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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노릇은 힘들고 도전적인 모험일 수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하는 것 중에 가장 보람되고 성취감이 드는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성공적으로 하나님의 남자와 여자로 키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많은 언급들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것은 자녀들에게 하나님 말씀에 관한 진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더불어 그분의 명령에 우리 자신들이 순종함으로 경건한 본보기가 되면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신명기 6:7-9의 명령과 똑같이 가르침에 있어, 신명기 6:7-9의 명령에 주의를 기우려야 합니다. 이 문장은 그러한 가르침의 지속적인 특성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항상 수행되어야 합니다 – 집에서나, 길에서나, 밤이나, 아침이나. 성경적 진리는 우리 가정들의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명령들의 원칙들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일요일 아침이나 기도만을 위해 따로 남겨 두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게 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직접적인 가르침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운다 할지라도, 그들은 우리를 바라봄으로써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우리의 역할들을 먼저 인지해야 합니다. 남편들과 아내들은 상호간에 서로 존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에베소서 5:21).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질서를 위해 위계를 세우셨습니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린도전서 11:3). 우리는 아내가 그녀의 남편보다 열등하지 않은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보다 열등하지 않으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에 대한 순종 없이는, 질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가정의 머리로서 남편의 역할은 그리스도께서 희생적으로 교회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자신의 아내를 자기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에베소서 5:25-29).

이러한 사랑의 리더십에 응하여, 아내가 자신의 남편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에베소서 5:24; 골로새서 3:18). 아내의 주요한 책임은 자신의 남편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지혜롭고 정결하게 살고, 가정을 돌보는 것입니다(디도서 2:4-5). 여성들은 천성적으로 남성들보다 자녀들을 더 잘 양육하는데, 이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의 주된 관리자들로 계획되었기 때문입니다.

징계와 훈계는 부모 노릇에 있어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잠언 13:24은 말씀합니다: “징계를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징계가 없는 가정들에서 자란 자녀들은 자신들을 원하는 곳이 없고 자신들이 가치가 없다고 느낍니다. 이들은 방황하고 자기의 절제가 부족하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반항하고 하나님을 포함한 그 누구의 권위도 존중하지 않게 됩니다. “네가 네 아들에게 소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의 생명을 망칠찌라”(잠언 19:18). 동시에, 징계는 사랑과 균형이 맞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이 원망을 품거나, 낙심하거나, 반항적으로 자랄 수가 있습니다(골로새서 3:21). 하나님께서는 징계가 행해질 때 그것은 고통스럽지만(히브리서 12:11), 대신에,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사랑을 담은 징계를 하면 그것은 자녀에게 엄청난 유익이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

자녀들이 어릴 때, 그들을 교회의 가족으로 그리고 사역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규칙적으로 성경을 믿는 교회에 참석하고(히브리서 10:25), 당신이 말씀을 공부하는 것을 자녀들로 하여금 보게 하며, 또한 자녀들과 함께 말씀을 공부하십시오. 자녀들과 말씀을 살펴보면서 그들 주위의 세계에 대해 그들과 의견을 나누고, 일상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가르칩시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언 22:6). 좋은 부모가 된다는 모든 것은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만을 숭배하는 당신의 모범을 따라 할 자녀들을 키운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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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서 가장 큰 계명은 이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5). 2절로 돌아가면,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말씀합니다. 신명기 6:5의 다음에서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아버지가 그의 자녀들과 자신들의 영적 성장과 안녕을 위해 주님의 방식과 말씀으로 자녀들을 가르치는 데에 부지런해야 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성서의 계명들에 순종하였던 아버지는 그냥 그대로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를 잠언 22:6으로 이끕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가르치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녀에게 주는 첫 번째 지시인데, 즉, 조기교육을 가리킵니다. 가르치는 것은 그들이 의도하는 삶의 방식을 자녀들에게 명확하게 하기 위해 계획됩니다. 자녀의 조기 교육을 이런 방식으로 시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에베소서 6:4는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두 방식 모두로 말하여진, 아버지에 대한 지침을 요약한 것입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 구절의 부정적인 부분은 아버지가 그의 혹독함, 부당함, 편애, 또는 부당한 권위의 행사로 말미암아 자신의 자녀들의 부정적 성향을 조성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자녀를 향한 거칠고 무리한 행동은 오직 마음에 악을 육성하게 할 것입니다. “노엽게 하다”라는 단어는 “짜증나게 하다, 몹시 화나게 하다, 불쾌하게 만들다, 또는 자극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잘못된 생각과 잘못된 방법에 의해 야기됩니다 – 혹독함, 부당함, 엄격함, 거침, 잔인한 요구들, 불필요한 규제, 그리고 독재적인 권위에서 나오는 이기적인 고집. 이렇게 노엽게 하는 것은, 자녀들이 어쩌면 그들의 부모들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면서, 역반응, 자녀들의 애정을 죽임, 거룩함에 대한 그들의 갈망을 감소시키는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현명한 부모는 사랑과 온유로, 순종을 호감이 가고 달성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듭니다.

