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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제정은 창세게 2:23-2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창조하시고 그리고는 남자를 돕는 배필로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결혼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세기 2:18)란 사실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입니다.

창세기 2:20에서 이브를 묘사하는데 사용된 “배필(helper)”이란 말은 “둘러 싸다, 보호하다, 또는 지원하다, 돕다”를 의미합니다. 이브는 아담의 “다른 반 쪽”으로서 지원하거나 돕는 자로서 아담 옆에서 창조되었습니다. 결혼했을 때, 남자와 여자는 “한 몸”이 됩니다. 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성적 친밀감을 갖는 육체적 결합에서 가장 온전하게 드러납니다. 신약 성경은 이 하나됨에 관한 경고를 추가합니다: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마태복음 19:6).

사도 바울에 의해 쓰여진 몇 개의 서신서들은 결혼과 결혼 관계 안에서 믿는 자들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의 본문은 고린도전서 7장이고, 다른 본문은 에베소서 5:22-23입니다. 같이 검토해 보면, 이 두 본문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혼관계를 위한 뼈대를 형성하는 성경적 원칙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 있는 본문은 성공적인 성경적 결혼에 관하여 특히 심오한 말씀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에베소서 5:22-23).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에베소서 5:25). “이와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에베소서 5:28-29).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에베소서 5:31).

믿는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의 원칙들을 구축할 때, 성경적인 결혼의 결실을 맺습니다. 성경 말씀에 기반을 둔 결혼은 그리스도를 남자와 아내 모두의 머리로 삼는 조화된 생활인 것입니다. 결혼의 성경적 개념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하나가 되신 것을 보여주는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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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그에게 “매여” 있다고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로마서 7:2). 여기서의 원리는 결혼의 끈이 끊어지려면 남편이나 아내 중 어느 하나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인데도, 우리의 현대 사회에서는 결혼한 경우들의 51 퍼센트 이상이 이혼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서약을 한 커플들의 반 이상이 이 서약을 깨뜨리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결혼한 커플이 자신들의 결혼이 지속될 것을 보장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혼 전에 수행되어야 하는 원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아모스 3:3). 거듭난 믿는 자에게, 이것은 누구든지 믿지 않는 자와 친밀한 관계를 시작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어둠과 빛이 어떻게 같이 하겠느냐?”(고린도후서 6:14). 이 하나의 원칙이 지켜진다면, 이후의 결혼에 있어 많은 심적 고통과 괴로움을 덜어 줄 것입니다.

결혼이 오래 지속되도록 지켜주는 또 다른 원칙은 남편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아내를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고 존중하며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에베소서 5:25-31). 상응하는 원칙은 아내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고 “주님께 하듯이” 자기 자신의 남편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에베소서 5:22).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간의 관계를 묘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셨고 교회를 자신의 “신부”로서 사랑하고, 영예롭게 하며, 보호하십니다(요한계시록 19:7-9).

하나님께서 처음 결혼으로 아담에게 이브를 데려 오셨을 때, 그녀는 아담의 “살과 뼈”로 만들어졌고(창세기 2:31), 그들은 “한 몸”이 되었습니다(창세기 2:23-24).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육체적 결합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개체를 이루기 위한 마음과 혼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이런 관계는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매력을 넘어서서 영적인 하나됨의 경지에까지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나를 그리고 나의”가 아닌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에 중점을 둡니다. 이것이 지속되는 결혼의 비밀들 중 하나입니다. 죽을 때까지 결혼을 지속시키는 것은 부부가 우선 순위가 되는 무언가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은 남편과 아내의 수평적 관계가 지속되어 두 사람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하나임을 확신하는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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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율법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다른 인종과 혼인을 맺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신명기 7:3-4). 그러나, 이 명령에 대한 이유는 피부 색이나 민족성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상당히 종교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다른 인종과의 결혼을 금지하신 이유는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거짓 신들의 숭배자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 숭배자들, 사교도들, 또는 이교도들과 결혼을 한다면,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2:11에 따르면, 이러한 염려는 정확하게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영적 순결의 유사한 원리가 신약에도 깔려있는데, 이는 인종과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고린도후서 6:14). 이스라엘 족속(유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우상 숭배자들과 결혼하지 말 것을 명령 받았던 것처럼, 기독교인들도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결혼하지 말 것을 명령 받습니다. 성경은 결코 다른 인종과의 결혼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다른 인종과의 결혼을 금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 말씀의 권위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한 것뿐입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언급한 바와 같이, 사람은 그 또는 그녀의 피부색이 아니라 그 또는 그녀의 성격으로 판단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의 삶 속에서는 인종에 근거한 편애의 여지가 없습니다(야고보서 2:1-10). 사실, 오로지 “하나의 인종”만이 존재한다는 것이 성경적 관점입니다 – 인류, 아담과 이브로부터 내려온 모든 사람들. 배필을 선택할 때, 기독교인은 결혼할 지도 모르는 배우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거듭 났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요한복음 3:3-5). 피부색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성경의 표준입니다(요한복음 3:3-5). 다른 인종간의 결혼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지혜와 분별 그리고 기도의 문제인 것입니다.

