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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후에도 삶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보편적인 질문입니다. 욥은 우리 모두를 위해 말합니다.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욥기 14:1-2, 14). 욥과 같이, 우리 모두는 이 질문에 도전 받아 왔습니다. 죽음 뒤에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는 단순히 존재하지 않게 되는가? 인생은 궁극적으로 개인적 위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 땅을 떠나고 돌아오는 회전문인가? 모든 사람들이 같은 곳에 가게 되는가, 아니면 다른 장소들로 가는가? 실제로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인가?

성경은 죽음 뒤에도 삶이 있을 뿐 아니라, 영원한 삶이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데 이 영원한 삶은 매우 영광스러워,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린도전서 2:9)고 말씀합니다. 육체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 영생의 선물을 주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5).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마땅할 형벌을 받고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삼일 뒤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자신께서 죽음에 대해 승리하셨음을 입증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무셨고,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목격되셨습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인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로마서 4:25)

그리스도의 부활은 문서화가 잘 된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그것의 확실성을 위해 목격자들에게 문의해보라고 도전하였는데, 누구도 그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였습니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초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역시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 뒤의 삶에 대한 궁극적인 증명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살아날 자들, 즉, 수많은 수확물들 가운데 첫 번째 열매이셨습니다. 육체적 죽음은 우리 모두가 관련이 있는 첫 사람인 아담을 통하여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된 모든 자들은 새 생명을 받게 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20-22).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몸을 일으키신 것처럼, 우리의 몸들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6:14).

우리 모두가 궁극적으로 부활한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다 천국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삶에서 각자가 선택해야만 하고, 자신의 영원한 목적지는 그 선택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고 죽음 뒤에는 심판이 있을 것(히브리서 9:27)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서 거부한 자들은 지옥에서의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것입니다(마태복음 25:46). 지옥도 천국과 마찬가지로 단지 어떤 존재의 상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실제적인 장소입니다. 불의한 자들이 끝이 없고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를 겪게 될 장소입니다. 지옥은 그곳에 거하는 사람들이 밤과 낮으로 영원히 고문 받게 될(요한복음 20:10) 무저갱(누가복음 8:31; 요한계시록 9:1), 불 못, 그리고 유황으로 타는 곳으로 묘사됩니다. 지옥에는 격렬한 슬픔과 분노를 나타내는 울음과 이를 갊이 있을 것입니다(마태복음 13:42).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사악한 길들로부터 돌아와서 살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에스겔 33:1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복종을 강요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거절하기로 선택한다면, 그분은 그분을 영원히 떠나 사는 결정을 받아들이십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시험, 즉, 앞으로 올 것에 대한 준비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 죽음 후의 삶은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생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불 못에 영원히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죽음 뒤에 영생을 얻고 영원한 불 못을 피할 수 있을 까요? 오직 한 길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한복음 11:25-26).

이 거저 주시는 영생의 선물은 모든 자들에게 주어질 수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한복음 3:36). 죽은 뒤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영원한 목적지가 결정됩니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죄값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충분히 치러졌다고 믿는다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임재 안에서, 이 땅에서의 의미 있는 삶뿐만 아니라, 죽음 뒤의 영생 또한 우리는 보장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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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보좌 심판은 요한계시록 20:11-15에 묘사되고 있으며 믿지 않는 자들이 불못에 던져 지기 전의 마지막 심판입니다. 요한계시록 20:7-15로부터 우리는 이 심판이 천년왕국 후 그리고 사탄, 짐승, 그리고 거짓 선지자가 불 못으로 던져진 후에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요한계시록 20:7-10). 펼쳐진 책들(요한계시록 20:12)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모든 사람들의 행위들의 기록을 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말하여 지고, 행하여진 모든 것, 또는 생각 된 것 조차 아시기 때문에, 이에 따라 각 자에게 상이나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시편 28:4; 62:12, 로마서 2:6, 요한계시록 2:23; 18:6; 22:12).

