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당신!
기독정보닷컴
1991
0
29
0
2021.09.10 18:59
영혼의 양식 91-30호 1991.07.28.
성서일과 ; 삼하12:1-4, 엡3:14-21, 요6:1-15.
제목 ; 바로 당신!
현재는 뚜렷하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지금으로부터 약 20~25년 전, 극동방송 아침 프로에 “은혜의 아침”이라는 방송 시간이 있었습니다. 최근 계속 크게 보도되고 있는 오대양 사건 관련설로 유명해진 구원파의 교주인 권신찬 목사의 설교 시간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침 8시이면 들을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어서 꽤 자주 들은 기억이 납니다. 경상도 억양의 독특한 음성인 권목사의 설교 내용이 어떠했는지는 지금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기억이 나는 것은, 특별 집회가 매 주일 오후 몇시에 용산 어디선가 있다는 방송이 자주 있더니, 설교 방송이 중단되었다는 것뿐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권목사의 독특한 구원론이 문제가 되어서 권목사가 방송국에서 쫓겨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구원파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가 가르친 제자 중 하나가 구원파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서부터입니다. 지금은 그 제자가 국민학교 교사로 있습니다만, 그 제자의 아버지는 감리교회 장로였고 어머니는 권사였습니다. 그 오빠는 목원대 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올케가 감리교회 유명한 목사님의 딸입니다. 올케가 그 제자의 가정으로 시집오면서 모든 식구가 구원파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구원파의 정식 명칭이 기독교 복음 침례회라고 하는데, 이 교단의 총 회장은 정 행덕 목사입니다. 이 정 행덕 목사는 바로 감리교 목사이면서 목원대 신학과 교수였습니다. 그리고 감리교 목사이면서 대전여자초급대학 교목이었던 이 성삼 교수의 부인과 딸이 지난 번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으로 죽었습니다.
이러한 구원파이기 때문에, 저는 이번 사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종교가 돈과 섹스에 관련되게 되면 아주 더럽게 타락하고 맙니다. 그런데 의례히 이단 종파는 돈과 섹스에 관련되어 끝내는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박 태선 장로의 전도관이 그렇고, 통일교도 종교라고 하기보다는 땅 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악덕 재벌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구원파가 바로 이러한 경우에 속합니다. 실질적인 교주라고 하는 유 병언 목사가 운영하고 있는 『세모』나 『삼우 트레이딩』, 그 밖에 오대양과 관련된 여러 회사들, 이런 회사들을 통하여 구원파는 온갖 비리를 행하고 있음이 지금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거짓된 모습이 밝혀질까봐 수십 명씩 죽일 수 있는 그들의 죄악상은 소림이 끼칠 정도입니다.
오늘 제가 구원파의 이야기를 이처럼 자세히 말씀드리는 것은, 어쨌든 같은 종교인으로서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단종파일지라도 하나님을 찾고 있는 그들이 시치미 뚝 떼고 있었습니다. 탁 명환 소장이 걸고넘어지자 무고 혐의로 고발을 했습니다. 이번에 관련자들이 자수하게된 동기가 무엇인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박 찬종 의원이 세모와의 관련설을 밝히자, 세모측에서는 반박 성명을 신문 1면 광고로 게재하였습니다. 유 병언씨는 목사도 아니고 교회도 다니지 않는다, 송 재화 여인은 딱 한번 만났을 뿐이지 아무 관련이 없다, 관련설을 퍼뜨리고 있는 박 찬종 의원은 사과를 하고 자중을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보면, 유 병언씨의 주장은 모두가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박 순자 여인이 거짓말로 끌어 모은 엄청난 사채가 세모로 흘러 들어갔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거짓말, 또 거짓말. 이것이 세모와 구원파의 실체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서 다윗은, 처음에는 자기 잘못을 감추어 두고 태연히 위장을 했으나, 나중에 자신의 잘못이 밝혀지자 솔직히 자기 죄를 시인하고 용서를 빌고 있습니다. 멋있는 사람입니다. 과연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만한 위치에서 얼마든지 자기 잘못을 감추어둘 수 있었으련만, 다윗은 자기 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단 선지자, 그런 사람 한 명쯤은 단칼에 없앨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던 다윗이었지만, 그는 나단 선지자를 두려워 한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낸 하나님을 더 두려워 한 까닭에, 나단 선지자의 말에 무릎을 꿇고 만 것입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다윗이 간음죄와 살인죄를 짓고서도 하나 반성하는 빛 없이, 우리야를 죽이고 나서 그 아내를 데려다가 후궁으로 삼아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지은 죄는, 간음죄와 살인죄라는 죄보다 더 큰 죄인,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속이는 죄를 짓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을 꾸짖게 된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꺼냅니다.
