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유다 열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 미가의 예언 활동 기간을 나타내는 세왕의 재위 기간은 약 63년이다(B.C.750-687). 미가가 63년에 걸쳐 예언한 것으로는 생각할 수 없다 할지라도 세 왕의 시대에 걸쳐 예언한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2-7절에 언급된 사마리아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 본서가 사마리아의 멸망 시기인 B.C.722년 이전의 예언임을 나타내며, 렘 26:18,19에 따르면 히스기야 왕 시대에 미가가 신탁을 전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Smith).
(주);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대한 묵시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여호와의 권위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을 전한 미가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말씀 선포의 권위를 갖고 있다(Calvin).
성 경: [미1:2]
(주); 백성들아...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 '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들아'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백성들아'와 대구를 이루는 표현이다. 혹자는 이것이 백성들을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이라고 주장하나(Hitzig, Steiner), 열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Von Orelli, Delitzsch). 또한 '들을지어다'(쉐마)는 법정에서 고소할 때 사용된 용어로 B.C.8세기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을 고소하시는 것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 열방이 당할 멸망의 전조임을 시사한다(McComiskey). 열방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이라도 범죄할 경우 심판하시는 것을 보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 하나님께서 멸망과 그 이유를 증거하시는 장소인 '성전'은 '그 처소'(3절)와 대구를 이루는 것으로
지상의 성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하늘을 의미한다(시 11:4; 사 63:15, Von Orelli,Smith,Calvin).
성 경: [미1:3]
(주);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 '높은 곳'(*, 바모트)은 '군사 요충지'(신 33:29;겔 36:2), '산의 정상', '이방신전'(렘 7:31;겔
20:29)등을 의미한다. 문맥상 '산'(4절)과 '우상 숭배'(5-7절)가 어급되는 것으로 보아 '높은 곳'은 '이방 신전'을 의미하는 듯하다(McComiskey,
Smith).
성 경: [미1:4]
(주); 산들이 녹고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 하나님께서는 하늘 처소에서 나와 땅에 임재하여 심판하신다. 세상은 마치 양초가 불에 녹듯이 녹을
것이고 밀이 불에 타듯이 타버릴 것이다. 또한 물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는 진흙 땅에 내린 비가 홍수를 이루어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것과 같이
심판당할 것이다. 미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세상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 당할 파괴가 얼마나 처참한 것인가를
강조한다.
성 경: [미1:5]
(주); 이는 다 야곱의 허물을 인함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를 인함이라 - 본 구절의 '야곱'과 '이스라엘'은 병행구를 이루는 다음 행위 '야곱과 사마리아', '유다와 예루살렘'처럼 대구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동의어로 사용되어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곧 이스라엘 전체를 의미한다(Delitzsch, Von Orelli). 한편 '허물'(페솨)은 이스라엘의 반란(왕상 12:19)이나 모압의 반란(왕하 3:7)을 지칭할 때 사용된 단어로 윤리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하며, '죄'(하타트)는 '어긋나다'(to miss)에서 유래된 단어로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페솨'와 '하타트'는 각각 죄의 적극적인 면과 소극적인 면을 나타낸다(McComiskey).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것은 그들이 저지른 죄 때문이다.
(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뇨...예루살렘이 아니뇨 - 본 구절은 두 개의 수사 의문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사 의문문에 해당하는
'무엇이뇨'(미)는 문자적으로 '누구냐'라는 의미로 '사마리아'나 '예루살렘'을 의인화한 것이다. '미'는 인격을 가진 대상을 지칭할 때 사용된
것으로 이스라엘 전체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7절에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창기로 표현한
데서 보다 더 분명해진다. 한편 '산당'은 '높은 곳'(바모트,3절)과 동일한 단어로 우상숭배지를 가리킨다(Von Orelli). 뿐만 아니라 '산당'은
'죄'를 의미하는 '하타트'와 동격으로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에(호 10:8) 여기서 '야곱의 허물'과 동일한 의미의 '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McComiskey).
성 경: [미1:6]
(주); 이러므로...그 지대를 드러내며 - 우상숭배로 영적 행음의 죄를 범한 사마리아는 하나님의 임재로 완전히 파멸될 것이다. 사마리아는 마치
농부가 밭을 경작할 때 나오는 돌들을 한쪽 구석에 모아놓은 돌무더기처럼 폐허가 될 것이며, 들판에 돌이 쏟아져 있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장소로 변할 것이다. 한편, '그 지대를 드러내며'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사마리아 성의 기초가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Delitzsch). 그리고 이
표현은 '하체를 범한다'는 뜻을 상기시키기도 한다(레 20;11,17,18,20,21,McCom-iskey). 이것은 구약 성경에서 행음이나 음행을 가리킬 때 사용된
것으로(삼하 6:20; 겔 16:36; 23:18;호 2:10) 7절에서 언급되는 사마리아의 우상 숭배를 암시한다.
성 경: [미1:7]
(주); 그 새긴 우상을 다 파쇄하고 그 음행이 값을 다 불사르며 - 본 구절은 사라리아의 죄가 우상 숭배임을 구체적으로 밝혀준다. '음행의 값'은
'형상'을 뜻하는 어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 '우상'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으며 음행의 대가, 곧 화대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맥상
하반절에 '기생의 값'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화대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McComiskey). '음행의 값'은 사마리아가 우상에게 드린
제물이나(lange) 우상들이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마리아인들의 재산을 가리킬 수 있다(Smith).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사마리아인들이 섬겼던
목상들을 비롯한 모든 우상들은 훼파를 당할 것이며 그들이 드렸던 제물이든 우상이 준 재산이든 모두 파괴당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한 사마리아의 함락(B.C.722-721)에서 성취된다.
성 경: [미1:8]
(주);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 이는 미가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앞에 놓인 운명을 바라보고 애통해 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당시
죄인이나 노예는 허리에 동여매는 옷만을 입었을 뿐 신발은 신지 못했다. 미가는 벌거벗은 몸으로 상징적인 행동을 취하여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
앞으로 당할 운명, 곧 앗수르의 포로생활을 암시하였다(Smith).
성 경: [미1:9]
(주); 이는 그 상처는 고칠 수 없고...예루살렘에도 미쳤음이니라 - 본절은 미가가 그토록 애곡하며 애통해 했던 이유를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사마리아의 죄가 더 이상 치유될 가능성조차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그것이
사마리아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유다, 곧 예루살렘에게까지 미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 경: [미1:10]
(주); 가드에 고하지 말며 도무지 호곡하지 말지어다 - '가드에 고하지 말며'는 다윗이 사울왕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과 연관된다(삼하 1:20). 다윗은 백성들에게 블레셋 성읍인 가드 사람들이 사울 왕과 요나단의 죽음을 알아서 기뻐하지 않도록 가드에 알리지 말라고 하였다. 미가는 이 사실을 처음에 기술하여 다음과 같이 두 가지를 암시하고 있다. (1)다윗이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처럼 미가도 패망을 암시한다. (2)유다를 함락하기 위해서 쳐들어오는 앗수르의 침략이 가드에서 시작되며 가드도 멸망됨을 시사한다(Smith). 미가는 다윗의 조가를 인용하여 가드 거민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멸망의 징조를 깨닫지 못하도록 호곡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McComiskey). 한편, 70인역(LXX)은 '호곡하지 말지어다'를 '악고에서 울지 말지어다'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악고'는 지리학상으로 본장에 나타난 성읍들과는 달리 너무 북쪽에 있어서 본장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다(Smith, Delitzsch).
(주); 베들레아브라에서 티끌에 굴지어다 - '베들레아브라'의 뜻은 '먼지의 집'이다. 티끌에 굴지어다'는 애곡과 슬픔의 표시로서(Von
Orelli)베들레아브라 사람들이 재난으로 인해서 자신들의 성읍 이름의 뜻과 같이 먼지 속에서 구르게 될 것을 의미한다.
성 경: [미1:11]
(주); 사빌 거민아 너는 벗은 몸에 수치를 무릅쓰고 나갈지어다 - '사빌'은 '아름다운' 혹은 '순결한'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은 정반대이다. 그곳 거민들은 재난을 당하여 벗은 몸, 곧 포로된 자들이 당하는 모욕과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사 20:4, Von Orelli, Lange).
(주); 사아난 거민은 나오지 못하고 - '사아난'은 유다의 아래 지역에 위치한 성읍으로 그 의미는 전쟁을 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다'이다. 성읍이름의 뜻과 같이 용감한 사나난 거민들은 적들이 침략할 때 겁에 질려서 성읍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읍 안에서 갇혀 살게 될 것이다(Smith).
(주); 벧에셀이 애곡하여 너희로 의지할 곳이 없게 하리라 - '벧에셀'은 본절에만 나타나는데, 아마도 예루살렘 근처에 위치한 지명으로 '근처의
집'이란 의미를 지니는 도피처를 가리키는 듯하다(McComiskey). 본 구절은 벧에셀 거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성읍이 주변에 없을 정도로 앗수르의
침략으로 황폐해지며 결국 벧에셀도 파멸될 것을 시사한다.
성 경: [미1:12]
(주); 마룻 거민이 근심 중에 복을 바라니 - '마롯'은 '고통' 혹은 '수고'등의 의미이다. 마롯 거민들은 성읍의 이름이 갖는 뜻과는 달리 평안과 축복을 기대하나 여지없이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주); 이는 재앙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문에 임함이니라 - '예루살렘 성문'은 재난과 슬픔의 시작을 알리는 9절을 상기시킨다.
예루살렘도 재난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예루살렘 역시 파멸하실 것이다.
성 경: [미1:13]
(주); 라기스 거민아 너는 준마에 병거를 메울지어다 - '라기스'(라키쉬)는 '준마'(라레케쉬)와 운율을 이룬다. 라기스는 병거로 무장한 성읍이며, 그곳 거민들은 전쟁에 능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앗수르의 침략소식을 듣고 전쟁을 치를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파멸이다. 그들은 준비를 타고 도망을 치게 될 것이다.