결혼을 고려하는 두 사람은 많은 요인들을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피부색의 차이가 무시되어서도 안되겠지만, 그 또한 절대 두 사람이 결혼해야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서로 다른 인종의 커플은 차별과 조롱에 직면할 수도 있으니, 자신들은 그러한 편견에 대해 성경적 태도로 대응할 수 있게 준비되어야 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로마서 10:12). 피부색을 따지지 않는 교회 그리고/또는 국제결혼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평등을 나타내는 강력한 예증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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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저는 이런저런 이유로 이혼했습니다. 제가 재혼할 수 있을까요?” “저는 두 번 이혼했습니다 – 처음은 제 배우자의 외도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불화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세 번 이혼했던 남자와 연애 중입니다 – 처음은 불화로, 두 번째는 그 자신의 외도로, 세 번째는 그의 아내 쪽의 외도로. 우리는 서로 결혼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이혼 후 재혼에 대한 다양한 경우들에 관하여 성경은 자세하게 언급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결혼한 커플이 모두 살아 있는 한 결혼을 유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입니다(창세기 2:24; 마태복음 19:6). 이혼 후에 재혼을 허락하는 유일하고 구체적인 사유는 간통(외도)인데(마태복음 19:9), 이것조차 기독교인들간에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내버려질 때 입니다 – 믿지 않는 배우자가 믿는 배우자를 떠날 때(고린도전서 7:12-15). 그렇다고, 이 문장은 특별히 재혼하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결혼 상태로 남아 있으라 권합니다. 육체적, 성적, 그리고 심각한 감정적 학대의 경우들은 갈라설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성경은 이혼과 재혼의 맥락에서 이러한 죄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혼을 싫어하시고(말라기 2:16),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고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혼은 한 쪽에 문제가 있든, 두 쪽 다 문제가 있든 간에, 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혼을 용서하실까요? 물론입니다. 이혼은 다른 어떠한 죄처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마태복음 26:28; 에베소서 1:7). 하나님께서 이혼의 죄를 용서하신다면, 이것이 재혼하는 것에 대한 자유를 뜻하는 걸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때는 사람들이 독신으로 남을 것을 소명하십니다(고린도전서 7:7-8).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저주나 형벌로 보아서는 안되겠고, 오히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7:32-36).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정욕으로 불타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고린도전서 7:9). 아마 이것이 때로는 이혼 후 재혼하는 것에 적용됩니다.

그래서, 당신은 재혼을 할 수 있거나 재혼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이 문제는 당신과, 당신의 잠재적 배우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나님 사이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는 지혜를 주시라고 그분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야고보서 1:5). 열린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당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시편 37:4).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잠언 3:5-6)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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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믿지 않는 자와 데이트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며, 결혼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6:14은 “믿지 아니하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같은 멍에를 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마리 소들의 모습입니다. 함께 짐을 끌어당기는 대신, 이 소 두 마리는 서로 상반되게 일하게 될 것입니다. 이 구절이 특별히 결혼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것은 분명하게 결혼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와 바알(사탄)이 조화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과 비 기독교인간의 결혼 안에 영적 조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믿는 자들은 그들이 구원을 받을 때 그들의 마음에 들어 온 성령의 거하시는 장소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켜 줍니다(고린도후서 6:15-17).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합니다 – 세상 안에서이지 세상 밖으로가 아님. 그리고 삶에 있어 가장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결혼만큼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경은 또한 말씀합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고린도전서 15:33). 믿지 않는 자들과 어떤 방식이로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되는 어떤 길로 빠르게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과 친밀하게 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전도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과 좋은 우정을 쌓는 것에 있어서 잘못된 것은 없지만, 거기까지 입니다. 당신이 믿지 않는 자와 데이트를 한다면, 솔직히 당신의 우선 순위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연애 감정 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를 위해 한 영혼을 구하는 것입니까? 당신이 믿지 않는 자와 결혼을 한다면, 당신들 둘은 결혼 생활에서 영적 친밀감을 어떻게 일굴 것입니까? 당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서로 동의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좋은 결혼생활을 구축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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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브리서 13:4). 성경은 남편과 아내들에게 성적으로 허락된 것이나 허락되니 않은 것에 대해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남편들과 아내들은 가르침을 받습니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고린도전서 7:5a). 아마 이 구절이 결혼에 있어 성관계에 대한 원칙을 규정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행해지던, 서로가 동의해야 합니다. 누구도 그 또는 그녀가 불편하거나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는 어떤 것들을 권장 하거나 강제해서는 안됩니다. 남편과 아내 둘 다 어떤 것(오럴섹스, 다른 체위, 성인용품 등)을 시도해 보기를 원한다면, 성경은 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할 어떤 이유도 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부부에게 성적으로 결코 허락될 수 없는 몇 가지 것들이 있습니다. “부부 교환”이나 “추가적인 다른 사람의 참여”의 행위(세 명끼리, 네 명끼리 등)는 노골적인 간음입니다(갈라디아서 5:19; 에베소서 5:3; 골로새서 3:5; 데살로니가전서 4:3). 당신의 배우자가 허락하고, 인정하며, 또는 거기에 참여까지 한다 하더라도 간음은 죄입니다. 포르노는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부추기므로(요한일서 2:16) 하나님께 의해 역시 정죄 받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포르노를 자신들의 성적 결합에 끌어 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 항목들 외에, 서로가 동의 하는 한 남편과 아내가 서로 행하는데 있어 성경에서 명백하게 금하는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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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은 결혼 관계에 있어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음은 알기 쉬운 성경적이 주고 있는 명령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에베소서 5:22-24).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도, 남편이 머리가 되는 원칙이 여전히 존재하였습니다(디모데전서 2:13).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아담의 “돕는 배필”로서 지어졌습니다(창세기 2:18-20). 하나님은 세상 권위의 여러 형태들을 세우셨습니다: 사회 정의를 집행하고 보호를 제공하는 정부; 하나님의 양을 인도하고 먹이는 목자; 그들의 아내들을 사랑하고 부양하는 남편;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을 훈계하는 아버지. 각각의 경우에 순종이 요구됩니다(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순종, 목자에 대한 양떼들의 순종,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순종 등).

