들 - '소빔'(*, 초빔)은 '파숫꾼들의 들'이란 뜻으로서, 사해 북동쪽비스가 산을 접하고 있는 고원지대를 가리킨다. 그리고 '비스가 산'은 아바림 산맥의 한 봉우리로서 여러 봉우리로 둘러 쌓여 있었다<21:20>. 그러므로 이곳에서 당시 이스라엘 진영이 머물고 있는 모압 평지(22:1)를 보면 산 봉우리들로 가려지기 때문에 이스라엘 진영 전체를 볼수 없게 된다.

성 경: [민23:15]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두번째 제단을 쌓는 발람]

(주); 저기서(*, 코) - 이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라기 보다, 방법과 방식을 의미하는 말로서 '그와 같이'란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키 위한 첫번째 시도(1-3절)와 같은 방법대로, 두번째로 이스라엘의 저주를 꾀하였다.

(주); 만날 동안에 - 여기서 '만나다'(*, 콰라)란 말은 무엇을 얻기 위해 만난다는 뜻으로써, 곧 복술가들에 있어서는 신탁(神託) 혹은 점괘(占卦)등을 구하기 위해 접신(接神)을 한다는 의미의 제의(提議) 전문 용어이다(Keil).

성 경: [민23:16]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두번째 제단을 쌓는 발람]

(주); 그 입에 말씀을 -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사악한 일을 동조하는 발람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하신 바를 추진해 가셨다<5절>. 그러나 끝내 이러한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을 저버리는 발람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된다(31:8).

성 경: [민23:17]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두번째 제단을 쌓는 바람]

(주);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 황급히 묻는 발락의 이 질문은 여호와께 대한 그의 신앙이 반영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그의 강렬한 의지를 대변하는 질문이다. 따라서 그의 이 질문 속에는 역사의 대 주재이신 불변의 여호와를 제물에 놀아나는 일종의 하급 신(神)으로 취급한 독신(瀆神)의 흔적이 있다.

성 경: [민23:18]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발람의 두번째 예언 노래]

(주); 일어나... 자세히 들으라 - 이 예언은 이스라엘 위에 저주의 선언이 내려질 것을 고대하는 발락에게 어리석고 사악한 생각에서 깨어나 주의 깊게 진리의 메시지를 들으라고 깨우친 책망과 훈계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일어나라'(*, 쿰)란 말은 영적으로 각성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특히 '자세히 들으라'(*, 하아지나 아다이)는 말은 문자적으로 '나에게 귀를 달라'로서 '오직 내가 하는 말에만 신경을 쓰라'는 뜻으로 이해된다(욥 32:11).

성 경: [민23:19]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발람의 두번째 예언의 노래]

(주); 하나님은 인생이... 인자가 아니시니 - 하나님의 불변하심과 진실하심을 소개하기에 앞서, 그 서론으로 하나님과 피조된 인간과의 본질적인 차이를 제시하고 있다. 흔히 인간과 본질적 차이를 지닌 하나님의 속성을 일컬어 본체적 속성, 비공유적 속성 또는 절대적 속성이라 지칭하는데 이에는 네 가지가 있다. (1) 존재 근거를 자신 안에 가지시는 독립성(자존성)이다(출 3:4;시 33:11;사 40:18;요 5:26;롬 11:33, 34). (2) 그분의 사상. 의지. 목적. 작정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존재와 본체에 있어서 결코 변함이 없으신 불변성이다(말 3:6;히 6:17;약 1:17). (3) (본질, 시간, 공간 등)모든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우시다는 점에서 무한성이다(시 90:2;145:3;렘 23:24;행 17:27) (4)절대 자존하시며, 불변하시며, 무한하신 하나의 영이시라는 점에서 유일성이다(신 4:35).

(주); 식언치 않으시고(* ... , 로이카제브) - 직역하면 '결단코 거짓말 하지 않으신다'로서, 진리되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반영한 말이다. 즉 하나님은 인간들처럼 때를 따라 그 약속하신 바를 지키지 않고 그 뜻을 시시각각으로 변경하시는 분이 아니라, 말씀하신 바를 온전히 지킴으로써 당신의 영광과 명예를 보존하시는 분이다(딤후 2:13;히 6:18). 그러므로 이같은 발람의 말은 앞서 선포되었던 축복(9, 10절)이 결코 변개될 수 없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주); 후회가 없으시도다 - 여기서 '후회하다'(*, 이트네함)란 '한숨쉬다', '동정하다'는 뜻의 '나함'에서 파생된 말로 자신의 말과 행위에 대해 전의지적으로 깊이 뉘우치는 상태를 가르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섭리와 경륜에 있어서 털끝만큼의 후회도 없으신 분이시다(롬 3:4). 이는 하나님의 진실하신 성품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당신이 계시하신 것과 언약하신 것 등에서도 이러한 진실성은 그대로 적용된다(민 23:19; 고전 1:9; 딤후 2:13). 한편, 그러나 여기서 후회가 없으시다는 말은 당신의 피조물이 당신을 저버린 채 멸망으로 치닫고 있을 때 당신의 사랑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고통으로써의 후회까지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시95:10). 이때의 후회는 결코 원망과 자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순수하고 깊은 사랑의 또다른 감정이다(창 6:6;출 32:14).

성 경: [민23:20]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발람의 두번째 예언 노래]

(주);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초월적인 섭리 앞에 자신의 사특한 의지를 접어 두어야 하는 연약한 인간의 진실한 고백이다. 사실 하나님의 뜻을 파괴하려는 사단과 그 무리들은 날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축복을 손상 시키기 위해 힘쓰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축복이 당신의 백성에게 온전히 전달되도록 역사 하신다(롬 11:29). 한편 이 말은 후일 범죄한 사울에 대하여 사무엘이 한 말에서도 같은 의미로 나타낸다(삼상 15:26-29).

성 경: [민23:21]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발람의 두번째 예언 노래]

(주); 야곱의 허물을...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 여기서 '허물' (*, 아웬)이란 '헛됨', '거짓', '부정', '우상'등의 뜻으로서 곧 죄악에 대한 총체적 용어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패역'(*, 아말)이란 '진저리나는 고역', '슬픔', '비참함' 등의 의미로서 곧 앞의 '허물'이 가져다 주는 필연적인 결과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보지 않으사 그 죄악의 결과가 빚어내는 이스라엘의 고통을 간과치 않으시기 때문에 그들을 책할 이유를 도저히 발견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Keil , Delitzsch). 결국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범한 수많은 죄악(민 14:22;시 95:10)을 영영히 진노하실 심판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즉 이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죄의 은총을 강조한 말이다(사 1:18). 그런고로 더나아가 이 말은 신약 성도들이 비록 허물 많은 존재이나,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다는 사실 하나로 의롭게 되는 대속의 원리를 예시한다(롬 3:28, 30;갈 2:16). 이처럼 죄로 인해 절망의 심연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던 자가 구원 얻어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이다(엡 2:6-8). 한편 칠십인역(LXX)과 탈굼역(Targums)은 본절의 주어가 명확치 않다는 점을 들어 본절을 "야곱의 허물을...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는 자가 없으며... "란 뜻으로 번역 했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그 의미는 위의 해석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주); 하나님이 그와 함께 -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서 결코 죄 있는 상태의 인간과는 교제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다'란 말은 앞서 언급되었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허물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더불어 계심은 곧 이스라엘이 특별히 축복받은 존재이자, 특별히 하나님과 언약 관계가 형성된 민족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말이기도 하다(삼상17:46).

(주); 왕을 부르는 소리 - '부르는 소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루아트'(*)는 '귀먹을 정도로 소리치다', '즐거운 소리를 발하다'란 뜻의 '루아'에서 파생된 말로서, 일종의 '환호'라 할 수 있다(삼상 4:5). 따라서 이 말은 '왕을 송축하는 환호'로 해석된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신민(臣民)으로서 그들 중에 늘 함께 거하시는 왕이신 하나님께 기쁨의 소리를 발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라 본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신 것은 그들을 당신의 백성 삼으시고, 그의 왕으로서 환호(영광)받기 위함이었다(창 17:8;출 6:6, 7).

성 경: [민23:22]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발람의 두번째 예언 노래]

(주); 하나님이... 들소와 같도다 - 여기서 '하나님'(*, 엘)은 '엘로힘'(*)의 시적(詩的) 축약어로서 '강한 능력의 소유자' 혹은 '전능하신 신'을 가리킨다. 또한 '인도하여'의 원어 '모치암'(*)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분사형으로서 하나님이 지금도 인도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계속 인도하실 것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Keil). 이처럼 이스라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지속적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들소'와 같은 힘으로 전진해 갈 수 있었다. 한편, 그리고 여기서 '들소'(*, 레엠)는 강력한 두 뿔과 튼튼한 어깨를 가진 짐승으로 가축으로 길들여질 수 없는 야생 동물로 묘사 되었다(신 33:17;욥 39:9-11;시 22:22). 따라서 '들소'는 이스라엘의 '용맹', 능력', '위용', '독립성' 등을 비유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 경: [민23:23]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발람의 두번째 예언 노래]

(주); 사술이 없고... 복술이 없도다 - '사술'(邪術)과 '복술'(卜術)은 고대 근동의 이교도들이 장래를 점치거나 신탁(oracle)을 구할 때 사용했던 주요 방편이다. 먼저 '사술'(*, 나하쉬)은 자연계의 변화나 인간과 동물의 세계에서 발견되는 비일상적 사건들을 통해 미래를 예측했던 방법이다(레 19:26에는 '복술'로 번역되고 있음). 그리고 '복술'(*, 케셈)은 점술가의 심령에 인식되어진 '가상적'(Pretended)신의 계시를 통해 예언하는 방법이다. 결국 이 두 방법은 이방 우상 숭배자들의 능력, 특히 발람 자신이 지닌 능력을 대표하는 기능들인 바지금 발람은 이것들로는 선민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주); 이때에... 어찌 그리 크뇨 하리로다 - 여기서 '이때(*, 카에트)란 '지금'(now)이 아니라 '적당한 때'(Modern Language Bible, a proper time)란 뜻으로 봄이 더좋다. 그러므로 본 구절은 '누구나 이스라엘의 대한 말할 때에 언제나 하나님의 크신 일로 인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까닭은 하나님이 친히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고 섭리하시며 한없는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이방의 국가들이 사술이나 복술 등으로 국가의 미래를 점(占)쳐 보려 애쓰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신 여호와의 명백하고도 공개적인 계시(啓示)에 의하여 그들의 과거와 현재 및 미래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언급한 말이기도 하다. 이에 헹스텐베르그(Hengstenberg)의 다음과 같은 해석은 유효 적절하다. 즉 "이러한 원리는 모든 시대의 교회 공동체와 성도 개인에게도 적용되니, 곧 세상의 지혜는 마치 파멸로 이끄는 징조 및 점과 같으나 하나님의 교회 및 성도는 하나님의 분명한 계시로 말미암아 그 뜻을 받았고, 또한 분별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Keil & Delitzsch, Ibid. , pp. 184, 185).

성 경: [민23:24]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발람의 두번째 예언 노래]

(주); 이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서 - 야곱은 임종시 유다에 관한 예언으로 "유다는...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창 49:9)라 했다. 이는 유다의 후손 중에 탁월한 권능의 왕이 날 것에 대한 암시였다. 그런데 발람이 이 예언을 이스라엘 전체에 적용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이 타민족을 훨씬 초월하는 힘과 영광과 위엄을 지닌 것을 강조하였다.

성 경: [민23:25]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발람의 두번째 예언 노래]

(주); 저주하지도... 축복하지도 말라 - 모압왕 발락은 두번째 신탁에도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메시지가 언급되자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그 결과 그는 발람에게 차라리 침묵할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 요구에는 자신의 두번째 계획조차 수포로 돌아간데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와 절망이 짙게 깔려 있다. 이처럼 악인의 계획은 궁극적 의미에서 처참한 실패로 끝이 난다(잠 24:19, 20).

성 경: [민23:26]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발람의 두번째 예언 노래]

(주); 내가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 이것은 발람의 예언 속에서도 언급된 바대로(23절), 자신의 그 탁월하다던 사술 및 복술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 앞에서는 도저히 무용지물(無用之物) 밖에는 되지 않는 것을 발람이 고백한 말이다. 즉 자신의 입술은 이미 하나님의 장중 안에 사로잡힌바 된 사실을 인정하는 말이다.

성 경: [민23:27]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브올 산에서 제단을 쌓는 발람]

(주); 다른 곳으로 인도 하리니 - 고대 이교도들의 특징은 자신의 끈질긴 노력 여하에 따라서 신(神)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신념이었다. 발락 역시 그러한 신념에 따라 하나님의 분명한 계시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신의 사악한 의지를 꺽지 않고 있다.

(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 - 직역하면 '하나님의 눈에 옳게 보여질 지 모르는 일이다'로서 이는 곧 신(神)의 비위를 맞춤으로써 자신이 계획한 바를 이뤄보고자 하는 발락의 샤머니즘(shamanism)적 발상이다.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탁월케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기사를 여러번 고지 받고서도, 이처럼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한 발락은 곧 멸망을 눈앞에 두고서도 계속 자신의 고집을 실행함으로써 하나님을 거듭 반역하는 멸망당할 악인들의 전형(典型)이라 할 수 있다.

성 경: [민23:28]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브올 산에서 제단을 쌓는 발람]

(주); 브올산 - '브올'은 '공지'(空地)라는 뜻으로서, 느보 산과 비스가 산이 속해 있는 아바림 산맥(27:12;33:47, 48;신 32:49)의 한 봉우리였다. 발람은 모압 평지와 보다 가까운 이곳에서 이스라엘 진영을 뚜렷이 내려다 볼 수 있었다(24:2).

성 경: [민23:29, 30]

주제1: [발람의 신탁]

주제2: [브올 산에서 제단을 쌓는 발람]

(주); 발람이... 나를 위하여 - 이전 두 번의 경우와 준비물 및 제사 방법은 동일하다(1-2, 14). 그러나 몇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거듭 시도되는 이 악한 계획은 물질의 노예로 전락한 추악한 종교인의 끈덕진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멸망으로 치닫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약 1:15)의 실체를 제시함과 더불어 앞의 두 예언 (7, 18절)이 발람의 확고한 신앙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성 경: [민24:1]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세번째 예언 노래]

(주);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 이는 이스라엘을 축복한 자신의 예언들(23:7, 18)에 대한 발람의 신앙적 평가라기 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느낀 체념이며 불가피한 상황 판단이었다. 사실 원래부터 이스라엘을 저주하거나 축복하는 것은 발람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발람의 다음 행동이다.

(주); 전과 같이 사술을 쓰지 아니하고 - 즉 점괘나 신탁을 구하기 위해 따로 특별한 장소에 나아가지 아니했다는 의미이다(23:3, 15). 발람은 어차피 지난 두번과 같이 하나님과의 교접 방법(23:3, 5)을 써 보았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런 과정을 이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축복하실 것이 확실할 것이었으므로 이제 그 접근 방법을 달리하였다. 즉그는 하나님과 만나는 절차를 생략하는 대신 하나님과 직접적 저주를 바라거나 자신의 의지에만 따른 저주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가 이렇게까지 생각한 것은 아마 지금까지의 실패가 '사술'(邪術)을 사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아, 더 이상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동정을 사게 되고 결국은 그가 바라던 저주를 가능케 할것으로믿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주); 그 낯을 광야로 - 발람은 여전히 사특한 눈으로 지금껏 모압 광야에 머물고 있던 이스라엘 진영을 바라보았다(22:1).

성 경: [민24:2]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주제2: [발람의 세번째 예언 노래]

(주); 하나님의 신이 그 위에 임하신지라 - 여기서 '하나님의 신'(the Sprit of God)은 곧 '성령'을 일컫는다(삼상 10:6, 10). 이 성령께서는 사악한 발람 위에 임하셔서 그를 감화 감동시키시고 '영에 감동된 자'(inspired man, gh9:7)로 삼으셨다. 즉 하나님은 발람의 첫번째, 두번째(23:5, 16) 저주 시도에서는 그 입술만을 주장하셨으나, 세번째 시도에서는 그의 전인격을 붙잡으시고 일종의 황홀경 속에서 그의 영의 눈을 여셔서 당신의 메시지를 접하게 하셨다(Keil. Delitzsch). 따라서 발람은 자신의 의지와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도구로써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을 축복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한 것은 발람의 인격이 하나님의 영(성령) 영접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는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삼손(삿14:6, 19)과 사울(삼상 10:6, 10;19:20, 23)의 경우처럼 당신의 강권적인 역사로 그의 인격에 임하시고, 그에게 능력과 은사를 덧입히셔서(출 31:3; 삿 3:10; 삼상 16:13),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그들의 장래를 예언케 하며, 또 그 주변국들의 운명까지 예언하게 하셨다. 한편 성령의 이러한 역사는 구원받은 자의 심령에 영원히 내주하셔서 교제하시는 그러한 사역과는 다르지만(요14:16, 17),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의인 뿐 아니라 악인의 인격까지도 지배하셔서 당신의 목적하신 바를 온전히 이뤄가시는 만유의 대주재자이심을 또 한번 확증하셨다.

성 경: [민24:3]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세번째 예언 노래]

(주); 눈을 감았던 자 - 여기서 '감다'의 히브리어 '솨탐'(*)은 '열다', '벗기다'는 뜻을 지니고 있어서 이 구절을 '눈이 열린 자' 혹은 '천리안을 가진 사내'(공동번역)로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 학자들(Clark, Hengstenberg 등)은 '솨탐'의 동류어 '사탐'(*)이 '막다', '눈을 감다', '비밀을 가리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역 성경처럼 '감긴 눈을 가진 자'로 보고 있다. 그런데 문맥의 흐름에 비춰볼 때 앞의 두 견해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두 주장 모두를 수용할 수 있다. 즉 성령에 감동된 발람(2절)은 외부와 통교할 수 있는 감각이 완전히 막히고('눈을 감았던 자"), 대신 영적이며 내적인 감각 기능들이 개방되어('눈이 열린 자') 신령한 세계를 목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Keil, Delitzsch, Hengstenberg). 즉 그는 타락한 육신의 눈이 감겨지고 대신 성령으로 감화된(2절) 심령의 눈이 열려져 '이상'을 뚜렷히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4절).

성 경: [민24:4]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세번째 예언 노래]

(주); 엎드려서(*, 노펠) - 원뜻은 '떨어지다', '누워 있다'이며, 상징적으로 '압도하다'란 의미도 지닌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의 신(the Sprit)에 압도되어 발람이 영적. 육적으로 포복하고 있는 상태를 묘사한 것이라 본다.

(주); 눈을 뜬 자 - 여기서 '눈을 뜨다'(*, 겔라)는 말의 원뜻은 '벗기다' 외에'발견하다'는 의미도 있다. 즉 단순히 눈을 뜬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무엇을 발견해 간다는 의미도 지닌다. 이는 3절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외부를 향하는 감각 기관이 마비된 반면, 내적인 감각 기관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음올 시사한다. 한편 이러한 내면(심령)의 눈이 감각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발람이 하나님의 신에 완전히 압도되었기 ('엎드려서') 때문에 가능했다. 이처럼 신령한 일은 오직 성령에 완전히 붙잡힌바 될 때에 비로소 감지할 수 있다(고후4:16-18).

성 경: [민24:5]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세번째 예언 노래]

(주);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 이스라엘의 현주소는 거칠고 메마른 광야였다. 그러나 발람이 바라본 것은 이스라엘의 현상적 초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친 백성인 그들이 지닌 내면적인 복된 상태와 미래에의 탁월한 영광이었다(사 58:11)

성 경: [민24:6]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세번째 예언 노래]

(주); 그 벌어짐이 골짜기같고 -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곧게 뻗은 골짜기 같고'(Niv, like valleys they spread out)가 된다. 여기서 '골짜기(*, 나할)란 급류가 좌우로 힘차게 뻗쳐 흐를 수 있는 골짜기를 일컫는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위용이 대단하다는 뜻이다. 아울러 생활용수(生活用水)가 절대 부족했던 팔레스틴의 지형 조건으로 볼 때 이러한 골짜기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기에 매우 양호한 곳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창 26:17 ; 왕하3:16 ; 시 104:10). 따라서 본 구절은 곤핍함이 없는 이스라엘의 필요한 삶을 예견한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 강가의 동산 같으며 -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특히 식물은 수분을 절대 필요로 한다. 따라서 물이 넉넉한 강가를 따라 조성된 동산은 그 풍부한 생명력으로 인해 늘 푸르름과 넘치는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그와 같이 이스라엘의 위용도 바로 강과 같은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에게 접맥되어 있다는 점에서 탁월할 수 밖에 없었다<시 1:3>.

(주); 여호와의 심으신 - 여기서 '심으신'(*, 나타)이란 묘목(苗木)을 동산에 심는다는 뜻으로, 이는 상징적으로 어떤 특정한 곳에 백성을 정착시킨다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본 구절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미구(未久)에 젖과 꿀이 흐르는 동산 가나안에 정착시키실 사실을 예견한 말이라 볼 수 있다.

(주); 침향목 - 주로 인도 지방에서 자생하는 귀한 나무로 높이 3-3. 7m 정도까지 성장한다. 주로 고급 향품의 재료로 사용된다(시 45:8 ; 아4:14)

(주); 백향목 - 레바논 지역에서만 자라는 매우 위품있고 아름다운 나무로서 다 높고 곧게 뻗은 자태로 인해 주로 위엄과 영광을 상징하는 데 사용되었다(시 92:12). 그러므로 위의 두 나무는 결국, 곧 가나안에 정착할 이스라엘의 위엄있고 찬란한 현재의 영적 상태와 미래의 축복과 영광을 예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성 경: [민24:7]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세번째 예언 노래]

(주); 통(*, 달레야우) - 원어상 이는 이중형(the dual)으로서, 곧 짝(pair)을 이루고 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이 말은 고대 근동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긴 막대의 양쪽 끝에 물 담는 양동이를 매단 모습을 연상시키는 말이다.

(주); 물이 넘치겠고 - 물이 귀한 팔레스틴의 지리적(地理的) 조건하에서 물이 풍족할 것을 예견한 것은 이스라엘의 번성과 풍요와 각종 자연적 혜택등을 예언했다고 할 수있다(사44:4)

(주); 종자(*, 제라) - 문자적으로는 '씨앗'(seed)을 가리킨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후손'을 의미한다.

(주);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 - 생명과 번영의 근원('종자')이 물가에 있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 후손이 항상 생명의 기쁨 및 넉넉한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될 것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다(신 8:7)

(주); 그 왕 - 이스라엘의 어느 특정한 왕을 가리킨다기 보다 그들이 배출할 모든 통치자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이 말은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왕 메시야(Messiah)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은 뒤에 나오는 '나라'란 말과 짝을 이뤄 생각해야 한다. 즉 '나라'는 통일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세울 나라로서(삼하5:3), 이것 역시 궁극적으로는 메시야로 인해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를 목적한다. 이나라는 비록 현상적으로는 이방의 침입을 받고 상처를 입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이방 세력을 괴멸하고(시 2편)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나라가 될 것이다(Keil, Delitzsch). 이 사실은 '진흥하리로다'(*, 티나세)란 말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이 말은 '전진하다', '높이다'란 뜻의 '나사'에서 유래한 말로서 이스라엘의 끝없는 번영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 아각 - 이는 이스라엘 왕정 초기에 사무엘에게 살해된 아말렉 왕(삼상 15:33)의 개인 이름이 아니라, 마치 애굽의 통치자가 '바로', 블레셋의 통치자가 '아비멜렉'이라는 왕호를 지녔던 것처럼 아말렉 왕을 통칭하는 왕호이다(Henstenberg). 한편, 그런데 발람의 예언 중에 유독 아말렉 왕호가 들먹여진 것은 그들이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최초로 공격한 강력한 족속이었을 뿐 아니라(출 17:8, 16), 그 당시 열국 중에 가장 패역한 나라로 멸망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op. cit. p189)

성 경: [민24:8]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세번째 예언 노래]

(주); 하나님이... 들소와 같도다 - 23:22 주석 참조

(주); 삼키고... 꺾으며... 꿰뚫으리로다 - 마치 야생 들소와 같은 당당한 이스라엘의 기개 앞에 어느 누구도 맞서 싸울 수 없다는 뜻이다. 발람은 열려진 영의 눈으로(4절) 이제 이스라엘이 출애굽 전의 나약한 노예 민족이 아니라, 어떤 세력도 단번에 물리칠 수 있는 막강하고 강력한 백성이 되었음을 목격할 수 있었다.

성 경: [민24:9]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세번째 예언 노래]

(주);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 23:24절 주석 참조.

(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 처음에 술사 발람에게 모압 왕 발락이 걸었던 기대(22:6)가 이제 여기서 오히려 역(逆)으로 선포되고 있다. 그런데 발람의 이 예언은 일찍이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재천명된 것이다(창 12:3). 실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는 언약 상대인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스라엘)을 복의 전달자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해 세상에 참된 복(구원과 생명등)이 전달되게 하셨으며, 나아가 당신의 나라를 확장해 가시고자 계획하셨다. 그런고로 이스라엘은 발락의 생각대로(22:6) 결코 외적 요인으로 인해 축복을 받거나 저주를받을 그런 나라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스라엘에 대한 태도 여하에 따라 타민족이 복과 저주의 기로에 서게끔 되어 있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요, 섭리였다. 지금 발람은 영에 감동되어 그러한 사실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이 그러한 특권을 지니게 된 것은 장차 이스라엘을 통해 인류의 구세주, 곧 메시야 예수그리스도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었다<창12:2, 3 주석>. 한편 이스라엘은 복의 대리자로서 이방 세계에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되심과, 당신을 찾는 자에게 복주시는 분이심을 증거할 특권과 의무를 지녔다(히 11:6).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교만치 말아야 했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를 위해 매진해야 했다(벧전 2:9).

성 경: [민24:10]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락과 발람의 논쟁]

(주); 손뼉을 치며 - 급한 마음으로 손벽을 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경멸과 조소의 의미를 담은 상징적 행동이다(욥 27:23; 겔21:17).

성 경: [민24:11]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락과 발람의 논쟁]

(주); 그대의 곳으로 달려가라 - 공동 번역은 이를 '당장 너 살던 곳으로 물러가라'로 번역함으로써, 그 당시 발락의 노기 어린 심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 즉 발락은 술사(術士)로서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는 발람을 쫓아 보내려한 것이다. 한편, 그런데 이일 후 발람의 행적에 대해 31:16과 벧후 2:15; 유1:11; 계2:14 등에서 유추해 살펴보면, 그는 철저히 물질의 노예가 되어 발락에게 이스라엘로 하여금 스스로 성적 타락과 우상 숭배를 자행하게 하여 끝내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준엄한 형벌을 받도록 만드는 사악한 술수를 조언했음을 알 수 있다(24장). 물론 그러한 발람의 부정한 계획은그대로 이뤄졌으나, 그 역시 비참한 종말을 맞고 만다(31:8). 이처럼 불의의 삯에 매달려 타인을 그릇 인도하는 자는 자신도 같은 종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마 24:54)

(주); 여호와가 그대를... 존귀치 못하게 - 발락의 이말은 지존자(至尊者) 하나님께 대한 극도의 모욕이요 힐난이다(Clalk). 즉 발락은 하나님이 발람의 소원을 이뤄주지 않음으로써, 발람이 얻을 수 있었던 재산과 명예를 송두리째 빼앗아갔다고 빈정거렸다. 그는 아직도 하나님을 인간과 아귀다툼이나 하는 하급 신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 경: [민24:12, 13]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락과 발람의 논쟁]

(주); 사자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나이까 - 이는 22:18을 두고 한 발람의 자기 변호이다.

성 경: [민24:14]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락과 발람의 논쟁]

(주); 어떻게 할 것을... 고하리이다 - 발람은 끝내 발락의 나라 모압이 멸망할 것을 알고 있었다(17절). 따라서 그는 모압이 멸망 당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을 미혹시켜 스스로 붕괴되도록 하는 묘책을 발락에게 주지시키려 했다(25장;31:16). 또한 그것과 더불어 그는 모압과 이스라엘과 근동 지역의 미래에 대한 개괄적 예언을 하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고하리이다'는 말은 '충고하겠읍니다'는 말로 번역함이 좋다(Calvin, Ainsworth). 한편 그러한 발람의 예언을 간추리면 (1)이스라엘에 한 별, 곧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것(17절) (2)모압. 에돔, 아말렉, 가인 족속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18-21절), (3)이스라엘이 앗수르의 포로가 된 셈(22절), (4)깃딤 지역으로부터 온 사람들(헬라인)이 앗수르와 에벨(셈 족속)을 괴롭힐 것(23, 24절)등이다.

성 경: [민24:15, 16]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네번째 예언 노래 - 야곱의 별]

발람은 자신의 말에 권위를 더하기 위해 전처럼(3, 4절) 예언 서두에 하나님께로부터 영감받은 사실(2절)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이 네번째 예언의 서언(15, 16절)은 세번째 예언의 서언(3, 4절)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자세한 주석은 그곳을(참조하라). 다만 이곳에는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란 수식어가 덧붙여 있을 뿐이다. 한편 비록 발람의 예언 동기와 태도는 불경스러웠으나, 그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당신의 뜻을 펼치시려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말미암아 그의 예언만은 영감된 신적 권위를 지녔다.

(주);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 이 말은 발람의 예언이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말미암은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 하나님의 영은 이미 세번째 예언시 발람에게 임한 영이었다. (2절). 즉 그때 임한 영이 아직도 발람을 주관하고 있어, 이 네번째 예언까지도 그 효력을 발했던 것 같다. 따라서 세번째 예언(3-9절)과 네번째 예언(15-24절)과의 시간적 간격은 극히 짧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네번째 예언 후 분명 하나님의 영(the Sprit of God)은 이방의 간교한 술사 발람을 영원히 떠나갔을 것이다.

성 경: [민24:17]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네번째 예언 노래 - 야곱의 별]

(주); 이때의 일이...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 여기서 발람은 한 별의 출현과 한 홀의 등장이 이미 일어난 일이나, 혹은 미구에 일어날 일이 아님을 두 병행 구절로 분명히 묘사했다. 즉 한 별(=한 홀)의 출현은 먼 '후일에' 일어날 일이었다. 한편 발람은 예언의 핵심어로 '그'는 불특정 3인칭 대명사로 표현되는 한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뒤와 연결시켜 볼 때 '그'는 분명 이스라엘의 궁극적 희망인 '메시야'(Messiah)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즉 '별'은 성경에서 왕의 위엄과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며(마 2:2; 계22:16), '홀'(*, 쉐베트)은 한 나라의 통치적 주권을 상징하는 일종의 지휘봉이다(창49:10). 따라서 이는 결국 이스라엘(야곱)의 혈통을 따라 만백성의 '왕'(통치자)으로임재하셔서 나라들을 통치하시고 의인에게는 구원을, 악인에게는 심판을 내리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품격을 예시한다(사42:1-9; 계22:16).

(주); 모압 - 현상적으로는 발락이 통치하는 사해 근방의 민족을 가리키지만, 총체적으로는 하나님과 그 백성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여기 모압(Moab)은 그러한 적대 세력들을 대표하는 주동적인 민족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현재 이스라엘을 저주코자 하는 모압 왕 발락의 의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바이다.

(주); 소동하는 자식들(*, 콜 베네 쉐트) - 직역하면 '셋의 모든 자식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셋의 후손들'이란 아담의 셋째 아들(창 4:25)인 셋(Seth)의자손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가운데 특별히 모압 자손을 가리키는 말이다(Ca-lvin). 여기서 '모압 자손'이 '소동하는 자식들'로 이해된 것은 그들이 호전적이고 교만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한편 발람은 이같은 용어를 사용해 교만하고 분쟁을 좋아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려던 발락과 그의 나라 모압을 힐난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호전적인 모압 족속은 넓은 의미에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모든 열방 세력을 암시하며 더 나아가 주의 복음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교회를 대적하는 무리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발람의 예언에서 볼 수 있듯이 한 홀, 또는 한 별이신 메시야의 도래로 결국 그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마 3:10, 12;요3:18, 19)

성 경: [민24:18]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네번째 예언 노래 - 야곱의 별]

(주); 원수 에돔... 원수 세일 - 여기서 '세일'이란 에돔 땅의 서쪽 경계를 이루면서 남북으로 아카바만 어귀까지 길게 뻗어 있는 거대한 산악 지대를 가리키는데, 결국 앞의 '에돔'이란 말과 대구(對句)를 이루며 '에돔 족속'을 상징한다(창 32:3;36:8). 한편 에돔 족속은 이삭 계열의 자손으로서, 이스라엘과는 형제국이지만 전날 이스라엘이 자국의 영토를 통과하고자 할때 적극적으로 방해함으로써(20:40-21;신2:4), 비록 멸망이 예고된 가나안 7족속은 아니나 이스라엘의 '원수'가 되고 말았다. 따라서 에돔 역시 야곱에게서 나올 '한 별로 말미암아' 마침내 그들의 '산업'과 더불어 최후를 맞게 될 운명이었다. 이처럼 비록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은 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방해하는 자, 곧 순종치 않는 자는 멸망을 면할 수 없다(롬2:28, 29).

(주);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오세 하일) - 직역하면 '권력(힘)을 가지고다스릴 것이다'이다. 즉 에돔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력한 통치를 시사한다(삼하8:14;대상18:11-13). 그런데 이 예언은 역사적으로는 다윗 왕 시대 때로부터 분명히 현실화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유대 하스몬 왕조시대 때 요한 힐카누스(JohnHyrcanus)로 말미암아 에돔(이두매)지역이 유대 영토로 귀속되면서 완전히 성취되었다(B. C. 129년, Joesephus). 그러나 구속사적으로는 메시야의 출현과 그 통치로 말미암아 에돔으로 상징된 악의 세력들이 완전 십자가 아래 굴복될때에야 비로소 성취될 것이었다.

성 경: [민24:19]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네번째 예언 노래 - 야곱의 별]

(주);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 여기서 '주권자'란 '짓밟다', '정복하다', '통치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라다'(*)에서 유래한 말로, 곧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절대권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는 어느 특정 왕을 가리키기보다 하나님이 인준하신 이스라엘의 왕권을 가리키며, 궁극적으로는 17절에 '홀'과 '별'로 상징된 바 곧메시야와 그 통치를 나타낸다. 진정 메시야는 야곱의 혈통을 빌어 나셔서(롬1:3;9:5)온 세상을 당신의 강력한 주권으로 통치, 심판하실 것이다.

(주); 남은 자들 - 곧 에돔 족속 중 멸절되지 않고 남은 무리를 가리킨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최후 심판대 앞에 설 사단의 무리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결국 한 의(義)의 주권자에 의해 종래 멸망하게 될 것이다(왕상 11:16)

성 경: [민24:20]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네번째 예언 노래 - 열방의 멸망]

(주); 아말렉을 바라보며 - 이는 발람이 하나님의 신에 사로잡힌 바 되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으로 바라보았다는 뜻이다. 곧 심령의 눈으로 아말렉의 미래를 바라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실제적으로 발람이 아말렉 족속이 거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을 가능성도 있다.

(주); 아말렉은... 으뜸이나 - 크노벨(Knobel)은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실제 아말렉(Amalek)이 그 역사와 힘과 명성에 있어서 열국 중 가장 탁월했다고 하였으나(Keil & Delitzsch, Vol. I-iii. P. 195), 실은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 역사에 자주 나타나는 에서 계열(창 36:12))의 한 베두윈(Bedoudin) 족속 아말렉은(삼상 15장) 결코 당시의 상황으로 볼때 주변 열강들보다 탁월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발람의 예언 속에서 '열국 중 으뜸'이라는 칭호를 얻은 것은 그들이 열국 중 출애굽하던 이스라엘을 '최초로' 괴롭힌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항상 이스라엘의 적대국이되었고 끝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대상이 된 민족이었다(출17:8, 16).

(주);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 역사적으로는 사울 왕 시대 때로부터 현실화되기 시작하여 히스기야 시대 때 완전 성취되었다(Keil & Delitzsc, Ibid). 그러나 영적으로는 한 의(義)의 주권자(메시야)로 말미암아 최종 이루어질 것이었다. 왜냐하면 아말렉 역시 모압, 에돔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를 적대시한 바 곧 사단의 세력을 상징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성 경: [민24:21]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네번째 예언 노래 - 열방의 멸망]

(주); 가인 족속 - 여기서 '가인'은 히브리어의 정확한 발음으로 '케니'(*, 겐족속)의 어원(語源)이 되는 '카인'(*)으로서 결국 '겐 족속'(Kenites)을 지칭하는 말이된다. 그런데 이 족속이 가나안의 '겐'인지(창15:19) 혹은 미디안의 '겐'인지(삿1:16;4:11) 분명한 성경적 근거는 없으나, 뒤에 연결된 내용으로 보아 모세의 처가(妻家)가 속한 미디안의 겐 족속으로 추론할 수 있다(Calvin). 즉 이어지는 발람의 예언속에서 이 족속은 이스라엘의 우호 족속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Hofmann).

(주); 너의 거처가 견고하니 네 보금자리는 바위에 - 여기 등장하는 가인(겐) 족속을 미디안의 겐 족속이라 볼 때, 이 말은 일차적으로 그들의 거처가 바위가 많은 호렙 산 주변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Keil &Delitzsch). 그러나 발람의 이 예언은 보다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곧 이는 가인(겐) 족속의 삶이 평탄할 것을 가리킨다(Hofmann). 그들은 모세의 처가가 속한 족속으로서 매우 우호적이었을 뿐 아니라, 모세의 처남 호밥은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10:29-32).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타민족처럼 적대적이지 않았기에, 그들의 보금자리는 대체적으로 견고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태도 여하에 따라서 복 또는 저주를 받게 될것이라던 발람 예언(9절)의 현세적 열매이다.

성 경: [민24:22]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네번째 예언 노래 - 열방의 멸망]

(주); 그러나... 쇠미하리니 - 카일(Keil)은 여기서 '그러나... 하리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키 임'(*)을 부정적 의미의 간접 의문문으로 해석했다(왕상 1:27;욥31:16;사29:16). 따라서 그는 본절을 '앗수르의 포로가 될 때까지 어찌 가인이 쇠미할 것인가?' 라는 뜻으로 보았다(Vol. I-iii. p. 197). 한편, 그런데 여기서 '쇠미하다'의 원어 '바아르'(*)는 '불을 붙이다', '먹어 버리다', '잔인하다'는 뜻으로 서서히 괴멸해 가는 상태를 일컫는다. 사실 당시 가인(겐) 족속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무리들로서 우상을 숭배하는 다른 이방 족속과 별 차이가 없었다. 비록 그들이 이스라엘과의 우호적인 관계로 인해(삼상15:6) 순간의 안녕<21절>은 누렸었으나, 불신앙의 무리였다는 점에서 끝내 멸망에 이를 것이었다.

(주); 앗수르의 포로가 되리로다 - 후일 그들 분파 중 일부 납달리 지역에 거주한 자들은 실제로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 정복된후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갔다(왕하15:29).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여기 앗수르가 세상 열강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인 만큼 겐 족속이 그러한 열강들에 의해 멸절되리라는 의미이다(Keil)

성 경: [민24:23]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네번째 예언 노래 - 열방의 멸망]

(주); 슬프다... 이 일을 행하시리니 - 발람은 자기의 동족 역시 장차 멸망당할 것을 이상으로 깨닫자(24절), 그 심판의 준엄함과 비참한 결과로 인하여 억제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였다. 공동 번역은 이때 발람의 심경을 '푸념하듯이 읊었다'라고 적절히 표현하였다. 그는 동족애로 인해 회복될 수 없는 좌절감을 맛보았던 것이다.

