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성경사전 1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조그만 우상이나미신 형상. 고대 사람들은 이것을 소유하면 복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고대의 드라빔은 한 가족의 신이었으며어떤 이들은 이것도 경배하고동시에 하나님도 경배하였다(삿17:1-13). 이런 우상들은사람의 모습처럼 생기기도 하였다(삼상19:13, 16). 야곱의아내 라헬의 형상은 드라빔이었다(창31:19, 30; 참조 삿17:5; 18:14, 20; 호3:4).
유다 지파에속한 이새의 막내아들. 그는 주전 1085년경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으며 세속 역사나 성경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생애는 삼상16:1-왕상2:46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는 사울을 대신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도록 하나님께서정하신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였고 왕좌에 오르기전에 이미 유명한 대언자 사무엘의 의해 거룩히 구분되어 기름 부음을 받았으며(삼상16:1-13)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가운데 오랜 동안의 역경과 위험을 잘 이기고 나갔다.젊을 때에 그는 목동으로 생활하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충성하며 대담한 삶을 살았고 그러다가음악 하는 자로서 행동이 곧바르고 단정한 자로 사울 왕 의 궁정에 들어가 왕을 위해 봉사했다. 그는때로 악한 영의 영 향을 받은 사울 왕을 위로 하고 그에게 맑은 정신을 갖게 해 주었으나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 이 있을 무렵에 왕 의 궁 에 서 나와 아버지의 양떼 를 지킨 것으로 보인다 . 그 후 그는 하나 님의 섭리 로 이스 라 엘 군 대의 진영 을 방 문하 여 용 맹스 럽게 블레셋의 투사 골 리앗 을 죽였고 그 뒤 왕 에 게 로 돌아와 서 명예 를 받 고 군대 를 다스 리 며 지 혜 롭게 행 동 하여 백성으 로부터 신 뢰와 사랑 을 얻었 다. 그러 나사 울 의 시 기 로 인 해 그는 유다의 광 야 로 피신 하고거 기 서 6 00여 명 의 무리 를 얻고 그 들 을 지도 하여 이스라 엘의 원수 들을 대 적하 였다. 그럼에 도 그는 여전 히 사울의 무서 운 추격 을 "받았으며 그 와중에 그를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손을 들어그를 대적하지 않았다. 후에 그는 블레셋 사람들의땅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하여 거기로가서 아기스의 영접을 받았고 그 뒤 사울과 요나단이 죽자 자기 땅으로 돌아와 왕권을 차지하게 되었다.그는 즉시 헤브론에서 유다의 집을 다스리는 왕이되었고 7년 동안의 어려움을 겪은 뒤에 만장일치로이스라엘 전 지파의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유다왕조를 설립했으며 그의 가문은 유다가 바빌론으로포로가 되어 끌려갈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는 왕으로서 먼저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고 자기가 부름 받은 모든 일에서 책임 있게 행했다. 그는 하나님의궤를 명예롭게 기쁘게 거룩한 도시로 가져왔으며 정성을 다해 경배 드리는 규례들을 수정했고 또 공평하게 백성을 다스리며 민족의 번영을 추구했다. 그로 인해 유다 왕국은 굳건하게 섰다. 또 그는 용사였으므로 외세의 침입을 막고 또성공적으로 약속의 땅 너머에까지 왕국의 영토를 확장해서 홍해에서부터 유프라테스에까지 이르게 했다(창15:18; 수1:3-4). 사울, 다윗, 솔로몬의 영토 지도 참조(30). 또한 그는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으로백성을 부유하게 하였으며 자기 아들 솔로몬이 지을성전을 위해 많은 물건을 예비하였다.그러나 다윗 역시 번영과 무제한의 권력으로 인한비도덕적 영향들을 다 피하지는 못했으며 여러 가지강한 유혹에 말려들어갔다. 비록 그의 삶 전체가 그를 둘러싼 다른 왕들에 비해 흠이 적고 훌륭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큰 죄들에 빠졌다. 그 당시의 다른 사람들처럼 그는 여러 아내를 두었고 결국그것으로 인해 큰 고통을 맛보게 되었다. 우리야와밧세바 사건에서 드러난 그의 죄는 정말로 사악한것이었지만 그는 어리석은 꿈에서 빠져나와 먼지와재속에서 회개하고 책망과 형벌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였다. 그 이후로 그는 여러 번 고통을 당하며 겸손해지고 자신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안에서는 물고 뜯는 일과 근친상간과 배반하는 일이일어났다. 다말과 암논과 압살롬의 사건은 그들의아버지 다윗의 마음을 찢어놓았다. 또 압살롬과 세바와 아도니야의 반역과 그의 백성들을 괴롭게 한기근과 재앙 그리고 요압의 범죄 등으로 인해 그는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오 내게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내가 멀리 날아가 안식하리로다”(시55:6).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역경은 좋은 열매를 가져왔으며 그는 아도니야의 반역 때에 자신의 성실함과불굴의 의지를 잘 보여 주었다. 요압과 시므이에 관해 그가 솔로몬에게 책무를 준 것은 공의를 담은 목소리였으며 결코 보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왕상2:5-9). 그는 성전을 짓기 위해 많은 것을 예비하였으며 백성을 불러 주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게 하였고 40년간 통치하다가 71세에 죽었다.그는 정신적으로도 능력이 탁월했고 또 살면서 많은 것을 습득했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에 친절하게관대하게 성실하게 인내하며 행동했고 경건하게 주자기의 하나님께 경배하며 그분을 찬양했다. 그는정치가요 용사요 또 시인이었다. 그의 시편 속에는그 자신의 솔직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고 또한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의 말씀들이 들어 있다. 시편들은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이 헌신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일에 큰 역할을 했다. 비록 그가 베들레헴의골짜기와 시온의 언덕에서 히브리말로 시편을 지었지만 그것들은 후에 많은 나라의 말로 번역되어 전세계 크리스천들에게 용기와 희망과 인내를 주었다.또한 그는 성전에서의 경배 의식에 시편들을 도입함으로써 이전의 의식을 더욱 보강시켰다. 시편 참조.다윗은 왕으로서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다. 그가정복하여 세운 왕국은 그리스도의 왕국의 그림자가되며 사실 그의 핏줄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메시아로 오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궁극적으로 다윗의 왕좌에 앉아 온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아드리아 바다 동쪽에 있는 유럽의 지방. 바울은 여기로 디도를보내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였다(딤후4:10).
