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376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육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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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쉬케의, 육적인, 천성적인.||#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프쉬키코스(Aristot., Diocles, Ptolem)는 프쉬케($5590: 호흡, 영혼)에서 유래했으며, '프쉬케의, 영혼에 속하는, 육적인, 천성적인'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프쉬키코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이 구절에서 프쉬키코스는 프뉴마의 종말론적인 부여가 없이도 살 수 있는 자연적인 인간성을 의미한다. 만일 불신자가 프쉬키코스하다면 진보가 없는 신자는 사르키코스($4559: 육신에 속한) 한 자이다. 프쉬키코스가 됨이 사르키코스보다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동일한 비난을 수반하지도 않는다. 프쉬키코스한 자는 신앙을 고백하지만 지상적인 것, 즉 그 사르크스($4561)에 머물 때 하나의 사르키코스가 된다.||(b) 고전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참조: 고전 15:44-49). 이것은 고전 15:45에서의 바울의 견해이다. 요 3:31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지혜서와 필로의 윤회 사상이 그 배경에 놓여있다. 육적인 것은 그 자체로는 죄악된 것도 아니며 프뉴마로 기우는 경향도 없지만, 부패하기 쉽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바울은 프뉴마 조오포이운으로서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이것과 대조시킨다. 이것은 부활에서의 하나님의 영(스 37:14)을 창 2:7의 죽어야할 운명의 혼과 대조시키는 것과 같다. 여기에서 멸망이 고려된다는 사실로 보아 바울은, 인간의 지상의 부패의 측면을 강조하는 지혜서의 전승과 관련있으며, 또한 순수한 묵시적 사상과 구별된다. 이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담 혹은 새로운 아담에 속하는 인간성에 대한 사상이다. 그러나 바울의 사상이 그의 반대자들의 사상과 확연히 다른 점은 하늘의 영적 존재는 아직 미래의 것이지 육의 껍질 속에 감추어져 있는 씨가 아니라는 종말론적 조건이다. 장차 올 것은 오직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으로서만 주어지며, 육과 영 사이의 연속성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신 프뉴마 조오포이운 안에서 우리 외부에 놓여있다. 그러나 고린도교인들의 지나친 열광과 비교되는 바울의 침착성은 단지 영적인 것의 미래적 속성을 강조하기 위함만이 아니다. 심지어 종말에도 사람은 고전 15:48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와 동등해지지 않을 것이다. 고전 15:48에 따르면 유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사람이 아담과 같은 프쉬케 조사라면 그는 그리스도와 같은 창조적 영인 프뉴마 조포이운이 결코 될 수 없다. 그는 단지 소마 프뉴마티콘일 뿐일 것이다.||(c) 약 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여기서 하나님과 그의 비밀을 아는 것에 대하여 문제가 제기된다. 프쉬키코스는 세상적인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 닫혀진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여기서 이 제한은 마귀적인 것이다. 지상 혹은 낮은 영역은 악한 귀신들이 다스리며 따라서 다툼, 요란, 분쟁이 일어난다.||(d) 유 1:19,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유다서에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프뉴마를 떠나 사는 프쉬키코스를 자기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사는 불경건한 사람과 동일시한다. 확실히 지상의 것은 그 자체로서는 악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전에 이미 관찰된 이 충동은 바울의 경우에서보다 여기서 더욱 강력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의 도움이 없으면 사람은 자신의 정욕과 불신앙의 희생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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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냉기 col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프쉬코스(Homer. 이래)는 프쉬코($5594: 숨쉬다, 불다, 차게 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추위, 냉기' cold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프쉬코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온다.||(a) 요 18:18, "그 때가 추운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b) 행 28:2,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c) 고후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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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차가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프쉬크로스(Homer. 