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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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다, 퍼뜨리다, 후회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코레오(Homer 이래)는 코라($5561: 공간, 장소, 지방, 시골나라, 땅)에서 유래되었으며, 다음의 의미를 지닌다.||(a) 코레오는 자동사로 '물러서다' 즉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움직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① 사람에게 사용될 때 '전쟁터에서 퇴각하다', 전치사와 함께 확대된 의미로 '달려들어 어떤 일을 수행하다', 즉 '반역하다'(Appian, Bella civilia), '어떤 행동을 후회하게 되다'(De Fluviis).|② 사물들에 사용될 때 '사물들을 움직이다', 신체의 유동성분(Aristot., Problemata), 소식이나 명령을 '퍼뜨리다'(Xen., Plato), 어떤 과정이나 사업의 '방향을 잡다'(Thuc.)를 의미한다.||(b) 코레오는 타동사로|① '들어올릴 수 있다, 잡을 수 있다'(움푹한 것, 그릇들에 대하여, Diod.).|② 확대된 의미로 '~을 참을 수 있다'(도시에 대해, Dem.)를 의미한다.|③ 기독교 후기 시대에 지성적, 영적 수용력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Plut.).||#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코레오는 70인역본에서 12회 나오며, 히브리어 나사(5375), 쿨(3557), 바이트(1004), 하자크(2388)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70인역본에서 코레오는 용기들의 수용 용량(왕상 7:26; 왕상 7:38; 왕상 18:32; 대하 4:5)과 능력의 수용(창 13:6)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코레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코레오는 자동사로 사용되었다.|①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여기서 코레오는 '어떤 일을 후회하다'를 의미한다. 이 사상은 아마도 있음직한 일회적 행동에 대한 것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지연시킨다는 데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② 마 15: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배로 들어가서"라는 문구는 의학의 생리적 과정에 대한 묘사와 일치한다. 이 문구는 정신과 의지의 자연스런 작용과는 무관한 것을 나타낸다.|③ 요 8: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여기서 코레오는 '퍼지다, 진행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동사는 유대의 반대자들의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않음에 적용되고 있다. 이곳에서 엔($1722: ~안에)이 에이스($1519: ~안으로)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예수님의 말씀이 들어갈 통로를 찾지 못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는 가정은 근거가 희박하다. 그리하여 요 8:30의 문맥에 비추어보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그의 가르침을 듣고 시인하면서도 아직 효력을 나타내지 않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반면에 요 8:31과 요 8:37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사상은 인간이 죄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되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요 8:32; 요 8:34).||(b) 코레오는 타동사로 사용되었다.|① 코레오는 수용능력에 대해 사용되었다.|·요 2:6에서 항아리들의 용량: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막 2:2에서 한 장소의 수용능력: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요 21:25에서 이 세상의 능력: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② 코레오는 예수님의 묵시적 교훈을 받거나 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찌니라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을찌어다".(마 19:11-12; 참조: 마 19:9-10).|그 의미는 비유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파악함에 해당한다(참조: 마 13:11; 마 13:16이하, 마 13:19; 마 13:23).|위의 예문들 모두에서 마태는 제자들의 이해를 강조한다. 코레오는 이해의 범위를 초월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가르침을 받아들여 이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고 있다.|③ 마 19:12,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을찌어다". 여기서 초기 기독교에서 발견되는 묵시적 경고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어떤 일에 대한 통찰력 또는 은사를 받아 사용하는 한 집단을 훈계하며 이로 인하여 이 집단을 다른 집단으로부터 구별하고 있다.|④ 고후 7: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가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바울의 "우리를 영접하라"라는 청원은 앞에 나오는 마음을 넓히라는 청원의 뒤를 잇는 것이며(참조: 고후 6:13)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스테노코레이스데) 것이라"(참조: 고후 6:12)라는 언급과 일치한다. 고린도인들은, 바울이 그의 사도적 사역에서 자신을 그들이 알도록 내어 주었음을 깨달아야 했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주 예수님의 날에 서로를 자랑할 수 있는 것이다(참조: 고후 1:14).|(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P. Schmid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