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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낮아짐
tapeivnwsi"
굴욕 abasement, 비하, 겸비 humiliation.||#1. 고전 헬라어 문헌||명사 타페이노시스는 타페이노오($5013)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감소'(몸의 부기가 주는 것, 죽음에 의해 사람이 감소하는 것), '약하게 하는 것, 약화시킴'(예: 어두움을 약화시키는 것), '비하, 의기소침'(사람, 또는 마음에 대하여)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이 단어는 주전 5~4세기의 플라톤 이래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비하 humiliation' 의 과정을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타페이노시스는 70인역본에서 40회 나오며, 4개의 히브리어군의 단어들을 번역하고 있는데, 주로 오니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오니는 '고생, 가난, 빈곤'을 뜻하는데 고통의 상태나 고통을 낳는 징벌을 표현한다. 나머지 히브리어들의 의미를 종합하면 '압박, 욕보임, 짓밟음, 낮음, 비천, 겸손,불모'등을 의미한다.||(a) 따라서 타페이노시스는 '천함, 곤란한 처지나 상태, 낮음' 그리고 이런 처지의 결과인 영혼의 상태로서 '슬픔, 비통, 고통'을 의미한다. 이런 어려운 상태는 이스라엘의 상태(신 26:7; 시 136:23; 삼상 9:16; 애 4:8) 혹은 개인의 상태(창 16:11; 창 29:32; 창 31:42; 창 41:52; 삼상 1:11; 삼하 16:12; 시 9:14; 시 90:3; 시 25:18; 시 119:50;92; 시 119:153; 시 31:8; 잠 16:19)이다.||(b) 사 53:8에서 타페이노시스는 여호와의 종(Servant)에 관하여 표현한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여호와의 종은 압박을 다하셨다. 이것은 그가 높임을 받으신 이유이다(사 53:7,10 이하).||#3. 신약성경의 용법||타페이노시스는 신약경에서 4회 나오며, '비천, 비하, 낮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누가복음에서 타페이노스는 마태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왕으로서의 통치에 관한 종말론적 돌입에 관련된 선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구약성경과 유대교의 문서에서 흔히 사용되던 것과는 다른 용법이다. 누가복음은 서두에 이미 이 주제를 도입하고 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마리아 찬가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구약성경적 표현으로써 찬양하고 있다(삼상 1:11; 참조: 시 113:5-9). 눅 1:48에서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계집 종", 즉 여자 노예는 낮은 신분의 사람으로 해석된다.|(참조: 눅 1:38).||(b) 약 1:10 이하는 부자와 대조하여 '낮아짐', 곧 '비하'를 언급한다: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부한 형제가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면 이 절들은 물질적인 부요를 의지하는 개종자들에 대해 경고하는 동시에 다음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 부한 형제가 누릴 진정한 기쁨의 근원은 그가 낮아진다는데 있다. 이러한 비하의 과정은 부한 자가 그리스도를 따를 때 겪는 가치의 재정립이다.|(A.F.Harper의 야고보서 주석 참조).||(c) 행 8:33은 사 53:7 이하를 70인역본으로부터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가리키는 구절로 해설한다.||(d) 바울은 빌 3:21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어려움들 속에서 오실 주님이 우리의 낮은 몸을 변화시켜 주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만드시리라는 소망에 의지하였다.|(참조: H.H.Esser; W.Grundmann).