이래)는 프쉬코스($5592: 추위, 냉기)에서 유래했다.||(a) 이 단어는 '찬, 추운, 서늘한'을 의미한다.||(b) 일반 헬라어에서 이 단어는 자주 문자 그대로의 추위에 대하여, 또는 종종 액체에 대하여 사용된다.||(c) 그리고 중성 형용사 프쉬크론(%766)은 때로 말 그대로 '찬 물'을 의미한다(Thoognis, Herodotus)||(d) 비유적으로 이 단어는 '쓸데 없는'(Herodotus), '무미건조한'(Aristoph), 사람들에 대해 '냉담한'(Xen., Aristot.)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프쉬크로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마태복음과 요한계시록에만 사용되었다.||(a) 마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중성 형용사 프쉬크론은 오직 '냉수'를 의미한다.||(b) 계 3:15; 계 3:16,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이 두 구절에서 요한계시록 세 단어들, 곧 클리아로스, 프쉬크로스, 그리고 제스토스를 연결시키는 몇 가지 국면들은 현존하는 헬라 문학의 독특한 점이다. 이 곳에서 이 세 단어는 모두 사람의 특성에 대해 비유적으로 또한 독립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구절은 대체로 영적인 열정의 수준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왔으며, 이 추측은 계 3:19 '열심을 내라'의 권고와 일치한다. 곧 열의가 없는 자들에게 열심 있는 노력을 촉구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그러나 이 통상적인 해석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 클리아로테스(미지근함)에 대한 현대적 의미는 분명히 아다나시우스(Anathasius)와 닐루스(Nilus) 이전에는 입증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구절은 '차가운'과 '더운'을 마치 이 두 가지 모두 바람직한 상태인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나타난다. 또한 사실상 '차가운'이란 말이 두 번이나 '더운'의 앞에 나오고 있다. 이것은 "뜨겁거나 찬 것이 더 낫다, 열심 없는 지지보다는 돌처럼 냉담한 것이 낫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루드빅(Rudwick)과 그린(Green)은 이 용법을 라오디게아의 상수도를 나타내는 분명한 상징으로, 이것은 말 그대로 미지근하고 구역질 날만큼 불결한(참조: 에메사이; 토하다) 인공 수도를 통해 나오는 물에서 유래하였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하였다. 이 가설은 이 수도관의 유적들이 남아 있다는 것과 아직도 도관들을 덮고 있는 퇴적물들에서 증명될 수 있다. '더운'과 '차가운'이라는 단어들이 서로 이웃하고 있는 두 경쟁 도시들,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와 골로새(Colossae, 참조: 골 4:13)의 물에 각각 사용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히에라폴리스의 유명한 석화 폭포들을(파묵칼레[Pamukkale]) 생기게 한 이 더운 물은 약효가 있어서 오늘날까지도 그 지방 주민들에 의해 안약으로 사용되고 있다(참조: 계 3:18b); 골로새에 있는 사시사철 차가운 샘물은 이 도시를 그 골짜기 중에서 가장 최초의 자연적인 거주지가 되게 하였다. 그러나 이 도시는 후에 라오디게아의 위치상의 유리한 점과 상업으로 인해 압도되고 말았다. 미지근함은 아마도 무력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라오디게아로 보내는 편지의 중심사상은 효과적인 섬김이 인간의 노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응답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C. J. Hemer).
식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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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다, 차가워 지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쉬코(Homer. 이래)는 기본동사이며,||(a) '숨쉬다, 호흡하다, 불다, 불어서 차게 하다',|(b) 수동태 '(점점) 차가워(서늘해)지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프쉬코는 신약성경에서 마 24:12에 한번 나온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여기서 프쉬코는 비유적으로 '약해지는 사랑'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프소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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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다 fee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소미조(Aristoph., Aristot. 이래)는 프소미온($5596: 한 조각, 소량, 작은 조각)에서 유래했으며,||(a) '(음식) 한 조각을 입에 넣어서 먹이다'(유아, 동물의 새끼의 입에),|(b) 보편적으로, '먹이다, 기르다, 양육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프소미조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로마서(롬 12:20)와 고린도전서(고전 13:3)에만 사용되었다.