또한 이때, 다른 책이 열리는데, 생명책이라고 불립니다(요한계시록 20:12). 이 책은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생을 물려 받을 것인지 혹은 불못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행위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를 받았고 그들의 이름들은 세상의 창조 때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요한계시록 17:8). 성경으로부터 우리는 또한 죽은 자들이 “그들이 행했던 것들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고”, “누구든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질 것(요한계시록 20:15)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 모두에 대한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성경의 많은 글들에서 분명하게 확인이 됩니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그리스도 앞에 서서 자신들의 행위들에 대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백보좌 심판이 최후의 심판이라는 것이 매우 분명하지만, 그것이 성경에 언급된 다른 심판들과, 특히 백보좌 심판에서 누가 심판을 받을 것인 지와 연관되어,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의견을 달리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다가 올 세 가지의 다른 심판들을 드러내고 있다고 믿습니다. 첫 번째는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심판, 즉, 나라들의 심판입니다(마태복음 25:31-36). 이것은 환란 이후 천년왕국에 앞서 일어납니다; 이것의 목적은 누가 천년왕국에 들어갈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이 두 번째 것은 믿는 자들의 행위들에 대한 심판인데, 자주 “그리스도의 심판대[bema]”로 묘사됩니다(고린도후서 5:10). 이 심판에서,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행위들이나 하나님께 대한 봉사의 정도에 따라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세 번째 것은 천년 왕국이 끝날 때의 백보좌 심판입니다(요한계시록 20:11-15). 이것은 믿지 않는 자들의 심판인데, 여기서 그들은 그들의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 불못에서의 영원한 형벌이 내려집니다.

다른 기독교인들은 세 가지 심판들 모두가 세 개의 분리된 심판들이 아닌 동일한 마지막 심판을 말한다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서, 요한계시록 20:11-15의 백보좌 심판은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 둘 다가 심판을 받을 때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이름들이 생명책에 기록이 된 사람들은 그들이 받거나 잃을 상급들을 결정하기 위해 그들의 행위들이 심판 받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이름들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은 불 못에서 받게 될 형벌의 정도를 결정하기 위해 그들의 행위들에 따라 심판 받을 것입니다. 이 견해를 고수하는 사람들은 마태복음 25:31-46이 백보좌 심판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또 다른 묘사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이 심판의 결과가 요한계시록 20:11-15의 백보좌 심판 뒤에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양들(믿는 자들)은 영생으로 들어가는 반면, 염소들(믿지 않는 자들)은 “영벌”에 던져집니다(마태복음 25:46).

백보좌 심판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가지든, 다가 올 심판(들)에 관한 사실들을 결코 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판장이 되시고, 모든 믿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심판 받을 것이며,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행했던 행위들에 따라 처벌 받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에게 진노를 쌓고 있고(로마서 2:5)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 하실 것임(로마서2:6)을 성경은 매우 분명히 합니다. 믿는 자들 역시 그리스도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이 우리에게 전가되었고 우리의 이름들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처벌을 받지 않고 우리의 행위들에 따라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로마서 14:10-12은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며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 자백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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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히브리서 12:1의 묘사를 통해 천국의 사람들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우리를 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이 “증인들”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열된 믿음의 영웅들인데, 우리가 그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 일부 성경 해석자로 하여금 그러한 영웅들(그리고 아마도도 다른 사람들을 포함)이 천국으로부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이해하게끔 만듭니다.

사람들이 천국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려다 보고 있다는 생각은 대중적 문화에 있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우리와 해어진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관념을 우리가 선호할 수는 있겠으나, 이것은 히브리서 12:1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의 근거 위에, 저자는 몇 가지 실용적인 교훈들을 작성하기 시작합니다(“그렇기 때문에”의 의미를 함축한 12장은 “이러므로”란 단어로 시작됩니다). 이 “증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자신들의 믿음에 대한 소명을 받은 11장의 사람들이며, 천국에는 구름과 같이 둘러싼 허다한 그들이 존재합니다. 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그들이 “증인들”이냐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의 적절한 해석은 “구름과 같이 허다한 그들”을 형성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믿음으로 사는 삶의 가치를 증거하는 증인들로 풀이되어야 합니다. 구약의 이야기들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을 선택한 것에 대한 축복을 증언합니다. 히브리서 12:1의 서두 부분을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자면, “우리는 행해지고, 사실이며, 검증된 믿음의 아주 많은 사례들을 가졌기 때문에...“ 그래서, 증인들은 천국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마치 이 땅 위에 사는 우리의 삶들이 매우 흥미로워서 라든가 또는 할 일이 없어서)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영속적인 사례들을 보이고 우리보다 먼저 간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기록은 믿음과 하나님과 진리를 증언합니다.

