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할 때와 궁핍할 때, 어느 때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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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0 19:15
영혼의 양식 91-26호 1991.06.30.
성서일과 ; 삼하6:1-15, 고후8:7-15, 막5:21-43.
제목 ; 넉넉할 때와 궁핍할 때,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는 말은 주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삶의 기준이 내 생각이나 어떤 개인의 이익에 있지 아니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또한 모범을 보여 주신 그 가르침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보여 주신 그 가르침이란 무엇입니까? 말할 것 없이 그것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사랑으로 우리를 보살펴 주시고, 그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길을 가르쳐 주며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말은,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을 때에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해 주실 것임을 확신하고 따른다는 말입니다. 돈이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해 주지 못합니다. 세상의 명예가 우리를 아름답게 해 주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고약한 사람일지라도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어저께 우리 집사람은 어느 교회를 갔다 왔는가 봅니다. 그런데 우리 식구가 그 곳에 얼마 동안 있는 사이, 성도들이 이것저것 많이 가져오더라는 것입니다. 저희도 여러분의 사랑을 감당할 길이 없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 교회 성도님들도 목회자가 괴로워 할 정도로 사랑을 베푸는가 봅니다. 그 교회 사모님이 하시는 말씀이, “형편이 넉넉지 못한 분들인데도 저토록 사랑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볼 때마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나누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라고 실토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은근히 질투심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만, 생각할수록 아름다운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이처럼 목회자와 성도가 서로 마음을 다하여 사랑을 나눌 수 있을 때에,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크게 성장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교회 목사님이 그 교회에 오래 있었으면서도 불구하고 다른 교회의 초청을 거부한 채 눌러 있는 듯 싶습니다. 비단 그 교회의 성도님들의 목회자에게만 그런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닐 줄로 믿습니다. 그 사랑하는 마음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분명 그들의 그 마음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항상 그들의 생활 속에 젖어 있을 것입니다.
혹시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을 비딱하게 받아들이는 분이 있을까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나 이왕 내친 김에, 우리 식구가 충격을 받았다는 항목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교회 사모님이 우리 집사람에게 묻기를, “영춘교회는 남는 성미를 가지고 몇 교회나 돕고 있는지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식구는 그 질문에 너무나 당황하여 우물쭈물하다가 사실대로 말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사모님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네 교회는 한 달에 두 말 이상을 이웃 어려운 교회를 돕고 있노라는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이제 분명히 영춘교회 목사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영춘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마다, 여러분들은 과히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되도록 좋은 점만 찾아내어 말씀드려야 여러분이 좋아하리라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만, 이제는 저와 여러분이 공동 운명체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욕 먹을 일이면 저도 욕을 먹게 될 것이며, 여러분들이 칭찬 받을 일이면 저도 칭찬을 받습니다. 반대로 제가 창피를 당할 일이면 여러분도 창피를 당할 일이며, 제가 기분 좋을 일이면 여러분들도 기분 좋을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좀더 나은 영춘교회를 위하여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도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별방교회의 이야기를 우리 교회와 비교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이 이야기를 거울 삼아 하나님 앞에 지금 보다 더 나은 영춘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후서 8장에서,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마케도냐 교회의 예를 들어 권고의 말을 해 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한 모금 사업을 처음에는 고린도교회가 시작을 했습니다. 이 때에 마케도냐 교회도 동참을 하여 꾸준히 모금 사업을 계속하여 예루살렘교회를 도왔습니다. 형편은 마케도냐가 고린도교회보다 훨씬 못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온 교회 성도들이 참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시작은 해놓고 교인들끼리 싸우느라 모금 사업을 중단한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어 다시 그 사업을 계속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10절에, 『이 일은 일년 전에 여러분이 먼저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또 자원하여 한 일이니 여러분이 완성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는 증거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말합니다만, 결국은 두 가지로 줄여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의 기쁨이요,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기쁨이란 무엇을 먹고 즐김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지켜 보호해 주신다는 확신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도, 사랑의 하나님과 함께 있음으로 해서 자연히 본받고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억지도 아니고 어떤 대가를 바라고 행하게 되는 가짜 사랑도 아닙니다. 넉넉하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고맙고 감사해서, 기쁨으로 베풀게 되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영춘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 이러한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몸을 버리셨던 것처럼 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 값없이 거져 주는 사랑. 