에베소서 6의 긍정적인 부분은 포괄적인 방향으로 표현됩니다 – 아이들을 교육하고, 양육하며,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그들의 행위를 발전시키라. 이것은 교육과 훈육의 전 과정입니다. “훈계”란 단어는 아이들에게 잘못된 것들(구체적으로)과 의무들(책임들)을 생각나게 한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 아버지는 정말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하나의 도구입니다. 명령과 훈계의 전 과정은 하나님께서 명령하고 꾸짖으시는 것이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권위가 아이들의 마음, 생각, 그리고 양심에 지속적이고 즉각적으로 와 닿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인 아버지는 진실과 의무를 결정하는 궁극적 권위로서 자기 자신을 제시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교육의 목표들은 모든 것들이 행해지는데 있어 따라야 하는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을 교사로 그리고 지도자로 삼을 때 가장 잘 달성될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아이가 잘할 때 주기 위한 사과를 회초리 옆에 두라”고 말했습니다. 훈육은 많은 기도와 함께 주의 깊은 관심과 지속적인 훈련으로 행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의한 징벌, 훈육, 그리고 조언은, 책망과 격려 모두를 가져다 주는, “훈계”의 핵심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나온 지시는 기독교적 경험의 학교에서 배우게 되고, 부모에 의해 집행됩니다 – 주로 아버지에 의해, 그러나 또한, 어머니의 관리하에. 기독교적 훈육은 아이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자라고, 부모님의 권위를 존중하며, 기독교적 기준을 알고, 자기 절제의 습관을 가지면서 자랄 수 있게 하는데 필요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디모데후서 3:16-17). 아버지의 첫 번째 책임은 자기 자녀들이 성경에 익숙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아버지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들과 방법들은 각양각색일 것입니다. 아버지가 역할 모델에 충실하면서, 아이들이 하나님의 뜻에 관해 배운 것들은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어디로 가든, 삶의 전반에 걸쳐 그들을 좋은 위치에 처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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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성들에게 있어 주님께서 부여하시는 어머니가 된다는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디도서 2:4-5에 보면 기독교인으로서의 어머니는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라고 가르침을 받고 있고(디도서 2:4-5), 그렇게 해야, 어느 정도는, 자신이 섬기고 있는 주님이자 구세주께 치욕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녀들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시편 127:3-5). 디도서 2:4에서, 헬라어 philoteknos(필레오테크노스) 는 자신들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어머니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말은 특별한 형태의 “어머니 사랑(모성애)”을 나타냅니다. 이 말 속에 흐르는 의미는 우리의 자녀들을 돌보고, 그들을 양육하며, 다정하게 안아 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특별한 선물로서의 각 자녀에게 따뜻한 친구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기독교인인 어머니에게 주어진 몇 가지 명령들입니다.

언제나 접할 수 있어야 함 –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신명기 6:6-7)

관여함 – 서로 소통하고, 토론하며, 생각하고, 함께 삶을 보냄(에베소서 6:4)

가르침 – 성경, 성경적 세계관(시편 78:5-6, 신명기 4:10; 에베소서 6:4)

훈련 – 기술을 개발하고 그/그녀의 장점들(잠언 22:6)이나 영적 은사들(로마서 12:3-8 그리고 고린도전서 12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자녀들 돕는 것.

훈육 – 일관되게, 성실하게, 그리고 확고하게 선을 그으면서, 주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르침(에베소서 6:4; 히브리서 12:5-11; 잠언 13:24, 19:18, 22:15, 23:13-14, 29:15-17).

양육 – 끊임없는 격려, 실패를 받아들임, 수용함, 애정, 조건 없는 사랑의 환경을 제공함(디도서 2:4, 디모데후서 1:7, 에베소서 4:29-32, 5:1-2, 갈라디아서 5:22, 베드로전서 3:8-9).

진실한 모범 – 언행일치의 삶을 사는 것, 자녀들이 경건한 삶의 본질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모범이 되는 것(신명기 4:9, 15, 23; 잠언 10:9, 11:3; 시편 37:18, 37).

성경은 모든 여성들이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고 결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축복으로 어머니들이 된 사람들은 그 책임감을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의 삶들에 있어 독특하고 주요한 역할을 가집니다.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허드렛일이나 불쾌한 일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임신 중에 아이를 배고, 유아기 때는 아이를 먹이고 돌보는 것처럼, 자녀들이 청소년들이거나 십대들이거나 청장년들이거나, 또는 그들 자신들의 자녀들을 가진 성년들이라 할지라도, 어머니들은 또한 자신들 자녀들의 삶에서 계속되는 역할을 합니다. 어머니의 역할이 변화되고 늘어나겠지만, 어머니가 베푸는 사랑, 보살핌, 양육, 그리고 격려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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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들을 어떻게 제일 좋은 방법으로 징계하느냐의 문제는 배우기 어려운 일일 수 있으나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엉덩이 때리기 같은 물리적 징계(체벌)만이 성경이 허락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물리적 징계를 수반하지 않는 “시간 제한” 그리고 다른 처벌들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성경은 물리적 징계가 적절하고, 유익하며, 그리고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결코 아동학대를 옹호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이는 실제로 물리적 손상이 발생할 정도로 물리적 징계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적절하고 절제된 물리적 징계는 좋은 것이고 아이의 안녕과 올바른 육성에 기여합니다.