(주); 그 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 - 이는 장차 임할 세계적인 대심판의 준엄함과 처절함을 단적으로 시사한다(Hengstenberg). 특별히 여기서 '그 때'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일을 행하시기로 '작정한 때'를 가리킨다(LXX, Vulgate)

성 경: [민24:24]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네번째 예언 노래 - 열방의 멸망]

(주); 깃딤 해변에서 - '깃딤'이란 지중해의 '구브로'(Cyprus) 섬을 일컫는다. 이 섬은 통상 성경에서 '서방의 섬'이란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는데(렘 2:10;겔27:6;단11:30)당시 베니게 해상 교역의 주요 기항지였다. 따라서 서방에서 동방 쪽으로 항해하는 모든 배들은 일단 이곳을 거치게끔 되어 있었다(Keil &Delitzsch, op. cit. p 198). 따라서 발람은 '앗수르'와 '에벨'을 학대하고 괴롭게 할 세력이 '서방 쪽에서' 오리라는 예언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서방(西方)의 나라가 정확히 어떤 나라인지는 예언되고 있지 않다. 한편 역사적으로는 마케도냐의 알렉산더가 B. C 4세기경 근동지역을 점령했을 때, 헬라인들이 유대와 앗수르를 괴롭힌 적이 있다. 그러나 팔레스틴탈굼(the Palestinian Targum)과 벌겟역(the vulgate)은 이 나라를 '이탈리아'(로마)로 언급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주); 앗수르를 학대하며 에벨을 괴롭게 - 여기서 '에벧'(*)의 문자적 의미는 '건너편', '건너온 자'란 뜻이다. 따라서 혹자(Onkelos)는 여기 '에벨'이 '유프라테스 강건너' 쪽의 민족들을 가리킨다고 하나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이 말이 칠십인역(LXX)과 벌겟역(Vulgate), 그리고 페쉬타역(Peshtta)이 취하고 있듯이, 순전히 '히브리인들'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발람은 그 민족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이스라엘' 혹은 '야곱'이란 명칭을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따라서 여기 '에벨'은 아마 '에벨 온 자손'(창10:21) 곧 셈족속의 국가들을 가리키는 말인듯 하다. 이런 견지에서 카일(Keil)은 여기서 '앗수르'는 유프라테스 동편에 위치하는 겐 족속의 대표로, '에벨'은 서편에 위치하는 셈 족속의 대표로 각기 사용되었다고 보았다(Penteuch, Vol. I-iii. p. 199). 한편 여기서 '학대하며... 괴롭게'는 원어상 둘다 '멸시하다', '거칠게 대하다', '모욕하다' 등의 뜻을 지닌 히브리어 '아나'(*)에서 파생된 말인데, 이말은 일찍이 400년간 애굽의 노예로 살아갈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이 예시될 때 적용된 단어이다(창15:13).

(주); 그도 멸망하리로다 - 서방쪽(깃딤 해변 쪽)에서 올 막강한 세력(헬라 ?)도 역시 멸망될 것이 예언되었다. 실제로 헬라인들은 후에 발흥한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따라서 이 부분은 앗수르에서 바벨로니아로, 그에서 폐르시아, 헬라, 로마로 이어지는 근동의 패권자들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축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B. C. 1400년대의 예언은 그후 A. D. 1세기 전까지 모두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리고 비록 '세계'란 무대 위에서 최후 승리한 강국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그 세상 나라 역시 야곱에게서 나올 '한 별', 곧 메시야(Messiah)가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로말미암아 멸망될 것이다. 그리하여 온 세상에는 오직 그분이 통치하시는 '홀'(笏)만이 충만하게 넘칠 것이다.

성 경: [민24:25]

주제1: [야곱의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

주제2: [발람의 귀향]

(주); 발람이... 자기 곳으로 돌아갔고 - 이 말은 실제 발람이 400마일(약 640km)이나 되는 먼 자기 고향으로 곧장 되돌아 갔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단지 발람이 자기 고향쪽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의미이다(Keil, Pulpit Commentary). 따라서 이후 진행되는 상황으로 보면 발람은 예언 직후 자기 고향 메소포타미아(신23:4)로 가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발람에게로 인도해 왔던 미디안 장로들과 함께 미디안 땅으로 갔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이스라엘을 범죄케 하는 사악한 꾀를 발락에게 일러줌으로써 결국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저주(심판) 받도록 했다(계2:14). 결국 이 일로 인하여 후에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정복할 때에 그는 미디안 다섯 왕들과 함께 그곳에서 죽임을 당하였던 것이다(31:7, 8). 한편 행스텐베르그(Hengstengbrg)는 발람의 이후 행적을 다음과 같이 추정하고 있다. 즉 발락 해어진 발람은 자기의 예언이 이스라엘에게 길(吉)함을 알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찾아가 그 예언의 의미를 풀이해 준뒤, 발락이 보장해주었을 부(富)와 명예를 모세에게 요구하다가 거절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런 후 격분한 그는 이스라엘에게 보복하기 위해 미디안 족속에게로 가서 사악한 꾀를 베풀어 이스라엘을 범죄케 했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이다(Keil &Delitzsch, Vol. I-iii. p. 203)

성 경: [민25:1]

주제1: [바알브올 음행 사건]

주제2: [우상 숭배자 처단 명령]

(주); 싯딤 - '아카시아 나무'란 뜻으로서 '아카시아의 초원'을 의미하는 '아벧 싯딤'의 축어이다(33:49). 그리고 이곳은 모압 평원북단에 위치한 지역이다(22:1). 이곳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여행 중 마지막으로 진 친 곳이며, 바로 이곳에서 모세가 신명기에 언급된 고별 설교와 율법의 전승을 행하기도 했다. 또 이곳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에 따른 작전 계획과 정탐꾼 파견을 한 곳이기도 하다(수2:1;3:1).

(주);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된 근본 동기를 밝히고 있다. 즉 모압 여인들은 우상 승배 권유에 앞서 음행(淫行)을 미끼로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였으며, 그후에 자연스럽게 그들을 우상 숭배로 미혹하였다. 그런데 이같은 미인계(美人計)를 통한 우상숭배 유도 계획은 발람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후일 분명히 지적되고 있다(31:16;계2:14). 즉 이같은 계획(바알브올 사건)은 발람의 꾀에 미디안과 모압이 연합하여 주도 면밀하게 시행되었던 것이다. 한편 이 사건의 비극성은 후일 사도 바울에 의해 또다시 지적되고 있다(고전 10:8). 실로 인간의 육체와 영혼은 유기적인 것으로, 한쪽의 부패는 곧 전인격의 타락으로 발전한다. 그런의미에서 하나님은 영육의 순결을 동시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출20:3-5, 14).

성 경: [민25:2]

주제1: [바알브올 음행 사건]

주제2: [우상 숭배자 처단 명령]

(주);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 당시 모압은 여러 우상들을 섬겼는데, 그 중 주신(主神)으로 '바알'(Baal)을 섬겼다. 이 '바알'은 '주인'이란 뜻으로서(호 2:16), 주로 생산과 다산(多産)을 주관하는 것으로 믿었다(Jerome, Keil). 그러므로 이 바알 숭배와 관련하여 풍성한 생산을 기원하는 뜻으로 난잡한 혼음(groupsex), 인신 제사 등의 음탕하고 끔찍한 행위가 곁들여졌던 것이다. 특히 바알 승배자와 바알신전의 여인들과의 음행은 바알 제사의 절정이며 또한 바알 숭배자들의 의무였다.

(주); 백성을 청하매 - 아마 주도 면밀한 계획하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급 인사들을 주로 유혹했을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을 올무에 빠뜨리는 일에 모압과 미디안이 긴밀히 연락, 협조했던 것 같다.

성 경: [민25:3]

주제1: [바알브올 음행 사건]

주제2: [우상 숭배자 처단 명령]

(주); 바알브올 - 이는 '브올 지역의 바알'이란 뜻으로. 추측컨대 벧브올 지방의 바알을 지칭하는 것 같다(23:28;신 3:29;4:46). 당시 바알 제사에 있어서 여인들과 처녀들은 생식과 다산(多産)의 신에 대한 헌신의 표로 신전에 찾아온 남자들과 음행을 행하였다. 한편 '바알브올'(Baal Peor)전쟁의 신 그모스(21:29) 또는 프리아푸스(Priapus) 등으로 불리어지기도 했다(Keil, Delitzsch).

(주); 부속된지라(* 이차메드) - 원뜻은'예속시키다', '멍에를 지우다'로서 곧 땔 수 없을 정도로 밀착되고 종속된 상태를 일컫는다. 즉 이스라엘 남자들은 모압 여자들과 더불어 바알 제의(祭儀)에 깊이 참석하고 음행을 일삼음으로써 바알에게 철저히 예속되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이 이렇케 타락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경은 '이스라엘이... 부속된지라'라고 표현하여 죄의 영향력이 전 이스라엘에 미쳐서 이스라엘 전체가 영적인 질병을 앓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 위에 언급했듯이 몇몇이 범한 죄의 영향력으로 전 이스라엘이 병들었기에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상대로 진노하셨다. 여기서 '진노하시니라'(*, 이하르 아프)는 말은 '타오르다'의 '하라르'(*)와 '급한 호흡', '분노'란 뜻인 '아프'의 결합형으로 곧 심령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화'롤 암시한다. 사실 하나님은 거룩한 의미에서 '질투하시는 분'(출 20:5;수24:19)으로서, 당신의 백성이 당신을 버리고 우상의 노예로 전락했을 때 당신의 그 거룩한 속성상 극열한 진노로 다가오신다. 이는 역설적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얼마만큼이나 사랑하시는가를 대변해 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성 경: [민25:4]

주제1: [바알브올 음행 사건]

주제2: [우상 숭배자 처단 명령]

(주);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 문자적으로'백성의 지도자들을 소집하다'란 뜻이다(Keil). 이때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공의로운 심판을 실행하기 위해 소환되었다(Wycliffe).

(주); 태양을 향하여 - 이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라는 뜻이다. 따라서 70인역(LXX)은 이를 '파라데이그마티제인'(*)곧' 공개적으로 수치를 주다', '드러내다'로 번역하였다. 한편 '태양을 향하여'란 말을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우상 바알이 태양을 상징하기 때문에 본절과 같이 형벌을 가한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은 바알을 섬긴 자들의 어리석음을 적나라하게 보이시기 위해 그들이 섬긴 그 '태앙을 향하여' 처형케 만드셨고, 그 결과 우상 숭배자들의 처참한 결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셨다(22:41).

(주);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 여기서 처형 대상자는 원문에 언급되었듯이(한글 개역성경에는 번역 안됨). '그들'(*, 오탐). 즉 바알 제사 의식에 참석한 무리들이었다. 한편 그들의 처형 방법은 이방 앗수르나 페르시아 지역의 처형법처럼 나무에 매단 뒤 날카로운 막대기로 찔러 죽이거나 혹은 십자가 처형처럼 못을 박아 죽인 것 같지는 않다(Keil). 아마도 먼저 칼, 돌 등으로 사형시킨 후(5절), 그들이 범한 죄의 괴악함과 부패함을 교훈하고 경고할 목적으로 나무 기둥에 높이 매달았던 것 같다<신 21:22>.

(주); 진노가... 떠나리라 - 여호와의 진노가 완전히 풀렸다는 뜻이 이니라, 다만 여호와의 공의에 만족할 만 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러한 처형과 더불어 준엄한 그분의 진노로 인해 죄악의 영향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염병으로 죽어갔다(9절). 이처럼 선민 이스라엘 가운데 죄악의 흔적이 말끔히 씻겨지기까지 하나님의 진노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성 경: [민25:5]

주제1: [바알브올 음행 사건]

주제2: [우상 숭배자 처단 명령]

(주); 사사 - '사사'(士師)란 '심판하다', '판결하다'란 뜻의 히브리어'솨파트'(*)에서 유래한 말로서, 주로 재판 사무를 맡았던 '재판관'(KYV, judge)을 가리킨다. 여기서 이들은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권고에 따라 일전에 임명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들로서(출 18:21, 25) 사사기에 등장하는 전민족적 지도자 사사들과는 구별된다.

(주); 너희는... 죽이라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모세가 바알 숭배자들을 단순히 감정적 차원에서 죽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의 법의 준엄한 판결을 거친 후 처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민25:6]

주제1: [바알브올 음행 사건]

주제2: [비느하스의 의분(義憤)]

(주); 회막 문에서 올 때에 - 처형과 염병의 피해로 인해 죽음의 기류가 이스라엘 전체 위에 무겁게 흐르자,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나아와 회막문(thedoor of the tabernacle)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처럼 자신의 허물을 깨달은 자는 무엇보다 먼저 눈을 하나님께 돌려 참회하며 그분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간절히 소망해야 한다(호6:1-3).

(주);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 - 그는 시므온 지파의 한 족장으로서 그의 이름은 '시므리'였다(14절). 그는 파렴치하게도 이스라엘 온 회중이 통회하는 그 순간에도 미디안 여인과 음행을 자행하고자 그 여인을 자신의 장막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것은 실로 음욕에 눈이 먼 인간의 근시안적인 맹목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한 예이다.

(주); 미디안의 한 여인 - 이는 미디안 족속의 한 두령이었던 수르의 딸 '고스비'였다(15절;31:8).

성 경: [민25:7]

주제1: [바알브올 음행 사건]

주제2: [비느하스의 의분(義憤)]

(주); 비느하스가... 일어나 - 여기 '비느하스'(Phinehas)는 엘르아살의 아들이자 대제사장 아론의 손자로서, 후일 아론->엘르아살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제3대 대제사장된 인물이다. 한편 여기서 '일어나다'의 히브리어 '쿰'(*)은 '자리를 박차고(결연히) 일어나다'란 의미로서, 그 당시 비느하스의 불타는 의분(義憤)과 의지를 대변해주는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 영광을 수호하는 일에 결연히 일어서는 그 도전 의식이야말로 거룩과 의(義)를 모토(motto)로 살아가야 하는 모든 성도들이 마땅히 추구해야할 바이다.

성 경: [민25:8]

주제1: [바알브올 음행 사건]

주제2: [비느하스의 의분(義憤)]

(주); 막(*, 쿱바) - 이 단어는 본 구절에만 나오는 것으로서 둥근 천막을 가리킨다. 당시 이것은 주로 부유 계층만 소유했던 천막으로서 귀부인의 침실로 사용된 것 같다(Delitzsch).

(주); 꿰뚫어서... 죽이니 염병이니... 그쳤더라 - 회막문에서 통회했던 이스라엘의 눈물이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게 하지 못했으나, 비느하스의 의로운 한 행동으로 이스라엘을 향하던 하나님의 진노(염병)가 멈춰지게 되었다. 따라서 여기 거룩한 의분에 찬 비느하스의 행동은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할 것이자, 그분의 심판을 대행한 것으로서, 하나님의공의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제사장의 중보적 행위와 같았던 것이다. 즉 그 행위가 일종의 '덮개'(속죄) 역할을 하여 백성들의 죄를 가리웠던 깃이다. 한편, 후대 유대인들은 본절에 나타난바 비느하스의 거룩한 분노와 삼상15:33에 나타난 바 아말렉 왕 아각을 쪼개 죽인 사무엘의 의분, 그리고 마카비상 2:24에 나타난 바 안티오쿠스 왕명을 따라 이방 제단에 희생 제물을 드리는 배교자를 죽이고 그 제단을 헐어버린 맛타디아(Mattathisa)공분(公憤) 등을 근거로 소위 '열심권'(zealot right, jus zelotarum)을 제정했다. 이 '열심권'에 따르면, 비록 그가 자격이 부여된 공적 지위에 있지는 않다고 할지라도, 신정체제를 경멸하는 자 혹은 여호와의 영광을 훼손시키는 자의 경우에 한해 누구나 응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고 한다(Salden, Beddeus, Oelrich). 그러나 때로 이열심권이 잘못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스데반의 경우(행 7:57, 58)이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206).

성 경: [민25:9]

주제1: [바알브올 음행 사건]

주제2: [비느하스의 의분(義憤)]

(주); 염병(*, 마게파) - '힘껏 때리다', '죽이다'란 뜻의 동사 '나가프'(*)에서 유래된 말로, 곧 '무서운 전염병'을 가리킨다. 비록 이 염병의 발생에 대한 분명한 언급은 없지만, 거의 틀림없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실 때(3절)동시에 이 염병이 이스라엘 중에 퍼졌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당신의 백성을 치실때 이처럼 종종 염병으로 당신의 진노를 나타내셨다(11:33;12:10;14:37;16:46등).

(주);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 - 후일 사도 바울은 이 당시의 사망자 수를 23,000명이라 했다(고전 10:8). 이러한 차이는 아마도 그가 랍비들의 전통적 견해를 따랐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로 보인다(Pulpit Commentary). 즉 바울 당시 서기관 학파들은 그 당시 염병으로 죽은 자가 23,000명이고, 사사들에 의해(5절) 죽은 자가 1,000명으로서 합계 24,000명이 된다고 주장했다(Keil & Delitzsch).

성 경: [민25:11]

주제1: [바알브올 음행 사건]

주제2: [약속된 대제사장직]

(주); 나의 짙투심으로 질투하여 - 여기서'나의 질투심'(*, 칸아티)이란 하나님을 위한 인간 본위의 감정적 질투심이 아니라, 죄 특히 우상 숭배를 가증히 여기시는 하나님 자신의 질투심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당신 이외의 우상에게 마음을 쏟을 때 당신의 그 거룩한 속성상 질투하신다. 이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반영하는 것으로, 당신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는 만큼 그들의 사랑 또한 요구하신다.

성 경: [민25:12]

주제1: [바알브올 음행 사건]

주제2: [약속된 대제사장직]

(주); 나의 평화의 언약 - 비느하스가 피를 흘렸음에도 하나님께서 그와 그 후손에게 영영한 대제사장 직분을 허락하신 것을 가리킨다(13절). 결국 이 은혜는 죄악을 도말함으로써 주어진 것으로서 하나님과 인간 간의 참된 평화는 죄의 청산으로 인해 성취될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그런데 하나님과 더불어 이러한 평화를 가장 완벽하게 성취하신 분이 십자가의 대속 제물로 인류의 죄를 도말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사53:5; 요 6:56; 19:34). 한편 이때 비느하스와 그의 후손들에게 약속된 '대제사장 직분'은 (13절) 엘리 시대의 일시적인 단절(삼상 2:27-36)을 제외하고는 신약 시대 로마가 예루살렘을 초토화시킬 때까지 비느하스의 가문을 통해 그 명맥을 유지해 갔다(Keil). 사실 대제사장 직분이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것으로서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명예직이다.

성 경: [민25:13]

주제1: [바알브올 음행 사건]

주제2: [약속된 대제사장직]

(주); 속죄하였음이니라 - 이 말은 비느하스의 의분(義憤)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하는 속죄 능력의 근원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패역한 범죄자를 살해했던 비스하스의 의분을 이스라엘의 죄를 속하는 속죄 수단으로 받아들이시사 당신의 진노를 거두셨다는 뜻이다. 이처럼 언제나 속죄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시 25:18).

성 경: [민25:14]

주제1: [바알브올 음행 사건]

주제2: [죽임 당한 두 남녀]

(주); 시므리... 시므온인의... 한 족장 - '시므리'는 '나의 보호자'란 뜻으로서, 그는 시므온지파의 한 족장(RSV, Head of father, s house)이었던 만큼 시므온 지파 전체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여기서 시므리의 출신을 명확히 밝힌 것은 지파 의식이 강한 히브리인들에게 뼈저린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특히 히브리인들에게 족장과 두령 등의 직임은 그들의 부족을 대표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부족들과 연합체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족장 시므리의 범죄는 곧 시므온 전체 지파의 명예와 위상에 치명타를 가한 것이다. 한편, 그런데 실제로 이 바알브올 음행 사건에 시므온 족장 시므리를 비롯하여 여타 시므온들이 많이 가담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사건에 뒤따른 하나님의 진노(처형과 염병) 이후 곧 실시된 인구 조사에서 시므온 지파의 수가 1차 계수시의 59,300명(1:23)에 비해 22,200명(26:14)으로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L. Wood).

성 경: [민25:15]

주제1: [바알브올 음행 사건]

주제2: [죽임 당한 두 남녀]

(주); 고스비 - '속이는 자'란 뜻의 이름으로서, 그 이름처럼 그녀는 이스라엘의 남자 시므리를 미혹하여 영육의 죽음에 이르게 했다.

(주); 수르... 미디안 백성 한 종족의 두령 - 31:8에 보면 고스비의 아비인 '수르'는 미디안 종족의 다섯 왕 중 한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곧 '수르'가 미디안의 여러 부족 중 한 부족의 지도자란 뜻이다. 그는 딸의 음행 사건이 있은후, 미디안의 나머지 네 왕과 함께 이스라엘의 칼에 처참히 살해당하였다. 한편, 본절은 바알브올의 음행사건에 미디안족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시사하고 있다.

성 경: [민25:17]

주제1: [바알브올 음행 사건]

주제2: [미디안 정복 명령]

(주); 미디안인들을 박해하며... 치라 - 상대국 왕의 가족을 살해하는 일은 곧 전쟁 선포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남자들을 적극적으로 미혹했던 미디안 여인들에 대한 징벌로써 그 나라를 초토화시킬 것을 명하셨다. 여기서 '박해하며'(*, 차로르)란 원래 '꺽쇠로 죄다', '괴롭히다'는 뜻으로 적군을 포위하여 서서히 멸망시킴을 뜻한다. 그리고 '치다'는 뜻의 히브리어 '마카'(*)는 '도리개로 무엇을 친다'는 뜻인데 상징적으로 '대학살'을 의미한다. 이 말들에서 미디안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파멸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이같은 하나님의 명령은 모세가 이스라엘 지도자로서 받은 마지막 전투 임무로서(31:2), 이 사명을 마치고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느보 산상에서 죽음을 맞게된다(신 32:49, 50). 그리고 이 명령은 31:1-11에서 온전히 성취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그런데 이 바알브올 음행 사건의 주동 국가라 할 수 있는 '모압'에 대해서는 전투 명령이 내려지지 않고 있음을 본다. 그 이유는 분명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그 조카 롯의 혈통인 이들을(창19:29, 37) 그래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일것이다(신 2:9).

성 경: [민25:18]

주제1: [바알브올 음행 사건]

주제2: [미디안 정복 명령]

(주); 궤계로... 유혹하였음이니라(*, 베니켈레헴 아쉐르 니켈루) - 여기서 '궤계'와 '유혹'은 동일 어근 '니칼'(*)에서 유래하였음을 볼수 있다. 이처럼 동일한 단어를 중첩시키는 것은 그 뜻을 강조하기 위함으로써 흔히 중언법적(重言法的)표현이라 한다. 한편 '니칼'은 '믿을 수 없게 행동하다', '속이다', '음모를 꾸미다' 등의 뜻으로 결국 미디안인들이 이스라엘을 철두철미 기만하고, 그들을 악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끈덕지게 미혹한 것을 강조한 말이다.

(주); 고스비의 사건 - 두고두고 이스라엘 민족사에 뼈아프게 기록된(신 4:3;시106:28, 29; 고전 10:8; 계 2:14)이 바알브올의 음행 사건을 일명 '고스비의 사건'(the matter of Cozbi)으로 명명한 것으로 보아, 이 사건에 이 여인의 역할이 매우 컸던 것 같다. 아마도 족장(왕)의 딸인 만큼 여타 여인들을 인솔하여 음행을 주도했던 것같다.

성 경: [민26:1]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제 2차 인구 조사 명령]

(주); 염병 후에 - 즉 바알브올 숭배 사건으로 인해 24,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염병이 끝난 후를 가리킨다(25:9).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불신앙 때문에 가나안 입국이 금지되었던 자들(모세 제외)의 멸망이 끝나게 되었다(14:19, 30). 결국 이 대 참사는 절망과 방황으로 점철되었던 광야 40년을 마감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의 새로운 삶으로 진입하는 큰 분깃점을 마련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주); 여호와께서...일러 가라사대 - 이 표현은 본서에 무려 80회 정도 나타난다. 이는 모세에게 주어진 말씀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과 죽음의 땅 광야에서 생명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강력히 시사한다.

(주);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 이제 하나님의 명령은 모세와 아론 대신 모세와 엘르아살에게 임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아론은 호르 산상에서 죽었기 때문이다(20:26). 그런데 아론의 죽음이 정확히 출애굽 제 40년 5월 1일에 있었으므로(33:38), 제2차 인구 조사는 그 이후의 일임을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엘르아살을 소개할 때, '아론의 아들'임을 명기한 것은 아론 가문의 제사장직 계승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어 지고 있음을 또한 보여 주기 위함이다.

성 경: [민26:2]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제 2차 인구 조사 명령]

(주); 회중의 총수를 ... 조사하되 - 문자적으로 '모든 백성들의 머리들을 위로 들게 하라는 의미'이다. 결국 이 말은 한 사람도 착오없이 모두 계수하라는 뜻으로, 당시 인구 조사가 신중히 진행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 인구 조사는 가나안 점령을 위한 군대조직 및 땅 분할을 위한 기본 자료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주의깊게 이뤄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인구 조사를 위해 1장의 경우처럼 각 지파 두령들의 도움이 있었을것이다. 그 조상의 집을 따라 - 1장의 인구 조사에서는 각 지파의 인구 총수가 기록 되었지만, 본장에는 더 세분되어 가족 단위로 인구 조사가 시행되었다.

(주); 이십 세 이상으로 ... 싸움에 나갈 만한 자 - 이같은 문구는 본서에 약 14회나 반복된다(1:3, 45;14:29;32:11등). 이것은 인구 조사의 목적이 군대 조직으로서의 편성에 있음을 보여 준다. 즉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전투적 형태를 갖추어야만 했다. 한편, 그런데 본절의 이 말을 단순히 25:17의 명령에 따라 미디안인들을 치기 위해 시행된 것으로 보면 안된다. 미디안 족속은 사실 그 세력이 미미했으므로, 후일 보여지는 대로 각 지파에서 1,000명씩 곧 12,000명으로도 충분히그 정벌이 가능했다(31:5). 따라서 본절의 이 명령은 어디까지나 가나안 정복 및 그후 땅 분배를 염두에 두고 내린 명령인 것이다(52-56절). 보다 자세한 내용은 1:3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26:3]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제 2차 인구 조사 명령]

(주); 요단가 모압 평지 - 이스라엘이 40년 광야 생활을 마감하고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에 입국할 때가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표현이다. 모압 평지에 대해서는 22:1 주석 참조.

성 경: [민26:4]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제 2차 인구 조사 명령]

(주); 너희는 - 이들은 모세와 엘르아살을 도와 실제적인 인구 조사 임무를 담당했던 각지파의 두령들을 가리킨다(1:4-18).

성 경: [민26:5]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수효]

(주); 이스라엘의 장자는 르우벤 - 이 기록은 이번의 인구 조사가 영적인 측면보다 역사적 측면에 더 중점을 두었다는 사실을 간접 시사한다. 왜냐하면 비록 르우벤이 혈통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장자였으나 아비 야곱의 첩 빌하와의 간통 사건으로 인해 그는 장자의 영적 권한을 동생 유다에게 물려주어야 했기 때문이다(창 35:22;49:4;대상 5:1).한편 르우벤의 후손은 후일 요단 동편의 비옥한 땅을 기업으로 얻었다가(수13:15-23),아람 왕 하사엘에 의해 탈취당했다. 그러나 B.C.740년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갈 때에는 르우벤지파의 수가 가장 많아지기도 했다(대상 5:6-10). 이것은 또한 "르우벤은...그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도다"라고 기원한 모세 축복의 성취로 볼 수 있다(신 33:6).

성 경: [민26:7]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수효]

(주); 이는 르우벤 가족들이라 - 이번 제 2차 인구 조사에서는 지파 중심 보다는 그 지파 내의 가족 중심으로 계수가 실시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한편, '가족'(*, 미쉬파하)에 대해서는 1:2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26:8]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수효]

(주); 발루의 아들은 엘리압 - 르우벤의 가족 중 특별히 '발루 가족'이 다시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이유는 그 가족을 통하여 '고라사건'(16:1-17:13)의 두 주동자 다단과 아비람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즉 '고라 사건'을 다시 상기시키고자 발루 가족을 언급한 것이다. 그만큼 그 사건이 이스라엘 광야사에 있어서 끔찍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런데 여기 '아들'로 번역된 히브리어 '베네'(*)는 '아들들'이란 의미의 복수형이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발루의 아들은 '엘리압' 혼자 뿐이다. 그 이유는 아마 (1)9절에 언급되고 있는 손자들을 감안해서 그렇게 썼거나(Keil), (2) 아니면 '베네'란 말이 가족 명부 기록의 관례적인 상용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Pulpit Commentary).(3) 혹은 발루의 아들은 여럿이나, 단지 여기 필요한 엘리압만이 기록되었을 뿐이고(그는 다단과 아비람의 아비이다). 나머지는 생략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말일 수도 있다.

성 경: [민26:9]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수효]

(주); 다단과 아비람 - 16: 1 주석 참조.

(주); 회중 가운데서 부름을 받은 자 - 백성들의 대표자 또는 백성들 중 특별히 선택되어 그 권위를 인정받은 자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다단과 아비람을 지칭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역을 좇아 고라의 역모(逆謀)에 동참함으로써 비참한 종말을 맞았었다< 16:1 , 12-35).

(주);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여호와께 패역할 때에 - 이 말 속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권위를 무시하고 그에 도전하는 자는 곧 그 권위의 주체이신 하나님께 반항하는 죄가 된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즉 고라 일당의 모세와 아론에 대한 항거는 그를 이스라엘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16장 주석 참조.

성 경: [민26:10]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수효]

(주); 땅이 그 입을 열어서 -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한 자에게 벌로써 내려진 지진(地震)을 가리킨다<16:31-35>.

(주); 고라를 삼키매 - 16:32에서는 다소 애매하게 표현되어 었던 고라의 운명이 본절에서는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즉 그는 다단 및 아비람과 더불어 산 채로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가 죽었던 것이다.

(주); 불이 ...삼켜 - 하나님의 심판 의지를 대변한 초자연적인 극렬한 불이 250인의 반역 가담자들을 소사(掃射)시킨 사건을 가리킨다<16:35>.

(주); 징계가 되게 - 즉 이는 그들에게 경고(징조)가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징계'는 히브리어로 '네스'(*)인데, 이에는 기(旗), '경고의 표시'(a warning sign),'징조'(omen), '신호'(sign) 등의 있다. 그런 견지에서 헬라어 70인역(Septuagint, LXX)역시 이 말을 '표적'이란 뜻의 '세메이온'(*)으로 번역했다. 결국 본문은 여호와를 거스리던 무리들이 죽임을 당한 사건은 동시대인과 오고오는 세대에 큰 경각심을 준 '경고'가 되었다는 의미이다(16:38;고전 10 : 6).

성 경: [민26:11]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수효]

(주);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 - 주석가들의 보편적인 견해는, 고라 아들들의 생존은 그들이 아비의 어리석은 범죄에 동참치 않았기 때문에 이해한다<16:32>.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는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이 독립된 개체로 서게 된다는 사실(겔 18: 2-4)을 인정할 때 범죄에 동참치 않은 고라의 아들들이 생존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이때 고라의 아들들은 모두 장성하여 분가(分家)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후일 고라의 후손 중 선지자 사무엘과 성가대장 헤만 등이 기록에 나타남을 본다(대상 6:33-38).

성 경: [민26:12]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수효]

(주); 시므온 - 야곱의 둘째 아들(창 29:33)로서, 난폭한 기질과 잔인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는 동생 요셉을 심히 미워했었으며, 여동생 디나가 강간당했을 때는 세겜인에게 끔찍스런 피의 보복을 함으로써 아버지로부터 저주를 듣기도 했다(창 34:25-30; 49:5-7). 그리고 이와 더불어 앞장(25장)의 시므리 사건등으로 인해 시므온과 그의 후손들은 약속의 땅에서 누리는 축복을 만끽할 수 없었다(신33:1-29;수 19:1).

(주); 느무엘(*, 느무엘) - 창 46:10에는 '여무엘'(*)이라 기록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기록자가 사본(寫本)으로 옮겨 적을 때 히브리어 알파벳의 '요드'(*)와 '눈'(*)을 혼동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Keil).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필사자(筆寫者)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은 최초 원본 기록자에게만 작용했다는 사실도 아울러 암시한다.

성 경: [민26:13]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수효]

(주); 세라(*, 제라호) - 이름의 뜻은 '해가 떠올라 비추다'이다. 창 46:10에서 이 이름은 '스할'(민26:13 난하주에는 '소할'로 명기)로 표기되어있는데,'스할'(*, 초하르)은 '번쩍이다', '눈부시다'란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이름들의 유사성으로 볼 때 아마 동일한 인물이 두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 경: [민26:15]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수효]

(주); 갓 - 갓은 야곱의 일곱째 아들이며 레아의 여종 실바의 첫아들이다(창 30:11). 그런데 여기서 그의 후손 지파가 세번째로 계수된 것은 그들 진영이 르우벤 진 기(旗)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2:10-16).

(주); 스본(*, 체폰) - 창 46:16에는 시뵨(*, 치프욘)으로 기록되었는데 동일 인물을 가리킨다.

성 경: [민26:16,17]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의 수효]

오스니는 '에스본'의 다른 이름이며, 아롯은 '아로디'외 동일한 이름이다(창 46:16).

성 경: [민26:19]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의 수효]

(주); 유다 - 레아 소생으로 야곱의 네째 아들이다(창 29:35;마 1:2). 그는 형제들 중 돋보일 정도로 우애(友愛)가 돈독했으며(창 37:26,27), 야곱에 대한 효성도 두드러졌다(창 44:18-34). 그러나 그는 남편을 잃은 자부(子婦) 다말에게 속아 그녀와 동침함으로써 쌍동이(베레스, 세라)를 얻게 된다(창 38장). 이러한 그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가 낳은 베레스 계통을 통하여 다윗을 얻게 하시고 마침내 때가 찬 경륜을 좇아 다윗의 혈육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케 하셨다(마 1장).

(주); 유다의 아들 - 옐, 오난, 셀라, 베레스, 세라 등 5명을 일컫는다<창 46:!2;대상 2: 3-5>.

(주); 에르 - '엘'과 동일인이다<창 46:12>.

성 경: [민26:20]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의 수효]

(주); 유다의 자손 - 유다는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아 엘, 오난, 셀라를 낳았다. 그런데 맏아들 엘이 결혼했으나 여호와께 징계받아 죽임을 당하였고, 둘째 오난도 형의 가문을 이어 주는 일(계대 결혼)을 거부함으로써 여호와의 진노를 사 죽고 말았다. 이후에 유다는 부지중 며느리 다말과 동침하여 쌍둥이 아들인 베레스, 세라를 낳았다(창 38장). 그러므로 유다의 혈통은 셀라, 베레스, 세라를 통해 계속 이어졌다.

성 경: [민26:23]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의 수효]

(주); 잇사갈 - 야곱의 아홉째 아들이며 레아가 다섯번째로 얻은 아들이다(창 30:18; 계 7:7). 그런데 잇사갈 지파에 대한 야곱(창 49:14)과 모세(신 33:19)의 축복은 특별한 것으로 시(詩)적인 아름다운 문체로 소개되고 있다.

성 경: [민26:24]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의 수효]

(주); 야숩(*) - 창 46:13에는 '욥'(*)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둘 다 '돌아가다'는 뜻의 이름으로서 동일인이다(대상 7:1).

성 경: [민26:26,27]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의 수효]

스불론 지파는 3가족에게서 도합 60,500명이 집계되었다. 이는 1차 인구 조사때의 57,400명보다(1:31) 3,100명이 증가한 수치이다.

(주); 스불론 - 레아의 여섯번째 아들이자 야곱으로서는 열번째 낳은 아들이다(창 30:20;계 7:8). 그리고 선지자 요나가 바로 이 지파에서 출생했다(욘 1:1). 한편 스불론 자손은 창 46:14에 나오는 그의 아들들의 이름과 일치한다.

성 경: [민26:28]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요셉, 에브라임, 베냐민 지파의 수효]

(주); 요셉 -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이며 야곱의 애처 라헬이 낳은 첫 아들이다. 그는 부친 야곱의 임종시 다른 형제보다 영육간 더 큰 축복을 약속받았으며(창 49:22-26), 그 결과 그의 아들들은 자신들의 삼촌과 같은 위상(位相)으로 승격되어 12지파 중 두 지파를 형성하계 되었다. 한편 요셉은 17세의 나이로 (37:2) 애굽에 팔린 뒤 한번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110세로 임종할 때(창 50:26) 그가 남긴 유언대로 그의 유해(遺骸)는 후손들과 더불어 고향 땅 가나안에 되돌아 갈 수 있었다(수 24:32).

성 경: [민26:29]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요셉, 에브라임, 베냐민 지파의 수효]

(주); 므낫세 - 요셉의 장자이며 애굽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의 소생이다(창 41:50). 그는 비록 장자였지만 조부(祖父) 야곱이 손을 엊갈려 축복함으로써 그 영적인 위상이 에브라임보다 열등하게 되었다(창 48:8-22). 한편 므낫세 지파는 가나안 정복 이후 반(半)은 요단 동편 땅에, 그리고 나머지 반은 요단 서편 곧 가나안 중부에 각각 거하였다(수13:8;17:7-13).

(주); 마길 - 대상 7:14-19에 기록된 족보에 의하면, 마길의 모친 곧 므낫세의 처(妻)는 아랍 여인이었다. 그리고 이들 마길의 후손은 후일 길리앗 지역을 할당받았다(32:40).

성 경: [민26:30]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요셉, 에브라임, 베냐민 지파의 수효]

(주); 길르앗 - 므낫세의 손자이자 마길의 아들로서, 부친 마길 가족과 더불어 길르앗 가족을 이룸으로써 므낫세 지파를 형성한 자이다. 그런데 본래 '길르앗'이 아람 지역과 가나안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 이름이었다는 측면에서, 아마 그의 이름은 아람 여인인 증조모의 영향을 받았던 듯하다(Pulpit Commentary).

성 경: [민26:33]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요셉, 에브라임, 베냐민 지파의 수효]

(주); 슬로브핫은...딸 뿐이라 - 히브리인들은 전통적으로 공식 문서나 족보 등에 여성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는다. 또 이번 조사가 '20세 이상으로 능히 싸움에 나갈 만한 자( 남자)를 계수하라'는 원칙에 의거한 것이라면 더욱이 딸들에 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시야를 좀더 넓혀 이번 인구 조사가 군사력의 재정비 뿐 아니라, 장차 들어갈 가나안 땅의 분배를 위한 준비 목적도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슬로브핫의 딸들에 관한 본절의 기록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리고 사실 '딸에 관한 상속문제'는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곧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르게 된다. 따라서 본절은 그때를 준비한 기록이기도 하다. 한편 딸들에 관한 율례와 상속법에 대해서는 27:1-23과 36:1-12을 참조하라.

성 경: [민26:35,36,37]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요셉, 에브라임, 베냐민 지파의 수효]

요셉의 차남(次男)인 에브라임 지파는 4가족에서 도합 32,500명이 집계되었다. 이는 1차 조사 때의 40,500명(1:32)보다 8,000명이나 감소된 인원이다(대상 7:20-27). 그리고 그 4가족은 에브라임의 세 아들을 좇는 세 가족과 그의 손자(에란)를 좇는 한 가족으로 구성되었다. 한편 대상 7:20-27에서는 수델라 자손들의 계보가 언급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여호수아의 조상된 브리아와 눈도 기록되어 있음을 본다.