히브리서 12:1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우리보다 앞서간 믿는 자들의 믿음과 인내로 인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믿음의 경주에서 이탈되지 않도록 격려를 받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라합과 기드온 등의 사례를 따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가복음 16:28에 있는 부자가 말한 그의 형제들에 대한 언급을 들어 떠난 영혼들(적어도, 하데스-구천에 있는)이 땅 위의 일들을 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 단락은 그 부자가 그의 형제들을 볼 수 있다고 전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형제들이 있다는 것과 그 형제들이 믿지 않은 자들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요한계시록 6:10을 증거의 글로 삼습니다: 환난의 순교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죽음에 대해 복수해 주시기를(그들의 피를 갚아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다시 한번, 이 단락은 순교자들이 땅 위의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에 관하여는 아무런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단락은 단지 그들이 공평함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주님께서 조치를 취해주시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말씀 할 뿐입니다.

성경이 천국의 사람들은 우리를 내려다 볼 수 없다고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지는 않으므로, 우리는 독단적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천국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천국의 영광을 즐기는 것과 같은 다른 일들에 몰두할 것 같아 보입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내려다 볼 수 있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경주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의 인정을 바란다거나 그들에게 찬사 듣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2:2은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에 초점을 맞춰 줍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 누구도 아닌, 예수님만이 우리의 복스러운 소망이십니다(디도서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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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지옥의 존재를 믿는 것보다 천국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성경에 따르면, 지옥은 천국이 존재하는 것처럼 실제로 존재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죽음 이후에 지옥으로 보내진다고 성경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가르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대해 죄를 범하였습니다(로마서 3:23). 그 죄에 대한 공정한 형벌은 죽음입니다.(로마서 6:23). 우리의 모든 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반하는 것이고(시편 51:4), 하나님께서는 무한하고, 영원한 존재이시기 때문에, 죄에 대한 형벌 또한 무한하고 영원해야 합니다. 지옥은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얻었던 이 무한하고 영원한 죽음입니다.

악하게 죽은 자들의 지옥에서의형벌은 성경을 통틀어 다음과 같이 묘사됩니다: “영원한 불”(마태복음 25:41), “꺼지지 않는 불”(마태복음 3:120), “수욕과 무궁한 부끄러움”(다니엘 12:2),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는 곳”(마가복음 9:44-49), “ 고통”과 “불 구덩이”의 장소”(누가복음 16:23, 24), “영원한 멸망(데살로니가후서 1:9),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는 곳”(요한계시록 14:10, 11), 그리고 “사악한 자들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 “불과 유황의 못”(요한계시록 20:10).

