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w{ra
시간, 때 hour, time, 시점 point of tim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호라(Homer 이래)는 다음의 의미를 나타낸다.||(a) 호라는 첫째로 '적합한, 일정한, 좋은 때'를 의미한다. 호라는 '어떤 일을 위한 때'이다. 씨 뿌리는 때, 결혼할 적합한 시기, 수확할 때에 대해 사용되었다. '적시에 키스하고, 적시에 결혼하고, 적시에 포기하라'는 표현이 나타난다(Anthologia Graeca, 38). 호라는 '일정한 때'를 나타내는데, 해 뜰 때와 해질 때, 정한 시간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호라는 어떤 활동에, 예를 들어 저녁 식사, 잠자리에 들기, 혹은 성적 향락을 위하여 관습적으로 정해진 시간을 의미한다.||(b) 호라는 자연 법칙에 의해 정해진 순환하는 년(年)과 함께 돌아오는 일정한 시간, 또는 시기, 계절을 나타낸다. 호라는 계절, 특히 봄과 여름, 겨울을 기술하게 위하여 곧잘 사용되었다.||(c) 호라의 특별한 용법은 년중의 '가장 좋은 때'를 나타낸다. 좋은 때, 특히 봄, 혹은 성장과 익는 때인 봄과 가을이나 수확의 때인 여름을 나타낸다. 그 다음 호라는 인생에 있어서 한창 때, 청춘을 나타낸다. '년중의 때, 년과 날의 이 때에'라는 표현은 년중 '좋은 때'를 가리킨다.||(d) 호라는 '짧은 시간', 특별히 '한 시간'(hour)을 나타낸다. 날(day)의 한 부분으로서 지나가는 시간은 인생의 덧없음의 상징이다. '죽음의 시간, 마지막 순간'을 의미하며, 필로에서 호라는 밤낮의 십이분의 일을 의미한다.||(e) 호라는 전치사나 지시사 등과 함께 '곧, 즉시, 즉각'을 의미한다.||(f) 끝으로, 올림푸스의 하늘 문들을 수호하는 계절의 여신 호레(Horae)의 의인법이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호라는 70인역본에서 약 7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에트와 샤아의 역어로 사용되었다.||(a) 구약적 시간 이해의 특성, 호라(hora)의 용법의 특성은, 모든 범위의 시간의 창조자와 주로서의 하나님 신앙이다. "시간은 창조된 실체에 속한다"(M. Rissi, BHHW Ⅲ 2210). 모든 것이 정해진 때에 발생하도록, 예를 들어 제철에 비가 오고(신 11:14; 욥 36:28; 슥 10:1) 추수 때에 곡식이 익도록 조처하시는 분은 사실상 여호와이시다(욥 5:26; 호 2:9). 가축을 집으로 몰 때와(창 29:7) 정해진 식사 시간도(룻 2:14)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이다. 그는 출생 시간의 주이시다(창 18:10; 창 18:14; 왕하 4:16). 죽는 때를 정하는 이는 여호와요(삼하 24:15; 욥 5:25), 이사벨과 같은 인간이 아니다(왕상 19:2). 자연적 진행의 때를 하나님이 분배하심에 대해 노래한 찬양이 재삼 재사 발하여진다: "하나님의 일은 모두 선하여 제 때의(엔 호라 아우테스) 모든 필요를 공급한다. 이것이 저것만 못하다 말하지 말라. 모든 것이 제 때에(엔 카이로) 유익하니라"(집회서 39:33).||(b) 이스라엘인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느 특정한 때에 자기 백성의 대적들을 치신 때(수 11:6; 출 9:18에서 우박으로 애굽을[욥 38:22 이하], 혹은 출 10:4에서 메뚜기로), 혹은 그가 벽에 불가사의한 글자를 쓰심으로 갑자기 벨사살을 공포에 질리게 하신 때(단 5:5)와 같은 역사에서의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식간에 성취되었거나(단 4:30. 70인역본 단 4:23: 에이스 카이론 카이호란 참조), 예정된 시간 정각에 실현된다(창 18:10; 창 18:14에 관련하여 창 21:1 이하; 왕하 4:16 이하). 욥 24:1에서처럼 갈망되는 하나님의 개입의 부재는 유혹을 받게 한다: "어찌하여 전능자가 시기를 정하지 아니하셨는고 어찌하여 그를 아는 자들이 그를 보지 못하는고?"|정해진 절기의 때에, 역사상 하나님의 구원 행위의 개념이 예배 중 생생하게 보전되어야 한다(출 13;10).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그 정해진 "때"(hour)에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민 9:2). 후대에 기독교 예배 의식에서 큰 역할을 하였던 시간 순서적 개념은, 다니엘(Theodotion) 9:21의 "저녁 제사를 드릴 때"(the hour of the sacrifice)라는 언급에 의해 가장 가깝게 접근된다. 그러나 구약에서 대체로 호라(hora)의 시간 개념은, 여호와가 행하였거나 예배에서 하나님과 관련된 내용의 그 충만성 배후로 후퇴한다.