(주); 라기스는...네게서 보였음이니라 - 본 구절은 라기스가 멸망당하는 이유를 나타낸다. 딸 시온, 곧 이스라엘이 범한 죄의 근원이 라기스에서
왔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 죄악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말과 병거를 의지한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 라기스를 통해서 우상들이 이스라엘에
유입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5-9절, Lange,Smith).
성 경: [미1:14]
(주); 이러므로 너는 가드모레셋에 작별하는 예물을 줄지어다 - '모레셋'은 '모레쉐트'(결혼지참금, 송별금)와 유사하다. 미가는 발음상의 유사함을 이용하여 청중들로 하여금 가드모레셋에 대한 예언의 내용을 결혼 지참금과 연결짓도록 유도하는 듯하다. 신부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신랑의 집으로 떠나듯이 미가 선지자의 고향인 가드모레셋은 유다에서 떨어져 나가 포로가 될 것이다(Smith, McComiskey).
(주); 악십의 집들이 이스라엘 열왕을 속이리라 - '악십'은 메마른 시냇물을 가리킬 때 사용된 단어로(렘 15:18) '기만'을 뜻한다. 갈증에 허덕이는
자가 메마른 시냇물을 만났을 때 느끼는 배신감처럼 유다 열왕들이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해 도움을 청하나 악십 사람들은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성 경: [미1:15]
(주); 마레사 거민아 내가 장차 너를 얻을 자로 네게 임하게 하리니 - '마레사'는 '정복자' 혹은 '얻을 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모라쉬'와 비슷하다. 그들은 '정복자'라는 뜻의 이름의 성읍이었으나 또 다른 정복자인 앗수르에 의해서 정복될 것이다.
(주);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라 - '아둘람'은 다윗이 사울의 핍박과 추적을 피하여 숨었던 동굴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누렸던 부귀와 영광은 마치 다윗이 동굴로 피한 것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성 경: [미1:16]
(주);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너를 떠났음이니라 - 미가는 이제까지 열두 성읍의 파멸을 예언한 후에 재난의 시작을 예언할 때와 같이
유다의 파멸을 애통해 한다. 유다의 종말은 바벧론의 침략으로 인해 유배당하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머리털은 능력과 권능을 상징하였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구별된 자들은 머리털을 깎지 않았다(민 6:1-21). 그러나 유다는 머리털이 없는 독수리처럼 머리털을 깎이게 되어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바벧론의 침략으로 인해 유배당하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머리털은 능력과 권능을 상징하였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자들은 머리털을 깎지 않았다(민 6:1-21). 그러나 유다는 머리털이 없는 독수리처럼 머리털을 깍이게 되어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바베론의 침략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게 되며 파멸당하여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성 경: [미2:1,2]
(주); 침상에서 악을 꾀하며...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부녀자들이나 권력자들이 행한 범죄를 나열한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두 가지 계층, 곧 부자들과 빈자들로 나뉘었다(McComiskey). 하나님 앞에서 죄악을 범하던 당시 부자들은 밤새도록 다음
날 행할 죄악을 꾀하고 날이 밝으면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미가는 그들이 밤에 계획하고 실행한 죄악을 2절에서 적나라하게 나열하고 있다. 그것은
타인의 발과 집을 빼앗고 사람들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는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이 앞서 언급된 죄악을 능히 행할 만큼 사회적
조건과 능력을 갖고 있었음을 뜻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능력만을 믿을 뿐 어느 누구도,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고 죄악을
자행했다(Lange). 그들이 빼앗은 토지나 재산은 하나님의 언약과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 각 사람과 각 지파에게 보장된 권리였다(출 22:26; 레
25:23ff., Von Orelli, Smith). 그 권리를 빼앗는 행위는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거부하는 행위였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것은 하나님과 백성
간의 관계가 파기됨을 시사한다. 그때 백성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뿐이다(3-5절).
성 경: [미2:3]
(주);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 내리기를 계획하니 - '그러므로'(라켄)는 재앙을 내리기로 계획하신 하나님의 결정이 앞서 언급된(1,2절) 죄악으로 인한 것임을 시사한다. 그 죄악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어긴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재앙 내리기를 계획하나니'(하쉐브...레)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뜻을 의미한다(Lange). 재앙을 내리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이 믿지 않아도, 거짓 선지자들이 평안하다 할지라도 변개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바꿀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심판 대상인 '이 족속'은 동일한 어구를 사용하는 아모스가 말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킨다(암 3:1,Calvin, Delitzsch).
(주);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히 다니지 못할 것이라 - 그들은 자신들의 절대적 권력과 능력만을 의지하고 자신들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께 보증하신 타인의 안녕이나 행복을 짓밟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행하였다. 이들이 저지른 죄악은 자신들의
목을 조이는 멍에와 같아서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속박과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교만하게 얼굴을 빳빳이 들고
다닐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모든 열방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McComiskey).
성 경: [미2:4]
(주); 너희에게 대하여 풍사(諷詞)를 지으며 슬픈 애가를 불러 이르기를 - 본 구절에는 '풍사를 지으며', '슬픈 애가를 불러','이르기를'등과 같은 세 개의 동사가 나타나는데 모두가 비인격 3인칭 단수 동사이다. 그러나 그 주어를 결정하는 데는 문맥을 중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본절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풍사를 지으며'의 주어는 열방들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전해 들은 열방들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비유나 속담을 지어 조롱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슬픈 애가를 불러 이르기를'의 주어를 3인칭으로 생각하면, 본 구절 이후에 언급된 '슬픈 애가'에 해당하는 구절을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왜냐하면 '슬픈 애가'에 대한 주어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이스라엘 자신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주); 그가 내 백성의 산업을...패역자에게 주시는도다 - 본 구절에 나타난 1인칭 '내'와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은 본 구절에서 땅을 분재하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하나님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을 허락하신
분이셨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과의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에게서 주셨던 땅을 빼앗아 '패역자'에 나누어 주신다. '패역자'는 문자적으로 '반역하는
자'를 가리킨다(McComiskey, Von Orelli).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이방인, 곧 앗수르를 의미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패역자'란 말은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비록 이방인인 앗수르가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된다 할지라도
미가는 그들이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반역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성 경: [미2:5]
(주); 그러므로 여호와의 회중에서 제비를 뽑고 줄을 띨 자가 너희 중에 하나도 없으리라- '회중'은 일반적으로 '무리'나 '군중'을 의미하나
본절에서는 '여호와의'라는 수식어가 첨가되어 한정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여호와의 회중'은 오직 여호와만을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 곧
언약의 백성을 의미한다(신 23장, McComiskey, Clavin). 한편 제비를 뽑고 줄을 띠는 것은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하던 여호수아 시대의
이스라엘을 상기시킨다(수 14:1-5). 언약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은 그 언약을 지키는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약속된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여 불법을 행함으로 언약의 축복의 자리에 참예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앗수르의 포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10절, Smith).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던 부자들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의 파멸을 전하는 미가의 예언을 듣기 싫어하였다. 그들은 미가의 예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언약된 백성이며 아들이며 장자이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출 4:22,23). 그들은 이미 완악해져서 미가의 심판
예언을 받아 들일 수 없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미가의 예언행위를 제한하며 핍박하였다.
성 경: [미2:6]
(주);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 - '그치지'는 '떠나다'라는 의미로, 본 구절은 치욕이 계속해서 떠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은 미가가 예언하는 모든 내용들이 모두 거짓말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치욕만큼 안겨줄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성 경: [미2:7]
(주); 너희 야곱의 족속이...행위 정직한 자에게 유익되지 아니하냐 - 본절은 미가의 예언을 모욕적인 것으로 오해하고 거부한 이스라엘에 대해
미가가 반문한 내용이다. 미가는 여기서 하나님의 심판 예언의 진정한 의도가 저주와 파멸에 있지 않고 오히려 회개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사랑에
기인함을 강조하고 있다.
성 경: [미2:8]
(주); 근래에 내 백성이 대적같이 일어나서 - '근래에'(이트물)는 '가장 최근에', 혹은 '어제'를 의미한다(Von Orelli). 하나님께서 미가의 예언을 통해서 지적하신 이스라엘의 잘못은 오래 전에 행했던 죄가 아니라 아주 최근에 행했던 죄악이다. 한편 본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구를 향해서 대적하여 일어났는지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본절은 미가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스라엘이 대적한 대상은 하나님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Calvin).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해 대적한 행위는 구체적으로 본절 하반절과 다음절에 언급된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을 핍박하고 압제한 행위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행한 것을 자신에게 행한 것으로 간주하신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들을 압제한 행위는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출 22:21-27; 신 27:19).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저지른 죄악의 대상은 세 부류이다.
(주); 전쟁을 피하여...겉옷을 벗기며 -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은 피난민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피난민을 보호하기는 커녕 그들의
옷을 강제로 벗겨서 빼앗았다. 여기서 '벗기며'는 군사적 용어로 '엄습' 혹은 '급습'을 의미하며(삿 9:33;삼상 23:27) 노략질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호 7:1). 이스라엘은 무방비 상태에 있었던 피난민을 급습하여 옷을 빼았었다.
성 경: [미2:9]
(주); 내 백성의 부녀들을...쫓아내고 - 이스라엘은 여자들이 안식을 누려야하며 보호를 받아야 할 집을 빼앗았다.
(주); 그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영히 빼앗는도다 - 이스라엘은 어린 자녀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았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은
아마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 속에서 어린 자녀들이 누려야 할 언약의 축복을 가리키는 듯하다(Smith). 이스라엘은 어린 자녀가 누려야 할
기회마저도 빼앗았다. 이스라엘이 핍박하고 압제한 이 세 부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보호해주고 돌봐주어야 할 대상이었다(출
22:22).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삶의 기반을 빼앗아 버리는 무자비한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며
대적하는 것이며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성 경: [미2:10]
(주); 이것이...이는 그것이 이미 더러워졌음이라 - 본절은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질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이다. 그것은 가나안
땅으로부터의 추방이다. 본래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은 백성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서 허락하신 축복의 땅이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이 누리도록 허락하신 안식은 단순히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축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었다(히 3:11,18; 4:1,3,5, Smith).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의도와는 달리 가나안 땅에 거하여
하나님의 축복에서 비롯된 번영을 누리는 과정에서 교만하여졌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이방 신이 준것으로 착각하고 우상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1:2-7) 자신의 욕심대로 많은 물질을 가질 때 안식을 누리는 것으로 생각하여 가난한 자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을
착취하였다(McComiskey).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을 축복의 땅 가나안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앗수르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다.