사실, 많은 성경 구절들이 물리적 징계를 권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언 23:13-14; 다음 또한 참조, 13:24; 22:15; 20:30). 성경은 징계의 중요성을 강하게 강조합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생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겪어야 하고, 이 점은 우리가 어릴 때 더 쉽게 학습됩니다. 징계받지 않은 아이들은 종종 반항적으로 자라고, 권위에 대한 존중이 없으며, 그 결과, 기꺼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따르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하나님 자신도 우리를 바로 세우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며 그리고 우리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회계를 촉구하시기 위해 징계를 사용하십니다(시편 94:12; 잠언 1:7; 6:23; 12:1; 13:1; 15:5; 이사야 38:16; 히브리서 12:9).

올바르고 성경의 원칙에 따라 징계를 적용하려면, 부모는 징계에 대한 성경의 조언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잠언은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잠언 29:15)와 같이 자녀들의 양육에 관한 풍부한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자녀를 징계하지 않은 결과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 부모가 망신을 당합니다. 물론, 징계는 자녀가 잘되기를 목표로 삼아야 하고 자녀들의 학대와 혹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분노나 불만을 배출하기 위해 사용되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징계는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가게 하기 위해 그들을 바로 잡고 훈련하는 데 사용됩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히브리서 12:11). 하나님의 징계는, 부모와 자식간에 마치 그래야 되는 것처럼, 애정 어린 것입니다. 물리적 징계는 지속적인 물리적 손상이나 고통을 유발시키는데 사용되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물리적 처벌은 항상 그리고 즉시, 남자/여자 아이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도록 위로가 뒤따라야 합니다. 이런 순간들이, ‘하나님게서 우리를 사랑 하기 때문에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 같이, 부모로서 우리도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와 같이 한다’는 사실을 자녀에게 가르칠 수 있는 완벽한 때입니다.

물리적 징계 대신에 “시간 제한”과 같은 다른 징계의 형태들이 사용될 수는 없을까요? 어떤 부모들은 물리적 징계에 그들의 자녀들이 잘 반응하지 않음을 발견합니다. 어떤 부모들은 “시간 제한,” 문 밖 출입 금지, 그리고/또는 자녀들로부터 무엇을 빼앗는 것들이 행동 변화를 촉구하는 데 더 효과적인 것을 발견합니다. 정말 그런 경우라면, 어떤 경우라도, 기대하는 행동 변화를 가장 잘 일으킬 수 있는 방법들을 부모는 채택해야 합니다. 성경은 명백히 물리적 징계를 옹호하지만, 경건한 성격 형성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정확한 방법보다, 그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 더 관심을 가집니다.

이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정부가 모든 방식의 물리적 징계를 아동 학대로 분류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부모들은 정부에 보고 되고 그들의 자녀들을 뺏기는 것이 두려워 자녀들의 엉덩이도 때리지 못합니다. 만일 정부가 아이들에 대한 물리적 징계를 불법으로 규정하면 부모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로마서 13:1-7에 따르면, 부모들은 정부(권세)에 굴복해야 합니다. 정부는 하나님 말씀을 부정해서는 안되고, 성경적으로 말하면, 물리적 징계는 자녀들을 위한 최선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자녀들을 약간의 징계라도 받을 수 있는 가족의 품에 두는 것이 정부의 “관리” 하에 두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습니다.

에베소서 6:4는, 아버지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대신에, 그들은 자녀들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은 절제되고, 올바르며, 그리고, 물론이죠, 애정 어린 물리적 징계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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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번성하고 땅에 충만 하라”고 명령을 받았습니다(창세기 1:28).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안정적인 환경으로서의 결혼이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습니다. 슬프게도, 아이들은, 오늘날, 때로는 귀찮고 부담스러운 존재로 간주됩니다. 아이들은 사람들의 경력과 경제적 목표 달성을 막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우리의 스타일을 방해”합니다.” 자주, 이런 유형의 이기심이 산아제한의 원인이 됩니다.

일부 산아제한의 이면에 있는 자기 중심적인 것과는 달리, 성경에서는 아이들을 하나님의 선물로 제시합니다(창세기 4:1; 창세기 33:5). 아이들은 주님의 유산입니다(시편 127:3-5). 아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축복입니다(누가복음 1:42). 아이들은 노인의 면류관입니다(잠언 17:6). 하나님께서는 불모의 여성을 아이들을 가지게 함으로써 축복하십니다(시편 113:9; 창세기 21:1-3; 25:21-22; 30:1-2; 사무엘상 1:6-8; 누가복음 1:7, 24-25). 하나님게서는 모태에서 아이들을 만드십니다(시편 139:13-16). 하나님께서는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을 아십니다(예레미야 1:5; 갈라디아서 1:15).