‘순종’으로 번역된 헬라어, ‘hupotasso’는 동사의 계속되는 형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정부와, 목자, 그리고 또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일회성 행위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행동의 양식이 되는, 계속되어야 하는 태도입니다.

물론,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할 책임이 있고,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따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야고보서 1:21; 4:7). 그리고 각각의 기독교인은 겸손하게 살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과 피차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에베소서 5:21). 가족단위 내에서의 순종에 관해서, 고린도전서 11:2-3은 남편은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하고(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하신 것처럼), 아내는 그녀의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혼생활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들에 관한 많은 오해가 오늘날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성경적 역할들이 제대로 이해된 경우에서 조차, 많은 사람들이 소위 여성의 “해방”을 지지하며 그 역할들을 거부하는 선택을 하는데, 이는 가족 단위가 분열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의도를 거부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분의 의도를 즐겁게 기념해야 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나쁜 단어가 아닙니다. 순종은 열등감이나 더 적은 가치가 반영된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가치를 조금도 포기함이 없이, 끊임없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누가복음 22:42; 요한복음 5:30).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에 관한 세상의 잘못된 정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에베소서 5:22-24:1의 다음과 같은 점들을 신중하게 주목해야 합니다. [1] 아내는, 모든 남자들이 아닌, 한 남자(그녀의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슨종의 규칙은 여성의 지위를 사회로까지 전체적으로 확장하지 않습니다. [2] 아내는 예수 그리스도께 개인적으로 순종하는 가운데, 그녀의 남편에게 기꺼이 순종해야 합니다. 여자는 자신이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의 남편에게 순종합니다. [3] 아내가 순종하는 예는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복종입니다. [4] 아내의 능력, 재능, 또는 가치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내가 자신의 남편에게 순종한다는 사실은 그녀가 열등하다거나 가치가 덜하다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습니다. 또한, “범사(모든 일에)”를 제외하고는, 순종의 명령을 통해 순종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자기 아내의 순종을 받기 전에 적성 검사나 지능 테스트를 통과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리더십에 있어, 많은 면에서 더 나은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남편의 리더십에 복종함으로써 주님의 지시를 따르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건한 아내는 단순하게 그녀의 거룩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말없이” 자기의 믿지 않는 남편마저도 주님께 인도할 수 있게 됩니다(베드로전서 3:1).

순종은 사랑의 리더십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어야 합니다. 남편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의 아내를 사랑하면(에베소서 5:25-33), 순종은 자기의 남편에 대한 아내의 자연적 반응이 됩니다. 하지만, 남편의 사랑 또는 그것의 부족함과 관계없이, 아내는 “주님께 하듯이” 순종하라고 명령 받고 있습니다(22절).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아내의 순종 – 하나님의 계획을 그녀가 받아들이는 것 – 이 자기의 남편에 대해 자신이 순종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 하듯이”란 비교는, 또한, 그녀가 따라야 할 더 높은 권위가 있다는 것을 아내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따라서, 남편에게 “순종”한다는 미명 하에 그녀는 사회 법이나 하나님의 법을 거역할 의무가 없습니다. 아내는 옳고 합법적이고 하나님을 기리는 일들에서 순종합니다. 물론, 아내는 학대에 대해서는 ‘순종’하지 않습니다 – 이는 옳지도, 합법적이지도, 하나님을 기리는 것도 아닙니다. 학대를 정당화하기 위해 ‘순종’의 원칙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고 악을 장려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의 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은 남편이 이기적이 되고 횡포를 부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사랑하라이고(25절), 남편은 하나님 앞에 그 명령을 이행할 책임이 있습니다. 남편은 지혜롭고, 자비롭게, 그리고 자신이 해명해야 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남편의 권위를 행사해야 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 의해 사랑을 받는 것처럼 아내가 자신의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면, 순종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5:24는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혼에 있어, 순종은 남편에게 명예와 존경을 가져다 주고(에베소서 5:33 참조) 남편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는 마음가짐입니다. 이것은 가족이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께서의 지혜로우신 계획입니다.