(주); 에브라임 - 요셉의 둘째 아들이나(창 41:52) 조부 야곱의 축복으로 인해 그 위치가형 므낫세 보다 올라가게 된다(창 48:8-22). 그런 관게로 이 지파에서 여호수아, 드보라, 사무엘 등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성 경: [민26:38-41]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요셉, 에브라임, 베냐민 지파의 수효]

베냐민 지파는 7가족(베냐민 아들들의 가족 다섯, 손자들의 가족 둘)에서 도합 45,600명이 집계되었다. 이는 1차 조사때의 35,400명(1:37)에 비해 무려 10,200명이나 증가된 수치이다. 한편 베냐민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는 창46:21과 대상7:6-12 및 8:1-5 등을 비교해 보면 각 이름들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음을 보게 된다. 이것은 아마 어형(語形)의 변화, 개명, 이중(二重) 이름 등의 영향때문일 것이다.

성 경: [민26:38]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요셉, 에브라임, 베냐민 지파의 수효]

(주); 베냐민 - 야곱이 라헬에게서 낳은 막내(열두번째) 아들이다.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죽으면서 '내 슬픔의 아들'이란 뜻의 '베노니'란 이름을 지었으나 야곱은 곧 그것을 '오른손의 아들'이란 뜻의 '베냐민'으로 개명하였다(창 35:18). 한편 시사 시대에 레위인의 첩을 강간 살해한 사건으로 온 지파가 그 살해자를 두둔하는 베냐민 지파를 거의 죽여버렸다(삿 19:25;20:35). 그때 간신히 목숨을 건진 베냐민인은 겨우 600여명에 불과했다(삿 21:47). 그 후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 회복 계획을 세웠는데, 그것은 엘르앗과 실로를 정복해 그곳 처녀 600명을 사로잡아 위의 생존자들의 아내로 삼게 하는 일이었다(삿 20:12,20-24). 이러한 배려로 베냐민 지파는 곧 소생, 번성하게 되었으며새로운 모습으로 이스라엘의 번영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매진하였다. 그들 지파에서는 초대 왕 사울(삼상 9:1,2), 파사의 총리 대신이 된 모르드개(에 8:2), 그리고 사도 바울(롬 11:1) 등 많은 일꾼들이 배출되었다.

(주); 아히람(*) - 대상 8:1에는 '아하라'(*)로, 창 46:21에는 '에히(*)로 언급되었는데, 모두 같은 어근에서 나온 말로 동일한 인물을 가리킨다.

성 경: [민26:39,40]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요셉, 에브라임, 베냐민 지파의 수효]

'뱀 같은'이란 뜻의 스부밤(*, 쉐프팜)은 창 46:21에서는 '흔들림'이란 뜻의 '뭅빔'(*, 뭅핌)으로, '보호'란 뜻의 후밤(*, 후팜)은 '골방', '방어', 등의 뜻인 '&#53907;빔'(*, &#53907;핌)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각각 동일 인물로서 달리 표현된 것 뿐이다. 한편 아릇(*)은 대상 8:3에 '앗달'(*)로 언급되는데, 이는 히브리어 레쉬(*)와 달려(*)이 서로 바뀌어 잘못 기록된 데서 비롯된 착오일 것이다.

성 경: [민26:42]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단, 아셀, 납달리 지파의 수효]

(주); 단 - 야곱이 라헬의 몸종 빌하에게서 낳은 아들이다(창 30:6). 야곱은 임종시 단에게 '뱀이요 첩경의 독사'(창 49:17)라 했으며, 모세도 이 지파를 향해 '사자의 새끼'(신 33:22)라고 하였다. 이러한 예언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전투적이고 용감하여 아셀 지파 등과 더불어 이스라엘 변방을 방어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에브라임과 베냐민 지파 기업 서편에 있는 비옥한 평지를 정복하지 못하고 구릉 지대로 밀려 났다(삿 1:34). 그 일 이후 그들 가운데 일부는 북쪽으로 올라가 라이스를 점령하고 그곳을 '단'이라 개명하였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의 남북 경계를 말할 때 통상 '단(북쪽)에서부터 브엘세바(남쪽)까지'라고 하였다(수 19:47;삿 18:29).

(주); 수함(*) - 창 46:23에는 '후심'(*)으로 되어 있는데 동일인이다.

성 경: [민26:44]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단, 아셀, 납달리 지파의 수효]

(주); 아셀 - 야곱이 첩 실바에게서 낳은 아들이다(창 30:13). 야곱과 모세는 이 지파에게 풍요하고 기름진 복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창 49:20;신 33:24). 결국 그들은 이 예언에 따라 가나안 기업을 얻을 때 지중해 해변의 가장 기름진 땅을 얻었다. 한편 신약 시대 때 아기 예수를 보고 기뻐 찬양했던 여선지자 '안나'가 바로 이 지파 출신이다(눅 2:36).

성 경: [민26:48-50]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단, 아셀, 납달리 지파의 수효]

납달리 지파는 4가족에게서 45,400명이 집계되었다. 이는 1차 조사 때의 53,400명(1:43)에 비하면 8,000명이 감소한 인원이다. 한편 이 지파의 가족 상황은 창46:24 및 대상7:13과 일치한다.

성 경: [민26:48]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단, 아셀, 납달리 지파의 수효]

(주); 납달리 - 야곱의 몸종 빌하에게서 낳은 여섯째 아들이다. 납달리 지파가 가나안에서 받은 기업은 아셀, 스불론, 므낫세 지파등과 경계를 이루는 갈릴리 바다와 요단 강사이의 땅이었다. 사사 시대에는 이 땅에서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 사람들을 소집하여 여사사 드보라와 함께 가나안 땅 야빈을 격퇴하기도 했다(삿 4:10). 또 다윗 왕 즉위식 때에는 납달리 장관 1천 명과 군사 3만 7천 명이 참석할 정도로(대상 12:34) 납달리 지파 세력은 군사적으로 맹위를 떨쳤다. 그리고 요시야 왕은 납달리 지방의 우상을 완전히 제거함으로써(대하 34:6), 영적으로도 납달리 지파가 경건한 모습을 지닐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한편 예수 당시는 이 지역이 행정 구역상 갈릴리에 포함되었는데, 예수께서는 이곳을 선교의 주무대로 삼았다(마 13-15).

성 경: [민26:51]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이스라엘의 총수]

(주); 육십만 일천 칠백 삼십 명 - 가나안 정복 직전, 곧 광야 40년의 방황을 마무리짓고'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지에서'(3절)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이다. 이는 38년 전 성막봉헌 후 시내 산에서 실시했던 1차 인구 조사때의 603,550명에 비하면(1:46) 1,820명 감소한 수치이다. 사실 1차 조사 때의 60만 장정들은 가데스 바네아의 대 범죄로 인해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죽어갔다(14:29-32). 그럼에도 불구하고가나안 정복에 필수적인 장정들이 60여만 명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기필코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정착시키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의지와 집념을 반영한 것이며아울러 당신의 약속을 지켜가시는 그분의 신실한 품성을 대변한 것이라 할 수 있다.한편 시내 산 1차 연구 조사(1:1-46)와 모압 평지 2차 인구 조사(26:1-51)의 제상황을 비교 분석하면 아래 도표와 같다.

* 도표 - 1

지파명 1차 조사 가족수 2차 조사 증감인원

르우벤 46,500 4 43,730 - 2,770

시므온 59,300 5 22,200 - 37,100

갓 45,650 7 40,500 - 5,150

유 다 74,600 5 76,500 + 1,900

잇사갈 54,400 4 64,300 + 9,900

스불론 57,400 3 60,500 + 3,100

에브라임 40,500 4 32,500 - 8,000

므낫세 32,200 8 52,700 + 20,500

베냐민 35,400 7 45,600 + 10,200

단 62,700 1 64,400 + 1,700

아셀 41,500 5 53,400 + 11,900

납달리 53,400 4 45,400 - 8,000

계 603,550 57 601,730 - 1,820

* 도표 - 2

조사 대상 1,2차 공히 20세 이상으로 전투 능력이 있는 자

조사 시기 1차 - 출애굽 2년 2월 1일

2차 - 출애굽 40년 5월 이후

조사 장소 1차 - 시내 산

2차 - 모압 평지

조사 목적 1차 - 광야 행군 질서 및 군대 조직 편성

2차 - 군대 재조직 및 가나안 땅의 기업 분배

조사 특징 1차 조사시의 갓 지파와 2차 조사시의 르우벤 지파를 제외

하고는 모두 백 단위로 숫자가 끝난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수는 별 변동이 없으나, 각 지파간 인구

수는 증감 폭이 매우 크다. 특히 므낫세 지파의 증가율과

시므온 지파의 감소율은 뚜렷히 대비된다.

르우벤 진 기에 속한 지파는 모두 감소된 반면, 유다 진 기

에 속한 지파는 모두 증가되었다.

성 경: [민26:52-56]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각 지파의 기업 분배]

본문은 제 2차 인구 조사의 군대의 재편성이라는 목적 외에 또다른 목적을 밝힌 부분이다. 즉 이번 조사는 각 지파의 인원수에 비례하여 가나안 영토를 분배할 목적으로 실시되었다. 그런데 이 분배는 다음의 몇가지 원칙이 주어졌다. (1)각 지파의 인구 비율에 따라 땅을 나눌 것(53절), (2)제비(lot)를 뽑아 그 땅위치를 결정할 것(55절), (3)결정된 땅은 각 지파 조상의 이름을 따라 얻도록 할 것(55절) 등이다.

성 경: [민26:53,54]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각 지파의 기업 분배]

(주); 명수대로...나눠주어 - 땅 분배의 제 1원칙으로 인구수의 비례에 따라 '많은 지파는 넓게, 적은 지파는 좁게'라는 평등한 분배기준이 정해졌다. 이는 하나님의 참되고도 공의로우신 성품을 드러내 주는 원칙인바(시 111:7,8), 곧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그들 각자의 형편에 따라 필요를 채우신다. 한편 여기에서 '나눠주어'란 말의 히브리어 '테할레크'(*)는 제비 뽑기에 적용되는 단어로 곧 매끄러은 돌(자갈)들을 통해 '분배하다'란 의미이다. 따라서 이 말 속에는 이미 제비 뽑기란 방법(55절)이 예시되어 있다.

(주); 기업(*, 나할라) - 이는 '물려받다', '소유하다'는 뜻의 '나할'에서 유래한 말로 곧 '상속 재산','유산'등을 가리킨다. 결국 이 말은 미구(未久)에 얻게될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 백성의 단독적인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적부터 약속해 오셨던 것을 그들에게 은혜로 전수케 하신 것임을 뚜렷이 시사한다. 사실 가나안 땅의 원소유자는 세상을 창조하신(행 17:24) 하나님이시다(레 25:23).

성 경: [민26:55]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각 지파의 기업 분배]

(주); 오직(*, 아크) - 이 말은 확신을 나타내는 불변사로서 '아켄'(*)과 동류어이며, '확실히','참으로','적어도' 등의 뜻을 지닌다. 따라서 이 말이 본절 초두에 언급된 것은 뒤따르는 내용이 결코 변경될 수 없는 절대 원칙임을 암시한다.

(주); 그 땅을 제비뽑아 - 분배될 땅의 넓이는 각 지파의 인원수 비례에 따랐으나(54절) 땅의 위치만은 '제비 뽑기'로 결정되었다. 한편 이와 같이 땅 분배를 '제비 뽑기'를 통해 시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즉 (1)각 지파에 할당된 땅이 하나님께서 친히 지정하신 것임을 인식시키고, 감사함으로 그 삶의 터전에 정착하게 하려는 까닭이다. (2)분배될 땅의 상태가 옥토냐 박토냐에 따라 시비가 일어날 소지를 미연에 방지케 하려는 까닭이다(R.Bechai). 한편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계시 전달의 한 수단으로 이와 같은 제비 뽑기가 종종 실시되었는데, 그 구체적인 실행방법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제비를 뽑는 자는 사람이지만 그 결과를 이루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깊게 의식하고 있었다(잠 16:33;18:18). 따라서 구체적으로 죄인을 선별할 때(수 7:14;삼상 14:42), 종교적 의문점을 해결하고자 할 때(레 16:7-1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얻고자 할 때(삼상 10:20,21) 이 방법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가 모든 세대에 걸쳐 영구적으로 적용될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시 방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 까닭은 이 방법이 무한한 당신의 지혜와 경륜의 한단면으로서 하나님께서 한 시대에 제한시켜 사용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이 완성된 오늘날 성도에게는 성경과 성령께서 삶의 결단과 판단을 내리게 해주는 유일한 근거가 된다(딤후 3:15-17).

(주); 조상...이름을 따라 -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사회적 활동상 및 전 삶을 가장 집약적으로 대표하는 것이다(창 17:5,6;25:25,26). 따라서 이름이 없어지는 것은 그 존재의 멸절을 의미하며(신 7:24;삼상 24:21), 이름이 지속적으로 보존되는 것은 곧 그 존재의 계속적인 번성을 의미한다고(창 12:2;삼상 18:30) 볼 수 있다. 그런 견지에서 구약의 히브리인들은 신약적 의미의 영생 개념이 희박한 대신에 한 개인의 존재는 죽음으로 종말을 맞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한 가족, 한 지파의 삶 속에서 영속한다고 믿었다. 이런 사실들에서 유추해 볼 때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각지파의 땅들을 얻게 한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즉 (1)분배된 땅은 단순히 한 세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사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세대를 위한 것이다. (2)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얻은 것은 그 조상들과 언약을 맺으셨던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임을 나타낸다. (3) 또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인들은 조상들처럼 성실한 언약 준수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성 경: [민26:56]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각 지파의 기업 분배]

(주); 다소를 물론하고...제비뽑아 - 땅분배 원칙에 있어서 인구 비례 원칙(53,54절)과 제비 뽑기 원칙(55절)은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제비 뽑기 원칙은 땅의 위치에 적용되는 원칙이고, 인구 비례 원칙은 땅의 크기에 적용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Keil).

성 경: [민26:57-62]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각 지파의 기업 분배]

본문에는 레위 지파의 인원수가 집계되었다. 즉 1개월 이상된 남자는 모두 23,000명으로서 1차 조사 때의 22,000명(3:39) 보다 1,000명이 증가하였다. 한편 그러나 특이하게 레위 지파의 수효를 계산할 때는 일반 인구 조사의 준거인 20세 이상이란 제한에 구애받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고유한 업무는 군복무가 아니라 성막 봉사였기 때문이었다.(3:15 주석 참조) 한편 이 지파에는 레위의 3아들(게르손, 고핫, 므라리)에게서 파생된 많은 가족들이 있었음에도 단지 일부분만 소개되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이 바로 이 지파 출신임을 소개하고 있다.(59절) 또 나답과 아비후의 범죄와 그들의 죽음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61절) 이는 오고오는 세대에 준엄한 경고를 주기 위함이다. 한편 본문과 3:17-20및 출6:16-27에 나타난 계보는 다음과 같다.

레 위

+----------------------------+-----------------------------------+

| | |

게르손 고 핫 므라리

| | |

+-+--+ +-----+-+----+-----+ +---+-+

| | | | | | | |

립 시 아 이 헤 웃 마⌒ 무

므 므 스 브 시 흘말 시

니 이 람 할 론 엘 리리

| | |

+----+ +---+--+ +---+----+

| | | | | | | |

아 모 고 네 시 미 엘 시

론 세 라 벡 그 사 사 드

리 엘 반 리

| |

+---+----+---+ +---+----+

| | | | | | |

나 아 엘 이 앗 엘 아

답 비 르 다 실 가 비

후 아 말 나 아

살 삽

|

|


성 경: [민26:57]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각 지파의 기업 분배]

(주); 레위인 - 이들은 금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 때에 이스라엘의 성결을 위해 하나님께 헌신함으로써 그후부터 제사장을 도와 성막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섬길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되었다<1:47-54;18:31;출 32:26-29>. 그리하여 그들은 여타 백성의 십일조로 생활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으며, 그 결과 가나안 땅 분배에서는 제외되었다. 즉 그들은 생업에 필요한 경작지를 분배받지 못하고, 다만 각 지파의 영토내에 마련된 땅에서 종교적 업무를 관할하였으며 각 지파들이 바친 십일조로 생활을 영위했다(18:21-24).

(주); 그 종족대로...가족이며 - 본절에는 레위 지파의 지도적인 3가족이 언급되었고 58절에는 그에 부속된 5가족이 제시되었다. 그 다섯 가족은 게르손에게 속하고(3:21), 헤브론, 고라 가족은 고핫에게 속하며(3:27;16:1), 말리와 무시 가족은 므라리에게 속한다. 그러나 여기 언급된 레위 가족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는 생략되었다. 그 이유는 여기서는 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모세와 아론 및 이스라엘의 제사장 된 아론의 아들들을 소개하려는 데 그 서술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Keil). 따라서 보다 자세한 기록은 출6:16-25을 참조하라.

성 경: [민26:58]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레위인 인구 계수]

(주); 고핫은 아므람을 낳았으며 - 혹자(Keil, Kurtz)은 여기 나타나는 고핫의 아들 아므람과 59절에 나타나는 아론과 모세 및 미리암의 부친 아므람을 동명 이인(同名異人)으로 본다. 그 이유는 출애굽 제 2년에 실시된 인구 조사에서 고핫 가족의 1개월 이상된 남아(男兒)의 수가 8,600명이나 된다는 점에 의심을 품고 제기한 이론이다(3:27,28). 즉 고핫의 네 가족에게서 모세 당대에 그처럼 많은 자녀가 출생했을 리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아론과 모세 및 미리암의 부친 아므람(59절)을 고핫의 아들 아므람(58절) 보다 훨씬 후대의 인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단지 현상적 근거에 따른 수치상의 견해이다. 성경 족보 기록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개연성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1)모세의 부친 및 삼촌들이 또다른 아내들에게서 자녀들을 낳았을 가능성, (2)모세 대(당시 모세는 80세였다)의 사촌들이 여러 아내들에게서 또한 자녀들을 낳았을 가능성,(3) 모세 아들들의 대(代)에서 또한 그들이 여러 아내들에게서 자녀들을 낳았을 가능성 등을 고려한다면 당시 일개월 이상의 남아가 8,600명에 이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The Wycliffe Bible Commentary,p. 146). 이와 관련하여 출 6:20 주석을 참조하라. 따라서 우리는 58절의 아므람(고핫의 아들)과 59절의 아므람(아론, 모세, 미리암의 부친)을 같은 인물로 본다.

성 경: [민26:59]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레위인 인구 계수]

(주); 아므람...요게벳 - 이들 부부 사이에서 모세 남매(아론, 미리암)들이 태어났다. 레위 지파 중 이들의 가족 상황이 특별히 묘사된 것은 이 가족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하나님의 도구로 크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주); 레위의 딸 - 출 6:20 주석 참조.

성 경: [민26:60,61]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레위인 인구 계수]

아론의 아들들에 관한 내용이다(3:2,4;출 6:23;레 10:1,2). 아론 가족은 이스라엘 중 특별히 제사장직의 신성한 의무를 담당했으나, 그 중 나답과 아비후는 잘못된 분향을 드림으로써 죽임 당했었다(3:4). 대신 엘르아살과 이다말은 성실히 맡은 임무를 준행함으로써 계속 제사장 혈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엘르아살은 아론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직을 계승했다(20:25-28).

(주); 다른 불 - 레 10:1 주석 참조.

성 경: [민26:62]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레위인 인구 계수]

(주); 레위인의 일개월 이상으로 - 타지파는 가나안 정복과 땅 분배에 관련되었기에 인구조사 대상이 20세 이상으로 규정 되었으나, 레위인은 그와는 무관하고 단지 성막 봉사와 속전(贖錢)에 관계되었기 때문에 1개월 이상으로 그 기준이 마련되었다<3:40-51>. 따라서 레위 지파 인원은 이스라엘 총인구에 포함되지 않았다.

성 경: [민26:63,64,65]

주제1: [제 2차 인구 조사]

주제2: [진멸당한 출애굽 첫 세대]

이 부분에는 제 2차 인구 조사를 실시한 인물과 장소 및 그 대상이 기록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추진하시는 성역사(Sacred History)가 인간 역사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되어 갔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생생한 기록이다. 특별히 가데스 사건(14장)을 중심으로 당신을 거역한 무리들의 멸망과, 순종한 갈렙과 여호수아의 생존을 대비시킴으로써 당신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내셨다(14:29,38). 이처럼 성경의 전 내용은 인간들의 일상사와 영웅담을 소개한 것이라기 보다 그들의 삶속에서 역사하시며, 당신의 초월적인 경륜으로 세상을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행위와 메시지를 소개하는 데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편 본문과 관련하여 가데스 바네아 사건이 기록된 14장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27:1]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기업을 요구하는 슬로브핫의 딸들]

(주); 요셉의 아들...슬로브핫의 딸들 - 여기에는 슬로브를 가정의 7대(代) 족보가 간략히 언급되었다. 이러한 족보는 가장 압축된 형태의 역사로서 성경에는 새로운 세대의 시작 예고나, 또는 밝히고자 하는 인물들의 역사성을 강조할때 종종 지시하고 있다. 또한 이 족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당신의 언약 백성을 인도해 오셨는가를 보이시기도 하신다. 한편, 본문은 기록된 내용이 허구가 아닌 역사성을 지닌 진실임을 밝히고자 하는 데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하겠다.

성 경: [민27:2]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기업을 요구하는 슬로브핫의 딸들]

(주); 그들이...가로되 - 슬로브핫의 딸들은 가나안 정복 후 각 지파의 영토 분할에 있어서 그 해당자가 20세 이상의 남자들에게만 국한된 지시 사항(26:52-56)을 전해받고 큰고민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아비는 이미 죽었고, 그들 중에는 아들이 없었으므로 자신의 가족은 원칙대로 하면 기업을 받을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당연히 이의를 제기할 수 밖에 없었다.

(주); 회막문에서 - 회막이 봉헌된(출40장) 후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회막 중심의 생활을 했다. 이는 그들이 전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는 행위이자 그분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표시이며, 또한 그들의 삶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과 연관된 종교적인 것임을 나타낸다. 한편 슬로브핫의 딸들이 상속 문제를 가지고 회막문에 이른 것은 하나님께 그 문제를 아뢰어 정당한 판결을 받기 위함이었다. 특히 그곳에는 종교, 사회 각 방면의 지도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었으므로 그들이 그곳을 찾았던 것이다.

(주); 온 회중 - 모든 백성들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좀더 제한적으로 백성들을 대표하는 각 지파의 두령들이라 보는 것이 좋다.

성 경: [민27:3]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기업을 요구하는 슬로브핫의 딸들]

(주); 아버지가...자기 죄에 죽었고 - 슬로브핫의 딸들은 자신들의 아버지가 고라 일당의 반역에 참여함으로 가나안 땅에 대한 자격과 권리를 박탈당하고 죽은 것이 아니라, 여느 일반인들처럼 필연적인 죽음으로 종말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들은 만일 아비에게 아들이 있었더라면, 그에게 물려주었을 기업을 자신들에게 주어 아버지의 이음이 대대로 보존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한편 슬로브핫의 딸들은 아비의 죽음 원인을 '죄'라 단정함으로써 바른 인간관(시14:2, 3;롬3:10-12)을 가졌음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신과 더불어 모든 인간이 죄인임을 올바로 인식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성 경: [민27:4]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기업을 요구하는 슬로브핫의 딸들]

(주); 어찌하여...아버지의 이름이...삭죄되리이까 - 가나안 땅의 분배 규정상(26:51-53) 딸들에게는 상속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아들이 없이 죽은 슬로브핫의 경우(26:33) 그 딸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상속은 물론 그 가족의 대(代)가 끊어지고 만다. 그러나 만약 규종을 초월하여 그녀들이 결혼 전에 기업을 물려받게 된다면, 결혼하더라도 그 기업은 자신의 남편을 통해 계속해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남게 된다. 아마 이때 남편은 처가에(妻家)의 일원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그 딸들은 아버지의 후손이 받게 될 기업을 지금 요청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예는 야일의 경우(32:41;신3:14), 야르하의 경우(대상2:34, 35), 그리고 바르실래의 경우(스2:61; 느7:63) 등에서 볼 수 있다.

(주); 기업을 주소서 하매 - 26:52-56과 수17:3-6을 참조하라.

(주);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주소서 - 공동 번역에서는 이를 '아버지의 근친들이 그 땅을 차지할 때 저희에게도 얼마쯤 나누어 주십시오'라고 의역(意譯)하고 있다.

성 경: [민27:5]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기업을 요구하는 슬로브핫의 딸들]

(주); 그 사연를...품하리니 - 직역하면 '그 사건을 여호와 앞에 가져왔다'가 된다. 특별히 여기서 '품하니라'(*, 야크레브는 '가까이 오다', '가져오다' 등의 뜻인 '카라브'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모세가 그 사건의 전 내용을 여호와께 가까이 가지고 가서 그분께 소상히 아뢰었다'는 의미이다. 이는 인간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주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신정 정치(神政政治)의 한 단면이다. 실로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과 지혜를 신뢰하는 자에게 은혜롭고 정확한 응답을 해주신다(렘33:3).

성 경: [민27:6-11]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새로운 상속법]

결국 슬로브핫 딸들의 주장은 하나님께 상달되어 그 딸들은 아버지의 기업을 상속받게 되었다. 이 판결은 그 이후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상속법 판례가 되었다(11절). 따라서 아들이 없는 집안의 경우 그 딸들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업을 상속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더나아가 딸도 없을 경우 그 기업을 아버지의 형제들(가까운 근친 순으로)에게 돌아가도록 규정되었다. 한편 딸이 아버지의 기업을 상속받을 경우, '결혼으로 인해 파생되는 토지의 지파간 이동을 방지키 위해 그녀는 오지 자기 지파의 남자하고만 결혼할 수 있었다(36:6).

성 경: [민27:7]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새로운 상속법]

(주); 딸들의 말이 옳으니 - 여기서 '말이 옳으니'(* ... , 켄 도브로테), 에서 '옳다'의 '켄'은 '의롭다'는 의미도 지닌다. 그러므로 본문은 단순히 '그 말한 것이 맞다'는 뜻 이상으로서 '그 말한 내용이 의롭다'는 의미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즉 조상의 가족 가운데서 아버지의 이름이 소멸되려는 것을 막으려 했던 그 딸들의 주장은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았던 것이다. 이처럼 그 딸들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축복(기업)을 타인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거룩한 집념이 있었다. 이러한 집념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은 항상 은혜로 다가오셔서 의롭다 인정하신다(왕하2:9-22).

(주); 그 아비의 기업으로 - 여기서 '아비의 기업'이란 만일 슬로브핫이 살아 있다면 그가 받을 몫을 가리킨다.

성 경: [민27:8]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새로운 상속법]

(주); 딸에게 돌릴 것 - 딸도 상속권을 얻을수 있다는 새로운 법조문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제한적인 법률로서, 여자가 상속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1)아비에게 상속할 아들이 없을 경우라야 했고 (2)그리고 상속받은 딸은 반드시 같은 지파의 남자와 결혼해야 할것 등의 제한 규정을 준수해야 했다.

성 경: [민27:9, 10]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새로운 상속법]

(주); 딸도 없거든...그 형제에게 - 여기서 '그 형제'란 자녀가 전혀 없기에 그의 땅을 타인에게 상속할 수 밖에 없는 딱한 처지에 이른 바로 그 사람의 형제를 가리킨다.

(주); 그 아비의 형제- 자신의 기업을 아들, 딸, 형제에게도 물려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이른 바로 그 사람의 백부(伯父)나 숙부(叔父)를 일컫는다. 한편 본문과 앞절(8절)및 후절(11절)를 종합 고찰해 보면, 다음과 같은 순위의 상속권 법이 생긴다. 즉 어떤 사람(Someone)을 중심으로 (1)S의 아들 (2)S의 딸 (3)S의 형제 (4)S 아비의 형제 (5)그외 S와 가까운 친족 순(順)이다. 이로 볼 때 상속권 법은 상속자의 이름 및 권리가 가장 오랫동안 잘 보존될 수 있는 자에게 상속될 수 있도록 조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Pulpit Commentary).

성 경: [민27:11]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새로운 상속법]

(주);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로 나눠주신 각 지파의 땅들이 계속해서 그 지파내에서 전수되기를 원하셨다. 본절이 바로 그러한 취지에서 명령된 것으로 상속이 최소한 그 지파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규정이다. 사실 이스라엘인들은 토지가 타지파로 넘어가는 것은 곧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기는 것으로 간주하여 이를 철저히 경계하였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지파내의 토지 상속을 통해 당신이 이스라엘 각 지파, 각 인격을 공히 사랑하시며 각자의 하나님이 되심을 강력히 시사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반영한 법규가 바로 여성 상속권 허용과 희년 제도이다<레25장>.

(주); 판결의 유례(*, 훅카트 미쉬파트) - 여기서 '율례'를 뜻하는 '미쉬파트'는 공식적으로 엄중히 선언된 법을 가리킨다. 즉 슬로브핫의 딸들이 기업 상속을 요구함으로써 새로운 규정이 공식적으로 정해졌는바 이 규정은 절대적인 명령으로 앞으로 생겨날 각종 상속법의 한 준거로 작용하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35:29에는 '판결의 유례'가 '판단하는 유례'로 번역되었다.

성 경: [민27:12]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모세의 최후 간구]

(주); 아바림 산 - 모압 평지에 위치한 큰 산맥인 아바림 산맥을 일컫는다. 이 산맥은 요단강 동편, 사해의 북동쪽에 있으며(23:14), 이 산맥의 북쪽에 비스가 산이 있었는데 그 산의 정상에 느보(Nebo) 봉우리가 있었다. 모세는 아느보 산에서 최후를 맞는다.

(주); 땅을 바라보라 - 므리바에서의 혈기 사건으로(20:13) 모세는 가나안 입국을 금지당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비록 들어갈 수 없는 가나안 땅이지만 눈으로 목격하게 함으로써, 그에 대한 당신의 사랑과 아울러 언약을 반드시 이루고야 마시는 당신의 신실함을 깨닫게 해주셨다(신34:1-4). 한편 부르크하르트(Burckhardt)에 의하면, 느보 산 정상은 가나안 땅을 전망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서, 그곳에서는 사방 최소 30마일, 그리고 남쪽 방향으로 60마일까지나 시야에 들어왔다고 한다(Keil&Delitzsch, Vol. I-iii. p.214)

성 경: [민27:13]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모세의 최후 간구]

(주); 아론...같이...돌아가리니 - 직역하면 '아론이 그 형제 백성들에게로 모여진 것처럼 너도 너의 백성들에게 모여질 것이다'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내세관을 잘보여 주는 표현으로(창25:8;35:29;49:29, 33;신32:50), 그들은 죽음이 존재의 멸절이 아니라 새로운 생의 출발점, 곧 먼저 간 그들의 조상들을 만나고 교통할 수 있는 계기로 믿었다(삿2:10). 특별히 본문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당신의 섭리 가운데 죽음으로, 당신의 언약에 참여한 그의 조상들처럼, 그 역시 당신의 나라에서 영원하고도 평안한 휴식을 얻게 될 것임을 확신시키셨다(마8:11; 눅16:22) 한편 아론의 죽음에 대해서는 20:26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27:14]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모세의 최후 간구]

(주); 회중이 분쟁할 제 - 즉 신광야 가데스에서 백성들이 물이 없어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한 사건을 가리킨다<20:3>. 여기서 '분쟁'(*, 므리바)이란 다툼이나 소송을 가리키며, 특히 서로 대적하며 서로 자기 주장만이 옳다고 우기는 상태를 일컫는다. 한편 이 말의 히브리어 '므리바'는 그사건 후 곧 그곳의 지명(地名)으로 정착된다<20:13>.

(주); 내 명을 거역하고 -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받은 자에게 가장 요구되는 바는 곧 그분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순종이다. 그런데 가테스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단지 '반석을 명하여'(20:8) 물이 나오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과 권능을 백성에게 나타냈어야 함에도 블구하고, 자신의 혈기와 분노로 므리바의 반석을 두번씩이나 두들김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더불어 그 거룩성을 훼손하고 말았던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20:10-13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 이 표현은 보충 설명격인 말로써, 곧 출애굽제 40년에 일어난 가데스의 므리바 물사건(20:2-13)과 출애굽 원년에 일어난 르비딤의 므리바 물 사건(출17:1-17)을 구별지워주는 역할을 한다.<20:13 주석>

성 경: [민27:15]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모세의 최후 간구]

(주); 모세가...여짜와 가로되 -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죽음 예고는 모세로 하여금 자신의 후계자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게끔 만들었다. 따라서 모세는 자신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그 사실보다도 장차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 전쟁 수행을 감당할 후계자 선정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실로 개인의 욕망을 극복하고 전체의 앞날을 걱정하는 참 지도자의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성 경: [민27:16]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모세의 최후 간구]

(주); 여호와...생명의 하나님 - 이 말은 여호와가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조성하신 바로 그 영들(Sprits)의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16:22>. 따라서 공동 번역은 이 부분을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숨을 불어 넣어 주시는 하나님 야훼여'라고 번역함으로써 위의 뜻을 더욱 선명히 하였다. 한편 죽음을 고지(告知)받은 모세가 이러한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의 주인되신 하나님께서(시36:9;행17:24, 25) 결정하신 사항에 대해 일말의 유감도 없음을 밝혔기 위함이었다. 사실 자신의 생명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할 수 있는 자는 죽음 앞에서 담대할 수 있다.

(주); 한 사람을...위해서 - 모세는 자신의 가나안 불입국이나 죽음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백성과 그 백성을 인도할 다음 지도자 문제에 관해 온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대승적(大乘的) 자세는 지도자에게 절대 필요하다. 특별히 그가 후계자 선임 문제를 자신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전폭으로 의뢰한 것은 지도자의 권위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확실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롬13:1)

성 경: [민27:17]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모세의 최후 간구]

(주); 그로...출입하게 하사 - 모세는 백성을 지도하고 가르치며 다스릴 사람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기를 원했다. 한편 '출입하다'(*, 에트와보)는 말을 직역하면 '나가고 들어오다'란 뜻인데, 곧 일상 업무의 활발한 수행을 일컫는 히브리인들의 관용적인 표현이다. 특별혀 여기서는 가나안 정복 전쟁과 영토 분배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을 정치 군사적인 측면에서 강력한 능력으로 통솔할 인물에 관한 묘사로 이해할 수 있다(신31:2, 3;수14:11;삼상18:13, 16).

(주);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 목자는 양들을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고 맹수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등 양들에게 생명같은 존재이다. 따라서 목자가 없는 양은 곧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후일 예수님께서도 이같은 표현을 사용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민망히 여긴 적이 있다(마9:36). 이런 점에서 모세의 염려는 당신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목자상을 예표한다고 볼수 있다(왕상22:17;겔34:5;슥10:2;막6:34).

성 경: [민27:18]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 여호수아]

(주); 신에 감동된 자 - 직역하면 '영(성령)이 그 안에 있는 자'가 된다. 여기서 성령이 그 안에 내주하신다는 말은 단순히 지혜나 통찰력이 탁월하다는 뜻(Knobel)이 아니라, 곧 성령의 뜻에 온전히 순복할 줄 아는 믿음과 지도자에게 필요한 영적 지혜와 능력이 충만함을 의미한다(Keil). 결국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미 여호수아를 당신의 일꾼으로 택정하시고 준비시켜 두셨음을 암시한다(출17:9).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역사를 위해 사람을 부르시고, 그에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성령의 은사를 덧입히신다. 사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신이 돕지 않고는 아무도 수행할 수 없다(출31:2, 3;슥4:6;행1:4, 5, 8;고전2:4, 5, 13).

(주); 안수하고 - 어떤 권위나 책무를 타인에게 전수하거나 또는 어떤 특별한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각종의 은사를 부여한다는 상징적 행위로서 뿌리 깊은 의식이다(8:10, 12;창48:14), 이는 신약 시대에까지 사용되고 있다(행6:6;딤전4:14).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출29:1-37 강해, 안수에 대하여>를 참조하라. 한편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안수하는 것은 그에게 신적 권위를 부여함을 뜻한다. 그러나 모세가 지닌 책무나 직임 자체가 안수를 통해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책무는 모세에게만 국한된 고유한 것이며, 여호수아에게는 새로운 책무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다만 그의 지도자로서의 권위와 존엄성만 전달되는 것이다(20절).

성 경: [민27:19]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 여호수아]

(주); 위탁하여(*, 치위타) - 이는 '세워', '지명하여'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본절은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로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의 장로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세움 받았음을 나타낸다.

성 경: [민27:20]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 여호수아]

(주); 네 존귀를 그에게 - 여기서 '존귀'를 뜻하는 히브리어 '호드'(*)는 '영광'(glory), '아름다움'(beauty) 등의 뜻이 있다. 한편 율법 계시의 전수자요, 선포자로서 하나님 앞에 독특한 직위를 가진 모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직무와 기능(특히 예언자적 소명)을 여호수아에게 모두 전수해야 할 것은 아니었다. 즉 여호수아에게 전달된모세의 영광과 아름다음은 부분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그가 여호수아에게 전수한 '존귀'란 뒤에 이어지는 문구로 볼 때 백성들이 그를 합법적인 지도자로 인정하는데 필요한 신적 위엄과 권위임을 알 수 있다.

(주);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 신적 권위로서 지도자에 위임된 여호수아에게 백성들이 취할 태도에 관한 명령이다. 사실 여호수아가 지도자로 위임되는 현장에 제사장과 온 회증(구체적으로 온 회중을 대표하는 장로 및 족장들)이 참가한 것은(19절), 그들이 여호수아의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하는 서약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신.구약을 막론하고 합법적 지도자에게 순복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출22:28;롬13:1;딛3:1). 한편 여기서 '복종하게 하라'(*, 슈메우)는 말은 '듣다', '주의하다'란 뜻의 '솨마'에서 유래한 말로서, 상대의 말을 주의하여 듣고 어김없이 순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성 경: [민27:21]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 여호수아]

(주); 제사장...앞에 설 것이요 - 여호수아가 비록 모세의 후계자로 임명되었으나, 그는 하나님과 직접 대면했을 뿐 아니라(7:89;12:7, 8) 또한 율법의 제정자로서 모든 제사장들과 장로들을 거느렸던 모세의 절대 권위와는 달리 대제사장의 권위 아래 놓이게 되었다(그러나 왕정 시대 이후로는 왕의 권위가 제사장의 권위보다 앞섰다-Pulpit Commentary). 따라서 그는 이스라엘의 국가적 중대사를 직접 결정할 수 없었고, 대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물어 처리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어려운 문제가 닥칠 때마다 대제사장 앞에 나아가 '우림의 판결'을 받아야 했다. 우림의 판결법 - 이는 '우림과 둠밈의 판결법'의 생략형인데, 여기서 '우림과 둠밈'이란 하나님의 뜻을 물어 중대사를 결정하는데 사용되는 것이다<출28:30 주석 및 출28:6-43 강해, '우림과 둠밈'을 참조하라>. 그런데 대제사장의 판결 흉패(출28:15-29) 속에 들어 있는 일종의 제비(lot)인 우림과 둠밈의 판결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시행되었는지는 알려진바 없다. 한편 성경에서 우림과 둠밈의 사용 빈도는 극히 미비한데, 그것은 보다 확실한 선지자들의 예언이 그 역할을 곧 떠맡었기 때문인듯하다.

(주);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 - '이스라엘 자손'은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가리키며, '온회중'은 백성들의 대표자(장로)들로 구성되는 전체 모임을 가리킨다. 따라서 장로(두령)들의 모임은 이스라엘 자손 전체를 대표하는 셈이 된다.