성경에서, 산아제한을 특별히 책망하는 것으로 가장 근접하에 보이는 글은 창세기 38장에 있는 유다의 아들 에르와 오난의 이야기입니다. 에르는 다말이라는 이름의 여자와 결혼하였지만 그가 사악함으로 주님은 그를 죽였고, 다말은 남편도 아이들도 없이 남겨집니다. 다말은 신명기 25:5-6의 역연혼(죽은 자의 형이나 아우가 그 미망인과 결혼하는 관습)의 율법에 따라 에르의 형제인 오난에게 결혼을 통해 주어졌습니다. 오난은 그가 낳을지 모를, 그리고 그의 형제를 대신하는 어느 자녀에게도 자신의 재산이 나뉘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피임의 가장 오래된 형태인 사정을 참는 방법을 실행하였습니다. 창세기 38:10은 말씀합니다;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오난의 동기는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는 다말과 관계했지만, 그의 율법적 의무인 죽은 형제를 위해 계승자 만드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이 단락은 하나님께서 산아제한을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증거로 종종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산아제한의 행위가 주님께서 오난을 죽이신 명쾌한 원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행위 뒤에 감추어진 오난의 이기적인 동기였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해서가 아닌,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보시는 방식대로 그들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긴 해도, 성경은 산아제한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용어의 정의에 의하면, 산아제한은 단지 임신의 반대입니다. 옳고 그름을 정하는 것은 산아제한의 행위 그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오난의 경우로부터 배운바대로, 옳고 그름을 정하는 것은 피임 뒤에 감추어진(산아 제한의)동기입니다. 만일 부부가 자신들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취하기 위하여 산아제한을 했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만일 부부가 그들이 더 성숙되고 경제적으로나 영적으로 준비될 때까지 일시적인 시간을 가지기 위하여 산아제한을 했다면, 당분간 산아제한을 하는 것이 어쩌면 용납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것은 동기로 귀결됩니다.

성경은 항상 아이들을 갖는다는 것을 좋은 일로 제시합니다. 성경은 남편과 아내가 아이들을 가지는 것을 “기대”합니다. 아이들을 가질 수 없는 것은 항상 나쁜 일로 제시됩니다. 성경 속의 그 누구도 어떤 자녀들도 가지지 않으려는 욕망을 표현한 적이 없었습니다. 동시에, 제한된 시간 동안 피임을 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주장될 수 없습니다. 모든 부부들은, 언제 그들이 임신을 시도해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자녀를 두어야 할지에 관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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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은 결혼 관계에 있어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음은 알기 쉬운 성경적이 주고 있는 명령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에베소서 5:22-24).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도, 남편이 머리가 되는 원칙이 여전히 존재하였습니다(디모데전서 2:13).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아담의 “돕는 배필”로서 지어졌습니다(창세기 2:18-20). 하나님은 세상 권위의 여러 형태들을 세우셨습니다: 사회 정의를 집행하고 보호를 제공하는 정부; 하나님의 양을 인도하고 먹이는 목자; 그들의 아내들을 사랑하고 부양하는 남편;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을 훈계하는 아버지. 각각의 경우에 순종이 요구됩니다(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순종, 목자에 대한 양떼들의 순종,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순종 등).

‘순종’으로 번역된 헬라어, ‘hupotasso’는 동사의 계속되는 형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정부와, 목자, 그리고 또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일회성 행위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행동의 양식이 되는, 계속되어야 하는 태도입니다.

물론,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할 책임이 있고,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따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야고보서 1:21; 4:7). 그리고 각각의 기독교인은 겸손하게 살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과 피차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에베소서 5:21). 가족단위 내에서의 순종에 관해서, 고린도전서 11:2-3은 남편은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하고(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하신 것처럼), 아내는 그녀의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혼생활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들에 관한 많은 오해가 오늘날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성경적 역할들이 제대로 이해된 경우에서 조차, 많은 사람들이 소위 여성의 “해방”을 지지하며 그 역할들을 거부하는 선택을 하는데, 이는 가족 단위가 분열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의도를 거부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분의 의도를 즐겁게 기념해야 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나쁜 단어가 아닙니다. 순종은 열등감이나 더 적은 가치가 반영된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가치를 조금도 포기함이 없이, 끊임없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누가복음 22:42; 요한복음 5:30).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에 관한 세상의 잘못된 정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에베소서 5:22-24:1의 다음과 같은 점들을 신중하게 주목해야 합니다. [1] 아내는, 모든 남자들이 아닌, 한 남자(그녀의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슨종의 규칙은 여성의 지위를 사회로까지 전체적으로 확장하지 않습니다. [2] 아내는 예수 그리스도께 개인적으로 순종하는 가운데, 그녀의 남편에게 기꺼이 순종해야 합니다. 여자는 자신이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의 남편에게 순종합니다. [3] 아내가 순종하는 예는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복종입니다. [4] 아내의 능력, 재능, 또는 가치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내가 자신의 남편에게 순종한다는 사실은 그녀가 열등하다거나 가치가 덜하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습니다. 또한, “범사(모든 일에)”를 제외하고는, 순종의 명령을 통해 순종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자기 아내의 순종을 받기 전에 적성 검사나 지능 테스트를 통과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리더십에 있어, 많은 면에서 더 나은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남편의 리더십에 복종함으로써 주님의 지시를 따르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건한 아내는 단순하게 그녀의 거룩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말없이” 자기의 믿지 않는 남편마저도 주님께 인도할 수 있게 됩니다(베드로전서 3:1).