그러나 나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욱 좋아하니 나의 입술은 주님을 닮은 듯하나 내 맘은 아직도 추하여 받을 사랑만 계수하고 있으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1.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 것은 이 길이 축복이 될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그 어느 것보다 귀하며 값진 것임을 믿습니다. 처음에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오해하여 세상 사람들보다 더 잘 살고 건강하게 사는 건인 줄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일이 잘되게 해 주고 어려운 일을 살짝 살짝 피하게 해 주는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고귀한 것임을 여러분은 모두 깨달았을 줄로 압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볼 수 없는 것으로 더 많이 임합니다. 마가복음 5장에서,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짐으로써 고침 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여인에게는, 병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육신은 건강하나 마음이 병들어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과, 육신은 비록 병들어 고통을 겪고 있지만 그 입으로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더 행복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많은 유대인들이 육신은 건강했지만, 그 마음이 강퍅하여 예수님의 능력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은 육신의 질병으로 인하여 그 마음이 연약해 졌습니다. 건강한 유대인들이 썩어질 육신을 의지할 수 있었으나, 이 여인은 의지할 그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여인은 예수님을 바로 볼 수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인에게,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병이 완전히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거라』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마케도냐 교인들보다 넉넉하게 살았지만, 그 마음은 오히려 마케도냐 교인들보다 여유롭지 못했습니다. 사는 형편이 좋아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항상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좋은 일을 하자고 말들은 많이 했으나 실상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조차 시작은 해놓고 다투기에 여념이 없어서 중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권능을 힘입어 믿게 된 사람은 누굽니까? 건강한 유대인이었습니까? 아니면 병들어 죽게된 여인이었습니까?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있던 교회는 어느 교회입니까? 고린도교회입니까? 아니면 마케도냐 교회입니까? 대답은 분명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그 능력을 힘입는 것은 사는 형편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은 보이는 것으로 인함보다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로 인하여 더 많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가난하게 산다든지 병들어 살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가난한데 있거나 건강치 못한데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지 못한 것이 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니고, 그들의 마음자세가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메마른 인생살이를 하는 것일까요? 바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형편이 어렵기 때문입니까? 또는 건강치 못한 때문일까요?
2. 하나님을 가까이 모셔들여 섬기는 자에게 축복을 해 주십니다
지난주에도 소개해 드렸듯이, 오베데돔의 집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은 그의 집에 하나님의 법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여호와 하나님” 그분을 말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예루살렘 성정에만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거기에는 십계명 돌판과 만나, 그리고 아론의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만나는 하나님의 은총, 그리고 아론의 지팡이는 제사장의 정통성 또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여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그 능력을 힘입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곳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은총이 아니었으면 감히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아 왔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고서도 두려워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난 후에, 그 얼굴에서 광채가 너무나 밝게 빛남으로 수건을 가지고 그 얼굴을 가리워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언제든지 뵙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너무나 귀중한 공기의 고마움을 잘 모르듯이,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뵙게 된 그 감격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요?
하나님의 법궤를 모신 오베데돔의 집은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성으로 모시려다가 웃사의 죽음으로 갑자기 모시게 된 것이기 때문에, 그 형편이란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가정에 축복을 하셨습니다. 형편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만 하면 축복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람의 생각을 따르면 갈등과 다툼이 일어납니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넘치는 은혜 가운데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기적과 놀라운 역사(役事)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 원채라고 하는 분이 쓴 “가난한 마음을 위하여” 라는 책에 이런 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김 아무개라고 하는 사람이 추운 겨울에 직장을 잃게 되어 죽기보다 싫은 구걸을 나서야만 했습니다. 어느 겨울 날, 음식점으로 들어가는 젊은 부부에게 동정을 구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잔돈이 없군요” 하고 남자가 말했습니다. 이 때 여인이 말하기를, “이렇게 떨고 있는 사람을 밖에 두고 어떻게 우리만 식사를 하겠어요? 여기 천 원이 있습니다.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직업을 찾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라며 돈을 건네주었습니다.
