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열매를 맺어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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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0 19:14
영혼의 양식 91-50호 1991.12.15.
성서일과 ; 습3:14-20, 빌4:4-9, 눅3:7-18.
제목 ; 좋은 열매를 맺어 기뻐하라
제 가족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름 아닌 한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 한별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에는 눈치를 살피고 어쩐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더니, 지금은 무척 활발해지고 명랑해졌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에는 대문 밖에서부터 큰 소리로 엄마를 찾으며 옵니다. 노래도 부르고 곧 잘 웃기는 이야기도 합니다.
요즈음에는 외할머니로부터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저녁 늦게까지 꼼짝도 못하고 외할머니와 함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외할머니한테 야단을 맞으며 오랜 동안 공부를 하니, 외할머니를 싫어할 것 같아서 “외할머니가 빨리 갔으면 좋겠지?” 하고 물으면, 한별이는 고개를 좌우로 힘껏 내두릅니다. 오히려 한별이는 할머니께 배운 공부 내용을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러한 한별이의 모습을 통하여, 사람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의지하고 살 수 있을 때에 안정을 얻을 수 있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면 모든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근심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 무슨 일을 맡기면 아주 짐스러워 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모든 어려운 환경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은혜의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일이 주어지면 아주 즐겁게 그 일을 해 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안정되어야 무슨 일이든지 즐겁게 할 수 있고, 그 일로 인하여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마음의 안정을 갖다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느 정도 좋아진 환경이 그 역할을 합니다. 우선 한별이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잡한 사회 생활을 해야 하는 성인들에게는 환경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스위스나 핀란드, 그리고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 자살율이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분명 먹고사는 문제도 기본적으로 해결이 되어야 하겠지만, 그 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좌우하는 그 무엇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해 줍니다. 스바냐 3장 16-17절에서 『두려워 말라. 기운을 내어라. 너를 구해 주신 하나님께서 네 안에 계신다』라고 말입니다. 15절에서도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니 다시는 화를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타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우리 인생이 의지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곳은 하나님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줄만 알고 믿으면 염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사랑해 주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기자는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라. 소원을 아뢰라. 그러면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 주실 것』이라고 빌립보서 4장 4-7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은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생활의 염려 때문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노라고 말합니다. 생활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어야 기쁘고 감사한 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까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항상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만, 우리는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생활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되어야, 우리는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성경에서는 회개라고 말하고, 또는 구원받았다 라고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생활의 염려 걱정이 없어야 인간답게 살 수 있어서 이웃을 생각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나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면 생활의 염려는 안 해도 되니까, 안심하고 무슨 일이든지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긍지를 갖게 되어 보람을 느끼며 살게 됩니다. 생활의 염려 때문에 떳떳치 못한 일을 억지로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집에만 오면 나가 놀던 한별이가 외할머니에게 붙잡혀 저녁 늦게까지 공부하고서도, 그 얼굴은 밝아서 뭔가 해냈다는 자부심을 잔뜩 나타내 주고 있는 그런 모습의 생활입니다.
그렇습니다. 회개한 인생은 떳떳하게 삽니다. 마지못해 억지로 사는 삶이 아니라,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기쁘게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나를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하나님 아버지가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에, 그 무엇도 두려울 것 없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로 치사스러웠던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문제를 떠나서 뭔가 사람 구실을 하게 되었음에 여유만만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1.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열매가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사는지 그 이유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기껏해야 인생의 목적이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나 자식 뒷바라지하는 일 따위입니다. 그러나 건강하게 잘 사는 일이 사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며, 자식 뒷바라지하는 일 또한 기쁨이 될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불안한 인생입니다. 미래가 확실치 않기 때문에 걱정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서 일에 대한 흥미도 없습니다. 매사가 귀찮고 힘들뿐입니다. 마음이 평온치 못하면 성질도 사나워지기 마련입니다.