성 경: [미2:11]
(주); 사람이 만일...선지자가 되리로다 - 본절은 이스라엘의 심령 상태를 나타낸다. 이스라엘은 참된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 하나님의 말씀인
참예언과 인간의 말인 허망한 거짓 예언을 분별할 능력이 없었다. 그들은 미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는 거짓말로 취급하고 핍박하여다.
그러나 만약 어떤 자가 이스라엘에게 포도주와 독주, 즉 부(富)와 번영과 풍요가 있으리라고 거짓 예언을 하면 그를 예언자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처럼 언약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바른 말을 하는 사람보다 무조건적인 축복을 말하는 아첨꾼을 더욱 좋아했다.
성 경: [미2:12]
(주); 야곱아...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며 - 양떼로 비유된 '남은 자'는 본서에서 처음으로 언급된다. 본서에서 '남은 자'에 대한 언급은 모두 다섯
번 등장하는데 그것은 심판과 전쟁과 연결된다(4:7;5:7,8;7:18). 4장에 언급된 '남은 자'는 '저는 자','쫓겨났던 자','환난을 당한 자'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모아서 강하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을 약속하신다(4:7;5:7). 남은 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들이며,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은 자들이다(7:18-20). 그들은 마치 비옥하고 푸른 초장으로 가득 찬 에돔 족속의 한 도시인 보스라에 모인 양떼와
같아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하심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한편, 남은 자의 수는 매우 많다. 마치 양떼들이 우리에 모였을 때 웅성웅성 소리가
나는 것처럼 남은 자들의 수가 매우 많아서 그들이 모여드는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이다.
성 경: [미2:13]
(주); 길을 여는 자가...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 - '여는 자'는 '왕'과 병행을 이루며(Von Orelli) 메시야를 암시한다. 왕은 여호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위임 통치자로서 백성들 가운데서 나와 백성들보다 앞서 나아가는 인도자이다. 그러므로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는 말씀은 백성들 앞에 서서 인도하는 왕의 모든 행위와 통치가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 그는 백성들의
인도자로서 백성들 가운데서 나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통해서 백성들을 이방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것이다. 이 예언은 가깝게는 이스라엘 백성이
앗수르의 통치에서 해방됨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메시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전히 구원을 받게 됨을 예표한다.
성 경: [미3:1]
(주); 청컨대 들으라 공의는 너희의 알 것이 아니냐 - 재판관 혹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중의 하나는 '공의'이다. 이 '공의'는 백성들을
치리하고 백성의 억울함을 판결하는 데 있어서 공정하고 공평하게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McComiskey). 한편 '너희의 알 것이 아니냐'는 수신자들,
곧 야곱의 두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들이 공의로 책임을 지기보다는 자기 편리와 만족을 위해서 고의적으로 공의를 굽게 만들었음을
지적하는 설의법적 질문 형식이다(Calvin). 여기서 '알 것'은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공의임을 단순히 지적으로 아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직접 행할 수 있는 실천적 지식을 가리킨다(Smith, Delitzsch). 두령들과 치리자들은 분명히 공의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공의를 버리고 악을 행하기를 즐거워하였다.
성 경: [미3:2,3]
본문은 야곱의 두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들이 공의를 저버리고 행한 죄악에 대한 묘사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직무가 백성들을 공평하고
공정하게 다스리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만족을 위해 백성들의 고혈(膏血)을 짜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미가는 지도자들의 행위를 사람들이
고기로 음식을 만들 때 행하는 방식을 빌어서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 때 고기의 가죽을 벗기고 살을 다지며 뼈를 발라내듯이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다루었다. 그들의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며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는
완악한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었다(렘 17:9).
성 경: [미3:4]
(주); 그 때에...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우시리라 - '얼굴을 가리우시리라'는 '응답지 아니하시고'와 병행을 이루는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의
간구를 외면하실 것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외면과 무응답의 원인은 공의를 버리고 백성들을 압제한 지도자들의 행위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언약 백성이며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며 도와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공의 대신에 불의를 행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자들이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기대하는 것은 자기 위선과 욕심에서 비롯된
어리석음에 불과하다. 그들은 율법을 무시하였으므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파기되었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성 경: [미3:5]
(주);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전쟁을 준비하는도다 - 본절은 거짓 선지자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거짓 예언을 행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에 물면'은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과 병행을 이루며, '평강'은 '전쟁'과 대구를 이룬다. 그러므로 '이에 물면'은 먹을 것, 곧
뇌물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Delitzsch, McComiskey). 그들은 백성들이 먹을 것(뇌물)을 갖다주면 백성들이 듣기 원하는 평안을 선포하나, 먹을 것을
가져다 주지 않으면 전쟁을 선포하여 백성들의 마음에 공포심을 불어넣었다. 그들의 예언은 특별한 기준이 없다. 다만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백성들이 자신들의 배를 채워주느냐 하는 것뿐이다. 그들은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기보다는 오직 자기들의 만족만을 위해서 거짓말을
두려움없이 내뱉었다.
성 경: [미3:6,7]
(주);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하나님이 응답지 아니하심이어니와 - 비록 거짓 선지자들이 사람들의 귀에 솔깃하고 달콤한 말을 함으로 백성들의
지지를 받을지라도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참선지자인 미가가 선포한 것처럼 하나님은 정치 지도자들(1-4절)과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을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이상'(*, 하존)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시와는 다른 것으로 환상중에서 이상한 것을
보고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것을 가리킨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상과 점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현혹하였고 그것의 대가로 부(富)와 번영과
안락한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때에 그들은 더 이상 이상도 볼 수 없으며 점도 칠 수 없어 안락한 생활을 추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은 심판의 날에 자신들이 현혹하여 인기를 누렸던 백성들 앞에서 공개적인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입술을 가리울 것'은
본래 슬픔을 나타내는 표현이나(레 13:45; 겔 24:17,22). 본문에서는 문맥상 부끄러움을 나타낸다(Von Orelli).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의 배와
만족을 위해서 이스라엘이 평안할 것이라고 계속해서 거짓 예언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심판이 임하는 그날에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혀가게
함으로써, 거짓 선지자들이 모두 거짓으로 예언하였음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하신다. 심판의 날에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들이 한 번도 하나님의
음성과 응답을 들은 적이 없는 존재들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됨으로 백성들에게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성 경: [미3:8]
(주); 오직 나는...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 본 구절은 미가가 자신에 대해 변호한 내용이다. '오직 나는'(웨우람 아노키)은 '그러나'라는 반의 접속사와 '나'라는 인칭 대명사가 합쳐진 강조 용법의 표현이다. 미가는 '웨우람 아노키'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자신의 사역과 선포가 거짓 선지자의 선포와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계시임을 강하게 묘사하고 있다. 한편 미가는 거짓 선지자들과는 달리 여호와의신, 곧 성령의 감동함으로 인해서 '권능'과 '공의'와 '재능'을 소유하였다. '권능'(코흐)은 사역을 감당하는 잠재력을 뜻한다(Von Orelli), '공의'(미쉬파트)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법적인 차원에서는 '율법'이나 '규례'를 의미하였으며(출 24:3; 레 5:10),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방법'이나 '관습'으로 이해되었다(창 40:13; 왕상 18:28). 선지자들에게 있어서 이 '미쉬파트'는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의미하였다. 이것은 윤리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어서 예레미야는 '미쉬파트'를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으로 생각하였다(렘 5:28; 7:5). 그리고 '재능'(게브라)은 '힘'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람들의 위협이나 협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사람들의 죄악을 고발하는 용기를 뜻한다. 거짓 선지자는 자기 생각과 허망한 환상을 보고 점을 치며 미래를 예측하였으나, 참된 선지자인 미가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신 권능과 공의와 재능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시를 선포하였다.
(주);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 거짓 선지자들은 평안을 선포하여 백성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도 하고, 전쟁을 선포하여
백성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하여 자신의 부(富)와 번영 그리고 안락한 생활을 추구하였다. 그들이 선포한 것은 사람의 만족을 전제로 한 인간의
생각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가의 사역은 거짓 선지자의 사역과는 전적으로 달랐다. 미가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였다.
하나님의 계시는 이스라엘 전체가 범죄하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했을 뿐만 아니라 언약 속에 내재된 공의를 저버리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는 죄악을 범하였다. 거짓 선지자는 이들의 죄를 개인적인 안락을 위해서 옹호하였으나 미가는 하나님의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였다.
성 경: [미3:9]
(주); 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말을 들을지어다 - 미가는 본절에서 '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들을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죄악이 매우 심각함을 시사한다(11절).
특별히 '미워하고'는 몸서리칠 정도의 혐오감을 나타낸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공의 자체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시할 뿐만 아니라 악을 즐겨
행하는 자들이었다.
성 경: [미3:10]
(주); 시온을 피로...건축하는도다 -'시온'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인 예루살렘을 나타내는 또다른 표현이다. 미가는 지도자들의 죄를 '피'와
동일시하여 지도자들이 끔찍한 죄를 범했음을 강하게 묘사하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자신들의 만족을 채웠으며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를 세워나갔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인 예루살렘을 피로, 죄악으로 세우는 것과 동일한 처사였다.