김씨는 오백 원을 남기고 오백 원으로 요기를 했습니다. 이 때 늙은 노인 하나가 음식을 먹고 있는 김씨를 부러운 듯 바라보았습니다. 김씨는 남은 오백 원으로 음식을 사 주었습니다. 그런데 노인은 먹던 음식을 종이에 쌌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길가에서 신문을 팔고 있는 꼬마에게 주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음식을 건네 받은 소년은 미친 듯이 빵을 먹다가 길을 잃어버린 듯 한 개를 보고 그 개에게 음식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소년과 노인은 힘을 얻어 일을 찾아 나섰습니다.
남아 있던 김씨는 개의 목에 매달려 있는 주소를 발견하고 그 주인을 찾아 개를 돌려주었습니다. 개의 주인은 고마워하면서 사례금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주인은 말하기를 “당신같이 양심 적인 사람을 내 사무실에 고용하고 싶습니다. 내일 나를 찾아오십시오” 하면서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려는 작은 사람들을 통하여 크게 역사 하십니다. 내가 가진 돈이나 능력, 또는 재능을 가지고 모든 일을 하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견주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 하실 것입니다.
3.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살되, 기쁘게 하나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축복된 삶을 삽시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 12절에서 『마음이 내켜서 하는 일이라면 가진 것에서 얼마를 바치든지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받으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없는 것을 억지로 내라는 말은 아닙니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헌금을 하든지,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든지 간에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 앞에만 그 진실한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내가 주를 위하여 충성을 못할 형편이면, 다른 사람이라도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으려면 사랑의 삶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 사랑의 삶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큰 축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 그릇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베풀어집니다.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란, 아무 다른 생각이 없이 글자 그대로 순수한 마음으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여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 보십시오. 이웃에게 사랑을 베푼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며,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인간 존재의 참된 의미를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왜 사는지, 그 삶의 이유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형편이든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가장 큰 부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서 그 사랑을 배워 그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며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모두, 가장 큰 부자가 되어 축복 받는 인생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성서일과 ; 삼하6:1-15, 고후8:7-15, 막5:21-43.
제목 ; 넉넉할 때와 궁핍할 때,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는 말은 주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삶의 기준이 내 생각이나 어떤 개인의 이익에 있지 아니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또한 모범을 보여 주신 그 가르침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보여 주신 그 가르침이란 무엇입니까? 말할 것 없이 그것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사랑으로 우리를 보살펴 주시고, 그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길을 가르쳐 주며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말은,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을 때에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해 주실 것임을 확신하고 따른다는 말입니다. 돈이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해 주지 못합니다. 세상의 명예가 우리를 아름답게 해 주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고약한 사람일지라도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어저께 우리 집사람은 어느 교회를 갔다 왔는가 봅니다. 그런데 우리 식구가 그 곳에 얼마 동안 있는 사이, 성도들이 이것저것 많이 가져오더라는 것입니다. 저희도 여러분의 사랑을 감당할 길이 없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 교회 성도님들도 목회자가 괴로워 할 정도로 사랑을 베푸는가 봅니다. 그 교회 사모님이 하시는 말씀이, “형편이 넉넉지 못한 분들인데도 저토록 사랑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볼 때마다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나누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라고 실토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은근히 질투심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만, 생각할수록 아름다운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이처럼 목회자와 성도가 서로 마음을 다하여 사랑을 나눌 수 있을 때에,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크게 성장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교회 목사님이 그 교회에 오래 있었으면서도 불구하고 다른 교회의 초청을 거부한 채 눌러 있는 듯 싶습니다. 비단 그 교회의 성도님들의 목회자에게만 그런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닐 줄로 믿습니다. 그 사랑하는 마음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분명 그들의 그 마음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항상 그들의 생활 속에 젖어 있을 것입니다.