『어떤 성(城)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부자였고 한 사람은 가난했다. 부자는 이것 저것 아주 많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암양 새끼 한 마리 뿐 이었다. 가난한 이는 그 양을 친딸 기르듯이 애지중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자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부자는 손님 대접을 하는데 자기 집 소와 양이 아까워, 가난한 집 새끼 양을 뺏아다가 손님 대접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이야기를 듣자, 분노를 하면서 소리쳤습니다. 『저런 죽일 놈!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는가? 그런 인정머리 없는 놈을 그냥 둘 수는 없다. 양 한 마리 대신 네 배로 갚도록 하라.』이 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요!』 그러면서 나단 선지자는 계속해서 다윗의 죄를 낱낱이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어째서 너는 나를 얕보며 내 눈에 거슬리는 짓을 했느냐?』고 말입니다.
다윗은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여호와 하나님께 죄를 지었소.』
죽음을 무릎 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나단 선지자도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지만, 더욱 용기 있는 사람은 자기 죄를 솔직히 시인한 다윗왕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의 영웅인 다윗의 그 부끄러운 면을 여실히 기록한 것 또한 우리들이 경탄해야 할 사실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전 두환 전(前)대통령은 “내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 라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빌고, 노 태우 대통령 또한 “우리가 정권을 ○○질 한 것은 큰 잘못이었습니다” 라고 사과 성명을 내고 하야를 한다면, 우리 나라는 얼마나 멋있는 민족이 될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우리 민족은 이처럼 훌륭한 사람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노라고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처럼, 우리도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두 분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다윗과 같이 솔직한 지도자를 모실 수 있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시다.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1. 진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털어놓고 하나님의 심판을 조용히 기다리기보다는, 거짓된 사람이 큰소리치는 세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술수로 적당히 넘기면 잘 될 줄로 믿고 있습니다. 다윗이 처음에 그러했습니다. 밝은 눈동자로 살펴보고 계신 하나님을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파의 권 신찬 목사나 유 병언씨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들의 계산대로 이루어 질 줄로 알았습니다. 자기들의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 다고 하면서, 다른 교회는 구원이 없고 자기네 교회만 다녀야 구원이 잇노라고 주장하던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슬리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빌립 처럼 계산이 빠르나,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말씀을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빌립은 그동안 예수님을 좇아 다니면서 많은 기적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또다시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면 능히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쉽게 인간적인 계산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5천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자면 2백만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는 계산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런 돈이 현재 없으므로 저들에게 먹을 것을 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아예 그런 이야기는 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하면서도, 생각은 세상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빌립의 계산은, 다윗이 하나님의 눈길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죄를 지은 것처럼, 아주 잘못된 신앙 자세입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실 때 인간의 힘을 의지 했었나요? 오로지 하나님은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실 뿐이지,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셨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빌립은 자기 두 눈으로 그런 하나님의 역사를 너무 많이 목도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인간적인 사고 방식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사랑을 이루려는 의지만 있으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셔서 그 사랑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만일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정한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2.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심으로써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의 생활 전부를 보살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도구로 삼으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과 늘 함께 동행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윗이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는 죄를 짓고, 모든 것을 밝히 아시는 하나님의 능력까지도 부인한 것입니다. 빌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주님과 동행하면서 동거동락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의 존재를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하시고자 하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만 한다면,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살려고 하지 않고, 자꾸만 자기 뜻과 욕심대로 살려고 하는데서 생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외면하고 회피하면, 그보다 더 큰 불경(不敬)은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3장 17절에서 우리들이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가도록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힘을 돋구어 내적 인간을 굳세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바울이 원하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의 삶을 힘차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빌립에게 바랬던 것도,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사 먹일 돈걱정보다는, 굶주린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관심이었습니다. 