결국 온전치 못한 마음 자세가 많은 갈등과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삶의 참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불안과 걱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성경에서는 『길 잃은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습3:19). 날은 어두워지고 갈 길은 먼데, 그만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과 같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당황이 되고 걱정이 되겠습니까? 밤길이라도, 가는 길을 알면 안심하고 갈 수 있으나, 대낮이라도 길을 잃어버리면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사는지,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하면 갈 방향을 몰라 헤매이게 됩니다. 분명한 소신을 갖고 살면 사탄의 세력은 넘보지 못하는데, 갈팡질팡 하게 되면 깔보고 우습게 여깁니다. 사실 적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자신이 없으면 지레 겁먹고 싸울 용기를 갖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면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자동차가 도로를 따라 달려야 하듯이, 인간은 인간이 가야 될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인간은 참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바냐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믿지를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면 고무줄 없는 팬티처럼 아무 쓸모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기름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겉 모습은 그럴싸하고 화려해 보여도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그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이 사는 인생,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같이 삭막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억지로 즐거움을 만들어 냅니다. 즐거워서 먹는 술이란 드물고 즐겁기 위하여 먹는 술이 대부분입니다. 괴로움과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술을 먹습니다. 즐겁기 때문에 노래하고 춤추는 것보다, 억지로라도 즐거워 보려고 그렇게 합니다. 이웃을 돕고 봉사하는 일도 그 일이 즐거워서 하기 보다, 그러한 일을 통하여 기쁨을 얻기 위하여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러한 인생을 쭉정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알맹이가 없는, 그래서 껍데기뿐인 무의미한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2. 평화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인간은 분명 짐승과는 다른 존재입니다. 먹고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보다 높은 차원의 귀한 존재입니다. 성경이 다른 책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모양을 가지고 있으되,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서 귀한 것처럼, 인간도 짐승처럼 먹고사는 것은 같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짐승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입니까? 착한 마음입니다. 진리와 선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누구든지 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선하게 진리를 따라 아름다운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까?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바르게살기를 원하나 의지가 약하여, 옳은 길을 가다가도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갓난아이를 보고 혼자 걸어가다가 넘어진다고 해서 야단칠 사람은 없습니다. 아기는 어른이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 도움을 청하는 길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힘도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당당히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아버지는 필요없다는 자녀가 괘씸한 것이지, 하나님을 찾고 도움을 청하는 자녀가 있으면 기꺼이 그 청을 들어주십니다. 당신의 것을 아낌없이 자녀에게 주시고도 기뻐하십니다. 그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엉뚱한 곳으로 다니다가 넘어지거나 빠지지 않도록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곳으로 다니라고 일러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진리가 아닌 곳을 가게 되면 위험합니다. 빠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를 따라 바른 길을 가도로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안 듣고 잘못된 길을 가다가 자녀가 어려움을 당하면 아버지는 괴롭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인생길을 바로 가도록 얼마나 부탁을 했는지 모릅니다. 당신의 아들을 죽음에 빠뜨리면서까지, 우리를 살리려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잘못된 마음이나 생각을 갖지 않도록 늘 말씀으로 깨닫게 해 주시고 연약하여 쓰러질 때에는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잘못을 하는 것은 내 안에 주님이 살아 계시지 않고 내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나’ 라고 하는 못된 존재가 주님을 배척하고 우리가 주님 곁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고 의지하면서 바른 인생길을 갈 수 있을까요?
