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어버려두다
paradivdwmi
전수하다, 전달하다, 전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이 동사는 기본 전치사 파라($3844:…곁으로부터, …곁에)와 디도미($1325:주다)에서 유래했으며, 플라톤 때로부터 헬라어 문헌에서 발견되며, '선생으로부터 학생에게 교훈이 전수되다, 전달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Theaet. 36, 198b). 아리스토텔레스, 폴리비우스, 플루다르크 등등의 작품에서도 이 단어가 '교훈을 전수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헬라의 신비종교에서 이 단어는 히에로스 로고스(거룩한 가르침)의 전수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필로가 이 단어를 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일이다(예: vit. Mos. 1, 23 등등).||#2. 구약시대의 용법.||영웅담, 설화, 법률 및 인명 목록의 전승은 선사시대의 이스라엘에서도 있었지만, 유대교가 자기 용어와 자기 의식을 가진 그러한 '전통'은 주전 마지막 2세기 동안 헬라문화의 침투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주후 1세기에 기독교와 직면하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생겨나게 되었다.|파라디도미에 상당하는 히브리어의 주요 단어 마사르가 이같이 새로운 용어로 채택되었으며, 이 단어는 공인된 율법 해석이 엄격하게 규제되어 전수되는 과정을 의미하였다(참조:Aboth 1:l; '모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아 그것을 여호수아에게 전수하였다'; 또 Peah 2:6 등등).||#3. 신약성경의 용법.||신약성경에서 동사 파라디도미는 119회 나오는데(그 중에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96회, 바울서신과 공동서신에 19회 사용되었다), '넘겨주다' hand over, '인도하다' deliver up, '전통을 전수하다' handing down tradition라는 의미도 지닌다.||1. `넘겨주다'라는 의미,|(a) 이 단어는 수난 기사에서 예수님을 넘겨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 예를들어 유다에 의해(막 14:10), 산헤드린에 의해 빌라도에게(막 15:1), 빌라도에 의해 백성들의 뜻에(눅 23:25), 그리고 처형하기 위해 군인들에게(막 15:15 등) 넘겨주는 것이다. 다른 재판들에서도 이와 같은 말이 사용되었다(마 10:17; 행 12:1).||(b) 이 단어는 고전 5:5; 딤전 1:20에 나오는 '사단에게 내어주다'라는 공식 문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사단에게 내어주는 것은 사단이 "이 세상 신"으로서 다스리는 교회 밖으로 그 범죄자를 내보내어 성도들의 교제에서 제외시키는 것이다.||(c) 이 단어는 또한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사용되었다(롬 1:24이하; 행 7:42; 참조: 엡 4:19).||(d) 어떤 사람의 영(요 19:30), 영혼(행 25:26), 몸(고전 13:3), 혹은 자아를 넘겨주는 것, 즉 포기하는 것(갈 2:20; 엡 5:25)은 기꺼이 죽는 것, 또는 희생적인 사랑을 표현한다(롬 8:32; 롬 4:25). 사도들도 역시 죽음에 넘기운 것이다(고후 4:11).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서는 결코 이런 "죽음에"라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다.||(e) 마 11:27; 눅 10:22에서 이 단어는 메시야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가지는 예수님의 권위있는 지위를 표현해준다. 만물이 아버지에 의해 그에게 넘겨졌다. 고전 15:24에 의하면 반대로 그리스도께서 왕국을 아버지께 도로 넘겨준다.||2. `(전통을) 전한다, 위임하다'는 의미,|(a) 막 7:13의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라는 구절에서, 파라디도미의 목적어는 랍비의 할라카(율법에 대한 해석)이다. 즉 이 구절에서 이 단어는 통상적인 유대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이 단어는 행 6:14에서 발견되는데, 여기에는 예수님께서 모세가 전하여 준 관습을 고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주장한 스데반에 대한 증인들의 증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행 16:4에서 누가는 파라디도미을 도그마타(결의안) 즉 바울이 루가오니아를 비롯한 여러 교회에 전하여 준 사도회의의 결의사항과 결부시켜 사용한다.||(b) 눅 1:2의 파라디도미의 용법은 중요하다. 여기에서 목적어는 구전된 디에게시스($1335:이야기, "내력")이거나 또는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된 자들"의 보고로서, 이 보고는 예수님의 생애 중에 일어난 사건들에 관한 보고이다. 이제는 예수의 역사가 율법에 대한 해석을 제치고 전승될 전통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c) 바울서신에서 파라디도미는 이 의미로 4회 나타난다(롬 6:17; 고전 11:2; 고전 11:23; 고전 15:3). 이 구절들 중에서 롬 6:17에서 수동태로 사용되어 있는 파라디도미의 주어는 교훈이 아니라 오히려 이와 대조적으로 일종의 교리를 `위임받은' 사람들이다.|한편, 고전 11:2; 고전 11:23 및 고전 15:3에서 이 동사의 목적어는 기독교의 교리이다. 고전 11:2에는 이전에 바울이 '전해 주었던' 교훈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 이 교훈의 내용이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서 바울이, 그 자신이 전해 받았던 교훈을 고린도교회에 전해주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생각하기에 특별히 중요하고 구속력있다고 보이는 자기 자신의 명령을 가리키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후자의 경우가 사실이라면, 바울 자신이 전통의 근원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다음의 다른 두 구절에서, 그는 자신이 그것을 전해주기 이전에 자기도 그 전통을 전해 받았다고 분명하게 언명하고 있다.|고전 11:23에서 바울은 "주"를 복음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여기에서 "주께"라는 말씀은 직접적인 계시를 가리키는 것도, 계속적인 전승과정을 약칭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성찬 제정의 말씀이 계속하여 전승되어 온 것으로, 주님 자신이 말씀하셨다는 바울의 믿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바울에게 있어서 주의 말씀은 최고의 권위가 있는 것이었다(참조: 고전 9:14). 여기에서 랍비적 의미에서의 전통의 개념을 찾으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바울은 어디에서도 그러한 생각을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개인적으로 받은 계시를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니(갈 1:16 등) 그 당시에 널리 알려진 전통에 호소하는 것이 복음전파를 촉진하거나 또는 복음의 연합을 강조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하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지속적으로 전승되어온 어떤 전통의 권위에도 호소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고전 15:3에서 파레도카(파라디도미의 직설 능동 과거)는 전통의 근원을 가리키는 어떤 말도 수식어로 취하지 않지만, 언어학적 자료를 통해서 볼 때, 적어도 3절 이하의 말씀들은 최초의 교회 전통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참조: H.Conzelmann in lntertretation 20, 1966, 15 이하).||(d) 그 목적이 가르치는 것일 때 사용되는 파라두나이(파라디도미의 과거 능동 부정사)는 전문적 용어이다. 예를들어 유대의 전승(행 6:14; 참조: 막 7:13), 기독교 전승(롬 6:17; 고전 11:2), 거룩한 계명(벧후 2:21), 믿음(유 1:3), 복음에 대한 것(눅 1:2), 공회의 명령(행 16:4)이다. 파라두나이는 구두적인 것이다.||3. `맡기다, 위탁하다'라는 의미, 행 14:26; 행 15:40와 벧전 2:23에서 `위탁하다, 맡기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도행전의 경우에 "은혜에" 맡긴다. 베드로전서의 경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신 것이다. 막 4:29에서는 `허락하다'(permit)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