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편에 설 것인가?

홈 > 기독자료 > 영혼의양식
영혼의양식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기독정보닷컴 0 24 0
영혼의 양식 91-47호                                              1991.11.24.

성서일과 ; 렘23:1-6, 계1:4-하-8, 요18:33-37.

제목 ;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하나님은 우리를 기르시고 보호하시는 목자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양떼입니다. 우리가 목자이신 하나님의 품안에만 있으면 아무 탈없이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23장 4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참된 목자를 우리를 위하여 세워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를 따르면 『겁이 나서 무서워 떠는 일없이 살게 될 것』이고, 그를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살 길이 열려 마음놓고 살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참된 목자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자기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참된 목자입니다(요10:2).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에 양떼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습니다(요26:31).

 예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하셔서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를 잘 믿어서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없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게 되면, 예전보다는 달라진 인생을 살게 됩니다. 고집이 세고 교만하던 사람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예수 믿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기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합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지도를 받아야 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아무 허물이 없고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교회를 나온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이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좋은 스승을 따르면 언젠가는 좋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좋은 스승을 모시고 살면서도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제 고집대로 살면 변화된 삶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히 목자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면, 머지 않은 날 스승을 많이 닮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에 좋은 목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목자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레미야 23장 1-2절의 말씀을 보면, 악한 목자는 『양떼를 죽이고 흩뜨려 버린다』고 했습니다. 양떼를 돌보기는커녕 『도리어 흩뜨려서 헤매게 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악한 목자는 그 본성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악한 목자는 양들을 잘되게 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보다는, 양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고 나쁜 길로 빠뜨리기를 좋아합니다.

 저는 엊그제 신문에서, 한편 우습기도 하고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북한 소식에 관한 것입니다. 김 일성과 김 정일, 두 부자의 별장이 북한 전역에 90여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북한에는 김 일성 부자의 별장 건설을 전담하는 건축 연구소가 따로 있답니다. 별장 중에서 연풍각은 6년을 걸려 지었다고 하니, 얼마나 크고 호화스럽겠습니까? 또한 수중각 이라는 별장도 있어서, 해저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바다 속에 사면 벽을 유리로 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침실은 보통 60평이고, 침대 매트리스는 몸에 좋다는 약재로, 이불은 한 채에 70만 마리의 참새턱의 밑 잔털로 채워서 만든 것이랍니다. 별장 관리는 3천명에 이르는 여성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답니다. 이 여자 관리원은 전국에서 165㎝ 이상의 아름다운 용모를 갖춘 17-22세의 처녀인 사람을 선발하여 채용한답니다. 선발된 여성들 중 10%는 1년 동안 안마술과 간호학을 배운 뒤 각 별장에 배치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한심스럽고 기막힌 일입니까? 적어도 5천명 이상이 김 일성 부자 두 사람만을 위한 일이 종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닙니다. 회복 불능의 상태로 돌아버린 것입니다. 남한에서도 청와대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그 앞에서 무조건 벌벌 길 뿐 만 아니라, 그가 부탁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만사형통이라고 하니, 우리 민족은 민족성 자체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아부 잘하고 지나치게 굽실거리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북한의 우리 동포들은 지도자를 하나 잘못 만남으로 해서 오랜 세월 동안 엄청난 고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김 일성이 언제 죽을는지 죽기만을 학수고대 할 뿐입니다만, 백두산에서 자생하는 만병초와 버섯을 교배한 만병초 버섯을 먹고 있다 하니, 쉽게 죽지도 않을 것 같아 큰 일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대부분 실제로 북한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상낙원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간간이 반항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자기만의 안일을 위하여 대다수가 침묵을 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북한 체제가 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남한에서도 북한과 비슷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유신과 5공 때입니다. 그 때에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하게 되면 오히려 의심을 사게 되고 따돌림을 받던 때였습니다. 신문도 TV도 모두가 다 거짓말만을 하던 때라서, 거짓말이 진실인 양 판을 치던 시절이었습니다. 전 두환 씨가 위대한 애국자인 줄만 알았습니다.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마인 것은 몰랐습니다.

