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홈 > 기독자료 > 영혼의양식
영혼의양식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기독정보닷컴 0 26 0
영혼의 양식 91-46호                                        1991.11.17.

성서일과 ; 시100:1-5, 살전5:16-18, 눅17:11-19.

제목 ;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저는 날이 갈수록 저를 이곳에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원래 감성(感性)이 풍부해서인지, 주변의 경관(景觀)이 저로 하여금 깊은 정감을 갖게 해 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산들과 맑은 물이 흐르는 강, 그리고 지금도 매달려 있는 노란 감들이 시골 정취를 흠뻑 느끼게 해 줍니다.

 점점 어려워져 가는 농촌 형편이 심히 걱정이 되면서도, 그래도 살맛을 갖게 해 주는 시골인심을 맛보게 된 것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목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그 값이 형편없게 된 요즈음 세상이지만, 그래도 우리 영춘교회 성도님들은 목회자의 말에 잘 순종하고 따라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형편없기 짝이 없는 제가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된 것은 무한한 영광입니다. 성격도 모나고 재주도 미천하건만 여러 사람들의 영적 생활을 지도하는 지도자가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한껏 겸손을 떨면서도 고집이 센 저입니다.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으나, 마음속에는 미움과 질투가 가득한 저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영춘교회 성도님들과 같은, 좋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이모저모로 사랑을 베풀어주고 있는 여러 성도님들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저는 목사이면서도 구원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건강하게 키워 주신 부모님, 음식 솜씨 좋고 노래 잘하며 시부모 공경할 줄 아는 아내, 모든 허물을 용서해 주고 보살펴 주는 형님, 개척교회 예배당 짓는데 2백만 원이나 되는 돈을 투자하고서도 뒷소리 없는 고마운 동생, 시집간다면 아빠와 같은 사람에게 가겠노라고 하는 딸 한나와, 그리고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신 아들 한별이, 괴팍한 사위를 따뜻한 사랑과 기도로 밀어 주고 있는 장모님, 이런 좋은 분들을 가까이 두고 있으면서도, 저는 감사보다는 불평과 불만이 더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14년이 넘도록 목회 하는 동안 만난 학운 교회와 한돌 교회 성도님들, 저의 온갖 허물과 실수를 사랑으로 덮어 주고 이해해 주어서 무사히 지나왔건만, 그 고마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목사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본이 될만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저를 목사님이라고 불러주시니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그냥 “정 목사” 또는 “목사 양반” 이라고 불러 주어서 감지덕지 할 뿐입니다. 별 하는 일없이 기와집에서 먹고 자게 해 주어 그것만해도 고마운데, 기름보일러를 설치해 주어서 편하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 주니, 저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정말 주님의 은혜는 끝이 없습니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볼 때에는 잘못된 것 투성이고 불만스럽게 여겨지는 사람들뿐이었는데,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 깨닫고 보니, 고맙고 감사한 일이 왜 이리도 많습니까? 밉던 사람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아직도 미운 사람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기도하기를, 그 사람들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있는 말씀을 보면,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께로부터 고침을 받고 난 뒤에 다시 찾아와 감사의 예를 올린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왜 나머지 아홉 명은 예수님께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못했을까요? 고맙다는 생각은 가졌지만 수줍어서 찾아오지 못했을까요? 아니면, 사례할 만한 돈이 없어서 말로만 인사하기가 어려워 찾아오지 않았을까요?

 19절의 말씀을 보면 그 의문이 풀립니다. 고침을 받고 예수님께 찾아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린 사람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그러니까 진정 구원받은 사람은 열 명중에 한 명뿐입니다. 은혜를 알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아홉 명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육신의 질병은 고침 받았지만 영혼의 병은 고침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분명 그들은 병만 나으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생전 소원이었던 문둥병이 나게 되자 마음에 들지 않는 또 다른 환경 때문에 불만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육신의 병보다도 영혼의 병이 더 깊게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문제가 하나씩 해결되어 갔을지라도, 마지막 남은 하나가 해결 될 때까지는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 불만 속에서 살아갔을 것입니다.

 찬양과 감사, 그리고 기쁨이라는 단어는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고 또한 기쁨의 생활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이 없는 삶은 불행합니다. 그러니 은혜를 고마워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 아홉 명의 사람은 고질병인 문둥병을 고침 받았지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불행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1.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는 한자 숙어가 있습니다. 남에게 받은 은덕을 잊고 배반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이 주는 느낌은 무척 강합니다. 단순히 은덕을 저버렸다는 뜻으로 끝나지를 아니하고,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까지 주는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은혜를 깨닫고 찾아와 감사의 예를 올린 그 한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말씀하신 듯 싶습니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서는 북한의 핵 개발과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에 의한 쌀 개방 문제가 가장 큰 관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둘 다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쌀 개방 문제는 아주 심각한 일입니다. 우리 나라 쌀값의 6분지 1밖에 안 되는 미국의 쌀 공세를 과연 막아낼 수 있겠는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가뜩이나 농촌 실정이 점점 어려워져 가는 형편에, 논이 벼대신 무슨 대체 작물을 심어서 농촌 가계를 메워 나갈 수 있을까요?