혹시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을 비딱하게 받아들이는 분이 있을까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나 이왕 내친 김에, 우리 식구가 충격을 받았다는 항목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교회 사모님이 우리 집사람에게 묻기를, “영춘교회는 남는 성미를 가지고 몇 교회나 돕고 있는지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식구는 그 질문에 너무나 당황하여 우물쭈물하다가 사실대로 말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사모님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네 교회는 한 달에 두 말 이상을 이웃 어려운 교회를 돕고 있노라는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이제 분명히 영춘교회 목사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영춘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마다, 여러분들은 과히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되도록 좋은 점만 찾아내어 말씀드려야 여러분이 좋아하리라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만, 이제는 저와 여러분이 공동 운명체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욕 먹을 일이면 저도 욕을 먹게 될 것이며, 여러분들이 칭찬 받을 일이면 저도 칭찬을 받습니다. 반대로 제가 창피를 당할 일이면 여러분도 창피를 당할 일이며, 제가 기분 좋을 일이면 여러분들도 기분 좋을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좀더 나은 영춘교회를 위하여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도 귀담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별방교회의 이야기를 우리 교회와 비교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이 이야기를 거울 삼아 하나님 앞에 지금 보다 더 나은 영춘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후서 8장에서,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마케도냐 교회의 예를 들어 권고의 말을 해 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한 모금 사업을 처음에는 고린도교회가 시작을 했습니다. 이 때에 마케도냐 교회도 동참을 하여 꾸준히 모금 사업을 계속하여 예루살렘교회를 도왔습니다. 형편은 마케도냐가 고린도교회보다 훨씬 못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온 교회 성도들이 참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시작은 해놓고 교인들끼리 싸우느라 모금 사업을 중단한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어 다시 그 사업을 계속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10절에, 『이 일은 일년 전에 여러분이 먼저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또 자원하여 한 일이니 여러분이 완성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는 증거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말합니다만, 결국은 두 가지로 줄여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의 기쁨이요,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기쁨이란 무엇을 먹고 즐김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지켜 보호해 주신다는 확신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도, 사랑의 하나님과 함께 있음으로 해서 자연히 본받고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억지도 아니고 어떤 대가를 바라고 행하게 되는 가짜 사랑도 아닙니다. 넉넉하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고맙고 감사해서, 기쁨으로 베풀게 되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영춘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 이러한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몸을 버리셨던 것처럼 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 값없이 거져 주는 사랑. 그러나 나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욱 좋아하니 나의 입술은 주님을 닮은 듯하나 내 맘은 아직도 추하여 받을 사랑만 계수하고 있으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1.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 것은 이 길이 축복이 될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그 어느 것보다 귀하며 값진 것임을 믿습니다. 처음에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오해하여 세상 사람들보다 더 잘 살고 건강하게 사는 건인 줄로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일이 잘되게 해 주고 어려운 일을 살짝 살짝 피하게 해 주는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고귀한 것임을 여러분은 모두 깨달았을 줄로 압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볼 수 없는 것으로 더 많이 임합니다. 마가복음 5장에서,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짐으로써 고침 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여인에게는, 병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육신은 건강하나 마음이 병들어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과, 육신은 비록 병들어 고통을 겪고 있지만 그 입으로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더 행복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많은 유대인들이 육신은 건강했지만, 그 마음이 강퍅하여 예수님의 능력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은 육신의 질병으로 인하여 그 마음이 연약해 졌습니다. 건강한 유대인들이 썩어질 육신을 의지할 수 있었으나, 이 여인은 의지할 그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여인은 예수님을 바로 볼 수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인에게,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병이 완전히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거라』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마케도냐 교인들보다 넉넉하게 살았지만, 그 마음은 오히려 마케도냐 교인들보다 여유롭지 못했습니다. 사는 형편이 좋아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항상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좋은 일을 하자고 말들은 많이 했으나 실상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조차 시작은 해놓고 다투기에 여념이 없어서 중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권능을 힘입어 믿게 된 사람은 누굽니까? 건강한 유대인이었습니까? 아니면 병들어 죽게된 여인이었습니까?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있던 교회는 어느 교회입니까? 고린도교회입니까? 아니면 마케도냐 교회입니까? 대답은 분명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그 능력을 힘입는 것은 사는 형편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은 보이는 것으로 인함보다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로 인하여 더 많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가난하게 산다든지 병들어 살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가난한데 있거나 건강치 못한데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지 못한 것이 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니고, 그들의 마음자세가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메마른 인생살이를 하는 것일까요? 바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형편이 어렵기 때문입니까? 또는 건강치 못한 때문일까요?