크레마
crh'ma
부, 재물 wealth, 자력(산) means, 돈 money.||#1. 고전 헬라어 문헌||명사 크레마는 크레(필요, 그것은 불가피하다)와 관계되며, 일반 헬라어에서 '일, 사업, 사건'(affair), '돈'(Hdt.), '가치있는 물건, 상품'(goods), '부, 재산'(Xenoph.)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크레마는 7O인역본에서 약 45회 사용되었으며, 5개의 히브리어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돈, 부, 재산'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크레마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타난다. 행 4:37에서 '돈뭉치'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마 10:22 - 마 10:23에서는 복수형으로 '재산, 소유'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행 8:18 이하에서 시몬 마구스는 하나님의 은사를 얻기 위해서 '돈'을 가지고 왔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그리고 행 24:26에서 벨릭스는 바울이 자기에게 '돈'을 주고 석방을 보장 받으려고 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신약성경에서 비판하고 있는 것은 재물 그 자치가 아니라, 재물을 신뢰하고 또한 재물을 가치없이 사용하는 일이다.||♠ 사도교부들의 문헌에서 유일한 용례는 헤르마스 목자서 비유편 2.5이며, 여기서는 가난한 자들의 기도와 부자들의 재물이 합력하여 해야할 일에 대해 언급한다.|(참조: J.H.Thayer; B.Reicke; C.Brown).
니고볼리
Nikovpoli"
니고볼리 Nicopolis(지)||니코폴리스는 '승리의 도시'를 의미하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니고볼리'로 번역되었다.||니코폴리스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에피루스(Epirus)의 수도로 세운 도시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주전 31년 악티움(Actium) 전쟁 이전에 이곳에 주둔했다. 그는 마크 안토니에 대한 최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암브리시아만의 한 곶에 이 성읍을 세웠다. 이 성읍은 알타(Arta)만에 있는 그리스도의 서쪽 해안에 위치하였다. 로마 식민지인 이 성읍은,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그곳에 세워진 악티안 게임(Actian games) 때문에 다소 유명했다.|비록 니고볼리라는 이름을 지닌 다른 성읍들이 여럿 있긴 했지만 사도 바울이 에피루스에서의 전도 활동을 위해 거점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회합 장소는 이곳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딛 3:12). 다른 지역들은 겨울 내내 지내려고 한 바울의 의도에 비추어 볼 때 거의 타당하지 않다. 니고볼리는 중요한 무역 도시이자 어업이 왕성하였다.|후에 코트(Goths)에게 파괴당했고, 후에 저스티니안(Justnian)에 의해 재건되었지만 그 후에 프레베자(preveza)는 니고볼리를 침략하여 차지했다.|(참조: PEB).
프라위테스
prau?th"
온유, 친절, 겸손, 동정심.||#1. 일반 헬라어의 용법||프라위테스는 프라위스($4239)에서 파생되어 투키디데스(Thucydides) 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온유, 온화, 친절'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프라위테스는 70인역본에서 11회 나오며, 히브리어 아나와 안와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에 3:13에서 아하수에로 왕은 자기가 온유하게 처신하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에 5:1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온유하게 변화시켰다고 한다. 시 45:4에서 왕과 관련하여 나온다: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시 90:10; 시132:1에는 '고생'이란 의미로 나타난다. 집회서 1:17; 4:8; 10:28에서 '유순, 온유, 겸손'이란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프라위테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온다. 신약성경이 프라위테스를 주장할 때, 그것은 순전히 인간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태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구원의 징표이다. 즉 그것은 '부름'(엡 4:2)과 선택(골 3:12)의 표식이며 성령의 역사(갈 5:23)이다. 그것은 헬라적 의미에서의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주어진 생활과 행위의 가능성이다. 그것은 인간의 한 기질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그리스도와 연결되고 그의 형상과 일치될 때에 생겨나는 것이다.|고후 1O:1에서 바울은 프라위테스와 에피에이케이아($1932)를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동안 사람에게 보여주셨던 태도의 특징으로 언급하면서, 그것을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교회에 제시한다: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프라위테스는 또한 죄를 범한 기독교인을 처리하는 일에 있어서 가져야할 태도에 관해서 언급된다(고전 4:21; 갈 6:1; 딤후 2:25).