성 경: [미3:11]
(주); 그 두령은...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 '두령'은 재판관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정치나 법계의 지도자를 의미하며, '제사장'과 '선지자'는 종교계의 지도자를 가리킨다. 두령은 공의로 재판을 하여 부당한 처우를 당하는 사람이 없게하는 책임을 갖고 있으나, 당시 이스라엘의 두령들은 뇌물을 수수하고 공정하지 못한 판결을 내렸다. 또한 제사장은 백성들이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훈해야 하나, 당시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삯을 위해서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악과 타협하며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가르침을 교훈하였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세대의 죄를 고발하여 회개하도록 유도하는 선지자들은 본연의 임무를 잊어버리고 안락한 생활을 위해서 먹을 것(돈)을 주는 자들에게 평안을 예언하였다(5절). 이상과 같이 당시 이스라엘의 전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돈을 숭배하였고, 안락한 생활을 위하여 공의를 굽게 하였다.
(주);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 본 구절은 당시 지도자들의 잘못된 인식을 나타낸다. 참된
선지자인 미가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하였다.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은 공의를 미워하고 불의를 즐겨 행함으로 빚어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파기였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외적인 의식, 곧 언약 백성이라는 사실만을 붙들고 자신들에게는 언약하시고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절대로 재앙과 심판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을 굳게 믿었고 그것을 자신들의 권세와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하였다(Smith). 그러나 그 결과는 심판이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언약 백성이라는 외적인 표징이나 의식의 준수가 아니라 언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 곧 공의를 행하며 순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를 외면하고 불의를 자행했으므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성 경: [미3:12]
(주);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 '시온'은 다윗이 정복한 여부스의 땅이었으나(삼하 5:7)
솔로몬시대에 이르러서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진 관계로 '거룩한 땅', '거룩한 도성'으로 불리움을 받았다(왕상 8:1). 본절에서 시온은 10절에서와
같이 예루살렘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시 149:2; 사 4:3; 40:9; 암 6:1).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곳이된 시온이
파괴당하며 거민들이 멸망당할 것이라는 사실은 당시 지도자들이나 백성들의 사고와 신앙의 차원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가의
입을 통해서 시온, 곧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하셨다. '밭같이 갊을 당하고', '무더기가 되고','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는 모두 예루살렘의
완전한 멸망을 나타내는 다양한 묘사이다. 예루살렘은 지도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의 죄로 인해서 완전히 파멸될 것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미가의 예언이 즉시 성취된 것은 아니다. 예레미야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미가의 말을 인용하여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였으며(렘
26:1-9), 그 예언의 실제적 성취는 B.C.586년 바벧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대하 36:6-20).
성 경: [미4:1]
(주); 말일에 이르러서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 '말일에'(베아하리트 하야밈)에 대해서 혹자는 '한정이 없는 먼 미래'를
의미하며, 본래는 그것이 종말론적 용어가 아니나 문맥상 본 구절이 여호와의 날을 지칭하기 때문에 종말론적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McComiskey). 그러나 70인역(LXX)에서 '마지막 날들에'(엔 타이스 에스카타이스 헤메라이스)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신 4:30; 겔 38:16;
호 3:5) '베아하리트 하야밈'은 종말론적으로 해석되는 것이 자연스럽다(Lange, Calvin). 그러므로 본장은 단순히 앗수르의 포로 상태에서 귀환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를 통해서 종말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신탁이다(Smith). 한편 '여호와의 전의 산'은 시온을 의미한다(2,7절,
Delitzsch). 이곳은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며 현존하시는 산이다. 3:12에서 성전의 파괴를 선언했던 것과는 달리 여호와의 전이 시온에 세워질 것을
선언한다. 더욱이 시온은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서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볼 정도로 고양(高揚)될 것이며 그 결과 모든 민족들, 곧 열국들은
시온에 매료되어 그곳으로 몰려오게 될 것이다(시 87편, Lange).
성 경: [미4:2]
(주);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 '시온'은 여호와의
전이 소재한 여호와의 산이다. 그러므로 산 자체에 강조점이 있다기보다 여호와께서 임재하신다는 사실에 초점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시온은 곧
여호와의 임재와 현존을 뜻한다. 열국들이 시온에 매료되어 몰려드는 것은 시온 자체에 매료시킬 만한 요소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시온에 임재하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말일에' 열국들은 시온에서 흘러나오는 여호와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게 되며 그 말씀을 받기 위해서 시온에 현존하시는 여호와 앞에 몰려들게 된다. 열국은 그 때에 여호와의 앞에 몰려들게 된다. 열국은
그때에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해서 완전히 변화될 것이다. 그들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살게 될 것이며 죄와 사망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도를 따른 여호와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Delitzsch).
성 경: [미4:3,4]
(주); 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 말일에 모든 열국이 모여들 시온은 약육강식(弱肉强食)과 같은 세상적인 원리가 통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의 재판장이며 심판자이신 분은 폭력이나 권력에 의지하여 부당한 판결을 하는 사람이나 나라가 아니라 바로 공의로우신 여호와 자신이시다. 여기서 '심판하시며'는 '다스리다'라는 의미이다. 여호와는 시온에서 온 우주의 주권자로서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실 것이며, 세상에서 '힘의 논리'로 좌지우지 했던 '강한 이방'을 판결하실 것이다.
(주);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 목가적인 주제를 설명하고 있는 본문은 시온에 있을 평화를 표현한 것이다. 당시의 다른 선지자들도 목가적인 표현을 통해서 평화를 묘사하고 있다(사 11:6-10; 호2:15; 암 9:13-15). 미가는 이 표현을 사용하여 메시야가 도래하여 이루실 왕국의 통치 원리를 설명하였다. 메시야 왕국의 통치 원리는 세상 나라의 원리인 힘이 아니라 평화이다. 세상은 철을 가지고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칼과 창을 만드나 메시야 왕국은 농기구를 만든다. 세상은 약탈자와 침략자로 인해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평안히 거할 수 없으나, 메시야 왕국에서 자연스럽게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밑에서 평화를 누릴 수 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평안히 쉴 수 있다는 것은 솔로몬 시대에 누렸던 평화롭고 번영된 나라를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선지자 스가랴가 선포한 메시야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왕상 4:25; 슥 3:10). 메시야 왕국에서는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통치 시대에 누렸던 것처럼 번영과 평화가 넘쳐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서는 힘있는 자가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지배하며 약탈하지만, 메시야 왕국에서는 의롭고 공평하신 메시야가 평화로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주);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 이는 앞서 언급된 모든 말씀을 보증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모든 것이
황폐해질 것이라는 선언을 들은 유다 백성들에게 미가가 예언한 본문의 말씀은 전혀 믿기지 않을 사건이었다(Calvin). 그러나 그것은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전해진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결코 변개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이 약속은 변치않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보증이다.
성 경: [미4:5]
(주);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 본절은 미가가
예언한 메시야 시대의 사건들이 아직 성취되지 않은 미래의 사건임을 시사한다(Smith). '이름'(쉠)은 그 이름의 소유자의 인격, 본질, 속성, 영예
등을 나타낼 떠 사용된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는 메시야 왕국에 들어간 자들이 여호와를 온전히 의지하며 여호와의 능력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을 의미한다(슥 10:12, McComiskey, Delitzsch).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전능하심을 통해서 자신의 모든 성품을 드러내셨다.
'만민'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 곧 우상의 능력으로 살아가지만, 메시야 왕국을 소유할 여호와의 백성들은 만군의 주가 되신 전능하신 여호와의
능력 안에서 행하게 되므로 온전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한편 미가가 본절에서 '만민'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2절의
'많은 이방'과 연결되는 것으로 유다 백성의 삶이 필연적으로 이방국가들과 상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방 국가와 유다는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Smith).
성 경: [미4:6,7]
(주); 그 날에는 - '그 날'은 1절에 언급된 '말일에'와 병행을 이루는 표현이며 메시야 왕국을 세우는 마지막 때를 시사한다(Lange, Delitzsch).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날에 심판받은 상태에서 회복되어 구원을 받게 되고, 예루살렘은 만국 중에서 높임을 받을 것이다(1절).
(주);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 본문은 메시야 왕국을 세우시리라는 소망의 말씀이다. 메시야 왕국에 참여하게 될 하나님의 백성은 '저는 자'와 '쫓겨난 자'이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직접 심판하셔서 '환난을 받게 된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자기 땅에서 쫓겨나는 수치를 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저는 자'처럼 연약하며 무력한 존재로 전략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힘을 잃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구원만을 바라보는 그들을 다시 불러 모으셔서 남은 백성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강한 나라로 만드실 것이다. 여기서 '되게 하고'(*,심티)는 '...으로 만들다'라는 의미로서 메시야 왕국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McComiskey). '남은 백성'은 결코 백성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호와는 심판을 받아 수치를 당하고 비참한 삶을 영위하는 백성들을 다시 모아서 메시야 왕국에 들어가게 될 남은 백성으로 만드시며 강한 나라로 만드실 것이다.
(주);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 - 여호와께서 남은 자들로 성취하실 강한 나라는 하나님이 직접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는 영원한 나라이다. 여기서 '이제부터'는 미가가 예언하는 당시의 현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일에 이루실 최종적인
구원의 때를 가리킨다(Von Orelli). 하나님은 그 날에 남은 자들의 왕이 되셔서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다.
성 경: [미4:8]
(주); 너 양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 - '양떼의 망대'와 '딸 시온의 산'은 동격이다.
'시온의 산'에서 '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펠'은 성전이 있는 산과 기드은 골짜기와 붙어 있는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요새를 가리킨다. 이것은
후에 시온과 농의어로 사용되었다(대하 33:14; 느 3:25-27, McComiskey). 시온의 산과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는 양떼의 망대를 구약 성경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다윗 왕가를 지칭하는 표상이다(삼하 7:8; 시 78:70; 렘 13:17; 암 9:11, Von Orelli, Delitzsch). 더욱이 '이전 권능'이라는 표현은
'양떼의 망대'가 다윗 왕가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확증해 준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모아 세우실 메시야 왕국, 곧 강한 나라가
이전에 다윗과 솔로몬이 세웠던 나라보다 훨신 더 부강하고 번영하며 평화스러운 나라일 뿐만 아니라 다윗을 통해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던
영원한 왕권의 성취임을 알려준다.
