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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039

2: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으나 두아디라 교회는 나중 행위가 처음보다 좋다고 합니다. 처음 사랑을 잃지 않았나 봅니다. 처음과 나중이 다 좋다면 최선이겠으나 그게 어렵다면 나중이 좋은 게 좋겠지요. 죽을 때 좋은 게 우리 개인의 삶에서도 최선이 아니겠습니까. 죽을 때 삶의 절정에 오르기 위해서라도 살아 있는 동안에 죽음을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늙어가면서 삶이 더 투명해지도록 노력하는 겁니다. 이런 내용을 주제로 하는 시 한 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문재 시인의 혼자의 넓이라는 시집에 나오는 노후입니다. 좀 깁니다.

 

처음처럼, , 참이슬? 처음처럼

 

퇴근길, 지하철 입구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등학교 동창 녀석, 이민 간 줄 알았는데

기러기 아빠 삼년째, 지난봄에는

대장을 삼 센티 잘라냈다며 굳이 곱창집이다

 

길가 쪽 자리, 요즘도 트럼펫 부냐고 물었더니

힘이 부쳐 쳐다보지도 않는다, 녹이 다 슬었겠다

그러면서도 연식 오른손 손가락으로 탁자 모서리를 톡톡톡

그래, 지상에서 영원으로라는 영화 좋아했지

마우스피스만 물고 부부부 부는 장면

밤하늘의 트럼펫이 명곡이지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도 좋았어

 

너 시집 나왔다던데, 요즘도 이슬만 먹고 사냐?

이슬만 먹고 산다고? 나는 처음처럼을 이슬처럼 털어넣고

피식 웃었다 그런데 이슬과 참이슬은 어떻게 다른가

그러다보니 이슬 본 지도 오래다, 이슬

이슬이라고 소리 내 발음해본 지도 참으로 오래

 

처음처럼 세병째, 처음처럼이라

우리는 처음에서, 그 많던 처음에서 얼마나 멀어진 걸까

그 처음들은 지금 어디에서 홀로 찬 이슬을 맞고 있을까

동창 녀석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동쪽, 태평양 쪽이다

 

고향 땅은 그대로 갖고 있냐?

벌써 다 팔았지, 그거 없었으면 애들 유학 못 보냈다

기러기 신세 되고 나면 알코올중독에 우울증이라는데 괜찮은 거냐?

하루하루 견디는 거지 뭐, 단풍 네 번만 보면 정년이다

노후란 말 침 이상하지? 늙은 다음은 죽는 건데

노후 대책이라니, 죽은 대책인데, 도대체 대책이 없다

 

술기운이 대장까지, 충분히 내려가 있었다

고향 집 지붕에 참 이슬 내릴 시간

장독대 해바라기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을 시간

처음이 처음이었던 그때 거기가 하나씩 떠오르는데

멀리 있던 얼굴들이, 꿈과 각오가 하나하나 나타나려는데

, 우리는 늙을 수도 없어, 노후에도 일을 해야 하잖아

우리는 늙어 죽을 때까지 일, , 일이다

녀석이 스마트폰을 꺼내 미국서 공부한다는 남매 사진을 보여준다

 

지하철 끊어질 시간, 우리는 처음처럼을 다 비우고 일어섰다

비틀, 이 나이에 지하철 타는 우리 같은 놈들은 헛산 거야

휘청, 얀마, 이 나이에 나처럼 종점에 사는 놈도 있어

넌 마, 시인이잖아, 시인,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시인

나는 서쪽 종점으로, 녀석은 동북쪽 종점으로

우리는 또 보자는 인사도 나누지 않고 헤어졌다

 

대학교 로고가 새겨진 야구 잠바를 입은

여대생이 노약자석을 부여잡고 토하고 있었다

창자가 부글거리는 듯했다, 동창 녀석의 한 마디가

더부룩한 아랫배를 치고 올라왔다

우리는 늙을 수도 없다

 

늙을 수조차 없는 우리의 노후 대책은 단 하나

절대 늙지 않는 거, 죽을 때까지 절대 죽지 않는 거

죽을 때까지 죽도록 일하다가 결국 혼자 죽어가는 거

그러니까 우리의 죽음을 순직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순직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아저씨, 종점이에요, 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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