|약 1:20에서 프라위테스는 올게($3709:성내는 것)와 대조되어 있으며, 선생에 대하여 분노를 터뜨리는 것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는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를 가리킨다. 온유는 신적 지혜로 영감된 참된 의인의 표식이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 3:13). 여기서 온유는 의인의 전 행위에서 나타나며, "독한 시기와 다툼"과 반대된다(약 3:14; 참조: 집회서 3:17; 벧전 3:4).|벧전 3:15에서 당국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의 이유에 대하여 물었을 때 친절하게 온유 겸손히 응해야 한다고 한다. 비록 그들의 부당한 대우가 분개와 반항하도록 자극할지라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적대와 박해의 상황과 관련하여 언급한 것이다.|(참조: F.Hauck/S.Schulz; W.Bauder).|→ $4239b 프라위스
후메내오
@Umenai'o"
후메내오 Hymenaeus (인)||휘메나이오스는 '결혼의 신에 속함'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딤전 1:20; 딤후 2:17). 그는 바울이 그의 믿음이 파산하였다고 비난한 이단자(딤전 1:20; 딤후 2:17)이다. 아마도 그는 기독교 교회 안으로 파고 들어온 그노시스주의에 물들었던 것 같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절제하다
ejgkrateuvomai
자제하다 exercise self-control.||#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엥크라튜오마이(Pythag., Aristot.)는 '자기를 지배(제어)하다, 자제하다, 그만두다, 삼가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엥크라튜오마이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히브리어 아파크(662: 붙잡다, 보유하다, 삼가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창 43:31에서 정을 '억제하는 것'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엥크라튜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고린도전서에 2회 나온다.||(a)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바울은 여기서 엥크라튜오마이를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를 위한 운동가의 '절제'에 대해 사용되었다.||(b) 고전 7: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여기에서 이 단어는 성적인 "자제"를 의미하지만, 여기에서도 마치 부부간의 성이 나쁜 것이기나 한듯 금욕주의를 찬양하지는 않는다. 이런 윤리적 용어가 드물게 사용된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 때문이다.|① 기독교인의 생활은 하나님의 명령의 지시를 받으며 따라서 자율적인 자제의 여지가 없다.|②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신앙은 이원론을 배척한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어서 다 선하기 때문이다.|③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은 고행에 의한 공로 구원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W. Grundmann).|바울에게는 독신과 절제가(참조: 고전 7:7) 더 바람직하다. 세계의 종말이 절박해 있다는 기대에 차있는 바울에게 있어서는 결혼이 창조의 규례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 바울은 마지막 환란 때에 결혼이 가져다 주는 고난에서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을 보존하려고 하였다(참조: 고전 7:26). 그들은 자유로이 주님을 섬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H. Baltensweiler).
인자하심
crhstovth"
선함 goodness, 친절함 kindness, 우정 friendlines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크레스토테스(Eur., Isaeus. 이래)는 크레스토스($5543)에서 유래되었으며,|(a) '정직, 존경할만함, 훌륭함, 가치있음',|(b) '친절, 우호적인(우정), 온화함(온유)'을 의미한다.|이 단어는 여러 비문에서 통치자들과 중요한 공적 인물들을 위한 영예로운 칭호로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크레스토테스는 70인역본에서 약18회 나오며, 히브리어 토스 어군의 역어로 사용되었다.|크레스토테스는 사랑의 '선이나 의'를 표현하며(시 14:1; 시 14:3; 시 53:3), 하나님의 자비 및 친절한 성품과 행위를 나타낸다(시 25:7이하; 시 31:19; 시 65:11등).||#3. 신약성경의 용법||크레스토테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바울서신에만 나타난다.||(a) 롬3:12에서 크레스토테스는 인간의 '선이나 의'를 의미한다: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 구절은 시 14:1을 인용한 것이다.