소아시아 남동부에 있던길리기아의 유명한 도시. 사도 바울의 1, 2차 선교여행 지도 참조(42). 다소는 지중해에서 10킬로미터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그리스 철학과 문학이 발달해서 한때는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와 비길 만하기도하였고 아우구스투스의 명령에 따라 자유 도시가 되어 번영을 누렸다. 사도 바울은 다소에서 출생한 유대인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가말리엘의 지도를 받기전에 여기서 초등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여기거하던 그의 선조들은 어떤 식으로 로마의 시민권을취득하였다(행9:30; 11:25; 22:3).
북쪽으로갈라디아, 동쪽으로 갑바도기아, 남쪽으로 길리기아와 맞닿고 있던 소아시아의 작은 지방. 이 지방은평지였으나 비옥하지는 않았으며 여기에는 이고니움, 더베, 루스드라 같은 도시가 있었다(행14:6).
야곱의 여섯째 아들. 그는 라헬의 여종인 빌하의 아들이며(창30:8) 성경에는 그에 관한 기사가 많지 않다.그는 네 명의 아들을 두었으며(창46:24) 족장 야곱은 자기 아들들에게 축복하면서 “납달리는 풀어 놓은 암사슴이며 아름다운 말들을 내는도다.”라고 말하였다(창49:21). 납달리 지파는 북부 팔레스타인의비옥한 땅을 차지하였으며 그 동서남북에는 요르단상부와 디베랴 바다, 아셀 지파, 납달리의 산들, 레바논 산지 등이 있었다(수19:32-39; 20:7).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납달리 지파 지도 참조(19, 24). 그들은 다윗이 왕에 취임할 때 군대와 함께 참여하였고(대상12:34) 재판관들의 전쟁 때에도 명예롭게 언급되고 있다(삿1:33; 5: 18; 6:35; 7:23). 그들은 시리아사람들에 의해 기세가 꺾였고( 왕상15:20) 아시리 아왕국으 로 잡 혀간 첫 번째 포로가 되었다(왕하15:29;사9:1). 우리 주님은 이 지역의 남부에서 많은 시 간을 보 내셨다(마4:13 -15).
나홀의 아들. 그는 나홀과 하란과 아브라함의 아버지였고(창11:24)갈대아의 우르에서 72세에 아브라함을 낳았다. 데라와 그의 가족은 메소포타미아의 하란까지 함께 갔고(창11:31-32) 그는 거기서 205세에 죽었다. 성경은 데라가 우상숭배를 했거나 혹은 참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겼음을 보여 준다(수24:2, 14). 어떤 이들은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이렇게 행하였으나 후에하나님의 은혜로 우상숭배가 헛된 줄을 알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것으로 믿는다.
I. 야곱과 레아의 셋째 아들. 그는 메소포타미아에서 태어났으며 후에세 아들과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을 낳았다(창29:34;출6:16-20). 그는 자기 누이 디나의 일로 인해 세겜사람들을 무참히 살육하고 그 결과 야곱은 임종 때에 그의 후손에게 재앙이 있을 것을 예언하였다(창34:1-31; 49:5-7). 그러나 후에는 그들이 주님의 편이 되어 모세는 그들을 축복하였다(출32:26-29; 신33:8-11). 레위 지파는 야곱의 예언에 따라 이스라엘 전체에 흩어졌고 다른 지파와 달리 상속물이 없었다. 다만 십일조와 첫 열매와 헌물과 희생물의 일부 등이 그들의 소유가 되었다. 레위 사람들 참조.II. 사도 마태 역시 레위로 불렸다. 마태 참조.