천국에서의 의인들에 대한 축복처럼 지옥에서의 악한 자들에 대한 형벌은 끝이 없습니다. 예수님 자신께서는 지옥에서의 형벌은 천국에서의 삶처럼 영원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십니다(마태복음 25:36). 사악한 자들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를 겪습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완벽한 공의를 인지하게 될 것입니다(시편 76:10).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형벌이 정당하며 자신만이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신명기 32:3-5). 그렇습니다. 지옥은 진짜 존재합니다. 그렇습니다. 지옥은 영원토록, 끝도 없이 지속되는 고통과 형벌의 장소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이런 영원한 운명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요한복음 3:16, 18,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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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4:10-12d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고린도후서 5:10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맥락 상, 이 두 성경 구절들은 믿지 않는 자들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자신들의 삶들에 대해 그리스도께 고백하는 믿는 자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구원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우리들 대신한 그리스도의 희생(요한일서 2:2)과 그분을 믿는 우리의 믿음(요한복음 3:16)에 의해 결정이 됩니다. 우리의 모든 죄들은 용서받았고, 우리는 결코 그 죄들 때문에 정죄 받지 않을 것입니다(로마서 8:1).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들을 심판하는 것으로 보기 보다는, 우리의 삶들에 대한 보상을 하시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 같이, 우리는 우리 자신들에 대해 자백을 해야 합니다. 이것의 일부는 분명히 우리가 범했던 죄들에 대해 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의 주요한 관심사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신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그리스도를 충실하게 섬겼느냐에 근거 해서 보상 받게 됩니다(고린도전서 9:4-27; 디모데후서 2:5). 우리가 심판 받게 될 것들의 일부는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상의 대 명령을 얼마나 잘 수행했었는지(마태복음 28:18-20), 우리가 얼마나 죄 가운데 승리했었는지(로마서 6:1-4),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우리의 혀들을 잘 통제했었는지(야고보서 3:1-9). 성경은 믿는 자들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충실히 섬겼는지에 근거해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면류관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고린도전서 9:4-27; 디모데후서 2:5). 다양한 면류관들이 디모데후서 2:5; 4:8; 야고보서 1:12; 베드로전서 5:4; 요한계시록 2:10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 1:12은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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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천국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그들보다 먼저 죽은 모든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원 속에서, 우리들의 친구들과 가족들을 보고, 알고, 그들과 함께할 넉넉한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천국에서 우리의 주요한 관심사항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천국의 경이로움을 즐기는 데에 훨씬 더 열중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재회는 우리 삶들 속에서의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 그분의 경이로운 사랑, 그리고 그분의 기적들에 대한 이야기로 더 가득 채워질 것 같습니다. 우리는 더욱 더 기뻐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믿는 자들, 특히 우리가 이 땅에서 사랑했던 사람들과 함께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사후에 사람들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사울왕은 엔돌의 마녀가 사무엘을 죽음의 영역으로부터 불러 올렸을 때 사무엘을 알아보았습니다(사무엘상 28:8-17). 다윗의 젖먹이 아들이 죽었을 때, 다윗은 표명했습니다: “지금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사무엘하 12:23). 다윗은 자신의 아들이 아기일 때 죽었던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천국에서 자기 아들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6:19-31에서는, 아브라함, 라자로, 그리고 부자는 죽은 후에도 모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모 되셨을 때, 모세와 엘리야는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마태복음 17:3-4). 이런 사례들을 보면, 성경이 우리가 죽은 후에도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천국에 도작하면, “그(예수님)와 같이 될 것”이라고 표명합니다: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한일서 3:2).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린도전서 15:49, 53).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그분을 알아 보았습니다(요한복음 20:16, 20; 21:12; 고린도전서 15:4-7). 예수님의 영광체(영화롭게 되신 몸)를 알아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영화롭게 된 몸들도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천국의 영광스러운 측면이지만, 천국은 사람보다 훨씬 더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실 곳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재회해서 그들과 함께 영원토록 하나님을 숭배한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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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천국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느냐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은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의 자세한 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말의 사건들 이후에, 지금의 하늘과 땅은 허물어 질 것이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영원히 거할 장소는 새 땅일 것입니다. 새 땅은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입니다. 바로 이 새 땅에 새로운 예루살렘, 천국의 도시가 자리할 것입니다. 이 새로운 땅 위에 진주로 된 문들과 금으로 된 길들이 자리하게 될 것입니다.

천국(새 땅)은 우리가 영광스럽게 된 육체를 가지고 거하게 될 물리적인 장소입니다.(고린도전서 15:35-58). “구름에 둘러싸인” 천국의 개념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천국 주위의 공중을 떠다니게 될 것”이라는 것 또한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믿는 자들이 경험하게 될 천국은 우리가 거하게 될 새롭고 완전한 행성일 것입니다. 새 땅은 죄, 악함, 질병, 고통,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의 지구와 비슷하든지, 아니면 아마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가 죄의 저주가 없게 재 창조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새 하늘은 어떻습니까? 고대인의 사고에서는, “천국”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영역뿐만 아니라, 하늘과 우주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1이 새 하늘을 지칭할 때, 그것은 온 우주(새 땅, 새 하늘, 새 우주)가 창조되어 질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리적이든 영적이든, 우주 안의 모든 것들은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가지며, 하나님의 천국 역시 재 창조될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새 하늘에 접근할 수 있을까요? 가능하지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천국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구체화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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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하나님의 본성, 사람의 본성, 죄의 본성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를 가진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타락한 죄 많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개념은 파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친절하고 자비로운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그분의 다른 모든 속성들을 능가하고 덮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친절하시며 자비가 풍성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거룩하며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너무나 거룩하기 때문에 죄를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사악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사 5:25; 호 8:5, 슥 10:3).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분이 모든 모양의 죄를 미워하시는 분임을 알려줍니다(잠 6:16-19). 그분은 자비가 많으시지만, 그분의 자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6-7).