||(b) 크레스토테스는 롬 2:4에서 그리스도 앞에서, 롬 11:22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와 통해서 나타난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태도와 행위를 의미한다.|딛 3:4이하에서 크레스토테스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하나님의 친절(자비)을 표현한다.|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신적 구원 활동의 특수한 궁극성을 체험한다. 그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하늘의 영역으로 옮김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 활동해 온 그분의 은혜와 친절하심(자비)에 대한 계시이다. '온유함, 친절함'을 뜻하는 크레스토테스는 여러 단계로 이루어져 있는 하나님의 운동 원인들 가운데 하나의 새로운 동인이다. 공동체가 비밀로서 소유하고 있는 것, 그리스도는 속량하시는 우주의 지배자라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현실로된 것은 마땅히 드러나야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공동체 속에서 활동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는 공동체를 경유하고 통과하여 전해지며, 앞으로 올 세대까지 확대된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통치를 전제로 삼는 신자들의 부활과 통치자적 지위는 앞으로 올 세대에서 밝혀져야 하고 드러나야 한다(Joachim Gnilka).||(c) 크레스토테스는 덕목 중의 하나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밖으로 퍼져나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체험은 그 자체로서 이제는 다른 사람을 향한 크레스토테스로 작용한다.|갈 5:22에서 크레스토테스는 성령의 열매이며, 고후 6:6에서는 성령과 관련되어 있다.|골 3:12에서는 이와 유사한 주님의 성품에 크레스토테스가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친절(자비)은 아가페의 직접적인 외관적인 활동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의 삶 속에서 항상 살아있고, 능동적이며,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고, 스스로 백성을 선별하셨으며, 죄와 사악함에도 불구하고, 때가 찰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무한한 인자함을 나타내 보이셔서 죄와 사악에도 불구하고 계속 인자함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원초적인 자비하심으로부터의 순환을 완성한다. 여기서 비로소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그 목적 Goal을 달성하게 된다. 하나님의 자애로운 아버지와 같은 자비로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울을 보듯 분명히 볼 수 있다. 더욱이, 기독교 공동체, 즉 교회의 구성원들은 반드시 그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자비의 길을 자신들의 소명으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 동시에, 그들은 그러한 자비의 징표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서 인자함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참조: J.H.Thayer; K.Weiss; E.Beyreuther).
기롱하다
cleuavzw
조소하다, 조롱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 및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클류아조(Aristoph., Demosth. 이래)는 클류에 (%741: 농담, 익살)에서 유래했으며, 비웃다, 조소하다, 조롱하다를 의미한다.|70인역본에서 이런 의미로 사용되었다(마카베오이서 7:27; 지혜서 11:15).||#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클류아조는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에만 2회 나온다.||(a) 행 2: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b) 행 17:32,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빌레도
Filhtov"
빌레도 Philetus (인)||필레토스는 '사랑하는'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 딤후 2:17에 한번 나온다: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그는 후메내오와 함께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대표적인 교사로 명명되었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훼손시킨 영지주의자(Gnosticist)였을 것이다(딤후 2:16-18). 바울은 디모데에게 "괴저처럼" 파괴적으로 번지고 있는 그와 같은 가르침을 피하라고 경고했다. 그들의 잘못된 교리는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육체의 부활을 부인했으며, 교리를 우화로 간주하여 그와 같은 모든 가르침을 상징과 비유로 돌렸다. 그들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지식에 대한 무지와 죄로부터 소생할 때 저들의 생활 가운데서 부활하는 발생한 것으로 믿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ISEB).