||(a) 롬 12:20에서 원수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b) 고전 13:3에서 가난한 자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프소미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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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은 조각||#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프소미온(Ptebt. 이래)은 프소모스(%751: 파편, 단편, 한 입, 한 조각)의 지소사이며, '작은 조각, 파편, 단편, 한 입'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프소미온은 신약성경에서 요한복음에만 4회 나오며, '빵의 한 조각'을 의미한다(요 13:26; 요 13:27; 요 13:30).|(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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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르다, 비비다. rub||#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프소코(Hesychius, Etym.)는 프사오(%748: 문지르다)의 부차적 형태이며 '문지르다, 비비다' to rub, '비벼서 조각 내다' rub to pieces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프소코는 신약성경에서 눅 6:1에 한번 나온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쌔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오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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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오(%752, w)는 헬라어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24번째)이다.|신약성경에서 오메가는 요한계시록에만 3회 나온다.|·계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 1:11TR에도 나온다.|A(알파)를 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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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아!||오($5599)는 감탄사이며, 오!, 아!로 표현한다(Homer. 이래).||(a) ① 감정을 표현하면서, 마 15:28; 눅 24:25; 롬 2:1; 롬 2:3; 롬 9:20; 갈 3:1; 딤전 6:20; 약 2:20.|② 주격이 호격의 위치를 취할 때, 마 17:17; 막 9:19; 눅 9:41; 행 13:10.|(b) 감정 없이, 행 1:1; 행 18:14; 행 27:21.|(c) 감탄이나 외침에서 주격과 함께, 롬 11:33.|(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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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의 가정법||오($5600)는 에이미($1510: 내가 있다, 나는 ~이다)의 가정법이다. 신약성경에서 약 66회 나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오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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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벳 Obed(인)||오베드는 히브리어 오베드(종, 즉 여호와의 종)에서 유래했으며, '오벳'을 가리킨다.|오벳은 룻과 보아스의 아들이며(룻 4:17), 다윗의 조부(룻 4:21 이하; 대상 2:12)이다. 오벳의 출생은 나오미의 노년에 위안을 가져다 주었다.|신약성경에서 오벳은 3회 나오며 마 1:5; 눅 3:32의 예수님의 족보에서 그의 조상의 한 사람으로 나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여기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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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여기에, 이 경우에||부사 호데(Homer. 이래)는 호데($3592)에서 유래하였으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그렇게, 그와 같이, 이런 방식으로, 이렇게'(Homer. 이래).|(b) 장소의 부사로|① '이쪽으로, 이곳으로', 마 8:29; 마 14:18; 마 17:17; 마 22:12; 막 11:3; 눅 9:41; 눅 14:21; 눅 19:27; 요 6:25; 요 20:27; 행 9:21; 계 4:1; 계 11:12.|② '여기에, 이곳에, 이곳에서', 마 12:6,41이하; 마 14:17; 막 9:1; 막 9:5; 막 16:6; 눅 9:33; 눅 22:38; 요 6:9; 요 11:21; 요 11:32.|③ '이 경우에, 이 점에서, 이런 처지에', 고전 4:2; 히 7:8; 계 13:18 등.|(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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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애도, 불평 혹은 환희의) 송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오데(Homer 이래로)는 아도($103: 노래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애도 혹은 한탄의 노래,|(b) 기쁨이나 찬양의 노래,|(c) 일반적인 시,|(d) 일반적인 노래.