||(c) 호라(hora)는 종말론적·묵시적 강조성을 지닌다. "주의 날"처럼 호라 카이루("시간 중의 시간", 단 8:17; 단 8:19)나 호라 쉰텔레이아스("완성의 때"; 단 11:40; 단 11:45)와 같은 표현들은, 심판 때에 불경건한 자에게 벌을 내리고 의인을 영원한 구원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주적 환상과 함께 오실 마지막 날의 사건들을 말한 것이다. 시작의 권면에서도 재난의 때(집회서 18:20), 죽음의 때(집회서 11:22), 악한 때(집회서 11:27)를 언급한다.||(d) 호라는 '긴 시간'을 나타내기도 하며(출 18:22; 출 18:26), 기간보다 다소 제한된 시점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고전 헬라어의 용법처럼, 즉시, 즉석에서(단 3:6; 단 3:15; 에스드라상 8:62), 그후 즉시(단일에, 에 8:1)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호라는 신약성경에서 약 105회 중 복음서나 사도행전에만 88회 나온다.|신약성경에서 호라의 용법은 고전 헬라어 문헌과 70인역본의 용법과 매우 일치한다.||(a) 호라는 '어떤 것을 위해 지정된 시간'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눅 14:17에서 예정된 잔치, 눅 1:10에서 분향을 위해 규정된 시간, 행 3:1에서 기도 '시간', 그리고 시간대를 나타내는 시간에 대해 사용된다. 여기서는 신약성경 시대에 널리 사용되었던 두 가지 의미, 즉 '시간' hour과 '정해진 때'라는 의미 양자가 결합해 있다. 공식적으로 계 9:15에서 특별한 날의 시간에 대해 사용되는데, 그것은 종말론적 사건을 위해 정해진 때를 의미한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호라는 일반적으로 종말론적 사건이 일어나도록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가리키는데, 계 14:7에서는 내용을 나타내는 속격으로부터, 계 14:15에서는 설명의 부정사로부터 그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구절에서 엘덴 헤 호라는 '지금 그것이 발행한다'를 의미한다.|계 3:10에서 호라 투 페이라스무("시험할 때")는 종말론적 시험에 의해 특징지어진 상황이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비슷하게 요 12:27(겟세마네 사건)에서 "이 때"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 정하신 확정된 요구가 발생하는 때의 상황(사태)을 표현하며, 예수님의 유일성이 이 표현에 의해 강조된다. 시간은 그것에 주어진 내용(content)에 의해 한정된다. 따라서 호라는 그 자체가 이 내용을 나타낼 수 있다(막 14:35). 그리스도교의 현재는 날이 밝아온다는 사실로 특징지어지는데 이 때는 신중(주의)을 요구한다(롬 13:11 이하). 이 때는 깨어서 부지런히 일한 중요한 때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요구는 호라와 부정사로 표현된다.||(b) 호라는 티노스(%1049)와 함께 인간이 고생하거나 활동하는 때를 의미하며, 그것은 특정한 환경에 엄격히 제한될 수 있는 것이다. 요 16:21에서 임신한 여인에게 '그녀의 때'는 비로소 어머니가 되는 분만의 때이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때에 관한 말씀들과 유사한 병행 어구를 일반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밖의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런 말씀들에서 호라는 흔히 '어떤 일을 위해 주어진 혹은 정해진 때', 특히 지금 예수님의 행동을 위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나타낸다.|그 '때'의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개념이 '내 때가 이르렀다, 혹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표현에 암시되어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정해 두신 때의 요구를 이루신다. 그 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향해 가실 때이며, 예수님께서 발을 씻기신 행동 그 자체로 보여주신 사랑의 행동을 기꺼이 수행하시는 때이다. 예수님은 그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가 정확히 정해져 있음을 알고 계셨는데, 그 사실은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는 진술로 표현된다(요 7:30; 요 8:20). 