순종은 사랑의 리더십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어야 합니다. 남편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의 아내를 사랑하면(에베소서 5:25-33), 순종은 자기의 남편에 대한 아내의 자연적 반응이 됩니다. 하지만, 남편의 사랑 또는 그것의 부족함과 관계없이, 아내는 “주님께 하듯이” 순종하라고 명령 받고 있습니다(22절).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아내의 순종 – 하나님의 계획을 그녀가 받아들이는 것 – 이 자기의 남편에 대해 자신이 순종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 하듯이”란 비교는, 또한, 그녀가 따라야 할 더 높은 권위가 있다는 것을 아내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따라서, 남편에게 “순종”한다는 미명 하에 그녀는 사회 법이나 하나님의 법을 거역할 의무가 없습니다. 아내는 옳고 합법적이고 하나님을 기리는 일들에서 순종합니다. 물론, 아내는 학대에 대해서는 ‘순종’하지 않습니다 – 이는 옳지도, 합법적이지도, 하나님을 기리는 것도 아닙니다. 학대를 정당화하기 위해 ‘순종’의 원칙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고 악을 장려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의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은 남편이 이기적이 되고 횡포를 부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사랑하라이고(25절), 남편은 하나님 앞에 그 명령을 이행할 책임이 있습니다. 남편은 지혜롭고, 자비롭게, 그리고 자신이 해명해야 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남편의 권위를 행사해야 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 의해 사랑을 받는 것처럼 아내가 자신의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면, 순종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5:24는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혼에 있어, 순종은 남편에게 명예와 존경을 가져다 주고(에베소서 5:33 참조) 남편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는 마음가짐입니다. 이것은 가족이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께서의 지혜로우신 계획입니다.

매튜 헨리(Matthew Henry) 성경 주석자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여자는 아담의 옆구리로 만들어졌다. 여자는 남자를 지배하기 위해 남자의 머리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남자에 의해 짓밟히도록 남자의 발로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오히혀 남자와 동등 하라고 남자의 옆구리고 만들어 졌고, 남자의 팔 아래에서 보호되고, 그리고 사랑 받기 위해 남자의 심장에 가까운 곳에서 만들어졌다.” 에베소서 5:19-33에 있는 남편과 아내에 대한 명령의 바로 다음 단락은 성령충만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믿는 자들은 예배하고(5:19), 감사하며(5:20), 복종해야 합니다(5:21). 그리고는 바울은 이 성령 충만한 삶에 대한 생각의 뒤를 이어 22-24절을 통해 그것을 아내들에게 적용시킵니다. 아내는 여자들이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라(성경은 결코 이점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결혼 관계가 잘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시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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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부모들이 자신들이 양육했던 방법에 어긋나게 사는 자녀들을 다루고 대응하는데 있어 참고할 수 있는 돌아온 탕자(누가복음 15:11-32)의 이야기에 내재된 몇 가지 원칙들이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가 한 번 성인이 되면 그들은 더 이상 부모들의 권위 하에 놓여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보면, 작은 아들은 자신의 유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모두 탕진하고 맙니다. 거듭나서 믿는 자가 아닌 자녀의 경우에는, 이런 것은 그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한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분명히 고백하였던 자녀의 경우에 있어 이런 자녀를 우리는 “탕자”라 부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자신이 가진 자원들을 헛되이 낭비해 버린 사람”인데, 가정을 떠나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위해 쏟아 부은 영적 유산을 낭비하는 자녀에 대한 알맞는 묘사입니다. 이런 자녀가 하나님께 대적하게 되면서, 양육, 가르침, 사랑, 그리고 보살핌의 그 모든 시간들은 잊혀집니다. 모든 반항은 먼저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부모님과 부모님의 권위에 대적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비유에서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이 떠나는 것을 말리지 않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그는 또한 자신의 자녀를 보호하려고 따라가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하기보다는, 이 부모는 충실히 집에 머물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서 다시 올 때, 부모는 기다리며 지켜보다가 자기 아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반기기 위해 뛰어 나갑니다.

우리의 아들들이나 딸들이 스스로 떠나려고 –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법적 나이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 결정을 내릴 때, 그 결정이 힘든 결과들을 가져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있다 하더라도, 부모들은 그들이 떠나는 것을 허락해야 합니다. 부모는 쫓아 가지 않고, 다가올 결과들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기보다는, 부모는 집에 머물며, 회개하고 마음을 바꾸는 조짐들이 있는지 계속해서 충실하게 기도하고 지켜봅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부모들은 자신들의 조언을 벗어나지 않고, 반항을 지지하지 않으며, 간섭하지도 않습니다(베드로전서 4:15).

자녀들이 법적 성인의 나이가 되면, 하나님의 권위와 정부에 부여된 권위에만 속하게 됩니다(로마서 13:1-7). 부모로서, 우리는 우리의 탕자들을 사랑과 기도로 지원할 수 있으며 자녀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한 번 마음을 돌리기만 한다면 같이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혜롭게 하시기 위해 종종 자초한 고통을 사용하시는데, 올바르게 대응하는 것은 각 개인에게 달려있습니다. 부모로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우리는 지켜보고, 기도하며, 그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 있으나, 성경 말씀에 따라 수행 되었을 때, 마음과 정신의 평강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다음의 말씀에 큰 위안이 있습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세기 18:25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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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이유로 자신의 자녀를 돌 볼 수 없는 부모가 그 아이를 다른 집으로 입양시키는 것은 사랑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자녀를 가질 수 없는 많은 부부를 위한 기도 응답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로서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려고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자녀가 아닌 아이들로 입양함으로써 대가족을 만들기도 합니다. 성경은 입양에 대해 좋게 말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바로 황제가 모든 히브리 남자 아기를 죽이라는 칙령을 내린 시기에 아들을 낳은 요게벳이라는 히브리 여인의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출 1:15-2). 요게벳은 바구니를 가져다가 방수 처리를 한 후에 그 아기를 넣고 강에 띄워 보냈습니다. 바로의 딸 중 한 명이 바구니를 발견하고는 그 아이를 꺼내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그를 왕실에 입양시키고 그에게 모세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잘 자라나서 충실하고 복 있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출 2:1-10).