성 경: [미4:9]
(주);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 본절은 앞서 언급된 예루살렘에게 있을 장래 영광에 대한 예언과는
대조적으로 현재 예루살렘이 겪는 고난을 나타낸다. 그들이 고난 중에 부르짖는 이유는 '왕'이 없기 때문이다(Von Orelli). 여기서 '모사'는 왕과
동의어이다(Lange, Orelli). 여기서 '모사'는 왕과 동의어이다(Lange, Delitzsch). 백성들은 왕이 없음으로 인해서 고난을 당하였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왕이 없어졌고'는 이방 국가처럼 단순히 국가의 붕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있으며 다른 이방 국가에게 예속된
것을 의미한다(McComiskey, Lange).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이며 하나님의 율법을 세우고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대리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왕의 상실은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와 인도하심의 폐지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것은 다윗 왕권이 영원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깨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왕권의 상실은 메시야가
오셔서 이루실 영원한 다윗의 왕권과 평화의 상실을 뜻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당혹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은
이스라엘의 겪는 고난을 비유한 것이다(사 13:8; 렘 6:24; 호 13:13). 해산하는 여인이 당하는 고통은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이방 국가들의
공격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해산하는 여인이 고통을 당한 뒤에 생명을 창출하는 것처럼 이스라엘도 고난 뒤에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Mays, Smith).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이다(10절).
성 경: [미4:10]
(주);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하며 또 바벧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 미가 선지자는 본 구절에서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을 한 후에야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포로 과정은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성읍에서 나가서'이다. '나가서'는 이스라엘 성읍이 원수들의 손에 의해 함락되는 것을 뜻한다. 둘째는 '들에 거하며'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원수들의 포로가 되는 것을 나타낸다. 셋째는 '바벧론까지 이르러'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벧론'이다. 혹자는 미가가 예언할 당시에는 앗수르의 위협이 있었을 뿐이며 바벧론은 단지 앗수르의 속국에 불과했기 때문에 '바벧론'이란 언급은 후대의 삽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해석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1)바벧론은 하나님이 없는 세계 권력의 중심지이다(Lange). 바벧론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적대감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창 10:10; 11:4-9) 이방 국가 전체를 뜻한다. (2)바벧론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킨 역사적 바벧론 국가이다(Von Orelli). 더욱이 다음에 나타난 '원수들'과 '많은 이방'(11절)이 모두 복수라는 사실은 본절의 바벧론이 역사적인 바벧론 국가일 가능성을 훨씬 증폭시켜 준다(McComiskey). '바벧론까지 이르러'는 당시 앗수르의 속국에 불과했던 바벧론이 강대해져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을 선포한 미가의 예언적 계시이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국가의 권력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당하며 포로 생활을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너의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 '원수들의 손'은 앞서 언급된 '바벧론'을 가리킨다. 미가는 하나님께서
바벧론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모습을 '속량'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속량'은 팔았던 것을 값을 주고 다시 사는 것을 뜻한다(시
78:55,Lange). 이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 생활이 하나님의 심판이었음을 시사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섬기지 않는 자기 백성들을 징계하신다.
백성들이 연약하여지고 비참해져서 다시 하나님을 찾을 때 구원하시고 강대한 나라로 만드신다(6,7절).
성 경: [미4:11]
(주); 이제 많은 이방이 모여서 너를 쳐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 '많은 이방'은 앞서 언급된
'바벧론'과 '원수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시온의 대적자들이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목적은 '시온이 더럽게 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온이 더럽게 되며'는 단지 시온의 백성들이 피를 흘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좀더 심하게 시온의 완전한 멸망이나
파괴를 뜻한다. 많은 이방들은 시온을 완전히 멸망시킴으로 시온의 거룩함인 하나님의 백성이 아무것도 아님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성 경: [미4:12]
(주);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 모략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 여호와께서 곡식단을 타작 마당을 모음 같이 그들을 모으셨나니 - 많은
이방의 목적(11절)은 헛된 생각이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시온의 거룩함을 짓밟는 것처럼 생각하였으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시온이
더럽혀지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으로 인해서 멸망당하는 것은 이방의 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많은
이방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된 것과 그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시온을 공격하기
위해서 모여든 많은 이방들을 통해서 시온을 징계하실지라도, 나중에는 시온을 공격한 이방들을 철저히 진멸시키실 것이다. 왜냐하면 이방들은
시온을 공격하여 완전히 멸망시킴으로 시온을 더럽혔을 뿐만 아니라 오만하여져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대적하여 승리한 것으로 착각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시온을 공격하기 위해 모인 많은 이방들은 심판을 기다리기 위해 모인 것에 불과했으며 그들의 승리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Smith).
성 경: [미4:13]
(주); 딸 시온이여 일어나서 칠지어다 내가 네 뿔을 철 같게 하며 네 굽을 놋 같게 하리니 - '뿔'은 힘을 상징한다(신 33:17; 삼상 2:1). '굽'은 '타작마당'(12절)과 연결된 것으로 이스라엘의 타작 마당을 상기시킨다. 이스라엘은 타작할 때 밟아서 낟알을 털어내었다. 하나님은 이방으로 인해 멸망당한 이스라엘에게 철과 놋과 같은 힘을 주셔서 마치 곡식을 타작하는 것처럼 많은 이방을 쳐부수게 하실 것이다.
(주); 내가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며 그들의 재물을 온 땅의 대주재께 돌리리라 - '구별하여'(베차)는 성전(聖戰)을 나타낼 때
사용된 용어이다. 이것은 시온이 많은 이방을 쳐부수는 전쟁이 하나님과 대적자들과의 싸움임을 알려준다. 이 전쟁에서 시온을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많은 이방을 물리치고 얻은 탈취물을 구별하여 '온 땅의 대주재'되신 여호와께 드릴 것이다. 이처럼 여호와는 온 땅의
대주재로서 절재적인 주권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권력을 다스리신다(McComiskey).
성 경: [미5:1]
본절은 맛소라 사본에서 앞장의 내용과 함께 연결되어 있어 앞장과 연관된 주제로 볼 수 있다. 미가는 본장을 시작하면서 또다시 심판과 구원이라는 극명한 대조법을 통해서 소개될 구속자이시며 왕되신 메시야를 강조하고 있다.
(주); 딸 군대여 - 이는 군사적인 용어로 예루살렘이 실제적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도시임을 나타낸다.
(주); 그들이...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 - 본 구절은 이스라엘이 이방의 침략을 받아 수치를 당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재판자'(*, 쇼페트)는 왕의 사법적인 기능을 강조하는 표현이다(암 2:3, McComiskey). 미가가 특별히 '재판자'를 사용한 이유는
'막대기'(쉐베트)와 연결시켜 언어 유희를 사용하고자 한 듯하다. 또한 왕이 뺨을 맞는 것은 수치를 나타낸다. 결국 본 구절은 이스라엘이 심판받아
침략자에 함락되며 이방 침략자들로 부터 치욕을 당케됨을 암시한다(Delitzsch).
성 경: [미5:2]
본절은 1절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침략자로부터 수치를 당하는 것과 대조를 이루어 더 이상 패배도 수치도 당하지 않게 하며 이스라엘을 온전하게 다스릴 자이신 참된 왕 메시야의 탄생을 예고한다. 그리고 마 2:6과 연관되어 인용되고 있다.
(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 '에브라다'는 '떡집'을 뜻하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으로 '열매를 많이 맺음'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별히 미가가 '베들레헴'의 옛 이름 '에브라다'를 첨가한 것은 본절의 베들레헴이 스불론의 베들레헴과 다른 지명이며(수 19:15) 다윗의 집을 가리키는 것임을 시사하기 위함인 듯하다. 미가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을 통해서 본절의 내용이 다윗의 집에서 나온 메시야 왕과 연관됨을 암시하고 있다.
(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나올 것이라 - '작을지라도'(차이르)는 크기가 작은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천하고 보잘것없는 상태를 나타낸다(시 68:27). 메시야가 천한 곳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은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비천한 자들을 높이신다는 것을 암시한다(눅 1:52). 한편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의 화자(話者)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곧 메시야가 천한 베들레헴에서 자신에게로 나온다고 말씀하심으로 자신과 메시야의 밀접한 관계를 시사하신다(McComiskey).
(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 '그의 근본'(모차오타이오)은 문자적으로 '그의 나옴'을 뜻하는 것으로 메시야의 기원을 의미한다. 한편
'상고'(케뎀)와 '태초'(예메 올람)는 영원성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만큼이나 오래됨을 의미하는 용어이다(7:14,20,McComiskey).
성 경: [미5:3]
(주); 그러므로 - 이것은 본질이 메시야 탄생을 알리는 앞절의 논리적 결과임을 나타낸다.
(주);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는 이스라엘이 침략자의 지배하여 방치될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서 이스라엘을 방치하시는 기간은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이다. '임산한 여인'에 대해 혹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며(Delitzsch, Keil, Ewald), 혹자는 이스라엘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Calvin, Theodoret, Von Orelli). 두 가지 견해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4:9,10에서 이미 임산한 여인이 시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방치 시기는 메시야의 등장으로 '그 형제
남은 자'가 돌아오는 때까지이다. 여기서 '그 형제'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이신 메시야의 형제이며(Von Orelli, Delitzsch)왕이신 메시야의 보호와
인도 아래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심판으로 인해서 쫓겨났던 상태에서 돌아와 회복될 것이다. 미래의 하나님 백성에 대한 궁극적인 구원도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미가 선지자는 어떤 의미에서 포로 생활이 메시야가 도래할 때까지 지속되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McComiskey).
성 경: [미5:4]
(주);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 본절은 메시야 사역을
나타낸다. '능력'과 '이름'은 동일한 의미를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하나님의 존귀와 능력을 나타낸다. 메시야는 하나님 존귀와 능력을 가지고 '땅
끝까지' 다스리신다. 그의 통치 원리는 세상 지도자처럼 무력이 아니라 '평화'이다. 그는 백성들에게 꼴을 먹이는 목자로서, 우주의 주인으로서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리실 것이다(시 2:8; 72:8).