공궤하다
trevfw
기르다, 먹이다, 양육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트레포(Homer 이래)는 기본 동사이며, '자라게 하다, 기르다, 양육하다, 부양하다, 먹이를 주다, 사육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트레포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6:26에서 하나님이 먹이시는 새에 대해 언급한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병행구절 눅 12:24에서는 까마귀에 대해 언급한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b) 행 12:20에서 지방에 관해 사용되었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여기서 트레포는 수동태로 기능하면, '먹고 산다'라는 의미가 된다.||(c) 눅 4:16에서 예수님에 관하여 언급되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여기서 수동태가 사용되어 '양육받는다'라는 의미에서 '자라나다'를 뜻한다.||(d) 마 25:37에서 주린 자에 관하여 '먹을 것을 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e) 눅 23:29에서 유방에 대해 '먹이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f) 계 12:6에서 '양육 받다'를 의미한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 12:14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g) 약 5: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부끄러워 하다
aijscuvnw
부끄러워하다, 수치를 당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이스퀴노(Homer 이래)는 아이스코스(%545: 천함, 추함, 수치, 창피, 불명예)에서 유래했다.||(a) 아이스퀴노는 본래 '보기 흉하게 하다, 추하게 만들다'를 의미했다.||(b) 아이스퀴노는 헬라 문학 속에서는 거의 전적으로 중간태나 수동태로 사용되어 '수치를 느끼다, 부끄러워하다, 당황하다, 난처해 하다'를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a) 동사 아이스퀴노는 70인역본에서 100회 이상 나오며, 대부분 히브리어 보쉬(창피를 주다)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65회). '부끄러워하다'라는 중간태 의미나 '겸손'의 의미는 헬라어 용법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드물게 사용된다. 이 단어는 시편, 이사야, 예레미야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이런 구절들에서 강조점은 아이스퀴노의 사회학적 측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신학적 측면에 있다. 하나님에 대한 완곡적 표현으로 사용된 수동구문(일반적으로 미래 2인칭 수동태)에서와 같이 일반적으로 여호와는 아이스퀴노의 주어로서 암시되거나 명시되어 있다(사 1:29; 20:5; 렘 2:26).|시편 기자들은 여호와의 심판을 기원하며(참조: 시 6:10; 35:26; 40:15), 선지자들도 여호와의 심판을 예언한다(사 1:29; 41:11; 렘 2:26). 여호와의 심판은 그들의 원수들과 불경한 자들을 부끄럽게 할 것이다.|따라서 아이스퀴노는 구약성경에서 우선적으로 악을 행하는 자들 혹은 모든 민족의 객관적인 파멸을 언급하고 있다(시 69:4-7, 19 이하). 여호와의 심판 행위는 그의 원수들로 하여금 수치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시 40:14; 시 83:16-18).||(b) 아이스퀴노는 성적인 의미로 에스겔서에서 자주 나타난다(16:36 이하; 23:10, 18 등). 창 2:25의 표준적인 진술,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에서 육신의 부끄러움은 죄책감의 가장 원초적인 표현이자 인간의 육체적 본성이 당하고 영육의 합일에 대해 의심을 품는 장해의 표징이다. 이러한 장해는 여호와에 대한 불복종의 행동에 기인하는 것이며,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인간은 결백함을 객관적으로 상실하게 되고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심오하게 장애를 받게 된다(창 3:7; 참조: G. von Rad, Genesis, 1961, 88, 95-9).||#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이스퀴노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부끄러워하다, 수치를 당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눅 16:3에서 중간태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b) 아이스퀴노는 부정어와 함께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을 나타낸다(고후 10:8; 빌 1:20; 벧전 4:16).|요일 2:28에서는 우리가 부끄러워하여 그로부터 위축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R. Bultmann, TDNT; G. Link; DNTT).