 문제는 진실을 알면서도 거짓된 자 편에 서서 자기 안일만을 추구하는 국민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진실을 따를 수 없으면 차라리 지도자이기를 포기했으면 좋으련만, 더럽게도 거짓된 정부에 일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이면서 경동교회 목사였던 강원용 씨는 교계 지도자 중 손가락 꼽히는 분입니다. 그 무서운 유신 시대에도 진실을 밝혔던 훌륭한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그만 5공에 들어 와서 국가자문회의 자문위원이 되고 맙니다. 전 두환 씨의 들러리가 되어 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 앞에서나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다고 보십니까? 조그마한 이익 때문에 거짓되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몇 푼 어치 안 되는 자존심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 우리 주변에는




 1. 거짓된 자 편에 서서 진리를 거스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한복음 18장에 있는 말씀을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을 불러놓고 『네가 유대인의 왕인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내가 세우려는 나라는 이 세상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36절에서 두 번씩이나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우시려던 나라는 보이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닙니다. 영(靈)적이며 정신적인 나라입니다. 무력이나 권력을 가지고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말씀을 가지고 다스리는 나라였습니다. 거짓과 속임수를 가지고 정치를 하는 나라가 아니라, 사랑과 평화의 복음을 가지고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요한복음 18장 37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고 했습니다. 결국 주님이 이루시려던 하나님의 나라는 진리 편에 선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 가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진리 말씀을 귀담아 듣고 진리 안에서 살려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새로운 세상인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레미야 23장에 있는 말씀대로 하면, 『세상에 올바른 정치를 펴서 사람들이 마음놓고 살 수 있는』평화의 나라를 이루시려고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그 일을 이어받아 수행토록 부름 받았습니다. 성령의 인도와 지시를 따름으로 거짓된 세상을 물리치고 진실된 세상을 이루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제 대접을 받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어떻습니까? 참 목자이신 주님의 뒤를 따라 진리 편에 서서 바르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악한 목자인 사탄의 세력에 빌붙어 거짓되이 살아가고 있습니까? 진리 편에 서서 살고 싶지만, 먹고살자니 어쩔 수 없어서 악한 무리와 어울려 살아가는 것입니까? 분명히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면서도, 먹고사는 일 때문에 그릇된 일을 가고 있다면 그처럼 불쌍한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 믿는 성도가 이루어가야 할 나라는 보이는 세상 나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나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세상 나라를 배척해야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멀리 해야 될 나라는 거짓된 세상 나라이지, 세상 나라 그 자체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진리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이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를 믿는 정치가가 있다면 그는 세상 법에 따라 정치 무대에 나서도, 그 정치하는 법은 속임수나 거짓이어서는 안되고 말씀 따라 진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나라 정치 풍토가 거짓이 아닌 진실이 통하는 세상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어서 국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쳐보겠다고 나설 때에는 거짓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국회의원이 도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입니다.

 계시록 1장 5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진실한 증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또한 예수님의 뒤를 따라 진실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삶의 모든 면에서 진실하게 살아감으로써 세상에서 예수님의 참된 증인이 되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든 소망이 땅 위에만 있기 때문에, 땅 위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하여,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하여 진실보다는 거짓을 더 선호합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성도들은 소망이 하늘에 있습니다. 가치의 중요성을,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에 둡니다. 그 중에서도 진실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 동기와 방법, 그리고 목적까지도 진실해야 합니다. 때문에, 아무리 좋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거짓된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거짓된 것은 언젠가는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거짓된 삶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몇 천년을 살아도 거짓된 인생은 헛될 뿐입니다. 차라리 하루를 살아도 진실하게 살아야 값이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로 하여금 거짓된 삶을 강요할 때, 아예 죽는 길을 택하는 것이 낫습니다. 구차스럽게 목숨을 이어가는 것보다는 깨끗하게 죽는 게 훨씬 좋습니다.