에스더 서에는 에스더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인이 나옵니다. 에스더는 부모가 죽은 후 사촌에게 입양되었고, 그 후 여왕이 되었고, 하나님은 유대 백성을 구원하는데 그녀를 사용하셨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씨를 통하는 대신에 성령을 통하여 잉태되었습니다(마1:18). 요셉은 예수님을 자기 자녀로 입양한 후 그를 키웠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 그리스도만을 믿고 신뢰함으로 우리 마음을 그리스도께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가족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인간의 자연적인 잉태를 통해서가 아니라 입양을 통해서 된 것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 8:15). 마찬가지로, 입양을 수단으로 하여 어떤 사람을 가족으로 삼는 것은 선택과 사랑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5).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자들을 그분의 영적인 가족으로 입양하듯이 우리는 모두 기도하는 마음으로 육신의 가족에 아이들을 입양하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분명히 육체적인 의미와 영적인 의미 모두에서 입양은 성경에 좋은 것으로 비추어집니다. 입양하는 사람들과 입양된 사람들 모두 엄청난 복을 얻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에 입양 됨으로써 얻게 되는 특권을 예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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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가족 관계의 우선 순위를 단계별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성경에서 가족 관계의 우선 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일반적인 원칙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신명기 6장 5절을 보면, 하나님은 분명히 첫째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그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결혼하였다면 배우자가 그 다음입니다. 결혼한 남자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 하셨듯이 자기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엡 5:25). 그리스도의 최고 우선 순위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고 그 다음이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하나님이 첫째이고, 그 다음은 자기 아내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내는 “주께 하듯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엡 5:22). 여성에게는 하나님이 첫째요 남편이 둘째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우리의 우선 순위에서 하나님 다음으로 두 번째이고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면(엡 5:31), 결혼 관계의 결과는 자녀가 그 다음 우선 순위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부모는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차세대가 될 경건한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데(잠 22:6; 엡 6:4), 이는 다시 한번 하나님이 최고 순위인 사실을 보여줍니다. 다른 모든 가족 관계도 이 사실을 반영해야 합니다.

신명기 5장 16절은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면 오래 살고 또한 일들이 잘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이를 제한하는 문구는 없으므로, 부모님이 살아있는 내내 그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물론, 어린이가 성인이 되면 더 이상 부모에게 복종할 의무가 없지만("자녀들아, 부모에게 순종하라"), 부모들을 존중하는 데는 연령 제한이 없습니다. 우리는 부모가 하나님, 우리의 배우자 및 자녀들의 우선 순위 목록 다음에 있음을 결론 지을 수 있습니다. 부모 다음으로는 나머지 가족들을 우리의 우선 순위에 둘 수 있습니다(딤전 5:8).

우선 순위 목록에 있는 모든 가족들 다음으로 동료 신자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14장은 우리에게 형제들을 심판하거나 멸시하지 말고(10 절) 동료 그리스도인이 "실족하거나" 영적으로 타락하게 될 어떤 일도 하지 말라고 지시합니다. 고린도전서의 대부분은 교회가 어떻게 서로 조화롭게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향한 다른 권고는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 5:13),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라”(살전 5:11),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히 10:24) 등이 있습니다.

우리의 우선 순위에서 마지막으로 오는 것은 세상입니다(마 28:19).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선 순위의 성경적 순서는 하나님, 배우자, 자녀, 부모, 나머지 가족들,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와 자매, 그리고 나머지 세상입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보다 어떤 한 사람에게 집중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나머지 관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성경적인 균형을 취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우리 가족 안과 밖의 모든 관계에서 모든 것을 잘 충족시킬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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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말과 행동에 있어서 존중하는 행동이며, 그들의 지위를 존경하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공경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존경하다, 칭찬하다, 귀하게 여기다"라는 의미입니다. 공경은 공로뿐만 아니라 지위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부 시민들은 대통령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여전히 국가 지도자로서 그의 지위를 존중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연령대의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가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도록 권고하십니다. 그분은 십계명(출 20:12)과 신약 성경에 또 다시 그 명령을 포함시킬 만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귀중하게 생각하십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장수를 보상으로 약속 받은 유일한 명령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들은 복을 받습니다(렘 35:18-19). 반대로 "타락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마지막 날에 경건치 못한 사람들은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롬 1:30; 딤후 3:2).

가장 현명한 사람인 솔로몬은 자녀들에게 부모를 존중하도록 권하였습니다(잠 1:8, 13:1, 30:17). 우리가 더 이상 직접적으로 그들의 권위 아래 있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마저 지상의 부모(눅 2:51)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마 26:39)께 복종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경외하는 방법으로 부모님을 대하여야 합니다(히 12:9; 말 1:6).