건강하다
uJgiaivnw
건강하다, 건전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휘기아이노(Theognis, Hdt. 이래)는 휘기에스($5199: 건전한, 건강한)에서 유래했으며, '건강하다, (마음)이 건전하다, 빈틈없다, 분별력이 있다'를 의미한다.|헬라 문헌에서 휘기아이노는 일반적으로 어떤 개념이나 의견이 사려있고 분별력이 있는 것, 즉 허위나 '병적인' 것과는 반대되는 '건전한' 것으로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참조: Plato, phdr).||#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휘기아이노는 70인역본에서 약 40회 나오며, 히브리어 살롬(안전한, 평화로운, 평안한, 창 29:6; 창 37:14; 출 4:18; 삼상 25:6; 삼하 20:9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휘기아이노는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휘기아이노는 '건강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눅 7: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강건하여졌더라". 예수님은 병자를 기적적으로 고쳐 주심으로 병자는 건강해졌다. 예수님의 치유이적에 의해 건강해진 것은 단순히 의학적인 치유의 결과가 아니라 보다 심원한 병 고침을 시사해 준다. 즉 그것은 구원의 시대가 동텄다는 징조이다. 이 치유이적에 관련된 자들은 벌써 그 영향권에 접근해 있는 것이다.||(b) 눅 15: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휘기아이노는 단순히 육체적인 안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참조: 눅 15:24). 불화의 상태에서 돌이켜서 아버지 집에 돌아옴으로써 아들로서의 본래의 상태로 복귀되었다. 즉 그는 이제 건강하게 되었다.||(c) 눅 5:3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과 예수님이 교제하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과 대결할 때 예수님께서는 이 격언으로 자신의 선교를 정당화 하신다.||(d) 요삼 1:2 에서는 헬레니즘적인 편지의 인사말을 사용한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e) 휘기아이노는 목회서신에 '건전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딤전 1:10,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 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② 딤전 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③ 딤후 1: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④ 딤후 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⑤ 딛 1: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⑥ 딛 1:13,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⑦ 딛 2:1; 딛 2:2,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여,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구속함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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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 bu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고라조(Aristoph. 이래)는 아고라($58)에서 유래했으며, `아고라에 자주 가다'를 의미하였고, `시장에서 사다'를 의미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일반적으로 `사다'를 의미하게 되었다. 또한, 이 말은 헬레니즘 시대에 일반적으로 노예들을 사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는데, 의례적인 노예 해방(sacral manumission )의 관습이 분명히 아고라조와 연관되어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이 말은 신약 용법상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2. 70인역본의 용법||아고라조는 약 25회 나오며, 일반적으로 상업적인 매매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예: 창 41:57; 느 10:31). 이 말은 레 27:19에서 꼭 한번 히브리어 가알(gaal: 구속하다, 속량하다)의 역어로 등장하고 있지만, 여기서 이 말의 목적어는 사람이 아닌 땅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아고라조는 신약성경에서 30회 나오며, 주로 4복음서에 자주 나타난다(20회).||(a) 아고라조는 일반적인 통상적 의미로 `사다'를 뜻하며, 복음서들에 가장 많이 발견된다(예: 마 13:44; 눅 22:36).||(b) 아고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 기독교인들을 `사는 것'을 묘사한다(5회). 이것은 분명히 노예 시장에 관한 그 시대의 전문 용어를 반영한 것이다.|고전 6:20에서 아고라조는 `사다'를 의미하며 우리들의 `구속됨'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7:23에서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이 두 구절에서 아고라조는 바울의 선교의 일종의 슬로건이며, 그 중요한 요점은 기독교인들이 자유한다는 것이 아니라(고전 6:19), 그리스도의 소유이다(고전 7:23)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그들의 구속의 사실을 언급한다.|계 5:9에서 아고라조는 어린양의 위대한 성취를 나타낸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여기서 어린양이 어떻게, 무엇으로, 누구를 위하여 사람들을 사셨다는 것을 지적한다.|계 14:3, 계 14:4에서도 마찬가지다: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벧후 2:1에서 "그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이단자들은 완전히 뻔뻔스러운 자들이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c) 계 3:18에서 공동체는 그리스도로부터 금을 사야 한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여기에서 사상은 사 55:1(값없이 사는 것)에와 같이 주는 것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진짜 소유 대신 가짜 소유를 취하는 것이다.|(참조: J.H.Thayer ; D.H.Field ; F.Buchsel ).
