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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가 언급하려는 것은 창조론 대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인 논쟁이 아닙니다. 창조론 대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인 논증을 위한 것으로, 창세기와 창조 연구 기관에서 제공하는 해답들을 우리는 자신 있게 추천합니다. 이 글의 목적은 창조론 대 진화론의 논쟁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성경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5은 공표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논쟁의 핵심 요인은 진화론을 믿는 대다수의 과학자들 역시 무신론자들이거나 불가지론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어떤 형태의 진화론을 고수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관점을 취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은 존재하지만 세상에 관여를 하지 않고, 모든 것은 자연 법칙대로 움직인다). 데이터를 실제로 정직하게 살펴보고 진화론이 데이터에 더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일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진화론을 옹호하는 과학자들의 극소수의 경우입니다. 대부분의 진화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더 높은 존재의 어떠한 개입도 없이 생명은 전적으로 진화되었다고 믿습니다. 진화론은 자연 과학으로 정의됩니다.

무신론이 사실이 되려면, 우주와 생명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 창조자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 대체되는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진화론의 일부 형태를 믿는 것은 찰스 다윈 전에도 존재했었지만, 그는 진화 과정 – 자연 도태 – 의 그럴듯한 모델을 처음으로 발전시켰던 사람이었습니다. 찰스 다윈은 한때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밝혔지만, 그의 삶에 일어났던 어떤 비극들의 결과로 나중에는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진화는 무신론자에 의해 고안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반증하려는 것이 다윈의 목적이 아니었지만, 그것은 진화론의 최종 결과물들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진화는 무신론이 성공하는 요인입니다. 진화론을 믿는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생명의 기원에 대해 대체되는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무신론의 기초를 마련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에 따르면, 바로 그것이 진화론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편 14:1; 53:1). 성경은 또한 사람들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핑계가 있을 수 없다고 공표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로마서 1:20).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어떤 사람이라도 어리석다 말합니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까지 포함해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을 믿는 과학자들이 과학적인 데이터를 편견 없이 해석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받아 들이려 하는 것일까요? 성경에 따르면, 그들은 모두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어리석음은 지적 부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화론을 믿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지적으로 명석한 사람들입니다. 어리석음은 지식을 적절하게 적용할 수 없는 무능함을 가리킵니다. 잠언 1:7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진화론을 믿는 과학자들은 창조론과/또는 지적 설계를 비과학적이며 과학적 연구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비웃습니다. 어떤 것이 “과학”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관찰되고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그것은 “자연주의적”이어야 합니다. 창조는 정의상 “초자연적”입니다. 하나님과 초자연적인 것은 관찰되거나 검증될 수 없습니다(그래서 논증은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창조나/또는 지적 설계는 과학으로 간주될 수 없습니다. 진화도 역시 관찰되고 검증될 수 없지만, 진화론자들에게는 문제가 되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데이터는 대체적인 설명에 대한 고려도 없이, 선입관적이고, 미리 목적한 바가 있으며, 그리고 미리 받아들여진 진화론을 통해 걸러집니다.

그러나, 우주와 생명의 근원은 모두 실험으로 입증되거나 관찰될 수 없습니다. 창조와 진화 둘 다는 근원에 관한 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체계입니다. 어느 것도 검증될 수가 없는데, 이는 우리가 우주나 생명의 근원을 관찰하기 위해 수십 억년(또는 수 천년) 전으로 돌아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을 믿는 과학자들은 창조론을 거부하는데 이 거부하는 근거 또한 그들로 하여금 진화를 근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라고 논리적으로 받아 들일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진화론은 최소한 근원을 밝히는 데 있어 창조론 보다 “과학”이란 정의에 더 맞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진화가 근원에 대한 검증될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일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러므로, 진화가 “과학적”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근원에 관한 유일한 이론이라고 합니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진화를 옹호하는 과학자들은 근원에 대해 사실일지도 모들 이론의 장단점을 정직하게 검토조차 하지 않고 그것을 거부하고 있는데, 이는 그것이 그들의 비논리적이고 편협한 “과학”의 정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창조론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는 창조주가 존재하게 됩니다. 진화는 무신론이 성공하는요인입니다. 진화는 무신론자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제쳐 놓고 생명의 존재를 설명하는 기반을 제공합니다. 진화는 하나님께서 우주에 관련하실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진화는 무신론을 믿는 종교를 “창조하는 이론”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선택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고, 아니면 비논리적이고 편견에 찬 바보 같은 사람들의 “과학적” 설명을 믿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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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어떤 현상의 “관찰, 파악, 설명, 실험적 조사, 그리고 이론적 설명” 으로 정의 됩니다. 과학은 자연적 우주에 대한 더 큰 이해를 얻기 위해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과학은 관찰을 통한 지식을 탐구합니다.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논리와 상상이 미치는 범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과학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과는 절대적으로 달라야 합니다. 어떤 것이 완벽하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사실을 우리가 기억 하는 한, 기독교인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면서 과학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은 신앙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아들과, 교육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인도함을 받기 위한 성령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은 절대적이어야 하는데,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된 이후로, 완벽하고,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에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과학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지적인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닙니다. 우리가 많고 놀라운 일들을 이루기 위해 과학을 의지할 수는 있으나, 실수들을 저지르는 과학 역시 인정해야 합니다. 과학을 믿는 다면, 우리는 또한 불완전하고, 죄스러우며, 유한하고,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인간들을 의지하게 됩니다. 역사를 통틀어 과학은 지구의 모양, 동력 비행, 백신, 수혈, 그리고 복제 같은 많은 것들에 대해 잘못들을 저질러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을 벗어나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진실은 두려워할게 하나도 없기에, 기독교인이 선한 과학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우주를 구축하신 방법에 대해 더 많이 배운다는 것은 인간 모두가 창조의 경이로움에 대해 감사하게끔 해줍니다. 지식의 영역을 넓힘으로써, 질병, 무지, 그리고 오해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우리의 창조주보다 인간적인 논리에 더 둘 때, 위험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종교에 헌신된 어느 누구와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들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선택한 것이며 그 믿음을 방어하기 위해 사실들을 찾아 나설 것입니다.