매튜 헨리(Matthew Henry) 성경 주석자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여자는 아담의 옆구리로 만들어졌다. 여자는 남자를 지배하기 위해 남자의 머리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남자에 의해 짓밟히도록 남자의 발로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오히혀 남자와 동등 하라고 남자의 옆구리고 만들어 졌고, 남자의 팔 아래에서 보호되고, 그리고 사랑 받기 위해 남자의 심장에 가까운 곳에서 만들어졌다.” 에베소서 5:19-33에 있는 남편과 아내에 대한 명령의 바로 다음 단락은 성령충만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믿는 자들은 예배하고(5:19), 감사하며(5:20), 복종해야 합니다(5:21). 그리고는 바울은 이 성령 충만한 삶에 대한 생각의 뒤를 이어 22-24절을 통해 그것을 아내들에게 적용시킵니다. 아내는 여자들이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라(성경은 결코 이점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결혼 관계가 잘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시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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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동성애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동성애자끼리/동성끼리의 결혼에 대해 명확히 언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동성애를 부도덕하고 비정상적인 죄로 정죄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레위기 18: 22은 동성애 관계를 가증하고 혐오스러운 죄로 보고 있습니다. 로마서 1:26-27은 동성애에 대한 욕구들과 행위들을 부끄럽고, 비정상적이며, 탐욕스럽고, 불건전한 것이라 공표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 9은 동성애가 불의하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동성애에 대한 욕구들과 행위들 모두 성경에서 정죄되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자들 간에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사실, 죄가 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이 결혼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간의 관계입니다. 결혼에 관해 첫 번째로 언급하고 있는 창세기 2: 24은 결혼은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연합하는 것이라고 묘사합니다. 고린도전서 7: 2-16 그리고 에베소서 5:23-33와 같은 결혼에 관한 지침들을 담고 있는 본문에서, 성경은 결혼이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의 관계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성경적으로 말해, 결혼은 한 남성과 한 여성간의 평생의 연합이며, 주로 가정을 세우는 목적을 위한 것이고, 그러한 가정을 위한 안정된 환경을 제공해 줍니다.

그러나, 오로지 성경만이 이러한 결혼에 대한 해석을 보여주는데 사용되지 않아도 됩니다. 결혼에 관한 성경적 관점은 세계 역사에서 모든 인간의 문명을 통해 결혼에 관한 일반적 해석이 되어 왔습니다. 역사는 동성애자끼리의 결혼에 대해 반대 의견을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 세속적 심리학은 남성들과 여성들이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서로를 보완하도록 설계되어 있음을 인정합니다. 가정과 관련하여, 심리학자들은 배우자 상호간의 좋은 성 역할 모델로서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연합이 자녀들을 올바로 양육하기 위한 최선의 환경이라고 주장합니다. 심리학은 동성애자끼리의 결혼에 대해 반대론을 펼칩니다. 본질상/육체적으로, 명백하게, 남성들과 여성들은 성적으로 서로 적합하게 설계되었습니다. 출산을 위한 성행위의 본질적인 목적과 관련하여, 오직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성관계만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본성은 동성끼리의 결혼에 대해 반대론을 펼칩니다.

따라서, 성경, 역사, 심리학, 그리고 본성이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결혼에 대해 찬성 의견을 펼치고 있는데도, 왜 오늘날 그런 논란이 존재합니까? 왜 동성끼리의 결혼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정중하게 반대의 뜻을 제시하더라도, 미움에 차고, 편협하며, 편견이 심한 사람들로서 낙인이 찍히는 건가요?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 커플을 어떤 합법적 동성끼리의 결혼의 형태로 있는 결혼한 커플로서 똑같은 법적 권리를 지지하고 – 최소한 훨씬 덜 반대함 – 있는데도, 동성애자 권리운동들은 동성애자끼리/동성끼리의 결혼을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밀어 붙이는 것일까요?