|이 단어들은 성서 외의 헬라어에서는 본래 종교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오데는 70인역본에서 87회 나오며, 주로 "노래"를 뜻하는 쉬르와 쉬라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명사는 시 18편에서 134편에 이르기까지의 시편의 제목에서 36회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데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노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엡 5:19(참조: 엡 5:18이하)에서 바울은 에베소의 기독교인들에 술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화합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권고한다. 이 구절들에는 틀림없이 신약성경 기자들이 종종 자유로이 인용하는 구약의 시편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또한 기독교인의 찬송가도 포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골 3:16에도 노래하는 것은 교화와 찬양의 수단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로제(E.Lohse)는 이 구절에서 사용된 세가지 용어간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구별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들은 함께 사용되어 성령이 불러 일으킨 모든 노래를 묘사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Colossians and Philemon, Hermeneia, 1971, 151).||(b) 계 5:9에서 오데는 종말론적인 찬양의 노래를 묘사한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모든 피조물 곧 하늘과 땅과 그리고 땅 아래의 모든 피조물이 어린 양의 주권임을 종말론적인 찬양의 노래로 고백한다.|'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은 완성되었으나, 그것을 노래할 수' 있는 시기는 후속되는 현재일 뿐이기 때문에 이 노래는 '새로운 것'이다. '당신이 합당하심은「당신이 우리를 구속하실 것이기 때문이로소이다」가 아니라「당신이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이로소이다」이다'(A.Plummer).|계 14:3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이 찬양대는 어린 양에 의해 구속함을 받은 자들을 위하여 찬양의 새 노래를 노래하는 하늘의 찬양대의 모습처럼 보인다. 구원을 영적으로 체험한 자들만이 새 노래를 노래할 수 있다(Ralph Earle).||(c) 계 15:3에 나오는 "모세의 노래"는 출 15:1의 모세의 노래를 바꾸어 놓은 것이며 게다가 시 145:7의 단어들도 포함하고 있어 거기에 기독론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모세가 홍해를 건넌 후에 일찌기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어린 양을 통하여 자유를 얻은 노래하는 자들로 하나님이 심판자로서 자신의 역사하심 속에서 드러내신 하나님의 행위를 축하한다'(E.Lohse).|(참조: K.H.Bartels, H.Schlier).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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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의 고통 pain of labor.|||#1. 고전 헬라어 문헌||명사 오딘은 후기의 문어체 오디스(%84)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해산의 고통, 진통'을 의미한다. 고전 헬라어 저술가들은 초기형태인 오디스를 인간이나 또는 동물 가운데 출산에 따른 고통을 묘사하는데 사용했으며, 또한 비유적 의미로 어떤 유형의 괴로움이나 또는 진통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하였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오딘은 70인역본에서 33회 나타나며, '산고'의 뜻을 가진 힐, '산고를 경험하다'의 뜻을 가진 훌, '아기를 낳다'의 뜻을 가진 얄라드, '출산의 고통'이란 뜻의 헤벨, '고통'을 뜻하는 할할라, 문자적으로 '자궁 경부'를 뜻하는 마스베르, 그리고 '고통, 경련'이란 뜻의 치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이 히브리어들은 가끔 상징적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항상 문자적인 해석이 강하게 묘사되었다. 따라서 오딘은 자주 '해산의 고통'에 비유한 '고통'을 묘사하며(사 13:8; 사 37:3; 렘 6:24 등), 때때로 죽음의 고통을 묘사하기도 하나(왕하 22:6; 시 17:4 등), 출산을 나타내는 문맥에서 문자적인 의미로 빈번히 사용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오딘은 신약성경에서 4회 나타난다.||(a) 살전 5:3에 오딘이 나오는데, 임신한 여인이 보통 상황하에서 겪는 필연적인 산고의 사실이 피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전망을 나타내는 표상으로 사용되고 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이 경우 사건 발생에 있어서 예상하고 있을 때조차도 갑작스러운 일이다. 본문의 요점은 자기 안전감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멸망이 예기치 않게 닥칠 것이라는 사실이다.||(b) 막13:8("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과 마24:8("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에서 오딘은 심한 고통을 나타내는 비유로 나타난다. 