가장 이성적인 과학자들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는 사람들 조차, 여전히,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온전하지 않음을 인정합니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입증되거나 입증 될 수 없는 자신들이 선호하는 많은 이론들처럼, 하나님이나 성경도 입증되거나 입증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과학은 사안의 조장이 아닌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는 참으로 중립적인 학문입니다.

과학은 대체로 존재와 하나님의 업적을 지지합니다. 시편 19:1은 말씀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현대 과학자들이 우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발견할수록, 우리는 창조의 더 많은 증거를 보게 됩니다. DNA의 놀라운 복잡성과 재생산, 물리역학의 복잡하게 얽히고 서로 맞물린 법칙들, 여기 지구의 환경 조건들과 화학적 요소들의 완전한 조화, 이 모두가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실을 지지하는데 공헌합니다. 기독교인은 진실을 추구하는 과학을 포용해야 하지만, 인간의 지식을 하나님보다 더 높게 여기는 “과학의 성직자들”은 거부해야 합니다.

-Got Questions Ministries

성경에 따라, 아담이 우리의 지구 행성이 존재하고 여섯 번째 날에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우리는 인류의 연대기적 세부 사항들을 통해 성경에 기초한 지구의 대략적 나이를 밝힐 수가 있습니다. 이는 창세기의 서술이 정확하고, 6일 동안의 창조가 문자 그대로 하루 24시간에 기준한 기간이며, 그리고 창세기의 연대순서에 있어 애매모호한 공백들이 없다는 추정 하에서 입니다.

창세기 5장과 11장에 나열된 계보는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 이어지는 혈통에 있어 아담과 각 세대의 조상이 되었던 그의 후손들의 나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역사적으로 어느 연대에 속했는지를 결정하고 창세기 5장과 11장에서 제공 되는 나이들을 더 하면, 성경이 지구의 나이가 몇 백 년의 오차 범위 안에서 대략 6000년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 집니다.

그럼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거의 대부분의 우리 교육 기관들에 의해 가르쳐지고 있는 수십 억년이란 지구의 나이는 어떻게 되나요? 이 나이는 주로 두 가지 연대 측정법들로부터 얻어집니다: 방사능 연령 측정과 지질 연대입니다. 약 6000년의 지구의 어린 나이를 옹호하는 과학자들은 지질 연대는 그것이 순환론을 채택하는데 있어 오류가 있고, 방사능 연령 측정은 일련의 불완전한 가정들에 기초하는 오류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더욱이, 그들은 지층화, 화석화 되고 그리고 다이아몬드, 석탄, 석유, 종유석, 석순 등이 형성되는데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는 대중적인 오해처럼 지구가 오래되었다는 미신의 정체가 틀렸음을 폭로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린 지구 나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틀렸다고 폭로한 오래된 나이의 지구에 대한 증거들 대신에 지구의 나이가 어리다는 긍정적 증거를 제시합니다. 어린 지구 나이를 옹호하는 과학자들은 오늘날 자신들이 소수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과학자들이 더욱더 증거를 재 조사하고 현재 받아들여 지고 있는 오래된 지구의 인식 체계를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그들의 순위는 시간이 지나면 바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궁극적으로, 지구의 나이는 입증할 수 없습니다. 6,000년이든 혹은 수십 억년이든, 이 두 견해들(그리고 둘 사이의 모든 견해들)은 믿음과 가정에 기초합니다. 수 십 억년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방사능 연령 측정과 같은 방법들이 신뢰할 수 있고 방사성 동위 원소의 정상적인 부식을 방해할 수 있는 그 어떤 사건도 역사상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6,000년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성경은 진실하고 다른 요인들이 전 세계적 홍수나 매우 오래 된 상태로 “보이는” 하나님의 우주 창조를 설명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한 예로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를 완전히 자란 성인들로서 창조하셨습니다. 의사가 아담과 이브가 사실상 하루보다 더 적은 나이일 때, 그들을 검사했었다면, 그 의사는 그들의 나이를 20살이라고 평가 했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 진화론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고 무신론자들인 과학자들의 말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 더 좋은 이유는 항상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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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 Theory)은 복잡하고, 정보가 풍부한 생물학적 구조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적인 원인들이 필요하며 이러한 원인들은 경험적으로 탐지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생물학적 특성들은 표준적인 다윈의 무작위-기회 라는 설명에 반대하는데, 이는 그것들이 설계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설계는 논리적으로 지적인 설계자를 필요로 하고, 설계의 외관은 설계자가 있다는 증거로 인용됩니다. 이 지적 설계론에는 세 가지 주요 논증들이 있습니다: 1)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복잡성, 2) 특정화된 복잡성 3) 인류 발생론의 원리.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복합성은 “...기본적인 기능에 기여하고 서로 잘 어우러지는 몇 개의 부분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체계인데, 이 부분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거 되면 그 기능의 효과적 작용이 마비되는 체계”로 정의 됩니다. 간단히 말해, 생명이 작동하기 위해 상호 의존하며 얽혀 있는 부분들로 구성됩니다.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는 새로운 부분의 성장에 대해 설명할 수는 있겠으나, 체계를 작동하는데 필요한 여러 부분들에 있어 동시에 발생하는 성장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인간의 눈은 분명히 유용한 체계입니다. 안구, 시신경, 그리고 시각 피질 없이, 무작위적으로 돌연변이가 된 불완전한 눈은 실제로 어던 종의 생존에 역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자연 선택의 과정을 통해 제거될 것입니다. 눈의 모든 부분들이 갖춰지지 않고 동시에 제대로 작동이 안 된다면 눈은 유용한 체계가 되지 않습니다.