성 경: [민27:22, 23]

주제1: [여자 상속법 제정]

주제2: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 여호수아]

(주); 회중 앞에 세우고...위탁하되 - 이스라엘 전체 백성을 대표하는 두령 또는 장로들의 모임 앞에서 모세에 의해 여호수아가 공식적으로 지도자에 올랐다. 신31:7에서는 '회중 앞'이란 말 대신에 '온 이스라엘의 목전(目前)에서'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온이스라엘을 대표하는 '회중'(장로 또는 두령들의 회)앞에서 여호수아가 지도자로 위임된 것은 곧 모든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실시된 것으로 간주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 경: [민28:1,2]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정한 시기에 드릴 제사]

이 부분은 본장과 29장 전체에 대한 서론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 그들이 그곳에서 지켜야 할 제사와 절기에 관한 규정을 다시 반복하고 확대, 정리해 주셨다(출 23:14-17; 29:38-42; 31:12-17; 레 23장; 민25:1-12).이와 같이 동일한 종류의 규례가 반복적으로, 다각도에서 계속 주어진 것은 그 규례들이 지니는 의미가 매우 큼을 시사한다. 한편 본장에는 매일 드리는 제사(상번제)와 그 제물을 비롯하여 안식일에 드릴 제물, 월삭에 드릴 제물, 무교절 및 맥추절에 드릴 제물이 언급된 반면, 29장에는 제 7월에 지키는 절기 즉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등의 절기에 드릴 제물이 언급되어 있다. 특히 모든 제사와 절기에 대한 규례가 이미 제시된 15장의 그것에 비하여 반복적이고 확대적이라는 점이 특징으로 지적될 수 있다. 그리고 28, 29장의 내용과 아울러 각 절기 때의 규례와 목적 및 그 의미에 대해서는 레위기 서론의 '히브리 절기와 축제' 부분을 참조하라. 한편 28, 29장에 언급된 바 각 절기때마다 사용된 희생 제물의 수효를 도표화 하면 아래와 같다.

제 물 번 제 물 속죄 제물

절기 수송아지 수양 어린양 수염소

매 일 2

안 식 일 2(4)

월 삭 2 1 7(9) 1

무 교 절 2 1 7(9) 1

칠 칠 절 2 1 7(9) 1

나 팔 절 1(3) 1(2) 7(16) 1(2)

속 죄 일 1 1(3) 7(9) 1(2)

첫 째 날 13 2 14(16) 1

초 둘 째 날 12 2 14(16) 1

셋 째 날 11 2 14(16) 1

막 넷 째 날 10 2 14(16) 1

다 섯 째 날 9 2 14(16) 1

절 여 섯 째 날 8 2 14(16) 1

일 곱 째 날 7 2 14(16) 1

여 덟 째 날 1 1 7(9) 1

* ( )안은 당일에 드린 그 희생 제물의 누계임.

성 경: [민28:2]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정한 시기에 드릴 제사]

(주); 나의 예물 - 여기서 '예물'(*, 코르반)이란 '바치다', '가까이 가져오다'란 뜻으로 곧 하나님께 가까이 가져가 바치는 향기로운 제물을 가리킨다(레 1:2). 이는 제사장들의 몫으로 돌려질 것이 아니었고 오직 화제로 태워 연기를 통해 하나님께 바쳐질 것이었다. 한편 이 말이 '나의'란 말과 결합되어 하나님께서 그 예물을 얼마나 기대하고 계시며 기뻐받으실 것인가에 대해 간접 시사하고 있는데, 이런 표현은 신인동형 동성론적 표현이라 한다. 더욱이 본절에서 '나의'란 말을 3번이나 반복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의 주체가 당신 자신임을 거듭 밝히셨다.

(주); 나의...화제...향기로운 것 - 여기서 '화제'와 '향기로운 것'은 동일한 의미로서, 모두 제물을 태워 그 연기와 냄새로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가리킨다(레 3:5, 11; 21:6, 8). 그리고 이는 드리는 자의 온전한 헌신과 충성을 상징한다(레 1:3-9 강해, 향기로운 제사).

(주); 정한 시기(*, 모아도) - 이는 '만나다', '고정하다'는 뜻의 '야아드'(*)에서 유래한 말로 곧 지정된 장소와 시기에 일정하게 모이는 날을 가리킨다.물론 이 날을 정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으로서 성경에서는 흔히 '여호와의 절기', '성회'등으로 표현되고 있다(출 12:16; 레 23:2-8).

성 경: [민28:3]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상번제]

(주); 화제 - 레 2:9 주석 참조.

(주); 흠 없는 - 레 1:3 주석 참조.

(주); 매일 둘씩 상번제로 - 여기서 '상번제'를 뜻하는 히브리어 '올라 타미드'(*)는 '규칙적으로(끊임없이) 드리는 번제'를 의미한다. 즉 이 제사는 매일두 마리의 어린 양을 희생 제물로 삼아 제단에서 불태우는 제사를 가리키는 데 아침에 한 마리, 오후 해질녘에 한 마리를 각각 번제로 드렸다.

성 경: [민28:4]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상번제]

(주); 아침에...해 질 때 - 출 29:39 주석 참조.

성 경: [민28:5]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상번제]

(주); 고운 가루(*, 솔레트) - 가늘게 빻은 가루를 뜻한다(레 2:1). 이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의 철저히 부서진(통회한) 자아를 상징한다(고후 4:10, 11). 레 2:1주석 참조.

(주); 에바 - 고체의 양을 측정하는 단위로서 1에바(Ephah)는 약 23리터, 곧 12되 정도된다.

(주); 기름 - 올리브(감람)를 빻아 채취한 것으로 이는 성령의 사역을 예표한다(출 30:24; 레 2:1).

(주); 힌 - 액체의 양을 측정하는 단위로서 1힌(Hin)은 약 3.8리터 곧 2되 정도이다.

(주); 소제 - 구약의 5대 제사중 유일하게 피없이 드리는 제사로서(레 2:1) 번제, 화목제등에 곁들여 드리는 제사이다.

성 경: [민28:6]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상번제]

(주); 시내 산에서 정한 상번제 - 이 '상번제'에 관한 계시는 하나님께서 성막과 각종 기구들을 계시하셨던 시내 산상에서 모세에게 이미 가르치셨던 제사법이다(출 29:38-42). 그런데 가나안 입성을 앞둔 현시점에서 다시 한번 언급하신 것은 이 제사가 지닌 영적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즉 이 제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영속적인 언약 관계를 강조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끝없는 은혜와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헌신이 어우러진 제사이다. 그러므로 이 제사는 그 '영속성'이란 측면에서 하루라도 거를 수 없는 성질의 제사였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출 29:38-42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주); 향기로운(*, 르레아흐 나호아흐) - 직역하면 '향기로운 냄새', '편안하게(즐겁게)하는 향내'가 된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을 매우 편안하고 기쁘시게 해드리는 냄새, 곧 번제의 향내를 가리킨다. 이러한 향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백성과 만나시며, 교제하실 것을 약속하셨다(출 29:41, 42). 레 1:9주석 참조.

성 경: [민28:7]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상번제]

(주); 전제 - 전제(a drink offering)는 독립된 제사의 한 종류가 아니라, 번제와 소제에 곁들여 포도주 또는 독주로 드려지는 제사의 한 방법이다 <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주); 거룩한 곳에서 - 공동 번역에서는 이를 '성소에'라고 번역하였으나 70인역(LXX)에서 처럼 좀더 구체적으로 '제단 주위에서'(*, 페리 톤 보몬)로 번역함이 좋다. 그러나 요나단(Jonathan)이나 팔레스틴 탈굼이 취하고 있는 바 '거룩한 그릇으로'란 해석은 적합치 못하다.

(주); 독주(*, 쉐카르) - 이는 자극성이 없는 물과 같은 음료수와 구분하여 사용되는 말로서 일반적으로 '술'을 뜻하는데 개역 성경에는 '독주'로 번역되었다. 그러므로 본문의 '독주'란 '포도주'(*, 야인)를 포함한 모든 자극성 음료를 대표하는'술'이란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이해함이 좋을 듯하다(Keil). 한편 옹켈로스 탈굼(theTargum of Onkelos)은 이를 '오래된 포도주'로 해석하고 있다.

성 경: [민28:8]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상번제]

(주); 아침 것 같이 - 상번제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두번 드려졌는데, 그 드리는 방법 및 절차 그리고 희생제물은 조석이 공히 동일했다.

성 경: [민28:9, 10]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안식일의 번제]

본문은 각종 제사 계시 중 안식일에 여호와께 드릴 제물에 대해 최초로 언급된 부분이다.

(주); 매 안식일의 번제 - 이는 매일 드리는 상번제 외에 안식일에 특별히 드릴 제사를 가리킨다. 이때의 제물을 수양(어린 양) 둘, 기름 섞은 고운 가루 2/10에바(상번제의 2배)에 해당되는 소제와 전제를 아울러 드렸다. 결국 안식일 제사는 매일의 상번제(소제, 전제와 함께 드리는 번제)외에 더 드리는 것이므로, 안식일에는 평일의 약 2배의 제물을 드리는 결과가 되었다. 이는 평일의 헌신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제정한 안식일에 더욱 정성을 다하여 헌신할 것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성 경: [민28:11]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월삭(月朔)의 번제]

(주); 월삭에는 (*, 베라쉐 호드쉐켐) - 이를 직역하면 '너의 달들의 시작에'가 된다. 즉 각 달의 초하루를 가리킨다. 이 달에는 매일 드리는 상번제 외에 세 종류의 번제물이 드려졌는데, 그 번제물에는 각각의 소제와 번제가 첨가되었다(11-14절). 그런데 '수 송아지(bullock)의 번제물'에는 기름 섞은 고운가루 3/10에바(Ephah)의 소제와 포도주 1/2힌(Hin)의 전제를 드렸다. 또한 '수양(ram)의 번제물'에는 기름 섞은 고운가루 2/10에바의 소제와 포도주 1/3힌 전제를, 그리고 '어린양(lamb)의 번제물'에는 기름 섞은 고운가루 1/10에바의 소제와 포도주 1/4힌의 전제를 각각 드렸다. 즉 소제와 전제의 양(量)은, '제물의 등급에 비례하여' 드려졌다.

성 경: [민28:15]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월삭(月朔)의 번제]

(주);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 월삭 때에 속죄제가 필요했던 것은 지난달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후, 번제를 통해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달에의 삶이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되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사실 지난 날의 죄가 해결되지 않은 채 번제로서 새로운 달에의 헌신을 다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사 1:10-17).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제하고자 하는자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죄 문제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요일 1:6-9). 이런 의미에서 제사 절차상 항상, 속죄제는 번제보다 앞서 드려졌다. 한편 '속죄제'에 대해서는 <레 4:1-12 강해, 속죄제에 대하여>를 참조하라.

성 경: [민28:16]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유월절 제사]

(주); 정월 십 사 일...유월절 - '유월절' (*, 페사흐)은 출애굽의 기쁨과 해방을 제공하신 하나님의 영광스런 경륜을 기념하는 절기로서<출 12:1-4>, 구속사(Heilsgeschichte)의 전형을 이루는 날이다. 그러나 이 날에는 특별한 제사를 드리지는 않았으며, 단지 가족 전구성원이 함께 모여 '어린 양 식사'를 하는 관례만 있었다. 한편'유월절'이란 말은 종종 '무교절' 이란 말과 별 구분없이 사용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두 절기가 한 주간 안에 동시에 치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월절의 음식 자체가 무교병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이 두 절기를 구분할 이유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즉 '출애굽'이란 한 사건을 중심으로 유월절은 초태생의 죽음을 강조하는 절기로, 무교절은 애굽으로 부터의 해방을 강조하는 절기로 지켜졌기 때문에, 이 두 절기는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히 구분하자면, 유월절은 정월(아빕 월) 14일 저녁 하룻밤만의 어린양 식사 의식을 말하고, 무교절은 정월(아빕 월) 5일로부터 한 주간 동안 지켜지는 무교병 축제 의식을 말한다.

성 경: [민28:17]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유월절 제사]

(주); 십 오 일부터...칠 일 동안 - 무교절은 정월 15일부터 21일까지 7일간 지켜졌다<출12:15-17). 이 절기 중 첫 날과 마지막 날에는 (18, 25절) 성회(聖灰)로 지켜졌고 일체의 노동이 금지되었다.

(주); 절일(*, 하그) - '돌다', '축하하다', '지키다'는 뜻의 '하가그'(*)에서 유래한 말로 거룩한 절기를 가리킨다. 사실 무교절(無敎節)은 이스라엘이 핍박 받던 땅 애굽에서 급히 나와야 했던 당시의 고통과 새로 거듭난 존재로서의 변화를 기념하는 거룩한 절기이다(출 12:15-20). 그러므로 이 기간 동안에는 그러한 의미를 상징하는 누룩없는 무교병(無敎餠)을 먹어야 했으며<레23:6 주석 참조>, 집안 내부에 있는 모든 누룩을 제거해야 했다. 여기서 '누룩'은 죄와 부패의 상징으로서(레 2:11; 고전5:7, 8),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에 철저히 배치되는 물질로 간주되었다. 출 13:7 주석 참조.

성 경: [민28:18]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유월절 제사]

(주); 성회(*, 미크라 코데쉬) - 직역하면 '거룩한 회집(총회)'(NIV, sacredassembly)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념일로 정하사 모든 다른 날에서부터 특별히 구별하신 날이다. 따라서 이 날은 생계를 위한 육체 노동이 금지되었다<출 12:16;레 23:7, 8>. 한편 이 날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 사역을 기념키 위해 제정하신 '안식일'과는 그 기원을 달리하지만, 모든 인간적인 일로부터 해방되어 거룩히 하나님의 영광만을 기려야 한다는 점에 서는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실로 하나님은 당신이 특별히 구별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아니면 시간이든 모두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지기를 원하신다.

(주); 아무 노동도 하지 말것이며 - 심지어 음식을 만들기 위하여 불을 지피는 행위가 금지시킨 안식일의 노동 금지 규례와는 달리 절기 때의 노동 금지는 단지 생계를 위해 일상적으로 하는 정규적인 노동을 말한다. 레 23:7 주석 참조.

성 경: [민28:19]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유월절 제사]

(주); 흠 없는 것으로 - 비록 아무리 값나가는 짐승이라 하더라도 상처나 결점이 있는 것은 제물로 사용될 수 없었다. 이는 온전한 희생과 헌신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서나 '흠 없는 것'은 곧 죄와는 무관하셔서(히 4:15;요일 3:5) 순결한 상태로 십자가의 희생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레 1:3 주석 참조.

성 경: [민28:20]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유월절 제사]

(주); 드리고(*, 타아수) - '일하다', '수행하다'란 뜻의 '아사'에서 유래한 말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준비하고 그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상태를 나타낸다.

성 경: [민28:22]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유월절 제사]

(주); 수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 구원의 감격과 해방의 기쁨을 기념하는 무교절 제사에서도 월삭 때와 같이(15절) 죄의 고백과 사함을 상징하는 속죄제틀 드려야 했다. 이것은 속죄제를 통한 죄사함 위에서 비로소 참된 기쁨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성 경: [민28:23]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유월절 제사]

(주); 아침의 번제...외에 - 매일 드리는'상번제'는 한날의 아침과 저녁에 제사가 드려졌다(4절). 그런데 이처럼 매일 조석(朝夕)으로 드려지는 상번제 외에 각종 절기 때드려야 하는 희생제물은 아침에 드리는 상번제 후에 추가하여 드려야 했다.

성 경: [민28:24]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유월절 제사]

(주); 이 순서대로 칠 일 동안 매일 - 무교절기간 동안에는 다른 날보다 더 많은 양의 제물을 드려야 했다(19-23절). 즉 매일 드리는 상번제 외에 월삭이나 칠칠절 때와 같은양의 제물을 더 드려야 했다. 왜냐하면 이 절기는 구원 사역과 새로운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 감사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많은 양의 제물이 매일 드려진다 하더라도,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이 정하신 절차에 따라 차분히 각종 제물을 드려야 했다. 사실 제사에 임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양의 제물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 순종 의식이다(삼상 15:22).

성 경: [민28:25]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유월절 제사]

무교절 기간 (1월 15일-1월 21일) 중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체 성회(聖會)로 모여야할 날은 절기 첫날(15일)과 마지막 날(21일)이었다. 이 날은 일상적인 모든 노동이 금지되었으며, 오직 그 절기의 의미 및 교훈을 깊이 되새기는 날로 삼아야 했다. 18절 주석을 참조 하라.

성 경: [민28:26]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칠칠절 제사]

(주);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 - 이 절기(칠칠절)는 밀의 첫 소출을 하나님께 바치는 맥추절(출 23:16) 또는 맥추의 초실절(출 34:22)로서, 보리 수확의 첫 열매를 바치는 초실절(레 23:9-14)로 부터 50일만에 맞이하는 날이다. 실제로 이 날은 보리의 첫 수확날로부터 밀 수확을 시작하는 날까지의 약 7주간과 연관을 가진 절기로써 곧 그동안의 추수를 감사하는 절기인 것이다<레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

(주);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 무교절 중 첫 소산을 드린 날로부터 세어서 제 7 안식일(7 7)의 다음날 백성들은 새로 수확한 밀의 가루로 만든 떡 두 덩이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이를 가리켜 '세 소재'라 한다<레 23:16>. 그리고 이 '새 소제'는 고운 가루 2/10에바에 누룩을 넣어 구운 것이었다. 레 23:16, 17 주석 참조.

성 경: [민28:27, 28, 29]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칠칠절 제사]

이 부분에는 칠칠절(七七節)에 드리게 될 번제와 소제의 예물에 대해 설명되어 있다. 여기서 칠칠절 제사가 예표하는 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무교절 기간 중 안식일(성회) 후 첫날에 곡물의 첫 소산을 헌상한 것은 안식일 후 첫 날, 곧 신약의 주일(主日)에 이뤄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한다(요 20:17;고전 15:20). 그리고 무교절 기간에 첫 소산을 드린 날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새 소제'를 드린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모든 성도들의 중생과 부활을 예표한다(고전 15:22-26). 또한 이때 드려지는 번제는 성도의 온전한 충성과 헌신을, 속죄제는 그리스도와 교제하고자 하는 자에게 필수적인 회개와 그리스도의 죄사유하심을 각각 예표한다. 한편 칠칠절의 제사 예물과 제사 절차는 월삭 때(11-15절)와 동일하다.

성 경: [민28:30]

주제1: [제물과 절기에 관한 규례]

주제2: [칠칠절 제사]

(주); 속하기 위하여 - 칠칠절에 번제 및 소제와 더불어 수염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리는 바로 '죄'란 사실을 암시한다(15, 22절). 즉 죄사유함을 얻은 인간에게 비로서 진정한 감사와 은혜에 대한 찬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히 13:15, 16).

성 경: [민29:1]

주제1: [7월의 절기들]

주제2: [나팔절의 규례]

(주); 칠 월에 - 7일에 걸친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근거하여성경 문학적으로 '7'이란 숫자는 완전, 거룩, 신성(神聖)의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이 숫자와 연결된 시간(시기)은 특별한 의의가 주어지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본문의 '7월'은 종교적으로 큰 의의를 지닌 달로 여겨졌으며, 하나님께서는 이달을 다른 달과 특별히 구별하셔서 세가지나 되는 큰 절기를 제정하셨다. 특히 이 '7월'(에다님 월, 왕상 8:2)은 민간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1월에 해당하는 달로서, 신년(新年)을 축하하는 기간으로서의 성격도 띠고 있다. 또한 '7월'은 추수와 파종의 중간기에 위치하였으므로,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일과 농사 일이 겹치지 않으므로 해서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있는 절호의 기간이 되었다(Scott).

(주);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 노동은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신성한 의무이다(창 3:19; 살후 3:10). 그러므로 본문의 노동 금지조항은 노동 자체를 부정하거나 정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의무(노동)보다 더 마음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있음을 가르치신 규례이다. 즉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신 날은 인간 본위의 생활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의 뜻을 기리는 데 모든 시간을 할애해야 함을 명(命)하신 것이다. 그런 점에서 RSV는 이 날을 '엄숙하게 쉬는 날'(a day of solemn rest, 레 23:24)로 번역하고 있다.

(주); 나팔을 불 날이니라 - 매년 7월 1일은 나팔을 불어 여호와의 은총과 권능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날에는 수양(ram)의 뿔로 만든 나팔을 길고 우렁차게 불었는데, 하루종일 일정한 간격으로 불었다<10:10; 레 23:23-25>. 한편 나팔은 어떤 기쁜 일이 발생했을 경우(대상 15:24; 16:6; 대하 5:12; 7:6; 스 3:10; 느 12:35,41), 하나님의 위엄과 섭리를 찬양할 때(시 98:6; 150:3). 어떤 새로운 사실을 알릴 때(출 19:16,19; 계 8:6-9:1,13), 경고를 할 경우(대하 13:12; 겔 33:3-6)등에 불었다. 그리고 후일 예수의 재림시(마 24:31)에도 불려질 것이다. 한편 백성들의 기쁨과 새로운 마음 가짐을 반영한 것이며, 아울러 여호와의 크신 영광을 찬양하는 소리로 이해할 수 있다. 레 23:24 주석 참조.

성 경: [민29:2]

주제1: [7월의 절기들]

주제2: [나팔절의 규례]

(주); 번제 - 새해 벽두에 충성과 헌신의 표인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이는 한 해 전체를 하나님께 헌신, 봉사하는 기간으로 삼겠다는 주의 백성된 자들의 아름다운 신앙 고백이다. 한편 나팔절의 번제 제물은 수송아지가 한 마리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일반 월삭 때의 번제 제물(11절)과 동일하다.

성 경: [민29:3,4]

주제1: [7월의 절기들]

주제2: [나팔절의 규례]

번제물에 덧붙여 드려져야 할 소제와 전제의 양은 번제물의 등급에 비례하여 각 절기시에 항상 동일했다. 그것은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번제물 소 제 전 제

수송아지 고운 가루 포도주

3/10 에바 1/2 힌

수 양 고운 가루 포도주

2/10 에바 1/3 힌

어 린 양 고운 가루 포도주

1/10 에바 1/4 힌

성 경: [민29:5]

주제1: [7월의 절기]

주제2: [나팔절의 규례]

(주); 속죄제를 드리되 - 새해 첫날(나팔절은 민간력으로 1월 1일)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새해를 시작하는 시간에 과거 부족했던 삶, 하나님께 불성실했던 순간을 참회하고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새로운 날들을 맞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본원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는 신앙적 행위이기도 했다(시 14:2,3; 롬 3:10). 다른 관점에서는 율법이 기능면에서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율법 아래 있는 자는 항상 죄에 대한 책무가 따르고 있음을 가르쳐 준다(롬 8:3; 히 7:19; 8:7). 따라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이루고자 하는 자는 나팔절의 속죄제 규례처럼 먼저 자신이 짊어진 죄의 짐을 해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편 신약 시대에 사는 우리는 묵은 것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일, 새로운 시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그분의 죄 사유하시는 은총과 성령의 인도하시는 역사를 덧입는 것이 필요하다(호 6:1-3; 히 10:12-25). 한편 '속죄제' 그 자체에 대한 내용은 (레 4:1-12 강해, 속죄제에 대하여> 부분을 참조하라.

성 경: [민29:6]

주제1: [7월의 절기들]

주제2: [나팔절의 규례]

(주); 나팔절(7월 1일) 때 드릴 희생 제물은 도합 세가지가 중복되었다. 즉 상번제의 희생 제물, 월삭의 희생 제물, 그리고 나팔절의 희생 제물이 그것이다. 따라서 나팔절 당일에 드린 희생 제물의 총수는 수송아지 3마리(월삭 2, 나팔절 1), 수양 2마리(월삭 1, 나팔절 1), 어린양 16마리(상번제 2, 월삭 7, 나팔절 7), 그리고 속죄제로 드린 수염소 2마리(월삭 1, 나팔절 1)였다.

성 경: [민29:7]

주제1: [7월의 절기들]

주제2: [속죄일의 규례]

(주); 칠 월 십 일에...성회로 - 7월 10일은 대속죄일(大贖罪日)로서 대제사장이 1년 1차 자신과 온 백성 및 성소의 죄를 속하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제를 드리는 날이다. 이때 백성들은 금식을 하고 회개하며(레 16:29; 23:27), 안식함으로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했다. 특히 본문에 언급된 '노동'(*, 멜레케트)이란 1, 12, 35절에 나타난 바 인간적인 일을 뜻하는 '노동'(*, 멜레케느 아보다)과는 달리 단순한 의미의 '일'까지도 포함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즉 이날에는 생계를 위한 노동은 물론 오락과 같은 육신의 유익 등 어떤 형태의 노동일지라도 모두 금지되었던 것이다<레 23:36>. 이런 절대적 노동 금지 조항은 이날 만은 오직 자신의 죄를 토해내는 회개에만 전념하게 하도록 하려는 조치이다<레 23:28,29>.

(주); 마음을 괴롭게 하고 - 여기서 '괴롭게 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니템'(*)은 '거칠게 다루다', '억누르다', '겸비하다'는 뜻의 '아나'에서 유래한 말로서, 곧 죄악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뼈저리게 자각하며 애통해 하는 참회자의 겸비한 심령과 자세를 가리킨다<레 23:27>. 또한 모든 음식물을 끊고 몸을 괴롭게 하는 금식도 위의 한 방법이다. 한편 NIV에서는 '마음을 괴롭게 하다'는 말을 '자신을 부인하다'(deny yourselves)로 번역함으로써 영적인 애통이란 점을 좀더 강조하였다. 레 16:29 주석 참조.

성 경: [민29:8-10]

주제1: [7월의 절기들]

주제2: [속죄일 규례]

속죄일에 요구된 희생 제물의 종류 및 수효는 나팔절 때와 동일했다(2-5절). 그리고 번제물에 곁들여 드려질 소제와 전제의 양도 동일했다(3,4절).

성 경: [민29:11]

주제1: [7월의 절기들]

주제2: [속죄일 규례]

(주); 속죄제와 상번제 - 여기서 속죄제는 속죄일에 '번제와 함께 드리는' 수염소 속죄제(11a절)가 이니라, 대제사장이 수송아지로 자신과 권속을 위해 속죄하고, 또한 백성을 위해 속죄하는 대속죄일의 속죄제를 의미한다<레 16:3,5,15>. 결국 대속죄일(7월 10일)에 드리는 제물은 레 16장과 이곳(8-11절)을 종합해 볼 때 다음과 같다. (1) 매일 드리는 상번제 제물과 그에 따른 소제와 전제, (2) 속죄일에 특별히 드리는 제사장과그 가족을 위한 속죄 제물(수송아지)및 백성을 위한 속죄 제물(수염소), (3) 속죄일에 드리는 번제물과 그와 더불어 드리는 수염소 속죄 제물 등이다.

성 경: [민29:12]

주제1: [7월의 절기들]

주제2: [초막절 규례]

(주); 칠 월 십 오일 - 종교력으로 7월 15일, 민간력으로 정월 보름에 해당한다. 그리고 오늘날 태양력으로는 9-10월경에 해당되는데 <레 23:26-32 강해, 히브리인들의 월력>, 이 날은 한해의 모든 추수를 마치고 수확한 모든 소출을 창고에 저장하는 즐거운 날이란 점에서 '수장절'(收藏節, the Feast of Ingathering)이라고도 한다(출 23:16).

(주); 성회...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 28:18 주석 참조.

성 경: [민29:13-16]

주제1: [7월의 절기들]

주제2: [초막절 규례]

본문은 초막절 절기 중 첫날의 제물에 대한 언급이다. 이 날에 드릴 제물은 상번제물(28:3) 외에 번제물과 속죄제물이 드려졌다. 번제물로는 수송아지 13마리, 수양(ram) 2마리, 어린 수양(lamb) 14마리를 드렸으며, 속죄제물로는 수염소(goat) 1마리를 드렸다. 그러므로 상번제물인 어린양 2마리를 합하면 모두 32마리의 짐승이 초막절 첫날에 드려진 셈이다. 이 외에 상번제의 소제와 전제가 드려졌으며 아울러 초막 절기의 전제도 곁들여졌다(1,2절 도표 참조).

(주); 다 흠 없는 것으로 - 레 1:3 주석 참조.

성 경: [민29:17-19]

주제1: [7월의 절기들]

주제2: [초막절에 드릴 제사]

초막(草幕) 절기 둘째 날에는 번제로 드려지는 수송아지가 한 마리 줄어서 12마리가 되었으며 그 외에는 첫째날과 동일했다. 결국 상번제물을 포함하여 31마리의 짐승이 드려졌다.

(주);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 즉 14, 15절에 제시죈 규례를 가리킨다(18,21,24,27,30, 33,37절).

성 경: [민29:20-31]

주제1: [7월의 절기들]

주제2: [초막절에 드릴 제사]

여기에는 초막절 기간 중 세째 날로부터 여섯째 날까지 드릴 제물의 수효가 언급되어 있다. 날이 진행될수록 번제용 수송아지의 수효가 한마리씩 줄어든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일하다. 1, 2절 주석 도표를 참조하라.

성 경: [민29:32-34]

주제1: [7월의 절기들]

주제2: [추막절에 드릴 제사]

초막절기의 일곱째 날, 즉 초막절의 제물을 마지막으로 드리는 날에는 번제물로 드려지는 제물 중 수송아지의 수가 첫날에 비해 6마리 줄어 7마리가 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희생 제물의 숫자는 첫날과 변함이 없다. 이처럼 제 7일에 수송아지의 수를 7마리가 되게 한 것은 거룩한 숫자인 '7'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초막절에 드리는 모든 제사와 제물에 대한 거룩함과 완전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절기가 계속 진행됨에 따라 수송아지의 수가 점점 줄어든 사실을 가리켜 혹자는 율법의 점진적인 퇴조(복음의 점진적인 계시)를 예시하는 진리로 받아들이기도 한다(Matthew Henry, Wordsworth). 한편 초막절 제 7일째에 드려진 짐승은 26마리이며, 그리고 7일 동안 바쳐진 모든 짐승의 숫자는 도합 203마리가 되었다.

성 경: [민29:35-38]

주제1: [7월의 절기들]

주제2: [초막절에 드릴 제사]

제 8일은 거룩한 대회(성회)로 모이는 날이다<레 23;36>. 그리고 이 성회 후에 절기동안 거했던 초막을 헐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 곧 초막절이 끝나는 날이다. 이 날에도 각종 제물이 여호와께 드려졌는데, 그 제물들은 절기를 마무리 짓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제물의 규모는 나팔절(7월 1일) 및 속죄일(7월 10일) 때와 같았다. 즉 번제물로는 수송아지 1마리와 수양 1마리, 어린양 7마리를 드렸고, 속죄제물로 수염소 1마리를 드렸다. 매일 드리는 상번제의 어린양 2마리를 합하면 이날에는 모두 12마리의 짐승을 드린 셈이 되었다. 따라서 초막절 전기간(8일간)에 드려진 제물의 총수는 215마리에 달한다. 이러한 초막절은 일년 동안 지켜지는 모든 절기 중 마지막 절기인 동시에 가장 큰 감사 절기이다. 그러므로 이 절기에는 다른 어떤 절기에서도 볼 수 없는 많은 제물을 드려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들의 기쁨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레 23:33-43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주); 거룩한 대회(*, 아체레트) - '에워싸다', '통치하다'란 뜻의 '아치드'에서 유래한 말로서, 곧 성회나 절기 등 거룩한 종교 모임을 가리킨다. 특별한 원문의 뜻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임은 하나님 중심으로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영역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는 오늘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참 교회의 전형이다(엡 1;22,23).

성 경: [민29:39]

주제1: [7울의 절기들]

주제2: [모세의 분부 이행]

(주); 이 절기를 당하거든 - 본절은 28, 29장의 결론을 이룬다. 여기서 ' 이 절기'란 원문상 '이것들'이라는 의미인데, 곧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절기 즉 상번제, 안식일에 드리는 제사, 월삭에 드리는 제사, 유월절 제사, 칠칠절 제사, 나팔절 제사, 속죄일 제사 및 초막절 제사 등을 일컫는다.

(주); 서원제나 낙헌제 외에 - 여기서 '서원제'는 하나님 앞에 거룩한 맹세를 함으로써 그분의 뜻대로 살겠다는 신앙 고백적 제사이며, '낙헌제'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구애됨 없이 하나님께 자원하는 심정으로 드리는 기쁨의 제사이다. 이 두 제사는 '감사제'와 더불어 '화목제'를 드리는 방식에 속한다(레 7:16; 22:18; 신 12:6). 그런데 본절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28,29장에 제시된 각종 제사들은 개인 또는 한 가족이 자원제나 서원제로 드리는 번제물 외에, 이스라엘 전체가 28:3-29:38 제시된 규례대로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드려지던 '화목제'는 회중을 위한 화목제보다 절차가 간단하였으며 절기 때마다 반드시 시행되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화목제를 자원하여 드리려는 개인이 있다면, 그는 절기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드릴 수 있었다(15:3,8; 레 22:18,21). 그러나 28,29장에 제시된 이스라엘 회중 전체의 제사는 그러한 개인의 화목제(서원제, 낙헌제)와는 별도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정한 기간에 드려져야 했다.

성 경: [민29:40]

주제1: [7월의 절기들]

주제2: [모세의 분부 이행]

(주); 여호와께서...명하신 모든 일 - 여호와께 드릴 많은 제사와 제물 등에 대한 계시를 전해 들은 모세는 백성에게 하나도 빠드리지 않고 전달해야 했다. 이제 백성들은 여호와의 계시 명령에 의존하여 각종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런데 비록 화려한 제사를 통해 풍부한 제물을 바친다 하더라도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치 않고 자의(自意)에 의해 행동한다면 그 제사는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실로 기뻐받으시는 것은 헌물의 양이 아니라, 바치는 자의 순종하는 마음과 정성된 헌신이기 때문이다(삼상 15:22). 한편 본절은 히브리 원문에는 30:1로 편성되어 있다<30:1>.

성 경: [민30:1]

주제1: [여자의 서원에 관한 제(諸)율법]

주제2: [서원 파약(破約) 금지]

(주); 모세가 ... 두령들에게 일러 - 개역 성경에서 본문은 모세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규례를 두령들에게만 전달한 것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히브리 원문에는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두령들에게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원문에 따라 직역하면 '모세는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했다(29:40).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 지파들의 두령들에게 이것이 여호와께서 명하신 바로 그 말씀이다 라고 말했다(30:1)'가 된다. 이것은 히브리 원문에서 보면 개역 성경 구분으로 29:40로 되어 있는 부분이 30:1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역 성경에는 본장은 모두 16절로 구성 되었으나 히브리 원문은 17절로 되어 있다. 한편 두령에 관해서는 1:4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30:2]

주제1: [여자의 서원에 관한 제(諸)율법]

주제2: [처녀의 서원 규제]

(주); 사람이 - '사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이쉬'(*)는 여자를 뜻하는 '이솨'(*)와 개념으로서 곧 남자(man)를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3-15절이 '여자'가 서원하는 경우에 대한 언급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남자에게 적응되는 규례이다. 그러나 통상 '남자'란 말은 그 속에 '여자'까지도 포함하는 말이므로, 여기서도 '누구든지'란 의미로 봄이 좋을 듯하다.

(주); 서원하였거나 - 여기서 '서원'(*, 네데르)은 일반적으로 자기 소유 (유형, 무형을 모두 포함) 가운데 어떤 것을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겠다는 적극적인 약속(vow)을 가리킨다(Keil & Delitzsch). 이러한 서원의 한 예로 자신의 전 삶을 여호와께 거룩히 구별하여 드리는 나실인의 서원이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서원은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리기로 약속한 모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맹세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주); 마음을 제어하기로 - 직역하면 '그의 영혼(마음)을 맹세로 묶기로' 라고 번역된다. 즉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모든 소욕을 절제하는 상태를 묘사한 것이다. 이는 앞의 '서원'이 무엇을 하겠다는 적극적인 개념인데 비해 '마음을 제어하는 것'은 무엇을 안하겠다는 소극적인 의미의 약속을 가리킨다(Keil & delitzsch). 그러므로 이에는 금식, 금주, 금욕 등이 포함된다. 물론 이같은 서원은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고자 하는 그릇된 동기에서 비롯되어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자발적인 신앙 표현이어야 한다.

(주); 서약하였거든 - 여기서 '서약한다'(*, 솨바 쉐부아)란 동일어를 중첩시켜 강조한 말인데, 직역하면 '맹세를 맹약하다'가 된다. 결국 이 말은 서약자가자신이 선언한 약속을 절대 변경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闡明)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 파약하지 말고 - 직역하면 '그가 맹세한 것을 깨뜨리지 말고'이다. 이 말은 서원을 불이행함으로써 그 약속한바를 헛되게 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 약속한 바를 이행치 않는 것은 하나님을 우롱하는 죄악이며, 그분에 대한 불신앙이다. 후일 다윗은 그의 시편에서 "...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시15:1- 4)라고 노래함으로써 서원 불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 입에서 나온 대로 - 하나님은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는' 자를 기뻐하신다(시 15:4). 즉 언행(言行)이 일치한 삶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받는다. 그러나 말만 앞서는 것은 하나님을 만홀(漫忽)히 여기는 죄악된 행위이다(약 2:26).

성 경: [민30:3]

주제1: [여자의 서원에 관한 제(諸)율법]

주제2: [처녀의 서원 규례]

(주); 어려서(*, 비느우레하) - 이는 '어린 시절에'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KJV, in her youth). 이 말은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처녀', '소녀', '젊은 여자'등의 뜻을 지닌 원어 ' 나아르'(*)에서 파생하였다. 따라서 뒤이어 나오는 '그 아비 집에 있을 때에'란 말과 결부시켜 본다면, 본 규례의 대상자는 아직 젊어 결혼하지 않은 처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이 처녀는 나이에 제한없이 결혼하지 않고 아버지의 집에 기거하면서 아버지의 권위 아래 있는 모든 여자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성 경: [민30:4]

주제1: [여자의 서원에 관한 제(諸)율법]

주제2: [처녀의 서원 규례]

(주); 듣고도... 아무말이 없으면 - 여기서 '듣다'란 의미는 소문에 의해서나 혹은 우연히 듣는 상태가 아니라, 서원을 한 딸로부터 직접 보고를 듣는 상태를 일컫는다. 사실 아버지는 그 가정의 총책임자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하나님 앞에서 그 가정을 대표하는 자이기에 자녀의 행동에 깊이 관여할 수 있었으며, 또한 자녀들은 자신의 일들을 아버지께 보고해야 했다. 한편 아버지가 딸의 서원 사실을 보고 받고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곧 허락으로 간주되어, 그때부터 딸은 서원한 내용을 실행할 의무를 지니게 된다. 여기서 5, 7. 8절등의 상황으로 볼 때 보고를 접한 아버지는 곧 가부(可否)를 결정해야만 했다. 만약 시간이 오래 경과한 후에는 자신의 의사를 번복한다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주); 지킬 것이니라 (*, 야쿰) - '지키다', '수행하다'란 뜻의 '쿰'에서 파생된 말로, 곧 어떤 언약을 근거로 그 약속을 신실하게 성취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성 경: [민30:5]

주제1: [여자의 서원에 관한 제(諸)율법]

주제2: [처녀의 서원 규례]

(주); 듣는 날에(*, 베욤 솨메오) - 여기서 '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욤'은 '하루'를 뜻하기도 하고 '한 시대'를 뜻하기도 하는 등 그 의미가 다양하다여기서는 '얼마 후', '잠시 동안', '그때' 등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본문은 딸의 보고를 '듣고 즉시' 내지는 '듣고 얼마 있지 않아'로 해석할 수 있다.

(주); 허락지 아니하면(*, 임 헤니) - 직역하면 '만약 좌절시켰다면', '만약 부인하였다면'이 된다. 이는 그 당시 딸에 대한 아버지의 권위가 얼마만큼 되었는지를 시사하는 문구이다. 한편 보통 서원을 할 때는 증인들 앞에서 한다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아버지의 거부권 행사에도 역시 증인이 필요했을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 누구든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대로 행치 않으면 죄가 된다. 그러나 아비의 권위 아래 있는 여자가 서원했을때, 만일 그 아비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서원의 불이행으로부터 오는 화(禍)를 면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 아비의 불허(不許)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딸의 서원을 공식 성립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하나님께서 이같은 규례를 주신 것은 부모의 권위를 세워주며, 아울러 무모한 서원을 예방하기 위한 조처였다.