그러나 요 2:4에 나오는 동일한 어구는 분명히 갑자기 포도주가 떨어진 다급한 상황에 대처하신 예수님의 행동과 관련이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여기서 또 다시 주어진 상황 안에서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한다는 사상이 나타난다. 호라가 사람의 속격과 함께 쓰일 때는 부정적으로 예수님의 대적자들의 행동의 때를 나타내기도 한다(눅 22:53; 요 16:4; 참조: 욥 38:23).||(c) "내 때가 이르렀다"는 문구와 함께 "그 때가 이르렀다", 즉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이르렀다는 독립적인 표현이 나타난다.|① 요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② 요 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③ 막 14:41, "세번째 오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이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④ 눅 22: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d) 요한복음에서 "때가 이르리라"는 어구는 미래의 사건을 암시할 때 사용되었다(요 4:21; 요 4:23; 요 5:25; 요 5:28; 요 16:2; 요 16:25; 요 16:32). 동일한 문맥에서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요 4:23; 요 5:25) 혹은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요 16:32)는 바로 가까이 임박한 어떤 일을 나타낸다. 이런 구절들에서 강조점은 단순한 미래가 아니라 "때가 오나니..."(에르케타이 호라)로써 그 임박함이 인상적으로 지적되는 사건에 주어진다.||(e) 파루시아(재림)의 도래와 함께 고려되는 것은 마 24:50; 눅 12:46의 비유에 근거한 기사에 강조되어 있다. 파루시아의 날과 시는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 심지어 아들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 13:32와 병행구절). 여기서 호라는 낮이나 밤의 부분(section)을 의미할 수 있으며, 열 두 부분을 나타내지 않는다.|인자는 예기치 않은 때에 오신다(마 24:44; 눅 12:40; 참조: 눅 12:39). 여기서 호라는 비유적으로 낮시간이나 밤시간으로 이해되는데 마 24:42-44에서 헤메라-풀라케-호라(날-경점-때)라는 순서가 그것을 보여준다. 재림은 놀라운 사건이라는 사상이 이 구절들에서 분명 중요하다(G. Delling).|신약성경에서 종말론적 시간 개념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복음서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미가 채워지는 시간에 대한 믿음 외에도 아직 기다려지는 호라 에스카테, 즉 마지막 한 시간의 대망을 분명히 증언하니, 이 시간은 한 동안의 종말론적 공포 후에(요 16:2; 요 16:32; 계 3:10) 임할 마지막 심판의 때이다(계 14:7; 계 14:15; 참조: 요 5:24). "마지막 때" last hour는 갑자기 도적같이 임할 것이기 때문에(눅 12:39 이하; 눅 12:46; 계 3:3) 아무도, 심지어 예수님도 "그 날과 그 시"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막 13:32; 마 24:36; 마 24:44; 마 24:50; 마 25:13). 그러나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우리는 깨어서 준비하여야 하며(롬 13:11) "시대의 표적"에 대한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마 16:3; 참조: 눅 12:56).|이것은 파루시아가 실제로 밤 동안에 일어날 것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놀람의 요소는 특별히 비유의 밤과 관련이 있다. 요일 2:18은 심지어 "마지막 때"(에스카테 호라)가 왔다고 말한다. 재림이 지연되고 있음이 분명하여졌을 때에도 각각의 현재의 시간(지금)을 올바른 태도로 다루어야 할 사명, 즉 이 때를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이 때가 지니는 가능성을 깨달아야 할 사명이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미리 그의 제자들을 대비시키고자 하셨던 핍박의 때의 시험에(요 16:1 이하) 있어서와 일상 생활의 윤리적인 책임에 있어서도 그러하다(롬 13:11 이하). 자기들의 신앙 때문에 법정에서 대답해야만 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특히 그의 영의 도우심을 약속하신다(마 10:19; 막 13:11; 눅 12:12). 