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전쟁의 첫째 승리 비결 :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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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쟁의 첫째 승리 비결 :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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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쟁의 첫째 승리 비결 : 생각하라

본문말씀 히브리서 10장 32-39절

 

 1. 서론

 

 지난 주일은 어버이 주일이라 잠시 히브리 강해를 멈추었는데, 지난번에 신앙생활 결코 우습게 생각해서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신앙생활은 구원의 서정이 아니라 영적 전쟁이기 때문에 반드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되지만 그 싸움이 결코 만만한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기독교 역사를 고찰해 보면 마치 인간의 흥망성쇠를 보는 것처럼 어느 지역이든지 기독교가 들어가게 되면 급속도로 발전하다가 어느 정점을 지나면 쇠퇴의 길을 걷다가 결국에는 그 명맥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락하기 쉬운데, 유럽이 그랬고 지금 한국 기독교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물론 차이라면 유럽은 긴 시간에 걸쳐 그렇게 된 반면 한국 기독교는 한국 사람들의 특성이나 성격처럼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좀 다를까?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가 생각하려고 하는 이 본문의 말씀은 바로 그와 같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중요한 여러 가지 비결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가지고 “영적 전쟁의 첫째 승리 비결 : 생각하라”는 제목으로 함께 생각해 봄으로 피차 은혜를 나누려고 하는데요. 

 

 2. 본론

 

 먼저 32절 말씀에 보면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전날에 빛을 받았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더니 그 이후 어떤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흔히 우리는 전도할 때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삼박자 축복을 받아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된다’는 식으로 전도하잖아요?^^ 사실 한국 기독교가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급성장한 이유도 깊이 들어가 보면 삼박자 축복과 같은 그런 축복성회가 한 몫 크게 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기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역으로 큰 고난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그 다음 말씀에 보면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영적 전쟁의 승리의 중요한 첫 번째 비결입니다. 왜?  

 우선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으면 그런 고난의 삶이 뒤 따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잊지 말고 언제나 늘 깊이 명심하고 살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그렇게 그런 사실을 주목하고 신앙생활하게 되면 그런 고난을 당해도 견디기 쉽지만 그렇지 않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그런 고난을 당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견디기 쉽지 않다보니 조그만 도전이나 어려움에 직명하게 되어도 쉽게 포기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 교회가 이렇게 급속도로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게 복 받는다고 해서 믿었더니 실제로 만사형통하여 성공하여 보란 듯이 떵떵 거리면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좋겠는데, 결코 그렇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중에 일부는 그런 일도 있지만 그래 가지고 그런 식으로 간증하기도 하는데, 제가 볼 때 대개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분들은 무슨 생각이 들까요? 곧 잘 속았다는 생각이 들거나 아니면 나는 택함 받은 백성이 아닌 모양이다라고 생각하고 신앙을 포기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전도하면 그 말을 듣고 교회 적을 두고 어느 정도 신앙생활 할 수는 있지만 조금만 힘든 도전에 직면해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반해서 누가복음 14장 26-27절에 보면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하면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믿으면 무조건 삼박자 축복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 다음 33절에 보면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으려면 애초 가지고 있던 모든 소유 가족이나 재산을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목숨조차도 다 버리고 포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실제로 무일푼이 되어야 된다는 뜻이 아니라 전체 문맥을 고려하면 그 이후에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청지기 사명을 감당하도록 맡기셨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그 백성들을 위하여 잘 사용해야 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지만 어쨌든 이미 그런 각오와 자세로 예수님을 믿어야 되기 때문에 그런 고난과 도전에 직면한다고 해서 믿음이 흔들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단지 그런 희생만 요구한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그러나 33-34절에 보면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이라고 말씀하신 연후에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그렇게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는 대신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이 땅의 부귀영화가 아닌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복을 받아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살고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고 유혹하며 전도하는 사람들은 주로 어떤 사람? 영적 사기꾼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만 아무튼 여기서 우리의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예수 믿기 전에 먼저 그래도 예수님을 믿을 것인가, 아닌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무조건 믿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누가복음 14장 33절에서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하면 28-30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서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고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단지 건축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지요?