특정화된 복잡성은, 특정화 되고 복잡한 패턴들이 생물들에게서 발견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정보만이 그것들의 기원을 설명할 수 밖에 없다는 개념입니다. 특정화된 복잡성에 대한 논증은 복잡한 패턴들이 무작위적인 과정들을 통해 발달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면, 100마리의 원숭이들과 100대의 컴퓨터들로 가득 찬 방에서는 결국 몇 가지 단어들이나, 아니면 아마 한 문장 정도가 만들어질 수는 있다 할지라도, 결코 세익스피어의 극본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세익스피어의 극본보다 생물학적인 생명이 얼마나 훨씬 더 복잡합니까?

인류발생론의 원리는 세계와 우주가 지구에서의 생명을 감안하는 “미세 조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지구의 공기 안에 있는 성분들의 비율이 조금만 변해도, 많은 종들이 매우 빠르게 사라질 것입니다. 만일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몇 마일 더 가깝거나 멀다면, 많은 종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지구에서의 생명의 존재 및 발달을 위해서는 아주 많은 변수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이런 모든 변수들이 무작위적이고 조절되지 않은 사건들을 통해서 생성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적 설계론은 지적인 원천(하나님이든, UFO이든 또는 그 외의 다른 것이든)을 밝히기 위한 가정은 하지 않지만, 지적 설계론의 이론가들의 거의 대부분은 유신론자들입니다. 그들은 생물학적 세계에 만연한 설계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증거로 봅니다. 그러나, 설계를 했다는 강력한 주장을 부인 할 수 없으나,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기 꺼려하는 몇 몇 무신론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자료를 지구가 외계의 생명체들(외계인들) 중 일종의 주된 종족에 의해 육종되었다는 증거로 해석하려 합니다. 물론, 그들은 외계인들의 기원도 역시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뢰할 수 있는 아무런 답변도 없이 논쟁의 시작점으로 돌아갑니다.

지적 설계론은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론이 아닙니다. 이 두 입장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성경적 창조주의자들은 성경의 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신빙성이 있고 사실이기 때문에 지구 상에서의 생명은 지적이신 분인하나님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결론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그들은 이러한 결론을 지지해 주는 증거를 자연적 영역에 에서 찾습니다. 지적 설계론자들은 자연적 영역에서 시작하여 지구상의 생명은 지적인 분(누구든 간에)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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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에 관한 성경 구절들은 홍수가 전 세계적인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창세기 7:11은 말씀합니다: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 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창세기 1:6-7과 2:6은, 홍수가 나기 전의 환경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는 매우 달랐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두 구절들과 또 다른 성경의 기술들에 근거해, 한때는 지구가 어떤 종류의 물로 된 덮개로 덮여 있었다는 합리적인 추측을 하게 됩니다. 이 덮개는 수증기로 된 것일 수도 있고, 또는 토성의 얼음으로 된 고리들과 비슷한 어떤 고리들로 구성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땅 속의 물로 된 층과 더불어 땅 위에 방출되었고(창세기 2:6), 전 세계적인 대홍수를 가져왔을 것 같습니다.

대홍수의 정도를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구절들은 창세기 7:19-23입니다. 물에 대한 말씀입니다: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물이 불어서 십 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위 구절들에, 우리는 “모든” 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사용될 뿐만 아니라, “하늘 아래 있는 모든 높은 산이 덮였고”, “물이 불어서 십 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였고, 그리고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서술들은 전 지구를 덮는 세계적인 홍수임을 분명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홍수가 지역적이었다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동해서 동물들을 이주시키라고 그냥 말씀하지 않으시고 왜 굳이 방주를 지으라고 지시하셨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왜 노아에게 이 땅에서 발견되는 모든 다른 종류들의 육지 동물들을 가두기에 충분한 큰 방주를 지으라고 지시하셨겠습니까? 홍수가 전 세계적인 것이 아니었다면, 방주를 지을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또한 베드로후서 3:6-7에서 이 노아 때의 홍수가 세계적이었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이 구절들에서 베드로는 앞으로 올 “세계적인” 심판을 노아의 홍수와 비교하고 있고, 그 때 존재했던 세상이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하여, 많은 성경 저자들은 전 세계적인 대홍수에 대한 역사적 진실성을 받아 들였습니다(이사야 54:9; 베드로전서 3:20; 베드로후서 2:5; 히브리서 11:7). 마지막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전 세계적인 홍수를 믿으셨고 자신께서 다시 오실 때 세상에 임할 멸망의 상징으로 삼으셨습니다(마태복음 24:37-39; 누가복음 17:26, 27).

전 세계적인 홍수와 같은 세계적인 재앙을 나타내는 성경 밖의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대륙에서 발견된 거대한 화석 묘지들과 거대한 양의 식물이 갑자기 덮여져야만 형성되는 많은 양의 석탄 퇴적물들이 존재합니다. 바다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화석들이 전 세계에 걸쳐 산 꼭대기 위에서 발견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지역의 문화들은 어떤 형태로든 홍수에 대한 전설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사실들과 그 외 많은 것들이 전 세계적인 홍수였다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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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공룡이란 주제는 기독교 집단 안에서 지구의 나이, 창세기의 적절한 해석,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발견되는 물리적 증거를 해석하는 방법과 같은 더 큰 주제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의 일부입니다. 지구의 나이가 아주 오래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성경에 공룡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에 동의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그들의 인식 체계에 따르면 공룡은 처음으로 사람이 지구를 걷기 수백만 년 전에 멸종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살아있는 공룡을 보았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구의 나이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들은 공룡이 비록 실제로 “공룡”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성경이 공룡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신, 성경은 영어 성경에서 몇 가지로 다르게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타닌(tanniyn)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바다 괴물”, 그리고 때로는 “뱀”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용”으로 번역됩니다. 타닌(tanniyn)은 일종의 거대한 파충류의 일종으로 나타납니다. 이 생물들은 구약 성경에 거의 30번 정도 언급되고 땅 위와 물 속 모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파충류들을 언급 할뿐만 아니라, 성경은 몇 가지 생물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일부 학자들은 기록자가 공룡을 묘사하는 것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베헤못(behemoth)은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가장 장대한 것으로 말해지고 있고, 그 거대한 꼬리는 백향목에 비유되고 있습니다(욥기 40:15). 어떤 학자들은 베헤못(behemoth)을 코끼리나 하마로서 식별하려고 하였습니다. 다른 이들은 코끼리나 하마는 백향목과 비교될 수 없는 매우 짧은 꼬리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편, 브라키오사우루스(앞다리가 뒷다리보다 훨씬 긴 거대 공룡)와 디플로도쿠스(거대한 공룡의 하나)는 백향목과 쉽게 비교 될 수 있는 거대한 꼬리를 가졌습니다.

