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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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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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91-48호                                                    1991.12.01.

성서일과 ; 사2:1-5, 롬13:11-14, 마24:36-44.

제목 ;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제가 김포에 있을 때에는 목사 횃불모임에 자주 참석을 했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그 횃불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부 강의가 끝나고 질문을 받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이 일어서더니, 질문에 아닌 엉뚱한 제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은 것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보고 평가를 해 주었으면 좋다는 는 것이었습니다. 차츰 이야기를 듣고 보니, 결국 그가 깨달았다는 것은 기도하던 중에 들은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마지막 때가 곧 가까이 왔는데, 그 마지막 때에 되어질 일을 자기에게 들려주려던 사람들에게 빨리 전하라고 해서, 목사님들이 모인 그곳에 왔노라고 했습니다. 주최측에서 막고 목사님들도 집어치라고 하자 그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 하지 않는 목사님들이 정말 안타깝다는 듯이, 자기 이야기를 꼭 들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아주 진지하고 적극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어쩐지 그의 모습이 불쌍해 보였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종말론 때를 몇 차례 연기했거니와, 엘리야 복음 선교회는 지난 88올림픽을 치르기 전에 세상 끝이 오리라 하더니, 지금은 그들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밖에도 여러 사람과 여러 집단이 종말을 말하고 있고, 종말에 관한 책들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 종말이, 잘못된 것은 멸하고 옳은 일은 행한 사람은 상을 주는 심판을 말한다면, 그런 대로 그 가치성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누구를 믿고 따른 사람만 구원하는 그런 종말이란,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웃기는 일입니다. 그처럼 이기적인 사람을 살아남게 하는 심판주가 있다면, 그는 엉터리 심판주 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둠의 세력이 주관하는 이 세상이 끝나고 빛이신 예수님이 왕으로 오셔서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말합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서 이루어 나가야 할 나라요, 장차 우리가 가게 될 영원한 하늘 나라 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예수님이 오시면서 종말은 시작되었고, 그 마지막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날은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6절에『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 때를 시간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서, 두부가 변질되어서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다면 그 두부의 생명은 이미 끝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그 모양은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그 존재 가치를 잃었다면, 그 인간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그 인간은 땅 속에 묻혀 폐기할 날만 남았을 뿐이지 아무 쓸모가 없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남아 있어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뿐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은, 불신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끝나는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믿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기쁜 날이 됩니다.

 그러므로 종말은,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세상에서의 훈련을 마치고 영원한 나라에 입문하는 것이 되고, 기독교 전체로 보아서는 예수님이 오시면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완성되는 때를 말합니다.

 또한 종말은, 어둠이 완전히 제거되고 맑은 빛만이 환하게 비치는 광명한 세상이 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3장 12절에서 『밤이 거의 새어 낮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은 비록 세상은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았다 할지라도, 아니 오히려 새벽이 가까울수록 어둠은 더 짙어지는 것처럼 이 세상은 더욱 죄악이 극성을 부릴지라도, 성도는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야 한다고, 로마서 13장 13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1.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바로 알고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서 잘못된 길을 감으로 파멸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은,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을 제일로 아는 이 세상이 끝나고,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존중하는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곡해한 것입니다. 세상 끝이 온다니까, 온 세상이 다 파괴되는 지구의 종말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지구의 종말을 예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증후와 과학적인 예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는 그렇게 쉽사리 지구의 종말이 오리라 여겨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인간성의 종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그 집은 얼마 안 가서 퇴락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 지구를 아무리 아름답게 창조하셨을지라도 사람의 심성이 타락하면 금방 지구는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 여러 가지 공해가 생기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자기만의 이익, 자기만의 편리를 생각하다 보니, 지금과 같은 오염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장 걱정해야 되는 것은 지구의 종말이 아니라 인간성의 종말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뀌기만 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금방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타락하는 이유를 보면, 남들이 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세상 자체가 어둠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본받을 것이라곤 어둠의 행실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곧 밝은 세상이 될 것이므로 어둠의 행실을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끝 날은 도둑 같이 임할 것이므로 밝은 세상을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신랑이 문을 두드리니까 그제서야 등불을 준비하려면 때는 이미 늦게 됩니다. 그 때 가서는 절대로 변명이란 있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자식들을 보고, 왜 좋은 본을 보지 못하고 나쁜 것만 배우려 하느냐고 야단치기를 잘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좋은 본을 보여 주신 예수님을 본받지 못하고 자꾸만 세상을 닮으려 하는 것입니까?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아도 그 위급성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종말의 때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임한다고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 누구도 그 때를 모릅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심판을 면할 수 없으며 눈곱만큼도 에누리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냥 세상이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행한대로 틀림없이 공정하게 심판하십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이미 심판이 끝났습니다. 단지 집행 날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인생은 끝난 것입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인생입니다. 하지만 그 인생도 구원받을 기회는 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의 오른 편에 있던 강도가 구원받은 것처럼, 언제든지 구원받을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가 때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이 닫히기 전에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문안에 들어서기를 주저하는 것은 세상에서의 즐거움을 잊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회를 놓치면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문이 닫힌 다음에 땅을 치며 애통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아량도 베풀 수도 있고 눈감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저를 원망하는 일이 없으시기 바랍니다. 왜, 그 때 좀더 강력히 권고하지 않았느냐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세상이 하도 썩어서 바르게 살아보려고 해도 살지 못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교도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자기 잘못으로 그곳에 들어가게 되었노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구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일까요? 누구 때문에 이 세상은 이다지도 어둡게 되었을까요?

