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보기)하늘나라의 뜻을 말하는 게 방언이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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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보기)하늘나라의 뜻을 말하는 게 방언이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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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사람이 저 나라에 가서 자기 나라의 말을 하면 저 나라의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인간의 말이 아닌 하늘나라의 말을 하면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를 빌려서 하늘의 뜻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담아서 기록을 했다. 이 성경은 성령님의 감화로 기록이 되었기 때문에 타락된 세상사람들의 생각과 지식과 개념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성령님의 감화로 읽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성령의 사람이 된다.

 

인간에게 성경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게 하려는 것이니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소원 목적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세상과 죄에 찌들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영적인 뜻을 못 깨닫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통역을 해주는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입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필요하다. 성경이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으니 성경을 영적으로 해석하려면 성령의 감화를 입어야 한다. 하늘나라를 인간이 알 수 있도록 말을 하는 것은 일종의 방언을 통역하는 거다.

 

방언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통역자를 통해야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다. 2:에 각 나라의 경건한 사람들, 즉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오순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모여서 성령이 임해서 각기 방언을 했고, 제자들도 방언을 했는데, 제자들은 자신들이 배운 바가 없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고, 다른 여러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이 말을 이해했다.

 

그런데 이 때 제자들이 한 방언이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된다는 말을 했겠느냐, 하나님의 일을 알게 하는 말을 했겠느냐? 하나님의 일을 알게 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이 크냐, 인간의 일이 크냐?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일이 뭐냐? 우리를 하나님처럼 만드는 게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닮는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로, 말씀의 이치로, 하늘의 이치로,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 되는 거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즉 마귀가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보이는 것, 즉 세상 것을 가지고 하와를 속였고 아담까지 속였다. 또한 마귀가 예수님에게도 세상 것으로 시험을 쳤는데,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 우리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니 교회에서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되고 세상에서 만사형통이 되고하는 것은 100% 마귀의 말이다.

 

부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속에는 돈도 들어있고, 아파트나 자동차 등도 들어있다. 온 집안 식구가 이런 소원 목적으로 살다가 죽는 게 좋겠는지, 좀 가난하게 살더라도 하나님처럼 만들어지는 게 좋겠는지? 하나님의 말씀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질이 들어있다. 인간이 존재적으로 하나님이 될 수는 없지만 말씀을 따라 살면 예수님의 마음을 닮을 수 있다. 이러면 어떤 면으로건 주님의 역사가 임한다.

 

방언이란 한 마디로 천국복음이다. 천국복음은 사람을 천국의 사람으로 만든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한다. 그런데 이런 면을 모르고, 관심이 없는 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로 따다리 보따리하는 것을 방언으로 알고, 이것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대부분 영웅성 허풍성이 강하고, 교만하고 주관이 강하다. 이런 자를 쓸 만한 사람으로 만들려면 하나님이 내려쳐야 한다.

 

오늘날 온 세상이 동서남북으로 왜 이리 시끄러우냐? 돈이 없어서냐, 집이 없어서냐? 무엇 때문에 이 난리냐? 핵무기 때문이냐? 사람이 바로 안 되어서, 참 지도자가 없어서 이 난리로구나. 세상에 빛이 없어서 어두우니 난리로구나. 빛만 있으면 갈 길을 바로 가고, 구별 분별이 되는데 이게 없구나. 자기 속에 걱정 근심이 많은 것은 자기 속에 진리의 빛이 없기 때문이다. 캄캄하면 염려 걱정 근심이 떠나지 않게 된다.

 

구원파의 전단지를 보니 성경해석이 세상물질로 들어가 있다. 하나님은 어려운 가운데서 역사를 하신다고 하면서 창:에서 하나님께서 혼돈 가운데서 창조의 역사를 했다고 한다. 이 말대로라면 하나님께서 빛을 만들기 전에 혼돈과 혼잡이 되게 해놓고 빛이 있어라라고 하셨다는 말이 되는데, 말이 이렇게 되면 인간에게 당신의 만능의 능력을 자랑하고 싶어서 혼돈이 되게 하신 것이라는 냄새를 풍기게 된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풀면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만들어 놓은 것도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이 되게 해서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되어버린다.

 

하나님은 어려운 가운데서 역사를 하신다는 말이 맞는 것 같으나 알고 보면 이런 하나님이 아니시다. 왜냐? 어려운 가운데서 역사하신다면 내가 어려워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역사를 안 한다는 말이 되고, 이러면 성도가 부르짖어야 도와주신다는 이론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경 어디를 봐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이 본질에서 이탈이 되면 안 되고, 본질을 염두에 두고 이치가 분명하게 나와야 한다. 이래야 공의의 말이 된다. 그래서 설교를 들을 때 세상적인 설교라고 해도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하지 말고 그 말의 근원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 출처를 알아내야 한다. ‘저 말의 뿌리, 생각의 뿌리가 어디서 나왔지?’ 하고 뿌리를 캐내야 거기에 합당한 말을 할 수 있는 거다. 이러면 자기가 지혜로워진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했다. 듣는 즉시로 반박을 하다 보면 속 좁은 사람이 되고 실수를 하게 된다.

 

우리는 믿어갈수록 영능의 실력으로 나가야 한다. 수십 년 교회에 다녔어도 성경을 몰라서 이단자들에게 밟히는 것은 안 된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다 이겼고, 이긴 실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했다. 죄의 유혹과 미혹에서 이길 수 있게 하고, 이긴 것을 주는 게 서로 사랑이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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