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이냐? 구원이냐?
기독정보닷컴
2024.07.05 21:45
심판이냐? 구원이냐?
예레미야 28:1~17`
자기 생각과 주장만 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남의 생각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복잡하고 갈등이 많은 세상 한복판에서 누군가 자기 생각과 같은 메시지를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말하면 얼마나 시원하고 반가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기 생각과 다르더라도 일리가 있고 설득력이 있는 말이라면 자기 주장을 바꾸는 배움의 기회가 됩니다. 주체적 사고를 하더라도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사익보다 공익을 강조하는 일이 옳다고 판단합니다. 혼자 잘 사는 것보다 모두 함께 사는 일이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주의보다 인류 보편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암담한 현실이라 할지라도 절망을 말하기보다 희망을 선포하는 일이 옳습니다. 공부를 많이 해야 아는 게 아닙니다.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삶의 원리입니다. 민족애를 강조하고 평화를 예언하는 일은 예언자의 마땅한 본분이기도 하지만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굳이 발언의 출처가 하나님으로부터 임하지 않아도 됩니다. 공의와 평화와 민족애를 강조하는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쉽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양심과 도덕에 터한 가르침은 아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 쉽고도 단순한 보편적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커다란 모순입니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이고 악이고 불의입니다. 인류 공동체의 문제는 어렵고 난해해서 풀지 못하는 게 아니라 너무 쉽고 단순해서 풀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냐가 일어나서 바빌로니아로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2년 만에 돌아온다고 예언하였습니다(1~4).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입니다. 백성이 기대하는 바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냐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성취에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이를 분명하게 고지합니다.
“평화를 예언하는 예언자는, 그가 예언한 말이 성취된 뒤에야, 비로소 사람들이 그를 주님께서 보내신 참 예언자로 인정하게 될 것이오..”(28:9)
주님, 미려한 설교가 능사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말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말 한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땅의 설교가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성취될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