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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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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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7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전지하신 분이라서 가룟유다가 당신을 팔아먹을 것을 훤히 아시는데 왜 열둘 중에 하나로 택했을까? 그리고 왜 당신이 택한 가룟유다를 두고 한 사람은 마귀니라라고 했을까?

 

가룟유다를 제 삼자의 입장에서 볼 때 비록 마귀 짓을 할 가룟유다이지만 마귀가 가룟유다를 택해서 왕을 삼는 것보다 예수님이 택해서 데려가는 게 가룟유다로서는 큰 은혜를 받을 좋은 기회가 되는 거고, 참사람으로 만들어질 좋은 기회다. 그런데 가룟유다는 예수님에게 택함을 받고 3년간을 따라다니며 배웠음에도 돈 한 푼 때문에 구원 팔고, 스승 팔고, 사람을 팔았다. 지금의 믿는 우리가 예수님보다 돈을 선택한다면 그 사상은 예수님을 팔아먹는 거다.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가룟유다가 자기에게 하는 말인지를 알아들었을까, 못 알아들었을까? 71절에서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라고 했는데, 71절의 말씀은 가룟유다가 아직 예수님을 팔기 전에 예수님의 마음속에 담아져 있는 것을 가룟유다와 예수님이 죽은 한참 후에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에 기록을 해 놓은 거고, 70절에서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라는 말씀은 열두 제자들 앞에서 하신 말씀이라서 가룟유다도 직접 들었는데, 이 말씀이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인 줄 알았을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속의 성질이나 성격이나 성분을 모르면 누가 자기를 두고 말을 해도 그 말이 자기에게 하는 말로 들리지를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로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게 마귀의 생각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룟유다가 당신을 팔 것이라고 직접 말씀을 하시지 않고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라고 하셨기 때문에 가룟유다는 자기 속의 성질이나 성격이나 성분을 모르는 상태라서 자기가 아닌 남에게 하는 말로 들리는 거다. 그러니 자기를 두고 하는 말로 알아듣지 못하고 자기를 제외한 열한 사람 중에 하나가 예수를 팔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거다.

 

그러면 만일 예수님께서 가룟유다가 당신을 팔 것이라고 직접 지적을 했다면 가룟유다가 이 말을 듣고 가버렸을까. 회개하고 고쳤을까? 가버렸을 거다. 왜냐? 앞에서 말했듯이 자기의 성격이나 성질이나 성분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를 지적을 해도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교인들 앞에서 나의 잘못을 지적해서 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그 말을 듣겠느냐, 벌떡 일어나서 가버리겠느냐? 그 자리를 일어나서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자리에 앉아서 그 말을 다 듣는다고 해도 자기를 고칠 생각 대신 마음속으로 목사님을 미워하고 변명할 말을 찾는다면 비록 그 자리에 앉아있더라도 마음은 벌써 가버린 거다. 주님은 이 마음을 보신다. 성경말씀은 전부가 나에게 하는 말씀으로 받아야 은혜가 된다.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가룟유다를 마귀로 만들어 놓았다는 거냐? 예수님을 팔기 때문에 마귀냐, 마귀는 예수님을 파는 거냐, 팔아먹는 그 자가 마귀 짓을 하는 거냐? 하나님께서 가룟유다를 마귀로 만들었다고 하게 되면 가룟유다가 예수를 파는 책임이 예수님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예수를 팔기 때문에 마귀라고 한다면 그 책임이 가룟유다 자신에게 돌아간다.

 

가룟유다를 잘 아시는 주님께서 이 가룟유다를 불러서 제자를 삼은 이유가 뭘까? 1. 당신을 팔아 먹으라고? 2. 당신이 가룟유다를 마귀로 만들었으니까 어차피 지옥에 갈 것이고, 당신이 인간을 구원하려면 십자가를 지는 사건이 있어야 하겠기에 이 일에 가룟유다를 이용해 먹고 지옥에 보내려고? 3. 어찌하든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영원히 존귀 영광자가 되게 하려고? 어느 거냐?