3. 주님과 항상 기뻐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뻐하며 사는 것이 행복의 내용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누구와 함께 기뻐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기쁨이란, 인위적으로 무엇을 먹거나 즐김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참 기쁨이 아닙니다. 제 구실을 다함으로써 생기는 기쁨이 참 기쁨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제목을 『좋은 열매를 맺어 기뻐하라』고 잡았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떳떳치 못하면 그 일의 결과가 어떠하든지 기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일이면 그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거니와, 그 결과에 대해서도 보람과 기쁨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 좋은 일이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세레 요한이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에게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에 세례 요한은 군중들에게 『속옷 두 벌을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은 이와 같이 남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말하고, 세리들에게는 『정한대로만 받고 그 이상은 받아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군인들에게는 『협박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남의 물건을 착취하지 말고 자기가 받는 봉급으로 만족하여라』하고 일러주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세레 요한의 말은, 정당하게 살면서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생활이 회개에 합당한 삶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에서는 『마음속에 참된 것, 고상한 것, 옳은 것, 순결한 것, 사랑스러운 것, 영예로운 것, 덕스러운 것, 칭찬할 만한 것을 품고 있으면서 예수에게서 배운 것, 받은 것, 들은 것, 본 것을 실천에 옮겨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함께 계실 것이라고 빌립보서 4장 9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좋은 열매란, 마음속에 있는 선한 양심이 시키는 대로 사는 생활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아름답고 좋은 일을 이루어 가는 일입니다.
결국 오늘의 말씀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먼저 생활의 염려와 걱정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보다 귀한 일을 찾아 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어울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맞게 정해 주신 일을 해야 합니다.
②그리고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활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임을 믿기 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얻고 기쁨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③이제는 생활의 염려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인데,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고 지혜를 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④그래서 우리는 항상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마음속에 품고 예수님이 보여 주신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고 누가복음 3장 17절에서 세례요한은 밝히고 있습니다. 알곡과 같은, 내용이 충실한 삶을 살았느냐, 쭉정이와 같은 무의미한 인생을 살았느냐에 따라 예수님은 인간의 최후 종착지를 결정하신다고 했습니다.
알곡과 같은 내용이 있는 인생을 살려면 하나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쭉정이는 수정이 되지 않은 벼이삭입니다. 벼꽃이 피었을 때에 날이 좋지 않아서 수정이 되지 않으면 그 후 아무리 일기가 좋아도 쭉정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헛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고 안정되고 평화로운 마음을 지녀서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하는 복된 인생을 가꿔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성서일과 ; 습3:14-20, 빌4:4-9, 눅3:7-18.
제목 ; 좋은 열매를 맺어 기뻐하라
제 가족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름 아닌 한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 한별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에는 눈치를 살피고 어쩐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더니, 지금은 무척 활발해지고 명랑해졌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에는 대문 밖에서부터 큰 소리로 엄마를 찾으며 옵니다. 노래도 부르고 곧 잘 웃기는 이야기도 합니다.
요즈음에는 외할머니로부터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저녁 늦게까지 꼼짝도 못하고 외할머니와 함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외할머니한테 야단을 맞으며 오랜 동안 공부를 하니, 외할머니를 싫어할 것 같아서 “외할머니가 빨리 갔으면 좋겠지?” 하고 물으면, 한별이는 고개를 좌우로 힘껏 내두릅니다. 오히려 한별이는 할머니께 배운 공부 내용을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러한 한별이의 모습을 통하여, 사람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의지하고 살 수 있을 때에 안정을 얻을 수 있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면 모든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근심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 무슨 일을 맡기면 아주 짐스러워 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모든 어려운 환경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은혜의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일이 주어지면 아주 즐겁게 그 일을 해 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안정되어야 무슨 일이든지 즐겁게 할 수 있고, 그 일로 인하여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마음의 안정을 갖다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느 정도 좋아진 환경이 그 역할을 합니다. 우선 한별이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잡한 사회 생활을 해야 하는 성인들에게는 환경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스위스나 핀란드, 그리고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 자살율이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분명 먹고사는 문제도 기본적으로 해결이 되어야 하겠지만, 그 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좌우하는 그 무엇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해 줍니다. 스바냐 3장 16-17절에서 『두려워 말라. 기운을 내어라. 너를 구해 주신 하나님께서 네 안에 계신다』라고 말입니다. 15절에서도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니 다시는 화를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타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우리 인생이 의지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곳은 하나님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줄만 알고 믿으면 염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사랑해 주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기자는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라. 소원을 아뢰라. 그러면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 주실 것』이라고 빌립보서 4장 4-7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은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생활의 염려 때문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하노라고 말합니다. 생활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어야 기쁘고 감사한 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까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항상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만, 우리는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생활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되어야, 우리는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성경에서는 회개라고 말하고, 또는 구원받았다 라고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생활의 염려 걱정이 없어야 인간답게 살 수 있어서 이웃을 생각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나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면 생활의 염려는 안 해도 되니까, 안심하고 무슨 일이든지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긍지를 갖게 되어 보람을 느끼며 살게 됩니다. 생활의 염려 때문에 떳떳치 못한 일을 억지로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집에만 오면 나가 놀던 한별이가 외할머니에게 붙잡혀 저녁 늦게까지 공부하고서도, 그 얼굴은 밝아서 뭔가 해냈다는 자부심을 잔뜩 나타내 주고 있는 그런 모습의 생활입니다.
