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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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60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4절 말씀은 우리에게 정말 큰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신다고 합니다. 눈물에는 기쁨의 눈물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슬픔의 눈물이겠지요. 슬픈 일을 당해도 눈물을 씻겨주는 이가 있으면 얼마든지 슬픔을 극복할 수 있겠지요. 이런 말씀이 관념적이거나 낭만적으로 들리시는지요. 이미 계 7:17절에서도 이 문제는 다뤄졌습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눈물을 흘리게 하는 세부 내용이 언급됩니다. 사망, 애통, , 아픈 것이 그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지나갔다고 과감하게 선포합니다.

눈물 흘릴 일이 없는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요? 그런 세상이 상상됩니까? 눈물과 웃음이 분명히 구별되는 이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눈물 흘릴 일이 없는 세상은 실질이 아니라 관념으로 다가올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희로애락은 늘 상대적입니다. 배가 고파야 배부름을 압니다. 늘 배부른 사람에게 배부름은 의미도 없고 실감도 안 됩니다. 몸이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은세상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눈물을 흘릴 일이 전혀 없는 세상을 관념이 아니라 실질로 인식하고 경험하려면 새 하늘과 새 땅이 가리키는 그런 새로운 세상으로의 변화가 있어야만 합니다. 비유적으로 애벌레에게 비상(飛翔)은 관념이겠으나 나비에게는 실질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반복해서 처음 것들은 다 지나갔다.’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 지나갔다.’라는 말씀을 오늘 우리의 영적 실존과 연관해서 다시 생각해봅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실존을 가리켜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말했습니다. 그냥 자연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겉으로면 보면 일반 사람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변화는 존재론적인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에게 이전 것은 모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돈도 새로워지고 사랑도 새로워지고 가족과 친구 관계도 새로워지고 국가나 인간의 모든 욕망도 새로워집니다. 다 지나갔으니까 말입니다. 그리스도교의 가장 기본적인 도그마로 설명하면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은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판단과 평가는 지나간 것입니다.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다.’라고 말하는 요한과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았다고 말하는 바울은 같은 신앙의 지평에 서 있는 제자들입니다. 이런 설명을 제상에서 제멋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분들은 안 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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