성 경: [민30:6]

주제1: [여자의 서원에 관한 제(諸)율법]

주제2: [유부녀의 서원 규례]

(주); 남편을 맞을 때에 - 이를 직역하면 '그녀가 남편에게 갈(속할)때에'가 된다. 이는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권위의 주체자가 아버지에게서 남편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주); 경솔히 그 입에서 발하였다 - 원문에 따르면 그녀의 서원이 그녀에게 있거나 또는 분별없는 말(경솔한 서원)이 그녀의 입에 있는 상태에서'로 번역된다. 즉 여자가 결혼전에 서원한 것이 아직 실행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거나 또는 한때 분별없이 서원한 말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결혼하게 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 경우 서원의 이행 여부는 그녀와 공동 운명체인 남편이 결정하며, 남편의 결정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위가 부여된다. 한편 랑게(Lange)는 본문 앞의 '혹시'라는 말을 근거로 본절의 상황이 약혼은 했으나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당할 일들을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즉여자의 서원이 약혼 기간에 행해진 것이며, 그 경우에도 약혼한 남자가 그 이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견해는 시간상 좀더 포괄적인 것이긴 하나 유대 사회에서 약혼과 결혼의 법적 지위가 대동소이 했다는 점에서 앞의 견해와 별 차이가 없다.

성 경: [민30:7, 8]

주제1: [여자의 서원에 관한 제(諸)율법]

주제2: [유부녀의 서원 규례]

(주); 남편이... 듣고 - 남편은 아내에 관한 한 최고 권위자이자 동반자이기 때문에 아내의 문제에 깊이 관여할 수 있다. 특히 본절에서 처럼 남편이 아내의 서약을 '보고받는 것'은 그 아내의 서원에 책임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편, 아내의 서원 내용을 들은 남편은 마치 딸에 대한 아비의 권위와 같이(4, 5절) 아내의 서원 실행 여부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었으며, 또한 그 결정에 신적 권위가 부여되었다. 4, 5절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30:9]

주제1: [여자의 서원에 관한 제(諸)율법]

주제2: [서원 이행(履行)의 의무]

(주); 과부나 이혼당한 여자 - 이들은 아비나 남편 등 자신들의 문제를 책임져 줄 권위자가 없는 자들로서 곧 하나님 앞에서 독립적 존재이다. 따라서 이들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서원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만 했다(딤전5:5).

성 경: [민30:10, 11]

주제1: [여자의 서원에 관한 제(諸)율법]

주제2: [서원 이행(履行)의 의무]

이 부분은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가 서원한 경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즉 남편 있는 여자가 남편과 상의없이 서원할 수는 있으나, 그 이행 여부에 대해서는 남편의 결정에 전적으로 따라야 했다. 이때 남편이 그 서원한 사실을 듣고도 금하지 않으면 그 서원은 효력이 있다. 그러나 남편이 금하게 되면 그 서원은 절대적으로 무효가 된다. 이것은 딸에 대해 가지는 아비의 권한(4, 5절)과 동일하다. 오히려 어감상(語感上) 더 강조되고 있는데, 그것은 딸과 아비의 관계 보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가 더욱 공고하기 때문이다.

성 경: [민30:12]

주제1: [여자의 서원에 관한 제(諸)율법]

주제2: [서원 이행(履行)의 의무]

(주); 무효케 하면(*, 야페르) - '파괴하다', '깨뜨리다'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파라르'(*)에서 유래하였다. 결국 이 말은 자신의 아내가 자기도 모르는 중에 하나님께서 원한 것을 남편의 권위로 중간에서 깨뜨린다면, 결과적으로 그 서원한 것을 무효화시키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성 경: [민30:13]

주제1: [여자의 서원에 관한 제(諸)율법]

주제2: [서원에 대한 남편의 책임]

(주); 남편이... 할 수 있나니 - 이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고유한 권한을 제시한 것으로, 이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1) 남편은 아내의 문제에 깊히 관여할 수 있는 권위자이다. (2) 남편과 아내는 공동 운명체로서, 하나님 앞에서는 두 인격체의 대표자가 남편이다. (3) 가정의 질서와 평화는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각자의 인격과 권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정착될 수 있다.

성 경: [민30:14]

주제1: [여자의 서원에 관한 제(諸)율법]

주제2: [서원에 대한 남편의 책임]

(주); 일향 말이 없으면 - 직역하면 '(듣는) 가운데 침묵을 지키면', '(들은) 후에 말하지 않으면'이 된다. 아내의 서원 내용을 직접 보고 받고도 그 남편이 즉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침묵하면 그것은 곧 묵시적 동조로 간주되어, 아내는 즉시 그 서원을 이행해야만 했다.

성 경: [민30:15]

주제1: [여자의 서원에 관한 제(諸)율법]

주제2: [서원에 대한 남편의 책임]

(주); 들은지 얼마 후에 - 여기서 '얼마 후에'를 뜻하는 히브리어 '아하레'(*)의의 원뜻은 '지연하다', '방해하다', '오래 머무르다'로서 의지적으로 시간을 오래 지체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남편이 이렇게 시간을 경과시키는 것은 일종의 아내의 서원에 대한 묵허(默許)로 인정될 수 있다.

(주); 아내의 죄를 담당할 것 - 남편이 아내의 서원 사실을 듣고서도 얼마 기간의 시간을 침묵으로 지체한 후 나중에 갑작스레 그 서원의 무효를 선언하는 것은 아내와 하나님 사이의 서원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자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되며, 더 나아가 아내에게 서원 불이행의 죄를 짓게 하는 결과가 된다. 이때 남편은 아내의 서원 파약에 대한 죄책을 아내 대신 지고 모든 율법상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했다. 즉 남편은 어린 암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려 죄의 용서를 받아야 했다. 만약 남편이 죄책을 회피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준엄한 징계를 당하게 된다.

성 경: [민30:16]

주제1: [여자의 서원에 관한 제(諸)율법]

주제2: [서원에 대한 남편의 책임]

이 부분은 본장의 최종 결론으로 가정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 아버지와 남편의 권위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있다. 덧붙여 이 내용 속에는 권위를 부여받은 자가 지니는 책임 의식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약3:1)

성 경: [민31:1]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 섬멸 명령]

본장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먼저 '바알브올 사건'으로 그들을 타락시켜 여호와의 징계를 받게 했던(25:1-9) 미디안들을 전멸시킴으로써, 가나안 정복의 전주곡(前奏曲)을 삼은 일과 그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장면이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본장에는 미디안 공략에 관한 기록만 제시되어 있으나, 실은 이때를 전후하여 모세의 주도로 요단 동편의 땅도 점차 함락시켜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서 이스라엘을 타락시켰던 미디안 정복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은 가나안 정복전쟁의 성격이 단순한 영토확장과 노획물 수탈이 아닌, 우상 세력 축출과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성 경: [민31:2]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 섬멸 명령]

(주);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 - 이스라엘에게 우상을 숭배하도록 유혹하고, 그 결과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했던 미디안들을 가리킨다(25:1-9). 그러므로 결국 미디안들은 이스라엘의 원수이기 이전에 선민(選民) 이스라엘을 배교케 했던 하나님의 원수였다(3절).

(주); 미디안에게 갚으라 - '원수를 갚으라'는 명령은 레 19:18의 '원수를 갚지 말라'는 말씀과 상반되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의 원수란 개인적 차원에서의 원수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과 그 백성을 욕되게 한 공동체적 차원의 원수이기 때문에 두 명령에 모순이 없다. 따라서 본 명령은 결코 감정적 보복 명령이 아니라, 악인에 대한 합당한 공의의 시행 명령인 것이다. (Webster). 사실 성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 위해 존재하는 신분이란 점에서 그분의 영광과 권위를 훼손하는 자에게 적극적으로 대처함이 마땅하다. 한편 미디안을 전멸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이 단순히 이스라엘을 유혹했다는 측면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의 영육간 부패로부터 이스라엘을 거룩히 보존하시기 위한 조처이기도 했다.

(주);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 미디안을 전멸시키는 것이 모세에게 맡겨진 최후의 사명임을 시사한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당신께서 맡기신 사명을 모세가 완수하기까지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연장시키셨다는 뜻이 된다. 한편 '조상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과 더불어 영존하는 곳으로 간다는 뜻이다(창 15:15;25:8;35:29). 27:13 주석 참조.

성 경: [민31:3]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과의 교전(交戰)]

(주); 여호와의 원수 -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시고 당신의 백성 삼으신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타락시킨 미디안의 악행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은 대적 행위로 간주되었음을 시사한다. 즉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당신과 동일시(identify)하신 것이다.

성 경: [민31:4-6]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과의 교전(交戰)]

이 부분은 일찍이 주어졌고(25:16-18), 지금 다시 반복된 미디안 정벌 명령에 따라 실제로 이스라엘이 미디안과의 전투를 위해 출전(出戰) 준비를 하는 장면이다. 이때 모세는 승전에 필요한 두가지를 준비시켰다. (1)매 지파에서 공평하게 1,000명씩을 소집하여 12지파에서 도합 12,000명의 군대를 이루게 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면 누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싸울 의무와 권리가 주어짐을 시사하고 있다. (2) 제사장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와 신호나팔을 가지고 참전하게 했다. 이는 이 전쟁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것으로서 오직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뢰해야 할 것을 시사하는 명령이다<10:9>. 아울러 이 전쟁이 바로 '여호와의 전쟁'임을 암시하는 명령이다.

성 경: [민31:5]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과의 교전(交戰)]

(주); 천만 인 중에서 - '천만 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알르페'(*)는 '1000'을 나타내는 '엘레프'(*)의 복수형으로서 직역하면 '1천들'(thousands)이란 뜻이 된다. 따라서 '천만 인'이란 문자적으로 꼭 '천만 명'이 아니라 막연히 대단히 많은 숫자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1:16>. 즉 모세는 전쟁에 출정할 수 있는 매우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약 60만명, 26:51) 중 특별히 12, 000명을 선발하여 출전시킨 것이다. 이는 미디안의 군사력이 별로 강하지 않다는 점도 고려됐겠지만, 나아가 이는 인간의 군사적 능력을 의지하기 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신앙적 조처였다(시2:12;146:5).

성 경: [민31:6]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과의 교전(交戰)]

(주); 제사장... 비느하스 - 여기서 비느하스는 칼을 쓰는 장수로 참전한 것이 아니라, 성물(聖物)을 가진 제사장으로 참전하였다(10:9). 그러므로 이러한 제사장으로서의 그의 참전은 결국 이 전쟁이 단순히 영토 확장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우상숭배자들을 척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거룩한 목적이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제사장 비느하스는 바알브올 사건 때 잘 보여진 바(25:7-13) 결코 불의를 용납치 않는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로서<25:7> 거룩한 전쟁에 함께 출전할 수 있는 최적격자였다.

(주); 성소의 기구와 신호나팔 - 히브리 원문에 따라 직역하면 '성소의 기구들과 소리낼 수 있는 나팔들'이다. 그러나 한글 개역 성경에는 단 복수 구별없이 모두 단수로 번역하였다. 반면에 공동번역은 '거룩한 기구들과 군호를 알리는 나팔'로 비교적 자세히 번역하였다. KJV도 공동 번역과 이해를 같이 한다. NIV 및 RSV도 '성소의 기구들과 정보 나팔'(RSV, vessels df the sanctuary and the trumpets for the alarm)로 번역함으로써 동일한 입장을 취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번역들에서는 '거룩한 기구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나타내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Living Bible은 '법궤와 나팔들'(the Ark, with trumpets)로 번역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흔적이 보인다. 이러한 견해에 동조하는 몇몇 학자들은 전쟁시 법궤가 종종 함께 나갔다는 후대의 사실에 근거하여(수 6:4-16) 여기 '성소의 기구들'을 '법궤'로 해석하여 전쟁터에 법궤를 옮긴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법궤는 하나이므로 복수로 언급된 원문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카일(Keil)은 '그리고'(and)를 뜻하는 원문의 히브리어 접속사 '와우'(*)를 설명적 접속사로서 이해하여 본문을 '성소의 기구들 곧 소리낼수 있는 나팔들'이라 번역하였다(Keil & Delitzsch, Vol. - . p. 225). 이 견해를 따른다면 비느하스가 전쟁터에 들고 나간 것은 '나팔들'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10:9). 사실 접속사 '와우'는 '그리고, 그러나, 즉, 곧, 왜냐하면' 등의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이에 반하여 혹자는 이를 '우림과 둠밈'(27:21 주석 참조)으로 보기도 하나(Wycliffe, the Targum of Palestine), 이것은 합당치 않다. 왜냐하면 '우림과 둠밈'은 대제사장의 복장에 고유하게 부착된 것이기 때문이다(출 28:30). 한편 전쟁에 대제사장이 출전치 않은 것은 대제사장은 시체에 의해 결코 더럽혀져서는 안되었기 때문이다. (레 21:10-12).

성 경: [민31:7]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 정복]

(주); 그 남자를 죽였고 - 본문에 기록된 바 살해된 '남자'들은 미디안의 모든 남자들이라기 보다 성인 남자이거나(Keil) 혹은 전쟁에 참여한 남자만을 가리킨다. 그리고 17절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사로잡힌 모든 남자(나이불문)들도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후대에 나타나는 미디안 남자들은 이 당시 사로잡히지 않은 남자들과 그 후손들로 보아야 한다(삿 7:14). 실제 미디안 족속들은 일정하게 한 곳에만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널리 퍼져 살았다는 사실은<창 25:4;출 2:15> 위의 견해를 확실히 뒷받침해 준다. 그런데 여기서 놓쳐선 안 될 사실은 이스라엘이 위와 같이 미디안을 패퇴시키기는 했으나 철저히 멸절시키지 못함으로써(15절), 훗날 다시 세력을 규합한 미디안 족속에 의해 엄청난 시련을 당해야만 했다는 점이다. (삿 6-8장). 이처럼 죄악된 존재를 철저히 근절하지 않으면 언제가 그 죄악으로 인해 큰 화(禍)를 당하게 된다(히 12:15).

성 경: [민31:8]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 정복]

(주); 미디안의 다섯 왕 - 여기서 미디안의 '왕'들은 본래 미디안 족속 중 막강한 세력을 지녔었으나 아모리 왕 시혼에게 정복당함으로써 그 세력이 약화되어 결국 시혼의 봉신(封臣)이 된 자들을 말한다<수 13:21, 22>. 그러므로 이들에 대해 수 13:21에서는 시혼의 '방백'으로 언급하였다. 이같은 점으로 미뤄볼 때 여기서 살해된 미디안의 다섯왕들은 시혼의 지배 아래 있었으나, 독립된 행정 체계로 각각의 도시들을 다스리는 도시 국사의 군주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왕'을 뜻하는 히브리어 '멜레크'(*)가 '다스리다', '통치하다'는 뜻의 '말라크'에서 나온 말로서, 일국의 왕 뿐 아니라 단순히 한 지역을 다스리는 방백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에서 확실시 된다. 그런데 여기서 미디안의 다섯 왕 이름이 낱낱이 기록된 것은 미디안을 섬멸한것이 역사적 사실이란 점과 그들을 섬멸한 이스라엘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가를 시사한다. 한편 미디안 왕들 중 '수르'(그스비의 아비, 25:15)와 '후르'는 수 13:21에서 '술'과 '훌'로 각각 나타난다.

(주);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 물질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켰던(25:1-3) 발람의 최후는 비참하게 끝났다(약 1:15). 즉 그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고도(23, 24장) 물욕에 눈이 어두워(유 1:11)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사악한 꾀를 제공함으로써(16절;계2:14) 끝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한편, 그런데 발람이 당시 미디안 족속들 중에 거하게 된 사실에 대해서는 24:25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31:9]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 정복]

(주); 미디안의 부녀들과 그 아이들을 사로잡고 - 미디안에 대한 이스라엘의 완전한 승리를 보여주는 구절이다. 그런데 모세는 미디안의 부녀들과 아이들을 단순히 포획한 데 대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명복으로 크게 노를 발하였다(14절). 따라서 결국 포로 중 남자와 동침한 경험이 있는 여자 및 사내 아이들을 모두 죽이게 했다(17절). 거듭 말하거니와 이러한 조치는 단순한 의미의 잔인한 살육이 아니라, 우상(사단)의 세력에 대한 단호한 척결 의지를 생생히 구체화 시킨 공의의 실현인 것이다.

성 경: [민31:10]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 정복]

(주); 성읍들과 촌락을 다 불사르고 - 당시 이스라엘은 미디안을 복수함에 있어서 초토화(焦土化)정책을 썼다. 그 까닭은 미디안이 전날 우상 숭배로 이스라엘을 타락시킨 허물때문이기도 했으나, 무엇보다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죄악(우상)의 오염으로부터 자신들을 철저히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미디안들이 살고 있던 '성읍들과 촌락'(NIV, towns and tent camps)중 '성읍들'(*, 이르)은 원래 모압 족속의 성읍이었으나 후에 이곳을 점령한 아모리 족속의 수중에 들어갔다(Keil).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이곳을 점령할 당시에는 미디안인들이 아모리 시혼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었던 때였다<수 13:21, 22>.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에 앞서 이곳을 강점함으로써 가나안 정복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후에 이곳은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되었다(32:37).

성 경: [민31:11, 12]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 정복]

(주); 탈취한 것(*, 솰랄) - 이는 상대를 억압하고 강제로 빼앗은 재물들을 가리킨다.

(주); 노략한 것(*, 말코아흐) - 전리품 중 주로 가축 종류를 지칭한다.

(주); 사로잡은 자(*, 쉐비) - 원문의 뜻은 '포로로 잡혀 이송된 자'인데 여기서는 이스라엘 군대가 사로 잡아 온 미디안 여자들과 아이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상은 미디안에 대한 이스라엘의 확실한 승리를 생생히 보여 주는 물적 증거들이다.

성 경: [민31:13]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 재섬멸 명령]

(주); 회중의 족장 - 여기서 '족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시'(*)는 '존경하다', '떠받치다'는 뜻의 '나사'에서 파생된 말로서 곧 각 지파의 존경받는 방백이나 지도자를 가리킨다.

성 경: [민31:14]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 재섬멸 명령]

(주); 모세가 노하니라 - 여기서 '노하다'의 원어 '콰차프'(*)는 '짝 갈라지다', '분노로 격동하다'란 뜻으로, 모세가 몹시 격노한 상태를 묘사한 말이다. 그런데 이처럼 모세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자들을 향하여 심하게 분노했던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실행치 않았기 때문이다. 즉 미디안은 사사로운 적대국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백성의 명예를 짓밟은 자들인 만큼 철두철미 괴멸되어야 했으나, 이스라엘 전사들이 관용 정책을 베품으로써 그 족속의 혈통을 이을 자들을 남겨 두었던 것이다(15절). 이처럼 큰 승리로 인한 인간적 만족감과 약자에 대한 저급한 동정심보다, 하나님의 뜻에 불응한 죄악을 더욱 크게 생각하고 분노했던 모세의 태도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분노심으로 분노한 거룩한 분노로서(25:11),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자세이다(행 4:19, 20).

(주); 군대의 장관 (*, 폐쿠데 헤하일) - 이는 '군대의 장교들'을 가리킨다. 여기서 '장교들'을 뜻하는 히브리어 '페쿠데'는 원래 '지명을 받은 자들'이란 의미를 지니는데, 구체적으로 이들은 곧이어 나오는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 이미 각기 일정 규모의 지휘관으로 지명되어 임명받았던 것이다.

(주); 천부장들과 백부장들 - 출 18:21 및 신 1:15 주석 참조.

성 경: [민31:15]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 재섬멸 명령]

(주); 여자들을 다 살려 두었느냐 - 군대장관들에 대한 모세의 책망 이유다. 즉 바알브올 사건을 '고스비 사건'(25:18)이라 칭한 사실에서도 보여지듯(고스비는 미디안 두령의 딸, 25:15), 미디안 여인들은 모압 여인들과 합작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여 우상 숭배의 죄를 짓도록 유도했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군사들은 마땅히 과거 쓰라린 죄악에 대한 단절 의지로써 과감히 '미디안인들을(남김없이) 치라'(25:17)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했어야 옳았다.

성 경: [민31:16]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 재섬멸 명령]

(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 이스라엘이 싯딤에서 저지른 음행과 우상숭배(25:1-3)는 전적으로 발람의 꾀에 따른 결과였으며, 아울러 발람의 그러한 사악한 계획이 성취될 수 있었던 것은 미디안 여자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활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므로 결국 본절은 미디안들이 모두 멸절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 것이다.

(주); 범죄하여(*, 리메사를 마알) - 원래 의미는 '은밀하게 행동하다', '배반하다'는 뜻으로 곧 믿음이 없고 마음이 약한 자들을 음밀히 꾀어 배도(背道)하게 하고 타락시킨 것을 가리킨다. 이는 미디안 여인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육체적으로 유혹한 뒤 자연스럽게 바알 숭배로 인도한 사실을 가리킨다<25:1-3>.

성 경: [민31:17]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 재섬멸 명령]

(주); 아이들 중에 남자는 다 죽이고 - 사리를 분별할 줄 모르는 젖먹이일지라도 사내 아이면 모두 죽이도록 한 것은 미디안 족속을 완전히 말살시키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죄악(우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다.

(주); 사내를 안 여자는 다 죽이고 - 이는 음란한 우상숭배에 연루(連累)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여자들을 모두 멸절시킴으로써 더 이상의 죄악이 결코 이스라엘에 침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 혹시 그들 중에 미디안 혈통을 이을 사내를 임신한 여자가 있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성 경: [민31:18]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미디안 재섬멸 명령]

(주); 너희를 위하여 살려둘 것 - 모세는 음란한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치 않은 정결한 미디안 처녀들은 살려 두어 이스라엘 중에 더불어 살게 했다. 그것은 처녀들만으로는 결코 한 민족을 구성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Keil). 한편 그 처녀들은 주로 몸종이나 하인 또는 주인의 첩으로서 이스라엘 내에 거주했을 것이다(신 21:10-14;삿 21:10-14). 이같은 조처는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을 또한 반영한다(합 3:2).

성 경: [민31:19]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군인들을 위한 정결 의식]

(주); 칠 일 동안 진 밖에 - 악성 질병에 걸렸거나 시체와의 접촉으로 인해 정결 의식법상 부정케 되었을 경우 그 자는 그 부패성으로 인해 7일간 부정했으며, 따라서 그 기간동안 백성들이 사는 진에서 격리되어야 했다<12:15;19:11>.

(주); 제 삼 일과 제 칠 일에 - 시체와 접촉한 자들에게 지시된 참회와 구원을 상징하는 두 번의 정결 의식 기간이다. 자세한 내용은 19:12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31:20]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군인들을 위한 정결 의식]

전투에 참전한 사람 뿐 아니라 전장(戰場)에 참여함으로써 살인과 시체의 부패에 오염된 모든 기구(*, 켈리)들도 정결케 해야했다<19:1-9, 14-19>.

성 경: [민31:21]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군인들을 위한 정결 의식]

(주); 여호와께서 명하신 법률 - 이것은 모세가 이미 19장에서 정결케 하는 의식(儀式)으로 받은 법(law)을 가리킨다. 특히 여기서 '법률'을 뜻하는 히브리어 '후카트 하토라'(*)는 '하나님의 법이 성문화(成文化)되어 기록된 법으로서 영원히 존재하는 규례'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는 모세에게 주어진 성문화된 규례가 여기서는 단지 적용되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으로 보아 그 당시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그 즉시 문자로 기록해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본서를 비롯한 모세 오경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다.

성 경: [민31:22]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군인들을 위한 정결 의식]

(주); 상납(*, 베딜) - 주석(朱錫, Sn;KJV, tin)을 가리킨다.

성 경: [민31:23]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군인들을 위한 정결 의식]

(주); 불을 지나게 하라 - 불은 소멸시키는 성질이 있는 것으로서 곧 불에 녹지 않는 금(gold), 은(silver), 동(bronze), 철(iron), 상납(tin), 납(lead) 등과 같은 물건을 불에 통과시키도록 한 것은 곧 죄로 더러워진 기물(器物)을 의식적으로 정결케 하는 상징적 행위라 할 수 있다(겔 22:20;슥 13:9;말 3:2).

(주); 오히려 정결케 하는 물로 - 여기서 '오히려'를 뜻하는 히브리어 '아크'(*)는 '그러나', '오직', '확실히', ' 외에' 등 다양한 의미가 있다. 본문에서는 '그 방법 외에', 또는 공동 번역에서처럼 ' 그렇지만 다시'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문맥에 부합된다. 그러므로 불 속을 통과해도 상하지 않는 모든 금속은 일단 불에 의해 정결케 한 다음 그와 더불어 반드시 붉은 암송아지를 태워 만든 재(재)를 섞은 물인 '정결케 하는 물'<19:9>로 깨끗케 해야만 했다. 이는 피 흘림이 없이는(붉은 암송아지의 재 속에는 이미 피를 포함함) 사함이 없다는 속죄의 대원칙에 따른 것이다(히 9:22) 한편 불을 통과할 수 없는 것들은 단지 정결케 하는 물을 뿌려 깨끗케 할 수 있었다. <19:18>. '정결케 하는 물'에 대해서는 19:9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31:24]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군인들을 위한 정결 의식]

(주); 제 칠 일에 옷을 빨아서 - 진(陣)밖에 머무르는 마지막 날 곧 제 칠 일에 옷을 빠는 것은 의식상 부정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깨끗한 존재가 되었음을 공식 선언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19:19>. 그러므로 이 의식(儀式)을 치른 후에야 비로소 정결한 자로 간주되어 이스라엘 진 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레 11:25;13:6;14:9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31:25-47]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전리품 분배 명령]

여기서는 미디안 족속을 무찌르고 노획한 전리품을 계수하여 각자의 공헌도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분배하는 내용과 분배된 전리품에서 얼마씩을 떼어 여호와께 헌상하는 내용이 언급되었다.

성 경: [민31:26]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전리품 분배 명령]

(주); 탈취한 사람과 짐승 - 여기서 '사람'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순수한 처녀들(18절)을 말하는데, 이들은 당시 몸종으로써의 상당한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짐승'(*, 베헤마)은 주로 네발 달린 큰 짐승, 곧 가축을 말하는데, 이것들 역시 젖과 고기의 공급, 농경 일, 수송 수단 등으로 매우 유용한 것들이었다.

성 경: [민31:27]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전리품 분배 명령]

(주); 절반은 회중에게 - 노획한 전리품은 참전 군인들에게 뿐 아니라, 참전치 않은 회중들에게도 분배되었다. 이는 이스라엘이 선민으로서 하나의 공동 운명체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래는 이 사건 이후에도 전투자와 비전투자 사이에 적용되었다(수 22:8;삼상 30:24, 25). 사실 이번 전쟁은 단지 12, 000명의 군사들만 수행한 것이 아니라, 후방에서 그들을 물심 양면으로 도운 일반 백성들도 함께 참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이번 전쟁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수행하는 것이었으므로 전민족의 일체감이 필요했다. 노획물을 백성 모두에게 돌아가게 한 것은 또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신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을 함께 찬양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실로 하나님이 베푸신 승리와 은혜를 더불어 나눌 때 그 기쁨은 배가(倍加)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 경: [민31:28, 29]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전리품 분배 명령]

(주); 오백분지 일을 여호와께 - 전리품 중 절반은 참전 군인들에게 돌아갔는데, 그 군인들의 몫 가운데 1/500을 모두 한꺼번에 취하여 여호와께 감사의 예물로 드리게 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이는 (1) 이번 승리의 영광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리고 그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며 (2) 승리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행동으로 신앙 고백하는 행위였다. 특별히 이것을 하나님께 헌상할 때 '거제'로 드리게 한 것은(거제에 대해서는 레 7:32 주석 참조), 거제로 드려진 모든 예물은 다시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가는 규례 때문이었다(18:28-30). 한편 여기서 '포로'(사람)를 '거제'로 드릴 때는 아마도 그 포로의 가치에 상응하는 거제물을 바쳤던 것 같다<8:11, 13>.

성 경: [민31:30]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전리품 분배 명령]

(주); 오십분지 일을... 레위인에게 - 전쟁에 참여치 않고도 전리품을 나눠받은 일반 회중들은 자신들의 몫 중 1/50(2%)을 우선 떼어서 자신들을 대표하여 성막 봉사를 하던 레위인에게(1:53, 54)주어야 했다. 이는 승리의 주체자이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규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와 좋은 것을 함께 나누도록 한 아름다운 친교에의 명령이었다(갈 6:6).

성 경: [민31:32, 33, 34, 35]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전리품의 총계]

(주); 군인들의 다른 탈취물 - 이는 32-47절에 소개된 양, 소, 나귀, 정결한 여자 등의 전리품 외에 군인들이 각자 자신들을 위해 노략한 보석이나 금 패물 등을 가리킨다(53절). 한편 그들이 획득한 전리품은 양 67만 5천, 소 7만 2천, 나귀 6만 1천 마리로서 도합 80만 8천마리의 각종 가축들이며, 또 3만 2천 명의 정결한 여자들이었다. 사실 당시 미디안 족속이 가축떼를 많이 보유하고 있었던 유목 민족이라는 점을 보유하고 있었던 노획물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Keil). 그리고 이와 더불어 50절에 언급된 개개 군인의 금 패물을 합치면 전리품은 실로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많은 노획물 및 그 구체적인 목록은 곧 이번 전쟁이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사 이스라엘에게 확실한 승리를 허락하셨던 기념비적이며, 사실적인 사건임을 강조한다.

성 경: [민31:36-47]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전리품의 총계]

여기서는 전리품이 각각에게 배당된 내용과 그 분배된 물량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었다. 이와같이 상세한 부분까지 긴 지면을 할애하여 구체적으로 반복 기록한 것은 이 전리품 획득이 역사성을 지닌 사건임을 알리고, 또 그 물품들을 통해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낱낱이 기억하고자 함이다.

성 경: [민31:37]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전리품의 총계]

(주); 세(稅)(*, 메케스) - '낱낱이 세다'란 의미에서 나온 말로 곧 인구 조사에 근거한 과세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 속에는 합리적이며 공평하고 정확한 전리품 헌상(獻上)이 이루어졌음을 암시한다.

성 경: [민31:41]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전리품의 총계]

(주); 거제의 세(稅) - 거제로 드린 예물을 가리킨다(29절). 이는 이미 계시된 제사장의 몫, 곧 참전한 군인들이 취한 전리품 중 1/500에 해당되는 몫을 가리킨다. 이 예물은 하나님께 거제로 헌상되었다가 다시 제사장 엘르아살의 몫이 되었다(출 29:27, 28;레 7:14, 32).

성 경: [민31:47]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전리품 분배 내역]

(주); 장막을 맡은 - 여기서 '맡은'에 해당하는 원어 '쇼메레'(*)는 '둘레에 울타리를 치다', '지키다', '수종들다'는 뜻의 '솨마르'에서 유래한 말이다. 따라서 '장막을 맡다'란 말은 장막을 보호하며 장막 안팎에서 진행되는 각종 일에 수종드는 것을 가리킨다(1:53;3:6, 7).

성 경: [민31:48-54]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군대 장관들의 지원 예물]

이 부분은 금번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사는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발생치 않았던 기적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군대 장관(14절)들과 참전한 군인들 각자가 하나님께 감사 제물로 바치는 장면이 기록되었다.

성 경: [민31:49]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군대 장관들의 자원 예물]

(주); 당신의 종들 계수한즉 - 원문에 따라 직역하면 '당신의 종들(천부장과 백부장들)이 우리와 함께 전장(戰場)에 있었던 자들의 머리들을 들었다(세었다)'가 된다. 즉 지휘관들이 휘하의 참전 군사들의 수효를 일일이, 정확하게 계산하였음을 밝히는 구절이다.

(주); 축나지(*, 니프카드) - 이는 '놓치다', '모자라다' 등의 뜻인 '파카드'에서 유래한 말로서, 여기서는 전장에서 전사한 사람들을 두고 한말이다. 적군이 전멸한 전투 중에 이스라엘 병사가 한 명도 전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 하나님이 그들과 더불어 계셨으며, 그들의 방패가 되어 주셨다는 확실한 증거이다(시 33:20;62:107). 사실 실제적으로도 대대로 유목민족인 미디안의 전투력은 별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여호와의 전투 명령(25:16-18)과 모세의 시행(31:6) 사이에는 얼마 동안의 시간차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번 미디안 공략은 분명 불의의 습격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편, 카일(Keil)은 포로로 잡힌 미디안 부족의 인원을 13만-15만명 사이로 보고, 그 중 전투력이 있는 남자를 대략 35, 000명 정도로 추정했다(Keil & Delitzsch, Vol. - . p. 230).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바알브올 사건에 대한 이스라엘 군사들의 보복 심리 및 불의의 기습 공략,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크게 작용하여 이스라엘이 전사자가 한 명 없는 완벽한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 경: [민31:50]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군대 장관들의 자원 예물]

(주); 금 패물(*, 켈리 자하브) - 이는 '금으로 만든 그릇 및 세공품들'을 가리킨다. 개역 성경에는 '금 패물'이란 단어 뒤에 '곧'이라는 부사가 병행됨으로써, 뒤에 나오는 발목고리 등 여러 전리품이 금 패물 속에 포함되는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금 패물은 분명히 이것들과 구별된다. 여기서 '금패물'은 뒤따르는 '금 세공품'(RSV, articles of gold), 즉 금으로 만든 그릇, 악기, 방패 등의 장식품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주); 발목고리, 손목고리 - 다른 말로는 '발장식품', '팔찌'(삼하 1:10)라 할 수 있다.

(주); 인장반지 - 손가락에 끼는 반지(ring)인데, 그 반지에는 독특한 문양이 새겨져 있어 도장의 기능까지 한다.

(주); 팔고리 - 혹자는 이를 목에 다는 치장, 곧 목걸이로 보기도 한다(Keil).

(주);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려고 - 직역하면 '여호와 앞에서 우리 자신들을 속(贖)하기 위하여'가 된다. 한편 '속죄하다'는 뜻의 원어 '카파르'(*)는 원래 '죄를 덮다', '용서하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어떤 특별한 죄에 대한 사유(赦宥)가 아니라, 생명을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속전(贖錢)을 드려 그 은혜를 감사하는 것이다. 즉 속전으로 드리는 금 패물을 전장(戰場)에서 죽지 않고 살아온 생명 대신 바치는 제물이었다.

성 경: [민31:52]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군대 장관들의 자원 예물]

(주); 거제의 금 - 여기서 '거제'로 번역된 원어 '테루마'(*)는 41절의 '거제'와 동일한 단어이다. 그러나 KJV는 41절을 '거제'(heave offering)로 번역한 반면, 본절은 '하나님께 들어 바친 제물'(the offering that they offering up to the Lord)이라 번역하였다. 즉 41절은 제사의 한 양식(樣式)으로서의 거제인 반면, 본절의 거제란 천부장과 백부장이 하나님께 제물을 바친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본절은 여호와께 들어 바쳤다는 의미로서, 바친 사실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거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레 7:32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드린 금은 도합 '1만 6천 7백 5십 세겔'(약 191Kg)이나되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이러한 많은 분량의 노획 가능성은 당시 고대 근동의 민족, 특히 미디안 족속들은 그 기호(嗜好)상 은 금 패물과 같은 각종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기를 즐겨하는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 된다(Keil).

성 경: [민31:53]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군대 장관들의 자원 예물]

(주); 자기를 위하여 탈취한 것 - 공적인 전리품(사람 및 가축)외에 군인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물건을 탈취한 사실이 처음 언급되었다. 아마 이러한 물건들은 위험을 무릅쓴 자들에 대한 응분의 보상으로 간주되어, 전리품 분배에 있어서 제외시킨 것으로 보인다.

성 경: [민31:54]

주제1: [미디안을 섬멸하다]

주제2: [군대 장관들의 자원 예물]

(주); 금을... 회막에 들여서 - 본래 모든 속전(贖錢)은 회막 봉사를 위해서만 사용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전은 성전 보물 창고에 보관시켰다<출 30:15, 16>.

(주); 기념을 삼았더라 - 즉 '이스라엘에게 항상 긍휼과 사랑을 베풀어 주십시요'라는 기원을 담은 물건으로 바쳐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기념물에 담긴 이스라엘의 정성어린 마음을 보시고 지속적으로 그들을 사랑할 것이며, 이스라엘은 그 헌상한 물건들을 통해 자신들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로 살아가는 존재들임을 늘 깨닫게 될 것이다.

성 경: [민32:1-5]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르우벤과 갓 지파의 요청]

이스라엘은 요단 동편(Trans-Jo-rdan) 땅을 정복함으로써 가나안 정복의 일보를 내디뎠다.(21:10-35;31:1-12)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중에 정복된 요단 동편에 안주하려는 지파가 생겨났다. 즉 르우벤과 갓 지파가 이곳이 자신들의 가축을 방목(放牧)하기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요단 동편 땅에 머물기를 요구했던 것이다. 본문은 바로 그러한 장면이 기록되었다.

성 경: [민32:1]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르우벤과 갓 지파의 요청]

(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 - 르우벤은 야곱의 장남이며, 갓은 레아의 몸종 실바의 첫아들로서 야곱에게는 일곱째 아들이었다(창 29:32;30:11). 이 두 지파는 시므온 지파와 더불어 같은 진기(陣旗)에 속한 지파였다.

(주); 심히 많은 가축의 떼 - 이 가축들은 출애굽 당시에 끌고 나온 것들도 있겠으나(20:19), 대부분 정복 전쟁 중 탈취했던 것으로 보인다(31:9).

(주); 야셀 땅과 길르앗 땅 - 이곳은 요단 강과 그 지류인 야르묵 강, 얍복 강, 아르논강 사이에 위치한 땅으로서 목축에 매우 적합한 지역이다(창 31:21;신 3:12-17). 따라서 이곳은 고대로부터 질 좋은 소와 양들로 유명하며, 특히 시리아 지역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곡창지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 본즉 그곳은 - 그곳을 바라본 두 지파의 눈은 욕심으로 가득찬 눈이었으며 민족적 사명과 공평을 잃어버린 어두운 눈이었다. 그 당시 다른 지파들도 가축을 소유했었으며(31:32-36), 그들도 자신들이 정복한 기름진 요단 동편 땅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만 눈을 두지 않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사사로운 욕심을 제어할 수 있었다.

(주); 가축에 적당한 곳 - 야셀과 길르앗 지역이 가축 사육에 절대 필요한 생활용수(生活用水)와 목초가 넉넉한 곳이었음을 보여 준다.

성 경: [민32:2]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르우벤과 갓 지파의 요청]

(주); 회중 족장들(*, 네시이 하에다) - 국가로서 그 조직이 미분화되었던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지파, 가계별로 존경받던 자들로서 제일 큰 지도자 모세를 도와 백성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다. 따라서 이들의 기능은 '장로'(*, 자켄)의 역할과 유사했다<신 21:6>.

성 경: [민32:3]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르우벤과 갓 지파의 요청]

(주); 아다롯... 브온 - 요단 동편(TransJordan) 땅은 얍복 강을 중심으로 다시 남과 북으로 갈라진다. 그런데 본절에 언급된 성읍들은 얍복 강 이남에 위치한 성읍들이다. 한편, 그리고 여기 소개되는 9성읍에 관해서는 이후 34-42절에서 두 지파 반(半)에게 요단 동편 지역을 분배하면서 다시 언급된다. 그러므로 각 성읍들에 대해서는 그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32:4]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르우벤과 갓 지파의 요청]

(주); 여호와께서... 쳐서 멸하신 땅 - 여기서 '땅'은 단순한 목초지만을 의미하지 않고 어떤 세력이 미치는 촌락과 성읍 등을 포함한 영토를 가리킨다(31:10). 특별히 이러한 영토를 '여호께서 쳐서 멸하셨다'는 말은 여호와께서 이방의 통치자를 몰아내시고(33절), 이제 그곳을 당신의 통치가 실현되는 영토로 삼으셨다는 의미가 된다. 한편 본문에서처럼 하나님이 친히 적군을 치시는 것으로 묘사된 표현은 가나안 정복 전쟁이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성전(聖戰)임을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다(출 15:1-18).