대답은, 성경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본질적으로 동성애가 부도덕하고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이렇게 내재하는 지식을 억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동성애를 정상화하려하고 동성애에 대한 그 어떠한 반대라도 공격을 가한다는 것입니다. 동성애를 정상화하는 최선의 방법은 동성애자끼리/동성끼리의 결혼을 상반되는 성끼리의 전통적인 결혼과 같은 위치에 두는 것입니다. 로마서 1: 18-32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셨기 때문에 진리는 알려졌습니다. 진리는 거부되고 거짓말과 대체됩니다. 그리고는, 거짓말이 장려되고 진리는 압제받고 공격을 당합니다.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동성애자 권리 운동에 참여하는 많은 자들에 의해 표현되는 격렬함과 분노는, 사실, 그들이 그들의 위치가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약한 입지를 극복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논쟁과 관련된 책에서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속임수입니다. 아마도 현대 동성애자 권리 안건에 관해 로마서 1:31의 말씀보다 더 정확한 묘사는 없을 것입니다: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동성애자끼리/동성끼리의 결혼을 허가한다는 것은 성경이 명백하게 그리고 일관적으로 죄악으로 정죄하고 있는 동성애적 삶의 방식에 인가를 내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동성애자끼리/동성끼리의 결혼을 굳건히 반대해야 합니다. 게다가, 동성애자끼리/동성끼리의 결혼에 반하는 강력하고 논리적인 주장들이 성경 밖에서도 존재합니다. 복음적인 기독교인만이 결혼이 한 남성과 한 여성간의 관계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따르면, 결혼은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습니다(창세기 2장 21-24절, 마태복음 19:4-6절). 동성애자끼리/동성끼리 결혼은 결혼제도를 왜곡하는 것이며 결혼을 제정하신 하나님께 대한 공격입니다. 기독교인들로서, 우리는 죄를 용납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동성애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죄들의 용서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해야 하고(에베소서 4:15절), “온유함과 존중함”으로 진리를 주장해야 합니다(베드로전서 3:15). 기독교인들로서, 우리가 진리에 굳건히 선 결과가 개인적인 공격들, 모욕들 그리고 박해뿐일 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한복음 15: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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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하나님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이 성립되었다고 인정하시는 어떤 정확한 지점을 분명하게 명시하지 않습니다. 세 가지 일반적인 견해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합법적으로 결혼할 때에야 결혼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즉, 법의 관점에서 남편과 아내가 되는 때를 결혼 성립으로 보는 것입니다. 2)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언약 맹세를 포함한 공식적인 결혼식을 마칠 때 하나님의 눈에 결혼이 성립되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3) 하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성관계를 맺는 순간을 결혼 성립으로 보신다는 견해입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견해를 각각을 살펴보고 각 견해의 강점과 약점을 평가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합법적으로 결혼했을 때를 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한 것으로 여기신다는 견해입니다. 이 견해를 지지하기 위해 주어지는 일반적인 성경 구절은 정부의 법을 준수하라는 명령입니다. (롬 13:1-7; 벧전 2:17). 이 견해가 주장하는 바는 만일 정부가 결혼을 인정하기 전에 특정 절차와 서류 작업을 완료하도록 요구할 경우 부부는 그 절차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요구 사항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지 않고 합리적인 한, 부부가 정부에 복종해야 한다는 이 주장은 분명히 성경적입니다. 로마서 13장 1-2절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견해에는 몇 가지 약점과 잠정적인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 정부가 조직되기 전에 결혼이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결혼 면허증과 같은 것이 없이도 결혼을 하고 살았습니다. 둘째, 심지어 오늘날에도 결혼에 대한 정부의 인정이 없거나 결혼에 대한 법적 요구 사항이 없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셋째, 합법적인 결혼으로 인정하기 전에 비 성경적인 요구 사항을 두는 몇몇 국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국가는 합법적인 결혼이 되려면 카톨릭교의 가르침에 따라 카톨릭 교회 안에서 카톨릭 사제에 의해 결혼이 집례될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카톨릭 교회 및 결혼을 성례로 이해하는 것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카톨릭 교회를 통해 결혼하라는 요구에 복종하는 것은 비 성경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넷째, 정부의 법령에만 의존하여 결혼을 합법화시키는 것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결혼에 대한 법적 정의를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2) 남자와 여자가 공식 결혼식을 마치면 하나님의 눈에 결혼한 것으로 인정된다는 견해입니다. 어떤 해석자는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에게 데리고 오신 것을(창 2:22) 하나님이 첫 번째 결혼을 주례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결혼식에서 아버지가 딸을 건네주는 현대의 관행은 에덴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을 반영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은 결혼식에 참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곳의 결혼식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그 식에 참석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결혼 예식에 예수님이 참석하신 것은 결코 하나님이 결혼 성립을 위해 결혼 예식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식은 하나님 앞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인류 역사의 거의 모든 문화는 여러 모양의 공식 결혼식을 준수하여 왔습니다. 모든 문화에는 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였음을 선언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사건, 행동, 언약, 서원 또는 선포가 있습니다.

3) 하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성관계를 맺을 때 결혼이 성립된 것으로 여기신다는 견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한 부부라도 육체적으로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면 아직 하나님 앞에서 결혼이 성립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어떤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가졌다면, 하나님은 그 두 사람이 결혼한 것으로 여기신다고 주장합니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근거로는 남녀 사이의 성 관계는 그 둘을 ‘한 몸’되게 한다는 성경 구절들입니다(창 2:24; 마 19:5; 엡 5:31). 이런 의미에서 성관계는 결혼 언약에 대한 최종 인침입니다. 하지만 성관계가 결혼을 성립시킨다는 견해는 성경적으로 건전하지 않습니다. 만일 어떤 부부가 합법적으로 결혼 예식을 치렀으나 어떤 이유로 인하여 성관계를 갖지 못하였더라도 그 부부는 여전히 결혼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우리는 구약이 종종 아내와 첩을 구별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나님은 성관계를 결혼과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예를 들면, 역대하 11장 21절은 한 왕의 가정 생활을 묘사합니다. “르호보암은 아내 열여덟 명과 첩 예순 명을 거느려 아들 스물여덟 명과 딸 예순 명을 낳았으나 압살롬의 딸 마아가를 모든 처첩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이 구절에서 처첩들은 르호보암 왕과 성관계를 갖지만 아내들로 간주되지 않고 다른 구별된 부류로 언급됩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7장 2절은 결혼 전의 성행위는 부도덕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만일 성관계로 인하여 어떤 커플이 결혼한 부부가 되는 것이라면, 결혼 전의 성행위는 부정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커플이 성행위를 하는 순간 결혼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결혼하지 않는 커플이 먼저 성관계를 갖은 후에 결혼을 선포하고 그 이후의 모든 성관계에 대해 도덕적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은 결코 성경적인 지지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결혼이 성립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다음의 원칙들을 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1)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 합법적인 유구 사항이라면 남자와 여자는 공식적인 정부의 허락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2) 남자와 여자는 그 커플을 ‘공식적으로 결혼시키는’ 전형적인 문화적, 가족적, 언약적 관습을 따라야 합니다. 3) 가능하다면, 남자와 여자는 육체적으로 ‘한 몸’ 되는 원칙을 성취하기 위해 성적인 관계로 결혼을 완성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원리 중 하나 이상이 충족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한 커플은 여전히 하나님의 앞에서 결혼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까? 궁극적으로 결혼은 그 커플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요일 3:20). 하나님은 진정한 결혼 언약과 성적인 부도덕을 정당화시키려는 시도의 차이점을 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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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30)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예수께서 어떤 여인이 여러 번 결혼했다면 그 여인은 천국에서 누구와 결혼한 것이 되느냐는 질문에 답변하신 내용입니다(마 22:23-28). 분명히 하늘에는 결혼 같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과 아내가 더 이상 하늘에서 서로를 알아볼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것은 또한 남편과 아내가 여전히 천국에서 가까운 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남편과 아내는 더 이상 하늘에서 결혼 상태로 있지 않을 것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아마 분명한 것은, 천국에서는 결혼이 필요 없기 때문에 결혼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결혼을 제정하실 때 그분은 특정한 필요를 채우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아담이 동반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셨습니다. 주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와는 아담의 외로움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그의 필요를 채워주는 해답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외로움이 없으며 돕는 배필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수 많은 신자들과 천사들에 의해 둘러싸일 것이며(계 7:9) 동반자에 대한 필요를 포함한 우리의 모든 필요가 다 채워질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사람이 자녀를 낳고 이 땅에 가득하여질 수 있도록 결혼을 제정하셨습니다. 하지만 천국은 출산에 의해 채워지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 그곳에 들어갑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출산에 의해 태어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천국에는 출생이나 외로움이 없기 때문에 결혼의 목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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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위한 적합한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며 각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성숙 수준과 삶의 경험은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18세에 결혼할 준비가 되며 어떤 사람들은 전혀 결혼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이혼율이 50%가 넘는 것을 볼 때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결혼 생활을 영원한 헌신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과 언제나 상충되는 세속적인 관점입니다(고전 3:18).