인류는 죄에 의해 부패하였고, 죄는 항상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대항합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통죄를 짓고 우리아를 살해한 후에 흥미로운 기도로 응답했습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시 51:4). 다윗이 밧세바와 우리아에게 죄를 범한 후에 그는 어떻게 하나님께만 죄를 범했다고 주장할 수 있었습니까? 다윗은 모든 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고 무한하신 존재입니다(시 90:2). 결과적으로 모든 죄는 영원한 형벌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완전하며 무한한 성품은 우리의 죄에 의해 모독을 당하셨습니다. 비록 우리의 유한한 생각으로는 우리의 죄가 시간적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시간의 영역에서 벗어나시는 하나님께는 그분이 미워하시는 죄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영원히 그분 앞에 있고, 그분의 거룩한 공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보다 이 사실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완벽한 예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죽었고 나사로는 낙원에 들어간 반면, 부자는 지옥에 갔습니다(눅 16 장). 물론 부자는 자신의 죄가 그의 생애 동안에만 저질러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는 결코 “어떻게 내가 여기에서 끝났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옥에서는 결코 그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정말로 지옥에 합당한가? 이것은 좀 너무한 것 아닙니까? 정도가 지나친 것 아닙니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누군가가 아직 살아 있는 그의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의 운명에 대해 경고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 부자와 마찬가지로 지옥에 있는 모든 죄인은 자신들이 그곳에 합당하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습니다. 각 죄인은 자기 죄에 대해 완전히 알고 정확하게 의식하고 있으며 그의 예민한 양심은 지옥에서 그를 고문합니다. 즉, 죄인은 자기 죄를 완전히 알게 되고 그 이후 단 한 순간의 위안도 없이 끊임없이 비난하는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지옥에서 겪는 고문입니다. 죄책감은 수치와 영원한 자기 증오를 낳을 것입니다. 부자는 그의 일생 동안의 죄에 대해 영원한 형벌이 정당하며 합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코 지옥에서 항의하거나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저주, 영원한 지옥 및 영원한 형벌의 현실은 무섭고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지옥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어둡게 들릴지 모르지만 좋은 소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요 3:16) 우리가 지옥에서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벧후 3:9).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공평하고 의롭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반드시 처벌하셔야 합니다. 누군가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큰 자비와 사랑 안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친히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위해 형벌을 치르실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무한한 하나님이며 사람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죽음은 무한한 죽음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죽음은 우리의 무한한 죄의 빚을 지불하심으로써 우리는 지옥에서 영원히 죄값을 치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고후 5:21).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고 그리스도의 희생에 기초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한다면, 우리는 구원 받고 용서받고 깨끗하게 되고 하늘에서 영원한 집을 약속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여 구원의 수단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분의 영생의 선물을 거부한다면, 그 결정의 영원한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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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묘사된 천국은 실제 장소입니다. "하늘"이라는 단어는 신약에서만 276번 발견됩니다. 성경은 세 개의 하늘을 언급합니다.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지만" 그는 거기에서 경험한 것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고후 12:1-9).

만일 셋째 하늘이 있다면, 또 다른 두 개의 하늘이 있어야 합니다. 첫 번째 하늘은 구약에서 "하늘"또는 "궁창"으로 가장 자주 언급됩니다. 이것은 새들이 날아 다니는 구름이 있는 하늘입니다. 두 번째 하늘은 별, 행성 및 다른 천체가 거하는 우주 공간입니다(창 1:14-18).

그 위치가 밝혀지지 않은 셋째 하늘은 하나님의 거처입니다. 예수께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하늘에 처소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 14:2). 천국은 또한 구속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죽은 구약 성도들의 목적지입니다(엡 4:8).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결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요 3:16).

사도 요한은 하늘의 도성을 보고 알리는 특권을 누렸습니다(계 21:10-27). 요한은 하늘(새 땅)이 하나님의 현존인 "하나님의 영광"(계 21:11)을 소유하고 있음을 목격했습니다. 천국에는 밤이 없고 주님 자신이 빛이기 때문에 태양과 달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계 22:5).