 오히려 신앙생활에 대한 이야기인데, 예수님을 믿는 것이 내게 유익이 되겠느냐, 손해가 되겠느냐를 먼저 깊이 계산해 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삼박자 축복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무조건 복을 받는다면 전혀 그런 샘을 할 필요가 없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의 영광은 보장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거기에 상응해서 치러야 할 희생이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유익하겠는가를 미리 계산해 본 연후에 예수님을 믿어 당하게 될 희생에 비해 주어진 복이 더 크다고 생각하면 믿고, 오히려 손해가 되겠다고 생각하면 애초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자세가 아니냐는 것이지요. 그렇잖아요?^^

 그 다음 31-32절에도 보면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서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는 말씀도 똑 같은 뜻으로 하신 말씀인데, 이렇게 두 번이나 똑 같은 뜻으로 말씀하신 이유는 이 문제가 그만큼 중요한 문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역시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신칭의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무조건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또 삼박자 축복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만사형통하여 성공하여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누가복음 14장 26-27절에서 예수님이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고, 33절에서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조차도 포기할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놓고 깊이 고민해 봐야 됩니다. 그래서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애초 포기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왜? 중간에 포기할 바에야 차라리 애초 시작하지 않는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못하시겠거든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그런 판단을 하기 전에 먼저 정말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지부터 명확하게 검정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상황이 지금 우리와 좀 다르기 때문에 그 점을 참조할 필요가 있는데,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대접 받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없다보니 정치 입문하고 싶으면 교회 다니지 않아도 다니는 것처럼 해야 될 정도로 기독교의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감사하지만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만 해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선 힘이 세지고 위상이 높아지려면 사람이나 지지자가 많아야 되는데, 당시 기독교는 이제 갓 발흥하게 된 신흥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이미 엄청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유대교로는 더 이상 구원 받을 수 없다고 해서 나온 세력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는 당시 율법의 제사제도를 부정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인정해 주면 제사 중심의 유대교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이스라엘 국가 존폐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없을 정도로 중차대한 문제기 때문에 기득권자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런 당시 상황을 놓고 볼 때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냥 단순히 어느 한 종교를 선택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언제 죽임을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의 정신이 없으면 결코 불가능한 일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당시 수많은 고난을 당해야만 했고, 그 가운데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은 하나 같이 죽임을 당했으며, 오직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사도 요한조차도 박해를 받아 밧모라는 섬에 유배 되어 기록한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러니 신앙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사실은 그런 극히 박해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럴수록 더 기독교가 왕성해 지더니 나중에는 결국 그렇게 박해하던 로마조차 기독교 국가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지 예수를 믿으면 고난을 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바로 두 번째 영적 전쟁의 승리 비결인데, 시간 관계상 다음으로 미루고 말씀을 마치려고 하는데요..

 

3. 결론

 

 로마서 3장 7절에 보면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러 심판을 받으리요”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흔히 많은 분들이 예수 믿도록 전도할 욕심으로 때로는 삼박자 축복을 받는다는 식으로 없는 말도 지어내어 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기 속을 채우려는 것이지 절대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실수를 사실은 목회자들이 제일 범하기 쉬운데, 비록 하나님을 위하고 예수님을 위하여 그런 거짓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심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목회자는 말할 것도 없고 성도들 역시 절대로 거짓 복음이나 부풀려서 복음을 전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선택은 상대방 몫이고,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우리는 단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내가 그 복음의 정확한 진리를 바로 알아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어설픈 지식으로 전했다가는 마태복음 23장 15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는 책망을 피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야고보서 3장 1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중직일수록 더 큰 심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저는 개척교회와 같은 교회에 담임 청빙 받아 위임 받았기 때문에 만사를 접어 두고 부흥에 초점을 맞추고 목회해야 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신학을 공부하던 중 구원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교회 부흥은 고사하고 만사를 접어 두고 바른 구원론 즉 복음의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하여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잘못된 구원론 위에 수천만 명으로 성장시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전도하기 전에 우선 먼저 우리 자신이 정말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진리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바로 알고 먼저 내가 그 복음의 진리를 좇아 살려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하심으로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칭찬 받는 그런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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