성공적인 결혼을 위해서는 견고한 기초가 반드시 필요하며, 그 기초는 심지어 결혼을 전제로 하는 데이트나 연애가 시작되기 전에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단지 주일에 교회에 참석하고 성경 공부에 참여하는 그 이상을 포함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결혼에 임하기 전에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견해를 배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혼 생활을 하기 전에 성경이 사랑, 헌신, 성관계, 남편과 아내의 역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최소한 본 받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 결혼 부부 한 가정을 모델로 삼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이가 많은 부부는 성공적인 결혼 생활, 친밀감 형성 방법(신체의 관계를 넘어서는), 믿음의 중요성 등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하게 될 커플은 그들이 서로를 잘 알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들은 결혼 생활, 재정, 사돈, 자녀 양육, 훈육, 남편과 아내의 의무, 그들 중 한 사람 또는 모두가 직장을 가질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서로의 견해를 알아야 하고 또한 상대의 영적 수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 배우자가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결혼하지만 나중에 보면 단지 말 뿐인 것을 알게 됩니다. 결혼을 고려하는 모든 커플은 반드시 기독교 결혼 전문 상담자 또는 목사와 상담을 해야 합니다. 사실, 많은 목사들이 결혼 상담을 받지 않은 커플에 대해서는 결혼식을 집행하지 않습니다.

결혼은 헌신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맺는 언약입니다. 결혼은 나의 배우자가 부자이든 가난하든, 건강하든 병이 들었든, 살이 쪘든, 말랐든, 지루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나의 남은 인생을 그 사람과 함께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싸움, 분노, 황폐, 재앙, 우울함, 괴로움, 중독 및 외로움을 포함하여 모든 상황을 견뎌야 합니다. 이혼은 선택 사항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결혼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심지어 마지막 수단으로 여겨서도 안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통해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합니다(눅 18:27). 그리고 이 사실은 분명히 결혼을 포함합니다. 만일 어떤 커플이 처음에 헌신하기로 다짐하고 하나님을 우선으로 모신다면 이혼은 비참한 상황에 대한 불가피한 해결책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의 소망을 주시지만 그 소망은 우리가 그분의 뜻에 따를 때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단지 느낌 때문에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데이트의 초기 단계와 결혼 때의 상대 모습이 크게 다른 것을 보면서 너무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연애의 절정에 닿으면 당신은 ‘사랑에 빠진’ 느낌을 알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감정이 영원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결과 실망이 찾아오고 심지어 그러한 감정이 사라지면 이혼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와의 뜨거운 흥분이 끝나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은 당황하는 대신에 더 깊은 사랑, 더 강한 헌신, 더 든든한 기초, 그리고 깨어질 수 없는 안전한 관계에 이릅니다.

성경은 사랑이 감정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 분명합니다(눅 6:35). 참된 사랑은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도록 하여 우리의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실 때 가능합니다(갈 5:22-23). 그 사랑은 날마다 내 자신과 이기심에 대해 죽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빛을 내시도록 할 때 나타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우리가 고린도전서 13장 4-7절이 묘사한 대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준비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할 적절한 때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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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와 결혼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가장 어려운 도전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결혼은 두 사람을 한 몸으로 결합시키는 거룩한 언약입니다(마 19:5). 신자와 불신자가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있습니다(고후 6:14-15). 만일 한 배우자가 결혼 후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곧바로 서로 다른 두 권위 하에서 살아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갈등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결혼 생활에서 벗어날 길을 찾고,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은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그 상황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도전되는 그 환경에서 주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고전 7:17). 성경은 고린도전서 7장 12-14절에서 불신자와 결혼한 사람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느니라".