도성은 값 비싼 보석과 맑은 벽옥으로 가득합니다. 천국은 12개의 문(계 21:12)과 열두 기초 (계시록 21:14)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덴 동산의 낙원이 회복됩니다. 생명수의 강이 자유롭게 흐르고, 만국을 치료하는 잎사귀를 내고 달마다 열매는 맺는 생명 나무가 또 다시 허락됩니다(계 22:1-2). 요한이 천국을 묘사할 때 얼마나 웅장한지, 천국의 실체는 유한한 인간의 능력으로 묘사하기가 불가능합니다(고전 2:9).

천국은 "더 이상 없는 것들”의 장소입니다. 더 이상 눈물도 고통도 없고 슬픔도 없을 것입니다(계 21:4). 죽음이 정복될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분리가 없을 것입니다(계 20:6). 천국에서 가장 좋은 점은 우리 주와 구세주가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요일 3:2). 우리는 우리로 하여금 영원토록 하늘에서 주와 함께 하며 즐거워할 수 있도록 우리를 사랑하고 자신을 희생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을 직접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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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진짜로 존재하는 장소입니다. 성경은 천국이 하나님의 보좌라고 말합니다(사 66:1; 행 7:48-49; 마 5:34-35).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이 땅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다음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막 16:19; 행 7:55-56).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습니다”(히 9:24).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보다 앞서 가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하늘에서 살아계시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참된 장막에서 대제사장으로 섬기시며 현재의 사역을 담당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집에 많은 방이 있으며 우리보다 먼저 가셔서 우리를 위한 장소를 마련하시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어느 날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우리를 그분이 계신 천국으로 데려가시겠다는(요 14:1-4) 말씀을 확신합니다. 천국에 우리의 영원한 집이 있다는 믿음은 예수님의 분명한 약속에 근거한 것입니다. 천국은 가장 확실한 실제 장소입니다. 천국은 참으로 존재합니다.

사람들이 천국의 존재를 부인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 자신의 마음의 가장 깊은 갈망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천국의 소망을 붙들고 낙심하지 말라고 격려합니다. 비록 우리는 이 땅에서 탄식할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우리 앞에 있는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있으며 그곳에 이르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고후 5:1-4).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 생에서의 어려움과 실망을 견디기 위해 천국에 있는 영원한 집을 바라보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하나님이 그분의 존재에 대한 지식을 사람들의 마음에 두신 것처럼(롬 1:19-20), 우리는 천국을 바라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무수한 서적들과 노래와 예술 작품들의 주제는 천국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죄는 천국에 가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천국은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거처이므로 죄는 그곳에 없으며 용납될 수도 없습니다. 다행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를 주셨습니다. 그 열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요 14:6). 그분을 믿고 죄의 용서를 구하는 모든 사람들은 천국의 문이 그들을 위해 활짝 열려있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영원한 집의 장래의 영광이 우리 모두에게 충실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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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천국)에 여러 층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가장 가까운 성경구절은 고린도후서 12장 2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로부터 하늘은 세 개의 층이 있음을 가리킨다고 해석합니다. 즉, 최고로 헌신된 그리스도인들” 또는 최고의 영성에 도달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층이 있고,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층이 있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성경의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세 개의 하늘이 있다거나 심지어 하늘에는 세 개의 층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많은 고대 문화를 보면, 사람들은 하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세 개의 다른 ‘영역’을 묘사합니다. 즉, 창공, 궁창, 그리고 영적인 하늘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를 ‘영적인’ 하늘로 데려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영역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서 자연 우주를 초월하는 곳입니다. 하늘에 여러 층이 있다는 개념은 부분적으로 ‘단테의 신곡’(Dante’s The Divine Comedy)에서 온 것으로서 시인은 천국과 지옥을 모두 9개의 다른 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곡’은 허구의 작품입니다. 천국의 다른 층의 개념은 성경에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늘에서 다른 상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상에 관해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행한 것에 근거해서 상을 나누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신자들에게 상을 주는 때가 있을 것이며 그 상은 사람에 따라 어느 정도 다르다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결케 하는 불을 견뎌낸 공적들만이 영원한 가치를 가지며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값진 공적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터 위에 세워질 것들로서 "금, 은, 보석"(고전 3:12)으로 불립니다. 한편, 상을 받지 못하는 공적들은 "나무, 풀, 짚"이라고 불립니다. 그 공적들은 악한 행위가 아니라 영원한 가치가 전혀 없는 천박한 활동들입니다. 상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각 신자들의 삶이 평가된 후에 나누어지게 될 것입니다. 신자들의 ‘심판’은 결코 죄에 대한 처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우리에 대하여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8:1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생각을 하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그리스도인은 결코 형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만 구세주의 발 앞에 던질 수 있는 면류관의 상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늘은 여러 다른 층이 없지만, 여러 다른 차등의 보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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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형벌의 수준이 다르다는 개념은 주로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가 1308년에서 1321년 사이에 쓴 ‘신곡’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시에서 로마 시인 버질은 지옥의 9개의 원을 통해 단테를 인도합니다. 동그라미는 동심원이며 사악함은 점진적으로 증거하면서 지구의 중심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곳에는 사탄이 속박되어 갇혀 있습니다. 각 원의 죄인들은 그들의 범죄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형벌을 받습니다. 각 죄인은 그가 저지른 주된 죄로 인하여 영원한 고통을 겪습니다. 단테에 따르면 이 동그라미들은 처음 동그라미로부터 시작되는데, 그곳에는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덕이 있는 이방인들이 거하고 있고, 지옥의 중심은 궁극적인 죄, 곧 하나님께 반역한 죄를 지은 자들을 위해 마련된 곳입니다.