 성경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한 사람도 죄인이 아닌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기 잘못은 작게 보이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크게 보이는 우리의 안경이 잘못된 것이지, 성경의 진단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뭔가 조금씩 달라지려는 마음의 자세,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보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도와서 새롭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온전하게 될 수 있다고 믿거나, 아니면 자기는 아무 허물이 없노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은 새로워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세상이 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문이든 TV를 보든지 간에, 내가 잘못이요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잘못이라고 외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보다 좋은 세상을 위하여 애쓰고 힘쓰기보다는, 되는대로 무의미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이 잘못되게 된 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발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서는, 로마서 13장 13절에 있는 말씀대로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는』경우가 많습니다. 자기는 음행하는 것을 조금치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인신매매 사건을 접하게 되면 “이 놈의 세상 망하려나!” 하면서 한탄을 합니다. 자기는 부정을 저지르면서 상대는 깨끗하기를 바라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2. 새로운 세상을 만드시기 위하여 약속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가르쳐 주시며, 새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들으시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 세상을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이 지으신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끼십니다. 그러나 타락한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더러워진 이 세상을 버리지 않으시고 깨끗하게 하려 하십니다.

 이사야 2장 4절에 『민족간의 분쟁을 심판하시고 나라 사이의 분규를 조정하시리니,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도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람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 지금 우리 가운데 오셔서 이루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시고자하여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사야 2장 3절에, 예수가 왕이 되셔서 우리를 다스리는 때가 되면 수많은 민족들이 몰려와서 말하기를 『자, 올라가자. 여호와의 산으로. 야곱의 하나님께서 계신 전으로! 사는 길을 그에게 배우고 그 길을 따라 가자』라고, 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길을 가지 않으면 참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파멸에 빠지게 됩니다. 기차는 반드시 레일을 따라 달려야지, 레일을 벗어나게 되면 그 기차는 전복을 하게 되고 많은 사상자를 내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길을 가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 이상이어서도 안도고 사람 이하여서도 안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만이 인간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육체의 만족을 누리는 것으로써 사는 보람을 찾는 것은 인간의 바른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짐승의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습니다.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 귀신입니다.

 인간은 분명 먹어야 사는 존재이지만, 생각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인간의 도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이 가야 될 길이 어느 길인지 판단해 보고 가야합니다. 그 길을 예수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그 길을 가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나라를 만들 수 있고 평화를 누리며 기쁨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이 보여 주신 길이란, 삶의 목적이 땅 위에 있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음을 말해 줍니다. 삶의 동기도 전에 욕심을 채우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 백성은 그 동기가 하나님의 은혜에서 출발합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 이미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갚고자하여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방법은 세상 사람들의 방법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 중심입니다만, 주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했습니다. 철저한 순종이었지, 환경에 따라 또는 형편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고 행동은 다르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길이 인간의 길이면 가야 되지, 어쩔 수 없어서 다른 길을 가서는 안됩니다. 옳은 길이면 가야하고 그른 길이면 가지 않아야 합니다.




 3. 새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어둠의 행실을 버리고 단정하게 삽시다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라고, 로마서 13장 11절에서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밤이 계속될 줄 알고 잠만 자서는 안됩니다. 어두운 밤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어두운 밤이 계속될 줄 알고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갑자기 환한 세상이 됐을 때에 창피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때를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해야지, 때가 지나간 다음에 후회를 한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일을 할 때가 있고 쉴 때가 있습니다. 교회를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할 때가 있고 집에서 잠을 자야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그 때를 잘 지켜야 합니다. 기도를 해야 할 때는 기도를 해야 하고 봉사를 해야 할 때에는 봉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로마서에서 바울은 두 가지의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바로 지금이 깨어나야 할 때라는 것을 우리는 동시에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잘 알고 깨닫기는 잘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그 때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노아 홍수 때에는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세상 일 때문에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홍수에 모두 휩쓸려 갔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올 때에도 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때에도, 두 사람이 밭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 둘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중에서는 버려 둠을 당하는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차라리 몰라서 멸망에 빠지게 되었다면 덜 억울할 것입니다. 이제 오늘 이 말씀을 듣고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면 얼마나 원통한 일이 되겠습니까?

 제발 내일로 미루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지금이 바로 결단할 때입니다. 확실한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분명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우물쭈물 하다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큰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어서 속히 주님 앞에 바로 서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4장 43절에 『만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는지 집주인이 알고 있다면, 그는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바로 이해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여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에 다 들어갈 수 있도록, 지금 깨어 일어나시는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리는 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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