2. 하나님을 가까이 모셔들여 섬기는 자에게 축복을 해 주십니다
지난주에도 소개해 드렸듯이, 오베데돔의 집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은 그의 집에 하나님의 법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여호와 하나님” 그분을 말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예루살렘 성정에만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거기에는 십계명 돌판과 만나, 그리고 아론의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만나는 하나님의 은총, 그리고 아론의 지팡이는 제사장의 정통성 또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여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그 능력을 힘입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곳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은총이 아니었으면 감히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아 왔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고서도 두려워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난 후에, 그 얼굴에서 광채가 너무나 밝게 빛남으로 수건을 가지고 그 얼굴을 가리워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언제든지 뵙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너무나 귀중한 공기의 고마움을 잘 모르듯이,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뵙게 된 그 감격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요?
하나님의 법궤를 모신 오베데돔의 집은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성으로 모시려다가 웃사의 죽음으로 갑자기 모시게 된 것이기 때문에, 그 형편이란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가정에 축복을 하셨습니다. 형편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만 하면 축복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람의 생각을 따르면 갈등과 다툼이 일어납니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넘치는 은혜 가운데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기적과 놀라운 역사(役事)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 원채라고 하는 분이 쓴 “가난한 마음을 위하여” 라는 책에 이런 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김 아무개라고 하는 사람이 추운 겨울에 직장을 잃게 되어 죽기보다 싫은 구걸을 나서야만 했습니다. 어느 겨울 날, 음식점으로 들어가는 젊은 부부에게 동정을 구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잔돈이 없군요” 하고 남자가 말했습니다. 이 때 여인이 말하기를, “이렇게 떨고 있는 사람을 밖에 두고 어떻게 우리만 식사를 하겠어요? 여기 천 원이 있습니다.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직업을 찾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라며 돈을 건네주었습니다.
김씨는 오백 원을 남기고 오백 원으로 요기를 했습니다. 이 때 늙은 노인 하나가 음식을 먹고 있는 김씨를 부러운 듯 바라보았습니다. 김씨는 남은 오백 원으로 음식을 사 주었습니다. 그런데 노인은 먹던 음식을 종이에 쌌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길가에서 신문을 팔고 있는 꼬마에게 주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음식을 건네 받은 소년은 미친 듯이 빵을 먹다가 길을 잃어버린 듯 한 개를 보고 그 개에게 음식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소년과 노인은 힘을 얻어 일을 찾아 나섰습니다.
남아 있던 김씨는 개의 목에 매달려 있는 주소를 발견하고 그 주인을 찾아 개를 돌려주었습니다. 개의 주인은 고마워하면서 사례금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주인은 말하기를 “당신같이 양심 적인 사람을 내 사무실에 고용하고 싶습니다. 내일 나를 찾아오십시오” 하면서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려는 작은 사람들을 통하여 크게 역사 하십니다. 내가 가진 돈이나 능력, 또는 재능을 가지고 모든 일을 하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견주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 하실 것입니다.
3.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살되, 기쁘게 하나님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축복된 삶을 삽시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 12절에서 『마음이 내켜서 하는 일이라면 가진 것에서 얼마를 바치든지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받으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없는 것을 억지로 내라는 말은 아닙니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헌금을 하든지,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든지 간에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 앞에만 그 진실한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내가 주를 위하여 충성을 못할 형편이면, 다른 사람이라도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으려면 사랑의 삶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 사랑의 삶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큰 축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 그릇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베풀어집니다.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란, 아무 다른 생각이 없이 글자 그대로 순수한 마음으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여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 보십시오. 이웃에게 사랑을 베푼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며,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인간 존재의 참된 의미를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왜 사는지, 그 삶의 이유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형편이든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가장 큰 부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서 그 사랑을 배워 그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며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모두, 가장 큰 부자가 되어 축복 받는 인생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