거의 모든 고대 문명은 거대한 파충류 생물들을 묘사하는 일종의 어떤 예술 형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북미 지역에서 발견된 바위에 새긴 그림들, 공예품들, 그리고 심지어 작은 점토 인형들은 공룡의 현대적인 묘사와 유사합니다. 남미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무늬는 디프로도쿠스와 같은 생물들을 타고 있는 남자들을 묘사하고 있고, 트리케라톱스, 익룡, 그리고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같은 생물들의 친숙한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로마시대의 모자이크, 마야의 도자기, 그리고 바빌론 성벽 모두는 문화를 뛰어넘어 지리적 제한이 없이 이러한 생물들에 대한 인간들이 가진 매력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르코 폴로가 쓴 Il Milione처럼 냉철한 이야기들은 보물을 비축한 짐승들이 나오는 환상적인 이야기와 어우러집니다. 공룡과 사람이 공존했다는 상당한 분량의 인류적 그리고 역사적 증거들 외에도, 북미와 서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함께 발견된 인간과 공룡의 화석화된 발자국 같은 물리적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공룡이 존재할까요? 이 문제는 해결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존재하는 증거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당신 주위의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달렸습니다. 성경이 문자 그대로 해석이 된다면, 지구의 나이가 젊다고 생각하는 해석 하에 공룡과 인간이 공존했었다는 아이디어는 받아 들여질 수 있습니다. 만일 공룡과 인간이 공존했다면, 공룡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성경에서 이 문제를 취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공룡은 홍수 후 언젠가 극적인 환경 변화와 인간의 끊임없는 사냥으로 말미암아 멸종되었을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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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에게 자신을 순종하는 것과 불순종하는 것에 대한 선택권을 주시기 위해서 에덴 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창세기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으셨었다면, 그들은 그저 프로그램 된 것만을 하는, 본질적으로 로봇들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를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들로 창조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실제로 “자유로운” 존재들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은 선택을 해야만 하였습니다.

나무나 나무의 실과에는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 없습니다. 실과 그 자체가 아담과 이브에게 더 많은 어떠한 지식도 가져다 주었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즉, 물리적인 실과는 어떤 비타민 C나 유익한 어떤 섬유질을 함유할 수 있으나, 영적으로 영양가가 많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의 행위는 영적으로 해로웠습니다. 그 죄는 악에 대해 아담과 이브로 하여금 눈을 뜨게끔 하였습니다. 처음으로, 그들은 악하게 되는 것, 수치심을 느끼는 것,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그들의 죄는 자신들의 삶과 세상에 타락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순종의 행위인, 실과를 먹음으로 아담과 이브는 악과 그들의 벌거벗음을 알게 되었습니다(창세기 3:6-7).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가 죄를 범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결과들이 어떠할지를 미리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을 것과 그럼으로써 세상에 악, 고통, 그리고 죽음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도록 사탄을 허락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에게 선택을 하도록 힘을 가하는 사탄의 유혹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자신들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 의해 하나님을 거역하고 금지된 실과를 먹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결과들인 악, 죄, 고통, 질병, 그리고 죽음이 그 이후로 줄곧 세상을 타락시켰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결정은 모른 사람들이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죄를 향한 성향을 가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담과 이브의 결정은 궁극적으로 십자가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우리를 대신해 흘리시는 그분의 보혈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는 죄의 결과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되고, 궁극적으로 죄 자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로마서 7:24-25에 있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되새겨 보기를 기원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Got Questions Ministries

가인의 아내가 누구였는지 성경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가인의 아내는 그의 여동생이었거나 조카 또는 조카딸, 등, 이었을 것이라는 게 오직 가능한 답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 가인의 나이는 성경에 나와있지 않습니다(창세기 4:8). 그들 모두 농부들 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가정을 가질 법한 장성한 성인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벨이 살해되었을 때에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 외에도 더 많은 자녀들을 두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창세기; 5:4). 특히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는 사실은(창세기 4:14) 아담과 하와의 많은 다른 자녀들 그리고 아마 손자 손녀들까지 많은 숫자의 자손들이 이미 동시대에 살고 있지 않았나 추측하게 합니다. 이렇게 볼 때 가인의 아내(창세기 4:17)는 아담과 하와의 딸이거나 손녀였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최초의(그리고 유일한) 인간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은 그들끼리 서로 혼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근친결혼은 훨씬 후에 사람들의 숫자가 충분히 늘어나 근친결혼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질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셨습니다(레위기 18:6-18). 오늘날,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유전자적 이상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비슷한 유전자들을 가진 두 사람이(즉 형제와 자매) 함께 자녀들을 가지면, 그들의 열성 형질들이 우세해질 수 있는 높은 위험성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가족들로부터 온 사람들이 자녀들을 가지면, 두 부모가 같은 열성적 특성들을 가질 가능성은 아주 적습니다. 인간의 유전자 코드는 몇 세기를 지나는 동안 유전자 결함들이 배가되고, 증폭되며, 세대를 통해 유전되면서 갈수록 더 오염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어떠한 유전적 결함도 지니지 않았기에, 그들 자신들과 처음 몇 세대의 그들 후손들은 지금의 우리들 보다 훨씬 더 나은 건강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녀들은, 만일 있었다면, 약간의 유전적 결함들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간의 근친결혼은 안전했습니다.