누추함
aijscrovth"
부끄러움, 수치 sham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이스크로테스(Pla., Gorg. 등)는 아이스크로스($150, 부끄러운, 더러운)에서 유래했으며, '부끄러움, 추함, 사악함'을 뜻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이스크로테스는 신약성경에서 엡 5:4에 한번 나온다: "누추함". 새번역은 "추잡한 행동"으로, 공동번역은 "추잡한 말", KJV, NASB는 '추잡함'이라고 번역했다. 행동인지 말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추잡함'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처음 익은 곡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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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열매 firstfrui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파르케(Soph., Hdt. 이래)는 아포($575)와 아르코($757)에서 유래했으며,||(a) 자연적 산물의 '첫 열매',||(b) 소득이나 소유에서 떼어 바친 '일정 비율의 제물', 그 다음에 성공이나 번영에 대한 '감사 제물',||(c) 신이나 또는 신의 종이나 성소에 바치는 '제물'(정규적이거나 특별한 제물이든 간에), 여기에서 유대인의 세금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Jos. Ant.).||(d) 종교적 용법에서 성전 봉사를 위해 스스로나 사람들이나 부모나 주인이나 스승에 의해 바쳐진 사람들은 아파르케일 수 있다.|(참조: O. Bauernfeind).||#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아파르케는 70인역본에서 약 70회 나오며,||(a) 하나님께 바치는 들이나 양떼의 '첫 열매'(신 18:4; 신 26:2; 신 26:10; 민 18:8-민 18:12; 느 10:37 이하),||(b) 성전이나 제사장들에게 드리는 '정규 제물'(대하 31:5 이하).||(c) '특별한 예물'이나 '헌금' 등(출 25:2 이하; 출 35:5; 출 36:6), 우상에게 드리는 제물(겔 20:31)을 나타낸다.||(d) 비제의적 의미로, 신 33:21에서 '분깃', 시 78:51에서 '장자'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파르케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롬 11: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여기서 바울은 민 15:17-민 15:21의 사상을 사용한다. 분명히 구약성경의 실례와 바울의 결론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다. 이스라엘인들의 경우, 제물로 드리고 난 나머지의 반죽은 일반적인 용도로 사용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블랙(M. Black)이 지적한대로, 반죽의 '첫 열매', 즉 처음 구운 떡덩이를 제물로 드림으로써, 반죽 전체 덩어리는 성화된다(민 15:17이하).|"뿌리가 거룩한 즉", 이스라엘 전체는 이 거룩한 족장을 통하여 성화되었다는 것이다. 즉 조상들(참조: 롬 9:5)이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고 받아 들여졌다면, 이 택하심은 어쨌든 원칙적으로 전체 이스라엘에게 유효하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바울의 희망을 확증한다.||(b) 아파르케는 첫 열매의 상징적 의미를 나타낸다.|① 고전 16:15에서 스데바나의 집은 아가야의 첫번째 기독교인들이다: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② 롬 16:5에서 에베네도는 아시아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의 첫 회심자였다: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베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③ 약 1:18에서 야고보는 자기의 독자들을 하나님의 창조물의 첫 열매라고 말한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야고보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옛 이스라엘을 대신하는 새로운 창조 질서의 첫 열매로 여긴다. 그들은 '인류의 남은 구성원들이 뒤따르게 될 잠정적인 첫 지불금'이다(M. Dibelius and H. Greeven).|④ 계 14:4에서 십 사만 사천 인은 하나님께 속한 첫 열매이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들은 구속을 받고 첫 열매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항상 "어린양" 앞에 있으면서 새 노래를 배운 예루살렘의 사제들이다.||(c) 롬 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여기서 첫 열매를 받는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믿는 자들이다. 성령의 선물은 종말론적인 육체의 구속에 대한 첫 불입금 이자 담보로 간주된다. 여기서 구속, 첫 열매, 하나님께 속한 자는 순서가 바뀌어 있다. 왜냐하면 첫 열매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 다음에 양자될 것과 영적 몸이 되는 것(즉 몸의 구속)이 뒤따르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d) 고전 15:20에서 아파르케는 부활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그리스도의 부활은 믿는 자의 부활에 대한 보증이 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모든 사람의 부활을 결정한다.|이 사상은 고전 15:23에서 부활 생명의 종말론적 질서와 관련하여 더욱 발전되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참조: H. -G. Link, C. Brown; O. Bauerneeind; A. S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