재난이 마지막 때를 예고할 것이다. 마태는 "재난의 시작" 을 새로운 시대의 탄생에 앞서서 나타나는 모든 종말론적 재앙과 관련시킨다. 여러 가지 재앙은 구원의 때가 촉박함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여기서 오딘은 그 본래의 의미인 '해산의 고통'이 의미하는 바 새로운 시대의 탄생의 진통인 것이다.||(c) 행2:24에서 오딘도 부활의 신생을 위한 진통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여기에서 해산의 고통을 죽음(다나토스)과 연관시켜 70인역본에 나오는 어구 시 17:5(오디네스 다나투, "사망의 올무")과 시17:6(오디네스 하두, "음부의 줄", 시 18:5)을 반영하고 있다. 임신한 여인이 그녀의 몸 속에 있는 어린 아이를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처럼 음부도 구속자를 더 이상 붙잡아 둘 수 없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지하 모태는 구속자를 풀어 놓는다. 하나님이 도우사 그 고통을 종식시킨다.|(참조: G.Bertram; R.K.Harrison).
구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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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의 진통을 겪다.||#1. 고전 헬라어 문헌||동사 오디노는 '산고의 진통을 겪다'를 의미한다. 고전 헬라어 저술가들은 오디노로 해산의 진통을 묘사하였고, 때로는 동물이 그 새끼를 분만할 때 겪는 진통을 묘사하기도 하였다. 이 용어는 어떤 심한 심신의 고통, 어려운 육체노동, 정서적 또는 정신적 긴장이나 불타는 듯한 욕구 불만에서 오는 갈망 등을 나타내는 말로 비유적으로 폭넓게 사용되었다. 파피루스에 이따금식 나오는 이 단어의 표현들은 일반적으로 상징적인 용법을 반영하고 있다.|호머는 이 단어를 비유적으로, 상처의 갑작스럽고 격렬한 고통에 대하여 사용하였다. 플라론은 이 단어를 지식의 산파로서 소크라테스의 사역과 관련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단어를 출산의 자연적 과정에 적용시켰다. 신화에서 운명의 여신들은 출산에 임하여 죽음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고통을 다스린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오디노는 70인역본에서 19회 나오며, 특히 이사야서(사 23:4; 사 45:10; 사 51:2 등)에서 출산의 고통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오디노는 '출산에서 몸부림치다'를 뜻하는 훌, 힐과, 또한 '잉태하다'(시 7:14), '산고하다'(아 8:5)를 뜻하는 강의형 동사 하발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그러한 의미를 나타낸다. 이러한 용어들은 모두 현저하게 문자적인 의미로 채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오디노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타난다.||(a) 오디노는 갈 4:27에서 사 54:1을 인용하고 있는데, 거기서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여기서 잉태치 못하는 여자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기적을 통하여 많은 자녀들, 즉 믿는 자들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다.||(b) 계12:2에서 고통 중에서 소리치는 임신한 여인의 표적이 하늘에서 보여진다: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우리는 성경전체를 통해 이스라엘이 해산의 고통을 겪는 여인으로 묘사된 것을 여러 번 볼 수 있다(사 66:7이하, 미 4:10; 5:3등). 특별히 이사야에서는 중대한 구절이 나온다: "여호와여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구로하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의 앞에 이러하나이다. 우리가 잉태하고 고통하였을지라도 낳은 것은 바람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사 26:17,18). 옛 이스라엘은 진통을 겪었으나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했다. 그러나 미 4:10에서는 "왜 네가 그토록 크게 부르짖느냐?…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애써 구로하여 낳을지어다. 이제 너는 성읍을 나가서 들에 거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너의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고 예언했다. 이 미가의 구절에는 고통 이외에도 구원을 받기 위해 들판으로 도주하는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옛 이스라엘은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이 일을 성취하셨다. "해산하게 되매", 즉 해산의 진통을 겪기 시작한 것은 이스라엘에 이제 곧 구세주가 탄생할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옛 이스라엘과 참 이스라엘인 교회를 연결시키는 중대한 매듭이 된다. 즉 본문의 여인은 메시아를 낳게 될 이스라엘이 분명하지만 본 장의 후반절에서 이 여인은 신앙 때문에 핍박받는 교회를 가리킨다(Heinrich Kraft; C.L.Morris).||(c) 갈4:19에서는 교회의 구성원을 위한 바울의 고통스러운 수고에 의해서만 그들이 믿음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은 마치 산고의 고통과도 같은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참조: G.Bertram; R.K.Harri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