-Got Questions Ministries

성경은 "원시인"이나 "네안데르탈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성경에 따르면 "선사시대" 사람들과 같은 것은 없습니다. "선사시대(先史時代)"라는 단어는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의 시대"을 의미합니다. 선사시대를 옹호하는 자들은 성경의 기록은 단지 조작이라고 전제합니다. 그 이유는 창세기는 사람을 창조하기 이전의 사건들을 기록(즉, 사람은 여섯째 날에 지어졌고, 그 이전 5일 동안에 다른 모든 것이 창조 되었다)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아담과 하와는 창조의 때부터 완전한 인간이었으며 더 낮은 생명 형태로부터 진화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합니다.

이러한 진술을 말한 성경은 지구 상의 충격적인 격변, 곧 대홍수 사건을 묘사합니다(창 6-9장). 그 사건에 의해 8명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문명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인류는 다시 시작되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참조하여 몇몇 학자들은 사람들이 동굴에서 살며 석기를 사용했다고 믿습니다. 이들은 원시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궁핍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확실히 반쪽 유인원이 아니었습니다. 화석 증거에 따르면 원시인은 동굴에 살았던 사람들인 것이 매우 분명합니다.

다윈을 따르는 고대 인류 학자들은(paleo-anthropologists) 일부 화석이 된 유인원을 보고 그 화석은 유인원과 사람 사이의 진화 과정에 있는 어떤 존재라고 해석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시인을 상상할 때 이러한 해석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털로 덮인 반은 사람이고 반은 유인원인 생물이 불 옆에 있는 동굴에 웅크리고 앉아서 새로 개발된 석기로 벽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러나 이는 공통적인 오해입니다. 다윈을 따르는 고대 인류학에 관한 한, 우리는 이러한 해석이 특이한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으며 증거의 결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실, 학계 내에서도 이러한 해석에 대한 주요 반대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다윈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세부 내용에 대해 서로 완전히 동의하지 못합니다.

불행하게도 대중적인 주류 견해는 사람과 원숭이가 모두 같은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다는 사상을 지지하지만 이것만이 유효한 증거에 대한 유일한 해석은 아닙니다. 사실, 이 특별한 해석을 지지하는 증거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그들은 완전히 발달된 인간이었으며, 의사 소통, 사회, 개발이 가능했습니다(창 2:19-25; 3:1-20; 4:1-12). 선사시대 원시인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진화론 과학자들이 설명하는 방식은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동굴에서 기형적인 이빨을 발견하고는 그 동굴에 유인원처럼 등이 굽은 기형적인 인간이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화석에 의해서는 동굴에 살던 원시인의 존재를 결코 증명할 수 없습니다. 진화론적인 과학자들은 단지 어떤 이론을 가지고 있으며, 그 후 그 이론에 맞는 증거가 있다고 억지를 부립니다. 아담과 하와는 가장 먼저 창조된 최초의 인간이었고 완전히 발달된 형태로 지적이며 직립으로 지어졌습니다.

-Got Questions Ministries

창조론의 타당성에 관한 논란이 굉장히 많습니다. 창조론은 "우주와 생물체는 진화론과 같은 자연적 과정보다는 성경의 기록대로 하나님의 구체적인 창조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믿음"으로 정의됩니다. 창조 과학은 종종 세속 공동체에 의해 묵살되고 과학적 가치가 부족하다고 비난 받습니다. 그러나 창조론은 어떤 주제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분명하게 호환됩니다. 창조론은 이 세상의 실제 사건, 장소 및 사물에 대해 진술합니다. 그것은 주관적인 생각이나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창조론과 일치하는 과학적 사실들이 확립되어 있으며, 그 사실들이 서로 관련되어 창조론자의 해석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다른 광범위한 과학적인 사고들이 일련의 사실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처럼 창조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초자연적 또는 영적인 설명은 배제하거나 거부하고 오직 모든 것이 자연의 속성 및 원인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철학적인 관점”인 ‘자연주의’와 반대되는 창조론이 어떻게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물론 그 대답은 “과학적”이라는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과학"과 "자연주의"는 정의에 있어서 창조론적인 견해를 배제하기 때문에 너무나 자주 똑같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정의는 자연주의에 대해 불합리한 숭배를 요구합니다. 과학은 "관찰, 식별, 묘사, 실험 조사 및 현상에 대한 이론적 설명"으로 정의됩니다. 과학 그 자체로는 자연주의와 무관합니다. 자연주의는 창조론처럼 실험에 의해 생성된 것이 아닌 일련의 전제 조건들을 요구합니다. 그 전제 조건들은 데이터로부터 추정되거나 시험 결과에서 파생된 것들이 아닙니다. 이러한 철학적인 전제들이 어떤 데이터를 취하기도 전에 받아들여집니다. 자연주의와 창조론은 모두 입증이나 검증이 가능하지 않은 전제들에 의해 강력한 영향을 받으며 사실들을 확인하기도 전에 논쟁에 들어갑니다. 이에 창조론은 적어도 자연주의만큼이나 과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공평합니다.