 

베드로는 예수님의 모든 언행심사와 이적 기사를 보고 듣고 만져보고 느끼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심을 발견했는데 가룟유다는 베드로와 똑같은 경험을 하고서도 예수님으로부터 무엇을 깨달았나? 가룟유다의 말을 들어볼 때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많은 병자를 고치는 것을 보니 예수이름을 팔아서, 즉 예수이름을 이용해서 돈 벌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와 말씀 속에서 예수님의 뜻을 깨닫지는 않고 나도 그 능력을 가지면 돈을 많이 벌겠구나하는 게 예수이름을 바꿔 치는 거고 예수를 팔아먹는 거다.

 

이 이치로 보면 오늘날 교회 안에 예수를 팔아먹는 가룟유다가 엄청나게 많다. 예수님의 눈으로 보는 눈이 아니면 이걸 못 본다. 설령 예수님께서 나를 팔 자러라.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라는 말씀을 안 했다고 할지라도 예수이름으로 세상축복운운하고, 세상과 연락하고, 세상과 짝짓고 있다면 이는 마귀 짓이다. 교권과 세권이 결탁을 하면 이는 필연적으로 마귀 짓이 나오게 되어있다.

 

요즘 크리스마스가 되면 절간 앞에 축 성탄하는 플래카드를 붙여주고, 석탄일이 되면 교회 앞에 축 석탄하는 플래카드를 붙여주는 곳이 있는데, 이걸 이치적으로 보면 돌부처와 하나님을, 조물주와 피조물을 같이 앉혀서 동등권으로 취급하는 거다. 믿는 사람이건 안 믿는 사람이건 이방우상을 섬기는 것을 예수 믿는 것과 동등으로 여기는 것은 마귀 짓을 하는 거다. 마귀가 예수님께 세상의 것 세 가지로 시험을 걸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마귀가 예수님께 시험을 건 세상 것을 소원 목적하는 정신으로 예수를 믿는다면 마귀에게 넘어간 거다. 이게 가룟유다의 정신이다.

 

기독교 종교적인 정신은 겉으로 보면 교권과 세권이 들어있고, 종교적 사업이나 운동 등이 들어있는데 마귀가 예수님께 세 가지 시험을 치는 내용 속에도 이런 사상이 들어있다. 그래서 세상 것을 얻기 위해 예수를 믿고 있다면 이 사람은 마귀의 시험에 빠진 거다. 마귀의 졸병이다. 그리고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은 예수를 안 믿는 세상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모른다. 왜냐? 안 믿는 사람들의 소원 목적이 자기와 똑같기 때문이다.

 

신앙의 본질을 모른 채 예수를 믿으면 이질적인 신앙의 질도 모른다. 그래서 본질적인 신앙과 이질적인 신앙을 구별 분별을 못한다. 이렇게 되면 자기 속의 신앙정신이 거짓적인 건지 이단적인 건지를 모르게 되고, 거짓 종이나 이단자를 못 찾는다.

 

예수 믿는 사람이 가룟유다를 지옥에 갔다고 하면서 자기 속에도 예수를 팔아먹는 정신이 들어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 가룟유다가 지옥에 갔다고 한다면 가룟유다와 같은 정신을 가지고 있는 자기도 지옥에 가게 된다는 말이 되는 건데, 자기가 한 말이 자기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를 모른 채 함부로 말을 한다. 우리에게 가룟유다를 보여주는 것은 가룟유다를 보고 자기의 신앙정신을 깨달아서 고치라는 건데 자기는 안 보고 남만 본다면 너도 가룟유다다.

 

자기가 가룟유다가 아니라면 예수님을 돈과 바꿔먹고 팔아먹는 게 없어야 한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어느 부분에서 돈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을 쉬기도 하고, 돈을 위해 자기의 신앙을 버리기도 한다면 이것은 자기도 곧 가룟유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자기에게는 무엇보다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자기의 행동으로 답을 하는 거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떠나갔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열두 제자와 함께 예수님 앞에 그대로 있다. 예수님을 떠나가지 않았다. 가룟유다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 열둘 중에 하나로 끼어있으니 안 믿는 사람들이 볼 때 가룟유다가 믿음이 좋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우리는 안 믿는 사람들의 기준의 눈을 가지면 안 된다. 성령의 눈으로 보는 기준을 가져야 한다. 이게 믿음의 눈이다. 그래야 하늘나라의 일을 바로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던지 2천 년이 지난 오늘날 세상의 모든 교인들이 가룟유다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예수를 팔아먹은 가룟유다의 결말을 보고서도 여전히 가룟유다의 길을 가고 있다. 우리 주님은 단순히 몸으로 나타나는 열심 충성만 보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든 것을 보신다.