(주); 종족들에게는 가축이 있나이다 -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떠나기 전 선조 대(代)에는 주산업이 목축업이었다(창 47:3, 4). 또한 그들이 애굽 생활을 할 때도, 그리고 광야 40년간 방황할 때도 목축과 연관을 가졌다(출 9:6;10:26). 특히 그들은 정복 전쟁에서 가나안 주변국들의 가축을 탈취하여 그들의 소유물로 삼았다(31:32-36).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많은 가축이 있었고, 따라서 좋은 목초지가 절대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르우벤과 갓 지파에게는 타 지파보다 더 많은 가축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절실했다(1절).

성 경: [민32:5]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르우벤과 갓 지파의 요청]

(주); 산업으로 주시고 - 여기서 '산업'(*, 아후자)이란 '소유', '기업' 등의 뜻을 지닌다. 이는 본래 '잡다'(to seize), '취하다'(to take)란 뜻의 '아하즈'에서 유래하였다. 즉 르우벤과 갓 지파는 요단 동편 땅을 그들의 '소유'로 취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관념으로는 하나님이 각자에게 허락하신 기업, 즉 땅은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고유한 소유로 간주되었다. 더욱이 희년(禧年, Jubilee)제도로 말미암아 비록 어떤 경로로 타인에게 땅을 양도하였다 하더라도 희년에 원주인이 그 땅을 도로 되찾을 수 있었다<36:4;레 25:8-55;27:17-24>. 그러므로 르우벤과 갓지파는 좋은 땅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얻기 위해 당돌한 요구를 했던 것이다.

(주);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 이 말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었다고 볼 수 있다. (1) 즉 그들이 요단 서편 땅 분배에는 관심이 없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2) 험난한 가나안 정복 전투에 참여치 않고 요단 동편에서 안주하겠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그것이다. 모세는 그들의 요구를 후자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호된 책망(6-15절)을 하게 된다(Lange, Keil).

성 경: [민32:6-15]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책망]

이 부분은 요단을 건너지 않고 요단 동편에 안주하겠다는 르우벤과 갓 지파를 향해 모세가 엄중한 책망을 하는 장면이다. 즉 만약 두 지파가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치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일일 뿐 아니라, 타지파들을 낙심케 하는 결과가 되어 결국 가데스 바네아에서처럼(14:1-10) 제 2의 반역 사건을 일으키는 죄악을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세는 르우벤과 갓 지파의 요구를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패역한 요청으로 단죄하였던 것이다.

성 경: [민32:6]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책망]

(주); 앉았고자 하느냐(*, 테쉐부) - 이는 '고요히 앉다', '거하다', '남아 있다'등의 뜻인 '야솨브'(*)에서 유래한 말로서, 곧 아예 자리를 잡고 안정되게 살려고 하느냐란 책망어린 물음이다.

성 경: [민32:7]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책망]

(주); 낙심케 하여서(*, 테니우운 에트 레브) - 직역하면 '너는마음을 기울게 한다'는 뜻이다. 본래 '낙심케 한다'란 말은 '거절하다', '금지하다', '반대하다' 등의 뜻인 '누'(*)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하나님께 버림당하여 하나님과 적대 관계에 있다는 뜻의 '테누아'(*)도 이 어근(*, 누)에서 나온 말이다(14:34;욥 33:10). 이처럼 원어의 뜻으로 볼 때 두 지파의 행위는 단순히 이스라엘 전체를 낙심케 한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정면 거부한 죄악이라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모세는 이 행위가 가나안 10정탐꾼의 보고로 불평을 함으로써 많은 사람이 심판받은 것처럼(14:1-10),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케 될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성 경: [민32:8]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책망]

(주); 너희 열조도... 그리 하였었나니 - 8-13절까지의 자세한 내용은 13:3, 21-33;14:26-35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즉 모세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10정탐꾼의 불신앙적 보고와 그 결과 일어난 반역 및 그로 인한 멸망의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키며두 지파의 부당한 요청을 책망하고 잇다. 사실 정탐꾼 10명의 불신앙적 보고가 빚어낸 결과가 온 백성을 뒤흔들어 놓았고, 결국 그 일로 가나안 입국이 40년간 유보되었다면, 두 지파의 불신앙적 태도가 몰고 올 비극적 결과는 실로 엄청날 것임에 틀림없다.

성 경: [민32:9]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책망]

(주); 낙심케 하여서... 갈 수 없게 - 하나님의 뜻을 실행함에 있어서 낙심과 두려움은 절대 금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패배와 불신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명령한 일을 수행하는 자에게는 그분에 대한 온전한 신뢰 및 그에 따른 담대함만이 요청될 뿐이다(수 1:6).

성 경: [민32:10]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책망]

(주);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 여기서 '진노하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하르 아프'(*)는 심하게 콧김을 내쉬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키는 말로서 곧 극도의분노를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오히려 그분의 뜻을 거역하는 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대응은 바로 이같은 분노이다.

성 경: [민32:11]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책망]

(주); 애굽에서 나온 자들의 이십세 이상 - 이것은 출애굽 제1세대를 가리키는 포괄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출애굽 제2년 1월 1일에 실시된(1:1) 시내 산 인구 조사 당시 20세 이상으로 계수함 받은 자를 가리킨다(14:29).

성 경: [민32:12]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책망]

(주); 그나스 사람 - 겐 족속과 함께 팔레스틴 남부 지역에 거주한 이방 족속으로 추정된다(수 14:13, 14).

(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밀레우 아하레) - 여기서 '온전히'에 해당하는 '밀레우'는 '채우다', '충만하다', '만족시키다'는 뜻의 '말레'에서 유래한 말이며, '순종하다'는 뜻의 '아하레'는 '뒤따르다', '머무르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서, 결국 이 말은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따름으로써 그분의 마음을 만족시킨 상태를 일컫는다. 이렇듯 주위 환경의 불신앙적 기류에 조금도 동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그분의 뜻을 추종했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출애굽 제1세대 중 끝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밟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성 경: [민32:13]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책망]

(주); 사십 년 동안... 다 소멸하였느니라 -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이 계수받을 때, 당시 20세 이상의 장정이 대략 60만명 가량이었으므로(1:46), 여자까지 합산하면 20세 이상의 남녀 수는 무려 120만명에 달했을 것이다. 이들이 40년(정확히는 38년) 동안 광야에서 죽어갔다면, 매일 80명 이상이 죽은 셈이되고, 시간당으로는 3-4명 꼴로 죽어간 셈이 된다. 이처럼 모세는 약속의 땅을 취하기를 거부하다가 여호와께로부터 징계받은 그 처절한 상황을 지금 다시 상기시킴으로써 르우벤과 갓 지파에게 행동의 재고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민32:14]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책망]

(주); 열조를 계대하여 - 여기서 '계대(繼代)하여'란 뜻의 히브리어 '타하트'(*)는 '대신하여'란 의미를 가진다. 그런 관점에서 공동 번역에는 이 부분을 '그런데 너희는 아비들을 따라'로 번역함으로써 죄악이 지닌 악순환과 지속적 파급 효과를 강조하였다. 결국 '가데스 바네아에서 범죄했던(13:25-14:45) 조상들의 불순종을 너희도 그대로 답습한다면'이라는 의미가 본 구절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주); 죄인의 종류로서 - '종류'(*, 타르부트)란 '자손', '결과' 등의 뜻으로서 본래 '많아지다', '증가하다'란 의미의 '라바'(*)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므로 '죄인의 종류'란 '죄인의 후손'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모세는 여기서 르우벤과 갓 지파의 요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행한 조상들의 불순종과 연결시킴으로써, 그들의 요구속에 담긴 패역함을 생생이 깨우치려 했다.

성 경: [민32:15]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책망]

(주); 또... 광야에 버리시리니 -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가데스 바네아에서 백성들이 그 땅 취하기를 거부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40년 동안 광야에 유리(流離)시키셨다. 이제 40년 후 또 다시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모압 평지에서 그 땅 취하기를 거부한다면,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이스라엘을 광야로 돌려보낼 것이라는 의미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열명의 불신앙적인 정탐꾼으로 말미암아 출애굽 세대가 다 죽어갔듯, 이번에는 불신앙적인 그 지파로 말미암아 다른 지파들까지 모두 멸망케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성 경: [민32:16]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르우벤과 갓 지파의 약속]

(주); 우리를 짖고 - 여기서 '우리'(*, 기데로트 촌)란 몸집이 작은 종류(양, 염소 등)의 가축들이 거처하는 곳(외양간)을 의미한다. 당시 유목민들은 돌을 사람 키 정도 높이로 쌓아 이러한 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Keil, Wetstein). 한편 이는 르우벤과 갓 지파가 요단 동편 땅을 차지하려 했던 목적을 반영한 것으로서, 그들은 목축이 용이한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원했던 것이다.

(주); 성읍을 건축하고 - 새로운 성읍을 건축한다는 뜻이 아니라, 기존의 훼손된 성읍들을 복구하여 든든한 보호처로 만든다는 의미이다(Keil, Delitzsch). 이같은 준비는 르우벤과 갓 지파 장정들이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전하는 동안 남은 가족들을 안전히 보호하도록 하려는 조치였다.

성 경: [민32:17]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르우벤과 갓 지파의 약속]

(주); 이 땅 거민의 연고로 - 이 말은 그 땅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의 호전적(好戰的)이며 패역한 기질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주); 그 견고한 성읍에(*, 베아레 함미베차르) - 직역하면 '요새화된 그 도시들 안에'가 된다. 이는 곧 원주민들이 거주했던 퇴락한 성읍을 재건하여 그들의 안식처로 삼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고대 사회에서는 요새화된 성읍에 사는 자들과 성곽 밖에 임시 처소를 정한 자들 및 유랑하는 자들이 각각 있었다. 보통 성곽으로 둘러싸인 성읍은 교통, 정치, 군사의 요충지로 인식되었으며, 따라서 성읍에 거주한다는 것은 곧 그 지역 전체를 통괄하는 세력이 됨을 의미했다.

(주); 무장하고 - '서둘러 몸 단장을 하고'란 뜻으로, 유아 및 가축의 안전이 보장되면 기타 사사로운 일들에 유념치 않고 곧장 전투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말이다.

(주); 앞에 행하고(*, 후쉼 리프네) -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앞에서서 두르는 자들'이 된다. 이 말은 두 지파가 이스라엘 진영의 선두에 서서 적군과 용감히 맞서 싸우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후일 이런한 그들의 맹세는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널 때(수 4:12)와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수 6:7, 9, 13), 그들이 타지파보다 선봉에 서서 전투를 수행함으로 지켜졌다.

성 경: [민32:18]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르우벤과 갓 지파의 약속]

(주); 각기 기업을 얻기까지 - 여기서 '기업'이란 상속된 재산, 토지 등을 가리키는데, 본절에서는 하나님이 각 지파에게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 한편 두 지파는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 약속된 '기업'을 모두 얻은 후 안정을 확보할 때까지 타지파와 함께 요단 서편에 머무를 것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수아가 그들을 요단 동편 자기 거처로 보낼 때까지 그 약속을 신실히 지켰다(수 22:4).

성 경: [민32:19]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르우벤과 갓 지파의 약속]

(주); 요단 이편... 요단 저편 - '이편' 혹은 '저편'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는 모두 '에베르'(*)로서 막연한 어느 한 쪽(one side)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본래 '건너가다'는 뜻의 '아바르'에서 유래했다. 즉 강을 사이에 두고 강의 어느 한 쪽을 말할때 이편 혹은 저편이라는 말을 쓴다. 따라서 엄밀히 보아 요단 동편을 '이편'으로, 서편을 '저편'으로 단정할 수 없다. 단지 말하는 자의 입장에서 볼 때 가까운 쪽을 이편, 건너편 쪽을 '저편'으로 지칭한 것 뿐이다.

(주); 저편에서는... 얻지 아니하겠나이다 - 르우벤과 갓 지파는 비록 자신들이 피흘려 쟁취한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이라 하더라도, 그곳에 대한 자신들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겠노라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즉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요단 동편 땅을 얻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고 공언하였던 것이다.

성 경: [민32:20]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조건부 허락]

(주); 여호와 앞에서(*, 리프네 예호와) - 이 말은 20-22절 사이에 여섯번이나 나올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이 말은 모세와 약속한 두 지파의 행동이 하나님의 주목을 받고 있음을 모세가 그들에게 분명히 주지시킨 것이다. 사실 두 지파의 약속은 단순히 인간 모세에게 한 것이 아니라 모세의 지도자적 권위를 인정하신 하나님께 맹약한 것이었기에 신실히 그 약속을 지켜야만 했다. 특히 '여호와 앞에서' 이루어지는 이 약속은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는다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서 위반시에는 공평한 증인되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과 징벌을 감수해야할 성질의 것이었다. 그러므로 두 지파가 신실히 요단 서편의 정복 전쟁에 참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더불어 계셔서 그들의 승리를 보장해 주실 것이지만, 만일 약속을 불이행한다면 그들은 죄인으로 간주되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성 경: [민32:21]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조건부 허락]

(주); 여호와께서 그 원수를... 쫓아내시고 - 가나안 정복 전쟁이 곧 여호와의 전쟁임을 나타낸 말이다. 실로 여호와의 뜻을 추종치 않거나 적극적으로 반항하는 무리들은 모두 그분의 원수가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은 이 땅에서 어떤 곳, 어떤 위치에 머무르든 하나님의 맹렬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성 경: [민32:22]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조건부 허락]

(주); 그 땅으로... 복종케 - 여기서 '복종케'를 뜻하는 히브리어 '니크베솨'(*)는 '진압하다', '정복하다'란 뜻의 '카바쉬'(*)에서 유래한 말이다. 따라서 본문은 가나안 땅을 정복(점령)한다는 의미이다. 아울러 그 땅이 '여호와 앞에' 복종하게 된다는 말은 곧 그 땅의 통치자가 여호와로 바뀌게 됨을 의미한다.

(주); 무죄히 돌아오겠고 - 두 지파가 약속대로 요단 서편(가나안 본토) 전쟁에서 선봉대로 참전하여 가나안 정복을 완수한다면 하나님께 약속한 바를 온전히 이루어드리는 것이 되며, 가나안 정복을 명하신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는 것이 될 뿐 아니라, 이스라엘 각 지파간의 내분을 막는 일이 된다(7-15절). 따라서 그들은 여호와께 인정된 자로 취급되어 더 이상의 허물을 지니지 않게 된다는 의미이다. 한편 여기서 '무죄히'(*, 네키임)란 '징벌을 면하다', '깨끗하게 하다'란 뜻의 '나카'(*)에서 유래한 말로서 곧 전혀 허물이 없는 순수하고 정결한 상태가 됨을 시사한다.

성 경: [민32:23]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조건부 허락]

(주); 너희 죄가 정녕... 찾아낼 줄 알라 - 만일 두 지파가 '여호와 앞에서' 엄숙히 맹세한 그 사실(16-19절)을 실행치 않는다면, 자신들이 발설한 그 말이 굴레가 되어 하나님의 준엄하고도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실로 하나님 앞에서 행한 맹세는 그 어떤 위경에 처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것으로, 그 맹세한 것을 불이행할 때 자신의 맹세가 그 증거물이 되어 자신의 죄를 자신이 담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성 경: [민32:24]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조건부 허락]

(주); 입에서 낸 대로 행하라 - 두 지파의 맹세에 대한 모세의 승인인 동시에 재확인이다(16절).

성 경: [민32:25]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조건부 허락]

(주); 명대로...행할 것이라 - 성읍과 우리를 건축한 후 즉시 가나안 본토 전쟁에 동참하라는 모세의 명령에 대해 두 지파가 순종을 맹세한 구절이다.

성 경: [민32:26]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조건부 허락]

(주); 이곳 길르앗 성읍들에 두고 - 일반적으로 길르앗은 요단 동쪽 세 구역(바산, 모압, 길르앗, 신 3:10;수 13:11;왕하 10:33) 중 한 지역을 가리키는데, 본문에서는 요단 동편 남부 지역(얍복강 이남)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 듯하다. 그러므로 이 지역에는 정복 전쟁 중에 두 지파에게 딸린 식솔들의 거주지로 주어졌다(수 1:14).

성 경: [민32:27]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모세의 조건부 허락]

(주); 무장하고 - '무장하다'는 뜻의 원어 '하라츠'(*)는 '떠나다', '구출하다', '준비하다'란 의미도 지니다. 결국 이 말은 적군에 대항키 위해 군사적인 것 뿐 아니라 마음의 준비도 갖춘 상태를 일컫는다.

(주); 다 건너가서 싸우리이다 - 이 말 속에는 자신들이 요단 동편(Trans-Jordan) 땅을 요구한 것이 정복 전쟁에 참여치 않기 위한 핑계가 아님을 힘주어 나타내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이러한 두 지파의 결의는 그들이 얼마후 타지파보다 먼저 요단을 도하(渡河)하여 여리고 평지에 진을 침으로써(수 4:12, 13) 확실히 입증해 보였다.

성 경: [민32:28]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회중 앞에서의 서약]

(주); 엘르아살과... 여호수아 - 모세와 아론에 의해 수행되던 이스라엘 통치권은 이제 다음 세대의 주역인 여호수아와 엘르아살에게 서서히 이양되고 있다. 실로 혼란과 방황으로 점철되었던 광야 40년 생활은 이제 종말을 고하고 안정과 정착의 새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을 감지한 모세는 자신의 마지막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즉 가나안 정복 전쟁이 아직 남아 있지만 모세는 마치 승리한 것처럼 그 결과의 뒷 일을 새로운 두 지도자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민32:29]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회중 앞에서의 서약]

(주); 싸워서... 항복하기에 이르거든 - 거듭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이미 가나안 정복 전쟁의 승리가 보장되었다 하더라도, 정복 전쟁의 수행만은 인간의 몫으로 남겨져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즉 가나안 정복 전쟁은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수행하시는, 승리가 보장된 전쟁이지만 거기에 인간의 동역(同役)이 반드시 요청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 결코 아니라, 오직 인간과 더불어 활동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그분의 은혜로우신 성품을 반영한 것이다(빌2:13).

성 경: [민32:30]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회중 앞에서의 서약]

(주); 가나안 땅에서... 산업을 - 두 지파가 약속을 불이행하여 정복 전쟁에 참여치 않는다면, 그들에게 요단 동편 땅을 주지 말고 요단 서편의 땅을 기업으로 주어 민족적 분열을 방지하라는 명령이다. 사실 두 지파가 가나안 본토 정복 전쟁에 참전치 않는다면 분명히 타지파에게 빈축을 사게 될 것이고, 그 와중에 두 지파가 요단 동편의 땅을 불하받게 된다면 결국 요단 강을 중간에 두고 이스라엘 민족이 둘로 나뉘어지는 비극을 맞게 될 것이다. 따라서 모세의 이 조치는 특정 지파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 공동체의 지속적 단합을 위한 지혜로운 배려임을 알 수 있다.

성 경: [민32:31, 32]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회중 앞에서의 서약]

이 부분은 25절에 이어 르우벤과 갓 지파 자손이 거듭 자신들의 맹세(16-19절)를 확신시키는 부분이다. 그리고 사실 이 맹세대로 그들은 요단을 건너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요단 동편(Trans-Jordan) 땅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할당받았다. 그러나 그들 지파가 탐낸 요단 동편의 이 기름진 땅은 후일 오히려 그 지리적 조건 때문에 숱한 이방의 침략을 받게 되었고, 따라서 그들 후손들은 잠시도 편안한 날이 없이 주위 이방 세력들의 위협에 시달리게 되었다(암 1:3, 13).

성 경: [민32:33-42]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르우벤과 갓 지파의 성읍]

모세가 갓 지파와 르우벤 지파 및 므낫세 반 지파에게 요단 동편 땅을 분배해 주었다. 여기서 므낫세 반 지파에게도 이러한 혜택이 돌아간 것은 그들 지파가 위험을 무릎쓰고 직접 길르앗 땅을 정복하였기 때문이다.(Gerlach.39절)

성 경: [민32:33]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르우벤과 갓 지파의 성읍]

(주); 갓... 르우벤... 므낫세 반 지파 - 여기 제시된 두 지파 반(半)은 모세에 의해 직접 요단 동편 땅을 기업으로 받은 반면 나머지 9지파 반(半)은 후에 제비뽑아(26:55) 가나안 땅을 분배받았다(수 14:2). 두 지파 반이 받은 기업의 경계와 성읍과 촌락에 대해서는 수 13:8-31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일반적으로 그들은 요단 강을 그 서쪽 경계로 하여 북쪽 헤르몬 산과 남쪽 사해의 중간에 이르는 땅을 기업으로 받았는데, 윗쪽은 므낫세 반 지파, 중간은 갓 지파, 아랫쪽은 르우벤 지파가 각각 차지했다. 물론 이러한 영토 분할은 후일 가나안 본토 전쟁이 끝나고 그 전쟁에 참여한 군사들이 돌아온 후에 이루어졌을 것이다(Keil). 한편, 모세에게 요단 동편 땅을 요청할 때는 전혀언급되지 않았던 므낫세 반(半) 지파가 영토 분배시 갑작스레 등장한 이유는 필시 요단 동편(Trans-Jordan)의 전투에서 그 지파가 세운 혁혁한 공적이 참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39, 41절). 그리고 므낫세 지파가 2분된 이유는 아마도 그 지파의 수효가 이스라엘 12지파 중 광야 40년 기간 동안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일 것이다(PulpitCommentary). 26:51 주석 도표를 참조하라.

(주); 시혼의 국토... 옥의 국토 - 이들의 영토에 대해서는 21:21-35;수 12:1-6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32:34, 35, 36]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르우벤과 갓 지파의 성읍]

이곳에는 갓 지파의 성읍이 열거되었다. 이 성읍들은 훼손된 옛 성읍을 수축하여 자신들의 거주지로 삼은 곳이다(16절).

(주); 디본 - '디본갓'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는 땅으로서 아르논 강 조금 북쪽에 위치한다. 수 13:18에는 르우벤 자손의 성읍으로 되어 있으나 본래는 갓 지파에게 주어졌었다. 후에 모압인이 이곳을 재탈환하여 계속 그들의 성읍으로 사수하게 된다.

(주); 아다롯 - '면류관'이라는 뜻의 지명인데 지금은 '앗타루스'(Attarus)라는 지역에 이곳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있다. 디본에서 동북쪽으로 약 11km정도의 거리에 있다.

(주); 아로엘 - '잔해', '폐허'란 뜻의 지명으로 아르논 강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수12:2;13:9, 16). 이곳은 수 13:25에 언급된 랍바 근처의 '아로엘'과는 다른 곳이다.

(주); 아다롯소반 - 이곳 위치는 불분명하며 앞의 아다롯과 구별하기 위해 '소반' 곧 동굴의 '아다롯'이란 이름을 붙인 듯하다.

(주); 야셀 - 현재의 '예스치르'(esszir)로 보기도 하는데(Keil, Delitzsch), 암만(Amman) 서쪽에 위치한다(21:32).

(주); 욕브하 - 얍복 강 중류 아랫쪽에 위치한 현재의 '예베이하'(Jebeiha)로 추측된다(Robinson).

(주); 벧니므라 - 요단 계곡에 위치한 이곳은 가축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지니고 있다. 3절의 '니므라'는 위의 지명을 축약한 것이다.

(주); 벧하란 - 수 13:27에서는 '벧하람'이라 기록된 곳으로 현재의 '라메'(Rameh)로 추정된다(Robinson, Burckhardt).

(주); 견고한 성읍을 건축하였고 - 장정들이 출정한 후에 남게 될 부녀자들과 유약한 자들에 의해서도 충분히 수성(守城)할 수 있을 만큼의 튼튼한 도시를 건축했다는 뜻이다.

성 경: [민32:37, 38]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르우벤과 갓 지파의 성읍]

이곳에는 르우벤 지파가 기업으로 받은 성읍들이 열거되어 있다.

(주); 헤스본 - 이곳은 여리고를 바라보는 곳인 얍복과 아르논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큰성읍으로서 한때 아모리의 왕 시혼(Sihon)이 수도로 삼았던 곳이었다(21:16). 원래 이곳은 르우벤 지파에게 주어졌으나(수 13:17) 갓 지파가 관리하기 용이하다는 이유로 훗날 갓 지파에게 분배되었고, 최종적으로 레위인에게 할당되었다(수 21:39;대상6:66).

(주); 엘르알레 - 고산 지대로서 헤스본 북동쪽 약 3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주변의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다. 오늘날 이곳에는 헤스본과 같이 발전된 모습의 성곽과 생활 수준을 상상할 수 있는 잔해들이 아직도 발견된다고 한다(Burckhardt).

(주); 기랴다임 - 헤스본에서 남쪽으로 아주 가까운 곳으로 추정된다.

(주); 느보 - 느보 산상에 있는 성읍으로 모세가 이곳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본 것 같다<27:12>. 이 '느보'(Nebo)란 이름은 아마도 바벨로니아에서 섬기던 우상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주); 바알므온 - 이곳 지명은 다양한데 '브온'(3절), '벧므온'(렘 48:23), '벧바알므온'(수 13:17) 등으로 불리워진다. 이곳은 아마 가나안인의 주신(主神) '바알'신 숭배 중심지 중 한 곳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곳은 현재의 '뮨'(Myun)으로 추정된다.

(주); 그 이름을 고쳤고 - 이스라엘 백성은 정복된 땅에대한 개명(改名) 작업을 추진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용할 땅에 이방인이 섬기던 우상의 이름이 붙여져 있는 것을 불경스러운 것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Pulpit Commentary).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의지는 그들 스스로를 성결한 민족으로 보존하는 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한편 고쳐진 이름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으나 얼마 후 옛 이름으로 환원된 것 같다(Keil, Delitzsch).

(주); 십마 - 포도의 주산지인 이곳은 헤스본에서 매우 가깝게 위치해 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르우벤 지파가 얻은 성읍은 각각 군집 형태를 위하면서 헤스본 성읍을 중심으로 각 성읍간의 거리가 매우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34-38절에 언급된 성읍들은 요단 동편 땅을 개괄적으로 분할하여 각 지파에게 나눠 준 것이며, 정복 전쟁 후에 합리적으로 재조정하여 각 지파에게 나눠 주었다(Keil). 그 구체적인 예로서 정복전쟁 전 갓 자손이 재건한 아로엘, 디본, 아다롯 등의 성읍들이 정복 전쟁 후 르우벤지파에게 이양되었고, 반면에 르우벤 지파가 수축했던 헤스본은 갓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주); 새 이름을 주었고 -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개명(改名)은 그 존재와 지위 및 삶의 양태의 변화까지를 뜻할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런 견지에서 여기 정복한 땅의 이름을 고친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1) 이제부터 그 땅의 주인이 하나님의 백성, 곧 이스라엘임을 천명하는 의미가 있다. (2) 각종 죄된 문화 및 우상과 연관된 이름이 제거됨으로써, 그 땅에 거주하게 될 백성의 종교적 성결이란 의미도 지닌다. 사실 이스라엘이 점령한 가나안 영토는 탈취나 강점이라는 의미를 뛰어넘어,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한다는 거룩한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따라서 성읍 개명 작업은 하나님 나라 건설의 한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성 경: [민32:39]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므낫세 반 지파의 성읍]

(주); 마길의 자손...길르앗을 쳐서 - 여기서 '마길의 자손'은 (26:29) 그 가족 전체라기보다 그들 중의 일부분을 가리킨다.(Keil, Delitzsch). 이들은 얍복 강 북쪽의 북부 길르앗을 중심한 바산 지역(21:33, 34)을 점령했다(신 3:13).

성 경: [민32:40]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므낫세 반 지파의 성읍]

(주); 거기 거하였고 - '거하였다'는 말은 본래 '정착했다'는 뜻이나, 여기서는 단순히 길르앗을 마길 자손들이 '소유했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마길 자손 중 7가족만 정복한 길르앗 땅에 정착했고(대상 5:24), 나머지 6가족은(26:29-33;수 17:2) 요단 서편의 땅을 분배받았다(수 17:2), 한편 요단 동편에 정착한 므낫세 지파 후손들은 그곳 원주민들의 문화와 종교에 잠식되어 후일 끝내 심각한 우상 숭배 죄에 빠지게 된다.

성 경: [민32:41]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므낫세 반 지파의 성읍]

(주); 므낫세의 아들 야일 - 엄밀히 따져 '야일'(Jair)은 므낫세의 아들이 아니라 그 '후손'을 가리킨다. 이는 '아들'이란 의미 외에 '후손'이라는 뜻의 넓은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한편 므낫세의 아들 '마길'(Machir)에게 딸이 있었는데, 그녀가 유다 지파의 헤스론과 결혼하여 스굽을 얻었다. 그리고 이 스굽(Segub)이 낳은 아들이 바로 '야일'이다(대상 2:21-24). 그러므로 야일은 할머니쪽(외가쪽)으로 므낫세의 현손(玄孫)이 된다. 그런데 야일이 할머니의 혈통에 의해 므낫세 지파로 규정된 것은 아마도 마길이 자신의 딸에게 엄청난 재산을 상속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Keil & Delitzsch, Vol.I-iii. p 241). 즉 아버지로부터 재산 상속을 받은 딸은 결혼하여도 아버지의 혈통을 그 자손에게 남길 수 있었던 여자 상속 규례(27:1-11;36:5-12)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본래 재산 상속을 받은 딸은 지파간 토지 이동을 방지하기 위해 같은 지파 안에서만 결혼할 수 있었으나(36:8, 12). 여기서는 특별히 두 지파간의 결혼이 성사된 것으로 볼 수 있고 대신 남자가 여자 쪽의 지파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 하봇 야일이라 칭하였으며 - 여기서 '하봇야일'(*, 하우트 야일)이란 '야일의 성읍들'이라는 뜻인데 (수 13:30;삿 10:4), 이곳은 주로 정착 초기 단계의 주거 형태인 천막들로 구성된 마을로 보인다. 그런데 야일이 길르앗에서 취한 정확한 성읍 수치는 23개였다(대상 2:22, 23). 한편 이스라엘이 길르앗 지역에서 60성읍을 취하였다고 기록한 신 3:4내용은 야일의 23성읍과 야일의 동족인 그술과 아람이 정복한 37개 성읍을 합한 것이다(대상 2:23).

성 경: [민32:42]

주제1: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주제2: [므낫세 반 지파의 성읍]

(주); 노바는...그낫과 그 향촌을 취하고 - 여기서 '노바'(Nobah)는 39절의 내용('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손은 가서 길르앗을 쳐서 취하고')으로 보아 마길의 자손이며 야일가족의 일부로 추론할 수 있다(Keil). 한편 그가 점령한 '그낫'은 향촌 곧 부속된 촌락들을 취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강력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발전된 성읍으로 보인다.그리고 학자들은 이곳을 오늘날 얍복 강 훨씬 북쪽의 '그나왓'(Kenawat)으로 보는데, 이는 예벧-하우란(Jebel- Hauran) 서편 경사 지대에 위치해 있다(Keil, PulpitCommentary). 한편 그 당시 사람들은 전쟁 등의 비상 사태가 발발하면 자기의 거처(촌락)를 버려두고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읍, 곧 모성(母城)으로 피신했었다. 노바는 이처럼 주변 촌락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성읍들을 점령한 뒤 자신의 이름을 붙였었으나, 그의 위세가 41절의 '야일'에게 미치지 못하여 통상적으로 노바의 점령지도 '야일의 성읍들'이란 이름으로 귀속된 것 같다(수 13:30).

성 경: [민33:1]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출애굽 여정 회고]

(주); 그 항오대로 - 직역하면 '그들의 군대들로서'가 된다.이 말은 이스라엘이 출애굽시 마치 승전(勝戰)한 군사들처럼 대장되신 여호와가 이끄시는 대로 씩씩하게 발걸음을 내디뎠음을 나타낸다(출 7:4). 즉 그들은 자신들을 압박하던 애굽인들의 눈치를 보며 숨죽여 애굽을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애굽의 신들을 보기좋게 파멸시키시고 바로의 교만을 여지없이 짓밟으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힘입어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애굽에서 나온 것이다(출 12:31-37). 즉 이제 더이상 비굴한 노예 민족으로서가 아니라, 가나안 땅을 정복하러 가는 의엿한 하나님의 군대로서 행진해 나온 것이다.

(주); 나오던(*, 야체우) - 이는 '튀어나오다', '이끌어 내다', '명하여 보내다'란 뜻의 '야차'에서 유래한 말로서,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구원하시는 능력에 따라 그분의 이끄시는 인도로 애굽에서 나온 상황을 묘사한 말이다(출 12:33).

(주); 노정이 이러하니라(*,일레마스에) - 직역하면 '이것들이 출발 지점들이다'가 된다. 특히 여기서 '노정'(路程)으로 번역된 '마스에'는 '떠남', '출발','여행' 등의 뜻을 지닌 '마사'(*)의 복수로서 '천막(tent)을 걷다', '떠나다','여행하다'라는 의미의 '나사'(*)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광야여정으로 제시된 본장의 지명들은 그들이 잠시 머물러 장막을 쳤다가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장막을 다시 걷었던 임시 처소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가나안을 목적하고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거처한 이러한 임시 처소는 곧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아가는(벧전 2:11), 오늘날의 성도들이 잠시 머무는 이 땅에서의 삶을 예표한다.

성 경: [민33:2]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출애굽 여정 회고]

(주); 모세가 여호와의 명대로...기록하였으니 -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친히 인도하셨던 여호와께서는 요단을 건너기 직전 모압 평지에 머무르던 때에 지금까지 거쳐온 경로들에 대해 모세로 하여금 일일이 기록하게 하셨다. 이렇게 지시한 이유는 숱한 어려움을 헤치고 마침내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당신의 권능과 신실하심을 그들에게 영영히 기억시키기 위해서였다. 한편 이 기록은 단순히 과거에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셨던 여호와의 행적을 기념키 위해서만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 기록은 과거에 여호와께서 그처럼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현재와 미래에도 동일한 보호와 사랑을 베풀 것에 대한 당신의 믿을만한 약속으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사실 성경의 모든 기록은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here and now) 나에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살아있는 말씀이다(딤후 3:15-17;히4:12).

성 경: [민33:3]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출애굽 여정 회고]

(주); 정월 십 오일에 라암셋에서 - 이는 출애굽의 시기와 장소를 언급한 것으로서, 이같은 구체적인 기술은 곧 출애굽 사건의 역사성과 사실성을 증명한다<출 12:37;13:4>.여기서 '정월'은 원래 유대 민간력으로 '7월'에 해당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해방과 구원을 기념하여 출애굽한 그 날을 신정국가(神政國家) 이스라엘의 건국 원년(元年)으로 삼게 하시고, 새로운 월력 곧 종교력을 만드셨다<출 12:2>. 자세한 내용은 <출 서론, 출애굽 연대>를 참조하라. 한편 라암셋은 애굽 동북부에 위치한 고센 지방의 한 성읍으로서, 노예로 전락했던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건축된 국고성이다(출 1:11). 이곳은 이스라엘인들이 애굽 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창 47:11)이자 출애굽의 출발지였다. 출 12:37 주석을 참조하라.

(주); 애굽...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 - 출애굽이 이스라엘 스스로의 능력이나 애굽인들의 노예해방 정책에 따라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과 경륜에 의해 성취된 사건임을 시사한다. 이를 통해서 거듭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영.육을 불문하고 인간 구원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 한 뿐 뿐이시라는 것이다(행 4:12;약4:12). 한편 여기서 '목전(目前)에서'란 말은 문자 그대로 '보는 앞에서'란 뜻인데, 이는 출애굽의 과정을 지켜본 애굽인들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는 여호와의 능력을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그 능력에 완전 압도되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큰 권능으로'(*, 베야드 라마)란 문자적으로는 '높은 손으로'(with ahigh hand)라고 번역된다. 이 말은 성경 문학적으로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을 생생이 의인화시켜 묘사할 때 사용되며, 이같은 표현법을 흔히 신인동형동성론적(神人同形同性論的) 표현이라 한다.

성 경: [민33:4]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출애굽 여정 회고]

(주); 장사하는 때라 - 이는 '장사 지내는 동안에'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좋다. 여기서 '장사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히카'(*)는 '죽이다', '멸망시키다'는 뜻도 지닌다. 그런데 이 말은 죄인을 징벌하는 측면에서 '죽이다', '벌주다'는 뜻의 '나카'(*)에서 유래했다는 점에서, 애굽인들의 장자(長子) 사망은 지극히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

(주);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 여기서 '벌을 주셨다'(*, 아사 쉐파팀)란 말은 '그가 심판을 집행하셨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애굽의 신들을 파멸시키셨음을 나타낸다. 이는 여호와가 모든 신중에 뛰어나신 유일한 참신(true God)임을 알려 주는 증거이다. 또한 이 구절은 애굽 땅에 내려진 재앙이 애굽인들에게 뿐 아니라 그들이 숭상하는 신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임을 보여 준다<출 12:29-36 강해, 여호와의10대 재앙>. 실제로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 가운데는 애굽인들이 섬기는 각종 우상들 곧 태양과 나일 강, 개구리, 가축 등을 징벌한 것이 대부분이었다<출 32:1-6 강해, 애굽의 우상 종교>.

성 경: [민33:5]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시내 광야까지의 여정]

(주); 라암셋 -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 정착지인 고센 지역 내에 위치한 곳으로서, 오늘날 타니스(Tanis)로 추정된다. 3절 및 출 12:37 주석 참조.

(주); 숙곳 - 이스라엘이 라암셋을 출발한 후 최초로 진을 친 곳이다(출 12:37;13:20). 이곳은 애굽의 비돔 근처에 위치하는데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기 전 체류하였다. 그러나 이곳은 요단 강 동편 얍복 강 윗쪽에 있는 '숙곳'과는 구별된다(창 33:17;수13:27).

성 경: [민33:6]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시내 광야까지의 여정]

(주); 광야 끝 에담 - 이스라엘이 두번째 진 친 곳으로 아직 홍해에가는 못미치는 곳이다(출 13:20). 여기서 '광야 끝'이란 수르(Shur) 광야의 변경을 가리키는데, 오늘날의 '와디 투림라트'(wadi Tumilat)로 추정된다. 한편 이곳은 그 당시 애굽의 동쪽 경계선을 이루는 지역으로 성벽과 같은 군사적인 보호막이 쳐졌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곳 변방을 가리켜 '성벽', '방벽'을 뜻하는 '에담'이라 부르며(8절), 한편으로는 '수르'(성벽)라는 히브리식 이름을 지닌 지역으로 명명되었기 때문이다(출 15:22). 따라서 이스라엘은 지금 애굽의 국경선을 막 넘는 순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출13:20 주석 참조.

성 경: [민33:7]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시내 광야까지의 여정]

(주); 바알스본 - 이곳은 수에즈(Suez) 만에서 북서 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으로 추정된다(Steward Paul). 따라서 이스라엘이 아직 홍해를 건너기 전에 머물고 있음을 알수 있다.

(주); 비하히롯(*, 피 하히로트) - 직역하면 '하히롯의 입구'가 된다. 여기서 '하히롯'은 애굽어로 '갈대숲'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이렇게 볼 때 이스라엘은 이제 '홍해'(히브리어로 '갈대 바다'를 뜻함, 출 13:18 주석 참조)에 거의 접근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 믹돌 - 문자적으로 '망대', '높은 곳'을 뜻한다. 이 지명의 뜻처럼 이곳은 애굽 동북쪽에 위치한 전략 요충지였다(렘 44:1;46:14).