자연주의와 마찬가지로 창조론은 발견에 있어서 과학적 방법과 양립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사상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과학적"으로 여길 수 없는 면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과학이 아닙니다. 창조론도, 자연주의도 반증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즉, 어느 하나를 확정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실험이 전혀 불가능합니다. 어느 쪽도 예측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 두 이론들은 결과를 예측하는 능력을 생성하거나 향상시키지 못합니다. 이 두 이론만을 근거로 해서 보면,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더 과학적으로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주의자들이 창조론을 거부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기적의 개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주의자들은 전형적으로 특별 창조와 같은 기적은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관측되어 오던 자연의 법칙을 위반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견해는 몇 가지 점에서 아이러니합니다. 한 예로, 생명이 없는 물질로부터 생명이 생겨난다는 무생기원설(abiogenesis)을 생각해 봅시다. 무생기원설은 과학의 개념에서 철저하게 반박된 개념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연주의적인 관점은 이 땅의 생명, 곧 스스로 복제하고, 자립하고, 복잡한 유기체의 생명이 무생명 물질로부터 우연히 발생했다고 전제합니다. 그런 일은 인간의 모든 역사에 있어서 결코 관찰된 적이 없습니다. 더 유익한 진화적인 변화가 있으려면 피조물이 더 복잡한 형태로 발전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한 변화는 결코 관찰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창조론은 성경이 기적의 사건들에 대한 문서화된 기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실제로 기적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기적 때문에 창조론을 비과학적으로 분류한다면 자연주의도 비슷한 딱지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자연주의 대 창조론 논쟁에 있어서 양측이 사용하는 많은 사실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사실이지만, 절대적으로 단일 해석을 요구하는 그러한 사실은 없습니다. 창조론과 세속적인 자연주의 사이의 구분은 전적으로 서로 다른 해석에 달려있습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에 대해 찰스 다윈은 친히 이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의 소개 글에서 "나는 이 책의 그 어떤 한 가지 내용도 거의 사실들로부터 제시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사실로부터 오히려 내가 도달한 것과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윈은 분명히 창조론이 아니라 진화론을 믿었지만 그는 믿음을 택하는데 있어서 해석이 핵심이었음을 기꺼이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한 과학자는 어떤 특정 사실을 보면서 자연주의를 지지할 수 있고 다른 과학자는 똑같은 사실을 보면서 창조론을 지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창조론이 진화론과 같은 자연주의적 사상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실은, 특히 이 이분법이 과학을 이끄는 사람들에 의해 인정된 후로, 타당한 주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많은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과학자들은 생명에 대해 가능한 유일한 설명은 자연주의적인 진화 또는 특별 창조라고 말합니다. 모든 과학자가 어떤 것이 참인지에 대해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둘 중에 하나만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왜 창조론이 배움을 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법인지를 알려주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것들 중에는 현실적인 가능성의 개념, 거시적 진화에 대한 증거의 결함, 경험의 증거 등이 있습니다. 자연주의적인 전제를 무작정 받아들이고 창조론적 전제들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데는 논리적인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창조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과학적 발견에 장벽이 되지 않습니다. 뉴톤, 파스퇴르, 멘델, 파스칼, 켈빈, 리나우스, 맥스월과 같은 이들의 성취를 검토해 보십시오. 그들 모두가 명확하고 부족함이 없는 창조론자들이었습니다. 창조론은 자연주의가 "과학"이 아니듯이 "과학"이 아닙니다. 그러나 창조론은 과학 그 자체와 전적으로 양립할 수 있습니다.

-Got Questions Ministries

창세기 1장 1-2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고 말합니다. 간격이론(Gap Theory)은 하나님이 우리가 화석의 기록만으로 아는 공룡이나 다른 피조물들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과 함께 완전한 기능을 하는 지구를 창조하셨다는 견해입니다. 간격이론에 따르면, 그 이후에 지구를 완벽하게 파괴하는 어떤 사건이 있었는데 아마도 사탄이 지구로 떨어진 사건 같고, 그래서 지구는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셔서 창세기에 좀 더 자세히 묘사된 것처럼 낙원의 형태로 지구를 재창조하셨습니다. 유신론적 진화론과 ‘날-시대’ 이론과 구별되는 간격이론은 또한 오래된 지구 창조론, 간격 창조론, 파멸-재건 이론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젊은 지구 창조론에서는, 창세기 1장 1절은 히브리어 이야기 방식에서 전체 1장을 요약한 것으로 봅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2절은 1절이 요약한 것을 단계별 과정으로 나누어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창 1:2)라는 말은 헷갈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쓸모 없고 모양이 없는 지구를 창조하셨다는 생각은 몇몇 보수 신학자들에게는 불편한 입장이며, 이로 인해 그들은 간격이론 또는 오래된 지구라는 견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간격이론을 옹호하는 보수 지지자들에 따르면, 창세기 1장 1절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본래 창조를 묘사합니다. 그런 다음 1절과 2절 사이에서 사탄은 하늘에서 반역하고 쫓겨났습니다. 사탄의 죄는 원래 창조물을 "망쳤습니다". 다시 말해, 그의 반란은 파멸과 궁극적 인 죽음을 가져 왔고, 지구는 "재건축"이 필요한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로 쪼그라들었습니다. 간격의 ‘시간적인 길이’는 지정되어 있지 않지만 수백만 년 동안 지속도 가능합니다.

물론, 사탄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타락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동산에서 유혹이 없었을 것입니다.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은 사탄은 창세기 1장 31절 이후 어떤 때에 타락하였다고 말합니다. 간격 창조론자들은 사탄은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간격이론의 한 가지 어려움은 피조물이 아담의 타락 이전에 죽음과 파괴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서 5장 12절은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간격이론은 두 세계를 언급하며 대응합니다. 사탄의 죄는 원래 창조물이 어떤 모양이었든 간에 그 창조물에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아담의 죄는 인간의 영역인 재창조된 지구에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아담의 죄를 통해 인간 세상에 악이 들어왔고 사람의 영역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이미 타락하였기 때문에 인간의 영역 밖에서 이미 반란이 있었던 것입니다(사 14:12-14; 겔 28:12-18). 죄는 사람이 선택하기 전까지 인간의 영역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뱀을 통해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선택하도록 유혹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간격이론에 대한 이의는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어떤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였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지 가운데 두시고 추측하도록 하시기보다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또한 창세기 1장 31절은 하나님이 그분의 피조물을 "매우 좋았더라"고 선언 하셨는데 이 말씀은 사탄이 간격 사이에 타락했고 그로 인해 악이 이미 이 땅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간격이론과 조화되기 어려운 언급입니다.

문자 그대로 6 일간의 창조 주간을 유지하면서 간격이론을 고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간격이론은 창세기 1장 3절에서 첫째 날 사건이 시작되기 전에 그 간격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진화를 사실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에 몇몇 보수 신학자들은 간격이론이 스코필드(C. I. Scofield) 및 버논 매기(J. Vernon McGee)를 옹호하는 자들이 많아지면서 많이 약해졌을지라도 그 이론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격이론을 고수하는 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오래된 지구와 진화론을 창세기와 조화시키기 위해 그 이론을 따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억지로 조화를 이루려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창세기 1 장을 평범하게 읽으면 처음 두 구절 사이에 시간의 간격을 전혀 인식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알려줍니다. 창세기 1장 2절은 하나님이 처음에 땅을 창조하실 때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두웠다고 알려줍니다. 즉, 미완성이며 아무도 살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창세기 1장의 나머지 부분은 어떻게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두운 지구를 하나님이 생명과 아름다움과 선하심으로 채우셨는지 알려줍니다.

