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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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반
사도행전 20:1~16
불가(佛家)에서는 도(道)를 통해 사귄 친구를 도반(道伴)이라고 합니다. 도반이란 ‘곧고 너그럽고 앎이 많은 벗’으로 동심동체(同心同體)의 동지를 일컫습니다. 인생에서 많은 벗을 만나지만 가장 진실한 벗, 영원성을 가진 벗은 말씀(道) 안에서 만난 벗이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역사에서 믿음의 벗을 이단으로 몰아 내친 경우가 적잖고, 지금도 신학교에서 학문의 자유를 유린하는 만행이 그치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편들었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교회에서 쫓아내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허다하니 도반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우리는 믿음 안에서 말씀을 통해 만난 벗들을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지 의문입니다. 정겨운 도반이 아니라 경쟁하는 도적(道敵)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없지 않으니 씁쓸하고 슬픕니다. 철부지 외골수 신학이 만든 폐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라는 표현이 유달리 눈에 띄입니다(5, 6, 7, 8, 13, 14). 각자도생, 제각기 살길을 모색하는 시대에 ‘우리’라는 인칭대명사를 대하니 마음이 울컥합니다. 과연 나에게 ‘우리’란 누구를 포함하고 있을까, 우리는 과연 한 지향을 향하여 한 길을 걷는 존재일까요? 바울 일행이 표현하는 ‘우리’란 말씀을 함께 공부하며 한 식탁에 앉는 친밀성, 먼 길에서 서로 기다리고 맞이하는 신뢰감, 한배를 탄 운명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바울 일행이 주도하는 복음의 세계화는 이런 ‘우리’가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만일 이 말이 맞는다면 오늘처럼 복음의 퇴행기에는 그런 ‘우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우리’는 없고 ‘나’만 존재하는 시대에 과연 복음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까요? 나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가치와 지향을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복음은 생명력을 점점 상실하고 있는데 제 교회의 부흥에 만족하여 흥겨워하는 모습이 철부지처럼 보입니다. 담 밖에서는 증오와 전쟁과 불의 등 온갖 불행이 실현되고 있는데 담 안에서 행복에 겨워하는 이기주의 현실이 안쓰럽고 역사가 종말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 때에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이 아쉽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이기 이전에 여기서 실현해야 할 가치 아닌가요?
주님, 바울에게 좋은 도반을 허락하신 주님께서 이 시대에도 ‘우리’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는 공동체성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빕니다.
2024. 6. 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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