성경에는 지옥의 차등 형벌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다른 수준의 처벌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계시록 20장 11-15절에서 백성들은 "책에 기록된 대로 그들의 행위에 따라”(계 20:12) 심판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심판을 받는 모든 사람들은 불못에 던져집니다(계 20:13-15). 그렇다면 아마 심판의 목적은 지옥에서 얼마나 심각한 형벌을 받을지에 대한 결정일 것입니다. 어떤 경우이든 불못에서 덜 뜨거운 부분으로 던져지는 것은 영원히 그곳에 있게 된 자들에게는 별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지옥에 다른 수준의 처벌이 있을 수 있다는 또 다른 지시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발견됩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7-48).

지옥이 어떠한 차등 형벌을 포함하든, 우리는 지옥을 피할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성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옥에서 끝마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사람들이 물어야 할 질문은 "제가 어느 길에 있습니까?"입니다. 넓은 길에 서있는 ‘많은’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 모두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인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자신이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그것이 바로 정확하게 그분이 의미하신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길을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파멸의 넓은 길에 서있는 것이며, 지옥에 여러 형벌의 차등이 있든 말든 그곳에서의 고통은 끔찍하며 무시무시하고 영원히 피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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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수면설"이란 사람이 사망한 후 부활과 최종 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사람의 영혼이 ‘잔다’는 믿음입니다. 영혼수면설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이 죽음과 관련하여 사람을 ‘잠자는’ 것으로 묘사할 때(눅 8:52; 고전 15:6), 그것은 문자 그대로 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잠자는 것은 시체가 잠자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죽음을 묘사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입니다. 죽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게 됩니다(히 9:27). 신자들에게는 몸을 떠나는 것이 주님과 곧바로 함께 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고후 5:6-8; 빌 1:23). 불신자들에게 죽음이란 지옥에서 영원토록 형벌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눅 16:22-23).

하지만 마지막 부활 때까지 임시적인 천국이 있습니다. 바로 낙원입니다(눅 23:43; 고후 12:4) 또한 일시적인 지옥이 있습니다. 바로 음부(하데스)입니다(계 1:18, 20:13-14).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낙원이나 음부(하데스)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영혼이 천국이나 음부에 있는 동안 그 사람의 몸은 "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활 때에 이 몸은 "깨어나" 천국에서든 지옥에서든 영원히 소유할 몸으로 변화됩니다. 낙원에 있던 사람들은 새로운 하늘과 새 땅으로 보내질 것입니다(계 21:1). 음부(하데스)에 있던 사람들은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계 20:11-15). 이 둘은 모든 사람들의 최종적이고 영원한 목적지로서 전적으로 그 사람이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영혼수면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그리스도 형제파 등 여럿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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