분명히,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명을 받았지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행동과 태도로 그들을 공경하십시오(막 7:6). 그들의 숨은 소원과 말로 표현하는 바람을 들어주십시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잠 13:1). 마태복음 15장 3-9절을 보면,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상기시키셨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조문을 순종하고 있었지만 그들 자신의 전통을 덧붙임으로 인하여 실제로는 율법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로는 부모님을 공경하였지만, 행동은 그들의 진정한 동기를 드러냈습니다. 공경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에서 ‘공경하라’는 단어는 올바른 행동을 요구하는 동사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노력하는 것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의 경우,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함께 합니다. 그것은 듣기, 주의를 집중하기, 그리고 부모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들이 자란 후에는 어릴 때에 배운 순종으로 인하여 정부, 경찰, 고용주와 같은 다른 권위를 존중하면서 잘 섬길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하지만 이는 경건하지 않은 부모를 본 받는 것을 포함하지는 않습니다(겔 20:18-19). 만일 부모가 행여 자녀에게 하나님의 명령에 모순되는 일을 하라고 지시한다면, 그 아이는 부모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행 5:29).

공경은 공경을 낳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복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공경은 쉽지 않으며 항상 재미있는 일은 아니기에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공경은 우리 인생의 목표인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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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의 문제는 굉장히 힘든 고민이며, 특히 평생 자녀를 고대하고 있는 부부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스도인 부부는 "주님, 왜 우리입니까?"라고 묻곤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과 양육의 복을 베풀기를 바라십니다. 육체적으로 건강한 부부의 경우, 불임으로 인한 가장 가슴 아픈 면 중 하나는 그 불임이 일시적인지 또는 영구적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경우라면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그것이 영원한 것이라면,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그들의 대처 과정은 어떠해야 합니까?

성경은 여러 이야기를 통해 일시적인 불임 문제를 묘사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이를 약속하셨지만 그녀가 90세가 될 때까지 이삭을 낳지 못했습니다(창 11:30).

리브가의 남편 이삭은 간절하게 기도했고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창 25:21).

라헬은 기도했고 마침내 하나님은 "그녀의 태를 여셨습니다." 그녀는 두 명의 아들, 곧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습니다(창 30:1, 35:18).

마노아의 아내는 한동안 불임 상태였지만 삼손을 낳았습니다(삿 13:2).

엘리사벳은 노년에 그리스도의 선구자인 세례 요한을 낳았습니다(눅 1:7, 36).

사라와 리브가와 라헬(이스라엘 민족의 어머니들)의 불임 상태는 마침내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이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에 의한 것임을 알려주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하지만 불임 부부는 하나님이 그분의 은혜와 은총을 보류하고 있다고 가정해서는 안되며, 그들이 어떤 면에서 벌을 받고 있다고 가정해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 부부는 그들의 죄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함 받았으며 자녀를 가질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불임 그리스도인 부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산부인과 의사나 기타 불임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 임신 준비를 위해 건강한 생활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어머니들이 수태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아이를 위해 계속 기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가 아이를 갖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뜻이 우리가 입양하여 양부모가 되는 것이든 또는 자녀 없이 사는 것이든, 우리는 주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의 사랑하는 자들 각자를 위한 거룩한 계획을 갖고 계심을 압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은 임신을 허락하기도 하시고 막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며 모든 지혜와 지식을 소유하고 계십니다(롬 11:33-36).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약 1:17). 이 진리를 알고 받아들이면 불임 부부의 마음의 아픔을 달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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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적인 기질을 보이는 아이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가혹하고 사랑 없는 비판적인 부모에 의해 성장하는 아이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일종의 반항을 보입니다. 가장 잘 따르는 아이조차 그러한 대우를 받으면 내적으로 또는 외향적으로 반항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형의 양육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족이 어떤 양육 방식을 취하든 상관없이 반항적인 아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반항적인 자녀는 태어날 때부터 강한 의지의 성격을 소유한다고 가정하면, 그는 제약을 시험해 보려는 성향, 지배하고 싶은 큰 욕구, 모든 권위에 온 힘을 다해 저항하는 특징을 보일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반항은 그 아이의 성향입니다. 또한 이러한 강한 의지를 가진 반항적인 자녀들은 종종 매우 지능적이며 놀라운 속도로 상황을 파악하고 상황과 주변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이러한 아이들은 부모들에게 극도로 힘들고 피곤한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그러한 자녀들을 지으신 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며, 또한 부모들에게 그 도전을 감당할 수 있는 자원을 남겨 두셨습니다. 반항적이고 고집 센 자녀를 은혜롭게 다루는 성서적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잠언 22장 6절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모든 아이들은 하나님을 향하는 길로 가야 합니다. 아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 역시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떻게 그분을 가장 잘 섬길 수 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강한 의지를 가진 아이를 다룰 때는 그 아이의 동기, 즉 다스리고 싶어하는 그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면 아이가 자신의 길을 찾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반항적인 아이는 자신이 이 세상을 다 책임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지고 계시며 그가 할 일은 단지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부모는 이 진리를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본인들부터 그 진리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부모는 그의 자녀에게 복종을 설득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일단 하나님이 규칙을 세우시는 분이라는 것을 확고하게 한 후에는 부모는 자녀의 마음 안에 그들은 하나님의 도구이며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면 부모의 역할은 이끄는 것이고 자녀의 역할은 따르는 것임을 반항적인 자녀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 점에서는 연약함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의지가 강한 아이는 미리 우유부단함을 발견하고, 곧바로 리더십의 공백을 메워 스스로 제어할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권위에 복종하는 원칙은 의지가 강한 아이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교훈입니다. 만일 어린 시절에 복종을 배우지 못하면, 나중에 고용주, 경찰, 법원, 군대 지도자를 포함한 모든 권위자들과 갈등을 맺는 삶이 될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5절은 우리 위에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가 있고 우리는 그 권위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또한, 강한 의지를 가진 아이는 자신이 이해할 때에만 규칙이나 법을 기꺼이 준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규칙을 지켜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 주고,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행하여야 하고 그 사실은 타협될 수 없다는 진리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알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모에게 자녀를 사랑하고 징계할 책임을 주신 것을 설명하고 만일 부모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임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능할 때마다 자녀에게 결정을 내릴 기회를 주어서 그가 완전한 무력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 나가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른 신자들과 함께 모이라고 명하신 것이기 때문에 타협할 수 없지만(히 10:25), 자녀들은 그들이 무엇을 입을 지 어디에 앉을지 등을 (타당한 범위 내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족 휴가 계획을 짤 때 그들에게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숙제를 주십시오.