성 경: [민33:8]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시내 광야까지의 여정]

(주); 바다 가운데로 지나 - 바다를 마치 육지처럼 지났던 홍해 도하(渡河) 사건을 일컫는다. 출 13:18 및 14:21-31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주); 광야에 이르고 에담 광야로 - 이 광야는 6절에 언급된 바 '수르'(Shur) 광야를 가리킨다. 출 15:22 주석 참조.

(주); 삼 일 길쯤 - 하룻길은 보통 32km정도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3일 길'은 약96km(240리)가 된다.

(주); 마라 - '쓰다'(苦)는 뜻의 '마라'는 수에즈 만 동쪽 약 11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후 최초로 진을 친 곳이다. 출 15:23 주석 참조.

성 경: [민33:9]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시내 광야까지의 여정]

(주); 엘림 - 홍해 도하 후 두번째 진 친 곳이다(출 15:27;16:1). '큰 나무'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무성한 나무로 둘러싸인 오아시스(oasis) 지대였다<출 15:27 주석>.

(주); 샘물 열 둘과 종려 칠십 주 - 메마르고 삭막한 광야 여정 중에 시원한 무과 그늘진 쉼터를 얻게 된 것은 오직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인도하심의 결과였다. 한편 여기서 '12'와 '70'은 각각 이스라엘 12지파 수와 장로들의 수(11:16)였다는 점에서 의미 심장하다<출 15:27>.

성 경: [민33:10]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시내 광야까지의 여정]

(주); 홍해 가 - 출애굽기에서는 이 사실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출 16:1). 이스라엘은 지금 홍해를 끼고 오른쪽으로 계속 남하하는 상태인데, 여기서 특별히 '홍해 가'라고 기록한 것은 아마도 그들이 홍해로 흘러드는 어느 개울을 통과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Stenry).

성 경: [민33:11,12]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시내 광야까지의 여정]

(주); 신 광야 - 수르 광야 동남쪽이며 아카바 만과 가까운 광야로써 팔레스틴 최남단 지역이다. 출 16:1 주석 참조.

성 경: [민33:13]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시내 광야까지의 여정]

돕가 - 이곳은 동(銅) 광산으로 유명한 '세라빗 엘카딤'(Serabit el-Khadim)으로 추정되는데(G.E. Wright), 그렇다면 이곳의 위치는 시내 산에서 서북쪽으로 약 75km지점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곳에서는 가장 오래된 B.C. 18C경의 셈어 계통의 비문(Proto Sinaitic Inscription, 원시내 비문)이 발견되어 언어 발달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주); 알루스 - 돕가 근처로 추측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성 경: [민33:14]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시내 광야까지의 여정]

(주); 르비딤 - '쉬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고시은 신(Shin) 광야와 시내(Sinai)광야 사이에 위치한<출 17:1, 8;19:2> 비옥한 광야 지대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물이 없어 이곳을 통과하던 중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다투었던 관계로, 이곳이 '맛사', '므리바' 등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출 17:1-7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33:15]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시내 광야까지의 여정]

(주); 시내 광야에 진쳤고 - B.C. 1446년 1월 15일 애굽 고센 지역의 라암셋을 출발한 이스라엘은 그동안 숙곳->에담->믹돌->마라->엘림->홍해 가->신 광야->돕가->알루스->르비딤을 거쳐 마침내 그해 3월 15일, 만 2달만에 시내 산이 있는 시내 광야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다음 해(B.C. 1445년) 2월 20일 이곳을 떠나기까지 정확히 11개월 5일 동안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각종 율법 제정, 성막 건립, 제사 제도완비, 인구 조사 실시 등의 중요한 일을 이곳에서 치른다.

성 경: [민33:16]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가데스까지의 여정]

(주); 기브롯핫다아와 - 시내 산 동북쪽 약 30km 지점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은 이곳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불순종에 따른 징벌을 받음으로써 '탐욕의 무덤'이라는 이 오욕의 이름을 남겼다(신 9:22). 11:34 주석 참조.

성 경: [민33:17]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가데스까지의 여정]

(주); 하세롯 - 시내 산 동북쪽 약 55km 지점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시내 산 출발 후 두번째 숙영지로서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난했던 장소였다(12:16;신 1:1). 11:35 주석 참조.

성 경: [민33:18]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가데스까지의 여정]

(주); 릿마 - 카일(Keil)은 이곳 '릿마'(Rithmah)를 이스라엘이 처음 도착했던 '가데스'와 동일 지명으로 이해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그는 12:16에 이스라엘이 '하세롯'을 떠난 후 바로 바란 광야에 진 쳤다는 사실과, 또한 그 다음에 곧바로 가데스의 정탐꾼 사건이 나오는 것을 들고 있다(13장). 아울러 그는 고고학적으로도 이곳 릿마를 오늘날의 아부-레테맛 계곡(Wady Abu-Retemat)으로 보고, 숙영지로서는 매우 좋은 곳이라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면, 당시 '하세롯'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릿마'에 진쳤으나, 그곳은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가데스'까지 백성들의 진영이 퍼져나갔던 것으로 본다(Keil &Delitzsch, Vol. I-iii. pp. 242-244). 그리고 정탐꾼 사건은 이곳 가데스에서 일어났으므로, 이후로는 가데스란 지명으로 더욱 알려진 듯하다.

성 경: [민33:20]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가데스까지의 여정]

(주); 립나 - '흰색'이란 뜻의 지명으로서 아마 신 1:1에 언급된 '라반'과 동일한 곳으로 추정된다(Pulpit Commentary).

성 경: [민33:29]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가데스까지의 여정]

(주); 하스모나 - 이곳의 다른 이름을 '헤스몬'이라 추정하기도 한다(수 15:27).

성 경: [민33:30,31,32,33]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가데스까지의 여정]

여기 언급된 여정동안 이스라엘 초대 제사장 아론이 죽었고(모세롯),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그 직임을 계승하게 된다(20:23-29;신 10:6-9).

(주); 모세롯 - 이는 '모세라'의 복수형 지명이다(신 10:6). 이곳에 숙영지를 마련한 후 아론은 모세라 곁에 있는 호르 산상에서 최후를 맞게 된다. 그때가 출애굽 제 40년 5월 1일이다. 따라서 이곳에 숙영한 때는 확실히 광야 40년 중 마지막 기간임을 알 수 있다.

(주); 브네야아간(*, 베네 야아칸) - '야아간의 아들들'이란 뜻이다. 이곳은 가데스(Kadesh) 북동쪽 약 18km 지점에 위치했으며 '브에롯 브네야아간'이란 별칭도 지니고 있다<신 10:6>. 한편 여기서 '야아간' 혈족은 호리 족속 중 한 분파인 '아간 가족'을 가리킨다(창 36:27;대상 1:42).

(주); 홀하깃갓 - '깃갓에 있는 구멍'이란 뜻으로 신 10:7에 나와 있는 '굿고다'와 동일 장소로 보인다.

(주); 욧바다 - '강이 많다'는 뜻으로 (신 10:7), 이곳에 와디(Wadi)나 샘이 많았음을 암시한다.

성 경: [민33:35]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가데스까지의 여정]

(주); 에시온게벨 - 이곳은 아카바 만(엘랏 만) 북쪽에 위치한 유명한 항구 도시이다. 이곳에는 솔로몬이 건축한 제련소가 있었으며 솔로몬 당시 오빌과의 해상 무역로로서도 큰 역할을 했다(왕상 9:26;22:48).

성 경: [민33:36]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가데스까지의 여정]

(주); 가데스에 진 쳤고 - 본절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숙영지 '에시온게벧' 이후 가데스에 이르는 동안 이스라엘은 한 번도 짐을 풀어 장막을 쳐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대해 카일(Keil)은 두 곳 사이의 거리가 보통 사람이면 걸어서 10-14일 걸리는 짧은 거리였기에 그냥 노숙(露宿, camping out)했다고 주장한다. 더나아가 '에시온게벧'에 이르러 마침내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광야 방황이 모두 종결되었고, 따라서 더 이상 광야의 천막 생활이 필요없었기 때문에 숙영지를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한다. 즉 바야흐로 고대하던 가나안 입성이 눈앞에 이른 것이다.

성 경: [민33:37]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 호르 산 - 이곳의 위치는 명확치 않으나 가데스 근처, 에돔 변경으로 추정된다<20:22 주석>. 이곳에서 아론이 죽어갔다. 기타 이 산과 연관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20:23;21:4;34:7, 8을 참조하라.

성 경: [민33:38,39,40]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본문에는 이스라엘의 초대 대제사장 아론의 죽음과 가나안 원주민으로서 이스라엘에 대항했던 아랏 왕에 대해 기록되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0:22-29 및 21:1-3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33:41]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 살모나 - 혹자(Raumer)는 이곳을 오늘날 '마안' 지역으로 보기도 하나 확실치 않다. 그리고 이 지명은 이곳 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성 경: [민33:42]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 부논 - 이곳은 옛날 에돔의 '비논' 지역과 동일한 곳으로 보이는데(창 36:41), 학자들에 의하면 이 지역은 죄수들이 보내지는 유배 마을로서 광산 지역이었다고 한다(Jerome, Jusebius). 오늘날 이곳은 페트라(Petra)와 소알(Zoar)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성 경: [민33:43,44]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 오봇...이예아바림 - 21:10, 1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33:45,46,47]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 디본갓...알몬디블라다임...느보 앞 아바림 산 - 여기서 앞서 언급된(21:30) '디본'과 동일 지명인 듯한데, 이곳은 아르논 북쪽 몇 마일 지점에 있다. B.C. 835년 경에 발굴된 메사 비문에 의하면 후일 이곳은 모압의 수도가 된 곳이다(Wycliffe). '알본디블라다임'은 다른 이름으로 '벧디불라다임'이라고도 한다(렘 48:22). 그리고 '느보 앞 아바림 산'은 모압평지에 위치한 큰 산맥으로써, 이 산맥의 유명한 봉우리들로 비스가, 느보등이 있다(21:20;27:12).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16-20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33:48]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 모압 평지 - 22:1 주석 참조.

성 경: [민33:49]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 벧여시못 - '사막의 집'이란 뜻을 지닌 모압의 유명한 성읍으로(겔 25:9), 비스가산 근처 사해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성읍의 남서쪽은 시혼 왕국과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후일 르우벤 자손에게 분배된 곳이다(수 12:3;13:20).

(주); 아벨싯딤 - 이곳은 모압 평지에 위치했으며 이스라엘이 최후로 진(陣)을 쳤던 장소이다(수 3:1). 그리고 '아카시아 나무의 목초지'란 지명 뜻을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은 바알브올을 섬겼으며(25장), 여리고 성 정탐꾼을 파견하기도 했다(수2:1). 오늘날 이곳은 요단 강 하류에서 동쪽으로 약 10km 지점에 위치한 현재의 '텔엘 케프레인'(Tell el-Kefrein)으로 추정된다.

성 경: [민33:50]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가나안족 섬멸 명령]

(주); 여리고 - 요단 강 서쪽 약 8km 지점에 위치한 큰 성읍으로, 이스라엘이 취한 최초의 가나안 정복지였다<수 6장>.

성 경: [민33:51]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가나안족 섬멸 명령]

(주); 요단을 건너...들어가거든 - 요단 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동쪽 경계를 이룬다(34:10). 후에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널 때 마치 출애굽 직후 홍해를 건널 때와 마찬가지로 강이 육지가 되는 기적 속에서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수 3:14-17). 이처럼 출애굽 후 광야 생활의 처음과 끝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큰 능력을 힘입어 죽음이 넘실대는 물을 순탄히 건넌 것은 곧 이스라엘의 해방과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달렸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성 경: [민33:52]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가나안족 섬멸 명령]

(주); 다 몰아내고 - 여기서 '몰아내고'(*, 호라쉐템)란 '기존 소유주를 몰아내고 대신 점유하다', '추방하다', '파괴하다'는 뜻의 '야라쉬'(*)에서 유래한 말로서, 가나안 원주민들을 철저히 분쇄하고 그 땅에서 완전히 축출한 다음 차지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시고,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시고자 하셨던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우상과 죄악에 찌든 무리들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다. 즉 이스라엘이 수행하는 가나안 정복 전쟁은 수탈을 목적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 성결의 한 과정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여호와 앞에서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갖고 원주민들을 철저히 몰아내어야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 일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함으로써(수 9:21), 그로 인해 훗날 수 많은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55, 56절).

(주);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 - '새긴 석상'(*, 마스키트)은 문자적으로돌, 벽 또는 어떤 물체에 '새겨진 형상(우상)들'(Carved images, NIV)이란 뜻이다. 즉이 말은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던 돌로 만든 우상(레 26:1)을 가리킨다. 그리고 '부어 만든 우상'(*, 찰메 맛세코트)이란 직역하면 '덮어 씌워 만든 우상들'(molten images, NIV)이란 뜻이다. 즉 나무나 흙 등으로 우상들의 모양을 만든 다음 그 위에 금속을 녹여 부워 만든 것을 가리킨다<레 26:1 주석>.

(주); 파멸하며 - 이 말의 히브리어 '이바드템'(*)은 '부수다', '멸망시키다'란 뜻의 '아바드'의 강의형(Piel)으로서 곧 철두철미 파괴시켜 그 존재를 없애버리라는 뜻이다.

(주); 산당을 다 훼파하고 - 여기서 '산당'(*, 바모탐)은 '높은 곳'이란 의미의 '바마'(*)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흔히 이 말은 '고지'(high place)라고 번역되기도 하나 대부분 '신전'(temple)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왜냐하면 고대 팔레스틴 지역의 우상숭배자들은 산과 같이 지상으로부터 높은 곳에 신전을 세워두고 각종 제사 의식을 집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그런 곳은 종교적으로 구별된 특별 처소로 인식되었다.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이방의 산당을 가증히 여기시고 우상과 더불어 부숴버릴 것을 엄명하셨다(레 26:3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일 중앙 성소 제도를 명하신 것도 바로 이러한 신앙의 난립을 철저히 방지하기 위함이었다(신12:5, 11).

성 경: [민33:53]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가나안족 섬멸 명령]

(주); 취하여 - 이 말은 원어상 52절의 '몰아내고'란 말과 동일하다. 즉 패역한 원주민을 깨끗이 쓸어내고 그 땅을 얻으라는 뜻이다.

(주); 너희 산업으로 - 여기서 '산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쉐트'(*) 역시 52절의 '몰아내고'란 말과 동일 어근으로서 '정복하여 점유한 것', 또는 '하나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이스라엘이 차지한 가나안 땅은 결코 그들의 노력에 의해 탈취한 점령지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창 15:18-21), 결국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신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이었다.

성 경: [민33:54]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가나안족 섬멸 명령]

(주); 제비 뽑아 나눌 것 - 이스라엘이 얻게 될 가나안 땅은 각 지파의 수효에 따라 그 넓이가 결정되었으며, 제비로서 그 땅 위치가 정해졌다. 이같은 명령은 이미 구체적으로 지시된 바 26:52-56의 반복이다. 따라서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주); 열조의 지파를 따라 - 이는 곧 가나안 땅은 12지파와 각 지파 자손들의 가족 단위로 땅이 분배될 것을 뜻한다(26:55).

성 경: [민33:55]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가나안족 섬멸 명령]

(주); 너희의 눈에 가시 - '가시'의 히브리어 '레쉬킴'(*)은 복수형으로서 곧'가시들'(thorns)을 의미한다. 신체 중 가장 예민한 부분인 눈에 여러 개의 가시가 들어갔을 때 그 당할 고통은 대단한 것이다. 한편, 그런데 이스라엘이 가나안 원주민들을 그 땅에서 완전히 축출시키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어려움을 당할 것이라는 이 우려섞인 예언은 훗날 그대로 성취되고 만다. 즉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몇몇 원주민들에게 관용 정책을 베풂으로써 사사 시대 및 왕정 초기에 계속 생존한 원주민들로부터 고통을 당했다. 더욱이 원주민들의 우상을 수용하기까지 하여 끝내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비운을 맞아야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으로,그 명령을 거역하는 자에게는 뼈저린 고통만이 따를 뿐이다.

(주); 옆구리에 찌르는 것 - '찌르는 것'(*, 리츠니님)이란 원문상, '갈구리들'(hooks)을 가리킨다. 이는 '예리하게 하다', '차갑게 하다' 등의 뜻인 히브리어'차난'(*)에서 유래한 말로서, 신체에 큰 상처를 입힐만한 흉기를 지칭한다. 한편 이처럼 위협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본절의 요지는 가나안 원주민을 그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어 그들의 죄악된 각종 문화와 우상을 제거함으로써,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증한 우상 숭배 등의 죄악에 물들지 않고 온전히 여호와만 섬기게 하기 위한 조처라 할 수 있다.

성 경: [민33:56]

주제1: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

주제2: [가나안족 섬멸 명령]

(주); 나는...너희에게 행하리라 - 이는 강력한 경고의 끝맺음 말로써 곧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원주민을 몰아내지 않을 경우 오히려 그들이 당할 엄벌을 천명한 것이다. 즉 하나님은 스스로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심판받아 마땅한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파멸과 축출을 계획하셨는데(창 15:16), 만약 이스라엘이 당신의 이러한 뜻을 거역한다면, 그 심판의 화살을 이스라엘에게 돌려 가나안 땅에서 그들을 좇아내시고 파멸시킬 것이었다. 이 경고의 메시지는 훗날 여호수아를 통해 또 한번 전달되지만(수 23:13), 이스라엘은 기어코 이 경고를 무시함으로써 훗날 쓰라린 역사를 맞게 된다.

성 경: [민34:1-29]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가나안 땅의 남편 경계]

이 부분에는 정복 전쟁으로 얻게 될 가나안 땅의 동서남북 경계선과 각 지파에게 할당될 몫, 그리고 각 지파 지경(地境)을 결정할때 제비를 뽑을 각 지파 족장의 명단이 제시되어 있다. 이처럼 미래에의 청사진을 지금 펼쳐보인 것은 그 땅이 확실히 이스라엘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사실과 그 땅의 진정한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이스라엘은 큰 영토를 약속받았으나, 원주민들을 멸절 시키라는하나님의 뜻을 어김으로써 다윗과 솔로몬 치세에 이르러서야(삼하 8:3;대하 9:26) 비로소 약속된 지경에 가깝게 소유하게 된다. 그런데 그 소유한 땅 중에서도 일부분은 자력이 아닌 주변 국가와의 동맹을 통해 확보하였다. 이를 볼 때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함에 있어서 여호와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이 얼마나 큰 손실을 자초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한편 약속의 땅에 대한 경계 설정은 일찍이 아브라함 당시 '횃불 언약'(창 15:12-21)을 통하여 이미 계시된 바 있었다. 그곳에는 보다 막연히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테까지'라고 묘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때가 되며, 구체적으로 각 성읍의 이름까지 적시하면서 그땅의 경계를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은 영원히 스스로 계시는 분으로서 당신의 약속의 본질은 결코 변함이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울러 당신의 경륜의 한 방편으로서 계시(啓示)의 점진적 사역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본장에 언급된 가나안 영토의 사방 한계선을 정탐꾼들의 노정과 더불어 지도로 나타내 보면 아래와 같다.

성 경: [민34:2]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가나안 땅의 남편 경계]

(주);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 - 가나안 땅에 대한 최초의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다(창 12:5-8). 그리고 이 언약은 거듭 확인되다가(창 13:15;15:18-21), 창 17:8에 이르러 가나안 경계내의 모든 땅을 이스라엘의 영원한 기업으로 줄 것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언약이 주어졌다. 이처럼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이 언약은 이삭을 거쳐야곱에게 이어져 왔으며 그후 모세에게 재확인되었다(출 3:8, 17). 하나님은 이 언약의 실현을 위해 비록 불신앙으로 점철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광야 40년 동안 그들을 계속적으로 보살펴 주셨다. 그리하여 마침내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은 그 실현 단계에 이르렀던 것이다.

(주); 그 땅은 너희의 기업 - 이는 비록 현재 가나안 원주민들이 그 땅에 살고 있으나 그들이 그 땅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즉 그 땅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선물의 땅이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원주민을 몰아내야 한다는 명분이 바로 여기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주); 가나안 사방 지경 - 여기서 '사방 지경'을 직역하면 '그것의 끝(경계)까지'가 된다. 곧 가나안 사면(四面, 동서남북)의 국경을 일컫는다.

성 경: [민34:3]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가나안 땅의 남편 경계]

(주); 에돔 곁...신 광야 - 이 말은 가나안이 광야를 중간에 두고 그곳에 연접한 에돔과 각각 분리된다는 뜻이다(Keil, Delitzsch). 이와 견해를 같이 하는 공동 번역은 '에돔경계선에 닿은 신 광야'라고 번역하였다. 그런데 이 지역은 팔레스틴 최남단을 기업으로 받은 유다 지파의 남쪽 경계와 일치한다<수 15:1>.

(주); 동편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 가나안 남쪽 경계는 염해, 곧 사해(死海)의 남쪽끝에서부터 시작하여 서쪽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사해의 남쪽 끝'이란 실제로는 사해바다 끝에서 남쪽으로 약 12km 떨어진 지점을 가리키며 이 지점에서 서쪽으로 가나안의 남쪽 경계선이 이어진다.

(주); 염해 - 염해(鹽海, Salt Sea)의 현재 지명은 '사해'(死海, Dead Sea)이다. 성경에는 이곳을 '염해'(창 14:3), '아라바 해'(신 3:17;수 12:3;왕하 14:25), '동해'(겔47:18;슥 14:8), '바다'(겔 47:8;암 8:12;미 7:12) 등으로 지칭하고 있다. 이곳은 팔레스틴 서쪽의 구릉 지대와 동방 모압의 고원지대 사이에 끼어있는 요단 계곡의 남단(南端)이다. 이곳의 수면(水面)은 지중해 수면보다 약 390m나 낮은 세계 최저 수면이다. 요단 강 외에도 여러 지류(支流)의 수량 유입이 막대하지만, 배수구(排水口)를 갖지 않은 이 호수가 1년 내내 동일한 수위(水位)를 유지하는 것은 막대한 수면 증발량때문이다. 따라서 이 호수에 함류된 염분의 양은 보통 바닷물의 약 6배에 달한다. 이런 까닭에 이곳에는 어떤 생물도 살 수 없으며, 또 그런 이유로 해서 이곳이 '사해'(dead sea)라 명명되었다. 이 바다의 남북 길이는 약 78.6km, 동서 너비는 약 14.4km이고, 총면적은 약 880km2에 이르므로 '호수'라 불리어지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바다'로 호칭된다. 이 바다는 원래 소돔과 고모라 지역이었는데 이 도시들이 멸망, 함몰되면서 형성되었다고 전한다<창 19:25 주석>. 현재 아라비아인들은 이 바다를 '바할롯' 곧 '롯의 바다'라고 부른다.

성 경: [민34:4]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가나안 땅의 남편 경계]

(주); 돌아서 아그랍빔 언덕 남편에 - 여기서 '돌아서'란 문자적으로 '방향을 전환하여'란 뜻이다. 그러므로 즉 이스라엘 국경의 남쪽 경계는 사해 끝에서 곧장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어서 서쪽 지중해를 향하여 곧바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사해의 끝에서 애굽 시내로 경계가 연결되며(5절) 그 경계선은 남서쪽으로 비스듬히 이어진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가나안의 남쪽 경계는 사해의 끝에서 남쪽으로 약 12KM 지점에서부터 시작되므로, 애굽 시내쪽으로 난 경계선은 방향을 바꾸듯이 곧장 서쪽으로 이어져 간다는 의미이다. 한편 '아그랍빔 언덕'은 '전갈(全蝎)의 언덕'이란 뜻을 가진 지역으로, 사해 남서쪽 약 30km 지점에 위치해 있다.이 부근에는 명칭 그대로 전갈(절지 동물로서 배 끝에 치명적인 독침이 있고 입 가까이에 집게가 있으며 다리는 4쌍이다)이 많다. 그리고 이 언덕은 석회암층으로 심한 경사(傾斜)를 이룬다. 오늘날 '피크레 계곡'(Wady Fikreh)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주); 신을 지나 - 여기선 '신'(Zin)은 신 광야에 있는 특정한 지역이다. 이 지역 이름때문에 그 부근의 넓은 광야가 '신 광야'로 불려지게 되었다(Pulpit Commentary).

(주); 가데스 바네아 남방에 이르고 - '신'에서 '가데스 바네아'로 이어지는 경계는 네게브(Negeb, 팔레스틴의 남방 지역)에 있어서 농경 가능 한계선인데, 이 경계선의 서북쪽은 넓은 농경 지대이다. 그러나 이 경계의 동북쪽은 산, 고원, 분지, 등 불모지(不毛地)를 이루는데 곧 신 광야의 일부에 속한다. 그리고 가데스 바네아는 신 광야의 서쪽 끝에 위치한다<20:16>. 그러므로 하나님은 가나안의 경계를 정하심에 있어서 남쪽 경계는 경작지와 불모지를 가르는 선을 택하셨다.

(주); 하살아달을 지나 아스몬에 - '하살아달'은 가데스 바네아 약간 윗쪽에 있는데 헤스론과 앗달(수 15:3)을 동시에 지칭하는 이름이다(Keil). 아마도 두 곳의 위치가 가깝고 주민들의 교류가 매우 잦았기 때문에 위의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가나안의 남쪽 경계는 이곳을 지나 다시 가데스 바네아 북서쪽 약 6km지점에 위치한 '아스몬'에 이른다(수 15:4). 한편 이 부분의 지명들은 모두 유다 지파가 차지한 기업의 남쪽 경계와일치한다<수 15:1-4>.

성 경: [민34:5]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가나안 땅의 남편 경계]

(주); 애굽 시내 - 이스라엘 영토의 남쪽 경계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지명으로서(왕상8:65;왕하 24:7;대하 7:8;사 27:12), 흔히 '애굽 강'으로도 불리운다(창 15:18). 물론 이것은 애굽에 있는 나일 강을 가리키는 지명이 아니라, 바란 광야에서 지중해로 흘러들어가는 시내를 가리킨다. 한편 이스라엘이 얻을 땅이 이 '애굽 시내'를 건너 북쪽에 위치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국가가 애굽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난 참 독립국이라는 의식을 고취하기에 충분했다.

(주); 바다까지 - 여기서 '바다'는 곧 지중해를 일컫는다. 결국 가나안 남쪽 경계는 사해남쪽 약 12km 지점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며 '애굽 시내'의 하구(河口), 즉 지중해에서 끝났다. 34:1-29 주석 지도 참조.

성 경: [민34:6]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가나안 땅의 서편 경계]

(주); 서편 경계는 대해 - 이스라엘의 서쪽 한계선은 '대해'(大海), 곧 '지중해' 해안이 된다(신 3:16, 17; 수 13:23, 27;15:47). 한편 '서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얌'(*)은 곧 '바다'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사고 개념상 서쪽에는 항상 큰 바다가 있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Pulpit Commentary).

성 경: [민34:7]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가나안 땅의 북편 경계]

(주); 대해에서...호르 산까지 - 본절의 '호르 산'(Mt. Hor)은 가데스 바네아 동북쪽 에돔 변경에 있는 '호르 산' 곧 아론이 죽었던 곳(20:22;21:4;33:37-41;신 32:50)이 아니라, 가나안 땅의 북쪽 곧 레바논에 있는 어떤 산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산의 위치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북쪽 경계선이 모호해진다. 다만 8절의 '하맛 어귀'라는 지명을 통해 추측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아셀, 납달리 지파가 받을 기업의 북쪽 한계선을 통해 북쪽 국경선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수 19:24-39).

(주); 긋고(*, 테타우) - 이 말은 '표시하다', '경계를 갈라 구분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타아'(*)에서 유래한 말로서 곧 '너는 구획(區劃)할 것이다'는 의미이다.

성 경: [민34:8]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가나안 땅의 북편 경계]

(주); 하맛 어귀에 이르러 - 여기서 '어귀에'로 묘사된 히브리어 '레보'(*)는 '입구에'(to the entrance)란 의미이다. 이는 '들어가다'란 뜻을 가진 '보'(*)에서 유래하였다. 그런데 하맛 성읍은 하맛 왕국의 수도로서 팔레스틴 훨씬 북쪽의 오론테스 강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본문의 '하맛 어귀에'라는 말은 하맛 왕국 남쪽, 즉 가나안 땅에서 하맛 왕국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편 하맛(Hamath) 왕국은 수도가 있는 '하맛'의 이름을 따라 명칭이 생겼으나, 후에는 그 왕국에 속한 모든 땅을 '하맛'으로 불렀다. 따라서 본절의 '하맛 어귀'는 오론테스(Orontes) 강변에 있는 왕국의 수도 '하맛'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아래인 하맛 왕국의 땅 일부분을 가리킨다(Keil, Delitzsch). 훗날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이 비록 영토를 확장하여 하맛 왕국의 땅 변방을 정복하기는 했으나 하맛 왕국 수도를 함락한 것은 아니었다(대하 8:4).

(주); 스닷 - 하맛에서 남동쪽으로 약 5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성읍인데, 오늘날의 '사닷'(Zadad)으로 추정된다(Knobel, Robinson).

성 경: [민34:9]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가나안 땅의 북편 경계]

(주); 시브론을 지나 하살에난에 미치나니 - 여기서 '시브론'(Ziphron)은 다메섹과 하맛 경계 중간에 위치한 성읍이다(겔 47:16). 그리고 '하살에난에 미치나니'란 말을 직역하면 '그것의 마지막 (지점은) 하살에난이 될 것이다'가 된다. 하살에난(Hazar-enan)의 위치는 불명확하다(겔 47:17:48:1) 많은 사람들은 원어로 '샘터'란 뜻의 '하살에난'을 현재의 '리브웨'(Lebweh) 샘 근처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Robinson). 이곳은 북쪽으로 흘러가는 오론테스 강(the Orontes)과 남쪽으로 흐르는 레온테스 강(theLeontes) 사이에 있다. 지금도 이곳은 샘이 많으며 조금만 파도 물을 얻을수 있다고한다(수 11:17;13:4, 5;19:24-39;겔 48:1). 한편 '하살에난'의 이치를 지금의 '리브웨'로 잡았을 경우, 가나안의 북쪽 경계는 지중해로부터 '스닷'까지는 북서쪽으로 타원형을 그리며 올라가고 '스닷'에서 '시브론'까지는 남동쪽으로 타원형을 그리며 내려온다. 그런데 '시브론'에서 '하살에난'까지는 다시 남동쪽으로 약간 더 내려오는데, 그리하여 '하살에난'은 가나안 북쪽 경계의 끝이 되고, 거기서부터는 가나안의 동쪽경계의 방향인 남쪽으로 곧장 이어진다<수 19:24-39>.

성 경: [민34:10]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가나안 땅의 동편 경계]

(주); 스밤 - 약속된 땅의 동편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곳 '스밤'(Shepham)은 '벌거숭이', '민둥 지대'란 의미를 지닌 것 같은데, 그 위치는 불명확하다.

성 경: [민34:11]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가나안 땅의 동편 경계]

(주); 스밤에서 리블라로 - 이 두 곳은 위치가 불명확하다. 그러나 '리블라'(Riblah)가 '샘'이라는 뜻의 '아인' 동편에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이곳은 하맛(8절) 왕국내에 있는 '리브라'(왕하 23:33;25:21;렘 52:27)와는 별개의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주); 아인 동편에 이르고 - 여기서 '아인'(Ain)은 긴네렛(갈릴리) 호수에서 멀지 않은 어느 큰 샘이 있는 장소로 보인다. 탈굼은 여기 '아인'이 헤르몬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요단 강으로 보내고 있다고 한다(Pulpit Commentary).

(주); 긴네렛 동편 해변에 미치고 - 직역하면 '긴네렛 동쪽 어깨를 건드릴 것이다'가 된다. 즉 이 구절은 동쪽 경계가 긴네렛(Chinnereth) 호수(갈릴리 바다)와 접한 해변에 이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긴네렛 호수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의 한 지점에 그 경계가 이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동쪽 경계는 다시 서쪽으로 이어져 긴네렛 호수 최남단에 이르고 마침내 요단 강을 거쳐 염해에 이른다. 한편 '긴네렛'은 '하아프'(harp) 또는 '수금'(竪琴)을 뜻하는 지명이다. 아마도 호수 모양이 하아프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른인 듯 하다. 신약에서는 이곳을 대부분 '갈릴리 바다(호수)'라 일컬었다.

성 경: [민34:12]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가나안 땅의 동편 경계]

(주); 요단으로 내려가서 - 여기서 '요단'은 갈릴리 바다(긴네렛 호수) 남단, 곧 갈릴리 바다에서 요단(Jordan)으로 흐르는 하구(河口)를 뜻한다.

(주); 염해에 미치나니 - 원문에 따르면 '그것의 끝은 염해가 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의 경계는 남쪽 경계가 염해의 끝에서 시작되어(3절) 서쪽, 북쪽 경계를 거쳐 다시 동쪽 경계의 끝인 염해에 이르러 끝난다. 34:1-9 주석 지도 참조.

성 경: [민34:13]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요단 서편의 기업]

(주); 제비뽑아 얻을 땅 - 26:52-56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주); 아홉 지파와 반 지파 - 이스라엘 12지파 중 르우벤, 갓, 므낫세 반(半) 지파를 뺀 나머지 곧 시므온, 유다, 잇사갈, 스불론, 에브라임, 단, 아셀, 납달리, 베냐민 지파 및 남은 므낫세 반(半) 지파를 가리킨다.

성 경: [민34:14]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요단 서편의 기업]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半) 지파가 요단 동편 땅을 기업으로 받는 과정 및 조건, 그리고 그 분배받은 성읍들에 대해서는 32장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34:15]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요단 서편의 기업]

(주); 해 돋는 편(*, 미즈라하) - 이는 '해뜨다'는 뜻의 '자라'(*)에서 유래된 말, 곧 '동쪽'을 가리키는 말인 '미즈라'(*)에 장소를 지정하는 접미사 '헤'(*)가 붙어 이뤄졌다. 이와 같이 복합어로 구성된 '해 뜨는 쪽'이라는 말은 단순히 '동쪽'이라는 표현보다 훨씬 더 의미가 강하여, 특별히 지정된 장소를 분명하게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여기서는 두 지파 반이 얻은 바로 그 기업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성 경: [민34:16-29]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기업을 차지할 자들]

이 부분은 가나안 땅 분배 작업을 책임질 자로서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임명된 사실과 더불어 제비뽑아 땅을 분배받을 각 지파 족장 10명이 임명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각지파를 대표하는 9명의 족장을 도표화하면 아래와 같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각 지파 대표자들의 이름은 대부분 하나님과 연관된 것들로서, 그들의 삶이 철두철미 하나님 중심적이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이들은 유다 지파의 갈렙을 제외하고 가나안 정탐시에 뽑혔던 족장들과는 모두 차이가 나는데(13:4-15), 그 이유는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10정탐꾼들은 가데스에서의 불신앙의 죄로 인해 광야에서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14:36-38).

성 경: [민34:17]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기업을 차지할 자들]

(주); 엘르아살과...여호수아 - 엘르아살은 하나님의 지명에 따라(27:21) 아비 아론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직을 수임(受任)받은 자이므로, 거룩한 기업의 분배에 감독자로 활약하는 것이 당연했다. 또한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이스라엘 전체의 군사.정치적 통솔자였기에, 백성들의 땅 분배에 깊이 관여해야 했다. 결국 이 두 사람은 출애굽과 광야 인도의 두 지도자 모세와 아론의 뒤를 이어 가나안 땅 정복과 정착이라는 대명제를 짊어진 새로운 세대의 새 지도자였다<32:28>.

성 경: [민34:18]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기업을 차지할 자들]

(주); 한 족장씩 택하라 - 여기서 '족장'(*, 나시)은 각 지파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를 가리킨다. 원래 각 지파를 대표하여 그들을 지도하는 우두머리를 히브리어로 '로쉬'(*) 곧 족장이라 하는데, 이는 본절의 '족장'과는 그 지위와 사명이 다르다. 즉 '로쉬'는 지파 전체를 통솔하는 상임 족장이며, '나시'는 특별한 목적과 사명을 위임받은 지파의 대표자이다. 가나안 정탐시 모세가 선출했던 12정탐꾼이 바로 이 '나시'에 해당한다(13:1-16). 그런에 간혹 두 단어가 혼용될 때도 있다<2:3>. 한편, 그리고 본문의 '택하라'(*, 티크히)는 말은 '잡다', '취하다', '받다'란 뜻의 '라카흐'(*)에서 파생된 것으로 '취할 것이라', '받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택하라'는 말은 각 지파에서 족장 1인씩을 선출하여 임명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지명해 두신 사람을 각 지파에서 인정하고 지도자로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성 경: [민34:19]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기업을 차지할 자들]

(주); 갈렙 - 갈렙(Caleb)은 여호수아와 더불어 가데스에서 가나안 정탐 후 신앙적 보고를 함으로써, 가나안 땅에 입성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13:1-16;14:30). 그러한 갈렙은 가나안 입성 직전 유다 지파의 지도자로 또한번 지명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사실 그는 원해 본토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아 '그나스 사람'(the Kenezite)이었다(32;12;수 14:6). 즉 그는 출애굽시 함께 나온 잡족(출 12:38)중의 한 사람으로, 창 36:11에 나오는 그나스의 후손으로 추정된다(Hitzig). 그러나 그는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귀화함으로써 유다 지파에 흡수되었다. 이처럼 그는 귀화인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대사(大事)에 이어서 유다 지파를 대표할 만큼 지파내에서 신망(信望)이 두터웠던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이스라엘 공동체는 배타적인 혈통 연합체가 아니라, 할례자이면 누구나 존귀한 일꾼이 될 수 있었던 신앙 공동체였음을 깨닫게 된다(롬 2:28, 29;갈 3:7).

성 경: [민34:20]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기업을 차지할 자들]

(주); 시므온 지파 - 원문에는 '시므온 자손(아들들)의 지파'로 되어 있다. 즉 시므온의 자손들로 구성된 지파라는 의미이다.

성 경: [민34:22,23]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기업을 차지할 자들]

(주); 자손 지파 - '자손'이라는 말은 '아이들'(children), '아들들'(sons)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표현은 한 지파가 동일한 혈통으로 밀접히 연결된 집단임을 나타낸다(19-28).

(주); 족장 요글리의 아들 북기 - 이 말은 '북기는 족장인 요글리의 아들'이란 뜻이 아니라 '요글리의 아들 북기가 족장이다'란 뜻이다. 이는 22-28절에 나오는 모든 족장들에게 적용된다.

(주); 요셉 자손 중 - 야곱의 아들 요셉은 '요셉 지파'로 단독 지파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각각 그 삼촌들과 동일한 위치에서 한 지파씩을 형성하게 된다(창48:5, 6).

성 경: [민34:29]

주제1: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

주제2: [기업을 차지할 자들]

(주); 기업을 나누게 하신 자들 - 이는 19-28절에 나타난 각 지파의 족장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가나안 정복 후에 그 땅을 제비뽑아 나누는 일을 담당할 자들로서 하나님께서 직접 지명해 주신 자들이다<18절>. 그런데 이 족장들은 실제 가나안에서 각 지파들이 차지하게 될 위치와 거의 흡사한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즉 최남단에 위치한 유다 지파 족장을 제일 먼저 언급한 이후 그 다음으로 시므온, 베냐민, 단 등으로 연결되다가 최종적으로 제일 북단에 위치한 납달리 지파 족장에 이르러 종결지워진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들 각 지파들이 차지하게 될 기업의 위치에 대해 이미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계셨음을 시사한다.

