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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벨론 북으로 55키로 지점에 있는 현재의 압합바로서 앗수르왕 사르곤 2세가 사마리아를 점령한 후 이곳 사람으로 식민하였다.
운하를 격한 2개의 시가로 되어있다(왕하 17:24, 왕하 17:31).

[2]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수리아의 한 마을로서 살만에셀 5세에게 멸망한 사바라인으로 하맛과 다메섹이 여기에 있다(왕하 18:34, 왕하 19:13, 사 36:19, 사 37:13).
[1](1) 사해 남단 부근에 있던 도시(창 10:19, 창 14:2, 창 14:8)

(2) 소돔 고모라와 같이 불로 망한 도시(창19:1-, 창 19:25, 신 29:23, 호 11:8).

[2] 베냐민의 도시로 스보임 골짜기에 있는듯 하다(삼상 13:18, 느 11:34).이 골짜기는 여리고와 예루 살렘 사이에 있엇다고 생각한다.

여리고에서 약 7.5키로 떨어진 와디암 다바아라고 이름한 곳이듯 하다.
동거

(1) 야곱의 제10자 스불론의 땅(창 30:20).

(2) 납달리 아셀 잇사갈 등에 둘려있는 12성읍이다 (수 19:10-16)

(3) 야곱이 축복하기를 스불론은 해변에 있는 거하리니 그 지경이 시돈까지라 하였다(창 49:13).

(4) 모세가 축복하기를 스블론이여 너는 기뻐하라 하였다(신 33:18).

(5) 예수님이 나사렛을 떠나 스블론과 압달리 지경에 있는 해변 가버나움에 사셨으니 이는 이사야의 예언이 응하였다(마 4:13-15,
사사 에훗이 모압왕 에글론을 죽이고 이곳으로 도망하였다.
(삿 3:26).
수넴과 동일한 땅(아 6:13)
(1) 시므온 지파에게 준 땅인데 후에 유다지파에 속했다(렘 19:5)

(2) 사울왕 시대에는 블레셋 군대에게 점령되어 있었는데 사울의 손을 피해 달아난 다윗이 거기 피신해 있었다.
여기를 근거로 해서 아말렉 군대와 싸웠다(삼상 27:1-).

(3) 그후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 머물러 있었다(삼하 1:1)

(4) 포로 귀환후 다시 유다의 마을로 부흥했다(느 11:28).
바벨론을 구약 성서에서 시날 이라고 불렀다(창 10:10, 창 11:2, 창 14:1, 사 11:11, 슥 5 :11,단 1:2).옛날 니므롯이 시날 당을 다스렸다고 하였는데 그때의 바벨은 바벨론을 말한다(창 10:10).
수풀

홍해 북에 돌출한 시내 반도 안에 있는 산.
(1) 이스라엘 백성이 이 산에서 1년간 유하는 동안에 여호와가 모세를 불러십계명과 율법을 주셨다(출 20:1-17).

(2)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에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경배한 일이 있다 (출 32:4, 행 7:30, 행 7:46).

(3) 백성의 수를 조사한 것,아비후가 거룩하지 못한 불로 분향하므로 멸망 받은 겻,모세가 성막을 처음친 곳이 전부 이 산이다(민 1:18, 레

애굽의 스에네를 가리킴이라 하나 확실하지 않다 다만 여호와가 이사야를 통하여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에 혹은 원방에서 혹은 북방과 서방에서 시님땅에서 돌아 오리라도 예언하셨다(사 49:8-12)

노략물

고대 베니게의 옛 도시로 상업이 번창했다.
두로와 같이 동 지중해 연안에 서 제일 큰 항구이다. 현재는 그곳을 사이다라고 한다
(1) 통상과 같이 시도의 종교(아스다롯 여신)가 이스라엘 나라에 침투했다 (왕상 11:5, 왕상 11:33, 왕하 23:13).

(2) 또 아합왕은 시돈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신 숭배를 공인 하고 장려하려 하였다(왕상 16:31-33, 왕상 18:17-40).

(3) 포로 시대가 지난 후 제 2신전을

요압의 사자가 아브넬을 쫑아가 이 우물가에서 데리고 돌아오매 요압이 그를 죽였다(삼하 3:26-27) 현재 아인사라.


시돈인이 헤르몬 산을 일컫는 이름이다(신 3:9, 신 29:6).

야곱의 둘째 아들 시므온의 거주지로서 저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호수아가첫번 땅을 나누어 줄 때는 제비 뽑는데 넣어주지 않아 빠졌고 두번째 나눌 때에 유다 지파가 받은 분깃중에 남반 부의 13서을 얻어 가졌다.
이 지방에는유명한 브엘세바 시글락 호르마 등이 있다(수 19:1-16).
솔로몬왕 후에 남 북국으로 분열될 때 흐로보암이 유다 온 집과 베냐민 지파를 모았다 하고 그 남 방임에도 불구하고 이 지파를 부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전혀 피차에
동족의 관
엔게디에 있는 한 고개의 이름으로 모압과 암몬이 유다를 치러올 때에 이 고게에서 접전하려 하였으나 레위인 야하시엘이 신의 감동을 받고 여호사밧왕에게 싸우지 말고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고 예언한 것이 응하였다(대하 20:14-19). 현재의 이름은 와디후사시이다.
봉오리

(1) 본래 예루살렘의 기드론과 두로뵈온 두 골짜기 사이에 솟은 절벽으로 된 남쪽 봉우리이다.
그 후에는 동쪽 등성이를 시온이라 불렀고 예루살렘을 찬칭하여 시온 성이라 불렀다(시 126:1, 사 1:26, 사 10:24).

(2) 옛날 다윗이 이곳을 쳐서 수도로 삼고 정치적 중심지를 만들었다(삼하 5:6-9, 왕상 8:1, 대상 11:5, 대하 5:2).

(3) 그리고 법궤를 이곳으로 옮겨 종교적 중심지를 삼았다(삼하 6: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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