돈이 얼마 들든지 그것은 걱정하지 말고, 군중들에 대한 애정을 가져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요렇게 따지고 저렇게 따지며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러도 이웃을 도울만한 형편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정없이 이웃을 돕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뒷감당은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웃을 돕지 못하는 것은 이기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관심입니다. 시간이 없네, 돈이 없노라고 하는 것은 다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져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려면 자기 욕심을 억제하고 세상적인 계산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 욕정을 채우기 위하여 가장 가까운 이웃인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빌립은 군중들에 대한 안타가운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먹을 것을 공급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세상적인 계산 방식에 얽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 깨달아 알 수 있다』고, 바울은 에베소서 3장 18절에서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살게 되면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된다』고, 19절에서 계속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현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제한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무한한 능력으로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3.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신비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아는 은혜의 생활을 합시다
우리의 가장 큰 잘못은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거나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진정 돌아와 주를 의지함으로써 풍성한 은혜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다윗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그 죄를 뉘우침으로 성군(聖君)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내 잘못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에 좋은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세상적인 사고 방식을 버리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교회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던 구원파가 가장 세상적인 방법으로 돈벌이에 급급했던 그 어리석음을 우리는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름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일 이루어 가는 일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일, 하나님의 일, 내가 할 일을 외면하지 말고 감당해야 합니다. 돈 걱정, 시간 걱정은 하나님께 맡기고 주의 뜻대로 살아 보십시오. 분명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서도 얼마든지 이 사실을 보증할 수 있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내 이익이나 내 생각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면 따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뒷감당을 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 위에 넘치는 사랑과 은혜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용기를 배웁시다. 가던 길이 잘못되었으면 솔직히 그 잘못을 시인하고 고쳐 살 수 있는 용기. 그러한 용기를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큰 축복을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오늘 우리를 향하여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잘못을 고쳐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내가 잘못했소!』라고 말입니다. 그런 다음에, 그 잘못을 고쳐 살면 하나님께서는 전보다 몇 갑절 더 큰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러한 은혜의 삶, 축복된 생활을 다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성서일과 ; 삼하12:1-4, 엡3:14-21, 요6:1-15.
제목 ; 바로 당신!
현재는 뚜렷하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지금으로부터 약 20~25년 전, 극동방송 아침 프로에 “은혜의 아침”이라는 방송 시간이 있었습니다. 최근 계속 크게 보도되고 있는 오대양 사건 관련설로 유명해진 구원파의 교주인 권신찬 목사의 설교 시간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침 8시이면 들을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어서 꽤 자주 들은 기억이 납니다. 경상도 억양의 독특한 음성인 권목사의 설교 내용이 어떠했는지는 지금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기억이 나는 것은, 특별 집회가 매 주일 오후 몇시에 용산 어디선가 있다는 방송이 자주 있더니, 설교 방송이 중단되었다는 것뿐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권목사의 독특한 구원론이 문제가 되어서 권목사가 방송국에서 쫓겨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구원파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가 가르친 제자 중 하나가 구원파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서부터입니다. 지금은 그 제자가 국민학교 교사로 있습니다만, 그 제자의 아버지는 감리교회 장로였고 어머니는 권사였습니다. 그 오빠는 목원대 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올케가 감리교회 유명한 목사님의 딸입니다. 올케가 그 제자의 가정으로 시집오면서 모든 식구가 구원파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구원파의 정식 명칭이 기독교 복음 침례회라고 하는데, 이 교단의 총 회장은 정 행덕 목사입니다. 이 정 행덕 목사는 바로 감리교 목사이면서 목원대 신학과 교수였습니다. 그리고 감리교 목사이면서 대전여자초급대학 교목이었던 이 성삼 교수의 부인과 딸이 지난 번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으로 죽었습니다.