성 경: [미5:5]
(주);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 - '이'(*, 제)는 앞절에서 언급된 메시야를 가리킨다. 메시야는 남은 자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것은 신약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고후 5:19; 엡 2:14).
(주); 앗수르 사람 - 미가가 말한 것과 동일하게 이사야도 앗수르가 패망할 때 다윗의 집안에서 새로운 왕이 등장할 것으로 예언하였다(사 10:34-11:1). 그러나 본절의 '앗수르'를 역사상 존재했고 이스라엘을 위협했던 강대국 앗수르로 해석하는 것은 어려움이 따른다. 왜냐하면 본절 후반부에 기록된 것처럼 실제로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대항해서 효과적으로 그들을 물리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며 위협하는 모든 이방 국가로 이해되어야 한다(McComiskey, Delitzsch).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는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공격하는 모든 국가들이다.
(주);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은 구체적으로 어떤 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이것은 히브리 문학적 기법으로(잠 30:15,18,21; 전 11:2) 여러 명의 지도자들이 일어나서 앗수르를 물리칠 것을 의미한다(Smith,
McComiskey).
성 경: [미5:6]
(주); 니므롯 땅의 어귀를 황무케 하리라 - 앗수르와 병행되어서 등장하는 '니므롯'은 바벧론을 가리킬 수도 있고(Von Orelli), 앗수르를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창 10:8-12, Smith). 이러한 니므롯은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세상의 모든 제국들을 상징한다.
성 경: [미5:7]
(주); 야곱의 남은 자는...여호와에게로 내리는 이슬 같고 풀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 '이슬'과 '단비'는 풍요로운 소출과 연관시키기 어려우며,
남은 자에 대한 묘사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슬'과 '단비'는 문맥상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즉 이슬과 단비가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것처럼 야곱의 남은 자들은 사람이나 인생을 기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기대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목적은 이슬과 단비와 같은 남은 자들을 통해서 모든 열국들에게 축복과 구원을 주시는 것이다(Smith).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을 기대하는
남은 자들에게 이슬과 단비는 축복과 구원이 될 수 있으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열국들에게 이슬과 단비는 심판을 상징할 수 있다. 이것이 다음
절들에서 '이슬과 단비'로 표현된 남은 자들이 '젊은 사자'로 비유될 수 있는 이유이다.
성 경: [미5:8,9]
(주); 야곱의 남은 자는...양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 미가는 남은 자와 열국과의 관계를 '젊은 사자'와
'양떼'로 비유하고 있다. 남은 자가 앞절에서는 '이슬과 단비'로 표현된 것과는 달리 본문에서 '젊은 사자'로 표상된 사실은 그리 생소하지 않다.
왜냐하면 신약 성경에서도 예수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도(요 1:29) 묘사되고 유대 지파의 사자로도(계 5:5)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과
단비가 남은 자들에게는 여호와로부터 내리는 구원과 축복이 될 수 있었으나 인생을 기대하는 열국에는 심판이 되었던 것처럼, 사람을 기대하며
교만한 열국들은 젊은 사자앞에 선 양떼처럼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다.
성 경: [미5:10,11]
본문은 자고하여 자신의 힘과 무력만을 의지하는 군대에 대한 파멸을 기록하고 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여기서 화자는 미가가 아니라 바로 여호와이시다. 여호와는 남은 자들에게 축복과 구원을, 대적자들에게 분노와 심판을 내리실 것을 말씀하셨다.
(주); 그 날에 - 이것은 4:1-4에 언급된 메시야 도래의 날을 가리킨다(McComiskey). 메시야가 도래하는 날 평화가 임할 것이며, 남은 자들은 정결하게 될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열국의 지배 원리인 군사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사랑과 평화에 의해 남은 자들을 통치하신다. 그때 남은 자들은 결코 사람이나 자신의 수단에 의지하지 않으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며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으로 온 열국을 지배하신다.
(주); 말을 너의 중에서...무너뜨릴 것이며 - '말'과 '병거', 그리고 '견고한 성'은 열국이 자고해지는 원인인 군사력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그것들은 단순히 나라를 지키는 수단이 아니라 또 다른 우상, 곧 하나님을 대신해서 의지하며 교만해지는 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말과 병거를 의지하는 것을 비난하였다(사 2:7;30:15-17; 호 10:13). 실제로 이스라엘은 말과 병거를 의지함으로 여호와께
범죄하는 결과를 저질렀다. 하나님께서 말과 병거, 그리고 견고한 성벽(사 2:7,15)을 훼파하시는 목적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육체적인 신뢰대상을
없애기 위함이다(Von Orelli). 하나님을 떠나 자고하게 하는 말과 병거들은 평화적 통치동안에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때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며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과 병거를 훼파하실 것이다.
성 경: [미5:12,13]
본문은 우상 숭배에 대한 심판으로 하나님께서 우상이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실 것을 나타낸다.
(주); 복술(*, 케솨핌) - 이는 입이나 손으로 하는 주문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어떤 징조나 예언을 얻기 위해서 막대기나 반지등을 사용하여 점을 치는 것을 의미한다(Lange, Von Orelli).
(주); 점장이(메오네님) - 이는 미래의 일을 미리 예측하는 행위를 나타낸다(레 19:26;신 18:10,14; 왕하 21:5; 사 2:6; 57:3; 렘 27:9). 그러나 점쟁이의 행위는 하나님의 영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마술적인 행위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빠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복술이나 점쟁이의 행위 등을 철저하게 금지시키셨다(레 20:27; 신 18:10,11).
(주); 우상과 주상 - '우상'(* 페셀)은 어떤 재료를 이용해서 새긴 상(像)을 의미하여 '주상'(마체보트)은 일반적으로 돌로 만들어진 기둥을
가리킨다. 이들은 모두 이방 신을 의미한다. '우상'과 '주상'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것이며 생명이 없는 것으로 전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우상과 주상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기 일쑤였다(왕하 10:26,27; 사 30:22; 40:18-20; 44:13).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그 모든 우상과 주상을 파괴하심으로 더 이상 이스라엘이 하나님이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지 못하도록 하실 것이다.
성 경: [미5:14]
(주); 아세라 목상 - 이것은 우상을 섬기는 제단 가까이에 있는 나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Smith), 가나안 백성들이 즐겨 섬기던 다산(多産)과
전쟁의 여신이었다(McComiskey). 아세라를 섬기는 과정에서 제의 매춘이 즐겨 행해졌다.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이 즐겨 섬기던 아세라 목상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며 그 산당을 세웠던 성읍조차도 흔적도 없이 훼파하실 것이다.
성 경: [미5:15]
(주); 내가 또 진노와 분한으로...갚으리라 하셨느니라 - '분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캄'(*)은 일반적으로 보복이나 복수를 뜻한다. 그러나
'분한'이 하나님께 사용되었을 때 그것은 재판장의 판결과 그에 따른 형벌로 이해되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처럼 공의를 떠나
개인적 감정에 의해서 복수하시는 것이 아니라, 공의를 따라 죄의 유무를 판단하신 후에 심판하심을 의미한다(Smith). 그 날에 하나님은 당신의
명령과 말씀을 따라 살지 아니하는 모든 열국에게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성 경: [미6:1]
(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내게 이르시기를 -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은 선지자들이 중요한 선언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문구이다. 선지자 미가는 하나님의 변호인으로 이스라엘과 변론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선지자 미가의 직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 동안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는가를 변호하는 것이다.
(주); 산 앞에서 쟁변하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트 헤하림'은 '산과 더불어 쟁변하다'로 번역해서는 곤란하다. 미가가 여호와의
변호인으로서 쟁론할 상대는 이스라엘이며 '산'은 단지 증인이나 배심원일 뿐이다(2절).
성 경: [미6:2]
(주);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쟁변을 들으라 - 여호와께서 백성들과 쟁론하시려고 할 때 '산들과 견고한 지대들'이
증인으로서 초청을 받는다. 왜냐가면 '산들과 견고한 지대들'은 이스라엘 역사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모든 사역의
산증인이기 때문이다(Smith). 만약에 이스라엘 온 역사와 더불어 살아온 산들과 견고한 지대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그들은 이스라엘의
불성실함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신실함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성 경: [미6:3]
(주); 무엇에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거하라 -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고소하시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들의 생각을
변호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신다. '괴롭게 하였느냐'(라아)는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고난을 줌으로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괴롭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힘으로 이스라엘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는 내게 증거하라'는 명령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당신에게 순종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도록 하는 고통을 준
적이 없다고 암시적으로 항변하신다. 또한 선지자들은 비록 이스라엘이 불의와 재물 앞에서 자기 욕망과 하나님의 율법이 상치됨으로 인해서
괴로움을 당했을런지 몰라도 실제적으로 괴로움을 당하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선포하고 있다(사 7:13;43:24;말 2:17).
성 경: [미6:4,5]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를 나열한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을 괴롭히신 적이 없다. 도리어 그들을 속량하시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보내셨으며 역사를 행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를 증거하는 본문에 기록된 모든 사건들은 출애굽에서 가나안 정복까지 있었던 대표적 사건들의 나열이다.
(주);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종 노릇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 '인도하여 내어'(헤어레티카)는 '괴롭게 하였느냐'(헤레티카)와 동음이어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언어적 유희(word play)를 통해서 역설적인 증언을 하신다. 곧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괴롭히신 적이 없으며 도리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속량하여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신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증거하는 선지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근거였으며 역사 신학이 되었다(McComiskey).
(주);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어 네 앞에 행하게 하였었느니라 - '모세'는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킨 지도자였으며 선지자였다(신 18:15-22). '아론'은 제사장의 시조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였으며(민 12:6;14:5,26; 20:7,29) '미리암'은 여선지자였다(출 15:20).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킨 것에서 만족하지 않으셨으며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합당한 지도자들을 세우셨다.
