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선물
아침에 교회에 가려고 현관 문을 나서는데 남편이 마당에서 다급한 소리로 부른다.
또 무슨 큰 사고인가 (남편은 봄에 엔진 톱으로 손목을 베어 기겁을 한 적이 있다.)
싶어 놀라 가보니 정말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보라가 소리 소문 없이 새끼를 6마리나 낳은 것이다.
어머, 어머,....!!! 말문이 막힌다.
묶어 두었기 때문에 임신은 꿈에도 상상을 못했는데
이 녀석이 언제 새끼를 가진 거지? 배도 부르지 않았는데?
약간 살이 붙은 것 같았으나 겨울을 대비해서 지방을 축적하는 것이려니 했다.
어쩐지 엊그제부터 들어가 꼼짝을 안하길레 추워서 안 나오는 줄만 알았다.
세상에 그런데 새끼를....!그 것도 여섯마리나. 황당하고 어이없고 기쁘면서도 짠하다.
도데체 언제 난 것일까?
어제 쯤 낳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혼자 새끼를 낳고 얼마나 기진 맥진했을까...
따뜻한 국물도 먹고 싶었을텐데...둔한 주인을 만나 딱하기만 하다.
태어난 지 만 7년 만에 처음 새끼를 낳았으니 사람으로 치면 노산이다.
안그래도 내심 우리 보라도 한번 쯤은 엄마가 되어야 할텐데.. 하던 차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6마리를 낳았으니.. 아연실색이다.
세끼 모두 하얗거나 연한 갈색이다.
도데체 애비가 누굴까... 음전하고 품위 있는 우리 보라를 유혹한.
아비의 정체가 곧 밝혀졌다.
몇 달 전 동네에 주인 없는 숫캐 한 마리가 들어와
건너편 새울터 점순씨가 붙잡아 가두고 있다는데
순희언니 말로는
그 개가 일주일 간 온 동네를 떠돌아 다녔는데 그 때 눈이 맞은 게 틀림 없단다.
족보야 어찌 되었든 우리 보라가 드디어 엄마가 되었다,
밤중에 한 차례 돼지고기 넣은 미역국을 끓여 주고는 들어왔다.
그나저나 한 두 달은 자라야 될텐데.. 추워지면 어쩌나.. 걱정이다.
내일은 개 집을 토굴 속으로 옮겨 주어야 겠다고 남편과 상의했다.
개집에 깔아 줄 전기장판을 주문했고
우선은 따뜻한 물을 플라스틱 병에 가득 담아 수건으로 싸서 넣어주었다.
꼬물꼬물한 새끼들은 눈도 못 뜬 채 엄마 품만 파고든다.
요놈들을 먹이려면 젖이 잘 나와야 할텐데.
안타까운 내 맘도 모르고 보라는 몸을 풀고도, 먹이를 앞에 두어도
품위를 잃지 않는다.
녀석에게 내일 아침 일찍 우리집 노계 두 마리를 잡아 푹 고아서 주어야겠다.
한동안 보라 해산관 노릇하느라 바쁘게 생겼다.
오늘이 추수감사주일이다.
올 추수감사절은 보라 덕에 더 뜻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