성 경: [민35:1]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레위인의 성읍]

(주); 모압 평지에서 - 이스라엘이 출애굽 제 40년 5월 이후부터 모압 평지에 진을 쳤을때(22:1),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해야 할 규례들을 지시하였다(22-36장). 이를 요약하면 (1) 2차 인구조사(26장), (2)가나안 정복 계획(33장), (3)제사와 절기의 규례(28-30장), (4) 가나안 땅의 분배원칙(34장), (5) 분배된 땅의 상속법(27,36장), (6)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제도(35장) 등이다. 결국 모압 평지에서 이뤄진 모든 사건과 규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와 그 땅에서 백성들이 행해야 할 일들에 대한 지시 사항들이었다. 한편 이런 일련의 일들을 마친후, 이스라엘은 출애굽 제 41년째 되는 해 마침내 요단강을 건너 제 41년 1월 10일에가나안 땅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33:38;신 1:3;수 4:19).

성 경: [민35:2]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레위인의 성읍]

(주); 레위인에게...주게 하고 - 레위인들에게는 오직 '여호와'가 그들의 기업이었으므로(18:20,23), 가나안 땅에서의 기업이 별도로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가정이 있었기에 거처할 최소한의 처소와 생활 터전이 필요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의 정착 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처소를 마련하시는 새 법을 제정하셨다. 한편 이렇게 마련된 처소는 필요한 경우 매매할 수도 있었다. 또한 매매된 경우라 하더라도 희년(Jubilee)에는 다시 원소유 주인 레위인에게 돌려졌다(레 25:32,33).

(주); 그 성읍 사면의 들 - 직역하면 '그 성읍들 주변에 있는 목초지'라는 뜻이다. 이는 곧 레위인들이 일정량의 가축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구절이다<3절>.

성 경: [민35:3]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레위인의 성읍]

(주); 가축과 물산과 짐승들 - 여기서 '가축'(*, 베헤마)은 통상 몸집이 크고, 또한 길들여 집에서 기를 수 있는 짐승(cattle)을 가리킨다(창 34:23;36:6;레1:2). 또한 '물산'(*, 레쿠쉬)이란 '물질'(substance), '재산'(property)을 의미한다. KJV는 위의 견해를 따라 '소유물'(goods)로 번역하였고, NIV와 LivingBible은 '양의 떼'(flock)로 번역함으로써 좀더 구체적인 묘사를 하였다. 그리고 '짐승들'(*, 하야탐)은 곧 '동물들'(animals)을 가리킨다. 아마 여기서는 앞의 '가축'외의 짐승들을 가리키는 듯하다(NIV, other livestock). 따라서 본문은 모든 짐승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결국 레위인들은 그들이 거처할 장소로서 성읍을 받았으며, 가축을 기르거나 방목할 장소로서 성읍 주변에 있는 목초지를 받았다. 원래 기업이 없는 레위인들은 백성들이 가져오는 십일조로 생활을 유지하였다(18:21-24). 그 십일조 가운데는 곡물 외에도 짐승과 가축들이 있었을 것이므로, 자연히 그것들을 관리할 목초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성 경: [민35:4]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레위인의 성읍]

(주); 사면 이천 규빗 - 여기서 '사면'(*, 사비브)이란 '주위에', '주변에' (round about)란 뜻이다. 이는 본래 '돌다'(to turn), '둘러싸다'(to surround)는 뜻의 히브리어'사바브'(*)에서 유래하였다. 한편, 그리고 본절의 '2천 규빗'이란 원문으로 '엘레프 암마'(*) 곧 '1천 규빗'이라는 의미이다. 한글 개역 성경 난하주에 1천 규빗으로 번역된 것과 같이 KJV와 RSV에도 1천 규빗(a thousandcubits)으로 되었다. 여기서 1규빗이 약 45.6cm 이므로 1천 규빗은 약 456m가 된다. 성읍의 성벽으로부터 밖으로 사방(四方) 각각 1천 규빗의 목초지이므로, 목초지의 한 변의 길이는 2천 규빗과 한쪽 성벽의 길이를 합한 것이 될 것이다(즉 2000규빗+성벽 한쪽의 길이). 한편 위의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성 경: [민35:5]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레위인의 성읍]

(주); 성밖 동편으로 이천 규빗 - 이 말은 목초지의 동쪽 길이가 성벽의 길이를 제외하고 2천 규빗(약 912m)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벽에서 사방 밖으로 각각 1천 규빗(개역 성경에는 2천 규빗으로 번역되었음, 4절 주석 참조)이 된다. 여기서 카일(Keil)은 성읍을 정사각형으로 보고 레위인의 목초지를 한 변(邊)의 길이가 2,000규빗+성읍의 길이인 정방형(正方形)으로 여긴다. 그러나 랑게(Lange)는 카일의 견해를 인정하면서도 성읍 모양이 정방형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다양성을 제시한다. 즉 성읍의 모양이 정방형(square)이든지 혹은 다른 모양을 하고 있든지 상관없이그 성읍의 외곽 성벽 사방(四方)에서 각각 1천 규빗의 거리까지는 성읍과 더불어 레위인들에게 주어지는 그들의 목초지라는 것이다. 본 주석은 랑게의 견해를 취한다.

성 경: [민35:6]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레위인의 성읍]

(주); 도피성으로 여섯 성읍 - 레위인들이 받을 성읍은 우선 도피성으로 지정된 6성읍이었으며 그후 나머지 42성읍이 더 주어졌다. 본래 도피성은 요단 동편에서 3성읍, 서편에서 3성읍씩을 지정하도록 되어 있었다(14절).각 지파들은 이 도피성을 포함하여 비례의 법칙에 따라 48성읍을 레위인들에게 주어야 했다. 한편 '도피성'(도피성,Refuge City)에 관해서는 9-34절 부분의 주석과 신 19:1-13 부분의 주석 및 여호수아 20장 등을 참조하라.

성 경: [민35:7]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레위인의 성읍]

(주); 사십 팔 성읍을 주고 - 레위인들에게 주어진 48성읍의 명칭에 대해서는 1-8절 주석 그림을 참조하라. 아울러 수 21:4-42 부분을 참조하라.

(주); 그 들도 함께 - 여기서 '들'(pasture land)은 레위인들에게 줄 각 성읍 주변의 목초지를 가리킨다<2절>.

성 경: [민35:8]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레위인의 성읍]

(주); 산업을 따라서 - 이 말은 각 지파(12 지파)가 무조건 동등한 수의 성읍(4성읍 씩)을 레위인들에게 줄 것이 아니라, 각 지파의 기업의 넓이에 따라서 형평의 원칙에 맞게, 넓은 지파는 많이, 좁은 지파는 적게 제공하라는 뜻이다. 한편 각 지파에서 할애한 성읍 수에 대해서는 1-8절의 그림을 참조하라.

(주); 레위인에게 줄지니라 - 각지에 흩어진 이스라엘 지파들은 여호와께서 특별히 선택한 무리인 레위인에게 자기 영토의 일부를 기증함으로써, 하나님께서 헌신할 기회를 얻게 되었으며, 아울러 율법 교육과 종교 생활에 더욱 매진할 수 있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 한편 레위인들이 얻은 성읍의 숫자가 '48'이라는 데서 한 가지 귀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48'이란 완전과 하나님의 섭리 및 하나님 나라 백성을 상징하는 수인 '12'와 지상의 수, 즉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상징하는 '4'가 결합된 형태(12 4)이다. 이는 곧 이 땅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B hr). 한편 풀핏 주석(Pulpit Commentary)은 당시 일개월 이상된 레위인 남자의 수가 23,000명이었다는 사실(26:62)에 근거하여, 레위인 남녀의 총 수효를 도합 50,000명 정도로 본다. 그러므로 48개 각 성읍에 1,000명 좀 넘는 레위인이 각각 거주했다고 생각한다.

성 경: [민35:9,10]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여섯 도피성]

(주);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 이는 도피성 설치 및 그 운용이 가나안 입성 후 실시될 사항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가나안 정복 전쟁이 운용될 도피성 제도를 미리 말씀하시는 것은 오직 역사의 미래를 홀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기인한다.

성 경: [민35:11]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여섯 도피성]

(주);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 살인 사건이 발생하였을 경우, 그 고의성 여부를 따져 비고의적인 경우에만 도피성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수 20장>. 한편 출 21:13에는 이러한 살인자가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장소로서 막연하게 한 '곳'을 지정하고 있으나, 본장에서는 6개의 도피성을 말하고 있으며, 여호수아 20장에서는 그 도피성의 이름들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수 20:7,8). 이것은 계시(啓示)의 점진성(漸進性)을 보여 주는 좋은 실례이다.

(주); 도피성(*,아리 미클라트; *, 폴레이스 톤 퓌가듀테리온) - 고대로부터 각 민족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성역(聖域)이 있어 그곳으로 피신한 자들에게는 죽음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하던 오래된 관습이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도피성'(逃避城, the Refuge Cities)이라고하는 특별한 성역 제도가 있었다(출 21:12-14;신 19:1-13;수 20:7-9).이것은 '여호와의 제단'과 더불어 (출 21:12-14;왕상 1:50;2:28) 이스라엘 사회에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자들에게 피신처 역할을 감당했다. 곧 이 도피성은 살인자에 대한 처형 재고 조처로 세운 것이었다(창 9:6;레 24:17;겔 18:20). 왜냐하면 유대 사회의 또다른 관습인 '고엘 제도'에 의하면, 피살자의 친족은 그 죽은 자를 대신하여 합법적인 피의 보수자가 되어 그 살인자를 죽일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혀 고의성 없이 부지중에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자는 자신의 결백을 재판을 통해 공개적으로 판단받기까지 일단 피해 있을 피신처가 필요했던 것이다. 도피성의 목적은 바로 이러한 우발적인 살인범을 개인의 복수로부터 보호하고, 결국 그 생명을 살려주는데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고엘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한 성격의 것이었다. 그러나 비록 살인범이 도피성으로 피신했다 할지라도, 그의 살인에 고의성(故意性)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는 죽음을 면할 길 없었다. 이러한 유대인의 도피성 제도의, 비고의적 살인자들만을 보호하는 규정은 후대, 이방 헬라나 로마의 성역(聖域) 제도와 궤를 달리하는 핵심적인 내용이다. 즉 이방의 성역 제도는 살인의 고의성 여부를 떠나 무조건적인 법적 사면 혜택을 주었으나, 유대인의 도피성 제도는 단순히 공정한 판결을 받기 위한 피신 장소였다. 따라서 이것은 고대인의 개념상 어떤 지역(장소)에의 신성성을 공의(公義)의 법으로 극복했다는 점에서 가히 획기적 규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살인자의 고의성 여부의 판단은 제사장이나 장로들로 구성된 진상 조사단의 면밀한 정황 판단과 회중의 입회하에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피성은 도합 여섯 개로 유대 땅 골고루에 퍼져 있었다(신 19:3). 그것은 살인범이 어느 곳에 있든 가장 가까운 도피성으로 도망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유대 전승에 의하면, 도피성으로 향하는 길에는 군데 군데 '도피성'(*, 미클라트)이라고 쓰인 큰 푯말을 설치하고, 또한 그 길도 넓게(약 14m 가량) 닦아 놓아야 했다고 전한다. 한편 여섯 도피성의 명칭에 대해서는 1-8 주석 도표를, 그 위치에 대해서는 여호수아 20장 지도를 각각 참조하라.

(주); 그릇 살인한 자 - 도피성으로 피신할 수 있는 자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즉 살인자는 누구나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살인하였거나 살인할 의향없이 실수하여 살인한 경우에만 해당되었다. 따라서 만일 그가 고의적으로 살인한 자라면 제단 뿔(구원의 뿔)을 붙잡아도 끌어내려 죽여야 했다(출 21:14). 한편 여기서'그릇'(*, 비쉬가가)이란 말은 원래 '실수하다', '정도를 벗어나다'는 뜻의 '솨가그'(*)에서 유래한 말로서<레 4:2> '실수로'(through error), '알지 못하고', '부지중에'(KJV, unawares), '우발적으로'(NIV, Living Bible-accidentally),'의향(意向)없이'(RSV, without intent)등의 의미를 지닌다.

성 경: [민35:12]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여섯 도피성]

(주); 보수할 자(*, 고엘) - 이는 원래 값(대가)을 치르고 '구속할 자'(redeemer),'회복할 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구약 성경에서 '근족'(레 25:25), '기업무를 자'(룻 2:20;3:9, 12;4:3) 등 여러 가지로 번역 되었다. 사실 '고엘'이란 말은'구속하다', '회복하다', '보상하다'란 뜻의 '가알'(*)에서 유래한 말로서, 결국 친족의 이익 뿐 아니라 손해를 회복시키며, 보상하는 책임을 맡은 자임을 알 수 있다(레 25:8-55 강해, 근족의 의무). 즉 친척이 어려워 그 소유지의 일부를 팔았을 때 땅 값을 대신 물어 주는 가까운 친족과, 종으로 전락한 친척의 몸값을 대신 갚아 주고 그를 자유케 하는 '근족'(레 25:25), 그리고 죽임당한 친족의 피값을 대신 보수(보복)해주는 자 등을 의미한다(Oehler). 한편 피의 복수는 피살자와 관련된 가까운 친족들이 의논하여 처리해야 할 의무였으며(삼하 14:7), 거기서 결정된 사항에 따라 피살자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복수 행위를 담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주); 살인자가...판결을 받기까지 - 비록 부지중에 살인한 자라 하더라도 응보의 원리(창 9:6)에 의해서 보수자(報讐者)에게 죽임당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살인자는 도피성으로 달려가서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사고의 내용을 알리고 보호를 청해야 했다<수 20:4>. 이때 장로들은 긴급 피난자에게 그 성읍의 일정한 장소를 제공하고 피살자의 보수자로부터 그의 신변을 보호해 주어야 했다. 그리고 살인자에 대한 보수자의 신병 인도(新柄引渡) 요구가 있을시, 그 보수자에게 그를 직접 넘기지 않고 회중이나 회중 재판소(사고를 낸 현장 회중들의 판결 또는 도피성에 있는 지역 재판소)에 그 살인자를 넘겨 공정한 사법적 판결을 받도록 하였다. 이때 판결 내용이 실수나 부주의로인한 비고의성 살인으로 판명되면, 그를 다시 도피성으로 데려다가 일정한 기간(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생명을 보존하도록 하였다. 만약 고의적(故意的) 살인으로 판결되면, 그는 피의 보수자에게 넘겨져 처형되어야만 했다(수 20장).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공정한 판결 제도를 설정함으로써,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무분별한 피의 복수가 악순환 되지 않게 하셨고, 보복과 형벌의 객관성을 확립코자 하셨다<9-15강해, 도피성 제도의 의의>.

성 경: [민35:13,14]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여섯 도피성]

(주); 여섯으로 도피성이 되게 - 6개라는 도피성 숫자가 처음 제시되었다. 여섯 도피성의 명단(게데스,세겜,헤브론,베셀,길르앗라못,바산골란)은 수 20:7,8에 가서야 비로소 언급된다. 그런데 이 도피성은 요단 동편에 3개, 서편에 3개를 각각 정함으로써 비고의적인 살인자로 하여금 손쉽게 피신토록 하였다. 한편 유대 전승(傳承)에 따르면, 요단을 기준하여 동서에 각각 3개씩 설치된 도피성은 각 성읍 사이가 정삼각형을 이룰 만큼 서로 동일한 거리에 위치했으며, 성읍 주위에는 높은 성벽과 같은 장애물이 없었다고 한다. 또 이 성읍들에는 모든 생필품(生必品)들이 완전히 갖춰져 있어서 하나의 작은 세계를 형성했다고 전한다.

(주); 요단 이편 - 32:19 주석 참조.

성 경: [민35:15]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여섯 도피성]

(주);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우거하는 자의 도피성 - 여기서 '타국인'(*, 게르)은 비록 혈통은 본토 이스라엘인이 아니지만,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사회에 귀화한 자들을 가리키며, '우거하는 자'(*, 토솨브)는 단순한 나그네나 여행객과는 달리 외국 출신의 영주자 체류인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중에 도피성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격과 생명체의 원소유주이심을 보이는 것이요(행 17:24-26), 또한 이것은 신약에 이르러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구원을 얻게 된다는 구속의 원리를 예시한 것이기도 하다(고전1:24;갈 3:27,28).

성 경: [민35:16]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고살자(故殺者)에 대한 규례]

(주); 철 연장 - 이는 생활 도구에서 부터 전쟁용 무기에 이르기까지, 철(鐵, iron)로 제작된 모든 물건들을 가리킨다. 익히 알듯이 '철'은 어떤 형태를 띠던 그 강도로 인하여 족히 살상용(殺傷用)무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피살자가 철제 기구에 의해 죽었다면, 그것은 분명 살해자에게 고의성이 내포된 것으로 보아야 했다.

(주); 쳐 죽이면(*, 히카후 와야모트) - 직역하면 '그가 그를 쳤다(히카후). 그리고(*, 와) 그가 죽을 것이다(야모트)' 가 된다. 유대인들은 이 문구를 근거로 사람을 쳤으나 피해자가 죽지 않은 경우는 살인죄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풀이한다. 그러나 형제를 욕하는 것 조차도 살인에 해당한다고 가르치신(마 5:21-26) 예수님의 교훈에 비춰볼 때 유대인들의 주장은 지나치게 문자적인 것에 얽매인 견해이다. 결국 형제를 살해할 의도를 가지고 연장으로 후려치는 자는 세상 법 이전에 존재하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긍휼'(도피성)의 대상에 들지 못하는 악행인 것이다.

(주); 고살한 자...반드시 죽일 것이요 - 여기서 '고살한 자'란 살해 의사(意思)를 가지고 사람을 죽인 자를 가리킨다. 또 '죽일 것이요'란 말의 히브리어 '유마트'(*)는 '죽다', '멸망하다'는 뜻인 '무트'(*)의 사역형 수동으로서, '그가 누구에게 살해될 것이다'란 의미이다. 따라서 본문은 남을 쳐서 죽인 자는 기필코 자기도 타인의 손에 의해서 죽임 당하도록 규정한 율례이다(창 9:6;레 24:17).

성 경: [민35:17]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고살자(故殺者)에 대한 규례]

(주); 사람을 죽일 만한 돌 - 히브리 원문상 이 말은 '사람을 쳤을 때 그를 죽인 바로 그 돌'이란 뜻이다. 즉 살인 의사를 가지고 사람을 돌로 쳤을 때 맞은 사람이 죽게 되는 경우의 돌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돌은 반드시 덩치가 큰 것만은 아니었다. 이런 견지에서 NIV에는 '사람을 살해할 수 있는 돌'(a stone that could kill)로 번역하였다.

성 경: [민35:18]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고살자(故殺者)에 대한 규례]

(주); 나무 연장 - 나무로 만들어진 도구(instrument)를 총칭해서 가리키는 말이다. 즉 곤봉이나 굵고 단단한 막대기 등도 살해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살상용 무기가 될 수 있다.

성 경: [민35:19]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고살자(故殺者)에 대한 규례]

(주); 피를 보수하는 자 - 여기서는 살해 당한 자의 가장 가까운 친척을 가리킨다. 12절 주석 참조.

(주); 그를 만나거든 죽일 것이요 - 이 말은 보수자가 그 살인자를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만나거든 그를 마음대로 죽이라는 뜻(Keil,Delitzsch)이 아니다. 왜냐하면 살인자는 반드시 재판을 거쳐 그 살인의 고의성(故意成) 여부를 따져 사형을 결정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살인자는 재판이 끝나기까지 어디든지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다(12절). 그러므로 본절의 의미는 재판의 결과가 고의적인 살인으로 드러날 경우, 보수자(피살자의 가까운 혈족)가 그를 인도받아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복수의 성격이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법적 보복임을 나타낸다. 이 경우 보수자가 먼저 손을 대고 그후에 군중이 합세하여 처형했다(신 13:9,10).

성 경: [민35:20]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고살자(故殺者)에 대한 규례]

(주); 미워하는 까닭에 - 고의적(故義的)살인의 근본 동기를 밝힌 말이다(마 5:22). 즉 남을 미워한 나머지 불타는 분노와 적개심으로 이웃을 살해한 자에게는 결코 긍휼의 성읍, 도피성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주); 밀쳐 죽이거나 - 여기서 '밀쳐'(*, 에흐도페누)란 '습격하다', '쥐어박다', '떠밀다'는 뜻의 '하다프'(*)에서 유래한 말이다. 결국 본문은 증오심으로 상대방을 공격하여 넘어뜨려 죽게 한 경우를 일컫는다.

(주); 기회를 엿보아...죽이거나 - 직역하면 '숨어 기다리다가 그에게(무엇인가를)던져, 그리고 그가 죽으면'이 된다. 원래 '기회를 엿본다'는 말은 '기다리며 엎드려 있다'(tolie in wait for)로서 집념어린 살인 의지를 반영한다.

성 경: [민35:21]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고살자(故殺者)에 대한 규례]

(주); 원한으로 인하여(*, 베에바) - 이 말은 '미워하다', '적의(敵意)를 갖다'는 뜻의 '아야브'(*)에서 파생된 말로서 '적의로'(KJV,RSV,NIV-in enmity), '앙심을 품고'라는 뜻이다.

(주); 손으로 쳐 죽이면 - 영역본 KJV,RSV에는 '그의 손으로 그를 세게 쳐서 그가 죽으면'으로 되어 있고, NIV와 Living Bible에는 '그의 주먹(fist)으로 그를 죽도록 치면(hit)'으로 되어 있다. 만약 이런 자들이 도피성으로 피신할 경우, 도피성 장로들은 도피성 밖으로 그를 끌어내어 보수자의 손에 넘겨 주었다(신 19:11.12).

성 경: [민35:22,23]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도피성 규례]

(주); 원한 없이 - '미워하는 일 없이 무의식 중에', '적대감을 갖지 않고'(without enmity)라는 뜻이다<21절>. 이처럼 비고의성을 띤 경우의 살인 행위는 그 정상(情狀)이 충분히 참작되어 도피성에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한편 우연한 살인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실례가 신 19:5에 언급되어 있다.

성 경: [민35:24]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도피성 규례]

(주); 회중이...판결하여 - 재판의 규례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각종 송사는 회중을 대표할 만한 재판관들에 의해 시시비비가 가려졌다. 그러나 회중들이 그 재판 내용을 인정치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이스라엘의 판결 방법은 온 백성의 객관적 동의와 나아가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본문의 재판에서 넓은 의미의 재판관은 '회중'이며, 피고(被告)는 '살인자'이고, 원고(原告)는 '보수하는 자'(12절 주석 참조)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증인(證人)은 당시 살인 사건 현장에 있었거나, 그 사건 내용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2명 이상이 요청되었다(30절).

성 경: [민35:25]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도피성 규례]

(주); 건져내어...도피성으로 - 24절의 재판에서 살인자의 비고의성(非故義性)이 판명되면, 그는 보수자의 손에 넘겨지지 않고, 그가 처음 피신한 도피성으로 다시 보내져 보수자의 보복으로부터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주);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 도피성에 피한 살인자는 비록 그 생명을 보호받곤 있지만, 그 살인의 대가인 '죽음' 문제가 완결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의 죽음이 보류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의 생명이 연장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백성들은 대신하여 속죄 사역을 담당하는 대제사장의 죽음은 바로 이러한 도피성에 있는 자가 받을 죽음을 대신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그 살인자가 치를 죽음은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대속되었다. 즉 피흘린 자는 반드시 피에 의해서만 속(贖)함 받을 수 있다는 '보응의 원리'(창 9:6;레 17:11)에 의해 대제사장의 죽음은 도피성에 피한 살인자의 피흘림을 대신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구속사적 견지에서 이는 죄아래 태어난인간이 그 죄값인 영.육의 죽음을 당하지 않고도, 십자가에 대신 피흘려 죽으신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은 얻을 수 있는 사실과 상통한다(Keil,Matthew Henry ,Ainsworth).

성 경: [민35:26,27]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도피성 규례]

(주); 도피성 지경 밖 - 도피성 제도는 연약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반영한 규례이다. 따라서 살인자가 어떤 이유 일지라도 도피성 밖으로 나가는 것은 곧 하나님의 긍휼을 무시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더이상 공적(公的)인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도피성 밖에서 피의 보수자가 그 살인자를 죽여도, 그 살인자는 이미 하나님의 긍휼에서 제외된 자, 곧 죽은 자로 간주되었으므로 '피의 보수자'(12절 주석 참조)는 자신의 살인 행위에 대해서 책임질 필요가 없었다. 이는 생명의 보금자리인 예수를 떠나서는 아무도 생존할(구원 받을) 수 없다는 진리를 예시한다.

성 경: [민35:28]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도피성 규례]

(주); 유하였을 것임이라 - 이 말은 곧 '머물렀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KJV, Heshould have remained)는 의미이다. 즉 이 구절은 도피성으로 피신한 자가 임의로 밖에 나왔을 때, 그를 죽이는 자에게는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살인자의 도피성 안에서의 생활은 그것이 비록 격리된 상태라 하더라도, 사법적인 징계나 구금(拘禁)은 아니었다. 단지 보수자에 의한 보복의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한 특별배려였기에, 그는 안전한 피신처에서 그의 생명이 구속될 때까지 (즉 대제사장의 죽음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주); 대제사장의 죽은 후 - 대제사장의 죽음은 대속 원리에 의해 피흘린 자의 죄를 담당하여 대신 죽은 것으로 간주되었다<25절>.

(주); 자기...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 대제사장이 죽은 후 살인자는 자유롭게 자기 처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유대 관례상 그는 자신이 과거에 지녔던 모든 명예와 지위를 회복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물론 살인 이외의 일반적인 범죄자들은 속죄 후에 대부분 옛 지위를 회복할 수 있었고, 기타 일들에 제재를 받지 않았다(Hirsch).

성 경: [민35:29]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성결 유지를 위한 규례]

(주); 이는 너희 대대로 - 여기서 '이는'(*, 엘레-these things)이 가리키는 바는 11-28절에 언급된 도피성 제도에 관한 모든 내용이다. 그리고 '대대(代代)로'란 말은 '다가올 모든 세대'(throughout the generation to come)를 말한다.

(주); 판단하는 율레 - 이는 공식적으로 엄중히 선포된 법으로서, 앞으로 되어질 일들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는 법을 지칭한다<27:10>. 즉 본절은 도피성 제도가 신적(神的)기원을 가졌으므로, 그 제도가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지켜져야 할 것이 강조된 말이다. 그러나 성경 기록상 이 제도가 실행된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거의 모든 세대에 걸쳐 외적의 침입을 받았으며 그 와중에 몇몇 도피성을 빼앗기도 했었으므로, 이 제도의 실행 여부는 더욱 불투명하다. 따라서 본절의 도피성 규례는 문자와 제도적 적용이라는 측면 보다, 피흘림의 악순환을 방지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율례라는 측면으로 이해함이 좋다.

성 경: [민35:30]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성결 유지를 위한 규례]

(주); 무릇 사람을 죽인 자 - 이 말은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나'란 뜻이다.

(주);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 살인자는 반드시 공정한 재판을 거쳐 판결을 받았다. 이때 살인 사건 현장에 있었거나 혹은 그 사건을 잘 알고 있는 증인(목격자)이 요청되었다. 그리고 2명 이상의 증인(證人)이 있을 때만 그 증언(證言)이 유효했다(신17:6;19:15;마 18:16;고후 13:1). 비록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라 하더라도 한 사람의 증언에 따라 최종 판결을 내리지 않은 것은, 사건을 정확히 파악하고 사사로운 인정이 개입되지 않게 하려는 제도적 장치였다. 결국 이는 율법의 신중성과 공정성을 나타냄과 아울러 생명에 대한 경외를 강조하는 규정이다.

성 경: [민35:31]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성결 유지를 위한 규례]

(주); 고살자의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 여기서 '생명의 속전'(ransom for thelife,NIV)은 원래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되심을 인정하는 표로 바치는 현금이지만<출30:12-16>, 여기서는 피해자 가족에 대한 보상금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고의적(故意的) 살인자는 이 속전(贖錢)제도에 의해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오직 그는 하나님이 정하신 바 '피는 피로 갚는다'는 공의의 규례대로 처형되어야 했다(창 9:6).

성 경: [민35:32]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성결 유지를 위한 규례]

(주); 대제사장의 죽기 전에는 속전을 받고 - 비고의적 살인으로 도피성의 보호를 받고 있는 자라 하더라도 속전<31절>을 지불하고 자유롭게 방임될 수는 없었다. 오직 그는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인한 속죄(贖罪)로써만 자유롭게 될 수 있었다<25절>.

성 경: [민35:33]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성결 유지를 위한 규례]

(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 히브리인들은 피를 생명으로 여겼으며, 따라서 피흘림은 곧 생명을 잃는 죽음으로 간주했다(레 17:11;신 12:23>. 그런데 이 죽음은 죄의 결과로 빚어진 부정적인 산물이기 때문에(롬 6:23), 결국 피흘림(죽음)은 의식법상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레 17:15,16). 그러므로 살인자를 죽이지 않고 방임하는 것은 곧 땅을 계속적으로 부정케 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피흘린 땅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는 '피는 피로'(창 9:6)라는 보응의 원칙에 의해 그 살인자의 피 역시 요구되었던 것이다. 즉 살인자를 피흘린 땅에서 처형함으로써 그 땅의 부정을 일소할 수 있었다. 창4:10 주석 참조.

성 경: [민35:34]

주제1: [레위인 성읍과 도피성]

주제2: [성결 유지를 위한 규례]

(주); 나의 거하는 땅 -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항상 임재해 계신다는 사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백성이며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은 곧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성을 파괴하는 것들, 특히 우상 숭배나 본절의 경우와 같이 사람의 피를 흘리는 행위 등으로써 그 땅을 더럽혀서는 안 되었다(레 11:45;18:25;24:23). 그러나 만약 피흘림으로 땅을 더럽혔을 경우,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규례에 준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결정이 이뤄지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 경: [민36:1]

주제1: [보완된 여성 상속법]

주제2: [여자의 상속 규례]

(주); 길르앗 자손 가족의 두령들 - 27장에서는 므낫세 지파의 한 가족인 슬로브핫(Zelophehad)의 딸들만이 모세에게 직접 찾아와서 기업 상속 문제를 거론했으나, 여기서는 이 지파를 형성하고 있는 각 가족의 두령들이 와서 모세에게 상속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문제는 슬로브핫 딸들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므낫세 지파 전체 이익이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즉 슬로브핫의 딸들이 아버지의 기업을 상속한 후, 타지파에게 시집가 버리면 결국 므낫세 지파의 기업 일부가 타지파에게 양도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므낫세 지파는 이 문제를 지파의 공동 의제로 삼아 그 대표되는 두령들을 '길르앗 자손 가족' 중에서 선발시킨 것은 그들이 슬로브핫의 딸들과 가장 가까운 '고엘'<35:12>이었기 때문이다(27:1).

(주); 두령된 족장(*, 네심 로쉬) - 1:4 주석 참조.

성 경: [민36:2]

주제1: [보완된 여성 상속법]

주제2: [여자의 상속 규례]

(주); 우리 주 - 여기서 '주'(Lord)라는 말은 모세를 가리킨다. 한편 개역 성경에는 '우리 주'라는 복수 형태로 되어 있으나, 히브리 원문에는 '아도니'(*, 아도니)곧 '나의 주'(my Lord)라는 단수 형태로 되어 있다. 즉 길르앗 자손 가족의 두령들이 함께 모세에게 나아왔으나, 그들 중 대표 1인이 그 지파의 공동 문제를 고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들이 모세를 '주'라 지칭한 것은 그들이 모세에게 내려진 신적(神的)권위를 인정하였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그런 측면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어려움을 단순히 인간 모세에게 가져간 것이 아니라, 그의 권위를 인준하신 하나님께 가져간 것이된다.

(주); 기업의 땅을 제비뽑아 - 26:55 주석 참조. 딸들에게 주게 하셨은즉 - 아들없이 죽은 사람의 기업은 그 사람의 딸이 대신 상속받을 수 있다는 27장의 상속법을 언급한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27:6-11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민36:3]

주제1: [보완된 여성 상속법]

주제2: [여자의 상속 규례]

(주); 그들의 기업은... 감삭되고 - '감삭된다'(*, 가라)는 말은 원래 '수염을 잡아 뽑다', '떨어뜨리다'란 뜻에서 유래한 말로 곧 수량이 줄어든다는 의미이다. 즉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주어진 기업이 타지파(他支派) 사람과의 결혼으로 인해 남편 지파에게로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므낫세 지파의 두령들이 슬로브핫 딸들의 상속 문제를 다시 건의한 분명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본래 가나안 땅은 영영히 팔지 못하며(레25:10,23), 각 지파에게 분배된 기업의 땅은 대대(代代)로 변함없이 존속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땅은 여호와께서 각 지파에게 선물하신 것으로, 그 땅은 곧 각 지파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연한 증거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27:1-11>.

(주); 첨가되리니 - 아버지로부터 기업을 상속받은 여자와 결혼한 타지파의 남자는 당시의 관례상 아내와 더불어 아내가 소유한 땅을 자기 지파 내로 영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 경: [민36:4]

주제1: [보완된 여성 상속법]

주제2: [여자의 상속 규례]

(주); 희년을 당하여...아주 감삭되리이다 - 매 7년마다 반복되는 안식년이 7번 지난 이듬해는 희년(禧年, Jubilee)이 된다<레 25:8>. 희년에는 자유가 선포되었고 모든 것이 얽매임에서 풀려나게 된다. 즉 종 되었던 자들이 자유의 몸으로 돌아오며, 팔렸던 기업이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아온다(레 25:10,13 주석 참조). 그리고 본절의 경우처럼 아버지의 기업을 상속받은 여자가 다른 지파의 남자에게 시집갈 경우, 그 기업은 영영히 남편 지파에게 복속된다. 물론 '희년'이 되기 전까지 여자쪽 지파에서 기업 무르는 절차를 통해서 다시 그 땅을 되돌려 받을 수는 있었다(레 27:23-25). 그러나 '희년'이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본래의 주인에게로 환원되어야 하는 규례에 의해 그 토지 역시 아버지의 기업을 상속받은 그 여자에게로 돌아간다. 결국 '희년'에 이르러 그 땅은 그 여자와 결혼한 남편의 지파에게로 영원히 귀속되고 마는 것이다. 므낫세 두령들이 염려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성 경: [민36:5]

주제1: [보완된 여성 상속법]

주제2: [모세의 분부]

(주); 여호와의 말씀으로 - 이는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서'(according to the word ofthe Lord)란 뜻이다. 즉 모세는 자신의 판단과 방법에 의거해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그 해결 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매사에, 특히 중대한 문제일수록 여호와의 뜻과 방법에 의지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안전한 처사이다(잠 1:7;렘 33:3).

(주); 요셉 자손 지파의 말 - 요셉의 아들 므낫세 지파의 두령들이 모세에게 건의한 말(2-4절)을 가리킨다.

(주); 옳도다(*, 켄) - '이치에 합당하다'는 의미이다.

성 경: [민36:6,7]

주제1: [보완된 여성 상속법]

주제2: [모세의 분부]

(주); 여호와의 명이 이러하니라 - 모세는 대언자적(代言者的) 입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받아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파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모세 오경'의 신적 권위는 스스로 입증된다.

(주); 마음대로 시집가려니와 - 이 말은 같은 지파의 가족 안에서는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지파 내의 가족 안에서는 '그녀들의 눈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게 하라'는 의미이다.

(주); 오직 그 조상 지파의 가족에게로만 - 여기서 '지파'(*, 맛테)란 야곱의 12아들들에게서 기인된 이스라엘 12지파(支派)를 가리키며, '가족'(*, 미쉬파하)이란 지파 내에서 유력한 세(勢)를 형성한 가문(家門)을 가리킨다. 따라서 한 지파내에는 여러 가족이 있었다(26:5-50). 그러므로 본절의 말은 아비의 기업을 상속받은 슬로브핫의 딸들은 반드시 지파 내에서 결혼을 하되, 가급적이면 가문(家門) 내로 시집을 가란 뜻이다. 이것은 지파 내에서 또다시 가족 단위로 땅이 분배되었다는 점(33:54)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이와같이 슬로브핫의 딸들의 경우처럼 기업(토지)을 상속 받은 여자로 하여금 지파와 가문 내로 결혼을 제한시킨목적은 각 지파 각 가문이 소유한 고유의 영토를 세세토록 보존시키기 위함이다(7-9절). 이처럼 각 지파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기업을 영구 보존하는 것은 하나님과 자신들이 맺은 언약 관계를 뚜렷이 하고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게 하는 것이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성 경: [민36:8]

주제1: [보완된 여성 상속법]

주제2: [모세의 분부]

(주); 무릇 그 기업을 이은 딸들 - 직역하면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자(딸)들'이 된다. 이로써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연관되었던 규례가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로 확대, 적용 되었다(대상 23:21-23).

성 경: [민36:9]

주제1: [보완된 여성 상속법]

주제2: [모세의 분부]

(주); 자기 기업을 지키리라 - 여기서 '지키다'(*, 다바크)는 말은 무엇에 연결되어 '굳게 붙어있다'(cling, adhere)란 뜻으로, 본문에서는 '확고히 보존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기업을 상속받은 여자가 자기 지파 내에서 결혼해야만 한다는 여성 상속법의 최종 목적은 각 지파가 그들이 처음 제비뽑아 얻은 땅을 자기 지파 기업의 소유로 세세토록 '확고히 보존하기'위한 것이다. 아울러 각 지파 간의 불건전한 소유욕과 경쟁심을 제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성 경: [민36:10]

주제1: [보완된 여성 상속법]

주제2: [기업을 지킨 슬로브핫의 딸들]

(주); 명하신대로 행하니라 - 이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6절) 므낫세 지파 내의 남자들과 결혼하여 아비로부터 상속받은 기업을 자기 지파 내에 존속시켰음을 나타낸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의 관계는 이와 같은 순종을 통해서만 복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성 경: [민36:11]

주제1: [보완된 여성 상속법]

주제2: [기업을 지킨 슬로브핫의 딸들]

(주); 말라와...노아가...시집가되 - 이곳에 기록된 다섯 명의 슬로브핫 딸들의 순서는 27:1에 제시된 순서와 다르다. 그 이유는 정확히 밝힐 수 없으나, 27장의 순서는 출생에 따른 연치상의 나열이고 본장의 것은 결혼한 순서에 의한 차례일 것으로 추정된다.

성 경: [민36:12]

주제1: [보완된 여성 상속법]

주제2: [기업을 지킨 슬로브핫의 딸들]

(주); 기업이...여전히 있었더라 - 개역 성경의 표현대로 하면, 여자 상속법이 선포될 당시(27:1-11) 이미 슬로브핫의 딸들은 기업을 분배받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 정복이 완료된 후에야 비로소 자기 몫의 가나안 땅을 소유할 수 있었다(수 17:1-6). 히브리 원어에 준하여 이 구절을 재번역하면, '그들의 기업은 그들의 아버지 가족의 지파와 함께 있게 되었다'가 된다. 즉 이 말은 기업 분배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뜻이 아니고, 슬로브핫의 딸들이 미래에 있을 기업 분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었다는 사실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슬로브핫의 딸들이 므낫세 지파 사람과 결혼했으므로, 그들은 정당하게 아버지의 땅을 분배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슬로브핫의 딸들이 기업을 얻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1) 먼저 딸들이 기업을 요구하자, 하나님께서 허락하심(27:1-11). (2) 그들이 다른 지파로 시집갈 경우를 전제한 문제 제기와 그 해결 방안이 마련됨(36:1-9). (3) 실제 기업을 분배받음(수 17:1-6) 등이다.

성 경: [민36:13]

주제1: [보완된 여성 상속법]

주제2: [결언(結言)]

이 부분은 여리고 맞은 편, 곧 요단 동편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여러 규례들(25-36장)의 결론일 뿐 아니라, 본서 전체의 대미(大尾)를 장식하고 있다. 특히 본절은 본서의 결론 부분으로서, 모든 말씀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직접 전달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본서의 주역(主役)은 인간 모세가 아니라, 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시고 가나안 땅에서 당신의 나라를 건설코자 하셨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