(주);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의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추억하며 - 본 구절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모압 왕 발락이 발람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던 사건이다(민 22-24장). 그러나 하나님은 발람에게 나타나셔서 그로 하여금 발락 왕의 말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주);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추억하라 - '싯딤에서 길갈까지의 사건'은 미디안의 패배, 요단 강을 건넘, 여리고를 무너뜨림등을 의미한다. 미디안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기 백성의 여인들과 음행을 하게 하고 우상을 섬기게 하였으나 하나님은 음행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미디안에게 진노하셨다(민 25:1-18). 또한 하나님은 홍해를 갈랐던 동일한 기적적인 방법으로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게 하셨으며 할례를 행하셔서 언약 백성이 되게 하셨다(수 3:1-5:15).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길갈에 진을 치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으로 철옹성이었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정복하였다(수 6:1-27).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경험하였던 초자연적 역사를 상기시킴으로 하나님 자신이 결코 이스라엘에게 불성실하시지도, 괴롭히지도 않으셨음을 변증하셨다.
(주); 그리하면 나 여호와의 의롭게 행한 것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 '의롭게 행한 것'(치드코트)은 '의로운'의 복수 형태로서 문자적으로는
'공평'을 의미한다. 이것은 종교적인 의미는 물론 세속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에게 사용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신실하셔서
이스라엘과 맺었던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앞서 출애굽에서 가나안 정복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함께하셔서
대적자들을 물리치시고 약속한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셨음을 예증하심으로 자신의 신실하심과 의로우심을 드러내신 바 있다.
성 경: [미6:6,7]
본문은 하나님께서 역사적 예증을 통해서 자신의 신실하심을 드러내신 것에 대한 이스라엘의 답변이다. 미가는 마치 이스라엘이 말하는 것처럼 자신이 이스라엘의 변명을 대신 하고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며 하나님께서 경멸하시는 외식적인 종교 행위인가를 드러내었다.
(주);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 '높으신'(마롬)은 '하늘에 계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계신 처소를 나타낸다(시 68:18). 고로 '높으신 하나님'은 곧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의미한다(Calvin, McComiskey).
(주);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는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된 가장 적절한 제물이었다(출 12:5; 레 9:2,3).
(주);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은 하나님의 관심을 얻고자 드리는 수많은 희생 제물을 가리킨다.
(주);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 '맏아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드릴
수 있는 최상의 희생 제물을 가리킨다. 실제로 맏아들을 희생 제사로 드리는 행위는 가나안의 풍습이었으나 이스라엘은 이를 받아들여 종종
행하였다(왕하 3:27;16:3;사 57:5). 사실 이스라엘이 드리고자 했던 '일 년 된 송아지',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 '맏아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이었다(Von Orelli).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의식적(儀式的)인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드리는 헌신이었기
때문이다(Delitzsch).
성 경: [미6:8]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항목을 세 가지로 언급하고 있다. (1)오직 공의를 행하며 - '공의'는 의로운 삶을 말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모든 사람에 대해 공평하게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2)인자를 사랑하며 - 이것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세드'는 하나님의 속성이면서 동시에 언약의 기본적인 원리이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타인에게 '헤세드'를 보이지 못할 경우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 것으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헤세드'를 얻게하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속성인 '헤세드'를 보여주고 그로 인해 언약을 맺었던 것처럼, 자기 백성들도 타인에게 '헤세드'를 보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킬 것을
요구하신다(McComiskey). (3)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겸손하게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며 행하는 것이다(Delitzsch).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은 이상의 세 가지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지자 미가가 율법에
기록된 희생제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미가가 강조하는 것은 앞서 언급된 세 가지 마음 자세와 행위를 동반하지 않은 희생 제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본절에서 요구된 마음의 자세와 행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사함을 얻는 조건들이 아니다. 분명히 죄사함은
희생제사를 통해서 가능하다. 그러나 본절의 윤리적 행위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곧 죄사함을 받은 백성으로서 삶 가운데
마땅히 드러나야 할 삶의 규범들이다. 이것이 없는 희생제사는 아무런 용서도 구할 수 없는 자기 만족의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성 경: [미6:9]
(주);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 하나님은 재판장으로서 이스라엘의 범죄를 고발하시기 위해서 피고인 이스라엘을 부르신다(Lange, Smith).
(주);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 '경외함이니라'에 대해서 혹자는 '보리라'(Keil, Kleinert)고 해석하나 시편 86:11에서처럼 '경외함이니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여기서 '경외함'이란 악을 떠나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순종하는 삶의 자세를 가리킨다(McComiskey).
(주); 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 그것을 정하신 자를 순종할지니라 - '매'(마테)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를 의미한다(Calvin). 선지자
이사야는 '마테'를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앗수르에게 적용시켜 사용한 바 있다(사 10:5,24). 만일 선지자 미가가 이사야와 동일한 방법으로
'마테'를 본 구절에서 사용했다고 한다면, 본 구절은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될 앗수르의 침략을 예고한 것이 된다(McComiskey). 하나님은 이미
'마테'로 이스라엘을 징계하실 것을 결정하셨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길이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테'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삶의 자세, 곧 경외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성 경: [미6:10,11,12]
본문은 히브리어 '오드'(*, 그러나)로 시작되며 수사 의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기로 결정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본문에서 지적된 죄를 계속해서 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본문에서 지적된 이스라엘의 죄는 우상을 섬기는 죄가 아니라 사회적인 불의이다.
(주);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 '에바'(에파)는 곡식의 양을 재는 단위이다. '축소시킨 에바'는 곡식의 양을 속여 나머지를 착복하는 불의한 행위를 가리키며 '거짓 저울추' 역시 그러하다. 하나님은 이러한 불의를 엄격하게 금하셨다(신 25:13-16).
(주);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 부자들은 단순히 도량 단위를 속여서 불의한 재물을 모은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과 힘으로 폭력을 사용하였다(2:1;3:2,3).
(주); 그 거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궤사하도다 - 이스라엘의 죄는 부자들의 불의만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거민들도 혀를 잘못
사용하여 늘 거짓을 말함으로 하나님께 범죄하였다. 여기서 '그 혀가 입에서 궤사하도다'라는 표현은 '입을 열 때마다 거짓이 튀어 나옴'을 뜻하는
것으로(Calvin) 이스라엘 거민들의 거짓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나타낸다.
성 경: [미6:13]
(주); 그러므로 나도 너를 쳐서 중히 상하게 하였으며 - '그러므로'는 이후에 선포된 하나님의 징계가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한 결과임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이다. '너를 쳐서 중히 상하게 하였으며'는 하나님의 징계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적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침략당하여 상하게 되며 질병에 걸릴 것을 의미한다(Calvin, Von Orelli).
성 경: [미6:14,15]
(주); 네가 먹으나 배부르지 못하고 속이 항상 빌 것이며...포도를 밟으나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 - 이스라엘 부자들과 거민들이 자기 만족을 위해서
도량형을 속이고 불의한 재물을 채웠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더 이상 자기 만족을 채울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들이 불의한 재물을
숨겼을지라도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적들의 칼 앞에서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될 것이며, 그들이 추수한 모든 것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성 경: [미6:16]
(주);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행위를 지키고 그들의 꾀를 좇으니 - 오므리는 시므리를 살해한 후에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며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를 계속하였다(왕상 16:25,26). 또한 그 아들 아합은 이방여인인 이세벧과 결혼하였으며(왕상 16:29-34) 아버지 오므리의 죄악을 본받아 재물에 대한 만족을 채우기 위해서 가난한 자의 고혈을 짜내었으며, 바알 숭배를 허용하여 우상 숭배를 조장하였고, 이에 반대하는 선지자들을 박해하였다(왕상 18-21장). 미가 당시의 이스라엘은 오므리와 아합 왕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주); 나로 너희를 황무케 하며...너희가 내 백성의 수욕을 담당하리라 - 본 구절 앞에 '레마안'(그러므로)이 위치해 있다. 이는 본 구절이 본절
상반절에 언급된 이스라엘의 죄, 곧 오므리와 아합 집의 규례를 따르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결과임을 시사한다. 이스라엘은 적들의 침략으로
황폐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멸망을 당함으로 이방 거민들 사이에서 비난과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성 경: [미7:1,2a]
(주); 재앙이로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라'는 다른 선지자들의 탄식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오직 욥 10:15에서만 나타나는 탄식 표현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타락하고 부패한 이스라엘에게 임할 재앙에 대한 탄식이다.
(주); 내 마음에 사모하는...선인이 세상에서 끊쳤고 정직자가 인간에 없도다 - '마음'(나프쉬)은 문자적으로 '영'(靈)을 가리킨다. 미가의 영이
간절히 사모하며 찾았던 무화과 열매들은 당시의 의로운 자들이었다(2절). 미가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직전에 의인을 찾았던 아브라함(창
18:23-33), 예레미야(렘 5:1-5), 에스겔(겔 22:30)등과 같이 이스라엘에서 의로운 사람을 찾았으나 한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
성 경: [미7:3]
(주);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며 대인은 마음의 악한 사욕을 발하며 서로 연락을 취하니 -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자행된 대표적인 죄악은
사회의 지도자들이 사욕을 채우고자 불의한 재물을 추구하고 연락을 즐기는 것이다. '군장'은 방백과 같은 관리들을 의미한다. 관리들, 재판관들,
대인들은 모두 뇌물과 같은 불의한 재물을 통한 사욕을 추구하기 위해서 공평한 처우을 행하거나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여기서 '악한
사욕'(하와트 나프쇼)에서 '사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와트'는 항상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재난이나 파멸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군장, 재판관, 대인 등 사회에서 지도 계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불의한 재물을 모으고자 하는 악한 욕심으로 정의를 굽게 하고 서로 결탁하여
백성들을 괴롭혔음을 시사한다.
성 경: [미7:4]
(주);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 본 구절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그 백성들이 얼마나 악하였는가를 드러낸다. '선한 자'와 '가시', '정직한 자'와 '찔레 울타리' 사이의 비교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아무리 좋고 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시'와 '찔레 울타리'처럼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고통을 주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총체적으로 타락하여 악을 행했으며 그들이 죄악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Calvin).