-Got Questions Ministries

  "날"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와 창세기에 나타나는 문맥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날"은 문자 그대로 24시간을 의미한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날”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 욤(yom)은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 단어는 지구가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데 걸리는 24시간의 하루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예, “하루에는 24시간이 있다”). 또한 새벽에서 황혼 사이의 일광의 기간을 나타내는 ‘낮’일 수 있습니다(예, "낮 동안은 꽤 뜨겁지만 밤에는 조금 시원합니다"). 그리고 불특정 기간을 나타내는 ‘때’일 수 있습니다(예, "할아버지 때에"). 창세기 7장 11절에서는 ‘욤’은 24시간을 가리키는데 사용됩니다. 창세기 1장 16절에서는 새벽과 황혼 사이의 ‘낮’ 기간을 가리키는데 사용됩니다. 창세기 2장 4절에서는 불특정 기간을 가리키는데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1장 5절과 2장 2절 사이에서 서수(즉,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 그리고 일곱 째날)와 함께 쓰인 ‘욤’은 어떤 의미입니까? 24시간의 기간입니까? 아니면 다른 뜻입니까? 여기서 ‘욤’이 불특정 기간을 의미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창세기 1장 5절과 2장 2절 사이에서 ‘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해 그 단어가 사용되는 문맥을 검토하고 성경의 다른 곳에서 사용된 문맥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성경이 성경 자체를 해석하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 단어 ‘욤’은 구약에서 2301 번 사용됩니다. 창세기 1장을 빼면 ‘욤’에 숫자가 있는 경우(이런 경우는 410번이 있습니다) 늘 평범한 날, 즉 24 시간을 나타냅니다. "저녁"과 "아침"이라는 단어가 함께 쓰이면(38 번이 있습니다) 늘 평범한 날을 나타냅니다. ‘욤’과 "저녁"또는 "아침"이 사용되면(23 번 있습니다) 항상 평범한 날을 나타냅니다. ‘욤’과 "밤"(52 번 나옵니다)도 항상 평범한 날을 나타냅니다.

창세기 1장 5절과 2장 2절 사이에서 사용되는 ‘욤’의 문맥은 각각의 날이 "저녁과 아침"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창세기의 저자가 24시간을 의미한 것이 분명합니다. "저녁"과 "아침"에 대한 언급이 문자 그대로 24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모순이 됩니다. 이것은 1800년 시대에 이르러 과학 공동체 안에서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나고 지구의 퇴적 지층이 재해석되기 전까지 창세기 1장 5절에서 2장 2절 사이를 해석하는 기준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암석층이 노아의 홍수에 대한 증거로 해석되었지만, 과학 공동체는 대홍수를 부인하며 내다버렸고 암석층은 대단히 오래된 지구의 증거로 재해석되었습니다. 한편, 의도는 좋지만 큰 착각에 빠진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대홍수를 부정하고 성경을 대적하는 과학 공동체의 주장과 창세기 기사를 조화시키기 위해 ‘욤’을 엄청나게 긴 불특정 기간으로 재해석하였습니다.

사실, 오래된 지구를 지지하는 수많은 해석들은 잘못된 가정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몇몇 꽉 막히고 완고한 과학자들이 우리의 성경 읽는 방법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0장 9-11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사람의 한 주간의 일의 패턴을 알려주시기 위해 문자 그대로의 6일을 사용하여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즉, 6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셨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원하기만 하신다면 즉시 모든 것을 창조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를 (6일째 되는 날에) 창조하시기 전에 우리를 마음에 두셨으며 우리가 따라야 할 본을 제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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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세 가지 주요 세계관 중 하나이며, 다른 두 가지는 무신론적 진화론(일반적으로 알려진 다윈주의 진화론과 자연주의 진화론)과 특별 창조론입니다.

무신론적 진화론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며 생명은 기존의 무 생명체로부터 자연 법칙(중력 등)의 영향을 받아 출현할 수 있고, 출현하였다고 말합니다. 특별 창조는 하나님이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혹은 기존의 물질로부터 직접 생명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두 가지 중 하나를 말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계시지만, 그분은 생명의 기원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으셨다는 견해입니다. 하나님은 아마 큰 무기체 덩어리들을 창조하신 후에 자연의 법칙을 창조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그분은 궁극적으로 생명의 출현을 염두에 두고 이러한 것들을 창조하셨을 수 있고, 어느 시점에서 일찍이 물러서서 피조물들이 알아서 발전하도록 두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또한 무엇을 행하든지 간에 그냥 두셨고 궁극적으로 생명체가 무생물 물질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이 견해는 자연주의적인 생명의 기원을 가정한다는 점에서 무신론적 진화론과 유사합니다.

유신론적 진화론의 두 번째 대안은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의 기원을 유발하기 위해 단지 한두 가지 기적만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는 견해입니다. 하나님은 꾸준히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윈의 진화론적 생명 나무(조류와 포유류 등을 낳은 파충류, 파충류를 낳은 양서류, 양서류를 낳은 물고기 등등)와 유사하게, 태고의 단순함에서 동시대의 복잡성에 이르는 단계에 따라 생명을 이끄셨습니다.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진화할 수 없었던 곳(파충류의 다리가 어떻게 자연적으로 새의 날개로 진화했습니까?)에서 하나님이 개입하셨습니다. 이 견해는 하나님이 우리가 아는 생명을 유발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셨다고 전제하는 점에서 특별 창조론과 유사합니다.