더욱이 양육은 일관성과 인내로 해야 합니다. 부모는 목소리를 높이거나 분노 가운데 손을 올리거나 혈기를 부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만일 인내를 놓치면, 강한 의지를 가진 아이는 그가 바라던 지배 감각이 채워지기 때문에 계속 당신이 감정적으로 반응하도록 당신을 좌절시키는 방법을 신속하게 알아낼 것입니다. 즉, 어떻게 당신을 지배할 것인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이때 부모가 화가 난 상태에서 육체적인 징계를 내리는 것은 종종 이러한 아이들에게 먹혀 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매를 맞을 때 약간 아픔은 느끼더라도 그에 비해 부모로 하여금 화를 내게 만든 희열이 더 가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강한 의지를 가진 아이들 중에는 부모가 매를 때릴 때 도리어 웃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매를 때리는 것은 그들에게 최선의 징계가 되지 못합니다. 아마도 강한 의지를 가진 반항적인 아이를 키울 때 성령의 열매인 인내와 절제가(갈 5:23) 가장 필요할 것입니다.

이러한 자녀를 키우는 것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시지 않는다는 약속은 부모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고전 10:13). 만일 하나님이 고집 센 자녀를 허락하신다면 부모는 주께서는 실수가 없으시고 그 일을 행하는데 필요한 지침과 자원을 제공할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부모의 삶에 있어서 고집 센 청소년을 키우는 때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말이 더 의미 있는 때는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구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시겠다고(약 1:5) 약속하신 주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지혜를 구하는 시간이 더욱 많아져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의지가 강한 아이가 잘 훈련될 경우 종종 큰 일을 이루는 성공적인 어른으로 자라난다는 사실을 알 때 위로가 있습니다. 많은 반항적인 자녀들이 대담하고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되어 상당한 재능으로 주를 섬기며 또한 인내와 성실로 그들을 키워주신 부모를 사랑하며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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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여성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동등하지만 성경은 결혼 생활에서 각각의 역할을 정해줍니다. 남편은 집에서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고전 11:3; 엡 5:23). 이 지도력은 아내에게 독재적이거나 멸시적이거나 군림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며 교회를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본과 일치해야 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 5:25-26). 그리스도께서는 연민과 자비와 용서와 존중과 이타적인 마음으로 교회(그의 백성)를 사랑하셨습니다. 이처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 5:22-24). 여성들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지만, 성경은 또한 남성들에게 그들의 아내를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 여러 차례 말합니다. 남편은 독재자의 역할을 맡아서는 안되고 아내와 그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합니다. 사실 에베소서 5장 28-29절은 남편들은 자기 몸을 사랑하고 먹이고 돌보는 것처럼 똑같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권고합니다. 아내에 대한 남자의 사랑은 그분의 몸인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동일해야 합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골 3:18-19).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우리는 이러한 구절들로부터 사랑과 존중이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특징 짓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랑과 존중이 존재한다면, 권위, 리더십, 사랑, 복종은 양 측 파트너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가정에서의 책임 분담과 관련하여 남편들에게 가족을 부양하도록 지시합니다. 이것은 그가 일하며 그의 아내와 자녀들을 위한 모든 생필품을 충분하게 제공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분명한 영적 결과가 초래됩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그러므로 가족을 부양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이는 아내가 가족을 부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잠언 31장은 경건한 아내가 분명히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아내의 주된 책임이 아닙니다. 그 책임은 남편의 것입니다. 남편이 자녀 키우는 일과 가사를 도울 수는 있어도(즉, 아내를 사랑할 의무를 수행하더라도), 잠언 31장은 또한 여성의 영향력과 책임의 주요 영역이 가정이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그녀가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더라도, 그녀는 가족을 돌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많은 여성들, 특히 풍요로운 서구 국가들의 여성들에게는 쉬운 생활 방식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여성들이 너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파열 지점까지 가 있습니다. 그러한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서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우선 순위를 재정렬하고 각자의 역할에 대한 성경의 지침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결혼 생활에서 역할 분담과 관련한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양 측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면 이 갈등은 최소화될 것입니다. 부부가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이 빈번하고 격렬한 경우, 또는 논쟁이 결혼 생활에 있어서 너무 두드러지는 경우, 그 문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러한 경우, 각 파트너는 먼저 기도에 힘쓰고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합니다. 그 후 사랑과 존경의 태도로 서로에게 헌신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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