(주); 그들의 파숫군들의 날 곧 그들의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 미가는 본 구절에서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임할 것을 예고한다. '파숫군들의
날'에서 파수꾼은 선지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부패할 때마다 파수꾼처럼 부패와 죄악으로 인해서 초래될 위험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경고하였다. 미가는 공의가 무너진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심판하실 것임을 지속적으로 선포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악을 자행하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그 너머에서 역사하실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을 바라보았다(McComiskey). 한편 미가는
하나님이 개입하는 날을 '형벌의 날'과 동격으로 처리하여 하나님의 주권이 개입하는 날 불의를 행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됨을
시사한다. 그 날에 서슴지 않고 불의를 자행하던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아 재난을 당하며 멸망하게 될 것이다. 미가는 앞서 이스라엘의 죄악이 극에
달하였음을 선언한 후에 심판을 예고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의 죄악으로 인한 것임을 시사한다(Delitzsch, Lange).
성 경: [미7:5,6]
(주);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사람이리로다 - 이스라엘의 죄악은 단순히 지도자들만의
타락이 아니었다. 그들의 부패와 타락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 단위인 가정의 파괴를 가져왔다. 인간의 생활 속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들인 이웃,
친구, 그리고 가족들끼리도 서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해를 가하는 관계로 변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은 심지어 한 이불속에서 잠을 자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까지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조차도 파괴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부패가 매우 심각하여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였음을 시사한다.
성 경: [미7:7]
(주);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 '우러러 보며 바라보나니'(아차페 오히이라)는 하나님의 역사적
개입을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자세를 나타내는 것으로 파수꾼의 태도와 연결된다(4절, Smith, McComiskey).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던 미가는
이스라엘의 부패를 목격하고 체험하면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역사하여 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한편,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미가의
구원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됨을 의미한다(Delitzsch). 미가는 의로운 자를 하나도 찾을 수 없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오직 구원자되신 하나님만을
신뢰하였다.
성 경: [미7:8]
(주);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 '대적'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멸망시킬 이방 열국을 가리킨다(Von Orelli). 미가는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멸망시킨 이들에게 기뻐하지 말 것을 선언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심판을 당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는 미가의 믿음을 보여준다.
(주);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 '엎드러질지라도'와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는 하나님의 심판을 뜻한다(사 8:22;9:1, Lange). 그 심판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한 것이다(4절). 비록 이스라엘이 죄로 인해
심판당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빛이시다(시 27:1). 하나님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성 경: [미7:9]
(주);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 미가를 대표로 하는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어두운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자신들의 불순종과 불의로 인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노와 그로 인한 심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재판장되신 하나님의 판결과 처분을 기다리며 인내한다.
(주);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회복될 것이다. '광명'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상태를 나타낸 '어두움'과 대조를 이루는 표현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구원을 받아 평화를 누리게 됨을
시사한다(신 8:14). 남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진노를 멈추시고 구원하시는 역사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 곧 자신의 언약을 성실히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움과 신실하심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6:1-5).
성 경: [미7:10]
(주); 나의 대적이...거리의 진흙같이 밝히리니 그것을 내가 목도하리로다 - 남은 자들의 구원은 대적자들의 파멸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인 이방 열국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됨을 전혀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파멸시키면서 자신들이 최고이며
자신들 위에는 아무도 없으며 자신들이 섬기던 우상이 이스라엘이 섬기던 여호와에 대해 승리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라고 이스라엘을 조롱하였다. 그러나 열국들은 자신들의 교만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구원을 얻는 날 심판을 당하여
파멸될 것이며 진흙처럼 사람들의 발에 밟히게 될 것이다. 그때 남은 자들은 그들의 파멸을 보게 될 것이다.
성 경: [미7:11]
(주);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 본절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바라보는 미가의 기대이다. '성벽을 건축하는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이방 열국에 포로로 잡혀갈 것을 전제로 한다(3:12;4:10). 미가는 이방 열국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 회복되는 날을 하나님의 구원의 날로 단순히 역사적인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는
미가가 바라보는 회복의 날, 곧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날 메시야를 통해서 성취되는 회복의 날을 가리킨다(렘 3:18, McComiskey, Lange). 왜냐하면
이스라엘 역사상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후에 지경을 넓힌 일이 없으며, 더구나 지경이 넓혀지는 것을 설명하는 다음 절이 이방인의 참여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 경: [미7:12]
(주); 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하수까지...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 본절은 회복의 평화와 기쁨에 이방이 참여하게 됨을
시사한다. '앗수르'와 '애굽'등은 역사상 맹위를 떨쳤던 실제적 국가를 말하기보다는 이방의 열국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또한 '하수'나 '바다'
그리고 '산'등은 어떠한 특정적인 지역을 가리키기보다는 이방인들이 사방에서 이스라엘로 몰려들 것을 나타내는 표현에 불과하다. 이것은 메시야를
통해서 이루어질 구원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론 이방인에게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여 전우주적인 차원으로 발전함을 시사한다(사 19:23, Delitzsch,
Lange).
성 경: [미7:13]
(주); 그 땅은 그 거민의 행위의 열매로 인하여 황무하리도다 - '그 땅'이 가리키는 지역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가나안이다(Caspari). 둘째는 가나안 이외의 지역이다(Delitzsch). 셋째는 죄악이 만연한 세상이다(McComiskey).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자연스럽다. 앞서 회복과 이방인의 몰려듬이 역사적 예루살렘이나 가나안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몰려드는 이방
열국이 구원을 얻는 반면, 나머지 죄악된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여 황무하게 될 것이다. '행위의 열매로 인하여'는 죄악된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이유가 바로 그들의 행위, 곧 범죄에서 비롯된 것임을
성 경: [미7:14]
(주); 원컨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하는 주의 기업의 떼를 먹이시되 - '주의 지팡이'는 양떼를 지키는 목자의 지팡이를 상징하며 '주의 기업의 떼'는 양떼인 주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상징한다. 미가는 본 구절에서 하나님을 양떼를 지키는 목자로 부르면서 양떼인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지켜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한편 '갈멜 속 삼림'은 양떼들이 먹고 마시기에 충분한 꼴을 제공하며 동시에 양떼들을 해하고자 하는 많은 들짐승으로부터 보호와 안전을 보장하는 지역을 가리킨다(Delitzsch).
(주); 그들을 옛날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옵소서 - '옛날같이'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모세와 여호수아의 시대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Delitzsch). (2) 혹자는 다윗시대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ange). (3)혹자는 이스라엘이 과거에 영화를 누리던 전(全)시대를 뜻한다고
주장한다(McComiskey). 세 가지 견해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한편 '바산과 길르앗'은 목축을 하기에 좋은 비옥한 땅으로(민
32:1;대상 5:9;시 22:12) 풍요와 비옥 그리고 안전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미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보호해 주실 뿐만 아니라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이 과거에 누렸던 영광과 풍요와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성 경: [미7:15]
(주); 가라사대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기사를 보이리라 - 본절은 미가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앞제 아래서 해방되던 출애굽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출애굽 때와 같이 남은 자들이 회복과 축복과 구원에 동참함을
말씀하신다. 한편 본절에는 세 가지의 인칭 대명사, 곧 '네가'와 '내가' 그리고 '그들에게'가 나타난다. 여기서 '네가'는 미가 당시의 이스라엘을
가리키며 '그들에게'는 미래의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가리킨다(Lange).
성 경: [미7:16,17]
(주); 가로되 열방이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려서...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인하여 두려워하리이다 - 본문은 남은
자들을 회복시키며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본 열방들의 태도이다. 열방들은 남은 자들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을 보면서 자신들의
능력의 보잘것없음과 비천함을 깨닫게 한다.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는 존경과 경위를 표현하는 모습이며(욥 29:9;사 52:15) '귀는 막힐
것이오며'는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우뢰 때문인 듯하다(욥 26:14,McComiskey, Hitzig). 열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 동굴에서
떨면서 기어나오는 짐승같은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을 갖게 되며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된다.
성 경: [미7:18]
(주);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 본 구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넌 후에 미리암이 노래한 것이다(출 15:11; 시 86:8). 이는 하나님께서 유일하시며 전능하신 신이실 뿐만 아니라 사랑이 풍성하신 인애의 하나님이심을 시사한다(Smith, McComiskey, Lange).
(주);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 본 구절은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나타낸다. '사유하시며'는 없애버린다는 의미이며 '넘기시며'는 간과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남아 있는 모든 죄악을 완전히 제거하시며 동시에 기억지 아니하신다. 그분은 노를 항상 품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를
즐겨하신다.
성 경: [미7:19]
(주);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로다 - '발로 밟으시고'(이크바쉬)는
'정복하다'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은혜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모든 죄를 정복하심을 뜻한다(Von Orelli). 한편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는 하나의 상징적인 묘사로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의 죄를 영원히 없이 하실 것을 보여준다. 남은 자들의 죄악을 없이
하시는 것은 남은 자들의 어떤 특별한 행위나 모습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인 긍휼 때문이다.
성 경: [미7:20]
(주); 주께서 옛적에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이유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열조들과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 때문이다. '야곱'과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족장들을 가리킨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이며 야곱에게 재확증하셨던 것이다(창 13:15;17:7,8,13; 48:4). 또한 그것은 예레미야의 새
언약에 의해서 재해석되었으며(렘 31:31-34), 하나님의 신령한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된다(벧전 2:5). 한편 하나님의 속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성실'(에메트)과 '인애'(헤세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와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실 것임을 암시한다. 이것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다. 사도 요한은 '은혜와 진리', 곧 '헤세드와 에메트'가 그리스도에게 충만하였다고 말하며(요 1:14)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요 1:17).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야곱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시사한다(Smith).
성 경: [미7:20b]
(주);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 '형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같은 나라
백성들끼리 서로 물고 뜯는 악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피를 흘리려고'와 '형제를 잡으려 하고'는 이웃의 재산을 빼앗는 행위, 곧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의 것을 약탈하고(McComiskey) 살인하는 행위를 시사한다(Delitzs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