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쓰게 하다
proi?sthmi
인도하다, 돌보다, ~에 관심을 갖다, 수행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로이스테미(Homer 이래)는 프로($4253: 전에, 앞에)와 히스테미($2476: 서게 하다, 서다)에서 유래했으며,||(a) '앞에 두다(놓다), 제출하다, 내놓다',|(b) 자동사 중간태에서 '자신을 선두에 두다, 앞서 가다', 완료형에서 '관장(통할)하다'(Soph.),|(c) 비유적 의미로, '능가하다, 뛰어나다'(Plut.),|(d) ① 은유적 의미로, '인도하다, 지도하다, 지시하다, 다스리다'라는 의미에서 '관장하다'(Hdt., Thuc.).|② '원조하다, 협동하다, 보호하다, 대표하다, 돌보다, 돕다, 조장(촉진)하다'(Hdt., Eur., Demosth.). 분사 복수로는 '후원자들, 관리자들, 감독들'(Ep. Ar. 182).|③ '~을 바라다, ~에 관심을 갖다, 정리하다, 처리하다, 집행(이행, 실행)하다'(Hdt., Soph.).||#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포로이스테미는 70인역본에서 8회 나오며 '관장하다(부리다)'(삼하 13:17; 암 6:10; 마카베오일서 5:19), '돕다'(사 43:24), '원조하다'(마카베오사서 11:27)라는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프로이스테미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온다. 신약성경에서 프로이스테미는 '인도하다, 돌보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후자의 의미가 두드러진다. 이것은 어린 교회의 구성원들을 인도하는 의무는 바로 돌보는 것이었다는 사실로 설명된다.||(a) ① 롬 12:8에서 바울은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분명 두 번째 표현은 사랑의 행위를 가리키는 다른 두 표현과 유사하다. 그러면 의미는 어느 정도 다음과 같다: "구제하는 자는 단순함으로, 돌보는 자는 열심으로, 선을 행하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하지만 전체 본문은 각기 다른 임무를 맡은 자들에게 주어진 은사에 대해 말하고 있으므로 호이 프로히스타메노이는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을 일차적인 임무로 하는, 성령에 의해 구별된 특별한 무리이다(참조: 고전 12:28의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② 살전 5:12에서도 그 직책은 동일한 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문맥에 의하면 프로이스타메노이의 임무는 상당 부분 목회상의 돌보는 일이며, 강조점은 그들의 지위나 권위에 있지 않고 신자들의 영원한 구원을 위해 애쓰는 그들의 수고에 있다. 특별한 직분들이 문제시 되고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은사와 직분은 신약성경에서 대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령과 직무는 대립되지 않기 때문이다(예: 마 7:29; 행 6:3).||(b) 디모데전서에서는 동사와 특히 분사가 반복하여 나오며, 인도하고 돌본다는 개념이 모두 나타난다. 이런 경우에는 교회 안에서 직책상의 지도자들을 매우 한정하여 가리킨다.|① 딤전 3:4에서는 감독의 직분을 받을만한 사람을 묘사한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그는 자기 집을 잘 다스리고(프로이스타메논) 자녀들을 단속하여 지킬 수 있는 자라야 한다. 바로 다음의 딤전 3:5에서는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1055)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에피멜레세타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여기서 다스리는 것은 돌보는 것과 같은 말이다.|또한 딤전 5:8에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또 딤전 3:12에서는 "집사들은 ... 자녀와 자기 집(가족과 종들)을 잘 다스리는 자일찌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자는 확실히 가장의 권위를 염두에 두고 있으나, 그가 우선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그 속에서 보여지는 사려와 배려이다.||(c) 마지막으로 딤전 5:17에서는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문맥은 단지 잘 다스리는 장로들 뿐만 아니라 특별히 신실한 영혼을 잘 돌보는 일을 하는 자들을 언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 절의 하반절은 목자의 보살피는 임무의 기준은 근면임을 보여준다. 이것은 프로이스타메노이가 특별한 위엄을 가지고 있으며, 장로들과 같이 지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실례에서 이 동사는 신약성경에서 '인도하다'와 '돌보다'라는 일차적인 의미를 지니며, 이 점은 신약성경에서 그 직무의 독특한 성격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눅 22:26에 따르면 두목(호 에구메노스)은 섬기는 자와 같기 때문이다.|신약성경에 나오는 프로이스타마이에서 돌본다는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프로스타티스($4368)가 롬 16:2에서 '여성 보호자' 혹은 '여성 후원자'를 뜻하는 단어라는 사실에서 보여진다. 비슷하게 신약성경에 나오지 않는 프로스타테스는 클레멘트일서 36, 1; 61:3; 64에서 '보호자'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여기서 언제나 그리스도에 관한 언급 및 아르키에류스($749: 대제사장)와 함께 사용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금 리더쉽과 돌봄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d) '~을 바라다, ~에 관심을 갖다, 수행하다'라는 의미는 디도서에서 2회 나온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일에 힘쓰라"고 권면 받는다.|① 딛 3:8,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② 딛 3:14,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참조: B. Reic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