 2. 참 목자를 보내시어 살길을 열어주시고 마음 높고 살게 하셨습니다




 계시록 1장 5절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죽음으로부터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거짓된 세력이 예수님께 거짓된 자 편에 설 것을 강요했을 때, 예수님은 단연코 진실을 택하셨다는 말입니다. 거짓된 삶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그 죽음의 세력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육신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진리라는 참 생명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거짓을 택하면 육신적으로 덜 괴로울지 몰라도 마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선택하면 세상 적인 측면에서 많은 손해난 괴로움을 당해야 하나, 그 마음으로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계시록 기자도 진실한 증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은총과 평화를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러나 악한 목자는 평소에는 그토록 양들을 위하고 국민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노라고 떠들다가도, 막상 위험이 닥치면 양들을 버리고 도망가 버립니다. 원래가 거짓이었기 때문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 목자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살길을 열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길을 걷는 자에게 풍성한 삶을 허락하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은 나무는 아무리 거름을 많이 주고 물을 주어도 싹을 틔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나무는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 싹을 낼뿐만 아니라 싱싱하게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거짓된 인생은 성공 같으나 실패하는 삶을 계속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나 보람이라는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악한 목자는 사탕발림에 능수능란 합니다. 거짓말을 밥먹듯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솔깃하여 그리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짓된 자에게 잘 넘어가는 사람의 특징은, 쉽고 편하게 많은 것을 한꺼번에 얻으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를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짓된 세력은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를 잘 이용합니다. 사탄의 세력은 다른 사람을 위하는 척 하면서 자기 실속을 차리려는 응큼한 무리들입니다.

 반면에, 참 목자이신 예수님은 정말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몸을 버리셨습니다. 말로만 희생과 봉사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주님의 제자라면, 주께서 보여 주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곧 상대를 위하여 내가 손해를 보고 욕을 먹는 일입니다. 만약 내가 좀 손해를 보고 욕을 먹었다고 해서 발끈하며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신앙 안에서 진실한 삶을 산다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3. 구원의 주요, 진리의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은총과 평화를 누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갑시다




 『고상하고 아름답다. 진리편에 서는 일. 진리 위에 억압받고 명예 이익 잃어도 비겁한 자 물러서나 용감한 자 굳세게. 낙심한 자 돌아오는 그 날까지 서리라.』(찬송가 521장)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베드로전서 2장 25절에,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이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일시적으로 주님 곁을 떠났던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 육신 적으로는 늘 주님 곁에 있었으나 마음은 주님 곁을 떠나 있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제 진정 돌아오십시오. 거짓된 세력에 빌붙어 살지 말고 하루를 살더라도 진실하게 살아봅시다. 신앙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과감히 던져 버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답고 고상한 일을 찾아 살아갑시다. 주님의 뒤를 따라 진실하게 살려면,

 우선 첫째로, 주님 편에 확실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어느 길을 택해야 진정 사는 길인지 바로 판단하고, 과연 예수 믿는 길이 복 받을 수 있는 길이라 생각되면 분명하게 태도를 정해야 합니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생활은 오히려 더 큰 비극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양쪽에서 다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주님의 뒤를 따라 진실하게 살려면 이 세상에서의 손해는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의 복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째째하고 비겁한 태도를 가지고서는 하늘나라의 복을 받지 못합니다.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실 줄로 믿는다면 세상 것에 대한 욕심을 버렸음을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를 위해 욕먹는 것도 각오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하다가 욕먹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님의 뒤를 따라 진실하게 살려면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열심히 일을 했으나 결과가 시원치 않아도 서운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주를 위해 충성을 다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게 끝났더라도 누구를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진실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복은 보이게 임하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게 임할 때가 더 많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주의 뒤를 따르는 동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교회 안에서 먼저 진실된 행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거짓은 물러가라고 훠이 훠이 내쫓아야 합니다.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거짓된 행위는 버려야 합니다. 영원히 진리 따라 사는 참된 주의 백성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