이러한 구원파이기 때문에, 저는 이번 사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종교가 돈과 섹스에 관련되게 되면 아주 더럽게 타락하고 맙니다. 그런데 의례히 이단 종파는 돈과 섹스에 관련되어 끝내는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박 태선 장로의 전도관이 그렇고, 통일교도 종교라고 하기보다는 땅 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악덕 재벌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구원파가 바로 이러한 경우에 속합니다. 실질적인 교주라고 하는 유 병언 목사가 운영하고 있는 『세모』나 『삼우 트레이딩』, 그 밖에 오대양과 관련된 여러 회사들, 이런 회사들을 통하여 구원파는 온갖 비리를 행하고 있음이 지금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거짓된 모습이 밝혀질까봐 수십 명씩 죽일 수 있는 그들의 죄악상은 소림이 끼칠 정도입니다.
오늘 제가 구원파의 이야기를 이처럼 자세히 말씀드리는 것은, 어쨌든 같은 종교인으로서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단종파일지라도 하나님을 찾고 있는 그들이 시치미 뚝 떼고 있었습니다. 탁 명환 소장이 걸고넘어지자 무고 혐의로 고발을 했습니다. 이번에 관련자들이 자수하게된 동기가 무엇인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박 찬종 의원이 세모와의 관련설을 밝히자, 세모측에서는 반박 성명을 신문 1면 광고로 게재하였습니다. 유 병언씨는 목사도 아니고 교회도 다니지 않는다, 송 재화 여인은 딱 한번 만났을 뿐이지 아무 관련이 없다, 관련설을 퍼뜨리고 있는 박 찬종 의원은 사과를 하고 자중을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을 보면, 유 병언씨의 주장은 모두가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박 순자 여인이 거짓말로 끌어 모은 엄청난 사채가 세모로 흘러 들어갔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거짓말, 또 거짓말. 이것이 세모와 구원파의 실체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서 다윗은, 처음에는 자기 잘못을 감추어 두고 태연히 위장을 했으나, 나중에 자신의 잘못이 밝혀지자 솔직히 자기 죄를 시인하고 용서를 빌고 있습니다. 멋있는 사람입니다. 과연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만한 위치에서 얼마든지 자기 잘못을 감추어둘 수 있었으련만, 다윗은 자기 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단 선지자, 그런 사람 한 명쯤은 단칼에 없앨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던 다윗이었지만, 그는 나단 선지자를 두려워 한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낸 하나님을 더 두려워 한 까닭에, 나단 선지자의 말에 무릎을 꿇고 만 것입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다윗이 간음죄와 살인죄를 짓고서도 하나 반성하는 빛 없이, 우리야를 죽이고 나서 그 아내를 데려다가 후궁으로 삼아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지은 죄는, 간음죄와 살인죄라는 죄보다 더 큰 죄인,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속이는 죄를 짓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을 꾸짖게 된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꺼냅니다.
『어떤 성(城)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부자였고 한 사람은 가난했다. 부자는 이것 저것 아주 많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암양 새끼 한 마리 뿐 이었다. 가난한 이는 그 양을 친딸 기르듯이 애지중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자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부자는 손님 대접을 하는데 자기 집 소와 양이 아까워, 가난한 집 새끼 양을 뺏아다가 손님 대접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이야기를 듣자, 분노를 하면서 소리쳤습니다. 『저런 죽일 놈!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는가? 그런 인정머리 없는 놈을 그냥 둘 수는 없다. 양 한 마리 대신 네 배로 갚도록 하라.』이 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요!』 그러면서 나단 선지자는 계속해서 다윗의 죄를 낱낱이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어째서 너는 나를 얕보며 내 눈에 거슬리는 짓을 했느냐?』고 말입니다.