이는 심지어 그들이 공판을 받을 "때"(hour) 조차도, 그 "때"로 하여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이바지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요약하면, 호라는 다른 시간 단위들처럼 신약에서 하나님이 주시고 채우시는 시간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예수의 때"는 "마지막 때"(에스카테 호라)까지, 모든 사람들의 때에, 신앙적 결단과 윤리적 실증의 때로서의 그 의미와 정의를 부여한다(참조: H. -C. Hahn).||(f) 신약성경에서 호라는 더 일반적으로 '고정된 혹은 정확히 잰 시각'을 의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마 8:13에서 "그 시로"; 마 9:22; 마 15:28; 마 17:18에서 "그 시로"; 행 16:18; 행 22:13에서 "즉시"를 제외하고 이 표현들은 언제나 끝에 오며, 치유의 갑작스러움을 강조하는데, 마태가 이것을 특별히 강조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이 표현들은 공관복음의 치유 기사에서 유데오스($2112: 곧, 직접, 즉시) 등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시련의 "때에"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장 적절한 말을 주실 것이다(막 13:11; 마 10:19; 눅 12:12).|계 11:13의 "그 시에"는 '곧, 바로'를 의미하는 것 같다. 엔 아우테 테 호라는 눅 20:19("즉시")에서 사건들의 시간적 순서를 강조한다. 눅 24:33; 눅 2:38; 눅 7:21; 눅 10:21; 마 26:55에서도 마찬가지다. 눅 13:31과 마 18:1의 엔 아우테 테 호라 혹은 엔 에케이네 테 호라는 단순한 연결부인 반면 행 16:33의 엔 에케이네 테 호라는 '곧, 당장', 바로 그 밤에 '당장'을 의미한다.|또한 고전 4:11에서 "바로 이 시간까지'(현재 순간에 이르기까지), 고전 15:30에서 파산 호란("때 마다")이라는 언급도 나타난다.||(g) 신약성경에서 호라는 낮의 열 둘째 부분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 두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요 11:9). 마 20:3; 마 20:5 이하; 마 20:9에 나오는 비유를 제외하고 공관복음에서는 수난 사건만이 특정한 시간과 관계가 있다(막 15:25; 막 15:33 이하 및 병행구; 요 19:14). 이것은 분명히 이 사건들을 강조한다. 방식만 다를 뿐 요 1:39에서 어느 한 시각에 일어난 사건도 이와 마찬가지다.|요 4:52 이하에서 시각에 대한 언급은 병든 소년의 치유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요 4:6에서 그 시각은 정오를 가리킨다: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참조: 행 10:9).|행 2:15에서 때는 아침이다: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한편 행 23:23에서 바울이 수행원들과 함께 떠난 때는 밤이다: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삼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행 10:3; 행 10:30의 제 구시는 오후 기도 시간을 뜻한다(참조: 행 3:1). 막 6:35; 막 11:11의 일반적인 언급에서 호라는 낮시간(주간)을 의미한다(참조: 마 14:15).|신약성경에서 얼마 동안의 시간의 길이에 대해서는 행 5:7; 행 19:34에만 언급되어 있다(참조: 행 19:19).|눅 22:59에서는 한 시간 가량의 시간을 의미한다: "한 시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가로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계 18:10; 계 18:17; 계 18:19에서 호라는 '짧은 기간에', '즉시로'를 뜻한다.|요 5:35; 고후 7:8; 갈 2:5의 프로스 호란은 '짧은 시간 동안에'를 의미하며 아이오니온과 대조된다(몬 1:15).|살전 2:17의 프로스 카이론 호라스는 '짧은 시간의 기간 동안에'이다. 시간의 길이가 비밀의 의미를 지니는 묵시 언어에서 미안 호란은 '짧은 시간 동안'을 의미한다(계 17:12). 막 14:37과 병행구에서 미안 호란은 엄밀한 의미의 한 시간이 아니고 단 시간 동안을 가리킨다: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그러나 마 20:12에서는 한 시간을 의미한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참조: G. Delling; H. -C. Hahn;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