그렇습니다. 회개한 인생은 떳떳하게 삽니다. 마지못해 억지로 사는 삶이 아니라,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기쁘게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나를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하나님 아버지가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에, 그 무엇도 두려울 것 없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로 치사스러웠던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문제를 떠나서 뭔가 사람 구실을 하게 되었음에 여유만만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1.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열매가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사는지 그 이유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기껏해야 인생의 목적이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나 자식 뒷바라지하는 일 따위입니다. 그러나 건강하게 잘 사는 일이 사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며, 자식 뒷바라지하는 일 또한 기쁨이 될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불안한 인생입니다. 미래가 확실치 않기 때문에 걱정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서 일에 대한 흥미도 없습니다. 매사가 귀찮고 힘들뿐입니다. 마음이 평온치 못하면 성질도 사나워지기 마련입니다.
결국 온전치 못한 마음 자세가 많은 갈등과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삶의 참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불안과 걱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성경에서는 『길 잃은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습3:19). 날은 어두워지고 갈 길은 먼데, 그만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린 사람과 같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당황이 되고 걱정이 되겠습니까? 밤길이라도, 가는 길을 알면 안심하고 갈 수 있으나, 대낮이라도 길을 잃어버리면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사는지,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하면 갈 방향을 몰라 헤매이게 됩니다. 분명한 소신을 갖고 살면 사탄의 세력은 넘보지 못하는데, 갈팡질팡 하게 되면 깔보고 우습게 여깁니다. 사실 적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자신이 없으면 지레 겁먹고 싸울 용기를 갖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면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자동차가 도로를 따라 달려야 하듯이, 인간은 인간이 가야 될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인간은 참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바냐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믿지를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면 고무줄 없는 팬티처럼 아무 쓸모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기름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겉 모습은 그럴싸하고 화려해 보여도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그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이 사는 인생, 오아시스 없는 사막과 같이 삭막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억지로 즐거움을 만들어 냅니다. 즐거워서 먹는 술이란 드물고 즐겁기 위하여 먹는 술이 대부분입니다. 괴로움과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술을 먹습니다. 즐겁기 때문에 노래하고 춤추는 것보다, 억지로라도 즐거워 보려고 그렇게 합니다. 이웃을 돕고 봉사하는 일도 그 일이 즐거워서 하기 보다, 그러한 일을 통하여 기쁨을 얻기 위하여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이러한 인생을 쭉정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알맹이가 없는, 그래서 껍데기뿐인 무의미한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2. 평화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인간은 분명 짐승과는 다른 존재입니다. 먹고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보다 높은 차원의 귀한 존재입니다. 성경이 다른 책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모양을 가지고 있으되,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서 귀한 것처럼, 인간도 짐승처럼 먹고사는 것은 같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짐승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입니까? 착한 마음입니다. 진리와 선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누구든지 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선하게 진리를 따라 아름다운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까?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바르게살기를 원하나 의지가 약하여, 옳은 길을 가다가도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갓난아이를 보고 혼자 걸어가다가 넘어진다고 해서 야단칠 사람은 없습니다. 아기는 어른이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 도움을 청하는 길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힘도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당당히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아버지는 필요없다는 자녀가 괘씸한 것이지, 하나님을 찾고 도움을 청하는 자녀가 있으면 기꺼이 그 청을 들어주십니다. 