다윗은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여호와 하나님께 죄를 지었소.』
죽음을 무릎 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나단 선지자도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지만, 더욱 용기 있는 사람은 자기 죄를 솔직히 시인한 다윗왕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의 영웅인 다윗의 그 부끄러운 면을 여실히 기록한 것 또한 우리들이 경탄해야 할 사실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전 두환 전(前)대통령은 “내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 라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빌고, 노 태우 대통령 또한 “우리가 정권을 ○○질 한 것은 큰 잘못이었습니다” 라고 사과 성명을 내고 하야를 한다면, 우리 나라는 얼마나 멋있는 민족이 될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우리 민족은 이처럼 훌륭한 사람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노라고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처럼, 우리도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두 분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다윗과 같이 솔직한 지도자를 모실 수 있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시다.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1. 진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털어놓고 하나님의 심판을 조용히 기다리기보다는, 거짓된 사람이 큰소리치는 세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인 술수로 적당히 넘기면 잘 될 줄로 믿고 있습니다. 다윗이 처음에 그러했습니다. 밝은 눈동자로 살펴보고 계신 하나님을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파의 권 신찬 목사나 유 병언씨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들의 계산대로 이루어 질 줄로 알았습니다. 자기들의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 다고 하면서, 다른 교회는 구원이 없고 자기네 교회만 다녀야 구원이 잇노라고 주장하던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슬리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빌립 처럼 계산이 빠르나,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말씀을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빌립은 그동안 예수님을 좇아 다니면서 많은 기적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또다시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면 능히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쉽게 인간적인 계산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5천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자면 2백만 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는 계산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런 돈이 현재 없으므로 저들에게 먹을 것을 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아예 그런 이야기는 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하면서도, 생각은 세상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빌립의 계산은, 다윗이 하나님의 눈길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죄를 지은 것처럼, 아주 잘못된 신앙 자세입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실 때 인간의 힘을 의지 했었나요? 오로지 하나님은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실 뿐이지,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셨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빌립은 자기 두 눈으로 그런 하나님의 역사를 너무 많이 목도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인간적인 사고 방식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사랑을 이루려는 의지만 있으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셔서 그 사랑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만일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정한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2.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심으로써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의 생활 전부를 보살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도구로 삼으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과 늘 함께 동행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윗이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는 죄를 짓고, 모든 것을 밝히 아시는 하나님의 능력까지도 부인한 것입니다. 빌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주님과 동행하면서 동거동락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의 존재를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하시고자 하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만 한다면,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살려고 하지 않고, 자꾸만 자기 뜻과 욕심대로 살려고 하는데서 생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외면하고 회피하면, 그보다 더 큰 불경(不敬)은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3장 17절에서 우리들이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가도록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힘을 돋구어 내적 인간을 굳세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바울이 원하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의 삶을 힘차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빌립에게 바랬던 것도,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사 먹일 돈걱정보다는, 굶주린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관심이었습니다. 돈이 얼마 들든지 그것은 걱정하지 말고, 군중들에 대한 애정을 가져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요렇게 따지고 저렇게 따지며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러도 이웃을 도울만한 형편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정없이 이웃을 돕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뒷감당은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웃을 돕지 못하는 것은 이기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관심입니다. 시간이 없네, 돈이 없노라고 하는 것은 다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져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려면 자기 욕심을 억제하고 세상적인 계산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 욕정을 채우기 위하여 가장 가까운 이웃인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빌립은 군중들에 대한 안타가운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먹을 것을 공급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세상적인 계산 방식에 얽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 깨달아 알 수 있다』고, 바울은 에베소서 3장 18절에서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살게 되면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된다』고, 19절에서 계속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현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제한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무한한 능력으로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3.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신비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아는 은혜의 생활을 합시다
우리의 가장 큰 잘못은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거나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진정 돌아와 주를 의지함으로써 풍성한 은혜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다윗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그 죄를 뉘우침으로 성군(聖君)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내 잘못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에 좋은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세상적인 사고 방식을 버리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교회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던 구원파가 가장 세상적인 방법으로 돈벌이에 급급했던 그 어리석음을 우리는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름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일 이루어 가는 일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일, 하나님의 일, 내가 할 일을 외면하지 말고 감당해야 합니다. 돈 걱정, 시간 걱정은 하나님께 맡기고 주의 뜻대로 살아 보십시오. 분명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서도 얼마든지 이 사실을 보증할 수 있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내 이익이나 내 생각을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면 따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뒷감당을 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 위에 넘치는 사랑과 은혜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용기를 배웁시다. 가던 길이 잘못되었으면 솔직히 그 잘못을 시인하고 고쳐 살 수 있는 용기. 그러한 용기를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큰 축복을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오늘 우리를 향하여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잘못을 고쳐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내가 잘못했소!』라고 말입니다. 그런 다음에, 그 잘못을 고쳐 살면 하나님께서는 전보다 몇 갑절 더 큰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러한 은혜의 삶, 축복된 생활을 다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