불신자와 결혼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 빛 가운데 살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요일 1:7). 그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 내시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갈 5:22-23). 신자인 아내는 불신자인 남편에게 복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벧전 3:1),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가까이 하며 그분의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독신 생활을 살도록 의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교회와 성경 공부반과 같은 외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불신자와의 결혼 상태가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를 바꾸지는 못하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빛이 밝게 비칠 수 있도록 상대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고 또한 좋은 본을 보여야 합니다(빌 2:14). 베드로전서 3장 1절에서 발견되는 진리, 곧 불신자 배우자를 구원시키는 것이 불신자와 결혼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며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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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몸"이라는 용어는 창세기에서 하와의 창조 기사에서 나옵니다. 창세기 2장 21-24절은 하나님이 아담이 잠든 사이에 그의 옆구리에서 갈빗대를 취하여 하와를 창조하신 과정을 묘사합니다. 아담은 하와가 그의 일부임을 인식했습니다. 그 둘은 사실 "한 몸"이었습니다. "한 몸"이라는 말은 우리 몸이 하나의 전체이며, 부분으로 나뉠 수 없고 여전히 전체이듯이 하나님이 결혼 관계를 그렇게 의도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두 개체(두 개인)가 아니라 하나의 개체(결혼한 부부)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연합에는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감정적인 애착에 관한 한, 새로운 개체는 이전 및 미래의 모든 관계에 우선합니다(창 2:24). 일부 결혼한 자는 새로운 파트너보다 부모와의 관계에 계속해서 더 큰 비중을 둡니다. 이것은 결혼 생활에 재앙을 가져다 주며, "떠남과 합함"에 대한 하나님 원래의 의도를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한 배우자가 감정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파트너보다 자녀에게 더 가까워지는 것 역시 유사한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지적으로, 재정적으로, 그리고 다른 모든 면에서, 부부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몸의 한 부분이 다른 신체 부위를 보살 피는 것처럼 (위장은 신체를 위한 음식을 소화하며, 두뇌는 몸 전체를 위해 몸을 지시하고, 손이 몸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각 파트너는 결혼 생활에서 상대방을 돌보아야 합니다. 각 파트너는 더 이상 자신이 번 돈을 ‘내 돈’으로 여겨서는 안 되고 ‘우리 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22-33절과 잠언 31장 10-31절은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 이 ‘하나 됨’을 각각 적용시킵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한 몸이 되고, 연합의 결과로 자녀들을 낳게 됩니다. 그 아이들은 이제 부모의 연합에 따른 특별한 유전체 구성을 소유하게 됩니다. 심지어 부부는 성적인 측면에서도, 자신들의 몸을 자기 것으로 여기기보다 서로에게 속한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고전 7:3-5). 그들은 자신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에게 즐거움을 주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 됨 및 서로에게 유익을 주려는 욕구는 특히 인류가 죄에 빠진 이후로 저절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창세기 2장 24절을 보면, 남자는 그의 아내에게 "합하여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단어의 배후에 두 가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의 아내에게 붙어야 한다는 것으로서 결혼 유대가 얼마나 단단한 지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다른 측면은 아내를 열심히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 "열심히 추구하다"는 것은 결혼 생활로 이어지는 구애를 넘어서서 결혼 생활을 지속시키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성향은 배우자에게 무엇이 유익할지를 고려하기보다는 "나를 어떻게 기분 좋게 할지"에 관심을 쏟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중심성은 신혼 여행이 끝나자마자 일반적으로 그 결혼을 지루한 결혼 생활로 이끌고 들어갑니다. 각 배우자는 자신의 필요가 충족되지 못한 것에 대해 계속 마음을 쓰는 대신에 상대 배우자의 필요를 채워주는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함께 사는 것이 멋진 것처럼 하나님은 결혼에 대해 더 높은 요구를 하셨습니다. 결혼 전에 그들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섬겼더라도(롬 12:1-2), 이제는 한 몸 되어 그리스도를 섬겨야 하고 그들의 자녀도 하나님을 섬기도록 양육해야 합니다(고전 7:29-34; 말 2:15; 엡 6:4). 사도행전 18장에 나오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부부로서 함께 그리스도를 섬기면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이 우리의 결혼 생활에 차고 넘칠 것입니다(갈 5:22-23). 에덴 동산에는 아담과 하와와 하나님, 이렇게 셋이 있었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의 결혼 생활의 중심에 계시다면 기쁨 역시 넘칠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참되고 완전한 하나 됨은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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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다처제에 관한 질문은 성경 어디에서도 그것을 명백하게 정죄하고 있지 않은 반면,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일부다처제 및 중혼의 첫 번째 예는 창세기 4장 19절에 있는 라멕의 경우입니다.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더라”. 구약 성경에서 몇몇 유명한 사람들은 일부다처자였습니다. 아브라함, 야곱, 다윗, 솔로몬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여러 아내를 두었습니다. 사무엘하 12장 8절을 보면,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는데 다윗의 아내와 첩이 부족하다면 더 주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열왕기상 11장 3절에 따르면, 솔로몬은 700명의 아내와 300명의 첩(아내보다 낮은 신분)을 두었습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일부다처제를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해 답변이 필요합니다. 1) 왜 하나님은 구약에서 일부다처제를 허락하셨습니까? 2) 하나님은 오늘날 일부다처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3) 왜 일부다처제는 바뀌게 되었습니까?