 

우리도 가룟유다의 마음을 가지면 가룟유다와 같은 결과가 온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난 후에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서 목을 매달아 죽었는데 지금의 자기도 가룟유다의 정신으로 살다가 그렇게 죽으면 되겠느냐? 가룟유다처럼 살다가는 가룟유다처럼 죽지는 않더라도 네 스스로 고통스러워서 목을 매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을 아느냐? 이게 성경이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라고 하셨는데, 제자들 중에 이런 일이 생기면 열한 제자의 얼굴이 어떻게 되며, 교회의 위신이 어떻게 되며, 전도의 문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라고 했으니 가룟이라는 고을 사람들의 체면이 어떻게 될까? 그리고 무엇보다 3년 동안 교육을 하신 예수님의 얼굴이 인간들이나 만물들 보기에 어떻게 될까? 뿐만 아니라 가룟유다를 만드신 하나님의 마음이 어찌 될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룟유다를 인간으로 만드신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구원을 위해서인데 이 가룟유다가 자기의 구원을 팔아먹고 바꿔먹고 죽이고 했으니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친구가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도 하고 더럽게도 만든다고 했다. 주님과 우리는 친구다. 예수라는 친구는 우리의 얼굴을 존귀 영광스럽게, 빛나게 만들어 주려고 하시는데 우리는 어떠냐? 누가 주님의 얼굴을 더럽게 만드느냐? 주님의 친구인 우리가 아니냐?

 

가룟유다가 지옥에 갔다. 천국에 갔다이걸 말하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온 천국을, 예수를, 구원을, 만능의 능력자 하나님을 다 팔아먹었으니 가룟유다 자기의 존재적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 이걸 보면 가룟유다의 입장에서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나, 이걸 보는 우리의 입장에서 참으로 마음이 아픈 거다. 우리가 이런 창조의 목적 면을 염두에 두고 기도를 하면 마음이 뜨거워지는 거다. 자신은 물론이고 부모 형제 처와 자식을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에 놓고 기도를 하라. 이게 옳은 기도다.

 

우리가 70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착잡했을까를 느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것을 보는 우리의 마음도 착잡하다. 그러면 이 말을 들을 때의 가룟유다의 마음도 착잡했을까? 아니다. 본인은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다. 우리는 깨닫지 못하는 가룟유다를 보면 마음이 착잡하냐, 아니면 돈 계산이 빠른 가룟유다를 만나면 동업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이 되느냐?

 

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가룟지방의 시몬이라는 사람의 아들이 유다. 이 유다가 가룟지방에 살기 때문에 가룟유다라고 하는 건데, 가룟유다의 아버지 시몬이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가 예수를 죽이는 곳에 팔아먹었다네라는 소문을 듣는다면 아버지로서 얼굴이 어떻게 될까? 자기 자식이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사회에서 이름이 올라가면 아버지는 그 소문을 듣고 기분이 좋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자식이 하나님 앞에서나 사회적으로 못된 짓을 했다고 하면 이 아버지의 위신은 내려간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사람과의 관계성이 바로 되어 나가는 게 참 복이다. 그런데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성보다 사람과의 관계성을 더 중요시하고, 사람과의 관계성보다 물질위주로 나가는 일이 많다. 그러니 하나님과 끊어지고, 사람과의 관계성을 물질 이해타산으로 따져 들어가고, 시집 장가를 갈 때도 이렇게 따져 들어간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절대로 물질 이해타산으로 따지지 말아라. 물질성으로 따지면 그 가정은 빤한 거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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