모세가 광야에서 놋으로 만든 뱀에게 히스기야가 붙여준 이름(민21:8). 이스라엘 백성은 유다 왕국의 말기까지 이 놋 뱀을 보존하였으며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것을 우상화했으므로 히스기야는 그것을 불사르고 그 이름을 느후스탄 즉 값어치 없는 한 조각의 놋이라고 하였다(왕하18:4). 사람들이 무언가를기념하기 위해 사용하는 유품 등은 오히려 그 반대의 효과를 가져오기 쉬우며 눈에 보이는 형상들은주님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가리는 경우가 많다(요3:14-16).
I. 스룩의 아들, 데라의 아버지(창11:22-25; 눅3:34).II.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과 하란의 형제. 그는갈대아의 우르에서 자기 조카인 밀가와 결혼하였고(창11:26, 29) 그 뒤 하란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보인다(창24:10; 27:43). 그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었고 그 중에 하나는 리브가의 아버지 브두엘이었다(창22:20-24).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페니키아의 상업, 재물, 권력의 중심지. 이곳은여호수아가 아셀 지파에게 준 지역의 경계 안에 있었으나(수19:29) 이스라엘은 이곳을 한 번도 정복하지 못했다. 두로는 시돈의 누이뻘 되는 도시였으나곧 시돈을 누르고 페니키아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가되었다. 모세는 이 도시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다윗이후로 이곳은 구약에 많이 나온다. 다윗과 두로 왕히람 그리고 후에 솔론 사이에는 동맹 관계가 있었다. 두로의 왕과 백성들은 다윗의 집과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삼하5:11;왕상5:1-18; 대상14:1-17; 대하2:3; 9:10).한편 아합은 페니키아의 공주인 이세벨과 결혼함으로써 북 왕국 이스라엘에 엄청난 저주 와 재난을가져왔는데 그 이유는 두로 사람들이 바알과 아스다롯 을 섬기며 이교주 의의 모든 악에 익숙해 있었기때문이다. 고대 역사는 두로가 해양 제국을 만 들고식민지를 개척 하여 지 중해와 대서양의 많은 지역에서 부와 명예와 권세를 얻었 음을 보여 준다 . 그 래 서 구약성 경은 두로 사람 들이 교만 하고 사치 하며 이 로 인한 죄 에 빠져 있음 을 지 적한 다 . 한편 느부 갓네살에 의해 두로 가 파 괴 되 는 것 은 이미 사 23 :13; 겔26: 7; 27: 01월 03일 6; 28 :1-1 9; 29:18:00 등에 예 언되 어 있 다 .우 리 주님 은 두 로와 시돈 지역 에 가 서 복 음 을 선 포하셨 으 며(마 15 :21) 여기 에 는 주후 58 년경에 기독교 회 가 세 워 졌다( 행21:3 -7; 비 교 마1 1:00 -21 22) .
대언자 호세아가 주님의 뜻에 따라 음란한 아내 고멜을 취하고 그녀가 낳은 딸에게 상징적으로 지어준 이름. 이것은 주님께서 다시는 이스라엘 민족을긍휼히 여기지 않고 용서하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호1:6, 8). 루하마 참조.
바울과 함께 일하던 동역자. 후에 그는 일이 어려워서 혹은 세상을 사랑하는마음에 사로잡혀 그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떠났다(골4:14; 딤후4:10; 몬24).
I. 벧엘과 아이 근처의 마을(스2:29; 느7:33).II. 르우벤의 도시(민32:38). 이곳은 모압 족속이 점령하여 예레미야의 시대에 지배하였다(사15:2; 렘48:1).III. 모압의 산. 여기서 모세는약속의 땅을 내려다보고 여기서죽었다. 이곳은 아바림 산지의 정상으로 여리고 맞은편에 있었다(신32:49; 34:1-12). 팔레스타인의 산들.IV.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우상(사46:1).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별 신화에서 느보는수성을 나타내며 고대 아라비아 사람들도 이 신을숭배하였다. 갈대아와 아시리아 사람들이 흔하게 이신에게 경배했다는 것은 이 이름이 복합어로 여러인물의 이름에 사용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를들어 느부갓네살, 느부사라단, 느부사스반(렘39:9,13) 등을 보기 바란다.
문자적으로 이 말은 사람과 짐승의 똥을 뜻하며(출29:14; 레4:11; 욥20:7) 상징적으로는 가치 없는 것, 수치거리 등을 뜻한다(렘16:4;빌3:8). 이스라엘 사람들은 짐승의 똥을 거름으로 썼고 가끔씩 말려서 연료로 썼다. 나무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낙타와 나귀의 똥을 거두는 일에주의를 기울였고 그것을 잘게 썬 밀짚과 섞어서 말렸으며 그래서 어떤 곳에서는 집의 벽마다 이것을말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뒤 그들은 그것을 화덕의 연료로 사용했다(겔4:12-16). 대언자 에스겔은 사람의 똥으로 빵을 구워 먹으라는 명령을받았다(겔4:12, 15). 한편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알기 전에 자기에게 이득이 되던 모든 것을 똥(배설물)이라 하였다(빌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