 아무튼 쌀 개방은 우리 나라에 원자폭탄 투하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쌀은 우리 나라 농촌 살림을 꾸려 나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중요한 수입원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식량 전쟁의 최후의 무기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중요한 쌀을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허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풍년을 허락하셔서 쌀이 여유롭게 되었으면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잘 사용했어야 했는데, 막걸리나 소주를 만들어 먹었으니 말입니다. 쌀은 농부들에 의해서 88번의 손길이 가야 비로소 우리가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오 같이 귀한 쌀을 우리는 고마운 줄 모르고 먹어 왔습니다. 이북의 동포들은 강냉이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어서 굶주려 가고 있다는데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감사한 마음 없이 먹거나 사용하면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옷 입는 것도 너무나 낭비하는 것 같습니다. 입을 만한 옷이건만 때가 지났다고 입지 않고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 떨어졌어도 기워 입지를 않고 버립니다. 머지 않아 입을 것이 없어서 헐벗을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두고 보십시오. 지금처럼 낭비와 사치가 계속된다면, 얼마 가지 않아서 소련처럼 될 것입니다. 비누 한 장, 치약 한 개 사기 위해서 3-4시간씩 기다려야 할 날이 옵니다. 하루 먹을 식량을 구하기 위하여 이틀을 기다려야 하는 그런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입니다.

 그런 날이 오면, 하나님께 감사할 줄도 모르고 이웃에게 인정 베풀기를 거부한 채 자기 가족 자기 자녀만을 위하여 돈 모으기에 여념이 없던 사람들도, 여지없이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돈 뭉치를 집어던지고 한끼 식량을 배급 타기 위하여 줄을 서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꿀꿀이죽을 먹고 무밥과 보리죽을 끓여먹던 것이 불과 3-40년 전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옛날 일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감사한 마음 없이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요새 좀 잘살게 된 것이 사람들은 다 자기 덕인 줄 압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자기 공로라 하고, 사람들은 자기가 잘나서 잘살게 된 줄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홉 명의 사람도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내가 열심을 다해서 부탁을 한 결과 고침을 받게 되었다” 고 말입니다. 그러니 은혜를 생각할 겨를이 없고 감사할 시간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실 지라도 고마워 할 줄 모르는 백성들에게는 더 이상 축복해 주기를 주저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스라엘 백성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민족은 없건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번번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어긋날 길로 갔습니다. 다른 민족의 종살이 하는 것을 애써 구출해 주면, 기껏 한다는 짓이 우상 숭배였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어도 여전히 불평 불만을 그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입장이었다면 한두 번 속고 내쳐 버렸을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은 끝까지 참으시고 용서하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 나라 백성이 꼭 이스라엘 민족과 같습니다. 하는 짓을 보면 복 받을 일보다는 벌받을 일만 찾아서 하는 것 같습니다. 앉았다 하면 도리짓고 땡이요, 모였다 하면 놀자판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조용히 가지 못하고 차안에서 흔들어대고 소리쳐대야 직성이 풀립니다. 어려운 이웃 돕자는 데는 그렇게 인색하면서 노는데는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씁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 백성을 사랑 하시사 복음을 들려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지금 하는 것을 보아서는 틀림없이 우리 나라가 소련이나 북한처럼 될 가능성이 많은데, 혹시라도 우리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바로 살기 위하여 힘쓴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불행을 스스로 불러들일 때는 하나님께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지난날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와 그 뜻을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베풀어주십니다. 역대상 16장 34절에서도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사랑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감사드릴 때,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에게 더 풍성해진다” 고 말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시고,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복되게 살 수 있는 지 그 길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시편 100편의 기자는, 『여호와는 하나님, 알아모셔라. 그가 우리를 내셨으니, 우리는 그의 것, 그의 백성이요, 그가 기르시는 양떼들이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백성 삼으시고 돌아보시며 기르시기 때문에, 우리는 다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면 됩니다. 자식이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부모님께 특별히 무엇을 해 드리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고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시편 100편 5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어지시고 그의 사랑이 영원하시며 그의 약속은 틀림없이 이루어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는 한 하나님은 영원토록 우리를 지켜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하시면서 우리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우리를 돌보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면서 사는 일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게 되면 함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벼농사가 풍년이 들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았다면 막걸리 만들어 먹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의식주 생활이 좀 여유롭게 된 것이 하나님의 돌보심인 줄 알고 있다면, 그처럼 낭비하고 사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마운 줄 알면 그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불만과 불평이 많은 사람이 술을 퍼먹고 세상을 멋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님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18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라고 했습니다.


 3. 어떤 처지에서든지 기뻐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늘 기도하며 삽시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기쁨과 감사는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기뻐하게 되어 있고 기쁨의 생활을 하려면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계속하려면 기도하는 생활이 늘 이어져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찾아 뵙고 말씀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히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해 줍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며, 어떻게 살아야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 그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그 생각이 바뀌게 되고 생활도 달라지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8절의 말씀은 성경마다 다르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 개역 성경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새 번역은 『우리가 예수 안에서 실행해야 할 하나님의 뜻』이라고 되어 있고, 공동번역은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종합해 보면,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은 예수를 믿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이요,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감사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된 일입니다. 하나님을 몰랐다면, 죽을 때까지 불평 불만 속에서 허공을 치는 허무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그 아홉 명의 사람들처럼 무슨 일이 이루어져도 감사할 줄 모르고 또 다른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가지고 불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입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안 됩니다. 지난날의 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옛날보다 달라진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보다 새로워진 미래의 내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보아야 합니다.

 내 의지로는 바람직한 내 모습을 가꾸어 갈 수 없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며 기도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분명히 달라져 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가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르시며 돌보시는 양떼들입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무쪼록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며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며 사는 축복된 심령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