1) 왜 하나님은 구약에서 일부다처제를 허락하셨습니까? 성경은 왜 하나님이 일부다처제를 허락하셨는지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추측해 볼 때, 몇 가지 고려해야 할 핵심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여아보다 남아가 약간 더 많지만, 여성의 수명이 좀 더 길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의 수가 항상 더 많았습니다. 현재 통계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약 50.5 %가 여성입니다. 고대에 똑같은 비율을 가정하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곱하면, 남성보다 여성이 수만 명 더 많게 됩니다. 둘째, 고대의 전쟁은 특히 잔인했으며, 치명적인 사망률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비율을 훨씬 더 증가 시킵니다. 셋째, 가부장적인 사회 때문에 미혼 여성이 스스로 공급하며 사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여성은 종종 교육을 받지 못했고 훈련도 받지 못했습니다. 여성들은 공급과 보호를 위해 아버지, 형제, 또는 남편을 의지했습니다. 미혼 여성들은 종종 매춘과 노예로 팔렸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수의 심각한 차이로써 많은 여성들이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에 남게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남편을 찾을 수 없는 여성들을 보호하시고 공급하시기 위해 일부 다처제를 허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한 남자가 여러 아내를 데리고 그들 모두의 공급자이자 보호자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 확실히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일부다처제 가정에서 생활하는 것은 매춘, 노예 또는 기아와 같은 대안보다 훨씬 낫습니다. 보호 및 공급 요인 외에도 일부 다처제는 인류의 훨씬 빠른 확장을 가능하게 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창 9:7)는 하나님의 명령을 성취하게 하였습니다. 남자들은 같은 시기에 여러 여인들을 임신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각 남자가 매년 한 아이를 낳는 것보다 훨씬 빨리 인류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은 오늘날 일부다처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심지어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동안에도, 성경은 일부일처제를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과 가장 근접한 계획으로 제시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원래 의도가 한 사람이 오직 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창세기 2장 24절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연관되는지보다 결혼이 무엇인지를 묘사하는 한편, 신명기 17장 14-20절을 보면 한 사람과의 결혼이 일관적으로 언급되는 것을 주목할 수 있고, 하나님은 왕들도 여러 명의 아내들(말들, 금)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내용은 왕들이 일부일처여야 한다는 명령으로 해석될 수는 없지만, 여러 아내를 취하는 것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선언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생애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왕상 11:3-4).

신약의 디모데전서 3장 2, 12절과 디도서 1장 6절은 영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자격 목록에 "한 아내의 남편"을 둡니다. 이 자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는 몇 가지 논쟁이 있습니다. 이 문구는 문자 그대로 "한 여인"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이 구가 일부다처제만을 말하는 것이든 아니든, “한 아내의 남편”은 결코 일부다처주의자로 간주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자격 조건은 영적 지도자의 위치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되면서도 그 자격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책망할 것이 없으며 절제하며 신중하고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딤전 3:2-4) 하지 않습니까? 만일 우리가 거룩함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벧전 1:16), 그리고 이러한 기준들이 장로들과 집사들을 위한 기준이라면, 그 기준들은 우리 모두를 위한 거룩한 기준들입니다.

에베소서 5장 22-33절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 말합니다. 그 구절은 남편(단수)을 언급할 때 언제나 아내(단수)도 언급합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단수)의 머리 됨이 …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단수) 사랑하기를 …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단수)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단수)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단수)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골로새서 3장 18-19절은 다소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복수형의 남편과 아내를 언급합니다. 하지만 이 내용은 바울이 한 남편이 여러 아내를 둘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골로새의 신자들 중에 모든 남편과 아내에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에베소서 5장 22-33절은 대조적으로 부부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만일 일부다처제가 허용된다면, 그리스도와 그분의 몸(교회)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비유하여 설명하려는 전체 논증이 무너지게 됩니다.

3) 왜 일부다처제는 바뀌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이전에 허락하셨던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원래 계획대로 결혼을 회복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심지어 아담과 하와로 돌아가더라도, 일부다처제는 하나님의 원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부다처제를 허락하셨던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제도가 하나님의 이상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현대 사회에서 일부다처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여성들은 자신을 공급할 수 있고 보호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일부다처제의 ‘긍정적인’ 면을 대치하는 것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현대 국가에서는 일부다처제를 금지합니다. 로마서 13장 1-7절을 따르면 우리는 정부가 세운 법을 지켜야 합니다. 법에 불순종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성경에 의해 허락되는 경우로서 그 법이 하나님의 명령과 모순되는 경우입니다(행 5:29). 하나님은 일부다처제를 허락만 하실 뿐 그것을 명령하지 않으시므로 일부다처제를 금지하는 법은 지켜져야 합니다.

일부다처제가 여전히 허용될 수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까? 아마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해결책이 불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결혼의 "한 몸"이라는 측면, 결혼에 있어서의 하나됨과 조화의 필요성, 그리고 일부다처제에 대한 진정한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일부다처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으며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고 확고하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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