성경적인 특별 창조론의 관점과 유신론적 진화론의 관점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죽음에 대한 견해입니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지구가 수십억 년이 되었으며, 화석 기록을 포함하고 있는 지질 주상 단면도는 장구한 시간의 시대를 나타낸다고 믿습니다. 인간은 화석 기록에서 후반에 나타나기 때문에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인간이 나타나기 오래 전부터 많은 생물들이 살았고, 죽었고, 멸종되었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아담과 그의 범죄 이전에 죽음이 존재하였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적 창조론자들은 지구는 비교적 젊고, 화석 기록은 노아의 홍수 동안과 그 이후에 저장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층들의 계층화는 물의 분류 및 액화로 인해 발생했다고 생각하며, 또한 이 두 현상은 관찰이 가능한 현상들입니다. 그 견해는 화석 기록과 죽음과 모든 아수라장의 대학살은 아담의 범죄 이후 수백 년이 지난 후에 발생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두 견해 사이의 또 다른 중요한 차이점은 창세기를 읽는 방법입니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주간에 대해 우화적으로 해석하는 ‘날-시대’ 이론 또는 골격 이론에 동의하는 성향을 지닙니다.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은 창세기 1 장을 읽을 때 문자 그대로 하루 24 시간에 동의합니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볼 때에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이 동의하는 두 견해 모두가 창세기의 창조 기사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결함이 있습니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별이 진화한 후 태양계가, 그 다음은 지구, 그리고 식물과 동물, 그리고 결국 인간이 생겨났다는 다윈의 시나리오를 상상합니다. 유신론적 진화론의 이 두 견해는 사건을 전개하시는 하나님의 역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일반적으로 다윈의 연대표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다윈의 연대표는 창세기의 창조 기사와 상충됩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 장은 지구가 하루에 창조되었고 태양, 달, 별들은 넷째 날에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의 표현은 태양, 달, 별들이 실제로는 첫날에 창조되었지만 넷째 날까지는 그것들의 자리로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구의 대기를 통해 볼 수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지구는 둘째 날에 대기를 갖게 된 것을 분명히 하는 창세기의 기사와 부딪히게 됩니다. 만일 태양, 달, 별이 첫째 날에 만들어졌다면, 그 날에 보였어야 합니다.

또한 창세기의 기사에 의하면 조류는 다섯 째 날에 바다 생물과 함께 지어졌음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지상 동물은 6 일째에 창조되었습니다. 이 기록은 조류가 지상 동물로부터 진화했다는 다윈주의 견해를 직접적으로 반대합니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새들은 지상 동물보다 앞서 있습니다. 하지만 유신론적 진화론자의 견해는 정반대입니다.

현대 기독교 내에서 가장 큰 불행한 경향 중 하나는 진화론을 수용하기 위해 창세기를 재 해석하는 것입니다. 많은 저명한 성경 교사와 변증론자들이 진화론자들에게 굴복하여 창세기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을 고수하는 것은 어떻게든 기독교의 신빙성에 해가 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우, 진화론자들은 성경에 대한 믿음이 약해서 신속하게 타협하려는 자들을 향한 존중을 잃게 됩니다. 진정한 창조론자들의 수가 학계에서 줄어들고 있지만, [창세기의 답변들](Answers in Genesis), [창조 연구 협회](the Creation Research Society), [창조 연구를 위한 기관](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등과 같은 여러 신실한 기관들은 성경이 실제 과학과 양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의 말씀 하나라도 참된 과학에 의해 반증된 적이 없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며,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주신 계시이고, 그분이 우주를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친히 알려주신 설명은 진화론과 맞지 않으며 진화에 대한 "유신론적" 이해와도 맞지 않습니다.

-Got Questions Ministries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합니다. 그 뒤에, 창세기 2장 4절에서 또 다른, 두번째 창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창조 기사가 있었다는 생각은, 두 본문이 하나의 창조 사건을 묘사하는 것을 오해한 것입니다. 두 기사는 피조물이 만들어지는 순서에 있어서 일치하며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없습니다. 창세기 1장은 "창조의 6일"(그리고 일곱째 날의 안식)을 묘사하고 있으며, 창세기 2장은 창조 주간 중 하루, 곧 여섯째 날만 다루고 있으므로 모순이 없습니다.

저자는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여섯째 날까지의 시간을 순서대로 되돌아 갑니다. 저자는 창세기 1장에서 여섯 째 날에 사람을 창조된 사실을 창조의 절정 또는 최고점으로 제시합니다. 그 후 저자는 2장에서 사람의 창조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창세기 1-2 장에는 두 가지 주된 모순이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식물과 관련됩니다. 창세기 1장 11절은 하나님이 셋째 날에 식물을 창조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 5절에서는 사람을 창조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식물을 창조하신 것은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인 셋째 날입니까(창 1장), 아니면 사람을 창조하신 이후(창 2장)입니까? "식물"에 대한 히브리 단어는 두 구절에서 다릅니다. 창세기 1장 11절은 일반적인 식물을 가리키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창세기 2장 5절은 농사를 필요로 하는 식물, 즉 돌 볼 사람이 필요한 식물을 언급하는 좀 더 구체적인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 구절들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 11절은 하나님이 식물을 창조하신 것을 말하는 것이고 창세기 2장 5절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까지 "농경 가능한" 식물을 자라나게 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모순으로 주장되는 것은 동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4-25절은 하나님이 여섯째 날에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동물을 창조하신 것을 기록합니다. 창세기 2장 19절은 몇몇 번역본을 볼 때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동물을 창조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2장 19-20절에 대해 멋지고 이치에 맞는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미)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본문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동물을 지으시고 그 후 그 동물들을 사람에게 데리고 오셨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본문은 “주 하나님이 (이미) 모든 동물들을 지으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순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섯 째 날에 동물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후 동물을 사람에게 데려오셨고 사람은 동물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두 가지 창조 기사를 개별적으로 고려한 다음 서로 조화를 시킨다면, 하나님은 창세기 1장에서 창조의 과정을 묘사하시고, 창세기 2장에서는 특히 여섯 째 날의 가장 중요한 세부 내용을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이는 단지 평범한 내용에서 구체적인 내용으로 사건을 기술해 나가는 일반적인 문학적 방법으로서 여기에도 모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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