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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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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교회의 힘은 막강하여졌습니다. 교회는 순수한 신앙인의 집합체가 더 이상 아니라 세속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엄청난 권력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 극점에 있는 교종(敎宗)들 가운데에는 물질과 성을 매개로 교회직을 팔았습니다. 내연녀와 간통은 물론 동성애와 근친 등을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차마 아들이라고 하지 못해 조카로 신분을 둔갑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교종은 아들을 추기경의 자리에 오르게 하여 다음 교종 선택에 영향을 끼치거나 스스로 교종이 되게 하였는데 이를 ‘추기경 조카라,Cardinalis nepos’로 불렸습니다. 족벌주의를 뜻하는 영어 네포티즘( nepotism)의 기원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런 악한 제도는 종교개혁이 있은 후에도 한참까지(1692) 유지되었습니다. 가장 악한 교종으로는 알렉산데르 6세(1431~1503)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만 유달리 악한 것은 아닙니다. 대개 그랬습니다. 교회에게 도덕성을 따진다는 게 별로 의미가 없던 시대였습니다. 오늘의 대형교회 목사직 세습 역시 네포티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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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2:17~21). 바울이 유대인을 향하여 하는 날 선 책망은 오늘 교회 지도자들이 들어야 마땅합니다. 딸이 한번은 “아버지, 설교 말씀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데 설교를 들으면서 큰 꾸중을 듣는 것 같아요” 하여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몽학선생이 되어 교우들을 야단치는 설교에 익숙해졌던 모양입니다. 고단한 인생길에서 이리저리 지친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오늘 여기서 살아낼 용기를 주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하기는커녕 교우들을 위축하게 만든 듯하여 면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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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2:24). 바울이 당시 유대인을 향하여 하는 이 꾸중은 가장 먼저 목사들이 들어야 할 야단입니다.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교회 성장이니 목회 성공이니 하는 수사와 이력은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가 제아무리 성장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세속 가치관에 젖은 채 추기경의 붉은 옷을 입고, 교종의 흰옷을 입는다고 뭐 대단한 자랑거리가 되겠습니까? 부흥과 성장과 발전과 성공보다 본질의 가치를 우선하여야 옳습니다. 중세 천년은 교회 영광의 시대였지만 주님의 뜻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르네상스의 계관시인 페트라르카(1304~1374)는 그 시대를 ‘암흑시대’로 불렀습니다. 오늘, 동네마다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어린이 행복지수와 청소년 자살율과 사회복지지출과 공공부문 여성 비율과 삶의 만족도는 OECD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힘이 아니라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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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의 기초가 흔들리는 세상살이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의 길을 따라 오롯이 사는 주님의 백성에게 반석이신 주님의 안전 보장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죄송합니다. 야단맞아 마땅한 자가 남을 책망하는 오류를 범하면서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송구하고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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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449 예수 따라가며 https://www.youtube.com/watch?v=t9PtqaEALV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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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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