당신의 것을 아낌없이 자녀에게 주시고도 기뻐하십니다. 그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엉뚱한 곳으로 다니다가 넘어지거나 빠지지 않도록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곳으로 다니라고 일러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진리가 아닌 곳을 가게 되면 위험합니다. 빠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를 따라 바른 길을 가도로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안 듣고 잘못된 길을 가다가 자녀가 어려움을 당하면 아버지는 괴롭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인생길을 바로 가도록 얼마나 부탁을 했는지 모릅니다. 당신의 아들을 죽음에 빠뜨리면서까지, 우리를 살리려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잘못된 마음이나 생각을 갖지 않도록 늘 말씀으로 깨닫게 해 주시고 연약하여 쓰러질 때에는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잘못을 하는 것은 내 안에 주님이 살아 계시지 않고 내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나’ 라고 하는 못된 존재가 주님을 배척하고 우리가 주님 곁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고 의지하면서 바른 인생길을 갈 수 있을까요?
3. 주님과 항상 기뻐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뻐하며 사는 것이 행복의 내용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누구와 함께 기뻐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기쁨이란, 인위적으로 무엇을 먹거나 즐김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참 기쁨이 아닙니다. 제 구실을 다함으로써 생기는 기쁨이 참 기쁨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제목을 『좋은 열매를 맺어 기뻐하라』고 잡았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떳떳치 못하면 그 일의 결과가 어떠하든지 기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일이면 그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거니와, 그 결과에 대해서도 보람과 기쁨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 좋은 일이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세레 요한이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에게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에 세례 요한은 군중들에게 『속옷 두 벌을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은 이와 같이 남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말하고, 세리들에게는 『정한대로만 받고 그 이상은 받아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군인들에게는 『협박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남의 물건을 착취하지 말고 자기가 받는 봉급으로 만족하여라』하고 일러주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세레 요한의 말은, 정당하게 살면서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생활이 회개에 합당한 삶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에서는 『마음속에 참된 것, 고상한 것, 옳은 것, 순결한 것, 사랑스러운 것, 영예로운 것, 덕스러운 것, 칭찬할 만한 것을 품고 있으면서 예수에게서 배운 것, 받은 것, 들은 것, 본 것을 실천에 옮겨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함께 계실 것이라고 빌립보서 4장 9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좋은 열매란, 마음속에 있는 선한 양심이 시키는 대로 사는 생활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아름답고 좋은 일을 이루어 가는 일입니다.
결국 오늘의 말씀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먼저 생활의 염려와 걱정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보다 귀한 일을 찾아 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어울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맞게 정해 주신 일을 해야 합니다.
②그리고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활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임을 믿기 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얻고 기쁨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③이제는 생활의 염려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인데,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고 지혜를 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④그래서 우리는 항상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마음속에 품고 예수님이 보여 주신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고 누가복음 3장 17절에서 세례요한은 밝히고 있습니다. 알곡과 같은, 내용이 충실한 삶을 살았느냐, 쭉정이와 같은 무의미한 인생을 살았느냐에 따라 예수님은 인간의 최후 종착지를 결정하신다고 했습니다.
알곡과 같은 내용이 있는 인생을 살려면 하나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쭉정이는 수정이 되지 않은 벼이삭입니다. 벼꽃이 피었을 때에 날이 좋지 않아서 수정이 되지 않으면 그 후 아무리 일기가 좋아도 쭉정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헛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고 안정되고 평화로운 마음을 지녀서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하는 복된 인생을 가꿔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